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비극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진성준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이메일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교전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이정진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888
  • “인생샷 남기려다…” 태국 유명 폭포서 관광객 또 추락사

    “인생샷 남기려다…” 태국 유명 폭포서 관광객 또 추락사

    태국 유명 관광지 폭포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셀카’를 찍다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마띠촌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지난 14일 수랏타니주(州) 유명 관광지인 코사무이(사무이섬)의 나무앙 2번 폭포에서 20대 외국인 관광객이 떨어져 사망했다. 높이 80m인 이 폭포에서는 2019년에도 2차례 외국인 관광객이 추락해 숨졌다. 사고 원인은 모두 셀카 탓이었다.이날 사고로 숨진 관광객은 루마니아 여성인 나네-이오사나 보데아(23)다. 오스트리아 빈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으로, 방학을 맞아 남자 친구인 마누엘 오판카르(22)와 여행을 왔다가 비극을 맞았다.커플은 정오쯤 폭포 앞에 도착했고 근처 연못에서 수영하며 더위를 식혔다. 여성은 남자 친구와 폭포 위에 올라 ‘인생샷’을 남기려 했다. 주위엔 영어로 ‘위험하니 주변 바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적힌 현수막도, 출입을 제한하는 밧줄도 있었지만 무시했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여성은 더 멋진 사진을 남기려고 자세를 잡다가 이끼 낀 바위를 밟았다. 그 순간 15m 아래로 떨어졌고 의식을 잃었다.사고 직후 남자 친구는 폭포 아래로 뛰어 내려가면서 주위에 도움을 청하고 여성을 구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여성은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추락 당시 바위에 머리를 세차게 2번 부딪혀 생긴 상처에서 피가 너무 나와서 지혈해도 회복할 수 없었다.
  • “풍요·평화 누리는 사회, 이방인 환대할 의무 있어”

    “풍요·평화 누리는 사회, 이방인 환대할 의무 있어”

    “풍요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람과 사회를 환대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압둘라자크 구르나(74)는 1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국내 언론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방인 배척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구르나는 지금은 탄자니아로 편입된 동아프리카 섬 잔지바르에서 태어났지만, 1964년 잔지바르 혁명으로 아랍계 엘리트 계층과 이슬람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1969년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1987년 ‘떠남의 기억’을 시작으로 10편의 장편소설을 썼지만 국내는 물론 아시아권에서 한 권도 번역되지 않았던 작가였다. 이번에 문학동네가 그의 대표작 ‘낙원’, ‘바닷가에서’, ‘그후의 삶’ 세 권을 출간하면서 국내 독자들도 구르나의 문학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1994년 발표된 ‘낙원’은 탄자니아의 가상마을 카와를 배경으로 열두 살 소년 유수프의 성장기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2020년 출간된 최신작 ‘그후의 삶’은 점령군에게 납치돼 팔려 갔던 두 젊은이가 세월이 흐른 뒤 고향 마을에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두 작품에 대해 그는 “‘낙원’의 경우 독일에 의해 식민화된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쟁을 다루면서 주인공이 식민주의에 휩쓸리게 되는 여정을 그렸다면 26년 후에 쓴 ‘그후의 삶’에서 그 부분을 좀더 깊이 다루고 있다”며 “두 작품은 식민화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살펴보며 작품을 썼다는 점에서 시간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깊이 연결돼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구르나는 전쟁, 난민, 전염병, 기후위기 등 혼돈의 시대에 문학이 가지고 있는 힘과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비단 지금뿐 아니라 인류는 늘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고 싸우고 해결하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학은 읽는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타인의 삶에 천착해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구르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은 괴물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작은 도발에도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하는 일이 빈발하기도 한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믿기 어려운 일이며 이런 전쟁이나 폭력은 절대 합리화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 불평등과 부당함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기를 소망했다. “저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라,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단지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일 뿐이지요. 한국 역사(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알고 있는데, ‘바닷가에서’가 한국 독자에게 울림을 준다면 작가로서 큰 기쁨일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게 문학이지요.”  
  • 김기덕 서울시의원, ‘5.18민중항쟁 제42주년 서울기념식’ 참석

    김기덕 서울시의원, ‘5.18민중항쟁 제42주년 서울기념식’ 참석

    서울특별시의회 부의장인 김기덕 의원(더불어민주당·마포4)은 18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마당에서 있었던 5.18민중항쟁 제42주년 서울기념식에 참석해 5.18민주유공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기념식에서 김 의원은 “5월의 봄날이 따뜻하고 청명한데, 믿기지 않는 비극을 겪여야 했던 시민들에겐 파란 하늘마저도 극심한 슬픔이었을 것에 형언할 수 없는 미안함과 감사를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42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은 나날이 성숙한 민주화를 이룩해 내고 있다고 언급하며, 어떠한 삶이라도 귀중하게 여기며 그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서울시의회를 대표해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 부의장은 ”앞으로도 민주영령들이 꿈꿨던 사회를 이뤄낼 것이며 포용과 배려가 빛나는 사회, 공정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구현해 나가기 위해 부끄럽지 않은 서울시의회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떻게 ‘광주 정신’을 상징하게 됐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떻게 ‘광주 정신’을 상징하게 됐나

    오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기다. 엄청난 기사가 쏟아지는데 빠뜨릴 수 없는 일이 기념식 참석자 모두가 75초 동안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노래가 어떻게 ‘광주 정신’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는지는 이미 모두 다 안다고 생각해서인지 언론들이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이 노래는 항쟁 막바지에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고(故) 윤상원씨와 광주의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1978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노동운동가 박기순씨의 1982년 2월 20일 망월동 묘역에서 거행된 영혼결혼식에 헌정됐다. 윤씨는 1980년 5월 26일 전남도청을 내주고 투항하자는 일부 의견에 반대하며 외신기자 회견 도중 “우리는 오늘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란 각오를 다졌고, 다음날 새벽 계엄군의 총에 끝내 산화(散花)했다.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난 백기완 선생이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며 쓴 미발표 장편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소설가 황석영이 빌어 가사로 다듬었고, 당시 전남대 재학생이며 대학가요제 수상 경력이 있던 김종률씨가 작곡했다. 1982년 황씨의 광주시 북구 운암동 2층집에서 녹음시설이 전무한 상태에서 기타와 징, 괭꽈리가 전부인 상태로 녹음했고, 2000개의 녹음테이프가 복사돼 세상으로 퍼져나가 대학가와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불려졌다. 이 노래는 1970년대 말부터 광주의 극회 ‘광대’에서 활동하던 문화운동 관련자들이 모여 지하방송 ‘자유광주의 소리’를 창설하기로 하고 첫 작품으로 만든 음악극 ‘넋풀이 굿(빛의 결혼식)’에도 들어갔다. 이 음악극은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 스러진 두 남녀의 영혼결혼식을 그리고 있으며 이 노래는 두 사람이 저승으로 떠나면서 ‘산 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노래로 배치돼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등의 가사는 온 몸을 바친 투쟁에도 엄청난 죽음으로 귀결된, 비극적 패배와 절망을 담고 있으며,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랫말은 죽음과 절망을 딛고 나아가자는 비장미와 용기, 결단을 담고 있다. 대중적인 4분의 4박자 단조의 행진곡 풍이라 더불어 부르기 쉽다. 이 노래는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 기념식에서 참석자 전원이 함께 불렀지만, 이명박 정부 2년 차인 2009년부터 공연단 합창 등으로 대체됐다. 황석영 작가가 북한을 다녀온 전력을 문제삼아 제목과 가사에 들어있는 ’님‘과 ’새날‘이 김일성 주석과 사회주의 혁명을 뜻한다고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제창을 둘러싼 논란은 이념 갈등으로 비화했고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져 해마다 5월의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2020년 민형배(광주 광산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기념일의 기념곡 지정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 의원은 당시 “5·18 40년이 지난 오늘 ’님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노래가 됐다”며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법 제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광주광역시는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윤상원 열사의 생가를 추모관 등으로 꾸며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추모의 정신으로 광주를 찾는 이라면 들러 봄직하다. 또 전남여자고등학교는 한국화 화가 하성흡씨가 윤 열사의 생애를 담은 12폭의 수묵화를 교내에 전시하고 있다. 다음달 3일까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 [진경호 칼럼] 부엉이바위의 그늘/수석논설위원

    [진경호 칼럼] 부엉이바위의 그늘/수석논설위원

    ‘노무현은 죽을까’. 13년 전 2009년 5월 21일 이 자리에 쓴 칼럼 제목이다. 그 이틀 뒤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해 봉하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칼럼은 졸지에 그의 죽음을 예고한 ‘데스노트’가 됐다. “며칠 뒤면 전직 대통령 구속 3탄이 나오거나 말거나 한다. 검찰은 노무현을 구치소에 넣을까. 그럼 어찌 될까. ‘노무현’은 죽을까”로 시작된 칼럼은 그러나 노무현의 죽음을 앞서 말한 게 아니다. 권력의 부패를 끊고 전임 정권에 대한 단죄라는 질곡의 정치사가 끝나기를 바라는 염원이었다. 그러하지 못하면 정치 보복 논란 속에 나라가 적의(敵意)로 가득한 진영 대결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의 묵시였다. 모두가 아는 대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오늘 우리의 불행한 정치는 그날, 2009년 5월 23일 부엉이바위 아래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자리에서 싹을 틔웠다. 노무현 불법대선자금의 실체와 이에 대한 사법 심판이라는 법치가 땅에 묻힌 대신 ‘누가 노무현을 죽였느냐’는 절규와 원망, 분노가 움을 텄다. 세상은 삽시간에 내 편과 네 편, 선과 악만 존재하는 땅이 됐고 이렇게 둘로 나뉜 세상 속에서 노무현의 뒤를 이은 대통령 둘이 줄줄이 영어의 몸이 됐다. 여의도 정치는 국민과 나라를 앞에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자신들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만 따지는 일차원 단세포 동물로 한때 멀쩡했을 금배지들을 줄기차게 퇴화시켰다. 대통령으로서 문재인의 마지막 말은 “성공한 전임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주실 거죠”다. 5월 9일 땅거미 진 청와대를 나서면서 수천 지지자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양산으로 내려가선 연일 자신의 안부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 바쁘다. 잊힌 대통령이 되고 싶다던 말을 가장 먼저 잊었다. 대선에서 패하고는 국회의원이라도 해야겠다며 6월 보궐선거에 나선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어떤가. 유튜브에다 ‘이재명, 인천 부일공원에서 숨쉰 채 발견’이라는 동영상을 띄웠다. 살아 있다는 말로 정치적 죽음의 그림자를 지지자들의 뇌리에 심었다. 민망하고 부끄럽다. 이제 막 대통령직을 내놓은 이와 간발의 차로 대통령이 못 된 이가 양산과 인천에서 떨리는 가슴 누르고 지지자들에게 나를 잊지 말라, 나를 지켜 달라는 신호를 연일 발산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대체 누가 누구를 지켜야 한단 말인가. 대통령은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존재가 아니다. 우리를, 국민을 지켜야 할 존재가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이 만든 그늘이 너무 크고 깊다. 사실이 어떠하든 선동과 조작으로 만든 허구만이 진실일 뿐인 가상현실 진영 정치에 길을 잃은 지 너무 오래다. ‘노사모’로 시작해 ‘문꿀오소리’를 거쳐 ‘개딸’과 ‘양아들’로 이어진 정치 팬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뜻일지언정 분노를 먹고사는 진영 정치의 볼모가 되고 말았다. 닷새 뒤, 노 전 대통령 13주기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죄다 집결할 봉하마을에 윤석열 대통령은 마땅히 가야 한다. 국민의힘 당적의 그가 가서 노 전 대통령이 그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었다고 말해야 한다.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벌인 검찰의 일원이자 수장이었던 그가 가서 당신의 비극을 우리 모두가 아파한다고, 하지만 부엉이바위 아래로 진실을 묻고 적대의 진영 정치를 싹 틔운 건 분명 당신의 잘못이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덧붙여 물어야 한다. 부엉이바위에서 길을 잃은 법치와 정치를 이젠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살아 있는 권력이든 죽은 권력이든 법 앞에서 모두 동등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야 용서가 있고, 화해와 포용, 통합이 따르지 않겠느냐고.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증오의 낡은 시대가 끝나지 않겠느냐고. 그것이 내가 청와대에 발을 딛지 않은 이유라고.
  • 돌아온 정태춘 “무뎌지면 끝이 없다…여전히 약자 얘기 노래하고파”

    돌아온 정태춘 “무뎌지면 끝이 없다…여전히 약자 얘기 노래하고파”

    버스터미널 식당에서 메밀국수를 시키니 판에 담긴 메밀과 육수가 나왔다. 어떻게 먹는 음식인지를 몰라 육수를 판에 부었다. 당연히 판에 뚫린 구멍으로 국물은 줄줄 흘러나왔고, 허둥대다 식당을 빠져나왔다. 1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서 가수 정태춘(68)은 이런 에피소드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돌아본다. 서울의 복잡한 터미널과 큰 식당, 수많은 사람과 낯선 환경, 그 안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나. 17일 서울신문과 만난 그는 “내가 초기에 세상과 부딪히는 방식을 잘 드러내는 일”이라면서 “불편하고 낯선 것에 적응하지 못하며 ‘나만 그런가’, ‘다른 사람은 어떤가’, ‘세상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결국 음악의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올해 데뷔 43년을 맞은 정태춘은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노랫말과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로 한국형 포크의 대명사로 꼽힌다. 1978년 데뷔 앨범 수록곡 ‘시인의 마을’과 ‘촛불’이 큰 인기를 얻었고, 1980년대에는 아내이자 음악적 동반자인 박은옥과 함께 ‘저항가수’의 길을 걸었다. 영화는 2019년 데뷔 4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 실황 영상을 바탕으로 정태춘의 음악 인생을 꼼꼼히 되돌아본다. 경기 평택 시골 마을에서 바이올린을 처음 배운 소년, 큰 성공을 거둔 청년과 시대의 불의에 저항한 중년을 거쳐 까다로운 손녀와의 대화를 읊조리는 노년의 모습이 28곡의 음악과 어우러졌다.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한 정태춘은 “나는 특이한 가수, 시대와 불화한 가수”라며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끊임없이 발산했고, 음악적으로도 여러 시도를 했다. 그게 대중음악사에서 내가 조금은 다른 역할을 한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창작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항상 비주류였다. 약자와 함께 살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회, 일말의 연민도 없는 주류 사회에서 나는 여전히 멀리 비켜서 있다”고 말했다.특히 세상의 낮은 곳에서 함께 손잡고 연대한 그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청계피복노동조합 후원부터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합법화 투쟁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2003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투쟁 등 역사의 현장엔 늘 그가 있었다. 1990년 3월 신문 사회면에 나온 기사를 보고 쓴 노래 ‘우리들의 죽음’은 당시 한국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아프게 짚는다. 맞벌이 부부가 출근한 사이 잠긴 방 안에서 놀던 다섯살, 세살 아이가 불장난을 하다 숨진 비극을 노래는 이렇게 읊조린다.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 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이제 안녕.”정태춘은 “요즘도 각종 사건·사고를 보면 마음이 아픈데, 감정의 판막이 많이 얇아져 그걸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더라”며 “그래도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상황, 절망하는 사람, 아픔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음반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곡 작업도 새로 시작했다. 그는 “당시 여러 사회문화적 변화 탓에 내 노래는 독백에 불과한 것 같았다. 더이상 음악 활동을 하지 않고 소진될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대신 그 기간 붓글을 쓰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진전을 열었다. 음악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꾸준히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셈이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무뎌지면 끝이 없다”며 끝없이 고민한다는 정태춘은 “나이가 들면서 더 정밀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과거 발표한 ‘아, 대한민국’의 가사 일부가 여성 비하적 표현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을 삭제한 게 한 예다. 그는 “여전히 약자들의 얘기를 담고 싶고, 그러려면 나 역시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더 예민하게 살피고, 공부도 많이 해서 잘 다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좋은 노래를 하고 싶어요. 조금씩 변화를 주되 내 이야기를 담담하고, 재밌고, 신나게 하려 합니다. 늘 그랬듯이.”
  • ‘4·3진상규명 기폭제’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년 만에 정비 탄력

    ‘4·3진상규명 기폭제’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년 만에 정비 탄력

    4·3진상규명의 기폭제가 된 집단학살의 비극이 서린 다랑쉬굴이 유해 발굴 30년 만에 유적지 정비의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년을 맞아 올해 특별교부세 7억 원을 투입해 다랑쉬굴 4·3유적지 정비를 본격 추진한다고 17일 밝혔다. 도는 지난 3월 행정안전부에 특별교부세를 신청, 7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해당 유적지는 사유지여서 그동안 안내판 정도만 설치하고 보존과 정비가 어려운 상태였지만, 관련 예산 반영에 따라 다랑쉬굴 유적지의 보존·정비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도는 그동안 토지소유자인 학교법인 이화학당과 토지 매수 협의를 진행해왔으며, 학교법인 관계자와 현지 조사를 거쳐 다랑쉬굴의 역사적 가치 등에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지난 4월 공문으로 매수 협의를 진행한 결과, 최근 학교법인 이사회에서 ‘매각의사가 있음’으로 의결됐다. 앞으로 교육부가 수익용 기본재산 처분 허가를 승인하면 감정평가 등을 통해 토지 매입 절차가 진행돼 연내에 토지 매입이 가능하도록 노력을 다해 나갈 계획이다. 토지 매입이 이뤄진 후에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진입로 정비 및 주차장 조성, 위령·추모 공간 등 도입시설에 대해서는 4·3유족회와 관련 기관·단체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유적지로서의 가치를 미래세대에 전승하는 현장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구좌읍 세화리 남서쪽 6㎞지점으로 해발 170m에 위치한 다랑쉬굴은 1948년 12월 18일 4.3 당시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주민들이 진압작전을 피해 굴속으로 피신했다가 발각돼 아이 1명과 여성 3명 등 11명이 집단 희생된 곳이다. 지난 1992년 유해 11구가 발굴됐지만 정식·정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 45일 만에 화장돼 김녕 바다에 뿌려졌다. 지금도 굴 속에는 그들이 사용했던 솥, 항아리, 사발 등 생활도구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승배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주년을 맞아 예산 확보와 사유지 매입의 물꼬가 트여 유적지 보존·정비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면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공감을 표하고 적극 협력해준 학교법인 이화학당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 투옥·고문 속에서도 유신독재에 저항… 죽음을 넘어 생명 노래[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투옥·고문 속에서도 유신독재에 저항… 죽음을 넘어 생명 노래[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지난 8일 김지하 선생이 별세했다. 1941년 신사(辛巳)생이니 우리 나이로 여든둘이다. 재작년쯤부터 몸이 편찮으시다고 들었지만 결국 생전에 뵙지 못했다. 누군가 세상을 등지면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 김지하 선생만큼 이러한 은유의 무게를 오롯이 감당할 만한 이도 드물 것이다. 선생을 생각할 때 우리는 목포와 원주라는 지명, ‘황토’와 ‘오적’과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언어의 섬광, ‘꽃 한 송이’라는 뜻의 본명 영일(英一)과 ‘언더그라운드’를 연상시키는 필명 ‘지하’(芝河)를 연쇄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실꾸리처럼 한없이 풀려 나오는 김지하 브랜드의 파상들은 해방 이후 한국 근대사를 아프게 증언하는 역사적, 미학적 원형을 모두 품고 있지 않은가.●감옥에서도 ‘문학’과 ‘사회’ 서적 탐독 선생의 험난한 생애는 이미 가계(家系)에서부터 암시된다. 증조부는 동학군에 참여했다가 돌아가셨고 조부는 노름으로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 아버지는 빨치산 경력으로 죽음을 맞을 뻔했지만 전기 기술을 가지고 있어 천행으로 살았다. 이처럼 가난과 몰락과 소외의 과정에서 선생은 실제적인 죽음도 여럿 보았다. 전쟁 때 뒷산에 수북하게 쌓인 흰옷 입은 시체들도 보았고 이념이 할퀴고 간 마을 사람들의 참화도 뚜렷이 목격했다. 선생이 말년에 펼친 생명사상은 어쩌면 이때 경험이 빚어낸 반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생의 내면에서 생명과 죽음은 그렇게 호혜적 반사체가 돼 줬을 것이다.생명과 죽음이 서로를 껴안은 첫 줄기는 1960년 4월 혁명이었다. 1961년 5월 초 서울대 민족통일연맹이 남북학생회담을 북쪽에 제안했을 때 선생은 남쪽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며칠 후 당시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군부 쿠데타가 있었고, 그네들이 추진했던 통일운동은 지하로 숨어들었으며, 선생을 비롯한 참여자들은 수배와 도피와 체포의 시간을 이어 갔다. 선생은 1964년 6·3항쟁에 참가하면서 첫 옥고를 치렀는데, 이때부터 투옥과 고문, 사형선고와 석방을 반복하는 젊은 날을 보냈다. 이미 선생은 국내외의 수많은 탄원과 강력한 구명운동으로 세계적인 저항시인의 상(像)을 구축한 상태였다. 유신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의 표상이자 민족문학의 상징으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위상을 거느리게 된 것이다. 나아가 선생은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 로터스상,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 등 쟁쟁한 국제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와 파급력을 갖추기도 했다. 어둑한 음각이지만 ‘시인 김지하’의 한 절정이 새겨졌던 시기였다. 삽화 하나. 어느 출판사 대표 한 분이 서울역에서 숙대입구 쪽으로 가는 헌책방에서 을유문화사 문고판 에스카르피의 ‘문학의 사회학’을 구했다고 한다. 이채롭게도 장서인(藏書印)은 어느 교도소 이름이었고, 책 뒤에 꽂힌 대출자 카드에는 ‘김영일’이라는 이름만 적혀 있었다. 김지하 선생이 복역했던 시공간과 일치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혼자 빌려 선생은 감옥에서마저 ‘문학’과 ‘사회’라는 두 기둥을 탐독했으리라.●저항문학의 극점기에 생명사상 싹터 1970년대의 언더그라운드에는 ‘3K’가 있었다. 김대중, 김민기, 김지하다. 정치와 노래와 시에서 그들이 던진 메시지는 암울한 시대를 때로는 비추고, 때로는 안타깝게 하는 흐릿한 등불 같았다. 바로 그때 서정적 비극성의 최전선으로 피어난 시집이 ‘황토’였다. “간다/울지 마라/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팍팍한 서울길/몸 팔러 간다”(‘서울길’) 이런 음색이 담긴 선생의 첫 시집은 선연한 흙빛을 따라 역사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갔다. ‘오적’(五賊)은 당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풍자’라는 미학적 장치를 통해 비판한 출중한 성취였고, ‘타는 목마름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개진해 간 뜨거운 노래의 성채였다. 이러한 성취는 저항문학의 극점이기도 했지만 이때부터 선생은 이미 생명사상의 맹아를 틔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은 감옥에 있을 때 운동을 하고 돌아와 누군가 감방 철창 쇠받침과 시멘트 틈에서 돋아난 풀에 물을 주는 것을 보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풀이 아니라 개가죽나무였다. 바람이 불어 흙먼지와 함께 날아든 씨앗이 시멘트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것이다. 선생은 거기서 진짜 생명을 보았다. 한낱 미물도 저렇게 스스로의 몸을 피워 올리는데 과연 나는 무엇인가 하는 자기 연민과 다짐이 동시에 북받쳐 올랐다. 선생이 감옥에 있을 때 이채로운 책 두 권이 일본에서 출간된다. 작품집 ‘불귀’와 옥중투쟁기 ‘김지하는 누구인가’였다. 발행처는 ‘일본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라는 곳이었다. ‘불귀’에는 당시 국내에서 읽을 수 없던 시편들과 1975년 5월 서울구치소에서 쓴 ‘양심선언’ 등이 담겼다. 일부 글은 한일대역으로 실렸다. 옥중투쟁기에는 선생의 옥중 메모 친필과 각종 법정 자료들이 실렸다. 이미 선생은 한반도 바깥의 시인이었다. 선생의 30대가 그렇게 저물어 갔다.●1980년대 동학·생명사상 창의적 접목 불혹의 연대 1980년대가 돼 선생은 감옥을 나와 동학과 생명사상을 창의적으로 접목해 ‘애린’,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 등을 썼다. 선생이 주창했던 ‘흰 그늘’과 ‘율려’의 미학은 생명사상의 정점에서 피어난 고갱이였을 것이다. 특별히 ‘흰 그늘’은 후기 미학을 집약하는 비유적 표상이었는데 선생은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 “4·19 직후 서울농대에서 겪은 스무살 때의 아득한 흰 밤길의 한 환상, 민청학련 무렵인 서른세 살 때의 우주에의 흰 길의 한 환상, 재구속되어 옥중에서 백일참선에 돌입했던 서른여덟 살 때의 흰빛과 검은 그늘의 교차 투시, 해남에서 두 계열의 연작시 ‘검은 산, 하얀 방’의 분열 구술, 목동 시절의 컴컴하고 침침한 ‘쉰’의 그늘과 일산 이사 직후의 그 눈이 멀 듯한 ‘일산시첩’의 흰빛들의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날카로운 모순 대립. ‘흰 그늘’은 나의 미학과 시학의 총괄 테마가 되었다.”(‘흰 그늘의 길 1’, 2003) 그렇게 선생의 생애는 역사의 ‘황톳길’에서 생명의 ‘흰 그늘’로 나아갔다. 1990년대 이후 타계할 때까지 선생이 드문드문 보여 준 정치적 선택은 세상을 뜨겁게 달구면서 비판과 논란을 이어 갔다. 1991년 강경대 사건 때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에 쓴 “죽음의 굿판 당장 집어치우라”라는 표현은 두고두고 선생을 따라다니는 전향문 같은 역할을 했다. 죽음의 흐름을 막아 보고자 하는 충심을 읽을 수도 있었지만 강대강(强對强) 대치 상황에서 그러한 속성은 속절없이 잊히고 묻혀 갔다. 이러한 굴곡을 한없이 애석하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시인 김지하’, ‘사상가 김지하’는 척박한 한국문학사의 돌올한 유산이자 그때그때의 맥락 속으로 귀환할 강렬하고도 흐릿한 등불로 남을 것이다. 숱한 투옥과 고문의 형극 속에서, 불온을 넘어 저항으로, 폐허를 건너 생명으로, “황톳길에 선연한/핏자국”(‘황톳길’)을 넘어 지금-이곳까지 영욕의 세월을 건너온 선생의 죽음을 마음 깊이 애도한다.●한 시대 전범·한국문학으로 우뚝할 것 앞으로도 우리는 선생이 남긴 아름다운 서정시 ‘황톳길’, ‘녹두꽃’, ‘빈 산’, ‘애린’을 깊은 감동으로 읽을 것이다. 목청껏 불렀던 ‘새’, ‘금관의 예수’, ‘타는 목마름으로’를 때가 되면 줄탁동시의 기운으로 소환할 것이다. “왜 날 울리나 눈부신 햇살 새하얀 저 구름/죽어 너 되는 날의 아득한 아아 묶인 이 가슴”,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그 누가 있어 한 시대를 이렇게 어둑하고도 아름답게 돌파해 갔겠는가.자연인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지만 그래도 ‘시인 김지하’의 언어는 한 시대의 전범이자 한국 문학의 선연한 역사로 우뚝할 것이다. 이제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그 시간/다시 쳐온 눈보라”(‘1974년 1월’)를 맞으면서, 우리는 선생의 언어를 빌려 ‘저항’과 ‘생명’이라는 차원을 새롭게 사유해 갈 것이다. 앞으로 선생에 대한 여러 해석과 평가가 따르겠지만, 첨예한 쟁점으로 김지하 담론이 펼쳐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한 시대의 거인을 추모하면서 선생의 평안을 마음 깊이 빌 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전쟁의 시름 달랜 힙합 … 우크라이나 밴드, ‘유로비전 2022’ 우승 영예

    전쟁의 시름 달랜 힙합 … 우크라이나 밴드, ‘유로비전 2022’ 우승 영예

    “넌 내 의지력을 빼앗을 수 없어 … 길이 파괴됐어도 집으로 가는 길을 찾겠어” 우크라이나의 5인조 힙합 밴드 ‘칼루시 오케스트라’가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막을 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22’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힙합에 우크라이나 전통음악과 악기를 결합한 격정적인 선율이 우크라이나의 비극과 맞물려 유럽 전역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날 유로비전을 주최하는 유럽방송연맹(EBU)은 14일 열린 결선에서 우크라이나가 우승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유로비전은 유럽방송연맹(EBU)에 소속된 각국의 방송사가 선발한 국가대표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음악 국가 대항전이다. 지난해 시청자 수가 2억명에 육박할 정도로 유럽 전역에서 주목하는 대회로, 아바(ABBA), 셀린 디옹 등이 유로비전을 통해 세계적인 팝스타로 발돋움했다. 칼루시 오케스트라는 이 대회에서 ‘스테파니아’라는 곡으로 참가해 결선에 올랐다. 리더인 올레흐 프시우크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헌정한 노래로, “들판에는 꽃이 피고 있지만 / 그녀의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있네 / 어머니, 자장가를 불러주세요” 등의 가사로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담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전쟁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비극을 이겨내려는 우크라이나인의 의지를 드러내는 메시지로 읽히면서 대회 초반부터 화제로 떠올랐다. 멤버들도 이번 대회를 통해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이들은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민간인 학살의 참상이 드러난 수도권 소도시 이르핀에서 촬영했다. 대회 기간 중 이탈리아에서 열린 전쟁 반대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날 결선 무대를 마친 멤버들은 “마리우폴의 우리 군인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결선에서 배심원 투표는 영국이 1위를 차지했지만 대중 투표에서 배심원 투표 4위였던 우크라이나가 압도적인 투표로 대역전에 성공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의 용기는 세계를 감동시켰고 우리의 음악은 유럽을 정복했다”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멤버들은 우승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승리는 우크라이나에 큰 영광”이라면서 “우승 뒤 무엇을 할 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모든 우크라이나인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우승팀이 속한 나라가 다음 대회를 개최하는 전통에 따라 내년 대회는 우크라이나에서 열리게 된다.
  • ‘화성 입양아 학대 살해’ 양아버지 항소심도 징역 22년

    ‘화성 입양아 학대 살해’ 양아버지 항소심도 징역 22년

    입양한 두 살짜리 딸을 때려 숨지게 한 30대 양아버지에게 항소심도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수원고법 형사1부(신숙희 재판장)는 13일 아동학대살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화성시 입양아 학대 살해 사건의 양아버지 A(37) 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생후 33개월 된 피해 아동을 강하게 때리면서 충격에 넘어진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 뒤 다시 때렸다”며 “피해 아동 외 자녀 4명을 양육한 경험이 있는 피고인은 쓰러질 정도로 때리면 아이가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고 본다”며 살해의 고의를 인정한 원심을 유지했다. 이어 “피고인이 아이를 입양한 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이고 남아있는 친자녀들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사정은 안타깝지만, 사회에서 비극적인 아동학대가 더 발생하지 않으려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양엄마인 B(36) 씨에게는 1심이 선고한 징역 6년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월으로 감형해 선고했다. 또 80시간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수강과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5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4명의 자녀를 양육하면서 이미 다자녀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추가 혜택을 보기 위해 아이를 입양했다고 보는 시각을 적용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4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부담을 지면서도 화목한 가족을 이루고 싶어 아이를 입양한 것이지 그 외 불순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현재 남아있는 초등학생 자녀 4명이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점 등 많은 고민 끝에 B씨에 대한 감형을 결정했다고 부연했다. 다만 그동안 다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처음부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B씨는 이날 실형 선고로 법정 구속됐다. 양아버지 A씨는 지난해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까지 화성시 소재 주거지에서 2018년 8월생으로 당시 생후 33개월이던 입양아 C양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는 이유로 나무로 된 등긁이와 구둣주걱, 손 등으로 여러 차례 때린 혐의로 기소됐다.
  • 미국 코로나 사망자 100만명 돌파..바이든 “비극적 이정표”

    미국 코로나 사망자 100만명 돌파..바이든 “비극적 이정표”

    미국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망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 미 백악관에는 조기가 걸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특별성명을 통해 “오늘 우린 비극적인 이정표를 남긴다”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상실이며 이를 치유하려면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기지와 함정 등에 조기 게양을 지시하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조기는 오는 16일 일몰까지 내걸린다. 단일 국가의 누적 사망자 규모로는 미국이 세계 최대로 2위인 브라질(66만 4000여명), 3위 인도(52만 4000여명)를 앞선다. 이날은 미국이 전 세계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두번째 코로나19 정상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한 날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유행은 끝나지 않았다”며 “코로나19 대응이 전 세계의 최우선 순위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까지 미 인구 3억 3000만명 중 확진 사례는 8000만건이 넘었다. 최근 분석에서는 전체 미국인의 60% 이상이 한 차례 이상 감염됐을 것으로 추산됐다. 실제 코로나 사망자는 공식 집계보다도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 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존스홉킨스대학은 각각 99만 5700여명(10일 기준), 99만 9000여명(12일 기준)으로 집계했다. NBC는 사망자 100만명은 “한때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피해 규모”라고 지적했다. 약 20만명의 어린이가 코로나19로 부모를 잃었다는 집계도 나왔다. 미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사망자가 많았던 이유로 인구 내 고령층과 비만·고혈압 환자가 많다는 점, 백신 접종 기피 정서를 지목했다. 지난 2년간 수차례 유행할 때마다 확진자 폭주로 인해 의료 체계에 과부하가 걸린 점도 원인으로 꼽혔다. 크리스토퍼 머리 워싱턴대 보건계량분석연구소(IHME) 소장은 “그토록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무시무시하다”며 “끝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기준 뉴욕타임스(NYT) 데이터를 보면 미국의 지난 7일간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는 2주 전보다 58% 증가한 8만 4329명이다. 하루 평균 확진자가 8만명을 넘긴 것은 오미크론 대확산이 수그러들던 지난 2월 하순 이후 처음이다.
  • [사설] 민주당 또 성비위로 박완주 제명, 특단 대책 내놔라

    [사설] 민주당 또 성비위로 박완주 제명, 특단 대책 내놔라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3선인 박완주 의원을 성비위 사건으로 제명했다. 지난해 말 보좌관을 성추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당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586그룹의 대표주자로, 정책위의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정치인이 성비위 사건으로 제명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입으로는 개혁적인 목소리를 높이면서 행동은 말과 달랐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개하고 있다. 당에서 제명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국회 윤리특위 제소를 통해 의원직에서 제명하는 등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최근 성추문이 잇달아 터지면서 당의 존립마저 흔들렸고 결국 대선에서도 패배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성폭행으로 실형을 받고 수감 중이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강제추행 혐의로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뒤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올 1월에는 김원이 의원의 전 보좌관이 동료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피소되기도 했다. 성추문이 잇달아 터지면서 국민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 당은 그때마다 똑같은 사과를 반복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최근에는 어처구니없는 최강욱 의원의 ‘짤짤이’ 발언까지 나왔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는 어제 입장문을 내고 “어쩌다 우리 당이 이 정도로 되었나 싶을 정도로 민망하고 또 실망이 크다”고 밝혔다. 민주당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성추문 사례도 더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성추문 집단’의 오명을 다시 뒤집어쓰면서 20일도 채 안 남은 6·1 지방선거에도 최대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당 차원에서 공식 사과하고 성비위와 관련된 인사들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
  • [책꽂이]

    [책꽂이]

    팬데믹 브레인(정수근 지음, 부키 펴냄) 팬데믹 3년차를 맞아 코로나19가 우리 뇌와 인지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코로나로 인한 두통과 피로, 기억력 감퇴 등이 다른 뇌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코로나에 걸린 적 없어도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는 피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260쪽. 1만 6800원.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김응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 사학자의 시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이면에 도사린 폭력성을 고발한다. 공포정치로 50만명이 투옥되고 3만여명이 처형된 혁명의 비극적 종말 과정과 라파예트, 시에예스, 콩도르세 등 반혁명가나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힌 혁명가들을 조명한다. 644쪽. 3만 5000원.우리 곁에 왔던 성자(최홍운 외 18인, 서교 펴냄) 고 김수환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현직 언론인과 사제, 수도자들이 그와의 추억을 담았다. 2009년 선종한 김 추기경이 생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공동선 추구를 위한 교회 역할을 강조한 사실과 어떻게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됐는지를 보여 준다. 232쪽. 1만 5500원.휴랭 머랭(최혜원 지음, 의미와재미 펴냄) 언어학자인 최혜원 이화여대 교수가 현대인이 사용하는 신조어와 언어유희, 외래어와 줄임말, 조음법칙 속에서 언어의 본질을 분석했다.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는 왜 영미권에서 ‘람동’으로 소개됐는지, ‘브렉퍼스트’는 왜 시커먼 ‘블랙퍼스트’가 됐는지 등을 재미있게 펼친다. 268쪽. 1만 7000원.여론 굳히기(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예진 옮김, 인간희극 펴냄) ‘홍보(PR)의 아버지’이자 ‘프로파간다’(1928)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1923년 저서가 99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 번역 출간됐다. 여론을 중심으로 심리를 활용하는 법을 설명한 저자는 “본능과 보편적 욕망에 호소하는 것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기본”이라고 조언한다. 296쪽. 1만 2800원.왼손잡이 우주(최강신 지음, 동아시아 펴냄)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왼손과 오른손에 우주의 작동 원리가 있음을 고찰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 입자 ‘중성미자’가 오직 왼쪽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서 우주가 비대칭적이고 자연이 왼쪽과 오른쪽을 차별한다고 설명한다. 전기와 자기, 약한 상호작용, 끈 이론 등 현대 물리학을 쉽게 설명한다. 240쪽. 1만 6000원.
  • 광주 뷰폴리에서 듣는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 뷰폴리에서 듣는 ‘임을 위한 행진곡’

    5·18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조명하는 포럼과 노래 전곡이 수록된 앨범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가 펼쳐진다. 광주비엔날레재단과 광주영화영상인연대는 13일과 14일 광주 뷰폴리와 광주독립영화관에서 ‘광주폴리 x 로컬가락(歌樂)- 내력 없는 소리’를 선보인다고 12일 밝혔다. 부제는 황망한 사건을 당했을 때 터져나오는 전라도 말 ‘내력 없는 소리하고 있네’에서 따왔다. 5·18과 세월호 등 현대사의 비극적인 순간을 환기함과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들, 실험적 음악활동을 포괄하는 의미다. 이번 행사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 4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모색하는 라운드테이블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는 공연 축제로 구성됐다. 13일(오후 1시30분~5시 광주독립영화관) 열리는 라운드테이블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여자들’이 주제다. 임태훈 조선대 교수가 1980년대 문화운동의 의미를 점검하는 ‘국가와 광장, 충돌하는 사운드스케이프의 문화사’ 기조 강연을 하며 1982년 ‘임을 위한 행진곡’ 앨범 제작에 참여한 임영희·임희숙(당시 극단 광대 및 갈릴리 문화패), 김은경(당시 한신대 대학생)의 공개 구술 토크가 마련된다. 토크는 이후 구술집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14일 공연은 뷰폴리에서 오후 4시 20분부터 9시까지 진행된다. 공연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수록된 1982년 최초 버전의 앨범 ‘넋풀이’(35분 27초) 전곡을 감상한 이후 시작된다. 이 앨범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전곡을 감상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40년 만에 처음이다.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이번 행사는 1982년 비합법 테이프로 녹음 제작된 이후 광주를 넘어 전 세계 민주주의 현장에서 불려지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기 마련했다”고 밝혔다.
  • ‘총리 퇴임‘ 김부겸 정계도 은퇴…“정치인·공직자 여정 마무리”

    ‘총리 퇴임‘ 김부겸 정계도 은퇴…“정치인·공직자 여정 마무리”

    “부족한 저를 공복으로 써주신 것에 대해 국민께 감사” 김부겸 국무총리는 12일 총리직 퇴임과 함께 자신의 정치인과 공직자로서의 여정도 마무리하겠다면서 사실상의 ‘정계은퇴’를 공식화했다. 김 총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공동체의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진단하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가진 제47대 국무총리로서의 이임사를 통해 “저는 오늘 국무총리직을 퇴임하면서 지난 30년 넘게 해왔던 정치인과 공직자로서의 여정도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정치에 처음 입문하던 시절, 저는 시대의 정의를 밝히고 어려운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그런 포부를 가슴에 품기도 했다. 그리고 국회의원으로,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또 국무총리로서 일하면서 공직이 갖는 무거운 책임감 또한 알게 됐다”며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공직자로서의 삶은 결국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이 당연하고도 엄중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언급했다.김 총리는 그러면서 “오늘 이 자리를 빌려 한 세대가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이 부족한 저를 국민의 공복으로 써주시고 우리 공동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국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갈등·분열을 겪는 공동체…정말 이럴 수는 없어” 아울러 김 총리는 “지금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보면서, 지난 세월 그 역경과 고난을 넘어서, 그런 위기 때마다 한마음으로 뭉쳐 돌파해낸 국민 여러분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책임져 오신 그 선배님들, 온몸을 바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신 우리 부모님들과 형제자매들 앞에서 저는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이민족에게 압제를 당했던 비극을 뛰어넘고 그 처절한 동족상잔의 아픔조차 극복해냈던 우리 민족 공동체의 역사를 생각하면 정말 이럴 수는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나와 생각이, 성별이, 세대가, 출신 지역이 다르다고 서로 편을 가르고, 적으로 돌리는 이런 공동체에는 국민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화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며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탐욕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수도권만 잘 살고, 경쟁만이 공정으로 인정받는 사회는 결코 행복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위기라고 저는 생각한다”며 “대화와 타협, 공존과 상생은 민주공화국의 기본 가치이자 지금 대한민국 공동체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정신”이라고 강조했다.김 총리는 그러면서 “저는 비록 오늘 공직을 떠나지만 우리 공동체가 더 어렵고 힘없는 이웃을 보살피고 연대와 협력의 정신으로 다음 세대의 미래를 열어주는 일에서, 오늘도 공직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자기 임무를 다하고 계시는 여러분을 믿고 저 역시 언제나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김부겸은 누구 김 총리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나 이후 참여정부 출범 후 진보정당인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꿔 현재에 이른 진영을 넘나든 정치인이다. 4선 의원으로 총리 직전에는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16대 총선에서는 경기 군포 지역구에 한나라당 당적으로 당선(초선)됐으며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소속 당적을 바꿔 국회에 계속 입성했다. 이후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보수 텃밭인 고향 대구로 내려가 19대 총선(대구 수성갑)에서는 낙선했으나 20대 총선에서는 당선됐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는 대표적인 정치인 중 하나다.
  •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이 부른 비극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이 부른 비극

    무면허로 동력 패러글라이더를 탑승하다가 추락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해 이에대한 계도와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11일 전북도와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에 따르면 도내에서는 새만금지구, 완주군 만경강 고수부지, 순창군 유등천 고수부지 등에서 동력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동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일부 지역은 관광객을 모집해 동력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제공하는 영업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동력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동호인이나 영업을 하는 업체들이 까다로운 관련 법규를 준수하는지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동호인들이 교관이 동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력 패러글라이더에 탑승했다가 사고를 당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11일 오전 7시 13분쯤 동력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려던 50대 남성이 조종 미숙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A(59)씨는 고향인 전북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섬진강군민체육공원에서 동력 패러글라이더를 탑승했다가 추락해 그자리에서 숨졌다.전북 소방당국은 300m쯤 떨어진 논에 동력 패러글라이더가 추락해 불길에 휩싸였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A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조종 면허가 없는 A씨는 이날 혼자 기체에 탑승했다가 이륙하자 마자 100m쯤 떨어진 농경지로 추락했다. 휘발류로 추진체를 돌리는 동력 패러글라이더는 추락 당시 충격으로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고 A씨도 화상을 입었다. 사고 발생 순간을 지켜보던 교관이 현장으로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A씨는 이미 화상과 추락시 충격으로 숨진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교관 없이 동력 패러글라이더를 탑승하게 된 경위와 사고 원인 등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도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A씨가 탑승했던 패러글라이더는 2013년식으로 기체 결함 여부도 조사 대상이다. 한편, 동력 패러글라이더를 타려면 관련 면허를 취득해야 하고 서울항공청에 비행허가도 신청해야 하는데 레포츠를 즐기는 개인들은 대부분 이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아 사고 방지 대책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허를 취득하지 않고 동력 패러글라이딩을 타려면 반드시 조종 면허를 취득한 교관과 동승을 해야 하지만 이 마저도 지키지 않아 사고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더구나 동력 패러글라이딩은 자연 바람을 이용하는 패러글라이딩 보다 사고 위험이 더 높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북에서 패러글라이딩 사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국토부에 공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무허가 업체들이 동력 패러글라이딩 사업을 하고 있으나 지도단속은 이루어지지 않아 사고 위험이 높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 “최고의 결혼 선물” 아내 임신 사실 알았는데…살해된 검사

    “최고의 결혼 선물” 아내 임신 사실 알았는데…살해된 검사

    마약밀매 수사한 검사신혼여행 중 살해당해 파라과이 한 남성이 콜롬비아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살해됐다. 숨진 남성은 마약과 조직범죄 수사 등을 담당하던 검사였다. 10일(현지시간) AFP에 따르면 마르셀로 페치(45) 검사가 콜롬비아 카리브해 휴양지인 카르타헤나 인근 바루섬의 리조트에서 괴한의 공격에 숨졌다. 아내이자 기자인 클라우디아 아길레라는 리조트 내 해변에 남편과 있던 중에 두 남성이 배를 타고 접근했다고 전했다. 아길레라는 남편이 전에 협박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페치 검사는 주요 마약 밀매와 돈세탁 사건 등의 수사를 담당해 왔다. 지난해 파라과이 주지사 딸 살해 사건과 2020년 브라질 전 축구선수 호나우지뉴의 여권 위조 사건 등도 수사했다. 페치 검사 부부는 지난달 30일 결혼했으며, 아내는 남편이 숨지기 불과 몇 시간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고의 결혼 선물”이라며 임신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한편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을 강력히 규탄한다. 조직범죄에 맞선 노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글로벌 In&Out] 끊이지 않는 분쟁, 트란스니스트리아/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끊이지 않는 분쟁, 트란스니스트리아/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연구과 박사과정

    트란스니스트리아는 현대 세계사에서 유례가 드문 특수한 지역이다. 우크라이나가 그러했듯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폴란드, 터키 등 주변 국가들이 힘을 겨루며 쟁탈전을 벌였던 이 지역은 1787~1792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결과로 러시아제국 영토에 ‘베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편입됐다. 그 후 러시아제국은 다양한 민족을 이주시켜 이 지역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꾀했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제국이 붕괴됐다. 러시아제국과 국경을 접한 루마니아 왕국이 이를 틈타 베사라비아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10월 혁명 직후 러시아제국이 사라진 자리에 등장한 소비에트러시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영토에 1924년 몰도바 자치공화국을 세워 실지 회복의 기회를 노렸다. 1939년 소련과 독일이 체결한 비밀의정서의 여파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루마니아는 1940년 독일의 압력으로 베사라비아를 소련에 양보한다. 소련은 베사라비아에 몰도바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1941년 독일은 소련을 침공하며 몰도바를 점령했다. 독일은 몰도바 영토의 대부분을 루마니아에 반환했지만 드네스트르강 동쪽 지역에 트란스니스트리아라는 특수한 지역을 설치했다. 1944년 소련군의 반격으로 몰도바공화국은 다시 소련 영토가 됐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특수 지역’의 지위를 상실했으나 지정학적 가치는 높아 1984년 몰도바 방어를 맡았던 소련군 사령부가 수도인 키시너우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이전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개혁정책이 실시됐다. 언론의 자유를 얻은 친루마니아 성향 몰도바 민족주의자들은 공교육과 공적인 자리에서 소련 전국의 공통언어였던 러시아어를 금지하고 몰도바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이에 반대한 드네스트르강 동쪽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2개 국어 병용’ 요구가 거부당하자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몰도바는 러시아계 주민의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했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도 무력으로 맞섰다. 러시아의 개입으로 내전은 종식됐으나 통일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특히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당시 대통령 행정부 제1부장관이었던 드미트리 코자크가 2003년 몰도바의 정치 체제를 인도나 캐나다 같은 연방제로 개혁하고 러시아군을 2020년 이전에 철수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몰도바 대통령은 ‘코자크 의정서’ 체결 직전 미국과 유럽의 압력으로 서명을 거부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마이단 혁명이 일어나며 러시아의 입장도 급변했다. 2014년 10월 러시아는 몰도바 내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임무를 군사적 범위에서 민간적 범위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몰도바가 나토에 가입하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독립을 지지하겠다고 발언했다. 이에 유럽 각국은 몰도바에서 러시아군을 철수하라는 목소리를 높였으며 2018년 유엔 총회까지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러시아는 결의 이행을 거부하며 약속을 깼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비켜 가지 않았다. 올 3월 유럽평의회가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러시아가 무단 점령한 지역’으로 규정하자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상황이 또다시 불안해졌다. 지난 4월 25일 트란스니스트리아 수도인 티라스폴에서 국가보안부 건물이 로켓포 공격을 받았고, 지역 라디오 방송탑 2개가 파괴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이면에 분쟁으로 점철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비극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 [속보] 연인 죄수와 함께 탈옥한 美 여성 교도관 결국 사망…비극적 최후

    [속보] 연인 죄수와 함께 탈옥한 美 여성 교도관 결국 사망…비극적 최후

    남성 수감자와 함께 사라진 미국의 여성 교도관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10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앨라배마주의 고위 여성 교도관 비키 화이트(56)가 경찰 체포 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이 함께 감옥을 나선 지 10일 만으로, 수감자 케이시는 체포돼 재수감됐으나 교도관 비키는 체포 과정에서 자신에게 총을 쏴 결국 사망했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달 29일로 이날 교도관 비키는 수감자 케이시를 정신감정을 위해 법원에 데려간다고 말하고 함께 감옥을 나선 후 연락이 끊겼다. 경찰 수사 결과 이날 케이시는 정신감정도, 법원에 갈 예정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특히 교도관 비키가 최근 자택을 매각하고 사건 전날 사직서를 낸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현지언론은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에 주목해 연인 관계라고 보도했다.이에 현지 경찰은 두 사람이 동승한 포드 차량의 사진을 언론에 공개해 수배에 나섰으며 9일 인디애나주 에반스빌에서 꼬리를 잡았다. 인디애나 경찰은 "두 사람이 탄 차량과 경찰 사이의 추격전이 벌어져 케이시는 체포했으나 교도관 비키는 스스로 총을 쏴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한편 수감자 케이시는 지난 2020년 총 2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미 지난 2015년 가택침입, 차량 절도 등 일련의 범죄로 75년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케이시는 경찰 조사 초기 살인을 자백했으나 이후 정신 이상으로 무죄를 주장해 재판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에 반해 교도관 비키는 평소 모범적인 근무 평가를 받아온 베터랑 교도관으로 전해졌다.  
  • 3代 여덟 충신·효자·열녀 기린 ‘팔홍문’… 돌 하나로 남은 ‘핏빛 가족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3代 여덟 충신·효자·열녀 기린 ‘팔홍문’… 돌 하나로 남은 ‘핏빛 가족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중학교 때 월요일 조회 시간에 ‘명심보감’을 읽는 순서가 있었다. 목소리가 낭랑한 친구가 연단에 올라 좋은 말씀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또박또박 낭독했다. “하루라도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저절로 일어난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에 하는 일이 없다.” 먼지바람이 부는 운동장에 정렬한 채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열서너 살짜리 아이들에게는 너무 옳은, 너무 좋은 말씀들이었다. 커서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될지는 몰라도 당장 지금 배우긴 지겹고, 봄에 가을을 생각하긴커녕 당장 내일도 알지 못하며, 새벽에는 5분이라도 더 이불 속에서 뭉개려 엄마와 실랑이를 하는 터였다. 선과 악, 그 내밀하고 복잡 미묘한 세계를 분별하기엔 턱없이 어리고 어리석었다. 우이독경이거나 마이동풍이거나, 결국엔 ‘명심보감’ 한 권을 귀동냥으로나마 완독한 셈인데, 책의 핵심적인 교화의 주제는 충과 효를 위시한 유교적 가치였다.“효도하고 순한 사람은 효도하고 순한 자식을 낳으며, 부모에게 거역한 자식은 부모에게 거역하는 자식을 낳는다.” 때로 가르침이 으름장으로 들렸다. 돈은 쓰면 다함이 있지만 충성과 효도는 다함이 없다면서, 들썩거리는 사춘기의 반항심에 비유의 못을 땅땅 박아 ‘입틀막’하기도 했다. “믿지 못하겠거든 저 처마 끝의 낙수를 보라. 방울방울 떨어짐에 어긋남이 없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 기념일이 집중돼 있다. 가족은 개인의 삶에 가장 밀착돼 있는 일상적인 관계이니 그것을 축하하며 기념하는 5월에는 특별히 의미 있고 행복해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5월만 되면 아니 5월이 시작되기 전부터 마음이 무겁다는 사람들이 있다. 아예 도망쳐서 숨어 버리고 싶다는 비명도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념일들을 기념하기엔 물적·심적으로 지쳤기 때문이다. 행여 기념일을 챙기지 않고 지나쳐도 마음 한구석이 죄책감으로 묵지근한 건 어쩔 수 없다. 가족은 ‘사랑하는’ 상대를 넘어서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처를 주고받아도 기어코 얽히고설켜야 하는, 우리가 사랑하는 아주 특별하고 이상한 사람들. ●유교문화 아래 직조된 핏줄의 무게 유교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이 사랑에 ‘당위’의 무게가 더해진다. 치밀한 그물망으로 직조한 명분과 도리가 부모와 자식, 부부의 관계를 장악해 그것을 종내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확장한다. 유학은 정교하고도 집요한 이념이다. 하지만 이상주의가 거개 그러하듯 제아무리 촘촘하게 짜인 그물망이라도 찢고 뜯고 삐져나오는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진 못한다. 존천리멸인욕(尊天理滅人慾), 천리를 보존하고 욕망을 없앨 만큼 기어이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이상과 현실, 명분과 욕망, 그 사이에 아름다운 잔혹극이 있다.지하철 1호선 서울역 3번 출구로 나와 염천교 쪽으로 걷다 보면 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가로수 아래 나지막한 돌이 하나 보인다. 지도상으로 순화공원이 시작되는 지점이지만 보도 한가운데 불쑥 튀어나와 있는 데다 표석의 앞면이 순화더샵 주상복합을 향해 있어 생뚱맞게 느껴진다. 도로를 향해 걸린 실종된 딸을 찾는 가족들의 플래카드가 그 위로 진한 그늘을 드리운다. 이미 오래전에 봤던 광고 같은데 1999년에 실종된 열일곱 살의 그녀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못했나 보다. 이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사례금은 1000만원으로 올랐고 그만큼 늙은 부모의 가슴은 숯이 됐을 것이다. 그래도 애타게 찾고 또 찾는다. 포기할 수 없는 세상의 마지막 사람, 가족이기에!●위풍당당 여덟 개의 정문은 어디에 ‘팔홍문 터: 팔홍문은 조선시대에 이지남(1529~1577)과 그 아들 등 삼대에 걸쳐 여덟 명이 충신·효자·열녀가 된 것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세워 준 여덟 개 문이다. 이지남과 그의 아들 기직·기설은 효자, 딸은 효녀, 기설의 두 아들 돈오·돈서는 충신, 이지남의 부인 정씨와 돈오의 부인 김씨는 열녀로 인정받았다.’ 결코 예사롭지 않다. 한 집안 삼대의 여덟 명이 정문(旌門)을 받다니! 가문의 영광이요, 고을의 자랑이다. 충신·효자·열녀에게 나라에서 내린 정문 비각이 줄지어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을 터인데, 지금은 그 흔적이 고작 돌 하나로 남아 있다. 본디 1634년(인조 12) 세워졌던 정려각은 김포 사촌과 이곳 서울 남문 밖 자인암으로 수차례 옮겨졌는데, 조상 덕 만큼이나 자손 복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충신과 효자와 효녀와 열녀, 그들은 다 죽었다. 죽었기에 붉은 문을 받았다. 남은 자들은 드높은 이름을 얻었지만 피와 살이 도는 보호벽을 잃었다. 정처가 없는 자손들은 제아무리 훌륭한 조상이라도 두고두고 지킬 방도가 없었다. 연안 이씨 이지남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돼 유배지에서 죽은 아버지를 위해 3년간 여막살이를 해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지효(至孝)라는 이름이 널리 퍼졌다. 그 후 어머니가 이질을 앓아 위중해지자 목욕하고 울부짖으며 하늘에 호소했다. 대변까지 맛보며 간병하다가 어머니를 살리는 꿈을 꾼 뒤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지남의 부인 정씨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겨워 까무러쳤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피눈물로 세월을 보냈고, 죄인으로 자처하며 입에 맞는 음식과 몸을 편안하게 하는 물건은 아예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지남의 장남 기직은 죽은 아버지를 위해 명당자리를 찾아 천지사방을 헤맸고 마침내 상청에서 울다가 기절해 죽었다. 둘째 아들 기설은 이지남의 삼년상을 치르고 남겨진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다가 병이 걸리자 칼로 손가락을 끊고 혀를 자르는 등 효행을 다했다. 이지남의 딸 이씨는 똑똑하고 인물이 빼어났는데 부친상을 당하자 슬픔에 겨워 3년간 죽만 마셨다. 죽을 때에 이르러 “내가 지금 죽어서 아버님 곁을 따르니 죽어도 유감이 없으나 다만 어머님이 살아 계시니 그 불효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앞서감이 죄송할 뿐이다” 하고 운명하니 그녀의 나이 18세였다. 호랑이 집안에 개의 새끼가 날 리 없었다. 이기설의 아들 돈오는 벼슬자리에 있지 않았음에도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스스로 강화도에 갔다가 적군이 상륙하자 성을 향해 달려갔다. 허나 성은 이미 적군에게 포위돼 있었으니 돈오는 북쪽을 향해 통곡하다가 적군과 부딪쳤고, 적군을 꾸짖고 굽히지 않으니 급기야 살해되고 말았다. 이때 돈오의 부인 김씨도 마니산에서 적에게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자결했고, 돈오의 아우 돈서는 적에게 포로가 되자 강물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숨차고 벅찬 이야기다. 온 가족이 효자요, 효녀요, 충신이요, 열녀다. 동리 사람들이 극구 칭찬하고 나라에서 상을 내렸다. 여덟 개의 붉은 문이 뜨르르하게 거리를 메웠다. 그런데 과연 이 이야기가 아름답고 존경스럽기만 한가? 내가 불효하고 불충하고 지조 없는 인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지남 가족의 집단 변사(變死)는 아무래도 지독한 비극이자 엽기적인 잔혹극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끊이지 않는 비명횡사의 사슬을 기념하는 이곳은 영광의 자리인가, 비극의 자리인가? 딛고 선 발밑이 서늘하다.(㉻에 계속) 소설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