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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깔깔깔]

    ●산부인과에서 생긴 일 산부인과의 분만실 앞 복도에 남편들이 여러 명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분만실에서 간호사가 나와 말한다. “한남동에서 오신분, 아들입니다.” 5분 뒤 간호사가 다시 나온다. “쌍문동에서 오신 분, 쌍둥이입니다.” “삼선교에서 오신 분, 세 쌍둥이입니다.” “사당동에서 오신 분, 네 쌍둥이입니다.” “오류동에서 오신 분, 다섯 쌍둥이입니다.” 그 순간, 기다리던 남편들 중 한사람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이유를 묻자 그가 울상을 지으며 한 말은 “우리 집은 구파발이란 말이오.”●여자가 화장을 하면 20대가 화장을 하면-화장 30대가 화장을 하면-분장 40대가 화장을 하면-변장 50대가 화장을 하면-위장 60대가 화장을 하면-포장 70대가 화장을 하면-환장 80대가 화장을 하면-끝장
  • “자고나면 억~ 억~” 부동산 재테크 배우기 광풍

    “죄송하지만 낮 강의는 인원이 넘쳐 마감입니다. 저녁 강의는 어떠세요.”15일 오후 10시쯤 서울 서초동 상업지구에 있는 한 부동산 전문학원.4일간의 무료 부동산 특강을 마련했는데 예약 전화가 쇄도해 상담원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같은 시간 40여명이 오밀조밀 모인 3층 강의실에서는 강의가 한창이다. 대부분 직장인과 자영업자다. 학원측은 “부동산 열풍으로 여름에 비해 신청자가 두 배나 늘었다.”면서 “주부 등이 많은 낮 무료강좌는 며칠 전부터 서둘러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전문학원 여름보다 신청자 2배 집값이 폭등하면서 서민들이 앞을 다퉈 부동산 재테크 학습현장으로 몰리고 있다. 기존 학원에 더해 대학 사회교육원, 백화점 문화센터까지 부동산 강좌를 잇따라 개설하고 있지만 수강 신청을 모두 수용하지 못할 정도다. “남들은 돈 벌었다는데 앉아서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배워서라도 준비해야지요.” 연봉 3000만원 수준의 중소기업 회사원 김모(30)씨는 신문광고를 보고 특강을 찾았다. 경기도 남양주시 직장에서 1시간 20분을 달려와 난생 처음으로 부동산 강의란 걸 듣게 됐다.“3년 전 결혼해 두 살짜리 아들과 아내와 함께 서울 면목동 부모님 집에 얹혀서 살고 있는데 앞으로가 너무 불안해요.”김씨는 무주택자 딱지를 떼기 위해 적금 2000만원에 전세를 끼고 대출을 받아 7000만원짜리 재개발지역 주택을 구입하려고 계획 중이다. “투기꾼들 아니에요. 답답해서 왔어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온 전임석(39·은행원)씨는 현재의 26평짜리 아파트를 30평대로 늘려 이사하는 게 목표다. 아이를 위해 학군이 좋다는 인근 목동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미 두 지역간 가격차는 전씨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아파트 값이 올라 부자 됐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야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었습니다. 수강료가 얼마가 드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두달짜리 부동산 과정을 운영 중인 K부동산 학원은 즐거운 비명이다.10차례 강의당 55만원의 적지 않은 수업료를 받지만 최근 정원 40명이 모두 사전예약으로 마감됐고 그보다 2주 후에 있는 강의도 이미 정원의 3분의2가 찼다. ●‘족집게 과외´·‘성급한 투자´ 조심해야 목 좋은 곳을 고르는 현장 강좌도 인기다. 전문가와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아파트 등의 투자가치와 땅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다. 학원 관계자는 “참가비 5만원에 전세버스를 대절해 평일 아침 함께 출발하는데도 인원이 넘쳐 못 받을 정도”라면서 “사업가, 월차를 낸 직장인, 주부 등 구성원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강사들도 상종가다.‘집중특강’‘일대일 강의’‘전화강의’ 등 형식도 다양하다. 한 강사는 “단기강의는 시간당 30만원, 일대일 강의는 시간당 20만원, 전화강의는 30분에 10만원 정도가 기본”이라면서 “하지만 신문·방송 노출이 많은 특급 강사는 요즘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른바 ‘족집게 과외’는 조심하라고 말한다. 한국부동산칼리지 김진현 원장은 “전문가에 기대는 초보투자가일수록 ‘대박’ 터지는 자리가 어딘지 등 구체적인 장소를 짚어달라는 일이 많은데 이는 아주 위험한 태도”라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만 의지하는 경우 대부분 묻지마 투자로 이어질 수 있고 자칫 사기를 당하기도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급한 자세’가 부동산 투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이재훈 윤설영기자 whoami@seoul.co.kr
  • “사찰음식은 몸과 마음 살리는 훌륭한 식품”

    “사찰음식은 몸과 마음 살리는 훌륭한 식품”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학자이자 평화·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72)박사가 5일 한국에 왔다. 세번째인 이번 방한에서 그가 새롭게 들고 온 메시지는 식생활 혁명을 통한 지구환경 살리기. 그는 지난해부터 한국 등 세계 각국에서 ‘희망의 밥상’을 출판하는 등 화학약품을 쓰지 않은 유기농법과 육류를 덜 먹는 채식주의가 환경파괴를 막고 인간을 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6일 오후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있은 인터뷰는 갑자기 일어난 소동 때문에 잠시 늦춰져야 했다. 인터뷰 직전 그가 머물던 방에 비둘기가 날아들어와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통에 놀란 비둘기가 창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서 파닥거리며 날아다녔던 것이다. 구달 박사는 “비둘기를 무사히 내보낸 다음 움직이겠다.”며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비둘기가 길을 잘못 찾아 들어왔을 뿐인데 학생들이 왜 그렇게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지 놀랍기만 했다.”며 ‘이것이 자연과 인간의 사이가 너무 벌어져버린 오늘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란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번 방한 목적은. -“한국에2개 밖에 없는 유·청소년 환경운동단체 ‘루츠 앤드 슈츠’를 더 늘리고 이 프로그램 등을 지원할 제인구달연구소 설립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만나 유기농식품에 대한 설득도 할 것이다.” ▶지난해 말 북한을 다녀왔는데 성과는. -“대체에너지 관련운동을 하는 NGO단체 초청으로 국립공원을 돌아보았고 빈곤 때문에 산림이 많이 파괴됐다는 얘기를 들었다.2개의 ‘루츠 앤드 슈츠’설립이 추진되었으나 북핵문제 이후 모든 연락이 끊겨 안타깝다.” ▶당신은 기업농과 육식이 환경을 파괴한다고 설명한다. 유기농과 채식주의가 환경에 좋다는 것은 알겠지만 경제성이나 영양학적 측면에서 현실성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유기농식품이 당장은 기업농의 대량 생산식품보다 더 비쌀지 모른다. 그러나 대규모 화학적 농법으로 파괴된 환경을 생각해 보라. 육류 사육에 쓰이는 곡물사료의 양과, 물소비, 열대우림의 파괴, 화학물질 오염 등으로 인한 환경피해 복구와 유해 식품으로 인한 인체 피해 치료비, 기업농에 의한 전통문화 파괴와 원주민들의 빈곤 심화 등 다른 비용을 생각하면 전혀 비싼 것이 아니다. 또한 채식을 하더라도 육류 대신 철분 등을 섭취하는 대체식품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문화와 철학이다.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나온다.” ▶중간에 갑자기 채식주의로 바꿨다는데 어렵지 않았나. -“비육우 사육의 잔인성을 서술한 책을 읽고 어느날 갑자기 결심을 하게 됐는데 고기를 끊자마자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내 경우 거짓말처럼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고기 소화를 시킬 필요가 없어서 그랬는지 에너지는 오히려 넘쳤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1년 300일을 해외로 여행하면서도 끄떡없지 않은가.” ▶화계사를 방문하는 것으로 아는데. -“중국과 네팔에서 사찰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다. 사찰음식은 가장 좋은 식품이다. 거기엔 평화로운 분위기, 자연에 대한 사랑이 있고, 직접 재배한 재료, 정성을 다한 요리 등으로 몸과 마음에 동시에 자양분을 준다. 쓰레기 배출도 전혀 없는 발우공양 체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좋은 음식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고기를 전혀 먹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방목되는 육류 정도로 해결되는 양만큼만 먹자는 것이다. 채소는 유기농 식품, 제고장 제철 식품을 먹어야 한다. 외국에서 먼길을 거쳐온 식품, 오래 저장된 식품은 그만큼 방부제 등 화학약품으로 오염되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작은 것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구달 박사는 “세상을 바꾸는 데는 ‘투표 한표’가 중요하다.”며 개인 소비자들의 실천을 강조했다.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yshin@seoul.co.kr
  • 소매치기와 격투 끝 가방 찾아줘

    “어제 제가 봉변을 당할 뻔 하다가 해군 한 분의 도움으로 다행히 피해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름은 홍웅(?) 확실하진 않은 것 같지만….”지난달 27일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현역 해군 하사가 소매치기범과 격투 끝에 빼앗긴 가방을 되찾아 주인에게 돌려준 미담이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해군 2함대사령부 소속 홍웅(23) 하사는 군복차림으로 외출을 나왔다가 경기도 평택시내에서 “소매치기야.”라는 20대 여성의 비명을 듣고 소매치기범을 뒤쫓았다. 홍 하사는 격투끝에 가방을 되찾았으나, 격투 중 넘어지는 바람에 소매치기범을 더이상 추적할 수 없었다. 홍 하사는 뒤따라온 가방 주인에게 가방을 돌려준 뒤 신분도 밝히지 않고 자리를 떴고, 그의 선행은 해군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가방주인의 감사의 글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홍 하사는 “위급한 상황에서 나오는 즉각적 반응이었을 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알려져 쑥스럽다.”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 삼성 40억 ‘돈벼락’

    40억원의 ‘돈벼락’이 떨어진다. 팀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삼성 선수들은 벌써부터 즐거운 비명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30억원보다 대폭 상향된 40억원 이상의 뭉칫돈이 선수단에 지급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부분은 우승시 타게 될 보험금. 지난해에는 5억원을 부어 20억원을 타냈지만 올해는 더 많이 부어 더 탈 것이 분명하다. 구단의 포상금과 포스트시즌 배당금 6억원도 더해지게 된다. 여기에 다음달 일본에서 열리는 코나미컵에서 우승 또는 준우승을 차지한다면 2억 4000만원에서 4억원을 덤으로 챙길 수 있다. 지난해에는 우승 보험금 20억원, 포스트시즌 배당금 7억원, 코나미컵 아시아 시리즈 2위 상금 3억원 등으로 30억원을 마련했다. 그러나 당시엔 우승 시기와 맞물려 모기업인 삼성그룹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 등 악재로 별도 보너스는 받지 못했다.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보너스 지급을 가로막을 악재가 없다. 따라서 지난해와는 다른 축제분위기에서 그만큼 보너스도 후하게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주지 못한 보너스까지 고려하면 예상을 훨씬 웃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보너스를 나눠 갖는 것은 아니다. 김응용 사장의 ‘신상필벌’ 원칙이 올해 지켜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활약도에 따라 A,B,C 세 등급으로 나눠 각각 1억원,7000만원,5000만원이 지급됐다. 올해도 비슷하지만 전체 액수가 늘어난 만큼 A급 선수에게는 1억원을 넘는 돈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일태 전남 영암군수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일태 전남 영암군수

    “우리 군은 인구 걱정 없어요.” 전남 영암군이 삼호읍 현대삼호중공업(조선소)과 접해 있는 대불 국가산업단지 시너지 효과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삼호중공업의 호황 여파로 대불공단 분양률이 90%로 치솟으면서 일자리를 찾아 지방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태(63) 영암군수는 “잡초밭이던 대불산단에 조선산업 기자재 업체들이 앞다퉈 들어오면서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을 찾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군 인구는 지난해보다 3000여명이 늘어 올해 6만 5000여명에 달한다. 군은 젊은 층을 붙잡기 위해 지역 명문고 육성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김 군수는 “50억원을 목표로 한 인재육성 기금도 지난해까지 벌써 44억원을 모았다.”며 “지난해 영암고와 영암여고에 2억 5000만원씩, 올해 1억 5000만원씩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또 얼마 전 영암군은 환경부가 전국 자치단체 277개 하수처리장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타 포상금 5000만원을 받았다. 영암읍 하수처리장이 하루 처리용량 2000∼7000t급 부문에서 1등을 차지했다. 앞서 올 상반기에는 맑은 물 공급(상수도) 평가에서도 전국 최우수 단체로 선정됐다. 영암군의 환경보전 시책이 호남의 명산 월출산의 영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정수장과 하수처리장 운영과 관련, 수도요금 현실화와 농촌 생활용수 개발, 슬러지 소각시설 효율적 운영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더욱이 하수슬러지를 이용해 키운 지렁이가 먹고 배설한 분변토로 퇴비를 만든 점도 모범사례로 꼽혔다. 김 군수는 “맑고 깨끗한 하수처리를 위해 환경관리공단의 도움을 받아 하수처리장을 환경기초시설 학습장으로 운영, 청소년들에게 환경보호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다.”고 자랑했다. 끝으로 그는 “상·하수도 사업에 올해 240억원, 내년에 290억원을 투자해 낡고 오래된 상·하수도 관을 바꾸고 마을별 하수처리장을 늘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영암 남기창기자 kcnam@ seoul.co.kr
  • 두번째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펴낸 이기호

    두번째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펴낸 이기호

    7년 전,“교수님 칭찬 한번 듣는 게 소원”이었던 문예창작과 대학원생은 문예지 신인 공모전을 앞두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 단편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 그러나 뒤늦게 심사기준이 2편의 작품이란 걸 알고는 부랴부랴 단편 하나를 더 써서 냈다. 뜻밖에도 당선작은 심혈을 기울여 쓴 역작이 아니라 3일 만에 뚝딱 지어낸 소설이었다. 랩음악 가사 형식으로 구성된 이 독특한 소설의 제목은 ‘버니’, 이 소설로 문단의 유망주로 떠오른 소설가가 바로 이기호(34)다. 첫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2004)에서 전통 화법과는 다른 성경체, 법정진술서, 자기소개서 등의 문체실험으로 주목받았던 이기호가 신작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문학동네)를 냈다. 기발하고 다양한 소설적 외피 안에 동시대 인간군상의 비루한 삶을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연민으로 담아냈던 전작의 미덕은 이번 작품집에도 여전하다. 하지만 ‘소설’과 ‘소설가’의 정체성을 파고드는 서너편의 수록작에선 작가 내면의 어떤 변화가 감지된다. ●“작정하고 제 자신 온전히 드러냈죠” “소설가는 소설 뒤에 숨어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제 이야기를 썼어요. 익명의 다수 앞에서 발가벗겨진다는 점에서 소설가는 창녀와 비슷해요. 어차피 평생 소설가로 살 거라면 좀더 용감해질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먼저 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자고 생각했지요.”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는 수 년째 9급 공무원시험에 낙방한 별 볼일 없는 30대 남자가 여관방으로 부른 성매매여성에게 소설을 읽어 준다는 엉뚱한 이야기다.‘오디오용 소설’을 표방한 소설은 최면 기법을 끌어들인 독특한 형식으로 읽는 이를 화자인 동시에 청자로 만들어 버린다.‘수인(囚人)’은 소설가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지독한 우화이다.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아수라장이 된 세상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소설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형서점의 무너져 내린 시멘트벽을 곡괭이로 파헤친다.‘자기를 증명하기 위한 끝없는 노동’이 소설가를 소설가이도록 하는 원동력임을 암시한다. ●“소설은 조금 더 비루해져야” “저는 소설이 조금 더 비루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설에 등장하는 우아한 백수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넓히고, 독자를 소설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에요. 지상에서 한뼘 떨어진 소설이 아니라 진흙탕에서 함께 구르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이기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는 약자들이다.‘최순덕 성령충만기’에 등장한 ‘시봉이’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뒷골목 낙오자의 모습으로 나온다. 시골에서 상경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시봉이는 어린 불량배들에게 얻어맞거나(‘당신이 잠든 밤에’), 국기를 훔쳐다 팔기 위해 새벽마다 게양대에 매달린다(‘국기게양대 로망스-당신이 잠든 밤에2’). 황당하고 기막힌 상황에 정신없이 웃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이 찡해진다. 작가는 “누구를 가르치거나 위로해줄 처지는 못되고, 그저 같이 붙잡고 울어주는 게 내 한계”라고 말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갈팡질팡하면서 살다 보니 소설가가 돼 있더라.”는 작가는 “두 권의 단편집은 워밍업 과정이었고, 앞으로 긴 호흡의 장편에 매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서울 오금동 ‘독천낙지골’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서울 오금동 ‘독천낙지골’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다. 주꾸미는 봄에 맛있고 낙지는 가을에 가장 맛있다는 뜻이다. 낙지는 알을 낳는 때인 5월부터 8월말까지 금어기를 거쳐 9월부터 잡기 시작한다. 지금이 목포, 영암, 순천 등에서 한참 낙지가 많이 잡히는 철이다. 우리가 흔히 삽을 들고 갯벌에서 잡는 모습을 TV를 통해 많이 보았지만 사실은 배를 타고 바다에서 주낙으로 잡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낙지를 좋아한다. 칼로 잘게 잘라도 꿈틀꿈틀 움직이는 낙지를 참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입천장에 쩍쩍 달라붙지만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또 목포 등 산지에선 세발낙지(조그만 새끼낙지)를 젓가락에 감아 통채로 먹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보면 ‘으∼악’하고 비명을 지르지만 그 맛은 정말 특별하다. 하지만 산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죽은 낙지를 쓰고 매운 양념과 함께 요리를 하기 때문에 낙지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없다. 낙지의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살리려면 양념을 많이 하지 않거나 살아있는 것을 먹는 것이 좋다. 낙지는 예부터 스태미나 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낙지에 풍부한 단백질과 비타민 B2, 칼슘 인 등의 무기질 때문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타우린이 풍부하다. 타우린은 신체 각 부분의 기능을 높여 여러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 질병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또 교감신경 억제 작용이 있어 고혈압을 개선할 뿐 아니라 심장에서 나오는 혈액의 양을 늘리고 심근의 수축력을 높여 심부전을 방지하는 작용도 있어 심부전 치료를 위한 의약제로 사용되는 성분이다. 이런 영양학적인 우수성 때문에 남도에서는 산모에게 미역국을 끓여 줄 때도 낙지를 넣어서 원기회복을 돕기도 했다. 낙지는 저지방, 저칼로리, 고단백질 식품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에게도 좋은 거의 ‘만병통치약’과 같다. 산지에 가서 먹는 그 맛만큼은 아니겠지만, 서울에서도 싱싱한 낙지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그 중 송파구 오금동의 독천낙지골은 낙지로 유명한 전남 영암 독천의 지명을 딴 식당이다. 이 곳에서는 무안, 완도 등에서 싱싱한 낙지를 매일 공수해오며, 양념으로 쓰는 고춧가루와 참기름도 전남 영암에서 난 것만 쓴다. 이 곳의 낙지볶음은 낙지 본래의 맛을 가릴 정도로 많이 맵지 않고, 싱싱한 산낙지를 살짝 익혀 콩나물, 미나리와 함께 내는데 연하고 단 낙지에 어우러지는 매콤하면서 약간 새콤한 양념의 맛이 여느 집에서 먹기 어려운 별미이다. 낙지 연포탕 또한 낙지의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과 간을 최대한 자제한다.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내고, 여기에 흔히 들어가는 모시조개 대신 굴을 넣어서인지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좋다. 낙지를 잘못 자르면 먹물 주머니가 터져 국물이 검게 변하므로 친절히 잘라주시는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필자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세발낙지를 시켰더니 ‘30분 뒤면 오늘 물건이 들어오니 기다렸다 그걸 드시라’는 주인의 말에 더욱 기분이 좋아졌던 곳이기도 하다. 곁들여 나오는 반찬들도 맛깔스러운데 많이 짜지 않으면서 감칠맛이 나는 갈치속젓과 쫄깃한 창란젓 등도 모두 안주인이 직접 담근 것이다. 투박한 총각김치와 깔끔한 무나물도 맛나다. 낙지연포탕, 갈낙탕 3만5000원, 낙지비빔밥 7000원, 낙지볶음 3만 5000원이며 산낙지와 낙지구이는 시가에 따라 달라진다.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 쉰다.(02)402-3160 또한 혹시 전남 순천에 간다면 낙지나라(061-742-2667)를 추천한다. 가장 싸게 산낙지를 먹을 수 있는 집이다. 주인 정득수씨가 직접 바다에서 잡아오는 낙지를 원가에 준다. 물론 집 한 쪽에 마련된 식탁에서 먹을 수도 있고 전화로 주문하면 고속버스를 이용해 보내준다. 생물이므로 택배는 불가능하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마리당 3000원 선. 여성전문병원 ‘한송이 W클리닉´ 원장
  • [원高·엔低시대 득과 실] 전자·자동차 ‘비명’… 中企 수출 아예 중단

    [원高·엔低시대 득과 실] 전자·자동차 ‘비명’… 中企 수출 아예 중단

    17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무역협회 최고경영자 조찬간담회는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온 한숨으로 가득 찼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원·엔 환율이 이미 역(逆)마진 수준으로 내려가 수출을 계속해야 할지 기로에 서 있다.”고 토로했다. 산업계가 ‘원고엔저’(원화가치 강세, 엔화가치 약세)에 비상이 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핵’ 2차 징후까지 포착돼 살얼음판이다. 국제무대에서 일본 제품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전자·자동차·정보기술(IT) 업종의 근심이 특히 크다. 무역협회가 수출대금을 엔화로 결제받는 국내업체 423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손해를 보지 않고 수출할 수 있는 원화 대비 엔화 환율의 마지노선은 971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원·엔 환율은 800원선을 오르내려 마지노선이 무너진 지 오래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환율 방어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일본으로의 수출을 거의 포기한 실정이다. 특히 중소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우산포장기기를 생산하는 M사는 지난 7월부터 대일 수출을 아예 중단했다. 현대자동차의 소형 승용차 ‘베르나’는 미국 시장에서 경쟁차종인 일본 도요타의 ‘야리스’보다 640달러 비싸다. 원래 야리스가 베르나보다 1000달러가량 비쌌지만 엔화가치 하락으로 차값이 계속 떨어지면서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 중형차종인 도요타 캠리와 현대 쏘나타 가격 차이도 종전 13%에서 9%로 좁혀졌다. 이런 탓에 5%에 육박하던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달 4.2%로 떨어졌다. 일본 업체들은 ‘엔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 전역에 600여개의 판매점을 갖추고 있는 ‘서킷 시티’에 따르면 최근 37인치 LCD TV의 가격 인하폭은 LG전자와 필립스가 각각 250달러,290달러인 반면 샤프는 300달러로 가장 많이 내렸다. 수출만 어려운 게 아니다. 내수에서도 환율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값을 내리면서 한국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이다. 테크노마트의 LCD TV 판매 가격을 보면 LG전자의 42인치(모델명 42LC2DRAS)가 245만원, 삼성전자 40인치(LN40R71BD) 240만원, 소니 40인치(KDL-40S2000)가 250만원선이다. 이 바람에 소니의 매장당 일주일 평균 디지털TV 판매 대수는 3대에서 9.5대로 세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본 제품은 국산보다 20% 이상 비쌌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일본의 새 정권이 안정을 찾기 전까지는 엔화가 약세를 보일 수 있다.”며 “내년 원·엔 환율 하락의 영향이 세계경기 둔화세와 겹쳐 나타나면 국내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미현 김경두기자 hyun@seoul.co.kr
  •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1)운명과 자유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1)운명과 자유

    인간은 자기선택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인생의 양 끝은 다 자유선택과 무관하게 처리된다. 이래서 사람들은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인생의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운명이 나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운명의 장난으로 살지 않고, 삶을 자유스럽게 영위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인생이 자유와 운명의 사이에서 흔들의자처럼 오가는 것으로 짐작한다. 동서고금의 철학사에서 운명을 부정하는 극단적 자유행동론자는 기원전 중국 전국시대의 묵자(墨子)와 20세기 프랑스의 실존철학자 사르트르가 대표격이겠다.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흔히 운명이라 부르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행동에 다름 아니라고 그의 저서 ‘시인 보들레르론’에서 밝혔다. 이런 초기의 자유행동론은 후기의 사회역사철학에서도 적용된다. 그의 행동철학은 철저히 인간주의적인데, 그 말은 자연적 필연의 요소를 완전히 지우려는 사유와 통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초기의 실존철학에서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계급투쟁의 의식철학으로서의 마르크시즘을 후기에 강조했다. 동양에서는 묵자가 철저한 비명론(非命論)을 펼쳤다. 비명은 운명이나 숙명을 부정하는 의미로서, 운명은 실천적인 노동분업의 가치를 말살시키고,‘팔다리의 힘을 다하고 생각하는 지혜를 다하게 하는데(非樂篇)’ 큰 방해가 된다고 묵자는 생각했다. 묵자는 인간 근육의 힘과 생산의지와 그 의식의 생각을 아주 강조했다. 묵자는 의식과 의지의 사상가로서 운명을 인간의 삶에서 온전히 배제시켰다. 묵자는 사르트르처럼 철저한 실천의식의 사상가였다. 과거 마오(毛)의 중공이 노자와 공자를 비판하면서 묵자를 은근히 좋아했던 것은 까닭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묵자와 사르트르는 인생을 너무 실천적 행동위주로 보는 단순성으로 넘쳐난다. 그래서 사유의 깊이에서 그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의식의 의지를 너무 강조했다. 그러나 운명은 자유행동의 적이 아니라, 그 행동과 함께 동반하기에 우리에게 문제가 된다. 자유와 운명의 이중성을 잘 읽은 철학자 가운데 나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로 해석학의 대가 리쾨르를 들고 싶다. 그는 그의 저서인 ‘의지의 철학’에서 자유의사(the voluntary)와 운명의 무의식(the involuntary)을 이원론적으로 나누지도 않고, 일원론적으로 통합하지도 않았다. 그가 말한 의지(will)는 저 두 가지 요소를 다 지닌 현상이지, 사르트르처럼 운명을 배제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다. 리쾨르는 생각한다. 인간의식은 스스로의 생각을 자유자재로 그리지 않고, 그 의식이 뿌리박고 있는 무의식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대화하는 조건에서 생활한다. 나라는 자의식은 무수히 많은 요인들(역사적, 사회적, 심리적, 생리적)이 나에게 주어져 생긴 현상이지, 내가 자의식을 만든 장본인이 아니다. 나는 전적으로 내 것인 것만은 아니다. 내가 자유의사로 원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만이 아니다. 그는 사르트르의 철학에 정공법을 가한다. 내가 자유의사로 원하는 것은 내 몸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주는 무의식과의 혼융에서 생긴 것이다. 나의 자유의사는 내 몸에 쌓여 있는 마음의 습관과 내가 살고 있는 생활세계의 역사적 숙업(宿業)을 무시하고 설명되지 않는다. 이것은 피아니스트나 체조선수가 받은 몸의 조건과 생활환경을 무시하고 그의 자유활동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이 말은 자유는 필연의 운명을 떠나서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필연의 운명은 자유의 의식적 행위가 늘 안고 있는 업(業)의 무의식적 성격과 같다. 즉 내 의식의 자유행위의 밑바탕에 늘 특수한 운명의 색조가 동시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이 점을 간과하기에 아무리 유식해도 한국학으로 등록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학문들은 한국인의 공동업장과 무관한 지식들을 화려하게 남발하기 때문이다. 리쾨르가 그의 ‘의지의 철학’에서 말했다.“나는 선택하는 나 자신의 방식과 또 내가 선택하지 않는 나를 선택하는 나 자신의 방식을 다 갖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자유로운 선택 행위에서도 남의 것과 다른 나의 특수한 방식이 있고, 또 심지어 나라는 존재는 내가 선택한 결과가 아니고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인데, 그런 나를 동시에 후천적으로 선택하는 나의 특수한 방식이 있음을 말한다. 리쾨르의 저 언명은 나의 모든 자유행동의 이면에 특수한 성격이 나의 자유행동을 제약하고 있고, 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또한 후천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 가는 와중에도 나의 특수한 운명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리쾨르의 철학은 운명의 성격이 나의 자유로운 사유와 행위를 특수하게 제한시키는 틀과 같아서 나의 실존적 자유가 그 틀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비록 무의식이 자유의사의 밑바탕에 은닉되어 있지만, 그의 철학은 무의식의 제약 속에서도 ‘코기토(cogito=나는 생각한다)’라는 자의식의 ‘재정복’과 ‘확장’을 도모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데카르트의 ‘코기토’ 철학을 무의식의 영역과 접목시킨 사유다. 무의식을 배제한 데카르트의 ‘코기토’ 철학의 힘을 가능한 한에서 무의식의 영역까지 확장시켜 무의식을 의미로서 재정복하려는 사유다. 그러나 나는 이 리쾨르의 길을 더 이상 따르지 않으련다. 왜냐하면 리쾨르의 길은 무의식이란 제약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아의 지성적 소유의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이란 제약과 성격의 업은 자아의 이성적 합리성의 읽기로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조급한 성격은 그것을 인식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점에서 인도의 불교 고승들인 세친(世親=바수반두)의 유식사상과 마명(馬鳴=아슈바고샤)의 기신론사상에 더 의존하고자 한다. 이들의 주장은 자유가 리쾨르의 소론처럼 자의식의 확장으로 운명의 장애를 극복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의식의 힘을 소멸시킴으로써 운명의 힘을 동시에 무력화(無力化)시키는 것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비유컨대 로댕의 ‘생각하는 사나이’와 신라의 미륵반가사유상의 비유를 내가 들었던 것(7회 글 참조)과 유사하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나이’는 침통한 얼굴에 근육질의 몸을 갖고 있다. 그것은 자아의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다. 그러나 미륵반가사유상에는 그런 근육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고요히 미소짓는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고 있다. 세상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소유의식과 그 의지를 포기한 자의 화평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 그 화평이 곧 자유다. 세친의 유식사상에 의하면 인간의 지각과 생각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운명이나 숙업의 영향 아래서 작용하고 있기에 지각과 생각이 ‘내가 생각한다(cogito)’는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것은 숙업과 운명인 ‘그것이 생각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그것’은 개인적 숙업일 수 있고, 역사적 사회적 공동업(공동운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 업은 사회적 역사적 공동업의 힘을 능가할 수 없으므로 자유의 철학은 역사적 사회적 공동업의 장애를 무력화시키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공동업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리쾨르처럼 이성적 사유를 더 확장시키거나 정복의 길을 가게 하는 근육질의 소유철학으로서 성공하지 못한다. 그동안 줄곧 ‘철학산책’을 통하여 주장해 왔던 사유는 선의 진군나팔을 불면 선은 반드시 악을 낳고, 사랑에 집착하면 증오를 등뒤에 감추고 있고, 평화를 광적으로 외치면 전쟁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의식은 선과 사랑과 평화를 자각하고 확장하려 하지만, 무의식은 이미 그 반대의 것을 분비하고 있다. 이것을 의식은 모른다. 이 무의식의 활동을 마명은 삼세육추(三細六)라고 불렀다. 삼세는 가장 깊은 무의식인 제8식 아뢰야식에서 일어나는 소유욕의 세 가지 미세한 현상들이고, 육추는 아뢰야식의 영향 아래서 제7식인 말나식에서 생기는 거친 여섯 가지 소유욕을 말한다. 이 말나식에서 아(我)중심의 사고가 무의식으로 일어나 모든 인간의 의식활동과 지각활동을 지배하게 된다. 지금 여기서 삼세육추의 무의식적 업을 자세히 말할 입장이 아니므로 생략하지만, 마명의 기신론 사상은 말나식에서 아중심의 분별심이 상속되고 소유로 개념화되어 의식의 모든 활동에 장애를 일으키고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업의 운명과 그 성격은 다 궁극적으로 소유욕의 발동에 기인한다. 아중심의 소유욕의 발동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인간은 화평한 자유를 맛보지 못한다. 나는 한국인들이 역사적인 어떤 공동업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여긴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국가가 백성과 국민으로 하여금 나라를 믿지 못하게 했다. 국가의 존립 이유는 병화의 예방과 치안유지, 국민을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하는 경제정책, 국민의 눈과 마음을 드높게 열게 하는 교육의 배려 등 삼원체제의 구축으로 국가가 모든 국민을 편가르지 않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성심으로 아끼고 보호하는 데 있다 하겠다. 저 삼원체제는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국가의 불변가치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한국의 현실정치는 정권교체 때마다 앞 정권을 송두리째 부정하면서 한국의 정당처럼 무상하게 부침하고 새로 시작하므로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다. 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하므로 국민 각자는 알아서 자기의 살 길을 찾으려고 온갖 아중심의 이기적인 사고를 전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각자가 자기의 살 길을 눈치껏 찾는 아중심적 사고가 한국인을 일체감으로 결집시키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우리를 모래알처럼 산산이 분산시키는 공동의 업장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공동업장의 제약과 고통을 덜 받고 자유스럽게 날개를 활짝 펴서 날기 위하여 한국인은 아중심으로 뿔뿔이 살길을 찾는 데 부심하는 유아심(唯我心)을 진정시켜야 한다. 그것은 당위적 도덕주의의 설교로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자가 국가를 못 믿고 제 살 길 찾기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는 더욱 상충하는 불행의 먼지바람이 강하게 일어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주에 이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데뷔 5년에 꿈같은 행운 김부자(金富子)양

    데뷔 5년에 꿈같은 행운 김부자(金富子)양

    『사랑은 이제 그만』이란 노래로 한창 방송, 「디스크」계의 화제를 휩쓸고 있는 김부자(金富子)(22). 「디스크」가 나온지 석달 남짓한 사이에 8만장 이상(제작자쪽 주장)이 팔려나가 갑자기 찾아온 행운에 벌린 입을 못다 물고 있다. 김부자(金富子)의 가요계서의 상표는 「민요가수」였다. 현역 여자가수중에서 민요조 또는 타령죠에 특징을 갖고 있는 가수로는 김(金)「세레나」와 조미미(曺美美)가 있고 여기에 김부자(金富子)가 포함돼서 이를테면 「민요조 3총사」. 「데뷔」곡 『강화(江華) 아가씨』 (김부해(金富海)곡)부터 민요조를 들고 나온 김부자(金富子)는 가수생활 5년동안 줄곧 이 재래식 노래를 불렀다. 취입한 노래 80여곡 중 「히트」했다고 꼽을 수 있는 노래가 『팔도기생(八道妓生)』과 『임오시는 길』. 이 두곡은 김(金)양의 대표곡으로 꼽혀 69년 5월 도일(渡日) 때는 일본에서 「도너츠」반(盤)으로 취입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김부자(金富子)가 받은 각광은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민요풍의 노래라면 김(金)「세레나」가 단연 「톱」. 김(金)「세레나」가 대낮 같은 인기가도를 달렸다면 김부자(金富子)는 달밤을 달려온 응달의 가수다. 65연도 DBS 「가요백일장」에서 1위 (김(金)「세레나」) 2위 (김부자(金富子))들 차지하여 가수로서의 출발은 똑 같지만 전자에 비해 후자는 신인(新人)의 인상을 벗어나지 못한게 이제까지의 실정. 이런 인상이 『사랑은-』의 「히트」로서 완전히 벗겨졌다. 「트로트 ·리듬」의 『사랑은-』은 김(金)양이 즐겨 부르던 단조로운 민요조와는 전혀 다른 창법의 노래. 한동안 창법(唱法)이 일본색(日本色)이란 시비도 있었지만 대중가요로는 완숙의 기교를 부렸다는 평판이다. 『「히트」가 얼마나 신나는 것인지 처음 느꼈어요. 없던 「팬 ·레터」가 평균 하루 10여통씩 날아오고 한밤중까지 전화받기에 땀이 날 정도예요』 김부자(金富子)의 즐거운 비명. 제조 발매원인 「오아시스 ·레코드」쪽은 이 「디스크」의 매진속도가 가요 사상 최고라고 큰 소리다. 「베스트 ·셀러」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동백(冬栢) 아가씨』(이미자(李美子))가 통칭 20만장 나갔다지만 이 숫자는 발매 후 3년간의 집계고 남진(南珍)의 『가슴 아프게』(8만) 이미자(李美子)의 『섬마을 선생님』(10만)도 1년 이상의 장기간 판매부수. 『사랑은 - 』이 3개월에 8만장이라면 확실히 「디스크」계의 신기록이다. 1백 55cm의 단신(短身)에 방울처럼 동그란 얼굴의 김부자(金富子)는 이 노래로서 가수생활의 전환점을 삼게 됐다. 「민요가수」에서의 「이미지 ·체인지」는 이미 다양해진 그녀의 「레퍼터리」로서 실증하게 됐다. 새로 취입한 노래 『찾아온 천릿길』도 민요조가 아니라 달콤하게 흐느끼는 「트로트」풍의 대중가요 가락. 덩달아서 그녀의 줏가도 뛰어 올랐다. 지방무대에서 그녀가 받은 「개런티」는 하루 8천원의 C급에서 1만 5천원~2만원의 B급으로 껑충 뛰었다. 「나이트 ·클럽」에서도 김부자(金富子) 쟁칼전이 벌어졌고 방송국의 출연회수도 증가일로. 전속사에서는 이미 전화를 사줬고 곧 자가용차도 사주겠다고 약속했단다. 김부자(金富子)의 행운에 박수를 보내는 한 가수는 색다른 이류로 그녀를 추켜세웠다. 강화도(江華島)가 고향인 그녀는 홀어머니와 두 동생의 생계를 도맡은 세대주. 아버지가 돌아간 뒤 가정생활은 온통 김부자(金富子)의 두 어깨로 감당해왔다는 귀띔이다. 69년 12월에 그녀의 「매니저」격인 이상문(李相文)씨(32)와 약혼 , 『올 가을쯤 결혼식을 올릴 것같다』는 김(金)양. 『엄마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아서 결혼을 늦추고 싶어요』라고 방울같은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선데이서울 70년 2월 15일호 제3권 7호 통권 제 72호]
  • [열린세상] ‘그림자 놀이’에 스러지는 인문학/김정란 상지대 교수 시인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호소하며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사회에 요청하고 있다. 고려대 인문학 교수들의 선언에 이어 전국 80여개 대학장들이 인문학을 살릴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의 마련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 사이 간간이 터져나오던 인문학자들의 비명이 한데 모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공계의 위기’에 관한 담론은 자주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가 대대적으로 이슈화된 적은 없었다.‘이공계의 위기’가 논의될 때마다 인문학자들은 속으로 조용히 삭일 뿐이었다.‘어쨌든 그건 이야기라도 되는구나. 인문학은 아예 그조차도 못되는구나.’라고. 나는 한국 사회에 등록되기 시작한 ‘이공계의 위기’나 ‘인문학의 위기’ 모두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것을 돈을 만들어내는 물질적 성과 위주로 판단하면서 그 기초를 무시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며, 결국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지속적인 경쟁력은 무엇보다 기초적인 실력에서 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문학 위기의 일단은 분명히 문명적인 것이다. 세계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인문학을 내다 버리고 있는 중인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현실적 결과로만 판단하는 추세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혜로운 눈은 현상의 표층 아래에서 도도히 흘러가는 다른 힘을 헤아린다. 지혜로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그 표층 아래의 흐름을 현상과 함께 헤아리고 미래를 준비한다. 현상만을 좇으면, 결국 그 공동체는 그림자 놀이만을 하다가 만다. 그 공동체는 진정으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아무것도 생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의 인문학의 위기는 아주 기이한 현상을 보인다. 초라한 인문학의 이면에는 문화의 기이한 버블 현상이 있는 것이다. 인문학은 문화의 물줄기 같은 것이다. 그것은 문화상품이라는 최종의 산물을 만들어내는 근원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수원은 말라 가는데, 하류에서는 지금 물놀이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분수를 만들어서 멋지게 공중에 쏘아 올리고, 그 위에 배를 띄우고 신나게 놀고 있다. 인문학이 지금처럼 위기상황에 몰리게 된 데에는 물론 인문학자들의 잘못도 있다. 그들은 대중과의 소통에 게을렀고, 대학이라는 안전한 틀 안에 갇혀 세상에 벼락이 치든 말든 나 몰라라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인문학자들에게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인문학은 성숙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 큰 틀의 철학을 정립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 막바로 시장으로 떠밀어 넣으면 인문학은 고사해 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처럼 근대의 경험이 짧고, 그나마도 왜곡될 대로 왜곡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서구인들이 수백 년에 걸쳐 연습한 것을 우리는 몇 배로 축약해서 빠르게 그리고 집약적으로 치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혼란의 덩어리 그 자체이다. 인문학은 결국 역사적 경험의 분절과 연관되어 있다. 현상의 차원에서 문화 상품들이 그때그때 대중의 느낌과 경험을 양식화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문학이 그 현상적 경험들을 역사적 경험과의 관계 안에서 제대로 자리잡아 주지 않으면 그것은 늘상 임시수용소에서의 삶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초를 마련한다는 발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건강한 정신적 몸 만들기 같은 근본적인 플랜이 있어야 한다. 대증적 요법으로는 시간 안에서 버티는 작업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리고 그 얇은 시간에 대한 경험으로는 미래의 강한 공동체를 약속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우연의 바람 안에서 정신없이 흔들려버릴 것이므로. 김정란 상지대 교수 시인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용인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용인길

    충북 음성군 생극면을 지난 영남대로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이 살고 있는 경기도로 접어든다. 종착지인 서울이 얼마 남지 않아 행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음 직하다. 교통의 요지인 용인으로 가는 길목인 옛길은 경기도 안성에 첫발을 내디딘다. 경기도 관문인 죽산에서 시작되지만 17번 국도와 맞물려 옛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도로가 직진화되면서 군데군데 남은 길은 인근 마을의 진입로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 가는 첫길 죽산 죽산에 들어서면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당간지주와 미륵입상이다. 그나마 옛길의 흔적을 알려준다. 미륵입상 앞에는 향토유적 제20호인 오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도로 서편으로 나있는 좁고 긴 콘크리트 도로는 지금은 사라진 안성선 철도 노반이 있던 자리다. 경부선 천안역에서 출발해 안성평야를 지나 안성에 이르는 철도였다.1927년 9월15일 이천시 장호원까지 개통되었으나 태평양전쟁으로 1944년 11월1일 안성∼장호원이 철거되고 1989년 1월 도로교통의 발전으로 폐선되었다. 정양화 용인시 전통문화연구소장은 “철로가 전쟁물자로 공급되는 바람에 철거됐다.”고 전했다. 500여m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비석거리 마을이다. 옛 과거길이자 관리가 다니던 관도임을 증명하듯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조선시대 지방 관리들은 자신들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재임기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영남대로에 공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의 공덕비도 섞여 있다. 비석거리를 지나면 말을 바꾸어 타던 분행역터다. 지금은 분행마을이다. 청미천을 넘은 옛길은 17번 국도를 따라 10여㎞를 내달아 용인시 백암면에 다다른다. 국도가 옛길을 덮어 자취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자투리 옛길은 좌항초등학교 쪽으로 접아들면서 잠시 국도와 이별한다. 좌찬역이 있던 좌전마을이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은 양옆이 무성한 잡초로 덮여 있다. 동네 한가운데 마을의 입구를 표시하던 비석이 서있었다는 이문(里門)터가 있다. 지금은 매몰돼 초가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잡았다. 국도와 다시 연결되는 길목이 좌찬고개다. 이 고개는 박포라는 장수가 정도전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으나 그 대가가 보잘 것 없다고 비난하다 귀양을 온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박포의 벼슬이 좌찬성이고 귀양지가 좌항리라서 좌찬현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개는 완만하지만 걸어서 넘기가 쉽지 않다. 좌전마을 뒤편에는 밤나무 5000여그루가 들어선 농원이 있다. ●수탈용 수여선 아스라히 국도 건너 남아있는 옛길에는 의병장 임경재의 비석과 석상이 자리잡았다. 양지 인터체인지를 지난 영남대로는 42번 국도와 만난다. 폐도화되다시피 한 길 옆으로 수인선과 함께 우리나라 첫 협괘열차가 운행되었던 수여선 철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농로지만 직선으로 곧게 뻗은 것이 철로였음을 짐작케 한다. 일제시대 때 사설철도회사인 ‘조선경동철도’에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운영하던 것으로 이천쌀과 소금을 강탈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수탈의 현장이다.1930년 개통해 삼박골과 김량천교를 건너 용인으로 들어갔던 이 열차는 1972년 적자운영으로 모습을 감췄다. 인근 양지천에는 일제시대부터 최근에 새로 놓은 다리까지 3개의 교각이 나란이 버티고 있는 일명 3세대 다리가 있어 세월의 흐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다리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실물 박물관인 셈이다. 여기서부터 옛길은 용인을 포함한 수도권의 대규모 택지개발붐에 밀려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인근에 동백지구와 구갈 2·3지구를 포함한 크고 작은 아파트단지가 빼곡히 들어찼다.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 나타나 있는 영남대로와 지금의 지도를 비교하면서 옛길을 회상하며 대로변을 걷는 모양새다. 그나마 남아있었다던 용인시 처인구청 인근 옛길은 소멸됐고 번잡한 시내 중심가 도로들로 자리메움했다. ●산천개벽의 상징 용인시청 국도를 따라 3㎞가량 지나면 오른쪽으로 기초자치단체의 청사로는 최대규모로 알려진 용인시 행정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지나 옛길은 잠시 국도 신세를 면한다. 멱조고개부터 어정리를 지나 판교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최근 입주를 시작한 동백지구 연결로로 사용되는 데다 대규모 어정가구단지가 자리잡아 옛길의 정취는 온데간데없다. 대부분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길이야 어찌됐든 멱조고개(일명 메주고개)는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옛날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부역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었고 시아버지가 대신 나무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면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시아버지가 걱정되어 찾아나서다가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혹시나 하여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시아버지가 배고픈 호랑이를 만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를 본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배가 고프다면 내 아이라도 줄 터이니 시아버님을 다치게 하지 말라며 아이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가 자신은 늙었기에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어린 손자를 죽게 했느냐고 꾸짖자, 며느리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느냐며 모셔왔다고 한다. 멱조고개는 이렇듯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연과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경찰대학 앞을 지나지만 이 길이 영남대로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없다. 그나마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것이 용인 향교이다. 그렇지만 이 향교도 원래는 구성면 마북리에 있었던 것을 이전·복원한 것으로 6·25때 소실된 후 남아있던 부재를 사용해 다시 지은 것이다. 구성동사무소를 지나면 연원마을이다. 이곳도 온통 아파트단지다. 옛날에는 마을 이름었지만 지금은 아파트단지 이름으로 변했다. 바로 옆마을 새터말에는 장승이 있지만 길목에는 월마트가 자리잡아 영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옛길은 풍덕천으로 이어진다. 곧바로 수지구청이다.23번 국도를 따라 간다. 풍덕천에서 옛길은 공사가 한창인 판교택지개발지구로 이어져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흔적이 남아있던 낙생초등학교 옆 너더리 마을도 얼마 전까지 부동산중개업소로 가득 찼으나 지금은 개발로 모두 철거돼 사진으로만 남게 됐다. 이어 영남대로는 청계산을 거쳐 종착지인 서울로 치닫는다. 글 사진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판교의 유래 개발이 한창인 판교(板橋)는 옛 명칭이 널다리였다. 마을 이름을 ‘널다리’라고 부르다가 ‘너다리’로, 다시 한자표기인 판교동으로 굳었다.‘널다리’란 이름은 마을 앞을 흐르는 운중천에 넓은 판자로 다리를 놓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해석이 분분하다. 정양화 용인시 전통문화연구소장은 다리의 경우 들(坪)의 뜻을 가지는 이름으로 교각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 말대로라면 ‘널다리’의 경우 넓은 들판을 가리키는 의미로 해석돼 판교의 명칭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판교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것은 정씨의 해석대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수 있는 천혜의 ‘넓은 들판’이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최근 자신이 연구한 자료에서 이같은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이 연구자료에 따르면 용인시 원삼면 맹리와 독성리에 각각 위치한 느다리와 쪽다리는 마을이 아닌 들(坪)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다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흔히 개울에 놓여있는 다리(橋梁)로 생각하기 쉽지만 기흥구의 잔다리와 이웃하고 있는 백암면의 홈다리와 같은 뜻을 가지는 전형적인 땅이름이라는 것이다. 즉 잔다리와 홈다리는 다리(교량)가 아니라 ‘작고 좁은 들(坪)’의 뜻을 가지는 이름이며 느다리와 쪽다리도 같은 발상에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 잔다리는 현재 마을을 이루고 있고 홈다리도 몇 집이 살고 있지만 느다리와 쪽다리는 그저 들판으로 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느다리는 구한말 ‘지명지’에 늘다리라고 나오고 있으며 판교평(板橋坪)이라고 옮기고 있다. 또한 쪽다리는 편교평(片橋坪)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늘다리의 경우 ‘널+다리’라고 생각해 널빤지의 뜻을 가진 판(板)자를 쓰고 다리는 교량으로 생각하여 다리의 의미를 지닌 교(橋)자를 사용한 것으로 편교도 조각의 뜻을 가진 편(片)자와 교(橋)를 사용했으니 판교나 편교나 소리나는 발음의 뜻을 임의로 취하여 붙인 표기라는 설명이다. 느다리는 맹골 마을에서 발원하여 미평리의 청미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이 있어서 다리(橋)를 놓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쪽다리는 작은 도랑이 전부이기 때문에 굳이 다리를 놓을 필요는 없어 위의 들(坪)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판교 시가지 명칭은 판평(板坪)으로 봐야 한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우리들의 현대침묵사/정길화 등 지음

    돌아보면, 지난 세기 한국 현대사는 상승과 하강의 아찔한 곡예를 펼치는 롤러코스터나 다름없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거대한 열차 소음에 가려 승객들의 비명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 따윈 무시되는 억압과 폭력의 시대는 곧 침묵의 역사였다. 1999년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첫 방송을 시작한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그 침묵의 카르텔을 용기있게 깨트린 프로그램이었다. 보도연맹, 반공포로, 북파공작원, 삼청교육대, 정인숙 사건 등 어둠속에 은폐돼 왔던 한국 현대사들이 하나씩 세상밖으로 불려나왔다.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해까지 6년간 총 100편이 제작됐다. ‘우리들의 현대침묵사’(정길화 외 지음, 해냄 펴냄)는 이중 스무 편을 골라 책으로 엮은 것이다. 13명의 PD들이 방송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취재수첩의 기록을 뒤지고 기억을 더듬어 원고를 썼다.1부 ‘억압과 폭력의 나라’는 1977년 무등산 무허가 판자촌 살인사건으로 사형당한 박흥숙, 사회정화란 이름으로 국가가 극단적인 인권유린을 행한 삼청교육대, 녹화사업의 명목으로 강제집징당한 뒤 의문사한 대학생 등 국가가 저지른 폭력적 사건들을 조명한다. 2부 ‘풀리지 않는 역사속 미스터리’에서는 정인숙, 박정희, 김형욱 등 미심쩍게 숨진 인물들의 죽음을 추적하고 친일파의 행적과 강남 투기의 역사를 좇는다.3부 ‘헤어나지 못한 레드 콤플렉스’에서는 연좌제의 폐해, 보도연맹, 반공포로 등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반공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밝히고,4부 ‘미국과 일본,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이자 혈맹의 나라로 여겨져온 미국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소파(SOFA)협정, 기지촌 정화운동 등을 통해 알아본다. 감춰져온 역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진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풍부한 정보와 생생한 인터뷰로 엮어진 글들은 20세기를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에겐 시간을 뛰어넘어 진실과 마주하는 감회를 주는 한편 젊은 세대에겐 역사적 무지를 깨우치는 귀중한 자료가 될 듯싶다.1만 3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억불(億佛)을 바라보며

    장흥에서 사는 즐거움들 가운데 하나는, 억불산 위에 앉아 계시는 그 숭엄한 분을 늘 배알하곤 하는 것이다. 억불산을 먼 곳에서 바라보면, 머리 부분에 한 개의 거대한 남근석이 총포처럼 우뚝 솟아 있는 듯싶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그것은, 한 여자가 숭엄하고 자비로운 표정으로 앉은 채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으로 바뀐다. 그 숭엄한 분의 얼굴 표정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시각은 오후 네 시에서 다섯시 반 사이이고, 그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장소는 남도대학 건물 너머의 예비군훈련장 옆 손씨네 별장 안팎이다. 탐진강을 가운데 둔 석대들판 저쪽으로 기우는 석양빛이 그분 얼굴을 분명하게 조명해준다. 택시를 타거나 친지의 차를 타고 읍내엘 오고갈 때 나는 산위에 앉아 계시는 그 숭엄한 분을 우러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러기 위하여 나는 미륵댕이라는 산굽이 길을 버리고, 남도대학 교문 앞을 지나 억불산 자락 하나를 넘어 다닌다. 일본 여행 중, 고구려 때의 담징 스님이 그린 일본 법륭사의 관세음 보살상을 본 적이 있는데, 억불산 위에 계신 분의 얼굴 표정과 앉은 모양새가 바로 그 관음상의 얼굴이나 표정과 흡사하다. 아니 산 위의 그분의 얼굴과 자세는 담징의 그것보다 훨씬 그윽하고 숭엄하다. 바라보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보는 자가 품고 있는 마음과 생각에 따라 그 형상이 여러 가지로 달리 보인다. 어느 조각가가 과연 그렇듯 숭엄하고 자비로운 불상을 조탁해낼 수 있을까. 그 산 아래, 손씨네 별장 옆에는 ‘목탁골’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지석묘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안목 없는 사람들이 그곳 동편에 예비군 훈련장을 만들어 놓았다. 좌우간 목탁골에서 산 위를 쳐다보면 그 숭엄한 분을 가장 잘 배알할 수 있다. 그곳은 예로부터 많은 불제자들이 순례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가곤 하였으므로 늘 목탁 소리가 들려오곤 했고, 그리하여 목탁골이란 이름이 생긴 것이다.이땅에 사는 대개의 사람들은, 미국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의 전설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전라도 장흥의 억불산 위에 앉아 계시는 억불(구세주)에 대해서는 모른다. 장흥에 의로운 인물들이 많이 나온 것은, 인민을 구제하는 그 숭엄하고 자비로운 분 때문이 아닐까. 산 위의 그 숭엄한 분에 대하여 슬프고 무서운 전설이 전해 온다. 흉년이 거듭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판국에, 관세음보살이 한 비구스님으로 현신하여 탁발을 해다가 구휼을 하곤 했다. 한데 부자들이 사는 성 안 사람들은 곡식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한 부잣집에 들어가니 며느리가 시부모 모르게 곡식을 많이 내놓았다. 현신한 관세음보살이 그녀에게 말했다.‘잠시 뒤 홍수가 져서 이 인색한 자들의 마을이 모두 잠길 터이니 그대는 당장 서둘러 저 산 너머로 피신하시오. 홍수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아무리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더라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 며느리가 산으로 피신을 하는데, 홍수로 마을 전체가 잠겼고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정상 부근에 이른 여인은 문득 생각했다. 다들 죽어 가는데 나 혼자서만 살아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저들을 구해야 한다. 물에 잠겨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꽈당 벼락이 떨어졌고, 그 여인은 그 자리에서 지금의 ‘미륵’의 형상이 되었다. 그런데 억불숭유의 조선조 사람들은 이 전설 가운데 끝부분을 잘라 없애고 ‘며느리 바위’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 바위의 원래 이름은 ‘금(神)미륵’이었다. 백제 때에 장흥의 이름은 ‘고마미지(古馬彌知)’이고 신라 때 이름은 오현(烏縣)이었다. 금(神)미륵이 있는 땅이라는 것이다. 억불(億佛)은 억 개의 부처가 있는 산이라는 뜻이 아니고,‘인민을 구제하는 미륵부처’가 있는 산이란 뜻이다. 옥편을 열어보면 ‘억(億)’은 ‘인민’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이다. 읍내엘 오갈 때마다 산 위의 그 자비롭고 숭엄한 얼굴은 나에게 말하곤 한다.‘혼자만 잘먹고 잘사는 것은 잘못된 삶이다. 죽어가는 것들을 구제하여 더불어 살아야 한다.’
  • [9월의 창] 사각지대… 그 눈과 귀

    [9월의 창] 사각지대… 그 눈과 귀

    글 김홍식 대인관계연구소 <아름다운 사람> 대표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장례식을 참여했지만 아직도 생각하면 슬프고 안타까운 장례식이 하나 있습니다. 5살 여자 아이의 장례식이었습니다. 너무너무 슬퍼하는 부모의 얼굴을 보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화장장까지 함께 가는데 어린 딸의 상주가 된 아빠는 함께 가는 사람들의 식사도 챙기고, 마지막 장례절차를 준비하느라고 슬픔을 잊은 듯 하였습니다. 찾아와 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음료수도 권하고…. 그러나 혼자의 시간이 되면 조용히 아내 옆으로 가서 하염없이 슬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부는 아무 말 없이 허공만을 바라보며 울지도 웃지도 않았습니다.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사람들에게 사고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트럭 기사가 주차해두었던 차를 빼기 위해 후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운전석에서는 안 보이는 사각지대를 둘러보아야 했는데, 그 날은 너무 피곤한 상태라 일상 점검을 생략한 체 승차한 후 바로 후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3살짜리 동생과 함께 차 뒤의 사각지대 에서 놀던 5살 언니가 커다란 뒷바퀴에 치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3살 아이의 비명에 놀란 기사가 황급히 차를 세우고 달려 내려왔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후였던 것입니다. 부모와 사고를 낸 기사는 사고 처리를 위해 천사 같은 어린 아이의 시신을 앞에 두고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해야 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동석한 경찰에게 원망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실수이니 운전기사의 처벌을 최소화 시켜 달라고 부탁하였고, 운전기사는 죽을죄를 지었다고, 용서 해 달라고 하며, “한 번만 둘러보았어도, 한번만 살펴보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트럭 기사가 한 번만 둘러보았으면 그런 안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근처에 있던 사람들 중 아무라도 기사가 볼 수 없는 차의 뒤쪽을 한 번만 봐주었다면, 꽃처럼 피어나는 어린 생명이 그렇게 허무하게 천국으로 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운전기사가 아무리 운전을 오래 했고, 잘 한다고 해도 운전석에서는 볼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그 곳을 보기 위해서는 차에 오르기 전에 확인을 하든지, 주위에 있는 사람 누구에게라도 대신 봐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운전자가 볼 수 없는 곳을 대 신 봐주기 위해서는 아이든 어른이든, 잘 낫든 못 낫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한 번 보고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만 해 줄 수 있으면 됩니다. 그 한마디는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자기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볼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이 인생의 사각지대입니다. 자신의 눈에는 안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는 삶의 모퉁이,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 오래된 습관, 잘 못 들여진 버릇, 가끔씩 튀어나오는 괴팍한 성질, 무의식적인 행동….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피곤하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각지대의 위험물들입니다. 그 것들이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데도 정작 본인은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 속에 자신이 볼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음을 인정하고, 주위 사람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부모는 자녀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내 인생의 사각지대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서라고 하면 서고, 가라고 하면 가고, 앞으로, 뒤로, 우측으로, 좌측으로 가라고 하면 그 대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 천사를 하늘로 보내고 후회하며 통곡하는 트럭기사와 같은 일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야당은 여당의 말을 들어야 하고 여당은 야당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근로자는 경영자의 말을 들어야 하고, 경영자는 근로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말을 들어야 하고 국민은 대통령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가정에 위기가 닥치고, 회사 내에서 의사소통이 안 되면 회사는 경영난을 겪게 되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사회의 질서는 깨지게 되고, 국민여론을 무시하는 지도자들은 국가를 혼란에 빠트리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서로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다툼은 가족들 간의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말하려 한다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는 지금 내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나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청주 세광고 ‘공부 비결’ 뭘까

    청주 세광고 ‘공부 비결’ 뭘까

    서울대가 5일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에게 제출한 ‘서울대 2006학년도 고교별 합격인원’이 공개된 가운데 지방 학교 중 최다 인원을 배출한 청주 세광고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 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12개교가 20명 이상을,62개교가 10명 이상의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합격자를 1명 이상 낸 학교는 815개교로 집계됐다. ☞ 04~06 서울대 입학생 출신고교별 현황 바로가기 이 가운데 세광고는 지방 학교·평준화지역 학교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23명의 합격생을 배출해 전체 9위에 올랐다.1∼6위는 예고나 특목고이며 8위는 서울 강남에 있는 휘문고다. 세광고는 지난해에도 20명을 서울대에 보냈으며,2004학년도에는 30명을 보낸 바 있다. 세광고는 올해 서울대 외에 연·고대에 42명을 합격시키는 등 이른바 명문대에 모두 85명을 진학시켜 명문사학으로 떠올랐다. 서울대 합격자 수로 명문 비명문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세광고의 약진 비결에 대해 이 학교 교사들은 ‘한빛학사(세광고 기숙사)운영’, 철저한 ‘이중 수준별 수업’, 그리고 1학년 때부터의 토론식 수업 등을 꼽았다.3학년 영어과를 담당하고 있는 구광림 교사는 “청주는 평준화 지역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우수한 학생들만 선발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하지만 1학년 때부터 수차례 평가를 통해 철저하게 수준별 수업을 시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밝혔다. 세광고는 1학년 때부터 학생들을 한빛학사반과 심화반으로 구분한다. 한빛학사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교 40등 안에 들어야 하고, 심화반에는 그 다음 80등까지 들어갈 수 있다. 한 번 한빛학사반이나 심화반에 들었다고 해서 1년 내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 평가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반을 옮겨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고 ‘한빛학사반’이나 ‘심화반’에서 버텨내기는 불가능하다. 다른 학교에서도 수준별 수업을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세광고가 특히 다른 점은 전교 40등에 드는 우수학생들을 다시 수준별로 나눈다는 사실이다. 구 교사는 “한빛학사반 아이들을 다시 A,B반으로 나눠 철저하게 수준별 수업을 시킨다.”면서 “극상위권에 속하는 한빛학사 A반 학생들이 거의 모두 서울대로 진학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3학년 학년부장 신진식(영어과) 교사는 “한빛학사에는 사감 교사 6명이 매일 돌아가면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면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사들의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교사는 또 “세광고는 한달에 한 번 이상 시험을 볼 정도로 시험을 많이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면서 “한빛학사반이나 심화반에 속한 아이들의 경우 시험 결과를 모두 데이터베이스(DB)화해 진학상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1학년 때부터 토론식 수업을 한 결과 논술·구술시험에서 강점을 보여 서울대 등에 많은 합격자를 내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고 밝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가고일의 매직 배틀’ 국내첫선

    ‘가고일의 매직 배틀’ 국내첫선

    # 짜릿한 마법사의 대결 가을 축제와 함께 새로운 놀이기구인 ‘가고일의 매직배틀’을 선보인다. 움직이는 집과 바이킹을 결합한 형태. 어두운 실내에서 영상과 각종 첨단 장치로 스릴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다크라이더로 우리나라에선 처음 선보이는 놀이기구이다. 중세 유럽의 한 마법학교에서 최고 자리를 놓고 다투던 두 마법사가 석상으로 변한 뒤 다시 대결을 벌인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높이 13m, 폭 41m,250평 규모의 마법학교 안에 시계추처럼 앞뒤로 움직이는 탑승시설에 사람들이 앉는다. 앞뒤로 진자 운동하고 건물의 벽, 천장, 바닥 등은 빙글빙글 회전 운동을 하며 짜릿한 스릴을 선사한다. 마법사들의 흥미진진한 대결에 따라 현장감 넘치는 음향 효과는 물론 의자가 흔들리고 갑자기 다리 밑으로 무엇인가 스치듯 지나가는 느낌에 다들 ‘끼∼악’하는 비명을 지른다. 또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갑자기 목·다리 뒤에서 쏘아지는 강한 바람에 ‘으∼악’소리가 절로 나온다.‘에어 샷’ 의자 등받이가 가라앉거나 심하게 진동하는 ‘콜랩스 효과’ 등 다양한 특수 효과에 마법사들의 대결장 한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또한 탑승객들이 마법의 주문인 “호리 호리 호로롱 팡팡”하고 외쳐야 교실 문이 열리는 등 직접 참여하는 재미를 더했다. 마법학교는 전설을 듣고 주문을 외우며 선악의 마법사가 깨어나는 이야기를 보여 주는 ‘프리 쇼’, 두 마법사가 대결을 펼치는 ‘메인쇼’, 모든 것이 뒤집어진 상태에서 마법의 여운을 남기는 ‘포스트 쇼’ 등 크게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승시간 3분30초, 한번에 52명까지 탑승한다. 키 110㎝ 이상이면 누구나 탈 수 있다.
  • “서울 중구는 복지행정 모델”

    “서울 중구는 복지행정 모델”

    ‘중구 복지행정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서울 중구(구청장 정동일)의 ‘중구사회안전망’을 벤치마킹하려는 전국 자치단체들의 방문이 줄을 잇자 공무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들이 중구를 찾는 것은 2004년 9월 중구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차상위계층 지원 시스템인 중구사회안전망의 사업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서다. ●새로운 복지 모델의 ‘전도사’ 중구에는 지난 2년 동안 강원 정선군과 경기 고양시, 충북 보은군, 대구 수성구, 광주 서구, 인천 남동구, 서울 강남구 등의 공무원들이 방문, 복지 노하우를 배워 갔다. 또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육생과 강원도공무원교육원 사회복지과정 교육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 등이 다녀 갔다. 지난해 말에는 서초·노원·마포구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사회안전망 시스템 시연회를 개최했다. 전국 사회복지 교육기관과 대학 등의 강의 요청도 잇따르고 있다. 담당 공무원인 정희창 사회복지팀장은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의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실무자 과정과 담당과장 과정 등에 10여차례나 강사로 나섰다. 지난 1월에는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에서 열린 ‘공무원 후견인제 활성화 방안에 따른 관련자 간담회’에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해 중구사회안전망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2월에는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도 중구청을 방문했다. ●인기비결은 체계적 통합 관리 복지 전문가들은 중구사회안전망을 복지행정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한다. 중구는 우선 관내 저소득층 4425가구 8788명의 모든 자료를 전국 최초로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했다. 이를 통해 저소득 계층에게 지원되는 각종 복지서비스 수혜 내역을 체계적으로 통합 관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35억여원의 성금·성품을 모집했으며,‘1직원 1가정 보살피기’를 통해 1300여명의 전직원이 저소득가정과 결연해 생활상담 등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방문간호사 1인 1동제’를 실시, 의료소외 계층에 대한 의료접근도를 높여 지난 2년간 1만 7947건의 건강검진과 백내장 수술, 치매관리, 의치·보철 등을 실시했다. 민간 사회안전망과도 연계하고 있다.‘1사 1동 자매결연’을 통해 4개 기업체와 200개 후원 가구의 결연을 성사시켰고, 종교단체와 복지관, 병원 등과 저소득층을 연결해 주고 있다. 이 밖에 14개 음식점과 저소득 노인가구를 연계한 밑반찬 지원 서비스, 제빵업소의 독거노인 ‘사랑의 생일케이크’전달,20개 이·미용사 자원봉사자의 ‘사랑의 가위손 운동’, 거동불편 노인을 위한 세탁사업,14개동 27개반에 저소득층 자녀 학습지원 공부방 운영, 차상위계층 도배·집수리 봉사단,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신용회복제도인 ‘으뜸중구 신용서포터스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길섶에서] 닭장차/송한수 출판부 차장

    “이 ××들, 대가리 박앗.” 닭장차에서 사무친 추억 한 조각입니다.386컴퓨터처럼 낡은 것이지요.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다음 이야기 또한 이해하고 넘겨야 할지 모릅니다. 철망을 없앤다는 발표 뒤 ‘닭장차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꼬리표를 뗐을 뿐’이라는 네티즌들의 말을 곱씹을 때였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것도 한복판인 광화문에 꼬리표마저 떼지 않은 원조 닭장차가 심심찮게 출현한다는 생각을 했지 뭡니까.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니. 83년 요맘 때 아닐까. 닭장차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시위하다 덜미를 잡혔고 친구들과 ‘억지춘향’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엮여 들어갔어요. 그리곤 성북서 유치장에 꼼짝없이 처박힙니다. 철창 안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죠. “집에 연락은 넣도록 해줘야 할 것 아뇨. 근데, 당신 왜 반말이오?” 지금 ‘386’ 하면 무슨 거창한 정치인 얘기로 들릴 테지만, 닭장차에서 시작된 그 시절 널브러진 삽화입니다. 참, 닭장차가 진짜로 사라지면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나는 걸까요? 송한수 출판부 차장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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