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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두한 원장의 건강이야기] 참을 수 없는 항문의 가려움

    지난달 말, 말쑥한 40대 숙녀 한 분이 병원을 찾았다. 항문이 못 견디게 가렵다는 거였다. 벌써 3년째인데 요즘은 너무 심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수시로 긁어야 하는 고통도 견디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항문이 불결해 그런가 싶어 배변 후 소독액으로 닦고 좌욕도 하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진다고 했다. 이 여성의 병은 항문소양증이었다. 무좀이나 칸디다 같은 곰팡이균에 감염되거나 치핵·치열 등이 원인이 되어 항문이 가려운 병이다. 더러는 커피나 술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뚜렷한 원인이 있다면 치료가 쉽지만 원인이 없는 경우에는 치료가 어려워 만성화하는 경우가 많다. 원인이 없는 대부분의 가려움증은 항문 주위의 피부 손상 때문이다. 이런 환자의 항문은 피부 색깔이 물에 분 듯 하얗고, 피부가 두꺼우며, 군데군데 헐거나 갈라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질환을 가진 환자들 대부분은 성격이 예민해 항문이 불결하면 참지 못하는 결벽주의자들인 경우가 많다.이런 성격 탓에 배변 후 휴지로 여러 차례 항문을 닦고, 그것도 모자라 비누나 소독약으로 다시 항문을 씻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항문 주위의 피부를 손상시켜 가려움증을 더욱 심하게 한다. 게다가 가렵다고 항문을 손으로 긁기라도 하면 피부 손상은 더 심해져 치료만 어려워질 뿐이다. 치료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배변 후 물로 간단히 항문을 씻고 수건 등으로 물기를 없앤 후 스테로이드 연고를 1일 3회 정도 발라준다. 휴지는 표면이 거칠어 피부에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안 쓰는 것이 좋다. 배변 후 휴지로 여러 차례 닦거나 물로 씻더라도 너무 자주, 또 힘을 줘 박박 닦는 것은 금물이며, 소독약이나 소금물로 씻는 것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잦은 좌욕도 항문 주위의 피부를 약하게 한다. 스테로이드 연고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한 달 이상 쓰지 않도록 하고 대신 항문 관리에 힘쓰는 것이 재발 방지에는 더 좋다.대항병원장
  • e쇼핑몰서 ‘그녀 마음’ 을 클릭하세요

    e쇼핑몰서 ‘그녀 마음’ 을 클릭하세요

    ‘밸런타인데이’(2월14일)가 엊그제인 것 같더니 어느새 선물을 주고 받는 남녀의 위치가 반대로 바뀌는 ‘화이트데이’(3월14일) 시즌이 찾아왔다. 국적 없는 상업주의니 뭐니 비판이 있긴 해도 남자친구의 사랑을 확인하고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날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에게 설레는 기다림의 대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화이트데이 선물로 1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화이트데이에는 뭐니뭐니해도 아기자기한 이벤트나 조그만 정성으로 여자친구를 감동시키는 전략이 효과적일 것 같다. 오프라인 매장보다 가격이 싼 인터넷 쇼핑몰들을 훑어봤다. 엠플(www.mple.com)은 ‘사랑의 프러포즈’ 이벤트를 마련했다. 고백하고 싶은 말을 게시판에 댓글로 남기면 5명을 뽑아 화이트데이 하루 동안 이벤트 메인 페이지 상단 전광판에 메시지 내용을 실어준다. 귀여운 하트 쿠션(1만 2000원)과 파마 서비스 이용권(5만 9000만원) 같은 실용적인 아이템도 있다. 롯데닷컴(www.lotte.com)은 9000원대 사탕과 초콜릿을 메시지 카드와 함께 포장해 배송료 없이 판매한다. 꽃바구니와 향수, 초콜릿과 인형, 케이크와 초콜릿으로 구성된 선물세트도 있다. 옥션(www.auction.co.kr)은 10일까지 ‘화이트데이 선물전’을 통해 주얼리, 향수, 초콜릿, 미니 가전 등을 6000∼10만원대에 판매한다.14K 이니셜 반지 2만 5900원, 아이리버 MP3플레이어 14만 9900원 등이다. 화이트데이 당일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 공개방송 입장권, 사탕 부케, 커플 머그컵, 식사권, 영화 예매권 등 프러포즈를 위한 상품 일체를 경매(시작 가격 15만원)로 판매한다. GS이숍은 11일까지 ‘화이트데이 기획전’을 열어 식사권을 할인 판매한다.‘비즈바즈 커플 식사권’(8만원),‘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 브래서리 뷔페 커플권’(9만 2000원),‘잠실 롯데호텔 라세느 런치 뷔페’(1인 5만 5000원),‘그랜드힐튼호텔 테마가 있는 뷔페 식사권’(1인 3만 9000원) 등이 있다. 엔조이밀란(www.njoymilan.com)에서는 사탕으로 만든 ‘캔디 속옷 세트’(6만 5800원)를 내놓았다. 향긋한 파스텔톤 캔디로 만들어진 속옷은 여성용과 남성용이 있다. 영국 제품이다.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특이하고 재미있는 컨셉트로 인기가 높다. G마켓(www.gmarket.co.kr)에서는 이벤트용 양초 100개를 9900원에, 꽃잎이 비누로 된 장미 6송이를 3000원에 팔고 프러포즈 현수막을 3만 9000원에 제작해준다. 이밖에 상자를 여는 순간 사랑 고백의 헬륨 풍선이 떠오르는 ‘사탕 초콜릿 케이크’(4만 1800원), 요일별로 사랑의 메시지를 새긴 ‘러브메신저 타월’(3만 9000원) 등도 기억에 남을 선물로 눈길을 끈다. 여자친구가 받고 싶은 선물을 직접 고르는 상품도 있다. 디앤샵(www.dnshop.com)에서는 받고 싶은 선물을 골라 10% 할인쿠폰과 함께 남자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는 ‘로맨틱 화이트데이 러브레터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지역명품의 재발견] 장수 사과

    ‘명품’ 사과로 유명한 전북 장수사과가 술, 비누, 보디로션 등으로 상품화된다. 장수군은 21일 지역 명산품인 사과를 이용해 와인, 미용상품, 액세서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 이를 상품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과 술은 알코올 농도 10도인 와인과 20도인 강화와인,40도인 브랜디 등 모두 4가지. 장수 사과 특유의 진한 향과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사과술은 현재 상표등록을 추진 중이다.10억원을 들여 건립하고 있는 특산주 공장에서 하반기부터 본격 생산할 계획이다. 사과 추출물을 원료로 한 미용상품은 비누, 샴푸, 린스, 보디로션 등이다. 아토피 질환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과비누는 특허 출원을 마친 상태다. 이밖에 사과꽃이나 낙엽 등을 이용한 귀걸이, 넥타이핀, 목걸이, 열쇠고리 등 액세서리도 개발이 마무리됐다. 장수군은 액세서리 제작을 농촌 체험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거나 지역 내 농촌 여성들에게 맡겨 주민 소득화로 연결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이번에 개발된 제품들은 상품화하기 어려운 사과나 사과의 부산물을 원료로 이용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사과 소비 기반을 넓히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농가 소득을 높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장수군에서는 750ha의 고랭지 과수원에서 연간 1만여t의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추석 무렵 조기 출하되는 장수사과는 당도가 높고 과육이 단단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여성&남성] 오늘 밸런타인데이 ‘청춘은 즐거워’

    많은 여성들이 밸런타인데이만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초호화 초콜릿 선물세트는 남자 친구에게 떠안기기 민망할뿐더러 가격도 부담스럽다. 직접 만든 수제품(DIY) 초콜릿이 대안으로 떠올랐을 정도다. 초콜릿이 마땅치 않은 것은 선물을 받는 남성들도 마찬가지다.‘초콜릿 광’이 아닌 다음에야 조금 먹다 버리기 일쑤고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운 바구니 처리도 골치 아프다. 특별한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꿈꾸는 남과 여의 속내를 살짝 들여다봤다. ●내 마음을 콕 헤아려 사줬으면 결혼 6년차에 접어든 직장인 안두현(33)씨는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결혼 직전인 2001년 지금의 아내에게 초콜릿 선물을 받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빡빡한 형편에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 그동안 별다른 선물을 바라지도 않았다.”는 안씨는 “어린 애도 아니고 초콜릿 선물은 싫다. 나한테 정말 필요한 물건을 아내가 알아서 사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안씨가 바라는 선물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울트라모바일 개인용 컴퓨터(UMPC)나 일본 N사의 두뇌개발을 위한 휴대용 게임기다. 집에서 TV를 볼 때 관련 제품 광고가 나오면 “야∼ 저게 가격이 엄청 내렸대. 박 대리도 샀더라고…”라며 ‘오버’를 해보지만 아내의 반응은 아직 시큰둥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대학원생 강민성(23)씨도 초콜릿보다는 당장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선물을 선호하는 ‘실속파’다. 강씨는 “여자들이 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도 막상 받고 나면 시큰둥한 것처럼 초콜릿은 별로”라면서 “사랑하는 사람한테 주는 거니까 의미도 있어야 하지만 품 안에 항상 지니고 다닐 수 있고 손때가 탈 수 있는 물건이라면 더욱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무원 석정민(25)씨 역시 “여자 친구가 주는 선물이라면 아무거나 좋다.”면서도 “얼마 전 마음에 쏙 드는 클래식한 시계를 봐뒀는데 혹시나 하고 기대하고 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선물은 뭐니뭐니 해도 정성 값비싼 물건보다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면 무엇이라도 상관없다는 남성들도 여전히 많다. 공무원 김영민(25·가명)씨는 “특별한 날인데 돈으로 손쉽게 살 수 있는 선물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서 “몇 년 전 종이로 접은 장미꽃 다발을 받았는데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데다 그걸 만들려고 며칠 밤을 새웠을 여자 친구를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흐뭇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원 이원철(27)씨도 “지난해인가 여자 친구에게 종이로 만든 공작 인형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좋았다.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고 보아도 실증이 나지 않았다.”면서 올해도 특별한 선물을 기대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돈을 주고 산 물건이라도 조금만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면 효과는 두 배 이상이라는 게 남자들의 공통된 속마음이다. 펜이나 지포라이터 등에 특별한 사랑의 메시지를 새기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학원생 이동훈(28)씨는 지난해 맥가이버 칼에 이니셜과 함께 ‘영원히 사랑해.’란 문구가 새겨진 선물을 받고 감동받았다.“경제적으로 부담은 안 되면서도 조금이라도 신경을 쓴 흔적이 있는 선물에 감동받게 되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설명했다. ●밸런타인데이에는 그래도 초콜릿 밸런타인데이에는 무조건 초콜릿이 최고라는 원칙주의자 남성들도 있다. 특히 연애 경험이 별로 없거나 현재의 여자 친구와 사귄 기간이 짧을수록 초콜릿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회사원 김상욱(26)씨는 “밸런타인데이에는 무조건 초콜릿을 받고 싶다. 일년에 많은 것도 아니고 딱 한번인데 그 정도는 기분내 주는 차원에서 좋은 것 아닌가.”라면서 “‘나이 먹어서까지 장삿속에 휘둘리는 짓’ 혹은 ‘화이트데이 선물도 고민되는데 서로 안 주고 안 받자.’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건 너무 삭막해 보인다.”고 말했다. 연애 경험도 몇 번 없는 데다 무슨 기념일만 가까워지면 여자 친구와 헤어지는 징크스에 시달린다는 은행원 윤태영(31)씨는 “초콜릿 지겹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면서 “제대로 초콜릿 한번 받아본 적이 없어 올해만큼은 꼭 여자 친구가 사준 초콜릿을 먹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신세대 여성,‘다이(DIY·수공예) 초콜릿’이 대세 정작 선물을 준비하는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초콜릿이 1등 메뉴였다. 다만 실속없이 포장만 거창한 ‘공장 초콜릿’은 주고 싶지 않다는 게 알뜰한 신세대 여성들의 생각. 남자 친구와 사귄 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이수민(25·대학생)씨는 평소 안 하던 요리 장갑을 끼고 초코쿠키를 만드느라 지난주 말을 다 보냈다. 그는 “일단 정성이 많이 들어가니 감동할 것 같고, 요새 말이 많은 트랜스지방도 없으니 남친 뱃살 빼는 데도 일조할 것 같다.”면서 “요즘엔 그냥 포장돼 있는 초콜릿을 주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민망해진다.”고 말했다. 남자 친구와 사귄 지 4년째인 주영진(27·교사)씨도 “초콜릿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친구들 사이에 ‘DIY 초콜릿’이 인기가 많다.”면서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정성이 담긴 초콜릿만큼 애정을 표현하는 데 제격인 게 없는 것 같다.”고 확신했다. 밸런타인데이 선물에 일가견이 있는 주씨는 “좀더 특별한 선물을 찾는다면 초콜릿 가루를 이용한 비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살짝 귀띔했다. ●실속파 vs 정성파 초콜릿 외의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는 여성들은 정성이 담긴 선물로 사랑을 확인시켜 주고 싶다는 쪽과 실용적인 선물로 승부를 걸겠다는 편으로 갈렸다. 대학시절 미팅에서 남자 친구를 만나 올해로 9년째인 직장인 정미연(29)씨. 그가 준비하고 있는 선물은 손수 접은 종이 장미꽃 29송이다. 딱 8년 전 100송이를 접어서 줬던 때를 떠올리고 있다. “장미꽃을 100송이 접어서 들고 학교 앞 정문에서 기다렸어요. 이젠 그때처럼 밤새 100송이를 접고 있을 수는 없지만 작게나마 만들면 변하지 않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밸런타인데이가 별 것은 아니지만 1년 전,2년 전을 떠올리며 너무 소홀해졌다는 생각이 들면 섭섭하지 않겠냐.”면서 “나이가 들수록 선물 값만 비싸지고 정성은 점점 사라지는 게 가장 섭섭한 일”이라고 털어놨다. 장모(25·대학원생)씨의 생각은 정반대다.“상술에 놀아나느니 차라리 실용적으로 남자 친구가 나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을 고르는 게 낫죠. 평소에 스쿠버다이빙을 하는데, 남자 친구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스노클을 사줘서 같이 스노클링을 배우러 가는 게 선물이라면 선물이에요.” ●기억에 남기는 게 최고 톡톡 튀는 선물로 남자 친구가 절대 잊지 못하게 만든 여성도 있다. 대학생 안모(26)씨는 “남자 친구가 곧 외국으로 떠나기 때문에 잘 때 나를 생각하라고 미리 팬티를 선물했다.”면서 “해골이 그려져 있는 팬티를 선물했는데 남자 친구가 받고 나서 어이없어하면서도 재미있어 하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며 웃었다. 그는 “밸런타인데이를 꼭 상술이니 뭐니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느냐.”면서 “어떤 선물을 주건 자기들끼리 즐기면서 행복할 수 있으면 좋은 것 같다.”며 밸런타인데이 선물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임일영 서재희기자 argus@seoul.co.kr
  • [금융상품 백화점]

    ●외환은행 `2030 직장인 저축예금´외환은행은 직장인에게 다양한 서비스와 금리우대를 제공하는 ‘2030 직장인 저축예금’을 판매하고 있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으로 가입 후 6개월간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 수수료가 면제되고, 외환카드 신규 회원이 되면 첫해 연회비도 받지 않는다. 급여를 이체하면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와 외환은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영업시간 후 인출·이체 수수료도 면제된다. 주택청약예금, 주택청약부금, 비과세 상품 가입 때 연 0.1∼0.2%포인트,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때는 연 0.4%포인트까지 금리를 우대해 준다.또한 새내기 직장인의 결혼, 차량구입 등 지원을 위한 직장인 전용 무보증 신용대출인 ‘e-좋은 직장인 우대대출’도 판매한다. 대출대상은 6개월 이상 급여이체자로 급여이체 실적에 따라 최고 10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하다.   ●미래에셋자산관리 CMA미래에셋증권의 종합자산관리(CMA)에 가입하면 투자자는 보통예금처럼 돈을 365일 수시입출금하면서 최고 연 4.4%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유휴자금을 환매조건부채권(RP)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 계좌에서 펀드가입, 주식거래는 물론 각종 신탁상품까지 가능하다. 체크카드 기능도 추가돼 계좌 잔고 내에서 신용카드 가맹점을 이용해 물건을 살 수 있다. 체크카드 기능에 부가된 GS칼텍스 주유시 ℓ당 40원 적립, 놀이공원 40% 할인, 삼성화재 대중교통상해보험 무료가입 등의 혜택도 주어진다.출시기념으로 3월9일까지 새로 5만원 이상 입금한 CMA계좌를 개설하면서 CMA체크카드를 발급받는 고객에게 3단우산이나 비누세트 등 사은품을 증정하며 이벤트가 끝난 뒤에는 추첨을 통해 5만∼100만원의 황금돼지 기프트카드도 제공한다.   ●한국투자증권 `월드와이드 차이나-베트남펀드´중국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펀드이다. 아시아에서 최고의 성장가능성을 가진 국가에 집중투자하는 셈이다. 해외주식 투자부분 중 중국과 중국 관련 유가증권에 70%, 베트남 유가증권에 30% 수준으로 투자된다. 펀드 내에서 환헤지를 한다.중국투자는 세계적 인덱스 전문기관인 FTSE에서 제공하는 중국 관련 펀더멘털인덱스에 기초한 포트폴리오로 구성되며 중국 본토 A주식투자는 홍콩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펀드자산 20% 이내에서 투자한다. 베트남 투자의 경우 건설, 무역, 수출 관련 주 등 성장성이 높은 산업에 투자된다.90일 이내에 환매할 경우 이익금의 70%를 수수료로 내야 하며 총보수는 선취형의 경우 연 1.884%, 후취형의 경우 평균잔액의 연 2.774%이다.   ●기업은행 코리보연동예금 출시기업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KORIBOR(코리보)에 연동하여 3개월마다 예금이율이 변동되는 ‘IBK코리보연동예금’을 판매하고 있다.CD금리에 연동하는 변동금리 예금은 있었지만 코리보에 연동하는 변동금리 예금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상품은 최근 한국은행의 지준율 인상으로 시장금리가 계속적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시장금리에 연동하여 3개월마다 금리가 변동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시장금리가 높아질 때 고객들이 높은 예금이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터넷뱅킹으로 가입하면 0.2%포인트의 우대금리가 추가 적용된다. 만기 전 언제라도 최장 3년까지 만기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자동만기해지 혹은 자동만기연장도 선택 가능하다. 개인 및 법인 모두 신규 가입이 가능하다. 최소 가입금액은 500만원.   ●대한변액CI보험치명적질병(CI)에 대한 고액의 치료자금을 투자실적에 연동시킨 상품이다. 보험료 일부로 펀드를 만들어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운용실적에 따라 보험금을 더 주는 형태로 보험료 운용수익에 따라 보험금이 늘어난다.실적이 나빠도 기본 사망보험금은 보장, 안정성을 갖췄다. 가입 이후 80세 이전에 중대한 암, 뇌졸중 등의 진단을 받거나 장기이식수술 등 큰 수술을 받을 경우 사망보험금의 80%까지 미리 받아 치료자금이나 가족의 생활자금으로 쓸 수 있다.계약자는 가입시 채권형과 혼합형(주식투자비중 30% 이하) 중에서 고를 수 있고 시장상황에 따라서 펀드를 변경할 수 있다. 일반 CI보험보다 보험료가 5%가량 싼 것도 특징이며 비흡연 등 건강한 사람은 추가할인이 돼 매달 2만 5000건이 팔리는 인기상품이다.   ●국민은행 직장인우대종합통장 인기몰이국민은행이 지난해 1월부터 출시한 직장인우대종합통장이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급여이체와 공과금 자동이체, 적립식상품 자동이체, 카드결제 실적, 전자통장 중 1가지 이상을 거래하는 고객에게 자동화기기 시간 외 이용 수수료와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 폰뱅킹 이용 수수료 등을 월 5회 이내에서 면제한다. 또 인터넷뱅킹을 통해 예·적금을 신규로 만들 때 연 0.30%포인트,20∼30대 필수상품인 주택청약예금과 장기주택마련저축 계좌를 새로 만들 때 0.20%포인트의 금리우대를 제공한다.통장 가입자가 KB STAR카드를 신규, 교체 또는 추가 발급 받으면 1년간 기본연회비와 맞춤연회비(4가지) 1가지를 면제받는다. 환전시 수수료를 최대 30%까지 우대해 준다.
  • [설 선물 특집] LG생활건강 ‘생활용품세트’

    [설 선물 특집] LG생활건강 ‘생활용품세트’

    LG생활건강이 스페셜세트 9종, 종합선물세트 11종, 치약세트 5종, 비누세트 7종, 유통별 전용세트 15종 등 47종(9000∼13만 8000원)의 선물 세트를 내놓았다. 모두 생활용품이다.‘프리미엄N2호(13만 8000원)는 치약·비누·샴푸·보디제품 등 24개 제품으로 구성됐다. 신경을 써야 할 고객에게 줄 선물용으로 권할 만하다.‘실크 리페어7’은 정식출시 이전에 설 선물용으로 먼저 내놓은 제품이다. 샴푸와 린스 등 샤인 세트가 들어 있다.‘퓨전헬스세트(3만 7900원)’는 결혼한 형제나 자매에게 줄 선물용으로 좋다. 머리빠짐을 예방하는 리엔 한방 헤어로스컨트롤과 함께 이탈리아산 올리브기름과 포도씨기름이 들어 있다.
  • [설 선물 특집] 애경 ‘생활용품세트’

    [설 선물 특집] 애경 ‘생활용품세트’

    애경은 50여종의 저렴한 생활용품 선물 세트를 1만∼9만원대에 내놓았다. 가격대를 다양하게 구성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 가운데 애경 종합2호는 2만 8400원. 리앙뜨 샴푸(220g 1개), 리앙뜨 린스(210㎖ 1개), 샤워메이트 보디네이처(225g 1개),2080치약 4개, 샤워메이트 비누(100g 4개), 리앙뜨 비누(100g 2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2080치약(120g 3개)&블루칩비누(100g 3개) 세트(1만 4800원선), 덴탈클리닉 2080 치약(160g×5개) 세트(1만 7100원선)도 실속형이다. 애경 종합7호는 가격이 가장 비싸 9만 7500원선이다. 프레시스, 에이솔루션, 마리끌레르 등 인기 화장품 선물세트도 있다.
  • [Seoul in] 서대문구 바탕골 예술관 청소년 문화체험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 26일 지역 청소년 40명과 바탕골 예술관의 문화체험 탐방에 나선다. 한지 만들기, 비누공예 등을 직접 체험하고, 고가구·현대 미술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을 둘러본다. 구는 고유의 멋과 맛을 음미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 문화체험 탐방을 마련했다. 가정복지과 330-1286.
  • [녹색공간] 손 씻으셨어요?/박정임 KEI 책임연구원

    올 겨울 감기가 유난히 심하다. 필자도 최근 며칠 동안 감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연말에 우리 딸아이가 감기와 중이염에 걸렸는데 이게 나에게도 전염된 것 같았다. 한집에 살면서 수건을 함께 쓰고 밥을 함께 먹는 처지에 감기 바이러스가 나만 피해가는 요행을 바랄 수는 없었다. 지금은 상식이지만, 질병의 제1 원인이 병원체라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17세기 레벤후크가 현미경으로 세균을 관찰하면서부터 질병이 병원균 때문에 발생한다는 가설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19세기까지도 유럽의 대다수 교양인들은 질병은 ‘나쁜 공기’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병원체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다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병원균에 오염된 물을 마셔 보인 ‘간 큰’ 지식인도 있었다. 이들은 질병을 치료하려면 그 원인인 나쁜 공기를 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대포를 쏘거나 불을 질러 연기를 냈다. 연기가 공기 중 유해 병원체를 어느 정도 소독하는 작용도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지역의 전염병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병원체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을 때에도 인류는 이처럼 병원체를 제거함으로써 질병을 줄일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세기 영국의 위생개혁 운동이다.1848년 영국에 두 번째로 콜레라 창궐이 우려되자, 채드윅은 하수관로를 정비하여 오물을 멀리 떨어진 장소로 보내고 급수관를 설치하였다. 덕분에 콜레라뿐만 아니라 장티푸스나 여러 수인성 전염병도 격감되었다. 이러한 환경위생 개혁조치를 여러 나라에서 채택한 덕택에 인류의 평균 수명은 비약적으로 증가되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에 많은 인구가 전염병의 공포 없이 모여 살 수 있었다. 본격적인 도시산업화를 가능하게 한 역사적 사건으로 위생개혁 운동을 꼽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개인위생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이유가 하도 다양해서 무엇이 가장 큰 원인인지 알 수 없더라도 개인적 수준의 위생 관리로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씻기부터 시작하자. 손은 신체부위 중에서도 세균에 가장 많이 접촉하는 부위다. 감기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같은 바이러스는 물론 식중독균 등 각종 세균도 곧잘 손을 거쳐 사람 몸으로 들어간다. 전염성 질병의 약 70%는 손씻기를 통해 예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구체적인 경우를 예로 들어 손을 씻도록 홍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여름 ‘범국민 손씻기 운동본부’가 출범하여 손씻기 교육과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손씻기 운동본부에서 2005년 10월 실태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대부분의 국민이 손씻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전화설문에서도 응답대상자의 94%가 공공화장실 사용후 손을 씻는다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실제 관찰한 결과 63%에 불과했다고 한다. 남의 눈치를 보며 손을 씻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씻기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습관이 되지 않아서이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손씻기가 습관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하고 위생관념이 부족하기 때문에 손씻기는 이들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 딸아이에게 손씻기를 잘 하면 10번 걸릴 감기를 3번만 걸리게 된다고 가르쳤다. 씻어야 할지 씻지 않아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에는 무조건 씻으리라 이르고 있는데, 딸아이가 볼멘소리를 한다.“학교 화장실엔 찬물만 나오고 비누도 없고 수건도 없어요.” 우리 아이들의 평생 건강 습관을 길러줄 수 있도록 올해부터는 학교에서도 손을 제대로 씻을 여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주인 선발대회를 하는 나라에 어울리는 소망인지는 모르겠다. 박정임 KEI 책임연구원
  • [심상덕의 서울야화]“공중목욕탕 누가 맨처음 이용?”

    ‘맨 처음 공중목욕탕엔 누가 갔을까.’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철엔 아무래도 목욕탕에 자주 가게 되잖아요? 예전엔 목욕탕에 사람이 많을 경우 옷장 대신 광주리에다 옷을 벗어놓고 탕에 들어갔었거든요. 또 그 당시만 해도 수돗물 공급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까 온몸에 비누칠을 잔뜩 하고 난 다음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던, 그런 일도 있었던 거죠. 그리고 한때는 서울시내 목욕업자들이 “목욕탕에 공급되는 수도요금을 인하해 달라. 만일 수도요금을 인하하지 않으면 공동 파업을 하겠다.”는 주장을 펼 정도로 목욕탕업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었다고요. 어떻습니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공중목욕탕에 출입하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들을 한두 가지 손꼽으라면 어떤 얘기를 하시겠습니까. 전에는 초등학교 3·4학년 나이에도 사내 아이가 어머니를 따라 여탕에 목욕을 가도 별다른 말들이 없었던 겁니다. 지금처럼 체격조건이 좋지도 않았고, 그 나이가 되도록 여기가 남탕인지 여탕인지조차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거든요.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잖아요. 그러나 이 목욕탕과 관련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 하나. 목욕하고 나와 보니까 옷광주리에 넣어두었던 새로 입고 간 그 내복 대신 난생 처음 보는 너덜너덜 여기저기 다 꿰맨 다른 사람이 입던 낡은 내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얼마나 속상했었는데요. 그때. 근데 지금과 같은 형태의 목욕탕 말입니다. 우리 서울에서 가장 먼저 현대적인 목욕탕이 들어선 것은 약 100년 전인 1907년이지요. 종로 2가에 YMCA 건물이 들어섰을 때 바로 이 YMCA엔 그 당시 YMCA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큰 목욕탕이 마련돼 있었고 일주일에 두번 수요일과 토요일에 개방이 됐던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서울에 회원제가 아닌 지금과 같은 공중목욕탕이 처음 선보인 건 언제쯤부터였을까요? 약 80년 전인 1925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공중목욕탕이 처음 생긴 뒤 20년이 지나고 나서 광복을 맞던 해 1945년엔 서울시내 공중목욕탕이 48군데로 늘어났었고요. 근데 우리 서울에 목욕탕이 처음 생겼던 약 80년 전, 그 당시 서울시민들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별 망측한 일이 다 있네. 아니 남들 많은 앞에 가서 어떻게 옷을 훌훌 다 벗고, 알몸으로 목욕을 하겠다는 거야.” 그래요. 이미 세월이 많이 지난 얘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목욕탕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던 거죠. 그러나 지금은 서울시내의 목욕탕이 1500여군데. 광복을 맞은 지 약 60년 만에 10배 이상 늘어난 겁니다. 서울의 목욕탕이.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국제기구 주름잡는 한국인] 유엔 인권판무관실 우종길·난민판무관실 이수진씨

    [국제기구 주름잡는 한국인] 유엔 인권판무관실 우종길·난민판무관실 이수진씨

    |제네바 이종수특파원|국제기구의 도시 스위스 제네바. 이곳에는 바다를 닮은 레만 호(湖)의 넓은 품처럼 국제공무원으로 지구촌을 누비는 한국인들이 있다. 정부 파견 형식이 아니라 유엔기구 국제공무원으로 일하는 한국인은 어림잡아 30명. 세계보건기구·국제노동기구·세계무역기구 등 근무 공간도 다양하다. 그 중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 근무하는 우종길(36)씨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일하는 이수진(36)씨가 지난해 12월21일 만났다. “반갑습니다.”“이렇게 뵙네요.” 인권과 난민 현장이라면 지구촌 어디든지 날아가야 하는 두 사람인지라 2년째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이날 처음 대면했다. 인권담당관으로 8년, 난민 교육관 등으로 10년 동안 일한 두 사람은 그동안의 애환을 징검다리 삼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먼저 국제무대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오지 원주민의 인권이 나아질 때입니다. 특히 2001년 필리핀 원주민 실태 조사 때 만난 50대 아주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한 회사의 개발로 부족의 전통 생활양식과 권리가 파괴되고 있다고 호소하기 위해 200여㎞를 걸어서 왔더군요.”(우종길씨) “난민 캠프의 참상은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성은 겹고통으로 신음합니다.2004년 방글라데시의 소수민족 노힝가 난민 캠프에서 위생·교육 문제 등 그들의 ‘희망’을 찾아주기 위해 땀흘렸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이수진씨) 얼핏보면 화려한 국제공무원. 그러나 고충도 적지 않다. 우씨는 소탈한 성격답게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아무래도 부모님과 가족들을 자주 못본다는 게 힘들죠. 특히 부모님 생신에 못가면 불효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설·추석 때는 외롭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한국 음식, 특히 김치를 자주 못먹어 힘들죠(웃음).” 그러자 이씨가 ‘행복한 고민’이란 듯 ‘고생 보따리’를 풀어놓았다.“2∼4년 간격으로 보직과 근무지가 바뀝니다. 유랑 생활이죠. 게다가 난민 캠프 특성상 치안 불안·의료시설 미비 등에 시달립니다. 동료 중에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습격을 받아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총장의 선출로 한국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에는 어땠을까? 두 사람이 국제무대에서 본 한국은 어디쯤일까?“강경화 외교통상부 국제기구국장이 6일부터 OHCHR 부판무관으로 부임하는 것도 호재입니다. 그러나 이전엔 가끔 문젯거리로 등장했던 북한보다 (한국이)덜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기 분담금 11위에 걸맞게 많은 자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유엔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면 ‘자발적 부담금’을 늘려야 합니다.”(우) “유엔 전문·산하기구에 내는 자발적 부담금의 위력이 큽니다. 미국·노르웨이·프랑스 등은 고위 직급 인사에도 관여합니다. 또 정부의 지속적 관심도 필요합니다.”(이) 국제공무원이 되는 과정은 크게 네 가지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문’을 거쳤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우씨는 하버드대 법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다가 사우디아라비아 친구가 유엔사무총장실에서 근무하는 것을 보고 ‘역동성’을 느꼈다. 졸업하자마자 96년 유엔 사무국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군 제대후 99년부터 인권담당관으로 근무했다. 이씨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와 정치외교학과(대학원)를 졸업한 뒤 외교통상부에서 선발하는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1기생으로 뽑혔다.2년 동안 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일한 뒤 정식 직원이 됐다. 삶의 길목에서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이들이 국제공무원이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이씨가 먼저 “환상을 깨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국제공무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시작했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이란 것. 특시 이씨처럼 난민 캠프를 찾아 ‘노마드(유목민) 생활’을 하는 국제공무원에게는 웬만큼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견디기가 쉽지 않다. 우씨도 적극 공감했다.“영어·불어 등 유엔 공식언어 2개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유엔정신에 걸맞은 개인의 신념과 전문 지식입니다.” vielee@seoul.co.kr ■ “메일 답장·보고서 작성… 인권문제면 어디든 가죠” |제네바 이종수특파원|‘인권 문제라면 어디든 간다.’ 많은 국제공무원들이 성탄절 휴가를 떠난 지난해 12월20일 오후 6시. 어둠이 내린 제네바 파키스가(街) 52번지 파키스유엔고등판무관 건물 3층의 우종길씨 사무실을 찾았다. 퇴근 시간이 됐지만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창가로 보이는 레만호를 즐길 겨를도 없어 보였다. 최근 그의 관심은 ‘기업의 인권 책임’이다. “대기업의 해외진출이 늘어나면서 인권 비중이 커졌습니다. 삼성·포스코 등 한국 기업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해당 국가의 허가가 났다고 방심할 게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과의 대화·협력 등이 중요하지요. 세계적 기업은 이미 인권변호사를 고용해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씨의 하루는 이메일 검색으로 열린다. 아침 9시에 출근하면 밤새 지구촌 곳곳에서 날아온 100통 안팎의 이메일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인권 피해를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개인의 진정서는 특별보호관에 맡기고 큰 이슈만 정리한 뒤 답장을 합니다.”. 평균 15∼20통의 답장을 쓰고나면 오전이 후딱 지나간다. 동료들과 한식이나 피자로 점심을 때우고 사무실에 와서는 국제사면위원회나 유엔라이트리서치 등 비정부기구 보고서도 검색해야 한다. 또 상급자가 출장을 가면 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고등판무관이 해외사절단을 만날 경우 해당 국가의 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또 1년에 20∼30권의 브리핑 노트 작성도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해외에 파견 나갈 경우 어젠다 설정, 관련 단체 접촉, 행정 업무 등 노동 강도가 곱절로 늘어난다. 퇴근 후에는 체력관리를 위해 수영장을 찾는다.“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각국에서 온 국제공무원들과의 승진 경쟁에서 이기려면 체력이 강해야 하거든요.” 그의 꿈은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직까지 진급하는 것이다.“많은 경험을 살려 민간부문으로 옮기는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회의 약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어요”. vielee@seoul.co.kr ■ “난민캠프가 사무실… 유목민처럼 지구촌 누벼” |제네바 이종수특파원|‘지구촌 난민 캠프가 사무실’ 이수진씨는 지난해 12월21일 오전 9시 사무실에 도착했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서 엄마를 찾아온 유치원생 아들의 재롱을 뒤로한 채였다. 출근하자마자 난민 훈련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짰다. 물품구입 방법에서부터 재정·서무·계약 체결 등 그의 업무는 전방위에 걸쳐 있다. 또 1주일 단위로 업무 관련 책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를 위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파견 업무 매뉴얼을 작성한다. 그나마 ‘비수기’여서 나은 편이다. 교육관이라는 업무 특성상 난민 캠프 파견이 잦다. 이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8시부터 업무를 시작하는데요 그 날 일이 정리되지 않으면 휴일이 따로 없습니다.” 지난해에도 4개월 동안 두바이,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의 난민 캠프가 그의 직장이었다. 올해에는 아프리카 가나의 아카라, 케냐의 나이로비, 우간다 등이 그의 사무실로 변한다. 파견 업무는 준비과정부터 할 일이 많다. 현지 상황 파악, 관련 책자 준비, 교육 프로그램 작성 등을 하노라면 파김치가 되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다. 순환 근무라는 특수성으로 ‘유목민 생활’이 불가피하다.1999년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로 첫발을 오스트레일리아(2년)에서 내디딘 이후 태국(3년), 방글라데시(1년9개월) 등을 돌았다. 업무도 매번 바뀐다.‘필드 오피서’ 시절에는 우물 파기, 화장실 설치, 옷·비누 만들기 등 모든 일이 그의 몫이다. “가는 곳마다 문명과 동떨어진 곳입니다. 기온이 33도로 푹푹 찌는데도 선풍기 한 대 없어 땀을 흘리느라 잠을 설친 적도 있습니다.”. 사랑니 4개를 뽑은 지 이틀 만에 솔로몬 제도로 파견을 나가기도 했다. 당연히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난민고등판무관의 이런 고충 때문에 동료들 가운데 노처녀가 많고 이혼 사례도 많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그는 지난 10년을 밝게 채색한다.“올해 10년 근속상을 받았습니다.100% 만족할 수야 없겠지만 현재까지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친정 엄마와 남편의 도움이 컸어요” 꿈을 물었더니 “한가족이 모여 사는 겁니다.”라며 웃었다. vielee@seoul.co.kr
  • [생활의 지혜] 손에 묻은 기름때를 지우려면

    기름때가 손에 묻게 되었을 때에는 세제 등으로 씻어서는 잘 빠지지 않는다. 이때는 비누로 손을 씻은 다음 설탕을 손에 묻혀서 몇 번 비비면 기름때가 깨끗이 빠진다.
  • 푸석해진 피부는 어떡해

    ■ 푸석해진 피부는 어떡해 ㅠㅠ 술에 망가지는 것은 간뿐이 아니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연말 술자리로 피부는 금방 푸석푸석 까칠해진다. 술로 인한 피부트러블은 대부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지만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만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 피부숙취, 수분 섭취가 우선 과음한 다음날 얼굴이 푸석하고 각질이 일어나는 이유는 알코올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면서 체내 수분도 함께 배출되기 때문. 피부 수분이 빠져나가는 양은 비워지는 술잔에 비례한다. 술은 또 체내의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을 파괴시켜 피부 노화를 부추기고 혈액순환을 방해, 눈두덩이나 얼굴을 붓게 하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알코올은 피지 분비량을 늘리고, 숙면을 방해, 부신피질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게 해 여드름이나 뾰루지 등 피부트러블을 유발하기도 한다.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생기면 하루 2∼3회 세안으로 피부를 깨끗이 하고 피지가 모공에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러 피부트러블이 생기면 더러운 손으로 만지거나 짜기도 하는데 이 경우 여드름이 덧나거나 흉터가 남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음주 전후에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피부관리의 기본이다. 단, 탄산음료나 커피의 카페인은 피부 탈수를 촉진시키므로 피하는 게 좋다. 음주 후에는 얼굴을 깨끗이 씻은 후 수분이 많은 로션을 발라주고, 물을 평소의 2배가량 마셔주면 피부 보습과 트러블 예방에 효과적이다. 보습과 세정·진정효과가 뛰어난 우유를 발라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귀가후 얼음수건으로 얼굴 냉찜질 과음한 날은 귀가 즉시 냉장고에 넣어 둔 수건이나 녹차 티백, 얼음을 감싼 수건 등으로 얼굴을 냉찜질하고, 미지근한 물로 닦아내 피부를 안정시킨 뒤 눈 전용 에센스와 크림을 발라주면 된다. 취했다고 메이컵 상태로 잠들면 노폐물과 화장품 속 유분이 모공을 막아 각종 트러블의 원인이 된다. 아침에는 물을 충분히 마셔 염분을 배출시키고 몸을 가능한 많이 움직여 얼굴에 집중된 수분을 분산시켜야 한다. 음주로 모세혈관이 확장돼 홍조증이 나타날 경우 술자리를 피하고 충분히 쉬어주면 대부분 정상으로 회복된다.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계속되면 만성화되기 전에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흡연도 피부에 심각한 위협이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마다 체내에서 0.5㎎의 비타민C가 파괴된다. 이 때문에 피부는 거칠어져 생기를 잃게 된다. ■ 도움말:서동혜 아름다운나라 피부과 원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숙취피부를 위한 생활습관 ▲물을 자주 마시고, 과일을 많이 먹어 수분과 비타민을 충분히 보충한다. ▲기능성 화장품을 이용해 피부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한다. ▲강알칼리성 비누 대신 중성이나 유아용 비누를 사용한다. ▲목욕시 보습 오일을 물에 섞거나 목욕 후 3분 이내에 오일이나 로션, 크림 등을 발라준다. ▲가습기를 이용해 실내 습도를 40% 이상으로 유지한다. ▲실내 온도를 너무 높지 않게 하고, 옷을 가볍게 입어 체내 혈액순환을 도와준다. ▲피부에 자극을 주는 울이나 폴리에스테르 소재 대신 면 제품 의류를 입는다. ▲자기 직전에는 많은 땀을 흘리는 운동을 피한다.
  • 경기도내 집단식중독 노로바이러스가 원인

    최근 경기도내 각급학교에서 발생한 식중독 사고의 원인은 노로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수원, 부천, 광명, 구리지역 각급학교에서 발생한 식중독환자 149명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한 결과,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20일 밝혔다. 노로바이러스는 비누나 알코올로 씻어도 죽지 않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감염된 사람의 변이나 구토물·공기 등을 통해 전염되며 아직까지 정확한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도내에서는 이달들어 학교급식 과정에서 모두 493명의 식중독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생활의 지혜] 비누조각 가열해 새 비누 만들어

    작아서 못쓰게 된 비누조각을 모아 내열 용기에 넣고 물을 약간 넣어 불린 다음 전자레인지에서 가열하면 새로운 비누 하나가 만들어진다.
  • 수도권 ‘별난 온천’

    성큼 다가온 겨울,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싶은 계절이 돌아왔다. 경기도에는 당일 혹은 1박2일 동안 즐길 수 있는 특색 있는 온천들이 산재해 있다. 경기관광공사는 8일 포천, 이천, 광주, 파주, 화성, 양평 등 도내 곳곳에 숨어 있는 온천여행지를 추천했다.●이천·광주 지역 이천의 대표온천으로는 `이천스파플러스´가 꼽히는데 나트륨 함량이 많아 피부미용, 부인병, 신경통 등에 좋다. 또 새로 생긴 독일식 온천리조트 `테르메덴온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불한증막, 헬스센터, 테라피 시설과 더불어 옥상의 하늘정원에는 조깅트랙, 퍼팅그린, 주스바 등을 갖추고 있다. 야외 온천풀 슬라이드 옆 130여평 공간에는 3개의 치료하는 작은 물고기 닥터피시 `친친어탕´이 있다. 탕에 몸을 담그면 새끼손가락만 한 친친어들이 몰려들어 각질을 쪼아대 마사지효과가 있다. 광주 퇴촌에 있는 `스파그린랜드´도 닥터피시를 도입한 온천이다. 정통 독일식 바데풀을 실내와 노천에 도입했고 대체의학 수치료 개념으로 설계된 120여개의 분사구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나온다. 정종, 녹차, 와인, 허브, 초콜릿 등의 이벤트탕도 주목할 만하다.●양평·화성·포천지역 양평 개군면에 있는 `쉐르빌유황온천´은 야자수 정원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황 노천탕이 인기다. 유황온천은 신경통, 당뇨병, 외상 후유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습식사우나, 건식사우나, 히노키 스파사우나, 황토토굴찜질방도 이용해볼 만하다. 화성은 `월문온천´ `율암온천´ `발안식염온천´ 등이 손꼽힌다. 율암온천과 월문온천은 700m 암반에서 용출하는 천연온천수로 비누를 조금만 써도 거품이 잘 일어나고 피부탄력에도 좋다.포천은 `신북온천´ `산정호수 한화콘도온천´ `제일온천´ `일동사이판´`명덕레저´ `웨스턴밸리´ 등 온천밀집지역이다.●김포·파주 지역 김포 `약암홍염천´은 처음 솟아오르는 물은 투명한데 10분 정도 지나면 공기에 산화돼 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하 460m 깊이의 붉은 암반에서 용출해 온천수가 염분, 철분, 무기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피부병, 눈병, 신경통에 좋다. 파주지역에서는 일본약탕 주와주와탕을 운영하는 `아쿠아랜드´와 인삼탕을 운영하는 `오두산랜드´, 황토탕·머스소금탕·안마기혈탕 등을 갖춘 `금강산랜드´가 손꼽힌다.(031)259-6929.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Seoul in] ‘중랑천 탐조 교실’ 등 프로그램

    도봉구(구청장 최선길) 12월 환경교실에 참가할 학생들을 모집한다. 오는 12·13·20·27일에 각각 열리는 ‘중랑천 탐조교실’에는 3인 기준으로 10개 가족이 참가한다.14·21·28일 ‘대안에너지 교실’에는 초등학교 2∼3년생이 참가해 태양열 조리기 만들기 등을 한다. 오는 12∼19일 열리는 ‘환경문제 해결은 우리 집부터 시작해요’에는 주민 20명이 참가해 자연재료 미용비누 만들기 등을 한다. 참가 안내와 접수는 인터넷(www.ecoclass.or.kr)으로 한다. 산업환경과 2289-1370.
  • [깔깔깔]

    ●여자 몸값? 남자 몸값? 남자가 여자에게 장난을 걸었다. 남자:“여자의 몸 값은 얼마나 될까?” 여자:“글쎄.” 남자:“7100원밖에 안돼. 호박 한 개 2000원, 호빵 두 개 1000원, 건포도 2개 100원, 무 두 개 4000원이야.” 듣고 있던 여자가 즉각 남자의 몸값을 계산했다. 여자:“그럼 남자는 메추리알 두 개 100원, 풋고추 한 개 20원. 총 쓸 만한 건 120원어치밖에 안되네.”●목욕탕에서 5살 먹은 아들을 둔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목욕탕을 가게 되었다. 목욕탕 앞에서 엄마는 아들을 여탕으로 데리고 가려 했지만, 아이는 아빠를 따라 간다고 우겨서 결국 남탕으로 가게 되었다. 아이가 탕속을 왔다 갔다 하다가 비누를 발로 밟고 쭉 미끄러지면서 아빠의 거시기를 잡았다. 그래서 다행히 넘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이고, 오늘 엄마 따라 갔으면 갈뻔 했네.”
  • 정보화마을 특산품 한자리에 모인다

    전국에 있는 정보화마을의 특산품이 한자리에 모인다. 배추를 단돈 100원에 파는 등 우수 농산품의 폭탄 세일행사가 열린다. 푸짐한 경품추첨, 전통민속공연 등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도 제공된다. 정보화마을중앙협의회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경기도 고양시 한국국제전시관(KINTEX)에서 ‘정보화마을 Festa 2006’ 행사를 연다고 밝혔다. 정보화마을이란 행정자치부가 2001년부터 농어촌 지역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고 주민의 정보이용 생활화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인터넷 홈페이지(www.invil.org)를 통해 정보화마을의 농수산물을 판매하고 농어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도·농 교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305개가 조성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에서 정보화마을 홍보관이 마련돼 정보화마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국 109개 정보화마을에서는 특산물을 전시·판매한다.19개 마을에서 농촌체험관도 운영한다. 전국 9개 권역별로 구성된 정보화마을 부스에서는 사과, 배, 귤, 김치 등 맛과 품질이 뛰어난 450여개 품목의 국산 우수 농수산물을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도자기 만들기, 한지공예, 허브비누 만들기 등 다채로운 농촌체험도 하고 김장 담그기, 주먹밥 만들기, 대형 인절미 만들기 등의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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