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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처 주지 않는 ‘대화의 기술’ 은평서 배운다

    서울 은평구 보건소 응암보건지소는 은평구 주민을 대상으로 비폭력대화 프로그램 ‘행복한 우리 가족, 나의 삶’을 실시한다고 13일 밝혔다. 비폭력대화란 마셜 B 로젠버그 박사에 의해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고, 자신을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공감과 소통의 방법이다. 이번 행사는 15일부터 30일까지 응암보건지소 4층 교육실에서 진행된다. 매주 수·목요일 오전 9시~낮 12시 총 6회 이뤄진다. 한국비폭력대화센터 정지선 전문강사가 강의한다. 은평구 주민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며 참가비는 무료이다. 교육내용은 솔직한 자기표현 연습, 깊이 있는 공감대화 연습, 핵심대화법 등 강의와 실습이 같이 진행된다. 실습을 통해 참여자들이 짝을 이뤄 배운 내용을 직접 연습해 보고 전문가의 피드백을 받아 하나씩 고쳐나가는 등 소통 방법을 배운다. 이번 교육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소통방식 속에 녹아들어 있는 공격성을 줄이고 가족 및 직장 관계에서 정서적인 유대감을 돈독히 할 수 있는 의사소통을 배우고자 마련됐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기고] “바람 속 촛불 되지 않도록 정부, 시민사회 의지 흡수 헌법 등 구조적 개혁 나서야”/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기고] “바람 속 촛불 되지 않도록 정부, 시민사회 의지 흡수 헌법 등 구조적 개혁 나서야”/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이른바 ‘촛불혁명’ 1주년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1000만 촛불 시민’이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인권상을 수상하면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그 관심이 확산돼 촛불시민이 노벨평화상이나 유엔 인권상을 수상하게 되길 기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의 평가는 어떨까. 촛불민주주의에 대한 해외의 관심과 연구는 이제 막 닻을 올렸다. 촛불민주주의에 대한 해외 학자들의 연구와 평가를 소개한다. 미국 포드햄대 호세 알레만 교수는 ‘글로벌 사건, 언어, 분위기에 대한 데이터’ 분석에서 “1979년 이래 한국의 정치 투쟁사와 비교했을 때 촛불집회의 강도가 셌다고 볼 순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지속성 측면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고, 실제 한국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기까지 100일간 보여준 모습은 2000년 세르비아에서 있었던 대통령 퇴진 비폭력 저항 운동에 버금간다”며 그 역사적 의의를 평가했다. 싱가포르국립대 김혜진 교수는 “촛불혁명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 원인은 한국에서 회자되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수저론’에서 비롯된 불평등 문제에 있다”고 봤다. “수저론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번진 부의 불평등 추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을 보여주며, 이 용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촛불시위를 촉발시킨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시각이다. 해외 학자들은 또 촛불혁명의 과정에 대해 소셜미디어, 스마트폰 앱, 인터넷 서비스 등 신종 미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네덜란드 네이메헌 대학 닉 얀코프스키 교수는 “한국에서 벌어진 ‘촛불민주주의’로 표현되는 대규모 집회 시위와 같은 정치적 사건에서 이런 소셜미디어들이 대중의 커뮤니케이션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뉴질랜드 와이카토대 고하르 칸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석을 통해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촛불집회를 ‘촛불난동’으로 묘사하고, 촛불집회 찬성자의 메시지는 ‘촛불혁명’으로 표현하는 등 양극화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미국 펜실베니이아대 저스틴 귀차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문에 명시된 내용은 거리 시위대가 주장하는 내용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재의 결정이 시위대의 촛불을 꺼버렸다고 생각한다”면서 “촛불집회에서 대규모 시민의 조직화 이면에 존재했던 희망을 실현하는 것과 동시에 좌절시켰다”고 분석했다. 이어 “헌재가 대통령 탄핵 요구에 동의했지만, 그런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어서 촛불 운동은 삭제됐다고 본다”면서 “원인은 한국 헌법 민주주의에 대한 보수적, 엘리트적 해석에 뿌리를 둔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해외 학자들은 촛불혁명 이후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한양대 칼 사세르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과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면서 “시위가 성공했지만 필요한 정당제도 변화와 헌법 개정 등 구조적·제도적 문제는 여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촛불혁명 이후 ‘바람 속의 촛불’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호주 디킨대 데이비드 훈트 교수는 “과거 한국 정부는 대규모 시위 세력의 일부인 시민사회의 의지를 체제 내부로 편입시켜 왔다”면서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시위에서는 시민 사회의 변화 의지를 내부화하는 정부의 역량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고갈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촛불혁명 이후 정부는 시민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그 의지를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로버트 베데스키 교수는 정치인류학적 시각에서 촛불혁명 이후를 전망했다. 그는 “촛불민주주의 이후 국가의 한 패러다임이 종식됐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됐다”면서 “향후 20~30년 동안은 신흥 권력 세력이 부상할 것이고, 이들은 본인들이 대중의 정서와 가치를 대표한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현 권력에 의해 새로운 법이 도입될 것이고 사회·경제적으로 국가의 개입이 확대될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패러다임 단계의 시작과 종말을 잉태한 씨앗을 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 [사설] 촛불집회 1년, 보혁 갈등 접고 통합의 길 찾아야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끌었던 촛불집회가 내일 1주년을 맞는다. 애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국민들의 자발적 집회로 시작돼 민심을 이반해 잘못된 길을 걸은 권력을 국민의 이름으로 끌어내린, 세계에서 유례없는 역사의 이정표를 세웠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작된 촛불 집회는 지역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모두 23차례 집회에 연인원 1680여만명이 참여한 촛불 집회는 비폭력과 평화를 지킨 국민의 승리,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촛불 정신은 국민 주권을 되찾아 올바른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 가자는 외침이었다. 권력을 사유화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권력을 단죄하고 부조리에 가득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자는 절규였다. 이런 촛불의 정신은 대한민국 개조의 원동력으로 변할 정도로 촛불집회의 영향은 크고도 심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을 받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고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 촛불 민심은 담대한 변화를 통한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여전히 혼돈 상태다. 촛불이 타오른 지 1년이 지났지만 촛불혁명은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 열망을 담은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을 앞세워 정쟁화시키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양극화로 대변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아직도 해소될 기미가 없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격화되는 조짐이다. 북핵 문제에 발목이 잡힌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전쟁 위기까지 직면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정권 교체를 이룬 자신감을 토대로 한층 성숙된 정치권의 대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른 구태의연한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촛불 민심을 이념의 잣대로 이분화해 정쟁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 정파의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촛불의 정신은 문재인 정부에도 적용된다. 촛불 민심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독단적인 국정 운영에 나설 경우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촛불의 정신은 어느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위대한 자산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자유와 정의의 소중한 가치가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의미다. 이는 보수의 정신도, 진보의 가치도 아닌 대한민국이 가야 하는 목표다. ‘촛불’과 ‘태극기’를 막론하고 우리 국민 모두의 바람이란 의미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갈등을 봉합하고 통합의 길로 가야 하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오늘 광화문광장에선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시민 집회와 태극기 집회도 동시에 열린다. 양 진영 모두가 갈등과 반목을 접고 서로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마음 자세로 대통합의 길로 나서길 당부한다.
  • [촛불 1년<상>] 1685만 촛불의 혁명…국민, 권력을 되찾다

    [촛불 1년<상>] 1685만 촛불의 혁명…국민, 권력을 되찾다

    3만→30만→110만→232만명 분노한 국민 촛불 들고 광장으로 “촛불 민주주의 정신 이어가야” 1년 전 서울 광화문광장이 무수한 ‘촛불’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이 하나둘씩 거리로 나왔다. 하나의 촛불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됐다. 그렇게 6개월간 23차례 열린 집회에서 모두 1685만여개의 촛불이 켜졌다.촛불 민심은 마침내 부정한 정권의 탄핵을 이끌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을 현실화하면서 ‘촛불혁명’으로까지 격상됐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인 모습도 크게 바꿔 놓았다. 촛불을 키운 건 박 전 대통령 자신이었다. 27일 서울신문이 23차례 진행된 촛불집회를 분석한 결과 그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퇴로로 찾았던 ‘대국민 담화’ 이후 촛불은 더 불어났다. 지난해 10월 24일 박 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그러나 같은 날 저녁 JTBC 뉴스에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면서 국민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다음날 박 전 대통령이 ‘1차 대국민 담화’에서 사과했지만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나흘 뒤인 29일 결국 1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작은 미미했다. 전국적으로 3만명(이하 주최 측 추산)이 거리로 나왔다. 이후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이 검찰에 체포됐다. 박 전 대통령은 11월 4일 ‘제2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특검 수사 수용 의사를 밝히며 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다음날 열린 2차 촛불집회에는 첫 집회 때보다 10배나 많은 30만명이 몰렸다. 11월 12일 3차 촛불집회에는 110만명이 몰리는 등 집회 인원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박 전 대통령은 11월 29일 ‘3차 대국민 담화’에서 “임기 단축을 포함하는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며 국회로 공을 넘겼다. 사과에는 진정성이 부족했다. 그러자 12월 3일 열린 6차 집회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232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수에 시민들이 촛불로 맞선 것이다. 광장은 점점 ‘축제의 장’으로 변해 갔다. 경찰과의 충돌은 잦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는 ‘비폭력 평화시위’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성숙한 시민의식도 광장에서 피어났다. 집회 참여자들은 자리를 뜰 때 일제히 각종 쓰레기를 치우는 등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특파원 생생 리포트] ‘죄수 소방관’ 들어보셨나요

    [특파원 생생 리포트] ‘죄수 소방관’ 들어보셨나요

    “불과 마주하면 무섭기도 하지만 교도소 대신 여기에 있는 것이 행복해요. 그리고 보람도 있고요.”미국에 ‘죄수 소방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는 1960~70년대 경부고속도로나 제주도 5·16 도로 건설에 범죄자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국가에서 산불 진화 등 중노동에 죄수나 범죄자를 이용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산불이 잦은 미 캘리포니아주의 범죄자들에게 ‘죄수 소방관’은 인기다. 교도소가 아닌 산불 진화 캠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주 정부는 일반 소방관(매달 평균 임금 3300달러)에 비해 매우 저렴한 비용(평균 500여 달러)으로 소방 인력을 충원하면서 연간 1억 달러(약 12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아끼고 있다. 캘리포니아 교정당국 관계자는 “캘리포니아 소방관 1만 2000여명 중 3분의1인 4000여명이 조기석방과 약간의 금전적 대가를 받고 산불 진화에 나서는 죄수 소방관”이라면서 “주 정부와 죄수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죄수 소방관 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한 해 평균 크고 작은 산불이 5000회 이상 발생한다. 2010년에는 한 건의 산불로 46만 에이커(약 5억 6300만평)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기도 했다. 산세가 험하면서 우기가 짧은 탓에 산불이 쉽게 일어나고 진화도 어렵다. 1년 내내 험준한 산에서 산불과 마주하는 캘리포니아 소방관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기피 직업 중 하나로 알려졌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죄수 소방관’이다. 먼저 약물이나 알코올 관련 등 범죄 사안이 가볍고 비폭력적인 수감자 가운데서 신청을 받는다. 그렇다고 수천명의 신청자 모두가 소방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교정당국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체력 테스트를 거친다. 또 4주의 기초 훈련을 마쳐야 비로소 ‘죄수 소방관’이 된다. 이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 교도소가 아니라 담장이 없고 열린 기숙사에서 민간 소방관들과 함께 생활한다. 식사의 ‘질’도 교도소와 비교할 것이 안 된다. 양질의 스테이크와 새우를 마음껏 먹을 수도 있다. 또 가족들이 방문하면 바비큐를 즐길 수도 있고, 캠프 내 작은 숙소에서 최대 3일간 가족과 지낼 수 있다. 한 죄수 소방관은 “교도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보통 캘리포니아 죄수들은 하루 모범 생활을 하면 하루 복역일이 줄어든다. 하지만 죄수 소방관들은 하루 산불 진화에 투입되면 복역일이 이틀 준다. 따라서 1년에 100일 정도 산불현장에 투입된다면 하루 자연 감소분과 이틀 특별 감소분을 더해 1년 정도의 형기가 줄어드는 것도 장점이다. 특별 급여도 나온다. 하루에 기본 2.56달러에 산불현장에 투입되면 시간당 1달러의 수당이 더해진다. 일반 교도소 죄수들의 시간당 노역장 임금인 8~95센트에 비해 높은 편이다. 죄수를 소방관으로 쓰는 것을 ‘착취’로 보는 시각에 대해 소방당국 관계자는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서 “교도소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바로 돌려보낸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교황 “남북 형제간 화해 이루길”

    교황 “남북 형제간 화해 이루길”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 종교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 간 화해 메시지를 띄웠다.프란치스코 교황은 2일(현지시간) 바티칸 사도궁에서 한국 종교지도자협의회의 예방을 받고 “한국인에게 평화와 형제간 화해라는 선물이 주어지길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단지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니라 소매를 걷어붙이고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며 “그 미래는 개인, 공동체, 인민, 국가 간 분쟁을 거부하고 조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 북·미 간에 험한 설전이 오간 것을 의식한 듯 “우리는 비폭력적인 평화의 언어로 공포와 증오를 야기하는 것들과 맞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를 떠올리며 교황은 “여러분을 보니 아름다운 한국 땅으로 향했던 지난 순례길이 생각난다. 우리가 하나 되어 나아갈 힘을 주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교황은 평소에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평신도로부터 신앙이 전파된 한국 가톨릭의 특수성을 종종 언급하는 등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 이날 예방에는 종교지도자협의회 의장이자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해 원불교 한은숙 교정원장, 천도교 이정희 교령, 유교 김영근 성균관장,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이경호 주교 등이 참석했다.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의 미겔 앙헬 아유소 기소 주교가 이들의 방문 목적을 설명했고, 교황은 일일이 예방단과 악수하며 환대했다. 종교지도자들은 교황에게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 자수와 원불교, 천도교 등 민족종교의 영문판 안내서를 선물했다. 이에 교황은 천주교 성물(聖物)인 메달을 답례품으로 건넸다. 메달에는 마태오 복음 25장 35절(‘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 따뜻이 맞아들였다’)이 새겨져 있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로힝야족 눈물 외면… “아웅산 수치 노벨상 박탈을”

    로힝야족 눈물 외면… “아웅산 수치 노벨상 박탈을”

    이슬람권 “실권자 수치, 학살 묵인”… 유엔 등 “인종청소 시도” 비난도 “아웅산 수치의 노벨평화상을 박탈하라.” 미얀마의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사망자와 난민이 급증하며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미얀마 정부와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3일 인도네시아 국영 안타라통신에 따르면 이날 세계 최대 이슬람교도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미얀마대사관 앞에서는 로힝야족 학살 반대 시위가 열렸다. 시위를 주도한 ‘로힝야족의 인도적 지원을 위한 직업 공동체’의 안디 시눌링가는 “아웅산 수치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면서 “수치는 로힝야족에 대한 폭력 행위와 강제적인 축출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11월 총선을 통해 집권한 수치는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 그리고 미얀마군에 의한 ‘인종청소’를 묵인 또는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수치는 앞서 미얀마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비폭력적 방식으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수니파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없는 공동체다. 이들은 몇 대에 걸쳐 미얀마에 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불교로 개종을 강요받거나 토지 몰수, 강제 노역, 이동의 자유 박탈 등 각종 차별·탄압에 시달렸다. 로힝야족과 미얀마의 갈등은 역사가 깊다. 1800년대 세 차례 전쟁 끝에 미얀마를 점령한 영국은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쫓겨났던 로힝야족을 데려와 중간지배계급으로 앉혔다. 이후 미얀마 독립과 함께 지금까지 불교도들의 보복을 받아 왔다. 로힝야족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2년 6월 라카인주에서 발생한 불교도와의 대규모 유혈충돌 때문이었다. 양쪽에서 약 200명이 사망했고 14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엔은 2012년 로힝야족을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10월 라카인주 국경 마을에서 경찰초소 습격사건이 벌어진 뒤에는,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란 단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ARSA는 갑자기 나타난 반군 무장단체로, 미얀마군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 미얀마군은 이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몇 달간 무장세력 토벌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8만 7000명의 난민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유엔과 인권단체는 미얀마군이 로힝야족 민간인을 학살하고 방화와 성폭행, 고문 등을 일삼으면서 ‘인종청소’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대학 국제관계학 교수 아시라풀 아자드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미얀마가 원하는 것은 모든 로힝야족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고 비판했다. ARSA가 지난달 25일 30여개의 경찰초소를 습격한 뒤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미얀마 군경과 공무원, 민간인을 포함한 사망자가 400명에 달하자, 지난달 27일 미얀마군이 국경을 넘으려던 로힝야족을 향해 박격포탄을 발사하고 기관총을 난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날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달 25일 이후 발생한 로힝야족 난민이 7만 3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난민 중 50여명이 총상을 입어 콕스 바자르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방글라데시의 난민 수용소가 포화 상태라고 AP통신은 이날 보도했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국경의 쿠투팔롱 로힝야족 난민캠프에서 만난 로힝야족 여성 라미자 베굼은 2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많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로힝야족이 국경 나프강에서 배를 타고 방글라데시로 들어가려 시도하다 익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달 31일에는 난민선 한 척이 전복돼 어린이와 여성 등 21명이 숨졌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반공법 1호 필화 ‘분지’의 남정현선생 가옥…함석헌 기념관·김수영 문학관엔 친필 원고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반공법 1호 필화 ‘분지’의 남정현선생 가옥…함석헌 기념관·김수영 문학관엔 친필 원고

    서울 도봉구 일대에는 남정현 가옥, 함석헌 기념관, 김수영 시비 등 걸출한 문화예술인의 족적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남정현 가옥에는 84세의 원로 소설가가 실제 거주하고 있다. ‘한국의 간디’ 함석헌 선생(1901~1989)이 살던 집은 함석헌 기념관으로 단장했다. 또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외롭게 서 있는 김수영 시인의 시비를 대신해 근사한 5층짜리 문학관이 손님을 맞는다.쌍문동의 2층짜리 주택에 살고 있는 남정현 선생은 반공법 제1호 필화사건 ‘분지’의 작가이다. 1965년 3월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한 뒤 같은 해 7월 기소됐다. 작가가 표현한 분지란 구릉지가 아니라 미국에 지배당하는 한국을 ‘똥덩어리 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삼각산이 한눈에 보이는 풍광이 좋아서 돈암동에서 이사를 왔고, 서울미래유산 동판이 붙은 집 대문을 아들과 함께 자랑스럽게 드나들고 있다고 말했다.함석헌 가옥은 선생이 1982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6년간 말년을 보낸 곳이자 선생의 둘째 아들 함우용씨 부부가 1978년부터 살던 집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전태일 열사의 집이 있었으나 열사의 집터는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시인, 교육자, 사상가, 언론인, 역사가로 항일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선생은 한국인 최초로 1979년과 1984년 두 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선정되었다. ‘씨알 사상’이라는 비폭력, 민주, 평화이념을 주창했다. 2015년 문을 연 기념관에는 보리수가 있는 앞마당과 선생이 즐겨 가꾸던 식물 온실도 꾸몄다. 1층 전시실에는 육필 원고와 편지는 물론 옷과 가구가 남아 있다.김수영 시비는 1969년 도봉동 산 107의 2 시인의 무덤 앞에 세워졌지만 당시 시신을 화장해 유골함을 묻었으니 문학관이 묘소라고 할 수 있다. 방학 3동 문화센터를 리모델링해서 문학관으로 개장했다. 1층엔 친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고, 벽면엔 시인이 시와 산문에 자주 쓰던 단어를 자석카드로 만들어 모아 놓았다. 2층은 일상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3층은 작은 도서관과 열람실, 4층은 세미나와 시낭송회가 열리는 대강당이 있다. 꼭대기 5층은 옥외 쉼터와 휴게공간 용도로 쓰인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팀
  • 남성 10명 중 8명 “연인에 폭력 행사한 적 있다”

    남성 10명 중 8명 “연인에 폭력 행사한 적 있다”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는 남성이 79.7%나 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16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홍영오 연구위원이 내놓은 ‘성인의 데이트폭력 가해 요인’ 논문에 따르면 이성 교제 경험이 있는 성인 남성 2000명 중 1593명이 연인에게 한 번이라도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가해 경험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상대방을 가족과 친구로부터 고립되게 하거나 행동을 감시하는 ‘행동통제’ 유형이 전체 응답자의 71.7%로 가장 높았다. 성추행(37.9%), 심리적·정서적 폭력(36.6%), 신체적 폭력(22.4%), 성폭력(17.5%), 상해(8.7%)가 그 뒤를 이었다. 행동통제 유형의 경우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했다’가 43.9%로 가장 높았고,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 전화’ 38.5%, ‘옷차림 제한’ 36.3%, ‘다른 이성 만나는지 의심’ 36.2%였다. 이밖에 심리적·정서적 폭력은 ‘화가 나 발을 세게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았다’가 23.1%로 가장 많았다. 신체적 폭력 가해 경험은 ‘여자친구의 의사에 상관없이 가슴, 엉덩이, 성기를 만졌다’가 24.5%로 가장 높았다. 연인에게 상해를 입힌 경험은 ‘상대방이 삐거나 멍이 들거나 살짝 상처가 났다’가 6.9%로 가장 많았다. ‘기절했다’와 ‘뼈가 부러졌다’도 각각 3.5%와 3.3%에 달했다. 홍 연구위원은 “피해자들은 행동통제를 당한 경우 ‘헤어지자’고 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가해자들은 행동통제에 대한 피해자의 대응에 더욱 폭력적으로 반응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면서 “행동통제도 데이트폭력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 경험 중 행동통제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남성들이 이를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가부장적 태도가 많은 남성에게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가해 행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과 관련해선 데이트폭력의 수용 정도를 나타내는 ‘폭력에 대한 정당화’, ‘성장기 아동학대 피해 경험’, 정서·행동·대인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고 변동이 심한 ‘경계선 성격장애’가 모든 유형의 폭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 연구위원은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폭력 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샌드위치·독서로 독재에 맞선 태국 ‘신개념 시위’

    [그 책속 이미지] 샌드위치·독서로 독재에 맞선 태국 ‘신개념 시위’

    거리 민주주의:시위와 조롱의 힘/스티브 크로셔 지음/문혜림 옮김/산지니/184쪽/1만 9800원2014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태국 독재 정권은 시민들에게 “행복해지라”고 명령했다. 행복이 명령한다고 될 일인가.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5명 이상 모이는 것도 금지하는 군부 정권의 횡포 앞에 시민들은 단순하지만 영민한 시위를 이어 갔다. 공공장소에서 샌드위치 먹기와 책 읽기로 거부하고 저항한 것. 그래서 샌드위치는 ‘민주주의 도시락’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인권운동가인 저자는 중국, 미국, 유럽, 중동 등 세계 전역에서 이뤄진 기발하고 익살스러운 시위 풍경을 포착해 새로운 변화의 길을 만들어 간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시위의 효과적 표현은 오직 창의적 표현뿐”이라는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의 말을 체감할 수 있는 79장의 사진들이 ‘변화의 순간’들을 증거한다. 저자는 “(이들이 이끈)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는 창조성과 용기 그리고 비폭력의 힘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준다”는 말로 시위의 정형을 깬 풍경들이 우리에게 건넨 가치를 전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中정부는 나의 적이 아니다”… 류샤오보, 적이 없어 더 강했다

    작가 친구 예두 “두드리면 더 유연해져” 구심점 잃은 반체제 진영 위축 전망도 “내 자유를 빼앗아간 정부에 말합니다. 나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나를 감시하고 체포하고 심문했던 이들과 나에게 형을 선고한 이들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2010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노르웨이 출신 배우 리브 울만이 대신 읽은 류샤오보의 법정 최후진술이다. 당시 류샤오보는 감옥에 있었고, 그가 앉아야 할 시상식 의자는 텅 빈 채로 남겨졌다. 류샤오보는 노벨상 소식을 부인에게 전해 듣고 “톈안먼 광장에서 희생된 영혼들에게 주는 상”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중국 정부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류샤오보를 ‘체제의 적’으로 규정했지만, 류는 적이 없었다. 스스로 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해졌다. 류샤오보의 친구인 작가 예두는 14일 홍콩 명보에 “당국이 그를 100번 두드리면 그는 100배 더 유연해졌다”면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당국엔 가장 큰 위협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계기로 체제에 저항하는 모든 힘은 류샤오보로 응집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류샤오보는 1980년대 초반부터 중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톈안먼 시위를 주도했던 저우펑숴는 “학생 대표 상당수가 류샤오보를 흠모했었다”고 밝혔다. 톈안먼 사태 직전에 류샤오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시위 소식을 듣고 고국으로 날아온 그는 광장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았다. 학생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며 단식에 돌입한 지식인 4명(톈안먼 4군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시위대가 군인의 총을 빼앗아 무장하는 단계에 이르자 기관총을 직접 부수며 비폭력을 외쳤다. 학생 대표였던 수쑤리는 “1989년 6월 4일 새벽 류샤오보가 시위대를 무장해제시키지 않았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더 죽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톈안먼 광장이 유혈 진압된 이후 많은 동지들이 망명했다. 지인들은 물론 당국도 노골적으로 망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류는 “망명은 패배”라고 여겼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08 헌장’은 2008년에 작성됐다. 당시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대였다.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이 유행했다. 중국 공산당은 서방의 체제를 마음껏 조롱했다. 이때 류샤오보는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을 요구한 헌장을 발표했다. 당국의 눈에는 톈안먼 사태의 씨앗을 잉태한 이도 류샤오보이고, 톈안먼을 영속시키는 이도 류샤오보로 비쳐졌다. 중국 내 반체제 진영은 구심점을 잃고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명보는 “그를 대체할 인물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류샤오보의 죽음이 오히려 중국인들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에 제2, 제3의 류샤오보가 나타나면 통치가 어려워질 것이고, 류샤오보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면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정광용·손상대 측 “비폭력집회 주최…극소수 참가자의 행동 예견 못해”

    정광용·손상대 측 “비폭력집회 주최…극소수 참가자의 행동 예견 못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당일 도심 과격 집회 및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광용 박사모 회장과 손상대 뉴스타운 대표가 재판 첫 준비절차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옛 탄기국)’ 대변인이자 박사모 회장 정씨와 행사 담당자였던 손 대표 측은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조의연)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 기일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씨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다만 자세한 의견은 “공모관계나 법리적인 부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다음 기일에 밝히기로 했다. 손씨 변호인도 “사실관계를 전부 인정하지만, 손씨를 탄기국 행사 총괄 단장으로 보고 기소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손씨가 시위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일부 참가자들과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편 탄핵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의 대리인단이었던 서석구 변호사도 이날 법정에서 선임계를 내고 사건을 수임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씨나 손씨가 현장에서 질서를 지키라고 외치기도 했으며 철저히 비폭력적인 집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극소수 참가자의 행동을 (정씨와 손씨가) 예견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씨와 손씨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일인 3월 10일 헌재 근처에서 ‘태극기 집회’를 주최하고 폭력 시위로 변질하도록 여러 차례 선동적인 발언을 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됐다. 검찰은 시위 과정에서 경찰 측에 6000여만 원의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두 사람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수공용물건손상 혐의도 적용했다. 다음 공판준비 기일은 이달 26일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월 항쟁 30년] “촛불집회가 87년 체제·헌법 수호”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형성된 87년 체제와 헌법이 촛불집회를 가능하게 했고, 촛불집회는 87년 체제와 헌법을 수호했다.” 9일 서울대 법학대학원에서 열린 ‘6월 민주화운동 30주년 동아시아의 민주화와 헌법’ 국제학술대회에서 6·10항쟁의 의의와 촛불집회의 관계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학술대회는 한국헌법학회와 서울대 아시아태평양법연구소, 서울대 법학연구소가 주최했다. 이 자리에서 장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87년 체제는 민주화운동이 헌법 개정을 촉발하고 헌법을 정치권의 편의적 개헌 없이 10년 넘게 유지한 유일한 체제”라며 “지난해 촛불집회가 비폭력적 정권 교체를 이뤄낸 것은 광장 정치를 용인한 민주주의, 정당의 대통령 탄핵,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조치 등을 가능하게 한 87년 헌법과 체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국운 한동대 법과대학 교수는 “87년 헌법은 한국전쟁에 의해 탄생한 군부세력과 6월 민주화운동으로 결집된 민주화세력의 타협으로 형성됐다”며 “5·16 쿠데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군부세력과 5·18운동의 강제 진압을 드러내고자 한 민주화세력은 87년 헌법에 두 사건을 명시하지 않고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만 표현함으로써 타협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후 양 세력의 타협으로 형성된 87년 체제를 되돌려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광범위하게 존재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를 후퇴시키려 하자 촛불집회가 일어난 것”이라며 “촛불집회는 이런 퇴행을 87년 체제 성과를 최대한 동원해 막아냈던 헌정사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역사의 물길 바꾼 민주항쟁 모습은

    역사의 물길 바꾼 민주항쟁 모습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민주화 30주년을 맞아 6월 민주항쟁 관련 자료를 선보이는 사진전 ‘1987년을 돌아보다’를 10일부터 8월 27일까지 야외 역사마당에서 연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1987년 1월 벌어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직선제 개헌과 독재정권 타도를 외친 6월 민주항쟁, 그해 12월 개헌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까지 30년 전 모습을 담은 사진 30여 점이 나온다. 또 경찰의 폭력 진압에 대해 ‘비폭력으로 저항한다’, ‘연행을 거부한다’, ‘연행되면 묵비권을 행사한다’ 등의 지침을 담은 6·10 국민대회 행동요강과 다양한 신문기사도 공개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 전시와는 별도로 26일부터 9월 3일까지 민주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民(민)이 主(주)인이 되다’를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완의 6월 항쟁이 낳은 촛불… 진정한 성공위해 관심 지속을”

    1987년 6·10민주항쟁(6월 항쟁)과 촛불집회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6월 항쟁과 같이 2차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관심이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7일 행정자치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연 ‘6월 항쟁 3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6월 항쟁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1차적 목표는 이루는 데 성공했지만 군부 통치 종식과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2차 목표는 실패했다”며 “촛불 혁명도 1차적 목표(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는 달성했지만 진정한 성패는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6월 항쟁과 달리 민주정부 수립에는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6월 항쟁의 경우 학생과 넥타이부대, 노동자 등이 주요 세력이었다면 촛불집회는 여성, 노인, 중고생 등을 포함한 일반시민이 주체가 됐다고 비교했다. 그는 “지금의 촛불시민들이 집단지성으로 무장하고 훨씬 발전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군사독재에 저항해 시위에 참여하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용기는 1987년이 더 컸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6월 항쟁의 경우 6월 26일 하루만 3687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지속기간은 6월 항쟁이 20여일이었고 촛불집회는 5개월이었지만 집회일만 따지면 역시 20여일이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6월 항쟁의 참가 연인원은 500여만명(12%), 촛불집회는 1684만명(32%)이었다. 87년의 시민들은 공권력에 대항 폭력을 행사했고, 2017년에는 시민들이 비폭력을 고수하고 수호한 것도 큰 차이점으로 들었다.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6·10민주항쟁을 3·1운동, 4·19혁명과 비교 분석하며 “이들 사건은 약 30년 정도의 주기로 발생했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안착하지 못해 억압의 누적과 폭발이 세대가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튿날인 8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 과제’라는 주제로 연이어 학술대회를 연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집회는 변했다… 경찰도 변할까

    21차례에 걸쳐 1600만명 이상이 참가한 촛불집회가 평화집회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이제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방식도 이런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불법이나 폭력이 난무하는 집회·시위 현장이 아니라면 대화에 방점을 둔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백남기 투쟁본부’ 등 11개 시민단체는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을 개정하자는 입법청원운동을 시작했다. 개정안에는 경찰차벽 설치 금지, 살수차 사용 범위 제한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촛불집회를 이끌어 온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안진걸 공동 대변인은 “집회·시위 문화가 달라진 만큼 경찰의 관리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며 “우발적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경찰과 주최 측을 연결해 주는 ‘대화경찰’ 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부터 열린 촛불집회에서 연행자는 23명에 그쳤다. 집회 초기 경찰의 해산명령에 저항하다 연행된 시민들이었고, 경찰의 무리한 강제해산 시도가 사라진 4차 집회부터는 단 1명의 연행자도 나오지 않았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집회로 인해 비폭력, 평화, 패러디, 다양한 참여 계층 등 새로운 집회 문화가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1981~1987년 전체 집회·시위 가운데 58.9%가 불법·폭력 집회·시위였지만 1988~1992년에는 22.6%, 1993~1997년 9.0%로 줄어들었다. 2013년 이후에는 이전보다 집회·시위 건수가 늘어났지만 이 가운데 불법·폭력 집회·시위가 차지하는 비중은 0.4%에 불과했다. 1988~1992년 한 해 평균 2763명이었던 집회로 인한 경찰 부상자도 2013년 이후에는 85명으로 줄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 불법이나 폭력 집회가 아니라면 경찰은 집회의 보호자이자 관리자가 돼야 한다”며 “불법·폭력 집회·시위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새로운 관리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4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주최로 경찰의 새로운 집회·시위 관리 방식 모색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가 열리기도 했다. 스웨덴 등 선진국에서도 도입하고 있는 대화경찰은 집회·시위가 열리기 전부터 주최 측과 접촉해 경찰 지휘부와 주최 측 사이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이날 콘퍼런스에서 황규진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기존의 물리력의존모델과 달리 협의관리모델은 국가 시스템이 안정되고 국민의 민주 의식 수준이 높은 선진국의 집회·시위 관리 정책”이라고 밝혔다. 경찰도 촛불집회에서 확성기를 이용해 집회 참가자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등 이전의 집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대화경찰 도입 등 집회·시위 관리 방식 변화 요구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대화경찰 도입 등 집회·시위 관리 방식에 대한 새로운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이누이트족 교사 ‘국제교사상’ 수상…2만분의 1 경쟁률

    이누이트족 교사 ‘국제교사상’ 수상…2만분의 1 경쟁률

    캐나다 출신의 교사가 교육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국제교사상'(Global Teacher Prize)을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19일(이하 현지시간) 가디언 등 서구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교사상 시상식에서 매기 맥도넬이 학생들과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매기 맥도넬은 179개국에서 추천 또는 선발된 2만 명의 교사 중 추려진 후보 10명를 놓고 다시 꼼꼼히 심사한 결과, 최종 수상자가 됐다. 그는 100만 달러(약 11억 2870만원)의 상금도 함께 받게 된다. 국제 교사상은 3년 전 두바이의 비영리법인인 바키재단이 우수 교사를 격려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지난해에는 비폭력과 평화 교육에 헌신한 팔레스타인 교사가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기 맥도넬은 캐나다 퀘벡주의 극지방 살루이트 마을에서 6년 동안 이누이트족을 가르쳐왔다. 이 마을은 인구는 1000여 명에 불과한 시골 마을이지만, 자살률과 빈곤율, 성범죄율이 대단히 높게 나타나는 등 사회문제 역시 심각했다. 이 곳에 부임해온 교사들은 대부분 이러한 가혹한 조건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맥도넬은 "이 기간 동안 스스로 목격한 학생들의 사례만 해도 10건이 된다"면서 "아침에 교실의 빈 책상 주변에 감돌던 그 적막함과 슬픔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맥도넬은 미혼모 학생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자살 방지 교육을 시행했다. 그뒤 학생들의 학교 입학율이 5배 늘었고, 폭력과 약물 남용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는 "세계가 이들의 현실에 관심을 가져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다"면서 "상금은 지역 사회의 교육 사업을 위해서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시, 촛불집회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 추진

    서울시, 촛불집회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 추진

    서울시가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또 촛불집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함께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촛불집회의 노벨 평화상 추천을 위해 시 차원의 ‘추천TF팀’을 가동하고 있으며, 다음 달 ‘시민추천추진단’을 구성해 내년 1월 노벨위원회에 추천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국민일보가 20일 보도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넘게 비폭력 방식으로 진행된 촛불집회가 집회를 통해 민주주의 및 평화, 헌정 질서 유지 등의 국민적 여론을 표출한 점, 평화로운 집회 방법의 선례를 제시하고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기능한 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가한 점 등에서 노벨 평화상 추천 사유가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1월 31일 마감되는 노벨 평화상 추천서는 별도 양식은 없으며 후보자의 이름, 추천 사유, 추천자의 이름 및 추천자가 소속된 기관의 이름 등 세 가지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추천자는 ‘사람들’ 또는 ‘기관’으로 규정돼 있다. 서울시는 시민추천추진단에서 추천권자를 선정하되, 각계의 명망 있는 인사 20명 이상이 포함되도록 할 계획이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또 2020년까지 촛불집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신청하기로 했다. 시는 촛불집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인 ‘세계적인 중요성을 갖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이번달 중에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고, 자료수집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날 보도된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정치 격변기에 테러 등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경우가 많은데 우리 촛불집회에는 폭력이나 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면서 “국민들의 평화 집회 의지와 역량은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거나 노벨 평화상을 받을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지원을 추진해보려고 한다”면서 “시민 촛불혁명을 역사에 기록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촛불집회 초기부터 자료를 모으도록 해 상당히 수집했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설] 대한민국 공동체, 새날을 열었다

    분열과 혼란의 터널은 끝났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이 새날을 열었다. 헌법재판소는 어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염원을 펼칠 때가 왔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이처럼 명명백백하게 보여 준 사건이 70년 헌정 사상 일찍이 없었다. ‘촛불’과 ‘태극기’의 집회가 내뿜었던 광장의 분노는 이제 삭여야 한다. 분열과 적대감으로는 결코 새로운 역사를 쓸 수도, 진전시킬 수도 없다. 우리 모두 겸허한 자세로 성찰하자. 헌법재판관 8명이 만장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더이상 탄핵 찬반으로 나눠 국력을 소진해서는 안 된다는 재판관들의 소명에 찬 결정이다. 우리 모두 승복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패가 달렸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으며 이러한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다”고 지적하고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며 파면을 선고했다. 350여일의 남은 임기를 못 채우고 파면된 당사자로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진전이다. 쿠데타나 혁명이 아닌 민주적인 법 절차로 대통령을 파면한 것은 헌정 질서 수호의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가 지적했듯이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하고 국민 신임을 배반했다. 파면 선고는 법치의 엄중함이 서릿발 같음을 최고 권력자에게 보여 주었다. 앞으로 권력자들이 권력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가를 보여 준 권력 행사 전범(典範)을 만들었다. 대통령직 파면 결정은 결국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이 그 권력을 회수한 것이다.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드러날 때, 국민들은 이미 대통령에 대한 도덕적 권위와 신뢰를 거두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부여한 통치 권력을 공의에 맞게 행사하지 않고, 비선 실세의 노리개로 삼음으로써 국민의 자부심에 먹칠을 한 것이다. 이제 사인으로 돌아간 박 전 대통령에게 요청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최종 변론에서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이야말로 이 다짐을 실천해야 할 때다.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에게 “우리 모두 승복하자”고 진정 어린 호소를 해야 한다. 지난 3개월여 우리는 양편으로 갈려 아스팔트 위에서 온몸으로 저항의 몸짓을 했지만, 비폭력과 평화의 금도를 지켰다. 이제는 시민의 역량을 통합과 화해에 쏟아야 한다. 이러한 성숙한 광장의 에너지를 새로운 시대를 열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동력으로 바꿔 보자. 더이상의 갈등은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할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내우외환에 처해 있다. 안으로는 탄핵 정국과 대선 정국이 뒤섞여 정치적 혼란이 거듭된 가운데 경제는 뒷걸음치고 불황 속에 청년 실업과 빈부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바깥으로는 북한 김정은이 잇단 신형 미사일 발사로 도발을 계속하고 있고.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착수와 중국의 전면적인 보복으로 안보 위기가 상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의 DNA를 가진 국민이다. 이제는 대통령 궐위 상태다. 60일 내에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선 주자들은 탄핵 과정에서 분열된 민심을 통합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화해와 치유의 최전선에 나서야 한다. 현행 권력 구조에 관한 성찰을 토대로 근본적인 토론도 필요하다. 서로 다른 신념이 극단적으로 부딪치는 광장 민주주의는 고장 난 대의정치 탓이다.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갈등을 조정, 통합할 책임은 대통령과 국회, 정당에 있다. 본격적인 대선 경쟁 과정에서 국난 극복의 국민적인 지혜를 모아야 한다. 새로운 통합의 리더십을 세워 내우외환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
  • 죽봉·각목에 자해까지…폭력 선동한 탄핵 반대 집회

    죽봉·각목에 자해까지…폭력 선동한 탄핵 반대 집회

    “다 박살 내겠다, 돌격하라”…2명 사망·2명 위중 경찰버스 탈취·파손…외신 기자까지 무차별 폭행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선고한 10일 이에 반발한 탄핵 반대집회 측 시위에서 참가자들의 폭력 사태가 속출했다. 이날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부상자가 이어졌고, 그 결과 병원에 후송된 참가자 2명이 사망했다. 다른 2명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위중한 상태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전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헌재의 주문 선고 이후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헌재를 박살내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 차벽으로 돌진했다. 시위대는 “우리는 피를 흘리지 않고 나라를 정상화하려 했는데 김대중·노무현 세력 때문에 이제 피로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 “이제 비폭력을 포기할 때가 왔다. 헌재와 검찰에 대항하는 폭력이 발생할 것”과 같은 과격 발언도 쏟아냈다. 사회자인 손상대 뉴스타운 대표는 폭력을 선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경찰을 향해 연신 욕설을 퍼부으면서 “다 박살내겠다”, “돌격하라”, “차벽을 끌어내라”고 참가자들을 선동했다. 정광용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대변인은 “박 대통령을 쫓아낸 모든 기자 색출작업에 들어간다”고 위협 발언을 내뱉었다. 이러한 선동에 일부 참가자들은 격앙됐다. 이들은 죽봉과 각목 등을 경찰에 휘둘렀고 차벽에 머리를 찧으며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취재진 폭행도 잇따랐다. 여러 언론사 소속 기자 10여명이 각각 취재 도중 이들에게서 집단으로 구타를 당했다. 카메라 등 취재 장비도 파손당하거나 탈취당했다. 취재 중인 기자 뒤에 다가가 금속제 사다리로 내려치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으며, 일본 교도통신 한국인 카메라기자는 집단 폭행으로 머리를 다쳤다. 시위대를 막던 경찰 9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경찰 피해도 발생했다. 참가자들은 경찰 버스를 파손하고, 차량에 밧줄을 걸어 잡아당기거나 차벽 차량을 뜯어냈다. 경찰을 향해 소화기를 뿌리기도 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시위 현장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62명으로 파악된다. 다른 참가자가 현장에 주차된 경찰 버스로 차벽을 들이받는 과정에서 소음측정차량에 부착된 철제 스피커가 떨어지면서 이에 맞은 1명 등 2명이 사망했고 2명이 크게 다쳐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다. 아울러 56명이 경상을 입는 등 60명이 병원으로 후송됐다. 2명은 현장에서 응급조치됐다. 탄핵 반대 집회 주최 측은 당초 밤샘 농성을 예고했다. 하지만 참가자 대다수는 오후 7시30분쯤 해산했고, 주최 측도 무대를 철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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