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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플러스] 조계총림 방장후보 선출 총회 31일 개최

    조계종 제21교구본사 조계총림 송광사는 ‘조계총림 방장후보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를 오는 31일 오후 2시 송광사 사자루에서 개최한다.총회 소집대상은 ▲비구계 수지 후 5년이 넘은 21교구 재적스님 ▲임명 후 1년 이상 된 본사 국장급 이상 종무원 비구스님 ▲21교구 관할 말사 주지인 비구ㆍ비구니스님 등이다.
  • 앨범 ‘예스터데이’ 들고 돌아온 재즈보컬 웅산

    앨범 ‘예스터데이’ 들고 돌아온 재즈보컬 웅산

    “노래하는 방식과 스타일이 예전에 비해 적잖이 달라졌다고 느낄 거예요.‘토치 송(torch song, 주로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볼륨을 높이지 않고 속삭이듯 부르는 창법)’을 많이 구사했기 때문이죠.”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본명 김은영·34)이 1년 6개월만에 세 번째 앨범 ‘예스터데이’를 들고 돌아왔다.1집이 재즈의 전범처럼 느껴지는 곡들로 가득찼고,2집이 감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보다 다양하면서 쉽고 편안한 재즈의 모습을 담았다. 재즈와 블루스라는 틀안에서만 노래했던 데서 일탈을 시도한 것. 그 시도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자신만의 색이 담긴 소리를 찾아 고민을 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 6개월 정도 뮤지컬 ‘하드록 카페’의 엘리자베스 킴으로 지내면서, 재즈 영역 밖의 음악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연주자가 아닌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서면서 내 안에 숨어 있던 록과 재즈, 블루스, 뮤지컬 등 다양한 소리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죠. 자신감도 더 생겼고, 무엇보다 소리를 통해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목소리가 ‘심할 정도로’ 강해 남자로 오인한 팬들이 많았던 그다. 또 과격하게 내지르는 ‘샤우팅 재즈’를 선호하던 그이기에 이번 변신은 사뭇 신선함을 안겨준다. 사실 로커에서 재즈 보컬리스트로, 입산과 환속을 반복한 이력에 비춰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웅산(雄山)은 18세에 비구니가 되겠다고 들어간 충북 단양 구인사의 무안 스님이 지어준 법명.2년간 절에 머물다, 입가에 맴도는 것이 염불이 아니라 노래임을 깨닫고 하산했다고 한다. 이번 앨범에서 타이틀곡 ‘예스터데이’와 ‘사랑이 너를 놓아준다’ 등 모두 7곡을 직접 만드는 등 작곡 실력도 만만치 않다. “‘예스터데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 지쳐 결국 놓아주는, 슬픈 꿈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이번 앨범의 주제인 사랑에 대한 기억이 듬뿍 녹아 있죠.” 웅산의 인기는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높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일본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등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500회가 넘는 공연을 펼쳤다. 카리스마가 넘쳐 웬만한 남자를 압도한다는 뜻에서일까. 열렬팬들은 ‘웅사마’란 애칭도 붙여 줬다.8월엔 일본 주요 도시 순회 콘서트를 통해 입지를 다질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가을쯤 웅산밴드 공연을 가질 계획이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종교갈등 넘어 화합 다져나가자”

    (사)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공동대표의장 지관스님, 이하 종지협) 소속 7대 종교 대표자들이 2일 오전 대구 계산성당을 시작으로 대구, 경북 지역에 있는 각 종교 성지에 대한 합동 순례에 나섰다.7대 종교 대표자들이 다른 종교의 성지를 함께 순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각 종교 대표들은 이날 오전 10시30분께 첫 합동 순례지로 1899년 대구에 설립된 천주교 계산성당에 들러 유물기념관을 둘러봤다. 성당에 들어선 지관 스님이 “다함께 참배합시다.”라고 제의하자 지성소 아래 나란히 선 일행은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여 참배했다. 이들은 이어 김보록 로베르 초대 본당 신부의 동산에 소나무를 기념 식수했다.20년된 반송으로 알려진 이 소나무는 ‘화합과 평화의 나무’로 명명됐다. 이번 행사에는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과 천주교 주교회의 종교간대화위원장 김희중 주교, 원불교 이성택 교정원장, 성균관 최근덕 관장, 천도교 김동환 교령,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등이 참가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대표회장인 이용규 목사의 해외 출장으로 공동대표 가운데 한 명인 한창영 목사가 참석했다. 각 종교별로 3명씩 20여 명으로 구성된 순례단은 대구 계산성당(천주교)에 이어 원불교의 경북 성주성지(2대 종법사 탄생지), 비구니 사찰인 경북 청도 운문사를 방문하고 이어 3일에는 경주 용담정(천도교), 경주 향교(성균관), 경북 영천 자천교회(기독교) 등을 순례할 예정이다. 종교 대표자들은 이에 앞서 지난 4월 북한산 진관사에 모여 사찰음식을 공양하는 행사를 가진 바 있다. 종지협 공동대표의장인 지관 스님은 “한국 종교사상 7대 종단 대표들이 뜻을 모아 다른 종교의 성지를 합동 순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모임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화합해 국민을 위하고, 종교간 이해와 화합을 다져나가자.”고 당부했다. 이날 비구니 사찰인 경북 청도 운문사를 둘러본 김희중 주교는 “종단 수장들의 의례적인 만남을 떠나 각 종교 창시자들의 탄생지와 구도지를 함께 찾아 가르침을 새길 수 있어 더욱 뜻깊었다.”고 말했다. 한편 종지협 관계자는 “이번 성지순례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해외 각 종교 성지를 함께 순례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지협은 1997년 출범한 국내 7대 종교의 대화 협력 기구로 종교간 현안이나 갈등에 대한 조정 역할 등을 하고 있다. 출범 이후 매년 ‘대한민국 종교문화축제’를 열고 있으며 지역종교문화행사를 공모한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대구·성주 김성호문화전문기자kimus@seoul.co.kr
  • [23일 TV 하이라이트]

    ●수요기획(KBS1 오후 11시30분) 히말라야의 품속에 자리 잡은 부탄왕국.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부탄 왕국에도 조금씩 서구 문화가 들어오고 있다. 그 속에서 힘겹게 라마승의 전통을 이어가는 동자승들에겐 어떤 꿈이 있을까. 스승 방에서 몰래 보는 텔레비전 앞에서는 넋을 잃고 마는 동자승들, 그들이 헤쳐 갈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마왕(KBS2 오후 9시55분) 석진은 나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순기를 살해했다며 거짓진술을 하게 된다. 오수는 그런 석진을 보며 갈등하다 급기야 형에게 전화를 한다. 희수는 오수의 전화에 석진의 상황을 묻고 오수는 그런 형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오수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공원으로 나온 나희를 맞이한다. ●거침없이 하이킥(MBC 오후 8시20분) 범이에게서 신지가 애인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형사는 곧바로 신지를 찾아간다. 이형사가 저녁 한번만 같이 먹자고 졸라대자 신지는 민정이와 함께 가겠다고 한다. 민호는 만남 200일 기념 선물로 유미에게 줄 쿠키를 손수 만든다. 하지만 민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윤호가 그 쿠키를 다 먹어 버린다. ●결정! 맛대맛(SBS 오후 6시50분) 애호박, 당근, 시금치. 편식의 주범, 채소 3종 세트의 색다른 변신을 만나본다. 메밀향 은은하게 퍼지는 구수한 메밀면, 과일 육수로 더욱더 시원한 맛 강수정의 ‘막국수’. 손으로 반죽한 탱탱한 면발이 예술, 걸쭉함이 다른 뽀얀 콩국의 진수 류시원의 ‘콩국수’. 여름 별미 국수 대결이 펼쳐진다. ●다큐 여자(EBS 오후 9시20분) 속명은 정수경, 법명은 서연 스님, 그리고 ‘인드라’라는 예명으로 1집 음반을 낸 비구니 가수가 있다.7남매의 막내로 자라면서 여고 시절에는 각종 음악경연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영남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하기도 했다. 대중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인드라’는 오늘도 속세에서 노래로 수행을 한다. ●클로즈 업<기자실 통폐합, 파장은?>(YTN 낮 12시35분)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으로부터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주요내용을 들어본다. 또한 각계의 우려에 대한 대책을 짚어본다. 정부가 언론 취재 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해 각 부처 기자실과 브리핑실을 대폭 줄이거나 없애는 방안을 발표했다. 기자실 통폐합, 과연 득인가, 실인가.
  • [산이 좋아 산으로] 충남 예산 가야산

    [산이 좋아 산으로] 충남 예산 가야산

    충남 예산과 서산에 걸쳐 있는 가야산(677.6m)은 경남 합천 가야산(1430m)에 비해 높이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주변 열 고을을 거느리며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 개심사·일락사·보원사지 등의 문화유산, 그리고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로 불리는 명당 남연군묘를 품고 있어 합천 가야산에 비해 무엇 하나 꿀릴 게 없는 명산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는 내포를 제일 좋은 곳으로 친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은 큰 바다요, 북쪽은 큰 만이고, 동쪽은 큰 평야, 남쪽을 그 지맥이 이어지는 바,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하면서 비옥한 평야 중심에 가야산이 놓여 있다고 적고 있다. 내포란 지금의 예산·서산·홍성·당진 지방과 태안·아산 일부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내포 지방이 배출한 인물에 주목했다.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 충무공 이순신, 추사 김정희, 의병장 최익현,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개화당 김옥균, 남로당 박헌영, 만해 한용운…, 걸출한 이 모든 인물들이 놀랍게도 내포 출신이다. 저자는 그들이 충청도 특유의 느리고 온화한 성품이 아니라 소위 ‘깡’이 센 사람들로 가야산의 정기를 받았다고 분석했다. 가야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바다가 가까워 일단 능선에 붙으면 내륙의 1000m 넘는 산이 부럽지 않고, 석문봉에서 바라보는 서산 간척지 너머 서해안 일몰이 특별한 장관을 이룬다. 봄철이면 진달래가 지천이고,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도 아름답다. 산행 후에는 덕산면의 온천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이다. 가야산 들머리는 크게 예산 덕산면과 서산 운산면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덕산 상가리를 들머리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상가리∼옥양봉∼석문봉∼상가리 원점회귀 산행을 한다. 가야산의 최고봉인 가사봉 정상은 각종 중계기지가 들어차 출입금지 지역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꾼들은 가야산의 실질적인 주봉인 석문봉에 올랐다가 가사봉에 들르지 않고 하산한다. 서산 운산면 용현계곡을 들머리로 하면 마애삼존불∼수정봉∼옥양봉∼석문봉∼상가리 혹은 보원사∼일락산∼석문봉∼상가리 종주산행을 즐길 수 있다. 상가리 가야산 주차장은 국립공원만큼 넓지만 주차비를 받지 않아 좋다. 이곳에 차를 세우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주말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주차장이 가득 찬다. 예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가야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등산객은 중·장년층이 많은데, 산행이 어렵지 않고 산행 후에는 뜨끈한 온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가리∼옥양봉∼석문봉∼상가리에 이르는 약 7.5㎞ 코스는 3시간 30분이 걸리는 원점회귀 코스다. 가야산은 등산 시작 지점과 끝이 꼭 일치해 자가용을 이용해 접근할 경우 편리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석문봉은 가사봉에 비해 24.6m 낮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야산의 주봉 대접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남연군묘가 가사봉이 아닌 석문봉을 주봉으로 삼고 있었고, 지금은 가사봉이 출입통제 구역이라 역시 석문봉이 주봉이 되었다. 이영준 월간 MOUNTAIN기자 # 여행정보 운산면 용현계곡은 문화유산의 보고다. 국보 서산마애삼존불, 사적 보원사지 등이 대표적인데 예전에는 계곡 일대가 전부 보원사의 영역이었다고 한다. 절터에는 당간지주,5층 석탑, 법인국사보승탑과 비가 남아 예전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상가리 쪽에는 남연군묘를 빼놓을 수 없고, 주차장에서 오른쪽 길로 10분 걸리는 보덕사도 들러볼 만하다. 본래 남연군묘는 가야사의 자리였다.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 질러 스님들을 내쫓고 자신의 아버지 무덤을 만들었다. 훗날 이 사건에 마음이 불편했던 대원군은 보덕사를 지어주었다. 비구니 사찰로 소담한 분위기가 좋다.
  • [OUR STORY] 봄처녀를 그리다

    [OUR STORY] 봄처녀를 그리다

    꽃을 보면 눈이 즐겁고 마음이 화사해진다.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진다. 어떤 꽃인들 그러지 않을까마는, 차디 찬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봄꽃의 유혹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다.3월이라…. 초순을 훌쩍 넘긴 이맘 때라면 청매실 농원이 있는 광양 매화마을로 가야 한다. 바람에 흩날린 하얀 매화꽃이 섬진강으로 떨어지는 광경, 생각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은가. 섬진강 자락에 기댄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 마을에선 노란 산수유가 다투어 피어났다. 해마다 중순을 넘어서야 만개하더니 매화꽃을 시샘하는 까닭인가, 일찌감치 꽃을 피워 냈다. 계곡과 돌담 사이에 흐드러진 산수유가 눈부시고 애절하다. 이맘 때면 또 봄이 깃든 약숫물, 고로쇠가 매화, 산수유와 공명을 다툰다. 삼국시대 병사들이 전투 중 화살에 꽂힌 나무에서 흘러나온 고로쇠를 마시고 원기를 회복했다던가.‘나도 예 있소!’하며 목청을 높이는 듯하다. 지리산과 백운산을 휘감으며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모습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에 봄빛이 완연하다. 주 초반 꽃샘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리긴 했지만, 서둘러 찾아 온 봄이 개화시기를 앞당겨 놓은 탓에 서두르지 않으면 낙화하는 모습만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만화방창 때는 좋아 아니 가지는(?) 못하리라∼. 글 사진 구례 손원천 기자 km@seoul.co.kr ■ 산수유 군락지 전남 구례 산동 상위마을 전주와 임실을 뒤로하고 남원땅에 접어드니 이름도 살가운 춘향터널과 방자교차로가 이방인을 맞았다. 설핏 웃음이 흘러 나왔다. 혹시 몽룡 고가도로나 향단이 삼거리, 변학도 다리는 없을까. 도로시설 이름만으로 가슴 한자락 내려놓게 하는 남도의 해학에 장시간 운전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 # 노란 군무(群舞) 산수유 남원을 지나 20분쯤 달렸을까. 봄물에 방게 기어 나오듯, 고샅길과 개울가 곳곳에서 노오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던 산수유가 어느새 선연한 노랑색 군락을 이루며 눈앞에 펼쳐졌다.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 국내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다. 작가 윤대녕씨가 ‘마른 가지에 뿌옇게 튀어 올라 비구니 애처로운 머리통에 비죽비죽 돋는 머리칼 끝들을 생각나게 한다’던 바로 그 꽃.3월로 들어서자마자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가 산동마을 농가 앞마당과 돌담길, 논두렁이며 산기슭에 꽃구름을 피워 놓았다. 마치 마을 전체가 노란 구름에 파묻힌 듯한 느낌. 노랑빛 감도는 이끼가 낀 채 단정하게 서 있는 돌담길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좁은 돌담길을 걷다보면 남녀간 정이 도타워지고, 없던 정도 생긴다 해서 사랑의 길이라 불린다. 그 돌담 위로 산수유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산수유도 돌담도 온통 노랑빛. 때마침 내린 봄비마저 노란 색깔을 머금고 흩뿌려지는 듯하니, 그야말로 꽃처럼 아름다운 봄날이다. 아마 여수·순천 10·19사건 때 ‘산동애가’를 부르며 토벌대에 끌려갔다는 19세 백씨(氏)소녀도 그처럼 아리따웠을 게다.‘잘 있거라 산동아 한을 안고 나는 간다/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고/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산수유가 지리산을 노랗게 물들여갈 때면 이곳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산동애가의 한 구절이다. 산수유에서 왠지모를 애절함이 느껴졌던 건 이처럼 가슴아픈 해방공간의 현대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나 보다. 상위마을에서 19번 국도를 가로질러 가면 만날 수 있는 현천마을과 반곡마을 또한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산수유 명소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 가볼 만한 곳 ●사성암 화엄사쌍계사 등 지리산을 대표하는 거찰 외에도 기암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사성암도 놓치면 아쉬운 볼거리. 절 뜨락에 서면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드넓은 토지면 등 구례 들녘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물줄기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다. 문척면 죽마리. ●운조루 1776년 건축된 조선시대 전통 양반가옥.‘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구름 위로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는 뜻의 이름만큼 아름답다. 남한 3대 길지(吉地)위에 세워져 세인들의 관심을 더한다. 중요 민속자료 8호. 토지면 오미리 #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해 갈 경우, 산수유마을을 먼저 둘러본 뒤 매화마을로 가는 게 편하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을 나와 남원 방향 17번 국도를 탄 뒤, 임실을 거쳐 남원시 직전에 있는 춘향터널을 지나자마자 19번 국도로 갈아 탄다. 밤재터널을 지나 지리산온천랜드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2㎞쯤 가면 산수유 마을에 닿는다. 매화마을은 산수유 마을에서 나와 다시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방면으로 가다 화엄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861번 지방도로 바꿔 타고 직진, 화개장터 지나 남도대교를 건넌 다음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된다. 산수유마을에서 40∼50분 소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구례까지 가는 것이 우선. 구례행 직행버스(4시간 소요)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하루 4차례 운행한다. 기차는 하루 15회. 구례구역에서 내린다. 상위마을까지는 구례공용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061)780-2731. ■ 지리산 피아골 직전마을 고로쇠 ‘여러분은 지금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계십니다.’지리산 피아골로 향하는 섬진강변 861번 지방도로 한쪽에 서있는 입간판 글귀다. 가슴에 여실히 와 닿는 명문. 최소한 이맘때 만큼은 더없이 정확한 표현이지 않을까. # 봄이 깃든 물 고로쇠 산수유에 취해 몽롱해진 정신을 봄비에 씻기운 맑고 깨끗한 섬진강 바람에 날려보내고, 지리산 피아골 계곡의 마지막 동네 직전마을로 향했다. 고로쇠 산지로 유명한 곳. 경칩을 막 지난 요즘 이 마을 사람들은 고로쇠 채취로 분주하다. 가을엔 부지깽이도 덤빈다더니, 딱 그 모양. 봄기운이 약동하는 피아골 자락에 나무들의 수액 차오르는 소리가 가득하다. 피아골에서 고로쇠 채취로 40여년을 보낸 손경섭(53)씨의 설명.“고로쇠는 뿌리에서 새순으로 흘려보내는 수액을 뽑아낸 겁니다. 날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이맘때 아니면 채취가 안되지요.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많은 수액이 나오지만, 비가 오고 눈이 오거나 강풍이 불어 날씨가 좋지 않으면 수액 양도 적습니다.”손씨의 자랑이 이어진다.“경칩 전후 한 달 동안 채취하는 직전마을 고로쇠 수액은 야산에서 생산되는 것에 비해 당도와 효능이 뛰어나 그야말로 산중 보약이죠.” 동행한 문화관광 해설가 박미연(35)씨는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 고로쇠 수액 한 말(18ℓ)을 서너명이 밤을 도와 마시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지리산 자락의 민박집 등에서 관광객들이 밤새 고로쇠 수액을 마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죠.”라며 거들었다. 막 채취한 고로쇠 한잔을 들이켰다. 들척지근한 것이 온몸에 산골의 봄기운이 통째로 전해진다. 미각을 통한 봄맞이처럼 생생한 게 또 있을까. 한화리조트 지리산(www.hanhwaresort.co.kr)은 피아골 직전마을 주민들이 채취한 고로쇠 수액을 택배로 보내준다.18ℓ1통 5만 5000원.(061)782-2171. 글 사진 구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고로쇠 수액의 약리효과 단풍과에 속한 활엽수인 고로쇠나무의 껍질을 한방에서는 ‘지금축’이라는 약재로 사용해 왔다. 지금축은 성미가 맵고 따뜻해 풍을 제거하고 습기를 없애며(祛風除濕), 혈액순환을 도와 어혈을 없애는(活血祛瘀) 작용을 한다. 따라서 풍과 습이 원인인 사지마비, 동통은 물론 골절·타박상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로쇠 수액은 해발 600∼1000m의 고지대에 자생하는 고로쇠나무의 뿌리에서 줄기로 올라가는 수액을 인위적으로 채취한 것이다.1m 정도 높이의 나무 몸통에 드릴로 1∼3㎝ 깊이의 구멍을 뚫은 뒤 호스를 꽂아 흘러내리는 수액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 소백산, 오대산 등 산이 깊고, 공해가 적은 곳에서 많이 재배하거나 자생하며 ‘고로쇠’란 이름은 관절통 등 관절질환에 좋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동안 고로쇠 수액의 성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당분 칼슘 마그네슘 칼륨 비타민B1·B2와 비타민C, 각종 미네랄 등의 영양소가 일반 물보다 40배 정도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알칼리성의 이온화된 성분은 인체에 쉽게 흡수된다. 이 가운데 주성분인 당분은 1∼2%가량 함유되어 있으며 사당, 포도당, 과당이 함께 어울려 달콤한 맛을 낸다. 성분이나 맛의 차이는 고로쇠나무가 자라나는 토양, 기후, 채취 시기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고로쇠 수액은 많이 마셔도 탈이 나지 않아 평소 물처럼 하루 4∼5회 음용하면 되며, 다른 음식에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함유 성분이 풍부하고 체내 흡수도 좋은 고로쇠 수액은 건강음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고로쇠 수액의 효능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되어 있지 않지만 수액에 포함된 당분이 혈당조절을 원활하게 해 당뇨, 고혈압, 피로회복 등에 효능이 있고, 각종 미네랄은 류머티즘 관절염, 통풍, 신경통, 산후 후유증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칼슘성분이 많아 노약자나 골다공증 등이 많은 부녀자에게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위장병, 피부병, 비뇨기과 질환 등에도 좋은 효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이경섭 강남경희한방병원장·경희대한의대 한방부인과 교수 ■ 전남 광양 섬진강 다압 매화마을 매화(梅花)라 한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난다.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줄 뿐만 아니라 그 자태가 연분홍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봄처녀의 아리따운 모습과 닮아 애간장을 녹인다. 매화는 또 한평생 춥게 살면서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옛 선비들은 매화의 그 고결한 기품을 본받으려 늘 가까이 두고 노래했다. 청빈과 지조, 그리고 올바른 법도를 지키게 하는 절개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병풍이나 족자, 청자·백자 도자기에서도 오롯이 피어나 사시사철 길잡이 역할을 했다. 퇴계 선생은 생전에 매화가 좋아 시 여러 편을 남겼다. 그 중 한 구절이다.‘옛 책을 펴서 읽어 성현을 마주하고/밝고 빈 방안에 초연히 앉아/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 보게 되니/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으리’-壬子正月二月立春(임자년 정월 초이틀 입춘) 매년 3월 한 달이면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 일대에는 매화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자,‘얼씨구나 매화로다’처럼 춘정이 그립거든 봄의 교향악이 펼쳐지는 그곳으로 훌쩍 떠나보자. 지리산과 구비진 섬진강을 덮은 매화의 시향(詩香)에 흠뻑 빠져 봄맛을 진하게 느껴 보자. 글 광양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광양시청 제공 매화마을로 유명한 광양 다압면(多鴨面). 지난달 하순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매화는 550리 섬진강, 아름다운 지리산과 백운산 자락을 배경으로 그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경남 하동 나들목에서 매화마을로 들어섰더니 섬진강 강가 주변에는 대나무와 억새풀숲 또한 그림처럼 쭉 이어진다.‘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표지판이 그럴듯하게 눈에 들어왔다. 지나는 차창 밖으로는 ‘섬진강 재첩국’이라는 간판이 여기저기 눈에 띄어 입맛을 자극했다. 매화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백운산 자락에 내려앉은 연분홍 구름선녀들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가를 감상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이 광경에 ‘와∼’라는 탄성을 연발한다. 또한 연인끼리, 가족끼리 그 추억을 담아내려고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꽃잎 가까이에 다가가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하고 볼에 비벼보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 17일부터 25일까지 매화축제 가장 이른 시기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매화꽃을 소재로 한 매화축제는 섬진강변 매화마을 일원에서 해마다 3월에 열리며 전국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개최되는 꽃 축제이다. 1997년 시작된 매화축제는 품질 좋은 매실과 매실로 만든 매실식품을 널리 알리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시작됐으며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섬진나루터와 청매실농원의 전통옹기, 그리고 섬진강 재첩잡이 풍경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강변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다. 광양시청에서 주최하는 매화마을 축제는 매화꽃이 만개하는 오는 17일부터 25일까지 9일 동안 열린다(청매실농원 자체에서는 이미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주제는 ‘달빛 어린 매화, 섬진강 따라 사랑을’이다. 특히 올해는 ‘매화학술대회’‘매화작품전시회’‘매화음악회’ 등의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아울러 ‘나만의 매화만들기’‘봄을 깨워라’‘매화탁본’‘꽃차만들기’‘섬진강변 소달구지여행’ 등의 체험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이밖에 전국 매화사진 촬영대회, 매화백일장, 매화사생화대회 등의 부대행사도 이어진다. 광양시청의 한 관계자는 “이 기간 동안 전국에서 50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섬진강의 유래 1385년 고려 우왕 11년 때의 일로 전해 내려온다. 경남 하동에 왜구들이 많이 출몰하면서 양민들을 괴롭혔다. 왜구들이 강을 건너려 할 때 두꺼비 수만마리가 몰려와 울음으로 왜구를 쫓아내자 이를 가상히 여긴 임금님이 강 지명을 한문으로 두꺼비 섬(蟾)자를 써서 섬진강(蟾津江)이라 부르라고 했다. 예부터 두꺼비는 집지킴이, 재복신으로 불리웠다. 액을 물리치고 부귀영화를 불러주는 동물로 여겨진 것이다. 예를 들어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고 잘 살아라’,‘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등의 동요도 있다. 또한 두꺼비가 절에 나타나면 스님이 합장을 하고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등 불가에서는 큰스님, 또는 실지 금와보살로 지칭되기도 한다. # 교통편 서울에서 갈 경우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타다가 산청으로 빠져 국도로 가는 길이 있으나 지리산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아예 진주까지 가서 하동읍내를 통해 다압면으로 가는 편이 좋다고 경험자들이 권한다. ●서울∼대전∼진주∼하동IC∼하동읍∼섬진교∼매화마을.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이용해 익산을 거쳐가는 방법도 있다. 익산∼전주∼구례∼간전교∼다압면∼매화마을. ●열차편으로는 하동역 또는 진상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이동하면 된다. # 주변 볼거리 ●자연관광 백운산과 4대계곡, 섬진강나루터, 광양만, 망덕포구와 배알도, 희양십경 등.(061)797-2731. ●문화유적 옥룡사지 동백림, 중흥사, 형제의병 유적지, 성불사 등.(061)797-3363. # 먹을거리 재첩국과 고로쇠 등이 풍부하며 그외 식당안내는 (061)797-2607로 하면 된다.
  • 홍콩 유명여배우 천샤오쉬 비구니 됐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백만장자 사업가인 홍콩의 유명 여배우가 돈과 명예를 모두 벗어 던지고 돌연 출가했다. 중국 언론들은 27일 80년대 드라마 홍루몽(紅樓夢)의 여주인공으로 최고 인기배우에 오른 천샤오쉬(陳曉旭·43)가 삭발한 뒤 비구니가 됐다고 보도했다. 천샤오쉬는 지난 99년 우연히 무량수경(無量壽經) 녹음테이프를 듣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깨달은 후 불법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불교에 정진, 야채만으로 식사하고 사무실도 불당으로 꾸몄다. 천샤오쉬는 92년 연예계를 떠나 베이징스팡(北京世邦)이라는 광고회사를 세워 지난해 매출액 2억위안(한화 240억원)의 순익을 거뒀다.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2005년 ‘중국 경제계의 풍운아’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 언론은 그녀의 남편도 출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jj@seoul.co.kr
  • 중국인의 삶과 일상을 엿본다

    우리와 문화가 가장 비슷하다는 중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문화와 무역의 커다란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문화와 생활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보는 좋은 기회가 있다. MBC는 11일부터 15일까지 매일 낮 12시40분에 다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중국을 소개한다. 최근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국내 최초로 진솔하게 중국인들의 삶과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국 TV프로그램 주간’을 만들었다. 11일 ‘북방에서’는 상해에서 호텔 주방장을 하던 소진이 마약중독으로 세번이나 중독자 감호소를 다녀온 뒤 마약을 끊기 위한 노력과 마약을 여전히 끊지 못한 그의 형을 통해 마약의 폐해를 담담하게 그렸다. 12일 ‘절집 아이들’은 중국의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버려진 여자 아이들을 돌보는 비구니 명수 스님의 헌신과 사랑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13일 방송되는 ‘후방으로’는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터지자 피란간 상해 시민들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공장기계와 도면을 들고 철수한 사업가, 부인과 함께 중경으로 가 전시 연합대학에 간 교수, 자신이 설계해서 완공한 항주 전당강의 다리를 폭파해야 했던 엔지니어 등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14일은 ‘왕씨 할머니’편으로 시골에서 살아가는 할머니의 평범한 삶을 소개한다. 장수성 서주 근처 가난한 시골 팔양촌에 사는 왕계영 할머니는 얼핏 보기엔 보통 할머니 같지만 중국 전통공예인 ‘종이 오리기’의 달인이다. 몸져 누운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며 농사를 짓고 남은 시간에는 전지 공예품을 만들어 판다.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중국 보통사람의 삶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15일 방송되는 ‘교도소 사람들’은 한번의 실수로 감옥에 들어왔지만 예술단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찾는 남녀 죄수들의 이야기를 다뤘다.1901년에 건립된 상해시 제남교 교도소엔 장기수들로 구성된 예술단이 있다. 최소 5년 이상의 남녀 장기수로 구성된 신안예술단은 관현악은 물론 무용극을 소화할 정도로 실력이 우수하다.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그들의 눈물나는 삶의 현장을 찾는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연기 고수’들 연극 무대로

    ‘연기 고수’들 연극 무대로

    요즘 공연계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다.20·30대 젊은 관객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붕어빵처럼 비슷비슷한 작품이 양산되는 형국. 그런데 올 겨울 연극무대가 중후해진다. 김혜자를 비롯해 정영숙, 사미자, 이순재, 양택조 등 TV에서 주로 활동해온 중견 연기자들이 잇따라 무대 나들이에 나섰다.‘아줌마 바람’을 불러일으킨 뮤지컬 ‘맘마미아’‘메노포즈’처럼 연극동네에도 중장년층의 반란이 일어날지 기대를 모은다. ●김혜자 ‘다우트´로 5년 만에 카리스마 연기 두말이 필요없는 배우, 김혜자는 연극 다우트(12월5∼1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출연한다. 영화 ‘문스트럭’의 작가 존 패트릭 셴리가 쓴 ‘다우트’는 인간 내면에 잠재한 의심과 의혹, 확신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지난해 퓰리처상과 토니상 등을 휩쓸었다. ‘셜리 발렌타인’이후 5년 만에 무대에 서는 김혜자는 극중 냉철한 엘로이셔스 원장수녀 역을 맡아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극단 실험극장이 국내 초연하는 이번 공연에는 연기파 배우 박지일이 엘로이셔스와 대립하는 플린 신부로 분해 극적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킨다.2만 5000∼5만원.(02)889-3561. ●정영숙·박순천 ‘황금연못´ 잔잔한 감동 극단 유의 황금연못(12월1∼31일 유시어터)에는 정영숙, 권성덕, 박순천 등 낯익은 얼굴들이 등장한다.1981년 캐서린 햅번과 헨리 폰다, 제인 폰다 부녀 등 호화 캐스팅과 탄탄한 작품성으로 아카데미상을 휩쓴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겼다. 오랜 세월 등을 돌린 채 살아온 아버지와 딸이 남자친구의 아들을 매개로 소통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캐서린 햅번이 연기했던 에델로 분하는 정영숙은 “연극을 한 지가 30년이 넘어 두렵다. 하지만 언제 또 해볼까 싶어 욕심을 냈다.”면서 “중년 세대와 젊은 세대에게 두루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만족스러워했다. 극단 유의 유인촌 대표는 “어른들이 볼 만한 연극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연출은 유 대표의 친형인 유길촌씨가 맡았다.3만∼4만원.(02)3444-0651. ●양택조·사미자 ‘늙은부부´ 황혼의 재발견 지난 11일 막올린 늙은 부부 이야기(내년 1월14일까지, 코엑스 아트홀)는 노년의 사랑도 청춘의 연애만큼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슴 따뜻한 연극이다. 2003년 초연 이후 매년 배우들을 바꿔가며 재공연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지난해 콤비였던 이순재·성병숙과 함께 양택조·사미자 커플이 번갈아 출연한다. 사별의 아픔을 공유한 노신사와 할머니가 티격태격 말다툼끝에 황혼을 함께 맞이하는 이야기는 중년 관객에게는 공감대를, 젊은 관객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절감하게 한다.2만∼4만원.(02)741-3934. 이 밖에 중견 연기자 연운경은 비구니 스님들의 구도 과정을 그린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14일∼내년 1월14일 제일화재 세실극장)에 출연한다.1만 5000∼3만원.(02)3443-101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비구니 대중가수 1호 인드라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비구니 대중가수 1호 인드라

    어두운 그늘에 한줄기 빛을 내린다. 광명이요, 생동이다. 맞다. 환하게 불을 밝히니 ‘인드라’라고 한다. 심산 유곡, 저 깊은 득도의 세계에 있던 희미한 ‘인드라’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중생의 무대에서 노래한다. 어디에서? 그냥 누군가 막 그리워질 법한 가을날이다. 억새풀이 군데군데 하늘거리는 청계천에서 가을의 물소리를 작은 목탁구멍 속에 담아낸다. 또 옛날 임금님이 거닐었던 경복궁 뒤뜰에서 주옥같은 타령을 하얀 고깔에 비비며 얼씨구나 춤을 춘다. “어디로 가나 세상에 태어나 무엇을 하다가 가나/밝은 세상에서 궂은 날만 보다가 이제 어디로 가나/불꽃이 사라지면 고요함이 남듯이/집착이 사라지면 고요함이 찾아드네.” 양인자·김희갑씨 부부, 아마도 이 시대 최고의 작사·작곡가 커플로 여겨진다. 김희갑씨는 올 4월에 칠순을 맞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공연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올 가을에는 특별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했다. 그랬다. 이 부부는 최근 환상의 합작품을 내놓았다.13년 만에 대중가요 작사·작곡의 콤비를 이루었던 것. 특히 한꺼번에 무려 여덟곡이나 생산해냈다. 누가 부를까. ●삭발 13년 만에 ‘중생의 세계로´ 신세대 비구니 인드라(40·법명 서연, 속명 정수경). 지난 1993년 머리 깎은 지 13년 만에 화엄경에 나오는 인드라망 구현을 위해 중생의 세계로 훌쩍 튀어나왔다. 예명이 ‘인드라’요 음반명도 ‘인드라’이다. 이른바 비구니 출신 대중가수 1호로 확실하게 도장을 찍은 셈이다. 아울러 데뷔 여덟곡 모두 신곡이라는 점에 범상치 않아 눈길을 끈다. 어찌했든 신인가수치고는 대단한 일임에 틀림 없다. 이에 대해 김희갑씨는 “인드라는 대중이 좋아할 요소는 다 갖추었다. 음대 출신이라 기본기가 탄탄하고 특히 트로트 창법이 매력적이다.”면서 “스님이어서 그런지 호흡도 길고 체력 또한 좋다. 특히 고음이 매력적이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양인자씨도 “이렇게 발랄하고 끼가 많은 비구니를 본 적이 없다.”면서 음색에는 우수가 쫙 깔려 있어 보기드믈게 근사하다고 거들었다. ●음대 출신… 관현악 전공한 독특한 이력 인드라가 이들 부부와 인연이 된 것은 출가무렵, 김국환이 부른 ‘타타타’가 작용됐다.‘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벌은 건졌잖소∼’로 시작되는 가사가 마음에 다가와 언젠가 노래를 부른다면 꼭 김씨 부부의 곡을 받겠다고 다짐했다. 인드라는 음대에서 관현악을 전공해 플루트 등 웬만한 악기는 프로급 수준으로 다룰 정도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가을햇살이 눈부시도록 화사하게 쏟아내는 지난 주말 인드라를 만났다. 서울 종로구청 옆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따끈따끈하게 막 나온 음반을 지인들에게 보내느라 많이 바쁜 모습이었다.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자 “많이 도와주세요.”라며 활짝 웃는다. 맑고 고우면서도 당찬 목소리가 퍽 인상적이었다. 왜 가수가 되려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일상사에 정화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반문하면서 무명(無明)을 대뜸 꺼낸다. 따지고 보면 전생의 길모퉁이에서 어디선가 다들 봤거나 아니면 잠시 못봤거나 했을 것이라며 웃는다. 아울러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가 스치듯 만나는 사람마다 어찌 미워하겠는가 하는 화두를 툭 던진다. 지혜롭지 못해 어디서 왔는지, 또 우리가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이다. 이어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을 법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읊조린다.“꽃이 피는 아침 좋아서 웃었네 세상도 함께 웃었네/꽃이 지는 저녁 나는 울어 버렸네 나혼자 울었네/수리수리 마하수리 백년이 아차하는 순간일세.” 인생이 곧 수행이요 그 가짓수가 8만 4000가지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득도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속으로 ‘대학 다닐 때 머리 깎았을 뿐인데….’하는 생각을 했지만 수첩에 주워 담기가 꽤나 바쁘다. ● 고통과 행복의 출발·끝은 ‘나´ 왜 비구니가 됐을까. 영남대 음대를 졸업할 무렵 철학과 삶의 고뇌에 푹 빠졌다. 어느날 절에 갔을 때 다가오는 느낌, 즉 ‘괜찮은 진리’를 생각하게 됐다. 모든 것이 ‘나로 인해 고통과 행복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라고 답을 얻었다. 그래서 스물일곱살 때 마산시립 교향악단 수석단원이던 시절, 속세의 음악이 문득 싫어짐을 느껴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그것도 이차돈이 순교했다는 ‘흥륜사’에서. 67년생, 숫자로 치면 나이 40이지만 30대초반의 앳되 보이는 얼굴이다. 수행과정에서 후회는 안했는지 물었다.“산사생활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지요. 지나고 보니 지금은 많이 (속이든 마음이든)비워졌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는 얼마전 청계천에서 승복차림에 목탁을 들고 신명나게 노래 한마당을 펼쳤다. 또 경복궁에서는 서양악기 플루트를 꺼내 무념무상의 연주를 해 주목을 끌었다. 행인들은 ‘스님이 플루트를? 혹시 괴짜 아닌가’하는 시선을 보냈다. 한 행인의 물음에 “스스로 인드라가 돼서 가는 곳마다 노래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빛이 되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우리만 (산에서)도 닦으면 뭐해요. 부처님의 제자로 할 일은 중생들과 같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플루티스트가 되려고 했어요. 머리깎고 스님이 될 줄은 정말 몰랐지요.” ●여고·대학시절 음악경연대회 입상도 하기사 학창시절 공부나 친구보다는 음악을 더 좋아했다. 여고시절 ‘월간음악’ 주최 콩쿠르와 영남대 주최 전국 남녀 고교생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하며 주위의 부러움을 받았다. 85년 영남대 음대 진학했을 때만 해도 꿈은 세계적인 플루티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 무렵 둘째언니의 권유로 해인사에 드나들면서 세속적인 음악활동이 무의미함을 느꼈다. 홀연히 음악을 내던진 그는 계룡산 동학사 강원(승가대학)을 거치면서 구도의 길로 들어섰다. 수행 도중 가끔 여기저기 사찰행사에서 MC도 보고 플루트를 연주했다. 소문이 퍼져 지난 2004년 대구 불교방송에서 방송제의가 들어왔다. 7개월 동안 ‘음악이 있는 명상’이란 저녁 9시 프로그램과 ‘토요일 오후 서연입니다’ 진행을 맡았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중생이 기쁘면 부처도 기쁘다’는 생각에 대중 앞에 적극 나섰다. 학창시절 국악까지 했던 목소리로 많은 팬들까지 끌어들였다.2005년 경북 영천 만불사 음악회에서는 ‘베사메무쵸’‘잊혀진 계절’ 등 친숙한 노래를 연주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관객들은 촛불을 흔들며 환호했다. 이때마다 저절로 느끼는 마음, 즉 아무리 거룩한 법문이라도 중생의 귀에 안들어오면 ‘꽝’이라는 것이다. ●“수행의 힘 노래에 반영되었으면…” “어디서 뭘 하든 제가 있는 곳이 곧 수행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 부처의 뜻입니다. 연예계 생활이 지겨우면 다시 산으로 들어갈지 모르지만 세속 나이 40에 뭔가 시작했습니다. 이 또한 한 수행의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깜짝 등장한 화제성 인물은 결코 아니란다. 지속적인 음악활동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이다. 그의 노래도 발라드에서 트로트, 서양음악과 국악을 접목시킨 독특한 음색이다. 아울러 여럿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재능까지 겸비했으니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래서 한국적 소리와 서양소리를 잘 버무릴 수 있는 비구니 가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자신의 노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에 “수행의 힘이 노랫소리에 잘 반영되었으며 좋겠다.”고 피력했다. ■ 인드라 그가 걸어온 길 ▲1967년 대구 출생 ▲84년 영남대 주최 ‘전국남녀 고등학생 음악경연대회’ 입상 ▲88년 제1회 플루트 독주회 ▲89년 영남대 음대 졸업 ▲85∼88년 영남오페라단 플루트 주자 ▲89∼92년 예술의 전당, 호암아트홀 연주 ▲89∼92년 마산교향악단 수석단원 ▲90∼92년 경남예술고등학교 강사 ▲90년 제2회 플루트연주회 ▲93년 경주 흥륜사 출가. 명진스님을 은사로 득도. 공주 동학사 강원(승가대학)에서 수학 ▲2004년 소아암 환자를 위한 음악회. 장애어린이 돕기 조인트 콘서트 ▲04∼05년 대구 불교방송 ‘음악이 있는 명상’‘토요일 오후 서연입니다’ 진행 ▲06년 세종문화회관, 김희갑 음악회 초청 출연 ▲06년 10월 제1집 음반 ‘인드라’ 출반 km@seoul.co.kr
  • 儒林 (598)-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4)

    儒林 (598)-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4)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4) 율곡의 답안지는 마침내 ‘홍범전(洪範傳)’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홍범전’은 북송의 왕안석(王安石)이 지은 책으로 주로 자연과 사회를 분석한 명저 중의 하나이다. 즉 ‘화수목금토’가 한 시공간에 존재하며 색, 소리, 냄새, 맛 등 물리적 성질을 지닌 다섯 오원소를 물질원소로 보고 있다. 이 요소들이 서로 다른 요소와 함께 차별과 대립을 반복함으로써 상생(相生)하고, 상극(相剋)하며, 천지만물이 생성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유가에 있어 대표적인 철학서인 것이다. 즉 자연계와 인간사회는 천도(天道)가 지배하는 곳으로 인간은 천도에 따라 성(性)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었다. 따라서 율곡이 인용하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의 고사는 이러한 하늘의 도를 어긋난 그 대표적인 예였던 것이다. 측천무후는 당나라 태종의 병을 시중들고 있었던 낮은 신분의 궁녀였던 미랑을 가리킨다. 아버지 태종뿐 아니라 세자였던 이치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경국지색. 마침내 아버지가 죽자 황제에 오른 고종은 미랑을 자신의 왕비로 삼고 이름을 무측천(武則天)이라 하였다. 태종이 죽자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던 미랑을 다시 궁중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왕비로 삼았던 고종은 마침내 허수아비왕으로 전락하고 만다. 고종이 죽은 후 중종과 예종을 차례로 폐하고 국호를 주라 칭하고, 자신을 신성황제(神聖皇帝)로까지 일컬었던 무측천은 그러나 오나라와 월나라 땅에 한여름에 서리가 내림으로써 하늘의 재앙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나라에 임금이 없기 때문에 양이 성한 계절에도 음의 결정인 서리가 내린 것이라는 당서(唐書)의 내용을 인용하였음인 것이다. 그 순간 정사룡은 자신도 모르게 붓을 들어 답안지 첫 장 한 구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내렸다. “一之本” 이 문장의 의미는 ‘많은 문장 중에서 으뜸’이라는 뜻이었다. 원래는 모든 답안지를 다 채점하고 났을 때 채점관들이 합의하여 장원이나 차석이 결정되어 최종시험관인 정사룡이 낙점하여 답안지에 써넣는 최종 판결문이었다. 물론 아직 답안지는 많이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내용을 다 읽지도 않고 도중에 장원급제에 해당되는 ‘일지본’의 관별을 내리는 것은 상례에 맞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 순간 정사룡은 더 이상 읽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정사룡이 그렇게 낙점을 내리자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양응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정사룡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정사룡은 탄식을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 이상의 답안은 없네. 만약 이 이상의 답안이 나올 수 있다면 이는 인간의 글이 아니라 신필일 것이네.”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이율곡의 ‘천도책’ 답안지에는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정사룡이 감탄하여 적은 ‘일지본’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음이다.
  • 부처님 오신날, 김천 청암사에서 욕심을 비우다

    부처님 오신날, 김천 청암사에서 욕심을 비우다

    비구니 도량 김천 청암사의 아침 ‘모든 것이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라’어둠이 있어야 빛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의 빛을 위해 그늘에서, 어둠에서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있는 도량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있던 분노와 응어리가 저절로 녹아든다. 오색 연등이 파란 5월의 하늘을 수놓고 있는 이맘때 우리가 사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구니 도량으로 알려진 경북 청암사의 아침을 느껴본다. 부처님 오신 날인 사월초파일. 불자건 아니건 초파일에는 인근 사찰을 한번쯤은 찾아보는 게 우리의 습관일 것이다. 경북 김천은 직지사를 비롯해 청암사, 수도암, 신흥사, 봉곡사, 계림사 등 유명한 사찰들이 많은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비구니 사찰로 알려진 청암사를 찾았다. 애틋한 사연과 아름다운 절의 모습이 초파일에 들러보기에 제격이다. 또한 청암사에서 수도산(불령산) 정상을 향해 50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수도암 또한 고즈넉한 사찰이다. 경북 김천에서 단아하고 조용한 사찰을 여행을 떠나보자. 글 사진 김천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셀수 없이 많은 별들이 까만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새벽 3시. 파르라니 깎은 머리, 앳된 얼굴의 스님이 “똑똑똑∼”청아한 목탁 소리로 모두가 잠들어 있는 고요를 깨운다.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수 겹의 나뭇결이 아름다운 선방에 하나 둘씩 불이 밝혀진다. 청암사의 새벽은 늘 그렇듯 이렇게 시작한다. 새벽 별이 아직도 가득한 지금, 잠의 수렁에 빠져있는 속세의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의 하루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을 몰아낸다. 고요한 산사의 밤을 깨우는 종소리와 함께 단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자 하는,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위한 염원을 담은 비구니들의 구성진 법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계곡에 피어오르는 새벽 안개처럼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구니들이 모여 용맹정진하는 청암사를 찾았다. # 나를 찾아가는 길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 쓸쓸한 낯이 옛날 같이 늙었다. /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백석의 ‘여승’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의 경계에 우뚝 솟은 수도산(불령산·1317m) 깊은 자락에 자리잡은 청암사. 아름드리 나무들이 즐비한 계곡을 승용차로 한참을 달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 인지 파란 이끼를 가득 머금은 바위들, 깨끗하다 못해 존재의 유무를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투명한 계곡물, 파란 하늘을 모두 가려버린 잣나무와 소나무.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지저귀는 새들과 풀벌레만이 낯선 이방인을 반기고 있었다.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불령동천(佛靈洞天)’이다. 깊은 계곡의 적막한 숲길을 쓸쓸하게 걸어가는 비구니의 모습에 한지에 먹물이 번져나가듯 뜻모를 애틋함이 가슴을 적신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두 볼에 흐르는 고운 선에서 느껴지는 구도자의 기품에 속인 손은 합장으로 변하고 이내 고개가 숙여진다. “스님, 청암사는 더 가야합니까.”,“어찌 깊은 산중에서 절을 찾으십니까. 마음이 있다면 바로 앞에 있을 겁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있단 말인가, 잘못 왔단 이야긴가.10여분을 더 걸으니 일주문이 저기 눈에 보인다. 맞게 오기는 온 것 같다.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듯한 일주문에 들어섰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갑자기 밝아지며 거짓말처럼 봄햇살을 쏟아낸다. 옛 대갓집 마당처럼 정갈하게 빗질된 절 마당에서 청암사의 정갈함이 느껴진다. # 끈질기게 이어온 청암사 청암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조선 인조 25년(1647년)때 큰 화재로 절이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다시 재건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130여년 뒤인 정조 6년(1782년) 다시 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도 바로 다시 세웠다. 그 뒤 점차 쇠락해 가던 청암사가 새로워지는 것은 광무 1년(1897년). 대운(大雲)스님이 8년에 걸쳐 청암사를 모두 보수하고 극락전을 새로 지으며 청암사는 제2의 중흥기를 맞았다. 참 어이없게도 보수를 끝낸 지 6년만인 1911년 9월 다시 원인 모를 화재로 또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대운스님은 1912년 봄에 청암사를 다시 세웠다. 그때의 모습이 지금 청암사다. 조선 영조 때 대강백(불교계의 대학자이자 원로를 일컫는 말)인 회암 정혜 스님 이후 우리나라 불교의 정신적인 가르침이 가득한 도량으로 자리잡았고 근세에는 박한영 스님뿐 아니라 많은 학승들이 거쳐간 사찰이다. 한 번 화재에 거의 모든 절은 생명을 다하는데 청암사는 다섯 번이나 화마가 할퀴고 지나갔음에도 아직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 아름답고 소박한 비구니 도량 청암사는 예로부터 ‘여인’들과 인연이 꽤 많은 절이기도 하다. 숙종의 둘째 왕비인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무고로 폐서인이 되었을 때 청암사 보광전에서 기도를 드렸고 그 인연으로 왕실의 후원을 받았으며 조선 말기까지 상궁들이 내려와 신앙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또한 청암사 계곡 바위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최송설당’. 그녀 또한 청암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여인이다. 대운스님이 청암사를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할 때 대시주(大施主)가 바로 그녀였다. 김천 출신으로 영친왕의 보모상궁이었던 그녀는 영친왕의 생모인 엄비와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재산을 얻었다. 대운스님은 그녀를 통해 많은 궁녀들의 시주를 얻을 수 있었기에 짧은 기간에 큰 사찰을 두 차례나 지을 수 있었다. 이런 인연 때문이었을까. 청암사에 1987년 비구니 승가대학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비구니들의 도량이 된 것이다. 지금은 130여명의 비구니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오직 불심을 위해 수련하는 소박하고 정갈한 사찰이다. # 자연이 곧 절이고 절이 곧 자연이라 청암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구역으로 나뉜다. 계곡 북쪽의 낮은 곳에 남향으로 자리잡은 대웅전과 그 남쪽 언덕 위의 보광전이다. 대웅전에서 보광전으로 가는 길은 마치 잘 가꾸어진 정원을 걷는 기분이다. 홍매화가 예쁜 얼굴로 반기는 오솔길, 길섶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 이끼 가득한 돌로 정성스레 쌓은 돌담, 무엇인가 생명을 느끼게 하는 텃밭 등 어느 사대부가의 고택을 연상케 한다. 무엇인가 커다랗고 웅장함으로 인간을 짓누르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 고만고만하며 단청을 입히지 않아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이렇게 자연과 함께 숨쉬며 살 수있을까. “절에 들어서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편안해야지. 파헤치고 잘라내고 절을 만들면 뭐해. 우린 그저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를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제일이야.”라는 지형스님. 정말 그랬다. 절이라기 보다는 편안한 마음의 안식처가 청암사였다. # 세상의 때를 씻어내는 청암사에서 계곡을 따라 수도산 정상으로 수도암을 찾아 떠났다. 따사로운 햇살에 민소매 셔츠만을 입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헉헉’거리기를 20여분. 수도산 줄기의 8부 능선을 지나자 가야산의 북쪽이 한눈에 들어오며 시야가 탁 트인다. 시원한 봄바람에 땀을 식히고 청암계 표지석에서 서쪽으로 20분을 지나자 드디어 수도암이 눈에 들어온다. 대적광전 앞에 섰다. 내 발 아래로 세상이 굽어보인다. 문이 활짝 열린 대적광전의 거대한 석불은 인자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굴암의 석불보다 80㎝ 정도 작은 비로자나불좌상은 가늘게 뜬 눈으로 부질없는 욕심으로 가득한 인간들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수도암은 수도산 8부 능선인 해발 1080m에 세워진 암자로 청암사와 같이 헌안왕 3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 제307호,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보물 제296호, 그 앞에 자리잡고 있는 ‘삼층석탑’ 한 쌍 역시 보물 제297호로 지정된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암자이다. 이렇듯 청암사와 수도암에 갈 때는 속세의 것을 버리고 바람에 날리는 옷깃마저 여미는 마음으로 돌아 보면 가슴 한가득 풍성함과 편안함을 품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조계종 상임감찰 비구니 정현스님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호법부 상임감찰에 비구니인 정현(正現·52) 스님을 임명하고 27일 임명장을 수여했다. 호법부에 비구니 스님이 임명되기는 1994년 종단개혁 이후 처음이다. 현재 상임감찰은 정현 스님을 포함해 모두 5명이다. 1979년 운문승가대학을 졸업한 정현 스님은 청도 죽림사 주지, 운문사 포교국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대구 동부경찰서 경승실장, 대구교도소 종교위원 등을 맡고 있다. 호법부는 사회의 검찰격에 해당하는 총무원 산하기구로, 상임감찰은 종단 내 정보수집과 비리감시 등의 활동을 한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정진석 새 추기경에 거는 기대

    정진석 대주교가 새로 추기경으로 서임된 일은 나라의 경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새 추기경 명단을 발표할 때 현장에서는 삼소회 소속의 비구니, 원불교 여성교무 들이 환호했다. 교황청 공식발표 직후에는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이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새 추기경 탄생이 한국 가톨릭만의 영광이 아니라 종교를 초월해 국민 일반의 기쁨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우리는 정진석 추기경의 탄생에서 여러 의미를 읽는다. 먼저 신도 400만명이 넘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위상에 걸맞게 복수 추기경을 모시게 된 점을 꼽을 수 있겠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추기경 서임을 받은 사실도 눈여겨본다. 서울대교구장이 추기경으로 나아가는 관행이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사회가 또 한분의 진정한 원로를 갖게 됐다는 사실이다. 엄혹했던 독재정권 시절 한국 가톨릭교회는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최선두에서 싸워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교파·계층 등 일체의 구분을 뛰어넘어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몫을 다했다. 그러하기에 ‘추기경’이라는 존재는 우리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연로한 김 추기경이 활동을 줄여 국민의 안타까움을 사는 지금 정 추기경의 등장은 그래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 추기경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사목의 지표로 삼아왔다. 아울러 가정과 생명의 가치를 강조해왔다. 양극화와 가정붕괴가 초미의 현안인 이 시대에 정 추기경이 다시금 우리사회의 앞길을 환히 비춰주리라 믿는다.
  •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동안거 해제법어 발표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불기 2550년 동안거 해제를 맞아 9일 해제법어를 발표했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집계에 따르면 이번 동안거에는 전국 97개 선원(총림 5곳, 비구선원 58곳, 비구니선원 34곳)에서 총 2246명(비구 1119명, 비구니 939명, 총림 188명)이 참여했다. 다음은 법어 전문.강남가경성합여지(江南佳景誠合如之)나/천재관광첨인성조(千載觀光添人性躁)로다/당성불이래년신조(成不爾來年新條)에도/뇌란춘풍졸미휴혜(惱亂春風卒未休兮)라.(강남의 아름다운 경치가 진실로 그러해도 천년의 구경거리에 조급함만 보탠 것이니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년에 새 가지가 돋더라도 봄바람에 어지럽기는 끝이 없으리라.)
  • [조용섭의 산으路] 팔공산(1193m 대구의 진산)

    [조용섭의 산으路] 팔공산(1193m 대구의 진산)

    “눈속에 오동꽃이 피었더라기/팔공산 동화사에 오르는 길에/고려의 두 장군이 피를 흘린 곳/주춤서 슬픈단가 외어보았소” 노산 이은상 선생의 시 ‘팔공산’ 전문이다. 대구의 진산 팔공산(1193m·대구광역시, 경북 영천, 경산시, 칠곡, 군위군)은 이 시에서 보듯 동화사로 대표되는 불교의 향기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체취가 산자락 가득 스며있는 곳이다. 이 산자락 남동쪽 들머리에 있는 파군(破軍)재는 천 여년 전 고려와 후백제의 전투로 아수라장을 이룬 전장(戰場)의 병마(兵馬) 대신 이제 수많은 차량행렬을 내려다 보고 있다. 산길은 갓바위 집단시설지구에서 갓바위로 올라 능성재∼신령재∼동봉(1155m)까지 능선산행으로 진행한 후 동화사 앞 야영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동봉에서 오도재∼서봉∼파계봉∼파계재∼한티재∼가산으로 이어지는 완전종주코스는 동계 당일 산행코스로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체력과 하산시간을 감안하여 코스를 조정하면 되겠다. 서봉 인근의 오도재와 서봉 샘터, 파계재에서 하산하는 길이 열려 있다. 코스 들머리의 갓바위 오름길은 마치 순례와 구도의 길처럼 1시간가량 계단으로 이어진다. 한겨울의 모진 추위도 아랑곳 않는 중생들의 그 지극한 원(願)에 갓바위 부처님(약사여래불)은 천년세월을 마다하지 않고 귀 기울이고 있다. 갓바위에서 약사암 쪽으로 내려서서 왼쪽 능선으로 오르며 산길이 이어진다. 산길 곳곳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바위지대는 팔공산의 면모를 잘 느끼게 해준다. 은해사(영천)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인봉을 지나면 이내 능성재다. 갓바위에서 1시간 소요. 오늘 운행할 목표 지점인 동봉에 이르는 능선은 올망졸망한 바위봉우리를 많이 만나는데, 오른쪽 산자락 사면으로 우회길이 나있다. 사거리를 이루는 평평한 잘록이(鞍部)인 신령재 왼쪽(서쪽)으로 난 너른 길은 폭포골을 거쳐 동화사로 이어진다. 오른쪽 공산폭포 방향은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다. 능성재에서 1시간 소요. 능선을 우회하는 오른쪽의 급사면 길은 바위길 못지않게 위험한 곳이 많으니 특히 동계산행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비로봉 군사시설물이 가까운 듯하나 생각보다는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느낌이다. 신령재에서 약 40분 정도 진행하면 조암에 닿는데(위치표지판 79번), 왼쪽 바위 지대로 내려서면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도량인 내원암을 거쳐 동화사로 내려설 수 있다. 조암에서 약 20분이면 염불봉 아래의 휴식하기 좋은 평평한 공간을 만나고 다시 30여분 올라서면 거대한 바위 봉우리인 동봉에 이른다. 북서방향으로 공간이 트인 이 곳은 겨울이면 매서운 칼바람과 추위, 그리고 시간이 빚어놓은 상고대와 설화가 늘 만발하는 곳이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들어서 있는 거대한 시설물들도 설경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모습이다. 동봉에서 나무계단을 거쳐 왼쪽으로 내려서면 갈림길을 만난다. 정면 능선의 왼쪽에 조금 비켜서있는 푸근한 봉우리가 서봉이고 오른쪽 안부가 오도재이다. 갈림길에서 왼쪽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서는 사거리에서 왼쪽 염불암이나, 정면의 능선(팔공스카이라인능선)을 거쳐 동화사 입구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친다. 하산시간은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 자가용 경부고속도∼동대구IC∼팔공산 방향∼갓바위집단시설지구 ■ 대중교통 열차나 고속(시외)버스로 동대구로 이동 한 후,104번 시내버스 이용.(수시운행,40분 소요) (택시요금:2만원) ■ 숙박 집단시설지구(갓바위, 동화사) 숙박업소 이용. 또는 식당 이용 조건으로 숙박할 수 있는 음식점이 많다.(동화사지구 86식당 053-986-0860)
  • 儒林(49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2)

    儒林(49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2)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2) 율곡의 생애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면 친가보다는 외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기록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고,‘율곡문집’에 실린 ‘세계도(世系圖)’를 보아도 아버지에 대한 내용은 ‘진실되고 정성스러워 꾸밈이 없으며, 너그럽고 검소하여 옛사람다운 기품이 있었다.’고 짤막하게 나와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서화에 능하고 수를 잘 놓았으며, 효행이 뛰어나고 언행이 심중하여 모든 부덕을 두루 갖춘 부인으로 평가되어 역사상 인물 중에 최고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여섯 살 때 어린 율곡을 데리고 강릉을 떠날 때 대관령 고갯마루 위에서 눈물을 쏟으며 지은 신사임당의 시는 효행이 뛰어났던 신사임당의 심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한양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강릉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산을 날아 내리네.” 이처럼 신사임당에 대한 풍부한 기록보다 훨씬 적은 이원수의 기록은 비범한 여인이었던 신사임당에 대한 상대적인 것일 뿐 이원수의 인격이 홀대를 받을 만큼 미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원수는 ‘율곡문집’에 실린 내용대로 ‘옛사람다운 기품’이 있긴 하였지만 우유부단하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이원수가 강릉의 처갓집에서 처가살이를 하였던 때의 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신사임당은 남편이 입신출세하기를 기원하여 10년을 기약하고 서로 헤어져 별거하기로 약조하였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남편에게 보다 원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남양 홍씨 밑에서 외아들로 자란 이원수는 아내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집에서 얼마 가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고 한다. 그가 가장 멀리 갔었던 것은 집에서 겨우 40리 떨어진 ‘반쟁이’란 곳으로 대관령도 넘지 못한 지척지간의 가까운 거리. 그것도 세 번이나 작심을 하고 떠난 후였다. 결단력의 부족으로 세 번째 돌아오는 남편을 맞을 때 신사임당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서방님께서 다시 돌아오시겠다면 이대로 입산하여 비구니가 되겠나이다.” 머리카락을 자른 아내의 결연한 의지를 본 순간 그제서야 대관령을 넘어 한양으로 와서 3년 동안 부지런히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으니, 그가 훗날 비록 말단관리였으나 수운판관이라는 벼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신사임당이 보인 단호한 의지의 결과였던 것이다. 신사임당은 이와 같은 일화를 통해 이미 남편의 우유부단함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평소 남북조시대 때의 학자 안지추(顔之推)가 지은 ‘안씨 가훈’을 본받아 가족간의 인화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신사임당으로서는 자신이 죽은 후 남편이 재혼을 하면 반드시 화목한 가정의 평화가 깨어질 것임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었다. 신사임당의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된다. 비록 이원수는 재취를 얻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살림을 주관하던 첩의 난폭한 행동으로 율곡은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라는 편지를 남길 만큼 극심한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 [인터뷰] 17년만에 다시 서울 온 미얀마 큰스님 아신 자띨라

    [인터뷰] 17년만에 다시 서울 온 미얀마 큰스님 아신 자띨라

    “세상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우리의 마음도 평화롭지 않습니다. 잠시나마 함께 모여 천천히 숨을 고르며 고요함과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세계에 남방불교 수행법인 ‘위빠사나’를 보급하는 데 앞장서온 미얀마 최고 선원인 마하시 선원의 수행지도 책임자 아신 자띨라(70) 사야도(큰스님)가 방한했다. 지난 1988년 국내 최초로 서울 북한산 승가사에서 위빠사나 수행법을 소개한 뒤 17년만에 첫 한국 방문이다. 서울 논현동 한국위빠사나선원(10월28일∼11월10일)과 경북 영주 현정사(11월12∼20일)에서 한국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집중수행지도를 하기 위해서다. 마하시 선원은 전세계에 위빠사나 수행을 보급하는 독보적인 선원으로, 미국·유럽을 비롯, 한국·일본 등 아시아에 500여개의 분원이 있다. 특히 미얀마에 직접 가서 수행하는 외국인 수행자 가운데는 한국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자띨라 사야도에 의해 위빠사나가 도입된 뒤 한국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 수행자들이 위빠사나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조계종에서 첫 간화선 수행지침서 ‘간화선’을 출간한 이유도 위빠사나 확산에 따른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다음은 자띨라 사야도와의 일문일답. ▶한국에서 위빠사나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 수행자에 대한 평가는. -한국의 비구·비구니들이 기존 수행법보다 위빠사나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기존 수행법들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좀더 발전하고 싶어하고, 뭔가를 더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수행자들은 다른 나라 수행자들에 비해 성격이 좀 급하고 화를 잘 내는 편이지만, 그만큼 수행에 열심히 참여하고 성실하다. ▶위빠사나와 간화선의 차이는. -간화선이 한 가지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라면 위빠사나는 매순간 일어나는 모든 것의 무상한 특성을 ‘알아차림으로써 관(觀)하는 것’이다. 위빠사나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마하시 방법’은 신수심법(身受心法), 즉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으로 관(觀)하는 부처님의 수행법이다. 아침에 눈 뜨고 세수하고 식사하고 화장실 가고 잠 드는 것 모두를 수행의 일부분으로 본다. 이같은 수행이 오래 쌓이면 부싯돌을 계속 비비면 불이 일어나는 것처럼 해탈에 이르러 열반에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의 장점은. -전문적으로 하지 않아도 금방 사티(Sati·몰입된 상태에서 대상을 알아차림)가 좋아진다. 이어 정진력이 좋아지고 사마디(Samadhi·선정 禪定)도 얻을 수 있다. 결국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며, 순간마다 충실하게 살 수 있다. ▶선원에서 스님의 하루 일과는. -오전 3시에 일어나 예불한 뒤 5시까지 좌선한다. 해 뜨기 전에 아침 공양을 하고 수행을 지도한다. 수행자들을 1대1로 면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낮 12시 이후 음식을 먹지 않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꼭 지킨다. 오후에는 외국인 수행자들을 주로 지도한다. 취침시간은 오후 9시쯤이다. 미얀마 선원에는 현재 거주하는 수행자가 300명 이상이고, 사야도가 7명, 지도법사가 약30명 정도다. 이번 한국 수행지도에서는 오전에는 경행과 좌선을 1시간씩 번갈아가면서 하고, 오후에는 법문과 수행점검 시간이 이뤄질 예정이다. ▶한국 불자들을 위한 조언은. -불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음과 법을 얻는 것이다. 윤회계에서 방황하지 말고 수행을 통해 근심·걱정·비탄에서 벗어나 수다원(성인의 무리에 처음 들어감)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데스크시각] ‘장자종단’이라 함은?/김성호 문화부장

    세계적으로 불교의 선(禪)풍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서도 한국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선 불교는 중국에서 발아해 찬란하게 꽃피웠지만 정작 그 종주국인 중국에선 사실상 명맥조차 잇기 어려울 정도로 쇠퇴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그 정신과 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서구인들은 티베트 불교를 비롯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초기 수행방식인 위파사나를 따르는 미얀마·실론 등의 남방불교를 선호해 왔지만 최근 들어 이들이 한국 선불교에 쏟는 관심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만 가고 있다. 한국불교에서 1700년 선불교의 맥을 이어온 중추 종단은 이른바 ‘장자종단’이라고 불리는 조계종이다. 전국 25개 교구에서 총 3000개의 본·말사를 거느리는 장자종단 조계종에 적을 두고 있는 신도는 전체 불교신자 1000만명중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조계종에 귀의한 뒤 한국불교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는 ‘푸른 눈’의 납자들도 이루 셀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조계종은 이제 한국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인 종단이 된 것이다. 이 세계적인 불교종단 조계종의 수장이 바로 총무원장으로, 맘 먹기에 따라서 엄청난 세력을 부릴 수도 있는 막강한 지위다. 조계종단뿐만 아니라 불교계 전체의 대표성을 띠는, 사실상 한국불교의 최고 지위랄 수 있다. 그 때문에 총무원장 자리를 둘러싸고 거듭 빚어졌던 조계종단의 마찰과 내홍은 씻을 수 없을 만큼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지난 94년,98년 조계종 수장 자리다툼의 와중에서 멸빈(승적박탈)된 적지 않은 스님들이 아직도 복권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법장 스님 입적후 새 총무원장 선출을 놓고 조계종이 고질을 반복해 앓을 전망이다. 법장 스님이 시신을 사회에 기증한 뒤 오랜만에 한국 선불교에서 자비행과 회향정신이 살아났다는 세간의 고운 시선과 존경심을 짓밟기라도 하듯 그 분위기가 혼탁상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법장 스님 입적후 얼마간 종단에서는 종전과 달리 추대를 통한 총무원장 세우기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얼마 안돼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마치 예정된 것처럼) 현 종단의 여권에서 추대위를 구성해 단일후보까지 뽑았지만 야권이 선출된 후보에 반발해 자신들의 후보를 추대할 움직임이다. 이와는 별도로 개별 후보까지 출마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어 종단 전체의 단독 후보 추대는 물 건너갔고 결국 선관위에서 21일부터 후보 등록을 시작한다고 한다. 물론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지기만 한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철을 밟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급기야 종정 스님이 나서 공정한 선거를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했고 전국의 7000여 비구니들도 ‘우리가 원하는 총무원장 스님’이라는 성명을 내 들뜬 분위기를 지적하고 나섰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번 선거는 조계종 내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로부터 혹독한 심판과 외면을 받을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반대로 지금까지의 오욕을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31일 선거일정이 잡혀있는 만큼 전대미문의 아름다운 선례를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광복 직후인 1947년 경북 문경 봉암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행하던 성철 청담 자운 향곡 월산 혜암 법전 스님 등 젊은 스님 20여명이 집결해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그 유명한 ‘봉암사 결사’다. 이들은 스스로 밥하고 나무하며 마을로 탁발을 나가 양식을 조달했다. 신도들로부터는 개인적으로 일절 시주를 받지 않음으로써 생활상의 평등을 실천했으며 이후 이들의 전설적인 수행 기풍은 조계종의 으뜸 귀감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장자종단 조계종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이 고승대덕들의 뜻을 진중하게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김성호 문화부장 kimus@seoul.co.kr
  • 감 익는 청도 ‘감 좋다’

    감 익는 청도 ‘감 좋다’

    가을 청도는 풍요롭다. 국내 최대의 감 생산지답게 청도는 진홍빛 감에 폭 싸여 있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반시(盤枾)를 따는 농부의 모습은 가을의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조용한 산사를 울리는 운문사 비구니의 예불 소리는 아늑한 가을의 품속에 안긴 듯 마음이 편하다. 새벽을 여는 운문호의 물안개는 가을을 더욱 호사스럽게 한다.‘맑은 길이 있는 고장’이라는 뜻의 청도(淸道). 그 곳에 가면 높고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 여유로운 전원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파란 하늘에 홍시가 걸렸네 청도에는 감나무 천지다. 감나무 밭인지 마을인지 구분 하기 힘들 만큼 가는 곳마다 온통 감나무다. 추수가 한창인 논과 밭, 산등성이, 마을 담장은 물론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까지 감나무가 즐비하다. 때문에 청도의 가을 하늘은 붉은 감과 어우러져 유달리 높고 푸르다. 차를 달려 비슬산 자락에 있는 풍각면 상수월 마을에 들어서자 때묻지 않는 시골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호박 넝쿨이 휘감긴 돌담과 도리깨질을 하며 깨를 터는 농부, 하늘을 향해 갈고리가 달린 긴 장대를 휘두르며 감을 따는 농부의 모습에서 시골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감이나 하나 맛보소.”감을 따던 마을 주민 정육지(71)씨가 갓 딴 홍시를 건넨다. 환갑도 채 안돼 보이는 그의 나이를 듣고 놀라자 “감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라며 농을 건넨다. 정씨는 “청도에는 흔한게 감나무여, 우리 동네 감은 씨가 없어서 먹기에도 좋아.”라며 자랑을 늘어 놓는다. 청도하면 으레 소싸움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감의 고장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감이 연간 2만여t. 전국 생산량의 20%에 이를 정도로 국내 최대 생산지다. 주민의 70% 이상이 감농사에 의지해 살고 있다. 청도의 감은 반시(盤枾)라 부르는데 감이 납작한 모양이 쟁반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명종 때인 1545년 청도 이서면 출신의 박호 선생이 평해 군수로 있다가 귀향하면서 가져온 감나무가 반시의 효시라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될 정도로 유명했다. 반시는 씨가 없다. 타 지역에서 새 종자를 들여와도 청도에만 오면 씨가 없어진다. 청도군에서 대학 연구소에 이 같은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연구 의뢰를 했지만 암나무가 대부분이라서 수정을 못하고 씨가 맺히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놨을 뿐 정확한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반시는 공판장에서 10㎏(60∼80개)에 1만 5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웰빙’으로 거듭난 감 흔한 게 감나무다 보니 감을 이용한 ‘웰빙’ 제품들이 많다. 눈길을 끄는 것은 감 와인. 세계 최초로 지난해 감와인 ‘감그린’을 개발했다. 청도와인(gamwine.com·054-372-8314)의 하상오(45)대표가 5년여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개발했다. 그는 “감은 화이트와인에 많은 ‘탄닌’ 성분이 많아 심장병과 노화방지에 좋은 고급 와인으로 청도 감은 씨가 없어 와인 생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750㎖ 1병에 2만 2000원. 아이스 홍시와 감말랭이는 대표 먹거리. 반시는 수분과 당도가 높아 곶감을 만들기 쉽지 않아 그 대신 감을 네 조각으로 나눠 말린 감말랭이를 만들거나 통째로 얼린 아이스 홍시로 판매한다. 곶감에 비해 부드럽고 쫄깃한 감말랭이를 만드는 농가는 두산농원(054-372-2428) 등 10여곳이 있다. 감말랭이는 1㎏(250g짜리 4박스)에 1만 5000원. 전통 염색기법에 따라 감물 천연염색은 색다른 체험거리다. 감을 씻어 즙을 낸 뒤 염색과 건조를 4∼5회 반복해서 천연 원단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개량한복과 침구류, 커튼, 가방, 차받침, 지갑 등을 만든다. 개량 한복 한벌을 만드는데 감즙 한말(20∼30㎏), 감 150∼160개 정도가 들어간다. 때문에 가격은 한벌에 30만∼50만원선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감물들이기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예던길따라(054-372-8314)에서는 손수건과 스카프 등 간단한 소품을 물들여 가져갈 수 있다. 체험료는 1인당 5000∼1만원. ●산사에 울리는 은은한 예불소리 병풍처럼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년고찰 운문사(054-372-8800)는 호젓한 가을 분위기가 묻어난다. 울창한 솔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조용한 산사를 울리는 예불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천년의 세월을 지킨 비구니 도량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함과 섬세함이 숨어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때인 560년 창건된 사찰로 현재는 270여명이 불법을 닦는 비구니 승가대학 등 총 30여동의 전각을 갖춘 도량이다. 이름난 법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 1200년전 원광법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속오계를 이곳에서 전수했고,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왕명에 따라 운문사에서 주지를 맡은 바 있다. 신라 때는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경내에는 화려한 당대 불교예술의 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신라때 지어진 삼층석탑과 석등, 고려때 지어진 원응국사비, 조선초에 세워진 비로전 등 7점의 보물이 있다. 불가의 예법도 볼 수 있다. 오후 6시면 어김없이 저녁예불이 행해진다. 가죽짐승을 깨우는 북소리, 물고기를 위한 목어, 그리고 입구에 걸린 커다란 범종 소리와 함께 예불이 진행된다. 10년전 운문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운문호는 청도의 아침을 연다. 새벽이면 몽환적인 물안개를 토해낸다. 구불구불한 호반길을 돌다 보면 호수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신라의 고도 경주와 청도를 잇는 운문댐 주변 도로는 운문사와 삼계리 계곡의 전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이 밖에 소요당 박하담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운강고택과 운곡 김몽로의 생가인 운곡정사, 전국 6개의 석빙고중 가장 오래된 숙종 때 세워진 석빙고 등은 역사 체험코스로 손색이 없다. ●시원한 청도 추어탕 청도역 주변의 추어탕 거리에서는 시원한 청도 추어탕을 맛볼 수 있다. 청도 추어탕은 남도 추어탕과는 달리 운문댐 아래 동창천에서 잡은 미꾸라지 외에 떡붕어와 쏘가리, 미꾸라지, 꺽지, 메기 등을 갈아서 맑은 국물을 낸 뒤 시래기를 듬뿍 넣어 끓인다. 자연산청도추어탕(054-371-5510)은 추어탕(4000원)과 올갱이로 끊인 고디탕(4500원)을 판매한다. 용암온천 인근의 음식점 하늘정원(054-373-3334)은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오리황토연잎구이와 오리바비큐보쌈 등을 맛볼 수 있다. 숙박은 이 지역에서 유일한 1급 호텔인 용암온천관광호텔(054-371-5500)이 좋다. 숙박료는 주중 6만 8000원, 주말 7만 8000원. 호텔에 있는 용암온천은 1000m의 암반에서 뿜어나오는 양질의 게르마늄 유황온천으로 각종 성인병에 좋다.6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요금 6500원. ●청도로 가는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북대구IC에서 빠져 대구신천대로와 30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5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로는 서울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를 타고 내려가 청도행 무궁화로 갈아타면 2시간30분에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barota.com·1544-7788) 청도군청 문화관광과(054-370-6373). 청도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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