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비명
    2026-07-25
    검색기록 지우기
  • H200
    2026-07-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618
  • [마광수의 섹스토리] ① 어느 여대생의 ‘에덴동산’여행

    나는 어느날 대낮의 환몽(幻夢)중에 지상낙원이라는 에덴동산엘 가보았다. 그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신 더 야(野)한 곳이었다. 나는 에덴동산은 문명화되기 이전의 곳이라서 원시적인 모습을 상상했었다.‘성경’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처음에는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덴동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인공미’와 ‘섹시미’의 극치였다. 나는 처음엔 아담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잘생긴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계란형 얼굴에 쌍꺼풀 진 눈, 제대로 오똑 솟아있는 코, 잘 빠진 인중, 그리고 조금 아래 있는 빨간 입술. 그 아래 다듬은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 2㎜ 정도 자라난 콧수염과 턱수염에서 난 페티시(fetish)를 느낄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아담의 속눈썹이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조 속눈썹 같아 보였다. 흡사 여장남성(transvestite)을 보는 듯했다. 하느님이 ‘야한 외모’ 중심주의자이시기 때문에 아담에게 속눈썹을 붙이라고 요구했든지, 아니면 아담 스스로가 나르시시즘에 겨워 긴 인조 속눈썹을 붙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의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었다. 그 손가락은 Y대 M교수의 긴 손가락들을 연상시켰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 보이는 관절의 움직임조차 아름다웠다. 왼손 검지와 오른 손 검지에는 실 같이 가는 얇은 금사(金絲)가 둘둘 말려져 있었고, 왼쪽 새끼 손가락과 오른 손 약지, 새끼 손가락에는 큼지막한 메탈로 된 커다란 반지들이 끼워져 있었다. 물론 손톱들도 다 10㎝ 넘게 길러져 있었다. 그는 위에는 안이 훤히 비치는 메시로 된 파란색 저지를 입고 있었는데, 이게 바로 무화과 나뭇잎 그물 옷인 듯했다. 웃옷이 비치지 않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의 가슴 근육과 배 근육을 볼 수 없어 무지 안타까웠을 것이다. 액세서리들로 온몸이 감싸인 그는 제대로 된 ‘힙합맨’이었다. 나는 평소에 힙합에 관심이 많아 ‘힙합 스타일’의 남자를 보면 눈을 떼지 못했는데 아담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완벽했다. 연한 베이지색 듀렛을 써서 머리를 깔끔하게 밀착시키고 그 위에는 앞이 가죽으로 된 메시캡을 옆으로 15도 정도 기울여서 썼다. 그리고 배꼽까지 내려오는 긴 메탈 목걸이를 두개나 걸고 팔에는 황금 암릿(armlet)과 팔찌를 하고 있었다. 특히 두 젖꼭지에 박혀 있는 커다란 피어싱(piercing) 고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아담의 손가락을 유심히 쳐다보고 나서 그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살풋했다. 나는 그의 긴 손가락을 하나씩 살짝 잡아당겨 보았다. 그리고 긴 손톱 끝부분을 깨물어보기도 하였다. 재미있었다. 정말로 갖고 싶은 손이다. 나는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게 더 많다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심볼에 손을 갖다 대봐요. 그리고 내 신체 부위중 아무 곳이나 긁어보세요.” 그래서 나는 그의 심볼을 살며시 잡아 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페니스 한 가운데 커다란 황금 링이 피어싱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저 심볼을 갖고서 인터코스를 하면 여자의 질(膣)에 얼마나 큰 오르가슴을 선사할까’하는 생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담은 자기도 역시 나의 치구(恥丘) 부근을 슬금슬금 쓰다듬어 주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야한 사람’을 좋아하셔서 나같은 남자한테도 여자처럼 치장할 권리를 주었죠. 그래서 나는 어느새 ‘탐미적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랍니다. 손톱이 짧으면 오히려 남을 할퀴게 되지요. 그렇지만 손톱이 길면 손톱이 부러지는 게 아까워서라도 남을 할퀴지 않게 되거든요.” 아담의 얘기를 듣고나서 나는 어서 빨리 이브를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아담에게 이브를 소개해달라고 졸랐다. 아담이 내 곁에서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이브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브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섹시하고 야(野)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적어도 3m는 될 것 같은 긴 머리는 하늘색으로 염색되어 중간중간에 흰색과 노란색으로 블리치가 되어 있었다. 이 긴 머리를 앞머리와 옆머리는 남긴 채 가체(假 )처럼 틀어올린 모습이 무척이나 관능적이었다. 가체 위에는 여러개의 나비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장식품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나비인 듯했다. 위 아래로 헐렁하게 붙어있는 연보라색 원피스는 속이 훤히 비치는 시폰 소재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가슴을 깊게 파 옷깃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미게 되어 있었다. 허리에는 굵은 요대(腰帶) 비슷한 황금벨트 장식이 있고 모든 옷 끝마다에는 은빛 레이스가 연결돼 있어 여성스러움이 돋보였다. 손톱의 길이는 15㎝가 넘었고 손톱 끝에는 아주 가느다란 황금 체인들이 꿰어져 있었다. 특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음부(淫部) 부분을 온통 뚫어놓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질구(膣口)에서는 두 개의 사파이어 사슬이 무릎 근처까지 늘어져 내려와 있었는데, 하나는 음순걸이였고 하나는 클리토리스걸이였다. 나는 이브의 섬뜩한 염정미(艶情美)에 놀라 어째서 이토록 야한 몸매를 갖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브는, “하느님이 워낙 야한 여자를 좋아하셔서 이렇게 차린 것이랍니다. 당신도 에덴동산으로 들어오고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 야한 여자가 되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이브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짙디짙은 화장이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 옷색깔에 맞추어 연보라색 아이섀도우를 칠하고 아이 라인을 눈꼬리 바깥까지 길게 뻗어나가게 하여 더욱 신비감이 난다. 그리고 왼쪽 눈에는 하늘색 콘택트 렌즈를, 오른쪽 눈에는 노랑색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었다. 특히 숱이 많고 길이가 긴 황금색 인조 속눈썹이 인상적이었다. 립스틱 대신 파란색 글로스 틴트를 바른 입술은 두터운 입술 고리와 함께 더욱 음음(淫淫)한 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내가 멍청한 모습을 하고 있자 이브는 매트릭스와 쿠션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 만큼 크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 사이에서 뭔가를 꺼냈다(이브의 옷에는 주머니란 게 없다. 그녀의 두 가슴 사이가 주머니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스프레이식 파운데이션이었다. 그녀는 햇볕 때문에 화장이 번진다면서 스프레이를 자신의 얼굴에다 대고 뿌렸다. 스프레이에서 나오는 미세입자 하나하나가 그녀의 얼굴 표면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꺄약’하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스프레이를 잡고 있는 오른 손에서 파아랗고 창백한 핏줄이 보였다. 이브의 가느다란 팔목에 있는 형광색 팔찌 세 개 아래로 힐끗힐끗 엿보이는 힘줄 두 개가 나를 이상하게도 흥분시켰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전혀 새로운 페티시였다. 또 이브는 남자같이 허스키한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 묘한 양성성(兩性性)을 느끼게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한번 멋진 페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때 아담이 문득 끼어들었다. “우리는 생식을 위한 성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모든 게 다 비생식적인 성희(性戱)뿐이지요. 남자든 여자든 ‘정력’보다 ‘정열’이 더 중요해요. 부디 이 말을 명심하세요.”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내 앞에서 한뻔 멋진 성희 장면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그랬더니 아담은, “그건 뭐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성희를 봐줄때 더 노출증적인 쾌감을 느끼니까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두 사람의 페팅이 내 앞에서 시연되었다. 두 사람은 먼저 옷을 훨훨 벗어던지고 식스티 나인(sixty-nine) 형태로 포개졌다. 그러고는 서로가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펠라티오와 쿤닐링구스를 하는 것이었다. 이브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이따금 아담의 페니스를 자극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아담은 자신의 수염을 이용하여 이브의 치구와 불두덩이 따끔거리도록 슬슬 비벼댔다. 두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구강성희를 즐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어느새 나의 음부 언저리는 애액(愛液)으로 흥건히 적셔졌다. “나도 빨리 애인을 구해 저런 페팅을 해봐야지. 그리고 먼저 손톱부터 길게 길러야겠다.”라고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약 력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 [길섶에서] 어떤 임종/우득정 논설위원

    어머니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닦아내려는 순간, 건너편 병실에서 비명에 가까운 여성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온다. 일순간 병실 환자들과 간병인들의 얼굴에 긴장된 빛이 스친다.‘또 누가 세상을 떠난 것일까?’행여 어머니가 충격을 받지나 않았을까 하고 되살펴보지만 지그시 감은 어머니의 눈에는 미동도 없다. 어쩌면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바심과 궁금증에 급히 건너편 병실로 나섰다.‘다른 환자들을 위해 울음소리를 좀 낮춰달라.’는 말이 입가를 맴돈다. 병실 침상의 환자 위로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여성의 어깨를 흔들며 “누나, 이러면 아버지가 편히 가실 수가 없잖아.”라며 스무살이 채 될까말까 한 청년이 울먹인다.1인실 병실에 붙은 환자 명패를 보니 ‘52세’다. 떠나보내기에는 서러운 나이다. 고인의 형제나 친척으로 보이는 이들이 휴대전화로 사망 사실을 알리는 사이, 병원 직원들이 서둘러 환자에게 부착했던 기계를 떼어내 철수한다. 이어 검은 관이 병실을 나선다.10분 남짓한 시간이다. 병실에서 짐을 챙긴 유족들이 간호사실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인사를 받는 간호사도, 이를 지켜보는 간병인들도 모두 텅빈 모습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하프타임] 한전 공정배감독 배구대표팀 맡아

    2005 V-리그에서 ‘프로팀 킬러’로 명성을 떨친 공정배(43) 한국전력 감독이 생애 첫 남자배구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대한배구협회는 20일 강화위원회(위원장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의 추천을 받아들여 공 감독을 최종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이날 발표된 세계선수권 아시아예선(6월17∼19일·카자흐스탄) 최종명단에는 2008올림픽을 내다보고 30대 선수들을 배제한 전면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예비명단에 포함된 정규리그 MVP 후인정(현대캐피탈)도 제외됐다.
  • [스포츠 라운지] 16세 최연소 양궁국가대표 이특영

    [스포츠 라운지] 16세 최연소 양궁국가대표 이특영

    새벽 5시 50분. 자꾸만 감기는 눈을 몇번이나 비벼보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도 보지만 아직 16살 소녀에게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투정은 잠시뿐. 얼른 마음을 다잡고 이슬이 촉촉한 운동장을 향해 총총 발걸음을 옮긴다. 하체 단련을 위해 400m 트랙을 5바퀴 돌면 몽롱하던 잠 기운은 싹 가시고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오후 9시까지 식사와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이어지는 건 훈련, 또 훈련뿐이다.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그에게 힘들지 않으냐고 걱정스레 물었더니 “국가대표로 운동할 수 있는 게 흔한 기회는 아니잖아요?”라고 당차게 되묻는다.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162㎝,52㎏ 자그마한 체구의 이 소녀는 한국 양궁 사상 최연소로 세계선수권대회(6월 20일, 스페인 마드리드) 출전권을 획득한 ‘여고생 궁사’ 이특영(16·광주체고 1년)이다. ●‘특별하게 빛나는’ 양궁 새별 ‘특별하게 빛난다’는 뜻을 가진 특영(特煐)이란 이름은 어머니 김칠순(50)씨가 지어줬다. 위로 언니만 넷이라 아들인 줄 알았다며 지은 이름. 하지만 가장 존경하는 선수라는 ‘신궁’ 김수녕(34)이 88서울올림픽 2관왕에 오를 때도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던 이특영은 이제 어머니의 예측대로 한국 양궁의 ‘새별’이 됐다. 광주 두암초등학교 4학년 체육시간. 피구 경기 중 특영이가 던지는 배구 공에 맞은 아이들은 저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코트 밖으로 나가야 했다. 평소 달리기도 으뜸인 특영이의 남다른 운동신경을 유심히 살펴 보던 양궁 코치가 활쏘기를 권유했다. 특영이는 “어릴 때부터 다트 게임을 좋아해 양궁이 어떤 운동인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궁금함만으로 힘든 운동을 견디기는 어려웠다. 한달 만에 그만뒀다. 미래의 새별이 빛도 발하지 못하고 사라질 뻔했지만 코치가 교실까지 찾아와 끈질기게 설득하는 바람에 다시 양궁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숨겨진 재능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솟아나온 건 2003년 5월 열린 32회 전국소년체전에서였다. 당시 동명중 2학년이던 특영이는 50m와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열린 같은 대회에서도 50m와 개인종합을 휩쓸었다. 군계일학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달 9일 2005 양궁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아테네올림픽 금메달 ‘트리오’ 박성현(22), 이성진(20·이상 전북도청), 윤미진(22·경희대 4년)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특영이는 “올림픽에 나갔던 언니들을 이겼다는 게 놀랍고도 기분 좋았지만 내심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고 돌아봤다. ●놀이공원 가고 싶은 소녀, 스페인 가다 쉴틈없이 달려와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지만 특영이는 아직 16살, 고1 소녀다. 인터넷 게임도 하고 싶고 놀이동산도 가고 싶다. 하지만 운동이 끝난 뒤 친구들과 채팅을 즐기는 것이 피곤함을 견뎌내는 소중한 힘이 된다. 게다가 투정만 부리지 않을 만큼 대견하기까지 하다. 특영이는 “김수녕 언니처럼 꾸준히 오랫동안 선수생활하면서 외국 대회도 자주 나가려면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다짐했다. 새달 2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세계양궁선수권대회가 첫 메이저대회 데뷔 무대. 또래보다 3∼4파운드 높은 44파운드짜리 활을 쓸 정도로 힘이 좋고 성격이 담대하면서 침착한데다 승부욕까지 뛰어나 김진호-서향순-김수녕-윤미진의 뒤를 이을 ‘여고생 궁사’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특영이는 “물론 세계대회에서 잘하고 싶지만 열심히 노력한 뒤에 오는 어떤 결과에도 만족할 것”이라고 주먹을 불끈 쥐면서도 “대회 끝나면 귀국하자마자 친구들과 피자 먹으러 가고 싶다.”며 어느새 또래 소녀로 돌아와 활짝 미소 짓는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진캐주얼 패션? ‘블루핏’에 물어봐

    진캐주얼 패션? ‘블루핏’에 물어봐

    ‘진(청바지)패션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패션계의 복고 바람과 불황이 맞물리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한 진캐주얼 패션이 올 들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는 20만∼30만원대 프리미엄급 진 제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전문매장들이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4층에 자리잡은 진캐주얼 전문매장인 ‘블루핏’과 ‘블루핏 애시드’가 바로 그곳이다. ●美·伊등의 상위 그룹 브랜드 선보여 지난해 3월 문을 연 ‘블루핏’은 프리미엄급 진캐주얼 멀티숍(편집매장).25평 규모인 이 매장은 미국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1∼2위를 다투는 진캐주얼 전문 브랜드만을 한데 모아 고급스럽게 꾸몄다. 노대영 진캐주얼 담당 바이어는 “‘블루핏’은 지난해초부터 진캐주얼이 인기몰이를 하고 멀티숍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매장이 각광받으면서, 이 두가지의 컨셉트를 접목한다는 차원에서 문을 열게 됐다.”며 “지난해 오픈한 이후 매출액이 매달 10∼20% 꾸준히 늘어나는 등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루핏’이 내놓은 제품은 ‘세븐 포 올 맨 카인드’·‘얼진’·‘프랭키B’·‘시티즌 오브 휴머니티’ 등 모두 16개 브랜드. 가격은 럭셔리(화려하고 고급스러운)한 제품들인 만큼 비교적 비싼 25만∼35만원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25만~30만원대 프리미엄급 인기 친구와 함께 쇼핑을 즐기던 박선희(26·여·서울시 성동구 옥수동)씨는 “집에 청바지 등 진캐주얼만 해도 10여벌이나 있을 정도로 진을 사랑한다.”면서도 “여기 제품들은 프리미엄급이어서 그런지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가격대가 비교적 높아 선뜻 손길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중 ‘세븐진’·‘조스’·‘시티즌 오브 휴머니티’·‘제임스’ 등은 간판 상품이다. ‘세븐진’은 지난 2000년 런칭(출시)해 할리우드 스타를 집중 공략, 고급 브랜드 반열에 올라선 제품. 주머니 등 장식적인 디테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자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뒷주머니에 로고인 ‘JJ’ 가죽 패치가 덧대어져 있는 ‘조스’는 특유의 워싱(색깔을 빼는 것)처리와 함께 예쁜 뒷모습이 매력 포인트이다. 찢어지거나 주머니에 다트(주름선)를 주는 등의 특별한 장식을 첨가, 마니아들을 유혹하고 있다. ‘시티즌 오브 휴머니티’는 부드러운 스타일과 세련된 워싱, 깔끔한 디자인이 강점이다. 주머니 부분에 입체적 느낌이 나는 아일릿 자수를 가미시킨 스타일이 시선을 모은다. 윤정연 진캐주얼 담당 바이어는 “‘제임스’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리미엄급 진캐주얼 제품에 진출한 브랜드”라며 “큰 주머니의 입체적인 다트 모양으로 엉덩이를 끌어올리는 히프업 및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어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밝혔다. ●10만원대는 ‘블루핏 애시드’에서 ‘블루핏’과 마주 보고 있는 진캐주얼 전문매장인 ‘블루핏 애시드’는 블루핏의 성공에 힘입어 올 2월 태어난 ‘블루핏’의 ‘새끼 브랜드’. 20평 규모인 이 매장은 ‘블루핏’과는 달리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소비자층을 겨냥한 까닭에 가격은 10만원대 안팎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쓰리닷츠’·‘프리피플’·‘트윌트웬티투’·‘J’ 등 7개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았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블루2’·‘본더치’·‘DOE’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선호하는 ‘블루컷’의 ‘새끼 브랜드’인 ‘블루2’는 유행보다 평범한 디자인과 특유의 데님(청바지)을 추구함으로써, 젊고 활력이 넘치며 발랄한 섹시함을 주요 컨셉트로 내세우고 있다. ‘본더치’는 피오루치·디젤·아메리칸 이글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디자이너 오디지오를 메인 디자이너로 영입해 모자·티셔츠·데님의류 등을 선보이면서 빠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DOE’는 월트디즈니 캐릭터인 ‘밤비’로 다양한 모양의 면티셔츠로 귀여운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젊은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나온 이현정(21·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씨는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심플한 티셔츠를 고르고 있다.”며 “블루핏 애시드의 디자인 대부분이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쳐 보이는 스타일로 꾸며져 젊은층이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진(청바지) 패션 열풍에 힘입어 올해의 진패션은 다양한 데님이 등장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로 라이즈 진’과 ‘부츠컷’이 대표적인 인기 품목이다. ‘로 라이즈 진’은 청바지 벨트 부분을 3∼4인치 밑으로 내려 골반뼈가 보이도록 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몸매를 날씬하게 하고 허리선의 굴곡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줘 보다 섹시한 느낌을 준다. 윤정연 진캐주얼 담당 바이어는 “이 제품은 골반이 살짝 드러나면서 다리가 골반뼈에서 시작되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켜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해 키 작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의자에 앉았을 때 속옷이 보일 수 있는 단점이 있는데, 최근에는 이를 보완한 허리선이 밀착되도록 처리한 제품도 나왔다.”고 소개했다. ‘부츠컷’의 인기도 지난해에 이어 지속될 전망이다. 보통 ‘나팔바지’라고 불리는 ‘부츠컷’은 허벅지는 약간 붙고 바지 밑으로 내려 갈수록 살짝 넓어지는 스타일이다. 올해에는 배에 꽂히는 시선을 분산시키는 앞 주머니나 엉덩이를 예쁜 모양으로 감싸주도록 하는 뒷주머니에 힘을 쏟는다. 청바지 디자인의 한 요소인 바지 뒷주머니는 위치를 조금 올려 다리를 길어 보이게 했다. 여러가지 바느질 장식과 다양한 링클(반짝이)을 가미해 한층 더 화려해졌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핑거푸드?

    |윌밍턴(미 노스캐롤라이나주) 연합|미국의 한 가게에서 판매된 초콜릿 아이스크림에서 사람 손가락이 나와 아이스크림을 즐기려던 고객이 기겁하는 일이 벌어졌다. 클래런스 스토어스란 이름의 남자는 지난 1일 밤 윌밍턴에 있는 디저트 가게 ‘콜즈 프로즌 커스터드’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 한 통을 샀다. 스토어스는 이 아이스크림을 집으로 가져가 먹던 중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지만 처음엔 가게 주인이 아이스크림 속에 깜짝 선물로 넣은 캔디라고 생각하고 입에 넣었다. 아이스크림을 혀로 녹이자 그는 이상한 느낌을 받고 그대로 내뱉었다. 그는 현지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뱉을 때까지도 그것이 정확히 뭔지 몰라 부엌으로 가져가 물로 씻어봤다”며 “그리고 (사람 손가락인 것을 알고) 비명을 질렀다.”고 말했다. 스토어스는 가게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내기 위해 변호사와 접촉할 예정이다. 문제가 된 가게의 주인은 “커스터드를 처리하는 기계를 맡은 직원이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지만 잘린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다.”며 황당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 스리랑카에서 佛心을 배우다

    스리랑카에서 佛心을 배우다

    고요함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 스리랑카를 아십니까. 열대성기후의 홍차가 많이 나는 나라 스리랑카는 찬란한 고대 불교문화와 태곳적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7곳이나 있는 보물 같은 나라가 바로 스리랑카이기도 합니다. 인도양에 외로이 한 점 떠있는 스리랑카, 홍차 향기가 그윽한 고요와 자비의 나라를 소개합니다. 스리랑카는 전국이 문화유적지라고 할만큼 고대 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유적지는 아누라다푸라와 폴로나루와, 그리고 캔디를 잇는 이른바 문화삼각지대와 시기리야에 몰려 있다. 그중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유산은 모두 7곳.200m 높이의 커다란 바위산 위에 지어진 왕궁인 ‘시기리야락’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곳. 우선 바위산으로 달려갔다. ●비명과 탄성을 지르는 4시간 수도인 콜롬보에서 시기리야까지는 169㎞. 자동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콜롬보를 빠져나가자 도로가 장난이 아니다. 편도 1차선 국도는 울퉁불퉁해 자갈밭을 달리는 것 같다. 달려오는 자동차와 부딪칠까봐 아슬아슬하다. 그렇게 좁은 도로를 추월하며 질주하는 버스. 앞에 마주 달려 오는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스리랑카의 근거리 교통수단)은 알아서 피해가라는 듯 마구 추월하며 경적을 울려댄다. 이방인의 눈에 도로는 무법천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나름의 룰이 있다고 한다. 이 룰을 모르고 운전대를 잡았다가는 5분도 못가서 사고가 난다고 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야자수와 이름 모를 나무들로 뒤덮여 있는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세계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스리랑카만의 자랑이다. 짐짝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며 어렵게 도착한 시기리야는 천둥과 벼락이 한창이었다. 서둘러 호텔로 들어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아침에 눈을 떴다. 붉은빛을 잔뜩 머금은 태양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카메라를 챙겨 스리랑카의 아침을 담으려고 서둘러 7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눈을 뗄 수 없는 황홀경에 숨이 막혔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칸달라마 호수가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지저귀던 새들도 잠깐 숨을 고르는 듯 조용했다. 아니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서니 하나의 점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보다 크기는 작지만 태곳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스리랑카, 그 아름다움을 둘러싸고 있는 고요함. 시간이 멈춘 듯한 나라, 스리랑카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계 제8대 불가사의 누가 높이 200m 바위 위에 궁전을 지었을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궁금증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5세기, 아누라다푸라를 지배하던 다투세나왕의 장남 카샤파는 왕족 출신 어머니를 둔 이복동생 목갈라나와는 달리 평민 출신 어머니를 둔 탓에 동생에게 왕위가 돌아갈 것을 몹시 우려해 아버지를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동생 목갈라나의 보복이 두려웠을까, 아버지를 살해한 후회와 고통 때문이었을까 카샤파는 신들린 사람처럼 시기리아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위에 궁전을 세웠다. 그러나 11년 후 인도에서 군대를 이끌고 온 이복동생과 싸움에서 패한 카샤파는 자살하고 말았다. 젊은 왕자의 광기어린 행동이 후대에 세계 문화유산을 남겼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임에 분명하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거대한 바위산만이 보였다. 올라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저렇게 큰 바위산 위에 궁전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1500년 만에 깨어난 미녀들 정상까지 계단은 1200개. 무더운 날씨에 20분 오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기리야 벽화가 기다리고 있다. 1875년에 우연히 이 바위산을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던 영국인에 의해 처음 발견된 ‘시기리야 레이디’는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벽화이다.1400년 긴 잠에서 깨어난 미녀들은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처음에는 500명이 넘는 여인들의 그림이 있었지만 지금은 훼손되어 18명밖에 남지 않았다. 2000년이 지났건만 빛나는 색채는 아득한 시간의 흐름조차 잊게 한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미녀들의 농염한 자태와 신비스러운 표정은 오히려 현대적이라 놀랍기까지 하다. 광기 어린 젊은 왕이 남겨놓은 최고의 걸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니 참 재미있다. 벽화 밑쪽에 있는 ‘미러 월’은 달걀 흰자와 꿀, 석회를 섞어 칠한 다음 표면을 문질러 밝게 빛나는 벽을 만들었다. 신기하게 거울처럼 보이진 않지만 언뜻언뜻 비치는 자신의 형체가 보인다. 조금 더 걷자 드디어 평지가 나온다. ●사자 입속으로 올라가는 궁전 발톱이 날카로운 사자 두 발 사이에 궁전 입구가 있다. 예전에는 다리와 머리가 있어 사자가 크게 입을 벌리고 앉아 있는 형상었다. 바로 여기 때문에 이곳의 이름이 시기리야로 정해졌다. 사자를 의미하는 ‘싱하’와 산을 의미하는 ‘기리얀’이 합쳐진 단어다. 또한 스리랑카의 국기도 칼을 든 사자가 자리잡고 있듯이 스리랑카인의 70%가 넘는 싱할라족은 스스로를 사자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철계단을 통해 올라간다.10여분만 올라가면 정상이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린다. 난간을 잡은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도대체 철계단으로 올라가도 이렇게 힘든데 2000년 전 그들은 어떻게 바위 정상까지 벽돌을 나르고 음식을 나르며 궁전을 만들었을까.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정상에 오르니 4800평 평지에 궁전과 연회장, 수영장 등 나타내는 벽돌들이 가득 박혀 있어 당시의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200m 높이의 바위 꼭대기에 수영장이라니…. 어이가 없다. 물이 지상에서 공급된다고 하는데 그 방법은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천륜을 어기고 얻어 권력의 두려움에 암벽 꼭대기로 도망쳐 온 카샤파. 불안과 고독에 몸부림쳤을 그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를 안쓰러워했을까. 카샤파가 앉아 무희들의 공연을 감상했다는 돌 평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권력욕 때문에 허망하게 생을 마친 왕의 평상에 앉아보니 욕심에 차서 살고 있는 세상사가 모두 허무해진다. ●이름처럼 예쁜 도시 캔디 몇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싸우고 배신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 끊이지 않는 인류를 향해 시기리아락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도다.” 스리랑카가 동방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면 캔디는 그 중에서 가장 빼어난 멋을 가진 곳이다. 완만하게 경사진 지붕을 얹은 전통 건축물들과 아름다운 호수, 푸른 나무와 풀들 등으로 인해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로 꼽힌다. 캔디는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북쪽으로 129㎞ 떨어져 있고 해발 465m에 자리잡고 있다. 인도의 잦은 침략에 남쪽으로 도시를 계속 옮기던 싱할라 왕조는 14세기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 무려 350여년 동안 이곳에서 고대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캔디는 스리랑카 사람들에겐 정신적인 고향이자 안식처다. 바로 부처의 치아 사리를 모셔놓은 불치사가 있기 때문이다.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 볼 만하다. 흰옷을 입고 연꽃과 향을 두 손에 든 순례자들의 행렬이 인상적이다. ●자비가 흐르는 황금사원 담불라는 캔디와 아누라다푸라를 연결하는 간선도로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순례자와 관광객들로 붐빈다. 산중턱에 위치한 석굴사원까지 맨발로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담불라의 석굴사원은 커다란 바위를 파내어 만든 5개의 석굴이 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제1석굴 안의 황금빛 와불. 길이 15m의 와불이 열반에 들 자세로 누워 있다. 발바닥에 그려놓은 불꽃 같은 꽃무늬도 강렬하고 현란하다. 나머지 석굴에도 수십개의 불상들과 벽화 등이 있다. 담불라는 180m 높이의 흑갈색 바위산이지만, 석굴안의 불상과 벽화는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래서 담불라를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뜻이 담긴 ‘란 기리’라고도 부른다. ■ 미리 알고가세요 스리랑카는 연 평균 30도에 가까운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온으로 습도가 매우 높다. 햇빛이 강해 선글라스, 자외선차단제와 모자 등은 필수. 현지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3시간 늦다. 화폐는 주로 루피가 쓰이며 미국 1달러가 96루피 정도다. 환전은 공항에서 하는 것이 좋다. 음식은 커리(인도식 카레)와 라이스(안남미)가 주를 이룬다. 밀크라이스라는 전통 음식은 우유와 안남미를 넣고 찐 것으로 우리나라 백설기와 맛이 비슷하다. 석가모니가 열반을 했을 때 제일 먼저 공양을 했던 음식이라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직항은 없고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혹시 배낭여행이나 개별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콜롬보에 있는 한국인가이드 정은희(001-94-776-322-589,eunicejung@hotmail.com)씨에게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가야여행사에서는 스리랑카 문화유적 탐방 5일 상품을 129만원에 판매한다. 모든 일정에 식사를 포함한 옵션이 포함되어 있다. 일정도 캔디, 시기리아락, 석굴사원과 네곰보 해변 등 스리랑카의 전반을 둘러볼 수 있게 알차게 꾸며졌다.(02)536-4200,www.kayatour.co.kr 글· 사진 스리랑카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한류열풍에 가려진 열악한 기초예술현장

    한류열풍에 가려진 열악한 기초예술현장

    대학로 흥행연극 ‘관객모독’에 출연중인 배우 전수환(40)씨. 그는 요즘 무대에 설 때마다 뿌듯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3년여의 외도 끝에 돌아온 연극무대가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엔 가족을 속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고교를 졸업하고, 극단 76단에 입단해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며 무대밥을 먹은 지 20여년. 무작정 좋아서 뛰어든 일이라 수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밥벌이는 포장마차 등 아르바이트로 대신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한해 2∼3개 작품에 출연해서 받는 돈은 고작 600만∼700만원. 여기저기 빌린 생활비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를 악물고 무대를 떠났다.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난생 처음 월급이란 걸 받았다. 그렇게 3년을 일해 빚을 거의 다 갚을 때쯤 딴 마음이 생겼다. 지난 연말 극단에서 연락이 오자 그는 망설임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아내에게는 ‘잘렸다.’고 거짓말했다. 아내는 지금도 그가 새 직장을 잡을 때까지만 연극무대에 서는 줄 알고 있다. 언제 들통날지 모를 상황에서도 그는 “무대에 서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며 미소지었다. 전씨의 사례는 2005년 대한민국 연극인들의 실상이자, 한류열풍의 그늘에 가려진 국내 기초예술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한류를 이끈 가수, 탤런트, 영화배우들이 ‘문화산업’의 주역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소설가, 시인, 화가, 공연예술인들은 생계를 걱정하며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게 우리 문화계의 양면적인 현실이다. ●4대보험 ‘사각’… 고용·산재가입 10% 미만 지난 6일 한나라당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연극배우의 현실과 발전방향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선 벼랑 끝에 몰린 연극인들의 육성이 거침없이 터져나왔다.‘에쿠우스’ 등 수많은 연극과 TV드라마, 영화에 출연해온 중견 배우 강태기(54)씨. 그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노동판이나 아르바이트 현장을 전전하는 배우들이 허다하다.”면서 “부를 누리거나 융숭한 대접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문제에 신경쓰지 않은 채 창작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우 김지숙(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씨는 “연극계가 어렵다는 얘기는 수십년 전부터 있어 왔지만 이젠 정말 절벽앞에 선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연극협회가 지난해 9월 전국 연극인 6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는 이같은 현실을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준다. 조사 당시 연극인들의 월평균 소득은 23만 2000원. 일반 임금노동자의 최저임금(56만 7000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작품당 평균 수입은 55만 7100원. 응답자의 41%가 임시직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극배우협회가 지난 연말 배우 300명을 전화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더 열악하다. 월 평균수입이 10만원도 안된다는 응답이 65%를 넘었다. ●“생존권 보장을” 지난 한달 파업도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회안전망 제도인 4대 보험(고용, 산재, 의료, 국민연금)제도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 연극협회 조사에서 93%는 산재보험에,92%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연금 미납률과 의료보험 미가입률도 각각 67%와 40%에 달했다.‘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는’연극인들의 비참한 현주소다. 배우협회가 ‘관객을 볼모로 삼는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지난 4월 한달간 ‘파업’을 감행한 것은 이런 절박한 현실인식에 따른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사상 유례없는 배우들의 집단행동은 그 순간마저도 어쩔 수 없이 생계를 택해야 하는 배우들의 대거 이탈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허현호 배우협회장은 “‘춥고 배고픈’이라는 수식어를 멍에처럼 짊어지고 사는 연극인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위안삼았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열악한 현실은 물론 연극인들만의 것은 아니다. 문학, 미술, 전통예술, 무용 등 기초예술 장르 전반에 걸친 공통된 문제다. 국악인 김덕수씨는 “전국 20여개 한국음악과에서 매년 1000명에 가까운 졸업생들이 배출되지만 취업은 가뭄에 콩나듯 하는 실정”이라며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른 분야로 전업하거나 시간당 2만원 내외의 중·고교 특기적성교육 강사로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권기금 지원 받아 ‘가뭄에 단비’ 현장 예술인들의 절박한 비명에 정부와 정치권도 서서히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로또복권 등으로 조성된 복권기금 446억원이 문화예술진흥사업에 투입된 것은 아쉬운 대로 타는 가뭄 끝에 만난 단비였다. 한나라당에 이어 열린우리당도 지난 6일 문화예술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정치권의 관심도 달아오르고 있다. 허현호 배우협회장은 이날 오전엔 한나라당 토론회에, 오후엔 열린우리당 문화특별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하느라 바빴다. 정략적인 접근이라는 비아냥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전시성 행정 대신 기초예술인들에게 실질적인 지원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그나마 실낱 같은 희망을 갖게 한다. 2003년, 세계 대표적 공연예술축제인 프랑스 아비뇽축제가 공연예술인들의 파업으로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년에 507시간 이상을 일하면 일년치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던 것을 열달반 동안 같은 시간 일해야 8개월치 실업수당을 받도록 법을 개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연차 서울에 체류중인 영국 연출가 글렌 월포드는 “영국에선 배우, 연출가, 스태프가 참여하는 조합이 정당한 임금 지급과 시간당 보수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로선 갈 길이 먼 셈이다. 문화관광부 김영산 기초예술과장은 “오는 7월 문예진흥원이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면 좀더 실효성 있는 지원이 마련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예술교육에 힘을 기울여 문화예술향수층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튼튼한 뿌리 없이는 아름다운 꽃과 탐스러운 과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한 자연의 이치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수입 1% ‘아름다운 기부’ 기초예술의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연극인 스스로가 발벗고 나섰다. 연극인들의 복지를 위한 재단이 20일 오후 6시 문예진흥원 대극장에서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연극인복지재단은 기초예술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열악한 제작 여건으로 빈사 상태에 빠진 연극인들을 지원하고자 만든 모임. 지난해 11월 재단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 배우 박정자씨를 대표로 뽑았다. 추진위원으로는 김미혜 한국연극학회장,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 이종훈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 윤석화 월간 객석 대표 등 15명의 연극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재단의 대표적인 사업은 연극인 1%기부 운동. 연극배우들은 출연료, 극단이나 기획사는 매표 수입의 1%를 자발적으로 재단에 기부하는 운동이다. 출범을 앞두고 박대표 개인 후원 모임인 꽃봉지회와 극단 자유 이병복 대표, 그리고 배우 윤석화씨가 각각 1000만원을 기부해 총 3000만원의 기금이 모인 상태다. 재단은 이 기금을 토대로 연극인 기금을 위한 공제회 설립, 연극인 생계지원, 연극인 자녀 학비지원, 의료 지원 등의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박 대표는 “재단의 설립은 연극인 모두를 위한 희망의 첫걸음이자 연극인 스스로 현실 개혁의 주체가 되는 중요한 터전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20일 열리는 출범식에는 연극인뿐만 아니라 정·재계 인사 등 1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기초예술 살아야 문화산업도 성장” “그동안 ‘순수예술’로 불러왔던 핵심 장르를 ‘기초예술’의 개념으로 재정립하고, 그 중요성을 널리 인식시켰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심재찬(연극 연출가)기초예술살리기범문화예술인연대 공동상임집행위원장은 지난 1년간의 성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갈수록 황폐해져 가는 문화적 토양을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면서도 막상 대처방안에 대해서는 무기력했던 예술인들이 마침내 머리를 맞대고 분야별 실태조사와 대안 마련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큰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 지난해 4월 출범한 기초예술연대에는 장르와 이념적 성향 등을 뛰어넘어 60여개 문화예술단체가 한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는 “문화산업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산업적이지 않은 분야들은 불필요하다는 식으로 오도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기초예술연대의 출범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현안”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예술현장의 실태가 심도있고 현실감있게 파악된 적이 없고, 그로 인해 문화정책 또한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졌다는 데 대한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기초예술연대는 지난 한해 연속포럼을 통해 내부적으로 장르별 현황과 정책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국회와 문화관광부, 문예진흥원 등을 상대로 새로운 예술정책 설정을 촉구하는 등 외부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심 위원장은 “초반엔 기초예술은 물론이고, 예술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정치인들을 보면서 ‘아,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면서 “지속적인 설득 끝에 로또기금을 문화예술계로 끌어들인 건 대단한 성과였다.”고 돌아봤다. 향후 기초예술연대의 과제는 조만간 전문민간인으로 새롭게 구성될 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해 현장 중심의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것. 그는 “창작의 질을 높이는 방안과 예술교육의 정착이 궁극적인 해결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동양의 맛으로 오스트리아인 사로잡은 전미자 아카키코 사장

    동양의 맛으로 오스트리아인 사로잡은 전미자 아카키코 사장

    |빈 함혜리특파원|오스트리아 빈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보면 특이한 광고 간판이 눈에 띈다. 현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동양 여자의 얼굴을 그려 넣은 ‘아카키코(AKAKIKO)’의 광고판이다.‘아카키코’는 빈 시내에만 10개의 체인점을 두고 있는 아시아 요리 전문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아카키코의 하루 총 고객수는 3000명이 넘는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오스트리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주인공 전미자(48) 사장을 시내 중심가의 ‘S’백화점 식당가 아카키코에서 만났다. ●오스트리아 여성 경제인 50인에 아카키코는 지난 1994년 빈 시내 백화점 식당가 한 구석에 1호점을 낸 지 11년 만에 연 매출 200억원에 이르는 사업체로 성장, 현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전 사장은 몇해째 오스트리아의 경제 전문잡지 ‘비르트샐트블라트’와 ‘비에네르린’이 선정하는 여성경제인 50인에 꼽히고 있다. 전 사장은 “경기침체로 모두들 고전하는 요즘에도 매상이 올라간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도대체 비결이 무엇일까. “아시아 요리는 무척 다양하고 맛이 독특하지만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그다지 친근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서구인의 식성에 맞는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고, 편안하게 아시아 요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식당의 분위기를 꾸몄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맛이다. 전 사장은 “빈 시내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아카키코를 즐겨 찾는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는 대략 120종이나 된다. 한국, 중국, 일본, 태국의 전통 요리 이외에 전 사장이 요리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개발한 퓨전 요리들이다. “요리는 할 줄 모르지만 맛을 보고, 잔소리는 좀 할 줄 안다.”는 전 사장은 전 세계의 요리책을 닥치는 대로 보고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 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성공의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80명의 요리사와 150명의 종업원들에게 언제나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도록 교육하고,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고객의 만족을 최고로 중시하라고 강조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살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인 전 사장은 말로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주방과 테이블을 오가면서 식재료의 품질과 위생 상태, 맛, 서비스를 점검한다. ●테이블 회전 위해 커피는 안 팔아 일본 식당을 연상시키는 이름 ‘아카키코’는 서구인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으로 국제 상표등록까지 돼 있다. 또 음식점의 위치는 항상 최고로 좋은 자리, 접근이 쉬운 장소를 택한다. 테이블 회전이 빨라지도록 하기 위해 커피는 팔지 않는다. 그는 “음식점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이 잘돼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음식 맛이 좋고, 종업원은 친절하고, 가격도 적당하고, 분위기까지 좋은 집은 금방 입소문이 나고 고객들이 알아서 제 발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아카키코의 고객은 99%가 현지인이다. 전 사장은 “고객 중에는 담백한 요리를 먹었더니 건강이 좋아졌다면서 일주일에 3∼4차례씩 찾는 단골도 많다.”며 “아이들은 ‘아카키코’에서 식사하는 것을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먹는 것보다 좋아할 정도가 됐다.”고 자랑했다. 아카키코 4개점은 오스트리아 레스토랑 가이드가 선정한 500개 식당에 올라있다. 아카키코의 동유럽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전 사장은 보다 간편하게 담백한 아시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아시안푸드 전문 패스트푸드점 ‘고 웍(Go Wok)’을 시작했다. 웍(Wok)은 중국 요리나 태국 요리를 할 때 쓰이는 속이 깊고 커다란 프라이팬이다. 즉석에서 웍을 이용해 요리를 해 주는 ‘고 웍’은 젊은 층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빈 시내에 있는 1호점에 이어 지난해 12월초 린츠 역사에 ‘고 웍’ 2호점을 선보인 그는 앞으로 새롭게 보수하는 기차 역사마다 개설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27년째 외국생활 가난한 유학생 도울 터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 무척 쾌활해 보이고,27년째 외국생활을 한 탓에 서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강인하고 억척스러우면서도 정이 무척 많은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다. 전북 이리 출생인 전 사장은 지난 1979년 오스트리아에 발을 디뎠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3년 정도 간병인으로 양로원에서 일한 뒤 빈 시내의 재래시장(나시마르크트)에서 채소와 과일 장사를 하다 한국식당을 개업했지만 곧 실패했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둔 상태에서 남편과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전 사장은 오스트리아 국적의 유대인 프리드랜더(47)를 만나면서 안정을 찾았고, 든든한 후원자인 시부모가 쌈짓돈을 풀어 준 덕분에 아카키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경제학 박사인 남편은 노무라연구소를 그만두고 아카키코의 재정을 맡아 도움을 주고 있다. “마음 고생, 몸 고생을 일일이 어떻게 다 얘기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때의 고생은 지금 생각하면 고생이 아니에요. 힘들었지만 그때의 고생을 발판으로 오늘의 제가 서 있는 거죠.” 전 사장은 “음식이든, 마음이든, 돈이든 아끼지 않고 퍼줬더니 그보다 더 큰 것이 돌아왔다.”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교민들과 가난한 유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종전60년…731부대 현장을 가다] 발굴 유해 급증…1만 5000명 사망설도

    [종전60년…731부대 현장을 가다] 발굴 유해 급증…1만 5000명 사망설도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 관동군 산하 731부대가 만주지역에서 자행한 생체실험 현장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신청할 예정이다.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과는 달리 일본군의 만행은 그 실상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다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유네스코는 유대인 120만명이 희생된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나치 수용소와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관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중·일관계가 최악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731부대’ 현장을 찾았다. |하얼빈 오일만특파원|중국 북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시내에서 남쪽으로 20㎞쯤 떨어진 핑팡지구 신장(新疆)대로 21호. 상가와 아파트가 섞여 있는 지역에 ‘731부대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정식 이름은 ‘침화일군(侵華日軍) 731부대 죄증(罪證)전시관’으로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붉은색 벽돌 건물이다. 이 전시관에는 2차 대전 당시 일본 군국주의가 만주에서 비밀리에 자행한 ‘생체 실험’의 전모가 생생하게 보존돼 있다. ‘731 전시관’은 2차 대전 당시 부대의 본청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현재 14개 전시실로 개조해 수천점의 관련 자료와 일본군이 자행했던 주요 생체실험 과정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다소 어두운 전시관 내부를 안내원과 함께 돌아보면서 억울하게 죽어간 마루타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사진과 실험에 쓰였던 도구, 모형을 이용한 생체실험 장면, 비디오 영상물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본 군국주의의 잔학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얼빈 사회과학원 731부대 연구소 진청민(金成民) 소장은 “731부대 유적지는 일제 군국주의가 세균전으로 인류를 말살시켜려 했던 역사의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인류 말살을 기도한 역사 현장 31종의 세균 실험과 영하 60도에서의 동상 실험, 사람과 말의 ‘피교환 주사’, 공기없이 얼마나 생존 가능한지를 실험한 ‘진공 실험’ 등등. 일본군은 인간의 몸을 나무토막(마루타·丸太)으로 여겨 온갖 생체실험에 사용했다. 엄청난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으면 태워버리거나 구덩이에 파묻었다. 그야말로 ‘인간이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일본 병사들의 동상 치료법 개발을 위해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 실험실에서 맨발·맨손의 인간을 기둥에 묶고 강제로 동상을 입혔다. 그 상처에 끓는 물을 부어 보기도 했고, 찬 물과 미지근한 물을 번갈아 붓기도 했다. 강제로 얼린 손발을 도끼로 때려 뼈를 부러뜨리는 실험도 했다. 마취 없이 실험에 동원된 마루타들은 자신의 배가 갈라지고 뼈에 붙은 살가죽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큰 유리 상자 속에 사람을 가두고 밖에서 공기를 빼내 완전 진공 상태를 만든 뒤, 인간의 생존 시간을 체크했다. 또 페스트 등 각종 세균을 강제로 몸 속에 주입, 인간의 장기가 어떻게 변하고 투입량에 따라 어느 정도 빨리 죽는지 실험했다. 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한국인을 동원한 인종별 실험도 자행됐다. ●한국인들도 마루타로 희생돼 왕강(王剛)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관람객은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몹쓸 짓을 할 수 있을까.”라며 치를 떨었다. 헤이룽장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한 학생은 “말로만 듣던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을 오늘에서야 명확하게 알게 됐다.”며 “침략 역사를 부인하는 일본인들이 직접 이러한 만행을 목격해야 한다.”며 분개했다. 전시관 관계자는 “실험이 끝나고 더 이상 필요가 없는 마루타들은 실험실 내부에서 소각됐거나 한꺼번에 구덩이에 파묻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죽어간 마루타들의 숫자는 대략 3000여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대의 책임자는 ‘인간 백정’으로 불렸던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중장이다. 그는 전후 도쿄 국제군사법정에 기소돼 재판을 받을 당시 마루타(생체실험 대상)가 총 3850명이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러시아인이 562명, 한국인이 254명, 나머지는 모두 중국인이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최근 전시관 인근 지역 개발과 함께 발굴된 유해 숫자가 급증하면서 ‘1만 5000명 사망설’이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당시 조선인들도 다수가 마루타로 희생됐지만 신원이 확인된 것은 심득룡(沈得龍)과 이청천(李淸泉) 두 명뿐이다. 심득룡은 당시 소련 극동 코민테른에서 파견한 공산당원으로 확인됐다. ●중국 마을에서 세균전 실험 45년 8월15일 일본 항복 직후 731부대는 인체 실험실과 각종 건물을 철거하고 증거가 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소각한 뒤 퇴각했다. 하지만 46년 페스트 실험용으로 사용됐던 쥐들이 튀어나와 당시 마을 주민 100여명을 몰살시킨 비극적 사건도 있었다고 전시관 관계자들이 전했다. 중국 대륙에 존재했던 인체실험실은 731부대 이외에 창춘(長春) 100부대, 베이징 1855부대, 난징(南京) 1644부대, 광저우(廣州) 8604부대 등 5개이며, 이들을 주축으로 중국 전역에서 인체 실험이 광범위하게 운영됐다는 게 전시관측 설명이다. 일본군이 실제로 전쟁 당시 세균전을 감행했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1940년 닝보(寧波)에서 페스트균을 대량 살포하여 100명 이상을 사망케 했고,1941년 봄 후난성(湖南省)에 페스트 벼룩을 공중 살포하여 중국인 400여명을 희생시켰다는 것이 중국측의 주장이다. 최근 731부대 장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가 일본의 한 대학에서 발견돼 일본군의 세균전 및 생체실험이 사실로 입증됐다. 페스트균을 배양해 지린성(吉林省) 눙안(農安)과 창춘에 고의로 퍼뜨린 뒤 주민들의 감염 경로와 증세에 대해 관찰했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oilman@seoul.co.kr ■ 731전시관 청리화 부관장 |하얼빈 오일만특파원|“일본 군국주의의 잔학상을 세계에 알리고 인류의 평화 애호사상을 함양하기 위해 731부대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게 됐습니다.” ‘731 전시관’ 청리화(程立華·여) 부관장은 “지난해 20만명이 731부대를 관람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300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며 앞으로 전시관 주변에 ‘731 공원’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731 전시관’을 통해 전세계에 일본과의 반파시스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불한 중국인들의 희생과 고난을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82년 설립된 ‘731 전시관’은 85년 8월15일 처음으로 외부에 개방됐다.95년 중국의 반파시스트(중·일전쟁) 전승 50주년을 맞아 신관을 설립하고 새로운 자료를 보강했다. 세계문화유산 신청 준비 작업은. -2000년부터 하얼빈시는 731부대 인근 120 가구와 11개 기업을 이주시키고 유적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2002년 5월부터 현 전시관 면적의 3배에 달하는 ‘731 공원’ 설립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예산은 모두 5억위안(약 650억원)이다. 일본이 이 부대를 설립한 이유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죽이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세균 부대를 창설한 것이다. 세균·화학 무기는 총과 대포와 비교해 원가가 5분의1에 불과하다. 731부대는 수천, 수만의 인민들이 참혹하게 죽어간 도살장이며 일본 군국주의가 인류를 말살하기 위해 시도했던 ‘세균전’의 현장이다. 생체 실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나. -페스트, 장티푸스, 이질, 콜레라, 탄저, 결핵, 매독 등 31개 종류의 세균을 이곳에서 배양시켜 마루타들에게 실험을 했다. 생체 실험 대상이었던 마루타들은 대부분 항일운동을 한 경험이 있으며 특수 감옥에 수감된 채 세균 전문가들의 치밀한 실험계획에 따라 고통 속에서 살해됐다. oilman@seoul.co.kr ■ 731 부대란 ‘731부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관동군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에 주둔시켰던 세균전 부대이다.1932년 창설돼 1936∼1945년 여름까지 전쟁포로 및 민간인 3000여명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 실험과 약물 실험 등을 자행했다. 바이러스·곤충·동상·페스트·콜레라 등 생물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 연구반이 있었고, 각각의 연구반마다 마루타라 불리는 인간을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사용했다. 1940년 이후 최소한 3000여명의 한국인·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7년 미 육군 조사에 따르면 36년부터 43년까지 부대에서 만든 인체 표본만 해도 페스트 246개, 콜레라 135개, 유행성 출혈열 101개 등 수백개에 이른다. 생체실험의 내용은 세균실험 및 생체해부실험, 동상 연구를 위한 생체 냉동실험, 생체 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 총기관통 실험, 가스실험 등이다.
  • ‘3인의 골잡이’ 킬러전쟁

    #장면1 6월3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경기장. 관중들의 일방적 응원을 뚫고 한국은 내내 경기 주도권을 쥐면서도 좀처럼 골을 넣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전 교체해 들어간 ‘축구 천재’ 박주영은 주눅들지 않았다. 이영표의 왼발 크로스를 받고 돌아서는가 싶더니 어느새 수비수 두 명 사이를 뚫고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박주영의 A매치 첫 골이자 본프레레 감독의 ‘원정경기 징크스’를 개운하게 털어낸 결승골이었다. 밤 10시부터 TV 앞에서 조바심내며 지켜보던 국민들의 함성이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장면2 6월9일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 쿠웨이트시티 경기장은 40도를 넘나드는 찜통. 우즈베크에서부터 다섯시간 남짓 비행의 피로까지 겹쳐 몸 컨디션은 엉망이다. 이럴 때일수록 선제골이 중요하다. 하지만 쿠웨이트의 수비는 완강했고 역습은 날카로웠다. 본프레레호 승선 이후 터뜨린 9골 중 6골을 중동팀 상대로 기록했던 ‘중동 킬러’ 이동국의 진가는 이때 나타났다. 안정환이 찔러준 스루패스를 논스톱으로 차넣으며 공격의 물꼬를 텄다. 첫 골 직후 이번에는 안정환이 직접 공을 몰고가다 반 박자 빠른 슛으로 쿠웨이트 그물을 흔들었다. 한국의 독일월드컵 진출 축포였다. 박주영(20·FC서울)과 이동국(26·포항), 안정환(29·요코하마)의 고른 활약으로 원정 2연전을 휩쓸기 바라는 기대를 섞은 가상 상황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이듯 국가대표팀의 진정한 킬러 역시 하나. 박주영의 대표팀 합류가 기정사실화됨에 따라 ‘신구 킬러 경쟁’도 한층 가열될 조짐이다. 일단 가장 앞선 쪽은 본프레레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이동국. 타고난 체력은 물론 과거 어슬렁거리던 습관도 싹 고쳐 ‘공이 있는 곳에 그가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부지런해졌다. 안정환이 본프레레호에서 2골에 그친 반면, 이동국은 9골. 그러나 한·일 월드컵과 일본 J리그를 통해 검증된 안정환의 완숙한 킬러 본능과 창조적 플레이는 ‘기록’을 무색케 한다. 큰 경기일수록 안정환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최근 J리그 소속팀에서도 5게임 연속골을 넣는 등 물오른 감각을 선보이고 있다.‘축구 천재’의 도전장도 만만치는 않다. 지난 8일 포항전, 본프레레가 지켜보는 앞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해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박주영은 지난 1월 국제청소년대회 4경기에서 9골을 폭발시킨 감각은 여전하다.K-리그 6골을 기록할 정도로 성인무대 적응도 완전히 마친 상태. 그간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혹평했던 본프레레 감독조차 “박주영의 맨투맨 능력이 탁월하다.”고 극찬할 정도다. 축구협회는 10일 박주영 등을 포함한 국가대표팀 예비명단 25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세식구 오붓하게 제천으로 가족여행

    세식구 오붓하게 제천으로 가족여행

    ‘첫 돌을 앞둔 딸아이와의 여행지로 어디를 택할까. 일단 황사가 심한 도심은 벗어나야 하고, 그렇다고 아이가 어린 만큼 너무 멀어서는 안되는 곳이어야 하는데.’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여행 지도와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한눈에 들어온 곳은 충북 제천.‘시원한 바람이 불고 밝은 달빛이 비춘다.’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멋진 호반에서 딸아이의 사진을 찍어주면 좋을 듯 싶어 주저없이 제천을 여행지로 택했다. 눈부신 호수와 시원한 강바람, 여기에 초여름 푸른 녹음이 우거진 제천으로 출발! 제천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설레는 첫 나들이 토요일 오전 8시.9개월에 접어 든 영은이 3시간 이상 장거리 여행이 처음이어서 철저한 준비를 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과일을 갈아만든 이유식과 뜨거운 보리차를 담은 보온병, 여기에 유모차와 함께 혹시 바람이 불어 감기에 걸릴까 비닐 커버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오전 10시 드디어 서울 양천구 목동을 출발. 가는 길은 올림픽대로→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남제천IC→82번 국도(금성경유)→청풍문화재단지로 정했다. 출발전 고속도로 교통정보안내(1588-2505)로 문의, 고속도로 상황을 체크했다. 문을 나서자 바람 한점 없는 화창한 날씨가 반겼다. 창밖은 짙은 녹음이 우거져 벌써 초여름 풍경이다. 오전 11시 30분. 중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 휴게소.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구운 감자와 맥반석 오징어, 사이다, 과자, 물 등 본격적인 소풍채비를 완료했다. ●눈이 시원한 청풍호반 서울을 떠난 지 2시간 30분. 고속도로 주변으로 펼쳐진 풍광을 감상하며 달리다 오후 1시 남제천 IC에 도착했다. 톨게이트 통행료는 6200원.IC를 나와 꾸불꾸불 굽은 호반길에 접어들자 눈이 시원하다.“우거우거∼, 까르르∼” 난생 처음으로 큰 호수를 본 영은이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호수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몸을 들썩 거렸다. 왼쪽으로는 초록으로 물든 금수산의 영봉이 반갑게 맞이하고, 오른쪽으로는 맑은 비취 빛을 띤 호수가 상쾌하게 다가온다. 이 길은 내륙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처녀 총각시절 데이트의 감회도 느낄 수 있다. 처음 만난 것은 금월봉. 호반길을 시작할 무렵 갑자기 기괴한 암석바위가 눈 앞에 펼쳐졌다. 삐죽삐죽 솟은 거대한 바위가 마치 금강산의 축소판. 관광객들이 바위 여기저기서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금월봉을 지나면 드라마 KBS 드라마 태조왕건 촬영장이 나온다. 멀리 호숫가에 띄워진 배와 나루터가 이색적이다. 도로에서 언덕을 넘어가면 실물 크기의 초가마을과 성이 있다. 히 이 곳에 있는 국내 최대 높이(62m)의 번지점프대와 사람의 몸에 줄을 묶어 하늘을 날게 하는 이젝션시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 번지점프 3만 5000원, 이젝션시트 2만원. 영은이의 시선을 끈 것은 번지점프대와 이젝션시트에서 쏟아지는 비명 소리. 보는 이들까지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짜릿한 놀이기구를 보는 영은이는 마치 ‘저렇게 무서운 것을 왜 타나.’하며 눈을 찌푸렸다. ●여유로운 호반 속의 점심 산책 경치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내다 어느덧 3시. 밥 달라는 영은이의 칭얼거림에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도로변 ‘처음그자리’(644-1600)라는 음식점에 들어섰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과 어울리는 야외 테라스의 비치파라솔이 아름답다. 영은이의 배를 채워준 뒤 청풍떡갈비(1인분 1만 5000원)와 시원한 물냉면(5000원)을 주문했다. 인근 농가에서 키운 상추쌈과 나물, 청국장에 떡갈비를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시원한 물냉면은 답답하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배가 불러오자 청풍대교를 건너 청풍문화재단지(640-6503)로 발길을 옮겼다. 입장료는 어른 1500원. 수몰지역 옛집들을 옮겨놓은 이 곳에는 수몰 동네와 관아, 향교 등을 재현해 뒀다. 한벽루와 청풍석조여래입상 등 보물 2점과 망월산성이 있다. 망월산 정상의 팔각정에 오르면 청풍호와 이를 둘러싼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뒤편에는 SBS TV드라마 ‘대망’ 촬영장이 있고, 앞에는 국제규격의 필드 하키 경기장이 멋있다. 단지 아래로 내려가면 청풍나루터(647-4566)에서 장회나루, 신단양, 충주댐까지 유람선이 운항한다. 왕복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걸리는데 청풍명월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왕복 요금은 어른 9000원, 어린이 4500원. 어느덧 오후 6시가 넘어섰다. 하루종일 첫나들이에 취해 즐거워하던 영은이가 졸린 듯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계획상으로는 박하사탕 촬영지와 배론성지, 박달재, 월악산 등 제천 10경중 2∼3곳을 더 가야 하는데 오늘은 이만 작전상(?)후퇴. 다음을 기약하며 서울로 향했다. 제천시청 문화관광과 640-5680.
  • 방송 외주제작 비뚤어진 성장

    방송 외주제작 비뚤어진 성장

    국내 방송의 외주제작 시스템이 ‘비뚤어진 성장’으로 신음하고 있다. 수년새 양적으로는 급팽창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에 불과한 것. 거대 자본과 스타 시스템으로 무장한 몇몇 대형 외주 제작사들이 방송사를 능가하는 파워로 몸집을 불리고 있지만, 대다수 외주제작사들은 여전히 방송사의 횡포에 치여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방송위원회와 독립제작사협회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방송 외주제작 업체들은 400여개.98년의 100여개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방송사에 납품 실적을 전혀 올리지 못하고 있으며, 불과 상위 5개가 전체 외주제작 물량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모두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방송사의 횡포로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 영세 외주제작사와 거대 외주제작사에 속한 PD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 방송 외주제작 시스템의 현주소를 들여다 봤다. ●“외주 편법 계약·청탁성 아이템 강요 등 횡포 심해져” 수년째 모 방송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VJ로 일해 온 A씨는 얼마전 개운치 않은 일을 경험했다. 제작진으로부터 “프리랜서 PD로 독립시켜 줄테니 한 코너를 맡아 납품하라.”는 요청을 받은 것. 주급 55만원을 받는 그로서는 평소 꿈인 외주 PD가 될 수 있고, 경제적인 문제도 숨통을 틔울 수 있을거라는 기대에 뛸듯이 기뻤다. 하지만 제작진이 내민 계약 조건을 접하고는 한숨만 토해냈다. 통상 10여분짜리 한 코너를 외주로 제작하면 연출료와 작가비 등을 합쳐 회당 250만∼500만원 정도의 제작비가 외주 PD에게 지급된다. 그러나 제작진은 “연출료만 70만원 줄테니 작가와 스크립터 등은 내부 고용된 인력을, 편집기 등도 회사 장비를 나눠 쓰라.”고 요구한 것. 김씨는 불공정 계약 요구를 거절하고 싶었지만, 방송사 눈밖에 나기라도 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A씨는 “외주 제작비를 남기려는 편법으로, 서류상에는 외주 제작업체에 연출료와 작가비 등을 모두 지급한 것으로 해놓는다.”고 귀띔했다. 취재 결과 이같은 ‘편법 계약’은 이 방송사 5∼6개 교양 프로그램들에서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었다. 이 방송사의 또 다른 외주 PD인 B씨도 외주제작 시스템이 프로그램 제작비를 남기는 ‘비자금 창구’역할로 전락했다고 꼬집는다. 그는 “갈수록 광고 시장이 악화되면서 올해 전체 제작비가 5% 정도 삭감됐다.”면서 “기존 프로그램의 제작비를 보전하기 위해 영세 외주제작사에 줄 제작비를 줄이는 편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외주 PD만 죽어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방송사가 ‘갑과 을’의 관계를 이용, 시시때때로 쏟아내는 청탁성 아이템 삽입 요구로 외주제작의 자율성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도 털어놨다. 사전 기획과 관계 없이 고위간부와 연이 닿아 있는 특정 업체나 연예인을 프로그램에 끼워 넣어 제작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 특히 저작권과 관련된 불공정 거래는 영세 외주제작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강조한다. 방송물의 저작권을 모두 방송사가 배타적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외주제작사의 경쟁력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원 소스 멀티 유즈’라는 말은 전파를 소유한 방송사에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주 물량은 넘치지만, 풍요속의 빈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드라마 외주 프로덕션에서 지난해까지 기획 PD로 뛴 C씨. 드라마 아이디어 생산에서부터, 연출자나 출연 배우를 섭외하고, 예산을 짜고, 집행·결산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았다. 현재 쉬고 있는 이유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 때문. 한 드라마를 끝내면 곧바로 다른 드라마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에 지쳤다.C씨가 일했던 프로덕션에서 최근 제작·방송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드라마는 어림잡아 6∼7개에 이른다. 일이 없거나 작품을 만들어도 편성권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중소업체들과 비교하면 분명 ‘행복한 비명’이다. 하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들이는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대가는 형편 없다.”면서 “후배들이 같은 길을 지망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다.”고 말한다. 소수 메이저급 프로덕션에 일이 몰리는 불균형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고 C씨는 강조한다. 그는 “매니지먼트 등을 함께하는 업체는 출연료에 관계없이 스타를 대거 동원할 수 있다.”면서 “시청률을 고려해야 하는 지상파 3사는 스타가 나오는 드라마에 우선적으로 편성권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타가 나오고, 드라마가 뜬다고 해서 그 자체로 제작사가 돈을 벌어들이지는 못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방송사에서 실제작비를 제대로 보전해주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회당 평균 1억 2000만원이 든다고 쳐도,‘저비용 고효율’을 바라는 방송사가 내주는 부분은 약 60∼70% 수준. 광고 수익은 모두 방송사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그나마 해외 판매 등을 위한 저작권도 7대3이나 6대4로 방송사가 기득권을 갖는다. 때문에 ‘짭짤한 수익’을 챙기기 힘들어진 프로덕션들이 스타 매니지먼트를 통해 ‘박리다매식’으로 드라마를 제작하게 된다. 드라마에 출연한 소속 연예인들을 ‘무보수’로 이용하면서 CF 등으로 벌어오는 돈은 그대로 부가 수익으로 연결시킨다는 것. 특히 OST 등 제작을 통해 파생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음반 제작에도 손을 대는 등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C씨는 “악순환을 없애기 위해 방송사와 외주제작업체 사이의 불균형적인 시스템을 털기 위한 법적 제도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표 홍지민기자 tomcat@seoul.co.kr ■ 고장석 독립제작사협회장 “프로그램 생산을 독과점해온 방송사들이 이제 시장논리에 따라 검증받을 때가 됐다고 봅니다.” 독립제작사들의 모임 ‘한국독립제작사협회’를 3년째 이끌고 있는 고장석 회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협회는 문화관광부에 등록한 400여개 독립제작사 가운데 146개사가 가입한 단체다. 그러나 이 숫자가 고정적인 것도 아니고 실제적이지도 못하다.“시장이 영세하다 보니 수십개 업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합니다. 협회에 가입한 곳이 146개사라고 하지만 협회에 제대로 회비를 내는 곳은 절반에 불과합니다. 그 정도만 어느 정도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라 보면 됩니다.” 그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독립제작사가 꼭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사장되는 우수인력들이 너무 많다.“PD를 지망하는 전국 대학생들이 매년 5000∼6000명씩 쏟아집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만 기존 방송국 PD로 일합니다. 나머지는 독립 제작사에서 흡수해야 합니다.” 또 방송시장이 스튜디오, 녹음·편집실 등 인프라 제공업체와 독립 제작사, 방송사로 삼원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시장이 형성되면 고용창출 효과도 무시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 회장은 요즘 특히 외주 전문 채널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껏 모든 방법을 다 써봤는데도 개선이 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결국 외주제작 채널 도입만이 답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고 회장은 방송위원회를 강력히 비난했다. 방송사 이익을 위한 활동만 한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긴급 재난방송시간을 제외하고 40%의 시간을 외주제작에 할당하게 되어 있는 방송법을 어기고 있는데 방송위가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한 코너만 제작해도 외주 제작에 포함시키고 뉴스시간은 보도프로그램이어서 외주 제작에서 빼야 한다고 합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보도는 국가적 행사라서 빼고, 자회사가 제작하는 것도 외주에 포함시킵니다. 방송법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외주제작 채널이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으냐는 물음에 대해 고 회장은 현실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공영성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에 재갈을 물린 게 전두환 정권 때 만들어진 지금의 틀입니다. 지금 그 틀을 깰 수 있을까요?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상업화된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는 게 더 빠른 방법입니다.” 거듭 쓴 소리를 하면서도 그는 마냥 속이 편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 고 회장 또한 방송사(MBC) PD 출신이고, 방송사 사람들도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위기감과 고충도 다 알고 있다.”며 “그렇지만 해야 할 소리는 해야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곤혹스런 방송위 방송위원회는 방송사와 독립제작사간 갈등에 곤혹스럽다. 독립제작사라 해도 회사마다 사정이 천차만별이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모든 독립제작사들이 울고만 있는게 아니라, 프로그램의 질에 자신이 없는 이유 등으로 해서 현 시스템 유지를 바라기도 한다. 거기에다 콘텐츠진흥과 관련된 사안은 문화관광부 소관인데다 기본적으로 외주제작은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당사자간 계약 관행이 굳어진 만큼 끼어들 여지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당사자들을 불러 외주개선협의회도 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계약에 관한 표준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런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데 있다. 그럼에도 방송위는 올해 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는 독립제작사에 대한 방송사의 우월한 지위를 문제삼아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방송프로그램 유통 문제에 개입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위 관계자는 “현재 방송법 등 관련 조항이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편성비율 고시 개정 등을 통해 외주제작의 개념과 범위 등을 더욱 명확히 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끝나지 않은 40년전 악몽…반전운동·종교 귀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전쟁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한국은 32만여명을 파병, 전사 5099명, 부상 1만 1232명이라는 희생을 안았다. 한국군에게 피해를 당한 베트남 사람들도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나라는 1992년 수교한 뒤 서로의 상처를 보살펴 주며 과거의 악연을 씻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아 전쟁 희생자들의 고통 속에서도 돈독해지고 있는 양국 관계를 살펴봤다. ■ 참전 생존자들의 고통 “1년에 몇번씩은 퀴논의 그 지긋지긋한 전략촌을 찾아갑니다. 손에는 M1 소총을 들고 있죠. 그리고는 저의 오발로 밀림에서 죽은 30대 여인의 치켜뜬 두 눈과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던 정 일병이 겹쳐집니다. 소리치며 깨어나면 가슴이 콱 막혀 숨을 못 쉬겠어요.40년이나 지났으면 잊혀질 법도 하련만….” 지난 28일 오후 서울 명동의 커피숍.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묵은 악몽을 얘기하던 박정익(가명·59·목사)씨의 눈가가 젖어든다.1965년 12월3일. 이 날은 박씨의 가슴에 핏빛 화인(火印)으로 남아 있다. ●밀림 헤매는 ‘김상사’ 박씨에게 베트남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194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다 65년 10월 맹호부대 기갑연대 3중대 소속으로 베트남 중부 캄란 땅을 밟았다. 전쟁보다 가난이 더 무섭던 시절.1년만 버티면 집 두 채를 산다는 말에 자원했다. 하지만 전장에 나서기엔 박씨는 너무나 여렸다. 실전 투입 한달도 안돼 퀴논 지역 작전에서 동료를 잃었다.“살아서 소 몰고 고향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였다.“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저 자신이 점점 ‘짐승’이 돼 갔지요.” 이듬해 11월 무사히 귀환해 수원에서 큰 포목점을 열었지만 전쟁의 악몽은 베트남 해변가의 안개처럼 머릿속을 짓눌렀다. 그를 ‘구원’한 건 신앙의 힘이었다. 뒤늦게 신학대학에 진학해 개척 교회를 열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도 베트남의 상처를 말하지 못했다.“퀴논에서 목회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짙은 그림자 남긴 베트남의 악몽 강인용(가명·부산)씨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자기와 가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베트남에서 귀환해 가정을 꾸렸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가족들을 괴롭혔고 결국 아들과 부인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강씨는 세상과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다. ●속죄의 길로 택한 반전 운동 베트남의 기억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김용삼(55)씨는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곡된 현대사 바로잡기에 뛰어들었다. 해병대 5중대 소속으로 68년 7월 전쟁터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4월 최전방이던 호이안 지역 전투에서 오른손에 총알 관통상을 입고 제대했다. 우연찮게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돌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베트남 전쟁의 본질 규명에 나섰다. 경남 마산의 시민사회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김영만(59)씨는 해병대 포병 3대대 11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67년 2월14일 ‘짜빈동 전투’에서 코에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200명의 해병대는 짜빈동 전투에서 월맹군 3000여명을 격퇴했다. 해병 전투사는 이를 ‘베트남전 최고의 해병 전투’로 기록한다. 김씨 역시 ‘학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짜빈동 전투 이틀 전 30대 남자 포로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 당시 포로 즉결 심판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죽은 포로의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며 애원했다.“고향에 계신 친할머니 같았어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 오기 전의 정상적인 청년으로 돌아온 거죠.” 김씨는 화랑무공훈장도 보훈 혜택도 마다하고 제대한 뒤 모든 것을 잊고 ‘희망의 땅’ 미국으로의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민 준비를 위해 호텔 견습생으로 들어갔다가 척추를 다쳤다.30대의 대부분을 하반신 불구로 보냈고 부인은 행상에 나섰다. 2003년 3월 그는 배상현씨 등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들을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파견했다. 김씨는 “이라크 파병은 우리 민족이 베트남전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잘못된 결정”이라면서 “전쟁을 없애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죄갚음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고엽제후유증 8만명 고통 PTSD는 치료도 못받아 “포탄 날아온다. 모두 피하라.” 200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LA의 USC 부속병원. 낯선 한국말 고함이 병동의 새벽 정적을 깼다.“여보, 제발 정신 좀 차려봐요.”눈을 뒤집은 채 병상에서 소리치고 있는 목사 김모(58)씨의 손을 잡고 부인 김모(56)씨가 눈물로 애원했다. “여기가 어디야. 또 월남 아니야.”김씨는 결국 꽁꽁 묶여 정신병동으로 갔다. 원인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백마부대 소속으로 1968년 9월부터 15개월을 베트남에서 보냈던 그는 현재 중풍과 PTSD 증세로 대소변도 못 가눌 정도가 됐다.PTSD는 전쟁 등 극단적인 사건에 노출된 뒤 나타나는 불안 장애. 헛것이 보이거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등 충격을 현실처럼 느끼기도 하고 한없이 차가워지기도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의한 PTSD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PTSD로 150만여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만여명이 자살을 택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파월 장병들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고엽제 환자 280명 중 60%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러나 보상은커녕 치료마저 요원하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병상 일지에 관련 증세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어야 전투와 연관된 상해로 인정받기 때문에 PTSD 전상자는 공식적으로 없다.”면서 “미국처럼 PTSD 환자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아버지는 PTSD로 고통받았고, 그 고통이 유영철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전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엽제의 고통도 끝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와 후유의증 환자는 8만여명. 그러나 판정 조건이 너무 엄격하다.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17.9%만이 후유증으로 판정받고, 이중 58.3%만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고엽제는 참전자 2세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2000년 182명의 부산·경남지역 고엽제 후유증 환자 2세 연구에 의하면 선천성 기형이 15건, 전신 허약이 12건이나 나타났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건강 장애를 보였다. 고엽제 피해로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도 2억 4000만달러를 보상비로 챙겼다. 그러나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32만여명을 보낸 한국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이두걸 이효용기자 douzirl@seoul.co.kr ■ 당시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예비역중장 “주한美軍 차출 막으려 파병” “주한미군을 자꾸 나가라고 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패망 직전의 월남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주위로부터 많이 듣고 있어요.”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5년 가까이 파병부대를 지휘한 채명신(80) 예비역 육군 중장은 베트남전 종전 30주년과 관련해 이 전쟁이 주는 교훈이 뭐냐고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반미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사회 일각의 풍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요즘 그는 베트남참전동지회와 6·25 유공자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강의차 지방출장도 자주 다니고 있으며, 옛 전우들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올해가 월남전 종전 3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투부대 파병 4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답게 그는 종전보다는 전투부대 파병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듯 했다. 월남 파병을 ‘용병(傭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파병의 불가피성을 들었다. ●朴대통령 “쉽지 않은 전쟁” 고민 “당시 파병은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돼 있었습니다. 미국이 월남에 지상군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주한미군을 빼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미국 본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제한적이었거든요.” 당시 우리보다 GNP가 많고 군사력도 월등한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파병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경제발전과 5·16 이후 불편했던 미국과의 관계 등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병 직전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던 자신을 불러 전투병 파병을 논의했었다는 얘기도 털어왔다.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전투수행에 관한 한 군의 최고 전문가다. 당시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았던 만큼 박 대통령도 적잖은 고민을 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월남에 파병되면 게릴라전을 수행해야 하는데, 뚜렷한 목표의식과 인간적인 존경을 받는 카리스마의 리더십, 은신과 보급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 등을 호찌민부대가 갖추고 있어 싸움은 쉽지 않겠지만 미국을 붙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민간인 무차별 총질 결단코 없었다” 최근 월남전과 관련해 이따금씩 보도되고 있는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참전 의미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비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주민으로 가장한 베트콩들이 많은 마을에서 수색작전을 하는 과정에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일부 주민들과 교전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무런 혐의도 없는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게 당시 사령부의 지휘방침이었다고도 했다. 실제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의 전과(戰果)를 거론했다. 당시 한국군은 사살자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베트남에 주둔하는 8년간 4만명 이상을 사살했는데 총이나 수류탄도 대략 2만정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은 동료가 쓰러지면 시체보다 총을 먼저 챙길 정도로 무기를 생명처럼 여겼는데 이 정도로 많은 무기를 노획한 것은 한국군이 얼마나 알뜰하게 베트콩만 골라서 공격했는지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미군과의 작전지휘권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파병 직전 박 대통령도 현지에서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전 지휘권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 결국 그의 뜻대로 됐다. “미군은 당시 한국군 병력이 2만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군의 통제를 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애초에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잘못됐고, 잘못된 군사전략에 우리가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게 내 신념이었습니다.” ●용병 논란 우려 독자 작전권 고집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면 ‘용병 논란’이 생길 게 뻔하고, 미군도 전쟁을 청부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권을 가질 때만 이 전쟁의 성격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로 설득했더니, 의외로 미군들도 수긍을 하더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이 결국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제개발을 첫 손에 꼽았다. 파병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점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금융기구에서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했던 차관을 선뜻 내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또 현대건설 등 월남전 특수에 힘 입은 것도 분명한 사실 아니냐고도 했다. 그는 ‘고엽제’ 등 전쟁의 부작용의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고엽제 후유증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고엽제 부작용 이렇게 심할줄을” 문민정부 때부터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를 후유증으로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현재 1만 2,000명이 후유증 판정을 받았으며,3만명은 의증 판정을 받은 상태다. 참전유공자회 책임자를 맡은 만큼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철군한 이후 베트남을 방문하지 않다가 수년전 관광차 하노이만 잠깐 한차례 들렀다고 한다. 또 월남전과 관련해 제작된 각종 영화 등도 관심있게 봤다. 하지만 상당수 작품의 경우 허구가 지나쳐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베트남전과 한국군 파병 등에 대해 회고록을 집필중이다. 잘 하면 올 연말쯤이면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나중에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현지 사령관을 마친 뒤 귀국, 군사령관을 마치고 군문을 떠났으며, 이후 스웨덴과 그리스, 브라질 등의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업 1000여곳 진출… 한류열풍 한국사람으로서 지금 베트남에 간다면 자신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제 한창 ‘성장’의 맛을 들인 이 후발 개도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선망의 대상이다. 불과 30년전 총부리를 겨눈 적(敵)이었다는 역사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2005년 베트남의 정서는 친(親)한국 일변도다. 하노이 도심 곳곳에서는 ‘SAMSUNG’과 ‘LG’와 같은 한국 기업의 간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티즈, 매그너스 등의 승용차는 30년전 탱크가 밟고 다녔을 법한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한국 제품이란 사실이 부각돼야 시장 점유율이 올라갈 만큼 베트남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미지는 ‘선진국급’이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가속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투자액이 40억달러를 넘었고 최근 3년간 투자금액은 타이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KOTRA 하노이 무역관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농업을 뺀 베트남 전체 취업 인구의 3%(35만명)를 고용하고, 베트남 수출액의 10%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주’한 한국 기업은 1000개는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섬유·의류·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출발한 우리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90년대 중반부터 철강·통신·사회간접시설을 향해 정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양국간 교류 확대가 ‘돈벌이’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1997년 드라마 ‘의가형제’로 시작된 한류 열풍은 이제 완전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베트남의 주요 TV채널에선 저녁 황금시간대에 ‘파리의 연인’과 ‘리멤버’ 등 한국 드라마끼리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뉴스도 경제뿐 아니라 스포츠·문화·사회현상과 같은 시시콜콜한 영역까지 보도돼 서울과의 시차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유학이나 한국 기업 취업을 위한 ‘한국어 배우기’ 붐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해외에선 드물게 한국어 인증시험이 치러지는 곳이 베트남이다. 응시생이 월 200∼300명에 이른다.TV에서 한국어 강좌가 방영되고, 호찌민과 하노이의 주요 7개 대학에 한국어 학과가 개설돼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과속에 무너진 ‘철도강국’ 자존심

    |도쿄 이춘규특파원|어처구니없는 열차사고가 잇따르면서 일본의 ‘열차 안전신화’가 무너지고 있다.‘철도 대국’이라는 일본인들의 자존심도 구겨졌다.25일 효고현 열차 탈선 사고에 앞서 도쿄시내 전철 건널목에서는 열차가 진입하는데도 간수가 차단기를 올려 행인들이 사망하는 어이없는 사고도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니가타현 지진 때는 신칸센도 탈선했다. ●사고순간, 승객 일제히 공중에 떠 이날 사고는 승객이 가장 많은 출근·통학 시간에 일어나 인명피해가 더욱 컸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사고 순간 승객들은 일제히 공중에 뜬 뒤 앞으로 날아가거나 처박혔다고 한다. 승객들은 “가가강…”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객차가 흔들린 뒤 순식간에 굉음이 들리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한 승객은 “속도가 꽤 됐다. 순식간에 유리창이 깨지고 몸이 회전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고 사고순간을 전했다. 승객들은 열차가 전 역을 예정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면서 “늦어서 미안하다.”는 방송을 한 뒤 속도를 올렸다고 말했다. 열차가 들이받은 맨션의 6층에 사는 여성(26)은 “지진인 줄 알고 일어났더니 밑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면서 “한신대지진 때보다 진동이 더 컸다.”고 전했다. ●“지옥 같은 참사현장” 사고 현장 부근에는 “살려달라.”는 구원요청이 빗발치고 울음과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어지럽게 들렸다. 비릿한 피 냄새도 진동했다. 사고로 처참하게 깨진 문이나 창문으로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승객들도 적지 않았다. 맨앞 차량에 타고 있던 여학생(18)은 “정신을 차려 보니 밖으로 튕겨나와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은 “주위에는 여럿이 넘어져 있었다. 부서진 펜스가 매달려 있어 그걸 잡고 밖으로 올라왔다.”고 덧붙였다. 구조작업은 경찰과 소방서·자위대원과 자원봉사대 등이 속속 현장에 도착, 긴박하게 이뤄졌지만 희생자는 점점 늘고 있다. ●과속·과실로 인한 인재 가능성 정확한 사고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초보기관사와 과속, 낡은 설비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사고로 이어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열차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남성 회사원(47)은 “사고현장 직전에 완만한 커브가 있다. 평상시에는 감속했지만 오늘은 그대로 달렸다.”며 과속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회사측은 “계산상으로는 커브길에서 시속 133㎞ 이상으로 달리면 탈선한다.”고 설명했다.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는 올해 23세로 입사한 지 11개월밖에 안된 초보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NHK는 사고 선로의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구형이어서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밖에 1990년대 이후 철도 회사들이 비용절감과 절전 차원에서 차량을 철에서 가벼운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로 바꾼 게 결과적으로 희생을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운행 중인 일본내 열차차량의 절반 이상이 경량 차량이다. 도시 전철은 물론 신칸센도 마찬가지다. 사고 열차는 스테인리스제의 차량이었다. 제조·유지관리 비용, 전력 소비량을 줄이고 소음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효율은 높였지만 측면의 충격에는 약하다는 문제를 노출했다. taein@seoul.co.kr
  • 간식비명목 4800만원 걷어

    “공문을 보내고 언론을 통해 알리는 등 사전예고를 했음에도 촌지는 여전히 오고 갔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지난 4일부터 16일까지 시내 213개교를 대상으로 금품 관련 특별감찰을 실시한 결과 촌지를 받은 교사 12명과 불법찬조금을 모금한 5개 학교가 적발됐다. 예상보다 적은 숫자였지만 감찰반 관계자는 공개 감찰기간에 버젓이 촌지를 건네는 학부모나 이를 받는 교사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촌지를 받거나 모금에 관련된 교사에 대해서는 감봉, 견책 등 경징계가 내려진다. ●교사 12명·학교 5곳 적발 시교육청이 조사한 결과 강남의 D초등학교를 비롯한 10개 초등학교에서 10만∼30만원의 금품이 오고 갔다. 촌지는 대부분 롤케이크, 떡, 책 등에 현금이나 상품권을 넣어 주는 방식으로 전달됐다. 적발된 금품 중에 5만∼10만원대 건강식품과 화장품도 있었다. 불법찬조금의 경우 S고교에서는 학생 간식비 명목으로 거둔 금액이 무려 4867만원에 이르렀다. 학교별로는 1인당 5만원에서 많게는 100여만원을 모금했다. ●감사반, 소화전수리공 변장도 이번 감사에는 총 33명의 감사반이 동원됐다. 촌지의 성격상 제보가 없고 현장을 포착해야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 적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학교 안으로 쇼핑백을 들고가는 학부모를 뒤따르는 역할은 또 다른 학부모를 가장한 30대 여직원이 맡았다. 선물이 건네지고 교사가 이를 거절하지 않은 사실을 이 직원이 확인하면 바로 감사반이 투입돼 고가의 선물인지 현금이나 상품권이 들어있는지 확인했다. 여직원을 투입할 수 없을 때는 작업복 차림으로 소화전을 수리하는 척하거나 운동복 차림의 동네 주민을 가장하기도 했다. 이번 감찰 기간 동안 강남의 일부 학교에서는 교감이 교문을 지키며 학부모를 비롯한 외부인 출입을 아예 금지하기도 했다고 감사반은 전했다. 불법찬조금의 경우 적발 숫자가 지나치게 적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시교육청 감찰반 관계자는 “이번에는 촌지 적발에 치중했다.”면서 “촌지에 대해서는 스승의 날을 전후로 감찰을 또 실시하고 불법찬조금은 연중 제보를 받고 감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안성에서 맞이하는 봄맞이축제

    안성에서 맞이하는 봄맞이축제

    얼쑤∼. 흥겨운 풍물소리가 봄을 열었다. 예년보다 봄꽃이 늦게 피어 상춘객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그렇다면 봄의 흥겨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가족들과 오붓하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땐 지난 주말부터 바우덕이 풍물단의 남사당놀이 토요상설공연이 시작된 경기도 안성이 ‘안성맞춤’. 눈꽃을 닮은 화사한 배꽃이 은은한 향을 날리고, 뛰어난 광택을 자랑하는 안성유기에 천년고찰 칠장사와 청룡사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마당놀이는 조선시대 전국 제일의 남사당으로 이름을 떨쳤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의 후예들이 펼치는 공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외줄타기 공연이 압권이다. 특히 공연과 주요 관광지의 주차·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봄을 타고 온 짜릿함과 흥겨움 “꽹괘 꽹괘 꽹꽹꽹!!!” 4월 첫 주말인 2일 오후 6시30분. 꽹과리 소리가 어스름한 저녁 하늘에 울려퍼지자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남사당전수관 야외공연장에 모인 상춘객 500여명의 어깨가 장단에 맞춰 들썩거린다. 오는 10월까지 계속되는 안성시립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www.baudeogi.com·031-675-3925)의 첫 공연. 악사들의 풍물반주에 맞춰 고사굿이 시작되고 설장구 합주와 살판(땅재주 놀이), 덧뵈기(탈놀이), 버나놀이(가죽접시돌리기), 상모놀이 등이 숨가쁘게 펼쳐졌다.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다.” 살판이 벌어져 어릿광대와 재주꾼이 묘기를 부리며 쏟아내는 재담에 공연장에는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이어 인형의 목덜미를 쥐고 있다는 말에서 유래된 인형극 ‘덜미’ 공연이 시작되자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드디어 공연의 최고 절정인 어름(외줄타기) 공연이 시작되자 이내 장내가 숨을 죽였다. 악사의 반주에 맞춰 줄광대(어름산이)가 3m 높이의 줄 위에 부채 하나 달랑 들고 아슬아슬 줄을 탄다. ‘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스럽다.’는 뜻에서 어름이라고 불리는 공연. 줄광대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대균씨. 그가 줄 위에서 중심을 잃은 듯 표정을 취하면 관객들의 ‘어이쿠’하는 외마디 비명이,‘별 것 없는 공연 보러 먼 길들 오셨네.’라며 익살을 부리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된다. 20여분간의 공연은 어름산이가 줄 반동을 이용해 수차례 1∼2m 솟구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풍물단의 전신은 조선 최고 처녀 꼭두쇠 바우덕이의 후예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꼭두쇠로 남사당패 100여명을 이끌어 전성기를 이루다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바우덕이의 애달픈 전설은 공연의 흥미를 배가시킨다.1848년 태어난 그녀는 다섯살 때 병든 홀아비를 떠나 남사당패에 들어와 기예를 배웠다.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과 미색을 겸비해 경복궁 복원공사 때 풍물놀이를 벌여 대원군으로부터 정3품 벼슬아치에게 주는 옥관자를 하사받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21살에 폐병에 걸려 꽃다운 나이인 23살에 요절하고 만다. 그녀의 시신은 그녀를 사모하던 이경화란 남사당에 의해 이름없는 냇가에 묻혔다고만 전해진다. 바우덕이 공연과 함께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안성 태평무 전수관(www.taepyungmu.net·678-2812)에서 열리는 전통무용. 태평무와 부채춤, 무당춤, 학춤 등 태평무 이수자와 강선영 무용단의 공연이 1시간 동안 무료로 펼쳐진다. ●배꽃 향기와 안성맞춤 볼거리 바우덕이가 어린시절 외줄을 타던 서운산 자락 불당골엔 4월 중순이면 새하얀 배꽃 물결이 일렁인다. 곳곳이 배 과수원인 안성에서는 어느 곳에 가도 배꽃 천지지만 시내에서 57번 지방도를 타고 남으로 서운산 자락의 배밭길을 달리는 것이 장관이다. 특히 청룡저수지 아래 개울가에는 바우덕이의 커다란 가묘를 만들어 그녀의 예술혼을 기리고 있다. 볼거리도 적지 않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축장으로 수도권의 경주라고 할 만큼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다. 송문주 장군이 몽고군을 격퇴시킨 죽주산성(경기도 기념물 제69호)을 비롯해 불교문화의 보물창고 칠장사에는 혜소국사비, 칠장사 철당간, 오불회 괘불탱 등 국보·보물급의 문화재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죽산리 5층석탑(보물 435호)과 죽산향교, 영창대군묘, 이덕남 장군묘 등이 있다. 또 시인 조병화의 생가인 편운재문학관(674-0307)과 혜산 박두진 시비 등과 함께 천주교 초대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묘를 모신 미리내 천주교성지, 죽산 성지 등을 찾으면 종교·예술인들의 발자취도 느낄 수 있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뛰어난 광택을 자랑하는 안성유기(중요무형문화제 제77호)를 전시한 안성맞춤박물관(676-4352)과 안성맞춤 유기장, 안성브랜드 센터 등 안성의 특산물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가족단위 나들이를 하기에는 남사당 전수관 옆의 갤러리 아트센터 마노(www.mahno.co.kr)가 좋다.‘거꾸로 선 집’과 ‘옆으로 지어진 집’ 등 이색적인 미술전시관과 레스토랑, 펜션은 신기함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 3만평의 농원에 펼쳐진 2000여개의 장독대가 장관인 서일농원(673-3171)도 봄나들이 최적지. 이 곳에서 담근 각종 장아찌와 청국장·된장찌개(7000원)는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한다. 또 안성천문대(777-1771)에서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다.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안성 쌀밥과 쫄깃하고 고소한 안성 한우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옛날 손맛을 그대로 대물림해온 80년 전통의 한우탕 집 안일옥(675-2486)과 청룡호수 부근 민물새우 매운탕집 남한산성(674-5923)이 맛있다. 일죽 IC 부근에 있는 찜질마을 건강나라(674-8255)에서 심신의 피로를 말끔하게 해소하는 것은 여행의 보너스. 평일에는 1만원, 주말에는 1만 3000원. 안성시 문화체육관광과(678-2064). ● 강릉 다른 지역의 가면극과 달리 연회자가 관노들이었다는 특징에서 지어진 강릉 관노가면극은 지역색이 물씬 풍겨나는 전통공연이다. 한국의 가면극 중 유일한 무언극으로 대사 이전에 춤과 몸짓으로 연회가 구성돼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일요일 오전 11시에 강릉관노가면전수회관에서 열린다.(033)642-1008.(www.kwanno.or.kr) ● 수원 정조대왕의 옛 발자취를 따라 가는 화성행궁 토요상설마당도 지난달 27일 개막돼 오는 11월26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경기 수원시 화성행궁에서 열린다. 매월 다른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이달에는 ‘새벽에 창덕궁을 떠나다’를 주제로 열린다. 재단법인 성정문화재단 (031)257-4500.(www.sungjung.org) ● 양주 중요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된 양주별산대놀이가 지난 3일 막을 올렸다. 오는 10월30일까지 펼쳐지는 행사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에 경기 양주시 양주별산대놀이 전수회관에서 열린다. 경기도 지방에 전승돼 온 가면극으로 대표적인 서민 오락이다. 거드름춤과 깨끼춤의 몸짓으로 연극적 요소를 가미하고 덕담과 재담으로 서민의 애환을 풍자해 왔다. 양주별산대놀이 전수회 (031)840-1389.(www.sandae.com) ● 남원 남도민요와 판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남원 민속국악상설공연이 지난 1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에서 열린다. 춘향전과, 흥부전, 심청전, 시집가는날, 남원전 등 공연과 우리가락 따라부르기 등 관객과 함께하는 행사가 진행된다. 공연이 끝난후 30분간 영상레이저 쇼도 상영한다.(063)620-6484.(www.namwon.jeonbuk.kr) ● 안동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열리는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마당놀이.4월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열리며,5∼10월까지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무동마당과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선비마당 등 6개 마당 공연과 관람객과의 뒤풀이 한마당이 펼쳐진다.(054)851-6393.(www.hahoemask.co.kr) ● 부산 오는 11월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부산시 용두산공원 민속놀이마당에서 진행되는 전통민속놀이마당에서는 부산의 중요무형문화재인 동래야류, 수영야류, 좌수영 어방놀이, 부산농악 등 매주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051)888-3281.(www.festival.busan.kr) 안성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무선헬기추락 초등생 3명 사상

    1일 오전 9시23분쯤 경남 진주시 문산읍 문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무선으로 조종하던 소형동력비행기(헬기)가 운동장 스탠드에 추락, 관람하던 1학년 최모(8)양이 프로펠러에 맞아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같은 학년 박모(8), 안모(8)양 등 2명은 중·경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문산초등학교는 ‘과학의 달’ 행사로 이날 J헬기클럽 소속 조모(35)씨를 초청, 소형동력비행기 비행시범을 마련했으며 현장에는 교사 26명과 전교생 500여명이 관람 중이었다. 사고 발생 직후 최양 등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수백명의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급히 대피하는 바람에 운동장에는 한때 큰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추락한 소형동력비행기는 무선조종기(리모컨)로 조종하는 길이 1m 정도의 헬기이며 사고 당시 주파수 이상이거나 동력공급 계통에 고장이 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조씨를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바람꽃(KBS1 오전 8시5분) 인표는 정님에 대한 의혹을 풀기 위해 의도적으로 은경을 만나고, 아무것도 모르는 은경은 탐정놀이하듯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한다. 한편 형주와의 약혼을 앞둔 정님은 제분공장과 동업하기 위해 윤명희를 만나러 서울로 출장을 떠나고, 때마침 영실은 진우의 제의로 제분공장 구경에 따라나선다. ●건강 스페셜(SBS 오전 11시35분) 뒤로 걷기는 앞으로 걷는 것보다 운동량이 3배나 높아 대사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때문에 관절뿐 아니라 당뇨나 고혈압,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정형외과 전문의 이수찬 원장과 함께 뒤로 걷는 올바른 방법과 주의점, 그리고 생활 속에서 튼튼한 관절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본다.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부산은 국내 제1의 항만도시에서 21세기 과학문화를 선도하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협의회는 부산 과학대중화를 이끌어 나가는 전담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협의회, 과학영재학교 등 부산이 갖추고 있는 과학인프라의 실상을 점검해 본다. ●애니토피아(EBS 오후 10시50분) ‘애니웨어(Ani-Where)’코너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박세종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버스데이 보이(Birthday bo y)’ 국회 상영 현장을 찾아간다. 박세종 감독이 특별 초청되어 작품을 해설하고, 관객들과의 진지한 토론 시간도 갖는다. ●김약국의 딸들(MBC 오전 9시) 용빈은 홍섭이 넘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간다. 병원에 도착한 용빈은 입원실 앞에서 망설이고, 병실 안에서는 홍섭의 괴로워하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용빈을 본 홍섭의 “왜 왔느냐?”는 말에 용빈은 마음 아파한다. 뒤늦게 온 강극은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얼굴이 굳는다. ●열여덟 스물아홉(KBS2 오후 9시55분) 일기를 통해 자신이 이혼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혜찬은 상영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작별을 고하고 집을 나오지만 눈물이 흐른다. 상영은 혜찬을 찾아가 오해라고 설득하지만, 혜찬은 지영에게 가라며 차갑게 돌아선다. 상영은 혜찬이 녹음한 노래를 들으며 가슴아파한다.
  • [클릭 세상속으로] 시각장애우에 TV읽어주는 사람

    [클릭 세상속으로] 시각장애우에 TV읽어주는 사람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5분만 눈을 감아 보세요. 시각장애인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겁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TV를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휴대전화로도 어디서든 고화질 화면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TV조차 여전히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실감나게 화면 설명 정년:“성. 매복이야.” 장보고:“물때가 바뀔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성우:“해안은 순식간에 피와 살점이 튀는 치열한 싸움터로 변한다. 많은 호위무사가 상처를 입거나 죽어 넘어진다. 해적의 공격은 잔인하고 위협적이다. 장보고가 출중한 검 실력으로 몇 명의 해적을 베어 나가는 사이 염장도 호위무사들의 숨통을 끊어 놓는다. 그러던 장보고와 염장은 어느새 간격을 좁혀 서로에게 칼날을 들이댄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본관 4층 녹음실. 모니터에서는 인기 드라마의 결투장면이 비치고, 장면마다 설명을 덧붙이는 성우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일제시대 유랑극단의 변사처럼 동작 하나하나에 토를 다는 것이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우의 내레이션이 없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겐 긴박한 결투신도, 애틋한 러브신도 ‘침묵의 연속’일 뿐이다. 화면 해설방송 작가 서수진(30·여)씨는 “3분이 넘는 전투신은 일반 시청자에겐 멋지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겐 비명소리와 칼소리, 말발굽 소리만 들리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한 장면 설명위해 사흘밤 새기도 화면 해설방송이란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의 내용을 음성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기존의 방송분에 음성신호를 추가하기 때문에 별도의 수신기(DVS·Descriptive Video Service)를 설치해야 한다. 이미 만들어진 방송에 단순히 설명만 덧붙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작업은 그리 녹록지 않다. 사물에 대한 정보가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화면 내용을 실감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대본 작성에서부터 애를 먹는다.70분짜리 드라마 한 편의 해설원고를 쓰는 데 7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다. 작가 겸 성우인 장현정(35·여)씨는 가장 어려웠던 작품으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꼽았다. 장씨는 “마지막 전투장면에서 이성을 잃은 형(장동건)이 동생(원빈)을 알아보지 못하고, 몇 분 동안 괴성을 지르고 싸우는 장면이 계속되는데 정말 난감했다.”고 털어놨다. 장씨는 이 장면 하나를 설명하려고 사흘 밤을 새웠다고 한다. 완성된 대본으로 화면에 맞춰 녹음하는 작업도 쉽지 않아 며칠씩 밤샘작업을 해야 한다. 꼭 설명이 들어가야 하는 화면이 있지만 장면전환이 빠르거나 대사 간격이 짧을 때는 몇 차례씩 수정을 반복해야 한다. 스튜디오를 제공하는 KBS 미디어 홍유선(52) 차장은 “지나치게 설명이 잦아도 드라마 감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설명의 양과 길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대사가 없는 5∼6초 사이에 3초 정도의 해설을 넣는 과정은 마치 칼로 재단을 하는 것처럼 정교함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1주일에 드라마 7편 서비스…내달부터 추가 편성 국내 화면 해설방송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음성정보센터가 2001년 4월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전원일기’를 방송하기 시작했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2년 만에 중단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4월 방송위원회의 도움으로 서비스를 재개,1주일에 3개 방송사 드라마 7편을 내보내고 있다. 새달부터는 방송 3사가 매달 영화 1편, 매주 드라마 또는 비드라마 1편씩을 추가 편성한다. 낮시간대 재방송이 대부분이다. 시각장애인연합회가 국고지원을 받아 전국에 무료 보급한 수신기는 3300여대에 불과하다. 시각장애인이 3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현실에 비하면 턱없는 수준이다.PD 역할을 하는 황유선(35·여)씨는 “미국 등에서는 일반 방송시간에 화면 해설방송을 주당 4시간 이상 방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면서 “장애인들이 문화를 누릴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신기 보급 문의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02)9500-114.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