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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달픈 乙들의 아귀다툼…공감없는 이해는 공허하다

    고달픈 乙들의 아귀다툼…공감없는 이해는 공허하다

    외국계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최 과장은 비정규직 혜미를 보면 연민과 짜증을 동시에 느낀다. ‘하는 일이 없다’며 혜미를 자르라는 사장 말에는 안쓰러움이 떠오르지만, 근태 불량에 ‘알바몬에서 봤다’며 따박따박 대꾸하는 모습엔 정나미가 떨어진다.(‘알바생 자르기’) 대규모 정리해고를 발표한 공장에서 사람들은 ‘죽은 자’와 ‘산 자’로 나뉜다. ‘죽은 자들’의 점거 탓에 공장이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자, 어제의 동료였던 ‘산 자들’은 ‘폭도들로부터 공장을 되찾자’며 직접 무기를 들고 나선다.(‘공장 밖에서’) 목 좋은 지하철역 100m 남짓 되는 거리에 경쟁적으로 들어선 빵집 세 곳. “저희 집이나 이 집이나 장사 잘되면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 그러면 여기 장사 잘되는 곳이구나, 하고 옆에 빵집 또 생겨요.” 호황을 바라고 들어선 곳에 장사가 잘되면 안 되는 모순이 이곳에선 현실이다.(‘현수동 빵집 삼국지’)●편들지 않는 시선 10편… 혼재된 선인·악인 서울시 마포구 현수동에서 일어나는 10편의 비극. 연작소설 ‘산 자들’(민음사)은 일간지 기자 출신 작가가 직조한 한국의 경제 현실에 관한 10회 짜리 기획기사다. 취업, 해고, 구조조정, 자영업, 재건축 등 경제문제 속 온갖 고단함, 그 와중에서도 ‘갑과 을’에 비해 덜 조명됐던 ‘을과 을’ 사이의 아귀 다툼이 도드라지는 소설들이다. 그 어느 하나 편들지 않는 글, 언론사 데스크한테는 “야마(기사의 핵심 주제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가 없다”고 한 소리 들을 법하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사옥에서 만난 장강명(44) 작가는 “어중간하게 나쁜 놈이면서 딱한 놈도 있고, 더 딱한데 착한지 나쁜지 모르겠는 사람도 있다”며 “도저히 한 문장으로는 축약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공감 없는 이해·이해 없는 공감 모두 지양해야 그래서 작가는 이해 당사자 양쪽의 사연을 다 넣으려 노력했다. “기사 제목만 보고 악플들을 달잖아요. 기사 끝까지만 봐도 악플을 못 다는데 말이죠. 기사보다 더 길게 사연을 보다 보면 감히 누구를 비난하겠어요.” 그는 ‘한국 사회 살기 힘들다’, ‘어느 현장을 가도 다 사연이 있다’는 느슨한 야마 두 가지만 가지고 접근했다. 그렇게 1부 ‘자르기’에서는 비정규직과 대기발령, 대규모 구조조정 같은 해고 이야기를, 2부 ‘싸우기’에서는 직장에 포함되지 않아 해고가 되려야 될 수 없는 자영업, 재건축, 취업 이야기를 담았다. 3부 ‘버티기’에서는 모두가 친절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세분화된 시스템,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제 침묵보다 저렴해진 ‘음악의 가격’ 등 그로테스크한 현실 진단이 이어진다. 초판 3000부를 찍고 사흘 만에 재쇄 3000부를 또 찍은 책은 작가의 예상과 달리 ‘힐링된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초고를 읽어보니까, 너무 우울하더라”는 작가가 자신의 책에서 느낀 건 ‘무력감’이었다. 독자들의 반응에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화여대 앞에서 빵집을 하다 접은 분이 ‘위로가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자기가 겪은 일이라든가, ‘내 일이다’ 싶은 걸 읽으면 그런가 봐요.” 모두가 느꼈으되 언어화하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들을 책 속에서 발견한 덕일 테다. 을과 을이 엉겨붙어 싸우는 고달픈 현실 속,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공감 없는 이해, 이해 없는 공감 모두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게 자본주의지, 어쩌란 말이야. 공산주의 하자고?’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그 논리만 옹호하면 그건 잔인한 거죠. 반대로 ‘여기 사람이 죽고 있다’ 그 구호 이상의 아무것도 없이, 왜 이런 톱니바퀴가 돌아가는지 이해를 않거나 거부한 채로 그 자리에서 통곡만 하는 건 공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길게 얘기한 셈”이라며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시스템의 억압에 새 감각 얻는다면… ‘산 자들’과 함께 작가는 SF 단편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아작)도 같이 펴냈다.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 그에게 SF를 쓰는 근육과 극사실주의 소설을 쓰는 근육은 ‘같은 근육’이다. 그는 공유차 서비스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을 빗댔다. ‘공유차 서비스 기술이 나와서 궁지에 몰린 택시 기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10년 전에 썼으면 SF이지만, 지금이라면 ‘산 자들’에 들어갈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가가 아니라 시스템이 개인을 억압해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이상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 개인에 대한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두 책은 다를 게 없다는 그는 같은 맥락에서 다음 작품은 ‘유일하게 시스템을 벗어난 인간’인 범죄자에 관한 얘기라고, 살짝 귀띔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단독] 노모와 죽으려 한 딸… 처벌 앞서 세 남매 갈등부터 풀었다

    [단독] 노모와 죽으려 한 딸… 처벌 앞서 세 남매 갈등부터 풀었다

    40건 중 17건 조정 완료·23건 진행 중 이해당사자 협의·관계 회복 뒤 형량 반영 학폭에 적용해 보니 상호 화해 ‘큰 효과’ “기계적 법 집행 넘어 피해자 중심 해결” “강력범죄·성폭력 등 2차 가해 주의해야”지난 4월 홀로 80대 노모를 부양하다 경제적 어려움에 지쳐 번개탄으로 동반자살을 시도한 50대 여성이 검거됐다. 노모에게는 세 남매가 있었지만 막내딸인 A(53)씨만 부양의무를 떠안다 생긴 비극이었다. 별다른 조치 없이 존속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될 사건이었지만, 회복적 경찰활동이 적용됐다. ●내년부터 전국 경찰청에 확대 적용 이는 경찰 입회하에 전문적인 대화 기관의 주도로 피해자와 가해자는 물론 이해 당사자 간 협의로 관계 회복에 힘쓰는 절차다. 올해 말까지 서울·인천·경기남부·경기북부청 등 4개 청에서 시범 운영 후 내년부터 전국 청에 확대 적용된다. 30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4월부터 시행된 회복적 경찰활동은 6월까지 40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17건은 조정이 완료됐고 23건은 절차가 진행 중이다. 회복적 절차가 완료되면 이해 당사자 간 대화 내용을 첨부해 향후 검찰·법원 단계에서 형량 등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경미한 사안은 경찰서장 주관으로 즉심 청구 또는 훈방 조치된다. ●세 남매 대화로 화해하고 부양 합의 A씨 남매도 7시간가량 이어진 사전대화와 본모임을 통해 서로에게 가졌던 죄책감과 원망을 털어놓았다. 모두에게 각자 사정이 있었다. 첫째 자식은 사고로 다친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고 둘째는 기초수급자였다. A씨는 담당 경찰관에게 “가정사를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럽지만 오랜 갈등이 풀렸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세 남매는 부양 비용을 공평하게 나누자며 합의서를 썼다. 경찰은 이들의 대화와 조정 내용을 사건기록에 첨부해 검찰에 송치했다. 회복적 활동은 학교폭력에 적용했을 때 특히 효과가 컸다. 회복 절차를 적용한 40건 중 21건은 소년 사건이었다. 후배가 선배를 폭행한 이후 선배들의 보복성 집단 폭행으로 이어진 사건에서도 회복 절차가 적용됐다. 선배에게 낙인찍힌 후배도, 후배에게 얻어맞은 선배도 학교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해당 사건을 맡은 학교전담경찰관(SPO)은 “학교폭력위원회에서는 징계 논의만이 이뤄진다”면서 “당시 한쪽의 피해가 훨씬 더 컸음에도 서로 징계 수준이 비슷하게 나와 양쪽 부모들 사이 감정의 골도 깊었다”고 전했다. SPO의 제안으로 4시간에 걸친 대화 끝에 서로 진심으로 사과했다. 부모들 역시 몇 차례 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사과했고, 합의금을 조정했다. 해당 사건은 상호 화해로 종결됐다. ●해외서도 소년범들 재범률 38% 낮아 호주, 영국, 캐나다, 미국 등에서도 경미한 소년범들을 중심으로 화합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해당 프로그램을 적용한 폭력범죄 소년범들의 재범률이 그렇지 않은 소년범들보다 38%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나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평가도 기존의 형사사법절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재범률을 낮추는 것은 물론 사법기관을 통한 분쟁 해결과 비교해 사회적 비용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 회복적 경찰활동을 적용할 순 없다. 김문귀 호서대 법경찰행정학부 교수는 “강력범죄나 가해자와의 대화가 오히려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성폭력 사건에 적용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 회복적 경찰활동이 적용된 사건들을 보면 친구 간 금전 갈등이나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분쟁이 많았다. 부부간 가정폭력에 적용된 사례도 있었지만 피해가 경미했고 피해자가 관계 회복을 원했다. 경찰 내부 반응은 긍정적이다. 한 여성청소년과 경찰관은 “많은 범죄가 사소한 감정싸움에서 시작된다”면서 “회복적 경찰활동으로 피·가해자 간 갈등 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기회를 제공해 더 큰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제까지의 경찰 활동은 정해진 법을 기계적으로 집행하는 데에 그쳐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증인이나 증거로만 취급됐다”면서 “회복적 경찰활동으로 피해자 중심의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여기는 중국] 20대 부부, 여행 후 돌아와보니…할머니와 아기 자택서 사망

    [여기는 중국] 20대 부부, 여행 후 돌아와보니…할머니와 아기 자택서 사망

    20대 부부가 여름 휴가 여행을 떠난 사이 할머니와 생후 20개월의 갓난아기가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산시성(陕西) 시안 시에 거주하는 20대 부부는 최근 7일 간의 여름휴가를 마친 직후 귀가한 집에서 사망한 가족들을 발견해 공안에 신고했다. 지난 23일 정오, 여행을 하고 귀가한 신 씨 부부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역한 악취가 코를 찌르는 것을 확인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신 씨 부부는 해당 악취가 거실 바닥에 쓰러져 사망한 신 씨의 모친 나 씨와 그의 자녀 샤오신의 부패한 냄새라는 것을 확인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에 따르면, 당시 7일 간의 여름 휴가를 떠난 신 씨 부부 대신 집 안에는 나 씨(57)와 신 씨의 자녀 샤오신(생후 20개월)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부부의 여행 기간 중 평소 지병을 앓았던 나씨가 병으로 사망했고 이후 돌봐줄 가족이 없었던 샤오신은 아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공안 조사 결과 나 씨는 발견 당시 이미 사망한 지 수 일이 지난 상태였다. 하지만 샤오신은 아사 한 지 불과 1~2일이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웃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 씨 부부가 여행 중이었던 당시 신 씨 집에서는 갓난아기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조사 결과 신 씨의 자녀 샤오신은 사망 직전 다리 뼈 일부가 부러지는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조사에 대해 공안 측은 나 씨의 사망 이후 먹을 것을 찾던 샤오신이 집 안에서 부상을 입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반면, 외부 침입 흔적이 없다는 점에서 타살 등의 혐의는 없다고 공안 측은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이 발생한 신 씨의 거처가 총 32층의 고층 아파트, 8개 동이 밀집한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는 분위기다. 일부 네티즌들은 “사건이 발생한 주택가에 무려 36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지만, 이웃 집에서 갓난아이가 아사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믿을 수 없다”면서 “그야말로 도심 속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처럼 고립된 생활을 하는 도시인들의 적막을 알 수 있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관할 지역 공안 관계자는 “장기간의 외출이 있을 시 반드시 자주 전화 연락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가족과 이웃간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송수로 아래로 몸을 던져 죽는 수백 마리 들쥐들, 왜일까?

    송수로 아래로 몸을 던져 죽는 수백 마리 들쥐들, 왜일까?

    나그네쥐 ‘레밍’처럼 마치 집단 자살을 연상시키는 들쥐들의 모습을 지난 28일 뉴스플레서, 라이브릭 등 여러 외신이 전했다. 영상 속, 네덜란드 홈머츠란 지역의 한 송수로 아래로 수백 마리의 죽은 들쥐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다. 어떠한 이유로 뛰어내린 걸까. 지난 26일(현지시간) 이 기괴스런 장면을 촬영한 안톤 캐퍼스란 사람은 뉴스플레어를 통해 “매일 아침마다 이곳 송수로 아래쪽 포장도로 주변에 수백 마리나 되는 들쥐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하지만 녀석들이 왜 송수로 아래로 뛰어내렸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부분의 들쥐는 떨어진 후 즉시 죽지만, 일부는 다치고 일부는 살아남아 달아난다”고 덧붙였다. 이 비극적인 현상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생쥐 전문가 니코 빔스터(Nico Beemster)란 이름의 지역 생태학자는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홈머츠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많은 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다. 들쥐들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어떤 엄청난 경쟁으로 이곳까지 오게 됐고 서로간에 싸움을 하다가 아래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모습은 생애 처음 보는 광경이다”고 말했다.사진 영상=Liveleakers 유튜브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 [이순녀의 시시콜콜]사선을 넘는 아이들

    또 하나의 비극적 장면이 전 세계를 충격과 슬픔에 휩싸이게 했다.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리오그란데 강 인근에서 나란히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된 엘살바도르 부녀의 모습. 스물 다섯살의 어린 아빠는 딸을 티셔츠 안에 넣어 감쌌고, 두살배기 딸은 아빠 목에 한쪽 팔을 두르고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강물에 뛰어들었지만 부녀의 발은 끝내 대지를 밟지 못했다. 남편과 아이를 먼저 건너가게 한 뒤 반대편 강가에서 기다리던 아내는 사랑하는 가족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멕시코 언론이 지난 25일(현지시간) 공개한 이 한 장의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에 떠밀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중남미 이민자들의 참혹한 현실에 다시금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보다 앞서 멕시코, 온두라스, 엘사바도르 등 중남미 이민자의 실상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진은 올해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로이터통신 김경훈 사진기자가 지난해 11월 25일 촬영한 것으로, 미국 국경수비대가 이민자 행렬을 향해 최루탄을 쏘자 온두라스 여성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포착했다. 여성이 입은 티셔츠에 그려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캐릭터와 기저귀를 찬 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엄마 손을 잡고 뛰는 아이들의 대비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모를 따라 사선을 넘는 아이들의 비극은 미국 접경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5년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려다 지중해에서 익사해 터키 해변으로 떠밀려온 시리아의 세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 2017년 1월에는 미얀마군의 군사 작전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도피하던 로힝야족 난민의 16개월 아들이 배가 침몰한 뒤 강가 진흙탕 속에 엎드린 채 숨진 사진이 공개돼 충격을 안겼다. 문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진 뒤에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살바도르 가족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멕시코 정부가 국경 단속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남미 이민자 행렬을 막으려 경유지인 멕시코에 관세 카드를 내세워 압박을 가한 탓이다. 지난해에만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이민자 283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비극의 고리는 끊기 어렵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법을 바꿨다면 그 훌륭한 아버지와 그의 딸이 당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화살을 민주당에 돌렸다. 쿠르디 사건 초기 유럽 내에서 폐쇄적인 난민 정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각국의 난민 정책은 별반 변하지 않았다. 독일 난민 구호단체 시아이는 지난 2월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난민 구조선 ‘알브레히트 펭크호’를 아일란 쿠르디호로 바꿨다. 쿠르디의 참극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는 부모의 고육지책이 아이를 사지로 몰아넣는 안타까운 상황을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하는 지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하다.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익사한 이민자 부녀 사진 파장에...美의회, 5조원 긴급예산 승인

    익사한 이민자 부녀 사진 파장에...美의회, 5조원 긴급예산 승인

    미국 정착을 위해 강을 건너다 익사한 엘살바도르 부녀의 비극적인 사진이 안팎으로부터 큰 파장을 몰고 오면서 미 의회가 5조원이 넘는 이민자 긴급 지원 예산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미국 하원은 27일(현지시간) 본회의를 열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붙잡힌 이민자 보호를 위해 46억 달러(약 5조 3000억원)의 긴급 구호 예산을 지원하는 법안을 찬성 305명, 반대 102명으로 가결했다. 이 법안은 전날 상원에서도 찬성 84표와 반대 8표라는 압도적 표 차이로 통과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하면 곧바로 발효된다. 법안은 구금된 이민자들의 열악한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보건복지부에 인도된 이민자 아동을 돌보는 데 30억 달러, 국경순찰대에 붙잡힌 이민자의 임시 주거와 식사에 10억달러 이상이 각각 투입된다. 당초 민주당 일인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진보 성향의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이민자 아동의 시설 수용기간을 3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이민세관단속국(ICE) 예산을 감축하는 내용의 수정 입법을 추진했으나 백악관과 공화당의 반대에 밀려 이를 포기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표결에서도 민주당 하원의원 235명 중 진보 성향 의원 71명은 끝까지 반대표를 던졌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백악관이 일부 행정상 보완조치를 할 수 있단 뜻을 밝혔다. 실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본회의 전 펠로시 의장과의 통화에서 구금시설에서 이민자 아동이 사망할 경우 24시간 이내에 의회에 통지하고, 이민자 아동의 시설 수용 기간을 90일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외신들은 엘살바도르 출신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23개월 딸이 리오그란데강에서 꼭 끌어안은 채 익사한 사진과 이민자 아동 수용시설의 열악한 주거 실태에 관한 언론 보도가 이날 법안 통과의 원동력이 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 사진과 보도로 국경 위기에 시급히 대처해야 한다는 여론에 불이 붙은 덕분에 미 의회가 다음달 4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열흘 간의 휴회에 들어가기 전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이날 법안 통과 소식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오사카를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남부 국경을 위한 초당적인 인도주의 지원법이 방금 통과됐다. 아주 잘 됐다”라며 “이제 우리는 망명 제도를 고치고 구멍을 없애기 위해 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이민자 부녀 익사 사진 본 트럼프 “법 안 바꾼 민주당 탓”

    이민자 부녀 익사 사진 본 트럼프 “법 안 바꾼 민주당 탓”

    리오그란데강 엘살바도르 이민자 부녀 익사 사건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에 대한 각계각층의 비판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겼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날 공개된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그의 23개월 된 딸 발레리아의 비극적 사진에 대해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미국 정계도 여야를 막론하고 부녀의 비극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척 슈머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진을 보고서도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공화당 소속 론 존슨 상원의원도 “미 국경에서 이와 유사한 사진이 더이상 나오길 원치 않는다”며 의회에 행동을 촉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도 “우리에게 올바른 법이 있었다면 이민자들은 (미국에) 오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강경한 이민법을 지지하지 않는 민주당을 탓했다. 미 상·하원은 46억 달러(약 5조 3300억원) 규모의 긴급 이민자 처우개선법안을 각각 통과시켰지만, 법안 조정에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도 이민자 아동들이 치약, 비누 등 생필품 부족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이민 아동을 위한 생필품은 모자라지 않다”고 강변하며 외부 단체의 기부 의사에 대해서도 “법률자문을 요청하겠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연방공무원과 기업들까지 나서 반이민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망명담당 관리 등이 포함된 미 연방공무원노조가 캘리포니아 제9연방고등법원에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법정 의견서를 제출했다. 또 미국 온라인 가구업체 웨이페어 직원들은 이민자 어린이 구금시설용 침대를 공급하기로 한 회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보스턴 본사에서 열었다. 미 대형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민간 교도소와 구금시설을 운영하는 업체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도현이 앗아간 씨랜드 악몽… 이젠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요

    도현이 앗아간 씨랜드 악몽… 이젠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요

    “갯벌 체험을 한다”고 좋아하며 집을 나섰던 유치원생 19명이 다음날 숨이 멎은 채 부모 곁으로 돌아왔다.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였다. 화마는 유치원생과 교사 등 모두 23명의 삶을 앗아갔다. 날림 건축과 불법 인허가, 소방시설 미비 등이 얽힌 인재였다. 생을 마치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드러내며 큰 충격을 줬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당시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고 호소하던 유족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한국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다고 생각할까. 씨랜드 화재로 큰아들 김도현(당시 7세)군을 잃은 김순덕(53·여)씨와 인터뷰해 그가 겪은 20년을 재구성했다.엄마는 그날 마음속에서 태극기를 떼어냈다. 여자 필드하키 국가대표 수비수 김순덕. 그는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금·은메달을 따서 받은 체육훈장 맹호장과 국민훈장 목련장, 대통령 표창을 모두 우체통에 넣어버렸다. 국가에 반납한 것이다. 씨랜드 화재로 아들 도현이를 잃은 뒤 정부가 보인 무성의한 대응에 실망해서다. 그해 12월 남편, 둘째 아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2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20년 전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씨랜드 사고가 나고 4개월 뒤 (56명이 사망한) 인천 호프집 화재가 났어요. ‘이 나라에서는 무슨 사고가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 둘째 아이를 이곳에서 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국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남편은 먼저 떠난 첫째 생각에 매일 울며 배달 일을 했다. 김씨는 이를 악물었다. 남편에게 “둘째 아이를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며 채근했다. 떠난 아들을 한순간도 잊은 적 없지만 부부는 도현이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얘기할 때마다 애끊는 마음이 생겨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봐 두려웠다. 부모들이 사투를 벌이는 사이 사고 당시 네 살이던 둘째는 청년으로 성장했고, 도현이를 똑 닮은 막내아들도 태어났다. 부부는 중식당을 차려 뉴질랜드에서의 삶에 적응해 갔다.한국 사회는 김씨 가족에게 악몽을 잊을 틈을 주지 않았다. 매년 어린아이들이 사고로 죽는 일이 되풀이됐다. 2013년에는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고교생 5명이 바다에 빠져 숨졌다. 또 2014년 4월 16일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고교생 250여명 등 모두 304명이 선박이 침몰해 사망했다. 세월호 참사다. 김씨는 “TV로 지켜본 한국의 모습은 1999년과 달라진 게 없었다”고 했다. 누구 하나 기본 정보조차 주지 않아 TV로 아이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현장으로 달려간 가족들, 이들에게 사고 원인을 설명 못 하고 뭔가 숨기듯 주춤거리는 정부…. 씨랜드와 판박이였다. 김씨는 “씨랜드 사고 때도 관련 보도를 보고 수련원에 달려갔더니 그제야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겼다’고 하더라”고 떠올렸다. 또 “당시에도 진실을 아는 사람은 얘기하려 하지 않았고 용기 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묻혔는데, 세월호 참사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은 세월호 참사를 보며 형이 생각났는지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김씨는 아직도 그날 아들이 있던 방에서 왜 불이 났는지, 도현이를 지켰어야 할 선생님들은 어디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당시 검찰은 사건 한 달여 만에 “301호(도현이가 머물던 방)에 피워 놨던 모기향 불이 종이나 의류 등에 옮겨 붙어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아이들이 모깃불을 발로 차 불이 났다는 결론을 유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씨는 “유족들이 해외 연구진을 초빙해 자체 실험도 했는데 모깃불로는 발화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전선에서 불꽃이 튀는 걸 봤다며 누전 가능성을 언급한 목격자도 있었지만 전혀 수사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수사를 요구하며 정부 관계자에게 만나 달라고 7차례나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가 20년 동안 되풀이한 가정이 있다. ‘만약 그날 상황이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도현이는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고 당시 도현이는 7세 반인 17명의 친구들과 함께 인솔교사 없이 301호에서 잤다. 6세 반 등 다른 방에서 자던 아이들은 비극을 피했다. 도현이와 같은 나이지만 동생과 함께 자려고 방을 옮겼던 아이는 살아남았다. 김씨는 “사고 나기 한 달 전까지 둘째도 같은 유치원에 다녔다”면서 “동생도 수련원에 갔다면, 그래서 도현이가 301호가 아닌 다른 방에서 잤다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은 ‘자칫 아이를 둘 다 잃을 뻔했는데, 한 명은 살리려고 그랬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불안을 치유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가고 있다. 둘째 아들은 엄마가 일찍 일어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카페에서 차나 마시고 오자”며 챙기기도 한다. 가족들은 20년이 지나서야 도현이에 대한 기억을 조금은 편히 얘기할 수 있게 됐다. 김씨는 “도현이가 보고 싶을 때 ‘보고 싶다’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마음에 더 좋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둘째가 ‘형도 우리가 잘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며 토닥여 준다”고 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그나마 우리 사회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2014년 이후 아동·청소년들의 체험학습 안전 매뉴얼이 한층 강화됐다. 그는 “지난 4월 강원도 강릉 산불 때 전국 소방차가 신속하게 집결하는 등 피해를 줄이려 애쓰는 모습을 봤다”면서 “사회적 참사 앞에서는 정파 등을 떠나 한마음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도현이의 2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24일 한국에 왔다. 오는 30일 오전 11시 유족 50여명이 서울 송파구의 송파안전체험교육관에 있는 씨랜드 참사 추모비 앞에서 작은 추모제를 연다. 이후 유해가 뿌려진 주문진도 함께 찾는다. “다른 유족들과 함께 아이들을 어떻게 기억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유가족이 바라는 건 안전한 대한민국이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어린이집에 다니다 안전사고로 죽거나 다친 아동은 2013~2017년 3만 3839명이나 됐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죽어야만 끝나는 ‘그림자 노동’… 가족 간병의 비극을 마주하다

    죽어야만 끝나는 ‘그림자 노동’… 가족 간병의 비극을 마주하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유영규·임주영·이성원·신융아·이혜리 지음/루아크/240쪽/1만 4000원 ‘긴 병에 효자 없다.’ 대수롭지 않게 흔히 쓰는 말이다. 하지만 장기간 투병하는 가족을 곁에서 수족처럼 돌보는 이들에겐 통감할 수 있는 명언이다. 나아질 기색 없이 오래도록 아픈 환자들에게서 갖게 되는 간병 가족의 나쁜 감정, 쌓여만 가는 경제적 부담, 우울증, 주변의 시선…. 그 고통은 자주 살인이나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부른다. 이른바 ‘간병살인’이다.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선 공론화되지 못한 사회문제이다. 국가 차원의 통계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은 그 소외된 아픔의 영역을 정색하고 수면 위로 끄집어낸 역작이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가 3개월여의 사전 조사를 거쳐 방방곡곡을 찾아 건져 증언록으로 탄생시켰다. 지난 10년간 판결문과 보건복지부의 자살사망자 전수조사,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심리부검 사례를 샅샅이 뒤져 파악한 ‘간병살인’ 가해자 수는 154명, 희생자 수는 213명. 책은 가장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이라는 ‘가족 간호’의 아픈 현실을 8개 테마로 정리했다. 가족 간호 안에 든 아픔과 고통의 두께는 상상을 초월한다. 86세 아내를 목 졸라 숨지게 한 89세 남편은 경찰서로 이송되면서 이렇게 울먹였다. “임자 잘 됐어…. 이제 나도 죽어야겠어.” 발달장애를 앓던 큰아들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쳐 죽게 한 노모는 이렇게 탄식한다. “지나고 보니 사는 게 늘 그늘이었어. 안 해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란 게 그 매스컴에 나오는 거런 것과는 많이 달라….” 노노(老老) 간병, 다중간병, 간병인 폭언·폭행, 장애인 간병, 죽음의 선택…. 저자들은 이제 그 아픈 현실을 더이상 외면하지 말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중에서도 지치고 힘든 간병인을 돕는 간병 보조인 지원 같은 공적지원서비스는 도드라진 대안으로 꼽힌다. 책 출간에 앞서 지난해 9월 8회에 걸쳐 연재됐던 이 심층 탐사는 제50회 한국기자상, 제36회 관훈언론상, 제21회 국제앰네스티언론상을 수상하며 센셔이션을 불렀다. 탐사기획부 기자들은 당시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이 전쟁은 누군가 죽어야만 끝납니다. 한국 사회가 우군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가족 간 살인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박상현의 디지털 미디어] 셀럽의 소셜미디어 재난관리

    [박상현의 디지털 미디어] 셀럽의 소셜미디어 재난관리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새뮤얼 콜트는 그들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19세기 미국에서 통용되던 이 말은 과거에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싸움에서 이겼지만, 콜트가 제조한 권총이 나온 후에는 누구나 동등한 위치에서 싸워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권총뿐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 낸 기술은 대부분 그렇게 현존하는 사회의 작동 방식을 바꾸고, 그 결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왔다. 누구나 편집 가능한 위키피디아가 나타나면서 대형 백과사전들은 멸종된 공룡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빠른 인터넷으로 대용량 파일의 공유와 스트리밍이 가능해지면서 CD, DVD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다. 미디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과거에는 국가에서 주파수를 부여받은 방송사나 값비싼 배달, 판매망을 갖춘 신문사, 잡지사만이 미디어의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플랫폼에 아무런 비용도 내지 않고 올라타서 미디어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총을 가질 수 있게 된 후에 많은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목숨을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셜미디어라는 막강한 무기 역시 일반인의 손에 들어간 후에 각종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유명한 인물이 술을 마시고 밤늦게 소셜미디어에 남겨 둔 일로 곤욕을 치르고 “장렬하게 산화”해 버린 예는 일일이 세기도 힘들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트윗을 하다가 잠드는 바람에 비문이 트윗된 일도 있을 만큼 소셜미디어 사고 앞에서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지난 한두 달 사이 흔히 ‘셀럽’이라고 불리는 소셜미디어에서 잘 알려진 분들이 구설에 오르는 일이 여러 건 생겼다. 팔로어가 몇만 명이 되는 유명인들 사이에 소셜 플랫폼에서 ‘배틀’이 벌어지는 모습은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놀라운 광경이다. 과거에는 신문사, 방송사가 편집한 콘텐츠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논쟁이 가감없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유명 정치인이 썼다가 급하게 지운 포스트가 사진으로 박제돼 온라인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미디어의 평등’이란 콜트가 권총으로 만들어 낸 평등처럼 ‘크게 다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보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해도 그 일을 겪는 당사자들에게는 큰 비극이다. 비슷한 위기를 숱하게 겪고 극복해 본 경험이 있는 전통적인 매체의 조직와 달리 미디어 경험이 없는 개인에 불과한 사용자들에게는 구설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타격이다. 더욱이 그 개인이 기업을 비롯한 큰 조직의 대표거나 상징적인 인물이라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기업의 대표나 조직의 장이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미디어를 잘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전문가는 아닌데, 자신이 소셜미디어에서 한 말이 오해를 부르거나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는 경우 조직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한’ 트윗을 자주 해서 구설에 오르는 것으로 유명한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지우겠다고 하자 테슬라의 주식이 2.5% 가까이 올랐다는 사실은 웃을 일이 아니다. 대중의 머릿속에 특정 개인의 브랜드가 조직의 브랜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면 그 개인의 계정은 더이상 개인의 계정이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대통령, 총리의 소셜 계정을 사실은 미디어 전문가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막말 트윗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계정에 올라오는 트윗의 절반 정도는 미디어 담당관들이 작성하고 관리한다. 이제 우리나라 기업의 대표나 단체장들도 자신의 계정을 전문가에게 넘겨주거나, 적어도 계정 관리 프로토콜 작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들의 말실수에 조직 전체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문제가 생기면 일부 대형 미디어들을 잘 ‘관리’하는 것으로 무마할 수 있었던 시절은 끝났다. 들어 본 적 없는 사람 하나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 한 장, 페북에 남긴 포스트 하나가 나와 내 조직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는 세상이다. 누구나 권총 한 자루를 들고 다니는 시대에는 새로운 위기관리법이 필요하다.
  • 끝내 미국땅 못 밟고… 이민자 부녀의 비극

    치약·비누없는 美이민자 아동 구금시설 美언론 “탈레반·해적보다 더 비인간적” CBP 국장 대행 “새달 5일 사임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의 부작용이 속출하며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미국 내 이민자 아동 구금 캠프의 충격적인 실태가 폭로된 데 이어 미·멕시코 국경 부근에서 20대 아버지와 두 살 난 딸이 함께 숨져 있는 사진이 공개되며 인권침해 문제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AP통신이 25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 속 인물은 엘살바도르 국적의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그의 딸 발레리아로 이들은 미·멕시코 접경 지역인 멕시코 마타모로스의 리오그란데 강에서 전날 숨진 채로 발견됐다. 온라인매체 복스에 따르면 부녀와 오스카르의 아내 타니아는 멕시코의 이민자 시설에서 미국으로 망명 신청을 하고 나서 기약없이 대기하다 결국 불법 입국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머문 멕시코의 구금시설은 43도를 웃돌았으며 음식도 충분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녀(父女)의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자 전날 공개된 미국 내 이민자 아동 구금시설의 열악한 실태가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다. 치약, 비누조차 없이 극도로 비위생적인 환경에 아동들이 처해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워싱턴포스트 등은 “미국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나 해적보다도 더 비인간적으로 이민자를 다루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2008년 탈레반에 납치돼 7개월간 구금된 데이비드 로드 전 뉴욕타임스 기자는 트위터에 “탈레반도 내게 치약과 비누는 줬다”고 말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문제 시설에 있던 300여명의 아동들을 보건당국이 관리하는 캠프로 이송했으며 존 샌더스 CBP 국장 대행도 다음달 5일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이민정책 강경파인 마크 모건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대행이 샌더스의 후임을 맡으면서 강경 대응 노선에서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미 하원은 이날 45억 달러(약 5조 2000억원) 규모의 이민자 가족과 아동의 처우 개선을 위한 긴급 예산을 가결하며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했다. 미국의 압력에 이민 행렬 저지에 힘을 쏟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이민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지침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면서 북부 미국 국경 지역에서 이민자를 체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한국어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뉴브강의 비극’ 달래주다

    한국어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뉴브강의 비극’ 달래주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외로워도 외로워도 님 오지 않고/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지으네.” 검은색 연미복을 갖춰 입은 푸른 눈의 연주자들의 입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 낮고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한 몸처럼 다루는 악기는 잠시 옆에 두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부르는 악사들의 노래는 엄숙했고, 합창단이 아닌 연주단이 서툰 우리말로 부르는 노래에도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여럿 보였다. 가곡이 끝나고 공연장에는 20초가량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만 흘렀고, 이역만리를 날아온 연주자와 월요일 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을 애도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다뉴브 유람선 참사’ 희생자들의 유족이고, 친구였다. ●이반 피셰르와 63명 단원들 엄숙한 합창에 20초간 정적 지난 24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 공연은 지난달 2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연주와 노래로 시작됐다. BFO를 이끄는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 지휘자 이반 피셰르(68)는 본공연에 앞서 “우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왔다. 최근 참담한 사고가 있었던 곳다. 이 사고로 많은 한국인이 희생됐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헝가리 국민과 부다페스트 시민들, 단원들과 저는 마음을 다해 유족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 싶다”며 63명 단원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도 BFO 측의 제안으로 추모의 글을 보내 “사고의 정확한 상황을 철저하게 확인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을 잘 보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지휘자 이반 피셰르와 오케스트라가 헝가리를 대신해 깊은 조의를 전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음악을 통해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피셰르는 1989년 부다페스트 연주회 당시 헝가리로 온 동독 난민들을 초대하고, 2015년 베를린 연주회에서는 시리아 난민을 위한 연주회를 여는 등 음악을 통해 인류애와 평화를 강조하는 ‘클래식 휴머니스트’로도 존경받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베토벤·쇼팽 협연 한편 이날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BFO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앙코르로 쇼팽의 프렐류드 4번과 브람스 6개의 피아노 소품을 선사했다. BFO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선사했고, 예정된 프로그램을 마친 뒤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 1번으로 객석을 떠나지 않는 관객들에게 화답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게임중독 질병 규정될까?…민·관 전문가, 사회적 타협안 찾는다

    게임중독 질병 규정될까?…민·관 전문가, 사회적 타협안 찾는다

    게임중독을 질병(게임이용 장애-Gaming Disorder)으로 보느냐, 마느냐를 놓고 뜨거운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게임과 게임산업을 둘러싼 첨예한 이해관계에 따라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국회 파행으로 지난 24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175일 만에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도 게임중독 질병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게임중독 질병 규정 논란을 쟁점별로 살펴본다.●“게임중독=질병” vs “여가 활동 위축”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회원국 총회에서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을 결정했다. WHO는 게임중독을 “게임을 한번 시작하면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조절 불능), 먹고 자는 것을 포함해 다른 모든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고, 게임 때문에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등 일상생활의 심각한 장애가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게임중독 규정에 대해 찬반이 엇갈린다. 문체부와 게임업계 등 반대 측은 “게임중독에 대한 진단 기준이 모호한데 무작정 질병으로 분류하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고 게임산업을 위축시킬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잖아도 청소년 게임에 대한 편견이 강한데 게임이 정신질환까지 유발한다고 하면 게임을 하면서 불필요한 죄의식을 느낄 수 있고, 게임 개발자들의 자유로운 창작 정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나 의료계 측은 “건전하게 즐기는 게임을 금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만 질병으로 보고 제때 치료하겠다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실제 게임중독으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은 잊을 만하면 나온다.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이 야단치는 어머니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고, 심지어 인터넷 게임에 빠져 생후 3개월 된 갓난아기를 방치해 굶겨 죽인 20대 부부도 있었다. ●“과학적 근거 모호” vs “예방·치료 계기” 문체부는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게임중독이 게임 그 자체에 원인이 있는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이 가정 불화나 학업 스트레스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게임중독이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고 명확한 정의도 없는데, 어떻게 질병으로 분류하고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나”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복지부와 의료계는 “세계적으로 게임중독을 주제로 한 50여개의 장기 추적연구 결과가 축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게임 등 중독성 질환을 인정하려면 뇌 영상 연구를 통해 도파민 회로의 이상이 밝혀져야 하는데, 2013년 도파민 회로 이상이 학계에 보고되었다고 한다. 또 게임중독에 대한 1000개 이상 뇌 기능 관련 연구로 과학적 근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되면 예방 및 치료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고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는 입장이다. ●“게임산업 위축” vs “게임 문화 오해 불식” 게임업계는 ‘수출 효자’인 게임산업이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우리나라 게임산업 규모는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지난해 영화, 음악, 출판 등이 포함된 콘텐츠 전체 수출액에서 게임이 62.1%를 차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규정되면 한국 게임산업의 손실금액이 2025년 최대 5조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내 게임 산업 규모는 연 13조원 정도다. 또 게임에 대한 규제 강화도 걱정한다. 현재 술·담배에 부과하는 치유부담금이 게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지노·복권·경마 등에 순매출 0.3%를 도박중독예방 치유부담금으로 부과하고 있는데, 게임도 비슷한 규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와 의료계는 “게임중독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아 게임산업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다음달 협의체 구성해 본격 논의 WHO 권고는 2022년 발효되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통계청·복지부 등 관계 부처 논의를 거쳐 5년마다 개정되므로 이르면 오는 2025년 개정 작업을 거쳐 2026년 시행된다. 정부는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복지부와 문화부 등 관계 부처와 게임업계, 의료계,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만들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와 문체부가 갈등 양상을 보이자 국무조정실이 중재에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국회 문체위에서 “다음달 협의체를 구성할 것”이라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논의를 거쳐 통계청이 기본적으로 (질병 관련) 고시 기준에 집어넣을 것인지 등 논의가 진행돼야 하는데, 꽤 오래 진행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도 “각계가 참여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건전한 게임이용 문화 정착은 물론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게임중독 질병 규정될까?… 민·관 전문가, 사회적 타협안 찾는다

    게임중독 질병 규정될까?… 민·관 전문가, 사회적 타협안 찾는다

    게임중독을 질병(게임이용 장애-Gaming Disorder)으로 보느냐, 마느냐를 놓고 뜨거운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게임과 게임산업을 둘러싼 첨예한 이해관계에 따라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국회 파행으로 지난 24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175일 만에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도 게임중독 질병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게임중독 질병 규정 논란을 쟁점별로 살펴본다.●“게임중독=질병” vs “여가 활동 위축”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회원국 총회에서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을 결정했다. WHO는 게임중독을 “게임을 한번 시작하면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조절 불능), 먹고 자는 것을 포함해 다른 모든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고, 게임 때문에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등 일상생활의 심각한 장애가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게임중독 규정에 대해 찬반이 엇갈린다. 문체부와 게임업계 등 반대 측은 “게임중독에 대한 진단 기준이 모호한데 무작정 질병으로 분류하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고 게임산업을 위축시킬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잖아도 청소년 게임에 대한 편견이 강한데 게임이 정신질환까지 유발한다고 하면 게임을 하면서 불필요한 죄의식을 느낄 수 있고, 게임 개발자들의 자유로운 창작 정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나 의료계 측은 “건전하게 즐기는 게임을 금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만 질병으로 보고 제때 치료하겠다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실제 게임중독으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은 잊을 만하면 나온다.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이 야단치는 어머니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고, 심지어 인터넷 게임에 빠져 생후 3개월 된 갓난아기를 방치해 굶겨 죽인 20대 부부도 있었다.●“과학적 근거 모호” vs “예방·치료 계기” 문체부는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게임중독이 게임 그 자체에 원인이 있는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이 가정 불화나 학업 스트레스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게임중독이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고 명확한 정의도 없는데, 어떻게 질병으로 분류하고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나”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복지부와 의료계는 “세계적으로 게임중독을 주제로 한 50여개의 장기 추적연구 결과가 축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게임 등 중독성 질환을 인정하려면 뇌 영상 연구를 통해 도파민 회로의 이상이 밝혀져야 하는데, 2013년 도파민 회로 이상이 학계에 보고되었다고 한다. 또 게임중독에 대한 1000개 이상 뇌 기능 관련 연구로 과학적 근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되면 예방 및 치료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고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는 입장이다. ●“게임산업 위축” vs “게임 문화 오해 불식” 게임업계는 ‘수출 효자’인 게임산업이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우리나라 게임산업 규모는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지난해 영화, 음악, 출판 등이 포함된 콘텐츠 전체 수출액에서 게임이 62.1%를 차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규정되면 한국 게임산업의 손실금액이 2025년 최대 5조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내 게임 산업 규모는 연 13조원 정도다. 또 게임에 대한 규제 강화도 걱정한다. 현재 술·담배에 부과하는 치유부담금이 게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지노·복권·경마 등에 순매출 0.3%를 도박중독예방 치유부담금으로 부과하고 있는데, 게임도 비슷한 규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와 의료계는 “게임중독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아 게임산업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다음달 협의체 구성해 본격 논의 WHO 권고는 2022년 발효되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통계청·복지부 등 관계 부처 논의를 거쳐 5년마다 개정되므로 이르면 오는 2025년 개정 작업을 거쳐 2026년 시행된다. 정부는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복지부와 문화부 등 관계 부처와 게임업계, 의료계,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만들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와 문체부가 갈등 양상을 보이자 국무조정실이 중재에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국회 문체위에서 “다음달 협의체를 구성할 것”이라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논의를 거쳐 통계청이 기본적으로 (질병 관련) 고시 기준에 집어넣을 것인지 등 논의가 진행돼야 하는데, 꽤 오래 진행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도 “각계가 참여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건전한 게임이용 문화 정착은 물론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왓쳐’ 안길호 감독X한상운 작가 “본 적 없는 ‘감찰’ 소재”

    ‘왓쳐’ 안길호 감독X한상운 작가 “본 적 없는 ‘감찰’ 소재”

    ‘WATCHER(왓쳐)’가 국내 최초로 감찰을 소재로 한 본격 심리 스릴러의 새 장을 연다. ‘보이스3’ 후속으로 오는 7월 6일 방송되는 OCN 새 토일 오리지널 ‘WATCHER(왓쳐)’(연출 안길호, 극본 한상운,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이하 ‘왓쳐’)는 비극적 사건에 얽힌 세 남녀가 경찰의 부패를 파헤치는 비리수사팀이 되어 권력의 실체를 밝혀내는 내부 감찰 스릴러다. 경찰을 잡는 경찰, ‘감찰’이라는 특수한 수사관을 소재로 사건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다면성을 치밀하게 쫓는 심리 스릴러를 그린다. 그동안 수사물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머물렀다면, ‘왓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대로 조명된 적 없는 ‘감찰’을 전면에 내세워 사건 속에 숨겨진 인간 군상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경찰 동료에게는 영원한 ‘내부의 적’이자 모두를 철저히 의심해야 하는 외로운 감시자, 비리수사팀의 시선으로 사건에 얽힌 이해관계를 파헤치고 권력의 실체에 다가선다. 소위 정의를 지켜야 하는 이들의 욕망과 신념의 대립을 들여다보며 선과 악, 정의에 대해 날카롭게 짚는다. 무엇보다 완성도를 담보하는 안길호 감독과 한상운 작가의 의기투합은 차원이 다른 심리스릴러의 탄생을 기대케 하며 드라마 팬들을 들썩이게 만든다. 디테일한 연출력의 대가로 손꼽히는 안길호 감독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 ‘비밀의 숲’부터 증강현실 게임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표현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까지 놀라운 연출력을 선보인 바 있어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국내 최초 미드 리메이크작 ‘굿와이프’에서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녹여내며 호평을 받은 한상운 작가 역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치밀하고 섬세한 ‘디테일 장인들’이 본격 심리 스릴러 장르에서 만나 발산할 시너지는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기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한상운 작가는 “지금까지 다룬 적 없는 ‘감찰’을 소재로 한 본격 심리 스릴러다”라고 차별점을 짚었다. “여러 수사물에서 ‘감찰’은 일선 경찰의 피를 빨아먹는 고위층의 수족, 혹은 주인공을 방해하거나 각성시키는 도구로만 등장했을 뿐 극의 중심에 서 본 적이 없었다. 수사와 비리의 경계선에서 범죄자를 잡기 위해 수많은 선악의 갈림길에 서는 경찰. 이들을 ‘감찰’의 시선으로 내밀하게 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안길호 감독 역시 “사건보다 사람과 그 관계성에 집중하는 드라마”라고 밝혔다. “기존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중심이 된 적이 없었던 감찰부서의 이야기이자, 캐릭터도 목적도 다른 세 주인공의 시점에 따라 사건과 상황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차별점이 흥미로운 드라마”라고 덧붙였다. 거미줄처럼 얽힌 사람들의 욕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하는 ‘심리 스릴러’를 잘 표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점을 둔 부분은 각 인물 간의 관계성이다. 안길호 감독은 “사건에 사람이 매몰되지 않고, 그들의 내면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는 데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한상운 작가도 “인물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인물 간의 반목과 충돌에 중점을 둔 심리스릴러다. 욕망은 이기적일 수도, 이타적일 수도 있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과정들을 각 인물의 상황과 성격에 따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지가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캐릭터도 목적도 다른 세 주인공 치광, 영군, 태주 역시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경계하고 협력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기존 장르물과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높였다. 안길호 감독과 한상운 작가는 서로에 대한 신뢰 역시 끈끈하다. 안길호 감독은 “장르물이지만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나는 드라마다. 사건을 치밀하게 쫓으면서도 관련된 사람들의 내밀한 감정선과 서사를 놓치지 않는다. 매 회가 궁금해지는 대본”이라고 극찬했다. 한상운 작가에게도 안길호 감독은 천군만마다. 한상운 작가는 “안 감독님은 뛰어난 비주얼 감각을 가졌고, 단순히 멋진 화면을 만들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쓸 줄 아는 연출자다. 디테일하면서 정확하고, 또 이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줄 아는 최고의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대본의 빈 공간을 감독님이 꽉꽉 채워주실 거라 믿는다”고 무한 신뢰를 보냈다. OCN 내부 감찰 스릴러 ‘왓쳐’는 ‘보이스3’ 후속으로 오는 7월 6일 토요일 밤 10시 20분 첫 방송 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교회오빠’ 이호경 PD “이관희-오은주 부부, 세상에서 가장 불행”

    ‘교회오빠’ 이호경 PD “이관희-오은주 부부, 세상에서 가장 불행”

    영화 ‘교회오빠’의 뒷이야기가 공개됐다. 25일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에는 영화 ‘교회오빠’ 연출자이자 KBS 시사교양국 이호경 PD와 영화의 주인공 오은주 씨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이호경 PD는 “‘교회오빠’ 실제 주인공인 오은주, 이관희 부부는 제가 아는 한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부부”라고 말했다. 이호경 PD는 “이관희 씨는 37살의 나이에 첫 딸과 만난 후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며 “사랑하는 아들이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어머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면서 이들 가족에 닥친 불행을 전했다. 이어 “넉 달 후 아내 오은주 씨가 열액암 4기 진단을 받았다”며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계속되는 비극은 충격적인 사연이었다”고 말했다. 이호경 PD는 또 암으로 가족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14년도에 미혼인 누나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갔는데 암이 발견됐다”며 “위암 4기였다”고 설명했다. 정보를 찾아서 암 환우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활동을 했다는 이호경 PD는 “(누나의) 항암 기간 동안 본업인 방송에 시간이 뺏기다 보니, 차라리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제가 살지 않겠나 싶었다”면서 ‘교회오빠’ 제작 계기를 밝혔다. 이호경 PD는 “비극 속에서도 부부가 너무 밝고 투명했다”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모습들이 제작진과 시청자들, 관객들에게 울림을 준 부분이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온전하게 살려고 했던 남자의 삶을 잘 전달하려 했다”면서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오은주 씨는 “이 이별이 끝이 아니라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면서 홀로 남은 감정을 전했다. 이어 “많이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더 사랑해주고 싶어 결혼식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고 전해 뭉클함을 안겼다. 영화 ‘교회오빠’는 2017년 방송된 KBS 1TV ‘KBS 스페설’의 ‘앎:교회오빠’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다큐멘터리 영화로 고인이 된 이관희 집사가 두 번째 암 재발 후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지난 5월 16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씨줄날줄] 마라탕과 대왕카스텔라/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마라탕과 대왕카스텔라/박록삼 논설위원

    예술 속 리얼리즘은 여러 모순을 가진 사회 속 고통받는 인간 존재의 비루함을 담아낸다. 하지만 리얼리즘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이 아니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등을 따지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예술로 형상화하다 보면 자칫 부조리극이 되곤 한다. 실제 우리네 삶은 이성과 합리의 가치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조리적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삶과 예술의 통찰을 담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가 그렇다. 갈매기처럼 비상을 꿈꾸는 여주인공에게 남주인공은 자신이 쏴 죽인 갈매기를 보여 주며 이상을 꺾게 한다. 하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남주인공이다. 부조리함이야말로 ‘진짜 리얼리즘’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2017년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대왕카스텔라 열풍’은 자영업자들에게 희망의 키워드였다. 하루 매출 200만원 안팎이라는 입소문이 전해지며 1000개가 넘는 가게들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프랜차이즈만 17개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 종편TV의 고발 프로그램에 나온 다음날 그 열풍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매출이 80~90% 줄어 울상이라는 뉴스 뒤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자영업자들의 희망을 배반한 일종의 ‘블랙코미디’와 같은 현상이었다. 오죽하면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 속 부잣집 지하에서 기생해야 하는 빈곤한 가장 두 사람이 한결같이 대왕카스텔라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한 인물로 묘사됐을까. 삶이 부조리하니 예술 역시 덩달아 부조리한 모습으로 풀어 갈 수밖에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기생충’ 속 서민의 삶이 ‘희비극’으로 펼쳐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서민들 삶의 부조리함은 대왕카스텔라 흥망의 우스꽝스러움에 머물지 않았다. 배달 전문 탕수육 창업 때도 그랬으며, ‘치맥 열풍’에 기대 전국적으로 8만개가 넘게 성행하는 치킨집 역시 매년 6200개가 새로 생기는 속에서 8000개가 문을 닫는다. 최근 전국 방방곡곡에 빼곡히 들어서는 ‘마라탕’(麻辣?) 또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다. 당장 맵고 얼얼한 맛에 흠뻑 빠지게 만든 이 중국 음식이 대왕카스텔라의 길을 가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자영업자들은 근본적으로 ‘을’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막대한 로열티를 내고, 건물주의 임대료 상승 압박에 시달리며, 배달앱에 수수료를 줘야 한다. 그렇다고 가맹 본사에 맞서기 쉽지 않고, 건물주와는 일대일 계약이라 더더욱 쉽지 않다. 하릴없이 최저임금 탓을 하는 게 부조리한 ‘을의 삶’이다. youngtan@seoul.co.kr
  • 없는 사람도 같이 살면 안 되나…‘신과함께’ 인간 존엄성을 묻다

    없는 사람도 같이 살면 안 되나…‘신과함께’ 인간 존엄성을 묻다

    “다 같이 살면 안 되나. 없는 사람도, 있는 사람도, 다 같이 살면 안 되나.” 하늘과 제일 가까운 동네, 서울 강북의 철거촌 한울동. 오락실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던 한 독거노인이 숨진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된다. 한울동 사람들은 노인의 장례식에서 ‘다 같이 사는 세상’을 원망하듯 노래한다. 마을 담벼락 위에는 눈에 익은 구호가 적힌 하얀 천막이 걸려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두 편의 시리즈 영화로 제작되며 ‘쌍천만 관객’(총 2668만 7790명)을 동원한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 ‘신과함께’가 4년 만에 다시 뮤지컬 무대로 돌아왔다. 서울예술단이 전작 ‘신과함께_저승편’에 이어 재해석한 ‘신과함께_이승편’은 공연시간 150분(인터미션 20분 포함) 내내 2009년 용산참사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재개발 정책과 철거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지난 21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신과함께_이승편’ 프레스콜(언론 시연회)에서 창작가무극(뮤지컬)으로 재탄생한 자신의 작품을 처음 본 주 작가는 “원작자인데도 부끄럽게 눈물이 났다. 눈물을 참느라 고생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원작은 진짜 끝까지 암울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안도’의 정서로 바뀌어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면서 “우울한 이야기다 보니 실제로 만화를 그릴 때도 고통스러웠는데, 뮤지컬에서는 여러 가택 신이 사람들을 돌보려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담겨 있어 ‘아 나도 이렇게 그릴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시종일관 관객을 향해 ‘다 같이 살면 안 되나’라고 묻는다. 뉴타운 정책으로 들어서는 ‘크고 비싼 집’과 그들을 위해 ‘파괴되는 집’을 통해 인간 존엄성과 공동체에 대한 화두를 끊임없이 던진다. 원작에 더욱 무거운 메시지를 더한 김태형 연출은 “강남 한복판에서 철거민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했다. 당초 다른 공연 일정이 먼저 잡혀 있던 터라 김 연출은 작품에 동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의 마음을 붙잡은 건 ‘공연장’이었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래? 역삼동에서 철거민들이 시위하는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 수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건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에요. 공연 스케줄을 뒤로 미루고 하겠다고 했죠.”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으로 제작된 원작 ‘신과함께’ 중 이승편은 집에 깃든 신들이 그곳의 사람들을 지켜 준다는 내용의 제주와 경기지역 가택신앙을 바탕으로 그렸다. 여기에 용산참사라는 비극을 녹여 풀었다. 주 작가는 “원작 마지막 부분에 6명의 죽음을 예정하면서 끝을 냈는데, 용산참사 때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 한 분이 돌아가신 걸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년 전보다 세상은 나아졌나’ 묻자 그는 “모르겠다”는 답을 내놨다. “그런 일(철거 폭력)은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잊어버리면 (인간성이) 소멸한다고 생각해요. 재조명하면서 잊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연출 작업 초반 철거민 이야기 비중을 두고 고민하던 김 연출은 한 언론 보도를 보고 연출 방향을 잡았다. 지난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씨 얘기였다. 그는 아현2구역 강제집행 이후 3개월 이상 빈집을 전전하며 노숙인 생활을 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의 유서에는 남겨진 어머니를 위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이 남겨져 있었다. 김 연출은 “‘2018년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이 철거 문제로 죽을 수 있구나. 이게 지나간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과감하게 철거민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는 김 연출은 “인간 존엄성보다 경제적 가치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고 이해했던 그런 것들이 소멸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철거와 재개발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누리고 가져야 할 기본적인 존엄성이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창작가무극 ‘신과함께_이승편’은 오는 29일까지 공연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주 4·3’ 첫 행사 눈길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의 아픔을 되새기고 인권적 의미를 조명하는 행사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20일(현지시간) 오후 유엔본부에서는 ‘제주4·3의 진실, 책임 그리고 화해’라는 제목의 인권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200명에 가까운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유엔주재 한국대표부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 강창일 국회의원실,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주관했다. 자료 영상과 기조 발제, 패널 토론, 유족 증언 순으로 3시간가량 진행됐다. 올해로 71년째인 제주4·3을 다루는 토론회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당시 미군정 공동 책임론이 잇따라 거론됐다.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기조 발제를 맡았다. 강 주교는 “제주4·3은 미국과 한국의 정부 당국 이 저지른 인권과 인간 생명에 대한 대대적인 위반이자 범죄였다”면서 “이번 심포지엄의 목적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 희생의 역사를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퓰리처상 수상자인 찰스 헨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 유엔인권이사회 강제실종위원인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 등이 패널토론에 참여했다. 커밍스 교수는 “잔혹한 대학살이 어떻게 제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미국은 답변해야 한다”며 당시 미군정의 책임론을 비중 있게 거론했다. 헨리 전 부국장은 “당시 서울에 특파원을 뒀던 AP통신과 뉴욕타임스는 4월 3일부터 몇 달간 총 30~40차례 보도했지만 철저하게 냉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면서 “특히 미군과 전혀 무관하다는 식으로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백태웅 교수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미군 작전 당사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포괄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광범위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4·3 당시 조천읍 북촌 학살사건 유족인 고완순씨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눈부시게 반짝거렸던 붉은 피가 너무나 선명하다.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지금도 눈을 감으면 지옥 같던 그 날이 마치 어제처럼 떠오른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세 살배기 남동생 등 일가족 6명을 잃은 고씨는 “제주4·3은 미군정 기간 제주 주민들에게 가해진 인권유린·학살 사건”이라며 “평화와 인권이라는 유엔의 설립 취지에 맞게 미국이 진실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반 고흐가 사용한 권총? 2억원 낙찰…“고흐, 스스로 생 마감한 것 아냐”

    반 고흐가 사용한 권총? 2억원 낙찰…“고흐, 스스로 생 마감한 것 아냐”

    후기인상파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이 경매에서 2억원이 넘는 금액에 팔렸다. 19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파리의 경매사 ‘옥시옹 아르-레미르 퓌르’가 진행한 경매에서 프랑스의 총포기업 ‘르포슈’가 19세기에 제작한 7㎜ 구경의 회전식 권총이 감정가의 3배에 가까운 16만 2500유로(약 2억 1300만원)에 낙찰됐다. 구매자는 미술품 수집가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권총이 고흐가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1890년 7월 자신을 향해 격발한 총이라고 본다. 경매사 측은 이 권총이 고흐의 것임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정밀 검사 결과 고흐의 사망 시점과 이 권총이 땅에 묻혀 있던 시간이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밝혔다. 해당 권총은 2016년 고흐의 고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고흐의 비극적인 삶을 상업화한다는 비난과 동시에 그가 스스로 삶을 끝내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고흐의 삶을 그린 영화 ‘앳 이터너티스 게이트’(영원의 문·2018)의 감독 줄리언 슈나벨은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지낸 80일간 75점의 그림을 남길 정도로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했다”면서 “그런 그가 자살을 할 리는 없다”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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