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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

    ■외교부 △주수단대사 박원섭 ■강원도 ◇부단체장·과장급△홍천군 부군수 박만수△법무통계담당관 홍종열△안전총괄과장 선민규△여성청소년가족과장 박승남△문화예술과장 김환기△경로장애인과장 원팔연△농업기술원 총무과장 홍종각△보건환경연구원 총무과장 안상훈△보건환경연구원 연구부장 최금종△입법지원전문위원 이국섭△체전준비단장 김관식△춘천시 김길수△동해시 장시택△횡성군 최종성△GTI박람회추진단장 전홍진△CBD당사국총회지원단장 지순식△자연환경연구사업소장 박일수△강원도립대학 사무국장 서동엽△2018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부장요원) 파견 안진석△강원FC(부장요원) 파견 지승태△산림소득과장 김병기 ■EBS △디지털통합사옥건설단장 김재근 ■해양환경관리공단 △해양산업본부장 신종명△감사실장 최상모△부산지사장 임석재△미래전략팀장 이정대△정보화운영팀장 최성환△재무회계팀장 김경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실장급 승진△산업융합진흥본부 창의산업정책연구센터장 이혜진△뿌리산업진흥본부 산업진흥실장 주홍신△경영기획본부 예산운영실장 이상일 ■한밭대 △대학원장 안병욱 ■금융결제원 ◇승진△상무대우 한창현 ■교보증권 ◇부서장△컴플라이언스팀 양준혁△결제사무팀 박종서
  • 6대1 경쟁률 뚫고 레바논 평화 지키러 떠난다

    6대1 경쟁률 뚫고 레바논 평화 지키러 떠난다

    레바논에서 6년째 유엔 평화유지군(PKO)으로 활동 중인 동명부대에 충원될 13진 장병 파병환송식이 19일 열렸다. 조정환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이날 인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열린 환송식에는 파병준비단장인 김시범(학군 31기) 중령 등 305명의 파병 장병과 가족, 군 관계자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6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13진 장병 가운데는 대(代)를 이어 파병된 장병도 5명이나 된다. 작전장교 차정석 소령은 월남전에 민사심리전부대 중위로 참전했던 차기문 예비역 중장의 아들이다. 이상민 대위와 한상헌 원사, 이석주 상사, 김범규 하사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도 주월십자성부대와 맹호부대 등에서 전투를 치렀다. 바통을 이어받은 형제도 있다. 정보통신중대 무선반장 이호진 중사의 친형 이진현 대위는 12진 화학장교로 파병돼 임무를 수행 중이다. 13진 장병 가운데는 레바논, 동티모르, 이라크 등에 이미 파병됐던 경험자가 88명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동명부대는 인도적 지원사업 156건, 레바논군 지원사업 62건 및 의료지원 6만여명 등 다양한 민군작전을 통해 평화유지군과 현지인에게 ‘신이 내린 선물’로 불리고 있다. 13진 장병들은 2개 제대로 나뉘어 24일과 새달 5일 출국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은행 수익성 나빠지니 고객 주머니부터 터나

    금융감독원이 은행 수수료 재책정 작업에 착수했다. 송금·타행 인출·수표 발행 등 서비스별로 원가를 분석해 은행권 공동 또는 은행별 수수료 모범규준을 만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원가산정 방식 등도 모범규준에 담아 외부 회계법인과 소비자단체의 검증을 거치도록 할 모양이다. 언뜻 보면 합리적 행정지도로 비쳐진다. 하지만 전후 맥락을 놓고 보면 본말이 전도됐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수수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얼마 전 최수현 금감원장이 “은행들의 수익이 나빠져 어렵다. 수수료를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다. 최 원장은 수수료 등 비(非)이자 수익 비중이 30~40%인 선진국 은행에 비해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12%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1년 새 거의 반 토막 난(3조 3000억원→1조 8000억원) 은행권의 순익이 비단 수수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국내 시중은행 직원의 평균 연봉은 7560만원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도시근로자 평균 연봉(3600만원)의 두 배가 넘는다. 국내 10대 그룹 대표기업 평균 연봉(6600만원)보다도 많다. 금융지주 회장의 연봉은 20억~3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은행원 1인당 생산성은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그런데도 고액 연봉 구조는 그대로 놔둔 채 손쉬운 수수료부터 올리겠다는 것은 만만한 고객들의 주머니를 털어 급한 불을 끄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행태를 관리감독해야 할 금감원이 오히려 앞장서 멍석을 펴주고 있는 것에 우리는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자신의 통장에 돈을 넣어도 자산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계좌 유지 수수료 등을 받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수수료 인심이 비교적 후한 것은 사실이다. 원가에 비해 과도하게 비싼 것도 있어 보이는 만큼 수수료 체계를 손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은행 임직원의 성과보수 체계부터 점검해야 한다. 인구 수에 비해 너무 많은 지점망과 대출 리스크 분석기법 선진화, 잦은 금융사고 예방대책 등에 대한 근본적 고민도 요구된다. 고객들이 공감할 만한 자구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결코 고통 분담에 선선히 나서지 않을 것임을 은행들과 감독당국은 명심하기 바란다.
  • [기고] 중국 비단의 비밀과 산업스파이/김학배 울산지방경찰청장

    [기고] 중국 비단의 비밀과 산업스파이/김학배 울산지방경찰청장

    역사적으로 산업스파이와 관련한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서기 552년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비단 제조 비법이 산업스파이에 의해 비잔틴 제국(이탈리아)으로 유출됐고,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이 기술을 활용해 발전할 수 있었다. 이후 1165년의 세월이 흐른 1717년 영국의 롬브(Lombe) 형제가 이탈리아의 비단 제조 기술과 기계도면을 유출했는데, 이것이 영국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중요한 원인이 됐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기 1363년 원나라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목화씨를 몰래 들여와 사람들이 따뜻한 면 옷을 입게 된 사건이 산업스파이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산업스파이는 경제적·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쳐 왔고, 갈수록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는 기업이나 회사가 개발·소유하고 있는 물품의 제조 방법, 판매 방법, 경영정보 등을 부정하게 입수하거나 정탐하는 행위이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산업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가 약 370조원이며, 이는 올해 우리 국가 예산 342조원보다 많다. 산업기술 유출 피해를 입은 기업은 생존 여부를 걱정해야 할 만큼 큰 타격을 받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미래 10년을 책임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핵심기술이 중국과 타이완으로 유출돼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에 있는 외국계 회사는 산업기술 유출 손해를 입어 투자를 꺼린 사례도 있었다. 대한민국 산업 수도 울산에는 자동차·중공업·석유화학 등의 업종에 7만여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어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더욱 큰 지역이다. 이에 울산지방경찰청은 산업기술 유출 수사전담팀을 운영하는 한편, 기업 관련 기관·단체, 기업단체, 대기업·중소기업, 경찰이 함께 참여하는 산업보안협의회를 내실 있게 운영하고 있다. 또한 기업을 대상으로 실제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산업기술 유출 예방교육을 시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효과적으로 예방하려면 2가지 사항에 특히 관심을 쏟아야 한다. 먼저, 기업인 스스로의 인식 개선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 이 범죄로 인해 손해를 입는 기업인들조차 산업기술 유출 범죄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업을 상대로 산업기술 유출로부터의 범죄 예방교육을 하다 보면, 많은 기업이 유사한 경험이 있었지만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생기면 경찰과 우선적으로 상의할 것이며,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것부터 당장 실천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두 번째, 기업·산업기술 관련 기관·경찰 간의 협력치안체제 구축이다. 정부 3.0시대에 정부기관 간 협업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필수 과제이다. 기업 및 기업단체가 경찰 등 정부기관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지속적인 만남의 장을 만들어 산업기술 유출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관련 범죄를 예방하고,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신속히 수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 지방자치발전기획단 출범… 지방분권·행정개편 등 지원

    기존에 대통령 소속으로 있던 지방분권촉진위원회와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를 통합하는 지방자치발전위원회(이하 자치위)의 사무기구인 지방자치발전기획단이 15일 발족했다. 3개국 7개 과 체제의 지방자치발전기획단은 자치위의 구성·운영 및 심의 안건 작성, 지방자치발전과 관련한 전문적인 조사 및 연구, 위원회 활동 홍보 및 대외 협력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또 대통령에게 보고할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 관련 정책 추진 사항과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 및 연도별 시행계획 수립을 지원한다. 초대 기획단장에는 오동호 자치위 출범준비단장이 임명됐고 각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파견된 공무원, 민간에서 선발한 전문위원 등으로 구성된다. 자치위는 관련 특별법이 시행된 날부터 5년간, 2018년 5월까지 활동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자녀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박상아씨 1500만원 벌금형

    자녀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박상아씨 1500만원 벌금형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시킨 혐의로 약식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며느리인 탤런트 박상아(40)씨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63단독 김지영 판사는 12일 업무방해 혐의로 약식 기소된 박씨 등 학부모 2명에 대해 각각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박씨는 지난해 5월 서울에 있는 모 외국인학교 입학처장인 미국인 A(37)와 짜고 자녀 2명이 2개월 다닌 영어유치원의 재학증명서를 발급받아 전학 형식으로 해당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의 자녀 2명(당시 4세와 6세)이 다닌 영어유치원은 외국인학교가 운영하는 유치원이 아닌 일반 어학원이다. 재판부는 “박씨가 해당 외국인학교가 문을 열기 전인 2011년 학교설립준비단 직원에게 입학 상담을 받았다”며 “자녀들이 외국인학교 입학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박씨는 검찰이 외국인학교 부정 입학 수사를 시작하자 자녀를 자퇴시키고 다른 학교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박씨와 같은 혐의를 받는 현대가 며느리이자 전 아나운서인 노현정(34)씨도 귀국해 지난 11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오바마, 이집트 원조 재검토 지시

    오바마, 이집트 원조 재검토 지시

    미국이 연간 15억 달러(약 1조 7000억원)에 달하는 이집트의 원조 재검토를 지시하는 등 군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10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집트 정부에 대한 원조 문제를 재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국 법령은 선출직 지도자가 쿠데타로 축출된 나라에는 원조를 중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도 이집트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지지세력인 무슬림형제단 고위 인사들을 잇달아 체포하는 상황에 대해 원조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11일 “최근 특정 단체를 표적으로 한 체포 사태는 이집트 과도정부와 군부가 주장하는 통합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도 “정치적인 체포와 구금이 계속된다면 이집트의 위기 극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혀 군부 압박에 가세했다. 일각에서는 군부 쿠데타 이후 이집트 정국이 극도로 분열된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 지속 여부에 대한 오락가락한 태도가 오히려 이집트 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다. 앞서 미국은 지난 3일 군부의 무르시 축출 발표에 대해 무르시를 비판하면서도 군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의견을 내놓지 않아 쿠데타를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무르시를 지지해 온 무슬림형제단이 미국에 강하게 반발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이집트 내 어떤 정파와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고 한 발 빼기도 했다. 이후에도 중동에서 순찰 중인 미 해병 상륙준비단이 이집트의 급변 사태에 대비해 홍해 해안으로 이동했다는 발표가 나오는가 하면 미 정부관계자가 이집트에 F16 전투기 지원 방침을 재확인하는 등 엇갈린 행보는 계속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오바마 정부가 이집트 군부에 조기 정권 이양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전투기 공급과 원조를 계속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한편 무슬림형제단은 11일 이집트 신임 하젬 엘베블라위 총리의 내각 참여 요청을 거부하고, 무르시 대통령이 복귀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반무르시 세력도 라마단(금식월) 첫 금요일인 12일 타흐리르 광장에서 대규모 맞불 집회를 열면서 지난주 군부의 발포로 500여명이 사상한 ‘피의 금요일’ 사태가 재연될 조짐이 일고 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힐러리도 2억원대 고액 강연

    힐러리도 2억원대 고액 강연

    힐러리 클린턴(66)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월 퇴임 이후 남편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못지않은 고액 강연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강연 대상 대부분이 의회 입법 관련 로비단체라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힐러리 전 장관은 지난 6개월 동안 댈러스와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도시에서 회당 20만 달러(약 2억 2400만원)가 넘는 강연을 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힐러리 전 장관이 2016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려고 자금을 모으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의 강연에 참석한 청중들은 주택 개발업자, 사모펀드 매니저, 기업 경영인 등 다양했지만 대부분이 특정 법안을 입법화하기 위해 의회에 로비를 해온 단체들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그 어디에도 없는 ‘독한’ 신문/안혜련 주부

    [옴부즈맨 칼럼] 그 어디에도 없는 ‘독한’ 신문/안혜련 주부

    불량식품의 추억… 얇은 비닐 빨대를 쪽쪽 빨아 먹던 달콤한 아폴로, 구워 먹기도 하고 찢어 먹기도 하던 쫀득쫀득 쫀득이, 듣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던 아이셔. 학교 앞 문방구나 구멍가게에서 늘 눈길과 발길을 잡아끌던 것들이다. ‘나 불량식품이야’라고 대놓고 생글거리는 이런 군것질거리들은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을 빨강·노랑의 원색으로 물들이며 통통 튀어오르게 한다. 유년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런 불량식품이 없었다면, 우리의 코흘리개 시절은 훨씬 삭막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재미와 애교로 보아 넘기는 것은 여기까지다. 마치 점잖은 척, 아닌 척, 괜찮은 척하는, 정말 불량한 양심으로 만든 부정한 식품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다. 불량식품인 줄 알면서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상대에게 속는다는 것이다. 상대가 고의로, 의도적으로 우리를 속인다는 것이다. 기호와 건강의 문제가 양심과 신뢰의 문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폐기하거나 가축사료로 써야 할 채소와 식자재를 씻지도 않고 분쇄해 ‘불량 맛가루’로 만든 식품 업자들이 입건되었다고 한다(7월 3일 자 9면). 아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인 주먹밥이나 유부초밥을 만들 때 많이 쓰이는 맛가루가 이런 재료로 만들어졌다니…. 아이들에게 노랑·빨강의 유년 시절의 향수 대신 곰팡내 나는 시커먼 기억을 남겨주게 되었다. 이와 관련한 글을 7월 4일 자 사설(31면) “소비자더러 ‘불량 맛가루’ 가려내란 얘기인가”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불량재료로 맛가루를 만든 A사도 피해자이므로 실명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경찰의 결정에, 사설은 납품받은 식재료의 품질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A사에도 귀책사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올바른 비판이고 전적으로 공감한다. 식품 업자들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를 사용해 만든 불량 재료들을 회사에 납품하며 사욕을 챙길 때, 그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나.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자재나 식품들이 비단 맛가루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고소한 쥐치포의 그 반지르르한 윤기, 노란 단무지의 그 아삭거림, 감칠맛 나는 오징어채의 그 눈부신 하얀색이 어느 식품업자의 돈 욕심에서 나오는 농간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불량식품은 현 정부의 근절 대상 4대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미 불량식품을 고의로 제조·판매하는 업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형량 하한제, 부당이득 10배 환수 등 식품사범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법무부와 함께 올해 안에 관련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참에 식품위생법과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 적용을 받는 정도에서 그치지 말고, 생명위해법 같은 살벌한 이름의 법 적용을 받도록 하자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강화되는 정부의 시책에 발맞추어, 아니 그보다 여러 발 앞서 서울신문이 불량하고 부정한 식품을 제조·유통·판매하는 이들의 이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매섭게 추적한다면, 그 누구보다 날카롭고 철저하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책임을 묻는다면,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치면’ 혼이 빠져나갈 지경까지 혼쭐이 난다는 걸 보여준다면, 불량하고 부정한 양심들에게 죄를 지으려는 유혹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어디에도 없는 독한 신문, 서울신문이 시도해 보면 어떨까?
  • [열린세상] 중국과의 관계개선의 득과 위험/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국과의 관계개선의 득과 위험/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삼국지를 보면 제갈공명이 관우에게 형주 땅을 맡기면서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형주와 맞닿아 있는 두 나라인 위(魏)나라와 오(吳)나라를 대함에 있어 오나라와는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위나라와는 대립적인 관계로 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관우는 이런 제갈공명의 말을 무시하고 위나라와 오나라를 동시에 적대시하다가 결국 형주 땅도 빼앗기고 자신도 목숨을 잃게 된다. 개인의 인생이나 조직의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구와 친하고 누구와 대립하느냐이다. 이를 제대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제갈공명의 진정한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며 미국과 더불어 주요2개국(G2)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을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하여 양국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정말로 의미 있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관우가 위나라·오나라와 모두 적대 관계를 만든 것에 비하면, 현재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고 있으니 정치·경제적으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해결방법을 전혀 찾지 못했던 대북관계도 이제는 희망이 보인다고 할 수 있고, 미국에 이어 중국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경제적으로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듯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우리의 미래에 정말 중요한 대사건이지만, 한편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이번에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 등을 놓고 의견의 합치를 볼 수 있어서 양대국 간의 외교관계가 좋아졌다는 사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문제는 차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물론 가장 간단하고, 어찌 보면 안전한 방법은 한쪽으로 확실하게 편을 드는 것이다. 그러면 고민할 일도 없고 오해를 살 것도 없다. 사실 이렇게 확실하게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외교 전략이었고, 지난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런 외교 전략을 통하여 우리는 큰 이득을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간단하고 확실한 외교 전략을 벗어나 미국과 중국 양쪽과 우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외교 전략이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두 마리 모두 놓치는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어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기뻐할 상황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더욱 복잡하고 조심스러운 외교 상황을 다루어야 한다는 경계심과 부담감부터 느껴야 할 것이다. 이는 비단 정부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주지하고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둘째, 다수의 강대국과 친교가 맺어지면 국론이 분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구한말에도 근대화 추진에 갈 길이 바빴던 우리 정부가 친청파, 친러파, 친일파 등으로 나뉘어져 싸우다가 결국 멸망했던 경험이 있다. 이는 물론 아주 극단적인 상황의 예이지만, 가까운 장래에 우리 국민들도 친미국과 친중국으로 의견이 나뉘어 대립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내가 잘 아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미국과의 FTA를 반대하던 경제학자가 중국과의 FTA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경우도 많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이라는 경제학자들도 미국에 더 호감을 느끼는 쪽과 중국에 더 호감을 느끼는 쪽에 따라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국가 안에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국내에 친미파와 친중파가 있어서 둘이 서로 잘 협력하여 각자 미국과 중국과의 외교에 노력한다면 국익은 크게 신장될 것이다. 문제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집단들이 국익이라는 큰 대의명분을 위해 일하지 않고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경우가 생기기 쉽다는 점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우리에게는 큰 기회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욱 조심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큰 기회는 큰 위기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 매장에서 휴대폰 판매…진화하는 PC방 창업

    매장에서 휴대폰 판매…진화하는 PC방 창업

    PC방 업계가 금연법에 대처하기 위한 돌파구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다수의 피씨방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PC방 금연법으로 인한 매출 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인테리어, 푸드카페 접목 등 부가수익 아이템을 찾아왔다. 최근 매장 내에서 일반적인 먹거리가 아닌 ‘휴대폰 판매점’을 겸업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 예비 창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추가되는 PC방 창업비용 없이 기본적인 PC방 창업비용과 동일하게 숍인숍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 휴대폰 판매점의 특징은 최신 스마트폰 등 고가의 휴대폰을 유통기한이나 재고부담 없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인데, 판매점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점포 수가 감소하는 추세다. 1층 입점에 따른 높은 권리금 부담과 비싼 월 임대료도 발목을 잡는 부분. 하지만 피씨방에 ‘휴대폰 판매점’을 접목하게 되면서 PC방 창업은 호객이나 홍보를 하지 않아도 단골과 비단골 고객을 포함한 일 고정 방문객수가 높아 기대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보통 소형 PC방의 경우 일 평균 200명~300명이고, 대형 매장은 400~500명으로 일방문객수가 높은 업종에 속한다. PC방 전문 프랜차이즈 고스트캐슬PC방은 푸드카페를 접목한 피씨방창업이 주된 시장에서 매장에 고급 진열 쇼케이스를 무상 제공하는 한편 최신 유행하는 휴대폰을 공급해 주고 있어 점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고스트캐슬PC방 관계자는 “금연법 대처와 경쟁매장과의 차별화를 위한 상품을 구상하다가 숍인숍 휴대폰 판매점을 기획하게 됐다”며 “이 외에 CJ제일제당의 고급 식자재를 활용, 돈까스 메뉴 및 다양한 컵밥류를 공급은 물론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접목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스트캐슬PC방 창업과 휴대폰 입점 관련한 자세한 문의는 홈페이지와 유선으로 할 수 있다.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커버스토리-열정 노동 강요하는 사회] 남보다 3배 더 일하고 월급은 3분의1

    [커버스토리-열정 노동 강요하는 사회] 남보다 3배 더 일하고 월급은 3분의1

    지난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신모(25·여)씨는 고민 끝에 올해 지원을 포기했다. 지난번 경험에서 학교나 종교단체 등을 통한 해외봉사 경력이 없으면 서류 통과도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신씨는 28일 “다들 소규모 해외봉사단에 참여한 뒤 그 경력을 디딤돌 삼아 더 큰 기관이 주관하는 해외봉사를 하더라”고 말했다. 해외봉사단 지원 수요가 늘다 보니 봉사활동에도 주관 기관에 따라 ‘급’이 생긴 셈이다. 지난해 현대차·LG·포스코·G마켓 등 기업 주관 해외봉사단의 평균 모집 경쟁률은 50대1을 넘었다. 해외봉사단이 인기인 이유는 자기소개서에 쓰는 ‘한 줄’로 기업이 원하는 열정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년제 대학 졸업 후 구직 중인 김모(28)씨는 “아무리 좋은 스토리를 준비해도 첫 질문에서 면접관 마음을 얻지 못하면 면접 내내 질문을 못 받는다”면서 “해외봉사단 경험은 서류 전형 통과에도 유리하고, 면접에서 인상적인 첫 대답을 할 때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봉사단 경험이 ‘선택’이라면 요즘 청년인턴제는 ‘필수’ 덕목으로 여겨진다. 이미 인턴 경험이 있지만 올해 또 인턴을 지원한 강인(27)씨는 “요즘은 다들 인턴 경력이 있어서 인턴을 하지 않았다면 그 직종에 대한 열정이나 준비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세계화 구호와 함께 영어 학습 바람이 불면서 기업이 토익 점수를 요구하고, 곧이어 구직자 영어 점수 인플레이션 현상이 생겼던 것처럼 인턴 역시 구직의 필수 코스가 된 셈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5월 10만 2200여명 수준이던 청년층 인턴 경험자는 2010년 22만 7400명, 2011년 162만 7000명으로 급증했다. 정부와 기업은 인턴 직원에게 ‘열정’을 기대하지만, 청년들의 열정은 사실 억지 춘향인 측면이 있다. 인턴제가 본격 활성화되던 2011년 인크루트가 20대 구직자 6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1.6%가 인턴제의 단점으로 ‘저임금 노동착취’를 꼽았다. 이어 25.5%가 ‘정규직이 되지 못했을 때 받는 물리적·심리적 피해가 매우 크다’고 답했다. 지역 언론사에서 3개월간 인턴을 한 김모(29)씨는 이 단점들을 모두 경험했다. 김씨는 인턴 기간을 “잃어버린 3개월”이라고 불렀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채용될 것”이란 회사 측의 설명을 들으며 100만원 남짓 월급에 쉬는 날 하루 없이 일했고 근무 성적도 좋았지만 최종 탈락했다. 탈락 이유가 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김씨는 “지방대가 ‘큰 변수’라고 미리 말해 줬다면 도를 넘는 부당한 근무 지시는 거부하고 당당하게 경험 삼아 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인턴 경험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0개월 정도 이어진다. 편법이지만 2년 가까이 인턴으로 고용되는 경우도 있다. 구직자들은 인턴 경험을 살려 정규직으로 입사하기를 꿈꾼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갖게 될 경우 중산층 이상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턴 경험 기간 자체가 이들이 공포스러워하는 ‘임금을 턱없이 적게 받지만 열정으로 버티는 기간’이 되고 있고, 인턴 이후 정규직 처우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연예기획자를 꿈꾸며 지난해 인턴으로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던 이모(27·여)씨가 결국 꿈을 포기한 이유는 자신의 사수였던 정규직 대리의 월급이 자신과 몇십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씨가 “생활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없고, 1년 내내 주말 없이 일하니 건강이 나빠졌다”며 사표를 내자 회사 측은 “열정을 높이 샀는데 안타깝다”고 대꾸했다. 회사 선배들이 “이번 생은 아닌가 보다”라며 스스로를 ‘열정 노동자’로 칭하는 것을 귓등으로 들었던 이씨이지만, 사표를 만류하는 단어로 ‘열정’이란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김정근씨 등이 쓴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라는 책에서 유래한 ‘열정 노동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보답으로 생각하며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이르는 말이다. 게임 업계 역시 일꾼들의 열정을 볼모로 열악한 근무 환경이 유지되는 일터로 분류된다. 게임 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인과 3D 화면 구축 업무를 담당하는 4년차 디자이너 윤모(32)씨는 “내 캐릭터에 대한 애착과 디자인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이 업계에 아직도 남아 있으려는 이유”라고 말한다. 거꾸로 말해 근무환경과 직원에 대한 복지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게임 출시 반년 전부터는 매일같이 야근과 특근, 주말 근무가 이어지지만 초과수당은 먼 나라 얘기다. 윤씨는 “이런 열악한 환경을 뻔히 아는 상사들은 오히려 ‘다 알고도 들어온 것 아니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면접 때는 붙여만 주면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하더니’로 시작되는 상사들의 우스갯소리는 열정을 저당 잡힌 윤씨의 뒤통수를 때린다. 이씨와 윤씨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그렇게 사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면서도 “그래도 남들보다 3배는 더 일하면서 3분의1의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처럼 제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열정은 잘못이라는 ‘각성’이 일어나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렸다. 1995년부터 실용음악과, 방송연예과, 사진학과 등 문화 서비스 관련 이색 학과가 우후죽순 신설될 당시만 해도 1990년대 ‘신(新)인류’가 ‘신(新)직업인’으로 진화할 것이란 기대가 넘쳤다. 2001년 굶주려 사망한 최고은 감독도 당시 새로 생긴 학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최 감독의 죽음 뒤 강우석 영화감독은 “영화계가 다 수용하지 못할 만큼 너무 많은 인력이 공급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영화 쥐라기공원 한 편으로 버는 달러가 승용차 150만대 수출액과 맞먹는다”는 분석에 모두 스필버그를 꿈꾸었을 뿐 ‘돈벌이’란 현실 문제를 논하면 열정이 모자란 것처럼 취급한 관행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단 영화계뿐이 아니다. 수도권 4년제 사진학과 졸업생(29)은 “졸업 직후 60% 정도는 사진과 관계없는 일을 한다.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PC방을 차리기도 하고, 시민단체로 가기도 한다. 사진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교수님들도 다양한 직업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생이 꿈을 좇아 사진학과를 선택한 것 자체가 열정을 증명한 일 아니냐”면서 “하지만 입학할 때 예술사진을 찍고 싶어 하던 열정가들은 작가로 성공한 선배를 봐도 생활이 어렵고 사람 자체도 어두우니 점점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꿈에 대한 열정 자체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던 학과생들의 자부심은 취업 준비와 함께 사라지기 일쑤다. 기업은 공식적으로 “스펙보다 열정”이라고 하지만, 토익과 경영학 전공 이수 과목이 없는 이들은 초라한 ‘스펙’ 때문에 열정을 보여 줄 면접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이 때문에 예술대 취업률은 50%대인 일반 대학 취업률 평균의 반 토막 수준이다. 최근에는 폐과되는 영화학과도 생겨 영화 관련 학과 수는 2010년 100곳에서 2011년 99곳, 2012년 96곳으로 줄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열정을 찬미하며 개인에게 한시도 쉬지 않는 폭주기관차 인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가”라면서 “사회가 적절한 보상 없이 개인에게 열정을 강요하는 건 의도가 순수하지 못하다. 폭주기관차는 언젠가 열을 받아 폭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열정 노동처럼 한 사람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는 건 개인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요즘 시대 상황과도 맞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창조경제도 창의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뜻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美 대학생도 허리가 휜다

    다음 달부터 미국 대학의 학자금 대출 이자율이 두 배 이상 뛸 것으로 예측돼 미 대학생들의 학자금 부채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의 학자금 융자서비스인 ‘스탠퍼드론’의 이자율이 다음 달 1일부터 현행 3.4%에서 6.8%로 인상된다. 현재 미국 대학생 700만명이 스탠퍼드론을 이용하고 있고, 전체 학자금 부채 규모가 최소 1조 달러(약 1100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충당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될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4일부터 학자금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달래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지만 정작 의회는 학자금 이자율 동결보다는 대출기금의 손실 해소 방안을 찾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협상 시한을 2일 앞두고 의회가 현재 유력하게 논의하고 있는 방안은 학자금 대출 이자율을 10년 국채 이자율과 연동하는 ‘변동이자율’ 방안이다. 여기에는 기금 운용주체인 연방정부의 손실을 줄이겠다는 의회의 계산이 깔려 있다. 현재 하원에 제출된 이 방안이 그대로 채택되면 대출금 이자율은 4.3%에서 많게는 8.5%까지 오른다. 미국 대학교육 관련 최대 로비단체인 미국교육협의회 테리 하틀 부회장은 “지난 2년간 적용된 이율 3.4%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2003년 25세 미국인 가운데 학자금 채무자는 25% 정도였으나 지난해에는 43%로 크게 늘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씨줄날줄] 부채 권하는 사회/문소영 논설위원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14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한 장·차관들에게 개당 4000원에 산 부채 70여개를 하나씩 돌렸다. 원전 비리의 여파로 전력난에 시달리자 ‘전력 먹는 하마’ 에어컨 대신 부채(扇·선)를 선물하고 에너지 절약을 독려하겠다는 뜻이다. 에어컨·선풍기에 비교해 부채는 전근대적 물건이지만, 사실 부채도 과학기술이 스민 문명의 산물이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동남아 산간지대에서 사용하듯이 원시시대의 부채는 나뭇잎이었다. 대나무를 잘게 쪼개 살을 붙이고 그 위에 쪽색(남색)이나 분홍으로 예쁘게 염색한 비단이나 기름 먹인 종이를 바른 부채는 한때 선진적 교역품이자 통치도구였다. 부채의 기원은 주나라 무왕이 만들었다는 둥근 부채로 초량선이다. 한반도에는 견훤이 고려 태조에게 공작의 깃털로 만든 둥근 부채(공작선)를 선물했다는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을 볼 때 고려 이전에 존재했을 것으로 본다. 이후에는 중국 사신에게 들려 보내는 국교품(國交品)이 되는데, 조선 태종 10년과 세종 2년에 명나라 사신에 흰 접부채 100자루를 주었다는 기록과, 세종 5년 일본국에서 접부채 20자루 등 토산품을 바쳤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특히 명나라 태조가 조선의 접부채(접는 부채)를 좋아해 모방품을 만들었는데, ‘살선’ 또는 ‘고려선’이라 불렸다. 그러나 접부채(摺扇·접선)는 일본이 기원으로, 한반도에 들어와 명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다. 단오에 조선의 왕은 부채를 신하들에게 선물했다. 당시 부채는 진기한 물건이었다. 첫 기록으로 태종실록 18년(1418년) 4월 태종이 “첨총제(僉摠制·상급 군령 기관) 이상은 전례(前例)에 의하여 원선(圓扇·둥근 부채)을 사용하고, 3품 이하 6품 이상은 학령선(鶴翎扇·손잡이가 날개 편 학모양)을 사용하고, 참외(參外·7품 이하 벼슬)는 백접선(白摺扇·흰색의 접는 부채)을 사용하라”고 한 지시가 있다. 다만 실행되지 못했다. 선물할 부채는 전라도와 경상도 등에서 진상 받아 썼는데, 별도의 대가를 치르지 않아 백성에게는 큰 괴로움이었다. 부채 선물은 조선에 이어 현대에도 이어졌다가 공급이 뚝 끊겼다. 오광수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2009년 9월 한 인터뷰에서 “1970~1980년대까지 화가들이 여름이면 부채를 선물하며 더위를 쫓는 등 풍류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림 값이 비싸서 그런지 이 관습이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엉겁결에 ‘부채를 권하는 사회’로, 다시 전근대 사회로 역주행했으나, 7~8월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릴 한국에서 공무원들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한국축구, 8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절반의 성공’으로 끝난 최강희호의 여정

    [한국축구, 8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절반의 성공’으로 끝난 최강희호의 여정

    ‘유종의 미’는 물거품이 됐다. 최강희 감독이 축구대표팀 마지막 경기를 찝찝하게 마무리했다. 한국은 18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8차전에서 0-1로 졌다. 지휘봉을 잡은 마지막 경기를 패했다. A조 2위(승점 14·4승2무2패)로 브라질행을 확정지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다. K리그클래식 전북의 ‘봉동이장’으로 돌아갈 최 감독의 발걸음이 무겁다. 최 감독은 경기 후 “본선에는 진출했지만 마지막 경기를 져서 아쉬움이 크다”면서 “오늘의 패배가 앞으로 한국축구가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고개 숙였다. 사령탑에 앉았던 지난 1년 6개월은 아쉬움만 가득하다. 최 감독은 “초반 두 경기 말고는 내용도, 결과도 썩 좋지 않았다”면서 “임기를 정해 두고 하다 보니 문제가 많았고, 감독으로서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브라질 전망은 장밋빛이었다. 최 감독은 “올림픽 동메달을 딴 젊은 세대의 멤버가 좋다”면서 “본선은 어렵게 갔지만 새 멤버로 잘 준비한다면 충분히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덕담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이 경기 후 한국 벤치를 향해 ‘주먹감자’를 날린 부분에 대해서는 “지고서 말하는 건 변명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최 감독은 아시아 최종예선조차 장담할 수 없던 지난해 2월, 쿠웨이트와의 3차 예선 최종전을 깔끔한 승리(2-0)로 장식하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조광래 감독 시절 주전을 100% 예약했던 해외파에 대한 무한신뢰 대신 K리거와의 무한경쟁을 시도하며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비단길은 아니었다. 경기력 때문에 늘 강도 높은 비판의 중심에 있었다. 역대 감독이 모두 당했듯 선수 기용 부분과 전술·포메이션에 대한 혹평이 끊이질 않았다. 경기에 승리하고도 투박한 공격루트, 불안한 수비, 단조로운 전술 등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최 감독이 만든 전북의 히트상품 ‘닥공’(닥치고 공격) 대신 ‘닫공’(닫힌 공격) ‘닥동’(닥치고 동국) 등의 비아냥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종예선까지’로 마지막을 정해 놓고 팀을 꾸리다 보니 리더십에서 한계도 뚜렷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선수를 조련하는 대신 눈앞에 보이는 ‘승점 3’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을 향한 촘촘한 로드맵이나 선수들과의 끈끈한 교감은 2% 부족했다. 지난 18개월간 사상 초유의 시한부 사령탑으로 ‘마이웨이’를 걸었던 최 감독의 소임은 끝났다. 울산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CEO칼럼] 초심으로 돌아가자/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

    [CEO칼럼] 초심으로 돌아가자/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

    우리는 1995년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 1472달러를 달성하면서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홍콩은 1987년, 싱가포르 1989년, 타이완이 1992년에 1만 달러를 넘은 것과 비교하면 늦은 감도 있지만, 이를 통해 한국은 아시아의 4룡(龍)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추세를 몰아 그 이듬해인 1996년에는 선진국들의 협의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불과 10여년 후인 2007년에는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다. 더불어 국내 몇몇 기업은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훌쩍 컸다. 그러나 최근 경제성장률은 2%대에 머물고 있다. 한때 바로 코앞에 와 있는 것만 같았던 국민소득 4만 달러는 구호로만 남았다. 이른바 성장통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성장통은 비단 국가의 경제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기업과 개개인의 성장 과정에서도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더 크기 위해서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만 한다. 기업들이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차별적인 제품으로 중무장을 했더라도 급격한 성장을 한 뒤에는 일정 기간 정체기를 맞기 마련이다. 놀라운 성적으로 신인상을 수상한 운동선수도 2년차 징크스라 불리는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지구촌에 즐거운 한류 붐을 불러일으켰던 ‘강남스타일’의 가수 싸이도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타이틀 하에 ‘젠틀맨’을 발표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전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성장통을 쉽게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사실 그 답은 무척 간단하다. 바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세상에 성공을 위한 왕도란 없다. 있다면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가슴 뛰던 출발의 순간이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군대에서 전역하던 날, 첫 출근을 하던 날, 결혼식장에 들어서던 날, 처음 자신의 가게 문을 열던 날처럼 가슴 설레던 그 순간의 결연했던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 또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은 기본을 돌아보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과 자주 비교되는 골프에서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뛰어난 골퍼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 갑자기 샷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장기간 슬럼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게 아니다. 더 좋은 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아니다. 기본기를 다시 점검하는 게 최선이다. 그립은 제대로 잡고 있는지, 임팩트 순간에 고개는 들지 않는지, 하체는 흔들리지 않고 잘 고정되어 있는지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바로잡아 나간다면 곧 예전의 실력을 되찾을 수 있다. 음식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식재료를 쓰고 위생적으로 조리해야 한다. 이게 음식점의 기본이다. 음식 맛의 8할은 재료다. 재료가 좋으면 굳이 여러 가지 양념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 기본에서 성패가 갈린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아시아 주요 10개국 가운데 9위에 지나지 않는 데다 내년 전망치(3.9%) 역시 10개국 중 꼴찌다. 한국경제가 아시아의 용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하지만 지난 60여년의 한국경제 발전사가 시련 극복의 연속이지 않았던가. 전쟁의 상흔을 이겨내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한민국의 초심을 잊지 않고 되살려야 할 때다. 처음 그날을 떠올려 보자. 무엇인가 간절하게 원하는 목표가 있었고, 다시 하라면 못할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서 그 목표를 성취했던 초심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자.
  • 당정, 영훈·대원 ‘국제중 인가’ 취소 검토

    교육부가 입학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영훈중학교와 대원중학교의 인가 취소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물론 지정취소 권한을 갖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취소 결정이 전제다. 시교육청은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태다. 교육부는 다른 국제중학교에 대해서는 입학비리 등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 당국의 감독을 강화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데는 확고한 의견을 보였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과 교육부는 11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갖고 최근 입시비리 문제가 불거진 국제중에 대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교문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희정 의원은 국회 브리핑에서 “문제가 된 2개 학교에 대한 (국제중) 지정 취소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다”면서 “문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경우 지정을 취소하는 부분에 대해 교육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서남수 장관의 말을 인용해 “학교 제도가 자주 변함으로써 학부모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면서 “(국제중 제도의) 큰 틀을 흔들지 않으면서 문제가 있는 학교만 지정 취소하고 나머지는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관리감독 강화 방안으로 입시비리 학교 학생에 대한 엄정 조치, 입시 종료 후 정기 감사 실시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영훈·대원중의 지정 취소가 결정되면 두 학교 모두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잃고 본래의 형태인 일반중으로 돌아간다. 지정 취소로 인해 일반중 학생의 입학이 시작되면 재학 중인 국제중 학생들과의 교과 과정 충돌이 불가피하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국제중 학생들이 다 졸업하는 데 3년이 소요된다”면서 “그동안 수업을 이중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현장에서는 혼란이 불거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몇 년간 국제중만 바라보고 입시를 준비해 온 학생들이 겪을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고민 또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제껏 국제중 지정 취소가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자립형사립고(자사고)였던 서울 용문고·동양고, 광주 보문고가 2011년 낮은 지원율을 이유로 자사고 지정을 자진 철회한 적은 있지만 입시 비리로 인한 지정취소 사례는 없었다. 현재 준비단계를 밟고 있는 울산과 대전의 국제중 설립에 미치는 영향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9월에 지정 협의를 한 울산과 대전의 국제중은 계획대로 2015년 3월 개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국제중 가운데 특목고 진학률이 가장 높은 두 학교가 폐지 위기에 처하면서 국제중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국제중 지정 취소는 최후의 카드이고 검찰에서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비리가 밝혀질지 지켜보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국제중 지정 취소는 어떤 방법도 안 될 경우에 진행해야 한다”면서 “검찰 조사를 지켜본 후에 이사장 등이 국제중 입시 비리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이 구체적으로 나오면 우선 임시 이사회로 가는 게 옳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中 윈난성 후타오샤 트레킹 체험… ‘차마고도’를 걷다

    中 윈난성 후타오샤 트레킹 체험… ‘차마고도’를 걷다

    지금 여기는 차마고도(茶馬古道)입니다. 정확히는 여러 갈래의 차마고도 가운데 중국 윈난성(雲南省) 위룽쉐산(玉龍雪山·5596m)과 하바쉐산(哈巴雪山·5396m) 사이의 후타오샤(虎跳峽)로 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길은 험합니다. 말과 사람이 겨우 지날 만큼 좁습니다. 협곡의 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호랑이(虎)가 건너뛸(跳) 수 있었겠지요. 한데 사방을 둘러친 풍경은 몇 마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광대하고 빼어납니다. 풍경에 홀려 자칫 발을 헛디뎠다간 곧장 수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겁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길인 셈이지요. 차마고도의 후타오샤 구간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족히 이틀은 걸립니다. 이번엔 ‘빵차’를 타고 이동하다 핵심 코스에 내려 트레킹을 즐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단기 속성 코스’ 쯤 될까요. 전 구간을 발품 팔아 걷는 것에 견줄 수야 있겠습니까만, 그 길에서 만난 감동의 깊이 만큼은 결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후타오샤 트레킹에 나서기 전 몇 가지 알아둘 게 있다. 먼저 삼강병류(三江幷流)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 진샤강(沙江)과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 등 세 개의 물줄기가 26㎞ 거리를 두고 함께 흐르는 것, 혹은 그 지역을 뭉뚱그려 일컫는 말이다. 세 강은 각각 양쯔강과 메콩강, 살윈강의 최상류를 이룬다. 이 가운데 후타오샤를 관통하는 물줄기가 진샤강이다. 겨울엔 옥빛, 여름엔 황톳빛으로 빛깔을 달리한다는 강이다. 진샤강은 남진을 거듭하다, 장강제일만이란 곳에서 180도 회전해 리장으로 흘러들어 간다. 리장 안에서만 614㎞를 굽이친 진샤강은 쓰촨성 등을 거치며 한껏 폭을 넓히는데, 그게 바로 양쯔강이다. 샹그릴라현 후타오샤진에 이른 진샤강은 위룽쉐산과 하바쉐산 사이를 할퀴며 지난다. 바로 이 구간, 그러니까 오래전 한몸이었다가 지각변동으로 떨어진 두 개의 거대한 산이 몸피를 바짝 좁힌 협곡이 후타오샤다. 협곡의 길이는 20㎞ 남짓. 폭은 가장 가까운 곳이 30m 정도다. 진샤강과 설산의 최대 표고차는 3900m에 달한다. 차마고도는 바로 이 후타오샤의 거친 산자락 사이를 지난다. 차마고도는 ‘밑줄 쫙’ 쳐가며 알아두자.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로 꼽히는 곳이다. 실크로드 보다 앞서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차마고도는 윈난성 등 중국 서남부의 푸얼차(普?茶)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선 ‘평균고도 4000m가 넘는 산자락에 다져진 험준한 길이 5000㎞ 정도 이어진다’고 적고 있다. 이 길을 따라 교역에 나선 상인 조직이 마방이다. 마방들은 차나 말 외에 소금과 약재 등 다양한 물품들을 실어 날랐다. 티베트 불교가 전래된 것도 바로 이 길을 통해서였다. 차마고도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후타오샤의 차마고도는 그 중 하나다. 중국 정부가 민간인의 티베트 입경을 불허하는 상황에서 차마고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중국 서남부의 리장(麗江)은 소수민족의 전시장 같은 곳이다. 궁벽한 소도시에 20여개의 소수민족들이 살아간다. 중국인들조차 소수민족의 삶을 엿보기 위해 리장을 찾는다고 한다. 리장 시내를 벗어나 214번 국도로 갈아탄다. 티베트의 라싸까지 가는 국도다. 오래전 마오쩌둥이 티베트를 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가던 길이기도 하다. 낡은 길이 주는 감동은 ‘신작로’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깊이를 가졌다. 길 양 쪽으로 줄곧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흐른다. 황톳빛 진샤강 위에 세워진 경홍교(景虹橋)를 건너면 샹그릴라다. 티베트 말로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란다. 유럽인들에겐 1933년 영국의 제임스 힐턴이 지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전설의 이상향으로 각인된 곳이다. 샹그릴라는 해발 3300m로 리장(2400m) 보다 고도가 높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리장과 다소 다른 건축 양식 등에서 서역의 향기가 물씬 전해 온다. 후타오샤 트레킹은 최소한 1박 2일은 잡아야 한다. 하지만 후타오샤의 정수만 골라 보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후타오샤진에서 진샤강과 나란히 달리는 로 패스(Low path)를 따라 차를 타고 가다, 하바쉐산 중턱의 중도객잔(2600m)까지 오른 뒤, 차마고도와 합류해 관음폭포까지 다녀오는 식이다. 이때 동원되는 탈 것이 ‘빵차’다. 식빵처럼 통통한 형태를 한 승합차다. 생긴 건 볼품없지만 차마고도 트레킹에선 조랑말 만큼이나 유용하다. 차마고도를 에워싼 산은 거대하다. 그에 견줘 사람과 길은 턱없이 작다. 사진으로는 도무지 표현이 되질 않는다. 그러니 그저 실핏줄 같은 저 길 위로 사람과 말이 걷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 외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박석이 깔려 있지 않은 길은 바닥이 깊이 파였다. 흙길이라고는 하나, 단단하기가 포장도로에 견줄 만한데도 길 가운데가 움푹 파인 거다. 얼마나 많은 말과 사람들이 밟고 지났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몸 돌릴 틈 없는 좁은 벼랑길에서 마방끼리 마주치면 어떻게 될까. 가이드 김성철씨는 “마방을 이끄는 우두머리 ‘마고토’끼리 협상을 벌여 적은 규모의 대상이 싣고 온 짐과 말을 모두 벼랑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고 했다. 물론 물건값은 온전하게 보전해준다. 다소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오도가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오가며 마주하는 위룽쉐산과 하바쉐산은 높고 또 깊다. 웅혼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 그 험준한 산에서도 생명이 자란다. 키 작은 관목들이 진회색 산자락을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거인이 짧은 초록빛 비단 치마를 걸친 듯, 어색한 몰골이다. 하지만 그 치열한 생명력은 경외롭기까지 하다. 주민들의 삶도 산자락을 따라 팍팍하게 이어진다. 급경사의 산자락에 계단식 밭을 일궈놓았다. 염전 형태의 광물 채집 시설도 이채롭다. 설산 위쪽의 광산에서 배출된 물을 가둔 뒤, 물에 함유된 미세한 광물을 걸러내는 설비다. 현지 가이드는 “허술한 시설로도 해마다 2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거둔다”고 했다. ‘짭짤’한 수준을 넘어 화수분에 가깝다. 차마고도의 풍경이야 어디서나 가슴 벅차지만, 마지막 산굽이에서 마주한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왼쪽으로 관음폭포가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고, 수십길 아래로는 장선생객잔 등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져 있다. 그 사이로 진샤강이 황톳빛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간다. 멀리서는 실핏줄 같았던 관음폭포지만, 바짝 다가서 보면 제법 수량이 풍성하다. 차마고도 버전의 오아시스다. 물은 맑고 차다. 하바쉐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남짓한 트레킹에 아쉬움도 남을 법하다. 한데 이쯤에서 돌아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길이 준 울림은 이미 차고도 넘쳤으니 말이다. 윈난을 말할 때 리장(麗江)고성(古城)을 빼놓을 수 없다. 사방가(四方街)에서 방사선 형태로 뻗어 나간 네 갈래 길 위에 1000년을 넘나드는 건축물들이 어깨를 맞댄 채 서 있는 곳. 길바닥엔 오화채색석이 촘촘하게 깔렸고, 위룽쉐산(玉龍雪山)의 만년설 녹은 물이 세 갈래로 마을을 적시며 흘러가는 곳이 바로 ‘동방의 베니스’ 리장고성이다. 해발 2400m의 나시족자치현인 리장은 중국 내에서도 ‘깡촌’으로 통했다. 그러다 1996년 발생한 대지진은 고성의 가치를 한껏 높여 줬다. 인근의 현대식 건물들은 하릴없이 스러졌지만, 고성은 끄떡없이 서 있었던 것. 3000여 채에 달하는 우아한 목조건물들은 서로 맞닿아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연환계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실핏줄 같은 100여개의 골목길로 연결된 건축물은 서로가 버팀목 노릇을 한다. 반면 화재엔 취약하다. 조조의 대군도 제갈공명의 화공 한 방에 케이오되지 않았던가. “고성 앞에 세워진 물레방아 모양의 대수차(大水車) 또한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액막이”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길바닥엔 박석이 깔렸다. 수많은 말과 마방들이 오가는 동안 길이 파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인근 흑룡담에서 발원한 수로는 세 갈래로 나뉘어 고성 곳곳을 적시며 흘러간다. 리장고성이 ‘동방의 베니스’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성 안에는 약 3만명의 주민이 산다. 그중 90%가 나시(納西)족이다. 나시족은 개구리를 숭상한다. 개구리가 하늘에서 동파교 경전을 가져와 인간에게 전해 줬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시족의 개구리에 대한 친밀감은 전통 복장에서 잘 드러난다. 나시족 여인들마다 등 뒤에 장식물을 메고 다니는데, 이게 꼭 개구리처럼 보인다. 거북이 등껍질을 닮은 장식물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원을 수놓았다. 머리엔 달처럼 둥근 모자를 쓰고 다닌다. 이른바 피성대월(披星戴月)이다. 별을 등에 지고, 머리엔 달을 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새벽별 보며 집을 나선 뒤 달 뜨는 밤에 돌아올 만큼 오래 일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사와 농사를 전담했던 나시족 여인들의 힘겨운 생활사가 배어 있는 표현인 셈이다. 리장고성은 1200년 전(1700년이란 견해도 있다) 세워진 바이사(白沙)고진(古鎭)과 1000년 역사의 수허(束河)고진, 그리고 800년 된 다옌(大硏)고진을 포괄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리장 시내의 다옌고진을 리장고성이라고 부른다. 세 곳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 시간을 내 따로 찾는 게 좋겠다. 리장고성을 기준으로 수허고진은 4㎞, 바이사고진은 10㎞ 정도 떨어져 있다. 규모는 작아도 번다한 관광지가 돼 버린 리장고성보다 한결 옛 정취가 살아 있다. 리장고성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게 위룽쉐산이다. 여태 단 한 차례도 인간에게 정상을 내주지 않은 산이다. 해발고도는 ‘현재’ 5596m다. 한라산을 3개 쌓아 놓은 것과 맞먹는 높이다. 지각활동이 활발해 지금도 높이가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산군들의 자태가 기막히다. 은빛의 용이 꿈틀대는 듯하다. ‘옥룡’이란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다. 산은 거대하다. 5000m 넘는 고봉만 13개, 72개에 이르는 4000m급의 ‘낮은’ 봉우리는 이름조차 없다. 그 안 어딘가에 ‘만년설 녹은 물로 차를 끓여 마시고, 사슴을 타고 다니며, 호랑이로 밭갈이를 하는 사람이 산다’는 전설 속 옥룡제삼국도 있을 게다. 불끈 솟은 산은 리장 어디서나 풍경의 주인이 된다. 위룽쉐산에서 캐낸 오화채색석은 리장고성 등의 길을 포장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산 중턱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있다. 승속을 가르는 듯한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면 해발 4506m의 빙천 세계다. 고산 증세로 머리는 어지럽고, 가슴은 답답하다. 예서 4680m의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가야 한다. 후들대는 다리로 마지막 계단을 딛고 서면 웅장한 위룽쉐산의 산군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글 사진 샹그릴라·리장(중국)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 수첩] ▲아시아나항공이 중국 리장까지 주 2회(목·일요일) 전세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리장 공항이 생긴 이래 외국계 항공사로는 처음이다. 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 목요일 출발은 4박(기내 1박) 5일, 일요일 출발은 5박 6일 일정이다. 6월 16일까지 1차 운항, 7월 18일~10월 17일 2차 운항한다. 아시아나 전세기를 이용한 관광상품은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투어2000, 혜초여행사, 라이브투어 등 다섯 곳에서만 판다. 대부분 리장과 다리(大理), 혹은 리장과 후타오샤 등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리장을 기준으로 후타오샤까지는 100㎞, 버스로 3시간쯤 걸린다. 위룽쉐산은 25㎞로 40분 거리다. 리장고성 수로의 원천인 흑룡담은 리장 시내에 있다. 가뭄으로 물은 바짝 말랐으나 리장 주민들이 성소로 여기는 곳이니 둘러보는 게 좋겠다. ▲위룽쉐산 빙천세계에선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진다.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50위안(약 9200원)에 방한 점퍼를 빌릴 수 있다. 고산증세를 완화시키는 산소통도 1개 당 50위안이다. ▲후타오샤 트레킹에 이용되는 조랑말은 200~300위안쯤 받는다. 객잔 숙박비는 150 위안선이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질청 아전들의 행패를 항용 상종하는 원상들보다 더 소상하게 알고 계시군요. 아니래도 포구에 있는 60여 호의 염호들도 구실살이들의 등쌀에 원성이 자자하답니다. 시생도 들은 풍월입니다만, 좀 알려진 가문에서는 향임 맡기를 꺼린다고 합니다. 구실살이들이란 신통치 못한 부류들이 맡게 되는데, 위세가 별로 없으니 아전들이 그들과 합세하여 일을 꾸민다고 합니다. 이서들을 장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그들의 약점을 잡는 일뿐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수령이라 할지라도 단박에 발목이 잡혀 저들의 농간에 휘말리게 됩니다. 얼마 전 이웃 고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만, 한때는 부호장(副戶長)과 예방(禮房)이었던 자가 이듬해에는 땔감을 담당하는 시탄빗(柴炭色)과 고기잡이에 대하여 수세하는 어세빗(漁稅色)을 맡았으나 이것을 돈을 받고 부이방(副吏房)에게 양도하였습니다. 한 해는 소금 굽는 일에 수세하는 염세빗(鹽稅色)이었다가 그 자리를 관청빗(官廳色)에 팔고 부호장을 맡기도 했답니다. 이런 폐단은 비단 이웃 고을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물화도 아닌 직임을 사고파는 수완과 사술이 저잣거리에서 말똥처럼 뒹굴며 거래하는 우리 행상들의 재간과 기민함을 뺨칠 만합니다. 이서들의 횡포와 농간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어느 누가 그들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지방관아의 사령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도 원래는 근본 없는 떠돌이로 성정이 포학합니다. 하나같이 늙고 병들어 허리 펴고 서 있기조차 힘든 작자들입니다. 정해진 녹봉이 없으니 천상 횡령과 뇌물로 가계를 수습하고 순라를 핑계하여 마을의 고삿길을 돌면서 갈취할 물건이 없나 살피고 다닙니다.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는 염호들을 찾아가 염한들과 시시덕거리면서 갈취할 구멍만 찾습니다. 도둑이나 범인을 알아내는 재간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출중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뇌물만 바치면 똥싼 놈은 은밀히 방면하고 겨 먹은 놈만 잡아들여 두 번 다시 굴신을 못 하도록 치도곤을 내려 하옥시킵니다. 수령이 저들의 포학함을 은연중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에 애꿎은 민호(民戶)들만 등골이 빠집니다. 수령의 분부가 있거나 없거나 저들끼리 눈짓으로 주관하여 잡아들여 주리를 안기거나 곤장을 내립니다. 기포(譏捕)는 뒷전이니, 병기고에 있는 병장기들이 녹이 슬고 부러지고 찌그러져도 거들떠보는 법이 없습니다. 썩을 대로 썩은 위인들이 무슨 수로 제구실을 하겠습니까. 제구실은 고사하고 적당과 내통하지 않는 것만 천만다행으로 알아야지요.” “작청 사람들을 두둔하실 줄 알았는데, 안전께서 먼저 그들의 허물을 낱낱이 발고하시니 시생이 더불어 할 언사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나 역시 음직으로 수령 행세하며 이 고을 저 고을을 가솔도 없이 방울나귀나 타고 떠돌고 다닙니다만, 오늘에 이르러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일로 하루가 흡족했던 궁반 시절이 그리울 따름이지요. 두어 칸 집에 솜옷 한 벌, 그리고 여름 베잠방이 한 벌 있고, 시렁 위에 서적 몇 권 얹어두고 거멀못 박힌 소반 하나에 지팡이 하나, 조밥에 소금국이면 족한 걸, 어쩌다 꼴같잖은 벼슬길에 뛰어들어 동가식서가숙으로 궁상을 떠는지 스스로 염치없고 가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듣자 하니 안전의 생활도 한둔으로 세월을 보내는 부상들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려가 적지 않겠습니다.” “환담을 나누다 보니 할 말 못 할 말 지껄이게 되었습니다만, 수령 생활도 무엄하기 짝이 없는 육방 관속들 눈치 살피느라 고달프기만 합니다. 어찌 되었던 십이령길을 온전하게 지켜 울진의 염호와 고을 민초들을 구휼하고 장시의 번성을 꾀해야겠다는 임방의 작정에 수령으로서 경의를 보냅니다. 울진 소산이 소금 아니면 건어물과 염장품으로, 백성들이 연명하는 것인데, 차제에 수령이 주선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가다듬어 적당을 소탕하는 데 일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반수를 믿고 병기고의 병장기들을 풀도록 주선해야지요.” “임소의 처사를 그토록 믿어주신다니 황감할 따름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여항에서는 질청의 아전들과 벙거지 패랭이며 더그레 걸친 위인들치고 올곧은 심사를 가진 위인을 찾기 힘들다는 소문이 자자하지요. 파시철에 어염을 눅은 값으로 사서 쟁여두었다가 산간지방으로 가서 됫박 곡식과 바꿔 연명하는 도부꾼들조차 행상이라 해서 폐해를 입습니다만, 힘없는 백성들이라,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 15세기 씨족부락 여진, 어떻게 동북아 패권국이 되었나

    15세기 씨족부락 여진, 어떻게 동북아 패권국이 되었나

    1616년 정월 초하루, 만주족의 국가가 탄생했다. 후금이다. 청 태조 누르하치는 허투알라에서 과거의 한(Han)칭호를 버리고 정식으로 최고 통치자로 칭호를 제정했다. 새 칭호는 ‘하늘이 여러 나라를 기르라 하여 임명하신 영명한 한’이었다. 이 시기 누르하치는 여허여진을 제외하고 자신이 속한 건주여진은 물론, 해서여진, 동해여진을 복속하여 통일국가를 수립했다. 1395년 편찬된 조선의 ‘용비어천가’에는 건주여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동북 1도는 원래 왕업을 일으킨 땅으로서,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생각한 지 오래돼 야인(野人·여진)의 추장이 멀리서 오고, 일란투먼(移?豆漫)도 모두 복종하여 언제나 활과 칼을 차고 잠저에 들어와서 좌우에서 모셨고’ 여기서 ‘일란투먼’은 여진어로 3만호(萬戶)를 말하는 것으로 송화강 하류역의 세 추장이 이끄는 부였다. 원나라에 여진이 5만호가 살다가 원 말기에 오도리, 후르하, 타온의 3만호만 남았던 그 부다. 용비어천가의 이 대목은 누르하치의 6대조로 조선의 동북지역인 회령(여진:알목하) 지역으로 이주한 오도리 만호의 몽케테무르도 포함한 것이다. 장백산 동남쪽이 만주족의 발원지다. 14세기 중엽 무렵에도 수렵과 어로 활동을 하고, 철기도 생산하지 못해 15세기 후반에 명·조선과의 밀무역을 통해 철 화살촉과 철제 갑옷, 등자 등을 확보했고, 15세기에야 겨우 농사를 시작했던 씨족부락 여진이 어떻게 최고의 문명국가라는 명나라와 조선의 혹독한 견제를 감내하고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재편했을까, 오랑캐라 불리며 무시당하였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청제국(1644~1912)으로 278년간 패권을 누리고, 역대 최대의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은 유소맹(류샤오멍·61) 중국사회과학원 교수가 쓴 ‘여진부락에서 만주국가로’(푸른역사 펴냄)를 읽어보면 풀 수 있다. 한국사람 중에 청 제국이 등장한 배경을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청의 등장을 그저 명이 조선의 임진왜란에 파병한 끝에 국력이 쇠약해진 덕분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극동에 위치했다는 지정학적 이유로 한국이 역사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든지, 강력한 중국(원, 명, 청) 때문에 중원으로 땅을 넓히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진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는지 점검해볼 수 있겠다. 여진의 혈연조직은 15세기 이전에는 할라(씨족)에서 무쿤(새로운 씨족), 욱순(일족), 보오(가족)의 순서로 확대 발전한다. 이런 일족과 가족의 발전은 사유재산 증가와 가내 노예의 소유와 관련이 있다. 생산력이 발전하고, 생산력 발전을 위한 대외적 약탈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혈연과 지연 중심의 가샨과 같은 부락이 아닌 국가조직으로 발전해나갔던 것이다. 특히 여진의 핵심 세력이었던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은 다른 혈연의 일족으로 구성된 지역연합체로, 세습제도가 발전하고, 군사적 수장이 출현하고, 부락장의 대외적 역할이 강화되면서 상층부 일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해서여진과 건주여진이 급속하게 발전한 것은 문명세계인 명과 접촉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명과의 조공, 호시(互市)참여가 진행된 것이다. 여진은 모피, 잣, 버섯, 꿀, 가축 등을 명나라에 보내고 농기구, 소, 수공업품, 쌀, 소금, 비단, 면포 등을 받아왔다. 명과의 호시는 월 1회에서 나중에는 하루 1회로 급속히 증가했고, 명나라 말기에 호시에 몰리는 인원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공은 여진은 명의 답례(회사·回賜)품을 은으로 통일했는데 여진사회로 들어오는 은의 수량이 연간 1만 5000량에 달했다. 명은 조공의 연간 인원을 해서여진은 1000명, 건주여진은 500명으로 제한했는데, 건주여진이 강성해지면서 조공인원이 1500명이 돼 규정의 3배나 됐다. 또 여진은 호시에서 거두는 세금도 은본위로 계산해서 징수해, 가치의 척도를 은으로 통일했다. 즉 화폐로 은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16세기의 이야기다. 시장의 발달은 사유제와 국가발전의 견인차가 됐다. 물질적 욕망이 자극됐지만, 다른 한편 집단의 평등원칙이나 상호협조의 관계망이 무너지면서 부족단위 대신 국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만주국은 자신들의 근본이었던 혈연과 지연에 기반을 둔 사회관계망을 군사조직(니루·구사), 더 나아가 팔기군 등 재편하면서 더 효율적인 통치와 전쟁수행에 나선다. 17세기로 들어오면 병자호란 등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들이 만주국의 시각으로 다뤄지고 있다. 불과 30~40년 전 자국의 역사도 배우지 않는 한국에서 만주국의 등장과 성장, 몰락을 다룬 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은 다른 국가의 운명과 엮여 있으니, 배우지 않으면 조선이 어떤 나라였는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나를 잘 알기 위해 남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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