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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하마을 공식 분향소 설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분향소가 24일 오전 조문객을 맞기 시작했다. 오전 11시30분쯤 설치가 완료된 공식 분향소는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회관 임시 분향소 바로 옆에 폭 10m 규모의 철제 구조물로 만들어졌다.분향소 안에는 수천송이의 국화로 만든 제단과 영정· 위패 등이 자리잡았다. 공식 분양소 설치 후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영정을 안치했고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위패를 들고 뒤따랐다.이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술을 따른 뒤 절을 올렸고 이해찬 전 총리가 참여정부 인사를 대표해 헌화했다.이 과정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은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울먹이기도 했다. 일반인들의 조문이 시작된 직후 공식 분향소에는 조문객이 밀려들면서 행렬이 50m 이상 길게 이어지고 있다.시간이 지날 수록 조문객들의 줄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식 분행소가 마련됨에 따라 봉하마을에는 공식 분향소와 노사모 자원봉사센터에 자리잡은 분양소가 각각 운영된다.천막으로 만들어진 임시 분향소는 곧 철거될 예정이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관련영상]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 ’부엉이 바위’ 어떤 곳이길래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젠 편히 쉬소서” 휴일 아침에도 끝없는 추모 행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시빈소가 차려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는 휴일인 24일에도 조문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전날 오후 8시40분께부터 유족들의 분향을 시작으로 정치인과 일반인의 조문이 시작된 이후 밤새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문했다. 24일 오전에도 전국에서 많은 조문객이 주차문제로 출입이 제한된 봉하마을 진입로를 2㎞이상 걸어서 들어와 빈소를 찾고 있다. 조문객들은 마을광장 한 쪽에 마련된 방명록에 ‘편히 쉬십시오’, ‘명복을 빕니다’ 등을 적으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통해했다. 장례를 준비 중인 유가족과 참여정부 참모진은 현재 마을회관 앞의 좁은 분향소를 대신할 폭 10m정도의 대형 분향소를 설치 중이다. 이날 오후부터는 이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을 전망이다. 한편 이날 오전 8시40분께 세종증권 매각 비리로 구속됐다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쪽에서 나와 곧바로 임시빈소가 마련된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다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현재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없이 빈소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23일 오후 서울구치소를 출발해 이날 새벽에 봉하마을에 도착한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유가족 등과 장례절차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분향소에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이택순 전 경찰청장과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아직까지 장례일정과 형식 등 장례절차를 확정하지 못한 유가족과 참여정부 참모진은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해 경황이 없다”며 일정 확정이 늦어지는 이유를 밝혔다. 김해 연합뉴스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관련영상]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 ’부엉이 바위’ 어떤 곳이길래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끝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대통령 재임시절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시점에서 고심끝에 몸을 내던지는 극단적 수단을 선택했다. 2003년 2월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6년 3개월만에 영욕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 올해 나이 63세다. 노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6시40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자신의 사저 뒤 봉화산에 경호관 1명과 함께 부엉이 바위에 올라 30m 아래 소나무밭으로 몸을 던졌다. 노 전 대통령은 머리 등에서 피를 흘리는 상태에서 김해 세영병원을 거쳐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직접 사인은 극심한 머리 손상 노 전 대통령의 직접적 사인은 극심한 머리 손상이었다. 아울러 추락의 물리적 충격으로 가슴뼈와 골반뼈 등이 심하게 부서졌다.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은 “노 전 대통령은 오전 8시23분쯤 인공호흡을 하며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도착 당시 의식이 없었고 스스로 호흡도 할 수 없었다.”면서 “두정부(머리 정수리)에 11㎝ 정도의 열상이 발견됐으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회복이 안 돼 오전 9시30분 중단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오전 9시30분쯤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서거하셨다.”면서 “이날 오전 5시45분 사저를 나와 봉화산을 등산하다가 봉화산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권양숙 여사는 남편의 시신을 확인한 뒤 정신을 잃었다가 병실로 옮겨져 안정을 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운구차에 실려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로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 시신이 안치된 관은 일반인들이 통상 장례식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것이라고 병원측은 밝혔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이호철 전 청와대 수석 등이 운구를 맡아 관을 차량에 실었다. 딸 정연씨 부부가 오열하며 이 광경을 지켜봤다. ●유족 7일 가족장 강력 희망 빈소는 봉하마을회관에 마련됐다. 장례 절차와 관련, 청와대측은 국민장을 제의했지만 유족 등은 ‘7일 가족장’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산에 오르기 전 짧게 남긴 메모 형식의 유서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달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포괄적 뇌물’ 640만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지난달 30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았다. 권 여사가 2007년 6월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전 회장의 돈 100만달러를 받았고,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이 송금한 500만달러를 투자운영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이 돈을 모두 요구해 받았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최근에는 딸 정연씨가 40만달러를 추가 송금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미국에 고급주택을 차명으로 샀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600만달러에 대해 자신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를 차례대로 불러 조사했고 노 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수수죄로 사법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이날 노 전 대통령이 숨지면서 검찰은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이 조사하던 정·관계인사에 대한 사법처리는 다소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경찰은 이날 경남지방경찰청에 이운우 청장을 수사본부장으로 하는 94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자살경위 등에 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운우 경남청장은 이날 오후 2시30분 브리핑을 갖고 취재진에게 노 전 대통령의 행적과 병원 후송과정, 수사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측은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전대미문의 사건이지만 일반적인 변사사건과 비슷한 경로로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측은 “해당 경호관은 물론 경호실과 측근, 유족 등을 대상으로 변사사건에 준하는 수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봉하마을의 경비를 강화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현지 특별취재팀 ●정치부 홍성규 김지훈 ●사회부 이재연 장형우 유대근 박성국 ●사회2부 김정한 한찬규 김상화 강원식 박정훈 ●사진부 김명국 도준석 정연호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23일 오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이날 오후 5시 39분 부산대 병원을 떠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운구된다.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약 40분 뒤 봉하마을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 전문이 공개됐다. 노 전 대통령은 사저를 나서기 26분 전인 오전 5시21분 컴퓨터 한글 파일에 마지막으로 저장한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화장해라.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오래된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빈소는 봉하마을에 마련될 예정이다.유족들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봉하마을 진입로가 좁아 고민했지만,유족과 문재인 전 비서실장 등 참모진이 상의해 빈소를 봉하마을에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유족과 김경수 비서관,문재인 이병완 전 비서실장,윤원호 전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위원장 등은 장례식장에 모여 가족장으로 할 것인지,정부의 국장 제안을 받아들일지 여부 등을 논의 중이다.유족들은 오후에 장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오전 9시25분쯤 부산대병원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을 확인한 직후 실신했던 권양숙 여사는 4시간여 만인 오후 2시쯤 의식을 되찾아 병원 11층 특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다음은 유서 전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책을 읽을 수도,글을 쓸 수도 없다.너무 슬퍼하지 마라.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미안해 하지 마라.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화장해라.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오래된 생각이다. 경찰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45분쯤 경호원 한 명과 함께 사저에서 나왔다.노 전 대통령은 사저에서 나오기 26분 전에 사저 안의 컴퓨터에 이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가 노 전 대통령을 근접 경호한 경호관의 보고를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 도착한 직후 경호원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경호원이 “가져올까요?”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가지러 갈 필요는 없다.”고 막았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바위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서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이 말이 경호원이 노 전 대통령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노 전 대통령은 이후 곧바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이 시각이 오전 6시40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는 사저 뒤편에서 경사 40도 정도의 비교적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 해발 100여m 높이이고 사저와의 직선거리는 200여m다. 한편 이운우 경남경찰청장은 23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과 관련해 “사건 현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것으로 보이는 등산화 한쪽과 피 묻은 상의를 발견해 수거했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이날 긴급 브리핑에서 수사 진행 과정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힌 뒤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사람은 이병춘 경호과장이며,아직 수사 초기 단계여서 이 과장의 진술은 확보된 게 없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사고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적절했는지,이 과장이 막을 수 없었는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청장은 또 노 전 대통령 시신의 부검 여부에 대해서는 “유가족 및 검찰과 협의해 결정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서 발견 경위에 대해서는 “유서는 이날 오전 5시10분쯤 컴퓨터 바탕 화면에 떠 있었으며,사고 이후 비서관에 의해 발견됐고 유서는 출력돼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에게 건네졌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양산 부산대병원 건물 부속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으며,앞서 허기영 부산대 법의학 교수 정재성 변호사 등이 입회해 검시한 결과 두개골 골절 및 다발성 장기 손상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때 실신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권양숙 여사는 이날 병원 귀빈(VIP)용 병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나우뉴스팀 nasturu@seoul.co.kr [관련영상]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 ’부엉이 바위’ 어떤 곳이길래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 ☞ 서울도 노 전대통령 추모 열기…‘촛불’ 켜졌다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경찰이 추모집회를 봉쇄하려는 목적으로 서울 시청 광장과 덕수궁 대한문 진입로를 통제해 곳곳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대한문 앞에는 이날 오후 4시부터 한 네티즌의 제안에 따라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됐다. 오후 6시까지 약 1000명(경찰추산)의 시민들이 찾아 영전에 헌화를 했다. 이에 경찰은 인근 지하철역인 시청역 출입구를 비롯해 주변 통행로를 모두 통제했다. 이같은 대응은 노 전 대통령 추모를 위해 덕수궁을 찾았던 시민들의 화를 부추겼을 뿐 아니라 주말 저녁 나들이객들과 이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불편을 끼쳤다. 항의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계단 위에서 카메라로 채증하는 모습이 눈에 띄며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장의 한 지휘관은 “추모집회가 폭력 시위로 변질될 위험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통제 이유를 밝혔다. ‘지하철역 채증’에 대해서는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해 답변할 수 없다.”며 해명을 피했다. 경찰은 분향소를 세우기 위해 준비된 천막을 압수했으며 이에 따라 시민들은 탁자 하나와 영정사진 하나만을 놓고 헌화 행사를 진행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관련영상]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 ’부엉이 바위’ 어떤 곳이길래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 ☞ 서울도 노 전대통령 추모 열기…‘촛불’ 켜졌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23일 오전 9시30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는 이 날 오후 5시39분 경남 양산의 부산대 병원을 떠나 오후 6시30분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했다.운구는 도착 5분후 마을회관에 안치됐다. 유족과 참모진 등은 병원측 제공한 버스와 승용차 등을 나눠타고 운구차를 뒤따랐다. 유족들은 이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됐던 부산대병원에서 “봉하마을 진입로가 좁아 고민했지만,유족과 문재인 전 비서실장 등 참모진이 상의해 빈소를 봉하마을에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족과 김경수 비서관,문재인 이병완 전 비서실장,윤원호 전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위원장 등은 봉하 장례식장에 모여 가족장으로 할 것인지,정부의 국장(國葬) 제안을 받아들일지 여부 등을 논의 중이다.유족들은 이날 모든 장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오전 9시25분쯤 부산대병원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을 확인한 직후 실신했던 권양숙 여사는 4시간여 만인 오후 2시쯤 의식을 되찾아 병원 11층 특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다음은 유서 전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책을 읽을 수도,글을 쓸 수도 없다.너무 슬퍼하지 마라.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미안해 하지 마라.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화장해라.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오래된 생각이다. 경찰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45분쯤 경호원 한 명과 함께 사저에서 나왔다.노 전 대통령은 사저에서 나오기 26분 전에 사저 안의 컴퓨터에 이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가 노 전 대통령을 근접 경호한 경호관의 보고를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 도착한 직후 경호원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경호원이 “가져올까요?”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가지러 갈 필요는 없다.”고 막았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바위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서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이 말이 경호원이 노 전 대통령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노 전 대통령은 이후 곧바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이 시각이 오전 6시40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는 사저 뒤편에서 경사 40도 정도의 비교적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 해발 100여m 높이이고 사저와의 직선거리는 200여m다. 한편 이운우 경남경찰청장은 23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과 관련해 “사건 현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것으로 보이는 등산화 한쪽과 피 묻은 상의를 발견해 수거했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이날 긴급 브리핑에서 수사 진행 과정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힌 뒤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사람은 이병춘 경호과장이며,아직 수사 초기 단계여서 이 과장의 진술은 확보된 게 없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사고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적절했는지,이 과장이 막을 수 없었는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청장은 또 노 전 대통령 시신의 부검 여부에 대해서는 “유가족 및 검찰과 협의해 결정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서 발견 경위에 대해서는 “유서는 이날 오전 5시10분쯤 컴퓨터 바탕 화면에 떠 있었으며,사고 이후 비서관에 의해 발견됐고 유서는 출력돼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에게 건네졌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양산 부산대병원 건물 부속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으며,앞서 허기영 부산대 법의학 교수 정재성 변호사 등이 입회해 검시한 결과 두개골 골절 및 다발성 장기 손상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때 실신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권양숙 여사는 이날 병원 귀빈(VIP)용 병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관련영상]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 ’부엉이 바위’ 어떤 곳이길래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 ☞ 서울도 노 전대통령 추모 열기…‘촛불’ 켜졌다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21) 서울 북한산 비봉능선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21) 서울 북한산 비봉능선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836.5m)은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도 서울의 상징이자 수호신으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북한산의 특징적인 매력은 미끈하게 잘 빠진 화강암 봉우리에 있다. 최고봉 백운대, 암벽 등반의 메카 인수봉, 무속인의 성지 보현봉 등 총 32개의 봉우리가 저마다 독특한 바위미를 자랑한다. 북한산을 즐기기에 좋은 방법은 능선 산행이다. 주능선, 의상능선, 원효능선, 우이능선, 진달래능선 등 북한산의 뼈대를 이루는 여러 능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비봉능선이다. 이곳은 북한산 서쪽 향로봉에서 문수봉까지 약 2.5㎞에 불과하지만, 서울 시내가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보이고 북한산 전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이처럼 전망이 좋고 풍광이 빼어나기에 진흥왕이 비봉(碑峰)에 순수비를 세우고 이곳이 자신의 땅임을 선포했던 것이다. # 순조 임금 탄생 비화가 서린 목정굴 비봉능선의 등산 코스는 구기동을 들머리로 비봉, 승가봉, 문수봉을 차례로 넘고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정석이다. 구기동 이북5도청을 지나 골목길 모퉁이를 두어 번 돌면 비봉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산행이 시작되면서 작고 아담한 계곡이 펼쳐진다. 졸졸 흐르는 개울을 기분 좋게 따르면 왼쪽으로 목정굴(木精窟) 안내판이 나온다. 등산로는 오른쪽이지만 목정굴을 구경하고 가는 것이 좋다. 목정굴은 순조 임금의 탄생 비화가 서린 동굴이다. 당시 고승으로 이름 높았던 농산 스님이 정조의 부탁을 받고 이 굴에서 기도를 드리다 입적해 순조 임금으로 환생했다는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목정굴은 ‘기도발’이 잘 듣기로도 유명하다. 굴 법당 안 수월관음보살 뒤로 계곡이 통하고 있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외부의 잡음을 차단하여 삼매에 들기에 좋다. 굴에서 이어진 길을 따르면 금선사가 나온다. 최근에 건물들을 세워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산세와 어우러져 분위기가 좋다. 절을 나오면 다시 등산로가 이어지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들어찬 호젓한 숲길이 끝나면서 돌계단이 이어진다. 30분쯤 된비알을 오르면 왼쪽으로 탕춘대능선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해 향로봉과 비봉 사이의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일단 능선에 붙으면 길은 순하다. 10분쯤 가면 비봉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화강암들이 켜켜이 쌓인 비봉은 오르는 길이 약간 위험하지만, 두 손으로 짜릿한 바위맛을 느끼며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정상에는 진흥왕이 555년 한강 일대를 평정하고 그 업적을 기리고자 세웠던 순수비(원형복제비)가 서 있다. 비석 앞에서는 북악산과 남산, 광화문의 빌딩들, 여의도와 63빌딩,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한강까지 한눈에 잡힌다. 저것이 산과 강이 어우러진 서울의 참모습이다. 비봉에서 내려와 5분쯤 가면 사모바위다. 이 바위는 남자들이 혼례식 때 머리에 쓰는 사모(紗帽)처럼 생겨 그렇게 부른다. 이곳은 헬기장이 넓고 주변 풍광이 좋아 휴식 장소로 인기가 좋다. 이어 승가봉을 넘으면 자연돌문에서 발걸음이 멈춰진다. 바위가 만들어낸 돌문을 통과하면 마치 신비의 세계로 입장하는 느낌이 든다. # 자연돌문을 통과해 문수봉으로 자연돌문에서 문수봉으로 가는 길은 암릉길과 우회로가 있다. 문수봉으로 직접 이어진 암릉길은 짜릿하고 경치가 빼어나지만 위험하다. 안전하게 우회로를 따르는 게 좋겠다. 암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왼쪽길을 따르는 우회로는 청수동암문까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15분쯤 이어진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암문으로 들어서 오른쪽 산성길을 따르면 문수봉이 지척이다. 비봉능선은 문수봉에서 끝나지만 능선 마루금은 주능선으로 이어져 백운대까지 뻗어 나간다. 문수봉을 내려오면 북한산성 12개 성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대남문이다. 2층 망루로 올라오면 보현봉이 잘 보이고, 그 옆으로 서울 시내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하산은 성문 밖으로 나가 구기계곡을 따라 내려오게 된다. 계곡을 만나기까지 급경사가 이어지니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내려온다. 구기계곡은 계곡미가 빼어나고 수량이 풍부하지만 좀 험한 것이 흠이다. 30분쯤 내려와 다리를 건너면 구기약수가 나온다.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2번 더 다리를 건너면 산행이 끝난다. 구기동 비봉통제소∼비봉∼대남문∼구기동 코스는 약 7.5㎞, 4시간쯤 걸린다. <여행전문작가〉 # 가는 길과 맛집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0212번 초록색 버스를 타고 종점인 구기동 이북5도청에 내린다. 불광역 2번 출구로 나와 7211번 초록색 버스를 타면 구기삼거리에서 하차한다. 구기동의 옛날민속집(02-379-6100)은 15년째 국산 콩을 직접 갈아서 만든 손두부, 콩비지, 청국장 등을 내놓는 한식집이다.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회장님은 댓글 다시는 중 은행에 이런 것까지 대통령 12년 만의 모내기 ‘큰 일’ 알바 시간당 1만원 이상 주는 곳 교과교실제 서울 공항중 가보니 싸면서도 품격 있는 와인 소개합니다 서울광장-노무현은 죽을까 수족구병 아기아빠도 急조심
  • 포항서 발견된 학성리비 신라시대 最古碑 가능성

    포항서 발견된 학성리비 신라시대 最古碑 가능성

    신라시대 최고(最古)로 추정되는 비석이 발견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5일 “최근 경북 포항시 흥해읍에서 발견된 ‘포항 학성리비’(가칭)가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영일 냉수리비’(503년·국보 제264호)보다 더 빠른 501년의 것으로 추정돼 신라시대 금석문 중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응급 보존처리 작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관계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비문의 상세한 내용을 정리해 자료집 발간과 학술 심포지엄 개최 등 후속 작업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학성리 도로 공사현장에서 한 주민에 의해 발견된 이 학성리비는 부정형 화강암(최대길이 104㎝, 최대너비 49㎝, 두께 12~13㎝, 무게 115㎏)의 한 쪽에 200여개의 글자가 음각돼 있으며 판독 가능할 정도의 양호한 상태다. 여기에는 신라시대 경주 6부 중 하나인 사훼부(沙喙部), 신라 17관등 중 여섯 번째인 ‘아간지(阿干支)’ 등의 글자가 확인되고 있다. 특히 비문 맨 앞에 보이는 ‘신사(辛巳)’가 비문의 제작 시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신사년은 지증왕 재위 2년인 501년 또는 진흥왕 22년, 561년이다. 561년 건립된 ‘창녕 진흥왕척경비’를 보면 벼슬의 관등명이 ‘아척간(阿尺干)’, ‘사척간(沙尺干)’ 등 ‘간(干)’으로 표기되는 반면, 이 학성리비에서는 ‘아간지(阿干支)’, ‘사간지(沙干支)’ 등으로 ‘지(支)’로 표기된다. 이는 학성리비가 561년보다는 501년에 건립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종일 학예연구실장은 “글자 자체는 판명이 되나 어떤 내용의 비문인지 전체적인 확인 작업은 앞으로 진행해야 할 부분”이라면서 “냉수리비, 울진 봉평신라비처럼 국보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日불교계 “한국침략 역사 참회” 여주서 공생기원비 제막

    한·일불교 문화교류대회에 참석한 일본 불교계가 일본이 한국민에게 고통을 끼친 과거사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을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 세웠다.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와 일한불교교류협의회는 13일 오전 신륵사에서 가진 제30차 한·일 불교문화교류대회에서 양국 스님들이 세계평화기원대법회를 봉행하면서 일본 측의 과거사 반성 내용을 새긴 인류화합공생기원비를 제막했다. 비문에는 “불행한 일이 여러 번 있었고 특히 근세에 일본이 한국민에게 다대(多大)한 고통을 끼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반성과 참회의 염(念)을 깊이 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안이 새겨졌다. 이 비문은 일한불교문화교류협의회장 미야바야시 쇼겐 스님이 과거사를 참회한다는 내용의 문안을 직접 작성했으며,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장 지관 스님이 비 앞면의 글귀를 썼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20) 경기 남양주 축령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20) 경기 남양주 축령산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에 걸쳐 있는 축령산(879.5m)은 숲이 좋은 산이다. 수도권에서 가깝고 깨끗한 시설의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어 지친 도시 사람들이 쉬어가기에 좋다. 축령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5월이다. 신갈나무,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고로쇠나무, 산벚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들이 뿜어내는 연둣빛 신록은 약동하는 봄의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게다가 축령산과 이어진 서리산(825m) 일대의 연분홍 철쭉이 만개하면 산은 옅은 화장을 한 새색시처럼 화사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5월에 축령산을 가장 많이 찾고, 산행 코스는 축령산자연휴양림에서 서리산으로 오르는 길을 선호한다. 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휴양림의 숙소인 산림휴양관 건물을 만난다. 휴양관 앞에는 심어 놓은 산철쭉이 만개해 마음을 설레게 한다. # 인공림과 자연림의 조화 휴양관 건물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르면 빽빽이 들어찬 잣나무 사이로 산길이 이어진다. 잣나무는 축령산의 대표적인 나무로 자연휴양림 일대와 산 동쪽으로 약 150㏊를 차지하고 있다. 가평에서는 이를 ‘축령백림(祝靈柏林)’이라 부르며 가평 8경의 하나로 꼽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잣나무들이 인공적으로 만든 산림이라는 것이다. 해방 전후에 심은 잣나무 묘목들이 60여년이 지난 지금은 아름드리 잣나무 숲으로 변해 후손들의 산림욕장과 자연휴양림으로 이용되고 있다. ‘서리산 2㎞’ 이정표를 만나면 잣나무가 사라지고 떡갈나무, 박달나무 등이 어우러진 자연림 숲길이 시작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힐 무렵이면 연분홍빛 철쭉 터널을 지나면서 능선에 올라붙는다. 일단 능선에 붙으면 길이 순하지만 꽃구경에 발걸음이 더디다. 이곳 철쭉나무는 자생종으로 수령이 50~80년 이상이고 다 자라면 3~4m 높이라 어른 키를 훌쩍 넘긴다. 서리산의 철쭉군락지는 축령산자연휴양림이 생긴 후에 등산객들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우연히 발견됐다고 한다. 이곳 철쭉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꽃이 작고 색이 짙은 ‘산철쭉’이 아니라 꽃이 크고 빛깔이 고운 철쭉이라 더욱 귀하고 아름답다. 특히 다섯 개 꽃잎 속의 긴 꽃술은 여인의 속눈썹처럼 부드럽게 올라가 우아한 자태가 돋보인다. # 3만 3000㎡(1만여평)의 자생종 철쭉밭 화채봉 삼거리에 이르면 각시붓꽃과 족두리풀이 땅바닥에 바투 붙어 피어 앙증맞다. 이어 ‘철쭉 동산’이라 써진 커다란 비석을 지나 나무 데크로 조성된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일명 ‘포토 데크’로 한반도 모양을 한 철쭉 꽃밭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여기서 서리산 정상으로 이어진 길을 따르다 보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하며 꽃에 취해 노래 한 자락을 흥얼거리기 마련이다. 서리산 정상은 시원하게 전망이 트인다. 남쪽으로 천마산∼철마산 능선이 시원하게 뻗어 있고, 동쪽으로 약 3㎞ 떨어진 축령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은 새순들이 뿜어내는 연둣빛 터널이다. 그 길을 따르다 보면 온몸이 연둣빛으로 물드는 느낌이다. 15분쯤 내려가면 억새밭 사거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하산할 수 있지만, 좀 더 능선을 타다가 절고개에서 내려가는 것이 좋다. 절고개는 서리산과 축령산의 중간 지점으로 3∼4월에는 야생화가 가득한 곳이다. 건각들이라면 절고개에서 축령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남이바위를 거쳐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타는 것이 좋겠다. 절고개에서 내려서면 휘파람이 절로 나는 울창한 잣나무숲을 통과하게 된다. 15분쯤 지나면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잔디광장에 닿고, 여기서 임도를 따라 다시 20분쯤 내려오면 산림휴양관을 만난다. 휴양림∼철쭉 동산∼서리산∼절고개∼휴양림 코스는 약 7.2㎞, 4시간쯤 걸린다. <여행전문작가> # 가는 길과 맛집 청량리역에서 마석 가는 기차나 버스를 이용한다. 청량리역에서 마석행 버스는 330-1, 765, 1330번이 운행된다. 마석에서 축령산 가는 30-4번 버스는 6:30 7:40 9:15 10:45 12:25 14:10 15:50 17:55 19:50 21:20에 있다. 축령산자연휴양림 앞의 서리산가든(031-591-6941)은 산채요리와 민물새우 우거지전골을 잘한다. 행현리의 전통음식점 옛골(031-585-1818)은 청국장 정식과 호박국수를 잘하는 집이다. 순창에서 구입한 콩으로 메주를 쑤고, 텃밭에서 내온 푸성귀들이 싱싱하다. 정성스러운 손맛으로 장떡, 도토리묵, 감자전 등의 반찬을 내온다.
  • “800년만에 전통 탑비 양식 되살렸죠”

    “800년만에 전통 탑비 양식 되살렸죠”

    “우리가 다시금 알아야 할 전통 양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지만 바로 그 점을 깨우쳐야 합니다.” 오롯하게 외길을 걸어 왔다. 그래서 호가 ‘외길’이다. 불교의 경전을 옮겨 쓰면서 수행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경(寫經)’이다. 초창기 불교 전파는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시대까진 나름대로 ‘사경수행’이 많았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공개적으로 중단됐다. 그런 세월의 흐름을, 700년간 잠들어 있던 사경을 다시 일깨운 사람이 바로 외길 김경호(47) 한국사경연구회 회장이다. ●초안선사 탑비 복원작업 완료 그는 최근 또 하나 전통의 맥을 이었다. 전통 탑비(塔碑) 양식, 그러니까 800년 만의 현대적인 복원작업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탑비란 고승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도곁에 세워지는 비석이다. 거기에는 주인공의 한과 삶이 맺힌 글이 빼곡히 적혀 있다. 김 회장은 최근 경기 양주의 사찰인 오봉산 석굴암에서 열반한 초안(속명 송만석·1926~1998) 선사의 탑비 복원작업을 완료했다. 이는 비문에 들어갈 글과 문양을 종이 위에 제작하는 작업이다. 남은 일은 석공이 그대로 돌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는 “불교가 발전했던 옛날 국사나 왕사 등의 전통적인 탑비는 지금처럼 비신(비석의 몸체)에 행장을 기록한 글만 새겨진 게 아니다.”면서 800여 년 만에 전통 양식을 되살렸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아울러 “전통 탑비 양식은 1085년에 세워진 법천사 지광 국사 현묘탑비에서 볼 수 있다.”면서 비신의 테두리와 윗부분에 극락세계를 상징한 그림과 아름다운 무늬를 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려 말을 거치면서 상징은 도식화됐고 1150년대 이후에는 아예 찾아 보기 어렵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우주선·휴대전화 등 현대 상징물도 담아 그가 이번에 제작한 탑비는 옛날 양식을 살렸을 뿐 아니라 불교 경전인 아미타경(阿彌陀經)에 표현된 극락세계를 참조했다. 꽃, 악기, 우주선, 휴대전화, 폭죽 등 현시대의 상징물까지 반영했다. 그렇다면 전통 탑비 양식이 왜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그는 “오래 잊혀 있던 문화이다 보니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이번 탑비를 제작하면서 이제는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시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사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네살 때. 붓을 잡고 부친에게서 획과 결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 진학도 미룬 채 홀로 서예공부에 빠졌다. 중학교를 1년 늦게 진학한 그는 이후 각종 전국 학생서예대회에 출전, 최우수·우수상 등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다. 고교 시절에는 사경에 빠져 세번이나 부모 몰래 출가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던 중에 가족들에게 붙잡혀 왔고, 두륜산에서는 토굴에서 지내기도 했다. 김문 문화부장 km@seoul.co.kr
  • 격동의 50년대… 댄스에 빠진 ‘자유부인’은 쾌락 때문?

    격동의 50년대… 댄스에 빠진 ‘자유부인’은 쾌락 때문?

    6·25전쟁에서 4·19혁명에 이르는 1950년대는 격동의 혼란기였다. 전쟁의 폐허 복구 과정에서 경제원조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토대가 형성되는 한편으로 반공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로 사회 전반을 통제했다. 무엇보다 ‘자유’와 ‘민주’, ‘실존주의’ 같은 근대 서구화 사상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유교적 전통과 관습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가치관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아프레걸= 전후(戰後)+girl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동국대 출판부 펴냄)는 무정형의 욕구가 사방으로 분출되던 1950년대 문화 현상의 실체와 내면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1950년대는 전근대사회로부터의 탈피를 강력히 추동하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자양분으로 작용했고, 격렬한 지각변동을 거치게 된다. 권보드래 동국대 교수를 비롯한 10명의 필진은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관, 지성적 열망과 퇴폐적 향락이 뒤엉킨 채 공존했던 당대의 문화를 읽는, 나름의 독법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미국 문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복제의 욕구가 놓여 있다. 저자들이 주목한 키워드는 ‘아프레걸(Apres girl)’이다. 전후(戰後)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프레 게르(apres guerre)’에 영어 단어 소녀(girl)를 합성한 이 조어는 향락, 사치, 퇴폐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분방하고 일체의 도덕적인 관념에 구애되지 않고 구속받기를 잊어 버린 여성들”로 ‘성적 방종’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신상옥 감독의 영화 ‘지옥화’, 이강천 감독의 ‘아름다운 악녀’ 등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육체적 쾌락과 돈에 대한 욕망을 직설적으로 내뿜는다. 1950년대 서울신문에 연재돼 숱한 화제를 뿌렸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남편의 제자와 춤을 추러 다니는 중산층 ‘아프레 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영화와 소설에 등장하는 이 아프레 걸들은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아프레 걸을 ‘자유를 갈망하던 사회적 약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테면 ‘자유부인’의 주인공 선영이 댄스나 계, 자모회 같은 영역에 진출하게 된 것은 사회적 요구가 작용한 것인데 그 책임은 오로지 여성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지적한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아프레걸들의 일탈은 쾌락과 욕망을 위한 값싼 방종이 아니라 잃어 버린 자아를 되찾는 과감한 모험이라는 주장이다. ●현모양처 여성상 계몽했던 잡지 ‘여원’도 흥미 아프레걸이 미국의 문물을 소비하고, 댄스와 같은 미국식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당대의 새로운 여성상을 대변한다면, 1950년대 지적 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던 잡지 ‘사상계’는 미국식 합리주의와 실용주의에 기반한 지식 엘리트의 문화를 상징한다. 1950년대 중반 창간된 여성지 ‘여원’을 통해 여성담론의 변화를 읽어 내는 대목도 흥미롭다. 현모양처 여성상의 계몽을 표방했던 ‘여원’은 짧은 기간이지만 독신여성 같은 다양한 여성 담론을 형성해 냈다. 하지만 곧 농촌여성을 중심으로 한 비도시 하층민 여성이 주 독자층으로 형성되면서 ‘여원’의 편집방향은 대중적 통속화의 길을 걷는다. 2만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강북구 “오패산 숲속여행 떠나요”

    강북구가 이달 11일부터 11월까지 숲 해설가와 함께하는 ‘테마가 있는 오패산 숲속여행’을 운영한다고 1일 밝혔다.1·3주 일요일과 2·4주 토요일에 열리는 숲속여행 프로그램은 벌리 약수터, 대왕참나무 숲, 꽃샘길 등을 돌면서 계곡, 생물 등을 관찰하고 오패산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꾸며졌다. 전문 해설가가 동행하는 만큼 숲의 자연 생태와 지역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꽃의 비밀 알아보기(4월), 곤충을 찾아라(6월), 숲속 미화원(7월) 등 매월 다른 주제를 선정, 참가자들의 흥미를 극대화했다. 아이들이 관심을 갖고 자연과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사방치기, 비석치기, 콩주머니 등 전통놀이도 마련됐다. 참가자는 1회에 50∼60명으로 제한되며, 서울시 숲속여행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참가비는 무료다. 강북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오패산 정상에선 백운봉, 인수봉, 만경봉은 물론 도심 경치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4) 월출산 구름다리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4) 월출산 구름다리

    “우와~, 바위가 살아 있는 거 같아요.” 전남 영암과 강진에 걸쳐 있는 월출산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판소리 서편제의 가락처럼 구성지게 늘어지는 남도의 구릉과 벌판에서 느닷없이 화강암 덩어리들이 치솟았다. 게다가 산 이름이 월악산도, 월영산도 아닌 월출산이다. 달을 낳은 산이라니? “남도에 그림 같은 산이 있다더니, 달은 하늘 아닌 돌 사이에서 솟더라.”라고 한 매월당 김시습의 말처럼 월출산은 훤한 달빛 아래 바위들이 빛날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월출산은 우리나라의 20개 국립공원 중에서 면적은 가장 작지만, 금강산·북한산·설악산 등의 절경을 모아 놓은 풍광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등산로는 천황사 입구에서 시작해 천황봉, 구정봉을 거쳐 도갑사로 내려오는 종주 코스다. 6시간 이상 걸리는 이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거친 돌길이라 만만치 않다. 봄맞이 가족산행이라면 바람골을 따라 구름다리까지만 오르내리는 짧은 코스를 권하고 싶다. 구름다리 코스는 월출산의 짜릿한 바위미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자봉 오른쪽 가슴에 걸린 구름다리 천황사 입구 주차장에는 ‘월출산’이라 새겨진 큰 비석이 서 있다. 그 앞에서 월출산의 수려한 암봉들과 눈을 맞추는 것이 산행의 시작이다. 왼쪽의 사자봉과 오른쪽 장군봉, 그 가운데 까마득히 솟구친 천황봉을 올려다보면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그렇게 심장에 시동을 걸었으면 출발이다. 목표는 사자봉의 가슴팍에 걸려 있는 빨간 구름다리다. 주차장에서 5분쯤 오르면 소나무가 우거진 야영장을 지나면서 호젓한 숲길로 들어선다. 제법 가파른 비탈에 숨이 차오를 무렵이면 작은 다리를 만나면서 길이 갈린다. 왼쪽은 천황사를 거쳐 구름다리로 오르는 능선길이고, 다리를 건너면 바람골 계곡을 거쳐 구름다리로 간다. 구름다리 코스는 먼저 바람골로 올랐다가 천황사로 내려오는 길이 수월하다. 다리를 건너면 바람골이 시작되는데, 꼭 설악산 천불동계곡에 들어선 기분이다. 사방으로 견고한 화강암들이 들어차 있고, 시원한 계류가 흘러온다. 물의 곡선을 따라 이리저리 휘어지는 계곡길을 20분쯤 오르니 다시 갈림길. 여기서 구름다리는 왼쪽으로 300m 거리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자 머리 위로 구름다리가 걸려 있다. “우와~ 바위가 살아 있는 거 같아요.” 아빠 손을 단단히 잡은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구름다리는 참으로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았다. 매봉과 사자봉, 멀리 바람골 건너편의 천황봉과 장군봉의 암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모두 구름다리를 쳐다보고 있다. 다리를 건너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짜릿짜릿 오금이 저린다. 다리의 높이는 지상에서 120m라고 하지만 체감 높이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까마득한 벼랑이다. ●남도의 푸른 들판에 솟구친 암봉들 이곳에 구름다리가 처음 놓인 것은 1978년. 당시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다리 폭이 좁았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크게 흔들렸으며 다리 바닥으로 밑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그래서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중간에서 되돌아오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지금은 해발고도 510m의 높이에, 길이 52m, 폭 1m의 규모로 2006년 5월에 새로 지어 개통했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설악산 일부를 옮겨놓은 듯한 장군봉의 암봉들이 장쾌하다. 그 오른쪽으로 영암의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남도의 부드러운 들판에서 솟구친 암봉은 월출산이 아니면 보기 힘든 풍경이다. 반듯하게 정리된 들판은 푸른 헝겊들을 잇대어 기운 조각보 같다. 그 헝겊마다 청보리가 쑥쑥 자라고 있다. 물씬 봄 냄새가 전해지는 따뜻한 풍경이다. 구름다리를 지나면 가파른 철계단이 이어지면서 사자봉과 장군봉의 비경이 계속된다. 가파른 철계단을 15분쯤 오르면 매봉 정상이다. 건너편 장군봉 너머로 영암 시내가 잘 보인다. 구름다리 산행은 여기까지다. 이곳에서 시원한 조망을 즐기고 다시 구름다리로 내려온다. 구름다리 입구 정자 앞에서 능선길을 따르면 천황사로 내려가게 된다. 가파른 길을 40분쯤 내려오면 천황사를 지나 바람골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주차장~바람골~구름다리~천황사~주차장 코스는 약 3㎞, 2시간30분쯤 걸린다. 여행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함평IC로 나와 공산~반남을 거쳐 영암에 이르는 것이 가장 빠르다. 호남고속도로를 타면 광산IC로 나와 나주를 거쳐 영암에 이른다. 대중교통은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02-6282-0600)에서 서울→영암행 08:50, 15:40, 16:50 하루 3회 운행. 영암 시내에서 월출산 입구로 가는 버스는 영암→천황사 07:10 09:00 10:10 15:20 16:30. 영암→도갑사 09:30 16:10. 바다와 접한 영암은 남도 고을답게 먹거리가 풍성하다. 영암군청 옆의 40년 전통의 중원회관(061-473-6700)이 유명한 맛집이다. 수차례 남도음식축제의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문희례 할머니가 직접 밑반찬을 챙긴다. 호남 한우와 갯벌에서 잡은 낙지를 함께 넣어 끓인 갈낙탕은 영암 별미 중 최고로 꼽힌다. 1만 5000원.
  • 故 최진실 유족, 추모비 건립 찬성

    故 최진실 유족, 추모비 건립 찬성

    지난해 10월 2일 세상을 떠난 故 최진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질 예정이다. 작곡가 정의송은 3일 “유족들의 동의를 받아 오는 21일 오전 11시 경기도 양수리 갑산공원에 안치돼 있는 최진실 묘원에 추모곡을 새긴 노래비 제막식을 거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진실씨 어머니를 비롯한 유족과 최진실씨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라며 “그녀가 남긴 아름다운 사연과 추억들을 영원히 새기려 한다.”고 의도를 전했다. 정의송은 “그동안 유족측과 갑산공원측에 협의한 결과 추진해도 된다는 연락을 받게 됐고 이에 이번달 21일 추모비건립을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비석에 새겨질 고인의 추모곡은 ‘진실, 꽃이 되신 님아’라는 노래로 정의송이 직접 작사와 작곡을 도맡았다. 또한 정의송이 최진실에게 남기는 글이 가사 밑에 덧붙여 진다. [ 최진실 추모비 내용 전문 ] 꽃은 졌네 싸늘히 졌네 아직도 봄이 남았는데 그 파리한 꽃잎을 떨며 꽃은 졌네 어딜 가나 어디로 가나 아직도 봄이 남았는데 그 애달픈 눈물 머금고 어디로 가는가 그토록 많이 외로우면 외롭다고 소리치지 그리도 많이 서러우면 서럽다고 소리치지 아! 가엾다 너무 가여워서 애끓는 울음이어라 부디 잘 가거라 꽃이 되신 님아 그토록 많이 쓸쓸하면 쓸쓸하다 소리치지 그리도 많이 그리우면 그립다고 소리치지 아! 보고파 너무 보고파서 애끓는 울음이어라 편히 잠들거라 꽃이 되신 님아 꽃이 되신 님아 최진실님, 당신이 남기신 아름다운 자욱들은 우리들의 가슴에 영원히 아로새겨져 있을것입니다. 사랑했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SK그룹 달력 일본 전시회에서 특별상 수상

    SK그룹 달력 일본 전시회에서 특별상 수상

    SK그룹은 22일 자체 제작한 ‘2009년 VIP용 달력’이 제60회 일본 달력 전시회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특별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일본 인쇄산업연합회가 주관한 달력 전시회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 제작된 달력을 대상으로 응모작을 모집해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수상작을 선정한다. 올해 VIP용 달력은 우암 송시열의 서예작품, 광개토대왕 비문, 고려시대 탄연의 필적이 담긴 비석 등을 소재로 디자인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7) 북한산성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7) 북한산성

    북한산은 북한산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북한산성이 북한산이라는 천연의 요새를 최대한 이용해 축조된 까닭이다. 백제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산성은 1711년 조선 숙종 때 대대적으로 개축됐다. 당시 산성은 14개의 성문과 120칸의 행궁, 140칸의 군창 등이 있어 유사시 수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북한산성을 한 바퀴 도는 코스는 우리 역사의 아픔과 북한산의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산길이다. 총 14개의 성문 중에서 능선에 있는 12개의 성문을 거치기 때문에 흔히 ‘12성문 종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겨울철에 산성 일주는 무리이고, 원효봉과 의상봉을 중심으로 작은 원을 그리며 산성계곡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북한산성 최고의 전망대 원효봉 구파발 인근의 효자리 마을회관 정류장에 내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펑퍼짐한 원효봉이 눈에 들어온다. 원효봉은 전체가 암봉이지만 생김새가 후덕해 정이 가는 봉우리다. 마을을 지나서 원효암 안내판을 만나면서 산길이 시작된다. 야트막한 능선에 올라붙으면 첫 번째 성문을 만난다. 산성 안의 시체가 나오는 문으로 알려진 시구문(서암문)이다. 시구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성길이 시작되고 15분쯤 가면 원효암에 닿는다. 근처에 원효대사가 수행했던 원효대가 있다고 해서 원효암이란 이름이 붙었다. 원효암을 지나면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쇠 난간을 잡고 암봉에 올라서면 탄성이 터져나온다. 그동안 막혀 있던 조망이 시원하게 뚫린 까닭이다. 돌불꽃으로 치솟은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836.5m)가 하늘을 불태울 기세고, 멀리 도봉산 오봉이 어른거린다. 암봉에서 내려서 솔숲을 통과하면 원효봉 정상이다. 이곳은 온통 암반이라 정상 자체의 품격도 뛰어나지만, 조망 또한 북한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백운대·만경대·노적봉이 어울려 눈부신 성채를 이루고, 그 오른쪽으로 대동문~문수봉~용출봉~의상봉까지 북한산성을 구성하는 주요 봉우리와 성문이 조망된다. 험준하기 짝이 없는 화강암 봉우리들을 연결한 산성은 가히 하늘이 내린 난공불락의 요새다. ●산성에 얽힌 뼈아픈 역사 1711년의 북한산성 증축은 사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었다. 병자호란의 뼈아픈 굴욕을 당한 후에 수도 한양에 가까운 철옹성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북한산성은 안타깝게도 실전에서는 한 번도 사용되지 못했다. 북한산성은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한 자들은 오히려 외세였다. 산성 내 축조되어 있던 시설물들을 철저하게 파괴한 자들은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산성이 항일무장투쟁의 본거지로 사용된다면 얼마나 진압이 어려울지를 훤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효봉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북문에 닿는다. 북문은 지붕이 사라져 뼈대만 앙상하지만 홍예문의 무지개 곡선이 우아하다. 북문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면 상운사를 스쳐 대동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계곡을 건너 북장대 능선을 따르는 것이 이번 산길의 핵심이다. 10분 정도 오르면 적석고개에 닿고 하산하면서 노적봉이 기막히게 보이는 훈련도감터와 노적사를 차례대로 만난다. ●김시습이 시를 썼던 산영루 노적사에서 내려오면 산성계곡을 만난다. 행궁, 절, 군창 등 북한산성의 주요 시설물이 자리잡은 넓고 평탄한 계곡이다. 15분쯤 오르면 비석거리가 나온다. 비스듬히 누운 암반에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비석들은 당대 북한산성 총사령관들의 선정비가 대부분이다. 비석거리 앞 계곡에 정자 주춧돌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유명한 산영루다. 기록에 의하면 산영루는 산성계곡 최고의 절경인 향옥탄을 바라보고 있고, 김시습이 하루 종일 시를 써서 계곡물에 띄워 보냈다고 한다. 산길은 산영루 터에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면서 중성문을 지난다. 중성문은 북한산성 안의 내성(內城)으로 순한 계곡길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어 법용사에서 왼쪽 길을 택해 국녕사를 지나면 가사당암문이다. 의상능선에서 가장 험준한 나한봉, 증취봉, 용출봉을 건너뛴 것이다. 암문에서 지척인 의상봉에 오르면 넓은 암반이 펼쳐지고, 산성계곡이 손금처럼 훤히 보인다. 하산은 의상봉에서 급경사를 조심조심 내려오면 마지막으로 대서문에 닿는다. 효자리~원효봉~북문~적석고개~비석거리~의상봉~대서문 약 7㎞, 3시간가량 걸린다. 산악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704번 파란색 버스를 탄다. 북한산성 입구 다음 정류장인 효자동 마을회관에서 내린다. 하산 지점인 북한산성 산성마을에는 뒤풀이 장소가 넘쳐난다. 이곳 식당들은 대부분 양미리구이를 파는데,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다. 한 접시 5000원.
  • 고향마을이 사라졌다

    고향마을이 사라졌다

    마을이 사라진다. 우리네 마음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농어촌 마을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댐 건설과 지역 개발 등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서뿐 아니라, 마을 주인인 주민들이 스스로 고향을 등짐으로써 마을 자연소멸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새 전입주민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고령화에 따른 주민들의 잇따른 사망은 마을 붕괴를 더욱 재촉하고 있다. 마을 소멸과 함께 설을 맞아 귀성할 곳을 잃은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으며, 고유의 문화와 풍습도 종적을 감추고 있다.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일정 부분 담보했던 공동체 의식과 유교 정신, 나눔과 이웃사랑, 넉넉한 인심 등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19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60년 13만 1936개에 달했던 농어촌 마을이 1980년 12만 4028개, 1995년 11만 6373개에 이어 2007년 10만 5377개로 급격히 감소했다. 총리실 산하 농촌경제연구원이 한국통계연감과 행정자치통계연보를 토대로 농어촌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7년 사이에 20여%인 2만 6559개 마을이 종적을 감췄다. 이 가운데 1995년 이후 12년 사이에 전체 소멸된 마을의 42%인 1만 996곳이 사라졌다.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40년 뒤면 농어촌 마을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자연마을 ‘입석’은 10년 전에 사라졌다. ‘도송골’이라고도 불린 이 마을은 1980년대 중반까지 50여가구가 살았다. 이 마을 출신인 금산우체국 집배원 한신(34)씨는 “주민들이 자녀교육 등을 위해 마을을 떠나니까 이들과 정이 든 이웃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따라 나갔다.”면서 “마을이 급격하게 무너졌지만 그래도 90년대 중반까지 5~6가구는 살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마을에는 주인이 떠난 빈 집터에 사찰이 들어섰고, 마을 입구에 ‘입석’이라고 새겨진 돌비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소멸되기 전 이 마을에서는 농사철마다 품앗이를 했고, 아이들은 쥐불놀이와 연날리기 등을 즐겼을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이동필 선임연구위원은 “마을의 소멸은 주민들의 심각한 고령화로 더욱 가속화되고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지난 2005년의 면(面)지역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39%에 달했다. 젊은이들이 제법 있는 면소재지를 제외할 경우 마을단위 고령화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환갑을 넘긴 노인이 ‘청년’으로 분류되는 마을이 부지기수이고 신생아가 ‘20년 만에 태어났네, 30년 만에 태어났네.’ 하는 마을은 셀 수 없이 많다. 아직 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의 상당수가 마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강 교수는 “적자생존과 효율성만을 따지는 정부의 시장·경제 논리는 작은 농어촌 마을의 소멸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면서 “마을의 소멸로 인해 고유의 가치와 문화가 사라지면 소프트파워 측면에서의 국가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조선시대 묘 석인상 구경하세요”

    노원구는 5일 ‘조선시대 묘(墓) 석인상 전시공원’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월계동 비석골근린공원에 들어선 이 소공원에는 8000㎡ 규모로 문관상(文官像) 13기, 동자상(童子像) 6기, 망주석(望柱石) 8기, 비석(碑石) 2기, 상석(床石) 2기 등 모두 31기의 석인상이 배치됐다. 월계동 염광학원과 공릉동 경춘선 철로변, 수락산, 불암산, 상계동 도선사 입구 등에 방치돼있던 석인상들을 한 곳에 모은 것이다. 이곳에 전시된 석인상은 외부 침입으로부터 무덤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관복 차림에 두 손을 모아 홀(笏·제사 절차를 기록한 문서)을 잡고 있는 문관상, 주요 인물을 수행하는 시자(侍者)로서의 의미가 강한 동자상, 2m 높이의 기둥으로 묘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하고 영혼이 자신의 묘를 알아볼 수 있게 안내 역할을 하는 망주석, 죽은 이의 일대기와 업적을 기록해 세운 비석 등이 있다. 소공원에는 또 높이 85~190㎝, 폭 38㎝에 이르는, 조선 초기부터 1900년대까지의 석물들이 전시돼 석공예 조각품의 시대적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른바 석물 변천연구의 교육 공원으로 꾸며진 셈이다. 산책로와 의자, 조명 등의 편의시설도 마련됐다. 이팝나무 외 7종 21그루, 1060본의 나무와 꽃을 심어 주민휴식 공간으로 조성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석인상 전시공원과 인접한 초안산 조선시대의 분묘군을 합쳐 국내 최초의 석인상 야외박물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NASA ‘존슨 스페이스 센터´르포

    NASA ‘존슨 스페이스 센터´르포

    │휴스턴(미 텍사스주) 박건형특파원│ 카우보이와 유전의 본고장인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남동쪽으로 40㎞가량 떨어진 곳에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 ‘우주 전초기지’가 자리잡고 있다.세계 제일의 우주연구소인 미항공우주국(NASA) 본원의 겉모습은 규모만 클 뿐 평범한 연구소와 다를 바 없었다.휴스턴 본원은 미 전역에 있는 NASA의 10개 기지 중 연구개발의 핵심을 맡고 있는 곳이다.이곳의 공식 명칭은 ‘린든 존슨 스페이스 센터’로 미국의 36대 대통령인 텍사스 출신 린든 존슨의 이름에서 따왔다. ●우주선·우주복·탐사장비… 첨단 과학관 인기 “NASA는 어린 시절부터 꿈을 갖고 자라온 미국인들의 희망이 현실화되는 곳입니다.그 때문에 투입되는 비용은 효율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었죠.한번 발사하고 버리는 로켓을 만들면 간단하지만,NASA 과학자들은 비행기처럼 언제든지 타고 오르내릴 수 있는 우주비행선을 머릿속에 상상해 왔고 실제로 만들어 냈습니다.물론 한번 우주를 다녀올 때마다 완전히 분해하고 조립해야 하는 비효율성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요.” 마리안 로사 센터 팀장은 ‘꿈’과 ‘상상’이라는 단어를 대화 내내 반복했다.존슨센터에서 꿈을 이룬 과학자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사람들이 또다른 꿈을 갖게 된다는 것이 로사 팀장의 말이다.존슨센터의 입구에 위치한 ‘스페이스센터 휴스턴’에 들어서자 어린아이들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람객들로 북적였다.과학관 형태를 갖추고 있는 스페이스센터는 미국 항공우주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스페이스센터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80년대.이전까지 아무렇게나 진열돼 있던 우주탐사 장비와 모형을 교육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워진 유인우주비행교육재단(MSFEFI)은 새롭게 센터를 세워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관을 만들어냈다.전시관 내에는 아폴로 우주인이 달에서 가져온 암석과 아폴로,머큐리,제미니 등 우주선의 모형과 실물이 전시돼 있다.우주왕복선 모형은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있고 지금까지 사용된 모든 종류의 우주복도 관람객들 사이에서 인기다.. ●1969년 달착륙 당시 관제센터 영구 보존 전기자동차를 타고 NASA 연구소 내부로 들어가자 여러 곳에 세워진 대형 로켓 실물들이 눈에 띄었다.전기자동차가 선 곳은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탐사 당시 사용됐던 미션컨트롤센터(MCC) 입구다. 이곳은 현재 사용되지 않지만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영구 보존되고 있다.60년대에 사용됐던 모니터와 전산기계에 가까운 컴퓨터의 모습은 그 당시 초라했던 기술로 달 탐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이들의 우수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MCC 안에서는 그 당시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발을 내딛기 전에 말했던 “개인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That‘s one small step for man,one giant leap for mankind)”이라는 암스트롱의 첫 교신이 끊임없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MCC에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안내 자원봉사를 하는 70대의 전 NASA 직원 페드로는 “이곳에는 현재 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어린아이들이 동경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한다.”면서 “‘아폴로 우주선이 실제로 달에 갔느냐.’고 묻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MCC를 나와 옆 빌딩에 들어서자 끝없이 이어진 창문 너머로 우주정거장과 우주왕복선 모형이 나타났다.실제 우주인들이 훈련을 받는 공간이자 연구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활용하는 곳이다.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머물렀던 즈베즈다 모듈을 비롯해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똑같이 만들어진 거대한 우주정거장과 도저히 하늘을 날 것 같지 않은 우주왕복선의 모습은 지난 수십년간 미국이 얼마나 많은 돈을 우주개발을 위해 투자했는지 대변하고 있었다. ●컬럼비아·챌린저호 ‘살신성인´ 되새겨 외곽에 있는 아폴로 계획 전시장에는 실물 크기의 새턴 로켓이 전시돼 있다.당초 새턴Ⅴ는 아폴로 18호를 싣고 우주로 향할 계획이었지만 너무나 막대한 재정지출을 감당하지 못한 미국 정부의 중단 결정으로 전시장에 누워 관람객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다.그러나 60층 높이의 거대한 로켓은 그 자체로도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입구로 돌아가는 전기자동차가 마지막에 멈춘 곳은 의외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갓길에 심어진 일련의 나무들이 있는 곳이었다.나무들 옆에는 조그마한 비석이 심어져 있다.바로 컬럼비아호와 챌린저 등 우주를 향해 날아가다 폭발해 사라진 우주인들의 무덤이다.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로사 팀장은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인류의 꿈을 위해 희생된 우주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NASA 연구진들은 새 각오를 다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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