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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경설’ 제니퍼 로페즈 부부, 공개키스…”우리 문제 없어요”

    ‘파경설’ 제니퍼 로페즈 부부, 공개키스…”우리 문제 없어요”

    ’파경설’에 휘말린 제니퍼 로페즈(39)-마크 앤소니(40) 부부가 공식석상에서 공개 키스를 나누며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일축시켰다. 로페즈 부부는 지난 3일(한국시간) 푸에르토리코 산 후안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푸에르토리코 주지사 취임식에 동반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키스를 나누며 애정을 과시했다. 불화의 기운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로페즈-앤소니 부부는 구랍 29일 파경설에 휘말렸다. 많은 할리우드 연예매체들은 두 사람이 이미 이혼에 합의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또한 이혼 발표 시점은 앤소니의 콘서트가 끝나는 오는 2월경이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로페즈 부부는 이번 공개 키스와 공식석상 나들이로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때문에 항간에 불거졌던 두 사람의 ‘2월 파경설’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한편 로페즈의 대변인은 구랍 2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페즈-앤서니의 파경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며 공식적으로 소문을 부인한 바 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사자성어 홍수/강석진 수석논설위원

    교수신문이 뽑은 기축년 희망 사자성어는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출처는 논어 자로(子路)편의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구절입니다.‘군자들의 사귐은 조화롭지만 모든 견해가 같기를 추구하지 않는 반면 소인은 같으면서도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화이부동한 정치를 바라는 지식인들의 바람이 투영됐을 터입니다. 지난해에는 광풍제월(光風霽月),그 한해 앞서서는 반구저기(反求諸己)가 선정됐습니다.또 연말에 뽑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난 연말에는 호질기의(護疾忌醫),2007년 자기기인(自欺欺人),2006년 밀운불우(密雲不雨),20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2003년 우왕좌왕이 선정됐죠. 한자가 갑자기 쏟아져서 골이 아프지요? 하지만 올해는 한자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청와대가 신년화두로 부위정경(扶危定傾)을 내놓았고,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다난흥방(多難興邦)을,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상창난기(上蒼難欺)와 분붕이석(分崩離析) 두가지를 내놓았습니다.군소정당 대표들도 빠지지 않았습니다.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풍운지회(風雲之會)를,민노당 강기갑 대표는 석전우경(石田牛耕)을 제시했습니다. 기억을 되돌이켜 보면 (한자 확인은 독자께 맡기면서) 한천작우,구동존이,운행우시,무심운집,눌언민행,극세척도,천지교태,약팽소선 등의 사자성어가 명멸해 갔습니다.사자성어의 전성기입니다. 사자성어는 역사유구(歷史悠久),원원유장(源遠流長)한 한자문화의 정화(精華)이긴 하지만 올해 정치인들이 내놓은 사자성어는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의미를 알기 어려운 것들입니다.그 뜻이야 하나하나 풀어나가면 다 좋은 것들입니다.그래도 아쉬움은 있지요.알기 쉬운 말로,국민의 이해를 구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난해한 사자성어의 홍수 속에 별 감동을 받지 못한다 해도 너무 괘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한 해가 지나면서 늘 깨닫는 일이지만 그 말을 하신 분들의 행동을 보면 늘 작심삼일(作心三日)로 그치기 때문입니다.작심삼일이 연말에 올해의 사자성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피사로와 그의 가족·친구들… 인상파 ‘풍경’ 한국 나들이

    피사로와 그의 가족·친구들… 인상파 ‘풍경’ 한국 나들이

    만약 새해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 위에서 움직인다면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과 같은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는 당분간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기도 고양시 아람미술관은 내년 1월6일부터 3월25일까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애슈몰린 미술관이 소장한 ‘피사로:그의 가족들과 친구들’ 컬렉션을 국내에 소개한다.‘인상파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사로와 르누아르,마네,밀레 등 초기 인상파 화가 19명의 작품 90여점,유화와 판화로 구성됐다.일반적으로 인상파라고 하면 프랑스 미술관에서 작품을 빌려오기 마련인데,영국에서 온 것은 상당히 특이하다.피사로의 장남으로 나중에 파리에서 영국으로 거주지를 옮긴 루시앙 피사로가 영국에 인상주의 화풍을 소개한 것이 인연이 된 덕분이다.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이라는 한국 전시회 제목처럼 전시의 중심에는 피사로를 중심으로 인상파 화가인 마네,르누아르 등의 작품이 소개된다.이어 ‘빛이 화가’로 불리는 인상파의 탄생에 영향을 준 밀레·코로 등 바르비종파의 작품도 선보인다.바르비종파는 파리 근교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촌 풍경에서 빛의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한 미술유파로,처음으로 야외에 나가 작품제작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고양 아람미술관은 “국내에서 여러 차례 인상파의 전시가 소개됐음에도 피사로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만한 전시는 없었다.”면서 “인상파의 숨은 거장 피사로를 중심으로 그와 영향을 주고 받은 인상파 화가들을 소개하고자 했다.”고 전시의 의도를 설명했다. 인상파와 바르비종을 관통하는 이번 전시의 소재는 ‘풍경’이다.초기 인상파 화가들은 파리를 중심으로 새로 구획된 파리의 거리,실크햇과 플록코트,철도와 열차 등 19세기의 새로운 과학을 발달과 부르주아의 탄생을 주로 그렸다.그런데 같은 초기 인상파이면서 피사로는 다른 소재를 택했다.자신이 교류하던 바르비종파 밀레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농촌사회의 풍경을 빛의 미묘한 변화를 살려 인상주의적으로 그려낸 것이다.본인은 유태계 부르주아로 시골생활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피사로를 바르비종파로 보기는 어렵다.1874년 제1회 인상파전을 비롯해 그 이후 8회까지 열린 인상파전에 빠지지 않고 작품을 출품한 유일한 사람이 피사로뿐이라고 한다.불화와 분열의 위기 속에서 곧은 신념과 자상한 면모로 새로운 미술을 개척하는 많은 화가들의 정신적인 멘토가 돼 주었고,그것이 피사로를 ‘인상파의 아버지’로 부르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 피사로의 ‘비내리는 튈르리 정원’과 ‘바느질하는 피사로 부인’,최초의 야외 풍경화인 코로의 ‘빌 다우레 근처의 르 푸티 샤빌’,‘만종’의 화가 밀레가 그린 경건한 분위기의 ‘양떼 모으기’,르누아르의 ‘수목이 있는 풍경’ 등이 주목할 만하다.관람료 일반 1만원,초·중·고생 7000원.(031)960-018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사운드 오브 뮤직’ 폰트랩家 산장 3대가 가업 이어받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실제인물인 폰트랩 일가가 3대째 산장지기가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미국 버몬트주에서 스키 산장을 운영하고 있는 ‘폰트랩가 남매’ 중 10번째이자 막내인 요하네스 폰트랩(왼쪽 사진 위·69)의 아들 샘(오른쪽·36)이 가업을 이어받았다며 ‘사운드 오브 뮤직’ 이면에 있는 가족의 속내를 조명했다.1938년 나치의 침공을 피해 오스트리아를 떠난 게오르기 루비비그 폰트랩 대령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해 음악회를 열며 돈을 벌었다. 지금의 산장을 산 건 1942년.가족들이 투어공연을 떠날 때면 마리아(왼쪽 사진 아래)가 손님에게 방을 임대해 주며 가업이 시작됐다. 가족의 이야기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과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져 대성공을 거뒀다.그러나 요하네스는 “좋든 나쁘든 영화는 우리를 대중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영화는 대단했지만 그건 우리 얘기가 아니었다.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 인물’ 사행세에 지쳐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나 뮤지컬에 대한 직접적인 수익도 얻지 못했다.폰트랩 대령이 47년 세상을 떠나자 부인 마리아가 가족 이야기를 단돈 9000달러에 독일 영화사에 팔았기 때문이다.요하네스는 영화의 이미지와 달랐던 가족 얘기도 털어놓았다.영화에서 다정하고 사려 깊게 묘사됐던 마리아는 실제로는 깐깐한 성격으로 엄격한 가정을 꾸렸다. 21년 전 마리아가 죽은 후에는 가족간에 불화가 계속됐다.또 영화에 등장한 폰트랩가의 남매는 7명이었지만 실제론 10명이다.마리아와 폰트랩 대령 사이에 세 명의 아이가 더 태어났기 때문. 요하네스는 “사람들이 장녀 리즐에 대해 물어봤지만 사실 첫째는 아들이었으며 영화가 개봉한 65년에 그는 54살이었다고 대답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두 번 봤다는 폰트랩가의 3대 샘은 이들에 대한 대중들의 환상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할리우드 스타, 인스턴트 결혼…”55시간만에 이혼?”

    할리우드 스타, 인스턴트 결혼…”55시간만에 이혼?”

    할리우드 스타들은 자유롭게 연애를 즐긴다. 개방적이고 관대한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짧은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것이다. 결혼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평생의 반려자를 결정하는 것이 결혼이지만 할리우드 스타들에게는 이마저도 큰 의미가 없다. 결혼 서류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파경을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빠른 할리우드의 변화 주기만큼 너무 짧았던 스타의 결혼을 살펴봤다. ◆ 브리트니 스피어스 - 55시간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지난 2004년 즉흥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가 단 55시간만에 파경을 맞아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상대는 동갑내기 친구인 제이슨 알렉산더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식을 올린 둘은 이후 스피어스가 이혼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남남이 됐다. 그녀의 첫번째 결혼이었다. ◆ 카르멘 일렉트라 - 9일 카르멘 일렉트라는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과 결혼식을 올린 뒤 9일만에 이혼 소식을 알렸다. 원인은 로드맨의 일방적인 이혼 통보. 아직까지도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첫번째 결혼이었다. 이에 팬들은 “둘다 짧은 연애를 즐기는 건 알았지만 결혼까지 빨리 끝낼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 에디 머피 - 2주일 영화배우 에디 머피는 트레이시 에드먼즈와 결혼식을 올린지 2주만에 남남이 됐다. 당시 새해 첫날 한 섬에서 극비리에 결혼한 두 사람은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식을 올려 많은 이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결혼 첫 날 부터 불화의 조짐을 보이다 끝내 이혼 절차를 밟아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 니키 힐튼 - 3개월 힐튼가의 상속녀 니키 힐튼은 결혼 2달만에 이혼해 충격을 안겼다. 당시 남편은 자신보다 12살이나 연상인 매니저 토드 마이스터. 두 사람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새벽 2시경 하객도 없는 상태에서 초고속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빨랐던 결혼만큼 파경도 빨라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 르네 젤위거 - 4개월 여배우 르네 젤위거는 가수 케니 체스니와 단 4개월만에 파경을 맞았다. 젤위거는 당시 이혼 서류를 제출하면서 사유로 ‘사기’를 들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길 꺼렸다. 이후 젤위거는 배우 생활을 잠시 중단할만큼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08~09프로농구] 첫 출격 서장훈 날았다

    ‘국보급 센터’는 과연 달랐다.“큰소리를 내고 이적했기 때문에 부담이지만 당장 성적을 내려는 욕심보다는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던 게 헛말이 아님을 알렸다.겸손은 승리로 열매를 맺었다.유니폼을 바꿔 입은 뒤 처음 뛴 서장훈(34)이 잘 나가던 모비스를 거꾸러뜨린 한판이었다. 전자랜드는 24일 열린 2008~09프로농구 모비스와의 울산경기에서 서장훈(15점 4리바운드)과 리카르도 포웰(15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김성철(13점·3점슛 3개),황성인(7점 8리바운드 5어시스트) 등 주전들의 고른 활약을 앞세워 70-68로 이겼다. 강병현과 조우현·정선규를 내주는 대신 KC C에서 데려온 ‘서장훈 효과’는 역시 컸다.모비스가 서장훈을 막느라 힘을 빼는 사이에 황성인이 수비 리바운드까지 따내며 점수를 차곡차곡 쌓았다.센터 도널드 리틀(4점 8리바운드)이 파울트러블로 줄곧 고전했지만 서장훈이 공백을 메웠다.포워드 포웰이 어시스트를 5개나 올린 점도 서장훈의 위세를 반영했다.특히 KCC 허재 감독과의 불화설 속에 둥지를 옮긴 서장훈이 연세대 시절 은사였던 최희암 감독에게 승리로 생일선물을 안겨 더욱 값졌다. 서장훈의 골밑슛과 김성철의 연속 3점슛에 힘입어 38-36으로 전반을 끝낸 전자랜드는 2쿼터 5분27초 전 오다티 블랭슨(19점 9리바운드 3스틸)에게 골밑슛을 내주며 33-34로 역전을 당했다.62-59로 앞선 4쿼터 종료 3분20초 전엔 리틀이 5반칙으로 코트를 떠나며 위기를 맞았다.1분41초를 남기고 김성철이 결정적인 3점슛을 터뜨리며 기세를 다시 올렸지만 모비스는 적극적인 올코트 프레싱으로 종료 7초 전 1점차까지 따라붙었다.이 와중에 정영삼이 금쪽같은 자유투 2개를 꽂아넣어 숨통을 열었다.다시 3점차 앞선 종료 1.1초 전 서장훈은 브라이언 던스톤(20점)이 공을 잡자마자 지능적인 반칙으로 모비스 분위기를 끊었다. 부산에선 삼성이 테렌스 레더(37점),애런 헤인즈(21점)를 앞세워 KTF를 83-76으로 꺾고 6연패 뒤 6연승을 달렸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하종현 미술상에 양만기씨 등

    제8회 하종현 미술상의 작가상 수상자로 작가 양만기(44·덕성여대 교수) 씨가,신설된 평론가상에는 윤진섭(53·호남대 교수)씨가 각각 선정됐다고 이 미술상 운영위원회가 21일 밝혔다. 양씨는 서양화에서 출발해 디지털미디어,컴퓨터,영상,애니메이션,홀로그램,레이저아트,사운드아트 등 폭넓은 장르를 넘나들며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해온 작가로,그의 작품은 미국 시카고미술관, 분당 SK센터, 홍콩 차이나모바일 사옥, 일본 도쿄 캐논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윤씨는 국제미술평론가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등 미술 평론계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있으면서도 2000년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 등 직접 전시까지 기획해온 평론가다. 하종현 미술상은 원로 화가인 하종현(73) 화백이 홍대를 퇴임하면서 받은 퇴직금 등 사재를 출연해 만든 상으로, 그동안 재불화가 이영배,화가 최인선,멀티미디어 작가 김영진,작가 고낙범,화가 권여현, 재미작가 조숙진,사진작가 김아타 등이 수상했다.상금은 작가 1000만원,평론가 500만원이다.
  • 서장훈 “전주팬께 죄송… 조용히 최선을 다할 것”

    19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서장훈(사진 오른쪽·34·전자랜드)의 얼굴은 극도로 초췌했다.수십여명의 취재진과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놀란 그는 “이렇게 많이… 너무 많이 오셨네요.”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서장훈은 “소란스럽게 한 것 같아 KCC 구단과 단장님,감독님,동료 선수들,전주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그러나 이렇게 됐기 때문에 전자랜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이어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새롭게 의욕이 넘친다든가.’‘얼마큼 성적을 내겠다든가.’ 여러 말을 하는 것은 KCC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앞으로 조용히 최선을 다하는 길뿐이라고 생각한다.”며 말을 아꼈다.서장훈은 “KCC에서 나름 잘 지내 왔고 지난 시즌 정규리그 2위도 했다.”면서 “처음엔 (하)승진이와 상생할 수 있을 거라 했는데 현실에선 어려워진 부분이 있었다.역할이 줄어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결국 이렇게 된 것 같다.하지만 알려진 것처럼 불화는없었다.”고 주장했다.부친 서기춘씨가 ‘트레이드가 안 되면 은퇴를 불사하겠다.’고 말한 보도에 대해 “저희 아버님의 인터뷰가 기사화된 게 유감이다.자식 가진 부모가 속이 상해 격앙된 상태에서 얘기하신 걸로 이해해 달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프로농구] 서장훈 결국 최희암 품으로

    [프로농구] 서장훈 결국 최희암 품으로

    허재(43) KCC 감독과 서장훈(34)이 끝내 결별했다.갈등설이 걷잡을 수없이 확산되면서 팀 분위기가 극도로 나빠진 상황에서 KCC 수뇌부가 어설픈 봉합보다는 새 출발을 선택한 셈.KCC와 전자랜드는 19일 “서장훈,김태환(이상 KCC)과 강병현,조우현,정선규(이상 전자랜드)의 2대3 트레이드를 실시한다.”며 ‘빅딜’을 발표했다.공교롭게도 서장훈은 졸업 10년 만에 연세대 은사인 최희암 감독의 품으로,강병현 조우현은 중앙대 선배인 허재 감독 밑으로 옮겼다. KCC는 ‘앓던 이’ 서장훈을 뽑아내는 한편 국가대표 출신 장신 가드 강병현(23·193㎝)을 영입,아킬레스건인 가드 라인을 보완하게 됐다.루키 강병현은 최 감독의 농구 색깔과 맞지 않아 프로 적응이 다소 더뎠다.평균 25분여를 뛰면서 평균 6.5점 2.7어시스트.하지만 경험만 쌓는다면 하승진과 더불어 팀의 ‘동량’이 되기에 충분하다.슈팅가드 정선규(28)도 중장거리포를 갖춰 3점슛 꼴찌(평균 5.2개) KCC에서 요긴하게 쓰일 터.KCC로선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셈. 허 감독은 “장훈이가 출전시간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구단이나 나와 불화는 없었다.언론이나 주변에서 몰고 간 측면이 있다.하지만 본인의 뜻이 분명한 이상 끄는 것보다 빨리 수습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최형길 단장도 “장훈이는 10분 정도 뛸 바엔 아예 농구를 안 하겠다는 선수다.다독여서 안고 갈 상황이 아니었다.”고 거들었다. 반면 전자랜드의 선택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다.“강병현과 정영삼은 트레이드 불가”라던 입장을 뒤집은 데 대해 팬들의 원성이 쏟아졌다.구단 홈페이지는 트레이드 발표 뒤 ‘먹통’이 됐다.여전히 톱클래스인 서장훈을 영입한다면 당장 골밑 수비와 득점력은 확실히 보강될 것이다.하지만 우승 전력이 아닌 상황에서 팀의 미래를 내보낸 것은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전자랜드는 올초에도 2006년 드래프트 1번 전정규(오리온스)를 트레이드 카드로 썼다.전자랜드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최 감독이 올시즌 성적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감독은 “(기다려야 하는) 어음을 (당장 쓸 수 있는) 현찰과 바꾼 것으로 이해해 달라.몸 관리만 잘한다면 3~4년은 충분히 뛸 수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또 “명문팀이 되려면 명품 선수가 필요하며 그만한 대가(강병현)는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KCC 6연패… 8위 추락 ‘빅딜’을 단행한 두 팀은 이날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맞붙었다.트레이드에 포함된 5명은 선수 등록이 이뤄지지 않아 이전 팀에 소속된 어정쩡한 상황.두 팀은 이들을 엔트리에서 제외하기로 사전에 합의했다.결국 김성철(23점·3점슛 5개)을 앞세운 전자랜드의 79-73 승리.6연패에 빠진 KCC는 8위까지 추락했다.삼성은 대구 원정에서 오리온스를 93-84로 꺾고 4연승을 달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프로농구] 펄펄 난 김성철, 오리온스 3연승 저지

    [프로농구] 펄펄 난 김성철, 오리온스 3연승 저지

    김성철이 날았다.전자랜드는 그를 앞세워 오리온스의 3연승을 저지했다.국보급 센터 서장훈이 빠진 KCC는 5연패 수렁에 빠졌다. 전자랜드는 17일 인천에서 열린 2008~09 프로농구 3라운드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김성철(20점)의 활약에 힘입어 74-69로 승리했다.전자랜드(9승 11패)는 KCC,삼성과 함께 공동 6위에 올랐다. 1쿼터를 25-22로 마친 전자랜드는 2쿼터 초반 주태수를 투입해 주득점원 리카르도 포웰의 체력을 아꼈다. 반면 오리온스는 발 빠른 신인 가드 정재홍,높이를 자랑하는 이동준과 ‘피터팬’ 김병철을 내세워 반전을 노렸지만 크리스 다니엘스와 이동준의 연속 턴오버로 주도권을 전자랜드에 넘겼고,전자랜드는 이 틈을 타 정병국-도널드 리틀-김성철의 연속 득점으로 맞섰다.도널드 리틀도 전반 12득점으로 제 몫을 다한 덕분에 전자랜드는 2쿼터를 44-35로 앞선 채 마쳤다.김성철은 2쿼터에서만 3점슛 2개를 포함,13득점을 올리며 팀을 이끌었다. 3쿼터 들어 전자랜드는 2쿼터에서 쉬었던 리카르도 포웰을 투입했고,오리온스도 1쿼터에서 3개의 반칙을 쏟은 주전 포인트 가드 김승현을 내세워 역전을 모색했다.3쿼터에서 58-50,8점차 맹추격을 당한 전자랜드는 4쿼터 종료 4분 29초 전 오리온스 크리스 다니엘스의 릴레이 골로 66-62까지 쫓겼지만 2분 39초를 남기고 터진 포웰의 3점포로 72-64까지 간격을 넓혔다. 하지만 오리온스가 오용준의 3점포와 김승현의 속공으로 69-72까지 추격하며 승부는 안갯속으로 빠지는 듯했다. 전자랜드는 종료 24.6초 전 돌파를 시도하던 정병국의 트래블링으로 3점슛 하나면 연장전까지 내몰릴 급박한 상황을 맞았다.이 와중에 원샷 플레이를 위해 지공을 펼친 오리온스의 김승현이 9.3초 전 루즈볼 반칙으로 기회를 물거품으로 돌리고 말았다. 한편 최형길 KCC 단장은 “서장훈이 감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지만 몸 관리가 철저하기로 소문난 그가 올 시즌 처음으로 코트에 나타나지 않아 허재 감독과의 불화설을 키웠다.이런 가운데 KCC는 안양 원정경기에서 KT&G에 82-88로 무릎을 꿇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세계 최고의 부자 워런 버핏의 손녀가 살아가는 방법

    세계 최고의 부자 워런 버핏의 손녀가 살아가는 방법

     그 흔한 케이블TV도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이 연 4만달러 수입으로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나가는 32세 노처녀 화가.물론 미국에서 그 나이에 그 정도 수입이면 적지도 많지도 않지만 할아버지 이름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할아버지는 세계 최고의 주식 부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미국의 패션잡지 마리 클레르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허름한 주택에서 히피처럼 살아가는 니콜 버핏의 삶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니콜은 “사람들이 제 성을 듣고는 맨먼저 떠올리는 것이 돈”이라며 웃었다.  ●한때는 버핏 부부의 사랑 받던 양손녀  사실 니콜은 버핏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양손녀.네 살 때 싱어송라이터였던 엄마가 버핏의 막내아들로 광고음악 제작자였던 피터와 결혼하는 바람에 일란성 쌍둥이 동생과 함께 버핏 가문에 들어갔다.버핏의 첫 아내로 2004년 작고한 수전이 특히 니콜을 예뻐했다.수전은 니콜의 초기 작품을 구입해준 것은 물론,유언장에 니콜에 대해 “사랑스러운 내 손녀”라고 썼다.수전 역시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으며 카바레 연출자였다.니콜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안이 예술가들로 가득한 것을 잘 모르지요.”라고 말했다.  니콜은 어렸을 때 버핏이 1958년 3만 1500달러에 구입해 지금도 살고 있는 오마하의 검소한 자택에 정기적으로 들렀다.다섯 살 크리스마스때 버핏은 지갑에서 빳빳한 100달러 지폐를 집어 니콜에게 주기도 했다.버핏이 소유한 과자공장을 귀빈 자격으로 찾기도 했고 아빠 피터는 1년에 두 차례 라구나 해변에 있는 버핏의 별장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가 지냈다.  니콜이 어느날 서재에 살금살금 들어가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는 할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다 넘어지자 버핏이 침을 꿀꺽 삼키고 “니콜,할머니와 내가 네 예술적 성취에 대해 무척 자랑스러워 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해.”라고 말했던 것을 니콜은 또렷이 기억했다.니콜은 “할아버지와 그런 식으로 정감있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진짜 큰 맘 먹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열일곱 살이 됐을 때 할아버지 기사가 언론에 큼지막하게 나오기 시작했다.급우들은 할아버지가 대문짝만 하게 나온 신문 지면을 니콜에게 들이밀었다.니콜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가 ‘그래,할아버지는 점점 더 언론에 자주 나올거야.우린 익숙해져야 해.하지만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 것이고 늘 해온 대로 살거야.”라고 말했다고 돌아봤다.  버핏은 손자 손녀들에게 대학 교육 비용은 지불했다.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하루는 니콜이 할아버지 사무실에 캠퍼스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할 비용을 대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돌아온 비서의 답은 “규칙이 뭔지 잘 알지 않느냐.학교에 내는 돈까지만이다.”는 것이었다.  4년 전 수전이 작고한 뒤 버핏은 해마다 연 크리스마스 파티에 갑자기 산타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선물한 산타 모자를 쓴 채였다.모두들 엉뚱한 버핏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다.니콜은 연휴가 끝난 뒤 할아버지 품에 뛰어들었다.그는 “우린 그렇게 정겹게 어울리는 가족이 아니다.하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하자 가족들은 모두 조금 놀란 듯했다.”고 말한 뒤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그런데 할아버지가 날 꼭 껴안아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가족 얘기 털어놨다가 할아버지와 의절  포옹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2년 전 미국의 빈부격차 문제를 심도있게 다룬 제이미 존슨 감독의 다큐멘터리 ‘1 퍼센트’에 니콜이 등장하면서 할아버지와 의절하고 말았다.존슨 감독은 유명한 존슨&존슨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다큐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족과 가난한 가족의 생활상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2006년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 1위를 차지했다.  그 전까지 버핏 가문에서 니콜만큼 공개적으로 할아버지와 가문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 이는 없었다. 니콜은 당시 “할아버지는 매우 내밀한 사람이다.난 그의 손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로 결심했지만 그건 결국 할아버지가 나와 동생과 의절할 정도로 큰 불화를 불러왔다”고 말했었다.  니콜은 왜 의절했는지 묻는 편지를 버핏에게 보낸 결과 “(양손녀들을) 한번도 진짜 가족 구성원으로 여긴 적이 없으며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입양한 바 없다.”는 내용이 담긴 답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당시 1년 전만 해도 편지 끄트머리에 ‘할아버지가’라고 썼던 버핏은 이때는 ‘워런이’라고 썼다.  사실 니콜이나 여동생은 피터가 1993년 이혼했고 엄마는 3년 뒤 다른 남자와 재혼했기 때문에 버핏의 재산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현재 니콜은 작품당 8000달러 정도 팔리는 작업으로만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 샌프란시스코의 한 부티크에서 부업을 하고 있다.그의 작품은 유명한 영화배우 셜리 템플의 딸인 로리 블랙과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거장 스코트 로스가 주로 구입해주고 있다.할아버지의 명성과 이미지가 자신의 예술가 입지를 그나마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란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그는 작품을 미완성인 채로 햇볕에 내놓아 물감이 변해 작품도 변하게 하는 독특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난 늘 그랬듯이 자주적이 될 것 같다.”고 말한 니콜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그게 할아버지가 내게 가르친 것이고 이제 내 인생의 기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최고 부자’ 워런 버핏 손녀가 살아가는 방법

    그 흔한 케이블TV도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이 연 4만달러 수입으로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나가는 32세 노처녀 화가. 물론 미국에서 그 나이에 그 정도 수입이면 적지도 많지도 않지만 할아버지 이름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할아버지는 세계 최고의 주식 부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미국의 패션잡지 마리 클레르는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허름한 주택에서 히피처럼 살아가는 니콜 버핏의 삶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니콜은 “사람들이 제 성을 듣고는 맨먼저 떠올리는 것이 돈”이라며 웃었다.  ●한때는 버핏 부부의 사랑 받던 양손녀  사실 니콜은 버핏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양손녀.네 살 때 싱어송라이터였던 엄마가 버핏의 막내아들로 광고음악 제작자였던 피터와 결혼하는 바람에 일란성 쌍둥이 동생과 함께 버핏 가문에 들어갔다. 버핏의 첫 아내로 2004년 작고한 수전이 특히 니콜을 예뻐했다.수전은 니콜의 초기 작품을 구입해준 것은 물론,유언장에 니콜에 대해 “사랑스러운 내 손녀”라고 썼다.수전 역시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으며 카바레 연출자였다.니콜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안이 예술가들로 가득한 것을 잘 모르지요.”라고 말했다.  니콜은 어렸을 때 버핏이 1958년 3만 1500달러에 구입해 지금도 살고 있는 오마하의 검소한 자택에 정기적으로 들렀다. 다섯 살 크리스마스때 버핏은 지갑에서 빳빳한 100달러 지폐를 집어 니콜에게 주기도 했다. 버핏이 소유한 과자공장을 귀빈 자격으로 찾기도 했고 아빠 피터는 1년에 두 차례 라구나 해변에 있는 버핏의 별장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가 지냈다.  니콜이 어느날 서재에 살금살금 들어가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는 할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다 넘어지자 버핏이 침을 꿀꺽 삼키고 “니콜,할머니와 내가 네 예술적 성취에 대해 무척 자랑스러워 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해.”라고 말했던 것을 니콜은 또렷이 기억했다. 니콜은 “할아버지와 그런 식으로 정감있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진짜 큰 맘 먹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열일곱 살이 됐을 때 할아버지 기사가 언론에 큼지막하게 나오기 시작했다.급우들은 할아버지가 대문짝만 하게 나온 신문 지면을 니콜에게 들이밀었다.니콜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가 ‘그래,할아버지는 점점 더 언론에 자주 나올거야.우린 익숙해져야 해.하지만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 것이고 늘 해온 대로 살거야.”라고 말했다고 돌아봤다.  버핏은 손자 손녀들에게 대학 교육 비용은 지불했다.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하루는 니콜이 할아버지 사무실에 캠퍼스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할 비용을 대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돌아온 비서의 답은 “규칙이 뭔지 잘 알지 않느냐.학교에 내는 돈까지만이다.”는 것이었다.  4년 전 수전이 작고한 뒤 버핏은 해마다 연 크리스마스 파티에 갑자기 산타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선물한 산타 모자를 쓴 채였다.모두들 엉뚱한 버핏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다. 니콜은 연휴가 끝난 뒤 할아버지 품에 뛰어들었다.그는 “우린 그렇게 정겹게 어울리는 가족이 아니다.하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하자 가족들은 모두 조금 놀란 듯했다.”고 말한 뒤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그런데 할아버지가 날 꼭 껴안아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가족 얘기 털어놨다가 할아버지와 의절  포옹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2년 전 미국의 빈부격차 문제를 심도있게 다룬 제이미 존슨 감독의 다큐멘터리 ‘1 퍼센트’에 니콜이 등장하면서 할아버지와 의절하고 말았다.존슨 감독은 유명한 존슨&존슨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다큐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족과 가난한 가족의 생활상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2006년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 1위를 차지했다.  그 전까지 버핏 가문에서 니콜만큼 공개적으로 할아버지와 가문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 이는 없었다. 니콜은 당시 “할아버지는 매우 내밀한 사람이다.난 그의 손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로 결심했지만 그건 결국 할아버지가 나와 동생과 의절할 정도로 큰 불화를 불러왔다”고 말했었다.  니콜은 왜 의절했는지 묻는 편지를 버핏에게 보낸 결과 “(양손녀들을) 한번도 진짜 가족 구성원으로 여긴 적이 없으며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입양한 바 없다.”는 내용이 담긴 답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당시 1년 전만 해도 편지 끄트머리에 ‘할아버지가’라고 썼던 버핏은 이때는 ‘워런이’라고 썼다.  사실 니콜이나 여동생은 피터가 1993년 이혼했고 엄마는 3년 뒤 다른 남자와 재혼했기 때문에 버핏의 재산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현재 니콜은 작품당 8000달러 정도 팔리는 작업으로만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 샌프란시스코의 한 부티크에서 부업을 하고 있다.그의 작품은 유명한 영화배우 셜리 템플의 딸인 로리 블랙과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거장 스코트 로스가 주로 구입해주고 있다. 할아버지의 명성과 이미지가 자신의 예술가 입지를 그나마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란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그는 작품을 미완성인 채로 햇볕에 내놓아 물감이 변해 작품도 변하게 하는 독특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난 늘 그랬듯이 자주적이 될 것 같다.”고 말한 니콜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그게 할아버지가 내게 가르친 것이고 이제 내 인생의 기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현희-신동진 끝내 파경

    노현희-신동진 끝내 파경

    탤런트 노현희(37)와 아나운서 신동진(40) 부부가 결혼 6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고 스포츠조선이 17일 보도했다.  스포츠조선은 이들 부부의 측근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미 한 두달 전부터 구체적인 이혼시기를 놓고 고심해왔으며 최근 각자의 변호사를 선임한 뒤 이혼에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측근은 16일 밤 스포츠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부부 사이에 여러가지 얘기가 나왔지만 그런대로 잘 지내왔다.”면서 “그러나 가까운 주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혼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조만간 법률대리인을 통해 이혼조정을 법원에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현희는 지난 4월 SBS ‘김미화의 U’에 출연해 “결혼할 때도 사실 불화설은 있었다. 살면서 누구나 작은 다툼은 있게 마련이고, 우리 부부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혼할 정도는 아니다.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으니 예쁘게 지켜봐달라.”며 당부한 바 있다. 노현희는 또 자신의 성형수술 사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시인해 눈길을 끌었다.  한성대 무용과 출신의 노현희는 1992년 KBS 14기 탤런트로 데뷔한 뒤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다모’ ‘회전목마’ ‘장미의 전쟁’ 등에 출연했다. 또 SBS ‘도전 1000곡’의 총결산편에서 쟁쟁한 가수들을 모두 제치고 ‘황제’로 등극한데 이어 뮤지컬, 연극무대에 서며 다재다능한 끼를 자랑해온 재주꾼이다.  1996년 MBC에 입사한 신동진 아나운서는 ‘아침이 좋다’ ‘스포츠 뉴스’ ‘섹션 TV’ 등을 거쳐 현재 일요일 낮 뉴스와 ‘행복충전 내일은 맑음’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1일 제20회 한국어문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장동건은 박중훈쇼 아닌 무릎팍 출연했어야”  서태지 공연장 찾은 40대들 ‘오빠’가 아니라 ‘태지’  애니스턴 넥타이만 매고 누드화보 찍어  
  • ‘3인조’ SS501, “팀분열 아닌 ‘성장분열’”

    ‘3인조’ SS501, “팀분열 아닌 ‘성장분열’”

    10대 용어로 ‘간지나는’ 이 그룹, SS501(더블에스오공일). 순정만화에서나 볼법한 키와 외모를 갖춘 SS501은 데뷔와 동시에 ‘꽃미남 그룹’이란 수식어를 꿰차며 소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이상 ‘비디오형 그룹’으로 기억되길 원치 않는다. 2008년 12월, ‘데뷔 4년차’에 이른 SS501이 ‘성장 분열’을 택했다. 정확히 말하지면, ‘팀 분열’이 아닌 ‘성장을 위한 분열’이다. 기존 5인조에서 3인조(김형준, 김규종, 허영생)로 탈바꿈한 SS501은 아이돌 그룹에서 ‘아티스트’로 변모하고 있었다. 지난 11월 말 한층 음악성을 높인 스페셜 앨범 타이틀 곡 ‘유 아 맨(U r Man)’을 발표한 ‘3인조 SS501’은 무서운 기세로 차트권에 진입, 연말 가요계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잠시 무대를 떠난 김현중과 박정민은 오랜 꿈이었던 연기에 날개를 달았다. 리더 김현중은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박정민은 뮤지컬 ‘그리스’에 도전하며 자신 안에 잠재된 또 다른 재능 캐내기에 여념이 없다. 불화설에 휩싸인 ‘3인조 SS501’의 진실, 그들에게 직접 SS501이 ‘분열 해야만 했던’ 이유를 허심탄회하게 들었다. ◇ 웬 불화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SS501이 컴백했다. 그런데 3인조다.’는 뉴스을 접한 대중들은 ‘불화설’을 제일 먼저 떠올리더라.”는 기자의 말에 SS501은 웃음을 머금었다. 질문은 무거워도 대답은 가벼웠다. “에잇, 벌써 5-6년이나 붙어 있었잖아요. 지긋지긋해~(웃음). 좀 떨어져 지내고 해야 애틋함도 생기죠. 효과요? 벌써 있어요! 컴백 무대 후 쪼르르 달려와 다 같이 축하 자리도 갖고, 정민이 뮤지컬 ‘그리스’ 응원도 가고…. 참, 현중 형도 드라마 촬영 전, 몰래 와서 공연 보고 갔다던대요! (형준)” 사실 SS501은 데뷔 때부터 ‘멀티그룹’을 지향하겠다고 밝혔던 바 있다. 워낙 색깔이 다른 다섯 재능꾼을 모아두고 나니 ‘한 방향’이 잡히지 않았던 것은 당연지사. 소속사 매니저는 “달라도 너무 달라 갈피가 잡히지 않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다면 같은 듯 다른 이 다섯 남자들은 어떻게 모이게 된걸까. SS501 탄생 배경에는 놀랄만한 에피소드가 숨어 있었다. 바로 소속사 측이 ‘순정 만화 주인공’ 다섯 캐릭터를 선정하고 이에 딱 맞는 인물들을 찾아냈다는 것.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렇게 들었어요. 소속사 이사님이 평소 염두하고 있던 독특한 만화 주인공 5명을 그대로 옮긴 듯한 그룹을 만들고 싶으셨대요. 그래서 길쭉한 키도 비슷하고 이미지도 닮았나봐요.(웃음) 그런데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격도, 개성과 재능도 모두 달라요. (규종)” ◇ 다툼? 4년간 딱 한번.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가진 덕에 ‘융합’은 쉽고 ‘갈등’은 없었다. ‘툭 터 놓고 말해서 4년간 몇 회 정도의 다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SS501은 이구동성 “딱 한번!”을 외쳤다. ”태국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김)현중 형이 지각해서 스케줄이 어긋날 뻔한 적이 있었어요. 평소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박)정민이가 ‘다음부터 늦지 말자’고 얘기했는데, 사정이 있었던 현중 형은 마음이 상했던 거죠. 화해요? 몇 시간도 못가요~. 벤에 올라타서 다시 배시시 웃고…. 으이그, 줏대 없는 사람들! (규종)” 뮤지컬 ‘그리스’ 공연으로 바쁜 박정민은 SS501의 돈독한 우정이 지금껏 금가지 않는 이유를 ‘겹치지 않는 캐릭터’에서 찾았다. “팀원들의 캐릭터가 겹치면 팀 전체로서는 뒤쳐지는 결과를 불러와요. 한 명쯤 빼도 상관없겠다, 혹은 팀 내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방황하게 되는 거죠.” “SS501은 이게 강점이에요. 다르기 때문에 한사람 한사람이 중요하고, 그래서 단 한명도 뺄 수가 없어요. 제일 좋은 점은 서로 질리지 않는다는 점예요. 말은 맨날 ‘지긋지긋 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스킨쉽도 마다하지 않더라고요. 팬들 오해할라…!(웃음) (정민)” ◇ ‘SS501’로 영원히, 소중한 ‘우리 이름’ 바꿀수 없죠! ‘3인조’지만 팀명은 그대로 쭉 ‘SS501’로 간다. 프로젝트 그룹 발표 당시 ‘3명’이란 변화에 초점을 맞춰 ‘트리플 에스’라는 활동명이 물망에 올랐지만, 김형준, 김규종, 허영생은 ‘SS501’이란 이름을 고수키로 결정했다. 멤버들과의 대화 중 모두가 ‘SS501’이란 팀명에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멤버 허영생은 그 이유를 ‘SS501’이란 팀명의 어원에서 부터 풀어냈다. “SS501은 다섯 멤버의 소중한 약속을 지니고 있어요. Super Star(수퍼 스타)가 될 때까지 ‘5’명이서 ‘0’영원히 ‘1’하나가 되자는 뜻이에요. 즉, ‘다섯이서 끝까지 함께 가자!’는 맹세를 담고 있죠. (영생)” “‘트리플에스’란 이름에 팬 여러분의 아쉬움이 컸어요. 기존 팀명의 속 뜻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죠. 행여 그 약속이 깨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셨나봐요. 사실 저희도 내심 속상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잠시 따로 활동할 뿐이지, 우리 이름은 우리가 가져 갈겁니다. (규종)” 새 타이틀곡 ‘유 아 맨(U r Man)’의 첫 방송 무대를 지켜 본 나머지 두 멤버(김현중, 박정민)의 반응이 궁금했다. 멤버들은 “바쁜 척,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컬러링까지 ‘유 아 맨’으로 해뒀더라.”고 너스레를 떨며 밝게 웃었다. “현중 형도, 정민이도 서로 자기 빠지니까 안될 줄 알았대요~.(웃음) 방송 후 전화가 왔어요. 함성 소리가 2배는 큰 것 같다고 부러워하면서도, 자기네 현장도 국내 팬들에 일본 팬들까지 초반 러시(Rush)가 장난이 아니라고 막 자랑하던대요! (형준)” SS501이 꿈꾸는 미래의 청사진에는 가깝게나 멀게나 늘 ‘다섯 명’이 함께 있었다. “10년차 그룹 신화 선배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희가 그리는 밑그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10년, 20년이 지나도 다섯 명 모두가 가치있게 기억되는 그룹 SS501로 남고 싶어요. 저희 노래 ‘유 아 맨(U r Man)’의 노랫말처럼 영원히 ‘팬 여러분의 SS501’이 되겠습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 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문화마당] 아직 휴대전화가 없다/구효서 소설가

    [문화마당] 아직 휴대전화가 없다/구효서 소설가

    어쩌면 앞으로도 휴대전화를 장만하지 않을지 모른다.휴대전화에 대한 특별한 사연은 없다.처음부터 휴대용 수신 장치 같은 걸 갖지 않았었다.삐삐라는 것도 쓴 적이 없다.별로 불편한 걸 모른다.남들이 많이 불편해할 뿐이다.이기적이다,결례다,오만하다는 말을 듣는다. 정말 그들에게 심려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원망이 너무 심해서 예의상 하나 구입할까 생각 중이기도 하다.시내의 공중전화기가 갈수록 줄어들기도 하고.그러나 선뜻 구입할 맘을 내지 못한다. 일종의 두려움 때문이다.전화라는 걸 처음 걸어본 게 중학교 2학년 때였다.집에 전화기를 들여놨던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그동안은 공중전화기를 썼다.돈을 넣고 수화기를 드는 건지,수화기를 들고 돈을 넣는 건지,매번 헷갈렸다. 전화벨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전화벨 소리를 들으면 설렌다는 어떤 이의 말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전화벨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려 얼른 수화기를 들지 못했다.여섯 번 일곱 번이 울리고 나서야 겨우 모기만한 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걸거나 받는 일은 노이로제를 불러왔다.작업실 전화요금이 아직도 1만원을 넘지 않는다.이메일도 서너 줄을 넘지 않는다.컴퓨터의 용도는 거의 문서작성에 한정돼 있다.소통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혼자 글을 읽고 글을 쓰고,나머지 시간을 공상으로 때우는 직업을 택한 것도 그래서일까. 바깥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소통을 하려면 노이로제 증상부터 앓는 것.이미 오래 되어서 그러려니 하지만 아직도 휴대전화는 없고,누구에겐가 먼저 전화를 거는 일도 없다. 이왕 이리 된 것,이제 와 고칠 수도 없을 것 같으니 맘이라도 편하게 갖고 싶다.이 자리를 빌려 변명하고 싶다.세상과 소통할 때 생기는 불편증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며,정도 차이는 있을망정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불편증상이란 어쩌면 저 복잡한 세상을 평생 대면하고 살아야 하는 인간 개체의 자기유지본능일 수도 있겠다는 것.세상이란,그런 개체들끼리의 다단한 교류가 만들어내는 사회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 ‘세상’은 갈수록 험악해지고,전쟁이 일어나고,거대한 자본들이 결합하면서 인격화되어,이제 개체는 스스로를 조절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세상’에 박탈당하고,마침내는 ‘세상’에 그 모든 것을 위탁하기에 이른 것은 아닐까. 맡겨버리면 편안해지니까.세상과 어떻게 대면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회사나 국가가 알아서 다 해준다.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몇 호선 전철을 타야 하는지,하루에 몇 시간을 어떻게 일해야 하며,누굴 만나야 하며,받는 월급으로 무슨 물건들을 사고 어떤 영화를 봐야 하는지.신문,텔레비전,인터넷이 내밀한 사적 충동까지 알아서 조정해 준다. MP3,PMP,휴대전화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 밀착 동행 지시하며 개성을 압류한다.사무실에서도 길에서도 전철에서도 한시도 ‘친절 서비스’에서 눈과 귀를 떼지 않는다.맡기고 의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하면 노이로제는 날아간다.불필요하게 자기의 양심과 내면과 신념 따위와 싸우지 않아도 된다.결례를 무릅쓰고 좀 끔찍한 표현을 쓰자면,그럴 경우 개체들은 돈의 숙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과 끝내 불화하며 거기에서 이는 스파크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돈이 잘도 피해가는 이유를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그렇다고 그것밖에는 달리 할 일도 없는 걸 보면 약간 운명이란 느낌도 든다.불편증상에서 벗어나 모든 걸 무언가에 몽땅 기댄 채 편하게 살고 싶지만,아직 휴대전화가 없다. 구효서 소설가
  • ‘넉넉한 노숙’… 재활의지 감감

    ‘넉넉한 노숙’… 재활의지 감감

    경기불황 등의 여파로 노숙자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정부의 공식 통계치는 거리나 상담센터 등에 기거하는 4484명(8월말 현재)에 불과하지만 생활이 쪼들리면서 기초생활수급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는 예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이에 따라 서울신문은 전국 최대의 노숙자 밀집지역인 영등포 일대를 대상으로 노숙자들과 함께 이들의 생활실태,빈곤의 악순환 구조 등을 소개하고 최근 발아한 ‘풀뿌리 빈곤운동’ 등 대안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싣는다.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이병민(35·가명)씨와 정민호(52·가명)씨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7일까지 취재진을 서울 영등포 노숙자 밀집지역으로 초대했다.이들과 함께 한 영등포 지역은 의식주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맘만 먹으면 하루에 여덟 끼도 먹을 수 있었고,교회를 돌면서 예배를 보고 ‘구제금’을 받아 하루 3만원도 벌 수 있었다.이들은 “가장 티가 나는 게 의식주 지원이어서 중복되는 것 같다.”면서 “이런 지원도 고맙지만 지나치면 노숙자들이 스스로 ‘노숙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역효과도 있는 만큼 자활의지를 키워 주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해가 뜨기 전인 오전 6시 이병민씨는 노숙인 상담센터인 햇살보금자리를 나섰다.그가 간 곳은 인근의 한 PC방.7시30분쯤에는 근처 G교회로 가서 아침을 먹었고,다시 PC방으로 돌아왔다.이씨는 11시30분쯤 “경마를 하러 가야 하니 빨리 점심을 먹자.”며 취재진을 G교회로 데려 갔다.메뉴는 시래기국,김치,깻잎무침,꽁치조림.이씨는 “고기가 자주 나와 인기가 많은 곳인데 오늘은 고기 대신에 꽁치가 나왔다.”면서 “무료급식소가 50여곳은 된다.”고 귀띔했다.  이씨에 따르면 노숙인들은 단골 급식시설의 반찬이 부실할 경우 중구의 구세군이나 종로구의 종로교회로 원정을 간다.급식 자체가 지겨워지면 보통 6명씩 짝을 지어 예식장에 가서 뷔페를 먹기도 한다.이씨는 “하루에 여덟 끼 먹고 간식도 챙겨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오후 6시 저녁을 먹기 위해 노숙인 상담센터로 돌아왔다.그리고 저녁 7시 다시 PC방으로 향했다.겨울이 다가오지만 추위 걱정은 없다.올해도 이미 두 곳의 교회에서 오리털점퍼를 지급했고,앞으로도 세곳 이상에서 점퍼를 받을 예정이다.노숙자 센터나 시설에서도 세 달에 한 번씩 점퍼가 지급된다.대부분의 노숙자들은 세곳 이상의 센터나 시설에 이름이 올라 있다.이씨는 “점퍼를 많이 받아 놓으면 짐만 되기 때문에 입을 것을 제외하고는 시장에 5000원씩 내다 판다.”고 말했다.  몇천원만 있어도 PC방이나 사우나 등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자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돈이 떨어지면 센터나 시설로 들어가면 된다.이씨는 “의식주가 해결되니까 일할 능력이 있어도 안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생활비가 안 들어가니 막노동으로 하루만 일해도 1주일간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민호씨는 지난 7일 취재진에게 ‘짤짤이’라고 불리는 교회 구제금을 받는 방법을 얘기해 줬다.구제금은 노숙자들이 예배를 보면 교회에서 1인당 500~2000원의 현금을 주는 것을 말한다.아침 7시30분 정씨는 ‘목동 코스’를 골랐다.코스는 요일마다 다양하다.화요일과 금요일은 주로 ‘서대문 코스’를 가는데 구제금을 주는 교회가 20곳이나 몰려 있다.수요일은 교회 4곳을 돌면 3000원을 벌 수 있는 ‘청량리코스’를,토요일에는 5000원을 벌 수 있는 ‘수원 코스’를,일요일에는 목동 코스를 주로 이용한다.정씨는 “일요일에는 5000원을 주는 교회가 있는 ‘일산 코스’도 좀 멀긴 하지만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이들이 전철을 이용할 때는 무임 승차한다.  정씨와 함께 간 목동의 한 교회는 규모가 작았다.예배를 마칠 때쯤 정씨는 500원을 받았다.애초 2000원이었는데 요즘 노숙자들이 몰려들면서 500원으로 줄었다.정씨는 급하게 발길을 옮겼다.10곳은 돌아야 목표액인 1만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정씨는 “운동도 하고 돈도 버는 것”이라면서 “건강에 자신있는 사람들은 하루에 2~3개 코스를 돌아다니며 3만원을 벌기도 한다.”고 말했다.  점심은 구제금 코스 중 하나인 Y교회에서 해결했다.오후 3시 10번째 교회를 마지막으로 정씨의 ‘짤짤이’가 끝났고 7000원을 수중에 쥐었다.그는 곧바로 경마장으로 향했고,얼마 지나지 않아 다 잃었다. 특별취재팀 ■ 노숙·쉼터… 병 나면 기초수급자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 노숙자들은 “거리노숙자·시설노숙자·기초수급자·일용직노동자는 결국 하나로 보면 된다.”고 말한다.기초수급자와 일용직노동자도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지 거리·시설노숙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노숙자 윤세형(54·가명)씨가 대표적인 사례다.그는 보통 노숙자들이 거리에 나서는 ‘3대 동기’인 실직·파산·가정불화 중 파산으로 2006년부터 거리에 나섰다.취재팀이 실시한 설문에도 노숙의 이유를 묻는 문항에서 3대 동기는 87%를 차지했다. 윤씨는 애초 일용직 노동자였다.하지만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월 5~6일은 굶어야 했고 거리를 배회했다.이후 윤씨는 거리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노숙자 상담센터 입소해 시설노숙자로 분류됐다.상담센터는 숙식을 제공하지만 15일 이상 체류할 수 없다.이후에도 건강 등이 나빠지면 쉼터로 보내진다. 몸이 급속도로 나빠진 윤씨는 어쩔 수 없이 올 초 노숙자 쉼터에 입소하게 됐다.윤씨는 “동사무소에 가면 기초수급자가 될 수 있다는데 아직은 움직일 만하다.”고 말했다.노숙자들에게 기초수급은 마지막 단계다.노숙을 하다가 병을 얻거나 알코올중독이 됐을 때는 이 길을 택한다. ●특별취재팀 ▲이경주 장형우 허백윤 이영준기자 kdlrudwn@seoul.co.kr ▲박철수 햇살보금자리 노숙자 상담보호센터 팀장외 노숙자 조사원 15명
  • 美언론 선정 2008 할리우드 최악의 영화는?

    美언론 선정 2008 할리우드 최악의 영화는?

    2008년 한해를 마무리 하는 12월, 유력 일간지들이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감하는 각종 순위들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의 유력일간지 중 하나인 뉴욕 포스트지는 ‘2008년 최악의 영화 탑10’을 발표했다. 10위는 드류 베리모어, 앤디 가르시아의 목소리 연기 ‘금발이 너무해’의 강아지 버전인 ‘비버리힐스 치와와’가 차지했다. 9위에는 “리뷰할 가치를 못느낀다.”는 촌평과 함께 코미디 영화 ‘위틀리스 프로텍션’이, “과연 더이상의 람보 영화가 필요할까”란 의문을 던진 실베스터 스탤론의 ‘람보4’가 그 뒤를 이었다. 이스라엘 최고 첩보원의 미용사가 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좌충우돌 뉴욕 소동을 그린 ‘아담 샌들러표’ 영화 ‘조한’이 7위, 빈 디젤과 감독 마티유 카소비츠 사이의 불화가 낳은 ‘2008년 판 워터월드’가 되었던 영화 ‘바빌론 A.D’가 6위에 올랐다. 5위에는 롤랜드 메머리히 감독의 ‘10,000 BC’로 신문은 “특수효과 잔치 그러나 진실성 부족”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4위에는 카메론 디아즈, 애쉬튼 커처의 로맨틱 코미디 ‘라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일’이, 3위에는 “도대체 다이언 키튼, 케이티 홈즈, 퀸 라티파를 가지고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촌평과 함께 ‘매드 머니’가 이름을 올렸다. 2위는 패리스 힐튼 주연의 ‘더 하티 앤 더 노티’로 뉴욕 포스트지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볼 가치조차 없는 영화, 흥행 성적 160만불 조차 감사해야할 영화”란 촌평을 달아 놓았다. 그렇다면 뉴욕 포스트지가 선정한 2008 최악의 영화 영예(?)의 1위는 무엇일까? 바로 마이크 마이어스 주연의 ‘러브 그루’. 신문은 이 영화에 대해 “그동안 마이크 마이어스가 ‘오스틴 파워’ 등을 통해 올려놓았던 코미디 성공을 망쳐버린 영화”란 촌평과 함께 같이 출연한 제시카 알바와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전설적인 연기력”이라고 풍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객원기자 김태경tvbodaga@hanma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드림걸스’ 제니퍼 허드슨 일가족 살해범은 ‘형부’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허드슨의 형부였던 윌리엄 밸포어(27)가 지난 10월 발생한 허드슨 일가 살해사건 용의자로 지난 2일(한국시간) 긴급 체포됐다. 미국 피플지는 이날 인터넷판을 통해 시카고 경찰 당국이 스테이트빌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밸포어를 체포했으며 현재 정식 기소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제니퍼 허드슨의 언니 줄리아 허드슨의 전 남편인 밸포어는 지난 10월 24일 허드슨의 어머니 다넬과 오빠 제이슨, 그리고 줄리아의 아들, 줄리안 킹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으며 사건 직후 보석위반 혐의로 스테이트빌 교도소에 구금됐다. 지난 7년 동안 살인미수와 차량절도 등 혐의로 여러 차례 교도소에 수감된 바 있는 밸포어는 자동차 할부금 등 문제로 최근까지 허드슨 가족들과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은 사건 원인을 가정불화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제니퍼는 미국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로 데뷔해 2007년 영화 ‘드림걸스’를 통해 오스카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스타로, 10월 발생한 끔찍한 총격 사건으로 엄마와 오빠, 조카를 잃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 온 佛 좌파 철학자 랑시에르

    한국 온 佛 좌파 철학자 랑시에르

    프랑스 철학계의 거장 자크 랑시에르(68) 파리 8대학 명예교수가 지난 2일 한국에서 첫 강연을 했다.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의 초청으로 열린 강연에는 최근 국내 학계에서 일고 있는 랑시에르 정치철학과 미학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많은 청중이 몰렸다. 랑시에르는 이 자리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의 한 형태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이며,진정한 정치는 불법 이민자,비정규직 등 주류질서에서 배제된 자들이 스스로 정치주체화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독창적인 정치사상을 설파했다.인권에 대해서도,인류를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구별해 우월적 위치에서 베푸는 인도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모든 인간은 공통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민주주의적 관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랑시에르는 강연 직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에서 불화와 불일치는 필연적”이라고 말했다.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과 이해들이 토론과 타협으로 합의를 이뤄내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만의 동질적인 세계를 구축하려는 방편으로 대화를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주장은 모든 사람들이 보고,생각하고,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즉 진정한 민주주의는,권리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불화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경계를 뛰어넘어 실질적인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랑시에르는 다만 대의제 민주주의는 모순적인 개념이긴 하나 권력을 직접 갖지 못한 사람들의 운동이 축적된 결과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지닌 공통의 능력이란 무엇일까.랑시에르는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전제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개념”이라고 피력했다.“인간의 능력이 불평등하다면 명령자의 요구를 피명령자들이 알아듣지 못해야 맞는데 그렇지 않다.이는 명령하는 사람이나 명령을 따르는 사람 모두 동일한 능력을 지녔다는 전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벌거벗은 인간’,즉 권리가 박탈된 인간이란 개념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배제된 자를 위한 타자의 정치는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과 의복을 나눠주는 인도주의 정치에 머물 뿐이라는 것이다.랑시에르는 불법이민자나 비정규직처럼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배제됐던 사람들도 얼마든지 새로운 정치주체로 나설 수 있으며,이들의 투쟁에 동참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대해선 “인종주의가 남아 있고,복음주의와 신보수주의 경향이 강한 미국 사회에서 흑인 대통령의 탄생은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하지만 기적(Miracle)을 기대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지난달 30일 서울에 온 랑시에르는 3일 홍익대에서 ‘감성적 전복’을 주제로 강연했고 4·5일엔 중앙대와 서울대에서 각각 ‘현대 세계의 정치적 주체화의 형태들’,‘테러가 뜻하는 것’ 등에 대해 말한다. 글 사진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자크 랑시에르는 1940년 알제리 출신으로 1965년 알티세르,발리바르 등과 함께 ‘자본읽기’를 공동집필한 대표적인 68세대 좌파 철학가다.1970년대 들어 스승인 알티세르를 엘리트주의로 비판하며 독자적인 사유의 길을 걸었다.이후 ‘불화’,‘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역사의 이름들’,‘감성의 분할’ 등 정치철학,미학,역사학 등 다방면에서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시각을 담은 일련의 저작을 발표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국내에도 지금까지 10여권의 저서가 소개됐다.
  • [EPL+] 저니맨 아넬카 도약 날갯짓 ‘저니맨 돌풍’

    역마살(驛馬煞). 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을 말한다. 축구계에도 한 팀에 오래 안주하지 못하고 여러 팀을 전전하며 역마살로 고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을 가리켜 ‘저니맨(journey man)’이라 부른다. 이적이 잦은 것은 그만큼 원하는 팀이 많기 때문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확실히 주전 입지를 굳히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언제 짐을 싸야할 지 모르는 그들의 축구 인생은 그야말로 기구하다. 현대 축구의 대표적인 저니맨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에서 뛰는 니콜라스 아넬카(29·프랑스). 최근 3년간 벌써 3번째 유니폼을 갈아 입었다. 대형 스트라이커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지만 다혈질의 성격으로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일으키는가 하면 들쭉날쭉한 플레이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자주 팀을 옮기다 보니 비등점 부근에서 끓어오르던 그의 기량도 이내 잠잠해지며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그가 달라졌다. 15경기 12골. 2일 현재 당당히 EPL 득점 선두에 올라 있다.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 터키 등을 거친 그가 이번 시즌 득점왕에 오른다면 프로 데뷔 이후 첫 영광이다. 더 이상 그에게 저니맨의 암울한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8개팀 전전하던 아넬카. 도약의 날갯짓 파리 생제르맹(프랑스)→아스널(잉글랜드)→레알 마드리드(스페인)→파리 생제르맹→리버풀→맨체스터 시티(이상 잉글랜드)→페네르바체(터키)→볼턴(잉글랜드)→첼시. 아넬카의 험난한 팀 이적사다. 아스널. 레알 마드리드. 리버풀. 첼시 등 선수라면 한 번 입어보기도 힘든 빅 클럽의 유니폼을 두루 섭렵했다. 13년 동안 8개팀의 선수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적료 총액도 8700만 파운드(약 1795억원)로 세계 최다다. 파리 생제르맹에서 데뷔한 아넬카는 1997년 2월 아스널로 옮겨 두 시즌 동안 23골을 작렬했고. 98~99시즌에는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의회(PFA) 선정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올랐다. 99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 둥지를 틀었지만 훈련 참가 거부로 45일간의 징계를 받았다. 결국 2000년 1월 친정팀 파리 생제르맹으로 돌아간 그는 2001년 시즌 종료까지 단기 임대 조건으로 리버풀로 옮겨 팀이 준우승하는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리버풀로 완전 이적하지 못했고 대신 새로 EPL로 승격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을 선택한다. 맨시티에서는 그의 축구인생 중 가장 긴 3시즌을 뛰며 뿌리를 내리는 듯 했지만 2005년 1월 다시 페네르바체로 떠나 1년간 터키에서 활약하게 된다. 이후 2006년 8월 볼턴과 4년 계약을 맺었고 27골(53경기)을 기록한다. 그리고 올해 1월. 그를 눈여겨 보던 첼시가 1500만 파운드(약 310억원)의 거액을 들여 영입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을 고집하는 ‘스타군단’ 첼시의 일원이 된 아넬카는 지난 시즌 디디에 드록바(30)의 후광에 가려 14경기에서 단 1골을 뽑아내는데 그쳤다.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맨유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도 실축했다. 중앙이 아닌 측면 공격수로 기용되며 팀 적응에 실패했지만 이번 시즌은 다르다. 드록바가 부상으로 빠진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던 중앙 공격수로 뛰며 첼시 선두 질주의 밀알이 됐다. 지난달 1일 선덜랜드전 해트트릭을 포함해 3경기(7골) 연속 2골 이상을 작렬하는 등 절정의 골 감각을 자랑한다. 맨시티 시절인 2003~04시즌 기록한 자신의 단일 시즌 최다 득점기록(25골) 경신도 가능해 보인다. 첼시의 주장 존 테리(28) 역시 “아넬카가 첼시를 이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사건건 동료와 마찰을 일으키던 ‘악동’ 이미지가 더 이상 없다. 이번 시즌 5골(13위)을 기록 중인 애스턴 빌라의 욘 카류(29·노르웨이)도 저니맨의 설움을 곱씹은 선수. 레렝가에서 프로에 입문한 그는 로벤로리(이상 노르웨이). 발렌시아(스페인). AS로마(이탈리아). 베시크타슈(터키). 리옹(프랑스)을 거쳐 7번째팀인 애스턴 빌라에 안착해 기량을 꽃피웠다. 영국 현지언론과 인터뷰에서 “EPL에서 뛰면서 발전했다”며 “체력적으로 향상됐고 그라운드 전체를 누비며 동료와 함께 뛰고 있다. 그것이 나의 달라진 점”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이비세비치를 아시나요?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 순위표 맨 윗자리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 차지하고 있다. 비다드 이비세비치(24·호펜하임). 이번 시즌 경기당 평균 1골이 넘는 골 행진 속에 17골(15경기)로 독보적 득점 1위를 기록 중이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지난 시즌 2부리그에서 승격된 팀도 2일 현재 리그 선두로 고공비행 중이다. 이비세비치는 어린 나이임에도 호펜하임이 벌써 자신의 6번째 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난 그는 2003년 스위스 바셀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지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미국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2004년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했고. 이후 독일 2부리그팀에서 활약하던 그는 유망주를 찾아 헤매던 호펜하임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공격수 루카 토니(31·바이에른 뮌헨)도 거의 매해 팀을 옮기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1994년 이탈리아 3부리그 모데나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올해까지 14년간 9개팀을 돌았다. 긴 무명 시절 끝에 2005년 피오렌티나(67경기 47골)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선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끌었다. 지난 시즌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해 홀로 21골을 몰아치며 우승컵을 안겼다. ◇저니맨의 전설. 앤디 콜 지난 12일 EPL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저니맨 앤디 콜(37)이 굴곡진 축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가 19년간 뛰며 몸 담았던 팀은 무려 12개팀. 2006년 10월 포츠머스에서 골을 작렬하며. 2005년 왓포드에서 은퇴한 레스 퍼디넌드와 함께 EPL 사상 가장 많은 6개팀에서 골을 터뜨린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통산 득점 역시 187골로 앨런 시어러(은퇴·261골)에 이어 EPL 역대 두번째로 많다. 1989년 아스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콜은 풀럼. 브리스톨 시티. 뉴캐슬을 거쳐 9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둥지를 틀며 선수생활의 황금기를 맞았다. 특히 99년 드와이트 요크(37·선덜랜드)와 투톱을 이루며 맨유의 ‘트레블(리그·챔피언스리그·FA컵)’ 달성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맨유에서 2001년까지 뛴 콜은 이후 블랙번. 풀럼. 맨시티. 포츠머스. 버밍엄시티. 선덜랜드. 번리에 이어 노팅엄 포레스트(2부)에 마지막으로 짐을 풀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31일 노팅엄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파기했고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콜은 “축구에서 얻은 경험을 혼자만 갖고 있기는 싫다. 되돌려 주고 싶다. 앤디 콜이라는 선수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축구인생의 제2막이 열리면 좋겠다”며 향후 코치나 감독으로 돌아오겠다는 꿈을 밝혔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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