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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암갤러리서 오는 15일부터 「대고려 국보전」

    ◎고려시대 문화유산 한자리에/불상·도자기 등 명품 2백66점 선보여 고려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한자리에 모은 대규모 전시회가 열린다. 오는 15일부터 9월10일까지 호암갤러리(771­2381)에서 열리는 「대고려 국보전­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에는 그간 해외에 흩어져 있어 볼 수 없었던 문화재를 포함해 불상·범종·불화·도자기·금속공예·나전칠기·회화·서예·팔만대장경 등 고려시대 문화 전반을 망라하는 명품이 대거 선보인다. 출품작은 국보 25점,보물 19점,해외문화재 27점을 비롯해 총 2백66점.해외문화재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 25점이며 영국의 대영박물관,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들여온 것이 각 1점씩으로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문화재가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국내에 단 한 1점밖에 없는 고려 나전칠기가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8점이 한꺼번에 소개되며,4m가 넘는 현존 세계 최대의 「수월관음도」(일본 경신사 소장)가 최초로 공개된다.또 영국 대영박물관이 좀처럼 일반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청자진사채 당초문완」도 이번 전시회에서 꼭 챙겨봐야 할 명품이다.이 그릇에 사용된 진사기술은 청자와 금속활자 기술을 접목시켜 세계 최초로 고려인이 창안한 것으로 예술성과 호화로움이 단연 뛰어나다. 사상적으로는 불교를,정치적으로는 귀족정치를 근간으로 한 고려왕조(918∼1392)의 문화는 각종 미술분야에서 섬세함과 우아함,화려함을 특징으로 한다.이번 전시회는 당나라의 문화를 거의 답습한 통일신라 문화와 달리 중국문화를 독창적으로 소화,한국미의 규범을 제시한 고려문화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출품작 중 48점은 초·중·고교 미술 및 국사교과서와 대학교재에 수록된 것들이다.
  • 수단,애 숙박소 3곳 습격/국경지역선 무력 충돌… 9명 사상

    ◎이집트,수단경찰관 70명 추방 【카이로 로이터 연합】 약 90명의 수단인들이 수단 수도 하르툼의 이집트 정부숙박소 3곳에 침입,일부 이집트인을 공격하고 그 가족들을 쫓아냈다고 이집트 관영 MENA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영국의 BBC 방송에 의해 수신된 이 통신은 쫓겨난 가족들중에는 하르툼주재 이집트 무관 가족들이 포함돼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사건이 언제 발생했는지는 즉각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수단은 이집트군이 27일 밤 수단의 국경지대 부대를 공격해 2명의 수단 경찰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국경지역 영유권을 둘러싸고 불화를 빚어 온 이집트­수단 양국간의 분쟁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아디스 아바바에서의 자신에 대한 암살기도에 수단이 개입했다고 밝힌 지난 26일 이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한편 무바라크 대통령은 29일 연예인들과의 회동에서 자신의 암살주모자는 모하메드 세라즈이며 그의 국적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카이로 AFP 로이터 연합】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은 29일 전날수단과 충돌이 발생한 수단접경 할라이브의 초소 4곳을 경비하고 있는 수단 경찰관 70명의 추방을 명령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영화배우들과 예술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수단인들이 28일밤 하르툼에 위치한 이집트정부 소유의 휴게소들을 점거한데 따른 보복으로 이같은 결정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 경기 김포군수/3강 4약… 공직 인맥이 변수(격전의 현장)

    김포군에서는 공무원과 교사 출신 등 7명의 후보가 혼전중이다. 민자당의 임순기 후보(62)와 민주당 이준택(62),무소속 유정복 후보(38)가 선두 그룹을 유지하고 있고 여기에 조한승 후보(56) 등 나머지 4명이 뒤를 쫓고 있다. 임후보는 김포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토박이로 32년 동안 이 곳에서 면장과 읍장을 지내며 밑바닥부터 다져온 인맥과 동문들을 중심으로 표밭을 다지고 있다. 행정경험과 성실성을 내세워 지지를 당부하고 있으나 군수 출신인 유후보가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다. 이후보는 김포종합고에서 20여년간 교직생활을 하다 지난해 교감으로 퇴임한 후 민주당에 입당,시장으로 출마했다.당연히 김포고 제자들의 지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민자당의 임후보와 성향 및 지지 기반이 비슷한 유후보의 출마로 여권표가 갈라지는 어부지리를 노리는 눈치다. 이 곳에서 군수를 지낸 유후보는 내무부와 경기도 기획관을 거쳐 올 3월까지 김포 군수로 근무했으며 공천을 받지 못해 출마를 포기했다가 주민들의 권유로 무소속으로 나왔다고 주장한다. 전국 최연소 국장과 최연소 군수,최연소 구청장이란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공천을 앞두고 현역 의원과 불화를 빚어 하루 아침에 인천으로 발령받는 아픔을 겪었다.때문에 당선을 통해 보상받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민자당 공천에서 탈락,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이순억 후보(57)와 경기도 교육위원인 조한승 후보 등도 나름대로 지역 기반을 확보하고 있어 막판까지 다른 후보를 괴롭힐 것으로 보이나 당선권에는 미치기 어려울 것 같다. ◎충남 홍성군수/「경륜」대 「토박이」 치열한 2파전 모두 4명이 출사표를 던진 충남 홍성군수 선거는 민자당의 정갑영 후보(60)와 자민련 이종근 후보(59)의 대결로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민자 정후보는 예산 출신으로 학연·혈연 등 홍성과 별 연고가 없으나 30여년 동안 새마을운동본부 지회장 등 각종 지역 활동을 펴 와 타향 출신이란 핸디캡이 별로 없는 편이다.오랫동안 홍성에서 살아와 지역 사정에 밝기 때문이다. 홍성축협 조합장으로 재직할 때 적자에 허덕이던 재무구조를 흑자로 돌려놓아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또 도청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자민련의 이후보는 홍성 토박이로 지역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홍성고 동문과 이사장을 지낸 신용협동조합 직원들의 지지로 기반이 매우 탄탄하다. 또 YMCA 이사장과 JC 회장 등 주요 민간단체장을 거치며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해 와 청년층의 지지도 넓다.그러나 지역에서 분포도가 넓은 축산인들의 지지도는 민자당 정후보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민주당의 한만동 후보(54)는 홍성고 출신으로 동문과 만해 한용운의 친인척들인 5백여가구 청주 한씨 문중의 지지를 받아 갈수록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충남대 재학 시절 사재로 야학을 열어 가르친 학생들과 국회의원 보좌관 및 재무부에 근무할 때 취직이나 승진을 도와준 사람들의 지지가 큰 힘이다.반면 공천을 늦게 받은 후발 주자인 점과 고향을 떠난 기간이 길어 기반이 두텁지 못한 것이 단점이다. 무소속 정낙송 후보(36·농업)가 이들을 뒤쫓고 있으나 활동영역이 좁아 당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 중국군의 대공세(6·25 내막/모스크바 새증언:16)

    ◎중,핵전초기 소총 실탄 모자라 고전/36개 사단에 6개사단 분량뿐… 모,소에 지원 요청/주소 중대사­그로미코 「38선 재돌파 여부」도 논의 중국군 파병문제를 논의키 위해 모스크바로 극비 파견된 주은래는 10월15일 모택동 앞으로 다음과 같이 짧막한 전문을 보내왔다.『필리포트 동지는 조선에 군사적 개입을 결정한 중국공산당 중앙위 정치국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10월18일.노신이 고강의 말을 인용해 스탈린에게 보고한 전문) 이 전문을 보낸 이후 중국지도부 내에서는 한국전 참전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당시 러시아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던 고강이 이같은 사실을 목단 주재 소련총영사관 직원들에게 알렸다.중공당정치국 내에서 이같은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목단의 소련총영사관 직원인 레도프스키,바즈노프장군은 이를 즉각 본부에 보고했다.다음은 10월25일 레도프스키 총영사가 모스크바에 보고한 전문. ○“즉각 조선파병” 주장 『조선전쟁 참전과 관련한 주은래의 전문보고가 있은 뒤 중국의 참전 여부를 놓고 중국지도부내에서 열띤 토론이 있었다고 함.고강은 팽덕회에게 즉각 조선파병을 실행할 것을 모택동에게 함께 청하자고 주장했음.두사람은 당장 중국군을 파병치 않으면 미군이 한반도 전역을 차지해 중국 뿐아니라 국제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고 말했다고 함.두사람은 첫째로 미군이 조선전역을 차지한 뒤는 중국군 파병명분이 없어진다는 점과 둘째로 미군이 국민당을 무장시켜 조선·인도차이나를 점령하고 나아가 중국까지 공격할 것이라며 즉각 파병을 주장했음. 다른 중공당 지도자들도 고강·팽덕회 두사람의 입장에 동조해 당정치국은 조선파병을 결정했다고 함』 한편 노신 대사가 입수해 보고한 이날의 회의 분위기는 파병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보다 뜨거웠음을 보여준다.『10월24일 조선파병 문제를 논의키 위해 민주 제정당 대표와 정부대표가 참석한 특별회의가 열렸고 주은래가 공식보고를 했다.참석자 다수는 정부의 입장에 동조했다.하지만 일부는 미국이 강한 반면 중국은 약하기 때문에 미국과 싸우면 중국이 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어떤 참석자는 미국이 조선,나아가 만주까지 점령하더라도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그 경우 소련과 미국이 전쟁을 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떤 참석자들은 왜 소련이 중국과 함께 조선파병을 않는가고 따졌다.회의 끝 무렵에 모택동이 발언을 했다.그는 조선은 중국의 관문이며 일본도 과거에 조선을 점령,이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을 공격했다고 말했다.따라서 중국정부는 미국이 조선을 점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중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고 모택동은 말했다.모는 또 소련은 중국과 매우 우호적이고 진실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직접 병력을 조선에 보낼 필요가 없으며 1950년 2월1일 체결한 중·소조약에 의거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최종결정은 이렇게 내려졌고 이어서 중국군이 한국전에 참전했다. 노신 대사는 10월27일 인민해방군이 조선에서 참가한 최초전투에서 남조선군 1개 대대를 궤멸시키고 수개 산봉우리를 점령했다고 보고했다.평양의 슈티코프 대사도 같은날 같은 내용의중국군의 최초전투 참가를 보고했다. 중국군의 참전으로 스탈린과 김일성은 크게 고무됐다.중국군이 전선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면서 스탈린은 매우 의기양양해 했다. ○스탈린,중 참전에 고무 시일이 지나면서 중국군은 무기,특히 탄약부족으로 다소의 어려움을 겪었다.11월7일 모택동은 스탈린 앞으로 전문을 보내 소총·자동소총 실탄의 긴급지원을 요청했다.(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26 637) 『조선에 파견된 우리 군은 주로 적에게서 노획한 무기를 갖고 싸우고 있음.따라서 무기의 종류와 구경이 각양각색이라 탄약 생산에 큰 어려움이 있음.특히 소총과 자동소총의 탄약 공급이 문제임.중국의 군수공장은 필요한 탄약의 생산능력이 매우 낮음.…중략…현재 중국의용군은 36개 사단으로 편성된 2개 병단임.그러나 확보된 탄약은 6개 사단이 쓸 분량밖에 없음.51년1월∼2월까지 36개 사단이 쓸 무기를 공급해주기 바람』 이와 함께 장황하게 쓴 필요 무기목록이 첨부됐다. 12월1일 스탈린은 모택동 앞으로 격려전문을 보냈다.이 전문에서 그는 중국군의 선전을 치하하고 『현대장비를 갖춘 미군과 싸우는 기회를 통해 중국군도 현대화된 강한 군대로 거듭 태어날 귀중한 경험을 쌓을 것』이라는 등 장황한 칭찬을 늘어놓았다.(전문번호 N97 68.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 50년 12월4일 모스크바주재 중국대사 왕자향이 그로미코 외무차관을 면담했다.중국정부의 입장을 대신해 왕대사는 한국전 상황을 전하면서 계속되는 패배로 미국·영국 진영에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고 특히 미정부의 입장이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왕대사가 그로미코를 찾은 목적은 연일 승리의 행진을 계속하는 중국군이 38도선을 넘어 계속 남으로 진격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의논키 위함이었다.그로미코가 기록해 대통령문서소에 보관돼 있는 이날 대화내용 일부를 소개한다.(문서번호 N517.그로미코와 왕자향대사의 대화 비망록) 『나(그로미코)는 외국 언론매체들에도 영국과 미국간 불화에 관한 보도들이 있다는 그(왕자향)의 분석에 동의했음.그리고 최근 들어 맥아더가 취하는 행동과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는 점을 나는 지적했음.본인은 또 미국은 한반도에서 이같은 불리한 상황 전개로 인해 매우 당황해하고 있다고 말했음.왕대사는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소·중과 한반도문제와 관련,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는지 나의 견해를 물었음.나는 아직 미국측으로부터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어떤 협상 제의도 없었다고 답했음.미국의 본심을 알 수는 없다고 본인은 말했음. 왕대사는 철저히 비공식적인 사견임을 전제,중국군이 38도선을 넘어 계속 전진하는 게 과연 정치적으로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물었음.이에 대해 본인 역시 사견임을 전제,중국은 현재의 유리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답했음.이에 대해 왕대사는 자신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음』 개전 초기 때처럼 38도선을 돌파해 남한 전역을 점령하자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서로 일치한 것이다. ○유리한 상황활동 공감 두사람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왕대사는 본인(그로미코)에게 예를들어 미국이 장개석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든지 아니면 장개석군과 함께 남조선에 대한 상륙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본인의 입장을 물었음.본인은 이에 대해 그와 관련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음.이에 대해 왕대사는 전선에서 보내온 병사들의 편지내용을 인용해 미군병사들은 일본군보다도 더 형편없는 군대라고 혹평했음』 12월7일 스탈린은 주은래 앞으로 전문을 보내 향후 휴전협상과 관련 중국이 취할 입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전문번호 N23343) 『휴전과 관련 귀하가 내건 조건들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함.이 전제조건들이 충족되기 전에 군사행동이 중단돼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믿고 있음.동시에 우리는 실질적으로 미국의 조종을 받고 있는 3개국(영국·스웨덴·인도를 일컬음) 대표 앞에서 우리의 카드를 너무 솔직하게 펴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함.서울이 해방되기 전에 중국이 카드를 먼저 내보여서는 안됨.더구나 미국이 중국이 내건 이 조건들을 유엔의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이용할 수도 있음.미국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해서는 안됨.따라서 현상황에서 우리는 다음의 2가지 카드만 내보여야 함. (1)중국정부는 영국·스웨덴·인도대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군사행동 종식을 환영함.중국은 남조선과 중국이 관련된 군사행동을 가능한한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음. (2)따라서 우리는 휴전에 관한 유엔과 미국의 입장을 알고 싶음』 ○“서울 점령선 협상말라” 스탈린의 의도는 중국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전에 섣불리 휴전협상에 임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새해를 맏은 51년 1월4일 모택동은 팽덕회가 1월3일자로 전선에서 보내온 전문사본 1부를 스탈린 앞으로 보냈다.중국군의 대공세와 국군의 후퇴를 담은 전선상황 보고였다.(전문번호 N15120.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 『우리 군은 동부전선의 양강에서 서부전선의 문천에 걸쳐 공세를 계속해 적의 수비선을 돌파했음.저항은 강하지 않음.적은 신속히 남으로 후퇴해 큰 손실은 입지 않았음.51년 1월3일 낮 12시까지 우리는 포로 3천명,1백50대의 차량과 탱크,포 1백문 이상을 노획했음.…중략…이같은 공세작전으로 서울·제물포·수원·홍천 등을 재점령한 다음 아군은 일단 공세를 멈추고 휴식을 취해 전력을 재정비,강화하겠음』 중국군의 의도는 휴전이 아니라 38도선 이남으로 공세를 계속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새로 밝혀진 사실/「중국 참전」 주도인물은 고강·팽덕회/모,전선상황 스탈린에게 직접 통보 중국군의 참전에 대한 내부의 논의와 관련하여 누가 과연 참전을 주도하였느냐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이번 자료는 이에 대해 고강과 팽덕회가 그 중심 인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이는 앞으로 중국측의 자료와 비교 검토하여 더 상세한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또한 이번 자료에는 소련은 왜 중국과 함께 파병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중국내에서 상당했었으며,이를 소련이 이미 알고 있음도 공개되어 있다. 이번 회의 내용에서 또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중국이 참전을 결정한 뒤에도 스탈린이 무기를 별로 제공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11월7일의 모택동 전문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그들은 36개사단병력에 고작 6개사단분량의 무기,즉 필요량의 6분의 1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이는 소련이 실제의 약속과는 달리 적어도 초전에는 무기를 거의 대주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의 주소대사가 중국군의 38선 월경을 문의하고 있음도 처음으로 밝혀졌다.이는 중국군의 38선 월경이 소련과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그리고 당시 일부에서 운위되고 있던 휴전논의에 대해서조차 스탈린은 직접 개입하여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뒤에 이에 응할 것을 주은래에게 권고하고 있음도 밝혀졌다.이러한 권고와 함께 모택동이 전선의 상황을 직접 스탈린에게 통보하는 데서 우리는 스탈린이 이 전쟁의 전개에 얼마나 깊숙이 직접 들어와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이번 회를 통해볼 때 전쟁은 스탈린과 모택동이 공동으로 치르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박명림
  • 동남아/화교 기업들 경영권 분쟁/테코사 창업2세­사위 불화

    ◎예오그룹 상속싸움 휘말려 동남아의 화교자본이 휘청거리고 있다. 가족중심으로 똘똘뭉쳤던 싱가포르,대만,홍콩등지의 화교기업들이 경영권 분쟁에 말려들어 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중국인 특유의 장삿술로 성공했던 이들 기업들은 서로 회사의 「방향타」를 잡으려는 2·3대 후손들간의 치열한 세력다툼으로 정상적인 회사경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또 경영권분쟁이 해결돼 어려운 고비를 넘기더라도 경영자가 회사 곳곳에 포진한 친인척의 눈치를 살펴야는등 서로간의 마음에 난 깊은 골은 쉽게 아물지 않을 전망이다. 동남아 식품·음료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싱가포르의 예오 히압 셍그룹은 내홍으로 경영권이 제3자에게 넘어갈만큼 막심한 타격을 입은 화교자본 중의 하나다.지난 35년 중국 복건성에서 건너온 간장제조업자가 세운 이 회사는 끈끈한 형제애를 바탕으로 동남아 음료시장의 상권을 장악했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에 따라 하루 두차례씩 회동,형제들의 사업을 논의할만큼 가문의 결속력은 대단했다. 최고 경영자에 오른 창업자의 손자인 알란 예오씨는 86년부터 94년까지 싱가포르 무역개발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88년엔 올해의 「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그러나 89년부터 불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당시 무역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인수한 미국계 통조림회사가 적자를 낸것이 도화선이 됐다.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가족원들이 단합해서 「정보독점」등의 이유로 알란씨를 맹비난했고 그는 이에 대해 자리만 차지했지 무능하다고 맞받아쳤다. 친·인척들의 압력에 굴복한 알란씨는 마침내 지난 1월 회장직을 사임했다.예오 그룹의 회장은 싱가포르 와이와이 그룹 회장으로 대체됐고 최고경영자(CEO)는 전직 휴렛패커드 간부가 떠맡았다.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부동산 재벌이 세력을 쥔 이사회에서 예오 형제들은 소주주로 전락해버렸다. 대만의 「블루칩」인 테코 일렉트릭에도 지난해 한차례 집안싸움의 태풍이 지나갔다.설립자의 사위로 회사경영을 맡고 있던 테오도르 후앙씨는 소외감을 느낀 아들들로부터 「원망」을 샀다.정권과 지나치게 가깝게 지낸다거나 해외여행이 잦다는게 주된 불만이었다.결국 아들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입장에서 분규는 타결됐지만 애초에 장거리 통신과 해외로 진출하려던 「야심찬」 계획은 중단됐고 이 와중에 회사 주식은 바닥권으로 폭락했다. 이와 같은 불안정성은 각각 68세와 78세의 회장이 지휘하고 있는 대만의 항공·운수그룹 「에버그린」이나 차이나트러스트 뱅크와 대만시멘트 등이 포함된 재벌 등 창업자가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고령인 기업에서는 어김없이 나타난다.80년대 아들중 한사람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확대시키려다 투자자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던 홍콩 부동산회사인 뉴월드 디벨럽먼트의 회장은 동요하는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건재를 확인시키는 해프닝도 일어났었다. 홍콩의 경제전문가들은 화교자본의 동요는 설립당초부터 뒤얽힌 복잡한 혈연관계가 분열의 씨앗을 제공해 원초적으로 내분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하지만 세대교체 혹은 경영층의 지각변동이 반드시 악재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찮다.거대기업의 해체로 완전히 새로운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고 또 젊고 유능한 전문경영자를 수혈받아 수십년간의 족벌운영으로 보수화된 기업체질의 근본적인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동남아 화교경제권의 풍경화는 한마디로 사망이 임박한 등소평 사후의 권력구도를 짜기에 급급한 모국 중국과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 음주선수(외언내언)

    월드컵축구는 꿈의 구연이다.19 30년 우루과이에서 제1회 대회를 치른이후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단일종목의 국제대회지만 그 열기는 올림픽을 훨씬 능가한다.94년 미국대회의 경우 전세계 1백80여개국에서 연인원 3백억명 이상이 TV를 통해 관전했고 40억달러의 수입을 기록했다. 따라서 월드컵축구는 단순한 스포츠행사가 아니다.국가의 위상을 한껏 드높일수 있을뿐만 아니라 경제·외교적인 측면에서도 막대한 실익을 챙길수 있는 지구촌의 대축제다.뿐만아니다.21세기들어 처음 열리는 이 대회가 이땅에서 펼쳐진다면 한반도의 평화정착에도 크게 기여할수 있을 것이다.2002년 월드컵 유치에 대한 국민적 염원은 이런 연유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축구개최지는 당초 96년6월에 결정될 예정이었다.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은 한국과 일본의 유치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이유로 96년초로 앞당기기로 했다.이 다급한 시점에서 한국축구가 내우외환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월드컵유치작전의 일환으로 대한축구협회가 개최한 제1회 코리아컵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은 결승전에도 진출하지 못했다.준결승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주전선수 몇명이 새벽까지 폭음을 한것이 주요 원인의 하나였다고 한다.95프랑스 툴롱 국제축구대회에 출전했던 올림픽대표팀은 코칭스태프의 불화로 3전 전패했는가하면 거친플레이로 선수들이 줄줄이 퇴장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월드컵축구유치는 스포츠외교로만 되는것이 아니다.국내외대회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 한국축구의 이미지를 고양하는 것이야말로 스포츠외교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번 일련의 사태가 2002년 월드컵축구 유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수 없지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심기일전의 계기로 삼는다면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 미 “대중 관계개선에 전력”/이 대만 총통 초청 불화 진화 나서

    ◎「1개의 중국」 정책 고수 【워싱턴 AP 연합】 미국은 12일 지난주에 있은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 방문으로 불화를 초래한 중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수습하는데 정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국무부는 이총통이 코넬대학의 동창모임에 출석한데 대한 중국측의 맹비난을 무시하고 「1개 중국」을 현재는 물론 장래에도 인정하는 미정책을 재확인하는 한편 중국에게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것임을 다짐하라고 촉구했다. 니콜라스 번스 국무부대변인은 또 J 스테이플턴 로이 주중 미대사가 금주 이임키로 된 계획에 관한 질문에 답변,『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격하시킬 의도가 없음을 명확하게 선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번스 대변인은 중국에서 출생하여 자란 미국정부의 중국전문가인 로이 대사의 이임에 정치적 의미가 없으며 일상적인 인사이동이라고 말했다.
  • 효친휴가(외언내언)

    이제는 고인이 된 김희갑씨가 고향방문단 위문잔치때에 부르던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로 시작되는 청승스런 가요 「비내리는 고모령」은 어디서 언제 들려도 중년 이상된 우리네 가장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토끼같은 아이들과 ○○같은 마누라」에게 사로잡혀 노부모를 돌보지 못하고 있을망정 불효하는 한을 가슴에 담아두고 노래방에 가서나 풀어보는 불효자 콤플렉스의 가장들.아마도 「효」는 우리에게 이런 정서의 유전 인자로 보다 더 진하게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렇게 그립다가도 정작 만나면 사흘이 못가서 불화가 폭발한다.애증이 칡넝쿨처럼 얽혀서 갈등을 낳는 관계.그게 육친관계다.그것이 강력한 규범일 수 있었던 옛날과는 달리 효도를 하고싶은 마음과 현실 사이에서 불화와 갈등을 세련되게 승화시키지 못해 어려워진 것이 오늘의 가족관계다.그러므로 패륜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효」를 말하지만 별로 효율적인 「말」노릇을 하지 못한다.관념적인 「말」보다는 애증의 교차가 빚는 갈등의 문제를 극복하는일에 지혜를 나누는 일이 효율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서만이라도 우리에게만 있는 「효」는 아름답다.비록 고질적인 가족이기주의가 있기는 해도 아직은 우리가 가정의 붕괴현상을 가장 더디게 겪고있는 사회인 것도 「효」의 정서가 공헌하는 바일 것이다. 효가 사람사는 도리였던 시대의 분들에게는 우스워 보이게 시작된 「어버이날」도 많은 자손들이 어버이에게 무관심해진 오늘을 반성하기 위한 것.공무원에게 어버이 생신날 하루 효친휴가를 허락하기로 한다는 소식도 전해진다.3·1절도 개천절도 그저 노는 날이 되어버린 마당에 효친휴가도 「놀기좋은 하루」로 추가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집안에 「효」의 전통이 살아있는 가정의 자녀는 좀 다르다.진정한 효친휴가를 보내는 일은 해당 가정과 직장에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등 사후의 중국­3가지 시나리오/예브게니 바자노프(해외기고)

    ◎ⓛ현지도부 건재… 시장화정책을 계속/②지역·민족 분열… 전국서 소요 잇달아/③러시아처럼 개혁 부진… 경제력 쇠퇴 중국문제 권위자인 예브게니 바자노프 러시아 외무부산하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은 4일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등소평사후 중국의 앞날에 대해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했다.첫째는 현지도부가 상황을 확고히 통제하며 시장화정책을 착실히 수행하는 것이고,둘째는 일대혼란이 일어나 전국이 정치·지리·민족별로 갈가리 찢겨져 소위 천하대란이 일어나는 일이며,마지막으로는 지금의 러시아같이 개혁이 지지부진하며 점차 국력이 쇠퇴해지는 것이다.그중 세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중·러 양국은 미·일등 서방세력에 맞서기 위해 이미 외교·군사적으로 공동전선을 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한반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다음은 기고문 내용. 수십년간 실질적으로 룽국을 지배했고 중국의 성공적인 개혁을 설계해온 등소평의 여생이 얼마남지않은 것 같다.그가 죽은 뒤 중국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나는 그의 죽음이 중국과 전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3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하고자 한다. ▷첫째 시나리오◁ 큰 정치적 변혁을 겪지 않고 지금의 개혁정치가 계속되는 것이다. 현재의 지도부는 이미 상당기간 권력을 장악해왔고 단합돼 있다.이들은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국가를 안정되고 효율적으로 이끌 능력이 있다.이들은 시장경제개혁을 수행하면서 이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상충되지 않게 잘 이끌어왔다. 경제는 점차 늘어나는 외국자본의 진출에 힘입어 성장을 계속할 것이다.비효율적인 국가기업들은 나름대로 실업을 줄이고 사회불안을 줄이는 데 일조하고 다른 사회적불안요인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통제될 것이다. 외교분야에서 중국은 보다 적극적이고 자기주장을 더 하게 될 것이다.경제·안보적인 고려,그리고 대국야망이 합쳐져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주도적 위치를 요구하려 할 것이다.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화된 러시아에게는 국경분쟁에서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이고 러시아극동지역과 시베리아지역엘 중국인 이민을 점점 더 많이 진출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강대화된 중국은 일본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이 지역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키우는 것을 견제할 것이다.장기적으로는 아·태시장을 놓고 일본과 경쟁을 벌이려할 것이다.미국 역시 중국으로부터 압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이는 쌍무문제에서 뿐 아니라 남사군도문제,대만문제,태평양의 해군문제등 여러 문제를 놓고 중국은 미국과 대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북한은 더 이상 시장화되고 실용화된 중국과 이념적 동지가 될수 없다.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공산정권이 하루아침에 붕괴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으려 할 것이다.국경지대의 불안정을 원치 않고 또한 북한정권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중국은 남한에 대해서도 경제적 이득,정치적 영향력행사를 위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이를 위해 중국은 주한미군의 조기철수를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 강력한 새 국가의 출현을 원치 않기 때문에 한반도의 조기통일실현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둘째 시나리오◁ 등소평사후 개혁이 중단되고 일대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지도부는 지역·파벌에 따라 갈가리 나누어진다.공산당계급은 신흥자본주의계층과 충돌한다.중원의 국경지대에서는 민족분쟁이 터져나와 안정이 흔들리고 전사회적으로 빈곤계층의 소요가 잇따른다.비효율적인 산업,경작지의 부족,원자재 부족등으로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든다.한마디로 금세기 20∼40년대의 상황이 되풀이 된다. 이 와중에 일부세력이 나타나 러시아에게 개입을 요청한다.또 어떤 세력은 미국의 개입을 요청한다.여기에 덧붙여 일본까지 갖가지 구실을 붙여 개입명분을 찾을 것이다.결국 미·러 중 한 세력이 우세를 차지해 중국은 한동안 이 두 나라중 한쪽의 동맹국이 될것이다.미·러는 중국에서의 대립으로 인해 관계가 악화돼 과거의 적대관계로 되돌아간다.다만 일본의 세력확대를 의식해 직접충돌은 피한다. 한반도에서 중국은 남북한에서 영향력을 상실한다.북한에서는 그 빈자리를 러시아가 채운다.남한은 안보·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미·일에 더 긴밀히 접근하게 된다. ▷셋째 시나리오◁ 단기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군사·경제적으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약세로 빠져든다.반면 미·일은 양면에서 모두 발전을 계속한다.이런 추세는 미·러의 불협화,미·중의 불협화와 맞물려 중·러의 접근을 불러온다.미·러는 유럽정책,옛소연방에 대한 미국정책을 둘러싸고 불화를 빚고 미·중은 인권문제·무역마찰로 관계가 악화된다.이는 실제로 최근 수년간 계속돼온 현상이다.러시아는 자신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서방과의 관계에서 입지회복을 위해 중국에 무기를 공급하고 중국의 대내외정책을 기꺼이 지지하고 있다.중국민의 시베리아·극동 이주를 허용하고 있고 국경·군사문제에서도 양보를 계속해 왔다. 중국 역시 러시아에 대해 유화정책을 계속했다.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외무장관은 현재 러·중관계를 사상최고수준으로 평가하며 이를 자기의 최대업적으로 자랑한다.러·중은 자신들이 미·일에 비해 낙후돼 있다고 느끼는 한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중·러는 유사한 정책을 펴며 협력할 것이다.두 나라는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북한의 대서방 대결정책을 부추길 것이다.러·중은 북한이 외세의 개입 없이 점진적인 개혁을 펴나가는 것을 지지할 것이다.그러는 한편 남한과도 관계개선을 하도록 주문할 것이다.물론 남한에 대해서도 북한에게 유화정책을 펼 것을 권한다.두 나라는 남한과는 경제·정치·군사면에서 협력증진을 계속 원할 것이다.한반도,나아가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주도권행사를 막기위해 두 나라는 남북한이 통일돼 강력한 국가로 탄생하는 것을 지지한다.일보믿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남북한의 통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대구시민을 생각하며(송정숙 칼럼)

    대구참사는 우리로 하여금 만사를 포기해버리고 싶게 만들었다.그동안 그토록 빈번했던 어처구니 없는 대형사고들이 우리를 이미 정신적 탈진상태로 만들었고 거기에 다시한번 일격을 더했으니 절망감이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위로의 말도 수습의욕도 찾아지지 않는 그 무력감에서 그래도 우리를 소생시킨 것은 다름아닌 대구시민이었다.그들의 그 아름다운 인정이었다. 자기 위험을 돌보지않고 현장에 뛰어들어 한목숨이라도 더 구하려다가 실신도 하고,벌겋게 피를 뒤집어쓰며 정신없이 생명을 구하고도 힘이 못미쳐 잃어진 목숨들을 안타까워 하는 그들.날밤을 새우며 구조반을 거들고 그 뒷바라지로 24시간을 매달린 어머니들과 한방울의 피라도 나누어보겠다고 길고 긴 줄을 서 있는 어른과 아이들.맥이 빠져 세상이 싫어지는 우리에게 그들은 구원이었다. 그중에서도 참혹하게 제자들을 잃은 시인교사가 절규처럼 한 말은 우리의 정수리를 때린 망치였다.참사로 희생된 동료교사에게 함께 저승길을 가게될 「우리 아이들」을 맡기노라 당부하며『이런 말이라도 하지않고는 누군가를 저주하게 될 것같아 환장하겠다』던 한마디.그건 우리심장을 하비는 송곳이었다.그런 그는 영정을 만들기 위해 병광이와 민철이와 석술이의 사진을 교무수첩에서 찢어내면서 『너희들은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용서해주도록 하라』고도 당부했다.대구시민인 그 「선생님」의 이 말을 우리는 멍에 삼아 등에 짊어지게 되었다. 침이라도 탁 뱉듯이 『이눔으 세상 나사가 빠져버렸다』고 힐난하며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말이 우리에게는 너무 흔해졌는데,누군가에게 구정물처럼 핑계를 한바가지 안겨주고 목청껏 비난이나 하는 말만 너무 많아졌는데,용렬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사형을 시켜버려야 할 공직자의 책임을 허옇게 열거하는 일로 카타르시스를 하는 듯한 말도 넘치게 들었는데 『누군가를 저주라도 하게 될 것같아 환장할 것같은 마음』을 참아가며 죄지은 이들을 사랑으로 용서하도록 가르치는 대구「선생님」말은 그런 말이 아니다.우리는 평생동안 그 말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대구시민을 안다.속속들이 다알지는 못해도 역사의 길목길목에서 대구 사람들이 보여준 결의를 알고 정의감을 알고 울분을 알고 그 인정을 안다.의때문에 분노하지만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줄도 아는 성숙한 아량을 우리는 믿는다.그런 대구의 희생자들이므로 돌아오지못할 저승길을 떠나며「선생님」의 당부대로 「저주」대신 「사랑의 용서」를 선택했으리라는 것을 또한 믿는다. 이 대구시민의 마음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은,우리 사회가 더는 이렇게 흘게빠진 채로 살지 않는 것임도 우리는 절감한다.높은 목소리로 일회성의 가혹한 비난이나 외치고 마는 일의 반복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비난과 비웃음은 까딱하면 적개심과 불화만을 확대시킨다.지구촌에는 불화 때문에 피비린내나는 내전을 하느라고 민족을 기아와 질병으로 피골이 상접한채 지옥속에 빠져버리게 한 나라도 숱하다.민족간의 갈등 때문에 전쟁이 끊이지않아 피폐의 늪에 빠진 민족도 얼마든지 있다.불화와 적개심은 증오와 갈등의 근원이 된다. 불화와 갈등은 승화시키고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따지고 집요하게 추궁하여 누구도 책임에서 회피하지 못하고 모든 빚은 다 갚아야 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그러기 위해 바로 「내가」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톺아보는 일이 우리에게는 시급하다.지속적으로,꼼짝못하게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법을 지키며 꾀피우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시민에게는 공직자도 사회지도층도 겁을 먹는다. 이런 모든 교훈을 대구시민에게서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그들이 스스로 비극을 딛고 일어나 늠름한 기상으로 거듭나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대구는 여러번 그러했으니까.그것이 우리 모두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수범이 될 것이다.우리는 대구를 사랑한다.대구를 형제로 둔 우리 모두는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 프레온가스 대체물질 HCFC/사용기간 15년단축 논의

    ◎8일 오존층보존회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CFC)의 대체물질로 사용 중인 염화불화탄화수소(HCFC)도 국제적 규제가 강화돼 사용이 금지될 전망이다. 이 경우 HCFC 개발에 투입한 막대한 투자비의 회수가 어려워진다.또 오존층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 또 다른 대체물질인 HFC(불화탄화수소)의 개발부담을 안게 돼 냉장고·에어컨 등 관련 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3일 통상산업부에 따르면 「몬트리올 의정서」의 1백45개 가입국은 오는 8∼12일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오존층 파괴물질 규제 강화 문제를 논의한다.정부는 이종구 통상산업부 통상무역1심의관을 수석대표로 한 대표단을 파견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오는 2030년으로 돼 있는 선진국의 HCFC 사용금지 시기를 2015년으로 앞당기고,개도국에 대해서도 규제일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CFC의 전례에 준해 10년의 유예기간을 요구할 예정이며,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우리나라는 오는 2025년부터 HCFC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 대형사고의 단절을 위해/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사설)

    「잔인한 4월」은 또한번 슬프고 두렵고 절망스런 사고를 안겨주고 물러갔다.대구지하철공사장사고는 그 소중한 어린 생명들을 한꺼번에 앗아간 슬픔을,사람이 저지르는 하찮은 실수가 이렇게 커다란 위험을 동반한다는 사실의 두려움을,집요할 만큼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대형사고의 절망을 또 한번 경험시켰다. ○동일사고 되풀이의 절망감 예측할 수 없었던 천재지변도 아니고 특정한 세력의 계획된 범행도 아닌,사람이 저지른 실수라는 사실이 여전히 우리를 암담하게 하는 대형사고였다.이런 대형사고가 그때 마다 그 대응에서도 똑같은 일로 거듭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절망시킨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계속되게 마련이다.특히 우리처럼 치열한 역사의 시련과 곤고한 현실의 어려움에 맞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의 현대사를 개척해온 사회에는 하고 많은 모순과 부조리들이 부산물로 잉태되게 마련이다.급성장하는 경제의 부작용으로 졸속과 부실의 체계가 생산현장에는 물론 정책현장에도 만연하게 마련이고 그에 반해 성급한사회적 기대와 상대적 박탈감에 의한 불화와 원한의 심정적인 채권자를 숱하게 낳아놓게 마련이다. ○흥분·분노·개탄만으론 안돼 그 모두가 사고를 예측시키는 요인인데도 그 대응에 우리는 효율적이지 못했다.흥분과 분노와 개탄으로 절절 끓기만 하다가 식어버리면 그만인 사고의 형태와 그에 유사한,비이성적이고 정밀성도 없는 대응만 해온 것이다.언제부턴가 우리는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재빨리 책임지울 상대부터 찾아내는 일에 이골이 나버렸다.특히 언론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모든 사고를 원한의 확대재생산에 활용하는 것에 크게 기능한 것도 그에 도움을 주었다.반성할 일이다. 그런 일은 사고를 줄여가는 일에 효율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책임을 질 사람들에게 도덕적 불감증을 키워줄 뿐이다.중학생이 시험지를 훔쳐내도,지존파가 살인공장을 차려도 사회를 탓할 핑계를 제공해 주고,가스누출 신고를 받고도 외면하는 직업인과 그것을 감시해야하는 공직자도 냉소적인 채 무책임할 수 있는 탓거리를 만들어준다.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우리 모두가책임진다는 자세를 보여야지 선동적인 방법으로 희생양을 내세워 책임을 전가하고 말끔히 잊는다면 아무 도움도 안된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대형사고가 아주 총체적인 실수와 실패의 집합체라는 사실이다.내탓 만도 아니고 네탓 만도 아니다.우리 사회는 이미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하이테크 사회가 되었다.그러므로 그 대응도 그에 준해야 한다.전문가·학자·심리학자·사회학자·수사책임자들이 참여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냉정한 대처를 해야 한다. ○특별조사·연구팀 구성해야 미·일 등 선진국의 경우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기관·회사·개인들이 책임의 회피가 아니라 자기쪽에 원인이 있는것이 아닌가를 철저히 객관적으로 규명하는데 전력함으로써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인다.우리 모두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자세다.이번 사건을 하나의 시범케이스로 종합 분석하고 연구해 결과와 대책을 보고케 하는 특별 「케이스 스터디 팀」의 구성을 제의 한다. 우리는 지금 싫든 좋든 세계의 일원으로살아남아야 하는 문명의 대전환점에 와 있다.그것은 분홍빛 미래상이 아니라 준열한 당위이다.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세계시민이 되지 않으면 따라갈 수없는 가혹한 현실이다.그러자면 무슨 핑계를 정부와 사회에 떠넘기고 법과 규칙을 외면하며 이기적인 삶을 사는 방식으로는 감내할 수없는 시대를 뜻한다.따뜻한 인정도 필요하지만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무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국민일반 안전의식 고취도 가혹한 횡액에 의해 억울하게 스러진 넋을 위로하는 일도 그런 일로만 가능하다.지루하고 답답하더라도 같은 잘못이 거듭되지 않게 하는 노력만이 최선의 대응이다.교육 등을 통한 국민일반의 안전의식 고취도 중요하다.5월을 맞으며 우선 그것을 시작하자.
  • 불통 부산전화국 회선/새달 3일 완전복구/방화직원 정신병력 확인

    【부산=이기철 기자】 전화국직원 방화사건을 수사중인 부산해운대경찰서는 27일 상사와 불화끝에 전화단자에 불을 지른 금사전화국 반송분기국사 시험실직원 서정수(32·5급·동래구 명장2동 308의 13)씨를 방화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서씨가 지난 93년1월 정신분열증세로 모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정신감정을 의뢰하는 한편 정신병력자를 전화국직원으로 채용하게 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편 한국통신은 복구반원 1백50여명을 투입,금융기관·파출소·동사무소 등 주요 공공가입자 1백3회선에 대한 복구작업을 마쳤으나 일반가입전화는 회선을 모두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1주일뒤인 다음달 3일쯤 완전복구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통신은 전화불통지역의 공중전화 28대를 무료전화로 전환하는 한편 긴급전화 50여대를 설치했다.
  • 테러대응 세계공동의 노력을(사설)

    독가스와 폭탄에 의한 테러가 4월의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일본에선 도쿄에 이어 요코하마에서 또 지하철독가스 테러가 발생했으며 미국에서는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정부 건물이 폭탄차테러를 당해 많은 희생자가 났다.충격적이고 개탄스런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탈냉전후 세계의 대국적질서는 평화구도를 지향할 것이나 문화·인종·종교차원의 불화·갈등에 따른 군소분쟁및 테러는 오히려 증대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이 있어왔다.중동및 옛공산권지역등의 분쟁은 이미 그런 예측을 뒷받침하는듯 했다.최근 일련의 테러도 같은 범주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경계되는 것은 테러수법이 갈수록 잔인해지고 독가스같은 무차별적 대량살륙 수단까지 동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종교적 광신주의 목적을 위한 테러까지 등장한 것은 불길한 조짐이 아닐수 없다.오클라호마시티의 폭탄차테러는 중동서 시작된 테러유형이다.93년 뉴욕 국제무역센터 테러나 이번의 테러로 이어지고 있다.일본에서 시작된 독가스테러 유형이 세계로 확산된다면 사태는 심각하다.우리는 어떤 목적이나 수단의 테러도 단호히 반대한다.테러는 무고한 인명을 무차별적으로 볼모 혹은 희생의 제물로 삼는 독선적인 반인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류 공적이기 때문이다.그동안의 대표적인 테러수단은 항공기납치 혹은 폭파였다.세계적인 강력·공동 대응결과 다행히 최근엔 억제되는경향을 보이고 있다.대신 폭탄차및 자살테러 유행에 가공할 독가스 수법이 새로이 등장한 것이다. 폭탄이나 독가스테러에 대해서도 항공기 납치·폭파테러에 대한 경우와 같은 유엔중심의 강력한 세계공동 대응책 강구가 시급하다.KAL(대한항공)기 공중폭파및 외국방문 국가원수에 대한 폭탄테러등을 당한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도 그것은 남의 일일수 없다.적대적인 북한은 사린 등 독가스도 대량 보유하고 있다.북한테러 가능성에대한 경계를 새로이 하는 경각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유원건설 법정관리 신청/3자인수 추진 주거래은과 상의없이

    ◎법원서 기각땐 부도처리 불가피 지난 달 제일은행이 제3자 인수를 추진키로 했던 유원건설이 18일 전격적으로 서울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유원건설은 이 날 세종합동 법률사무소의 신영무·오성환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법정관리 신청서를 제출했다.그러나 3자 인수를 추진했던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과 사전 상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법원의 판결이 주목된다. 법원은 법정관리 신청기업의 채권·채무상태와 채권자의 동의 여부,기업이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해 법정관리 결정을 내리지만 주거래 은행의 동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법원이 법정관리 결정의 첫 조치로 회사재산보전 처분을 내리면 유원건설의 채권·채무는 동결된다.반면 법정관리 신청이 기각되면 부도처리가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원건설의 한 관계자는 『지난 달 최영준 사장이 제일은행과 3자 인수시키기로 동의한 뒤에도 동의사실을 부인하는 등 측근들과 독단적인 경영을 해왔다』며 『1년간 채권·채무를 동결하고 금융지원이 이뤄진다면 소생할 수있다는 측근들의 건의에 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주거래은행과 사전 상의없이 독자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나 당초 계획대로 3자 인수를 계속 추진하겠다』며 『법정관리에 대한 동의 여부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유원건설은 지난 93년 3월 타계한 최효석 회장이 지난 65년에 설립,초창기에는 미군 공병단 발주공사인 CEO공사로 급성장했으나 팔당·올림픽대교 붕괴,터널굴착기 과다 도입 등으로 급격히 쇠퇴했다.게다가 경영수업을 받지 못한 2세 최영준씨가 30세의 어린 나이에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수주 감소,경영진 불화 등으로 지난 해부터 끊임없이 부도설에 휩싸여 왔다. 지난 2월 말 현재 총자산 6천2백69억원,제일은행의 대출 및 지급보증 3천9백여억원 등 총부채 5천3백97억원으로 자본잠식까지는 가지 않았으나,재평가할 경우 자산항목에서 장부가를 밑도는 항목이 적지않아 자산이 부채보다 2천억원 이상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 일본 귀화한 80대 교포/서울 현지처에 당했다

    ◎72년 집 사주고 살림… 여자 바람 피워/이혼뒤 되찾은 부동산 사돈이름 신탁/불화로 소송… “외국인 취득불가” 패소 일본에 귀화한 80대 재일교포가 한국에서 「현지처」 명의로 사둔 부동산의 소유권을 되찾기위해 13년동안 송사를 벌였으나 결국 법원의 패소판결을 받았다. 일본에서 빠찡꼬를 운영하는 김모씨(83·일본 시즈오카시)는 72년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와 술집에서 만난 장모(46·여)씨와 하룻밤 정을 쌓은 뒤 매월 용돈을 부쳐주며 이른바 「현지처」로 삼았다. 이후 장씨에게서 두아들을 얻자 김씨는 혼인신고를 마치고 서울 성북구 주택가에 이들의 살림집을 마련해 주었다.또 당시 20대 중반의 「어린 아내」가 경제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따로 거액을 들여 서울 동작구에 땅을 산 뒤 3층짜리 건물을 지어 여기서 나오는 임대료로 생활비를 해결하도록 배려했다.일본국적을 가진 외국인이라 자신의 이름으로 사기는 곤란해 장씨 이름으로 소유권을 등기했다. 10년동안 한국에 잠깐씩 들르며 노년의 행복을 누리던 김씨는 그러나 82년 장씨가 그동안 서모씨와 불륜을 저지르고 동거까지 한 사실을 알게 됐다.또 장씨이름으로 사놓은 부동산은 서씨가 다른 사람에게 이미 팔아치운 상태였고 게다가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 서씨의 호적에 올라가 법률상 「남의 아들」이 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했다. 김씨는 장씨와 협의이혼하는 한편 땅값이 뛰어 4억여원이 호가하는 부동산을 되찾기위한 긴 송사에 들어갔다.우선 장씨와 서씨를 상대로 명의신탁해지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내 승소한 뒤 다시 서씨에게 땅을 산 사람들을 상대로 같은 소송을 제기해 85년 역시 승소했다. 한국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던 김씨는 한국에 있는 사돈 이모씨(서울 동작구 상도동)에게 변호사선임과 소송비용 등 모든 소송절차를 일임했고 승소판결로 되찾은 부동산은 이씨의 이름으로 명의신탁했다. 김씨는 이후 돈문제를 둘러싸고 사돈집과 불화가 생기자 93년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또 다시 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민사16부(재판장 황인행 부장판사)는 12일『외국인인 김씨가 명의신탁을 해지하고 소유명의를 되찾는 것은 실질적으로 소유권을 취득하려는 것』이라고 전제,『그러나 외국인이 한국에 있는 토지에 대해 소유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관계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도 김씨는 이같은 허가절차를 밟지 않은 점이 인정되는 만큼 소송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며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결국 김씨는 고국에서 한동안 누렸던 행복을 잃어버린 데 이어 투자한 돈마저도 찾지 못하고 일본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 제일제당/삼성그룹/「감시용 카메라」 공방… 불화 증폭

    ◎제일제당/이재현 상무 감시… 고발 검토/삼성/이건희 회장 모친 보호 차원 삼성그룹이 재산 처리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는 제일제당 이재현 상무의 집 옆에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불화가 증폭되고 있다. 제일제당은 31일 삼성그룹이 고 이병철 회장의 맏손자이자 이건희 현 회장의 장조카인 이상무를 옆 집 옥상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를 통해 일거수 일투족 철저히 감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상무는 현재 고 이 회장이 살던 서울 중구 장충동 1가 110에서 할머니 박두을 여사(고 이 회장의 부인)와 함께 살고 있다.제일제당은 삼성에 카메라를 철거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카메라가 설치된 담 위에 높이 1.8m의 담장을 새로 쌓았다. 카메라가 설치된 이웃 3층 집은 삼성의 계열사인 한국안전시스템(세콤)과 호텔신라 직원들의 교육장소로 사용되는 건물로 삼성항공 이영호 상무의 명의로 돼 있다.무인 카메라는 한 달 전 쯤 세콤이 설치했으며 삼성은 물의를 빚자 31일 카메라를 철거했다. 제일제당의 관계자는 『삼성이 지난 연말부터 이상무를 미행하더니 결국 감시 카메라까지 동원했다』며 『최근에는 이상무의 외삼촌인 손경식 제일제당 회장도 감시하고 있어 고발까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선대 회장의 부인이자 이건희 회장의 모친인 박여사를 보호하기 위해 보안용으로 카메라를 설치했다』며 『최근 이 회장 집 주변에 정신병자들이 몰려다닌다는 정보에 따라 박여사를 포함,계열사 대표이사들에 대한 보안을 강화했다』고 해명했다. 삼성그룹은 제일제당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2백15만주와 부동산 43만평의 처리 문제로 제일제당과 마찰을 빚고 있다.
  • 혈육의 정/연변은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소”(두만강 7백리:6)

    ◎거의 조선족이 알선… 70년대부터 재회 급증/한달간 머물며 “못다한 정”나누고 여행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은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난 고국 어느쪽의 혈육이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남북의 혈육들이 이념적 갈등 때문에 고국땅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고나 할까.조선족들의 이런 처지는 남북으로 갈라진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속된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에 조선족들이 끼어들게 마련인 것이다. ○문혁이전엔 엄두 못내 그러나 남북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문화혁명 이전에는 상봉을 주선하기는 커녕 조선족 자신들조차도 남한에 혈연,특히 이름깨나 난 혈연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었다.문화혁명 당시에는 이런 꼬투리만 잡혀도 호된 투쟁을 받았다.남한에 혈연을 둔 것도 죄가되어 실제 곤욕을 치른 조선족들도 많다. 용정시 백금향에 들렀을 때 백금발전소 최몽필 문화잠장으로부터 생소한 이야기를 들었다.지금은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의 6촌 계수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발전소에 살면서 좀 떨어진 향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밥을 지어준다는 그 여인의 이름은 윤순옥(64).막상 만났더니 오랜 고생 탓인지는 몰라도 노쇠한 그늘이 역역했다. 그녀는 24살이 되던 해에 12살이나 더 먹은 박용태(함북 길주군 태생으로 72년 작고)의 후실로 들어왔다.후취 장가를 들 무렵 3살난 아들이 있었다.박용태의 부친은 박관일,박관세,박관선 3형제였는데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5촌이 되는 사람들이다.보학도 배우지 않았거니와 족보도 확인하지도 못한 나로서 그렇다 아니다를 논할 처지는 못 되지만,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방송국에 편지 부탁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박용태는 박정희 대통령과 군관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신사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형제분이 찍은 사진이었다.밤이면 이불 속에서 사진을 보이면서 박정희라고 이야기 할 때 그녀는 모골이 송연했다.그때만 해도 적국의 대통령과 인척관계가 된다는 사실만이라도 감옥 밥을 무던히 먹을 죄였던 것이다.벽에 걸어둔사진틀 뒤에 몰래 보관하고 집식구들끼리만 돌려 보곤 했다. 그러다가 문화혁명 시기에 우연히 사진이 치보주임 최홍운씨의 눈에 띄었다.최 주임은 박정희라는 것은 몰랐지만 해방전 박용태의 신사복차림을 보고는 소각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귀띔해 주었다.그러나 박씨는 사진을 농속에 깊숙히 감추어 두었다.만약 당시 최주임이 고자질을 했더라면 박정희와의 관계는 뒤로 제쳐놓고도 투쟁을 받았을 것이다.1972년 박씨가 세상을 뜨자 사진을 불살라버렸다. 한중수교가 이루어 진 후 일가 친척 없이 고독하게 살아온 그녀는 한국 KBS사회교육방송국에 친척을 찾아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냈다.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과 친척이라고 선을 달아 줄 것을 요구한 편지가 꽤나 된다면서 그녀의 혈육을 찾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지는 못했다.사회교육방송국에서 종종 보내온 책자와 편지를 지금도 보배처럼 보관중인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다. 『령감은 고생만 하다 너무 일찍 가셨디요.기런 북새통을 살다보니 박대통령 사진도 못 남겼수다.다가저의 불찰이디요.저는 박씨 가문에 들어온 사람이라 남이라면 남일테지만….자식들한테 혈육도 모르고 지내게 하는 거이 가슴 아픕네다』 그러나 두만강을 사이 두고 한동안 친선을 유지해온 중국과 북한은 사정이 달라 혈육간의 왕래가 비교적 잦았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방승섭(68)은 여기서 김일성주석으로 호칭하는 그의 처형 아들이었다.다시 말하면 김일성주석의 본처 김정숙의 언니가 바로 방승섭의 모친이다.70년대 초 두 나라 정부에서 교섭하여 방승섭부부,어머니,두 아들과 딸하나를 데려갔다.1986년 대소과수농장의 관치성농장장은 조선을 방문하는 기회에 청진시 칠세대에 사는 방씨 댁을 찾아갔다.고향 사람을 만났다고 후한 접대를 해주었다.방씨 부인은 3년 전에 대소과수농장을 찾아온 적도 있다. 용정시 지신(일제시기 화룡현 다라즈)의 출신이고 항일투쟁에 차가했다가 현재 조선인민군에서 장군이 된 김광협의 친척들은 50년대와 60년대에 북한으로 이주했다.김광협의 7촌 조카 김상호는 1946년 참군하여 조선으로 나간 후 소련 유학을 하고돌아와 조선인민군 공군 부사령이 되었다고 한다.김상호는 어머니와 일가친척을 모두 모셔갔다. 연변에 살던 김광협의 친척들은 소작농으로 가정 살림이 째지게 가난했다.세발의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살림인지라 김광협의 동생은 한쪽 눈이 먼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동생 일가가 평양에 도착하던 날 김광협은 처 유명옥과 함께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제수를 보는 그의 마음은 참 딱했을 것이다.그런만큼 그는 제수를 끔찍히도 아꼈다고 한다.순 농군으로부터 국가 간부가 된 동생은 처하고 불화했는데 그 일 때문에 형님한테서 모진 꾸지람을 들은 다음부터 가정화목을 지켰다는 것이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노인들의 이야기다. 김광협의 6촌 형님 김병협은 북흥촌 이기희씨의 고모부이다.그 이씨가 회령 사탕공장에 있을때 들었다는 이야기는 김광협 일가의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그러네까 64년도 일입네다.김광협 6촌형의 딸,내게는 고종사촌 되는 누이가 두만강을 건너 평양 갔다 오는 걸음에 우리집에 들렸댔습네다.그 고종4촌 말이 김광협 집 앞대문엔 보초가 다섯이나 서 있더라고 기래요.삼촌을 집에 모신 김광협은 아침 문안을 꼭 드리고 식사도 독상을 대접하더랍데다.김광협은 식구들과 식당칸에서 밥을 먹으면서 요리가 나오면 모처럼 온 조카딸에게 연신 넘겨주었다는 거디요.조카딸도 화룡영화관 해설질을 하던 남편과 함께 나중에 평양으로 불러들였디요』 ○남북 오누이 극적 상봉 그러한 북한과의 일변도 왕래가 변화를 일으켜 딴판을 맞고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남쪽의 혈육과도 정을 통하게 되었다.두만강을 훌쩍 건너는 것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우회하는 먼거리에 남한이 있을지라도 무척 가까워졌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의 일이다.중국 조선족 한 분은 북과 남에 사촌형제들이 있다.그해 북에 건너가 4촌 여동생한테 남에 사는 형한테서 온 편지를 전했다.편지를 받아쥔 여동생은 흐느껴 울었다.얼마나 그립던 오빠였던가!여동생의 남편은 6·25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 되어 남으로 밀고 내려갔다. 그분은 얼마있다가 남한의 사촌형님 집으로 갔다.형을 만난 그는 깜짝 놀랐다.형님이 앞을 못보는 장님이 되었던 것이다.6·25전쟁 당시 국군에 있었던 형은 어느 한 전투에서 인민군의 총에 맞아 소경이 되었다는 것이다.어찌 보면 매부의 총에 부상을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타의에 의해 혈육간에 살생을 해온 우리 민족처럼 뼈에 사무치는 한을 가진 민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분은 여동생과 형님이 중국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그러자 형님은 『소경인 내가 볼수도 없는 신세이고 만나면 여동생한테 서러움만 더 줄것이니 친척 동생더러 대신 가서 만나라』고 했다.결국 친 오누이의 만남은 무산되었지만 다른 혈육이 중국에서 뜻깊은 눈물의 상봉을 가졌다.그들은 만 한달간 한 집에 머물면서 한 많은 회포를 풀었다.그래서 두만강가는 이래저래 눈물 마를 날이 없는 모양이다.
  • 패션재벌 이 구치가 몰락/창업주 죽자 자손들 재산다툼으로 불화

    ◎전 회장마저 피살… 고급가죽사 명성 추락 73년 전통의 세계적인 가죽·패션 명품회사인 이탈리아 구치사 창업주의 손자이자 전회장인 마우리치오 구치(46)가 27일 밀라노에서 피살됨으로써 가족들간의 오랜 불화를 겪어왔던 구치가는 또 다른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됐다. 구치사 창업주인 구치오 구치는 지난 1904년 피렌체에서 고급 가죽 가방과 액서서리 소품들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성공한 후 1922년 구치사를 설립하고 38년 로마에서 첫 구치 상점을 열었다.로마의 첫 구치 상점은 2차세계대전중에 파괴됐으나 구치사는 곧 밀라노와 뉴욕으로 진출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이같은 번영과 평온은 창업주 구치오 구치가 지난 53년 사망하면서 함께 끝났다.창업주 구치오의 아들 로돌포와 알도는 서로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수년 동안 법정시비를 벌였다.구치는 80년대 패션명품으로서 명성이 그 절정에 달했으나 구치가는 구치오의 장남 로폴도가 83년 사망하면서 삼촌과 조카,사촌들간의 법정소송,배반등 더 큰 불화를 겪었다. 로돌포는 사망하면서자신의 지분을 아들 마우리치오에게 상속했다.최대지분을 보유한 마우리치오는 사촌과 함께 삼촌 알도를 축출하고 회사를 차지했다.그러나 마우리치오의 승리는 곧 끝나고 말았다.가족들이 마우리치오가 막대한 상속세를 탈세하기 위해 아버지의 사망 전 서명을 위조해 주식을 양도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마우리치오는 87년 스위스로 일시 피신했으며 이탈리아 정부는 밀라노의 대학교수가 구치사를 운영토록 임명,구치사에 첫 외부경영자가 탄생했다.마우리치오가 스위스로 피신해 있는 동안 구치가의 사람들은 점차 자신들의 주식지분을 매각했다. 마우리치오는 지난 88년 상속세 탈세혐의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고 89년에 회장직에 복귀했다.마우리치오는 그러나 다시 조카들과의 내분으로 지난 93년9월 아랍계은행에 자신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었다.
  • 「95 서울판화 미술제」 예술의 전당서 새달5일까지 열려

    ◎한국 고 근대판화 발전사 한눈에/고려 불화판화서 60년대 작품까지 3백여점 출품/외국 8개공방도 참가… 회화적 관점서 새롭게 조망 우리나라 판화미술의 발전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한국 고·근대 판화전」이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속에 열리고 있다. 한국판화미술진흥회 주최 「95 서울판화미술제」(4월 5일까지·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특별전 성격을 띤 이 전시회는 고려시대부터 1960년까지의 판화작품 3백10점을 전시,고·근대 판화를 회화사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망해 본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고·근대판화는 서지학이나 출판·인쇄사적 측면에서 다루어졌을 뿐 판화만의 전시는 거의 없었다. 우리의 전통판화를 계승·발전시킨다는 목적 아래 기획된 이번 전시는 우리의 전통판화를 고려불화판화,조선시대 유교판화,조선시대 말엽의 생활판화 그리고 근대판화로 구성한다. 불교판화는 모두 1백30점 정도가 전시된다.이중에는 국보급인 금강반야바라밀경(1311년·개인소장),보물 877호로 지정된 금강반야바라밀경(1357년·삼성출판박물관 소장)이 포함돼 있으며 국보 206호 화엄경변상도(개인소장) 80점이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화엄경변상도는 대방광불화엄경(보통 화엄경으로 지칭)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화엄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3개본(40권본,60권본,80권본)이 모두 전해지고 있으며 변상도 판목의 경우 80권본만이 완전하게 보존돼 있다. 유교관계 판화는 물고기와 이무기가 용으로 변하는 형상을 담고 있는 「기원도」(14 00년대) 등 50여점이 전시된다.조선 개국과 더불어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상이 변해가는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전개하고 있다. 생활관계 판화로는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포함해 조선후기 목판화 1백여점이 전시된다.이밖에 30점의 근대판화에는 19 05년 해강 김규진이 자신의 작품을 석판화로 제작한 것,일제시대 천재화가로 알려졌던 이인성씨의 목판화 작품도 처음 공개된다. 한편 서울판화미술제 주최측은젊은 판화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신예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40세 이하 판화작가 54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선정작가전」도 특별전으로 마련했다.「선정작가전」에는 강준 김미향 문경원 서소영 오경영 이시은 정환선 하의수 등이 출품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판화전문 아트페어로 관심을 끌고 있는 이번 서울판화미술제에는 국내 51개 업체(화랑 36개,공방 8개,관련업체 7개)와 8개 외국 공방및 출판업체 등 모두 59개 업체가 참가한다.출품작가는 미술제 선정작가 54명을 포함해 총 3백44명이며 1천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된다. 또 판화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마련된 미술제답게 판화전시 외에 판화제작및 한지제작 실연,판화 상품전,세미나(4월3일·예술의 전당 서예관)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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