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비극
    2026-04-15
    검색기록 지우기
  • 7개월
    2026-04-15
    검색기록 지우기
  • 금전
    2026-04-15
    검색기록 지우기
  • 포항시
    2026-04-15
    검색기록 지우기
  • 행진
    2026-04-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890
  • [뉴스 in] “간병 비극, 이제 국가가 나서야”

    [뉴스 in] “간병 비극, 이제 국가가 나서야”

    유교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선 식구가 아프면 가족이 돌보는 걸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게 부모이자 또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해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딘다. 하지만 빠른 고령화 속도와 함께 전통적 가족 형태가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의 간병은 더는 가족 구성원의 몫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증가 추세인 간병살인의 숫자가 우울한 방증이다. 비극은 국가가 간병 부담을 가정에만 지우면서 발생한 측면이 크다. 물론 정부도 점점 책임을 인식하고 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9월에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간병인들은 여전히 앞이 캄캄하다. 거창한 구호로 포장됐다가 흐지부지된 정책을 수도 없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환자뿐만 아니라 간병하는 가족에게도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해야 한다. 사회복지망을 손질하고, 그물코를 더 촘촘하게 조여야 한다. 이제 국가가 침묵을 깰 때다.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규방에 갇혔지만… ‘신선의 재주’로 사대부 남성들을 휘젓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규방에 갇혔지만… ‘신선의 재주’로 사대부 남성들을 휘젓다

    #신선의 재주라고 기려지던 그녀 망국의 치욕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은 우리나라 한시를 통독하고 난 소회를 ‘우리 조선 제가의 시를 읽다’(讀國朝諸家詩)라는 시로 갈무리한 바 있다. 김종직부터 김창흡에 이르는 열네 명을 다룬다. 이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유일한 여성 허난설헌인데, 황현은 이렇게 평가했다. 세 그루의 보배 나무를 둔 초당(허엽)의 집안 제일가는 신선의 재주로는 경번(허난설헌)이었네. 티끌 세상에 오래 머무르지 못할 줄 알았음인가 처량하게 달빛 아래 서리가 연꽃에 내려앉았네. 세 그루 나무는 허엽의 아들 허성, 허봉, 허균을 가리킨다. 이들 부자는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명류(名流)였다. 여기에 허난설헌을 더해 ‘허씨오문장가’(許氏五文章家)라 한다. 하지만 황현은 그녀를 신선에 버금갈 만한 재주를 지닌, 그야말로 ‘최고’로 꼽았다. 황현만이 아니다. 심수경도 “허봉과 허균도 시로 이름을 날렸지만, 여동생 허씨는 더욱 뛰어났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신선의 재주를 지녔다고 기려지던 허난설헌은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황현도 그녀의 요절을 ‘서리 맞아 떨어진 연꽃’에 비유하며 안타까워한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허난설헌은 어느 봄날, 신선이 살고 있다는 광상산의 꿈을 꾼다. 꿈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생생했다. 꿈속에서 지은 시도 생생해 기록해 두었다. 마지막은 이러하다.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달빛 아래 찬 서리에 붉게 떨어졌구나. 동생 허균은 여기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누이는 기축년(1589년) 봄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시에서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졌다고 했는데, 실제 징험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죽음을 4년 전에 이미 예감했던 것이다. 그는 정말 신선이었던 걸까. #규방에서 그 너머를 꿈꾼 그녀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의 이름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이다. ‘난설헌’은 그녀의 호다. 서경덕의 문인이자 동인의 영수로 이름 높던 허엽의 딸로 태어났다. 외조부 김광철은 전라도 관찰사까지 역임했다. 남편 김성립은 안동 김씨 명문가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했다. 명문가문에 둘러싸여 생장했으니, 그녀의 삶은 유복했을 법하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용납되지 못했고, 부부간 금슬도 그리 좋지 않았다. 게다가 슬하 1남 1녀 모두 어린 나이에 잃어, 후사조차 없이 죽어 갔다. 짧고 강렬한 삶, 그것은 ‘재인박명’(才人薄命)이란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실제로 그녀가 남긴 시편은 부자유한 시대를 살아간 한 여성이 감내하고 소망하던 정감으로 가득하다. 규방에 갇혀 지내야 했던 여인의 원망을 절절하게 그려내기도 하고, 천상에서 노닐고 싶은 욕망을 환상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세속 사람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한 ‘유선시’(遊仙詩)는 그녀의 특장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신선이란 남성의 오랜 로망이었는데, 여성 허난설헌은 감히 그 세계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녀의 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대부 남성의 전유물인 한시를 가지고 시선(詩仙) 이백까지 넘볼 정도였다. 그녀는 ‘채련곡’(採蓮曲)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가을이라 긴 호수엔 푸른 옥 흐르는 듯 연꽃 깊숙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 두고 물 건너의 임을 보고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 부끄러웠네. 연밥을 따던 젊은 여인이 마음에 두고 있던 사내를 보고 연밥을 던지며 속마음을 표현했다가 다른 사람 눈에 띄어 수줍어하는 장면이 절묘하다. 하지만 이백의 ‘채련곡’은 연꽃 사이에서 연밥을 따고 있는 아리따운 처녀를 훔쳐보며 희희덕거리던 사내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사대부 남성의 관음증이 농밀하게 넘쳐났다. 그에 반해 허난설헌은 여성을 애정 표현의 주체로 당당하게 내세운다. 남성의 한시를 활용해 남성적 관점을 여성의 관점으로 뒤집어 놓은 것이다. 당나라 시인 이익의 ‘강남곡’(江南曲)을 차용해 시도하고 있는 전복 또한 흥미롭다. 남들은 강남땅 좋다 하지만 내 보기엔 강남땅 시름겹기만. 해마다 모래톱 포구에 서서 애끊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배만 바라보네. 본래 이익은 돌아올 기약 없는 장사꾼보다 밀물·썰물처럼 들고 나는 것이 분명한 뱃사공에게 시집가는 게 좋을 뻔했다는 여인의 심경을 노래했다. 하지만 허난설헌의 ‘강남곡’은 다르다. 남자들은 놀기 좋은 곳으로 강남을 꼽지만, 여성에게 그곳은 기약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수심의 장소일 뿐이다. 탕자들이 실컷 놀다 가버리고 마는 강남이란 공간 자체의 성격을 전복해버린 것이다. 허난설헌은 그런 시각을 ‘남’(人)과 ‘나’(我)로 명확하게 구분 짓는다. 사대부 남성의 한시를 가지고 이렇듯 규방 너머에 그녀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갔다.#사대부 남성과 어깨를 겨루었던 그녀 하지만 사대부 남성이 구축해 온 사회적 규범과 문학적 전통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출중한 재주를 갖췄더라도 한 여성이 완벽하게 넘어서기에는 너무 강고했던 것이다. 실제로 난설헌시집을 읽다 보면, 당시(唐詩)를 배워 가던 습작의 흔적을 종종 만나게 된다. 때문에 숱한 표절 시비에 휘둘렸다. “두세 편을 제외하고 모두 위작이다”(이수광)거나 “남동생 허균이 중국시를 표절해 끼워 넣었다”(신흠)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이수광은 순천부사로 있으면서 ‘강남곡’을 지었다. 순천이 ‘소강남’으로 일컬어져 왔던 까닭이다. 남들은 강남을 낙원이라 하지만 나는야 강남을 악지라 말한다오. 첩첩 파도는 산보다 높게 일어나고 사나운 바람 사시사철 몰아친다오. 모두 순천을 낙원으로 일컫고 있지만 직접 보니 그렇지 않다는 반전은 허난설헌의 그것과 흡사하다. 허난설헌의 ‘강남곡’에서 얻은 착상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격조는 한참 떨어진다. 허난설헌의 작품을 표절이라고 비난한 신흠도 마찬가지였다. “규수 허씨의 ‘사시사’가 세상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허난설헌의 ‘사시사’에 화답하는 시를 지었다. 비난하지만 비난되지 않던 허난설헌의 시적 성취를 보여 주는 사례다. 몸은 비록 밀폐된 규방에 갇혀 있었을지 몰라도 그녀의 시 정신은 그를 훌쩍 뛰어넘어 천상과 같은 상상의 공간만이 아니라 사대부 남성의 현실 공간까지 휘젓고 다녔던 방증이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글로벌 인사이트] 살인적 집값 상승에… 맥도날드·차에서 잠드는 ‘억대 연봉 난민’

    [글로벌 인사이트] 살인적 집값 상승에… 맥도날드·차에서 잠드는 ‘억대 연봉 난민’

    “집을 살 수 없다고? ‘지구 종말론’을 탓하라.”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최근 이런 제목의 칼럼으로 선진국 가운데 처음 외국인의 주택 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한 뉴질랜드 정부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냈다. 살인적인 집값 상승에 거리로 내몰리는 국민을 위해 다소 극단적일지라도 뉴질랜드 정부가 자구책을 내놨다는 평가다.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뉴질랜드 전체 인구 450만여명의 1%에 해당하는 약 4만명이 홈리스(노숙자)로 추산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2% 내외)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FT는 뉴질랜드의 집값이 지난 10년여 새 57% 상승했으며, 특히 오클랜드는 상승폭이 90%에 달했다고 집계했다. 국경을 초월한 부동산 투기가 과열되면서 정작 국민들은 자동차, 텐트, 창고, 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됐다. 특히 뉴질랜드는 전 세계 부자들에게 핵전쟁, 생물학전, 상위 1% 부자를 향한 혁명 등으로 인한 이른바 ‘둠스데이’(지구 종말의 날)를 대비한 피난처로 여겨지면서 집값이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참모이자 인터넷 결제 서비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이 2011년 비밀리에 뉴질랜드 시민권을 취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외국 투기자본이 집값을 끌어올려 젊은 키위(뉴질랜드인)들이 집을 살 수 없게 됐다”며 외국인 주택 매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한 한편, 노숙자 주거시설을 지을 목적으로 1억 뉴질랜드 달러(약 756억원)를 투입했다. ● 실리콘밸리 일자리 29%↑… 주택은 4% 늘어 살인적인 집값 상승에 ‘주거 적신호’가 켜진 나라는 뉴질랜드만이 아니다. 10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올해 1분기 또는 지난해 4분기 기준 ‘글로벌 실질 주택가격 지수’는 160.1로 200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직전 정점을 찍었던 2008년 1분기의 159.0을 추월했다. 국가별로 보면 63개국 가운데 48개국(76%)에서 최근 1년간 실질 주택가격이 오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워싱턴주 시애틀, 뉴욕의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 중화권에서는 홍콩과 중국 선전, 상하이 등 역시 대도시를 중심으로 집값이 치솟고 있다. 영국 런던, 캐나다 밴쿠버 등에서도 투기자본에 의한 집값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억대 연봉을 받고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차에서 노숙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미 연방정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에서 4인 가족 기준 소득 11만 7400달러(약 1억 3000만원) 이하를 저소득층으로 분류한다. 막대한 주거비 부담 때문이다. 치솟는 수요에 비해 경직된 주택 공급이 비극을 불렀다. 컨설팅사 맥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 일대에는 주민 1000명이 유입될 때 신규 주택 공급은 325가구에 불과했다. 반면 1973년부터 2010년까지 27년간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의 실질 소득은 2배로 증가했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도시의 풍경은 별로 변한 것 없이 갈수록 퇴락해 가는데 집값만 미친 듯이 오르는 상황이다. 292개 회원사를 둔 조직인 실리콘밸리리더십그룹(SVLG)의 칼 가디노 회장은 “지금의 주택·교통난이 지속한다면 얼마 안 있어 ‘실리콘밸리 엑소더스’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SVLG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 동안 정보기술(IT) 기업의 집중으로 실리콘밸리 지역의 일자리는 29%나 증가했지만 이들이 머물 주택 공급은 겨우 4%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아마존의 도시’이자 ‘스타벅스의 고향’으로 불리는 시애틀은 지난 4년간 뉴욕 집값을 뛰어넘었다. 시애틀 시의회는 노숙자 복지 기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5월 인두세 부과 법안을 꺼냈으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이 이에 맞서 도심에 짓고 있던 17층짜리 오피스빌딩 건설 계획을 중단하는 등 역풍을 맞아 백지화됐다. 이 법안은 영업이익 2000만 달러가 넘는 기업에 직원 1명당 275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였다. 시애틀에서만 4만 5000여명을 고용해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아마존이 타깃이었다. ●‘맥난민’ 5년새 6배 급증… 57%가 직장인 중국 광둥성 선전시도 비슷한 요인으로 신음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흔한 시골 중 한 곳이던 선전은 덩샤오핑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화웨이, 인터넷서비스 전문업체인 텐센트, 배터리·전기차 제조업체인 BYD 등이 들어서 있다. 기업의 성장과 함께 인구가 집중되면서 임대료가 치솟았다. 글로벌 부동산시장 분석업체 넘베오에 따르면 2018년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초인플레이션을 겪는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를 제외하면 세계 1위는 홍콩이고 베이징이 2위, 상하이가 3위이며 선전은 그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집값 폭등으로 새로운 풍속이 생겨났다. 홍콩에서는 집 대신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을 일컬어 ‘맥난민’이라 부른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국제청년회의소(JCI)가 지난 6~7월 홍콩 시내에 산재한 110개 맥도날드 매장을 조사한 결과 맥난민의 수는 334명에 달해 2013년에 비해 6배로 급증했다고 조명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 57%가 멀쩡한 직업을 가진 직장인이라는 점이다. 천문학적인 집값 부담이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홍콩 중산층 아파트 가격은 평(3.3㎡)당 1억원을 넘어서 내 집 마련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영국 런던 리젠트 운하에 정박된 보트에서는 일명 ‘보트족’이 모여 산다. 폭등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주거용 선박에서 수상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런던의 주택 평균 거래가는 9억원대인데 비해 보트는 3000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 보트에서 생활하는 영국인은 3만명에 이른다. 집값은 지난해 영국 노동자들이 평균적으로 벌 수 있는 연간 소득의 8배로 폭등했다. 이는 영국에서 집값과 연소득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7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집값은 1997년부터 2016년까지 259%나 폭등했다. 이 기간 연소득은 68% 오르는 데 그쳤다. 영국 왕립경제학회는 “외국인의 투자가 없었다면 2014년 영국 평균 집값은 실제보다 19% 낮았을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내기도 했다. ●호주·홍콩, 빈집에 세금 부과 추진 전 세계가 집값 폭등으로 신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갈 곳 잃은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에 몰리고 있는 탓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금리를 낮추고 역사상 유례없는 돈 풀기에 나섰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기준 금리를 0.25%까지 낮춰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을 대폭 늘렸고 민간이 가진 미 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당시 시중에 풀린 수조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액수의 유동자금이 투자처를 찾던 끝에 각국의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현상이 일부 도시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오를 만한 곳에만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른 각국의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의 주택 구입 금지 법안을 의결한 뉴질랜드 의회를 비롯해 호주는 외국인이 주택을 사들인 경우 6개월 이상 빈집으로 두면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홍콩 정부도 ‘빈집세’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주택 개발업자가 분양한 아파트가 1년 이상 팔리지 않고 빈집으로 남아 있으면 임대료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매긴다는 방침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늙은 아내 살해한 남편도 치매”…법의 관용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늙은 아내 살해한 남편도 치매”…법의 관용

    ⑥ 가족이 말하는 ‘그’ 정오성씨 사례로 본 ‘처벌불원’ 판결문 “형량을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은 치매에 걸린 늙은 아내를 둔기로 내리쳐 살해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것입니다. 하지만 수십년간 동고동락한 배우자가 치매로 허물어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은 직접 겪어 보지 않곤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사건처럼 간병인 본인 역시 고령에 치매를 앓는 상황에선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한 상태에 다다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지난해 4월 인천지법 제15형사부 법정. 재판장 허준서 부장판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낭독했다. 이날 선고가 이색적이었던 건 총 8장의 판결문 중 6장이 양형(형량을 정하는 일) 이유로 채워진 것이다. ‘범죄 사실-증거 요지-법령 적용-양형 이유’ 순으로 구성되는 판결문에서 통상 양형은 짧게는 한 문단, 길어야 1장 내외다. 재판부가 특별히 양형에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은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피고인 정오성(85·가명)씨가 처한 암울했던 현실과 아비를 용서해 달라는 자녀들의 호소를 최대한 반영하려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씨는 지난해 1월 인천 자신의 집에서 말다툼하다 순간적으로 격분해 아내(85)를 살해했다. 아내는 5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했고, 정씨가 사실상 혼자 간병했다. 원래는 정씨 자녀 9남매 중 막내인 아들이 이들을 부양했다. 그러나 2012년 막내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노부부만 살게 됐다. 아내가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 것도 막내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녀들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내처럼 심하진 않지만 정씨도 치매를 앓고 있었다. “어머니를 이미 끔찍한 사고로 잃었는데, 아픈 아버지마저 감옥에서 돌아가시게 하는 비극을 겪지 않게 해주십시오. 자식들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병든 아버지가 간병 과정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이런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정도로 심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식들 모두 죄책감에 참담할 뿐입니다.” 정씨의 자녀들은 눈물로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 사건의 경우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권고하는 형량(양형 기준)은 징역 5~8년이다. 살인 동기에 따라 5가지로 구분되는 살인죄 중 제1유형 ‘참작동기살인-가중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참작동기살인’은 특별히 참작할 동기가 있는 살인으로, 살인죄 중에서도 가장 형량이 가볍다. 다만 숨진 아내가 범행에 저항할 수 없는 ‘취약한’ 피해자였고, 범행 수법이 잔혹했다는 점은 가중 요인으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양형 기준보다 크게 낮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은 고령화사회 진입과 가족해체 등에 따른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으로 비극적인 사태가 개인의 반사회적 성향이나 악한 마음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가족이 서로 상처를 보듬고, 어머니를 비명에 떠나보낸 슬픔과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도록, 아버지를 가족의 품에 돌려보내는 것도 법이 허용하는 선처와 관용”이라고 판시했다. 취재진이 지난 7월 이씨의 집을 찾아갔을 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웃들은 “6개월 전 자녀들이 이씨를 모셔 갔다”고 했다. 자녀들이 재판부와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서울신문이 분석한 ‘간병살인’(미수 포함) 판결문 108건 중 50건(46.3%)은 이처럼 남은 가족들이 선처를 호소해 형량 감경(특별양형인자) 요인이 됐다. 선처를 호소한 50건 중 20건(40%)은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2016년 한 해 동안 선고가 난 살인사건 727건(1심 기준) 중 집행유예 비율이 20.2%(147건)인 걸 감안하면 2배가량 높다. 가족의 손에 의해 숨이 끊어지는 순간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배신감, 분노, 허탈함, 슬픔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온 이들은 이런 감정을 잊고 가해자를 용서한 경우가 많다. “갈 때 안 됐나. 빨리 가라. 몇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가라. 여러 사람 피해 끼치지 말고….” 지난해 10월 울산의 한 원룸. 김상철(23·가명)씨는 화장실 천장에 밧줄을 건 뒤 아버지(52)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다. 이날 아들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요양시설에 있던 아버지가 소란을 피우다 쫓겨나 집으로 왔기 때문이다. 당뇨를 앓는 아버지는 한쪽 발목을 절단하는 등 거동이 불편했다. 젊은 시절 돈도 벌지 않고 가정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였지만, 김씨는 힘이 닿는 데까지 돌보고 요양시설로 모셨었다. 그런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김씨는 밧줄로 직접 아버지 목을 졸랐다. 한 10초 정도 당겼을까. 아버지가 켁켁거리며 발버둥치자 김씨도 이성이 돌아왔다. 손에 힘을 풀었고, 다행히 아버지는 병원에서 회복했다. 김씨는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씨가 실형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친척은 물론 아버지까지 선처를 호소해서다. “나쁜 애가 아닙니다. 제가 술에 절어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리지 못했습니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와중에도 학업에 열중해 대학에 진학한 애입니다. 대학도 장학금과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다니고 있어요.” 김씨도 아버지를 다시 요양시설에 모시고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하는 등 깊이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와서 그 이야기를 물어보는 이유가 뭔데? 우리 시동생… 억울하게 죽었어.” 경기도 연천에 사는 김순래(80·여·가명)씨는 7년 전 일에 대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30년 넘게 같은 마을에 살던 동서 이연순(당시 72·여·가명)씨가 치매에 걸린 남편(76·김씨 시동생)을 살해한 사건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 했다. 처음에 김씨는 “자기도 사람이면 후회 많이 했겠지. 그래서 감옥 갔잖아. 하지만 가족들은 쉽게 용서가 안 돼”라며 이씨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1시간가량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서히 감정의 변화가 엿보였다. “사실 힘들었어…. 남편 증세가 갑자기 나빠졌거든. 뜬금없이 벽을 보며 절을 하지 않나, 사람들이 독약을 뿌려 자기를 죽인다고도 하지 않나.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이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았지.” 이씨의 남편은 원래 요양시설에 있었지만, 기저귀를 찢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해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이씨도 고령인 데다 당뇨와 우울증 등 지병을 앓고 있었다. 사건 전날 밤 남편은 이상행동을 말리는 이씨에게 손찌검을 했고, 온몸에 이불을 감은 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다음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술을 마시던 이씨는 자고 있던 남편을 둔기로 내리쳤다. “이씨가 젊은 시절 음식 솜씨도 좋고 상냥했어. 우리 시어머니로부터 항상 ‘며느리 중 네가 최고’라는 칭찬을 받았지. 말년에 이런 일을 벌일지는 꿈에도 몰랐어. 내 남편은 5년 전쯤 먼저 갔어. 사실 남편이 안 가고 치매에 걸렸다면 나도 버텼을까 싶기는 해. 한순간 욱한 감정만 참았다면 그렇게 감옥 안 갔을 건데….” 이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국민참여재판을 받았고 자녀들이 선처를 호소했지만 7명의 배심원 모두 실형을 결정했다. 이씨는 형기가 1년가량 남은 지난해 건강이 악화돼 가석방됐다. 조카가 이씨를 강원도로 모시고 갔다고 한다. 이씨 자녀들은 사건 이후 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않았다. 큰어머니인 김씨와도 연락을 끊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요양병원 입소 3주 만에… 걷는 법을 잊은 엄니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요양병원 입소 3주 만에… 걷는 법을 잊은 엄니

    요양기관 실태와 문제점정진수(62·가명)씨는 3년 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누나들과 실랑이가 벌어진 가운데 치매인 어머니(98)는 경기도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했다. 독신인 정씨는 평생 어머니를 모셨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심장 수술을 두 차례나 받고 체력적 한계를 느끼자 4명의 누나에게 “돌아가며 돌보자”고 제한했다. 하지만 누나들이 선택한 건 요양병원이었다. 정씨가 반대했지만 밀어붙였다.“갑자기 요양병원 직원 8명이 들이닥쳐 어머니를 강제로 데려갔어요. 울화가 치밀어서 소리쳤죠. ‘그래 할 테면 해 봐라. 엄니 꼴이 어떻게 되는지…’.”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집에선 잘 돌아다녔던 어머니가 입소 3주 만에 걷는 법을 잊어버렸다. 왼쪽 다리가 퉁퉁 부었다. 운동 없이 앉아만 있어 혈액 순환이 되지 않는 심부정맥혈전증 탓이었다. “어머닌 이제 휠체어도 못 타요. 옛날 폴더 폰처럼 앉았다가 눕는 게 운동의 전붑니다.” 정씨는 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누나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할 수 있는 건 일주일에 한 번씩 음식을 싸들고 택시와 버스를 갈아타며 문병 가는 것뿐이다. 병실에 배정된 조선족 간병인은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정씨가 “어머니가 왜 이리 야위었어요”라고 하면 간병인은 “나이 먹고 살 쪄서 좋을 것 없어요”라고 쏘아붙인다. 간병인의 눈치를 보던 어머니는 정씨만 보면 집에 데려가 달라고 울음을 터뜨린다.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참습니다. 저 없을 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750만명 ● 65세 이상 인구 수 우리나라는 지난 6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750만명을 넘어서는 등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은 가정의 노인 부양 부담을 낮춰 주는 대안이다. 나아가 ‘간병살인’ 등 비극을 막는 해법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대다수 기관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장기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흔히 요양원으로 불리는 노인요양시설과 요양병원이다. 돌봄 서비스가 주기능인 요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원래 만성 질환자나 회복기 환자들이 가는 병원이지만, 가족 구성원 내에서 노인 환자를 직접 돌보기 어려워지면서 요양원의 대체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입소 자격과 시설, 비용 면에서 차이가 있다. 요양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장기요양 1~2등급을 받은 노인들에 한해 입소할 수 있다. 비용(본인 부담금)은 장기요양급여의 20%로 1등급은 1일 1만 3030원, 2등급은 1만 2090원이다. 식비는 별도다.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며 노인들의 거동 등 일상생활을 돕는다. 2% ● 국가·지자체 운영 요양원 비율 문제는 질 좋은 시설이나 병원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전국 3300여개의 요양원은 16만명의 정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지만 질은 담보되지 않는다. 소독과 위생 관리만 잘해도 발생하지 않는 옴(전염병)이 요양시설에서 잇따라 발생하는가 하면, 요양병원에서 낙상 우려가 있는 환자의 관리를 용이하게 하려고 손발을 침대에 묶어 놓았다가 화재 때 대피하지 못하고 화를 입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요양원은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곳인데 전국 108곳(공동생활가정 포함)으로 2.0%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이용자가 몰리는 곳만 몰리고, 입소자가 15명 안팎의 영세한 곳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서울요양원의 경우 전체 수용 인원이 150명인데, 현재 접수 대기자만 1080명에 이른다. 대부분의 요양시설은 개인(72.4%)이나 법인(25.5%)이 운영한다. 초기에 시설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느슨한 규정을 적용한 탓에 모텔이 요양시설로 업종 변경해 운영되는 등 질 낮은 시설이 양산됐다. 요양병원도 일반 병원보다 느슨한 규정으로 우후죽순 들어서다 보니 시설 편차가 크다. 1등급 병원은 전국에 202개 있는데, 지역별로 편차가 크게 나타났다. 1등급 요양병원은 서울(31개)과 경기(45개), 부산(23개) 등 주로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있는 반면 제주에는 1곳, 강원도에는 한 곳도 없었다. 최하위 5등급 병원은 서울이 4곳에 불과했으나 강원도는 7곳이나 됐다. 서제희 보건사회연구원 미래질병대응연구센터장은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국민건강보험으로 이분화돼 있는 의료비 지불 방식을 하나로 묶어 노령 환자가 상태에 따라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유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늙은 아내 살해한 남편도 치매”…법의 관용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늙은 아내 살해한 남편도 치매”…법의 관용

    정오성씨 사례로 본 ‘처벌불원’ 판결문 “형량을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은 치매에 걸린 늙은 아내를 둔기로 내리쳐 살해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것입니다. 하지만 수십년간 동고동락한 배우자가 치매로 허물어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은 직접 겪어 보지 않곤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사건처럼 간병인 본인 역시 고령에 치매를 앓는 상황에선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한 상태에 다다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지난해 4월 인천지법 제15형사부 법정. 재판장 허준서 부장판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낭독했다. 이날 선고가 이색적이었던 건 총 8장의 판결문 중 6장이 양형(형량을 정하는 일) 이유로 채워진 것이다. ‘범죄 사실-증거 요지-법령 적용-양형 이유’ 순으로 구성되는 판결문에서 통상 양형은 짧게는 한 문단, 길어야 1장 내외다. 재판부가 특별히 양형에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은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피고인 정오성(85·가명)씨가 처한 암울했던 현실과 아비를 용서해 달라는 자녀들의 호소를 최대한 반영하려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씨는 지난해 1월 인천 자신의 집에서 말다툼하다 순간적으로 격분해 아내(85)를 살해했다. 아내는 5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했고, 정씨가 사실상 혼자 간병했다. 원래는 정씨 자녀 9남매 중 막내인 아들이 이들을 부양했다. 그러나 2012년 막내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노부부만 살게 됐다. 아내가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 것도 막내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녀들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내처럼 심하진 않지만 정씨도 치매를 앓고 있었다. “어머니를 이미 끔찍한 사고로 잃었는데, 아픈 아버지마저 감옥에서 돌아가시게 하는 비극을 겪지 않게 해주십시오. 자식들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병든 아버지가 간병 과정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이런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정도로 심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식들 모두 죄책감에 참담할 뿐입니다.” 정씨의 자녀들은 눈물로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 사건의 경우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권고하는 형량(양형 기준)은 징역 5~8년이다. 살인 동기에 따라 5가지로 구분되는 살인죄 중 제1유형 ‘참작동기살인-가중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참작동기살인’은 특별히 참작할 동기가 있는 살인으로, 살인죄 중에서도 가장 형량이 가볍다. 다만 숨진 아내가 범행에 저항할 수 없는 ‘취약한’ 피해자였고, 범행 수법이 잔혹했다는 점은 가중 요인으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양형 기준보다 크게 낮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은 고령화사회 진입과 가족해체 등에 따른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으로 비극적인 사태가 개인의 반사회적 성향이나 악한 마음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가족이 서로 상처를 보듬고, 어머니를 비명에 떠나보낸 슬픔과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도록, 아버지를 가족의 품에 돌려보내는 것도 법이 허용하는 선처와 관용”이라고 판시했다. 취재진이 지난 7월 이씨의 집을 찾아갔을 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웃들은 “6개월 전 자녀들이 이씨를 모셔 갔다”고 했다. 자녀들이 재판부와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서울신문이 분석한 ‘간병살인’(미수 포함) 판결문 108건 중 50건(46.3%)은 이처럼 남은 가족들이 선처를 호소해 형량 감경(특별양형인자) 요인이 됐다. 선처를 호소한 50건 중 20건(40%)은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2016년 한 해 동안 선고가 난 살인사건 727건(1심 기준) 중 집행유예 비율이 20.2%(147건)인 걸 감안하면 2배가량 높다. 가족의 손에 의해 숨이 끊어지는 순간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배신감, 분노, 허탈함, 슬픔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온 이들은 이런 감정을 잊고 가해자를 용서한 경우가 많다. “갈 때 안 됐나. 빨리 가라. 몇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가라. 여러 사람 피해 끼치지 말고….” 지난해 10월 울산의 한 원룸. 김상철(23·가명)씨는 화장실 천장에 밧줄을 건 뒤 아버지(52)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다. 이날 아들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요양시설에 있던 아버지가 소란을 피우다 쫓겨나 집으로 왔기 때문이다. 당뇨를 앓는 아버지는 한쪽 발목을 절단하는 등 거동이 불편했다. 젊은 시절 돈도 벌지 않고 가정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였지만, 김씨는 힘이 닿는 데까지 돌보고 요양시설로 모셨었다. 그런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김씨는 밧줄로 직접 아버지 목을 졸랐다. 한 10초 정도 당겼을까. 아버지가 켁켁거리며 발버둥치자 김씨도 이성이 돌아왔다. 손에 힘을 풀었고, 다행히 아버지는 병원에서 회복했다. 김씨는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씨가 실형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친척은 물론 아버지까지 선처를 호소해서다. “나쁜 애가 아닙니다. 제가 술에 절어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리지 못했습니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와중에도 학업에 열중해 대학에 진학한 애입니다. 대학도 장학금과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다니고 있어요.” 김씨도 아버지를 다시 요양시설에 모시고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하는 등 깊이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와서 그 이야기를 물어보는 이유가 뭔데? 우리 시동생… 억울하게 죽었어.” 경기도 연천에 사는 김순래(80·여·가명)씨는 7년 전 일에 대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30년 넘게 같은 마을에 살던 동서 이연순(당시 72·여·가명)씨가 치매에 걸린 남편(76·김씨 시동생)을 살해한 사건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 했다. 처음에 김씨는 “자기도 사람이면 후회 많이 했겠지. 그래서 감옥 갔잖아. 하지만 가족들은 쉽게 용서가 안 돼”라며 이씨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1시간가량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서히 감정의 변화가 엿보였다. “사실 힘들었어…. 남편 증세가 갑자기 나빠졌거든. 뜬금없이 벽을 보며 절을 하지 않나, 사람들이 독약을 뿌려 자기를 죽인다고도 하지 않나.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이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았지.” 이씨의 남편은 원래 요양시설에 있었지만, 기저귀를 찢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해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이씨도 고령인 데다 당뇨와 우울증 등 지병을 앓고 있었다. 사건 전날 밤 남편은 이상행동을 말리는 이씨에게 손찌검을 했고, 온몸에 이불을 감은 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다음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술을 마시던 이씨는 자고 있던 남편을 둔기로 내리쳤다. “이씨가 젊은 시절 음식 솜씨도 좋고 상냥했어. 우리 시어머니로부터 항상 ‘며느리 중 네가 최고’라는 칭찬을 받았지. 말년에 이런 일을 벌일지는 꿈에도 몰랐어. 내 남편은 5년 전쯤 먼저 갔어. 사실 남편이 안 가고 치매에 걸렸다면 나도 버텼을까 싶기는 해. 한순간 욱한 감정만 참았다면 그렇게 감옥 안 갔을 건데….” 이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국민참여재판을 받았고 자녀들이 선처를 호소했지만 7명의 배심원 모두 실형을 결정했다. 이씨는 형기가 1년가량 남은 지난해 건강이 악화돼 가석방됐다. 조카가 이씨를 강원도로 모시고 갔다고 한다. 이씨의 자녀들은 사건 이후 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않았다. 큰어머니인 김씨와도 연락을 끊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DMZ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 영화 142편에 담다

    DMZ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 영화 142편에 담다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가 경기 김포·고양·파주 일대에서 막이 오른다. 8일 김포시에 따르면 파주프리미엄아웃렛 등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39개국, 142편이 오는 13~20일 경쟁과 비경쟁 부문으로 나뉘어 상영될 예정이다. 열번째 열리는 행사의 특별상영관으로 지정된 김포아트홀에서는 17일과 19일 이틀간 개막작인 ‘안녕, 미누’를 비롯해 9개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다. 학생이나 군인·일반단체 등이 단체로 관람할 수 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DMZ국제다큐영화제는 폭력과 비극이 시작된 비무장지대가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계인들과 함께하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염원하는 다큐 축제다. 행사 관계자는 “국내 최대 다큐영화제인 DMZ다큐국제영화제에 김포시가 참여하게 돼 매우 뜻깊고, 이처럼 좋은 영화제에 김포시민들이 많이 찾아가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단체관람 신청 문의는 DMZ국제다큐영화제 사무국(031-936-7396)으로 하면 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처럼…부산영화제 ‘아름다운 날’ 올까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처럼…부산영화제 ‘아름다운 날’ 올까

    새달 4일부터 79개국 323편 상영 美 공포영화 명장 제이슨 블룸 내한“지난 4년간의 진통을 끝내고 올해는 영화인, 관객 모두가 화합하는 영화제 정상화의 원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영화제 정상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한 달 앞둔 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다. 다음달 4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 상영 외압 논란으로 촉발된 지난 4년간의 부침을 딛고 이 이사장, 전양준 집행위원장 등 영화제 창립을 주도한 원년 멤버로 전열을 재정비했다. 때문에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위상을 회복하는 도약점이 될 전망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싸고 부산시와 갈등을 겪은 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사퇴와 검찰 고발, 영화계 블랙리스트 논란 등으로 사태가 악화되며 지난 4년간 파행과 위상 추락을 겪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영화제에 돌아와 보니 내부의 상처가 상당히 깊다는 걸 절감할 수 있었다”며 “비유를 하자면 환자가 스스로 병원에 찾아가 환부를 수술해야겠는데 의사가 ‘지금은 너무 허약하니 몸을 다스리며 시간을 갖자’고 말하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도약의 원년임을 내세운 만큼 내외부와 소통하며 외압이 있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상처를 입게 된 조직 내부의 문제가 무엇인지 집행위원으로 꾸린 특별위원회를 통해 고민해 나가겠다”며 “미디어 환경도 많이 바뀐 상황에서 관객과 함께 지속가능한 영화제를 만들기 위한 방안도 찾겠다”고 했다. 올해는 전 세계 79개국 323편의 영화가 관객과 만난다. 지난해보다 3개국 23편이 늘었다. 개막작으로는 윤재호 감독의 ‘뷰티풀 데이즈’, 폐막작으로는 홍콩 원화평 감독의 ‘엽문 외전’이 선정됐다. ‘뷰티풀 데이즈’는 어린 나이에 낳은 아들과 남편을 버리고 한국에 온 탈북 여성의 신산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최근 남북관계의 변화와 맞물려 주목도가 높은 주제인 데다, 배우 이나영이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는 작품이라 눈길을 끈다. 이나영은 “비극적 사건을 겪었음에도 삶에 지지 않고 다양하게 살아가는 캐릭터에 매료돼 대본을 보자마자 마음을 정했다”며 작품에 대한 믿음을 전했다. 폐막작인 ‘엽문 외전’은 홍콩 정통무술을 세계에 알린 배우이자 제작자인 원화평 감독의 최신작이다. 올해 영화제에는 국내 영화 팬들에게 사랑받은 ‘겟 아웃’, ‘해피 데스데이’ 등을 만든 미국의 공포명가 블룸하우스의 수장이자 제작자인 제이슨 블룸도 내한한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호러, SF, 컬트 영화를 소개하는 미드나잇 패션 섹션에 초청된 블룸은 1978년 개봉해 ‘공포 영화의 교과서’로 남은 ‘할로윈’을 재단장해 선보인다. 올해 처음 신설된 섹션 ‘부산 클래식’에서는 거장들의 명작들과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크나 숨겨진 작품 13편을 소개한다. 오슨 웰스의 미완성 유작으로 최근 완성돼 베니스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바람의 저편’이 아시아 최초로 상영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트럼프 경고도 무시…러, 시리아 반군 최후 거점 공습

    터키도 공습 용인…알아사드 편에 설 듯 트럼프 전날 “무모한 짓 말라”…체면 구겨 러시아군이 시리아 반군 최후 거점 공습을 강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무모한 공격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러시아군이 4일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의 반군 조직을 겨냥한 공습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도 반군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전투기가 이들리브주 서쪽 외곽의 지스르 알슈구르를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러시아군의 공습은 이들리브에 대한 러시아 및 시리아 정부군의 대대적인 탈환전의 신호탄일 가능성이 있다. 최근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마지막 남은 반군 점령지 이들리브를 탈환하기 위해 병력을 집결해 왔다. 또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이들리브 군사 작전은 테러범 소탕을 위한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시리아 사태에 개입해 온 터키도 알아사드 대통령의 편에 설 것으로 보인다. 당초 터키 정부는 350만명에 이르는 이들리브 주민 등의 피해를 우려해 군사작전에 반대해 왔다. 터키는 그러나 지난달 31일 이들리브의 60%를 통제하는 시리아 무장조직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을 테러집단으로 공식 지정해 입장을 바꿨다. 이는 테러집단 궤멸을 명분으로 한 이들리브 공습을 터키가 용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와 이란, 터키 3국 정상은 오는 7일 이란 테헤란에서 만나 시리아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에 “알아사드 대통령은 이들리브를 공격하는 무모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와 이란이 이런 비극에 동참하는 것은 심각한 인도주의적 실수”라면서 “수십만명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으나, 러시아가 이를 무시해 체면을 구기게 됐다. 앞서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조너스 파렐로 플레스너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구두 경고는 시리아에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면서 “미국이 빈사 상태인 제네바 평화협정에 희망을 거는 동안 알아사드 대통령은 이란과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지상과 공중에서 진격 중”이라고 분석했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이나영 기자회견 ‘뷰티풀 데이즈’로 공식석상 “뱀파이어 미모”

    이나영 기자회견 ‘뷰티풀 데이즈’로 공식석상 “뱀파이어 미모”

    배우 이나영이 6년 만에 영화 ‘뷰티풀 데이즈’로 컴백하는 소감을 밝혔다. 이나영은 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지하 2층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뷰티풀 데이즈’를 첫 번째로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큰 영광이고 어떻게 봐주실지도 굉장히 궁금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뷰티풀 데이즈’는 어린 나이에 아들을 낳고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한국에 온 탈북 여성의 삶을 그린 영화. 이나영은 삶의 시련을 겪은 탈북 여성으로 분했다. 영화 ‘하울링’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이나영은 “감독님의 대본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내가 하고 싶었던 형식, 캐릭터가 접목돼있는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보자마자 마음을 결정했다”면서 “결코 약하지 않는 비극적 사건을 겪었음에도 삶에 지치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캐릭터였고 그걸 감독님이 잘 표현해주셨다”고 작품에 매료된 요소들을 언급했다. 이어 “영화를 찍고 나서는 제가 몰랐던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됐다. 감독님의 영화 스타일에 참여하게 돼 좋았다.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촬영하셨다. 콘티와 분위기 느낌을 머리속에 다 갖고 계시더라. 좋은 마음으로 촬영했다”고 덧붙였다. 윤재호 감독은 2016년 영화 ‘히치하이커’로 제 69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며 주목받은 영화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한 윤재호 감독은 “개막작으로 선정돼 영광이다. 저예산 예술영화지만 뜻이 있는 분들과 힘을 합쳐 만든 영화다. 많은 이들이 보러 와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올해 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열흘간 영화의전당과 롯데시네마센텀시티, CGV센텀시티,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등 5개 극장 30개 스크린에서 79개국 323편을 상영할 예정이다. 개막작은 윤재호 감독의 ‘뷰티풀 데이즈’, 폐막작은 원화평 감독의 ‘엽문 외전’이 선정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설] ‘간병 살인’ 비극 없게 사회안전망 촘촘히 짜야

    100세 시대를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 치매나 중풍을 앓는 환자를 둔 집이 주변에 흔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의 터널에 갇힌 이들에게는 100세 시대가 앞이 캄캄한 재앙일 수 있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사건은 잊힐 만하면 터져 나온다. 지난달에도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79세 노인이 쓰러져 숨진 상태로 뒤늦게 발견되기도 했다. 간병을 맡은 60대 부인도 치매를 앓고 있었던 안타까운 사건이다. 간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병상의 배우자나 노부모를 숨지게 하거나 동반 자살하는 참극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간병 살인’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은지는 서울신문의 탐사기획 기사에서 여실히 확인됐다. 참사를 겪고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가족들은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는 한탄을 쏟아냈다. 기획취재 결과 간병 살인의 수치는 해마다 늘었다. 2006~2010년 매년 10건 안팎이던 것이 2015년 한 해 동안은 21건을 기록했다. 간병 살인과 간병인 자살은 간병 기간이 속수무책으로 길어지면서 빚어진다. 극심한 생활고와 감당할 수 없는 간병 비용이 주요 원인임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치매 환자를 간병하는 과정에서 치명적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인데, 2050년에는 6~7명 중 1명으로 늘어난다는 경고다. 우리 사회가 ‘간병 비극’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수치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인 질병은 앞으로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의 증가는 가까운 미래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임은 예견된 사실이다. 환자를 돌보느라 손발이 묶이는 가족은 당장 소득이 없어지고 건강까지 악화하는 연쇄 고통에 시달린다. 노노 간병이나 돌봄 가족들의 비극적 삶을 돌보려면 사회안전망 차원의 노인복지를 더 촘촘하게 짜야만 한다. 새 정부 들어 치매 지원책이 꾸준히 확대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간병 인력 부족 등 메워야 할 구멍은 많다. 지속적인 간병이 필요한 노인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장기요양보험의 시간과 서비스를 더 확대해야 한다. 병원, 보건소, 건보공단 등으로 쪼개진 가정간호 서비스 제도도 통합해 일사불란한 지원이 가능하게 손봐야 할 것이다. 한 해 복지예산이 150조원이 넘는데, 빈곤 노인의 간병 참사가 이어진다니 말이 안 된다.
  • 브라질 ‘인류 유산’ 화마가 삼켰다… 유물 2000만점 잿더미 위기

    브라질 ‘인류 유산’ 화마가 삼켰다… 유물 2000만점 잿더미 위기

    소화전 고장 호수 물 퍼날라 초기진화 실패 여성 해골 ‘루치아’ 등 상당수 소실된 듯 테메르 대통령 “비통한 날”… 각계 ‘절망’“브라질 국민에게 비극적인 날”, “과거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 브라질의 국보급 문화재가 소장된 200년 역사의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이 2일(현지시간)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불탔다. 인류 유산으로 꼽히는 소장 문화재 상당수가 소실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브라질 각계에서 절망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국 BBC방송, AP통신 등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의 여성 해골 ‘루치아’ 등 2000만점에 달하는 소장 유물의 상당수가 소실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화재는 박물관 관람 시간이 종료된 오후 7시 30분 시작됐으며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브라질 정부는 3일 현재까지도 피해 상황을 공식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티아나 세레주 부관장은 “남미에서 가장 큰 자연사 박물관이자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브라질의 과학과 역사, 문화 소장품들이 이곳에 있다”고 말했다. 올해 200주년 기념 행사도 연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은 1818년 건립됐으며 포르투갈 왕족들이 거처하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의 인류 해골부터 미이라, 화석, 운석 등 자연사적 연구 가치가 높은 유물부터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돔 페드로 1세의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예술품 등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인류 유산들이 보관돼 있다. 리우 소방청은 초기 화재 진압에도 실패해 국립박물관이 불타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주변 소화전들이 작동하지 않아 주변 호숫가에서 물을 길어 진화에 나섰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트위터에 “200년 넘은 브라질의 지식과 연구 성과, 작품들을 잃게 됐다”며 “브라질 국민에게 비통한 날!”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국립박물관 측은 테메르 정부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긴축 정책으로 과학·문화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박물관이 황폐해졌다는 울분을 쏟아냈다. 또 다른 부관장인 루이스 두아르테는 현지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지금 파괴돼 버린 이 유산들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싸워 왔다. 이제 엄청난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물관이 최근 브라질개발은행(BNDES)과 계약을 맺고 화재 예방 예산을 마련했다는 사실도 드러나면서 “끔찍한 아이러니”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의 역사와 문화가 통째로 ‘재’가 됐다는 통탄이 쏟아지고 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베르나드 벨루 프랑쿠는 이날 “이 비극은 국가 자살 행위로 과거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탄식했다. BBC방송은 “브라질 국민들은 불에 탄 국립박물관 사태를 치솟는 범죄율과 폭력, 경제 쇠퇴, 정치적 부패 등 브라질이 처한 총체적인 위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200년 역사’ 브라질 국립박물관 큰불…“브라질 비극의 날”

    ‘200년 역사’ 브라질 국립박물관 큰불…“브라질 비극의 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에 2일(현지시간) 오후 7시 30분쯤 큰불이 발생했다. 1818년 지어진 이 박물관은 한때 왕족이 거처하기도 한 유서 깊은 곳으로, 소장품이 2000만여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돔 페드로 1세가 가져온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가공 예술품이 다수 보존돼 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의 해골 ‘루치아’, 1974년 발견된 운석 등 진귀한 소장품이 많다. 화재는 폐관시간에 난 데다 불이 자면서 20개 소방서에서 소방관 80여명이 출동했지만 대응이 늦어 유물 상당부분이 소실됐을 우려가 크다. 화재 원인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세 여성 블로거 멕시코 재벌 요트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20세 여성 블로거 멕시코 재벌 요트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호주의 20세 여성 여행 블로거가 멕시코 재벌의 초호화 요트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해 그리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의 포트 맥쿼리 출신인 시니드 맥나라마는 정기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여행 사진을 올려놓아 1만 2000여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블로거였다. 그녀는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그리스 케팔로니아섬에 정박해 있던 멕시코 광산 재벌 알베르토 바일러레스의 요트 뒤쪽에서 위중한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후송되는 과정에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은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으며 경찰이 이 요트가 아르고스톨리 항구에 정박해 조사를 받도록 지시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호주 매체들은 그녀가 요트 위에서 발견됐을 당시 요트에는 선원들만 있었으며 그녀는 요트 뒤쪽에서 로프로 몸을 휘감은 채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그녀의 사촌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족들은 사인을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요트 위에서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신문은 맥나마라의 어머니와 자매가 그녀를 보려고 그리스로 향하는 와중에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고 전했다. 바일러레스와 가족들은 사고 며칠 전 마얀 퀸 4세 요트를 떠났다고 그리스 매체들은 전했다. 지난달 올린 글을 통해 그녀는 “보트 위에서 지내거나 일하면서 전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넵, 난 아주 좋은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친구들과 팔로어들은 소셜 미디어에 비통한 심정을 털어놓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과 모험심 가득한 정신을 지녔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한 친구는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았고 당신을 알게 됐다는 것이 축복으로 여겨졌다”고 적었다. 다른 친구는 “모두가 시니드의 책 한 쪽을 읽어봐야 하는데 그녀는 발리에서 휴가를 즐기다 전 세계를 요트로 1년 반 돌아다니는 여행으로 발전했다”고 적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열심히 독립운동했던 유일한 왕손… 아버지 의친왕은 재평가돼야 한다

    [색다른 인터뷰] 열심히 독립운동했던 유일한 왕손… 아버지 의친왕은 재평가돼야 한다

    “어머니인 의친왕비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조의 마지막은 늘 비극으로 끝났다. 대한제국 왕실의 비운은 당연히 겪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라’라고 말씀하신 게 아흔이 다 돼서야 받아들여져요. 아버지 의친왕의 잘잘못을 역사가 정확하게 평가했으면 합니다. 그게 제 마지막 바람이에요.”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녀’ 이해경(88) 여사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이 여사는 지금 한반도의 상황이 조선왕조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어떤 연유에서 이 같은 생각을 떠올릴까 궁금했다. 이 여사는 고종 황제의 친손녀다. 아버지 의친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순종 다음 서열이었으나 일제의 견제 등으로 동생인 영친왕에게 황태자 자리를 빼앗겼다. 동생인 영친왕이 철저하게 일본식 교육을 받은 것과 달리 의친왕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독립운동가와의 접촉이 잦았으며,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탈출하려고 기도했다가 만주에서 일제에 발각돼 송환되기도 했다. 의친왕은 일제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지만 거부하며 항일정신을 사수한 왕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8·15 독립 이후 이승만 정부가 망국(亡國)의 책임을 물으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이 여사는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 등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가의 미래를 바로 세우려 했던 고종 황제나 의친왕과 비슷한 고민을 문재인 대통령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생각한 대로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결과’는 ‘운명’이고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친왕의 13남 9녀 중 다섯째 딸이다. 세 살 때 생모와의 이별,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사동궁(의친왕부·義親王府) 생활, 그리고 8·15 광복, 이어진 6·25 전쟁, 1956년 가혹한 현실을 피하고자 선택했던 도미(渡美) 등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 여정을 보냈다. 특히 그는 순탄치 않은 노년을 보낸 아버지 의친왕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듯했다. 이 여사는 “아버지가 매일 술에 빠져서 살았다는 일제에 의한 역사적 오류가 아직도 그대로”라면서 “항일정신이 강했던 아버지는 일제의 핍박과 삼엄한 감시가 본격화되면서 매일 술집에 다니는 척해야 했다. 그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의친왕이 190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이토 히로부미가 대통(大統) 계승을 권유했지만 한마디로 거절했고, 1919년 중국 상해(상하이) 임시정부로 탈출을 시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던 유일한 ‘왕손’”이라면서 “의친왕의 열정과 행동은 반드시 재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떠난 지 62년, 26살의 꿈도 많고 한도 많았던 앳된 여인에서 이제 미수(米壽)를 넘긴 ‘호호 할머니’로 변한 조선의 마지막 왕녀인 그와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일제 치하에서 의친왕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사동궁을 찾았다. 그때마다 노래와 춤으로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린 기억이 있다. 특히 길러주신 의친왕비(이하 지밀 어머니)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궁 밖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대외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어린아이가 말을 옮길 수 있어서 조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역사 문헌 등을 보면 퍼즐처럼 맞춰지는 일들이 있다. 어렸을 때 갑자기 일본 경찰들이 집 주변에 늘었다든지, 해방 직후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이 사동궁을 찾았던 일 등이 기억난다. →그렇다면 의친왕의 독립운동 행적은 어떻게 아는가. -미 컬럼비아대학 한국학과 사서로 27년간 일하면서 많은 한국 역사책과 자료를 접했다. 거기서 아버지의 흔적을 많이 찾았다. 또 유학 오신 한국 학자들이 나에게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와 자료가 있는 미 도서관 등을 알려줬다. 미국에서 한국의 근대사를 공부했다. →여자로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있었을 텐데. -맞다. 어렸을 때는 상당히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역사 자료 등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심정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어쩌면 미국 생활이 아버지와 나를 연결해 준 것 같다.→누구나 인생에 굴곡이 있겠지만 특히 더 했던 것 같다. -한때는 드라마처럼 ‘궁’에서 호강하며 살았다. 어렸을 때 시녀들이 ‘공주마마’라고 부르며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 줬다. 하지만 8·15 독립 이후에 ‘왕족’이 ‘망국의 원흉’으로 인식되면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친북 인사로 몰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 온 지 62년이 지났다. 한국을 몇 번 찾지 않았다고 알려졌는데. -맞다. 사실 떠나면서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당시 왕족이라는 굴레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사회에 대한 반감 등 때문에 한국에서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왔다. 정말 안 가려다 생모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19년 만인 1975년 한국을 다시 찾았다. →1950년 중반에 미국 유학은 흔치 않은 일이다. 왕족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당시 망국(亡國)의 책임을 물어 왕족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와 지밀 어머니 등 가족들이 먹을 쌀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지밀 어머니가 나의 혼수품으로 주신 비단을 팔아서 연명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8군의 도서관에서 일할 때 친하게 지냈던 데이비드 스트릿맨이라는 군인의 아버지가 도와줘서 미 유학이 가능했다. →미국 생활은 어땠나. -비행기 값을 마련하고자 지밀 어머니가 사 주신 야마하 피아노를 팔았다. 비행기 표를 사고 남은 돈 80달러를 가지고 무작정 미국으로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했던 것 같다. 다행히 텍사스의 메리 하딘 베일러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모두가 반대했던 미국행이라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한국과 연락도 끊었다. 사실 도움을 요청할 곳도, 도와줄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과 방학에는 식당과 백화점, 보육원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먹고살기 어려웠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아무도 내가 조선의 왕녀인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어도 누가 쳐다보지 않았다. →의친왕비가 자신의 호적에 이 여사만 올리는 등 총애를 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생모, 낳아 주신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 -3살 때 헤어진 생모를 10년 후인 13살 때 화신상회(현 종로 제일은행 본점 자리)에서 만났다. 그 이후로 또 거의 본 적이 없다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잠시 같이 지냈다. 생모는 박금덕 여사다. 그는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올 정도로 정·재계의 마당발로 소문난 여성이었다. 의친왕이 한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에 당찼던 것 같다. 내가 궁 생활을 힘들어 했던 것이 자유분방하고 당찬 생모의 성격을 닮아서인 듯하다. →일부에서 ‘공주’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하는데. -그건 분명히 잘못이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뀌면서 고종 임금님이 황제가 되고, 왕자인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이 의친왕, 영친왕 등으로 봉작됐다. 그러니까 나는 왕자의 딸이지, 왕의 딸이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마지막 공주’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내 밑으로 여동생들은 궁 생활을 하지 않았고, 위로 언니들은 돌아가셨다. 그래서 ‘마지막 왕녀’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인연을 못 만나서 그런 것 같다. 물론 결혼할까 고민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었다.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복잡했던 우리 가정사를 보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꿨는데, 막상 선택의 순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내가 힘이 미약하고 나서는 것을 싫어해 숨어 있었지만, 일제에 의해 왜곡·날조된 우리의 역사를 되찾는 일에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나도 미력이나마 돕고 싶다. 글 사진 뉴욕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이해경 여사는 누구 -1930년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다섯 번째 딸로 출생. -1933년 생모인 박순덕씨 곁을 떠나 ‘궁’으로 거처 옮김. -1946년 경기여고 졸업 -1950년 이화여대 음악과 졸업 -1953년 미8군 사령부 도서관 사서 근무 -1956년 미국으로 유학 -1959년 미국 텍사스 메리 하딘 베일러대 졸업(성악 전공) -1969년 컬럼비아대 동양학도서관 한국학 사서 취직 -1996년 컬럼비아대 동양학도서관 한국학과장 정년퇴직 -현재 뉴욕의 컬럼비아대 근처 작은 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살고 있음.
  • 美넷플릭스, ‘日후쿠시마 원전’ 과장·희화화 논란

    美넷플릭스, ‘日후쿠시마 원전’ 과장·희화화 논란

    미국의 넷플릭스(세계 최대의 드라마·영화 온라인 서비스업체)가 제작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이 강하게 반발, 구체적인 대응을 계획 중이라고 지지통신이 2일 보도했다. 피해 사실을 과장하고 희화화하는 한편 촬영 과정에서도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게 일본 측이 발끈한 이유다.지지통신에 따르면 지난 7월 방송된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인 대상의 후쿠시마 투어에 참가한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현지 제공 음식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을 언급한다든지, 당국의 허가 없이 출입금지 지역에 잠입한다든지 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 프로그램은 데이비드 패리어라는 뉴질랜드 출신 기자가 제작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극의 땅’을 돌며 촬영한 대체로 자극적인 내용의 다큐멘터리 ‘다크 투어리스트’다. 후쿠시마 원전 이외에 카자흐스탄의 옛 핵 실험장과 멕시코인의 미국 밀입국 체험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영상에서는 패리어를 포함한 외국인 투어 참가자가 도미오카초와 나미에마치 등 원전 사고 피해 지역을 돌아본다. 후쿠시마현은 원칙적으로 출입이 금지된 ‘귀환곤란구역’에 제작진이 막무가내로 잠입해 폐허로 변한 게임센터 내부를 촬영한 것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나미에마치의 한 식당에서는 식탁에 오른 음식에 대해 “방사능에 노출된 재료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투어 참가자가 방사선 피폭 가능성에 겁을 먹는 모습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버스 이동 중에 방사선량 측정기 수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하자 “이제 돌아가자”며 투어를 중단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에 후쿠시마현은 부흥청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5월의 시인’ 김준태, 통일 염원 외치다

    ‘5월의 시인’ 김준태, 통일 염원 외치다

    ‘한 놈을 업어주니 또 한 놈이 자기도 업어주라고 운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두 놈을 같이 업어주니/ 두 놈이 같이 기분 좋아라 웃는다/ 남과 북도 그랬으면 좋겠다’김준태(70) 시인이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도서출판b)를 펴냈다. 17번째 시집이다. 시인의 둘째아들이 낳은 쌍둥이 손자를 보면서 얻은 영감을 제목으로 달았다. 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아이와 꽃, 하늘, 흙 등을 자주 쓴다. 인간과 자연, 우주가 합일된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통일 역시 평화를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꿈을 전한다. 그는 6·25전쟁, 베트남전쟁 참전,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다. 할아버지가 일제의 징용에 끌려가고 아버지가 6·25 때 좌우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된 비극적 이력을 지녔다. 그가 여러 시집을 통해 통일과 평화, 인권 등에 남다른 감수성과 깊은 세계관을 드러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1980년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지방신문에 게재해 5·18 학살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다. 신군부로부터 갖은 고초를 겪으며 ‘5월의 시인’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번에 담은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자정을 넘어서, 새벽에 쓴 시’ 등이 일본 주오대학에서 발행하는 종합 계간지에 번역돼 실리기도 했다. 김 시인은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 통일의 물꼬를 틀 즈음 발간돼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법 위에 권력자… 아프간의 비극 불렀다

    법 위에 권력자… 아프간의 비극 불렀다

    부패권력은 어떻게 국가를 파괴하는가/세라 체이스 지음/이정민 옮김/이와우/314쪽/1만 6000원 저자가 10여년간 취재한 ‘부패 보고서’ 주택 개발로 차익 챙긴 대통령 가족 등 정치인 도덕적 붕괴가 경제 붕괴 원인 내전 종식 후 아프간 상황 생생한 증언‘예절, 절제, 그리고 옮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의 부재는 경제적으로도 대재앙을 일으킨다.” 2008년 파탄 직전까지 갔던 아일랜드 사태를 색다른 시각으로 분석해 주목받은 아일랜드 칼럼니스트 핀턴 오툴의 유명한 일갈이다. 공직자와 은행 고위간부, 그리고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똘똘 뭉친 부패정치 네트워크를 파헤친 오툴은 이렇게 경고한다. “시민들은 자신을 둘러싼 명백한 범죄에 정면 대응하길 꺼린다. 그 경향은 부패와 연관될 때 더욱 심해진다.”#1.아프가니스탄 고위 공직자가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된 뒤 검찰이 관련 혐의 증거와 함께 거액의 현금 다발까지 확보했지만 현직 대통령이 석방을 지시하고 TV에까지 등장해 무고를 주장한다. 이후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보직 해임되고 체포 영장을 승인한 검찰 부총장은 스파이 누명을 쓴 채 해임된다. #2.세관, 부패한 관리와 기업가들이 결탁해 불법으로 물건들을 들여오고 값싼 수입품들을 무한한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에 깔아 놓는다. 권력에 줄이 없는 지역 상품 생산자며 수입업자들은 경쟁력을 잃고 도산한다…. 1996년 탈레반의 카불 점령으로 시작해 5년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내전.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은 이 내전은 종전 이후의 비참한 양상 탓에 더욱 회자된다. 책은 10여년간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살면서 건져낸 ‘부패 고발서’로 눈길을 끈다. 부패권력이 국가를 망쳐 가는 과정과 암묵적 동조가 부른 비극상이 생생하다. 아프간의 부패상은 지독하다. 내전 종식과 함께 탈레반이 떠난 칸다하르에는 폭력이 난무했다. 폭력을 피해 시민들이 모여든 공유지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고 주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대통령의 형과 그 형제들이 공유지를 헐값에 사들여 주택단지를 개발, 시민을 상대로 비싼 가격에 집을 팔아 엄청난 차익을 거둔 것이다. 탈레반 수감자들의 말을 전하는 관리들의 증언이 충격적이다. 탈레반 가입 동기가 민족적 편견이나 이슬람교 무시, 미군 영구 주둔에 대한 우려, 민간 사상자들에 대한 원한 때문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프간 정부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패했고 부패가 확산되다 못해 제도적으로 자리잡자 비폭력적 방법으로는 아프간 정부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물론 당시 아프간과 탈레반의 국제, 정치적 역학 관계는 슬쩍 비켜간 진단일 수 있다. 하지만 아프간 관리들과 시민, 탈레반 수감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그 부패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고스란히 입증한다. 특히 아프간과 연결해서 소개한 이집트, 튀니지, 나이지리아의 부패 사례는 우리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인문주의자로 통하는 에라스무스는 일찍이 간파했다. “그렇게 입이 쩍 벌어지는 소득 격차는 우연히 생기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권력층에게 유리하도록 온갖 법을 개정하고 특혜를 몰아준 결과다.” 600년 전 에라스무스가 경고한 부패의 문제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경제평론가 알다 지그문트 도티르의 말을 결론삼아 전한다. 정부 관리들과 은행 간부들이 결탁한 부패정치 탓에 2008년 경제 붕괴를 맞은 아이슬란드를 꼬집은 말이다. “아이슬란드의 붕괴는 경제적 붕괴일 뿐 아니라 도덕적 붕괴이기도 하다. 수십년간 우리 사회의 표면 아래서 꿈틀댄 광범위한 정치부패와 방치를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재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60년 전 묻어둔 비극, 풀꽃이 먼저 싸매주었네

    60년 전 묻어둔 비극, 풀꽃이 먼저 싸매주었네

    저 앞의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초지가 평강고원이랍니다. 아직은 닿을 수 없는 북한 땅이지요. 시선을 가까이에 두면 초록빛 철원평야가 다가섭니다. 눈앞의 풍경 중 어디까지가 남한 땅이고 어디서부터가 북한 땅일까요. 철책에서 쉬어 가는 잠자리는, 쩌렁쩌렁 울어 대는 매미는 어디에서 날아온 걸까요. 강원 철원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은 미답의 땅, 북한을 그려 보게 합니다. 녹색길이 특별한 것은 지뢰구역 철조망 옆을 걷다가 북녘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보다는 생각이, 달뜬 걸음보다는 차분한 사색이 어울리는 길이지요. 북녘을 향한 그리움을 부려 놓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길은 걸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철원은 한국전쟁의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는 땅이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평화전망대나 제2땅굴 같은 안보 관광지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대열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해발 362m의 작은 산은 남한 땅과 북한 땅을 가득 품는다. 소이산은 한국전쟁 후 60여년 동안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2010년에 통제구역에서 해제된 뒤에도 지뢰 때문에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 그동안 전쟁의 폭격에 황폐해진 산은 스스로를 치유했고,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은 원시림 같은 울창함을 되찾았다. 그러던 2012년, 철원군과 육군부대가 힘을 합쳐 4.8㎞ 길이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을 열었다. 길 끝에서 바라보는 북녘 땅은 자연스레 통일의 꿈을 꾸게 한다. 숲길이 주는 미덕도 빼놓을 수 없다. 녹진한 풀 향을 맡고 묵은 낙엽을 밟으며 자연이 낸 길을 따른다. 시간에 맞춰 한 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대개의 안보관광지와 달리, 이곳에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고 바라보고 싶은 만큼 바라볼 수 있다.●전쟁이 남긴 구멍 난 상처 노동당사 철원이 1946년에는 북한 관할구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노동당사는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이 조선노동당 당사로 쓴 건물이다. 늦여름 햇덩이가 내리쬐는 낮에도 건물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신축 당시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한 리(里) 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다는 이야기, 기밀 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외에는 건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 혹은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들이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전쟁 중 폭격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돼 지금은 네 면의 벽체와 군데군데 골조만 남아 있다. 건물 뒤는 앞보다 훨씬 처참하다. 외벽이 거의 무너져 내려 기다란 파이프가 건물을 지탱하는 상태다. 벽에는 깊게 팬 탄알 자국이 무수하다. 손 한 뼘 되는 간격으로 총알의 흔적이 이어진다. 밤중에 노동당사 주변을 지나는 군인들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곳에 총을 난사했기 때문이란다. 부서지고 구멍이 뻥뻥 뚫린 건물은 남과 북의 서글픈 현실을 말해 준다. 신청 후 단체로 움직이는 철원의 다른 안보관광지와 달리, 노동당사는 민간인통제선 밖에 있어 특별한 절차 없이도 갈 수 있다. 노동당사 맞은편에 소이산이 보인다.●철조망 따라 핀 ‘지뢰꽃’… 소이산 생태숲 아래부터 위로 천천히 고개를 든다. 산수국이 핀 땅, 철조망, 지뢰라고 쓰인 삼각형 표지판, 철조망 안팎을 오가는 잠자리, 새파란 하늘. 숲길 옆으로 철조망이 끝없이 이어진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의 첫 번째 구간은 1.3㎞ 길이의 지뢰꽃길이다. 지뢰와 꽃이라니 얼마나 상반되는 조합인가. 철원 출신의 시인이 쓴 시 ‘지뢰꽃’에서 이름을 따왔단다. ‘지뢰 지대로 출입을 절대 금함.’ 철조망에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렇다. 철조망 안은 아직 지뢰 지대다. 지뢰가 있다 한들 뿌리 내리고 잎을 틔우려는 자연의 생명력을 막을 순 없다. 도심 가로수처럼 때 되면 모양을 가다듬어 주지 않는 데도 철조망 안 수풀은 제 알아서 자라 푸르기만 하다. 어떤 나무는 가로로 누워 자라다가 철조망에 막혀 가지 뻗을 곳을 잃었다. ‘지뢰꽃’의 한 구절이 스쳐 간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산수국, 벌개미취, 하늘말나리, 노루오줌, 맥문동…. 소담한 꽃들이 철조망 따라 피어나 스산한 마음을 달래 준다.●철원평야 뒤 백마고지까지 파노라마 뷰 두 번째 구간인 생태숲길이 시작되면 철조망이 걷혀 시야가 트인다. 너른 들판에 농촌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지뢰밭을 일궈 세운 대마리 마을이다. 1968년 민간인통제선 북쪽의 농지를 개간한다는 계획에 따라 반공정신이 투철한 제대 군인과 지역 주민들 150가구가 모여 마을을 이뤘다. 농지를 개간하다가 지뢰가 폭발해 팔다리를 잃은 이들도 있다고 한다.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마을에는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사연이 있다. 40분 정도 좁다란 숲길을 오르면 마지막 구간인 봉수대 오름길이 나온다. 온통 아스팔트 도로다. 산에 웬 아스팔트 길인가 싶겠지만 이곳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군 작전로로 닦아 놓은 길이다. 소이산은 최근까지 군사적 요지였다. 철원평야를 비롯해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형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봉수대 오름길은 산으로 따지면 깔딱 고개다. 걷는 맛이 적은 아스팔트 길인 데다가 경사가 가팔라 숨이 가쁘다. 고진감래. 옛말에 틀린 것 하나 없다고 묵묵히 걸어 전망대에 오르면 선물 같은 풍경이 기다린다. 너른 철원평야 뒤로 백마고지, 김일성고지, 아이스크림고지 등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전망대 유리판에 지명이 적혀 있어 눈앞의 풍경과 지명을 하나하나 맞춰 볼 수 있다. 낮은 언덕 세 개가 삼자매봉, 삼자매봉 뒤의 봉우리가 백마고지, 저긴 김일성고지, 저 아득한 초원이 평강고원…. 열흘 동안 열두 번의 전투를 하며 심한 포격을 받은 탓에 산등성이가 하얗게 벗겨졌다는 백마고지는 여전히 허옇다. 사람에게나 자연에나 전쟁의 상흔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끝을 알 수 없이 광활한 평강고원 너머 북한의 산 능선이 흐릿흐릿하게 이어진다. 예쁜 꽃도 아니고 눈부신 일몰도 아니지만 그리운 땅이라는 이유만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픈 풍경이다. 소이산에 다녀간 이들의 메시지가 전망대 앞 밧줄에 묶여 바람에 나부낀다. “동생과 제가 싸우지 않도록 평화를 주세요.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세요.” 한 아이에게는 동생과 싸우지 않는 것이 평화다. 한 국가에는 갈라진 두 땅이 하나가 되는 것이 평화다. ‘평화’라는 거창한 단어를 읊조리게 되는 곳, ‘통일’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돌아보게 되는 곳, 이곳은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다.●시간과 자연이 빚은 주상절리 ‘송대소’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의 출발지인 노동당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송대소가 있다. 30m 높이 현무암이 수직 절벽을 이루고 절벽을 휘감는 물줄기가 깊은 소(沼)를 이룬 곳이다. 절벽은 다각형 기둥으로 뒤덮여 있다. 30만년 전,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식으며 수직 틈이 생겼고, 풍화작용이 일어나며 여러 모습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송대소 주상절리다. 송대소는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 저마다의 감흥이 있다. 멀리서는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과 S자로 돌아 나가는 한탄강이 한눈에 담긴다. 절벽이 수면에 비치는 모습은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법한 풍광이다. 가까이서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계절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을 걸으면 주상절리의 기이한 모양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4~8각형의 다각형 기둥이 있는가 하면 널빤지처럼 넓적한 판도 있다. 수십만년의 시간과 비바람이라는 자연이 빚은 합작품이다. 내비게이션에 ‘송대소’를 치면 정확한 주소가 나오지 않는다. 멀리서 송대소를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모닝캄빌리지 펜션 옆 나무데크다. 모닝캄빌리지 정원 한편에 나무 계단이 있는데, 시야가 탁 트여 송대소와 S자로 흐르는 한탄강을 훑을 수 있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신평화로를 거쳐 평화로와 연신로를 지난다. 신평화로로 가다 소요산사거리에서 좌회전 후 평화로를 따라 25㎞가량 직진한다. 신서교차로에서 ‘철원, 도산리’ 방면으로 우회전하고 연신로를 따라간다. 노동당사삼거리에서 ‘관인, 철원읍사무소’ 방면으로 우회전해 금강산로에 다다르면 노동당사다. →맛집:철원은 유독 매운탕 집이 많다. 물살이 거센 한탄강에서 난 민물고기 맛이 좋기 때문이다. 고석정 입구에 있는 임꺽정가든(455-8779) 역시 민물매운탕을 잘한다. 고석정과 한탄강 등 철원의 명소와도 가깝다. 삼정콩마을두부집(455-9284)은 두부전골, 두부청국장 등 각종 두부 요리를 한다. 가게에서 국내산 콩을 직접 삶고 갈아 속이 편안하다. →잘 곳:한탄리버스파호텔(455-1234)은 고석정, 삼부연폭포 등 철원의 대표 관광지와 가깝다. 게르마늄 온천 사우나와 실내 온천 풀장이 있어 물놀이를 하기에 좋다. 백마고지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학마루 철원펜션(010-6711-0818)은 한탄강에서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다.
  • [월드피플+] 숨진 딸의 장기 기증한 女, 16년 후 보답 받은 사연

    [월드피플+] 숨진 딸의 장기 기증한 女, 16년 후 보답 받은 사연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면 그대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16년 전, 숨진 딸의 심장판막을 기부했던 한 여성이 최근 다른 가족들로부터 같은 보답을 받았다. 29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미러는 잉글랜드 버크셔 주 레딩 출신의 리사 말렛(36)의 사연을 소개했다. 사연에 따르면, 리사의 딸 제이든은 2002년 첫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욕실에서 경련을 일으켰는데 이는 심각한 뇌손상으로 이어졌고, 결국 딸은 살아남지 못했다. 리사와 남편 케빈은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지만 또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딸의 심장 판막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사람의 결정 덕분에 생후 4개월 된 남자아이가 새 삶을 선물 받았다. 리사는 “아이를 잃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절망에 빠져 있는 다른 가족들을 위해 기증하고 싶었다”면서 “기증을 통해 우리도 갈수록 상실감에서 벗어나 편안함과 위로를 받았고,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6년 후, 숨진 제이든의 동생 에스메(4)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심장 결함을 갖고 태어난 에스메는 병원에서 인공 심장을 통해 1년 간 생을 연장해왔지만 대동맥 협착증(aortic stenosis, 대동맥판막이 좁아져서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혈류가 충분하게 나가지 못하는 상태) 진단을 받고, 장기 기증이 절실해졌다. 둘째마저 잃을 수 없었던 엄마는 에스메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장기기증 호소문을 보냈고, 고통과 불확실함 속에서 기증자가 나타나길 기도하며 기다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한 가족에게서 심장을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 받았다. 그녀는 “무슨 말로도 이 감사함을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 딸에게 심장을 기증한 가족들은 지금 생애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면서 “슬픈 사실이지만, 비극적인 일이 생기면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배웠다”고 전했다. 사진=미러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