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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탓이오」의 의식구조(사설)

    잘못은 모두 남이 저지르고,잘된 공은 모두 「내차지」여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가득차 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모든 책임은 남에게 전가하고 이득만을 챙기려고 든다. 지금 현안중인 모든 정치적 갈등도 거기서 비롯된다. 사회에서는 목청 크게 외치는 것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난동이 끊이지 않는다. 훌륭한 외모의 자가운전자들이 차선을 침범하여 머리만 디밀고,붉은 신호등이 들어왔거나 말거나 진행하는 앞차의 꼬리를 물고 멈출줄을 모르고 밀어붙인다. 그러다가 완전히 교차로가 마비되면 삿대질을 하며 남의 핑계로 돌린다. 서로가 어깨동무하여 수렁에 빠지듯 해놓고 그 안에서 싸움질만 하는 형국이 조직 안에서,기업 안에서,캠퍼스 안에서,고속도로에서,터널입구에서,주택가의 골목길에서 끊임없이 거듭되고 있다. 남에게 뒤집어 씌우기를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어떤 봉변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무슨 일이 생기면 허겁지겁 「남의 탓」을 찾아내는 생리가 보편화해버렸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신앙의 자세로 「내 탓이오」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는 천주교 신자가 일상을 성찰하는 기도의 한 구절이다. 아무리 절박한 핑계가 있더라도,그 안에는 반드시 스스로의 불찰이 내포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반성하지 않고는 진실로 용서받고 영원한 구원의 길을 갈 수 없다는 신앙적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삶을 통해 실천하는 것을 카톨릭신뢰회복운동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뜻에서 갖가지 실천방안도 모색되고 있다고 한다. 이 운동이 종교차원을 넘어서 범시민적인 것으로 확산될 수 있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지난 시대에 겪은 독재와 권위주의의 피해는 우리에게 「민주훈련의 결핍」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이 상처가 하루아침에 주어진 방대한 자율의 폭을 감내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모든 자유가 책임의 보증이 없이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욕구」만 비대하게 만든 이상증상을 만연시켜 사회를 혼란과 갈등속에 파묻히게 만들었다. 내 책임을 깨닫는일,그것이 『내 탓이오』를 인정하는 일이다.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원망하고 한탄하고 불화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해결도 남이 해주기를 요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해결할 「나」가 아무 데도 없으니 누구도 나서서 책임을 져줄 수가 없다. 그렇게 쌓여진 미해결의 덩어리가 우리 사회를 숨막히게 하고 있다. 「내 탓이오」를 성찰의 표어로 삼아 제창하고 있는 카톨릭평협측에서는,이 운동의 실천을 거창한 곳에서 찾지 않겠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수재민 돕는 일이 「내탓」에 맡길 수 있는 일이듯,수재민이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도 「내탓」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교통질서에서야말로 「내탓」을 생각하며 운전을 하고,길을 건너고,주차질서를 지키고,사람 다니는 길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남을 다치기 이전에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기업이 어린이 먹을 우유 제조일을 속이고,비밀통로로 공해물질을 방류하는 따위 파렴치한 짓도 「자신의 탓」은 모두 감추고 이득만 챙기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잘못된 일이 「나의 어떤 탓」 때문인가를 반성하면,다시는 같은 「탓」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 탓의 원인을 알게 되면 시정하고 치유할 방법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내탓」을 성찰하는 일은 인간을 성숙시키는 가장 훌륭한 덕목이다. 훌륭한 시민정신이 정착한 사회는 타락하지 않고 후퇴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 만들기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지금 우리는 놓여 있다. 다함께 가슴에 손을 얹고 「내 탓이오」를 되뇌며 자기성찰을 해볼 때이다.
  • “춤추러 다니지 말라” 충고에 아내가 남편을 독살

    【속초】 강원 속초경찰서는 6일 춤추러 다니지말라는 남편을 독약으로 살해한 임복녀씨(38ㆍ속초시 교동 4통2반)를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임씨는 지난5월 초부터 춤바람이 나 가정을 돌보지않고 같은 마을 김모씨(38)와 춘천ㆍ강릉 등지를 돌아다니며 정을 통해 남편 이도원씨(38ㆍ건축업)와 잦은 불화를 일으켜오던중 지난2일 밤0시20분쯤 이씨가 사온 술을 함께 마시다 『춤을 추러 다니지 말라』고 타이르는 이씨에게 이혼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임씨는 그러나 이씨가 이를 거절하자 부엌에 있던 극약을 음료수에 몰래 타 술에 취한 이씨에게 먹여 숨지게 했으며 이 사실을 숨긴채 『남편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잠자다 숨졌다』고 속이고 장례준비를 하다 평소 임씨의 남자관계가 복잡한 사실을 눈치챈 친척들이 경찰에 신고해 범행일체가 밝혀졌다.
  • 이라크의 군사대국화 방지에 초점/윤곽 잡히는 부시의 중동과녁

    ◎경제제재 계속… 침략정책 포기 유도/중동 세력균형 구축돼야 미군 철수 부시 미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나 미 행정부의 페르시아만 외교계획에는 「후세인에게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를 강요한다」는 온건한 목표가 설정돼 있다. 부시 대통령 측근들은 미국과 그 우방들이 후세인 대통령을 억제시킬 수 있으며 그를 전복시키지 않고도 이라크를 일개 지역세력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초점이 돼온 이 접근법은 「페르시아만 위기가 중동은 물론 세계의 정치적 군사적 질서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후세인이 팽창정책을 추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관리들 말에 의하면 미국이 추진하는 것은 후세인 축출정책이 아니라 후세인 침략 저지정책이다. 미국의 일부 보수파 평론가들은 부시의 사우디아라비아 파병에 대해 「나쁜 정책」「나쁜 정치」라고 걱정하면서 『제2의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경계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욱이 내주에 의회가 속개되면 부시 대통령은 『냉전 종식으로 생긴 「평화 배당금」을 페르시아만의 장기 군사작전에 꼭 써야 하느냐』는 논쟁에 직면할 것이다. 부시의 전략은 아랍인들과 불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미군의 장기적인 페르시아만 주둔을 전제하고 있다. 이번 페르시아만 사태는 이집트ㆍ시리아ㆍ이란 등을 이 지역에서 이라크의 힘과 상쇄시킬 위치에 놓았다. 또 질적으로 새로운 수준에 오른 미소 협조와 서구맹방들의 이 지역에서의 군사역할확대는 군사적으로 취약한 걸프 국가들에 안보를 제공하고 후세인을 억제시키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더라도 패배를 뜻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부시의 접근방법엔 여전히 위험성이 따르고 있다는 점을 미국 관리들은 시인하고 있다. 부시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회피했던 종합적인 중동정책의 수립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는 그의 구상에 관해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없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지는 부시 측근과 행정부에서 흘러 나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미국의 새로운 대 중동 종합정책의 윤곽을 더듬었다. 첫째,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새로운 외교활동에 관해 조심스런 낙관론을 피력하기 시작했지만 부시는 후세인이 쿠웨이트 철수신호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이 군비증강을 계속하자 전 국가안보 담당보좌관 헨리 키신저와 같은 국제문제전문가들은 『부시가 무력을 사용할 계획이라면 오랫동안 기다릴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도발이 없는데 군사행동을 취한다면 그렇지않아도 깨지기 쉬운 아랍연합을 갈기갈기 분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고위관리들에 따르면 부시는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며 그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대한 미 정책의 제1조는 이라크가 식량ㆍ재화ㆍ군수품의 부족을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경제제재조치를 계속하는 것이다. 후세인이 철수가 아니라 공격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경제제재로 이라크가 약화돼 전쟁을 치를 수 없을 것이며 후세인은 체면을 살릴 수 있는 협상을 희망하면서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시는 유엔의 기본 요구,즉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가 이루어지기 전엔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고위관리들은 아랍국가들이 내놓을 수 있는 몇가지 방안에 대해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시 쿠웨이트가 영토문제와 대 이란 전비문제 협상에 성의있게 임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백악관 국가안보 담당보좌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이라크가 쿠웨이트 철수에 동의하면 이라크­쿠웨이트간 이견을 해소하기 위한 회담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의 접근은 후세인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상자 속」에 갇혀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 고위관리는 『미군 철수는 후세인이 지금처럼 행동할 수 없도록 중동의 군사력과 정치적 균형이 재정립된 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몇가지 가정,즉 ▲미소의 이해 일치 ▲나토 회원국들의 군사적 역할 확대 ▲이집트 시리아 이란의 연대 등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서구맹방들이 장기간 확고한 군사력으로 남아 있거나 앞으로도 신속히 대응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 중동의 세력재편이 미국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미국과 이집트 사이의 거래에는 늘 말썽이 많았고 이란의 대미 반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시리아는 테러리즘 지원 때문에 오랫동안 비난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랍 국가들이 부시를 지원하는 대가로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같은 것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쿠웨이트 정부에 관한 문제다. 분명히 미국은 쿠웨이트 왕정회복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년동안 지구촌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미국으로선 그건 꼴사나운 정책이 아닐 수 없다.
  • 미 중동정책 “강ㆍ온 불협화음”

    ◎협상파 베이커 휴가가 불화설 반증/사태장기화땐 “파병반대” 여론 거셀 듯 페르시아만 긴장상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 지역에 대규모병력을 파병해 놓고 있는 미국 조야 일각에서 미의 대중동정책노선을 싸고 잡음이 들리고 있다. 잡음의 일단은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의 장기휴가에서 비롯됐다. 베이커장관은 지난 16일 후세인 요르단왕과 부시대통령의 회담장에 배석한 후 곧장 와이오밍으로 가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이라크와의 군사대치 상황에서 외교정책의 최고 입안자인 국무장관이 장기간 워싱턴을 비우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간다는 지적이 정가일각에서 제기됐고 이어서 대중동정책과 관련,백악관내에 불협화음이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베이커장관의 부재로 최근 중동파병등 중요정책 발표시 부시대통령과 자리를 함께 한 것은 리처드 체니국방장관과 콜린 파월 합참의장이었다. 이 두 사람은 그동안 대체로 중동정책에서 무력사용등 강경대응을 선호한 반면 베이커장관은 협상쪽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었다. 이런 견해차가 베이커의 장기휴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비친 것이다. 베이커의 휴가와 관련한 불화설은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의 지난주 보도를 통해 정식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국무부 출입기자들은 정례브리핑이 있을때 마다 베이커장관의 행방과 휴가문제를 놓고 반농담조로 여러 갈래의 질문을 해 대변인을 난처하게 만들었었다. 파문이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최근 정례브리핑에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던 마거릿 터트와일러 대변인은 27일 이례적으로 회견장에 나와 정색을 하고 이같은 불화사실을 부인했다. 터트와일러 대변인은 『그는 이번 문제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늘 아침 전화를 걸었을때 적어도 하루에 6시간씩 이 문제에 시간을 쏟고 있으며 상오 7시부터 하오 1시반까지는 전화에 매달려 있다』고 베이커 국무의 근황을 상세히 소개하기까지 했다. 베이커 국무는 28일 워싱턴으로 복귀했다. 베이커장관의 휴가를 부시대통령,댄 퀘일부통령이 휴가를 간 것과 같은 시각에서 대수롭지 않게 보는 해석도 물론 있다. 그리고 베이커장관이 막후에서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 등과 사태해결을 위해 활발한 협상을 수행중이라는 반론도 있어 아직은 불화설의 진상을 파악키 힘들다. 26일 백악관 앞에서 있었던 미군파병에 대한 항의시위도 새로운 사태발전의 하나이다. 약 2백명의 미국인이 『우리는 텍사코(미 석유회사)를 위해 죽을 수 없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산발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이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외국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것이었다. 8월초 AP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6%의 미국인은 석유회사들이 이라크의 침공으로 이익을 보았으며 부당하게 휘발유값을 인상했다고 응답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 대학교수가 부시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실었는데 이 글은 『나는 오늘 사우디로 떠나는 아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21살 난 해병이다. 무엇 때문인가. 단지 값싼 석유를 얻기 위해서인가』라고 쓰고 있다. 물론 베트남전때 같은 대규모 반정부ㆍ반전운동과는 거리가 있는 움직임들이다. 미 의회도 아직은 부시의 대이라크 강경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워싱턴 정가는 물론 미국내 여론의 동향도 낙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 프레온가스 규제에 업계“비상”/냉장고ㆍ자동차등 관련기업 대응책고심

    ◎「오존층파괴 주범」낙인,수출입 큰 타격/정부도 수급조정위 구성등 대책 모색 냉장고,자동차,전자부품 등에 쓰이는 각종 냉동기의 냉매와 발포제,분사제로 널리 활용되는 프레온가스류(CFC)가 대기권상층부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몰려 국제적인 규제대상이 되고 있다. 유엔환경기구를 중심으로 지구오존층보호를 위해 올해부터 프레온 및 할론가스류의 수출입이 규제를 받게됨에 따라 전자ㆍ자동차등 국내의 관련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오는 93년부터는 프레온가스류를 이용하는 냉장고ㆍ자동차ㆍ전자부품 등의 수출이 규제돼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CFC는 불화염화탄소의 약자로 듀폰사의 상품명인 프레온가스로 불린다. 각종 냉동기의 냉매로서 이 물질의 생산이 규제되면 에어컨ㆍ냉장고 등의 생산이 큰 지장을 받게 된다. 프레온가스는 또 향수등 화장품과 살충제를 분사시키는 재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이들 제품의 생산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소화기도 분말소화기만을 생산할 수 밖에 없고 프레온가스로 세척하는 반도체ㆍ정밀기계등의 수출도 치명타를 입게 된다. 프레온가스류의 사용이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4년 미캘리포니아대의 롤란드교수팀이 CFC 및 할론가스가 성층권의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부터. 오존층은 대기권 상층부의 산소(O₂)가 태양자외선에 의해 오존(O₃)으로 변화,해로운 자외선이 지구에 도달하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존층이 감소되면 인류의 건강유지와 자연환경보호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사람은 피부면역성이 저하되고 농산물은 콩과식물의 수확량이 떨어지며 수산물의 플랑크톤감소,기상이변 등이 뒤따르게 된다. 오존층은 지표로부터 25㎞∼30㎞ 떨어진 곳에 수백억t이 존재하고 있다. 오존층 1%감소는 지구도달 자외선량의 2%를 늘게하여 이 자외선량 1%는 사람들의 피부암발생확률을 2%나 높게 된다. 실제로 조사결과 78년이후 북반구의 오존층이 3∼5%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구오존층보호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87년 유엔환경기구(UNEP)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특정물질의 생산 및 사용량을 86년수준에서 감축하기 위한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했고 최근 런던에서 열린 이 의정서 제2차 협약국회의는 오는 2천년까지 프레온가스류의 생산을 전면금지(개도국은 2천10년까지)키로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가입국이 무역규제를 하도록 돼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관련 법률제정 등의 준비과정을 거쳐 늦어도 92년말까지 가입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프레온가스류의 국내시장규모는 연간 4백억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관련산업은 연 4조원규모나 된다. 그만큼 프레온가스사용 규제에 따른 대체물질개발과 민관합동의 대응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상공부는 29일 하오 과천청사에서 관련부처합동대책회의를 열고 특정물질 수급조정위를 구성,불요불급한 분야의 사용량을 줄이는 한편 업종별ㆍ용도별 사용량을 책정해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 “10월3일 조기통독”으로 쾌속 항진/동독의회의 “통독결의”의미

    ◎“동독경제 살리자”… 불화씻고 통합 확정/국제 공인ㆍ12월 전독총선으로 “대단원” 동서독의 완전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동독의회는 23일 새벽 2시(현지시간) 통독결의안을 가결,오는 10월3일을 40여년간에 걸친 동서독간 민족분단 상황을 극복하고 「하나의 국가」로 다시 태어나는 날로 선택했다. 지난해 10월 호네커 공산독재를 몰아내고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린지 1년,그리고 지난 7월1일의 경제ㆍ사회통합 조치가 시행된지 3개월여만에 정치통합을 이룸으로써 동서독은 마침내 통일을 완수케 되는 것이다. 동독의회가 채택한 통독결의안은 서독연방헌법의 규정에 따라 통독절차를 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즉 연방헌법 제23조가 규정하고 있는 「독일영토를 구성하는 다른 지역」의 「연방가맹」 결정행위이며 동독측의 결정만으로 충분하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3일부터 동독은 서독에 흡수통합됨으로써 정치ㆍ외교적으로 「국가」의 기능을 자연히 상실,완전 소멸하게 된다.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켜온 통독작업은 그동안 하루 앞을 가늠해보기어려울 정도로 쾌속으로 진행돼왔다. 동구의 개혁ㆍ개방열기에 곁들여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대탈주는 40년 공산독재의 아성을 밑으로부터 흔들어 놓았으며 때맞추어 불꽃을 댕긴 공산정권 반대시위는 10월에 이르러 전국으로 번져 드디어는 호네커를 몰아내고야 말았다. 이때부터 표면화되기 시작한 동서독 국민들의 통일열망은 분단의 상징물인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기에 이르렀으며 이어 지난 3월의 동독총선에서는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서독 기민당과 함께 조속한 통일달성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로타르 드 메지에르의 기민당에 표를 몰아 주었다. 이때부터 통일논의는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몇차례의 양독정상회담을 통해 지난달 1일에는 화폐통합을 주축으로 한 동서독 경제ㆍ사회통합 조치가 이루어졌으며 그로부터 채 두달도 안돼 완전통일을 의미하는 정치통합이 결정된 것이다. 이번 정치통합결정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길지는 않지만 몇주째 동서독내의 정당들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었다. 우선 양독정당들은 통일선언을 먼저 할 것이냐 아니면 전독총선을 앞서 치를 것이냐로 신경전을 벌여왔다. 양쪽의 집권당인 기민당은 선거를 먼저 치르고 그뒤 통합을 선언하자는 입장이었던데 비해 사민당을 중심으로한 야당세력은 정치통합뒤 총선을 치르자는 「선통일」 주장을 내세우며 동독연정에서의 탈퇴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절차문제를 놓고 이같이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것은 총선에서의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서 기민당측이 양보,「선통일」방안이 채택되자 이번에는 정치통합일자를 두고 다시 의견이 엇갈렸다. 당초 12월2일로 예정된 전독총선 직전에 정치통합을 선언,현서독의 선거법체제아래서 총선을 치르자고 주장하던 사민당측은 이를 번복,오는 9월15일에 정치통합을 선언하자고 조기통일론을 내세웠다. 사민당은 괴멸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동독의 경제를 가능한한 빨리 서독에 편입시켜 상황을 호전시켜야 한다며 9월12일의 모스크바 「2+4회담」 개최직후에 정치통합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기민당은 동독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14일이 적당하다고 맞섰고 서독의 콜총리는 동독 공산정권수립기념일인 10월7일을 넘기지 않기 위해 10월6일 통일을 선언하자고 동독측에 권고하기도 했다. 이같이 각 정당들 간에 각양각색이던 정치통합일정이 10월3일로 결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독총선일까지의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각 정당 나름대로의 정치적계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까지 통독작업을 담당해온 기민당으로서 정치통합일정을 앞당기자는 야당의 주장을 끝내 반대할 경우 조속한 통일을 원하는 유권자들로부터 통일추진세력으로서의 이미지가 손상될 우려를 간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당초 조기통독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민당 역시 조기 정치통합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기민당 못지 않은 통일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과시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전문가들은 동독의 국민경제가 정치게임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으며 정치지도자들은 오히려 당분간 경제사정이 악화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내린다.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난 14일 드 메지에르 총리는 사민당출신인 발터 롬베르그 재무장관과 사민당추천인 무소속의 피터 몰락 농림부장관 자유당의 크루트빈슈히 법무장관 등 4명을 「실책」을 이유로 사직시켰다. 사민당은 이를 기다렸다는듯 메지에르 총리를 가리켜 『콜의 꼭두각시』라고 몰아붙이며 기민당과의 대연정에서 탈퇴,지난 4월12일 이래 1백30일간 유지해온 동거상태를 마감했다. 이같은 움직임들은 앞으로 선거전에서 경제ㆍ사회 혼란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 위한 발판 마련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치통합 일정이 결정되긴 했지만 선거전을 겨냥한 이같은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통합을 전후해서 안팎으로 몇가지 거쳐야할 순서가 남았으나 이는 부수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오는 9월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이른바 「2+4회담」이 남아 있다. 동서독과 2차대전 전승국인 미ㆍ영ㆍ불ㆍ소 등 4개국 외무장관이 통독문제를 다루기 위해 만나는 이 회담은아마도 이번에 마지막이 될 것이며 동서독의 점령국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동서독의 통일을 보장하는 최종 인증서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10월 1일과 2일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외무장관회담에서 통독의 국제적인 공인절차를 거쳐 11월19일부터 파리에서 열리는 CSCE정상회담에서 동서독의 통일을 재확인하는 성명서가 채택되어 외교적으로 통독절차를 마무리 짓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동독 지방의회선거를 거쳐야 한다. 오는 10월14일로 에정되어 있는 지방의회선거는 분단되면서 없어졌던 동독지역내의 5개 주의회의 부활을 위한 절차이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12월2일의 전독총선. 동서독 양쪽 의회가 해산되고 명실상부한 하나의 의회를 탄생시키기 위한 전독총선은 통독작업의 가장 핵심적이며 최종적인 절차로 꼽혀왔었다. 그러나 「선통일 후총선」방안이 채택됨으로써 전독총선은 정치통합의 마침표 찍기 작업 정도의 의미만 갖게된 셈이다.
  • 동독연정 붕괴… 통독행보 “주춤”/사민당의 탈퇴 배경과 앞날

    ◎통합시기등 마찰,각료해임에 폭발/과반의석 확보못해 의회인준 난관/사민,“통일협력” 공언… 「대세」엔 차질없을 듯 동독 사민당(SPD)이 19일 로타 드 메지에르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에서 탈퇴키로 결정함으로써 지난 4월12일 출범한 기민당(CDU) 주도의 동독연정이 4개월여만에 붕괴될 운명이다. 사민당 소속의원 88명은 이날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메지에르 총리가 지난 15일 경제위기의 책임을 물어 자당출신 경제각료 2명을 해임함으로써 함께 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연정탈퇴를 의결했다. 사민당은 이와 함께 외무ㆍ노동ㆍ무역 등 나머지 각료 5명도 20일 사임키로 결정했다. 최대 파트너인 사민당의 이탈로 동독연정은 기민(1백63),독일사회동맹(22),민주출발당(4),농민(3) 등 1백94의 의석으로 전체의석(4백)의 과반수 확보마저 어렵게 됐다. 따라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하는 통일조약의 의회비준에 당장 차질이 생기게 됐다. 사민당이 서독과의 통일조약협상에는 계속 협력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으나 기민당으로서는 구공산당인 민사당(65석)과의 제휴 가능성까지 생각해 봐야할 입장이다. 기민ㆍ사민 양당의 불화는 통독총선의 시기 및 방법을 싸고 이미 수개월 계속돼오다 이번 각료해임으로 폭발한 것이다. 지난 7월24일에도 총선문제로 자민당(23석)이 탈퇴,1차 연정위기를 맞았으나 사민당의 탈퇴보류로 위기를 넘긴바 있다. 불화의 가장 큰 원인은 총선시기 등을 놓고 각당의 이해가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1차위기때 주쟁점은 총선시기를 통합보다 먼저 하느냐 나중에 하느냐였다. 통합후 총선을 실시할 경우 현 서독선거법이 적용돼 득표율이 전체의 5%에 못미치는 정당은 의석배분자격을 못 얻는다. 사민당은 군소정당의 진출을 막아 자당의 세확대를 노려 통합후 총선을,반면 기민측은 군소정당의 진출을 통해 사민 등 좌파세력의 분산을 계산해 선총선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는 메지에르 총리가 통합후 총선을 받아들임으로써 일단락됐었다. 그러나 이번엔 총선승리를 노리는 서독 사민ㆍ기민당측의 입김까지 가세돼 불화를 가중시켰다. 8월초 콜 서독 총리가 12월2일로 잠정결정돼 있는 총선시기를 10월14일로 앞당겨 통합과 동시실시하자고 제의하고 이를 동독 기민당이 수락,사민측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에 맞서 동서독 사민당은 12월2일 총선에 9월15일 통합을 주장했다. 여기에는 회생기미를 보이지 않는 동독 경제사정,이때문에 서독정부가 지출해야 할 과도한 통일부담금 등 총선 「악재」에 대한 책임전가의 계산이 상호작용했다는 지적이 많다. 연정탈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경제각료해임도 기민측의 경제악화의 책임전가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사민당은 주장한다. 결국 총선일은 12월2일로 잠정결정됐지만 통합시기는 아직 미정인 상태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통일작업에 큰차질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우선 이런 불화가 각당간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됐고 동서독 국민들간의 분위기가 통일흐름자체에 대한 손상을 용납치 않을 것이란 점 때문이다.
  • 북경아시아드 「D­31」… 장충식 우리 선수단장(안녕하십니까)

    ◎“27억 아시아축제에 한국이미지 심겠다”/“3백일작전 마무리… 종합 2위 따낼 터/남북한 대결엔 페어플레이 펼쳐야죠”/“인기종목 선호현상 팽배… 대학 체육교육 각성해야” 【대담:김종일체육부장】 「단결 우의 진보」를 슬로건으로 내건 27억 아시아인의 대축제인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9월22일 팡파르를 울리고 막을 올릴 북경아시아드는 11억 인구의 대국 중국이 2천년대 도약의 전기로 삼기 위해 6년여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행사로 규모면에서 최대라는 점과 예측불허의 순위다툼,8년 만의 남북한 재회이외에 대회기간중 펼쳐질 한국의 북방외교 등 경기안팎으로 그 어느 대회보다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답보상태에 있는 남북한관계에 돌파구를 여는 계기가 대회기간중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6백68명의 대규모 우리 선수단을 이끌 단장으로 남북 체육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장충식단국대총장(59)이 전격발탁돼 이같은 기대를 더욱 부풀게 하고 있다. ○금메달 60∼65개 예상 서울사대 재학시절 럭비선수로 활약했으며 지난 65년 대한배드민턴협회장으로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후 스키·축구·태권도·농구·테니스 등 5개 종목 대학연맹회장과 네차례에 걸쳐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단장을 역임했던 장단장은 이번 대회에 한국의 종합 2위 고수라는 대임과 함께 남북 체육교류 전기마련이라는 또다른 짐을 지고 있어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결단식을 20여일 남겨놓고 출전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장단장을 만나 보았다. ­단장의 대임을 맡으신 지 한달이 넘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아직 선수단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지 않아 단장으로 행동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선수촌을 자주 찾아 감독·코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북경대회의 특징과 의의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1949년 정권수립이후 자국에서 열리는 최대의 국제스포츠행사입니다. 중국은 이번 대회를 전기로 지난해 6·4 천안문유혈사태로 실추된 대외이미지를 제고하고 2천년대 올림픽유치의 기반을 확고히 다진다는 의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도 그동안 개별적 교류가 있었기는 하지만 미수교국인 중국에 대규모 선수단과 예술단·관광단이 간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또 8년 만에 남북한 스포츠발전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당초 이번 대회에는 처음으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38개 회원국 모두가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의 페르시아만 사태로 쿠웨이트를 지지하는 아랍국가들이 대회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봄니다. 페르시아만 사태 자체가 각국의 중재노력으로 더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같고 중국에서도 아랍국들을 상대로 활발한 교섭을 벌일 것이므로 1∼2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정대로 참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회판도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27개 정식종목에 걸린 금메달 3백8개중 홈팀 중국이 약 절반인 1백40∼1백45개를 가져가고 나머지를 놓고 우리와 북한 일본이 각축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국이 60∼65개,일본이 50∼60개,북한이 30개 정도를 따내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한국의 종합 2위 고수를 확신하십니까. ▲낙관은 어렵지만 턱걸이라도 2위는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때의 성적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는데다 우리가 유리한 태권도등이 빠져 불리해졌지만 일본의 전력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종목조정도 중국에는 유리하지만 우리와 일본에는 마찬가지입니다. 장단장은 일본이 포상금제까지 도입하며 「타도 한국」을 외치고 있어 힘든 싸움이 될테지만 우리가 구기,유도를 제외한 투기,양궁 사격 등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우세한 입장이고 북한은 정신적으로는 부담이 되지만 경쟁상대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북한도 대규모선수단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아직은 불확실하나 선수단 5백명을 포함,응원단까지 2천여명을 파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배나 되는 1백20명의 예술단을 파견하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레슬링 사격체조 탁구 육상 중·장거리 등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복싱에서는 거의 모든 체급에서 우리와 결승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컨디션 조절에 노력 ­지난 86년 서울서 열린 제10회 아시안게임에서는 우리가 중국에 금메달 1개 차로 선두를 내주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금메달 65개가 중국의 1백45개와는 너무 차이가 크며 이는 나중에 성적이 나쁠 경우를 예상해 목표를 줄인 것이라는 말도 없지 않은데요. ▲86때는 홈의 이점도 있었고 육상에서 예상외의 메달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육상 수영 사격 등 금메달이 많이 걸린 기초종목에서 고전이 예상됩니다. 사격에서만 어느 정도 기대를 걸 수 있는 입장입니다. 장단장은 우리가 기초종목에서 열세인 것은 소득이 향상되면서 프로스포츠 선호현상이 팽배,야구·축구 등에 우수한 선수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진단하고 인기종목만 육성,파행적 발전에 한몫을 하고 있는 대학스포츠가 각성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선수단의 훈련과사기는 어떻습니까. ▲86·88 양대회를 치르느라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고 일부 선수들은 너무 혹사시킨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88이후 종목별로 부분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으나 은퇴한 선수들과의 기량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현재 지난해부터 실시해온 「3백일 작전」의 훈련이 마무리단계에 있으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세심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북경대회에서는 남북한이 82년 뉴델리대회이후 8년 만에 다시 만납니다. 한국이 86년 아시안게임 2위,88년 올림픽에서 세계 4위까지 한 마당에 북한과 메달경쟁에 집착,과열경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한민족으로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분위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아무리 형제끼리라도 경기자체는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승부에만 집착해 더티플레이를 해서는 안되겠지요. 관중들이 보더라도 친화의 정이 흐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페러플레이에 전념하겠습니다. 그는 남북이 스포츠에서나마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응원단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고베 유니버시아드 때도 남북한 선수들이 페어플레이를 했으나 조총련과 민단으로 갈린 응원전으로 분열상을 노출시키고 말았다면서 북경에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우리 응원단에 남북한팀 모두를 고르게 응원,민족의 동일성을 과시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장단장의 발탁에 대해 북경에서의 남북 체육회담 재개를 위한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남북 체육회담은 이번 대회 단일팀 구성을 위한 것이었으며 기본 10개항까지 합의했었으나 끝내 결렬되고 말았고 그 이후 북한과의 어떠한 접촉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서독이 사실상 통일됨으로써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게 된 남북한이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까지 제각각 출전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며 이를위해 최소한 남북 체육교류를 빠른 시일내 실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북한도 제3국에서의 교류정도는 수용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단장과는 구면 ­남북한체육교류를 위한 구체적 복안은.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급한 발언으로 결국 국민을 실망시키는 꼴이 돼선 안된다고 생각하므로 당국과 체육계의 의견을 수렴해 인내를 갖고 추진할 방침입니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단일팀 구성 제의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대회기간중에는 어차피 선수단들간의 활발한 접촉이 이뤄지겠지요. 지난번 북경에서 열렸던 다이너스티컵 축구대회때도 남북한이 부드러운 관계를 맺었지 않습니까. 또 북한단장으로 오는 김유순 북한NOC위원장과는 로잔체육회담등에서 몇차례 만난 적이 있어 얘기가 잘 통할 겁니다. 경평축구전 재개등 구체적 카드는 마련되지 않았으나 남북관계의 전체적인 흐름이 호전되면 적극적인 제안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제대회 단장을 너무 자주 맡으신다는 말과 함께 임원구성에 대해서도 구설수가 없지 않은데. ▲유니버시아드단장을 네차례나 맡았던 것은 대회자체가 일반인이 단장을 맡기에는 거북스러운 점이 있기 때문에 대학교수중에 고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고 특히 88서울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스포츠외교차원에서 중용된 것입니다. 제가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 협의도 없이 단장·본부임원을 동시에 발표하는 바람에 무척 당황했었고 스승인 김성집선수촌장을 부단장으로 선임해 도저히 못가겠다고 고사했었으나 남북한 체육교류·북방외교 등이 얽혀있어 끝내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스포츠는 봉사에서 시작,봉사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스포츠계에서 떠나 대학스포츠 육성지원에만 헌신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단장으로서 강조하시는 점과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선수단 모두가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규칙이 깨지면 불화가 생깁니다. 또 선수단 모두가 86·88의 주역이었던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 프레온가스류 수입 규제/내일부터/「공업진흥회」추천때만 가능

    상공부는 대기권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류를 수입추천품목으로 묶어 오는 20일부터 수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프레온가스류를 수입하려면 내수용수입 뿐만아니라 수출용 수입도 한국정밀화학공업진흥회의 추천을 받아야만 가능하게 됐다. 상공부는 18일 그동안 수입이 자유롭던 CFC(염화불화탄소) 및 할론가스 21개 품목을 수입추천품목으로 지정,수출입 별도공고와 대외무역관리규정을 고쳐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오는 92년으로 예정된 몬트리올의정서 가입에 따른 본격적인 사용규제에 앞서 정확한 수급상황파악을 통해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위한 것이다. 국내 프레온가스수요는 CFC의 경우 2만7천6백22t으로 1만8천3백49t은 수입으로 충당했다.
  • 모스크바와 평양사이(사설)

    소련과 북한은 요즘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외부에 알려지고 있다. 지난 6월 한소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양측은 그들의 주소대사를 소환했고 소련 역시 주북한대사를 귀국시켰던 것으로 전해졌었다. 그 보다 앞서 소련측은 북한대사 손성필의 신임장제정행사를 석달간이나 지연시켰고 평양측도 이에 반발,지난 4월 김일성 생일행사에 재평양 소련인사들을 단 한명도 초청하지 않았다고 해서 세계의 화제가 된 일도 있었다.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오는 9월7일쯤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은 그동안 소련·북한간의 소원한 듯한 관계에 비추어 여러가지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소·북한관계가 다시 원활해질 것인가 또 그렇게 되면 북한에도 이런저런 변화가 올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최근의 여러가지 국제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소련­북한 관계는 궁극적으로 전통적인 맹방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련 외무장관의 평양방문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셰바르드나제는 지난 88년 12월에도 일본·필리핀 등을 방문하는길에 평양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모스크바와 평양사이에는 눈에 띄는 반목이나 불화는 없었다. 다만 최근 한소관계가 날로 증진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남북한 대화가 교착상태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셰바르드나제의 평양방문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는 9월초 예정대로라면 서울에서는 남북한 총리회담이 열리게 된다. 셰바르드나제의 평양방문 시기는 그때를 전후한 것이다. 그의 평양방문 목적을 꼭 이와 연결시킨다는 것은 아니나 그 시기가 갖는 의미에 비추어 혹시 남북한문제와 관련해서 평양당국에 어떤 신호나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 아니냐는 추찰은 가능하다. 우리로서는 지금 단계에서 꽉 막혀있는 한반도문제에 비추어 셰바르드나제의 평양행 가방속에 한소와 소·북한,그리고 한반도문제와 관련된 「현안」들이 들어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한소관계가 현재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소련과는 오랜 정치 군사적 지원아래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북한이 이에대해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련의 대한관계 개선은 그들의 세계전략과도 관계되는 일이다. 특히 한소관계에 있어 소련이 계속 경협측면에 중점을 두는 반면 우리쪽이 항상 정치와 경협의 병행을 중시하는 것은 북방외교의 결실을 통해 남북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의 충정 때문이라는 사실을 북한은 알아야 할 것이다. 소련은 또 한소 관계개선에 있어 북한측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소관계는 물론 한반도문제 전반에 걸쳐 북한은 결코 배제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한소 관계개선」과 같은 맥락과 구도아래 북한·미국의 관계개선을 지원하는 입장인 것이다. 셰바르드나제의 평양행은 경우에 따라 북한 변화의 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북한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 북의 거부는 “개방물결 공포증”/평양은 왜 「대교류」 등 돌리나

    ◎대거왕래 따른 체제혼란을 우려/“당국 개입” 트집,특정단체 초청만 북한측이 선별적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힌 전민련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및 서총련등 특정단체의 개별방북에 대해서도 우리측이 이를 허용하는 공식 입장을 천명했음에도 불구,책임있는 당국간 접촉을 꺼리는 북측 고집에 막혀 「민족대교류」가 첫날부터 무산됐다. 북측의 이같은 외곬 주장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남은 4일간의 교류기간에도 남북간 인적 왕래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 확실시 된다. 우리측 정부는 지난주말 3차례에 걸쳐 방북신청자 명단을 전달하려 했으나 북측의 거부로 모두 좌절,민족대교류 성사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지난 12일 홍성철통일원장관의 성명을 통해 북측이 선별 초청하겠다고 밝힌 전민련등 특정단체들의 명단만이라도 13일 북측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측이 이날 명단접수를 거부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당국배제 논리이다. 북측은 이날 하오 3시의 연락관 접촉에 앞서 하오 1시30분쯤 방송을 통한 조선학생위 대변인 담화에서 『남한 당국이 민간인 단체를 뒷전에 돌려놓고 전민련등 4개 단체의 명단을 넘겨주겠다며 간섭하고 있다』며 『14일 상오 9시 판문점에서 서총련대표 2명과 만나 신변안전보장과 편의제공문제등을 논의한 뒤 하오 6시 이들 단체에 대한 신변안전보장 각서를 정부당국에 전달하겠다』고 밝혀 정부당국을 완전히 배제시키겠다는 의도를 나타냈다. 우리측 정부는 이에대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정부가 해외여행을 하더라도 여권을 발급하고 상대국 비자를 받아야만 여행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정부로서는 당국간 신변안전보장없이 방북을 허용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짓일 뿐 아니라 이는 무정부 상태하에서나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북한측이 이같이 당국자를 배제시키고 전민련등과의 직접 접촉을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이들이 방북을 못하게 됨으로써 야기될 우리측 정부와 재야단체간의 불화를 조장하고 이를 크게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전민련등이 방북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우리측 정부의 개별접촉 불허방침에 있음을 주장,그 책임을 우리 정부에 전가시키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측은 앞으로 이같은 점을 크게부각,대대적인 선전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북측은 우리의 민족대교류 발표와 그에 따른 후속조치로 명분상 수세에 몰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는 북측이 7·20이후 보내온 대남 전통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북측은 지난 10일 민족 대교류의 전제조건으로 국가보안법 철폐,임수경위문단의 재소자 면회 등 3가지를 내세웠다. 재소자 면회는 우리 실정법상으로 가족·변호인단 외에는 허용될 수 없으며 국가보안법철폐 주장은 바로 내정을 간섭하는 것으로서 우리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북측이 이같이 우리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을 주장한 것은 민족 대교류를 거부할 명분을 찾으려는 의도라는 것이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전민련등의 제한적인 교류도 전혀 원하지 않고 있으며 오로지 판문점 범민족대회 개최에만 관심이 있다고 보인다. 전민련·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민중당(가칭)·서총련 등 관계자 수백명이 평양등을 방문했을 때 개방과 교류의 물결유입으로 체제가 흔들리게 되는 것을 북측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임양 위문단 파견도 애당초 뜻이 없고 단지 선전전 차원에서 제의한 것이며 정치선전장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는 판문점 범민족대회만 성사시키려는 속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북측은 개방과 교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이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 대교류가 성사되지 못한 점과 범민족대회에 우리측 단체가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앞으로 남북 대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북측은 내외부적인 개방압력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 남북대화와 회담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박정현기자〉
  • YS­JP “불용성 앙금” 어찌될까/김종필위원 귀국계기로 본 저류

    ◎민주계 당무 독주에 불만 쌓여/“JP 용퇴선언” 가상 시나리오 나돌아 김영삼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최고위원,민자당 두 「동업자」간의 불화문제가 13일 JP(김종필최고위원이니셜)의 귀국으로 여권의 제1 현안이 되고 있다. 두 사람간의 불화와 그 해소책이 일단 14일로 예정된 JP의 청와대 「독대」에서 심도있게 논의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이들간의 불화는 본인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성격차로 인한 부부간 갈등같은 구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본의 아니게 중재자 역할을 맡아야할 노태우대통령 입장에서도 묘책을 찾기가 쉽지 않게 돼 있고 따라서 이들간의 불화는 두 당사자와 노대통령까지를 포함한 여권을 계속해 곤혹스럽게 만들 게 틀림없다. YS(김영삼대표최고위원이니셜)와 JP와의 관계에 대해 민자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서로 다른 선로를 깔고 있는 단계』로 풀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로위로 아직 기차(행동)가 다니지는 않지만 그 전단계인 선로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깔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불화깊이와 심각성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확한 표현이라는 게 민자당내의 평가인 듯하다. 두 사람의 불화는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 불만을 가진 일방성이 아니라 쌍방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해소책 마련을 어렵게 만든다. JP가 YS에게 보내는 불만은 두가지다. 하나는 내각제에 대한 YS의 「이중적 태도」이고 또 하나는 당운영과 관련한 「독주」로 풀이되고 있다. JP측이나 민정계는 이 두가지 상황 모두가 YS의 「대통령직을 향한 밀어붙이기」라는 일관된 전략위에서 나오는 것으로 분석한다. YS가 JP에게 보내는 시선 역시 JP가 자신에게 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민주계측은 JP가 『사사건건 YS의 당운영에 제동을 걸고 있고 이로 인해 여권의 분열상이 노출되고 있다』고 공박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민주계측은 『한번 더 YS의 방침에 제동을 거는 식의 발언이나 행동을 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거의 공개적인 경고를 보내는 상태다. 두 사람의 불화를 지켜보는 민정계는 JP쪽에 심정적인 동조를 보이는 것 같다. 민정계는 두 사람간 관계악화의 책임을 YS쪽에서 더 찾고 있다. JP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박태준최고위원도 똑같이 갖고 있다는 것이 민정계 중진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YS가 당내에 개인참모팀을 설치,당 사무처를 따돌리면서 기획·입안 등 주요 당무를 개인참모팀에게 맡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3당 합당의 정신을 깨고 당을 자신의 차기대권장악의 도구로만 활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JP와 박최고위원까지도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무대 소품」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각제문제와 관련해 지난번 청남대 회동에서 JP는 YS의 안색이 바뀌도록 공박했다는 것이 민자당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소식통들은 『JP가 「우리가 합당 당시에 어떤 처지에 있었으며 어떤 메모를 교환했는가」라고 YS에게 반문하면서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전하고 있다. 청남대 회동에서 두 사람간의 불화가 표면화됐고 JP의 거듭된 귀국연기로 공지의 사실로 확대된 감이 있다. 민자당의 모든 계파가 노대통령과 JP의14일 회동결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 자리에서 JP는 자신이 「모종의 결단」을 실행에 옮길 수도 있음을 「호소」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민정계는 관측하고 있다. JP가 YS를 겨냥해 행사할 수 있는 결단의 종류와 관련해 「세대교체론을 스스로 실천에 옮기는 결단」이란 가상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가상 시나리오는 이렇다. 세대교체론이 싹을 틔우고 있는 상황에서 JP가 『우리 세대가 이 나라에 더 이상 기여할 것은 없다. 우리가 물러나는 것만이 유일하게 노대통령을 돕는 것이며 국민에 대한 마지막 봉사가 될 것』이라는 식의 발언으로 세대교체론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평민당 김대중총재까지를 포함한 3김의 동시퇴진 압력이 국민 속에서 나타날 것이란 가상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가상 시나리오지만 내각제가 끝내 당내 이견으로 추진되지도 못할 경우 언제든지 위협용으로 쓸 수 있는 「핵폭탄」 임에는 틀림없는 것같다. 민정계는 노대통령이 JP를 국내 사정의 복잡함,YS에 대한 예우문제 등을 들어 일단 설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JP는 YS에게도 적절한 「주의환기조치」와 재발방지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이 과정에서 JP에게 현재보다 「국정운영에 더 많이 기여할 자리」가 주어질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고 있다. 민정계 내부에서는 박최고위원이 적극 나서서 민정계를 대변해 줄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박최고위원측에서도 은연중 이같은 요청이 있기를 기대했고 보면 민자당의 내부사정은 좀 더 복잡해질 수 있다.〈김영만기자〉
  • 여권에 “내각제 시각차”갈등/민자 지도부의 불협화설 안팎

    ◎민정ㆍ민주계의 유보방침에 공화계서 발끈/JP 일본체류 연장에 「모종구상」추측 무성 내각제 추진여부를 둘러싸고 노태우대통령과 김종필 민자당 최고위원간에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여권지도부의 내홍이 또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지난 7월말 노대통령과 민자당 김영삼 대표 최고위원과 김종필ㆍ박태준 최고위원의 4자 청남대 회동 이후 끊임없이 흘러나온 여권지도부내의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불화설이 설로서가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둔 내연과정을 겪고 있다는 증좌가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 합당의 3인 수뇌부중 김영삼 대표가 그동안 국민여론 및 야권의 분위기 등을 내세워 내각제개헌 불가의지를 확인해온 것은 당내는 물론 정가에서도 공지의 사실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노대통령도 3당 합당당시 기본정신이 됐던 내각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자 김종필 최고위원이 극도의 불편한 심기를 방일일정 연장이라는 간접적인 항변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지난1일 일본내의 백제촌 등에 대한 방문명목으로 일본나들이에 나섰던 김종필 최고위원이 3일 동안의 공식일정을 끝내고 5일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9일로 귀국일정을 조정했다가 또다시 13일로 재조정하는 등 거듭된 일정변경을 한데는 국내에 들어오고 싶지 않은 그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측근들은 분석하고 있다. 3당 합당이후 김영삼 최고위원이 박철언 당시 정무1장관과의 불화로 상도동 자택에 칩거하며 노대통령의 당무활동 재개종용도 거부한데 대해 못마땅한 심정을 드러냈던 JP(김종필 최고위원)가 오는 11일 대통령과 당 최고위원들간의 청와대 회동 일정통지에도 불구,일정을 늘려잡은 것은 YS(김영삼 대표)에 대한 불신의 차원을 넘어 노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을 지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3당 통합이후 그동안 내각제 개헌여부를 놓고 민정ㆍ민주ㆍ공화 3계파간의 갈등 및 반목은 끊임없이 노출돼 왔지만 JP입장에서는 민주계의 내각제 무산을 위한 「의도적인」 언론플레이에도 불구,최대계파인 민정계가 자신에게 심정적인 동조를 보내고 있는 점 등을 고려,시간이 되면 당초 합의대로 차근차근 추진돼 갈 것이라고 낙관해 왔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노대통령이 당의 3최고위원들간의 청남대 회동때 내각제 개헌문제와 관련,국민들에게 민자당의 내각제 추진움직임이 여권의 주요인사들이 돌아가며 집권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쳐지고 있는 만큼 자신은 내각제 개헌에 적극나서지 않고 국민들의 여론이 내각제에 대해 호의적 평가를 내릴때 통치권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하겠다는 사실상 내각제추진 유보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적인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내각제를 추진할 경우 6ㆍ29선언 직전의 국민적 저항과 유사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노대통령의 내각제와 관련한 자세변화 이유로 청와대 측근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노대통령의 자세변화조짐에 대해 김영삼 최고위원등 민주계가 사실상 내각제개헌 추진의 포기로 해석하고 있고 그동안 내각제를 지지해온 민정계 의원들의 상당수가 내각제 포기 대세론에 따르려는 듯한모습을 보이는데 대해 김종필 최고위원이 심각한 결단 등 모종의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최고위원은 특히 여권내의 세불리에도 불구,어떻게 내각제 추진의 물꼬를 틀어나갈지 또 결국 김영삼 대표등 집요한 「방해」에 의해 내각제추진을 포기해야 될 경우 향후 자신의 거취와 공화계의 진로 등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공화계 중진들은 진단하고 있다. JP 측근들은 지난해 가을 민주ㆍ공화당의 밀월관계 형성이후 김최고위원이 김영삼 대표에게 「소신과 우정」을 다짐하며 향후 정계개편을 도모한 것은 내각제의 대원칙에서 시작된 것인 만큼 내각제추진 계획이 무효화될 경우 새로운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JP의 이번 귀국지연이 정치적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라고 JP비서실팀 등은 주장하고 있으나 귀국이후 그의 향후 입지모색과정 등을 통해 「후쿠오카 구상」이 구체화될 것이 틀림없다. 『당총재인 노대통령을 모시고 YS의 한발 뒤에 서서 새로운 정치모델을 창출하겠다』던 JP가 내각제를 둘러싼 여권지도부의 갈등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 나갈지 좀더 가시적인 행동표출은 올 연말쯤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 원화/대 엔화 강세ㆍ불화엔 약세/페만사태이후 「환율」 변동의 파장

    ◎사태 오래끌면 대일 수출에 큰 타격/대달러화는 오름세… 7백15원 기록 페르시아만 사태로 유가가 들먹이고 국내 증시마저 한차례 강타 당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등 주요 외환시세가 급변하면서 원화 환율에도 적잖은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페만 사태이후 달러화가 엔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면서 국제외환시장의 엔화 시세에 연동돼 움직이는 원화의 대엔화 환율이 최근 내림세로 치달아 수출전선에 반갑지 않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 국내 수출업계는 한동안 원화의 대엔화 환율이 오름세를 타 대일수출이나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상품수출이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했으나 페만 사태의 갑작스런 발발로 엔화 약세가 뚜렷해지자 수출에 다시 먹구름이 끼고 있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최근엔 미달러화가 미경제의 둔화기미 등으로 마르크화등 서방통화에 대해서는 약세를 보이면서도 원유수입 의존도가 높은 엔화에 대해서는 강세기조를 유지,페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엔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이 큰폭의 절상을 보일 것이라는우려 섞인 진단마저 나오고 있다. 페만 사태이후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것은 달러화 강세기조가 당분간 이어지리라는 심리적인 기대감으로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대미달러환율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소식이 알려진 2일과 3일 달러당 60전과 10전이 떨어졌으나 사태가 악화되면서 월요일인 6일에 달러당 90전이 올랐고 7일 80전,8일에 40전이 각각 올라 환율 7백15원50전을 기록했다. 시장평균환율제의 도입으로 대미달러환율이 달러화의 국제시세에 관계없이 국내 외환시장에서의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관계로 페만 사태로 인한 달러화의 국제시세 변동에 그렇게 민감하게 움직인 편은 아니다. 이에 비해 원화의 대엔화 환율은 국제외환시장에서 형성되는 엔화와 달러화의 교환비율에 따라 자동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이들 통화의 국제시세가 그대로 원화의 대엔화 환율에 영향을 주고 있어 페만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엔약세 반전은 국내수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1백엔당원화환율은 지난 1일 4백89원28전으로 올들어 최고수준을 나타내 대일수출에 밝은 전망을 비춰 주기도 했으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후 국제시장에서 엔화의 움직임과 함께 변동되면서 8일 현재 14원65전이 떨어진 4백74원63전으로 3% 가까이 하락했다.
  • “위상회복” 정지… 부산한 「박철언행보」/방소등 관심끄는 최근동향

    ◎비밀문건 든 「북방보따리」 내용 궁금/「미민련」등 각종 모임서 “새 정치” 역설/“이미지 제고ㆍ세대교체 포석” 관측도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의 불화로 지난 4월 정무1장관직을 사임한뒤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해 왔던 민자당의 박철언의원이 최근 자신의 사조직인 월계수회,미래민족문제연구연합회(미민련),한국민주민족 청년동맹(한민청) 등의 행사에 공개적으로 나서는가 하면 4일 정부대표단의 교섭을 측면지원키 위해 소련으로 출국,「북방밀사」로서의 역할을 재개함에 따라 그의 행보에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장관직 사임후 그의 여권내 위상과 북방 밀사로서의 역할에 대해 갖가지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박의원의 최근 행보는 자신의 「건재함」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임과 동시에 향후 정치권의 풍향을 가늠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방소의미 애써 축소 ○…박의원측은 이번 소련방문을 지난 4월초 내한,자신의 양재동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는 표도로프박사의 초청에 따른 답방에 불과하다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 중앙위원과 최고회의 대의원을 겸하고 있는 표도로프박사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측근 「5인방」에 속하는 실력자인데다 소련방문중 면담추진대상자에 한소 정상회담 성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체르니아예프대통령안보보좌관과 야코블레프대통령위원회 위원,알바토프 미ㆍ캐나다 연구소장 등 고르바초프를 움직이는 핵심측근 7∼8명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정부대표단 활동에 대한 측면지원이상의 임무를 띤 것으로 관측. 물론 정부측도 현재 정부대표단이 수교와 경협문제를 비롯,양국간의 현안에 대한 공식협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박의원의 소련방문을 회담분위기를 북돋우는 「조연」역할 정도로 설명하고 있으나 그의 일본방문과 곧이은 이번 소련방문이 노태우대통령의 「독려」에 따라 이루어졌고 일본 방문당시 도쿄에 이틀간 머물면서 고르바초프의 측근으로 노보스티통신계열 주간지의 일본 지국장인 두나이예프를 만나 방소일정및 접촉인사등에 관해 사전에 협의를 거치고 돌아왔다는 후문이어서밀사로서의 박의원 역할에 관심이 집중. ○학술회의에도 초청 특히 박의원측근들은 그의 이번 「북방가방」에 한소수교,경협및 문화ㆍ첨단기술교류 등 양국간의 현안 문건외에 별도의 「비밀문건」 2건이 포함된 점을 들어 한소 정상교환 방문,북한의 개방과 관련한 소련의 역할문제등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측. 게다가 북방정책의 단계적인 추진을 주장하던 박의원이 『북방정책의 2단계 과업이 마무리되는 오는 93년 2월까지 한소,한중 및 남북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전략을 수정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박의원 측근들은 주장. 박의원은 이번의 소련 방문과는 별도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으로 부터 오는 9월초 소련 외무부가 주관하는 아시아ㆍ태평양 국제학술회의에 남덕우무역협회장,장덕진대륙연구소장,김경원 전유엔대사,정종욱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공식초청을 받는 등 자신의 표현대로 『소련측이 대화상대로 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이번 소련 방문에는 중국문제 전문가인 나창주(북방정책연구소장),김정길의원(〃연구위원)과 표도로프박사의 지기이며 소련통인 재미교포 안과의사 윤성렬박사가 동행. ○「대중성」 확보 안간힘 ○…박의원의 북방행보와는 별도로 국내무대에서도 그는 지난 2일 대구에서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미민련」의 대구ㆍ경북지역이사 및 핵심회원 1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간담회에 참석,대중 연설을 한데 이어 3일에는 포항에서 대구지역대학생 5백30명으로 구성된 「한민청」 창립총회겸 하계 수련회에서도 「시대적 과제와 북방정책」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함으로써 자신의 약점으로 지목된 「대중성」확보에 활발한 움직임. 박의원은 이들 집회에서 자신의 평소 지론인 3대 시대적 과제와 북방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 외에 새로운 정신운동의 전개및 정치권의 새바람을 역설함으로써 세대교체론의 돌풍을 겨냥한 포석으로 관측. 박의원측은 이들 집회와 연설내용을 일상적인 행사로 치부하고 있으나 장관직 사임후 이미지 관리를 위해 약 3개월간 접촉을 기피했던 월계수회 회원들과 지난달 중순이후 공개적으로 회합을 가지기 시작한 사실과 함께 지난달 23일 청남대에서 노대통령과의 「독대」,일본방문시 이재황,이긍규,박승재의원 등 월계수회 회원들을 대동했던일,3일 박태준 민자당최고위원이 포항에서 현 지구당위원장인 이진우의원을 격려하는 동안 별도의 장소에서 민자당 지구당 간부들에게 이재황의원을 지원해줄 것을 독려하는 등 최근 박의원의 일련의 언행은 「동면상태」에 있는 과거 3개월과는 사뭇 형태가 달라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 게다가 월계수회와 「미민련」을 노대통령의 선거당시 조직됐던 여권의 외곽단체로 치부하며 자신과의 관련설을 극구부인했던 박의원이 최근의 이들 단체모임을 전면에 나서 직접 주관하는 일도 박의원의 향후 행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 87년 6ㆍ29선언 당시 노태우후보를 지지하는 모임의 형태로 출발했던 「미민련」은 89년 12월 조직을 재건,현재 전국 13개 시도에 1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오는 10월말 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 때까지 10만명 규모로 확대할 계획. 박의원의 시대적 과제와 북방정책을 지지하는 대학생 조직으로 지난 2월부터 회원을 모집해온 「한민청」 역시 올안에 전국 조직으로 확대 개편할 예정. 박의원은 이처럼 사조직의 확대 개편및 직접 관리를 통해 대중성 확보를 겨냥하는 한편 민정계 비주류 중진인 이종찬,이한동의원을 비롯,김동영총무,황병태의원 등 김대표의 측근들과도 최근 잦은 회동을 갖는 등 정치권내의 관계 정상화에도 신경쓰는 모습. 박의원은 특히 지난달 김종필최고위원과 골프회동을 가진데 이어 1일에도 조찬회동을 갖고 정국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김윤환정무1장관과는 주 2∼3회에 걸쳐 흉금을 열어놓고 국정을 논의한다는 후문.
  • 고모가 8세 조카 유괴/40대 여인 영장/5백만원 받고 돌려보내

    ◎부모유산 싸고 불화 서울 마포경찰서는 20일 이남이씨(43ㆍ여)를 특정법죄가중처벌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지난달 19일 하오2시쯤 마포구 성산2동 시영아파트8동 앞길에서 친동생인 종연씨(35ㆍ회사원ㆍ마포구 성산2동 시영아파트 8동) 아들 립군(8)을 유인해 대구와 대전 등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종연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방 얻을 돈 5백만원을 구해달라』고 요구해 2일뒤인 지난달 21일 5백만원을 받고 아이들 돌려준 혐의를 받고있다. 이씨는 경찰에서 『지난 4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유산 9백70만원을 동생과 내앞으로 남겼는데 동생이 모두 가져 내 몫을 찾기 위해 범행했다』고 말했다.
  • 「간통죄」 판사가 첫 위헌제청/부산지법

    ◎“헌재결정 내릴때까지 재판 정지”/피의자 석방… 폐지 논란속 귀추 주목 【부산=김세기기자】 간통죄에 대한 폐지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판사가 직권으로 간통죄의 위헌여부를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제청해 주목되고 있다. 부산지법 제3민사부 김백영판사는 30일 부산지검 형사1부 장용석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한모씨(32ㆍ공원ㆍ부산진구 가야1동)와 주부 이모씨(29ㆍ여ㆍ부산진구 가야1동)의 간통사건에 대해 간통죄의 위헌여부를 헌법재판소에 제청,위헌여부에 대한 결정이 있을때까지 영장발부 등 모든 재판과정을 정지한다고 밝히고 한씨와 이씨를 석방했다. 김판사는 위헌제청결정문에서 『재판의 전제가 되는 형법 제241조1항의 간통죄가 성도덕의 유지와 건전한 성풍속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지만 헌법 제10조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법조항과 헌법 제37조의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에 위배돼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를 제청했다』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때까지 이 사건의 재판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김판사는 『특히 이번사건은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러 형식적인 부부에 지나지 않는데도 성의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함으로써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속영장이 신청된 이씨는 지난 3월부터 남편 김모씨(33)와의 가정불화로 집을 나와 생활하던중 한씨와 알게돼 지난 5월13일까지 정을 통해오다 남편의 고소로 경찰에 붙잡혔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김판사의 간통죄 위헌제청에 따라 1백80일 이내에 이 사건을 심리,위헌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 세종대 오늘 수업재개/전체교수회의 확정

    세종대는 24일 상오9시 전체교수회의를 열어 25일 0시를 기해 휴업조치를 해제하고 수업을 재개하기로 한 방침을 재확인했다. 세종대는 이에따라 이날 상오10시쯤 교내 게시판에 이중화신임 총장명의로 담화문을 내고 『지금까지의 불화를 종식시키기 위해 총장 교수 학생 등 3자가 대화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호소하고 『25일부터 8월30일까지 여름방학없이 1학기수업을 계속해야 부족한 법정수업일수 10주를 채울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즉각 수업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 한국전 40돌 맞아 재조명 미 유에스 뉴스지

    ◎“잊혀진 전쟁”6ㆍ25… 「공산화 도미노」막았다/동ㆍ서 이념대립서 군사충돌로 급선회/「값비싼 희생」은 동구민주화와 연계성/“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한국인 모든 세대에 깊이 자리” 미국의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6ㆍ25 40주년을 맞아 「잊혀진 전쟁」을 재조명하고 이 전쟁이 남긴 유산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남북대결의 현실을 분석하는 특집기사를 6월25일자 카버스토리로 다뤘다. 장장 14쪽에 이르는 유에스 뉴스지의 특집기사를 요약한다. 지금부터 꼭 40년전 장마비가 내리는 아침에 시작돼 그후 37개월동안 이미 수탈당한 아시아 변방의 반도를 뒤흔든 야만적인 투쟁은 마지막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후기인 동시에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서문이었다. 이것은 갑자기 열전으로 변한 냉전이었고 공산주의 사상 가장 담대한 「국제해방전쟁」이었으며 유엔으로서는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경찰업무」였다. 판문점이라는 무인지대의 황량한 「휴전마을」에서 교착상태로 끝날 때까지 이 전쟁에는 22개국이 참전했고5백만명의 인명이 이로 인해 희생됐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소요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발발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의 기억속에 미국의 킬링필드였던 안개낀 산들만큼이나 아물거리는 존재로 남아있다. 폭찹힐이나 하트브레이크 리지에서,또는 장진호에서 퇴각하는 길에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값하는 기념비는 어디에 있는가? 베를린 장벽이 유럽 분단의 상징이라면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시아의 베를린 장벽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이 2주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을때 이들은 냉전의 가장 뚜렷한 흔적인 한국의 분단상태를 언젠가는 끝낼 수도 있을 해빙작업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화해의 봄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 공산주의 양대 종주국인 중국과 소련은 자신들이 지난 1950년 파괴하려 했고 그후 40년간 무시하고 비난하고 전복시키려 애써 왔던 한국과의 외교재개를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냉전의 모델◁ 한국전은 유럽일변도였던 미국의 관심을 태평양쪽으로 되돌렸다. 2차 대전후 극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약화되기 시작했었다. 트루먼행정부는 「중공」과의 타협에 접근하게 된다. 당시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아시아는 서방의 군사적 영향력,경제력 통제 및 사상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기술했다. 한국전이 중국과 소련간 불화의 서막이었다는 증거가 현재 나타나고는 있지만 당시 한국전은 획일적 공산주의의 이미지를 강화했으며 미정책입안자로 하여금 이때문에 오랜기간 골머리를 앓게 해왔다. 한국전은 무엇보다도 냉전을 정치ㆍ이념적 성격에서 군사충돌로 변모시켰다. 이는 전후 봉쇄정책의 촉매일뿐 아니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표현한대로 「군사산업 복합체」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51회계연도 미군사예산은 1백40억달러(책정기준)에서 53회계연도에는 5백40억달러로 상승된다. 보다 놀라운 점은 미국의 대외 원조계획의 군사화이다. 1950회계연도의 경우 군사원조가 대외원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60회계연도에 41%로높아졌다. 한국전은 또한 냉전기간을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을 괴롭혀온 기본적인 모순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은 한편으로 국내에서 악의에 찬 반공주의에 반대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에서는 공산주의 침략이 이루어지는 세계 어디서고 이를 퇴치한다는 결의를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50년 9월30일 북한이 남침을 시작한지 3달째가 되는 날 트루먼은 국가안보회의문서 68호에 서명한다. 이 문서는 『소련의 강대국 부상을 막기위해 미국은 희생이 어떠하더라도 국내외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결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미 극우세력의 득세◁ 다른 수준에서 한국전은 핵시대(소련은 전쟁발발 3개월전 첫 핵실험에 성공했음을 발표한다)에서 전쟁이 가열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전쟁이었다. 이같은 새로운 「제한전」의 개념은 그러나 중국을 핵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51년 3월 맥아더는 중국 로비스트였던 조셉 마틴하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루먼의 제한전 개념을 공개적으로통박한다. 그는 『공산주의가 세계무대 장악을 위해 준동하는 지역이 아시아』임을 상기시키면서 『아시아가 떨어지면 유럽도 공산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명령에 순종하는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트르먼은 마침내 맥아더를 해임하나 공산주의 「격퇴」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맥아더가 밀려난데 자극받아 존 맥가시상원의원은 공산주의 동조세력이 트루먼 행정부안에 도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로부터 13년후 피그만사건이 있고난후 미국이 아시아에서 또다른 제한전으로 치달을 무렵 배리 골드워터상원의원은 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방위를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맥아더를 상기시켰다. 이같은 우익노선은 마침내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미국의 정책으로 채택된다. ▷잊혀진 전쟁◁ 한국전의 여파가 오래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에 관한 한 가장 놀라운 것은 거의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수는 5만4천여명으로 한 세대후의 베트남전의 미군희생자 5만8천명에 거의 육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한국전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 것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사람들에게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에서 비겼다는 사실은 결코 달갑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트루먼대통령은 ▲징집연장 ▲세금인상 ▲임금ㆍ물가 통제부과 등을 취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에 비교하면 국내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고 하겠다. 또 베트남전이 TV를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된 것에 비하면 한국전은 신문에나 조금 보도되는 등 일반인들의 관심밖의 일이다. 한국전이 끝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냉전이 종식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 보건대 한국의 산하에서 치른 희생과 최근 프라하,바르샤바,부다페스트에서의 민주주의 태동은 분명한 연계성을 갖고 있다. 미국의 봉쇄정책은 성공했으며 미국과 우방국들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값비싼 희생을 치른 것이 분명하다. 최종적인 결과를 볼때 그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역사는 결론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남북대결◁ 한국전쟁은 총성이 멈춘지 1세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남북한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이 경제기적을 거두고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모든 세대와 사회계급에 걸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친북한신문의 편집인 손진형씨는 『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휴전된지 37년이 되도록 남북한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이며 1백51마일 휴전선에는 1백만의 병력이 마주 대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영화상영전에 간첩과 공산주의자를 113으로 신고하라는 자막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북에서는 김일성이 또다른 전쟁 가능성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북한주민은 매년 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동안 전투비상체제하에 놓인다. 김일성은 『미제국주의자와의 전쟁경험은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남쪽에서는 전쟁이 재벌이라는 신흥기업군이 자랄 수 있는 혼란스럽고 독점적인 시장을 마련해 주었다. 전쟁은 남북을 합쳐 1백50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았으며 수백만명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인구의 대량이동은 도시화를 촉진시켰다. 전쟁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남북 모두 군인들이 정치권력을 쥐도록 만든 점이다. 남에는 장성출신의 대통령이 3명이나 되고 그중 2명은 쿠데타로 집권했다. 북에서는 전현직 고위 장교들이 김일성의 강력한 지지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당의 고위직에 앉아 있다. 경희대 나종일대학원장은 『전쟁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성숙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군사적인 수단과 독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지적한다. 아직도 남북 모두에게 분단상황은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은 독일통일방식의 단계적 통일을,북한은 1국2체제 방식을 내놓고 있다. 한국전쟁의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 서울대 김경동교수는 『전쟁이 왜,어떻게 발발했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당시 전쟁을 막을 통제능력이 거의 없었다』라고 진단한다. 전쟁이 한국민들에게 가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남한은 자신들이 1950년에는 갖지 못했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오존층파괴 특정물질 제조규제법안을 마련/상공부

    정부는 「오존층 보호를 위한 특정물질의 제조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올가을 정기국회에 처리하기로 했다. 15일 상공부가 확정한 이 법률안에 따르면 오존층을 파괴하는 할론과 염화불화탄소(CFC)등 특정물질의 대체물질 개발과 특정물질 사용합리화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특정물질 사용합리화기금을 설치토록 하고 있다. 이 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재원은 특정물질이 포함된 국내생산제품과 이 물질이 포함된 제품을 수입할때 일정금액을 징수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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