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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브니코프(전 평양주재 구소련대사)가 말하는 김정일 부자와 북정권

    김일성이 사망한지 40여일이 넘었으나 북한은 김정일체제 공식출범을 미룬채 핵관련 미­북대화만을 진전시켜나가고 있다.그들은 남북대화등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긍정적 변화조짐을 보이지 않고있다.김일성사후 김정일의 위상과 그가 그리고 있을 남북관계 청사진등 북한의 향후 진로와 내부동향등에 대한 궁금증만 커가고 있다.또 김정일의 자질과 성격등에 관해서도 여러 엇갈리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본지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은 최근 북한사정에 정통한 미하일 슈브니코프 전평양주재 구소련대사(70)를 만나 김부자의 행적,향후 북한정권의 장래에 관한 그의 견해등을 들었다.통산 13년간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한 북한통인 슈브니코프 전대사는 특히 소­북한관계가 원만한 82∼87년 평양주재대사로 근무,김일성부자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924년 러시아 툴라시에서 출생한 그는 소련군사외국어학교를 졸업했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국제부 한국(남북한)과장을 역임했으며 외교관으로선 주로 북한관련 업무를 담당했었다.슈브니코프 전대사는 인터뷰에서 김일성의 모스크바 비밀방문,김정일의 사생활과 주변인물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놓았다.그러나 특별한 개인적 유대 때문인듯 그의 김부자 평가는 비교적 후하다는 인상을 주었다.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사정에 밝고 특히 김부자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전직 구소련고급외교관의 북한평가와 분석은 향후 「김정일 평양」의 향방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귀기울여 볼만 한 것들이었다. ◎평양식사회주의 미래가 없다/김일성 추모기간 끝나면 권력승계 무난/핵탄제조 능력… 플루토늄 보유량 적어 ­북한주재 대사로 근무했던 80년대는 소련과 북한관계가 밀월과도 같은 순탄한 시기였던 것으로 아는데 평양근무는 얼마나 했는지. ▲60년부터 3년간 첫번째로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했다.그리고는 본국으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에서 일했고 69년부터 73년까지 다시 평양근무를 했다.모스크바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장으로 일하다 82년 12월 북한주재 대사로 발령받았다.87년 12월까지 대사로 근무했으니 평양대사관에서만 13년을 일한 셈이다. ○13년간 평양에서 근무 나의 북한대사 재임기간이 소련­북한 양국관계가 가장 우호적인 시기였다는 점에 동의한다.이 기간중에 김일성주석이 모스크바를 두번 방문했다.나는 그중 한번은 김주석을 직접 수행,1개월에 걸친 기차여행을 함께 했다.60년 이후 그는 모스크바를 방문한 일이 없다.주재국 대사인 나 개인으로서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김주석의 모스크바방문의 구체적 시기는 언제였는가. ▲첫번째는 체르넨코 서기장 재임시인 84년이었고 두번째는 고르바초프 서기장 때인 86년이었다.이중 84년 방문때 내가 모스크바까지 김주석과 동행했었다.1개월간 기차로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로 왔다가 귀국 때는 벨로루시,우크라이나,몰도바,루마니아를 돌아 평양으로 갔다.모스크바는 공식방문이었지만 나머지는 비공식방문이었다.86년 방문 때는 비행기편을 이용했는데 나는 동행치 않았다. ­김주석은 고소공포증으로 비행기여행을 극히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소공포증은 아니다” ▲그가 비행기여행을 피한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그것은 척추에 문제가 있으니 비행기여행은 피하라는 의사들의 권유 때문이었다.비행기 착륙시의 충격이 허리에 무리를 줄수 있다는 것이었다.그가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겠지만 그는 항상 허리를 똑바로 펴고 꽂꽂이 서 있었다.그것은 조금이라도 굽히는 자세가 되면 척추에 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김주석은 말년에는 심장질환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사망원인도 심근경색으로 발표되었다.평소 그의 심장병 병세는 어느 정도였는가. ▲나이가 들면서 심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80년대 중반에 심장발작을 한차례 겪었다.내가 대사로 있을 때였는데 소련의사를 보내달라는 부탁도 자주 있었다.대부분 김정일이 직접 찾아왔고 외교부장을 보낼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본국에 요청해 의사를 보내주었다.하지만 당시 러시아의사들의 최종진단은 『심장질환의 증세는 있으나 집무에는 지장이 없고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북서 모반 있을수 없다 ­김주석 사망과 관련,한때 자연사가 아니고 정치적 변고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1백% 불가능한 이야기다.자연사가 분명하다.김일성 주변을 보면 모반은 불가능하다.절대 불가능하다.김일성 주변의 인물은 김정일이 모두 통제하고 있다.그리고 김일성·정일 부자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부자지간 이상이었다.김정일은 정실 소생의 장자다.김일성은 그를 끔찍이 아꼈다.김일성이 김정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때가 많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내가 아는한 그렇지 않다.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니 김주석 사망후 김정일의 얼굴이 아주 못쓰게 됐던데 무엇보다 부친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물론 김주석 사망으로 받는 정치적 중압감도 큰 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추모기간 지나면 승계 ­김일성 사망 1개월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김정일이 주석과 당총서기직을 승계했다는 발표가 없다.다소 이상한 일 아닌가.후계구도에 진통이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데. ▲김정일은 70년대 중반 공식 후계자로 확정되면서부터 실제로 국가경영 실습을 해왔다.70년대 당중앙위원으로 들어간 뒤 이후 정치국원,그리고 4∼6인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임위원이 됐고 김주석 사망당시는 군최고사령관이었다.그리고 요로에 자신의 심복들을 배치해놓고 있다.부친과 같은 세대인 원로들로부터 한결같은 지지를 받고있다.그래서 그의 권력승계는 별 문제 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김일성 추모기간만 끝나면 주석직 승계와 함께 국가지도자로서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당총서기는 정치국에서 이미 선출해놓고 발표만 미루고 있을수도 있다.당대회소집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김정일은 이미 「경애하는 지도자」였고 군통수권자였다.부친 사망과 함께 자연스럽게 제1인자가 되도록 미리 치밀한 장치가 돼있었던 셈이다. ○김일성 음주 극히 자세 ­김정일이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도 없고 세습승계에 대해 일반주민은 물론 권력층 내부에도 반발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김정일은 과연 북한 최고지도자가 될만한 인물인가. ▲대사로 근무할 당시 김정일을 비교적 자주 만나 가깝게 지냈다.그는 수시로 나를 불러 식사도 하고 술도 함께 마셨다.당시 그는 술을 아주 조금 마셨다.김일성도 술은 극히 자제했다.이점에 대해 외부에서는 잘못 알고있는 것 같다. ○카레이스·영화 큰 관심 내가 겪은바로는 김정일은 말이 적은편이다.지나치게 자기 생활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점이 특징이다.북한 같은 사회에서 2명의 지도자가 존재할 수는 없다.그래서 그는 의식적으로 부친의 그늘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때때로 『이 사람은 진짜로 권력 정상에 오를 생각이 없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김정일은 부친과 사진을 함께 찍는 것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쓸 정도로 몸조심을 했다.소련대표단이 그렇게 북한에 자주 갔는데도 김부자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젊었을 때 김정일은 여러 스포츠를 즐겼다.특히 카 레이스를 좋아했고 영화·음악등에 관심이 많았다.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차츰 성격이 조용하고 신중한 쪽으로 바뀌었다.부친의 영향 때문으로 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사람들이 겪는 인격성장 과정과 같다고 할수 있다.김일성대학 철학부에 다닐때 성적은 좋은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외국에서 공부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 ○손혜림,손성필의 친척 알콜중독자라느니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느니 하는 말을 나로서는 이해할수 없다.그와 자주 낚시도 다녔는데 나라문제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있고 또 나름대로 정치에 대한 철학도 가지고 있는 교육받은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그의 사생활등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그의 경력은 물론 부친이 만들어 준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김일성이 5자녀중 그를 후계자로 택한 것은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겠는가.나름대로 그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았겠는가. ­김정일의 가족관계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데.몇차례 이혼했다는 얘기도 있고.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의 집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부인이 있고 자녀가 2명 있다는 사실만 안다.내가 평양에 대사로 있을 당시 그의부인 이름은 손혜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모스크바주재 대사 손성필과 친척인 것으로 안다.김정일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북한에서는 이것이 비밀사항으로 돼있다.그는 60년대초 부친을 따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이 있고 80년대 중반 북경에 간적이 있으나 그외 외국이라고는 나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한때 동독 방문설이 있었으나 루머임이 확인됐다. ­아웅산 폭파사건,대한항공기 폭파사건,그리고 여러차례의 한국인 납치사건의 배후에 김정일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다.대사가 그의 성격등에 대해 잘못 알고있는 것 아닌가. ○소·동구 붕괴에 위기감 ▲솔직히 말해 그 사건들의 배후에 대해 나는 들은 것이 없다.한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저지른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당시 소련정보기관들은 추가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었다.북한 정보기관의 소행이었더라도 그들의 속성상 비밀사항이 외부에 새나오지는 않는다. ­앞으로 김정일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는지.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을 포함,모든 정책방향이 김일성생존시와 동일할 것으로 보면 된다.다소의 변화가 있더라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고 본질적으로 동일할 것이다.지금 북한에서 정책을 바꾼다면 체제변화가 불가피하다.김정일은 소련,동구의 예를 지켜보았다.체제변화를 쉽게 용납지 않을 것이다. ­경제난 때문에 결국 정책변화가 불가피한 시기가 올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김영주도 정일을 아껴 ▲북한은 폐쇄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라는 것은 사실이다.북한경제는 소련에 의존한 체제였는데 지금은 그 관계가 단절됐다.지금 러시아지도자들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은 외부세계가 그들을 고립시킬수록 더 주체체제를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그들은 살아간다.북한은 지금도 철저한 분배사회다.그래서 사회안정면에서 본다면 어쩌면 러시아보다 낫다고도 할수 있다. 예를들어 현재 러시아에서는 소비재가 상점에 넘쳐나지만 주민 90%가 이를 살 능력이 없어 불만이다.북한은 그렇지 않다.그들은 아예 가난하지만 주민 모두가 이를 참고 사는데 익숙해있다. 다시 말해 북한을 고립시키는 정책은 좋은 결과를 낳기 힘들다는 것이다.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물론 김정일은 한국과의 협력이 북한사회의 내부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응하겠지만 그들을 고립시키는 것보다는 이 개방을 유도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북,내부붕괴 우려 개방 신중/“주석,정일 매우 아껴… 부자관계 이상”/후처소생 평일은 대권 넘볼수 없다/김정일 나이들며 술적게 마시고 신중/김일성 항공여행 기피,척추통증 때문/80년대 중반에도 심장발작… 자연사 확실 ­삼촌인 김영주,이복동생 김평일은 개인적 야심이 없겠는가. ▲그들은 김정일과 같은 라인이라고 생각한다.나는 김영주와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그는 모스크바대학을 나왔는데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것으로 느껴졌다.김평일은 후처소생이어서 어차피 북한사회에서 김정일과는 격이 다르다.김일성은 생전에 김정일내외,그리고 거기서 난손자들을 특히 귀여워하며 아꼈다. ○불만있어도 표현 못해 ­북한에 반정부,반체제세력이 있는가.김정일에 대한 군부의 충성은. ▲심각한 반대세력은 없다.인텔리겐차,교육받은 계층가운데 다소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짐작할수 있는것 아닌가.그러나 어떤 사람이고 그런 생각을 드러냈다가는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조심해야 한다.따라서 사회전반에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군부의 김정일 지지는 확고하다.오진우는 김정일의 젊은 시절 스승이었고 그를 아주 좋아한다.오진우가 언젠가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김정일이 직접 내게 찾아와 모스크바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해준일이 있다.후일 오진우와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는 김정일과 내게 진심으로 감사했다.오극렬도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다. ­반정부 시위,주민들의 봉기가 일부 있었다는 얘기도 간혹 들리는데. ▲북한은 그런 일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김정일의 여성편력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사의 견해는. ▲물론 내가 그의 사생활을 다 안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런 유의 얘기는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사회주의국가 간부들은 끝없이 밀려드는 일거리들로 숨돌릴 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김정일이 오래전부터 실질적 국가경영을 맡아왔다고 볼때 방탕한 생활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보는가. ▲영변의 핵단지는 연구·훈련용으로 규모도 매우 작다.물론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인력과 기술은 갖고 있고 운반수단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핵폭탄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북한은 갖고있지 못한 것으로 알고있다.그들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화해의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북한은 이론적으로는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지만 실제로 이를 현실화할 능력은 없다고 본다. ○핵탄 현실화 어려울것 ­대사의 평양근무 기간은 소련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던 시기였는데 북한당국의 항의나 섭섭함의 표시는 없었는가. ▲공식적인 항의는 없었다.당시 소련지도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원했다.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북한정부와 차이가 있었다.우리는 국제사회가 모두 문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북한은 주체사상을 고수했다.소련지도자들은 주체에 대해 반대했고 이것이 양국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북한당국이 주체사상을 굳이 고집하는 데는 우리로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가까이서 본 김일성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66년에 조·소 정상회담 ▲ 그가 취한 정책의 옳고 그름은 일단 논외로 하자.우선 분단,남북대치등의 어려운 상황에서 50년 가까이 집권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있었던 브레즈네프와 김일성간 양자회담을 4시간 가량 지켜본 적이 있는데 그는 참모의 도움없이 회담을 잘 이끌어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런 회담이 있었다는 것은 금시 초문인데. ▲외교비밀인데 실수로 발설한 것 같다.66년 그런 회담이 열렸었다.당시 소원했던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해 두 지도자가 비밀리에 만났고 그후 양국관계는 급속히 좋아졌다.양국관계사에 매우 중요한 회담이었다.이 자리에서 공식 협정체결 같은 것은 없었으나 주로 경제분야에서 많은 원조약속이 이루어 졌고 군사원조를 포함한 군사협력,기술지원 약속도 이뤄졌었다. ­공산주의,특히 북한 공산주의체제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러시아에서는 70년이나 되는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나는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지금도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그러나 북한이 하고있는 사회주의는 미래가 없다고 본다.전혀 없다.남한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체제경쟁에서 북한이 졌다.그러나 그들이 굳이 그렇게 살겠다면 그렇게 놓아두고 그들이 스스로 변화를 택할 때까지 도와줄수 밖에 없지 않은가.
  • 김일성 사망발표 당일 대표단 파병/중,「비핵화」등 6개정책 제시

    【홍콩 연합】 중국은 김일성 사후 북한노동당의 긴급초청과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지시에 따라 사망발표 당일 즉각 3명의 고위대표단을 북한에 비밀리에 파견해 앞으로의 북·중관계에 대해 『6대정책』을 제시했다고 홍콩의 최대경제지 신보가 22일 북경소식통을 인용,크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정관근,정치국 후보위원 온가보,등소평판공실 주임 왕서림 등 최근 급부상중인 차세대지도자 3명이 9일부터 11일까지 평양을 비밀방문해 북한의 경제개혁을 촉구하는 한편 중조우호합작조약 수정의도를 밝히고 비핵화를 요구한 대북정책들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정관근은 중국은 ▲첫째 북한이 김일성의 유지를 계승하고 경제발전과 국가건설에 나서는 것을 지지하고 ▲둘째 한반도가 비핵지구로 남고 장기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셋째 어떤 국가나 일방이 각종 이유로 군사도발을 일으키고 이지역의 안정을 파괴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북한측에 밝혔다. 정관근은 이어 중국은 ▲북한의 경제개혁 추진을 지지하고 최근 북한이 요구한 원조증대 요구에 부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며 ▲북한이 김일성의 유지를 계속 받든다면 양국의 당대당 및 인민들간의 우의는 부단히 공고해질 것이고 ▲중국과 북한이 체결한 중조우호합작조약은 때가 되면 중국이 수정의견을 제시할 계획임을 차례로 밝혔다고 신보는 말했다. 정관근이 북한에 제시한 6대 정책중 첫째 경제발전 및 넷째 경제개혁 촉구는 대표단이 출발전 등이 지시한 『등소평의 의사』라고 신보는 말했다.
  • 「주체사상의 지주」는 무너지고…/운동권 새진로 모색할까

    ◎북체제 변화따라 방향 수정할듯/한총련선 “당분간 현노선 고수할것” 김일성사망이후 한총련등 운동권 학생들의 앞으로의 행동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망소식이 발표된 이후 운동권 학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학생들은 『사태변화를 지켜볼뿐 지금 상태에서는 말할 입장이 못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몇몇 대학에 대자보가 등장했으나 김의 사망사실만 전하고 있을 뿐 특별한 논평등은 싣지 않고 있다. 한총련 관계자는 11일 『김주석의 사망소식에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남북상황등을 정확하게 인식,앞으로의 통일사업을 어떻게 전개하느냐를 논의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한총련 간부들은 지난 9일 사망소식이 보도된뒤 긴급 중앙상임위원회를 열어 추모방법과 김주석사후의 통일운동방향등을 논의했으나 구체적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이에 따라 10일쯤 공식 기자회견을 갖겠다던 계획도 취소했다. 김준일한총련정책위원(26)은 『현재로서는 북의 체제변화에 따라 한총련의 통일노선이 갑자기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어떠한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민족통일3대원칙이 지켜진다면 대화상대로 인정할 것이라는 원칙론을 펴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 사망을 계기로 학생운동의 노선이 크게 수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민족해방(NL)계열이 주도하고 있는 학생운동권이 김일성이라는 사상적 지주를 잃음으로써 자연히 방향전환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구나 북한내부체제가 급변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따라 국제정세및 통일환경 역시 달라질 것으로 보여 운동권의 자세변화도 필연적이라는 해석이다. 지금까지 학생들은 그들이 말하는 통일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북한의 전권을 쥐었던 김일성과의 직접대화에 전적으로 의지해 왔다. 수차례에 걸쳐 학생대표를 평양에 파견한 것이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베를린에 있는 범청학련 사무국장 최정남씨(25)를 보내기로 했던 것도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김정일 후계체제가 확립되면 학생들은 통일운동에 있어 그전의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법적 제약등 여러가지 현실적 한계로 인해 비밀방북을 통한 북한 최고통치자와의 담판등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운동권으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운동권은 김정일 후계체제를 기정사실화하고 그에 따른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정책위원은 『김정일은 수십년전부터 후계기반을 닦아왔기 때문에 권력승계에는 아무런 문제점이 없을 것』이라면서 『그가 김주석 통일노선을 계승한다면 언제라도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학생운동권의 통일에 관한 구체적 노선변화는 북한내부변화와 맞물려 이뤄질 전망이다.
  • 베트남사절단 극비 방북/이타르통신 보도/무기구매·군사협력 논의

    【모스크바 교도 연합】 베트남정부및 군사사절단이 경무기 수입과 기타 군사협력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초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했다고 이타르 타스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이타르 타스통신은 평양발 기사에서 베트남대표단이 또 베트남국방장관 도안 큐 중장이 오는 16일 북한을 방문하도록 주선한다는데 북한측과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타르 타스통신은 평양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베트남국방장관의 비밀방문일자가 당초 5월27일로 정해졌었으나 연기됐다고 말했다. 한편 베트남의 보 반 키에트총리는 베트남과 러시아간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달 중순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 전전대통령­김일성 정상회담 추진/장세동씨·허담교환방문/85년

    지난 85년 가을 전두환전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남북한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장세동전안기부장과 허답전노동당비서(91년 사망)를 특사로 극비리에 각각 평양과 서울에 파견했다고 중앙일보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허비서가 85년 9월4일부터 6일까지,장부장은 10월16일부터 18일까지 각각 신변보장 각서를 교환하고 판문점을 거쳐 평양과 서울에 도착,전전대통령과 김주석을 면담했다고 밝혔다. 장·허씨는 전전대통령과 김주석의 친서를 휴대한 교환비밀방문에서 1차 정상회담(남북한 최고위급회담)을 조기에 평양에서,2차회담은 서울에서 갖기로 하는등 구체적인 협의를 벌였으나 북측은 86년 이후 직선제 개헌문제 등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이 불안해지자 정상회담 자체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특사가 비밀리에 왕래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이 표출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미인권과 방사능 인체실험/이경형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최근 헤이즐 올리어리 미에너지장관은 지난 40년대와 50년대 미정부기관이 정신박약아동등 8백명의 미국인을 상대로 비밀방사능실험을 했었다고 밝혀 세계를 놀라게했다. 게다가 에드워드 마키 미하원의원이 3일 『그것은 약과』라며 70년대까지도 비밀방사능실험이 계속 되어왔으며 실험용 동물인 기니피그와 함께 노인·죄수·불치병환자들이 실험대상이 돼왔다고 폭로했다.그는 에너지부의 문서들을 인용,7백여명의 사람들이 31건의 실험에 이용되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46∼47년에는 신장기능이 좋은 환자 6명에게 우랴늄 소금을 주사,신장에 상해를 일으키는지를 실험했고 63년부터 71년까지는 위싱턴주와 오리건주의 죄수 1백31명에게 X선을 조사,방사능이 인간의 생산능력과 성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했다고 밝혔다. 이에 클린턴미대통령은 3일 백악관의 관계관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신속히 특별대책반을 구성하여 에너지부·국방부·항공우주국·중앙정보국(CIA)·재향군인부등 할것없이 과거 방사능실험과 관련있는 모든 부서나 기관의 관계서류를 수집,공개 검증하도록 지시했다.이어 백악관당국은 인체방사능실험의 진상을 조속히 파악하고 부당한 실험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보상을 해주겠다고 밝혔다. 인간의 존엄성,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미국에서 아무리 「냉전시대의 산물」이라고하나 인체실험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미국민들의 컨센서스다. 소련이 과거 핵폭탄폭발시 유출되는 방사능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제 군인들을 상대로 실험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 공산독재국가의 무지막지한 비인간적 처사로 세계적 지탄을 받았었다. 방사능물질이나 세균등을 인체에 직접실험하는 일은 2차대전때의 일제나 독일 나치,그리고 소련같은 나라의 소행쯤으로 여겨져 왔는데 과거의 일이긴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장으로 자처해온 미국의 정부기관이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대만­북한 양국/대표부 설치 추진

    【홍콩 연합】 대만은 지난해 한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한 후 북한과 대표부 교환개설을 본격 추진중이며 양측 관리들이 이에따라 최근 상호 비밀방문까지 했다고 대만의 최대 일간지 중국시보와 유력 경제지 공상시보가 5일 크게 보도했다. 6일 홍콩에 배포된 이들 신문은 집권 국민당의 요복본 당단비서장(원내총무)의 말을 인용,김창호를 단장으로 하는 북한 정무원 관리 3명이 대표부 개설을 논의하기위해 대북을 비밀리에 방문한 후 6일 출국한다고 전했다.
  • “북한은 「은혜」 납치 진상 밝혀라”/일 언론,평양측에 일제 포문

    ◎일인 납치는 명백한 주권침해 행위/납득할 해명없을땐 양국관계 악화 일본정부가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에게 일본인화 교육을 시켰던 「이은혜」가 일본에서 납치돼 간 일본여성인 것과 관련,북한측에 납치경위 해명요구와 외교루트를 통한 문제해결에 나서기로 한 가운데 일본 언론들은 자국민을 납치해간 북한의 만행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일본정부 소식통은 17일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일본에서 끌려간 사람의 가족이 「이은혜」라고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측이 이를 부인한다면 일·북한관계 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신문들은 17일에도 사설·특집기사 등을 통해 『북한은 이은혜 사건 해명에 성의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산케이(산경) 신문은 사설에서 『북한이 납치한 것이라면 이것은 일본에 대한 명백한 주권침해로서 외교상 방치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설은 『북한은 1987년 11월의 폭파사건 그 자체를 「한국측의 날조」라고 부정하고 김현희가 북한공작원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의 상세한 자백 등에 비춰볼 때 북한의 대남 파괴공작 조직에 의한 범행이라는 것은 이제는 국제상식이 되어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북한은 주체사상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납치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살인·모략 등 어떠한 비인간적 수단도 무방하다는 비밀방침을 취해 왔다』고 말하고 『이러한 수단을 한국에 대해 행사하는 것은 물론 허용될 수 없으나 그 목적을 위해 외국인까지 납치해 쓰고 있다면 언어도단』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혹시 북한이 정말로 국제사회에 끼어들기를 희망한다면 이 폭파사건에 대해서도 이제는 국제상식에 어긋나는 시치미를 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은혜 문제는 북한에 의한 국제적 동참의 희망이 진심인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북한측이 국제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성실한 방법으로 해명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렇지 못하면 의혹은 걷힐 수 없고 테러국가라는 레테르도 뗄 수 없어 최종적으로는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각오해야만 한다고경고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도 『타국의 국민을 무리하게 납치하는 등의 무법은 국제사회에 결코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는 주권국가에 대한 중대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극히 반인도적인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경찰당국은 실종당시의 상황을 철저히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이니치(매일)신문도 『일본정부는 이 여인의 상황파악은 물론 북한에 들어가게 된 사실관계에 대해 진상을 밝힐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북한측에서도 납득 가능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 김일성,“대미관계 현상유지”/「신정책」확정/남북교류ㆍ대일수교 추진

    ◎“노대통령 만나지 않을 수 없다” 간부회의서 밝혀 【도쿄 연합】 북한 주석 김일성은 지난 9월 중순 중국을 비밀방문,중국 지도자들과 회담하고 돌아와 17일 휴양지인 묘향산에서 노동당 간부회의를 열고 남북한의 긴장완화를 비롯,대일 국교정상화 회담방침 등 이른바 신정책을 최종 결정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도쿄의 북한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26일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묘향산 간부회에서 김은 ▲남북관계는 긴장완화와 교류확대를 추진하고 ▲대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개최하며 ▲대미관계는 당분간 종전의 원칙을 견지,고자세로 임한다는 것 등 신정책을 수립했다. 특히 남북관계에 대해 김은 간부회의에서 『아무튼 노태우 대통령과 만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 지난 18일 평양에서 강영훈 총리에게 『총리회담이 진전돼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이날 간부회의에서 결정된 신정책을 바탕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소식통은 풀이했다. 이에 앞서 김은 중국의 요청으로 지난 9월 중순 심양을방문,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을 비롯,강택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 등과 회담하고 중ㆍ북한 관계와 한소ㆍ한중 관계 등 한반도 주변의 급변하는 정세에 대해 협의했다. 김은 이 자리에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9월초 북한을 방문해 한국과의 국교정상화 방침을 통고했다는 사실을 중국측에 소개하자 등소평도 한국과 무역대표부 설치에 대해 양해를 촉구하면서 『남과의 관계정상화는 멀지 않다』며 대한 관계정상화 방침을 강력 시사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 북경­평양 현안 “양해 구하기”/중국 강택민,북한행의 언저리

    ◎한ㆍ중관계 개선 북측의 반발 무마 중국/「김정일 승계문제」 긍정 반응 기대 북한 중국의 강택민당총서기가 14일 북한방문 길에 오른다. 강총서기의 이번 방북은 지난해 11월 김일성이 중국을 비밀방문했을 때 양국간 합의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강으로선 지난해 6월 천안문사건 이후 조자양 후임으로 당총서기에 임명된 뒤 첫번째의 해외방문이 된다. 강의 이번 평양행이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방문시점이 지니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단순한 답방이라면 두나라가 시기적으로 편할 때를 택했을 터이지만 현재로선 양측 모두가 복잡하고 중대한 대내외사정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통된 상황은 중국ㆍ북한이 똑같이 소련ㆍ동구의 민주화물결 속에서 철저하게 고립돼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또 중국은 6중전회가 12일 끝나기는 했지만 국가의 주요정책 사항을 결정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20일 개막)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북한은 4월15일 김일성생일에 이어 22일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치르고 그 직후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의 강총서기 평양행은 다목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인 것 같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강이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의 민주개혁이 진행되는 가운데 중국에서 6중전회를 통해 결의한 대중노선강화,당체질개선 등의 대응조치들을 김일성에게 자세히 설명해줄 것이란 점이다. 이와 함께 일당독재를 고수하는 중국ㆍ북한이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공동으로 국제정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이번 방문시기가 김일성측 요청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김이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세습하는 것과 관련,오랜 우방국인 중국의 사전 양해를 얻어내고 세습에 따른 국제사회에서의 비난도 앞장서서 막아주길 기대하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강의 방북이유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개선 움직임에 대해 김일성을 설득,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는 최근 한국의노태우대통령이 대중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표명한 사실등을 들어 한ㆍ중 두나라의 관계정상화 시기가 멀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또 이 신문은 중국이 경제발전을 위해 종전에는 미국등 서방 선진국에만 크게 의존했으나 국제정세 변혁으로 서방국가들의 자본과 기술이 동구 등지로 쏠리기 때문에 개발경험이 풍부한 신흥공업국인 한국과 유대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포스트지는 따라서 강총서기는 평양방문 때 중국과 한국의 상호무역사무소설치등 양국관계 개선의 불가피성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신문은 또 13일자에서 지난 12일 북경공항에 머문 최호중 한국외무장관 옆에 실질적인 중국최고실권자인 등소평의 아들 등박방이 동석한 점을 지적하고 최장관의 북경기착이 양국관계 개선과 무관치 않음을 시사했다. 다른 홍콩지들도 지난해 11월 김일성이 북경을 방문했을 때 이미 등소평이 한ㆍ중 유대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점을 들고 강의 평양행도 같은 맥락에서 분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대만계인 성도일보는 13일 「강택민 북한방문의 내ㆍ외인」이란 제목의 분석기사를 통해 김일성은 소ㆍ동구 민주개혁의 충격에 불안하고 초조한 심경을 위로받기 위해 강의 방문을 요청한 것 같다고 밝히고 있다. 이 신문은 어떠한 예언가도 지난해 크리스마스 얼마 전까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그렇게 쉽사리 국민편에 선 군대에 의해 처형당할 것을 예측치 못했다며 강압에 의한 사회안정을 이루고 있는 듯한 북한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김일성은 화약통 위에 앉아 있는 형국이며 내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전쟁도발을 할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성도일보는 이 기사에서 남북한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제4땅굴이 이러한 김의 야욕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이 자국경제발전을 위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절실히 원하고 있는 만큼 김일성의 무력도발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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