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비닐
    2026-04-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15
  • 플라스틱 먹은 거북‧낚싯줄 걸린 돌고래…‘발리’ 해양동물들의 고통

    플라스틱 먹은 거북‧낚싯줄 걸린 돌고래…‘발리’ 해양동물들의 고통

    ‘신들의 섬’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발리 해변이 밀려드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최근 발리섬에서 구조된 멸종위기종 푸른바다거북의 배설물에서 비닐봉지가 상당수 발견됐다. 5일 발리의 거북이 보호단체 TCEC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해군은 지난해 12월 27일 발리 앞바다에서 푸른바다거북을 불법 포획한 어선 3척을 나포했다. 길이 1m 이상, 무게 300㎏ 이상으로 자랄 수 있는 푸른바다거북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이다. 보호단체 TCEC에 인계된 푸른바다거북은 생후 7년짜리부터 30년이 넘는 경우까지 다양했다. 거북이들은 야생에 돌려보내기 전에 치료·관찰 기간을 가졌는데 배설물에서 상당수의 비닐봉지가 나왔다. TCEC 회장 마데 수칸타는 “최소 5마리의 배설물에서 플라스틱이 나왔다. 라면 수프 봉지 등 다양한 플라스틱 쓰레기였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배설물 속 플라스틱 양이 점차 줄고 있어 조만간 방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고통 받는 바다의 주인들쓰레기장으로 변한 바다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바로 해양동물이다. 쓰레기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삼켰다가 죽은 바다 거북 등 발리에서 쓰레기의 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해양동물들의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국제기업 ‘포오션’은 2020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섬 해안에서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낚싯줄로 꽁꽁 묶여 겨우 숨만 쉬던 돌고래를 구조하는 영상을 공개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당시 돌고래는 오랫동안 줄에 묶여 있어 입 주변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고개를 가누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구조자들이 서둘러 낚싯줄을 제거하고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냈지만, 언제 다시 쓰레기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을지 모르는 상황이다.또 2020년 12월 15일 포오션이 공개한 또 다른 영상에는 발리 해안에서 쓰레기 사이를 유영하는 고래상어의 모습이 담겼다. 멸종위기 취약종인 고래상어는 매일 수천톤의 물을 들이마신 후 크릴과 플라크톤 등을 걸러내 섭취한다. 이 과정에서 해양 쓰레기들을 먹을 수밖에 없다. 포오션 관계자는 “고래상어가 빨아들인 바닷물에 섞인 미세플라스틱이 목숨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 2위 ‘해양 오염원 배출국’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해양 오염원 배출국으로 꼽힌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 오염뿐만 아니라 해양 생태계를 위태롭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한해 20만 톤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발리섬에선 2019년 비닐봉지·스티로폼·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고, 수도 자카르타에선 작년 7월부터 마트 등 상점에서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됐다. 하지만 일회용품 사용은 여전하다. 환경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가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쓰레기 투기가 지속된다면 발리 전체가 쓰레기로 뒤덮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 중학교 체육수업서 백골이?...부실공사 탄로나자 직원 살해해 운동장에 매립

    중학교 체육수업서 백골이?...부실공사 탄로나자 직원 살해해 운동장에 매립

    부실공사 사실이 탄로 나자 이를 고발한 직원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학교 운동장에 매장한 피의자 2명이 사건 16년 만에 붙잡혔다. 이들은 자신들이 담당했던 중학교 운동장 트랙 건설 사업 중 부실 공사 사실을 눈치 챈 직원에게 악감정을 품고 다량의 마취약을 먹인 뒤 살해해 매장한 혐의다. 중국 후난성 인민검찰청은 지난 2003년 발생한 ‘운동장 시신매장 사건’에 대해 당시 400미터 트랙 건축을 담당했던 두샤핑, 뤄광충 등 두 사람을 고의 살인죄 혐의로 기소했다고 4일 이같이 밝혔다. 관할 검찰 측은 피의자들에 대해 피해자 덩스핑을 잔인하게 살해해 학교 운동장 아래 매립한 혐의로 고의 살인죄를 구형했다. 사건은 2003년 후난성 신황현(新晃县) 소재의 제1중학교에서 살인을 모의한 두 씨와 뤄 씨 등 두 사람의 계획적 살인 행위로 시작됐다.검찰 조사 결과, 피의자 두샤핑은 당시 신황현 제1중학교 운동장에 400미터 규모의 육상 트랙 공사를 수주, 이 과정에서 굴착 공사를 담당했던 또 다른 피의자 뤄 씨를 알게 된다. 당시 건설 대금 중 일부를 불법 은닉했던 두 씨는 사업에 관리 감독자로 참여했던 피해자 덩 씨에게 악감정을 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두 씨가 공사 대금의 상당량을 불법 은닉, 부실공사로 이어지자 당시 학교 소속의 행정 직원이었던 피해자 덩 씨가 이를 학교 측에 고발하고 우 씨의 공사를 막았다는 것이 두 씨가 잔인한 살인을 계획했던 결정적인 이유였던 셈이다. 다수의 증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무렵 두 씨는 피해자의 고발을 계기로 피해자 덩 씨를 죽이고 싶다는 등의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는 등 보복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잔인한 시체 매장 사건은 2003년 1월 22일 제1중학교 트랙 공사가 무려 2년 만에 완공되기까지 단 10일을 남겨둔 날 발생했다. 당시 피해자 덩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거주, 운동장 트랙 건설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공사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는 사건 당일 낮 12시가 가까워지자 사무실에서 장기를 두며 점심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바로 이때 사무실로 피의자 두 씨와 뤄 씨 두 사람이 등장했다. 수사 결과, 피의자들은 다량의 마취약을 물에 탄 뒤 이를 피해자에게 건내 마시도록 강요했다. 약이 든 물을 마신 피해자는 곧장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피의자들은 피해자의 얼굴을 청테이프로 감고, 손과 발은 비닐봉지에 넣어 움직일 수 없도록 했다. 또, 피해자의 머리를 망치로 수차례 가격해 살해했다.사건 당일 밤 11시 무렵, 피의자들은 어둠을 틈타 피해자의 시체를 운동장 내 아직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활주로 가장 큰 구덩이에 매장했다. 간이 매장한 시체 위에는 돌을 올려 시체를 감췄고, 이튿날 다시 사건 현장을 찾은 피의자들은 활주로에 묻힌 시신 구덩이를 더 깊이 파는 공사를 진행했다. 이 잔인한 살해 사건은 지난 2019년 6월 19일 우연한 계기에 시작된 운동장 트랙 공사를 하던 중 백골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외부에 처음 알려졌다. 피해자가 무고하게 살해돼 학교 운동장에 매립된 지 무려 16년의 일이었다.수사 결과, 피해자의 시신은 매장된 지 16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시신은 당시 ‘신황현 제1중학교’라는 학교에서 제공한 운동복을 입은 상태였다. 경찰은 현장에서 시신을 감쌌던 테이프와 비닐봉지 등을 발견하고, DNA 감정으로 사망자의 신원이 당시 실종 신고가 있었던 덩 씨로 확정했다. 시신이 주요 사인은 두개골에 심각한 골절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유골에서는 살해당하기 직전 다량의 마취약을 투약됐을 것으로 보이는 마취 성분의 약품이 검출됐다. 한편, 이번 사건을 담당한 검찰 측은 두 씨와 뤄 씨 등 일당에 대해 최소 24년 이상의 유기 징역형을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힌 상태다.
  • [월드피플+] “아들 손 잡아주려” …두려움 무릅쓰고 양손 이식한 英 엄마

    [월드피플+] “아들 손 잡아주려” …두려움 무릅쓰고 양손 이식한 英 엄마

    영국 여성 코린 허튼(51)은 2주에 한 번 관리실을 찾아 손톱을 치장한다. 손톱 미용에 정기적으로 돈을 들이는 게 언뜻 사치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허튼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다. 3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허튼은 2013년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손과 다리를 모두 잃었다. 졸지에 사지절단환자가 된 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신경과 근육 신호를 감지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생체공학 의수를 썼지만 혼자서는 신발 끈을 묶을 수도, 이혼 후 홀로 키우던 4살 아들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허튼은 “예전엔 몰랐는데 밀고 당기고, 여닫고, 비틀어야 할 버튼과 지퍼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특히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 없는 게 제일 속상했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허튼은 영국 이식수술 권위자 사이먼 케이 교수를 찾아갔다. 허튼은 최소한 아들 손은 잡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며 수술을 부탁했다. 의사는 1년에 걸쳐 허튼의 심리상태를 검증한 끝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줬다. 하지만 실제 수술까지는 5년을 기다려야 했다. 성별과 피부색, 손 크기까지 여러 조건에 부합하는 기증자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튼이 패혈증 치료를 위해 25번의 수혈을 한 것도 걸림돌이었다. 몸 안에 여러 사람의 혈액이 뒤섞여 있어 항원항체 검사에서 면역 거부 반응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허튼이 수술 후 상태를 받아들일 만큼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도 재차 증명해야 했다.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손발 이식은 장기 이식과 다르다. 신장이나 심장 등 장기는 몸 안에 있지만, 손과 발은 매일 환자 눈에 보인다. 이식 후 거부 반응을 줄이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지만 수여자가 심리적으로 손을 거부할 수 있다. 상황에 대처할 만큼 강한 정신력이 필수다”라고 설명했다. 허튼은 “아들 손을 잡아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정신 훈련에 매진했다. 의족을 신고 킬리만자로를 등정하는 등 수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수술대에 올랐다. 허튼은 2019년 1월 양손 이식 수술을 받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새 손을 얻었다. 수술에는 의사 8명과 그 외 의료진 20명이 투입됐다. 티타늄 나사로 뼈끼리 고정한 후 10개의 큰 신경 줄기를 교체하고 힘줄과 혈관을 이어붙이는 데 12시간이 걸렸다.수술이 끝은 아니었다. 새 손을 얻고 1년 동안 허튼은 매일같이 적응 훈련을 했다. 그는 “새끼손가락을 베였는데 실제 느낌은 검지손가락이 다친 것 같았다. 감각 지연 현상도 있었다. 뭘 만지면 어떤 느낌인지 잠시 멈추고 생각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손가락을 움직이며 새 손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수술 후 2년이 흐른 지금, 허튼은 놀랄 만큼 새 손에 완벽히 적응했다. 양손 운동성과 민감도도 오른손 95%, 왼손 75%까지 높아졌다. 최대 75% 목표를 뛰어넘었다. 그는 “지난달 내 손으로 비닐 팩을 찢었다.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허튼은 또 손톱 미용을 위해 2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관리실을 찾고 있다. 그는 “손톱 치장을 하며 기증자를 잊지 않으려 늘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허튼은 기증자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자선단체도 세웠다. 암벽등반 등을 통한 모금 운동으로 비슷한 처지 장애인을 돕고 있다. 허튼은 “기증자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제 아들이 내 손 잡는 걸 덜 어려워한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 고픔과 아픔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

    고픔과 아픔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

    올해도 많은 분들이 새봄을 향해 시를 보내 주셨다. 오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읽었다. 예년보다 더 오래 숙고했는데, 손에서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짜인 세계를 횡단하며, 심사자들의 눈과 손이 시종 천천히 움직였다. ‘오픈’이 보여 준 감춤과 들킴의 미덕, ‘물과 풀과 건축의 시’에서 감지한 조용한 폭발, ‘비닐하우스’가 만들어 낸 미묘한 긴장, ‘온몸일으키기’가 일으킨 위트와 블랙 유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같이 머리와 가슴을 두드리는 시편이었다. 당선작과 끝까지 경합한 ‘저기 저 작은 나라’ 외 네 편은 독특한 시적 세계관으로 심사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자기만의 세계가 이미 상당 부분 구축돼 있어 앞으로 그 세계가 어디로 어떻게 뻗어 나갈지 궁금했다. 토씨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문장들은 묘한 리듬감을 자아내 읽을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띤 토론 끝에 ‘반려울음’ 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젊음은 젊은 상태, 혹은 젊은 기력을 가리킨다. 젊은 시가 있다면 그 상태를 잊거나 잃지 않고자 기력을 쏟아붓는 시일 것이다. ‘고픔’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일 것이다. 일상의 한 장면에서 지나간 시간을 길어 올리고 작금의 감정을 그 위에 내려놓는 시일 것이다. ‘반려울음’은 쓰면서 고파지는 시, 배가 뱃가죽과 배꼽을 소환하는 시, 마침내 쏟아버리면서 동시에 쏟아지는 시였다. “버썩거리는” 일상을 비집고 다른 존재를 향한 유일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빛나는 시였다. 울음을 껴안으면서 울음과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였다. 시 쓰는 데 있어 이른 시간과 늦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시간은 모두 제시간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응모자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화마는 나흘 만에 잡혔다. 두툼한 잿더미와 무너진 바위들만 남기고서. 녹원은 결심했다. 담배를 끊자. 한 번에 끊어 버리자. 대신 그는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몇 시간 내내 산불 사진만 바라보자니 눈이 따끔거렸다. 사진 속 불길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웠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타오르는 가지들이 밤을 붉게 밝히고, 바위를 감싼 불꽃은 날개처럼 솟구쳤다. 녹원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폈다. 어떤 사진 앞에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줄에 묶인 채로 화마의 먹이가 된 개들, 산 위로 녹아내린 짐승들의 잿더미. 지난 나흘간 몇 장의 사진을 보았더라? 수십 장, 어쩌면 수백 장에 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진도 녹원이 찾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녹원은 도시락통을 열면서 말했다. “주말에는 산에 다녀올까 해요.” 노아가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언제나 그랬듯, 탕비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읍내의 백반집에 갔을 터였다.                    어쩌다가 노아와 매일 점심을 먹게 되었더라.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노아는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탕비실에 찾아왔다. 언젠가, 센터의 다른 직원들이 노아에게 슬그머니 질문하는 순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었다. 노아씨는 박 주사가 안 무서워요? 노아가 물었다. “전에 일하던 곳 가시는 거예요?” 녹원이 답했다. “네,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네요. 그냥 한 번 직접 보고 올까 싶어요.” 노아가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그를 빤히 지켜보았다. 그날, 노아의 대답을 떠올리면 언제든 웃음이 나왔다. 질문을 받은 뒤, 노아는 양손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말했었다. 글쎄요. 녹원 주사님 요리를 엄청 잘하시는데… 맨날 나눠 주세요. 노아가 불쑥 말했다. “주사님,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주말에 가실 때요.” “산에요? 왜요?” “그냥… 마음이 쓰여서요.” 녹원이 웃었다. “아니, 누가 주말에 직장 상사를 만나요.” “아니, 그래두 그거랑 다른 게, 저희는 친하잖아요.” 노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젓가락을 툭 내려놓는 손짓까지, 그 모든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녹원은 빠르게 백기를 들었다. “아니, 가고 싶으면 같이 가요. 토요일 아침에 출발할 거예요.” 노아가 웃었다. 녹원 역시 웃어 버렸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희뿌연 유리창 너머로 검게 번진 산맥이 펼쳐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산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붉거나 노란빛으로 번득거렸지. 지지 않는 태양처럼 사흘 내내 빛났다. 녹원은 그것을 보면서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덜너덜해진 손끝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을 생각했냐면, 그러니까. 그것이 거기에 있을까? 그 산에서, 아직도 살고 있을까?            그해,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지리산에서 걸려온 전화는 사무소 곳곳을 돌아 우도근 과장의 손에 도착했다. 전화를 끊은 과장은 눈썹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곰이 왔다구 그러네요. 녹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곰이요? 직원 중 하나가 물었다. 곰이요. 우도근이 덧붙였다. 아마 또 그 곰이겠죠.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원은 몇 분간 말없이 기다렸다. 곰이라는 게 무엇인지, 진짜 동물을 뜻하는지, 혹은 일종의 암호인지. 누구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사무소 사람들 대부분이 녹원을 어려워했다. 그들은 녹원이 신입이라는 것을, 그가 대학을 갓 졸업했으며 이 사무소가 첫 직장이라는 사실을 잊은 양 굴었다.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녹원이 어느 집단에 녹아들기까지는 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대개 녹원을 불편해했다. 처음에는 그의 거대한 몸집에 압도당하고, 이후에는 그의 무표정이 난처하다고들 했다. 어쩔 수 없지. 녹원은 생각했다. 불편한 건 피차 마찬가지니까. 녹원이 손을 들자, 사무실의 눈길 모두가 그에게로 쏠렸다. 녹원은 모른 척 말했다. 과장님. 저는 곰이 뭔지 모르는데요. 아 맞네. 박 주임 들어오기 전에 생긴 일이구나. 잠깐 와 볼래요? 과장에게로 가려면 사무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야 했다. 통로 측 직원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자신의 의자를 당겼다. 녹원은 그들 사이를 느리게 지나갔다. 우도근 과장이 빈 의자를 꺼내어 툭툭 두드렸다. 녹원은 의자에 앉았다. 과장은 사무소 내에서 녹원을 꺼리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위 탓인지, 경력 덕인지, 혹은 한평생 산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우도근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로 온화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지위나 나이 상관없이 존댓말을 쓰고, 자잘한 실수는 웃으며 넘어갔다. 정말이지 괜찮은 상사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왜 사람이 이토록 불편할까. 아니, 사실은, 불편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우도근은 불편하고… 께름칙한 존재였다. 이 곰이 그 곰이에요. 과장이 컴퓨터를 가리켰다. 화면 중앙에서 어린 곰이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내보인 모습이었다. 과장이 말했다. 우리끼리는 도돌이라구 불러요. 녹원이 물었다. 도도리요? 우도근이 정정했다. 도돌이. 도돌이표 할 때 그 도돌이요. 그가 곰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 이 녀석이 말이에요. 매년 돌아오거든요. 아무리 내쫓아도 포기하질 않아요. 그래서 도돌이에요. 멈추지 않고 되돌아와서요.      노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차에 탔다. 어깨에 멘 가방 입구로 스테인리스 보온병이 비죽 나와 있었다. 그는 차가 출발했을 때부터 꾸벅거리며 졸다가, 고속도로에 진입할 무렵에는 푹 잠들었다. 녹원은 라디오 소리를 줄였다. 양쪽 창 너머로 산기슭이 형태를 드러냈다. 새카맣게 탄 자국이 군데군데 보였다. 녹원이 기사에서 찾아본 대로였다. 산은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기사들은 특정한 단어들을 되풀이했다. 재앙, 재난, 상실. 평소에도 산불이 자주 나는 지역이었으나, 이번 피해는 유난히 참혹했다. 처음에는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로부터 불씨가 솟아올랐다. 불씨는 때마침 불어온 강풍을 타고 날아올랐다. 마치 누군가 사주한 양, 화마는 적절한 환경 속에서 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현장의 직원들은 검은 재로 뒤덮인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를 했다. 마스크를 벗으면 까만 코피가 쏟아져요. 그들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매일 목이 아픕니다. 그들의 말은 녹원을 슬쩍 스치고 사라졌을 뿐이다. 녹원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는 곰을 생각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곰에 대한 질문만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괜찮을까? 살아 있을까? 산속에서, 이제는 폐허로 변한 그곳에서? 녹원은 흘끗 조수석을 보았다. 노아는 덜컹거리는 창에 이마를 댄 채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뒷좌석의 목 베개를 찾으려다가 관두었다. 괜한 배려를 해 준답시고 잠을 깨우는 건 아닐까. 상사와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가득 긴장하여 잠들지 못한 건 또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손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녹원은 한숨을 내쉬고서 속력을 올렸다. 여전히 이런 일들이 어려웠다. 어느 정도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조차 무엇을 해 주는 게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노아는 톨게이트를 지날 즈음에 깨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로 좌우를 살피고서 웅얼거렸다. “주사님. 커피 안 드셨죠. 드셔야 해요. 제가 직접 내렸는데. 맛있을 텐데.” 그는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따라 건네고서는, 다시금 까무룩 잠들었다. 녹원은 홀로 웃다가 커피를 마셨다. 노아의 말이 맞았다. 커피는 맛있었다. 알맞게 따뜻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한국의 마지막 야생 반달곰은 설악산에서 죽었다. 천구백팔십삼년, 녹원이 태어난 해였다. 곰은 살해당했다. 웅담을 노린 밀렵꾼의 총알이 곰의 척추를 뚫었다. 곰은 총알이 박힌 몸으로 마등령 계곡까지 달아났다. 바위들 사이에 웅크려서 며칠을 울어댔다.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는 울음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으엉, 으엉. 글자로 적힌 울음은 처절하기보다 우스꽝스러웠다. 으엉, 으엉. 짐승은 보름 가까이 앓다가 죽어 버렸다. 우도근은 말했다. 그 후로 이 산에는 곰이라고는 없었거든요. 그러나 사십여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녹원이 입사하기 삼 년쯤 전에, 곰 한 마리가 설악산에 나타났다. 아홉 살배기 암곰이었다. 백오십오 센티미터의 신장에 백 킬로그램, 날렵하다고 할 만한 덩치였다. 몇 해 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중 하나인 양 싶었다. 주말 등산회 사람들이 그를 처음 발견했다. 당시 암곰은 폭포를 어슬렁거리며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신고인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곰이 도토리를 먹는다니까요. 곰이 원래 도토리를 먹어요? 사무소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지리산에 방생한 곰들이 다른 국립공원으로 넘어간 일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설악산이라니. 이 정도의 거리를 이동한 야생동물은 한 번도 없었다. 곧 남부보전센터에서 인력을 파견했다. 설악산 국립공원 쪽에서도 직원들을 내보냈다. 모두의 목적은 최대한 빠르게 곰을 생포하여 지리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계장이던 우도근을 포함하여, 현장직 몇몇이 포획 조에 가담했다. 그들은 방패와 밧줄을 지고서 산을 올랐다. 암곰은 폭포에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후다닥 참나무에 올라가서 버텼다. 우도근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녹색 그물을 설치했다. 보전센터 직원이 마취총을 쐈다. 십여 분이 지나고, 정신을 잃은 곰이 그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기절한 곰은 꽁꽁 묶인 채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그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 달이 지났을 때 암곰이 새끼를 남기고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설악산에서 낳은 새끼인지, 설악산까지 데리고 온 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곰에게 어떤 발신기도 붙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새끼 곰은 폭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홀로 남은 새끼를 잡는 일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당시의 도돌이는 약 육십 센티미터 정도였다. 포획되는 순간에는 나무 뒤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더랬다. 촉촉한 코나 동그란 귀가 어찌나 귀엽던지, 현장에 나온 직원들 모두가 끙 소리를 냈더랬다. 붙잡힌 도돌이는 어미와 마찬가지로 헬리콥터를 타고 지리산으로 갔다. 현장에 간 직원들은 은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녀석, 돌아가서 엄마랑 다시 만났겠지? 이것 참, 이산가족 상봉이네…. 그들 중 누구도, 그 곰이 귀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새끼 곰이 무수한 위험을 무릅쓰며 산맥을 넘어오다니. 우도근이 손가락을 튀겼다. 그런데 진짜로, 이 녀석이 돌아온 거예요. 이 년 만이었다. 이번에는 대피소의 직원이 먼저 곰의 흔적을 발견했다. 대피소 부근의 물푸레나무에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남아 있노라고 했다. 족제비나 오소리의 발톱 같지는 않다.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깊은 자국이다. 꼭 곰이 남긴 흔적처럼 보인다고. 무인카메라를 추적한 결과, 그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다시금 보전센터의 직원들이 오고, 또 한 번 포획 조가 꾸려졌다. 우도근은 지난 포획에 참여한 경력을 인정받아 두 번째로 방패를 들었다. 곰은 나무 위 벌집을 습격하던 중에 붙잡혔다. 마취총에 맞아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보전센터 직원들이 직접 나무에 올라가 몸을 밧줄로 묶어야 했다. 그들은 곰의 왼쪽 귀에서 조그만 기계를 하나 발견했다. 배터리가 닳은 발신기였다. 수의사는 말했다. 배터리를 교체하기 전에 서식지를 탈출한 모양이네요. 곧 그들은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냈다. 수의사는 곰이 세 살이 조금 안 된 암컷이며, 또한 두 해 전 이 산에서 퇴출당한 바로 그 새끼 곰이라는 사실까지 밝혀 주었다.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얘가 그 곰이라고? 우리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그 아기곰 말이야? 수의사가 말했다. 뭐, 이제 아기라고 부르긴 뭐하죠. 그의 말이 맞았다. 철창에 갇힌 짐승은 일 미터하고도 오십팔 센티미터였다. 몸무게는 백사십오 킬로그램, 울부짖는 모양새는 가히 맹수라고 부를 만했다. 곰이 또다시 지리산으로 돌아간 후에도, 다들 찜찜한 느낌을 걷어내지 못했다. 과장이 말했다. 물론, 그 느낌이 맞았죠. 일 년 만에 지리산에서 전화가 왔어요. 위치 추적을 했는데, KF-75가 그곳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요. ‘돌아갔다.’ 그쪽에서도 돌아갔다고 표현하더군요. 설악산의 직원들은 혀를 찼다. 독한 곰이다. 지독한 놈이야. 쑥덕거렸다. 곰 방사 계획 같은 거 대체 누가 짠 거냐?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심지어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나뭇가지마다 흰 서리가 열매처럼 맺혀 있었다. 다른 반달곰들은 지리산 곳곳에 웅크려 동면을 취하고 있을 텐데. 단 한 마리의 곰만이 얼어붙은 산맥을 넘어 고향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직원들은 곰을 도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간 추적이 이루어졌다. 곧 곰이 설악산에서 동면을 취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번에는 사무소에서도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했다. 어느덧 세 번째로 이곳에 방문한 보전센터의 직원들과 함께 동면포획을 준비했다. 산속의 굴 어딘가에 잠든 곰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다. 녹원이 끼어들었다. 잠든 중에 끌어낸다고요? 네, 그래서 동면포획인 거죠. 무서운 방법이네요. 음, 사실은 그게 가장 평화로운 방법인데요. 곰의 입장에서는, 잠든 사이에 세상이 뒤바뀐 거잖아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요. 우도근이 턱을 괴고서 녹원을 바라보았다. 곰의 입장이라. 과장이 중얼거렸다. 곧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그 미소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우도근이 말했다. 박 주임은 곰이 불쌍한가 봐요. 나는 우리 직원들이 불쌍한데. 매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짐승 하나 때문에. 안 그래요? 녹원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우도근의 앉은키는 그보다 훨씬 작았다. 백육십 센티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키에 가느다란 팔다리. 그와 비슷한 외양의 남자들은 대체로 녹원을 불편하게 여겼다. 경계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은 녹원의 몸을, 그의 크기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 과장은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내보인 적 없었다. 외려 그는 어린아이를 대하듯 녹원을 대하곤 했다. 이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박녹원 주임님. 이번 포획 작전에 같이 가 볼래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곧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좋아요. 그럼 좋을 것 같습니다. 우도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좋다. 그럼 정해진 거지요? 이제 자리로 돌아가세요.      사무소는 녹원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정문 양쪽에서 가지를 맞대고 있었다. 진입로 안쪽으로 목조 건물이 엿보였다. 여기까지는 화마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녹원은 정문 건너편에 차를 세웠다. 막 깨어난 노아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녹원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노아씨. 제가 왜 여기 왔는지 설명을 먼저 드려야겠는데요.” “아, 네, 네.” “그러니까…. 여기에 곰이 한 마리 있었거든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시작점이었다. 녹원은 가장 건조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개체, 포획, 복원 프로젝트, 서식지, 정부 지침. 그런 단어들이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도돌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차 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노아는 찌푸린 얼굴로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내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마침내 고개를 돌린 노아가 활짝 웃었다. 녹원은 물속에서 나온 사람인 양 참던 숨을 토해냈다. 노아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사님. 진짜로 엄청난 사연이네요. 저라도 여기 왔을 거예요. 잘 오셨어요.” 녹원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양 뺨이 화끈거렸다. 곧 코끝까지 시큰거릴 듯했다. 녹원은 노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푸른 기를 머금은 하늘은 투명해 보였다. 녹원은 길을 건넜다. 사무소 정문 기둥에 기대고 서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사무소의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약 사십 분이 남아 있었다. 건너편에서 달칵, 소리가 트였다. 곧 우도근이 소리를 쳤다. - 아니, 뭐야. 박녹원 주임이 건 거예요? “네, 안녕하세요, 과장님. 제가 지금 사무소 앞에 와서요. 인사라도 드리려고 했어요.” 우도근이 정문으로 나오기까지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녹원은 금세 그를 알아보았다. 깡마른 몸집과 산양처럼 총총거리는 걸음걸이. 과장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그를 비껴간 듯 보였다. 머리가 더 벗어지지도, 주름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우도근은 어설픈 인사치레로 시간을 잡아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아니, 진짜로, 뭐 때문에 왔어요?” “도돌이 말이에요. 무사한가요?” “에? 도도리?” “도, 돌, 이. 아시잖아요. 되돌아오는 곰이요.” 우도근이 아아― 길게 소리를 냈다. 탄식 같은 소리였다. 녹원은 지금껏 내내 연습한 얼굴, 가능한 한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로 버티고 섰다. 과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박 주임, 그거, 곰 때문에 온 거예요? 그거 물어보러?” “네. 맞습니다.” “세상에… 박 주임 대단하네요. 아니지, 지금은 주임이 아니지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보통 주사라고들 불러요.” “그래요. 박녹원 주사님.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거기서 여기까지 왔어요. 한 시간은 걸릴 텐데. 굉장하네, 정말로 굉장하네요.” 녹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과장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우도근이 한숨을 내쉬면서 웃었다. 눈에 익은 표정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요새는 산불 뒤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재난안전과고 자원보전과고 할 거 없이 다들 난리거든요. 곰까지는 신경 쓸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도 몰라요. 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발신기는요? 센터 쪽에서 확인 들어가지 않았어요?” “발신기 그거.” 과장이 수염 자국조차 없는 턱을 어루만졌다. “어디 보자…, 그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 봐요. 지금 몇 시죠?” “점심시간 끝나려면 아직 삼십 분 남았어요.” 과장이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마침내 우도근 쪽에서 손을 들었다. “좋아요. 알아봐 줄게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데.” “감사합니다.” “사무소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괜찮습니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차 안에 있을게요.” “친구? 박 주임 친구요?” “네. 직장 동료 겸 친구요, 같이 왔어요.” 과장이 눈을 치켜떴다. 입은 헤 벌어졌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하리만치 환한 웃음이 그의 얼굴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녹원은 어찌할 바 모른 채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과장의 미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도근은 사뭇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요.” 녹원은 그의 뒷모습이 사무소 안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자신이 과장의 안부에 대해서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삼차 포획은 이른 새벽 중에 진행되었다, 직원들은 사무소 정문 앞에 모였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으로, 우도근의 이야기에 등장하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수의사는 녹원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젊었다. 그와 함께 온 보전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점잖은 인상으로, 말수가 적고 걸음이 빨랐다. 설악산에서도 꽤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녹원과 우도근을 포함한 공원사무소의 직원들 외에도, 곰이 머무는 구역 근처의 분소 직원들 역시 합류했다. 보전센터 직원들은 여섯 다리가 달린 은색 안테나를 들고 왔다. 그것으로 곰을 찾아냈다고 했다. 곰은 탐방로로부터 머지않은 계곡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도돌이가 홀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로 그 계곡이었다. 사람들은 장비지원조와 마취조, 추적조로 나뉘었다. 녹원은 장비지원조에 배치되었다. 곰을 붙잡아 데려오는 데 필요한 장비를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우도근은 추적조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우도근의 조가 선두에, 녹원의 조가 후미에 섰다. 행렬은 흔들다리를 건너고 금강문을 거쳐서 산길을 올랐다. 폭포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들은 곧 탐방로를 벗어나 숲 안쪽을 가로질렀다. 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에서 멈춰서 짐을 풀었다. 녹원은 가방을 내려놓고 장비를 하나씩 꺼냈다. 녹색 안전그물과 구조용 밧줄, 헬멧과 방패 등이 손에서 손을 타고 넘어갔다. 이제 마취조와 추적조가 공터 너머의 폭포로 가서, 곰을 데리고 올 것이라고 했다. 녹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풀 뒤에서 조끼를 걸치는 우도근이 보였다. 녹원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우도근이 인사를 건넬 듯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녹원은 그 몸짓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곰이 여기에서 살 수는 없나요? 예? 뭐라고요? 곰 말이에요. 세 번이나 돌아왔잖아요. 여기가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원하는 곳에 놓아주는 게 불가능한가 해서요. 침묵이 흘렀다. 과장이 천천히 헬멧을 썼다. 턱에 매는 끈을 고정한 뒤 녹원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웃음기조차 없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박녹원 주임님. 네, 우도근 과장님. 저건 맹수예요. 말이 천연기념물이지, 사실은 유해조수라고요. 그리고 여기는 국립공원이에요. 매일 사람들이 오가는 산이요. 이해하겠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올라오는 말을 삼키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저도 알아요. 그의 목소리가 나무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저도 안다고요. 과장님. 매일매일 사람들이 여기에 오잖아요. 자연이 좋다거나,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취미 생활이라면서 산에 오르내리죠. 그런데 제 말씀은요, 과장님, 그건 그 사람들 선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 곰의 경우는 다르다고요. 쟤는 이 산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계속 되돌아오는 거겠죠. 여기에서 살아야 하니까. 여기서 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녹원은 입을 다물었다. 턱이 떨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과장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거의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는 녹원이 건네준 가방 안에서 보호구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그는 팔꿈치와 무릎 위로 보호구를 주섬주섬 끼우며 말했다. 우리 박녹원 주임님은 말이야. 여기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네요. 녹원은 그를 쳐다보았다. 질문들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란 어디이며, 대체 무엇이 안 되는 거냐고,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론, 녹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도근은 낡은 지프를 타고 되돌아왔다. 도돌이가 사라진 지점까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미리 얘기해 놓았다고도 덧붙였다. 과장은 왜인지 들뜬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과장이 따라나서 준다면, 훨씬 간편히 산을 돌아다닐 수 있을 터였다. 노아와 녹원은 우도근의 지프 뒷좌석에 올라탔다. 과장이 몸을 돌려서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 반갑습니다. 박녹원씨 직장 동료라면서요.” “네.” 노아가 그와 악수하며 답했다. “네, 동료 겸 친구예요.” 우도근이 빙긋 웃더니, 다시 앞으로 돌아앉았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녹원은 우도근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박녹원씨라니. 생경한 호칭이었다. 우도근 과장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전, 저 산속에서. 우도근의 지프는 금세 산중도로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는 까맣게 탄 산맥이, 왼쪽으로는 잿빛 강이 이어졌다. 검은 산에서부터 흩날린 잿가루가 차창에 달라붙었다. 지프는 강의 굽이를 따라서 모퉁이를 돌았다. 국립공원의 시작점을 알리는 아치형 입구와 함께, 강변을 따라 선 갖가지 가게들이 나타났다. 잿빛 먼지에 휩싸인 편의점과 식당, 분사무소와 등산로로 향하는 흔들다리. 우도근은 다리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차창을 내리고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녹원과 노아는 창밖으로 목을 뺐다. 강 건너로 접근금지 테이프를 친 약수터가 보였다. 폭포 방향으로 입산하는 사람들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치는 구간이었다. 몇 해 전 녹원이 삼차 포획 행렬에 낀 채로 지나갔던 지점이기도 했다. 우도근이 약수터 위쪽을 가리켰다. “저쪽 산허리에서 발신기를 발견했어요. 아주 훼손되었다던데. 억지로 뜯어 버렸나 봐요.” “그 외 흔적은 못 찾았고요?” “네, 사체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과장이 룸미러로 녹원의 얼굴을 흘긋 보았다. 그가 시동을 끄면서 말했다. “산에 다녀오고 싶으면, 지금 다녀와요. 나는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까.” 녹원은 머뭇거렸다.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지금껏 우도근을 오해했던 것일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과장은 친절하고 온화한 남자였다. 녹원의 기억 속에서 보여 주던 적대적인 태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허탈한 웃음이나 경시하던 눈길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아군처럼 보였다. 녹원은 차에서 내렸다. 노아가 그를 뒤따라왔다.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약수터를 지났다. 숲은 고요했다. 산으로 향하는 계단의 난간은 새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바삭하게 타오른 나무들은 식물보다는 불꽃의 잔재처럼 보였다. 보이는 곳마다 회색 재가 휘날렸다. 새들이 지저귀지 않고 잎사귀도 흔들리지 않았다. 도돌이를 처음 만난 날과는 모든 게 달랐다.         추적조와 마취조는 숲 너머로 떠났다. 장비지원조는 공터에서 짐을 가지고 대기하기로 했다. 녹원은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숲속을 바라보았다.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 피나무, 소나무, 벚나무. 여름의 샛노란 볕뉘가 나뭇가지 사이를 환히 비췄다. 곧 낯선 소리가 그 풍경을 뒤흔들었다. 쿵. 높은 곳에서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바위에 기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잎사귀들이 흔들렸다. 산 전체가 몸을 털어내는 듯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득하게 번져 왔다. 얼마 후, 그들이 나무 그늘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행진이라도 하듯 한 줄로 선 채 숲을 가로질렀다. 수의사와 과장이 선두에 서 있었다. 그 뒤로 들것을 붙든 남자들이 내려왔다. 녹원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들것 안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짐승이 있었다. 포로처럼 눈과 입, 팔다리를 묶인 채. 녹원이 지고 온 밧줄이 곰의 몸을 엑스자로 붙잡고 있었다. 수의사의 목에 둘렀던 파란 천은 곰의 눈을 가리는 데 쓰였다. 벌어진 입 사이로 붉은 혀가 늘어져서 달랑거렸다. 녹원은 행진을 쫓는 아이처럼 곰을 따라서 걸었다. 필사적으로 들것을 쫓아가며 곰을 보았다. 그의 귀에 새로 부착된 발신기를, 어깨와 가슴을 가로지르는 흰 반달을, 마른 땅처럼 갈라진 발바닥을 보았다. 남자들은 공터 정중앙에 들것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보호구를 주섬주섬 벗었다. 녹원은 장비들을 챙기는 일도 잊고, 내내 곰만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 다가온 사람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한번 만져 봐요. 녹원은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다. 우도근 과장이었다. 그가 부드러운 얼굴로 곰을 가리켰다. 쓰다듬어 보라니까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머뭇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녹원은 곰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검은 털은 까슬까슬하고 서늘했다. 피부는 몹시 단단했다. 녹원과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털과 살, 그 안에서 흐르는 피가 손바닥 아래에서 두근거렸다. 녹원은 눈을 깜빡였다. 곰의 치욕과 자존심, 곰의 마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끊임없이 돌아온다는 뜻의 이름도 곱씹었다. 짐승이 꿈틀거린 순간에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나중에 과장과 수의사를 비롯한 몇 사람이 물어보았다. 왜 손을 떼지 않았어요? 왜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녹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느꼈던 소속감을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아늑하고 달콤한 마음은 처음이었다. 극복해 낼 수도 없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곰은 소리를 질렀다. 으엉, 소리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밧줄의 매듭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곰은 순식간에 들것에서 벗어났다. 그는 녹원이 보았던 사진처럼 양팔을 벌리고,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드러낸 채로 일어나 섰다. 도돌이는 잠시 휘청거리다가 녹원을 끌어안았다. 끌어안았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표현을 썼다. 끌어안았다. 곰이 그를 끌어안았다고. 녹원은 등 뒤의 바위로 쓰러졌다. 그 순간이 녹원의 목숨을 구했다. 곰의 무게는 녹원의 몸을 지나 바위 아래로까지 분산되었다. 만약 선 채로 힘겨루기를 했거나, 땅바닥에 곧바로 쓰러졌다면, 녹원의 뼈는 모조리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녹원은 그 접촉을 기억했다. 그날의 다른 어떤 때보다 더욱 선명히 기억했다. 늑골을 짓누르는 냄새와 촉감. 곰은 녹원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작았다. 그런데도 어찌나 무거운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녹원은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도돌이는 저를 끌어안지 않았어요. 걔는 저한테 기대어 있었죠. 수의사도 그의 말에 증언을 보태 주었다. 곰이 박녹원씨를 고목이나 바위, 혹은 어떤 기둥처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박녹원씨에게 매달린 거죠. 파란 천이 흘러내리며 초점을 잃은 눈이 드러났다. 입가에서 흰 거품이 끓었다. 남자들이 곰을 끌어냈다. 녹원은 바위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았다. 흐릿한 사람들이 소리쳤다. 괜찮아요? 숨 쉴 수 있어요? 녹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괜찮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렇지가 않았다. 호흡할 때마다 갈비뼈가 조각나듯 아팠다. 결국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곰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사에서 읽은 기묘한 울음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채우고 있었다. 정말로 으엉, 으엉, 하고 우는구나. 녹원은 생각했다. 정말로 울어버리듯이 우는구나. 바로 앞에서는,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녹원씨. 박녹원씨. 녹원은 고개를 돌렸다. 우도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는 몇 해는 더 늙어버린 양,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여기에서 일하면 안 돼요.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해. 과장은 몇 번이나 말했다. 박녹원씨. 산에서 내려가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요.              “날이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자고들 가요.” 우도근은 주장했다. 녹원과 노아가 연거푸 손사래를 쳤는데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그의 집은 산기슭 끝자락에 있었다. 녹원과 노아는 빨간 지프를 따라서 시멘트 언덕 위를 올라갔다. 새하얀 돌벽에 노란 지붕을 올린 집이 나타났다. 옅은 녹색 잔디를 깐 마당에는 흔들 그네와 스프링클러, 평상이 놓여 있었다. 집의 뒤뜰은 산사면과 바로 맞닿았다. 천만다행으로 이쪽 능선까지는 불길이 오지 않아서 피해를 면했노라고 했다. 녹원은 자신의 트럭에서 내려와 주위를 살폈다. 우도근의 집은 언덕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언덕 앞뒤로 보이는 것은 산과 강뿐이었다. 주위에 놓인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녹슨 가로등 하나가 전부였다. 우도근이 노란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란이. 나 왔어.” 녹원은 어깨를 움츠렸다. 우도근에게 부인이 있다는 사실은 들은 적 있었다. 직접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우도근이 부인을 부르는 광경을 보다니. 란이, 라고 부르다니. 그가 누군가를 저토록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곰을 부를 때만 제외하면. 저녁 시간은 한없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란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아름 꺼내 녹원의 품에 안겨 주었다. 별구경하다가 자세요. 란은 오래전부터 녹원을 알아온 양 친근한 어투로 말했다. 마당 평상이 별구경하기 딱 좋거든요. 맥주 곁들이면 그만 한 휴가도 없어요. 막상 부부는 평상 휴가에 동참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홉 시만 되어도 눈꺼풀이 감겨서, 먼저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도근은 평상에 담요를 깔아 주었다. 조카에게나 건넬 법한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재밌게 놀고 푹 자요. 알겠지요?” 마당에는 녹원과 노아만 남았다. 두 사람은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다리를 죽 편 채 맥주를 홀짝거렸다. 산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살갗을 서늘하게 적셨다. 부부의 말대로, 마당에서 보는 별은 몹시 선명했다. 허공에 멈춘 불씨처럼 반짝거렸다. 녹원은 언덕 너머에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두 갈래로 나뉜 물길이 다시 한 길로 합쳐지는 지점까지 살폈다. 강 뒤편의 산은 부드러운 어둠에 잠겨 있었다. 녹원이 불쑥 말했다. “천 킬로미터예요.” 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하셨어요?” “곰이 이동한 거리 말이에요. 한 번에 삼백사십사 킬로미터, 세 번 돌아오면 천백삼십이 킬로미터 정도 돼요. 서울에서 도쿄까지가 그 정도 거리래요.” 노아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했다. “지독한 곰이네요.” 녹원은 동의했다. 정말이지 지독한 곰이었다. 세 번째 귀환 이후, 이 독한 곰은 제법 유명해졌다. ‘되돌아오는 곰.’ 그런 유의 머리기사와 함께. 도돌이라는 이름 역시 앙증맞게 실렸다. 설악산 측은 이 사건을 일종의 기회로 삼았다. 설악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시작점을 ‘되돌아오는 곰’으로 삼자. 마침내 도돌이는 설악산으로 방사되었다. 몇 가지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서, 사무소 내부에도 곰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추적하는 절차가 투입되었다. 반응은 썩 괜찮았다. 이토록 강력한 의지를 가진 곰이 번번이 돌아오던 고향. 한 기자는 도돌이를 천구백팔십삼년에 죽은 곰의 환생인 양 묘사하기도 했다. 수십 년의 한이 이제야 풀렸노라고. 녹원이 말했다. “어릴 때 제 별명이 웅녀였거든요.” 노아가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웃어도 돼요?” 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가 웃는 사이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열세 살쯤 때 이미 키가 백칠십을 넘었어요. 그때 짝꿍이 되게 웃기던 애였거든요. 저를 맨날 웅녀라고 불렀는데, 그게 못내 좋았어요. 그전에는 한 번도 별명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녹원은 설악산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곰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마지막 야생 곰, 그가 태어나던 바로 그해 엉엉 울어버리다가 죽은 짐승. 녹원은 곰이 죽은 날짜도 찾아보았다. 곰은 칠월 말일, 녹원이 태어나기 바로 전날에 죽었다. 그 숫자 간의 관계를 깨달은 순간, 녹원의 머릿속으로 괴상한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누구에게도 이것에 대해 말한 적 없었다. 가뜩이나 자신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어떻게 반응할지 뻔했다. 녹원은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나야말로, 그 곰에게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번에 노아는 웃지 않았다. 녹원은 말을 이었다. 그 생각은 오래도록 그를 옭아맸다고. 누구나 이상한 믿음 하나 정도는 있잖아요, 그런 말로 뭉뚱그리기에는 지나치게 묵직한 믿음이었다. 자신이 그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존재라면, 왜 이토록 사람들이 어려운지 설명할 수 있을 듯했다. 사람에게 죽은 짐승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역시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바로 그런 경우는 아닐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에서 마음을 떼어낼 수 없었다. 꼭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래서요. 도돌이와 나 사이에도 무언가 이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녹원은 고개를 들었다. 노아는 끌어안은 무릎에 턱을 괸 채로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평상에 깐 담요를 펼쳐 노아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고개를 드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희고 선명한 달이었다. 두 갈래의 강 위로 두 개의 달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밤 동물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녹원은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양팔을 죽 펼친 순간, 그대로 멈춰 섰다. 그는 빳빳이 굳은 채로 귀를 기울였다. 눈앞으로는 밤의 어둠을 타고 흐르는 산의 능선만 보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등 뒤 어딘가에서, 아마도 뒤뜰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낮게 숨 쉬는 소리가 울렸다. 녹원은 그 숨소리를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귀에 익었다. 다시 한번 비닐이 흔들렸다. 얇은 막이 찢어졌다. 그것이 그르렁거렸다. 나는 알아.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어. 녹원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발뒤꿈치를 들고 돌아섰다. 주택은 엷은 가로등 불빛에 잠겨 있었다. 소리는 조금 더 뒤에서, 가로등 너머에서 들려왔다. 녹원은 천천히 걸었다. 가로등을 지나서 집의 뒤쪽으로 갔다. 뒤뜰에는 지붕을 씌운 분리수거함과 차고가 있었다. 차고의 비상등은 활짝 켜져 있었다. 안쪽의 빨간 지프가 선명히 보였다. 그 옆의 분리수거함을 뒤적거리는 물체 역시도 뚜렷하게 보였다. 녹원은 멈춰 서서 그 물체를 보았다. 검고 큼직한 뒷모습. 몇 해 전보다는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곰은 비닐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검은 발이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움켜쥐었다. 비닐들이 흔들리고 찢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녹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메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마음은 한 차례 솟구치더니, 도무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녹원은 집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곰의 움직임을 훑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니 부석거리는 털이라거나 바싹 야윈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얘.” 녹원이 말했다. “도돌아.” 곰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응답하듯이. 자신이 어떻게 불리는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녹원은 한 발짝 다가섰다. 다음 걸음은 좀더 가볍게 옮겼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계속 걸어갔을 터였다. 손은 녹원을 꽉 쥐고 뒤로 당겼다. 녹원은 뒤돌아보았다. 노아가 거기 있었다. 비상등의 빛에 새하얗게 질린 채, 녹원을 붙들고 속삭였다. “움직이면 안 돼요. 주사님, 움직이지 마세요.” 녹원도 무엇인가 말하려 했다. 괜찮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이미 한 번 이 곰을 만난 적 있다. 그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곰은 놀랍도록 명민한 동물이라 몇 해 동안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나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곰은 구부정하게 서서 멀뚱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흰자가 슬며시 드러난 눈은 사람의 것보다 둥글고 검었다. 그 눈동자에서는 어떤 생각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결, 그것들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 감정 또한 없었다. 곰은 그와 전혀 다른 구역에, 다른 세계에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했다니. 우스운 생각이었다. 그들 간에는 무엇도 교차하는 것이 없었다. 녹원은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녹원이 속삭였다. “노아씨. 뒤로 가요. 등 돌리지 말고, 뒷걸음질로요.” 노아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들은 기묘한 춤을 추듯, 일정한 리듬에 따라 뒷걸음질을 쳤다. 곰은 그들을 빤히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의 트럭 옆으로 다가갔을 무렵, 녹원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냈다. 그것을 차의 앞문에 대고 몇 차례 내리쳤다. 열쇠와 문이 맞부딪치며, 금속이 깨지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곰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팍에 모으고 있던 앞발을 바닥에 내딛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산속으로, 그리하여 어둠 너머로 녹아내렸다.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곰이 뜯어둔 비닐들을 바라보면서. 창문 안쪽에서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도근 아니면 란이 깨어난 모양이었다. 녹원은 잽싸게 몸을 돌렸다. 노아는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녹원은 그의 팔을 붙들었다. “노아 씨. 여기에서 다른 거 본 거로 해요. 아무거나 좋아요. 고양이나 멧돼지, 살쾡이. 뭐 그런 게 내려왔다고 그래요. 곰을 봤다고는 하지 마요.” “왜요? 주사님. 방금 보셨잖아요. 곰이에요. 맹수라고요. 제대로 말씀드려야 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눈 한 쌍, 그 눈길이 불에 덴 자국처럼 머릿속에 새겨졌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몇 해 동안 그를 옭아매던 감정들이 이제야 제대로 된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곰은 사람과 다르다. 곰은 사람이 아니다. 곰은 사람보다 나은 존재다. 앞뜰에서는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녹원이 낮게 속삭였다. “노아씨. 나는요. 늘 곰에게 산을 주고 싶었어요. 아주 통째로 줘 버리고 싶어요.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다고요. 그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하겠어요?” 노아가 자신의 팔을 붙든 손을 붙잡아 내렸다. 그는 오래전에 과장이 짓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일그러진 얼굴, 여전히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주사님.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우리가 산을 줄 수 있나요? 우린 애초에 산을 가진 적도 없잖아요. 다들 그걸 알아요.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이 저 곰을 찾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찾아서 보호하고, 같이 살려고요. 다들 그걸 위해서 애쓰는 거잖아요.” 노아의 등 뒤로 우도근이 보였다. 그가 집의 벽을 따라 돌아와 가로등 아래 섰다. 그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며 물었다. “뭐 깨지는 소리가 나던데, 무슨 일 있어요?” 노아가 녹원을 올려다보았다. 녹원도 노아를 내려다보았다. 노아씨. 박녹원 주사가 안 무서워? 직원들의 질문이 녹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쩔 수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노아씨, 먼저 들어가세요. 저도 곧 갈게요.” 노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몸을 돌렸다. 우도근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노아를 흘끗 보고서, 녹원에게 다가왔다. 녹원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차 안에서 무엇인가 찾다가 열쇠를 떨어트렸고, 차 문에 부딪힌 열쇠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고. “죄송해요, 주무시는 걸 깨웠네요.” 우도근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녹원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도근도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과장의 눈길이 뜯어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가 닿는 순간, 녹원이 입을 열었다. “과장님. 여기 족제비 같은 게 있던데요.” 우도근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족제비요?” 녹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열쇠를 찾다가 뒤뜰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다가가니 족제비인지 오소리인지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중이었다고. 꽤 굶주려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장은 분리수거함으로 다가가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봉투를 이리저리 비쳐 보더니 혀를 찼다. “아이고, 이걸 하루 늦게 내놨더니…험하게도 물어뜯어 놨네.” “안에 들여놓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녹원은 너덜너덜한 봉지를 들어 우도근에게 건넸다. 옛 과장이 그것을 받으며 빙그레 웃었다. “시골은 시골이지요?” 박녹원도 마주 웃었다. 지금은 이 정도의 대응이야,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녹원은 방으로 돌아왔다. 벽을 향해 누웠다. 그의 옆에 누운 노아가 뒤척거렸다. 그는 녹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반대로 돌아눕고,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의 망설임이 애틋한 동시에 힘겹게 다가왔다. 녹원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노아가 움직임을 멈췄다. 녹원은 벽에 드리워진 그늘을 물끄러미 지긋이 보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등 뒤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울렸다. 노아가 결국 피로에 항복한 모양이었다. 녹원은 몸을 돌려 정면으로 누웠다. 유리창으로 스민 달빛이 천장을 부드럽게 밝혔다. 녹원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불타는 산을 생각했다. 잿빛 산, 폐허처럼 모두 불타버린 산, 잿더미로 뒤덮여 일견 늪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이다. 곰이 그 위를 달리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그는 산맥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빠르다. 성체로 자라난 곰들은 사십에서 육십 킬로미터의 속력을 낸다.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며 끈기의 화신이다. 바삐 위치를 바꾸는 앞발과 뒷발 너머로 회색 구름이 퍼져 나갈 것이다. 곰은 바위를 뛰어넘고, 나무를 오르고, 강을 건넌다. 어떤 방해도 없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누구도 그를 쏘지 않는다. 잠든 채로 끌려 나오지도 않는다. 그는 어디든지, 원하는 만큼 간다. 산은 모두 곰의 것이다. 그는 자유롭다. 녹원은 가슴에 양손을 올렸다. 마치 포로처럼.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로 번져 나갔다.
  • 저렴하고 시공편한 합성수지 배선 사용 금지

    저렴하고 시공편한 합성수지 배선 사용 금지

    올해부터 건축물 천장 등에 화재에 취약한 합성수지 전기 배선관 사용이 금지된다.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천장 등 보이지 않는 곳의 화재 안전을 강화한 내용이 담긴 개정된 전기설비규정(KEC)이 유예기간을 거쳐 1일부터 시행됐다고 밝혔다. 개정 규정에 따르면 건축물 천장 등 은폐된 장소의 전기 배선에 주로 사용하던 폴리염화비닐(PVC) 전선관이나 폴리에틸렌(PE) 전선관 등 ‘합성수지’ 전선관 대신 금속제 배관 등을 사용해야 한다. 사망 9명, 부상 6명 등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2018년 8월 인천 화재사고 등은 천장의 전기배선에서 발화한 사고로 합성수지관은 가격은 저렴하나 화재 발생 시 확산하기 쉽고 다량의 유독성 가스가 발생하는 문제가 심각했다. 또 건물 내 배선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콤바인덕트관(CD관)도 직접 콘크리트에 매립하거나 건물의 개방된 장소에 사용하는 경우 외에는 불연성 마감재를 사용하거나 불연성 전용관에 넣어서 설치토록 했다. CD관은 합성수지로 만든 주름진 관으로, 굴곡진 장소 등에 사용이 편리하고 가격도 저렴해 옥내배선용으로 널리 사용됐으나 화재에 취약하다. 산업부 조사결과 PVC관이나 CD관은 화재 발생 시 유해가스 배출량이 금속제 전선관 대비 각각 31배와 26배 많았다. 화재 확산 속도도 각각 25배와 22배 높았다. 산업부는 강화된 안전기준 조치로 주택·상가 등에서의 화재사고 예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나아가 생활공간, 전기산업 현장에 대한 각종 전기재해(화재·감전 등)를 줄이기 위한 안전기준을 지속적으로 보완·정비할 예정이다.
  • 덴마크와 스웨덴 2030년 국내선 항공편 화석연료 0으로

    덴마크와 스웨덴 2030년 국내선 항공편 화석연료 0으로

     새해부터 프랑스에서 1.5㎏ 미만의 채소와 과일을 비닐로 둘러씌워 판매하면 안된다. 오이와 레몬, 오렌지 등 30종류의 채소와 과일이 대상이다. 다만 1.5㎏ 이상을 포장할 때나 조각으로 잘라 판매하거나 가공해 판매하는 과일은 예외다.  아울러 플라스틱 빨대, 수저와 식기, 음료스틱, 스티로폼 도시락, 풍선지지대, 필름코팅 접시류 및 산화분해성 플라스틱 제품 등의 제공이 금지됐다. 지난해 마지막날 영국 BBC가 보도한 데 따르면 이번 조치는 2040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 제품 사용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목적으로 지난 2020년 2월 제정된 ‘낭비 방지 및 순환경제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은 2025년까지 플라스틱 제품의 재활용률을 100%까지 끌어올리는 목표도 갖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까지 나서 “진짜 혁명”이라며 2040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이용을 없애겠다는 프랑스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일과 채소의 37%가 포장된 형태로 판매되는데 이번 조치로 연간 10억개 이상의 플라스틱 포장 쓰레기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내년 2023년에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도 전면 금지될 예정이다. 또한 세탁 시 배출되는 미세플라스틱 배출을 막기 위해 2025년부터 생산되는 모든 세탁기에 미세플라스틱 필터를 장착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이 시행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공공장소에 식수 공급대를 만들도록 강제해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기로 했고, 간행물도 플라스틱 포장 없이 운송하도록 했으며, 패스트푸드 점도 더 이상 플라스틱 장난감을 공짜로 증정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업계 지도자들은 이런 조치들이 너무 발빠르게 확대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충분한 계도 기간이 주어지지 않고 곧바로 시행해 대안을 검증할 여유조차 없어 문제란 지적이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기후변화협약(COP)26 회의에서 맹세한 데 따라 여러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조치를 천명했다. 지난달 초 스페인은 과일과 채소의 플라스틱 용기 판매 금지 조치를 내년에 도입하겠다고 공표했는데 대안을 모색할 말미를 주겠다는 취지였다.  마크롱 행정부는 또 자동차 광고에 걷기나 사이클 등 녹색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포함시키도록 하는 등 여러 다른 새로운 환경 규제를 공표했다.  덴마크 정부는 2030년까지 국내선 항공편의 화석연료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목표를 공표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연두 연설을 통해 “녹색 에너지로 날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녀 역시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론이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덴마크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990년 수준의 70%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프레데릭센 총리는 “살려고 여행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비행한다. 세상의 다른 나라들은 너무 느리다. 이 때 덴마크가 선두로 나서 바를 훨씬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녹색 국내선 항공을 달성하는 일은 힘들겠지만 연구진과 기업들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 비행기 제조업체인 에어버스는 수소로 가동하는 비행기를 2035년쯤 취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덴마크는 어렵잖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2030년 목표 시점까지 갖춰지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스웨덴도 앞서 똑같이 2030년쯤 국내선 항공편의 화석연료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공표했다. 아울러 그로부터 15년 뒤에는 국제선 역시 마찬가지로 만들 계획이다. 또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항공기에는 공항 이용료를 더 물리겠다고 덧붙였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총량이 ‘0’이 되도록 하겠다고 지난해 10월 약속하기도 했다.  반면 프랑스는 2시간 반 미만이 걸리는 거리라면 국내선 항공편 운항을 금지하고 열차를 타게 하는 방식을 권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파리와 낭트, 리옹, 보르도를 여행할 때 열차를 이용하게 된다.  독일은 탈원자력발전소 목표 달성을 금년 말에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 유럽은 미래 세대에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당장 필요한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에 반해 어느 대선 후보가 원전을 감축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무턱대고 반기를 들고 있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 어떤 비전과 약속을 할지 더 폭넓고 미래 지향적인 공론화가 이뤄졌으면 한다.
  • [취중생]코로나 덕에 생긴 서울역 텐트촌...노숙인에 온기를 더하다

    [취중생]코로나 덕에 생긴 서울역 텐트촌...노숙인에 온기를 더하다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텐트 37개노숙인 한파와 방역 위한 임시방편“시설 등에 비하면 텐트가 나을 것”‘노숙인’ 입장에서 고려한 지원 필요[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달 29일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텐트에 성인 남성 2명이 패딩 지퍼를 턱 끝까지 올린 채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었습니다. 가로 폭 150~160㎝에 불과한 텐트 안에서 그들이 영하의 추위를 견디려면 서로의 체온을 나눌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한 명은 얼굴선이 진하고 체격이 제법 있어 서울역 노숙인들 사이에서는 ‘곰’으로 불립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눈이 크고 홀쭉한 노숙인(이현덕·56)은 ‘부엉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추위 탓인지 이들의 얼굴 곳곳이 빨갛게 부르텄습니다. 텐트 위쪽 환기 구멍에 천이불과 비닐을 덮어 넣었지만 칼바람을 온전히 막기에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임시 지붕처럼 걸쳐 놓은 종이박스는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힘없이 떨어져 나가곤 했습니다. ‘곰’으로 불리는 유창호(61)씨는 “텐트 하나당 한 명씩 쓰는데 5일 전에 신청한 텐트가 아직 소식이 없어 둘이 같이 쓴다”면서 “무릎 구부리고 엇갈려 자긴 하지만 비좁고 새벽이 되면 덜덜 떨면서 깬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역에 노숙인 텐트가 등장한 건 ‘코로나19 덕분’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생활치료센터 병동이 부족해 재택치료를 해야만 했습니다. 집이 없는 노숙인이 재택치료를 할 수 없는 노릇. 노숙인을 돕는 교회와 시민단체가 임시방편으로 텐트 3개와 침낭, 깔개를 지원했습니다. 이후 텐트는 방한 대비용으로 쓰였습니다. 텐트 후원이 늘어 지금은 서울역 광장 근처에만 37개로 늘었습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1번 출구와 2번 출구 사이 광장 공터에는 주황색 텐트 20개 가지런히 설치돼 있습니다. 노숙인 전담 경찰관인 서울역파출소 박아론 경위는 “시민들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끔 텐트를 배치했다”면서 “텐트를 설치한 후 서로 술을 자제하는 등 조심하는 분위기”고 설명했습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코로나 상황에서는 텐트가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와 함께 찬바람을 피하는 임시방편으로 바람막이 정도는 된다”면서도 “완전히 사적 지원이라 오히려 노숙인을 위한 공공 지원 정책이 부재하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다”고 짚었습니다.물론 노숙인을 위한 주거 및 자활 지원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본인 의사만 있다면 텐트가 아니더라도 고시원이나 쪽방이나 일시보호시설 등에 일정 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그러나 노숙인들과 활동가들은 “오히려 텐트가 나을 수도 있다”며 쓴 웃음을 보였습니다. 세면대나 화장실 등을 공용으로 쓰고 밀집해 주거하는 고시원과 쪽방은 오히려 코로나 감염이 걱정되는 환경이고, 단체생활 위주인 시설은 규율이 엄격해 적응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안 대표는 “코로나 이후 주거지원을 신청하는 노숙인들이 확 줄었다”면서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생기는 순간, 고시원이나 쪽방 전체가 폐쇄되기 때문에 불안감이 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존 노숙인 지원 정책은 ‘비노숙인’ 시선에서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집단화해서 바라보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노숙인들이 서울역을 떠나지 못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속감’입니다. 서울역 광장 근처에는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 겁니다. 실제 이날 오후 유씨와 이씨 텐트를 다시 찾았을 때 한 노숙인이 “이 시간에 두 사람은 주로 외출한다”고 귀띔했습니다. 노숙인 지원 및 자립 운동에 매진한 정창덕 뉴산타운동본부 대표는 “국내에 노숙인 한 명의 자활 및 치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담해서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없고 시설이나 쉼터를 기준으로 관리 체계가 구축됐다”면서 “여러 시설을 옮겨다니는 분들도 많은데 이럴 경우 제대로 관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위기는 가장 취약한 곳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합니다. 재택치료할 곳이 없어 임시로 설치한 텐트가 노숙인들의 방한과 코로나 방역을 위한 현재의 최선책이라는 점이 씁쓸할 뿐입니다. 임인년 새해, 노숙인들이 텐트 하나로 한파를 버텨야 하는 현실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노숙인의 시선에서 이들의 삶의 궤적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 대표는 “노숙인마다 모두 사연이 다르듯 현재 필요한 것이 정신 치료인지, 자활 혹은 자립 프로그램인지가 모두 다르다”면서 “1대 1 상담, 장기적인 치료와 자활 지원 등 생애 프로그램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이 진정한 지원과 관리”라고 강조했습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집은 가짜라고 여기던 자연전도사 박상설 선생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집은 가짜라고 여기던 자연전도사 박상설 선생

    집을 짓고 사는 일은 가짜라고 평생을 여겼던 박상설(朴相卨) 씨가 푸른 지구별을 떠나 138억년 전 떠나온 우주로 돌아갔다. 향년 94. 캠핑에서 늘 답을 찾고 우주를 품는 마음으로 살아온 캠핑 선구자인 박씨가 지난 23일 타계, 27일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는 사실을 2021년의 마지막 날에야 알게 됐다. 기자는 그를 만날 기회를 잡지 못했다. 3~4년 전인가부터 이상기 아시아N 대표 선배를 통해 그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언젠가 함께 캠핑을 하면서 한없이 긴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여기고만 있었다.그 연배에도 늘 여행을 다니고 야영을 한다고 해서 기회가 많을 줄 알았다. 지난 10월 24일 강원도 인제 백담사를 다녀왔다고 아시아N에 손수 기사를 올렸길래 정정한 것으로만 생각했다.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한달 남짓 투병하다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니 더욱 안타깝다. 고인은 90세이던 2018년 9월 미리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가치관, 인생관이 함축돼 있다. 1. 사망 즉시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의학 연구용으로 시체를 기증한다. 2. 장례의식은 일체 하지 않는다. 3. 모든 사람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 4. 조의, 금품 등 일체를 받지 않는다. 5. 의과대학에서 해부실습 후 의대의 관례에 따라 1년 후에 유골을 화장 처리하여 분말로 산포한다. 이때 가족이나 지인이 참석하지 않는다. 6. 무덤, 유골함, 수목장 등의 흔적을 일체 남기지 않는다. 7. 제사와 위령제 등을 하지 않는다. 8. ‘죽은 자 박상설’을 기리려면 가을, 들국화 언저리에 억새풀 나부끼는 산길을 걸으며 ‘그렇게도 산을 좋아했던 산사람 깐돌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9. ‘망자? 박상설’이 생전에 치열하게 몸을 굴려 쓴 글 모음과 행적을 대표할 등산화, 배낭, 텐트, 호미, 영정사진 각 1점만을 그가 흙과 뒹굴던 샘골농원에 보존한다. 10. 시신 기증 등록증(등록번호: 10-344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과 02-2228-1663)굳이 속세의 직업을 간추리면 칼럼니스트, 자연과 삶의 전문기자, 기계기술사 등이 명함에 적혀 있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법무사를 부친으로 태어나 유복했던 유년을 보내며 책과 텐트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전쟁이 터져 육군 공병으로 입대, 총 대신 길을 냈다. 군인 생활 중 가장 좋았던 일을 텐트 생활로 꼽았다. 1963년 육군 공병 대위로 제대한 뒤 설계회사에서 일하며 학원 강사로도 일했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 부지를 외상으로 구입해 15평짜리 주택 10채를 지어 큰 수입이 생기자 경기 가평의 임야 30만평을 매입해 캠핑과 인문학 강의를 함께 했다. 37세 때였다. ‘캠프나비’란 이름의 농장은 지금은 강원도 홍천에 있다. 2000평이나 되는 농장에는 들국화도 피어나고 워크숍과 인문학 세미나가 열리는데 번듯한 건물은 없다. 비닐하우스가 있을 뿐이다. 아이와 어른이 세대를 뛰어넘는 대화를 나누고 도시형 캠핑을 거부하고 농장 곳곳에 텐트를 친다. 품는다. 세상을 뜨기 얼마 전까지도 산을 찾아 한뎃잠을 청했다. 자녀들에게 손가락질이 돌아갈 것을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홀로 살아간 지 40년이 다 됐다. 자녀들과 손주들과도 이메일로만 만났다. 나무를 20만 그루정도 심었다. 환갑 무렵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의술이 아니라 자연과 벗한 것이 그의 목숨을 되살렸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했고, 그러자 움직이지 않던 몸의 근력과 생기가 살아났다. 82세에 집을 떠나 길을 걷다 가난한 시골 기차역장 집에서 폐렴으로 누운 지 열흘 만에 저세상으로 떠난 레흐 톨스토이를 닮고자 했다. 아들딸들도 걷다가 죽고자 하는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해 늘 여정을 떠날 때마다 시신기증등록증과 돈 20만원정도를 목에 걸고 다녔다. 어느날 딸이 “아빠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 물었다며 “길을 걷다가 들국화가 눈에 띄면 ‘아버지가 참 좋아하셨는데…’ 그렇게 스쳐가듯 가끔씩 생각해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캠핑은 인생에서 우러나와야만 제대로 발현되는 정서 운동입니다. 일평생 하고도 화장터에 갈 때까지 해야 하는 것, 그것이 캠핑”이라고 답했던 그다. 자유기고가 최은자 씨는 긴 애도문을 남겼다.“그에게 94세라는 지구 나이가 있었지만, 내가 만났던 그는, 나이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때론 200세 허연 수염 기른 미래를 보는 신선 같았고, 때론 땡땡이치고 학교 뒷담을 넘어 도망치는 사춘기 꼴통 같았고, 때론 나날이 오염 되는 지구환경에 잠 못 이루는 생태학자였고, 때로는 18세기 유럽 파티를 즐기는 바람둥이 백작 같았다. 자유와 고독을 사랑하는 시인이고, 매일 설렘으로 무장하는 백전노장이며, 청승과 낡은 풍습에 얽매여 사는 인생은, 도와줄 필요도 없다고 잘라버리는, 냉정한 칼이었다. 그는 설악산 정도는, 백번도 넘게 올랐다는 알피니스트였고, 세계여행 중에는 거리의 노숙자들과 나란히 잠을 청하고, 그들과 음식을 나누는 별종이었고,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는 채 집을 나설 때, 무한한 설렘으로 온몸이 들뜬다 하였다. 종점을 보지 않고 무조건 올라탄 버스로 이리저리 헤매는 것이 가장 가성비 좋은 여행이라고, 깔깔깔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은 개구쟁이 자체였다. 몇년 전부터 그는 주먹만한 글씨 외에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망가졌지만, 스마트폰에 수를 놓듯이 문자를 새겨 넣어, 매일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포노 사피언스’였다. 시간과 자유의 서핑보드를 마음껏 즐기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다가도, 여린 들꽃들의 씨를 받아 긴 겨울동안 말려 봄을 기다려 뿌려 놓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며 흘깃 본 미지의 여인을 찾아가듯, 그 장소를 몇 번이나 가본다고 했다. 그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 미치겠다던 그는, 세상의 24시를 살지 않고 그가 제작한 우주시계를 보며 산 사람이었다. 재미나게 아주 재미나게 살아라! 그리고 시시한 이야기는 하지마! 당당하게! 멋지게! 미치게 멋지게 살아! 그리고 씩 웃던 사람. 하얀 눈 오는 날 세상 떠나고 싶다던 마지막 바램까지도, 완벽하게 연출한 깐돌이 어린왕자!!!” <본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아시아N 기사와 이투데이의 월간지 ‘브라보’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와우! 과학] 딸기 등 농산물 2~3일 더 신선하게…국제연구진 ‘스마트 팩’ 개발

    [와우! 과학] 딸기 등 농산물 2~3일 더 신선하게…국제연구진 ‘스마트 팩’ 개발

    농산물을 며칠 더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새로운 식품 포장재를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미 과학매체 사이언스 데일리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난양공대와 미 하버드대 공동연구진은 극소량의 항균물질을 서서히 방출해 식품의 부패를 늦추는 식품 포장재를 개발했다.실험결과 ‘스마트 팩’으로 불리는 새 포장재는 기존 포장재보다 농산물의 보관 기간을 2~3일 더 늘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 포장재는 높은 습도나 유해 세균이 나오는 특정 효소를 만나면 섬유 부분에서 항균물질을 방출한다. 실제로 스마트 팩 안팎에서 대장균이나 리스테리아균 등의 각종 세균은 죽어 없어졌다. 스마트 팩으로 포장한 딸기는 기존 보존 기한인 4일보다 3일 정도 긴 7일 동안 신선함을 유지했다. 특히 스마트 팩은 비닐처럼 비교적 투명해 내용물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방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주성분이 옥수수 단백질로 만들어져 미생물에 의해 쉽게 분해되는 특성도 갖고 있다. 추가 성분 역시 식물성 녹말인 셀룰로스와 아세트산, 구연산 등으로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제조 비용은 기존 비닐 정도지만 앞으로 더 저렴해질 가능성이 크다. 연구 주저자이자 난양공대 생명공학자인 메리 찬파크 박사는 “이번 발명은 식품업계 포장재에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비닐을 대체할 수 있다”면서 “과일과 채소, 육류 그리고 생선 등 다양한 농산물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성과는 미국 화학학회(ACS) 회보인 ‘응용 재료와 계면’(Applied Materials and Interfaces) 최신호에 실렸다.
  • 내년부터 지방흡입술로 뽑아낸 폐지방으로 의약품·화장품 만든다

    내년부터 지방흡입술로 뽑아낸 폐지방으로 의약품·화장품 만든다

    지방흡입술을 이용해 빼낸 폐지방이 현재는 버려지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이를 활용한 의약품이나 화장품 생산이 가능해진다. 또 슈퍼마켓, 중소형 슈퍼, 편의점 등에서는 1회용 봉투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한국형 순환경제 이행계획’을 마련했다고 30일 밝혔다. 현재는 태반 외 의료폐기물은 재활용이 원천 금지돼 있기 때문에 지방흡입술을 이용해 추출한 폐지방은 물론 폐치아도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간 폐치아 600만개, 폐지방 약 100t이 모두 소각폐기 처리한다. 인체 폐지방에는 줄기세포, 콜라겐 등 의료나 미용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물질들이 포함돼 활용도가 높고 폐치아도 임플란트 시술을 할 때 소실된 잇몸뼈를 재건하는 뼈이식재 제작에 사용 가능하다. 이번 계획에 따라 폐지방, 폐치아 등 의료폐기물들의 사용이 가능해졌다. 또 엔진, 변속기 등 자동차부품, 프린터 토너카트리지, 복사기, 공기청정기 등 87개 품목에만 재제조가 허용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원칙적으로 모든 제품이 재제조가 가능하다. 현재 플라스틱은 석유를 원료로 해 만들거나 바이오플라스틱도 석유계를 혼합시키지만 정부는 2050년까지 순수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내년 1월부터 석유계 플라스틱과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동일해 기존 플라스틱과 같이 일반적 재활용이 가능한 바이오플라스틱은 분리배출 표시가 허용된다. 정부는 친환경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샴푸, 린스 등 4종의 화장품을 다회용기에 원하는 만큼 소분 구매할 수 있는 매장을 늘릴 계획이다. 현재는 소분·리필 화장품 구매가 가능한 매장은 10곳 정도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다회용기 사용 배달문화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한편 지금은 유상구매를 통해 비닐봉투를 사용할 수 있지만 내년에는 슈퍼마켓, 중소형 슈퍼, 편의점 등 제과점, 종합소매점에서 전면 사용이 금지되고 2025년까지는 33㎡ 초과하는 도소매업, 음식점, 주점업에서도 사용이 금지된다. 2030년에는 비닐봉투 사용이 모든 업종에서 사용이 금지된다. 정부 관계자는 “이행계획에 따라 생산, 유통, 소비 전 과정에서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순환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법적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K-순환경제 이행계획을 통해 폐기물 소각, 매립을 최소화하고 폐자원을 완전 순환이용하도록 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저감시키고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 58만원에서 7000만원까지…얼굴 없이 사랑 키운 22년

    58만원에서 7000만원까지…얼굴 없이 사랑 키운 22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도 전북 전주시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000년 4월 58만 4000원이 든 돼지 저금통을 전달한 이후 22년째다. 29일 오전 10시 5분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전화벨이 울렸다. 50대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근처 성산교회 오르막길에 주차된 트럭에 상자가 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굴 없는 천사임을 직감한 직원들이 달려가 보니 상자가 있었다. 천사는 2019년 도난사건이 발생하자 전달 장소를 주민센터 공터에서 인근 골목길로 바꿨다. 상자에는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은 편지와 함께 현금 7009만 4960원(5만원권 14다발과 동전 9만 4960원)이 들어 있었다. 이로써 얼굴 없는 천사가 전달한 성금은 모두 8억 872만 8110원에 이른다. 심규언 노송동장은 “주민들은 선행을 본받고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천사(1004)를 상징하는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해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9년 12월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천사비를 세웠다. 경기 구리시에서는 한 노인이 폐지를 주워 팔아 모은 1000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면서 기부했다. 시에 따르면 7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지난 27일 오전 수택2동 행정복지센터를 방 문해 민원 창구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직원은 봉지 안에 든 현금 뭉치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5만원권 200장이었다. 이 노인은 “1년간 폐지를 주워 모은 돈”이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말했다. 직원이 인적사항을 묻자 노인은 “김씨”라고만 말한 뒤 떠났다. 센터는 현금을 수택2동 저소득층 100가구에 나눠 줄 계획이다.
  • “1년간 폐지 주워 모은 돈”…1천만원 기부하고 간 ‘김 노인’

    “1년간 폐지 주워 모은 돈”…1천만원 기부하고 간 ‘김 노인’

    경기 구리시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주워 팔아 모은 돈 1000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익명으로 기부했다. 29일 구리시에 따르면 7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지난 27일 오전 구리시 수택2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민원 창구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창구 직원은 봉지 안에 든 현금 뭉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현금 뭉치는 5만원권 200장이었다. 이 노인은 “1년간 폐지를 주워 팔아 모은 돈”이라며 “수택2동의 어려운 이웃을 써 달라”고 말했다. 창구 직원이 인적 사항을 묻자 노인은 “김씨”라고만 짧게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행정복지센터 측은 “이 노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서 익명을 원한 기부자의 마음을 존중해 신원을 더 이상 파악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행정복지센터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이 현금을 수택2동 저소득층 100가구에 나눠줄 계획이다. 구리시 관계자는 “폐지를 주우며 힘들게 모은 소중하고 값진 돈”이라며 “기부자의 마음을 어려운 이웃에게 그대로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 지구촌 ‘신신 커플’ 1만 4000쌍 ♡ 100세부터 가정방문 여행

    지구촌 ‘신신 커플’ 1만 4000쌍 ♡ 100세부터 가정방문 여행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몽고정길 121. 주소는 몰라도 경남 마산에서 ‘예식장’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특별한 예식장이 있다. 1967년 낡은 목조 건물을 고쳐 문을 연 신신예식장이다. 3층짜리 건물을 1층은 살구색, 2층은 연두색, 3층은 분홍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했지만 건물 외벽 곳곳 균열을 때운 흔적이 54년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요즘 기준으로는 너무나도 촌스러운 공간이지만 주말이면 이곳 ‘주인장’의 축복을 받기 위한 연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50년이 넘는 무료 예식 봉사로 세상에 따뜻함을 더하고 있는 ‘신신예식장 주인장’ 백낙삼(90)씨에게 그의 특별한 인생관을 들어 봤다. ●세계서 찾는 없는 이들의 결혼식장 “참 이상해요. 여기는 마산에서도 돝섬 바다와 가까운 작은 결혼식장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예약하시는 분들을 보면 서울에서 참 많이 오시고 저 멀리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에서도 ‘꼭 신신에서 하고 싶다’며 찾아오세요. 연령대도 다양한데 얼마 전에는 80대 부부가 찾아와서 제가 주례를 서기도 했죠.” 부인 최필순(80)씨와 단둘이 결혼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백씨는 요즘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예약 전화에 목이 쉴 정도다. 백씨의 미담과 그의 인생이 담긴 ‘신신’은 마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올해 그의 인생이 연이어 언론에 조명되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LG그룹이 주는 의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특히 방송인 유재석이 진행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뒤로는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백씨는 이미 이웃 사랑 실천 등을 이유로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포장을 받았고, 2019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도 받았다. “시골에 살면서 청와대로 두 번이나 초대를 받았죠. 88년에도 청와대 초대로 서울에 갔지만 경찰에서 제 신원 조회가 안 된다는 이유로 청와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따로 국민포장만 받았어요. 3년 전에는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통령한테 직접 훈장을 받는 영광도 누렸죠.” 백씨는 노태우 정부 당시 국민포장 수상자로 선정돼 서울을 찾았지만 정작 청와대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의 신원정보가 청와대에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마을 어른들이 백씨를 ‘효자’라며 국민포장 후보로 추천한 게 화근이었다. 백씨는 “처음 내가 ‘효자’ 부문으로 국민포장을 받게 됐다는 도청의 연락을 받고 ‘나는 불효자라서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일이 꼬이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정부에서는 국민 추천을 통해 ‘51년간 무료 결혼식으로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봉사한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한국전쟁 직후 찾아온 고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고마운 삶을 살고 있다”는 그의 인생은 역설적이게도 누구보다 힘들고 절망적인 시기에 희망의 싹을 틔웠다. 1953년 전쟁통에도 교육자의 꿈을 안고 고향 울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지만, 전쟁의 생채기는 20대 청년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백씨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운수업을 하며 아들의 학비를 댔지만 큰 사고로 회사가 도산하면서 백씨마저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기고 부랴부랴 부산으로 와야 했다. “가족들이 원래 살던 집으로 갔더니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고, 어디 산동네에 달셋방 하나 겨우 구해 아버지와 형님 둘이 살고 있더군요. 하루는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도 없고 제 머리맡에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너는 네 살길을 찾아라’라는 쪽지만 남겨 놓고 야반도주를 한 거죠. 그렇게 가족들 모두 뿔뿔이 흩어졌어요.”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해 학업은 마쳐야겠다고 결심한 백씨는 이웃들에게 차비를 빌려 서울로 돌아왔지만, 모두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그의 자취방은 도둑이 들어 베개 하나 남겨 놓지 않고 싹 쓸어간 뒤였다. 텅 빈 방에 홀로 누워 뜬 눈으로 하루를 보낸 백씨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며 주린 배를 부여잡고 무작정 밥과 일자리를 찾아 자취방이 있던 흑석동에서 서울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폭격에 무너져 임시로 복원해 강바람에도 흔들리던 한강대교를 건너던 때였다. 시커먼 강물을 바라보니 억눌러 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난간을 붙잡고 서럽게 엉엉 울고 있는데 어디선가 ‘젊은이, 힘들고 어려워도 꼭 살아남아’라는 말이 들려왔어요. 얼굴도 모르는 행인이 저에게 해준 그 말이 흔들리던 저를 붙잡아 준 큰 힘이 됐죠. 눈물을 닦으며 다시 걸어 서울역 근처 자동차 서비스 공장에 들어가 어떤 일이든 시켜만 달라고 애원했고, 사무원으로 채용되면서 최소한의 숙식은 해결했죠.” 이듬해 봄 한강을 찾은 백씨는 또래의 연인들이 보트를 타며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면서 먹고살 길부터 떠올렸다. 그에게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꽃다운 시절이지만 당장 눈앞의 생존이 더 절박했다. 공장에서 도움을 주던 어르신에게 사정을 설명해 카메라 한 대를 구한 백씨는 낮에는 한강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사진을 찍어 주고, 밤에는 공장에서 택시 주차 등을 하며 억척스럽게 일했다. 매일 200원, 한 달에 5000원 저축을 목표로 발이 퉁퉁 붓도록 일감을 찾아다녔고, 비가 오는 날이면 비닐우산을 팔거나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팔기도 했다. 그가 거리의 사진사로 활동하던 곳이 한강의 ‘신신보트장’이었다. “신신(新新)이라는 어감이 좋았다”는 백씨는 훗날 마산에 예식장을 열면서 청춘의 일터였던 보트장의 이름을 가져왔다.●은퇴 후 ‘신신의 부부들’ 만나는 게 꿈 백씨에게 예식업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저처럼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가정을 꾸리는 사람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향 어른들의 중매로 지금의 부인을 만난 백씨는 처가인 울산의 작은 초가집 앞에서 약식으로 혼례를 치렀고, 그 뒤로 한동안 부인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부부가 함께 지낼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모은 돈으로 지금의 신신예식장 자리에 있던 7평짜리 목조 건물을 사 사진관을 열었고, 사진관을 예식장으로 키우며 부부가 함께 살 보금자리까지 마련했다. 처음 예식장 문을 연 당시엔 사진값 6000원만 받고 식장을 빌려줬지만 지금은 식장 운영·관리비와 봉사자들에게 줄 최소한의 인건비 등의 명목으로 70만원가량을 ‘유동적’으로 받는다. ‘완전 무료 예식장’을 표방하는 만큼 이마저도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겐 ‘스드메 패키지’를 무료로 제공한다. 백씨가 주례와 사진사를 담당하고, 미용 기술을 익힌 봉사자들이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한다. 예복과 드레스도 무료로 빌려준다. 신신에서 올린 1만 4000여회의 결혼식 기록은 백씨에겐 세상 무엇보다 뿌듯한 자랑거리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신신에서 결혼했지만 지금은 여유가 생겨 연락드린다’는 전화와 편지도 자주 오고 ‘신신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30~40년 지난 예식비와 후원금을 보내 주는 분들도 많이 늘고 있다”면서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나라와 사회에서 상까지 주시니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겠나”라며 자신의 선행을 더욱 낮췄다. 앞으로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100세까지 예식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며칠 뒤면 우리 나이로 92세가 됩니다. 100세까지 신신예식장 주인으로 살며 봉사하는 게 제 꿈인데 이제 8년 정도 남았네요. 100세가 되고 저도 은퇴라는 걸 하게 되면 못난 남편 만나 평생 고생만 한 아내 손 꼭 잡고 전국을 여행하며 신신에서 저희와 아들과 딸의 연을 맺은 부부들을 만나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남은 인생의 소망입니다.”
  • 내년 전기차 22만·수소차 3만대 늘린다… “주유소보다 편하게 충전기 16만기 확보”

    30년 된 석탄발전 폐지·태양광 확대종이컵 금지 등 폐기물 제로 추진도 정부가 2022년을 ‘2050 탄소중립’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을 위한 원년으로 삼고 사회 전 부문에서 탄소중립 전환을 추진한다. 특히 무공해 전기차, 수소차의 보급률을 높이기 위한 지원과 인프라 구축을 획기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환경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교육부 등 5개 부처는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내년도 합동업무계획 ‘한국판 뉴딜, 탄소중립’을 발표했다. 정부는 내년에 무공해차 ‘50만대 시대’를 열기 위해 전기차와 수소차 보급목표를 높이고 재정지원을 하는 한편 주유소보다 편하게 충전할 수 있도록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11월 기준 국내 전기차 수는 22만 9000대인데 이를 내년에 44만 6000대까지 늘리고 수소차도 1만 9000대에서 5만 4000대까지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말까지 전기충전기는 누적 16만기, 수소충전소는 누적 310기로 확대하는 한편 무선충전, 배터리 교환 같은 신기술 실증도 추진해 무공해차 편의성을 늘릴 계획이다. 정부는 ‘폐기물 제로’를 목표로 한 순환경제 실현을 위해 과대포장 기준을 마련하고 비닐봉투·종이컵 사용 금지,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등 생산·유통·소비 모든 단계에서 폐기물을 줄인다. 폐플라스틱의 종류별 수거를 통해 물질재활용, 열분해, 소각시설 열 회수를 확대하게 된다. 또 정부는 설계 수명이 30년 이상 된 석탄발전은 원칙적으로 폐지하면서 석탄발전을 줄이고 암모니아 수소 발전처럼 탄소를 이용하지도 배출하지도 않는 무탄소 발전시스템 도입도 추진한다. 동시에 태양광, 풍력에너지 관련 규정들을 정비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고 여기서 만들어진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전력망·분산에너지 시스템도 구축한다. 댐 지역에서는 수상태양광 보급을 확대하고 가축분뇨,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오는 폐수(음폐수) 등 유기성 폐자원을 바이오가스로 만드는 시스템도 확충할 방침이다. 한편 과기부도 탄소중립을 위한 수소기술이 포함된 ‘국가필수 10대 전략기술’을 구체화하고 연구개발에 내년 3조 3000억원을 투입하면서 매년 꾸준히 지원 규모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 베네수엘라에 등장한 스타벅스, 알고 보니 짝퉁

    베네수엘라에 등장한 스타벅스, 알고 보니 짝퉁

    심각한 경제적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스타벅스가 등장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교묘하게 위장한 짝퉁 스타벅스였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동부의 상업중심지 라스메르세데스에 짝퉁 스타벅스가 개장한 건 12월 초. 짝퉁 스타벅스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소셜 미디어에는 스타벅스 로고가 뚜렷하게 인쇄된 일회용 컵에 커피를 마시는 사진이 홍수를 이뤘다. 컵에는 주문자의 이름까지 적혀 있어 진위를 의심하기 힘들었다. 덕분에 짝퉁 스타벅스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매장에서 음료를 마시던 대학생 에마누엘 그란헤이오(20)는 "새로운 걸 맛보고 싶어 친구와 함께 스타벅스에 왔다"고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짝퉁 스타벅스는 라스메르세데스에 있는 대형 마트 '예트!'의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스타벅스 로고 간판이 설치돼 있고 'We Proudly Serve Starbucks®' 사업 슬로건까지 당당하게 내걸고 있지만 정작 '스타벅스'라는 매장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로고와 슬로건만 슬쩍 도용한 짝퉁이지만 소비자는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음료를 담아 건네는 일회용 컵에도 스타벅스 로고가 선명하게 인쇄돼 있고, 종업원들도 유사한 유니폼을 입고 있어 의심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짝퉁이지만 가격도 의심을 사지 않을 정도로 비싸다. 짝퉁 매장에선 3~7달러에 커피 등 각종 음료를 팔고 있다. 최저임금이 월 2달러를 약간 웃도는 수준인 베네수엘라에선 절대 싼 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치밀하게 위장한 짝퉁 매장의 정체는 스타벅스와 네슬레가 공식 성명을 내면서 드러났다. 스타벅스와 네슬레는 "카라카스에 문을 연 매장은 우리와 관계가 없으며, 이 매장에서 판매되는 음료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고 확인했다. 정체가 드러났으면 서둘러 문을 닫아야 할 일이지만 짝퉁 매장은 변명에 급급했다. 매장 매니저는 "커피머신과 커피를 제공한 업체로부터 가이드라인을 받고, 법적으로 가능한 일을 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코카콜라의 비법을 전수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며 스타벅스와 동일한 음료를 팔았으니 로고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프랜차이즈협회까지 비판에 가세하는 등 여론이 불리해지자 결국 짝퉁 매장은 정체를 가리기로(?) 했다.  27일(현지시간) 소셜 미디어에는 짝퉁 스타벅스가 로고 간판을 검은 비닐로 감싸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올랐다. 사진에는 "베네수엘라 스타벅스가 사망했다"는 설명이 달렸다.
  • 관악 “매주 목요일, 투명페트병·비닐만 따로 배출해 주세요”

    관악 “매주 목요일, 투명페트병·비닐만 따로 배출해 주세요”

    서울 관악구는 단독주택·상가 지역을 대상으로 투명페트병·폐비닐 분리배출 요일제(포스터)를 시행한다고 26일 밝혔다. 아파트 등과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앞으로 매주 목요일에는 투명페트병과 비닐만 각각 분리해 배출해야 하며, 그 외 재활용품은 목요일을 제외한 다른 요일에 배출해야 한다. 구는 주민의 혼란 방지를 위해 구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구정소식지, 전광판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한 홍보와 함께 계도기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분리배출 방법은 간단하다. 투명페트병은 내용물을 비우고, 라벨을 제거한 뒤 찌그러트린 후 뚜껑을 닫아 배출해야 하고, 비닐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부피를 줄여 (반)투명봉투에 담아 배출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이물질이 묻은 비닐은 재활용이 아닌 일반 쓰레기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해야 하고, 모든 재활용품은 검은 봉투가 아닌 속이 보이는 (반)투명봉투에 담아 배출해야 한다. 구는 내년 상반기에 공공 선별장 내 투명페트병 전용 선별 시설을 만들어 분리 배출된 투명페트병이 고품질 재활용품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재활용품 전용 봉투 사업, 재활용품 스마트수거함 운영, 투명페트병 유가 보상제 시행 등 재활용 특수 사업도 추진한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투명페트병·폐비닐 분리배출 요일제가 수입에 의존하던 고품질 투명페트병을 확보하고, 타 재활용품과 비닐이 혼합되는 것을 막아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며 “제도가 빨리 정착될 수 있도록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서울포토] 추위에도 ‘선별진료소 긴 줄’

    [서울포토] 추위에도 ‘선별진료소 긴 줄’

    올겨울 들어 전국 대부분 지역이 가장 낮은 기온을 보인 26일 서울 도심은 휴일임에도 매서운 추위 탓에 한산했다.영하 날씨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선별진료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종로구 보건소 선별진료소 앞에는 20여명의 시민들이 간격을 띄운 채 몸을 웅크리고 검사를 기다렸다. 보건소에서 대기하는 이들을 위해 찬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비닐 천막을 설치했지만 서로 간격을 띄우고 줄을 선 탓에 일부는 천막 밖에서 검사를 기다려야 했다.선별진료소 바깥에서 시민들 간 거리두기와 절차를 안내하는 직원들도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에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 [취중생]한파에 내몰린 주거빈곤 아동...공무원도 모르는 복잡한 정책

    [취중생]한파에 내몰린 주거빈곤 아동...공무원도 모르는 복잡한 정책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1. 초등학교 1학년 A(8)군은 인근 공원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한밤 중에 용변이 급할 때는 신문지에 해결하고 있다. 지난 겨울 한파로 배수관이 동파된 뒤 변기가 역류해 화장실 수리가 필요하지만 집주인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수리를 미루고 있다. 가스비 부담으로 난방을 떼지 못해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견딘다. #2. 미취학 아동 B(5)군은 건물 사이 빈 공간에 산다. 벽돌로 가벽을 세운 무허가 주택으로 집안에 창문이 없다. 환기가 되지 않으니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다. 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열재로 외풍을 막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 주거급여 대상자인데도 임대인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도 못 받고 있다. 이 두 사례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올해 발굴해 지원한 아동주거빈곤가구 중 일부다. 이처럼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사는 아이들이 추위에 내몰리면서 고통받고 있다. 아이들의 주거권 뿐 아니라 생존권, 발달권, 학습권도 침해받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정부 정책도 현장 중심의 맞춤형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는 가구에 비해 가족관계 만족도가 더 많이 떨어지고 우울감도 심하다는 연구 결과(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송아영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최근 발표됐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 연계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A군처럼 주택법상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에 사는 아동·청소년은 전체 18만 3000가구로 나온다. B군처럼 고시원·판잣집·비닐하우스·컨테이너·움막 등 비주택에 사는 1만 4000가구,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이 30%가 넘는 ‘주거비 부담 과다 가구’ 41만 6000가구를 합하면 전체 540만 아동·청소년 가구 중 약 59만 4000가구(약 11%·세 집단 중복 가구 제외)가 주거취약계층에 속한다. 이 연구에서는 주거취약계층인 아동·청소년 가구 94.3%는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한 정부의 지원 정책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25.8%만이 정책의 수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거급여, 공공임대주택 등 정부의 주거빈곤계층 지원책이 동시에 시행되다보니 대상자들도 어떤 정책의 수혜를 받는지 알기 어렵다. 복지담당 공무원조차 모든 주거 지원책에 대해 상세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적은 복지 자원으로 중복 수혜를 막는데 치중하다보니 정책의 간명함이 사라진 것이다. 아동 양육에 들어가는 추가 지출을 고려하면 아동주거빈곤가구는 부모가 열심히 일을 해도 주거비를 충당하기가 빠듯하다. 그럼에도 부모가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돼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1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려나 사실상 입주가 어려워진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 방향이 하루 하루 열심히 일해 밥벌이를 하는 대다수 주거취약계층의 근로 의욕을 꺾고 있는 셈이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10월 아동 주거권 보장을 위해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등 대책을 내놓았다. 내년까지 비주택 가구를 대상으로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1만 3000호를 우선 공급하겠다고 했다. 연 2000호 공급 규모를 4000~5000호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목표인데 60만 아동주거빈곤가구에는 못 미치는 규모다. 임세희 교수는 25일 통화에서 “아동주거빈곤가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아동을 기르는 평범한 가정에서 싸고 질좋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5% 미만인 경우에 지급된다. 임 교수는 여기에 아동·청소년을 위한 주거급여를 신설해 지급하고, 아동이 있는 가구 중 중위소득 100% 이하이면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에는 공공임대주택 우선입주권을 부여하자고 설명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측도 “최저주거기준에 따라 단순히 주거 면적이나 방의 개수만으로 지원을 결정하기보다는 실제로 주거환경이 어떤지에 따라 세심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 한화건설, ‘2021 한화건설 혁신기술 공모전’ 시상식 개최

    한화건설, ‘2021 한화건설 혁신기술 공모전’ 시상식 개최

    한화건설(대표이사 최광호)은 지난 23일 우수한 경쟁력을 지닌 중소 협력사와 동반성장 및 기술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2021 한화건설 혁신기술 공모전’ 시상식을 개최했다고 24일 밝혔다.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진행된 시상식은 윤용상 한화건설 건축사업본부장과 기술공모전 수상자 등 최소한의 인원이 참석해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한화건설은 지난 10월 15일부터 11월 26일까지 한화건설 홈페이지를 통해 제안서를 공모했으며 다수의 국내 중소기업, 스타트업, 대학(원), 연구기관 등에서 총 178건의 기술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제안된 기술들을 투자가치성, 창의성, 효율(효과)성, 확대가능성의 4가지 항목으로 평가해 지난 21일 기술발표회를 가진 뒤 최종 7개 수상작을 뽑았다. 대상으로 선정된 유석토건(주)의 ‘락 드릴링 공법’은 지속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공사현장 소음 및 진동 문제를 개선하는 암반 천공 공법이다. 이 기술은 암반 굴착 시 활용 되는 기존 공법 대비 소음, 진동, 분진 문제를 효과적으로 개선했고 운영 장비 효율성도 뛰어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금상은 (주)창소프트아이앤아이가 제안한 ‘빌더허브(BuilderHub) 공종별 상세설계 자동화 BIM기술’, 은상은 (주)플러스데크의 ‘플러스 비닐거푸집’, 동상은 (주)참슬테크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AI기반 주차장 융합 플랫폼’이 선정됐다. 우수상은 피에이치탑다운(주), (주)GD컨설턴트, (주)부일건화가 선정돼 각 사에 상패 및 상금이 수여됐다. 한화건설은 수상한 기술을 포함해 접수된 모든 기술에 대해 추가 지원 혜택을 검토한다. 기술 아이디어 검증에 필요한 건설현장 및 테스트베드를 지원하거나 공동 개발 지원 등 연구개발 협력, 협력사 등록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한화건설 홈페이지에 구축된 신기술, 신공법 발굴 및 지원 플랫폼인 ‘기술제안센터’를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등 협력사와의 상생협력을 지속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날 시상식에서 윤용상 한화건설 건축사업본부장은 “한화건설 혁신기술 공모전에 우수한 기술들을 제안해줘서 감사드리고, 상호 윈윈(Win-Win)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의 기술 지원을 통해 상생협력 및 ESG경영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