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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야 헌재 「시효만료」 결정설에 촉각

    ◎강경­신축대응 엇갈려 수위조절 부심­민자/“처벌대상자 제약 소지있다” 재고 촉구­야권 여야는 28일 헌법재판소가 5·18 불기소처분 헌법소원에 대해 내란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자 정치권의 특별법제정 및 관련자처리 방향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대책마련에 부산했다. ▷민자당◁ 헌재가 전두환·노태우씨의 12·12군사반란죄 공소시효 만이 남아 있다는 의견인 것으로 전해지자 위헌시비를 막기 위해 특별법안 내용과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과 「확실한」 입법을 해야 한다는 적극론이 동시에 표출됐다. 김윤환대표는 『헌재가 해석한 공소시효 범위를 넘는 규정을 특별법에 담았다가는 위헌판정을 받을 위험성이 있고,그렇다고 헌재해석으로도 가능한 전·노씨의 군사반란죄 처벌 만을 규정하는 법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과거의 헌정파괴에 대한 단죄의지 및 절차를 명확히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내용을 담기 위해 특별법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강삼재사무총장은 이날 광명갑지구당 대회에서 「회기내 특별법 제정,주동자 의법처리」를 거듭 강조했다. 「5·18특별법 제정 기초위원회」의 현경대 위원장도 『공소시효 기산점에 대한 헌재의 판단 등은 존중해야 겠지만 헌재의 결정이 입법의 무용론으로 비약돼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이날 열린 기초위에서도 『사실관계에 대한 헌재의 해석과 입법상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특별법 추진 움직임은 별개』라는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맥락에서 전·노씨 뿐 아니라 다른 관련자도 반란죄 공범으로 5·6공때 시효진행이 중단됐고 지금도 기소가 가능하다는 적극론도 제기됐다.헌법부칙에 내란죄 등의 공소시효 중단 또는 시효배제 규정을 넣지 않더라도 특별법에 이를 반영,위헌성 판단을 받아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내란죄에 대해 헌재가 법률적으로는 시효만료 견해를 취하더라도 이를 결정문 본문에 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제아래 「5·6공 때는 내란죄 기소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을 특별법에 간접적으로 담아 시효중단 및 기소가능성을 남겨두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형법불소급 원칙은 범죄의 종류와 형을 다루는 실체법에만 적용될 뿐 공소시효 등 절차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헌재의 해석으로 입법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야권◁ 공소권 없음이 부당하다는 결정에 『당연하다』는 표정이다.그러나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해석에 대해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대통령 재임 중에는 시효가 정지된다』고 반발하며 헌재가 최종선고를 연기해 줄 것을 신청했다.반면 자민련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수긍했다. 국민회의는 내란죄의 수괴가 정권을 장악한 5,6공은 공소가 불가능했던 만큼 전·노씨의 재임중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논리다.공소시효가 끝났다는 것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닌 경우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의 문구에 헌재가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회의는 또 공소시효의 기산점을 최규하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5일이 아닌 『6·29선언 이후 직선제개헌이 완료된 시점』(변정수 고문)이나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81년 1월24일』(박상천 의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헌재의 결정은 처벌대상을 특정인에 한정시키는 것이라며 관련자 전원의 사법처리를 주장했다.율사출신인 강수림·장기욱 의원은 『내란죄의 공소시효는 끝났고 군사반란죄의 공소시효도 전·노씨만 적용할 수 있다는 결정은 처벌대상을 제약할 소지가 있다』며 『내란죄와 군사반란죄의 공소시효가 관련자 전원에게 아직 유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은 공소시효와 관련,『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동시에 『소급입법은 절대로 안된다』며 전·노씨를 내란죄로 처벌하지 못해도 군사반란죄로 처벌하면 된다는 입장이다.이경우 나머지 관련자는 공소시효가 완료돼 처벌이 불가능해진다.박준병 의원 등 당내 5·18 관련자를 보호하려는 배려로 풀이된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2

    ◎전화폐허서 교역 13위 경제강국 건설/부·마사태­10·26사건… 박정권 18년 마감­1979년/「민추협」 발족… 민주화운동 본격 점화­1948년/금융실명제·재산공개 등 대대적 개혁조치­1993년 ▷1971년◁ 2월17일 남한의 한필성,북한의 필화 남매가 국제통화로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4월27일 제7대 대통령선거,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7월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 39명이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8월23일에는 실미도 특수부대원이 서울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10월1일 전국에서 장발족 단속이 시작됐다.12월25일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8월3일 모든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는 이른바 「8·3 조치」가 발표돼 기업들이 자금숨통을 트게 됐다.10월17일 유신이 선포,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강제송환됐다.10월6일 이화여대생들은 쌍쌍파티 중단을 결의했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량 25%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석유파동이 발생,국내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74년◁ 4월17일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됐다.7월13일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육영수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졌다.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1975년◁ 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돼 가결됐다.3월17일 서울 면목동 YH무역 여공 2백여명이 신민당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6년◁ 8월1일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10월24일 박동선이 로비활동을 펼친 것이 미국에서 문제화됐다. ▷1977년◁ 8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송전을 시작했다.9월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11월11일 이리역에서 한국화약의 화약수송열차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8년◁ 1월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납북됐다.4월24일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수매부정에 항의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6월30일 현대아파트 부정분양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7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년◁ 10월7일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됐다.10월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10월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부마사태).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12·12사태). ▷1980년◁ 4월21일 사북광업소 광부 7백여명이 어용노조에 반발해 광산촌을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5월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가 신설됐으며 8월27일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0월13일 삼청교육 실시가 발표됐다. ▷1981년◁ 1월13일 대학졸업 정원제가 도입됐다.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전두환이 초대 총재로 선출됐으며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 피고인 12명의 형량을 확정했으나 김대중은 나중에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됐다.전두환은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2년◁ 3월18일 고신대생 문부식등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3월27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5월7일 대검은 대화산업회장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외국환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1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등이 구속됐다. ▷1983년◁ 1월11일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방한,한일정상회담을 갖고 40억 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3월17일 일본에서 활약중이던 프로기사 조치훈이 기성을 획득,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5월18일 김영삼 신민당총재는 민주화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을 주장하며,자택에서 단식에 들어갔다.6월1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다.10월9일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 발생,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등 17명이 사망했다.11월17일 동아건설은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리비아 1단계 대수로 공사를 32억9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1984년◁ 5월18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발족됐다.22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됐다.9월6일 전대통령은 일본을 공식방문했다.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만찬에서 과거의 한일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9월 북한 적십자가 보내준 수재구호물자를 남한측이 인수했다.미국방송이 의정부에 핵배낭 특수부대가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5월23일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사과 요구 및 반미구호를 외쳐 충격을 주었다.9월20일 남북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각 1백51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1986년◁4월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등 시위가 본격화됐다.7월2일 부천에서 시위중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양을 경찰관이 성고문한 사건이 처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다가 고문사했다.4월8일 김대중·김영삼씨는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13일 전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논의 유보를 발표하고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24일에는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다.6월10일 민정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29일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수용을 밝혔다.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1월14일 문교부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확정 발표했다.2월25일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했다.4월26일 13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그 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났다.9월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돼 10월2일까지 계속됐다.11월부터는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됐다.11월2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백담사로 은둔했다. ▷1989년◁ 3월25일 문익환목사가 방북,김일성과 면담했다.6월30일에는 외국어대 임수경양이 북한에 들어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0∼1년◁ 90년2월9일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민자당이 창당됐다.10월1일 한소양국이 수교했다.91년2월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이 발생,이원배등 의원5명과 청와대비서관,정태수 한보그룹 회장등 8명이 구속됐다.12월18일 노대통령은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으며 같은달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가서명했다. ▷1992년◁ 3월24일 14대 총선이 실시돼 2번째 여소야대가 실현됐다.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95년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8월22일 중국과 수교,주변 4강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2월19일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은 2월25일 취임후 공직자 재산공개,군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실시등 굵직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이회창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6월 율곡사업감사,7월 평화의 댐 감사등 과거비리를 사정했다. ▷1994년◁ 정부의 외교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집중됐다.그 결과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됐다.국내적으로는 구포 열차전복사건,위도 여객선 침몰사건,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아현동 가스폭발사건,성수대교 붕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년◁ 6월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자치선거가 일제히 실시된 결과 수도 서울의 시장에 민주당의 조순후보가 당선되는등 시도지사에 대거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다.4월28일 대구가스폭발에 이어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고가 계속됐다.
  • 소신 굽히지 않는 “대쪽판사”/이회창 감사원장 내정자의 면모

    ◎재판 10여건서 소수의견 낸 “강직파”/선관위장때 불법선거에 사임 결단 『비공식적으로 감사원장직 요청은 받았지만 앞으로 국회동의 임명절차가 남아 있으므로 현재로서는 소감이나 감사원운영계획등에 대해 밝히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차기대통령에 의해 새정부의 감사원장으로 내정된 이회창대법관이 22일 대법원 청사 3층 사무실로 찾은 기자들에게 밝힌 첫마디이다. 그는 그러나 『김영삼차기대통령과는 면식이 없던 사이』라면서 『최근 새정부에 동참해 달라는 의사타진을 받고 고심끝에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당수의 공무원들은 다 청렴한 것 아닌가요』라며 자신의 성품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겸손해하며 『감사원장직에 내정된 이유는 잘 알지 못하며 그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 것 같다』며 소감피력조차 극구 사양했다. 투철한 사명감과 대쪽같은 성품으로 법조계에 정평이 나있는 그의 첫마디 역시 「그 다운」일성이었다. 81년 법관출신으로는 최연소 대법관으로 임명돼 86년까지 대법원 판사를 지내면서 대법원전원합의체 판결 46건 가운데 16건의 주심을 맡아온 그는 이중 10여건에서 「소수의견」을 통해 판결과 관련된 소신을 피력,법이론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현 김덕주대법원장과 함께 진작부터 대법원장감으로 지목돼 주로 소장 법관들의 지지도가 높은 이감사원장 내정자는 대법관시절 이같은 대쪽소신이 「걸림돌」이 돼 대법관 재임명에서 탈락되기도 했다. 그는 이어 88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을 맡았으나 재임1년3개월때인 89년10월 동해시및 서울 영등포을구 국회의원 재선거과정에서 불법선거운동을 규제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임했다. 53년 경기고를 졸업,서울법대에 진학한뒤 4학년때인 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그는 58년 공군 법무감실 법무관을 거쳐 60년 인천지법 판사로 발령돼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그뒤 73년까지 주로 서울에서 민·형사·고법판사등을 지냈고 73년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77년 서울고법판사를 거쳐 서울남부지원장,서울민사지법 수석부장판사를 역임했다. 이어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을 거쳐 대법관이 된 그는 80년 5월 비상계엄령하에서 김대중씨집에서 불법집회를 가진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세경변호사에 대한 고등군법회의에서 『81년 계엄령이 해제된 시기에서 박변호사에 대한 군법회의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소수의견을 냈었다. 당시 이일령·이정우·오성환대법관과 함께 낸 이 소수의견은 당시 시국상황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88년 다시 대법관에 임명된 그는 92년 3월 국가보안법 제7조 고무찬양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상명씨 사건선고에서 이재성·배만운대법관과 함께 『고무찬양죄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적행위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라며 반대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판결이외에 그가 고법판사로 있을 당시 모재벌이 연루된 사건에서 사건을 재벌쪽의 패소로 판결을 내린 그에게 재벌측이 보내온 양복티켓을 변호사를 통해 반납토록 한 일화도 법조계에서 잔잔한 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차기대통령으로서는 차기 정부에서 명실상부한 감사원의 기능을 위해 그의 이같은 성품과 해박한 법이론이크게 평가됐으리란 분석이다. 이감사원장 내정자의 부친은 대검검사를 지낸 이홍규변호사(87)이며 부인 한인옥씨의 부친 한성수씨 역시 대법관을 지냈고 사위 최명석씨(31)도 현재 서산지청검사여서 전형적인 법조인가족이기도 하다. 가끔 갖는 법조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한번 「발동」이 걸리면 두주불사한다는 것이 주위의 말. 부인 한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 북,대선교란 유언비어 유포/「민민전방송」 통해 대남 모략선동 혈안

    ◎“공안당국서 야후보 암살/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국론분열·사회혼란 조성 목적 【내외】 북한이 대통령선거가 임박함에 따라 각종 유언비어를 조작,한국내에 유포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선정국과 관련한 북한의 유언비어 조작및 유포는 주로 대남 흑색선전매체인 「민민전방송」이 맡고 있는데 지난 22일 한국의 안기부에서 야권 대통령후보를 암살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대남흑색선전매체에 따르면 안기부는 민자당 김영삼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어두워짐에 따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여러가지 비상대책을 강구했다는 것이다.바로 그 비상대책의 하나가 당선이 유력시되는 야권 대통령 후보를 선거일 3∼4일전에 암살한다는 것인데 물론 암살자는 안기부의 특수요원이라는 것이다. 이와함께 군기무사에서도 대통령선거와 관련,여러가지 대책들을 강구했다고 이 대남 흑색선전매체는 날조하고 있다. 기무사가 준비했다는 대책 가운데는 군부에서 계속 권력을 장악할 목적으로 대통령 후보중한사람을 암살한 뒤 그것을 구실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것이다. 「민민전방송」의 이같은 주장은 물론 대선정국에 편승,한국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아가 한국사회의 혼란을 조장시켜 궁극적으로는 대남적화통일을 달성하려는데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종전 발표후의 중동

    ◎휴전 모르는 이라크병사 산발저항/“후세인 실각땐 배상요구 철회” 파드/“걸프 영군 철수엔 1년여 소요될것” ○…파드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은 사담 후세인이 권좌에서 축출될 경우 이라크측에 대한 전쟁 배상요구를 철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 PA통신은 파드국왕이 지난달 27일 사우디에 망명중인 셰이크 알·압둘라 알·사바 쿠웨이트 왕세자 및 쿠웨이트 관리들과 회담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바레인에서 수신된 이 통신은 파드국왕이 『신의 뜻에 따라 이라크에 회교신념과 민족주의에 충실하고 아랍 동포들을 존중하는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전쟁피해배상에 관해 언급,『나는 이러한 새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특별 산유쿼타 요청 ○…쿠웨이트 정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해 쿠웨이트를 재건하는데 소요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특별 원유생산쿼타를 설정해 줄 것을 요청. 쿠웨이트 라디오 방송은 28일 라시드 살림 알 아미리 석유장관이 OPEC가 과거 이란­이라크 전쟁기간동안 양국에 대해 그 같은 선례를 남겼던 사실을 상시시켰다고 전언. ○…28일 하오2시(한국시간)를 기해 다국적군이 모든 공격을 중단하고 이라크도 3시간 후 전투중지 명령을 내림으로써 휴전이 시작된이래 10시간이 지난 1일 자정 현재까지 다국적군과 이라크군간에 소규모 교전이 산발적으로 있었지만 휴전은 비교적 잘 준수되고 있다고 미군관리들이 밝혔다. 다국적군측은 휴전 소식을 알지 못한 이라크군이 개별적으로 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을 우려,휴전소식을 알리는 전단을 살포하는가 하면 대형스피커를 통해 휴전소식을 아랍어로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걸프지역에 파견된 미군이 철수하는데는 수개월이 소요될것이라고 미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전망. 빌리에르 걸프주둔 영국군사령관도 4만명의 영국군 철수에는 1년 가까운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경원계획 ○…EC(유럽공동체)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라크의 상수도 정화장비 구입 긴급원조로 70만달러(약 5억원)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28일 EC대변인이 발표. ○쿠웨이트,계엄령 발효 ○…해방된 쿠웨이트에서는 금주초부터 3개월간의 비상계엄령이 발효돼 일체의 집회가 금지되고 언론과 우편및 통신에 대한 검열이 실시된다고 KUNA통신이 보도. ○화학전 대비령 해제 ○…이스라엘은 28일 휴전에 따라 이라크의 화학무기 공격에 대비해 시민들에게 가스마스크를 휴대하고 직장과 가정에 밀폐된 대피소를 만들도록 규정해온 비상조치를 해제했다고 이스라엘 군대변인 나크만 샤이준장이 밝혔다. ○퇴각못한 병사 2만명 ○…걸프전 휴전의 효력이 발생한 28일 아침 쿠웨이트와 이라크 남부에 남아있는 이라크군의 전체 숫자는 1만∼2만명이라고 미군소식통들이 밝혔다. 이 소식통은 기자들에게 또 이날 하오2시(한국시간)로 예정된 다국적군의 종전에 수시간 앞선 보고서들이 이라크군 잔류병력이 1천개 혹은 그보다 적은 부대들로 분해됐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군측은 잔류 이라크병사들이 다국적군을 공격하지 않는한 북쪽으로 철수하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국군 1백26명 희생 ○…한 이라크 괸리는 28일 걸프전 초기 26일 동안에 이라크군 2만명이 사망하고 6만명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군당국은 지금까지 이라크군 8만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말하고 다국적군은 그동안 전사 1백26명,실종 51명,포로 13명,지상전 시작전 42명이 사망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국제전화 주내 복구 ○…전 세계로 연결되는 쿠웨이트의 국제 전화선이 지난해 8월2일 이라크의 침공 직후 폐쇄된뒤 처음으로 이번 주말쯤 복구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미국의 전화회사인 AT&T사가 27일 밝혔다. ○…쿠웨이트 주재 미국대사는 쿠웨이트 정부가 쿠웨이트를 완전 장악하게되는 28일(현지시간)까지는 쿠웨이트로 복귀할 것이라고 마거릿 터트와일러 미국무부 대변인이 27일 밝혔다. 영국과 프랑스대사관도 28일 문을 열었다.
  • “티베트 계엄령 철회 환영”/인 망명 달라이라마

    【뉴델리 AFP 연합】 인도에 망명중인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30일 티베트 수도 라사 일원에 대한 비상계엄령을 5월1일부로 해제한다는 중국정부의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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