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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안사 사찰 규탄/공동집회 갖기로/9개 정당ㆍ사회단체

    평민ㆍ민주당과 민중당(가칭) 및 통추회의 등 9개 정당ㆍ사회단체로 구성된 확대비상시국회의는 11일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13일 보라매공원에서 열리는 「보안사 대민사찰규탄 국민대회」를 시발로 보안사 불법사찰 공동조사와 범국민서명운동 지방주요도시의 공동집회를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 13일 「사찰」 규탄집회/보라매공원서/윤이병 참석 증언검토

    ◎정당ㆍ재야대표 확정 평민당과 민주당 「통추회의」 「국민연합」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등 9개정당과 재야ㆍ종교단체 대표들은 9일 하오3시부터 종로구 충신동 「전민련」사무실에서 「확대비상시국회의 집행위원회」를 열고 오는13일 「보안사불법사찰 국민대회」를 열기로 하고 집회장소와 방범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당초 13일에 열릴 집회장소를 여의도 광장으로 결정했었으나 국군의 날 행사를 위해 설치해 놓았던 시설물이 아직도 남아있는 점을 고려,여의치 않을 경우 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집회를 갖기로 했다. 이들은 또 13일에 열릴 집회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이병(24) 또는 그의 가족들이 보안사의 비리를 증언하는 기회를 갖게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 13일 「사찰」 규탄 집회/어제 재임단체 대책회의

    평민당과 민주당소속 의원 및 천주교ㆍ불교ㆍ「국민연합」 등 9개 종교ㆍ재야단체 회원 30여명은 8일 하오6시30분쯤 서울 중구 명동 향린교회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문제와 관련,대책회의를 열고 각 단체가 연대해 「확대비상시국회의」를 구성하고 오는13일 하오2시 여의도에서 범국민규탄대회를 열기로 했다. 앞서 평민ㆍ민주당 및 「전민련」 등 26개 정당ㆍ재야단체회원 60여명은 이날 상오8시30분쯤 같은 곳에서 보안사의 민간인사찰에 대해 정부의 정확한 진상규명과 국방부장관파면,국군보안사령관 구속수사 등 책임자의 처벌 등을 요구했다.
  • 야 통합의 “먹구름”지분다툼/「통합15인위」앞둔 양당의 대응전략

    ◎평민 「선통합」원칙 고수… 이총재 발목잡기 안간힘/민주 계파갈등ㆍ내분증폭 우려,「선이견조정」고집 평민ㆍ민주당과 통추회의등 야권3자가 8일 상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통합정당 15인 추진기구」첫모임을 갖게 됨에 따라 야권통합논의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다. 회담을 앞두고 평민ㆍ민주 양당의 지도부가 원칙적인 통합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평민당측은 「선통합 후이견조정」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측은 「선이견조정 후통합」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회담을 하루 앞둔 7일 김대중총재의 확고한 구심력으로 일사불란한 평민당측은 당무회의에서 조기통합성사를 위해 은근히 민주당 이기택총재의 결단을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나섰다. 이와는 달리 이총재의 구심력에 비해 원심력이 더 큰 민주당측은 이날 정무회의에서 평민당 김총재의 2선후퇴론을 주장하는 원외위원장들의 목소리를 잠복성이슈로 남겨둔 채 제3자 추대론ㆍ공동대표제ㆍ「동등지분에 의한 실질적 경선」등 백가쟁명식 설왕설래가 있었다. ○…평민당은 이날 상오 김대중총재주재로 5인 협상대표조찬 모임과 당무회의를 잇따라 열어 「선통합 선언 후이견 조정」원칙을 재확인 특히 평민당측은 이날 통합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이총재등과 민주당내에 엄존하고 있는 김총재 2선후퇴론자를 분리시키기 위한 의도인 듯 「선통합선언 후조정」안이 본래 평민당안이 아니라 민주당 이총재의 안이라고 주장해 눈길. 김총재는 이날 상오 가든호텔에서 열린 5인협상대표와의 조찬모임에서 『15인 추진기구는 통합신당의 조직등을 논의하기 위한 기구가 아니라 통합선언을 하기 위한 기구』라면서 『야권3자가 선관위에 합당등록한 후 지도체제ㆍ지분문제 등은 새로운 통추위를 구성해 논의해야 한다』며 「선통합선언」의 분명한 지침을 내렸다는 후문. 이에 따라 김태식대변인은 『「선통합선언 후조정」안은 지난달 20일 3자 회동과 보라매집회에서 이 민주총재가 먼저 했던 얘기』라고 주장하면서 『15인 기구에서는 이미 국민앞에 약속한 통합정신에 입각해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말해 김총재2선후퇴론이 크게 분출한 지난달 26일 지구당위원장 회의를 계기로 신중론으로 선회한 이총재의 발목잡기에 안간힘. 5인협상대표인 정대철의원은 신문스크랩을 「증거물」로 제시하며 『지난 7월10일 이후 민주당 이총재와 김정길의원등의 발언을 정리해보면 「선통합 후조정」안인데 이제 와서 「선조정 후통합」을 얘기하고 있다』면서 『이총재가 계속 자기주장을 번복하면 통합이 곤란해진다』고 공격. 정의원은 또 『평민당의 경우 김총재의 역할이 9할5푼이라고 한다면 민주당도 이총재의 역할이 7∼8할은 되므로 이총재의 역할에 기대를 건다』고 말해 평민당측이 경우에 따라 민주당의 상당수를 흡수한 「부분통합론」도 겨냥하고 있음을 시사. ○…민주당은 이날 정무회의와 이기택총재와 5인협상대표간의 오찬모임에서 통합의 성패가 걸린 「선통합선언」방식은 통합후 갈등과 내분이 증폭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선이견조정 후통합」원칙을 재확인. 5인협상대표간사인 김정길의원은 평민당측이 「선통합」방안이 민주당측의 당초안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김대중­이기택 2자회담이나 통추회의의 김관석상임대표와의 3자회담 합의문에는 그런 문구가 없다』고 일축. 이날 정무회의에서는 대표선출과 관련,「동일지분에 의한 실질적 경선」이라는 종전 당론 대신 『현정국이 비상시국인 점과 재야가 통합협상의 새당사자로 등장한 점을 감안해 15인 통합추진기구에서 경선 이외에 다른 방법도 논의할 수 있다』는 수정안을 채택해 주목. 김정길의원은 『차기 총선을 위해서는 지도체제문제가 어느 한 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굴복하는 식으로 결론이 나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다음 총선까지는 집단지도체제로 하며 당대표는 합의에 의해 제3자중 추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 노무현의원도 『첨예한 대여투쟁국면에서 경선을 강행할 경우 상호 매도와 매수로 분열의 부담이 있다』고 경선에서 합의추대로 방침을 바꾼 이유를 설명하고 『공동대표제는 제도자체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면서 제3자 추대론에 가세. 이에 비해 이총재의 한 핵심측근은 김평민총재가 지난달 27일 평민당 전당대회에서 2선후퇴 불가방침을 천명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김관석대표가 당대표를 맡고 김대중총재와 이기택총재가 상임고문을 맡는 방식과 3자가 공동대표를 맡되 김관석대표가 상임공동대표를 맡는 방식중 후자가 실현가능성이 더 높은 게 아니냐』고 반문해 눈길. 이에 대해 김총재 2선후퇴론을 고수하고 있는 원외위원장측은 『공동대표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국 「김총재유일체제」로 굳어질 것』이라면서 『당지도부의 협상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해 여차하면 서명작업 등을 재개할 움직임.
  • 대여투쟁 단일전선 모색/김대중ㆍ이기택총재 내일 회담

    ◎여의 상설기구안 사실상 거부 민자당은 지난 1백50회 임시국회에서의 여야 격돌로 빚어진 정국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평민당측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으나 평민당측이 이를 거부한 채 민주당과 재야세력과의 연계를 통한 장외투쟁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여야의 대립상황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민자당은 정국의 긴장해소를 위해 16일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제의한 평민당 김대중총재와의 회담및 현안 법안협의를 위한 여야 상설기구 구성이 평민당측에 의해 사실상 거절되었음에도 여야 대화노력을 계속하는 동시 소속의원들의 귀향활동을 통해 주요법안의 일방처리가 불가피했음을 설명토록 하는등 대국민 홍보활동을 병행키로 했다. 한편 평민ㆍ민주당은 내주초 의원직 총사퇴를 동반제출하고 야권통합을 추진하는등 민자당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대응방안을 모색키로 했다. 이에따라 평민당의 김대중총재와 민주당의 이기택총재는 오는 18일 상오 8시 서울 가든호텔에서 만나 의원직 사퇴에 따른 공동보조방안과 평민ㆍ민주ㆍ재야의 3자통합을 바탕으로 한 범야권 통합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두 총재는 이날 회동에서 평민당이 오는 21일 하오 4시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기로 한 「민자당 폭거규탄 의원직 사퇴선언및 총선거 촉구 결의대회」에 야권이 공동참여하는등 연대투쟁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날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향후 정국대처방안을 논의,평민당및 재야와 대여 투쟁단일전선을 구축하기로 하고 야권 주요인사로 구성되는 비상시국회의의 민주당측 대표로 조순형부총재등 5명을 선임했다.
  • 내각제 공동저지/야권 비상시국회의

    평민ㆍ민주당과 「국민연합」은 22이 비상국회의 제1차대표자회의를 열고 모든 민주세력이 함께 민자당의 장기집권음모에 맞서기로 의견을 모으고 여권의 내각제개헌추진과 국회에서의 개혁입법등 각종 현안처리에 있어 국회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 5월14일 「국민연합」 대표자회의에서 기존야당과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비상시 국회의 구성을 결정함에 따라 소집됐으며 평민당의 문동환부총재등 4명,민주당의 노무현의원등 2명,「국민연합」측의 박영모공동의장등 4명이 참석했다.
  • “잠복성 불씨로” 야권통합 논의/평민 통추위,「절충안」유보의 안팎

    ◎「통합추진」 무력화ㆍ「재야」카드 내세워 무마 속셈도/재야대표선정 어려움… 민주당수용여부도 불투명 24일 열린 평민당의 중도민주세력통합추진위가 당내 서명파의원들이 제시한 「선합당ㆍ대표경선 후조직책인선」을 골자로 한 야권통합 절충안을 별도 소위를 구성해 연구ㆍ검토한뒤 재론키로 한데 따라 이 문제를 둘러싼 평민당의 서명파동은 당분간 잠복기에 접어들 전망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평민당내 분위기로 볼때 절충안을 당 주류쪽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이날 회의에서 절충안이 현행 정당법 등에 저촉돼 수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다수의견으로 제기됐던 점으로 미루어 소위에서의 연구ㆍ검토과정 역시 절충안의 부적절성을 체계화시키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잇다. 서명파들 역시 당에서 절충안을 수용할 것으로는 거의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이들은 다만 김대중총재가 지난 22일 소속의원과 당무지도위원 연석회의에서 말한 29일 청와대회담 이후의 「야권통합을 위한 중대복안」이 공개될 때까지 집단행동을 유보할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복안의 내용이 종전의 입장에서 별달리 진전된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서명운동을 재개,확산시키겠다는 자세이다. 따라서 관심은 김총재가 생각하고 있는 중대복안이 과연 어떻게 짜여질지에 대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평민당안팎에서는 평민당지도부가 야권통합은 평민ㆍ민주(가칭)양당의 통합추진을 우선시하겠다는 종전의 입장을 바꿔 최근에는 재야를 포함시킨 3자통합방식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김총재도 지난 22일의 연석회의에서 『재야에서도 조직을 만들어 통합에 참여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3자통합의 동시추진 의사를 강력히 시사했다. 따라서 김총재의 「중대복안」은 지금까지 평민ㆍ민주양당의 통합논의를 사실상 백지화시키고 재야를 포함시킨 새로운 통합협상을 제의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 평민당이 24일 범재야 성격의 「국민연합」이 제의한 평민ㆍ민주ㆍ재야 3자간 비상시국대책회의 결성에 3∼5명의 대표를 보내기로 한 것도 그동안의 움직임과 연관시켜볼 때주목되는 대목이다. 김총재가 재야라는 새로운 카드를 내놓은 것은 「사실상의 김총재 2선퇴진」을 주장하는 민주당에 비해서는 재야쪽이 훨씬 교감의 폭이 넓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물론 재야내에서도 반동교동성향의 인물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야의 현재 상황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만큼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비판적 지지론자」들의 적절한 엄호만 있다면 야권통합문제에 있어 평민당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계산했으리라는 분석이다. 민주당측 관계자들이 재야를 통합협상에 끌어들이려는 평민당측의 움직임에 대해 「물타기식 통합방안」이라고 반박하는 것도 3자통합방안을 민주당 견제를 위한 「맞불작전」으로 해석한데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재야를 통합협상의 한 구성원으로 끌어들인다면 그 대표성을 누구에게 부여하겠느냐는 점이다. 전민련이나 민연추같은 재야의 공식조직들은 각각의 정파적 성격과 내부이견으로 재야의 대표로 내세우는데는무리가 있다. 따라서 김총재는 지난번 언급한 재야의 야권통합을 위한 공식기구를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또 통합방식은 지난번 민주당과의 협상에서 수정안으로 제시했던 대로 지분문제를 무시하고 통합을 위한 수임기구를 평민ㆍ민주ㆍ재야출신 동수로 구성해 인물위주로 조직책을 선정한뒤 당대표를 경선하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여기에는 김총재가 「중대복안」이라고 했던 만큼 자신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도 설사 조건부가 될망정 언급이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측이 김총재의 「중대복안」에 대해 순순히 응할는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민주당측의 반응이 평민당내 서명파들의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임은 물론이다.
  • “대만,1년내 반공법 폐기”/이총통,북경에 정부차원 대화 촉구

    【대북=우홍제특파원】 대만의 이등휘총통은 22일 『중국대륙의 전체적인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북경당국은 무엇보다 정치의 민주화와 경제자유화를 이룩해야 할 것』이라며 『북경측은 이와 함께 대만이 독립된 주권국가임을 인정,동등한 입장에서 정부대 정부의 대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촉구했다. 이총통은 이날 하오 총통부회의실에서 제8대 총통취임이후 처음 가진 내외신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대만국민당정부가 지난 48년 중국공산당을 반란단체로 규정한 「동원감란시기임시조례」는 1년이내에 폐기,북경측과 활발히 통일문제를 협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경측은 대만이 현재 취하고 있는 탄성외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국제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총통은 이밖에 대만의 헌정개혁과 관련,오는 7월 비상시국회의(국시회의)를 개최한 뒤 앞으로 1∼2년이내에 헌법개정등을 통해 정당정치제도를 확립하고 대만의 민주화를 가속화시키겠다고 덧붙였다.
  • 「전대협」목소리 극렬화예고/「4기 출범식」계기로 본 학생운동 전망

    ◎「반미통일ㆍ민자해체」를 핵심 과제로/학생들 관심끌려 「학원자주화」병행/일부대 탈퇴등 반대세력 늘어 분열조짐도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19일 광주 전남대에서 전국 1백61개대학(전문대포함)의 2만여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제4기 출범식」을 치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전대협은 이날 경찰이 「출범식」을 원천봉쇄하기위해 학교안으로 들어올 경우에 대비,비상식량과 화염병등 다량의 시위용품을 상경대 건물 옥상등 3개건물에 갖다놓고 장기적인 점거농성을 벌이고서라도 「전대협」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는 앞으로의 투쟁행태가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대협」은 이날 출범식을 통해 올해 투쟁방향으로 ▲민자당분쇄및 노태우정권 퇴진을 통한 민중생존권쟁취 ▲반미조국통일투쟁 ▲사대노예교육과 학원내 저질문화를 척결하기위한 학원자주화투쟁을 제시했다. 특히 「전대협」은 지난9일 창당된 민자당의 내분,전ㆍ월세값 폭등,재벌의 부동산투기방조,현대중공업과 KBS사태때의 공권력투입등으로 노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10%도 못받고 있다고 판단 민자당해체투쟁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 「전대협」의 송갑석의장(24)은 「제4기 출범식」을 갖기 직전 전남대 학생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민자당분쇄투쟁을 위해 평민당과 가칭 민주당과의 연대도 불사하겠다』고 밝혀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평소 「제도권 야당」으로 매도했던 두 야당과도 손잡고 일하겠다는 「주도적」인 제의를 했다. 이에따라 「전대협」은 오는 27일 「국민연합」주최로 전국에서 열기로 한 「민자당해체와 노정권 퇴진 국민대회」를 통해 「5월투쟁력」을 총결산한뒤 6월2일 「국민연합」이 개최하는 「비상시국회의」(시국대토론회)를 거쳐 「6월 항쟁」 3주년인 6월10일에 대규모 시위를 벌여 민자당해체투쟁을 가속화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전대협」은 또 미국을 「광주학살의 주범이자 3당야합의 산파자」로 규정,22일을 「반미의 날」로 설정해 전국 각 대학별로 「반미투쟁 결의대회」와 미대사관에서의 항의투쟁,양담배와 농축산물수입반대운동 등으로 반미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심산이다. 88올림픽 공동개최투쟁을 벌였던 「전대협」은 지난해 평양축전 참가투쟁을 벌인데 이어 통일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산하에 「전면개방 자유왕래 실현및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학생추진위」(위원장 권오중ㆍ23ㆍ연세대 총학생회장)를 구성,본격적인 통일운동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7월20∼27일 남북국토순례대행진 ▲광복절을 맞아 10만학생 방북교류추진 및 콘크리트장벽 참관투쟁 ▲10월 UN단독가입 저지투쟁 등으로 통일운동의 열기를 확산시키기로 했다. 「전대협」은 이밖에도 교육악법개폐및 사립학교 재단전입금확보등 학원자주화투쟁을 병행시켜 일반학생의 호응을 얻음으로써 학생운동의 대중화를 노리겠다는 전략도 짜놓았다. 그러나 「전대협」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계속 확보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일부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전대협」을 탈퇴하는등 운동노선에 반발하는 새로운 학생세력들이 등장하고 있어 앞으로 학생운동의 양태가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공안당국이 송갑석의장등 핵심간부 17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선 상태여서 조기에 이들이 붙잡힐경우 지도부가 흐트러져 구심점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학생운동권의 소수파이면서 NL계열(민족해방파)과 함께 양대 세력인 PD(민중민주파)계열의 총학생회장과 학생회 간부들이 지난 17일 서울대에서 「전대협」측의 반대에도 아랑곳않고 「전국학생투쟁체연합」(전학투련)주비위 발족식을 갖고 사실상의 활동에 들어감으로써 「전대협」노선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올해의 학생운동은 「민자당분쇄투쟁」과 「반미조국통일운동」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이나 문제의 관건은 일반학생및 국민이 이를 어느정도 수긍하고 호응하느냐는 점에 달려있다.
  • 안개정국속 「이등휘호」출범/대만총통 취임과 「항해기상도」

    ◎국민의 민주화 욕구 수렴등 과제 산적/당내 파벌싸움도 심각… 전도 불투명 장경국총통의 사망으로 지난 88년 이후 그의 잔여임기를 물려받았던 이등휘총통이 대만 안팎의 정세가 그 어느때보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20일 정식으로 임기 6년의 제8대 총통에 취임한다. 이총통은 최근들어 부쩍 고조되고 있는 대만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와 집권당인 국민당 내부의 파벌싸움,야당의 강력한 도전 등으로 그의 정치여정이 매우 순탄치 않을 것이란 평을 받고 있다. 또 사회ㆍ경제적인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압력도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대만의 안정과 번영을 꾀하기 위해 그가 풀어야 할 난제는 너무 많은 것 같다. 그가 당면하고 있는 시련가운데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집안 싸움을 종식시키는 일로 지적되고 있다. 대만 국민당 내부의 권력투쟁은 지난 3월 8대 정ㆍ부총통선거를 둘러싸고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현재 3개 계파로 나뉘어 첨예한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이총통이 러닝메이트로 그의 비서실장 이원족을 지명한데대해 이환 행정원장을 대표로 하는 원로보수인사들이 기득권 상실을 우려해 크게 반발,비주류파를 만들어 별도의 후보를 내세우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총통의 설득으로 당시 소동은 가라앉았으나 최근엔 군부실력자 학백촌 국방장관(4성장군출신)이 차기 행정원장으로 지명됨에 따라 대만주민들은 『군의 정치개입이 민주화에 역행한다』며 날마다 거센 항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이총통에 대항했던 이환이 행정원장직에서 해임되는 것은 명백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비주류파측에선 이러한 주민시위에 편승,이총통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류ㆍ비주류 외에 얼마전 국민당의 젊은 혁신파인사들은 별도로 신국민당련선을 결정했으며 대북시 출신 입법위원으로 최다득표당선 경력을 자랑하는 조소강(41)이 이 단체를 이끌며 이총통에 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40년 동안 일사불란했던 국민당이 이처럼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데 대해 관측통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치러야 할 진통으로 보기도 하지만 농학박사로 학자출신인 이총통의정국운용능력이 충분치 못한 것 같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ㆍ경제적 측면에서도 대만은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지난 87년 계엄령해제 이후 범죄발생건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TV에선 권총등 불법무기류 신고에 관한 프로를 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치인ㆍ기업인에 대한 범죄단체의 협박ㆍ폭행사건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 불안과 치안문제이외에 임금을 비롯한 원가상승 등으로 경제가 받고 있는 타격도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된다. 한편 이총통은 이러한 상황들에 대처하기 위해 오는 6월중 국정회의(비상시국대책회의)를 소집,각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종신직 대륙원로들을 3년이내에 모두 퇴진시키는 등 정치민주화를 가속화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각계각층 보수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빠른 시일안에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얼마전 이총통은 중국에 대해 정부대정부의 대화를 제시했다. 다시 말해 북경당국은 대만을중국의 일부로 보거나 지방정부로 취급하려 하지말고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측은 이러한 「1국2정부」제의는 대만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두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라며 즉각 거절했다. 대만의 대 중국투자는 통일문제와 큰 관계가 있다. 대만측은 7백억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대륙안에 경제력을 과시,앞으로의 통일논의를 그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속셈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중국은 언젠가는 대만이 본토에 귀속될 것이므로 투자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에 맞서 대만의 대륙정책도 장기적인 것 같다. 국제정세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민주화는 필연적이며 제2의 천안문사건이 발생,강경보수적인 현 중국 지도층이 물러나고 대륙전체가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인식하게 될 때 통일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대북=우홍제특파원〉
  • 과도중립내각 구성 촉구/총선ㆍ지자제 동시실시도/평민,시국선언문

    평민당은 7일 현시국을 「민주주의 전반의 비상한 국가위기」라고 규정하고 위기극복을 위해 『과도적 중립거국내각을 구성하고 거국내각 주도로 총선과 지자제선거를 빠른 시일안에 동시 실시하라고』고 촉구했다. 평민당은 이날 상오 당내비상시국대책위와 총재단회의 당무지도합동회의를 잇따라 열어 채택한 「위기에 직면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평민당은 이 선언문에서 『현난국은 노태우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한 3당야합과 민주화ㆍ개혁에 대한 국민여망을 도외시한 재벌기업들의 부동산투기와 개혁정책의 후퇴로 인한 경제위기의 가중및 민자당의 대권경쟁과 노동ㆍ언론상황의 5공식 회귀때문』이라고 주장하고 현정권에 대해 신뢰와 대화의 정치를 구현하라고 요구했다. 선언문은 또 『현정권이 민주화와 개혁을 거부할 경우 국민과 더불어 강경한 투쟁을 벌여나가겠다』고 경고하고 『국민의 정치를 되살려 놓기 위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세력의 통합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선언문은 『현정부는 난국을 극복할 만한 능력도 갖지 못하고 국민의 신뢰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거국중립내각 구성의 이유를 들고 『3당야합으로 국민의 대표성을 상실한 국회도 민의에 재구성해야 한다』면서 조기총선을 주장했다. 선언문은 이와함께 KBSㆍMBC 등 언론정상화를 위한 서기원 KBS사장의 퇴진과 공권력투입과 관련,최병렬공보처장관및 안응모내무부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 평민,오늘 시국선언

    평민당은 7일 상오 중앙당사에서 총재단회의와 당무위원회를 열어 위기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당비상시국대책위(위원장 박영숙부총재)가 마련한 이 시국선언문은 현재의 위기정국이 3당통합에 의해 비롯됐다고 보고 총선 및 지자제 동시실시를 통한 국민의 재심판과 여야영수회담의 조기실현을 거듭 제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선언문은 또 물가 및 부동산대책과 증시침체및 노사분규 등 당면현안을 다루기 위해 임시국회 소집을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 「선안정 후성장」촉구/평민 확대간부회의

    평민당은 3일 확대간부회의와 비상시국대책회의를 잇따라 열어 물가안정을 위해 ▲선안정 후성장정책채택 ▲통화정책의 근본적 전환 단행 ▲재벌의 부동산투기 억제를 정부측에 촉구했다.
  • 야권 비상시국회의/민연추서 구성제의

    민중의 정당 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민연추)의 백기완ㆍ이우재ㆍ고영구 공동대표 3명은 3일 상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평민ㆍ민주당(가칭)ㆍ국민연합과 공동으로 「비상시국회의」 구성을 제의하는 한편 야권공동으로 현대중공업사태 긴급대책반을 구성,울산현지에 파견하자고 제의했다.
  • 임시국회 소집 요구/평민 비상시국대책위

    평민당은 2일 당 비상시국대책위원회를 긴급 소집,노사분규악화ㆍ주가폭락 등 현시국의 위기상황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현재의 위기상황은 현정권의 통치력부족과 여권의 내분및 민주화와 개혁조치의 후퇴때문이라고 결론짓고 민자당측에 임시국회 즉시소집과 13대 국회해산및 총선실시를 촉구했다. 평민당은 당초 8명으로 구성됐던 대책위원회에 부총재단ㆍ상임고문단 전원과 당3역 등을 추가시켜 31명으로 확대개편했다.
  • 야권통합논의 8일 공식대좌/평민ㆍ민주대표단

    평민당과 민주당(가칭)은 오는 8일 상오 국회 귀빈식당에서 양당의 야권통합 5인협상대표간 상견례를 겸한 첫 회담을 갖고 공식적인 통합협상에 착수한다. 양당 협상대표단장인 평민당의 김원기총재특보와 민주당의 김정길원내대책위원장은 2일 상오 서울 하이아트호텔에서 만나 이같이 결정하고 양당간의 원활한 통합협상을 위해 공식ㆍ비공식 접촉을 병행하는 한편 통합을 위해서는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양당은 또 통합 이전이라도 원내대책 및 비상시국대책 등에 있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다.
  • 여야의 난국수습책 마련 이모저모

    ◎“시국 난기류 타개”… 정치권도 총력대응/“위험수위” 판단… 정치안정 회복 주력/임시국회등 초당적 대처방안 모색/상황인식ㆍ처방방법 견해차 해소가 급선무 「총체적 난국」으로 진단되고 있는 현재의 시국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권의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민자당과 야권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처방전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외견상 정치권이 발벗고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현상황에 대한 인식과 처방방법은 각양각색으로 표출돼 이들 처방전의 효과는 미지수다. ○…민자당은 부동산투기심화 및 증시붕괴직면등으로 이어지는 경제상황악화와 노사갈등심화,각종 민주화입법추진 미흡등으로 인한 정치ㆍ사회전반의 난기류형성은 단순한 경제ㆍ사회적 위기상황을 넘어 정치권을 위협하는 수위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난국상황이 3당통합이후 더욱 심화됐다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정책위산하의 각급 정책회의 및 당무회의ㆍ당직자회의ㆍ당정회의등을 통해 당차원의 대응책 제시에 적극적인 의욕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주택난 해소를 위한 대국민토론회등을 통해 주택문제해결 및 부동산투기 억제대응방안등을 논의한 데 이어 3ㆍ4일의 당무회의ㆍ부동산투기대책 당정회의 등에서도 민자당의 대처방안을 제시할 예정. 이와함께 야권의 노동위 소집요구등 국회차원의 대책논의주장에 대해 미온적이었던 자세를 바꿔 각종 상위소집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적극적인 노력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자당의 이같은 적극적인 의욕과시에도 불구,각종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민정ㆍ민주ㆍ공화 3계파가 처방전 제시에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정리된 당의 입장을 내놓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민주계측이 각 분야에 걸쳐 개혁정책추진을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 민정ㆍ공화계는 「야당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습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치부하고 있어 계파간 감정대립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는 양상. 민정ㆍ공화계는 『모든 문제는 완급을 가려 순서대로 풀어나가야지 목소리만 높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며 민주계의 개혁일변도의 정책수정 요구에 떨떠름한 표정. KBS사태 발생직후 열린 국회 문공위에서 민주계의원들이 당정회의결과등을 무시,서기원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등 정부의지와 상반된 주장을 펴는 바람에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든 데서 볼 수 있듯 인기성발언 및 정책추구에 익숙해져 있어 민주계의 근본적인 인식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민정ㆍ공화계의 주문. 이에대해 민주계는 민주계대로 『3당통합이후 오히려 정부ㆍ여당의 안일한 국정운영 태도때문에 위기국면을 부채질했다』면서 『가시적인 개혁정책 제시없이는 현난국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맞서고 있어 계파별 조율작업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 ○…민자당내 일각에서는 정부ㆍ여당의 효과적인 대응책 수립을 위해서는 기존의 당정회의방식이 전환돼야 할 것으로 분석. 정부가 정책수립을 한뒤 당관계자들을 모아놓고 형식적인 브리핑정도만 하는 당정회의 방식을 탈피,현안에 대한 난상토론 방식을 거쳐 최종안을 유도하는 실질적인 당정협의의 모델이 개발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 이와함께 당의 목소리가 충분히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식 당정회의 뿐만 아니라 정부부처 실무선의 전문가들과 당정책팀과의 유기적인 협의체제가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 민자당은 이와함께 정부측에서도 과거타성에서 벗어나 여당이 정부정책과 견해를 달리하는 대안을 제시했을 경우 보다 진지한 자세로 반영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평민ㆍ민주당(가칭)등 야권도 일련의 위기상황이 기존 정치권 전반에 심각한 악영항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아래 종전까지의 관망적 자세에서 탈피,초당적 대책마련을 위해 부심. 정치불신의 차원을 넘어 정치파국까지 생각해봐야 할 절박한 상황에서 사태의 책임을 「현 정권의 통치력 부족」이나 「3당야합의 결과」로만 밀어붙이며 반사적 이익만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야권 저변에 흐르는 대체적인 인식. 평민당이 공휴일인 2일 상오 비상시국대책회의를 소집해 당차원의 대책을 모색한 것도 이같은 상황인식에서 기인. 평민당은 이날 당초 8명으로 구성됐던 대책위원회를 시국의 중대성을 감안해 부총재단ㆍ상임고문단ㆍ당3역등을 모두 포함시켜 31명으로 확대하는 등 난국타개를 위해 명실상부한 총력체제에 돌입. 이날 회의는 2시간여에 걸친 자유토론 끝에 현재의 위기상황이 ▲노태우대통령의 통치력 부족 ▲민자당창당에 따른 여권의 내분악화 ▲민주개혁조치의 후퇴때문이라고 결론짓고 모든 난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임시국회의 즉각 소집을 여당에 촉구하기로 결정. 평민당은 이와함께 김대중총재가 이미 제안했던 노태우대통령과의 회담의 조속한 실현이 난국극복의 지름길이라고 거듭 주장. 평민당측은 현재의 위기상황이 3당통합이후의 정치경색과도 밀접하게 연관됐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여야대화의 활성화를 통한 정치적 안정기반구축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 임시국회 즉각소집과 여야 영수회담의 조기실현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설명. 평민당 핵심간부들은 『민자당측이 창당대회 일정등을 이유로 국회 소집과 여야 영수회담을 기피하고 있으나 창당사유가 국사에 우선할 수는 없다』고 공격. ○…민주당(가칭)은 작금의 「총체적 난국」이 3당통합이후 내분등 거여의 잇따른 자충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주장에는 평민당과 궤를 같이 하며 임시국회소집ㆍ시국대책위원회구성등에 평민당과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입장. 그러나 거여의 자충수로 인한 반사적 지지가 지역적 한계가 뚜렷한 평민당보다는 민주당쪽으로 쏠릴 것으로 보고 2,3일 이철ㆍ박찬종의원을 반장으로 KBS,현대중공업 등에 대한 독자적 조사활동도 병행.
  • KBS등에 조사단/민연추

    민중의 정당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민연추)는 28일 현대중공업사태 진상조사단(단장 이우재공동대표)과 KBS사태 진상조사단을 각각 현지에 파견했다. 민연추는 이날 비상상임위를 열고 현사태를 비상시국으로 규정짓고 『평민ㆍ민주당(가칭)ㆍ국민연합ㆍ민연추 등 4자가 참가하는 비상시국회의를 개최할 것』을 재촉구했다.
  • 목사ㆍ시민 7백여명 3당 합당반대 행진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소속 개신교 목사와 신도 등 7백여명은 13일 하오2시쯤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비상시국과 민주화실천을 위한 성직자 기도회」를 갖고 하오4시부터 기독교회관에서 덕수궁까지 인도를 따라 걷기대회를 가졌다.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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