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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대만 심리전 치열/통일방안싸고 최일선 공방

    【홍콩 연합】 중국의 하문과 대만의 김문도간의 양안 최일선에서는 최근 홍콩의 주권회귀를 계기로 통일 방안을 둘러싸고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홍콩의 명보 등 중국 신문들이 7일 보도했다. 양안간 심리전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지난 1일 홍콩 주권회귀일을 맞아 대만의 금문도가 마주 보이는 하문에 ‘일국양제(1국2체제)’ 통일중국이라고 쓴 대형 선전간판을 세우고 공세를 취하면서 시작됐다. 대만의 금문도 수비대는 즉각 ‘삼민주의 통일(삼민주의 통일)’이라는 거대한 선전담장을 설치,중국의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거부하고 국부인 손문의 삼민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부의 분배,법치를 우선으로 하는 통일원칙 천명으로 반격했다. 중국측은 이에 질세라 붉은 색의 대형 선전간판에 야간에 등을 밝혀 선전공세를 강화했다.
  • D­29/역사적 의의(홍콩 주권반환:1)

    ◎7우러1일 0시/빅토리아항 주인이 바뀐다/「1국 2체제」 인류의 새로운 실험 시작/유니언 잭­오성홍기 교대… 식민 156년 “끝” 홍콩이 6월30일 자정 중국으로 반환된다.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마감하는 홍콩반환은 20세기말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다.홍콩은 반환 경축행사로 축제분위기에 젖어 있다.세계는 홍콩반환이후 중국이 홍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중국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가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홍콩반환 한달을 앞두고 홍콩반환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집중 조명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홍콩 하늘에 붉은 깃발.영국국기 유니언 잭이 내려지고 중국의 붉은 깃발 오성홍기가 홍콩하늘에 휘날일 날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홍콩에 대한 영국지배에 석양이 지고 중국영토가 되는 홍콩의 불확실한 새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둠의 역사였던 식민지시대를 청산하는 홍콩반환은 불꽃놀이등 화려한 경축행사속에 이루어진다.6월30일 자정.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공식반환식에서 홍콩을 1백50여년간 지배해오던 영국의 유니언 잭과 홍콩기가내련진후 시계추가 새날을 알리는 순간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특별행정구 깃발이 게양된다. ○자본주의 이식 선례 영국이 떠나고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는 역사적인 홍콩반환식은 전세계적으로 중계된다.반환식을 중계하는 TV카메라의 불빛이 꺼지고 불꽃놀이도 끝나면 홍콩의 밤은 다시 어둠속으로 빠질 것이다.그 어둠속에서 나침반도 없이 미지의 세계를 항해할 홍콩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된다. 홍콩은 한나라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공존하는 새로운 실험이다.홍콩의 반환은 특히 자본주의 지역이 평화적이고 자발적으로 공산주의 정권에 주권이 이양되는 최초의 선례가 된다.그것은 1980년대말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민주화된 「동구 대혁명」의 역사적 흐름과는 반대되는 현상이다.그러한 시대흐름의 역류속에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자본주의 지역인 홍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홍콩에 대한 중국의 약속은 지켜질 것인가.중국은 홍콩환수를 활용,더욱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인가.세계가 홍콩의 반환을 주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그러나 홍콩이 반환된다고 해서 당장 대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7월1일 아침이 밝아오더라도 홍콩사람들은 6월30일의 아침과 같은 일상생활을 할 것이다.홍콩거리는 여전히 화려하게 붐빌 것이며 영국지배의 유산인 2층버스도 계속 홍콩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영국이 홍콩에 밝혀논 자본주의의 찬란한 불빛도 중국의 사회주의에 의해 당장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홍콩의 반환은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시대가 끝나는 20세기 말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다.영국은 아시아의 전초기지에서 떠나고 중국은 굴욕의 역사를 청산하게 된다. 홍콩의 반환은 그러나 고전적인 개념의 식민지 반환과는 다르다.홍콩은 가난한 식민지 지역이 아니기때문이다.홍콩은 세계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지역일뿐만 아니라 주인인 영국보다고 잘살고 새로운 주인이 되는 중국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홍콩의 국민소득은 높다.홍콩은 미국이나 유럽,일본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발전된 지역이다.홍콩은 금세기초까지만해도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했었으나 지금은 동서양의 가교역할을 하며 국제 금융·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자유항 역할 그대로 홍콩은 중국의 홍콩특별행정구로 다시 태어난다.중국은 앞으로 50년간 「1국 2체제」속에 홍콩의 자본주의를 보장하기로 약속했다.홍콩의 기본법은 홍콩의 경제적 독립을 철저히 보장한다.홍콩은 금융정책,재정 및 조세권의 독립 등 독자적인 경제적 지위를 보장받는다.홍콩은 또 자유무역항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며 외환및 자본의 이동도 보장된다. 홍콩특별행정구의 수반은 홍콩인 가운데서 선출되며 외교·국방을 제외한 고도의 자치권도 인정된다.초대 행정수반으로 지난 연말 동건화가 선출됐다.그는 『홍콩과 중국은 하나다.무슨 일을 하든지 중국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동건화의 말에 나타나듯이 홍콩의 기존 질서는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겠지만 그것은 중국이 허용하는 범위라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중국은 물론 홍콩의 발전을 파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홍콩의 몰락은 중국에게도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홍콩주민의 80%는 미래을 낙관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다.홍콩증권시장의 활황과 부동산 폭등은 낙관적인 홍콩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그러한 낙관속에서도 홍콩내부의 문제와 중국의 불확실성때문에 미래를 비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중국이 홍콩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단지 6백50만의 홍콩인들의 미래만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아시아 전체의 경제·지정학적 역학관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홍콩의 반환은 중화민족의 응집력을 높이고 중화경제권 형성을 촉진하며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정치·경제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거대 중국의 출현을 앞달길 지도 모른다.홍콩반환식을 축하하는 화려한 불꽃놀이의 불빛속에는 세계를 향한 중국의 원대한 야망도 함께 빛날 것이다. □홍콩조차 일지 ▲1842년:청나라 남경조약으로 홍콩섬 영국에 할양 ▲1860년:2차 아편전쟁과 북경조약으로 구룡반도 할양 ▲1898년:신계지역 및 부속도서 99년간 조차 ▲1984년:홍콩반환에 관한 영국­중국 공동선언 ▲1990년:중국,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통과시킴 ▲1993년:중국,홍콩환수 준비위한 예비원원회 설치 ▲1996년:초대행정장관 동건화 선출 임시입법회의 의원 선출 ▲1997년:홍콩 중국에 반환 ◎홍콩반환 행사 일정/자정 맞춰 의용군 팡파르/찰스 왕세자·패튼 총독 왕실요트로 “굿바이”/동틀무렵 군본대 도착… 반도 연일 불꽃축제 홍콩반환식은 6월30일 하오 6시15분 영국의 홍콩지배를 마감하는 고별식으로 개막된다.고별식은 찰스 왕세자,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패튼 총독 등 영국측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해군본부 타마르 기지에서 열린다. 하오 9시부터는 빅토리아항에서 홍콩반환을 주제로 한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같은 시간 빅토리아공원과 해피밸리 경마장에선 중국측 주제의 민속공연,버라이어티 쇼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역사적인 공식 반환식은 하오11시30분 컨벤션 센터에서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 영국의 찰스 왕세자 등 중국과 영국측 대표단과 40개국·30개 국제기구에서 초청된 4천여명의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강 주석과 찰스왕세자는 홍콩반환에 관련된 연설을 한다. 하오11시59분쯤 영국국가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가 연주되는 가운데 영국국기와 홍콩기가 내려진다.역사적인 순간인 30일 자정,중국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중국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특별행정구 깃발이 게양된다. 7월1일 새벽 0시30분쯤 찰스 왕세자와 패튼 총독이 영국왕실 요트 브리테니아호를 타고 홍콩항을 떠난다.그들이 떠난후 동건화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수반이 취임선서를 하고 1일 새벽 중국군 본대가 진주한다. 홍콩은 반환식을 경축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5월말부터 시작되며 축제분위기에 빠지고 있다.반환식과 관련,2건의 대형 불꽃놀이 및 70여건의 음악회,민속공연 등 문화행사와 그밖에 수많은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찬란하게 빛나는 홍콩」이라는 주제로 홍콩섬 중심가와 구룡반도 번화가 대형빌딩을 오색 등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홍콩의 야경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 인도네시아 우중쿨론 국립공원(세계 문화유산 순례:17)

    ◎신의 손길이 머무는 위대한 태초의 땅/푸창 등 4개의 섬과 주변보다 12만551㏊/동·식물 1천여종 어우러진 “자연의 보고”/세계적 희귀종 「자바코뿔소」 유일 서식지 신이 태초에 만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인간도 여느 동물과 다름없이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땅.유네스코가 1992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인도네시아의 우중쿨론국립공원은 자바섬 서남단에 위치했다.공원은 우중쿨론반도와 푸창·파나이탄·한두룸 등 네 섬,주변 바다로 이루어졌다.면적은 육지가 7만6천214㏊,해역이 4만4천337㏊로 모두 12만551㏊나 된다. 푸창섬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7시쯤이었다.지난밤 11시쯤 출항한 통통배가 속도를 줄인다 싶어 선실에서 나오니 멀리 작은 섬이 보였다.상오7시라지만 남인도양의 아침은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섬은 동화책 속의 무인도같았다.바닷가를 빙둘러 빽빽히 들어찬 열대수 때문에 섬 안이 들여다 보이질 않았다. TV에서나 보던 희귀한 열대 동식물을 야생 상태 그대로 보게 된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우중쿨론국립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그 대신 1천종이 넘는 동식물,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곤충과 바다생물이 사는 자연의 보고이다.그 중에서도 뿔이 하나인 자바코뿔소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을 비롯해 세계적인 희귀종 수십가지가 서식한다. 아침을 먹는둥마는둥 하고 곧바로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밀림탐사에 나섰다.먼저 나루에서 섬 맞은편 초퐁까지 숲 한복판을 직선으로 통과했다.거리는 3㎞쯤.숲속은 꽉 들어찬 나무가 하늘을 가려 어두컴컴했다.주종인 헤아스 나무는 보통 밑둥이 어른 두세아름쯤 되게 굵었고,뿌리를 땅위로 마구 내뻗어 땅바닥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또 부러진 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발밑이 늘 조심스러웠다. 숲속에 동물은 흔했다.한가족인가,사슴 여섯마리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슬금슬금 달아났다.힐끔 돌아보는 모습이 그리 놀란 것같지는 않았다.원숭이가 이나무 저나무로 옮겨다니며 숲속의 침입자를 구경했다.독수리가 「까각」,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남기고 후두둑 날아갔다.그야말로 「동물의 왕국」이었다. 다음날은 우중쿨론반도로 건너갔다.자바코뿔소가 가끔 눈에 띈다는 「코뿔소 식당」까지가 첫 코스였다.숲길은 푸창섬보다 훨씬 험했다.가이드 자이칸(50)은 칼로 나무를 찍으며 길을 터갔다.그러다 나무줄기 한토막을 잘라 입으로 가져가니 묽은 우유빛 액체가 흘러나왔다.가이드가 하는대로 그 수액을 마셔보니 찝찌름하면서도 먹을 만했다.자이칸은 『숲에서 나무 속살이나 수액만 먹고도 평생 살 수 있다』고 자랑했다. 숲에서 잠깐 벗어났다 싶자 갑자기 200∼300평쯤 되는 풀밭이 나왔다.「물소광장」이라 이름붙은 이곳에서 물소의 일종인 「반텡」수십마리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반텡도 자바섬에만 사는 희귀종이다.그 곁에는 공작새들이 한가롭게 오갔다. 드디어 코뿔소가 가장 좋아하는 풀이 밀집 서생하는 「코뿔소 식당」에 도착했다.예전에는 이곳에서 코뿔소를 가끔 볼 수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주위를 둘러본 가이드는 최근 한달새 코뿔소가 다녀간 흔적이 없다고 말했다.강줄기를 따라 우중쿨론 깊숙히 들어가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추중쿨론강 하구에서 카누를 타고 거슬러 올라갔다.강가로는 이름모를 열대수들이 물속에 잠긴 채 무성히 자랐고,주변은 괴괴했다.신음소리처럼 들리는 원숭이 울음이 왠지 두려움을 자아냈다.1.5㎞쯤 나아가니 강은 두줄기로 갈리는데 통나무를 쌓아 막아놓았다. 배에서 내려 발디딜 공간도 마땅찮은 밀림을 30분쯤 헤맸을까,그제서야 가이드가 볼멘소리로 실토했다.자신도 최근 반년동안 코뿔소를 본 적이 없으며 현재 자바코뿔소는 50마리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인도네시아정부에서 최근 간행한 안내서도 그쯤 추정했다).결국 자바코뿔소를 꼭 봐야겠다는 욕심을 포기해야만 했다. 우중쿨론에서 나흘 머물면서 그 너른 자연을 깊이 체험한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럼에도 밀림 통과,코뿔소 찾아나서기,카누탐사등에서 보고느낀 자연의 위대함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바다 위 상공에서 유유히 날아다니다 해질녘이면 파나이탄섬으로 돌아가는 검붉은 박쥐떼도 보았다.1m쯤 되는 도마뱀과 원숭이·사슴은 곁에 있는 인간에 아랑곳없이 자기들끼리 어울렸다.우중쿨론의 자연은 실로 아름다운 태초의 풍경이었다.인적이 드문드문하고 신의 손길이 그대로 남은 우중쿨론에서 인간은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그것은 자연의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여행 가이드/밀림탐사 현지가이드 꼭 필요… 낚시 등 레저시설 다양 우중쿨론국립공원을 보려면 웬만큼 고생할 각오는 해야 한다.교통편이 불편한데다 현지에서 밀림을 헤치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우중쿨론에 들어가려면 먼저 라부안이나 타만자야에 있는 공원 사무소에서 허가를 받는다.또 현지인 가이드의 안내를 필히 받아야 한다.우중쿨론에는 탐사코스가 다양하게 있지만 일단 푸창섬을 중심으로 한 코스를 권할 만하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라부안까지는 육로로 3시간30분∼4시간쯤 걸린다.버스편은 수시로 있다.라부안에서 푸창섬은 75㎞,배로 5∼6시간 거리이다.푸창행은 월·금요일,돌아오는 배는 목·일요일등 주에 두차례씩 있다. 타만자야는 라부안에서 우중쿨론반도쪽으로 92㎞ 들어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이곳에서 푸창까지의 배편은 모두 개인이 운영하는 것뿐이다.따라서 출항시각이 일정치 않고 승선시간도 7∼8시간 걸리는 것이 큰 흠. 푸창섬에는 숙박시설과 식당이 있어 숙식은 해결된다.밀림 탐사말고도 해수욕·보트놀이·바다낚시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다.
  • 전원도시 베료조브카(시베리아 대탐방:44)

    ◎주말농장서 채소 등 재배… 수입 “짭짤”/직장인들 농장에 가축 위탁사육 늘어/도시 일자리 줄고 물가올라 귀향 러시/집단농장은 중국산 농산물에 밀려 점차 쇠퇴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서쪽으로 1백㎞를 달리면 아름다운 전원도시 베료조브카가 나온다.넓이가 1백∼3백㏊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콜호즈 「러시아혁명 60주년 기념농장」이 들어선 곳이다. 이 농장을 배경으로 들어선 수백가구의 주말농장이 최근들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도시로 떠났던 젊은이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농촌 「베료조브카」로 되돌아오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웃 크라스노야르스크의 군수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일자리가 없어진 탓이다.여기에 도시 물가가 폭등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일부 시민은 귀향행렬을 서두르고 있기도 하다.또 하나의 「흡입요인」은 「베료조브카」의 땅이 기름진 옥토라는 사실이다.이 옥토는 「체르나좀」이라 불린다.「흑토」라는 뜻이다.비료를 별도로 주지않아도 웬만한 작물은 2∼3모작이가능하다. ○연간 2∼3모작 가능 베료조브카 주말농장의 가축위탁사육도 도시민들로 부터 시선을 끈다.농업이외의 직업을 가진 가축소유주들이 일정한 수고비를 주고 남에게 가축을 맡겨 키우는 방식이다.러시아 전역이 그렇듯 대부분의 시베리안들은 안정된 직장을 제외하고는 직업을 두세개 전전한다.한개의 직업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이곳 주말농장에는 젖소나 양 2∼3마리쯤을 소유하고 있는 봉급쟁이가 많다.젖소나 양을 갖고 있으면 이들로부터 나오는 우유가 생활에 짭짤하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도시 직장인이 퇴근할 무렵이면 이 마을에는 초원에 맡겨둔 가축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행렬이 이어진다. 이 마을 들녘에서 만난 지굴라예프씨(39)는 따로 직장을 갖고 있는 한 젖소주인으로부터 젖소를 받아 하루종일 관리해주는 사람이다.그가 관리하는 젖소는 모두 40마리.하지만 소 한마리를 한달간 맡아주고 받는 돈은 2만루블(4천5백원정도)에 불과하다.주인들은 아침 일찍 젖을 짜고 소를 맡기고 출근한 뒤 다시 회사에서 돌아와 맡긴 소를찾아간다.젖짜는 일까지 맡기면 돈을 더 줘야한다.젖은 1차가공을 거쳐 주인이 직접 시장이나 상점에 내다판다.지굴라예프씨는 『젖소의 개인소유가 10년전부터 시작됐으며 최근 국가농장으로부터 젖소를 불하받아 키우는 개인 소유주가 크게 늘고 있다』고 변화된 이곳 모습을 전했다. 밀레스킨 이바노비치씨(67·보일러공)도 베료조브카의 「체르나좀」 혜택을 톡톡이 보는 농부이자 공장종업원이다.그 역시 식탁에 오르는 모든 야채·과일을 주말농장에서 자급자족한다.뿐만 아니라 짬짬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 출가한 아들과 딸에게 생활비를 대주기도 한다.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갔지만 아들과 딸가족은 여전히 특별한 직장없이 놀고 있다. ○야채 등 농장서 조달 때문에 그들도 주말마다 이곳으로 직접 와 농사일을 거든다.가족의 유일한 소득 원천이 이곳이기 때문이다.3백여평되는 그의 집 안뜰에는 양배추·오이·붉은무·당근·토마토·파·딸기·마늘등이 가득했다.직접 지어먹는 작물가운데 일부는 시장에 내다 팔고 있었는데 점차 판매량을 늘릴 계획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베료조브카 언덕배기에 있는 그의 농장주택은 「여름주택」과 「겨울주택」으로 나눠져 있다.6·7·8월은 여름주택에서,나머지는 겨울주택에서 보낸다는 것이다.여름주택은 통나무를 이용한 2층 목조가옥으로 모든 방이 통풍이 잘되도록 「원두막」식으로 꾸며져 있었다.겨울주택은 나무를 땔감으로 하는 페치카가 달린 여느 일반주택이었다.주택이 계절별로 따로 있는 이유는 이곳 베료조브카의 계절별 기온차가 크기 때문이다.여름은 아주 덮고 겨울은 몹시 추워 연교차가 섭씨 70∼80도를 오르내린다. 그는 『공장의 일거리가 줄어 일주일에 3일정도만 근무,남은 시간을 주말농장에 투자한다』고 했다.삶의 방편으로 밭농사를 시작했지만 전업농가도 최근 부쩍 늘고 있어 이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그의 아들·딸은 틈틈이 벽돌을 사 이바노비치의 집에 쌓아둔다.도시생활에 별반 소득이 없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다.그는 『이 모든 모습이 페레스트로이카가 망쳐놓은 것』이라면서도 이는 옛소련이 좋다는것은 아니며 단지「공산당이 없는 옛소련」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국 농산물 밀려와 베료조브카의 「배경」인 「러시아혁명 60주년 기념 콜호즈」(집단농장)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파종면적·수확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이는 농산물 가격이 자유화되면서 이전의 정부지정「단골고객」이었던 북쪽 추운지방 사람들이 가까운지역의 싼 농산물을 사먹기 때문이다.1백10㏊의 체르나좀에서 연간 양배추 3천t을 생산한다.2백㏊의 땅에서는 감자를,당근수확량도 연간 2백t에 달하는 엄청난 농장이다.하지만 해마다 10%이상 수확량이 급감,집단농장 관리자들을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지난해 겨울에는 수확해놓은 양배추·감자 수십t이 판로를 잃어 창고에서 썩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러시아의 상징이던 콜호즈가 갈길을 잃고 있는데 대해 한 관계자는 『소비지인 이웃 크라스노야르스크에 값싼 중국산 농산물이 엄청나게 밀려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농산물의 수급조절을 위해 창고를 늘리려해도,30∼40년된 농기계들을 신제품으로 대체하려해도 예산지원이 없다는 것이 콜호즈관계자의 푸념이었다.8백여명의 인부도 보다 월급을 많이 주는 직업을 찾아 하나 둘씩 떠나고 있다.이 집단농장의 평균월급은 42만루블(95달러)정도.때마침 양배추의 모종을 옮겨심던 콜호즈 인부관리자 게라시모바 옐레나씨(25·여)는 『이 정도의 봉급은 죽지 않고 겨우 살 정도』라면서 『젊은 부부들은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활하기 힘들다』며 말끝을 흐렸다.
  • 한국에선… 일본 대사관(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0)

    ◎“과거인식 잘못” 반일정서에 곤혹/비중있는 재외공관… 직원 50명/교역 급속 증가… 경제업무 중시/정치·안보 밀접한 동맹… 정무분야 중요 서울 종로구 중학동 18의 11,한국일보사와 연합통신사의 사이에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다.1백m쯤 떨어진 미국대사관이 세종로 큰 길가에 보란듯이 서 있는 것에 비하면 일본대사관은 주변의 고층빌딩 사이에 5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을 숨기듯 웅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일본정부의 사무소가 처음 설치된 것은 지난 65년이다.우리가 먼저 49년 1월에 주일 대한민국 대표부를 설치했으며,일본이 65년 주한 일본정부 사무소를 설치한 것이다. 65년 12월18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이 발효되면서 양측 대표부와 사무소는 대사관으로 승격했다.일본은 이후 부산에 총영사관을,제주도에 출장소를 각각 1곳씩 설치했다. ○11명째 대사 보내 양국간의 국교가 정상화된 뒤 일본은 66년 3월16일 기무라 시로(목촌사랑칠)초대 대사를 부임시킨이래 지금까지 모두 11명의 대사를 한국에 보냈다. 현재의 주한 일본 대사는 야마시타 신타로(산하신태랑).32년생으로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뒤 외무성에 들어가 미국 안전보장과장과 독일대사관 참사관,태국 대사,정보조사국장등의 요직을 거친 엘리트 외교관이다.야마시타대사는 특히 미국과의 안보조약 업무를 계속 담당해왔기 때문에 한·미·일 3국간의 안보협력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주한 일본대사가 접촉하는 인사의 폭은 매우 넓고 깊다는 것이 외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일본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열리는 환송연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분야의 한국내 유력인사는 모두 볼 수 있다고 한다. 야마시타 대사의 경력이 말해주듯 주한 일본대사관은 일본의 재외공관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손꼽힌다. 5대 대사를 지낸 스노베 료조(수지부양삼)의 경우 외교관으로서 최고직인 외무차관에 오르기도 했다.또 일본 외무성에서 아주국장과 북동아과장등 아시아쪽의 중요한 외교포스트를 맡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을 거쳐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 일본의 재외공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물론 워싱턴의 주일대사관으로 외교관 숫자만 1백명이 넘는다. 현재 주한 일본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은 모두 50명선.이 숫자는 미국과 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보다는 적지만,일본이 중시하는 서방선진 7개국(G­7)에 파견한 외교관의 숫자의 평균과 비슷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주한 일본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의 90%가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아파트 지역에 몰려산다는 점이다.한국에 파견된 일본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다.일본대사관의 한 직원은 그 이유를『개포동에 있는 일본인 학교에서 동부이촌동에 스쿨버스를 보내기 때문』이라고 자녀교육을 이유로 들며『집단거주촌을 만든다든지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 설명했다. 65년 수교이래 한·일관계가 양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일본대사관의 한국정부와의 협의사항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한·일 양국이 정치,안보상의 동맹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정무분야도 중요하지만 교역이 늘어남에 따라 경제분야의 업무도 마찬가지로 중시되고 있다. ○비판여론에 촉각 일본대사관측이 양국관계에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바로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한국인의 비판적 여론이다.특히 올해 광복 50주년,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도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의 「적대적」태도가 그다지 바뀌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매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일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일본도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한 현안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으며,지난 8월15일의 무라야마총리 담화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국민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그러나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의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같다』고 최근의 한국내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일본대사관은 한국내에서 반일감정이 확산될 때마다 학생시위대의 공격목표가 되기도 한다.지난 75년 8월15일 문세광이 육영수여사를 저격했을 때 일본대사관은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으며,지난 6월6일에도 학생들이 안국동 일본공보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져 도서관이 불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양국의 인적교류가 확대되고 있으며,이에 따라 주한대사관의 영사업무도 폭주하고 있다. 일본대사관측이 제공한 일본 법무성자료의 통계에 따르면 93년 일본인의 해외여행지 1위는 미국,2위는 한국이다.또 같은해 한국인의 해외여행지 1위는 일본,2위는 미국이다.87년부터 우리정부가 해외여행을 단계적으로 자유화하면서 일본 방문자는 87년 16만9천9백74명에서 지난해 59만5천6백90명으로 크게 늘었다.그러나 아직까지 약간의 규제가 있지만 미국처럼 비자받기가 어렵다는 불평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여행사 관계자들은 말한다. ○대부분 지한파로 한편으로 일본 대사관이 「관리」해야 하는 한국내의 일본인은 1만1천명 정도다.94년 10월1일을 기준으로 볼 때 장기체류자가 8천7백18명,영주자가 4백79명으로 공식집계되고 있다.장기체류자는 역시 민간기업인이 2천1백90명으로 가장 많고,유학생이나 연구원이 1천6백46명,자유업이 98명,특파원등 언론관계인이 74명,기타 4천4백9명등이다.유학생 가운데는 대사관에 체류를 신고 하지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고된 숫자는 실제 체류자보다 적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 체류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본인들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한국에 염증을 느끼거나 애정을 느끼거나 한다.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한국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본 외교관들은 대체로 지한파의 성향을 갖게 된다고 한다.양국의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가운데 적극적으로 양국관계를 개선하려다 보니 자연히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 「북한소멸」(외언내언)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것과 같다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정치와 경제의 혼돈이 극심하던 때의 일이다.이 무렵 미국의 어떤 잡지는 세계의 미래지도를 그리면서 한반도를 붉게 칠해 충결을 준일도 있다.자유진영이 몰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2차대전을 마무리한 국제회의가 이른바 얄타회담이다.전승(전승)연합국들의 전후문제처리 정상회담이다.이 회담의 합의가 지난 50년의 세계를 지배해온 동서냉전의 얄타체제를 탄생시켰던 것.독·일(독·일)의 식민지 해방과 독일분단,새로운 국경선및 영향권설정 등이 내용이었다.한반도 분단도 이 얄타회담의 산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극의 한쪽을 지배했던 공산주의와 그 종주국 소련의 몰락·붕괴는 얄타체제와 그에 의해 설정되었던 국경선및 영향권의 변경을 예고하는 것이었다.국경선변경은 89년의 베를린장벽 붕괴로 시작되었으며 동구권의 자유화와 동서독의 통일 그리고 소련의 소멸로 이어졌던 것이다.결과적으로 세계지도상의 붉은색도 거의 다 지워지고 말아믿. 그것은 불가피한 역사의 흐름이자 과정이다.강제로 분단되었던 독일은 민주화통일로 갔고 인위적으로 무리하게 통합되었던 유고와 체코는 민주화로 분열되었으며 발트3국등 스탈린에 의해 강제 병합되었던 구소련 공화국들은 자유독립의 길을 찾았다.체첸과 유고같은 경우는 지금도 분열의 진통을 계속하고 있다. 불합리와 모순이 자연과 순리를 회복한 것이며 그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계사의 흐름이자 시대의 요구라 해야 할 것이다.같은 강대국들에 의한 인위적 분단의 한반도만 아직도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것은 우리의 불행이 아닐수 없다. 영국의 권위있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95년에 소멸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의 하나로 북한을 꼽았다고 한다.내년은 좀 빠를지 모르나 언젠가는 그렇게 되는것이 역사와 시대의 요구요 순리라 생각되지 않는가?
  • 경남 울주군 천전리 바위그림(한국인의 얼굴:10)

    ◎눈·코·입 깊게 음각… 괴상한 모습/청동기 작품… 종교의식의 탈 새긴듯/옆에 사슴몸뚱이… 인두수신상 모양 경남 울주군 천전리 옛날 선사인들이 남긴 어떤 생각의 흐름을 보노라면 경외로운 마음이 우러난다.자신들이 의도한 바를,그것도 형이상학적사고를 빌려 어찌 그리도 잘 표현했는지….경남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의 청동기시대 바위그림 유적에서도 그런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천전리유적은 같은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유적(서울신문○월○일자)처럼 청동기인들이 새긴 바위그림으로 이루어졌다.그리고 두 유적은 모두가 태화강지류 대곡천 강가에 자리했다.그림이 들어있는 바위는 높이 2.7m,너비 9.5m의 붉은색 셰일.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은 주로 위쪽에 새겨놓았다.이 거대한 암벽 캔버스에는 사람얼굴 등의 인물상을 비롯,여러가지 기하학무늬와 동물 그림 등이 어우러져있다. 인물상은 7군데에 뚜렷이 각인되었다.얼굴만을 묘사한 것과 전신을 모두 나타낸 것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원시 바위그림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아주 단순한 표현기법의인물상이다.그러나 무심히 보아 넘기지 못하도록 눈길을 잡아 매어두는 요소가 분명히 깃들여있다.깊은 오목새김(음각)으로 인해 밝기 보다는 오목부분의 어둠이 뚜렷한 인물상 하나.그 인물상은 좀 괴상스럽다. 그래서 청동기인들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원시종교의식과 관련한 탈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눈 코 입이 너무 깊은 탓에 여느 사람의 얼굴로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또 공교롭게도 이같은 얼굴의 바위그림은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난다.그것은 울주군 천전리로부터 멀어도 여간 멀지않은 시베리아 아무르강유역의 바위그림 원시탈이다.시베리아와 한반도 남문 사이의 청동기인들의 길이 일찍 열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위그림에는 사슴도 여러 마리가 나온다.사슴은 동서양을 통틀어 재생력을 가진 생명체의 상징물이었다.또 샤머니즘에서는 죽은 샤먼의 영혼이 사슴의 몸뚱이를 빌려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환생을 의미하는 것이다.사슴의 뿔은 우리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왕권을 상징했다.그런데 사슴 몸뚱이에 부드러운 사람얼굴이 달린인두수신상이 천전리 바위그림 속에서 발견되었다.서양신화에 나옴직한 그림이라서 사뭇 흥미롭다. 그리고 도안화한 한 인물과 태양인듯 싶은 둥근 무늬 좌우로 네 마리의 사슴이 뛰는 그림도 있다.열매를 꿴 화살모양의 무늬는 큐빗의 화살을 연상시킨다.학자들은 이 천전리 바위그림의 무늬를 암수가 결합하는 것으로 해석했다.역시 에로스적 해석이 아닌가 한다.기하학 무늬는 마름모꼴무늬,굽은무늬,둥근무늬,우렁무늬,십자무늬,삼각무늬등 다양하다.홑이나 겹을 이룬 이들 무늬는 꿰맨 것 처럼 무더기로 붙어있다. 이 바위그림들에서는 천전리 청동기사람들의 지혜가 엿보인다.그들의 보금자리는 어디였을 까.바위그림이 있는 물가 바로 근처에서 아직 집자리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고 보면,좀 떨어진 데서 살았을 것이다.그래서 이미 발굴된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와 청량면 동천리 집자리유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들 두 집자리유적은 천전리와 대곡리 두 바위그늘 유적과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일직선상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 복식의 특색(백제를 다시본다:25)

    ◎스키타이계 영향… 깃관·장화 즐겨 착용/신분구별 공복제도 고이왕때 제정/왕은 자색도포에 청비단바지 입어 백제의 복식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따라서 당시의 복식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도 없다.다만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발굴 등에서 나타난 복식관련 유물이 더러 부합되어 복식의 대체적인 윤곽을 어느 정도 계층별로도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추세다. 이를테면 AD 501∼522년에 재위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은 당시 왕과 왕비의 옷은 물론 장신구가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특히 중국 양나라의 「직공도」는 당시 백제 사신의 옷을 그대로 보여준다.또 「삼국사기」기록은 고이왕 27년(260년)에 제정한 관복을 연상시키거니와 「주서」 「통전」 「북사」 등 중국측 기록은 서민들이 입었을 옷을 짐작케 하고 있다. 한국 고대문화의 원류가 북방문화,즉 스키타이계인 만큼 복식의 경우에도 스키타이계의 영향을 받았다.고대인들은 머리에 삼각형 모자(변형모)와 새깃털로 장식한 관(조우관)을 썼고 좁은 소매에 둔부선까지오는 왼쪽여밈의 저고리와 말을 탈 때의 편리성을 감안하여 좁은 바지를 입었다.상의 위에는 의례용으로 긴저고리를 입기도 했다.허리에는 가죽이나 헝겊으로 된 띠를 맸고 장화를 신었다.또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의 장신구를 즐겨 착용했다. ○중국 고서화에 전해 백제와 고구려·신라 삼국이 이러한 기본 복식을 이어받고 있다는 사실은 4세기 중국 양나라의 「직공도」에서 잘 나타난다.4∼6세기에 그려진 고구려의 고분벽화도 이를 확인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백제 왕의 옷 매무새는 「구당서」 및 「신당서」동이전이 비교적 소상히 전한다.소매가 넓은 자색 두루마기(대수자포)에 청색 비단 바지(청금과)를 입고 가죽띠(소피대)를 맸다는 것이다.또 흑색 가죽신(오혁리)을 신고 김화가 장식된 검은비단관(오라관)을 썼다고 한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한 왕의 옷 매무새에다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장식을 곁들여 보면 아주 찬란하다.자색옷에 꿰매어 붙인 사각형 혹은 오각형의 얇은 금판이 더욱 빛나고 허리에 두른 은제 과대는 위엄을 더했을 것이다.왕비는 물론 왕도 귀고리를 달았고 금동제 신발(금동리)을 신었다.과대는 숫돌 물고기 청동 등의 장식품을 길게 늘어뜨린 아주 화려한 허리띠다.과대는 고구려나 신라의 귀족들도 6세기까지 금·은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백제귀족들도 김과대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왕의 금동신발은 제사 등 특별한 경우의 의례용 만 아니고 평상 집무복에도 갖춘 신발인지도 모른다.금동신발은 보기와는 달리 딱딱한 신의 안쪽에 헝겊을 대면 충분히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밑바닥에는 뾰족한 스파이크 같은 것이 있어 신기에 불편하지 않다.현재도 일본 신사의 신관들이 금동신발과 같은 모양의 신을 나무로 만들어 신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금동신발·귀걸이도 백제의 공복제도는 고이왕 27년(260년)에 제정됐다.이것은 법흥왕 7년(520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신라 보다 무려 2백60년이나 앞선 것이다.백제의 공복은 관모의 장식,대 및 옷의 색깔로 품계를 구분했다. 관모에는 1∼6품에 한해 은화를 장식했다.그러나 그 아래 품계는 관제는 같았으나 은장식은 없었다.이 은화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김화와 비슷한 종류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새깃털(조)을 금속으로 모방하는 가운데 발전시킨 귀족적인 수식일 것이다.새깃털을 관에 장식하는 습속은 동북아시아 기마민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구려인들이 즐겨 사용했던데 반해 백제에서는 조배나 제사 때만 사용했다. 띠(대)의 색깔은 1∼7품은 자색,8품은 검은색,9품은 붉은색,10품은 청색,11∼12품은 노란색,13∼16품은 백색을 각각 썼다.「구당서」에 따르면 관인의 옷색깔은 평민과 구별하기 위해 모두 비색(적색)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통전」에는 6품까지는 자의,11품까지는 비의,16품까지는 청의이며 평인은 자의비의를 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어느 쪽이 옳던 일반백성은 왕의 옷색깔인 자색과 관인의 색을 옷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양나라의 「직공도」에 나타난 백제의 사신은 아주 화려한 차림새였다.짙은 연두색 장유에 고동색 선을 수구와 옷깃 섶 밑단에 둘렀으며 짙은 연두색 띠를 했다.분홍색 넓은 바지부리에는 주황색 선을 대었고 검은색 장화를 신었다.관은 잘 보이지 않으나 은화를 장식한 관을 끈으로 매어 턱 밑에서 고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지난해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 새겨진 신선과 5인의 악사는 백제의 복식을 밝혀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자료로 부상했다.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는 5인의 악사가 생생한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다.이들은 관을 쓰지 않고 머리를 길게 땋아서 조선시대 내인의 새앙내리 접듯이 몇 번 접은뒤 댕기로 묶어서 오른편 귀쪽에 붙였다.이 모습은 마치 일본의 아좌태자 양쪽에 서있는 왕자들의 미즈라를 연상시킨다. 이같은 악사의 모습은 소매넓은 자색유와 치마(군)를 입고 장보관(장포관)을 썼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또 신선으로 보이는 11개의 인물상도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과제다. ○서민 다·적의 못입어 백제시대의 여자옷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수서 동이전」은 백제부인은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는 땋아서 늘였는데 출가 전에는 한줄,출가 후에는 2줄로 땋아 머리위에 서렸다고 전한다.여인들은 또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미루어 볼 때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아름다운 장식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여왕은 기본복인 치마 저고리 위에 소매 넓은 포를 입고 띠를 하였다.머리에는 김화로 장식한 관을 썼고 금귀고리와 금·은 팔찌,금·옥·호박·유리구슬로 된 목걸이를 달았다.옷에는 왕과 같이 금판을 꿰매어 붙였다. 무령왕릉 출토품에서 확인된 백제인의 금·은 세공술은 같은 시기 어느나라보다 뛰어나다.이는 곧 백제 의상의 수준 또한 매우 높은 것을 의미한다.장신구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나 옷은 투박한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한나라의 복식문화는 문화전반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백제의 복식은 당대 백제의 금·은 세공술의 위치에 걸맞는 최고의 수준이었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물상의 두발/무령왕릉 동자상도 「우올림머리」/「주악상」과 같아… 특정계층 두발형태 인듯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유리로 만든 한쌍의 동자상이 있다.하나는 반파되었지만 하나는 완전한 모습으로 전한다.높이 2.8㎝인 이 동자상의 허리부분에는 허리에 구멍이 뚫려 줄로 달아매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이 유물에 대해서는 목걸이 같은 장식물로 쓰여지지 않았겠느냐는 의견과 종교적인 의미를 가졌다는 두가지 설이 나와 있다. 복식사학자들은 대체로 불교관련설,구체적으로 이 동자상이 보살이라는 설에는 회의적이다.왜냐하면 이 동자상이 완벽한 백제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보살을 당시의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는 것으로 형상화하기는 어렵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동자상의 머리부분이다.얼핏 보면 동자상은 머리카락이 없는 것 같다.보살로 해석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그러나 자세히 보면 머리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이 보인다.머리 왼쪽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귀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지난해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5인 주악상도 얼핏 삭발한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머리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5명의 악사에게서 모두 나타나는이 부분은 동자상의 경우보다 훨씬 뚜렷하다.그래서 동자상이나 주악상의 머리모양은 아마도 백제 당시 어떤 계층의 머리형태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이는 향로가 백제에서 만들어졌다는 또다른 확실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 향로에 새겨진 주악상의 주인공들은 성년남자임이 눈으로도 확인이 된다.백제남자의 경우도 미성년과 성년,혹은 기혼과 미혼의 머리모양이 달랐을 것이다.그런데 주악상과 동자상의 머리모양이 같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자상이라고 불리는 유리조각품의 주인공은 동자가 아닌 성인남자일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 여성수영복 스포츠스타일 “붐”

    ◎원색에 허리선 강조… 건강미 발산 “한껏”/꽃무늬 색상의 자연주의물결도 강세 본격적인 휴가철로 접어들었다.강렬한 태양과 뜨거운 모래,싱그러운 바닷내음이 서로 어울리는 올 여름 해변가에서 여성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수영복은 어떤 것일까. 최근 각 매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수영복은 시원스러우면서 단순한 기능미를 발산하는 스포츠스타일과 꽃무늬 색상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연주의 풍이 강세를 띤다. 스포츠스타일은 보그나 글래머지등 해외 여성·패션지에서도 일제히 제시하는 올 여름 유행 형태로 전세계적인 붐을 이루고 있다. 검정과 파랑 노랑 등 원색의 대비나 보색의 배합을 통해 건강미를 나타내거나 검정·붉은색등 단색으로 차분한 멋을 내기도 한다. 목선이 라운드로 처리되거나 옆허리선에 다른 색깔로 줄선을 넣는 방법등으로 안정감을 주는 스포츠형은 해변에서 단순히 바닷바람을 즐기는 형이 아니라 수상스키나 스노클링등 레포츠를 즐기며 휴가를 보내려는 활동파들에게 알맞다. 자연을 마주 대하는 해변옷차림에 수년째 패션전부문을 강타하는 자연주의 물결이 가세한 것은 당연한 현상.튀지 않는 모래색상에 꽃무늬와 과일,호피등 동물 무늬등이 다양한 형태로 연출된다.이밖에 녹색 암적색등의 민속풍 칼라와 형광 오렌지 은빛등도 포인트를 주는 색상으로 대담하고 화려하게 선보이고 있다. 바다 이미지의 줄무늬에다 자수 장식을 넣은 것은 쾌활하게 보이고 큼직한 꽃무늬는 남국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지난해에 이어 비키니 스타일 보다는 원피스 스타일이 단연 인기이며 다리를 길게 보이기 위해 양 바깥쪽의 다리선을 깊게 판 하이레그(High Leg)스타일이 두드러진다. 소재는 신축성이 좋은 라이크라 섬유가 주로 사용되는데 자연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원 수영복위에 면으로 짠 니트를 한겹 입힌 독특한 상품도 나와있다. 한편 지금까지의 수영복의 기능위에 레조트 개념이 확대되면서 해변 강변 온천등 휴양지에서 부담없이 입을 수있도록 한 세트형도 인기다.수영복과 무늬 색상이 동일한 랩스커트,티셔츠,짧은 바지,두건등이 짝을 이뤄 판매되고 있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살갗 태우기(선텐)를 하기 좋도록 어깨끈을 붙였다 떼었다 할 수있는 탱크탑 스타일도 노출경향에 힘입어 판매강세를 띠고 있는 아이템이라는게 백화점 수영복 영업담당자들의 설명이다.
  • 시인 이근배 그산하에 가다(동학의 함성을 찾아서:1)

    올해 2월10일은 동학혁명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가렴주구의 만석보 수세가 그 도화선이 되었다.18 94년 이날 분노한 농민들이 고부관아를 쳐들어간 것이다.전봉준을 우두머리로 한 미완의 혁명이었지만,그 정신은 우리의 자아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외세에 대한 민족자존의 역사요,부패 봉건체제에 대한 민중의 항거이기도 했다.서울신문사는 동학혁명 1백돌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 격동의 현장에 취재팀을 보냈다.거기서 이근배시인은 대서사시를 쓰고,동행한 기자는 역사를 엮었다. ◎횃불 타오르다/「풀뿌리 혁명」 100년 서사시로 돼새긴다 해가 뜬다 둥둥 배들평야에 해가 뜬다 황토재에 해가 뜬다 갑오년의 해가 뜬다 전봉준의 해가 뜬다 흰옷 입은 백성들아 뜨는 해를 보아라 이 기쁜 설날 아침 가슴에 뭉친 설움일랑 털어버리고 천지신명께 비는 마음으로 뜨는 해를 보아라 오백년 왕조의 기둥뿌리는 썩어가는데 해는 떠서 무엇하나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들 설날이 와도 먹을 것이 없는데 해는 떠서 무엇하나 꽝꽝 얼어붙은 배들평야녹이려 해가 뜬다 더냐 황토재 몰아치던 눈보라 쓸어내려 해가 뜬다 더냐 고을마다 백성들 피고름 짜내는 고부 군수 조병갑이 같은 탐관오리 천벌주려 뜬다 더냐 난리 난다 난리 난다 쥐불처럼 번지는 소문 틀어막으려 해가 뜬다 더냐 오냐 오냐 알겠다 다섯자 남짓 작은 키에 상투 쫓은 전봉준이 전라도 정읍땅 새집 마을 한 귀퉁이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눈 부릅뜨고 앉은 전봉준이 일어서라는 해로구나 때가 왔다 때가 왔다 일러주는 해로구나 아니다 아니다 전봉준이의 해는 백성이다 전봉준이의 하늘은 백성이다 전봉준이는 백성들의 가슴속을 본다 그 끓어오르는 설움을 본다 나라를 살리려는 붉은 마음을 본다 전봉준이는 산을 본다 들을 본다 이나라 백성들 말고 누가 이땅을 밟으랴 왜놈들이 어디라고 넘보느냐 양놈들이 어디라고 기웃거리느냐 백성들을 살려야 한다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 갓 마흔살 녹두 전봉준이 일어선다 서마지기 논밭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던 글방샌님 전봉준 동네 아이들 네댓 가르치고 무덤자리 골라주며 끼니를 이어가던 외톨배기 전봉준 남들 보기에는 그러했겠지만 사실은 녹두만큼 작은 덩치속에 해를 하나 품고 있었다 새 세상을 껴안고 있었다 백성들이 주인인 나라 백성들이 하늘 대접을 받는 나라 배달의 자손끼리 오손도손 깨를 쏟으며 사는 나라 전봉준은 새 나라의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두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어둠속을 헤매이며 빛을 모으고 있었다 동학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1893년 계사년 음3월 초열흘은 동학창시자 최제우의 스물아홉번째 제삿날이다 2대 교주 최시형은 이 날을 맞아 보은 속리산자락 장내 마을에 전국 동학교도들을 집결시키라는 통유문을 팔도 각읍 접주들에게 내린다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재앙이 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척왜양창의」 ­왜놈과 양놈을 물리치려고 대의로 일어선다 드높이 올린 깃발아래 2만을 헤아리는 교도들이 팔도에서 몰려든다 충의대접주 손병희 충경대접주 임규호 청의대접주 손천민 금구대접주 김덕명 정읍대접주 손화중… 보은 장내 집회가 있은지 열달 전봉준은 어둠속에서 불씨를 피우고 있었다 정읍,금구,부안,태인을 오가며 곳곳에 불씨를 묻어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1894년 갑오년 음 정월 마침내 횃불에 불을 붙일 날은 밝아오고 있었다. ◎보은집회는 고부봉기의 “전야제”/사회변혁 시도한 세력의 애타는 몸짓/사상적 구심점 잃은 민중의 호응받아/보은에서 고부까지 약사 한국사에서 19세기는 조선왕조가 해체되는 시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통치기강은 해이해졌고 농촌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농민전쟁과 변란이 끊이지 않았고 전염병까지 기승을 부렸다.여기에 이양선이라는 외국배들은 협박에 가까운 통상요구와 함께 약탈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즈음 중국은 아편전쟁의 패배로 동아시아의 종주국으로서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급기야 1860년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에 의해 북경이 함락돼 황제가 피란을 떠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조선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은 이미 설득력을 잃고 있었다.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실학도 역부족이었다.그러자 기층사회에는 정감록같은 도참사상과 후천개벽설이 구석구석 퍼져나가 술렁거렸다. 수운 최제우는 이러한 시대 상황속에 대응책을 구하고 나선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동학은 유교적 세계관에서 출발하여 서학의 충격을 받아들이고 민중사상의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수용했다.그러나 최제우 당시 동학은 종교적 차원에 머물렀다. 그래서 동학혁명이란 곧 「사회변혁세력이 동학을 정치·사회운동으로 활용코자 했던 몸짓」으로 평가한다.19세기 변혁운동을 이어받고 있던 전봉준을 비롯한 남접계는 종교적 성격이 강했던 최시형의 북접계와는 달리 현실투쟁이 그 목표였다.전봉준계는 이를 위해 북접계를 끌어들여 남·북접이 연계되어 일본과 서구제국을 배척한다는 척왜양의 대중운동을 일으키게 된다. 충청도 보은군 장내에서 1893년3월 2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던 보은집회가 그것이다.북접이 남접의 뜻에 호응해「척왜양창의」를 내건 평화적 집회였다.그러나 같은 시간 전봉준의 남접계는 전라도 금구에서 따로 집회를 가졌다.보은의 교도들과 합세한뒤 제물포로 올라가 직접 위와 양을 몰아내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금구집회도 4월2일 보은집회가 해산되자 막을 내렸다. 1890년경 입교한 전봉준의 지도력으로는 역부족이었고 세력이 조직화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1893년4월 금구집회 해산에서부터 1894년2월 고부봉기까지는 바로 혁명의 기운을 결집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혁명이 싹이 튼 땅/「척왜양창의」 깃발 흔적 간데없고/충북보은군 장내마을 가는길 충청북도 보은군 외속리면 장내리는 동학혁명의 전야제라 할만한 보은집회가 열렸던 곳이다.보은에서 상주가는 길을 따라 20분쯤 달리다보면 면사무소와 농협을 표지판으로 쉽게 찾을수 있는 전형적인 면소재지이다. 장내는 현재 1백5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요즈음의 지리감각으로는 왜 이곳에서 그같은 대규모 집회가 열렸는지를 이해하기가 쉽지않을 것이다.그러나 장내는 남으로는 영동,동으로는 상주,서로는 옥천·대전,북으로는 청주가 모두 1백여리 상간에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마을에서는 이제 서쪽의 옥녀봉과 동서를 가로지르는 삼가천을 경계로 농성하던 2만 동학교도들의 주문외는 소리와 「척왜양창의」를 내세운 깃발의 흔적은 찾을수 없다.다만 속리산 쪽을 향해 마을을 2백∼3백m쯤 벗어난 왼쪽 논 사이에 남아있는 동학교도들의 얕은 돌성만이 지나간 역사의 일단을 말해주고 있다. 동학혁명 이후에 지어지기는 했지만 마을을 가로지르는 삼가천 너머에 있는 선씨 문중 아흔아홉간 고옥은 옥녀봉과의 절묘한 구도로 찾는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 부드러워지는 「YS패션」(청와대)

    김영삼대통령의 맵시가 달라지고 있다.검게 물들인 머리의 색깔이 좀 엷어졌다.전에 없이 꽃무늬가 든 넥타이를 자주 맨다.앞머리는 이마쪽으로 약간 끌어내리고 있다.전반적으로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있는 인상이 짙다. 올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이같은 변화,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의미는 무엇일까.대통령의 측근들은 『머리색깔이 너무 진하니까 오히려 어색하다는 지적이 있었다.그러나 넥타이는 특별히 변했는지 우리도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넥타이에 변화가 시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취임식에서 그는 빨강과 쥐색 줄무늬 넥타이를 맸다.클린턴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붉은색과 감청색,미색의 3색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였다.대통령취임후 공식석상에서 맨 넥타이의 모두가 줄무늬거나 체크·둥근 원이 들어 있는 비교적 단순한 무늬였다.그러나 3일 대통령의 경찰병원 위문 때와 해외공관장 만찬석상에서의 넥타이는 붉은색 바탕에 꽃무늬가 새겨진 것이었다. 김대통령의 패션 스타일은 검정이나 감청색 양복에 붉은색이 들어가는 넥타이로압축된다.여기에 가운데가 움푹 꺼지도록 매는 「YS식」 넥타이매듭이 상표다. 양복은 제일모직 VIP복지로 만든다.양복을 맞추는 곳은 오래된 단골집인 체스트 필드 양복점. 김대통령의 패션은 그런점에서 취임전과 후가 달라진게 하나도 없다.머리염색을 연하게 하고,헤어스타일을 부드럽게 하고,꽃무늬 넥타이를 매는 의미를 새삼스레 찾는 것도 고집스럽게 변하지 않는 독특한 취향 때문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은 다섯켤레가량의 구두를 지니고 있다.모두 끈이 없고 상표도 똑같다.찰스 주르당.국내업체가 상표를 도입해 만들고 있는 신발이다.신발크기는 2백65㎜. 대통령이 되고나서 켤레수가 늘어났지만 상도동에 있을 때는 구두가 늘 한켤레였다.3당합당후 한번은 신발장에 있는 구두를 출입기자가 들어봤다가 6만원이란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있는 것을 발견,화제가 됐었다.굳이 이 상표를 고집하는 것은 가죽이 다른 신발들보다 연해서 발이 편하다는 설명.9만2천원짜리. 구두나 신발에 대한 검약정신은 악연을 가진 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과 비슷하다.상도동에서 청와대로 이삿짐을 싸고 옮긴 사람들은 측근들이 아닌 청와대 경호실 사람들이었다.경호원들은 신발장에 있던 낡은 운동화를 별 생각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다음날 경호실은 그 운동화를 다시 찾느라 소동을 벌여야 했다.쓰레기통에 버린 것은 대통령의 하나밖에 없는 조깅화였기 때문이다. 지금 김대통령에겐 조깅화가 두켤레 있다.모두 코오롱 제품.황영조선수를 세계제일의 마라토너로 키운 코오롱이 2억원인가를 개발비로 들여 개발한 조깅화다.원래는 그것도 한켤레밖에 없었는데 미국 방문에 앞서 예비용으로 하나를 더 구입했다고 한다.대통령은 장학로제1부속실장에게 돈을 주면서 한켤레를 더 사오라고 했다.2만7천원. 미국서 클린턴과 조깅하는 사진이 국내언론에 전송된 직후 한 신문사에서는 대통령이 신은 운동화가 미국산 나이키가 아니냐 하는 얘기가 나왔었다.무늬가 나이키와 비슷한 탓이었다.그러나 사진 원판을 확대해 보니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는 결론에 이르러 가십으로는 쓰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김대통령에게 많은 것은 넥타이다.넥타이에 대해서만은 멋을 부린다.두 며느리와 미국에 사는 딸들이 주로 공급하고 있다.
  • 옐친정부의 과제(러시아는 어디로:1)

    ◎보수파 유혈진압 이후의 정국전개/개혁과정 불만층 무마가 급선무/양대 선거 시기 등 향후 정치일정 난제/민주원칙 어긴 조치들 대내외적 부담 4일 상오 7시부터 하오 5시까지 정확히 10시간 동안 계속된 전투에서 옐친대통령은 마침내 「승리」했다. 모스크바강을 사이에 두고 사격연습하듯 쏜 T­72탱크의 로켓포는 일명 「백악관」으로 불리는 순백의 러시아의사당 건물을 화염에 휩싸인 폐허로 만들어 놓았다. 러시아는 이제 권력의 한 축인 의회가 존재하지 않는 절름발이 국가가 됐다.검붉은 화염을 내뿜는 의사당건물은 지금 러시아가 처한,그리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를 웅변하고 있다. 정확한 피해규모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이번 사태의 사상자수는 사망 1백명을 포함,수백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집중포화를 맞은 의사당 안에 남아있을 피해자들까지 합치면 사상자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유혈사태 진압이 끝난 뒤 옐친정부가 떠안은 첫번째 과제는 사상자들에 대한 처리문제다.전투기간중 이들은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술주정꾼 절도범들로 구성된「폭도」로 불렸다.그러나 이들중 다수가 개혁추진과정에서 소외된 불만계층임을 부인할 수 없다.이들에 대한 정부의 보상문제는 물론 저임금,연금생활자 등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책이 우선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어려운 것은 조기총선 등 향후 정치일정 문제.비상권한을 확보한 만큼 향후일정은 옐친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우선은 12월 총선을 예정대로 치를지 여부를 결정지어야 한다.지난달말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는 현재 물리적으로 12월총선이 가능할지를 검토중인데 「불가」입장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상황도 판이하게 바뀌었다.내년 3월경 동시선거,아니면 시차를 2∼3개월 정도 두고 양대선거를 치르는 방안등 몇가지 대안이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대선거를 순조롭게 치르기 위해서는 89개 지방정부의 협조가 불가결의 요소다.당초 옐친대통령은 의회의 반대를 비켜가기 위해 지방지도자들을 국정의 파트너로 상대했고 반면 이들은 옐친을 지원하는 대가로 경제·정치면에서의 자치권 확대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크렘린 일각에서는 의회가 해산된 마당에 지방정부의 눈치를 더 이상 살필 필요가 없다는 소리도 있다.옐친대통령이 국정을 완전히 주도해야 한다는 말이다.그러나 만약 현재 작업중인 신헌법안에서 지방정부대표로 구성될 상원(연방의회)의 역할을 축소시킨다든가 이미 소집돼있는 연방평의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등의 기도가 있을 경우 지방정부와의 마찰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옐친대통령이 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지방정부와의 권한분담을 어느 선에서 균형을 잡느냐가 향후 정국안정의 키포인트로 등장했다. 대서방 관계도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이번 사태기간중 서방국들이 일관되게 옐친을 지지한데는 공산정권으로의 복귀가능성이 있는 의회보수파들에게 정권이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 크게 작용한 게 사실이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혈진압을 비롯,인권·민주화등 국내문제를 걸고나올 가능성이 크다.경제재건을 위해 서방의 원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옐친으로선 이를 끝까지 무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옐친대통령은 프라우다,소비예츠카야 로시아등 의회지지 주요 일간지들을 정간시키고 반대파들의 정당·사회단체활동을 모두 중지시키는등 앞으로 민주주의원칙에 집착치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했다.이런 분위기하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질지도 사실은 의문이다. 반옐친세력의 최대보루였던 의회는 어쨌건 문을 닫았다.하지만 권위주의 통치가 장기화되고 경제가 빨리 회복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반대파들은 분명 다시 세를 규합할 것이다.옐친은 이번에 군을 불러들였다.같은 사태가 되풀이된다면 군의 속성상 그때는 「부르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거리로 나올 것이다. 따라서 이번 싸움은 옐친의 승리가 아니라 그의 마지막 「도박」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이 도박에서 지면 그의 시대도 끝이다.
  • 안혁·강철환씨가 말하는 참상(요덕15호 북한정치범수용소:12)

    ◎생과 사의 경계선:사/눈쌓인 병풍산서 죽음의 벌목사역/굴러내리는 원목에 압사·골절 일쑤/작업성과 나쁘면 하루한끼 주는 구류장 형벌 정치범 수용소에서 실시하는 강제노역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1년동안 줄곧 계속하는 돼지기르기·소기르기·식품공장 사역등이 있는가하면 계절에따라 풀베기·강냉이 심기·무배추재배·산나물채취등 갖가지 노역이 기다리고 있다.또한 폭우·폭설이 내려 길이 훼손되거나 시설물이 부서지면 수시로 임시작업반이 편성돼 사역을 해야한다. 노역대상자는 7살 어린이에서부터 8순노인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각자 나이와 체력에 맞춰 빠짐없이 일해야 한다.노역자체가 형벌이므로 이를 게을리하거나 작업성과가 좋지않으면 강냉이쌀 배급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한 달에 3번이상 지적을 받으면 그 무서운 수용소안의 구류장에 1주일정도 벌을 받게된다.반 평밖에 안되는 구류장에서 한 끼씩만 먹고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있으면 나중에는 오금이 펴지지 않아 풀려나서도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나오게 된다.이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은 특히 구류장 형벌을 가장 무서워한다.꾀병을 부리거나 작업중 요령을 피우거나 건성으로 일을 하다가는 영락없이 적발되어 구류장 형벌을 받게된다. 폐병에 걸려 각혈을 하면서도,치질이 심해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하면서도,또 늑막염에 걸려 옆구리에서 고름을 흘리더라도 죽기전까지는 반드시 작업장에 나가야 한다. 강제 노역 가운데 가장 어렵고 고달픈 일이 벌목작업이다.사람들이 벌목작업을 무서워하는 것은 물론 힘들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작업중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벌목작업은 수용소에서 4㎞쯤 떨어진 병풍산 일대에서 행해진다.작업 기간은 12월부터 3월까지이다.숲이 우거지고 나무잎이 무성한때를 피해 겨울철에 나무를 베어내는 것이다.벌목작업에는 20대에서 50대까지의 「힘좋은 남자」들만 동원된다. 매일 새벽 6시에 수용소 앞마당에 집합,5명씩으로 된 1백여개의 작업조를 편성한뒤 작업장까지 걸어간다. 아직도 사방이 어둑어둑한 눈쌓인 추운 겨울 새벽.담요 조각으로 온통얼굴을 감싼채 넝마같은 옷을 겹겹이 껴입고 발에는 헝겊으로 감발한 사람들이 톱과 갈쿠리를 둘러메고 소리없이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유령들의 행진처럼 소름끼친다. 5명으로 구성된 각 작업조는 눈이 무릎까지 쌓인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계곡 양쪽켠 산등성이로 다시 기어 오른다. 병풍산은 크고 험하고 가파른 산이다.좁은 계곡 양켠의 V자형 산등성이를 올라가면 이미 사람들은 기운이 빠져 비실거린다.그곳에는 이미 붉은 페인트로 베어야 할 나무 밑둥에 표시가 되어 있다.벌목 대상은 주로 소나무와 전나무이며 지름이 30㎝ 이상 1m까지 되며 길이는 10∼20m의 거목이 대부분이다.우선 5명이 한 그루씩 달라붙어 톱질을 한다.30여분쯤이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무가 쓰러지고 이어 곁가지를 모두 잘라낸뒤 5m 길이로 2∼3토막의 통나무를 만든다. 벌목작업때 나무를 베고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손쉬운 일이다.가장 위험하고 힘든 일은 토막낸 나무를 계곡 아래쪽으로 옮기는데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계곡 양쪽의 산등성이는 60도정도로 가파르다.때문에 나무토막을 5명이 한꺼번에 아래쪽으로 밀쳐버리면 저절로 굴러내려간다.그러나 이때가 위험하다.나무 숲에 가려 아래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굴러내린 원목에 사람들이 부딪혀 현장에서 즉사하거나 허리·다리·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잇따른다.1t에 가까운 원목이 굴러내리는 탄력은 대단해 굴러내리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변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워낙 사방에서 우릉꽝꽝하며 원목이 구르는 소리 때문에 분간을 못하기 일쑤이다.작업하는 사람들은 원목을 굴릴때 『어이 간다』하며 함성을 지르지만 메아리 탓에 별 효과가 없다.보위부원들은 『죽거나 다치면 너희들만 손해니까 알아서 하라』고 말할 뿐 아무런 안전대책도 없다. □특별취재반 김만오(정치부차장) 양승현(정치부기자) 최철호(사회1부〃) 문호영(정치부〃) 송태섭(사회1부〃)
  • 김정일,인민군 완전 장악할까(오늘의 북한)

    ◎25일 창군기념일 계기로 점검 해본다/원수계급 받으면 사실상 군지배/「권력승계」관련 보수파 숙청 예상/당군사위장·국방위장 맡을지는 불투명 북한의 「붉은 군대」「조선인민군」이 오는 25일로 창설 60주년을 맞는다.김정일의 50회생일(2·16),최고인민회의 제9기3차회의(4·8∼10),김일성의 80회생일(4·15)등 굵직한 행사에 이어 치러지게 될 이번 인민군 창군60주년기념행사는 김정일의 명실상부한 군권력장악과 관련,또다시 내외의 관심을 끌고 있다.현역병 1백만명의 규모를 자랑하는 「조선인민군」은 『조선노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란 북한의 명문규정대로 로동당의 절대적 지배하에 있는 「당의 군대」「혁명의 군대」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동시에 이러한 당적·혁명적 성격은 김일성의 유일체제와 연관되어 이제까지 조선인민군을 철저한 「김일성의 군대」로 각인시켜 왔다. ○매년 기념행사 요란 지난 1977년까지 2월8일을 인민군창건일로 기념해 오던 북한은 1978년부터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창설(1932)했다는 4월25일로 일자를 변경,해마다 요란한 기념행사를 벌여오고 있는데 이같은 결정 역시 인민군의 김일성 사병화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의 생일 이틀전인 지난 13일 「중대방송」을 통해 당중앙위원회,당군사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국방위원회 공동명의로 「김일성주석에게 대원솔칭호를 수여한 데 대한」「결정」을 발표,지난해말 인민군최고사령관에 취임한 이후 예측돼왔던 김정일에의 원솔계급수여가 오는 25일 현실화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북한군의 장성서열은 소장·중장·상장·대장·차솔·원솔로 올라가는데 원솔의 자리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인 지난 53년2월부터 김일성주석이 지켜오고 있으며 차솔는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 올라있다. 북한군은 최고사령관아래 「모든 군사정책을 마련하고 군산업발전에 관한 사업을 조직·지도하며 전인민군을 지휘하는 최고 군사기관」(당규약 27조)인 당군사위원회와 이를 심의·집행하는 국가기구차원에서의 국방위원회를 최상위에 두고 있다. 실제적인 군정은 최고 당·정협의체기구인 중앙인민위원회직속의 인민무력부가 위 두기구의 통제 아래 인민군총참모부(총참모장 최광)를 통해 시행하도록 되어있는데 김일성주석은 당군사위원장과 국방위원장을 모두 맡고 있어 정책결정의 정점에 서 있다. 한편 김정일은 그의 권력승계작업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지난 80년 당중앙위 6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상무위원」「정치국원」「비서」로 선출됨과 동시에 오진우에 이어 두번째 위치로 당중앙위 군사위원에 올랐다. 이어 81년 후계자호칭이 공식적으로 나오면서 군사업의 70%이상을 직접 지시하기 시작했고 90년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중앙인민위원회와 동격의 위치로 확대개편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됐으며 지난해 12월 당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인민군최고사령관에 추대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계급은 소좌 따라서 실질적으로 군을 장악하고 있으나 공식계급은 73년 당조직선전부 근무당시의 소좌계급에 머물고 있는 김정일이 차솔인 오진우위의 원수계급에 올라간다는 사실은 군내 위계질서를 명확하게 확립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볼 수 있다. 북한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실제 군을 통제하는 국방위원회위원장과 당군사위원회 위원장을 이번 25일 군창설기념식에서 김일성으로부터 물려받을 것인가의 여부가 김정일의 명실상부한 군권장악을 측정하는 관건이 될것이며 이는 또한 「총비서」 「주석」직이라는 공식권력승계를 점칠수 있는 자대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대폭 인사개편 될듯 이와관련,서재진민족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군은 심각한 인사적체에 직면,50세의 「김정일원수」가 들어섬으로써 이을설등 연로하고 무기력한 혁명빨치산1세를 솎아내 군의 신진대사를 꾀함과 동시에 권력승계와 관련한 군의 지지강화를 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따라서 25일 행사이후 대대적인 군인사개편과 김정일의 양위원장 취임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헌법 일부개정 검토 북한헌법 93조는 그러나 주석이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회위원장이 된다고 규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의 당군사위와 국방위 위원장직승계를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불가피하다. 바로 이 대목이 지난 10일 폐막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 3차회의에서 제기된 「헌법수정」안의 내용에 관심을 갖게하는 부분이다. 그 구체적 내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있는 이 헌법수정안에 대해 서실장은 『북한이 공개한 내용이 「김일성동지와 로동당이 새롭게 제시한 사상과 이론,그 밑에 인민이 이룩한 성과를 반영해」라고 돼있어 애매하긴 하지만 「포괄적」이라는 측면에서 헌법 93조의 수정등도 점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연구소의 김창순이사장은 『지난해 이뤄진 김정일의 인민군최고사령관 추대가 위헌사항이므로 이를 바로 잡기위해 주석=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이라는 고리를 끊었을 수도 있다』고 밝히고 『이번에 김일성에 수여된 대원솔계급을 새로 만드는 안도 포함될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김이사장은 최근 일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제1부주석제 신설」가능성에 대해서는 『원래 제1부주석제가 북한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과거 김동규와 김일(76·4)이 그 자리에있었다』고 지적,『김정일은 왕위계승자로서의 동궁의 개념에 드는 이상,영의정·우의정과 같은 개념의 제1부주석등 행정의 수위자리를 꼭 거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원수가 국방위원회와 당군사위원장을 맡는 것이 상식이긴 하지만 신설된 대원솔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것』이라며 김일성의 대원솔계급이 단순한 상징적 계급이 아닌 스탈린식의 실질적 권한을 갖는 것이라면 군을 통제하는 양 위원장자리는 당분간 김정일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 했다. 김일성이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엔 결코 최고권력의 지위를 김정일에 넘겨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는 전문가들 역시 인민군의 현계급제도에 없는 「대원솔」계급 신설은 향후 김정일에게 「총비서」 「주석」 등의 자리를 물려주더라도 김일성이 더 「상위」의 지위를 만들어 눌러 앉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라고 말하고 있다.
  • “정상회담때 쌀개방 언급 없었다”/부시 서울여로 이모저모

    ◎“청와대측,회담결과에 지극히 만족”/결혼기념일 부시에 붉은장미 47송이/“통일은 한국 주도로”… 부시,미군기지서 강조 조지 부시미국대통령은 방한 이틀째인 6일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과 단독·확대정상회담을 가진뒤 공동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국회를 방문,연설을 하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낮에는 신라호텔에서 한미상공인들을 초청,오찬을 함께 했으며 하오에는 미군기지를 방문하고 주한미국인들을 접견한뒤 저녁에는 노태우대통령내외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청와대 배경등 설명 ▷정상회담◁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이날 상오10시20분부터 11시25분까지 1시간5분동안 청와대본관 2층 집무실에서 단독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현안등에 대해 논의. 노대통령은 부시대통령을 집무실로 안내,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며 청와대 주변전경을 설명한뒤 자리를 잡고 잠시 환담. 노대통령은 『새해 벽두에 각하와 함께 남북관계의 장래설계를 논의하게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화제를 돌렸고 부시대통령은 『나도 뜻깊은 경험으로 여긴다』고 화답. ○…한미 양국의 확대 정상회담은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간의 단독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약 10분 길어지는 바람에 상오 11시25분에서야 시작. 확대회담 장소인 청와대 본관 2층 집현실에 나란히 입장한 양국 정상은 먼저 사진기자들을 위해 악수를 나누는 포즈를 취한 뒤 부드러운 조크로부터 회담을 진행. 노대통령은 먼저 『오늘로 결혼 47주년을 맞은 부시대통령내외가 기념여행을 한국으로 와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문을 연 뒤,동북아 새질서,한미경제협력문제등에 관해 언급. 이어 부시대통령은 『오늘 노대통령내외분께서 결혼47주년을 의미하는 붉은 장미47송이를 숙소로 보내줘 감명받았다』며 『한여자와 47년간 살아온 한 남자의 얘기를 들어보지 않겠느냐』고 조크,폭소. 양국 정상의 이같은 우의어린 인사교환으로 이날 확대회담은 화기찬 분위기속에서 10분만에 간단히 종료. ○비내려 실내서 진행 ▷청와대 환영행사◁ ○…부시미대통령 내외를 위한 6일 상오의 공식 환영행사는 비가 내리는 날씨때문에 당초 본관앞 대정원에서 개최하려던 계획을 바꿔 본관 1층 로비에서 간략하게 진행. 부시대통령내외가 도착하자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대통령내외는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으며 노대통령이 날씨때문에 환영행사장을 실내로 옮겼다고 양해를구하자 부시대통령은 『멋진 환영행사가 될 것입니다』라고 인사. 부시대통령은 환영식이 끝난뒤 1층 로비 오른쪽에 마련된 서명대에 다가가 「GBUSH」라고 기념 서명. ▷국회연설◁ ○…부시미대통령내외는 이날 하오2시 승용차편으로 국회에 도착,박준규국회의장의 안내를 받으며 의사당 2층 의장 접견실에 와 방명록에 서명. 부시대통령은 박의장의 소개로 민자당의 김영삼대표 김종필 박태준최고위원과 민주당의 김대중 이기택대표등 여야지도자들과 악수를 나눈뒤 민자당의 이자헌총무,민주당의 김정길총무 박정수국회외무위원장 현홍주주미대사등 우리측 인사 11명 및 그레그대사,솔로몬국무부동아태담당차관보등 미국측 인사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농산물수입개방,남북한 관계등에 관해 18분간 환담. 부시대통령은 환담이 끝난뒤 박상문사무총장의 안내로 국회본회의장에 입장했으며 박의장의 소개및 환영사에 이어 20분간 한미관계및 동북아정세,우루과이라운드협상,남북관계및 핵문제,한미무역문제 등에 대해 연설. ○칠보원앙새등 선물 ▷공식만찬◁ ○…노태우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위해 이날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베푼 공식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하오7시부터 9시45분까지 진행. 양국정상내외는 만찬시작전 2층 접견실에서 선물과 자필서명된 사진을 교환했는데 노대통령내외는 분청도자기와 칠보원앙새 한쌍을,부시대통령내외는 크리스탈 유리병 한쌍과 바바라여사에 관한 책 한권을 각각 선물. 노대통령은 만찬사를 끝낸뒤 『오늘이 마침 부시대통령내외의 결혼 47주년』이라며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성을 아내로 둔 분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을 남편으로 둔 분이 3년뒤 백악관에서 금혼식을 맞이하도록 기대한다』고 말하고 준비된 축하케이크를 내오도록 했고 부시대통령내외는 축하케이크를 자르며 만면에 웃음. ▷정상회담 반응◁ ○…약 1시간15분동안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이 끝나자 청와대와 정부관계자들은 이번 회담결과에 지극히 만족하는 표정들. 회담결과를 브리핑한 김종휘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양국정상은 회담결과에 지극히 만족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공동기자회견에서 미측 기자들이 일본문제에 대한 질문만을 계속한 것만 봐도 이번 부시대통령의 아시아순방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며 한미관계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 김수석은 한·미통상문제에 쏠리는 국민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는 듯 『양국 정상은 지금까지 한미협력관계가 외교·안보중심에서 앞으로는 경제분야에서도 파트너 쉽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쌀이란 단어는 나오지도 않았다』고 설명. ○규제완화 우회적 강조 ▷기업인 오찬◁ ○…부시대통령은 방한 이틀째인 6일 조찬과 오찬을 한미기업인들과 함께해 이번 순방의 목적이 통상관계에 있음을 거듭 입증. 부시 대통령은 특히 이날 낮 한미기업인 6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라호텔에서 열린 오찬간담회에서 통상관계중 비관세장벽등의 규제완화와 미국계 금융기관의 진출을 가로막는 금융상의 제약조치를 철폐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강조. ▷미군기지 방문◁ ○…캠프 케이시 전방미군기지 방문을 마친 부시대통령은 하오 4시30분쯤 용산 미군기지에 도착,기지내 강당에서 3천여명의 미군및 가족 그리고 한국거주 미국시민들을 상대로 약10분간 연설하고 이들을 격려. 부시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지난해 중동전 당시 쿠웨이트에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을 격퇴시킨 미군의 역할을 상기시키면서 한반도에서도 주한미군이 평화유지를 위해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특히 한반도 통일이 독재자가 아닌 자유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민주국가(한국을 지칭)에 의해 이루어져야한다고 역설.
  • 세균공장 피격… 바그다드에 괴질 번져(걸프전쟁현장)

    ◎물·전기 끊겨 촛불 아래서 마취 않고 수술/쿠웨이트에선 콜레라 발생… 다수 사망설/“이라크,다국군 지상공격 대비 화학지뢰 매설” ○감염병사 50여명 숨져 ○…다국적군에 의한 바그다드교외 세균무기 생산 공장의 공습으로 인해 이 공장을 경비중이던 50여명의 병사가 급격히 번지고 있는 수수께끼의 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소련 타스 통신이 10일 이집트 신문 알하키카를 인용,보도했다. 알하키카지는 『시리아 국경을 넘어 이라크에서 탈출해온 이집트인 의사의 증언에 의하면 세균 공장에 대한 공중폭격 직후에 공장을 경비하고 있던 1백여명의 병사가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이중 절반이 입원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들 환자들은 특히 폐와 순환기,장기 등에 장애를 받고 있다. 병원측은 살균을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실패해 바그다드시로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고 이집트인 의사는 설명했다. ○후세인,또 승리 장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0일 약 2주일간의 침묵을 깨고 3주 이상의 다국적군 공습을 겪고 있는 이라크 국민들이 보인 힘과 확고부동함을 찬양하면서 인내할 경우 걸프전쟁에서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이날 바그다드 방송을 통해 이라크 국민들에게 행한 약 25분간의 연설에서 『이라크 국민들은 확고부동하고 신념과 빛에 차 있으며 신이 그들에게 부여한 임무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믿음에 순종하고 있다』고 찬양했다. 그는 또 이라크 국민들에게 인내할 것을 촉구하고 이라크는 앞으로 수일내로 중동지역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몰아내기 위한 전투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20여일간의 공습으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는 전화는 물론 전기와 수도도 없는 도시로 변해버렸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가 1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바그다드에서 암만으로 피난 온 의사와 주민들의 말을 인용,다국적군의 쉴새 없는 공습으로 거의 모든 통신시설·발전소·정유공장·주요 교량·비행장·군사기지 등이 파괴됐다고 전했다. 이슬람교국에서 적십자 역할을 하는 「붉은 초승달」의 의사인 요르단인 리제크 자브라부박사는 공습당한 바그다드 주민들의 생활상은 14세기 생활상과 비슷하다면서 수혈이나 정맥주사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마취도 하지 않은채 어린이들의 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촛불 아래서 하고 있으며 수술전에 손을 씻을 맑은 물조차 없다고 비참한 상황을 설명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는 또 항생제나 맑은 물조차 없어 치료도 못받고 죽어가는 환자도 있으며 주민들이 연료가 부족해 추위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중국,외교노력 강화 ○…걸프전쟁과 관련,이렇다할 외교적 역할을 행사하지 않았던 중국이 사태의 평화적 해결책 모색을 위해 양복창 외교부 부부장을 시리아와 이란·터키 및 유고슬라비아에 파견함으로써 걸프외교에서의 역할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11일 양부부장이 중국지도자들의 메시지를 휴대하고 이들 4개국을 순방,『걸프분쟁의 조기해결 및 평화회복 방안과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부부장은 시리아와 이란을 거쳐 오는 15일 터키에 도착하며 17일 유고슬라비아를 방문,12일부터열리는 비동맹운동회담의 결과를 보고받을 예정이다. ○…걸프전쟁 개시이후 모두 1백65명의 미군이 사망하거나 작전중 실종됐다고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이 10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전투작전 중에 사망한 다국적군은 87명이며 항공기 손실대수는 27대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군 및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이라크에서는 1만5천명의 군인이 사망했다고 카이로의 알 하키카지가 이날 밝혔다. 이 신문은 이 정보가 「아랍 동맹 3개국」으로 보내는 이라크 지도부의 메시지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밝히고 폭격과 미사일 공격으로 14개 군 시설물이 완전 파괴됐으며 사망자 대부분은 이 시설물들의 경비병들과 수비대들이라고 말했다. ○…이라크군이 점령중인 쿠웨이트 일부지역에서 콜레라가 발생,첫 사망자가 생겼다고 로이터 통신이 쿠웨이트 피난민의 말을 인용해 보도. 쿠웨이트에서 요르단으로 지난 8일 피난온 압둘 라만군(17)에 따르면 『쿠웨이트의 살미야 지역에서 한 부자가 콜레라에 감염,아버지가 숨졌다』고 말했다. 라만군은 『사람들로부터 다른사람들도 콜레라에 걸려 죽었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 숫자는 모른다』고 말했으나 이날 요르단으로 피난온 사람들은 콜레라 발생사실을 들은 바 없다고 부인. ○…미군은 이번 전쟁에서의 사망자 처리를 위해 사우디 북부사막지대에 냉동차를 비롯한 영안실을 갖추는 등 사후처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개전이후 지금까지는 카프지전투에서의 사망자 11명과 사고사를 포함,모두 54명에 대해 사후처리를 해왔으나 지상전이 벌어지면 사망자수가 급격히 늘 전망이어서 이들의 손도 바빠질 듯. 전장에서 군인이 사망하게 될 경우 그 처리절차는 우선 장비와 인식표 등 개인 소지품을 수거한 뒤 수의를 입혀 「슬리핑백」에 넣어져 냉동차로 옮겨져 보관되다가 본국으로 송환,도버·댈라웨어 공군기지에서 가족들에 인도된다. ○이라크,메카 순례 거부 ○…이라크는 미군 및 유럽군이 사우디내의 성지에 주둔하고 있는데 대한 항의로 메카로의 연례성지 순례를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고 압달라 파델 이라크 종교장관이 11일 말했다. 파델장관은 또 이라크는 성지순례 보이콧에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해 몇몇 이슬람 국가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지순례는 매년 6월 중순에 행하게 된다. ○…다국적군 전투기들이 보다 작은 지역을 목표물로 공격함에 따라 전투기들간의 공중충돌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552AWACS편대의 개리 뵐거대령이 11일 말했다. 뵐거대령은 다국적군의 공습이 쿠웨이트와 이라크 남부지역으로 국한됨에 따라 공격목표지역에 비해 출격횟수가 지나치게 많아졌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 찰스 페티존대령도 너무 많은 전투기들이 한꺼번에 좋은 지역에 몰려 다른 전투기들의 임무수행을 위해 자신의 목표를 공격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전투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와 이라크내에 설치한 50만개의 지뢰들 중엔 신경가스와 겨자가스로 채운 지뢰들도 포함됐을 수 있다고 한 미군 소식통이 11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라크군이 부설한 지뢰에는 이란­이라크전때 이라크가 이란군과 쿠르드족에 사용한 화학무기를 채운 특수지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으나 보안상의 이유로 그같은 정보입수 경위는 밝히지 않았다. ○터키,유수량 감축 부인 ○…터키는 11일 터키가 이라크에 대한 무역금수 확대조치의 일환으로 유프라테스강의 이라크로의 유출량을 줄였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무라트 숭가르 외무부 대변인은 터키는 기술적 이유로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3일까지 유프라테스의 시리아 및 이라크로의 유수량을 약 1백70㎥ 감소시켰다고 말했다. 숭가르 대변인은 시리아와 이라크가 평소대로 초당 5백㎥의 강물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는 강물이용 문제가 민감해 지난해의 경우 시리아·이라크·터키간에 긴장을 조성하기도 했었다. ◎걸프전 11일 상황/다국군,스커드발사대 5기 폭파 ▷하오1시◁ 미 딕 체니 국방장관과 콜린 파월합참의장,이틀간에 걸친 사우디 방문을 마치고 워싱턴 도착. ▷하오5시35분◁ 다국적군기,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이동식발사대 5대를 파괴. ▷하오7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라프 산자니 이란 대통령에게 우호관계 다짐하는 메시지 전달. ▷하오7시5분◁ 프랑스 군대변인,프랑스기들이 이라크 남동부 항공기 격납고와 쿠웨이트 남부 포진지를 폭격했다고 발표. ▷하오9시20분◁ 비동맹 15개 국가,베오그라드에서 걸프전중재를 위한 회담을 가짐. ▷하오11시10분◁ 이라크,쿠웨이트 남부지역에 신경 및 겨자가스를 채운 지뢰를 매설했다고 미군소식통 발표. ▷하오11시35분◁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후세인 요르단국왕과 걸프전중재를 위한 정상회담을 갖기위해 암만에 도착.
  • 남원 국립종축장 목부 김춘석씨의 “신미년 소망”

    ◎“새해엔 양같이 화목한 삶을”/다툼없는 「무리생활」 본받을만/선보다 악이 판치는 사회 안타까워/서로 돕고 양보하는 미덕 되살릴때 새해 새아침이 밝았다. 양띠해인 신미년의 주인공 양떼들의 지상낙원인 전북 남원군 운봉면 국립종축원 남원지원 양목장에 떠오른 새아침 붉은 태양은 유난히도 커보였다. 지리산 준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해발 1천1백60m의 덕두산 삿갓봉. 1천3백여마리의 양떼들도 목부 김춘석씨(49)의 낯익은 발자욱소리에 일제히 깨어나 『메에헤 메에헤』 소리치며 반갑게 새해 인사를 했다. 『그래 너희들도 새해 복많이 받고 건강하게 자라거라』 스스로도 양띠인 김씨는 주위에 몰려드는 양떼에게 덕담을 하면서 행여 밤사이 병든 놈이 없는지를 살피며 양을 쓰다듬었다. 김씨가 양치기노릇을 한지는 이곳 목장이 문을 연 지난 71년부터여서 올해로 꼭 20년. 논밭을 합쳐 겨우 다섯마지기(약 1천5백평)를 부치는 이웃 운봉면 동천리의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난 김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뒤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김씨는 손바닥만한 농토를 일구어 노부모와 아내,아들 딸 등 일가족 8명을 부양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 양을 치는 목부가 됐다. 가축이라곤 토끼 한마리 길러 본 적이 없는 김씨여서 처음엔 양치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한 밤중에도 몇번씩 일어나 혹시 앓는 놈이 없는지 점검해야 했다. 또 해마다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동안 가족과 완전히 떨어져 해발 5백m 이상의 덕두산 기슭 2백만평의 초지에서 방목을 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하루종일 양떼한테서 눈을 떼지않고 감시하는데도 어린 양들이 바위나 돌부리에 걸려 다치기 일쑤였고 무리를 벗어나 멋대로 돌아다니는 양들을 찾아 온 산을 헤매기도 했다. 양떼를 잘 몰기로 이름난 호주산 캘피종 양치기 개인 「로」가 조수노릇을 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장난꾸러기 양은 틈만 나면 벼랑이나 계곡,가시덤불 속으로 내달아 애를 태웠다. 그럴때마다 김씨는 어렸을 때 그토록 부러워했던,송아지 고삐를 잡고 소먹이러 다니던 이웃 친구들의 생각이 떠올라 양들을 더욱 정성껏 돌보아주었고 저도모르게 정이 들어갔다. 양떼를 마치 친자식처럼 여기는 김씨에게 가장 가슴아픈 일은 전국의 각 병원과 연구실에서 의학실험용으로 쓸 양을 자기 손으로 골라 보낼때. 김씨는 『양은 성격이 온순하여 무리끼리 다투거나 싸우는 일이 없을뿐만 아니라 인내심이 무척 강해 잘 참고 견디며 사람을 좋아하고 따른다』면서 『요즈음같이 각종 흉악한 범죄가 판을 치고 남을 해치는 일이 많은 세상일수록 양의 착한 심성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정년퇴직을 하게되는 김씨는 『남은 소망이라면 세상사람들이 부디 양처럼 어질고 선량하게 살아 누구나 안심하고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라며서 축사 앞마당에서 뛰노는 양떼들에게로 발길을 옮겼다.
  • 노대통령·고르비,크렘린대좌 2시간15분(모스크바 여로)

    ◎“모스크바여 영원하라” 노어인사에 박수/푸시킨 시구 인용… “지금은 기적의 순간이다”/“한국젊은이 고속전철 타고 시베리아 올 날 멀잖았다” ▷정상회담◁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모스크바정상회담은 14일 상오 11시1분(한국시간 하오 5시1분)부터 2시간15분 동안 크렘린궁내의 소련연방최고회의 건물 4층 대통령회의실인 올드 레드룸에서 진행. ○화기 넘친 분위기 노 대통령이 먼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밤새 편히 지내셨느냐』고 물었고 이에 노 대통령은 『아주 편안하게 잘 지냈습니다』라고 대답. 양국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의 요청을 받고 잔뜩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잠시 포즈. 노 대통령은 본격회담에 앞서 고르바초프의 얼굴사진이 큼지막하게 표지에 실린 「페레스트로이카」 한국어판 책 1권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선물. 노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리의 만남이 한반도의 얼음을 깨는 일』이라고 언급했던 점을 상기시킨 뒤『나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이야말로 양국 관계에 봄을 열고 씨앗을 뿌려 양국민 모두가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과정에서 17일부터 열리는 소련최고인민회의 준비와 관련한 자신의 연설문 마무리 문제와 소련 국내문제를 둘러싼 여러 첨예한 대립과 논쟁상황 등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의 6·29민주화선언과정에서의 어려웠던 과정을 설명하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위로.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냉전체제 와해 등 최근의 변화와 페만사태 등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 노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에 대해 설명하자 전적인 지지와 동감을 표시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과거에는 강대국이 자신의 의지를 약소국에 강요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라파에 평화가 왔듯이 아시아에도 평화가 와야 하며 모든 문제를 군사력을 사용,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물론 아시아는 유럽과 여러 조건이 다르다. 그러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평화의 질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답게 「평화」를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평화정착이 아태지역 평화의 관건임을 거듭 확인. 한편 김종인 경제수석은 정상회담에 앞서 카운터 파트인 마슬류코프 제1부수상과 30분 동안 별도 협의를 가졌다. ○올 노벨상 수상 축하 ▷공식만찬◁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부터(한국시간 15일 새벽 1시)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고르바초프 대통령 주최의 공식만찬에 참석. 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올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고 『이는 각하께서 용기와 신념,탁월한 지도력으로 온 인류의 한결같은 소망을 실현하고 있는 데 대한 세계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각하 내외분의 건강과 행운을 위하여,소련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그리고 한소간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축배를 들자』고 제의하고 「발쇼예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소련에서의 첫 밤을 보낸 노 대통령은 1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14일 하오 4시) 크렘린궁 외곽의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내 무명용사묘에 헌화하는 것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 ○무명용사묘에 헌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과 소콜로프 주한 소련 대사의 안내로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스미르노프 모스크바 주둔군 사령관의 영접을 받은 뒤 3군 의장대를 사열. 노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하는 동안 군악대는 차이코프스키의 진혼곡을 연주했는데 선두의 헌화병은 소련군의 독특한 걸음걸이로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 이어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쓰인 붉은 색 리본이 달린 화환을 무명용사묘에 헌화하고 양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중절모를 벗어 묵념. 이날 헌화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과 이홍구 대통령정치특보,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 등 수행원들이 참여.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4일 하오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인 라이사 여사의 안내로 크렘린궁내 박물관을 둘러본 뒤 30여 분 간 환담. 김 여사는 박물관에 도착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라이사 여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13일 공식환영행사에서 이미 한차례 만난 탓인지 친근감있게 가벼운 포옹을 교환. 두 대통령 부인은 박물관장과 함께 러시아 황실의상과 칼 등 무기들이 진열된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궁전내 파인애플룸에서 자녀·의상·부군에 대한 내조 등을 화제로 환담 후 기념촬영.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3일 저녁 9시(현지시간)의 TV뉴스를 통해 소련국민들에게 처음 소개돼 관심이 집중. 이날 TV에 소개된 노 대통령 방소 관련화면은 공항도착 장면과 크렘린궁내의 공식환영행사 등으로 약 4분간에 걸쳐 방송. ○「크라시바야」 연발 소련 체신부에 근무하는 실라 니콜라에바씨(여·40)는 TV를 보면서 「크라시바야」 「오친 크라시바야」(대단히 아름답다)를 연발. 그녀는 한복의 맵시와 김 여사가 가진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잘 조화돼 환상적이라고 감탄. 소련국민들의 미에 대한 정서는 유럽보다 동양인들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설명되곤 한다. 소련인들의 이런 정서 때문에 김 여사가 보여주는 특유한 분위기는 그 동안 소련을 방문했던 어느 나라의 퍼스트레이디보다 더 강렬하게 소련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임양 구속」,대북정책 역행 아닌가/법질서 무시한 행동은 처벌 마땅 ▷모스크바대 연설◁ ○…노 대통령은 이어 하오 3시30분부터 모스크바대학을 방문,교수·학생들을 상대로 「냉전의 벽을 넘어,평화와 번영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2시간 동안 연설. 노 대통령은 『모스크바대학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많은 개혁의 지도자들을 배출했다』고 경의를 표하고 투르게네프·곤자로프·체호프·칸딘스키 등의 문호와 벨린스키·게르첸·웨르나드스키·켈디쉬 등 이 대학 출신 사상가와 학자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 노 대통령은 『이 대학이 낳은 문호 곤자로프는 러시아인으로는 첫 한국견문록을 남겼다』고 「인연」을 강조하고 『그는 길에 깊이 패인 수레바퀴 자국들을 보고 한국인이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것을 알았으며 신기하게도 가난한 사람까지 시를 쓸 만큼 학식이 있었다고 썼다』고 설명.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우리 두 나라의 새로운 만남을 시인 푸시킨이 노래한 「기적의 순간」처럼 경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야 뽀옴뉴 추우드노예 므그노베니예/뻬레 더 므노이 야비일라시 뜨이」(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러시아말로 푸시킨의 시구절을 인용. 노 대통령은 『나는 서울을 출발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속전철을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스톨홀름으로,파리로,이스탄블로 여행을 떠나는 내일이 올 것을 확신한다』는 말로 연설을 끝내고 「마스끄바,베치나야 찌베 슬라바」(모스크바여,영광이 영원하여라) 「발쇼에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러시아어로 인사. 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3명의 학생으로부터 임수경양 처벌과 국가보안법 폐지,한소 경협과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발전 문제,청소년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즉석 답변. 노 대통령은 첫번째 질문 학생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는데 평양축전에 참석한 여학생을 엄벌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물은 데 대해 『우리 정부는 학생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끔 절차를 만들어 놓고 있다』면서 『그러나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몰래 다녀온 데 대해서는 우리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변. 노 대통령은 이어 『만약 북한에서 남한을 몰래 다녀갔다면 10배 20배의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부연설명했고 학생들은 이에 박수로써 호응.
  • 김일성,집무실 문앞서 강총리 마중/우리대표단,평양 주석궁 찾던 날

    ◎우리측에 깍듯이 경어… 줄곧 밝은 표정/총리회담 호칭… 통일노력의 성과 바라/이례적 서구적 춤 공연… “남측 대표에 대한 성의” 북한방문 3일째인 18일 강영훈 국무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은 상오에는 비공개회의를 가진 데 이어 하오에는 평양의 김일성 주석궁(금수산 의사당)에서 김 주석과 면담하는 등 3박4일의 일정 가운데 가장 극적인 하루를 보냈다. 우리측 대표단은 이날 저녁에는 양형섭 최고회의 의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으며 우리 기자단은 비공개회의가 열리고 있는 동안 평야시내 노동신문을 방문,신문제작 과정을 둘러보았다. ▷김일성 주석 면담◁ ○…18일 하오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의 강영훈 국무총리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예방,20분간 요담했다. 강 총리는 이날 하오 3시 정각 평양시내 금수산 의사당 현관에 도착,주석궁측의 안내를 받아 김 주석 집무실로 향했다. 강 총리가 주석집무실 입구에서 20여m 떨어진 지점에 이르자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김 주석이 강 총리를 맞았다. 김 주석과 강 총리는 반갑게 악수를교환하면서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집무실 안으로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집무실 복판에 장방형 탁자가 마련 돼 있었고 동서로 마주보는 자리에는 강 총리와 북한 연형묵 총리가 앉았으며 김 주석은 남북 양총리의 한 가운데 좌정. 이 자리에서 강 총리가 먼저 『주석 각하,제가 서울을 떠날 때 노태우 대통령께서 김 주석에게 정중한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씀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김 주석은 『감사합니다. 노 대통령께서 건강하시는지요. 서울에 가시면 「사랑하시는」 나의 인사를 전해주시오』라고 응답. 이어 강 총리가 『제가 서울을 떠날 때 노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 말씀이 계셨습니다만 김 주석께서 남북 관계개선을 위해 총리회담을 개최하게 한 데 대해 인사를 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김 주석은 『피차 마찬가지지요. 귀측의 호응으로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데 대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김 주석과 강 총리와의 단독면담은 사진촬영을 위해 약 3분간 공개됐는데 김 주석이 『강 총리 고향이 북쪽이라면서요』라고 말하자 강 총리는 『네 그렇습니다. 45년 전에 평양을 거쳐 서울로 갔습니다. 연 총리를 두번째 만나니까 친근하게 여겨집니다』라고 답변. 이어 김 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귀측이 우리측 제의에 호응해 나섰기 때문에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평양에서 양측이 여러 가지 진지한 얘기를 서로 나누어 결실을 맺을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니 앞으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희망합니다』라며 밝은 표정을 짓기도. ○…강 총리를 제외한 우리측 회담대표 6명과 수행원 3명 등 9명은 이날 하오 3시10분쯤 주석궁 현관에 도착,10분간 집무실 옆 대기실에 머문 다음 3시21분쯤 집무실에서 김 주석과 면담. 김 주석은 강 총리가 우리측 대표단을 소개하자 홍성철 통일원장관,정호근 합참본부장 순으로 일일이 악수를 하며 반갑게 맞았다. 김 주석은 우리측 회담대표 및 수행원과 인사를 끝낸 다음 『자 모두를 앉읍시다』라며 직사각형 긴탁자 북쪽 중앙에 좌정했으며 같은 쪽 좌우에는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과 안병수 조평통서기국장 등 북한측 회담 대표 및 수행원이 착석. 김 주석은 양측 대표단이 모두 참석하자 『저는 이번에 총리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에 온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조국통일을 위해 많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이에 대해 강 총리는 『우리 회담대표를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만나게 해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번에 평양에 와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만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응답. 김 주석은 이어 『고위급회담이 열린 자체가 우리민족의 전망을 밝게 내다보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80년대부터 10년 만에 열리게 된 이번 고위급회담은 우리 민족의 앞날에 밝은 전망을 갖게 해줘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문건 채택은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 서울에서 열리는 총리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주석과 우리 대표단과의 면담은 하오 3시21분부터 30분까지 10분간 진행됐는데 김 주석은 우리 대표단에게 최고의경어를 사용하면서 시종 밝은 표정으로 환대해 주목. 김 주석은 우리 대표단과의 면담을 끝낸 다음 3시30분부터 35분까지 5분간 주석궁 중앙홀에서 남북 양측 대표단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으며 촬영이 끝난 다음 우리 대표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작별 인사. 우리측 대표단과의 면담에 앞서 강 총리는 이날 하오 3시부터 김종휘 대표와 연형묵 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20분간 김 주석과 개별면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는 공개면담 때보다 더 깊숙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주석은 면담중 「고위급회담」이라는 표현 대신 「총리회담」이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 ○…주석궁 현관벽은 대리석으로 장식됐고 중앙통로에는 붉은 카펫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현관에서 중앙홀에 이르는 천장에는 대형 샹들리에가 중앙 4개 양쪽 5개씩 모두 14개가 달려있는 등 은은하면서도 호화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중앙홀 정면벽에는 (기념촬영 한 곳) 백두산 삼지연의 봄 풍경을 그린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고 중앙홀 양 옆에는 오엽송 분재가 놓여있었다. ▷18일 비공개회담◁ ○…18일 상오 10시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2차 비공개회담에 앞서 강영훈 총리와 북측 연형묵 총리는 전날 있었던 평양시 인민위원장 주최옥류관 만찬에서 맛본 평양냉면ㆍ날씨ㆍ첫날회담 등을 화제로 15분 동안 환담. 양측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총리는 전날보다 다소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눴으나 각 분야에서 통일문제를 놓고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자는 우리측 입장과 「속도」를 강조하는 북측 입장이 엇갈려 가벼운 신경전. ▲연=어젯밤에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강=아주 참 조용하고 방온도도 꼭맞게 조절해줘서 잘 잤습니다. 평양가면 평양냉면 한번 꼭 먹어봐야지 했는데 역시 평양냉면 맛은 다릅니다. 잘 먹었습니다. ▲연=어제 학생소년궁전에서 어린애가 그림그리는 것 보셨지죠. ▲강=천재적이더군요. 4살짜리가 그리는 데 두살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젖먹을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이지요. 옆의 여덟살난 여자아이도 명필이더군요. ▲연=옛날부터 한민족이 본래똑똑하지요. 어제 1차회담을 했는데 서울쪽에서 어떻게 보도하고 있습니까. ▲강=잘 진행돼 간다고 보도합니다. 한술에 배부르겠느냐는 얘기가 있듯이 갑자기 다 해결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의 입장과 시각을 확실히 알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가 뚜렷하다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부터 잘 해갑시다. ▲연=잘 합시다. 평양시에선 어떤 평이 있느냐 하면 말입니다. 북남 고위급회담이라는 것이 「고위급」이 달려서 회담수준도 높을줄 알았는데 수준이 대단히 낮다고 합니다. ▲강=교육을 어떻게 그렇게 시켰어요(웃음). 숙소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대단히 실망했다고 얘기하더군요. ▷양형섭 의장 주최 만찬◁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하오 8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천리마거리 목란장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 양 의장은 만찬사에서 『구두쟁이 셋이면 제갈량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며 『민족 앞에 책임진 정치인으로 남조선의 국회의원들과 손잡고 민족재생의 길을 함께 걸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피력. 강 총리는 답사에서 『통일을 이룩한 동ㆍ서독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 축적이야말로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이 가야 할 길』이라고 지적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양보하는 대화의 숨결 속에 증오와 대결의식은 봄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 강 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만찬이 끝난 뒤 경음악과 남성독창ㆍ3중창 등 공연을 관람했는데 「4계절의 춤」이라는 제목의 무용은 얇고 짧은 의상에 서구적인 춤이어서 이채. 북측의 한 참석자는 『우리는 본래 민족적인 무용을 좋아하는데 이같은 무용을 공연한 것은 남측 대표에 대한 북측의 성의』라고. 강 총리가 공연히 끝난 뒤 무대에 올라가 악단과 가수ㆍ무용수 등 출연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자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 강 총리 일행은 만찬에 앞서 이날 하오 평양 중구역에 위치한 인민대학습당을 약 45분간 관람했으며 기자단은 비공개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노동신문을 방문한 데 이어 하오에는 김일성경기장에서 1시간10분 동안 학생 5만명이 연출하는 「일심단결」이란 집단체조를 관람. ◎“합의 없어도 크게 진전” 남/“「불가침」 타결 못봐 유감” 북 ▷대변인 회견◁ ○…18일 남북고위급 이틀째 비공개회담에 대한 남북간의 시각은 긍정과 부정이 다소 엇갈리는 듯한 분위기로 양측 대변인의 별도 회견을 통해 표출. 똑같은 장소(인민문화궁전 1층 회의실)에서 먼저 회견을 가진 북측의 안병수 대변인은 『우리는 불가침선언을 제기하면서 오늘 회담에서 매우 쉽게 합의될 것으로 확신했다』며 기본적으로 남북간에 큰 이견이 없는 점 등 그 근거를 예시. 안 대변인은 『남측에서는 밟아야 할 절차가 많아 국무총리라 해서 당장 합의를 해줄 수는 없다고 하길래 그러면 가조인이라도 하자고 했으나 불가피하게 합의를 보지 못했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피력. 이어 우리측의 임동원 대변인은 서두에 『과거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이 진행됐다』고 강조한 뒤 『합의선언문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한 회담이 아니라 내용면에서 많은 접근을 보아 대단한 진전을 이룬 회담』이라고 평가. 임 대변인은 회담내용을 조목 조목 설명한 뒤 양측 안의 내용이 유사한 데도 불가침선언이라는 명칭상의 문제로 합의를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헌법에 불가침문제는 국회의 비준을 거치도록 돼 있는 제도상 절차 때문』이라고 설명. 임 대변인은 『강 총리가 회담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총리라 해도 권한 밖의 일을 하는 등 법을 안 지키면 감옥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북측 제도와는 다르니 속도전도 좋으나 절차를 밟도록 하자」고 농담을 곁들여 우리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고 소개.
  • 우리 대표단 방북 이모저모

    ◎“서울∼평양 가까워진 느낌”… 남북 총리 재회/“대동강은 여전… 인심은 조석변” 강 총리/대표단 일행,교예극장서 「곰전투」등 관람/북 안내원들,담당기자 찾느라 우왕좌왕 남북 분단 이후 45년 만에 우리측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16일 북한을 공식방문한 강영훈 국무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평양에서의 역사적인 첫날밤을 보냈다. 우리 대표단은 숙소인 대동강 상류 백화원초대소에서 짐을 푼 뒤 평양시내 교예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가 주최하는 인민문화궁전에서의 만찬에 참석한 후 북한영화를 관람했다. ▷남북 총리회동◁ ○…이날 하오 1시35분쯤 숙소인 정부초대소(백화원)에 도착한 강 총리 일행은 초대소 로비에서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의 영접을 받고 응접실로 자리를 옮겨 약 5분간 환담. 먼저 연 총리가 『대표단 일행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하자 강 총리는 『오면서 보니 우리 일행을 위해 추계 대청소까지 하는 등 준비가 대단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감사를 표시. 연 총리가 이어『평양과 서울 사이가 매우 먼 것처럼 알았었는데 자주 내왕하다보니 가까운 것 같다』고 말하자 강 총리는 『대동강을 건너다 보니 산색은 옛날과 같으나 인심은 조석변이라는 옛말이 떠오른다』면서 『연 총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말해 폭소. 연 총리는 이어 응접실 좌우에 걸린 북한의 명승지를 그린 대형 풍경화를 가리키며 북한이 고향인 강 총리에게 『생각나는 곳이 없느냐』고 묻자 강 총리는 고향인 약산의 풍경화를 바라보며 『학교 다닐 때 매일 올라다녔는데 특히 진달래꽃이 아름다웠었다』고 회상. 강 총리는 뒤편에 있는 총석정 등 대동강과 금강산 그림을 둘러보며 『나는 아직 금강산을 가보지 못했다』고 하자 연 총리는 이를 받아 『다음 오실 때는 구경할 수 있겠죠』라고 말한 뒤 『오시느라고 피곤하실텐데 쉬시지요』라며 일층 숙소로 안내. ▷만찬◁ ○…북한 연형묵 총리는 이날 약 6분간에 걸친 만찬연설을 통해 『북과 남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는 통일의 노래ㆍ통일의 춤으로 들썩하는 평양의모습과 엄청난 대조를 이루는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라면서 『대결을 없애고 단합과 통일을 실현해야 하며 그러자면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 연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측 강 총리를 두번 거명했으나 지난번 서울회담 때 「총리」라고 불렀던 것과는 달리 「수석대표선생」이라고만 호칭. 강 총리는 만찬답사에서 『사람과 물자의 왕래와 교류가 촉진된다면 자연히 신뢰가 쌓이게 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어떠한 어려운 문제도 하나하나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각 분야에 걸친 접촉ㆍ교류와 협력의 조속한 실천을 강조. ○…인민문화궁전 대연회장에서 열린 연 총리 주최의 만찬은 우리측 대표단 일행 90명과 북측 관계자 1백10명 등 2백여명이 참석. 북한측은 만찬테이블을 34개 만들어 한개 테이블에 6∼7명씩 배치했는데 한 테이블당 우리측 일행은 2명씩 자리를 잡도록 조치. ○…만찬이 시작된 지 1시간10분 가량이 지난 하오 9시5분쯤에는 북한의 만수대예술단이 등장해 만찬분위기는 더한층 고조.23명으로 된 만수대예술단은 「도라지타령」을 시작으로 「고향」 「꽃파는 처녀」 「노들강변」 「봄의 노래」 등 우리측 대표단에게도 귀에 익은 음악을 연주. 특히 인민배우인 주창혁과 함금주가 노래한 춘향전중의 사랑가는 만찬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들이 노들강변을 부를 때는 일부 참석자들이 가사를 따라 부르기도. ▷교예극장 공연◁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하오 5시30분 교예극장에서 공중곡예ㆍ곰전투ㆍ외바퀴자전거 타기 등 14개 서커스 프로그램을 관람. 양측 대표단을 비롯 좌석 3천5백석을 거의 채운 관중들은 고난도 묘기가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 특히 외바퀴자전거 타기를 하던 연기자가 두차례 실수를 하자 관중들은 물론 우리측 인사들도 박수로 격려. 요술을 한 인민배우 김택성씨는 공연에 앞서 빨간 글씨로 「조국통일」이라고 적은 광목을 펼쳐보였고 이에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 ▷영화관람◁ ○…인민문화궁전에서의 만찬이 끝난 뒤 대표단 일행은 밤 10시35분 안병수 북측 대변인 안내로 평양 청년회관에도착,「평양의 모습」 「조선의 민속」이라는 문화영화를 자정까지 약 2시간 동안 관람. 영화시작에 앞서 강영훈 총리와 안 대변인은 응접실에서 잠시 환담을 나누었는데 안 대변인이 『학생들의 집단체조는 수령님께서도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시니 꼭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관람을 권유. 이에 강 총리는 『집단체조를 보고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적이라고 하더라』며 관람을 사양하기도. ▷숙소도착◁ ○…대표단 일행이 탄 승용차와 버스 행렬은 평양역을 출발한 지 약 15분만인 하오 1시45분쯤 숙소인 백화원에 도착. 승리거리와 대학생거리 등을 지나 초대소까지 달리는 동안 연도의 시민들은 남측 대표단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어 환영. 안내원은 『시민들이 남쪽 대표들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소개. ○…83년에 건설됐다는 백화원초대소는 대리석으로 된 통로바닥이 카펫으로 덮여있고 천장에는 크고 작은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는 등 호화롭게 치장. 객실에는 소주ㆍ수삼주ㆍ인삼주 등 북한산 술과 사이다 등 음료수ㆍ황태포ㆍ과일 등이 비치돼 있으며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도 비치. ▷평양역 도착◁ ○…대표단 일행은 하오 1시20분에 평양역에 도착. 특별열차가 역구내로 서서히 들어가 멈추자 북측 안내인들은 자신이 맡은 남측 수행원과 기자들을 찾느라 우왕좌왕. 역구내에는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영광스런 조선노동당만세」등의 대형구호들이 어지럽게 천장에 매달려있기도. ▷개성역∼평양역◁ ○…대표단 일행은 통일각을 출발한 지 1시간15분 만에 개성역에 도착. 개성역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노동당 및 역무원 관계자 수십명이 나와 대표단 일행을 영접해 조촐한 분위기. ○…대표단 일행이 개성에서 평양까지 타고간 특별열차는 객차 14량과 소화물칸 1량이 달린 콤팩트식 열차. ▷판문점 출발◁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변인인 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은 판문점을 통과하기 직전인 이날 상오 8시40분쯤 통과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회담에 임하는 우리측의 입장 등을 천명. ○…북측 영접요원으로 나온 최우진 대표(외교부 순회대사)와 최봉춘 책임연락관은 상오 8시50분 우리측 대표단이 타고갈 10대의 벤츠승용차와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지역의 평화의 집 앞에 도착. 강 총리는 상오 9시 정각에 북측 최 대표 및 우리측 대표들과 함께 평화의 집에서 나와 승용차에 탑승. 강 총리는 뒷좌석에,최 대표는 앞좌석에 각각 앉았으며 양측 책임연락관과 우리측 대표 6명도 각각 하늘색 벤츠승용차에 탑승한 후 곧바로 군사분계선을 넘기 위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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