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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습지 채택료 챙긴 교사 해임처분은 징계권 남용

    15만원짜리 중학교 학습교재 한질을 학생들에게 권유하면 교사들은 5만원의 채택료를 받는다.그렇더라도 이를 이유로 교사를 해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특별7부(재판장 孫智烈 부장판사)는 16일 학생들에게 학습교재를권유하고 H학습지로부터 105만∼155만원의 채택료를 챙긴 金모씨 등 광주 M중의 전 담임교사 3명이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를 상대로 낸 해임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교육자로서의 비위 정도는 가볍다고 할 수 없지만 해임처분은 징계권 남용”이라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김씨 등은 96년 한질당 15만원인 H학습지를 채택하면 5만원씩을 사례비로 지급하겠다는 제안을받고 가정통신문까지 발송,학생들의 구독을 권유했다. 이에따라 김씨 등 교사들은 1인당 105만∼155만원의 사례비를 챙겼다.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씨 등 교사 10명은 97년 징계위에 회부됐다.징계위는 잘못을 시인한 7명은 정직이나 감봉에 처했지만 시인하지 않은 3명에게는해임처분을 내렸고 이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비위 공무원 ‘감싸기 징계’ 많다

    정부 부처와 투자기관,지방자치단체가 검찰 등으로부터 통보받거나 자체 감사기구를 통해 적발한 직원의 비위를 철저히 징계하지 않는 것으로 지적됐다. 감사원은 14일 발행한 ‘98년 감사연보’에서 지난해 11월26일부터 12월17일까지 재정경제·행정자치·건설교통부와 서울시·경남도·서울지하철공사등 전국 70개 기관의 자체감사 업무 실태를 점검한 결과 모두 118건의 위법·부당사항을 적발해 2명을 징계요구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경남도교육청은 98년 7월 창원지검으로부터 교사 319명이부교재 채택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했다는 사실을 통보받고도 금품수수액이 100만원 이상인 교사 16명에 대해서만 경징계하고,나머지는 경고만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산업은행은 아일랜드 현지법인의 4급직원이 97년 4월부터 98년5월 사이 공금 1억9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자체감사에서 적발했으나 면직만 시키고형사고발을 하지 않은 사실도 감사원 감사결과 적발됐다. 정보통신부도 각각 2,000만∼2억원씩의 공금을 횡령한 우체국 직원 7명을적발,처리하는 과정에서 3명은 징계도 하지 않은채 의원면직시켰으며,징계한 4명에 대해서는 형사고발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와함께 감사연보에서 지난해 감사활동을 통해 모두 8,369건의위법·부당 사항을 적발해 1,374명의 징계를 요구하고 2,938억원을 추징·회수·보전했으며 29억원을 환급·추급하도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도운기자 dawn@
  • 행정학회 세미나…”공직비리 감찰기능등 부여를”

    청와대와 국무총리실,감사원,검찰,경찰,국세청 등 국가 사정(司正)기관이개별적으로 추진해온 부패방지 정책을 일원화해 정부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사정정책을 수립,심의하는 ‘부패방지정책위원회’의 신설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행정학회가 12일 이틀간 일정으로 개최한 ‘공직부패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세미나에서 한국행정연구원의 문신용 정보관리연구부장은 ‘공직부패와 사정체계’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제안했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부패방지정책위는 총리와 민간인 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며 현재 국무조정실의 조사심의관실을 확대한 부패방지조정관실이 사무국을 담당하도록 문 부장은 제안했다. 문 부장은 부패방지위의 기능을 정부의 부패방지 정책 수립,심의와 함께 부패방지 추진실적 분석·평가,반(反)부패 교육·홍보,시민단체의 부패척결 활동 지원,공직비위에 대한 감찰기능 등을 제시했다. 이번 세미나는 정부가 부패방지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행정학회 및9개 연구기관에 용역을 준 분야별 부패방지 대책을 중간발표하는 것이어서정부 정책에 상당 부분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세미나에서 정신문화연구원의 정영국 박사는 ‘공직자 표준 행동강령’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박사는 강령을 통해 전별금이나 촌지수수를 금지하고 직무와 무관하게받을 수 있는 선물의 범위를 일정액 이하로 제한하며 결혼식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산하단체나 업체등에 보내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제안했다. 정 박사는 또 국민들의 부패감시와 고발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반부패운동 지원 공익기금’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밖에 세미나에서는 ‘예산부정 신고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관급공사 등에서의 예산남용이나 비자금 조성에 대한 고발을 활성화하고 탈세고발자에게 추징세액의 20%를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실시하는 방안 등이 제기됐다. 정부는 각 연구기관의 용역안이 확정되면 이를 토대로 정부의 부패방지종합대책 시안을 만든 뒤 공청회 등을 거쳐 6월말 최종적인 부패방지종합대책을확정,시행한다는 계획이다.
  • 대통령 직속 ‘새천년 준비위’ 첫발

    앞으로 다가올 천년을 대비하기 위한 기구인 대통령 직속 ‘새천년준비위원회’가 12일 첫발을 내디뎠다.새천년준비위원회 이어령(李御寧)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20명이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으로부터 위촉장을 받고오찬을 함께했다.오찬에서는 준비위가 앞으로 해야 할 일과 역할을 놓고 참석자들간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김대통령은 “국민이 새 천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의식개혁이 중요하지않나 생각한다”며 “적게는 국민에게 방향을 제시하고,크게는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는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참석자들도 새로운 천년에 즈음한 의식공간의 확충을 비롯해 기념비적인 상징물 제작,의식개혁과 지난 천년을 이어온 우리 문화의 재발견 등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준비위는 앞으로 정부 지원 아래 새 천년 맞이 사업추진의 기본 이념 및 국가비전 등을 설정하고,각종 사업추진 기본계획 수립하게 된다. 위촉된 준비위원은 ▲이관(李寬)행자부 밀레니엄위원장 ▲최정호(崔禎鎬)문화부 문화비전 2000위원장 ▲김상하(金相廈)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경리(朴景利)소설가 ▲백남준(白南準)비디오작가 ▲정진홍(鄭鎭弘)서울대교수 ▲김재철(金在哲)대한무역협회장 ▲장상(張裳)이화여대총장 ▲신일희(申一熙)계명대총장 ▲김규(金圭)서강대 커뮤니케이션센터소장 ▲이우환(李禹換)서양화가 ▲표재순(表在淳)연출가 ▲박원훈(朴元勳)전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오태석(吳泰錫)연극연출가 ▲이경숙(李慶淑)숙명여대총장 ▲손숙(孫淑)연극배우▲정명훈(鄭明勳)아시아하모닉상임지휘자 ▲이연숙(李連淑)연세대교수 ▲신현웅(辛鉉雄)문화부차관
  • [제2공화국과 張勉](14)분출하는 욕구(中)/교원노조

    4월혁명후 활발해진 각계의 움직임 가운데 노동운동은 특히 두드러졌다.이승만(李承晩)정권에서 체제유지의 첨병 노릇을 한 대한노동총연맹(대한노총)등 기존의 노동관련 단체들은 급속히 그 힘을 잃어갔다.반면 노동조합을 비롯한 새로운 노동조직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고 쟁의도 크게 늘어났다. 4·19직전 전국의 노동조합은 621곳,조합원은 30만7,000여명이었다.하지만다섯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60년 9월1일 현재 조합 수는 821군데로 32.2%,조합원 수는 33만3,000여명으로 8.6%가 각각 늘어났다. 노동쟁의도 1958년에 50건,59년에 109건이던 것이 60년에는 218건으로 급증했다.노동운동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활력을 보인 것이다. 그 격렬한 흐름 속에서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관심을 끈 것이 교원노조 운동이었다.교직(敎職)이 갖는 가치지향적 성격에,학생·학부모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도 컸지만 무엇보다 교원노조가 합법성을 얻고자 벌인 투쟁이 워낙 치열했기 때문이다. 교원노조 운동은 4월혁명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된다.대구에서는 4월29일 경북여고에 중고교 교사 60여명이 모여 학원 자유화와 교사의 권익옹호를 위해 ‘교원조합’을 결성키로 합의한다. 이어 ▲5월1일 동성고에서는 ‘서울시 교원노조결성 준비위원회’가 ▲5일에는 전주고에서 교원노조가 ▲12일에는 부산 동광초등학교에서 교원노조 결성준비위가 각각 출발한다.5월 말이면 학교 단위로,또는 시·군 단위로 교원노조가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이승만정권이 무너진 지 한달만에 이처럼 교원노조가 전국적으로 자생하게된 토양은 무엇일까.그것은 ‘속죄와 책임의식’이었다.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독재권력에 항거하여 용감하게 싸우는데 그들을가르친 교사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그리고 ‘역사의 비극을 또다시 저지를지도 모르는 권력 앞에 무방비로 있을 수는 없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사실 ‘3·15부정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정권이 교육계에 저지른 만행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교육감·교장들이 나서 교사들을 자유당 비밀당원으로 입당시킨 일은 기본이었다. 환경미화를핑계로 이승만·이기붕(李起鵬)의 사진,업적을 교실에 장식토록해 그 결과로 교사의 근무성적을 평가하거나 ▲교장·교감이 가정방문에 나서 자유당후보 지지를 직접 호소하고 ▲학생들에게 글짓기를 시켜 이승만을찬양토록 하는 일들이 예사로 벌어졌다. 교육계 지도자들도 총동원되다시피 했다.60년 1월26일자 서울신문 1면에 난자유당의 ‘정·부통령선거중앙대책위원회’공고를 보면 지도위원에 백낙준(白樂濬)김활란(金活蘭)임영신(任永信)김연준(金連俊)유석창(劉錫昶)등 사학(私學)의 거물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을 정도였다. 교원노조 운동은 60년 7월17일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교조총련)’를결성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통일된 체제를 갖춘다[별표 참조].이때 노조에 참여한 교사는 이미 1만9,883명이었다.교조총련은 위원장 자리를 당분간 공석으로 두는 대신 서울지구 부위원장인 강기철(姜基哲)을 대표로 지명했다.얼마전 타계한 재야인사 계훈제(桂勳梯)도 서울지구 중앙위원으로 참여했다. 교원노조 결성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정부측 대응도 곧바로나왔다.허정(許政)과도정부의 이항녕(李恒寧)문교차관은 “교원노조 결성을 권장하지도 막지도 않겠다”고 밝혔다.그러나 곧이어 이병도(李丙燾)문교장관은 5월19일 “교원노조를 불허한다”고 신문지상에 발표했다. 교원교조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쟁이 곧 사회 전반으로 번졌다.교사들은 53·57년 법무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합법’을 주장했고 대한변호사회도 이를 지지했다.‘7·29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장면(張勉)주요한(朱耀翰)조재천(曺在千)등 신파 지도자들도 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교원노조와 행정권의 정면충돌은 60년 8월 대구에서 발생했다.조준영(趙俊泳)경북지사가 대구·경북의 노조간부 25명을 산간벽지로 전근시킨 것이다.대구·경북 노조는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8월25일 오후6시 조합원 8,000명 전원이 퇴직한다’는 마지노선을 확정한다. 조합원들은 11일부터 연좌농성에 들어가는 한편 16일에는 경북지사의 부당한 인사조치를 중단시켜 달라는 ‘행정처분 집행정지명령 가처분신청’을 대구고법에 냈다. 이 와중인 8월23일장면내각이 정식 출범한다.교조총련의 강기철 대표를 비롯한 수뇌부는 오천석(吳天錫)문교장관,윤택중(尹宅重)문교부 정무차관과 협의를 계속한다. ‘교사 8,000명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는 그러나 의외로 손쉽게 해결된다. 교조가 정한 시한인 8월25일 대구고법이 경북지사의 인사가 잘못됐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그 이유는 ▲교원노조 결성이 합법이며 ▲경북지사의 인사권 행사는 재량권의 범위를 넘은 것으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 사태후 장면정부는 ‘노동조합법 개정’‘교직단체법 개정’을 통해 교원노조 운동의 흐름을 바꾸려고 애쓴다.그렇지만 교원노조는 9월 말 단식투쟁에 돌입해 결속을 과시한다.교원노조 운동은 1960년 당시 한국 노동운동을대표했다.이 운동은 ‘5·16쿠데타’후 사실상 사라졌다가 결국 1980년대 ‘전교조운동’으로 되살아난다. 이용원- 교사40%가 자발적 참여 교원노조 운동에서 노조를 대표한 인물은 강기철(姜基哲·74·전 평택대교수)씨.강씨는 1960년 7월17일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교조총련)’가 발족할 때 대표를맡았다.그는 ‘5·16쿠데타’로 교조총련이 용공·불법 단체로 낙인 찍힌 다음에도 지금까지 그 대표직을 유지해 왔다. 강대표는 교원노조가 설립될 당시 한양대 강사였다.그는 “‘3·15부정선거’당시 교육자는 독재권력의 하수인 내지는 시녀 노릇을 해왔다”면서 그 당시를 “정신적인 노예상태”라고 기억했다. “교원노조는 자주적인 힘으로 탄생했다”고 강조하는 그는 “당시 전국의교사가 10만명이 채 안됐는데 그 가운데 4만명 가량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강교수는 허정(許政)과도정부 당시 이항녕(李恒寧)문교차관,김학묵(金學默)보사차관 들이 처음 교원노조 결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음을 기억했다. 그런데 그들이 입장표명을 한 지 며칠만에 현직에서 쫓겨나더라는 것. 강교수는 “장면(張勉)정부는 교원노조 운동에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고 평가하면서 “그래도 쿠데타 세력보다는 장면정부의 죄가 엷다”고 말했다. - 노조측 쟁의권 자진포기 교원노조 설립 당시 윤택중(尹宅重·86)옹은 장면내각의 문교부정무차관이었다.윤옹은 전북 학무국장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장면내각에 문교부 정무차관으로 들어갔으며 나중에 문교장관을 지냈다. 그는 교원노조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강대표 등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 간부들을 만나 장면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인물이다. 윤 전장관은 “당시에도 교사들의 노동운동은 일반 노동자와는 다르다는 인식이 깊었다”고 회고했다.교사들에게 단체행동권 등을 인정하는 것은 좋으나 굳이 ‘노동조합’이란 명칭을 사용해야 하느냐는 반감이 있었다는 것. 윤 전장관은 “교원노조 대표들과 상의할 때도 일반 노동조합과는 다르다는사실에 뜻을 같이했다”고 공개하면서 “그들도 파업 등 쟁의권을 실제로 포기했다”고 밝혔다.그는 교원단체 명칭을 ‘교원노조’가 아니라 교원연구단체나 교원친목단체로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다 ‘5·16쿠데타’를 당했다”고도 기억했다. 장면내각에 들어올 당시 신·구파 어느쪽도 아니라 중도파로 인정받은 윤 전장관은 “다만 민주당원으로서 새 정부 출범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신·구파 갈등이 혁명을 불렀다는 주장은 쿠데타세력이 조작한 명분”이라고 단정했다. 이용원기자
  • [부활절 특집]“예수의 부활생명 나눠 민족위기 극복”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가 가장 중히 여기는 축일이다.부활절을 맞아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원로 디렉터인 김준곤(金俊坤·75)목사로 부터 부활절의 의미와 부활절을 맞는자세 등을 들어보았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데 요즘 일반인에게는 물론 일부기독교인조차도 이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같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적이면서도 증인과 증거를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믿는 자들은 결코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4가지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4가지 증명이란? 먼저 진리가 거짓에 승리한 것을 증명합니다.그리고 선이 악에 승리한 것을 입증하고 있고,사랑이 증오를 극복하고 승리한 것을 입증합니다.마지막으로 생명이 죽음에 승리한 것을증거하고 있습니다.때문에 부활을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특히 IMF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이 부활생명이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부활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부활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에게만 의미있는 일이 아닙니다.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사랑과 화해,희생,봉사,나눔,섬김의 메시지이지요.그리고 절망에서 소망을 볼수 있도록 해줬습니다.오늘날 세계가 봉착한 인종문제나 종교갈등,도덕적 타락은 물론 우리의 남북문제나 지역감정,노사,빈부,세대간,계층간 갈등문제 등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문제들은 이같은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난하고 고통받는,소외된 자들이 부활의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도와주고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기 위해 특히 믿는 자들이 불씨가 돼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또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로 바꿔가야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자기 자신과의 관계,타인과의 관계,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신앙문제나 도덕적 타락,자연환경의 파괴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서 특별히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현재 남북통일의 강가,21세기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새로운천년을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맞이해서는 안됩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21세기를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죠.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사랑과 화해와 도덕의 부활로 맞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김목사는 올해 초 3일동안 여의도에서 금식기도회를 개최,여기서 모아진 1억원의 헌금을 결식아동돕기에 쓰는 등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0년 복음화성회 대회장,84년 세계교회기도성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기독교21세기운동 한국대표,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를 맡고 있다.저서로 ‘예수칼럼’ ‘영원한 생명언어’ ‘김준곤 문설집’(전6권)등이 있다. 朴燦 - 부활절 교리와 풍습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그리스도가 이렇게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와 죽음·악마’를 물리친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활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그리스도교회의주요축일이다.영어이름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비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르고 있어 한 해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그리스도교에서 1년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절기이다. ▒부활절의 날짜 서방 그리스도인들은 춘분(3월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만월(滿月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그러나 만월이 일요일인 경우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따라서 부활절은 대개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된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8세기까지 기독교 여러 분파에서 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정됐다.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다른 계산법을 따라 서방교회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5주 후에 해당된다. ▒종교의식 부활절 전야예배는 2세기경 기독교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무렵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주말 전야예배에서비롯됐다.예배순서는 ‘새로운 불의 강복’ ‘부활절 촛불점화’ ‘성구봉독’ ‘세례반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새벽예배는 주로 개신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부활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미국 펜실베이니아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새벽예배는 이제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초교파적으로열리는데 TV와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부활절의 관습 유럽인들의 고대의식과 상징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지만그중에서도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나누기’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관습이다.‘계란나누기’는 십자군전쟁에서 유래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부대로 출정한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이 고향을 떠나 방황하던중 자신을 정착하게 해준 마을 이웃들의 따뜻한 정에 대한 감사표시로 계란을 삶아 줬는데 바로 그 날이 부활절 날이었다.그녀는 그 계란으로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찾아 헤매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이후 매년 부활절이면 부부는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이것이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됐다고 한다. 朴燦- 부활절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1885년 부활절 아침,외국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하에서도 교파별,지역별 연합예배를 갖고 ‘민족의 부활’을위해 기도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서울남산에서 1만5,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것이 처음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역할을 했으나 4.19 혁명을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부터 10년동안은 정치적 상황과 연합예배에 대한 개신교내 교파간 입장 차이로 분열된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기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비가맹교단이 각각 남산과 덕수궁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던 것. 70년대 유신체체하에서도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그러나 75년부터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교단이 연합하여 예배를 갖다 96년부터는 장충체육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고 있다. 한편 지난 90년부터는 남북교회간에도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나누어 오고 있다. 朴燦- 개신교 오늘 138개지역 연합예배 4일은 기독교 최대의 경축일인 부활절이다.이날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날.20세기의마지막 부활절을 맞아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등 기독교계 교단은 부활절 연합예배,예수부활 대축일 미사 등을 통해 부활의 기쁨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긴 참뜻을 새겼다. 개신교는 오전 5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예년과 같이 연합예배를 올렸다.부활절 연합예배는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개신교계가 이를 초월해 함께 하는 유일한 행사.올해는 예장통합과 합동,감리교 등을 비롯한 30여개 주요 교단들이 참여했다. 장충체육관에서는 이날 0시부터 철야기도회에 이어 오전 4시30분 목회자와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간증과 찬양,기도회로 시작,5시30분부터 1만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연합예배가 거행됐다. 길자연(예장합동 총회장·왕성교회 당회장)부활절 연합예배 대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연합예배는 강만원 기장 총회장의 기도와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이경운 예장대신 총회장,김재룡 예성 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이어졌다. 연합예배위원회는 이에 앞서 지난 3월27일부터 일주일동안 ‘남산 걷기대회’‘찬양 대축제’‘민족화합을 위한 한국교회 지도자 회개기도회’‘십자가 대행진’등 갖가지 축하행사를 펼쳐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톨릭도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별로 4일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예수부활 대축일 미사’를 올린다.가톨릭은 부활절 일주일전부터 시작되는 성주간(Holy Week)의 전례에 따라 성(聖)목요일 성유축성 미사,성금요일주님 수난예식에 이어 토요일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성토요일 부활 성야미사를 드렸다. 성공회도 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150개 성당에서 ‘부활 대미사’를 올린다.성공회는 고난주간(성주간)동안 매일 예식을 올렸다.월화 수요일은 미사와 함께 기도,신앙강화에 힘쓰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에는 수난예식,토요일 오후 7시 중심예식인 부활밤 예절을 드렸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은 사순절에서 부활절까지 40여일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 성경을 읽으며 자기근신의 시간,기도,묵상의 시간을 가졌다.기간중 특별금식과 단식을 하면서 이를 통해 모아진 헌금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성공회도 사순절 기간동안 금식을 권장하면서 신자들에게 미리 주어진 극기헌금함에 모인 동전등 헌금을 불우이웃과 북한동포돕기에 쓸 계획인데 지난해는 동전으로만 4,000여만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朴燦
  • 청소년축구대표“4강신화 다시한번”

    3일 개막되는 99나이지리아 세계청소년(20세 이하)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한국청소년팀이 2일 격전지인 에누구에 입성,‘멕시코 4강신화’ 재현을다짐하며 진군을 시작했다. 한국은 예선 D조에 속해 오는 6일 오전 3시 포루투갈과 첫 경기를 갖는다. 지난달 25일 출국,현지 적응훈련을 해온 한국선수들의 컨디션은 대체로 양호한 상태로 제실력만 발휘한다면 예선 통과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스트라이커 이동국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해 있고 투톱 파트너 김은중도 부상에서 회복,정상컨디션을 되찾아 자신감에 차 있다.여기에 발빠른 설기현이 최전방의 한축을 충실히 맡아줄 전망이며 김경일과 서기복,김건형 등도 미드필드를 튼튼히 해주고 있다. 코칭스태프는 30도를 넘는 무더위와 호텔까지 침입한 모기,비위생적인 음식 등 장외요인에 골머리를 앓고있다.실제로 선수들은 한낮에는 아예 연습을못하고 서늘해진 뒤에야 몸을 푼다.말라리아 등 각종 질병을 옮기는 모기는호텔복도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아 저녁시간에는호텔방에서 나오는 것을 삼가해야 할 정도다. 한편 이번 대회는 3일 자정 A조 나이지리아-코스타리카전을 개막전으로 오는 25일까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카투나,이바단,에누구,카노,바우치,포트하쿠트,칼라바 등지에서 펼쳐진다.
  • 금감위 출범 1년-금융정책 실무 주역들

    금융감독위원회를 이끈 주역은 단연 李憲宰 위원장이다.옛 재무부 재정금융심의관을 그만둔 지 20여년만에 개혁의 ‘선봉장’으로 복귀,구조개혁을 진두지휘했다. 陳懿鍾 전 총리의 사위이며 許京萬 전남지사와는 사촌 동서지간이다.경기고와 서울 법대를 졸업했다. 조연급으론 李위원장을 보필한 ‘5인방’이 있다.기업 구조조정을 이끈 徐槿宇 구조개혁기획단 3심의관은 40세의 젊은 나이로 李위원장과 함께 재벌총수들을 상대했다.한국신용평가 설립 첫해인 85년에 입사,당시 사장이던 李위원장과 인연을 맺었다.광주 인성고와 서울 상대 출신이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로 영전한 金暎才 대변인은 금감위의 ‘입’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간혹 앞서나간 발언으로 ‘사오정 대변인’이란 별명을 얻었으나 李위원장을 밀착 수행,구조조정의 당위성을 설파했다.증권감독원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李佑喆 행정기획실장은 금감위 설립준비위부터 李위원장을 모셨다.대외 업무를 총괄하고 금감위 살림을 도맡아 금감위와 금감원 발족에 큰 기여를했다.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했다.행시 18회로 재무부 출신이다. 금감원 수석 부원장보로 승진한 鄭基鴻 전 통합기획실장은 치밀한 성격에다 은행업무에 정통해 李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중소기업 지원과 자금시장 왜곡문제를 해소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69년 한은에 입행한뒤 은행감독원에서 잔뼈가 굵었다.광주일고와 서울상대를 나왔다. 李鍾九 구조개혁기획단 1심의관은 소탈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생보사 등 2금융권 구조조정을 맡고 있다.한나라당 李重載의원의 아들로 경기고와 서울 상대를 나왔다.행시 17회로 재경원 은행담당 과장을 지냈다.청와대로 자리를옮긴 延元泳 전 구조개혁기획단장은 초기 ‘5인방’ 중 한 명으로 은행간 합병을 일궈냈다.행시 12회로 경기고와 서울상대를 나왔다. 이밖에 李容根 상임위원(행시9회)은 5개 은행 퇴출때 노사대립을 수습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金鍾昶 상임위원(행시8회)은 증권·회계분야를 맡아 국제적 회계기준의 도입에 일조했다. 南相德 구조개혁기획단 2심의관(행시16회)은 제일·서울은행의 매각문제를맡아왔다. 白汶一
  • [독자의 소리] 절전형제품 사용 생활화해야

    석유수출국들의 생산량 감소로 석유값이 배럴당 3달러나 급등했다.국내 여건상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연간 9억달러의 추가 에너지수입과 국내외 생산원가의 부담은 가중된다.국내의 1월 중 에너지 총수입액은 위축됐던 산업경기와 소비위축의 상대적 회복세와 반등으로 전력·휘발유 등 에너지소비가전년 동월대비 11억달러로 증가추세에 있다. 에너지소비의 증가는 산업경기의 회복현상으로 우리 경제가 해빙기에 접어들어 공장들의 가동률이 높아짐을 나타내는 것이다.그러나 도로에 넘쳐나는차량행렬이나 밤거리의 휘황찬란한 네온불빛 등 불필요하게 늘어나는 비경제 활동의 에너지 소비는 지양돼야 한다.석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에서 에너지를 무조건 쓰지말고 아끼자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사용을 하자는 의미이다.산업체에서는 절약형 시스템 도입,가정에서는 절약형 제품의사용 등 보다 효율적인 에너지사용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유기호[경기 안양시 공작마을·에너지관리공단 대리]
  • [국무회의]’국민 공감얻게 국민연금 보완후 실시를’

    30일 청와대 국무회의는 추경,정부조직법,인권법 등을 주요 안건이 많아 2시간20여분이 걸렸다. 안건처리가 끝난뒤 金大中대통령은 金成勳농림부장관에게 농·축협 통합 추진상황을 물었다.金장관은 “축협이 통합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며 “농·축·수·임협 등 4개의 협동조합중앙회가 우리나라에만 있고,특히 중앙회조직이 비대해 농민을 위해 반드시 통합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인권법 통과에 따른 의미를 설명했다.“우리 인권법은 유엔의 권고와 세계 각국의 실태를 참고한 것으로 손색이 없다”면서 “제정의 목적은 인권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실업대책,추경예산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와 국민공감대 형성을 위한 국민연금의 보완후 실시를 역설했다. 끝으로 金鍾泌국무총리는 金농림부장관에게 ‘4월5일 식목일’의 계절적 타당성을 물었다.이에 金장관은 “통일후 남북 기후조건을 고려하면 4월5일이적기”라고 답했다. 이에 앞서 안건처리 과정에서 인권위원회 여성참여 규정 문구를 놓고 국무위원간 긴 논란이 벌어졌다.崔在旭환경장관 등이 “인권위 위원 임명조항에1인 이상의 여성이 포함되도록 규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그러나 姜基遠여성특위위원장 등이 반대의견을 냈고 결국 ‘각 1인 이상’이란표현만 빼기로 했다. 이날 처리된 안건은 다음과 같다. ■법률안?인권법안 ?정부조직법개정안■대통령령안?예산회계법시행령개정안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규정개정안?육군항공사령부령개정안 ?전투경찰대설치법시행령개정안 ?유아교육진흥법시행령개정안 ?한국종합기술금융주식회사법시행령폐지안 ?과학관육성법시행령개정안 ?농어촌정비법시행령개정안 ?품질경영촉진법시행령개정안 ?품질경영촉진법시행령개정안 ?산업디자인진흥법시행령개정안 ?혈액관리법시행령개정안 ?한강수계관리위원회규정안 ?공인노무사법시행령개정안 ?도시공원법시행령개정안 ?유료도로법시행령개정안 ?유료도로관리권등록령개정안 ?철도소운송사업법시행령개정안 ?항만법시행령개정안■일반안건?1999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1999년도 일반회계 예비비지출안(거창사건 관련자 명예회복 사업지원금) ?루마니아와의 관광분야에서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안 ?카타르 정부와의 투자 증진 및 보호 협정안 ?2000년도 예산안편성지침안■보고안건?공공기관의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현황 ?1999년도 정부입법계획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추진방안
  • 새 1000년 준비위 발족 새달 대통령 자문기구로

    정부는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범정부적인 계획을 만들고 국민들의 결합과결속을 도모하기 위해 ‘새 1000년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했다고 29일밝혔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위원회는 다음달 중 발족될 예정이다. 위원회는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20명 이내의 위원들로 구성되며,위원장에는 L교수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인류의 문명사적인 대전환기가 될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고 국가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업을 세우고 심의·조정 등의 일을 하게 된다. 위원회는 산하집행기관으로 국무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재정경제·행정자치·문화관광부차관과 예산청장,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등으로 관계부처 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산하에는 위원회 및 협의회 활동을 지원하고 행정사무를 맡기 위해 문화관광부 차관을 단장으로 추진기획단이 구성된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30)

    ◆前한성은행장 韓相龍2,3년전 평소 알고 지내는 고서점에서 일제말기에 출간된‘창남수장(暢楠壽章)’이라는 문집 한 권을 구입한 적이 있다. 문집 이름에 ‘수(壽)’자가 들어간 것은 흔히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기념하여 만든 것이 보통이다. 일제 당시 환갑잔치에 문집까지 낼 정도라면 고관대작이나 후학이 많은 거유(巨儒) 정도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 문집 역시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첫 장을 넘겨 보니 당시 미나미(南次郞)총독의 축하 휘호가 나타나더니 뒤 이어 일본인 육군대장의 글씨와 궁내부대신을 지낸 민병석(閔丙奭)의 서문이 곁들여져 있었다. 다시 축하시 모음란에는 당대의 명사들이자 유명한 친일파들이 대거 운집해있었다.황족 친일파인 윤덕영(尹德榮)·좌옹 윤치호(尹致昊)·후작 이항구(李恒九·李完用 아들)·중추원 참의 김사연(金思演)·은행가 민규식(閔奎植)등등. 이런 수준의 인물들이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위해 시를 보낼 정도였다면 그의 수준·성향도 짐작이 간다.알고 보니 문집의 주인공은 일제당시 경제계의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한상룡(韓相龍·1880∼?)이었다. 한때 ‘조선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던 한상룡은 1880년 규장각 부제학 출신 한관수(韓觀洙)의 3남으로 태어났다.17세때 관립외국어학교 입학을 계기로 신학문에 눈뜬 그는 미국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하였으나 외숙 이윤용(李允用)의 주선으로 대신 사립 성성(成城)학교에 입학(1899년)하면서군인의 길을 택하였다. 이듬해 그는 한국정부의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장티프스로 학업을중단하고 1901년 귀국하였다.귀국후 그는 사립 중교의숙(中橋義塾)의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이 해 경부철도 기공식에서 고종의 종형인 이재완(李載完)의영어통역을 담당한 것이 인연이 돼 공직(평식원 총무과장)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의 공직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그는 자신을 둘러싼 ‘좋은 여건’을 배경으로 야심을 키워가고 있었다.당시로선 근대문물에 대한 견문과 영어·일어 구사능력을 갖춘 인재였던데다 그의 뒤에는 당대 제일의 권력자인두 외숙(이윤용·이완용 형제)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903년 12월 그는 한성은행(漢城銀行) 총무 취임을 계기로 금융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한일병합’ 직후인 1910년 9월 이 은행의 전무취체역으로 취임한 그는 일제당국에 로비를 하여 당시 조선인 합방공로자에게 지급한 은사공채(恩賜公債)를 흡수,자본금을 300만원으로 10배나 증자하면서 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성은행이 조선 귀족들의 은행이라는 소문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며 3·1의거 당시 민중들의 표적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이 무렵 그는 40여년 동안 일본 제일은행의 최고책임자로서 일본 재계의 거두로 군림해온 시부자와(澁澤榮一)를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에서는 이토(伊藤博文),경제에서는 시부자와,건설에서는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目賀田種太郞)를 ‘조선에서 영원히 기억해야할 3대 은인’이라고 하면서,특히 시부자와에 대해서는 ‘일본은 물론 동양에서 공전 절후의 위인’이라고 극찬하였다.그는 시부자와의 좌우명 ‘일생일업(一生一業)’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기까지 했다.그가 대부분의 친일파들 처럼 정계로 나아가지 않고 실업계로 진출한 것은 시부자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가 매국에 가담한 친일파들에게 준 공채를 토대로 발전을 도모한 한성은행은 1923년 그가 두취(頭取,현 은행장)로 취임한 직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관동대지진의 여파에 이어 영업부진·경영악화가 계속됐다.이듬해 총독부는 이 은행을 정리대상으로 지목하였으며 28년 마침내 조선식산은행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나의 한성은행인가,한성은행의 나인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한성은행에서 나고,자라고 그로써 거기에서 죽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한성은행을 잃게 되자 그는 병석에 눕고 말았다.식민지 예속자본의 말로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밖에도 그는 한성은행 재직시절 금융계 내에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조선내 각종 기업·회사 설립에 중개자로 참여하였는데 실권은 전혀 가지지 못한채 명목상의 감투만 여럿 쓰고 있었다.이런 그를 두고 정신문화연구원 김경일 교수는 “‘한상룡의 경력은 반도 재계사의 축도(縮圖)’라는 표현처럼그는 제국주의 권력과 식민지 예속경제 사이에서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했던 정상배”였다고 평가했다.금융계에 평생을 바치고자 했던 그의 포부는 한성은행의 경영권 양도와 뒤이어 신탁회사 운영에서 배제되면서 날개를 접고 말았다. 한편 그의 친일이 겉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한성은행에서 물러나 사회활동을 본격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우선 그는 조선에 업적(?)을 남긴 주요 일본인들의 동상·기념비 건립을 시작으로 친일대열에 본격 합류하였다. 첫 사업은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의 동상을 제작,1929년 10월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에서 제막식을 가졌으며,이 해 12월에는 이토(伊藤博文)기념회의 조선측 발기인 총대를 맡기도 했다.33년 2월에는 평소 자신이 숭배해온 시부자와의 기념비 건립을 추진,12월 장충단에서 제막식을 가졌는데 이는 전적으로 한상룡의 발의와 주동에 의한 것이었다. 또 35년 5월에는 ‘조선개화의 은인이자 일한합병의 공로자’인 데라우치(寺內正毅)의 동상건설회 발기인 및 실행위원으로 참여하여 총독부 청사내홀 우측에 그의 동상을 건립하였으며,이듬해 2월 소위 ‘2·26사건’으로 사이토(齋藤實) 전조선총독이 사망하자 부민관에서 추도회를 개최하고 39년 4월 그의 동상을 총독부 청사내 홀 좌측에 건립하였다.이밖에도 그는 러일전쟁 당시 한국주재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정무총감 출신의 시모오카(下岡忠治) 등의 동상건립에 참여하면서 식민통치자들의 업적 찬양에 열을 올렸다. 한편 한상룡이 군국주의 일제통치하에서 40여년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군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한성은행에서 물러난 후 그는 군부관련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31년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조선내 각지를 돌면서 강연·담화 등을 통해 그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였다. 또 33년 4월 경성국방의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것을 비롯해 조선국방의회연합회 설립준비위원 및 감사(34.4),조선국방비행기헌납회 고문(34.12),해군협회 조선본부 창립위원(35.4)등을 맡아 활동하였다.37년7월 중일전쟁 발발 직전에는 관동군사령부 사무촉탁(칙임관 대우,근무기간 37.7.1∼40.7.1)으로 임명돼 군사령부를 방문,조선실업구락부 및 자신의 명의로 국방헌금을 하였다. 당시 그는 후방 전쟁지원단체인 경기도군사후원연맹 부회장이자 경성군사후원연맹 고문으로 있으면서 ‘애국금차회’ 창립을 주도,조선여성들에게 전쟁물자로 노리개 금붙이마저 내놓으라고 강요하였다.41년 태평양전쟁 개전으로일제의 인력·물자동원이 거세지자 그는 이 역시 전면에 나서서 협력하였다. 특히 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훌륭한 군인이 되자’라는 글에서 “반도에 불타는 애국심과 적성(赤誠)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약진 반도의 통치사상에 획기적인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며 조선청년들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7년 중추원 참의(칙임관 대우)에 첫 임명된 이래 해방 때까지 그는 만18년 4개월동안 줄곧 중추원의 참의·고문을 지냈다.해방 1년전인 44년 4월 그는 윤치호·박중양(朴重陽·중추원 참의)·이진호(李軫鎬·총독부학무국장)·이기용(李琦鎔·황족·백작) 등과 함께 일본 귀족원 의원에 선임됐는데 마지막까지 일제에 협력한 결과이자 끝까지 일제에 끌려다닌 형상이라고도 할 수있겠다. 그는 한성은행 경영권 양도를 비롯해 일제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의도적 배제를 당했지만 그 때마다 변신과 일관된 친일노선으로 버텨냈다.한마디로 일제하 그의 생존논리는 철저한 예속과 굴종이었다.그를 ‘친일 예속 자본가의 전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해방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鄭雲鉉 jwh59@
  • 水協 차기 상임감사 당선자,학력 허위기재 판명후 사퇴

    25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수협중앙회 개혁 결의대회를 겸한 임시총회에서차기 상임감사로 선출된 辛鍾基씨(60)가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중앙회내 감사선거관리위원회가 이같은 비위사실을 적발,투표 수일전88명의 선거인단에 통보했는데도 단위조합장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85표의유효투표 중 68표(80%)를 辛씨에게 던져 수협의 개혁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감사란 직책은 수협 내부의 부조리와 비리를 감시하는 자리로 지극히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더욱이 辛씨는 30년 가까이 학력을 속인 채수협의 임직원으로 일해온 것으로 드러나 수협의 인사관리 체계가 엉망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선관위가 20일전부터 임기 3년의 상임감사 후보자 2명의 약력을 정밀조사한 결과 辛씨는 K대를 입학 1년도 안돼 중퇴했으나 서류에 K대를 졸업한것처럼 허위로 기재한 사실이 밝혀졌다.감사선관위는 이같은 사실을 투표 전에 朴鍾植 중앙회장을 비롯,87개 조합장들에게 통보했다.관계자는 “조합규정상 학력 허위기재만으로는 辛씨의 후보자격을 박탈할 수 없어 선거인단에비위사실을 통보하기만 했다”면서 “두 후보가 상임이사 출신이라 인맥이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17표 득표로 선거에 패한 安重基후보는 “30년간 학력을 속인 부도덕한 사람이 반성치 않고 선거를 강행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한편 辛씨는 당선후 파문이 커지자 사퇴했다. 辛씨는 64년 수협에 4급(고졸 이상)으로 입사,상임이사(임원급)까지 역임한 뒤 94년 퇴직했다.현재 수협의 자회사인 수협문화사 사장으로 있다.辛씨는입사때부터 학력을 대졸로 속였으나,수협측은 입사자격이 고졸 이상이라는구실로 정밀 확인작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수협 인사관계자는 “辛씨가 학력을 허위기재해 승진과정에서 혜택을 봤을 수는 있다”면서 “이력서 위조는 공소시효가 지났고,감사 입후보관련 사기죄 적용여부는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 결과 고발사유가 안되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 국무회의-”외환거래 자유화 차질없는 대비”

    23일 세종로 종합청사에 열린 국무회의는 정부조직 개편 등 굵직굵직한 현안이 많아 2시간 가까이 계속됐다.꼼꼼히 국정을 챙기는 스타일인 金대통령의 많은 주문이 뒤따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날 국무회의는 회의 말미에 경질된 姜昌熙 전과학기술부장관과 金善吉 전해양수산부장관의 이임인사가 있어 분위기가 숙연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金대통령은 외국환거래법 시행령안이 의결된뒤 “정부가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고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확보하는데 중요하다”고 평가하고 “그러나 기업과 은행이 함부로 외국에서 외환을 차입해서 부담을 주지않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특히 “단기외채를 경계하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위해 재경당국에서 살펴야 할 것”이라며 “조기경보체제를 구축,위험이 닥칠 때 즉각 대처할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한다”고 주문했다.金대통령은 “외환거래자유화가 모험적이고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있다”고 전하고 관계당국의 차질없는 대비를 거듭 역설했다. 이어 정부운영 및 기능조정방안의 취지와 각 부처별 향후 후속조치에 대한金대통령의 주문이 장기간 이어졌다. 金대통령의 당부가 끝나자 金鍾泌국무총리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원안대로 통과되도록 외부에 청탁하거나 로비를 해서는 안된다”고거듭 요청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金총리는 姜전과기부장과 金전해양부장관의 노고를 치하한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일이 엉켜 부담스럽게 됐다”고 위로했다. 그러자 金대통령도 “姜장관은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남겼다.金장관도 고생을 했지만,결과가 국민의 걱정으로 나타나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이들을 격려했다.두 장관은 “앞으로도 국회에서 정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이임인사’를 했다. 이날 처리된 안건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령안 ▒소비자보호법시행령개정안 ▒외국환거래법시행령 ▒외무공무원임용령개정안 ▒국가안전기획부직원법시행령개정안 ▒자연재해대책법시행령개정안 ▒지방공기업법시행령개정안 ▒유선 및 도선사업법시행령개정안 ▒기상업무법시행령개정안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시행령개정안 ▒향교재산법시행령개정안 ▒새천년준비위원회규정안 ▒농산물의 생산자를 위한 직접지불제도시행규정개정안 ▒산업기술단지지원에 관한 특례법시행령 ▒석유사업법시행령개정안 ▒승강기제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시행령개정안 ▒국민의료보험법시행령개정안 ▒국민연금법시행령개정안 ▒어선법시행령개정안 ▒어항법시행령개정안 ▒선박직원법시행령개정안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자본유치촉진법시행령개정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시행령개정안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시행령개정안■일반안건 ▒1998년도 재산형성저축장려금기금 결산보고서 ▒1998년도 농어가목돈마련저축장려기금 결산보고서 ▒1998회계년도 국민투자기금 결산보고서 ▒1998년도 공무원연금기금 운용상황 보고梁承賢yangbak@
  • 뇌물 맛들인 농협조합장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23일 미곡종합처리장 공사와 관련,수주업체들로부터수차례에 걸쳐 뇌물을 받은 충북 옥산농협 전 조합장 李基萬씨(56),전 충북외속농협 조합장 金容得씨(64),구미 선산농협 전무 朴太圭씨(49) 등 3명을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포항 흥해농협 전 조합장 李景澤씨(46)를 수배했다. 검찰은 또 조합장 등 간부직원과 부하직원들의 비위사실을 미끼로 돈을 뜯어낸 포항 흥해농협 판매부장 鄭聖永씨(49)와 전무 權泰鉉씨(46) 등 3명을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전 흥해농협 조합장 李씨는 지난 94년 12월 30억원을 들여 흥해읍 약성리에 흥해농협 미곡종합처리장과 건조장을 세우면서 수주업체인 ㈜국제종합기계로부터 2차례에 걸쳐 2,9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다. 옥산농협의 전 조합장 李씨 등도 미곡처리장 건설사업과 관련,수주업체들로부터 700만∼1,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61년 ‘교원노조’사건“명예회복” 재심청구 준비

    5·16 직후 현직교사 1,500명을 ‘용공분자’로 몰아 교단에서 추방한 ‘교원노조사건’의 진상규명·명예회복을 위해 당시 교원노조총연합회 대표였던 姜基哲씨(74)가 최근 姜信玉 변호사를 통해 재심 청구를 준비중이다. “40년 가까이가 지난 사건으로 법률적 시효는 이미 지났습니다.그러나 새 세기를 앞두고 지난 역사의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교원노조사건’의 진상규명과 그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1960년 5월 결성된 한국교원노동조합은 최근 합법화된 전교조의 원조격으로 ‘4·19때 희생된 학생들의 피에 보답’한다는 취지로 결성됐다.“자유당시절 교사들이 3·4인씩 조를 짜서 부정선거에 가담한 사례도 있었습니다.학생들의 피로 4·19혁명이 성공하자 교사들은 쥐구멍이라도 찾고싶은 심정이었죠.그래서 교사들이 다시는 비리나 부정을 저지르지 말자는 취지로 결성한 것이 교원노조입니다.” 60년 7월 전국조직을 갗춘 한국교원노조는 한 때 조합원 수가 4만 명에 달했다.당시 초·중·고 교사와 대학교수 등 전체교원 수가 10만명이 채 안됐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규모였다. 한편 5·16 직후 쿠데타 세력은 교원노조 조합원 1,500명을 ‘용공분자’로 몰아 체포,교단에서 추방하였다.이들중 간부급 54명은 구속돼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됐는데 이 숫자는 당시 정당·사회단체의 피체자 가운데 가장 많은숫자였다.이들은 혁명재판에 회부돼 모두 징역15∼10년을 선고받았는데 강씨는 이들 가운데 최고형인 징역15을 선고받고 7년 넘게 복역했다.민주당 정권을 전복한 장본인인 쿠데타세력들이 이들에게 갖다 붙인 죄목은 놀랍게도 ‘민주당 정부전복음모’.그러나 조사결과 혐의사실이 발견되지 않자 다시 ‘간첩사건’으로 몰아 붙였다. “당시는 통일문제를 언급하거나 한미경제협정·2대악법 반대투쟁에 나서면 모두 용공단체로 규정했습니다.당시 교원노조는 강령에서 ‘반공’을 명시했었고 한미경협문제는 거론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2대악법은 노동탄압과 직결된 것이어서 다른 사회·언론단체들과 함께반대운동을 했지요.그런데 그게 ‘이적행위’로 둔갑하더군요” 68년 7년만에 출옥한 그는 정치정화법으로 6년간 묶여 있다가 10월유신 이후에는 보안처분대상자로 분류돼 이후 20년 가까이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였다.3공시절 3선개헌반대 33인준비위원,민주수호국민협의회 기획운영위원,엠네스티한국위원회 이사 등을 지낸 강씨는 그동안 ‘토인비와 문명’등 역사·문명사 관련 저술과 연구에 몰두해 왔다. 강신옥 변호사는 “상식적으로는 재심의 사유가 충분하나 법 논리상 제한점이 많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 사건은 역사적·정치적 차원에서 꼭 해결돼야할 역사적 문제”라고 밝혔다.
  • 경기도, ‘칭찬의 날’ 운영

    정부합동감사를 받고 있는 경기도청 공무원들은 오는 20일을 긴장과 기대속에 기다리고 있다. 정부합동감사반은 행정자치부와 농림부,건설교통부,문화관광부 등 10개 중앙 부처 공무원으로 이루어졌다.지난 15일 감사를 시작한 뒤 25일까지 경기도 업무 전반을 ‘이 잡듯’ 뒤지고 있다.그런 합동감사반이 이날을 ‘칭찬의 날’로 정했다.비위를 적발하는 날이 아니라 잘한 것이 있으면 발굴하여널리 알리고 격려하겠다는 것이다. 언제나 ‘엄중문책’이나 ‘중징계’ 등을 앞세우던 감사반이다.감사를 생각하면 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이 때문에 무턱대고 반가움을 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칭찬의 날’이 운영되는 것은 경기도가 두번째다.지난 1월 감사를 받은전라남도가 처음이었다.당시 감사반은 제도개선 사례 54건과 수범사례 43건을 발굴했다.‘칭찬의 날’운영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수범사례는 ▒영세민 전기시설 무료로 정비해주기 ▒중소기업 1사에 공무원 1인을 지정해 지원해주기 ▒농번기에 농민들을 직접찾아가 민원 해결해 주기등이었다.이 가운데 제도개선 사례 18건과 수범사례 14건이 포상 상신을 위한 심사대상에 올라있다. 행자부 복무감사관실 관계자는 이같은 제도가 감사의 ‘정상화’에 기여할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다.효과 감사나 생산성 감사가 감사의 본령임에도 불구,그동안은 목표달성 여부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정부합동감사반은 이에 따라 ‘칭찬의 날’과 함께 ‘관용심사제도’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소신껏 일하다 저지른 사소한 잘못은 면책하거나 징계수위를 크게 낮추겠다는 것이다.
  • [이런사람이 대접받는 사회]정보통신부 崔世河사무관

    농고출신의 말단 공무원이 대학교수가 됐다.9급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며 주경야독(晝耕夜讀) 끝에 일궈낸 결실이어서 더 값지다.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진흥과에서 소프트웨어(SW)진흥정책을 맡고 있는 崔世河사무관(48).70년 강원도 평창농고를 졸업,다음해 정보통신부의 전신인 체신부 9급 전송기술직으로 공직사회에 첫 발을 디딘지 30년만에 대학강단에까지 서게 됐다. 최근 산업인력 교수요원제에 도전,70대 1의 경쟁을 뚫고 모교인 동양공전전문대 정보통신학과의 겸임교수로 선발됐다.이번 학기부터 주 1회씩 강의한다. 정통부 출범 이후 말단관리 출신의 공무원이 대학강단에 서기는 처음있는일.그는 “어려서부터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생각을 실천에 옮긴 결과”라고 말하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남다른 의지와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다. 농고를 나와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게 되자 독학으로 전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체신부 전송기술직 9급에 응시해 합격,서울전파감시국에서 말단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그의 인생을 바꾸는전환점이었다. 73년 야간인 동양공업전문대 전자통신과를 나온 뒤 75년에는 명지대 전자공학과로 편입해 학사학위를 받았고 기술직 공무원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위해 85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연세대 산업대학원전자공학과에서 국비위탁생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난 2월에는 청주대학교에서 전자공학과 박사가 됐다. 그렇다고 직무에 소홀했던 건 아니다.그는 “공부때문에 일을 소홀히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남보다 2배 이상 더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말했다.국무총리상과 체신부장관상을 4차례나 받는 등 상도 6차례 받았고 무선설비기사 1급과 전자기사 1급 등 자격증도 4개나 갖고 있다.한국통신학회 등에 그동안 14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통신관련 전문서적 4권을 내놓기도 했다.
  •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장애 학생들이 나섰다

    “차라리 우리가 하겠습니다” 경사로 없는 계단,손잡이 없는 화장실,시각장애인용 표식이 없는 보도블록…. 장애 학생들이 열악한 교내 장애인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연세대의 장애인 동아리 ‘게르니카’는 최근 ‘장애학생 지원센터 준비위’를 구성,올해 안에 장애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연희관에 경사로와 화장실손잡이 등을 자비로 개조하기로 했다. 비용은 2002년 월드컵 개최를 기념,지난해 휠체어를 타고 유럽을 종주했던朴大雲씨(28·신방 3년)가 받은 TV출연 광고비 1,000만원과 기금모금 등을통해 마련키로 했다. 준비위는 얼마전 장애인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열고 이들을 도와줄 도우미도 모집하고 있다.장애인용 대학생활 가이드도 내기로 했다.후배들이 적게 움직이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시간표도 짜주고 수강신청서를 모아 일괄적으로 수업 신청을 해줄 계획이다. 장애인 학생들이 스스로의 권익보호에 나선 것은 학교측의 무관심 때문이다.이들은 “그동안 줄기차게 장애인 시설 보완을 요구했지만 학교측은 단 한번도 공식적인 접촉을 하지 않았고 정책적 지원도 외면해왔다”고 주장했다. 연세대는 실제로 지난해 5,000만원의 장애학생 복지비 관련 예산을 편성해놓고도 3,000만원을 집행하지 않았다. 동아리 간사인 金炯壽씨(25·국문4)는 “장애인 특례입학 등으로 100여명이 넘는 장애인을 뽑아놓고도 학교측은 예산타령만 하고 있다”면서 “다음달20일 장애인의 날에 즈음해 장애학생 지원센터를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 일부 재야인사들 鄭亨根의원 과거 고문 사실 폭로

    徐敬元 전의원 등 일부 재야인사들이 대공수사국장 등 안기부 요직을 거친한나라당 鄭亨根의원의 과거 고문사실 등을 폭로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89년 밀입북사건으로 8년7개월의 수감생활을 하다 3·1절 특사로 풀려난 徐전의원이 폭로에 앞장섰다.그는 지난 10일 ‘고문 국회의원 鄭亨根을 심판하는 시민모임 준비위’도 발족시켰다.徐전의원은 “당시 鄭씨가 직원들을 다내보내고 러닝셔츠와 군복바지만 입힌 상태에서 밤 9시15분부터 새벽 1시45분까지 주먹으로 구타했다”면서 “이렇게 직접 당한 사람이 10여명이고 모임에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도 20명이나 된다”고 소개했다.그는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鄭씨가 구두를 신은 채 맨발인 (나의) 발등 위에 올라서서 밟고,주먹으로 머리를 마구 때렸다”고 주장했다.“당시 金大中 평민당 총재가 金日成에게 친서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자백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鄭의원은 이에 대해 여권의 사주에 의한 ‘鄭亨根 죽이기 음모’라며 고문사실을 부인했다.鄭의원은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원을 어떻게 고문했겠느냐”며 “국정원이 徐전의원 주도 모임에 자금을 지원하고 제휴해서‘정형근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고 반격했다. 이에 정치권은 신중한 반응이다.국민회의는 “모든 것은 진실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고 한나라당은 “徐씨가 고문에 의해 간첩이 된 것처럼鄭의원을 물고늘어지는데, 오히려 자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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