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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이라마 비폭력노선 한계오나

    티베트 사태로 달라이 라마(72)의 비폭력 노선도 시련속에 있다. 티베트인들은 그동안 달라이 라마를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하며 비폭력 노선을 따라왔다. 그러나 중국의 독립 요구 시위에 대한 무력 강경 진압을 계기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비폭력 노선에 대한 좌절감과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 이후 16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첫 공식 기자회견을 연 달라이 라마는 “매우 슬프고, 불안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이라고 한탄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전했다. 중국 정부가 한족 출신 중국인들을 티베트에 이주시키는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승려들에 대한 ‘정신교육’ 실시 등 통제를 강화하면서 티베트인들의 불만이 고조돼 왔다. 이런 상황속에 올해 72세인 달라이 라마는 “폭력은 자살행위”라며 여전히 비폭력 노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티베트인들의 폭력시위에 대한 비난도 거부함으로써 달라이 라마 자신이 딜레마에 빠져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티베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시위 중단을 주문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하면서 티베트인의 대변인 격인 자신이 “도덕적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이걸 하라, 혹은 저걸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중국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되 대화를 통해 최대한의 자치를 추구한다.”는 그의 비폭력 중도 노선은 5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자신에게 1989년 노벨평화상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그런 비폭력노선이 시험대위에 있는 셈이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특파원 칼럼] 장이머우 감독, 뭘 보여줄까?/ 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와이어’의 등장을 보고 무릎을 쳤다.“중국 무술영화의 전유물을….” 뒤에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한탄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은 세계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오래전부터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은 “죽을 각오로 준비하고 있다. 성공 아니면 실패의 두 길뿐, 실패하면 죽음”이라며 비장함으로 화답해 주었다. 만약 베이징이 시드니와 경합했던 2000년 올림픽을 치렀더라면, 호기심은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라면 수십년 잠에서 막 깨어나 비약하는, 욱일승천의 중국을 그려내도 무방했을 것이다. 하지만 8년만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당시 ‘가능성’이었고,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중국의 파워는,‘현실’로 나타난 지 오래다. 이런 차에 중국이 ‘힘’을 과시하려 든다면 세계는 ‘조화’를 느끼기보다는 위협을 느끼기 쉬울 것이다. 조용히 일어서려는 ‘화평굴기(和平起)’만으로도 세계는 충분히 겁을 먹고 있다.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그때 개최했어야 했다.”고 지금까지 아쉬워하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이만한 국력과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수도에서 첫번째 올림픽을 치른다는 것이 자랑할 만하냐.”는 얘기다. 오늘에 이르고 보니, 중국은 ‘보여줄 것’이 고민이다. 일단 중국이 내걸고 있는 ‘녹색·과학·인문 올림픽’이란 주제를 살펴보자.‘녹색’은 인류 공통의 목표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 중국 스스로 체화하지는 못한 것이어서 누구에게 내놓을 만한 ‘중국만의 상징 부호’가 되지 못한다. 과학은 당위론이며, 인문은 개념조차 모호하다. 중국 대내적인 주제에 가깝다. ‘하나의 꿈, 하나의 세계’라는 구호는 어떤가. 미국이나 영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구호였다면 혹 어떤 이는 ‘자유’나 ‘인권’을, 프랑스라면 ‘평등’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인도라면 ‘비폭력’이라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거듭되지만, 중국이 세계와 어떤 꿈을 공유하려는지 그 상징성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의 한 주요 관계자는 일전에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화로운 발전과 화평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 어떤 나라도, 민족도, 종교라도 이 올림픽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었다. 아쉽게도 ‘조화로운 발전’‘화평’‘민족’‘종교’ 그 어떤 것도 역시 아직 충분히 중국적이지는 못하다. 88올림픽 때 굴렁쇠를 들고 등장한 어린이는 ‘평화와 화합’을 연상시키기 충분했었다. 한국이 전쟁으로 인한 분단 국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모스크바,LA올림픽은 냉전의 결과로 반쪽 올림픽으로 진행됐던 터였다. 일전에 베이징대학의 석학 지셴린(季羨林)은 “공자(孔子)를 내세워라.”라고 조언했다 한다. 중국 전통문화의 대표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에서 철저히 사망한 공자를 온전히 되살리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다소 동양적이다. 세계로 확산중인 ‘공자학원’처럼 호기심을 줄 수는 있어도 서양을 넘어 세계를 아우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혹자는 ‘일어나라(起來),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여’로 시작, 스스로 ‘과거’를 삭제한 중국 국가(國歌)에서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중국을 느끼기 어려울지 모른다. 세계인들은 40차례 이상의 금메달시장식에서 중국 국가를 듣게 될 것이다. 하필 아테네올림픽이 베이징에 앞서 열린 것도 중국의 많은 장점을 가린다. 장이머우는 색(色)과 장엄함으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리라 믿는다. 관건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다. 오는 8월8일 기자의 상상력의 한계가 입증되길 기대해 본다. 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 모던 타임스/조윤정 옮김

    모던 타임스/조윤정 옮김

    ‘지식인의 두 얼굴’ ‘근대의 탄생’ 등을 저술한 영국의 석학 폴 존슨(80)의 베스트셀러 ‘모던 타임스’(전2권, 조윤정 옮김·살림 펴냄)가 국내 출간됐다. 책이 영국에서 초판된 것은 1983년. 이후 ‘20세기 대표 역사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초판 이후의 10년을 논의 범주에 추가해 1991년 개정판을 냈다. 국내에 선보인 이번 책은 개정판이다. 폴 존슨이 파악한 20세기 세계사의 동력은 정치였다.20세기는 그대로 정치의 시대였다.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70여년의 역사를 조명한 책은 평범한 연대기식 서술방식이 아니라 인물들을 부표로 삼아 주요사건을 재해석했다는 점이 우선 주목할 만하다. 각권이 700여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임에도 주눅들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까닭이다. 저자가 선언한 ‘모던 타임스’의 시발점은 1919년 5월29일이었다. 그날 서아프리카와 브라질에서 촬영된 일식 사진이 젊은 유대계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증명했다. 상대성 이론을 혼동한 산물, 즉 “세계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라는 상대주의적 시각이 세계 정치무대에 만연했다. 기존의 인식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것이 돼버렸고, 사회에는 개인적 책임감과 객관적 도덕규범이 무너져 내렸다.“구질서가 종말을 맞고 방향을 잃은 세계가 상대주의적 우주 속을 떠도는 상황”을 자양삼아 권력의지로 중무장한 독재자들이 세계무대 위로 속속 올라올 수 있었다고 짚는다. 레닌, 스탈린, 히틀러, 무솔리니, 마오쩌둥 같은 인물들이 출현한 태생적 배경이 이렇듯 상대성 이론에 뿌리를 대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레닌은 종교적 혁명가, 히틀러는 낭만적 혁명가 20세기 주요 인물들을 불러내되 그들을 세밀화처럼 정밀묘사한 재담이 독자들에겐 무엇보다 두드러진 흥미포인트이다.1권에서는 권력을 장악하기까지 제각각으로 발현됐던 정치가들의 개인적 성향을 일일이 짚어 보인다. 지나치게 냉담했다는 평가를 들은 레닌. 혁명만을 위해 살았던 그의 외골수 기질 자체가 러시아 혁명과 볼셰비키당의 색깔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히틀러는 어땠을까. 레닌이 종교적 혁명가라면, 그는 “낭만적 혁명가”였다. 화가로 성공하지 못한 히틀러였지만 위축될 때나 혹은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매달릴 때는 예술가의 행동양상을 보였다. 그런 개인적 성향이 독일인의 기질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독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4개 국어를 구사하는 탁월한 언어능력으로 뮌헨회담의 스타로 떠오른 무솔리니는 따져보면 허영심 많은 야망가에 나르시시스트였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저자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여론에 극도로 민감했던 무솔리니의 성향과 천재적 모방능력에 폭력성이 더해져 빚어진 복합적 산물인 것이다. ‘인물’과 ‘사건’의 접점에서 역사를 재평가하는 시각은 상당부분 통념을 뒤집는다. 루스벨트는 “순전히 운이 좋아 미국을 구한 대통령”이었고, 마오쩌둥은 “난폭하고 세속적이며 인정머리 없는 농부”였다. 무솔리니는 “특이한 능력으로 평생 웅장한 오페라와 코미디 사이를 불안하게 오간” 인물이었으며, 처칠은 “대공황 직전 한몫 벌어보려 투기를 하고 객장을 어슬렁거리던” 인물이었다. 비폭력 운동의 상징어가 된 간디에 대해서도 지은이의 평점은 후하지 않다.“간디의 기행은 신성한 기인을 숭배하는 인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의 가르침은 인도의 문제와 인도의 소망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물레를 돌리는 일은 직물을 대량생산하는 나라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가 생각한 식량 정책을 추진했다면, 아마 많은 인도인이 굶어 죽었을 것이다.” 간디가 가난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도 엄청난 돈이 들었다는 등 인물 퍼레이드를 통해 아슬아슬한 통념 전복의 묘미가 이어진다. ●“마오쩌둥은 난폭하고 인정머리 없는 농부” 당대 지성인들을 바라본 시선에도 날이 서 있기는 마찬가지다. 스탈린의 러시아, 마오쩌둥의 중국 실정을 서구에 전했던 당시 지식인들의 시각이 신랄히 까발려지기도 했다. 노동수용소를 두고 “인간을 개조하는 소비에트의 방식은 매우 유명하고 효과적”이라고 찬양한 지식인도 있었다. 저자의 개인적 신념으로 이어지는 서술방식에 논쟁의 여지는 물론 많다. 그러나 20세기 ‘정치 실험’의 폐해를 전방위로 반박한 비판적 사유체계는 오만한 세계 위정자들의 각성제가 되기엔 여전히 유효하다. 각권 2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달팽이 박사 권오길 이야기(이상권 글·유기훈 그림, 봄나무 펴냄) 패류 연구가이자 ‘달팽이 박사’로 평생을 살아온 권오길의 삶을 그린 동화. 작가는 권 박사를 수차례 만나 취재한 이야기를 권 박사의 입말을 살려 생생하게 풀어냈다. 권 박사는 30여년간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달팽이 족보를 만들어냈고,‘과학 에세이’라는 읽기 쉬운 과학책을 써내 과학의 대중화에도 앞장선 인물이다.8500원.●선생님 과자(장명용 어린이 시·김유대 그림, 창비 펴냄) 지금은 30대 직장인이 된 어린이가 1986년에 지은 시를 화가 김유대가 재미있으면서도 정감 있는 그림과 함께 되살려냈다.“선생님이 과자를 잡수시네/선생님 혼자 잡수시네/야, 조거 얼마나 맛있겠노/선생님은 그래도 혼자만 얌얌.”으로 시작하는 짧은 시엔 혼자 과자를 먹는 무심한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의 애달픔이 질박한 사투리 속에 천진하게 녹아 있다.9800원.●청설모 토끼 까치(장주식 글·원혜영 그림, 국민서관 펴냄) 시골 가까이 사는 작가가 실제로 겪은 세 개의 소동을 보태거나 빼지 않고 사실 그대로 그린 작품. 사람과 동물이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환경동화. 아동문학 평론가 원종찬은 ‘청설모 토끼 까치’를 “이 땅과 거기를 지켜 온 사람과 그들의 애끓는 삶에, 동물까지 깊이 끌어올린 작품”이라 평가했다.8000원.●티베트의 영원한 지도자 달라이 라마(김병규 글·김형준 그림, 주니어랜덤) 인도에 망명정부를 수립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싸워온 티베트 종교지도자 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의 삶을 그린 인물 이야기. 그는 89년엔 노벨평화상을, 올 10월엔 미국 국회에서 수여하는 황금 메달상을 받았다. 종교적 화합과 비폭력, 인권 옹호를 위해 노력해온 달라이 라마의 일생이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그려졌다.8000원.
  •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영혜.“남편이 고르고 고른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 영혜는 밤마다 꿈을 꿨고, 한 얼굴을 봤다. 피투성이일 때도 있었고, 썩어 문드러진 시체 같기도 했다. 물컹한 날고기를 씹는 이빨 감촉이 생생했다. 아버지가 죽인 개 흰둥이의 희번덕이는 눈이 선명했다. 영혜는 고기 먹기를 거부했다.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고기냄새가 난다며 남편의 몸을 멀리했다. 빠르게 살이 빠졌고, 아프게 말을 잃었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는 아버지에게 저항하며, 영혜는 손목을 긋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영혜는 동물 아닌 식물로 살고 싶었다. 햇빛과 물로만 견디고 싶었다. 영혜는 나무가 되려 했다. 그렁그렁 눈물 맺힌 언어로 말하는 소설가, 한강(38)은 10년 전 나무가 되고 싶어 결국 나무로 화분에 심긴 여자 이야기(‘내 여자의 열매’)를 썼다. 그 여자가 마음에 맺혀 7년 뒤 연작소설로 되살려냈다. 한강은 여자에 관한 세 편의 중편(‘채식주의자’ 2004,‘몽고반점’ 2004,‘나무불꽃’ 2005)을 발표했고, 최근 소설을 묶어 늦은 책 ‘채식주의자’(창비)를 펴냈다. ●‘기름진 폭력’에 대항하는 담백한 생명뿌리 여자 영혜는 식물 같은 마음을 지녔다.‘식육’(食肉)의 잔인함은 영혜의 여린 줄기에 생채기를 냈다. 줄기는 딱딱한 등걸로 마르지 못했고, 생채기는 옹이로 굳지 못해 늘 아팠다.‘고기를 먹어야 정상인 세계’는 먹힌 목숨들이 영혜의 명치에 끈질기게 달라붙게 했다. 한강은 ‘왜 정상(正常)은 동물성이어야 하는가.’를 물으려 영혜의 ‘식물적 비정상’을 극한으로 몰아갔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초상화이자, 영혜와 함께 우는 작가의 속울음이며, 영혜가 견디지 못한 세상 밑바닥에 대한 폭로다. 연작 두 편째 중편제목이자 영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그 푸릇푸릇한 ‘식물성 낙인’은 작가가 파악하는 세상의 시원이며 근원이다.‘기름진 폭력’에 반대되는 ‘담백한 생명의 뿌리’다.‘고기=육식=동물성=남성성=폭력=파괴’에 대비되는 ‘채소=채식=식물성=여성성=비폭력=구원’의 정점이다. 육식은 욕망이고, 욕망은 폭력의 원천이며, 폭력은 ‘힘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의 에너지원이다. 한강은 영혜를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그래서 욕망과 폭력의 대상이 되고, 영혼이 파괴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그렸다. 한강은 나무의 식물성을 지극한 여성성에 겹쳐 투사한다. 브래지어를 차지 않아 속박 받지 않는 영혜의 가슴은 작가가 소설에 설치한 또 하나의 몽고반점이다. 영혜는 말한다.“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나는 괜찮아(‘채식주의자’ 중에서).” 영혜의 바람과 달리 영혜는 괜찮지 않았고, 영혜의 젖가슴은 자꾸만 여위어 찌르듯 날카로워졌다. 자신을 온전히 보전할 수 없는 식물성이 처한 현실이다. ●동물적 잔인함에 맞서는 ‘퇴행적 진화’ 정신병원 복도 끝에서 영혜가 물구나무 서는 행위도 상징적이다. 땅을 짚은 손에서 뿌리가 돋아 흙을 파고들거라 영혜는 믿는다.‘동물 영혜’가 감행하는 식물로의 ‘퇴행적 진화’는 현 세계에서 ‘보편’을 획득한 ‘고기=동물성=남성성’과 싸우는 한강의 작가의식이다. ‘나무’가 된 영혜가 피우는 꽃은 ‘불꽃’이다. 불꽃은 아름답지만 자기파괴적이다.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 영혜는 자해를 통해 자신의 식물됨을 지키려 한다. 현실에 뿌리박고 하루를 살아내는 식물은 내상이 깊다. 영혜가 다시 말한다.“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나무불꽃’ 중에서).” 세상을 떠받치는 건 동물성의 잔인함이 아니다, 생명을 지탱하는 건 식물성의 싱그러움이다, 물구나무선 영혜가 새빨갛게 피 몰린 얼굴로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젊어서 죽은 가수 김광석은 “한결같이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나무’)를 노래했다.‘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 영혜는 정신병원에서 비를 맞았다. 땅속으로 녹아들어가 다시 거꾸로 돋아나려고,‘나무 영혜’는 비를 맞으며 오늘도 그렇게 서 있다. 아프고 강렬하게.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데스크시각] 미얀마가 버마로 불리는 날/최종찬 국제부 차장급

    지난달 19일 승려들이 이끄는 반정부 민주화 시위로 시작된 미얀마 사태가 한 달을 넘겼다. 전세계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들불처럼 번져가던 민주화시위는 군사정부의 무자비한 강제 진압으로 일단 수그러들었다. 지난 1988년 8월8일의 민주화시위가 3000명의 희생자만 남긴 채 끝난 것과 닮은꼴이다. 총칼과 탱크 앞에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속절없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하지만 총칼을 앞세운 무력의 힘은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1962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해 45년간 누리고 있는 군부의 영화는 이제 끝을 맺을 때가 된 것 같다.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움직임들이 이런 희망을 가능하게 해준다. 먼저, 군부 내의 불협화음을 들 수 있다. 군 장성 일부가 이번 시위 진압에 불만을 품고 항명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군부 서열2위인 마웅 아예 장군이 아웅산 수치여사와 몰래 면담을 하려 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철옹성 같았던 군부의 결집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금이 커지다 보면 군정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다음은 국제사회의 압박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군정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제재 수위는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탄 슈웨 장군 등 미얀마 군부 지도자 14명의 미국내 금융자산을 이미 동결한 미국은 지난 19일 군부 지도자 11명에 대한 추가적인 미국내 금융자산을 동결하고 미얀마에 대한 수출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제재조치를 다시 발표했다. 십시일반으로 각국의 제재조치가 뭉치면 미얀마 군정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동안 미얀마 군정을 은밀히 지원해온 중국과 인도도 세계의 눈초리를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 다음으로 민심이 군부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시위 때 군정은 승려들에게 총을 쏘고 게다가 불교사원에 난입해 1000여명의 승려를 체포하기까지 했다. 정신적 지주인 승려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끌려가는 모습을 본 미얀마 국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군정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을 것이다. 이 분노가 끓어 넘치면 화산 폭발하듯 폭발할 것이다. 그 중심부엔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수치여사가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그녀는 비록 군정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에 있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미얀마의 민심은 ‘지진해일’처럼 요동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바라는 세계인들의 바람이다. 세계인들은 미얀마 군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력을 동원할 것을 주장하지 않지만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미얀마 군정을 압박하고 있다. 군정이 1989년 입법기관의 승인 없이 바꾼 국명인 미얀마를 쓰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대신 버마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미얀마라는 이름을 쓰게 되면 현 군정을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해서 대부분의 국제 언론들도 버마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 가운데 일부 신문도 미얀마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기자는 서울신문도 기사를 쓸 때 미얀마라는 이름 대신 버마를 사용해 달라고 부탁하는 분당의 한 고등학교 2학년생 12명의 이메일을 받았다. 한국 고교생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한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이처럼 미얀마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미얀마의 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단지 시간문제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광화문앞의 촛불문화제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지지한다면 미얀마 대신 버마라고 불러주세요.”라는 버마민족민주동맹 소속 조모아의 절규를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한걸음에 달려오길 기대한다. 최종찬 국제부 차장급 siinjc@seoul.co.kr
  • [사설] 미얀마 유혈사태 국제사회가 막아야

    미얀마에서 반정부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군사정권의 기름값 대폭 인상으로 촉발된 민생 시위는 승려들이 가세하면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야간통행금지와 시위금지 조치에도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군사정권은 그제 병력을 투입해 강제진압에 나섰다. 미얀마 정부는 부인하고 있으나 진압 과정에서 적어도 4명 이상이 숨지고 100명이 넘는 부상자를 냈다고 한다. 또한 옛 수도 양곤에 있는 사원을 덮쳐 승려들을 다수 연행했다. 평화적인 비폭력 시위대에 총을 쏘아대는 군사정권의 야만적인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압정에 못 이긴 수십만명이 거리에 나서 독재자를 퇴진시켰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군에 의해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1988년의 유혈사태를 기억한다. 당시 군부는 시위대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며 학살에 가까운 진압으로 국제사회를 경악케 했다.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정당이 80% 이상의 의석을 얻었으나 군정은 민정 이양 약속을 어겼다. 이번 미얀마 시위는 5000만 국민들의 가슴 속에 억눌려 있던 장기 군사독재에 대한 불만이 유가 인상을 계기로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19년 전의 불행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유엔이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선진 8개국 외무장관들도 폭력을 비난하고 대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미얀마에 경제·군사적 영향력을 지닌 중국이 나서야 한다. 중국은 지난 1월 유엔 안보리의 미얀마 제재안을 “내정간섭”이라며 거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군부를 지지하는 듯해서는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라고 할 수 없다. 유혈사태 확산을 막아야 한다. 나아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80년 민주항쟁 경험이 있는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 ‘씨알’ 새달 5일 창립

    다석 유영모(1890∼1981)와 바보새 함석헌(1901∼1989)은 기독교와 과학정신·동양종교사상을 아우르며 영성과 평화를 함께 바라본 종교인이면서 ‘삶의 철학자’로 통한다. 오산학교 설립자이자 3·1독립운동 주역인 이승훈의 제자 유영모는 ‘특권 양반사상이 나라를 망쳤다.’는 판단 아래 민중을 주체로 세워 섬기는 민주사상을 제시한 인물.“진인(眞人)의 경지인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을 햇볕에 그을린 농부의 얼굴에서 본 뒤 땀흘려 일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고자 농촌으로 들어가 살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민주화와 비폭력 평화운동의 사상가인 함석헌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런 두 사람이 줄곧 강조한 것은 바로 씨알, 즉 민중이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3월13일 한날에 태어나고 사망 날짜도 2월3일과 4일로 하루 차이였다. 같은 생각과 삶 만큼이나 나고죽는 날까지도 같았던 이들이다. ●종교계·학계 등 인사 대거 참여 두 사람이 생전 강조한 이 씨알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재단법인 씨알(이사장 김원호 유미특허법인대표)이 다음달 5일 오후 4시 장충동 우리함께빌딩 2층 강당에서 창립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지난 8월30일 창립이사회를 연 데 이어 지난 18일 서울시로부터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었다. 재단법인 씨알은 유영모,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씨알들의 정신문화운동과 환경조성, 씨알사상 전승발전을 위한 기반조성, 씨알상 제정운영을 통한 씨알 삶 따라살기 등이 그 일들이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정신을 따르는 학계·종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상임이사 박재순 목사를 비롯해 이사인 김철호 KAIST 경영대학 초빙교수, 육순종 목사(성북교회 담임), 정양모신부(다석학회 회장), 감사인 김종생 목사(예장통합 사회봉사부 총무)가 그들이다. 여기에 정진섭 변호사, 김흥호 목사(다석사상연구회회장), 류승국 교수(전 한국정신문화원장), 문동환 목사(한신대 명예교수),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 원경선 풀무원 설립자, 유인걸 성천문화재단 이사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김수중 한국양명학회회장, 김조년 한남대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 박영호 다석학회 고문, 변진흥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서유석 대한철학회 부회장, 송인창 동양철학회 회장,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 이병창 한국철학사상연구회장, 이정배 한국조직신학회 회장도 들어 있다. ●다석전집 출간·세계평화사상 연구사업 서둘러 이들이 가장 벼르는 것은 다석전집 출간. 다석일지를 포함한 유영모의 모든 저작물에 낱말풀이와 주해를 붙여 다석연구의 토대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함석헌의 세계평화사상 연구사업도 큰 과제. 종교, 문명에의 근본적 반성과 성찰을 담고 있는 함석헌의 사상이 인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학술진흥재단과 공동진행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두 사람의 철학은 흔히 성경말씀(계명, 아가페 사랑)뿐만 아니라 그리스철학과 서구 근대철학의 로고스(이성), 동아시아의 길(道), 한민족의 한 사상을 아우르는 종합적 사상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두 사람의 복잡한 철학 연구에는 전문학자들의 모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 수렴을 통해 매월, 격월, 혹은 절기별 각 분야 전문가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내년 7월로 예정한 세계철학대회 ‘함석헌, 유영모 사상 발표회’는 가장 먼저 치러야 할 대규모 행사. 박재순, 김성수, 김영호, 김흡영, 박노자, 박영호, 양현혜, 윤정현, 이규성, 이기상, 이정배, 정대현, 김경재, 정양모, 허우성의 발제를 한글과 영문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씨알상 제정·‘사상 발표회´ 추진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씨알상을 제정, 매년 말 수여하며 두 사람의 생몰일에 즈음해 씨알생명평화문화제도 정기적으로 열어나간다. 한편 다음달 5일 창립식 자리에서는 강연회가 열려 김흥호 목사(‘유영모와 함석헌’)와 류승국 교수(‘씨알사상에 대해’)가 발제할 예정이다. 재단법인 씨알의 김원호 이사장은 “한국의 근현대사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진행과 민중 삶속으로의 깊숙한 기독교 유입의 특징을 갖는다.”면서 “유영모와 함석헌은 한국 근현대의 이런 문명사적 상황과 사명을 깊이 자각해 주체적이고 세계적인 정신과 철학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이라크 사태 출구 보이나

    이라크 혼란의 주범인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평화 로드맵’의 전격적인 합의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영 일간 가디언은 3일 시아파와 수니파 대표단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4일간의 협상에서 민주적 방법으로 정치문제를 해결할 것을 포함한 12개항의 화해 방안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12개항 합의방안에는 ▲민주적, 비폭력적 사태 해결 ▲무장해제 ▲회담 진행중 무기사용 금지 ▲협상 결과 수용 ▲인권보호 등이 포함돼 있다. 협상에는 강경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 알사드르의 대표단과 수니 아랍 정파 지도자 아드난 알둘라이미, 북아일랜드·남아공 대표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이번 합의안이 이라크 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의원 등에게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에게 국면전환용 카드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시아파인 알말리키 총리는 “미국이 오는 15일 발표하는 이라크 주둔 증가 효과 보고서에는 긍적적인 측면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검토중인 보고서에 이라크 정부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의견이 포함돼 있어 알말리키 총리가 현재의 위기를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짐 캐리, ‘진지하게’ 아웅산 수치 여사 석방 촉구

    짐 캐리, ‘진지하게’ 아웅산 수치 여사 석방 촉구

    ’웃기는’ 남자 짐 캐리가 자못 진지해졌다. 그동안 몇 편의 영화에서 그답지 않은 진중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지만 짐 캐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할리우드 최고의 코미디 배우다. 익살스런 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 그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짐 캐리는 ‘인권행동센터(Human Rights Action Center)’와 ‘버마(미얀마)’를 위한 미국의 캠페인(U.S. Campaign for Burma)ꡑ을 도와 11년째 가택 연금 상태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유튜브(YouTube.com)’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서 “군부정권의 탄압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수치 여사는 현대의 간디, 혹은 만델라에 비교될 정도의 영웅이지만 미국인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른다.”고 밝히고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라는 의미의 ‘웅산 히어로(unsung hero)’는 쉽지 않은 그의 이름과도 비슷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1988년 군사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항쟁을 무력 진압하며 최소 수천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미얀마 군부는 1990년 총선에서 83%의 지지를 받은 NLD(민족민주동맹)를 인정하지 않고 이 동맹을 이끄는 아웅산 수지 여사를 가택연금하는 등 군사 독재를 지속해 국제 여론의 비판을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인의 관심에서 벌어져 가고 있다. 수지 여사는 현재 미얀마의 양곤시에 장기간 자택연금 상태에 있다. 수지 여사는 지난 1991년 군부 독재정권과 맞서 비폭력 민주화 운동을 이끈 노력을 인정 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 = 배우 짐 캐리(왼쪽)와 아웅산 수치 여사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myungwlee@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특파원 칼럼] 폭력의 시대 간디를 생각하다/이종수 파리 특파원

    14일은 인도가 독립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유럽에서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를 조명하는 열기가 뜨겁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뒤 파리에 들른 한 정치학 교수는 “오다가 몇 나라를 거쳤는데 유럽에서 왜 간디 열풍이 뜨거운지 궁금하다.”고 말할 정도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도 최근 잇따라 특집기사로 간디의 사상과 삶을 조명했다. 주간 렉스프레스는 ‘간디, 근대’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에서 간디의 무저항 철학이 단순히 인도라는 지정학적 공간에 머문 게 아니라 1960년대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해 가까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비폭력 사상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력 주간지 누벨옵세르바퇴르도 특집 기사에서 “간디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웅 가운데 한 명”이라며 그가 영국에 살면서 ‘비폭력’과 ‘무저항’이라는 ‘투쟁’ 방법을 창안한 과정을 분석했다. 1869년 인도 오만해 해안도시 구자라 인근 마을에서 태어난 간디는 영국으로 유학가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인도 독립에 헌신했다. 비폭력·무저항으로 상징되는 ‘시민불복종 운동’ 등으로 구금과 석방을 거듭하다가 1947년 인도의 독립을 맞이했으나 힌두교와 이슬람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이듬해 힌두교 광신자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곧 간디 전기를 출간할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간디의 근대성은 무저항을 강조한 데 있다.”며 “인류 역사를 이끈 동인은 돈이나 돈의 착취가 아니라 굴욕감을 극복하려는 무저항의 방식에서 나왔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간디는 우리로 하여금 빈 라덴이나 다른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간디의 비폭력 사상은 가장 근대적이고 전위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탈리는 간디에게서 환경 사상과 반세계화운동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간디 열풍은 ‘지금, 여기의 지구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직도 세계에는 종교·종족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악의 분쟁지역으로 꼽히는 다르푸르 사태를 보자.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아프리카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 지역에 2만6000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는 내용의 결의안(1769호)을 승인함에 따라 해결의 실마리는 찾았지만 수단 정부의 미온적 반응으로 아직 매듭을 짓지 못했다.4년 동안 이슬람 민병조직 등에 의한 기독교계 양민학살 등으로 20만명이 죽고 25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하는 비극이 진행형이다. 매일 수십명이 테러로 죽어가고 있는 이라크는 어떤가. 미국 주도로 사담 후세인을 몰아낸 뒤에 찾아온 것은 평화가 아니라 종파 간 분쟁으로 인한 사실상의 내전 상태에 빠져 있다. 가까이는 지난달 납치돼 석방 여부가 아직 불투명한 한국 인질 사태도 결국 탈레반과 미국이 옹립한 집권 세력과의 테러-반(反)테러의 악순환이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간디의 손자인 라즈모한 간디의 말은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일리노이대 교수인 그는 “할아버지의 사상은 평화·관용·진리의 메시지로서의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말했다. 아탈리의 해석을 빌리면 ‘무저항’과 ‘비폭력’으로 대변되는 간디의 철학은 상대방, 구체적으로 영국이라는 제국주의에서 받은 굴욕감에서 시작한다. 간디는 굴욕감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게 아니라 굴욕감의 근본적 원인을 찾는 데서 해법을 찾았다. 그 방식은 차이를 찾되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생명력이 길다. 지구촌 분쟁의 당사자들에게 간디의 지혜를 배우자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이상일까? 이종수 파리 특파원 vielee@seoul.co.kr
  • ‘기사송고실’ 내주 착공

    다음달 중순부터 언론은 정부청사를 출입할 때 공보부서의 사전 약속을 받아야 한다. 취재원과 만나는 장소도 정부가 특정한 장소에서 이뤄진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18일 각 부처의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통합브리핑센터로 통합하는 정부 방안과 관련,“공무원들을 상대로 취재할 때 사전에 공보실을 통해 약속을 해야 하며, 어디서 만나는지도 부처에서 정하기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브리핑과 송고시설이 없는 청사는 임의 방문 자체가 안 된다.”며 “개별 공무원과의 전화통화도 공보실을 통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자와 중앙부처 공무원의 접촉이 극도로 제한돼 기자들의 취재에 많은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 처장은 “정부 비리를 취재할 때도 공보부서에 이야기하고 약속을 잡아야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비리 대상자의 경우 정확한 조사와 공식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김 처장은 또 “앞으로 대변인제가 내실화돼야 하고, 취재지원 시스템이 변하면서 언론뿐 아니라 공직사회도 동시에 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처장은 통합브리핑센터 공사와 관련,“다음주 월요일 시행업체를 선정, 내주중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자협회 요구에 따라 기사 송고실 부스 총량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에 있으며, 서울경찰청과 서울지검은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경찰청과 검찰청은 송고실까지 유지하되, 서울시내 10개 경찰서는 폐쇄적 기자단을 해체하고 10여석 규모의 송고시설만 둘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언론단체를 참여시킨 가운데 정보공개 TF를 구성, 정보공개제 개정 방향을 논의하고, 관련 입법도 추진하겠다.”며 “내부비리 고발 공무원을 보호하는 방안 마련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기자협회는 정부가 기자실 통폐합 공사를 강행할 때 헌법소원 등 법적투쟁과 함께 기존의 기사송고실로 계속 출근하는 등 비폭력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히고 있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임창용 윤설영기자 sdragon@seoul.co.kr
  • “교황보다 달라이 라마 더 존경” 독일 시사주간지, 자국민 설문

    |파리 이종수특파원|독일인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독일 출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보다 더 존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14일(현지시간) 여론조사기관 TNS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44%가 오는 19일부터 10일 동안 독일을 방문하는 달라이 라마를 ‘모범’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베네딕토를 ‘모범’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2%다. 또 응답자 절반은 달라이 라마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해줄 수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 슈피겔은 특히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달라이 라마를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중국 독립 운동이 실패하자 인도 다름살라로 건너가 망명 정부를 세운 뒤 중국의 티베트 통치에 대한 비폭력·무저항 투쟁을 벌인 공로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한편 종교 호감도에서 독일인들은 불교에 가장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가장 평화적 종교?’라는 설문에 응답자 43%가 불교를 꼽았다. 기독교는 41%, 이슬람교는 1%였다.vielee@seoul.co.kr
  • [책꽂이]

    ●간디 자서전(간디 지음, 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금욕을 실천하고 단식이라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식민지배에 저항해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로 불린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 간디의 자서전.1940년 첫 출간된 이후 전 세계 수십개 언어로 번역돼 출판된 간디의 ‘진실추구 이야기’로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간디에 초점을 맞춰 번역했다. 손수 짠 옷을 입고 저항의 수단으로 단식하며 무소유를 실천한 간디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1만 6000원.●정치게임-속거나 즐기거나(김창현 지음, 브랜드뉴데이 펴냄)선거의 최대 관심은 ‘누가 당선되느냐.’에 모아진다. 하지만 마케팅 전문가인 저자는 ‘정치 소비자들’에게 정치인의 사기도박에 속지 말고 제대로 된 한 표를 행사해 보자고 권유한다.‘누가 될까.’보다 ‘누구를 찍을까.’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 현실 정치판을 불량상품이 난무하는 저잣거리로 비유하는 저자는 “최소한 속았다는 심정이 들거나, 속았다는 놀림을 받아서는 안된다.”면서 제대로 된 정치참여를 촉구한다.1만 2000원.●부의 제국(존 스틸 고든 지음, 왕수민 옮김, 황금가지 펴냄)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제국 미국과 그 힘의 원천이 된 혁신적인 부(富) 창출의 모든 것을 밝힌 책. 시사평론가인 저자는 미국의 경제력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면밀하게 분석했다. 식민지 경제의 동력원이 된 담배 이야기부터 뉴욕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잡는 과정, 그리고 J.P. 모건 등 미국 경제계의 영웅들과 각종 비리스캔들, 역대 대통령의 실책과 업적,IT기술의 발전상까지 미국 경제의 면면을 모두 다뤘다.2만 3000원.●그래도 그림 그리는 이유를 말하라(강하진 쓰고 그림, 글을읽다 펴냄)1972년부터 35년간 실험미술 작업을 해오고 있는 중견작가의 작업노트. 초기부터 현재까지 메모한 180편의 단상과 지금까지 제작한 대표작품 100여점을 함께 수록했다. 단순한 작업노트가 아니라 물리학이나 과학에 대한 관심,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의 모습, 문명비판 등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 놀랍다. 한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예술의 의미를 재음미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2만원.●정신분석의 은밀한 분석(박시성 지음, 효형출판 펴냄)10여년간 임상에서 활동해온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40편의 영화 속 이미지를 정신분석학을 통해 새롭게 해석했다.‘라캉의 카우치에서 영화읽기’라는 다소 어려운 부제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1901∼1981)의 핵심 개념을 바탕으로 쓴 영화 비평집이라는 설명에 다름 아니다. 의학 포털사이트 ‘메디게이트’에 연재했던 글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1만5000원.●일분 후의 삶(권기태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기자 출신으로 지난해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작가가 절체절명의 순간,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열두사람의 감동적인 생존기록을 담은 실제 이야기. 생의 극한에 도달했던 고속버스 운전기사, 프로복서, 보험세일즈맨 등 평범하고 소박한 존재들의 경험을 직접 찾아가 듣고, 감동받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철저한 사실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열 두 편의 논픽션이라고 할 만하다. 작가가 군에서 제대한 1990년 지방신문 단신기사에서 시작된 ‘삶의 탐구’는 빠른 호흡과 소설가다운 극적인 진행, 유려한 묘사와 맞물려 ‘문학 논픽션’이라는 새 장르를 만들어 냈다.9800원.●협상의 완성(오하시 히로마사 지음, 이경덕 옮김, 다른세상 펴냄)협상의 기술을 알고 사용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성과를 얼마나 최대화하는지 50가지의 사례와 포인트로 정리한 ‘협상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협상의 시대에 어떻게 협상에 대처해야 하는지 명확히 꼬집었다.‘시간을 통제하라.’ ‘거짓을 말하면 안된다. 그러나 진실을 모두 말할 필요는 없다.’ ‘뻔뻔스러운 제안에서 시작하라.’ 등 일본인 뉴욕변호사인 저자가 협상의 강국 미국에서 체득한 협상의 기술 50가지가 소개돼 있다.9800원.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7) 한국민주주의 운동 토론회-지상중계 (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4∼5일 이틀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서는 외국 학자들이 본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발표회가 참석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에드워드 베이커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자문위원과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홀거 하이데 독일 브레멘대 명예 교수 등은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의미와 과제 등에 대해 발표했다. ●6월 항쟁은 민주주의 운동이자 근대화 운동 하이데 교수는 5일 ‘한국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개인적 단상’이라는 기조 발제에서 “1986∼87년 민주화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 운동인 동시에 근대화 운동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이데 교수는 ‘민주화와 근대화’라는 ‘발전의 양면성’을 통해 민주화 20년을 조망했다. 그는 “6월 항쟁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세력과 더 근대화된 사회를 원하는 세력이 힘을 합쳐 전두환 정권에 대항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진단하고 “이런 맥락에서 6·29선언은 민주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권력 엘리트들의 전술적 후퇴였으며 동시에 근대화론자들의 부분적인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권력 엘리트 가운데 근대화론자들과 형식적 민주화를 요구하던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6·29선언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는 것이다. 반면 6·29선언 이후 실질적인 민주화를 위한 첫 단계로 민주노조를 건설하려던 노동자들은 즉각 극심한 탄압에 부딪쳤다고 꼬집었다. ●외환위기 민주주의 운동 취약점 드러나 하이데 교수는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근대화의 범위를 통해 민주주의 운동의 취약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가 지적하는 취약점은 노동계급운동 진영이 ‘민족주주의-보수주의자’와 ‘신보수주의자’ 사이에서 적절히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민족주의-보수주의자들은 한국 국가자본의 경쟁력을 위해 노동조건을 제한하려 했고, 신보수주의자들은 ‘시장’을 노동조건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 내세우며 세계시장을 개방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신세대 사이에서는 신기술로 가능해진 기회를 활용해 전혀 새로운 운동이 싹텄다.”면서 “그 징후는 노무현 후보 당선과 탄핵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한국 민주주의 도전 과제 많다’ 베이커 자문위원은 지난 4일 ‘한국 민주화에 대한 고찰과 결론’에 대한 기조발제에서 “한국 국민들은 유신반대운동, 광주항쟁,6월 항쟁 등을 자체적으로 잘 풀어왔고,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며 한국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하루키 교수는 ‘한국의 민주혁명 30년과 일본’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광주 항쟁은 운동의 비폭력적 성격과 모순되지 않는 비폭력 운동의 혁명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서 “6월 항쟁은 유신체제의 폐지를 얻어냈다.”고 평가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손호철교수 ‘민주화 진영’ 비판 “민주화운동 출신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최소한 겸손한 자세만 보였어도 지금과 같은 위기는 자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5일 발표한 ‘한국 민주주의 20년, 성과와 한계 그리고 위기’를 통해 민주화 운동세력과 노무현 정권을 거세게 비판했다. 손 교수는 “민주화 20주년을 맞아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 어쩌면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며 도덕성 추락과 무능을 지목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들에게 정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오만과 독선’일 것”이라고 개탄했다. 손 교수는 “정통성을 과신한 김영삼 정권의 오만과 독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오히려 증폭됐다.”면서 “이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청개구리마냥 자신의 노선을 고집하는 한편 오히려 국민을 비판하고 원망하는 노 대통령과 측근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내용은 별로 없고 정책은 보수적이면서도 스타일만 급진적이어서 빈 수레만 요란한 개혁으로 잡음을 일으키고 기득권 세력의 불안감을 조성해 사회 갈등을 불필요하게 증폭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화운동 진영이 그동안 절대적으로 누려왔던 도덕적 우위가 무너졌다.”면서 “대표적인 것이 각종 비리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뿐 아니라 민주노총도 현장 지회는 말할 것도 없이 중앙지도부까지 비리에 연루될 정도니 할 말이 없다.”고 꼬집었다. 손 교수는 민주화운동 진영이 위기를 겪게 된 구조적인 원인으로 신자유주의를 꼽았다. 그는 “자유주의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서민과 중산층의 정부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최악의 사회 양극화를 초래했다.”면서 “군사독재정권들보다 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 가장 반서민적인 정권이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화운동 진영이 그동안 북한 인권문제와 민주주의에 침묵하는 이중성을 보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북한 문제도 대중들이 민주화운동 진영의 진실성과 헌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동티모르 대통령 당선 호르타

    동티모르의 평화적 독립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주세 라모스 오르타(57)가 동티모르 독립 이후 실시된 첫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을 확정 지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개표 90%가 진행된 11일 27만 3685표로 73%의 표를 얻었다. 취임일은 오는 20일. 사나나 구스마오 초대 대통령의 뒤를 이어 임기 5년간 국정을 이끌게 된다. 포르투갈인 아버지와 티모르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가톨릭 학교를 거쳐 미국 안티오크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5개 국어에 유창한 그는 유엔에서 동티모르 대표로서 독립을 위해 비폭력 투쟁과 로비로 명성을 쌓았다. 그 공로로 1996년 카를로스 벨로 주교와 노벨상을 공동수상했다. 2002년 독립한 동티모르 초대 정부에서 외무장관, 총리직을 지냈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합병 뒤 탄압과 기아로 10만명을 잃었으며 그의 형제 가운데 4명도 이때 사망했다. 취임 뒤 그의 첫 역할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좌파,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프레틸린)을 껴안아 국민화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지난해 알카티리 전 총리가 반대파 제거를 위해 전체 군인 1400명 중 600명을 전격 해고하면서 동티모르는 내전 상태를 겪었다. 침체된 경제 활성화도 당면 과제다. 인구 100만명의 동티모르 국민 대다수는 커피 등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실업률은 50%에 달한다. 어린이 60%는 영양결핍에, 전체 국민의 42%는 하루 1달러 이하를 버는 절대빈곤 상태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면 “서구 자본을 적극 유치, 석유·가스 채굴로 들어오는 오일머니를 경제부흥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동티모르 앞바다에서 석유와 천연가스층이 발견돼 희망을 더해 주고 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비폭력 평화정신’ 함석헌 사상가 반열에

    ‘한국의 간디’ 함석헌(1901∼1989)의 철학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집 ‘씨알 생명 평화(씨알사상연구회 지음, 한길사 펴냄)’가 발간됐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인 함석헌의 철학이 다산 정약용에 이은 20세기의 한국철학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의 독실한 개신교 장로교회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16살에 평양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 3·1운동에 가담한 연유로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오산학교로 편입한다. 함석헌이 평생동안 진리의 화두로 삼았던 ‘씨알(원래 알의 ㅏ는 아래아 ㆍ다)’사상은 이때 오산학교에서 싹텄다.일본의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독창적인 민족사관을 형성하고, 이후 오산학교에서 10년간 역사 교사생활을 하게 된다.1938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탄압이 노골화되면서 학교에서 추방당한 함석헌은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목 등으로 일제시대에 모두 4번 감옥을 가게 된다. 47년 공산주의자들의 회유 정책을 피해 가족을 뒤로 하고 월남한 함석헌은 이후 수염을 깎지 않았다. 전쟁 중에도 성서 공부 모임을 계속했던 그는 56년 진보 월간지 ‘사상계’에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을 발표하면서 큰 호응을 얻는다.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적극 참여해 70년 일흔살의 나이로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다. 진보적 기독교 지식인과 재야운동을 펼친 그는 76년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85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다.87년 암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하던 중 89년 일흔여덟의 나이로 소천했다. 함석헌은 신앙과 교육을 비롯해 농사를 생의 지표로 삼았다. 씨알사상은 그가 농사꾼의 한 사람으로서 터득한 지혜 및 경험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김명수 경성대 신학대학장은 판단했다. 스스로 ‘한국의 간디’라 불리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던 함석헌은 24∼25년 로망 롤랭의 간디전을 읽은 이후 평생 간디가 간 길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가 간디를 사랑하고 존경한 이유는 “조직적인 악에는 조직적인 사랑으로 대항할 것과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이기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간디를 씨알 중의 씨알로 삼았던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 겉장에 “씨알은 자기 교육의 기구이자 어떤 종교, 어떤 정치 세력과도 관계가 없다.”며 “스스로 역사의 주체인 것을 믿고, 그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안다.”고 천명했다. 종교는 정치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석헌은 이를 평생 화두로 삼았다. 종교인이면서도 정치악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치는 나에게는 성가신 일입니다. 내가 정치를 털어버릴 수 있다면 기뻐 춤출 것입니다.”라고 간디봉사회 앞에서 연설했다. 일부 기독교는 ‘거대한 이기주의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는 한국의 종교 현실에서 함석헌의 겸손하고 진실을 추구했던 사상은 ‘큰 모순의 바위에 큰 쇠망치를 내린 것’과 같을 것이다.656쪽.2만원.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씨줄날줄] 3·1절과 우쓰노미야/황성기 논설위원

    3·1 독립만세로 점화된 비폭력 저항운동이 조선 강토에서 불같이 번져가던 1919년 4월초. 우쓰노미야 다로(1861∼1922) 조선군사령관은 “군대는 강압수단을 사용해 (조선인들이)두려워서 복종하고 꼼짝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조선통치에 위기감을 느낀 일제의 피비린내 나는 조기 진압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제암리 학살사건은 우쓰노미야의 지시 직후 일어난다.4월15일 일본 군경은 수원 남쪽 제암리 주민 약 30명을 교회에 몰아넣고 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렀다.24명이 숨졌다. 제암리뿐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다.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운동 3개월간 7509명이 숨지고 1만 5961명이 다쳤다고 썼다. 우쓰노미야의 15년치 일기가 발견됐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이 일기의 일부를 보도했다. 일기에는 제암리 사건의 뒤처리에 관한 협의 내용이 등장한다. 학살과 방화를 인정하면 “제국의 입장이 불리하게 되므로 저항을 받아 살륙하게 됐다.”는 날조 경위를 적어놓았다. 제암리사건을 은폐하려던 일제의 비열한 속셈이 88년이 지나서야 드러난 것이다. 참상을 목격한 영국인 선교사 스코필드에 의해 일제의 잔인무도한 살륙이 알려지긴 했지만 일본군 간부의 육성과도 같은 생생한 기록은 처음이다. 권태억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제 고위층의 속내와 식민현실을 파악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우쓰노미야는 육군사관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보병 제1연대장,7사단장을 거쳐 대장으로 예편한 골수 군인이다. 그런 그의 장남이 일본의 반전·반핵·군축운동의 대부가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쓰노미야 도쿠마(1906∼2000)는 중의원 10선, 참의원 2선의 거물 정치인이었다. 와다 하루키는 회고록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때 “리버럴한 아시아주의자인 우쓰노미야씨는 친구로서 김씨를 돕는 데 적극 움직였다.”고 적고 있다.85년에는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기도 했다. 자민당 내 좌파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한국, 북한, 중국과의 우호관계에도 앞장섰다. 일제가 침략해 깊은 상처를 낸 나라들이다. 아버지가 진 빚을 갚겠다고 한 것일까. 한반도에 얽힌 우쓰노미야 부자를 3·1절 아침 생각해본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이석행 민주노총 5대위원장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이석행 민주노총 5대위원장

    이석행(48)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은 온건파인가, 강경파인가. 이 위원장을 온건파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29일 그의 첫 기자회견 뉴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온건파라더니 아니네.” 이 위원장은 회견에서 “파업투쟁을 통해서 노동자의 조직역량이 강해져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의 대화 조건으로 장기투쟁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180명의 구속자 문제 해결을 내걸었다. 마오쩌둥을 연상시키는 ‘현장대장정’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잦은 파업, 강경시위는 시민들만 짜증나게 했을 뿐 아무런 위력이나 실익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지도부 비리사건, 내부 폭력사태 등과 겹쳐져 민주노총의 위기론까지 자초했던 터다. 이 상황에서 이른바 ‘온건파’의 당선은 변화를 기대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꽤 센´ 발언으로 이런 예상에 물음표를 찍게 했다.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뜻밖에 사람좋은 ‘배추장수´ 인상이었다. 충청도 억양, 내려간 눈꼬리에 시종 미소가 입가를 떠나지 않아 외모로만 본다면 분명 그는 ‘온건’했다. ▶해고노동자 출신인데 어떻게 해고됐습니까. “대동중공업이 두원그룹으로 매각된 다음 해인 1991년 해고됐습니다. 당시 윤석양 이병이 양심선언을 하고 보안사의 정치사찰 문서를 공개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제가 267번째로 나왔습니다. 조합원 20명의 임금을 옷장에서 훔쳐 해고됐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게 ‘말’지는 물론 주간 노동자신문에 박스기사로 실린 거예요. 너무 분하고 황당하여 보안사 앞에 가서 ‘보안사 해체하라’고 유인물을 돌리며 항의했죠.” 회사는 항의하는 그를 오히려 ‘회사 무단이탈’‘회사 명예훼손’을 이유로 해고했다. 더욱 황당해져 법에 호소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졌다. 그때는 젊은 정열이 넘쳤고,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믿던 때였다. 사법부에 대한 절망과 불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 노조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전북기계공고를 나왔습니다. 정밀가공사 자격증만 따 나가면 잘 살 수 있다고 해 그런 줄 알았습니다. 졸업하고 상공부장관 추천을 받아 진주 대동중공업에 취직했는데 이게 딴판이에요. 일당이 770원이었는데 월급으로 10만원을 받았습니다. 일요일도 없었고, 연장근무를 얼마나 했으면 이만 한 돈을 받았겠습니까. 누가 와서 노조 만들면 일요일과 ‘4대절’ 빨간날은 모두 놀 수 있다고 말해 따라가서 교육부장 맡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같은 ‘강성’이 됐나요. “1984년도에 한국노총 1주일 코스 ‘새마을 교육’을 받고 깜짝 놀랐어요. 이름만 ‘새마을 교육’이지 노동 교육이었어요. 김금수(전 노사정위원장), 천영세(민주노동당 의원)씨가 강사로 나왔고, 함께 교육을 받았던 여성노동자들이 서울에 한번 놀러 오라고 해요. 청춘이라 1주일 후 서울로 올라갔죠.” 그때 여성들이 서울대 다니다 현장에 들어온 ‘학출’운동가였다. 노조운동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며 혼을 냈고 이때부터 월2회,1박2일씩 상경 학습이 시작됐다. 다음 해에는 문성현(민주노동당 대표)씨 등을 만났고 이불 속에서 ‘불온서적’을 탐독하기에 이르렀다. 본격적으로 파업을 주도하거나 연대투쟁에 가담하는 운동가가 되었다. ▶해고노동자인데 어떻게 민주노총 조합원 자격이 있었지요. “제가 전과 7범이라 정식 취직은 못합니다. 대신 비정규직으로 작은 공장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며 서울 동부 금속지역노조에 가입했죠. 비정규직으로 위원장이 된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이 위원장은 선반공으로서 촉망받는 기술자였다. 해고된 뒤는 물론,2005년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금형공장으로 돌아가 선삭 일을 하였다.‘엄마냄새 ’다음으로 ‘기름냄새’가 좋다는 그는 죽을 때까지 현장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현장’을 강조하고 계신데 ‘현장’의 힘을 몰아 더욱 세게 나가는 것 아닌가 걱정됩니다. “맞습니다. 힘이 되는 만큼 교섭을 요구할 겁니다. 지금 걱정이 ‘제조업 공동화’입니다. 남아 있는 굴뚝산업 자동차, 조선, 반도체 정도입니다. 이거라도 제대로 지키는 민주노총이 돼야 합니다. 제조업들이 외국가는데 정부는 서비스산업, 관광산업 외치다 실업률이 이렇게 됐습니다. 힘을 갖고, 정부 정책 초기단계서부터 개입해 들어갈 겁니다. 이렇게 되자면 민주노총이 파업을 해도 콧방귀 뀌는 상황으론 안 됩니다.” 그러나 파업은 수단이지 목적은 될 수 없다고 못박는다. 이 일로 내부에선 욕먹지만 이론이 아니라 체험으로 굳어진 신념이기에 현장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현장대장정은 앞으로 6개월간 텐트를 들고 떠나려 한다. 우선 2월 한달간 서울 사무직을 순회한 후에는 20만 조합원이 파업 안되면 촛불집회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낼 작정이다. ▶이수호 전 위원장 때 추진했던 사회적 교섭 재개를 기대해도 될까요. “우리 의견을 반영하는 시스템이 되면 전체 조합원의 찬반투표를 거쳐 그 힘을 받아 들어가겠습니다. 정부가 틀 만들어놓고, 받을래 안 받을래 하는 식으론 안 됩니다. 현장에는 교섭하자는 소리가 높습니다.2004년 당시, 정부와 민노총 간에는 노사정·노정의 중층적 교섭틀이 합의돼 가고 있었습니다. 실무자들이 대화를 거부해 깨졌지요. 이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데서부터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폭력적인 거리 시위에 시민들이 지쳐 있는데요. “비정규 법안, 자유무역협정(FTA) 거리 시위는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가족에 한 명 꼴이나 되고 FTA는 민족 정체성과도 관련된 일입니다. 또 임금인상 요구만으로는 민주노총 존재의미가 없습니다. 제도개선, 정치운동을 통해 소외 계층의 공감을 얻어야지요. 다만 폭력시위는 다분히 유도된 측면도 있지만, 오는 8일 공식 취임식 때 비폭력투쟁을 선언하겠습니다. 경찰이 밟고, 잡아가도 저항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경영계는 산별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들을 테이블로 끌어낼 복안은 있습니까. “산별노조가 정착되면 기업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을 설득하겠습니다. 주택, 교육, 의료비 등 기업의 후생복지비 지출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부분을 정부와 함께 교섭하면 기업이나 노동자나 걱정없이 일할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노동장관을 만나겠고, 산자부, 행자부, 교육부 등 누구라도 찾아가겠습니다.” 이 위원장은 누구와도 대화를 피하지 않겠다며, 자신은 ‘더디게 발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열려 있음을 뜻하는 이 말은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유인 듯도 싶었다. yshin@seoul.co.kr ■ 이석행 위원장은 1958년 충남 청양 출생. 광산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이후 기성회비를 한번도 못내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14세 때 광산에 들어가 아침 여섯시부터 노동자로 일하고 밤 1시까지 재건학교에서 공부한 뒤 귀가하는 생활 끝에 학비를 모아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학비를 보태주던 누나가 결핵에 걸리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가 구두닦이를 했다. 또다시 2년간 돈을 벌어 고향에 내려와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박정희 대통령 때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세운 전북기계공고(익산)를 다녔다. 돈이 안 들고 취직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977년 대동공업에 병역특례자로 입사해 이때부터 금속노동자가 됐다.1980년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위원장을 2회 지냈다. 해고된 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무차장, 전국자동차산업연맹 부위원장을 지냈고 1988년 전국금속산업연맹 부위원장을 거쳐 2004년 민주노총 4기 이수호 위원장의 러닝메이트로 사무총장이 됐다.2005년 민주노총 내 금품비리 혐의로 지도부가 총사퇴할 때 물러났다. 민주노총 내 온건파인 국민파로 5기위원장 당선. 월수 150만원 정도의 선반공 임금과 강의료, 아내가 액세서리에 구슬을 붙여주고 받는 돈 60만원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다.
  • 상인41% “합법시위도 불편주면 곤란”

    집회·시위와 관련해 일반 시민은 불법 여부에, 집회·시위 다발지역 주변 상인들은 불편 여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KDI가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광화문·대학로 일대 영업점 경영자 300명, 서울 거주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각각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같이 드러났다.●시민47% “불법 엄벌·합법 보장”일반 시민의 47.4%는 ‘불법에는 엄정 대처, 합법적인 집회·시위는 보장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합법적이라도 지나치게 불편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답변이 32.2%로 뒤를 이었다.‘어떤 경우라도 집회·시위는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와 ‘불법적인 경우라도 과도하지 않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의견은 각각 9.6%,4.6%에 그쳤다. 그러나 영업점 경영자들은 ‘합법적이라도 지나치게 불편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응답이 40.7%로 가장 많았다.‘어떤 경우라도 집회·시위는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25.0%에 달해 집회·시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3년간 폭력·불법은 물론, 비폭력·합법 집회·시위로 손실을 입었다는 영업점이 전체의 63.7%에 이르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반면 경영자들이 ‘불법에는 엄정 대처, 합법적인 집회·시위는 보장돼야 한다.’와 ‘불법적인 경우라도 과도하지 않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26.7%,4.7%에 불과했다.●영업점 64% 최근 3년간 손실 경험피해 보상금 액수와 관련해 시민들은 합법일 경우 응답자의 62.9%가 40만원, 불법일 경우 48.6%가 90만원이 적정하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영업점 191곳을 대상으로 별도 조사한 결과 38.7%가 1회당 50만원의 영업 손실을 입었다고 응답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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