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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폭력’ 간디도 못 받은 賞?

    ‘비폭력’ 간디도 못 받은 賞?

    고(故)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수상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은 받았지만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받지 못한 상이 있다. 바로 9일(현지시간) 발표를 앞둔 노벨평화상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7일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야 마땅한 역사상 인물들을 선정해 발표했다. 간디는 세계적인 비폭력 평화주의자답게 1937년과 47년, 48년 등 3차례 평화상 후보군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독립운동을 한 정치 지도자’, ‘사후(死後)’라는 이해하지 못할 이유 등으로 상을 받지 못했다. 또 대부분이 유럽 출신인 백인 심사위원들의 지역·인종적 편견도 간디를 배제한 이유 중 하나라고 FP는 설명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너 여사는 여성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명망이 높았다. 또 세계인권선언 제정에도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 역시 1947년, 1955년 평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상을 받지 못했다. 해리 트루먼 전 미 대통령은 “그가 상을 못 받으면 대체 누가 상을 받을 수 있느냐.”고 성토하기도 했다. 체코 민주화 운동인 벨벳혁명을 이끈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도 유력한 후보였지만 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가 유력한 수상자로 떠올랐던 1991년에는 지역적 안배를 고려한 노벨위원회의 결정으로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상이 수여됐다. 중동평화를 위해 큰 역할을 한 팔레스타인 평화운동가 사리 누세이베가 아직도 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1994년 평화상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94년 당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그 뒤에도 중동의 갈등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벨위원회는 중동지역 인사들에게 상을 주기를 주저하고 있다고 FP는 전했다. FP는 이 외에도 평화상을 받아야 했던 인물로 나이지리아의 환경운동가 켄 사로 위와와,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 등을 꼽았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민주, 강행땐 정권퇴진운동 불사… 한나라, 질서유지권 발동에 기대

    여야 간 미디어 관련법 협상이 21일 밤에도 무산되면서 ‘3차 입법전’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3차 입법전’은 지난해 말과 올초 두차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민주당은 의장석 점거 등 무력 행사로 직권상정의 빌미를 주진 않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폭력적인 방법을 배제한 법안 저지 대책 등을 집중 논의했다. 일부 강경파 의원은 본회의장 내 국회의장석과 단상을 점거하고 밧줄로 서로 묶는 방법이나 직권상정의 열쇠를 쥔 국회의장과 부의장의 집무실을 봉쇄하는 방법 등을 내놨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여론의 반감을 살 수 있고, 도리어 의장의 직권상정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비폭력 항거 방법인 ‘의원직 총사퇴’에 의견이 모아졌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 전원의 사퇴서를 정세균 대표에게 일괄 제출한 뒤 직권 상정에 직면했을 즈음 사퇴서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전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은 미디어법 표결에는 불참하게 된다. 다만 강경파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의장석을 점거하거나 본회의장에서 농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직권 상정 시나리오는 민주당의 대응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상적 의사진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김 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뒤 법안을 표결처리하는 방식을 상정하고 있다. 이때 한나라당 의원들도 무력 동원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국회의장실도 직권 상정에 대비한 전략 마련에 들어갔다. 여야 간 합의처리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김 의장이 한두차례 중재에 나설 수도 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여권의 강경 기류를 감안할 때 22일 이후 언제든 직권상정이 결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일방 처리를 강행하면 법안 무효화 운동과 함께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설 참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국민적 투쟁을 통해 이를 뒤집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홍성규 김지훈기자 cool@seoul.co.kr
  • 암투병 아키노 위중

    암투병 아키노 위중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인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이 암투병 중 중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2일 아키노 전 대통령의 대변인을 인용, 올해 76세인 아키노 전대통령이 음식섭취를 중단한 채 지난주 집중치료 병동으로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결장암 진단을 받은 이후 화학요법 치료를 받아왔다. 평범한 주부였던 아키노는 1983년 야당 지도자였던 남편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가 암살당하자 정계에 뛰어든 이후 1986년 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부를 무너뜨리는 등 비폭력 시위의 세계적인 선구자가 됐다. 1992년 하야한 뒤로도 정치·사회활동은 계속해 왔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도 부정선거와 부패혐의로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사설] 6·10항쟁 참뜻은 평화의 완성에 있다

    1987년 6월10일. 돌이켜 보면 그날 우리는 정말 하나가 됐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로 민주쟁취” 그 한 덩어리의 외침에 군사독재는 기겁을 했고 직선제의 꿈은 현실이 됐다. 한국민주주의의 전환점이 된 이날을 역사는 6·10항쟁이라는 이름으로 기린다. 이제 22돌을 맞았다. 시민사회단체와 야4당은 오늘 이를 기념하는 ‘6월항쟁 계승 및 민주회복 범국민문화제’(범국민대회)를 열 예정이다. 그러나 경찰과 서울시는 이들이 개최키로 한 서울광장 등에서의 집회를 불허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이에 맞서 광장 개방을 요구하는 연좌농성까지 벌여 긴장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민주주의’에 새롭게 관심이 모아지는 지금 중요한 것은 6·10항쟁의 참뜻을 되새기고 계승해 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광장의 상징적·전략적 가치에만 매몰돼 땅뺏기 놀이 하듯 서로 무리지어 싸우는 것은 본말 전도다. 야당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엊그제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6·10대회는 문화행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 시장은 “행사 주체와 내용 등을 종합하면 정치적 행사”라며 서울광장 사용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오늘 서울광장에서는 자유총연맹의 ‘승용차 자율요일제 참여 캠페인’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경찰은 이 단체가 먼저 신고해 6·10대회를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행사는 취소됐다. 서울광장이 무주물이 아닐진대 그같은 ‘선점’ 논리 자체가 공소했다.우리는 6·10대회가 그동안 줄곧 서울광장에서 진행돼 왔음에 주목한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6·10항쟁은 그만큼 무게감을 지닌다. 주최 측이 내세운 대로 6·10대회가 과연 비폭력 평화의 ‘문화제’로 치러질 수 있을까. ‘시민의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에 걸맞은 행사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서울광장 사용을 허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6월항쟁의 숭고한 뜻은 평화의 정착으로만 완성된다.
  • 6·10대회 하루 앞두고 서울광장 긴장감

    6·10 항쟁 22주년을 하루 앞두고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6·10 범국민대회’를 서울광장에서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굳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경찰은 ‘6·10 범국민대회’를 불법시위로 간주,강제해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충돌이 우려된다.   ●야당·시민단체 “장소 옮기는 일 없을 것”  야당과 진보성향 시민단체로 구성된 ‘6·10 민주회복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는 9일 “경찰의 집회 불허 방침에 상관없이 대회를 예정대로 하겠다.”고 밝혔다.이들은 10일 정오 성공회 대성당에서 영상물 상영과 공연 등으로 구성된 기념식을 시작으로 오후 7시에는 서울광장에서 정당·시민단체 대표자들의 시국선언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문화제 등을 열 계획이다.하지만 경찰은 “이들의 집회 신고가 허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허할 수밖에 없다.”며 집회를 강행할 경우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해산할 계획이다.경찰은 서울광장을 다시 봉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위원회측은 “서울광장은 시민을 위한 공간”이라며 “경찰이 차벽으로 광장을 막으면 차벽 주위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한이 있어도 장소를 옮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준비위원회는 “서울시는 그 동안 공익성이 있는 대규모 시민행사는 허가 없이 서울광장을 사용하도록 묵인해 왔다.”며 “이번 대회도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서울광장 사용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참여연대는 서울시의 서울광장 사용불허와 경찰의 집회 금지 조치로 시민의 권리가 침해됐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조치를 신청했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집회금지통보효력정지 가처분을 서울행정법원에 신청했다.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안상수·신지호 등 한나라당 의원 6명이 발의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일부개정안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으므로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표명했다.인권위는 개정안에 포함된 ▲마스크·복면 등 착용 금지 규정 ▲기구의 제조·보관·운반행위에 대한 추가처벌 규정 ▲통고만으로 영상촬영을 가능하게 한 규정 등은 “과잉범죄화를 초래하는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이날 긴급 성명을 발표,정부에 집회 불허 방침 철회와 서울광장 상시 개방,평화적 집회에 대한 물리력 행사 자제를 촉구했다.  정 대표는 6·10 항쟁 22주년을 하루 앞둔 이날 긴급성명을 발표,범국민대회에서 비폭력 평화의 원칙을 지킬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정 대표는 “서울광장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대회 개최를 보장한다면 민주당은 평화적 집회가 되도록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백재현 전혜숙 원내부대표 등 국회 정무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10명도 한승수 국무총리를 면담하고 서울광장 사용 허가를 요구했다.이들은 이날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한 총리와 20여 분간 만나 “10일 열리는 ‘6월 범국민대회’ 행사가 서울광장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총리께서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하지만 한 총리는 “(민주당 등이 집회 신고를 접수하기 전에) 자유총연맹에서 이미 서울광장 집회 신고를 한 상태”라며 “먼저 신고한 집회를 보호하는 원칙에 따라 서울시에서 자유총연맹 행사에 (서울광장 사용)허가를 내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한 총리의 답변에 민주당 의원들은 한 총리가 나서 자유총연맹에 행사 취소를 권유해 줄 것을 부탁했으나 한 총리는 “(내가) 행사를 하라 마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거절했다.  민주당은 서울시와 경찰의 서울광장 집회 불허방침에 반발,시한부 장외투쟁에 돌입하기로 했다.우제창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오늘 오후 4시 시청 앞 광장에서 의원 전원이 모인 가운데 대책회의를 소집키로 했다.”고 밝혔다.민주당은 대책회의 후 시청 앞 광장에서 철야 천막농성을 벌인 뒤 6.10 범국민대회가 예정된 10일 오후 7시까지 시청 앞 광장 개방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보혁 전날부터 시국행사 열어 분위기 잡기  한편 대회를 하루 앞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은 각각 상반된 입장의 시국행사를 열어 분위기 선점에 나섰다.  진보 진영은 이번 행사를 정권의 각성과 국정쇄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론 결집을 목표로 하고 있는 반면 보수 측은 “사회적 불안을 피해야 한다.”며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전 11시 영등포 본부에서 노동자 시국선언을 하고 “6·10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정부의 반민중·친자본적 노동정책에 대항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오후 1시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민주주의와 87년 체제’를 주제로 학술 토론회를 열었다.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오전 11시 ‘MB OUT 민주회복 위한 대학생행동연대 발족 기자 회견’을 열고 전국 대학생 단체들을 결집,정부비판 운동을 확대한다고 선언했다.  보수 진영은 이에 맞서 반정부 여론이 불필요한 불안을 일으킨다며 시국관련 행사를 통해 진보 단체와 6·10 대회 주최 측에 자중을 촉구할 계획이다.바른사회시민회의는 오후 2시 전국은행회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대한민국의 장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정부 규탄 위주의 추모 대회에 대한 시민들의 정치적 균형 유지를 호소했다.뉴라이트전국연합을 비롯한 범보수 단체들과 ‘반국가교육척결 교육연합’도 오후 2시30분 같은 장소에서 각각 시국선언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핵 문제 등 사회적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사회 안정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세계 평화의 종아 울려라

    세계 평화의 종아 울려라

    전 세계 분쟁국가들로부터 탄피를 기증받아 만든 강원 화천군 ‘세계 평화의 종’이 26일 일반인들에게 처음 선보인다. 화천군은 20일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파로호 상류 평화의 댐 일대에 조성한 세계 평화의 종 공원 준공식을 26일 갖는다고 밝혔다. 공원에는 30개국에서 기증받은 탄피 등으로 만든 37.5t(1만관), 너비 3m, 높이 5m의 범종과 노벨평화상 수상자 17명의 평화메시지, 7명의 악수하는 손 조형물 등이 설치된다. 범종 위쪽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동서남북’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고 북쪽을 향한 비둘기 날개는 분리, 보관하다 평화통일이 찾아오는 날에 완전 조립할 예정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날 전 세계에 완벽한 종소리를 전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공원 안에 전시될 평화메시지는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의 사무국장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비폭력 인권투쟁을 펼치다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스몬드 투투 주교를 비롯해 티베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활동 중인 달라이 라마 등 노벨평화상을 받은 17명의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 수상자 7명의 실제 손을 본떠 만든 손 조형물도 함께 전시된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中 난징서 대학생 수천명·경찰 충돌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장쑤(江蘇)성 성도 난징(南京)에서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20주년을 2주일여 앞두고 벌어진 대학생들의 집단 시위에 중국 공안당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18일 밤 난징 항공항천대학(航空航天大學) 장닝(强寧) 캠퍼스의 대학생 수천여명이 공무원의 동료학생 구타에 항의하며 학교 부근 대로를 점거한 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비폭력, 비협조’ ‘소외계층을 도와 화합사회를 건설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밤 늦게까지 연좌농성 등을 벌이다가 출동한 공안(경찰)과 충돌했다. 특히 평화시위에도 불구하고 학생 3명이 연행되자 공안과 직접 충돌했으며, 이 과정에서 공안 차량들도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시위는 학교 부근에서 노점을 차려놓고 장사하던 이 대학 학생들이 단속 공무원에게 물품을 빼앗기고 일부 여학생들이 구타를 당한 데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관련 소식이 동료 학생들에게 급속히 전파됐고, 순식간에 수천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시민들까지 합세해 한 때 1만명이 넘는 군중이 부근 도로를 가득 메운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홍콩 언론들은 홍콩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정보센터 소식통을 인용, 20일 이 같은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다. 중국 인터넷에도 ‘남항대학 구타사건’ ‘남항사건’ 등의 항목으로 관련 내용과 사진이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대학생 시위는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이어졌으며,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부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 7일에도 저장(浙江)성 성도인 항저우(杭州)에서 대학생 수백명이 동료가 사망한 교통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바 있다. 한편 중국이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You Tube)에 이어 최근 검색 사이트인 구글의 블로그 서비스(Blogger.com)까지 차단했다고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네루-간디 가문/함혜리 논설위원

    인도 ‘건국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의 웅변은 지금도 역사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 그는 1947년 8월14일 자정 직전 이런 명연설을 남겼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세상 사람들은 잠들어 있겠지만 인도는 생명과 자유를 위해 깨어날 것입니다.” 인도 국민회의를 이끌던 마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전개한 것과 달리 강경한 투쟁을 벌이다 8차례나 체포되고 9년동안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던 네루는 독립 후 초대 총리에 취임해 1964년 죽을 때까지 지위를 고수했다. 인도 정치에 큰 영향력을 미친 ‘네루-간디 가문’의 영광은 이렇게 시작됐다. 네루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 카스트, 지역, 문화를 아우르는 범민족주의를 기본 통치이념으로 국가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미국과 소련 중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는 비동맹 외교로 제 3세계의 지도자를 자임하며 인도의 국익을 챙겼고 자주 국방에도 힘썼다. 인도의 자존심을 한껏 치켜세워 준 네루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물려받은 것은 네루의 무남독녀 인디라 간디다. 영국에 유학 중 페로제 간디와 결혼하고 귀국해 정계에 입문한 인디라는 1966년 당시의 총리 샤스트리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인도 최초의 여총리가 됐다. 녹색혁명을 성공적으로 실시하는 등 국민들의 신임을 받았지만 권위주의적인 정치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비운을 맛본다. 1980년 재집권에 성공하지만 1984년 10월31일 시크교도 경호원들에 의해 총을 맞고 암살당했다. 연방의회는 만장일치로 인디라 간디의 아들 라지브 간디를 총리로 선출했으나 그 역시 1991년 선거를 지휘하던 중 암살당하고 만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라지브 간디의 아들 라훌 간디가 최근 인도 총선에서 국민회의당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단숨에 정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하버드대를 나와 인터넷 회사를 경영하던 라훌은 귀공자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빈민촌에서 밤을 지새우고 지구 두 바퀴에 이르는 거리를 누비며 총선유세를 펼쳐 젊은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변이 없는 한 40세가 되는 2년 후 만모한 싱의 뒤를 이어 총리직을 맡게 될 전망이다. 네루-간디 가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속될지 관심거리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촛불집회에 감동 받아 시집 냈지”

    “촛불집회에 감동 받아 시집 냈지”

    “촛불은 우주적 사건이야.” 새 책이 나왔다고 서울 인사동에 기자들을 끌어모은 시인 김지하가 무슨 얘기를 하는가 했더니 대뜸 꺼낸 게 촛불 얘기. 그리고 구한말 사상가 김일부의 ‘정역(正易)’ 얘기다. “정역에서 후천개벽의 시작을 ‘기위친정(己位親政)’이라고 했어.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자리에 앉는다는 건데, 작년 촛불이 그 시작을 알리는 사건인 거야.”라고 말하는 시인. 그는 거기서 어찌나 감동을 받았던지 이번에 낸 4권의 에세이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이룸 펴냄)를 거진 다 촛불 얘기, 정역 얘기로 채웠다. 같이 낸 시집 ‘못난 시들’(이룸 펴냄)도 마찬가지. “촛불세대인 두 아들놈이 ‘오적’ 이후 시가 어려워졌다고 하더라.”라는 시인은 그걸 두고 “한 방 맞았다.”고 표현했다. 그 말 들으니 오랜 벗 조동일 교수 말도 생각이 나더란다. “어수룩하게 살고 못난 시를 좀 쓸 수 없느냐.”고 하던 말. 그래서 노력은 해야겠다고 던진 게 이번 책들이다. 못난 시에 멋들어진 제목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모두 ‘못난 시’라고 제목을 붙였다. 뒤에 붙인 숫자는 1, 2, 3 차례로 나가다 10000도 갑자기 나오고 소수점이 찍히기도 한다. ‘번호 없음’도 있다. 그걸 두고는 “붙인 숫자는 그냥 무질서 자체야. 지도자도 명령도 없었지만 자발적 비폭력을 몇 달간 이어간 촛불 같아 보이지 않아.”라고 해몽을 한다. 스스로 “반정부운동에 이골이 났다.”고 하는 그. 하지만 촛불을 무조건 지지한 건 아니다. “촛불은 뭔가를 비는 마음이야. 다소곳함이 있어야지. 자기 고기 구워 먹으려는 숯불이나 홍길동이가 의적질할 때 쓰는 횃불하고는 달라.”라고 쓴소리도 한다. 하지만 시인이 대운하 사업, 집회 중 마스크 착용 금지 등 정책을 두고 하는 소리들은 훨씬 더 쓰다. 대통령을 위시한 위정자들 얘기에는 거침없이 육두문자도 섞었다. ‘후배 운동권’들에게도 좋은 소릴 안 한다. 그는 “촛불이 숯불과 횃불을 역이용할 정도로 발전했어. 이제 지식인들의 시대는 간 거야.”라고 한다. 거기다 덧붙인다. “앞으로도 촛불은 켜지고 켜지고 또 켜지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켜질 거다. 각오해라.”라고. 그리고 들리는 시인의 혓소리. 쯔쯔쯔.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박연차씨, 태광실업 회장직 29년 만에 물러나 종합소득세 안내문 발송…올해부터 달라진 것은 ‘어머니로 살기 좋은 나라’ 한국 50위… 스웨덴 1위 逆이민 급증…왜 해외이주자들 돌아올까 화폭에 담은 모녀사랑 여성학자 10만원짜리 한식상에 뭐가 들어갈까
  • [촛불집회 1년] 자발적 정치광장 마련… 성격 변질돼 갈등 부르기도

    [촛불집회 1년] 자발적 정치광장 마련… 성격 변질돼 갈등 부르기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요구한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집회가 2일로 1년이 됐다. 먹거리를 걱정하며 촛불을 들고 시작된 집회는 일반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비폭력성 등으로 ‘촛불문화’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후 정치·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촛불이 저항과 압력 수단으로 활용된 경우도 적지 않아 또 다른 논란을 가져 왔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소통문화 코드로 인식되고 있는 촛불집회 1년의 명암을 짚어 본다. ●촛불이 밝힌 희망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촛불의 공과를 가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좌우 진영에서 촛불관련 토론회와 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학생과 주부, 직장인 등 생활인들이 광장으로 몰려 나와 국민 모두가 자발적 참여자가 됐다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그동안 정치사회적으로 약자였던 주부들과 학생들이 촛불의 도화선이 돼 이슈의 전면에 등장했다. 보수진영의 변철환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은 “촛불을 성원하는 국민들의 환호가 열렬해지면서 주도단체들도 뜻하지 않았던 성원을 받았고 멈출 수 없을 정도로 기세가 세차게 흘러갔다.”고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는 전국을 뒤흔들었다. 시민들은 촛불집회 3개월여 동안 대의정치에서 참여정치로, 제도정치에서 생활정치로 주권자로서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지난달 29일 치러진 경주 국회의원 재보선에 ‘아고라’책의 저자인 시민대표 채수범씨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도 촛불 정신이 토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이를 ‘헌정 애국주의’로 정의내렸다. 신 교수는 “민족에 기반한 기존의 맹목적 내셔널리즘을 벗어나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정치적 공동체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개인,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주의가 싹을 틔웠다는 분석이다. ●촛불이 드리운 그늘 하지만 촛불의 부작용도 만만찮다. 시민축제의 장이 정치적 이념 대립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촛불이 꺼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발적인 국민들의 요구를 이어가고 대안을 마련하기보다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이른바 ‘반MB 전선’으로 촛불이 확산되면서 불거진 좌우 갈등을 일컫는 대목이다. 촛불집회 막바지 무렵에는 정권퇴진 운동으로 촛불을 이어가야 한다는 정치적 견해도 있었다. 변 대변인은 “애초 순수성이 사라지는 바람에 오히려 국민들의 의견이 정부에 전달되는 길이 차단되고 정부 역시 소통의 움직임을 닫아 버렸다.”고 지적했다.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광우병에 대한 왜곡된 정보, 언론보도 속에서 오히려 누구의 말도 신뢰하지 못하는 등 사회적 권위가 해체됐다.”고 비판했다. 진보진영은 다른 각도에서 촛불의 한계를 들춰 냈다. 촛불의 ‘연대’ 정신을 살리지 못했다는 자성이다. 광우병 위험에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했던 촛불이 정작 벼랑 끝 삶을 살고 있는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를 끌어 안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인터넷카페 미친소닷넷의 운영자 백성균씨는 “촛불이 소외계층을 외면한 측면이 있다.”면서 “뒤늦게나마 용산 철거민 같은 서민들을 끌어 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고통의 공유와 연대만이 폭력 끊는다

    고통의 공유와 연대만이 폭력 끊는다

    존 레넌은 ‘이매진’에서 누굴 죽이거나 죽을 이유가 없는 세상을,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사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노력만 하면 쉬운 일이라고도 귀띔한다. 이 노래는 40년 가까이 국적, 인종, 종교,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음미하는 불후의 명곡이 됐지만 사람들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지, 노력하지 않았던 탓인지 여전히 크고 작은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정치학자이자 릿쿄대학 법학부 교수인 다케나카 치하루는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갈라파고스 펴냄)를 통해 다시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그는 일본 지식인 사회의 대표적인 반전주의자이자 평화운동가다. 그는 먼저 양극화를 이야기한다. 오늘날 세계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와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로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사회 내에서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 양상도 넓은 범위의 전쟁이다. 양쪽의 충돌이 빚은 전쟁은 무관심과 망각에 의해 심화된다. 악의 축이 돼버린 이슬람 세계는 새뮤얼 헌팅턴이 이론적 편견을 제공하고 미국 등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에 따라 변절을 거듭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뿐이다. 관심은 어떻게 전쟁 또는 폭력을 다스릴 수 있는가에 쏠린다.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강한 폭력을 써서 폭력을 없애는 방법이다. 미국이 자주 써먹는다. 단기간 효율성이 있을 수 있지만 저자는 “연쇄적인 폭력의 고리를 만드는 등 독으로 독을 제압하려다 대량의 독을 유포시킬 위험이 있다.”고 선을 긋는다. 두 번째로 최소한의 폭력으로 폭력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고 평화를 강제하는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을 떠올리면 되겠다. 이 방법도 외려 현지의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모두 강한 자만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저자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비폭력의 힘을 이용해 평화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그는 “이상주의자의 허황된 생각일 뿐이라며 무시당할지 모른다.”면서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혁신시켜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를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로 바꿀 희망을 포기 하지 않았다.”며 마하트마 간디가 펼친 비폭력 운동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인간 사회가 자멸할 수 있는데 왜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왜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답은 간단하다.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힘이 폭력을 통제하려는 힘보다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힘을 강화하면 보다 사이 좋게 세계를 만들 수 있다. 고통의 공유와 연대가 핵심이자 열쇠다. 이같은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정치가나 전문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선택으로 책임져야 하며 우리 스스로에게 평화의 비전을 만드는 힘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간디의 손자 라지모한의 글이 인용된다. “지금만큼 비폭력의 가치를 절실히 느낀 적이 없다. 빈부, 종교, 민족 등의 이유로 서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와 화해라는 다리를 놓자.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뉴욕의 어린이와 전쟁으로 발을 잃은 아프가니스탄 어린이가 서로 마음이 통하느냐 여부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 1만 1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함석헌 씨알사상 전집 출간

    사상가 함석헌 선생(1901~1989년)의 서거 20주기를 맞아 생전에 남긴 글을 집대성한 30권 분량의 저작집이 발간됐다. 함석헌은 기독교적 평화주의를 기반으로 유교와 불교·선 등 동양 사상을 아우르고, 자연친화적인 생명주의를 강조한 민족 사상가이자 민중운동가로 꼽힌다. 한길사에서 펴낸 이번 전집은 1988년 나온 함석헌 전집(20권)을 토대로 새로 찾아낸 시 72편, 강연문 26편, 편지 39편, 에세이 11편, 동양고전풀이 17편, 인물론 9편, 대담 6편, 간디의 명상집 등을 새롭게 추가했다. ‘씨알의 희망’처럼 발표 당시 검열로 인해 실리지 못했던 글들도 살려냈다. 함석헌의 역사의식, 씨알사상, 세계주의, 여성사상, 비폭력운동 등이 총망라돼 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함석헌의 사상은 특정한 사상이 아니라 보편적 내용을 다루고, 시세(時勢)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전”이라고 평가했다. 함석헌씨알사상연구원의 김영호 원장도 “선생의 저작은 다양한 삶의 원리와 실천론이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통섭이 요청되는 시점에서도 대단히 선구적”이라고 말했다. 한길사와 함석헌씨알사상연구원은 1일 오후 6시 교보문고 지하 1층에서 출판기념회와 더불어 ‘함석헌 선생 탄신 108주년 심포지엄과 낭독의 밤’을 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간디 유품 소장자 “보건 정책과 맞바꾸자”

    마하트마 간디의 유품을 경매에 내놓은 개인 소장자가 인도 정부에 물품과 인도의 국민 보건 정책을 맞바꾸자고 제의했지만 인도 정부가 이를 거절했다고 AF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인도 정부는 경매 참여를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부(國父)’의 유품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간디 소장품에 대한 경매는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5일(현지시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 인터넷판과 AFP 등에 따르면 미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평화운동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제임스 오티스는 경매를 하루 앞둔 4일 뉴욕 주재 인도 총영사에 ‘간디 유품 소장자가 인도 정부에 보내는 제안’이라는 제목의 서한을 전달했다. 오티스는 이 서한을 통해 “예산 배정 우선순위를 국방에서 국민보건으로 변경하면 유품 경매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AFP와 인터뷰에서 경매 철회와 함께 소장품을 정부에 기증할 뜻도 전했다. 오티스는 간디 유품을 활용해 ‘비폭력 저항운동’ 정신을 전파하는 교육 행사를 실시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오티스가 소장하고 있는 간디 유품은 둥근테 안경과 회중시계, 가죽샌들 등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도 정부는 이를 주권 침해로 받아들이며 즉각 반발했다. 일개 개인의 주장과 일국의 예산문제를 동등한 위치에 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한때 오티스는 정부가 제안을 받아들여 경매를 취소한다고 밝혔지만 결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무부의 아난드 샤르마 차관은 “간디도 이런 합의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인도인의 주권을 대표해 특정 부분에 대한 예산의 재분배 문제에 관한 한 합의는 이뤄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문화부 장관은 “인도 정부는 간디 유물을 되찾기 위해 경매 참여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면서 “다른 노력이 허사로 끝날 경우에 대비, 만모한 싱 총리는 정부가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덧붙였다. 경매 관계자는 유품이 2만~3만달러에 거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실제 낙찰가는 이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간디가 쓰던 ‘안경과 샌들’ 경매 나온다

    ‘인도의 상징’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가 생전에 쓰던 물건들이 경매에 나온다. 다음달 4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미국 뉴욕에서 회중시계, 안경, 샌들을 포함해 간디가 생전에 쓰던 물건들이 경매될 예정이라고 ‘타임스’를 비롯한 영국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번에 경매로 나온 물건 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회중시계, 안경, 샌들이다. 간디가 사용하던 회중시계는 6년 동안 그의 비서로 일한 조카딸 아바(Abha) 간디가 소장하고 있었다. 1910년 무렵 간디가 회중시계를 찬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이 시계가 진품임을 증명하고 있다. 간디의 트레이드 마크인 둥근 금속테 안경은 1930년대에 인도군 대령 H A 시리 디완 나와브(Shiri Diwan Nawab)가 선물로 받아 그 가족들이 갖고 있었다. 당시 간디는 “이것은 나에게 자유로운 인도의 이상(vision to free India)을 주었다.”는 말과 함께 이 안경을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가죽 샌들은 1931년 영국 런던에서 인도의 자치를 둘러싸고 원탁회의가 열렸을 때 자신의 사진을 찍어준 영국군 장교에게 보답으로 준 물건이다. 이 물건들은 각각 선물 받은 사람의 가족을 통해 물려내려 오다 익명의 수집가에 의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경매를 주관하는 ‘안티쿼룸 경매회사’(Antiquorum Auctioneers) 측은 이 물건들의 가치를 3만 파운드(한화 약 6000만 원)로 평가했다. 그러나 “간디는 생전에 갖고 있던 물건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이번 경매에 나온 것은 실제로는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한편 간디는 1869년에 태어나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인도의 독립 운동에 헌신했고 ‘비폭력주의’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48년 78살의 나이로 한 극우파 힌두교 신자의 손에 암살되기까지 인도 전통의상을 즐겨 입고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이며 주로 불리는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란 뜻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문설주 기자 spirit0104@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만나고 싶었습니다]‘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만나고 싶었습니다]‘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을 기억하시나요. 1973년 9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 소속으로 전남 장흥·강진·영암·완도에서 당선된 황호동(73) 의원. 110㎏에 180㎝의 거구인 그는 이듬해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에 국회의원 신분으로 역도 선수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그해 서울신문은 9월 6일자 1면 기사에서 “역도 슈퍼 헤비급 黃鎬東선수(국회의원)가 132.5㎏으로…은메달을 보탰다.”고 보도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국제대회 선수로 뛰었던 일이나, 메달을 딴 것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황 전 의원을 전직 국회의원들의 사랑방인 서울 을지로 헌정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그를 만나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국회의원 역도선수가 된 배경부터 물었다.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김택수 당시 대한체육회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북한이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데, 아무래도 북한과 메달 한두 개를 놓고 순위경쟁을 할 것 같으니 선수로 뛰어달라는 얘기였지요.” 역기를 놓아버린지 10년이 넘었고, 아시안게임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도 김택수 회장에게 “진작에 말하지 그랬느냐.”고 말하는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출전 결심이 서 있었다. ●슈퍼헤비급 체중 통과하려 맹물 엄청 마셔 황 전 의원은 출전을 하려던 이유에 대해 “내 의지를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선수생활을 그만둔 10년의 세월과 젊음을 뛰어넘어 국제경기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삶의 도전이었던 것이다. 결심은 했지만 국회의원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고 하면 “미쳤나 보다.”는 말을 들을까 봐서 친한 대학 선배 한 명에게만 출전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는 38세의 노장 역도선수는 태릉 선수촌으로 들어갔다. 유신헌법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할 무렵 야당 의원이 정부 측의 요청에 덥석 응했다면 이상한 눈길을 받았을 터. 그는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다 TV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나오자 욕설을 하면서 “왜 또 나왔어?”라고 소리를 지르는 강한 야당성향을 보여줬다. 그리곤 그의 모습은 두 차례나 선수촌에서 며칠씩 사라졌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있는 남산에 끌려갔다 왔던 것이다. 짧은 기간에 가장 어려운 것은 훈련의 강도 보다 몸무게였다. 슈퍼헤비급에 출전했지만 훈련을 해도 몸무게는 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에서 몸무게를 재기 몇시간 전부터 맹물을 엄청나게 마시고 간신히 통과했다. 그리고 은메달을 땄다. 한국대표팀은 금메달 16개·은메달 26개로 4위, 북한은 금메달 15개·은메달 14개로 5위였다. 냉전이 한창일 당시였기에 남북 승부 결과는 국민적 관심사였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역도로 다져진 그는 당시로서는 거구였다. 그래서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중인 1956년에 ‘고려대 덩치’ 4명에 선발됐다. 4명은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호에 투입됐다. 하지만 신익희 후보가 선거를 불과 10일 남기고 유세 도중 돌연 숨지면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그의 큰 덩치는 국회의원이 돼서도 인기를 누렸다. 여야 대치가 있을 때면 전면에 나서달라는 요구는 그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1972년의 10월유신으로 8대 국회가 해산되고 실시된 총선에서 탄생한 9대 국회에서는 극심한 유신반대 투쟁이 벌어졌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개헌 추진을 위한 대여 강경투쟁 노선을 선택했다. 공화당은 국회(현 서울시의회) 건물 문을 걸어잠그고 운영위를 열어 야당이 발의했던 개헌특위구성결의안 폐기를 시도했다. 복도에 몰려 있던 신민당 의원들은 “황호동 의원 어디있어?”라고 찾았다. 불려나간 황 의원은 회의장 문짝 아래 위를 두 손으로 잡고 틀었다. 그가 문을 틀어놓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이가 틈 사이로 손을 넣어 문고리를 열었다. 문을 부수지 않고도 회의장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의안 폐기가 선언되고 난 뒤였다. 해머와 소화기가 등장한 35년 뒤의 18대 폭력국회 장면을 보면서 소감이 어땠을까. 그는 “요새 정치 싸움은 치열해요. 무슨 시장 깡패들도 아니고….”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에는 나를 김두한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나는 비폭력주의자였어요. 김영삼 총재 시절에 여야가 부딪치기는 했지만 의자에 앉아서 말로 싸웠지, 저런 폭력은 쓰지 않았어요. 지금 야당이 너무 지나치다고 봐요.”라고 혀를 찼다. 그리고는 “매우 저질 국회요. 대통령에 국회 해산권이 없으니까 국회가 자진해산해야 할 판이오.”라고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여야 대치때 선봉섰지만 난 비폭력주의자 개헌특위구성결의안이 폐기되자 김영삼 총재는 가두시위를 벌이고 청와대까지 쳐들어가자고 했다. 그때 황 의원이 나서 “바깥에 경찰이 쫙 깔려 광화문에도 못갈 판에 무슨 청와대를 가느냐.”고 반대했다. 주변에서 “기운 센 사람이 왜 반대하느냐.”는 핀잔이 쏟아졌지만 황 의원은 “기운이 세니까 반대한다.”고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에는 야당 내에서도 파벌 대립으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1975년 신민당 옥천·보은·영동지구당 개편대회에서 나선 이용희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중앙당에서 최형우 사무차장이 파견됐다. 최 사무차장은 현지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국회 내에서는 폭력이 없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이철승 계보였던 그는 호남출신이면서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을 지지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유세장에 갔더니 연설대 위에 김대중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달라는 메모가 올라와 있었다. 그는 메모 요구대로 하기는커녕 김대중 욕을 실컷 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1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황 전 의원은 인터뷰를 마친 뒤 헌정회 사무실을 나서면서 “지금 국회는 너무 사납다.”면서 “참을성을 키워서 국회와 국회의원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어떻게 지내시나요 1주에 3일 신장투석… 정부 지원금으로 생활 황호동 전 의원은 몇년째 투병 중이다. 신장기능에 문제가 생겨 1주일에 3일을 병원에 가서 투석치료를 받는다. 그래서 인터뷰 날짜도 병원에 가지 않는 날로 잡았다. “건강은 어떠시냐.”는 질문에 “한번에 피를 4㎏씩 투석하고 나면 어지러워서 계단에서도, 길에서도 넘어지기 일쑤요.”라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슈퍼헤비급 은메달리스트여서 장미란 선수를 연상하면서 인터뷰에 나갔지만 황 전 의원은 ‘키 큰 전직 의원’ 모습이었다. 한때 어른 허리만했다는 팔뚝은 여느 70대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병과 싸우느라 약간 지쳐보였지만 목소리는 정정했다. 요즘도 하루에 담배 한 갑 반을 핀다고 했다.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일반 병원에 다녔지만 요즘은 종교단체에서 투석을 하기 때문에 돈은 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돈 얘기가 나오자 황 전 의원은 “집이 워낙 좁아서…. 응접실이 없어서 손님을 집으로 오라고 하지를 못해요.”라고 했다. 나이 등을 감안해서 자택으로 인터뷰를 가겠다던 기자를 굳이 말리고 헌정회 사무실을 고집했던 데 대한 해명인 셈이다. 전남 강진 갑부였던 조부로부터 140여평의 불광동 주택 등 부동산 몇 채를 물려받았지만 남은 것은 30평짜리 아파트뿐이라고 했다. 정부 예산에서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100만원으로 생활을 한다. 이 가운데 자신의 용돈은 20만원, 나머지 80만원으로 부인과 함께 생활을 한다. 생활비가 적지 않으냐고 하자 “우리 사회와 경제가 어느 상황인데, 이 정도면 고마워해야지요.”라고 손사래를 친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생활하는 박영록 전 국회 부의장의 사정에 비하면 자신은 낫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가 10대 국회에서 낙선하고 나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 정치규제에 묶여버렸다. 그 뒤에 그는 정치계를 떠났다. 떠난 이유를 물으니 “돈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의 국회의원 시절에는 낭만과 멋이 있었던 듯했다. 국회의원 시절 월급을 타는 날이면 당시 국회의사당 부근의 무교동 다방에는 대학 후배들이 그득했다고 한다. 월급봉투를 들고 다방에 들어가서 후배들과 만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월급을 나눠주다 보면 월급 봉투는 금방 비어버렸다. 때로는 집으로 찾아오는 후배들을 빈 손으로 보내지 못해 용돈을 쥐어줬다고 했다.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 73세 ▲ 전남 강진 출생 ▲ 강진 농고 졸·고려대 경제학과 졸 ▲ 9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전남 강진·장흥·영암·완도) ▲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 발기위원 ▲ 신민당 중앙당 청년지도국장 ▲ 체육훈장 백마장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선씨 종부 ‘350년 간장’ 인터넷에 팔았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나 뉴타운이 애물단지가 된 이유 또 다른 철거민들…세운상가 떠난 이들의 겨울 29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 화염병 폭력시위 최대 20년 구형

    화염병 폭력시위 최대 20년 구형

    모 단체 회원 수십명이 서울 시내 도로를 점거한 채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경찰관 27명이 다치고 경찰 버스가 망가졌다면 검찰 구형은 어떻게 될까. 검찰이 내놓은 노동·집단사범 양형기준에 따르면 기본 14등급(징역 6~8개월)에서 출발하는 흉기사용 폭력 집회·시위 유형으로 분류된다. 또 화염병 투척 등 행태에 따른 3등급, 상해자 수 및 상해 정도에 따른 4등급, 재물 파손에 따른 1등급, 시설물 점거에 따른 2등급이 보태져 24등급(징역 4~5년)이 구형된다. 대검 공안부(부장 박한철 검사장)는 15일 노동·집단 사범 구형 기준 도입 등의 2009년 공안부 운영방침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근로조건과 무관한 불법파업으로 국민에게 불편을 끼치고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 과거와는 달리 고소·고발이 없어도 수사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안3과 부활, 검찰 수뇌부 인사에서의 ‘공안통’ 약진에 이은 이 같은 조치 등 강력한 ‘공안 드라이브’가 거듭 예고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신공안 정국 조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새 제도는 서울중앙지검, 서울남부지검, 부산지검, 광주지검, 울산지검, 창원지검, 순천지청 등 노동·집단 사범 사건이 많은 10여개 청에서 8월까지 시범 실시한 뒤 문제점을 보완해 확대 시행한다. 김희관 대검 공안기획관은 “구형 기준이 체계화·계량화됨으로써 전국적으로 일관된 법집행이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평균 구형량은 다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5년 동안 노동·집단사범 1459명의 판결문을 분석해 30등급의 구형 기준표를 마련했다. 또 불법 집회·시위 유형을 비폭력, 일반 폭력, 시설점거 폭력, 흉기사용 폭력 등 네 가지로 나눠 각 2~5등급, 12등급, 13등급, 14등급을 기본 등급으로 부여했다. 불법 파업의 유형도 네 가지이며 비폭력의 경우 기본 9등급이고, 나머지는 집회의 경우와 같다. 검찰은 가담 동기와 정도, 파급 효과, 피해 정도, 수사협조 등 다양한 요소를 가중·감경 인자로 활용해 기본등급에서 등급을 올리거나 낮춰 구형하게 된다. 검찰은 특히 흉기 소지 또는 사용, 주요시설 점거, 떼법 관철을 위한 집단 행동, 정당한 기업활동 방해 등을 주요 가중인자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검찰은 부당노동행위,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사측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구형기준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150명 규모 사업장의 대표가 노조 불가입을 조건으로 직원을 채용하고 노조선거에 개입했다면 기본 10등급에 사업장 규모에 따른 2등급, 노조불가입 조건 3등급, 노조선거 개입 5등급을 합쳐 20등급을 기준으로 구형받게 된다. 한편 검찰은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법질서 확립 수준을 측정·점검할 수 있는 ‘법질서 확립 지수(떼법 지수)’를 외부 용역을 통해 상반기 중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타임’ 표지 폭력국회 여야 책임 떠넘기기

    여야는 11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한국의 ‘폭력국회’ 사진을 표지에 실은 것과 관련, 신경전을 벌였다.타임은 아시아판 최신호(12일자)에서 아시아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본회의장 내에서 여야 의원들이 뒤엉켜 있는 우리나라 국회의 사진을 태국 시위대가 절규하는 모습 등과 함께 표지 사진으로 사용했다<서울신문 1월10일자 4면 보도>.이 사진은 17대 국회 때인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 직전에 빚어진 여야간 물리적 충돌을 담고 있다. 당시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BBK 특검법’을 처리하려 하자 한나라당이 이를 반대하며 본회의장을 점거했고, 신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심하게 충돌했다.한나라당은 타임지 사진으로 과거 본회의장 점거 경험이 있는 구태의 당사자였다는 사실이 부각될까봐 신경쓰는 눈치이고, 민주당도 최근의 ‘입법전쟁’에서 물리력을 동원했다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이 사진을 크게 부각할 의도는 없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도 이번 ‘폭력 사태’의 원인을 상대방에 넘기며 신경전을 펼쳤다.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우리 국회가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된 데 대해 민주당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본회의장 점거의 원조로 폭력행사 당사자들이 권력의 병풍 뒤에 숨어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고 말했다.오상도 김지훈기자 sdoh@seoul.co.kr
  • 진성호 “민주,‘폭력당’으로 이름 바꿔라”

    진성호 “민주,‘폭력당’으로 이름 바꿔라”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했던 민주당을 향해 “당명을 폭력당·소수독재당·탈법당·비민주당으로 바꾸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진 의원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토론방에 올린 ‘민주당 당명부터 바꾸세요’란 글에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지난 6일 본회의장 점거를 해제하면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을 듣고 기가 막힐 뿐이다.누가 준 어떤 권리로 민주당은 본회의장 문을 닫았다는 것인가.민주당 대표가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진 자리인가.”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그는 정 대표를 향해 “국회 정상화란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항의한 뒤 “해머·등산용 자일 등을 이용,국회를 무법천지로 만든 총체적 책임은 정 대표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 의원은 국회 점거에 대해 “이런 식이면 국회의원 선거는 왜 하나.그냥 민주당이 법안도 만들고 통과도 시켜라.”라며 “지금 국민들의 지난 총선 투표에 대해 불복종 투쟁을 하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이 점거 기간 중 ‘비폭력’ ‘민주주의’란 팻말을 사용한 것에 대해 “정말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고 평가절하한 그는 “자신들이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현장에서 어떻게 그런 문구를 들 수 있는가.”라며 공격을 이었다.  진 의원은 “최장집 교수가 말했듯 촛불민주주의는 이상이 아니다.지금의 선거제도와 국회제도가 민주화 투쟁을 거친 대한민국이 만든 최선의 제도”라며 “의회민주주의가 흔들리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곳인 국회는 누구보다 더 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머와 등산용 자일을 동원하고 본회의장 내에서 식사하면서,일방적 주장을 담은 문구를 국회 본회의장에 덕지덕지 붙여놓는 방식이 민주당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인가.초등학생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해 초 신년하례사를 지적하기도 했다. 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인가.시대가 변했는데 아직도 저항하던 시절의 패러다임을 고수하자는 것인가.”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진 의원은 “승리하신 민주당 의원님들, 만족하시냐.계속 이런 식으로 국회를 운영하실 거냐.언제까지 야당만 하시려고 하냐.다음 세대에 부끄럽지 않느냐.”면서 “잠시의 승리 때문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지금 회생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고 거듭 비난했다.  하지만 진 의원의 이 같은 강변에도 네티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대부분의 네티즌은 진 의원의 발언에 비난 댓글을 다는가 하면 반대표를 던지고 있는 것.7일 오후 2시 현재 진 의원의 글은 13만 2831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정작 찬성은 587표에 그쳤다.반대표는 무려 1만 4473표를 기록하고 있다.진 의원의 글에 대한 답글은 무려 1만724개나 됐지만 이 중 진 의원에게 호의적인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대부분의 네티즌은 진 의원의 주장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일부 네티즌은 “한나라당은 당명을 딴나라당으로 바꿔라.”(좋은 사람), “뻔뻔하다.”(이븐)라며 과격한 댓글을 달았다.또 “진성호님은 신인 개그맨인가요.”(신비의 스타), “ 장수하세요.큰 웃음주셔서 땡큐”(연희과새로미) 등 진 의원을 비웃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aura’란 아이디의 네티즌은 “딴나라당이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것부터가 코미디”라며 “한나라당 사람들은 눈가리고 아웅하기의 달인이다.”라고 비난했다.이 외에도 “땅나라당이 민주주의를? ㅋㅋㅋㅋ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요.”(옳게 사는 거니)와 같은 비난 의견이 줄을 이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조폭 잡는 저승사자’ 퇴임

    ‘조폭 잡는 저승사자’ 퇴임

    부산지역 조직폭력배에 ‘저승사자’로 불렸던 부산지방경찰청 폭력계 고행섭(58) 경감이 30일로 30여년간의 형사 생활을 접는다. 지난 79년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그는 무려 20여년을 부산 경찰청 폭력계에서 보내며 ‘조폭 형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92년 ‘범죄와의 전쟁’에서 칠성파,20세기파,유태파,영도파 등 부산 4대 폭력조직을 일망타진했다. 1998년 부산 금정구 서동에서 엽총 인질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인질범을 설득시켜 수갑과 함께 단주(짧은 염주)를 채워줬다.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이때부터 붙잡은 범인들에게는 단주를 꼭 채워줬다. 2002년 ‘사랑의 경찰교사제’와 예비폭력배 양성을 뿌리뽑기 위해 2005년 도입한 ‘스쿨폴리스(배움터 지킴이)’도 그의 작품이다.고 경감은 ‘청소년 상담가’로 제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경성대학 야간과정에 다니며 2년째 책과 씨름하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고] 美 흑인 인권운동가 베벨 목사

    [부고] 美 흑인 인권운동가 베벨 목사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1960년대 미국 흑인 인권운동을 이끌었던 제임스 베벨목사가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오다 20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 자택에서 숨졌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향년 72세. 저명한 인권운동가였던 베벨 목사는 킹 목사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60년대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SCLC)와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를 이끌며 남부 흑인들의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섰고,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등 반전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1968년 킹 목사의 피살 후에는 멤피스에서 환경미화원의 파업을 지원하는 등 킹 목사의 유지를 받들어 인권운동을 해왔다.그러나 15년전 자신의 10대 딸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가 인정돼 지난 4월 유죄평결을 받았고,수개월 복역하고 보석으로 풀려난 뒤 항소를 진행하고 있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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