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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골목 맛세상] 안성의 요리 명가

    [뒷골목 맛세상] 안성의 요리 명가

    경부고속도로 안성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내로 향하다 보면 중앙대학교 안성 캠퍼스 정문과 나란히 안성맞춤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에는 바로 ‘안성맞춤’이란 단어를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 바뀌게 한 안성유기의 역사며 제작방법에서부터 수저와 그릇 같은 반상기, 제기, 불구(佛具), 징이며 꽹과리 같은 악기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흔히 놋쇠라고 부르는 유기는 만드는 기법에 따라 방짜유기와 주물유기로 나누어지는데, 나로서는 놋쇠를 불에 달구어 일일이 메질을 되풀이하며 얇게 늘려 형태를 잡아가는 기법으로 만들어진 방짜유기에 예사롭지 않은 관심이 갔다.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낸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모양도 모양이지만, 어딘가 보이지 않는 깊은 공간에서 새나오는 것 같은 은은하면서도 황홀한 빛은 흡사 무슨 향기로운 생명이라도 깃들어 있는 것처럼 여겨져 자칫 바라보기마저 외경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럴지도 몰랐다. 소위 많은 명품들이 그렇듯이 안성유기 또한 그것을 만든 이들의 장인정신(匠人精神)이 낱낱의 작품 속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아직까지 살아 숨쉬고 있을지도 몰랐다. 안성에서 살아 숨쉬는 장인정신은 비단 유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맛세상에서 만난 요리에서도 어렵잖게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대저 요리에 있어서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 요리 하나 하나에 자신의 생명까지 불어넣을 정도로 몰두하여 마침내 자신의 삶과 요리가 기꺼이 한 몸이 되는 경지가 아니랴.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에는 ‘포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포정은 숙수 혹은 주방장 같은 요리사를 일컫는 말로, 옛날에는 직업으로 이름을 삼는 일이 흔했다. 포정이 양나라 혜왕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는데, 그 손을 놀리는 것이나 어깨로 받치는 것이나 발로 딛는 것이나 무릎을 굽히는 것이나 쓱쓱 칼질하는 품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흐름마저 음률에 맞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문혜군이 그 재주를 감탄하자 포정이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도는 재주에 앞서지요. 처음 제가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은 소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난 뒤에는 소가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오직 마음으로 일할 뿐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곧 손발이나 눈 따위 감각기관은 멈춰버리고 마음만이 작용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 몸뚱이의 자연스러운 이치를 따릅니다. 뼈와 살이 붙어있는 큰 틈바구니를 젖힐 때나 뼈마디가 이어져 있는 큰 구멍에 칼을 넣는 일들은 모두 자연의 이치를 따라 갈라갑니다. 그래서 제 재주는 뼈와 살이 맺힌 곳에서도 아직 한번도 칼이 다치지 않도록 하지요. 하물며 큰 뼈에 부딪치는 일이 있겠습니까. 솜씨 있는 포정은 일년에 한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을 베기 때문이요, 보통 포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에 부딪혀 칼을 부러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칼은 이제 19년이나 지났고 잡은 소의 수가 수천 마리에 이르는 데도, 칼날이 지금 막 새로 숫돌에 간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저의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집어넣기 때문에, 넓고 넓어 칼날을 휘둘러도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19년이나 지난 칼인데도 막 숫돌에서 새로 간 것 같지요. 그러나 지금도 막상 뼈와 심줄이 한데 얽힌 곳을 만났을 때는 저도 그 다루기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하며 조심합니다. 눈길을 집중하고 몸놀림을 천천히 하며 칼놀림 또한 매우 미묘하게 합니다. 마침내 뼈와 살이 쩍 갈라지면 마치 흙덩이가 땅에 철썩 떨어지는 것 같은데, 그때에야 저는 흐뭇한 마음으로 칼을 닦아 품에 간직합니다.” 문혜군은 무릎을 치며 감탄한다.“훌륭하구나! 포정의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양생법을 깨우쳤도다!” ‘안일옥’(031-675-2486)은 옛날의 안성장에서부터 비롯하여 80년이 넘게 소위 쇠전머리 장국밥의 입맛을 대물림해오는 3대 전통의 명가다. 예부터 안성장은 유기뿐만이 아니라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 또한 유명하여 전국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드는 큰 장으로 발전되었는데, 바로 안성장에서 떠돌이 장돌뱅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장국밥이 안일옥에서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작고한 1대의 이성례에서 비롯하여 2대의 이양귀비(87세),3대의 우미경(42세)에 이르면서, 요리에 몰두하여 마침내 자신의 삶과 요리가 기꺼이 한 몸이 되는 도의 경지는 더욱 깊어졌으리라. 한 가지에만 전념하여 80년,3대를 이어간다는 것은 안으로 흐르는 장인정신이 없이는 전혀 불가능할 터이다. 벌써 아흔에 가까운 이양귀비 할머니는 더 이상 식당일에 관여하지 않지만,3대의 우미경은 날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방에서 손수 요리를 다루고 있다. 어찌 며느리 우미경뿐이랴. 이양귀비의 3남 6녀의 자녀들은 이미 작고한 장남 김종선이 송탄에 안일옥 분점을 낸 것을 필두로,2남 김종안이 도기동 쇠전머리에 새집을 지어 장터국밥집을 열 준비를 하고 있고,3남 김종열이 안일옥 본점을 맡고 있다. 4녀 김종숙이 평택에,5녀 김종금은 안일옥 본관 바로 옆에 별관을 열어 약간 색다른 메뉴로 보신탕이며 삼계탕을 선보이고 있다. 이만하면 가히 요리만으로 명가다운 집안을 이룬 셈이다. 이중에서 3남이면서도 안일옥의 전통을 내리 이어받은 김종열은 아내 우미경을 도와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일찍이 중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거기에서 외식산업경영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하는 둥, 경험과 학문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직 중학생인 아들 김형우를 시흥에 있는 조리과학고등학교에 입학시켜, 미리부터 4대를 이을 준비도 하고 있다. 안일옥의 메뉴는 일찍이 쇠전머리 장국밥에서 발전하여, 해장국(4000원)부터 설렁탕(5000원), 곰탕(5000원), 내장곰탕(5500원), 갈비탕(5500원), 꼬리곰탕(1만원), 도가니탕(1만원), 족탕(1만 2000원), 안성맞춤우탕(1만 5000원), 소머리수육(1만 5000원), 도가니수육(2만원), 모듬수육(2만 5000원), 꼬리수육(3만 5000원), 족수육(4만원)으로 다양하여졌다. 만일 모처럼 외식에 나섰거나 몸이 허약해서 보양식을 찾는 중이라면 약간 무리하다 싶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안성맞춤우탕을 권하겠다. 안일옥에서 특별히 만들어낸 메뉴인 안성맞춤우탕에는 한 그릇 가득히 우족을 위시해서 꼬리, 도가니, 갈비, 소머리고기가 다양하게 들어 있는데, 맛도 맛이지만 양 또한 넘쳐나서 비싸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우정집’(031-675-4029)은 냉면전문집이다. 그리고 과연 냉면전문집답게 메뉴는 냉면과 비빔냉면 딱 둘뿐이다. 흔히 냉면과 함께 팔기 마련인 수육마저도 없으며 소주나 맥주 같은 주류도 없이 다만 냉면뿐인 것이다. 혹시 종교적인 이유에서 술을 팔지 않는 것인가 하고 물어보았더니, 술을 팔다 보면 술꾼들 때문에 냉면이 좋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서 팔지 않는다는 단순한 대답이었다. 수육의 경우는 자칫 수육을 그날 팔지 않으면 냉장고에 넣어 보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다음날은 수육의 고유한 맛을 잃어버릴 터이고, 그런 수육을 차마 손님들에게 내놓을 수가 없어서 아예 포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우정집의 주인 배석윤은 황해도 출신으로 갓 스물 무렵에 서울 수표동의 유명한 음식점 경희장의 주방에서 요리사로서의 첫 수업을 쌓아 경력 40년이 훌쩍 넘은 소위 요리의 장인이다. 그이가 안성에 터를 잡은 것은 1968년 당시 미화장이라는 안성에서 가장 큰 음식점 주방장으로 내려오면서부터였다. 미화장이 없어지자 그이는 바로 미화장 앞에 터를 잡아 1975년에 냉면전문집을 열었다. 그런 그이가 요즈음 들어 애오라지 하는 일이란 전혀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일이다. 그이는 나와의 인터뷰마저도 아내 복경순과 이미 대학의 외식산업과를 나와 전문요리사가 되어있는 아들 배승태에게 맞긴 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듯이 우정집은 이미 경기도 지정업소며 모범업소로 선발되었지만 어디에도 인정서 따위는 보이지 않고, 붙은 것은 냉면과 비빔냉면 각각 5000원이라고 적힌 메뉴판이 전부였다. 우정집에서 생각 없이 냉면을 먹다 말고, 나는 자칫 입에 문 냉면 몇 올마저도 목구멍으로 흘려 넘기기가 불현듯 외경스러운 기분이었다. 세상에 이런 이도 있는 것일까. 전문요리사출신인 아들마저 아버지의 길은 옆에서 보아내기만 해도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 도저히 뒤따르지 못하겠다며 그만 포기하고만 길을 걷는 이. 길이 깊어지다 못해 이제는 애오라지 자신을 세상에서 숨기려 드는 이. 그렇게 장인정신 깊어지면 안으로 갈무리되어 어디론가 또 다른 공간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일까. 그리하여 어느 날 눈 밝은 이를 만나면 은은하면서도 황홀한 빛을 내어 무슨 향기로운 생명체로 다시 새나오는 것일까. 안성교육청 앞에 숨어있는 ‘향교식당’(031-675-4288)이라는 4000원짜리 가정식백반집도 나로서는 장인정신이 빛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집은 기실 안성 부근에 작업실이 있는 내가 일주일에 한번 꼴로 들르는 단골집이다. 어떤 날은 향교식당의 백반을 먹다 말고 자칫 심약해진 나머지 눈물마저 글썽일 때가 없지 않다. 나를 그렇듯 심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반찬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이 집 주인의 선의(善意)이다. 누군가는 한갓 가정식백반에서 장인정신 운운하는 나를 너무 싸구려라며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구태여 한 마디 변명하자면, 손님에 대한 선의가 없이 어떻게 장인정신이 우러날 수 있으랴, 되물을 수밖에. 시어머니 오은자와 며느리 서강열이 사이좋게 솜씨를 내는 향교식당 4000원짜리 백반의 반찬은 가짓수가 무려 16가지가 된다. 돼지불고기, 꽁치조림, 청국장찌개, 고추버섯볶음, 소고기장졸임, 미역쌈, 무장아찌, 시금치, 오이소박이, 어묵볶음, 오이노각, 김, 깻잎장아찌, 멸치땅콩볶음, 콩나물, 깍두기…. 반찬들의 어느 하나 고부의 정성이며 선의가 깃들지 않은 것이 없지만, 김같이 사소한 것도 쉽게 사서 쓰는 일이 없이 일일이 품을 팔아 들기름에 구워내는 식이다. 뿐이랴,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시켜서 양껏 밥을 먹고 나면, 한 양푼 가득히 갓 끓여낸 누룽지탕을 다시 가져다준다. ● 설렁탕 역사는 수백년 설렁탕이 조선시대 선농단과 왕실소유 토지인 직전에서 해마다 봄이면 거행된 왕의 친경행사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친경행사에서 왕이 선농제라는 일종의 풍년제를 올린 후 제사에 쓴 소를 재료로, 문무백관이며 인근의 백성들까지 두루 나눠먹게 하기 위하여 솥 가득히 끓여낸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라는 식이다. 이 설렁탕은 원래 선농탕이 변한 것이다. 이후 민간에서는 요리법이 차츰 발달하여, 우선 사골을 넣고 10시간 정도 끓인 다음에 소머리, 양지고기를 넣고 다시 3시간 정도 끓여서 고기만을 건져낸 다음에 부위별로 썰어내고, 뼈는 다시 푹 고아서 손님에게 내게 되었다. 설렁탕에 반해 곰탕은 사골 같은 뼈는 쓰지 않고 주로 내장 위조로 푹 고아서 말 그대로 곰탕을 만들어낸다. 해장국은 선지에 우거지를 넣어서 고아낸다.
  • [문화마당] 오드리 헵번,성공의 이름/정은숙 도서출판 마음산책 대표·시인

    출판계에 식지 않고 부는 뜨거운 바람 가운데 하나는 성공학 또는 성공론이다. 한마디로 말해 어떻게 하면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을 할 것인가 하는 담론이 널리 읽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성공한 사람들의 라이프 스토리나 그 방법론은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테면 요즘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순신, 서양의 처칠이나 루스벨트, 알렉산더 같은 인물들의 인생과 성공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어려운 시대를 만나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위인들에게서 구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기는 듯하다. 그런데 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누구나 아는 이런 위인들 외에 동시대 혹은 바로 윗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도 적잖게 읽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비단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친근하게 생각하는 연예인 또는 유명 인사들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본다. 영국 출신 록그룹 비틀스나 미국의 영화배우인 말론 브랜도, 가수 마돈나 같은 사람들의 성공담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누구나 한번은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던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더 큰 공감을 얻는다. 또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들이 자신들의 성공을 어떻게 만들고, 가꿔나갔는지를 들여다보는 데는 세속적인 관심도 적잖게 내포되어 있다. 최근에 나는 이런 유명인들의 성공담과 관련하여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삶을 새삼 주목하게 되었다. 그녀의 주옥 같은 영화는 이미 오래전에 보고 찬탄한 바 있지만, 그녀의 삶과 스타일에 대해서는 근래에 눈뜨게 되었다. 이런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준 한 권의 책이 바로 ‘오드리 헵번-스타일과 인생’이다. 살아 있다면 일흔이 되었을 1999년에 그녀의 인생을 추모하기 위해 편집한 이 책에는 그녀의 아들을 포함하여 모두 아홉 명의 필자들이 글과 사진 등을 싣고 있다. 이 가운데는 그녀와 영화 작업을 같이 했던 명감독 빌리 와일더나 오드리 헵번을 자신의 스타일로 가꾼 유명한 디자이너 지방시, 살바토레 페라가모 뮤지엄의 관장 스페파니아 리치 같은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어, 그녀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오드리 헵번, 그녀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그녀의 열정과 겸손함을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꼽고 있다. 물론 그 가운데 빌리 와일더 같은 이는 그녀의 선천적으로 타고난 연기력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오드리 헵번, 그녀가 나타나면 언제나 촬영장은 화기애애해졌고 어떤 순간에도 매력적인 정중함을 잃지 않았노라고 저자들은 술회한다. 어느 비공식 저녁 식사자리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웨이터가 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우아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이다. 특히 그녀는 말년에 이르러 유니세프 활동을 통해 지구상의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는 데 헌신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아이들은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미래의 희망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닥치는 연약하고 다치기 쉬운 몇 년을 살아남을 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신체적 학대에서 확실하게 해방될 때까지는 긴장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결국 그녀의 성공은 모두 이같은 따뜻한 마음씨에서 나온 것이다. 나도 감히 그녀를 닮고 싶다. 그 아름다운 내면을 말이다. 정은숙 도서출판 마음산책 대표·시인
  • 디지털 시대, 종이책 살아남을까

    디지털시대에 과연 종이로 엮은 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수·합병이라는 세계적인 기업트렌드 속에서 출판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비단 출판뿐만 아니라 디지털, 그리고 세계화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맞닥뜨리는 공통된 화두다. 또 성공하기 위해선 꼭 넘어야 할 과제다. 마치 괴물처럼 버티고 선 두 가지 문제를 주제로 국내외 출판 전문가들이 서울에 모여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한다. 18,19일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되는 ‘한국출판포럼 2004’에는 앙드레 쉬프랭, 가이타로 쓰노, 베들렁 피렐 등 해외의 출판 전문가들이 참가해 변혁기를 맞은 출판산업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들 외에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대표이사를 지낸 페터 바이크하스, 브라이언 그린 영국 ISO위원회 위원장, 백욱인 서울산업대 교수, 김상욱 춘천교대 교수 등 국내외 출판 및 도서유통, 독서 분야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한다. 독서·출판·도서유통 3개 분과에 총 13개 주제발표 및 패널토론이 이어지는 이번 포럼엔 300여명의 출판·독서 관련 업체 및 단체 관계자가 참관할 예정. 미국의 원로 출판인 앙드레 쉬프랭은 주제발표를 통해 세계화 바람속의 출판의 위기를 진단한다. 그는 출판사가 고수익 달성만을 추구하는 대형 복합기업에 독점될 경우 상업성 짙은 출판물이 홍수를 이룰 것이라고 우려하는 한편, 국경을 넘어선 문화적 제국주의가 등장할 것을 경계한다. 일본 ‘책과 컴퓨터’ 총괄 편집장인 가이타로 쓰노는 디지털시대를 맞아 책, 독서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냉철하게 지적한다. 그는 우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MS Reader’나 일본 소니의 ‘리브리에’ 등의 예에서 보듯 개인적 독서를 위한 전자북은 완전히 실패했음을 지적하고, 종이책을 통한 독서는 그 비중이 줄어들지언정 사라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베이스 검색은 새로운 형태의 독서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대처할 방안을 모색해야 하다고 촉구한다. 포럼에선 또 도서정가제, 독서운동, 독서교육 등에 대한 주제 발표 및 토론도 진행될 예정이다. 문의 한국출판포럼 2004 사무국(02-716-0116,0427).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동대문시장 먹자골목

    [뒷골목 맛세상]동대문시장 먹자골목

    머잖아 겨울이다. 강원도의 백두대간 어름에서는 때 이른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무심코 지나치는 지하철역이나 지하도, 공원의 어둑한 귀퉁이에 신문지며 얇은 담요 한 장을 덮고 누워있는 홈리스들의 새우등이 새삼스럽게 눈에 시리다. 어디서 대낮부터 소주 한 병이라도 얻어 마신 것일까. 발치께에는 빈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다. 나라 전체에 아무리 불황이 깊다지만, 요즈음 들어 부쩍 늘어난 길거리의 새우등들은 결코 예사롭게 흘려 넘길 수 있는 정경은 아니다. 그런 겨울의 초입에, 이를테면 30대의 한 젊은이가 역시 30대의 아내와 초등학교 저학년의 여자아이 그리고 갓 돌이 지난 사내아이를 거느린 채 어느 날 느닷없이 직장을 잃었다고 치자. 직장을 잃는다는 일은 그에게는 어쩔 수 없이 마른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가공할 충격임에 틀림없을 터이다. 미처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맞이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금방 공포로 변하고, 사랑스러운 처자식마저도 자칫 두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으로만 여겨진다. 그런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처럼 불행한 사람은 다시 없으리라.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을 즐기면서, 쇼핑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맛있는 집을 찾아서 외식을 하는 등 한껏 행복감에 젖어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 또한 그들처럼 즐기던 일상의 행복감이 벌써부터 까마득한 옛날의 일처럼 기억에 흐리다. 아아, 아침에 일어나 아직 덜 깬 잠을 투정하며 서둘러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부랴부랴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던 일상이 저렇듯 눈부시고 화려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생각한다.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가. 어쩌면 나에게 닥친 불행은 결코 내 탓만은 아니다. 뭔가 이 사회의 정치가, 경제가 크게 잘못된 탓이다. 그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상대적 빈곤감과 상대적 불행감이리라. 그이가 직장을 잃든 말든, 그리하여 처자식들이 굶주리게 되든 말든, 세상은 전혀 무관심하게 하루하루 잘도 흘러가는 것이다. 이쯤에 이르면 그는 세상을 향해 기어이 복수심을 드러내고, 끝내는 범죄적 충동에까지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그리고 벌써부터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처자식을 버려둔 채 길거리를 방황하는 또 한 명의 새로운 홈리스가 그림자처럼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듯 이제 막 직장을 잃은 젊은이에게 권하고 싶다. 아직은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 싹트기 전에, 그렇게 범죄적 충동에 사로잡히기 전에, 그리고 마음속에 홈리스의 그림자가 자리잡기 전에, 처자식과 함께 한번쯤 동대문시장을 가보면 어떨까. 동대문 시장에서도 1950년대의 낡고 허름한 복고풍 건물이며 가게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먹자골목을 찾아가서 마지막 만찬이라도 하듯 처자식과 함께 뜨거운 닭한마리 칼국수를 먹으면서 자신이 서있는 현재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면 어떨까. 지하철 1호선이나 4호선의 동대문역 9번 출구를 빠져나온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여자아이는 걸리고, 사내아이는 가슴에 안은 채 한 손으로는 아내의 손을 잡고서.9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번듯한 빌딩의 동대문종합시장이 나온다. 주로 비단이며 이불 같은 혼숫감을 파는 동대문종합시장 1층의 중앙통로를 빠져나오면 시장의 물건을 나르는 오토바이들이 무슨 사열식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도열해 있다. 오토바이들을 지나면 곧바로 대학천길이라고 부르는 복고풍의 먹자골목이 시작된다. 대학천길이라고 해서 드넓고 화려한 길을 상상한다면 곧장 실망하게 된다. 네 식구가 한꺼번에 지나치기가 어려워 끝내 앞뒤로 서야 할 만큼 비좁은 골목일 뿐인데, 골목 양쪽으로 처마를 마주 대면서 낡고 허름한 식당들이 줄지어 서있다. 대학천길은 끝에서 광장시장 출입구와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먹자골목은 대학천길의 중간에서 끝나고 천막상회며 등산장비점 등의 다른 업종으로 바뀐다.100여m쯤 되는 먹자골목에는 주로 닭한마리 칼국수를 위시하여 생선구이, 민물매운탕, 돼지곱창, 이렇게 네 가지 종류의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먹자골목의 중간쯤에 이르면 한 식당 앞에서 그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출 것이다.‘진할매 원조 닭한마리’라는 상호인데, 유리창에 커다랗게 광고판이 나붙어있다. 그는 무심코 광고판에 눈을 준다. 거기에는 진할매인 듯싶은 유복하게 생긴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닭한마리 칼국수를 시작하던 무렵의 모진 고생으로부터 마침내 성공하기까지 이러저런 이야기가 입지전적으로 나와 있다. 그가 이야기에 끌려 솔깃한 마음으로 식당 안을 들여다보면, 벌써부터 손님들로 북적거려서 얼핏 빈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식당 안에 가득한 손님들에 그는 까닭없이 주눅이 드는 기분이어서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만다. 먹자골목을 얼마 걷지 않은 동안에도 벌써 대여섯 군데의 닭한마리 식당을 지나친다. 그러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닭한마리가 끝나고 이번에는 민물매운탕이며 돼지곱창이 시작되고 있다. 그는 몇번인가 두리번거리다가 ‘원조 소문난 닭한마리’(02-2279-2078)라는 맨 끝집으로 들어선다. 이 골목의 닭한마리집 치고 원조라는 관형어가 붙지 않은 식당이 없지만, 식당 안의 많지도 적지도 않은 손님들이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기실 이 ‘원조 소문난 닭한마리’는 내가 그와 똑 같이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십년 가까이 다니는 단골집이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게 식당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은 그는 닭한마리를 주문한다. 이미 꼬박 하루를 엄나무와 황기, 마늘을 넣고 푹 고와서 전혀 닭냄새가 나지 않는 닭한마리는 육수에 기름기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닭한마리에 곁들여 감자와 떡이 들어있는 커다란 양푼냄비가 적당히 끓기 시작하자 그는 우선 아내에게 먹을 것을 권한다. 아내는 새콤달콤한 야채 겨자소스에 닭고기며 떡, 감자 따위를 찍어먹으며 모처럼만에 환한 표정이다.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닭고기보다는 떡이며 감자를 좋아하자 그는 추가로 떡사리를 한 접시 더 시킨다. 닭한마리와 떡사리 한 접시에도 좋아라 신명이 나있는 식구들을 바라보자, 그는 불현듯 눈시울이 뜨거워져 온다. 그는 할 수 없이 소주 한 병을 시킨다. 그리고 말없이 자작으로 한 잔 두 잔 목 안으로 깊이 털어 넣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돌아 아내에게 잔을 내밀자 아내는 두 말 없이 잔을 받는다. 아내가 단숨에 술잔을 비운 다음에 그에게 다시 잔을 건네고, 그는 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져 온다. 닭고기가 비어지자 이번에는 칼국수를 시켜서 닭한마리의 남은 국물에 끓인다. 아내는 아예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까지 맺혀가며 아이들 먹이랴, 틈틈이 자신도 먹으랴, 정신이 없다. 칼국수를 먹고 나면 이번에는 공깃밥 한 그릇을 시켜 국물에 볶아먹는 것으로 닭한마리의 전과정을 끝낸다. 가만 있자, 모두 얼마가 들었더라. 닭한마리에 1만 3000원, 떡사리 한 접시 추가 1000원, 공깃밥 1000원, 칼국수사리 2000원, 소주 3000원, 모두 2만원이다. 결국 네 식구의 마지막 만찬에 2만원이 든 셈이다. 닭한마리 식당을 나서며 그는 직장을 잃은 후 처음으로 가슴이 훈훈해져 온다. 그리고 저 밑바닥에서부터 비롯하여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오르는 기분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린 채, 공구점이며 공업사, 천막가게, 헌구두며 군복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는 전혀 비현실적인 1950년대 복고풍의 대학천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문득 국화빵이며 붕어빵 같은 각종 빵틀을 파는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그리고 가격을 묻는다. 둘 다 20만원 정도이다. 그가 아내를 돌아보자 아내가 그에게 눈으로 묻는다.“왜 붕어빵 장사하게요?” 그 역시 눈으로 대답한다.“못할 것도 없지.”내친 김에 냉면 만드는 기계며 통닭 튀기는 기계에도 관심을 갖는다. 뜻밖에도 가격이 비싸지 않아 40,50만원 정도이다. 이번에는 건축자재 가게에서 벽돌 쌓거나 콘크리트 작업할 때 쓰는 쇠손을 만져본다. 가격은 4000원이다. 그는 어쩐지 그런 막일도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원조 소문난 닭한마리’에서 마주 보이는 골목길을 들어서면 곧바로 왼편에 ‘청천강’(02-2266-7091)이라는 민물매운탕집이 숨어 있다. 그가 만일 닭고기를 싫어한다면, 먹자골목에서 찾을 곳은 당연히 청천강이다. 역시 네 식구가 간다면 메뉴 중에서 메기매운탕을 권하고 싶다. 대중소로 나누어지는데, 각각 2만 5000원,2만원,1만 5000원이다. 이중에서 1만 5000원짜리에도 팔뚝만한 메기 두 마리가 들어있어 네 식구 먹기에는 충분하다. 청천강의 자랑은 2000원짜리 돌솥밥인데, 검은 콩을 넣어 금방 내놓는 돌솥밥은 매운탕에 말아먹어도 좋지만 정갈한 반찬과 함께 맨밥으로 먹어도 찰진 달콤함이 금방 입안에 가득 찬다. 네 식구라도 돌솥밥은 두 솥이면 된다. 청천강에는 메기매운탕 이외에도 추어탕(6000원), 통추어탕(7000원)이 있고, 빠가사리매운탕, 메기빠가사리매운탕이 역시 대중소로 나누어져 각각 2만 5000원,2만원,1만 5000원인데, 주인은 메기빠가사리매운탕을 추천한다. 주인의 말인즉, 메기는 살이 많은 대신 고소한 맛이 덜하고 빠가시리는 고소한 맛은 강한데 살이 없어서 둘을 섞으면 서로의 장단점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3만원짜리 잡탕이 있는데 다른 집과는 달리 모래무지며 누치 따위 물고기를 쓰지 않고 메기, 빠가사리에 미꾸라지만을 섞어 진한 맛을 낸 것으로, 네댓 명의 술꾼들이 진한 맛을 즐기며 술안주로 먹기에는 그만이다. 닭한마리에 비하면 1만원쯤 더 들어서 3만원 가까운 가격인데, 그로서는 네 식구의 마지막 만찬이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을 터이다. 더군다나 오늘의 만찬으로 인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비롯하여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오른다면 결코 비싼 값이 아니다. 어떤가, 먹자골목에 와서 그 정도의 힘을 얻었다면 그동안 몸과 마음에 쌓인 거품을 걷어내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 무슨 일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 ‘지점 10군데’ 자긍심 대단 ‘진할매 원조 닭한마리’ 는 확실히 닭한마리 업종에서는 출세한 집이다. 이미 10군데에 지점을 내어 닭한마리를 프랜차이즈화시킨 자긍심이 대단하다. 그런 식당의 유리문에는 다음과 같은 광고문이 붙어있다. ‘나는 지금 70노인입니다.1978년 우리 식구가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놓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무엇인가 먹는 장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여러 가지 연구를 하던 중 닭요리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원래 마음먹은 일을 끝내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성질인지라 밤을 새워 고민하면서 닭을 재료로 한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놓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시식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열흘 정도 지나자 한 가지 요리에 열 명 중 칠팔 명이 칭찬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닭한마리입니다. 모든 음식의 맛은 첫째로 재료의 신선함에서 찾는 것을 원칙으로 알고, 그날그날 항상 물을 끓여놓고 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중앙시장에 가서 한 마리 두 마리 닭장에서 산 채로 잡아오곤 했습니다. 재고는 절대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닭한마리 요리를 하면서 땀이 눈, 코, 입으로 흘러내려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오직 식구들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닭 한 마리에 1200원에 사오면 1300원에 팔 정도로 마진 없이 오로지 많은 사람에게 시식시킨다는 생각으로 전념한 결과,3년이 지나자 손님이 줄을 섰고,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각종 신문잡지며 TV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 [도심 미관해치는 전깃줄] 한전 정변훈 업무담당관

    “공중선 지중화율은 이웃 일본 등 다른 나라들보다 높습니다.” 9일 한전 서울지역본부 배전관리부 정변훈 업무담당관의 설명이다. 한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지중화 비율은 전체 전력설비의 9.6%로 일본의 7.9%보다 높은 수준. 도시별로 따져봐도 서울은 48%로 도쿄의 40.4%보다 높다고 말한다. 한전측은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치단체의 지중화 요청이 2000년 32건에서 2003년 57건으로 1.8배 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예산은 2000년 441억원에서 지난해 307억원으로 줄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사업비를 자치단체에서 분담토록 했다. 서울시내 공중선은 5091㎞에 이른다. 모두 땅에 묻을 경우 어림잡아도 7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단 비용문제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여건이 서울 도심의 공중선 지중화를 방해하고 있다. 우선 지역균형발전을 들어 경제여건이 열악한 지방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회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다 복잡한 대도시의 경우 비좁은 지하공간이 또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배전기 등 기기(機器)를 함께 묻어야 하는데, 상수도관과 하수관 등이 이미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심 상권일 경우 상인들의 협조 또한 절실하다. “서울 충무로의 경우 이런 문제점이 선결과제입니다.” 막상 사업에 착수하면 자기네 상가 앞으로 지하 매설물이 지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고 정담당관은 귀띔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서울시 인사]

    ■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 ◇신임△경영본부장 池溶範 ◇전보△감사실장 金碩坤△경영기획처장 李孝宰△상가경영처장 金俊植△장묘문화센터소장 金洪烈△어린이대공원 운영센터부소장 朴官善△교통운영처장 金鍾澈△도로관리처장 金玖煥△공동구관리처장 許明善△공사관리1처장 姜南求△공사관리2처장 朴勝五△공사관리3처장 孫基萬△공사관리4처장 李閏周△청계천인수준비단장 金碩鍾 ■ 강남구 △건설교통국장 권오철 △민원감사담당관 강인환
  • [Doctor & Disease] 서울대학병원장 성상철 박사

    [Doctor & Disease] 서울대학병원장 성상철 박사

    “관절염은 결코 노화에 이르는 통과의례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혹사한 결과이며, 자기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한 후과라고 봐야죠. 그런 만큼 나이들어 관절염 앓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치료가 되는데 기약없이 고통을 감당하며 사는 일도 어리석고요.” 성상철(57·정형외과) 서울대병원장이 병원장 부임 이후 바쁜 일과를 잠시 접고 모처럼 자신의 전공 분야인 퇴행성 관절염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의료 한국’을 상징하는 무게에다 평생 의료현장을 지켜온 경륜이 더해진 그의 말에서는 묵직한 신뢰감이 배어 있었다.“최근 들어 삶의 질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퇴행성 관절염 환자가 늘고 있을 뿐 아니라 30∼40대의 젊은 환자도 많습니다. 레크리에이션이나 운동으로 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하기 때문이죠. 다른 기관이나 조직처럼 관절도 수명이 유한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 필요가 있습니다.” 퇴행성 관절염이란 어떤 질환인가. -나이가 들면서 관절 부위가 마모돼 통증과 강직으로 나타나는 병이 바로 퇴행성 관절염이다. 주로 나이가 들면서 관절을 이루는 연골이 닳아 발생하며, 노인 특히 여성에게 많다. 일상적으로 관절염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관절염의 지속적이고도 심한 통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처음에는 계단을 못오르는 정도지만 차차 병증이 심해져 나중에는 평지도 못 걷게 된다. 그렇게 해서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된 사람도 많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거나 움직임에 문제가 있다면 그 불편과 존재감의 손상을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발병 추세는 어떤가. -노령화, 관절염에 대한 인식의 변화 등에 따라 환자가 느는 추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화에 따라 예외없이 나타나 75세 이상의 노인은 모두 퇴행성 관절염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주로 50대 후반 들어 발병하며 고령화의 영향으로 60∼70대 환자가 많다. 특히 여성이 관절염에 취약한데 이는 우리의 생활패턴이 여성의 관절을 혹사시키는 데다 폐경기 이후 여성의 호르몬 체계가 바뀌기 때문이다. 성 병원장은 이 질환의 발병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원인을 ‘관절 혹사’에서 찾았다.“요즘 사람들이 옛날처럼 격심한 노동을 하는 건 아닌데 30대 환자가 심심찮게 있거든요. 원인은 크게 두가집니다. 하나는 운동인데, 달리기의 경우 달리는 순간 한쪽 무릎에 체중의 5배나 되는 부하가 가해집니다. 이걸 되풀이하면 관절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또 다른 원인은 교통사고 등 사고로 인한 손상인데, 요즘엔 차가 많아 사고 발생률도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세상 아닙니까.” 발병 경로는 어떤가. -나이가 들거나 손상된 관절 연골은 탄력을 잃거나 닳아 없어지게 된다. 연골이 없으면 뼈와 뼈가 맞닿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일으키며 이때 떨어져 나온 뼛조각이 통증을 심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병증이 무릎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발목이나 고관절, 손목에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원인도 함께 짚어달라. -노화에 의한 마모가 주된 원인이지만 관절의 사용 강도와 빈도에 따라 병증이 나타나는 시기는 크게 달라진다.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주 젊은 나이에도 증세가 나타나며 체중이 무거운 사람도 관절염에 취약하다. 무릎을 다쳤거나 육체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안짱다리나 선천적인 연골의 결함 등 유전적 소인을 구명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진단은 어떻게 하는가. -환자의 병력을 통해 병증의 선행 요인을 파악한 뒤 이학적 검사를 통해 자세와 걸음걸이, 골격 변형 등을 파악하면 대부분 판정이 가능하다. 이게 미흡하면 X-레이로 확인하면 된다. 더러는 검진 과정에서 MRI나 CT 등을 동원하기도 하는데 이런 장비는 섬세한 치료방법이나 수술 여부를 판정하는데 필요하지 관절염 진단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치료에 대해서도 듣고싶다. -치료는 관절염의 진행을 억제하고 통증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병증의 정도에 따라 경증, 중등도, 중증으로 나누는데 경증과 중등도는 약물과 함께 생활습관 개선, 운동 및 물리치료, 체중조절 등으로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 그러나 상태가 좋지 않은 중등도와 중증인 경우에는 85% 정도를 수술로 치료한다. 수술은 관절경수술이 주종이고 마지막으로 인공관절 교체술을 적용한다. 특히 나이가 젊어 아직 활동량이 많은 경우에는 ‘O’형 다리를 바로잡는 경골절골술을 시행해 관절의 굴곡을 교정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관절경수술은 간편한 대신 효과가 1∼5년 정도로 짧고, 절골술은 수술 규모는 비교적 크지만 5∼10년 정도 효과가 지속되고 운동도 할 수 있다. 인공관절은 10∼15년 정도 사용할 수 있지만 마지막 선택이라는 점에서 활동 부담이 적은 고령자에게 적당하다. 성 병원장은 최근의 무분별한 인공관절 수술에 대해 정색하고 경고했다.“일부에서는 젊은 사람을 상대로 분별없이 인공관절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이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공관절수술을 하면 이후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고, 운동이나 일에도 제약이 많습니다. 의사나 환자가 인공관절 선택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존 관절염 치료약이 소화장애나 위장관 출혈 등 문제가 없지 않아 최근 들어 부작용이 적고 소염기능이 뛰어난 약제를 개발 중이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성 병원장은 “병증이 나타나면 주저하지 말고 의사를 찾아 치료를 받는 게 삶을 잘사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관절보호 어떻게 세월을 막을 수 없듯 퇴행성 관절염도 일단 시작되면 진행을 막거나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런데도 치료가 필요한 것은 병증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통증을 줄여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성 병원장은 이와 관련,“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절을 질환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이라며 “관절염 증상이 나타나면 관절에 무리한 힘이 가해지는 조깅이나 등산, 에어로빅, 테니스 같은 운동을 피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지팡이나 목발은 보행에 도움이 되지만 더러 해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으므로 전문의와 상의해 사용하며, 잠자리는 딱딱한 매트리스를 사용하는 것이 관절 보호에 유리하다고 했다. 체중 조절도 관절 보호의 필수 조건. 체중이 무거우면 관절염의 진행이 빨라지므로 식이조절과 적절한 운동 등을 통해 체중이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운동은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따르되, 하루에도 몇번씩 최대한으로 관절을 움직여 줘야 관절이 굳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관절의 활동량을 늘리는 운동으로는 수영과 자전거 페달밟기 등이 좋다. 또 뜨거운 목욕이나 샤워, 냉·온찜질 등은 통증을 완화시키고 뻣뻣한 증상을 완화시켜 준다. 성 병원장은 “무릎관절은 우리 몸에서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일량과 체중 부담이 가장 많은 만큼 평소 혹사를 막고 적당한 운동으로 근력을 키운다면 관절의 수명을 오래 연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서울대학병원장 성상철 박사 ▲서울대의대 및 대학원(박사) ▲미국 하버드의대 정형외과 연구원 ▲서울대의대 학생담당 학장보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 진료부원장, 개원준비단장 ▲분당서울대병원장 ▲대한슬관절학회장 ▲대한스포츠의학회장 ▲대한관절경학회장 ▲현, 서울대병원장(서울대의대 정형외과 교수) ▲대한정형외과 스포츠의학회장 ▲대한노화학회장 ▲대한정형외과학회 차기 이사장
  • [책꽂이]

    ●이판사판 화엄경(성법스님 지음, 정신세계원출판국 펴냄) 화엄경의 세계는 부처와 중생, 부처와 보살, 부처와 세상, 부처와 물질 등이 하나로 어우러져 결국 존재 자체가 부처님이 되는 세계를 일컫는다.‘이판사판’은 원래 화엄경에서 나온 것으로 이판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에 대한 판단이라면, 사판은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에 대한 판단을 말한다.1만 1000원. ●로마제국 흥망사(에드워드 기번 지음, 황건 옮김, 청미래 펴냄) 로마 제국을 학문적으로 다룬 고전적인 역사서 ‘로마 제국 쇠망사’의 주요 내용을 발췌, 요약한 축약판.18세기 영국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에드워드 기번이 12년에 결쳐 집필한 역작으로 애덤 스미스, 네루, 처칠, 러셀 등이 지혜의 원천으로 삼았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에서 아우렐리우스황제 재위까지의 오현제 시대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거쳐 동로마 제국의 성립과 멸망, 이슬람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로마 제국 전체 역사를 다룬다.2만 3000원. ●레이첼 카슨 평전(린다 리어 지음, 김홍옥 옮김, 샨티 펴냄) 미국의 여성 과학자 레이첼 카슨 평전.1962년에 출간된 저자의 ‘침묵의 봄’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켜 세계 곳곳에서 살충제 사용 금지법을 만들도록 했고,‘지구의 날’(4월22일)이 제정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카슨은 유방암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고, 알을 낳아도 부화시키지 못하는” 자연파괴 사례를 조사하고 폭로했다.2만8000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단청(한석성 구술, 박해진 정리, 현암사 펴냄) 한국 고대 단청의 면모를 보여주는 고구려 고분벽화, 위는 푸르게 아래는 붉게 칠해 조화를 이루는 상록하단(上綠下丹)의 원칙, 임진왜란을 전후로 크게 바뀌는 조선시대 단청 등에 대해 설명. 우리나라 단청무늬의 핵심인 ‘머리초’, 선명하고 강렬한 느낌이 단청 중에서 으뜸인 ‘휘(暉)’, 기둥에 비단옷을 두른 듯한 ‘주의초(柱衣草)’등 짜임새 있는 무늬와 선명한 채색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한성석은 구한말 거의 모든 궁궐 단청을 주관한 아버지 동운 화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단청 명장이다.2만원. ●중국의 역사와 문화(하재근 지음, 최윤진 그림, 자인 펴냄) 중국의 방대한 역사와 문화를 촌철살인의 유머와 그림으로 풀어낸 교양만화. 인터넷 신문의 논객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황하문명을 알아야 동양이 보이고 한국문화가 보인다고 말한다. 중국과 우리를 애써 분리하려 들지 말고 우리가 황하문명에 속해있다는 걸 당당하게 인정할 때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씌어졌다.1만 1000원. ●피아졸라(마리아 수사나 아치 등 지음,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군부독재에 의해 탄압받던 탱고를 민중의 음악으로 부활시킨 아스토르 피아졸라 이야기.‘아르헨티나의 거슈윈’으로 불리는 피아졸라는 탱고를 댄스홀에서 콘서트홀로 가져왔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뒷골목에서 가난한 이민자들을 위해 탄생한 춤곡을 클래식·재즈와 결합시킴으로써 탱고의 역사를 바꾼 것. 그는 자신의 음악을 전통탱고와 구분되는 ‘누에보 탱고’라 불렀다. 피아졸라의 아버지는 다리를 저는 아들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음악교육을 시켰고, 피아졸라에게 반도네온(라틴음악용 소형 아코디언)을 사줘 탱고인생의 길을 걷게 했다.2만 5000원.
  • [뒷골목 맛세상] 가평의 자연과 맛

    [뒷골목 맛세상] 가평의 자연과 맛

    경춘선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남양주에서 가평으로 접어드는 어름에 ‘어서 오세요. 자연을 가슴에 담아가는 가평’이라는 선전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아름다운 문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덜컥, 하고 가슴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자연을 가슴에 담아가라고?하기는 가평이야말로 산과 물 같은 자연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고장임에 틀림없다. 군내를 관통하여 흐르는 북한강과 그 강이 군데군데 빚어놓은 청평호반이며 남이섬, 그리고 대성관광지 같은 절경들, 거기에 어울려 함께 이어지는 유명산과 운악산, 축령산, 명지산 등의 장려한 산자락들은 얼마든지 둘러보아도 결코 싫증나지 않는 풍광이다. 그러나 내 가슴에 덜컥, 걸린 자연은 그러한 풍광들보다는 그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자연이었다. 일찍이 노자는 세상살이의 지혜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하였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꾸밈이 없이 저절로 그러하게’이다. 그 무위자연에 노자는 덧붙인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살아가는 일을 물 흐르는 것처럼 해라. 아아, 단 한번이라도 나는 자신의 삶을 ‘꾸밈이 없이 저절로 그러하게’ 놓아둔 적이 있으며,‘물 흐르는 것처럼’ 흘려준 적이 있으랴. 계절마저도 가을이 깊어지고 어느 날 아침에 하얗게 무서리가 내린 끝에 저마다 제 빛깔이며 향기를 뽐내던 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시든 대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렇듯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의 마지막이란 시들어 말라붙다 못해 앙상한 형해(形骸)만으로 바둥대다가 끝내는 거친 시간의 바람 속으로 한 줌 먼지가 되어 사라지게 마련일 터이다. 불과 엊그제까지도 불붙듯 온 산에 붉고 혹은 노랗던 단풍들마저 낙엽이 되어 하릴없이 산야에 뒹굴고, 거기에 추수를 끝낸 빈 들판들도 덧없이 적막감에 싸인 채 보는 이의 눈을 시리게 한다. 언뜻 돌이키면 늙는다는 것은 저렇듯 적막한 늦가을의 풍경과 다름 없다. 비단 사추기(思秋期)의 여인만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낸 삶 속에서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것 없이 허방을 짚는 듯한 이에게는 늙어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길이란 더더욱 적막하고 허무한 풍경이나 다름 없을 터이다. 그리하여 화려한 빛깔과 향기 대신에 시든 대로만 남은 저 많은 생명들 또한 자신의 삶처럼 처연하다 못해 추하게마저 여겨질지도 모른다. 만일 그대 또한 자신의 살아낸 삶이 처연하다 못해 추하게마저 여겨진다면,‘가슴에 자연을 담아가라’는 가평의 여행길에 나서기를 권하고 싶다. 가평에서도 운악산 가는 어름에 있는 ‘꽃무지풀무지’(031-585-4875)라는 야생 수목원에 들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한나절을 좋이 늦가을의 햇살 아래 수목원 여기저기 한가롭게 거닐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누가 알랴. 번쩍 그대의 눈이 열려 그대가 전혀 몰랐던 그대의 자연을 만나게 될지. 원래 꽃무더기 풀무더기라는 뜻인 ‘꽃무지풀무지’에는 지난 계절 내내 야생 수목원을 원색으로 한껏 장식했을 온갖 야생화들의 빛깔이며 향기는 더 이상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대신 수목원 가득히 펼쳐져 있는 것은 저마다 천명을 다하고 시들어 버린 꽃대들만이 지난 화려했던 시절의 증거처럼 남아서 잿빛 풍경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수생식물원을 지나고, 습지원을 지나고, 향기, 붓꽃, 나리원을 지나, 산채원이며 덩굴식물원을 지나도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역시 잿빛 풍경뿐이다. 어거지로 찾아낸다면 수목원 가장 위쪽 그늘진 곳에 숨어있는 국화원의 한 쪽에서 쑥부쟁이 몇 다발만이 애잔하게 보랏빛 잔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야생 수목원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대가 위안을 받을 만한 풍경은 없다. 동자꽃, 노인장대, 맥문동, 제비꽃, 은방울꽃, 둥글레, 용담, 앵초, 금불초, 초롱꽃, 비비초, 애기기린초, 금강초롱, 말나리, 하늘나리, 참나리, 털중나리, 꼬리풀, 금낭화, 노루삼, 산작약, 마타리, 패랭이, 구절초, 해국, 울릉국화, 한라구절초, 모싯대…. 그 모든 야생화들은 이제 한낱 푯말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뿐인가. 수목원의 뭇 야생화들은 정말이지 그대에게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고 잿빛 풍경 속으로 속절없이 사라진 것뿐일까. 아니리라. 결코 그것뿐만은 아니리라. 그대가 흡사 자신의 처연한 삶이라도 어루만지듯 푯말과 함께 남아있는 야생화들의 시든 꽃대를 어루만지는 순간, 그대는 벼락처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시든 꽃대는 결코 시든 꽃대로만 끝나지 않는다. 시든 꽃대는 시든 꽃대대로 그 안에 길을 열고 있다. 그리하여 그대가 시든 꽃대가 안에 열린 길을 따라 어디론가 들어가게 된다면, 그대는 마침내 그대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만일 그대가 그대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연만 만나게 된다면, 그대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될 터이다. 늙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다, 늙어서 그대 또한 시든 꽃대가 되면, 그때에서야 그대는 비로소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게 될 터이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현상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일이다.은방울꽃의 시든 꽃잎 안으로 들어가 보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로 거기에는 다가올 어느 봄날 아침에 그다지도 화려하고 향기롭게 피어날 수천수만의 새로운 은방울꽃들을 만나게 되리라. 하늘나리의 시든 대 속으로 들어가 보라. 거기에는 이미 내년 봄에 새로운 줄기로 살아날 수천수만의 하늘나리들이 더없이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으로 벌써부터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아아, 늙어서 시들어진다는 것이야말로, 그리하여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리하여 오래 잊었던 자신의 자연을 만나고, 마침내 ‘꾸밈이 없이 저절로 그러한’ 지혜의 물을 만나서 비단 그대만이 아닌,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 함께 영원한 강이 되어 흘러간다면, 어떠한 늙음이며 죽음이 더 이상 그대를 홀로 적막하게 하랴. 세상살이라는 것을 그대와 나는 자칫 저마다 가득히 채워야만 할 무슨 항아리 같은 것으로만 여겨오지는 않았을까. 그리하여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그대와 나는 애오라지 항아리를 채우는 일에만 애면글면하지는 않았을까. 남보다 더 많이, 남보다 더 넓게, 남보다 더 가득히…. 그것이 결국은 밑이 빠져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라는 것조차도 모른 채.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마저도 잃어버리고 흡사 무슨 굶어죽은 아귀라도 씌인 것처럼 헛된 일에만 매달려 아등바등 하지는 않았을까. 아아, 무릇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비운 다음에야 비로소 더욱 가득히 채워진다는 것을 그대와 나는 왜 몰랐던 것일까. ‘꽃무지풀무지’는 11월 중순경까지는 문을 연다. 비록 겉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적막하고 처연한 잿빛 풍경일 터이지만, 그 잿빛 풍경 안에서 만일 그대가 그대의 또 다른 자연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그대의 가을 여행은 온몸 가득히 충만해지리라. ‘꽃무지풀무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운악산 등산로 입구가 있고, 거기에 손두부집들이 올망졸망 촌락을 이루며 몰려있다. 그 중에서 할머니손두부가 유명하지만 어느 집을 들어가도 늦가을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따끈한 손두부(5000원)에 묵은 김치를 가닥으로 싸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거기에 가평의 명산품 잣막걸리를 한 잔 곁들이면, 꽃무지풀무지에서 이미 충만해져온 그대에게 더 이상 무엇이 부족하랴. 손두부 이외에도 순두부(3000원), 두부버섯전골(1만 2000원), 순두부백반(5000원) 등이 있다. 꽃무지풀무지에서 포천으로 가는 길목에는 현리에 국수호박을 전문으로 하는 시골마당(031-585-2309)이 있다. 이 국수호박은 호박을 국수로 만든 것이 아니라 호박 자체가 삶으면 국수처럼 줄줄이 면발이 되어 나오는 것으로, 여기에 양념장만 곁들이면 그대로 요리가 되는 100% 천연국수인 셈이다. 물국수호박과 비빔국수호박이 각각 5000원인데, 가평을 지나다가 출출하다 싶으면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는 재미가 그야말로 별미일 터이다. 그대가 좀 더 가을 여행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번에는 신청평대교를 건너 유명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설악면의 들풀(031-585-4322)을 찾을 것을 권하고 싶다. 블루베리 스파랜드라는 온천으로 가는 쪽에 여유롭게 자리 잡고 있는 들풀은 된장이며 청국장을 직접 담가서 팔기도 하고 요리로도 만들어내는 청국장 전문집이다. 들풀은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사람 키를 두 세배는 훌쩍 넘을 것 같은 콩 낟가리를 쌓아놓아 벌써부터 왠지 마음이 푸근해져오는 기분인데,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이다. 콩 낟가리를 지나면 이내 항아리가 30,40개가 넘는 커다란 장독대에 다다르는데, 해마다 된장과 청국장 제조용으로 100여 가마씩 사용하고 있다. 들풀의 김용옥씨와 김안나씨 부부는 함께 주방일도 하고 서빙도 하면서, 주로 콩요리를 위주로 한 1만원짜리 정식을 한 상 차려낸다. 청국장찌개, 된장찌개, 생청국장, 두부부침, 된장부치미에 황태구이, 더덕구이, 잡채, 들풀무침 그리고 깻잎장아찌, 더덕장아찌, 황태장아찌에 각종 나물이 곁들여져 한 상 가득히 채우고 있다. 한 상 중에서도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은 생청국장으로, 고스란히 생으로 먹게 내온 것이다. 밑에 깻잎이나 머위, 상추, 김 등을 깔아 한 잎에 싸 먹게 되어있는데, 생청국장 위에 고명으로 얹은 보랏빛 오디가 주인의 살가운 마음씨를 엿보게 한다. 흔히 청국장이라면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우선 그 역한 냄새 때문에 먹는 것 자체가 고역스러운데, 여기에서는 매실을 넣고 검정콩가루를 섞어 발효시키는 비법으로 냄새를 해결한 것이다. ■ 된장찌개에 마늘은 ‘NO’ 들풀에서는 요리와 함께 청국장과 된장도 직접 판매한다. 청국장은 800g에 1만원, 된장은 3년 숙성된 것만으로 파는데,1㎏에 1만 5000원이다. 부부는 청국장과 된장을 팔기에 앞서 먼저 청국장이며 된장을 보다 맛있게 끓이는 법을 친절하게 일러주는데, 이들의 말에 따르자면 절대로 마늘을 넣지 말 일이다. 청국장에 무, 호박, 대파, 신김치, 양파, 청양고추, 두부를 준비해서 우선 무, 호박, 양파, 대파는 썰고, 신김치는 속을 털고 썰어서 꼭 짠 뒤 기름에 살짝 볶는다. 여기에 황태나 멸치를 우려낸 육수를 붓고 두부와 청양고추를 넣은 다음에 청국장을 알맹이 그대로 넣어서 걸쭉하게 끓이는데, 채소만 익었다 싶으면 금방 불을 끈다. 청국장은 유산균이나 비피더스균처럼 장을 깨끗이 하는 작용과 면역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는데 자칫 오래 끓이면 이런 좋은 효소와 균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된장찌개 역시 마늘을 넣지 않고 청국장에 들어가는 재료 외에 감자와 표고버섯을 곁들이는데, 된장을 체에 걸러 풀어서 청국장보다 2배 정도의 시간을 들여 푹 끓여내는 식이다.
  • [‘힘의 미국’과 부시] ① 과제

    [‘힘의 미국’과 부시] ① 과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존 케리 민주당 후보와의 혈전끝에 재선에 성공했지만 그의 앞에는 비단길이 아닌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층으로 뚜렷하게 양분된 사회를 통합해야 하는 최우선적인 과제를 안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이라크전을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 인사 백악관 영입” 이번 선거에서 상대방인 케리 후보가 뚜렷한 정책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반(反) 부시’ 정세에만 의존하고도 박빙의 승부를 벌인 데서 부시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부시 대통령도 이를 인식하고 국민통합을 위해 민주당측에 손을 내밀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카렌 휴즈는 “백악관에 민주당 인사들을 영입하고, 교육개혁과 관련해 에드워드 케네디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에게 입법을 의뢰하는 방안 등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선거과정에서 밝힌 대로 내년부터 조세와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정책에 대한 개혁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공화당에서는 소득세를 없애고 모든 세금을 물품판매세(Sales Tax)로 통일하자는 획기적인 조세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또 부시 대통령은 의료산업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부시 대통령은 TV토론에서 케리 후보가 “공화당은 의료보험을 민영화할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부인했지만 군수산업보다 규모가 크다는 의료산업에 군침을 흘리는 공화당측 지지자들이 많다. ●이라크는 해법 찾기 어려워 대외적으로는 이라크 문제가 향후 4년 내내 부시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정국은 여전히 혼미해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회의감이 커져가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토머스 도넬리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 이후 현실을 인정하고 충분한 병력을 이라크에 투입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이라크의 조속한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군사작전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부시 대통령이 꿈꾸는 이라크 재건, 더 나아가 ‘중동의 민주화’라는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내에서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동맹국들은 이라크에 발을 담글 생각이 없는데다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전이 잘못된 전쟁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문제를 해결할 만한 비장의 카드가 없는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와 함께 역시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 부각된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에 대한 시급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에 몰두하는 만큼 북한과 이란에 할애할 시간과 자원이 충분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함에 따라 부시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내외 정책들이 의회에서 강력한 뒷받침을 받을 수는 있게 됐다. daw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4)18년만의 시화호 외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4)18년만의 시화호 외출

    최후를 목격하는 일처럼 불행한 경우가 있을까. 낡은 사진첩과 답사노트를 뒤지면서 시계바늘을 18년 전으로 되돌려본다. 시화호가 망가지기 직전을 목격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사회적으로 공개할 의무감을 느낀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틈만 나면 시화호에 가서 살았다. 당시에는 시화호란 명칭도 없었고 그저 화성이나 안산 앞바다로 일명 ‘반월만’이었다. 물론 갯벌을 둘러싼 환경운동이나 갯벌환경에 관한 인식조차 공론화되지 않던 시절.1987년 6월10일, 역사적인 시화호 방조제공사가 시작되었다. 엄습해오는 예감이라고나 할까. 시화호 내의 음도나 형도, 어도, 아니면 화성의 송산면이나 서신면, 우정면 등의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면서 민중생활사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흔적없이 사라진 계명산 봉화대 저울섬이라 불렀던 형도는 물이 썰면 송산면 독지리 쪽에서 30여분만에 쉽게 걸어들어갈 수 있었다. 독지리 사람들은 봄에는 가무락·동죽·대합·피조개·소라·낙지를 잡고, 여름에는 맛, 가을에는 낙지·쭈꾸미 등을 채취하였다. 물고기는 숭어·농어·민어·새우·꽃게·전어를 잡았다.1988년, 독지리 사람들은 보상 문제에 골몰하였다. 오래 살아온 1등급은 호당 900여만원, 분가한 이들은 2등급으로 호당 850만원, 심지어 최저 100만원 정도를 받는 이도 있었다. 배 보상도 이루어져 작은 배는 서신면의 용두리, 궁평리 쪽으로 팔려나갔으며, 큰 배는 소래포구로 팔렸다. 형도에는 30여가구 120여명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낙지와 바지락·굴·피조개·숭어, 새우, 농어 등을 잡았다. 본디 어부들의 살막만 있던 무인도였는데 기미년(1919) 만세운동으로 쫓겨온 이들이 정착하여 어업에 종사하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피란민이 밀려들어와 마을이 커졌다. 형도 복판의 계명산을 허물어 바지선으로 돌을 실어날라 방조제를 막았다. 그래서 형도 동쪽 해변에는 중동에서 퇴직한 중장비들이 대체 일감을 찾아 빼꼭하게 들어차 있었다. 계명산 정상을 올라가니 봉화를 올리던 석축봉화대가 완형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계명산을 신성한 신으로 모시고 있었으며, 봉화대 밑에는 바위가 겹쳐진 동굴이 있어 이 역시 신성시되었다. 마고할매가 쌓은 봉화대라고 했다. 동굴은 비단실 열꾸러미를 넣어도 바닥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고 했다. 호기심이 동하여 동전을 던져보았더니 실제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관해기’를 쓰기 위하여 다시 찾았을 때, 동굴도 없어졌으며 봉화대도 사라졌다. 쉽게 말하여, 문화유산을 깔아뭉갠 것. 음도는 형도와 달라 지명유래처럼 소가 누워 있듯 나지막한 섬이다. 파평 윤씨가 사화 때 역적으로 몰려서 낙향하여 개척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밀도가 높아서 160여명이 살고 있었으며 어업이 주종이었다. 섬 북쪽 선착장에서 뱃길로 안산시 사리포구쪽으로 빠지거나 화성의 독지리와 고정리 사이에 위치한 목섬을 거쳐서 걸어들어갔다. 형도 가는 길과 달리 음도는 멀어서 무려 한 시간여를 걸었다. 물 때를 잘못 맞추면 걸어가다가 조류에 휩쓸려 죽는 이도 많았던 섬이다. 갯벌을 걸어가면서 굴따는 ‘자세’로 지천으로 널린 굴을 까먹으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음도 사람들은 섬 정상의 숲속에 소당이라 부르는 신당을 모셨다. 조기잡이의 신인 임경업 장군, 각시, 소댕애기씨, 말구중 등 무속신을 모시고 있었다. 선착장 갯가에는 당나무가 서있고 바위가 쌓인 곳은 군웅당이라고 했다. 고정리 쪽 갯가의 돌출바위는 각시당(일명 나락부리당)이라 불렀다. 밀물 때는 보이지 않고 썰물에만 모양이 나타나는 각시당은 갯벌 복판에 서있어 갯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준다고 하였다.18년 뒤의 음도에도 여전히 신당 건물은 숲속에 남아 있다. 우거진 가시덤불을 헤치고 다시금 신당문을 여니 그림들은 간곳이 없다. 찾아온 길손에게 낙지를 거저 주면서 연신 술잔을 권하던 어민들도 사라지고 쥐죽은 듯 고요하다. 옛사람들이 일부 살기는 하지만 예전의 떠들썩함은 찾을 길이 없다. 초등학교를 찾아가니 아직도 건물은 의연한데 주인 잃은 그네는 줄이 끊어진 채로 시간이 멈춰섰다. 마산포에서 걸어들어가던 어도는 음도나 형도와 달리 당시에도 시멘트 포장이었다. 마산포구에는 횟집이 번성하고 있었고 물이 나면 쉽게 어도로 들어갔다. 포도밭을 지나 언덕배기를 내려가면 어도 가는 길목의 해변 초입에 해안초소가 있고 터주가리처럼 생긴 신당이 바위 위에 모셔져 있었다. 고포리의 마산포는 반월만의 어업전진기지로서 형도·어도·선감도·탄도·불도와 연계되었다. 일제시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인천 가는 연락선이 대부도와 영흥도를 거쳐서 다녔다. 따라서 대부도 사람들은 마산포를 거쳐서 사강장을 보았으며, 이곳의 생활권도 뱃길로 인천과 서울로 이어졌다. 이제 대부도와 영흥도는 시화호로 연결되어 4차선 도로로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고포리 어촌계는 당시에 224호에 도합 1000여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거느리는 대단위 조직이었다. 고포리의 굴은 알이 작은 대신에 맛이 뛰어났다. 갯벌에서는 맛이 지천으로 잡히고 있었고, 봄·가을에는 숭어, 여름에는 농어, 그 외에 꽃게와 게장용 박하지가 많이 잡혔다. 오랜만에 찾아가본 시화호는 정말이지 예전이 아니었다. 상전벽해는 이를두고 말함이렷다.‘남양인천’으로 불릴 정도로 큰 외항이었던 비봉면 유포리(일명 버들무지)는 예전에는 남양관아로 연결되던 중요한 포구였다.1960년대까지는 조기잡이 중선배가 있어 연근해어업을 다녔다. 가리맛의 주생산지였으나 건너편에 반월공단이 들어서면서 어업은 일찍이 막을 내렸다. 우정면 호곡리를 들어서니 예전에 없던 어시장이 들어섰다. 호곡리는 범아지라 불렀으며 바닷가를 백년거지라 했다.‘백년을 거처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는 뜻. 범아지의 바닷가로 돌출한 산에는 당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백년거지는커녕 화옹호에 가려졌다. 수산물이 어획되지 않는 동네에 웬 어시장일까. 거개가 수입산이나 외지에서 들여온다는 솔직한 답변이다. ●물고기 쫓겨난 시화호는 사막일 뿐 물새가 노닐던 해변이 갈대밭으로 덮이면서 아예 ‘우음도 갈대축제, 갈대보러 오세요’ 그런 글이 인터넷에 떠있다. 해초 대신에 갈대라! 문전옥답인 바다밭은 갈대밭으로 변하고, 아직도 죽은 조개껍질들이 하얗게 뒤덮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갯벌에 관한 한 한국사회의 인식은 지난 20여년간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시화호 출신 해양생태학자로서 국회로 진출한 제종길 의원은,“갯벌문제는 간단히 보면 해양생태 보존과 개발론의 싸움이지만, 지역감정은 물론이고 지역정치를 포함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문제점들이 모조리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만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시화호도 끝나지 않았다. 시화호가 미완의 장인데 바로 코밑에서 화옹호를 기어이 막았다. 세인들은 간척의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갯벌문제만 나오면 이제는 지겨워한다.‘듣기 좋은 노래도 자주 들으면 지겹다.’(歌曲雖艶 恒廳斯厭)는데 불길한 예언만 쏟아져나오니 아무리 취지가 좋은들 약발이 덜 먹힌다. 간척론자들은 호재를 부른다. 결코 사회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자원공사를 비롯한 간척주도집단의 ‘밥벌이’를 위해서 간척이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 있다. 문제점 투성이인지라 종합성적이 낙제점 이하인데도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잘못한 이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불감증사회’답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물고기도 돌아오고 심지어 돌고래까지 돌아오고 있다는 밑도끝도 없는 낭설이 진실처럼 떠돌기도 한다. 시화호에서 돌아오기 전, 예전에 늘 드나들던 송산면 옛바닷가로 나갔다. 갯벌로 가던 언덕배기를 넘자 한가로운 오솔길 대신에 신작로가 나타났고 조개를 캐던 갯벌터에 농구골대도 들어섰다. 배는 사라지고 연습용 경비행기들이 마중한다. 물고기가 부려지던 선착장은 흉물스럽게 콘크리트더미만을 남기고 있고 죽어버린 따개비만이 ‘여기가 예전에는 잘나가던 포구였소.’라는 무언의 항거를 하는 듯하다. 물고기가 쫓겨난 시화호는 사막일 뿐이다. 해수유통이 되면서 한결 나아졌고, 온갖 철새들이 몰려오고, 옛갯벌은 갈대밭이 되어 야생동물의 보고로 변하고 있으며, 공룡알들이 발견되었다고 아우성이지만 어찌 이토록 무정하게 ‘무단가출’했던 오염된 바다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으랴. 해결책은? ‘무식과격’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동안 투자한 그 모든 것이 아깝더라도 눈 딱감고 방조제를 허무는 길 뿐이다. ●새만금 운명도 시화호의 전철 못벗어날듯 오랜만의 시화호 외출에서 느낀 소감이 이러하니, 현재 진행되는 새만금의 운명 역시 시화호의 전철에서 한치도 못 벗어날 것 같다. 과거를 거울 삼아 오늘의 현실에 살리자는 감고계금(鑑古戒金)의 전범이 시화호일진대, 새만금은 시화호에서 충분히 배웠음에도 아직도 수업료가 부족한 것일까. 성호 이익은 ‘관가에 일이 없으면 촌동네도 조용하다.’(公府無事 村巷方安)고 하였다. 관청에서 불필요한 간척 같은 일을 벌이지 않으면 살 만하다는 뜻이거니와,‘지도가 바뀐다.’‘5000만평 땅을 건지다.’ 등등으로 국민을 현혹하면서 8000억원 이상의 돈을 들이고도 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국민대사기극’, 시화호에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싶다.
  • [꼭! 한번 가고 싶다] 와~ 맛있네 칠레 와인

    [꼭! 한번 가고 싶다] 와~ 맛있네 칠레 와인

    ‘칠레는 멀어도 와인은 가깝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자주 언급되긴 하지만 칠레는 여전히 먼 나라다. 와인은 다르다. 칠레산 와인 맛은 그 어떤 것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가격 부담없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칠레와인, 진짜 매력은 무엇이며 어떤 곳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프랑스인들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지만 와인을 즐기기 때문에 심장질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프렌치 패러독스’. 이것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와인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여기에 웰빙 흐름이 가세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찾게 됐다. 프랑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많은 수입산 와인 속에서 유독 칠레와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단 ‘저렴한 가격’만은 아닐 듯한데…. ●독주에 익숙한 이들을 유혹한다 칠레와인을 맛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국인의 입에 유난히 칠레와인이 잘 맞는다고 말한다. 칠레와인을 즐기는 이재영(30·테크노마트 대리)씨는 “칠레와인 장점은 다른 것보다 저렴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입 안에서 약간 매운 맛과 향을 내면서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매운 맛에 익숙한 한국인이 선호할 만한 종류가 주로 수입되기도 하지만 일단 우리 음식과 잘 어울린다. 자극적이고 맛이 강한 한국음식에 눌리지 않고 잘 어우러져 또하나의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독한 술에 익숙한 음주 문화 탓에 확대되는 속도가 예상외로 느렸다. 롯데호텔 와인바 ‘바인’의 소믈리에 공승식씨는 “20~30도 이상의 독주를 즐기던 사람들에게는 와인이 술로 인식되지 않는다.”며 “상대적으로 칠레와인은 ‘술마신’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신선한 느낌과 풍부한 향이 진짜 매력 프랑스와인이 깊고 전통적인 맛을 대표한다면 칠레와인은 신선한 맛이 매력적이다. 칠레에서 와인 농장을 처음 만든 이들은 16세기 중반 스페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칠레가 세계적인 와인 생산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다. 이 무렵부터 칠레 와인 산업 종사자들이 유럽의 양조 기술자들을 초빙해서 선진 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또 프랑스나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젊은 와인 개척자들도 늘었다. 짧은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깊이가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기후 조건과 와인 생산자들의 노력으로 칠레와인은 새롭고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공승식씨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 기호에 맞다.”며 “와인의 깊은 맛을 구분하지 못하는 초보들에게도 권할 만하다.”고 말했다. 칠레와인은 향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풍부하면서 프랑스 와인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다. ■ 한옥에서 와인 한잔 어때요?-분위기 좋은 와인바 와인을 즐길 만한 와인바가 많아졌지만 어디를 가야할지 모를 때 이곳에 들러보자. 서울 청담동 베라짜노(517-3274)는 380여가지 와인을 갖춘 대표적인 와인바다.5만∼20만원선의 서른가지가 넘는 칠레산 와인이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와인바와 와인숍의 두가지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박필근 점장이 추천하는 칠레산 와인은 ‘칼리나 카르메네르’. 카르메네르의 전형적인 특징인 부드러우면서도 매운 맛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설명. 매주 금요일 바비큐 파티(1인 2만원·와인 별도)에서 다양한 와인, 바비큐, 샐러드를 즐기는 것도 좋다. 영업시간 오후 6시∼새벽 2시. 일요일 휴무 한옥에서 맛보는 와인도 색다른 맛을 준다. 인사동 민가다헌(733-2966)은 작은 방 하나를 와인창고로 개조해 와인을 제공한다. 널찍한 마당, 고운 처마를 바라보며 전통술 대신 와인을 기울이는 풍류를 즐길 수 있다. 통의동 더 소설(738-0351)은 출판사 ‘열린책들’이 사옥에 꾸민 와인바. 문화와 와인의 향기가 짙다.ReB(518-3456)은 도매가 수준의 선술집형 와인바로 품질 좋은 450여종의 와인이 있다. 은은한 분위기로 더욱 유명한 일 치프리아니(540-4646), 모던차이니즈 레스토랑 이닝(547-7444)도 충실한 와인 리스트를 갖추고 있어 와인을 즐기기에 좋은 곳. 글 최여경 나길회기자 kid@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인사]

    ■ 국방부 △정책보좌관 鄭泰龍 ■ 노동부 ◇이사관 승진△감사관 全云基△근로기준국장 嚴賢澤△고용정책심의관 申英澈◇서기관 승진△기획관리실 기획예산담당관실 任勝淳△고용정책실 고용정책과 李相福△〃 외국인력정책과 李道英△〃 훈련정책과 金度亨△노사정정책국 노동조합과 金慶倫△〃 노사조정과 河逈紹△근로기준국 임금정책과 李德姬△대구지방노동청 근로감독과장 全在星△대전〃 산업안전과장 鄭秉源 ■ 철도청 ◇서기관 전보△고속차량개발과장 任顯濬△대전기관차사무소장 金永瑞△순천차량〃 李建鎭△영주〃 李邦雨△부산〃(직대) 崔榮相△철도대학파견 兪泳植△㈜로템파견 李在仁 ■ 통계청 ◇과장급 전보△혁신인사 諸正本△산업통계 崔仁根△물가통계 韓聖熙 ■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 전보△관리본부장 金定柱△품질안전실장 裵鍾奎 ◇2급 전보△조직관리부장 金慶顯△비전전략〃 曺德煥△노사협력〃 延德元△후생복지〃 李粲鏞△자금총괄〃 申東植△재산관리〃 金思容△호남지역본부 관리〃 申秀容△〃 용지〃 丁鐘生△충청지역본부 〃 崔仁△〃 재산관리〃 金榮泰△감사실 감사2〃 柳龍熙△토목설계1〃 金昶吉△품질관리〃 鄭在民△환경관리〃 權五煥△토목1〃 李良相△궤도1〃 李光道△궤도2〃 金鍊國△수도권지역본부 토목궤도〃 權寧喆△영남지역본부 토목2〃 李準晳△호남지역본부 토목궤도〃 梁東漢△충청지역본부 토목〃 張亨植△〃 토목궤도〃 許玉迅△호남지역본부 시설관리〃 鄭永洙△전철전력설계〃 柳升魏△전차선2〃 李瑾源△〃 전력〃 崔英萬△충청지역본부 시설관리〃 金容珍△시스템사업본부 전송설비〃 李禹凞△〃 무선통신〃 梁德奎△수도권지역본부 시설관리〃 崔千植△시설장비사무소 궤도시설〃 金雲顯△중국진출준비단 파견 高昌男△〃 朴胤澈△수도권지역본부 건설1처 金亨基△시스템사업본부 전기계획부장(직무대리)崔太守 ■ 국민은행 ◇팀장△신기술팀 崔知鎬 ◇개설준비위원장△시흥2동지점 李杰洛△호계3동지점 梁東晧△명동PB센터 元延植 ■ 외환은행 ◇지점장△경주 李浩成△광산 姜承求△노원동 朴炳基△대화역 李哲周△도당동 金淵天△마산 朴永哲△무역센터 李弘一△봉천동 金義經△산곡동 曺圭亨△삼산 姜奎粲△서울아산병원 曺京鎬△서잠실 鄭道均△신림역 朴泰均△신반포 李相佑△안양 李善振△여의도남 南昌佑△연남동 金亨培△연산동 黃承國△연수 李成旭△용산전자상가 李南雲△용인 梁洪蓮△인사동 吳昇埈△천안공단 權純一△춘천 崔龍洵△충무로 張時源△퇴계로 張澤洙△평택 金京洙△하남공단 崔奉宇 ◇개인금융지점장△삼성역 林炳錫△역삼동 鄭用雨△을지로 柳根亨 ◇기업금융지점장△도당동 鄭澤元△역삼역 曺喆煥 ■ SK증권 △신반포지점장 金桂植 ■ KTF ◇전무 승진△재무관리부문장 洪英度△연구개발원장 金泰根 ◇상무 승진△서부네트워크본부장 柳又鉉△경영지원부문 사업지원실장 李永圭△마케팅부문 굿타임 서비스실장 文璣雲△신사업부문 신사업전략실장 李東原△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운용실장 朴贊敬△윤리경영실장 李大山 ◇상무보 승진△경영지원부문 인력개발실장 盧弘乃△마케팅부문 마케팅지원실장 羅錫均△홍보실 스포츠홍보담당 姜宗學△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품질관리실장 安基鐵△신사업부문 인터넷사업실장 趙漢信△연구개발원 차세대연구소장 孫熙男△홍보실 홍보담당 柳錫五 ◇상무급 전보 △동부네트워크본부장 李光洙△네트워크부문 네트워크전략실장 吳性穆△신사업부문 컨버전스사업실장 李京洙△신사업부문 플랫폼개발실장 郭俸君 ◇상무보급 전보△마케팅부문 단말기전략실장 林憲文△수도권마케팅본부 법인영업단장 李弘基△전략기획부문 변화관리실장 尹慶根△전략기획부문 사업개발실장 朴原震△마케팅부문 마케팅전략실장 姜國鉉△수도권마케팅본부 강북마케팅단장 片明範△신사업부문 인터넷운용실장 李相烈△마케팅부문 마케팅연구실장 朴仁洙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2)신화와 과학이 만나는 이어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2)신화와 과학이 만나는 이어도

    섬을 찾아가고 있다. 하나는 ‘신화 속의 이어도’, 다른 하나는 ‘과학 속의 이어도’이다. 이름은 같되, 역할이 다르고 취할 바도 다르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신화와 과학이 이처럼 절묘하게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 해양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먼저, 신화 속의 이어도를 찾아가 본다. 이어도는 제주도에만 있는 섬이 아니다. 처처불불(處處佛佛)처럼 곳곳에서 이어도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어도를 만난 사람은 어쩜 이 세상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곳이 피안(彼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꿈에 취하고 싶은 사람들은 메트로폴리스의 뒷골목 허름한 술집, 그도 아니면 영화관에 앉아서라도 꿈을 꾼다. 자본의 시대는 민중의 이상향마저도 오로지 상품으로 환치시킬 뿐이다.‘혁명’은 꿈 속에서도 불가능하고,‘개혁’은 구두선으로 되뇌일 뿐이다. 삶은 늘 현실에 차압당한다. 그래도 이상향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모진 현실을 벗어나 어딘가 ‘지상낙원’이 있을 것만 같다. 옛날에도 그랬다. 가령 보이지 않는 섬 따위에 이상향이 있을 것만 같다.‘그 섬에 가고 싶다.’고 누구나 생각했으나 정작 그 섬에 가본 이는 없었다. 천년의 이상향, 이어도였다. ●가 본 사람 없는 피안의 섬 조선 후기에 변란이 그치지 않았을 때, 해도출병설(海島出兵說)이 떠돌았다. 이름 모를 남쪽 섬 어딘가에서 기마(騎馬)가 벌떼처럼 일어나 한양을 들이친다는 유언비어가 장안을 덮쳤다. 화들짝 놀란 벼슬아치들 가운데는 실제로 도망친 사람도 있었다 한다. 현실을 전도시키는 유언비어의 놀라운 힘! 그 시대를 예언하는 묵시록이 파도를 타고 뭍으로 전해졌다.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모든 희망과 절망이 바다로부터 온다. 산너머 남풍 부는 곳에 이상향이 있다면, 섬사람들에게는 수평선 저 너머 미궁의 바다속에 이상향이 있다. 마라도 남서쪽 물마루 너머에 평화의 땅, 환상의 땅, 이어도가 숨어있다고 믿어왔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라도 남서쪽의 수중 암초가 이어도란다. 비단 우리에게만 섬에 유토피아가 있는가. 플라톤이 ‘대화’에서 언급한 이래로 오랜 세월 서양인의 꿈이 되어버린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도 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 아틀란티스를 찾으려는 무수한 노력들이 하나의 새로운 학문, 즉 아틀란티스학(Atlantology)을 출현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틀란티스는 여전히 미궁의 바다에 머물고 있다. 꿈과 약속을 이뤄 주던 이상향은 천년을 뛰어넘는 하나의 기호로 각인돼 유전인자로 전승될 뿐이다. 그 이어도는 오늘도 남태평양으로 열려진 바닷 속에 잠들어 있다.‘이어도학’(Ieodology)이 출현할 단계이다. 이제, 또 하나의 이어도를 찾아가야 할 차례다. 신화와 과학이 만나서 새로운 이어도를 탄생시켰다.‘전설의 섬 이어도에 우뚝선 첨단 해양과학기지’란 설명이 붙은 한국해양연구원(KORDI)의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Ieodo Ocean Research Station)가 그 곳이다. 신화는 현실일 수도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해도에 소코트라 등으로 명기된 이어도의 실체가 드러났다. 마라도에서 남서쪽 149㎞ 떨어진 수중 암초로, 주변 수심은 55m, 암초의 정상은 해수면에서 4.6m에 불과하다. ●수중 암초에 해양과학기지 들어서 이곳에 무려 1220t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 기둥을 박았다. 수심 40m 해상에 15층 높이,400평 규모의 기지가 들어섰다. 연구원 8명이 2주간 상주할 수 있다. 당연히 선박 접안시설과 헬리콥터 이착륙장, 등대시설, 통신 및 관측시설, 실험실과 회의실도 마련되었다. 해양·기상관측장비 44종 108점이 설치되어 가히 종합연구센터의 면모를 갖추었다. 관측 자료는 무궁화위성(KOREASAT)과 글로벌스타(GLOBALSTAR)를 통해 한국해양연구원으로 전송된 뒤 인터넷을 통해 사용자에게 실시간 제공되고 있다. 지난해 14호태풍 매미가 엄습했을 때, 상륙 10시간 전부터 위력을 경고해 자연재해 감소에 큰 역할을 했음은 세간에 잘 알려진 사실. 이어도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심재설 박사는 과학기지의 역할을 ▲종합해양▲기상관측소, 인공위성에 의한 해양 원격탐사자료 검·교정▲지구환경변화의 핵심자료 제공▲태풍구조 및 특성연구▲어·해황 예보 및 지역 해양연구▲황사 등 대기오염물질 이동 및 분포파악▲불량한 기상 상태에서 해양구조물의 안전성연구▲안전항해를 위한 등대 및 수색 전진기지 역할 등으로 꼽았다. 기지의 역할은 과학적 목적을 뛰어넘어 국방·영토상으로도 중요하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면 망망해대에 작은 점 하나로 보인다. 수중 암초가 과학기지건설을 통해 하나의 섬으로 ‘승격’되었다. 사람이 상주할 수도 있다. 국제해양법상으로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200해리 해양주권시대에 저마다 해역을 넓히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당에 이어도 같은 수중 암초가 망망대해에 존재하고, 이곳에 기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된 사실을 우리는 조물주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모든 것은 원격 관측제어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우주와 해양이 하나로 연결되고, 또 육지로 전달되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첨단 과학기술의 노하우가 총동원되고 있다. 사실, 수심 40m의 거친 바다에 수천 t이 넘는 거대한 골리앗 기둥이 당당하게 선 것만으로도 우리의 기술력을 입증한다. 연구 실무자들은 이들 고급 장비의 도난을 걱정했다. 늘 사람이 지킬 수 없어 망망대해라도 ‘해적’들이 들이닥칠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격제어로 조정,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설치하기도 했다. 기지를 건설하려 했을 때, 중국 등이 까닭없이 반발하기도 했다. 그만큼 해역 주권의 이해득실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신화의 바다에서 과학의 바다로 나아갔으니 감개무량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어도가 실제로 확인되었다고 이상향의 꿈이 끝난 것일까. 달나라가 그랬다. 유인우주선 아폴로가 우주인을 내려놓자, 사람들은 더 이상 계수나무와 방아찧는 토끼는 사라졌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 ‘우주선신화’로 ‘달나라신화’는 영영 소멸된 것일까. 프랑스의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신화는 인간에게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은 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신화는 매우 중요한 것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환상이었지요. 환상을 통하여 인간은 우주를 이해합니다. 물론 환상에 불과할 뿐이지만 말입니다. 과학적인 사고관을 가진 우리지만 매우 제한된 정신력만을 사용할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탐라 백성이 꿈꾸던 ‘4차원의 현실’ 궂은 일을 하다보면 지문이 닳아 없어진다. 그러나 지문을 영원히 없앨 수는 없다. 민중이 천년을 꿈꾸어 온 이상향의 지문도 그대로 남는 법. 탐라 백성이 꿈꾸던 이상향인 이어도는 가상 공간이며,4차원의 ‘사이버 현실’이다.‘사이버 현실’이 현실과는 구별되지만, 민중은 환상 속에서나마 현실을 보고싶어 한다. 이어도는 현실과 환상을 이어주는 ‘유토피아행 티켓’이다. 그러면 과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신화란 무엇인가. 신화가 던져주는 환상은 과학의 환상과 화려하게 만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양자는 영원히 다른 화두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우리는 신화와 과학이 만나는 이어도에서 2개의 섬을 얻은 것이다. 영원히 미궁의 섬으로서 남아 있어야할 ‘신화 속의 이어도’, 그리고 현실에서 수면 위로 솟구친 ‘과학속의 이어도’가 그것이다. 신화와 과학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환상적이지 않는가.
  • [뒷골목 맛세상] 인천 차이나타운

    [뒷골목 맛세상] 인천 차이나타운

    작가 오정희의 빼어난 단편 ‘중국인 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절망적이며 게다가 퇴폐적이다. 주정뱅이, 양공주, 아편중독자 등이 우글거리는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중국인 거리’에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주인공 소녀는 앞날에 대한 한 가닥의 희망도 없이 초조(初潮)를 경험한다. 기실 작가에게 있어서 ‘중국인 거리’란 갓 자의식에 눈뜨는 자신의 내면풍경에 다름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일찍이 구한말 이래 ‘청관’이란 이름으로 인천의 북성동과 선린동 일대에 자리잡고 살아온 화교들의 참혹한 생활사가 단색 판화처럼 실사적 풍경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저녁 무렵이 되면 바구니를 팔에 건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뒤통수에 쇠똥처럼 바짝 말아붙인 머리를 조금씩 흔들며 엄청나게 두꺼운 귓불에 은고리를 달고 전족한 발을 뒤뚱거리며 여자들은 여러 갈래로 난 길을 통해 마치 땅거미처럼 스름스름 중국인 거리를 향했다. 남자들은 가게 앞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말없이 오랫동안 대통 담배를 피우다가 올 때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대개 늙은이들이었다. …늙은 중국인들은 우리들에게 가끔씩 미소를 지었다. 통틀어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는 동네에, 바로 그들과 인접해 살고 있으면서도 그들 중국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이들뿐이었다. 어른들은 무관심하게 그러나 경멸하는 어조로 ‘뙈놈들’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과 전혀 접촉이 없었음에도, 언덕 위의 이층집,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없는 상상과 호기심의 효모(酵母)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밀수업자, 아편쟁이, 누더기 바늘땀마다 금을 넣은 쿠리, 그리고 말발굽을 울리며 언 땅을 휘몰아치는 마적단, 원수의 생간(肝)을 내어 형님도 한 점, 아우도 한 점 씹어먹는 오랑캐, 사람 고기로 만두를 빚는 백정, 뒤를 보면 바지도 올리기 전 꼿꼿이 언 채 서 있다는 북만주 벌판의 똥덩어리였다. 굳게 닫힌 문의 안쪽에 있는 것은, 십년을 사귀어도 좀체 내뵈지 않는다는 깊은 흉중에 든 것은 금인가, 아편인가, 의심인가.‘ 비단 작가 오정희의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도, 화교라는 이름으로 100년이 넘게 살아온 중국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척박한 황무지를 넘어 차라리 유형지에 흡사할 터였다. 애오라지 끈질긴 인내심 하나만으로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하여 어디에서나 나름대로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채 꼿꼿한 자긍심을 지켜온 화교들로서도 유일하게 발을 붙이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걸어야 한 곳이 바로 우리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쇠락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역시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화교들에 대한 각종 제도적인 제한과 거의 악랄하기까지 한 경제적, 사회적 차별정책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듯 어둡고 참담하고 부정적이며 어디를 둘러보아도 단 한 점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쇠락의 대명사 ‘중국인 거리’가 오늘은 관광특구 차이나타운이란 이름으로 화려하게 거듭 태어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이르러 IMF 극복을 위한 외국자본 유인책의 하나로 외국인들에게 부동산 취득을 가능하게 하면서 화교들에 대한 각종 제한과 차별정책 또한 사라진 것이 빌미가 되어, 일찍이 이 땅을 떠나 타이완, 동남아시아, 미국 등으로 나갔던 2,3 세대의 화교들이 되돌아오고 덩달아 화교 자본도 함께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초순 열린 ‘제3회 인천중국의 날 문화축제’때 둘러본 차이나타운은 옛날 가난에 찌든 어두운 모습은 거의 흔적조차 사라진 채 관광특구답게 보다 산뜻하고 이국적인 향취가 풍겨나는 화려한 거리였다. 중국풍의 백화점을 위시한 새로운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는가 하면,20여곳이 넘는 중화요리 식당과 중국잡화점, 중국식품점, 무역회사 등이 한창 번성하고 있었다. 이중에서도 새로 들어선 중화요리 식당들은 저마다 우리가 인천의 차이나타운이라면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자장면의 본고장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들의 입맛에 초점을 맞추어 거의 퓨전에 가까운 새로운 메뉴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자장면 하나에도 태림봉의 유슬자장면, 자금성의 향토자장면, 태화원의 채식자장면, 북경장의 시금치를 갈아 면을 뽑은 녹색자장면, 본토의 고구마자장면 등, 각 식당의 특성에 따라 전혀 새로운 자장면들이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었다. 태림봉(032-763-1688)은 일반 자장면을 약간 고급화하여 유슬자장면(5000원)이라는 특색 있는 자장면을 내었는데, 원래 유슬이란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가늘게 채 썰어서 볶는다는 뜻으로, 거기에 죽순, 표고버섯, 양파, 팽이버섯, 호박, 당근 등의 야채도 함께 채를 썰어서 자장소스를 만들어 보다 격조 높은 자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태림봉에서 맛본 요리 중 으뜸은 튀김초면(8000원)이라는 약간 생경한 이름이었다. 원래 팔진초면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초면이란 일본의 라면처럼 면발을 기름에 튀겨 꼬불꼬불해진 것을 일컫는다. 팔진초면은 이름처럼 8가지 진기한 재료가 들어간다고 해 붙여진 것이다. 초면에 새우, 조개, 키조개, 오징어, 해삼, 소라 등의 해물과 죽순, 피망, 총각버섯, 샐러리, 청경채 등의 야채를 그릇 가득히 담아 내오는데,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이 아연 일품이다. 만일 중화요리에 대하여 일가견을 가진 마니아가 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태림봉의 기아해삼이란 비싼 요리를 권하겠다. 해삼의 내장을 빼내고 그 속에 새우며 키조개, 전복 등을 다져넣어서 통째로 찌고 튀기고 다시 볶아낸 다음에 한 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낸 이 기아해삼은 원래 쇼양해삼으로 불리는 요리이다. 그런데 옛날 기아자동차 회장이 이 요리에 심취한 나머지 거의 날마다 찾다 보니 중화요리 주방장들 사이에서 마침내 제 이름보다는 기아해삼으로 더 유명해져 버린 것이었다. 기아해삼의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맛은 거의 황홀하여 비단 기아자동차 회장이 아니라도 깊게 빠질 수밖에 없는데, 한 접시에 6만원이나 되는 가격이 아깝지 않게 여겨질 정도였다. 향토자장면(4000원)으로 유명한 자금성(032-761-1688)은 태화원(032-766-7688)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곳에선 채식요리들을 권하고 싶다. 태화원의 채식요리는 중국요리로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다. 돼지고기나 닭고기, 쇠고기 같은 일체의 육류는 물론 생선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콩, 표고버섯, 두부, 찹쌀, 감자 등으로 육류며 생선 맛을 내고 있다. 이를테면 콩으로 햄을 만들고 두부로 고기 맛을 내며 한천으로 해파리를 만들고 동고버섯 줄기로 생선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내는 채식요리는 해파리냉채, 라조생선, 라조육, 탕수육, 팔보채, 샥스핀 등으로 물경 50여 가지에 이른다. 공화춘(032-766-0571)에서는 코스요리를 주문할 것을 권하고 싶다.1만 5000원짜리 코스요리에는 3품냉채, 유산슬, 팔보채, 탕수육, 새우칠리소스가 나오고 식사로는 자장면이 따른다.2만원짜리 코스요리에는 삼선샥스핀과 라조생선, 부추잡채가 추가되는데,1만 5000원짜리 코스로도 쉽게 포만감에 이른다. 차이나타운의 중화요리집은 이밖에도 부엔부, 청관, 대창반점, 본토, 신승반점, 주경루, 성림장, 황금성, 향만성, 풍미 등 많다. 만일 이국적인 향취에 취해 거리의 이곳저곳을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한 끼를 때우기 위해서라면 하고많은 식당 중에서 구태여 어느 한 곳을 찾아 기웃거릴 필요가 있을까. 식당 주인들뿐만 아니라 주방장 같은 요리사들을 위시해 종업원 대부분이 화교출신이며 저마다 요리 전문가이다. ●자장면 나이는 121세 자장면이 처음 태어난 것은 1883년 인천이 개항되면서 청국지계가 설정되고 주로 산둥지방의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자연스럽게 청요리집들이 생겨나면서 부터였다. 이때 처음으로 청요리를 접한 서민들이 신기한 맛과 싼 가격에 놀랐고, 청요리가 인기를 끌자 누군가가 부두 노동자들을 상대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산둥지방에서 즐겨먹던 춘장에 생각이 돌아, 마침내 춘장으로 자장소스를 만들어 국수를 비벼먹는 자장면이 탄생한 것이었다. 자장면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메뉴로 내걸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05년에 문을 연 공화춘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화춘은 지금은 당시 화려했던 옛건물의 자취만 남아 있지만 이미 일제 때부터 크게 이름을 날린 고급 요릿집이었다. 물론 지금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화춘과는 무관하다. ●“아무거나 고르세요” 차이나타운의 식당 중에 문득 현관에 ‘자장면 없습니다.’라는 쪽지를 붙인 원보(032-773-7888)가 있다. 아니, 자장면을 팔지 않는다니!그러고도 장사가 되나? 약간은 어이없는 기분으로 슬쩍 식당 안을 들여다보면 웬걸 빈 자리가 없게 손님들이 바글거린다. 주로 중국식 만두를 전문으로 하는데 왕만두, 물만두, 찜만두, 군만두가 각각 3000원이고, 생선물만두와 별미만두국이 4000원이다. 어느 만두도 다 맛이 있지만, 별미만두국이야말로 이름 그대로 별미다. 별미만두국은 조개, 굴, 새우, 동죽살 같은 해물에다가 호박과 당근, 양파, 죽순, 송이버섯 등의 야채를 채 썰어 넣어 만두 위에 고명처럼 가득히 얹어준다. 자칫 그릇 밖으로 넘쳐날 것처럼 푸짐하지만 시원하면서도 고소한 국물 맛이 입안에 오래 머문다. 다 먹고나면 정말로 값이 4000원인가 싶게 그 양이며 맛이 뛰어나다. 원보에는 이밖에도 삼선해물탕(5000원), 오향장육이며 오향족발, 해파리냉채, 산동소계라는 닭고기요리가 저마다 1만원인데, 어느 요리든 눈 감고 주문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원보의 유천해 사장은 굳이 자장면을 먹으려면 북경장(032-766-4455)의 자장면을 먹으라고 권했다. 그이의 주장인즉 차이나타운의 자장면이야 맛이 도토리 키재기로 거기에서 거기인데 북경장 자장면이 2000원으로 값이 가장 싸다는 것이었다.
  • [문화마당] 베르테르와 ‘욘사마’ 신드롬/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세계 문학사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1808년 나폴레옹은 괴테를 만났을 때 그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흔일곱 살이 되었을 때 괴테는 이 소설과 관련하여 말하였다.“나는 살았고, 사랑하였으며, 아주 많은 고통을 겪었다! 누구든지 만약 자신의 생애에서 한 번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가슴에 와닿으면서 마치 그 책이 오직 자신을 위하여 쓰여진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없었다면 그 삶은 참으로 비참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또 다른 이유로 뭇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실연 당한 뒤 슬픔에 못 이겨 자살한 주인공 베르테르는 독일은 물론이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도 자못 큰 영향을 끼쳤다. 사랑에 절망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젊은이들의 호주머니 속에는 늘 괴테의 이 소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이 나온 뒤로 자살자의 수가 급격하게 치솟았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라이프치히, 바이에른, 오스트리아에서 금서 목록에 오르는 불운을 맞기도 하였다. 괴테는 독자들에게 제발 베르테르를 따르지 말라고 충고할 정도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문학사에서 최초로 ‘상품 열풍’을 일으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베르테르가 소설 속에서 사용한 장신구가 젊은 세대에게 크게 유행하였다. 젊은 남자들은 베르테르처럼 노란 조끼를 즐겨 입었으며, 젊은 여자들은 ‘베르테르 향수’를 뿌렸다.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놋쇠 단추가 달린 푸른색 프록 코트며, 위를 접어올린 갈색장화, 둥근 펠트모자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가 하면 베르테르 도자기 인형, 소설 속의 삽화를 그려넣은 찻잔, 베르테르 얼굴을 그린 부채들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한다. 요즈음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방영한 TV드라마 ‘겨울 연가’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이 드라마를 벌써 몇 번째 방영할 정도라니 그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금년 연말에는 일본어로 더빙하지 않고 한국어로 그대로 방영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한국어로 직접 듣기 위하여 몇 달 전부터 한국어를 공부해 온 극성 주부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에 주연 배우로 출연한 배용준의 인기도 각별하다. 이른바 ‘욘사마 신드롬’이라고 하여 일본 열도가 시끌벅적하다. 우리말의 ‘님’보다도 더 높은 존칭어인 ‘사마’를 붙여 존경심을 나타낸다. 일본 총리까지 ‘욘사마’가 자신보다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이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겨울 연가’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콘텐츠 산업과 관광수입도 짭짤한 모양이다. 올해 말까지 이 드라마와 관련한 콘텐츠 상품의 매출은 줄잡아 2000억원으로 예상되고, 드라마의 촬영지였던 용평과 춘천을 찾는 관광객도 엄청나게 늘었다. 연말까지 무려 수십만명의 일본 관광객이 한국을 찾을 전망이다. 그런데 관광수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를 통하여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심어 주었다는 점이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하여 독일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 젊은이들을 끌어들인 것처럼,‘겨울 연가’도 한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일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비록 이 드라마와 주연 배우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주로 30∼40대 가정주부들이라고는 하지만 그 효과는 아마 세대를 뛰어넘어 일본 사람 거의 모두에게 두루 미칠 것이다.“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을 요즈음처럼 실감하는 때도 없다. 김욱동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 [뒷골목 맛세상] 네 모녀 목포산낙지

    [뒷골목 맛세상] 네 모녀 목포산낙지

    북한산 산행을 하는 이들이 산을 오르내리기 위해 모이는 장소는 코스에 따라 여러 곳이 있다.그 중에 한 곳이 지하철 불광역 코스인데,불광역 코스의 산행팀들 중에서 언제부터인가 입소문을 통해 유명해진 낙지전문 요리집이 있다.그 입소문이란 다름 아닌 ‘싸고 양이 많은데다가 색다른 맛이 있다.’는 것이다. ‘목포산낙지’라는 평이한 옥호인데,나로서는 이 맛집을 취재하는 동안에 지금까지의 다른 맛집들과는 달리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불광역 산행팀의 입소문에 따라 ‘목포산낙지’를 찾았을 때,우선 그 위치가 뒷골목의 뒷골목에 숨어 있어서 집 찾기부터 쉽지 않았다. 이제 막 땅거미가 내려앉는 평범한 주택가 골목을 해맨 끝에 어렵사리 찾아냈는데,이것 봐라,주변의 정황으로 보아서는 전혀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집안에는 뜻밖에 손님들이 바글바글 들끓고 있어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겨우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었다. 어렵게 자리를 차지하고 드디어 연포탕이며 철판낙지볶음 같은 ‘목포산낙지’의 몇몇 요리를 대할 수 있었는데,나로서는 산행팀에게 들은 입소문 중에서 싸고 양이 많다는 점은 얼른 수긍이 된 데 반해 다른 집하고는 달리 색다른 맛이 있다는 점은 별로 수긍이 되지 않았다.나중에 산행팀의 한 사람에게 이 점을 지적하자 그 이는 대뜸 잘라 말했다. “한두 번 먹어가지고는 목포산낙지의 색다른 맛을 알 수가 없지.” 그이의 말에 나는 은근히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는데,게다가 덧붙이는 말이 불광역 ‘목포산낙지’는 원조가 아니고 정작 ‘목포산낙지’ 원조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이가 가르쳐준 원조는 지하철 홍제역 부근에 있었는데,이것 봐라,이 원조 역시 어쩌면 그렇게도 불광역과 판박이로 똑 같으랴.뒷골목의 뒷골목 주택가에 숨어있는 것하며 바글바글 끓는 손님들하며…. 알고 보니 이 판박이 ‘목포산낙지’는 불광동과 홍제동 말고도 사직동과 마포 서부지청 뒷골목에도 있었다.그리고 그 주인들은 홍제동(02-391-7992)의 어머니 오순옥 여사를 위시해서 사직동 배화여대 입구(02-735-0881)의 큰딸 유영숙,불광동(02-388-3551)의 둘째딸 유경숙,마포 서부지청 옆골목(02-713-7604)의 셋째딸 유정숙으로 일가를 이루고 있기도 했다. 내가 일가 중에 먼저 취재를 하고 싶다고 운을 뗀 것은 불광동의 둘째딸 유경숙이었다.우선 내가 처음 간 집인데다가 주인 되는 이가 붙임성이 있어 보이고 그만큼 성격도 화끈하겠다 싶어서 먼저 운을 뗀 것인데,보기 좋게 한 마디로 거절당하고 말았다.그이는 빤히 나를 보며 묻는 것이었다. “거추장스럽게 왜 신문에 나고 그래요?” 아니,신문에 나는 것이 거추장스럽다니! 이 정도 되자 나도 드러내놓고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어서 오기로 달려들어 북한산 산행팀들까지 동원한 끝에 삼고초려식으로 어렵사리 취재 승낙을 받아냈다. 홍제동의 오순옥 여사가 일가의 중심이 되어 오늘의 ‘목포산낙지’ 시대를 열게 된 것은 정말로 한 순간의 우연 때문이었다.갓 결혼한 열아홉살 새댁의 몸으로 남편 유점만을 따라 고향인 고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것은 일찍이 60년대 초반이었다. 달랑 몸뚱어리 하나만을 밑천으로 삼고 시작한 젊은 부부의 서울살이는 애초부터 고달플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충무로 길거리에 난전을 펴고 앉아 막무가내로 장사를 하기 시작하여 의정부를 헤매며 고물장사를 하다가 이번에는 홍은동으로 흘러들어 인왕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게 되었는데,20년 가까운 서울살이 끝에 1남 3녀의 자녀들과 함께 수중에 1000만 원을 거둘 수가 있었다.어느 덧 중년에 이른 부부는 홍제동에 보증금 1000만 원짜리 전세에 10평 남짓한 가게를 마련하여 미처 옥호도 내걸지 못한 감자탕집을 열었다. 아마도 이들 일가에게는 감자탕집을 전후한 시기가 가장 어려웠던 모양이었다.모처럼 어머니와 세 딸이 함께 모여 이러저런 지난 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둘째딸이 어머니의 말에 우스갯소리로 한 마디 덧붙였다. “하여튼 우리 집은 제대로 시집간 딸이 하나도 없응께.” 그러자 어머니가 나에게 세 딸들을 손짓해보이며 큰소리를 내었다. “이년들 통통한 몸땡이 잠 보시요.시방 이렇게 잘 묵고 잘 사는 년들이 어디 있겄소? 다 에미 잘 만난 덕이제.” 어머니의 말에 세 딸들이 이구동성으로 ‘그건 그래’하며 키들거렸다. 감자탕집을 시작한 지 4년이 되던 어느 해 가을에 유점만씨가 시제를 지내러 고향에 갔다가 산낙지를 가져왔다.식구들이 먹어치우기에는 많은 양이어서 우연찮게 손님들에게 내놓았더니,반응이 놀라웠다. 당시만 해도 오순옥 여사는 낙지요리에는 전혀 무지하여 고향에서 하던 대로 그저 끓는 물에 데쳐내는 식이었는데,살아있는 낙지여서일까,한번 먹어본 손님들은 감자탕보다는 자꾸 낙지만을 찾는 것이었다.할 수 없이 남편이 다시 한번 고흥에 가서 산낙지를 사올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번에도 반응이 놀라웠다. 마침내 부부는 감자탕집을 때려치우고 그 자리에 낙지집을 차렸다.‘목포산낙지’라는 옥호도 이때 붙인 것인데,우선 탁자 3개를 놓고 시작하여 손님이 넘쳐나면 모자라는 자리는 가까운 주차장 한편에 천막을 쳐서 때웠다.그리고 한번은 남편이 한번은 아내가,이렇게 날마다 교대로 고흥을 오르내렸다.서울역에서 자정 무렵에 출발하는 밤차를 타고 이른 새벽에 순천에 내려 버스로 바꿔 타고 고흥에 도착하면 이제 막 장이 열린다.부랴부랴 산낙지를 사서 고속버스를 타면 오후 4시에 남부터미널에 도착하고 거기서 택시를 타면 간신히 저녁 시간에 가게에 닿을 수 있었다. 언젠가 고흥장의 산낙지가 물량이 달려 안타까워하자 상인 중의 한 사람이 녹동에 가보라고 일러주었다.그리하여 부부는 녹동 수협 공판장에서 중개인을 만나 직접 산낙지를 구할 수가 있었다.녹동 수협과 거래하면서부터는 활어 운송차가 날마다 서울을 오르내려서 부부가 직접 녹동까지 다니지 않고도 손쉽게 산낙지를 공급받게 되었다. 이 무렵에는 오순옥 여사 또한 다양한 낙지요리에 눈을 떠 낙지데침 말고도 연포탕이며 낙지무침,낙지전골 등의 메뉴를 내놓을 수 있게 되었는데,이런 메뉴는 누구에게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순전히 손님들의 요구에 따르다 보니 저절로 익혀진 것이었다.이를테면 주인 뿐만이 아니라 주인과 손님이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인 셈이다.어쩌면 바로 그런 합작품의 솜씨 속에 산행팀의 한 사람이 나에게 스무고개 비슷하게 밝힌 ‘한두 번 먹어봐서는 알 수 없는 목포산낙지 색다른 맛’의 비밀이 있는지도 모른다. ‘목포산낙지’를 찾는 손님들이 하고 많은 낙지요리 전문집들 중에서도 정도 이상으로 이 집만을 고집하는 것에 대해 무슨 비법이라도 있느냐고 오순옥 여사에게 묻자,뜻밖에도 아주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비법은 무슨 베라묵을 비법.워낙 생물이라 낙지 자체가 좋은 것뿐이제.” 저마다 ‘목포산낙지’를 차린 세 사위들 중에서 둘째 사위가 언젠가 조심스럽게,‘장모님,혹시 어디서 낙지요리법을 전수받았습니까.’하고 물어왔을 때도 대답은 비슷했다. “전수는 무슨 베라묵을 전수.손님이 원하는 대로 거시기하게 맹글다봉께 거시기하게 된 거지.요리법이고 뭐이고 따지자먼 나 같은 엉터리는 천하에 없을 거이여.” 세 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서 낙지요리 솜씨를 전수받은 것은 둘째딸이다.당시에 양재동의 유명한 한식당에서 서빙을 하던 둘째딸 류경숙은 거기에서 어쩐지 배우 한석규를 닮아 지성적으로 보이는 남편 정종석을 만나 결혼한다.그리고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그동안 벌어놓았던 돈도 다 까먹고 할 수 없이 어머니 그늘에 들어온다. 이미 남편과 함께 유명한 한식당에서 식당일의 이모저모를 익힌 류경숙은 어머니 그늘에 든 지 1년 후에 홍제동에서 멀지 않은 대조동에 당시까지 비어 있던 창고 중에서 13평을 세 얻어 ‘목포산낙지’라는 옥호를 내걸었다.이 대조동 ‘목포산낙지’ 또한 상상외의 성공을 하여 단숨에 창고 전체를 사용하는 40여평 규모로 터를 넓힐 수 있었는데,젊은 부부의 의외의 성공에 놀란 집주인이 부부를 내쫓고 대신 낙지집을 차리는 바람에 부부는 지금의 불광동으로 자리를 옮겨 바야흐로 불광동 시대를 맞게 되었다. 류경숙은 류경숙대로 솜씨며 경영에 있어서 홍제동의 어머니 못잖은 비법이 있는 듯하다.그녀는 그 비법에 대해 ‘손님에게 두 개를 줘야 손님이 하나를 준다.’라는 아리송한 대꾸로 얼버무렸다.내가 미진해하자 그녀가 덧붙였다. “낙지가 비쌀 때는 오늘은 낙지를 많이 못준다고 솔직하게 밝히고,대신에 낙지가 쌀 때는 손님들이 놀랄 만큼 많이 줘요.그리고 그걸 손님들이 믿어줘요.” 목포산낙지가 번창하기는 홍제동이나 불광동뿐만이 아니라 사직동과 마포도 마찬가지인 듯하다.첫째딸 류영숙이 사직동에 ‘목포산낙지’를 낸 것은 1999년이고,셋째딸 류정숙이 뒤늦게 마포 서부지원 옆골목에 ‘목포산낙지’를 낸 것은 2001년이다.이들 세 딸들 또한 어머니처럼 녹동에서 ‘워낙 생물이라서 물이 좋은’ 산낙지를 가져다 쓰는 것은 물론이다.그렇듯이 저녁이 되면 손님들로 식당이 다 차서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도 사직동이며 마포 또한 예외는 아니다. ■ 서울서 세발낙지를? ‘목포산낙지’의 메뉴는 세발낙지를 젓가락에 감아서 통째로 먹는 통낙지(2만원)와 송송 썰어서 참기름을 묻혀먹는 산낙지(2만원)가 있다. 그리고 낙지에 콩나물과 파와 양파를 넣어서 철판에 볶는 산낙지철판볶음이 있는데,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각각 4만,3만,2만원짜리로 나누며 4만원짜리는 네 사람이,3만원짜리는 세 사람이, 2만원짜리는 두 사람이 먹을 양으로 적당하다. 산낙지전골이나 산낙지볶음,산낙지무침,산낙지연포탕도 역시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나뉘어지며 값도 마찬가지다. 만일 ‘목포산낙지’에 처음 들르는 이라면 나는 우선 산낙지연포탕을 권하고 싶다.연포탕에는 살짝 데쳐 썰어내는 낙지 말고도 조개가 적잖게 들어있는 데다가 미나리며 부추,미역을 원하는 대로 추가하여 먹을 수 있는데,그것들을 다 건져먹고 나면 그 국물에 취향에 따라 이제 막 삶아낸 소면이나 중면을 말아먹기도 하고,밥을 넣고 끓이다가 계란을 풀어 죽으로 먹기도 한다. 산낙지철판볶음이나 산낙지전골,산낙지무침,산낙지볶음 같은 안주 메뉴도 다 먹고 난 후에는 다시 거기에 밥을 넣고 볶아먹을 수 있는데,이런 식으로 하면 한 가지 요리만으로도 충분히 양을 채울 수 있다. 이밖에도 점심식사 메뉴로는 산낙지회덮밥(6000원),산낙지볶음덮밥(5000원),뚝배기세발낙지연포탕(7000원) 등이 있는데,비단 점심 때 뿐만이 아니라 저녁에도 주문이 가능하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8) 근대의 불빛 우도 등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8) 근대의 불빛 우도 등대

    ‘근대’는 그림처럼 다가왔다.그것이 ‘식민지 근대’였건,‘제국주의 근대’였건 어김없이 왔다.비행기가 없었던 시절,‘문명’이라 이름붙은 것들은 대개 해양을 통해 들어왔다.19세기말의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국의 바다’는 등대 건설로부터 시작됐다.침략이었건,무역교류였건,해저 지형에 익숙지 않은 외국배가 들어오자면 등대는 필수 시설이었다.이 땅의 등대는 그렇게 제국주의 뱃길을 인도하는 길라잡이로 태동했다.어느날 갑자기 포구 앞의 무인도에 일본인들이 높다란 기둥 건물을 세우자 사람들은 그것을 ‘등대’라고 부르며 수군댔다.등대에 불이 점화되고 그렇게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인천 앞바다 칠발도등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한국 등대 100주년 기념식’이 그것.100주년 회년은 비단 칠발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울기등대(1906),시하도등대(1909),죽변등대(1910),어룡도등대(1910) 등 전국의 수많은 등대들이 속속 회년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도 우도등대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지난 100년을 생각한다.양정식(32) 등대지기가 길안내를 맡는데 세살배기 아들이 쫄랑거리며 층계를 앞서 오른다.등대 주변에서 사는 덕분에 그 나이에도 인근의 지형지물을 꿰뚫고 있다. 등대지기의 삶은 이처럼 가족공동체적일 수밖에 없다.등대지기 중에는 더러 급환으로 자식이나 가족을 잃은 애달픈 경험도 가지고 있다.편의상 등대지기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공식 직함은 ‘항로표지원’.명칭은 아무래도 좋다.뱃길을 지켜주는 ‘바다의 지킴이’ 역할은 그대로이므로. ●세계 등대역사 실물 모형 한눈에 우도를 찾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섬에 만들어진 등대공원은 우도가 처음이다.호미곶,부산영도,여수 오동도 등지의 등대들이 속속 박물관·조망관·체험관 등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제주도 우도등대도 그 행렬에 동참했는데,특기할 점은 세계의 등대 역사를 알려주는 실물 모형을 만들어 앉은 자리에서 세계 등대여행을 할 수 있게 한 점이다. 상하이항의 파고다,신화 속의 등대인 파로스,독일의 브레머헤븐,일본 최초의 양식 등대인 쓰루가만 입구의 다데이시사키,1355년에 세워진 프랑스 코르투앙,뉴욕 허드슨강 입구의 킹스턴,그리고 한반도의 이러저러한 등대들이 모형으로 모여 있는 산교육장이다. 서기 874년 중국 상하이의 마호강 중앙에 세워진 마호타파고다등대는 글자 그대로 탑이다.송나라 때인 1279년까지 불을 밝혔으며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목탑 양식으로 서구의 근대적인 기능형 등대와는 다른 민족적 조형미를 보여준다.오로지 원통형기둥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파고다등대는 등대 건축에서도 민족적 형식이 도입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더구나 신화 속의 등대로만 알려진 파로스등대에 이르면 서구의 등대가 가히 빌딩 수준의 규모였음을 알게된다. 우리 등대도 근래 들어 다양한 건축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등대가 항로표지뿐 아니라 정서적,미학적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갖는다는 각성이 낳은 결과다.거북선 모형의 한산도등대,새가 올라앉은 형상의 몽하도등대,첨성대를 바위에 올려놓은 듯한 호도등대 같은 재미있는 등대도 있다. 민족건축 양식은 아니더라도 현존하는 오래된 등대의 건축사적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등대 건축은 1900년대 초반부터 콘크리트를 사용한,당대로서는 최첨단 공법이 적용된 건축물이었다.벽돌조,철근콘크리트조,철골조 등 다양한 건축기술은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해 로마시대나 르네상스풍을 연상케하는 등대도 많다. 칠발도등대(1905)를 필두로 팔미도(1903)·부도(1904)·거문도(1905)·제뢰(1905)·우도(1906)·울기(1906)·죽도(1907)·시하도(1907)·당사도(1909)·목덕도(1909)·하조도(1909)·격렬비도(1909)·가덕도(1909)·죽변(1910)·소리도(1910)·방화도(1911)·어청도(1912)·산지(1916)·주문진(1918)·홍도(1931)·미조항(1939)·서이말등대(1944) 등은 대한제국기와 일제 침략의 요동치는 현장을 지켜본 근대 문화유산의 총아들이다.그런 점에서 지금 남아 있는 수십개의 등대들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일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그만큼 문화사적으로 값진 유산이기 때문이다. ●일제 침략 현장 지킨 근대 문화유산 우도에 왜 이렇게 수많은 등대모형을 만들어 전시했느냐고 묻자 부원찬 제주해양수산청장은 이렇게 답변했다.“한국 등대사가 100년을 돌파했음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21세기가 문화의 세기인 만큼 등대도 변해야 합니다.바닷길만 밝힐 게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하는 해양문화의 바닷길도 아울러 열어야지요.” 등대의 역사 자체가 ‘제국의 역사’였던 만큼 이전까지만 해도 ‘시민과 함께하는 등대’는 사실 구두선이었다.그러나 근래 등대들은 분명히 변신을 시작하였다.영도등대에서는 문학인들의 시낭송회가 열리고,우도등대에도 숙박을 하며 등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이제는 명승지나 대충 둘러보고 마는 바다여행이 아니라 등대 여행도 꿈꿔볼 일이다. ●“바닷가 절경엔 등대 아니면 초소” 필자는 지인들에게 가끔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대한민국 바다에서 가장 뛰어난 절경은 등대 아니면 해안초소’라고.동해안의 절경마다 해안초소가 서있어 접근을 막는다면,만이 훤히 굽어보이는 높다란 곳에는 또한 등대가 서있었다.그러니 근대적 관해(觀海)의 가장 빼어난 조망지는 등대일 수밖에 없다.불빛이 퍼지자면 사방팔방 관망되는 절벽이나 산봉우리,우뚝 솟은 암초의 등을 타고 서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도등대도 그런 곳이다.등대에 오르니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바다가 열린다.절벽 아래로 아낌없이 부딪혀 깨어지는 파도를 보노라니 세상을 잊고 이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과욕(?)이 머리를 쳐든다.조용하다.그리고 아름답다.그러나 막상 역할이 바뀌어 정작 내가 등대지기가 되어도 주변의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답고 조용하기만 할까.오고가는 배들이 모두 걱정거리로 보이는데도 말이다.그래도 좋다.제주도에서 풍광이 가장 뛰어난 곳 가운데 한 곳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우도등대는 돔형의 탑으로 1906년 3월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2년만 지나면 이 등대도 100살의 나이를 채운다.이렇듯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등대들은 나름의 설치 배경이 있다.모두 하나같이 외해(外海)로부터 들어오는 길목의 험난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우도등대 바로 앞은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다.수심도 깊다.그래서 다리도 놓지 못하고 늘 도항선으로 오가야 한다.제주도 등대의 맏형이 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등대 ‘낭만’은 만들어진 환상 1123년에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갔던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에도 ‘바닷길은 깊은 곳이 두려운 곳이 아니라 얕은 곳이 무섭다.’고 기록돼 있다.이른바 ‘배가 깨지는’ 해난사고는 대부분 해변에 가까운 곳에서 빚어지는 사고다.등대는 이런 곳에 설치된다. 등대는 ‘낭만’인가.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그러나,단연코 그렇지 않다.‘등대낭만’은 등대에 관한 수많은 미화와 환상이 불러일으킨 환영일 뿐이다.영국의 사학자 홉스 바움의 표현대로 ‘만들어진 전통’이다.근대적 등대가 선보인 이래 등대의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환상 창조’의 위력이 문학예술 곳곳에서 발휘돼 그런 ‘환영’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나라에 등대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20세기 초만 해도 등대는 ‘선진기술’의 집약체였다.단순하게 불빛만 비추는 곳이 아니라 이곳에 최초로 무선전신지국을 설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정세의 동향을 감지하고 보고하는 중요한 목적까지 수행했다.무선국의 존재는 등대지기가 최소한 무선기술을 습득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인데,당시에 무선사는 최고의 첨단기술자였다.그러니 전쟁이 벌어지면 적의 함대나 항공기가 등대를 우선 공격목표로 삼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일제시기의 모든 등대장들은 일본인들로 채워졌다.비밀유지를 위해서였으며,한국인들은 일용직으로만 일할 뿐이었다.광복 당시에 한국인으로서 정식 등대원으로 잔존한 사람은 고작 4명에 불과했다.지방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등대장도 초대받아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 사회적 위상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복되던 해,많은 등대들이 민중들의 공격을 받았다.일본인 등대지기가 철수한 상태에서 등대의 값진 설비들을 모조리 뜯어가기도 했다.그만큼 등대의 장비가 첨단 시설이자,고가품이었다는 방증이다.또 당시 민중들의 의식 속에 깃든 등대에 대한 민족적 적대감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등대는 24시간 가동하므로 3교대를 돌리자면 쉴틈이 없다.우도등대의 경우 주변에 흩어진 8개의 등표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하루에 세 번씩 이상유무를 점검해 해난의 여지를 살핀다.선박 조난의 책임을 등대에서 져야 할 이유는 없지만 막상 관할 해역에서 사고라도 나면 등대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그런 즉,등대를 두고 말하는 ‘낭만타령’은 얼마나 속절없는가! 지금도 등대가 밝히는 뱃길을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물동량과 정보가 숨가쁘게 세계에 전달된다.그 ‘오고 감’이 없다면 우리 경제가 아예 돌아가지 않는다.등대는 ‘현실’이다.
  • [뒷골목 맛세상] 이천 신둔·사기막골

    [뒷골목 맛세상] 이천 신둔·사기막골

    고향을 잃은 이들은 ‘이천쌀밥’과 ‘산야초 시절음식’을. 올해도 한가위가 되자 고향을 찾아 조상을 뵙는 1000만 명에 가까운 귀성객과 역귀성객들로 인하여 고속도로는 물론 국도까지도 어김없이 몸살을 앓았다.그렇듯 해마다 무슨 연례행사처럼 고향을 찾는 전국민적인 귀소본능에는 어쩐지 눈물겨운 데가 없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덩달아 경쟁사회 체제에 들어가면서,너나없이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변화와 혁신의 급물살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그리고 급물살의 눈이 뒤집힐 것 같은 속도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뒤로 쳐지거나 튕겨져 나온 이들은 자칫 낙오자라는 관형어를 이름 앞에 붙여야 했다.그런 경쟁사회의 급물살 속에서 얼핏 눈을 돌려보면,직장이나 길거리 심지어 가정에서마저도 잠시나마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휴식을 취할 만큼 여유로운 공간이 단 한군데라도 있던가.어쩌면 조금치의 여유도 허용되지 않는 저마다의 일상생활이 한가위가 되면 무슨 사생결단의 중대사처럼 저마다 고향을 찾아 나서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리하여 끝내는 전국의 고속도로며 국도를 거대한 주차장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어렵사리 고향을 찾는 이들은 그나마 행복한 편인지도 모른다.벌써 오래 전부터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들,그리고 고향이라고 해봤자 누구 하나 반겨줄 연고자 하나 없이 차라리 타향보다 더 낯선 곳이 되어버린 이들에게는 한가위의 유난히 커다랗고 샛노란 보름달이 무슨 비수처럼 눈에 아프게 박혀 오리라.여우도 늙으면 제가 태어난 곳을 향해 머리를 돌린다고 하지 않던가. ●20여가지 반찬 추석상 부럽잖아 그대가 만일 한가위의 커다란 달이 눈에 박혀 오래 아팠다면,비단 그대만이 아니라 가까운 이 또한 한가위의 달 때문에 오래 눈이 아팠다면,그대는 추석 뒤끝의 가을볕이 좋은 날 가까운 이와 함께 훌쩍 3번 국도를 따라 이천으로 길을 나서고 볼 일이다.그리하여 광주를 지나고 곤지암을 지나,마침내 도예촌으로 유명한 신둔과 사기막골 어름에서 걸음을 멈출 일이다. 그대는 이미 곤지암을 지나 넋고개라고 불리는 야트막한 고갯길을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하는 ‘이천쌀밥’이라는 똑같은 이름의 입간판들을 여러 번 보게 되리라.얼핏 헤아려보아도 신둔 도예촌 일대의 ‘이천쌀밥’이라는 입간판은 20여개가 넘는다.그대는 딱히 어디랄 것이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입간판들 중의 한 곳을 골라도 무방하다.어느 이천쌀밥집을 들어가도 그대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이천쌀밥과 함께 20여 가지의 반찬들이 가득한 상차림과 마주 앉게 되리라.이만한 상차림이라면 여느 추석상 부럽지 않게 한껏 넉넉하다. 그대가 다소 입맛이 까다로운 이거나 그만큼 맛의 미묘한 차이에 민감한 이라면,그대는 우선 넋고개 마루턱에 있는 고미정(031-634-4811)을 찾기 바란다.고미정의 주인은 이름이 고미정(高美貞)인데,이 이가 바로 3번 국도변에 이천쌀밥집이 있게 한 원조다.같은 업종의 음식골목에는 대체로 서로 원조임을 내세우는 원조경쟁이 심한 법인데,이천쌀밥의 경우 고미정이 원조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원래는 신둔면 소재지가 있는 신둔 도예촌에서 1991년에 도예가인 남편 천세영씨가 하는 성원요(星源窯‘)의 전시장 옆에 ‘이천쌀밥’이라는 옥호를 걸고 30평 남짓한 한식당을 열었다가 그 후에 넋고개로 자리를 옮겨 ‘이천쌀밥’을 차렸는데,그후 이 ‘이천쌀밥’은 오빠인 고제원에게 넘겨주고 바로 옆에 새로 집을 지어 고미정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옥호로 내건 것이다. ●이천의 대명사… 자신 이름을 옥호로 고미정을 열면서 주인 고미정은 벌써 자신의 고유한 옥호가 아니라 이미 이천을 대표하는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이천쌀밥이라는 상차림을 포기하고 한정식 상차림으로 바꾸었다.이 고미정 한정식은 1만원과 2만원,3만원의 상차림이 있다.1만원 상차림은 구절판,홍어무침,삼색전,잡채,편육보쌈,야채 샐러드,조기구이,계란찜 등에다가 각종 밑반찬과 함께 된장찌개를 내고,2만원 상차림은 1만원짜리에 닭찜,불고기,더덕구이,도토리묵을 더하고,3만원 상차림은 거기에다가 홍어삼합,갈치조림,황태구이,소갈비찜을 덧붙이는데,이를 테면 이천쌀밥을 고미정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고급화한 셈이다. 이천에서 거주하고 있는 시인 양용직은 3번국도 도예촌 주변의 숱한 이천쌀집들 중에서 청목(031-634-5414)을 가장 서민적이면서도 맛이 뛰어난 집으로 꼽았다.그의 말로는 음식에 대한 정성이 다른 집과는 남다르다는 것이었다.실제로 1인분 9000원짜리 영양쌀밥 상차림은 적게 남기고 많이 판다는 주인 강춘모의 주장이 아니더라도,값에 비해 넘치다시피 풍족해보였는데,일일이 반찬그릇을 헤아려보니 24가지나 되었다. 간장게장,비지찌개,조기조림,꽁치구이,우거지찌개,겉절이,장조림,편육보쌈,부침개,호박잎쌈,상추와 치커리 등속의 야채쌈,잡채,김,고추졸임,젓갈 이외에도 취나물,비름나물,고무마순 등을 위시한 각종 나물들….이런 상차림 앞에서 주인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에 한껏 자랑스러운 기색을 띈 채,야채들 대부분 직영 농장에서 손수 기른 것들임을 내세웠다. ●산야초 1백여가지 어우른 ‘음식예술’ 만일에 그대가 여기저기 지천으로 흔한 이천쌀밥에 우선 눈부터 질려서 좀더 색다른 별미를 찾는다면,그리고 그만큼 그대가 미식에 눈이며 코,혀 같은 감각이 익숙해졌다면,아니,그보다도 그대가 누군가 정말로 소중한 이와 함께 떠나와서 다소 값이 무리하더라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면,나는 그대에게 일말의 주저도 없이 ‘산야초 시절음식’(031-633-9494)을 권하겠다.고속도로 서이천 IC를 빠져나와 3번국도로 접어들어 이제막 사기막골 도예촌을 지나는 어름에 있는 ‘산야초 시절음식’은 ‘옹화산방(甕話山房)이라는 멋진 옥호로도 불린다. ‘산야초 시절음식’이란 이름 그대로 산과 들에 자생하는 풀들이며 꽃들을 따 모아 그것들을 재료로 하여 시절에 따라 달리 빚어내는 음식이다.아니 음식의 재료뿐만이 아니라 모든 조미료 또한 산야초를 발효시켜 만든 효소와 식초만을 사용하고 있다.실제로 이 집의 정원 한 켠에는 산야초 1백여 가지를 뜯어다가 나름대로의 비법으로 발효시키는 중인 20여 개의 커다란 장독들을 구경할 수가 있다. ‘산야초 시절음식’에서는 한정식 코스 요리로 상차림을 내는데,종류에 따라 앵초와 우슬초,구절초로 나눈다.앵초 1만 5000원,우슬초 2만 5000원,구절초 3만 5000원이다.앵초는 호박죽,시절무침,방김치편육,산야초부침이,호박범벅이 코스로 나온 다음에 식사를 할 수 있는 된장찌개와 갖가지 반찬,쌀밥 등이 뒤따른다.후식으로는 송화다식과 백초식초가 곁들여진다.나는 그대에게 세 가지 코스 중에서 역시 무리할지 모르지만 우슬초를 권하고 싶다.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슬초에 나오는 근채쌈이라는 거의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요리를 잊을 수가 없어서이다. 근채쌈은 기다란 두 개의 접시에 나오는데,각각 꽃잎쌈과 알뿌리쌈으로 나누어진다.꽃잎쌈은 계절에 따라 다른데,봄에는 초롱꽃잎,여름에는 하수오,가을에는 산마잎이나 곰취,겨울에는 달맞이꽃 이파리를 쓴다.내가 먹은 꽃잎쌈은 밑에 하수오 잎을 깔고 그 위에 죽순과 배,토마토,오징어를 순서로 차곡차곡 쌓은 다음에 보랏빛 도라지꽃잎을 얹고 고명으로 자줏빛 오디를 올렸다. 알뿌리쌈은 소리쟁이,곰취,우엉,대추 등을 각각 잘게 채썰어서 볶은 다음에 한움큼씩 가지런히 놓고,백짓장처럼 얇게 썰어서 맨드라미 식초에 절인 생감자에 한 입씩 싸먹게 되어 있다. ●값은 부담되지만 색다른 맛 아아,우선 눈으로만 보아도 가슴부터 설레는 그 황홀한 색감이라니! 방짜 유기의 젓가락을 든 내 손가락은 어쩔 수 없이 떨려나서 차마 요리에 손을 대지 못한 채 한동안 쩔쩔 매었다.그러나 나를 황홀하게 하는 것이 어디 근채쌈 뿐이랴.시절무침이란 이름 그대로 시절에 따라 나오는 갖가지 산야초들을 넣고 거기에 닭다리 고기를 백초라고 불리는 효소와 식초로 양념하여 구운 다음에 잘게 썰어서 역시 효소와 식초로 산야초들을 버무리고 왕새우와 해파리를 곁들여 샐러드 식으로 무친 요리다. 그 풍성한 시절무침에 들어가는 산야초는 달개비,제비꽃잎,쇠별나물,망초,싱아,쇠비름,소래쟁이,민들레,방가지잎,논주름잎 등으로 미처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그야말로 산과 들에 가득한 산야초들이다, ‘산야초 시절음식’의 모든 요리에는 산야초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산야초부침이는 달맞이뿌리와 매운냉이뿌리,황새냉이뿌리 등을 캐서 말렸다가 가루를 내어 메밀과 섞여서 부쳐낸다. 장김치편육은 산야초 효소와 간장, 그리고 고추씨를 넣어 담근 배추김치를 3년 이상 숙성시켰다가 낸 장김치에 민들레,방가지,소래쟁이 잎사귀와 함께 돼지고기 편육을 싸서 먹는다.진달래꽃고추장홍어무침은 진달래꽃잎을 넣어 담근 고추장으로 홍어를 무쳐내는데,진달래향의 그 황홀한 색감이 홍어에서 아직도 어른거린다. 어떤가.그대는 소중한 이와 함께 이쯤에서 ‘산야초 시절음식‘의 맛이나 멋뿐이 아니라 그 색감이며 향기 때문에 벌써부터 아뜩하게 취해 있을지도 모른다.그리고 그렇듯 황홀하게 취한 그대에게 까짓 고향이야 없으면 어떠랴.속절없는 노래 가사 그대로 정들면 고향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구태어 잃어버린 고향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슬퍼하지 말자. ■ 도예촌 방문은 필수 이천의 3번국도변에 있는 설봉공원에서는 해마다 10월 무렵에는 이천도자기축제가 열리고 있다.국제공모전,세계현대도자전,도자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도자기의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는데,특히 체험관에 들러 스스로 도공이 되어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비단 축제 때 뿐만이 아니라도 설봉공원에는 이천세계도자기센터와 전통가마,토야흙놀이공원 등이 상설되어 있어 자녀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 코스로는 더할 나위없다. 그리고 가까운 신둔도자촌이나 사기막골 도자촌에 들리면 값비싼 명품뿐만이 아니라 뜻밖에도 반찬그릇이며 주발 밥공기 등 생활도자들이 1000원에서부터 비싸야 5000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파는 곳도 눈에 띈다.이왕 이천 나들이에 나선 김에 몇 가지 생활도자들을 사면 어떨까.그리하여 가까운 이웃들에게 선물을 한다면 어떨까.받는 이는 물론 주는 이까지도 이 가을이 느닷없이 포근하고 정겹게 여겨지지는 않을까.
  • 비취빛 비경-中 주자이거우·황룽

    비취빛 비경-中 주자이거우·황룽

    남태평양의 에메랄드빛 바다에 한국의 10월 비취빛 하늘이 내려앉았다면? 더구나 이같은 환상적 풍광이 해발 3000m가 넘는 첩첩산중에 펼쳐져 있다면 과연 믿는 이들이 있을까.중국 쓰촨(四川)성 북단 아바 창(藏)족·창(羌)족 자치주에 자리잡은 주자이거우(九寨溝)와 황룽(黃龍).두 곳을 둘러보고나서 기자는 신비스러우면서도 약간은 황당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한국인들에겐 낯설지만 두 풍경구는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및 ‘세계생물보호구’,‘21세기 녹색환경구’ 등 굵직한 타이틀을 3개나 보유한,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비경지역이다.중국인들에게 흔히 ‘신비의 동화세계’로 불리는 주자이거우와 황룽으로 안내한다. 쓰촨성의 성도(省都)인 청두(成都)국제공항을 출발한지 30분 남짓 흘렀을까.도착지인 주자이황룽 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기내방송이 나오고,승객들이 앞다퉈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바다를 이룬 구름을 비집고 우뚝 솟은 설산(雪山)이 마치 남극바다에 떠 있는 빙산 같다.해발 2000∼5000m의 험산과 고원지대로 이루어진 주자이거우는 미처 발을 딛기도 전 이렇게 방문객을 사로잡고 있었다. 주자이황룽 공항.비행기를 빠져나와 바쁘게 100여m쯤 걸었을까.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면서 숨이 차다.“천천이 걸으세요.공항의 해발고도가 3500m예요.” 일행중 고도계와 기압계를 겸한 시계를 차고 있는 이가 뒤에서 소매를 잡으며 말한다.평지에서 1을 가리키던 기압이 0.63을 가리키고 있다.어쩐지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더라니. 공항에서 주자이거우까지는 버스로 1시간30분 거리.최근 포장된 듯한 아스팔트길이 꼬불꼬불 끝없이 이어진다.고산 반응으로 가뜩이나 어지러운데 마치 꽈배기를 꼬아놓은 듯한 도로를 가다보니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버스 창 밖으로 막 가을색이 들기 시작한 고원의 풍광이 펼쳐진다.노랑과 연주홍,연초록이 띠를 두른 듯한 고원지대.사람들은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연신 ‘곱다.’를 연발하며 눈을 떼지 못한다. 주자이거우(九寨溝)를 한자로 풀어보면 아홉개의 성채가 있는 해자다.과거 이 협곡을 중심으로 9개의 티베트족(창족)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창족들이 주류를 이루어 산다. 주자이거우는 해발 4528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Y자형의 협곡을 이루고 있다.신생대 4기 빙하기가 지나면서 엄청난 규모의 물줄기가 쏟아져 내려오면서 협곡을 만들었고,그 과정에서 수많은 폭포와 호수를 형성했다고 한다.계곡 주변의 원시림은 중국이 자랑하는 판다의 고향이다. 관람은 3개 코스로 나누어 할 수 있다.첫번째 코스는 계곡 입구부터 Y자형 계곡의 삼거리격인 낙일랑폭포까지,두번째는 폭포부터 왼쪽 계곡 끝의 장해(長海)까지,세번째는 폭포부터 오른쪽계곡 끝의 원시림 입구까지다. 코스를 따라 100여개의 크고 작은 호수와 폭포들이 펼쳐지며 탄성을 자아낸다.하나하나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이름을 지어놓았다.워낙 과장이 심한 게 중국 풍경과 요리 이름이라고 하지만,주자이거우에선 이같은 과장이 결코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특히 5㎞에 걸쳐 갖가지 모양의 호와 소가 이어지는 수정군해(樹正群海),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양이 작은 불꽃이 꽃을 이루고 있는 듯한 화화해(火花海),한 마리의 용이 물속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와룡해(臥龍海),해발 3100m에 마치 남태평양의 바다를 옮겨놓은 듯한 장해(長海)는 주자이거우 관람의 핵심 포인트다. 폭이 325m,높이 35m에 달하는 낙일랑폭포와,벼랑에 오색 비단을 걸어놓은 듯한 진주탄(珍珠灘)폭포에 이르면 거대한 물줄기가 토해내는 굉음과 아름다움에 취해 모두들 할말을 잃는다. 주자이거우의 비경은 국내에 개봉됐던 중국영화 ‘영웅’에서 일부 소개됐다.비록 잠깐 스치듯 지나갔지만 주인공 이연걸이 수면을 차고 솟구치며 기상천외한 무공을 펼치던 오묘한 빛깔의 호수가 바로 주자이거우의 전죽해(箭竹海)다. 주자이거우 풍광의 핵심은 물색이다.온세상의 옥을 모두 거두어다가 이곳에 녹여놓았는지,호수들은 한결같이 투명한 연둣빛을 띠고 있다.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신비스러운 물빛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는 탄산칼슘이다.석회암 지역에서 빠져나온 탄산칼슘 성분이 물에 녹아 이같은 빛깔을 낸다고 했다. 주자이거우 투어는 계곡내에서 운행되는 셔틀버스를 타야만 한다.오염을 막기 위해 다른 차는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다.다만 시간이 넉넉할 경우 버스를 타지 말고,나무를 깔아 만든 등산로를 이용해 트레킹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총 80㎞가 넘는 3개의 코스를 트레킹으로 둘러보려면 사흘은 잡아야 한다.입장료는 3∼10월 145위안,11∼2월 100위안. ■오색호수 영롱 天土 정원 황룽 주자이거우 숙박촌에서 동쪽을 향해 버스로 2시간쯤 가면 황룽(黃龍)이 나온다.황룽은 창족어로 ‘써얼취’라고 불리는데,‘오색영롱한 호수’란 뜻이다. 마치 한국의 산간 오지의 다랑논에 비취빛 물을 담아놓은 듯하다.크고작은 수백개의 연못이 계단을 이루듯 계곡을 메우고 있고,그안엔 한결같이 연녹색 또는 황금색 물이 가득 들어있다.이곳은 주자이거우와 달리 걸어서만 계곡을 오를 수 있다.해발 3000m부터 시작되는 계곡을 따라 3600m 높이까지 왕복 8.2㎞의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길 바닥은 약간의 쿠션감이 느껴지는 황토를 깔았다. 길 양편으로 계속 이어지는 연못들은 대부분 군락을 이루고 있다.각 군락마다 분경지(盆景池),영월채지(映月彩池) 등 저마다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린다.황룽의 수십개 연못군락중 백미는 가장 꼭대기(해발 3600m)에 자리잡은 오채지(五彩池)다. 고색창연한 사찰 황룽사 위쪽에 연못이 타원형 군락을 이루고 있는 오채지.‘천상(天上)의 정원’이 있다면 아마 이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연못에 담긴 물들은 바닥의 티끌까지 보일 정도로 맑다.10월 중순에 이르면 연못 주위의 숲이 빨갛게 물들면서 아름다움이 절정이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이름다운 연못이 어떻게 다랑논처럼 계단을 이루고 있을까.비밀의 열쇠는 놀랍게도 나뭇잎과 석회가루다.나뭇잎이 물에 떠밀려 내려오다가 얕은 곳에서 정지하면 물에 용해된 석회성분이 달라붙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둑이 형성된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오채지를 한바퀴 돌아 하산길로 접어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황룽사에 들르게 된다.고대부터 신성한 터로 여겨진 곳으로 현재 사찰의 면모는 명대에 완성됐다고 안내판에 씌어 있다.규모는 작지만 불교신자들에겐 상당히 유명한 절이라고 한다. 내려갈 때는 속도를 빨리해 주차장에 닿았다.인근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데,일행들의 얼굴이 백지장 같다.고산반응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듯했다.일부는 올라갈 때 휴대용 산소까지 사서 마셨는데도 마찬가지다. ●주자이거우의 사람들,창(藏)족 주자이황룽 공항에 도착하면 이색적인 풍광 하나가 궁금증을 자아낸다.마치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때 운동장을 가득 덮은 만국기처럼 오색띠가 여객청사를 장식하고 있다.빨강,황금,청,초록,하양.이 다섯가지 색깔은 바로 주자이거우의 자연,그리고 이곳 주인공인 창족의 생활을 내포하고 있다. 빨강은 권위,황금은 수확,청은 하늘과 바다,초록은 초원,흰색은 청결함과 순수함을 뜻한다.주자이거우에선 가정집,호텔,시장 등 어디를 가든 이 오색깃발이 펄럭인다. 예로부터 유목과 농경에 종사해온 창족은 독특한 관습을 가진 독실한 불교도들이다.그래서 둘째아들은 무조건 승려로 출가시킨다.창족은 놀랍게도 일처다부제 전통을 갖고 있다.남자는 유일하게 장남만 정식 결혼을 할 수 있다.두 사람은 나머지 남동생들을 데리고 살아야하며,형수는 시동생과도 잠자리를 같이한다.결혼하지 못한 여자와 남자가 많다 보니 강간이 많이 일어나는데,관습상 죄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지금은 중국의 법률에 따라 불법에 해당되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이같은 관습을 따른다고 한다. 매장 방식도 독특하다.매가 시체를 먹게 하는 조장(鳥葬·천장으로도 불림),물에 띄워보내는 수장,높은 탑에 놓아두는 탑장,불태우는 화장,땅속에 묻는 토장 등 다섯가지.죽은 자의 지위에 따라 방식을 달리하는데,가장 지체가 높은 사람은 조장,가장 낮은 이들은 토장으로 묻힌다. 창족의 집은 화려하다.그들의 상징인 오색을 적절히 섞어서 장식하기 때문이다.집은 지금도 현대적 측량기구 없이 짓는다.고산에서 흘러내린 타원형 돌(‘어란석’이라고 불림)로 집의 기초를 세우고,2층은 목재를 이용해 짓는다.보통 1층은 창고와 동물 우리로 쓰고,사람은 2층에 거주한다. 주자이거우 숙박촌에 가면 창족의 전통공연을 볼 수 있다.19곳에서 매일 열릴 정도로 성황을 이루는데,상당히 박진감 있으면서 재미 있다.공연장에 입장할 때 얇은 흰색 머플러를 하나씩 준다.관객들은 공연중 마음에 드는 창족 가수나 무용수의 목에 이 머플러를 걸어준다.공연 관람료는 20달러 정도. ●청두도 둘러 보세요 주자이거우에 가려면 청두(成都)에 하루쯤 묵게 마련이다.청두는 2∼3세기 삼국시대 촉한의 수도였던 쓰촨성의 성도(省都).쓰촨성은 기름진 분지지형에 자리잡고 있으며,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로 혹한과 혹서가 없는 중국 최대의 곡창지대다.사방이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는데,주자이거우도 여기에 해당한다.그중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했던 고촉도(古蜀道·촉한의 청두와 위나라 시안을 잇던 산악길)가 바로 여기다. 청두 시내엔 제갈량의 위패와 유비의 묘가 있는 무후사(武侯祠)가 있다.또 당나라 때 시성으로 불리는 두보가 안사의난을 피해 피란을 와서 기거하던 두보초당이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몰린다.청두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두시간쯤 가면 러산(樂山)시다. 작은 산이 하나의 불상을 이룬 러산타포(낙산대불)가 있다.벼랑을 깎아 만든 이 불상은 높이가 71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석각불상.당나라 시기(712년) 만들기 시작해 90년이 지나 완성됐다고 한다. ■ 꼭 챙기세요 ●항공편 및 환전,기후,시차 주자이거우로 들어가는 중국 국내선 항공편중 90% 이상이 청두에서 출발한다.청두까지는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1588-8000)이 주 3편(화·목·일 오전 9시45분) 비행기를 띄운다.3시간30분 소요.청두에서 주자이거우까지는 하루 수차례 국내선이 뜬다.50분 소요.주자이거우와 황룽은 위도상 아열대지역임에도 해발 2000∼4000m의 고지대라 기온이 10∼15도 정도로 낮다.긴팔 옷과 두꺼운 자켓이 꼭 필요하다.한국 원화는 쓰기 어렵기 때문에 중국 위안화로 바꿔가야 한다.1위안은 150원.시간은 한국보다 1시간 늦다. ●여행상품 모두투어(www.modetour.co.kr)에서 주자이거우와 황룽,러산을 묶은 4박5일 상품은 109만 9000원,주자이거우와 황룽,두보초당을 묶은 3박4일 상품은 89만 9000원에 각각 판매중.(02)7288-376. ■ 양고기바비큐도 맛보세요 유명한 쓰촨요리는 청두에서 마음껏 맛볼 수 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마파두부 등 다채로운 쓰촨요리를 내는데,값도 저렴한 편이다.주자이거우에는 각국 관광객들의 입맛을 고려해 덜 매운 퓨전형 쓰촨요리가 많다.주자이거우 숙박촌엔 양고기집이 많다.특히 양을 통째로 굽는 양고기바비큐가 먹을 만하다.미리 주문하면 숯불에 5∼10시간 서서히 구워 부위별로 잘라서 내준다. 고산지역에서 자라 양 특유의 냄새를 거의 느낄 수 없다.특히 갈비 구이가 맛있다.1마리 요리해주는데 1000위안(15만원) 정도.20여명이 실컷 먹을 수 있다. 주자이거우(중국 쓰촨성) 글 · 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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