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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음악 ●국립중앙박물관 아침 11시 콘서트-‘홀로 된다는 것’ 변진섭 미니콘서트 16일 오전 11시 서울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메인 오디토리엄. 2만원. 1544-1555. ●2010 맥 인디뮤직 페스티벌(노브레인 나티 트랜스픽션 피아 내귀에도청장치 와이낫 고고스타 등 출연) 19일 오후 7시, 20일 오후 4시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3만원. (02)3274-8600. ●콘서트 라이브열전 인 대학로 ‘어느새’ 장필순 16~18일 오후 8시 ‘마법의 성’ 김광진 19일 오후 8시, 20일 오후 6시, 21일 오후 5시 서울 동숭동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1관. 5만원. (02)762-0010. 국악·클래식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제307회 정기연주회 : 등단음악회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세종음악콩쿠르를 통해 발굴된 젊은 국악인들의 무대. 임평용 지휘. 최광일(피리), 심재날(대금) 등 출연. 1만 5000원. (02)399-1721.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 러시아 거장의 밤-피아니스트 바딤 루덴코 리사이틀 15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 등. 3만~15만원. (02)461-6712. ●2000-2010 금호아트홀 하이라이트-미리암 프리드 & 조너선 비스2 19일 오후 8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 바이올리니스트 미리암 프리드와 피아니스트 조너선 비스가 연주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 두 번째 시리즈. 소나타 3, 8, 9번 연주 예정. 8000~3만원. (02)6303-7700. 연극·뮤지컬 ●연극 ‘너의 왼손’ 16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선교활동을 목적으로 중동에 들어갔다가 숨진 사건을 통해 한국사의 아픔을 다룬 최용훈 연출의 3부작 가운데 2편. (02)758-2000. 1만 5000~2만 5000원. ●연극 ‘우리말고 또 누가 우리와 같은 말을 했을까’ 17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다윈의 거북이’, ‘하얀 앵두’ 등의 김동현 연출이 시도하는 작품으로 별다른 서사구조 없이 말을 화두 삼아 공연을 진행한다. 2만~2만 5000원. (02)3668-0007. ●연극 ‘글렌게리 글렌로스’ 18일부터 2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3관.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의 작가 데이비드 마메트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으로 경쟁을 내세워 비인간화되어 가는 사회를 그렸다. 전석 1만원. 1544-1555. 미술·전시 ●세계미술의 진주, 동아시아전 12월 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동아시아 8개국 현대미술가 23인이 펼쳐 보이는 다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 (02)580-1300. ●5인5색전 24일까지 경기 마북동 장욱진가옥. 곽훈, 김인중, 김차섭, 오경환, 최욱경 등 장욱진 화백에게 그림을 배운 화가 5명의 그룹전. (031)283-1911. ●함명수전 23일까지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 털실로 수놓은 듯한 독특한 질감의 붓질로 빌딩숲과 골목길 등 도시 풍경을 그려온 작가의 신작 10여점. (02)730-7818.
  • 작가회의 정부보조금 안 받기로

    작가회의 정부보조금 안 받기로

    한국작가회의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의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 요구와 관련해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또 신임 이사장으로 문학평론가 구중서(74)씨를 선출했다. 작가회의는 20일 서울 용강동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회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예술위가 보조금 3400만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향후 불법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을 비롯한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확인서를 요구한 일을 집중 논의했다. 도종환 전 사무총장은 예술위의 구두 사과와 이번 사태를 접한 원로 문인이 작가회의에 3400만원을 익명으로 전달한 일 등을 전했다. 이날 원로 회원과 젊은 회원 대부분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고, 작가회의는 보조금을 받지 않기로 중지를 모았다. 또 현 정부의 문화행정 등에 대한 저항의 뜻을 글로 담아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저항의 글쓰기 운동에 회원 158명이 서명했다.작가회의는 예술위가 확인서 제출 요구의 근거로 삼은 정부 지침의 철회를 위해 활동을 확대할 방침이다. 임기 2년의 구 신임 이사장은 “국가의 정신적 지위를 드높이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문학인들의 가치지향적 작업을 사심 없는 순수한 선의로서 지원해야 하는 것은 국가 문화기관의 당연한 의무”라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서약하라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자세도 아니다. 뿌리 깊고 광범위한 역사 후퇴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물질중심적이고 비인간화하고 있는 사회를 좋은 언어로 다시 인간화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부이사장으로는 최원식 인하대 교수, 도종환·나종영·이은봉 시인 등이 선출됐으며 사무총장은 소설가 김남일씨가 맡았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아름다움, 인종, 성, 지위, 역사의식…인간에게 피부는 무엇일까

    아름다움, 인종, 성, 지위, 역사의식…인간에게 피부는 무엇일까

    영상 속에서 한 여자가 붓으로 정성스럽게 눈썹을 그리고 있는데, 눈썹을 그릴수록 눈썹은 사라져 민둥눈썹으로 변한다. 이 여자가 계속 분첩으로 눈썹과 눈두덩이를 두드리자 사라진 민둥눈썹 뒤로 털이 숭숭한 송충이 눈썹이 나타났다. 영상 속의 여인은 곱게 화장한 남자였던 것이다. 남자의 정체성을 드러낸 그는 클렌징 크림으로 화장을 열심히 지워 낸다. 하지만 그럴수록 얼굴은 더욱 화려해진다. 화장수가 묻은 화장솜으로 눈두덩을 여러 차례 문지르니 스모키 눈화장이 나타나고, 입술을 문지르니 빨간 립스틱을 바른 요염한 입술이 나타난다. 화장을 하는 것인지 지우는 것인지 알 수 없고 반전이 기대되는 이 작품은 프랑스 사진작가 니콜 트랑 바 방의 비디오 영상 ‘스트립 티즈(Strip Tease)’이다. 인간의 외모와 성적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국내·외 작가 18명 참여… 영상·회화·조각 등 30점 전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씨(Space C)에서 9월30일까지 열리는 ‘울트라 스킨’(ultra skin) 전은 모회사인 코리아나화장품과 관련있는 미술관답게 인간의 피부와 화장,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배명지 큐레이터는 “외부 자극을 가장 먼저 수용하는 감각기관인 피부를 소재로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를 이어 주는 매개체로서의 피부, 아름다움과 완전함, 인종과 성, 계급과 지위, 역사의식 등을 보여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국·미국·프랑스·영국·중국·스웨덴·호주 출신의 작가 18명이 피부를 통해 보여 주고 싶은 세계에 대해 평면회화나 영상, 오브제, 조각, 사진 등 30점의 작품으로 제시했다. 스웨덴의 사진작가 안네 올로포슨의 사진작품들은 불안정 존재로서의 자아가 외부로부터 위협받을 수 있음을 상징하는 사진을 보여 준다. 금발의 젊은 여성의 얼굴을 주름이 가득한 늙은 노파의 손으로 감싸거나,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채 감싼 사진들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극적 대비를 이루고 있는 이 사진은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인간이 소유한 시간의 유한함을 느끼게 한다. 중국 작가인 니 하이펑은 ‘도자기 수출 역사의 부분으로서의 자화상’ 이란 사진작품을 전시한다. 1994년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이주해 작업하는 이 작가는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 등을 캔버스로 활용해 ‘펀치 볼’ 등 도자기 그림을 그리고, 네덜란드가 세운 동인도회사의 항해일지 등을 적어 넣었다. 17세기 유럽으로 수출된 도자기의 역사와 네덜란드에 이주한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화하는 효과를 냈다. 김재홍의 ‘거인의 잠-길Ⅲ’은 인간의 신체를 대형 캔버스에 그렸는데, 그 신체는 자연과 대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철조망이 쳐져 있기도 하고, 개발로 인해 고통받는 환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환경·인종차별 문제 등 현대미술로 표현 영국 작가 앤디 리온의 애니메이션 ‘베어(Bare 벌거벗은)’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소수자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 작품이다. 푸른색 털을 지녔던 곰이 면도를 하다가 실수로 얼굴 한쪽의 털을 몽땅 밀어 버렸다. 푸른 털 대신 분홍색 살갗을 보게 된 푸른 곰은 이번엔 아예 털을 다 잘라 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푸른색 곰들은 털을 밀어 버려 분홍색이 된 곰을 향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한다. 푸른색 곰들은 주류답게 커다란 크기로, 분홍색 곰은 작게 묘사해 피부색과 인종차별의 문제를 코믹하면서도 날카롭게 제기했다. 프랑스 사진작가 룰리앙 로즈의 ‘살아 있는 인형들’ 시리즈는 섬뜩하다. 인형과 사람들의 얼굴을 접사하듯이 찍었는데, 진짜 사람들의 얼굴은 자기로 만든 인형의 피부처럼 아주 매끈하게 처리하고, 인형들의 얼굴은 진짜 사람들의 얼굴처럼 땀구멍과 주름 등을 표현해 인형과 사람과의 구분이 쉽지 않다. 실제와 가짜 사이의 모호함을 보여 줌과 동시에, 매스미디어가 널리 홍보하는 비인간화된 미적 감수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영국에서 작업하는 한국작가 조소희의 ‘발(Foot)’은 실뜨기로 발과 다리를 입체로 만들고 나머지는 그물처럼 실로 연결해 놓은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껍질과 같은 인체의 연약함과 무기력함을 보여 준다. ‘괴물’을 그리는 이승애의 연필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인간의 영혼과 몸을 모두 보호해 주는 이 작가의 몬스터들은 흉측한 모습이지만, 다시 한번 생각하면 사랑스럽다. (02)547-9177.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자판기 냉커피·율무차 절반서 식중독균 ☞한류스타 배용준이 1년간 두물불출하며 쓴 책은? ☞마약 밀반출 한인 3명 싱가포르서 사형 위기 ☞‘원더걸스’ 선예 美 메이저리그서 시구한다 ☞두번째 지휘봉 잡는 첼리스트 장한나
  • 서커스야? 예술이야?

    서커스야? 예술이야?

    캐나다 아트서커스 ‘아이디’ 가운데 한 장면. 캐나다 아트서커스팀 ‘서크 엘루아즈’의 신작 ‘아이디(ID)’가 지난 7일 송도국제신도시 내 인천세계도시축전장 빅톱시어터에서 개막했다. ‘서크 엘루아즈’는 ‘레인’(2006년),‘네비아’(2007년)등의 내한공연으로 국내 관객에게 친숙한 단체다. ‘아이디’는 회사 창립자인 제노 팽쇼가 직접 총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인천세계도시축전 개막에 맞춰 전세계에서 첫선을 보였다. ●현란한 음악과 고난도의 묘기 돋보여 서정성이 돋보였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아이디’는 익스트림 스포츠와 길거리 댄스를 결합한 역동적이고 속도감있는 움직임으로 한층 젊어진 아트 서커스를 보여줬다. 힙합과 테크토닉, 록이 어우러진 현란한 음악과 춤, 고난도의 서커스 묘기는 관객의 눈과 귀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도시의 소음을 배경으로 막이 오르면 삭막한 회색 건물이 드러난다. 개성을 잃어버린 비인간화된 미래 도시의 풍경이다. 여기에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그들만의 해방구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개성을 맘껏 표출한다. 자전거 바퀴가 바닥에 누운 사람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아찔한 묘기, 중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듯 봉에 매달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장면, 그리고 천 하나에 의지해 아름다운 공중곡예를 벌이는 대목은 탄성을 자아냈다. ●다국적 출연자 15인의 역동적 에너지 하이라이트는 모든 출연자들이 건물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다시 튀어오르는 수직점프 장면. 트렘플린을 활용해 마치 벽을 타고 위로 걸어올라가는 듯한 착시 효과로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다. 밋밋하게만 보였던 회색 건물에서 숨어 있던 장치들이 드러나며 효율적인 쓰임새를 선보이는 아이디어도 인상적이었다. 독일, 캐나다, 라오스, 미국 등 각국에서 모인 15명의 출연자들은 에너지가 넘쳤다. 다만 제목의 ‘아이디’, 즉 정체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공연이 끝날 때까지 파악하기 어려웠던 점은 아쉽다. 또 하나, 공연장을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다. 공사가 한창인 신도시 벌판에서 천막극장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일단 공연장에 들어서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10월25일까지. 3만~10만원. (032)471-86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역사·고전 속 ‘우먼파워’

    사람이 살면서 어떤 대상에 지적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많겠지만, 기본적인 관심대상은 역시 자기의 문제일 것이다. 자기 문제에서 출발한 발언이야말로 가장 큰 공명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자기 문제에서 출발하다’라는 전제는 흔히 보편성의 이름 아래 포기되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그러하다. 약자는 자기와 자기 문제에서 쉽게 소외된다. 그리하여 여자들, 특히 공부하는 여자들은 흔히 여성 문제는 주변적인 것이므로, 더 중요하고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나도 사실 그런 구석이 없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여성의 역사를 공부해 오면서도 이것이 내 전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공은 어디까지나 어렵고 ‘폼 나는’ 러시아 역사 연구라고만 여겼으니까. 하지만 여성의 역사를 강의할 책임이 주어질 때 마다하지는 않았는데, 그때마다 여성은 역사적으로 종속적인 지위에 있었고 희생자, 피억압자라는 내용의 책들을 접해 왔다. 이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왜 여자들은 심한 억압 상황 아래에서도 순종만 했는지” 질문하며 곤혹스러워했다. 또, 그들과 함께 읽은 책의 한 여성저자는 통탄하며 말했다.‘역사 속 여성선배들의 정신적 노력은 축적되지 않은 채 단절되었고, 여자들은 항상 원점에서 새로 출발해야만 했다’고. 이 책은 이러한 질문, 혹은 개탄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나는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기는 했을망정, 자신을 비인간화시키는 상황에 맹종하고 산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 속에서 주체적 삶을 살고 독자적 문화를 형성해 온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역사와 고전 속의 여자들을 불러내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싶었다. 레스보스 섬에서 여성동료들과 더불어 살며 시를 쓰고 여신들을 찬양했던 사포, 내가 소녀 시절부터 좋아했던 안티고네를 비롯하여 문학작품 속 여성인물들,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 통치자를 옹립하기 위해 궁정 쿠데타를 조직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러시아 제국의 여성 공인 다슈코바에 이르기까지. 숨겨졌던 보배와도 같은 이 여자들은 내게 와서 말을 건넸고, 나는 그들을 내 친구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자 했다. 인문학 연구자로서의 내 능력이 닿는 한 이들과 함께 여성주체를 복권시키고 싶었다. 사람이 자기의 문제를 피하면 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차별받는 게 민족이건 성별이건, 인종이건, 계급이건,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렇게 비분강개하며 말하지만, 사실 책을 쓸 땐 비분강개하지 않았다. 명민하고 용감하고 현명한 여성선배들과의 대화는 통쾌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한정숙 서울대 서양학과 교수
  • [녹색공간] 자연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김제남 녹색연합 정책위원

    11월11일은 빼빼로 데이였다. 청소년들에겐 빼빼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는 날이 되고 있다.‘1’자가 4개 겹친 이 날에 기다란 과자인 빼빼로처럼 키 크고 날씬해지라고 주고받은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 빼빼로의 종류도 날씬하고 뚱뚱한 것에 이르기까지 호화롭다. 상점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아예 한 자리를 내어 빼빼로만을 팔고 있는데 다양한 종류에 화려한 포장이 사고 싶은 욕구를 끌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날은 물론이거니와 밸런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등이 장삿속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이 장삿속 수단이 되는 것도 유쾌하지 않지만 사탕, 과자, 초콜릿 등 가공식품이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류에 인공첨가물이 많고, 인스턴트식품과 패스트푸드는 인스턴트 문화를 만들어 아이들 생활과 문화 속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요즈음은 생일잔치도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햄버거와 청량음료를 먹으며 축하하고, 추억할 만한 날을 정해 우정을 나누는 방법도 손쉽게 가공식품을 구입해서 선물을 나누는 식이다. 컴퓨터를 켜면 모든 정보와 놀이가 있고 상점에는 없는 것이 없다. 물질의 풍요와 정보는 넘치는데 자연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청소년들이 자신의 본성과 의식을 온통 화려한 가공물과 물질에 빼앗기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나누는 우정과 소통은 격식을 갖춘 것이 앞서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치열하고 비인간화되어 가는 교육 환경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우정과 선물을 나누는 그 심성과 문화를 나는 소중하게 생각한다. 보다 자연스럽고 멋이 풍기는 문화를 창조하고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음식은 섭취하여 그 사람의 일부가 되듯이 건강한 음식에 건강한 몸과 정신이 만들어진다. 역시 문화는 창조하여 나와 사회의 일부가 되듯이 건강한 문화는 나와 사회의 관계를 만들고 서로 소통하면서 정신과 문화를 건강하게 살찌운다. 요즈음 가을의 향연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울긋불긋한 낙엽이 한창이다. 곱게 물든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며 옛날에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나뭇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서로 배꼽을 쥐고 웃을 줄 알고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시상을 그려내던 그때의 동심은 자연을 닮은 것이었다. 나뭇잎에 편지를 써서 책꽂이를 만들어 건네던 그 때의 벗은 자연 속에서 즐기는 풍류를 알고 있었다. 우리는 어릴 때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을 가지고 놀았다. 그네를 타고 널을 뛰면 하늘에 닿을 것 같았다. 온통 흙을 뒤집어쓰며 어머니 땅의 품안에서 뛰어놀았다. 해가 지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자연이 주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놀고 자연은 늘 우리의 놀이터와 문화마당이 되어 주었다. 우리의 몸이 알아서 자연과 하나 되어 놀았다. 놀이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 맺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놀이를 통해 어른들의 세상과 장차 해나가야 할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오늘날의 빼빼로 데이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한 놀이와 문화 그리고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라고 자연 속에서 놀 줄 알았으면 좋겠다. 점점 잃어가는 자연의 감수성을 되찾아 주고 자연에서 노는 기쁨과 풍류를 아는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계절마다 주는 자연을 놀이삼아 낙엽 밟는 낙엽의 날도 있고, 흰눈을 가지고 노는 날이 화이트 데이가 되면 어떨까? 쓰던 물건 중에 아끼는 것을 가지고 나눔시장을 열면서 친구들과 소통하는 날을 갖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자연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아이들은 자연과 사람이 공생하는 법도 배우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며 일하는 심성과 행동을 늘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김제남 녹색연합 정책위원
  • 험한길 앞장선 실천적 신앙인

    험한길 앞장선 실천적 신앙인

    17일 타계한 강원용 목사는 한국 현대사와 궤적을 같이하면서 항상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신앙인이자 사회운동가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에 이어 최근까지 한 세기를 관통하면서 늘상 소신있게 앞장섰던 선구적 인물이었다. ●‘소판 돈´ 70원 손에 쥐고 만주로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 판돈’70원을 손에 쥔채,‘농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신념아래 만주 용정으로 건너간 게 18세 때인 1935년. 당시 은진중학교에서 만난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와의 교유는 인생의 큰 좌표를 세우는 중요한 계기였다. 그들과 함께 농촌계몽활동을 하면서 암울한 조국현실에 눈뜨기 시작했고 특히 당시 은진중학교 교사였던 김재준 목사를 만난 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결정적인 방향타가 되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강 목사는 사회, 신앙적인 틀에서 운명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김규식, 여운형 등과 만나 청년대표로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면서 건국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동시에 선린형제단을 결성하고 김재준목사를 설교자로 모셔,1945년 12월에 지금의 경동교회를 설립했다. 당시 그가 세운 경동교회는 기독교장로교의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하였다.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등 격동기를 보낸 강 목사는 1956년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스승 폴 틸리히와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를 만나면서 신앙과 사유에 큰 변화를 맞았다. 기독교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사이와 너머’(Between and Beyond)라는 철학을 굳건히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위기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양극의 대립갈등 속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는 상호이해를 통해 새 길을 여는 방식을 지켰다. 이런 행동과 처신은 한때 오해를 불러일으켜 그에게 ‘중간파’, 혹은 ‘회색분자’라는 오명을 안기기도 했다.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를 통해 “독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대립하는 역사속에서 양극을 넘어선 제3지대에 내가 설 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살아 왔다. 항상 양극사이에서 좁고 험한 길을 걸어야 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그가 이같은 평가에 적잖이 고민했음을 알 수 있다.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설립 1960년대 초반 귀국한 뒤엔 대화중심의 아카데미운동에 돌입,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며칠씩 숙식을 같이하며 생각을 나누었던 대화모임은 당시 우리사회에서 유일한 소통의 장이었다. 특히 그해 6대 종교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대화모임은 세계적인 종교간 대화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와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의장을 역임했으며 종교간 대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니와노 평화상, 만해 평화상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 목사가 주도했던 아카데미운동의 요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고 안식일도 인간을 위해서 있다.’는 이른바 화육(化肉)신앙이다. 결국 그가 지향했던 사회는 하느님의 사랑이 중심이 되는 화해공동체였던 것이다. 70년대 양극화와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중간집단육성강화교육과 민주화, 노사간 대화, 성 평등 실현과 관련한 운동들은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를 통해 배출해낸 인재들은 곧바로 90년대 시민사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라는 가치관을 강조했던 강 목사는 해방이후 한국정치에 관심을 가져 민주화운동에도 깊숙이 참여했다.1970년대 김수환 추기경,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민주회복국민회의’대표위원을 맡기도 했지만 현실정치 참여에는 거리를 두었다. ●“교회는 세상위해 있는것” 신앙철학 한국 교회를 세계교회의 움직임에 동참시킨 것은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을 일이다.1948년 이후 세계교회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어 왔다.‘교회는 세상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신앙 철학으로 교회와 사회의 벽을 허무는 일에 앞장섰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파격적인 운동과 시도는 기성교회와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통일 조국에서 부모의 산소에 성묘를 가고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는 일을 내 눈으로 보지는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강 목사.“모세가 이스라엘 민족과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하던 가나안을 비스가 봉우리 꼭대기에서 바라보며 후배 여호수와에게 부탁을 하고 죽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멀리서라도 가능성을 보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말 그대로 임종 때까지 평화통일을 향해 달려 왔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송두율칼럼] 돈의 철학

    [송두율칼럼] 돈의 철학

    37년만에 귀국했다가 뜻하지 않게 서울구치소에서 맞았던 설날 아침, 방안 스피커를 통해서 “부자 되세요.”,“돈 많이 버세요.”라고 하는 여성 아나운서의 명랑한 목소리의 새해인사가 흘러나왔다. 새해 덕담으로 그런 내용의 인사가 상당히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후에야 알았다.‘재물 불리기’나 ‘돈벌 욕심’ 정도로 이야기되었더라면 곧 알아들을 수 있었을 단어인 ‘재테크’니 ‘부자마인드’도 그곳에서 처음 들었다. 인류가 돈을 교환과 지불, 그리고 가치저장수단으로 사용한 이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에 대해서처럼 많은 이야기가 있는 대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말의 돈의 어원이 “돌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또 독일에도 “돈은 물보다 더 빨리 흐르고 공기보다 더 가볍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니 흐름이 돈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결국 돈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이 상품이 되며 그 돈을 사용하는 인간도 그 흐름에서 영영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인간 생활에 필요해서 생긴 돈이 마침내 인간을 지배하게 된 자기모순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해보려는 종교의 가르침도 있었고, 정치적 이론과 실천도 있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성경 속의 가르침이나, 착취와 비인간화의 상징인 화폐를 폐지하고 그 대신에 ‘프롤레타리아 현물경제’를 도입했던 러시아의 ‘전시공산주의(1918∼21년)’의 실험도 각각 그러한 예에 속한다. “나는 어렸을 적에 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 늙어서 알게 되었다.”라고 술회한 오스카 와일드(O Wilde)의 솔직한 고백은 바로 돈이 가치를 잃어버릴 때만 인간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통념을 비판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그러한 돈은 애초부터 돈으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또“인간은 그가 죽는다는 것을 유일하게 아는 생물체이면서 동시에 유산(遺産)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이후에도 돈을 계속 관장(管掌)하려는 비밀스러운 상상력을 가진 존재다.”라는 볼테르의 지적처럼 삶에 있어서 절대적 가치로 전제된 돈은 죽음까지도 극복하려는 엄청난 욕망을 지니고 있다. 돈의 형이상학적 본질을 “모든 가치의 가능성을 모든 가능성의 가치”로 만드는 절대적 수단에 있다고 파악한 독일의 철학자 지멜(G Simmel·1858∼1918)은 그의 방대한 저서 ‘돈의 철학’ 속에서 우리는 삶의 수단이어야 할 돈이 삶의 목적이 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나, 이 수단을 우리 삶의 심미적(審美的)인 질을 적극적으로 고양시키는 전제로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 없이는 많은 것이 불가능하다. 단 돈은 어디까지나 고상한 인격과 품위를 지키는 수단이 되어야지 천박스러운 삶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주장하면서, 돈이 만들어내는 평준화 속에서 개인의 흔들리지 않는 높은 인격의 질(質)을 변호하고 있다. “우리 모두 부자마인드를 키워 부자 되어봐요.”라는 말이 ‘돈의 철학’의 전부를 설명하는 것처럼 들리는 현실 속에서 ‘돈의 철학’이 ‘삶의 철학’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부정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벌고, 쌓아놓은 돈을 죽음의 문턱을 뒤로하고서도 계속 관리하고 싶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완전히 억제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성원 사이에 ‘돈의 철학’과 ‘삶의 철학’을 최대한 서로 근접시키는 사회적 약속은 가능하다. 그러한 가능성을 그저 부자에 대한 가난한 자들의 집단적 보복심리에 의거한 발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한,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이른바 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단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돈의 철학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4) 한국의 다도철학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4) 한국의 다도철학

    해가 길어졌다. 꽃피는 3월 버들가지에도 봄이 오고 새들이 맑은소리로 미친듯이 여기저기서 울어댄다. 차밭의 묵은 풀들을 정리하는 일에 흥이 돋는다. 해가 뉘엿뉘엿 산봉우리를 돌아 집으로 돌아간다. 푸르디 푸른 봄 하늘은 마치 뜬구름이 사라진 허공처럼 무량한 넓이를 보여준다. 삶이란, 차인의 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삶과 차, 삶과 차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차의 길이라는 것이 새삼 세월속에서 묻어난다. 서산 청허 스님은 그같은 차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금생의 한길로 다닌 지 벌써 몇 년이며/현기를 헤아리는가 후도생(後道生)아/산 밖에서 인간 세상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베갯머리가에서 시냇물 소리를 듣네/꽃 밟고 돌아오는 길 봄 구름이 습하고/계수나무로 차 달이는데 저녁노을이 맑다/숲의 학과 야생 고라니가 서로 믿으니 이미 후덕한데/붉은 문에 하필 수놓은 옷이 빛나겠는가” 참으로 소박한 차의 살림살이가 묻어난다. 저녁노을을 벗삼아 계수나무로 달여먹는 차는 얼마나 풍요롭고 또 풍요롭겠는가. 사람들은 이같은 차의 미학을 음풍농월의 단절적인 삶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한폭의 수묵화 같은 차의 살림살이는 단지 삶의 멋을 부리기 위한 겉치장이 아니다. 관념과 현실을 투과한 깨달음의 삶속에서 펼쳐지는 우주적인 삶은 곧 현실일 수 있으며 충만한 내면의 동화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차를 접하며 가장 많이 듣는 것은 바로 ‘다도(茶道)’라는 말이다. 조금 풀어서 해석한다면 차의 길 즉 차의 정신성과 물신성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말이라고 본다.‘다도’는 크게 2가지 뜻을 지닌다. 먼저 차를 다루고 끓이고 마시는 바른 방법이다. 이같은 것은 무척 현상적인 것으로 차를 다루고 끓여내는 모든 행위를 원만자적하게 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하나는 위에서 지적했듯이 정신성의 획득이다. 차 즉 다법을 통해 얻어지는 내면의 깨달음이다. 옛 성인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모든 것은 하나의 길로 통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즉 차의 내외적인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진리의 당체를 얻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성인 초의 스님이 처음으로 ‘다도’라는 말을 언급했다. 초의 스님은 “다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동다송을 썼다. 조주풍의 다도가 없어져버려 알지 못하므로 다신전을 쓴다.”고 말씀했다. 초의 스님은 또 김명희에게 “수체(水體)와 다신(茶神)이 열리어 정기가 들어오니 곧 대도를 이루게 된다.”고 했다. 초의 스님은 올바른 다법 안에는 차의 물신성과 정신성을 동시에 투과해야 한다는 다도론을 넌지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도철학을 도대체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것인가. 다도철학이란 차를 다루고 끓이고 마시는 일에서 자연과 인간의 삶을 깨닫게 되는 진리나 이념의 총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도철학은 단순한 차를 벗어나 당시대를 함께 관통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사상과 연관을 가지며 그것은 다도사상 다도정신 다인정신 다도관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을 갖는 것이다. 우리의 다도사상은 ‘정(正)’과 ‘중(中)’으로 요약할 수 있다.‘정’과 ‘중’은 불·유·선 등 우리선조들의 정신적 사상사적 철학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다.‘정’과 ‘중’의 개념을 고전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먼저 유가에서는 ‘정’을 통한 ‘중’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정’은 무사(無邪)이며 본래의 ‘성(性)’이자 진리이다. 이에 반해 ‘중’은 중용이고 화(和)이다. 이것을 불교에서 보면 ‘정’은 팔정도며,‘중’은 ‘중도’다. 이것을 도가적으로 본다면 ‘정’은 심재와 전일이며,‘중’은 망형일 수 있다. 정과 중은 다사(茶事)와 행다례의 원리가 된다. 포법에 있어서 ‘정’은 정갈한 차, 깨끗한 차를 알맞은 분량으로 열을 제대로 익혀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뜻한다.‘중’은 이러한 중요한 요소들이 서로 어울려 본래의 모습으로 탄생하게 하는 역동적인 관계를 ‘기’와 시간으로 잘 다스려 조화롭게 그 내용을 얻는 것이다. 행다례에서 ‘정’은 올바른 자세이며 ‘중’은 온화한 부드러움이다. 찻자리에서 ‘정’은 차를 접대하는 팽주인 주인과, 손님의 기본 예의범절이며,‘중’은 깍듯하고 예의범절을 지키나 조금은 여유가 있는 상대적인 예절을 뜻한다. 한발짝 더 나아간다면 찻자리부터 차를 우려내는 것까지 주인의 빈틈없는 세밀한 정성이 ‘정’이 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접대받는 손님이 주인과 하나가 되어 온화하고 편안한 마음이 되는 것이 ‘중’에 해당된다. ‘정’과 ‘중’은 또한 차실 등 찻자리를 꾸밀 때 기준이 되는 중요한 미의식이기도 하다. 먼저 다실이다. 다실에 있어서 ‘정’은 자연과 일체가 되어 있는, 아니면 현대인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라야 한다.‘중’은 편안하게 손님을 맞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고 수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차 핵심인 다완을 만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최고의 ‘다완’으로 불리는 ‘이도다완’은 먼저 다구를 쓰는 사람이 쓰기에 편하고 개성이 있게 만들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을 닮은 것처럼 넓고 담백한 의연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다완에서 ‘정’은 자연을 닮은 담백함이요,‘중’은 다구가 쓰기에 편하나 개성이 있다는 점이다. 다도에서 ‘정’과 ‘중’은 한발짝 더 나아가 차인의 사회 문화, 윤리적인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것은 어쩌면 현대 차인들의 삶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차인의 사회 문화적인 삶속에서 ‘정’은 자신의 실체를 거짓없이 있는 대로 꿰뚫어보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만큼 내적 성찰이 이루어졌으며 그에 맞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분자족’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자신이 지닌 능력의 최상과 최하가 어디에 있음을 알고 삶을 열심히 영위해갈 수 있는 성실한 노력이다. 차인의 삶속에서 ‘중’은 부족한 자신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인 ‘자비’다. 차에는 또한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는 실천적인 철학이 숨겨져 있다. 먼저 차는 사회적 구조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해준다. 분노도 탐욕도 모두 생각에서 나온다. 꾸준한 음다생활을 통해 가벼운 살림살이로 급진전하고 있는 자신의 살림살이를 깊고 넓게 할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성하는 삶이 매우 중요하다.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그릇된 점을 깨달아가는 것을 공부라고 했다. 또한 옛 다인인 목은 이색은 자신의 차실에 가만히 정좌해 하루생활을 반성하는 차생활을 하며 탐욕에 물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차는 또 현대인들의 가장 큰 적이라고 부르는 스트레스를 다스릴 수 있다. 옛 차인들은 차의 고유한 기능중 한가운데에 근심을 없애는 것을 들었다. 음다는 신체의 오관을 즐겁게 해준다. 코로는 향기를 맡고 혀로는 맛을 보고, 눈으로는 찻물과 차싹과 다구를 보며, 손으로는 따스한 찻잔의 촉감을 느끼고, 귀로는 찻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지금은 그같은 호사를 누릴 수 없지만 땔나무를 사용했던 옛 차인들은 찻물 끓는 소리를 유난히 사랑했다. 찻물 끓는 소리를 소나무에 스치는 바람, 비오는 소리, 봄 강물소리 등 천지만물을 그대로 보듬어안는 자연의 소리로 들으며 사랑했다. 뿐만 아니다. 물은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물을 대하는 인간은 가장 편안하게 그것을 흡수한다. 그같은 물의 친연성은 정신적 신체적 긴장을 이완함으로써 뇌파를 쉽게 안정시켜 일상생활의 안정화를 가져다준다. 우리 주변에 중요한 일을 앞두거나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꼭 차를 먹는 습관을 지닌 다인들이 많다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차생활은 스트레스를 낮추고 정신건강을 유지시킨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음다생활은 또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간 대화의 통로를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현대인들의 주요한 삶의 문화적 터전은 가상공간에 있는 가상현실이다. 가상의 공간은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보다는 지극히 개별화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비인간화의 길을 걷게 하는 ‘쿨 컬처’ 즉 차가운 문화로 상징된다. 차는 이같은 차가운 문화를 훈훈한 문화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차를 함께 마시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본원적인 감정들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차를 끓여 마시는 과정에서 굳었던 감정들은 서서히 풀릴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마저 형성되기 때문이다. 차는 가족과 가족, 조직과 조직, 더 나아가 인간과 신이 영혼을 나눌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차는 또 인간과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예의를 갖출 수 있는 기본자세를 만든다. 음다생활은 인내심과 질서를 갖춘 예의바른 행동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차는 젊을 때뿐만 아니라 중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를 가꿀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물의 진리를 통해 자연을 사랑하게 되는 우주적인 눈을 갖추게 한다는 점에서 삶의 실천철학으로서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대흥사 제11대 종사인 함월 해원선사는 차가 가진 삶의 실천철학을 이렇게 시로 노래하고 있다. “갑술년 봄 온갖 꽃 감상하는데/청암스님은 회를 돕느라 사무가 번다하네/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어 걱정스럽더니/다행히 직접 만나니 즐거움이 끝이 없네/쌍계의 물 가득하니 선차(仙茶)로 족하고/칠불의 바람 불어와 손님의 흥을 더하네/멀리 낙동강 향해 돌아가야 하나니/헤어짐에 이르러 뜻이 어떠한가 묻지 마라.” <일지암 암주> ■ 中·日의 다도철학 중국에서 다도란 말에 대한 기록은 8세기말 당나라 사람 봉연이 썼다. 봉연은 그의 글에서 “이로부터 다도가 크게 성행했다.”고 적고 있다. 그 후 ‘다록’을 썼던 장원이 그의 저서에서 “차를 정성들여 만들고 건조하게 저장하며 깨끗하게 우리면 다도를 다한 것이다.”고 차를 다루는 법에 대한 다도를 적고 있다. 그러나 중국 다도정신의 근원은 육우가 쓴 ‘다경’에서부터 비롯됐다. 육우는 다도의 근원을 ‘검덕’으로 보고 그것을 숭상해야 한다고 했다. 북송의 휘종황제는 ‘대관다론’에서 “청(淸)·화(和)·정(靜)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저런 것들을 종합해보면 중국의 다도정신은 ‘검(儉)·청·화·정’으로 집약된다.‘검’은 검소,‘청’은 청렴결백,‘화’는 화목,‘정’은 고요한 경지를 의미한다. 근대의 차인인 장만방은 “중국의 다덕은 염(廉)·미(美)·화(和)·경(敬)이다. 염은 맑은 차를 마심으로써 청렴하고 근검하게 하며, 미는 명품차에서 아름다운 맛과 향기를 음미하며 우정을 서로 나누고 건강하게 장수를 누릴 수 있다. 화는 다례를 중시하는 덕을 지녀 화합하고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경은 남을 존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이 즐거워할 수 있도록 정갈한 다기와 좋은 물을 쓴다는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의 다도철학은 다른 어느나라보다도 투철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차’는 곧 ‘도’요 정신이며 삶으로까지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다도는 철학적 의미가 매우 깊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다도철학은 앞서 살펴봤지만 ‘와비’정신이 그 핵심이다. 와비는 원래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허전함’‘은자의 생활철학’등에서 보여지듯 인간의 삶속에 근원적으로 투영된, 완전한 탐욕을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한다. ‘달님도 구름 사이가 아니라면 싫습니다.’고 했던 센리휴의 말은 이같은 와비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와비사상은 또 다구를 평가하는 기준에서도 볼 수 있다. 와비차에 어울리는 차그릇들은 완전한 상태의 차그릇에 손질을 가해 불완전하고 불균형적인 ‘초(草)’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센리휴는 다실에 놓인 멀쩡한 꽃병 귀를 한쪽만 망치로 떼어냈다고 한다. 이같은 와비정신은 다회에서 내놓은 식사에서도 드러난다. 밥 한 그릇에 반찬 두세 가지, 가벼운 술 등 간단하고 소박한 식사가 기본이었다. 일본의 다도는 센리휴의 사규(四規)로 압축된다. ‘화·경·청·적’이 그것이다.‘화’란 찻자리에 참석한 사람들과 주인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 경은 주인과 손님 모두가 각기 불성을 지닌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청’은 물질적 정신적인 욕심을 떨쳐낸 맑은 마음을 통해 자유롭게 되는 것이며,‘적’은 공간적 고요함과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열반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뜻한다. 위에서 살폈듯 중국과 일본 등도 차에 대한 형식과 내용을 벗어나 국가와 개인의 삶의 철학으로서 ‘차’의 길을 가꾸어왔음을 알 수 있다.
  • [새영화-타임 마스터] “행성 소년 구하라” 흥미진진한 모험

    프랑스산 애니메이션 ‘타임 마스터’(Les Maitres du temps·15일 개봉)는 실사를 방불케 하는 총천연색 3D애니메이션도 웬만해선 눈길을 끌기 힘든 요즘 같은 시대에 오히려 빛을 발하는 영화다. 투박한 그림, 복고풍 음악 등 영화가 주는 첫인상은 ‘시간의 지배자’라는 제목처럼 관객을 순식간에 영화가 만들어진 20여년 전으로 안내하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와 상상력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영화는 외딴 행성 페르디드에 혼자 남겨진 소년 피엘이 겪는 모험과 그를 구하러 떠난 자파 일행의 흥미진진한 우주 여행을 담고 있다. 살인 말벌떼의 습격으로 아빠를 잃은 피엘은 아빠가 남겨준 마이크로 우주선 선장인 자파와 교신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간다. 호기심 많은 피엘이 빛나는 열매를 맛보고, 낯선 동물 친구들과 친해지는 동안 자파 일행도 피엘을 구출하러 가는 도중 괴짜 우주 항해사 실바드의 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우주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다.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SF장르지만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프랑스의 전통은 영화 곳곳에 숨어 있다.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외계 생명체 자드와 율라가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악취에 괴로워하는 대목이나 자파 일행이 감마 10행성에서 만나는 얼굴없는 괴물은 과학문명에 비인간화되고, 개성이 파괴된 현대인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다. 시간에 얽힌 마지막 반전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73년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타임 마스터’는 르네 랄루의 1982년작.SF소설가 스테판 울의 원작을 바탕으로 ‘에일리언’‘블레이드 러너’‘제5원소’의 컨셉트 디자이너였던 뫼비우스가 디자인 작업을 총괄했다. 전체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문화마당] 오염되지 않은 꿈/문흥술 서울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언젠가 유치원생인 듯한 어린아이 몇몇이 예쁘장하게 생긴 한 여자 애를 두고, 그 애가 공주냐 아니냐 하는 설전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이들이 내린 결론은 여자 애가 공주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자 애는 자신은 공주가 맞다고, 아빠가 자기에게 늘 ‘우리 공주’라고 한다면서 울먹였다. 그러자 나머지 아이들이 공주가 아닌 이유를 말하는데,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말하기를, 비디오에서 본 공주들은 머리가 다 긴데, 그 여자 애는 머리가 짧다는 것이 아닌가. 시인 유하는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라고 했다. 컴퓨터로 상징되는 각종 정보 메커니즘이 우리네 삶의 세목을 지배하는 정보사회를 두고, 유하는 무의식의 욕망마저 통조림 찍어내듯이 획일화한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 온 종일 인터넷, 텔레비전 등과 같은 정보 메커니즘과 함께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논리에 길들여지고 있다. 잠깐 우리들 욕망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아마도 출세해서 돈 벌어 좋은 집에서 좋은 차 굴리면서 호강스럽게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드물 것이다. 물질적 가치만을 최우선시하는 이런 욕망이야말로 상품물신주의가 지배하는 정보사회에 오염된 단적인 예다. 정보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신격화된 상품이 모든 가치 평가의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품물신주의이다. 우리 주변에 자동차와 관련된 농담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유독 소형 승용차와 관련이 있다. 가령, 소형차 운전자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아 살펴보니 타이어에 껌이 붙어 있더라는 것이나, 구부러진 길을 돌 때 차가 넘어질까 봐 운전자가 손을 땅에 짚고 돈다는 것이 그 예이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값싼 차를 타지 말고 비싼 차를 타야 대접을 받는다는 상품물신화의 논리가 잠복해 있다. 비싼 차와 관련된 농담이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값비싼 상품을 소비하도록 유혹하고, 그런 상품을 소유할수록 뭔가 품위 있는 듯이 보이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풍조를 조장하는 전위 부대가 정보 메커니즘이다. 정보사회의 논리에 함몰되기 이전의 본래적 욕망을 두고 ‘영도(零度)의 꿈 혹은 욕망’이라 한다. 오염 제로의 욕망, 그것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에 뿌리를 드리우고 있다. 물신화되고 비인간화된 정보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영도의 욕망’은 자신의 체제를 일거에 전복시킬 수 있는 강력한 부비트랩과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음흉한 정보사회는 그런 욕망을 철저히 억압하고 대신 자신의 논리에 충실하게 복종할 수 있도록 우리들 욕망을 교활하게 조작하고 통제한다. 공주는 무조건 머리가 길어야 한다고 믿는 어린 세대가 계속해서 정보 메커니즘의 논리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성장해 간다고 상상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밝고 건강한 꿈을 심어주는 것은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필연적 의무이다. 기성세대가 오염되지 않은 문화를 늘 가까이 하고 바른 생각을 하면서 ‘영도의 욕망’을 가질 때, 자라나는 세대도 그것을 본받을 것이다. 훗날 우리의 귀엽고 소중한 아이들이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의 한 생산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진정 인간다운 존재로 고귀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의 여부는 온전히 기성세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프라하의 봄’ 주역… 동유럽 민주화 기여

    바츨라프 하벨(69) 전 체코 대통령이 제7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울평화상문화재단(이사장 이철승)은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각계인사 15명으로 구성된 최종 심사위원회를 열고 ‘유럽의 양심’으로 불리는 하벨 전 대통령을 수상자로 확정했다. 이철승 이사장 겸 심사위원장은 “공산정권 시절부터 동유럽 민주화의 기수로 이름을 떨친 하벨 전 대통령은 1989년 시민혁명을 통해 체코의 민주화를 이뤄냈고,대통령 재임 때도 유럽의 평화정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하벨 전 대통령은 “명예롭게 생각한다.”면서 흔쾌히 수락 의사를 전해왔다.지난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하벨 전 대통령은 86년 에라스무스상을 시작으로 90년 시몬 볼리바르상과 유네스코 인권상,필라델피아자유메달(94년),미국 대통령 자유메달,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이상 2003년),그리고 올해 캐나다 명예동반자상 등을 잇따라 수상했다. 시상식은 다음달 중순 열릴 예정이며 상금 20만달러가 수여된다. 하벨 전 대통령은 ‘프라하의 봄’과 ‘벨벳혁명’을 주도한 동유럽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로,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됐다. 36년 프라하의 부유한 건축가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인문계 고등교육을 금지당해 공장 근로자로 일하며 야간학교와 체코 기술대학 경제학부를 나왔다.문학도의 꿈을 간직해온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연극무대에 뛰어들어 무대 조감독 등을 거치며 63년 ‘가든파티’,65년 ‘비망록’ 등의 희곡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공산체제의 비인간화를 비판하면서 68년 작가동맹을 이끌고,‘프라하의 봄’ 운동에 참가해 옛 소련의 군사 개입을 비난하다 저술활동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독립작가서클의 ‘7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77년 1월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는 ‘77헌장’을 발표하면서 반체제 작가에서 민주화 지도자로 거듭났다. 79년 ‘부당하게 억압받는 자들을 변호하는 모임(VONS)’을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 5년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89년 학생시위에서부터 시작된 ‘벨벳혁명’의 물결에서 시민포럼을 결성해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그해 12월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회에서 대통령에 선출됐다. 세 차례 대통령을 지내고 지난해 퇴임해 인권과 자선에 관한 활동을 하고 있다.지난 6월에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북한에 대해 행동할 때’라는 글을 통해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96년 타계한 부인 올가 여사의 뜻을 살려 전 재산을 장애인 권리 찾기와 지원을 위한 재단에 기부하고,인권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고은이 노래하는 비극·절망의 풍광/연작시 ‘만인보’ 16~20권 출간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萬人譜)’ 16∼20권이 창비사에서 나왔다.1986년 처음 세상에 나온 ‘만인보’는 97년 15권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던 민중의 다양한 삶의 결을 노래하면서 총체적인 역사인식을 불어넣어왔다.7년 동안 호흡을 고르며 정제해 내놓은 이번 연작시 719편이 태어난 공간은 민족사의 대전환기인 식민지·해방공간·한국전쟁 전후를 아우른다. 시인은 이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삶과 맞닥뜨린 죽음의 상황,전래사회가 무너진 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실존과 폐허(…),비인간화를 몰고온 전쟁 등이 비극의 풍광으로 그려진다.” 시인이 이 ‘폐허’에서 부르는 절망의 노래에는 이번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김일성·조소앙·이승만·신익희 등 좌우익을 망라한 정치인을 비롯,임화·이중섭·선우휘 등 예술가와 남인수·현인·김정구 등 가수 등이 시인의 웅장한 서정성으로 살아난다.또 한라산을 핏빛으로 물들인 빨치산과 토벌대,창녀,장작 장수,노천 사진사 등 이름없이 그 공간을 메웠던 민초들의 절절한 사연이 역사 위로 복원된다.사람만이 아니다.1300명의 양민이 학살당한 진주 초등학교 운동장,서울 변두리 판잣집 풍경이 또 하나의 역사적 주체로 살아나 스산하던 당시의 진상을 증언한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해설에서 “당대의 숱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 역사의 모습들을 섬세하게 직조하면서 역사의 진행을 거대한 양감으로 재구성한다.”고 상찬한다.시인은 올 하반기에 5권,내년에 5권을 더 보태 모두 30권으로 ‘만인보’라는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이종수기자
  • [씨줄날줄] 자살

    미국의 젊은 여성 아나운서가 1974년 어느날 TV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30세의 이 아나운서는 생방송으로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갑자기 기술상의 문제가 생겼다며 방송을 중단했다. 몇분 후 화면에 나온 그는 “시청자 여러분에게 자살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그리고 권총을 꺼내 자기 머리에 쏘았다.‘자살,도대체 왜들 죽는가’라는 책에 나오는 최초의 생방송 자살 사례다. 사람들은 정말 왜 자살할까.그 이유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활발해진 것은 19세기부터다.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1858~1917)은 자살은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사회현상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세계보건기구가 1969년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살의 동기는 989가지이며 자살방법은 83가지가 있다고 한다.오늘날에는 더욱 다양할 것으로 생각한다. 자살률은 풍요로운 현대로 올수록 증가한다.지금은 10대 사망원인중의 하나가 될 만큼 자살이 많아졌다.사회가 비인간화되고 고독한 절망자가 많아지면서 자살이 더 늘어나고 있다.자살방지협회를설립했던 일본의 한 의사의 연구에 따르면 비관주의자보다 실망한 낙관주의자들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자살을 통계학적으로 접근하면 큰 틀의 흐름을 알 수 있다.자살기도는 여자가 남자보다 두배 이상 높다.그러나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은 남자가 여자보다 두배 이상 많다.남녀 모두 20대와 30대에 자살률이 높으나,여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낮아지는 반면 남자들은 60대가 되면 급증한다.이혼한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다.밤보다 낮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우울증 환자의 15%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남겼을까.‘프랑스의 윤리통계’라는 책에 따르면 사람들과 인생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다고 한다.그 다음으로 ▲부모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작별의 말 ▲장례 지시 ▲신의 자비에 대한 믿음 ▲내세에 대한 신앙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아픔 ▲속죄의 마음 ▲자기를 그리워해주기 바라는 마음 ▲자살하게 만든 괴로움 등의 순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그러나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죽는 것보다 괴로움을 참는 것이 더 낫다.”라고 말했다. 이창순 논설위원
  • [열린세상] 모내기 철

    요즈음 출퇴근할 때 차창 밖으로 모내기가 한창인 들녘을 바라보면서 싱거운 생각을 해보곤 한다.풍성한 추수를 기대한다면 제때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하는데 이 같은 일은 소홀히 하거나 아예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머리로만 또는 말로만 대신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씨 뿌리고 돌보더라도 기회를 놓치면 가을걷이는 바랄 수 없다는 것이 천리이다.오늘 우리 사회의 처지가 이처럼 단순한 진리를 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효율성의 극대화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이 길만이 무한 경쟁의 시대에 대외 경쟁력을 높이는 비결이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 시대에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보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Ceteris Paribus)’이라는 전제를 망각하고 영(零)에 수렴하는 비용으로 무한대의 효용을 실현할 수 있다는 허구를 신봉하게 하고,봉이 김선달이 바로 신지식인의 귀감이라는 비약을 확신하도록 강요한다. 금본위 통화제도에서 금화는 거래의 유일한 결제 수단이다.그런데 금화는 거래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마모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깎이기도 하여 갈수록 애초의 정량에 미달하게 된다.이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거래 과정에서 정량에 가까운 금화는 자기가 보관하고 함량 미달된 금화부터 거래 대금으로 결제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라는 것을 간파하게 될 것이며,시장 거래의 되풀이는 실제 거래에서 통용되는 금화의 정량이 시간이 갈수록 함량 미달의 금화만으로 채워질 것이다. 정량에 가까운 금화는 좋은 돈,함량 미달의 정도가 큰 금화는 나쁜 돈이라고 한다면 시장 거래에서 남게 되는 돈은 나쁜 돈뿐일 것이다.이처럼 악화가 양화를 내쫓는다는 것이 바로 그레셤의 법칙이다.그러나 이 같은 법칙에는 한계가 있다.아무리 악순환이 되풀이되더라도 마지막에 금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통화만이 결제 수단으로 통용되는 극한 상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교육과 여론이 시민들에게 정의의 의미를 절감하도록 만드는 시점이 있기 때문이다.즉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정글 상황으로까지 타락하지 않는 극한점이 있으며 극한 수준을 한계윤리라고 부른다.한계윤리는 비윤리가 아니라 허용 한도 범위에서의 윤리 의식이다. 투입량의 크기를 초과한 산출량의 크기의 부분을 흔히 마진(Margin)이라고 부른다.인간의 이기심은 바로 이 부분의 크기에만 관심을 두게 만들고 다른 조건들을 고려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치부하게 한다.무조건적인 이윤 극대화의 기대를 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투입·산출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인간의 삶의 질을 후퇴시켜 마지막에는 비인간화의 상황을 고착시킨다.더욱 나쁜 것은 이 같은 상황에 반드시 무임 승차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경제 환경의 투명성이 결정적으로 훼손된다는 점이다. 클수록 그리고 빠를수록 좋다는 환상이 바로 병든 사회의 대표적인 증상이다.극대치만을 추구하는 타성은 급기야 투입과 산출의 순리적 관계를 무시하게 만들고,인위적 조작을 강요하며,억지와 무리를 요구하여 상식과 합리에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즉 거짓과 불신을 조장하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기 때문이다.순리에 어긋나는 투입·산출의 관계는 비정상을 당연시하게 하고 이러한 관행에서 비롯된 숨겨진 비용이 부당한 뒷거래이거나 환경 파괴라는 재앙으로 남게 된다. 상품의 질은 같거나 오히려 나쁜데도 판촉에 현혹되어 충동 구매를 하거나,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필요량 이상으로 즉흥 구매한다면 소비자는 이미 시장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일 뿐이다.인간적 삶을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적정량을 의식적으로 소비할 때 생산과 소비는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한정된 자원의 고갈을 막을 수도 있고,적정수준을 초과하는 이윤을 겨냥한 숨은 비용을 최소화해 소비자가 객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 우리 경제의 투명성이 확보될 것이다. 김 어 상 서강대교수 경제학
  • [열린세상] 애완동물과 사회 심리

    20세기 인류사의 수레바퀴의 한 축을 지탱해 왔던 마르크스는 그의 잘못된 변증법적 유물사관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길을 걷게 하여 희생과 과오를 범하는 결말을 가져오게 만들었다.하지만 패배의 역사를 초래하기는 했으나 적어도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인간성의 상실과 인간소외 문제와 같은 비판적 예측은 적중했다고 평가해야만 할 것이다. 개인의 자유신장을 최고이념으로 설정한 서구의 자본주의 사회는 예외 없이 개개인의 개성이 강조되면서 자연히 가족이라는 최소집단체마저도 원자화로 변하기 시작하였다.드디어는 각자가 뿌리없는 부평초의 모습으로 거대한 국가라는 추상적 테두리 안에서 떠다니는 꼴로 변하고 말았다.이것이 바로 소위 리스먼이 말하는 ‘군중속의 고독’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대로 생리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는 데 자본주의적 문명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마르스크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리를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또는 ‘상품으로부터의 소외감’으로 적절하게 지적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가 발달되면 될수록 개개인간의 사이에는 오로지 화폐로 계산되는 상품과 거래관계만 증가되면서 인간과 인간의 심정적인 관계와 교류는 약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물건과 물건과의 접촉보다는 마음과 마음의 교류에서 보다 인간다움과 본래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그러므로 자연히 이러한 비생명적인 사물의 자리에 그래도 생명 없는 사물보다는 살아있는 존재를 대신하여 가까이 하게 되는 현상이 바로 애완동물이다. 따라서 사회가 비인간화와 소외감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상호경쟁적이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인간과의 교류나 접촉보다는 각종의 애완동물을 그 자리에 대치하는 경향으로 변하게 된다.이와 같은 사회병리적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급속히 나타나고 있음은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애완동물 전문상점이 전국의 곳곳에 번성하고 전문병원이 성업화되는가 하면 애완동물 미용실까지 생겨나고 있어 건전한 가치관과 사회발전에 염려스러울 뿐이다.애완동물과의 접촉에서 얻는 만족에 비하여 인간과의 접촉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은 그 질과 양은 엄청난 차이인 것이다.어떻게 하든 인간과의 유대감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손쉽게 애완동물에 대한 소유욕만을 취하려는 경향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동물해방론자인 레이건의 말대로 정말 동물을 애호한다면 그 동물의 본래의 만족을 충족시켜줘야 한다.집안에서 온갖 정성으로 동물에게 아무리 잘 해준다 하더라도,밖에서 마음대로 뛰놀게 해주는 야생생활을 못따라 간다.따라서 애완동물가는 동물을 좋아(Like)할 뿐 사랑(Love)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그대여,진정으로 당신이 동물을 사랑한다면 당장 집안의 애완동물을 야생으로 내 보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여하튼 사회가 비정상적일수록 애완동물에 관련된 사업이 발달되며,그것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건전한 관계가 상실됨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이다.미국과 서구사회가 오래전부터 그랬고 가까운 일본도 이미 오래됐으며 한국사회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자본주의 사회발달의 부정적인 측면을 100년전에 예측한 마르크스의 인간소외론은 지금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처녀시절에 밤낮없이 애완동물에 빠져있던 여성일지라도 결혼하고 애기가 태어나면 하루아침에 아기사랑으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에서도 우리들은 인간사랑이 최상임을 알게 된다.인간사랑은 동물사랑과는 한 차원 높은 최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인간의 애완동물에 대한 애정은 그 기본이 자기만족이며 이기심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심리인 것이다.세상의 동물애호가들이여! 지금부터라도 참으로 동물을 사랑한다면 자연속으로 되돌려주고 마음껏 뛰놀게 할지어다. 김동규 고려대 교수 북한학
  • [열린세상] 이라크전과 종교적 근본주의

    숨겨진 구실이 자원 쟁탈이든 아니면 주도권 쟁탈이든 이라크를 둘러싼 재앙은 이제 깊은 시름의 찌꺼기를 남긴 채 서서히 마감되는 듯하다.처음부터 수그러들지 않고 꾸준히 제기되는 전쟁구실로 이 같은 가시적 이유 외에도 종교적 근본주의를 꼽고 있는 주장들에도 이제는 주목할 때인 것 같다. 근본주의라는 말은 원리주의라고도 불리며,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개념으로 현대사회에 대한 우려를 직접,간접으로 나타내고 있기에 현대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요즈음 유행하는 주제이기도 하다.근본주의가 단순히 현대사회 현상을 투영하고 있는 수동적 피사체인지,아니면 비인간화되는 사회구조로부터의 능동적 탈피 몸부림인지 아직까지는 그 성격이 분명하게 규명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근본주의라는 매개는 우리로 하여금 오늘의 복잡한 제현상에 손쉽게 다가가게 하고,다루게 하고,해결책을 강구하게 하므로 매우 실용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현대사회의 정치,경제,문화,종교 현상의 특징을 다루는 개념으로 근본주의라는 용어를사용하는 데 우리는 익숙하다. 이러한 장점과 함께 우리가 경계해야 할 매우 위험한 가능성도 근본주의는 내포하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의도적으로 근본주의라는 매개를 계획적으로 유포하는데,이 경우 총체적 재앙으로 근본주의는 등장하고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왜냐하면 이 때의 근본주의는 으레 상대방을 근본주의로 몰아세워 감정차원에서 손쉽게 적대감을 조성하지만 상대방이 이쪽의 주장이나 실천방안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도록 일방적으로 대결구조 양상만을 증폭시키는,즉 이성보다는 전폭적으로 감성에 호소하게 만드는 최면적 전개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주의가 무엇인지,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근본주의 현상인지에 대해서는 다루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여하튼 근본주의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다음의 세 가지 특성을 보편개념의 근본주의든 특수개념의 근본주의든 모든 근본주의는 반드시 지니고 있다는 점에 일치하고 있다. 첫째,이념적 차원으로,환경론자나 여성해방론자 등 진보적 주장에 대한 거부입장으로 보수성을 강조하는 형태인데 보수주의라는 보편적 용어보다는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내용상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둘째,사회심리적 차원으로,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하는 사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형태로 개체의 자유나 다양성보다는 전통권위에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현상으로 지배통솔의 논리에서 병영과 같이 규율과 통제를 강조하는 단세포적 획일주의를 의미한다. 셋째,경험적 차원으로,근본주의자들의 ‘준거의 틀’은 기계적 고정관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므로 다양한 발상이나 유연한 사고보다는 진지함을 나타내는 기준으로 판에 박힌 반응만을 고집하고,최상의 덕목은 경직된 감정이야말로 바로 지조라고 믿는 형태이다. 이처럼 근본주의는 보수성,획일성,경직성을 핵심적 사고체계로 하고 있으므로 자유와 책임,다양성과 신축성,참여와 유연성을 부인하는 이념체계이다.따라서 상황이 이 같은 의식구조로 기울어질 때 구체적으로 그 분야가 학문세계이든,정치무대이든,경제현장이든,종교문화차원이든 결과는재앙이라는 어두운 모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지금의 이라크가 바로 그 실례이다. 앞에서 보듯이 전쟁구실이 ‘자원 쟁탈’이나 ‘주도권 쟁탈’이라면,이른바 북한핵과 관련된 한반도 긴장상태는 그다지 염려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그러나 만약 일부의 주장처럼 감추어진 이유가 종교적 근본주의라면 참으로 우려해야 할 사안인 것이다. 그리고 ‘악의 축’과 같은 정치 외교적 차원의 어휘로서는 심히 부적절한 용어가 난무하는 오늘의 상황은 이 논거가 단순히 가정만이 아닌 것 같아 두렵다. 김 어 상 서강대 교수 경제학
  • 노벨상수상자 로렌츠 제시하는 현대문명이 범한 ‘8대 죄악’

    인간은 문명과 문화의 이름으로 어떤 과오를 범해 왔을까. 누구나가 그럴 것이라고는 여기면서도 명쾌한 답을 제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이같은 문제에 대해 지난 73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비교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1903∼1989)가 여덟가지 ‘죄악’을 구체적으로 들었다. 로렌츠는 최근 이화여대 출판부가 펴낸 ‘현대 문명이 범한 여덟가지 죄악’(양승태 옮김)에서 ▲인구 과잉 ▲생명공간의 황폐화 ▲인간간의 과도한 경쟁 ▲감정의 냉각 ▲유전적 쇠퇴 ▲전통의 와해 ▲세뇌 가능성의 증대 ▲핵무기 등을 구체적인 죄악의 사례로 꼽고 이를 ‘비인간화의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로렌츠는 저서에서 “다른 생명체를 일방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 인간 자신에 대해서만 존엄성을 부여하고 집착한 결과 인구 과잉사태가 빚어졌다.”며 “좁은 공간에 많은 인간들이 밀집해 있는 상황은 간접적으로는 인간관계의 고갈과 차단을 통한 인간성 상실,직접적으로는 공격적인 행동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경제적 이익이나 편안함,쾌락추구 등 이른바 ‘문명적 삶’을 위해 삶의 공간이자 원천인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그는 “자연이 고갈되지 않는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고 충고한다. 인구과잉과 생태계의 황폐화는 결과적으로 인간들 상호간의 탐욕 추구를 위한 무한경쟁을 초래하며,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냉각시켜 위기를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알몸’ 에 담은 성욕과 인간정체성/인체테마 전시회 2題 개막

    사회·문화적으로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인체를 주제로 한 두개의 전시회가 관심을 끈다.하나는 지난 6일부터 열린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의 ‘신체풍경’전,다른 하나는 12일부터 열릴 안국동 갤러리사비나의 ‘더 누드’전이다.전시제목은 다르지만 인간의 알몸을 통해 비인간화하는 인간,성적 욕망과 정체성,자아 반영,페미니즘 등을 표현한다는 기획의도는 비슷하다.특히 참여작가 중 김일용 정복수 박성태는 양쪽 전시회에 모두 출품해 눈길을 끈다.두 전시회 모두 회화 사진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다. ●신체풍경전 삼성미술관 학예연구실의 이준씨는 “작가 스스로 옷을 벗거나 대상의 옷을 벗긴다는 행위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거부,사회적 관습과 편견에 대한 저항,금기를 건드리는 위반의 심리학 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10여년전부터 테크놀로지 아트를 구사해온 공성훈의 영상작품 ‘벌레 먹다’가 그렇다.제 알몸을 합성해 지네와 같은 이미지를 연출한 그는,그 지네화한 자신을 씹어먹는다.사이보그 인간이출연하는 시대의 정체성 혼돈과 위기의식을암시한다. 사진작가 박영숙의 ‘아줌마’는 임신과 출산을 끝낸 40대 중년 여성의 몸에 주전자·다리미와 흐드러지게 핀 장미 등을 합성해 놓은 연작이다.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극복하려는 작품.역시 사진작가인 김아타는 ‘뮤지엄시리즈’를 통해 인간은 여전히 존엄한가를 묻는다.투명 아크릴 판 속에놓인 알몸의 남녀는 ‘액자 속의 오브제’일 뿐이다.철로 침목을 도끼와 전기톱으로 조각한 정현의 중성적인 신체,살아있는 신체를 석고로 떠내 조립한 김일용의 에로틱한 신체,알루미늄 망사로 ‘현대적으로 해석한 지옥의 문’을 조각한 박성태의 추락하는 인간의 신체도 볼만하다.내년 2월23일까지.(02)750-7818. ●더 누드전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가 누드를 정의하길,“인간의 유일 이념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영원한 테마” 라고 했다.더 누드전은 이 정의에 천착해 누드의다양한 해석을 보여준다.작가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소주제를 표현한다.먼저 고명근 김일용 민성래 서정태 신경철 정동암정복수 홍성도 박성태는 ‘기호로서의 누드’를 통해 인간의 내면 세계를 보여준다.소름까지 표현된 김일용의 ‘껍질’이나 해부도같은 정복수의 ‘인생을 찾는 사람’은 겉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봐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에로티시즘을 통한 예술’은 민병헌 박학성 우창훈 이숙자 이은재 이호중 정우범의 몫이다.특히 이은재의 홀로그램같은 여성누드 사진은 유방을 만지는 타인의 손과,음부를 가린 여성의 손 등으로 은밀한 욕망과 성 정체성을보여준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드러낸 ‘생명을 구현하는 누드’에서는 김보중 이강하 조광현 한애규가 인체를 환경적으로 해석해 보여준다.12일부터 내년 2월27일까지(02)736-4371. 문소영기자 symun@
  • [열린세상]대선후보들의 경제관

    나는 언제부턴가 솔직히 선거제도를 믿지 않는다.수많은 대중들의 다양한 욕구들을 어떻게 한줌도 안 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만족시켜줄 수 있는가? 최소한 광복 이후 역사적 경험이 증명한다.그들은 말로는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며 희망적 미래를 개척할 것이라 약속했지만 사실은 자신과 그가신들,그리고 그에게 정치자금을 대준 이들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관철시켰다.그 결과는 농촌의 황폐화와 공업지대의 비인간화,‘20대80 사회’로 상징되는 빈부격차 심화,우리 사회를 먹여 살리는 참일꾼들인 농민이나 노동자의 절망감 증대 등이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생각나는 5분짜리 영화가 있다.‘마우스콘신’이라는작은 마을에 많은 쥐와 몇몇 고양이들이 살고 있었다.주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쥐들은 4년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대표를 뽑는데 하필이면 고양이를 뽑았다.많은 쥐들이 그 고양이에게 시달림을 받고 빼앗기고 하면서 정말 다시는 고양이를 뽑지 않겠노라 다짐한다.그러나 또 선거가 오면 역시 고양이가 당선된다.수십년이 흐른 뒤 드디어 한용감한 쥐가 분연히 일어섰다.“왜 우리가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고양이를 대표로 뽑아 괴로움을 자초하는가?” 이에 많은 쥐들이 동참하고 나섰고 모든 쥐들이 박수를 치며 영화는 끝난다.이 얼마나 시사적인가! 이 영화의 기저에는 풀뿌리가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다스린다는 자율·자치의 원리가 깔려 있다.그에 비해 우리가 보아 온 과거의 정치는 대부분 무책임한 엘리트 정치였다.4년이란 기간에 권력 잡은 이들이 ‘한 철 장사’하는 격이었다.민초들은 속고 또 속았다.마치 장 자크 루소의,“국민들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지 그 직후부터는 노예가 된다.”는 말을 증명하듯. 그러나 이제 변화의 조짐이 짙다.문제는 정치의 방향과 내용이다.이런 점에서 나는 대통령 후보들의 노동정책과 농업정책에 큰 관심을 가진다.그 누가과연 참일꾼인 민초들이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옆에서 가장 잘 도와줄 것인가? 우선 아쉽게도 이·노·권후보 어느 누구도 생명산업이자 모든 살림살이의근간인 농업을 제1의 우선순위를 갖는 경제정책분야로 치지 않고 있다.휴대전화와 컴퓨터는 없어도 살 수 있으나 건강한 먹을거리는 스스로 생산하지않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이 없다.또 인간은 자본 없이도 잘 살지만 자본은 인간 노동력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데 국민 생존의 근간을 제쳐둔 채 자본의생존을 우선시한다.첨단 상품을 많이 팔아 달러만 벌면 저절로 먹을거리 문제는 해결될까? 건강한 먹을거리의 자립 능력을 잃으면 공급자에게 예속된다는 사실을 모를까? 나는 불행히도 유기농 먹을거리 생산 농민들을 ‘국가공무원’으로 모셔 합당한 대접을 하겠다는 후보를 보지 못했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재벌개혁이니 민생개혁이니 하면서 여러 제도개혁 정책들이 난무함에도 풀뿌리 살림꾼인 농민이나 노동자가 ‘건강한 생산’의주체로 재탄생하도록 도와줄 프로그램이 없다는 점이다.출자총액제한이니 집중투표제니 집단소송제니 하는 것들로 생산성 아닌 파괴성을 강화하는 자본의 독재를 막을 수는 없다.또 그러한 제도들이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살인적인 경쟁 구조를 해체하지도 못한다.더불어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비전이 없다는 말이다. 끝으로,지난 11월13일의 여의도 농민 총궐기,그 이전의 쌀농사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 대회,억압적인 ‘직권중재’에 파업 200일을 맞은 가톨릭병원 노동자들,벼랑에 몰린 800만 비정규직,공식 실업자 중 50%나 되는 대졸자,청소년 92%가 ‘한국사회 썩었다.’고 보는 현실,현대 30억원,대우 20억원,삼성 10억원 등 97년 대선 때 기업들이 여당 후보에게 바친 검은 돈들(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이런 문제들에 ‘보다 근본적으로’ 대처할 의지와 능력이 어느 누구에게도 확실치 않다. 그래서 우린 또다시 ‘차선’이나 ‘차악’을 뽑을 수밖에 없는 걸까? 우리는 그렇다 치고 우리 아이들에게라도 희망을 줄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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