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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자왕, 귀족 배신으로 唐에 끌려가”

    “의자왕, 귀족 배신으로 唐에 끌려가”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했을 때 웅진(현 공주)으로 피란 온 의자왕을 사로잡아 당나라에 넘기고 승승장구한 백제 최고위 귀족 예식진을 비롯한 예씨 가문의 무덤이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발굴됐다. 신라사학회의 김영관 제주대 교수는 2010년 4월 시안시 문물보호고고연구소가 대학가인 시안시 창안(長安)구 궈두난춘(郭杜南村)이라는 곳에서 당나라 중기 때 무덤 3기를 발굴한 결과 이들이 각각 예식진과 그의 아들 예소사, 손자 예인수의 무덤임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발굴은 2006년 중국 허난성 뤄양(陽) 시내 골동품상에서 백제의 유민 예식진이라는 묘지명이 발견된 지 4년 만으로, 이 묘지명을 연구해 2007년 8월 ‘백제멸망의 진실-예식진의 배신’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김 교수의 논문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 김 교수는 “2007년 논문에서 예식진이 백제가 멸망할 당시 웅진성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당나라에 넘겼다고 ‘구당서(舊唐書) 소정방 열전’에 기록된 ‘예식’과 같은 인물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예씨 가문의 가족묘 중 예인수의 묘지명에 ‘할아버지가 중국 황제 고종에게 의자왕을 끌고 가서 바쳤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나온다.”고 밝혔다. 또한 예씨 집안 인물 묘지명에서 지난해 7월 중국 학계에서 보고한 예군 묘지명의 예군은 예식진의 형으로 드러났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는 “예식진의 묘비명에는 백제 웅진 출신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90년 뒤에 손자인 예인수에 이르러서는 백제인의 정체성을 잃고 당의 백성으로 동화되는 과정이 드러난다.”면서 “이 때문에 백제 멸망의 악역을 담당해 놓고도 책임의식이 희박해져 노골적으로 할아버지의 활약상을 묘비명에 거리낌 없이 서술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들 예씨 집안 4명의 묘지명에 대한 분석 결과를 28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서강대 정하상관 610호에서 열리는 제111차 신라사학회 발표회에서 공개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與 ‘공천 살생부’에 불쾌半 불안半

    4·11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내에서 ‘공천 살생부’가 나돌기 시작했다.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이런 명단이 돌게 마련이라지만 의원들은 불쾌감을 드러내면서도 내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것으로 알려진 한 문건에는 총 42명의 지역구 의원들 이름이 나열돼 있다. 이 가운데 4명은 ‘예비명단’으로 분류돼 있고, 나머지 38명은 사실상 공천배제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최근 경쟁력(50%)과 교체지수(50%)를 바탕으로 지역구 의원의 25%(34명)를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뒤여서 대상 의원들의 수도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계파별로는 친이·친박계가 고루 포함됐다. 그러나 문건의 출처가 불분명한 데다 수도권과 영남권에 집중된 점, 기준이 모호한 점 등으로 미뤄 특정 정치세력에서 유출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명단에 나온 의원들은 서울의 경우 초선(6명)과 재선(3명)에 집중됐고 영남권의 경우 중진 의원들이 대다수였다. 이 문건대로라면 당내 4선 이상 의원 17명 가운데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을 제외하고 ‘생존’하는 의원이 정몽준·박근혜·이재오·황우여 의원 4명뿐이라는 기이한 결과가 나온다. 3선 의원도 22명 가운데 13명으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문건을 본 한 중진 의원은 “무조건 선수와 연령이 많은 순서대로 작성한 것 같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당 지도부는 살생부 논란을 일찌감치 차단했다. 비대위 정치쇄신분과 위원장인 이상돈 비대위원은 “누가 소설을 썼느냐. (비대위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비대위에서 그런 문제를 언급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고 부인했다.신뢰성과 관계없이 이러한 명단이 나왔다는 것 자체에 현역 의원들은 반감을 갖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명단을 확보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산책하던 개 건드린 남자, 하필이면 물린 곳이...

    산책하던 개 건드린 남자, 하필이면 물린 곳이...

    산책하는 맹견을 건드린 남자가 까딱하면 남성을 잃을 뻔한 아찔한 사고가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했다. 친구의 개를 쓰다듬은 남자가 성기를 물려 병원에 실려갔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피해자는 아르헨티나 포사다스에 살고 있는 30세 남자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남자는 지난 19일(현지시각) 공원에서 산책 중인 친구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얘기를 시작한 남자는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던 개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친구의 개는 그러나 낯선 사람의 손을 반기지 않았다. 개는 남자에게 달려들어 성기를 꽉 물어버렸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발길질을 하면서 겨우겨우 개를 떼어냈다. 하지만 이미 다리 사이에선 피가 잔뜩 흐르고 있었다. 기겁을 한 개의 주인은 자신의 오토바이에 친구를 싣고 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현지 언론은 “친구가 재빠르게 병원으로 후송한 덕분에 남자가 남성을 잃진 않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전했다. 남자를 문 개는 평소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독종’ 핏불이었다. 사진=자료사진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휴대전화에 아기 안은 여자 유령 사진 찍혀

    남미의 한 산에서 심령사진이 찍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르헨티나 지방 살타의 산 베르나르도 산에 놀러간 일단의 청소년들이 휴대전화로 기념사진을 찍다 우연히 하얀 유령(?)의 사진을 찍었다. 신나는 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이 산에 오른 건 지난주였다. 소년들은 캠핑을 하기로 하고 밤에 산에 올랐다. 텐트를 친 청소년들은 모닥불을 지피고 휴대전화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던 청소년들은 깜짝 놀랐다. 사진에는 있어야 할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인간 형체의 뿌연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사진을 확대하니 전신이 하얀 여자가 아기를 안고 서 있었다. 심령사진을 찍은 걸 알게 된 청소년들은 텐트와 짐을 내버려둔 채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을 쳐 단순에 산을 내려왔다. 사진은 18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지방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사진을 공개한 청소년들은 “당시 주변엔 친구들 외 아무도 없었다.”면서 “산에 유령이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트리부노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과자 좀 줘~” 여성의 쇄골 무는 얼룩말 포착

    “과자 좀 줘~” 여성의 쇄골 무는 얼룩말 포착

    얼룩말이 사파리 관광객의 어깨를 무는 동영상이 해외언론에 소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최근 유튜브에 올려진 한편의 동영상을 보도했다. 동영상은 메건이라는 여성이 미국 텍사스에 있는 사파리 중에 얼룩말의 공격을 받는 장면이다. 메건이 차량 조수석에 앉아 과자를 먹으려는 순간. 얼룩말이 내려진 차 유리로 과자를 뺏어 먹으려고 머리를 들이 밀었다. 그런데 얼룩말은 과자대신 메건의 쇄골부분을 물었다. 깜짝 놀란 메건은 “얼룩말이 내 어깨를 물었어!”라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동영상의 묘미는 슬로모션, 그녀의 비명이 슬로모션의 효과와 함께 독특한 느낌을 선사한다. 메건이 친구에게 보여주는 장면에는 메건의 쇄골부분에 큼지막한 이빨자국이 남아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메건은 동영상과 함께 “그 이후 심각한 상처는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진=데일리 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헤비메탈이 몰려온다

    헤비메탈이 몰려온다

    지난해 10월 전설적인 밴드 화이트스네이크의 첫 내한공연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가죽 재킷 차림 ‘형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 형님들이 또 설레고 있다. 2월에 주다스 프리스트를 필두로 헤비메탈의 과거와 현재를 망라하는 밴드들이 줄지어 내한공연을 하기 때문. ‘메탈 신(神)의 역대 마지막 내한 강림.’ 홍보문구가 호들갑스럽다. 그런데 그럴 만하다. 1970년 결성된 영국의 5인조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는 ‘비포 더 돈’(Before The Dawn) ‘페인킬러’(Painkiller) 등 수많은 명곡을 쏟아내며 4000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전설. 이들은 지난해 6월 유럽에서 시작한 ‘에피타프(묘비명) 투어’가 자신들의 마지막 순회공연이라고 선언했다. 팬들의 조바심은 한껏 고조된 상황. 주다스 프리스트가 새달 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 선다. ‘로큰롤 대디’ 임재범과 한국 메탈 신의 간판 디아블로와 크래쉬가 함께 한다. 7만 7000~12만 1000원. 1544-1555. 미국의 5인조 혼성 밴드 에반에센스는 새달 17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첫 내한공연을 연다. 에반에센스는 2003년 데뷔앨범 ‘폴른’(Fallen)으로 그래미상 신인상과 최우수 하드록 공연 부문을 휩쓸었다. 펑크 여전사를 연상케 하는 여성보컬 에이미 리가 뿜어내는 호소력 짙은 샤우팅은 밴드의 최대 무기다. 13만 2000원. (02)512-2706. 연옥(煉獄)에서 살아 돌아온 목소리가 이쯤 되지 않을까. 미국의 5인조 메탈밴드 램 오브 갓의 보컬 랜디 블라이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웬만한 마니아가 아니라면 두 곡쯤 들으면 멀미를 일으킬 강렬한 사운드를 뽐내는 램 오브 갓이 새달 12일 악스코리아에서 내한공연을 한다. 8만 8000~9만 9000원. 1544-1555.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배 버린 선장·거짓 방송” ‘13일 금요일 밤’의 人災

    “배 버린 선장·거짓 방송” ‘13일 금요일 밤’의 人災

    “여성과 어린이부터 타십시오.” 지난 13일 밤(현지시간) 이탈리아 서해안 토스카나 제도의 질리오 섬 인근 칠흑 같은 해상에서 미국 보스턴 출신의 벤지 스미스는 생애 최악의 시련과 맞닥뜨렸다. 유람선은 기운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구명정에는 100명 안팎의 인원만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선체에 매달려 꼭 부둥켜안고 있던 가족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떨어져야만 했다.”며 몸서리쳤다. ●한국인 34명 무사… 엔진실 폭발 가능성 1912년 4월 15일 영국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꼭 100년 만에 이탈리아 연안에서 현대판 타이타닉의 공포가 재현됐다. 그것도 서구인들이 꺼리는 ‘13일의 금요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승객 등 4200여명을 태운 호화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좌초되는 바람에 지금까지 5명이 숨지고, 17명이 실종됐다고 AP 등 외신들이 15일 전했다. 24시간 만에 구조된 29세 동갑내기 신혼부부를 비롯해 최소 34명의 한국인 승객은 안전하게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친구 부부와 여행에 나섰던 한국인 승객 김철수(49)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구명조끼를 들고 비상구로 빠져나오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는데 비상 탈출훈련이라고 해서 그대로 믿었다. 하지만 구명보트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이미 배가 70도가량 기울어 있었다.”며 그제서야 실제 상황임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구명보트가 있는 갑판에 도착한 뒤에야 ‘배를 버린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그때부터 어른 아이 없이 모두 울부짖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가 더 공포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사고는 지중해 정기 운항에 나선 유람선이 질리오 섬 인근 해상에서 바닷속 암초와 충돌하면서 일어났다. 일부 승객들은 배가 부딪히기 직전 정전이 되고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고 말했다. 이는 엔진실에서 폭발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사고가 나자 길이 290m, 11만 4500t 규모인 유람선은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유람선이 한쪽으로 기울며 전복되기 시작하자 집단 패닉에 빠진 승객들은 서로 구명정으로 기어오르려 했다. 배가 바닷속으로 빠져들면서 사람들은 바닷속으로 하나둘씩 사라졌다. 승객 200여명은 바다에서 90m가량 떨어진 해안까지 헤엄쳐 간 뒤 바위에 올라가 구조를 기다렸다. 65세 여성은 심장마비로 숨졌다. 여성과 어린이를 안전한 해안으로 먼저 실어 나른 구명정은 3시간 만에야 현장으로 되돌아갔다. 구명정 가운데 3대는 기술적 문제와 승무원의 미숙함으로 작동되지 않았다. ●“훈련한다 했는데 배 이미 70도 기울어” 이번 사고는 승무원들의 무책임, 늑장대응 등이 키운 ‘인재’였다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은 승객들이 주장한 대로 선장 프란체스코 셰티노(52)가 승객들이 다 대피하기도 전에 배를 버렸다는 혐의를 조사 중이다. 하지만 선장은 이를 부인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승무원들이 ‘단순한 기술적 문제’라고 안내하는 바람에 승객들은 사고가 난 지 45분 동안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암초가 많은 사고 지역에서 거대한 유람선이 왜 그렇게 해안선 가까이로 다가갔는지도 의문이다. 해안 경비대는 선장이 안전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배를 항구 쪽으로 접근시키려 했을 수 있지만, 문제는 유람선이 사고 직후 조난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셰티노 선장 등 관계자들을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체포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블랙박스 분석에도 들어갔다. 사고 유람선은 2004~2005년 4억 5000만 유로(약 6646억원)의 비용으로 건조됐으며 스위트룸 58개와 레스토랑 5개, 온천탕 5개, 수영장 4개 등을 갖추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키가 작아 슬픈 강도…170㎝ 여자 입 못막아 잡혀

    중국의 한 강도가 인질을 잡으려다 작은 키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경찰에 붙잡혔다. 복수의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범인 황(黃)씨는 지난 10일 광둥성 선전시의 한 지하통로에서 강도범행 대상을 물색하다 천(陳)씨를 발견하고 달려가 가방을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천씨는 가방을 붙잡고 놓지 않았고, 큰 소리로 “도와주세요!” 등을 외치며 주변에 상황을 알렸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황씨는 천씨의 입을 손으로 막으려 했지만, 키가 160㎝인 황씨는 키가 170㎝가 넘는 천씨의 입을 막지 못했다. 손이 닿지 않았던 것. 범행 현장 주위에 있던 경찰은 천씨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와 곧장 황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며칠 째 황씨를 미행하다 행적을 놓쳐 당황하던 차에 구조를 요청하는 천씨의 목소리를 듣고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키 작은 강도의 비애”, “세상에서 가장 황당하게 잡힌 강도”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요즘 유럽은 독일어 열풍

    요즘 유럽은 독일어 열풍

    “갑자기 유럽 전체가 독일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독일 집권 기민당(CDU)의 원내대표 볼커 카우더가 지난해 11월 당 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유는 바로 일자리다. 50%에 이르는 최악의 실업률에 직면한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청년들이 줄지어 ‘일자리 강국’ 독일로 구직 이민에 나서면서 독일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현지시간) 조명했다. 독일어 강사가 재정 위기 속에서 가장 잘나가는 직업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 전 세계에 독일어와 독일 문화를 알리는 독일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은 요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독일문화원에서 20년 넘게 독일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귄터 슈빈저(61)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어 강좌가 요즘처럼 인기를 얻은 때가 없었다.”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경제가 호황을 이루면서 독일에 대한 이미지가 확실히 나아졌다.”고 말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독일문화원 직원들은 독일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스페인 청년들의 취업원서 작성까지 도와주고 있다. 독일문화원은 이 틈을 타 독일 경제의 성과를 홍보하는 안내서까지 방문객에게 나눠주고 있다. 통계에서도 남유럽에서 독일로의 유입 흐름은 뚜렷이 감지된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6월 독일로 이주한 사람은 모두 43만 500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9% 늘었다. 이 가운데 외국 국적을 지닌 이민자수는 38만 100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1% 급증했고, 유럽연합(EU)회원국에서는 29% 더 유입됐다. 특히 남유럽국가에서의 유입이 두드러졌다. 그리스 출신 이민자는 전년 동기에 비해 무려 84% 급증한 9000명을 기록했다. 스페인 출신 이주민은 7200명으로 전년에 비해 50%나 늘어났다. ‘두 개의 유럽’이라 불릴 정도로 독일의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능력은 유럽 내에서도 독보적이다. 외려 독일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최근 독일 상공회의소(DIHK) 설문에 따르면 독일 기업의 3분의1이 숙련노동자 부족이 경영의 최대 위험요인이라고 응답했고, 가게·식당 등에서도 일할 사람을 찾는 광고가 넘쳐난다. 재정위기가 심화된 지난해에도 독일은 3%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미국이나 유로존 전체 GDP 성장률의 2배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실업률은 5.5%에 불과했다. 같은기간 청년 실업률도 8.1%로,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지난해 민간 소비는 전년보다 1.5% 증가했다. 지난 5년 동안 최고 수준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종로구 쪽방촌 주민에 일자리

    민족 최대 명절 설을 앞두고 서울의 대표적 빈민가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2010년 종로구가 빈곤층 자활사업으로 도입한 ‘길품 택배’ 사업 덕분이다. 길품은 ‘남의 길을 대신 가고 삯을 받는 일’이라는 뜻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밀린 일감 때문에 물품 배달에 매달리는 이들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과 함께 반드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겠다는 의욕이 그득했다. 쪽방촌 주민 8명이 2개 거점 센터를 중심으로 택배 일을 하고 있다고 11일 구는 밝혔다. 구는 2010년 7월 청사에 사무실을 차려주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쪽방촌 주민들은 신한·CJ·현대 등의 택배회사에서 물품을 넘겨받아 구청과 광화문 일대 주상복합건물, 상가 등 종로 인근 배송지에 직접 전달하는 일을 한다. 직원들은 배달 한건당 수수료 500원을 받아 한달 평균 5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지난달에는 하루 평균 700~800건의 발송 요청이 들어왔지만 이달 들어서는 1000건을 웃돌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직원 한명이 한달 평균 50만원가량의 수입을 배정받으며 쪽방상담센터를 통해 구가 지원하는 임금까지 합치면 매달 100만원 이상을 번다. 돈의동에서 만난 직원 노모(56)씨는 “1년째 길품택배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노씨는 이전에 건설현장에서 일하며한달 7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일이 없을 땐 수입이 40만원도 못 미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는 “많지 않지만 내가 스스로 일해 번 돈이라 너무나 값지다.”면서 “경기 침체로 아예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많은데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자활 의지를 갖고 추운 날씨에도 성실히 일해 줘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택배사업을 확대해 빈곤층을 위한 사회적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한국불교 대표적 學僧 지관스님 입적

    한국불교 대표적 學僧 지관스님 입적

    대한불교 조계종 32대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智冠) 스님이 2일 오후 7시 55분 서울 정릉동 경국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0세, 법랍 66세. 영결식은 8일 11시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거행되며, 장례격은 3일 결정될 예정이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에 따르면 지관스님은 지병인 천식과 투병하다가 상태가 악화해 이날 세상을 떠났다.지관스님은 폐 천식이 심해 지난해 9월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수면 치료’를 받으며 지병을 돌봤지만, 고령이라 회복되지 않았다. 지관스님은 9월 입원 직전 원고지에 친필로 ‘사세(辭世)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스님은 임종게에서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팔십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라고 전했다. ●평생 불교 저서 편찬에 매진 1947년 해인사에서 당대 최고 율사(律師)였던 자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지관스님은 1953년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963년 경남대를 졸업하고서 1976년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해인사 주지, 동국대 이사와 총장, 조계종 총무원장(2005-2009) 등을 역임했다. 지관스님은 조계종을 대표하는 학승(學僧)으로 꼽힌다. 지관스님은 퇴임 후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자신의 호를 딴 가산(伽山)불교문화연구원에서 불교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 편찬작업에 매달렸다. 금석문(石文) 분야의 권위자였던 지관스님은 ‘가산불교대사림’ 이전에 ‘역대고승비문총서’(전7권)를 편찬했으며, 한국불교학연구자 100인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한국불교문화사상사’ 등을 펴내는 등 종단을 대표했던 학승다운 면모를 보여왔다. 그가 1974년 펴낸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도 한국불교학 자료의 서지적 기원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님은 1991년 동국대 총장에서 물러난 뒤 한국불교학연구를 통한 한국불교중흥을 위해 사재를 털어 창경궁 근처에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개원했다. 개원 후 연구원 10여 명과 함께 편찬 작업에 매진한 스님은 바쁜 일정에도 머물던 정릉 경국사에서 승용차 없이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출퇴근하는 등 솔선수범하며 배움과 가르침의 길을 걸었다. 그가 평생 매달렸던 가산불교대사림은 현재 13권까지 편찬됐다. 조계종 원로의원이던 지관스님은 2005년 제32대 총무원장에 취임했으며, ‘원로’답게 종단의 안정과 화합의 기틀을 마련하고서 4년 임기를 마치자 평화롭게 종권을 이양했다. 그는 총무원장 재임 시 조계종의 소의경전(근본경전)인 ‘금강경’을 표준화했으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완공 등 조계사 성역화,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충남 공주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 국제선센터 건립 등을 통해 한국불교와 간화선의 대중화 기반을 구축했다. 고인은 조계종단에서 최연소 강사(28세), 최연소 본사(해인사) 주지(38세), 최초 비구 대학총장(1986년·동국대) 등의 기록도 갖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관광부 은관문화훈장(2001년)에 서훈되고 조계종 포교대상(2001년), 만해대상 학술부문상(2005년) 등을 수상했다. 이 밖에 종단교육공로표창(1969년), 서울시 정의사회구현 표창(1982년) 등 수상경력이 있다. ●故 노대통령 비명·만장 작성 한편, 지관스님은 지난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건립된 ‘아주 작은 비석’에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비명과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사용된 만장을 직접 쓰기도 했다. 반면 같은 해 6월,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심화된 국론분열을 수습하고자 7개 종단 종교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자 참석을 거부해 눈길을 끌었고, 2008년 7월에는 경찰이 조계종 경내에서 지관스님이 탄 차량을 과도하게 검문한 것과 관련,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1. ‘저항’의 시대와 그 기원 누군가 제게 2000년대 문학에게 주어질 단 하나의 이름을 꼽으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저항의 시대’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저항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저항’의 기표, 이를테면 세계에 대한 저항이나 주체를 둘러싼 폭력들에 대한 투쟁 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최근의 문학이 보여주는 강렬한 ‘저항’들은, 오히려 역사적 투쟁이 끝났다는 저 냉엄한 현실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제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지난 몇 해간 문학은 끊임없이 그가 떠맡을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들에 대해 고민해왔고, 또 우리 앞에 그 실천적 노력을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실은 저의 고민도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갑작스럽게 대두된 ‘시와 정치’에 대한 격렬한 저 논쟁의 배경에는, 과연 일반적인 평가에서처럼 단지 촛불시위나 용산참사와 같은 문학 외적인 요인만이 작용했던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진단은 문학이 예술적인 층위에 안주하면서도 대중적 관심을 추수하는, 일종의 권위적 시장주의를 드러냈다는 음울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심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고 보기에, ‘시와 정치’논쟁은 지나치게 끈질기고 또 적극적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단순한 사회적 정세 이상의 무언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 ‘저항의 시대’가 숨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2000년대 들어서 낯선 감각과 새로운 어법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출현과 반응, 이 집단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소통불능의 자폐적이고 이기적인 문학이라는 신랄한 비판이나 조금만 더 자아 밖으로 나오라는 애정 어린 충고에서부터, 여러분이야말로 ‘도래’할 문학적 민중이 될 거라는 뜨거운 격려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반응들의 폭발에 정작 시인들은 당황했다. 새로운 시들을 둘러싼 이 논의들은 여러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문제, 즉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 그리고 그 대답들로 느껴진다.(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 ‘창작과 비평’ 2008년 겨울호. 69쪽) 문학이 고민하는 정치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와 정치’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진은영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에서부터 이미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가 미학적인 완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귀결은,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에 대한 당연한 정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진부한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라는 그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어째서 진은영은 특정한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낯선 시들의 출현으로부터 시의 정치성에 대한 고민을 읽어냈던 것일까요? 80년대와 결별한 후 정치에 대한 반동적인 면모를 보여 왔던 문학이,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목격한 후 뒤늦게 정치성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는 해석은 지나친 음모론같이 보입니다. 반면에 이 글의 출발점이었던 ‘젊은 시인’들을 주목하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진은영이 가진 문제의식이란 현실과 문학 사이의 괴리에 대한 즉흥적인 고민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등장한 새로운 시에 대한 오래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랑시에르의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문제는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문제이며 그런 면에서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책제목 ‘감각적인 것의 분배: 감성론과 정치’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의 문제의식과 결론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진은영, 앞의 글, 71쪽) 진은영이 소개한 랑시에르의 감성론은, 미적 자율성의 이름으로 정치를 함께 담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단에서 이 이론을 열렬하게 환영했던 데에는, 혹시 ‘시와 정치’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의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 문학이 직면했던 거대한 과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넘어설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근대문학’이며, 근대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일종의 상상적 권위에 불과하다는 이 충격적인 선언 앞에 당시 우리 문단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유령처럼 배회하던 ‘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울과 겹치면서, 가라타니의 종언론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탄으로 다가왔던 까닭이죠.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비평가들은,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문학의 종언-이후’에 대한 갖가지의 견해들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나는 더 이상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가라타니의 태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종언의 기표일 뿐이라거나, 그가 논의하는 내용이 일본문학만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식의 비생산적인 사족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애초에 가라타니가 종언을 이야기한 맥락이 문학의 소멸을 말하는 비관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라타니가 문학에 요구한 것은 종언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전개될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였습니다. 이것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표제를 내걸었음에도 실제로 그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 세계자본주의의 전개양상이었던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요. 따라서 문학에 대한 기대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말은, 철저하게 ‘근대문학’에 부여된 상상적 층위의 정치적 역할과 그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라타니에게 문제의 핵심은 ‘정치’에 있었지만, 당시 우리 문단은 그것을 성급하게 ‘문학’에 국한시키며 오해를 낳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급조된 대응담론이 아니라, 고진이 ‘종언’을 선언한 이후에 등장했던 우리의 문학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 ‘정치’의 자유, ‘정치’로부터의 자유 ‘근대문학의 종언’이 등장했던 해는, 우리 문단에서 ‘미래파’라는 새로운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처음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해 보내던 우려와 달리, ‘미래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환영하는 이들과 비판하는 이들 모두에게 중심담론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인들이 과거와 같이 (담론화하기 쉬운)특정 논의의 틀 안에 규정되는 일이 드물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미래파 논의가 이토록 빠르게 문단의 중심담론으로 부상한 데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이후 전개된 ‘미래파 논쟁’의 주된 핵심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과연 ‘미래파’란 존재하는가, 둘째는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논쟁에 참여한 거의 모든 이들이, 별다른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래파 논쟁’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세가 한풀 꺾였던 것에 비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시적 ‘새로움’에 대한 믿음은 ‘미래파’라는 분류가 유명무실해진 지금까지도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단순히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작업을 분석하여 그것이 ‘미래파’의 증거가 되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우리 문단에 이러한 논의가 등장했고 또 불붙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시의 미래는 이들이 적어나갈 것이다. 이들에게는 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이 없고, 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듯한 서정, 고만고만한 서정이 없다. 그 대신에 다른 게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있다.(권혁웅, ‘미래파: 2005년, 젊은 시인들’,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149~150쪽) 가라타니는 문학의 종언을 가져온 중요한 전제로서, 이제 더 이상 문학이 현실의 ‘정치’나 ‘실천’을 대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권혁웅은 ‘채무의식’이 없어짐으로써 우리 시가 시적인 새로움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마련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차이로부터 시의 ‘새로움’이 가진 기원을 엿보게 됩니다. 이제 시는 80년대적인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 즉 ‘실천’이라는 기표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현실이 80년대의 시가 직면했던 폭력적인 억압을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의 억압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실천을 상상적으로 담보하던 과거의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는 ‘우리에게/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진은영, ‘70년대産’)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들과 맞설 것을 요구받습니다. 가라타니가 ‘정치의 자유’로 인해 발생한 이 모순적 상황을 종언의 원인으로 인식했다면, 우리는 이 모순된 상황을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후 겪는 일시적인 홍역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분기점이야말로 어째서 진은영이 랑시에르의 감성론을 급히 ‘수혈’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는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새로운’ 시가, 어떻게 여전히 남아있는 저 정치에 대한 요구를 떠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면서도 첨예하게 미학적이’고 싶다는 진은영의 고백에는, 전자에 의한 ‘실천’의 획득과 후자에 의한 ‘새로움’의 향유를 동시에 소유하고픈 욕망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가 진은영이 랑시에르를 소개한 배경에 ‘근대문학의 종언’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말한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시적인 ‘새로움’에 대한 요란한 환영, 심지어는 강박적인 것으로마저 여겨지는 저 ‘새로움’에 대한 추수는 단순한 예술사조의 변천이나 시대적 흐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의지로 얻어낸 것이 아니었던 ‘정치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강한 채무감에서 기인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논의들은 ‘채무의식’의 극복이 ‘새로움’의 원동력이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셈이지요. 아마도 신형철은 이러한 진실에 일정 부분 닿아 있는 듯 보입니다. 그가 황지우의 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야기하는 미학과 정치의 논의는, 앞선 것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한몸이었던 사례가 우리 시사(詩史)에 있는가? 물론 있었다. 예컨대 황지우의 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의 시가 대표적으로 보여준, ‘회의하면서 긴장하는’ 그 언어의 배후에는 권력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억압이라는 외적 상황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말과 해야만 하는 말의 분열 속에서, 언어의 회의 혹은 언어의 긴장은 (시인 자신의 의지나 역량에 힘입은 바 못지않게) 상당부분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덕분에 그의 시는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었다.(신형철, ‘가능한 불가능’, ‘창작과 비평’ 2010년 봄호, 375쪽) 과연 최근 우리 시는 80년대의 채무의식을 ‘극복’하였을까요? 신형철은 여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시가 정치를 떠맡을 수 있었던 원인이 현실정치의 불가능함에 있었다는 가라타니의 견해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날 ‘시’와 ‘정치’가 확고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인이 가진 분노의 감정이 미학의 이름을 통해 고스란히 정치적 정념의 형태로 분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형철 또한 이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새로운 시와 비평에 대한 요구가 ‘아무도, 적어도 시에서는, 그 어떤 발화도 억압하지 않는’ 오늘날의 상황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방향이란 ‘첨예하게 미학적인 시들에서 우선 그 미학적인 것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 이후에 거기에서 정치학적인 것까지를 읽어내는 일’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신형철의 화법에서, ‘실천’의 강박과 ‘새로움’의 강박을 서로 다른 것으로 떼어놓으려는 시도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들이 지니는 동일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또 인정하지 않는 이상, ‘시와 정치’는 영원한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를 ‘고유한 주체의 합리성에서 유래하는 특정한 행위 양식’으로, 시를 ‘주체가 스스로의 자유 안에서 건네는 내밀한 고백’이라고 정의할 때, 시와 정치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시인을 거부했던 이유는, 시가 가지는 본연의 속성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훌륭하게 완성된 공동체에게 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가 가지는 힘이란 공동체의, 세계의 질서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목격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과정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논의하던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며, ‘정치는 그 자체로, 즉 고유한 주체 때문에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계의 상징체계 속에 ‘없음’으로 규정된 ‘자리-없음’(placelessness)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실재의 공간이라고 말했던 라캉의 언명과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란 처음부터 통치 과정(치안)의 바깥,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만이 가능한 행위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깥의 존재양식이야말로 시와 정치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버린 권위’라고 생각했던 과거 문학의 정치성을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방금 이야기한 ‘정치’와는 사뭇 다른 층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치적인 시’라고 불러온 것들은, ‘정치’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에 더욱 가깝게 다가서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실체가 있는 폭력들에 맞서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도래할 혁명을 향해 나아갈 것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형철도 이미 지적했듯이, 과거 우리 시들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맥락에 기댄 결과였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시가 추구해야 할 정치성이란 랑시에르의 진단과 같이 본래적인 의미의 ‘정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단순히 이전과 다른 ‘정치’의 정의에만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경계할 것을 주장했던 전위적 언어에 대한 맹신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평가들은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벌충하려 하였으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텅 빈 해체’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시 비평의 영역에서 그동안 관성적으로 제기되어온 ‘소통’에 대한 요구가 지닌 본질적 문제점은, 개인과 사물 세계를 ‘자명한 것’들로 번역하려는 ‘투명성’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시적 공간에서 보존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물의 불투명성이며, 빛의 언저리에 드리워진 기이한 그림자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아닐까? (…) 그러므로 낯선 현전의 형식들에 직면해 여전히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비평이 우선 대결해야 하는 것은, 텍스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사소통 공동체의 지평에 나타난 저 낯선 얼룩을 깨끗이 지우고자 하는 순백을 향한 비평 자신의 욕망이 아닐까? (함돈균, ‘균열, 불면, 기화, 그리고 여백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는가’, ‘얼굴 없는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9, 133쪽) 함돈균이 내놓은 ‘불투명성’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오류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명한 것’과 ‘투명성’을 추구하는 질서란 개인과 사물을 명확하게 재단함으로써 그것들을 교정하고 규정지으려 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랑시에르가 ‘세계의 감성분할행위’라고 불렀던 것과 동일한 행위를 뜻하지요. 언뜻 생각하기에 이들에 대한 저항이란 혁명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규정들을 무화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려한 수사와 문장들을 걷어내고 함돈균의 주장을 다시 읽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그가 비평이 나아가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비평 자신의 욕망’과의 대결이란, ‘낯선 얼룩’을 보존하고 ‘불투명성’을 획득하는 작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돈균이 이것을 결국 우리들이 직면한 ‘낯선 현전의 형식’에 대한 옹호를 위해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논리는 세계에 대한 전위의 저항을 제시한 이후에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 ‘낯선 형식’들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롭게 출현한 시들을 ‘낯선 현전’과 ‘낯선 형식’으로 명명한 뒤, 이들에게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의 반동성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함돈균만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전반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의 논리적 모순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 문학담론 전체의 병폐를 폭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한마디로 해체나 전위를 통한 저항의 대부분은, 다분히 사후적인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정치성이었던 셈입니다. 백낙청은 자신의 글에서, 시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들이 가지는 이러한 환원론적 오류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통상적인 의미의 윤리 내지 도덕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문학의 진정한 윤리임을 강조하는 데 머물 경우 그것은 구체적인 정치현실과 무관한 또하나의 정언명령을 발하는 것밖에 안 된다.’(백낙청,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 20쪽)고 강조합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논의들이 가지는 정치성이 단지 제스처에 불과한 껍데기라는 것과 함께, 이제는 그러한 논의방식들이 하나의 새로운 정형이 되어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낙청은 그 너머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한 채,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 즉 도(道)와 ‘도의 힘’으로서의 덕(德)에 대한 사유가 실종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며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의 글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도(道)는 노자의 ‘道’ 개념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규정적 명명을 거절하는 상태로서의 이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덕(德)을 일종의 공동체적 당위성, ‘세계-내-존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점으로 바라본다고 할 때, 우리는 백낙청의 이 진술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의 한계를 재차 강조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을 이야기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허무주의가 앞뒤 없이 계속된 막무가내식 해체의 결과임을 꼬집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백낙청의 지적은 매우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지적을 어디까지나 ‘모더니즘 논의’의 문제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낙청은 (모순을 드러낸)이들과 달리 ‘다른 흐름’들이 있음을 주장하며, 그것의 구체적 성과로 자신이 전개해 온 리얼리즘 논의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리얼리즘 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랑시에르의 감성론보다 훨씬 우리의 현실에 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피하기 위해 자세한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역시, 마구 가거나 너무 가서는 잘 갈 수가 없다’는 경구적 발언을 인용하는 백낙청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자신이 발전시켜온 리얼리즘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그의 함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문학이 직면한 문제가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전에 없던 시적 변화들은 문학이 직면한 고민을 그대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더니즘 논의’로 한정짓는 태도는 여전히 ‘시’와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강동호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 정치성의 논의를 상당 부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재현행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를 오롯이 인정하고, 그 실패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우회로를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 시의 잠재적 정치성을 긍정적 어법인 잠재성의 정치로 바꾸는 일은 오롯이 독자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아울러 저 시적 언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찾아주는 것, 즉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사하고 그것을 현실의 언어로 변환시키는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을 감행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비평가의 몫이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의 미학과 사회적 현실 간의 상관도를 상세히 규명하는 사회학적 분석에 해당하며, 이를 근거로 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던지는 복화술사의 정치에 속할 것이다. (강동호,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 ‘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312쪽) 시의 언어는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처한 시공간을 써냄으로써 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그의 주장이 기존의 ‘텅 빈 해체’와 결별할 수 있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과감하게 다가서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강동호가 ‘비평의 의무’라고 여기고 있는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색하는 행위란, 어디까지나 시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예외성 너머에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가 세계에 대한 어떠한 물리적 강제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양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선전이 되는 순간, 그것이 이미 시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시인에게 ‘예술가의 의무’라는 이름하에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일이란 기만에 다름 아닌 셈입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시는 정치적일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가 가진 예외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강동호가 지적했듯 오로지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초석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의 예외적 속성에 대한 고의적인 망각이란, 시가 ‘정치적인 것’에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현실정치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를 가지고 통치행위에 연관된 영향력을 고민하려다 보니, 우리 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불가능성을 은폐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형철이 말한 ‘역사적 맥락’이 소멸한 지금, 더 이상 망각의 방법은 통용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학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신을 첨예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조건’들을 낳았던 본래의 ‘정치’로 회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상상적 대리자’에서 ‘상상의 대리자’로 앞서 저는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문학의 의무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구분을 모두 넘어서는 것으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모더니즘-리얼리즘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자는 맥락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리된 담론으로 여겨져왔던 각각의 한계들을 한번에 조망하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극복할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라타니는 자유로워진 ‘정치’의 시작이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기실 오늘날 우리 문학이 직면한 위기는 달리 보면 ‘정치’의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격렬한 투쟁의 시대가 이미 지나갔음에도, 우리에게 ‘80년대적 실천’은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여전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두 가지 과제를 오늘의 정치에 요구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이미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승리의 착각을 극복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투쟁의 과정을 경험하며 우리에게 각인된 ‘실천’의 기표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과제는, 흥미롭게도 문학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유입 이후, 이제까지 문학은 더 이상 대문자로 적어야 할 정치행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를 내달려왔습니다. 지금에야 그 유행이 거의 수그러들었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구호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러나 80년대의 투쟁이 맞서왔던 억압의 구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깊은 이면에 내재된 채 현존하며, 오히려 더욱 교묘한 전술로 우리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허용된 자유의 형태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자유는 문학이 겨냥할 만한 명확한 적대를 제공하지 않았지요. 이후 문학은 진퇴양난의 고민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해체주의의 대안적 담론을 추수하자니, 그것은 이미 ‘거대담론의 붕괴’라는 잘못된 필요조건을 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고, 과거의 실천적 구호를 답습하자니 오히려 그 적대행위 자체가 초자아적 정언명법이 되어 주체를 구속할 뿐이었습니다. 확고한 결단이 불가능했던 문학은 결국 두 가지 사이에서 모호하게 표류하였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기형적인 ‘미래파’의 규정과, 그들의 부족한 정치성을 벌충할 ‘시와 정치’의 논의였던 셈입니다. 흑백논리의 모순을 회색이 되어 피해보고자 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문학의 생명력을 더욱 옥죄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며, 가라타니의 진단대로 문학은 독자들에게 더 이상 스스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미적 모더니티의 운명’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것이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방향성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문학이 철저하게 현실정치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역할을 재인식할 것을 주장합니다. 과거의 문학이 불가능했던 정치의 ‘상상적 대리자’ 역할을 통해 권위를 획득했다면, 이제부터 문학은 그것을 넘어서서 현실정치의 불가능한 감성을 떠맡는 ‘상상의 대리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벤야민은 이미 1929년에 이러한 개념의 기초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그 ‘공산주의자 선언’이 오늘날에 내리는 지령을 파악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들의 얼굴 표정을, 매분 60초 동안 째깍거리는 자명종의 숫자판과 맞바꾸며 짓고 있다. (발터 벤야민, ‘초현실주의’, ‘발터 벤야민 선집 5’, 길, 2008, 167쪽) 오늘날의 문학은 현실정치가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역할을 짊어짐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성을 획득해내야 합니다. 우선 첫째는 ‘정치적인 것’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정치를 대신하여 ‘정치’만의 고유한 미래적 지향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수많은 조건들의 제약을 받는 ‘실천’을 대신하여, 문학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통해 ‘정치’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아나키스트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억압의 구조가 주관적 폭력에서 객관적 합리성으로 이행된 이상, 현실정치의 조직적인 치밀함만으로는 저 합리성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이들에게 객관을 넘어설 상상력을 부여함으로써, 저 ‘정치’에 부재하는 ‘미래에의 의지’를 대신하는 역할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벤야민에게 ‘초현실주의자’로 상징된 예술가의 의무가 다음 시대로부터의 지령을 파악하는 것이었듯이, 시인이 세계를 조망하는 소실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란 처음부터 저 상상력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문학에 부여된 두 번째 역할은, 우리 주변의 ‘얼굴 표정’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라보는 일입니다.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한 번도 진보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친부살해를 통해 권력구조를 뒤집은 형제는 결국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버지의 권좌에 앉음으로써 권력을 더욱 강하게 재생산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혁명’을 자처했던 지난 역사의 모든 변화들은, 대개 그 결과가 새로운 지배구조를 낳는 반복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학이야말로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 됩니다. 이제까지의 혁명이 다시 권력이 된 까닭은, 그 전개과정 안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을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정치의 과정이 미처 목격하지 못하는 그늘에까지도 자신의 시선을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이야말로 모두를 끌어안을 영구한 혁명, 벤야민이 희구했던 단 한 번의 진보를 완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식을 붙인다 하더라도, 문학이 감행하는 정치란 처음부터 예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라캉적 ‘없음’이 된 자리들, 상징체계에서 추방된 이들과 초대받지 않은 미래를 세계 속에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감성분할을 재분할하는, 상징계를 넘어설 ‘미학적 예술 체제’의 실재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가 이제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 4m 거대 비단뱀, 2살 아이 칭칭감은 ‘아찔 사고’

    2살 짜리 사내 아이가 집 마당서 놀고 있다가 비단뱀의 먹이가 될 뻔한 아찔한 사건이 알려졌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호주 포트 더글라스에 사는 카이 달튼(2)은 집 뒷마당에서 놀고 있다가 4m가 족히 넘는 비단뱀을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뱀은 달튼을 노리고 달려들었고 아이의 몸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아이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엄마 레이첼 설리반(20)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다. 곧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 설리반은 공을 던지며 뱀을 떼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하자 옆집으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옆집 남자들이 달려왔고 몇명의 남자들이 달라 붙은 끝에 뱀을 아이에게서 떼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 사고로 달튼은 다리를 포함 4군데를 뱀에게 물렸으며 급히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받아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엄마 설리반은 “아이는 충격에 빠져 전혀 울지도 않고 소리만 질렀다.” 며 “큰 부상없이 살아남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밝혔다. 현지 수의사는 “이 뱀은 거대한 비단뱀의 일종이나 다행히 독은 없었다.” 며 “아이를 먹이로 생각하고 달려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공부하지마!” 아내의 다섯 손가락을 자른 남편

    “공부하지마!” 아내의 다섯 손가락을 자른 남편

    대학 공부를 하겠다는 아내에게 불만을 가진 방글라데시의 한 남편이 아내의 오른쪽 다섯 손가락 모두를 절단하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방글라데시 매체 더 데일리 스타 보도에 의하면 2008년에 결혼한 라피쿨 이슬람(30)은 최근 아내 하와 아크타르(21)가 자신의 허락 없이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심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연합에서 파견 노동자일을 하는 이슬람은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두바이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해 “누이의 집으로 선물을 보냈으니 거기서 만나자.”고 말했다. 4일 오전 8시경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있는 누이 집에서 아내를 만난 이슬람은 아내에게 “깜짝 선물이 있다.”며 아내의 눈을 스카프로 가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아내의 입을 테이프로 붙이고, 손을 묶고는 오른쪽 손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이어 “너의 공부를 끝내 주겠어.” 라고 말을 한 후 오른쪽 다섯 손가락을 모두 잘라냈다. 비명을 듣고 방으로 들어온 그의 누이와 그녀의 남편은 사전에 공모를 한 듯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도 없이 그저 바닥의 피를 닦기만 했다. 이슬람은 잘려진 손가락을 다시 붙일 수 없도록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크타르의 고통 호소에 결국 사건 발생 3시간 만인 11시경 병원으로 데려가던 그들은 심지어 “이 일을 발설하면 차에서 던져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진단 후 절단된 손가락을 찾아오라는 의사의 종용에 쓰레기통에서 4개의 손가락만을 찾아왔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 접합수술이 불가능 했다. 남편을 체포한 방글라데시 경찰은 “8년의 기본 과정만을 마친 남편이 아내가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질투를 느껴 자행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남편의 재판정 앞에는 연일 수백 명의 인권운동가들이 모여 그의 종신형을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부모 집에 머물고 있는 아크타르는 “비록 오른쪽 손가락이 없지만 왼손으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공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의 고학력에 불만을 가진 남편들의 엽기적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다카 대학교에 조교수로 일하는 아내의 한 눈을 파낸 실업자 남편이 검거돼 충격을 던졌다. 사진=The Daily Star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19일 TV 하이라이트]

    ●TV 50년 쇼는 즐거워(KBS1 밤 10시) 은퇴 후 40년 만에 컴백무대를 선보이는 ‘펄시스터즈’. 1960년대 당시 ‘커피한잔’, ‘님아’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또 1970년대에 미국 진출을 해 많은 화제를 일으켰고, 브로드웨이 쇼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큰 이슈를 불러왔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요계를 풍미한 가수들이 출연해 TV 50년 역사의 추억 속으로 함께 빠져본다. ●브레인(KBS2 밤 9시 55분) 마음 속 깊은 원한도 억누른 채 순임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강훈. 새로 꾸려진 상철의 연구팀에 자신의 논문이 도움이 될 거라고 설득하지만 상철은 강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편 고재학은 준석과 함께 강훈의 논문으로 학회 발표를 준비한다. 은숙은 첫사랑 공덕기의 입원으로 들뜨지만 공덕기는 의식을 잃고 재수술을 하게 된다. ●빛과 그림자(MBC 밤 9시 55분) 기태 아버지의 비명 후 1년이 흐르고, 서울로 올라온 기태 가족은 생활이 궁핍해진다. 정혜는 월남에 가서 공연하고 돌아온다. 하지만 양태성의 사기로 돈 한 푼 받지 못한다. 한편 기태는 동철과 오랜만에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우연히 채영을 만난다. 정혜는 순애의 말만 믿고 안가에 노래를 부르러 따라 나선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SBS 밤 11시 15분) 한류스타 최지우가 10년 만에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특유의 매력으로 MC들을 사로잡는다. 여신의 이미지와는 달리 소탈하고 털털한 모습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그녀. 그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제해 왔던 이유를 털어놓는다. 춤과 노래 솜씨, 그리고 최지우의 모든 것이 방송된다. ●동물일기(EBS 밤 8시) 서울 중구 신당동에 괴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바로 공원 한복판에 뛰어 노는 캥거루가 있다는 것인데….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찾아가 보니 정말 신나게 뛰노는 모습이 캥거루와 흡사하다. ‘구찌’라 불리는 도심 속 캥거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14살 주완이와 12살 은주가 ‘동물일기’에서 ‘구찌’의 정체를 밝혀낸다. ●명불허전(OBS 밤 10시) 2010년 1월 첫 방송 이후 100회를 맞은 차인태의 ‘명불허전’. 정치·경제·문화·예술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명사들이 출연해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더불어 인생철학을 들려줬다. 100번째 손님으로는 최근 한국인 소설가 최초로 미국의 시사지 뉴요커에 ‘익명의 섬’이 게재되며 다시 한 번 이목을 끈 이문열 작가와 함께한다.
  • 일 잘하는 강북구, 16개 사업 수상

    올해 상복이 터진 강북구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15일 구에 따르면 서울시와 정부 등 각종 대외기관 평가에서 16개 사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전국 기초단체장 공약실천계획서 평가, 대한민국 경관 대상 등 전국단위 평가에서만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인센티브도 5억 5300만원에 이른다. 우선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전국 기초단체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약실천계획서 평가에서 공약의 지향과 가치를 묻는 ‘종합구성’과 지자체장의 약속 실천 정보를 상시적으로 공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묻는 ‘웹 소통’ 부문에서 최고 등급인 ‘SA’를 받았다. 214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SA등급을 받은 곳은 서울시 자치구 3곳을 포함해 26곳뿐이다. 국토해양부 주최 제1회 대한민국 경관 대상에서는 ‘북한산 자락 우이동 주민이 주도한 우리동네 경관 만들기’로 시가지 경관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자체 주도의 획일적인 사업진행 방식에서 벗어나 경관 협정을 통해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해 경관을 정비·관리함으로써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킨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강북구 지역사회복지협의체가 지역사회복지협의체 정부 평가에서 대도시 분야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으며, 행정안전부의 도로명 주소사업 평가에서도 기초자치단체 최우수로 뽑혔다. 결식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북 희망우유 배달 서비스’는 아동급식사업 우수사례로 뽑혀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따냈다. 서울시 인센티브 평가에서도 일자리창출기반구축사업 우수구를 비롯, 대기질 개선 우수구, 보건소 사업 우수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박겸수 구청장은 “구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행정을 펼친 결과”라며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개인 파산’ 몰린 트럭운전사 ‘130억원’ 로또 대박

    ‘개인 파산’ 몰린 트럭운전사 ‘130억원’ 로또 대박

    신용카드 빚으로 개인 파산에 몰린 한 트럭 운전기사가 로또 당첨으로 인생역전을 이뤘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사는 크레이그 고세트(44)는 지난 주말 집 인근 주유소 편의점에서 평소처럼 로또를 샀다. 그리고 이 로또 티켓이 무려 1125만달러(약 130억원)에 당첨됐다. 현재 이동주택에 살고 있는 고세트 부부는 그간 빚으로 인해 곤궁한 삶을 살아왔다. 고세트는 “우리 부부는 지난 3년간 신용카드 빚 때문에 가난에 몸부림을 치다 개인 파산 신청을 준비중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세금을 제외하고 829만 달러(약 96억원)를 수령한 고세트 부부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처음 당첨 사실을 알았을 때 비명을 질렀다.” 며 “마치 게임 속 공간에 있는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고세트 부부는 일시불로 거액을 모두 수령한 후 여행을 가는 꿈에 부풀어 있다. 부부는 “먼저 빚을 모두 털어내고 집을 한 채 산 후 미네소타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 이라며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큰 돈을 받게 돼 정말 축복받은 느낌”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크리스마스가 일요일?…가평 펜션 예약완료 임박

    크리스마스가 일요일?…가평 펜션 예약완료 임박

    크리스마스가 하필 일요일과 겹치는 바람에 12월은 주말 외에는 빨간 날이 없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 특수는 있기 마련이다. 연인들의 이벤트상품이 줄을 잇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빽빽하게 예약이 밀려 있는 펜션들도 크리스마스 특수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특히 인기 있는 지역은 가평, 강촌, 춘천 지역 등지의 서울 근교 펜션들. 짧은 휴일 탓에 주말을 이용한 1박 2일 여행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월요일에 다시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 커플에게 원거리 여행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여러 펜션 중에서 커플들이 펜션을 선택하는 기준은 ‘인테리어’와 ‘시설’이다. 추운 겨울철이기 때문에 야외활동보다는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이에 각 펜션들은 경쟁적으로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통해 저마다의 콘셉트를 잡고 아기자기하고 로맨틱한 커플 펜션의 면모를 갖춰나간다. 원룸식 펜션보다는 사다리식 복층 객실이 인기가 더 높다. 아기자기한 매력을 극대화 시켰기 때문이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돈을 더 쓰더라도 독채 사용이 가능한 펜션을 잡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부대시설로는 객실 내 월풀이나 스파가 비치된 펜션이 더 잘 나간다. 여행에서 찝찝하게 씻는 것보다 월풀 스파로 여행의 피로를 씻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장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겨울철이기 때문에 뜨끈한 스파가 더욱 주목받는 것도 선택이유의 한 몫을 차지한다. 조병일 메종드파티오 대표는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서 오지 않는다면 가평역과 터미널에서 차량 픽업이 가능하다. 또한 바쁜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인 바비큐패키지를 신청하면 식사준비의 번거로움 없이 장을 보지 않고도 바비큐파티를 편하게 즐길 수 있다.”라고 전했다. 가평 커플펜션 메종드파티오는 ‘미워도 다시 한 번’, ‘M-net Asia Japan 가평여행 편’의 촬영지로 독특한 건물 외관이 눈에 띈다. 흐르는 계곡과 남이섬, 자라섬 씽씽축제, 쁘띠프랑스와의 접근성이 좋아 데이트코스가 다양하며 최신곡 업데이트가 완료된 노래방 시설, 실내 외 바비큐장 등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서울에서 경춘선, 가평터미널로 평균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여행의 피로를 줄여주며 스파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돌아갈 수 있어 바쁜 커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크리스마스 와인 증정, 할인이벤트도 진행 중이기에 보다 경제적인 예산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딸려 올라가 끔찍한 죽음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딸려 올라가 끔찍한 죽음

    미국의 한 여성이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딸려 올라가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14일 오전(현지시간) 맨하탄 메디슨 에비뉴의 한 빌딩에서 사무실에 올라가려 엘리베이터에 탄 수잔나 하트(41)의 발이 로비 바닥과 엘리베이터 사이에 끼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문도 제대로 닫지 않은 채 위로 올라갔고 하트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 상황은 함께 승차한 2명의 사람들이 목격했으며 이들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사고 발생 직후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 측은 수시간에 걸쳐 하트의 시신을 옮겼으며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참사를 당한 하트는 이 빌딩에 있는 유명 광고회사에 다니는 여성으로 알려졌다. 빌딩 관계자는 “이 엘리베이터는 지난 6월에 검사를 받았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언론에서는 빌딩 업주가 수차례 시 당국의 엘리베이터 안전 조치 권고를 무시해 왔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사설] 중국의 무책임과 오만은 反中을 부른다

    중국이 우리의 해양주권을 유린하는 사태로 내년이면 수교 20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가 중차대한 기로에 섰다. 엊그제 인천해경 이청호 경장이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단속하다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사건 하루 뒤에야 마지못해 미적지근한 유감을 표명해 우리의 해양주권이 백척간두에 선 꼴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년 방중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방침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말로만이 아니라 관계 재정립 차원에서 엄중 대응하길 바란다. 중국 어선의 불법 어로는 갈수록 흉포화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목포해경의 박경조 경위가 숨지고, 이번에 이 경장이 순직했다. 그런데도 중국 외교부는 이 경장이 희생된 직후 즉각적인 사과 표명은 미룬 채 자국 어민의 합법적 권리와 인도주의적 대우만 요구했다.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비례(非禮)다. 역지사지해 보라. 누군가의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일 중국 공안원이 공무집행 중 비명에 갔다면 그런 반응을 보였겠는가. 지난 10월 우리측이 불법조업 어선 3척을 나포하자 “문명적 법집행을 하라.”고 했던, 어처구니없는 태도 그대로다. 국민의 정부·참여정부를 거쳐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의 느슨한 대응이 화를 부른 측면도 있다. 대중 저자세 외교가 문제라는 얘기다. 까닭에 이제부터라도 중국 어선의 폭력 저항에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총기 사용을 담보한 단속 매뉴얼을 현장에서 즉각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 이전에 중국은 자국 어민들이 이웃 나라 바다에서 해적이나 다름없는 어로를 하고 있는 현실을 엄중히 인식해야 한다. 특히 한국 내에서 해군을 동원해서라도 중국 어선의 해적질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될 정도로, 반중(反中)정서가 고개를 들고 있음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될 것이다. 우리 해역이 해적들로 들끓는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처럼 변해 버린 근본적 배경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중국의 엄청난 어업 인구가 연·근해의 남획으로 물고기 씨가 마르자 목숨을 걸고 우리 바다를 넘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운위하면서 불법조업을 사실상 방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양식업 등 우리의 연안어업 기술과 경험을 전수하는 방안은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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