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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인도등 전위무용 한눈에/창무 국제예술제,새달5일까지 서울서

    ◎한국외 4개외국단체71명 출연/감각적 표현주의 동작 선보여 유럽과 한국의 실험성짙은 예술단체가 한데모여 개성있는 공연을 보여주는 국제예술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창무예술원 주관으로 지난 13일부터 11월5일까지(평일 하오 7시30분,토·일요일 하오5시)포스트극장(13∼11월3일)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11월4·5일)에서 펼쳐지는 「창무국제예술제」는 국내에선 쉽게 볼수 없는 소극장 아방가르드 예술제란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예술제에는 타악기그룹 「푸리」와 마임이스트 이건동,창무회등 3개 국내단체와 함께 프랑스 카마르고 현대무용단,네덜란드 마임이스트 유니스 모리스,독일 재즈연주가 시론 노리스,이탈리아 오기댄스그룹 현대무용단,인도 살라라 쿠마리무용단등 4개 외국단체에서 모두 71명이 출연한다. 외국단체중 지난 90년 5명의 단원으로 결성된 프랑스 카마르고 무용단은 연대기적인 줄거리나 무대장치보다는 단순화된 무대와 직접적인 신체표현으로 시적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에 치중하는 단체.작품성을 인정받아 프랑스 문부성의 후원을 받고있고 무용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번 서울공연에선 즐겁고 감각적인 표현주의 동작이 두드러진 「거위관리자」와 「부자와 가난뱅이」등 두 작품을 보여준다. 3세때 네덜란드로 입양된후 암스테르담과 베를린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한국인 여성 마임이스트 유니스 모리스는 한국인 무용수 2명,마임이스트 1명,록뮤지션 3명과 「비를 기다리며」를 합동공연할 예정.「비를 기다리며」는 4명이 출연해 한 여인의 분열된 정신세계를 남녀관계를 통해 부각시킨 작품이다. 이와함께 미국 애틀랜타 출신으로 모험성 강한 프리재즈의 전형을 보여주는 흑인 재즈베이스 연주자 시론 노리스는 「인간공화국」「베트남」「바빌론 부르스」「트로이여인들」등 자신이 작곡한 레퍼터리를 모아 들려준다.또 지난 79년 창단해 현재 13명의 상주단원으로 구성된 이탈리아 오기댄스그룹 현대무용단은 유럽인 공통의 정서를 살린 작품에 치중하는데 이번 무대에는 이탈리아의 정취가 물씬 드러나는 「경이의 상자」를 올린다. 한편 국내단체중 전통음악을 전공한 4인의 젊은 음악인으로 구성된 타악기그룹 「푸리」는 물질문명 추구에 따른 생명파괴를 다룬 음악 무용 무대미술의 혼합공연을 소개하며 창무회는 「비단길」「숨」등 창무회 우수 레퍼터리 5편을 골라 보여준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14∼16일=프랑스 카마르고 현대무용단 ▲17∼19일=유니스 모리스와 한국공연예술가 합동공연 ▲20∼22일=타악기그룹 푸리 ▲23∼25일=이건동 창작무언극 ▲26∼28일=시론 노리스 ▲29∼31일=이탈리아 오기댄스그룹 현대무용단 ▲11월1∼3일=인도 살라라 쿠마리무용단 ▲4일=창무회 우수레퍼터리공연 ▲5일=창무회 신작 「한」공연.
  • 국비 해외훈련/내년 940명으로 증원

    ◎장기/국장급과정 25명·일반과정 180명 선발/단기/개별·단체 구분… 7백명으로 대폭 늘려 정부는 공무원의 국제화·전문화 능력 배양을 위해 국비 장기해외훈련인원을 올해 2백명에서 내년에는 2백40명으로 늘리기로 확정했다.정부는 특히 4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기구 직무훈련과정을 금년 25명에서 내년 35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내년에 공무원 국비 단기해외훈련 인원도 대폭 늘려 7백명을 내보내기로 했다. 장기해외훈련은 2∼3급 국장급 과정과 4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기구 직무훈련과정 및 4∼7급 경력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과정으로 구분된다. 국장급과정 훈련은 외국의 유명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관련 정책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훈련기간은 1년이다.훈련공무원에게는 훈련 소요 직접 경비와 월 2천8백98달러(이하 미국기준)가 지급된다. 국제기구직무훈련은 국제기구,외국정부기관등에서 직무를 수행하거나 비교정책연구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훈련기간은 2년이내다. 4∼7급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과정은 외국의 유명대학원에서 학위과정을 이수하거나 연구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훈련기간은 영어권은 2년이내,일본 독일 프랑스등 비영어권은 2년6개월이내,중국 러시아 중남미등 특수지역은 3년까지 가능하다.훈련공무원에게는 직접 경비와 함께 월 1천4백49달러의 체재비가 주어진다. 내년에는 국장급 과정 25명,국제기구과정 35명,일반과정 1백90명을 내보기로 결정했다. 일반과정은 부처별로 토플시험성적을 감안,경쟁선발하며 이미 선발시험을 치렀고 10월에 대상자가 확정될 예정이다.일반과정 가운데 특수지역훈련만이 11월에 선발시험을 치르고 12월에 훈련자를 결정한다. 소속 부처의 추천에 의해 총무처장관이 선발하는 국장급 과정과 국제기구과정은 오는 11월 선발계획이 확정,각 부처에 통보되고 12월에 훈련대상자가 결정된다. 국장급 과정의 자격요건은 선발연도말 현재 53세이하인 2,3급 공무원으로 소정의 어학실력을 구비하면 된다.국제기구 직무훈련과정은 50세 이하의 4급 공무원 가운데 동일 직급에서1년 이상 국외훈련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선발자격이 있다. 국비단기훈련은 개별훈련과정과 단체훈련으로 나누어진다. 4∼7급을 대상으로 하는 단기개별훈련은 분야별로 어학시험을 통해 경쟁선발한다.내년 훈련대상은 올 12월에 선발계획이 통보되고 내년 1월 선발시험실시,2월 대상자확정등의 절차를 거쳐 결정된다.단기개별훈련은 6개월이내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며 훈련 직접 경비와 월 1천5백30달러의 체재비가 지급된다. 단기단체훈련은 2∼7급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훈련기간은 대개 1∼3주다.이 훈련은 해외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무원들에게 선진문물이나 현장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자는 취지에서 실시되는 것이다.내년에는 20∼25분야의 단체훈련이 계획되고 있으며 훈련공무원 선발은 각 부처장관의 추천에 의해 수시로 이루어 진다. 한편 정부는 올해 각 부처별로 1만여명의 6급이하 실무공무원을 대상으로 1주 정도의 기간 일본 대만등에 단기국외시찰연수를 실시한 것이 효과가 좋았다고 판단하고 내년에는 이 부분의 연수대상을 넓히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 로마/카타콤베(아랍서 지중해까지:18)

    ◎기독교도 숨던 지하무덤… 미로수백㎞/「쿼바디스」의 아피아가도 주변에 산재… 땅굴 곳곳 교인들 수난 흔적 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가게를 구경하다 깜박 카메라를 놓고 나왔는데 두어 블록이나 걷고 있을때 『시뇨레! 시뇨레!』하면서 주인이 쫓아왔다.베네치아에서 만들어와 판다는 세라믹 액세서리들의 그 담백한 아름다움에 잠깐 정신을 놓았었던 것 같다.자리까지 비운 채 여기까지 유실물을 갖다주러 오다니 싶어 얼굴이 붉어진 것은 비단 그 가게주인이 예쁜 아가씨였던 때문만은 아니다.잊은 물건 으레 찾으러 들이닥치겠지 싶어 필자 같았으면 오불관언 그냥 버티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아무 것도 아닌 이런 사소한 일이 실은 한 나라의 민도랄까 문화적 수준을 제풀에 측정케 만들고 절감케 한다.이탈리아 사람들은 너무 친절해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 곧잘 나서기 때문에 골탕을 먹는 수가 있다고도 하지만(하긴 필자도 그 때문에 엉뚱한 길을 헤맨 적이 한번 있기는 하다),이 아가씨의 친절은 여태까지도 쉬이 잊혀지지가 않는다.남의 얼굴에다 제 얼굴 디미는 간판들이나 판을 치는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미덕이요 소양이다.피곤한 신경으로 거리를 걷다보면 간판들의 그런 번잡스러움 같은 것까지가 그 나라의 수준을 금세 헤아리게 만든다. ○친절한 시민 인상적 소위 앞서간다는 나라들의 그것은 대체로 그저 눈에 뛸 정도의 글씨로 숨듯이 얌전한 반면 후진 나랄수록 그 요란함과 새치기는 극성스럽다.TV나 신문·잡지의 광고 역시 예외일 리가 없다.잠자리에 들기전 하다못해 잠깐이라도 TV를 켜는 새버릇이 이번 여행중에 붙은 것도 순전히 그 탓이었을 것이다.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책광고·상품광고 같은 것이 우리처럼 허풍스럽고 요란한 나라가 또 있을 것 같지 않아 겸연쩍고 창피했다.2등은 쓰레기처럼 잊혀지는 존재므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제1이어야 한다느니,「정복할 것이냐 당할 것이냐」하는 따위 히틀러의 발악이 무색할 지경의 광고까지 태연히 횡행하는 사회이니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로마 국립공원 뜰은 장식삼아 여기저기 놓인 세계 유명인사들의 대리석 흉상들로도유명한데 관광온 이쪽의 원로 하나가 이승만 대통령의 흉상도 있을지 모른다는 농담을 듣고 열심히 그것을 찾아다녔다는 얘기가 있다.결국 찾지 못하자 귀국해서는 그 얘기를 글로까지 썼다는 것이다.이런 얘기의 우스꽝스러움은 「유명인사」라는 그 개념상의 차질에 있다.독재를 했건 뭘 했건 유명하기만 하면 「문화적 인물」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이 원로는 착각을 한 것이다.인도의 간디수상도 신청을 했다가 거절을 당했는데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일까보냐는 개탄이 나올 법도 하다.이 얘기를 해준 것은 60년대에 이주해서 30여년째 로마에서 살고있는 H씨이다.문청(문청)시절 어울려 다니던 친구로 이번에는 10여년 만의 해후인데 불혹의 연치가 완연한데도 그 유머러스하고 직재적인 사고방식은 여일했다.그 무렵의 친구들이 모르는 새 모두 소원해졌는데도 이 H씨만은 예 그대로 와락 반가운 느낌부터 앞선 것도 그 탓이었을 것이다.끝내 로마에다 뼈를 묻을 작정이냐는 농담에,집과 차와 가재도구를 다 정리해 귀국해봤자 강남에서 몇달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되레 역습이다.자녀들이 장성하자 사위만은 모국청년으로 골라야겠다 싶어 몇 차례나 기회를 만들었으나 돈 타령,땅타령,줄리어드다 하버드다 하고 외국유학 얘기만 나오다 대화가 끊겨 끝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사돈될 사람들 간에도,당사자들 새에서도 대화가 그 모양으로 단절돼 내심으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데이트 몇번하면 으레 제 소유물로 알고 자질이야 있건 없건 유학물 먹은 일이나 자랑삼으면서 연애 따로,결혼 따로를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이쪽 젊은이들의 그런 사고방식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근교의 아파트단지 식당에서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모처럼 배불리 먹여주고 그녀가 차로 데겨간 곳은 카타콤베 앞이었다.로마에 와서 뭘 봤느냐는 물음에 실은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다는 필자의 동문서답이 마음에 걸려서 였을까.카타콤베는 옛 로마 서민들의 지하무덤이다.왜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느냐고 이번에는 그녀도 묻지 않았다.숙소에서 확인한 TV채널만도 20여개가 넘고 인근 지방의 유선방송까지 합하면 천여 채널이 넘는다는 각종 정보홍수에 에워싸여 살다보면 문명이니 문화적인 혜택이니 하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런 온갖 빤히 눈에 보이는 세계가 되레 지겨워질 나이에 그녀 역시 이르른 것같다.정부 각 기관과 문화관과 대기업의 본사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로마의 신시가지 에우르 구역을 도중에 거치면서 필자는 과천을 제풀에 연상하고 있었는데,카타콤베들은 그 너머 구아피아가도 인근에 흩어져 있었다. ○10만명 매장된 곳도 로마제국 때 닦여진 길이다.붉은 언덕과 짙은 색깔의 나무들이 갑자기 사방을 에워싸면서 차량마저 끊기다시피해 한적한 시골을 연상시키는 이 가도는 아닌게 아니라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속담을 역으로 연상시켰다.지금은 관광자원이 돼버린 옛 제국의 영화가 하층민들의 무덤까지도 그냥 버려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물론 이 무덤들이 특별히 유명해진 것은 박해를 받던 그 무렵 기독교도들의 지하 은신처요 포교활동의 근거지였다는 까닭이 더 크다.도망을 치던 베드로가 예수의 환영을 만나 저 유명한 대사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읊조리던 데가 아피아가도였고 그때 남은 예수의 발자국모형이 보존된 도미네 쿼 바디스교회가 이 인근에 있다.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쿼 바디스」나 「성의」 같은 것에도 물론 카타콤베가 나온다.지하 2·3층,어떤 것은 5층까지 파내려간 이 부근의 수십기 카타콤베들은 복잡한 미로와도 같아서 혼자서는 들어갈 수가 없고,10만여명이나 매장된 곳도 있으며,그 길이를 합하면 수백㎞에 이른다고 한다. 입구에서는 각국 언어별의 가이드들이 여남은명씩 되는 관광객들의 조를 짜고 있었다.어쩌다 네덜란드어 가이드를 무심코 따라들어가 설명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구태여 그런 것이 필요한 것같지도 않았다.사람 하나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만한 흙벽의 좁다란 통로와 역시 흙으로 된 계단을 몇번이나 꼬부라지며 내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가이드의 랜턴불빛에 기괴하고 참담한 낙서와 그림들이 홀연히 벽에서 나타나는가 하자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를 샛길들이 곁으로 불쑥불쑥 들이닥치곤 했다. 이런지하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돼버린다는 제풀의 상상은 기묘한 것이었다.나는 왜 여기 있는가,이번 여행은 뭐땜에 떠나왔는가 하는 따위 상투적인 의문들이 그제야 근거를 찾고 입지를 얻은 듯한 느낌이랄까,갑자기 천지가 막막했다.초기 기독교도들의 그것뿐 아니라 중세의 여러 종교적인 박해에도 이곳은 피난처가 됐던 모양으로 지상으로 올라오는 중간중간의 작은 방들에는 그 수난의 표상들과 기념물들이 흔적이나 조각들로 새겨지거나 놓여 있거나 했다.화살에 목이 꿰인 성 아무개,칼로 순교당한 누구 하는 식의 그런 전시물들 역시 숭엄한 분위기이기는 해도 청량한 느낌은 아니다.로마시내에는 4천여 승려들의 해골을 수백년에 걸쳐 모아놓은 해골사원이라는 으스스한 곳도 있지만,이런데를 특별히 찾는 사람들 역시 일반적인 심성의 그런 관광객들은 아닐 것도 같다. ○중세에도 피난처로 겨우 한시간 남짓이나 머물다 나온 지하에서 로마라는 한 도시의 허상을 통째로 별견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면 아마 과장일 것이다.사람사는 세상에는 으레 있게 마련인 그 말할 수 없이 구질구질한 거래와 아귀다툼들이 이를테면 로마라 해서 어떻게 이런 지하세계 같은데로 깨끗이 모두 매몰될 수가 있겠는가.필자가 카타콤베 속에서 저절로 떠올린 로마의 그 허상이란 것도 실은 숙소근처의 가게에서 사흘째 눈독을 들이고 있던 싸구려 골동품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우리 돈으로 2만여원쯤 되는 그 놋쇠물병은 연륜이랄 것도 쓸모도 별로 없어 보이는 얄팍한 물건 같았으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어떤 곡선형태라는 그 한가지 점만으로도 어딘가 정답고 신선하게 느껴져 값을 깎자느니 안된다느니 하고 며칠째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도무지 무뚝뚝해 보이기만 하는 가게의 뚱보주인은 필자가 들를 때마다 『적당하고 좋은 값』이라면서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이쪽 역시 기어이 에누리를 해서 그것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집념에 들떠 있었다는 것도 아니다.구태여 따지기라도 한다면 한계가 빤한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눈곱 정도로나 허용된 소위 그 「자유」라는 명제나 「자유스럽고 싶다」는 감정을 두고 필자도,그도 사실은 줄다리기흉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국제 통화제도 개혁 서두를때”/브레튼우즈 50주년 세미나 중계

    ◎「목표환율대」 도입… 변동폭 상하 10%내 제한/경상·자본거래 자유화 등 당면과제로 제시 『주요국 통화간의 환율은 현재 거의 균형 상태로,새로운 국제통화 제도를 도입하는 최적기이다.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프레드 버그스텐 미 국제경제연구소 소장) 『IMF(국제통화기금)의 설립목표인 환율의 안정과 무역의 균형적 발전을 달성하는데 있어 현행 제도는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세계 경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IMF 주도로 국제통화 제도의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폴 볼커 전 미 연방준비이사회 의장) 21세기의 새로운 국제통화 질서를 모색하기 위한 「브레튼우즈 기구(IMF와 IBRD)출범 50주년 기념 세미나」가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제 49차 연차총회 개막에 앞서 29∼30일(현지시각)열렸다.국제 금융계의 지도자들은 현행 국제통화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는 세계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국제통화 제도의 개혁에 관한 논의는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제기 됐었다.일본은 매년 1천억달러의 국제수지흑자가 쌓이고,반대로 미국은 대규모 적자가 누적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이번 세미나는 이런 논의를 공식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데 의의가 있다. 버그스텐 소장은 「21세기를 대비한 IMF의 개혁」이란 발표를 통해 세계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목표환율대(또는 환율변동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폴 볼커가 주도하는 브레튼우즈위원회가 지난7월 제시한 「선 국가간 거시경제 정책조정,후 목표환율대 이행」과는 그 순서가 다르다. 브레튼우즈 위원회는 목표환율대 제도로 이행하는 시기를 오는 2000년 이후로 잡고 있다.1단계로 미국,일본,EU(유럽연합)등 주요 선진국의 물가·성장률·금리 등 거시경제 지표를 일치시키고,2단계로 IMF가 거시경제 지표의 일치 여부를 감시할 수 있도록 각국의 경제정책을 감독·조정하는 체제를 마련하는 등 충분한 준비단계를 거치자는 주장이다. 반면 버그스텐은 사전 준비단계 없이 곧바로 목표환율대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브레튼우즈위원회의 제안보다 훨씬 급진적이다. 그가 제안한 목표환율대 제도는 미 달러화,일본 엔화,독일 마르크화 등 3대 기축통화간의 중심 환율을 정해 발표하고 환율의 변동폭을 상하 10%로 제한하자는 내용이다.작년에 있었던 유럽통화의 위기는 ERM(유럽환율조정 체제)의 환율 변동폭이 2%대로 너무 좁았기 때문이라며 그 폭을 10%대로 넓히고 석유 파동이나 독일 통일과 같은 외부 충격이 있을 경우,중심 환율을 적절히 조정하면 통화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버그스텐은 자신의 제안에 두가지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우선 환율을 일정 범위 이내로 묶을 수 있으므로 나라마다 환율안정을 위해 갖가지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고,따라서 물가안정이나 경기회복 등 대내적 정책목표에 주력할 수 있어 경제정책의 재량권이 오히려 커진다. 따라서 거시경제 정책의 조정체체 구축이 경제정책의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브레튼우즈 위원회의 제안에 난색을 표시하는 미국,독일,일본의 반대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향후 브레튼우즈 기구가 풀어야 할 과제로 ▲경상거래 자유화의 및 자본거래 자유화의 지속적인 추진 ▲지난 81년 이후 가입한 34개 회원국에 대한 SDR(특별인출권)의 신규 배분 ▲IMF의 지도체제 강화 ▲쿼터(지분률 및 투표권) 개선 ▲개도국 및 체제전환국에 대한 개발금융 지원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개발에 대한 지원강화 등을 꼽았다.
  • 기무치 있습니다/박정호(굄돌)

    요즈음 도쿄시내 식당가의 변화를 꼽으라면 한식당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뿐만 아니라 일식 대중식당에서도 「기무치(김치)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을 써 붙인 식당들이 서서히 늘어가고 있다.반찬용 김치뿐아니라 김치우동,김치볶음밥등 메뉴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비단 「기무치」뿐아니라 「가루비」(갈비)도 이제는 완전히 일본단어로 정착되어가는 단계로서 20∼30년후에는 김치와 갈비의 원조가 일본이라고 오해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농담도 제법 실감있게 들리곤 한다.최근 실시한 일본고교생의 「한국에대한 작문」 콩쿠르에서도 응모자 3천5백명중 태반이 김치를 소재로 한 글이어서 김치가 얼마나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50년대 미국에서 저가품의 상징이었던 일본제품이 고가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생선초밥(스시)의 지위가 크게 상승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과거에는 비위생적인 날 것을 먹는다고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던 뉴욕커들조차 점심의 별미로 생선초밥을 선택할 정도로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이처럼 미국인들의 생선초밥에대한 인식을 바꾸도록 한 배경에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는 힘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를 해외에 소개하는데 있어 상대국민들에게 말과 역사,문화를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음식을 맛보도록하는 것도 중요한 홍보기능중의 하나일 것이다.배추김치가 희귀한 아·중동지역공관 및 상사의 부인들이 「김치홍보」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하는데 대해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도 이런 까닭에서이다. 일부에서 한국보다도 일본이 김치를 더 많이 수출한다는 근심어린 오해가 있는데,확인해 본 결과 한국이 제1위수출국으로 해마다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93년에는 3천5백만달러 어치를 수출했고 올해에도 40%정도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일본은 자국통계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극소량을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음을 부기해둔다.
  • 북,김정일승계 맞춰 핵타결 속셈/미­북회담 답보배경과 전망

    ◎특별사찰·경수로 문제 종전 주장 고집/새달 3차회담서 합의… 내부 선전 노려 미·북 3단계고위급 2차회담은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있는 가운데 종반에 접어들고 있다. 양측이 이번 회담에서 타결을 도출해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회담장 주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정부의 한 당국자는 『합의 발표문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때문에 모두들 회담이 합의없이 끝날 경우에 대비하는 등 회담장 주변은 벌써부터 파장분위기다. 특히 양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핵대사와 강석주 외교부부부장이 각각 오는 30일 귀국비행기 예약을 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이런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이제 관심은 회담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끝나고 3차회담이 언제 열릴지에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양측은 28일 사흘째 수석대표회담을 열어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방안을 협의했으나 회담은 꽉 막힌 듯 숨통을 찾지 못하고 양측 입장은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한 외교소식통은 『이견을 보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 논의를 거듭했으나 어느것 하나의견접근을 이룬 것이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양측 수석대표는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핵동결의 세부적인 방안과 경수로 지원을 시간대로 연결짓는 기술적 문제를 중점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양측이 이견을 보인 부분은 특별사찰의 수용과 실시시기 문제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몇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경수로 건설자재가 도착되기 전까지는 핵투명성 확보를 위해 특별사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북한은 『남북간의 신뢰가 조성되고 관계가 정상화됐을 때 핵투명성은 보장될 수 있다』는 기존입장을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북한은 경수로지원과 연계된 핵문제 해결방안을 최대한 늦추려는 이행계획 방안을 고집하고 있다.대체에너지의 지원 시점도 논란이 되고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흑연감속로 완공예정 시점으로 원유나 전기시설의 제공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반면 에너지난이 심각한 북한은 흑연감속로 건설을 중단하는 시점부터 에너지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지난달 1차회담 당시의 합의문은 『미국이 경수로와 대체에너지 제공을 「보장」하는 즉시 북한은 흑연감속로 건설동결 등의 조치를 취한다』고 되어 있다. 북한이 핵연료봉을 재장전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위협용」일 뿐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회담이 계속되는 전제조건이 핵연료봉 재장전과 재처리를 하지 않는 것이어서 연료봉의 재장전은 곧 회담의 파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본국정부의 훈령을 받아 담판을 벌이고 있는데도 회담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북한 내부사정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김정일은 김일성의 사망 1백일을 맞는 다음달 16일쯤 주석직을 물려받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핵문제의 포괄적 합의라는 완전타결을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에 맞춰 잔치분위기를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인다.소식통들은 북한이 이번 회담을 축제준비단계 정도로 삼고 있는 것같다고 분석한다.애당초 이번 회담에서 타결을 이뤄낼 의지가 없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양측은 「핵문제 해결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했으나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는 정도의 발표문을 낼 것으로 여겨진다. 3차회담의 시기는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 예정시점을 전후해 열릴 가능성이 높다.2주일 정도의 휴회기간이 있다면 그동안 전문가회의를 한차례 갖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협상방식은 「벼랑끝 타기」이다.한참 밀고당기는 줄다리기를 벌이다 막판에 「숨겨놓은 카드」를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런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이번 회담 막판에 전격 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 마야·잉카유물 한눈에/「중남미 문화원」 생겼다

    ◎고양에… 가면등 1천5백여점 전시/전멕시코대사 이복형씨 27년간 수집 마야·아즈테카·잉카등 화려했던 중남미의 문화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남미 문화원」이 건립됐다. 이 문화원은 국내 유일의 중남미문화 전시공간이 될 뿐만아니라 아시아에서도 개인이 소장한 중남미 최대전시관으로 평가돼 학계와 학생등 관심있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 302에 위치한 중남미문화원은 1천2백평 대지에 연건평 3백평,지하1층·지상1층규모로 회화·토기·도자기·가면등 1천5백여점의 중남미 문화유물을 전시,오는 10월7일 개관된다. 이문화원을 개설한 전멕시코대사 이복형원장(63)은 『10만이 넘는 한국인이 중·남미대륙에 정착해 살고 이들 국가와 정치·경제등 다방면에 걸쳐 교류가 확대되는 시점에서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우리의 문화를 전달할 때 돈독한 관계를 다질 수 있어 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문화원에는 4개 전시홀과 영상세미나실,갤러리·연구실등이 갖춰져 있고 건물양식도 중앙홀의분수대,붉은 바닥장식·스테인드 글라스·기와등 중·남미풍으로 지어졌다. 전시홀중 토기전시실에는 주로 멕시코와 중미일대의 토기가 수집,전시돼 있는데 마야토기(AD 550∼950)를 비롯,코스타리카·파나마일대 조로테가토기등 기원전 1세기부터 14세기까지 다양한 토기를 선보이고 있다. 석기및 목기실에는 9∼12세기 당시 인디오들이 영혼과 물질을 혼합한 신비의 상징으로 숭배됐던 뱀모양의 멕시코 퀘잘코아뜰석조물등 코스타리카및 멕시코의 석기·목기가 주류를 이룬다. 가면전시실에는 인디오들의 축제·카니발·의식용등으로 사용되던 가면이 나무·가죽·천·철기·석기등 다양한 재료와 색채를 이용,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민속공예실에는 스페인과 동양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비단과 재봉틀·마구·악기·항아리·접시등 서민용품들이 전시됐다. 이들 유물은 이원장이 지난 67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아르헨티나·코스타리카·도미니카공화국·멕시코대사를 역임하는등 중·남미에서 27년간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골동품및 공예품점,벼룩시장등을뒤져 모은 것이다.(0344)62­9291
  • 미·북 전문가회의 결과와 고위회담 전망

    ◎「경수로」 북핵해결 최대 난제로/한국형 현격한 입장차 재확인/4∼5명 상주 영사관계 의견접근 미국과 북한은 연락사무소의 설치를 위한 평양회의와 경수로·대체에너지·폐연료봉 교체문제를 논의한 베를린회의가 끝난 뒤 똑같이 간단한 회의 결과문을 발표했다.주요 현안을 협의했으며,이를 본국 정부에 보고하기로 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또 결과문 끝머리에는 진지하고 충분한 협의를 했다는 사실도 덧붙이고 있다. 북한은 회의가 끝난뒤 미국과 협의한 결과를 모두 담은 긴 합의문을 공동으로 발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미국과 의견 일치를 본 부분에 대해 합의문 형식으로 공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특히 연락사무소의 설치를 위한 평양회의에 더욱 집착했던 것 같다.베를린회의와 달리 별다른 이견의 노출없이 3일만에 회의를 끝내는등 순항을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이 회의에서는 연락사무소의 설치 시기 말고는 거의 모든 절차적인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무부 관계자들도 연락사무소의 지위및 임무,외교관의 신분보장,통신보호,식료품 구입,사무실 임대 방안및 위치등 시시콜콜한 것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논의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회의가 순조롭게 끝나자 미국측대표인 린 터크에게 장문의 합의문으로 공동 발표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전문가회의는 현안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미측이 거부,결국 짤막한 회의 결과문만을 발표하고 자세한 내용은 본국정부에 보고하기로 한 것이다. 북한측은 이번 평양회의에서 아주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으로 전해진다.연락사무소의 첫 출발은 영사관계 업무부터 시작하되 4∼5명의 정식 외교관이 상주하는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데 대체적인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측은 또 핵문제 해결을 위해 연내 개설을 강력히 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러면서도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은 결국 정전체제의 종식을 의미한다는 논리를 전개,평화협정의 체결 문제를 들고나온 것으로 알려진다.미국측은 「남북 당사자대화」 원칙을 들어 이를일축했지만,이번 회의를 통해 북한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한 것을 성과로 꼽을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반면 베를린회의를 통해서는 미국의 유화적인 분위기 조성에도 불구,핵해법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했다.두차례의 대표접촉,네차례의 전체회의를 거쳤지만 경수로의 모형에 대한 양쪽의 견해차가 커 합의에 실패했다.북측대표인 김정우도 기자회견에서 『경수로를 입찰로 선택하겠으며,그것은 북한의 당연한 권리』라고 밝혀 경수로 모형에 대한 합의도달에 실패했음을 밝혔다. 북한은 또 베를린회의에서 경수로·대체에너지등 의제가 아닌 새로운 문제를 들고나왔다.건설을 중단할 2백Mw및 50Mw급 원자로에 대한 현금 보상문제가 그것이다.이 문제는 전체회의에서 나온 게 아니고,세이모아와 김정우의 대표 접촉에서 김이 전격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세이모아는 당시 『이 자리에서 논의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버린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김은 논의도 되지않은 이 문제를 기자회견에서 공식거론,앞으로도 계속 주장할 뜻임을 시사했다.이러한 북한의 지연전으로 또 다른 현안인 대체에너지와 폐연료봉 처리문제는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못하고 오는 23일 열릴 고위급회담 2차회의로 넘겨버렸다.어쨌든 전문가회의는 실무적인 문제를 준비하고 북한의 속셈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지만,핵문제의 해결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회의였다고 할수 있다. ◎갈루치 미차관보 일문일답/“경수로 4국 협의… 미 재정부담 준비/「현국형」 기술·정치·재정 3요소 충족” 미국 국무부 차관보인 로버트 갈루치 핵담당대사는 16일 하오 김포공항에서 이한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에 대한 경수로지원및 미국과 북한의 연락사무소개설 문제등에 대해 설명했다. 일문일답 요지는 다음과 같다. ­베를린 협상에서 북한측은 노형을 자신들이 국제공개입찰을 통해 선택하고 재정부담은 미국이 져야된다고 주장했는데. ▲한마디로 절충할 의사가 전혀 없다.북한의 역할은 관련국의 협의 사항을 따르는 것이며 노형을 선택하겠다는 주장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베를린 전문가회의는 협상을 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전문가회의에서 나온 얘기들을 오는 23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2차회의에서 구체적으로 협의하게 될 것이다. ­1주일전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특별사찰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특별사찰을 실시할지에 대해서는 신축적인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북한핵 과거의 투명성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또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복귀 역시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경수로 지원에 있어 러시아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가.이번 방한을 통해 제네바 2차회담의 새로운 전제조건들이 준비됐는가. ▲러시아가 기술지원에 관심을 보이기는 했다.그렇지만 우리는 한국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형 경로수가 기술·정치·재정적인 측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이번 방한을 통해 마련한 새로운 전제조건은 전혀 없다. ­북한이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지 않고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이 가능한가.평양과 워싱턴에 개설될 연락사무소의 기능은. ▲미국과 북한의 포괄적인 협상에는 남북관계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 포함돼 있다.연락사무소 개설논의는 협상이 아닌 사실파악 차원에서 이뤄졌다.평양회의는 실무적이고 예비단계이며 아주 유익했다.연락사무소는 일반적으로 두나라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할 것이다.미국과 북한 사이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라야 개설이 가능하다. ­23일 제네바 회담의 전망은.3차,4차회담이 계속 열릴 가능성이 있는가. ▲과거 경험으로 미뤄볼 때 회의는 약 1주일 가량 열릴 것이다.그 이후 계속 회담을 가져야 할지는 전망하기 어렵지만 많은 문제들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3,4차회담으로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경수로지원을 위해 국제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포함되는 국가는. ▲지금까지 한국·일본·중국·러시아등과 협의를 했으며 그밖의 아시아·유럽 여러나라들에게도 제의해 참여가 가능하다.미국은 재정적인 부담을 할 준비가 완벽하게 됐으며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 「12·12」는 우발적 충돌/전 전대통령 석명

    ◎정승화씨가 김재규 도와줘/“사전계획도니 군부반란 명확”/장태완씨 전두환 전대통령은 15일 『12·12 사태는 어디까지나 김재규의 10·26 내란사건 관련 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조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사건』이라면서 쿠데타나 군사반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이날 「12·12 사태」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서면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면서 발표한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쿠데타나 군사반란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태 다음날에도 대통령이 건재했고 헌정질서도 그대로 유지됐으며 행정부와 국회,사법부에도 변화가 없었으며 국민생활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전전대통령은 합수부측의 병력출동에 대해 『합수부가 정총장을 연행할 때는 수사관과 합수부에 이미 배속돼 있던 헌병들만 동원했고,나중에 다른 부대가 출동한 것은 국방부장관의 도피 잠적으로 군지휘계통에 공백이 생긴 가운데 정총장계열의 일부 지휘관들이 먼저 군통수계통을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군대를 출동시킨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전전대통령은 검찰에 제출한 「변호서」에서 사태발생 직전 청와대에 이웃한 제30경비단에 유학성 당시 국방부군수차관보등 8명의 장성이 모인 데 대해 『이들은 수도권 지역의 주요지휘관들로 정총장의 연행 수사가 불가피함을 설명해 이해를 구하고 군부내의 동요를 사전에 막겠다는 순수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이어 최규하 당시대통령에게 정전총장의 연행을 재가받는데 8시간이 걸린데 대해 『최대통령은 재가를 하는데 국방부장관의 배석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노재현국방부장관이 대통령의 출두지시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나 도피 잠적함으로써 재가가 지연됐다』면서 『처음에는 보고후 재가가 난 뒤에 정총장을 연행할 계획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로 절차상 차질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정총장은 김재규에 의해 10·26 내란의 군부후원세력의 핵심으로 역할을 하게 돼 있었고 실제로 내란음모의 2단계 계획인 「계엄령선포로 사태장악」까지 실현되도록 도와주었다』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합수부에서 조사된 정전총장의 10·26 전후 혐의내용을 열거한 뒤 『정총장은 김재규의 내란계획이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판단될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살피며 김재규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했다. 전전대통령측은 이날 대국민 발표문과 함께 검찰에 보낸 2백28쪽 분량의 답변서,84쪽의 「변호서」,정전총장의 10·26 관련 행적을 요약한 도표등을 함께 배포했다. 한편 12·12당시 수경사령관으로 신군부와 맞섰던 장태완재향군인회장은 이날 『전두환전대통령이 12·12는 10·26사건에 관련된 정승화 당시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충돌 사건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12·12는 사전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하극상에 의한 군부반란임이 명확하다』고 반박했다. 정전총장도 『전씨측의 이같은 주장은 모두 허구이자 조작』이라면서 『반성은 커녕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은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 전대통령 「국민께 드리는 말씀」 요약

    ◎“「12·12」는 사회 평온… 쿠데타 아니다” 주장/전 총장측이 먼저 자의적 부대 출동/보안사,내전 막으려 대응병력 동원 90년대도 반이 지나고 몇년 안있어 21세기를 맞이하게 되는 이 시기에 제가 70년대의 「12·12사태」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12·12는 박정희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된 「10·26」사건과 관련해서 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입니다. 범인은 대통령을 제거한뒤 자기계열의 군부세력을 이용해서 계엄령을 선포하여 사태를 장악하고 혁명위원회를 구성,정권을 탈취하려 했습니다. 김재규 스스로 털어놓고 확인한 이러한 「3단계 혁명계획」은 10·26의 성격이 내란사건임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정씨는 김재규와 동향이며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관계로 김재규의 추천으로 참모총장이 되었고 10·26 당일에는 범행장소인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인접해 있는 50m의 지척거리에서 수분에 걸쳐 수십발의 총성이울렸는 데도 평생 총격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그가 대수롭지 않은 오인사격으로 생각했다고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건직후 김재규로부터 대통령의 유고사실을 알게 됐으면 육군참모총장 직책을 맡고 있는 정씨로서는 우선 그 엄청난 사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진상과 경위를 알아보는 일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재규를 의심하면서도 그와 같은 차를 타고 그가 하자는대로 황급히 현장에서 벗어났습니다. 육군본부로 이동한 뒤에도 군과 휴전선의 이상동향을 알아보고 일단 긴급상황이 없는 것을 확인했으면 곧바로 정상적 조치들을 취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범행현장 별채에서 김재규를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과 그 곳에서 보고 들은 일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보안을 유지하라는 김재규의 지시대로 대통령권한대행(국무총리)과 상관인 국방부장관에게도 수시간 동안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재규의 내란계획이 실패로 판단될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살피며 김재규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는 계엄사령관이 된 뒤에는 『박대통령의 서거는 애석하지만 국가와 국민전체의 불행은 아니다』고 김재규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쿠데타를 해서라도 막겠다』고 정치적 저의를 드러냈습니다. 내란사건에 대한 수사는 바로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목적이었습니다. 소장이 대장을 연행했으니 「하극상」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나 이 사건은 수사담당자가 범법용의자를 조사한 일로 이해해야 합니다. 범인이 권부의 한 축인 중앙정보부장이었다는 사실,관련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바로 용의자 수사를 위한 영장발부권자(계엄사령관)였다는 사실등 통상적 방법과 순리적 절차에 따라 용의자를 연행·수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밟는 절차에 하자가 있었지 않나 의문을 품는 분들이 있고 사전재가가 나기 전에 정총장을 연행한 것도 시비가 될 수는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미리 연행계획을 보고한 바 있고 처음에는 재가가 난뒤에 정총장을 연행할 계획이었습니다.재가에는 국방부장관의 배석이 필요했으나 국방부장관은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로 출두를 지시했음에도 두차례나 도피·잠적함으로써 그 시간 만큼 재가가 늦어진 것입니다. 합수부측이 처음부터 쿠데타 목적으로 전투병력을 출동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정총장을 연행할 때에는 수사관과 수사관을 돕기 위해 합수부에 이미 배속돼 있던 헌병들만 동원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다른 부대가 출동하게 된 것은 국방부장관의 도피잠적으로 군지휘계통에 공백이 생긴 가운데 정총장 계열의 일부 지휘관들이 먼저 군통수체계를 무시한채 자의적으로 부대를 출동시킨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정총장측 지휘관들은 합수부와 대통령 경호부대인 30경비단을 향해 포격을 명령했는데 이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총리공관등이 있는 특정지역까지 사정권에 포함시키는 위험천만한 만행이었습니다. 서울 중심가에 미사일 발포까지 명령한 저들의 난동에 대해 보안사령부는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예방하고 사태가 내전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응병력을 출동,난동지휘관들을 체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김재규의 10·26내란사건 관련 용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사건」일 뿐입니다. 12·12사태 다음날에도 대통령께서는 건재하셨고 헌정질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행정부·국회·사법부나 국민생활에 아무런 변화나 영향이 없었습니다.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러한 사태를 「쿠데타」라고 하거나 「군사반란」이라 한다는 얘기는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당시 우리의 생각은 순수했고 우리의 판단과 행동은 정당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몇몇 개인의 자의가 아니라 필연적 인과에 따라 굴러가며 10·26이라는 반인륜적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12·12의 결단에 힘입은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승화·장태완씨,전씨측 「석명서」 반박/“계염사령관 불법 체포… 분명한 반란행위”/대통령 경호병력 사전결제없이 교체/정/무단 서울진입 무장병력 진압은 당연/장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은 15일 하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쌍용아파트 자택에서 전전대통령측이 검찰에 제출한 답변서에 대해 『반성은커녕 지금까지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서 『법정 말고는 어디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가 가만히 있으면 저들의 뻔뻔한 거짓말을 인정하는 꼴이 돼 말문을 털어놓는다』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전대통령측은 우선 정전총장의 내란방조의혹에 대해 김재규가 육본벙커로 오는 도중 차안에서 박정희전대통령의 시해사실을 알렸는데 이를 따지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그날 하오7시20분쯤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이 와이셔츠차림으로 뛰쳐나오며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다급한 김에 김부장에게 「외부소행이냐 내부소행이냐」를 물었으나 김부장이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고 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더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당시 신군부측은 정전총장이 차안에서 김재규와 앞으로 계엄이 내려질 경우 어떤 부대를 동원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상의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차안에서 김부장이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이 내용에 대해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하고 계엄령을 내려야 할 텐데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본 것은 사실이다.일국의 대통령이 돌아가신 비상상황에서 사후수습책이 마련될 때까지는 보안을 지켜야 하지만 참모총장으로서 동원가능한 부대를 염두에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전전대통령측은 시간을 끌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기회주의적 자세를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흉계다.김재규와 육본벙커로 돌아오자마자 전군에 비상을 걸어 북한의 남침에 대비토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또 자체방위력이 없는 육본을 방어하기 위해 9공수에 출동을 명령했다.전방부대는 북한병력의 움직임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양평에 있던 20사단에 대해 서울로 이동할 준비를 시켰다.장태완수경사령관을 불렀는데 1시간후쯤 육본벙커로 왔다.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언제 알았는가. ▲그날밤 11,12시무렵 김비서실장으로부터 범인이 김정보부장이란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해 듣고 김진기헌병감에게 체포토록 명령했다.수사관들을 차출하는등 준비에 1시간가량 걸렸을 것이다.체포한 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넘기라고 지시했다. 신군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내가 김재규와 한통속이었다면 왜 나와 사이가 좋지도 않던 보안사령관에게 수사토록 했겠는가. ­전두환전대통령등 12·12관련자들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는 당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국가적인 비상사태를 수습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계엄사령관이다.전두환의 합수부도 따지고 보면 법에 명시된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 시해범 색출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참모총장의 권한중 일부를 위임해준 것에 불과할 뿐이다. 국민들이 언제 전두환일파에게 참모총장의 공관을 무력으로 점령해 계엄사령관을 체포할 권한을 줬느냐. 그것도 대통령을 경호하고 있던 헌병대병력을 자기들 수하의 부대로 교체하고 사전결재를 9시간이나 미루고 감금상태에서 사후결재를 한 것이 어떻게 합법이냐. 또 12·12사태당시 수경사령관이었던 장재향군인회장(63·종합11기)도 전전대통령의 석명내용에 대해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면서 『지휘계통 없이 불법적으로 서울시내에 들어온 무장병력은 당연히 진압해야 하며 이 진압행위를 반란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정치군인들의 궤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1개분대이상 규모의 무장병력이 서울시내에서 돌아다니려면 24시간이전에 참모총장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고 반드시 헌병과 함께 다녀야 한다』면서 『수경사령관은 통보가 없는 병력에 대해서는 즉시 연행하거나 포획·사살하도록 임무가 부여돼 있다』고 당시 임무를 설명했다.
  • 삼성코닝 구미공장/우리 기업에선:21(녹색환경가꾸자:77)

    ◎폐수 하루 4천t 재활용… 연2억원 절감 말끔히 손질한 잔디밭과 곳곳에 서있는 정원수들,그리고연못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비단잉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외국의 잘가꿔진 공원속에 서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경북 구미시 구미 제2공단 삼성코닝 구미공장. 하루 7천여t의 폐수가 생산되고 있는 공장안이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의 쾌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 공장은 컬러TV 브라운관과 전자회로판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최대한 재활용하고 폐기물의 발생원 감소에 주력,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다.이 공장에는 1천4백여명의 사원이 컬러TV 브라운관과 전자회로판을 생산,연간 2천1백억원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그린라운드를 예견해 92년부터 환경보전을 경영활동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삼성코닝은 배출시설및 오염방지시설의 운영과 폐기물관리등이 뛰어나 환경처로부터 올해 환경관리 모범업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공장은 지난 89년 준공이래 5년간 수질분야에 35억원,대기분야 30억원,기타 7억원등 72억원이 투자됐다. 3천여평의 부지에 하루 1만1천t을 처리하는 폐수처리장에는 반응조·침전조가 설치돼 있으며 최종 처리장은 슈퍼 그래픽으로 단장해 수영장으로 착각할 만큼 깨끗하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브라운관 연마제 약품등 하루 7천t의 폐수는 폐수로로 유입,우선 물리·화학적 폐수처리장인 반응조에 모아진다.이곳에서 약품처리된 폐수는 다시 침전조로 보내져 슬러지를 거른뒤 상등수 4천t은 또다시 브라운관 연마공정에 보내 재사용,폐수 발생을 줄여 연간 2억여원의 용수비를 절감하고 있다. 또 브라운관 제작과정에서 소요되는 월 사용량 20t의 알코올 가운데 90%인 18t을 수거,재활용하고 각 공정마다 폐기물 분리수거함을 비치,전사원이 자원 재활용에 앞장서고 있다. 회사측은 정화처리된 최종방류수의 자체기준을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은 배출허용 기준치인 1백ppm을 20분의1인 5㎛으로 크게 내려 정하고 그마저 처리과정에서 3∼4ppm까지로 더 내려 거의 원수에 가까운 맑은 물로 처리하고 있다. 이곳의 방류수로 양어장을 만들어 비단잉어·붕어등 민물고기 2천여마리를 기르고 있다.
  • “수납대장 검증 불가능” 맹점 악용/세금착복 3가지 수법

    ◎“세금 깍아준다” 유혹한뒤 가짜도장 날인/청탁받고 수납부에 「납세」 소인만 찍기도/법무사가 “대행해준다” 속여 영수증 위조 인천시 북구청 세무공무원들의 세금착복사건은 기존의 세금수납체계의 허점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러 왔음이 드러나고 있다.특히 이같은 세금횡령사건은 비단 인천 북구청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담당공무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범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공무원들은 각종 세금납입 건수가 한번 납기에 적게는 수십만건에서 많게는 1백만건이 넘는등 방대한 분량으로 수납대장의 검증이 불가능한 현 세금수납체계의 맹점을 이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구청의 세무행정이 아직 전산화가 안된 점을 악용,납세자에게 가짜 은행소인이 찍힌 납세필증을 발행해주고 세금을 착복하는 수법을 썼다. 수사당국과 시청의 조사결과 비위공무원들은 세가지 유형으로 범행을 저질러온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납세의무자가 직접 은행에 내야할 지방세납부를 세무공무원이 싼 액수로 납부해 주겠다고 「손님」을 끌어들인뒤 미리 만든 가짜도장을 찍어 세금을 가로챘다. 또다른 방법은 세무공무원이 친분있는 납세의무자나 동료직원의 청탁을 받아 허위로 소정의 세금을 납부한 것처럼 수납부에 소인하는 방법이다. 이들 공무원외에 등기업무등을 대행해주는 법무사도 가짜도장을 만들어 세금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져 지방세행정의 난맥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번에 시청에 적발된 조광건법무사무소의 경우 민원인들로부터 위임받은 등기업무를 하면서 2개의 가짜 은행지점도장을 만들어 사용했다. 조법무사는 등기과정에 필요한 등기소보관용,등기서류첨부용,납세자보관용,구청보관용등 은행보관용을 제외한 4개의 영수증에 자신이 만든 가짜도장을 사용했다. 현행 수납체계는 건물 또는 토지구입자가 취득가를 구청에 자진신고하면 구청측은 세금액을 부과하고,납세자가 은행에 세금을 내면 은행은 납세자에게 납부영수증을 내주도록 하고 있다. 또 은행은 구청보관용 영수증을 구청에 제출하고 구청측은 납세자의 납세액이 적힌 수납대장의납세액과 은행측의 구청통보용 영수증원본을 대조,납세사실이 확인되면 수납대장 확인란에 구청용 소인을 찍음으로써 납세절차가 끝나게 된다. 법무사무소는 이같은 수납체계에도 불구하고 은행을 거치지 않고 세금납부업무를 해왔다. 이로 미루어 법무사의 비리는 수납대장을 관리하는 관련공무원들과의 결탁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시청과 검찰의 시각이다. 사건직후 이 법무사무소에서 북구청업무를 담당해오던 김모씨(31)가 북구청의 전화연락을 받고 잠적했다는 사실만 봐도 구청의 세무직원과 법무사무소와의 결탁여부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일이며 앞으로 검찰수사에서 이 부분을 어느 정도까지 밝혀낼 수 있을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이산가족 재회」 촉구 1천7백만명 서명

    ◎1백29국서 참가… 서명 세계신/서명지 쌓으면 33층건물 높이 일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위원장 조영식)가 고령의 이산가족 1세대들의 재회를 위해 지난해 6월부터 대대적으로 벌여온 「남북이산가족 재회촉구 범세계서명운동」이 최다국가 최다서명의 세계신기록을 수립,조만간 기네스북에 기록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서명운동추진 중앙본부는 9일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가두성명 및 서신발송,직접 면담등의 방법으로 지난 8월15일까지 실시한 서명운동에 1백29개국 1천7백3만5천3백5명의 인원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가 91년 쌀개방반대서명운동에서 수립한 기네스북 최고기록(1천3백7만8천9백35명)보다 4백만명가량 많은 것이다. 서명은 한장에 30명단위로 했으며 전체서명지는 3t 무게이며 높이로 쌓으면 33층 건물높이인 1백여m가 된다. 서명자 가운데는 국내 각계 인사들과 시민들은 물론 유엔의 임원들과 국가지도자,노벨상수상자등 5만5천여명의 외국인들까지 참여했다.이번 서명운동의 첫번째 서명인은 김영삼대통령으로 중앙본부가 본격적인 서명운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단계에 있던 지난해 2월 대통령당선자의 자격으로 서명을 했었다. 이후 김대중아·태평화재단이사장,김수환추기경,한경직목사등 정치·사회·종교계의 원로인사들이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또 해외지부등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등 노벨상수상자 33명과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슐레이만 데미랠 터키대통령등 국가지도자 10여명,유엔 관계자 10여명도 서명했다. 이날 세계 신기록수립을 공표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서명을 한 조위원장은 『남북이산가족 재회를 성사시키려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으나 거의 실효성이 없어 전 세계에 마지막으로 호소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당초 목표보다 참가자들이 훨씬 많아 매우 기쁘다』면서 『이 서명으로만 끝나지 않고 광복 5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꼭 이산가족들이 서신왕래라도 할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국민들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협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고소득층 과소비 자제해야 한다(최택만 경제평론)

    최근 국내경기가 과열조짐을 보이면서 과소비풍조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지난 8월중 해외여행경비와 수입외제차 판매대수 등 두가지 지표가 사상 최고를 기록,소비동향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8월 한달간 해외여행자가 쓴 외화가 5억달러를 넘어섰고 외제차판매대수도 5백대를 돌파했다. 올들어 8월말까지 해외여행수지는 10억달러 적자가 났고 외제차 판매대수는 2천대를 넘어섰다.지난해 해외여행수지 적자총액이 5억6천만달러였고 외제차 판매대수가 1천9백대인 점을 감안하면 올들어 증가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여행수지 적자통계는 해외여행자가 은행 등에서 공식적으로 환전한 것을 집계한 것이다.여행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외화를 바꾸어 나가거나 LA와 홍콩 등지에서 원화를 달러로 환전한 것 등을 감안하면 적자폭이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최근 여행수지는 사정분위기 퇴조와 과소비풍조의 재확산,방학을 이용한 단기연수 명목의 대학생 해외여행 등의 요인에 의해 적자가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동남아등지에서 퇴폐·향락적인 관광 뿐이 아니고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골프와 낚시 등 레저를 빙자한 관광을 즐기면서 외화를 마구 써 적자를 누증시키고 있다.외제차의 경우는 대미무역마찰을 고려해 세정당국이 구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중단하자 판매대수가 부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과소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서울 강남의 의류상가에는 값비싼 외국옷들이 즐비하다.한벌에 몇백만원하는 것이 많다.옷 뿐이 아니다.손수건 한장에 6만∼7만원하고 스타킹 한켤레에 15만원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잠옷 한벌에 1백50만원짜리가 있다.수입의류는 비싼 것이 더 잘 팔린다고 하니 아연할 수 밖에 없다. 「입는 사치」가 어린이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어 걱정이다.현재 국내에는 이시코시(일본),베베(미국),베네통(이탈리아),오조나(프랑스)등 세계각국의 유명상표 아동복이 속속 수입되고 있다.이들 제품은 순모 원피스가 17∼20만원,스웨터가 7만∼10만원으로 국산보다 4∼5배가 비싸다.하지만 성인 외제의류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과소비를 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땀흘려 번 돈으로는 그렇게 쓸 수가 없다.중산층이상 고소득층 아니고는 돈을 그렇게 쓸 수 없을 것이다.고소득층 가운데도 불로소득계층의 소비는 한층 더 낭비적이다.이들 계층은 우리사회가 마치 대량소비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여 「낭비를 미덕」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이들은 『내돈을 내가 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두가지의 기본적인 모순이 함유되어 있다.고소득층의 과소비는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인 빈곤감을 높여준다.빈곤감 또는 박탈감이 심화되면 사회적 갈등과 마찰을 초래하고 심한 경우에는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양분되는 이중구조를 조장하게 된다.고소득층의 과소비는 중산층으로 파급되고 심한 경우는 저소득층에도 충동적인 구매를 이식시킨다. 또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가치를 경시하는 대신 배금주의나 물질주의를 확산시킨다.낭비는 그들 2세의 정신적 가치나 심성도 황폐화시키고 있다.이처럼 이들의 전시적인 과소비는 자신들의 가정은 물론 우리사회 전체에 위해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소득층 또는 불로소득 계층의 낭비적인 소비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소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절약이 미덕」이라는 건전한 소비문화를 창출하는 것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낭비와 과소비를 제거하는 동시에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중시되는 진정한 소비문화를 꾸며 나가야 한다.절약이 미덕인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솔선하여 과소비를 극력 억제해야 할것이다.특히 고소득층은 성찰을 통해 가시적 소비욕구를 자제하거나 당분간 유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과소비를 억제하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계층은 다름아닌 불로소득 계층이다.이들의 경우 자력에 의해 소비를 줄일 수 없도록 생활자세가 바뀌어 버린 경우도 있다고 들린다.더구나 이들 불로소득 계층 자녀들의 낭비적인 소비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측은한 생각이 든다.이들은 자동차가 없으면 한발짝도 못가는 것으로 알고 유명상표가 붙은 옷이 아니면 입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이들 2세들은 절약이라는 단어를 모른다.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불로소득계층의 부모들은 그들 2세를 위해서 과소비를 자성하면서 절제있는 생활로 돌아가기를 당부한다.그들이 자체적으로 낭비를 없애고 절약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타력(세무조사·시민운동)에 의해서라도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우리 2세들에게까지 물질만능의 천민자본주의적 사상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야 없지 않은가.
  • 서울대 교수 34명 계약제 채용/기간 조교수 4년·전임강사 2년

    ◎내년부터 정·부교수까지 확대 서울대는 지난 1일 조교수·전임강사 34명을 계약제로 채용한데 이어 내년부터 교수계약채용제를 부교수·정교수까지 전면확대실시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7일 교수들의 연구의욕을 높이고 경쟁적인 연구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내년 1학기부터 신규채용되는 교수전원에 대해 3년간의 계약기간을 명시해 채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는 최근 교무담당학장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신규교수임용규정개선안」을 마련한 데 이어 8일 학장회의를 거쳐 최종확정할 예정이다. 이 개선안에 따르면 95학년도 1학기에 채용되는 정교수와 부교수는 3년의 계약기간을 명시해 임용한 뒤 교수의 능력에 따라 정년을 보장하든지,아니면 3년후 연구업적과 교육업적 등을 평가해 정년보장 또는 재계약여부를 결정하게 된다.또 조교수와 전임강사의 경우 올 2학기 신규채용방식과 마찬가지로 각각 4년과 2년의 계약기간을 명시해 임용한다. 서울대는 개정된 임용규정에 따라 오는 12일 교수채용공고를 낸 뒤 10월22일까지 지원을 받아 내년도 1학기에 40명정도의 교수를 신규채용할 방침이다. 서울대는 지난 3월 94학년도 2학기 신규채용조교수와 전임강사에 대해서만 각각 4년과 2년의 계약기간을 명시해 채용공고를 내고 이달 1일 모두 34명의 교수를 채용했다. 서울대의 이같은 조치는 본격적인 「계약교수제」 도입에 앞선 예비단계로 보여 다른 대학의 교수채용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입체형상 프린터기 파버 개발/PC입체영상 그대로… 팩스 전송까지

    ◎자동차모델 개발·수술에 응용… 큰성과 개인용컴퓨터로 입체형상을 뽑아낸다.과학월간지 디스커버 최근호는 지금까지 컴퓨터 모니터위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입체형상을 프린터로 원래모습 그대로 입체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3차원영상을 그대로 뽑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팩스로 전송할 수도 있는 이 신기한 기계의 모델명은 「파버」.「스테리오리토그래퍼」라고도 불리는 이 3차원프린터는 하나의 2차원영상(평면)을 한번에 하나씩 차례로 쌓아가는 방식으로 디지털 컴퓨터 파일을 3차원물체(입체형상)로 전환한다. 예를 들어 커피잔을 하나 만들고 싶으면 그래픽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입체영상을 만들어 이를 파일로 보관한다.그다음 언제든지 그 파일을 불러와 프린터를 동작시키면 똑같은 컵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도 있다. 현재 이 3차원프린터를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는 곳은 미 자동차생산업체 크라이슬러사.캘리포니아주 발렌시아에 있는 이회사 디자인팀은 새로운 자동차모델을 개발할때 이 프린터를 사용해 쉽게 모형을만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채택되지 않을 수도 있는 모형들을 수도없이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절약되는 셈이다.이 3차원프린터가 사용되는 곳은 비단 제조업체뿐이 아니다.복잡한 구조를 연구해 이를 방정식으로 풀어내는 수리물리학,생명공학 등 그 응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이중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의료분야.미 UCLA대학병원은 「파버」를 사용해 컴퓨터 단층촬영결과를 모형으로 만들어낸다.그리고 이를 가지고 수술구상을 함으로써 실제로 수술성공률이 높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 3차원프린터는 플라스틱만을 재료로 쓰고 있다.그러나 조만간 금속을 이용하는 기술도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여기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 쪽은 미 해군.바다 한가운데서 군함의 부품이 파손될 경우 3차원프린터를 이용하면 쉽게 교체해 정상적인 운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이며 입체모형회사의 대표이기도 한 마셜 번스박사는 『앞으로 15년내에 파버는 가정용으로 널리 보급될 정도로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며 『이 기계는 직접 보지 안고는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나의 산행/신원영(굄돌)

    세상사 그냥 되는 일이라곤 없다.땀을 흘리지 않고 노력없이 이룩되는 일이란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는 세상의 이치일 것이다. 밤을 낮삼아 연구실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학자는 없다.피나는 훈련과 거듭되는 연습없이 정상을 차지한 운동선수 역시 없다. 이 비정하고 엄연한 사실은 인류가 지구에서 생존하면서부터 계속되어온 불변의 진리이다. 나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출판업 역시 전쟁이다.출판사 수가 전국의 서점수보다도 더 많은 8천7백여개에 달하는 웃지못할 현실,이해할수 없는 출판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부단히 벌이는 생존전략은 비단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다. 새로운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저자관리,제작,영업,거래서점의 매장관리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다른 생각을 해볼 틈이 나질 않는다.일속에 파묻혀 하루해가 저물고,또 한해를 보내게 되다보니 벌써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일의 성취감에 때론 만족도 하지만 이면에 쌓이는 스트레스 또한 적지않다.어느 때부터인지 예전과 같지 않은 건강,몸에이상한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솔직한 고백이다.그러다보니 어떤때는 본의 아니게 신경이 과민해지는 경우가 많다.나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산을 타는 것이 제격이라는 한의사 친구의 권유에 따라 시작한 것이 바로 등산이다.40을 넘기면서 시작한 이 산행은 이제 한주일도 거를수 없는 주요한 행사가 되었다. 한주일 내내 사람과 일과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 생활하다가 땅과 자연의 기를 받으면서 오르는 산길은 복잡한 삶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며 새로운 활력을 충전시켜 준다.계속 흘러내리는 땀으로 한바탕 목욕을 하노라면 쌓였던 체내의 노폐물이 배출됨은 물론 마음과 육체까지 주일내내 가뿐함을 느낀다. 더욱이 산 정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상쾌한 그 기분은 극락이나 천당이 아닐까.고향의 친구,학교동창,때로는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오르는 산행이니 주고받는 대화가 격의없고,덕담이고,고담준론이니 부담이 없다.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면 대자연속의 작은 인간의 모습을 볼때마다 느끼는 겸손함,그것 또한 소중하고 좋다.
  • 대학주사파 설득 교수가 나서라/최호중(시론)

    지난 8월초에 세계자유민주연맹의 연차 총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세계반공연맹의 후신인 이 민간단체가 공산주의 총본산이었던 옛 소련의 수도에서 대대적인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많이 변한것을 절감케 되지만,러시아 정부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크렘린 내에 전대표단을 불러 환영 만찬을 베풀게 하는등 극진한 환대를 한 사실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총회에서는 러시아를 비롯, 개혁과 개방을 추구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정치적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원만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을 다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인류 보편의 기본가치인 자유와 인권과 행복을 확보함에 있어 공산주의와 통제경제를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가름이 난만큼,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제질서를 굳히는데 힘을 모아 나가자는 결의를 하필이면 바로 이 모스크바에서 공동 코뮈니케로 발표하게 됐는지 어리둥절하면서도 자못 진지했던 회의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총회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한 김에 제정러시아의 역사를 살펴보고 또 그 유물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그러면서 느낀 것은 과연 왕정을 뒤엎고 혁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극한 상황이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왕족이 그 영화를 누리려고 민생을 도탄에 빠트렸으니 누구라도 더 참고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갔다.그런데 노동자 농민들을 다 잘살게 해주겠다던 공산혁명은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공산주의는 비록 목표하는 것 자체는 좋았다 하더라도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 못됐고,더욱 잘못된 것은 공산혁명을 통해 집권한 세력이 지난날 왕족이 누린 것과 똑같은 영화를 누리기에 급급했을 뿐,인민을 잘 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이었다.말하자면 다른 방편으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는 처지에서 권력을 잡기위해 인민을 속이고 그들을 교묘하게 이용한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은 비단 소련에서만 그런것은 아니었다.모택동 정권하의 중공도 마찬가지였다.외빈을 조어대에 초치해 놓고 만찬을 대접하면서 이 방은 옛날에 건륭황제가 자주 찾았던 곳이고이 술과 이 요리는 그가 즐겨 들었던 것이고,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식기와 탁자도 모두 그때 사용했던 것이라고 하면서 마치 황제자리에 앉기라도 한 양 우쭐해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은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니다.주석궁이라는,대궐을 무색케하는 어머어마한 집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살면서 노경에 접어든 김일성은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에 나와 밥을 질질 흘리면서도 손에는 늘 다이아몬드가 수없이 박힌 최고급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모든 인민에게 쌀밥에 고깃국,비단옷에 기와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공수표를 해마다 되풀이해 오면서 말이다. 옛 소련과 동구권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네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라는 억지뿐이었다.그 「우리식」이라는 것은 이미 손을 들고만 공산주의 방식과 다를 것이 없었다.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외에,안으로는 혹독한 억압을 강화하고 밖으로부터는 자유와 개방의 바람이 스며들지못하도록 막는 일이었다.그 결과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파탄,그리고 북한주민이 겪어야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정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사회일각,특히 대학가에 주사파가 오늘도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시대착오적인 북한의 주의주창을 맹종하고 있는 그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고 있든지,아니면 자생적이든지 간에 우리는 더 지체하지 말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어느 사회고 욕구와 현실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만계층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억울하고 막막하게 여기는 현실을 타파해 보려고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그렇다고 어떠한 언동도 모두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가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우리 대학가를 좀먹고 있는 주사파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맹종자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그 책임은 마땅히 우리 사회전체가 져야 하지만 아무래도 일차적 책임이 교수진에게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지금까지는 학원내 이상기류를 의식해서 일부교수들이 학생선도의 본분을 애써 기피하거나 외면하고 국내외 학술회의 참석,언론등에 대한 기고,혹은 정부 각 기관에 대한 자문역할등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어온 감이 없지 않지만,이제는 교수 모두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해야 한다.그래서 모스크바에서 버린 길을 뒤늦게 서울에서 쫓아가는 우를 범하려하는 것을 방임해서 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나라와 겨레의 장래가 어지럽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 “일 동대사의 「진보」는 신라유물”

    ◎고대 최재석명예교수,논문통해 주장/유물 담은 궤짝의 일식명칭 분석… 제작국 유추/일본서기에도 신라서 사들인 기록 남아 일본 나라(나양)의 동대사 정창원은 엄청난 명품을 소장한 고대문화유물의 보고.AD 756년 천왕 쇼무(성무)가 세상을 뜬 뒤 49재일에 왕후 고메이(광명)가 이 절에 바친 이른바 진보로 불리는 유물들이 특히 유명하다.일본 학계는 그동안 이들 유물의 출처를 당이나 일본 자체생산품으로 해석해왔다.그러나 정창원 소장의 진보는 거의가 신라에서 제작되었다는 반론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이같은 반론을 제기한 학자는 최재석박사(고려대 명예교수).그는 최근 발표한 「일본 정창원 소장품의 제작국」이라는 논문에서 동대사 노사나불 불전에 바친 유물목록 헌물장을 통해 유물의 성격을 규명했다.발원내용과 연관시켜 「국가진보장」으로도 호칭되는 이 헌물장 안에는 7백여점의 값진 유물목록이 들어 있다.헌물장에 나타난 유물은 쇼무가 생전에 즐겨 입었던 가사를 비롯,악기·무기·무구·거울·병풍 등으로 정창원 소장품의 주류를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이들 유물을 넣은 궤짝을 가지고 진보를 만든 나라가 어딘가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었다.헌물 당시(AD 756년)의 시기를 약간 비켜 진보내용을 적은 「폭량장」에 의하면 유물을 담은 궤짝을 한궤로 기록했음을 밝혀냈다.더러 신궤라고도 적었는데,일본에서는 한과 신은 모두 가라(Kara)로 호칭되기 때문에 신라의 궤짝으로 풀이했다.그리고 정창원의 각종 궤짝과 상자를 잠근 자물쇠가 통일신라의 유물인 경주 안압지 출토품과 형태가 똑 같다는데도 눈길을 주었다. 이와 더불어 각종 진보들이 궤짝에 담기 전에 자루에 먼저 넣었기 때문에 자루의 천을 여러 기록들을 통해 면밀히 살폈다.최박사는 그동안 일본인 학자 구로가와(흑천진뢰)등이 내놓은 고구려비단(고구려금)이라는 견해와 일본 여러 절의 헌물장 내용을 종합,진보를 넣은 자루는 고구려에서 직조한 비단으로 결론을 내렸다.그러면서 고구려가 생산한 비단은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명품(삼국지,후한서,구당서)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단지 신라가 통일을 실현한이후에도 비단 생산지는 고구려 옛땅이었던 탓에 계속 고려금(고구려비단)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최박사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인 정창원소장의 진보가 당시 신라 물품이라는 당위성을 일본사서 「일본서기」와 「속일본서기」에서 찾았다.그 이유는 천왕 쇼무가 죽기 이전시기에 해당하는 AD 671∼706년까지 신라사신이 7차례에 걸쳐 일본에 온 것으로 기록한 이들 사서는 그때마다 사들인 금은보화와 무기류,미술공예품의 명세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박사는 당시 왕실을 주축으로 사들인 이들 신라물품의 일부가 정창원소장 진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럼에도 정창원 진보를 당이나 자국(일본)의 것으로 해석하는 일본학계의 시각은 오류라는 것이 최박사의 견해.신라사신편이 아니고는 진보를 구입할수 없다는 사실은 당시 보잘것 없는 일본 조선술및 항해술에서도 나타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황해의 해상권을 장악한 통일신라의 위치를 보면 더 명백해진다는 것이다.그리고 당에 파견한 일본조공사들은 실제 당으로부터 하대를 받아 진귀한 물품을 사올수 없는 처지였다는 것을 역사기록과 연관시켰다.
  • 복식의 특색(백제를 다시본다:25)

    ◎스키타이계 영향… 깃관·장화 즐겨 착용/신분구별 공복제도 고이왕때 제정/왕은 자색도포에 청비단바지 입어 백제의 복식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따라서 당시의 복식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도 없다.다만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발굴 등에서 나타난 복식관련 유물이 더러 부합되어 복식의 대체적인 윤곽을 어느 정도 계층별로도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추세다. 이를테면 AD 501∼522년에 재위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은 당시 왕과 왕비의 옷은 물론 장신구가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특히 중국 양나라의 「직공도」는 당시 백제 사신의 옷을 그대로 보여준다.또 「삼국사기」기록은 고이왕 27년(260년)에 제정한 관복을 연상시키거니와 「주서」 「통전」 「북사」 등 중국측 기록은 서민들이 입었을 옷을 짐작케 하고 있다. 한국 고대문화의 원류가 북방문화,즉 스키타이계인 만큼 복식의 경우에도 스키타이계의 영향을 받았다.고대인들은 머리에 삼각형 모자(변형모)와 새깃털로 장식한 관(조우관)을 썼고 좁은 소매에 둔부선까지오는 왼쪽여밈의 저고리와 말을 탈 때의 편리성을 감안하여 좁은 바지를 입었다.상의 위에는 의례용으로 긴저고리를 입기도 했다.허리에는 가죽이나 헝겊으로 된 띠를 맸고 장화를 신었다.또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의 장신구를 즐겨 착용했다. ○중국 고서화에 전해 백제와 고구려·신라 삼국이 이러한 기본 복식을 이어받고 있다는 사실은 4세기 중국 양나라의 「직공도」에서 잘 나타난다.4∼6세기에 그려진 고구려의 고분벽화도 이를 확인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백제 왕의 옷 매무새는 「구당서」 및 「신당서」동이전이 비교적 소상히 전한다.소매가 넓은 자색 두루마기(대수자포)에 청색 비단 바지(청금과)를 입고 가죽띠(소피대)를 맸다는 것이다.또 흑색 가죽신(오혁리)을 신고 김화가 장식된 검은비단관(오라관)을 썼다고 한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한 왕의 옷 매무새에다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장식을 곁들여 보면 아주 찬란하다.자색옷에 꿰매어 붙인 사각형 혹은 오각형의 얇은 금판이 더욱 빛나고 허리에 두른 은제 과대는 위엄을 더했을 것이다.왕비는 물론 왕도 귀고리를 달았고 금동제 신발(금동리)을 신었다.과대는 숫돌 물고기 청동 등의 장식품을 길게 늘어뜨린 아주 화려한 허리띠다.과대는 고구려나 신라의 귀족들도 6세기까지 금·은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백제귀족들도 김과대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왕의 금동신발은 제사 등 특별한 경우의 의례용 만 아니고 평상 집무복에도 갖춘 신발인지도 모른다.금동신발은 보기와는 달리 딱딱한 신의 안쪽에 헝겊을 대면 충분히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밑바닥에는 뾰족한 스파이크 같은 것이 있어 신기에 불편하지 않다.현재도 일본 신사의 신관들이 금동신발과 같은 모양의 신을 나무로 만들어 신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금동신발·귀걸이도 백제의 공복제도는 고이왕 27년(260년)에 제정됐다.이것은 법흥왕 7년(520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신라 보다 무려 2백60년이나 앞선 것이다.백제의 공복은 관모의 장식,대 및 옷의 색깔로 품계를 구분했다. 관모에는 1∼6품에 한해 은화를 장식했다.그러나 그 아래 품계는 관제는 같았으나 은장식은 없었다.이 은화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김화와 비슷한 종류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새깃털(조)을 금속으로 모방하는 가운데 발전시킨 귀족적인 수식일 것이다.새깃털을 관에 장식하는 습속은 동북아시아 기마민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구려인들이 즐겨 사용했던데 반해 백제에서는 조배나 제사 때만 사용했다. 띠(대)의 색깔은 1∼7품은 자색,8품은 검은색,9품은 붉은색,10품은 청색,11∼12품은 노란색,13∼16품은 백색을 각각 썼다.「구당서」에 따르면 관인의 옷색깔은 평민과 구별하기 위해 모두 비색(적색)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통전」에는 6품까지는 자의,11품까지는 비의,16품까지는 청의이며 평인은 자의비의를 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어느 쪽이 옳던 일반백성은 왕의 옷색깔인 자색과 관인의 색을 옷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양나라의 「직공도」에 나타난 백제의 사신은 아주 화려한 차림새였다.짙은 연두색 장유에 고동색 선을 수구와 옷깃 섶 밑단에 둘렀으며 짙은 연두색 띠를 했다.분홍색 넓은 바지부리에는 주황색 선을 대었고 검은색 장화를 신었다.관은 잘 보이지 않으나 은화를 장식한 관을 끈으로 매어 턱 밑에서 고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지난해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 새겨진 신선과 5인의 악사는 백제의 복식을 밝혀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자료로 부상했다.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는 5인의 악사가 생생한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다.이들은 관을 쓰지 않고 머리를 길게 땋아서 조선시대 내인의 새앙내리 접듯이 몇 번 접은뒤 댕기로 묶어서 오른편 귀쪽에 붙였다.이 모습은 마치 일본의 아좌태자 양쪽에 서있는 왕자들의 미즈라를 연상시킨다. 이같은 악사의 모습은 소매넓은 자색유와 치마(군)를 입고 장보관(장포관)을 썼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또 신선으로 보이는 11개의 인물상도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과제다. ○서민 다·적의 못입어 백제시대의 여자옷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수서 동이전」은 백제부인은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는 땋아서 늘였는데 출가 전에는 한줄,출가 후에는 2줄로 땋아 머리위에 서렸다고 전한다.여인들은 또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미루어 볼 때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아름다운 장식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여왕은 기본복인 치마 저고리 위에 소매 넓은 포를 입고 띠를 하였다.머리에는 김화로 장식한 관을 썼고 금귀고리와 금·은 팔찌,금·옥·호박·유리구슬로 된 목걸이를 달았다.옷에는 왕과 같이 금판을 꿰매어 붙였다. 무령왕릉 출토품에서 확인된 백제인의 금·은 세공술은 같은 시기 어느나라보다 뛰어나다.이는 곧 백제 의상의 수준 또한 매우 높은 것을 의미한다.장신구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나 옷은 투박한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한나라의 복식문화는 문화전반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백제의 복식은 당대 백제의 금·은 세공술의 위치에 걸맞는 최고의 수준이었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물상의 두발/무령왕릉 동자상도 「우올림머리」/「주악상」과 같아… 특정계층 두발형태 인듯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유리로 만든 한쌍의 동자상이 있다.하나는 반파되었지만 하나는 완전한 모습으로 전한다.높이 2.8㎝인 이 동자상의 허리부분에는 허리에 구멍이 뚫려 줄로 달아매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이 유물에 대해서는 목걸이 같은 장식물로 쓰여지지 않았겠느냐는 의견과 종교적인 의미를 가졌다는 두가지 설이 나와 있다. 복식사학자들은 대체로 불교관련설,구체적으로 이 동자상이 보살이라는 설에는 회의적이다.왜냐하면 이 동자상이 완벽한 백제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보살을 당시의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는 것으로 형상화하기는 어렵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동자상의 머리부분이다.얼핏 보면 동자상은 머리카락이 없는 것 같다.보살로 해석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그러나 자세히 보면 머리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이 보인다.머리 왼쪽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귀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지난해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5인 주악상도 얼핏 삭발한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머리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5명의 악사에게서 모두 나타나는이 부분은 동자상의 경우보다 훨씬 뚜렷하다.그래서 동자상이나 주악상의 머리모양은 아마도 백제 당시 어떤 계층의 머리형태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이는 향로가 백제에서 만들어졌다는 또다른 확실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 향로에 새겨진 주악상의 주인공들은 성년남자임이 눈으로도 확인이 된다.백제남자의 경우도 미성년과 성년,혹은 기혼과 미혼의 머리모양이 달랐을 것이다.그런데 주악상과 동자상의 머리모양이 같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자상이라고 불리는 유리조각품의 주인공은 동자가 아닌 성인남자일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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