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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인 스포츠] 2013 아시아 5개국 대회 준우승 이끈 15인제 럭비대표팀 주장 박순채

    [피플인 스포츠] 2013 아시아 5개국 대회 준우승 이끈 15인제 럭비대표팀 주장 박순채

    야성적이고 원시적인 남자들의 스포츠, 트라이 하나를 찍기 위해 모두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신사의 스포츠, 전 세계 600만명이 열광하는 스포츠. 럭비다. 2013HSBC 아시아5개국대회(A5N)를 준우승으로 마친 15인제 럭비대표팀 주장 박순채(28·일본 산토리)를 지난 19일 만났다. 만나기 전까지 “말주변이 없고 인터뷰 울렁증이 있는데 어쩌냐”고 고민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유쾌하게 재잘댔다. 그라운드에선 웃음기 없는 전사(戰士)였지만, 유니폼을 벗고 뿔테안경을 쓴 박순채는 순박한 청년이었다. 전날 홍콩전(43-22승)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눈치. “지금까지 한 경기 중에 가장 잘한 것 같아요. 정신적 지주인 유영남(파나소닉)이 후반 30분을 남겨두고 부상으로 빠져서 불안했는데 마무리가 좋았죠. 오윤형(KEPCO)은 어제 트라이 세 개 찍고 보너스킥까지 해서 대회 득점 1위(68점·4경기)가 됐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준우승으로 다 보상받은 것 같습니다.” 15인제 럭비대표팀은 강원도 양구에서 고강도 체력훈련을 했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일본 원정경기를 다니며 지난 두 달을 빡빡하게 보냈다. 결국 지난해에 이어 아시아 2위를 지켰고, 국제럭비위원회(IRB) 랭킹도 2010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24위로 두 계단 뛰어올랐다. ‘캡틴 박’은 뭐니뭐니해도 지난 4일 한·일전이 하이라이트였다고 전했다. 순수 일본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용병을 수혈한 ‘무늬만 일본’에 5-64로 졌다. 한국은 올해 A5N에서 일본을 상대로 유일하게 트라이를 찍었고, 2002년 이후 원정 최소 점수차로 간극을 좁혔다. 프로(톱리그)를 보유한데다 등록선수만 12만명에 이르는 일본을 상대로 나름 선전했다는 게 자체 평가다. 박순채 자신에게도 특별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치치부노미야 경기장을 처음 밟아봤어요. 소속팀 홈구장인데 동료들이 뛰는 것만 봤지, 그라운드를 처음 누빈거죠. 뭉클하기도 하고,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각오도 컸습니다.” 한국은 졌지만, 그의 이름 세 글자는 확실히 각인시켰다. 파이팅 넘치게 팀을 이끄는 박순채의 모습에 일본 선수들은 놀랐고 또 반했다. 근성만큼은 알아주는 박순채다. 그는 일본 톱리그에서 뛰겠다는 의지만으로 겁없이 현해탄을 건넜다. 스카우트된 것도 아닌데 열정만 믿고 무작정 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명문팀 산토리가 관심을 보였다. “일주일동안 입단테스트를 봤어요. 러닝부터 체지방, 웨이트까지 세밀하게 체크하더라구요. 연습경기 20분동안 공을 딱 세 번 잡았는데 운 좋게도 두 번이 독주(獨走)로 연결돼 트라이를 찍었어요. 바로 계약서에 사인했죠.” 팀은 개인 숙소와 자가용 승용차, 비행기까지 살뜰하게 제공했다. 연봉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자유계약(FA)으로 대박친 몇몇 빼고는 프로야구 선수가 부럽지 않을 정도”라며 해맑게 웃었다. 설렘으로 시작한 일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에선 승승장구하던 그가 벤치신세를 졌다. 지난 시즌 한 경기도 못 뛰었다. 파워풀한 럭비가 강점인데 팀은 스피드를 앞세운 럭비라 적응이 어려웠다고. 게다가 산토리는 톱리그 16개 팀에서도 최강팀. 지난 시즌 무패로 우승할 만큼 압도적이고, 기량이 월등하다. 그는 지난해를 ‘시련’이라고 규정짓는 대신 새 시즌에 대한 희망을 전했다. “못 뛰니까 정말 서럽더라고요. 이러려고 일본 온 게 아닌데 참담했죠. 올해는 8월 31일 리그 첫 경기가 잡혔는데 예감이 좋아요. 준비됐으니까 부딪혀봐야죠.” 럭비는 1998방콕·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 7·15인제 금메달을 따낸 효자종목이지만 일반인에게 생소하다. 삼성중공업·포스코건설·KEPCO와 국군체육부대가 일반부의 전부인데다, 1년에 10경기를 치를까말까 할 정도로 경기 수도 적다. “럭비 한다고 하면 한국에서는 ‘어깨에 뽕 넣고 하는 그거?’라면서 미식축구랑 헷갈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일본에서는 다들 ‘스고이’하면서 종이를 들이밀거든요. 일본 가서 처음 사인을 해봤어요. 리그 결승 때도 1만 7000명이 운동장을 꽉 채웠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해요.” 박순채는 일단 운동장에서 보면 매력을 알 거라고 확신했다. 거칠고 위험해보이지만 철저히 스포츠맨십을 지키고 트라이 하나를 찍기 위해 15명이 희생하고 뭉친다며 럭비의 매력을 구구절절 읊었다. 일본처럼 바글바글한 관중석을 꿈꿨다. “뜨거운 함성이 있으면 힘들어도 한 발씩 더 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헝그리정신’ ‘비인기종목의 설움’ 이런 건 싫어요. 남들이 안 알아줘도 우리만의 색깔로 럭비할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럭비월드컵에 진출해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내년 A5N우승팀에게 2015년 월드컵 티켓이 주어지는데 결국 걸림돌은 일본이다. “내년까지 열심히 몸 만들고 성장해서 일본 한 번 잡아볼 생각입니다. 월드컵도 무조건 가야죠. 이번 대표팀에도 일본파가 11명이었는데 못할 것 없잖아요?”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프로필 ▲1985년8월20일 출생 ▲아버지 박종수(62), 어머니 김홍련(61), 누나 박혜정(30) ▲190㎝, 105㎏ ▲부개초-부평중-인천기계공고-경희대-포스코(2008~11년)-일본 톱리그 산토리(2012년~) ▲대한민국 남자15인제 럭비팀 주장, 5개국대회 준우승(2013년), 산토리 대회 우승(2012년), 전국체전·봄철리그·대통령배 포스코 3연패(2009~11년) ▲좌우명=최고보단 최선을, 말보단 행동으로
  • 檢, 부산HK저축은행 前대표 수사

    검찰이 부산HK저축은행 전 대표 A씨를 특가법상 알선수재 및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이 저축은행은 HK저축은행 계열사로, 검찰 수사에서 정·관계 로비가 드러날 경우 ‘2010년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이어 부산 지역은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HK저축은행 비리도 수사하고 있어 HK저축은행 전반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고발된 부산HK저축은행 전 대표 A씨 등 임직원 9명의 비리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A씨 등 임직원들과 관련해 고객 돈을 빼돌려 마음대로 쓴 비리에 대해 중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여러 혐의 중 현재로선 업무상 배임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A씨와 관련해 ‘특가법상 알선수재 및 뇌물공여’ 혐의를 특정, A씨의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고 있다. 자금흐름 추적 과정에서 알선이나 뇌물 대상이 금감원·지방자치단체·정치권 등의 인사로 파악될 경우 정·관계에 부산발(發) 핵폭풍이 또다시 몰아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부산HK저축은행의 정기 감사를 통해 문제의 소지가 있는 10여건의 비리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고발했다. 이 저축은행 B씨는 지난 3월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일부 상관이 채무자로부터 각종 접대를 받았다는 등의 비위 사실이 포함된 유서 등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부장 강남일)는 지난 10일 신용정보 회사에 채권 추심 수수료를 과다 지급한 혐의 등으로 HK저축은행을 압수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 채권 추심 업무와 관련된 각종 서류 등을 확보했다. 금감원은 HK저축은행이 채권 추심 업무를 신용정보 회사에 위탁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규정보다 많이 지급한 정황을 포착하고 지난 1월 검찰에 고발 및 통보했다. HK저축은행은 자산 규모 2조 6000여억원으로 업계 2위로 알려져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손짓으로 차인꾼을 불러 세운 행수란 놈은 곱상스럽게 생긴 외양과는 달리 완력이 장사였다. 오줌을 지리며 엉거주춤 다가서는 차인꾼의 상투를 한손으로 비틀어 잡고 태질을 시켜 얼살을 빼는가 하였더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다시 허릿바를 끌어올려 덜미잡이로 엎치자, 차인꾼은 제힘에 겨워 꼬꾸라져서 콧등에 흙이 묻어났다. 순식간에 사람의 혼백을 빼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넋을 빼놓은 다음에 그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 “모르겠습니다.” “이놈, 어디로 가는 줄 모르다니, 넋은 어디다 두고 다니길래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이런 산중에서 소피보는 계집이나 간색하며 허둥지둥한단 말이냐?” “보시다시피 쇤네는 태게꾼일 뿐입지요. 원상들이 향도하는 데로 몇 날 며칠이고 입 닥치고 따라갈 뿐 신지가 어딘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 태게꾼이라 해서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신지가 어딘지 궁금하지도 않더냐?” “쇤네는 그저 원상들이 가는 대로 따라다니는 것을 천직으로 알 뿐입지요.” “혼백은 집 시렁에 얹어두고 고깃덩이만 왔다 갔다는 얘기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와들와들 떨고 있는 차인꾼의 뒤통수를 다시 한번 치고 나서, “이놈 봐라. 한 입으로 두말하고 있네. 방금 넋은 빼고 다닌다고 네놈 주둥이로 씨부리지 않았더냐?” “…….” 한마디 언사에 실려 있는 위엄을 듣자 하니, 산골 무지렁이 출신은 아니란 것을 단박 알아차릴 만하였다. 살년을 견디다 못해 산적으로 나선 일자무식 세궁민은 아니었다. 글줄이나 읽은 위인이란 생각이 얼른 뇌리를 스쳐갔다. “쇤네는 삯전이나 받는 담꾼일 뿐입니다요.” “이놈,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을 듣지 못했느냐? 네놈이 담꾼이든 원상의 행세를 하는 놈이든 상관없이 같은 일행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비겁하게 발뺌을 하여 그 초라한 목숨이나 구걸하자는 것이냐? 이놈 보아하니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한 입으로 두말하고 있네.”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냐. 이 배은망덕한 놈.” “창졸간에 불쑥 나온 말이니 해량하십시오.” “이놈 포달 떠는 꼴이 가관이군.” 당장 목이라도 베일 기세였다. 그러나 그는 차인꾼에게 명령하여 널브러진 시신을 들쳐 업도록 하였다. 조기출을 비롯한 일행은 다만 사태를 지켜보기만 할 뿐 대꾸 한번 변변스럽게 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참혹한 살육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시각은 어느새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몸은 물먹은 솜같이 무거웠으나, 잠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이틀 전에 겪었던 봉변을 소상하게 이야기한 조기출의 입에서 문득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구차하게 살아남기만 해서 뭣하겠소. 전대 털린 것은 그렇다 치고 수하에 따르던 차인꾼 한 사람 속절없이 저승으로 보내버린 주제에 어디다 비위짱 좋게 낯짝을 쳐들고 다니겠습니까. 적당들이 그런 술책으로 우리 일행의 눈을 어둡게 만들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적당들 턱밑에 낯짝을 디밀고 죽여달라고 지다위 못 한 것이 여한이 되었습니다. 명줄을 놓아버린 사람이나 끌려간 사람이나 원망이 구천에 사무치겠지요. 어찌 되었거나 시생과 같이 미욱하고 무지한 밥쇠가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운세 사나웠던 탓이오. 너무 자책 마시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 하지 않았소.” “행수 명색이었던 시생이 행중이 화적떼에게 된불을 맞고 멸구를 당하게 되었다면 사태를 불문하고 떨치고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어야 했는데, 난생처음 봉적한 일이라 할지라도 흡사 구경꾼처럼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치욕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감 정한조나 둘러앉은 원상들 역시 말이 없었다. 말없이 앉아 있기 진력날 즈음에 침묵하던 곽개천이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적당들의 짜놓은 미술에 여지없이 끌려들었을 것입니다. 적당들은 고개치나 산코숭이 같은 내왕이 호젓한 곳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북새통을 놓으며 복물과 전대를 취탈해 왔는데, 이 화적들은 백주창탈을 예사롭게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예사로 저지르고 말았소. 그 악행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게 되었소. 게다가 미술을 쓴다는 사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적당들도 이젠 완력만 가지고 봇짐을 털려는 것이 아니란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내 불찰로 자책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과 맞설 수 있는 계략을 꾸며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 WCC 부산총회 앞두고 개신교계 분란 심화

    WCC 부산총회 앞두고 개신교계 분란 심화

    ‘WCC가 뭐길래….’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를 5개월여 앞두고 개신교계의 분란이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총회 한국준비위원회(준비위)는 “총회를 원래대로 부산에서 열 것이며 모든 프로그램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비롯한 보수적인 교단들을 중심으로 개최 반대운동에 나서는 등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원래의 총회 주관 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준비위와는 별도의 협력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주최측도 사실상 이원화되는 양상이어서 개신교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WCC 부산총회에 반대 의사를 밝히고 개최 저지 운동에 나선 측은 무엇보다 WCC의 이념을 문제 삼고 있다. WCC가 종교 다원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일 기독교학술원이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마련한 포럼에서는 WCC 총회의 성격을 놓고 첨예한 설전이 오갔다. “WCC는 ‘개종선교를 하는 교회는 자기 자신을 구원의 중재자와 구원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여기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WCC가 개종강요 선교를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WCC가 비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 한기총과 한국교회연합 측 인사들은 총회 준비위가 상임위원회 명단에 자신들의 이름을 넣었다는 사실마저도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형편이다. NCCK를 비롯한 에큐메니칼 단체들도 준비위의 총회 개최에 불만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최근 NCCK 정책협의회를 열어 “준비위가 담당한 영역과 NCCK를 비롯한 회원 교단과 에큐메니칼 진영이 준비해야 할 영역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결정했고 NCCK는 별도의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준비위가 NCCK와 협의 없이 총회 장소를 변경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준비위는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해 지난 10일 총회를 예정대로 부산에서 치르겠다며 각 교단의 적극적인 협력을 호소했지만 개신교계엔 총회 준비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11일 한기총이 부산역 광장에서 ‘2013 WCC부산총회 반대 전국대회’를 연 것도 그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특히 준비위가 교계에 총회 준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요구하면서 “(총회 개최에 대한) 일방적이고 근거 없는 허위 왜곡에 단호히 대처할 것이며 총회를 망치려는 목적으로 비정상적인 반대를 계속할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한편 오는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WCC 제10차 총회에는 세계 각국 교회를 대표하는 대의원 825명을 비롯해 3000여명의 교회 관계자가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총회를 지원하기 위해 23억원의 예산을 책정했으며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3월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45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부산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5) 파주 임진강 황복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5) 파주 임진강 황복

    “황복? 알았네” 딱 두 마디, 노루꼬리만한 통화였다. 파주어촌계 박영숙(58)씨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밥상에 놓고 벌떡 일어섰다. 뭔가 감이 온다. 내 손도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수조차 시동이 걸렸다. 난 허락된 동행이나 되는 듯 무작정 차에 올라탔다. 낡은 트럭은 사이렌처럼 앵앵거리며 봄 논둑을 달렸다. 배꽃 하얗게 핀 언덕을 지나 검문소를 끼고 곤두박질치듯 내려간 곳은 임진강 장파리 나루터. 햐, 강이다. 노을이 물 위로 노랗게 쏟아지는 봄 강이다. 대놓은 쪽배 서너 대가 몸을 부딪치며 수런거린다. 어부는 박씨를 확인하자 서둘러 배에 올라 물속에 담가놨던 망을 꺼냈다. “다섯 마릴세” 앉은뱅이 저울에 올려진 황복 다섯 마리는 딱 2㎏이다. 즉석에서 현찰이 건네진다. 영화 속 ‘거래’를 목도한 느낌이다. 그새 놀은 내려앉고, 어부는 아껴둔 황복 한 마리를 양동이에 넣고 사라졌다. 늙은 아내가 기다리는 저녁밥 시간이다. 복숭아꽃 봉오리가 툭툭 터지는 4월 20일경에서 6월 초까지 딱 50여일. 임진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갔던 치어가 산란을 하기 위해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와 독을 품는 기간이다. 그래서 미식가들은 강의 돼지라고 불리는 이 하돈(河豚)을 맛보기 위해 산에 진달래꽃만 피면 북쪽을 쳐다보며 안달이 난다. 하돈이라. 문헌을 보면 황복이 산란기에 돼지 울음 소리를 낸다고 하여 붙여졌다는데, 가만히 황복을 들여다보면 돼지를 닮기도 했으니 강을 유영하는 돼지로 은유한 조상들은 얼마나 풍류가 넘치는가. 별스러운 인생아, 꽃잎처럼 저며 놓은 천하의 진미 황복 회를 먹다가 강나루로 뛰다니 나도 어쩔 수 없는 글쟁이다. 하지만 미식가라면 캐비어, 트러플, 푸아그라와 함께 4대 진미로 꼽는 황복의 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옛 시인의 표현대로 ‘복사꽃 피고 진 뒤 빈 가지만 마주하다니. 서글퍼라! 하돈 맛도 모르고 지났구나’라고 1년을 아쉬워하며 노래해야 한다면 정말로 서글프니까. 한 달 전부터 다짐을 받아 놨던지라 복집 주인 심한구(44)씨는 두루 마음을 써 준다. 독을 제거하고 1㎏ 회를 뜨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여분.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간 것은 뱃살이다. 뜨거운 물에 살짝 넣었다가 건진 뱃살은 부드럽고 연하다. 씹히는 질감이 역시 최고의 부위다. 하지만 수컷에서 나오는 고단백 정소(이리)가 빠질 수 없다. 특히 복의 이리는 독이 없다. 살짝 데쳐서 참기름과 약간의 간을 하여 먹는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망설이게 되니 눈 질끈 감고 마시듯 후루룩 들이켜야 옳다. 씹을 새 없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어쩌니 해도 꽃잎처럼 얇게 떠 놓은 회만큼 복을 탐미하게 하는 부위는 없다. 접시바닥이 환하게 비치도록 낱장으로 펼쳐놓은 회를 보니 이것이야말로 강의 봄꽃이지 싶다. 복 요리에는 꼭 미나리가 등장한다.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마침 식당 주인의 어머니가 근처에서 뜯었다는 야생 돌미나리가 상에 올랐다. 살갗처럼 저민 회를 한 겹 앞 접시 위에 얹어놓고 고추냉이를 살짝 발라 돌미나리 대에 돌돌 감는다. 스치듯 간장을 찍어 입 안에 넣고 씹으니 잘강잘강 그 풍미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살점 사이로 돌미나리 향이 곁들여져 입안은 환하게 봄 호사다. 왜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황복이 나오는 철이면 정사를 게을리 하고 그 맛을 탐했는지 알 것 같다고, 짐짓 우스갯말이라도 해야 할 듯하다. 아니 “사람이 한 번 죽는 것과 맞먹는 맛”이라는 극찬이 꼭 설득력 있는 것은 아니지만 봄날의 낭만을 섞으면 무슨 표현이 아까우랴. 미나리 없이 간장만 살짝 찍어 씹어보니 쫄깃하며 담백한 맛이 그래서 복어 중 으뜸이라고 하는가 싶다. 꼬들꼬들한 복어껍질은 미나리와 함께 새콤달콤하게 무쳤고, 한쪽에서는 맑은 탕이 끓는다. 술꾼들은 한 잔 해야 한다. 복어 지느러미를 태워 뜨겁게 내린 정종 한 잔 마셔야 풍류가 살아날 것이니까. 비위가 허락하는 사람은 산수유처럼 샛노란 황복 쓸개주를 노려봐도 좋겠다. 술 먹고 난 다음날 복집으로 달려가듯이 미나리와 콩나물만 넣고 맑게 끓인 탕이 주는 향수는 크다. 와르르 끓어오르고 그 시원한 국물을 훌훌 퍼먹으며 알알해진 속을 달래본다. 먹고 나니 슬쩍 입안이 마르고 갈증이 느껴진다. 아무리 독을 잘 제거했다고 해도 미세한 독은 남아있기 마련이니 ‘독을 맛 봤구나’ 싶다. 적당한 독은 몸을 뜨겁게 하는 등 나이 든 사람들에게 이로운 작용을 한다고는 하지만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 문득 남해에서 한 어부가 “독이 많아 국물이 퍼런 것을 먹어야 진짜재”하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 옛사람들도 복은 늘 미식의 첫손이면서 경계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 부녀자 생활지침 규합총서(閨閤叢書)를 보면 “피와 알이 독이 많아서 잘못 먹으면 반드시 사람이 왕왕 죽으니, 사람이 그것을 모르지 아니하되, 한때 맛을 밝혀 해를 입는 이가 있으니 애달프다”고 적고 있다. 또 “곤쟁이젓(생 새우젓)이 복어 독을 푼다”고 비방을 적고 있다. 이렇게 독을 무서워하면서도 복 예찬은 끊이지 않았다. 영조때 겸재의 친구였던 이병연(1671~1751)은 풍요로운 봄날 풍경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늦봄에는 복어국/ 첫여름에는 웅어회/ 복사꽃잎 떠내려 올 때/ 행주 앞강에는 그물치기 바쁘다’ 그런데 이렇게 시인묵객을 사로잡고 지천이었던 황복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치어를 방류하고 봄이면 그물을 뽀득뽀득하게 빨아 던져놔도 들어서질 않는다. 곧 복사꽃은 지는데 1년 강 농사 80%를 차지하는 이 봄 그물이 비어 있으니 어부들은 근심이 가득하다. 임진강이 노랗게 저물어 간다. 글 사진 손현주 음식평론가 marrian@naver.com
  • 윤창중 비위맞추려 이례적으로 전속 女인턴 배정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과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의 책임론이 대두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행사를 준비했던 주미 한국대사관 역시 이번 사건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주미 한국대사관과 워싱턴 한국문화원은 사건 무마에 가담한 의혹을 사는가 하면 사건이 폭로된 이후에는 언론에 여러 차례 말을 바꾸며 진실을 왜곡하고 사건의 진상 공개를 회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처음 사건이 알려졌을 때 대사관과 문화원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청와대와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미주 한인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미시 USA’ 등의 폭로 등을 통해 대사관이 성추행 발생 직후 사건을 보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또 대사관 측이 성추행 사건을 보고받고도 묵살했다거나 경찰 신고 후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돕는 데 가담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최병구 문화원장은 12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8일 윤 전 대변인의 귀국 항공편을 항공사에 문의했느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말해 사실상 부인하지 않았다. 한편 윤 전 대변인의 워싱턴 방문 기간 대사관 측이 전담인력을 배정하지 않는 관행과는 달리 인턴 A씨를 윤 전 대변인의 비서 격으로 별도 배정한 것은 그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추기 위한 조치였다고 대사관 관계자가 말했다. 이와 관련, 대사관 측은 이번 대통령 방미의 중요성 때문에 인턴을 대거 동원했음에도 별도의 사전 교육조차 실시하지 않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곽개천의 점잖은 언사에 찌그러진 바라지 문을 열었던 궐자가 한순간 머뭇거리는가 하였더니, 내친김이란 듯 걸찍하게 내뱉었다. “이놈 봐라, 대살지게 생겼다 해서 제법 고시랑거리는군. 난장 박살을 내주기 전에 썩 비켜나라, 이놈.” “함자가 뉘신데 언사가 그토록 고약하시오?” “혓바닥을 뽑아버릴 놈들. 보면 몰라서 묻고 있느냐. 눈깔은 뒀다가 동냥을 보냈나, 꽁무니에 박고 지내나. 보아하니 비킬 데 없는 행상꾼들이 분명한데, 언죽번죽 제법 할퀴고 드는군. 정말 회술레를 돌려야 정신을 차리겠나?”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초저녁부터 주찬을 질탕하게 차리고 앉아 술판들 벌이고 있구려.” 점잖게 타이르는 말에 오히려 기분이 상한 궐자가 메줏덩이만 한 주먹을 뭉쳐 내려칠 시늉을 하며, “엇따. 이놈 봐라, 네놈들은 안 처먹어도 배부른 생불이더냐?” “내게 무슨 대단한 도량이나 있는 줄 아시오? 여차하면 발길질도 마다하지 않는 성미니 대중없는 헛소리 집어치우시오. 댁이나 나나 죽고 나면 모두가 여섯 자 아니겠소. 자칫 완력을 뽐내다 보면 평생 신세 망치는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소.” “어허, 기침에 재채기가 겹친다더니. 말본새 한번 피마 씹구멍같이 잘도 실룩거리네. 결기를 자랑만 하지 말고 어디 한번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들어 봐.” 어육지변을 만들겠다고 땅땅 벼르는 중에 곽개천은 냉큼 둘러댈 말구멍을 찾지 못하자, 얼굴이 원숭이 볼기짝이 되어 안절부절이었다. 그는 봉노에 둘러앉은 패거리들의 얼굴에서 문득 살기를 느꼈다. 분명 일손을 놓고 장삿길로 나선 도부꾼들이나, 장시를 배회하며 일손을 찾는 차인꾼들은 아니었다. 장시를 배회하는 무뢰배들이라 하더라도 감히 원상들을 상대하여 그런 막말을 할 수는 없었다. 완력 한 가지로 막 살아가는 부류거나 추쇄당하고 있는 살범이 아니라면, 지난날 포수 생활 할 적에 어디선가 한두 번 마주친 듯한 얼굴도 있었다. 더 이상 대거리를 주고받다간 난리 북새통을 겪을 것이었다. 그때, 윤기호가 곽개천의 괴춤을 잡아끌며 말했다. “걸레는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법, 더 이상 비위짱 사나운 꼴 보기 전에 그만 돌아섭시다. 내성 술청 거리에 색주가가 한두 군데입니까. 내가 업어다 난장 맞힌 꼴이 되었소.” 곽개천 일행이 그들을 상대하여 완력을 겨루기로 한다면 결코 불리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임방을 코앞에 둔 내성에서 분란을 일으킨다면 까닭이야 어디에 있던, 풍속을 어지럽힌 죄로 징치를 당하게 될 것이었다. 속내를 좀더 알고 보면 그 왈짜들 역시 형세가 불리한 곽개천의 사정을 익히 꿰고 있었기에 시비를 걸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한때, 보부상의 우두머리에게 장시의 풍속 단속권을 부여한 적이 있었으나, 스스로 작폐를 저지르는 경우 구성원의 우두머리와 접장을 처벌했었다. 그러나 장시의 질서가 워낙 어지럽게 되자 단속권 자체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무뢰배와 도부꾼들이 물밀듯이 장시로 몰려들어 풍속을 어지럽혀 놓았기 때문이었다. 괴춤을 뒤져보았자, 냄새나고 성가신 불알 두 쪽밖에 가진 것이 없는 왈짜들을 상대로 세력 다툼을 벌인다면 우세 당하는 쪽은 곽개천 일행일 수밖에 없었다. 머쓱해서 술청에서 물러서고 마는데, 잔뜩 기대했던 김청도가 일행의 뒤를 따르며 혼잣소리를 하였다. “검은 구름에 학 지나가듯 잠시 희다 말았군.” 일행의 떨떠름한 기색을 모를 리 없는 윤기호가 냉큼 발명하였다. “행중에 이런 수치가 없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허물하겠습니까. 공연히 본데없는 것들 상종했다가 살풍경한 꼴을 당했습니다. 모두 엄포에 불과하지만 제 불찰이 큽니다.” 배고령이 맞장구쳤다. “모두가 부질없는 짓입니다. 당초부터 떡전을 찾거나 도방에 둘러앉아 막걸리 추렴이나 할 생각을 가졌더라면 그 발칙한 놈들에게 우세는 당하지 않았을 테지요.” “우리 행중에게 색주가 출입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어서 그런 수치를 당한 게야. 그만 도방으로 들자구. 휘진 몸둥이들 이끌고 색주가 전전해 보았자 골병만 깊이 들 뿐이지.” 곽개천이 딱 부러지게 일갈하자 모두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술청 거리를 벗어났다.
  • [윤창중 파문] ‘무마 가담 의혹’ 주미대사관 책임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과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의 책임론이 대두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행사를 준비했던 주미 한국대사관 역시 이번 사건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주미 한국대사관과 워싱턴 한국문화원은 사건 무마에 가담한 의혹을 사는가 하면 사건이 폭로된 이후에는 언론에 여러 차례 말을 바꾸며 진실을 왜곡하고 사건의 진상 공개를 회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처음 사건이 알려졌을 때 대사관과 문화원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청와대와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미주 한인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미시 USA’ 등의 폭로 등을 통해 대사관이 성추행 발생 직후 사건을 보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또 대사관 측이 성추행 사건을 보고받고도 묵살했다거나 경찰 신고 후 윤 전 대변인의 귀국을 돕는 데 가담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최병구 문화원장은 12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8일 윤 전 대변인의 귀국 항공편을 항공사에 문의했느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말해 사실상 부인하지 않았다. 한편 윤 전 대변인의 워싱턴 방문 기간 대사관 측이 전담인력을 배정하지 않는 관행과는 달리 인턴 A씨를 윤 전 대변인의 비서 격으로 별도 배정한 것은 그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추기 위한 조치였다고 대사관 관계자가 말했다. 이와 관련, 대사관 측은 이번 대통령 방미의 중요성 때문에 인턴을 대거 동원했음에도 별도의 사전 교육조차 실시하지 않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인사]

    ■서울신문 ◇논설위원실△수석논설위원 손성진△논설위원 박건승 박현갑 안미현◇경영기획실△부실장(겸임) 이상훈◇편집국△부국장 손석구 이도운△선임기자 임태순 유상덕 노주석 장상규△전문기자 임병선<부장>△정치 박홍환△사회 박찬구△메트로 이동구△정책뉴스 김성수△국제 이종락△경제 김태균△산업 최용규△문화 황수정△체육 이기철◇사업단△부단장 이연경 김성곤△수석기획위원 함혜리◇콘텐츠평가팀△팀장 육철수△심의위원 김주혁◇온라인뉴스국△기획위원 박희석◇일본현지법인개설준비위△위원장 황성기 ■감사원 ◇고위감사공무원 <승진>△공직감찰본부장 주승노△감사교육원장 김충환<전보>△제2사무차장 정길영△기획관리실장 왕정홍 ■외교부 △의전장 최종현 ■농림축산식품부 ◇국장급 <승진>△대변인 남태헌<전보>△식품산업정책관 임정빈△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임재암◇과장급 전보△축산정책과장 이상만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최영현△인구정책실장 이태한△정책기획관 장재혁△보건의료정책관 권덕철△건강보험정책국장 이동욱△보건산업정책국장 박인석△복지정책관 조남권△장애인정책국장 윤현덕 ■환경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송재용 ■해양수산부 △허베이스피리트피해지원단 보상협력팀장 노진관△해양수산인재개발원장 설인철△인천지방해양항만청 항만정비과장 김종래△국립수산과학원 운영지원과장 최경욱 ■금융위원회 ◇임명△사무처장 고승범△금융정책국장 김용범 ■병무청 ◇고위공무원 승진△병역자원국장 이성수 ■농촌진흥청 ◇승진△농촌지원국장 이범승△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물부장 이규성△국립농업과학원 농업공학부장 이용범△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장 이진모△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장 김인철△충북도 농업기술원장 김숙종◇전입·전보△국립농업과학원 농업환경부장 이상범△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장 김종철△국립식량과학원 기능성작물부장 전영춘 ■KBS △대전방송총국장 곽영지 ■에쓰오일 ◇승진 <부사장>△생산지원본부장 류경표<상무>△신사업부문담당 박승구△노사협력부문담당 오석동△업무부문담당 김평길△변화지원부문담당 박태철△컨트롤러 조용국
  • [커버스토리-장기 불황의 그늘] 주식·부동산 거품에 ‘잃어버린 20년’…日, 고령화·저금리·엔고 덮쳤다

    [커버스토리-장기 불황의 그늘] 주식·부동산 거품에 ‘잃어버린 20년’…日, 고령화·저금리·엔고 덮쳤다

    한때 전 세계를 장악할 듯한 기세로 뻗어가던 일본 경제는 1990년을 전후로 급격하게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잃어버린 20년’은 부동산 거품이 꺼진 1991년부터 2010년까지 극심한 장기 침체 기간을 일컫는다. 이후에도 최근까지 저성장이 이어졌다. 결국 디플레이션(물가의 지속적인 하락)과 엔고 탈출을 위해 윤전기를 돌려 화폐를 무제한 찍어내는 등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초 일본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 장기 불황의 서막이 올랐다. 금융 산업이 휘청하면서 실물경제에 타격을 줬다. 일본 기업은 3대 과잉(고용, 설비, 채무의 과잉)으로 고전했다. 투자는 실종됐고, 소비는 부진에 빠졌다.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경제는 탄력을 잃어갔다. 정부 대응도 늦었다. 뒤늦게 제로(0%) 금리를 통해 금융완화 정책을 단행하고 재정 지출을 확대했지만 장기 불황의 골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실제 1980년대 연평균 4.4%였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90년대에는 연평균 1.5%에 그쳤다.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자산가격도 폭등했다. 부동산 가격은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올라 1991년 정점을 기록했다. 1981~1991년 6대 도시의 상업용지 가격은 1970년대에 비교해 473%, 주거용지 가격은 225% 상승했다. 결국 버블 붕괴라는 치명타를 입었다. 1991년 이후 10년 동안 부동산 가격은 급락세로 돌아섰다. 6대 도시의 상업용지와 주거용지 가격은 최고점을 기록했던 때와 비교해 각각 5분의1, 2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도쿄 주택지는 버블붕괴 후 연간 9%씩 하락했다. 1999년에는 최고 가격을 기록했던 10년 전에 비해 57% 수준으로 떨어졌다. 1980년대 주가는 6배로 상승했다. 특히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 강세를 유도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주가상승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5년간 200% 올랐다. 1989년 말 고점을 보인 주가가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지는 데는 불과 3년이 걸리지 않았다. 닛케이 평균주가지수는 1989년 3만 8915에서 1999년 말 1만 8934로 하락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 1985년 2월 달러당 260엔이었던 환율은 3년 만인 1987년 말 120엔, 1995년 중반 80엔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엔고로 인한 수출 둔화를 우려해 금리를 급격하게 낮췄다. 1985년 말 5%였던 정책금리는 불과 1년 사이에 2.5%까지 인하됐다. 금리가 낮아지자 시장에는 유동성이 풍부해졌고, 넘쳐난 유동성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 버블을 형성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의 장기 침체 과정에서 심한 소비위축 현상을 경험했다. 일본의 평균 민간소비 증가율은 1980년대 3.7%에서 1990년대 1.5%로 급격히 떨어졌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0.9%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자산버블→기업수익성악화→부동산 및 주가폭락→저성장의 구조화’라는 그릇된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20년 동안 개인과 기업의 생산성이 줄고 장기간 디플레이션을 겪은 탓에 현재 일본의 국민소득은 20년 전보다 못하다. 2011년 일본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68만 1000엔(약 4700만원)으로 20년 전인 1992년보다 2.5% 떨어졌다. 반면 국가 빚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1992년 GDP의 20%에 불과했던 국가부채 비율은 20년 만인 지난해 230%로 불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237%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영기 한국은행 도쿄사무소 소장은 일본 장기 불황 원인에 대해 “자산 버블이 꺼진 후 성장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기대심리가 매우 낮아진 게 큰 원인이었다”면서 “이 과정에서 적절한 투자와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고령화와 저금리, 엔고 등으로 불황이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현대重 임직원, 하청업체서 25억 뒷돈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하청업체에 줄 대금을 조직적으로 부풀려 25억원을 챙긴 사실이 적발돼 울산지방검찰청이 수사에 나섰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초 내부 감사에서 울산공장의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 소속 턴키공사부 간부와 직원 25명이 2001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하청업체 7곳으로부터 25억원을 받은 사실을 적발하고 감사 결과를 검찰에 넘겼다고 9일 밝혔다. 이들은 하청업체에 줄 대금을 부풀려 계약한 다음 뒷돈으로 되돌려 받아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야유회비, 접대비 등으로 사용했다. 회사 측은 해당 부서를 해체하고 비위 행위가 드러난 25명 가운데 4명을 해고했으며 나머지는 수위에 따라 정직, 감봉 등의 처벌을 내렸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협력업체에 줄 돈을 부풀려 빼돌렸다는 점에서 사실상 횡령”이라며 “현재 관련 업무의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특수수사 컨트롤타워 둬야”… 檢개혁 한계 지적

    “특수수사 컨트롤타워 둬야”… 檢개혁 한계 지적

    지난달 24일 출범한 검찰개혁심의위원회의 대다수 외부 위원들은 1일 2차 회의에 앞서 서울신문과의 전화설문에서 “검찰을 뿌리부터 바꾸겠다”며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했다. 특히 검찰의 입장과 달리 특수수사 지휘부 신설에 반대해 주목됐다. 하지만 이날 오후 ‘검찰 특수수사 체계 개편’을 주제로 열린 검찰개혁심의위원회 회의에서는 “대검에 특수수사 지휘 컨트롤타워를 둬야 한다”는 검찰 논리를 그대로 수용해 검찰 측 논리에 밀린 위원회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원장인 정종섭 서울대 로스쿨 교수 등 외부 위원 9명 중 소신을 밝힌 위원 7명은 ‘검찰의 정치성’을 강력 질타하며 향후 검찰개혁심의위원회에서 검찰의 정치 중립 확보 방안 마련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은 “정권이 대검 중앙수사부를 통해서만 검찰을 통제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상설특검과 특수수사 체계 개편을 통해 검찰이 정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했다. 다른 위원들은 “검찰 수사 체계를 정비하고 수사 자율권을 준 뒤 수사 결과에 따라 인사를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상명하복의 ‘검사 동일체 원칙’, 순혈주의 등 검찰의 조직 문화도 개혁해야 한다” 등의 의견을 내놨다. 특히 다수 위원들은 중수부 폐지 이후 일선 검찰청의 특별수사를 지휘할 ‘컨트롤타워’를 별도로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위원들은 “대검에 컨트롤타워를 만들면 중수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대검이든 고검이든 지휘·지원 부서를 둘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도 특수부에서 각자 하듯 우리도 그런 식으로 해야 한다”, “대검에 또 다른 특수수사 지휘·감독 부서를 만들면 결국 개별 사건에 개입하게 돼 직접 수사 기능이 없더라도 중수부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등의 입장을 피력했다. 이날 회의 초반까지만 해도 대검에 지휘 부서를 두는 데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 측에서 대검의 특수수사 지휘 필요성 등을 역설했고 열띤 토론을 거쳐 검찰 입장으로 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신설 부서는 기존 중수부 기능에서 직접 수사를 제외한 수사지휘와 지원 기능을 맡게 될 것”이라면서 “위원들은 검찰총장이 책임지고 지휘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점에 다 동의했다”고 밝혔다. 한 위원은 “격론은 있었지만 대검에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됐다”고 전했다. 중수부 폐지 대안으로 거론되는 ‘상설특검’ 형태는 검찰개혁심의위원회 내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민주통합당은 별도 조직을 갖춘 ‘기구특검’을 추진하고 있지만 검찰과 여당은 사안별 특검을 구성하는 ‘제도특검’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복수의 위원들은 “사건이 있을 때 구성되는 제도특검은 의미가 없고 지금껏 실패를 거듭했다. 기구특검이 옳다”, “수시로 만들어졌다 없어지면 특검이 흔들릴 수 있다. 수사 인력 등을 별도로 확보해 안정적으로 운영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위원은 “상설특검도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 주고 필요할 때 구성하는 제도특검이 합리적”이라고 반박했다. 위원들은 검찰 비리를 단속하는 대검 감찰본부장은 ‘외부 인사’가 맡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위원들은 “내부 인사는 검찰 내 인맥이 얽혀 있어 공정하게 감찰을 했다고 해도 외부에선 감찰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 “검찰 내부에서 오랫동안 봐 온 사람은 일정 수준의 비위는 관행으로 여기며 큰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부고] 47개월 최장수 육군참모총장 이세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2기)로, 제21대 육군참모총장(1975년 3월∼1979년 1월)을 지낸 이세호 예비역 대장이 28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1946년 육사 2기로 임관한 이후 37사단장, 28사단장, 육군보병학교장, 육군사관학교장, 6군단장, 주월 한국군사령관, 제3군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또 1969년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취임해 1973년 철수할 때까지 4년 동안 1100여회의 대대급 이상 대부대 작전, 57만여회의 소부대 작전을 지휘했다. 베트남 철수 이후에는 제3야전군 창설 준비위원장으로 야전군을 창설하고 초대 3군사령관을 지냈다. 고인은 1975년 3월부터 1979년 1월까지 47개월간 육군참모총장을 맡아 역대 최장수 총장직 수행 기록을 남겼다. 재임기간 대전차 방어를 위해 토우중대를 창설했고 적 지하갱도 탐지 능력을 보강할 목적으로 시추 장비를 도입했다. 또 교육참모부를 신설하고 예비군 전력화를 완성하는 등 향토 방위력을 강화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태극 무공훈장(1회), 충무 무공훈장(4회), 을지 무공훈장(2회), 화랑 무공훈장(1회)을 수상했다. 육군은 유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고인의 영결식을 30일 오전 10시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육군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유족은 오영숙 여사와 3남 2녀.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6시. 고인은 국립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 안장된다.(02)2258-5940.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쫀디기·꿀맛나 “우리가 4대악이라고?”… ‘문방구 과자’ 눈물의 폐업

    [주말 인사이드] 쫀디기·꿀맛나 “우리가 4대악이라고?”… ‘문방구 과자’ 눈물의 폐업

    “씁쓸하죠. 요즘 같아서는 차라리 잘 그만뒀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26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주택가. 1970~80년대 학교 앞 ‘불량식품’으로 이름을 날렸던 A제과의 공장은 텅 비어 있었다. A제과는 ‘빨대과자’로 등하굣길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과자업체. 2010년 공장 가동을 멈춘 김모(58) 전 사장은 3년간 남겨둔 공장 기계를 지난주 고물상에 내다 팔았다. 김 전 사장은 “아버지가 회사를 세웠을 때부터 40년 넘게 해온 일인데 아쉬움때문에 쉽게 기계를 정리할 수 없었다”면서 “자식 같은 기계들을 용광로에 밀어 넣은 것 같아 며칠을 끙끙 앓았다”고 했다. 문방구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과자업체가 문을 닫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 전 사장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먼저 학교 앞 문방구와 구멍가게가 꾸준히 줄어들면서 판로가 막혔다. 게다가 대기업 제품이 확산되면서 ‘영세 업체에서 만든 과자들은 깨끗하지 않고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정기적으로 품질 검사를 받으며 식품위생법 등 관련 법령을 충실히 지켰지만 한 번 덧씌워진 ‘불량’의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김 전 사장은 “불량식품을 단속할 때만 되면 구청 직원 등이 만만한 우리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면서 “대기업에서 만드나 영세 업체에서 만드나 과자의 성분은 같다. 전기밥솥에서 만들든 가마솥에서 만들든 같은 밥 아니냐”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한 가지 악재가 더 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량식품을 성폭력과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과 함께 이른바 ‘4대악’으로 규정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의 단속 강화에 애먼 영세 과자업체들도 불똥을 맞은 것이다. 김 전 사장은 “처벌받아 마땅한 비위생 업체도 있지만 양심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장사하는 곳도 많다”면서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고 일했는데 요즘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현재 소규모 과자업체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도 열변을 토했다. ‘맛기차콘’과 ‘호박 꿀맛나’ 등을 만드는 한진식품의 김영기(42) 대표는 “‘영세 업체는 더러울 것’이라는 편견 탓에 중소기업 매출은 줄고 대기업 매출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적법한 신고 절차와 위생 검사 등을 마쳤는 데도 ‘불량식품’이라는 표현 때문에 우리 직원들까지 ‘불량직원’이 되는 기분”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쓰거나 원산지를 속여 파는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 대기업보다 부족한 것은 포장과 마케팅뿐”이라면서 “영업 허가를 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불량식품이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쫀디기’를 만드는 남일제과의 박성렬(42) 부장도 “몇 년 전부터 규제가 심해져 위생 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다”면서 “대기업 제품과 공정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온다는 사람 없다고 마음이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천에서 옥수수 과자를 만드는 한모(45) 사장은 “위해식품과 영세업체 제품은 구분해야 하는 데 불량식품으로만 매도되고 있다. 상인들끼리 모여 호소문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얼마 전에 경찰들이 공장에 찾아왔다가 소득 없이 돌아가면서 자기들도 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몰라 답답해서 미치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처럼 영세 과자업체가 때 아닌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은 범정부 차원의 불량식품 단속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검찰청, 지방자치단체 등은 상설 합동단속체계를 구축해 올 6월까지 집중적인 단속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경찰 역시 100일동안 부정·불량식품 집중단속을 실시하겠다며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300여명을 식품 위해사범으로 적발했다. 문제는 ‘불량식품’의 애매한 정의와 실적 중심의 단속이다. 식약처는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불량식품을 ‘사전적으로는 비위생적이고 품질이 낮은 식품을 의미하나, 통상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장하는 모든 식품을 의미한다’고 모호하게 정의해 빈축을 샀다. 서울 시내의 한 일선 경찰은 “솔직히 어디까지 단속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면서 “문책까지 운운하며 압박하는데 실적이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한 구청의 단속 담당자는 “실적 때문인지 불량식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달라는 경찰 등 관계 기관의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세 업체의 제품을 불량식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오세욱 국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느낌상의 불량식품과 실제 불량식품은 다르다.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거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 함유된 제품이 불량식품”이라면서 “똑같이 지자체 등의 관리·감독을 받는 제품인데 단순히 값이 싸고 문방구에서 판매한다는 이유로 불량식품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창순 중앙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도 “천연색소와 합성착향료 등은 대기업이 만드는 과자에도 똑같이 들어가는 성분”이라면서 “특정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만 주의를 기울이면 섭취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식약처가 품질 검사 기관으로 공식지정한 한 대학 산학협력단의 연구원 역시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은 모두 자가품질검사를 통과한 제품들로 이른바 ‘불량식품’들도 절대 다수가 검사를 거친다”면서 “검사를 통과한 제품들은 식약처에서 ‘이 정도면 판매해도 된다’고 허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속 때문에만 추억의 과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준비물 없는 학교’ 등의 시행으로 주요 판매처였던 문방구 수가 크게 줄어든 것도 타격이 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2만 4881개였던 소매문구점은 2011년 1만 5750개로 약 37% 감소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45년째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이원구(75)씨는 “안 그래도 장사가 안됐는데 식품 단속 때문에 더욱 힘들어져 가게를 급매로 내놨다. 젤리와 껌 등 5개를 팔던 과자류도 1개로 줄였다”면서 “슈퍼에서는 팔아도 되는 과자를 학교 주변 문방구에서는 팔면 안 된다는 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충남 공주에서 과자를 만드는 조모(34) 과장은 “문방구가 줄어들면 판로가 막힐 수밖에 없다. 동네 슈퍼에라도 납품을 해볼까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시민들의 의견은 갈린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김희연(41·여)씨는 “문방구 등에서 파는 과자들은 색깔도 자극적인 데다 성분 자체가 의심스러운 것들이 많다”면서 “대기업 제품은 문제가 생기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만 영세 업체들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어렸을 때 우리가 불량식품들을 먹었던 것도 먹을 게 그것밖에 없어서였던 게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최정은(32·여)씨는 “이런 과자들을 먹고도 잘만 컸는데 불량식품이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렵다”면서 “4대악이라면서 과자업체만 단속하기 보다는 다른 중요한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찬반을 막론하고 사라져가는 추억에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같다. 직장인 홍민규(26)씨는 “볼 때마다 학창시절이 떠올랐는데 추억의 먹거리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광(39)씨는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면서 “‘달고나’도 ‘쫀드기’도 아쉬워하는 것은 언제나 나이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명칭이어 시청마저 창원으로…박탈감에 옛마산 “차라리 쪼개”

    경남 옛 창원·마산·진해 3개 시가 합쳐 출범한 통합 창원시가 2년 10개월여 만에 분리 논란에 휩싸였다. 통합 시청사가 우리 지역에 와야 한다는 지역 갈등이 원인이다. 창원시의회는 24일 ‘통합 창원시에서 구 마산시 분리 건의안’을 지난 23일 임시회에서 채택해 청와대와 국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경남도와 경남도의회, 창원시 지역구 국회의원 등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이 건의안은 지난달 창원·마산·진해 지역 각 3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창원시 현안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일곱 차례 회의 끝에 만든 것이다. 전체 의원 52명 가운데 찬성 42명, 반대 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건의안은 “3년간 통합 시정을 운영한 결과 마산시를 분리하는 게 창원시와 국가 발전에 부합된다고 판단돼 조속한 분리를 바란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와 함께 “주민 반대가 적지 않았으나 인센티브를 공언한 정부 약속만 믿고 주민투표도 없이 통합한 상황에서 시 명칭과 시 청사 가운데 하나를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마산 지역에 배려해 달라는 호소조차 묵살되는 등 더 이상 통합가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마산시를 원상 회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갈등은 통합시 출범 전부터 시작됐다. 통합준비위원회는 청사 소재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통합 시의회로 미뤘다. 통합 시의회는 지역 입장을 조율하지 못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별위는 마산시를 분리하고 청사는 현 창원시 임시청사 소재지로 한다는 내용의 조례안 등 2개의 합의안으로 이를 풀었다. 그러나 23일 본회의에서 마산 출신 의원들이 청사 소재지 조례는 마산시 분리가 확정된 뒤 발효하도록 할 것을 요구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청사 소재지는 조례 개정만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마산시 분리는 국회나 정부가 통합 창원시법을 폐지하고 분리법을 입법해야 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다시 분리되는 기관·단체 및 주민들의 혼란과 후유증도 걸림돌이다. 마산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시 명칭과 청사를 모두 창원 지역이 차지한다면 통합에 따른 마산시민들의 상실감과 박탈감은 한계를 넘게 된다며 원래의 마산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리비아 주재 佛대사관서 폭탄 테러

    리비아 주재 프랑스 대사관이 23일(현지시간) 차량 폭탄 공격을 받아 보안요원 2명이 다치고 대사관 건물이 크게 파손됐다. AP·AFP통신에 따르면 현지 경찰들은 이날 폭탄이 설치된 차량이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알안달루스 지역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 건물 앞에서 폭발했다고 밝혔다. 이 폭발로 현장에 있던 프랑스인 보안요원 2명이 다쳤고 대사관 건물과 인근에 세워져 있던 차량 2대에 불이 붙었다. 지난해 9월 발생한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피습 사건 이후 수도 트리폴리에서 외국 대사관을 겨냥한 폭탄 공격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공격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하고 리비아 정부에 신속한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올랑드 대통령은 로랑 파비위스 외무장관에게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테러 공격으로 부상한 프랑스인들의 본국 송환을 감독하기 위해 트리폴리로 대표단을 파견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모하메드 압둘아지즈 리비아 외무장관은 “이번 공격을 리비아의 혁명을 도운 형제국에 대한 테러로 규정한다”면서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프랑스와 합동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민주 ‘우클릭’ 논쟁 본격화

    민주 ‘우클릭’ 논쟁 본격화

    민주통합당이 5·4 전당대회에서 채택할 당 강령·정책 개정안에 중도노선을 강화하는 내용과 문구가 대거 포함되면서 ‘우클릭’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등의 내용이 기존 강령·정책보다 완화되거나 표현이 후퇴한 것을 놓고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22일 국회에서 ‘강령·정책 개정안 공청회’를 열어 당 내 의견을 수렴했다. 이상민 강령·정책 분과위원장은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쓸데없는 이념적·소모적인 논쟁만 유발할 것을 고려해 중도라는 개념을 문구에 전혀 넣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청회에 앞서 배포된 강령·정책 개정안을 보면 중도노선을 강화하기 위한 문구가 대폭 추가되거나 표현이 손질됐다. 통상 분야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면 재검토’라는 표현이 ‘FTA를 포함한 모든 통상정책에 있어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추진하며, 피해 최소화 및 지원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적극 마련한다’로 바뀌었다. 안보 분야에서는 ‘북한의 핵실험 등 안보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확고한 안보태세를 갖춘다’는 표현이 추가돼 우클릭을 뒷받침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 ‘기업의 건전하고 창의적인 경영활동을 존중한다’는 친기업적 내용이 포함되고,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라는 표현은 빠졌다. 복지 분야에서는 기존의 ‘보편적 복지’라는 표현이 ‘복지와 함께 선순환하는 성장지향’으로 대체됐다.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당내외 인사들은 예외없이 개정안에 대해 반발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김윤태 고려대학교 교수는 “경제민주화의 실체라고 볼 수 있는 분배 가치에 대한 설명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보편적 복지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은 진보가치의 후퇴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동철 의원은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라는 진보 가치는 강화하되 안보나 사회기강과 같은 보수 가치와 충돌할 때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노선 강화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도 나왔다. 지난 대선에서 공보단장이었던 우상호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당의 진보 정책을 베껴서 선거에서 이겼는데, 우리는 진보 정책을 내놓아서 졌다는 게 말이 되나”라면서 “선거 시기에는 중도층을 견인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지지층이 필요한 정강정책은 순화시키고 부동층을 위한 정강정책을 만드는 정당이 왜 존재하나”라고 반문했다. 진성준 의원은 “당의 강령과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한데, 다소 과하게 수정된 측면이 있다”고 반발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씨줄날줄] 무명의 헌신/서동철 논설위원

    솔직히 고백하건대, 인천 강화경찰서의 정옥성 경감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큰 안타까움을 느낀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3월 1일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자살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시민을 구조하려다 파도에 휩쓸렸다고 했다. 이럴 때 흔히 쓰는 문구가 살신성인(殺身成仁)일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당시에는 한 경찰관이 목숨을 바쳤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럴 만한 상황이었겠지’하는 느낌이었다. 시신이라도 찾겠다는 여러 날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렸음에도 여전히 마음의 울림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TV 뉴스에서 정 경감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럴 지경으로 무딘 마음의 소유자가 되었을까’하고 자책했다. 화면 속의 정 경감은 자살하겠다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을 필사적으로 뒤쫓아 물에 잠긴 선착장 경사로 끝에서 가까스로 소맷부리를 잡은 듯했다. 하지만 거칠게 뿌리치는 듯 물보라가 일면서 두 사람은 더욱 깊은 곳으로 밀려갔다. 내가 그였다면 저렇게 아무 주저함도 없이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 수 있었을까. 결론은 ‘그렇게 못했을 것’이었다. 순찰차의 블랙박스에 잡혔다는 영상은 어떤 감동적인 드라마도 범접하지 못할 감동을 담고 있었다. 사실 경찰관이 관련된 비위 사건은 사흘이 멀다하고 신문의 지면을 장식한다. 경찰청이 밝힌 지난해 말 현재 경찰 규모는 전경과 의경을 제외하고 10만 2386명. 어떤 조직이든 숫자가 많다 보면 별별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의의 화신을 기대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법질서를 유지하는 책무를 가진 경찰이기에 아쉬움도 큰 것이다. 그럴수록 정 경감처럼 제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경찰관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를 보면서 이런 이름 없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을 지키고 있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우리나라가 결국은 다시 일어서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마움이 생겼다. 정 경감의 의거가 그저 한순간의 칭찬과 위로로 끝나서는 안 된다. 뒤에 남는 가족은 어떻게 살라고 안전장치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느냐고 그를 책망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가족을 돌볼 수 없었던 항일영웅의 후손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독립운동을 원망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정 경감의 부인은 “남편은 다시 태어나도 경찰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부인의 이런 신념이 변치 않도록, 또 정 경감을 ‘아바마마’라고 부르는 어린 딸을 비롯한 삼남매가 먼 훗날에도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민간의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포주인의 비위짱이 뒤틀리지 않게 적당히 구슬러 놓았더니 수전노 행세대로 값을 눅게 잡아 주지는 않았으나,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건네기로 약조해 주었다. 하긴 그들이 아니라면 울진 포구 염막에서 생산된 토염은 팔아치울 곳도 마땅치 않았다. 간혹 떠돌이 장돌림들이 울진 포구 토산염 좋다는 소문만 듣고 섣불리 염호들을 찾아와 흥정해 간 사례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십이령을 채 반도 넘기 전에 천도나 잔도(棧道)를 건너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평생 동안 돌이킬 수 없는 포병객이 되거나 열명길에 들어서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한조가 이끄는 소금장수 상단 아니면 고헐간에 소금섬을 넘겨줄 부상들도 흔치 않았다. 내성에서 가져온 무명짐을 넘겨주기로 약조하고 흥정을 여축없이 성사시킨 행수는 해거름에 염막을 나섰다. 염창의 지붕에서 벗겨진 이엉들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쉴 새 없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모래펄에 씻기는 파도 소리는 오늘따라 스산했다. 염전이 있는 수산천을 발행하여 도방이 있는 말래의 숫막까지는 등짐 없이 열불나게 걸어도 한식경이나 걸렸다. 포구에서 발행하여 구만리와 외고개를 지나거나 흥부에서 발행하면 쇠치재나 세 고개재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소금섬을 지고 걷는다면 아침 선반에 발행해서 말래 도방 거리에서 하룻밤을 유숙해야 할 상거였다. 그리고 십이령으로 접어들어 사흘이나 나흘이 되어야 허위단심 현동 저자나 내성 장시 어름에 당도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등에 짐바리가 없는 단출한 몸으로 걷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시절로 보아 칼바람이라고 부르는 동남풍이 불어야 할 때였다. 오금 밑을 지악스럽게 파고드는 한기는 뼈에 사무치도록 차가웠다. 그러나 등짐을 지지 않고 반나절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었다. 기분은 날아갈 것 같은데, 바람 때문에 길이 줄어들지 않았다. 소년 시절부터 사십 평생까지 등에 진 쪽지게를 벗을 날이 거의 없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장을 모른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자신을 낳아준 아비와 어미의 얼굴조차 기억에 없다. 소년 시절은 구걸로 한둔하면서 숱한 고초를 겪은 것만 기억에 선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울진 포구의 염전에서 내성 장시를 오가는 소금행상에서 작은 쪽지게를 지고 담꾼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이 사십 초반에 이르렀다는 것도 내성 태생이라는 것도 작반하던 늙은 부상들이 귀뜸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때까지 그의 생애는 오직 길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걷고 또 걸어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는 길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등 뒤 쪽지게에 얹은 소금짐은 바위를 지고 있는 것처럼 어깨와 허리를 짓눌렀다. 짓누르는 무게로 말미암아 허리는 자꾸만 아래로 구부러지고 찬 서리 머금은 된비알 치받이 벼룻길을 스친 흙냄새가 콧등에서 폐부에까지 진동한다. 모가지를 잔뜩 빼올리니 5리 길도 걷지 않아 뒷덜미가 둔기로 얻어맞은 듯 뻐근하게 울려온다. 걸음을 한 발짝씩 옮겨놓을 때마다 오금은 자꾸만 오그라들고, 천도에서 튀어 올라온 돌니를 밟을 때마다 등짐을 진 채로 기우뚱거려 수십 길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만 같아 가슴 졸인다. 오줌은 마려워 하복부가 팽팽하게 당겨오는데, 일행은 전혀 쉴 참을 주지 않는다. 쪽지게를 벼랑길에 세워두고 속시원하게 배설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나 그렇게 되면 일행은 벌써 저만치 앞장서버려 도무지 뒤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물미장을 겨드랑이에 끼고 오지랖을 움켜쥐고 걷노라면 등골에는 어느새 진땀이 흐르고, 발뒤축에서 흘러나온 피가 짚신을 적신다. 치받이길은 그런대로 버틸 수 있다지만, 내리받이길은 더욱 고통스럽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걷지 않으면 높이 쌓아올린 등짐이 머리 위에서 곧장 쏟아질 듯 위협하여 물미장으로 발부리 앞을 버텨주지 않으면 그대로 벼랑길로 곤두박질쳐 순식간에 어육이 되고 말았다. 5리만 내려가도 두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허리는 쥐어짜듯 저려온다. 십이령길 주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그 모두가 내리받이 벼랑길을 내려가던 행상들이 실족하여 열명길에 오른 연고 없는 무덤들이었다. 소금장수들의 허우대가 한결같이 껑충한 것은 모두 그러한 고통과 질곡을 참아내기 위함 때문일 것이었다.
  • 민주, 강령서 ‘한·미 FTA 재검토’ 빼고 우클릭 하나

    민주통합당이 ‘5·4 전당대회’에서 채택할 당 강령 및 정강정책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하는 것을 포함해 당의 노선을 중도 지향으로 대폭 보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도층의 이탈이 지난해 대선 패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반성에 따른 것으로, 성사될 경우 본격적인 ‘중도주의 노선’의 부활로 볼 수 있어 주목된다. 민주당 전대준비위원회 산하 강령·정책분과위는 15일 비공개 워크숍에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한반도 복지 등 3대 지향점의 기조를 유지하되 각론에서는 수정 보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는 “전면 재검토한다”는 문구를 “FTA 등 통상정책에 국익을 최우선시해야 하고 피해 부분 최소화 및 피해 분야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경제민주화 분야에서는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등은 그대로 살리면서 기업의 창의적 활동을 촉진, 지원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 분야에서는 ‘보편적 복지’라는 표현을 ‘복지국가의 완성’으로 바꿔 ‘선별적 복지’와 이분법적으로 대비되는 것을 피하기로 했다. 또 튼튼한 안보를 앞세운 안보 이미지를 강화하고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으로 예상돼 민주당이 당 정체성과 노선을 ‘우클릭’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진보 노선을 선명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전준위 전체회의 등을 거쳐 전대에서 새 강령과 정강정책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한편 전대준비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당명을 ‘민주통합당’에서 ‘민주당’으로 바꾸고 당헌 1조를 “당원을 중심으로 운영하되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라는 문구로 개정하기로 의결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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