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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길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길

    등장인물 미노 : 15세이르 : 15세 장소 멕시코 남동부 치아파스에서부터 시작된 철길 위의 화물 기차. 캘리포니아주 근방의 국경을 향해 달리고 있다. 무대 정중앙에 화물 기차의 트레일러가 놓여 있다. 트레일러의 양 측면에는 상부로 오르내릴 수 있는 사다리가 부착돼 있으며, 상부에는 화물을 싣기 위해 이용하는 핸들과 레일이 튀어나와 있다. 기차는 관객석을 마주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가정한다. 처음 넓고 메마른 땅 위 철길을 달리는 화물 기차. 미노와 이르, 트레일러 상부 핸들에 허리를 묶은 채 기차가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앉아 있다. 불그스름한 노란색 조명이 두 아이의 머리 위로 비춰진다. 노을이 지고 있다. 철길 위 기차 소리만이 옅게 울린다. 주변을 둘러보던 미노, 대뜸 질문을 던진다. 미노 어디쯤일까? 이르, 대답하지 않고 정면만 응시한다. 지친 모습이다. 정적, 그리고 기차 소리. 미노 응? 여기는 어딜까? (사이) 너도 몰라? 이르…그게 중요해? 미노 중요하지. 그걸 알아야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잖아. 이르, 대꾸하지 않고 허리에 맨 밧줄을 만지작거린다. 미노 이르, 나 지도 좀. 이르 네가 꺼내. 미노 꺼내 줘. 미노, 이르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이르, 마지못해 트레일러 측면 사다리 쪽에 매어 둔 가방으로 손을 뻗는다. 꼬깃한 종이 하나를 꺼내 미노에게 건넨다. 미노, 받지 않는다. 미노 얼마나 남았어? 이르, 미노를 흘겨보며 느리게 종이를 펼친다. 이르 터널 세 개, 아니, 두 개. 미노곧 있으면 이 길도 끝이네. 이르 아쉽냐? 미노 조금. 넌 어때? 이르, 다시 입을 다물고 철길로 고개를 돌린다. 미노 아쉽지 않아? (사이) 아니면 설레나? 이르 (기가 차다는 듯이) 대체 설렐 게 뭐가 있는데? 미노 앞으로 펼쳐질 일들 말이야. 너도 여기까지 와 본 건 처음이잖아. 이르 자꾸 종알대지 말고 조용히 해. 너 그러다가- 미노 (이르가 주의를 주는 모습을 따라하며) 떨어져, 중심 잃어, 터널한테 잡아먹혀! (미어캣처럼 허리를 곧게 피고 목을 늘여 먼 곳을 바라본다.) 터널 나오려면 한참 멀었겠다. 순간적으로 크게 덜컹거리는 트레일러. 이르, 급하게 밧줄을 묶은 핸들을 그러쥔다. 미노,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노 이르, 터널한테 잡아먹힌 사람 본 적 있어? 이르 (밧줄의 매듭을 확인하며 건성으로) 응. 미노 어떻게 생겼어? 이르 납작해. 미노 또띠야처럼? 이르, 불편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 입을 다문다. 미노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말을 잇는다. 미노 우리 할머니 또띠야 진짜 맛있는데. 할머니는 맨날 일하러 다녔거든. 화요일이면 집에 오는 길에 꼭 옥수수 가루를 한 봉지씩 사 왔어. 만드는 방법도 다 기억해. 옥수수 가루 두 컵에 소금 한 꼬집, 한번에 엉기지 않게 물을 조금씩 넣고- 이르 우리 놀러 가는 거 아니거든. 미노 알지. 우린 순례자들이잖아. 이르 …순례자? 미노 그래. 야수의 등허리에 올라타서 국경을 넘나드는 순례자. 배고픔과 목마름을 견뎌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근사하지 않아? 이르 (심드렁하게) 그래. 참 근사하다. 미노 미국에도 또띠야가 있을까? 맛있는 게 엄청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사이) 없어도 괜찮아. 만드는 방법 기억하니까. 옥수수 가루 두 컵에 소금 한 꼬집, 한번에- 이르 (말을 가로채서 빠르게 읊는다.) 엉기지 않게 물 조금씩 넣어서 납작하게 눌러 굽는다고. 알았어. 미노 외웠네? 다행이다. 이르 그게 왜 다행이야? 미노 네가 꼭 먹어 봤으면 좋겠거든. 우리 할머니 또띠야는 그냥 시장에서 파는 거랑 달라. 이르 (건성으로) 그래. 미노 진짜야! 이르 알았다고.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미노, 푸르게 물드는 하늘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La Llorona. 미노눈물 많은 여인아, 하늘빛 옷 입고 눈물 많은 여인아, 또다시 흐느끼네 고달픈 삶에 길을 잃어도- 미노, 노래를 멈춘다. 이르, 미노를 쳐다본다. 이르 왜 멈춰? 미노 그냥. 이르 다음 가사 몰라? 미노 알아. 이르 뭔데? 미노, 대답하지 않는다. 이르, 나머지 가사를 채워 노래한다. 이르 고달픈 삶에 길을 잃어도 사랑만은 그대로 그대로 머무리라 미노 이 노래 어디서 배웠어? 이르 그냥. 지나다니다가. 미노 나는 할머니가 알려 줬는데. (사이) 할머니 보고 싶다. 이르 나중에 할머니도 미국으로 오시라고 해. 미노 그럴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니야. 이르 뭐가? 미노 우리 할머니는 올 수 있어도 안 와. 이르 왜? 미노 싫어하거든. 이르 미국을? 미노 엄마를. 이르 엄마가 돈 보내 줬다며. 미노 맞아. 덕분에 먹고살 수 있었지. 그래도 할머니는 날 두고 간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이르 엄마랑은 언제 헤어졌는데? 미노 태어난 지 반년도 안 돼서. 이르 그럼 얼굴도 모르겠네. 미노, 품속에서 너덜너덜한 사진 한 장을 꺼내 이르에게 내민다. 미노 우리 엄마래. 이르, 사진을 받아 들고 여자의 얼굴과 미노를 번갈아 관찰한다. 이르 어, 닮았네. 그… 입꼬리가 닮았어. 눈매도. 미노 안 닮았어. 이르 아니야, 여기 보면- 미노 할머니가 그랬어, 하나도 안 닮았다고. 이르 …야, 그래도 너 먹여 살리려고 그 먼 길을 간 거잖아. 곧 있으면 같이 살게 될 거고. 난 너 같은 애 처음 봤어. 미노 나 같은 애? 이르 가족 찾으러 가는 애들 중 절반은 전화번호 하나 없이 떠나. 끊긴 연락처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그런데 넌, 너희 엄마가 코요테를 고용했다며. 널 미국으로 보내 달라고. 미노 응. 이르 넌 운이 좋은 애야. 이르, 사진을 돌려주려 한다. 미노, 고개를 내젓는다. 이르, 사진을 지도에 끼워 가방에 넣는다. 미노 그러면 너는? 이르 나는 뭐? 미노 운이 나빠? 가족이 없어서? 이르 그건 아닐걸. 미노 왜? 이르 아직 안 죽었잖아. 미노, 이르의 말을 곱씹는다. 이르, 손가락으로 기차 위 쌓인 먼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미노 죽으면 운이 나쁜 건가? 이르 (건성으로) 몰라. 미노 혼자 다니는 거 안 무서웠어? 이르 그냥 그랬어. 미노 나쁜 사람들 많이 만났어? 이르 응. 미노 그럴 땐 어떻게 했어? 이르 …맞았어. 미노 그런데도 안 무서웠어? (대답이 없다.) 대단하다. 나는 혼자 있으면 무섭던데. 이르 다 컸는데 뭐가 무섭냐? 미노 혼자 지내 본 적이 거의 없었단 말이야. 이르 곱게도 자랐네. 미노 할머니 보고 싶다. 이르 치아파스에 계셔? 미노 아니. 떠나셨어. (사이) 아주 멀리. 어색한 정적. 기차 소리. 미노 이르, 넌 미국 도착하면 어디로 갈 거야? 이르, 미노를 무시하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다. 미노, 그런 이르를 지켜본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미노, 달빛에 의지해 철길을 살핀다. 미간을 한껏 찌푸린 끝에 터널을 발견한다. 미노 터널이다. 이르, 급하게 허리에 묶은 밧줄을 풀고 상부에서 내려간다. 미노도 뒤이어 내려간다. 이르는 트레일러 왼쪽의 사다리를, 미노는 오른쪽의 사다리를 끌어안는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지다 둘을 삼킬 것처럼 울린다. 이르 (큰 소리로) 미노, 꽉 잡아! 미노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응! 터널. 암전. 과거 미노 아저씨! 트레일러 위로 불이 들어온다. 미노, 앞서 핸들에 매달아 두었던 작은 가방을 끌어안은 채 움직이지 않는 트레일러 상부에 앉아 있다. 관객석을 향해 브로커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중이다. 미노 아저씨, 우리 엄마랑 통화해 봤어요? 우리 엄마 목소리 어때요? 저는 못 들어 봤거든요. 집에 전화기가 없어서요. 그래도 편지로 자주 이야기했어요. 제 이름이 그대로라서 다행이래요. 트레일러 아래로는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르, 무대 상수에서 등장한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미노 할머니가 엄마한테 그랬나 봐요, 이름 바꿔버릴 거라고. 근데 안 바꿨어요. 우리 할머니는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왜 안 바꿨을까요? 이르, 이윽고 누군가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온 힘을 다해 도망치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잡히고 만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이르, 엎드린 채 몸을 웅크린다. 여러 발들에게 걷어차인다. 미노 제 이름, 원래는 까미노로 지으려고 했대요. 길 말이에요. 한참 이르를 짓밟고 때리던 무리가 떠난다. 이르, 겨우 몸을 일으켜 걷는다. 무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문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이르 (갈라지는 목소리로)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이르의 걸음이 느려진다. 이르 저, 물 한 잔만. 한 모금만…. 이르, 끝내 주저앉고 만다. 그때 살짝 열리는 문 하나. 틈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이르를 비춘다. 손 하나가 컵을 내민다. 미노 길은, 어디서든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이르, 컵을 받아 들고 허겁지겁 물을 마신다. 문이 닫힌다. 미노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랬어요. 이르, 비운 컵을 문 앞에 내려놓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닫힌 문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느리지만 보다 힘찬 걸음걸이. 미노 아저씨.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요? 이르, 무대를 거닐다 다시 기차 곁으로 돌아온다. 트레일러 위로 오를 기회를 엿보던 찰나, 미노의 말을 엿듣는다. 미노 우리가 아니라, 나만 가요? 이르 (불쑥 끼어들며) 쟤 이틀도 못 버틸걸요. 미노, 이르를 내려다본다. 이르 저런 애들 많이 봤어요. 금방 떨어져 죽어요. 아니면 터널한테 잡아먹히든가. 미노 (다시 관객석을 향해) 나 혼자 가요? 이르 (다급하게) 저 이거 탄 적 많아요. 저번엔 소노라까지도 갔어요.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미국이에요. 저랑 가면 쟤 미국 도착할 수 있어요. 미노 (이르를 향해) 내 이름은 미노야. 이르 쟤가 미국 가야 아저씨도 돈 받는 거죠? 그렇죠? 미노 미노라니까. 이르 제가 같이 탈게요. 보름이면 가요. 미노 …같이? 이르 같이. 같이 타게 해 주세요. 물이랑 먹을 것도 조금만요. 이르, 간절하게 관객석을 바라본다. 미노,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르의 표정이 환해진다. 금세 트레일러 상부에 오르는 이르. 미노, 이르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미노몇 살이야? 이르 열다섯. 미노 이름은? 이르 …이르. 미노 ‘걷다’ 할 때 그 이르? 이르, 고개를 끄덕인다. 미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암전. 다시 현재 터널에서 빠져나온 기차의 소리는 처음과 같이 옅다. 불 들어오면 두 아이, 여전히 사다리를 꼭 끌어안고 있다. 이르, 조심스럽게 트레일러 상부로 기어 올라가 반대쪽에 있던 미노에게 손을 뻗는다. 미노, 이르의 손을 잡고 올라온다. 이르, 미노의 허리부터 핸들에 묶는다. 매듭이 튼튼한지 수차례 확인하고 나서야 제대로 앉는다. 미노, 그 모습을 지켜본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르 (허리를 묶으며, 조금 들뜬 목소리로) 터널 하나. 이제 하나 남았어. 미노, 말이 없다. 이르 왜 그래? 배고파? 미노 아니. 이르가방에 크래커 조금 남았을 거야. 물도. 그거 먹어. 미노 괜찮아. 이르 곧 도착하잖아. 아낄 필요 없어. 미노 배 안 고파. 이르 그럼 왜 그래? 설마 너, 진짜 아쉬워서 그래? 미노 (말 돌리며) 그 코요테 아저씨는 왜 멕시코에 사는 걸까? 미국을 잘 아는 것 같았는데. 이르 (가방 속에서 물병을 꺼내 내밀며) 미노. 미노 (받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 미국이 그렇게 멋지고 살기 좋은 곳이면, 그 아저씨는 왜 계속 코요테로 사는 걸까? 이르, 미노를 흘겨보다 물을 마신다. 이르 (물병을 가방에 넣으며) 모두가 같은 꿈을 꾸지는 않아. 미노 그럼 코요테들은 무슨 꿈을 꾸지? 이르 아무 꿈도 안 꿀걸. 미노 왜? 이르 머리에 든 게 돈밖에 없으니까. 미노 너는 코요테 아저씨가 싫어? 이르 응. 미노 나는 좋았는데. 이르 그 아저씨가 잘해 줬어? 미노 아니. 이르 그런데 왜? 미노 코요테니까. 이르 브로커들이 멋있어 보이디? 미노 브로커를 코요테라고 부르는 게 멋있어 보이는 거야. 이르 그게 그거지. 미노 엄연히 달라. 다시 덜컹거리는 트레일러. 이르, 경직돼 핸들을 붙든다. 흔들림이 잦아들자 허리 매듭을 확인한다. 미노, 아무렇지 않게 말을 잇는다. 미노 진짜 코요테들은 평생 가족들이랑 무리 짓고 산대.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댔어. 이르 사람보다 낫네. 미노 그치? 나도 코요테로 태어날걸 그랬나 봐. (사이) 너, 진짜 코요테 본 적 있어? 이르 아니. 미노 나도. 이르 늑대랑 비슷하게 생겼대. 미노 그건 알아. 이르 그럼 대충 짐작되잖아. 미노 늑대도 직접 보진 못했단 말이야. 이르 직접 봤으면 아마 밥이 됐을 거다. 대화가 끊긴다. 이르, 미노의 눈치를 본다. 이르 (달래려는 듯이) 넌 운이 좋은 애니까 늑대를 만난 적이 없는 거야. 걔네 엄청 사납댔어. 미노 정말? 이르 그래. 미노 (시무룩해져서) 그럼 평생 못 보겠네. 다시 정적. 기차 소리. 이르, 떠오른 것이 있는 듯 미노의 어깨를 붙잡는다. 이르 미노, 늑대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어. 미노뭔데? 이르 상상. 미노 상상? 이르늑대를 봤다고 상상하는 거야. 미노 (실망하며) 뭐야. 이르 처음엔 그렇게 시작해야 돼. 자, 말해 봐. 늑대에 대해서 아는 거 뭐 있어? 미노 음… 털이 많아. 이르 그렇지. 미노 갈색. 그리고 검정색. 회색도. 이르 배 쪽에 있는 털은 흰색이랬어. 미노 (점점 신이 나서) 꼬리가 복실복실해. 이르 귀는 삼각형이야. 미노 주둥이가 길어. 이르 눈이 날카로워. 미노 밤엔 막 등불처럼 빛나고. 이르 엄청 빨라. 미노 그리고 높은 소리로 울어. 두 아이들, 동시에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내다 웃음이 터진다. 이르, 재빠르게 표정을 굳힌다. 이르 아직 안 끝났어. 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다 상상했어? 미노 응. 이르 눈 감아 봐. 미노, 눈을 감는 척하다가 슬쩍 뜬다. 이르, 미노의 눈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덮는다. 이르 아까 말한 걸 되새겨 봐. 털이랑, 꼬리랑, 귀, 주둥이, 눈…. 미노, 얼굴을 찌푸리며 머릿속으로 늑대를 만들어 낸다. 이르 어때? 그려져? 미노 …늑대다! 이르 그래. 늑대는 어디 있어? 미노 끝없이 펼쳐진 들판. 이르 거기서 뭘 하는데? 미노 달리고 있어. 바람을 거스르면서. 이르 맞아. 늑대는 달리는 중이야.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온몸의 털이 춤을 추지. 갈색, 검정색, 회색…. 여러 색들이 한 데에 섞여서 오묘한 빛깔을 만들어 내고 있어. 그렇게 달리다 햇살 아래 멈춰 서면, 털 한 올 한 올이 타오르는 것처럼 번쩍여. 미노, 탄성을 터트린다. 이르 늑대는 왜 멈췄을까? 미노 어, 사냥을 하려고? 이르 그렇지. 털만큼이나 번쩍이는 매서운 눈이 사슴을 발견했거든. 미노 사슴아, 도망가! 이르 쉿. 사슴은 풀을 뜯느라 바빠. 늑대가 자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고 있다고. 늑대는 몸을 낮춰서 살금, 살금, 살금, 다가가다가…. 이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큰 소리로 미노를 놀랜다. 미노,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허리에 묶은 밧줄이 미노를 다시 트레일러 위로 앉힌다. 미노 (꿈에서 깬 듯이) 나, 늑대를 봤어. 이르 그래. 그렇게 상상하는 거야. 미노,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미노 진짜로 봤어. 이르 알았어. 진짜 본 거 맞아. 미노 코요테는? 코요테도 볼 수 있을까? 이르 그럼. 미노 코요테가 될 수도 있고? 이르 뭐든 할 수 있어. 미노, 한껏 신난 모습으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다시 상상 속에 빠진다. 이르, 미노를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다. 날이 밝기 시작한다. 마지막 터널이 안개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르, 터널을 발견하고 미노의 옆구리를 찌른다. 미노, 얼굴에서 손을 떼어 낸다. 이르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터널. 두 아이들, 밧줄을 풀기 시작한다. 겹쳐 묶은 매듭이 잘 풀리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손이 미끄러지기도 한다. 이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터널을 보며 허겁지겁 매듭을 푼다. 이윽고 트레일러 측면으로 내려가 사다리에 몸을 밀착시킨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르 (소리친다.) 미노! 꽉 잡아야 해!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르, 위를 올려다보자 막 매듭에서 풀려난 미노가 몸을 일으키고 있다. 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이르 뭐 해! 내려가! 미노, 이르의 외침에도 꿈쩍 않고 트레일러 위에 꼿꼿하게 서서 터널만을 바라본다. 이르 너 미쳤어? 얼른 내려가라니까! 미노 (나직하게) 나, 정말 됐어. 이르 미노! 내려가! 미노 코요테가 됐어. 이르 미노! 미노, 터널을 끌어안으려는 듯 양팔을 벌린다. 이르, 눈을 질끈 감는다. 기차의 소리가 귓등을 때린다. 마지막 터널. 암전. 기차 소리가 끊긴다. 침묵 끝에 헤드라이트를 닮은 불이 트레일러 위를 비춘다. 미노가 앉아 있다. 미노, 널브러진 밧줄을 만지작거리며 노래한다. La Llorona의 멜로디. 미노 고달픈 삶에 길을 잃고도 사랑이 그대로 그대로 머물까? 눈을 가린 여인아, 뒤늦은 후회로 눈을 가린 여인아, 손을 내밀어도 죽음의 기차 위에 선 아인 잡을 수 없었다네 계절이 가도 푸른 소나무 그대로 머물 수밖에 마지막 기차 소리 점점 커졌다가, 불 들어옴과 동시에 서서히 잦아들어 옅게 깔린다. 이르, 다급하게 사다리를 타고 트레일러 위로 올라간다. 미노, 멀쩡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르 너… 너 괜찮아? 미노, 살짝 웃어 보이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이르, 혼란스러운 표정. 이르 너 정말로-. 미노 이르, 미국이야. 두 아이들, 얼마 남지 않은 철길을 멍하니 응시한다. 미노 나 가방 좀. 이르, 얼떨떨하게 사다리에 묶여 있던 가방을 풀어 미노에게 건넨다. 미노, 망설이다가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지도를 꺼내 펼치자 엄마의 사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르에게 내민다. 이르, 어리둥절하게 받아든다. 미노 뒤에 봐. 이르, 사진을 뒤집는다. 낯선 주소가 쓰여 있다. 기차, 서서히 멈춘다. 이르, 급하게 짐을 챙긴다. 이르내려야 돼. 미노 이르. 이르 지금 안 내리면 붙잡혀. 얼른 내려야 돼. 지도와 사진을 가방 속에 쑤셔 넣고 사다리를 타는 이르. 한 발짝씩 아래로 내딛다 끝내 뛰어내린다. 두 발이 땅에 닿는다. 이르 미노. 얼른 내려와. 미노 이르, (긴 사이) 난 못 내려. 이르의 얼굴에 서서히 깨달음이 번진다. 이르 …언제부터? 미노 그게 중요해? 이르, 대답하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한다. 미노 있잖아,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상상하는 거야. (트레일러 끝 모서리에 걸터앉는다.) 이르, 나에 대해서 아는 거 뭐 있어? (대답이 없자) 어서. 이르 (훌쩍이며 천천히 나열한다.) 치아파스랑, 또띠야랑… 할머니. 까미노. 열다섯 살. 미노 엄마도. 이르, 미노의 가방에서 사진을 꺼낸다. 사진과 미노를 번갈아 본다. 미노 찾아갈 수 있겠지? 이르, 사진을 품속에 넣는다. 미노 자. 이제 눈 감아 봐. 이르,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미노 어때? 그려져? 고개를 젓는 이르. 미노 아니야. 할 수 있어. (사이) 하나씩, 하나씩. 멈추지 말고. 이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발걸음을 옮긴다. 기차 주변을 빙 둘러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한다. 미노, 이르를 지켜본다. 미노 모르는 게 있을 땐 채워 넣으면 돼. 늑대가 되어서, 코요테가 되어서. 이르 (중얼거린다.) …미노가 되어서. 이르, 멈춰 서서 품에서 사진을 꺼낸다. 뒷면에 적힌 주소와 눈앞의 집을 번갈아 본다. 도착이다. 미노, 허공에 대고 문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이르, 따라 문을 두드린다. 똑, 똑, 똑. 미노, 트레일러 상부에서 일어난다. 미노 (기대에 찬 얼굴로) 누구세요? 이르, 한참의 고민 끝에, 이르 저는, 암전. 막.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거친 입’ 라디오 DJ 돈 이무스, 누구보다 따듯했던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거친 입’ 라디오 DJ 돈 이무스, 누구보다 따듯했던

    입도 거칠고 음탕한 농담을 즐겼지만 좋은 일도 많이 했던 미국 라디오 진행자 돈 이무스가 27일(이하 현지시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50년 가까이 여러 라디오 방송에서 ‘이무스 인 더모닝’을 진행해 뉴욕의 아침을 열었던 그가 성탄 전야에 입원한 텍사스주 베일러 스콧 앤드 화이트 병원에서 사흘 만에 25년을 함께 한 부인 데이드레, 아들 와이어트(21)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일간 USA 투데이가 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아들, 네 딸이 있다. 재커리는 암과 투병하는 아이들, 백혈병과 싸우거나 이겨낸 아이들을 돕는 이무스 랜치 프로그램으로 처음 이무스와 인연을 맺었는데 당시 열 살이었다. 차츰 가까워져 둘째 아들로 입양된 재커리는 미군으로 해외 근무 중이어서 귀국 길에 올랐다.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난 이무스는 본명이 존 도널드 이무스 주니어로 캘리포니아와 뉴욕, 클리블랜드에서 마이크를 잡았는데 늘 불뚝거리는 성정 때문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987년까지 플로리다주에서 알코올 재활 치료를 받고 약물 중독을 이겨내 1993년 뉴욕 WFAN 방송에서 ‘이무스 인 더모닝’을 시작하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3년 뒤 MSNBC에서도 동시에 진행하면서 명성에 날개를 달았다. 논란과 비난을 마다 하지 않은 탓에 그의 프로그램은 워싱턴 정가의 힘있는 인물들과 브로커들이 많이 찾았다. 존 매케인, 존 케리, 팀 러서트, 해리 코닉 주니어, 존 멜렌캠프 등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인물들이 그의 손님들이었다. 두 방송국 동시 진행은 2007년까지 이어졌지만 그 해 룻거스 대학의 여자농구 선수들을 “거친 여자애들”이라거나 “굼뜬이들”이라고 폄하해 평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잡지 타임이 뽑는 25명의 영향력 있는 미국인에 선정됐던 그는 거듭 “생각이 없었고 바보 같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불가촉 천민(pariah) 대접을 받았다. WFAN과 MSNBC 두 방송 모두에서 잘렸고, 당초 CBS와도 계약이 돼 있었지만 이를 빌미로 없던 일로 하자 그는 CBS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법정 밖 화해로 4000만 달러(약 464억원)를 받아냈다. 이와 별도로 룻거스 대학 선수 키아 본이 그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가 나중에 취하했다. 뉴욕의 다른 방송국에 취업한 뒤에도 이듬해 선출직 관료에 대한 얘기를 공유하거나 미국프로풋볼(NFL) 코너백 애덤 패크맨 존스를 인종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등 잡음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방송에서 지난해 초까지 계속 일했다. 2009년 전립선암 2기라고 고백한 그는 암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이라크전쟁 부상 장병을 돕는 자선재단 활동을 열심히 했다. 영유아 돌연사 증후군을 연구하는 CJ 재단을 위해 4000만 달러 모금에 앞장섰고, 뉴멕시코주의 목장을 경영해 죽어가는 아이들을 돕고, 라디오쇼 게스트들을 곧잘 기금 모금에 유인했다. 또 뉴저지주 해켄색 대학병원에 본부를 둔 ‘내일의 어린이 기금’을 위해 3000만 달러를 거뒀는데 지금의 돈 이무스-WFAN 소아과 센터 전신이다. 폭스뉴스 채널의 스타이자 동료 라디오 진행자인 션 해니티는 “가슴이 찢어진다. 진짜 돈 이무스를 난 잘 아는데 부인과 아들, 입양한 둘째 아들까지 존중했고 따듯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암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했던 일들은 영원할 것이다. 그가 내게 보냈던 모든 이메일은 날 웃게 만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5000만원 체납? 200만원에 해결”… 국세 브로커 판친다

    “5000만원 체납? 200만원에 해결”… 국세 브로커 판친다

    5억 미만일 땐 5년 지나면 징수 못 해 소액 압류재산 털어버리면 시효 시작 경기 나빠 문 닫은 자영업자들 ‘타깃’ 재산 빼돌린 악성 체납자도 악용 가능 국세청, 브로커 신종 수법에 속수무책서울에 사는 자영업자 A씨는 최근 전 거래처 사장 B씨로부터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폐업하고 세금 5000만원가량을 체납해 골치를 앓고 있었는데 B씨가 “비슷한 처지였다가 벗어났다”며 휴대전화 번호 하나를 건넸다. A씨가 이 번호로 연락하니 상대방은 “200만원만 주면 해결해 주겠다”고 말했다. A씨가 못 믿자 상대방은 “국세청이 압류한 계좌에 있는 돈을 세금으로 내고 계좌를 해지하면 5년 뒤 세금이 싹 사라진다”며 “알아서 처리해 주겠다”고 장담했다. 22일 세무사들과 자영업자들에 따르면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폐업했거나 사정이 어려워 세금을 체납한 자영업자를 타깃으로 한 ‘국세 소멸시효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세무사는 “경기가 나빠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가 많은데 동종업계 네트워크를 타고 브로커를 소개받는다”며 “많게는 1억~2억원, 대부분 5000만원 미만 체납자에게 세금을 없애 주는 대가로 약 200만원을 요구한다”고 귀띔했다. 브로커의 수법은 국세징수권 소멸시효를 악용하는 방식이다. 세금 5억원 이상이면 납부 기한으로부터 10년, 5억원 미만이면 5년이 지나면 국세청이 세금을 걷을 수 없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다만 국세청이 압류한 재산이 있으면 소멸시효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압류된 재산이 없는 날로부터 5년 또는 10년이 지나야 세금이 사라진다. 브로커들은 체납자 상당수가 압류된 재산이 적다는 점을 노렸다. 서울 여의도의 한 세무사는 “체납액은 수천만원인데 압류 재산은 기껏해야 수백만원의 예금이나 보험인 체납자가 많다”며 “몇 백만원만 내면 수천만원의 세금을 안 낼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종 수법인 데다 알음알음 음성적으로 퍼져 국세청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체납 징수가 고액 체납자 중심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 방식이어서 이런 브로커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새로운 편법 세무 컨설팅이라 현재로서는 처벌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산을 일부러 숨긴 악성 체납자들이 이 수법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리 배우자나 자녀 명의로 재산을 빼돌린 체납자에게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안 낼 면죄부가 된다. 한 세무사는 “국세행정 시스템에서 소멸시효가 다 돼 가는 체납자를 추려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게 조치할 수 있는데 국세청이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은 체납액 5000만원 이상 체납자의 경우 지방국세청에서 따로 관리할 수 있지만 행정력의 한계 때문에 고액 체납자부터 조사하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체납자 대부분은 진짜로 돈이 없어 어려운 사람들인데 이들의 명단을 다 뽑아 소멸시효가 끝나지 못하게 하는 건 정상적인 국세행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멸시효가 납세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이를 악용해 체납자로부터 돈을 받고 정부가 정상적으로 징수할 세금까지 못 걷게 만드는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기용(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악의적으로 소멸시효를 이용해 세금을 안 내는 편법을 쓴 납세자에게는 소멸시효를 중단시키거나 더 연장하도록 세법을 바꿔야 한다”며 “브로커에 대한 처벌을 비롯해 국세행정의 보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5000만원 세금 안 내려면 200만원만 주세요”…‘국세 소멸시효 브로커’ 활개

    “5000만원 세금 안 내려면 200만원만 주세요”…‘국세 소멸시효 브로커’ 활개

    서울에 사는 자영업자 A씨는 최근 전 거래처 사장 B씨로부터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폐업하고 세금 5000만원가량을 체납해 골치를 썩는데 B씨가 “비슷한 처지였다가 벗어났다”며 휴대전화번호 하나를 건넸다. A씨가 이 번호로 연락하니 상대방은 “200만원만 주면 해결해 주겠다”고 말했다. A씨가 못 믿자 상대방은 “국세청이 압류한 계좌에 있는 돈을 세금으로 내고 계좌를 해지하면 5년 뒤 세금이 싹 사라진다”며 “알아서 처리해 주겠다”고 장담했다. 22일 세무사들과 자영업자들에 따르면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폐업했거나 사정이 어려워 세금을 체납한 자영업자를 타깃으로 한 ‘국세 소멸시효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세무사는 “경기가 나빠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가 많은데 동종업계 네트워크를 타고 브로커를 소개받는다”며 “많게는 1억~2억원, 대부분 5000만원 미만 체납자에게 세금을 없애주는 대가로 약 200만원을 요구한다”고 귀띔했다. 브로커의 수법은 국세징수권 소멸시효를 악용하는 방식이다. 세금 5억원 이상이면 납부 기한으로부터 10년, 5억원 미만이면 5년이 지나면 국세청이 세금을 걷을 수 없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다만 국세청이 압류한 재산이 있으면 소멸시효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압류된 재산이 없는 날로부터 5년 또는 10년이 지나야 세금이 사라진다. 브로커들은 체납자 상당수가 압류된 재산이 적다는 점을 노렸다. 서울 여의도의 한 세무사는 “체납액은 수천만원인데 압류 재산은 기껏해야 수백만원의 예금이나 보험인 체납자가 많다”며 “몇백만원만 내면 수천만원의 세금을 안 낼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종 수법인 데다 알음알음 음성적으로 퍼져 국세청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체납징수가 고액 체납자 중심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 방식이어서 이런 브로커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새로운 편법 세무 컨설팅이라 현재로서는 처벌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산을 일부러 숨긴 악성 체납자들이 이 수법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리 배우자나 자녀 명의로 재산을 빼돌린 체납자에게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안 낼 면죄부가 된다. 한 세무사는 “국세행정 시스템에서 소멸시효가 다 돼가는 체납자를 추려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게 조치할 수 있는데 국세청이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은 체납액 5000만원 이상 체납자를 지방국세청에서 따로 관리할 수 있지만 행정력의 한계 때문에 고액 체납자부터 조사하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체납자 대부분은 진짜로 돈이 없어 어려운 사람들인데 이들의 명단을 다 뽑아 소멸시효가 끝나지 못하게 하는 건 정상적인 국세행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멸시효가 납세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이를 악용해 체납자로부터 돈을 받고, 정부가 정상적으로 징수할 세금까지 못 걷게 만드는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기용(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악의적으로 소멸시효를 이용해 세금을 안 내는 편법을 쓴 납세자에게는 소멸시효를 중단시키거나 더 연장하도록 세법을 바꿔야 한다”며 “브로커에 대한 처벌을 비롯해 국세행정의 보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방글라 가정부 “사우디 주인이 성학대…끓는 기름으로 고문”

    방글라 가정부 “사우디 주인이 성학대…끓는 기름으로 고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가정부가 고용주에게 성 학대와 고문을 당했다고 호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와 알자지라 등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여성 수미 아크터(25)가 지난달 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 사실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아크터는 해당 영상에서 “주인이 나를 때리고 고문했다. 보름 동안 감금하고 끓는 기름에 내 팔을 집어넣었다”며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제발 도와달라”고 눈물을 쏟았다. 또 고용주에게 성 학대까지 당했다면서 “고문을 당한 곳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고 구조를 요청했다. 그녀는 한 달 전에도 정부와 인력소개소에 본국으로 귀환할 뜻을 밝혔지만 부정적 답변을 얻었다며 도움을 구한 바 있다. 그러나 아크터가 이미 사망했다는 가짜뉴스가 나돌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아크터의 남편 시라줄 이슬람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내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방글라데시 구호단체 BRAC은 아크터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고용주와 함께 있으며 논란 후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그녀가 한 달여 만에 다시 피해 사실을 폭로하자, 방글라데시 시민사회가 들고일어났다. AFP통신은 지난 1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아크터 송환과 함께 해외 근로 여성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파문이 일자 방글라데시 정부는 아크터를 학대하고 다른 브로커에게 팔아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된 채용회사를 단속하는 한편, 국영 인력수출사무소에 그녀의 송환을 지시했다. 1991년 이후 외화벌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넘어간 방글라데시 여성은 약 30만 명이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본국으로 송금하는 외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많은 방글라데시 여성이 열악한 처우와 성폭력을 포함한 신체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브로커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일도 다반사다.사우디아라바리아에 이주노동을 갔다 지난달 말 귀국한 시리나 베굼(29)은 8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요리만 하면 된다는 말을 믿고 떠났지만, 가족 6명의 청소와 세탁 등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다. 월급도 처음 약속과 달리 235달러(약 27만 원) 수준이었다”고 하소연했다. 또 “매일 14~15시간씩 쉬지 않고 일했다. 지팡이로 맞기 일쑤였고 언어도 통하지 않아 매우 힘들었다”고 밝혔다. 병든 남편과 두 아이의 생계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 노동을 하러 갔던 그녀는 가족 중 장남에게 성폭행까지 당했다고 털어놨다. 살아 돌아온 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함께 송환된 나즈마 베굼(42)은 죽어서야 고국 품에 안길 수 있었다. 현지언론은 병원 관리직을 약속받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던 이 여성이 가정부로 일하다 고용주의 학대에 시달려 사망했다고 전했다. BRAC에 따르면 올해만 48명의 방글라데시 여성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英 ‘트럭참사’ 베트남 청년들, 고가 ‘VIP 패키지’였는데…

    [여기는 베트남] 英 ‘트럭참사’ 베트남 청년들, 고가 ‘VIP 패키지’였는데…

    “아들을 편안한 4인용 승용차에 태워 영국으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하지만 아들은 안락한 승용차가 아닌 냉동 컨테이너 트럭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난 1일 냉동 화물트럭에서 발견된 39구의 시신이 전원 베트남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이들의 밀입국 경로에 이목이 집중됐다. 조사 결과, 이들 중 상당수가 거액의 ‘VIP 패키지’에 속아 밀입국을 시도하다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드러났다. 베트남 현지 언론 브앤익스프레스는 최고 5만 달러(한화 5800만원)에 달하는 ‘VIP 패키지’는 신속, 편안, 안전을 보장하는 밀입국 옵션으로 이는 일반 육로를 이용한 1만5000달러보다 월등히 비싼 가격이라고 전했다. 18살에 불과한 띠엡, 그의 가족은 1만3000달러(한화 1510만원)만 내면 아들을 안전하게 영국까지 보내준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었다. 4인용 승용차를 타고 프랑스를 경유해 영국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들은 프랑스에서 1년을 머물렀고, 마지막으로 영국에 무사히 도착하면 잔금을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아들은 영영 소식이 끊겼다. 안락한 4인용 승용차 대신 냉동 트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가족들은 “트럭으로 이동하는 줄 알았다면 절대로 그를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소중한 아들을 잃고, 큰 빚만 남은 상태다. ‘VIP 패키지’에 속아 프랑스나 독일까지 오게 된 베트남 청년들은 영국 땅을 밟기 위해 컨테이너에 숨는 제안을 거부할 방도가 없었다. 더구나 사전에 브로커들의 말을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냥 믿고 따르는 수밖에. 게다가 돈이 없어 ‘VIP 패키지’를 이용하지 못할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들은 트럭 아니면 맨발로 숲을 뚫고, 산을 넘어야 한다. 베트남 밀입국자들은 이런 저렴한 루트를 ‘잔디(Grass) 패키지'라고 부르는데, 주로 러시아나 중국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 중 다음 여정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장, 농장, 식당 등에서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성매매에 동원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새로운 삶’은 거부하기 어려운 욕망이다. 거금을 내고, 고생을 해서라도 끝에 가면 충분한 ‘대가’를 부여받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틴다. 응웬 반 흥도 꿈을 향해 영국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지난 2018년 베트남을 떠났다. 일단1만7000달러를 내고 러시아로 향했고, 가족들이 진 은행 빚으로 프랑스로 넘어갔다. 몇 주 전 그는 영국으로 가는 마지막 비용을 엄마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엄마는 “그 후 아들은 영영소식이 없다”고 전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jongsil74@naver.com
  • 檢, 조국 동생 구속영장 재청구… 강제집행면탈 혐의 등 추가

    檢, 조국 동생 구속영장 재청구… 강제집행면탈 혐의 등 추가

    내일쯤 영장심사… 조국 동생 출석할 듯 정경심 구속 후 3차 조사… 김경록도 불러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동생 조모 전 웅동학원 사무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1차 영장이 기각된 지 20일 만에 재청구됐다. 검찰은 강제집행면탈과 범인도피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구속 이후 3차 조사하며 남편인 조 전 장관과의 공모 혐의를 규명하는 데 주력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고형곤)는 29일 조 전 국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강제집행면탈 ▲배임수재·업무방해 ▲증거인멸교사·범인도피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조 전 국장은 2016~2017년 웅동중 교사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에게 돈을 받고 시험 문제와 답안지를 넘겨준 혐의를 받는다. 또 수사가 시작되자 채용비리 브로커들에게 해외 도피를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허위공사를 근거로 공사대금 채권을 확보하고 2006년과 2017년 웅동학원을 상대로 허위소송을 벌여 100억원대 손해를 입힌 혐의도 있다. 조 전 국장은 2006년 소송에서 승소한 뒤 채권을 부인에게 넘기고 2009년 이혼했는데 웅동학원 이사장인 부친이 주지 못한 공사대금은 기술보증기금이 대신 갚았고 그는 연대 채무를 졌다. 검찰은 조 전 국장이 해당 채권을 인수한 한국자산관리공사의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위장 이혼한 것으로 보고 강제집행면탈 혐의를 추가했다. 다만 검찰은 최근 새로 포착한 금품수수 혐의는 이번 영장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이 혐의와 관련된 수사는 별도로 이어 나갈 계획이다. 조 전 국장의 구속 여부는 31일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결정된다. 이번에도 건강 문제가 영장 발부 여부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앞서 1차 영장이 기각될 때 법원은 허리 디스크 등을 호소한 조 전 국장의 건강 상태를 참작했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영장 기각 후인 지난 21일 조 전 국장은 목에 보호대를 차고 휠체어에 앉은 채 검찰에 출석하기도 했다. 조 전 국장 측은 “팔다리 마비 증상이 있어 지난주 검찰 조사 이후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지만 실질심사를 포기했던 1차 영장 청구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출석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이날 정 교수와 조 전 장관 가족의 자산관리인인 한국투자증권 프라이빗뱅커(PB) 김경록씨를 불러 조사했다. 정 교수 소환 조사는 지난 24일 구속 이후 세 번째다. 검찰은 한두 차례 정 교수를 더 조사한 뒤 조 전 장관 소환 일정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가 대체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조사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교사 채용에 1억 부른 조국 동생… 2000만원 깎아주며 설득도

    교사 채용에 1억 부른 조국 동생… 2000만원 깎아주며 설득도

    브로커 통해 지원자 물색… 단계별 수수 시험 출제 동양대 “공식적 의뢰 안 받아”웅동중학교 교사 채용 비리에 연루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동생 조모씨가 1차 필기시험뿐 아니라 2차 실기시험과 면접시험 문제까지 돈을 받고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와 브로커들은 “금액이 너무 크다”며 채용 청탁을 망설이는 지원자 부모에게 금액을 낮춰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설득하기도 했다. 16일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웅동학원 채용비리 관여 브로커 박모씨와 조모씨의 공소장을 보면 조 전 장관의 동생 조씨는 실질적으로 채용 비리를 주도했다. 2015년 동생 조씨는 “1억원에서 1억 5000만원 정도의 돈을 주고서라도 정교사로 채용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며 “그 돈을 받아다 주면 소개료를 주겠다”고 브로커 박씨에게 제안했다. 이에 박씨는 또 다른 브로커 조씨를 통해 채용 대상자를 물색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필기시험 문제지와 답안지뿐 아니라 수업실기시험 과제와 면접시험 질문 내용도 함께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인 부모에게 채용 단계에 따라 착수금과 성공 보수금을 받았다. 해당 지원자는 최종 합격해 채용됐다. 필기시험 문제 출제 의뢰나 보관 등은 조 전 장관의 어머니인 박모 웅동학원 이사장 권한으로, 동생 조씨는 박 이사장 집에서 문제를 입수한 것으로 적시됐다. 이와 관련, 검찰은 웅동중 내부 문건을 통해 필기시험 출제기관으로 정경심 교수가 재직 중인 동양대가 있는 것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동양대는 검찰에 “공식적으로 웅동중에서 채용시험 문제 출제를 의뢰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액이 크다”고 망설이는 지원자 부모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정황도 있다. 2016년 말 또 다른 지원자를 물색하던 박씨는 “(채용 금액으로) 1억원이 너무 크다”는 한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동생 조씨와 협의를 한다. 이후 금액을 착수금 1000만원, 성공 보수금 7000만원으로 낮춰 해당 부모를 설득했다. 앞선 15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고형곤)는 브로커 박씨와 조씨를 배임수재·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동생 조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실기·면접 문제까지 빼돌린 ‘조국 동생’··· 브로커 공소장에 실질적 지휘자로 적시

    실기·면접 문제까지 빼돌린 ‘조국 동생’··· 브로커 공소장에 실질적 지휘자로 적시

    채용 청탁 망설이는 지원자 부모에게 금액 낮춰주기도채용비리 감추기 위해 브로커들에게 도피 지시 정황도웅동중학교 교사 채용 비리에 연루된 조국 전 장관의 동생 조모씨가 1차 필기시험뿐 아니라 2차 실기시험과 면접시험 문제까지 돈을 받고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브로커’로 알려진 박모씨와 또 다른 조모씨의 공소장에서 동생 조씨는 실질적인 채용비리 지휘자처럼 적시돼 있다. 이들은 “(1억원이라는) 금액이 너무 크다”고 채용 청탁을 망설이는 지원자 부모에게는 금액을 낮춰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설득하기도 했다.16일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웅동학원 채용비리에 관여한 브로커 박모씨와 조모씨의 공소장에 따르면 동생 조씨는 브로커인 박씨와 또 다른 조씨에게 지시해 실질적으로 채용 비리를 주도한 인물로 적시돼 있다. 지난 2015년 조씨는 “웅동중학교 정규직 사회 교사를 채용해야 하는데, 1억 원에서 1억 5000만원 정도의 돈을 주고서라도 정교사로 채용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며 “그 돈을 받아다 주면 소개료를 주겠다”고 박씨에게 먼저 제안했다. 이에 박씨는 브로커 조씨를 통해 채용대상자를 물색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1차 필기시험 문제지와 답안지뿐 아니라 2차 수업실기시험 과제와 면접시험 질문 내용도 함께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지원자 부모들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제안을 받아들인 부모에게 이들은 채용 단계에 따라 착수금과 성공보수금을 받았다. 이들은 1차와 2차 문제들을 순차적으로 부모에게 알려줬고, 해당 채용자는 최종 합격해 채용됐다. 이중 1차 필기시험의 문제 출제 의뢰나 보관 등은 조 전 장관의 어머니인 박모 웅동학원 이사장의 권한인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되어 있다. 웅동학원은 채용절차의 공정성과 사전 시험문제 유출 방지를 위해 이사장에게 이 권한을 부여했다고 한다. 최근 검찰은 모집계획 등 내부문건에서 시험문제 출제기관으로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근무하는 동양대가 포함된 사실을 포착해 수사 중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1차 필기시험 문제 출제를 의뢰한 것은 박 이사장이었다. 박 이사장은 출제자 측으로부터 문제지와 답안지도 직접 건네 받아 보관했다. 동생 조씨는 박 이사장의 집에서 1차 필기시험 문제지와 답안지를 입수해 채용지원자에게 건넸다. “금액이 크다”고 망설이는 지원자 부모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정황도 공소장에 담겨 있다. 2016년 말 또 다른 지원자를 물색하던 브로커 박씨는 “(채용 금액으로) 1억원이 너무 크다”는 한 지원자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동생 조씨와 협의를 한다. 이후 금액을 착수금 1000만원, 성공보수금 7000만원으로 낮춰 해당 부모를 설득했다. 동생 조씨는 채용비리 사실을 숨기기 위해 브로커들을 도피시킨 혐의도 받는다. 조씨는 지난 8월 웅동중학교 교사 채용비리에 대한 보도가 나오자 브로커들에게 “잠잠해 질 때까지 필리핀으로 나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또 “해당 언론보도가 사실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허위 사실확인서를 작성하게 하기도 했다. 조씨는 350만원의 도피자금을 건네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고형곤)는 지난 15일 브로커 박씨는 배임수재, 업무방해, 범인도피 혐의로, 브로커 조씨는 배임수재와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브로커 박씨는 지원자 부모 2명으로부터 총 2억 1000만원을 받아 일부를 수수료로 챙겨 조 전 장관 동생 조씨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브로커 조씨는 채용비리 1건에 관여해 8000만원을 받아 수수료를 떼고 동생 조씨에게 건넨 혐의다. 검찰은 채용비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만큼 동생 조씨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은 동생 조씨에 대해 배임수재·업무방해·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지난 9일 조씨의 건강상태 등을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동생 조씨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조국 동생이 빼돌린 웅동학원 교사 채용 시험문제 동양대서 출제

    조국 동생이 빼돌린 웅동학원 교사 채용 시험문제 동양대서 출제

    검찰, 정경심 교수 등 다른 가족 관여 여부 조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동생 조모(52)씨가 뒷돈을 받고 빼돌린 것으로 조사된 웅동학원 교사 채용 시험문제는 조국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가 근무하는 동양대에서 출제한 것으로 검찰이 보고 있다. 검찰은 조씨 수사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하고 정경심 교수 등 학교법인 운영에 관여한 다른 가족들이 채용 비리를 알고 있었는지 살펴볼 방침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고형곤)는 채용 비리가 벌어진 2016~2017년 웅동중 사회 교사 모집계획 등 내부 문건에 동양대가 시험문제 출제기관으로 기재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정경심 교수가 2013년부터 웅동학원 이사로 재직 중인 점으로 볼 때 시험문제 출제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웅동학원 사무국장으로 일한 조씨가 교사 채용 대가로 지원자 부모 등 2명에게서 모두 2억 1000만원을 받고 시험문제를 건넨 정황을 파악하고 배임수재·업무방해·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지난 9일 기각됐다.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챙기고 뒷돈 대부분을 조씨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 박모씨와 또다른 조모씨는 조씨에 앞서 구속됐다. 검찰은 전날 이들 브로커를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동양대가 교사 채용 시험문제에 관여한 정황을 공소장에 포함했다. 조국 전 장관 동생 조씨는 지난 8월 채용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도피자금을 대가며 공범 조씨를 필리핀으로 도피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의혹을 부인하다가 브로커들이 잇따라 체포·구속되자 사실관계를 대부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웅동학원 이사장인 모친 박정숙(81)씨 집에서 시험문제를 빼내 지원자들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채용 비리를 알고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만간 조씨의 모친 박씨를 직접 조사할 방침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폭력·차별 못 견뎌 이혼하는 데 11년… ‘코리안웨딩’ 끝은 다시 가난

    폭력·차별 못 견뎌 이혼하는 데 11년… ‘코리안웨딩’ 끝은 다시 가난

    베트남 현지서 본 ‘결혼 이주민 수난사’ 1980년대 후반 우리 정부가 농촌의 인구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장려하기 시작한 이후 베트남은 가장 적극적인 상대국이었다. 결혼을 통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인구는 2000년 이후 모두 10만여명. 껀터, 하이퐁 등 주로 가난한 농촌 및 도시 외곽의 어린 여성들이 왔다. 이후 30여년간 많은 이주여성이 ‘코리안드림’을 이뤘지만 적지 않은 여성에겐 악몽으로 끝났다. 남편과 시댁의 홀대와 차별, 학대 등을 견디다 못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빈곤과 사회적 낙인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되풀이되는 이주여성 수난사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신문은 결혼 이주여성들이 결혼 전후 겪은 속 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베트남에서 이주혼이 가장 활발한 메콩델타 지역을 찾았다. 결혼 피해 여성 4명과 가족을 한국인과 결혼시킨 당사자 13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가난 싫어 택한 황금빛 ‘코리안 웨딩’ “따님이 국제결혼해 한국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맞나요?”(기자) “아니, 우리 집 딸들은 둘 다 대만으로 갔고 한국은 저기 건너편 집에 가 봐요.”(베트남 껀터 주민) 지난달 13일 베트남 남부 껀터시의 화디엔 마을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기자가 국제결혼 여부를 묻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동네에서 국제결혼은 흔한 일이다. 도심에서 차로 달려 50여분 떨어진 곳, 흙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마을이었다. 결혼이주민 자녀가 있는 가족을 수소문하니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딸을 타국에 시집보냈다고 했다. 껀터 인구는 이 나라 전체의 2.5%(112만명)에 불과하지만, 베트남 결혼이민자 가운데 6분의1이 껀터 출신이다. 이곳에 국제결혼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20여년 전이다. 브로커들이 알음알음 들어와 한국이 ‘잘사는 나라’라며 풍요로운 삶을 미끼로 홍보했다. 최근에는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한류 열풍이 코리안드림을 부추긴다. 껀터 안빙 시장에서 만난 응웬쭝응히아(60)는 “10년 전 국제결혼을 해 떠났던 동네 사람이 한국에서 돌아와 2층짜리 집을 짓는 걸 보고 환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응히아의 가까운 친척 중 5명이 한국, 대만 등으로 떠났다. 그는 “조카 한 명이 한국에 잘 정착해 최근에 자기 엄마를 한국으로 모셔 갔다”며 흐뭇해했다. 이 마을에는 이따금 결혼 중개업자가 찾아와 ‘영업’을 한다. 이들의 설명을 듣고 국제결혼을 결심하면 혼인 계약은 초고속으로 성사된다. 지난해 유엔인권정책센터 껀터사무소에서 결혼이민예정 현지사전교육 참가자 16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입국 전 남편을 만난 횟수는 70%가 1~2회, 21%가 3~4회라고 답했다. 배우자와의 평균 연령 차는 19.5세로 여성 23.5세, 남성 43세였다.이곳 사람들에게 중개 국제결혼은 꼭 딸을 팔아 돈을 버는 행위는 아니다. 국제결혼 때 남성 측이 여성의 가족에게 100만~300만원을 건네기도 하지만 현지인들끼리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 쪽에 주는 결혼지참금과 비교해 그리 많은 돈은 아니다. 한 주민은 “브로커들이 영업할 때 가족에게 돈을 약속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받는 일은 별로 없다”면서 “가족들도 결혼이 성사되면 굳이 더 요구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여성은 가난한 친정이 마음에 걸려 남편에게 용돈을 부탁해 송금하기도 한다. 부모들이 바라는 건 돈이 아니라 딸의 ‘더 나은 삶’이다. 호티란(48)은 “일자리가 없는 껀터에서 가난을 물려받아 사는 것보다는 훨씬 잘살고 세련된 나라로 자식을 보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세 딸을 모두 국제결혼시킨 팜티프언투(61)는 2년 전 막내딸을 한국으로 보냈다. 딸은 25세, 사위는 40세였다. “종종 들려오는 나쁜 뉴스가 있지만, 딸은 한국에 잘 정착해 종종 화상통화를 걸어온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딸을 한국으로 보냈던 동네의 한 부부는 얼마 전 한국으로 떠났다. 딸이 한국에서 자리를 잘 잡아 부모를 아예 모시기로 했단다. 그는 “그런 것까진 바라지 않고, 그저 딸이 좋은 데서 잘살았으면 한다”며 웃었다.# 결혼이주자를 보는 복잡한 속내 주민들은 한국으로의 이주 결혼을 좋게 말했지만, 사실 그 속내는 복잡했다. 화려한 삶을 보장하는 듯한 이주 결혼이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착잡한 일도 벌어진다. 언니가 국제결혼을 했다는 응웬티란프엉(33)은 “사랑 없이 외국에 가서 결혼하는 여자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는 “결국 가난과 일자리 부족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언니는 외로움에 떨다 우울증까지 얻었다. 껀터 수상시장에서 만난 당반푹(46)은 “이곳에서 결혼해 외국으로 떠나는 많은 여성의 동기는 가난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 출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가서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일 것”이라며 “이런 결혼 방식이 근본적으로는 잘못됐지만, 처한 환경을 고려하면 (그런 선택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했던 베트남 이주여성 가정폭력 사건은 베트남에서도 공분을 일으켰다. 발전한 도시인 다낭에서 만난 응웬쭝히은(40)은 “자기가 마음에 든다고 데려가 놓고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폭행 사건이 반복될수록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여성을 한국에 보낸 껀터 지역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안 좋은 뉴스가 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푹은 “폭행 영상을 봤지만 잘잘못을 속단할 수 없다”면서 “남자가 나쁜 사람이라면 불운한 경우이고 어쩌면 여성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주변 사람들은 한국에서 모두 잘산다”고 덧붙였다. 쯔엉티투튀(50)는 “솔직히 자기 자식이 잘사는지 못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무시당하고 망가진 가정에서 살고 있더라도 고향의 부모에게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자식은 드물다”며 “자존심 때문에라도 숨길 것”이라고 했다.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실시한 귀환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돌아온 여성의 약 22%가 ‘가정폭력으로 결혼 생활이 끝났다’고 답했다. # 파경 뒤 쉽지 않은 귀환, 남은 삶도 파국 끝내 한국 생활을 정리한 베트남 여성들에게는 이후에도 고된 삶이 기다린다. 지난해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이혼 건수는 1570건(한국 가정법원 통계)이었다. 지난 10년간 1만 6840쌍이 이혼했다. 파경을 맞고도 서류상 이혼을 하지 못한 이주여성도 많다. 국제결혼 때 양국에 혼인신고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혼 건수 통계도 양국이 같아야 한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결혼 이주가 가장 많은 껀터 지역의 법원으로부터 입수한 ‘국제결혼 이혼 건수’는 201건에 불과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국민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경우를 모두 합친 숫자인데도 한국 법원의 통계보다 훨씬 적다. 그만큼 서류상으로는 아직 이혼하지 못한 여성이 많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법원 관계자는 “과거에 비하면 최근 이혼율이 매우 늘어난 것”이라고 전했다.귀환여성 응웬티지엠(38·가명)은 17살 차이가 나는 남성과 결혼했다가 2005년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류상 남편과 이혼하는 데 11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남편과 등진 상태에서 이혼 방법을 알려 줄 사람도, 한국에서 서류를 떼다 줄 사람도 없었다. 처리할 방도를 몰라 정리하지 못한 채 살다가 2016년에야 유엔인권정책센터 껀터사무소의 도움으로 이혼 절차를 밟았다. 중개 결혼 피해자 보띠링(31·가명)은 이혼까지 4년이 걸렸다. 링은 “2013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한 번도 한국에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혼 비자를 준비하던 중 베트남 주재 한국영사관으로부터 “남편의 소득이 기준에 못 미쳐 비자를 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갈 수도 없는 한국에서 이미 링은 서류상 결혼한 여자였다. ‘법적 남편’과의 연락도 끊겼다. 2016년부터는 비자 취득을 포기하고 이혼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일방 이혼은 허가되지 않았다. 남편의 정확한 주소, 바뀐 연락처도 없는 상태에서 이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조사 결과 혼인 관계가 깨진 귀환여성 가운데 3분의1(30.1%)은 여전히 법적 혼인 상태였다. 28%만이 양국에서 법적 이혼을 끝냈고, 24.7%는 한국에서만 이혼했다. 껀터법원 당판흥 최고재판관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귀환여성들은 남편과의 연락 두절, 서류 미흡 등으로 이혼 절차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이곳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밝혔다. 급기야 껀터법원은 이혼을 원하는 여성이 베트남 국영 국제방송에 이혼 의사를 밝히는 자막 광고를 낸 후 3개월 내 연락이 없으면 남편 없이 이혼 궐석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광고 비용은 법원이 부담한다. 이주 결혼 경험자들은 괴로운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면 다시 빈곤에 내던져진다. 귀환여성 가운데 고향에 그대로 거주하는 인원은 절반에 불과했다. 36%는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내 타지로 이동했고, 11%는 외국으로 다시 이주 노동을 떠났다. 귀환여성의 44.1%는 수입이 10만원 미만, 32.8%는 10만~20만원 수준이었다. 20만~35만원 미만은 15.4%였다. 껀터·허우장·다낭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dynamic@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가난 벗겠다고 한국에 시집간 내 딸… 병든 몸, 두 아이, 1억동 빚만 남았다

    가난 벗겠다고 한국에 시집간 내 딸… 병든 몸, 두 아이, 1억동 빚만 남았다

    한국 남자가 ‘선택’해 22살에 결혼한 딸 폭력에 지쳐 4년 만에 베트남 돌아와 고향 정착 못하고 일자리 찾아 타지로 태생 따라 국적 다른 두 아이는 눈칫밥 한국의 결혼이주민 26만명은 애매한 존재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농어촌을 떠받치는 등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맡고 있지만 한쪽에선 이들을 ‘진정성 없는 혼인자’로 매도한다. 차별적 시선과 배우자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일부는 본국으로 떠났다. 2000년 이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38만명의 여성 중 9만명이 법적으로 이혼했다. 서류상 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쫓기듯 떠난 이들을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베트남 껀터에서 15년 전 딸의 결혼과 이혼 과정을 지켜본 여성을 만나 잘못된 국제결혼이 한 가족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들었다.“엄마, 나 한국 남자랑 결혼해.” 15년 전 뜨띠흐엉(54·가명) 가족의 비극은 시작됐다. 며칠 이모 집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떠났던 딸이 다짜고짜 결혼식을 하겠다고 전화했다. 국제결혼 브로커가 모은 10명의 여자 가운데 ‘선택’받았다고 했다. 매매혼임을 모르지 않았다. 가지 말라고, 굶어도 여기서 같이 살자고 붙잡았다. 딸이 되물었다. “엄마, 우리 집에 결혼계약 위약금 낼 돈 있어?” 딸은 어릴 적부터 눈치가 빨랐다. 중학교를 마친 뒤 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재학 내내 가난에 찌든 가족에 대한 괄시와 놀림에 시달렸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린 딸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했었다. “우리 집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한국 남자랑 결혼해야 할까 봐.” 브로커들이 마을을 다니며 “한국으로 시집가면 행복하게 잘산다”는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베트남에서는 9만 8752명이 한국 결혼이주를 선택했다. 이왕 한 결혼,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22살 된 딸을 데려가는 사위는 40대였지만 아내를 사랑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바람대로 되지 못했다. 사위의 사업은 결혼 직후 망했다. 그즈음부터 폭력이 시작됐다. 맞다가 집 계단으로 굴러떨어지기가 수차례. 경찰에 신고하자니 집에서 우는 젖먹이 아기가 마음에 걸렸다. 집안일만 하는 딸의 몸에 든 피멍을 주변에선 알 길이 없었다. 유엔인권정책센터에 따르면 베트남으로 돌아온 귀환여성의 22%는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사위는 다 쓰러져 가는 장모의 집을 새로 짓는 데 1억동(약 500만원)을 보태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우선 대출을 받아 처음으로 철판을 댄 집을 지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무리한 대출금은 가족의 몫이 됐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다 갚지 못했다. 껀터 지역의 올해 월 최저임금은 371만동(약 19만원)이다. 고향으로 도망 오던 때 딸의 뱃속엔 둘째 아이가 있었다. 결혼 4년 만에 돌아온 딸은 고향에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떠나 지금까지 타지를 떠돌고 있다. 최근에는 고향으로부터 200㎞ 떨어진 가죽공장에서 막 벗겨 낸 가죽을 소독하는 일을 하다 수차례 병이 났다. 이처럼 한국에서 돌아온 여성의 절반은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 동네에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데다 가정 파탄의 주범인 양 보는 차가운 시선 때문이다. 베트남 귀환여성의 30%는 이혼 절차마저 마치지 못했다. 베트남 껀터·허우장에만 최소 300명 이상의 귀환여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딸이 낳은 두 아이는 흐엉에게 맡겨졌다. 첫째 손녀 이름은 김이은(가명), 둘째 손자 이름은 응웬쭝(가명). 같은 엄마·아빠를 뒀지만 태어난 나라에 따라 각각 한국인과 베트남인으로 국적이 다르다. 농사꾼인 흐엉의 아들은 자기 가족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으로 부모를 부양하면서 여동생의 두 자녀까지 거뒀다. 이따금 고단함이 폭발해 “너희 엄마랑 한국에 돌아가라”며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이미 두 아이에겐 익숙하다. 아직 어린 이 아이들이 눈치만 늘었다. 껀터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가난 벗겠다고 한국에 시집간 내딸…병든 몸, 두 아이, 1억동 빚만 남있다

    가난 벗겠다고 한국에 시집간 내딸…병든 몸, 두 아이, 1억동 빚만 남있다

    한국 남자가 ‘선택’해 22살에 결혼한 딸매질에 지쳐 4년 만에 베트남 돌아와고향 정착 못하고 일자리 찾아 타지로태생 따라 국적 다른 두 아이는 눈칫밥한국의 결혼이주민 26만명은 애매한 존재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농어촌을 떠받치는 등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맡고 있지만 한쪽에선 이들을 ‘진정성 없는 혼인자’로 매도한다. 차별적 시선과 배우자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일부는 본국으로 떠났다. 2000년 이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38만명의 여성 중 9만명이 법적으로 이혼했다. 서류상 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쫓기듯 떠난 이들을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베트남 껀터에서 15년 전 딸의 결혼과 이혼 과정을 지켜본 여성을 만나 잘못된 국제결혼이 한 가족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들었다. “엄마, 나 한국 남자랑 결혼해.” 15년 전 뜨띠흐엉(54·가명) 가족의 비극은 시작됐다. 며칠 이모 집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떠났던 딸이 다짜고짜 결혼식을 하겠다고 전화했다. 국제결혼 브로커가 모은 여자 10명 가운데 ‘선택’받았다고 했다. 매매혼임을 모르지 않았다. 가지 말라고, 굶어도 여기서 같이 살자고 잡았다. 딸이 되물었다. “엄마, 우리 집에 결혼계약 위약금 낼 돈 있어?” 딸은 어릴 적부터 눈치가 빨랐다. 중학교를 마친 뒤 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재학 내내 가난에 찌든 가족에 대한 괄시와 놀림에 시달렸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린 딸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했었다. “우리 집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한국 남자랑 결혼해야 할까 봐.” 브로커들이 마을을 다니며 “한국으로 시집가면 행복하게 잘산다”는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베트남에서는 9만 8752명이 한국 결혼이주를 선택했다. 이왕 한 결혼,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22살 된 딸을 데려가는 사위는 40대였지만 아내를 사랑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바람대로 되지 못했다. 사위의 사업은 결혼 직후 망했다. 그즈음부터 폭력이 시작됐다. 맞다가 집 계단으로 굴러떨어지기가 수차례. 경찰에 신고하자니 집에서 우는 젖먹이 아기가 마음에 걸렸다. 집안일만 하는 딸의 몸에 든 피멍을 주변에선 알 길이 없었다. 유엔인권정책센터에 따르면 베트남으로 돌아온 귀환여성의 22%는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사위는 다 쓰러져 가는 장모의 집을 새로 짓는 데 1억동(약 500만원)을 보태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우선 대출을 받아 처음으로 철판을 댄 집을 지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무리한 대출금은 가족의 몫이 됐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다 갚지 못했다. 껀터 지역의 올해 월 최저임금은 371만동(약 19만원)이다. 고향으로 도망 오던 때 딸의 뱃속엔 둘째 아이가 있었다. 결혼 4년 만에 돌아온 딸은 고향에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떠나 지금까지 타지를 떠돌고 있다. 최근에는 고향으로부터 200㎞ 떨어진 가죽공장에서 막 벗겨 낸 가죽을 소독하는 일을 하다 수차례 병이 났다. 이처럼 한국에서 돌아온 여성의 절반은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 동네에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데다 가정 파탄의 주범인 양 보는 차가운 시선 때문이다. 베트남 귀환여성의 30%는 이혼 절차마저 마치지 못했다. 베트남 껀터·허우장에만 최소 300명 이상의 귀환여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딸이 낳은 두 아이는 흐엉에게 맡겨졌다. 첫째 손녀 이름은 김태경, 둘째 손자 이름은 리우자후이. 같은 엄마·아빠를 뒀지만 태어난 나라에 따라 각각 한국인과 베트남인으로 국적이 다르다. 농사꾼인 흐엉의 아들은 자기 가족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으로 부모를 부양하면서 여동생의 두 자녀까지 거뒀다. 이따금 고단함이 폭발해 “너희 엄마랑 한국에 돌아가라”며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이미 두 아이에겐 익숙하다. 어린아이들은 눈칫밥만 늘었다. 껀터 글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영상편집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dynamic@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홍희경 기자의 규제 클렌즈] 세무조사·심사 등 규제 아닌 규제…‘힘 있는’ 협회 만들어야 숨통 트여

    “동남아·중국인 대상 웨딩관광 개척 사업 잘된다는 소문나자 세무조사 주춤하는 사이 中업체가 시장 점령” “국세청은 피해 예상 중소기업에 예정된 세무조사 착수를 직권으로 중단합니다. 잠재력 있는 기업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합니다. 국내에서 단기간 개발이 어려운 분야는 관련 기업이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을 확보하도록 2조 5000억원 이상 자금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가) 한국 배제 조치 이후인 지난 5일 정부는 연 1조원 이상 자금지원 방안과 함께 세무조사 중단이나 기술혁신을 위한 M&A 자금 지원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 상황을 뒤집어 생각하면 정부 당국이 기업에 가할 수 있는 영향력의 범위를 알 수 있다. 이른바 ‘○○에 관한 규제법’이란 명칭이 붙은 법에 의한 규제 이외에도 세무조사, 목적자금에 대한 엄격한 대출심사 같은 조치들로 정부는 기업이나 소상공인의 활동을 규제할 수 있다. 실제 기업들은 정부가 규제로 분류하지 않는 세무조사, 형사처벌 두려움을 규제로 느낀다. 지난 30년 동안 역대 여러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국정과제로 강조하고 정부는 늘 전 정부를 능가하는 수준의 규제 개혁 사례를 집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소상공인이 한국을 ‘규제 중독 국가’로 인식하는 원인은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특정 대상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권위’라고 부른다. 그리고 국가가 규제라는 권위를 광범위하게 시장에 행사하는 기업 환경에서 규제 개혁은 ‘권력’의 양상을 띤다. 기업 세무조사 중단,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을 위한 국가의 특별관리처럼 권력을 행사해 시혜를 베푸는 식이 개혁의 내용을 이룬다. 전 정부에서도 뽑히지 않던 산업단지 앞 전봇대를 며칠 만에 뽑고(MB), 손톱 밑 가시로 지목한 푸드트럭을 공공 장소에 대거 설치하는(박근혜 전 대통령) 식의 ‘평시 행정을 압도한 권력’이 작동했다. 광범위한 규제로 권위를 유지하다 협소한 기업 활동 영역을 부분적으로 개혁하는 시혜를 베풀며 권력을 드러내는 정부의 입김을 줄일 방법은 조직화와 산업 구조화에 달렸다. 가게 하나로는 가격을 결정할 힘이 없으니 옆 가게와 뭉쳐 주장하는 게 조직화다. ○○협회나 ○○중앙회 식으로 조직화를 이룬 뒤 집단 이익을 요구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구조화는 한 차원 더 위의 문제다. 수많은 옆 가게끼리 서로 관련돼 분업, 공동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불확실성을 키우는 외부 변수를 관리 가능한 리스크(위험)로 변환시킬 수 있도록 생태계 역량을 키운 단계다. 구조화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면 수출, 혁신, 융합과 같은 확장이 이뤄지고 한국 당국의 방침과 권위에 종속되는 정도는 약화된다. 한국은 여러 산업의 구조화에 무관심했다. 지난봄 만난 R웨딩 스튜디오 이사는 중국·동남아 진출 실패담을 털어 놓으며 그 분위기를 설명했다. “결혼이 줄어든다는 위기감에 해외 진출을 모색했다. 동남아를 겨냥해 눈 덮인 대관령 화보를 만들고, 중국을 겨냥해 제주도 스튜디오를 열었다. 웨딩 촬영 관광이란 새 길을 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착각이었다. 숙박업이 관광이지 웨딩은 관광이 아니란 말을 들었다. 웨딩 촬영 같은 콘텐츠가 있어야 관광객을 모을 수 있고, 숙박업과 연계해 특화 관광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소용 없었다. 국가가 웨딩 스튜디오 운영에 명시적인 규제를 한 적은 없다. 다만 사업이 잘된다는 소문이 3년쯤 나면 세무조사가 들어오고, 스튜디오와 야외 결혼식장을 함께 운영할까 타진하니 현재 스튜디오의 정원으로 쓰는 땅이 그린벨트로 따로 묶여 있어 쓸 수 없는 식의 어려움이 있을 뿐이다. 규제도 없고 진흥도 없다.” 7년 전부터 추진했던 해외 진출 계획을 R스튜디오가 포기한 반면 R스튜디오와 협업을 타진했다 지금은 중국 내 수십곳에 지사를 차린 중국 스튜디오 기업은 한국인 포토그래퍼를 아르바이트로 쓰며 제주 등지에 중국인 여행객을 송출한다. 여행객들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한다. “분명 한국의 촬영·편집 기술이 더 좋았고 한국 업체들이 먼저 사업화 아이디어를 냈는데, 우린 여전히 고객의 효용은 박하고 브로커들에게 대다수 수익이 돌아가는 영세한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웨딩 스튜디오 사업이 이제 하나의 산업으로 우뚝 섰다.” saloo@seoul.co.kr
  • FBI 수사관들도 충격…기증된 시신 아무렇게나 보관하고 팔아넘긴 美 업체

    FBI 수사관들도 충격…기증된 시신 아무렇게나 보관하고 팔아넘긴 美 업체

    5년 전 미국 애리조나주(州)에 있는 한 시신기증 업체를 급습했던 연방수사국(FBI)의 요원들이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뒤늦게 세상에 공개됐다. 19일(현지시간) 애리조나 리퍼블릭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2014년 1월 피닉스에 있던 생물자원센터(BRC)라는 이름의 한 시신기증 업체를 불법 매매 혐의로 급습했던 FBI 요원들 중 일부 수사관이 최근 법정에서 당시 목격했던 끔찍한 광경에 대해 증언했다. 당시 BRC 사건에 특별 수사관으로 참여했던 마크 퀴너 전 요원은 “압수 수색 당일 업체 내부 보관실에서 누군가의 시신에서 분리된 머리나 팔다리 등 신체 부위가 쌓여 있는 양동이들을 발견했다”면서 “그중 기증자를 확인할 수 있는 인식표가 붙어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그는 “남성의 성기로 가득 차 있는 냉장고를 발견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충격적인 진술은 보관돼 있던 신체 부위가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퀴너 전 요원은 “마치 프랑켄슈타인에서 나오는 것처럼 남성으로 추정되는 상반신에 여성으로 추정되는 더 작은 머리가 꿰매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FBI의 수사관들은 문제의 업체가 기증받은 시신과 장기를 의료 연구용이 아니라 불법으로 해외에 팔아넘기고 있다는 정황을 발견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당시 업체에서 압수한 문서에는 시신을 각 부위에 따라 값을 매겨 놓은 가격표도 있었다. 하지만 FBI는 문제의 업체가 시신과 장기를 매매한 해외 거래처의 실체를 밝히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FBI 요원들은 궁극적으로 이 시설에서 총 중량 10t에 달하는 시신 몸통 142개와 신체 부위 1755개를 찾아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또 다른 전직 FBI 요원 매슈 파커는 “시설에서 시신 가방을 옮기는 작업을 한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면서 “그걸 보고 도저히 잘 수 없었고 그곳은 마치 자동차를 갈기갈기 찢는 폐차장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이들의 증언은 지금은 폐업한 업체 측으로부터 시신은 의료 연구용으로 쓰인다는 얘기를 듣고 시신을 기증했다고 주장하는 유가족 33명이 업체의 대표였던 스티븐 고어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중에 밝혀졌다. 스티븐 고어는 이 사건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12만1000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시신을 BRC에 기증했었다는 유가족 트로이 하프는 KTVK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과학 연구에 쓰이는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BRC에 기증된 시신 중 최소 21구는 나중에 미군이 도로변 폭탄 폭발의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에 쓰였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BRC의 사례가 특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시신 매매 사업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됐다. 종종 시신 매매 브로커들은 슬픔에 빠진 유가족에게 무료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증받은 시신을 연구 시장에 팔아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주에서 이식 불가능한 신체 부위에 관한 매매는 태아가 아닌 한 합법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애리조나와 콜로라도에서는 시신 매매 브로커들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에서는 기증된 시신을 어떻게 보관하거나 판매하는지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ABC 15 방송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수천만원 쓰고 미국 시민권…원정출산 천국 하와이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수천만원 쓰고 미국 시민권…원정출산 천국 하와이

    하와이를 꿈의 섬으로 여기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와이키키 해변에서 단 며칠이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전 세계 명품 브랜드를 모아놓은 대형 쇼핑몰에서 큰 폭의 할인율을 적용해 쇼핑을 즐기길 소원한다. 그런데 매년 하와이를 찾아오는 약 1000만 명의 여행객 중에는 자녀의 미국 시민권을 획득을 목적으로 한 이들도 상당하다. 이른바 ‘원정 출산'(birth tourism)을 위한 최적의 지역으로 하와이를 꼽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한국의 유명 대기업 총수의 자녀와 그 손자, 손녀가 미국 시민권자이며, 이들이 출생한 지역이 다름 아닌 ‘하와이’라는 소문이 떠돌며, 이곳은 마치 원정 출산의 파라다이스처럼 여겨지는 형편이다. 이 같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이들 때문일까. 하와이 현지에는 ‘원정출산’이라는 기대에 부푼 이들을 겨냥해 출산을 위한 의료, 숙박, 각종 행정절차 등 전반을 돕는 여러 곳의 전문 원정 출산 업체가 성행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를 포함,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오는 산모들을 위해 수십 년 째 원정 출산을 도왔다는 수 곳의 업체들은 서로가 ‘원조’이며 가장 공신력 있는 업체라고 자부하는 등 암암리에 홍보를 지속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 원정 출산 패키지까지…출산 전후 2~3만 달러 수준실제로 하와이를 거점으로 운영되는 일부 업체가 제공하는 원정 출산 광고에는 마치 물건을 구매하듯 가격별, 조건별로 디자인된 ‘패키지’ 구성 상품도 있을 정도로 활성화돼 있는 분위기다. 출산 시기 즈음 하와이에 도착, 출산을 마친 뒤 자녀에게 미국 여권을 쥐어주는데 성공한 이들의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를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해당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산모들은 출산 전후 각각 1개월 씩 총 2개월 동안 곧 태어날 자녀에게 미국 여권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면 바다 건너 이국에서의 생활로 인한 고난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이들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정 출산을 돕는 업체들이 제공하는 가격은 각 패키지 별로 상이하지만, 평균 2만 5000달러에서 3만 달러(약 3000~35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비용에는 출산 전후 지출하는 병원 진료 비용 전액과 왕복 항공권, 2개월 간의 현지 숙박 체류 비용 등을 일체 포함한 것이다. 이 같은 원정 출산을 돕는 업체의 명칭은 ‘산후 조리원’, ‘여행사’ 등 ‘가짜’ 간판을 달고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주로 제법 큰 규모의 아파트와 레지던트 호텔, 콘도 등을 장기간 임대, 각국에서 오는 만삭의 여성들에게 출산 전후 머무를 수 있는 편의 시설을 제공하고, 출산 시 이용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병원을 중계하는 것이 이들 업체의 주요 임무다. 또 현지 언어에 낯선 고객들에게 출산 전후 과정 등 일체의 행정 처리 등을 돕는 업무도 이들이 하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도움 덕분에 만삭의 여성들은 현지에서 약 2개월 동안 거주, 출산 후에는 아이의 손에 독수리 문양이 아로새겨진 미국 여권을 쥐어 공항을 통과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미래의 사교육비 지출 대비 원정출산비용 “아깝지 않아” 이 같은 현지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의 이민연구센터(the Center for Immigration Studies)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미국 시민권을 위해 미국행을 선택하는 만삭의 외국인 국적 여성의 수는 약 3만 6000명(2018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연구센터 측은 “미국 정부가 이들 원정 출산 여성들의 개인 정보 및 신원 등을 추적, 수치를 집계해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인 국적자일 것이다. 다만, 중국인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한 국가는 한국인 산모”라는 입장이다. 이어 대만, 터키, 러시아 등의 출신 산모도 원정출산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지난 2007~2016년 약 10년 동안 미국 원정출산을 시도한 한국 국적의 임산부 수를 추적한 결과 이 기간 동안 약 3만 명의 여성이 자녀의 미국 여권 취득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기간 연평균 무려 3000명의 여성들이 만삭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길게는 24시간, 짧게는 11시간의 장시간 비행을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만삭의 몸으로 무리가 될 수 있는 약 10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비행과 출산 전후로 한국과는 크게 다른 병원 환경을 이겨내야 하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국행을 선택하는 이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행 출산을 결정하기에 앞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출산 전후 병원비, 진료비 등의 항목에 최소 2만 달러, 많게는 3만 달러 이상의 금액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평범한 직장인 부부에게 ‘원정출산’은 쉽고 간편한 선택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자 하는 이들의 선택을 가장 확고하게 만든 측면은 미래에 지출할 가능성이 명백한 ‘사교육비’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필자와 평소 친분이 있는 한국인 가족의 사례에서도 원정 출산 시 소요되는 비용과 한국에서 출산 후 유치원 때부터 줄곧 영어유치원, 영어 과외와 중국어 과외, 미술, 피아노, 무용, 태권도, 논술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의 사교육 기관에 아이를 내몰아야 하는 형편을 고려하면 차라리 미국 원정 출산 비용이 ‘싸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평가다. 이는 과거 자녀의 병역 문제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목적과는 크게 달라진 특징이다. 과거 자녀 병역 문제 회피 등을 목적으로 한 불법 원정 출산이 줄을 이었다면, 자녀의 미래 사교육 지출에 대한 고려가 새로운 원정 출산의 목적으로 등장한 셈이다. 그런데 원정 출산 목적의 이 같은 변화는 과거의 원정출산이 소수 상류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데 그친 것에서 나아가,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교육 문제가 결부됐다는 점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비관적인 시각이 다수다.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한 원정 출산이 감소한 이유는 현행 법규상 원정 출산 시민권자는 병역 면제를 받기 어렵게 된 현실적인 상황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남성이라도 부모와 당사자가 미국에 장기간 체류하거나 병역 의무 기간 당시 미국에 살지 않는다면 병역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명문 법 규정이 실효됐기 때문. 더 이상 병역 면제가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아이를 낳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 사유가 아니게 된 셈이다. 그 대신 과거보다 더 강력한 원정출산의 동기로 등장한 것이 자녀의 사교육 문제다. 자국의 교육 체제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들이 보다 나은 환경의 교육을 자녀에게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행 출산을 감행해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국 국적의 여성 10여 명이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입국, 원정 출산을 시도한 사례가 현지 경찰에 의해 적발되는 사건이 일반에 공개된 바 있다.이들 10여명의 만삭의 여성들은 입국 후 현지 원정 출산 전문 브로커와 접선, 대형 아파트에 입주해 출산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브로커들은 여성 1인당 약 10~23만 위안(약 1700~3800만 원) 수준의 비용을 받고 원정 불법 출산을 도운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건에 대해 현지 법원은 여성들에 대해 1인당 25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상태다. 그런데, 이 같은 논란과 ‘불법’ 원정 출산이라는 사회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매년 다수의 국가에서 원정 출산을 목적으로 현지 공항을 밟는 여성들이 줄을 잇는 현상은 매우 아이러니해 보인다. 특히 얼마 전 한국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현직 교사 출신의 학부형이 시험지와 답안을 몰래 반출한 사건 등을 기억할 때, ‘말 설고 물 설은’ 타국에서의 원정 출산을 계획하는 젊은 부모들에 대해 ‘불법’이라는 사회적 잣대만 들이댈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원정출산이라는 불법적인 행위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출산을 앞두고 자녀의 미래를 계획 중인 부모 중 어느 누가 과연 ‘원정출산’이라는 선택지 앞에 마냥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이런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몹시 아쉬울 뿐이다. 호놀룰루=임지연 통신원 808ddongcho@gmail.com   
  • 또다른 난민 구호선 伊 람페두사 입항 “견딜 수 없는 상황”

    또다른 난민 구호선 伊 람페두사 입항 “견딜 수 없는 상황”

    이탈리아 정부의 입항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난민 구호선 알렉스가 41명의 이민 희망자들을 태우고 람페두사 항구에 들어와 닻을 내렸다. 알렉스 호 선장은 위생 상태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그동안 머무르던 국제 수역을 떠나 시칠리아 섬 바로 위에 있는 람페두사 항만에 접안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아직 이민 희망자들이 하선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영국 BBC가 6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배는 난민을 돕는 메디테라니아 자선재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 재단은 트위터를 통해 지칠 대로 지친 선원들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 살고 있으며 이렇게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불필요한 잔인함”이 가중된다며 당국의 불허 결정을 무릅쓰고 입항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난민을 구조하는 선박의 이탈리아 항만을 불허하고 이를 위반해 허가를 받지 않고 해역을 항해하는 모든 이에게 벌금을 물리겠다고 공언했다. 앞서 2주 동안 국제수역에 머무르던 난민 구호선 시 와치(Sea-Watch) 3호가 지난주 람페두사 항에 입항한 지 일주일 만에 알렉스 호가 같은 항구에 닻을 내린 것이다. 독일인 여자 선장 카롤라 라케테는 입항 과정에 경찰 순시선을 들이받으려 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법원의 결정으로 풀려났지만 여전히 인신매매, 공무 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독일의 자선재단 시 아이(Sea-Eye)가 운영하는 또 다른 비정부기구(NGO) 선박인 알란 쿠르디도 이민 희망자 65명을 태운 채 람페두사 항만 밖 국제수역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2월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탈리아 정부가 망명을 불허한 사례가 2만 4800건이나 된다. 또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6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살비니 부총리의 난민 구호선 입항 금지 조치를 찬성하는 이탈리아 국민은 전체의 59%를 차지한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생활하는 것을 유일한 삶의 탈출구로 여기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 희망자들이 지중해를 건너오는 주요 통로로 삼고 있어 이를 차단하고 통제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들어 이민 브로커들이 아예 이들 난민 구조선이 기다리는 리비아 앞 바다에 이민 희망자들이 표류하거나 조난하는 사고를 방관하거나 유도하고 난민 구조선에 태워 유럽 대륙에의 첫발을 이탈리아에 딛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을 이탈리아 정부나 국민들이 갖게 됐다. 지난달부터 이탈리아 항구에 허가를 받지 않고 입항한 난민 구호선 등에 물린 벌금은 5만 유로에 이르렀다. 국제이민기구(IOM)는 올해 들어 지중해에서 681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426명이 리비아와 튀니지를 통해 이탈리아로 입국하려던 이들이었다. 한편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은 이날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난민구조선에 항구를 개방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dpa 통신이 보도했다. 제호퍼 장관은 서한을 통해 “지중해에 떠 있는 선박이 들어갈 항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구조된 난민을 태운 선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에서 우리는 공통적인 기독교적 가치를 갖고 있다”면서 “선원과 선박이 어느 국적인지, 이주자들이 어떤 단체에 구조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미국 멕시코 합의 불발, 10일부터 관세 부과되나

    미국 멕시코 합의 불발, 10일부터 관세 부과되나

    미국과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 유입 및 관세 문제를 놓고 6일(현지시간) 이틀째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 도출에는 이르지 못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對)멕시코 관세 부과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미 의회에 대응해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전날 백악관에서 열린 고위급 협상에 이어 이날 백악관에서 실무급 협상을 이어나갔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이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은 예정대로 오는 10일부터 멕시코산 모든 수입품에 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멕시코가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미 지역 이민자를 막지 않으면 당장 다음주부터 멕시코 제품에 관세를 매겨 10월에는 25%까지 늘리겠다고 경고했다. 회담이 끝난 후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으며 현재 우리는 여전히 관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상을 이끈 마이크 펜스 부통령 부통령도 이날 펜실베이니아를 방문해 “현시점에서는 관세가 월요일에 부과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펜스 부통령은 영국에 이어 아일랜드·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7일 귀국할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과 “주말 동안 멕시코의 제안에 관해 대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멕시코 대표단의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교부 장관 대변인은 트위터 계정에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면서도 “옵션들이 계속 탐구될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은 있었으나 멕시코 측 제안에 미국이 기대한 수준에 못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 측은 이날 이민 브로커들이 소유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를 동결했으며, 미와의 협상에선 남부 과테말라 국경 지역에 군인 6000명을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對)멕시코 관세 부과가 양국 경제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미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상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감안해 국가비상사태 선포 계획을 세웠다고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이날 보도했다. 더힐은 2019년 회계연도에 67만 5000명이 국경에서 체포되거나 입국 거부 조치됐다는 내용과 멕시코 제품에 대한 관세부과 계획이 초안에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 간 대치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소속 리처드 닐 하원 세입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관세부과를 시도한다면 이를 막기 위한 반대 결의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멕시코 관세 부과와 관련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이민정책을 위해 동원되는 두 번째 국가비상사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15일 국경장벽 건설자금 조달을 위한 권한 확보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19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은 대통령이 국가적 위기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예산 재배정 등 평상시보다 확대된 권한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해외 북한인권단체 “탈북 여성 중국에서 성매매 등 심각한 인권 유린”

    이런 소식을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 모르겠다. ‘외신이 쓴 것을 이렇게 옮겨야 하나’란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참담한 상황을 알려 바로잡아야 한다는 해외 북한인권단체의 진정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전체 북한 이탈 여성을 그릇된 시선으로 볼 여지도 있다는 점 때문에 조심스럽기 그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건너간 여성 대부분이 ‘성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는 해외 북한인권단체의 보고서를 해외 언론들이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코리아 퓨처 이니셔티브’는 탈북 여성들이 중국 북동부의 인신매매 범죄조직에 의해 성매매 시장으로 팔려가거나 강제 결혼, 사이버 섹스 업소에 근무하는 등 비참한 현실에 처해 있으며, 피해자 가운데 심지어 아홉 살 소녀도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2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와 영국 BBC가 보도했다. 중국에 체류 중이거나 한국으로 이주한 탈북 여성 50여명을 장기간 만나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이 단체는 설명했다. 이들 탈북 여성을 성 노예로 거래하는 지하경제 규모가 연간 1억 달러(약 1195억원)에 이른다고 보고서는 추정했다. 보고서에 담긴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현실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12~29세가 대부분인 피해자들의 약 60%가 브로커 등을 통해 성매매 시장으로 향하며, 이들 중 절반은 강제 성매매를 당하고 있다. 30% 가량은 현지 남성과 강제 결혼을 하며, 15% 정도는 온라인상에서 사이버 섹스를 강요받는다. 특히 보고서는 “사이버 섹스 시장을 겨냥한 탈북 여성 인신매매도 최근 들어 확산 중”이라며 “아홉 살 소녀가 ‘온라인 생중계’를 위해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도 발견됐다”고 전했다. 보고서를 쓴 윤희순 연구원은 “최근 몇 년간 탈북 여성들의 성 노예화와 관련한 규모와 비참함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여성들은 북한으로 송환되면 고문당해 죽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이런 구렁텅이에 갇히게 된다. WSJ는 “북한 국경의 통제가 엄격해지면서 탈북 위험과 비용도 상승했다”며 “일부 브로커들이 잃어버린 수입을 되찾기 위해 여성들을 인신매매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북한 여성의 중국행은 “사막으로 탈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BBC는 “피해자들은 30위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몸을 팔며, 단돈 1000위안에 아내로 팔려간다. 세계 온라인 이용자들이 돈을 내고 보는 사이버 섹스물에 팔려간다”는 윤 연구원의 얘기를 옮기고 있다. 이어 BBC 기사는 남한 인터넷 이용자들이 구독하는 돈이 이런 사이버 섹스 시장을 팽창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은 출신 지역이나 성(姓)만 표기한 채로 두 여성의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 브로커나 갱단원 등에게 당한 내용들을 차마 옮기지 못하겠는데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남한 기업들은 그들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위해 북한 윤락녀를 원한다. 내 첫 성매매 상대는 남한 사람이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여기는 중국] 명문학교가 뭐길래…가짜 계약서 알면서도 돈 ‘펑펑’

    명문 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목적으로 가짜 임대계약서를 고가에 구입한 학부모들 등장해 논란이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거주하는 6세 자녀를 둔 남성 홍 씨. 그가 오는 9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를 위해 가짜 임대 계약서를 18만 위안(약 3100만 원)에 구입한 사실이 현지 공안에 적발됐다. 홍 씨는 일명 ‘슈에취팡(学区房)’으로 불리는 명문 초등학교가 몰린 지역에 주소지를 둔 위조 부동산 계약서를 구입, 이를 해당 지역 공안국에 신고하는 방법으로 자녀의 명문 초등학교 입학을 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홍 씨가 구입한 위조 부동산 계약서 상의 아파트 주소지는 ‘선전명덕실험학교’ 등 이 일대에서 손꼽히는 명문 학교가 소재한 곳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홍 씨는 앞서 자신이 구매한 임대계약서가 사실은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부동산 브로커 등 일당이 허위로 조작한 위조 계약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계약서 구입을 위해 무려 18만 위안(약 3100만 원)을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위조 계약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큰돈을 지출한 것은 선전시가 운영하고 있는 명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일대에 주소지를 둔 ‘거주민’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유 탓에 일명 1등급 학군으로 알려진 슈에취팡 일대에 주소지 등록을 완료하기 위해 매년 이 시기 홍 씨와 같은 불법적인 방식을 저지르는 사건이 해당 지역 공안에 끊임없이 적발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현지 유명 부동산 업체 ‘리엔지아(链家)’ 관계자는 “선전명덕실험학교를 중심으로 주변에 주소를 둔 계약서의 경우 그것이 허위로 작성된 것이라도 10만 위안(약 17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며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번 사례자 외에도 이 일대 소재한 유치원 내부에서는 이 시기 가짜 부동산 계약서를 구매하려는 학부모와 판매 브로커들 사이에 분주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움직임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담당 공안국 조사에 따르면, 홍 씨의 자녀가 등원했던 유치원 같은 반 소속 유치원 생 중 절반 이상이 가짜 부동산 계약서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자녀가 등원한 유치원 같은 반 학생의 수는 30여명에 달한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의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가자 임대차 계약서 작성을 통해 명문 초등학교 입학 신청서 증빙 서류로 사용했다는 것이 현지 공안국의 설명이다. 특히 선전시의 경우 매매, 임대 등 부동산 실제 가격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집 값 부담을 이기지 못한 일부 학부모들은 이 같은 가짜 부동산 계약서 구매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현지 공안국 관계자는 “선전시는 집 값이 유난히 비싼 지역으로 악명이 높다”면서 “집을 살 돈은 없지만, 명문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고가의 가짜 입대계약서를 사들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가의 가짜 계약서 구매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명문 학교 입학이 100%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현지 유력 언론 ‘징지관차바오(经济观察报)’에 따르면 지역 정부가 입학에 큰 관여를 해오고 있으며, 현행 정책은 이 일대에 학부모 본인 명의로 집을 구매한 이들에게 자녀 입학 우선권이 돌아가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고가의 가짜 부동산 계약서를 구매한다고 해도 부동산 소유자 자녀에게 입학 기회가 먼저 돌아가는 형편이라는 것. 실제로 현행 정책 상 현지 부동산 소지 학부모 자녀의 입학 기본 점수는 100점 만점에 80점인 반면, 월세 계약 학부모 자녀의 입학 점수는 기본 60~65점에 불과하다. 한편, 현지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은 “지난 2017년부터 현지 명문 초등학교 입학 과정에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면서 “애초에 모든 과정에 전자 방식으로 실행되기 시작한 이후에는 브로커에 의해 위조된 계약서를 남용할 경우 입학 신청서 작성 및 접수 자체가 불가하다”고 지적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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