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
7월1일자로 건강보험재정이 통합되었다.1998년부터 조직간의 통합으로 시작된 건강보험의 통합과정이 재정통합을 통하여 이제 완결 된 셈이다.지난 몇 개월간 일부 정치권의 재정통합 유예 시도로 건강보험이 또다시 정치논리의 소용돌이에 휘 말리나 하는 우려가 있었으나 다행히도 그 우려가 기우로 끝나게 되었다.
건강보험 재정 통합으로 수혜자인 국민이나 의료제공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보험료,급여 방식,급여 범위 등의 주요한 내용에는 변화가 하나도 없다.다만 회계처리상의 조그만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두 가지 중요한 통합의 의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은 30년이나 지속된 그 지겨웠던 조합(분리) 대 통합의 논쟁이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이다.건전한 논쟁은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건강보험 통합-조합 논쟁은 그 수준을 훨씬 넘어 거의 파괴적 국면에 이르고 있었다.
양극단의 투쟁적 상황에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건강보험에 의한 국민 건강권 보호는 유실되고 비난만이 난무하는 혼란적인 상황이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세계 최고 수준의 본인부담률,고급의료기술의 비급여,암·신장병 등 중병에 걸리면 평생 모은 재산을 날려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건강보험 및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욱 가중되어 왔으며,잘못된 건강보험제도의 짐을 모두 국민이 떠 안아야 했던 것이다.이제 이러한 우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둘째로,당장은 아니지만 의외로 많은 바람직한 제도상의 변화를 건강보험 재정통합을 기점으로 이루어 질수 있을 것 같다.소모적인 논쟁이 더 이상 없다면,그리고 정치권이 더 이상 정치 세몰이에 건강보험을 이용하지 않는다면,이제 건강보험의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동안 그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통합논쟁에 가리어 제대로 된 접근이 어려웠는데 이젠 가능하게 된 것이다.그래서 국민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하는 건강보험에서 탈피하여 국민건강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건강보험제도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건강보험은 그 지혜와 힘을 결집하여 중장기비전제시를 하면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무엇보다 국민 건강의 지킴이가 된다는 큰 원칙 속에서,구체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필요로 하는지를 파악하고,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재정적자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며,건강보험의 서비스 보장성을 어떻게 강화하고,국민의 의료이용에 어떠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그래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야 하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보험료인상과 같은 대 국민 요구도 가능한 것이다.외국제도의 보험료율이 얼마이니 우리 국민도 얼마를 부담해야 한다는 식의 단세포적 접근은 이제 통용될 수 없다는 것도 정책당국은 충분히 인지하여야 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의 정책기조나 제도적 장치가 변하지 않고 지속될 경우,팽창하는 재정소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며,중질환으로 인한 일반가구의 재정파탄은 계속될 것이고,국민의 보험제도에 대한 불신은 가중될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민에게 진솔되게 다가가는 방법이다.건강보험제도에서 의료계나 약계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과거처럼 그것이 국민건강보호 보다 우선시되어서는 국민을 설득하기가 어렵다.결국 우리네 보험제도는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필요로 하고 있다.전달체계 확립,지불보상제의 개편,진료지침의 도입 등이 필수적이며,그러한 변화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선진화는 앞당겨질 것이고 우리국민과 우리경제가 질병으로 인해 부담하는 사회적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양 봉 민 서울대교수 보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