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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품’ 루이뷔통 성장비결 뭘까

    세계적인 업계의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경제전문 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22일자)가 꼽은 비결 중 하나는 1989년 루이뷔통을 인수한 모기업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적절한 인재 기용이었다.그가 지난 98년 채용한 마르크 제이콥스는 루이뷔통의 대표적 디자이너로 발돋움해 젊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였고,식품업계에 있다가 2000년 루이뷔통으로 옮겨온 생산부문 임원 에마뉘엘 매튜는 연간 5%의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냈다.아르노 회장이 인수한 뒤 루이뷔통의 매출은 5배,수익률은 6배나 증가했다. 파리 루이뷔통 본사 지하 연구소에서 비롯된 “철저한 품질검사”도 비결로 꼽혔다.핸드백의 경우 출시에 앞서 연구소에서 4일 밤낮 로봇팔로 떨어뜨리길 반복하는 내구성 검사를 거쳐,자외선 검사,5000차례의 지퍼 여닫기 검사 등을 받는다.엄격한 정찰제 등 판매망 관리도 비결이었다.루이뷔통 가방은 정찰가격 밑으로 값을 내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소비자 욕구를 매출로 직결시키는 광고력도 손꼽혔다. 지난 2년 동안 루이뷔통은 연간 38억달러(약 4조 4500억원)어치 제품을 팔아 판매율 두 자릿수 성장과 업계 최고 4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경쟁업체 구치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황장석기자 surono@˝
  • ‘1000만’ 태극기 꽂은 강제규감독

    강제규(42) 영화감독은 하마터면 ‘태극기를 휘날리지 못할 뻔’했다.지난 2001년 6월 강 감독은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선다.영화 ‘쉬리’ 이후 새로운 아이템으로 SF장르를 선택한 그는 몽골을 다녀오는 등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KBS-TV에서 제작한 6·25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우연히 접했다.그의 시선에 찰나처럼 스쳐간 장면은 이러했다.육군본부가 주도한 유해발굴사업단의 연락을 받고 50년 만에 남편의 유해와 마주하는 아내(75)와 딸(33)의 모습이었다.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어떤 예술가적 고통이 그의 가슴에 파고 들었다.곧,‘그래,한국전쟁이야!’라는 직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단박에 ‘칭기즈칸’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로 방향을 확 틀었다.이때부터 1000만 관객에게 다가서는 긴 여정이 시작됐던 것이다. ● 태극기는 휘날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주말 서울 강남구 포이동 ‘강제규 필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머리는 80년대의 대학생처럼 길었고,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대작 영화의 역량이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우선 최근 미국 샌타모니카에서 가진 영화 ‘태극기∼’ 시사회의 현지 반응을 먼저 물었다. “아메리칸 필름마켓(AFM) 전용극장에서 미국과 유럽 각국의 영화관계자 200여명이 관람했지요.그런데 이례적일 만큼 한 사람도 중간에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다들 눈물이 글썽한 채 나오면서 ‘쇼킹하다’고 입을 모으더군요.” 특히 그는 “시사회때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상황을 소개하는 것이 관례지만 ‘태극기∼’는 시사회 기준인 1시간40분 러닝타임보다 더 길어 그냥 진행했다.”면서 “그럼에도 다들 감동적으로 영화를 감상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는 찬사도 아끼지 않았다. ● “영화는 철학적 메시지 담아야” 관객 1000만돌파의 비결에 대해 그는 “영화 ‘태극기∼’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종합해볼 때 시대적으로,정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서,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면서 “영화는 보고,즐겁고,기뻐하고,철학적 감동의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자신의 영화철학을 피력했다. 제목을 ‘태극기∼’로 정한 특별한 까닭이 있는지 물었다.그는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제목을 ‘W프로젝트’로 명명했으나 막상 보도자료를 내려고 하다 보니 마땅한 제목이 없어 고민했다.”고 토로했다.또한 한국전쟁을 떠올리면 강렬한 이미지가 한가지 연상된다는 그는 “그건 군인들이 총신 끝에 태극기를 묶고 휘날리며 고지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 ‘태극기∼’가 커보이고 역설적으로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듣고 제목을 그렇게 확정지었다.“모든 게 당초보다 커졌지요.영화를 찍고 나니 필름길이만 해도 33만자(1자가 약 30㎝)였습니다.서울∼부산을 왕복해도 남을 거리이지요.또 전국 67군데 흩어진 촬영장소를 돌아다닌 거리도 15만㎞에 이릅니다.” 영화관련 인터뷰 기사는 많이 보도돼 그의 과거시절로 얘기방향을 돌렸다. 그는 마산에서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부친이 마산 시내에서 조그마한 장사를 했는데 마침 집 근처 강남극장(지금은 없어졌지만)의 주인과 친하게 지냈다.덕분에 어릴 적부터 극장을 공짜로 자주 드나들 수 있었다.이때 즐겨 본 영화가 ‘아톰시리즈’‘로봇태권V’‘독수리요새’ 등이었다.흑백 영사기 돌리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영화 ‘시네마천국’의 꼬마 주인공 ‘토토’처럼. 중학교때 학교 성적은 3년 줄곧 전교 1등을 차지했다.특히 수학·과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해 주변에서 ‘신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때마침 형이 비행기 조립을 무척 좋아하는 바람에 집안을 온통 비행기 조종석처럼 꾸며놓았다.그의 과학적 재능을 더욱 개발하는 바탕이 됐다(형은 나중에 공군사관학교로 진학한다.지금은 대한항공 조종사로 근무중이다). 이같은 주위의 칭찬과 배려속에 중학을 마친 그는 고교에 진학하면서 사춘기를 맞아 비뚤어지기 시작했다.철학자들이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인생이 뭐꼬?’라는 물음표를 하루종일 떠올리며 거리를 마냥 쏘다니기 일쑤였다.하루는 ‘불선천지 팔양신주경’을 우연히 접하면서 불경에 푹 빠지기도 했다. 또 ‘어린왕자’와 ‘갈매기의 꿈’을 읽고 생텍쥐페리와 리처드 바크의 철학사상에 탐닉하기도 했다.학교성적은 거의 꼴찌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진촬영’에 취미를 가졌다.카메라 하나를 둘러메고 바다로,시내로,산으로 가서 닥치는 대로 셔터를 눌러댔다.필름현상은 집 근처의 사진관 아저씨한테 직접 배웠다.이때 배운 촬영기술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선배들과 곧바로 단편영화에 제작에 나서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 영화감독 꿈을 펼치기 시작한 고2 이뿐만 아니었다.사진촬영을 하면서 동시에 문학서클에도 가입했다.주로 표현주의 기법의 시를 창작하면서 문학적 자질을 키워 나갔다.이때 쓴 습작시만 수백편에 이른다고 했다.그가 ‘태극기∼’ 촬영을 끝마치고 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담은 책을 쓰게 된 것도 그의 문학적 재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며 “참,괴기하게 보냈다.”고 표현했다.그러나 그런 행동들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영화감독을 할 수밖에 없는 ‘동물적 토양’이었다고 술회했다. 그가 영화감독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은 고2때.어느 겨울날 마산 시민극장에서 ‘닥터 지바고’를 관람했다.극장문을 나서면서 ‘영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하는 찡한 감동을 느꼈다.이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중단했다.오로지 영화공부였다.마산에는 개봉극장이 거의 없어 주말이면 부산으로 달려가 개봉영화를 감상하고 막차로 돌아오곤 했다.이때 본 영화가 ‘사학비권’‘철수무정’‘하노버스트리트’‘새벽의 7인’등이었다. “고교때는 술도 마시고 좀 이상한 짓을 많이 했지요.고3때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했더니 ‘딴따라’라고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또 당시만 해도 마산고에서 예체능계를 진학하는 예가 거의 없었지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그는 선배들과 어울려 단편영화를 미친 듯이 찍어대기 시작했다.흔하던 미팅은 딱 한번.그것도 미팅 선약을 펑크낸 선배 대신이었다. ● ‘태극기~’는 다시 시작합니다 이때 만든 단편영화들은 ‘침묵’‘땅밑 하늘공간’‘깰수 없는 겨울잠’ 등이었다.제목에서 풍기듯 실험적인 작품에다 이미지 표현 중심의 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다.16㎜영화는 10여편.특히 대학 2년때 같은 학과 동료인 탤런트 박성미씨와 함께 단편 ‘가을오후’를 제작하면서 친해져 결혼에 골인했다. “89년에 결혼했지만 한동안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 돼 아이를 5년만에 낳았습니다.‘은행나무 침대’를 만든 후 첫째 아들 윤원이,그리고 ‘쉬리’ 이후에 둘째 지완이를 낳았지요.” ‘태극기∼가 대박을 터뜨렸으니 부인한테 보너스를 두둑히 주었느냐는 질문에 올 여름에 가서야 결산이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그후에는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물었다. “‘태극기∼’는 겨우 끝났고 다시 시작합니다.세계인들이 한국영화를 보고 울고 웃고 해야 합니다.끊임없이 그 문을 두드릴 뿐입니다.” 김문기자 km@ 강제규 감독 프로필▶1962년 11월 마산 출생 ▶81년 마산고졸 ▶85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졸 ▶90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로 시나리오 데뷔 ▶96년 ‘은행나무 침대로’로 영화감독 데뷔▶99년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아시아 개혁을 주도할 개혁 50인에 선정.강제규필름 대표 ?99년 영화 ‘쉬리’제작▶2004년 영화 ‘태극기휘날리며’ 제작 ▶수상기록=백상예술대상 각본상,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백상예술대상 각본상,아시아스타 50인 등˝
  • [盧탄핵안가결-高대행 체제] 高대행은 누구

    ‘행정의 달인’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됨으로써 공직사회에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 대행은 새로운 자리를 맡거나 한번 맡았던 자리를 다시 역임하는 ‘재수(再修)’를 해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 총리를 지낸 그는 노무현 정부 들어 다시 총리를 맡았는가 하면,노태우 정부에서 지낸 임명직 서울시장 자리를 김대중 정부에선 선거를 치러 재수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의 고 대행은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 13회에 합격한 뒤 만 37세의 나이에 전남도지사를 지냈다. 교통·농수산·내무부 장관 등 그가 맡아온 장·차관급(도지사와 청와대 수석비서관 포함) 이상 자리만 9개다.1985년 총선에서는 전북 군산·옥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공직사회에서는 그를 ‘기록제조기’로 부르기도 한다.“4·15 총선이 끝나면 대학교수로 돌아갈 것”이라던 그가 이번에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음으로써 또다시 기록을 만든 셈이다. 다만 삼고초려 끝에 자리를 맡아온 고 대행은 이번엔 고민할 시간없이 곧바로 권한대행을 맡은 점이 다르다. 고 대행은 행정의 달인이라는 닉네임(별명)에 걸맞게 행정의 구석구석을 챙긴다.결코 무리수를 두는 일은 없다. 100년 만의 ‘3월 폭설’이 내리던 지난 5일 대부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 고 대행은 중앙재해대책본부를 세 차례나 찾아가 차질없는 대응을 당부했다.이런 행정능력 탓에 총리를 맡을 때 ‘안정형’ 책임총리로 불렸다. 그는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책임지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고 대행의 생활신조는 ‘돈 받지 말라.누구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지 말라.술 마신다고 소문내지 말라.’는 세 가지다. 부친인 고형곤 전 전북대 총장이 공직에 나가는 아들에게 한 당부다. 고 대행은 공직생활 내내 이런 당부를 지키려고 했고,공직생활의 장수 비결과 화려한 경력도 여기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고 대행은 ‘화합주’를 즐긴다.화합주는 폭탄주를 이르는 말이지만 그는 폭탄주라는 표현 대신 ‘화합주’라고 칭한다.고 대행은 “돈 받지 말고,시류에 영합하지 말라는 것은 잘 지켰는데,술 문제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 같다.”고 너털웃음을 웃곤 한다. 요즘에는 화합주 대신 ‘설산 칵테일’을 즐기기도 한다. 설중매와 산 소주를 한 병씩 섞은 뒤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다.1주일에 한번 정도 테니스를 치고,골프는 아예 치지 않는다. 박정현기자 jhpark@˝
  • YMCA의 산증인 ‘오리선생’ 전택부씨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라는 구절이 제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하늘 나라를 위해서는 YMCA 일을 했고 땅의 나라를 위해서는 ‘한글 운동’을 했습니다.” 한국기독교청년회(YMCA)의 산 증인 전택부(全澤鳧·89).이름 뒷글자인 ‘오리 부(鳧)’자 덕에 ‘오리 선생’으로 불리며 70년대 좌담회와 80년대 ‘사랑방 중계’ 프로그램 등에서 구수한 입담과 재치있는 유머 감각으로 넉넉한 웃음을 안겨주었던 서울 YMCA명예총무가 최근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수필선집 ‘자화상을 그리듯이’(범우사 펴냄)를 완간했다.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만난 전택부 선생은 건강한 모습으로 무욕(無慾)의 삶을 살고 있었다. “7년 전 주위에서 자서전을 내라고 권유했는데 뭐 내세울 만한 것도 없어 반대했는데 하도 극성스럽게 말을 해 자서전은 뭐하고 해서 그 동안 낸 글모음집을 내기로 했어.그 속에 내 삶이 들어 있거든.” 60세까지 발표한 글을 모은 1권과 YMCA를 떠난 뒤 낸 수필을 담은 2권에 이어 이번에 낸 3권은 근래에 발표한 수필로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YMCA 숨결 불어넣은 ‘영원한 Y맨’ 함남 문천에서 1915년 태어난 그의 삶은 YMCA와 뗄래야 뗄 수가 없다.고 장준하의 부탁으로 사상계 초대 주간을 맡은 뒤 57년 YMCA에 들어가 이듬해 사무국장,64∼75년 서울 YMCA총무를 역임했다.그 기간 1938년에 일본에 의해 해산된 뒤 유명무실해진 한국 YMCA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78년 10여년 동안의 자료를 일일이 모아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1903∼1945)를 펴냈고 6·25 때 불타버린 서울시 종로구 YMCA회관 건물을 10여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 또 지난해 ‘Y새끼다리들이여’를 펴내 서울YMCA 개혁운동에 길을 터주며 ‘영원한 Y맨’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1848년 시작한 YMCA운동의 기본정신은 정의와 자유야.산업혁명 뒤 영국에 몰려든 노동자들이 비참한 삶에서 헤어나려 자발적으로 주창한 이 운동은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이라는 특수성까지 맞물려 젊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어.” 2001년 쓰러진 뒤 거동은 불편하지만 기억력은 비상했다.삶의 주요한 장면을 들려줄 때 연도까지 정확히 짚어냈다.아마도 유머를 강조하며 실천해온 것이 기억력을 유지해온 비결인 듯 싶다. “YMCA운동의 핵심은 교파와 인종을 초월하는 통합정신과 유머를 강조하는 방법론이야.사회 정의를 실천하되 유머스럽게 하자는 거지.그런 의미에서 YMCA는 한국 유머의 발상지야.” 그의 유머감각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사랑방 중계’패널 시절 초대손님으로 나온 중광스님에게 “앞으로 당신을 중광 목사라 부를 테니 저를 오리 스님으로 불러 달라.”고 해 방청객을 웃긴 일은 유명하다.또 2003년 낸 책 ‘Y새끼다리여‘의 ‘새끼다리’도 YMCA간사를 뜻하는 영어 ‘Secretary’의 음을 빌려 만들 정도로 감각이 탁월하다. ●한글사랑 온몸으로 솔선수범 오리 선생의 삶의 다른 축은 ‘한글 사랑’.함흥 영생학교 시절 민족주의자인 조선어선생 조정우에게 한글의 과학성과 편리함에 감화를 받은 뒤 한글에 대한 애정은 평생 이어졌다.일본 유학길에 조선어학회가 발간한 잡지 ‘한글’ 창간호부터 싣고 갔고 창씨 개명마저 거부했다. 해방후에는 초등학교 선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54년 이승만 대통령이 ‘한글 간소화’를 추진하자 사상계에 특집기사를 실어 강력하게 항의해 철회시키기도 했다. “일본 신학교 본과에 다니던 40년 한글을 못쓰게 하자 이에 항의,학교를 자퇴하고 조선총독을 죽이고 나도 죽자고 마음먹기도 했어.그게 뜻대로 되겠어? 화병으로 건강이 악화돼 고향으로 돌아왔지.” 차분한 목소리가 한글날 대목에 이르자 언성이 높아졌다.“글이 없는 민족이나,있어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민족은 망해.만주족을 봐.유엔에서도 인정한 보배 같은 한글을 무시하고 국경일에서 빼는 얼빠진 나라가 어딨어?” 2000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던 도중 2001년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글날을 살려달라.’는 내용의 글을 전하고 오다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 ●“온통 돈주고 해처먹는 소리만 들려” 그의 삶은 ‘한 우물’로 정의될 수 있다.“평생 야인으로 살면서도 정권과 명예 앞에 굽실거리지 않았어.YMCA를 떠난 뒤 퇴직금으로 빚갚고 나니 생활에 쪼들릴 때 이름만 걸치면 월급을 주겠다는 제의도 거부했어.”라는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당연히 어둡고 답답하기만 하다. “온통 검은 돈 주고 돈 받아먹은 소리밖에 안들려.지조나 신의도 없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 당 저 당 떠다니는 정치가들을 보면 개탄스러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서울 YMCA인물 70인전’을 펴낼 준비에 분주하다.그의 ‘YMCA 사랑’도 한결같았다.“YMCA운동만 잘해도 나라가 잘돼.” 이종수기자 vielee@ ■걸어온 길 △1975년 서울YMCA 명예총무 △1981년 외솔회 이사 △1986년 한국상록회 고문·인간상록수 △1987년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고문 △1999년 Hulbert 이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1999년 성재 이동휘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2000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 △2002년 한글인터넷주소 추진 총연합회 의장˝
  • [삶과 경영 이야기]① 윤석금 웅진그룹회장

    성공한 경영전문가의 철학은 기업 운영에만 유효할까? 그렇지 않다.‘경영’이란 본질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출발하기에,성공한 이의 경영철학은 직장생활에서나 자녀 키우기,청소년의 교우관계,그리고 성공하는 연애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이 시대 ‘잘 나가는’ 경영인이 공·사석에서 육성으로 들려주는 생생한 성공 비결을 주 1회 연재한다. 웅진닷컴(옛 웅진출판)과 웅진코웨이개발·웅진코웨이·웅진식품 등 11개사를 거느린 웅진그룹의 윤석금(尹錫金) 회장은 해방둥이(1945년 생)이다.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또래가 대개 그러하듯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강경상고와 건국대 경제학과를 마친 그는 브리태니카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1980년 웅진출판을 설립,출판업을 시작한 그는 지난 24년 동안 업종을 확장하면서 경이로운 성장을 이뤄 지금은 연 매출이 총 2조원에 이르는 11개사를 경영하고 있다. 윤석금 회장이 처음 설립한 회사는 웅진출판(지금의 웅진닷컴)이다. -어릴 때 꿈이 좋은 출판사를 차리는 것이었다.출판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직원이 7명밖에 안되는 영세기업이었다.그런데 아침에 보면 그 가운데 한 두명은 얼굴빛이 어두웠다.이유는 여러가지일 터이다.직장 상사와 부딪쳤을 수도 있고,집에서 부인과 다투었을 수도 있다.모르는 체 하다가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그들을 불러 함께 목욕탕에 갔다.다음엔 식당에 가 당시 1000원 하던 순두부·된장찌개 등으로 점심을 했다.왜 기분이 나쁜지,무슨 일이 있는지 묻지 않았다.그렇게 목욕과 점심을 같이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그들의 얼굴빛은 어느덧 밝아져 일에 몰두했다. -한국 사람들은 기(氣)가 발동해야만 신나게 일한다.기분이 나쁘면 일을 안하고,심지어는 회사 일을 해치기도 한다.자신이 발의한 일은 열심히 하지만 남이 시키는 일,지시하는 일은 굉장히 싫어한다.윗사람들은 지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수록 부하직원의 창의력을 없애고 고정관념을 심어주게 된다.그래서 나는 항상 직원 의견을 물어 일을 처리한다.그것이 지시하는 것보다 밑에 사람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한다. -주위에서 친하고 가까운 사람을 보면 모두 상의해 주는 사람이다.아랫사람과 상의하는 사람이 인기도 좋다.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상의하기를 싫어하고 지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의사소통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기 쉽다.상의하고 토론하는 사람이 가장 인기있다.신바람 나게 일하려면 그 일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무슨 일이든 참여해서 같이 해나갈 때 신나게 일들을 한다. 윤 회장은 그룹의 11개사 가운데 노조가 결성된 곳은 하나도 없지만 단합은 잘 되어 있다고 밝혔다.그는,자신이 ‘사랑’을 경영정신으로 삼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나는 ‘또또 사랑’을 강조한다.‘사랑하고 또 사랑하고,또 또 사랑하자.’는 뜻이다.그러나 ‘사랑’만으로는 신바람을 일으킬 수 없다.공정성과 투명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가난한 농촌 출신이라 주위에는 도움을 바라는 친인척·친구가 적잖다.그렇더라도 이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거나,납품업체에 참가하는 것조차 못하게 한다.우리 회사 내에서는 동창회나 지역모임 등이 일체 금지된다.대신에 종교·취미·봉사 활동을 하는 모임만 인정한다. 윤 회장이 세운 회사는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시작해 몇년새 업계 선두그룹으로 성장했다.윤 회장은 선발주자를 따라잡으려면 ‘차별화’밖에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보통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이기려고 하는데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자금이 부족하고 인재가 부족하고 사회적 지명도가 떨어진다.불리한 조건뿐이다.그러니 선발주자를 따라가기만 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무언가 다른 것,큰 회사가 놓치는 틈새를 찾아야 한다.그것이 차별화다.그리고 차별화는 창의성에서 나온다. -웅진출판에서 위인전을 기획할 때였다.서점에는 업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출판사들의 위인전 전집이 이미 꽉 들어차 있었다.그런데 그 내용을 분석해 보니 아이들에게 읽히지 않아야 할 것을 읽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등장하는 위인마다 어려서부터 ▲큰 꿈을 꾸고 ▲또래의 아이들을 지도하는 ‘골목대장’이었다.그들은 워낙 훌륭하게 타고 났으므로 위인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였다.그러나 그게 말이 되는가.게다가 역사적인 인물에 관한 어릴 적 기록이 얼마나 있다고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가.한마디로 ‘작문’이었다.위인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대부분 장군·열사들인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위인전의 개념부터 바꿔야 하겠다고 기획했다.어렸을 때 똑똑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뒤떨어진 사람을 3분의1씩 골랐다.전세계적으로 위인들의 분포가 사실 그랬다.그 위인전은 출간되던 해에 모 신문사가 제정한 출판대상을 받았다.시상식에서 심사위원이라는 한 대학교수가 나를 찾아와서는 우리 전집의 우수성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데,우리의 기획 의도 그대로였다.웅진의 위인전이 가장 많이 팔렸다. -나는 출판업을 하면서 다른 출판사와 싸운 일이 없다.그들과 늘 다른 길을 갔기에 싸울 까닭이 없었다.차별화라는 것이 남과 다른 것을 만들어야지 똑같이 만들면 안된다.대형 출판사를 흉내 냈다면 백날 깨졌을 것이다.소비자는 1등이나 2등을 찾지 3등을 찾지는 않는다.그러니 1·2등만 살아난다.나머지는 유지가 된다 해도 죽지 못해 사는 것이다. 윤 회장의 기업이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여느 기업처럼 위기를 맞았지만 도리어 이를 기회 삼아 새 아이디어로 극복함으로써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웅진코웨이개발이 지금은 연 매출 1조원대 규모로 성장했지만 IMF사태 후에는,월 매출액이 150억∼160억원에서 80억원대로 줄었다.1년 동안 고민한 뒤 한 일본 기업을 참고해 렌털 개념을 도입하기로 했다.그 전에는 정수기만 팔면 그만이었다.(소비자가) 쓰던 정수기를 반납할 수야 없지 않은가.그러나 렌털 제도를 도입하자 모든 것이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맘에 안드니 도로 가져가라 하면 그만이게 된 것이다. -우선 모든 고객의 물을 검사해 주기로 했다.검사비가 한달에 몇억원씩 들어갔다.결국 직원의 서비스가 바뀌더라.고객이 항의전화 몇번 하면 그 직원은 견뎌내질 못했으니까.당시 고객에 대한 서비스 지수가 삼성·LG전자는 78점이었는데 웅진코웨이개발은 28∼30점에 불과했다.지금은 거의 따라잡았고 몇년 안에 우리가 톱이 될 것이다.(기업이) 소비자를 바꿀 수는 없다.그러므로 우리가,종업원이 고객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웅진코웨이개발의 매출은 3∼4년 전에 월 80억원이었다.지금은 월 800억원이다.그때는 이익이 (매출의) 3%였지만 지금은 10%이다. 윤 회장은 몇년전 36세인 한 기업의 부장을 그 회사의 경영자로 발탁해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웅진식품은 사실 원해서 시작한 회사가 아니다.그룹의 11개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남의 것을 산 거다.돈을 빌려 주었는데 못 갚더니 회사를 가져가라고 했다.그것이 음료회사였다.해 보니 한해 적자가 130억∼150억원이 됐다.IMF 때는 하도 골치가 아파 그냥 가져가라는 데 아무도 안 받더라.음료회사가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는데 그 대답이 다 맞았다.첫째 웅진은 책이나 정수기를 파는 회사라는 인식이 굳어 웅진에서 만드는 음료를 누가 먹겠는가라는 거였다.둘째 규모가 큰 해태·롯데와 비교하면 원료 구입비나 시설비용,영업의 노하우,숙련된 직원 등 모든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았다. -사정이 좋지 않으니 사장을 자주 바꾸었는데 다들 열심히 하겠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자신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그런데 기획실의 젊은 부장은 나를 볼 때마다 “걱정 말라.”면서 최고의 회사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그래서 그 서른여섯살인 기획부장을 사장으로 앉혔다.어느날 그 사람이 ‘쌀뜨물’을 가지고 내 방으로 왔다.참 엉뚱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맛이 있었고 ‘아침햇살’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덤으로 ‘초록매실’도 만들었다.이 제품들이 팔리기 시작하는데 첫해에 각각 1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회사 전체로는 매출이 2700억원이 됐다. -쌀과 매실을 원료로 한 음료는 웅진에서 처음으로 시판했다.기존 대기업들은 생각하지 못한 틈새를 공략한 것이다.하루아침에 음료업계 3위로 올라섰다.요즘은 매출이 더이상 신장되지 않아 고민이다.그 이유는 확연하다.많은 업체가 유사제품을 내놓아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때문이다.참신한 아이디어로 매출을 올렸지만 또 다른 벽이 나타난 것이다.이제는 영업으로 이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단순히 배달원의 개념을 뛰어넘는 일을 하도록 여직원들을 훈련시켜 매장에 배치하고 있다. 윤 회장은 “안 된다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어떤 일을 벌여도 당연히 되지 않는다.”라면서 스스로 자신감과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경영인이 해주어야 한다는 말로 끝맺었다. 이용원 부국장 ywyi@˝
  • [초등학교 설거열병] (상) 혼탁 배우는 선거 실태와 문제점, 유래-초등학교 ‘햄버거 회장’

    초등학생들이 개학하자마자 선거바람에 휘말려 비틀거리고 있다.4월 총선을 앞두고 어른의 세계에 선거 ‘올인’ 열풍이 거세게 부는 것 못지않게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과열혼탁선거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6년 전 반장을 회장·실장 등으로 바꾸었으나 이름만 달라졌을 뿐 ‘햄버거 선거’의 폐해는 여전하다.해마다 초등학생들까지 선거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심을 잃어야 하는 것일까.서울신문은 이번주에 피크를 이루는 초등학교 선거 현장을 찾아보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 서울 강북지역의 A초등학교 6학년인 이재민(가명·12)군은 며칠 전 내리 3년째 학급회장에 뽑혔다.4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회장 선거에 나갔다.이군은 “중학교에서도 회장으로 활동해 리더십을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이군은 회장에 자주 뽑히는 비결로 ‘접대’를 꼽았다. ●이번주가 선거 피크 이군은 스스럼없이 “선거를 앞두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고 말했다.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다니면 괜한 오해를 살까봐 3,4명씩 나눠 집으로 불렀다.간식도 먹고,만화책도 읽고,컴퓨터 오락도 하다가 동네 PC방에 몰려 갔다.PC방 사용요금은 물론 이군의 몫이었다.친구들을 5,6차례 초대하면 새 학급의 절반 가까이 되는 친구들과 안면을 트게 되고,선거에도 ‘큰힘’이 된다는 것이다. 경기 분당의 B초등학교 6학년 서수진(가명·12)양은 지난해 학급회장 출신.서양은 “선거 전날 반 친구들을 모아 떡볶이와 김밥,튀김을 실컷 사줬다.”고 말했다.서양은 “꼭 회장을 해보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어서 엄마에게 특별히 용돈 2만원을 얻어 한턱 냈다.”면서 “친구들에게 인심을 얻었고 회장에도 당선됐다.”고 털어놨다.경기 일산 C초등학교 조모(26) 교사는 “학생들이 학급회장 후보에게 ‘뽑아주면 무엇으로 한턱을 낼 작정이냐.’고 대놓고 묻는다.”면서 “더 비싼 간식이나 학용품을 돌리는 쪽에 투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가 생겼다.”고 혀를 찼다. ●“회장 됐으니 한턱 내야지” 학급회장에 뽑히면 응당 당선사례를 한다.사례를 소홀히 했다가는 회장에 뽑히고도 ‘왕따’가 된다. 지난 5일 선거를 치른 경기 성남의 D초등학교 6학년 2반 교실.새로 뽑힌 회장에게 가장 먼저 신경써야 할 일을 묻자 당장 “먹을 것”이라는 답이 튀어나온다.여학생 회장으로 뽑힌 이모(12)양은 “학급 친구들에게 햄버거와 피자를 사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당선턱’은 햄버거와 피자.새학기가 되면 초등학교 이웃의 패스트푸드점은 호황을 누린다.‘회장 엄마’들이 햄버거와 음료수를 40∼50개씩 사가는 진풍경이 벌어진다.‘당선턱’에는 대략 10만∼20만원이 든다. 초등학생 5학년 아들이 학급회장에 뽑힌 한 학부모는 “팝콘 치킨과 음료수·햄버거 등의 메뉴를 골라 학생 한명당 3500원어치씩 40인분을 준비해 모두 14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주부 박모(36·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씨는 “지난해 아들이 E초등학교 6학년 학급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반 친구 30명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먹인 뒤 PC방에 보냈다.”면서 “옆반 회장 엄마는 당선사례로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돌렸다.”고 귀띔했다.전교 어린이회장에 뽑힌 학생은 전 학년 30∼40개 학급에 일제히 피자와 음료수를 돌리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어떤 학부모는 지나친 경쟁의식을 내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장모(36·주부)씨는 “지난해 아들이 6학년 학급 회장에 뽑힌 날 같은 반 학부모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도대체 어떤 선물을 돌렸기에 내리 회장만 도맡아온 우리 아들을 제치고 회장에 뽑혔냐.’고 따져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기습선거’ 등 대책 내놓지만 백약이 무효 과열과 혼탁이 심해지자 이를 막기 위해 투표 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 ‘기습선거’를 치르는 학교도 있다. 사전 선거운동을 못하도록 개학과 동시에 선거를 치르거나 담임 교사에게 선거 사실을 당일 아침에 통보하는 것이다. 서울 강남지역의 한 초등학교는 후보자가 직접 손으로 만든 포스터와 플래카드만 정해진 장소에 붙이도록 하고 있다.얼마 전 일부 부유층 학생들이 인쇄소에 주문,제작한 포스터로 선거운동을 벌여 위화감을 조성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학교 관계자는 “잘잘못을 가리는 가치관이 미처 정립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자칫 물질 선거의 병폐를 모르고 어른이나 다른 사람의 방식을 답습하곤 한다.”면서 “교사와 학부모가 나서서 잘못된 선거풍토를 바로잡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 ˝
  • [눈에띄네 이얼굴] ‘목포는 항구다’ 박철민‘

    주연 뺨치는 또 한명의 조연배우? 지난달 20일 개봉한 ‘목포는 항구다’(제작 기획시대)의 인기 비결 가운데 하나는 주연인 차인표와 조재현이 걸쭉하게 뽑아내는 남도 사투리 속에 망가지며 보여주는 코믹 연기다.그런데 이들 못지않은 코믹 연기를 보여주는 조연배우가 있다.탁월한 개인기를 자랑하면서 영화를 빛내는 주인공은 박철민(37).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그가 SBS 드라마 ‘햇빛 쏟아지다’의 류승범의 동료인 ‘웃기는 경찰’임을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혹은 ‘춘향뎐’의 방자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목포는‘에서 그의 역은 형사 조재현의 군기를 잡고 구박하는 가오리파의 ‘새끼 두목’.발군의 입담과 끼있는 연기로 연신 눈길을 끈다.특히 주먹으로 잽을 날리며 “취취취,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이런 아름다운 새끼를 봤나…내가 너의 노래 때문에 나의 과거를 반성해야 쓰겄냐?” 등의 포복절도할 대사를 터뜨릴 때면 눈물마저 난다.하회탈을 연상시키는 미소가 특징인 박철민의 끼있는 연기는 이미 연극계에서 검증받은 바 있다.‘오봉산 불지르다’‘기호 0번 대한민국 김철식’‘비언소’ 등의 작품에서 코미디 배우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80년 ‘조용히 살고 싶다’로 영화에 얼굴을 내민 뒤 ‘부활의 노래’‘이재수의 난’‘박봉곤 가출사건’ 등에 출연한 그의 개인기에 ‘목포는‘ 홈페이지의 네티즌들도 열띤 반응을 보인다.“그 분 너무 웃겨서 죽는 줄 알았어요.”(‘입에서나’)“가오리 아저씨가 젤로 웃겨요.”(김경순) 그같은 반응은 연극에서 영화로 뛰어들어 개성강한 연기자로 인정받은 이문식·공형진·성지루 등과 같은 반열의 배우가 될 것임을 예감케 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훌쩍 떠나볼까-섬진강

    구례는 관광자원에 관한 한 축복받은 땅이다.웅혼함이 절로 느껴지는 지리산,어머니 저고리고름마냥 선이 고운 섬진강,그리고 화엄사·천은사 등 천년고찰과 볼거리, 먹거리에 사철 사람들이 몰려든다.그러나 이들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귀하고 아름다운 구례의 또 다른 모습을 놓치기 쉽다. 구례의 들판 한 귀퉁이에 솟은 오산 꼭대기에 앉아있는 암자 사성암,판소리 동편제의 웅혼함을 체험할 수 있는 판소리전수관,국내 최장수마을로 알려진 상사마을은 구례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꼭 가보아야 할 곳들이다. 외지인들의 경우 구례 하면 지리산,섬진강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마련.하지만 지리산과 섬진강의 큰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오산(鰲山)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해발 531m의 오산은 꼭 거대한 지리산에서 떨어져 나온 꼬마섬 같다.자라 모양을 하고 있어 오산이란 이름이 붙었는데,정상까지는 걸어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높지도 험하지도 않지만 비경이 많아 인근에선 가족 등반이나 단체 소풍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즈음 사성암(四聖庵)에 도착했다.582년 연기조사가 세운 이래 원효,의상,도선,진각 등 4대 성인이 수도를 했다고 해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에 붙여 지은 약사전이 마치 중국의 3대 석굴중 하나인 둔황의 모가오쿠를 하나 떼어다 붙여놓은 것 같다.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전각에 오르니 법당의 안쪽 암벽에 약사여래불을 새긴 암각화가 보인다.원효대사가 수행중 손톱으로 긁어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마애불이다. 사성암 선각스님은 “마애불이 수십미터 벼랑 꼭대기에 새겨져 있고,이끼 등에 덮여 보이지 않아 신도들이 볼 수 있도록 전각을 벼랑에 붙여 지었다.”고 설명했다. 약사전에서 내려다보니 곡성에서 구례구역을 지나 동쪽으로 확 꺾어져 흐르는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대웅전,산신각쪽으로 돌아가니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차일봉이 병풍을 두른듯 둘러싸고 있고,그 아래 너른 벌판 한 가운데 구례읍내가 손바닥만하게 자리잡고 있다. 선각 스님은 “지리산과 섬진강,구례의 모습을 이렇게 한군데서 손바닥 보듯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라며 “특히 토요일엔 암자 아래 활공장에서 패러글라이더들이 섬진강변으로 날아 내려앉는 진풍경도 구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성암은 약사전 중창불사를 하면서 콘크리트길이 뚫려 차를 타고도 올라갈 수 있다.도로 입구에서 암자까지 셔틀 봉고차도 운영된다.(061)781-4544. 사성암에서 내려오니 해가 뉘엿뉘엿 진다.해질녘 섬진강 풍광은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간전교 인근 강변에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펼쳤다.멀리 산자락 너머 지는 햇살을 받아 잔잔히 흐르는 섬진강 물비늘이 황금빛을 띤다.마치 나비가 번데기옷을 벗고 화려한 날개를 펴듯,섬진강은 하루에 한번씩 다시 태어난다. 동편제 전수관은 구례읍 백련리에 있다.전수관 건물과 함께 이곳 출신의 국창(國唱) 송만갑 선생의 생가,명창들의 추모비 등이 세워져 있다. 한국국악협회 구례군 지회장인 마인화(72)씨는 “판소리,특히 동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가 심각하다.”고 걱정한다. “보통 섬진강을 기준으로 동편제,서편제로 나뉩니다.동편제는 섬진강 동쪽의 구례,남원,운봉 등에서 성했어요.반면 서편제는 광주,보성,나주 등에서 주로 불렸지요.동편제는 웅장하고 씩씩합니다.서편제는 부드러우면서 한이 서린듯 애절하지요.아마 동편제는 웅장한 산악지형의 영향을,서편제는 너른 들판지세의 영향을 받았겠지요.” 그는 “똑같은 판소리를 동편제,서편제로 각각 들어보면 누구든 그 차이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며 직접 춘향가 한 대목을 동편제,서편제로 각각 불러 그 차이를 설명했다. 흥보가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영화 ‘서편제’에 나오는 판소리는 동편제적 요소가 더 강한데,영화 제목 때문에 일반인들은 동편제를 서편제로 잘못 알고 있다.”고 했다. 전수관에선 판소리 전수자들에 대한 교육과 함께 동편제 판소리 발표회,송만갑 선생 추모 판소리경연대회 등을 매년 열고 있다.또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을 위해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동편제 판소리를 선보이는 상설 공연도 열고 있다.(061)782-1288. 마산면 상사마을로 향했다.장수촌으로 손꼽히는 구례에서도 장수노인들이 가장 많다는 마을이다.80년대 중반 수집가구밖에 안 되는 마을에서 90세 이상의 노인이 10여명에 달해 전국 최장수 마을로 선정됐던 곳이다. 이곳 주민들은 장수의 비결로 당몰샘을 꼽는다.지리산의 모든 약초 뿌리가 녹아들고,일제 강점기 시절 창궐하던 콜레라를 물리쳤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샘이다.샘은 돌과 콘크리트로 아담하게 단장돼 있다.지금도 주말이면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고.샘물은 깊숙한 바닥에 깔린 자갈의 무늬까지 보일 정도로 티없이 맑다.특이하게도 다른 유명 약수처럼 톡 쏘는 맛은 전혀 없다. 샘물의 기운이 담벼락 옆의 산수유에까지 미쳤나 보다.3월 말에나 꽃을 볼 수 있는 산수유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샛노란 가루를 한가득 머금고 있다. 글 구례 임창용기자 sdragon@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IC에서 빠져 17번 전주∼남원 산업도로를 탄다.남원 춘향터널을 빠져나오자 마자 오른쪽 고가도로로 진입하면 구례로 가는 19번 국도에 들어서게 된다.서울서 구례까지 4시간 소요.호남고속도로에서 차량이 붐빌 경우 대전∼진주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된다.함양IC에서 빠져 88고속도로를 갈아타면 남원까지 갈 수 있다. 서울역에서 구례구역까지 새마을호 및 무궁화호 등 전라선 열차가 하루 15회 다닌다.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선 하루 4차례 구례행 버스가 출발한다. ■구례 제대로 즐기기 ●황토염색 체험장 구례읍 계산리 섬진강 옆 한 마을에 가면 ‘황기모아’란 황토염색 작업장이 나온다.지난 2000년 황토염색가 류숙(53)씨가 폐교를 이용해 황토염색 공간을 꾸민 곳이다. 황기모아에선 황토염색 과정을 둘러보고 체험학습 코너에도 참여할 수 있다.침구에서부터 속옷,겉옷,커튼,소품 등 수십가지의 황토염색 제품을 보고,구입도 가능하다. 2003년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류씨는 동약철학과 수지침,풍수지리에도 능하다.황토는 물론,관상,건강 등에 대한 걸쭉한 입담이 염색체험보다 재미 있다.(061-783-5515). ●여기서 하룻밤 구례읍내나 화엄사 인근 숙소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사성암,당몰샘,동편제 전수관 모두 읍내에서 10여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화엄사에서 읍내쪽으로 내려오면서 한화콘도(061-781-2171),지리산프라자관광호텔(782-2171),지리산 워커힐호텔(782-1500),황토방여관(783-0997) 등 콘도와 호텔,여관이 많다. 온천욕을 하고 싶으면 산동면 지리산 온천지구에서 묵는 게 좋다.지리산온천관광호텔(783-1414),송원리조트(780-8000),신라모텔(783-6644) 등 숙박업소가 몰려 있다. ■ 꼭 맛보세요 지리산의 음식은 뭐니뭐니 해도 산채가 가장 유명하다.화암사,연곡사 등 지리산으로 진입하는 길엔 산채 전문음식점이 즐비한데 그중 화엄사 가는 길목의 ‘청냇골가든’ 음식이 깔끔하면서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이 집의 주 메뉴는 산채정식.취,고사리,더덕 등 전통적인 산채나물에다 우엉,박나물,피마자 잎,쑥부쟁이,죽순,웅설버섯 등 이색 나물,참꼬막 무침,조기 구이 등 해산물에 쑥국과 토란탕까지.40여가지의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깔끔하다. 특히 이중 웅설버섯과 쑥부쟁이는 진한 향과 맛으로 입맛을 돋운다.웅설버섯에선 마치 능이버섯을 연상케 하는 진한 향이 난다.검은 색깔,쫄깃한 맛도 능이와 비슷하다. 쑥부쟁이는 식물도감이나 야생화 전시장에서 보던 것이었는데,이렇게 나물로 먹기는 처음이다.쌉쌀하면서 새콤한 맛이 자꾸 젓가락을 가게 한다.고소한 맛이 나는 흑두부 조림,담백함이 느껴지는 토란탕도 맛이 돋보인다.다만 전체적으로 양념 맛이 강한 듯한 게 옥의 티.마늘,생강 등 양념이 많이 들어가 산채 특유의 향과 맛이 약간 줄어든 느낌이 든다.1인분 1만원.(061)781-2222. 육류맛을 보고 싶으면 산동면 탑정리의 ‘지리산멧돼지관광농원’에 가보자.지리산 온천지구에서 가깝다. 주인 박종선씨는 “멧돼지 고기는 예부터 잡냄새가 없고 건강식으로 알려져 조상들이 즐겨 먹었다.”고 말했다. 멧돼지 숯불 바비큐와 구이,멧돼지 사골탕이 이집의 주메뉴다.숯불 바비큐는 한 입에 먹을 만한 크기로 저민 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돌려가며 굽는 요리.기름이 밑으로 떨어지면서 노릇하게 익은 것을 상추에 싸먹는다.고소하지만 느끼하지 않고,부드러우면서 쫄깃하다.구이는 일반 삼겹살을 굽듯 불판에 굽고,사골탕은 멧돼지 사골을 푹 고아 국물을 우려낸다.멧돼지바비큐 1인분 2만원,구이 1만 3000원,사골탕 7000원.(061)783-1973. 글 구례 임창용기자˝
  • [발언대] ‘랑그’적 사고와 ‘파롤’적 사고/김명한 전주보훈지청 보훈과장

    연극이나 영화 등 대중매체를 비평할 때 기호학적 비평의 기법으로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의 방법이 있다.나타난 그대로 일상생활을 표현한 것이 랑그이며,전혀 엉뚱한 표현이 파롤이다.즉 양식집에서 양주나 돈가스를 주문하는 것은 랑그적 표현이나,양식집에서 막걸리나 순두부찌개를 주문하는 것은 파롤적 표현이다.부모나 기성세대들은 파롤적 표현보다 랑그적 표현을 중시하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이를 강조한다.그러나 파롤적 표현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날 수 있다며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목소리가 전선을 타고 전달되는 전화를 발명한 벨 등은 평범한 사람이 느끼지 못한 의문점에서 시작해 인류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분들이다.바로 이러한 분들의 창조력이 랑그적 사고보다는,약간 현실에서 일탈한 파롤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최근 우리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인기 절정을 누리고 있다.한 영화를 1000만명 이상이 관람했다면 국민 4명중 1명이 봤다는 계산이 나오며,영·유·노약자를 제외하면 성인 2∼3명중 1명이 관람했다는 결론이 나온다.대단한 성과여서 우리도 이제는 문화국민으로서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국은 자국의 우월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할리우드 영화 제작진에게 거액을 투자,영상매체를 통해 ‘팍스 아메리카나’문화를 수출하고 ‘세계경찰’이라는 역할 수행에 거부반응을 없앴다.일본은 애니메이션으로 ‘국수주의’와 ‘군국주의’문화를 은연중에 자국민에게 심어줌은 물론 세계에 ‘예스 재팬’문화를 수출한다.이를 볼 때 영상매체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다. 그러면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단순히 애국이나 반공,나라사랑을 주제로 랑그적 표현을 하였다면 이러한 영예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다만 이 영화와 관련해 우리 현실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는 있다. 남북간에 경협 등 화해무드가 조성되고는 있지만 엄연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어,휴전선에는 지금도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춥고 어두운 밤을 뜬눈으로 밝히는 군인들이 있다.또 6·25 당시 입은 상흔으로 50년 넘게 병원에서 신음하는 상이용사가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태극기‘를 보면서 단순히 파롤적 표현만을 볼 것이 아니라,한단계 더 나아가 ‘파롤의 파롤적’사고로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를 있게 한 전상용사와 참전용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자. 김명한 전주보훈지청 보훈과장˝
  • [이런 책 어때요] 원전 소녀경/최형주 옮김

    음양의 교접과 조화를 추구하는 중국고대의 성의학서를 완역.전설상의 군주인 황제가 소녀와 대화하는 체제로 이뤄진 ‘소녀경’은 단순한 방중술을 뛰어넘어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천지인(天地人)이 합일하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준다.‘소녀경’은 남자를 불,여자를 물로 인식한다.물은 불을 단번에 끌 수 있지만 불은 물을 끓이기 위해 은근하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청말 고증학자인 예더후이(葉德輝)가 정리한 판본을 우리말로 옮겼다.‘소녀경’외에 ‘소녀방’‘옥방비결’‘통현자’등 방중술 문헌들도 함께 실었다.1만2000원.˝
  • [월드이슈-흔들리는 전통결혼문화] 同性결혼·동거커플 갈수록 늘어

    결혼의 의미와 형식은 각 민족과 국가의 역사와 함께 변화해왔지만,최근 들어서는 동성애가 지구촌 결혼제도의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또 ‘죽은 자와의 결혼’ 등 극단적인 형태의 결혼도 일부 국가에서는 제도화된 풍습이 되어가고 있다. ●동성애가 헌법개정 이슈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헌법 개정을 주창하면서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이 문제가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보수와 진보층간에 찬반의견이 엇갈리지만, ▲동성간의 결혼은 반대하되 ▲‘시민결합(civil union)’ 등의 형태로 이들의 법적 권익은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동성애자 커플말고도 미국의 결혼문화가 변화한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 나타난다.USA투데이가 26일 인구조사국 통계를 인용,보도한 데 따르면 미국 성인 남녀 가운데 59%만이 결혼을 했고 24%는 한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10%는 이혼,그리고 나머지 7%는 미망인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같은 결혼 통계는 지난 1970년 결혼비율이 72%였던 것에 비하면 13% 정도 줄어든 것이다.이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15억 달러를 들여 결혼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결혼보다는 실용적인 동거” 결혼을 장려하는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동거를 인정하고,이를 법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일반화되어 있다. 또 유럽국가들이 결혼하지 않은 커플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동성애자 부부에게도 어느 정도 법적 혜택을 부여하고자 하는 ‘배려’에서 출발했거나,그같은 부수적 목적을 갖고 있다. 동성애 커플의 결혼을 허용한 첫번째 나라는 실용주의 국가인 네덜란드로 2001년 법을 바꿔 4쌍의 게이 커플에게 결혼을 허용했다.같은해 독일이, 2년뒤 벨기에도 동성애 커플의 정식 결혼을 허용했다.스웨덴은 지난해 10월 처음 동성애 커플의 자녀 입양을 인정했다. 영국 정부도 동성애자 커플에게 상속,연금 등의 권리를 부여하는 ‘시민결합’의 입법을 추진중이다.독일에서도 ‘비결혼 커플’에 대한 법률에 따라 동성애자 부부도 한쪽의 성(姓)을 따를 수 있고,주택 마련 때 차별받지 않는 등의 권리를 갖고 있다.독일에서는 6000명이 비결혼 커플에 등록돼있다. 프랑스에서는 꼭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동거문화가 널리 퍼져 있으며 정부도 시민결합협약(PACS·Pacte Civil de Solidarite)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을 보호한다.올해 현재 13만 3890명이 협약에 가입돼 있다. 8년째 PACS를 유지하고 있는 나탈리 라미레즈(28·여·기자)와 디야리 안타르(31·남·교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나탈리의 프랑스인 부모와 디야리의 알제리인 부모가 만날 기회가 없었고 ▲두사람의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확신이 없으며 ▲자녀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협약 가입에 따라 교사인 디야리는 정기순환 근무에서 제외돼 나탈리가 일하는 마르세유 지역에서 계속 정착할 수 있었다.또 3년이 지나면서 두사람은 재산권을 공동으로 갖게 됐으며,결혼한 부부와 마찬가지로 세금 혜택도 받았다.만일 두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관계를 청산하고 싶다면 3개월전에 관청에 협약해지를 통보만 하면 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이 사회적 추세다.다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가정의 파트너’란 프로그램에 등록한다.노르웨이에만 이런 커플이 1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노르웨이 의회는 상속권 부여 등 이들의 권익을 크게 신장해주기 위한 법안을 검토중이다. 최근 들어서는 가족중심의 사회인 이탈리아에서도 동거를 인정하는 쪽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의회에 사상처음으로 결혼하지 않은 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제안됐다.이탈리아는 그동안 동성애자의 권리를 인정하는데는 질색을 해왔다.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커플을 인정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면 이탈리아에서도 동성애자 부부를 법적으로 인정할 여지가 생긴다. 유럽의 영향으로 캐나다 정부는 동성애자의 결혼을 인정하는 정책을 추진키로 하고 이를 위한 법률적 기반을 갖춰 나가기로 결정했다.이에 앞서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한 법원이 동성애 남성들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보수적인 남미와 아시아의 변화 가톨릭의 보수적 결혼관이 절대우위인 남미에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자는 입법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칠레 의원들은 지난해 6월 게이 및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 커플에게도 법적 지위를 부여해 연금과 재산상속 등의 사회제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에 앞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회는 2002년 12월 남미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에 대해 유사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동성애자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최근 들어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선언하는 ‘커밍아웃’은 있지만 아직 이들의 결합을 결혼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돼 있지 않다. ●유엔도 동성애 파트너 인정 나라별로 동성애 커플의 결혼과 관련한 갖가지 움직임이 나타나자 유엔은 지난달 “직원들이 소속한 국가의 법률에 따라 해당자의 동성 파트너를 가족으로 인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는 국가 출신 유엔 직원의 동성 파트너는 수당,의료보험 등 직원 가족으로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도운기자 dawn@˝
  • 씨티의 노하우 금융권 약되나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로 국내 금융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총자산 1200조원에 전세계 100여개국 3400여개의 점포를 갖고 있는 외형 때문에도 그렇지만 200년 역사의 선진금융기법이 한미은행 225개 지점에 이식될 때 나타날 결과를 두려워하고 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씨티은행의 국내은행 인수에)이미 5∼6년 전부터 충분한 대비를 해왔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자신하기도 했지만 금융계에는 벌써부터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한 뒤에는 토요일에도 영업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등 경계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10년 이상 먼저 한 PB영업 ‘서울 강남지역 부자 두 명 중 한 명이 씨티은행 고객’이라는 은행업계의 과장된 ‘속담’은 씨티은행의 경쟁력을 대변한다.국내 시중은행들은 지점당 수신고가 대개 1000억원대에 불과하지만 씨티은행 전국 12개 지점의 평균 수신고는 지난해 말 현재 5000억원이 넘는다. 씨티은행은 1991년 ‘씨티골드’라는 이름으로 프라이빗뱅킹(PB)영업을 시작했다.국내 은행들이 지난해에야 PB사업을 본격화한 것을 감안하면 10년 이상 앞선 것이다.현재 씨티은행 지점이 서울 압구정동·대치동·방배동·역삼동,경기도 분당 등 부자동네에 집중돼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씨티은행 출신 시중은행 PB팀장은 “은행 전체 수익의 90%가 전체 고객의 10%인 씨티골드 회원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첨단기법과 전통기법의 조화 씨티은행은 연중 영업확대 캠페인을 벌이면서 고객들에게 ‘경품 세례’를 안긴다.부자라도 공짜는 좋아하기 때문.기존 고객이 씨티골드 고객을 추천하면 호텔숙박권·골프채·가전제품·화장품 등을 준다.10명을 추천해 10포인트를 쌓으면 300여만원짜리 노트북PC나 몰디브 여행티켓이 나온다. 씨티골드 회원들에게는 송금 수수료가 면제되고 전담관리자(CE)로 불리는 담당직원이 생활을 관리해 준다.한 CE는 미국에 여행간 고객의 애완견에게 밥을 주러 아침마다 그 집으로 출근하기도 했다.또 와인 맛 보는 법,스카프 고르는 비결,고급 서양식당의 테이블 매너 등 수시로 고객 대상 강습회를 연다.뮤지컬 ‘명성황후’를 후원하면서 골드회원 3000여명을 초청했던 것은 국내 은행권 문화마케팅의 효시로 돼 있다. 씨티은행은 고객자산 증식을 위해 다양한 금융기법을 쓴다.시중은행 임원은 “고객이 돈을 들고 오면 예금으로 받지 않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신사 등으로 연결해 준다.”면서 “은행은 중개수수료를 챙겨서 좋고 고객들은 은행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어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은행들도 자산운용 부문을 대폭 강화할 움직임이다.국민은행은 한투증권이나 대투증권 인수를 추진하는 한편 PB에 강한 스위스계 은행과의 제휴도 계획중이다. ●200년 역사의 뱅커사관학교 “1)상사의 말은 무조건 옳다.2)상사의 말은 역시 무조건 옳다.3)만일 상사가 틀렸다고 생각되면 다시 1번을 되새겨라.” 오랜 전통을 가진 이 경구는 씨티은행이 선배·후배간 도제(徒弟)식 교육에 얼마나 철저한지 말해준다. 국내은행의 PB사업 조직은 대부분 씨티은행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오랜 노하우를 옮겨오기 위해 각 은행들이 벌인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의 결과다.한 시중은행의 PB센터는 절반 이상이 씨티은행 출신이다. 씨티은행 직원들은 1년에 2차례가량 싱가포르 아시아지역 본부 주관의 ‘글로벌 콘퍼런스’ 참석 기회를 얻는다.여기에서 전세계 점포에서 축적된 영업 노하우를 공유한다.씨티은행은 이를 ‘성공의 전이(Success Transfer)’라고 부른다.현재 보편화된 주가지수연동예금의 경우,씨티은행은 99년에 이 콘퍼런스를 통해 노하우를 배웠다.당시 시장상황에 안 맞아 출시를 미뤘을 뿐이다.주가지수연동 상품 1호가 지난해 조흥은행에서 나왔을 때 그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이 씨티은행 출신이었다. ●이헌재 부총리 “씨티가 한미 인수해 다행”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6일 씨티은행을 ‘책임감 있는 은행’이라고 치켜세우며 “개인적으로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와의 인수경쟁에서 씨티가 이긴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97년 말 외환위기로 국내 어떤 은행도 외국과 신용장(LC)을 개설하지 못할 때 씨티은행이 가장 먼저 우리나라와 LC를 개설해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이어 “2000년 하이닉스가 유동성 위기를 맞았을 때에도 씨티그룹 자회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가 차입 주간사로서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브리지론을 얻는 데 도움을 줬다.”며 “앞으로 우리나라의 은행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가 금융권에는 ‘위협요소’가 되고 있지만,정부로서는 선진 금융기법 전수와 시장안전판의 역할을 씨티에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김태균 김유영기자 windsea@˝
  • 정의장 “日, 6자회담 성공에 역할해야”

    |도쿄 황성기특파원|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26일 오후 도쿄의 아메요코 시장 부근의 아사히 신용금고 6층 회의실에서 시장 연합회의 니키 다다오 회장 등 관계자로부터 시장 현황을 청취했다. 정 의장은 “도쿄 한복판에 있는 아메요코 시장은 남대문 시장과 비슷하다.”면서 “주말에 20만∼30만명이 북적거린다는 아메요코 시장에 비해 남대문 시장은 너무 어렵다.대형할인점,백화점 틈바구니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니키 회장 등 시장 관계자들은 “우리의 강점은 현금으로 싸게 상품을 사들여 그것을 0.1∼5% 정도의 적은 마진만 남기고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이 주변에 들어서는 것은 우리의 손님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님을 모으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환영한다.”면서 “손님들은 백화점에서 물건 가격을 확인한 뒤,우리 시장에 와서 같은 물건이지만 보다 싼 것을 구입한다.”고 소개했다. 한편 정 의장은 일본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과 관련,“일본은 북한에 대해 납치문제를 내세워 북·일 관계에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데 일본도 6자회담을 성공시키는 데 역할해야 한다.”고 말했다. marry04@˝
  • 영화 ‘어깨동무’ 주연 이성진

    “NG가 많이 나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거의 없었어요.아마 ‘나동무’란 인물에 집중한 덕분인 것 같아요.” 그룹 NRG의 ‘꽃미남 가수’ 이성진(27)이 ‘진짜 연기자’로 거듭난다.새달 12일 개봉하는 ‘어깨동무’에서 주연급인 ‘나동무’역을 맡아서 말끔하게 소화했다.시트콤 ‘레츠고’의 ‘주접맨 연기’나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에서 살짝 얼굴을 비치곤 했지만 비중 높은 역은 이번이 처음.그가 맡은 동무는 착하다 못해 약간 어리버리한 청년.우연히 비디오가게에서 가져온 비디오테이프 때문에 ‘작은 어깨’ 태식(유동근) 일당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그들과 얽히고 설키는 인물이다.그 과정에 코믹하고 순진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제작사인 CK픽쳐스측에서 그가 모바일 영화 ‘건달과 달걀’에서 보여준 연기력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할 정도로 그의 연기는 영화에서도 물 흐르듯 스며든다.비결을 물었더니 살짝 옛날 얘기를 들려준다. “원래 가수가 되기 전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학원을 다녔어요.기회가 닿지 않아 가수로 먼저 발을 디뎠지만 연기의 매력을 잊지 못해 시트콤에 6개월간 출연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라며 웃는다. 시사회가 끝나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묻자 “기차 앞에서 수갑 차고 협박받는 장면과 그뒤 너무 놀라 오줌을 누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고생도 많이 했지만 화면에서 너무 추하지 않게 비쳐져 다행입니다.” 가수 활동을 하다가 연기자 겸업을 하는 데에 대한 일부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서도 당당하다.“가수 비나 김동완 등 연기를 겸하는 분들이 앨범 인기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저 역시 비슷한 입장인데,돈을 벌거나 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새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서 나선 겁니다.능력이 된다면 둘다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가수와 연기자 중 어느 쪽에 더 끌리냐는 질문엔 “가수가 된 지 9년이나 됐으니 맞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거고요.연기를 제대로 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글쎄요.오랜 뒤의 모습을 상상하면 아마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은연중 연기에 대한 강한 열의를 보인 그에게 어떤 영화에 출연해 보고 싶냐고 더 깊이 파고들었더니 “천진난만함과 사악함을 함께 지닌 이중적 인격,예컨대 ‘프라이멀 피어’의 에드워드 노턴 같은 연기나 ‘눈먼 새의 노래’에서 안재욱씨가 보여준 그런 장애인역에 도전하고 싶어요.또 기회가 닿으면 ‘YMCA 야구단’ 같은 스포츠영화도 찍었으면 좋겠어요.” 연기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욕심은,그의 이미지가 ‘주접맨’에서 ‘연기맨’으로 바뀔지 궁금하게 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고용있는 성장으로]②일자리 내가 만든다- ‘맞춤교육’으로 취업 가뿐히

    충남 논산의 건양대는 ‘맞춤식 교육’으로 취업난을 뚫고 있는 대표적인 지방대학이다. 이 대학은 올해부터 경영학부에 군수학(軍需學) 전공과정을 신설,신입생을 뽑는다.2006년 부산의 군수사령부가 대전으로 오는 것을 겨냥,군용물자에 대한 조달·관리·수송 등을 체계적으로 익히게 해 군수 관련 장교나 군무원으로 취업시키기 위해서다. 건양대는 또 충남도의 백제문화권 개발계획에 따라 외국인 관광과 이에 따른 통역 인력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영문·중문·일문 등 어문학과 전공자들을 백제권 관광전문가로 키울 계획이다.이를 위해 3개 학과의 외국인 교수를 2명씩 늘려 영문 9명,중문과 일문 각 6명 등 총 21명으로 증원했다.원어민 교수는 전체 전임교수(183명)의 11.5%에 이른다.어문학과 학생들은 ‘3+1제도’에 따라 4년 대학생활 중 1년은 해외연수를 다녀와야 한다. 이같은 교육으로 건양대 취업실적은 주변 지방대학은 물론,수도권의 유수대학보다 월등히 높다.올해 39개 학과 졸업생 1309명 가운데 진학(유학) 66명,입대 2명을 제외하고 취업대상자가 1241명.이 중 997명의 취업이 확정돼 순수 취업률이 81.7%에 이른다.특히 금융국제교류학과,토목시스템공학과,생활체육학과 등 10여개 학과는 100% 취업률을 달성했다.지난해 전국의 대학 평균취업률이 53.8%인 점을 감안하면 건양대의 취업성적 수준은 놀랄 만하다. 건양대는 지난 1월 제68회 의사고시에서도 응시생 49명이 전원 합격했다.의대생들은 7∼8명이 조를 이뤄 환자를 직접 대면하며 진료사례를 익힌다.1990년에 설립된 건양대가 개교 10여년 만에 ‘취업 명문대학’으로 우뚝 선 이유는 “가르쳤으면 책임져라.”는 설립자 김희수(75) 총장의 소신에서 찾을 수 있다.김 총장은 동양 최대 안과전문병원인 서울 영등포 김안과병원과 대전의 건양대병원도 세웠다.김 총장과 교수·직원들은 1주일에 한번 이상은 기업을 방문하는 등 재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한다.총장까지 뛰는 만큼 학생들도 1년에 4차례씩,졸업 때까지 학과 구분 없이 16차례의 토익(TOEIC)시험을 치르며 실력을 쌓아야 한다. 대구 영진전문대도 기업수요에 맞춘 교육으로 취업난을 뚫고 있다.지난해까지 10년 연속 90%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다.디지털전기정보계열 등 졸업생 153명 대부분이 삼성전자 등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했다.성공 비결은 역시 ‘주문식 교육’과 과감한 시설투자.주문식 교육은 산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하는 교재에서 시작된다.96년 이후 지금까지 공동개발 교재가 96권에 이른다.정규수업에는 산업체와 연계된 프로젝트가 상당수 있다.학생들은 전공능력 인증자격과 어학자격 기준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학생 1인당 학교 기자재 보유액이 2700만원에 이른다.쾌속조형기(19억원) 등 큰 기업에도 없는 첨단 장비들이 갖춰져 있다.전체 교수 178명 가운데 65%가 산업체 근무경력을 갖고 있다. 경기도 시흥의 한국산업기술대도 산학협력을 통한 취업교육으로 3년 연속 취업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이 대학은 시화·반월공단의 1300여개 중소기업들과 산학협력 제휴를 하고 있다.해마다 이들 기업이 요구하는 수요에 맞춰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교육함으로써 고취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철승 이사장

    소석(素石)이 요즘 바쁘다.서울평화상 준비 때문이다.몸보다 마음이 더 바쁘다.그는 1996년부터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3대 이사장이다.올 가을 7번째 수상자를 탄생시킨다. 소석 이철승(李哲承·82).그는 보수 우익의 대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건국기념사업회장,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의장,자유민주총연맹 총재,반탁반공 학생운동기념사업회 총재.10년 넘게 갖고 있는 직함들이다.이 외에도 몇몇 더 있다.그는 요즘도 보수진영의 집회나 시위가 있으면 거리로 나선다.화법은 여전히 직설적이다.지금의 반미·친북 분위기의 시발은 국민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이라고 단언했다.“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의 기둥과 나사를 모두 빼버렸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60대 초반쯤으로 보인다.20여년 전 가까이서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다.정확한 기억력도 변함이 없다.얼굴엔 잡티조차 없다.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그는 요즘도 헬스클럽에서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관리한다.스트레스를 몸에 담지 않고 평생 술,담배를 멀리한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했다.“세상이 어지러워 나이를 잊고 산다.”고 했다. ●“서울평화상은 대한민국의 긍지” 그는 “서울평화상은 이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상으로 컸다.”고 소개했다.수상자 면면을 보면 상의 권위와 경륜에 수긍이 간다.사마란치 전 IOC위원장이 첫 수상자였다.이어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국경없는 의사회,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오가타 사다코 유엔난민고등판무관,분쟁지역의 난민과 빈민을 돕는 NGO 단체인 옥스팜 등이 2년 간격으로 뒤를 이었다.국경없는 의사회와 코피 아난 총장은 서울평화상을 받고 몇 년 뒤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아난 총장은 우리 정부의 방한 요청을 몇 차례 거절했다.북한을 의식해서였다.하지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기꺼이 방한했다.국경없는 의사회와 옥스팜 관계자들은 시상식에 참석하는 과정에서도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회고했다.비즈니스 클래스의 비행기 티켓을 보내겠다고 하자 이코노미석을 주문했다.행사를 간소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했다.식사도 싸구려 찌개집을 고집해 시상식 관계자들에게 감명을 줬다.오카다는 세계의 고통받는 어린이를 위한 재단을 만들면서 상금을 기금으로 내놓았다.또 한국 내 일부 반일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게 서울평화상을 준 데 대해 일본인들이 놀라워했다고 소개했다. 소석은 “일본은 우리보다 국력이 크지만 서울평화상만한 상이 없다.”고 했다.자긍심을 가질 만하다고 했다. ●각 국의 로비전 치열 그는 요즘 외교사절 등의 면담 요청을 피한다.서울평화상 후보 선정과 관련한 잡음을 피하기 위해서다.얼마 전 외교부에서 열린 공관장회의에 참석했던 몇몇 대사들로부터도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하지만 완곡하게 모두 거절했다.직원 등을 통해 주재국에 훌륭한 후보가 있으면 공식 절차를 거쳐 추천해 달라는 답변 정도만 했다.일부 주한 외교사절의 면담 요청도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실제 역대 후보 선정 때도 로비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았던 유수한 국가의 정치인들로부터 로비를 받기도 했지만,끝내 이들을 수상자로 선정하지 않았다. “수상자를 고르는 작업이 참 힘들어요.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전력에도 흠이 없어야 하거든요.이념적 경향성 등의 시비도 없어야 하고요.” 세계 각 분야의 권위자로 구성되는 추천위와 심사위원회가 있지만,최종 선정작업은 항상 긴장되고 힘든다고 설명했다.지구촌의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나 단체를 골라야 상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추천위는 1000여명으로 구성되고 매회 후보들만 100여명에 이른다.그동안 수상 거부 등의 불상사나 수상자 선정과 관련한 잡음이 한번도 없었다.서울평화상의 품위와 명성을 높여나가는 요인이 됐다.상금은 30만달러에서 20만달러로 낮아졌다.금리가 낮아 기금의 수익금이 줄었기 때문이다.노벨평화상 상금은 90만∼110만달러 수준이다. 그는 “기금 수익금이 줄어 중단됐던 해외인사 초청 연수도 새롭게 계속하고,평화상 금액도 다시 올리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여야도,정치도 없는 상황 안타까워” 소석은 현대 정치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1970년 DJ,YS와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쟁을 벌였고,엄혹했던 박정희 정권의 유신시절 신민당 대표를 지냈다.지역구(전주)의 심판을 받아 7차례 국회의원이 됐다.80년대 말 정계를 떠날 때까지 삶의 궤적은 3김씨와 더불어 현대 정치의 살아 있는 기록이었다. 소석은 그러나 스스로를 “3김 정치의 낙제생이었다.”고 회고했다.69년 말 김영삼,김대중씨와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야당의 리더로 떠올랐던 그다.48세 때였다.YS는 43세,DJ는 45세였다.박정희 독재에 맞서 중도통합론과 내각제를 주창한 그는 ‘시대를 앞서나간 정치인’이었다.한 발짝 앞서나간 그의 주장은 배척받았고 결국 양김으로부터 밀려났지만 일관된 소신과 논리를 굽힌 적이 없었다. 그는 정치 얘기가 나오자 “참으로 걱정스럽다.”고 했다.여도 야도 없고,국민들이 기댈 만한 정치지도자도 없다고 했다.이리저리 둘러봐도 검찰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그는 “평생 야당생활을 했지만 지금처럼 막가는 정치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석은 “진정한 보수를 대변할 정당을 만드는 데 중심이 돼 달라는 요청이 있지만 정치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했다.그러면서도 “반미·친북 분위기가 날로 기승을 부려 안타깝다.”고 했다.그는 해방후 맨손으로 나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결정을 배격하고 좌익을 물리치고 나라를 세운 반탁·반공 세대다.“58년 전 했던 반공운동을 지금 또다시 거리에서 해야 하나 생각하면 한심스럽고,팔자가 기구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는 “한나라당이 진정한 보수를 대변할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고 했다.더 이상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도 했다.그러면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깨부수고 새로 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완전 해체한 뒤 이념이 같은 사람끼리 구락부 같은 것을 만들어 총선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보수 원로다운 제언이었다. ■ 서울평화상 이란 서울평화상은 ‘88 서울올림픽’이 성공리에 개최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1990년 제정된 국제평화상이다. 이 상은 국적,인종,종교,이념을 초월해 모든 분야에서 세계평화와 인류화합 증진에 업적이나 공적이 있는 개인·단체에 수여하고 있다.사망자는 수상자가 될 수 없고 반드시 수상자는 한국을 방문해 상을 받아야 한다.그동안 개인 4명과 2개 단체가 수상했다. 최태환 편집국부국장 yunjae@˝
  • 술따라 맛따라-안동소주

    “술 빚기의 처음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술을 기다리는 정성이 깃들어 있어야 ‘안동소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와 전통식품 명인6호로 지정받은 안동소주의 제조기능보유자 조옥화(83) 할머니는 지금도 소주를 내리는 날에는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온 정성을 쏟는다.“안동소주는 누룩과 쌀만을 섞어 발효시키고 그것을 증류하여 만들어 낸 순곡주입니다.안동에서 소주를 만드는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누룩,쌀,물 등 재료 선별에 정성을 들이지 않습니다.저는 누룩을 직접 띄우고 좋은 쌀을 손으로 만지며 깨끗한 술이 나오기를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조 할머니가 술을 한 잔 권했다.안동소주는 향이 깊고 강했다.45도의 안동소주 한잔을 들이켜자 혓끝에 담백함이 느껴질 뿐 쓴맛은 없다. 우리 소주는 몽골(후에 원나라로 칭함)에서 전래되었다.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페르시아의 이슬람문화를 받아들이며 증류방식의 술제조법을 배웠고 그것이 고려에 전파되면서 비로소 소주의 시대가 열렸다.당시 몽골군 기지가 있었던 개성,안동,제주를 중심으로 소주를 많이 빚었다.역시 그랬다.그래서 안동소주에는 선비의 부드러움보다 무인의 강렬함이 느껴지는가 보다.안동소주는 조선시대 들어 안동 사대부집안의 가양주(家釀酒)로 자리잡았다.그러나 일제 강점기때 전통주 생산이 금지되었고 광복 후엔 1962년 주세법이 개정되어 순곡주 생산이 금지되면서 안동소주의 맥도 끊겼다. 조씨가 안동소주 재현에 뜻을 두게 된 것은 1986년 새마을운동 기금 마련을 위해 동동주를 향토 야시장에 팔면서다.정년을 앞둔 한 시청 직원이 ‘동동주보다 안동소주가 더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보처럼 내려오던 조씨의 전통 소주고리가 빛을 보게 된 것은 1990년 9월.그때 처음으로 안동소주 제조면허를 받아 빚기 시작했다.안동시 신안동에 살던 집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 팔면서 안동소주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그때는 정신이 없었어요.전국 각지에서 술을 사겠다고 새벽 5시부터 집 앞에 줄을 섰는데,그 줄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고도 남았어요.술을 더 달라고 항의하는 이들도 많았어요.” 그때는 혼자 제대로 된 술을 만들려는 욕심 때문에 밤새우는 일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안동소주는 누룩(밀)과 쌀을 발효시켜 증류시킨 술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오래될수록 향기와 맛이 좋아진다.또한 증류를 통해 불순물이 제거돼 마신 후에도 뒤끝이 깨끗하다. 현재 조옥화씨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 배경화(53)씨에게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음식을 만들고 술을 빚는 일이 너무 힘들어 며느리에게는 가르치고 싶지 않았지만 며느리 배씨가 자청해 수제자가 되었다고. 조옥화씨는 마지막으로 “안동소주의 맛과 향의 비결은 ‘누룩’입니다.좋은 밀에 정성을 쏟아 발효시킨 누룩만이 안동소주의 이름을 지킬 수 있게 합니다.”라고 했다.조씨는 “지금도 옛 어른들의 정신과 방법을 충실히 지키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안동소주 이렇게 빚어요 ① 좋은 밀 1㎏을 분쇄한 후 물을 넣고 적당히 반죽한다. ② 원형틀에 밀반죽을 넣고 모시보자기를 씌운 후 발로 밟아 모양을 만든다. ③ 누룩을 틀에서 꺼내 20일 정도 띄운 뒤 콩알 크기로 분쇄해 건조시킨다. ④ 건조한 누룩을 하룻밤 이슬을 맞혀 곡자 냄새를 없앤다. ⑤ 쌀 5㎏을 씻어 물에 불린 후 시루에 쪄 고두밥을 만든다.그늘에 멍석을 깔고 고두밥을 넓게 펴 말린다. ⑥ 누룩과 고두밥을 손으로 버무리며 적당량의 물을 넣어 혼합한 후 술독에 넣고 약 15일간 숙성시킨다.전술 완성. ⑦ 전술을 증류기에 넣고 증류를 한다.처음에는 70도의 독한 술이 나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도수가 떨어지는 술이 나온다. ⑧ 받은 술의 도수가 45도 정도 되고 혀끝에서 가장 좋은 향과 맛이 날 때 증류를 멈춘다. 글 안동 한준규기자 hihi@˝
  • ‘낭랑18세’ 비류·온조

    타고난 외모는 아니더라도 시선을 ‘곱빼기’로 받는 이들이 있다.쌍둥이 자매 탤런트 비류와 온조가 그 주인공. MBC의 ‘대장금’에 맞서 ‘선전’하고 있는 KBS 2TV ‘낭랑 18세’에서 주인공 정숙(한지혜)의 의리파 친구들 ‘오공주파’는 인기몰이 비결 중의 하나.그 가운데 비류와 온조는 일란성 쌍둥이라는 ‘천부적 조건’에다 감칠맛 나는 연기로 시청자의 궁금증과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드라마 초반 화면 합성 아니냐는 오해를 살 정도로 똑닮은 이들 자매는 음색까지 똑같아 구별이 쉽지 않다.촬영장에서도 항상 붙어다녀 제작진들을 헷갈리게 하기 일쑤.귀띔하자면 약간 더 통통하고 안경을 쓰고 나오는 이가 언니인 비류다. 기억력 좋은 시청자들은 이들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연기자로 거듭나기 전 MBC의 ‘코미디 하우스’에 개그맨 박명수를 면박주는 당돌한 소녀들로 나와 얼굴을 처음 알렸다.오락프로그램에서만 활약해오던 이들이 새로 태어난 계기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화교 출신 명랑 쌍둥이 ‘비류·온조’로 분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이들은 이은실·은주라는 이름을 버리고 진정한 연기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세웠다.이어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에서도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란히 출연,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현재 비슷한 역할만 주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을 터.그러나 당분간 명랑·쾌활 컨셉트로 밀고 나간다는 생각이다.“현재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거니까….” 신인이기 때문에 더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걱정이 왜 없을까. “쌍둥이다 보니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건 사실이에요.” 앞으로 각자 활동할 날에 대비해 서서히 워밍업 중이다.“한시도 떨어진 적 없는 우리가 프로필 사진도 따로 찍었다니까요.” 박상숙기자 alex@˝
  • “M&A 성공비결은 기업문화 통합”

    ‘기업 인수·합병(M&A)의 성공비결은 조직문화의 통합과 철저한 사후관리.관련없는 기업 인수와 과도한 인수가격은 백전백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8일 팬택&큐리텔과 SK커뮤니케이션즈,영산대 등을 M&A에 성공한 모범사례로 선정했다. 91년 설립돼 ‘삐삐’ 제조로 이름이 알려진 팬택은 2001년 11월 하이닉스 자회사인 현대큐리텔을 인수했다.현대큐리텔은 팬택&큐리텔로 사명을 바꾸고 이동통신 단말기 개발에 주력,인수당시 5000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1조 5000억원으로 신장했다.현대큐리텔 시절 1150억원의 적자에서 2002년 500억원,지난해 700억원을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현대큐리텔은 당시 미·일 컨소시엄과 이스라엘 기업이 인수를 시도하는 상황이었다.팬택은 해외경쟁자가 인수했을 경우 예상되는 대량해고,기술유출 등을 파고들면서 전문성을 갖춘 경영자(박병엽 부회장)을 내세워 M&A에 성공했다.인수후에는 고용승계 약속,신규차입,기존거래선과의 관계 강화,우리사주제도 정착 등과 함께 기업문화 통합작업으로 내외부의 갈등을 봉합했다. 라이코스와 넷츠고가 통합되면서 2002년 11월 출범한 SK커뮤니케이션즈는 단숨에 국내 5위 사이트로 올라섰지만 페이지뷰가 경쟁사에 비해 10∼30% 낮은 수준이었다.이에 지난해 8월 커뮤니티 사이트인 사이월드를 합병하면서 이같은 단점을 보완했다. 합병전에는 고용안정을 최대한 보장했고 합병후에는 인력유출 방지,복리후생 향상,양사 조직원 혼합 등 조직문화 융화에 주력했다. 전주호 상무는 “피인수기업의 기존 핵심역량을 최대한 키우고 함께하는 조직문화를 이룩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SBS 새 아침드라마 '청혼’ 주인공 조민수

    ‘눈물 여왕’조민수가 1년 만에 ‘당찬 여인’으로 변신,안방극장에 복귀한다. 조민수는 ‘이브의 화원’후속으로 오는 16일부터 방영될 SBS 새 아침 드라마 ‘청혼(극본 허숙,연출 강신효)’에서 버림받은 뒤 찾아온 사랑을 지키는데 모든 것을 거는 여주인공 ‘한경희’역을 맡았다. “그동안 불쌍한 역할만 했잖아요.지난번 ‘얼음꽃’에서도 그랬고….그런데 시놉(시놉시스)을 보니 ‘경희’란 인물이 청순가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자기방어도 확실한 변화무쌍한 캐릭터더라구요.딱 제 성격인거 있죠.욕심이 났어요.” 여태껏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이렇게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단다.“기존의 일일드라마와 달리 극 전개가 빠르고 매회마다 긴장감 있는 ‘사건’이 하나씩 들어있어요.‘다음엔 또 어떤 일이?’라고 한껏 기대하게 만드는 드라마예요.” 그녀는 1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시간이 지날수록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겠더라구요.예전에는 몰랐는데 어린 연기자들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제길을 가는 선배 연기자들이 무척 존경스럽게 느껴졌어요.이제는 저만의 색깔을 찾아야겠죠.” “언제나 일 속이 아닌 일 밖에서 나를 바라보며 살아요.”어느덧 방송 경력 18년차의 중견연기자가 된 조민수.실력파 연기자로 인정 받으며 장수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었다. ‘청혼’은 남편(선우재덕)에게 배신당하고 딸과 함께 사는 30대 이혼녀(조민수)가 사랑의 아픈 기억을 가진 재벌 2세 노총각(이진우)과 진솔한 사랑을 그린 멜로물.‘못된 남자와 불쌍한 여자’,‘불륜’등 기존 일일 드라마의 판에 박힌 ‘공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강신효 프로듀서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통속적인 선악 갈등구도에서 탈피하여 진솔하게 그려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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