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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혁명기념행사서 “총격”/고르비 참석

    ◎사열대앞 행진시민 2발 발사 【모스크바 AP 연합】 볼셰비키혁명 73주년 기념행진이 진행되던 도중 한 남자가 레닌궁 사열대 인근에서 총 2발을 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현장을 목격한 타스통신의 한 기자가 말했다. 타스통신 비디오부 소속인 세르게이 보지아노프 등 목격자와 소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이 남자는 모스크바시 바우만지역 대표들 틈에 끼어 붉은 광장을 행진하던 중 고르바초프 대통령 등 소련지도부가 서 있었던 사열대에서 불과 80m 떨어진 지점에서 총신을 일부 잘라낸 2연발 사냥총을 2발 발사한 뒤 곧 체포됐다. 타스통신은 KGB의 한 대변인을 인용,체포된 남자가 레닌 그라드 출신이며 사냥총으로 공중에 2발을 발사했으나 사상자는 없었다고 보도했을 뿐 더이상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 외면 당하는 볼셰비키혁명/73돌 맞아 소서 옛「영광」 퇴색

    ◎라트비아공등서 경축일 공식 폐지/군 반대속 일부 시선 반정시위 허용/“혁명 아닌 테러”… 시민단체들,희생자 추모행사 벌여 볼셰비키혁명이 7일로 73주년을 맞는다.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레닌의 볼셰비키혁명은 그러나 사회주의의 퇴조와 함께 「빛바랜 영광」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고 있는 느낌이다. 볼셰비키혁명은 지난 1917년 멘셰비키의 임시정부를 무너뜨린 10월 혁명으로 소련 최대의 국경일로 경축되어 왔다. 혁명지도자 레닌은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을 창설하며 소련국민의 절대적 존경과 흠모를 한몸에 받아왔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도 소련사회를 개편하는 「평화적 혁명」을 주도하면서도 레닌이즘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성대한 볼셰비키혁명 기념행사를 위해 지난달 10일 포고령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소련 군부와 공산당의 보수파 지도자들도 혁명이념의 계승 발전을 위해 위엄있고 화려한 기념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소련의 사회구조 변화와 동유럽의 공산주의체제 붕괴 등동구의 대변혁 이후 사회주의 실험이 시작된 볼셰비키혁명은 소련과 동구에서 이제 더이상 최대의 국경일이 아니다. 발트해 3국중의 하나인 라트비아공화국은 지난날 3일 볼셰비키 혁명기념일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라트비아공화국은 더 나아가 이날을 「공산주의 공포에 희생된 날」로 지정했다.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공화국과 함께 아르메니아공화국도 이날을 평일로 만들었다. 15개 공화국중 거의 절반이 올해 볼셰비키혁명 기념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급진개혁파 지도자들은 악화된 경제상황을 감안,올해의 기념행사가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스크바시 의회 집행위원회는 지난 1일 모스크바시내의 군사퍼레이드와 함께 모스크바 유권자동맹의 항의시위도 동시에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개혁파인 포포프시장이 이끄는 모스크바시의 이같은 결정은 볼셰비키혁명 기념일이 더이상 소련국민 모두가 함께 축하해야할 소련 최대의 국경일이 아님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모스크바 유권자동맹은 이날을 「정치적 희생자를 기억하는 날」로 정하고 공산당본부가 있는 스타라야 광장에서 기념식을 갖고 반체제 핵물리학자 고 사하로프박사가 살던 치가로와 거리의 아파트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소련 제2의 공화국인 우크라이나의 시민단체인 「루프」도 당국의 군사퍼레이드에 항의,반군사 시위를 계획하고 수도 키예프에서 「공산당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 행사를 갖는다. 백러시아,타지크,우즈베크,카자흐,키르기스공화국은 공식적인 군사퍼레이드가 예정되어 있으나 민족분규와 생필품 부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어 진정한 축하행사가 될지 의문시 되고 있다. 각 공화국에서 볼셰비키혁명 기념행사에 대한 거부운동이 확산되자 소련정부는 모스크바시 군사퍼레이드 규모를 축소했다. 군사행진에 동원되는 군병력을 지난해의 9천3백명에서 8천6백명으로 줄이고 행사시간도 1시간에서 35분으로 단축시킨 것이다. 볼셰비키혁명 기념행사의 이같은 변화와 함께 일부에서는 10월혁명은 「국가적 비극」이며 많은 피를 흘린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레닌이즘은이제 더이상 모든 소련인들의 마음의 고향이 아니며 소련의 다당제 채택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으로 볼셰비키혁명의 역사적 의미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 외언내언

    소련의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는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라고 대답한다.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일축한다. 그는 사회주의는 정의ㆍ평등ㆍ자유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반대하는 것은 병영사회주의와 전체주의 국가가 개인에게 압력을 가하는 사회주의라고 규정한다. 그는 사회주의에서 비사회주의적인 위해 요소들을 제거하는 개혁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소련은 7일로 볼셰비키혁명 73주년을 맞았다. 1917년 10월혁명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창설을 기념하는 이날은 소련 최대의 명절이자 세계 사회주의 국가들의 기념일로 기려져 왔다. 하지만 지난해 동구 공산정권의 잇단 붕괴와 지난달 동서독의 역사적인 통일이란 세계적 대변혁 속에 소련 역시 다당제 채택 등 정치개혁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으로 볼셰비키혁명의 고전적 의미를 퇴색시키면서 「제2의 혁명」을 맞고 있다. ◆그러나 소련은 15개 공화국중 14개가 부르짓는 독립 또는 주권선언과 시장경제 전개를 놓고 순탄치 않은 길이 예상된다. 고르바초프는 이 두 가지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려 한다. 시장경제 전환계획이 잘만 되면 소련 전체 경제가 활성화되어 주민생활도 나아질 것이며 이에 따라 각 공화국들도 그가 구상하고 있는 새 연방조약을 받아들여 발전된 연방체제를 이룰 것이라는 야심이다. ◆어쨌든 소련은 이제 새로운 혁명을 위한 힘든 과정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새 경제를 창조한다는 것은 금세기 최대의 실험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비관론자들은 경제가 난파 직전인 이 판국에 경제개혁이 몰고올 혼란은 내란이나 쿠데타까지 유발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소련인들에게는 한다면 해 보이는 잠재 에너지가 있다. 그것이 소련의 힘』이라고 말한다. 「제2혁명」으로 불리는 소련의 개혁은 빠르면 식품 연료 등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번 겨울이,늦으면 서구적인 사고방식과 제도속으로 소련을 융화시키려 할 때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불확실하지만 이미 시작된 필요과정인 것이다.
  • 96년 1인 GNP 10,190불/7차 5개년계획 지침

    ◎연 7% 성장… 경상흑자 55억불로/95년부터 채권국 전환/교역량 2천억불 넘어/과학기술투자비율 GNP 3∼4% 선 오는 92년부터 96년까지 5년 동안 우리 경제는 연간 7%씩 성장,96년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만1백9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95년에 가면 총외채보다 대외자산이 많아져 채권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6일 이승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주재로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총량지표 전망을 포함한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수립지침」을 확정,33개 부문별 계획수립위원회에 시달했다. 이 지침의 총량지표 전망에 따르면 수출은 계획기간중 연평균 9.9%씩 증가,올해 6백45억달러(추정치)에서 96년에는 1천1백20억달러로 늘어나며,수입은 연평균 8.8%가 증가,올해 6백90억달러(추정치)에서 96년에는 1천1백30억달러로 늘어난다. 경상수지는 92년에 균형을 이룬 후 점차 흑자규모가 증가해 96년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55억달러로 확대된다. 정부가 이를 위해 7차 계획기간중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잠재력의 확충 ▲형평 및 복지증진 ▲국제화 대응체제 구축 ▲각종 제도정비를 4대 기본과제로 설정,중점 추진키로 했다. 경제기획원이 마련한 7차 계획의 기본지침에 따르면 우리 경제는 이 기간중 GNP 디플레이터가 연평균 4.5%를 기록,물가가 가장 안정됐던 83∼87년 수준(4.2%)과 비슷한 경제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또 96년까지 1조원 규모의 첨단기술개발기금을 조성하고 국민총생산액중 과학기술투자의 비율을 현재의 2ㆍ1% 수준에서 96년에는 3∼4% 수준으로 크게 늘려 선진국과의 기술경쟁에 대비키로 했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의 지침을 토대로 각 부처와 전문연구기관이 7차 계획 시안을 마련,공청회 개최를 통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 8월까지 7차 계획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 북한 당 창건기념식에 아ㆍ아 고위급 대거 초청

    【내외】 북한은 올해가 당 창건 45주(10ㆍ10)인 점을 감안,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외국의 고위대표단을 다수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번 당 창건 45주 행사에 주로 아ㆍ아주 친북국가들의 고위인사들을 대거 초청했는데 ▲중국 공산당정치국 상무위원 송평 ▲이란의 만스리 타지리 부통령 ▲마다가스카르의 디디에 라치라카대통령 ▲우간다의 삼손 키세카 총리 ▲토고 국회의장 네산아쿠에데이 ▲말리 국회의장 히비키 디아라 등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북한 방송들이 6일 보도했다.
  • 소 혁명 70년만에 자본주의 실험 본격화

    ◎최고회의 「경제개혁안」 채택의 의미/국유재산 매각ㆍ소규모 기업 사유화/시장경제 도입… 값 자유화 전면 실시/물가불안ㆍ실업 등 도사려 시행엔 “산넘어 산” 「5백일 계획」으로 불리는 급진경제개혁안이 최고회의를 통과함으로써 소련은 사회주의혁명 70여년만에 다시 자본주의 경제원리를 대폭 수용하는 역사적인 대전환을 이루었다. 스타니슬라프 샤탈린이 입안한 개혁안을 기본골격으로 하고 리슈코프총리의 온건개혁안을 약간 절충해 만든 이 개혁안은 토지의 사유화를 포함한 시장경제원리의 도입과 정치적으로 15개 연방공화국에 경제주권을 대폭 이양하는 탈크렘린화를 주내용으로 담고 있다. 볼셰비키 혁명의 대의가 토지국유화,모든 생산수단의 국유화,그리고 민족ㆍ계급을 초월한 단일 소비에트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창설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개혁안 채택이 갖는 의의는 가히 역사적이라 할만하다. 최고회의 1차 투표에서 통과된 절충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샤탈린이 제출한 급진개혁안의 정신이 거의 90%이상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세부적인 시행규칙과 시행시기 등은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1차 최고회의 표결 결과가 찬성 3백23,반대 11표로 나타난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급진개혁안의 채택은 거의 기정사실화한 것 같다. 샤탈린안을 토대로 해서 본다면 이번 개혁안은 본격적인 시장경제체제 도입을 위해 5백일간의 시행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1백일까지 공화국간 경제개혁위가 구성돼 개혁일정을 조정한다. 따라서 기존 경제부처는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다. 그리고 국가자산의 매각과 농민에 대한 토지매각이 시작된다. 그동안 가장 논란이 돼 왔던 부분이 바로 토지매각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기본정신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토지 사유화를 싸고 「이념적으로 고려된」 여러 절충안이 제시됐다. 그중의 하나가 23일 발표된 토지종신보유제이다. 고르바초프의 경제보좌관인 니콜라이 페트라코프가 제시한 이 안은 「사유」라는 표현만 피한 채 토지의 상속권까지 인정한다고 돼 있다. 이 안은 또한 초기단계에서 군ㆍKGB 등의 예산을 줄이고 대외원조의 76%를 삭감,국가세출 규모를 대폭 줄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미국식 연방준비은행을 설립,민간 상업은행과 함께 은행제도를 2원화한다. 2백50일까지는 가격자유화를 전면 실시하고 소규모 기업의 절반을 일반에 매각한다. 4백일까지는 제조산업의 40%를 매각하고 자본자유화를 전면 실시한다. 마지막으로 5백일까지 제조업체의 70%,건설ㆍ소규모 기업의 90%를 사유화하기로 돼 있다. 소련경제가 처한 현 상황은 사실 이런 급진개혁안의 도입으로도 회생여부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미 컨설팅회사인 플랜이콘사 조사에 의하면 소련의 연간 총생산량은 매년 3%씩 감소하고 있다. 여기다 그동안 실시해온 부분적인 개혁정책으로 각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무리하게 임금인상을 단행,엄청난 통화가 시중에 나돌아 인플레가 위험수준에 와 있다. 그 결과 최근 인플레는 연 10%선에 육박해 있다. 샤탈린안은 국유재산의 매각을 통해 시중의 돈을 흡수하고 세출을 줄이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급진개혁 도입의 충격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예를 들어 과연 1백일안에 어떻게 은행체제의 2원화가 이루어질 것인지,그리고 물가인상에 대한 불만,실업문제 등을 어떻게 극복할지 여전히 회의적이다. 샤탈린안이 시행될 경우 실업발생률은 초기에 5천만∼1억명선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번 급진안과 온건개혁안 사이에서 수차례 지지와 번복을 되풀이한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어느 쪽도 현 소련 경제위기해결에 대한 모범답안이 못 된다는 데에 소련의 문제가 있다. 고르바초프가 중재한 절충안이 채택된 셈이지만 리슈코프 총리는 이미 사임을 공언한 상태여서 앞으로 크렘린은 또 한차례 정치적인 혼란을 겪을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만한 일은 몇차례 오락가락했지만 고르바초프가 결국 샤탈린안을 기본으로 한 절충안을 제시,통과시킴으로써 급진개혁쪽으로 확실히 방향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연방 각공화국의 주권회복에 기초한 새연방체제 구성과 시장경제화를 적극 주장하고 있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의 개혁요구 목소리가 앞으로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고르바초프로서는 현재 소련국내의 분위기로 보아 현실적으로 이들과의 협조 외에 다른 길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급진개혁안 채택으로 소련은 이제 점진ㆍ보수의 「제동장치」를 포기한 셈이 됐다. 그것이 과연 소련을 살리는 길이 될지 아니면 후퇴를 가속화하는 길이 될지 지금은 누구도 점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다.
  • 소,「시장경제 개혁안」 채택/최고회의/고르비에 한시적 비상대권부여

    ◎새달 15일까지 특위서 경제개혁구체안 마련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소련최고회의는 24일 소련이 70년된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버리고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전환하도록 하는 역사적인 경제개혁안을 3백23대 11,기권 56의 압도적 표차로 가결시켰다. 최고회의는 이와 함께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소련의 경제위기 해결과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오는 92년 3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대통령 비상대권을 부여했다. 최고회의는 그러나 경제개혁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조정에 실패,대통령이 지명한 특별위원회가 오는 10월15일까지 구체안을 최고회의에 제출하도록 결의했다. 이 계획 채택으로 소련은 볼셰비키혁명과 독재자 스탈린의 「야만적인 집단주의」 경제체제가 기본적으로 뒤바뀌게 됐다. 이 계획의 채택은 또 중앙집권식 사회주의를 수정해 보려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이제 중앙집권식 사회주의를 폐기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요구한 비상대권 부여안이 이날 3백5대36,기권41의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됨에 따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경제운영ㆍ예산ㆍ법질서 등 경제ㆍ사회생활 모든 면에서 포고령을 내릴 수 있는 특별권한을 갖게 됐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의회가 대통령포고령에 대해 취소 또는 수정권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나친 권한 독점이 아니냐는 반발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 몸에 밴 안일… 삐꺽거리는 「개혁」

    ◎송복교수 소ㆍ동구 학술 기행 특별기고/대부분 공장 주 40시간 가동에 불과/“힘든일 왜 하나”… 농부도 주말엔 휴무/뇌물 없인 일처리 안돼… 사회기강 급속 붕괴/지식인 푸대접 심해… 청소부 봉급이 신문사 사장보다 많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성공할 것인가. 페레스트로이카의 운명은 세계의 향방은 물론 아시아 한반도의 운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최근 2주간 소ㆍ동유럽을 방문,페레스트로이카의 현장을 살펴보고 돌아온 본사 논평위원 송복교수(연세대ㆍ사회학)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사회학적 진단 특별기고문이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소련을 다녀왔고 또 동구 여러 나라들을 보고 왔다. 이 다녀 오신 분들의 사회주의 사회의 실상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이나 느낌도 거개가 일치해 있다. 평소 사회주의 사회나 그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떤 태도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건 그 사실에 대한 인식에는 대차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세상은 있는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있다」라는 미국 초기 사회학자 윌리엄 토머스의 명구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그것을 세상의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서도 처음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부정적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고 반대로 긍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나 동구사회에 관한한 보고 싶은 것만 보았건,보기 싫은 것은 애시당초 보지 않았건 관계없이 대체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그것은 첫째로 소비재가 아주 귀하다는 것,그래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것. 둘째로 사회관계에 부드러운 기가 없고 윤기가 없고 활기를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셋째로 사람들이 너무 느리다는 것,바쁜 것도 없고 안달하는 것도 없고 그리고 성취동기가 전혀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 넷째로 너무 관료주의화해 있다는 것,그 어느 사회보다 관료주의의 병리가 골수에까지 깊이 박혀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다섯째로 그러면서 너무 부패해 있다는 것,도덕적 기강이 관료사회에서나 일반 시민사회에서나 다같이 급속히 무너져 가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던져준다는 것,대개 이런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 흔히 말하는 「소비에트 엑스페리먼트」(Soviet Experiment)가 실패한 것이라는 결론을 어느 시각에 입각해 있는 사람들이든 다 같이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난 이후 70수년간 인류사회 최초로 소련이 시도한 공산주의사회의 실험은 그 실험 3세대가 지난 오늘날의 결과에서 보면 그것이 하나의 결과이든 조짐이든 어쨌든 실패했다는 결론을 다같이 도출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살아 있는 공산주의 최고 이론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어니스트 만델(Ernest Mandel)의 최근 저서 「페레스트로이카를 넘어서(Beyond Perestroika)」에서도 꼭 같이 지적되고 있다. 누가 보든 궁금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은 도대체 그동안 뭘 「어떻게 했길래」 저러고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맥도널드 빵을 사먹기 위해 1㎞ 이상의 줄을 서 있어야 하고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의 말보로담배가 자기네 돈(루블)값보다 오히려 더 귀하고 더 태환성이 높아 보이고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TV 프로가 텔레비전에 비치기만 해도 하던 일을 멈추고 저렇게 넋이 빠져 보고 있는냐는 것이다. 담배를 사기 위해서,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옷을 사기 위해서,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렇게 긴 줄을 서 있어야 하고 누구나 비닐백을 한 둘씩 상시로 들고 다니면서 줄만 보이면 뭘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이 저렇게 무작정 긴 행렬에 끼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런 생활의 연속이 일과의 시작이며 끝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소련 전가정주부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서 줄서 있는 시간은 연 3백억 시간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대개의 가정주부들은 하루 2시간 이상을 꼬박 줄서는데 바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그 3백억 시간의 생산손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을 계산하지도 않고 계산할 필요도없고 더구나 생산과 연관해서 계산하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이 나라의 생활습성처럼 보인다. 건물 도로 전철로 공원시설 등 사회간접자본도 모두 마찬가지다. 지을 때는 거창하고 웅장하기 더할 데 없이 지었을 것이다. 과연 큰 나라답게 웅대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모두 지어져 있다. 아마도 국가예산으로 국가가 관장해서 짓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하기는 해도 위용이 없고 오래된 것 같기는 한데 고풍스러움을 찾기가 어렵고 공사기간이 결코 짧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날림으로 보인다. ○관료주의 병리 극심 더구나 안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처럼 건물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1∼2㎞에 이르는 거대한 상가를 지어 놓고도 안은 텅텅 비어 있고 거기에 부서진 것 허물어진 것 망가진 것은 일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호텔시설도,그것도 외국손님들로차 있는 손꼽히는 호텔도 변기통이 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문이 부서져 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국가는 예산이 없고 개인은 그것이 어디 내것이냐는생각에서 일 것이다. 참으로 「만인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인가. 이 사회는 마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증명하기 위해서 존속하는 사회로 느껴진다. 이 증명은 농촌에서도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호텔내에서의 식사나 호텔 밖에서의 식사나 이 광활한 농업지대에서 생산되는 채소라는 것을 식탁에서 구경할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캤더니 지금 소련 농장에서 채소의 60%가 출하되지 않고 밭에 심어진채 그대로 썩고 있다는 것이고,곡물은 10%가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국가는 운송시설 냉동시설이 모두 부실해서 손 쓸 여력이 없고 농부는 그것이 「내 것도 네 것도 아닌데」 무엇하러 따가운 햇살에 수고로움을 끼칠까 보냐이다. 자본주의사회의 농부들처럼 기를 쓸 이유도 없고 안달할 필요도 없다. 고추값이 떨어진다고 고추를 자동차에 싣고 여의도 광장에서 농성하는 한국의 농사꾼은 이나라 농부들의 눈으로 보면 실성한 사람들이나 하나도 진배가 없다. 왜 그렇게 살 것인가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고 무엇하려고 그렇게한푼의 값을 더 올려 받으려고 애를 쓰는냐이다. 더구나 토ㆍ일요일의 이나라 농부들은 밭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는다. 모스크바 근교의 어느 농촌마을을 돌아다녀도 토ㆍ일요일 이틀동안 들판에 나와 일하는 농부는 그 어느 한 사람도 그림자조차 구경할 길이 없다. 이는 불가리아의 그 넓은 농업지대에서도,유고의 그 많은 농촌마을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때(시)라는 것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없는 것인지 해당이 안되는 것인지 어쨌든 토ㆍ일요일은 어디든 일하지 않는다. 정말로 마르크스의 이상대로 「능력껏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갖는 것」인지,고전 경제학파들의 주장대로 「능력에 따라 일은 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고만 하는 것」인지,자본주의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풍습도를 볼셰비키혁명 70수년동안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제가 아니고 또 오늘도 아니고 내일이다. 글라스노스트는 「개방」하자는 것이고 페레스트로이카는 「개편」하자는 것이다. 어디를 향해서 개방하고 어떤 문제를 새로이 개편ㆍ개혁하자는 것인가. 지금까지 소련ㆍ동구에서 시도해 온 교환방식은 시장메커니즘으로,소유는 사소유로,관리는 기업경영체계로,생산은 소비재 위주로 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서구사회를 준거로 해서 모든 것을 서구식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나 길고도 험난한,그러면서 성공이 전혀 보장이 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그 누가 이 사회를 얼핏 보든 선뜻 짐작할 수 있는 길이다. 첫째로 이 사회는 개방하면 더빨리 부패할 것이라는 것이다.지금도 도덕적 위기를 어디서든 맞고 있다. 개방하면 그 위기는 일로상승할 것이다. 지금까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안정은 도덕적 안정감에서 왔다. 그 누가 그 얼마나 부패해 있든 정보통제로 사람들은 부패의 종류를 잘 인식치 못했고 그 수준을 제대로 측량치 못했다. 그러나 개방은 남의 부패를 가장 먼저 인식시키고 그 수준을 실제보다 수배로 과장해서 측량시킨다. 그래서 어떤 사회든 개방과 동시에 정보흐름이 자유화되면서 예외없이 부패가 역상승으로 가속화했다. 이 부패의 속도도 문을 닿아놓은 기간과 정도에 비례했다. ○빵등 소비재난 최악 더구나 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폐쇄사회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홍수져가면서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자본주의의 장점이 아니라 가장 타기되어야 할 결점들이다. 애들이 밖에서 다른 애들과 섞여 놀때 부모가 아무리 사회화시켜도 못된 것을 먼저 배워 온다.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카트를 쓰려해도 말보로 담배 한값을 먼저 내야 쓸 수 있고,호텔 청소부도 담배나 스타킹을 미리 테이블 위해 얹어 놓아야 청소를 제대로 해준다. 이것이 어디 밑바닥에서 일하는 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랴. 저변에서 상층에 이르기까지,교육수준이 낮은데서 높은데를 가릴 것 없이,무슨 안개처럼 덮여 있는 듯하다. 어디를 가나 뇌물을 주어야 하고 어디로 가든 암달러상이 있다. 둘째로 노는데 모두 이력이 나 있다는 것이다. 공장은 1주 30시간에서 40시간 일하는 것이 보통이고,일거리가 많아도 40시간 이상 일하는 곳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것도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토ㆍ일요일은 반드시 논다. 그리고 1일 6시간 일하든 8시간 일하든 5일 일하는 중에도 정작 일하는 시간은 2시간 뿐이고 나머지 시간들은 대부분 잡담으로 채워진다고 한 관리자는 말한다. 이 관리자는 잡담도 노동의 하나라고 조크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이 노동하는 주중에도 담배를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길가의 긴행렬에 가담해 줄 서 있다면 결근하는 것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하긴 줄서는 것도 고된 노동임엔 틀림없다. 아마도 한국사람의 경우 줄서는 것은 그 어떤 고된 노동보다 고된 행동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줄서기 위해서 결근하는 것도 합리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줄서기 위해선 결근해도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상상을 불허하는 극히 희귀한 노동현상이 이 나라의 노동관행이다. 고르바초프의 말대로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사회」­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벌고,더 많은 업적을 내서 더 많은 냉산성을 올리자는 성취동기는 이 나라에선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소유에 대한 욕망도여느사회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현재 사는 아파트를 싼 값으로 사서(2백50달러 미만) 개인소유화하라고 해도,그것을 왜 사냐고 반문한다. 지금 이대로 살아도 죽을 때까지 이 아파트에서 살 수 있고,더구나 국가에서 수리비까지 부담하는데 왜 그것을 사서 그 돈을 쓰고 그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에덴동산이 그런 것인지,어떻게 보면 낙원에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순진하고 그리고 착해 보인다. 저런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보는 그 악마구리 같은 경쟁문화­비단 한국사회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보아지는 경쟁문화가 심어지고,경쟁행위가 주도적 행위로 등장했을때 이 사회가 어떻게 요동칠 것인가. 미상불 대혼돈과 고통이 말할 수 없이 따르는 소용돌이가 전국 각지에서 넘쳐 흐르게 될 것이다. 셋째로 지식인의 푸대접이다. 교수나 의사 기자가 노동자보다 월급이 훨씬 적다. 보통 공부많이한 지식인은 한달 2백50루블이고 노동자는 3백50루블,당관료는 4백루블이 되어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신문사 사장이 5백레바를 받는데(8레바가 1달러),청소부가 7백레바를 받는다고 했다. ○암달러상 거리활개 불가리아 칼 마르크스 대학의 손체브(Rasdoslav Tsonchev)교수에게 그 차이의 합리성을 따졌더니 노동자가 주도세력이 돼 있는 나라의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산성은 아무리 올라도 3배가 오르기 어려운데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지식인의 경우 그 생산성은 열배 백배 심지어는 무한대로 확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어떻게 발전을 가속화하려 하는가.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리고는 손으로 마르크스 석상을 가리켰다. 칼 마르크스대학의 높이 세운 마프크스 석상의 큰 마르크스 이름에 학생들이 페인트로 곱표(×)를 크게 치고 무어라고 불가리아어로 갈긴 낙서를 보라는 신호이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마르크스를 싫어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모스크바대학 교수들도 요사이 모스크바 대학생들도 한결같이 비판적이되어 간다고 조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ㆍ학생들의 부르짖음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얼마나 야기시키고 있는가. 루마니아에서의 광산노동자들의 데모학생 살해수가 그것을 밑받침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인센티브는 좀체 유발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산업화를 촉진해 갈 것인가. 소련에서의 개방화와 개혁화는 모스크바 까마귀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만큼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까마귀는 도시에서 관광객이 던져주는 빵조각을 먹고 혹은 쓰레기통이나 뒤지며 쉽게 쉽게 살고 있다. 우리네 갈가마귀처럼 멀리 하늘을 높이 높이 비상하지도 않고 먹이를 찾아 끼옥끼옥 울며 아귀다툼을 벌이지도 않는다. 색깔도 우리 까마귀와는 달리 목과 배ㆍ등 일부가 오히려 회색으로 보인다. 주둥이와 우는 소리는 까마귀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까마귀는 야성이 없고 사람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배가 고프면 고픈대로,부르면 부른대로 게으르게 살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본성을 되찾을 것인가. 정녕 되찾게 할 필요가 있을것인가.
  • “군사상 문제없다/교류지원책 강구”/판문점 관할 유엔사

    유엔군사령부는 20일 노태우대통령의 남북간 민족대교류를 위한 특별발표와 관련,통행로로 이용될 판문점에 대한 특별관리대책을 한국정부와 함께 세워 남북한의 자유왕래실현에 대비키로 했다. 유엔사의 한 관계자는 『남북간의 인적ㆍ물적교류에 대비해 모든 지원방법을 강구중』이라고 말하고 『헬리곱터를 비롯한 수송수단과 함께 안전통행을 위한 안내ㆍ경비인원의 보강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고르비위상 타격… 소 공산당 분열위기/옐친ㆍ민주강령파 탈당의 파장

    ◎당정분리등 개혁수용 미흡에 반발/지지세력 적어 「홀로서기」엔 의문도/당내균형 깨져… 본격적 정치다원시대 신호탄 소련공산당내 급진개혁파 기수이며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이 12일 탈당을 선언한데 이어 당내 급진개혁세력인 민주강령파도 신당결성을 위해 탈당한다고 발표,소련공산당은 혁명후 초유의 분당사태를 맞게됐다. 이들의 탈당은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1903년 갈라선 이래 87년만의 일로서 당내외에 적지않은 파문을 그려갈 것으로 보인다. 옐친과 민주강령파가 12일 탈당선언을 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옐친은 지난 5월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에 당선된후 6월에는 「보다 나은 지도자가 되기위해」 공산당원 자격을 유보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었다. 또 공산당대회 대의원 25명을 대표하여 12일 탈당을 발표한 민주강령파 지도자인 쇼스타코프스키도 오래 전부터 당대회에서 만족할만한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당을 떠날 것이라고 말해 왔었다. 이들이 요구해 왔던 것은 ▲국가에 대한 당의 지도적 위치 폐기 ▲각급 행정ㆍ군ㆍ공장에 조직된 당세포조직 해체 ▲조속한 시장경제로의 이행 ▲민주집중제 포기 등이었다. 28차 당대회를 앞두고 옐친은 이 가운데 ▲당명변경 ▲당강령(민주집중제)변경 ▲제민주세력과의 연합 등으로 요구사항을 축소했으며 고르바초프와 나란히 앉아 담소하는 등 타협의 신호를 보냈었다. 그러나 당대회가 진행되면서 보수파의 수적 우세가 확인되고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공고히 하는 대신 당강령에 민주집중제를 유지시키고 또 공산주의를 「문명발전의 유일한 전망」으로 규정하는 등 보수파의 주장을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고르바초프가 민주강령파 소속대의원을 상당수 중앙위원회 명단에 포함시키긴 했으나 옐친 등의 생각보다는 적었고 부서기장에 개혁적 보수파인 V 이바시코가 당선되는 등 급진개혁파의 당내 입지가 죄어 들어오는 형국이 됐다. 게다가 12일 당대회 토의에서 당내 파벌을 계속 불허키로 의견이 모아짐에 따라 탈당의 벼랑으로 내몰렸다. 이처럼 급진개혁파의 탈당이 오래전부터 예상돼 왔으며 이번 당대회 과정을 통해 불가피해진 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탈당선언은 당내외에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급진개혁파의 전격적인 탈당은 지금까지 보수파,고르바초프의 중도개혁파,옐친이 이끄는 급진개혁파 등 3개 파벌이 벌이던 「당내경쟁」 이 이제는 「당외경쟁」으로 바뀌게 됐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련된 3개 세력 모두 상당한 위상변화를 겪게 됐다. 이번 당대회 기간동안 수적우세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의 능란한 솜씨에 영향력 행사의 어려움을 겪었던 보수파로서는 급진개혁파의 탈당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인 셈. 보수파의 리더격인 리가초프가 『당이 오히려 잘 돌아갈 것』이라고 반색한 것만 봐도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옐친과 민주강령파의 탈당선언이 당원의 대거 탈당으로 이뤄질 경우 이들은 중도개혁파와 급진개혁파간의 알력으로부터 어부지리를 얻으려 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입장은 간단치 않다. 일면 「눈의 가시」가 빠져 나감으로써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보수파와 급진개혁파를 양쪽 균형추로 중도개혁의 곡예를 펼치던 고르바초프로서는 한쪽 균형추를 상실함으로써 보수파의 공격에 직접 노출되는 부담이 생기는 등 이번 당대회의 승리가 공허해질 우려도 있다. 또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으로서 독자적인 노선을 취할때 겪게 될 어려움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탈당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빼든 급진개혁파도 사정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 민주강령파는 4천6백여 대의원 가운데 소속대의원이 1백여명에 불과하다. 당원 40%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도부도 3개 세력으로 갈려 있고 지지자 40%가 탈당에까지 동조할지도 의문이다. 쇼스타코프스키가 12일 오는 가을 신당창당을 위해 공산당을 떠나겠다고 발표하면서도 소속원들에게 당분간 공산당적을 버리지 말라고 한 것도 지지확보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노선도 분명하지 못하며 아직은 소련사회에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공산당에 필적할 실력과 지지가 없어 「홀로서기」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이들은 이러한 약점보완을 위해 60여개 군소 제정당과의 연합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어떻든 급진개혁파의 분당은 단순히 공산당의 분열이라는 차원을 넘어 다당제의 시발이며 소련사회의 급격한 다원화를 예고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
  • 한반도에 감도는 「독일증후군」/서병철 외교안보연 교수(세평)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토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에 이르는 가장 바람직한 처방은 독일식 접근방법인데 그 가능성이 보이고 있어 이는 우리에게 신선한 희망을 갖게한다. 독일식 방법이라 하는 것은 분단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사용을 배제하고 상호간 위협대상이 아니라는 신뢰를 구축한 속에서 접근을 통하여 실직적인 협력을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서로 방문하고 경제적으로 도와주며 필요하면 정상회담도 개최하고 유엔에서 옆자리에 앉아 국제문제에 의견을 일치시키는 가운데 국경선을 개방한 후 민족자결에 의하여 통일에 이르는 합리적 방법이 독일식이다. ○독일식 접근 바람직 지금까지 동서독에서와는 달리 남북한 관계개선이 전혀 진척되지 않은 것은 북한의 후기 스탈린주의적 경직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한으로 하여금 고집을 꺾고 타협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적 추세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지난 6월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회담을 통하여 마련되었다. 소련이 회담에서 경제문제에 치중하는 인상을 주려 했어도 국교수립이 안된 한국과의 정상회담 개최에 나선 것은 이미 양국간 관계에 급변을 예고해 주는 것이다. 한소 정상이 불과 1시간 동안 만났지만 양국간의 수교,서울과 모스크바 상호방문,한반도의 평화정착 공동노력,남북대화를 통한 교류 증진,그리고 경제협력 등 당장 필요한 모든 사항에 합의함으로써 근본적인 교류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의 긴장과 남북한간 대립을 조성한 배후의 근원인 소련이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냉전시의 산물을 정리하고 신사고를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였다.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정책이 체제유지에 장애물이라는 관점에서 외면해 왔으며 현상 유지에 도움이 안되는 외풍을 원천봉쇄하려 함으로써 소련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북한으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하는 충격요법을 활용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소련은 대세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는 과거의 브레즈네프 독트린과는다른 방법으로 벌을 받는다는예를 동유럽에서 보여온 바 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를 망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분수에 넘치는 저항을 하다가 차우셰스쿠가 쓰러졌다. 동독에서도 「자주성」을 내세우는 오만을 보인 호네커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소,북한에 충격요법 고르바초프는 한걸음 더 나가 분단국을 통일시키는 산파역할까지 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통독을 가로막는 빚장을 잠갔던 소련이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일에 청신호를 보임으로써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에대한 반대급부로 「한지붕 밑의 유럽」 계획을 성사시키는 결심을 얻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질서를 재정립하는 데 마지막 저해요소는 북한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탈바꿈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는 이미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과 동맹국들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조정되었음을 분명히 하였고 다음해 12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각국이 독자적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할 수 있음을 허용한 바 있다. 이는 소련이 자국의 행동 반경과 정책방향의 선택폭을 스스로 확대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지나치게 소련에 기대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은 것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소련과 동맹국들간의 관계는 50년대 중반기 상황을 방불케 한다. 당시 탈스탈린 정책이 소련에서 시작되어 다른 공산국에 전파되었고 얼마 가지않아 위성국들이 오히려 소련을 앞질러 스탈린 망령에서 벗어났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공산체제 개혁과 해체가 바로 그 진원지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변국들이 질적인 면에서 소련을 추월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오직 북한만은 45년전과 흡사하게 소련의 권유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련이 탈스탈린운동 때와는 달리 「신사고」 실현을 중단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북한도 계속해서 소련의 희망을 묵살할 처지에 있지 못하다. 소련은 북한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페레스트로이카 파급을 방해할 경우 전격적으로 한소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것과 같이 가까운 시기안에 한국과의 일방적인 국교수립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도 소련은 동유럽 동맹국가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독의 반발을 외면하고 1955년 10월 서독과 수교한 예가 있다. 이는 동독이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1974년 9월보다 19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소련의 입장에서 서독의 경제적 잠재력이 협력대상으로서 매력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 소련이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한국의 자본과 기술,그리고 생활필수품 제공을 기대하는 것과도 비유된다. ○집안단속 강화할 듯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집안단속을 위한 경직성을 강화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이 최신군비를 전적으로 소련에 의존하고 있으며 무역 60%,외채 80%를 소련이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볼때 계속해서 소련의 비위를 거스를 입장이 못된다. 소련의 군사원조가 중단되면 잠재적 저항세력인 군부를 자극하게 되고 이는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국 북한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소련이 원하는 대로 동독이 택했던 것과 같은 협력정책을 답습하는 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문제의 독일화를 위하여 서독이 추진했던 예를 참고삼아 「북방정책」으로 주변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한반도 정책」으로 북한을 회유하는 신축성 있는 정책을 구사함이 바람직하다.
  • “한국에 한수 졌다”일 외교 자성론/한ㆍ소정상회담에 착잡한 반응

    ◎“왜 화려한 워싱턴무대 활용 못했나”비난도/“대소경협의 라이벌로 등장”재계서도 우려 사상 최초의 한소수뇌회담을 지켜보는 일본의 시각은 복잡하다. 「한소국교합의를 환영한다」 (요미우리) 「역시 남북대화가 열쇠다」 (아사히)라는 6일자 신문사설들이 보여주는 바와같이 표면상으로는 이번 회담의 성과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이것이 동북아시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교ㆍ경제상으로 『무엇인가 한 수 졌다』는 자책감에 빠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NHK­TV가 매일밤 11시부터 방송하는 「미드나이트 저널」의 5일밤 해설은 이런 분위기를 짐작케 해준다. ▲캐스터=최근들어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지는데요,이번 한소정상회담도 그 타이밍이 아주 절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을 착안할 수 있었을까요. ▲이다(반전)해설위원=그렇습니다. 타이밍이 정말 좋았습니다. 노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만해도 전혀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국ㆍ캐나다ㆍ멕시코방문계획을 취소하고 일본에만 온 것이어서 그런 계획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습니다. ▲캐스터=노대통령은 이제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인물로 부상했습니다. 미소만 띠는 그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추진력이 나오는지…. 이런 취지의 해설대담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우리 일본외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불만감이 역연했다. 이날밤 9시 뉴스시간에서는 외무성 구리야마쇼이치(요산상)사무차관도 나와 『일본정부는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한소정상회담이 결정됐을 당시의 사카모토 미소지(판본삼십차)관방장관의 기자회견내용도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해준다. 『우리가 한 수 뒤졌다,그런 차원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깨끗한 히트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일본정부는 이번 한소정상회담과 미소수뇌회담이 한반도정세 및 일소관계의 앞으로의 전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이들 정상회담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스탬퍼드대학에서의 연설등 아시아ㆍ태평양정책에 관한 일련의 발언내용에 대한 분석에 착수했다. 세계 초일류의 경제대국임을 자랑하는 일본이,그것도 동북아시아의 중심국인 일본이 이번 한소정상회담에서만은 외교상으로 한국에 기선을 제압당했다는 충격을 도처에서 드러내 보이고 있다. 현재 일본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미소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내년 일본을 방문,근본적인 협의를 하겠다』는 발언에 큰 위안을 받고 있으며 한국정부가 김종휘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을 특사로 보내 한소회담의 결과를 일본에 설명하겠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NHK­TV가 방송했던 구리야마차관과의 대담에서처럼 현재의 일본은 세계정세에 영향을 미칠 외교전략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수동적 외교」에 머물러 있다고 자책한다. 이번 한소회담을 보는 일본경제계의 반응도 대단히 민감하다. 한국과 소련은 이번 정상회담결과 민간 베이스의 무역ㆍ투자교류로부터 차관의 공여를 포함한 국가차원의 경제교류로 심화시키는 준비를 끝냈다. 일본의 재계수뇌들은 이것이 아시아 지역의 긴장완화에 직결되는 것은 물론 심각한 상태를 더해가고 있는 소련경제의 재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련정부의 고위관계자가 『대소경제협력에 소극적인 일본에 실망한 결과 소련은 한국에 접근했다』라는 워싱턴에서의 발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같은 발언을 한 인물은 다름아닌 프리마코프 소련대통령평의회 사무국장이어서 반응의 심각도를 더한다. 프리마코프사무국장은 지난 4일 『우리는 일부 일본기업에 실망한 결과 한국경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일본에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들 안건의 진전상황에 따라서는 『지불지연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소련경제의 리스크(위험)의 크기와,풍부한 자원 및 거대한 소비재시장이라는 매력 사이에서 딜레마의 고뇌가 생길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어쨌든 이번 한소정상회담 결과 한국이 대소경제협력면에서 일본의 새로운 라이벌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 경응대 고비키 마사오(소차목정부)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소련으로 본다면 일본을 상당히 의식,견제하고 있으며 목표는 차라리 일본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일본 각계의 인식은 한소정상회담 이후에 생겨났다. 일본은 왜 미소 정상회담의 화려한 무대를 이용할 생각을 못했는가. 구리야마차관의 「수동형외교의 자책」은 일본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결론처럼 들린다. 이제는 일본외교의 능력을 시험할 시기라는 지적이다.
  • 무엇을 다루고 합의할까(워싱턴 미소정상회담:1)

    ◎「냉전이후 세계질서」 구상에 최대관심/군사동맹체 변화로 양국위상 크게 약화/쌍무관계 강화,강대국 역량만회 꾀할 듯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31일부터 6월3일까지 워싱턴에서 미소정상회담을 갖고 군축문제를 비롯,통독 및 리투아니아 독립문제 등 국제 현안을 심도있게 논의한다. 본지는 냉전종식을 선언한 지난해 몰타회동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와 핵심의제 등을 4회에 걸쳐 풀어 싣는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의 이번주 워싱턴대좌는 냉전종식 후 최초로 열리는 미소정상회담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1945년 얄타와 포츠담에서 풀어진 실을 다시 감아 올릴 좋은 기회라고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계간 포린 어페어즈의 편집장 윌리엄 하일랜드는 말한다. 오는 31일부터 6월3일까지 계속될 이번 회담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군축협정과 무역관계 등의 쌍무협조 문제를 매듭짓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그들이 냉전 이후의 새 질서에 관한 구상을 시작하느냐의 여부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미소간 이념대결이 사라진 것과 더불어 세계문제를 다루는 미소의 역량이 2차대전후 가장 불확실해진 가운데 열린다는 사실도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작년 12월 폭풍우가 몰아치는 지중해의 몰타섬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냉전종식을 선언한지 6개월만에 다시 갖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은 그후의 많은 변화 속에서 특히 소련이 이끌어 온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전면 붕괴되고 냉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서구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새 역할 모색을 위해 고심중이며,강력한 통일독일의 장래가 시급한 국제문제로 부상한 시점에서 열리는 것이다. 더욱이 소련의 국내 안정문제와 진로는 몰타회담후 급격히 불확실해져 볼셰비키혁명 이래 최악의 상태로 지칭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독일 미국과 새로운 안보관계를 협상해야 하는 한편 국내에서 정치 경제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또 민족주의자들의 소요를 억제시키면서 동구정권의붕괴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 더구나 강력한 통일독일의 출현과 관련한 유럽에서의 새로운 세력균형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최소한 미국으로부터의 확고하고 광범위한 보장 없이는 전략무기 감축과 소련군의 동구 철수,통일독일의 나토 귀속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백악관국가안보담당보좌관 브랜트 스코크로프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군축이 아니라 독일의 정치적 지도를 다시 그리는 것이며 그 다음은 소련내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상 핵무기의 98%에 해당하는 5만5천기의 핵탄두와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이들을 과연 초강대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미소에 국경을 초월한 영향력 행사를 가능케 했던 군사동맹체는 침몰중이며,이에 따라 세계에 대한 미소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금전의 영역이 증대되고 있으나 세계무역에서 미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3,4%에 불과하다. 종전의 미소관계 성격이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파국을 막으려는 방법론에 치중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냉전종식후 국제생활의 새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역점이 바뀌었다고 소련의 미국ㆍ캐나다문제 연구소장 게오르기 아르바토프는 말한다.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면서 미국외교도 미소관계 중심에서 소련을 점차 유럽 주요강대국중의 하나로 보는 광범위한 미유럽관계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미소가 유럽의 주요문제에 관해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이번에 논의하는 문제는 앞으로 개최될 일련의 다른 정상회담에서 정리된다. 미국이 참가하지 않는 6월25∼26일의 유럽공동체 정상회담(더블린),7월5∼6일의 나토회원국 정상회담(런던),7월9∼10일의 서방7개국 경제정상회담(휴스턴),6ㆍ7ㆍ9월의 미ㆍ영ㆍ불ㆍ소ㆍ 및 양독 외무장관회담,그리고 금년말로 예상되는 미국포함 전유럽 35개국 정상회담 등이 그것이다. 과거 서방의 통합요소는 안보문제였지만 미래의 통합요소는 무역재정등 경제문제가 될 것이다. 또한 비군사분야에서 세계의 힘의 중심은 둘이 아닌 셋,즉 일본과 동아시아,미국과 캐나다,독일과 유럽이 될 것이며 경제 초강국이 아닌 소련의 세계적 역할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장거리 또는 전략 핵미사일 감축 및 화학무기 비축 감축협정의 승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외무장관은 얼마전 모스크바에서 군축에 관한 예비합의에 도달한 바 있다. 따라서 워싱턴 정상회담후 미소관계는 더욱더 비무장화될 것이다. 오하이오대 역사학교수 존 가디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워싱턴과 모스크바간의 경쟁관계는 경쟁과 협조의 관계로 발전하고 시간이 더 지나가면 협조적 이해관계가 더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같은 미소협조는 냉전종식후 약화된 그들의 영향력을 쌍무관계 강화를 통해 만회,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을 반영하는 것일지 모른다.
  • 「종합유선TV」 92년 상반기 허가/내년 10개 채널 시범방송

    ◎공보처 추진위 상계ㆍ목동등 아파트촌 유력 정부는 오는 92년 상반기중에 종합유선방송을 허가해 주기로 했다. 공보처 종합유선방송추진위원회(위원장 강용식차관)는 17일 제1차회의를 열어 종합유선방송의 추진일정을 협의,이같이 결정하고 늦어도 91년 상반기까지는 공보처와 체신부가 10개 채널 정도로 종합유선방송 시범방송을 시작하는 한편 관계입법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또 91년말까지는 법시행에 필요한 시행령제정등 준비사항을 끝내고 92년 상반기의 본격종합유선방송에 대비키로 했다. 정부는 시범방송의 지역과 관련,서울 목동ㆍ상계동 아파트단지를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종합유선방송이 활성화될 경우 20∼30개 채널이 가동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공보처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종합유선방송이 다룰 프로그램은 쇼 드라마 뉴스 영화공지사항 행정안내등 다양할 것』이라고 말하고 『종합유선방송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덕션사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고 밝혔다. 종합유선방송추진위는 다음주 중 제2차 회의를 열어 시범방송의 구체적인 실시시기ㆍ지역 등을 결정한다.
  • 청와대-상도동“거리좁히기 간접대화”/노비서실장 YS전격방문의 저변

    ◎국정운영 시각차ㆍ김위원의 불만해소/차기관련 무리한 요구에 경고 의미도 청와대와 상도동간의「거리좁히기」가 다시 집권민자당의 긴급한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청와대와 김영삼최고위원이 서로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양상이 아니라 김최고위원은 불만을 늘어놓으며 달아나기만 하고 청와대는 어쩔 수 없이 거리를 좁히려고 쫓아가는 형국이 되풀이 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의 불만표시가 되풀이 되는 것은 김최고위원의「야당성향」과 차기대권구도를 직접적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청와대측은 지난1일 김윤환정무1장관을 김최고위원에게 보내 「설득」한 데 이어 2일에는 노재봉비서실장을 상도동 김최고위원 자택에 파견,자제와 이해를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노실장은 당면 「총체적 위기상황」과 관련,노대통령의 단호한 극복의지를 설명하고 당차원에서 최대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앞장서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실장은 재벌의 부동산투기를 확실히 뿌리뽑고 일부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국민경제차원에서 해를 끼치는 기업의 반사회적 형태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는등 정부의 위기처방도 아울러 설명,김위원으로부터 상당한 공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들어 김최고위원측이 청와대에 표시하고 있는 불만은 확실히 국정운영방안을 둘러싼 시각차라고 할 수 있다. 민주계가 지난 1일의 고위당정회의와 지난달 30일 밤의 긴급경제장관회의에서 난국극복의 요체가 개혁에 있음을 강조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최고위원은 노대통령과의 잇단 「간접대화」에서 한두재벌이 쓰러지더라도 부동산투기에 대한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고 KBS에 대한 대응방안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난국극복을 위해 안기부장ㆍ내무부장관의 경질과 전당대회후 대규모 당직개편을 통한 민심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정ㆍ공화계는 물론 청와대는 김최고위원의 이같은 발상이 여건을 무시한 대국민 이미지관리용일 뿐만 아니라 당내입지확대를 위한 정치적 제스처이상으로 보지않는 눈치다. 특히 이같은 공공연한 개혁요구가 김최고위원이 지구당위원장 사퇴에 이어 다음 단계의 결심을 행동에 옮기기 위한 명분축적용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김최고위원의 요구가 미래에 대한 확실한 담보요구에 있는만큼 당권을 달라는 것인줄 뻔하게 알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김최고위원의 불만표시가 잇따르면서 청와대측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노대통령이 2일 노실장을 상도동 김최고위원 자택에 전격 파견한 것도 이같은 불안감의 표시로 봐야할 것 같다. 물론 노실장의 파견이유에는 김최고위원을 설득하는 것외에 김최고위원의 심중을 보다 정확히 파악,대비키 위한 진단목적도 들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민정계의 한 핵심당직자는 『현재 민자당의 최고관심사이자 불안은 김영삼최고위원의 「다음행동」이 무엇이냐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관측통들은 「대권밀약설」 제공으로 어려운 형편에 처한 김최고위원이 현재의 국정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을 통해 명분을 축적한 뒤 지난번 청와대 당직자회의 불참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또 한번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번 박철언 파동때와 같이 탈당카드를 내밀 가능성도 있고 그보다 전단계인 백의종군,즉 당직사퇴카드를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청와대측은 최근 두차례의 간접대화에서 대통령을 잘 돕는 것이 차기대권을 겨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점을 적극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도 미리 김최고위원의 위상을 담보해 줄 수는 없다는 점,여당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해설」등이 청와대가 상도동에 보내는 주된 메시지다. 대통령을 잘 돕는 것이 가장 확실한 차기대권획득의 방법이라는 청와대측의 설명은 설득이면서 동시에 경고의 뜻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내에서의 일방적인 투쟁만으로는 대권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을 뒤집어 말한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김최고위원의 잇단 불만표시는 오는 7일의 청와대 4자회동을 계기로 더욱 증폭되거나 다시 잠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난번 청와대 4자회동에서의 불쾌감이 상호간에 불식되지 않았고 청와대측이 다른 경우와는달리 민주계가 국정위기상황에서 잇따라 드러내는 불협화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쉽게 청와대와 상도동의 거리가 좁혀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쪽은 계속해 달아나고 다른 한쪽은 거리를 좁히려는 피곤한 쳇바퀴돌기를 그만두자는 이야기도 민정계에서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민정계의 이런 변화는 경우에 따라 상도동에 대한 청와대의 접근시각을 바꾸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달아나는 쪽과 따라가는 쪽 모두 지쳐있는 상태인 셈이다.
  • 저소득층 주택금융 확대 바람직/민자 주택정책토론회 요지

    ◎건축규제 등 완화,공급촉진 시켜야/투기성 「1가구 다주택」엔 재산세 중과를 민자당은 27일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주택정책에 관한 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정호 국토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주택공급확대 촉진방안」,김관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금융확대 및 세제개선방안」에 관해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다음은 그 요지다. ◇주택공급확대 촉진방안=지금까지의 주택정책을 볼때 수요에 부응한 효율적인 주택생산 활동이 이뤄지지 못하고 각종 주택관련 제도들도 주택건설 및 기술개발 그리고 공정경쟁을 유도하는데 미흡했다. 주택문제가 해결된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투자실적을 비교하면 주택시장 규제가 강화된 82년 이래로 주택투자율이 저조,생산활동에 차질을 빚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주택정책이 실패한 것은 분양가격의 상한제와 각종 투자억제대책을 통한 시장개입,일가구 다주택 보유제한 등의 직접규제가 있었던데다 토지이용계획 및 건축법규의 획일성과 주택금융제도의 취약 등에도 원인이 있다. 현안의주택문제해결을 위한 시급한 과제는 주택의 생산을 대폭확대하는 것이나 정부의 각종 규제 및 통제로 인해 주택시장이 왜곡되어 생산에 큰 차질을 빚고 있으며 아울러 주택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따라서 시장규제를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완화하고 각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며 일부 경직된 토지이용과 건축규제를 대폭완화하여 주택생산을 보다 탄력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주택공급 촉진의 기본방향은 ▲민영주택의 경우 업체간 가격경쟁,품질경쟁을 통해 장기적으로 가격안정효과 및 주택의 품질향상을 유도할 수 있도록 시장규제를 완화하고 ▲공공주택은 전액 재정 및 공공투자로 건설하되 정상주택에 입주가 불가능한 최저주거수준의 영세민을 수혜대상으로 하여 철저한 입주자 관리를 하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저소득층 서민뿐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 수요의 격증에 대비키위해 주택임대업을 기업화하여 임대주택을 대량생산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주택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평가와 재검토가 요구되며 그 결과를 토대로 현행의 주택건설촉진법,임대주택 건설촉진법,도시계획법,재개발법 등 주택건설 및 공급에 관련된 법규 및 유관제도를 시급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주택금융확대 및 세제개선방안=주택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정책이 소득계층별 구분에 따라 합리적으로 이루어져 중산층에 대한 주택금융은 원칙적으로 시장기능에 의존하되 자금의 가용성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서민층의 내집마련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상환부담이 낮은 금융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서민층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방안으로 이자율을 하향조정하게 되면 역금리를 과도하게 유발하여 재원조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며 따라서 무주택서민의 소형분양주택의 구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이차보진을 통해 초기의 상환부담을 경감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자금의 회전율을 높이고 구입주택의 장기보유를 유도할 수 있도록 현재 관행화되어 있는 융자의 자동승계를 불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저리융자에 따른 프리미엄을 줄이고 융자를 이용한 투기수요를 불식시켜 서민층의 주택마련을 보다 수월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주택기금의 자금지원은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기관 등의 소형주택건설에 한정토록 하는 한편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수 있도록 기금지원의 사후관리를 정비 확충하는 등 국민주택기금의 운영방법에 대한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주택자금 대출액의 범위내에서 중장기(만기 5∼10년) 주택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일반은행에도 허용함으로써 주택금융의 활성화를 유도하며 장기금융기관인 장기신용은행으로 하여금 개인에 대한 장기주택구입자금 대출업무를 취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주택금융기관을 확충해야 한다. 주택자금대출액의 범위내에서 주택은행 일반은행 등이 중장기 주택채권을 시장실세금리로 발행하여 기관투자가들에게 매출하는 등 주택채권의 발행을 확대해야 하며 주택은행에 대한 정부대출을 확대하여 다른 국책은행의 자본금 수준으로 증자해야 한다. 주택에 대한 조세정책은 주택의 건설ㆍ매매ㆍ보유ㆍ소비의 각행위별로 목적과 방법이 상이해야 한다. 특히 양도소득세의 경우 우리는 1가구 1주택 소유라는 대전제하에 광범위한 면제혜택을 주고 있어 외국에 비해 너무 관대한 느낌이 든다. 따라서 1가구 1주택의 경우라도 양도소득세 면제요건을 현행 3년거주 5년보유에서 10년 이상의 거주 또는 보유로 늘리는 등 비과세민 감면규정의 대폭적인 축소가 있어야 한다. 투기적 목적의 1가구다주택 보유를 억제하고 여타자산과의 조세형평을 기하기 위해 보유과세인 재산세를 대폭강화,실제가치 재산세 부담액을 1% 수준까지 제고하는 등 과표현실화를 높여야 할 것이다.
  • 바웬사,대통령 출마 첫 시사/파 노조위장에 재선

    【그다니스크(폴란드)AP 로이터 연합】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을 지도해오면서 폴란드 민주화 변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레흐 바웬사가 21일 열린 폴란드 자유노조인 솔리 다르노시치(연대)제2차 전국대회에서 전국위원회 위원장에 재선됐다. 바웬사는 이날 실시된 위원장 선거에서 총 유효투표의 77.5%인 3백62표를 획득,다른 2명의 경선자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위원장에 다시 선출됐는데 저명한 노조운동가인 안드레이 슬로비키와 무명의 지방 노조지도자인 토마스 보이치크는 각각 52표와 25표를 얻는데 그쳤다. 한편 바웬사는 이날 투표실시전에 행한 개막연설을 통해 자신의 대통령출마계획을 최초로 시사했다.
  • 시베리아 철도개통이후 한인 푸대접/러시아동방정책 추진과 위상변모

    ◎러시아농민들의 극동행렬에 밀려나/1990년이민장려칙령마저 폐기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을 연결하는 5천8백마일의 시베리아철도는 명실공히 세계최장의 철도라 할 수 있다. 이 철도의 건설은 러시아의 동방진출과 동방경영을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계획이 완성된 것은 1890년 12월이었다. 당시 집권자인 알렉세이3세는 우랄산맥 동쪽의 첼리아빈스크로부터 옴스크 이르크추크를 거쳐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철도건설을 결정, 1891년에 그의 아들 니콜라이를 시베리아철도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한 후 본격적인 건설에 나섰다. 공사는 모두 6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당초 건설계획은 1억7천5백만달러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1891년부터 1903년까지 13년동안에 완성키로 돼 있었다. 그러나 험악한 지형과 기후조건 등으로 건설공사가 지연된데다 노일전쟁ㆍ1차세계대전 등을 겪으며 계속 지연돼 볼셰비키혁명 1년전인 1916년에야 최종적으로 완공을 보게 됐다. 당초 계획보다 2배나 긴 26년만에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착공 7∼8년만에 개통돼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개통된 극동의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간 우수리선은 1891년에 착공,1897년에 완성되었으며 바이칼호이동의 공사는 1904년까지 대부분 마무리됐었다. 어쨌든 시베리아철도는 이 공사 책임자였던 세르게이 위테교통통신상의 말대로 『금세기 전세계 최대 사업중의 하나』였음에 틀림없다. 시베리아철도의 개통은 러시아인들의 시베리아 이민에 많은 편리를 제공하게 되었고 따라서 극동으로의 이주에 필요한 비용도 대폭 경감하게 됐다. 그러자 이민의 수도 늘어나게 되어 시베리아철도위원회는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에 많은 혜택을 주었던 1861년의 이민장려칙령을 1900년 6월에 폐기해 버렸다. 가난한 러시아 농민들은 주로 1900년 이후부터 시베리아철도를 따라 동방으로의 이주를 시작했다. 1900년에는 1만7천명의 농민들이,그리고 1901년에는 1만1천3백64명의 농민들이 연해주로 옮겨왔다. 이러한 이주농민의 급증에 따라 농민에게 분여할 경작지가 부족하게 되자 1902년에는 사전답사를 통해 1인당 15데샤치나(15정보)의 토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경우에만 이주를 허용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이로 인해 이민의 수는 다소 감소해 1902년에는 5천8백62명,1903년 8천9백11명,1904년 1천3백77명,1905년에는 2백14명이 연해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1905년의 혁명이후에 러시아정부의 정책이 다시 바뀌어 극동에의 이민을 장려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럽러시아 지역의 지주들이 농민의 소요에서 벗어나도록 그들에게 이민을 허용하려 했던데 있었다. 이에 따라 이민 숫자가 크게 늘어나 20세기초 극동지방의 인구급증을 초래했다. 1897년에서 1914년까지 시베리아의 인구는 4백60만에서 7백60만이 되어 65.2%가 늘어났으며 그중 극동지방의 인구는 90만에서 1백60만으로 77.8%가 증가했다. 한편 행정편제는 1884년에 자바이칼,아무르,연해주(프리모르)지방이 극동변강을 구성하고 있었으며,1894년에는 자바이칼지방이 동시베리아 총독의 관할에 귀속됨으로써 분리됐고 1909년부터 1917년까지 극동변강은 아무르,프리모르,캄차카,사할린 등 4개의 지방(오블라스트)으로 구성되었다. 극동변강의 행정 책임자는 총독이었으며 각 지방의 책임자는 군무지사로 불리웠고 그 밑에 군ㆍ면에 해당하는 행정으로 우에즈드,볼로스트가 있었다.
  • 「단일체제」 카드로 불협화 일단락/민자내분 조기수습 국면의 배경

    ◎민정계,“「중대결심」선언하면 자해” 설득/민주계요구 수용… 회동은 모양갖추기/민주게,당내소외 벗고 야당기질 발휘 잦을듯 김영삼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로 내분양상을 보였던 민자당내의 계파간 갈등은 민정계의 신속한 수습안제시에 따라 「단발성」으로 마무리될 조짐이다. 8일 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이 상도동 김최고위원의 자택을 방문,김최고위원과 단독면담을 가진끝에 노태우대통령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동을 갖기로 한 것은 민정계의 민주계에 대한 설득작업이 어느정도 결실을 거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정ㆍ민주 양계파의 수뇌부급인사들은 7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 당직자 회의 불참이후 다양한 막후접촉을 갖고 전당대회후 당의 지도체제를 형식상으로는 집단지도체제이나 대표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줌으로써 사실상의 단일지도체제로 정비키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사태해결의 결정적 고비가 지나간뒤 이뤄진 노실장의 상도동방문 및 11일 하오,또는 12일 있을 예정인 노ㆍ김청와대회동은문제매듭의 마지막 수순이며 내분표면화로 야기됐던 당내외의 파문을 다분히 의식한 의전절차라고 할 수 있다. 조기수습이 가능케 된 가장 큰 원인은 당지도체제문제등과 관련한 민주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발성으로 끝날 전망 ○…민정계가 조기 수습에 나선 것은 우선 김최고위원이 10일 부산으로 출발하며 11일에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11일까지 김최고위원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그로서도 기자회견을 통해 「중요한 결심」의 일단을 밝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럴 경우 민자당내분은 보다 심각하고 해결이 어려워지는 국면에 접어들어 갈 가능성이 컸다. 이와함께 통상적으로 사회불안이 1년중 가장 고조되는 봄 정국을 앞두고 당외에서 가해질 각종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우선은 당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거시적 판단도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또 민자당내분이 최근 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이반을 가속화시키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계파를 초월해 당전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준다는 것도 당헌의 관계조항을 「대표최고위원은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는 요지의 내용으로 바꾸는 것일 뿐 이로인해 당내 최대계파인 민정계의 세가 삭감되거나 민주계가 당운영을 주도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음직하다. 김최고위원이 당운영권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민주계에서 주장하는 개혁에 대해서는 공화계가 민정계를 능가하는 생리적 거부감을 보이고 있고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당무회의 위원구성비율에서 민정계가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는 점때문에 그의 「전횡」은 불가능할 것 같다. 민정계는 당헌개정소위의 절충과정에서 총재인 노대통령이 대표최고위원에게 중요당무에 관한 협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하는등 그외의 제도적 견제장치 마련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박장관 위세 꺾일 듯 ○…김최고위원의 청와대당직자회의 불참이라는 강수처방으로 그동안 당운영에서 소외되고 김최고위원의 방소활동에서 보여진 박철언정무1장관의 「일탈」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민주계는 상황이 급전되면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결이 이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7일 김최고위원의 대리역인 고위측근과 민정계최고위층과의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직후 면담을 통해 「상황호전」의 청색신호를 감지한 민주계는 8일부터는 김최고위원의 당무집행거부가 갖는 의미를 축소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계측은 7일 청와대당직자회의후 민정계와 청와대측의 핵심간부들로 구성된 대책회의에서 일부의 「강력한 대응」 주장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한 당사자인 박장관등의 중재로 자신들의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청와대측으로부터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계측은 이번 파동으로 인해 통합후 자신들의 위상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계보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동시에 김최고위원의 「정치력」을 당내외에 과시할 수 있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민주계소식통에 의하면 김최고위원이 말했던 「중요한 결심」의 구체적 내용은 노대통령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되는 모종의 행동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소식통은 『사태가 악화됐을 경우 노대통령은 야당총재로서의 김영삼씨보다 현재의 김최고위원을 대하기가 더욱 거북스럽게 됐을 확률이 높았다』고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계도 이같은 「제2탄」을 터뜨릴 경우 민자당전체가 입게되는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고 자신들도 아무런 득이 없는 일종의 자해행위밖에 안된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기수습을 내심 강력히 희망해 왔다. 민주계가 민정계에서 제시한 수습안이 단지 환부의 거죽만을 덮어주는,즉 선언적 의미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선뜻 받아들인 것은 파국에 대한 두려움을 민정계 못지않게 갖고 있음을 반증한다 할 수 있다. 민주계는 이번 파동을 통해 앞으로 자신들이 당내에서의 입지를 넓혀나가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보고 야당기질을 적극 발휘해 가며 각종현안문제 해결에 대처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계가 막후접촉등을 통해 제시했던 불만의 내용은 ▲민자당의 개혁의지 부족 ▲박철언장관의 독주 ▲당운영에서의 민주계 소외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같은 다양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민주계가 지도체제에서의 「양보」로 만족하는 것은 개혁의지 부족이나 당운영에서의 소외 등은 지도체제문제 해소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박정무장관에 대한 견제도 비록 2선으로 물러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세를 꺾는데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불만에 대한 한가지 양보만으로 수습의 길이 보이는 보다 큰 배경은 불만표출이 여러가지 표면적인 것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래입지에 대한 불안이 주요인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민정계도 안도의 한숨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의 불참사태에 대해 원인제공자인 박철언정무장관과 김최고위원 모두를 비난했던 민정계는 최고위층의 조속한 단안으로 사태가 수습국면을 맞은 것에 대해 안도하는 표정이다. 민정계는 김최고위원의 「무례」가 겨냥하고 있는 장단기목표의 괴리로 인해 처방전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인식을 같이해 왔다. 특히 김최고위원의 반발이 지극히 공개적인 형식을 취함으로써 노태우대통령의 처방전 마련에 대한 운신폭이 지극히 좁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김최고위원의 불참사태를 놓고 민정계는 두가지의 대책을 비교ㆍ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째는 타깃이 된 박정무장관을 2선으로 돌리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막후절충을 통해 인사조치없이 김최고위원측을 무마한다는 쪽이었다. 박정무장관의 독주는 민정계를 사분오열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민정계 평의원들의 인식은 박정무장관을 차제에 2선으로 후퇴시키면서 김최고위원의 「야당성행위」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공법의 사용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던 편이다. 그러나 박정무장관의 2선퇴진은 ▲김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에 노대통령이 굴복하는 형식이 됨으로써 통치권손상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과 ▲박장관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존과 신임이 워낙 두터운 점 등이 고려돼 막후절충을 통해 지도체제문제를 양보하는 방안이 수습책으로 채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막후접촉을통한 수습에도 불구하고 박정무장관의 활동영역은 그 이전보다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민정계의원들이 이번 사태로 민정계의 결속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점과 결속을 위한 전단계조치로 박정무장관의 2선후퇴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청와대회의 불참의 여진이 없어지는 전당대회 전후를 맞취 2선후퇴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박정무장관은 지금까지 ▲당무에 있어서의 노대통령대리인 ▲북방정책에 관한 정부책임자 ▲정부정책입안ㆍ집행에 있어서의 노대통령 핵심측근이라는 3∼4가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번 사태로 박정무장관은 노대통령대리인으로서 당무에 간여했던 역할을 일단 자제하거나 노대통령으로부터 자제를 요구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방소에서 돌아와 노대통령에게 박정무장관과의 불편을 호소한 이후 박장관은 이미 민정계조직강화특위위원에서 물러났고 또한 본인 스스로도 7일 밤 사석에서『당분간 조용히 지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정계는 결과적이지만 김최고위원이 이번 청와대 불참을 통해 자신의 정치스타일의 일면을 내보여 민정계에 대비할 시간을 준 것이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민정계의 단결을 결과적으로 촉구한 셈이며 단결의 장애물이었던 박장관의 위세를 꺾어준 것도 민정계에 마이너스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은 민자당내 각계파들이 내부결속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모든 당무가 대권경쟁의 연장선상에서 협상되고 처리될 가능성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민자당은 창당전당대회도 하기전 계파간 밀월관계를 끝내고 공개ㆍ비공개경쟁시대로 돌입하게 된 셈이다. 민정계는 보선패배로 내각제개헌 가능성이 적어진 데 이어 이번 사태로 계파간 경쟁이 공개화됨으로써 당장 「차기준비」에 착수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김영만ㆍ김교준기자〉
  • 리투아니아공 위기 국면/소,탱크 등 1백대ㆍ공수부대 1천명 투입

    【빌니우스ㆍ모스크바 AP AFP 연합】 크렘린이 리투아니아공화국의 독립요구에 대응,군사조치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24일 소련의 탱크와 장갑차 약1백대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로 진입했다고 현지 목격자들이 전했다. 한편 리투아니아 의회는 이날 새벽 무력을 이용해 소련이 리투아니아 의회를 장악하고 의원들을 체포할 경우에 대비,리투아니아 의회의 권한을 워싱턴주재 리투아니아 외교관인 스타시스로조라티스 2세에게 전면 위임하는 결의안을 의결했다. 리투아니아 의회의 아우드리스 부트카비키우스의원은 리투아니아의회가 이같은 권한위임법안을 통과시킨 이날 새벽 1천여명으로 추산되는 공수부대 병력을 포함 무장군인들을 태운 1백대 가량의 소련군 차량대열이 빌니우스시 중심가 간선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을 몇몇 시민들과 함께 목격했다고 말했다. 현지 시민들은 이날 새벽 빌니우스시내로 진입해 리투아니아 의회 건물을 끼고 통과한 소련군 차량행렬이 탱크와 장갑차들이라고 전했다. 부트카키비우스의원은 당시 차량에 타고 있는 소련공수부대원들은 이 차량 행렬이 빌니우스 북서쪽 75km 떨어진 요나바시에서 빌니우스 북부 시아우레스 미에스텔리스의 군부대로 이동하는 길이며 1천명의 공수부대원들이 이 차량행렬에 타고 있음을 알렸다고 말했다. 리투아니아 의회의 일부 의원들은 이같은 결의안을 통과시킨 직후 의회 건물 밖으로 나와 약 1백m 떨어진 간선도로위를 소련군 차량행렬이 통과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카지미에라 푸룬스키네 리투아니아 총리는 소련군 이동과 관련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장장갑 차량들은 대체로 한밤중에 도심 한가운데로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의회에 모여있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한편 발트지구 소련국경부대장 발렌틴 가포넨코는 이날 반란 가능성에 대비해 리투아니아 국경을 따라 소련군 병력이 추가로 배치됐다고 말한 것으로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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