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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집에 놀러와… 세계로 초대장 보낸 사람들

    우리 집에 놀러와… 세계로 초대장 보낸 사람들

    “고향에서 제2의 인생을 찾았습니다.” 제주 구좌읍 행원리에 사는 오혜성(55)씨는 9일 “누군가 우리 집에 온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주택 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에 등록한 새내기 호스트(집주인)인 오씨는 방문객(게스트)을 ‘친구’로 표현했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왔는데 어떻게 대접을 안 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갓 잡아온 문어와 한참 살이 오른 보말(‘고둥’의 제주도 사투리)을 식탁에 내어놓고 오손도손 대화를 하다 보면 밤새는 줄 모르고 시간이 훌쩍 간다고 했다. 오씨가 처음부터 민박업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그저 어렸을 때 살았던 제주가 그리워서 4년 전 외할머니 집을 헐고 새로 전원주택을 지었다. 2층짜리 지중해풍 주택으로 방은 2개만 만들었다. 오씨 부부 말고는 이용할 사람이 없어서다. 부산에서 사업을 했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내려와 이곳에서 바람을 쐬곤 했다. 그러다 지난해 오씨는 아내를 설득해 아예 제주로 이사를 왔다. 하지만 부부가 살기에는 적막했다. 한참 일할 나이에 하던 일을 그만두면서 무기력해지는 것도 느꼈다. 이에 그가 내린 결론은 집을 가지고 뭔가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공들여 지은 이곳에 사람들을 초대하면 활력이 생길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오씨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면 인원수마다 추가 비용을 받겠지만 우리는 머무는 사람 수에 관계없이 하루 숙박비만 받는다”며 “금전적 관계를 뛰어넘어 경험을 공유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은퇴 후 외롭지 않아요, 시니어 호스트 가정집을 빌려주는 ‘공유 민박’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를 한 50대 이상 시니어들에게 공유 민박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단절된 사회적 관계가 호스트와 게스트로 연결되는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며 “새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다. 우리나라에서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50대 이상 호스트 수는 1300명을 넘는다. 강원도 속초에서는 50·60대가 전체 호스트의 40%를 이룬다. 연령대별 호스트 증가 속도(전년 대비)에서도 50·60대(129%)가 가장 빠르다. 70대 이상도 92%의 증가율을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60세 이상이 전 세계 에어비앤비 호스트 중 10%를 차지한다. 넉넉하지 못한 재정 상황 때문에 부수입을 벌기 위해 호스트를 하는 경우(49%)도 많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활동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차원(43%)에서 방을 내주기도 한다. 지난해 7월부터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공유 민박을 하는 정현숙(52)씨는 “매일 여행 다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미국, 벨기에, 이스라엘, 홍콩, 대만 등 세계 각지에서 오는 외국인 손님들을 맞이하다 보면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이 그려질 때가 많다고 했다. 노인복지센터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는 정씨는 혼자서는 두 가지 일을 모두 감당할 수 없어 지금은 딸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그의 집이 ‘부산 마마앤도터’로 불리는 이유다. 정씨는 “나중에 요양보호사 일을 그만두고 나면 온전히 호스트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면서 “지금은 차근차근 배우며 준비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라고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맛있게 드셨어요?” 등 기본적인 영어는 할 수 있지만 대화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는 것이다. 정씨는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면서도 “외국인 손님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관광지를 둘러볼 때 영어를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호스트에서 게스트, 다시 호스트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사는 전제우(32)·박미영(31) 부부는 공유 민박을 하면서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같은 회사(SK텔레콤)에서 만나 2014년 결혼을 했을 때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들이었다. 그러다 같은 해 9월 신혼집의 방 한 칸을 외국인 손님에게 내주면서 새로운 세계를 맛봤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유목민(디지털 노마드)의 삶에 푹 빠진 것이다. 이듬해 어렵게 들어갔던 회사를 둘 다 그만뒀다. 양가 부모를 모신 자리에서 프레젠테이션도 했다. 세계시장과 국내시장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질의응답 시간도 가지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전했다. 단순히 현재의 삶으로부터의 ‘일탈’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위한 도전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들은 훌쩍 떠났다. 지난해 7월부터 올 7월까지 1년 동안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태국, 호주, 하와이, 남미, 멕시코, 쿠바, 미국, 유럽 등을 거쳤다. 말 그대로 세계일주를 하고 온 것이다. 숙소는 자신의 집 또는 주변 호스트의 집을 방문했던 외국 게스트들과 연락이 닿아 그들 집에 머물렀다. 지난 7일부터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대안예술공간 ‘이포’에서 여행 사진전을 열고 있는 이 부부는 “공유 민박이 일시적 관계에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유대가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왔다”면서 “공유 민박 등 공유 경제의 핵심은 ‘공유’지 ‘경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돈을 버는 문제로 접근하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들이 1년 동안 여행만 한 것은 아니다. 디지털 노마드를 추구하는 이들은 개발자답게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짤방(짤림 방지용 인터넷 이미지) 검색기, 여행(AO Trip), 좋카만(‘좋아요’를 부르는 카드 뉴스 만들기) 앱 등 평소 관심 있던 서비스를 내놓았다. 지난 8월부터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옥집을 구해 이곳을 공유 민박 장소로 쓰기로 했다. 현행법상 주인이 거주를 안 하는 민박은 불법이기 때문에 창천동에 있는 집은 정리할 예정이다. 이들은 “세계 여행을 하면서 한국적인 걸 많이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호스트 역시 ‘한국의 얼굴’이란 마음가짐으로 외국인들과 다양한 한옥 체험을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을 입히다… 미술관이 된 민박집 예술인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홍대에서는 이색적인 장면도 연출된다. 공유 민박 최초로 게스트하우스 공간을 미술 전시관으로 꾸몄다. 조각가 이길래·김민기, 설치미술가 송송, 도예가 한정은이 에어비앤비 호스트 6명과 협업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지난 7월부터 3곳의 게스트하우스가 순차적으로 새 단장에 나섰다. 다음달부터 한정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는 ‘민즈 하우스’가 마지막으로 문을 연다. 민즈 하우스 호스트인 이민정(39·푸드 칼럼니스트)씨는 “홍대를 찾는 외국인 게스트 상당수가 영화감독 등 예술인”이라면서 “이들에게 한국의 다양한 콘텐츠와 작가를 널리 알리고 싶어 이런 기획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길래 등 국내 유명 작가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아트 디렉터(미술평론가 김병수)가 발벗고 나서준 덕분에 첫출발이 성공적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시 비용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후원한다. 이씨는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으면 좋겠다”며 “공유 민박이 한국의 예술을 알리는 또 하나의 창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각가 김민기와 함께 작업한 ‘우&우 하우스’ 호스트인 최우성(38·이벤트 기획업)씨는 “이달부터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면서 “외국인들의 관심이 기대 이상으로 뜨겁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우버·에어비앤비도 세금폭탄 맞나

    “아마존·스타벅스가 빈의 소시지 노점보다 세금 덜 내” 글로벌 세수(稅收) 전쟁이 시작됐나? 유럽연합(EU)이 ‘세금 회피’ 애플에 천문학적인 세금 추징 결정을 내리자 호주와 오스트리아도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기업에 대해 추가 과세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호주는 2일(현지시간)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기업이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벨기에 등 법인세가 낮은 유럽 국가로 수익을 이전하는 만큼 추가 세금 부과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시드니모닝헤럴드(SMH)가 보도했다. 우버는 지난해 호주 상원의 법인세 회피 관련 조사에서 호주에서 얻은 수익 중 25%를 네덜란드의 본사로 이전해 왔다고 시인했다. 지난달 호주 국세청이 1만 2000명의 우버 운전자에 대한 10%의 부가세 부과 방침에 반발해 소송을 내는 바람에 우버는 현재 호주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다. 이 때문에 EU가 지난달 30일 애플에 세금 130억 유로(약 16조 2500억원)를 더 내라고 결정한 후 다른 국가도 글로벌 기업에 대한 과세에 열을 올리며 ‘세수 전쟁’이 시작됐다고 SMH가 분석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애플의 ‘더블 아이리시 더치 샌드위치’ 기법을 활용해 세금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은 “호주에서 100달러 운임을 받으면 네덜란드 자회사 매출로 잡고 우버 운전기사 몫과 부대 비용을 뺀 10달러의 이익이 생긴다면 9.8달러를 로열티 형태로 버뮤다 페이퍼컴퍼니로 보내고 남은 이익 20센트 중 25%에 해당하는 5센트만 법인세로 네덜란드 정부에 납부한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도 글로벌 기업이 소시지 노점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며 세금 추징 가능성을 내비쳤다. 크리스티안 케른 총리는 “빈의 모든 소시지 노점과 카페가 글로벌 기업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낸다”며 “이는 아마존과 스타벅스 등이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과 구글은 각각 오스트리아에서 매출을 1억 유로 넘게 올리고 있지만 오스트리아에서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인세율이 낮은 EU 회원국이 스스로 EU 구조를 약화시켰다”며 조세 회피처로 알려진 아일랜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을 비판했다고 BBC는 소개했다. 한편 아일랜드는 애플에 130억 유로를 추징해야 한다는 EU 결정에 불복해 항소키로 했다. 엔다 케니 총리는 이날 내각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마이클 누난 재무장관은 “기업에 (아일랜드) 세제의 확실성을 제공하고 회원국의 세정 주권에 대한 EU의 침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구글엔 벌금·애플엔 법인세 추징… EU의 對美 IT전쟁

    구글엔 벌금·애플엔 법인세 추징… EU의 對美 IT전쟁

    유럽연합(EU)이 세계 정보기술(IT) 시장 패권을 놓고 미국 IT 기업들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구글에 대해 반독점법 위반 결론을 내리고 천문학적 벌금 부과를 예고한 데 이어 애플에 대해서도 “10년 넘게 감면받았던 법인세 130억 유로(약 16조 2100억원)를 반납하라”고 결정했다. 페이스북 역시 자회사인 ‘와츠앱’(무료 메신저 서비스)에 대한 개인 전화번호 정보를 활용하려 하자 사생활 보호를 근거로 조사 대상이 됐다. 아마존과 넷플릭스, 스카이프, 우버 등 미국의 어지간한 IT 기업은 모조리 EU 규제의 사정권에 들어와 있다. 이처럼 유럽이 미국과의 무역 갈등을 감수하며 실리콘밸리 기업에 거액의 ‘세금 폭탄’을 물리려는 데에는 조만간 구체화될 ‘유럽 디지털 단일 시장’ 구축을 앞두고 판을 흔들어 ‘EU판 구글’, ‘EU판 우버’ 등이 생겨나게 하겠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우버·넷플릭스 등 웬만한 美 IT기업 EU 사정권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EU와 실리콘밸리 기업 간 싸움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현재 시장의 가장 큰 관심은 EU와 구글 간 대결에 쏠려 있다. 최근 EU는 구글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구글이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에 검색 및 지도 서비스를 기본 탑재해 이용자의 선택권 폭을 줄였고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 이외의 운영체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 왔다는 것이다. 유럽 인터넷 검색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구글이 경쟁사로 갈 트래픽을 자사 서비스로 우회시켜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EU가 구글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최종 결론 내릴 경우 구글은 지난해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최대 74억 5000만 달러(약 8조 5000억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EU는 구글의 탈세 행위에 대해서도 칼날을 겨누고 있다. 애플과 마찬가지로 유럽 세금 체계의 허점을 악용해 구글이 내야 할 법인세를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잊혀질 권리’(개인이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자신의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놓고 구글과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애플과도 전면전에 나섰다. EU는 지난달 30일 아일랜드에 “애플로부터 최대 130억 유로의 법인세를 추징하라”고 결정했다. EU가 단일 기업에 추징한 세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이 12.5%인 데 비해 애플은 2003년 매출의 1%만 세금으로 냈고, 2014년에는 0.005%만 냈다고 보도했다. ●페북·아마존 개인정보 보호 위반·담합 조사 애플이 아일랜드 세무 당국과 짜고 법인세 납부액을 줄여 왔다는 게 EU의 판단이다. 이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1일(현지시간)아일랜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EU 결정에 화가 나고 실망스럽다”면서 “법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적 결정인 만큼 결국 번복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미국에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챙겨뒀다”며 EU의 조치에 맞서 유럽에 쌓아 둔 현금 일부를 미국에 송금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 밖에도 EU는 페이스북(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과 아마존(법인세 담합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섰다. 공유경제의 대표 주자인 우버(차량공유)와 에어비앤비(숙박공유)도 유럽 각국 정부의 줄소송으로 어려움을 겪다 최근 EU의 규제 완화 권고로 다소나마 숨통이 트였다. WSJ은 2010~2014년 EU 집행위원회가 81개 기업을 조사해 30건의 반독점 위반 판결을 내렸고 이 중 21개가 미국 기업이었다고 전했다. EU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반독점법 위반 조사가 미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실리콘밸리 업체들을 ‘벼르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는 충분한 상황이다. 특히 EU가 구글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결론을 내기 위해 5년 넘게 조사해 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EU와 미국 간 IT 전쟁을 ‘예정된 기획’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이 때문에 EU가 유독 미국 업체에 대해 철퇴를 가하려 하는 가장 큰 이유로 조만간 가시화될 ‘유럽 디지털 단일 시장’에서 역내 기업의 생존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U가 10년 가까운 구상을 거쳐 지난해 5월 발표한 이 전략의 핵심은 28개 EU 회원국 간 모든 디지털 장벽을 허물어 미국에 뒤진 디지털 경제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유로스탯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EU의 인구는 약 5억 1010만명으로 미국(3억 2140만명)을 크게 앞서며 국내총생산(GDP)도 19조 350억 달러로 미국(18조 5581억 달러)과 비슷하다. ●회원국 언어 이질성 등으로 구글 대항마 쉽지 않아 하지만 나라별로 IT 관련 법령이나 규제가 제각각이다 보니 미국과 대등한 시장 규모를 갖추고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역내 기업이 나오기 어려워 미국 IT 기업에 안방을 내주고 있다는 게 EU의 생각이다. 실제로 EU 소비자 중 EU 내 다른 나라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는 비중은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EU 내 중소기업이 역내 다른 국가에 물건을 파는 비율도 전체의 7%에 머물고 있다. 온라인 서비스 플랫폼을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회원국의 디지털 시장을 하나로 묶는 동시에 기존 미국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도 막아 EU 안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게 EU의 속내다. 기존 기술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창업기업)에 거대 시장에 접근할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EU 28개 회원국의 디지털 시장을 통합하면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약 3400억 유로(약 403조원) 증가하고 일자리 380만개가 새로 생겨난다. 행정비용도 15~20% 줄여 장기적으로 EU 전체 GDP의 3% 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반대로 미국은 유럽에서 디지털 단일 시장이 출범해 역내 IT 기업이 성장할 경우 자국 기업은 물론 비유럽 IT 기업의 시장 진입이 매우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구글 몰아내도 대체자 못 만드는 EU의 고민 하지만 유럽 내부에선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몰아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EU에서 아무리 실리콘밸리 업체를 규제한다 해도 이를 대체할 역내 기업이 생겨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크다. 창업 관점에서 볼 때 유럽은 미국에 비해 세금과 고용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금융 시스템도 투자보다는 은행 대출을 중시해 벤처 육성에 잘 나서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 유럽은 EU 결성 당시부터 언어적 이질성과 회원국 간 경제 격차, 개별 규제 등으로 이해 관계가 얽혀 구글 등에 맞설 거대 IT 기업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애초 구글 같은 기업을 만들 토양이 아닌데 구글부터 몰아내려 하면 유럽의 IT 시장은 세계의 흐름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英 EU 탈퇴 땐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 폐기될 수도 EU가 디지털 단일 시장을 출범시키려면 나라마다 다른 계약법과 저작권법, 세제, 소비자 보호 규정 등 관련 법규를 모두 손봐야 하고 이동통신 환경도 모두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단시일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여기에 역내에서 IT 환경이 가장 앞선 시장으로 평가받던 영국이 브렉시트로 EU에서 빠져나갈 경우 디지털 단일 시장 전략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ICT, 농부가 되다] “임파서블 버거, 농업 판도 바꾸는 파괴적 혁신”

    [ICT, 농부가 되다] “임파서블 버거, 농업 판도 바꾸는 파괴적 혁신”

    일반 소고기 햄버거와 맛 비슷 온실가스는 87%나 적게 배출 “기존 업체와 마케팅 전쟁 각오” 최근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꾼 ‘파괴적 혁신’ 기업 1~2위로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선정했다. 우버는 전 세계 택시업계를 뒤흔든 차량공유서비스 회사로 현재 60여개 국가에서 서비스 중이다. 많은 도시에서 서비스 철회를 요구하는 택시 회사들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다. 여행자들에게 현지인들의 남는 방을 제공하는 에어비앤비(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전 세계 191개 국가에서 100만곳 이상의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 역시 기존 숙박업계의 불만이 커지며 줄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미국 스마트팜 업체들도 전통적 방식으로 시장을 이끄는 ‘농업 거인’들과의 전쟁을 각오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유기농 채소 시장 혹은 채식주의자용 인조고기 등 틈새 시장이나 공략하려고 뛰어든 게 아니라며 글로벌 농업 판도 자체를 바꾸기 위한 자신들의 ‘파괴적 혁신’을 강조했다. 미국 뉴욕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는 순식물성 햄버거인 ‘임파서블 버거’를 생산하는 임파서블 푸즈의 한국계 최고재무책임자(CFO) 데이비드 리는 “애초 이 제품 자체가 (채식주의자용이 아니라) 일반 육류 버거 애용자들을 빼앗아 오기 위해 만든 것”이라면서 “전통적 방식으로 햄버거를 만들어 온 프랜차이즈 업체 등 세계 모든 업체들과 일전을 벌일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 버거는 일반 소고기 햄버거와 맛은 같으면서도 토지는 95%, 물은 74% 적게 사용하며 온실가스도 87%나 줄여서 배출한다. 콜레스테롤도 거의 없어 건강에도 유익한 이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안다면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도시농업 스타트업인 ‘에어로팜’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마케팅경영자(CMO) 마크 오시마도 “조만간 기존 (노지 재배) 생산업자들과 한바탕 유통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그럼에도 결국에는 농약과 비료 등에 노출되지 않아 순수한 맛을 간직한 우리 제품을 소비자들이 찾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마트팜 스타트업 ‘크롭원 홀딩스’의 최고경영자(CEO) 소니아 로 역시 “중요한 건 지구의 환경과 소비자의 선택권이지 전통적 생산자들의 기득권이 아니다”라면서 “(우버나 에어비앤비가 그랬듯) 스마트팜 업체들도 결국 각국 정부의 농업 보조금 정책들과 법정에서 싸워 가며 시장에 진출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 사진 실리콘밸리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최저연봉 8000만원’ 1년…월급쟁이의 세상을 뒤집었다

    ‘최저연봉 8000만원’ 1년…월급쟁이의 세상을 뒤집었다

    지난해 초 미국의 신용카드 결제시스템회사인 '그래비티 페이먼트'는 파격적인 내용을 밝히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연봉 110만 달러(약 13억원)를 받는 CEO 댄 프라이스가 자신의 연봉을 7만 달러(약 8000만원)로 삭감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직원 120명 중 7만 달러 이하의 연봉을 받는 30명의 연봉을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올렸다. 일부에서는 '세상의 관심을 받기 위해 한 소영웅주의'라며 격하하기도 했고, 그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게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세계 대다수의 월급쟁이들은 마냥 부러움의 시선과 자신들의 직장에서도 도입되기를 바라는 희망 섞인 기대감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CEO 댄 프라이스의 이러한 파격적 조치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미 프린스턴대 교수의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실험적으로 기업 현장에 도입한 첫 번째 시도이기도 했다. 디턴 교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연봉 7만5000달러가 될 때까지만 행복감이 늘어나고, 그 이후에는 소득이 행복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래비티 페이먼트'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을까. 프라이스 CEO는 12일(현지시간) 미 NBC뉴스 '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선사업을 하듯, 혹은 나를 희생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며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일종의 '장기적 투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100% 사실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사실인 부분도 있을 것"이라면서 "비판적 의견을 통해 배우는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연봉 7만 달러 실험 이후 실제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맨먼저 직원들의 이직률이 뚝 떨어졌고 만족감은 올라갔다. 2011년부터 계속 늘어나던 이직률은 2013년 13.2%까지 치솟았지만 지난해 -18.8%로 대폭 낮아졌다.(표 참조) 또한 연봉이 올라가면서 회사 근처 시애틀에 집을 구하는 직원들도 생기면서 출퇴근 시간이 짧아졌고, 퇴근 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많아졌음이 확인됐다. 프라이스 CEO 역시 7만달러 소득에 맞추기 위해, 기존 집은 에어비앤비(일종의 민박업체)에 빌려줘서 임대수입을 얻고, 자신은 직장 근처 게스트하우스 방을 구해 지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래비티 페이먼트에 입사하겠다는 사람들의 원서가 3만장이 넘게 들어왔다. 이중 50명의 직원을 새로 뽑았다. 또한 한 해 1~2회 정도이던 직원들의 출산율이 10명으로 확 늘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준 부수적 혜택이다. 만족도가 높은 직원들이 이뤄낸 업무 성과와 함께 개선된 기업이미지가 결부돼 경영상황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동안 4155명의 새로운 고객을 확보했다. 이는 55% 증가한 수치로 연평균 5% 정도의 증가율이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신장세다. 또한 9%에 이르던 고객 이탈율은 5%대로 감소됐다. 매출 증가는 당연한 귀결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도보다 35% 상승한 2180만 달러(약 240억원)였다. 수익 역시 650만 달러(약 72억원)로 전년도(350만 달러·약 39억원)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프라이스 CEO는 "경제적 효과, 즉 돈 문제만을 갖고 바라보는 게 가장 쉬운 접근이겠지만, 우리가 진짜 주목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의 증대"라면서 '연봉 7만 달러 실험'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는 디턴 교수의 연구 결과에 충분히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마냥 순풍에 돛 단듯 순항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회주의자'라는 비난까지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공동창업자였던 형과의 소송, 전 부인의 가정폭력 고소 등 '연봉 7만 달러 실험'의 비본질적 요소긴 하지만 부정적인 걸림돌은 존재한다. 프라이스 CEO는 "많은 어려움과 부정적 의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할 일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는 기업의 대표이자 기업계의 리더 중 한 사람으로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인간과 사회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늦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진화하는 집, 피스틀리·소파사운즈를 아시나요?

    집에 대한 개념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먹고 자던 공간이던 집이 쉬고, 즐기고, 보여주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다시 공연하는 공간, 빌려주는 공간으로 다양하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나의 집, 혹은 집에서 사용하지 않은 공간을 여행자에게 대여하는 숙박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는 이미 전세계에 여행 숙박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만 1만6000개의 숙소가 에어비앤비에 등록돼 있으며, 지난해 에어비앤비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숙박한 외국인 관광객은 50만 명에 달한다. 집이 공유의 개념으로 진화한 것이다. 에어비엔비에 이어 집을 활용한 다른 서비스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음식판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를 표방하는 피스틀리도 이런 서비스 중 하나다. 피스틀리를 이용하면 레스토랑 테이블을 예약하듯 다른 사람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예약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워싱턴DC·시카고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별장 대여에 특화된 ‘VRBO’, 청소 및 침대 정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미엄 집 대여 서비스 ‘원파인스테이(Onefinestay)’, 회의실이나 사무실을 시간 단위로 대여해 주는 ‘리퀴드 스페이스(LiquidSpace)’ 등 저마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표방하는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단순히 집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커뮤니티 공연 기획 서비스인 소파사운즈도 등장했다. 가정집 거실 소파에 앉아 적은 인원이 음악을 감상하는 소규모 공연을 주로 기획해 이름도 소파사운즈다.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소규모 공연 전문 기획사로 시작해 현재 뉴욕, 베를린, 뭄바이 등 200개 도시로 퍼졌으며, 2014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첫 공연을 열었다.이제 집이 나만의 공간으로 남는 시대는 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공유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또한 집이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오늘을 행복하게 살겠다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집은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함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은 “특별법이 추진되어 제도적으로 지원된다면 집을 공유하는 게 더욱 확산될 것이다”고 전하면서 “집으로 휴가를 떠나고 집에서 나만의 음악공연을 보는 시대가 됐다.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고, 보여주고, 자랑하는 공간으로 집의 개념이 바뀌는 미래 트렌드가 빠르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론] 서비스산업, ‘디지털 혁명’에 눈감고 있다/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시론] 서비스산업, ‘디지털 혁명’에 눈감고 있다/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나라 경제가 위기다. 1960년대 경제 개발을 시작한 이래 1970년대 1차 석유파동과 1997년 외환위기를 빼고는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상회하거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도 항상 수위를 다투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OECD 평균 이하 수준이 됐다.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기업들의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지면서 5년 생존율이 20%도 안 되는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 국민은 OCED 국민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긴 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다. 청년 실업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경제 악화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경제 문제의 원인과 처방에 대해 명확한 진단이나 사회적 공감대 없이 표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과 국가는 전략적 방향이 분명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전략 이론에서는 ‘틀린 전략’이라도 ‘무(無)전략’ 보다 좋고, 상충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을 최악이라고 한다. 시장 상황에 따라 기업은 성장 위주의 전략을 취할 수 있고, 원가절감 등을 통한 생산성 전략을 추구할 수도 있다. 통계적으로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한다는 기업들의 성적이 가장 나쁘다. 이유는 조직원이 서로 상충되는 행위를 각자의 편의대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지금 규제를 개혁하고 시장 경쟁을 활성화할 때인가, 아니면 왜곡된 시장이어서 시장을 규제하고 통제를 해야 할 때인가. 이 질문에 우리는 내부만 들여다봐서는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지금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큰 변화의 하나가 서비스 산업의 급격한 디지털화다. 필자는 지금 미국의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주최한 세계 창업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다. 우버와 에어비앤비, 스트라이프 창업가와 사회적기업가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 창업과 산업의 혁신에 열광하고 있다. 우버는 차량 소유를 줄이고 있다. 합승을 자유롭게 하면서 서민들에게 택시가 지하철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숙박산업은 에어비앤비가 디지털화하고 있다. 핀테크 산업은 어떤가. 기존 금융사들이 외면했던 서민들에게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들은 더이상 허가제 뒤에 숨어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로 가고 있다. 경제정책 실패로 화폐 가치가 불안정한 일부 국가의 국민들은 정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디지털 화폐 ‘비트코인’을 택해 경제 기반을 스스로 다지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와 전기자동차의 결합은 이제 자동차 산업이 더이상 기계 산업이 아니라 디지털 산업이고, 배터리 업체가 주도하는 화학 산업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온디맨드’(수요가 결정하는 시스템) 혁명이 대한민국에서만 잠잠하다. 소위 상생과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산업의 신규 진입과 경쟁이 철저히 봉쇄됐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큰 변혁의 시간에 새로운 기회가 존재한다. 전자제품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점에 일본은 실기했고, 우리는 기회를 잡았다. 지금 세계는 서비스 산업의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에 과거의 일본처럼 ‘과거의 사고’에 머물러 있다. 정치권은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한 채 대증요법에 가까운 규제를 남발하고 있다. 철학과 시대 정신이 빈곤한 공무원들도 영혼 없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많은 규제들을 보자.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산업을 할당하고 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기업과 소비자가 결정할 가격과 마케팅 비용을 정부가 결정하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기업의 가격 담합을 강제하고 있다. 모두 골목 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유통산업의 경쟁을 막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제들이다. 시장은 활성화돼 산업 혁신을 이끌어 가야 하고, 분배는 조세 정책과 복지후생 프로그램에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분배를 시장에서 실현하려고 하니 서비스산업의 디지털 혁명은 요원하다. 지금 우리 모습은 마치 전자기계의 디지털화를 수수방관했던 일본의 그 모습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가 받을 고통에 대해 변명할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할 때다.
  • [씨줄날줄] 기본소득 300만원 보장 논란/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기본소득 300만원 보장 논란/임창용 논설위원

    지난해 12월 ‘기본소득’이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언론이 ‘핀란드에서 조만간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는 보도를 쏟아내면서부터다. 핀란드 정부가 국민에게 월 80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핀란드 사회보험공단은 올해 11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일정까지 밝혔다. 국내외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논쟁이 불붙었다. 영국의 사회 분야 싱크탱크 네스타는 올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10가지 트렌드 중 하나로 기본소득을 꼽기도 했다. 올해부터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나라가 나올 것으로 본 것 같다. 스위스가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5일 실시한다. 성인에게는 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 미성년자에게는 월 650스위스프랑(약 78만원)을 보장해 주는 게 핵심이다. 기본소득보다 적게 버는 사람에게 차액만큼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여론조사는 6대4 정도로 부결을 점친다. 부결되면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첫 국가는 11월 투표가 실시되는 핀란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핀란드에선 7대3 정도로 찬성 의견이 많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조건 없이 국민 모두에게 일정액 이상 지급하는 소득이다.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도록 하자는 취지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해 온 ‘지식인 모임’은 “무직자도 기본적 생활을 보장받아야 하고, 직업이 있어도 생계를 위해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생계가 보장된 상태에서 원하는 일을 해야 경쟁력과 생산성, 인간의 품격이 올라간다는 논리다. 반대 측에선 노동 의욕을 떨어뜨리는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받아친다. 두 나라 말고도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는 나라는 느는 추세다. 네덜란드에서 위트레흐트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기본소득 실험을 검토 중이다. 프랑스에서도 지난해 남부의 아키텐주 의회가 일종의 기본소득 실험안을 통과시켰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빈곤의 덫을 벗어나 자신에게 맞는 안정된 직업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인들도 기본소득 도입에 긍정적이다. 인공지능 같은 4차산업을 이끄는 이들이다. 에어비앤비에 투자한 샘 알트만 Y컴비네이터 최고경영자, 페이스북 투자자 마크 앤드리슨이 대표적이다. 이유는 다르다. 테크노 거인인 그들의 생존 기반, 즉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인공지능과 로봇 확산으로 인한 일자리 급감에 대비하려면 기본소득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대량 실업이 공동체 파괴를 초래해 자본주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겁을 먹고 있는 듯하다. 스위스 국민투표 이후 기본소득 논란은 더 뜨거워질 것 같다. 우리의 ‘무상복지’ 논란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사회주의식 실험의 성패가 궁금하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수요 에세이] 이젠 민관 협업이다/전성태 행정자치부 창조정부조직실장

    [수요 에세이] 이젠 민관 협업이다/전성태 행정자치부 창조정부조직실장

    4년 전 미국 동부에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했을 때 많은 주택이 파괴됐다. 이재민 구호는 일차적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3만명을 웃도는 이재민이 잠잘 곳을 신속하게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숙박 분야 공유경제 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재난 땐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에어비앤비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이 기업은 이재민들에게 숙소를 무료로 제공할 자원봉사자를 찾아 연결하고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정부와 기업의 협업이다. 지난달 22일 유엔 본부에서 175개국 대표가 ‘파리 기후변화 협정서’에 서명했다. 앞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사상 최대의 민관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 외에도 부의 양극화, 저출산과 고령화 등 국가가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에 직면했다.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잘 해결하기 어렵고, 민간의 기술력과 정부의 행정역량이 융합되어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데 모두가 공감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 보이스피싱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였다. 지난해 상반기 피해액은 월평균 261억원이나 된다. 같은해 11월 금융감독원은 민관협업을 추진했다. 어느 스마트폰에든 ‘T전화’라는 앱을 설치하면, 의심되는 전화가 걸려올 때 문자와 음성으로 미리 알려주고 자동으로 녹음해 쉽게 신고할 수 있게 됐다. 신고받은 ‘그놈 목소리’를 공개해 유사 피해를 예방할 수 있게도 했다. 이렇게 금감원이 SK텔레콤과 협업한 이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월평균 126억원으로 절반 이하가 됐다. 산림청은 지난해 도시 숲 686곳을 조성했다. 정부가 부지를 마련하자 기업과 시민단체가 나무 15만 그루를 심었고, 시민 43만여명이 숲 가꾸기에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삼성화재는 4년 전부터 임직원이 모은 기금으로 20개 학교에 숲을 조성했고, 올해도 산림청과 연계해 6개 학교에 숲을 만든다. 이처럼 정부와 민간의 벽을 허물자 많은 기업과 국민이 사회공헌과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서비스 만족도 역시 높아졌다. 공공데이터 개방에서도 민관협업이 날개를 달고 있다. ‘카카오내비’(김기사), ‘굿닥’, ‘직방’, ‘스마트택배’ 등은 정부가 보유한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창업에 성공한 사례들이다. 우리나라의 공공데이터 개방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환경부가 제공한 국립공원 탐방로의 360도 영상은 카카오의 ‘다음지도’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내부의 유물은 ‘네이버 뮤지엄’에서, 제주도의 세계자연유산은 ‘구글 컬처럴 인스티튜트’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정부와 기업이 협업함으로써 국민은 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하고 정부는 창업을 지원함과 동시에 예산도 절약할 수 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민과 관의 협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민간은 창업과 성장의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가 새롭게 생겨날 것이다. 더불어 정부는 대처하기 힘들었던 많은 사회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민관협업이 꽃피우고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제 정부와 기업, 학계, 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민관 간 협업 네트워킹’을 만들어 모두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는 특히 빅데이터와 관련된 민관협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공 부문의 빅데이터가 민간 부문 빅데이터와 결합하고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이 융합되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빅데이터 활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인류에게 가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보고(寶庫)임에 틀림없다. 최근 클라우드와 슈퍼컴퓨팅 확산 등 정보기술 발달에 발맞춰 정부에서는 공공 빅데이터 기반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니 앞으로 공공과 민간의 빅데이터 활용을 통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즐거운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정부는 2013년부터 국민에게 행복을 안기는 ‘정부 3.0’을 구현하기 위해 기관 간 협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왔다. 지금까지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간의 공공협업 위주였다면 앞으로는 기업과 학계,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더 큰 민관협업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 민간의 앞선 기술과 창의력이 정부 3.0 노력과 하나로 된다면 현실과 미래에 닥칠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우리 국민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 노년층 ‘인테리어 투자族’

    노년층 ‘인테리어 투자族’

    은퇴후 재테크 수단으로 임대 → 인테리어 투자 급증 여행객·에어비앤비 등 ‘집테크’ 개념 수익 창출 지향 은퇴한 노년층의 ‘집’에 대한 관심이 ‘인테리어 투자를 통한 수익 창출’에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 재테크 방법이 부동산 임대에서 인테리어 투자로 옮겨 가는 추세다. 18일 이노션이 발표한 ‘생애주기별 인테리어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노년층의 인테리어 관련 소셜 데이터 1만 1000여건은 수익, 투자, 시공, 전원주택, 단독주택, 귀촌, 펜션, 테라스하우스 등의 연관어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여행객, 게스트, 공유하다, 에어비앤비 등의 단어가 함께 포함돼 인테리어 개선을 통한 임대 공간을 마련, ‘집테크’ 개념의 수익 창출을 지향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학원, 센터, 교육비 등의 연관어도 많은 점으로 볼 때 노년층이 직접 나서 집짓기 기술을 배우고 시공에도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노션 관계자는 “은퇴 후 부동산 대신 인테리어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실용주의적 ‘스마트 실버’ 계층이 늘고 있다”면서 “젊은 관광객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로 숙박을 제공하는 ‘시니어 호스팅’ 사업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싱글족과 신혼부부의 인테리어 관심은 ‘온라인 집들이’에, 자녀를 둔 세대는 ‘엄마의 만족과 로망’을 실현하는 데 모아졌다. 분석 결과 이들은 컬러, 가격, 조명, 벽지, 온라인 집들이, 후기, 자랑하다 등이 주요 연관어로 떠올랐다. 전·월세에 살더라도 적은 비용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물을 공유하고 자랑하는 ‘온라인 집들이’는 새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노션 내 소셜 빅데이터 분석 전담 조직인 디지털 커맨드 센터는 지난 1년간 주요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약 55만건의 인테리어 관련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수집해 생애 주기와 연관된 6만 1502건을 분석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마루180·구글 캠퍼스 서울… 국내 스타트업 요람 가보니

    마루180·구글 캠퍼스 서울… 국내 스타트업 요람 가보니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아니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류의 말은 스타트업 창업자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해 어느덧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스타트업’이란 용어는 기존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 기업을 말한다. 스타트업은 초기 비용이 10억원 이상 들어가는 벤처와 달리 소규모, 저비용으로 창업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전 세계 300여개 도시에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Uber)나 기업가치가 세계적 호텔 체인인 힐튼과 맞먹는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 모두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스타트업 주변에는 그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단체들이 있다. 스타트업 요람이라고 불리는 아산나눔재단의 ‘마루180’(MARU180), 구글의 ‘캠퍼스 서울’,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디캠프’(D camp), 중소기업청 산하 ‘팁스창업타운’, 네이버의 ‘D2 스타트업 팩토리’ 등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임대료가 가장 큰 부담인 스타트업에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고 무엇보다도 스타트업의 자생적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 공간들은 일종의 공동 사무실을 뜻하는 ‘코워킹스페이스’와 달리 선별된 스타트업에 공간뿐 아니라 교육, 마케팅, 홍보, 투자 등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타트업 성지’로 부상 중인 테헤란로 서울 강남구 강남역에서 삼성역을 잇는 길이 4㎞, 너비 50m의 왕복 10차선 테헤란로. 이 일대는 2000년대까지 정보통신 기업과 벤처 기업의 메카로 군림했다. 2010년 이후 테헤란로는 마이크로소프트, 네오위즈, 넥슨코리아, 엔씨소프트 등이 빠져나가면서 점점 활기를 잃어갔다. 하지만 최근 테헤란로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엿보인다. 역삼동에 ‘마루 180’, ‘D2 스타트업 팩토리’, ‘디캠프’ 그리고 대치동에 ‘구글 캠퍼스 서울’ 등 스타트업 요람들이 문을 열면서 미래를 위한 태동을 시작했다. 아산나눔재단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마루180은 스타트업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입주 공간이다.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을 뜻하는 마루에 ‘역삼로 180’의 180을 덧붙였다. 개관 2주년을 맞은 마루 180은 그동안 86개 스타트업을 지원했다. ‘정주영 에인절투자기금’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한 돈만 1921억여원에 이른다. 현재 마루 180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은 10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등록된 카드를 접촉시켜야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오르자 마치 새로운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전동휠을 타고 복도를 누비는 직원부터 족히 2m는 될 것 같은 태권브이 모형이 사무실 한가운데 놓여 있다.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넘쳐나는 것도 마루 180의 특징이다. 서로 다른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제품 개발 진행 상황을 묻거나 투자받은 기관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다. 계단, 벽 등 마루 180 곳곳에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큰일에도 전력을 다한다’와 같은 고 아산 정주영 회장의 말들이 마음을 다잡게 한다. 5층에 나무들과 잔디가 어우러진 옥상 정원은 냉혹한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입주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 개발에서 시험까지 한곳에서 가능 대치동 오토웨이타워 지하 2층에 지난 5월 들어선 구글 캠퍼스 서울에는 9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창업한 지 3년 이내, 직원 수 2~8명의 스타트업에만 입주 자격이 주어진다. 구글이 말하는 ‘캠퍼스’는 작업공간, 회의실, 통신망, 카페테리아 등 물리적 공간과 구글 전문가 멘토링, 투자자 연결, 교육 프로그램 등이 함께 제공되는 곳을 의미한다. 캠퍼스 서울은 영국 런던,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이어 세 번째이며 아시아에서는 최초다. 지하 2층이라 갑갑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다. 캠퍼스 서울에는 중정(中庭)과 비슷한 테라스가 있어 햇빛을 맘껏 즐길 수 있다. 로비에서 등록하면 발급되는 빨간색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캠퍼스 투어에 나설 수 있다.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안마 기계가 놓은 방이었다. 캠퍼스 입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다. 입구 정면 긴 테이블에는 삼성, LG, 애플 등에서 만든 스마트폰은 물론 웨어러블 기기, 드론까지 구비된 디바이스랩이 마련돼 있다. 스타트업들에서 만든 앱 등이 여러 종류의 기기에서 작동이 되는지 한자리에서 즉시 시험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캠퍼스 서울의 가장 큰 특징은 스타트업별 칸막이가 없다는 점이다. 브리짓 빔 구글 창업지원팀 수석매니저는 “창업의 길은 고독하고 힘든데 캠퍼스에 합류하면서 얻는 가장 큰 혜택은 ‘함께 꿈을 향해 뛰어갈 동료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스타트업 간 교류하면서 아이디어를 좀 더 구체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업자에 입소문… 입주 경쟁률 17대1 마루 180에는 인공지능에 기반한 모바일로 개인 일정을 관리하는 앱인 ‘코노’(KONO)를 만든 코노랩스, 세계 최초 클라우드 기반의 모바일 영상 합성 엔진 기술인 얼라이브를 만든 매버릭, 사용자의 피부 상태를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앱을 통해 피부 관리 팁을 제공하는 웨이웨어러블 등이 입주해 있다. 선발 심사를 거쳐 입주사를 뽑는데, 경쟁률이 17대1에 이른다. 마루 180의 인기는 든든한 지원에 있다. 입주사가 되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고 500만원 상당의 홍보 이벤트를 벌일 수 있도록 실비를 지원한다. 또 해외 출장 시 사무공간과 에어비앤비 숙소를 할인 제공한다. 교육과 이벤트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지난 2년간 마루 180에서 열린 스타트업 교육, 네트워킹 이벤트는 모두 769건, 누적 방문자는 32만 9000명에 달한다. 대표적인 행사로는 ‘쫄지마! 창업스쿨’, ‘스타트업 그라인드’ 등이다. 또 1대1 멘토링 프로그램인 ‘멘토링랩’을 통해 투자·홍보·데이터 분석 등 국내의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스타트업에 필요한 정보와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사업설명회 개최 비용도 전액 지원 이런 전폭적인 지원은 성과로 나타났다. 2014년 4월 14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통계를 살펴보면 입주사들의 평균 직원 수가 입주 전에 비해 2배(5.8명→11.9명)로 늘었고 평균 투자금이 10.8배(1억 9500만원→21억 1600만원)로 증가하는 성과를 얻었다. 마루 180 건물 4층에 입주해 있는 브레이브팝스(brave pops) 컴퍼니 이충희(38) 대표는 “저희가 개발한 ‘클래스 123’은 인터넷 학습 운영도구로 초등학교 교사들이 주요 타깃층인데 사업설명회가 꼭 필요했다”며 “지난해 마루 180에서 120여명의 교사들에게 사업설명회를 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실비를 제공해 줘 큰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구글 캠퍼스 서울에는 스마트폰으로 부르는 야간버스 서비스를 만든 콜버스랩, 실시간 법률·정책 분석 플랫폼을 제공하는 피스컬노트 등이 입주해 있다. 강윤모(31·여) 피스컬노트 한국지사 대표는 “스타트업에 입주 공간이 제공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며 “구글 캠퍼스 서울의 경우 스타트업과 관련된 행사가 끊임없이 열리다 보니 저절로 얻게 되는 최신 정보는 덤”이라고 밝혔다. 피스컬노트는 이번 총선에서 ‘우리동네후보’ 앱을 제공한 바 있다. 강 대표는 피스컬노트에 인수된 우리동네후보의 창업자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투자 참여하고 아이디어 내고… 내 이름은 ‘금융 프로슈머’

    투자 참여하고 아이디어 내고… 내 이름은 ‘금융 프로슈머’

    일본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귀향’은 엔딩 크레딧이 길다. 영화 제작 후원에 참여한 시민 7만 5270명의 이름이 10분간 올라간다. 돈뿐만 아니라 뜻을 모아 준 시민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제작진은 공식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에 진행 상황과 예고 영상을 내보내며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고, 시민들의 참여로 제작비의 절반인 12억여원을 모아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듯 크라우드펀딩은 적은 돈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대중’(Crowd)으로부터 ‘모금’(Funding)한다는 의미로 후원이나 모금의 개념과 유사하지만 최근에는 자금 조달에 성공하면 제품을 만들어 보상을 하거나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올 1월 국내에서 정식으로 시행된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에는 한 달여 만에 34개 기업이 참여해 10개 기업이 12억 5000만원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27일 금융권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크라우드펀딩은 2005년 개인대출방식(P2P)으로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발해지면서 ‘소셜 펀딩’ 등으로 불리며 미국과 유럽에서 퍼지기 시작했으며 2011년 무렵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크라우드펀딩의 핵심은 온라인을 통한 활발한 의사 소통에 있다. 투자자들은 중개업체 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는다. 투자자가 창업자에게 직접 질문을 하기도 하고 여기에 대한 창업자의 답변과 태도에 따라 투자자들의 마음이 바뀌기도 한다. 크라우드펀딩 투자자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상품 개발 과정에 참여하는 ‘금융 프로슈머’(생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의 역할을 한다. 펀딩 중개업체 와디즈 관계자는 “온라인상에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신뢰할 만한 정보와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처음 투자하는 사람들은 전문 투자자들의 선행 투자와 중개업체 투자 자문단들의 질문과 피드백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비투자형에는 후원형과 보상형이 있으며 수익을 내는 투자형에는 증권형과 대출형이 있다. 후원형은 앞서 영화 ‘귀향’처럼 대가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문화공연이나 사회 공헌 활동 프로젝트를 할 때 주로 이용된다. 공연 티켓이나 작은 기념품을 답례로 주기도 한다. 보상형은 발명품이나 시제품을 만들 때 자금을 모은 뒤 제품이 완성되면 이를 참여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예컨대 발명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목표액, 모금 기간 등을 제시하면 관심 있는 고객들이 돈을 입금한다. 목표 금액을 달성하면 그 돈으로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보내고 목표 금액에 도달하지 못하면 받은 돈을 다시 고객에게 되돌려 주는 식이다. 사전 주문 제작인 셈이다. 미국의 스마트워치 제조사 페블은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 킥스타터를 통해 2033만 달러(약 246억원)를 조달했다. 최근 뜨고 있는 유형은 투자형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산업을 육성하고자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분야이기도 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25일 5개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와디즈·유캔스타트·오픈트레이드·인크·신화웰스펀딩)를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로 등록하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지분 투자(증권형)를 법적으로 허용했다. 벤처·스타트업 기업에 관심 있는 일반 투자자들도 참여해 기업을 같이 키워 나가며 수익도 함께 나누자는 취지다. 집을 공유하는 형태인 ‘에어비앤비’ 형태의 숙박업이나 문화공연 프로젝트형 펀드도 조성될 예정이다. 예컨대 뮤지컬이나 영화 제작을 할 때 일반인들이 소액 주주로 참여하고 공연이 성공하면 수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고용기 크라우드펀딩기업협의회 회장(오픈트레이드 대표)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연간 9만개 정도 만들어지는 법인이 자본시장에 편입되는 효과가 있다”면서 “앞으로는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한 기업도 이후 성공을 해서 막대한 수익을 남기게 되면 이를 증권형이나 보상형으로 전환해 참여자들한테 주는 식의 ‘하이브리드’ 펀딩도 곧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를 통해 개인들끼리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P2P 서비스도 이미 시장에서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제도권으로 완전히 들어오지 못해 어정쩡한 상태다. 현재 P2P 서비스 업체들은 대부업자로 등록해 영업하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불법이고 어디까지가 등록 업체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투자 한도 등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업계 관계자들과 투자자들은 “상한선을 정해 놓은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 한도를 조금 더 유연하게 늘릴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일반 투자자는 연간 500만원(기업당 200만원),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2000만원(기업당 1000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애플, 구글, 페이스북 중 연봉이 제일 높은 곳은?

    애플, 구글, 페이스북 중 연봉이 제일 높은 곳은?

    세계적인 IT 업계 연봉 및 업종 관련 정보, 설문조사 통해 공개돼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정보통신(IT) 관련 기업들의 연봉 및 근무 조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링크)가 공개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느 기업의, 어느 직종이, 얼마나 연봉을 받는지 구체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어 더욱 화제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의 와이컴비네이터 산하 해커뉴스 게시판에는 한 사용자(아이디: z0a)가 미국 IT 업계의 연봉을 간단히 볼 수 있는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자는 제안과 함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설문 항목은 ▲고용주 ▲근무지 ▲직위 ▲근속 연수 ▲근무 경력 ▲연간 기본급 ▲사이닝 보너스(일종의 계약금) ▲연간 상여금 ▲연간 주식 배당금 ▲성별 등 총 11개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속 직장은 어도비, 에어비앤비, 아마존, 블룸버그, 시스코, 익스피디아, 페이스북,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모질라, 넷플릭스, 오라클, 퀄컴, 삼성, 트위터, 우버, 야후 등이 포함됐다. 설문 참여자는 모두 1856명으로 남성 1790명, 여성 66명이었다. 다만 삼성은 참여자가 1명에 그쳐 의미있는 비교 대상이 되기에 부족했다. 해커뉴스는 소프트웨어 개발 및 스타트업 동향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로, 미국의 많은 개발자가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교환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설문 결과는 흥미롭다. 특히 이들의 직종 중 가장 많은 근로자가 포진돼 있는 소프트웨어기술자(SWE)의 평균 연봉을 놓고 비교해보면 구글이 25만6000달러(약 2억 9721만원)로 가장 높았고 이어 페이스북이 24만9000달러(약 2억 8908만원)로 뒤를 이었다. 아마존과 애플은 각각 24만5000달러(약 2억 8444만원)와 23만6000달러(약 2억 7399만원)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들 기업에 비해 한참 뒤처진 16만5000달러(약 1억 9156만원) 정도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설문에 참여한 일부 근로자는 기본급이나 사이닝 보너스, 상여금 외에 받을 수 있는 주식의 비중을 높여 비슷한 경력의 근로자보다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구글의 한 근로자가 공개한 연봉은 기본급은 25만 달러에 ‘불과’하지만, 연간 배당금은 80만 달러로 3배 이상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근무지 문항에 ‘베이 에리어’(샌프란시스코만 지역)와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마운틴뷰라는 지명을 적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음을 나타낸 근무자는 158명이며 기타 장소를 기입한 근무자는 1473명이었다. 모든 사람이 모든 항목에 답한 것이 아니므로 인원수가 일치하진 않지만, 이를 먼저 ‘실리콘밸리 근무 여부’와 ‘성별’ 요소로 나눈 것이 다음 표다. 업계 종사자들은 우리 생각과 달리 구글이냐 페이스북이냐와 같은 직장보다는 실리콘밸리에 속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연봉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0번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성별은 알 수 없는 것을 뜻한다(Silicon Valley), 1번은 실리콘밸리 밖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이 역시 성별을 밝히지 않은 것을 뜻한다(Non-Silicon Valley), 2번은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남성(SV_Males), 3번은 실리콘밸리 밖에서 일하는 남성(Non_SV_Males), 4번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여성(SV_Females), 5번은 실리콘밸리 밖에 일하는 여성(Non_SV_Females)이다. 이를 살펴보면 남녀 모두 일반적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연봉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경력’과 ‘연봉’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다. 가로축이 경력, 세로축이 연봉으로, 실리콘밸리는 적색, 그 외 지역은 검정색으로 표시됐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 속한 근로자는 기타 지역보다 경력이 적어도 더 큰 연봉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해당 데이터를 더 보기 쉽게 시각화한 자료들(링크)도 공개되고 있다. 사진=ⓒ포토리아(맨위부터 순서대로), RawGit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열린세상] 합리적인 입법을 통한 법치주의의 확립/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열린세상] 합리적인 입법을 통한 법치주의의 확립/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두 가지 죄목으로 고소를 당했다. 청년들을 부패하게 했고, 국가가 지정하는 신 대신 이상한 신을 믿는다는 혐의였다.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던 소크라테스에게 친구들이 찾아와 탈옥을 권했다 그때 그는 “나에게 불리해졌다고 해서 법을 어기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라며 거절했다. 바로 이것이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법이 일단 만들어지면 지켜야 한다는 준법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소크라테스를 예로 들기도 한다. 악법도 법이라는 명제는 국가 작용이 법에 따라 이루어지기만 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람에 의한 자의적 지배가 아니라 객관적인 법에 근거를 두면 괜찮다는 것이다. 법을 존중하지 않거나 준법의식이 약한 것을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 탓하는 국민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국민은 법이 일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와 이익만을 보장해 주는 수단에 불과하므로 지킬수록 손해만 본다고 생각하고 있다. 법치주의에 대한 이해가 다르고 진보와 보수 양측의 타협과 절충을 끌어내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국민이 공감하는 법치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의 법치주의는 국회에서 법률이 제정되기만 하면 지켜야 한다는 식의 형식적 법치주의에 그치지 않는다. 법률의 목적과 내용 또한 정의에 합치되는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고 헌법재판소는 밝히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 지켜야 할 법이 어떠한 내용을 담는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법률이 제정되고 폐지되는 입법 과정을 통해 국민 개개인의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많은 제도와 정책들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특히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온라인 업체가 등장한 O2O 서비스 사업 영역이 시끄럽다. 세상은 바뀌는데 법에 따른 규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오프라인 업체와 전통 상인을 죽인다는 아우성이 마주치고 있으나 국회와 정부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기 위해 어떠한 절차를 밟을 것이냐는 문제조차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공청회나 청문회에서도 찬반 의견 대립이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고 끝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우리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변화하는 다원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다양한 의견들이 조화를 이루고 접점을 찾아가면서 법의 목적인 공공의 이익이나 사회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공적인 논의와 참여 속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그 결정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일지라도 이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경쟁에서 패배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음에 다시 공론에 부쳐 자신의 견해를 펴고 상대방을 설득할 기회가 충분히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률의 목적이 공공의 이익과 질서 유지에 이바지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법이 택하고 있는 방법이 효과적이고 적절한 것인지도 한번 새겨 볼 일이다. 법이 예상하고 있는 규제와 제한보다 완화된 형태나 방법은 없는지 찾아볼 일이다. 끝으로 법으로 보호하려는 공익이 제한되는 사적인 이익보다 더 큰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청이 추상적이어서 실제 적용할 때 다양한 견해차가 드러날 수 있다. 당장은 절차가 번거롭고 비능률적으로 보일지라도 적어도 이러한 요청이 지켜질 때 국가의 입법 작용에 정당성이 인정될 것이다. 그러면 국민은 법을 존중하고 따를 것이고 자연스레 법치주의가 확립될 것이다. 지난 1월 임시국회에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일명 원샷법 등 40개의 법안이 무더기로 통과됐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법의 목적에 모두 이바지하는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 본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일생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사람의 걱정이 한낱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톡!톡! talk 공무원] ‘업무 혁신 선도’ 서주현 행자부 협업행정과장

    [톡!톡! talk 공무원] ‘업무 혁신 선도’ 서주현 행자부 협업행정과장

    육아휴직 중 얻은 아이디어로 사무실 구석구석 불편사항 개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 불편한데도 애써 바꾸기엔 귀찮은 것들이 있다. 가령 사무 공간에 있는 수많은 전등 스위치가 각각 정확히 어느 곳의 전등 스위치인지 모르면 일일이 눌러 볼 수밖에 없는데도 애써 개선하지는 않는다. 또 정수기 높이가 낮으면 물을 마실 때마다 허리를 굽혀야 해 불편하지만 굳이 높낮이를 조정하기엔 수고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서주현(44) 행정자치부 협업행정과장 손에 들어가면 확 바뀐다.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게 보이면 바로 고칩니다. 필요한 재료는 점심 시간이나 퇴근 후에 인근 시장, 문구점에 가서 사비를 써서라도 사면 되거든요.” 그는 행자부에서 ‘특이한 공무원’으로 통한다. 단순히 남들보다 민첩하고 부지런해서 그런 건 아니다. 행정직인데도 스마트기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친숙하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그런 차이가 일하는 방식은 물론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11층 협업행정과 사무실에 가 보면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있다. 창가에 있는 그의 자리에는 2년 전부터 의자가 사라지고 없다. 높은 책상 위에 업무용, 인터넷용 컴퓨터 두 대만 놓여 있다. 서 과장뿐만 아니라 협업행정과 공무원 절반 이상은 하루 대부분을 서서 일한다. 사무실 한가운데에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앉아 토론할 수 있는 대형 탁자가 놓여 있다. 그 앞에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는 서 과장이 직접 주문했다. 서 과장이 협업행정과로 배치받은 2014년 9월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제가 오기 전에도 11층은 2011년부터 ‘스마트오피스’로 시범 지정돼서 행자부에서 유일하게 책상마다 파티션이 없어요.” 당시 서서 일할 수 있는 책상이 반짝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자부에 본격적으로 서서 일하는 문화가 안착된 것은 서 과장이 철공소에 직접 책상을 주문 제작해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공무원시험에 응시한 척추장애인 수험생을 위해 철공소에서 비슷한 책상을 만든 적이 있어요. 알음알음으로 철공소 연락처를 알게 돼 실행에 옮겼죠.” 그는 ‘집중력 상승’을 서서 일하기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둘째 아이를 낳고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할 때 복귀하면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당시 인사실 교육훈련과 과장이었던 그는 본보기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의무감에 하긴 했는데 그동안 못 읽었던 신문도 꼼꼼히 읽고 인터넷 블로그로 기록도 남기다 보니 아이디어가 샘솟았죠.” 복직 후 그는 에어비앤비, 구글코리아 등 혁신 기업으로 알려진 곳을 두루 찾아다녔다. “공간이 혁신을 만든다는 말이 있어요. 이미 혁신을 이룬 기업들은 어떻게 공간을 사용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업무 혁신을 꾀하기도 했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공공기관의 잘못된 영어 사용 바로잡기 작업은 서 과장이 평소 사용해 오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제작 업체 ‘채팅캣’ 대표와 페이스북에서 인연이 닿으면서 시작됐다. “어학 실력이 검증된 원어민을 통해 잘못 사용하는 영어를 바로잡는 데 드는 비용은 건당 단돈 200원이에요. 공모를 했다면 상상도 못 했을 가격이죠.”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27) 로봇 ⑥ 드론, 성공의 열쇠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27) 로봇 ⑥ 드론, 성공의 열쇠

    드론이 농촌으로 간 까닭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과학기술 전문지인 테크놀로지 리뷰는 매년 세상을 바꿀 10가지 혁신 기술을 발표해 왔다. 2014년에는 가상현실, 뇌지도, 신경망칩과 같은 최첨단 기술들이 선정되었다. 그중 첫 번째로 소개된 주인공은 첨단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농부였다. 와인 산지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소노마 밸리에서 포도농장을 운영하는 라이언 쿤테씨는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하게 꿰고 있다. 적외선 카메라가 탑재된 3D 로보틱스사의 드론 덕분이다. 드론은 수시로 항공 촬영을 해 물이 부족하거나 병충해가 있는 지역을 알려주고,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식물의 건강 상태까지 보여준다. 이륙부터 촬영과 착륙까지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오토파일럿(autopilot) 기능이 있어 따로 조종을 배울 필요도 없다. 이전에는 사람이 탑승한 항공기에서 찍은 영상을 사용하였는데 시간당 사용료가 1000달러였다. 지금은 1000달러짜리 드론 한 대면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드론이 열어가는 첨단 농업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민간 드론 시장의 80%는 농업용으로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일본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농업용 드론을 개발해 왔다. 노령화에 따른 부족한 일손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시행해 2013년에는 농촌 지역의 드론 보급이 2500대를 넘었다. 대표적인 무인 헬리콥터 업체인 야마하는 RMAX 드론으로 일본 농경지의 40%에 살충제와 비료를 뿌리고 있다. 작년 5월에는 미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최초로 미국 내 사용 허가도 받았다. 드론계의 애플로 불리는 중국의 DJI도 8개의 모터와 회전 날개를 가진 아그라스(Agras)를 출시하며 농업용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그라스에는 10리터의 분사용 탱크가 탑재되어 있어 1시간이면 축구장 10개 정도의 넓이에 농약을 뿌릴 수 있다. 가격도 경쟁사의 절반 수준인 1만 5000달러다. DJI는 단숨에 시장을 제압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스마트폰으로 조정하는 드론을 최초로 선보이며 레저 시장을 공략하던 프랑스의 패롯도 도전장을 던졌다. 일반 드론에 장착하면 농작물의 작황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첨단 센서 ‘세콰이어’(Sequoia)를 내놓았다. 컬러 카메라, 분광 카메라, 관성 센서, GPS, 영상 소프트웨어까지 장착된 이 제품은 고급 드론보다 비싼 3500 달러이다. 미국에서 열린 2016년 농업박람회에서 패롯이 인수한 스위스의 센스플라이(senseFly)는 세콰이어를 탑재한 드론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2010년에 과학자, 엔지니어, 농부 3명이 설립한 에어이노브(Airinov)는 드론과 빅데이터를 접목하여 데이터 농업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 밖에도 미국의 에그리보틱스, 허니콤, 로보플라이트, 캐나다의 프리시즌호크 등 쟁쟁한 실력자들이 즐비하다. 농업용 드론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드론은 서비스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보도 속에 새로 생겨나는 직업도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드론을 이용한 물류, 자원 탐사, 임대, 정비, 이벤트 기획,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업종이 리스트에 올랐다. 최근에는 대학에 관련 학과가 신설되고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와 창업 프로그램도 늘어났다. AP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드론 조종사 수요가 1만 명에 달해 면허 취득을 위한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급여도 높은 편이고 숙련된 조종사는 일반 근로자의 두 배가 넘는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작년 5월 타임지에 스카이캐치(Skycatch)라는 회사가 소개되면서 우버형 드론 서비스가 주목을 받았다. 2013년 설립된 이 회사는 창업 1년 만에 구글벤처스와 유명 벤처캐피탈로부터 32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드론으로 임대 서비스만 하는 이 신생 기업의 고객은 엘런 머스크의 태양광 기업 솔라시티, 글로벌 석유회사 셰브론, 일본의 건설장비 회사 코마츠와 같은 큰손들이다. 그런데 정작 이 회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워크모드(Workmode)’라는 서비스이다. 항공 촬영을 원하는 고객과 드론을 소유한 개인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에서 시작해 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해 주는 우버형 비즈니스가 드론계까지 파고들었다. ‘드론계의 우버’로 불리는 스카이캐치의 CEO 크리스찬 산즈는 “얼마 후에는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더 큰 꿈을 내비쳤다.  드론 시장을 평정하다시피 한 DJI는 생태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1000만 달러의 기금을 마련했다. 페이스북에 투자해 대박이 난 벤처투자사 엑셀파트너스와 함께 스카이펀드를 설립하고 유망 기업 발굴에 나섰다. 전 세계의 드론 업체를 조사한 뒤 첫 번째 투자 대상으로 ‘드론베이스’를 선정하였다. 2014년에 설립된 이 회사 역시 의뢰자와 해당 지역의 드론 조종사를 연결해 주는 공유 서비스 업체이다. 자체 조종사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부동산과 건설 분야로 급성장하여 ‘에어비앤비’라는 별명이 따라붙는 루키 스타트업이다. 이곳에서 간단한 등록을 하고 교육을 받은 후 현장 사진을 찍어 보내면 건당 최소 300달러의 보수를 받는다. 현재 미국 항공관리국의 규정에 따르면 드론은 무게 25kg, 고도 150m, 시속 160km 이하로 낮 시간에 가시거리 이내에서 운행하여야 한다. 건설 현장은 대부분 이런 조건을 만족해 비교적 규제 문제가 적다. 2015년 창업한 스타트업 드로너스(Droners.io)는 ‘드론으로 무엇이든 찍어드립니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등장하였다. 건설 현장은 물론이고 결혼식, 파티, 이벤트, 부동산 중개업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 외에도 2014년 가장 뜨거운 스타트업 20에 선정된 영국의 에어스톡(Airstoc),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에비에이터(Aviator) 등 우버를 꿈꾸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드론에 꿈을 실어 날리고 있다.  드론의 승부처  멋진 드론을 만들고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하여 하늘에 띄우는 것이 사업의 전부가 아니다. 스카이캐치는 “우리는 드론 업체가 아니라 데이터 업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수많은 우버형 조종사들이 보내온 영상을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분석한다. 스카이캐치의 서버에 쌓이는 데이터는 지금까지 웹에서 얻을 수 없었던 현실 세계의 고객 정보이다. 이 정보들은 하드웨어 중심의 드론을 서비스형 드론(Drone as a Service)으로 바꾸고 있다. 창업자 크리스찬 산즈는 드론으로 건축업계에서만 2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최근에는 광산업, 벌목업, 농업, 에너지 분야의 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 중이다. 닛케이 아시아 리뷰는 구글이나 인텔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드론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기를 판매하는 것이 아닌 ‘데이터’ 확보에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제 드론이 어떻게 나는지가 아니라 어떤 정보를 수집하느냐에 사업의 성패가 달린 것이다.  3D 로보틱스는 한 걸음 더 나가 “우리의 롤모델은 안드로이드이다”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플랫폼 업체를 선언하고 나섰다. DJI도 드론 시스템과 운영체제(OS)를 결합한 플랫폼 제공으로 맞불을 놓았다. 현재 이 분야의 선두 주자는 드론계의 마이크로소프트로 알려진 ‘에어웨어’(Airware)다. 이 회사는 최초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클라우드를 통합 운영할 수 있는 드론 OS ‘항공 정보 플랫폼(AIP)’을 공개하였다. 일찌감치 에어웨어의 가치를 알아본 구글벤처스, 인텔캐피털, GE는 이미 4000만 달러를 투자해 두었다. 여기에 대응하는 연합군인 ‘드론코드’(Dronecode)에는 3D 로보틱스를 필두로 퀄컴, 바이두, 패롯 등 50여 개의 기업이 오픈소스로 운영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또 하나의 세력은 6000여 개발자들의 커뮤니티가 만들어 가는 플랫폼인 ‘오픈파일럿’(OpnePilot)이다. 이미 시작된 플랫폼 전쟁의 승패는 드론계의 판세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끝으로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가 발표한 ‘192가지의 미래 드론’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며 드론 여행을 마치려 한다. 초소형 주머니 속 드론부터 공중 부양 도시까지 상상 속의 드론이 흥미롭다. 김지연 R&D경영연구소 소장 jyk9088@gmail.com  <지난 칼럼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kimjy_it
  • [사설] 공유경제, 신성장 이끌 마중물 돼야

    정부가 그제 위기를 맞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투자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다. 연구개발(R&D) 특구 조성과 스포츠산업 규모 확대, 대학의 해외 캠퍼스 설치 허용 및 건강관리 서비스 육성이 포함됐다. 모두 의미 있는 대책이지만, 특히 공유경제를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안이 눈길을 끈다. 공유경제는 자산이나 지식, 서비스 등을 다른 사람과 나눠 쓰는 신개념 경제다.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나 모바일 기반의 콜택시 ‘우버’가 대표적이다. 공유경제 산업은 이미 세계적으로 연 80%씩 성장하는 메가트렌드 시장이다. 에어비앤비는 2008년 설립돼 191개국에서 200만개의 객실을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 공유경제 시장 규모는 2010년 8억 5000만 달러에서 2014년 100억 달러로 급성장했고, 2025년엔 3000억 달러를 넘으리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이제라도 공유경제 산업을 육성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다. 철강이나 조선, 전자 등 기존 주력 산업이 한계에 부딪혀 성장판이 닫히려는 시점에서 공유경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성공의 관건은 공유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얼마나 과감하고 효율적으로 정비하느냐에 달렸다.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사업 모델로 주목받았다. 반면 한국에선 이런 서비스가 대부분 불법이었다. 차량이나 숙박 공유 같은 서비스를 품어 줄 업종 구분 규정이 없어 사업자 등록 자체가 어려웠다. 앞으로 각 분야에서 공유경제 개념을 차용한 서비스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걸림돌이 될 만한 규제는 과감한 손질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신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는 일단 모두 물에 빠트린 뒤 꼭 살려 낼 것만 살리도록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고무적이다. 비단 공유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산업에서도 금지 규정이 없으면 모두 가능한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용자의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사회질서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만 남기면 된다. 기존 사업자들과의 이해충돌을 최소화하는 것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숙박 공유 서비스는 당장 호텔이나 민박 사업자들에게 큰 위협이 된다. 차량 공유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자동차 운전 대리업 또는 택시업계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업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유 민박업을 우선 부산·강원·제주 지역에만 도입하고, 내년에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은 이런 점에서 적절해 보인다. 공유경제는 아직 낯설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도입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규제에 익숙한 행정관청이나 공무원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새로운 시장 진입과 성장에 따르는 성장통이라고 본다. 낡은 규제들은 역대 정부가 그토록 손보려고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공유경제 도입이 규제 시스템을 바로잡는 모멘텀이 되기를 기대한다.
  • [무역투자진흥회의] ‘류현진 ML 진출 도운 스콧 보라스’ 한국서도 나올 수 있다

    [무역투자진흥회의] ‘류현진 ML 진출 도운 스콧 보라스’ 한국서도 나올 수 있다

    프로야구 선수를 대신해 구단과 연봉·이적 협상을 담당하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본격적으로 육성된다. 일반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한국판 제리 맥과이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거대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인 IMG와 같은 회사가 국내에서 나올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이 연내에 나온다. 정부는 17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스포츠 에이전트 육성 등을 핵심으로 한 스포츠 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스포츠 에이전트는 법률 지식이 부족하고 협상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대신하는 대리인이다. 야구 선수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운 스콧 보라스가 대표적인 에이전트다. 정부는 스포츠 산업 성장에도 불구하고 에이전트 제도가 발달하지 않아 선수 관리·마케팅·홍보 등 연관 산업의 발전이 지체됐다고 판단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 4분기까지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에 대한 운영지침(대리인 요건, 표준계약서, 수수료 가이드라인 등)과 우수 에이전트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프로야구의 경우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함께 에이전트 제도 시행 시기를 결정하고 대리인 조건 등 불합리한 규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프로야구는 2001년 에이전트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15년이 지나도록 시행되지 못했다. 변호사만 대리인을 할 수 있고 대리인으로 지정된 변호사는 1명의 선수만 대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불합리한 규제였다. 여기에 선수를 대신해 협상 전문가인 에이전트가 나서면 선수 연봉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구단의 불만도 한몫했다. 현재 국내 프로스포츠 가운데 에이전트 제도를 시행하는 종목은 프로축구가 유일하다. 수요가 급증하는 골프, 캠핑 등 유망 스포츠 산업에 대한 규제도 대폭 풀린다. 그린벨트 구역을 풀어 실내체육관을 테니스장 한 개 크기인 800㎡에서 1500㎡ 규모까지 세울 수 있도록 했다. 회원제 골프장은 비용이 저렴한 대중제로 전환하기 쉽도록 해 골프 수요를 확대한다. 이를 위해 회원제 골프장을 대중제로 전환할 때 지금은 회원들의 100%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을 80%로 완화한다. 또 국유림을 비롯한 보전녹지·보전관리지역에도 캠핑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올해 스포츠 산업 연구·개발(R&D) 자금도 14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1억원 늘려 스포츠용 용품도 육성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스포츠 시장을 내년까지 내수 50조원, 일자리 32만개 수준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소유 개념이 아닌 서로 빌려 쓰는 방식의 공유경제가 숙박과 차량에도 접목된다. 현행 불법인 에어비앤비 등 숙박공유 서비스를 ‘공유숙박업’ 규정 신설로 합법화해 부산·강원·제주(규제프리존)에 연간 120일까지 주거용 주택 숙박을 허용하기로 했다. 우버 등 차량공유업체에 경찰청의 면허 정보를 제공해 운전 부적격자를 걸러 낼 수 있게 하고, 공영주차장 이용도 허용한다. 차량공유 확산을 위해 시범도시를 지정하고 행복주택,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에 도입할 예정이다. 정부는 수출 동력 창출을 위한 신산업 투자 지원책도 내놓았다.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신산업투자위원회를 신설해 입지·환경 등 사전 진입 규제를 네거티브 심사 방식으로 바꿔 원칙적으로 모두 개선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규제 담당 부처 장관이 규제 존치 이유를 거꾸로 민간심사위원회에 소명해야 해 갑을 관계가 뒤바뀔 것으로 보인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손발 묶였던 양재·우면 ‘R&D 단지’ 내년 첫 삽

    손발 묶였던 양재·우면 ‘R&D 단지’ 내년 첫 삽

    그동안 각종 규제로 손발이 묶였던 서울 양재·우면 일대의 기업 연구개발(R&D) 집적단지 사업이 내년에 첫 삽을 뜬다. 정부는 인근 경기 성남시 판교까지 연계해 민간기업 R&D의 랜드마크로 키울 계획이다. 81개 기업이 향후 3년간 5대 신산업 분야에 44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R&D 집적단지를 포함한 현장 대기 프로젝트 6건의 투자(6조 2000억원)까지 더하면 모두 50조원대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17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보고했다. 규제와 기관 간 이견으로 현장에서 대기 중인 기업투자 프로젝트 6건이 풀린다. ▲양재·우면 일대 기업 R&D 집적단지 조성(투자 규모 3조원) ▲경기 고양시 K컬처밸리 조성(1조 4000억원) ▲고양시 자동차서비스 복합단지 조성(8000억원) ▲의왕산업단지 조성(6000억원) ▲충남 태안 타이어 주행시험센터(3000억원) ▲수상태양광 발전사업(1000억원) 등이다.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사업 계획이 확정돼 있고 투자가 바로 이뤄질 수 있는지, 정부가 해소할 수 있는 규제가 있는지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고 말했다. 스포츠와 공유경제 등 새로운 서비스 시장을 개척해 일자리를 창출한다. 연내에 변호사만 대리인이 될 수 있는 프로야구 에이전트 규정을 고치고 미국 스포츠 매니지먼트업체인 IMG 같은 큰 회사가 나올 수 있도록 에이전트 제도 운영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내 실내체육관 건립도 기존 800㎡에서 1500㎡까지 완화한다. 공유경제도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활성화한다. 공유 민박업의 경우 제주와 부산, 강원 ‘규제 프리존’에서 시범 도입하고 추후에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판 에어비앤비’가 등장하는 셈이다. 우버 등 차량 공유업체에 경찰청의 면허 정보를 제공해 운전 부적격자를 걸러내고 공영주차장 이용도 허용한다. 정부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 입지와 환경 등 사전 진입규제를 ‘네거티브’(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만 금지) 방식으로 바꾼다. 또 융합 신제품이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맞춰 81개 기업은 2018년까지 44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도경환 산업부 산업기반실장은 “분야별 집중 지원을 통해 향후 120조원대의 생산유발 효과, 41만 5000개의 일자리 창출, 650억 달러의 수출 증진 효과를 이끌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Iceland Desolation 아이슬란드 적요寂寥

    Iceland Desolation 아이슬란드 적요寂寥

    춥고 외로웠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알고 있다. 3개의 형용사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나란 인간, 말로는 잘 표현을 못하겠다. 1년이 지나서야 일부를 해동해 본다. 약간의 온기를 더해. ‘얼음땡’도 아니고 ‘얼음땅’이라니! 1년 전 나에게는 2월이 가기 전에 써야 하는 유럽항공권 1장이 있었다. 그래서 목적지는 유럽, 시절은 겨울. 동행자는 없음이 자동 결제된 상황이랄까. 파리나 비엔나처럼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유럽의 로맨틱한 도시들을 먼저 떠올렸지만, 그 도시의 어느 뒷골목에 홀로 서서 윈도우를 힐끗거릴 내 모습을 생각하니 ‘성냥팔이 소녀(혹은 아줌마)의 재림’이 될까 두려워졌다. 그나마 심장박동수를 조금이라도 올려 줄 미지의 세계가 필요했다. 이름도 이상한 ‘아이슬란드’. 세상에 ‘얼음땡!’도 아니고 ‘얼음땅’이란 나라가 있다니. 공항 입국장은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고, 호텔은 전부 아이스호텔이 아닌지. 거리에 온통 스노맨들이 돌아다니고 집집마다 펭귄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건 아닌지. <겨울왕국>, <인터스텔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무대가 된 나라라니 상상되는 것들마저 만화적이고 SF적이다. 오슬로를 경유해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에 도착했다. 이 도시에 아이슬란드 인구 31만명 중 3분의 1이 넘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유는 분명했다. 2월 중순에도 영하 2℃와 영상 2℃ 사이를 오가는 ‘온난한’ 날씨 때문. 좋은 기후의 땅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노르웨이 출신의 바이킹들이 일부러 이름을 아이슬란드로 정했다는 것이다. 더 위도가 높고 인간이 살기 어려운 땅에 그린란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같은 이유라니 일찌감치 작명의 위력을 알았던 걸까. 그러나 아이슬란드에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많은 눈이 왔다. 다행이 낮 동안 부지런히 태양이 눈을 녹이지만 문제는 도시가 항상 젖은 느낌이라는 것.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한 용품을 챙기기는 했어도 우산을 고려하지 않았던 내게 비장의 무기는 오슬로에서 구입한 방수재킷이었다. 누군가 아이슬란드에서는 방한보다는 방수가 중요하다고 했었다. 현지인처럼 출퇴근한 투어들 사실 온전히 혼자일 자신이 없어서 예약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G 어드벤처G Adventure 여행사에서 기획한 ‘아이슬란드 로컬 리빙’이라는 자유로운(?) 그룹(?) 여행이었다. 방이 예닐곱개쯤 되는 2층 집 하나를 빌려 15명이 3박 4일간 현지인처럼 살아 본다는 취지였다. 아침은 냉장고의 식료품으로 각자 해결하고, 저녁은 셰프도 아닌 현지 가이드가 양갈비 오븐구이 등의 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좋다는 여름을 제쳐 두고 한겨울에 사람들이 아이슬란드를 찾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흔히 오로라라고 부르는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 때문이다. 아이슬란드는 전역에서 오로라 관찰이 가능하다. 북극권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어서 자다가도 창문 밖으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라헌터들은 더 선명한 오로라를 보겠다고 밤이 되면 인공조명이 없는 외곽으로 ‘헌팅’을 나간다. 일기 예보, 대기 관측을 하듯 오로라 관측 정보en.vedur.is도 시시각각 업데이트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일행에게 내려진 진단은 ‘가능성 희박’.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틀 연속 밤을 기다렸지만 차를 몰고 나가기도 어려운 악천후였다. 그러니 낮 동안 아이슬란드를 열심히 즐길 수밖에. ‘로컬 리빙’답게(?) 각자가 예약해 둔 투어 프로그램을 찾아 외출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귀가했다. 그 유명한 블루라군 온천욕부터 골든서클투어, 동굴탐험, 빙하워킹 등이 기본이고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싱벨리르 국립공원에서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도 가능하다고 했다. 여행사 직원 말로는 물에 들어가면 춥지 않다는데, 한국에서라면 휴교령이 떨어질 눈보라 속에서 아이슬란드 학생들은 조깅을 하고 있었으니 판단은 스스로의 몫이다. 남부 해안을 도는 투어 프로그램을 선택한 날 아침에도 눈보라가 거셌다.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눈이, 아니, 아이스가 날리고 있었다. 투어가 취소되지 않는 것이 영 불만인 채로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걸은 끝에 투어 버스에 탑승. 이후 창밖은 온통 하얀 풍경뿐이었다. 눈이 내리는 풍경, 눈이 쌓인 풍경, 눈이 녹은 풍경, 눈이 감기는 풍경, 눈이 휘둥그레지는 풍경, 눈이 멀 것 같은 풍경 등등. 바람은 또 어찌나 센지 ‘스코카포스’처럼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조차 휙휙 넘어가는 책장처럼 허공으로 날릴 정도였다. 머나먼 적요의 땅에서 아이슬란드는 적요의 세상이었다. 전체 국토의 11%가 빙하로 이루어진 황무지. 사람도 건물도 귀한, 천년 이끼의 땅.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땅. 적요의 절정은 레이버렌디동굴Leiðarendi Cave 속이었다. 동굴에는 인공 조명이 없었다. 방문자 센터 같은 것도 없었다. 차에서 내려 헬멧과 헤드랜턴을 하나씩 배급받았고 별다른 이정표도 없는 길을 따라가니 곧바로 동굴 입구였다. 뚝뚝 물이 떨어지고 바닥이 흥건한 동굴 속을 웅크리고 걷다가 비로소 넓은 공간을 만났을 때 가이드는 모두에게 헤드랜턴을 끄라고 명령했다.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도 말고, 소리도 내지 말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여태 이토록 온전한 어둠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눈앞에 손을 가져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귀가 토끼처럼 커지고, 코가 개처럼 예민해지는 느낌. 가이드의 사소한 ‘트릭’은 아이슬란드 동굴탐험을 일생 기억할 만한 경험으로 남게 했다. 자연스럽게 자연현상을 체험하게 하는 것. 이것은 아이슬란드에서 체험했던 모든 투어에 일맥상통하는 철학처럼 보였다. 자연을 아끼고 보존한다는 ‘오만한’ 접근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두는 것 말이다. 아이슬란드 남쪽의 유명한 해변인 레이니스피아라Reynisfjara에 도착해 버스를 내릴 때 가이드가 여러 번 반복한 말이 있다. “절대로 바다에서 등을 돌리지 말아요!” 그날 파도는 정말 거셌다. 주상절리대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해변이었고 검은 모래사장은 제법 넓었다. 전쟁이라도 하듯이 온몸으로 돌진해 서로에게 몸을 던지는 파도들은 괴성을 지르는 듯도 했다. 저 바다에서 수영을 감행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했다. 그렇게 무모한 짓은 상상도 해 보지 않은 내가 안전을 자신하며 바닷가로 돌출한 주상절리대 앞으로 나간 순간 거대한 파도가 전속력으로 돌진해 왔다. 설마 하며 뒷걸음질 치는 속도보다 파도가 달려오는 속도가 빨랐고, 이내 발은 무릎까지 흠뻑 젖고 말았다. 이 나라의 날씨가 그러하듯, 아직도 생생하게 활동하는 화산들이 그러하듯, 파도조차도 예측 가능한 범주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투어 버스의 히터가 젖은 부츠를 몇시간 만에 말릴 수 있을 만큼 화끈했기에 다행이었다. 어쨌든 나는 살아남았다. 얼음의 이면, 눈꺼풀의 이면 한 해가 지나 다시 그 부츠를 꺼내 신었는데 발등을 덮은 고무 부분이 칼로 벤 듯 갈라져 있었다. 12월 내내 그 까닭을 고심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아이슬란드 빙하 투어 때문이었다. 흔히 아이젠(이건 브랜드 이름이다)이라고 부르는 크램폰Crampons을 착용했다가 발을 잘못 놀려 신발이 찢긴 것. 남들은 성큼성큼 잘도 돌아다니는데 조금만 비탈이 져도 혼자서 쩔쩔매며 얼어붙어 버렸던 굴욕도 다시 떠올랐다. 스카프타펠Skaftafell 국립공원의 빙하는 생각보다 미끄러웠고, 신비로운 푸른빛이었으며,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 보였지만 피켈등반용 얼음 도끼에 쉽게 부서졌다. 작은 크레바스 안으로 몸을 웅크려 들어가자 바닥에 얕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두꺼운 빙하를 통과하는 동안 빛조차 파랗게 물이 들어 있었다. 시간이 무한히 농축된 곳. 사실 나는 빙하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몇해 전 안나푸르나의 크레바스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친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발이 자꾸만 헛디뎌졌다. 크레바스 안이 끝없는 심연의 어둠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은 힘이 났던 것 같다. 다시 레이카비크로 돌아와 마지막 밤은 혼자만의 숙소를 선택하고 시내에 남았다. 아이슬란드의 필수 코스라는 블루라군Blaa Lonið까지는 거리가 멀기도 했고 원래 로컬들은 가지 않는 곳이라는 말에 힘입어 과감하게 패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 니나 & 효도르Nina & Horður는 성공적이었다. 남다른 인테리어 감각을 지닌 젊은 부부 니나와 효도르의 고급스러운 취향도 맘에 꼭 들었다. 앙큼하게도 공항까지 캐리어를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 데다가 아이슬란드의 모든 집에서는 수도꼭지를 틀면 온천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른 저녁 옥상 야외 테라스에 놓인 작은 자쿠지는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가소롭다는 듯 눈발이 떨어지고 있었고. 따끈한 온천수에 몸을, 차가운 공기에 머리를 맡긴 채 눈을 감았다. 처음엔 동굴의 어둠이, 곧 이어 빙하의 푸른빛이 보였다. 눈꺼풀을 투과하는 빛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때, 나는 보았다. 희미하게 일렁이는 녹색 장막을.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은 푸른 작별의 손짓을. ▼아이슬란드를 꿈꾸는 여행자를 위해 G 어드벤처 투어 아이슬란드 로컬 리빙 6일 168만원부터 포함사항 현지 주택 4박, 조식 4회, 중식 1회, 석식 2회(요리교실), 레이카비크 시티 투어, 오로라 관찰(차량 포함) 불포함 사항 항공료 및 기타 식사, 개별 선택 투어 | 한국 대리점 신발끈여행사 02 333 4151 gadventures.kr 나이스트립(주) 꿈꾸는 여행 아이슬란드 7일 여행 529~549만원 포함사항 런던 경유 항공편 및 전일성 식사 및 숙소, 교통편, 가이드, 일정표상의 관광지 입장료 포함 불포함 사항 개인경비 및 가이드, 기사 팁 출발 1~2월 매주 수요일 예정 02 771 1932 www.icelandtour.co.kr 샬레트래블앤라이프-자체 여행 전문가팀이 제작한 <아이슬란드 101>은 국내에서는 드문 한국어 가이드북으로 감성이 넘칠 뿐 아니라 레스토랑과 숙소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맞춤형 여행도 예약할 수 있다. 02 323 1280 iceland.chalettravel.kr 글·사진 천소현 기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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