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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강한파에 전북서 1명 숨지고 교통사고 500건

    한반도를 덮친 최강 한파와 폭설로 전북에서 1명이 숨지고 500여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12일 전북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18분쯤 고창군 부안면 한 마을 앞 도로에 A(92)씨가 쓰러져 있던 것을 한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당시 A씨 시신은 이미 한파에 얼어붙은 상태였다. 경찰은 이틀 전 병원에서 퇴원한 A씨가 전날 밤 집을 나섰다가 동사한 것으로 보고 사인을 조사 중이다. A씨를 포함해 올겨울 들어 전북에서 발생한 한랭 질환자는 모두 13명이다. 질환 별로는 저체온증이 12명으로 가장 많았고, 동상 1명이었다. 눈길 교통사고도 잇따랐다.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신고된 교통사고는 500여건에 이른다. 계량기 동파는 59건이다. 이밖에도 임실에서는 염소를 기르는 축사와 비닐하우스가 주저앉았고 장수에서는 퇴비시설이 무너져 1500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영화 ‘다운사이징’ 개봉...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영화 ‘다운사이징’ 개봉...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엉뚱하고도 조금은 무서운 영화 ‘다운사이징’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11일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 ‘다운사이징’이 이날 국내에 정식 개봉했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제목 그대로 ‘downsizing’, 인간의 몸이 작아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상상에서 시작된 독특한 설정 안에 정치, 사회, 문화 등 현재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적절히 풍자하고 있다. 영화는 자칫 유쾌한 코미디 영화로 비쳐지지만, 인구 과잉에 따른 각종 기후 문제, 환경오염, 주택난 등 심오한 이야기를 다룬다.영화 ‘다운사이징’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인간을 작게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담겼다. 영화상 다운사이징 된 세상에서는 1억 원이 120억 원의 가치를 가질 뿐 아니라, 12.7cm의 키로 다운사이징 된 소인은 손톱만 한 크기의 햄버거를 먹고도 쉽게 배부름을 느낀다. 36명이 4년간 배출한 폐기물이 비닐봉지 한 개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쓰레기 배출량은 확 줄어들고, 몸집이 작으니 작은 평수의 집도 대 호화 주택이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이 영화에선 현실이 된다. 영화에서 주인공 폴(맷 데이먼 분)은 평생 같은 집에 살며 매일 똑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때운다. 아내는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지만, 대출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폴은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길 열망한다. 그러던 중 다운사이징을 선택한 친구를 우연히 만나며 그도 시술을 받기로 한다. 하지만 시술 직전 가족의 곁을 떠날 수 없다며 도망간 아내와 결국 이혼을 맞게 되고, 달라진 삶 속에 그는 더딘 적응을 시작해 간다.영화는 장난스러운 상상에서 비롯됐지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오래된 명제를 다루며 진지하게 흘러간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선택한 다운사이징이 과연 행복을 불러다 줄 수 있을까. 영화 ‘다운사이징’은 앞서 베니스 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런던 영화제, 부산 국제영화제 등에서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독창적이면서 유쾌한, 그리고 꽤 진지한 폴의 인생과 상상 속 세상 이야기는 영화 ‘다운사이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1일 개봉.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전북 폭설, 강추위에 교통사고 200여건

    전북지역에 사흘 연속 눈이 쏟아지고 강추위까지 덮쳐 사고가 속출했다. 11일 전북도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도내 전역에 폭설과 한파가 몰아닥쳤다. 사흘 동안 내린 눈은 임실이 28㎝, 고창 23㎝, 정읍 22㎝, 진안 19㎝, 장수 18㎝ 등 평균 14.14㎝이다. 군산, 정읍, 김제, 고창, 부안 등 5개 시군에는 한때 대설경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폭설과 함께 강추위도 몰려왔다. 11일 오전 6시 기온이 장수 영하 17.7도, 진안 영하 16도, 임실 영하 14.5도, 고창 영하 12도를 기록했다. 곳곳이 얼어붙으면서 눈길 교통사고가 잇따랐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220여건의 교통사고가 접수됐다. 또 장수에서 축산분뇨 저장창고 1동(197㎡)이 파손됐다. 비닐하우스 구조로 된 이 창고는 전날부터 천정에 쌓인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전날에도 임실군 관촌면 한 염소 사육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출동한 소방당국이 눈을 걷어내고 임시 보수를 마쳤다. 임실군 신평면의 한 돼지우리(200㎡)도 폭설에 힘없이 내려앉았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낙상사고도 잇따랐다. 전날 오전 10시께 전북 무주군 설천면에 거주하는 이모(84)씨가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이씨는 대퇴부가 골절되고 발목과 허리 통증을 호소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눈 쌓인 전주 기린봉(306m) 정상에서 하산하던 김모(61·여)씨도 발목을 접질려 소방당국이 구조했다. 지난 이틀 동안 관내에서 발생한 낙상사고는 모두 35건으로 집계됐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야호~ 무료 썰매장… ‘씽씽’ 노원

    서울 노원구는 13일 중계근린공원 등에서 무료 얼음썰매장을 개장한다고 10일 밝혔다. 구는 겨울을 맞아 중계근린공원과 상계근린공원, 당고개근린공원에 얼음썰매장을 조성했다. 공원 유휴공간 바닥에 방수비닐을 깔고 0.5m 높이의 모래마대로 물막이벽을 설치한 후 자연결빙해 얼음썰매장을 만든 것이다 썰매장은 오는 13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약 한 달간 운영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매시 10분 휴식)까지 평일, 주말 언제나 이용 가능하다. 단 운영기간과 시간은 날씨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특히 썰매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2인 이상의 안전요원이 상주한다. 구급약 비치, 응급환자 발생 시 이송 등의 의료지원도 병행한다. 얼음썰매장은 2014년 첫 개장 이후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매년 1일 평균 300여명이 찾고 있다. 구는 중계근린공원에 팽이치기, 제기차기, 투호 등을 할 수 있는 ‘전통놀이 체험장’도 별도 마련했다. 김성환 구청장은 “지역 내 가까운 공원에서 부담 없이 겨울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얼음썰매장을 개장했다”면서 “겨울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 전통 겨울놀이를 체험하며 멋진 추억을 만들어 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정류장 ‘온기텐트’… 훈훈한 서초

    정류장 ‘온기텐트’… 훈훈한 서초

    서울 서초구는 지역 내 버스정류장 등에 마련한 이색 온기텐트인 ‘서리풀 이글루’가 20여일 만에 16만여명의 주민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0일 밝혔다.서리풀 이글루라고 이름 지은 것은 서초의 지명 유래인 서리풀과 에스키모의 보금자리인 이글루에서 착안한 것으로 ‘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구는 지난해 12월 20일 시범운영을 시작해 버스정류장 30곳, 횡단보도 앞 보도 2곳 등 총 32곳에 서리풀 이글루를 설치했으며 이달 중순까지 총 52곳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가로 1.6m, 세로 3.5m, 높이 2.8m의 사각형 주택 모양으로 성인 12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으며, 텐트 안은 바깥보다 온도가 2~4도가량 높다. 구는 방한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비닐 커튼형 출입문 대신 미닫이문을 설치했다. 벽면은 투명 비닐로 제작해 버스 운전기사가 기다리는 주민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기둥은 강풍에도 흔들림이 없도록 철골로 세우고 철제 나사로 지면에 고정해 안전성을 높였다. 조립식이어서 재활용이 가능하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올여름 폭염을 막아준 ‘서리풀 원두막’처럼 ‘서리풀 이글루’는 주민을 추위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주민생활밀착형 행정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미세먼지 불법 배출 7720건 적발

    황 함유 기준을 넘는 연료를 쓰고 날림먼지 억제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등 미세먼지를 다량 배출해 온 사업장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9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6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 산림청과 함께 미세먼지 다량 배출 현장을 특별 점검한 결과 총 7720건의 불법 행위를 적발했다. 이 중 188건은 고발 조치했고 과태료 3억 4000만원이 부과됐다. 점검은 액체연료(고황유) 사용 사업장 1268곳과 건설공사장 등 날림먼지 발생 사업장 7168곳, 불법소각이 우려되는 농어촌 지역 및 인근 야산 등에서 이뤄졌는데 사업장 580곳과 불법 소각현장 7140건이 각각 적발됐다. 환경부는 고황유 불법연료 사용이나 공사가 적은 계절적 특성상 날림먼지 사업장 적발이 상반기보다 줄었으나, 농촌 지역에서 생활폐기물이나 비닐 등 농업 잔재물 불법소각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고황유 등 액체연료를 쓰는 대기배출사업장에서는 황 함유 기준 초과 연료 사용 7건, 배출시설 설치신고 미이행 10건 등 총 43건의 불법 행위가 적발됐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가난 포르노 (최고나)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가난 포르노 (최고나)

    무대 쪽방촌 느낌의 골방. 원근감을 주기 위해 사선으로 놓인 방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관객석에서 앞쪽 방은 들어찰 곳 없이 빽빽한 쓰레기(보기에 따라서 생활용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가 들어차 있으며 몸 하나 간신히 뉘일 정도로 좁은 공간이 쌓아 놓은 물건들을 중심으로 둥그렇다. 그 옆방은 그에 비해 제법 집의 형태를 갖추었다. 티브이도 있고 버너도 있고 조그만 냉장고와 작은 침대도 있다. 앞쪽 방 위쪽으로 CCTV가 연결되어 있다. 그 화면은 뒷방 티브이를 통해 볼 수 있다.남자, 휴대폰을 귀에 대고 옆집을 살피는 듯 창밖을 힐끔 본다. 남 (통화 중) 모르긴 해도 강남에 빌딩 두어 채는 가지고 있을 거라니까. 구라 아니야. 몇 달간 이 몸이 뭐빠지게 고생해서 알아낸 거지. 원래 있는 사람들이 지 꺼 꽉 쥐고 안 쓰잖아. 그 할매 골골거리는 꼴이 길어봐야 두 달이야, 두 달. 두 달 후면 여기 청산하고 우리 가족 넷이서 알콩달콩…. 만삭의 여, 양손 가득 짐을 가지고 들어선다. 손이 모자라 휴대폰은 어깨로 귀에 댄 채다. 여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남 얘기 다 끝났잖아. 나도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거든? 그냥 우리 지금은(여자의 배 내려다 보며) 알콩이랑 달콩이만 생각하자. 여 알콩하고 달콩한 그 기간이 두 달 남았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구? 남 그럼! 당연하지! 여 (짐 내려놓고) 당연은 무슨! 지금 상황만 봐도 그래. 너랑 나랑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어라 살펴봐도 삼시세끼 꼬박 챙겨 드셔, 새벽기도 빠짐없이 참석하셔, 아침마다 정정하게 일 나가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너랑 알콩달콩인데? 남 너 오빠, 못 믿어? 여 응. (사이) 그러다 천수해로 하면 어쩌려고? 남 확실하다니까. 걷는 폼이 골골한 게 먹는 약도 확연히 늘어났고, 새벽에 잔기침도 엄청나게 심해졌어. 길어봐야 올해 설까지야. 여 그래도…. 남 (여자의 말 막으며) 어쩔 수 없잖아. 여 (흘겨보며 짐 내민다) 이거나 받아. 남 (물건 받아들며) 이게 뭐야? 생활비도 없다면서. 여 복지관에서. 겨울이라고 이것저것 챙겨주네. 확실히 강남이 좋긴 좋아. 나눠주는 것부터가 격이 달라. 쌀 하나를 줘도 꼭 이천 쌀만 준다니까. 남, 문 옆으로 쌀가마니랑 받아 온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여, 봉투 안을 뒤적거리다 과자 봉지를 꺼내든다. 여 (과자를 우적거리며 바닥 짚는다) 아직 한 겨울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바닥이 냉골이네. 남 수도관 동파가 올해는 좀 빨리 됐어. 그래도 나는 여기 몇 년 살았다고 금방 적응되는 거 있지. (걱정스러운) 자기, 많이 불편해? 여 아냐. 나도 전에 살던 고시원보단 백밴 나은데 뭐. 거긴 주방을 공동으로 썼는데, 꼭 내가 사놓은 김치만 훔쳐가던 놈이 있었어. 의심 가는 놈이 있긴 한데 확실하게 단정은 못 짓겠구. 그렇다구 무턱대고 범인으로 몰수도 없고. 그래서 나중엔 김치를 아예 안 샀었지. 자기, 김치 없는 라면 먹어 봤어? 진짜 (고개를 저으며) 사람이 할 짓이 못 돼. 남 그 자식은? 가만 뒀어? 여 가만 두긴. 나중에 여자 속옷 훔치다가 덜미 잡혀서 개망신 당하고 쫓겨났어.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남 미친놈이네. (침대 가리키며) 자기야, 여기 앉아. 여긴 좀 나을 거야. 여 (침대 위로 올라간다.) 할머닌 괜찮을까?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입 안에서 김이 나와. (호호 불며) 자기야, 이거 보여? 남 (옷장을 뒤적거려 커다란 점퍼를 뺀다. 이때 짐이 쏟아져 문 앞에 약간의 옷들이 쌓이게 된다. 자신도 입고 여자에게도 두꺼운 점퍼 하나를 건넨다) 이거 입어. 괜히 감기 걸리지 말구. 여 (점퍼를 입으며 침대 위 이불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워낙 건강 체질이라 웬만한 추위에는 꿈쩍도 안 하는데 자기랑 살림 합치고부터 몸이 약해졌어. 임신 때문인가 아침부터 삭신도 쑤시고 목도 아프고 머리도 지끈거리는 게 조만간 감기가 올 것 같아. 남 (버럭) 감기? 그러게 독감예방접종 하랬잖아! 여 삼만 팔천 원이야. 그걸 어떻게 맞아? 남 그러다 약값이 더 나는 거 몰라? 그깟 돈 몇 푼 아끼려다가 병원비, 약값 더 나가는 거라고! 진짜 짜증 나게! (바닥에 쌓인 비닐봉지를 걷어찬다) 여 야! 남 뭐! 여 너 지금 뭐 하는 짓거리냐? 남 짓거리? 짓거리? 다시 한번 말해 봐. 남편한테 짓거리? 여 그래. 짓거리라 했다. 남 말하는 본새하곤. 그러니까 네가 어디 가서 고등학교 중퇴자란 소릴 듣는 거야. 여 고졸인 넌 뭐 얼마나 그렇게 대단한데? 남 이거 왜 이래? 나 전문대까지 휴학했어. 너하곤 완전 급이 달라. 이번에 네가 임신만 안 했어도 나 학교 복학했다. 여 얼씨구? 등록금은 있냐? 남 …. 까짓것 벌면 되지. 여 (코웃음 친다) 퍽이나 벌겠다? 지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게. 남 으이구! (자신의 머리 때리며) 그날 밤 내가 왜 술을 마셨는지 그날 밤이 내 인생 천추의 한이다, 한! 이래서 몸 굴리는 애들하곤 함부로 노는 게 아닌데. 여 (벌떡 일어나 노려본다) 그 몸은 나 혼자 굴렀냐? 애는 나 혼자 만들었고? 한 번만 자달라고 졸라 될 땐 언제고. (배 만지며) 알콩아, 달콩아, 봤지? 네 아빠가 저렇게 병신 같은 놈이란다. 남 (애써 누르며) 됐다, 됐어.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내가 저 고등학교도 못 나온 년이랑 무슨 얘길 하냐? 남, 옷을 추려 입고 밖을 나가려는데, 기계음이 들린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기계음은 내내 남과 여의 집에서만 들린다) 여, 재빠르게 리모컨 집어 티브이를 켠다. 남, 언제 그랬냐는 듯 잽싸게 달려와 티브이 앞에 선다. 티브이 화면 가득 노파의 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 떼지 않는다. 언제 싸웠냐는 듯) 다리를 절고 있네. 남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 떼지 않는다. 언제 싸웠냐는 듯) 빙판길에 넘어졌나? 노파, 문을 열고 들어선다. 머리 위에 짐을 얹고 양손에도 한 가득 짐을 들고 있다. 다리를 절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여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 떼지 않는다.) 양 손에 짐이 한 가득이야. 남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 떼지 않는다.) 어디 폐지 같은 거나 주워 오는 거지. 남, 눈치 보며 슬금슬금 여의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여, 기다렸다는 듯 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과자를 우적거리며 영화 감상하듯 나란히 모니터에 집중하는 두 사람 여 저런 건 도대체 어디에서 줍는 거야? 남 아파트 쓰레기통, 상가 앞, 식당 뒤, 구석구석 뒤지겠지. 여 저게 진짜 돈이 될까? 남 진종일 쌔빠지게 고생하면 끽해야 하루 5천 원 정도? 여 그렇게나 적어? 남 몸만 죽어나는 거지. 노파, 가져온 물건들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금방이라도 쌓인 물건들이 넘어질 듯 위태하다. (혹은 넘어져도 무방하다) 여 저러다 정말 큰일 나시겠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남 저런 게 바로 궁상이야. 사는 거 자체가 민폐 인생. 여 너무 그러지 마. 찾아오는 가족도 없다는데 안 됐잖아. 남 아들이 하나 있긴 한데 연 끊은 지 꽤나 된 거 같아. 여 하나밖에 없는 자식새끼, 금이야 옥이야 길렀는데 머리 커서 귀찮다고 외면하고? 남 뻔한 스토리지. 여 사람들은 왜 늘 뻔한 것에 속는 걸까? 남 견디려고 그러는 거지. 그래야 견딜 수 있거든. 여 그래서 수집하나? 헛헛한 마음을 물건으로. 남 마음이 물건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그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거야? 여 오빠. 남 응? 여 난 저렇게 살기 싫어. 남 (여자의 배 쓰다듬으며) 내 자식도 저렇게는 살면 안 돼. 천장에서 쿵쿵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 (하늘 올려보며 남자의 곁으로 바짝 붙는다) 뭐지? 남 저놈의 쥐새끼들. 여 쥐야? 남 사람 없을 땐 내내 조용하다가 꼭 들어오면 저 난리지. (둘러보다 빗자루를 집어 천장을 하늘로 쿵쿵 찌르면 이내 조용해진다) 조용히 해, 새끼들아! 여 (번뜩 뭔가 생각난 듯 남자의 빗자루를 빼앗는다) 오빠, 줘 봐. (천장 환기구를 열어 그 안을 기웃거린다.) 남 뭐해? 여 (이내 뭔가를 손에 쥐고 내려온다) 잡았다! 남 (여자에게 멀찍이 떨어지며) 잡았다구? 쥐를? 여 (의기양양) 응. 남 뭐하려고? 여 할머니 갖다 주게. 남할머닐? 여 적을 알고 나를 알면 그때부터 백전백승! 게임 끝이야. 여, 남자가 말릴 새도 없이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남 야! 자기야! 여, 어느새 옆집으로 넘어갔다. 노파 집 대문을 두드린다. 남, 티브이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본다. 여 할머니! 노파 목소리 뉘슈? 여 저어, 옆집인데요. 잠깐 문 좀 열어주실래요? 노파, 절룩거리며 느리게 현관 앞을 걸어간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외출하셨습니다. 노파 (문 살짝 열고 고개만 삐죽 내민다. 경계하는 느낌이다.) 뭔디 그랴? 여 수도관이 동파 돼서 걱정 돼서 한 번 와봤어요. 많이 추우시죠? 노파 겨울인디 추운 건 당연하지. 여 그래서! (쥐 내밀며) 이거라도 가지고 계시라고요. 만져보세요. 노파 (떠밀리듯 받아들며) 이게 뭔디? 여 쥐요. 노파 쥐? 여 살아있어요, 아직 따뜻하구요. 노파 (의심스러운) 애기 엄만 안 춥가니?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난 몸땡아리, 애기 엄마도 솔찬히 추울 텐디. 여 전 괜찮아요. 옆에 남자친구도 있구, (배를 내려다보며)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돌아가려면) 노파 (문을 처음보다 조금 활짝 연다) 저기, 색시! 여 (돌아보면) 네? 노파 나 그런 사람 아녀! 여 뭐가요? 노파 선물을 받았으면 은혜를 갚아야지. 쪼매만 기다려. 뭐라도 줄 거 없나 찾아 볼랑게. 난 천성이 신세 지곤 못 사는 성격이여. 노파, 집 안으로 들어간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노파, 물건들 사이를 뒤지기 시작한다. 둘러보다 한 묶음의 짐 보따리를 내밀며,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외출하셨습니다. 노파 이불 있어? 여 네? 노파 새댁 집에 이불 있느냐고? 여 (생각하다) 하나 있긴 한데 그게 사계절용이라 그렇게 따뜻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쓸 만해요.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 추우면 우리 자기랑 꼬옥 껴안고 있기도 하고…. 노파 (자랑스럽게) 날도 추운디 한 사람당 두 개 정돈 덮어야지. 우리 집엔 이불 엄청 많아. 이것 말고도 여덟 개나 더 있는디? 여 (받아들며 감동이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할머닌 정말 마음이 따뜻하시네요. 노파 세상 혼자 살간? 서로 돕고 사는 기 세상이지. 추워. 얼른 가. 노파, 먼저 들어간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여, 자신만한 커다란 이불을 가지고 들어온다. 여 (한숨 길게 내쉰다) 아후, 안 되겠어. 도저히 못하겠어. 남 (이불을 받아들며) 왜 또 그래? 여 백퍼센트 코튼 마크잖아. 오리털도 아닌 거위털이야.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오빠가 알기나 해? 남 할머니가 주신 거야? 여 그래. 저쪽 집에 엄청 많대. 남 자기야,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강하게 다져야 해. 생각해 봐, 저 할머니 돌아가시면 그게 전부 우리 거야. 이불 깔고 덮고 지지고 볶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니까. 여 몰라. 암튼 기분이 안 좋아.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도저히 그 일은 못하겠어. 이건 옳은 짓이 아냐. 우리도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직 같은 거 해 보는 거 어때? 남 아니. 구직은 더이상 희망이 없어. 여 오빠, 그러지 말고 일용직이라도 구해 보자. 남 (여자의 배를 내려다보며) 이 몸을 해 가지고? 여 우리 사정 얘기하면 받아주는 데가 있을 거야. (남자의 손 잡으며) 오빠…. 남 …. 여 제발…. 남 …. 넌 그럼 빠져. 이번 일은 나 혼자서 할 테니까. 여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우린 한 몸이야. 이 아이들 낳기로 결정한 날 잊었어? 뭐든 함께하기로 약속했었잖아. 남 그랬었지. 여 우린 그때 너무 힘들었어. 남 알아. 여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부모도 없고. 빽도 없고. 남 아무것도 없었지, 우린. 여 그래도 행복했었잖아. 남 사랑만이 전부였던 시기였지. 여 극복하자. 할 수 있어. 노력하면 어떤 일도 다 이뤄낼 수 있다니까. 남 개소리야. 여 오빤 옆집 할머니 보면 친할머니 생각 안 나? 오빠도 할머니가 키워 주셨다며? 남 그때 생각 따윈 하고 싶지 않아. 여 난 가끔 그 시절이 그립던데….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가 나았던 거 같아. 너무 많이 아는 지금은…. 남 할머닌 나를 학대했어. 여 학대? 남 어린 꼬마였지. 아빠 손에 이끌려 왔던 날, 아빠 등 뒤로 숨었던 날, 할머니의 우악스런 손아귀가 나를 질질 끌고 갔어. 그리곤 내가 아빠 인생을 망쳤다며 끝없는 폭언과 폭력을 휘둘렀지. 여 오빠, 옆집 할머닌 오빠네 할머니와는 달라. 이렇게 이불도 주고 정말 좋으신 분이라고. 남 아무리 그래도 나쁜 점은 분명 있을 거야. 옆집 할머니의 나쁜 점을 한 번 생각해 봐. 여 할머니의 나쁜 점? (생각하다가) 예를 들면…? 남 예를 들면…. (생각났다) 저장강박! 저렇게 쓰지도 못할 거 쟁여만 놔서 이웃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잖아. 저것도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티비에서 본 거 같아. 기억 안 나? 전에 복지관에서 도배 새로 해준다고 했을 때…. 여 (조금 솔깃하다) 아, 그때! 난리부르스도 아니었지. 문 앞에 대자로 쫙 드러누워가지고. 남 그래! (좀 장황하게) 물건들 좀 치우려고 그러면, “차라리 날 밟고 가라! 이것들아! 내 두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저 물건들 못 뺏는다!” 아니, 지가 무슨 이순신이야? 잔다르크야? 저 중에 쓸 만한 물건이 어디 있다고 저 난린지. 저런 건 욕심이 많다는 반증이야. 여 욕심? 남 그래. 스크루지보다 더 지독한 짠순이. 집에 물건들은 숨기면서 정작 중요할 땐 나 몰라라 외면하지. 저러다 결국 저 쓰레기 더미에 깔려 돌아가실 거야. 자기 꺼 꽉 움켜쥐고 남의 거 야금야금 훔치면서. 여 (놀라) 저 물건들이 훔친 거야? 남 훔친 거지. 박스 뒤지고, 남의 물건 뒤지고, 더 가난한 사람들 기회 뺏으면서. 여 (동조됐다) 몰랐어. 할머니가 그런 사람인 줄. 남 (여자의 손 잡으며) 자기야, 그러니까 마음 약해지면 안 돼. 우리도 남들처럼 살아야지. 혼인신고도 제대로 하고, 애들 호적도 제대로 올리고. 남들 사는 만큼 딱 그만큼만 살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외출하셨습니다. 노파 (노크 소리) 색시, 안에 있어? 여 누구지? 남 할머니다! 노 파색시! 여 왜 온 거지? 혹시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신 건가? (남자를 쿡 찌르며) 오빠! 오빠가 나가봐. 얼른. 남 (경계하며 문 쪽으로 다가선다.) 누구시죠? 노파 옆집이외다. 색시 있슈? 여, 겁에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남 잠깐 이 앞에 나갔는데요. 왜 그러시는지…? 노파 구청에서 라면 한 박스를 선물로다 줬는디. 내가 밀가리를 먹으면 위가 쓰려. 남 (여전히 경계하며) 그래서요? 노파 색시 먹을랑가 물어볼라고 그러지. 남 무슨 라면인데요? 노파 진라면이랑 너구리랑 짜파게티랑 뭐 이것저것 섞였는디? 남, 여자를 바라보면 여,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남 (찜찜하지만 문을 살짝 연다) 뭘 이런 걸 다 주시고…. 노파 (고개 들이밀며) 애기 엄만 어디 멀리 갔수? 여 (잽싸게 이불로 머리를 덮는다) 남 슈퍼 갔어요. 라면 사러. 노파 아이고, 잘 됐고만. 내가 그 시간에 딱 맞춰 왔네. 얼른 전화혀서 라면 사지 말고 오라 그랴. 신혼부부들이 무신 돈이 얼마나 있다고. 얼른 전화혀. 남 네에. 그럴게요. 노파 (가려다가 돌아본다) 임신했을 땐 특히 남자가 잘해야 혀. 먹고 싶다는 거 있담 다 멕이구, 짜증내도 것도 일절 받아주고. 남편이 잘해야 그 기운에 평생 살아. 늙은이 말이라고 무시허지 말구 새겨들어. 알겄지? 남 네, 그럴게요. (하다가) 근데 겨울엔 딸기를 못 구하잖아요. 노파 색시가 딸기가 먹고 싶대? 남 네에. 노파 딸인가 보네. 딸기가 땡기는 걸 보니. 남 (헤벌쭉, 딸 생각에 기분 좋다) 딸이래요, 딸. 것도 쌍으로다. 노파 둘씩이나 들어 있어? 남 (헤벌쭉) 네에. 그렇다네요. 노파 아이고, 장해라. 장해. 참말로 장하네 그려. 남 (꾸벅 인사하며) 할머니, 라면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남, 라면박스를 입구 옆에 놓는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여 (뒤집어쓴 이불 밖으로 빠져나오며) 갔어? 남 (복잡하다) 응. 여 할머니 정말 나쁜 사람 맞아? 남 (찜찜하다) 그렇다니까. 여 이렇게 이불에 라면까지 주셨는데도? 남 (멈칫) 의도를 생각해야지. 왜 이런 조건 없는 나눔을 베푸는지. 여 조건 없는 나눔? 남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야. 본디 그렇게 세상은 굴러가게 돼 있어. 근데 이거 봐봐. 할머니가 주신 것들.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어? 여 (생각하다 머리를 쥐어 잡으며) 정말 모르겠어. 남 중졸인 네가 이해하기엔 좀 어려운 문제일 거야. 좀더 깊게 생각해 봐. 여 (생각하다) 할머니에게 실망했어. 남 (환희에 차) 생각났어? 여 임산부에게 라면을 먹으라니. 딸기는 못 줘도 라면을 먹으라고 권하는 건 아니잖아. 라면은 성인병 고혈압의 원인이야. 과다한 나트륨 함량으로 내 아이들이 아토피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 남 그래! 바로 그거야! 여 (여자 뭔가를 깨달은 듯 놀라 입을 막는다) 설마 할머니가 이 모든 걸 꾸민 거야? 남 그, 그런 거지. 여 꼴랑 라면 하나 주면서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내면서? 남 드디어 깨달았구나. 여 오빠 말이 맞았어. 저 할머닌 나쁜 사람이야. 남 그럼. 난 언제나 네 편이야. 여 내 앞에선 위해주는 척, 순진한 척하면서 뒤로는 엄청난 계략을 꾸미고 계셨던 거야. 남 이제 말이 통하는구나. 여 할머니 재산이 얼마라고? 남 한 십억쯤 되려나? 여 확실한 거야? 남 (당황스러운) 그냥, 사람들 얘기가…. 그러지 않겠느냐. 풍문이지, 풍문. 여 강남에 빌딩이 두 개라며? 설마 그것밖에 안 되겠어? 아아, 할머니가 빨리 뒈져버렸음 좋겠어. 남 걱정 마. 조만간 그렇게 될 테니까. 그전에 우리는 먼저 선수 치고 튀자. 할머니 재산 홀라당 챙겨가지고. 여 몇 주 후에나 발견되시겠지? 이참에 단단히 한몫 챙기자고. 남 우리가 먼저 발견한 걸 고마워할지도 몰라. 여 무연고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남 장례식은 고사하고, 저 많은 짐들 정리하려면 국가도 고생이지. 여 맞아. 저 중에 쓸만한 건 전부 처분하고 할머니 통장이랑 국가보조금 남은 거랑 이것저것 모아서 한몫 단단히 챙기자고. 남 그 돈으로 알콩이랑 달콩이 피아노랑 발레를 가르치는 건 어때? 여 피아노랑 발레? 남 내 오랜 로망이거든. 알콩이는 피아노를 치고 달콩이는 그 옆에서 발레를 하고. 나랑 넌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완벽하지 않니? 여 (상상하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죽이자! 남 (놀라) 뭐? 여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도저히 못 기다리겠어. 지금 당장 죽이자! 시간이 얼마 없어. 좀 있으면 알콩이와 달콩이가 태어날 거라고! 남 그래도 지금은 너무 이르잖아. 여 이르긴 뭐가 일러? 당장에 실행에 옮겨야지. (찬장을 뒤져 식칼을 꺼낸다. 금방이라도 실행에 옮길 듯 위협적인 표정이다) 남 자, 자기야. 왜 그래? 여 시간이 얼마 없다니까. 우리 애들은 우리처럼 자라게 할 순 없잖아. 오빠. 남 그래도…. 여 일단, 최고급 산후조리원부터 예약해줘. 거기에서 인맥을 쌓아야지. 남 결심이 선거야? 여 응! 남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사라지고? 여 그딴 거 개나 주라 그래! 남 그래도 좀 그렇잖아. 살인과 고독사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여 (비장하다) 아니, 나는 해야겠어.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때야. 여, 성큼성큼 현관을 향해 걸어가는데 남, 급하게 현관문을 막아선다. 남 자! 잠깐! 여 왜 이래? 비켜. 남 어쩌면 우리 할머니보다 옆집 할머니가 조금은 더 나은 사림일지도 몰라. 여 무슨 소리야? 언제는 나쁜 사람이라며.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 등쳐 먹는. 남 그건…. 그냥 내 생각인 거고. 여 아니. 아무리 자기가 진실을 외면해도 그건 명백한 사실이야. 남 자기야. 진정하고 조금만 기다리자. 여 뱃속의 아이가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 한다니까. 남 알아! 그건 나도 알지. 하지만 얼마 안 남았어. 금방 돌아가실 거야. 여 알콩달콩이도 시간이 없어. 남 그래도 애들은 어리니까 아직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어쩌면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믿을지도 몰라. 여 위선 좀 그만 떨어. 알콩이 달콩이도 우리처럼 살게 할래? 우리처럼 거지 같은 옷 입고 거지같은 방 안에서 지내면서. 입에서 김 나와서 겨울이면 끔찍하고. 여름이면 뜨거운 선풍기 끌어안고 지내면서. 거지 같은 학교 졸업해서 쥐꼬리만 한 월급 못 받을까 전전긍긍하고. 외식은커녕 맨날 돈돈 거리면서 지내겠지. 남들 다 다니는 학원 한 번 못 보내고, 학교도 간신히 졸업하고, 어쩜 못할지도 몰라. 그렇게 눈치 보며 살게 할 거야? 남 돈만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잖아. 우리 둘이 사랑하는 모습 보여주고 우리가 떳떳하면 자식들도 언젠간 알 거야. 언젠간 부모의 노력과 수고를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 여 떳떳해? 우리가 뭐가 떳떳한데? 복지관에서 공짜밥 얻어오는 게 떳떳한 거야? 예방접종비용 비싸 못 맞는 게 떳떳한 거야?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떳떳한 지 알려줘 봐. 내 손에 싸구려 반지라도 하나 끼워주고 남들 하는 만큼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려면 그 망할 놈의 돈이 필요하다고 난! 네가 뭐라고 떠들던 간에 난 오늘 저 할머닐 죽여야겠어! 여, 남자를 밀어낸다. 남, 막았던 자리 무너지듯 자리를 비켜선다. 여, 밖으로 성큼성큼 걷는다. 거칠게 현관문을 두드린다. 한 손엔 칼을 숨기듯 쥐고 있다. 여 할! 머! 니! 노파, 느리게 현관으로 다가온다. 노파 옆집 색신가? 기계음 김분임 할머니가 외출하셨습니다. 노파 (문을 활짝 열며) 색시, 마침 잘 왔어. 들어와 봐, 어여. 여, 무시무시한 얼굴이다. 성큼성큼 노파 집 안으로 들어간다. 좁은 집 안, 서로를 마주 보고 간신히 선 노파와 여자 그 가운데 딸기 한 팩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여, 칼을 빼들고 찌르려다 딸기를 보고 멈칫하는데, 노파 먹고 싶었다며? 여 네? 노파 신랑한테 다 들었어. 딸기 먹고 싶다 그랬다며. 여 (냉랭한) 그런데요? 노파 요리하다 온겨? 여 뭐여? 노파 지금 칼 들고 서 있잔여. 여 (칼을 숨기며) 대파 있으세요? 노파 대파? 여 라면에 넣으려고 보니 대파가 마침 똑 떨어져서요. 노파 글씨. 대파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겄네. 혼자 사는 노인네라 집 안에 마땅한 게 없어. 배고프면 먹고 안 고프면 굶고 그러니께. 노파, 쭈그려 앉아 냉장고를 연다. 이것저것 뒤적거린다. 여, 딸기 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노파 (냉장고 뒤지며) 찬물에다 밥이나 말아먹지. 음식이 변변찮해. 대파가 있을라나 모르겄네. (돌아보며) 대파 대신 양판 안 되야? 여 그거라도 주시면 고맙구요. 노파, 양파를 한 망 건네준다. 계란, 버섯 이것저것 한 움큼 들려 있다. 여, 얼떨결에 받아든다. 노파 딸이라매? 여 네? 노파 남편이 많이 좋아하드라고. 여 그 자식이 임신한 걸 좋아해요? 노파 가장의 위치가 원래 그런 거여. 좋으면서 티도 못 내고 맘속 복잡허고. 섭섭하고 서운한 게 있더라도 자네가 넓은 맴으로다 이해혀야지. 여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노파 한 인간을 다른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제. 용기 잃지 말구 악착같이 살어잉. 여 …. 노파, 딸기를 까 여자의 입에 넣어준다. 노파 어뗘? 맛이? 여 달아요, 아주. 노파 내가 샥시가 딸기 좋아하는 걸 우찌 알았겠어? 신랑이 챙겨주고 싶은디 맘처럼 되지 않응게 속상한 겨. 색시도 알지? 신랑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거. 여 네에. 노파 겨울엔 딸기가 없어. 비싸기도 하고. 우리 같은 사람은 먹기 쉽지 않제. 맴이야 그렇지 않겄지만 그래도 너무 서운해하덜 말어. 여 (맛있게 딸기를 먹는다) 할머닌 안 드세요? 노파 난 늙어서 식욕도 읍서. 뭐가 맛난지도 모르겄고 배만 차면 그만이여. (딸기 팩 건네며) 가져가서 신랑이랑 맛나게 나눠 먹어. 여 자꾸 이렇게 주시기만 하면 제가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잖아요. 노파 아녀, 아녀. 내가 뭐 바라고 그런 것도 아닌디. 여, 딸기 팩 챙겨들고 느리게 돌아서면, 노파 샥시. 여, 멈춰 선다. 노파 내가 쪼매난 부탁 하나만 혀도 될까? 여 (다시 경계한다) 부탁이요? 노파 뭐 거시기한 건 아니고. 내가 만약 죽거들랑 내 시신 처리 좀 해돌라고. 그냥 보다가 요 며칠 안 보이면 구청 같은데다 연락 좀 햐줘. 그 짝에서 알아서 잘 해줄 텐게. 여 할머니. 그런 말씀 마셔요. 오래오래 사셔야죠. 노파 암만 그래도 아가들도 있는디 시체 냄시 풍기며 마무릴 할 순 없지 않겄어? 죽는 날을 내가 택할 수 있으면 좋겄지만 살아보니 그것도 내 맘대로 안 되고. 시상에서 제일 나쁜 게 지 목숨 지가 끊는 거라 그럴 수도 없고. 얼마 안 되지만 이 콧구녕만한 집구석도 여기저기 뒤져보면 쓸 만한 게 있을 거여. 마지막 부탁 들어준 보답이다 생각하고 부담 갖지 말고 가져. 보니께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은 거 같더라고. 세상천지 아는 사람이라곤 자네가 준 요 쥐새끼랑 자네 집안 식구들이 전부니께. 여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러면 저희가 너무 죄송하잖아요. 노파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내가 오히려 미안허지. 나, 한 번만 만져 봐도 되나? 노파, 여자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여자의 배에 손을 지그시 댄다. 노파 꼼틀거리는구만. 생명이. 한 생명이 가믄 또 다른 생명이 오겄지. 그것이 자연의 섭리니께. (여자의 배에 대고) 환영하네. 이 세상에 온 걸. 여, 노파가 준 딸기 팩을 가지고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온다. 여, 급하게 집 안으로 들어선다. 남 어떻게 됐어? 여, 딸기 팩을 남자에게 집어 던진다. 너부러진 딸기들 남 뭐야, 이게? 여 입양 보내. 남 뭐? 여 그렇게 해. 남 뭔 소리야? 여 막달이라 지우진 못하겠구, 그냥 입양이나 보내자구! 남 지긋지긋하다, 정말. 또 그 소리냐? 여 네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이잖아! 남 난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여 (노려보며) 미친 새끼. 할머니가…. 할머니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기계음 김복임 할머니가…. 김복임 할머니가…. 김복임 할머니가…. 김복임 할머니가…. 김복임 할머니가…. (반복 재생된다) 남과 여, 동시에 옆집을 돌아본다. (암전) >>등장인물 남자 여자 노파
  • [와우! 과학] 175만개 미세 플라스틱 돼 돌아오는 비닐봉투

    [와우! 과학] 175만개 미세 플라스틱 돼 돌아오는 비닐봉투

    플라스틱 제품이 없는 현대 문명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이 우리 주변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 편리성과 유용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환경 오염이 문제가 되고 있다. 땅속에서 오랜 시간 썩지 않고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최근에는 플라스틱 제품이 바다로 흘러간 후 분해되어 생성되는 미세 플라스틱(microplastic)이 새로운 환경 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의 문제는 플랑크톤과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먹이로 오인하고 섭취하는 해양 생물이 많다는 점이다. 결국, 미세 플라스틱이 먹이 사슬을 타고 들어가 모든 해양 생물체는 물론 잠재적으로는 해산물을 섭취하는 사람까지 해로울 수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해산물 섭취를 제한해야 할 만큼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심하지 않지만, 매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막대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누적되면 나중에는 해양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될 우려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해양 생물체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더 잘게 부숴 미세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플리머스 대학의 리처드 톰슨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흔한 해양 갑각류의 하나인 오세스티아 가마렐루스(Orchestia gammarellus)가 역시 흔한 쓰레기 가운데 하나인 플라스틱 비닐 봉투(plastic carrier bag)를 어떻게 분해하는지 연구했다. 이 작은 해양 생물에게는 반투명 플라스틱 쓰레기가 먹이의 일종으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 연구팀은 오세스티아를 실험실과 실제 환경에서 관찰해 이들이 어떻게 플라스틱 비닐 봉투를 조각 내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비닐 봉투가 488.59μm 이하의 작은 크기로 잘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중간 크기 비닐 봉투 하나가 175만 개의 조각으로 분해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조각 낸 비닐 봉투는 해양 생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먹이로 오해해 먹을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사실 이 문제를 해양 생물체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애당초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해양 쓰레기 오염을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은 버리지 않는 것이다. 특히 해양 쓰레기 오염은 언젠가 자신의 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직접 바다나 해변에 버리는 쓰레기는 물론이고 길가에 버린 쓰레기도 빗물에 쓸려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무심코 버린 봉투 하나도 심각한 오염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보인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비닐 봉투 한 장, 175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 된다

    비닐 봉투 한 장, 175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 된다

    플라스틱 제품이 없는 현대 문명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이 우리 주변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 편리성과 유용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환경 오염이 문제가 되고 있다. 땅속에서 오랜 시간 썩지 않고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최근에는 플라스틱 제품이 바다로 흘러간 후 분해되어 생성되는 미세 플라스틱(microplastic)이 새로운 환경 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의 문제는 플랑크톤과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먹이로 오인하고 섭취하는 해양 생물이 많다는 점이다. 결국, 미세 플라스틱이 먹이 사슬을 타고 들어가 모든 해양 생물체는 물론 잠재적으로는 해산물을 섭취하는 사람까지 해로울 수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해산물 섭취를 제한해야 할 만큼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심하지 않지만, 매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막대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누적되면 나중에는 해양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될 우려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해양 생물체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더 잘게 부숴 미세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플리머스 대학의 리처드 톰슨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흔한 해양 갑각류의 하나인 오세스티아 가마렐루스(Orchestia gammarellus)가 역시 흔한 쓰레기 가운데 하나인 플라스틱 비닐 봉투(plastic carrier bag)를 어떻게 분해하는지 연구했다. 이 작은 해양 생물에게는 반투명 플라스틱 쓰레기가 먹이의 일종으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 연구팀은 오세스티아를 실험실과 실제 환경에서 관찰해 이들이 어떻게 플라스틱 비닐 봉투를 조각 내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비닐 봉투가 488.59μm 이하의 작은 크기로 잘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중간 크기 비닐 봉투 하나가 175만 개의 조각으로 분해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조각 낸 비닐 봉투는 해양 생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먹이로 오해해 먹을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사실 이 문제를 해양 생물체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애당초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해양 쓰레기 오염을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은 버리지 않는 것이다. 특히 해양 쓰레기 오염은 언젠가 자신의 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직접 바다나 해변에 버리는 쓰레기는 물론이고 길가에 버린 쓰레기도 빗물에 쓸려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무심코 버린 봉투 하나도 심각한 오염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보인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여기, 사람이 있어요”…사면으로도 회복되지 않을 ‘용산참사’의 비극

    “여기, 사람이 있어요”…사면으로도 회복되지 않을 ‘용산참사’의 비극

    고(故) 이상림·양회성·한대성·이성수·윤용헌씨.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로 희생된 철거민 5명의 이름이다. 당시 참사로 경찰특공대원 고(故) 김남훈씨도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올해로 8년째. 참사 9주기를 맞는 새해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29일 발표한 첫 특별사면 대상자에 용산참사 사건으로 법적 처벌을 받은 철거민 26명 중 25명(한 명은 재판 진행 중)이 포함됐다.일반 형사범, 불우 수형자, 일부 공안사범 등 6444명을 특별사면하기로 결정한 정부는 이번 특별사면의 특징 중 하나로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과 같이 구제가 절실한 사안을 엄선하여 배려함으로써 사회적 갈등 치유 및 국민 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용산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9년 1월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에 있는 남일당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재개발에 반대하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발생한 화재로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다친 사람을 포함해 총 23명(철거민 6명, 경찰 17명)이 부상했다. 서울시가 올초에 발간한 ‘용산참사백서’(이하 백서)에 따르면, 남일당 건물이 속한 용산4구역은 2008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입자에 대한 보상 대책은 미흡했다. 법적 기준 이상의 보상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고, 세입자에 대한 무상임대 제공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강제 퇴거로 재산상의 손해뿐만 아니라 생계수단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철거민들은 생존권 투쟁을 위해 2009년 1월 19일 남일당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4층짜리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경찰과 철거용역은 망루 설치를 저지하기 위해 남일당 건물 건너편에서 물대포를 쏘면서 남일단 건물 진입을 시도했다. 철거민들은 이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남일당 건물 3층 계단과 4층 계단 사이에 여러 개의 쇠파이프를 용접해 장애물을 만들었다. 그러자 철거용역은 건물 안에 있던 소파, 폐자재, 폐타이어 등 고무재질이나 비닐이 포함된 물건을 계단에 쌓아놓고 태워 유독한 연기를 피웠다. 연기가 크게 나 신고를 받은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했고, 참사 직전인 20일 새벽에도 불이 나 소방차가 출동했다. 경찰과 철거민들 사이의 협상은 19일 하루 동안 몇 차례 시도되었다. 오후 3시쯤에는 서울경찰청 정보관이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의 인태순 당시 연대사업국장을 만나 ‘오후 10시까지 자진철수하면 선처하겠다’는 경찰 측 입장을 전했으나, 철거민들은 ‘경찰병력이 철수된 후 대화를 하겠다’고 알려왔다. 다시 오후 6시 40분쯤 정보관이 용산구, 조합, 시행사 등과의 면담을 주선하였지만 결과적으로 협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 날인 20일 진압이 이루어졌다. 현장 활동가들도 망루 농성 개시 25시간 만에 경찰이 전격적으로 진압 작전을 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특공대가 20일 오전 4시 10분쯤 현장에서 도착했고, 경찰은 오전 5시 30분쯤 철거민들에게 농성 자진 해산을 권고하는 방송을 했다.이후 경찰특공대의 진압은 오전 6시 30분에 시작됐다. 지상조와 옥상조로 나뉘어 진압 작전에 투입된 특공대원은 5개 제대 98명이었다. 당시 망루 농성을 하던 철거민은 36명이었다고 한다. 오전 6시 47분쯤 특공대원들이 컨테이너에서 내려 옥상에 진입했고 농성자 6명을 검거했다. 건물 4층과 옥상에 있던 나머지 농성자들은 망루 안으로 들어가 특공대원들의 망루 진입에 대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특공대원들이 망루의 2~3층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때인 7시 20분쯤 망루 안에서 불길이 일었고, 이 불길이 망루 전체로 번지면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남일당 건물 아래에서 마음을 졸이며 옥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 다른 철거민들과 가족들은 불이 붙은 망루를 향해 “여기 사람이 있다”면서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 말은 용산참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이후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2009년 3월 12일 기준으로 철거민 24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일반건조물방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정부가 이날 특면사면 대상자를 발표하면서 법적 처벌을 받은 철거민 숫자는 최종적으로 26명이다.용산참사는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세입자들의 망루 농성을 정부가 공권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백서는 “용산참사는 시민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유가족, 구속자, 부상자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 모두의 참사였다. 용산4구역 개발사업의 주체인 조합원들 역시 사업 지연으로 큰 경제적 피해를 입었고, 삶의 기반을 잃기도 했다”면서 “용산참사 관련자들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용산참사의 비극은 영화 ‘두 개의 문’(2012년 6월 개봉)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또 용산참사 9주기를 맞는 내년 1월에는 용산참사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공동정범’이 개봉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어르신들은 채소 공짜” …아르헨, 훈훈한 농심 화제

    “어르신들은 채소 공짜” …아르헨, 훈훈한 농심 화제

    연말을 맞아 아르헨티나 농민들이 노인들에게 각종 채소를 무료로 나눠줘 화제다. 이색적인 ‘채소 나눔’ 이벤트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렸다. 의사당 앞에 모인 농민들은 상추, 토마토, 근대 등 다양한 채소를 비닐봉투에 넣어 노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이날 농민들이 노인들에게 무료로 전달한 채소는 약 2만 ㎏. 비닐봉투에 2㎏씩만 담았어도 1만 명에게 나눠줄 수 있는 물량이다. 나눔 행사는 아르헨티나 전국 각지에서 소규모 농사를 짓는 영세 농민들이 주도했다. 행사에 참가한 한 농민은 “절대 채소가 남아돌아 나누는 건 아니다”면서 “연말에 노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격려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최근 연금제도를 대폭 개정했다. 날로 불어나는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의회가 14시간 마라톤 심의 끝에 개정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내년부터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연금은 줄게 됐다. 현지 언론은 “연금법 개정으로 정부가 절약하게 된 재정이 최소한 1000억 페소(약 6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인들만 졸지에 피해를 입게 된 셈이다. 농민들이 채소를 무료로 나누기로 한 건 연금을 적게 받게 된 노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채소 나눔에 참여한 한 농민은 “평생 연금을 붓고 이제 편안한 삶을 살아야 할 어르신들이 애꿎은 피해자가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노인들은 “연말에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아 매우 기쁘다”면서 “채소를 이웃들과 나누겠다”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길섶에서] 밤의 향기/황수정 논설위원

    단정하게 포장된 깻잎 묶음을 펼치자니 후각이 감감하다. 엄동에 칠팔월 들녘의 들깨향이야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명색이 깻잎 아닌가. 코끝에 갖다 대고 흔들어 봐도 들깨밭 근처에나 갔다 왔나 싶게 맹맹하다. 시골집 뒤란에는 봄여름 내내 들깨가 우썩우썩 자랐다. 장독대를 둘러치고 위세 좋게 너울거렸는데, 살펴보면 고작 두세 포기가 장차게 품을 벌린 거였다. 더위에 짓무른 한여름밤에도 집안 공기는 들깨향이 은근했다. 바람 한줄기라도 문득 불면 마루 깊숙이 누운 우리 집 사람들은 한밤중에 들깨들이 어쩌고 있는지 말 안 해도 알았다. 그때는 해가 지면 칠흑의 밤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낮밤 인공조명을 쐬면 들깨는 향기를 잃는다 한다. 밤의 고요를 빼앗겨 제 향기를 털리는 것은 깻잎만일까. 별을 잊고 달빛을 놓치는 불면의 도시. 절대 고요의 밤에 등짐 내려놓고 다리 한번 뻗어 보지 못한다. 어두워져도 마음을 뉘어 재울 줄 모른다. 밤이 밤다워야 들깨는 들깨다워지는데. 칠흑의 밤에 머리가 젖도록 까맣게 잠겨 보고 싶은데. sjh@seoul.co.kr
  • 공기총 산탄에 농민 부상

    비닐하우스에 공기총 산탄이 날아와 일을 하고 있던 40대 농민이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24일 오전 11시 43분쯤 전북 김제시 광활면의 한 비닐하우스에 공기총 산탄이 날아들었다. 이 사고로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고있던 A(47)씨가 어깨를 다쳐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한 주민은 “철판에 무언인가 맞는 소리가 나더니 그 파편이 A씨 어깨를 스쳐 지나간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서는 공기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탄이 발견됐다. 경찰은 탄환이 날아든 방향을 역추적해 총을 쏜 용의자를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다행히 A씨는 크게 다치지 않아 간단한 치료만 받았다”며 “김제는 수렵 활동 금지지역이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외국 노동자 ‘비닐하우스 숙식’ 개선 불응시 사업장 변경 허용

    내년부터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를 비닐하우스와 같은 임시숙소에서 지내게 하다 적발되면 신규 인력 배정을 받지 못한다. 또 외국인 노동자에게 숙식비를 받으려면 반드시 서면 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정부는 22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영계획, 고용허가제 불법체류·취업 방지방안, 농업 분야 외국인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을 확정했다. 내년 비전문취업(E-9) 규모는 올해와 같은 5만 6000명으로 결정했다. 신규 입국자는 올해보다 2000명 늘어난 4만 5000명, 재입국자는 2000명 줄어든 1만 1000명이다. 외국 인력은 국내 인력 부족 현상을 감안해 상반기에 60%를 배정한다. 정부는 동포 방문취업(H-2) 규모도 올해와 같은 30만 3000명으로 동결했다. 불법체류 단속은 강화한다. 관계부처 합동단속 기간을 기존 20주에서 22주로 늘리고 단속인원도 340명에서 400명으로 보강한다. 또 내년부터 불법고용 이력이 있는 사업주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정책자금 융자사업’에서 감점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취업 활동 기간이 끝나는 외국인 노동자 7500명은 전수 관리해 불법체류 위험을 낮춘다. 열악한 주거시설 등의 문제가 제기됐던 농업 분야는 내년부터 근로환경 개선 제도를 도입한다. 우선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내년부터 신규 인력 배정을 중단하고 자율 개선 기간 내 숙소를 개선하지 않으면 해당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숙식비 지침보다 높은 비용을 받거나 해당 국가 언어로 작성한 서면동의서를 받지 않는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근로계약 체결 전 외국인 구직자에 대한 숙소 정보 제공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노숙자 위해 호텔 숙박비 대신 내준 남성들

    노숙자 위해 호텔 숙박비 대신 내준 남성들

    마음씨 고운 세 남자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가던 길에 만난 한 노숙인을 위해 파티를 미루고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미러는 연말을 맞아 사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려던 세 명의 건축가가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에게 호텔방을 무료로 선물했다고 보도했다. 호의를 베푼 남성 로저 하티건(43)과 그의 동료 조 리치, 데이비드 해리슨은 지난 15일 브리스톨시 볼드윈 거리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가는 길에 우연히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여성을 만났는데 행색이 예사롭지 않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성은 소지품이 한가득 든 비닐 가방을 들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세 남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하티건은 “할머니는 한눈에 봐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자신은 71살이며 갈 곳이 없다고, 18년 동안 거리에서 노숙을 해왔다’고 말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세 사람은 차마 그 노인을 그곳에 홀로 두고 떠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각자 흩어져 주변 호텔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함께 시 중심가를 걷던 하티건은 친구 중 한 명에게 객실이 남는 방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할머니를 호텔로 데려다준 뒤 2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대신 지불했다. 그는 “우리는 연말의 금요일 밤을 보내기 위해 함께 모였다. 그러나 할머니를 보는 순간 그녀의 안위가 우리 우선순위가 됐다”며 “할머니가 안전한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는 파티를 즐기러 떠날 수 있었다”는 말을 남겼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美다우 화학사업 품은 SK

    SK이노베이션의 화학사업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이 미국 글로벌 기업 다우케미칼의 폴리염화비닐리덴(PVDC) 사업 인수를 마무리했다고 18일 밝혔다. 최종 인수 금액은 7500만 달러(약 82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로써 SK종합화학은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로 다우케미칼의 화학사업을 인수하게 됐다. 앞서 상반기에는 다우케미칼의 에틸렌 아크릴산(EAA) 사업을 3억 7000만 달러(약 4030억원)에 사들였다. 이번에 인수한 PVDC는 고부가 포장재 산업의 핵심 분야인 배리어 필름 소재 중 하나다. 외부 수분이나 산소를 차단해 내용물의 부패와 변형을 막아 준다. 냉장·냉동 육가공 포장재 원료로 주로 쓰인다. 김형건 SK종합화학 사장은 “차세대 성장 주력 분야인 고부가 포장재 사업과 자동차용 소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군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성동의 버스 정류장엔 겨울이 없다

    성동의 버스 정류장엔 겨울이 없다

    겨울 찬 바람을 막아 주는 서울 성동구의 버스정류소 앞 ‘온기누리소’가 지역 안팎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성동구는 “지난달 성동구청 앞 버스정류소에 시범 설치한 온기누리소에 대한 호평이 이어져 왕십리역 4번 출구, 상왕십리역 6번 출구 등 27곳에 추가 설치했다”고 18일 밝혔다.온기누리소는 ‘온기’(溫氣)와 세상을 뜻하는 ‘누리’를 합한 말로, 따뜻한 기운을 세상에 전하는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0~15명이 들어갈 수 있다. 안에서 외부를 볼 수 있도록 투명 비닐을 사용했고, 지붕은 멀리서도 눈에 잘 띄도록 노란색으로 제작했다. 온기누리소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아이디어다. 정 구청장은 지난여름 뙤약볕을 가려 줬던 그늘막에 착안, 한겨울 추위를 막아 주는 공간 조성을 제안했다. 구는 지난 9월부터 2개월간 재질과 규격, 디자인 등을 지역 업체와 협의·제작한 뒤 지난 11월 구청 앞 버스정류장에 시범 설치했다. 대학생 최우식(21·행당동)씨는 “햇볕을 가려 주는 그늘막에 이어 겨울 칼바람을 막아 주는 텐트까지, 이것이야말로 주민들을 위한 생활밀착 행정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이민영(36·서초구)씨는 “야근으로 귀가가 늦을 때면 너무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를 기다리곤 했는데, 온기누리소가 생겨 마음까지 훈훈하게 데워 준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등 올겨울 유난히 추운 날이 많다고 한다”며 “주민들이 잠시나마 추위를 녹이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온기누리소의 의미처럼 온기가 성동구에 고루 퍼질 수 있는 따뜻한 행정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英여성, 어머니 떠나보낸 뒤 유골 먹겠다고 밝혀 논란

    英여성, 어머니 떠나보낸 뒤 유골 먹겠다고 밝혀 논란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젖은 한 여성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계획이 많은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17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미러는 데브라 파슨즈(41)가 올해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에 어머니의 유골을 뿌릴 예정임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녀는 말그대로 칠면조 고기와 크리스마스 푸딩에 어머니 유골을 넣어 열심히 먹을 생각이다. 데브라의 어머니 도린 브라운은 지난 5월 흉부감염을 앓고 난 후 기도 폐색으로 갑자기 숨을 거뒀다. 10여 년 전 아들을 잃고 큰 의지가 됐던 어머니의 죽음은 데브라에게 또다른 비극이었다. 데브라는 “엄마와 난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만큼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내 인생의 우여곡절을 이겨내도록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한순간에 사라졌을 때 나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슬퍼했다. 장례식을 치른 후, 큰 상실감을 느낀 데브라는 어머니의 유골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랑했던 어머니의 재를 어딘가에 흩뿌리고 싶지는 않았다. 어딘가로 던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동생에게 유골의 일부분을 넘겨받아 비닐 팩에 보관했다.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어 집 안에 두었다가 유골함을 구해 진열도 해봤지만 어머니와 전혀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보다 어머니가 더 많이 그리웠던 데브라는 영감이 떠올랐다. 그녀는 “처음에 무엇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 상자를 열고 손가락을 핥아 유골에 담궜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손가락들은 내 입 안에 있었고, 하얀 가루의 짠 맛은 위안이 됐다. 내가 한 일에 대해 혼란스러웠지만 당시의 편안함과 친근감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 어머니의 유골을 섭취하고 싶은 충동은 거부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데브라는 “크리스마스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1년 중 가장 특별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를 잃은 내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유골을 먹는 건 엄마 없이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는 최선책이다. 엄마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 같고, 내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거나 경의를 표하는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다. 크리스마스 저녁식사에 엄마와 함께한다면 엄마도 행복해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커버스토리] 암 이겨냈듯… 사람들에게 행운의 네잎클로버 나눠주는 청원경찰

    [커버스토리] 암 이겨냈듯… 사람들에게 행운의 네잎클로버 나눠주는 청원경찰

    “사람들에게 행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근 5년간 야생에서 뜯은 네잎클로버 3000여개를 지하철에서 책을 보거나, 도서관을 찾는 수험생, 청소하시는 분,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어린이 등 주변에 행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해 온 청원경찰이 있어 화제다. 경기 고양시청에 근무하는 오수용(49)씨다.# 주먹깨나 쓰던 문제아, 청운의 꿈을 품다 보통 키에 커다란 눈과 짙은 눈썹을 가진 그는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문제아’였다. “담배도 피웠고 술을 마시고 도로변 연탄재를 집어던지거나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웃음). 그런 오씨가 변한 건 청원경찰이 되면서부터다. 군 복무를 마치고 얼마 후 “조금만 공부하면 청원경찰이 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친구는 중도에 포기했지만 친구가 내다 버린 책을 주워다 몇 개월 열심히 공부했더니 청원경찰에 덜컥, 정말 합격했습니다. 홀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 림프전까지 퍼진 암… 하마터면 큰일 날 뻔 공직에 몸을 담게 되자 매사 조심스러워졌다. 말은 조용하고 가려서 해야 했고, 친절해야 했다. 말씨가 달라지니 행동이 변했고, 행동이 변하니까 성격도 변하더란다. 특히 5년 전 우연히 갑상선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많이 변했다. 아무리 치료가 쉬운 병이라고 하지만, 암이 림프전까지 전이돼 조금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왼쪽 귀밑부터 오른쪽 쇄골까지 40㎝가량 칼을 대야 했다. # 행운 필요한 3000여명에게 건넨 작은 위로 수술 후 술 담배를 끊고 틈만 나면 전국의 산과 들을 다니며 건강을 챙겼다. 특히 산에 오르면 모든 욕심이 없어지며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하늘의 계시처럼 강하게 밀려들었다. 그때부터 군락을 이룬 클로버를 보면 어김없이 네잎클로버가 신기하게 눈에 잘 띄었다.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안 보이던 네잎클로버가 하루에도 몇 개씩 눈에 띄었다. 때로는 5잎, 6잎, 7잎 클로버도 발견했다. 클로버를 문방구에서 비닐 코팅한 후 예쁜 리본을 달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슬퍼 보이거나 남루해 보이거나 뭔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그는 “지금까지 어림잡아 3000개는 넘을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행운을 빌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청원경찰은 나의 인생을 바로잡아 줬다”고 말한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길섶에서] 아궁이/진경호 논설위원

    그때도 추웠다. 바깥만이 아니라 방 안도 추웠다. 창문 틈새로 황소바람이 웅웅대며 파고드는 몇 걸음 웃목엔 물도 얼었다. 왜 책상은 꼭 창문 옆인지, 양말 두 켤레로 감싸고도 발이 시렸다. 그 겨울을 이길 수 있었던 건 구들 밑 아궁이였다. 기껏 연탄 두 장 포개 넣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 옹골진 아궁이 덕에 솥뚜껑 크기로 까맣게 익은 아랫목 비닐장판에 손을 얹고 발을 녹이다 등을 붙이곤 꾸역꾸역 잠이 들었다. 칼바람에 뺨을 베이면 아궁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기억 끝으로 어머니가 달려 나온다. 행여 귀한 자식 감기 들까 새벽 3시든 4시든 찌렁찌렁한 바람 맞아 가며 이방 저방 아궁이 연탄 갈아대던 당신…. 철을 모르고 저만 아는 자식은 오십 줄에 든 지금도 아궁이가 먼저고, 처연한 모정은 뒷자락이다. 안부 전화에 당신이 노래를 한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몹시도 그리워라…사랑하는 이 마음을…낙엽 따라 가버렸으니~’ “나 노래 잘하지? 성당 사람들이 다 좋아해.” 팔순 소녀가 끝까지 부른다. “나 재미있게 지내. 그러니 걱정마 애비야.” 어머니가 아궁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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