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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자기 내리친 번개에 젖소 32마리 떼죽음

    갑자기 내리친 번개에 젖소 32마리 떼죽음

    갑자기 내리친 번개에 애지중지 키우던 젖소 32마리가 떼죽음 당하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USA 투데이 등 현지언론은 미주리주 텍사스 카운티에 위치한 카불에서 젖소 32마리가 번개가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달 29일. 이날 새벽 농장주인 자레드 블랙웰더는 평소처럼 젖소에게 여물을 주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에 우유를 짜기 위해 다시 농장을 찾았을 때 목격한 것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죽어있는 32마리의 젖소들. 블랙웰더는 "처참한 상태로 젖소들이 죽어있어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였다"면서 "폭풍우를 피해 한 쪽으로 모여있다가 번개를 맞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조사에 나선 미주리주 농업국 측도 "일반적으로 젖소는 비바람이 불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 밑으로 모인다"면서 "이같은 사고가 간혹 발생하기는 하지만 32마리 젖소의 죽음은 지역 내 최대 숫자"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로 가장 상심이 큰 사람은 졸지에 32마리의 젖소를 잃은 농장주 블랙웰더다. 두당 2000~2500달러(220~280만원) 정도로 추산돼 전체 피해규모는 약 6만 달러(약 6800만원). 블랙웰더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피해액 전체를 보상받기는 힘들 것 같다"면서 "번개에 맞아 죽은 젖소는 식용으로도 사용이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홍수에 휩쓸린 가족 극적 구조…착한 사마리아인의 사연

    가슴 따뜻한 시민들의 선행이 꺼져가던 한 가족의 생명을 살렸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ABC뉴스 등 현지언론은 텍사스주 미르틀 스프링스에서 벌어진 한 가족의 극적인 구조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큰 참사로 기록될 뻔한 사고가 일어난 것은 지난달 29일. 이날 텍사스에 사는 필립과 에밀리 오첼트리(25) 부부는 4개월 된 아들과 18개월 된 딸을 자동차에 태우고 길을 나섰다. 사고는 이날 텍사스 지역에 토네이도를 동반한 강한 비바람이 불어 닥친 것이 원인이었다. 이에 거센 바람과 불어난 강물을 뚫고 달리던 부부의 차량은 결국 급류를 이기지 못하고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남편 필립은 "당시 불어난 강물이 자동차 안으로 속절없이 들어왔다"면서 "아내와 두 아기가 함께 타고 있었는데 몸을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때 구조 소리를 듣고 나선 것이 바로 주위를 지나던 착한 사마리아인들로, 이들은 일제히 전복된 자동차로 달려갔다. 그러나 구조는 쉽지 않았다. 자동차가 강물에 밀려 흘러가기 시작했고 물살 탓에 좀처럼 차 문도 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시민들 몇몇은 자동차가 흘러가지 않도록 잡아서 몸으로 버티기 시작했고 일부는 자동차 유리창을 통해 아기들부터 구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히 오첼트리 가족은 이들의 헌신 덕에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그로부터 며칠 후 부인 에밀리는 몇몇 낯선 남자들을 안고 고마움의 눈물을 터뜨렸다. 바로 아들과 딸을 앞장서 구조해 준 착한 사마리아인들이었다. 에밀리는 "당신들의 도움 덕에 우리 가족이 여기 한자리에 있다"면서 "목숨을 걸고 우리를 구조해 줘 너무나 감사하다"며 눈물을 떨궜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희망 나눔, 행복 두 배] 포스코, 매월 나눔의 토요일… 임원들도 中企 찾아 아낌없는 법률·세무 상담

    [희망 나눔, 행복 두 배] 포스코, 매월 나눔의 토요일… 임원들도 中企 찾아 아낌없는 법률·세무 상담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 온 포스코는 지역사회가 가장 중요한 이해 관계자다.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활성화와 사회복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88년 자매마을 활동을 시작으로 2003년 ‘포스코봉사단’을 공식 창단했다.경북 포항, 전남 광양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활성화와 사회복지를 위해 사회적 기업을 운영·지원해 소외계층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서별 자매마을 결연 활동으로 지역과 호흡하고 있다. 국내를 넘어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포스코가 진출했거나 진출 예정인 해외 저개발국가의 자립 지원에도 앞장서고 있다. 매월 ‘나눔의 토요일’을 정해 복지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 인천 송도 등에서 24개 재능봉사단이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설비·전기 기술을 가진 임직원의 농기계수리 봉사단, 전기수리 봉사단, 현장의 응급처치 기술을 보유한 직원들의 응급처지전문봉사단, 도배전문봉사단 등이 있다. 임원들도 전문성을 바탕으로 매달 1~4차 협력 중소기업을 방문해 법률·세무·인사노무 등 전문 분야 조언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사업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지역사회의 필요를 반영하는 ‘포스코 스틸빌리지’ 사업도 집중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 스틸빌리지’는 철강재를 활용해 주택 건립에서부터 놀이터, 다리 등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마을 건축 구조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업이다. 2009년부터는 스틸하우스 건축봉사를 통해 화재 피해 가정을 지원해 왔으며, 지난해부터는 저소득가정까지 지원 범위를 넓혔다. 스틸하우스는 일반 콘크리트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동이나 변형에 강한 구조로 설계돼 지진에 강하고 안정성도 뛰어나다. 특히 2015년부터 세계적인 고가품인 포스맥을 스틸하우스의 외장재로 적용해 내구성을 높였다. 포스맥은 포스코의 고유 기술로 개발된 고내식 도금강판으로 일반 아연도금강판대비 5배 이상 부식에 강한 차세대 고내식 강판이다. 비바람 등 외부 환경에 노출되는 건축외장재의 부식을 방지해 유지 보수 비용이 줄어들고, 사용 수명이 길어져 경제적이다. 2007년 창단된 포스코 대학생 봉사단 ‘비욘드’는 현재까지 1000여명의 나눔 인재를 배출했다. 국내에서 화재 피해나 주거환경이 어려운 이웃을 대상으로 스틸하우스 건축 봉사를 진행해 온 것은 물론 인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다양한 봉사활동과 문화공연 등을 해 오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월 2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비욘드 창단 10주년 기념 행사를 열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비롯해 송영태 한국해비타트 상임대표, 포스코 임직원, 역대 비욘드 단원 등 총 300여명이 참석했다. 권 회장은 비욘드 10주년 기념책자 발간사를 통해 “포스코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라고 생각해 왔다”며 “비욘드를 거쳐간 1000여명의 청년들이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로 성장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10주년 기념 행사는 그동안의 봉사활동을 담은 사진전, 저소득아동 대상 새학기 학용품 세트 제작 봉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권 회장도 학용품 세트 제작에 참여했다. 이날 제작된 학용품세트 2000상자는 국내 저소득가정 아동 및 복지시설 등에 전달됐다.
  • [길섶에서] 생명력/오일만 논설위원

    불암산 정상에서 본 소나무가 가끔 떠오른다. 도저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것 같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늠름하게 서 있다. 끈질긴 생명력이 주는 경이로운 아름다움 그 자체다.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이어 온 만큼 그 푸름이 값지다. 운이 좋아 양지바른 옥토에서 자란 나무처럼 쭉 뻗지는 못했지만 옹골진 기품이야 어디 비길 데가 있을까. 집안에서 키우는 양란이 최근 새싹을 틔웠다. 지난 가을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자태를 자랑하던 꽃들이 스러지고 덩그러니 줄기만 남아 허망했던 기억이 있다. 겨우내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지내면서 또 다른 생명력을 키웠다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은 인간 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온실 속에서 자라 부모 덕에 초년 출세를 했다고 해도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모진 비바람을 헤치면서 단단히 뿌리를 내려가는 그 과정이 삶의 길이 아닌가 한다. 가난하던 과거와 달리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행복지수가 급락 직하하는 요즘 새삼 생명의 의미를 돌아본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김해공항 항공기 무더기 결항…부산에는 강풍주의보

    김해공항 항공기 무더기 결항…부산에는 강풍주의보

    밤새 몰아친 비바람에 김해국제공항에 도착 예정이던 항공기 여러 편이 결항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6일 오전 6시 15분쯤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인 대한항공 KE1461편 항공편이 취소되는 등 모두 9편(국내선 7편, 국제선 2편)의 항공기가 결항했다. 또 오전 6시20분 도착 사이판발 김해공항행 아시아나 OZ608항공편이 김포공항으로 회항했다. 김해공항 항무통제실의 한 관계자는 “비구름이 낮게 깔려있어 비행기 이착륙에 필요한 시정(시야)이 확보되지 않아 결항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5일 오후 강풍주의보가 내려졌고 남해동부 먼바다와 앞바다에는 풍랑주의보가 발령됐다. 6일 부산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전까지 모두 14건의 강풍 피해가 접수됐다. 피해 신고 대부분은 간판 등의 추락을 우려해 안전조치를 요청한 것이다. 간판 4건, 창문 2건, 전선 늘어짐 2건 등이다. 이날 0시쯤에는 부산 영도구의 한 건물 10층 외벽에 있던 가로 4m, 세로 7m 크기의 홍보용 간판과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도로에 주차된 아반떼 승용차 외부와 상점 1곳의 장식용 전구가 파손됐고 주택으로 연결된 전선도 파손돼 주택 1곳에 정전이 발생했다. 강풍으로 남항대교와 부산항 대교 양방향에서 트레일러 차량의 진입이 통제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밤낮없이 북적였던 골목 적막감… 상인·주민들 “이제 일상으로”

    경찰·취재진·지지자들 대부분 철수 시민단체들 “사필귀정” “역사 교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이 결정된 31일, 최근 20일 가까이 시끌벅적했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 전 대통령의 자택 주변엔 적막감이 흘렀다. 지난 12일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퇴거해 머물기 시작한 뒤 밤낮 구분 없이 지지자들과 경찰, 취재진이 북적였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인파가 사라졌다. 1200여명에 달했던 경찰 병력은 몇 명만 남은 채 모두 철수했고, 지지자들도 자취를 감췄다. 박 전 대통령 자택 앞 담벼락을 가득 채운 장미꽃과 지지자들의 응원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만 비바람에 나부꼈다. 전날 새벽까지 자택 앞을 지키던 지지자들도 오후가 되자 모두 돌아갔다. 친박 단체인 ‘근혜동산’의 김주복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결정된 이날 새벽 3시 45분쯤 자택 앞에서 삭발을 하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억울함을 주장했다. 또 밤새 자택 앞을 지킨 지지자 5~6명은 경찰과 취재진을 향해 “삼류 쓰레기들아, 진실을 보도하라”면서 “부모도 잡아넣을 놈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지지자들이 철수한 삼성동 자택 주변의 상인과 주민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박 전 대통령의 자택 바로 옆에 있는 삼릉초등학교에서 아이를 기다리던 한 학부모는 “그동안 죄를 인정하지 않고 집 안에만 있었으니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계속 모여든 것 아니냐”라면서 “늦었지만 매일 집 앞을 찾아왔던 분들을 위해서라도 (박 전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곳에서 10년간 세탁소를 운영했다는 한 주민은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돼 축하를 받으며 청와대로 떠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면서 “막상 구치소로 향하는 모습을 TV로 보니 구속까지 시킬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날 자택에는 이영선 행정관이 오전 5시쯤 들어갔다가 1시간 뒤 나왔으며, 박 전 대통령의 미용을 전담했던 정송주·매주 자매는 이날 오지 않았다. 박 대통령 구속에 대해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사필귀정이자 권선징악”이라며 “명백한 커다란 잘못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지지자들은 마지막까지 부인하고 비호하고 있다. 이들은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이옥남 정치실장은 “전직 대통령이 탄핵에 이어 구속까지 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 안타깝다”면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역대 정권에서 관행처럼 이어진 관치금융(재단 설립을 통한 사익 추구)을 근절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는 1일 오후 2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제4차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국민대회’를 연다. 정광용 국민저항본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구속 직후 성명을 내고 “거짓과 불의가 승리하고 정의와 진실이 패배했다”며 “일시적으로는 거짓과 불의가 이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정의와 진실이 결코 지는 법은 없으니 신념으로 싸우자”고 주장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촛불집회를 열지 않는다. 다만 퇴진행동 산하 적폐청산특별위원회와 4·16연대는 오후 6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 세월호 진상 규명, 적폐 청산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고 전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커버스토리] 나는 ‘9급 지방직’ 공무원…5급 되려면 29년 걸린다

    [커버스토리] 나는 ‘9급 지방직’ 공무원…5급 되려면 29년 걸린다

    ‘시민의 이불’로 불리는 공복이 있다.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223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29만여명(2015년 기준)의 지방직 공무원이다. 중앙정부가 국가를 덮는 지붕이라면 지방정부는 이불이다. 지붕이 뚫려 비바람이 샐 때 온기를 지켜 주는 마지막 보루라는 얘기다. 지방직 공무원들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등 각종 재난이 터지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마지막까지 제 몫을 한다. 이러한 보람과 안정적 고용 지위 때문일까. 지난해 7·9급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도전한 이는 모두 25만 4295명이나 됐다. 이 가운데 19대1의 경쟁률을 뚫고 1만 3000여명만이 공무원증을 손에 쥐었다. 공직자로서 사명감을 품고 현장에서 근무 중인 지방직 공무원의 삶은 어떨까. 공직사회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급여와 수당 데이터를 토대로 지방직 공무원의 처우를 살펴봤다.‘43’ 평균 연령 # 지방직 평균 연봉 5648만원 ‘43.3세의 7급, 공직 경력 16.8년의 남성 행정직 공무원’ 데이터가 말해 준 대한민국 지방직 공무원의 평균적 초상이다. 중앙 부처 공무원과 큰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평균연령이 1살가량 많고, 공무원 경력도 1년 이상 길다. ‘현장 경험으로 단련된 노련한 공무원’으로 요약된다. 지방직 공무원 1인당 평균 연봉은 5648만원(광역 시·도 기준)으로 중앙직을 포함한 전체 공무원 평균연봉(5892만원)보다 다소 낮았다. 광역시·도 중 공무원이 가장 젊은 곳은 세종시로 평균 42.8세였다. 대구는 평균 48세로 가장 많았다. 지방직 공무원이 속한 지자체 240곳은 각각 하나의 정부다. 각 지자체가 인사, 수당 등에 자율권을 가진 까닭에 같은 직급의 공무원이라고 해도 어느 곳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급여, 승진 등의 차이가 꽤 난다. 우선 급여에서 본봉은 지자체 간 차이가 없다. 공무원 보수규정에 따라 직급·직렬 등에 맞게 매년 정해지는 같은 액수를 받는다. 월급 명세서에 찍히는 액수를 가르는 건 각종 수당과 맞춤형 복지비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복지비는 각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나 단체장의 철학에 따라 행자부 훈령인 ‘지자체 예산편성 운영기준’ 안에서 각기 달리 편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당을 인정받는 최대 추가근무 시간도 지자체장이 노조와의 협상해 정할 수 있다. 또 업무 특성에 따라 장려수당을 지자체 능력 안에서 줄 수 있다. 쓰레기장과 화장장, 도축장 등 업무강도가 높은 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주는 수당은 행자부에서 정한 상한선이 없다. 이웃 지자체 공무원이 야근·조근을 하고 수당을 얼마나 받는지는 공직사회의 큰 관심거리다. 서울신문이 17개 광역 시·도 공무원의 지난해 초과근무수당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월평균 41만 5300원을 받았다. 초과근무수당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서울시로 공무원 1명당 월평균 52만 789원이 지급됐다. 이어 울산시(51만 7420원), 충남도(49만 7549원), 경북도(48만 5620원), 경남도(48만 2130원) 등의 순이었다. 강원도 공무원은 지난해 월평균 21만 7600원의 초과근무 수당을 받아 가장 적었다. 서울과는 월평균 2배 차이가 났다. 강원도 관계자는 “수요일과 금요일은 ‘화목한 데이’로 지정해 6시에 퇴근하도록 하고 일을 가급적 집중력 있게 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복지비인 ‘복지포인트’도 지자체마다 차이가 난다. 복지포인트는 공무원의 복지 향상을 위해 매년 지급되는데 복지전용 카드를 이용해 공무원연금매장과 병원, 서점 등에서 쓸 수 있다. 노사협상에 따라 지자체별로 제공 포인트를 정한다. 기본 포인트를 가장 많이 받는 광역지자체(2017년 기준)는 대구로 1인당 연간 114만원을 받았고, 충남도 111만원, 울산 110만원, 인천·광주 100만원 순이었다.‘43만’ 서울 자치구 月초과근무수당 # 곳간에서 인심 날까? 같은 서울이라도 25개 자치구별로 수당과 각종 복지 혜택은 차이가 났다. 흔히 생각하듯 ‘있는 집’(재정 형편이 좋은 자치구) 인심이 후했을까. 통계를 보면 새내기 공무원들은 그렇게 믿는 듯하다. 최근 5년간 서울시 7·9급 공채 합격자의 희망 근무지 순위를 보면 1위 송파구, 2위 서초구, 3위 중구, 4위 강남구 등이었다. 재정자립도 1위인 중구를 포함해 부자 동네로 알려진 ‘강남3구’가 포함됐다. 하지만 ‘팩트 체크’를 해 보니 꼭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건 아니었다. 자치구 중 기본 복지포인트가 가장 높은 곳은 중랑구로 210만원이었다. 중랑의 재정자립도는 25개 구 중 20위다. 이어 송파구와 노원구가 200만원, 관악구 195만원, 양천·용산구 190만원 수준이었다. 기본포인트가 가장 적은 곳은 서초로 140만원이었고, 성북구 154만원, 은평구 155만원 등의 순으로 적었다. 초과근무수당도 중구난방이었다. 지난해 직원 1명당 가장 많은 초과근무수당을 받은 곳은 강남구로 월평균 56만원이었다. 2위 중랑구 53만 8338원, 3위 송파구 53만 6796원, 4위 마포구 47만 7930원 순이었다. 재정자립도 등과는 일관된 비례 관계가 보이지 않았다. 가장 낮은 곳은 종로구로 31만 9312원을 받았고, 강동구 33만 3510원, 동작구 36만 4950원 순으로 수당액이 적었다. 하지만 복지포인트나 수당이 다소 많다고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민간 기업 직원과 마찬가지로 공무원도 복지 혜택이 늘면 근로의욕이 높아져 성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랑구 관계자는 “실제 상급 지자체의 기술직 등 우수인력이 복지제도 등을 보고 우리 구로 옮겨 오고 싶어 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43’ 서울 자치구 月초과근무시간 # 5급 이상 여성공무원 11% 공직생활을 어디에서 하느냐에 따라 승진이 늦거나 빨라질 수 있다. 경기와 경남북, 전남북, 충남북 등 광역도에 9급으로 채용돼 초급 간부인 5급까지 승진하는 데는 보통 22.1년이 걸린다. 특별시인 서울시가 26.4년, 부산·인천 등 광역시는 평균 26.9년이 걸린다. 기초지자체인 자치구 공무원은 27.7년, 군 단위 공무원은 31.8년 걸렸고 시 단위 공무원은 32년 걸려 평균적으로 승진이 가장 늦다. 승진에 걸리는 평균 시간은 ▲9급→8급 2.5년 ▲8급→7급 4.8년 ▲7급→6급 10.1년 ▲6급→5급 11.6년 등이다. 9급 공무원이 5급까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평균 연수는 29년인 셈이다. 중앙 부처 공무원은 ▲9급→8급 4.2년 ▲8급→7급 6.4년 ▲7급→6급 8.1년 ▲6급→5급 9.3년 등이었다. 9급에서 7급까지는 지방직 공무원이 더 빨리 승진하지만 6급부터는 중앙직 공무원이 승진 속도를 앞질렀다. 9급 중앙 부처 공무원이 5급으로 승진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28년이었다. 지자체별로 여성 간부 비율도 각기 다르다. 17개 광역 시·도의 5급 이상 여성공무원 평균 비율은 11.1%였다. 서울이 20.8%로 가장 높았고, 경북도는 4.8% 가장 낮았다. 서울시 자치구만 따져 보면 평균 20.3%였고 영등포가 35.7%로 가장 높았다. 여성인 신연희 구청장이 이끄는 강남구는 10.3%로 가장 낮았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판잣집과 달동네 <상>

    [그때의 사회면] 판잣집과 달동네 <상>

    가수 남인수가 휴전 이듬해인 1954년 발표한 ‘이별의 부산정거장’ 속의 판잣집은 피란민의 애환과 고난을 말해준다. 고향을 잃고 집을 잃은 사람들은 그곳을 터전으로 해서 다시 삶을 이어 갈 수 있었다. 40여년 전만 해도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는 온통 판잣집으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6·25 전쟁 후 집을 잃은 사람들과 북한 피란민들에게는 판잣집이나 움막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일제 강점기에도 무허가 불량주택이 있었다. 땅에 흙담을 만든 뒤 그 위에 가마니나 거적을 덮은 것으로 토막으로 불렸으며 그 속에 사는 사람은 토막민이라고 했다. 유치진의 희곡 ‘토막’은 바로 일제하 토막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소재로 한 희곡이다. 판잣집은 판자와 나무로 만든 집이었다. 판자촌의 생활은 비참했다. 말이 집이지 겨우 비바람만 피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다. 불법 가옥이어서 전기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우물은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공동으로 썼다. 전쟁이 터지면서 200만명에 가까운 이북 동포들이 월남하고 농어촌 주민들이 상경하면서 서울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쟁 이후의 혼란 속에 판자촌은 걷잡을 수 없이 생겨났다. 서울의 청계천 주변과 용산 해방촌, 금호동 등에 집중적으로 생겼다. 해방촌은 최초의 판자촌이다. 해방촌은 해방(광복)을 전후해서 생겨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 용산구 용산동 2가 일대다. 광복 후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먼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전쟁 이후 월남한 동포들이 합류하면서 수만 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판자촌이 형성됐다. 38도선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38 따라지’라고 했다. 따라지는 화투에서 한 끗을 의미하는데 하찮은 인생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낮춰 불렀다. 청계천 양쪽에도 판자촌이 형성됐다. 수표교까지는 판잣집이 없었지만 종로 3가 근처부터 하류 쪽으로 판자촌이 길게 띠를 이루고 있었다. 대폿집과 철물점, 보신탕집도 판잣집이었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화재가 자주 발생함에 따라 불법 판잣집을 마냥 묵인해 줄 수도 없었다. 정부는 우선 간선도로 주변의 판잣집을 자진 철거하도록 유도했다. 미관보다 더 큰 문제는 화재였다. 판잣집의 재료가 기름칠한 종이와 나무였으므로 화재에는 무방비였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은 한 집에서 불이 날라치면 수십, 수백 가구가 동시에 불탔다. 그러나 자진 철거는커녕 도리어 더 불어나고 매매행위까지 공공연하게 발생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판잣집을 전부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1955년 무렵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해 6월 무렵 자진 철거한 판잣집은 9322가구이며 철거 대상 판잣집은 6만 가구에 이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판자촌 화재(1972년 1월 5일).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이런 쪽방이 1㎡당 2500만원…중국 맹모들이 만든 ‘미친 집값’

    이런 쪽방이 1㎡당 2500만원…중국 맹모들이 만든 ‘미친 집값’

    ●‘쉐취팡 집값’ 양회에서도 뜨거운 감자 “지난 5년 동안 쉐취팡(學區房·학구방) 문제를 지적했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파트 한 평(중국은 1㎡)에 25만 위안(약 4150만원)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베이징시 인민대표인 가오아리는 지난 6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분과별 회의에서 정부가 쉐취팡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쉐취팡은 한국으로 치면 강남 8학군 주변 주택을 뜻한다. 베이징에는 유명 초·중등학교가 있는 시청구, 둥청구, 하이뎬구에 쉐취팡이 몰려 있다. 쉐취팡 문제가 양회(전인대와 정치협상회의)에서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자 천바오성 교육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쉐취팡은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을 하려는 열망과 부동산 투기가 낳은 심각한 부작용”이라면서 “정부가 교육 자원의 재분배를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미미하다”고 밝혔다. 대체 쉐취팡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이럴까? 서울신문은 지난 11일 베이징의 대표적인 쉐취팡인 시청구 원창 후퉁(胡同·골목)을 찾았다. 원창 쉐취팡의 중심에는 베이징 제2실험초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각종 교육 사이트와 부동산 사이트가 꼽은 베이징 최우수 초등학교다. 1909년 생긴 이 학교는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과 수소탄, 인공위성)의 아버지로 불리는 첸쉐썬 등 유명 인사를 많이 배출했다. 100여명의 교사 대부분이 베이징 사범대를 졸업했고 40%가 석·박사 학위 소지자다. 학교에 수영장과 체육관이 있으며 소장 도서가 10만권에 이른다.●작년 정부 단속 전에는 1㎡당 최대 5000만원 최신식 학교 건물 주변에는 허름한 판잣집과 쪽방이 줄지어 있다. 중국 전통 주택인 사합원(四合院) 형식을 갖춘 주택의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10여 개의 쪽방이 나온다. 담벼락에는 부동산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대부분의 광고는 집을 팔 사람이 아니라 살 사람이 낸 것이다. 광고 전단에는 “집 팔 사람은 연락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집 팔 사람을 소개해 주면 후사하겠다”는 광고도 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인 쪽방의 가격은 1㎡당 15만 위안(약 2500만원) 안팎이었다. 10㎡ 넓이의 방 한 칸에 150만 위안(약 2억 5000만원)인 셈이다. 부동산 업체 롄자에 들어가 물어보니 “지난해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그나마 가격이 평당 15만 위안에서 진정된 것”이라면서 “이전에는 평당 20만~30만 위안이나 됐다”고 말했다. 롄자의 한 중개인은 “지금 우리 부동산에 구매를 신청해도 3년은 기다려야 한다”면서 “순번을 기다리지 않고 매물을 중간에 가로채려면 웃돈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웃돈으로 얼마가 더 필요하냐고 물으니 “많을수록 좋고 미리 돈을 박아 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화장실 딸린 56㎡ 아파트는 20억 넘어 쪽방보다 아파트는 훨씬 비쌌다. 1㎡당 20만 위안(약 3320만원) 이상이 대부분이다. 방, 거실, 화장실이 각각 1개인 56㎡인 아파트 가격이 1232만 위안(약 20억 4400만원)이나 됐다. 1985년에 지어진 아파트여서 시설은 쪽방과 별 차이가 없었다. 왜 중등학교나 대학이 아닌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쉐취팡 현상이 빚어질까? 초등학교를 잘 선택해야 명문 중등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실험초등학교 졸업생은 대부분 명문 중등학교인 베이징 사범대부속 중학교로 진학한다. 중국 여성과 결혼한 한 교민은 “아이가 어느 초등학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면서 “명문 초등학교 학생이 그대로 인근의 명문 중·고등학교로 진학해 외부인은 중간에 끼어들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민은 최근 중국 국적인 3살배기 아들의 미래를 위해 시청구와 하이뎬구의 쉐취팡을 알아보다 결국 포기했다. 베이징에 쉐취팡이란 괴물이 탄생한 원인은 교육부장의 말대로 비정상적인 교육열과 부동산 투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에만 입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멀리 떨어진 우수 학교로 등교하는 것을 막아 학교 평준화를 이루려는 조치다. 시청구 등은 월세가 아닌 진짜 집 소유주의 자녀만 쉐취팡 인근 명문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허가한다. 월세 이주를 막으려는 조치였으나 결과적으로 쉐취팡 매매가를 천정부지로 올려 놨다. 집값이 치솟자 부자만 쉐취팡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쉐취팡을 사들인 부자들은 구매한 집에 후커우(호적)만 올리고 집을 비워 두거나 농민공에게 값싸게 월세를 놓고 자신은 호화주택에 산다. 아이가 명문 초등학교 입학에 성공하면 자가용으로 등하교시키면 된다. 아이가 졸업하면 더 비싼 가격에 쉐취팡을 팔아 치운다. ●‘1주택 6년 한 학생 정책’ 층별 가격차 초래 베이징의 명문 초등학교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시청구 위민(育民)초등학교 주변에는 쪽방으로 이뤄진 사합원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가 즐비했다. 학교 주변 부동산 4곳을 찾은 끝에 겨우 빈집을 확보하고 있는 업체를 만날 수 있었다. 중개인과 함께 간 아파트는 1979년에 지어진 것이었다. 벽에 칠한 페인트는 누렇게 변색됐거나 떨어져 나갔고 복도 천장에는 심한 균열이 생겼다. 가스 배관은 녹이 슬어 위험해 보였고 창문은 방음은커녕 비바람이 불면 모조리 깨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중개인은 두 집을 보여 줬다. 넓이가 85㎡으로 같은데 11층은 1360만 위안(약 22억 5800만원)이었다. 반면 1층 집은 1700만 위안(약 28억 2200만원)으로 오히려 1층이 비쌌다. 이유를 물으니 중개인은 “1층 집을 사면 내년에 바로 위민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지만 11층 집은 4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이른바 ‘1주택 6년 한 학생’ 정책 때문이었다. 시청구, 하이뎬구, 둥청구는 쉐취팡 문제가 심각해지자 2016년부터 한 집에서 1명이 명문학교에 진학하면 6년 동안 그 집에 사는 누구도 입학을 금지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중개인은 “집집마다 입학 가능한 시기가 다 다르니 잘 살펴야 한다”면서 “아이가 아직 어리면 비교적 싼 집을 미리 구매해 놓고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부모 권력·부 따른 ‘교육세습’ 한국보다 심각 명문학교는 지역별로 특색이 있다. 톈안먼 중심가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시청구와 둥청구의 명문 초등학교는 예로부터 공산당 고위급 자녀가 많이 입학했다. 지금도 이 전통이 남아 있어 고위층 집단 거주 지역인 중난하이에서 통학하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베이징대·칭화대·인민대 등이 있는 하이뎬구는 부자들과 고소득 전문가의 자녀가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조부모와 부모가 해당 학교 출신이면 입학이 수월하고 그 학교 교사의 자녀도 입학이 쉽다. 부모의 권력과 부에 따라 교육세습이 쉐취팡 주변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중국 정부는 쉐취팡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주택 단지의 모든 가구 학생을 한 학교에 배정하지 않고 여러 학교에 나눠 보내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일부 학자는 쉐취팡에 한해 높은 부동산 보유세를 부과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하지만 공교육 전반의 수준이 올라가지 않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순위를 매기는 중국 특유의 서열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쉐취팡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쉐취팡에서 이뤄지는 권력과 부의 세습 카르텔은 강남 8군보다 훨씬 강고해 보였다. 글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제 귀가 왜 이러죠?’ 폭풍우에 대형 귀 펄럭이는 애완견

    ‘제 귀가 왜 이러죠?’ 폭풍우에 대형 귀 펄럭이는 애완견

    폭풍우 앞 귀여운 애완견의 모습이 포착돼 소셜 미디어 상에서 화제다. 2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잉글랜드 북서부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를 강타할 폭풍우 도리스(Doris)에 노출된 애완견 맥스(Max)를 소개했다. 케직에 거주하는 주인 케리 어빙(Kerry Irving)과 폭풍우 직전 라트리그로 산책을 나선 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패니얼(springer spaniel) 종 맥스. 영상에는 언덕을 등진 채 강풍을 맞는 맥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자신의 대형 귀가 바람에 펄럭이자 맥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란 듯 미동없이 앞만을 쳐다본다. 해당 영상은 9살 맥스를 소셜 미디어 상에서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스타로 만들었다. 어빙은 페이스북에 맥스의 영상을 게재하며 “(맥스의 귀가) 풍속 측정기의 침처럼 마구 흔들렸다”라고 덧붙였다. 영국 기상청( Met Office)은 이번 스톰에 공식적인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대서양을 건너온 저기압이 며칠 동안 시속 160km의 강한 비바람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의 스프링거 스패니얼은 60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잉글리시 스패니얼 중 하나로 코커 스패니얼과 가까운 친척관계다. 밝고 명랑하고 호기심이 왕성한 성격으로 주인과 가족을 극진히 사랑하고 지인도 잘 따르는 등 사람을 매우 좋아하는 애완 종이다.(참고: 다음 강아지 백과) 사진·영상= Kerry Irving Facebook / Mailonline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新전원일기] 초지 달리고, 한우 먹고, 펜션서 자고 ‘테마공원 같은 농장’ 제주서 영근다

    [新전원일기] 초지 달리고, 한우 먹고, 펜션서 자고 ‘테마공원 같은 농장’ 제주서 영근다

    제주는 ‘신화의 땅’이다. 1만 8000개 신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창조신 ‘설문대할망’이 제주도를 만들었다면 그의 아들 ‘오백장군’은 바위로 굳어 제주도를 지킨다. 서울에 살던 여신 ‘금백주’가 제주 송당의 ‘소천국’이라는 남자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고, 그 자손들이 흩어져 마을마다 수호신이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제주의 마을마다 지금까지 1~2개씩 남아 있는 당(堂)은 그런 신화들의 흔적이다.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당 중에서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본향당은 제주도 구좌읍 송당리에 있다. 당 안에 오래된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의미로 ‘송당’이라고 부른다.신화의 마을 송당에서 ‘한울타리 농장’을 키우는 안석찬(47)·강인자(44)씨 부부를 만났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혀질 정도로 사나운 날씨였다. 도착하자마자 250마리의 황우 한우를 키우는 축사를 둘러봤다. 거기서 좀 떨어져 있는 다른 축사에는 200마리의 소들이 있다고 한다. 천장이 높은 조립식 축사 안은 눅눅한 볏짚 냄새와 소들의 분뇨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사료가 쏟아져 내려오자 소들이 일제히 머리를 내밀고 사료를 핥기 시작했다. 몸집이 큰 소 사이에 있는 송아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송아지는 등에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어제 태어난 송아지라고 했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됐다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걸음도 불안해 보였다. 송아지는 당연히 아직 귀표도 부착되어 있지 않았다. 모든 소들은 축산물 이력제에 의해 귀표를 부착해야 한다. 귀표는 개체별 식별번호로 구제역과 같은 질병이 발생했을 때 방역이나 추적 관리, 품질 향상을 위해 축산물의 원산지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 제주, 1995년부터 축산물 수출 전지기지로 육성 축사 안쪽 끝까지 들어갔을 때, 몇 마리의 소가 축사를 벗어나 비를 맞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흙을 딛고 비탈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축사로 돌아오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놈들의 행동이 이상해 이유를 물었더니 경사진 길을 올라서면 9만평의 초지와 연결돼 있는데 습관적으로 거기로 향하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를 맞으며 비탈길에 서 있는 녀석들은 넓은 초지가 그리워 비를 맞으면서도 그 너머로 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제주도에 본격적으로 축산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특히 제주 동부 지역 중산간에 분포된 방대한 초지는 조사료(건초)를 만들 수 있는 유리한 자연 조건이다. 1995년에는 한우 축산뿐 아니라 낙농, 양돈 등을 장려하고 축산물 수출 전진 기지화의 중심으로 육성됐다. 안 대표의 한우 사육은 선대로부터 시작됐다. 안 대표의 부친은 축사 60평에서 20마리의 소를 키웠다. 이런 환경 때문에 안 대표는 자연스럽게 소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에게 물을 먹이는 일이 그의 주된 임무였다고 한다. 초지는 넓지만 습지가 부족한 제주에서는 풀을 먹이기 위해 초지를 찾아갈 필요는 없었지만 물을 먹이기 위해서는 물웅덩이로 소들을 데리고 가야만 했다. 이때 하나의 물웅덩이에서 사람과 소가 함께 물을 마셨는데, 가운데에 돌담을 쌓아서 그 경계를 나누었다고 한다. 경계만을 나눴을 뿐 결국 같은 물이었지만 이쪽과 저쪽, 사람과 소가 그 물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그때 꼭 챙겨 갔던 것이 수건이란다. 그래도 소와 같은 물을 마실 수는 없다고 생각해 물 위에 수건을 놓고 필터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제주대 축산학과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축산인의 꿈을 키웠다. 아버지에 이어 축산을 업으로 삼으려는 계획이 구체화된 시기였다.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축산 이론을 공부했고 축사 관리나 전산 관리같이 농장 경영에 실제로 필요한 것을 익혔다. 그는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서 ‘흥사단’ 동아리 활동도 했다. 그때 부인 강씨를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조립식 건축 현장에 다니면서 기술을 익혔다. 트랙터나 포클레인 같은 농기계 조작 방법도 배웠다. 축산은 소나 돼지를 잘 사육하는 것 못지않게 경영이나 기계 조작 능력과 같은 외적 요소도 중요하다. 초기 투자에서 출하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각각의 과정마다 전혀 다른 영역의 능력이 요구된다. 특히 소사육은 초기 투자 비용도 많이 들고 출하까지 대략 3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조사료 비용과 인건비를 얼마나 절감하느냐가 중요하다. 안 대표는 일찍 그것을 깨달았다. 조립식 건축 현장에서 배운 기술로 그는 지금의 축사 2개 동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트랙터나 포클레인뿐 아니라 노우어 컨디셔너, 테더와 같은 건초 생산 장비로 초지에서 직접 조사료를 만듦으로써 원가를 절감했다. 이런 끊임없는 노력은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소고기의 단가가 떨어져 마리당 50만원 정도의 이익밖에 남지 않을 때에도 무사히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관광자원 결합한 체험프로그램 개발 필요 그가 한우 농장을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다. 처음 25마리로 시작한 농장은 이제는 450마리를 키우는 제법 큰 규모의 농장이 됐다. 한울타리 농장은 여기서 태어난 송아지를 한 마리도 내보내지 않으며, 또한 외부의 송아지를 받아들여 키우지도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자신의 농장에서 태어난 송아지를 키워서 출하하고 있다. 한 달 평균 10마리의 소를 출하해 연간 12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농장을 더 확대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했다. “지금이 딱 기로인 것 같아요. 이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더 확장할 것인가. 만약 농장을 확대한다면 2000마리까지 늘려야 해요. 초지가 9만평 있으니까 조사료를 만들어 먹이고 부족할 경우 수입 건초를 먹이면 사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문제는 전문가예요. 송아지 관리, 농기계 사용, 전산 관리 등을 할 줄 아는 전문가가 더 있어야 해요. 그래서 쉬운 얘기가 아니죠.” 안 대표는 농장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좀더 다른 방향을 잡은 듯 보였다. “거의 대부분의 농가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귤을 재배하는 1차 산업만으로 농촌은 힘들죠. 농촌의 미래는 1차 산업과 결합할 수 있는 것들을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바다가 보이는 넓은 초지를 이용한 관광객들의 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초지를 달리고, 식당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고, 송당 펜션에서 자는 이른바 ‘즐길거리’와 ‘먹거리’와 ‘자는 곳’이 어우러진 큰 그림이었다. 송당이 속해 있는 구좌읍은 농축산업을 바탕으로 해서 다른 산업과 결합시킬 좋은 향토 자원을 갖고 있다. 구좌읍에서 시작해 지미봉에 이르는 제주 올레 21코스 ‘하도 종달올레’는 올레 코스 중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손에 꼽힌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가 당근밭과 감자밭 사이를 지나면 다랑쉬오름을 비롯해 성불오름, 아부오름, 용눈이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들로 이어진다. 수령이 1000년 된 비자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비자림도 있다. 초지 위의 풍력발전소도 이색적인 풍광을 더한다. 또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산마을곳’이라는 활엽수림 지대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 마을이 있었던 산마을곳은 제주 4·3 때 소개(疏開)돼 지금은 무성한 활엽수 숲이 돼 있다고 한다. 기본적인 정비는 이미 끝났고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절차만 남아 있다니 기대되는 곳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 땅에 뿌리를 내린 송당 토박이인 안 대표가 고향을 중심으로 농축산업을 연계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발전을 위해 그는 전국한우협회 제주도지부 부회장을 비롯해 제주대 동문회, 동아리연합회, 초등학교 동창회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 최소 ㎏당 2만 2000원 보장돼야 한우산업 유지 미국을 비롯해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도 소고기가 수입되는 현실에서 한우 농장에 대한 전망과 축산 농가가 살아남기 위한 조건 등이 궁금했다. “한우는 ‘만숙종’(晩熟種)입니다. 그래서 사육하는 데 경비가 많이 듭니다. 그 대신 육질의 조직이 촘촘해 식감이 뛰어나고 풍미가 좋습니다. 교잡우에 비할 바는 아니지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격 경쟁력도 중요합니다. 최소 ㎏당 2만 2000원은 보장돼야 한우산업은 할 만합니다. 한 마리를 400㎏으로 잡았을 때 800만원은 돼야겠지요.” “안 대표는 선친의 일을 물려받아서 이렇게 잘 이어 가고 계시는데 혹시 아들이 소사육을 하겠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들이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이 소사육사라고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니까 하겠다면 물려줄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대에서는 가족 노동력으로 소를 사육했고 그래서 다른 일도 같이 해야 했지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전문화되고 기계화됐죠. 아마 앞으로는 더 전문적인 기술이나 시스템이 필요하겠죠. 아들은 아직 어리니까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래요. 기본적인 것을 익힌 다음 판단하고 선택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빗소리도 더 거세게 들렸고 바람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한울타리 농장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비행기 시간을 계산한다면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공항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어두운 산길이었다. 송당 사거리를 지나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1112번 도로를 따라갔다. 공항은 비행기 이착륙이 지연돼 혼잡스러웠다.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는 제주공항 장면이 떠올랐다. 폭설로 며칠 동안 비행기가 결항되면서 공항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던 뉴스가 연일 보도된 때였다. 겨우 대합실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침부터 종종거리며 돌아다닌 피곤함이 밀려왔다. 비행기가 뜨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과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되지라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심정이 뒤섞여 머릿속에 떠돌아다녔다. 나중에 송당 본향당의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하면서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날 밤 무사히 서울에 도착한 것은 본향당 신의 가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우리가 지나왔던 1112번 도로에 제주 수호신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신을 모신 본향당이 있었다.■글쓴이 소설가 강진 2007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건조주의보’로 등단. 소설집 ‘너는, 나의 꽃’, ‘피크’(공저), ‘캣캣캣’(공저) 등.
  • [박홍기 칼럼] 소녀상이 꽉 주먹 쥔 이유를 아는가

    [박홍기 칼럼] 소녀상이 꽉 주먹 쥔 이유를 아는가

    소녀상이 그 자리에 있었다. 웅장한 빌딩 뒤편의 넓지 않은 길가에 있는 탓에 더 작아 보였다. 인도 군데군데엔 눈이 쌓여 있다. 소녀상의 차림은 알록달록했다. 누군가가 예쁜 스웨터를 입혀 주고, 털모자를 씌워 주고, 벙어리장갑을 끼워 주고, 목도리를 둘러 주고, 털양말을 신겨 준 것이다. 덕분에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소녀상은 뙤약볕이 내리쬐고, 비바람이 치고, 눈보라가 닥쳐도 오직 한 곳, 주한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다. 6년째다. 엄마와 함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소녀가 소녀상 앞으로 다가왔다. 소녀상의 얼굴을 만지며 “예쁘다” 하더니 소녀상 옆의 빈 의자에도 앉아 봤다. “전쟁터로 끌려간 할머니랬지. 할머니, 춥겠다”라며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소녀상 얼굴에 걸쳐 놨다. 일본이 집요하게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속내가 이것이다. 소녀들에게 보이는 역사의 전이(轉移)다. 소녀상이 존재하는 한 ‘보이지 않으면 잊힌다’라는 일반적인 망각 현상을 억지하기 때문이다. 일본엔 눈엣가시다. 소녀상은 풀고 가야 할 한·일 과거사의 중심에 있다. 위안부 문제는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실명으로 “증인이 여기 있다”고 위안부였음을 밝히면서 불거졌다. 역사적 증언이었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수요집회’가 처음 열렸다. 25년 전이다. 외침은 분명했다. 반인륜적 전쟁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이다. 그러나 일본의 주장은 한결같다. 일본군, 즉 국가에 의한 강제 동원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녀상은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해 위안부 할머니를 형상화했다. 2011년 12월 14일 세워졌다. 거칠게 뜯긴 단발머리 끝은 가족과 고향과의 단절을, 닳고 해진 맨발은 험난했던 인생을, 땅을 딛지 않은 뒤꿈치는 내 나라에서조차 온전히 발을 붙이지 못한 한(恨)을 담고 있다. 소녀상은 무릎 위에 꽉 주먹을 쥐고 있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아 내겠다는 의지에서다. 어깨 위의 작은 새는 평화와 자유의 상징이다. 과거와 현재의 할머니들과 우리를 잇는 연결 고리다. 한·일 관계가 틀어졌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최근에 설치된 소녀상이 단초가 됐다. 일본은 대사와 총영사를 일시 귀국시켰다. 통화 스와프 협상과 고위급 경제협의도 일방적으로 중단·연기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라 “한국 측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속한 10억엔을 줬으니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까지 철거하라는 것이다. 소녀상이 등장한 이래 쌓인 불만의 표출이다. 가해자가 큰소리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12·28 합의는 피해 당사자들을 완전히 배제했다. 설명도 없었다. 헌법재판소의 2011년 8월 30일 결정도, 대법원의 2012년 5월 24일 판결도 무시했다. 헌재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봤고, 대법원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렇지만 양국 정부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不可逆的·돌이킬 수 없는)’ 합의라고 못박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0억엔은 정부의 책임과 사죄의 대가라는 논리까지 폈다. 일본은 지금껏 그랬듯 사죄 없이 화해와 치유에만 방점을 뒀다. 굴욕적이다. 국가는 또다시 피해 당사자들의 기본권을 짓밟았다. 소녀상은 조형물 그 이상이다. 국민의 자존감으로 승화됐다. 오죽하면 “지금도 내 나라, 내 땅에서마저”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까 싶다. 아베의 말마따나 재협상은 국제 신용과도 직결될 수 있다. 그러나 국익도 국민적 지지가 바탕이 돼야 한다. 국가의 결정이니 옳고 그름을 떠나 따르라는 권위시대적인 주문은 온당치 않다. 국제 정세와 얽힐수록 의지할 곳은 국민이다. 투명한 절차가 전제돼야 함은 당연하다. 법원이 판결한 12·28 합의 문건 공개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도 “과거를 책임진다”는 실천적인 자세를 갖지 않는 한 12·28 합의와 상관없이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소녀상이 주먹을 펴지 않고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kpark@seoul.co.kr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오늘만 같지 않기를 - 조현주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오늘만 같지 않기를 - 조현주

    >>등장인물 노대복 69세, 마을버스기사 양옥화 67세, 노대복의 아내 노운수 45세, 노대복·양옥화의 아들, 택시기사 노만석 22세, 노운수의 아들, 퀵서비스맨 때어느 가을 토요일 저녁 장소한눈에도 오래되고 허름해 보이는 집의 거실이다. 거실 벽은 얇은 나무합판으로 둘러쳐져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거나 나무합판이 삐져나온 곳이 보인다. 가구나 테이블, 가전제품, 주방의 싱크대 등에도 오랫동안 사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대 뒤쪽은 주방이다. 싱크대와 냉장고 등이 있고, 냉장고 앞에 식탁으로 사용하는 원목 탁자가 있다. 주방 오른쪽으로는 미닫이문이 있고, 이 문을 나가 좁고 긴 복도를 따라가면 현관문이 나온다(객석에서 현관문은 보이지 않는다). 미닫이문 오른쪽 벽에는 커다란 전신 거울이 걸려 있고, 그 바로 옆은 노만석의 방이다. 주방 왼쪽으로는 뒷마당으로 바로 연결되는, 스테인리스로 된 문이 있다. 뒷마당에는 양옥화가 가꾸는 텃밭이 있다. 파나 고추 같은 것들을 키운다. 바로 옆에 방문이 있고(노운수의 방), 그 옆에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이곳은 욕실 겸 화장실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또 하나의 방문이 있다(노대복, 양옥화의 방). 방문이 마치 이 집 인테리어의 전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외의 특별한 건 보이지 않는다. 흔한 액자조차 벽에 걸려 있지 않다. 무대 앞쪽에는 온 가족이 앉을 수 있는 패브릭 소파가 객석을 향해 디귿자로 배치되어 있고 담요 같은 것들이 걸쳐져 있다. 왼쪽 소파에는 마른 빨랫감들이 아무렇게 놓여 있다. 가운데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고 꽃병이 있다. 테이블은 나무의 밑동을 잘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 역시 오래돼 보인다. 무대 밝아지면 대복, 방문을 열고 등장한다. 주방을 어슬렁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다. 잠시 후 뭘 찾는지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기억이 났는지 서랍장을 뒤져 손톱깎이를 찾아 소파 쪽으로 온다. 소파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놓는다. 자신의 발을 불만스러운 듯 이리저리 살피는 대복. 한참을 들여다보다 깎기 시작한다. 통증이 있는지 간간이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한다. 동작을 반복하다 신경질이 나는지 손톱깎이를 옆 소파에 던져 버린다. 대복 빌어먹을! 발가락을 뽑아내든가 해야지. 소파에 드러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손톱깎이를 찾는다. 다시 발톱을 깎기 시작하는 대복. 곧바로 미닫이문이 열리고 휘파람을 불며 운수 등장한다. 무스로 정돈한 올백 머리, 알이 큰 선글라스를 쓰고, 동선운수라고 쓰인 택시회사의 제복을 입고 있다. 거울을 보며 한껏 폼을 잡는 운수. 그런 모습을 한심한 듯 쳐다보는 대복. 잠시 후 둘의 눈이 마주친다. 과장되게 인사를 건네는 운수. 운수 그간 옥체 건강하셨습니까? 대복 누구? 운수 저는 그러니까, 아들입니다. 대복 그런 이름은 내 머릿속엔 없는데. 여긴 어떻게? 분명 문을 걸어 잠갔는데. 운수 수척해 보이십니다, 아버님. 들어가서 쉬시지요. (혼잣말처럼, 하지만 대복에게도 들릴 정도로 크게) 큰일이야, 빨리 기억이 돌아와야 할 텐데. 대복 뽑아낼 게 있는데 뽑아낼 수가 없네요. 어째야 합니까, 하나님. 운수 하나님은 바쁘셔서 그런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대복 쑤욱, 하고 뽑혀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운수 세상에 있는 건 다 있을 만한 이유가 있어섭니다. 마음에 평안을 찾으시지요. 대복 실수를 하셨습니다. 아주 큰 실수를 하셨어요, 하나님. (발톱에 통증을 느끼는지 인상을 찡그린다) 운수 병원엘 가세요. 왜 가만히 두고 병을 키워요? 대복 내 병을 키우는 건 네놈이다, 이 망할 자식아. 운수 또, 또 그러신다. 혈압도 높은 양반이. 대복 어디 가서 뭘 했기에 이제야 기어들어오는 거냐? 운수 뭘 하긴요, 일했죠. 대복 네놈이 야간조인 건 너만 모르고 우리 가족이 다 알아. 운수 일 끝나고 피곤해서 그냥 회사 근처에서 잤습니다. 대복 걸어서 이십 분이면 오는 너의 회사 말이냐? 운수 밤새 운전만 하면 다리가 부어요. 천근만근입니다. 대복 그래, 알지 알아. 나도 사십 년을 운전만 해서 발톱이 이 모양이지. 보이냐? (발을 들어 운수 쪽으로 내민다) 얼빠진 놈.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리려고. 운수 그만하세요. 저도 낼모레면 오십이에요. 대복 아유,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겨우 칠십밖에 처먹지 않아서. 운수 먹을 만큼 먹었다는 거죠. 대복 어디서 같잖게 나이 타령이야? 운수 조심하세요. 곧 터집니다, 제 인생에 잭팟이. 뒷일,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 대복 감당 못해도 좋으니 제발 좀 터져다오 그놈의 잭팟. 운수 두고 보세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는다) 대복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다 발톱을 깎기 시작한다) 어디 이름 모를 강에 가서 돌 껴안고 뛰어들든가 해야지. 운수 (소파에 앉으며) 그 의사 새끼 그거 돌팔이였나봐요. 수술한 지 얼마 됐다고 또 그래요? 대복 내성발톱이란 게 원래 그렇다. 운수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대복 내 자식도 내 맘처럼 안 되는데, 뭔들 되겠냐? 운수 이 자식새끼는 자나깨나 아버님, 어머님 생각뿐입니다. 대복 자나깨나 노름 생각뿐이겠지. 운수 노름이라뇨. 친, 목, 도, 모. 남들이 오해하겠어요. 대복 그래. 하룻밤에 몇 백만 원이 오가는 친목도모. 운수 전 아니에요. 그런 돈도 없고. 대복 얼마나 다행이냐, 네놈이 개털인 게. 운수 총알만 있으면. (대복의 험악한 얼굴을 보고) 농담이에요, 농담. 대복 네 엄마 한 번 더 쓰러지면 네 귓구멍에 총알을 박아주마. 운수 말씀 한번 살벌하십니다. 대복 이 집의 절반이 아직도 은행 거라는 것도 잊지 않았겠지, 응? 내가 평생을 일해 장만한 이 집 말이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51-23번지! 운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느낌이 와요. 운의 바람이 저한테 불어오고 있다고요. 대복 여기 죄 많은 노름꾼 하나가 정신 못 차리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회개할 수 있게 정수리에 번개라도 내리쳐 주세요. 운수 요즘엔 말이죠, 상대가 어떤 패를 들었는지가 보여요. 대복 세 치 혀로 거짓을 일삼는 죄인입니다. 지옥의 문을 잠깐 열었다 닫아주실 순 없으신가요? 그 틈으로 살짝 밀어 넣고 싶습니다만. 운수 진짜라고요. 앉아서 딱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놈이 지금 땡을 쥐고 있구나, 삼팔따라지를 쥐고 구라를 치고 있구나, 하는 게 보입니다. 대복 그거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 어찌나 놀라운지 전혀 믿기지가 않아. 운수 열에 여덟은 정확하게 맞힙니다. 이제야 빛을 보는 겁니다, 그간의 세월 동안 쌓인 경험과 그리고. 대복 돈과 빚이. 운수 네, 그렇죠. 정말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터집니다, 빰빠라밤~. 대복 내 속이나 터지게 하지 마라. (사이) 그런데. 운수 네, 존경하는 아버님. 대복 상대 패가 보이는데 왜 돈을 못 따는 거냐? 운수 중요한 지적이십니다. 대복 이유가 뭐냐? 운수 제 패가 그놈들 패보다 낮아서죠. 대복 아! 그렇구나. 그렇지, 그래. 그걸 몰랐네. 내가 몰랐어. (사이) 어떤 패를 들었는지는 보이는데, 그 패를 이길 수 없는 개패만 들어온다 이거지. 그렇지? 운수 환장할 일이죠. 한 끗으로 밟히고 족보로 밟히고 땡으로도 밟히고. 대복 그러니까, 재수가 없는 놈이구나 너는. 운수 기다리세요. 아스팔트는 깔렸습니다.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대복 노름꾼에 거짓말쟁이에 재수까지 없는 아이입니다. 하나님 곁에 자리가 남아 있나요? 운수 정말, 미치겠다니까요. 대복 정신 빠진 놈. 발톱을 정리하고 대복이 뒷마당으로 나가자 운수는 피곤한지 소파에 깊이 몸을 묻는다. 잠시 후 안방 문을 열고 옥화 등장. 손에 쥔 기저귀를 주방 쪽에 있는 휴지통에 버린 후 소파 쪽으로 와 잠든 운수를 본다. 옆 소파에 걸쳐진 담요를 들어 운수의 몸에 덮어주는 옥화. 뒷마당에서 들어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대복, 가만히 서 있다가 안방으로 들어간다. 옥화, 소파에 앉아 이불을 개기 시작한다. 운수 (깜짝 놀라 일어나며 잠꼬대한다) 야 이 개새끼야, 이 씨벌놈아. 내 돈이야.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며 씩씩댄다. 뜨악해하는 옥화와 눈이 마주치자 태연한 척한다) 언제 나오셨어요? 옥화 미칠 거면 저 산골 오지 같은 데 가서 미쳐다오. 내가 못 찾아갈 곳에. 운수 며칠 만에 본 아들이 조금은 반갑지 않으세요? 옥화 그럴 리가. 전~혀 반갑지가 않단다. 운수 마음에도 없는 말 하십니다 또. 옥화 네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운수 별일 없었어요? 옥화 없었다. 운수 정말요? 옥화 어제도 없었고 오늘도 없었고, 내일도 없을 거다. 하긴, 그런 게 너한테 뭐 중요하겠니. 한 달에 반을 밖에서 자는 애가. 운수 저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옥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날 도와주는 거다. 운수 그럴까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손가락만 빨고 집안에 처박혀 있을까요? (사이) 빌어먹을. (일어난다) 옥화 혹시, 여자 생겼냐? 운수 무슨 소리에요? 옥화 정희 엄마가 봤다더라, 네가 어제 젊은 여자랑 시장 입구 족발집에 있는 걸. 운수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아, 그분. 평생을 남 얘기로 입을 털어오신 분이죠. 옥화 그래도 없는 얘긴 안 턴다. 누군데? 운수 아무 사이 아니에요. 옥화 말해봐. 어떤 사람인데? 운수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옥화 너 갔다 온 거 알아? 운수 나 참. 그냥 아는 다방 여자애예요. 옥화 다방? 운수 (실망한 듯 보이는 옥화를 보며) 대체 뭘 생각했던 거예요? 아직도 저한테 무슨 기대 같은 걸 갖고 계세요? 옥화 그런 거 없다. (사이) 좀 제대로 된 여잘 만나면 세상이 무너지냐? 운수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옥화 알아서 하기는. 알아서 해서 이 모양 이 꼴이지. 운수 어머니!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아기 울음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온다. 울음소리 점점 커진다. 운수 저거 아직도 안 갖다 버렸어요? 옥화 말 좀 예쁘게 해라. 저거라니. 운수 만석인 어디 갔어요? 옥화 씻는다. 운수 이 자식은 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옥화 이따 데려다주기로 했다더라. 운수 그래요? 옥화 정말 우리가 키우면 안 되겠냐? 운수 누구요? 옥화 우리! 운수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마세요. 옥화 만석인 절대 안 된다는데, 네가 얘기 좀 잘 해봐. 운수 나도 싫어요. 그리고 그게 그럴 수가 없어요. 대복 (목소리) 여보, 이리 좀 들어와 봐. 옥화, 뭔가 더 이야기를 하려다 말고 방으로 들어간다.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파에 기대서 거실을 둘러보는 운수. 욕실 문이 열리고, 바지와 러닝만 입은 만석이 머리를 털며 등장. 운수 여, 아들. (모른 체하는 만석을 향해) 인사 좀 하지. 만석 오셨어요. 운수 그래. (방으로 곧장 들어가려는 만석을 멈춰 세우며) 아들아. 이리 좀 앉아봐라. 만석 바쁩니다. 운수 나도 바빠. 딱 일 분만 얘기하자. 만석 (앉으며) 왜요? 운수 (무심하게) 너, 뭐하는 놈이야? 만석 뭐가요? 운수 (주방 쪽에 있는 종이상자를 가리키며) 저거 말이야. 만석 저게 뭐예요? 운수 저거 말이야, 저거. 벌써 며칠째야? 열흘 정도 되지 않았냐? 만석 (알아차리고) 일주일밖에 안 됐어요. 운수 밖에는 뭐가 밖에야? 그 일주일 새에 저 방 안에 뭐가 채워졌는지 모르냐? 젖병에 딸랑이에 인형에. 그것만으로도 한 살림이다. 만석 오늘 데리고 갈 겁니다. 담당자 만나기로 했어요. 운수 그런 건 바로바로 처리했어야지. 만석 제가 알아서 합니다. 운수 아니지, 아니지. 이건 우리의 문제라고. 네가 저걸 이 집 안에 들여놓았던 순간부터 말이야, 우리 가족은 모두 공범이 된 거라고. 만석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담당공무원과도 이미 다 얘기가 됐거든요. 운수 공무원? 이 자식 순진하게. 걔네들이 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누가 알아? 다짐을 받아 놔야지 서면으로다. 만석 믿을 만한 사람들이에요. 애 있는 동안 매일 찾아와서 체크하고. 운수 (말 자르며) 확실하게 하란 말이다. (사이) 여자는? 연락은 됐고? 만석 아뇨.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어요. 운수 처음 몇 번은 받았잖아. 만석 받았죠. 운수 뭐라고 그랬댔지? 그 남자 애가 확실하니까 잘 키우든, 아님 고아원에 버리든 알아서 하라고? 만석 그랬죠. 운수 망통 같은 년. 애가 무슨 쓰레기야? (사이) 남자는? 만석 여전히 연락 두절. 출입국 기록을 보면 필리핀 쪽으로 간 것 같다던데. 운수 하긴 나라도 웬 여자가 네 애 낳았으니까 네가 알아서 키워 했으면 외국으로 떴을 거다. 만석 경찰이 조사하고 있으니까 곧 해결되겠죠. 운수 뭐, 하든 말든. 아무튼 요즘 젊은 것들은 이해를 못 하겠어. 대체 어떤 강심장이면 애를 박스에 담아서 퀵으로 보낼 수 있나? 대단해, 대단해. 졸라게 놀라워. 안 그러냐? 만석 전 별로. 어렸을 때부터 하도 놀라운 일을 많이 겪어서. 본인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운수 넌 누굴 닮아서 그렇게 비아냥이 수준급이냐? (말이 없는 만석을 향해) 됐고. 정말 네 애 아니지? 마지막 기회다. 지금 말하면 다 용서해주마. 만석 대체 몇 번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요? 운수 근데 너도 생각을 해봐. 퀵으로 물건을 받았어. 물건을 받았는데 수취인이 없어. 수취인도 없고 돈도 착불이라 못 받고. 다시 연락을 하니까 전화기가 꺼져 있어. 하는 수 없이 집으로 가져왔는데, 짜잔. 램프의 요정처럼 아이가 튀어나왔네? 너라면 이게 이해가 가냐? 만석 이해가 안 가면 이해를 하지 마세요. 어차피 관심도 없잖아요. 운수 네가 이 애빌 가다마사, 띄엄띄엄 보는, 아주 건방진 경향이 있는데. 만석 (말 자르며) 됐어요. 내 애 아니고, 오늘 데려다줄 거고, 그걸로 끝입니다. 그러니 더는 아무 말 마세요. 운수 (곰곰이 생각하다) 그런데 말이야. 이런 경우엔, 뭔가 보상금 같은 거 안 주냐? 일주일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했는데. 만석 안 줍니다. 버려진 애 돌봐주고 무슨 돈을 바래요? 양심도 없어요? 운수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양심이 무슨 소용이라고. 그러다 손가락 빨고 사는 거야. 손해만 보다 빚더미에 올라앉는 거고. 만석 우리 집도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죠. 누구 덕분에. 운수 (기분 나빠하지 않고 반색하며) 그러니까, 뭔가 탈출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아들아. 그런 의미에서, 총알 좀 있냐? 이번에야말로 빚에서 좀 벗어나보게. 만석 (어이없어하며) 없어요. 운수 갚는다, 갚아. 이번에 한꺼번에 갚는다. 얼마지 이제까지 빌린 게? 한 백만 원 되냐? 만석 이백십팔만 사천오백 원이요! 운수 거짓말하지 말고. 만석 이자 빼고 원금만! 운수 그렇게 많았냐? 사천오백원은 뭐야? 대복 지난주에 가져간 담뱃값이요. 운수 아, 그래, 백 원짜리랑 십 원짜리 말이지. 집 앞 편의점 알바애가 실실 쪼개더라. 십 원이 남네요, 하면서. 그 뒤로 내가 거길 못 가요. 만석 능력 없으면 끊으세요. 운수 담배까지 못 피우면 이 엿 같은 세상을 어떻게 견디겠냐? 만석 그래서, 얼마요? 운수, 비굴하게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만석,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만석 여기요. 운수 (지폐를 보며) 뭐냐 이게? 만석 담배 네 갑은 살 수 있을 겁니다. 운수 (손가락 두 개를 힘차게 펴며) 이 두 개를 말한 거지, (손가락을 굽혀서 내보이며) 이 두 개가 아니라. 만석 없어요. 운수 그러지 말고. 이번 주말 지나면 바로 준다니까, 진짜로. 만석 없습니다. (사이) 다음주 할머니 병원 가는 거 알고 있죠? 운수 벌써 한 달이 지났냐? 만석 이번엔 몇 십만 원이라도 좀 내세요. 할아버지도 나도 이제 돈 나올 데가 없어요. 목구멍까지 찼다고요. 운수 알았어, 알았어. (혼잣말처럼) 그러니까 내가 신약으로 하자니까. 만석 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운수 네 할머니이기 전에 내 엄마야. 어디서 돼먹지 않은 소리야? 만석 똑바로 하시라고요, 그러니까.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이게 다예요. 운수 필요 없어, 새끼야. 보자 보자 하니까 지 애비를 허수아비 짚단으로 알아. 싸가지 없는 새끼.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다시 나와 지폐를 챙기고 욕실로 향한다) 두고 봐,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네놈 얼굴에 뿌려줄 테니까. 만석 이백이십오만 사천오백 원입니다. 운수, 가만히 노려보다 욕실로 들어가 문을 세차게 닫는다. 멍하니 지갑을 들여다보는 만석. 한숨을 쉬다 옆에 놓여 있는 빨랫감을 발견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빈 분유통을 들고 나오는 옥화. 분유통을 싱크대에 넣은 후 소파로 와 앉는다. 옥화 저녁은 어떡할래? 만석 바로 나가봐야 해요. 옥화 뭐가 급하다고 밥도 걸러. 찌개 끓여 놓은 거 데우면 되니까 한술 뜨고 가. 만석 담당 직원이 곧 전화할 거예요. 준비하고 있다 바로 나가야 해요. 옥화 그 사람은 주말에도 일한다니? 만석 그 사람도 빨리 마무리하고 싶겠죠. 옥화 여기 있는다고 애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뭘 그리 야박하게. 전화해서 월요일에 데리러 오라 그래라. 만석 이미 끝난 일이에요. 더이상은 안 돼요. 아까 얘기드렸잖아요. 옥화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야. 애를 데려가면 재울 데는 있대? 분유는 탈 줄 알고? 이제야 겨우 적응 좀 했는데, 또 이렇게 다른 데로 보내면 애가 놀라. 월요일에 오라 그래. 만석 그 사람들은 그게 직업이에요. 버려진 애들 보살피는 거. 옥화 버려지다니. 만석 빨리 가야 적응을 하죠. 여기서 계속 살 수 없잖아요? 옥화 왜 못 살아? 그냥 살면 되지. 아버지가 아무 얘기 안 하던? 만석 (얼버무리며) 별말 없었는데요. 옥화 하여튼 도움이 안 돼요. (사이) 한 번 더 생각해봐라. 만석 뭘요? 옥화 우리가 키우는 거 말이다. 만석 (단호하게) 그건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옥화 네가 말한 그 절차라는 것만 해결하면 키울 수 있는 거잖냐. 만석 그냥 들은 걸 얘기한 거예요. 저도 잘 몰라요. 사실 알고 싶지도 않고요. 옥화 그 애 얼굴을 봐서 알잖니? 큰 눈망울, 둥근 콧잔등에 숱도 무성하고. 사랑받으며 크면 이쁘게 자랄 거야. 천벌받아, 그런 애 버리면. 만석 천벌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애가 어떻게 되든 말든 버리고 도망간 사람들이죠. 옥화 이 할미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싶다. 만석 자식을 버리는 게 이해가 가요 할머닌? 그래요? 옥화 (당황하며) 그건 아니다만. 그래도 이게 다 인연 아니겠나 싶고. 만석 여긴 그냥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에요. 길어지면 불행한 인연이 될 뿐이죠. 옥화 애 생각을 해봐라. 어디 멀리 외국에 보내져서 소젖 짜고 양털이나 벗겨내게 할 셈이냐? 만석 누가 그래요? 옥화 나도 귀가 있고 눈이 있어. 티비에서 다 봤다. 만석 팔려 가는 게 아니에요, 입양이죠. 외국 가서 더 잘 먹고 좋은 교육받고 더 사랑받고 클 거예요. 그리고 아무려면 어때요. 내 아이도 아닌데. 옥화 우리 손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인정머리가 없어졌을까. 민달팽이 집이 없다고, 불쌍하다고 울던 우리 착한 손자는 어디 갔을까. 응? (사이, 달래듯) 그러지 말자. 어디 보내지 말고 우리가 키우자. 만석 우리 형편을 좀 생각하세요. 옥화 입 하나 는다고 당장 내일 굶어 죽는다니? 제 먹을 건 타고나는 거야. 만석 다 있는 사람들 이야기에요. 옥화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 만석 무슨 생각이요? 옥화 그 절차라는 거, 내가 하면 되지. 만석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옥화 왜 말이 안 돼? 만석 할머니는 안 돼요. 옥화 내가 왜 안 돼? 만석 암 환자가 무슨 애를 키워요? 옥화 (당황하며) 그게 무슨. 암 환잔 애를 못 키운다니? 만석 입양도 못 할 거예요. 옥화 이 집에 나 혼자뿐이냐? 너도 있고, 운수도 있고, 네 할아버지도 있고. 만석 전 빼주세요. 도와 드리지 않을 거니까. 옥화 그래, 그럼 넌 빠지고. 나랑 네 애비랑, 아니 네 할아버지랑 키우지 뭐. 만석 맘대로 하세요. 근데 애는 오늘 데리고 갈 거예요. 그렇게 하기로 했고요. 얘긴 끝났습니다. 옥화 안 된다. 그렇게 안 둘 거야, 이 할미가. 만석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하셔야 해요. (방으로 향한다) 옥화 (혼잣말처럼) 커갈수록 지 애비를 닮아가는 건지. 만석, 옥화의 말을 듣고 잠시 멈춰 서 있다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간다. 옥화, 멍하니 앉아 있다. 잠시 후 대복 안방에서 나온다. 검정색 양복을 입고 있다. 욕실 문을 열고 깜짝 놀라는 대복. 대복 아이고 깜짝이야. 뭔 짓이냐, 이 망할 자식아! 운수 (목소리만) 뭐가요? 대복 왜 그러고 섰냐고? 운수 (목소리만) 하루에 삼사 분씩 이렇게 물구나무를 서줘야 뇌경색에 안 걸린답니다. 대복 옷이나 처입고 해라. 운수 (목소리만) 아버지, 여긴 욕실이라고요.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는 대복. 주방으로 가 대충 손을 닦고 거실 쪽으로 나와 소파에 앉는다. 대복 애새끼가 갈수록 이상해져. (사이, 혼자 웃으며) 아, 고놈, 참 여자애라서 그런지 애교가 장난이 아니네. 눈웃음치는 게 어찌나 이쁜지. 안 그래? (옥화가 반응이 없자) 뭐해? 옥화 응? 왜요 왜? 대복 어따 정신을 팔고 있어? 옥화 뭐라고 했어요? 대복 밥 먹자고. 옥화 아, 그래요, 그래야죠. 대복 (일어서는 옥화를 말리며) 이 사람이 나사가 빠졌나. 있어 그냥. 저녁은 무슨. 연씨네 상갓집 가기로 했잖아. 옥화 어디요? 아, 그랬죠, 상갓집. 대복 약 때문에 그래? (문득 생각난 듯) 아, 애는 만석이가 보나? 옥화 (힘없이) 조금 있다 데려다주기로 했대요. 대복 (실망한 듯,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래. 오늘? 뭔 사람들이 주말에도 일을 하나. 옥화 만석일 잘못 키웠나 봐요. 대복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옥화 엄마 없는 손자새끼, 기 안 죽이고 번듯하게 키우려고 어르고 달래고 오냐오냐 키웠더니 어른 되더니 인정머리도 없고, 고집불통에, 저밖에 모르고. 대복 헛소리하지 마. 만석이만 한 놈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다고. 내가 살면서 유일한 자랑거리가 있으면 만석이 놈이 내 손자라는 거야. 옥화 나도 그런 줄 알았죠. 대복 맘고생을 하면서 커서 그런지 어린놈이 어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옥화 친구도 하나 없는 거 아니겠죠? 대복 헛소리 지껄일 거면 가서 옷이나 챙겨 입고 나와. 옥화 정말 우리가 키우면 안 될까요? 대복 누굴? 옥화 저 애요. 대복 어허, 이 사람. 물이나 줘. 옥화 왜요?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요. 대복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무책임한 일이지. 옥화 (물을 가지러 가며) 풍족하게 키우진 못해도 부족하게 안 키우면 되잖아요. 딴 집에 가서 어떻게 클지 누가 알아요.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데. 대복 당신이 신경쓸 일 아니야 그건. 옥화 그럼 난 뭘 할까요? 왜요? 당신도 암 환자가 뭔 소릴 하나 싶은 거예요? 대복 이 사람, 할 게 왜 없어? 옥화 뭐요? 대복 (무심하게) 잘 보내줘야지. 둘 다 잠시 말이 없다. 잠시 후 물을 떠서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옥화. 대복, 마신다. 대복 (곧바로 잔을 내려놓으며) 찬물 없어? 옥화 따뜻한 거 드세요. 대복 사십 년 동안 내가 따뜻하게 마시는 거 봤어? 옥화 배 아프다면서요. 대복 그런 적 없는데. 옥화 지난밤에도 배 붙잡고 끙끙댄 거 다 알아요. 대복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돼. 살던 대로 살아야지. 옥화 살던 대로 살아서 이 모양 이 꼴이잖아요. 대복 우리 꼴이 어때서? 이만하면 잘살았지. (냉장고 냉동칸에서 얼음을 꺼내 컵에 담아 휘젓는다) 옥화 거기 찬장 위에 좀 봐요. 대복 왜? 옥화 만석이가 무슨 비타민인가 사왔다고 하루에 하나씩 먹으라고 했어요. 대복 (찬장을 뒤적여 약통을 꺼내 읽는다) 아쿠알렌? 이게 뭔데? 옥화 몰라요, 몸에 좋대요. 대복 당신이나 먹어. 옥화 드세요. 대복 아, 안 먹어. 내가 평생 약이란 걸 먹고 살았던가. 당신이나 꼬박꼬박 챙겨 먹어, 까먹지 말고. (약통을 다시 찬장에 넣는다) 옥화 난 다른 약 못 먹어요. 의사가 그랬어요, 치료하는 동안 다른 약은 먹지도 말라고. 대복 (찬장 문을 닫으며) 아, 몰라. 그럼 낫고 나서 먹든가. (그냥 물만 마신다) 옥화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척이라도 좀 해봐요. 따뜻한 물도 싫다, 약도 싫다, 그놈의 고집은. 대복 칠십 년을 이렇게 살았어. (소파 테이블로 잔을 가져온다) 옥화 앞으로 반백년은 더 살 텐데, 지금부터라도 건강 챙겨야죠. 대복 시답지 않은 소리. 오늘내일하는데 새삼스럽게 뭔 건강 타령이야. 요즘엔 아주 귀가 따가워, 하도 몸 여기저기가 곡소리를 내서. 운전도 그만해야 할까봐.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젠 내가 겁이 나. 차 몰고 가다 승객들 얼굴을 보면 이 사람들, 다 내 저승길에 데려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요즘엔 정말이지 제발 곱게만 죽었으면 하는 게. (시무룩해하는 옥화를 보며) 괜찮겠어? 상갓집엔 나 혼자 가도 돼. 옥화 아니에요, 같이 가요. 연씨네가 남도 아니고. 대복 인생 참 허무하지. 그 양반이 그렇게 갈 줄 누가 알았어? 옥화 그러게요. 그렇게 시간 아깝다고, 바쁘게 살아야 한다더니 정말 바쁘게 가버렸네요. 대복 그러니까, 뭐든 적당히 하며 살아야 해. (사이) 몸은 어때? 옥화 그냥 그래요. 대복 그냥 그렇다고? 옥화 그냥 그렇다고요. 대복 그냥 그런 게 어떻다는 거야?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옥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아요. 대복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다) 그러니까 그게 뭔 말이야? 옥화 아휴, 그냥 그런 줄 알아요. 대복 (멋쩍은 듯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이, 자꾸, 화가 늘어. 옥화 피곤해요. 좀 누워 있다 나올게요. 대복 전기장판 켜놨어. 옥화 벌써 무슨 전기장판을 켜요, 돈 아깝게. 대복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면서 오들오들 떠는 거 보기 싫어. 이불도 깔아놨으니까 가서 누워 있어. 옥화 (문득 생각난 듯) 애들 밥을 차려줘야 하는데. 대복 내가 차려줄 테니까 들어가. 옥화 당신이 무슨. 대복 어허, 들어가. 나도 다 할 줄 알아. 옥화 (머뭇거리다) 그럼, 좀만 누울게요. 대복 들어가, 들어가. 옥화 방으로 들어가고 홀로 남은 대복. 천천히 거울 앞으로 걸어간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넥타이를 꺼내 매기 시작한다. 하지만 잘되지 않는지 번번이 실패한다. 욕실 문을 나와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운수. 대복이 포기하고 소파로 걸어 나오자 헛기침을 하며 소파로 다가오는 운수. 욕실로 들어갈 때와 똑같은 모습이다. 운수 아, 개운하다. 대복 (시계를 보고, 운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제대로 씻기나 한 거냐? 운수 진정한 신사는 항상 한결같아야 합니다. 대복 네가 한결같이 얼간이긴 하지. 운수 또 그러신다. 하나뿐인 아들이 얼간이면 퍽도 좋으시겠네요. 대복 이럴 줄 알았다면 줄줄이 낳을 걸 그랬지. 운수 그러시지 그랬어요? 대복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그랬다. 네놈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울 것 같아서. 운수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었잖아요, 우리가? 대복 (놀란 얼굴로) 네놈 태어났을 때 우리 전 재산이 얼마였는 줄 아냐? 수중에 칠만 원이 있었다, 칠만 원! 자장면 한 그릇에 삼십 원이었는데, 그걸 못 사먹었다, 돈이 아까워서. 운수 귀에 인이 박이겠어요 그 얘긴. 대복 부탁이니 제발 그 쓸모없는 귀에 좀 박아 놔라. 어디 구멍이라도 뚫린 거냐? 왜 맨날 듣고 흘려, 흘리긴? 운수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사이) 어머닌요? 대복 방에 누워 있다. 운수 밥 먹고 바로 일하러 가야 하는데. 어머니! 대복 네가 차려 먹어라. 운수 왜요? 대복 내 마누라가 네놈 종이냐? 앞으론 네가 차려 먹어. 운수 나 참, 계속하실 거예요? 그만하시죠. 대복 밥솥 안에 밥 있고, 냄비 안에 찌개 있다. 그 손 노름할 때만 쓰지 말고 이젠 네 엄마 좀 도와라. 운수 아니, 밥을 나만 먹어요? 숟가락 하나만 얹자는데, 그것도 못마땅하세요 이젠? 대복 (넥타이를 살피면서) 네 엄마랑 난 초상집 갈 거다. 운수 무슨 초상집을 하루건너 하루씩 가요? 대복 난들 아냐? 줄줄이 하나님 품으로 가는 걸 내가 무슨 수로 막아? 운수 또, 또 흥분하신다. 대복 봐라. 네 애비 꼴을 봐. 나도 곧 간다. 차에 치여 가고, 산책하다 심장마비 걸려 가고, 자다 가고, 내 친구들 다 그렇게 갔어. 나도 멀지 않았다. 운수 아버진 오래 사실 겁니다. 걱정 마세요. 대복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물어보자. 운수 묻지 마세요. 대복 너, 나 가고 네 엄마 가면 뭐하고 살래? 그냥 지금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동네 노름판이나 기웃거리면서 주인 없는 강아지마냥 떠돌면서 살고 싶냐? 운수 퍽도 좋겠습니다. 대복 정신 좀 차려라. 네 나이가 벌써 오십이야. 운수 오십이 뭐 어때서요? 대복 뭔가 대단한 건 못 해냈어도 대단한 척은 해야 할 나이 아니냐. 내가 딱 네 나이 때 이 집을 샀다. 빚 하나 없이. 너도 기억하지? 운수 당연히 기억하죠. 제가 그때 결혼했잖아요. 대복 (당황하며) 그랬냐? 운수 말 나온 김에 저도 하나 물어볼까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대복 (말 자르며) 묻지 마라. 운수 그 여잘 왜 그렇게 싫어하셨어요? 대복 그런 적 없다. 운수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근본도 알 수 없는 고아여서? 술집에서 니나노 하던 여자라서? 셋 중에 골라보세요. 아니면, 주관식으로 하셔도 되고요. (대답 없는 대복을 향해 채근하듯) 네, 네? 대복 이상한 아이였다. 음침하고 말도 없고 늘 남의 눈치만 살피고. 병 걸린 사람처럼. 운수 멀쩡할 리가 있습니까? 평생을 비바람 속에서 살아가보세요. 누구라도 이상해집니다. 하지만 절 사랑해줬습니다. 저도 사랑했고요. 대복 나는 네가 더 나은 사람을 만나길 바랬다. 운수 거짓말 마세요. 아버진 그냥 그 여자가 싫었던 겁니다. 아님, 제가 싫었던 건가요? 대복 그 시절 우리 대 부모들은 다 그랬다. 어떤 부모라도 그랬을 거야. 우린 옛날 사람이다. 운수 심지어 만석일 낳고 나서도 변하지 않으셨죠. 아버지도! 어머니도! 대복 그 애가 도망간 게 우리 탓이라는 거냐? 운수 (어이없어하며) 그럼, 누구 잘못일까요? 두 분 말고 그 여잘 싫어한 사람이 또 있었나요? 대복 그만하자. 이십 년도 지난 얘기. 운수 그러죠. 그러니까 쓸데없는 얘기하지 마세요, 아버지도. 대복 (분노하며) 쓸데없는 얘기?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게 개차반처럼, 한량처럼, 동네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받으면서 살겠다고? 운수 제 인생입니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안 써요. 대복 신경써라 써. 이 지옥불에 빠질 자식아. 이 동네에서 사십 년을 살았어. 모두가 우릴 안단 말이다. 운수 아버지를 아는 거죠. 어머니를 아는 거고. 대복 너는 뭐 어디서 날아 들어왔냐? 네가 우리 집안 골칫덩이인 것도 다 알아. 운수 그렇게 부끄러우시면 나가 드릴까요? 대복 안 되지, 안 돼. 그럴 수야 없지. 나가서 또 무슨 사골 치려고. 수작 부릴 생각 마라. 운수 아, 그렇죠. 이 집이 아직까지 반은 아버지 거죠? 대복 (정색하며) 더는 안 된다. 한 번 더 사고 치면 그땐 정말 너랑 나랑 갈라서는 거다. 운수 갈라서는 게 그리 낯선 경험이 아니라서. 대복 돈은 어떡할 거냐? 운수 무슨 돈이요? (황당해하는 대복을 향해) 갚을 테니 기다리세요. 대복 원금은 바라지도 않으니 은행이자라도 내놔라. 운수 갚습니다, 원금까지 다. 십 원짜리 하나 빼놓지 않을 테니까 두고 보세요. 대복 말했다. 이자. 운수 알았다고요. 갚는다고요. 이때 방문이 열리고 만석이 거실로 나온다. 외출복 차림이다. 운수 여, 아들아. 아버지 밥 좀 차려다오. 주방으로 향하는 만석. 밥을 차리려 하는 줄 알고 득의만만해하며 대복을 향해 웃음 짓는 운수. 만석이 박스를 살펴보고 소파 쪽으로 가져오자 실망한다. 운수 아드님? 제 말 귓구멍에 들리셨어요? 만석 차려 드세요. 바로 나가봐야 돼요. 운수 뭐 어려운 일이라고. 밥 푸고 찌개 데우고 반찬 꺼내놓으면 되지. 만석 그렇게 하시면 되겠네요. 운수 캬아, 아버지. 보셨죠. 제 아들이 저렇게 자기 소신이 있고 싸가지가 없습니다. 대복 차려 먹어라 네가. 만석아,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라. 운수 아버지, 우리 집안에 언제부터 예의범절이란 단어가 사라진 거죠? 대복 넥타이를 못 매겠어. 만석, 대복 목에 건 채로 넥타이를 매보다가 안 되자 벗겨내 거울 앞으로 가져가 자기 목에 걸고 매듭을 맨다. 운수 하긴. 원래 대단한 집안은 아니죠 저희가. 족보도 없고. 대복 상놈의 집안이라서 미안하구나. 운수 상놈까지는 아니고. 농민이나 소작농, 그 정도 아니었을까요 우리 조상님들은. 대복 내 십이대손 할아버지께선 정오품 정량 별좌 교리셨다. 네놈의 십삼대손 할아버지 말이다. 운수 처음 듣는 얘기네요. 대복 그럴 리가. 삼십 원짜리 자장면 얘기 다음으로 많이 해줬을 텐데. 만석 (넥타이를 대복의 목에 걸어주며) 잠깐 봐요. (정리를 해준다) 됐어요. 운수 아들아, 너는 이 얘기 들어봤냐? 우리 조상 중에 정오품 정, 뭐, 아무튼, 그런 분이 계셨다는데. 만석 근데 이거 너무 낡았어요. 대복 괜찮다. 아직 쓸 만해. 운수 아주 개가 짖는구나, 개가 짖어. 내 말은 다 씹어 드셔들. 만석 이거밖에 없어요? 여기 실밥도 다 터지고. 다른 거 하세요. 대복 괜찮다니까. 운수 손자분 말 들으세요. 온 동네가 영감님을 아신다면서요. 만석 제 거 있는데 가져올게요. 대복 (만류하며) 됐다. 상갓집에 요란하게 하고 가는 거 아냐. 이 정도가 딱 좋아. 만석 할머니랑 같이 가세요? 대복 그래. 저녁 같이 챙겨 먹어라. 만석 저도 바로 나가봐야 해요. 운수 차리고 가라. 네 아버진 배고프다. 대복 밥은 먹어야지. 운수 그래, 밥은 먹어야지. 만석 약속 있어요. 대복 그러냐? 제대로 된 거 먹고 다녀라. 운수 난 약속 없다. 밥 차려줘라. 만석 할머닌요? 대복 방에. 슬슬 깨워야겠다. 만석 제가 들어갈게요. 애도 데리고 나와야 하고. 운수 찌개 데우고 들어가라. 밥 퍼놓고 데리고 나와. 반찬도 꺼내고. 만석 그만 징징대세요. 운수 뭐, 징징? 오냐오냐하니까 이 새끼가 정말. 만석 이젠 제발 철 좀 드시죠. 운수 아유, 그래요. 철이 일찍 들어서 몸이 무거우시겠어요 우리 아드님은. 만석 가족은 안중에도 없죠?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생을 하든 말든 그냥 아버지 편한 대로 살면 그만이죠? 운수 핏대 세우지 마라. 한 대 치겠다 그러다? 만석 할머니 치료비도 그렇고. 할아버지 발톱 수술 못 하는 거 돈 없어서인 거 알고나 있어요? 대출이자가 한 달에 얼만지나 알고 있냐고? 운수 다 아니까 침 튀기지 마라. 만석 아시면 아는 만큼 내놓으세요. 운수 퍽이나 많이 내놓나 보지? 오토바이 그거 타서 얼마나 버냐? 백? 이백? 만석 다른 사람한테 손 안 벌릴 정도는 버니까 걱정 마세요. 운수 아주 그거 돈 조금 빌려줬다고. 만석 모범을 좀 보이시라고요. 운수 왜? 내가 못 미덥냐? 너도 네 엄마처럼 도망갈래? 대복 (엄하게) 그 입 다물어라. 네 귀방맹이 날릴 힘은 나도 아직 있으니까. 운수 좋아요! 한번 해볼까요, 오늘? 삼대가 진하게 한번 엉켜볼까요? 만석 그만하죠. 운수 왜? 막상 하려니까 쫄려? 어이, 아들, 와 봐. 와보라고. 운수, 자리에서 일어나는 만석을 따라가며 뒤통수를 톡톡 친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뒤통수를 때리자 만석이 되돌아서 운수의 양손을 잡아챈다. 바닥에 떨어지는 지폐. 곧바로 만석의 멱살을 쥐는 운수. 운수의 팔목을 강하게 쥐는 만석. 대복, 테이블에 있는 컵을 그들을 향해 던진다. 대복 나가라.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네놈들 둘 다 나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마. 적막이 흐르고, 잠시 후 옥화가 방문을 열고 등장한다. 차분한 옷차림, 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다. 바구니 안엔 아이가 잠들어 있다. 운수와 만석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심히 지나치는 옥화. 테이블 위에 바구니를 올려놓고 소파에 앉는다. 대복을 보고 이마를 찌푸리는 옥화. 옥화 아, 또 왜 그 넥타이를 했어요. 버렸어도 벌써 버렸어야 할 걸. 대복 이 사람 버리긴 왜 버려 이걸. 옥화 멀쩡한 넥타이를 두고 왜 자꾸 그것만. 대복 다 자기 몸에 맞는 게 있는 거야. 난 이게 편해. 옥화 그놈의 고집은. 이때, 전화벨이 울리고 만석 통화한다. 통화가 끝난 후 옥화에게 다가오는 만석. 옥화의 눈치를 보다가 바구니에 손을 뻗는 만석. 옥화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라. 만석 가야 해요, 할머니. 옥화 알았어. 안 보내겠다는 게 아니야. 여기, 이것만 좀 하고. (바구니를 정리한다) 대복 (바구니를 들여다보며) 거기, 거기. 바람 안 들어가게 잘 좀 욱여넣어 봐. 옥화 알겠어요, 있어 봐요. 대복 한 번 더 포대기에 싸야 하지 않겠어? 옥화 그럴까요? 바람이 차니까 아무래도. 만석 그 사람이 집 앞까지 차 가지고 오기로 했어요.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대복 그렇다는데? 옥화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 (계속한다) 운수 (상자를 발로 툭 차며) 야, 이것도 같이 가져가. 여기다 담아왔으니 여기에 담아가야지. 옥화 저 상잔 두고 가라. 저기에 또 이 애를 가둘 수는 없어. 그럴 순 없어. 만석 알겠어요 할머니. 그렇게 할게요. 대복 어이쿠. 깼는데? 여보, 깼어. 옥화 (바구니 안을 보며) 간다고 또 인사한다고 깬 거야, 기특하게? 그런 거야? 대복 우루루루루, 까꿍. 웃는다 웃어. 고놈 참. 옥화 한 번 더 해봐요. 대복 그럴까? 우루루루루, 까꿍! 옥화 (만석을 향해) 아가, 방에 파란색 가방 하나 있어. 그거 좀 갖고 나와. 대복 뭔데? 옥화 애한테 필요한 것 좀 쌌어요. 대복 딸랑이도 넣지 그랬어. 그거 좋아하던데. 옥화 넣었어요. 대복 잘했네. 운수 (빈정거리듯) 참, 재미나게 사십니다, 두 분. 알콩달콩, 보기 좋네요. 대복 아직도 안 나갔냐? 운수 나가야지요. 이 집에 제가 있을 곳이 없는데. 대복 밖엔 있고? 운수 글쎄요. 정말 이제부터라도 찾아볼까요?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는다.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 만석과 눈이 마주치지만 서로 외면한다) 돈도 생겼겠다. 옥화 밥 한 숟갈 뜨고 가. 너 좋아하는 꽃게찌개 끓여놨어. 잠시 침묵. 운수 됐어요. 약속 있어요. 옥화 그럼 냉장고에 넣어 놓을 테니까 낼 아침에 들어와서 먹어. 운수 그냥 드세요. 얼마 된다고 그걸 남겨요. 갔다 올게요. (나간다) 옥화 (밖에서 들리게 큰소리로) 냉장고에 넣어 놓는다. 알았지? 알았지? 대복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만석에게) 왜 그러고 섰어? 앉아. 만석 집 앞에 와 있대요. 대복 벌써? 만석 네. 옥화 (바구니를 들여다보며) 잘살아라. 사는 게 제 맘처럼 되는 것도 아니니까 부모 원망 말고 운명이려니, 팔자려니, 누구 탓할 것도 없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세월 가고 세월 가면 언제 이만큼 왔나 싶을 테니 하루하루 즐겁게 웃으면서 살아. 네 세상도 한세상, 내 세상도 한세상, 결국 한세상 사는 거니, 그러니까 너는 멀리멀리, (떨리는 목소리) 발길 닿는 데까지 멀리 가렴. 대복 (꽃병에서 꽃을 꺼내 바구니 옆에 감는다) 꽃바구니 타고. 옥화 그래, 꽃바구니 타고. 어디, 하루하루가 오늘만 같겠니? 대복 그래. 오늘만 같을라고. 전화벨이 울리지만 받지 않는 만석. 그런 만석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옥화. 천천히 바구니를 내어준다. 만석 갔다 올게요. 늦을지도 몰라요. 먼저 주무세요. 대복 그래. 얘기 잘하고 와. 만석 네. 저 가요, 할머니. 반응 없는 옥화. 대복 손짓으로 만석을 보낸다. 만석 밖으로 나간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에 다가가 밖으로 나가는 만석을 지켜보는 대복.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다. 그사이 옥화 역시 일어서 서성이다가 가운데 소파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대복 그 옆에 앉아 정면을 응시한다. 대복 갔네. 옥화 갔네요. 대복 그래. (사이) 어떡할까? 우리도 가야지? 옥화 가야죠. 대복 안 가면 안 되겠지? 옥화 안 되겠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씨잖아요. 대복 그래. 가야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씨니까. 옥화 네. 대복 그럼 갈까? 옥화 그래요, 가요. 대복 그래. 가자구. 옥화 가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두 사람.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 “헬조선 끝내겠다”…천정배, 19대 대선출마 선언

    “헬조선 끝내겠다”…천정배, 19대 대선출마 선언

    국민의당 천정배 전 공동대표가 19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천 전 대표는 26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송년 기자간담회를 열어 “수많은 국민이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세상을 바꾸자고 울부짖고 있다. 국민혁명을 완수해 차별없는 세상을 만드는 역사적 소명을 다하고자 대선에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천 전 대표는 “‘헬조선’을 끝내고 국민주권 중심의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라며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특권과 패권주의를 끝내야 한다. 혁명 대열의 맨 앞에서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새 길을 뚫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천 전 대표는 “저는 지난해 4월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패권주의에 맞섰다”며 “낙후되고 소외된 호남의 위상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어떤 분은 야권이 호남표가 없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친문(친문재인) 진영을 겨냥, “패권주의에 빠져 호남을 들러리 세운 세력에 호남은 과거 같은 압도적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호남의 열정을 이끌어내는 역할은 제가 해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풍처럼 몰아치는 해운대 파도

    태풍처럼 몰아치는 해운대 파도

    전국에 겨울비가 온 22일 강풍 특보가 내려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이날 강한 비바람 탓에 김해공항에서는 항공기 출발·도착이 큰 차질을 빚기도 했다. 부산 연합뉴스
  • 양희은 상록수, 안치환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촛불 든 시민들 “뭉클”

    양희은 상록수, 안치환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촛불 든 시민들 “뭉클”

    “소개도, 예고도 없이 올라와서 ‘나 양희은이야’ 하는 표정으로 멘트 1도 안 하고 노래로 다 말했다. 마지막에 ‘여러분 더 크게!’ 그리고 ‘깨치고 일어나 끝내 이기리라’ 떼창. 감동이었다.” “깜짝 등장하여 발언 없이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 등 세곡 부르고 내려가는데.. 가슴이 찡했다(hcpo****)”, “아..유튜브에 찾아보고 듣는데.. 눈물난다. 아.. 더럽고 문란하고 무능한 박근혜 무조건 처단해야한다..(joli****)”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는 제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촛불집회에는 약 150만명이 모였다. 첫 눈이 오고 추운 날씨였지만 시민들의 촛불은 보란 듯이 환하게 타올랐다. 사상 최대 인원이 모인 촛불 집회에 1970, 80년대 대표적인 ‘저항가수’로 이름을 알렸던 안치환과 양희은이 함께 했다. 청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브레인 역시 무대에서 에너지를 발산했다. 안치환은 ‘자유’라는 노래 속 가사를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라는 가사를 ‘자유여 민주여 통일대박 외치면서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로 개사해 불렀다. 이어 그는 “내 음악 인생에서 가장 귀중하고 영광스러운 무대에 서 있다”라면서 “전 세계를 다니며 봤던 그 어떤 바다보다도 아름답고 숭고한 촛불의 바다가 내 앞에 펼쳐져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이어 마지막 곡으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안치환은 “내 노래가 훼손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만큼은 같이 하고 싶다”며 가사 중 ‘사람’을 ‘하야’로 바꿔 불러달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의 시민들은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를 외치며 호응했다. 이어 라인업에 없던 양희은이 무대에 올랐다. 별다른 멘트 없이 노래로 시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침이슬’을 시작으로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 노래에 촛불 든 시민들이 함께 열창했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는 가사의 ‘상록수’에서 양희은은 “함께 부르자”고 요청했고 현장에 모인 이들은 “끝내 이기리라”를 함께 연호했다. 마지막으로 노브레인은 “노래밖에 해드릴 것이 없다”며 ‘아리랑 목동’, ‘비와 당신’, ‘젊은 그대’를 선곡했다. 특히 ‘아리랑 목동’에서는 ‘야야 야야 야야’를 ‘하야 하야 하야’로 개사했고 ‘젊은 그대’를 부를 때는 “이 아름다운 목소리가 청와대까지 들렸으면 좋겠다”는 멘트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양희은은 집회 이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어젯밤 광화문에서.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 그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 불렀다! 대구에서 올라가 시간 맞추기가 정말 애가 탔으나 보람이 있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양희은 ‘상록수’ 가사 저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비바람 맞고 눈보라쳐도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거칠은 들판에 솔잎되리라우리들 가진것 비록 적어도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우리들 가진것 비록 적어도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이외수 “김진태 정신 차려라, 요즘은 건전지 촛불”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이외수 “김진태 정신 차려라, 요즘은 건전지 촛불”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17일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꺼지게 된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가운데 소설가 이외수가 “100만 국민의 함성을 애써 무시하려는 막말”이라고 비난했다. 이외수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김진태 의원,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말했군요. 아직도 조선시대인 줄 아십니까. 정신 차리세요”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 파라핀 촛불 들고 시위하는 사람 없습니다. 모두들 건전지 촛불 씁니다. 푸헐”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저는 건전지 촛불이에요. 비바람에도 끄떡없죠. 꺼지지 않는 촛불의 힘을 보여드릴게요’라는 사진을 올렸다. 앞서 ‘진박(진짜 친박근혜계)’으로 꼽히는 김진태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결국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 “민심은 변한다”면서 “특검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면 촛불에 밀려서 원칙에 어긋나는 법사위 오욕의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영감의 원천 제주의 바다 예술 샘솟다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영감의 원천 제주의 바다 예술 샘솟다

    아이들과 해변가를 노닐던 이중섭 새로운 화풍 ‘제주화’ 남긴 변시지 개인 글씨체 완성한 서예가 현중화 제주 서귀포의 바다는 언제 어디서든 그림 같다. 좋은 날엔 말할 것도 없지만 물안개 낀 여름이나 찬바람 부는 겨울, 흐린 날에는 또 다른 그림을 그린다. 거센 비바람이 몰려드는 날조차도 제주의 바다는 경외할 만한 그림을 그린다. 그런 서귀포의 바다는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원천이다. 서귀포항을 끼고 있는 구시가지는 지금은 쇠퇴한 도시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한때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예술가들이 거쳐 가거나 생활 터전으로 삼았다. 그리고 여전히 젊은 예술가들도 이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남긴다. ‘작가의 산책길’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서귀포의 자연과 문화를 알기 위해 태어난 길이다. ‘작가의 산책길’은 동쪽 소정방폭포에서 서쪽 기당미술관, 남쪽의 서귀포항을 연결하는 서귀포 구시가지 둘레길로 약 5㎞에 이른다. 화가 이중섭은 아이들과 이 길의 해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고 폭풍의 화가 변시지는 제주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남겼다. 서예가인 현중화는 자신만의 글씨체를 완성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이들의 작품 세계와 발자취는 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소암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중섭은 예술의 고장 서귀포를 가장 대중적으로 알린 예술가다. 그가 서귀포에 머물렀던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년도 못 미치는 기간이었다. 아내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 삼아 온 이곳에서의 생활은 매우 궁핍했지만 가족 모두가 모여 가장 단란한 추억을 남긴 이 시기는 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 새, 게, 섬 등이 서귀포 생활을 모티브로 하며 이후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외롭게 생활을 이어 갔던 이중섭에게 ‘지상 유토피아의 공간’으로 남게 됐다. 이중섭미술관 아래 이중섭이 살았던 집이 있으며 그와 아이들이 자주 게를 잡고 놀았을 것이라고 알려진 자구리 해안까지도 걸어서 10여분이면 갈 수 있다. 섶섬과 문섬, 새섬이 한눈에 들어오며 반대편으로는 한라산까지 보이는 자구리 해안은 가장 아름다운 서귀포 해안의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작가의 산책길’의 한 축은 바로 이중섭미술관이 있는 거리와 자구리 해안을 잇고 있다. 현실로서의 제주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화가로 변시지(1926~2013)를 빼놓을 수 없다.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났지만 일본과 서울 등에서 생활해 온 그는 1975년부터 제주에 다시 정착하며 제주를 대표한 화가가 됐다. 황토색 바탕에 검은색 선으로 제주의 풍광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표현해 온 그는 특히 미친 듯이 불어 젖히는 제주의 바람을 잘 묘사해 ‘폭풍의 화가’라고도 불린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여운들이 그림의 바람처럼 일렁인다. 잠시 비바람을 피하러 들렀던 기당미술관에서 그의 작품들을 우연히 만났고 더 현실 같은 그의 그림 속에 빠져 한참을 미술관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인 화가 이왈종의 미술관은 정방폭포 앞에 있다. ‘제주생활의 중도’ 연작을 해 온 그는 이중섭과는 다른 제주의 또 다른 유토피아를 보여 준다. 화려하고 풍자적인 분위기로 일상과 꿈을 잘 조화시켜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사한 색감과 위트 넘치는 그림체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매력적이다. ‘작가의 산책길’은 이러한 이야기 위에 서예가 소암 현중화가 자택에서 서쪽의 삼매봉까지 자주 산책을 했던 것에서 모티브를 따 2010년 정비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공공미술 작품들도 합류했다. 2012년 서귀포시와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주도로 50여점의 공공미술작품이 작가의 산책길 위에 놓이게 된다.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해 제주와 서귀포, 자연과 문화 등을 재해석해 거리를 수놓았다.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한 김해곤 감독은 “제주의 숲, 집, 바다, 길을 작품으로 고급스럽게 표현하려고 했다. 결국은 제주의 자연과 문화예술가는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들은 서귀포시에서도 관광객들에게 소외받던 구시가지의 골목과 칠십리시공원, 자구리 해안 등을 주요 명소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다. ‘작가의 산책길’ 일부는 제주 올레길 6코스와도 겹친다. 서귀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금의 40~50대에겐 지난해 이중섭 거리에 문을 연 서귀포관광극장이 더욱 반갑다. 1963년 개관해 90년대까지도 영화가 상영됐던 곳으로 40~50대에겐 많은 추억을 안겨준 곳이다. 이 극장이 10여년 만에 노천으로 운영되던 옛 모습 그대로 개관하며 음악회, 시낭송, 전시회, 강연 등을 이어 가자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 영화, 건축 전문가들에게도 주목받고 있다. 건물이 방치됨으로써 약 50년의 세월을 예술처럼 고스란히 남겼다. 이중섭 거리에서는 매주 토요일 젊은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아트 플리마켓도 열린다. 제주가 좋아 제주를 찾은 젊은 예술가들이 만들고 그린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직접 판매한다. ‘작가의 산책길’을 관리하는 지역주민협의회 김준형 사무국장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더 담을 수 있을지 시와 함께 고민 중”이라고 했다. ‘작가의 산책길’은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지역번호 064) →가는 길 : 제주공항에서 600번 리무진 버스를 이용해 경남호텔 리무진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이중섭미술관(760-3567) 입장료 1000원. 기당미술관(733-1586) 400원, 매주 월요일 휴관. 왈종미술관(763-3600) 입장료 5000원. →함께 둘러볼 곳 :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는 제주를 대표하는 폭포다. 천지연은 높이 22m, 넓이 12m에 이르며 숲이 조성돼 있어 산책하기 좋다. 밤 10시까지 야간개장도 한다. 천지연폭포와 함께 새연교를 통해 새섬 산책로를 걸어도 좋다. 정방폭포는 높이 23m로 우리나라 유일하게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폭포다. →맛집 : 서귀포항 부근의 호림식당(732-8184)은 지역 주민들이 더 알아주는 식당이다. 매년 겨울 아귀 스페셜을 선보인다. 붕장어 샤부샤부, 제철 해산물, 생선을 이용한 물회, 조림, 탕 등도 맛있다. 이중섭 거리 위쪽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상설 시장으로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시장 안 금복식당(762-2243)에서는 할머니 밥상 같은 보리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1인분 가격이 3000원이다. 통닭, 오메기떡, 한라봉 주스 등이 특색 있는 먹거리로 꼽힌다.
  • “오늘밤은 유난히 추워” 크러쉬, 폭우 속 열린음악회 무대 화제

    “오늘밤은 유난히 추워” 크러쉬, 폭우 속 열린음악회 무대 화제

    KBS1TV ‘열린음악회’에 출연한 가수 크러쉬가 화제에 올랐다. 호소력 짙은 보컬 때문도, 화려한 퍼포먼스 때문도 아니었다. 6일 방송된 ‘열린음악회’는 지난달 초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드림파크CC에서 진행된 행사의 녹화 방송으로 꾸며졌다. 이날 행사는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초반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크러쉬가 무대에 올랐을 때는 폭우가 쏟아졌고, 크러쉬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비를 닦아내며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크러쉬가 부른 ‘가끔’의 ‘오늘밤은 유난히 추워‘, ‘오늘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라는 노랫말은 비바람을 맞으며 노래하는 크러쉬의 상황과 맞아떨어지며, 일명 ‘짤’이라고 불리는 방송화면 캡처 사진으로 제작됐다. 누리꾼들은 “이런 날씨에 행사를 계속 진행하다니 너무하다”, “방송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웃기면서도 안쓰럽다”, “가사 전달력만큼은 뛰어난 무대인 것 같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영상=열린음악회/네이버tv캐스트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삼시세끼 어촌편3’ 에릭 요리 실력에 이서진-윤균상-나영석PD까지 ‘행복’

    ‘삼시세끼 어촌편3’ 에릭 요리 실력에 이서진-윤균상-나영석PD까지 ‘행복’

    ‘삼시세끼-어촌편3’ 에릭이 마법 같은 요리 실력을 뽐내며 맏형 이서진과 막내 윤균상을 행복하게 만든다. 28일 방송되는 자급자족 어부라이프 tvN ‘삼시세끼-어촌편3’에서 에릭은 이서진을 위한 맞춤요리를 선보이며 요리천재의 면모를 제대로 뽐낼 예정이다. 만화를 보고 배웠다는 비범한 카레부터 불맛을 제대로 살린 잡채밥까지 다채로운 요리열전이 펼친다고. 특히 지난 방송에서 이서진과 윤균상을 한 밤중 갯벌로까지 나가게 한 봉골레파스타도 전격 공개될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방송에 앞서 공개된 사진에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비주얼의 파스타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서진, 윤균상이 직접 캔 조개로 근사한 파스타를 완성한 에릭의 요리 실력이 어땠을지 더욱 궁금해지는 상황. 사진에서는 나영석PD 역시 에릭이 만든 파스타에 흠뻑 빠져있는 모습도 보인다. 삼시세끼 제작진은 “에릭의 파스타를 맛 본 이서진과 윤균상이 ‘입 안 가득 퍼지는 바다향에 반해버렸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며 “파스타 뿐 카레, 잡채밥, 관자구이 등 에릭이 계속해서 풍성한 요리를 선보여 이서진이 ‘매일이 생일파티인 것 같다’고 즐거워하고 있다”고 귀뜸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에릭의 요리뿐 아니라 득량도 갯벌에 홀릭된 3형제의 모습이 재미를 더한다.이들 3형제는 밤하늘의 별처럼 갯벌 위를 수놓은 조개들을 캐기 위해 거친 비바람도 뚫고 갯벌로 향해 조개 파라다이스를 만끽한다고. 또 그 동안 비전만 제시하던 캡틴 이서진이 비바람 속 고군분투한 동생들을 위해 드디어 아궁이 앞에서 직접 요리를 하며 색다른 볼거리를 더한다. 에릭의 감탄을 이끌어낸 이서진의 요리가 과연 무엇일지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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