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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팬들 ‘태왕사신기’ 보려고 HDTV 구입

    日 팬들 ‘태왕사신기’ 보려고 HDTV 구입

    MBC TV 대작 드라마 ‘태왕사신기’(극본 송지나ㆍ박경수, 연출 김종학ㆍ윤상호)의 인기몰이 개시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12월3일부터 일본 NHK 고화질(HD) 위성방송인 BS하이비전 채널을 통해 드디어 전파를 타는 것. ’태왕사신기’ 방송을 앞두고 주연배우 배용준의 일본 소속사인 IMX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사이트 브로코리(brokore)는 최근 “‘태왕사신기’ 일본 방영, 무엇으로 볼 것인가”라고 묻는 앙케트를 실시했다. 162회로 실시된 이번 여론조사에서 “‘곧바로 BS하이비전을 보겠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2%에 이르러 이 드라마에 쏠린 일본인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실제로 ‘태왕사신기’를 보기 위해 30만 엔(한화 약 242만 원)이 넘는 고가의 하이비전 시스템을 구입하는 팬들이 속출하는 등 가전업계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좀 기다려 BS(일반 위성방송)로 보겠다”거나 “곧장 DVD로 보겠다”고 말한 응답자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한국에서 수목드라마의 시청률 정상을 지키고 있는 ‘태왕사신기’를 보기 위해 방송시간이 되면 한류 메카로 알려진 도쿄 신주쿠의 쇼쿠안도리와 신오쿠보 일대 한국식당은 일본 팬들로 발디딜 틈없이 북적거릴 만큼 ‘태왕사신기’는 방송 개시 전부터 ‘대박’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NHK는 본방송에 앞서 11일부터 12차례에 걸쳐 BS1, BS2, BS하이비전 등 모든 위성 채널을 총동원해 특별방송인 ‘태왕사신기 내비게이션’을 내보낸다. 당초 BS채널에만 편성했다가 팬들의 문의와 요청이 쇄도해 이례적으로 11일 지상파인 NHK 종합채널에도 특별 편성하는 등 ‘태왕사신기’ 인기몰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태왕사신기’는 일본 전역의 30개 첨단극장에서 6개월 동안 상영될 예정이어서 안방극장은 물론 일본 극장가에도 ‘담덕’ 열풍이 몰아칠 것으로 기대된다. 도쿄=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헬기 추락 때까지 조종간 놓지 않았다”

    “헬기 추락 때까지 조종간 놓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충돌음과 함께 블랙호크(UH-60) 4호기의 동체가 방향을 잃고 회전하기 시작했다.“어, 어.”,“뭐야.” 비명과 고함이 뒤엉킨 헬기 안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조종사 왕태기(39·학군 29기) 소령은 헬기의 꼬리날개가 떨어져 나간 사실을 직감했다. 함께 이륙했던 5호기의 주회전 날개가 헬기의 후미를 강타했던 것. 순간 왕 소령의 머릿속은 탑승자 16명과 15m 아래 헬기 탑승을 위해 모여 있는 200여명의 장병들 생각뿐이었다. 조종간을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선 ‘토크’(헬기 날개가 회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동체가 돌아가는 현상)를 바로잡고 탑승자들을 안정시켜야 했다. “동요하지 말라. 불시착에 대비해 자세를 최대한 낮춰라.” 왕 소령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이었을까. 헬기는 장병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가까스로 벗어나 500여m 떨어진 활주로 끝자락까지 곡예비행을 이어갔다. 곧이어 굉음과 함께 헬기의 왼쪽 앞부분이 지면에 충돌했고, 왕 소령은 정신을 잃었다. 오른손은 여전히 조종간을 굳게 틀어쥔 상태였다.5일 저녁 7시20분 육군 2사단의 공중강습 훈련이 한창이던 강원도 인제군 현리의 군 비행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추락 직후 왕 소령은 중상자 2명과 함께 경기 성남의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됐다. 하지만 4시간 만인 밤 11시12분 아내와 초등학생 남매를 남겨두고 끝내 세상과의 인연을 접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전국은 기름값과 전쟁 중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기름값에 서민들은 너도나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예 승용차를 팔고 자전거를 구입하는가 하면 연탄이나 화목 보일러 설치와 하우스 시설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도 적지 않다. 주유소도 급격한 매출 하락에 따른 적자 보전에 고심하는 등 유류값 상승 여파가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최근엔 ‘BMW족’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는 유명차 브랜드인 ‘BMW’를 빗댄 말로, 승용차를 집에 둔 채 버스(Bus)와 지하철(Metro), 도보(Walking)로 이동하는 ‘알뜰족’을 말한다. 광주시에서 전남 나주로 출퇴근하는 이모(37·회사원)씨는 지난달부터 승용차를 집에 놔두고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씨는 “예전엔 일주일이면 10만원어치를 주유하면 됐는데 몇달 전부터 15만원, 지난 달부터는 20만원을 육박했다.”고 말했다. ●자가용족 시내·통근버스 이용 급증 이모(56·대구 북구 침산동)씨는 최근 승용차를 팔고 자전거를 구입했다. 이씨는 “회사가 가까워 아예 차를 처분하고 자전거를 구입했다.”면서 “기름값 부담은 없어졌지만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춘천에서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모(57)씨는 “자전거 판매량이 예년보다 20∼30%가량 늘어났다.”고 말했다. 울산공단의 에쓰-오일은 직원들의 통근버스 이용이 늘어나 출퇴근 시간에 부산 해운대 지역을 비롯해 14개 노선에 18대씩 통근버스를 운행하는 등 통근버스 운행 대수와 노선을 늘렸다. 단독주택에 사는 주부 박모(40·광주 북구 매곡동)씨는 “기름보일러용 등유 가격이 20ℓ당 2만원으로 지난해 1만 5000원보다 크게 올랐다.”며 “올 겨울은 전기매트를 구입해 난방비를 줄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름값 싼 주유소 찾아 원정도 주말 등을 이용해 기름값이 싼 주유소를 찾아 원정을 나가는 실속형 운전자도 늘고 있다. 박모(34)씨는 “전국 주유소의 판매가 비교 사이트인 ‘오일프라이스워치’를 통해 싼곳을 찾아 주유를 한다.”며 “가장 싼곳에서 주유할 경우 5만원어치에 2∼3ℓ를 더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름 보일러를 화목이나 연탄보일러로 바꾸는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계룡산 아래 마을인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1리 김철근(63)씨는 “우리 마을 40가구 가운데 20%는 화목보일러나 연탄을 때고 있다.”며 “아직 기름보일러를 때는 집은 노인들이 기름값이나마 벌기 위해 막노동판에 나가 일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우스 시설 재배를 하는 농가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전남 나주시 세지면 멜론 재배농가들은 요즘 기름값과 전쟁이다. 염만준(60) 세지멜론연합회장은 “멜론은 28∼30도로 생육 온도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기름값이 말도 못하게 많이 든다.”며 “실내 온도를 높이기 위해 예전에는 하우스 안에다 부직포 1장을 덮었으나 지금은 4장을 겹쳐서 커텐처럼 친다.”고 말했다. ●감귤 등 하우스 농사 포기 속출 김종훈(44·서귀포시 도순동)씨는 최근 하우스 감굴 재배를 포기했다. 김씨는 “치솟는 기름값에다 인건비 인상 등으로 남는 게 없다.”면서 “내년에는 기름값 걱정없는 노지 감귤 농사만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설재배 농가들은 나무나 연탄 보일러로는 열효율이 기름보다 떨어져 기름을 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한 호접란 농장은 기름 보일러를 없애고 1000만원을 들여 지하공기(연중 15∼18도)를 이용한 난방시스템을 설치했다. 농장주 오모(44)씨는 “지하 40∼60m에서 끌어 올린 지하공기를 공급하면 여름철에는 온도가 2∼5도 내려가고 겨울철에는 5∼6도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면서 “초기 시설에 목돈이 들어가지만 기름값 인상에 촉각을 세우는 걱정에서는 해방됐다.”고 말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허용길 농촌지도사는 “지하공기를 이용하면 유류비 50% 이상을 절감할 수 있어 시설 재배농가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름 소비가 줄어드는 바람에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던 중소형 주유소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성남시 수정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44)씨는 “기름값이 오르면서 매출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경제난 속에 매출이 줄어든 데다 기름값마저 크게 올라 업종 전환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김석의 갯바위 통신] 철제미끼 ‘지그’ 퐁당 갈치 낚는 손맛 짜릿

    지금 제주도는 ‘라이트 지깅 낚시’ 열풍이 불고 있다. 갯바위나 방파제에서 부시리와 방어, 가다랑어, 줄삼치, 그리고 제주 특산물인 은빛 갈치까지 지그(jig)를 물고 늘어지며 낚시인들의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지그는 낚시 대상어종의 먹잇감이 되는 소형 어류 형태로 만들어진 철제 인조 미끼. 이런 메탈지그를 사용해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일종의 루어낚시가 바로 ‘지깅낚시’다. 지깅낚시에서 주로 사용되는 메탈지그의 무게는 보통 30∼300g 정도. 그 중 60∼80g대의 비교적 소형 지그를 이용해 대상어를 유혹하는 것을 ‘라이트 지깅낚시’라고 부른다. 라이트 지깅낚시의 주대상어는 아주 다양하다. 바다의 난폭자라고 불리는 부시리를 비롯해, 방어나 가다랑어류 같은 회유성 어종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참돔, 넙치, 갈치 등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대상어종의 폭이 넓어지는 추세다. 차량으로 이동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포인트를 찾아 물고기와 파이팅을 벌이는 라이트 지깅낚시 열풍에 제주도내 낚시인은 물론, 외지인들마저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 서쪽의 한림읍 용수리 갯바위와 도선으로 5분이면 닿는 차귀도, 한경면 판포리 갯바위 등에서는 ‘대 파란’이라고 할 만큼 부시리, 이빨다랑어(줄삼치), 잿방어 등이 줄지어 낚이고 있다. 씨알은 부시리가 80㎝ 전후, 다랑어와 방어는 50∼60㎝가 주로 낚인다. 파이팅 고기라 불리는 만새기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 제주도는 에기나 웜 등의 루어보다는 소형 지그가 가장 잘 팔린다고 한다. 갯바위 라이트 지깅낚시에서 사용되는 소형 지그는 무게가 가벼워 농어나 오징어를 낚을 때 쓰던 장비를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소형 지그만 별도로 구입하면 되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지 않아 라이트 지깅 낚시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낚이는 어종들이 모두 힘이 좋아 낚는 재미에 쉽게 빠져 들수 있는 것 또한 매력이다. 현재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는 낚이는 고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것이 현지 낚시인들의 전언이다.9월 중순 제주를 덮친 태풍 ‘나리’때문이다.‘나리’가 몰고 온 많은 비로 엄청난 양의 토사와 담수가 바다로 흘러 들면서 제주 북쪽 바다는 거의 초토화됐다. 제주시 덕동이나 탑동 방파제 등에서 지그를 던지면 나뭇잎이 걸려 나오고, 바닥을 긁어도 밑걸림이 생기지 않는 원인은 대량의 토사가 갯바위 근처 바닥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토사가 사라지고 호조황을 기대하려면 최소 2∼3개월은 지나야 된다는 게 현지 낚시인의 전망이다. 제주시 앞바다가 전혀 조황이 없는데 비해 동쪽의 우도에서는 무늬 오징어가 엄청난 양으로 낚여 올라오는 이변이 벌어지고 있다.1.5∼2㎏ 정도의 무늬 오징어를 일인당 30∼40마리씩 낚는다고 한다. 우도가 이런 폭발적인 조황을 보이는 주요한 원인 또한 태풍이라 보여진다. 제주시 앞바다의 오징어들이 태풍을 피해 제주 동쪽의 우도로 피신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주 서쪽 바다에 부시와 잿방어, 다랑어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서 제주도 도로 주변 갯바위나 방파제를 찾은 가족, 연인, 친구들이 손맛을 만끽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제주 루어피싱랜드 064)726-1988.
  • ‘대백제국 주류성도’ 제막

    ‘대백제국 주류성도’ 제막

    지난 20일 충남 연기군 전의면 미곡리 운주산 고산사에서 제14회 백제고산대제(百濟高山大祭)가 성황리에 열렸다. 운주문화연구원(원장 최병식)과 고산사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백제 의자왕과 부흥군에 대한 다례공양에 이어 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태고종 스님들의 범패의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새로 들인 종각 ‘백제루’에 현판과 목어를 단 것을 비롯, 강원대 예술대학 임근우(미술학) 교수가 그린 ‘대백제국 주류성도’ 제막식을 겸해 엄숙한 분위기를 더했다.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가인 임 교수가 최근 완성한 ‘대백제국 주류성도’는 운주산성을 바탕으로 백제 주류성에서 부흥군이 출진하는 장면을 담았다. 고산사는 늦깎이 고고학자로 백제사 연구에 매달려온 최병식 운주문화연구원장이 10년 전 세운 사찰. 백제 멸망후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과 백제 부흥에 나섰다가 비명에 숨진 부흥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은 원찰(願刹)이다. 백제 부흥군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주류성(周留城)이 있었다는 바로 그 운주산 자락에 터를 잡았으며 고산사를 세우기 이전부터 백제 부흥군 천도재를 겸해 해마다 ‘백제 고산제(高山祭)’를 열어왔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情婦 탓에…” 임신한 아내 살해한 20대 남성

    “아무리 여자에게 눈이 삐어도 그렇지.정부(情婦) 탓에 4개월된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살해하다니!” 중국 대륙에 한 20대 남성이 정부(情婦)가 도박 빚 탓에 같이 여행을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화가 난 나머지 임신한 아내를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천하의 몹쓸 XX’는 중국 동북부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 눙안(農安)현에 살고 있는 리하오밍(李好明·)그는 정부가 도박 빚으로 여행을 함께 갈 수 없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자마자 화가 너무 난 나머지 임신 4개월된 아내를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을 충격 속으로 빠뜨렸다고 동아무역신문(東亞貿易新聞)이 23일 보도했다. 사건의 장본인 리는 2년전 친척의 소개로 창춘시의 부잣집 딸 샤오잉(曉穎)씨를 만났다.첫눈에 서로 반한 이들 남녀는 곧바로 사랑에 빠져들었다.그녀와 사랑에 빠진 가운데서도 이 몹쓸 XX의 ‘종자’는 한눈을 팔았다.창춘시 한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아란(阿蘭)씨와 또 사귄 것이다.한마디로 양다리를 걸친 셈이다. 하지만 리는 그중 한 여자를 선택해야 했다.샤오잉씨의 경우 집안에 돈이 많은 것으로 이유로 ‘종자’는 그녀와 결혼을 했다.결혼한 이후에도 ‘종자’는 아란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했다. 그러던중 지난 6월17일 오후,아란씨가 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당신과 함께 가려던 여행을 갈 수 없어 안타깝다.도박 빚이 좀 있는데 그것을 갚기 전에는 같이 여행을 갈 수 없다.”고. 이 메시지를 받은 ‘종자’는 화가 꼭뒤 끝까지 치밀었다.이때 마침 리는 아내 샤오잉씨가 목욕탕에서 오일 마사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이 장면을 목격한 ‘종자’는 그대로 달려가 그녀의 배를 사정없이 걷어찼다.너무 아파 비명을 지르는 샤오잉씨에게 주방으로 달려가 과도를 가져와 여러차례 난도질하자,샤오잉씨는 그 자리에서 열명길에 오르고 말았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리는 갑자기 겁이 더럭 났다.어른 집안에 강도가 침입한 것으로 가장한 뒤 ‘종자’는 샤오잉씨의 시신을 주방으로 끌고가 불에 태워버렸다. 집에서 화재가 나는 것을 목격한 주변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가 공안(경찰)당국과 소방당국에 신고했다.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화하자 샤오잉씨의 불에 탄 시신도 발견됐다. 공안당국은 리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집중 추궁한 끝에 아내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리는 경찰 조사에서 “나는 샤오잉과 헤어지고 아란과 다시 결혼할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눙안현 인민검찰원은 리에게 고의살인죄 혐의로 체포해 창춘시 인민검찰원으로 신병을 넘겼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대우조선 ‘즐거운 비명’

    ‘부전자전’(父傳子傳) 국내 조선업체들이 수주 잔치를 벌이는 가운데 해외 자회사까지도 수주 신기록 행진에 동참하고 나섰다. 대우조선해양은 루마니아의 자회사인 대우망갈리아조선소가 최근 유럽 해운회사로부터 5550TEU급 컨테이너선 9척을 수주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로써 대우망갈리아조선소는 지금까지 총 21척,19억 2000만달러어치를 수주해 이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수주액 10억달러를 돌파했다. 대우조선이 1997년 이 조선소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수주액은 겨우 300만달러에 불과했다.10년새 수주액이 64배로 불어난 것이다. 대우조선도 올 들어 145억 2000만달러어치를 수주해 지난해 수주기록(110억달러)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남상태 대우조선 사장은 “망갈리아조선소는 글로벌 전략에 따른 첫 해외 생산기지로서 대단히 중요하다.”며 “더 나은 기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신당 대선후보 정동영] 정동영 그는 누구

    [신당 대선후보 정동영] 정동영 그는 누구

    평화시장을 오가는 언덕길은 가파랐다. 숨이 턱에 차고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어머니가 만든 아동복 바지를 팔러다니던 시절.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하고 산다는 데 감사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그 가난이 싫어 ‘본격적으로 옷장사를 할까.’마음먹기도 했다. 이대로 잘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도 같았다. 바느질한 천을 메고 청계천을 걸으며 청년은 상념에 빠지곤 했다. 옷장사가 천직이 될 뻔한 청년이 15일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어렵고 고단하던 시절이 머릿속을 스쳤다. 환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홀어머니와 세명의 동생 정동영 후보는 1953년 7월27일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진철(1969년 타계)씨와 어머니 이형옥(2005년 타계)씨 사이의 다섯째 아들. 형만 넷이었다. 그러나 얼굴도 보지 못한 형들이다. 모두 정 후보가 나기도 전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누구에게나 가혹했던 시절이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일 무렵. 고단한 병치레를 계속했던 아버지가 조용히 세상을 등졌다. 충격이었다. 우상으로 여겨왔던 아버지다. 아프고 또 아픈 마음을 달래기 힘들었다. 정 후보는 지금도 인생에서 가장 아팠던 기억을 그때로 꼽는다. 방황도 많이 했다. 뒤에 남겨진 건 홀어머니와 세 명의 동생, 그리고 가난이었다. 혹독한 현실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에겐 무거운 짐이다. 계속 방황하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때부터 정 후보는 가장으로서 삶을 살았다. ●서울대 재학중 시위·투옥·징집 ‘10월 유신’이 선포된 1972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했다. 가난한 시골 청년은 굴곡많은 현대사와 마주보게 됐다.72학번 동기들의 징역형을 합하면 100년이 넘는다는 말이 나오던 시절이다. 투옥과 수배가 반복됐다. 정 후보도 1973년 시위에 참가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다. 최초의 유신반대 학생시위로 기록된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시위다. 당연한 듯 구치소에 구금됐다. 다음해에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 또다시 3개월간의 구치소 생활. 이번에는 출감하자마자 강제 징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의 어머니가 눈에 선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18년 기자 생활… 80년 광주 취재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정 후보는 문화방송(MBC)보도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1996년까지 18년을 기자로 지냈다. 아직 신참티가 남아 있던 1980년 5월 그는 광주 도청 앞에 서있었다. 봉쇄된 광주에서 흘러 나오는 소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도보로 직접 광주 시내로 들어갔다. 눈으로 지켜본 광주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총알이 빗발치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취재를 해야만 했다. 목숨을 내놓고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의 리포트는 보도되지 못했다. 당시 리포트는 올 5월 우연히 발견돼 27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1995년 정 후보는 정치인으로 변신을 결심한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정 후보는 1996년 4월 전주 덕진구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2000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우리당 탈당 ‘배신자´ 비난 듣기도 그리고 그해 12월 김 전 대통령 면전에서 당시 권력 최고실세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퇴진을 요구했다. 이른바 ‘정풍운동’이다. 결국 10일 후 권력의 정점에 있던 권 최고위원은 자진 사퇴한다. 정치인 ‘정동영’을 국민 뇌리에 각인시킨 사건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치 실험에 돌입했다. 민주당을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모험이었다. 민주당 분당의 원흉으로 몰렸다. 그러나 정 후보는 열린우리당을 다시 탈당했다. 비난이 쏟아졌다.‘배신자’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들었다. 이제는 다시 민주당에 손 내미는 상황에 처했다. 아이러니다. 2002년 정 후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꼴찌를 밥먹듯했다.1승 15패. 참담했다. 고통이 극심했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 그러고는 승자 노무현 후보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마치 자기 선거인 것처럼. 그런 정 후보가 이제 5년 만에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나선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선거다.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사설] 서민 물가부담 나몰라라 할건가

    부자들은 물가가 올라도 타격이 적지만 서민들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특히 생필품 가격이나 공공요금은 고소득층이나 저소득층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때문에 이런 품목이 오르면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힘겨울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대선 정국에 함몰된 나머지 물가관리를 등한시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민생경제를 말로만 떠들어서야 아무 소용 없다. 서민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이렇게 무관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의 생활물가 통계를 보면 서민들의 입에서 비명이 나올 지경이라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특정품목에 가중치를 부여해서 ‘계층별 물가지수’를 산출한 결과, 저소득층(소득 하위 20%) 물가는 지난 2년간 5.9% 올랐다고 한다. 반면 고소득층(소득 상위 20%)은 5.3% 인상됐다. 식료품·주거비·공공요금은 지출비중으로 따져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1.5∼2배나 부담률이 높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원인과 대안을 찾아볼 생각은커녕 생활물가를 아예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정부는 통계청이 내놓은 2%대 소비자 물가상승률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품목별 가중치가 달라 생활물가의 체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수치에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 텐가. 주요 생필품은 유통단계 단축 등으로 가격을 낮추고, 공공요금의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일본처럼 소득계층별 부담률을 물가통계에 반영해서 저소득층의 고통을 덜어주는 정책도 개발해야 한다.
  • 돼지용 흥분제로 망친 정사(情事)

    지난 25일밤 11시 50분쯤 전남(全南) 해남(海南)읍 보건여인숙 외딴방에선 갑자기 여인의 괴성이 울려 화제. 이날 읍내 H편물점 김모양(23)과 S양복점 김모군(27)은 몇 달전부터 사랑을 속삭이던 끝에 「역사적(?)인 거사」에 들어 가기로 약속한 다음 보건여인숙에 투숙했던 것. 김군은 돼지를 흥분시키는 최음제를 사서 김양에게 『근사한 약』이라 속이고 먹였던 것인데, 예상했던 효과는 보지 못하고 엉뚱하게 약물중독을 일으켜 비명까지 올렸다고. -급할수록 돌아가란 속담이 있잖아. <해남(海南)> [선데이서울 71년 2월 14일호 제4권 6호 통권 제 123호]
  • [길섶에서] 외도의 두 갈래/우득정 논설위원

    토마스와 프란츠 사이를 줄다리기 하던 사비나는 어느 날 남몰래 떠난 파리에서 회상에 잠긴다. 그리고 외도하는 남성에게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자신에게 탐닉했던 프란츠는 ‘이상형’ 추구형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신기루를 찾아 헤매지만 끝내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다. 종말은 이국 땅에서의 비명횡사다. 자신이 탐닉했던 토마스는 매일 상대가 바뀐다. 그는 어쩌면 똑같을 수밖에 없는 상대방에게서 100만분의1의 차이를 확인하려 한다. 탄탈로스와도 같은 토마스의 갈증 역시 체코의 시골 밤길 산산조각난 트럭에서 마침표를 찍는다.(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십이 넘어서도 K는 우리의 우상이다. 술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자리를 파할 때까지 화려한 여성편력사(그의 표현은 인생역정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한때 놀았다던 친구들도 입을 떡 벌린 채 ‘형님’을 연발한다.K의 결론은 항상 이렇다.“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플라토닉 로맨티스트인 것 같아.”입술에 침조차 바르지 않은 그의 표정은 항상 진지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1달러= 913.70원 10년만에 최저치

    1달러= 913.70원 10년만에 최저치

    “당국이 개입하는 것 외에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을 방법이 없다.” 1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0년만에 최저치인 913.70원으로 하락 마감하자, 외환 전문가들은 이렇게 단말마적 비명을 질렀다.1997년 10월2일 913.50원 이후 최저치다. 미국의 금리인하 여파로 전세계적으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국내 수출업체들이 달러 매도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스권 유지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측에서는 910원대의 원·달러 환율이 바닥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조선·건설·자동차 등 수출업체들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수출업체들의 매도세를 진정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외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결국 900원대를 향한 하락은 시작됐고, 당국이 개입하지 않는 한 800원대로 하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환율이 최근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대폭적인 금리 인하 여파로 달러화 약세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시간으로 오는 12일 밤에 발표되는 미국의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크게 나쁘지 않으면 달러 약세는 불가피하다. 우리은행 외환시장팀의 이특주 계장은 “그러나 미국 고용지표가 확실히 나쁘게 나타나면 8월 중반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가 재차 발생해 달러 수요가 많아지고, 달러 강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쇼크 때 원·달러 환율은 950.40원로 치솟았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제유가가 80달러 선을 돌파했고, 국제 곡물가도 치솟고 있어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것이 물가안정에 도움을 주는 만큼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명분이 크지 않다는 것도 추가 하락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래도 계집애냐 다방서 나체「쇼」

    얼마전 부산(釜山)시 대연동 N다방에선 희한한「스트립·쇼」가 벌어져 숙녀손님들이 어리둥절. 지난 21일께 곤드레 만드레 취한 김모군(20)은 친구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다 옥신각신 시비가 벌어졌는데…. 친구 한사람이『계집애같은 놈』이라고 욕설을 퍼붓자 흥분한 김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몽땅 벗은 다음 마지막「팬츠」도 홀랑벗고『이래도 내가 계집애냐?』고 시위. 거기까진 아직도 좋았는데 개선장군처럼 다방안을 활보, 건장한 남성미를 과시하는 바람에 손님들 혼비백산. 그런데 어느 험구가 말씀인즉, 『숙녀제씨들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얼굴을 가린 손가락틈사이로 열심히 관람하더라』고. 물론 농담이겠지. [선데이서울 71년 2월 7일호 제4권 5호 통권 제 122호]
  • [열린세상] 신정아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김정란 시인ㆍ상지대 교수

    [열린세상] 신정아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김정란 시인ㆍ상지대 교수

    신정아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은 처참하고 비통하다. 문제의 발단은 신정아씨 자신이 학력을 속였다는 사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는 이 사건 안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일은 괴이쩍고 차마 마주보기 민망하다. 그 사건이 터져나오게 된 계기의 추악함, 그리고 이어서 불거진 권력형 비리의 개연성, 그리고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선정성과 폭력성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슬픈 비명이 나오게 만든다. 외국 출장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옆 자리의 승객이 펼쳐든 살색 신문지 위에서 신정아씨의 누드 사진을 보았다. 누군가 둔기로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충격. 아, 그렇구나, 한국에 돌아왔구나. 무지막지한 정글에. 약한 자는 어떻게 하든 난도질하고 보는 잔인한 습성의 하이에나 언론을 가진 나라. 아, 그렇구나. 내 생은 이 나라에서 흘러가는구나. 언론이 진실의 중계자가 아니라 정글의 싸움판의 최전방에 서서 폭력을 휘두르는 나라에. 언론이 자신에게 주어진 말의 힘을 정보의 공정한 분배와 분석이 아니라, 폭력적 무기로 사용하는 나라에. 가슴이 덜덜 떨렸다. 공포였을까? 아닌 것 같다. 한국 언론에 대한 나의 절망은 이미 그 단계를 벗어나 있다. 그것은 깊은 좌절감, 뼈마디까지 쑤시게 하는 슬픔과 아픔이었다. 나는 신정아씨의 학력위조와 또 그것과 관계하여 거론되고 있는 권력형 비리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신정아씨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인격을 그토록 잔인하게 난도질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거론되고 있는 모든 의혹 중에서 학력위조를 제외하면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모든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질 때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마치 모든 의혹이 확정적인 것처럼 보도하고, 그것도 모자라 누드사진까지 실어서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것은 너무나 야만적인 행동이다. 그 사진을 게재한 신문사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이라는 뻔뻔스러운 핑계를 대고 있는데, 대체 한 여성의 누드 사진이 국민의 알 권리 어떤 부분에 해당된다는 말인가. 더욱이 일부 언론이 신정아 사건을 몰아가는 데에는 일정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건을 정도 이상으로 키우는 데에는 청와대 인물과의 연관성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것처럼 느껴진다. 청와대 아니라 청와대 할아버지라도 비리가 있으면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 검찰은 청와대 눈치 보지 말고 끝까지 파헤쳐서 책임이 있다면 추상처럼 책임을 묻기 바란다. 그러나, 이 사건이 전개되는 정황 안에는 어떤 쓰라림이 있다. 그 사이 숱하게 제기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의혹에 대해서 왜 검찰과 언론은 그토록 무력할까? 신정아 사건에서는 메모쪽지까지 찾아내고, 중간중간 개인적 프라이버시에 해당되는 사안까지 언론에 흘려주는 검찰은 어째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모든 혐의의 수사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력할까? 검찰은 도곡동 땅에 대한 ‘제3자’가 누구인지조차 밝혀내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사력을 보여준 바 있다. 또한 무수하게 제기된 다른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수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여성의 누드사진까지 찾아내는 취재 실력으로 언론은 왜 이명박씨에 관한 의혹들은 밝히지 못하는 것일까? 내 앞의 생은 너덜너덜하다. 일생 동안 시를 쓰며 나는 언어가 진실의 도구임을 줄기차게 믿었다. 그러나 그 언어는 나의 고국에서는 전혀 진실의 도구가 아니다. 모든 룰은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언론에 밉보인 사람의 잘못은 한없이 부풀려지고, 언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의 죄는 결코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언어를 붙들고 통곡한다. 나는 이 땅에서 누구로 살아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김정란 시인ㆍ상지대 교수
  • [길섶에서] 출근길 봉변/임병선 체육부 차장

    조바심 탓일까. 출근길에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을 빠져나오다 봉변을 모면하는 직장인을 종종 본다. 며칠 전에도 앞서가던 30대 여성이 “어머나” 하는 비명과 함께 넘어질 뻔한 장면을 봤다. 그제 점심 무렵에 나랑 나란히 걷던 후배도 큰 화를 당할 뻔했다. 두어 달 됐을까. 지하철역에서 시청앞 광장으로 빠져나오는 출입구 방향을 틀면서 계단을 새로 만들었다. 사람들 발길이 조금 한적한 틈을 엿봐 계단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지하철역 층계와 새 계단의 층계 높이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새 층계의 폭이 10㎝ 정도 좁아진 게 문제였다. 지하철역 층계에 익숙해진 발걸음만 믿고 정신을 딴 데 팔면 발이 계단에 툭 걸리는 것이다. 망신살 아닌가. 멀쩡한 직장인이, 오래간만의 가족 나들이에 나선 어른이 많은 이들 앞에서 위기일발의 장면을 연출하는 것에 웃어야 할지, 동정을 보내야 할지 헷갈리곤 한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사 험난하지 않은가. 시청이나 시공업자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임병선 체육부 차장 bsnim@seoul.co.kr
  • [연극리뷰] ‘8인의 여인’을 보고

    [연극리뷰] ‘8인의 여인’을 보고

    “범인은 놈이 아닐 수도 있죠.”“그럼 우리 중에 범인이 있단 얘기야?”사실 ‘8인의 여인’을 설명하려면 이 두 대사로 충분하다.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반짝이는 거실, 한 중산층 가정의 ‘8인의 여인’(10월7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1관, 황재헌 연출)은 하룻밤 사이 모두 가장을 죽인 용의자가 된다. 이른 아침, 주인을 깨우러 2층으로 올라간 하녀는 비명을 지른다. 등에 칼을 꽂고 쓰러져 있는 ‘가장’, 아빠, 남편, 형부, 주인, 사위, 오빠의 죽음에 온 집안 여자들은 혼비백산한다. 경찰을 부를래도 엔진은 고장났고 전화기선은 잘려 있다. 간밤엔 개도 짖지 않았다. 결국 남은 건 8인의 여인. 서로의 알리바이를 하나씩 꼬챙이에 꿰어 난도질하는 그녀들의 악다구니가 무대를 울린다. 유산과 채권, 혼전임신, 불륜, 근친상간 등 저마다의 치부가 세치 혀로 발겨진다. 결국 그녀들 모두 간밤에 ‘그’의 방에 들렀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정작 비밀들이 풀려나가면서 ‘누가 죽였나.’에 온통 정신이 쏠렸던 관객의 눈은 그녀들 인생으로 옮겨진다.‘피가 멈추지 않는 상처’와 같은 사랑의 기대감에 찬 여인들. 이미 오래전 시들었거나 이제 막 품은 감정이지만 짝지어 속내를 열며 여인들은 어느덧 연대를 형성한다.‘마미’역의 이주실은 이죽거림과 헛기침, 천연덕스러운 취기 연기로 어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경쾌한 추리극은 ‘짝’하는 박수소리로 동일한 공간에 새 공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어수선함은 고쳐야 할 부분. 가장의 죽음이 무대에 던지는 극적인 효과가 질서 없는 괴성이나 분주한 동선 때문에 희미해지고 만다. 뮤지컬로 만들어질 ‘8인의 여인’들은 좀더 단단해지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결국, 범인은 누구냐고? 그건 관객의 마음 속에 남을 물음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나라 없는 사람/커트 보네거트 지음

    “나는 모든 사람의 머리가 쭈뼛 설 만큼 무시무시한 리얼리티 프로를 구상하고 있다. 제목은 ‘예일대 C학점’이다. 조지 W 부시는 주변에 C학점 상류계급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1)역사와 지리를 전혀 모르고 (2)백인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3)이른바 기독교도이며 (4)정말 놀랍게도 정신병자, 즉 영리하고 번듯하게 생겼지만 양심은 전혀 없는 자들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이런 식이다. 웃긴다. 웃기되 ‘실소’가 아닌 ‘블랙유머’다. 목에 착 달라붙어 컥컥대게 하는, 가시뼈가 폴폴 돋은 웃음이다. 그의 유머는 사회적 약자를 위로하나, 강자의 의식은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른다. 읽는 이에 따라 유쾌하고도 불쾌하다. ●마지막 작품이자 유일한 회고록 보네거트는 지난 4월11일에 죽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기 엿새 전이었고, 여든네 살이었다. 보네거트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반전운동가였으며, 히피의 대항문화를 선도했다. 무엇보다 ‘초거대 제국’ 미국의 광기를 사납게 공격했다. ‘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일한 회고록이다. 그가 수석편집인으로 있던 잡지 ‘인디즈타임스’에 5년간(2000∼2005년) 연재했던 글을 묶었다. 보네거트는 “어떤 웃음은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썼다. 그는 2차대전 막바지였던 1943년 연합군으로 징집됐고, 그 연합군에 의한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나치의 아우슈비츠 학살만큼이나 연합군의 드레스덴 학살(13만 5000명)에 치를 떨었던 사람이 보네거트였다. 살아 남았을 때 터져나온 건 소름끼치는 웃음뿐이었다고 보네거트는 말했다. 그의 유머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맹렬한 유머다. ●“정신병자·비양심적” 맹공격 그래서다. 전쟁을 일으키는 인물들에게 보네거트는 무섭게 분노한다. 부시 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을 “정신병자들” “양심도 동정심도 수치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라 쏘아붙인다.“베트남 전쟁은 백만장자들을 억만장자로 만들었으나, 오늘날의 전쟁은 억만장자들을 조만장자로 만들고 있다.”고 일갈하고,“미국 지도자들이 권력에 취한 침팬지라고 말한다면 나는 중동에서 싸우다 죽어가는 우리 병사들의 사기를 꺾는 매국노가 되는 걸까?”라며 정색하고 묻는다. 특히 ‘문명’과 ‘지성’의 이름으로 ‘반문명’과 ‘무지’를 타자화하는 식자(識者)들에게 치를 떤다. “‘슈렙널’이라 불리는 유산탄은 ‘슈렙널’이라는 이름의 영국인이 발명했다. 여러분도 그런 발명품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 싶은가? 네이팜탄은 하버드에서 발명됐다. 진리란 그런 것인가?” ‘나라 없는 사람’이란 책 제목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보네거트에게 미국은 “내 나라요.” 외칠 조국이 아니었다.“내가 사랑하는 미국”이 아닌 “내가 사랑했던 미국”이라 말하는 사람. 커트 보네거트는 ‘나라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1999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저무는 20세기의 묘비명을 이렇게 쓰고 싶다 말했었다.“아름다운 지구여! 우리는 그대를 구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 속악하고 게을렀도다.” 95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서울 8월 더위 ‘역주행’

    올 여름 8월 서울의 늦더위는 기상관측 이래 역대 4위인 것으로 나타났다.31일 기상대에 따르면 8월 하순 평균기온은 섭씨 26.9도로 1943년 28.0도,1939년 27.2도,1966년 27.0도에 이어 네번째로 높았다. 또 최고기온은 초순 32.2도, 중순 33.0도, 하순 33.2도 등 8월말로 갈수록 기온이 높아지는 ‘역주행 날씨’를 보였다.8월 서울의 열대야 발생일수는 11일로 예년 평균의 3.3일보다 3배 이상 많았다. 8월 하순 열대야 일수는 3일로 1967·85년의 4일에 이어 세번째로 많았다. 그러나 올 여름에는 국지성 호우에 이어 더위가 찾아오는 패턴을 보여 체감더위는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늦더위가 찾아오면서 올 여름 우리나라 해수욕장 개장기간은 가장 길었다. 일찍 더위가 시작된다는 기상청 예보에 따라 전남 신안 우전해수욕장과 진도 가계해수욕장이 예년보다 보름 이상 앞당긴 지난 6월2일 문을 열었다. 또 8월 하순에도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어서면서 동해안과 서해안, 남해안, 제주도의 해수욕장들은 8월말 또는 9월초로 폐장시기를 늦췄다. 부산 해운대 송정 광안리 다대포 송도 등 5개 해수욕장과 제주 함덕해수욕장은 2일 문을 닫는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건기와 우기로 구분되는 여름철 날씨 변화 등을 감안해 내년부터 해수욕장의 개장과 폐장일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해수욕장 개장일이 늘어나면서 피서인파는 전반적으로 크게 늘었다. 남해안과 동해안이 전년대비 각각 10∼20%의 증가율을 보였다. 입장객은 궂은 날씨가 이어진 8월 초·중순보다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하순에 많았다. 뒤죽박죽 날씨로 에어컨, 빙과류 등 여름상품 매출도 엎치락뒤치락했다. 에어컨은 8월 하순에도 성수기 못지않게 팔려 가전업계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8월 초 집중호우로 습도를 낮춰주는 제습기도 ‘반짝상품’으로 많이 팔렸다. 반면 빙과류 음료업계는 궂은 날씨로 매출이 줄어 울상을 지었다. 춘천 조한종·서울 주현진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UFO, 있다? 없다? 의문의 동영상들

    UFO, 있다? 없다? 의문의 동영상들

    UFO는 있다? 없다?’ 최근 카리브해의 작은 섬 아이티와 남미의 베네수엘라에서 잇따라 UFO가 발견되면서 UFO 관련 UCC가 화제가 되고 있다. UFO로 추정되는 물체가 촬영된 이들 UCC는 각종 UCC사이트에서 주목받으며 사실여부를 두고 뜨거운 논란을 낳고 있다. UFO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생생하게 촬영된 UFO는 감탄을 터뜨릴 수 밖에 없다. 이 UFO는 진짜 촬영된 것일까. 아니면 고도의 동영상 제작기술이 만들어낸 작품일까. ◇아이티 UFO는 가짜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아이티섬 UFO다. 카리브해 상공을 유영하던 2대의 UFO는 야자수 나무 사이를 저공비행하며 또렷한 모습을 드러냈다. 5개의 돌기를 가진 거대한 꽃모양으로 각각의 돌기에서 둥근 빛을 쏘고. 중앙에서는 거대한 불빛이 내려온다. 촬영자의 머리 바로 위를 나는 것처럼 상세하게 모습을 드러낸 이 물체가 진짜 UFO라면 역사상 가장 명확한 UFO 촬영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너무 또렷한 모습때문인지 이 UFO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가짜라는 의견이 팽배했다. 우선 모양이 일반적인 UFO와는 너무 다르다. 우리가 아는 납작한 모자모양과 달리 아이티 UFO는 마치 크리스마스 장식리스같은 모습이다. 카메라에 생생히 담길만큼 느린 속도도 의심스럽다. UFO는 마치 촬영을 즐기기라도 하듯 느린 속도로 촬영자의 머리위를 여러번 왔다갔다 한다. 몇몇 네티즌은 야자수가 모두 같은 모양인게 아무래도 세트에서 조작촬영을 한 것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무시무시한 속도의 스페인 UFO 2006년 7월 스페인에 나타났다는 UFO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흐린 영상이지만. 속도만은 상당하다. 이리저리 정신없이 움직이는 이 비행물체는 UCC 동영상 속에서 진짜 UFO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영상 역시 네티즌들 사이에서 가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은 카메라. 네티즌들은 “물체 속도보다 카메라가 더 빠르다. 마치 날아오는 곳을 알고 찍은 것같다”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UFO가 카메라 앞으로 가까이 오는데도 아래 보이는 집보다 어떻게 크기가 더 작을 수 있느냐”며 이 UCC 동영상 속의 UFO는 명백한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촬영자와 주변 친구들의 목소리 등에서 추측되는 긴박한 상황전개와 감탄사 등은 혹시 진짜 UFO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2명에게 촬영된 베네수엘라 UFO 베네수엘라에 나타난 이 미확인 비행물체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위는 볼록하고 아래는 납작한 이 거대한 비행물체는 베네수엘라 로스로퀘스 섬의 키 큰 야자수 위를 유유히 날아 섬 너머로 사라진다. 문제의 영상은 2개의 화면을 엮은 것으로 첫번째 화면은 오후 8시32분. 두번째 화면은 오후 8시10분에 각각 촬영된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 또 다른 사람이 UFO를 촬영함으로써 UFO가 등장했다는 증거까지 마련한 셈. 특히 두번째 영상에는 촬영자와 주변 사람들이 놀람과 두려움을 드러내는 비명소리가 함께 녹음돼 있어 사실성을 더한다. 너무도 UFO같은 이 물체에 대해 네티즌들은 진짜 UFO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네티즌은 “이 동영상 속 UFO의 크기로 봐선 조작이 쉽지 않았을 것같다. 진짜 UFO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동영상 속 UFO가 진짜인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영상 UCC제작자가 늘어남에 따라 UFO 영상을 보게될 확률은 점점 높아지게 됐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 박효실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4) 명과 후금의 정세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4) 명과 후금의 정세 Ⅱ

    천계 연간 격렬한 당쟁이 빚어지고 결국 위충현을 비롯한 엄당이 국정을 장악하게 되자 그 불똥은 곧바로 산해관 바깥으로 튀었다. 요동, 요서(遼西)의 방어를 책임진 최고위 지휘관들 또한 당쟁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 당파에 속하느냐가 경략(經略), 순무(巡撫) 등의 운명을 결정했다. 설사 뛰어난 전공이 있더라도 엄당의 눈밖에 나면,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동림당과 연결되어 있던 웅정필(熊廷弼)과 원숭환(袁崇煥)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쟁에 희생된 웅정필과 원숭환 웅정필(1569∼1625)은 1619년 명의 대군이 사르후 전투에서 참패한 이후 요동경략으로 흐트러진 요동 지역의 방어태세를 수습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친히 무순 지역까지 순시하면서 요동의 형세와 후금의 동태를 파악한 뒤, 후금군의 서진(西進)을 막기 위해 이른바 삼방포치책(三方布置策)을 제시했다. 산해관 지역의 방어를 굳건히 하고, 천진(天津)과 등래(登萊) 등지의 수군을 활용하고, 조선의 도움을 받아 후금을 배후에서 견제한다는 복안이었다. 웅정필의 계책은 광녕순무(廣寧巡撫) 왕화정(王化貞)의 반대에 밀려 실현될 수 없었다. 왕화정은 병부상서 장학명(張鶴鳴)의 지원을 받았고 엄당 쪽에도 줄을 대고 있었다. 웅정필과 왕화정의 대립은 결국 동림당과 엄당의 대립이었던 셈이다. 두 사람의 불화 속에 1622년 광녕이 함락되었다. 패전의 책임을 지고 두 사람 모두 체포되었지만 1625년 웅정필만 사형이 집행되었다. 참수된 웅정필의 목은 변방으로 조리돌려졌다. 광녕이 함락된 데는 왕화정의 과오가 훨씬 컸음에도 정작 웅정필만 처형된 것은 엄당의 농간 때문이었다. 당쟁, 그리고 엄당의 전횡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였다. 웅정필이 사라진 이후 나타났던 영웅이 원숭환(1584∼1630)이다. 원숭환은 명과 후금 사이의 군사적 대결, 궁극에는 명청교체(明淸交替)라는 격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천계 연간 명이 엄당의 전횡에 휘말려 안으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 밖에서 후금의 군사적 위협을 막아냄으로써 국가안보를 책임졌던 동량(棟樑)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누르하치도 원숭환이 버티고 있던 영원성(寧遠城·오늘날 요녕성 興城市 소재)을 넘지 못했고, 끝내는 패전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원숭환이 1626년 영원성에서 승리를 거두자 명의 조야는 감격했다.1619년 사르후 전투 이후 연전연패했던 명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원숭환은 일약 ‘하찮은 여진 오랑캐’ 때문에 구겨진 중화(中華)의 자존심을 살린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이 ‘중화의 영웅’ 또한 1630년 비명횡사했다. 전장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명 조정이 스스로 죽였다. 후금의 반간계(反間計)와 명 조정의 당쟁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나타난 결과였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사학자 옌충녠(閻崇年) 등이 중심이 되어 원숭환을 추모하고 그의 시대를 재조명하려는 분위기가 자못 활발하다. 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도 민족의 기절(氣節)과 애국주의를 선양하려는 차원에서 원숭환 관련 사적을 정비하라고 직접 지시했을 정도였다. ●영원성에 방어의 거점을 마련하다 원숭환은 호(號)가 자여(自如), 자(字)가 원소(元素)로 광동성(廣東省) 출신이다. 그는 1597년(만력 25) 수재(秀才)가 되고,1606년(만력 34)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거인(擧人)이 되었다. 원숭환은 36세 때인 1619년(만력 47) 북경에서 과거에 최종 합격하여 벼슬에 진출했다. 그가 조정으로부터 처음 임명된 관직은 복건(福建) 소무현(邵武縣)의 지현(知縣)이라는 자리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의 군수급 관직이었다. 일개 지방관에 불과했던 원숭환의 운명이 바뀐 것은 1622년이었다. 지현 재직 시의 근무 성적에 대한 고과(考課)를 위해 북경에 왔는데, 그의 능력을 알아본 어사 후순(侯恂)이 원숭환을 천계제에게 추천했던 것이다. 후순은 동림당 계열이었다. 천계제는 원숭환을 병부 직방주사(職方主事)로 발탁했다. 지방관에서 일약 중앙관으로 변신시킨 파격적인 인사였다. 1627년까지 승진을 거듭한 원숭환은 이후 요서 지방의 방어 대책을 마련하여 북경과 산해관의 안전을 지키는 최일선에서 활약하게 된다. 산해관 방어를 위해 고심하던 원숭환은 영원을 주목했다. 영원은 산해관에서 200리 정도 떨어져 있는 ‘산해관의 현관’이었다. 요동, 요서 지역에서 육로로 산해관이나 북경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전략 요충이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동쪽으로는 발해만에 접해 있어 방어에 용이했다. 더욱이 해안에서 15리 정도 떨어진 바다에 각화도(覺華島)라는 섬이 자리잡고 있어서 배후의 지원 기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원숭환은 산해관을 지키려면 영원에 제대로 된 중진(重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명 조정의 관인들 가운데는 산해관 바깥의 방어를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1618년 이래 거듭되었던 요동에서의 패전 때문에 병력이 격감하고 성지(城池) 등 방어 시설이 퇴락한 데다, 주민들이 이산했기 때문이었다. 영원을 방어해야 한다는 원숭환의 주장은 왕재진(王在晉) 등의 반대에 밀려 채택될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황제를 설득하여 원숭환의 손을 들어준 사람은 대학사 손승종(孫承宗)이었다. 손승종의 지원을 얻어낸 원숭환은 1623년 영원성 수축에 감독관으로 직접 참여했다. 그는 조대수(祖大壽)와 만계(滿桂) 등을 지휘하여 담장을 높이고, 포대(砲臺)를 개수하는 등 성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1624년 9월, 영원성의 수축 공사는 완료되었다. 원숭환은 이후 성 외곽의 유민들을 불러모아 농경지를 개간토록 하고, 산해관과 해로를 통해 상인들도 끌어들여 성에 대한 물자 공급도 원활하도록 조처했다. 버려졌던 영원성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물자가 활발하게 유통되면서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살상력 뛰어난 홍이포(紅夷砲)를 거치하다 영원성을 정비한 이후 원숭환이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명군의 화력을 증강시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주목한 것이 바로 홍이포였다. 명 조정에는 일찍부터 서양의 새로운 화포인 불랑기(佛狼機)나 홍이포 등을 활용하여 후금군을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관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선구자는 유명한 서광계(徐光啓·1562∼1633)였다. 일찍이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를 통해 천주교에 입교하고, 서양의 과학기술에 눈을 떴던 그는 서기(西器), 그 가운데서도 서양식 화포의 활용을 열렬히 주장했다. 천계제는 서광계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포르투갈 상인들의 근거지였던 마카오(澳門)로부터 30문의 홍이포를 구입하여 북경의 도성과 산해관 등지에 배치했다. 홍이포는 기존의 중국식 화포에 비해 사정 거리가 길었을 뿐 아니라 살상력이 월등했다. 영원성 전투 이전에 요동에서 벌어진 후금군과의 전투에서도 명군은 화포를 사용했지만 그 위력은 신통치 않았다. 처음 사격 후, 두 번째 포탄을 발사하기 전에 후금군의 날쌘 기마대는 이미 명군 진영을 덮쳤다. 그런 전철을 뒤풀이하지 않으려면 훨씬 강력한 위력을 지닌 화포가 필요했다. 원숭환은 손승종과 상의하여 산해관에 배치되어 있던 홍이포 11문을 영원성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성밖이 아닌 성루(城樓) 위로 옮겨 배치했다. 원숭환은 병사들에게 홍이포를 조작하는 기술을 숙달시키기 위해 손원화(孫元化) 등을 불러들였다. 훗날 등래순무(登萊巡撫)로 활약했던 손원화는 당시 손꼽히는 화기 전문가였다. 그는 일찍부터 포르투갈 기술자들에게 홍이포를 다루는 기술을 배웠다. 손원화는 영원성의 포병들을 훈련시켰다. 원숭환의 혜안과 손원화 등의 노력을 통해 영원성의 방어 태세는 일신되었다. 1626년 1월, 누르하치는 팔기군을 이끌고 요하(遼河)를 건너 영원성을 향해 진군했다.1618년 이후 거침없이 승전을 구가해 왔던 누르하치였다. 하지만 곧 그의 머리 위로 홍이포의 불벼락이 날아든다. 누르하치의 운명이 종착역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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