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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안보(21세기 한­일 새 지평:2)

    ◎양국의 발전적 미래를 위하여/세계화 시대… 일본과 적극 손잡을때/지난일 얽매여 무조건 기피 곤란/국제문제 협력,공동이익 추구를/윤정석 ▲중앙대 교수(59세) ▲서울법대졸 ▲법학박사 한일간에 참다운 미래가 있으려면 두나라 국민 사이에 신뢰와 협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일본의 제국주의 압박이 이 땅을 떠난지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그 쓰라림과 괴로운 경험을 잊지 못하고 미움과 불신으로 저들,일본사람들을 대할 때가 많다. ○신뢰·협력 있어야 요즈음에도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일본을 놓고 두가지의 강력한 입장에서 자기의 위치를 유지하고 그리고 자기의 존재를 넓혀가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한편에서는 일본을 욕하고 일본사람에 대하여 분노하고 그리고 이 철천지 원수와 협력하는 것을 철없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 어떤 자리에서라도 앞장서서 일본을 자극하는 이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없이는 한국의 앞날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일본이 가지고 있는 기술자본 그리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일본과 협력하여야 된다고하며 기회있을 때마다 이같은 주장을 하고 앞장서서 일본을 수용하는 이가 있다.이러한 두가지 사람들은 지식인이나 언론인 속에 더욱 많은 것 같이 보여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진다.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놓고 두갈래 세갈래 갈라져 서로 삿대질을 하는 모습이 아직도 흔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이런 일은 일본에 관한 연구 토론회에 참석해 보면 더욱 심하게 드러나 보인다. 왜 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한일관계를 볼수 없을까.내가 창씨를 했고,일본말을 쓰지 않아 벌을 받았고,친척누이가 정신대에 끌려갔고,형은 학병에 나가 전사했고… 등과 같은 일들과 지금의 나 자신과의 관계를 냉철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지금 내가 할 일은 과거에 매달린 감정표현이 아니라 미래를 보며 나의 정열을 쏟는 극일·배일·반일의 엄연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연한 이웃나라 지난 1백50년동안은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정신과 문명을 가지고 우리는 살았으나,그보다 훨씬 전 수백년동안은 우리가 일본에 정신·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을 일깨워주고가르쳤지 않은가.앞으로 우리는 예전과 같은 가르칠 영광을 되찾아야 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과 경쟁할 수밖에 없고,함께 어울려 서로 도와가며 살 수밖에 없다.한차례의 씨름판에서 힘을 겨루듯이 앞으로의 1백년을 내다보는 한일양국의 건전한 경쟁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신뢰하며 함께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 엄연하게 가장 근접해 있는 일본을 없는 것같이 태연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예를 들면 지난날 우리의 모든 국제항공노선이 도쿄의 국제공항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도쿄를 통해서 세계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이제 김포공항을 통해서 우리는 아시아 대륙과 직접 연결될 수 있고 유럽과 미국대륙에도 직접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그래서 우리는 이제 도쿄,말하자면 일본을 거치지 않고 세계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결국 일본은 없다는 것이 된다.그러나 여기까지 올 때 우리는 일본에 많은 신세를 졌고 일본으로부터 배웠으며 이제는 일본과 경쟁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안간힘을 다해서 미국·유럽과 과학기술을 놓고 경쟁하고있다.통신 정보는 물론 전자·신소재산업 등에 있어서나 생명과학 등의 첨단분야에 있어서 일본은 끊임없이 경쟁을 통해서 새로운 문명을 찾아가고 있다.여기에 우리는 또다시 일본의 신세를 지고 그들을 통해서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으로 보는가. ○서로 알아야 도움 일본의 국내정객이 일본정치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한국을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어려움이 많다.한국을 등지고 한국에 대하여 별 관련이 없이 지내온 일본정객은 국내정치에 어려움을 겪는 법이다.적어도 한반도의 정세에 능한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이것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얽혀진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일본의 국무총리는 한반도와 무관하게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고 있다. ○함께 이뤄 나가야 국제정치외교분야에서 일본과 협력하는 것을 마치 친일파들이 하는 짓으로 보는 이도 많다.지금의 세계사정에서 볼 때 국제정치 외교분야는 어떤 한나라가 주도적으로 국가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적어도 함께 이루어 놓고 그 결과를 나누어서 향유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고 특히 탈냉전이후의 국제관계라고 할 수 있다.동북아시아에 있어서 한국 단독으로 평화와 번영을 이룩할 수는 없다.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본다.이런 분야에 있어서 우리는 일본을 믿고 협력할 수밖에 없다.이제는 우리에게 일본은 그렇게 해도 될 만한 나라가 되었다고 본다.다만 우리의 안보문제에 있어서 군사력이 필요한 경우에 일본은 분명히 제외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된다.일본은 아직도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여 국제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일의 바람직한 대북한 정책/“「대북한 개방유도」 공동사업 인식 필요”/점진 변화 이끌어 돌발사태 예방/식량 지원문제 등 긴밀 협조해야/오코노기 ▲일 게이오대교수(50세) ▲게이오대 정치학과졸 ▲법학박사 올해가 전후 50년인데도 한일 양국이 여전히 「역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일본국회의 「50년 결의」및 몇몇 정치인의 무신경한 발언에서 보듯이 최근 감정마찰의 「잘못」은 분명히 일본측에 있다.이것이 김영삼·호소카와회담에서 나타난 우호적 분위기를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그 책임은 중대하다. ○우호분위기 파괴 북방외교를 추진했던 노태우 정권과는 달리 김영삼 정권은 미·일 양국과의 우호관계를 중시하는 정권이다.한편 과거의 전쟁책임을 명확히 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는 무라야마 정권도 호소카와,하타 정권 못지않게 적극적이다.자민당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총재,신당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대표도 여기에 이의가 없었다.사실 연립정권 발족 당시 여당 3당은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고 미래의 평화에의 결의를 표명하는 국회결의」를 채택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비둘기파 노선」이 보수파 의원을 자극했던 것 같다.그들은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을 결성해서 국회결의의 채택에 반대했다.그러나 한국내에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그룹은 확실히 소수다.최후까지 국회결의에 반대한 의원은 50명,즉 전체 중의원 5백2명의 10%에 지나지 않는다.그들은 오히려 「자기방어」를 위해 일어섰던 것이다. 따라서 「50년 결의」의 내용이나 몇몇 정치인의 발언을 과대평가해 과민반응을 보일 것은 없다.사실 그들은 일본국민의 다수파의 지지를 얻을 리가 없다.유감이지만 시간의 경과 이외에 이러한 상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처방전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세대가 교체됨에 따라 그들은 점점 고립화돼 나갈 것이다. ○정책적 협조 유지 그런데 이러한 감정마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한일양국 정부는 대외정책,특히 북한과 관련된 정책 분야에서 정책적인 협조를 유지하는데 성공하고 있다.냉전 종결에 따라 「공통의 적」의 소멸이 한일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예상과는 달리 북한의 핵문제라고 하는 「공통의 위협」이 양국에 긴밀한 협력을 요구한 것이다.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발족및 쌀원조에서의 한일협조가 이를 상징한다. 그러나 대국적으로 보면 냉전종결및 제네바 합의가 북미,북일관계 개선을 자명한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북한의 「친미」정책에 반대하면할수록 일본과 한국의 대북한정책은 경직화하지 않을 수 없다.만일 (북한의 친미정책을) 전면적으로 반대하면 우리는 크로스 승인이라고 하는 본래의 목표조차 상실하게 될 것이다. ○북 경제체제 위기 바꿔 말하면 한일양국에 요구되고 있는 것은 북한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국제체제에 끌어안는 것이다.따라서 우리의 최대 과제는 한일협력을 토대로 어떠한 국제체제를 여하히 형성하는가이다.북한이 북미 평화협정의 체결을 고집해 「새로운 평화보장체제」의 수립을 요구한다면 우리도 새로운 다국간평화구상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콸라룸푸르와 쌀원조 교섭의 과정에서 북한이 그 내부적인 약점,즉 심각한 에너지·식량·외화부족을 드러낸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거듭되는 「동결 해제」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지도부는 미국과의 교섭을 단념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으며 국내의 식량사정도 교섭의 장기화를 허용하지 않았다.즉 우리는 겨우 북한의 「배수진」 정책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중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쌀원조 문제로 상징되는 북한의 경제위기가 그것이다.궁지에 빠진 경제를 재건하기 이전에 북한은 긴급하게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나 그 전망은 밝지 않다.후계 문제에 관한 이러저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서기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정치체제의 위기보다도 오히려 경제체제의 위기인 것이다. 경수로및 쌀원조를 둘러싼 북한의 태도에는 비판받아 마땅한 점이 적지 않다.하지만 폭력적 사태를 피하면서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촉진해 한반도 통일에 따라는 유형무형의 코스트를 분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지 않으면 안된다.한일 양국은 이것이 공동사업이라고 인식해 북한의 개방·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한쪽선 “쌀배 억류” 한쪽선 “실무접촉”/북 2중자세 「속내」뭘까

    ◎정무원­군부 정책갈등 표면화 추측/북 식량난 심해 배 “송환요구” 응할듯 『김일성 생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 쌀수송선의 북한 억류사태의 발생과 그 진행경과를 주시하고 있는 한 정부당국자가 11일 내린 잠정결론이었다.이번 대북 쌀수송선의 북한 억류과정에서 북한내 강온파간 갈등이 감지된다는 게 이 당국자의 관찰이었다. 북측은 지난 8일 북경 쌀회담 전금철단장 명의의 전문에서 우리측 이양천 1등항해사의 청진항에서의 사진촬영과 관련,『정탐행위를 자백했다』며 쌀회담중단을 일방선언했다. 그러나 북측은 지난 10일밤부터 송환접촉을 위한 실무접촉에 호응해오는 등 희망적인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북측은 지난 2일 선박의 억류 직후부터 삼천리총회사와 대한무역진흥공사 채널을 통해서는 조만간 긍정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는 소식이다.우리측이 10일 송환협상 실무대표로 통일원 김형기 정보분석실장을 북경에 보낸 것도 이같은 메시지에 희망을 걸었고 실제로 이날밤 실무접촉이 일단 성사된 것이다. 북측의 이같은 이중적 자세는 북한내 강온파의 실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남조선쌀」을 적극적으로 받으려는 정무원계열과 체면손상과 체제동요를 막기 위해 이를 차단하려는 군부 및 공안계통이 따로 놀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상황을 김정일의 권력기반에 이상이 있다고 확대해석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다만 분명한 것은 김일성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때의 일사분란함과는 한참 동떨어진 양상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번 북경 실무협상에서 북한측이 결국엔 우리측의 조건 없는 송환요구에 응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북한의 식량난이 북한당국자들이 배짱을 튀길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엄연한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또 북측 스스로 신변안전 보장각서를 써준 선원들을 사진촬영이라는 사소한 문제로 무작정 억류할 명분도 없는 형편이다. 반면 이번 사태가 예상 밖으로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우려도 없지 않다.매파와 비둘기파간의노선투쟁에서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전자의 목소리가 더 큰 게 상례인 까닭이다.더욱이 사진촬영에 시비를 걸어온 북한 강경파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경직돼 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측은 이같은 복합적인 상황을 감안해 강온 양면대응책을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쌀관련 합의의 전면 백지화를 배수진으로 12일까지 송환 실무접촉을 벌인다는 방침이 그것이다.
  • 서울 각 구청/“애향심 높이고 지역특성 부각”

    ◎새 상징물·로고 제작 「붐」/구로­아홉 노인/은평­비둘기/양천­태양·물 등 형상화/공모통해 주민 행정참여·단합 유도 민선단체장의 취임으로 본격적인 주민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지역주민의 애향심을 높이고 자치단체의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상징물과 휘장·로고 등을 앞다투어 새로 제작하고 있다.이러한 움직임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취지에서 지방자치의 개막에 걸맞는 참신한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자치단체들은 특히 새로 정할 상징물에 대해 주민을 대상으로 직접 공모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자치단체 행정에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편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는 최근 「도시이미지프로그램」의 하나로 구를 상징하는 로고와 휘장을 구민 공모방식으로 새로 만들었다.휘장은 쾌적한 환경을 상징하는 초록색 바탕에 주민의 단결과 화합을 뜻하는 둥근 타원과 흰색 느티나무를 그려넣었다.여기에 구로구의 탄생에 얽힌 전설속의 노인 9명을 9개의 푸른 점으로 형상화했다. 양천구도 지난달 15일 구의 이름을 나타내는 태양(양)과 물(천)을 동그라미와 물결무늬 등으로 형상화한 휘장과 구기를 새로 제작했다.타오르는 희망을 상징하는 주황색 동그라미를 미래지향적인 구의 발전상을 나타내는 3개의 선이 둘러싸고 있고 그 아래쪽으로 깨끗함과 생동감을 상징하는 청색 물결무늬를 새겨넣었다. 은평구는 구민한테 공모한 대추나무열매와 비둘기를 조화시킨 상징마크를 민선구청장 취임직후인 지난달 29일 구의회 심의를 통해 최종확정했다.서대문구도 최근 엑스포 디자인연구소에 맡겨 구민의 화합과 애향심을 상징하는 두개의 타원이 겹쳐 있고 구의 대표적 명물인 독립문을 그린 상징도안을 새로 만들었다. 성동구는 최근 1천8백만원의 예산을 들여 세종대 산업디자인연구소에 상징물제작을 의뢰,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산을 형상화한 작품을 최종채택했다.지난 3월 성동구에서 나뉜 광진구는 일간지 광고를 통해 공모한 42점의 구기 시안 가운데 당선작을 오는 25일 확정,발표한 뒤 오는 10월쯤 만들 예정이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대구시는 최근 시민 3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팔공산을 상징물로 선정하고 7백만원의 시상금을 걸어 주민을 대상으로 도안을 현상공모했다. 경북도민의 기상과 적응력을 상징하는 뜻에서 상징나무를 느티나무로 바꿨으며 강한 의지와 서민적 기품을 나타내는 백일홍을 도의 꽃으로 정했다.웅비하는 경북을 뜻하는 왜가리는 도의 새로 선정했다. 강원 강릉시와 원주시는 민선시장 취임직후 시청를 상징하는 휘장과 상징물 배지를 만들어 이곳을 방문하는 외부손님과 주민에게 지역홍보 치원에서 나눠주고 있다. 충북은 속리산 정이품소나무 사진액자 1천개를 만들어 주병덕 지사를 찾는 방문객에게 충북을 기억하라는 뜻에서 선물로 주고 있다. 충주시는 충주·중원의 통합과 민선자치단체의 출범을 기념하는 뜻에서 고도 충주를 기리는 기념탑이나 상징조형물을 내년까지 세우기로 하고 세부계획을 짜고 있다. 새로 신설된 인천의 연수구와 계양구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로고와 상징물,구민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 구청장의 관심 아래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서울 광진구청 박기호(42)문화계장은 『구민의 애향심을 높이고 우리 구의 독자성을 강조한다는 뜻에서 상징물과 구기·구가 등을 구민을 상대로 공개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 「피해」만 강조하는 일본(오늘의 눈)

    6일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50주년이 된 날.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원자폭탄이다.9일에는 나가사키가 원자폭탄 피폭 50년을 맞는다.따라서 히로시마 50년을 맞아 「유일 피폭국」 일본으로서는 감회가 깊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폭돔이 있는 평화공원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와 중·참의원장,최고재판소장 등 3부 수장을 비롯,60만명이 모여 기념식을 거행했다.이날의 메시지는 「Never Again Hiroshima」와 「핵무기 없는 세계를」이었다.학생대표들이 나와 평화에의 맹세를 제창하고 비둘기가 하늘을 날아오르면서 기념식은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히로시마 50주년과 관련,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일본 언론 특히 TV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은 피해국일 뿐이다.일본은 반핵의 대의명분을 온통 다 갖고 있는 듯이 미국을 향해 원자폭탄의 사용이 정당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원폭 사용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미국내 의견은 일본 언론에서 환영받는다.「히로시마」의 홍수 속에 일제가 점령한 지역에서의 피해자들이 겪었던 시련과 슬픔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건조하게 전해지고 있다.예를 들면 일본군 독가스 실험으로 몇만명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식이다. 일본은 오키나와까지 점령된 뒤에도 결사항전을 계속하고 있었다.45년7월26일 발표된 포츠담선언이 일본에 전해진 것은 28일.전쟁수뇌부는 이를 묵살했고 아사히신문 등은 「묵살」,「소살」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포로를 상대로 한 생체실험과 점령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독가스 실험은 일제의 잔학성을 말해주기에 충분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침략과 차별,전쟁,학살,집단 강간,강제연행,재산공출,민족말살 그리고 전후 피해자들을 외면·방치해온 그 모든 책임보다는 마지막 맞은 매가 아플 뿐이다.「히로시마」의 홍수 속에 스스로의 궤적을 더듬는 노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것이 이곳에서 만나는 많은 외국인들의 지적이다.히로시마를 되새기는 것과 함께 스스로 초래한 일들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일본 스스로를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 「교역 상담창구」 무협 구평회 회장에 듣는다(인터뷰)

    ◎남북 쌀회담 막전막후와 경협 전망/“김용순등 당실세가 배후 지휘”/평양시민 1백만 식량증산 동원/정무원쪽과 갈등… 전금철로 대표 교체/북,경협에 적극적 자세… 교역 확대 될것/임가공위주 소규모 대북투자 바람직/월드컵 공동개최엔 정치적 결단 필요 ­남북문제가 여러가지로 잘 풀려가는 듯합니다만. ▲남북간 쌀협상을 두고 북한 권력내의 매파와 비둘기파간의 치열한 암투가 있었습니다.결국 심각한 식량난 때문에 매파가 비둘기파의 의견을 수락했고,나중에는 매파가 협상을 주도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북한에서 누구를 매파로,누구를 비둘기파로 볼 수 있습니까. ▲북한의 당과 군이 매파죠.이에 비해 세계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실제 살아가는 문제를 다뤄야 하는 정무원쪽이 아무래도 비둘기파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우리가 알기로는 당초 쌀협상의 북한측 대표는 정무원 사람이었던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누군지 밝힐 수 없지만 그것이 회담 직전에 전금철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남북간 쌀협상타결이 남북경협확대로 이어지리라 보십니까. ▲서명주체의 이름은 정무원 산하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전금철 고문으로 결정됐지만 노동당과 군을 대표하는 권력핵심부에서 쌀회담을 적극 지원,타결을 이끌어냈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을 포함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꺼려하던 북한권력이 이번 쌀회담을 계기로 한국정부와의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일 막후외교 치열 ­일본이 이번 쌀회담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무역진흥공사가 이 일에 끼어든 것도 그렇고요. ▲김용순 노동당비서가 쌀회담타결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것이 사실입니다.남북한은 물론 일본·미국등도 막후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수교회담」에서 일본대표인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이 김용순비서에게 「남한과의 쌀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남북정부간 대화가 어려우면 준정부기관인 대한무역진흥공사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를 내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김용순이 이를 수용했습니다. 구회장은 이번의 쌀협상이 실질적인 남북간 정부차원에서 타결됐고 북한내 실세인 김용순이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만큼 앞으로의 남북경협을 『큰 길에 나선 상태』라고 전제,활발한 움직임을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은 쌀회담을 북·일수교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고 북한도 수교시 받을 수 있는 막대한 배상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남북 쌀제공타결이 자칫 북·일 양국간의 수교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할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큰길」 들어선것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느 정도인 것으로 알고 계십니까. ▲북한이 최근 평양시민 1백만명을 지방으로 보냈습니다.부분적으로 폭동 등을 예방,김정일정권의 공고화를 위한 사전포석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을 농촌으로 보내 식량증산에 투입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남한측으로부터 식량원조을 받은 사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질 경우 지도노선(주체사상)에 큰 흠집이 생기지만 이를 각오할 정도로 식량사정이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쌀제공집행기구가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아닌 민간기업에 돌아갈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북한측은 지난 달부터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접촉창구로 삼기 전에 북경에 나와 있는 우리 대기업들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하면서 「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기업들도 쌀제공을 경색된 남북경협의 돌파구로 판단,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고 정부도 「아무런 조건 없이 쌀을 제공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북한측이 와타나베의 의견을 수용,무공에 접근했습니다.이것이 우리정부에 긴급보고되면서 「민간기업을 통한 쌀제공」이 한단계 격상된 것 입니다.「정부차원의 쌀제공」을 북한이 끝까지 거부했다면 정부는 기업명은 밝힐 수 없지만 쌀문제로 북한과 막후접촉을 벌인 모기업을 선정,쌀제공창구로 삼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활발한 경협이 예상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전망과 우리측의 대책은 어떻습니까. ▲남북경협은 장사라는 기본원칙에 정치(남북대화)와 교육(자본주의화)이라는 두 가지변수가 얽혀 다른 장사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이번의 쌀협상타결로 남북경협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투자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는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남북대화(정치협상)가 진전돼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임금결제 등에 관한 문제가 타결돼야 본격적인 경협이 가능합니다. ○이기주의 버려야 현재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이 과열경쟁입니다.최근 전경련이 남북경협특별위원회를 가동,대북투자시 과열경쟁와 중복투자를 막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하지만 이것도 기업들이 소아적인 이기주의자세를 버리지 않는 한 유명무실한 기구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쌀회담타결로 북·일간 급속한 관계진전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은 사실 한국쌀보다 일본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물량(30만t)도 한국보다 많고 북·일수교에 앞서 배상금으로 미리 받았다고 선전할 수 있어 김정일체제에 타격도 훨씬 적다는 이유지요.일본도 북·일수교를 무라야마정권의 당면과제로 설정,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즉 쌀을 지렛대로 수교회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대북경협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북한도 수십억달러로 예상되는 배상금을 손에 쥘 수 있다면 붕괴직전까지 간 경제를 재건할 수 있다는 복안이 있을 겁니다.결국 양국은 수교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쌀문제를 효과적으로 이용,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양국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던 한국쌀 제공문제가 타결된 만큼 북·일관계는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쌀에 더 관심 ­남북관계의 개선이 예상된다면 2002년 월드컵유치위원장으로서 월드컵 남북공동개최의 가능성이 있습니까.어떻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공동개최는 세계축구연맹(FIFA)의 규약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하지만 과거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는 등 민족의 이름으로 FIFA의 규정을 뛰어넘은 전례도 있습니다.개최형식등은 우리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일입니다.유치신청서의 최종마감일(9월말)까지 남북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유치위원장으로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면 「분단된 상태에서 공동개최라는 거사를 이룩해야 전세계에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냐.또 역사에 기록될 이 일을 해내야 후세에 떳떳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공동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신청서를 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진하겠습니다. ­무협의 5만회원 가운데 남북교역을 희망하는 기업이 많은데 지원책과 경협의 추진방향은 어떻습니까. ▲무협은 현재 정부를 대신한 「남북교역상담창구」로 지정돼 회원사에게 남북교역절차와 관련법규 및 서식작성방법 등에 관한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부산과 대구·광주지부 등 10개 지부에 상담요원 1명씩을 파견,지원하고 있습니다.현시점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는 임가공 위주의 소규모투자입니다. ○북,민간원칙 불변 이를 통해 북한경제도 이해하고 신뢰도 쌓아 대규모투자에 대비하는 전략을 짜야 합니다.남한기업이외국기업의 선점을 우려하지만 사실 북한은 「황금알을 낳은 투자지」도 아니고 구매력을 갖춘 시장도 아닙니다.남북관계의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남북경협은 남한정부를 배제하고 민간차원에서 추진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의 활성화의 전제조건은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의 개선이며 정부차원에서 경제적인 안전장치를 만들 때까지 임가공 위주의 교역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백화점 문화교실/이색강좌 많아졌다

    ◎신세계­외국인 주부와 함께하는 문화기행/현대­미술품 수집감상·유적답사 등 선봬/미도파­작은 책방·금요 음악감상 클럽 개설 신세계와 롯데 현대 등 각 백화점에서 운영 중인 문화교실의 강좌들이 요즘들어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동적인 프로그램들로 크게 강화됐다. 신세계 백화점은 이달부터 시작된 여름학기 정기강좌에 외국인 주부와 함께하는 생활문화 기행과 문화유산 탐방,가족 주말농장,건강 레저를 위한 포켓볼과 검도강좌들을 새롭게 개설,좋은 반응을 모으고 있다. 이 가운데 외국주부들과 문화유산 탐방을 떠나는 생활문화 기행은 평상시 외국인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일반주부들이 외국인들과 어울리면서 생활영어를 배우고 문화답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달 15일에는 소래 어시장,7월13일에는 인천 갑문과 자유공원,8월24일에는 삼성전자와 건릉을 각각 방문할 계획이다. 또 가족 주말농장은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벗어나 가족들이 함께 텃밭을 가꾸면서 자연을 체험하게 하는 강좌.6월부터 11월까지 경기도 광주군의 비둘기 주말농장과 고양군의 자유 주말농장을 가족당 5평 정도씩 임대,농작물을 직접 재배하면서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현대 백화점은 미술의 해를 기념,큐레이터 되기,미술품 딜러 되기,미술품 수집과 감상 등으로 엮어지는 박물관대학 강좌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속의 한국역사를 탐방하는 현대문화생활클럽도 마련했다.그밖에 문화유산 답사,역사기행,풍물기행,문학기행,등산클럽 등의 테마가 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주요강좌로 내놓고 있다. 미도파 백화점은 상계점 문화센터 내에 5백여권의 교양·문학서적을 비치한 작은 책방을 개설,회원들의 책 읽기를 독려하는 동시에 금요 음악감상클럽 프로그램을 통해 클래식 음악과 신세대 음악의 동시이해를 돕고 있다. 또 그레이스백화점이 생활경제와 관련,부동산 및 소규모 점포 경영전략과 보석감정교실을 이색강좌로 개설해 놓았다.롯데 백화점도 소자본으로 여성들이 손쉽게 독립할 수 있는 소점포 교실을 이색강좌로 운영 중이다.
  • 시청광장의 까치/김광서 서울시 문화관광국장(굄돌)

    6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서울을 상징하는 나무는 은행나무.새는 까치,꽃은 개나리이다. 그중에서 까치는 국민들로부터 길조로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시청 옥상에는 수백마리에 이르는 비둘기들이 살고 있다.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는 우리에게 친숙함과 잘 길들여지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종 축하행사 때에 많이 날려 지기도 한다. 그러나 당초부터 비둘기가 시청광장을 점유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20년 전인 1974년도에 시청옥상에 까치집을 지어놓고 수십마리의 까치를 넣어서 기르기 시작했다.그러나 얼마 안가서 도저히 기를 수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비둘기로 다시 바뀌게 된 것이다. 까치의 속성이 인공 사육이 잘 안될 뿐 아니라 야생조류로서의 본성 때문에 인공적으로 지어진 집에서는 살지를 못하는 것이었다.그러다보니 20년이 지나는 세월 동안 까치는 서울의 새이면서도 시청광장에서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봄에 까치 가족이 시청광장 은행나무에 나타나 둥지를 틀기 시작하더니 집을 짓고 살림을 시작했다.그것도 시청광장에우람하게 솟아있는 서울의 나무인 은행나무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으니 시청광장에서 까치가 노닐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까치가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간다느니 은행나무의 영향 때문이라는 등 갖가지 이론을 내세우지만 깊이 따질 일도 아니고 그저 좋을 뿐이다.
  • 온건 강석주 배제…평양태도“경화”/북은 격낮춘 북경회담 왜제의했나

    ◎새상황 조성… 시간끌며 추가양보 노려/북권부내 암투… 강경파 득세 가능성도 북한이 11일 불쑥 「갈루치­강석주」 미·북 고위급 회담의 격을 한단계 낮춰 북경에서 개최하자는 의외의 제의를 해와 그 저의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왜냐하면 그들은 줄곳 미­북 접촉의 격을 높여 정치성을 강화하려 애써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격을 낮춰가며 협상대표를 바꾼 이유는 1차적으로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의 북한 권력구조내 위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강석주는 북한내에서는 외교부를 대표하는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다.이 때문에 강경 군부세력에게는 배척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지난해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합의문을 만들어낼 당시 강석주가 「한국형 경수로」를 사실상 받아들이고도 평양에는 뉴앙스가 다르게 보고한것이 뒤늦게 확인돼 거세됐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여하튼 강석주 배제는 경수로 협상에 임하는 북측 태도가 경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미·북 협상은 보다 시간을 끌면서 난항을 겪게될 것으로 전망된다. 갈루치 미핵대사는 방한중이던 10일 우리정부의 고위당국자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자신들이 핵연료를 재장전하더라도 협상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오판하고 있는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 권부내에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들 강경파는 협상을 질질 끌면서 연료봉을 재장전하겠다고 위협,한반도에 긴장감을 고조시켜 ▲중유의 조기공급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추가 완화 ▲송·배전시설등 추가지원등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하는것 같다는게 정부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그 과정에서 「허바드­김계관」라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주목된다.「갈루치­강석주」라인은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가 어려워질때마다 긴장을 푸는 「핫라인」의 역할을 해왔다. 북한측이 기습적으로 협상대표의 격을 「준고위급」으로 낮춘 또다른 속셈으로는 한·미·일 3국의 경수로 전략을 흔들어 보자는 것일수도 있다는지적이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3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을 불러와 혼선을 일으켜보자는 의도로 보인다는 것이다.협상이 어려운 고비에 처할때면 새로운 제의를 내놓아 상대방을 교란하는것이 북한의 협상전술이라는 것이다.정부는 북한측 의도를 여러각도로 면밀히 분석하면서도 협상국면만은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일단 유연한 대응을 하기로 했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경수로 지원」 한국주도는 불변”/나 부총리가 말하는 북핵대응/“북서 수용땐 「한국형」 표현엔 신축성/10억달러 추가지원 검토한 적 없다” 11일 정부는 북한핵문제를 둘러싼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대북 경수로 지원 과정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은 우리측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마지노선임을 확인한 것이다. 나웅배 통일부총리는 이날 상오 이례적으로 기자실에 들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이 체결하는 경수로 공급협정에는 한국형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반드시 명기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못박았다.이는 전날 열린 한·미·일 3국 전략회의 이후 나온,한국형 경수로 명칭을 양보할 수도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명백히 부인한 것이다. 사실 10일 3자회의를 마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의 발표문에는 우리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 온 「한국표준형」이라는 문구가 빠졌다.그 대신 「KEDO에 의해 제공되는 경수로」로 표현하는 바람에 마치 한국형을 양보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11일 나부총리나 공노명 외무장관 등 주요 당국자들은 기존 방침이 불변임을 강조했다.표현이 바뀐 것은 북­미 고위급회담 재개를 앞두고 한국형에 대해 「트로이의 목마」라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는 북한을 굳이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해명이다. 다시 말해 KEDO 설립협정문에 명기된 대로 결국 한국형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한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얘기다.지난 3월 뉴욕에서 서명·발효된 KEDO 협정은 그 설립목적에서 『KEDO는 약 1천메가와트 용량의 한국 표준형 원자로 2기로 구성되는 대북한 경수로 지원사업의 재원조달과 공급 및 대북한 대체 에너지 공급을 위해 설립된다』고 밝히고 있다.나아가 이 협정은 KEDO가 북한과 경수로 공급협정 등을 체결토록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현재로선 우리측으로선 2가지 장치를 통해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확보돼야 한다는 게 불변의 입장이다.즉 KEDO가 북한과 체결할 공급협정에 「울진 3·4호기를 참조모델로 한다」는 점이 명기되어야 하고,주계약자도 우리측 한전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나부총리 등 당국자들은 『북한이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수용하다면 (경수로 노형의)표현법에 대해선 신축적인 검토가 가능하다』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 다음은 11일 나 부총리의 일문입답 요지. ­한·미·일 공동 언론발표문에 한국형 경수로가 명시되지 않았는데… ▲KEDO에 의해 제공되는 경수로는 당연히 한국형을 의미한다.참조발전소로 한국형이 명기되고 우리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주계약자가 되는 것이다. ­내용이 한국형이면 명칭은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공급협정상 참조발전소로 울진 3·4호기가명기되어야 한다.그리고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10억달러 대북 추가지원은 검토한 바 없다.북한이 한국형을 받아들인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보장된다면 표현법은 신축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다. ­한·미·일 공동발표문에서 「성의있는 공동노력」을 계속키로 했다는데. ▲북한이 한국형경수로와 우리의 중심적 역할을 받아들이고 핵동결을 유지한다면 중유제공과 제네바에서 제기된 문제에 관해 호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신축성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경수로 문제 이외에 연락사무소 개설과 평화협정 등의 문제도 논의될 수 있는 것인지. ▲평화협정 전환문제는 남북 당사자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며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다를 사안이 아니다.미국측도 이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 김인호 청장에 듣는 철도정책(국정 어떻게 돼 갑니까)

    ◎경부·호남선 5년내 준고속철도화/대도시 교통수단 전철위주 재편 추진/공사화땐 책임경영제 도입… 적자 개선/내년부터 연중예매제 실시… 입석 점차 폐지 내년부터 철도청이 공사로 바뀐다.철도가 들어 온지 1백여년 만에 처음으로 「장사」개념이 도입되는 셈.서비스는 나아지고 대신 요금은 오르게 될 것이다. 김인호 철도청장이 공사화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그는 20일 본사 정종석 경제부차장과의 특별인터뷰「국정­어떻게 돼 갑니까」에서 공사화에 맞춰 인간중심의 기업경영 체제를 갖추고 서비스 수준을 높임으로써 「신철도」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사화 맞춰 질개선 고속철도의 건설과 병행해 기존철도도 새마을호 이상의 준 고속철도로 고급화하고 입석제는 폐지하겠다는 게 김청장의 구상이다.요금도 어쩔 수 없이 물가에 큰 부담이 없는 범위내에서는 현실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경기고·서울 법대를 졸업한 이른바 KS맨.행정고시 4회로 옛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경제기획국장,기획차관보의 정통 엘리트코스만을 밟아 왔다.노태우 정부 말기에 환경처차관을 지내는 바람에 한때 야인으로도 있었지만 그의 능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 소비자보호원장을 거쳐 철도청장에 이름으로서 다시 자기궤도를 찾고 있다. ­공사가 되더라도 지금같은 방만한 체체로는 적자는 심화되고 서비스 수준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들을 많이 합니다.공사가 되면 어떻게 달라집니까. 『내년 1월1일 공사화를 목표로 다음 달에 정관을 개정합니다.6월에는 사규를 제정하고요.10월이 되면 임원을 선정하고,12월까지 자본금을 납입해 설립등기를 마칠 예정입니다.오는 9월부터는 공사화에 대비한 시험운영체제로 들어갈 겁니다. ○요금 현실화 불가피 철도는 지금까지 「국민의 발」이라는 공공성만 강조해 왔어요.누적 적자가 지난 해 말로 3천2백46억원이나 됩니다.이런 상태니 철도에 대한 투자나 연구 개발이 있었을리 없습니다.철도의 효율성이나 수익성은 고려하지 못했던 때문이지요.그러나 본부제 등의 기업 조직과 독립 채산제 등 원가 개념에 따른 책임 경영제를 도입하면적자는 개선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열차 운용과 관리는 공사가 맡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기존 철도와의 연계,기술 습득은 어떻게 됩니까.고속철도에 치우쳐 일반철도는 오히려 서비스가 나빠질 우려는 없을까요. 『우리는 고속철도가 운영될 앞으로 5년까지는 첨단 장비의 기능을 낱낱이 파악하고 운영 요원의 훈련을 강화하는 데 노력할 방침입니다.또한 경부선과 호남선 등 고속화가 가능한 철도를 조사해 이런 선로는 준고속철도화 해 새마을급 이상으로 고급화하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설날이나 추석이면 많은 사람들이 귀성 열차표를 사려고 밤샘을 하곤 합니다.어떻게 개선책이 나오기 어렵습니까.당장 며칠뒤면 추석 열차표를 예매하지 않습니까. 『그게 그렇습니다.명절이면 2천6백만명이 이동해요.그런데 열차표는 3백만명분밖에 없습니다.구하려는 사람은 많고 표는 한정돼 있는 겁니다.그러니 해결책도 어렵습니다.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지난 해는 예매방법을 공모도 해봤습니다.그러나 추첨제와 예약제 확대 아이디어밖엔 안나옵니다. 임시대책이긴 합니다만 올해는 예매 창구를 모든 여행사로 넓혔습니다.조금은 쉽게 살 수 있을 겁니다.내년부터는 예매 시행일을 현행 1백20일 전에서 3백50일 전으로 확대하려고 해요.이를테면 연중 예매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공사화가 되면 서비스 개선의 명분으로 철도 요금을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실제 현행 요금이 수송원가에도 못미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고요.요금은 어느수준이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마디로 우리나라 철도 요금은 세계에서 가장 낮습니다.평균으로 따지면 요금이 원가의 69.6%로 밖에 안됩니다.여객은 76.5%,화물은 60.4%,소화물은 그보다 더 낮아서 45.6%에 불과합니다.이걸 맞추려면 현재보다 평균 43.8%를 인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통일·비둘기호 줄여 그렇다고 공공요금의 성격이 짙은 철도요금을 인상요인 만큼 한꺼번에 인상할 수는 없겠지요.반대로 지금처럼 물가정책의 제약을 받아 적정수준으로의 조정을 미뤄서도 안됩니다.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철도 요금을 적정선으로 현실화 하되 국민 생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즉 연차적으로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철도의 수송 분담률이 지난 60년대 초에는 50%를 넘었어요.그러다가70∼80년대를 거치면서 지금은 25%대에 그칩니다.왜 그렇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철도 수송이 크게 위축되게 마련입니다.그러다 도로 확장에 한계가 생기고 간선 철도망이 확충되면 다시 철도 역할이 높아지게 마련이죠.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지금부터 간선철도망을 확충하면 오는 2001년까지는 철도의 수송 분담률을 60%로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건설교통부 주관으로 벌이는 제3차 국토종합개발 계획 수정작업에 이같은 계획을 반영할 겁니다』 ­외국의 경우,철도가 고급화됐고 장비도 현대화돼 있는데 서비스 차원에서 개선책이 있으면 설명을 좀 해주시죠. 『앞으로 중장거리 여객은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위주로 개편하려고 합니다.대신 도시간 수송은 도시전철이나 경전철 등이 맡게 돼요.장기적으로 비둘기호나 통일호는 점차 줄여야겠지요. 그렇다고 페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지역 수요에 따라 열차의 등급을 조정한다는 얘기입니다.입석제도 서비스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페지해야 합니다.』 ◎21세기 청사진/철도 수송부담률 60%로 제고/부산∼포항∼고성 동해안 관광철도 개통 오는 2천년대 초에는 거미줄같은 철도망으로 전국이 「반일(반일) 생활권」에 들어간다.고속철도가 개통되지 않아도 시속 2백㎞에 가까운 준 고속철도가 서울∼부산 간을 오가고 원주와 강릉을 잇는 직통 철도도 새로 놓는다. 의정부∼인천∼수원∼용문을 잇는 수도권 전철을 타고 경기도를 일주하고 부산에서 포항·삼척을 거쳐 고성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관광철도도 생긴다. 철도청이 올 초에 내놓은 21세기 철도망의 밑그림이다.총 궤도는 현재 6천5백62㎞에서 오는 2001년 7천8백26㎞,2012년 1만7백86㎞로 늘려 철도의 수송 분담률을 현재 25%에서 오는 2001에는 60%까지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시속 70∼80㎞인 철도의 평균 운행 속도를 1백50∼2백㎞로 높여 전국 어느 곳이나 반나절 만에다녀올 수 있게 한다.이를 위해 중장거리 수송은 무궁화호 이상으로 등급을 높이고 시속 2백㎞의 준고속철도도 경부선과 호남선에 운용할 계획이다. 고속철도의 건설과 병행해 기존 철도망도 확충,호남축 천안∼논산간 67.8㎞와 영호남축 목포∼사상간 2백89.5㎞를 2003년까지 신설한다.원주∼강릉간 99㎞의 직통 철도와 경주∼포항∼강릉∼고성간 3백98㎞의 관광 철도도 새로 놓는다.경부과 호남을 관통하는 동대구∼순천간 1백60㎞의 철도는 2000년 착공한다. 복선화 전철로 바뀌는 철도는 ▲영동선 영주∼철암간 87㎞(96년 완공) ▲경부선 수원∼천안∼부산간 4백3.2㎞(2009년) ▲충북선 조치원∼봉양 1백15㎞(2004년) ▲장항선 천안∼장항 1백44.9㎞(2009년) ▲중앙선 용문∼원주∼제천 83.7㎞(2009년) 등이다.이에 따라 전철화율은 현재 18%에서 2001년 32.3%,2012년 64.7% 높아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대도시 교통수단은 도시철도 위주로 재편한다.수도권 전철망 중 동북부 순환전철은 의정부∼퇴계원∼도농간 21㎞가 2003년에,동두천∼마석∼용문간 75㎞가2011년에 각각 개통한다.동남부 순환전철 용문∼이천∼수원간 50㎞와 성남∼광주∼이천간 37㎞는 2011년부터 착공하고 서부순환 전철 일산∼김포∼인천간 27㎞와 능곡∼부천∼군자간 29㎞도 같은 시기에 추진한다. 부산권 전철망은 부전∼가야∼사상간 7.3㎞가 2001년까지,울산∼영천간 82㎞가 2002년까지 복선으로 놓이고 동대구∼영천간 34.9㎞는 2002년까지,광주∼송정리간 14㎞와 대전∼두계 25.4㎞는 2006년까지 복선 전철화한다.
  • 클레이사격/동호인 4만… 새 레포츠 정착

    ◎사격장 10곳… 누구나 쉽게 배우고 명중률 높아/비행접시 맞힐때 쾌감 “짜릿”… 스트레스 해소 「창공을 가르며 솟아 오르는 접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접시와 함께 산산조각나는 스트레스」 요란한 총성과 함께 날아가는 목표물을 명중시켰을 때의 짜릿한 쾌감은 클레이사격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다. 지난 2월말로 수렵기간이 끝나고 날씨가 포근해지면서 클레이사격장을 찾는 동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생활체육 전국사격연합회 염홍철 사무국장(41)은 『클레이사격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워 즐길 수 있어 주말이면 주부,직장인,대학생등 많은 사람들이 사격장을 찾고 있다』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목표물을 따라 정확한 사격을 해야하므로 집중력과 결단력,민첩성과 안정된 자세를 요구하며 이를 배양시켜 주는 레포츠』라고 말했다. 클레이 사격은 시속 60∼90㎞로 공중을 비행하는 흙(Clay)으로 만든 접시모양의 목표물인 피전(Pigeon)을 총으로 쏘아 맞추는 레포츠.사수가 사대를 옮겨가며 날아오르는 표적을 맞추는 스키트와 사수가자리를 옮기지 않고 한 곳에서 기다리다 솟아오르는 접시를 깨뜨리는 트랩경기로 구분된다.클레이사격은 라이플·피스톨을 사용하는 라이플사격과는 달리 산탄총을 이용하기 때문에 배우기 쉽고 명중률이 높아 일반인들사이에 레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산탄총으로 이동표적을 맞추는 사격의 발상지는 영국.18세기 영국에서 야생조수는 모두 국왕의 소유물로 취급돼 수렵은 국왕과 귀족들에 한해 사교경기로 이뤄졌다.따라서 일반 시민들은 수렵대신 살아있는 비둘기를 날린 뒤 총으로 쏘아 맞추는 경기를 즐겼는데 이후 비인간적이란 비난이 일면서 진흙으로 빚어 만든 표적을 이용한 클레이사격이 등장하게 된 것. 우리나라에는 지난 55년 대한사격연맹 발족과 함께 스포츠로 도입됐으며 88올림픽이후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엘리트스포츠에서 레저로의 전환을 가져와 현재 동호인수만도 4만을 헤아린다. 클레이사격은 태릉사격장을 비롯해 전국 10여곳에서 즐길 수 있으며 총은 시·도지사의 허가로만 구입이 가능하고 소지절차가 까다로울 뿐만아니라 가격(초보자용은 1백50만원선)이 비싼편이어서 우선은 대여해 쓰는 것이 좋다.복장은 활동성있는 옷차림이면 된다.실탄은 25발 1박스에 2만5천원정도. 염홍철국장은 『이 레포츠가 총기를 다뤄야하는 만큼 안전수칙과 교습자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태릉사격장내에 위치한 생활체육 전국사격연합회(02­971­94 18)는 초보과정을 강습하며 회원은 싸게 이용할 수 있다.또 레저이벤트업체인 코니언(723­7237),한국종합레포츠(516­2042)등에서도 강습회가 있다.
  • 경보음 무시 버스 “죽음의 질주”/화순 건널목사고

    ◎등교길 학생·출근 주민들 “참변”/기관차에 받혀 2백여m 끌려가 【화순=최치봉 기자】 출근길 버스가 철도건널목에서 열차와 충돌,등교길 학생과 주민등 14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11일 상오 6시35분쯤 전남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연양마을 경전선 철도건널목에서 화순교통소속 전남5자1121호 군내버스(운전사 김요중·42)가 경보음을 무시하고 달리다 광주발 부산행 902호 비둘기호(기관사 김영수·38)열차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조미소양(15·화순여중 2년)등 14명이 숨지고 강옥주씨(50·여·화순읍 감도리)등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사상자들은 화순 중앙병원,전남대·조선대·보훈·기독병원등에 옮겨졌다. 중상을 입은 승객 정수정양(18·화순실고 2년)은 『경보음이 울리고 기차가 달려오는데도 버스가 그대로 달려 중앙부분이 열차에 부딪쳤다』고 말했다.버스는 열차에 들이받친 뒤 2백m가량 끌려갔다. 정원이 77명인 이 버스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차례 연양리·감도리일대에서 화순읍과 광주광천터미널등지를 운행하는 통근버스로 버스공제조합에 가입돼 있다. 사고가 난 건널목은 차단기가 없고 경보기만 설치된 2종 건널목이다. 사망자 명단 ▲임현정(12·여·오성국교 6년) ▲최경섭(10·〃 4년) ▲조귀경(〃·여·〃) ▲조미영(13·화순여중 1년)▲조미소 ▲조영현(15·화순중 2년) ▲김옥진(54·여·감도리 354) ▲정귀례(64·〃·벽라리 146) ▲이순희(39·〃·감도리 246) ▲정경님(62·〃·〃) ▲최삼례(65·〃·감도리 617) ▲정금녀(60·〃·내평리 188) ▲조대진(47·감도리 246) ▲조정호(60·감도리) ◎참사현장 표정/세딸 한꺼번에 잃은 부부 망연자실/주민들 “차단기만 있었으면…” 흥분 ○…이날 네딸이 버스에 탔다가 미소·미영·귀경 등 세딸을 잃은 조순영씨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딸들이 나란히 버스에 타는 것을 지켜본뒤 집으로 돌아왔다 10분만에 비보를 전해들은 조씨는 『그동안 날품팔이와 농삿일로 모은 돈으로 광주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오는 5월 이사할 예정이었다』며 『딸들이 새집에서 살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마을 주민들은 『사고지점이 급커브길인데다 지난해부터 감도리∼화순읍∼광주광천터미널을 잇는 군내버스노선이 개설됐는데도 차단기도 없는 2종 건널목으로 방치돼 왔다』며 『그동안 군당국에 무인차단기 설치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중금속비둘기(외언내언)

    미국정부는 1989년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가 만들어내는 중금속 대기오염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공식자료를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일산화탄소는 혈액의 산소흡수를 저해함으로써 인식 및 사고능력을 손상시키고 반사작용을 감소시키며 졸음을 유발하고 무의식상태와 사망에 이르게 할수도 있다.질소산화물은 감기등 바이러스성 전염병에의 저항력을 손상시키고 기관지염 및 폐렴의 원인이 된다. 오존은 순환기 점액막에 염증을 일으켜 기침 및 폐기능 손상을 가져오고 감기와 폐렴에의 저항력을 줄이며 만성심장질환·천식·기관지염 및 폐기종을 악화시킨다.벤젠은 생식기능장애 선천성결손증을 만들뿐아니라 명백하게 발암물질이다.그리고 납은 순환·생식·신경 및 신장기관에 영향을 준다.어린이들의 과도활동증(Hyperactivity)및 학습능력저하의 혐의가 있고 뼈와 기타조직에 축적되어 그영향이 지속된다. 이 무서운 납이 지금 서울시청주변 비둘기들의 허파에,그것도 성남지역 비둘기와 비교해 10배나 많은 양으로 축적돼 있다는 조사자료가 알려지고 있다.호남대 이두표교수의「야생동물 중금속오염실태연구」결과다.비둘기 뼈속 중금속량은 또 24배에 달한다.더 중요한것은 도시의 새 허파에서까지 중금속이 발견되는 예 자체가 드물다는 것이다.최악의 단계를 보여주는 셈이다. 새는 사람보다 공기흡인량이 3.5배에 달한다.그래서 대기의 영향을 조사할때 비둘기가 자주 시료가 된다.그렇다치고 비둘기의 3분의 1쯤의 중금속이 서울사람들 몸속에도 들어와 있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떠오른다. 「오존경보제」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은 세워졌다.그러나 실제로 인체에 어느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아직 없다.대기오염문제를 너무 형식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반성을 해야한다.위험의 정도는 분명히 밝혀야한다.이게 바로「삶의 질」적 접근이다.
  • 개표연습(외언내언)

    「높은 산당」의 「백두산 후보」,「예쁜 꽃당」의 「무궁화 후보」,「좋은 섬당」의 「제주도 후보」,「깊은 강당」의 「한강 후보」,「무소속의 까치,비둘기,비익조,잉꼬,제비,타조후보」등 자연을 의인화한 10명의 후보가 출마한 서울시장 선거등 4개 지방선거 실제상황에 대비한 서울 성동갑 선거구 선거의 개표에 소요되는 시간은 최대 3일로 나타났다. 부재자 4천3백여명을 포함,선거인 수 17만9천여명에 일반투표율 79∼83%,후보자수 서울시장 10명,성북구청장 7명,시의원 선거구당 5∼7명,구의원 선거구당 3∼6명을 가상한 개표시연회는 부재자투표 개표에만 무려 4시간 30분이 걸렸다. 시연회에는 선관위와 서울시직원 3백여명이 개표종사자로 동원됐고 관람석에선 전국 시군구 선관위 직원과 서울시 직원 7백여명이 메모까지 해가며 참관하는등 실제상황을 방불케 했다.선관위 관계자들은 4개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첫 경험을 어떻게 소화할지 스스로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선관위는 이미 지난해 11월 속초시를 시작으로 전국 11개 개최단위별로 선거모의 연습을 실시하는 등 「행여」를 대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해왔다. 그러나 2천년대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선거방법은 해방직후의 붓두껍 투표와 수작업 개표가 여전해 선거문화는 세월이 변해도 원시 상태의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혹 있을지 모르는 투개표 부정을 의식한 야당쪽의 불신풍조가 오히려 오늘의 선거후진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선관위 종사자들은 선진국의 OMR카드식이나 버튼식 투표방식 등 과학화된 선거방식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읍,면,동별로 개표를 진행하거나 전산개표기 등을 도입하면 인원과 시간을 대폭 줄일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들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저러나 공명선거를 실현해 내랴,완벽한 선거준비하랴,이래저래 선관위만 바빠졌다.후보자의 공식 홍보물만도 16억6천장이나 된다니….
  • 베니스 산마르코광장(걸작 건축 감상:12)

    ◎1백m 수직 종탑,수평 광장과 멋진 조화/바다 접한 길이 150m공간… 6개건축물에 둘러싸여/9세기때 조성… 다양한 변화감,현대 도시광장 모델 풍요로운 태양,왁자지껄한 대화소리,밝은 웃음,평화로운 비둘기떼,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무리들,이따금 풍기는 커피향기,이 모든 것들은 이탈리아 어느도시에서나 접할수 있는 광장의 전형적인 풍경이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지만 「이탈리아의 모든 좁은 골목길들은 항상 활기 띤 생활이 일어나고 있는 광장으로 연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탈리아인들은 유럽의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좁은 침실을 가지고 있는 대신 가장 넓은 거실을 가지고 있는 문화라고도 한다. ○정치·종교의 중심지 이것은 광장이나 가로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활을 두고 하는 말이다.이탈리아의 광장은 단순한 외부공간이 아니라,거실을 대신하는 장소이며,집안으로 들어가는 전실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광장을 중심으로 한 외부 공간에서의 생활일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후와 생활문화의 영향도 크겠지만잘 계획된 광장의 형태에 기인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수많은 광장 중에서도 물의 도시 베니스에 위치한 산 마르코 광자이은 규모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인간미,다양한 시각적인 변화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나폴레옹은 베니스 점령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칭송하였고,현대에 있어서도 도시 광장의 모범적인 모델로서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산 마르코 광장은 베니스에서는 유일한 대규모 광장이며,상업의 중심지인 리 알토 다리에서 산 마르코 내포의 산 조르조 섬을 향하는 축상에 위치하고 있어 베니스의 정치·경제·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수백년간 해오던 곳이다.리 알토 다리에서 광장으로 연결되는 폭이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거쳐 광장으로 향하는 아치를 빠져나오면 갑자기 길이가 1백50m가 되는 대규모 공간과 확 트인 바다를 마주하게 되는 극적인 공간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광장내에는 아름다운 음악,종탑의 종소리,18세기부터 문을 열었다고 자랑하는 카페 등 로맨틱한 분위기와 함께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대할 수 있어 베니스 여행의 하이라이트적인 장소임을 직감하게 된다. 광장은 9세기에 처음으로 조성되어,12세기 말 공화정 총둑에 의한 확장 계획에 따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들의 신축·개축·재건 등을 거쳐 16세기 경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산 마르코라는 명칭은 광장 동쪽의 산 마르코 성당이 성인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고 있어 붙여졌다.829년 베니스의 상인 두사람이 아드리아 북부지방의 수호 성인이며 복음주의자 성 마르코의 유해를 이집트로부터 훔쳐와 이를 모시기 위해 총독의 궁전 옆에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다.그당시 광장은 성당 앞 운하가 흐르는 곳까지로 그 규모는 현재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1176년 광장 확장 계획에 따라 운하를 막고 현재의 규모를 갖추어 완성 당시에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가장 체계적으로 계획된 광장이란 찬사를 받았다.광장은 ㄱ자 형으로 산 마르코 광장과 소규모 광장인 피아체 광장이 연속되어 있어 대광장의 열기가 소광장 쪽으로 흘러 넘쳐 바다로이르게 하는 듯하다. ○초기의 성당은 소실 대광장과 소광장은 기능과 건축시기,건축양식을 각기 달리하는 6개의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로 둘러 싸여 있어 더욱 흥미롭다.광장의 동쪽은 비잔틴 건축 양식을 지닌 산 마르코 성당으로 둘러싸여 있다.초기의 성당은 화재로 소멸되었고,1094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광장의 서쪽은 현재의 박물관 건물로 마무리된다. 원래는 산 제미아노성당이 위치하고 있었으나 베니스가 나폴레옹의 휘하에 있을 당시 성당을 허물고 궁전을 짓게 하였기 때문에 이 건축물은 「나폴레옹의 날개」라 불리고 있다.광장의 북쪽은 수평적인 힘을 강조하고 있는 프로쿠라티에 베키에라 불리는 베니스의 독특한 건축양식의 건축물이 있다.16세기에 지어진 이 건축물은 58개의 아치형 입구를 가진 건물로서 동쪽 끝 부분 시계탑 아래의 한 아치만이 광장과 리알토 다리로 향하는 골목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이 건축물은 원래 산 마르코의 재정과 행정을 맡은 아홉 명의 권력자들을 위한 호화주거와 상가용 건축물이었으나 현재는 상가와 사무실들로 사용되고 있다.화재로 인해 원래의 건물이 소멸되어 16세기에 다시 재건되었지만 형태는 새로운 경향보다는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12세기 베네치안 건축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광장의 남쪽은 북쪽 건물보다 1백여년 뒤에 지어진 프로쿠라티에 누오베라는 건축물로 마무리 되고 있다. 소광장 피아체타는 동쪽의 두칼레 궁전과 서쪽의 도서관 건물로 둘러싸여 있으나 한면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 광장에 시원한 트임을 제공한다.총독의 관사인 두칼레궁전은 베네치안 고딕양식을 강하게 풍기고 있는 건축물로 1550년경에 완서되었다.마주하는 도서관건물은 베네치안 양식과는 매우 다른 로마양식의 건축물로서 베니스건축에 로마고전 양식이 자리잡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 건축물이다. ○강열한 조형미 더해 맞은편 두칼레 궁전과는 형태가 매우 다르지만 동일 마감재료의 사용이나 베니스인들이 즐기는 긴아케이드의 도입은 통일된 광장 분위기를 형성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광장 피아체타의 하이라이트는 바다로 향하는 시원한 열림을 두 기둥의 연출로 살짝 닫아 광장의 경계를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다.더 나아가 두 기둥사이로 분절되어 보이는 전망이 주는 시각적인 변화는 공간 경험을 극에 달하게 해준다. 이렇듯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로 둘러싸여 광장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풍부히 해주고 있는 건축적 요소들은 산 마르코 광장과 피아체타광장이 연결되는 위치에 서 있는 높이가 약1m에 달하는 종탑의 시각적인 힘으로 용해되어 광장의 모든 다양성은 하나로 가슴에 영상화된다.종탑의 높이는 광장의 방대한 규모를 한번 더 강조해 주기도 하며,열주로 연속되는 광장의 수평적 시각을 하늘로 향하는 수직적인 시선으로 유도하여 광장에 강렬한 조형적인 힘을 더해주고 있다.종탑은 912년에 건축되기 시작하여 12세기말에 완서되었으나,1902년 7월 갑자기 무너져내려 20세기 베니스의 가장 큰 재해로 기록되는 사건을 낳기도 하였다.그러나 베니스인들은 동일한 위치에 똑같은 종탑을 건립하기로 즉시 결정하였고,1912년에 현재의 종탑이 재건되었다. 이렇듯 산 마르코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일련의 건축물들은 수세기를 거치면서 건축되어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건축가에 의해 각기 다른 건축양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변화감과 동시에 주변 건축물의 규모·형태·재료의 고려를 통해 부여되는 통일감,광장규모의 웅장함과 동시에 인간미를 부여하는 건축물의 섬세함,자연발생적인 무질서와 함께 공존하는 질서체계 등의 수많은 매력을 내보이며,산 마르코 광장이 현재의 활기찬 생활이 일어날 수 있는 성공적인 도시 외부 공간으로 되기까지는 수백년을 통해 끊임없이 지속되는 광장에 대한 일관된 설계원칙이라는 점이다.이러한 산 마르코 광장의 성공적 사례를 통해보면,수시로 변화를 거듭하는 우리의 도시 설계와 사라져가는 「마당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 열차·음악학원 승합차 충돌/어린이 5명 사망·3명 중태

    ◎창원 경전선 건널목 【창원=강원식 기자】 24일 하오 1시쯤 경남 창원시 동면 용강리 용암마을앞 경전선 용암건널목에서 광주에서 부산진역으로 가던 비둘기호 902 열차(기관사 하점봉·33)와 경남 5거 1727호 그레이스(운전자 최봉술·46) 승합차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승합차에 타고있던 김민석(8)·영근(6) 형제,송혜진(10·남·창원국교 3년)·승주(9·창원국교 2년) 남매,윤혜진 양(8) 등 어린이 5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승합차 운전자 최씨와 정아영(9),김미성양(9)등 3명도 크게 다쳐 마산고려병원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모두 중태다. 김민석군 등은 창원시 소답동 같은 마을에 사는 어린이들로 소답동의 도레미 미술학원에서 함께 학원수업을 마친뒤 승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변을 당했다. 사고 승합차는 열차에 중앙부분이 들이받쳐 40∼50m쯤 끌려가면서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철길옆 언덕으로 튕겨 나가 인명피해가 컸다.
  • 철새 모이주기·희귀조 탐조행사/어제 파주서

    ◎일반인 2백명 참가,사료 8백㎏ 뿌려/서울신문·조류협 주최 철새모이주기와 희귀조 탐조회가 19일 경기도 파주군 민통선에서 열렸다.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는 서울신문사와 한국조류보호협회가 공동주최하고 삼성전자(주)가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일요일을 맞은 어린이와 가족단위의 일반인 2백여명이 참가,밀·옥수수등 새모이 8백㎏을 뿌려주었다. 이 지역은 희귀조인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독수리(243호)등의 도래지로 참가자들은 준비해온 망원경으로 새들의 생태를 관찰하며 특징을 기록하는데 열의를 보였다. 한편 지난달 말 상처를 입고 치료중이던 천연기념물 324호인 칡부엉이를 20일동안 보살펴 자연으로 방생하는 행사도 이날 열렸다.또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5마리를 통일촌에서 방생하기도 했다.
  • 키질 천불동/무자트강 40m벼랑위 석굴236개(서역문화기행:10)

    ◎석가 고행 그린 미륵설법도 등 “벽화의 보고”/인도불교문화 동점 중간역… 쿠차·위구르·중국 3가지 문자·풍속 엿보여 쿠차에서 키질천불동을 찾아가는 73㎞는 감탄의 협곡이었다.쿠차에서 서쪽 바이청(배성)까지 그 중로에는 두개의 천불동이 있었다.기암절벽을 병풍으로 두른 염수 계곡을 따라 잠시 북상하면 문득 뻘겋고 황량한 촐타크산을 만나는데 그 바른쪽에 쿠무투라(고목토랍)천불동이 열린다.이곳 사람들은 「아래쪽 천불동」으로 부른다.여기서 다시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방불케하는 도깨비 형상의 뻘건 바위의 협곡을 빠져나오면 활짝 트인 고비사막.그 건너편으로 하얀 눈 모자를 눌러 쓰고 서쪽으로 달리는 천산산맥과 동행한다. 거기서 만난 고비사막 그 대부분은 회백색의 황량이지만 쿠차강 언저리는 기름진 초원이었다.바른편으로 하얀 천산,왼편으로 빨간 촐타크산,그렇게 선연한 색채의 무한속을 덜커덩거리다 필자는 불현듯 서울에 두고온 대칸짜리 집 한채와 반생을 넘게 일심전력 주워모은 만권의 책이 아침 햇살에 희끈거리는 먼지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났다. 다시 좌회전,촐타크산의 지맥인 밍우타크산(명옥달격산)의 허리를 넘어 서면 동에서 서로 흐르는 무자트강(목찰제하)이 보인다.산과 강사이에는 기름진 총림에 갈대가 우거졌고,그 북쪽 벼랑 40m쯤의 높이로 비둘기집처럼 네모난 석굴들이 일렬,혹은 이렬·삼렬 횡대로 서 있는데 그 2백36개의 석굴군을 통틀어 「키질천불동」으로 불렀다. ○모래돌 퇴적 벼랑이뤄 그것들은 몇 만년전 모래돌이 퇴적한 벼랑이었다.그것들이 석굴로 개착된 것은 기원1∼2세기 동한후기,불교의 동점때 시작해서 13세기 이슬람교에 밀려나기까지 1천여년에 걸친 일이다.바로 승려와 불도들이 불상을 모시고 종교의식을 올리는 불전으로서의 지제굴,승려들이 기도하면서 고행하는 선굴,그리고 승려들이 생활하는 승방으로서의 비가라굴,그리고 물건을 저장하는 창고굴등의 구실을 했었다. 키질석굴은 카슈가르에 남은 삼선동보다 약간 늦지만 돈황의 막고굴보다 1세기 이상 앞선 것으로 판명된 중국서북지역 최초의 천불동이었다.그 규모나 가치로 보아돈황의 그것보다 초라하고 엉성하지만 키질천불동의 석굴 양식이나 벽화의 내용,기법에 있어 인도의 불교문화가 동점하는 중간역이 분명했다.그속에 쿠차·위구르·중국등의 세가지 문자와 풍속이 출현하는가하면 서역의 간다라미술의 동점이 역력했다.예를 들어 타원형의 얼굴에 가는 눈썹과 높은 코,넓은 턱에 엷은 입술,그리고 물결치는 헤어스타일,그러한 불상이 곧 간다라의 그것이었다. 석굴은 2㎞의 벼랑에 동서로 분포되어 있었다.그 가운데쯤 남북을 움푹 자른 작은 골짜기를 중심으로 서쪽에 81개,골짜기에 55개,동쪽에 1백개의 석굴이 분포되었는데 형체가 온전하거나 벽화를 보유한 것은 1백군데에 미치지 못했다. 석굴의 양식으로 볼때 그 절대다수가 지제굴이었는데 지제굴은 인도에서 전래한 원초적인 형태로 석굴의 안쪽에 기둥을 두고 기둥뒤로 반원형,기둥밖으로 사방형,곧 말굽모양의 중심주형과 다만 네모뿐인 방형,리고 불전을 전후 2개실로 나뉘고 전실 중앙에 입불을 모신 대상형 등 세가지가 있는데 중심주형으론 4호·7호·8호·13호·17호등 40개굴,방형으론 3호·9호·14호·39호·40호등 23개굴,대상형으론 47호·48호·60호·1백36호 등 4개굴이 있었다.용도와 내실을 갖춘 승려의 생활 공간인 비가라굴로 2호·5호·6호·10호·15호 등 31개굴이 있었다. 그러나 키질 천불동의 영혼은 석굴에 있지 않고 거기 벽면마다 그려진 벽화임을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다.그 벽화가 자그마치 1만㎡에 달했다.그중 가장 보편적인 주제로 석가모니 전생에 노루나 곰·토끼등 짐승이 되었던 사적을 그린 본생고사가 70여종,석가모니의 일생에 있었던 각양각색의 형을 그린 불전고사가 60여종,다시 인과보응의 설법을 도해한 인연고사가 40여종이 있었다.이밖에도 약간의 천궁기락도·비천도·동물도·천상도 등이 있었지만 그림 자체가 불법을 설명하는 시각적인 강론인만큼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오현의 구자비파 발견 필자는 서쪽 벼랑의 석굴부터 순례를 시작했다.그 최서단의 8호굴은 중심주형 지제굴로 높이 6m쯤의 비교적 큰 석굴이었다.비록 그 벽화의 대부분이 벗겨지거나 탈색되었지만 마름모의 무늬,곧 능격화아래 희미하게나마 오현의 비파,곧 당시에 나오는 구자비파를 발견했을 때의 감격은 대단했다.안내자의 손전등을 빌려 그 높은 벽면을 열심히 비추었지만 오현은 더욱 가물가물 침침한 것이 안타까웠다. 8호굴과 비슷한 서쪽 벼랑을 사다리로 10m쯤 올랐을 때 거기 17호굴이 있었다.키질에서는 특굴로 알려져서인지 그 입장료도 곱으로 비쌌다.거기는 키질 특유의 문양인 마름모 무늬의 천장 아래 정병을 가진 미륵보살이 많은 협시 보살을 거느린 「미륵설법도」를 비롯해 석가모니의 생전 고행을 그린 본생고사가 널려 있다. 17호굴의 아래로 역시 특굴로서의 38호굴은 「음악동」으로 불릴만큼 많은 보살이 피리·공후·북·비파등의 악기를 들거나 원형의 천장에는 기다란 낙천도가 흐르는 선율처럼 그려져 있었다.그런가 하면 선연한 마름모 바탕에 두마리 꿩의 「쌍치도」도 눈에 띄었다. 다시 그 옆으로 나란히 있는 47호굴과 48호굴은 모두 대상형의 지제굴이었는데 18m가 넘는 높은 석굴속에 16m의 불상이 버티고 서 있고,그 좌우로 다섯렬의 좌불들이 빽빽했지만 휑하게 쓸쓸한 공간에서 망망했던 찰나,필자는 그 왼쪽 벽면에서 호랑이에게 몸을 바치고 그 먹이가 되는 「사신사호」의 본생고사에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다. ○독일인이 훔쳐간 흔적 서쪽 벼랑 중앙쯤의 76호굴은 궁융굴,석굴은 직방형이지만 천장은 활모양의 반원형,그런데 그 천장엔 공작의 현란한 날개만 남아 있었다.물론 독일사람에게 절도당한 것이다.이 천장에 저토록 현란한 공작의 날개가 온전한 모습으로 거드름을 펼 수 있더라면 얼마나 광채로울까. 바로 그 옆에 대상형 지제굴 77호굴.그 널따란 석굴의 천장은 너울너울 신나게 춤추는 보살의 무기도,격렬한 선율을 타고 무녀의 귀고리·면사·스카프·치마등이 물결치고 있었다.그리고 후실의 용도에는 꿩·양·사슴·오리·말·호랑이·원숭이등 열한가지 동물이 칙칙한 색상으로 생동했다. 그 옆으로 80호석굴,거기 본생고사와 인연고사에는 한마당 지옥이 그려졌는데 석가모니 앉은 땅밑으로 누군지 사람의 머리를 불로 태우는 끔찍한 장면이 자못 리얼했다. 이밖에 화랑식인 석굴로는 석가모니일생의 각종 형상을 종합한 불전고사 50여폭의 1백10호굴과 호랑이·사자·사슴·개·오리·꿩·토끼·뱀·말·곰·기러기등 열여덟가지 동물이 사실적으로 혹은 인상적으로 그려진 2백24호 굴은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키질천불동에서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그 하나는 인도사람으로 정승의 자리를 마다하고 쿠차로 도망왔던 구마라옌(구마라염)의 아들인 구마라주바(구마라십·Kumarajuva 344∼413)가 여기서 나서 출가하여 「대품반야」,「법화」,「유마힐」 등 74부 3백84권을 중역함으로써 남조의 진체,당의 현장등과 함께 중국 삼대불경번역가로 지위를 굳힌 사람이다.마침 지난해 가을 9월17일부터 키질천불동에 있는 키질석굴연구소에서는 그의 1천6백50주 탄신을 기념하는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고 그 동상을 세웠다. 또 하나는 우리 교포 화가인 한낙연씨(?∼1947).1946년 이곳에 와서 벽화를 임모하다가 결국 석굴의 미술을 고증하는 전문가가 되어 오늘의 69호굴을 발견하고 각 석굴의 벽화를 통일,정리하여 일련번호를 만든 공을 남긴 사람이다.두번째의 정리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1947년6월,그는 비행기사고로 조난당하고 지금 10호석굴에는 그의 작업일지가 석각되어 있다.
  • 이슬람교 상륙 거점… 에이티갈시원 웅장(서역문화기행:8)

    ◎동서문물 교류 실크로드의 중심지/중국 서쪽끝 도시 카시갈/녹색돔의 전도사 호오쟈가족묘… 궁전 방불/중국최초의 석굴시원 삼선동도 시외곽에… 생불벽화 유명 호탄에서 중국 최서단 도시로서 이슬람교의 중심지인 카시갈까지 5백9㎞는 필자에게 신선한 체험을 안겨주었다. 그밤이 팔월 한가위 어스름 저녁,고물딱지 장거리버스에 올랐다.승객은 온통 위구르족.꼬박 밤을 새우면서 열두시간을 달렸다.차창의 깨진 창틈으로 몰아치는 고춧바람에 기침이 나도록 맵디매운 담배연기,그리고 양고기 노릿내,그것들이 시간마다 코란의 독경소리와 범벅이 되어 눈과 귀를 찌르는데 창밖의 몽롱한 달빛에 스쳐가는 부연 모래빛,가도 가도 불빛 없는 바다에 뜬 느낌이었다. 카시갈은 옛날 소륵국의 도읍지.우전이나 마찬가지로 한나라 때는 36국의 하나요,당나라 때는 안서사진의 하나였다.「한서」,서역전의 기록대로라면 장안에서 9천3백50리(4천6백75㎞)지점,벌써 2천년전의 호구가 1천5백호에 인구 8천6백여명,거기다 시열,그러니까 오늘의 바자,곧 장을 말하는데 카스갈의 바자는 아직도 전중국을 대표하고 있다. 중국은 한나라 때부터 그들의 국토방위를 위한 최서단 요새로 생각했었다.후한 때의 명장 반초(33∼103)가 파미르고원을 넘어 쳐들어온 쿠샨왕조(대월씨국)를 대파하고 그의 부하인 감영을 무역의 사절로 로마에 파견한 것도 여기였었다.인도의 불교가 동점한 최초의 거점도 여기요,중동의 이슬람교가 상륙한 최초의 거점 또한 이곳이었다. ○로마로 넘어가는 관문 그도 그럴것이 카시갈은 알타이산맥으로부터 시작한 타림분지가 솟아오르면서 파미르고원으로 달려가는 바로 해발 1,294m의 낮은 고원지대라는 지리적 특색을 살린 곳이다.거기서 파미르고원을 넘으면 곧장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기스탄 등의 관문으로 통한다.그러니까 로마로 넘어가는 실크로드의 중국측 마지막 역참인 것이다. 중국에서 실크로드의 의의를 동서의 교통과 무역외로 서역의 침입을 막고 중원을 지키겠다는 국방에 두지만 그에 못지않은 의의는 예술에 있다.예술의 가시적인 성취는 무엇보다 석굴이다. 석굴은 사실상 「석굴사」 혹은 「석굴암자」의 약칭이다.그것은 벼랑이나 석굴속에 설시한 불교사원으로 초기불교가 「이진수행」을 제창함에 비추어 석굴은 적지였었다.석굴은 속세의 잡음이 들리지 않는데다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한 이점 탓에 불교의 고사와 원리를 벽화로,석가를 비롯한 보살·미륵을 조각하기에 좋았었다. 기원 3세기전부터 인도에서 성행했던 석굴 개착은 그로부터 대략 5세기 뒤인 동한말,그러니까 기원 200년 전후해서 중국에 출현했으니 그 최초의 석굴이요,최서단의 석굴이 카시갈에 있다.바로 「삼선동」. 삼선동은 위구르말로 「투쿠자우지라」.그 이름 그대로라면 세사람의 신선이 사는 동굴이지만 실상은 세개의 석굴을 말했다.카시갈에서 북쪽으로 18㎞지점,차크마크(흡극마극)강을 따라 황막한 사막을 달리다 문득 그 강둑에 멈추었다.대절한 택시기사는 남쪽 벼랑을 가리킨다.파미르고원에서 흘러내리는 설수의 강인데 강폭은 1백50m를 넘을 만큼 넓었다.필자 혼자서 차크마크를 건너서 조금전 택시기사가 가리키는 곳까지 족히 20여분을 헐레벌떡 뛰었다. 삼선동은 하상으로부터 15m쯤 벼랑,그 12m쯤 높이에 1m 남짓의 간격으로 나란히 뚫린 세개의 석굴이어서 필자는 지붕위에 매단 비둘기집 상자를 보는 느낌이었다.중간석굴이 약간 컸지만 대체로 높이 2m 남짓에 너비 2m쯤.거기서 벼랑끝도 3m 남짓 보였다. 그속에 한말 불교미술이 아직도 남았다니 나그네의 속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옛날 인수봉 타던 가락으로 적갈색 그 벼랑을 올랐지만 겨우 4m 높이서 쩔쩔매고 말았다.그 나머지 수직의 암벽은 어쩔 수 없었다.미리 알았더라면 조립식 사다리를 준비하거나 아예 벼랑의 상단에서 자일을 묶고 낙하할 것을. ○전래 불교미술의 원형 자료에 따르면 석굴은 굴마다 전후 2실로 나뉘었다고.서굴과 중간굴은 텅텅 비어 있고 오직 동쪽 석굴만이 진귀한 미술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특히 70여개의 불상이 사방을 벽화로 메운데다 조정(물풀을 그린 천장)에는 연꽃이 그려졌다고.그중에도 미술사적·불교사적 초점의 벽화는 그 벽화중의 좌불한 컷으로 ,그 좌불은 방격무늬의 가사를 입고 거기에 녹색·남색·홍색 등 세가지 색깔이 어울린 채색의 구성이라고 했다.그것은 인도불교가 중국 전래당시 불교미술의 초기적인 원형을 보인 것이다.무엇보다 쿠츠의 키질천불동이나 돈황의 막고굴보다 연대가 앞선데다 간다라의 영향조차 보이지 않는 점에서 주의를 받아왔었다. 삼선동 그 석굴에 발을 디디지 못한 채 돌아서는 필자는 청나라 시인 철보(1752∼1825)가 카스갈의 지방관으로 귀양살이하던 1810년 무렵에 쓴 「유삼선동」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칠십이동천,무지용탁석. 내찬소륵서,착공의암벽. 응고적선인,도명둔공적. 산황운불서,석쇄사여격. 위제고백인,욕상심전탕. 선인불가견,선동차친력. 적환여적선,탑연경수적.」 (세상엔 72동천의 선계가 있다지만,중 하나 설 곳 없네. 카시갈 서쪽으로 숨어,석굴을 파고 암벽에 기댔네. 신선이 여기로 귀양와서,명예를 피한 채 적막세계로 숨은 거지. 산이 거칠어 구름조차 깃들지 못하고,돌이 부서져 모래는 여울처럼 흐르네. 백길되는 아스라한 사다리에,발을 딛자 후들거리는 마음. 신선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고,사람은 여기 삼선굴에 올랐네. 귀양살이 이 사람도 속세의 신선처럼,우두커니 다시 누굴 따를까?) 근 2백년이 지났건만 차크마크강은 예대로 황량했다.예전의 사다리마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매일 다섯차례씩 예불 카시갈에서 불교의 유적이 삼선동에 상징적으로 남았다면 이슬람교의 유적은 카시갈이 이슬람교의 중심지답게 웅장하고 찬란하다.우선 이슬람의 예배당으로 4백50여년의 역사에 1만7천㎡의 면적을 지닌 맘모스의 에이티갈(애제□이)사원이 있고,이슬람의 일개 무덤으로 아바호오쟈(아파곽가)같은 궁전식 능묘가 그것이다. 카시갈시의 해방북로에 있는 에이티갈사원은 중국 최대의 청진사다.아랍어와 이란어의 복합사인 「에이티갈」은 곧 예배당을 뜻하는데 1426년 당시 카시갈의 통치자였던 사크서즈 미잘의 후예가 세운 것이다. 그 사원은 넓은 땅에 돔과 첨탑을 배합한 예배당·독경당·문루·연못 등의 장엄한 외형이 나그네의 시선을 끌지만 사원의 광장으로부터 중정·본전까지 사원 전역에매일 새벽부터 드리는 다섯차례의 예배,더구나 매주 금요일 하오에 드리는 주말예배의 성황은 열렬하다.신도 모두가 깔개를 깔고 이맘(예배의 인도자)이 암송하는 코란에 따라 무겁게 화창하는 군중의 소리는 파도되어 출렁이고,다시 신도들이 대지에 이마를 조아리며 무엇인가 외치는 장면은 경련을 일으킬 정도였다. 카시갈시 동북쪽 5㎞지점의 하오한(호한)촌에 있는 호오쟈의 무덤은 우리의 상식과 너무 달랐다.작은 개울을 건너 낮은 언덕을 올라 고목 서너그루 아래로 말굽형의 아치를 들어서면 왼쪽으론 줄줄이 높은 기둥의 예배당이요,바른편에는 기다란 담안으로 마치 궁전을 방불케 초록빛 타일의 돔이 우뚝 솟아 있다. 궁궐의 문을 열 듯 대문을 열자 그 안에는 침침한 광선에 무거운 침묵이 덤벼오면서 울긋불긋 현란함을 느꼈다.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것들은 야외의 봉분이 아닌 옥내의 설단식 무덤이었는데 강렬한 채색의 주단이 그 관을 덮고 있는 모습은 마치 1인용 텐트를 치고 있는 야영장을 방불케 했다. 3백50여년전 이슬람교 전도사였던 호오쟈로부터 5대에 걸친 그의 가족 72명의 집단 묘지였다.그 안에는 청나라 건륭황제의 부름으로 궁궐에 갔다가 황제의 구애를 거절하고 자살하였다는 호오쟈의 딸 향비의 묘도 있다.비록 전설이지만.
  • 볼링그린공원/뉴욕첫공원…각종조형물의 천국(브로드웨이“새바람”:2)

    ◎맨해튼 남단 1번지… 역사의 자리/각국 문물수용… 스스로 변신추구/북쪽보도 거대한 황소상­배터리파크의 한국전참전비는 관광명소 「볼링 그린」.브로드웨이 대장정의 출발점인 이 물방울 모양의 작은 공원에 서면 브로드웨이는 무성한 가지를 뻗어낸 거대한 나무로 치솟아 있다. 이 수령 3백년의 나무를 키워낸 볼링 그린은 미국민들이 자랑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시민정신 발상지자 아메리칸 드림의 시발역 이라는 역사의 무게로 오늘날의 브로드웨이를,그리고 맨해튼을,뉴욕을,미국을 떠받치고 있다. 뉴욕 최초의 공원이기도 한 볼링 그린을 중심으로 남쪽의 배터리 파크와 북쪽으로 월스트리트가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트리니티 교회를 포함,브로드웨이 1백번지까지 반원형의 도입부는 브로드웨이가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자양분 역할을 해온 역사의 거리다.부두에서 연결되는 배터리 플라자,스테이트 스트리트,화이트홀 스트리트등 세갈래 길을 통해 겉잡을 수 없이 밀려들어오는 유럽 문물을 볼링 그린이 수용하여 새로운 길 브로드웨이로 쏟아내고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브로드웨이가 오늘날 세계 문화 예술의 수도로 희망의 도시,가능성의 도시로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이 출발점이 품고 있는 다양한 자양분에서 비롯되고 있다.브로드웨이 또한 스스로의 끊임없는 실험과 변신의 노력으로 갈수록 생명력을 더해가고 있다. ○관광객 필수 코스 볼링 그린 남쪽에 1907년 건립된 대표적 건물인 세관 건물이 지난해부터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조지 구스타프 헤이 센터)으로 새출발하게 된 것은 브로드웨이에 풍요를 더해 줄 하나의 사건으로 기대된다.브로드웨이 문화의 출발점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이 건물에 이질적인 인디언 문화가 이식되는 것은 브로드웨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또 볼링 그린의 북쪽 보도 한가운데는 커다란 청동 황소 한마리가 눈을 부라리며 마천루 사이로 뻗어나간 브로드웨이의 소실점을 응시하고 있다.긴꼬리를 하늘로 치켜세운채 앞다리를 약간 낮추고 금방이라도 들이받을 자세로 서있는 이 황소 역시 새로운 도전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유명해지고 있다. 조각가 아투로 미도디카의 작품으로 1987년 10월에 세워진 높이 1·8m에 무게 5t인 이 황소상은 공원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어느날 밤에 이곳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도로 가져가라는 당국과 이곳에 기증해야겠다는 작가와의 입씨름이 수년간 계속되는 동안 황소상은 어느새 이 거리의 명물이 되고 말았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줄서서 기다려 사진찍는 필수 코스가 됐으며 그 많은 사람들이 뿔에 매달리고 올라타고 두드려도 이 황소상은 우그러지거나 손상되기보다는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반들거릴 뿐이다. 볼링 그린 남쪽 배터리 파크의 클린턴성(성)옆에 세워진 한국전참전비도 이 지역 또하나의 명물로 되어가고 있다.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배 타러 가는 길목에 지난 91년 세워진 이 기념비는 검은 화강암에 총을 메고 행군 하는 병사의 모습을 파내어 뻥뚫리게 만들었다.기단부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비롯,참전(의료지원단 포함) 22개국 국기를 새겨놓았으며 바닥에는 빙둘러서 각국의 참전병사수와 사망자수를 새겨놓았다. 한쪽에서 보면 자유의 여신상과 뉴욕만의 푸른 바다가 병사의 가슴속에 들어와 있고 다른 쪽에서 보면 맨해튼의 마천루가 병사의 온몸에 들어차 있는 이 절묘한 조각품은 새세기를 맞는 브로드웨이와 한국과의 새로운 연계의 상징물로 보여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17세기초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뉴암스테르담으로 건설되었으나 점차 지배권이 영국인들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1664년부터는 뉴욕으로 이름이 바뀌고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 경영 창구로 발전했다.볼링 그린은 당시 영국의 절대군주 조지 3세가 말을 타고 출정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던 식민통치의 상징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1776년 7월4일 필라델피아에서 전해진 독립선언의 소식은 영국의 압제에 시달리던 이 지역 주민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닷새후인 7월9일 성난 군중들은 볼링 그린 한복판에 서있던 조지 3세의 동상을 무너뜨리고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했다.그들은 이 동상을 녹여 4만2천개의 총알을 만들었으며 이 총알로 맨해튼 전투에서 4백여명의 영국군을 전사시켰다. ○세계적 금융가 형성 볼링 그린의 획기적인 역할 변화와 함께 바로 옆의 브로드웨이 1번지는 당시 영국인 사교클럽 케네디하우스가 있던 곳이었으나 독립선언후 조지 워싱턴 장군의 사령부가 들어서 영국군과의 싸움을 독려했다고 건물 벽면에 크게 붙여진 동판이 말해주고 있다. 이 건물은 1921년 새로 지은 것으로 과거 대서양을 주름잡던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라인사가 자리잡고 있다가 현재는 시티뱅크가 들어있다.또다른 대표적인 건물로는 호화건물의 극치로 1920년대 이 지역의 건축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쿠나드빌딩(25번지,현재 우체국)과 존 록펠러가 자신의 부를 쌓아올렸던 스탠더드 오일 빌딩(26번지,금융역사박물관)등이 15m폭 브로드웨이의 양쪽으로 높게 솟아 있다. 볼링 그린을 출발한 브로드웨이는 오른편으로 골목길인 익스체인지 플라자를 만나고 이어 다음 블록에서 월스트리트를 만나며 그 일대에 세계적인 금융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건너편에 위치한 트리니티교회와 교회묘지는 맞은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갈색벽돌의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의 첨탑은 주변의 마천루숲과 어우러져 기묘한 스카이라인을 이룬다.1693년 영국왕 윌리엄 3세때 처음 세워졌던 이 교회는 1776년 화재로 소실됐고,1839년에는 설계 잘못으로 붕괴된후 현재는 1846년 리처드 업존에 의해 세번째 건축된 것이다. ○묘비문에 역사가 이 교회는 신성모독의 도시로 자리잡혀 가던 초기 뉴욕의 주민들에게는 신성회복의 경고였으며 그후 3백년이 넘도록 뉴욕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특히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교회묘지는 마천루숲 사이의 오아시스 구실을 하고 있으며 명재상 알렉산더 해밀튼,보스턴 티파티의 주역 새뮤얼 애덤스,불후의 해군함장 제임스 로렌스등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묻혀 있어 이들의 묘비명을 차례로 읽어 나가노라면 미국 역사의 한페이지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느끼게 된다. 이 지역의 남쪽으로는 배터리 파크가 자리잡고 있다.바다로부터의 침략을 막기 위해 대포를 설치해 놓은 곳이라는 뜻에서 배터리(포대)라고 이름지어진 이 공원은 맨해튼섬의 남단에 위치해 브로드웨이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중앙부의 클린턴성을 중심으로 많은 기념물들이 이곳저곳에 위치해 있으며 자유의 여신상과 이민국이 있던 엘리스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곳이다. 배터리파크 북부의 스테이트 스트리트 17번지는 소설 「백경」의 저자 허먼 멜빌의 출생지로 유명하다.오늘날 그곳에는 뉴욕굴착박물관이 위치해 있어 3백년전부터 뉴욕의 도시계획 지하시설물 설치·철거등 지하공사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모든 것이 역사가 되고 그것은 보존되며 현재의 거울로 활용되고 있다. 볼링 그린을 중심으로 한 브로드웨이의 출발점은 이같은 끊임없는 거듭남으로 브로드웨이의 풍요를 약속하고 있다.중앙 분수대에서 뿜어내는 소담스런 물줄기를 감도는 바다 갈매기와 육지 비둘기의 평화로운 만남처럼 브로드웨이 1번지는 소박한 모습으로,그리고 넓은 포용력으로 조용하게 마천루 숲을 향해 그 문을 열고 있다.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자양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 철도요금 평균 4.8% 인상/15일부터

    ◎고속도통행료는 3.8% 올려 오는 15일부터 고속도로 통행료는 평균 3.8%,철도요금은 평균 4.8%가 오른다. 건설부와 교통부는 5일 도로 및 철도관련 시설의 안전관리에 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승용차·버스·중형이하 화물차의 고속도로 통행료와 무궁화·통일호·비둘기호 열차 및 철도화물의 요금을 평균 5%,새마을호 열차요금은 4%씩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수송효율이 높은 10t이상의 대형화물차요금은 3% 내리고 서민생활과 직결된 수도권의 전철요금은 지하철요금과 함께 올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승용차와 16인승이하 승합차 및 2.5t미만의 화물차(1종차량)는 서울∼부산 통행료가 1만2천2백원에서 1만2천9백원으로 5.7%,서울∼대전은 4천8백원에서 5천원으로 4.%씩 오른다.서울∼광주는 9천2백원에서 9천7백원으로 5.4%,서울∼대구는 8천5백원에서 8천9백원으로 4.7% 각각 인상된다.그러나 물류비를 줄이기 위해 10t이상 대형화물차(4∼5중)의 통행료는 서울∼부산이 2만6천9백원에서 2만6천1백원으로 8백원이 내린다. 철도요금은 새마을호의 경우 서울∼부산이 2만1천5백원에서 2만2천3백원으로,서울∼광주가 1만7천4백원에서 1만8천1백원으로 오른다.무궁화호는 서울∼부산이 1만2천7백원에서 1만3천3백원으로,서울∼광주가 1만2백원에서 1만8백원으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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