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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자위권 곧 발동”/샤미르총리/팔레스타인인 3일째 시위

    【예루살렘 로이터 AFP 연합】 팔레스타인인 노동자 집단학살 사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사망자 20여명,부상자 최소한 8백여명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22일 연 3일째 시위를 계속했으며 이츠하크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는 유태인들이 자위권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경찰은 이날 동예루살렘에서 미국측에 이스라엘의 정책과 학살을 호소하기 위해 미영사관쪽으로 평화행진을 벌이던 2백여명의 팔레스타인인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아 해산시켰다. 검은색기를 든 시위대들은 한 이스라엘인에 의해 지난 20일 자행된 집단학살사건에 항의하는 평화행진을 벌였으나 이스라엘 경찰은 시위를 무차별 진압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여성들을 대기중인 경찰차로 끌고갔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이스라엘 점령 요르단강서안과 가자지구의 한 군대변인은 1백만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통행금지조치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으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날 경찰과의 충돌에서 또다시 1명이 사망하고 최소한 25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아랍소식통들은 이날 가자지구에서 정오기도후 열린 시위에서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아메드 알 무사바흐(18)라는 청년이 피살됐으며 전날밤에도 가자지구에서 유태인들에 의해 총격을 당한 한 팔레스타인인이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양측의 충돌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모두 21명으로 늘어났다.
  • 전직대통령 「회고록」 나온다/최규하ㆍ전두환 전 대통령,출판 계획

    ◎「12ㆍ12」ㆍ「6ㆍ29」 등 주요사건 규명 기대/올해중 집필마무리… 95년쯤 출간할듯/최/하산이후 본격작업… 2∼3년뒤 탈고예상/전 국내에서도 오래지 않아 전직대통령들의 회고록이 출판될 것으로 보인다. 10대 대통령을 지낸 최규하씨가 회고록의 집필을 마무리한 상태에 있다. 백담사에 은둔중인 전두환 전대통령도 회고록 집필을 위한 자료정리를 끝내고 구성작업에 들어갔다. 두 전직대통령의 측근들은 『최 전대통령의 경우 워낙 잘 챙기는 성품이어서 전혀 외부의 도움없이 집필을 하고 있고 전 전대통령 역시 과거의 일들을 대부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알맹이 있는 회고록이 될 것으로 안다』고 전하고 있다. 회고록 집필은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작업에 비유된다. 특히 국정의 핵에 있었던 전직대통령의 회고록은 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 주요한 사료로 취급되고 있다. 두 전직대통령이 재임했던 기간은 한국현대사의 격랑기이고 그같은 성격 때문에라도 역사적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규명된 부분보다 오히려 많다. 우리 헌정사에는 모두 5명의 전직대통령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회고록은 아직 나와있지 않다. 고 이승만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나 상당기간 미국 하와이에서 체류했으나 기억력 감퇴와 건강사정등으로 회고록을 남기지 못했었다. 3∼4 공화국의 주역이었던 박정희 전대통령 역시 재임중 비명에 갔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불가능했다. 제2공화국 당시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 전대통령은 모일간지에 재임중에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구술을 다른 사람이 문장화했고 권좌에서 물러난 지 20년이 넘은 뒤에야 이루어져 본격적인 회고록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최규하 전대통령은 80년대 중반부터 회고록을 집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관 생활을 오래한 경험때문에 직접 작성한 메모를 비교적 풍부하게 갖고 있는 편이다. 최 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치밀한 성격때문에 한가지 사건을 다루는 데 어떤 것은 1년이 걸린 것도 있다』고 말했다. 전 전대통령은 얼마전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황강에서 북악까지」를읽고 『너무 치켜세운 부분이 많다』고 측근에게 밝힌 바 있다. 작가 천금성씨가 80년 당시 「개혁주도세력」의 자료협조를 얻어 집필한 「황강에서…」는 전 전대통령의 출생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집권세력에 의해 「홍보물」로 이용돼 널리 보급됐으나 정작 전 전대통령 자신은 백담사에 은둔한 이후에야 읽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전 전대통령은 『내가 쓸 회고록에는 절대 나를 미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육군사관학교 입교때 정식 합격생이 아닌 합격자 후보로 붙었다가 입교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모든 것을 있었던 대로 기록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전 전대통령의 회고록 본격집필은 하산과 함께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7년의 재임기간중에 대통령으로서 남긴 메모와 공보비서실에서 작성하는 「통치사료」를 모두 연희동사저에 옮겨 놓은 바 있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그의 약속대로 「사심없이」 회고록이 집필된다면 5공기간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여겨지고 있다. 전 전대통령은 풍부한 자료외에 수치에 매우 밝은 것으로 알려져 회고록에 거는 기대를 크게 하고 있다. 한 측근은 그의 기억력에 대해 『사단장시절에 30만원의 관공비 모두를 참모와 운전병에 이르기까지 20명이 넘는 부하들에게 나누어준 것으로 말하는 데 언젠가 개개인에게 준 액수를 말씀하시길래 합해 보니까 정확하게 30만원이었다』는 예를 들고 있다. 두 전직대통령의 회고록이 출판될 경우 국회의 5공 청문회와 광주청문회를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았던 80년대의 주요사건들의 실체와 배경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 전대통령이 정승화당시 계엄사령관의 연행을 뒤늦게나마 추인하게 된 배경,5ㆍ17 계엄확대조치의 경위,광주 5ㆍ18 발발배경과 발포문제,최 전대통령의 하야문제 등은 두사람의 회고록에서 공동으로 다루어질 사안들이다. 이밖에도 전 전대통령의 회고록에서는 6ㆍ29선언의 주체,최초의 평화적 정권이양과정과 갈등 일해재단설립과 정치자금조성의 전말이 다시금 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전 전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회 5공및 광주합동청문회장에서 『이 자리에서 밝히지 못하는 사실들을 회고록에서 밝히겠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전직대통령의 회고록 출판경험이 없다시피한 나라에서는 회고록의 출판자체가 커다란 사건이 될 수 있다. 최 전대통령은 측근들에게 『집필은 올해안에 마무리 하더라도 출판은 95년쯤에 가능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최 전대통령이 95년을 꼽고 있는 것은 국가기밀이 주내용이 되는 전직대통령의 회고록인 만큼 15년쯤은 지나야 한다는 계산에서다. 미국등에서는 통상 국가외교비밀등은 20년을 시한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전대통령이 계산한 15년은 우연찮게도 형법에 규정된 공소시효만기와 일치한다. 이 기한이 지나면 회고록에서 어떤 새로운 사실을 공개하더라도 소추를 면할 수 있다. 전 전대통령의 경우 올 여름부터 본격 집필에 들어갈 경우 92∼93년쯤이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 출판시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전망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 공개될 경우 언제나 손해를 보게 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만큼 여러가지 출판에 대한 견제를 받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전 전대통령의 회고록은 90년대 후반기에나 출판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양조장에 가스총 강도/대낮 3인조,금고탈취

    【청주】 9일 하오4시50분쯤 충북 청원군 북이면 신대리1구 13의 4 북이양조장 사무실에 가스총을 든 3인조 강도가 침입,양조장 주인 박재기씨(42)와 공장장 박재광씨(39)의 부인 조영숙씨(35) 등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뒤 현금50여만원이든 소형금고를 뺏아 달아났다. 박씨는 혼자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3명이 사무실로 들어와 갑자기 가스총을 들이대고 돈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며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고 말했다. 범인들은 이어 양조장 숙사에 있다가 박씨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조씨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넘어뜨린뒤 사무실 캐비닛을 뒤져 소형금고를 빼앗아 미리 대기시켜 놓은 경남1모 1548호 소나타승용차를 타고 달아났다. 경찰의 차적조회 결과,범인들이 범행에 사용한 승용차는 최근 경남 진주에서 도난당한 차로 밝혀졌다.
  • 홍콩∼북경 횡단버스/새달부터 처음 운행/편도 23일 소요

    【홍콩 연합】 홍콩∼북경을 연결하는 최초의 중국대륙횡단 버스가 오는 5월1일 홍콩을 출발한다. 홍콩의 민간운수회사 시티버스가 추진중인 중국대륙횡단 버스는 편도에 23일이 소요되는 장거리 버스여행이나 이미 탑승 희망자가 쇄도하여 즐거운 비명이다.
  • 요시다ㆍ구보타ㆍ후지오…/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사명대사에게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여쭈되 『조선에 보물이 있습니까』하니 스님이 『보물은 일본에 있을 뿐 조선에는 없다』고 대답했다. 다시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고 묻자 『지금 조선에서는 당신의 목을 베기만 하면 천금의 상을 받게 되므로 당신의 머리가 곧 보물인 것이다』라는 호통이 나왔다. 가토는 간담이 서늘했다. 조선 선조 27년(1594년)4월에 사명스님이 울산 서생포에서 왜장가토를 만났을 때 얘기다. 허균이 지은 자통홍제존자사명송운대사 석장비명으로 전해 온다. 이승만은 생래적으로 반일주의자였다. 1952년말 한일회담이 교착상태에 들자 도쿄의 미군당국은 중재를 해줄양으로 이승만을 도쿄에 초대했다. 당시 일본총리는 노회하기로 소문난 요시다 시게루(길전무)였다. 먼저 미국대사 머피가 마련한 오찬에 요시다가 불참하는 결례를 저질렀다. 이어 다음날 미군사령관 클라크가 초대한 만찬에서 두 노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만난다. 요시다가 묻고 노대통령은 대답했다. 『듣건대 산자수명한 한국엔 아직도 호랑이가 많다던데요』,『한국엔 이제 호랑이가 없소』『그럴리가…. 예로부터 백두산 호랑이가 유명하지 않습니까』『당신들 일본사람이 마구 잡아 가죽까지 벗겨간 터에 이제 호랑이는 씨가 말랐소』 한일간에 가로놓인 넓은 강과 깊게 드리운 그늘의 연원이 역사적으로 대개 이러하다. 요시다가 이어 한일간 지난날에 언급,『우리의 군국주의자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고 하자 드디어 이승만의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귀하는 군국주의자들에 책임을 돌리지만 그런말은 아직도 한국을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망과 그 시도를 의심하는 한국인들에게 확신을 줄지 모른다』고 쏘아붙인 것이다. 요시다는 대답대신 묘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한일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차 있다. 증오와 불신감 또한 뿌리깊다. 양쪽의 여론조사는 언제나 서로를 「가장 싫어하는 국가군」속의 첫째로 꼽고 있다. 최근에도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첫 인상은 「간사하다」로 나타났고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대표적인 느낌은 「감정적」이라고 지적됐다. 40년의 강점과 식민수탈을 단 한마디 「불행했던 과거」라는 표현으로 호도하고 「유감」을 표할지언정 결코 시인 사과는 하지 않는 그들이다. 그런 일본은 요즘 안팎으로 눈부신 변신을 거듭하는 소련을 배울 필요가 있다. 소련은 얼마전 지난 1940년의 카틴숲 학살사건이 당시 그들 내무인민위원국(NKVD)의 주도아래 저질러진 범죄라고 시인하고 폴란드 정부에 사과하는 곰의 재주를 부렸다. 43년 소련을 침공한 나치독일이 스몰렌스크 동쪽 카틴 숲속에서 4천3백구의 유해를 찾아냈을 때 소련은 시침을 뗐었고 지금까지 그랬다. 소련이 과거의 전쟁적 범죄를 시인하고 사과하는데 50년이 걸린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며 사실은 영원히 사실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지난 37년 중국군이 완강하게 버티던 남경시를 함락시킨 일본군은 부녀자 겁탈과 약탈은 물론 닥치는 대로 학살한 양민이 30만을 넘는다. 한국에서의 경우도 그러하다. 태평양전쟁기간중 39년부터 45년까지 6년동안 일본 등지에 노무자로 끌려간 한국인은 1백37만명,국내에서의 강제노역4백50만,군인 군속 소위 여자정신대 등으로 연행된 37만 등 모두 6백만명이 일제에 의해 동원되거나 학살됐다.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유감」표명만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일본당국은 연전에 교육용으로 일본역사상 10명의 「위인」을 선정한 바 있다. 그중 근대편에는 길전송음ㆍ서향륭성ㆍ이등박문 등 조선침략의 원흉들이 망라됐다. 군국주의 잔재에 젖어 있는 일본 지도층의 의식의 단면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오래전에 「일본의 한국병합」이라는 책을 쓴 야마베 겐타로(산변건태랑)는 이들 소위 근대화주역들의 행적을 분석한 뒤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시대에 따라 그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언제나 정한론이었다』고 갈파했다. 바로 그것이다. 53년 한일회담 당시 일본대표였던 구보타(구보전관일랑)는 『한일평화조약이 체결되기전에 한국이 독립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다』라고 흥분하더니 끝내는 한술 더 떠 조선통치를 「시혜」라고까지 망발을 해 한일관계사에 이른바 「구보타 망언」을 남긴다. 『이등박문의 길을 따라 우리는 한국에 뿌리를 심어야 한다』고 말한 자는 요시다였고 마지막 수석대표였던 다카스기(고삼진일)는 『일본이 한국을 20년은 더 지배했더라면…』하고 아쉬워했다. 30년후인 86년 당시 문부상이던 후지오(등미정행)는 『식민지지배니 하고 떠들어 대지만 일본은 좋은 일을 하지 않았는가』고 근성을 드러냈다. 섬나라 지도층의 한국에 대한 착시와 오만이 이와 같다. 지금도 일본 도처에는 그때보다 더 많은 요시다,구보타,다카스기,후지오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이 일본에 임한 기본자세는 정신적이며 도덕적이었다. 「정신적 화해」였기도 하다. 반면 일본은 법적ㆍ실무적이었고 경제동물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지금 막강한 부와 힘을 갖고 있다. NTT(일본전신전화) 한 회사의 주를 팔면 서독의 전 회사주식을 살 수 있고 도쿄를 처분한다면 그 돈으로는 미국 하나반을 살 수 있다. 미국의 핵우산을 빌려 쓰고 풍요를 구가하는 그 사회에 「대동아전쟁긍정론」이 대두된 지는 오래다. 급기야는 군국일본과 일왕찬미의 상징이었던 일장기와기미가요의 사용이 공식화되기에 이르렀다. 패전후엔 그토록 믿었던 힘을 버리고 조심조심 부지런하기 30년만에 졸부가 된 그들이 이제 다시금 축적된 힘에 대한 자신과 오만을 갖고 그것을 활용하고 싶어한다. 그러한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전쟁범죄와 관련된 피해보상문제와 재일동포문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간교하고 이중적이고 인색할 수가 없다. 그래가지고는 한일에 가로놓인 강과 그늘은 영원히 걷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일은 그들의 앞날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동거여인 살해/20대공원 투신

    17일 하오 1시50분쯤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139의10 이기재씨(50)집에 세들어 사는 박병운씨(25ㆍ공원)가 함께 살던 정금화씨(28ㆍ여ㆍ공원)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뒤 스스로 배와 목을 찌르고 8m높이의 옥상에서 뛰어내려 중태에 빠졌다. 이웃 장모씨(49ㆍ여)는 『숨진 정씨의 형부가 찾아 왔다가 문이 잠겨 돌아간 직후 옥상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박씨가 뛰어 내렸다』고 말했다.
  • 총포사강도 인질난동/주인 흉기로 위협/출동경관과 공기총 대치

    ◎격투끝에 잡혀…경관 1명찔려 중태 14일 하오 6시13분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1가 143 삼보예식장 1층 동호총포사(주인 손병수ㆍ51)에 김경만씨(23·강서구방화2동미경연립13동1032호)가 들어가 주인 손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공기총과 실탄을 요구하다 이를 본 행인이 신고,출동한 경찰에게 칼을 휘두르고 공기총을 겨누며 대치하는등 소란을 피운 끝에 20여분만에 잡혔다. 김씨는 경찰관 10여명이 4분뒤인 6시17분쯤 출동,가게에 들이닥치려 하자 손씨를 꿇어 앉히고 손씨의 점퍼로 얼굴을 뒤집어 씌운채 왼손에 든 칼을 손씨의 목에 들이대고 오른손으로 가게에 있던 길이1m가량의 공기총을 집어들어 경찰에게 겨누며 대치했다. 이어 김씨는 5차례에 걸친 경찰의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찰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실탄이 없는 것을 알아채고 당황하는 순간 경찰이 쏜 가스총 2발을 맞았다. 이때 영등포경찰서 형사계 소속 윤희정순경(33)과 5반장 배종옥경위(53)등 경찰관 3명이 김씨에게 달려들자 김씨는 이에 저항하며 윤순경의 오른쪽 등부분과 배경위의 오른쪽 손가락을 칼로 찌르고 문밖으로 뛰어나가 차도에서 차량사이를 비집고 50여m쯤 도망가다가 경찰관 5∼6명이 덮쳐 격투끝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실탄을 장전하지 않은 공기총으로 마구 공포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퇴근길 시민 5백여명이 비명을 지르며 대피하는등 소동이 벌어졌고 이 일대 교통이 한동안 마비됐다. 윤순경은 이웃 서울대윤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중태이다.
  • “수교국 급증”… 「외교전성시대」 진입

    ◎“인사적체 해소”… 기대부푼 외무부/1년새 10국과 수교… 대사직임명에 관심/신설공관장에 김영섭ㆍ송학원씨등 물망/년말까지 8국 더 늘듯… 유엔가입 촉진제 구실 우리외교는 지금 전성시대를 한껏 구가하고 있다. 북방외교를 꾸준하게 추진,지난해 2월 헝가리와 동구사회주의국가로는 처음으로 국교수립을 맺은 이래 1년 남짓동안 무려 10개국과 수교를 맺었기 때문이다. 특히 북방외교의 종착역격인 소련과의 관계정상화도 「초읽기」에 돌입한데다 대중국관계개선도 9월의 북경아시안게임을 통해 커다란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여 주무부처인 외무부는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외교소식통들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연말까지는 최소한 7∼8개국과 수교의정서에 사인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같은 수교도미노현상은 결과적으로 우리외교의 다음목표인 「1,2년내 유엔가입 실현」도 빠른 시일내에 달성할 수 있게 만드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부적으로도 외무부는 10개 수교국에 모두 상주대사관을 설치한다는 방침을세우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외무부관료들의 최대 불만사항이었던 인사적체 해소에도 한몫을 톡톡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헝가리ㆍ폴란드(11월)ㆍ유고(12월) 등 지난해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동구 3개국에는 이미 상주대사관이 설치돼 있다. 또 지난해 7월 국교수립을 맺은 이라크는 종전의 총영사관이 상주대사관으로 격상,정무ㆍ경제ㆍ영사 등 대사관 고유업무를 계속해 오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상주대사관이 설치될 국가는 동구권의 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 등 3개국과 아프리카의 알제리ㆍ나미비아 등 2개국,그리고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인 몽고등 모두 6개국이다. 이들 6개국에 대한 대사임명은 물론 대통령령인 「재외공관의 명칭ㆍ위치 및 관할구역에 관한 규정」의 개정안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통과된 연후에나 가능하다. 외무부는 개정안이 통과된 뒤 우선 참사관급 외교관을 대사관 개설요원으로 현지에 파견한다는 방침이다. 특명전권대사는 주재국정부의 아그레망등 필요한 절차가 있어야 하기때문에 이보다 2,3개월 늦게 현지부임하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지난달 대사관개설 요원이 파견돼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알제리에는 다음달 중으로 대사가 현지에 부임할 것으로 보이며 3월에 동시다발적으로 수교한 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ㆍ나미비아ㆍ몽고 등 5개국에는 다음달중 대사관개설준비요원 파견을 거쳐 7,8월경 해당국 대사들이 현지에 부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호중외무부장관은 이들 국가주재 대사임명과 관련,『신설공관인만큼 그동안 공관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인사중에서 적임자를 골라야 할 것』이라고 측근들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누가 거명되고 있는지는 『대사임명은 대통령의 전권사항』이라는 이유로 외무부관계자들이 일체 함구하고 있는 실정. 다만 공관운영 경험이 있는 외무부 본부대사나 외교안보연구위원 중에서 새로운 외교영역을 개척한다는 프런티어적인 자부심이 대단한 인사가 적임자로 낙점될 것이란 게 이들의 중평. 현재 김영섭ㆍ장명하ㆍ장만순본부대사 등과 외교안보연구원의 이경훈 조광제연구위원과 송학원연구부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대사관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사와 참사관을 포함,1등서기관ㆍ2등서기관 등 최소한 5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외교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 이에따라 당장 필요한 외교인력만도 30명정도이고 앞으로 수교국 수 증가로 인한 인력수요는 더욱 급증할 전망이다. 외무부는 이를 위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덜한 아프리카 및 중남미지역의 일부 공관을 폐쇄하거나 축소,이곳에서 빼낸 외교관을 신설공관에 투입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이같은 방안이 해당국의 반발초래등 역작용을 불러일으킬 경우 비상대책으로 미ㆍ일ㆍ서구 등 공관의 비교적 여유있는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는 후문. 외무부는 또 급증한 인력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해까지 20명씩 뽑던 외무고시선발인원을 75% 증가된 35명으로 책정했다. 외무부는 이와함께 향후 경제분야가 외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인식아래 재외공관은 물론 외무부 본부직원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경제교육을 시킬 방침이다.
  • 한밤 가정집 3층방에 불/불길 세모자 주민이 구해

    ◎스치로폴 깔아 뛰어내리게 6일 상오1시30분쯤 서울 구로구 독산4동 196의 33 주만수씨(40ㆍ상업)집 3층 셋방에서 불이나 세들어 사는 정화연씨(35ㆍ상업)는 피신하고 정씨의 부인 박명순씨(32)와 그 아들은 주민들에 의해 구조됐다. 불이 나자 정씨등 일가족 4명은 계단을 통해 피신하려 했으나 연기와 불길에 막혀 나가지 못하고 안방창문을 통해『불이야』라고 소리친뒤 정씨만 8미터 아래 땅으로 뛰어내려 땅으로 뛰어내려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는 골절상을 입었다. 이어 정씨의 부인 등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이웃주민 전성규씨(33)등 이웃주민 4∼5명이 불이난 건물앞 철물점에서 스치로폴 40여장을 바닥에 깔자 박씨와 아들 동욱군(11)등 3명이 뛰어내려 목숨을 구했다.
  • 6살난 딸 정화조에 밀어넣고 뚜껑닫아/「비정의 아버지」영장

    서울 신정경찰서는 4일 양해은씨(36ㆍ양천구 신정3동 1186의21)를 살인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양씨는 지난2일 하오5시쯤 자신의 둘째 딸(6)을 양천구 신정1동 모 경양식집 화장실정화조에 밀어 넣은뒤 정화조 뚜껑을 덮어놓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있다. 정화조에 갇혔던 양양은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술집 종업원들에 의해 구조됐다. 양씨는 경찰에서 『몇년전부터 다리에 류마티스를 앓아 아내가 파출부로 일하면서 얻은 수입으로 어렵게 살고있는 것을 가장으로 부끄럽게 여겨오다가 이날 술에 취한김에 딸을 죽이고 나도 함께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
  • “과소비의 주범” 수입급증의 원인과 실태(뉴스 추적)

    ◎“칫솔서 고급차까지” 호화 외제품 몰려온다/냉장고 5백ㆍTV 2백% 수입증가/중기도산 속출,일부산업 공동화 현상/관세인하등 개방화가 수입가속화 부추겨 요즘 백화점마다 외제상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미국산 개밥,일제 플래스틱 바가지,서독제 손톱깍이에서부터 1천만원대의 찻잔세트까지 없는게 없다. 이가운에 악어가죽 숙녀화는 57만8천원,타조가죽 핸드백은 2백85만원,영국산 웨지우드 찻잔세트는 1천만원을 넘는다. 또 미제웨스팅 하우스냉장고(5백59ℓ)가 2백36만원,일제 TV(19인치)가 1백98만원,이탈리아제 홈바용 수레는 2백만원에 팔리고 있다. 길을 걷다보면 이제 고급 외제승용차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최고급 BMW승용차(서독산)는 1억4천3백만원이나 하며 수천만원대의 외제승용차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져 외제차 수입상들은 즐거운 비명이다. 고급 내구소비재뿐만 아니라 외제상품은 이제 술 장난감 칫솔 속옷 젓가락등 우리네 일상생활 구석구석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급속한 수입확대에 따라 과소비등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수입자유화의 배경및 실태,부작용,앞으로의 대책등을 점검해 본다. ▷수입금증의 원인과 배경◁ 최근의 외제품 범람현상은 정부의 시장개방 정책에 편승하여 외국상품이 국내에 홍수처럼 밀려들어 오고 있는데다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많은 국민들이 소비성향이 외제 선호쪽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입자유화율(농산물 포함)은 지난 88년 95.4%였으나 89년 95.5%,90년 96.3%로 높아졌고 공산품의 경우 자유화율은 99.7%로 사실상 완전 개방된 상태를 맞고 있다. 마약류ㆍ총포류등 국민건강과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10개 품목을 제외하고는 92년부터 모든 공산품의 수입이 완전 자유화된다. 따라서 90년대에는 귀금속을 포함한 사실상의 모든 공산품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들어오게 되며 소비자들은 어떤 외제품이든 살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이처럼 수입개방정책을 실시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지난 86년이래 수출이 잘 돼 수입보다 수출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무역수지 흑자는 통상마찰을 불러 일으켰고 통화관리에 지장을 초래했다. 때문에 무역흑자관리의 일환으로 수입자유화가 가속화된 것이다. 정부의 관세인하 5개년계획에 따른 평균관세율의 단계적 인하조치도 수입급증의 원인이다. 관세인하 5개년계획은 평균고나세율을 88년 18.1%에서 93년까지 7.9% 내리도록 했다. 이에 따라 89년 한해에만 거의 6%포인트 대폭적인 인하가 있었다. 이 가운데 사치성 소비재 품목의 관세는 더욱 대폭적으로 인하돼 88년 30∼50%에서 90년대에는 16%로 떨어졌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87년8월 수입개방 당시 관세율 50%에서 현재 20%로 대폭 인하돼 89년중 고급 외제승용차 수입은 1백84%나 증가했다. 여기에 사치성 소비재의 경우 국내제품에도 같이 적용되는 특별소비세도 대폭 인하,수입급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수입자유화 실태◁ 수입이 본격 개방된 지난해 우리나라는 지난 81년이후 처음으로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한 지난 86년이래 88년까지 3년동안 연평균 26.1%의 높은 증가율을나타냈으나 89년에는 2.8% 증가에 그쳐 급격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면 수입은 87년에 29.9%를 기록한 이래 88년 26.3%,89년 18.6%의 높은 증가세를 지속했다. 물량기준으로 보면 89년중 수출은 6.0% 감소한 데 반해 수입은 13.9%나 늘어나 수입물량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한마디로 수출증가세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데도 수입증가세는 별로 둔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원자재,자본재보다 소비재가 수입을 주도하고있는 현실이다. 지난 86년이루 89년까지 우리나라의 소비재 수입증가율은 연평균 23.5%를 기록,같은 기간의 총수입증가율 18.5%를 크게 넘어섰다. 이에 따라 85년중 8.5%이던 총수입에 대한 소비재 수입비율이 89년에는 10.0%로 올라갔다. 특히 89년 한햇동안 외제 냉장고의 수입증가율이 5백52.3%를 기록한 것을 비롯,가스레인지(2백79.4%) 칼라TV(2백42.3%) 세탁기(2백28.9%) 골프용구(2백5.3%) 승용차(59.3%) 등은 각각 엄청나게 수입이 늘어났다. 내수용 수입과 수출용 수입에 있어서도 88년이후 내수용이 수출용 수입의 증가율을 넘고 있다. 89년에는 수출용 수입이 6.2% 늘어난 데 비해 내수용 수입은 27.2%나 증가했다. 총수입에 대한 내수용 수입비율은 64%에 이르러 84년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부작용◁ 급격한 수입증가추세와 소비재수입의 격증은 우리나라 국민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즉 흑자재원을 고갈시키는 것을 비롯,주요 수출산업의 공동화촉진,대일편중의 수입 구조심화,건전한 국민소비생활 저해등의 부정적인 특면을 낳고 있다. 이같은 부정적인 측면의 대표적 사례는 과소비풍조의 확산이다. 30만원짜리 재떨이가 심심치않게 팔리는가 하면 해외에서 4천원짜리 약이 국내에 수입돼 4만원으로 둔갑해 팔린다. 3천만원대으 모피 패션쇼가 열리는 일류호텔은 항상 입추의 여지가 없이 만원이다. 과소비 풍조는 계층간의 위화감 조성은 물론 인플레 및 제조업공동화 현상의 우려를 낳는다. 망국의 외제병을 국내 제조업체가 앞장서서 유발하고 있는 현실은 부끄러울 정도다. 국내대기업이 자사생산품과 같은 품목의 외제품수입에 앞장서는 사례가 그것이다. 대우ㆍ기아ㆍ쌍용등 자동차 업체가 외제차 수입으로 짭잘한 재미를 보고 있고 위스키시장이 개방되자 OB,진로등 주류업계도 수입선이 되고 있다. 해태ㆍ농심등 제과업체도 초콜릿,카라멜까지 수입해 구색맞추기를 이유로 판매대행에 재미를 붙였다. 가전제품의 경우 삼성ㆍ금성ㆍ대우등 가전3사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미제 대형냉장고ㆍ컬러TVㆍVTRㆍ음향기기등을 수입하고 있다. 또 수출촉진을 위해 설립돼 정부의 정책금융지원을 받아 성장한 종합무역상사들이 최근들어 수출보다는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에 치중,수입증가세를 주도해 비난받고 있다. 이처럼 과소비 열풍을 타고 쏟아져 들어오는 고급소비재들 때문에 상당한 수준에 있던 국산소비재들이 시장침식 위협을 받고 있으며 수입개방때문에 생존기반을 잃고 있는 국내업체들의 도산폐업이 속출,산업피해 구제신청을 내는 사례가 많아졌다. 내수용 수입가운데 자본재수입은 수출경기의 회복에 따라 수출용으로 전환될 수도 있고 자본재수입 자체는 산업구조 고도화에 기여,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수출이 늘어나지 않는 현실에서 내수용 수입의 증가는 무역흑자기조를 위협 경제전망을 어둡게 하고있다. 또 이제까지 수출주종 품목이었던 철강ㆍ자동차ㆍ기계ㆍ섬유등의 수입이 크게 늘고있는 것은 산업구조의 선진화를 해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정종석기자〉
  • 보험모집원 피습/집앞서 4곳찔려 중태

    27일 하오11시쯤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9의251 유홍례씨(54ㆍ여ㆍ대한교육보험 모집인)집 앞길에서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유씨가 20대 청년 1명으로부터 오른쪽 어깨와 머리 등 4곳을 흉기로 찔려 인근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유씨는 이날 보험료로 수금한 현금 26만원과 10만원권 자기앞수표 1장 등 36만원이 든 손가방을 갖고 있었으나 범인은 이를 빼앗아가지 않았다. 유씨의 맏딸 김수영씨(29)는 비명소리가 들려 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며 20대 청년 1명이 황급히 달아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 「징용 한인묘」 돌보며 후손찾기 12년(특파원코너)

    ◎일 사무가와 향토연,현해탄 넘나들기 16차례/연고지 춘천ㆍ창원 오가며 직접 수소문/한해 두번씩 벌초ㆍ분향 등 묘관리 정성 3월이라고는 하지만 잔뜩 찌푸린 사무가와(한천)의 봄은 아직 냉기를 품고 있다. 도쿄(동경)에서 도카이도(동해도)선 전철로 55분쯤 달려 7번째 역,치카사키에서도 자동차로 20분쯤 더 들어간 사무가와 마을 공동묘지에 한인묘 2기는 잠들어 있었다. 지난 18일 일요일인데도 이곳 묘지를 찾은 마을 일본인들은 10명이 넘었다. 사무가와마치(한천정) 향토연구회 히로다 도미지(광전부치ㆍ73)회장을 비롯,이케다 사히치(사전금칠ㆍ76),교육위원회 고바야시 다카시(소림륭ㆍ62),정사 편찬과장 미자와 마코도(삼택성ㆍ51),주부인 무라다 유키에(촌전행지ㆍ53),가와사키 기쿠에,건설회사 상무 요시다 마사야스(길전정강),구스야 시게마사(남곡무정ㆍ77)씨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향토문화 연구회원들로 연고가 없는 이 한인 분묘를 돌보는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인구 4만정도의 사무가와에 향토문화연구회가 발족된 것은 12년전으로 지금은1백40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이 무연 한인 분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연구회발족보다 훨씬 오래전 일이었다. 본래는 금은제련기술자였으나 향토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이케다 사히치씨를 중심으로 한 몇 사람이 공동묘지를 한구석에 쌓여 있는 비석더미에서 대단히 훌륭한 비석 2개를 찾아냈다. 하나는 1927년 9월22일 작고한 황인필의 묘비였고 다른 하나는 26년 3월1일 작고한 권인출의 묘비였다. 이들 묘비에는 사방에 명문이 새겨져 있었으며 모두 사무가와 일대에 살던 「조선인 일동」이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작고한 이들은 모두 이 일대 한인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사무가와 마을 주민들의 지금까지 조사결과에 따르면 60여년전 이 마을에는 한 부락을 형성할 정도로 많은 1백50여명의 한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온 기술자들이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사가미(상모)선등 철도부설공사를 위해 기술자가 필요한 상태였으며 사리채취를 위해서도 많은 인부가필요했다. 이같은 일에 한국에서 건너온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서는 이곳 일인들이 지역발전에 공헌한 사람들이라며 존경하고 있다. 사무가와 향토문화연구의 멤버들의 소망은 현재 무연 묘로 거의 방치되어 있는 이들 분묘의 후손을 찾아 성묘하도록 해 주자는 것이다. 현재 이곳 마을사람들은 1년중 3월과 9월 두번에 거쳐 분묘를 손질하고 향불을 피우지만 그렇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후루야 도쿠코씨(고실도구자ㆍ33)는 설명한다. 한인 분묘 2기중 황인필씨의 묘는 본적이 경남 창원군 창원면 거용리라고 적혀있으나,권인출의 비문에는 춘천이라는 글귀만 나올 뿐 자세한 사항은 적혀있지 않다. 이들 향토문화연구회 회장 히로다 도미지씨는 『이들 분묘의 연고자가 나타나 잘 관리해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케다 사히치씨는 그동안 16번이나 한국을 방문,춘천과 창원까지 갔었으나 현지의 사정에 밝지못해 자손을 찾지 못했다며 아쉬워 했다. 이와는 별도로 부근의 유명한 사찰 고젠지(흥전사)에는 또 하나의 분묘가 있다. 진양 정씨의 묘로 단기 4290년 부 이현칠씨가 세웠다는 비명이 남아 있으며 치호ㆍ지호ㆍ준호ㆍ영호 등 아들 이름도 새겨져 있다. 이 분묘도 현재는 무연분묘로서 사무가와 마을 사람들이 돌보고 있다. 현해탄의 높은 파고를 넘은 이 마을 사람들의 인정탓에 냉랭한 사무가와의 날씨도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 한필성ㆍ필화 「남북 오누이」 40년만에 일 삿포로서 극적 상봉

    ◎“오빠!왜 이제 왔어요”… /목메인 남매,오열ㆍ절규도 잊어/생이별의 한은 울음까지 삼켜 【삿포로(일본)=동계아시안게임 특별취재반】 『오빠,왜 이제 왔어요』 『40년만에야…』 헤어지기 40년,생사를 확인한지 19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남북의 오누이는 오히려 담담했다. 통곡도 오열도 절규도 없었다. 40년 생이별이 서러웠고 남북의 정치적대립으로 상봉직전에서 또 19년을 기다려야했던 안타까움과 그동안 가슴을 저린한이 큰울음까지도 삼켰기 때문이다. 지난50년 6.25의 와중에서 이산가족이 돼버린 한필성(62ㆍ목축업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통패리 166의2) 한필화(48ㆍ북한국가체육위원회 동계경기지도부국장)남매는 지난71년 극적으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상봉직전까지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필성씨는 71년 2월7일 삿포로 동계프레올림픽에 출전한 북한 스피드스케이팅선수중 여동생 필화씨가 포함돼 있는 것을 알고 일본 아사히신문 주선으로 도쿄로 날아가 30분동안 전화로 통화,「목소리만의 상봉」은 이루었으나 남북간의 팽팽한대립의 벽에 막혀 눈물을 뿌리며 귀국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19년만인 8일 하오8시 이국땅 삿포로에서 필성,필화남매는 혈육의 정을 갈라놓은 벽을 마침내 허물고 40년만에 재회했다. 17살 홍안소년이던 필성씨는 어느덧 환갑을 넘은 노인으로,8살의 귀엽기간 했던 막내동생 필화씨도 중년을 넘긴 주부로 세월이 흐른뒤였다. 삿포로 지도세공항 입국장대합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오누이는 비명처럼 반가움의 한마디를 토해 놓고는 어깨를 들먹이며 얼싸안고 흐느꼈다. 두 오누이의 극적인 만남은 북한선수단 임원으로 지난2일 삿포로에 도착,선수촌 프린스호텔에 묶고있던 필화씨가 남편 임세진씨(김일성대학 체육교수)와 조총련 간부 송암우의 안내를 받아 삿포로에 도착한 한필성­홍애자 내외를 마중나옴으로써 지도세공항 로비에서 이뤄졌다. 한필성씨는 회색싱글 양복차림,홍애자씨는 분홍빛 치마저고리에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공항에 나와 플래시세례를 받았으며 1백50명의 내외신기자들 앞에서 큰절을 올리고 돌아서는 순간 회색빛깔의 양장차림에 파머를 한 필화씨가 『오빠』하고 부르며 와락 달려들어 극적인 상봉이 이뤄졌다. ◎“기쁘단 것외엔 할말 없어 이젠 어머니한 푼것 같다” ○한필성ㆍ필화 남매 회견 지도세공항에서의 아쉬운 첫만남을 마친 필성ㆍ필화남매는 이날 하오10시15분쯤 공항에서 동남쪽으로 40㎞ 떨어진 삿포로 프린스호텔에 도착,45분동안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금의 소감은. ▲필성=기쁘다는 말밖에 할말이 없다. ▲필화=19년전에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제야 만나게 됐다. 하지만 나도 오빠만큼이나 기쁘다. ­사전에 상봉을 위한 연락이 있었는가. ▲필성=없었다. 서울에는 나같은 이산가족이 많다. 남북한의 자유왕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생사확인과 서신교환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일이 더 잘풀려 교향방문단교환이 성사되면 제일 먼저가고 싶다. ­앞으로의 일정은. ▲필성=오늘(8일)은 일단 따로 숙소를 정해 각자 휴식을 취하겠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동생이 삿포로를 떠날때까지 숙식을 함께할 예정이다. ­북한을 떠날때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나. ▲필화=『이번에는 꼭 오빠를 만나라,네가 지명한 체육인이니 주위의 도움을 청하면 상봉이 성사될 것이다. 오빠를 만나면 큰절을 올리고 숙식을 함께하라. 너만이라도 필성이를 만날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 대도시「다가구주택」 신축 붐/집세 폭등 여파…지하포함「3층형」많아

    ◎“4∼5가구 세 주면 건축비 충분”/서울서만 1천5백채 신청 단독주택에서 4∼5가구가 함께사는 다가구주택을 짓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전국주요도시의 전세값이 부쩍오르면서 대지50평,건평75평이하 규모의 「미니3층」집을 지으면 자신이 한층에 살면서도 나머지를 3∼4가구에 전세를 주어 건축비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주택 등이 들어서면서 한때 신홍주택가로 명성을 떨쳤으나 이제는 대부분 낡은 집들이 돼버린 서울 은평구의 역촌동 대조동 불광동 구산동,도봉구의 수유동 우이동 삼양동,성동구의 중곡동,관악구 봉천동 신림동 등지에서는 요즈음 낡은 집을 헐고 그자리에 다가구주택을 짓느라 여기저기서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시가 올들어 건축허가를 내준 다가구주택은 이미 1천5백건을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의 6백여건보다 2.5배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은평구청의 경우 2일현재 3백30여건을 허가,지난해 1백20건의 3배에 육박하고 있다. 건설부 또한 이같은 다가구주택이 대도시 주택난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판단에 따라 연건평 1백평이하의 다가구주택건설을 허용하고 가구별로 7백만원의 주택자금을 융자해주는 한편,표준설계도까지 보급하기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키로 함에 따라 다가구주택은 앞으로 엄청나게 불어날 전망이다. 다가구주택이란 가구별로 소유권이 따로 등기되는 연립주택 등 다세대주택과는 달리 일반 단독주택에 여러 세입가구가 들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방은 물론 화장실 조리실(부엌) 등을 따로 꾸민것으로 반지하층과 지상2층 등으로 지어지는게 보통이다. 대체로 지하층엔 2가구가 세들고 1층과 2층가운데 하나는 주인이 살고 하나는 세를 내주고 있다. 은평구 대조동 212의62 이춘근씨(52)는 『대지43평에 건평 20평짜리 20년된 낡은집을 수리하려고 견적을 냈다가 2천만원이 넘는다는말에 엄두를 못내던 터에 건축업자가 「미니3층」집을 지으면 한푼도 들이지 않고 새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해 아예 집을 헐고 새로 짓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새로 짓는 다가구주택은 각층이 21.5평으로 연건평 64.5평이어서 총건축비가 6천4백50만원이 드나 1층엔 자신이 살더라도 지하2가구의 전세금 1천7백만원씩과 2층 전세금 3천만원을 더하면 6천4백만원을 전세금만으로 충당할 수가 있다. 이같은 다가구주택의 건축붐은 대체로 건축업자들이 부채질하는 경우가 많다. 집수리를 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수리보다는 다가구 주택의 신축을 권유하고 집을 짓게되면 전세입주자까지 확보해주기도 한다. 은평구 신사동 22의1 대성건업주인 김대식씨(41)는 『집을 신축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집이 지어질때까지 살곳이 없다는것과 자재비 등 당장 필요한건축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건축업자들이 전세입주자를 확보해줄것을 보장하고 공사대금은 세입자가 입주하면 받기로하는 조건을 제시하면 집주인들은 대개 이에 따른다』고 말했다. 주택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진건축사사무소대표 허진씨(39)는 『겨울철은 건축비수기이나 지난해 가을부터 전세값 폭등하기 시작하자 겨우내 다가구주택의 설계의뢰가 줄을 이었다』면서 『지금도 10건의 설계가 밀려 4명의 설계사가 매일 밤일을 하고있다』고 즐거운 비명을 올렸다.
  • 청백리는 미운가/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옛날엔 세상이 알아주는 청백리의 묘소에 백비를 세웠다. 비석은 있되 비명이 없는 백비는 한 공직자의 생전의 청백을 가장 장중하게 예우해주는 표현이다. 조선 명종때 박수량은 38년간 관직에 있으며 청렴을 실천했다. 그에게 청탁을 하는 것은 바로 죄를 주십사하는 요청이기도 했다. 형조판서로 있을때 같은 판서의 아우가 광주 목사로서 부정을 저질렀다. 동료판서가 청탁을 하자 파직할 죄량이 아닌데도 파직을 시켜버렸다. 「청렴강직」은 살았지만 그는 동료들로부터 미움과 모함,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명종은 박수량의 청백을 포상하기 위해 그의 고향 장성에 99간집을 지어 청백당으로 사명을 했고 그가 죽어서는 서해의 하얀 암석으로 백비를 세워 백면에 그의 일생을 강력하게 나타내게 했다. 같은 명종때의 한림 김렴(삼휴당)은 권신들의 청탁을 받는 족족 물리쳐 미움을 받아 한산군수로 좌천됐다. 그래도 중앙에서의 모략중상이 그치지 않자 그는 벼슬을 내던지고 초야에 묻혔다. 청백리는 밉상인 것이다. 지금은 공직을 떠난 한 세리를 나는 알고있다. 재직중엔 도시락ㆍ서류보자기를 들고 달동네에서 1시간을 걸어 출근했다. 그가 어찌어찌하다가 공무원 기강확립 작업과 관련,「서정쇄신기록부」에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모범공무원,이른바 현대판 청백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주위의 눈초리가 달라졌다. 동료들이 따돌렸다. 그래 당신만 깨끗하고 우리는 모두 기름때가 묻었느냐는 힐난도 들려 몸둘바를 몰랐다. 청백리가 미움받는 예는 밖에도 있다. 집한칸없는 청백리로 유명한 태국 방콕시장 잠롱 스리무앙은 지난 1월 시장선거운동중 반대세력의 암살테러를 가까스로 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잠롱시장은 88년 부패정치인및 기업인 추방을 외치면서 팔랑다르마당을 창당,「가진자들을 위한 정치」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때부터 일부 정치인과 부유층의 미움을 샀다. 그가 방콕시장이 된후 민원업무에 급행료와 뇌물이 통하지 않게 되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모두 그의 적이 되었다. 지나친 청렴결백이 목숨까지 위협하는 화근으로 변했다. 청백리는 동서고금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기존 가치와 수구적체제 속에서는 미운오리가 되기 싶상이다. 다산은 『청렴한 관리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가 지나간 곳은 산림도 천석도 모두 맑은 빛을 받게 되기때문이다』라고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맑은 빛이 되기는 커녕 거꾸로 그 산림과 천석에 묻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송대의 학자 육구연은 「상산록」에서 청렴한 공직자의 유형을 세등급으로 나눴다. 첫째 봉급 이외의 아무것도 받지않고 남는 것을 반환하는 사람,둘째 명분이 바른 것까지만 받는 사람,셋째 선례가 있는 것까지는 받으며 직권을 이용한 부정을 행하지 않는 사람. 공직의 어려움과 청백의 한계를 적절히 조화시킨 매우 융통성있는 청렴공직자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게 볼때 시대가 뒤로 내려올수록 청렴한 관리의 이미지가 조금씩 흐려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최근들어 관가가 유난히 술렁대고 있다고 들린다. 큰 여당이 나왔고 그래서 조만간 개각을 포함한 대대적인 인사개편이 있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크게 개헌까지간다면 관직사회에 「경천진동」의 지각변동이 있을터이니까 시류따라 인맥따라 연줄을 잡고 몸조심 말조심하여 살아남아야겠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때에 만연하는 것이 보신주의ㆍ무사안일ㆍ요령주의ㆍ방관ㆍ면피 등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4년새 공무원 범죄가 두배로 늘었고 작년에만도 직무와 관련된 금품수수 등으로 1만2천명 가까이 적발됐다고 한다. 그 부정 비리내용은 대충 직무유기ㆍ직무상 기밀누설ㆍ금품수수(뇌물)ㆍ직권남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 전환기적 비위사례이되 그 수치와 내용이 관가의 술렁댐을 말해준다. 얼마전 홍콩에서 발행되는 중국계 신문(문회보)이 우리 사회의 뇌물수수와 부정부패에 관해 보도한 것을 보고 40여년 귀가 닳게 들어온 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나 했다. 그 기사에서 인용된 관련부처들이 벌집쑤신듯 흥분하여 결백을 증명하기에 바빴고 국제적인 항의끝에 결국 그 필자가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이젠 한국사회에 부정부패가 없다니 기쁘다』고 한 그 해명내용도 끝내 개운찮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환기이다. 새정치질서 구축의 회오리 속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공직자들의 자세이다. 공복으로서의 직분을 다하고 있는가,청백리엔 안가더라도 최소한 까마귀 싸우는 골을 이루지는 않는가 지켜보는 것이다. 정치의 풍향에 따라 공직사회가 흔들리면 나라의 발전이나 사회의 안정은 기약될 수 없다. 공직사회기강이 해이되면 공권력도 무력화 된다. 공무원도 사람이고 명예나 지위가 아니면 돈을 바란다. 기왕이면 모두 갖는게 좋을 것이나 하나씩만 가져도 괜찮다. 모두 가지려고 딴 생각하면 큰일난다. 자고로 청백리가 증오나 질시,심하면 암살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가 까마귀들 속의 백로로서 두려움과 신비의 인물인 탓이다. 같이 오염되고(거세개탁)한 패거리가 되어야하는데 그만이 홀로섰기(독야청청)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청백리가 미움받지 않는 세상이 되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즉 모두가 청백리가 되는 것이다. 다소 무리이고 욕심일 수도 있지만 하려고만 들면 어렵지도 않다. 정치사회적인 전환과 변혁기에 모든 공직자가 본분과 책무를 지키어 하나만 갖는 청백리가 되어 청사에 남아보겠다는 각오를 가져봄직도 한 것이다.
  • 비상령속 살인 속출/40대 관광사 대표 잠자다 피살

    경찰의 방범비상령이 내려진 가운데 10∼12일 서울 부산 대구 제천 등지에서 강도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12일 상오2시20분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 351 정형제씨(40ㆍ삼복관광 대표)가 안방에서 잠자다 괴한이 휘두른 흉기로 목을 찔린채 중태에 빠진 것을 함께 자던 부인 김경숙씨(34)가 발견,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부인 김씨는 『아들(12) 등 세식구가 함께 안방에서 잠을 자던중 갑자기 남편이 비명을 질러 깨보니 목 오른쪽 2군데를 칼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괴한 1명이 방문을 열고 황급히 달아났다』고 말했다. 【부산=김세기기자】 11일 상오8시30분쯤 부산시 서구 충무동1가 32 해성장여관 2층 안내실에서 이 여관주인 김복심씨(51ㆍ여)가 온몸을 예리한 흉기에 찔려 숨져있는 것을 김씨의 둘째아들 최정식군(18ㆍ고2)이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청주=한만교기자】 지난10일 하오6시쯤 충북 제원군 봉양면 구학리 원주∼제천국도변 밭두렁에서 원주택시소속 강원1 사1329호 택시운전사 전종표씨(27ㆍ원주시 단계동 단계아파트 107동207호)가둔기로 머리를 맞아 숨진채 발견됐다. 【대구=김동진기자】 11일 새벽1시50분쯤 대구시 중구 남산1동 594의2 남도슈퍼(주인 조영호ㆍ60ㆍ남산3동 588의5)에서 주인 조씨가 둔기에 맞아 신음중인 것을 옆집 식당주인 진태근씨(47)가 발견,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 있을 수 없는 사건들(사설)

    국교상급생 4명이 1년생 어린 후배를 실신할 때까지 뭇매를 때리고 옷까지 벗겨 방치하여 동사에 이르게 한 사건은 우선 기사 자체를 끝까지 읽는 것조차 힘들게 한다. 그런가 하면 한 대학생은 남자 고교생 50여명을 무용수로 고용하고 TV출연료를 가로채는가 하면 역시 수시로 뭇매를 때리며 거느리고 동성연애의 대상으로까지 삼아온 사건도 알려졌다. 두 사건은 각기 그 성격이 다른 것이긴 하나 어느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도 없고 또 전부 미성년들의 사건이란 점에서 다같이 좀처럼 참을 수 없는 반론과 반인간성에의 분노를 느끼게 하고 또 이보다 먼저 이 기괴한 사회행태에 망연자실함과 자괴감을 떨쳐내기 어렵게 한다. 한마디로 이 사건들은 있을 수 없는 일들이고 있어서도 안될 일들이다. 동급생도 아니고 가장 나이어린 학년의 후배를 실신할 때까지의 비명 속에서도 끝내 집단폭행이 가능했다는 가해아들의 문제는 결국 어떻게 이런 병적심성이 길러질 수 있었는가의 문제가 된다. 이것이 가해아 1명의 소행이라면 또 개인적 이상증상으로 미룰 수도 있다. 그러나 4명의 합작이면 우리는 이러한 성향의 배경을 개인적인 환경에서만 찾을 수도 없다. 말하기는 싫지만 사회적으로 너무 자주 눈에 띄고 있는 폭력과 인명경시의 경향이 이제 미성년아들에까지 파급되어 있다는 가정을 해볼 수밖에 없다. 남자 고교생 50여명의 무용수 건만 해도 그저 한 대학생이 출연료를 갈취했다는 사안만은 아니다. 누구나 미성년 학생들을 모아 무용단을 조직할 수 있고 또 이렇게 조직한 팀으로 대충 훈련을 시킨 뒤 TV출연까지도 가능하며 더 나아가 유흥업소 무대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사회적 구조가 더 어이없고 답답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고 이것에 기생하는 젊은이를 구속했다. 구속했으므로 문제를 종결한 것이 아니라 구속을 통해서 우리는 무질서하고 무논리적인 우리 사회의 혼란스런 관리체계를 확인한 것이다. 이런 구조속에서 어떻게 우리는 이 사회의 건전성을 추구해 갈 수 있는가가 너무 막연해 보이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이 무엇보다 명백하게 실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청소년들에 대한 인성교육의 부재현상이다. 인성교육이란 무엇인가. 심심단련ㆍ질서의식ㆍ사회적응력ㆍ협동심ㆍ인간관계의 개선능력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어느것도 조금이나마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겐 없고 오히려 청소년들은 점점 더 집단적으로 정신적ㆍ정서적 불건강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증상들만 확인되고 있다. 어제 발표된 한국사회보건연구원 조사에서도 중고생 62%가 자살충동을 느끼는 정서불안정 상태에 있고 또 이로 인해 20%가 음주를,68%가 진통제복용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연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에는 중고생 72%가 돈내기 도박을,20%가 편싸움을,25%가 금품탈취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이들이 모두 이 세태를 극복하며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육의 내용도,사회의 환경도 어떤 개선이 없이 그대로 계속되어서는 이 희망은 불가능한 것이다. 청소년대책의 혁명적 접근이 더 급히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모델 모집 허위광고 1천8백만원 사취/심사비 명목 갈취

    서울시경은 6일 임종래씨(37ㆍ의류판매업ㆍ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 2동51호)를 사기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임씨는 지난해 8월1일 모일간지와 주간ㆍ월간지에 「모델활동비를 지원하고 상금 5백만원과 해외연수 특전을 준다」는 내용의 모델지망생 모집광고를 허위로 내고 이를 보고 찾아온 윤모양(21ㆍE여대 무용과2년) 등 1백53명으로부터 심사비명목으로 1인당 3만5천원씩을 받은뒤 같은 15일 최종선발된 최모양(19) 등 49명으로부터 다시 교육비명목으로 1인당 25만원씩을 받아 모두 1천8백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 기습폭설 3일… 엇갈린 명암/차량체인ㆍ염화칼슘 없어서 못팔고

    ◎난방점ㆍ고궁 사진사들 즐거운 비명/술집등 유흥업소선“엎친데 덮친격”울상 연 3일간의 폭설로 많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피해를 본 반면 일부 상인들은 오히려 뜻밖의 호황을 누리는 등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폭설로 가장 득을 본 사람들은 차량용 체인과 스노 타이어를 파는 자동차 부속품상들과 난방기구상들로 평소보다 3∼5배나 많이 몰려드는 고객들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올렸다. 자동차 체인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거산상사의 경우는 3일동안 차량 5백여대분의 체인을 판매,재고가 동이 났다. 백화점과 시장 등에서도 난로와 오리털파카 등 쌓여있던 겨울용품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롯데백화점과 미도파백화점 등 일류백화점 관계자들은 『지난주까지 난로가 하루 2∼3대,오리털파카가 약 4백만∼5백만원어치 팔렸으나 지난 3일간 매상이 갑절이나 늘었다』고 말했다. 또 경복궁ㆍ창경궁 등 고궁에도 하루평균 2백여명 정도 찾아오던 관람객들이 최근에는 무려 10배이상 늘어나 2천∼3천명에 이르러 사진사들이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또 3일동안 전국에 뿌린 염화칼슘의 분량이 5만7천부대나 되어 생산업체인 D화학은 2억1천7백여만원의 판매고를 올렸고 염화칼슘 공급량이 모자라 서울시의 경우 국내 처음으로 염화칼슘 대신 소금 6천6백가마 2천6백40만원어치를 구입하여 각 구청마다 3백가마씩 배당하는 바람에 제염업자들도 뜻밖의 재미를 봤다. 서울 지하철도 이번 폭설 기간동안 승객이 평소보다 하루평균 1백여만명이나 늘어난 3백여만명이 몰려 6억2천여만원의 추가 수입을 올렸다. 반면 시민들이 일찍 귀가한데다 심야영업시간 단축까지 겹쳐 술집 등 유흥업소는 된서리를 맞아 울상을 지었다. 또한 건물신축공사 등 각종 공사장에서도 폭설로 공사가 중단,이곳에서 일자리를 갖고 있는 일용잡부들이 일감을 얻지 못해 평소 새벽5시쯤이면 50∼2백명 정도의 인부들이 몰렸던 서울 동작구 사당동과 신촌로터리 일대의 「인력시장」이 문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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