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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문화재 밀반입 법적 대응 최선인가

    ◎北 “외화벌이” 공공연히 도굴·반출/국내 반입 안되면 외국으로 유입/문화재 환수차원서 접근 필요 북한문화재는 고미술시장에서 ‘비밀’이랄 것도 없이 그동안 버젓이 유통돼왔다.서울 인사동 골동품상 치고 중국을 통해 북한 문화재에 손을 대지 않은 이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문화재는 최근 고미술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돼 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문화재 밀반입사건으로 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장 등 고미술관계자 다수가 구속된 후 국내 고미술계는 IMF이후 위축된 시장경기가 더욱 움츠러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문화재는 국내 문화재급 고미술품이 거의 고갈되고 도자기 불화 등 한국 고미술품의 국내 가격이 국제 시세를 웃도는 상황을 보완해줄 수있어 크게 환영을 받아왔다.그러나 국내 상인들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격을 부추키고 위조품을 반입하는 등 부작용이 심했던 것도 사실.한 고미술상인은 “문화재적 가치있는 작품외에 엉성하고 조악한 위조품들이 들어와 시장을 혼탁하게 하기도 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반입은다소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미술품의 특수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가 않다.또다른 고미술상은 “북한이 외화벌이목적으로 문화재를 도굴,반출한다는 것은 이미 2∼3년전부터 공공연한 사실”이라면서 “국내로 들여오지 않으면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 등 다른 나라로 넘어가게 돼 그것을 다시 환수해오려면 지금보다 몇 배의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思夫曲/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지난해 미국의 대표적 여성기업인 브랜더 바네스 펩시콜라 북미지역 사장은 22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면서 ‘일보다 가정이 더 소중하다’고 사임이유를 밝혔다. 펩시콜라회사는 황금알을 낳는 기업에다 그의 능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경영인이었으나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더 늦기전에 가족에게 돌아간다’고 선언했다. 가정은 이처럼 소중하다. 가족이 있기 때문에 인생에서의 최상의 목표인 부와 명예를 추구한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 가정은 어떤가.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인한 생활고로 가정내 폭력과 불화가 예사롭게 목격되는 요즘이다. 자식을 서로 맡지 않겠다는 부모들,나몰라라며 무작정 가출하는 실직 가장들,또 그런 남편을 상대로 이혼하자는 부인 등 사회복지 시설에는 고아아닌 고아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여성특별위원회가 조사한 ‘실직자 및 가족의 생활실태’에 따르면 남성실직자 5명 가운데 1명이 이혼·별거중이거나 이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초등학교 어린이가 ‘고아가 되기 싫어서’ 엄마의 시신옆에서 열흘 이상 지낸 이야기는 우리 가정의 정체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예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린 자식을 옆에 두고 죽어버리는 엄마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선지 조선중기의 한 여인이 남편이 요절하자 ‘가시는 길에 읽어보시라’며 관속에 넣었다는 ‘사부곡(思夫曲)’이 공개되어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병으로 죽게된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줄기를 엮어서 짚신을 삼아 천지신명께 빌고 ‘검은 머리가 희어지도록 함께 살지 못한 것’을 여인은 끝내 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가정은 전에는 남편이 병들면 아내가 남의 집 파출부로 일하면서 자식을 공부시키고 남편의 약값을 대고 시부모를 공양해왔다. 더구나 우리의 정서는 사회생활에서는 남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버림받는 일이 있어도 가족만은 굳건하게 믿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자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들곁에 있어 주는 것이 부모이고 머리가 희어지도록 함께 가정을 이끌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부부다.인간의 삶의 진정한 행복은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400년전의 사부곡으로 가족의 결속과 소중함을 다시 한번 다짐해보자.
  • 親日의 군상:8/월북무용가 崔承喜(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에 국방헌금 내고 ‘舞踊報國’ 맹세/15세때 日 유학… 귀국후 세계순회공연하며 대활약/1942년 6개월간 만주 돌며 130여회 日軍 위문공연/해방후 前歷 비난 피해 남편과 월북… 北韓정권 참여 □엇갈리는 親日 평가 “예술위해 불가피” “자의적 친일 활동” 근대 이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중에서 ‘스타중의 스타’는 누구일까? 1930년대 당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무용가 崔承喜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崔承喜는 세계적인 무용가라는 찬사를 받은 ‘전설적 예술가’였다. 바로 그 崔承喜가 최근 우리사회에서 ‘부활’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국적의 재일교포 무용수 白香珠씨가 내한공연을 통해 崔承喜의 춤사위를 완벽에 가깝게 복원한데 이어 한달 뒤인 7월에는 그의 이름이 국내 한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崔承喜(1911∼?). 언제적 이름인가. 그의 이름 앞에 ‘월북무용가’란 수식어가 필요할만큼 우리 귀에 낯선 이름 崔承喜. 해방후 남편을 따라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는 반세기 가까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왔다.그가 ‘최모(某)’에서 ‘崔承喜’라는 이름 석자를 되찾은 것도 90년대 들어서다. 암울한 일제하 미국과 유럽·중남미 등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식민지 조선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조선의 꽃’ 崔承喜. 그러나 그는 남한에서는 ‘월북예술가’라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반(反)혁명분자’로 낙인찍혀 남북한 모두에서 외면당해 왔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가 지하창고에 가둬 뒀던 한 천재 예술가를 ‘역사의 양지녘’으로 이끌어내 보자. 崔承喜는 한일병합 이듬해인 1911년 서울 종로에서 양반집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26년 숙명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당초 도쿄음악학교에 진학할 작정이었으나 연령미달로 입학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던중 큰 오빠 崔承一의 권유로 당시 일본 최고의 무용수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돼 그의 문하에 입문했다. 해방후 그에게 쏟아진 ‘친일파’라는 비난은 그의 출생시점과 그가 일본으로 무용공부를 떠나면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열여섯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이시이 문하에서 무용공부를 한 崔承喜는 29년 귀국,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차렸다. 이듬해 2월 그는 경성(京城)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발표회를 가졌는데 첫 공연 치고는 성공작이었다. 이 때 공연한 한국무용 ‘영산춤’ 등은 한국인이 춘 최초의 독자적 춤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이자 당시 와세다대학 재학생이던 安漠(본명 安弼承)과 결혼,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최승희연구가 鄭昞浩(중앙대·무용과) 명예교수는 그들의 결혼배경을 두고 “崔承喜는 공연기획 분야에서 천재적인 安漠의 능력을,安漠은 崔承喜의 인기를 사회주의 건설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해방후 崔承喜의 월북은 그의 남편 安漠의 권유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安漠은 북한정권에서 평양음악학교장·문화선전부 부부장(차관)을 지냈으나 58년 숙청의 비운을 맞았다. 한편 崔承喜는 33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로 들어갔다. 남편 安漠이 ‘조선독립음모사건’으로 구속되자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곤란까지 겹쳐 더이상 국내에서는 활동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일본행은 의외로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쿄로 돌아온지 두 달만에 그는 한 잡지사 주최 여류무용대회에서 ‘신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 때 그가 춘 춤은 ‘에하라 노아라’라는 전통 조선무용으로 술에 취한 자기 아버지의 굿거리 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1934년 도쿄에서 개최된 그의 제1회 신작발표회를 통해 그는 명실공히 ‘톱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는 “崔여사가 추는 조선무용을 보면 일본의 서양무용가들에게 민족의 전통에 뿌리박으라는 강력한 가르침을 볼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인 최초의 무용가’라는 점이 의외로 일본사회를 강타하여 그에게 광고모델 요청이 쇄도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그의 인기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마침내 해외공연을 추진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38년 2월 그는미국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시작으로 해외공연길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파리 공연에 이어 스위스·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 유럽공연을 마쳤다. 이무렵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40년 브라질 공연을 시작으로 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칠레·멕시코 등 중남미지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40년말 2년여 해외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오자 일제 당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인기를 군국주의 전쟁에 활용할 속셈이었다. 결국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일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崔承喜 부부는 궁성(宮城),메이지신궁(神宮),야스쿠니신사(神社)을 참배하고는 ‘무용보국(報國)’을 맹세하였다.(‘報知新聞’40년 12월7일) 며칠 뒤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구미(歐美)공연 때 마음이 든든한 것은 위대한 일본의 국력 덕분이었는데 새삼 조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졌다”며 친일성향을 드러냈다. 그의 친일과 관련,빼놓을 수 없는 일화 한토막.아사히신문 41년 2월5일자에는 ‘일독(日獨)헌금 교환,독일인 기사와 崔承喜씨’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일본회사에 근무하던 한 독일인 기사가 귀국하면서 여비의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써달라고 이 신문사에 기탁한 일이 있은 후 이번에는 유럽공연을 다녀온 崔承喜가 두 차례의 독일공연에서 생긴 수입금을 독일육군병원에 헌금하려고 가져왔다는 것. 이 무렵 崔承喜는 일본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또 춤을 통해서도 그의 친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춤의 비중이 점차 증가한데다 춤동작에서도 일본 전통춤인 ‘노(能)’가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공연 수익금의 일부,혹은 전부를 국방헌금으로 바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부터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일본군부와 조선군사령부 등에 국방헌금을 바쳤다. 41년말 ‘대동아전쟁’(소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예술가들까지도 전선(戰線)으로 내몰았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42년 2월초 그는 일본군 위문공연차 만주·중국으로 향했다. 8월까지 6개월 동안에 무려 130여 차례의 위문공연을 하였는데 당시 그의신분은 일본 육해공군 촉탁이었다. 해방때까지 그의 일본군 위문공연은 계속됐다.그는 상하이 주둔 한 일본군 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하다가 일본패망 소식을 접했다. 해방이 되자 그에게는 중국 현지에서부터 ‘친일파’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듬해 5월 귀국해 보니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일전력(前歷) 때문에 그는 남한 땅에서는 설 땅이 없었다. 결국 그는 귀국한지 두 달도 채 안돼 남편을 따라 월북하였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공과(功過)가 교차된 崔承喜의 일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에는 변호와 비판이 엇갈리기 마련이다. 무용학자 鄭昞浩 교수는 崔承喜의 친일행적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는 예술을 위해 친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가 한국무용사에 남긴 업적에 무게를 실어준다. 반면 金鍾旭(서지연구가·60)씨는 “崔承喜는 도일 직후부터 본명 대신 일본식 이름(崔承子,사이쇼코)으로 활동한 열성 친일파”라며 그의 친일성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전성기 시절 ‘반도의 무희(舞姬)’‘민족의 꽃’으로 불리며 조선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崔承喜. 식민지시대와 분단기를 거치면서 그에게 씌워진 ‘친일(親日),친공(親共)’의 굴레가 ‘역사의 화해’를 볼 날은 과연 언제일까. ◎崔承喜의 知人들/동서양 명사들과 골고루 교분/美 소설가 존 스타인벡/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화가 피카소·시인 장콕토/周恩來 등과도 친교 전성기 당시 崔承喜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예술인들과 교류를 맺고 있었다. 우선 일본 체류시절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와 민예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등 당대 일본 최고의 지성인들이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소설가 존 스타인백·루이스 레에나·존 그로프,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소설가 로맹 롤랑·미셀 지몽,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와 친교를 맺고 있었다. 또 중국인으로는 周恩來 총리,무용가 梅蘭芳 등이그의 후원자이자 벗이었다. 국내에서는 呂運亨·宋鎭禹 등 민족진영 인사와 남편의 동지이기도 한 朴英熙·韓雪野 등 카프계열 작가들이 그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 파리공연 때 그는 피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은 적이 있다.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安씨집안(시댁)과 崔씨집안(친정)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 병역기피 91명 명단 공개/해외체류 24·입대거부 67명/병무청

    ◎매년 공개… 부모 공직자땐 권고사직 조치 병무청은 22일 군입대를 거부한 채 외국에 머물고 있는 미귀국자 24명과 병역기피자 6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미귀국자 및 병역기피자 명단이 언론에 공개된 것은 93년(318명)과 97년(37명)에 이어 3번째다. 병무청은 국외여행 허가기간을 넘긴 미귀국자들을 형사고발하고 친권자 및 보증인에게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자진 귀국을 종용해 왔으나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아 명단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정당한 사유없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미귀국자 24명의 출국 목적으로는 유학이 19명으로 가장 많았고 친지방문 4명,전지훈련 1명이다.체류국은 미국 21명,캐나다 2명,일본 1명 등이다. 신체검사후 현역이나 공익근무 소집대상 보충역으로 편입돼 입영통지를 받고도 입대를 거부한 병역기피자 67명의 기피 원인으로는 무단기피가 58명으로 가장 많으며 나머지는 학생운동 4명,범죄도피 3명,가정불화 2명 등이다. 이들 미귀국자 및 병역기피자는 병역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처벌을 받으며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이들 병역법 위반자의 친권자 직업은 가수 김세레나(본명 김희숙)를 비롯,자영업 11명,농업 10명,상업 7명,회사원 5명,노동 5명,약사 1명,무직 18명,확인불가 7명,기타 26명 등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미귀국자 및 병역기피자 명단을 매년 언론에 공개하고 부모가 공직자일 경우 권고사직을 시키는 한편 귀국보증인이 과태료 미납시 해외여행 제한 및 융자대출,인허가업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10대 집단자살 원인·대책/가족·친구에 소외… 자살 도피

    ◎결손가정 출신·환각상태때 특히 위험/대부분 징후 예고… 미리 비극막아야 무분별한 10대들의 집단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10대들의 집단자살은 가정이나 학교,친구들로부터 소외된 아이들끼리 어울리다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본드 등 유사환각제를 흡입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례가 많아 청소년들의 약물흡입에 대한 철저한 감독과 지도가 요구되고 있다. 집단 자살한 청소년들은 환각 상태에서 ‘우리 죽을까’라고 누군가 제의하면 거리낌없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발생한 경기도 파주의 여중생 3명 자살 사건도 10대들의 환각집단자살이었다. 니스 냄새를 흡입하고 환각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다. 소외감·좌절감에서 빠진 10대들의 겁 없고 나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9,109명 가운데 10대(11∼19세)가 643명으로 해마다 5% 이상 증가하고 있다. 집단자살하는 10대들은 주로 결손가정 출신과 여학생들이다. 이번에 자살한 여중생 가운데 2명은 부모가 이혼해 편부슬하에 있었다. 3학년인 A양(15)은 서울로 전학을 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파주로 돌아온 뒤 한반 친구들과는 사귀지 못하고 같은 처지에 있던 후배 1학년생 2명과 어울리다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전문가들은 10대의 자살이유로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가족간의 유대관계 붕괴 △학업부진 △부모불화 △우울증 등 정신병 증가 등을 꼽았다. 인기스타가 죽으면 따라 죽는 ‘모방자살’도 가끔 발생한다. 서울대 의대 소아정신과 申敏燮 교수(40)는 “청소년기에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면 친구들끼리 본드 흡입 등 자기 파괴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기도 한다”면서 “‘동반자살’이라는 무모한 행동도 거리낌없이 저지르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李勳求 교수(58)는 “충동적인 행동을 벌이기 쉬운 결손가정의 10대들이 환각물질을 흡입했다면 집단자살의 가능성은 대단히 높아진다”면서 “자살예고 징후를 잘 관찰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대화의 광장 金鎭熙 상담교수(33)는 “어른들은 나약한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 갈곳없는 초등교 영어 보조강사

    ◎교육부 1,500명 선발… 일선학교 채용기피/학교측 “기존 교사와 불화… 능력도 의문”/합격자들 문의전화에 교육청 “기다려라”/과학실습·컴퓨터 강사 선발 차질우려 최근 전국 교육청별로 선발한 초등학교 영어교육 보조 강사들이 일선 학교들의 임용 기피로 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대졸자 취업 지원과 영어 조기 교육 강화라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달 각 시·도교육청에 1,500명의 영어 보조강사를 임용하라는 지침을 일선 학교에 내렸다.이에 따라 시·도 교육청은 일정 수의 보조강사 채용 공고를 내고 선발을 마쳤거나 선발 절차를 밟고 있다.그러나 일선 초등학교들은 이미 채용한 기존 영어 강사들을 내보낼 수 없고 선발된 강사들의 능력을 믿을 수 없다며 채용을 기피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중등영어교육 자격증이 있는 1순위자 464명과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2순위자 444명 중에서 492명을 서류 심사로 합격시켰다.하지만 대부분은 임용 대기 중이다. 91년 서울 J대를 졸업한 趙모씨(30·서울 관악구봉천동)는 “지난 1일 교육청에서 1순위자로 합격 통보를 받은지 1주일이 지나도록 임용 통보를 받지 못했다”면서 “교육청에서는 학교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합격자 朴모씨도 임용 여부에 대해 지역교육청에 문의해 보았지만 “합격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답변만 들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스스로 학교를 찾아다닌 끝에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운이 좋은 경우다.지난 6일 강서구 K초등학교에 자리를 얻은 李모씨(28)는 “직접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임용을 부탁한 결과 여섯번째 만에 채용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일선 학교는 학교대로 교육부의 일방적인 지시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있다. 성동구 K초등학교 鄭모 교장은 “영어 보조강사를 채용하라는 지시를 지난 1일에야 받아 무척 당황스러웠다”면서 “너무 졸속 행정으로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영어 교육은 올해부터 3·4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서울에서는 485개 공립학교 등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외부강사를 채용,교육을 시키고 있다.따라서 상다수 일선 학교들은 기존 강사들과의 마찰 가능성 때문에 보조 강사 채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영어 보조강사의 보수는 한달에 50만원 가량으로 국고에서 지원된다. 영어 보조강사뿐만 아니라 과학실습 보조강사와 컴퓨터교육 보조강사들도 같은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교육부는 전국적으로 과학실습보조강사 1,500명과 컴퓨터교육 보조강사 3,00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서울시는 과학실습 보조교사 123명과 컴퓨터 교육 보조교사 337명을 이번 주 중 선발할 예정이지만 임용에는 적잖은 마찰이 따를 전망이다.
  • 말聯 고정환율제도 복귀/총리,재무장관 전격 해임

    【콜라룸프르 AP AFP 연합】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경제정책을 둘러싼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와의 불화끝에 전격 해임됐다고 국영 베르나마 통신이 2일 보도했다. 한때 73세의 마하티르 총리의 후계자로 떠올랐던 안와르(52)는 또 집권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의 부총재직에서도 해임될 전망이다. 안와르의 해임은 마하티르 총리가 고정환율제를 도입하고 자국통화 링기트의 국내거래만 인정하는 내용의 경제안정대책을 발표한 직후 취해졌다. 극심한 경제난에 대한 최후의 수단으로 마하티르 총리는 이날 링키트화의 환율을 달러당 3.8링기트로 고정시키는 한편 외국인 단기 투자자금에 대한 규제 등 강력한 대책안을 발표했었다.
  • “자식사랑 나약한 마음 반성”/손녀 고액과외 田淑禧씨의 자술서

    ◎“남이 하니 나도”… 순간적 경솔함 후회 “남들이 모두 하니 나도 안할 수 없다는 나약한 마음으로 저지른 일에 대해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손녀에게 고액과외를 시킨 사실이 드러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명예회장 田淑禧씨(79)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편지를 강남경찰서로 보내왔다. 田씨는 200자 원고지 19장 분량의 편지에서 “순간적인 경솔함때문에 손녀가 대학에도 낙방했고 가족간의 불화도 초래했다”고 후회했다. 田씨가 손녀 姜모양의 학교를 찾은 것은 수능시험을 불과 두달여 앞둔 지난해 9월.姜양이 수학,과학탐구,사회탐구 과목에서 부진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담임 盧교사는 “단시일에 가르치는 곳이 있다”면서 문제의 한신학원을 소개했다. 소개를 받은 金榮殷 원장은 “수업 방법이 특수하기 때문에 두달이면 충분하다”며 田씨를 유혹했다. 田씨는 “기껏 200만∼300만원 정도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고액을 요구해 깜짝 놀랐다”면서 “그러나 손녀를 위한다는 일념 때문에 자식 몰래 한푼 두푼모은 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 水月觀音圖 등 4건 국가문화재 지정

    문화관광부는 22일 水月觀音圖 등 4건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예고한다. 이들 문화재는 30일 이상의 예고기간을 거쳐 보물 및 국보 등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다. 수월관음도(서울 宇鶴문화재단 소장)는 52.5×100.3㎝ 크기의 고려시대 불화로,합장한 善財동자가 오른발을 왼무릎 위에 올린 半跏의 자세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에게 法을 청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大樂後譜(국립국악원 소장)는 영조 35년(1759)에 徐命膺이 편찬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官撰 악보로 7권 7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資治通鑑綱目(서울 개인 소장)은 중국 송나라 朱熹가 司馬光의 ‘資治通鑑’을 ‘春秋’의 체제를 모방해 綱과 目으로 나눠 편찬한 중국 史書. 이를 조선 세종의 명령으로 집현전 학사들이 교정하고 주석을 달아 세종 10년(1428)에 인출한 책 59권 중 제20권이다. 50×98.3㎝ 크기의 地藏菩薩圖(부산 개인 소장)는 道明尊者와 無毒鬼王이 함께 배치된 三尊圖 형식의 그림. 고려불화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麗末鮮初의 것으로 추정된다.
  • 한솔종이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9)

    ◎삶을 지속시킨 ‘소중한 존재’ 자각/요강·동고리·고비 등 갖가지 종이용품에/유물인식시스템·종이접기·한지제작 체험도/종이 쓰임새 변천 한눈에 알아보게 전시/기획전시실선 닥종이 인형전·부채전도 함께 한솔종이박물관은 재미있고,현장 학습에 많은 도움이 되는 곳이다. 박물관중에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 곳은 없겠지만 한솔종이박물관도 흥미있고 지식에 보탬이 되는 가볼만한 박물관이다. 한솔종이박물관 관람이 재미있는 이유는 두가지.첫번째는 눈길이 쉽게 떠나지 않는 유물이 많다는 점이다.우리 조상들은 종이로 온갖 물건을 만들었다.갓·등·부채·미투리·반닫이·우산·베개뿐만 아니라 음식물과 곡식을 담던 동고리와 채독,문서를 꽂아 보관하던 고비,화살을 넣던 전통도 종이로 만들었다. 중국종이(華紙),일본종이(和紙)와 비교해도 역시 조선종이(韓紙)의 질이 으뜸이었다.옛 우리 선비들은 읽고 난 책들을 모아 함경도,평안도 변방을 지키는 병졸들에게 보내는게 관례였다.독서를 장려키 위함이 아니다.책장을 뜯어 옷을 만들어입으라는 배려였다.종이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던 기록도 있다. 전시품 중 흥미를 끄는 것은 종이요강.여인네들이 가마를 타고 먼 길을 갈때 필수품이었다.종이를 꼬아 과자 그릇처럼 예쁘게 만들었다.겉면에는 콩기름이나 들기름을 정성스레 발랐다.놋쇠로 만든 요강과 달리 중요한 순간에 소리가 나지 않았다. 종이박물관이 재미있는 두번째 이유는 스스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우선 유물인식시스템이 있다.미투리를 센서에 올려놓으면 ‘종이·삼·짚을 섞어 꼬아 만든 신발’이라는 설명과 그것의 유래가 컴퓨터 화면에 친절하게 나온다. 관람객이 컴퓨터 영상을 따라 재미있게 종이접기를 하는 코너도 있다.한지 재현관에서는 직접 종이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2시간여 종이박물관을 돌아보면 ‘뭔가 배운 것 같다’는 뿌듯한 느낌이 온다. 박물관 제1전시실의 첫째 방은 ‘종이 이전의 세계’다.종이가 만들어지기전까지 인류의 모든 문명은 불완전하고 미완성이었다.기록을 위해 갖가지가 쓰였다.점토판·파피루스·양피지·짐승뼈·갑골문·죽간 등.종이가 없었던 시절의 불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둘째 방은 ‘종이의 탄생과 전파’.서기 105년 중국 후한(後漢)시대 蔡倫이 종이사용을 실용화 시킨 이래 종이의 전파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우리의 종이 사용 역사도 중국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통일신라 시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알려준다.종이박물관에는 고려 초기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 제삼십육’원본(국보 제277호)이 소장되어 있다. 제2전시실은 ‘종이의 오늘과 내일’을 알려주는 곳이다.컴퓨터 시대에도 종이의 효용가치는 변함없음을 강조한다.전시의 주제는 ‘종이는 영원한 친구’.그와 관련된 영상물도 준비되어 있다.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종이 퀴즈게임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매직비전이라는 특수전시기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스스로 빛을 내는 ‘축광지’도 볼거리다.안네 프랑크,베토벤,李仲燮 등 국내외 유명인사의 메시지가 담긴 종이도 있다. 특히 서울대 金安濟 교수의 ‘종이인생’이 눈길을 끈다.젊은 시절의편지와 일기,결혼 청첩장,첫 직장 임용장,첫 월급봉투 등 ‘종이’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축소판’이다. 이어 기획전시실과 한지재현관을 둘러보면 관람은 끝난다.기획전시실에는 김영희씨의 ‘닥종이 인형전’에 이어 8월31일까지 ‘부채 특별전시전’이 열리고 있다. 한지재현관에서는 닥나무 껍질을 벗겨 삶고 두드리고,한지를 떠내는 13개 과정을 옛 그대로 보여준다.한지 전문가 金泰福씨(52)부부가 관람객들을 친절히 맞는다. 한솔박물관은 한국 최초의 종이박물관이다.세계적으로도 9번째다.한솔그룹이 공익사업 차원에서 설립,운영도 책임지고 있다.개관한지 1년이 채 안됐다. 담임선생님의 인솔로 종이박물관을 찾은 전북 고창군 부안초등학교 학생들은 “이제는 시험에 종이에 대해 어떤 문제가 나오더라도 맞힐 자신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큐레이터 嚴素姸씨/“미래에도 종이는 다정한 친구”/관람객과 일심동체 유도 유물수집 등 60억원 들여 지역민과 융화에도 신경 한솔종이박물관은 전문 큐레이터(박물관운영책임자)를 두고 있다.미국 뉴욕대 예술학대학원을 졸업한 嚴素姸씨(34). “전라도는 옛부터 예술의 고장이라고 불리지 않았습니까.그러나 지금은 문화 관련 기관이 별로 없어요.저희 박물관은 이 지역의 문화 갈증을 푸는데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지요” 때문에 종이박물관측이 신경을 쓰는 것도 ‘지역민과의 융합’이다.최근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민화 그리기 공모전을 가졌다.박물관쪽에서 먼저 학교를 찾아 특활시간을 활용한 교육기회를 갖는 프로그램도 개발중이다. 아빠와 함께 연만들기,크리스마스 카드 그리기 등도 계획하고 있다.전주시청을 비롯한 정부 관공서와 연계해 박물관 소개 등 관람객 유치작업도 적극 벌이고 있다고 嚴씨는 설명했다. 박물관 시설도 관람객들과 전시유물의 ‘일심동체’를 이뤄내기 위해 스스로 참여토록 유도하는 것이 많다고 밝혔다. “유물인식 시스템,종이접기 코너 등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해 ‘종이’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도록 하는데 전시의 중점을 두었습니다” “종이라는 주제로 박물관을 만드는데어려움이 컸습니다.어디까지가 종이의 영역인지 자르기가 쉽지 않았죠.그러나 ‘종이는 영원한 친구’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종이가 과거는 물론 미래에도 인류 문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방향으로 유물을 수집,정리했습니다” 유물수집과 정리에 60억원 남짓 들었다.기원전에 사용됐던 파피루스도 어렵게 영국에서 구입했다. 그녀는 “컴퓨터시대를 맞아 종이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그러나 외국 언론기관의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젊은이들도 컴퓨터 화면보다는 종이에 쓴 활자를 보는게 편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아무리 첨단화되어도 ‘종이 문화’는 지속된다고 생각합니다”면서 말을 맺었다. ◎종이박물관 가는 길/전주 IC서 7㎞ 거리 터미널서 택시로 15분/단체는 사전예약해야 호남고속도로 전주 인터체인지에서 7㎞ 정도 떨어져 있다.인터체인지를 나와 전주 시내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한솔종이박물관 푯말이 간간이 있어 그것을 따라 오면 된다.전주 고속버스터미널과 전주역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각각 15분,30분 정도 걸린다. 관람료는 무료.월요일과 국경일은 휴관하며 화요일∼일요일 상오 9시부터 하오 5시까지 문을 연다.하루 7차례에 걸쳐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코스도 있다.관람 소요시간은 2시간. 한지뜨기 실습,한솔제지 공장 견학 등을 위해서 20인 이상 단체관람객들은 꼭 사전 예약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단체관람일은 매주 화,수,목요일이며 한지재현관은 수,목,토,일 주 4회 운영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2가 180번지.(0652)210­8000.
  • 高宗의 부부싸움(秘錄 南柯夢:21)

    ◎“황태자 폐위” 궁중流言 나돌아/고종 “맏아들 폐위는 나라 망치는 일” 진노/“누구의 획책인가…” 嚴妃 추궁하자 졸도/30분뒤 깨어나니 노여움 풀고 부부화해/“가화만사성 경의 말들어…” 번갈아 하사품 고종과 엄비의 가정불화는 마침내 엄비의 기절로 끝나게 되었으니 궁중 사건으로는 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런 긴급 사태를 당하여 정환덕은 고종에게 “안심하십시요.30분 뒤에는 깨어나십니다”라고 말씀드렸다.과연 깨어날수 있을까.이 예언이 맞지 않으면 당장 해임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30분이 지나 밤 8시가 되었다. 엄비께서 갑자기 몸을 옆으로 둘리시더니 얼굴을 벽에 대고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시며 숨을 몰아 쉬셨다.기사회생한 것이다.상궁과 내인이 급히 뛰어 대청에 나와 고종에게 엄비가 깨어난 것을 아뢰었다.황상께서는 급히 달려가서 엄비가 깨어나신 것을 확인하셨다.너무 기뻐 좌우를 돌아보시더니 “정시종(鄭侍從=정환덕)의 추산법(追算法)은 과연 천하 제일이다”하시며 칭찬하시기를 마지 않으셨다. 어떻게 엄비의회생을 예언할 수 있었을까.그건 정환덕이 엄비의 졸도가 약으로 치료될 일이 아니라 화병으로 일시 까무라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엄비가 졸도하기 전 정환덕이 엄비에게 불려가 고종과 독대 내용을 질문받은 일이 있었다.그 뒤 소문이 고종의 귀에 들어가 다시 고종에게 불려갔으니 사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터이다. 황상께서는 경위총관(警衛總官) 이근순(李根淳), 궁내협판(宮內協判) 이봉래(李鳳來),탁지대신(度支大臣) 이용익(李容翊),평양참령(平壤參領) 길영수(吉永洙),호위대참장(護衛隊參長) 이서구(李書九) 등 요인들이 즐비해 있는 가운데 대청에 좌정하시어 나(정환덕)에게 물으시기를 “지금 엄비가 너를 불러 무슨 일을 묻던가”고 하시었다.이에 아뢰기를 “엄비께서 단지 나라 일을 걱정하시며 왕실의 운명에 대해 점치라고 하셨을 뿐 그 밖에는 다른 말씀은 없었습니다”고 했다.황상께서는 “알겠다”고 하시면서 자리를 뜨셨다. 그때 나는 몸을 일으켜 “한 말씀만 더 드릴 일이 있습니다”고 아뢰었다.“무슨일인가” 하시기에 “속담에도 있듯이 집안이 화평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家和萬事成)고 하였습니다.군신간에도 화목하여야 나라가 잘되는 것이오니 폐하께서는 부디 매사 평화와 관용과 원만으로 해결하시고 상벌을 분명히 하시며 허실(虛實)을 분명하게 하신다면 궁중은 물론 장안도 아무탈 없이 승평(昇平)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만일 그렇지 못하면 위험과 난리가 박두하게 될 것입니다. 본시 권좌에 오르면 그 순간부터 정신이 몽롱해져서 정사를 그르치게 마련이다.1904년은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던 해다.그런데 국왕이 부부싸움에만 정신을 팔고 있었으니 그것은 마치 클린턴이 성추문 사건에만 신경을 쓰다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그르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라가 위태롭다는 말은 입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던 말인데 ‘남가몽’에 보면 성주목사를 심선택(沈善澤)이 이같은 말을 하고 있다.심선택은 북간도 개척을 진언한 인물이다. 편안할 때 위태함을 잊지말아야 하고 즐거울 때 우환을 잊지말아야 한다(安不忘危樂不忘憂)는 것은 고금의진리입니다.지금 나라 형편을 보건데 겉으로는 태평한 듯 하지만 속으로는 지극히 험난하여 문자 그대로 누란의 위기요,‘눈섭이 타는 위급’(燒眉之急)이라 할 것입니다.그러나 모두가 이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앉아서 바라만 보고 있으니 이것은 마치 만신창이가 된 몸에 도화분을 발라 상처를 가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근본을 다스려야 낫지 말초를 다스려서야 나을 수있는 병이 아닙니다.지금이야말로 국가를 치료할 양약이 필요할 때입니다. 병든 나라를 치료하기 위한 양약이라고 했는데 이름이야 ‘개혁’이든 ‘제2의 건국’이든 상관이 없다.지금이야말로 그런 약이 필요한 때 아닌가. 아무튼 고종과 엄비의 부부싸움은 엄비의 졸도로 일단락됐는데 사실은 배후에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정환덕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내시가 한사람 있었는데 이름이 봉시(奉侍:내시) 강석호(姜錫浩)였다.이 사람이 불시에 정환덕을 찾아오더니 엄청난 궁중비밀을 털어놓았다.정환덕도 몰랐던 일이기에 깜짝놀랐다. 봉시 강석호가 내게 찾아와 “영감께서는경선궁 사건을 실지로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하고 물었다.이에 답하기를 “사실은 부부싸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아직도 안개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고 했다.강석호는 말하기를 “영감이나 저나 천안(天顔:임금)을 지척에서 모시는 몸으로서 다같이 나라와 고락을 함께 하고 있는 처지가 아닙니까” 하며 목소리를 낮추면서 “근일에 궁중유언(宮中流言)이 돌고 있는데 민비 소생인 황태자(순종)를 폐해 대군(大君)으로 강등하고 엄비의 소생인 영친왕을 황태자로 모시고 저 한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황상폐하께서 이 소리를 들으시고 크게 진노하셔 말씀하시기를 ‘예부터 맏아들을 폐하고 어린 아들을 세운다는 것은 국가를 망치는 근본이라 했다.어느 반역분자가 이런 일을 획책하고 있는가’하시면서 엄비를 나무라셨습니다.엄비가 황공무지하여 어쩔줄 몰라 하시다가 까무라치게 된 것입니다.영감께서는 이 일을 알고 계셨습니까. 강석호는 부부싸움의 진상은 대개 그러하니 “이런 어려운 시기를 당해 앞으로 우리 두사람은 대소사를 가릴 것없이서로 협력하여 나가자”고 제의해 왔다.정환덕이 “물론 그렇게 해야지요”라고 동의했는데 얼마 뒤 고종이 정환덕을 불러 치하하였다. 황상께서는 “짐이 경의 말에 따라서 궁중의 유언비어를 말끔히 씻어 냈더니 화기(和氣)가 되살아났다.이 어찌 가화만사성 아니겠느냐”하셨다.엎드려 아뢰기를 “이는 이 나라의 훙복이옵니다.옛말에 ‘착한 마음을 한번 품으면 길신(吉神)이 따르고 악한 마음에 흉귀(凶鬼)가 따른다’고 하였사오니 이제 이 나라는 다시 회생할 것이옵니다”고 아뢰었다. 이때 고종은 손수 금일봉(금화 200환)을 하사하며 정환덕을 치하하였다.그런데 다음날 경선궁에서 엄비가 정환덕에게 “약간 정표를 준비했으니 받아 가라”는 하명이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물건을 그냥 받아갔다가는 큰일날 것 같았다. 그래서 10여일을 그냥 맡겨두고서 찾아가지 않았더니 엄비께서 “저번에 약간의 정표한 물건은 왜 받아가지 않느냐”고 물으셨다.대답하기를 “너무 황송해 받아가지 못했습니다”고 하였다.그리고 나서 황상께 고하기를 “경선궁에서 약간의 정표로 하사하신 물건이 있었습니다만 감히 받을 수가 없어 이처럼 말씀드립니다”고 아뢰었다. 황상께서는 “무슨 물건이든가”고 물으시기에 “엄비의 말씀이 ‘막중 존엄한 자리를 가까히 모시는 신하로서 의복이 남루해 혹시 정결하지 못하여 냄새가 날까 두려워 다소의 의복을 하사한다’하셨습니다만 아직 펴보지 못하였습니다”고 아뢰었다.이에 고종이 “받는 것이 옳다”고 허락하셔 마침내 선물을 받아 펴보았다. 펴보니 구름 무늬 비단으로 만든 크고 작은 예복 각 한 벌씩과 물소뿔띠와 학을 그린 흉배자 각 한 벌,수단(繡緞) 두필,왜비단 두필,순인갑사(淳仁甲紗) 한필,가는 모시 세필,분명주 두필,목양목 두필,백미 10섬,지화(紙貨) 300환.씨를 뺀 화솜 50근.안동포 두 필 그 밖에 여러 물건이 들어 있었다. 고종은 200환밖에 하사하지 않았는데 엄비는 이처럼 지화 300환 이외에도 엄청난 물품을 하사하였으니 그때도 지금처럼 경제권이 여편 쪽으로 넘어갔던 것 같다.
  • 국내 금융시장 불안 가중/러 모라토리엄 파장

    ◎對러 수출 중단·원貨절하 압력증대/아시아 제2외환위기 촉발 가능성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외채 지불유예) 선언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러시아의 루불화 표시 외채 상환유예와 루블화의 평가절하는 러시아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물론 원화의 절하압력으로 이어져 환율급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루불화 평가절하가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로 이어질 경우 일본 엔화의 폭락,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심리적 불안감 등과 어우러져 아시아에 제2의 외환위기를 촉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다 러시아에 대한 국내기업의 수출이 전면 중단될 위기를 맞는 등 수출증대에 비상이 걸렸다. ■원화 절하압력 커졌다=한국은행 국제부 관계자는 “러시아에 대한 투자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끼칠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채권이 많은 일본과 독일은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이며,달러화의 강세 여파로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도 약세를 보일 것이기 때문에 원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그럴 경우 현재 달러당 1,330원대인 원화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차입,더 힘들어진다=독일이나 일본 등 러시아에 대한 채권이 많은 나라들이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채권 확보에 적지 않은 지장을 받게 된다. 이 경우 이들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금융기관에 빌려준 외화에 대한 회수 압력을 가할 공산이 크다. 국내 금융기관은 독일이나 일본 금융기관에 대한 부채가 많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간접적 파급 효과로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독일이나 일본 금융기관들의 신용공여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다각적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했다.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 회수하기 힘들어졌다=정부는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 중 미상환분은 무기 등의 현물로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회수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정부가러시아 정부로부터 받아야할 채권은 지난 6월 말 현재 이자를 포함해 15억6,000만달러다. 91년 러시아 정부에 14억7,000만달러의 차관을 제공해 이 중 2억8,000만달러를 받았으며,나머지 원금에다 이자까지 불어나 15억달러가 넘어섰다. ■국내 금융기관 및 기업의 투자현황=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금융기관의 대(對)러시아 투자규모는 지난 3월 말 현재 17억6,000만달러다. 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대부분 러시아의 국공채에 투자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차관과 금융기관 및 기업의 투자액을 합하면 30억달러 이상에 대한 회수전망이 불투명해 졌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국내 금융기관의 투자는 일부 은행 및 종금사들이 러시아 주식투자전용 펀드(Golden Tiger)에 참여하면서 97년 9월 말에는 22억4,000만달러까지 늘었으나 97년 10월 이후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건강악화에 따른 정국불안과 동남아 금융위기의 확산 우려,국내 금융기관의 외화 유동성 부족 등으로 투자 규모를 점차 줄였다. 국내기업의 러시아에 대한 직접투자 규모는 지난 4월 말 현재 1억2,000만달러로 총 해외직접투자(172억3,000만달러)의 0.7%에 불과하다. ■정부 대책은=산업자원부는 현지 상무관을 통해 사태를 파악하는 한편 수·출입에 미칠 파장을 분석하는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산자부는 특히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상당 기간 러시아에 대한 수출이 전면 중단되는 등 우리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보고 대책을 강구 중이다. 산자부 洪元柱 구아협력과장은 “당장 수출대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향후 현지 시장에 대한 불안감으로 장기간 러시아에 대한 우리 수출업체들의 수출이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지난 해 우리나라의 대 러시아 교역규모는 수출 17억6,790만달러,수입 15억360만달러로 세계 17위를 차지했다. 지난 상반기 수출은 7억2,600만달러,수입은 5억1,290만달러였다.
  • 힐러리는 클린턴의 흑기사?

    ◎르윈스키 관련 비디오증언 궁지에 몰리자 “性추문 수사는 편견서 비롯” 언론 통해 반격/중앙정가의 견제 부각시켜 위기 모면 시도 힐러리 여사가 또 빌 클린턴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클린턴이 갖가지 추문에 연루돼 궁지에 몰릴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 피터팬이 되곤 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루윈스키의 성추문과 관련,17일 비디오 증언으로 위기에 몰리자 또 모습을 드러냈다. 들고 나온 무기는 엉뚱하게도 지역감정. 클린턴 대통령의 출신지인 아칸소주의 한지역 신문과의 회견에서 “특별검사나 성추문 수사는 아칸소주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시골뜨기 출신 대통령에 대한 워싱턴 중앙 정가의 노골적인 견제라고 몰아 세웠다. 극약 처방적인 발언이다. 가문이나 학벌 출신지 따위보다는 능력을 최우선시하는 미국 특유의 정서를 십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이 바로 미국 정서를 거스르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쟁점을 다투기보다 변죽을 표적삼아 일전을 벼르겠다는 것이다. 클린턴이 예전과 달리 막다른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성추문의 상대가 성관계를 시인한 것은 물론 물증까지 제시했다. 더구나 수사의 초점이 위증여부에 맞춰져 있다. 바로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다. 힐러리가 맨처음 ‘남편 살리기’에 나선 것은 92년 첫번째 대통령 선거때였다. 플라워즈라는 여성과 성추문이 번지자 지고지순한 부부사랑론을 내세워 여론을 잠재워 버렸다. 힐러리의 솜씨가 빛났던 것은 지난 1월. 르윈스키와 성추문이 불거지자 이번에는 색깔론으로 맞섰다.“클린턴을 짓밟으려는 광범위한 우익세력들의 공모”고 추문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계산은 정확하게 표적을 맞췄다. 세번째 화살도 과녁을 꿰뚫을지 두고 볼 일이다. 사안이 예전과 달리 어렵지만 대신 힐러리는 요즘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이후 최고의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정 불화설 등 갖가지 소문에 시달리면서도 미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고 있는 힐러리의 솜씨가 주목된다.
  • 외교관 믿어줘야 외교가 산다/鄭達鎬 駐오스트리아 공사 기고

    ◎‘직업관료 텃세로 前 외통장관 경질’은 오해 본지 7일자 23면 한·러 외교관추방 사건으로 朴定洙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물러난 데 대한 ‘궁지 몰린 장관 아무도 안도왔다’는 기사와 관련,鄭達鎬 주오스트리아 공사가 기고문을 보내왔다. 다음은 ‘외교관 믿어줘야 외교에도 힘 실린다’는 제목의 기고문 내용이다. 서울신문 기사는 직업관료와 비직업관료 출신장관 사이의 허물 수 없는 벽이 전격경질 사태를 가져온 원인이라고 몇가지 사례를 왜곡하거나 부정적으로 부각시켰다. 직업외교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트려 궁극적으로는 우리 외교에 대한 국민의 지지기반을 훼손하고 있다. 지엽적인 사항을 확대해 보도하면 국민을 오도할 뿐 아니라 문제의 본질마저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러 외교관 상호추방 사태에서도 우리 언론이 우리측 내부사정을 미주알 고주알 캐내 턱없이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 외교가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이번 사태의 전과정을 단 2회 간략히 보도했을 뿐이다.외교사안에 대해 정부가 잘못한 점이 있을 경우 언론이 이를 즉시 질책하고 냉철하게 평가하는 것은 건전하고 유용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진행중인 사안의 경우는 비록 잘못하는 점이 있더라도 정부나 관련 공무원을 지나치게 몰아세우게 되면 이는 우리의 교섭력을 악화시키고 상대방의 입지를 강화시킨다. 결국은 국가의 대외 이익 추구라는 외교목표에 역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더욱이 이번 기사는 본질적인 사안에 대한 평가도 아니고 정부에 대한 질책도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소위 ‘공무원 불신풍조’에 편승해 직업관료와 정치인 출신 장관간에는 항상 불화가 있는 것으로 전제해 놓고,마치 직업외교관들이 정치인 장관에게 협조를 하지 않아서 장관이 물러난 것처럼 썼다.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면 우리 정부 내부를 이간하고 관료사회 내지 직업외교관을 비하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써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기사 부제로 ‘박정수 전 외통장관 전격경질에 텃세론 제기’라 해놓고 누가 이를 제기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있다. 이는 기자가 평소 가지고 있던 판에 박힌 스테레오 타이프로서의 텃세론을 제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주는 것이다. 우리 직업외교관은 국가간의 관계에서 우리 국익을 지키고 신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이런 목적 아래 외교에 임하는 집단이다. 장관이 누가 됐든 일단 임명된 뒤에는 장관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외교의 사령탑으로 일사불란하게 외교를 수행하는 인격체이다. 정치인 장관과 직업관료간에는 시각이 다를 수 있고 업무수행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직업외교관 출신장관과 부하 관료 사이에서도 흔히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시각의 차이나 이견이 곧 갈등이나 불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상식이다. 우리 직업외교관들은 정당한 비판은 달게 받을 것이나 근거없는 보도로 직업외교관을 비하시키는 것은 우리의 집단적 인격에 대한 모독으로 보고 이에 당당하게 대응할 것이다.
  • ‘대립과 갈등’ 봉합 최선을/朴載昌 숙명여대 교수(특별기고)

    국회가 최소한의 구성 요건을 갖추게 되었다.어렵사리 후반기 국회를 향도해 나갈 국회의장을 새로 선출해 냈기 때문이다.그러나 신임 국회의장이 선출되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국회가 순항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만큼 국회의장의 선출과정이 난항을 거듭했다는 의미다. ○선출과정 불신 재생산 정치권의 갈등과 대립을 최종적으로 조율하는 곳이 국회라고 한다면 국회의장의 선출은 정치권의 불화가 진정세로 들어섰음을 상징해야 옳다.그러나 이번의 국회의장 선출과정은 오히려 정파간의 불신과 대립을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만을 낳고 말았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 전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과 회의가 극점에 도달해 있는 때다.이런 상황 속에서 국회가 다시 정치적 갈등이나 정파간 대립으 로 영일이 없게 된다면 국회부터 퇴출시키라는 유권자들의 엄중한 질책과 저항이 임계범위를 넘게 될 것이다. 신임 국회의장이 당면한 최우선적 과제는 정파간의 갈등과 대립을 봉합하고 심기일전해서 그동안 다하지 못한 국회의 역할을 다하도록 국회의원을 지도하고 국회를 관리해 나가는 일이다.실추된 국회의 권위를 재생하고 사회적 불신과 외면을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회의장 스스로 권위와 체통을 바로 세우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가 신뢰하고 존경해마지 않는 거당적 정치지도자로 거듭나야 한다.당연히 불편부당한 자세로 정파간의 이해관계를 초월하고 개인적인 명리나 친소관계를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정파초월 중립성 유지 이런 중립성의 유지를 위해서 소속 당적을 스스로 버리는 일은 새로운 국회의장상의 정립을 위한 도정에서 작은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선진 의회에서는 국회의장이 평의원들과 어울려 담소하거나 점심식사하는 일마저 사양한 채 고독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삶의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타산지석으로 삼아볼 일이다. 국회의 대외적 독자성과 대내적 자율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일도 신임국회의장이 감당해야 할 핵심적 과제중의 하나다.어떤 외부의 압력에 대해서도 과감히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기개가 있어야한다.정파간 대립과 갈등의 한가운데 서서 제3의 심판관이 되려면 가장 현실정치적인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는 환경 속에서 가장 철학적인 성찰과 번민을 거듭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간적인 성숙과 성찰력은 바람직한 국회의장이 갖추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자격요건중의 하나인 셈이다. ○스스로 개혁·변화해야 국회는 또 우리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향도해야 하는 국가적 사명을 지고 있다.스스로가 개혁하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무엇보다도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국회의 기능적 좌표가 단순히 행정부를 감시하고 유권자의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는 일 이상의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그렇기때문에 국회의장은 미래사회에 대한 고도의 조망력도 갖추어야 한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정부수립 50주년이 된다.의회민주주의의 역사가 어느 새 반세기를 넘게 되었다는 뜻이다.이쯤되었으면 이제 우리도 국회다운 국회,국회의장다운 국회의장을 탐내볼 만한 때도 되었다.아무쪼록 개혁과 변화의 시대적인 요구를 가장 훌륭하게 소화해낸 국회의장으로기록되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이는 신임 국회의장이 걸머진 역사적 소명이기도 하다.
  • ‘홧김에 불’ 늘었다/올들어 방화성 화재 1,685건 발생

    ◎사회 불안 탓… 작년보다 7.8% 늘어 IMF한파로 인해 홧김에 불을 지르는 방화나,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자치부는 29일 올들어 지난 6월말까지 방화성 화재는 1,685건이 발생,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7.8%가 늘어났다고 밝혔다. 방화성 화재 건수는 전체 화재발생 건수 1만7,036건의 9.9%에 불과하나 이로 인한 사상자수는 전체의 21.3%를 차지,상대적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동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방화성 화재 증가는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자 증가와 사회불안,가정불화 등이 주요원인으로 분석됐다. 한편 올 상반기중 화재로 인한 재산피해는 773억5,000만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8.6%가 증가했으나 인명피해는 사망 269명,부상 888명으로 각각 21%와 4.7%가 감소했다. 화재를 원인별로 보면 누전 등 전기로 인한 화재가 5,408건으로 전체의 31.7%로 가장 많았고 이어 담배 2,198건(12.9%),방화 1,685건(9.9%) 등의 순이었다.
  • 北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출/687명중 447명 신인으로 교체

    북한은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통해 대폭 물갈이를 했다.687명의 전체 대의원중 65%인 447명이 신인이다. 북한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27일 “지난 90년의 제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수와 같은 687명을 선출했다”고 보도했다.이번에 새로 선출된 대의원의 비율은 90년 9기의 신진비율인 31.4%보다 훨씬 높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8년3개월만에 선거가 이뤄진데다 金正日체제로 바뀌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에 신인 비율이 높아졌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지도급 인물들은 재선출돼 별다른 권력변동은 없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金英春 총참모장,玄철해 총정치국 조직부국장,朴재경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등 金正日 직계인 신진 군수뇌부들이 대의원에 새로 선출됐다. 李鍾玉 朴成哲 金英柱 부주석과 金永南 부총리 겸 외교부장 桂應泰 당비서, 楊亨燮 최고인민회의 의장,趙明祿 군총정치국장들도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92년 남파간첩인 李善實 정치국 후보위원과 金正日의 매제인 張成澤과 누이동생인 金敬姬도 대의원에 선출됐다. 와병중인 姜成山 총리와 金正日의 계모인 金聖愛,金達玄 전 부총리는 제외됐다.金聖愛는 金正日의 후계 승계과정에서 불화를 빚었기 때문에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 日本 공산당 위원장 31년만에 中國 방문

    【베이징(北京)AP 연합】 후와 데쓰조(不破哲三) 일본 공산당위원장이 중국 공산당과 31년간의 불화를 청산하고 화해를 모색하기 위해 19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후와 위원장은 5일간의 중국 방문중 장쩌민(江澤民) 공산당총서기 겸 국가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과 만나 양당간 관계증진 방안과 지난해 경신된 미­일 방위협력협정 내용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 공산당은 문화혁명 당시인 67년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 이론 해석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공산당을 ‘4적(敵)’중 하나로 지목,관계를 단절했다.
  • 대원군 개혁의 교훈/李炫熙 성신여대 교수(서울광장)

    ‘놀고 먹으며 호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양반들도 나라 발전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한다.상민들만 내게 되어 있는 군포를 양반계급에게도 확대 적용하라.’ 130여년전인 1863년 12월 천신만고,은인자중 끝에 대권을 거머쥔 정략가 흥선대원군(이하응)이 개혁의 날이 시퍼런 칼을 빼들고 여러가지 묵은 악폐를 도려내는 안건중의 하나로써 고종 8년(1869) 획기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 바로 특권계층인 양반에게도 군포라는 세금을 물린 조치였다.군포제는 원래 병역세로 징수한 것이었으나 특권층인 양반은 면제해주고 일반 백성에게는 어린이와 죽은 사람에게까지도 부과했던 가혹한 것이니 그 횡포가 얼마나 큰 것이었나 상상이 간다.이것은 곧 불만투성이가 되어 전국적인 민란(민중의 투쟁)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대원군은 이를 다시 호포제로 바꾸었는데 양반들의 체면을 보아 그들의 이름대신 하인의 이름으로 납부하라고 하였다. 대원군은 집권 10년간 그밖에 여러가지 개혁을 계속했다.그는 “고질적인 세도통치 60년의 횡포 등을 어찌 하루 아침에 뜯어 고치겠느냐마는 칼을 빼든지 1년 이내에 완료되어야 한다””고 조기 타결방침을 세웠다. ○“양반들도 세금 내라” 그는 특히 인사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사색붕당의 소속 인사를 적재적소에 고루 기용하였다.소외되었던 북인계 임상준을 훈련대장에 등용하였고 지역편중 인사정책으로 능력이 있어도 푸대접을 받았던 평안도·황해도 출신도 과감히 기용,그들의 유능한 재기(才器)를 국가발전의 밑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고려의 후손이라고 쳐져 있던 왕정양 부자를 장관급에 발탁하여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개각때마다 등용설이 있었던 능력있는 유후조가 당파가 남인이라 해서 탈락되었었는데 대원군은 그를 정승으로 파격 기용해서 소외,탈락세력의 대동단결을 모색한 바 있다.결국 거국 내각을 구성한 것이다. ○1인 주도에 한계점 술 잘마시고 호탕하게 놀던 자도 특장점이 있다면 특채하여 위축된 사기를 진작시켜 주었다.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경복궁의 중건(重建)은 대원군의 결단력이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하였다.그는 이를 소신있게 강행키위해 묘책도 썼다.경복궁은 임진왜란때 왜군이 쳐들어와 방화 소실된 채 270여년간 폐허로 방치되어 왕실의 권위가 떨어져 있음을 보고 ‘제도권 정치복원’이란 대명제 속에셔 이를 복원토록 강행한 것이다.두번이나 큰 불이 나서 귀한 목재가 다 타 버렸으나 그대로 밀고 나가 2년만에 원래 모습보다 크게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그는 살아있는 대원군으로 아들 고종을 앞에 내세웠으나 그 자신이 전부 정권을 장악했다. “개혁은 뜯어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지는 것이고 백성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라는 생각 속에 10년간 개혁의 칼을 번뜩였다. ○‘깜짝개혁=실패’ 교훈 그러나 계속된 며느리(민비­명성황후)와의 불화,민씨 친족의 대두로 마음 고생을 많이 하였고,만년에는 친인척을 요직에 등용함으로써 모처럼 불을 당긴 개혁의 이미지를 퇴색시켰다.더욱이 그의 개혁은 즉흥적이고,일인 중심적으로 불도저식이었기에 실패하고 말았다.제도적 장치가 미흡했던 것이다. 백성들에게 편안함을 주어야 한다는 위민(爲民),애민(愛民)사상을가졌음에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였다.그것은 양반에게 부가했던 세금이나 급진적 개혁이 결국 층이 두터운 기득권 세력을 극복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깜짝 개혁’은 ‘즉각 실패’라는 등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천신만고끝에 국민에 의해 대권을 잡은 ‘국민의 정부’는 과감하고도 신속하게 개혁을 마무리 짓고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위상제고에 총력을 기울여야 마음먹은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세리 전속사 삼성/‘세리팩’ 브랜드로 뜬다

    ◎‘아놀드 파머’ 맞먹는 상표 목표… 내년 결정/‘서브 광고’ 검토… 계약·포상금 부담 걱정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으로 그녀의 전속사인 삼성이 다시 부산스러워졌다. 대규모 판촉행사를 기획하는 한편 그녀의 영문 이름인 ‘세리팩(SERIPAK)’을 브랜드화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아놀드 파머’나 ‘잭 니클로스’같은 세계적 브랜드로 키운다는 목표다. 그러나 높아지게될 박선수의 몸값에는 몹시 걱정하고 있다. ○…삼성물산 SS패션은 박세리의 이름을 딴 브랜드 ‘세리팩’의 개발을 검토중. 한 관계자는 “올 하반기 박세리의 성적을 지켜본 뒤 내년쯤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리 우승을 기념,자사 의류 브랜드인 하티스트,SS,아스트라에 대해 10일부터 전국의 매장에서 열흘간 할인판매 행사도 갖는다. 아스트라 제품은 20%,에스에스와 제일모직 제품은 50%씩 할인된다. 아스트라 제품이 할인 판매되기는 지난 5월 박선수의 미 LPGA대회 우승이후 두번째. ○…박세리가 메이저대회 2연승을 올림에 따라 앞으로 삼성과의 관계에도 관심이집중. 삼성으로선 박세리의 커진 위상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하고 그것이 틀어질 경우 결별까지도 가능하다는 관측들이 제기. 이는 최근 박세리측이 삼성에 메이저대회 우승보너스로 100억원을 요청했다는 설,삼성과 아버지 박준철씨와의 불화설 등으로 불거지고 있다. 물론 박세리는 96년에 10년간 3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삼성의 허락없이 다른 스폰서와의 계약이 어려운 상태다. 그러나 어느 한쪽의 불만이 커질 경우 ‘계약 파기’라는 극단적 결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삼성은 박세리를 광고모델로 내세우는 한편 ‘서브광고’를 허용하는 방안까지도 강구하고 있다. 모자나 옷,신발 등에 다른 업체의 브랜드를 ‘SAMSUNG’과 함께 붙일 수 있도록 해 박세리의 수입을 늘려준다는 구상이다. 별도 포상금은 미정 상태. ○…골프광으로 알려진 李健熙 삼성회장은 새벽 내내 박세리의 경기장면을 지켜보다 우승이 확정되자 기뻐하면서 미국 현지의 박세리에게 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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