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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주류 “파경”… 「새짝」 찾기 나설듯/민주당의 향후 진로

    ◎조기 전당대회로 홀로서기 모색/KT/“KT 「제2 이민우」 만들겠다” 별러/동교/“감정골 너무 깊다”… 일부선 분당 점치기도 대여투쟁의 노선을 둘러싼 민주당의 갈등은 28일 최고위원회의의 결론과 29일 의원총회의 추인으로 일시 봉합되기는 했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이번 사태로 각 계파,특히 동교동계와 이기택 대표쪽 사이의 앙금은 「갈데까지 간」 양상이며 상황의 진전에 따라서는 제2,제3의 내분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앞으로의 민주당 진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진다.일부에서는 『분당 시나리오의 서곡이 아니냐』고까지 말한다. 이날 의총에서도 발언에 나선 15명의 의원 대부분이 「최고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빠른시일안에 국회에 등원할 것을 주장했다.주류·비주류 가릴 것 없이 이대표의 투쟁노선에 불만을 터뜨린 것에 다름아니다. 삐꺽거리고 있는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무엇보다 최고위원회의 결정이 뇌관 역할을 하고 있다.우선 민자당이 주요 안건을 강행처리하려고 할때 이대표가 내릴 「결단」의 풀이부터가 다르다.이대표 쪽은 결단이 원내복귀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12·12」 장외투쟁은 다음달 12일까지 지속된다는 점을 강조한다.그러나 많은 최고위원들은 민자당의 강행처리는 곧 국회등원이라고 받아들인다.두번째는 주요 안건의 범주이다.이대표 쪽은 새해 예산안,WTO 가입비준 동의안과 추곡수매등 세가지로 한정하고 있으나 대다수 의원들은 『중요 민생법안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고개를 젓고 있다. 이래저래 민주당은 민자당이 강행처리 방침을 세운다면 또 한차례 폭풍권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특히 민자당이 이들 안건을 처리하겠다고 애드벌룬을 띄울 때마다 민주당은 진의 파악을 위해 우왕좌왕할 것이 뻔하다. 결국 민주당은 다음주 국회등원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비등점을 향해 치닫는 「갈등의 전주곡」일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또한 이번 갈등은 곪을대로 곪은 이대표와 동교동계의 불화를 확인한 계기가 됐으며 당연히 민주당의 당권및 대권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전당대회의 조기개최가 현실화될 공산도 크다. 그전처럼 이대표와 동교동계의 협력관계는 이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범주류의 와해」를 의미한다.각자 제갈길로 나간다는 뜻이다.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면서까지 홀로서기에 본격 시동을 건 이대표는 「12·12」투쟁 주도로 야당지도자로서의 이미지 제고와 지도력 회복에 성공한 만큼 더 이상 「고용사장」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생각이다.이번 투쟁에 적극 동참한 개혁모임의 계속적인 협조를 이끌어내고 사조직인 통일산하회를 중심으로 영남권과 중부권의 지지를 끌어모으면 「해볼만한 싸움」이라는 것이다.그는 김대중씨가 「장외」에 있는 현실도 충분히 활용할 심산 같다. 하지만 동교동계가 생각하고 있는 「주판알」은 너무 다르다.김대중씨에게 참기 힘든 무례를 범한 이대표와의 신뢰는 이제 깨졌으며 그는 결국 「제2의 이민우」가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독자후보를 내든지 제3의 인물을 내든지 여하튼 이대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조기 전당대회도 불사한다는 쪽으로 내부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비주류 수장인 김상현고문은 이런 갈등을 십분 활용,어느 때 보다 당권 장악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결국 민주당은 앞으로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가 되는 복잡한 양상을 띠며 뜨거운 겨울나기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의원총회 주변/DJ비난 발언에 고함·몸싸움/동교계 “등원”­개혁모임 “장외” 주장 민주당은 29일 의원총회를 열어 다음달 12일까지 「12·12사건」 관련자의 기소를 위해 장외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의했다.겉으로는 전날 최고위원들이 마라톤 회의 끝에 마련한 결론을 추인하는 모양을 갖춘 셈이다.그러나 이날 추인은 사실상 그동안 국회등원을 주장해 온 동교동계와 비주류측의 묵시적 양해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전날 최고위원회의의 결론 가운데 민자당이 주요현안을 강행처리 하려 할 때 내릴 이기택 대표의 결단이 곧 등원이라는 전제 또는 기대 아래 이뤄진 추인인 것이다.따라서 이날결의는 「장외투쟁 계속」 보다는 「결단을 통한 등원」에 무게를 두고 있어 등원문제를 둘러싼 제2의 내분을 유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오10시에 시작된 이날 총회는 2시간40분동안 무려 15명의 의원이 발언에 나서 등원문제등 「12·12투쟁」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전개.특히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등원촉구발언을 둘러싸고 일부 의원들이 심한 몸싸움까지 벌이는 등 험악한 장면도 연출. 두번째 발언자로 나선 「개혁모임」소속의 제정구 의원은 김이사장의 발언에 대해 『하나의 밀알도 때와 장소를 가려 뿌려야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법』이라면서 『김이사장의 등원촉구는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비난.제의원은 이어 『김이사장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우리당의 분열을 심화시킨 결과를 가져 왔다』고 지적하고 『김이사장의 첫 실수』라고 공격. 김이사장에 대한 제의원의 비난이 계속되자 동교동계 의원들은 일제히 『발언 그만해』『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박광태의원은 단상으로 달려가 제의원을심하게 밀치며 발언을 제지. ○…이날 회의에서 이희천·오탄·박상천·박태영·한화갑의원 등은 즉각 등원할 것을 주장.반면 「개혁모임」의 장영달의원과 김인곤의원은 장외투쟁을 계속할 것을 주장해 대조. 이희천의원은 『농민들이 추곡수매동의에 대한 우리 당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 즉각 등원할 것을 주장.이에 오탄의원도 『총회의 의결을 통해 즉각 등원하자』고 호응.율사출신인 박상천의원도 『여당이 지자제법 개정안과 민간운동지원법제정안,통합선거법개정안등 악법을 기습처리할 우려가 크다』면서 등원을 촉구.또 한화갑의원은 『6·29때 처럼 국민들의 지지가 완전히 모아지지 않았다』면서 『단칼로 끝내려 해서는 안된다』고 원내·외 병행투쟁을 주장.이밖에 임복진의원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악기를 드는 법이 있느냐』면서 『지휘석에 선 이기택대표는 유감스럽게도 손에 악기를 들었다』고 이대표의 의원직 사퇴행위를 간접 비난. 이에 맞서 홍사덕·이해찬의원 등은 『최고회의의 결론에 안도한다』면서 『이제 부천집회를 성공시키기 위해 당력을 모을 때』라고 내분 중단을 촉구. 한편 이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동교동계와의 불화설을 의식한 듯,『12·12투쟁에 당권이나 정략차원의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
  • 특별기 타고 급행…“폐암 중증” 관측/오진우,왜 갑자기 파리 갔나

    ◎주치의등만 수행… 정치목적 없는듯/의료수준·인도적 정책 고려 불 선택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폐암치료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것은 입국 신청 4일만에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측은 지난 20일 북경주재 프랑스대사관에 오진우부장의 입국 비자를 신청했다는 것이다.프랑스정부는 정식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 「거물」의 입국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 이틀 뒤인 지난 22일 알렝 쥐페 외무장관의 승인을 받아 입국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진우부장은 비자를 받은지 이틀 뒤인 24일 서둘러 평양을 출발했다.그의 비자발급을 위한 입국 목적도 「폐암 치료」라고 돼 있을뿐 아직은 그가 중병을 앓고 있는지 단순한 검진차원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수교국간의 영공통과 문제로 특별기보다는 민간항공기를 이용해 달라는 프랑스정부의 의사전달에도 굳이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특별기를 타고온 점등을 보면 그의 폐암이 중증일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진우부장을 수행한 인물은 주치의2명,간호요원 2명,경호원 1명,통역 1명인 것으로 전해졌다.때문에 그의 프랑스 방문에 신병치료 이외의 망명등 정치적 목적은 없는 것으로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그가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파리 시내 라에넥병원은 파리의 6대 종합병원의 하나로 호흡기전문 병원이다.그러나 26일 현재 그의 병원입원 기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가명으로 입원한 것으로 보인다. 오진우부장이 중국 등 수교국을 두고도 프랑스를 택한 것은 프랑스의 발달된 의료기술,프랑스와의 관계및 프랑스의 인도주의적 정책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프랑스는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회당 정권의 출범으로 서방국가 가운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84년 12월에는 통상대표부에서 일반대표부로 승격됐다.평양의 양각도호텔도 프랑스 기업이 투자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의료기술은 에이즈 백신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등 세계적 수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또 고 김일성주석의 심장박동기도 프랑스 의료진이 방북해 달았을 만큼 북한에는 프랑스 의료기술이 친숙한 점도 고려된듯하다. 또 프랑스가 미수교국의 지도층이 치료나 검진을 희망하는 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허락해준 전례들도 오진우부장의 프랑스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프랑스는 지난 85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제2인자의 치료를 받도록 했으며 지난 5월에는 리비아의 외무장관이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파리를 경유하는 과정에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 적이 있다. ◎오진우의 전력과 최근 행보/항일유격대출신 혁명 1세대… 77세로 거동 불편/군 좌지우지… 김정일과 권력투쟁설 올해로 만 77세인 북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최근 그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로 노쇠현상이 뚜렷했다.가장 최근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 16일 김일성사망 1백일 추모회였는데 이때 다리를 저는등 거동이 몹시 불편한 모습으로 북한 TV에 비쳐졌다. 그는 김정일에 이어 권력서열 제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8일 김일성사망 이후 몇몇 주요 행사에 나타나지 않아 김정일과의 불화설등 그의 신변을 둘러싸고 이상이 있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즉,7월20일 중앙추도대회 후 첫 중요행사인 「7·27 전승기념일」 행사에 군원로이며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그가 당연히 참석해야 했으나 불참했고,이어 9·9절(정권수립기념일)행사,10월11일의 단군릉 개건 준공식등 비중있는 행사에 잇달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다만 지난달 20일 추석을 맞아 「혁명열사릉」에 헌화한 뒤 다음날인 21일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사망 45주 추모회에 참석했고 또 하루 뒤인 22일 김정숙동상에 헌화한 사실이 전해졌다.생전에 두터운 교분을 유지해 왔던 김일성부부,혁명열사 추모행사에만 참석했을 뿐이다. 폐암이라는 오의 병력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지금까지 파악된 것으로는 86년 9월께 음주운전 사고를 내 의식불명의 중태에까지 빠졌었다는 것이 전부일 정도이다.당시 오는 한 연회에 참석한 뒤 만취된 채로 차를 몰고가다 평양시내 전승기념관의 가로수를 들이받아 9개월가량 고위 당정간부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이때 김정일이 헬리콥터까지 동원,긴급 후송을 하도록 지시하고 치료에도 세심한 배려를 해 준 것이 계기가 돼 김정일에 호감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그의 출생연도가 김일성보다 불과 5년 아래인 1917년생인 것으로 알려져 폐암이 아니더라도 노환을 피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원 출신으로 혁명 1세대를 대표하고있는 그는 김일성과함께 오늘의 북한 체제를 구축한 주역의 한사람이다.함남 북청출신인 오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권력 구조에서 언제나 2인자로 군림함으로써 그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다.옛 소련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대학을 수료한 뒤 항일유격대에 가담한 오는 45년 10월 인민군 최고사령부 호위국장에 취임하면서 북한 군부의 핵심라인에 올랐다.이어 60년 8월 1집단군 군사령관을 거쳐 당정치위 후보위원이 됐으며 마침내 76년 5월 인민무력부장에 취임,군부를 장악했다.92년 4월에는 원수에,93년 4월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올라 실질적인 3인자 지위에 있다가 김일성이 죽자 권력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최근에는 그의 「거세설」·「연금설」과 함께 아들의 중국탈출설도 나왔었다. ◎“오진우란 환자없다” 입원 부인/파리병원 주변 스케치 ○…파리시내 비노가에 있는 북한 일반대표부는 오진우 부장의 방문에도 불구,겉으로는 조용한 분위기. 북한측 한 관계자는 기자가 전화를 걸어 오부장이 대표부내에 있는지 등을 묻자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면서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고 딱딱한 반응. 북측은 한달여전부터 폐암치료병원을 물색해 왔으며 암치료약을 상당분량 구입해 평양으로 수송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오늘중 검진 받을것” ○…오부장은 입원할 병원이 워낙 취재진에게 노출돼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거소에서 의사왕진을 통해 진료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라에네크병원측은 많은 취재진이 몰리자 『오늘 이 시간 현재 「오진우」라는 환자는 병원에 없다』며 『그러나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겠다』고 발표. ○노출우려 왕진 가능성 ○…프랑스 내무부는 26일 상오 오부장이 이날 중 라에테크병원의 검진을 받을 예정이라고 발표. 외무부는 검진결과에 따라 입원,수술,귀국등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 ○외교소식통,망명 일축 ○…한 외교소식통은 오부장이 망명할 가능성에 대해 『프랑스정부는 인권탄압등의 경우에 한해 망명을 허용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일축. 이 소식통은 『오부장의 프랑스방문이 핵문제합의문 채택에 이어 남북대화등 관계진전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
  • 북한 권력구조 불확실성 증폭/김정일 단군릉 준공식 불참의 저변

    ◎오진우도 참석 안해… 김­오 불화설 뒷받침/권력승계 공식화 지연가능성 더 높아져 북한당국이 1년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이른바 단군릉 준공식에 공식후계자 김정일이 얼굴을 내밀지 않아 북한 권력구조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이날 준공식에는 북한 권력서열 3위인 강성산 정무원총리가 준공사를 낭독하는 한편 이종옥부주석 등 당정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것으로 북한 중앙통신이 전했다.그러나 정작 서열 1,2위인 김정일과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자리를 비움으로써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 것이다. 단군릉 개건공사는 생전의 김일성이 북한체제의 정통성을 강조함으로써 부자간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바로 이같은 시나리오에 따라 「주연」으로 나타나야 할 김정일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은 심상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단군릉 개건작업은 김일성 처리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관측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아왔다.즉 북한당국이 매장하든,영구보존하든 평양 근교의이른바 단군릉에서 김일성시신을 처리한 뒤 오는 15일 대대적인 1백일추모제를 거쳐 김정일이 공식 1인자로 등극한다는 구도가 상정됐었다. 하지만 이날 북한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자연히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오진우의 이날 불참도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다.최근들어 오진우와 김정일의 불화설 및 인민군 장성인 오의 아들이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중국으로 탈출했다는 미확인 루머가 유포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불참이 그의 건강상의 문제나 장악력의 부족에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현재로선 예단키 어렵다. 지난 10일 당창건기념일에 이어 김정일이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실이 반드시 그의 실각을 의미한다고 속단하기에는 시기상으로 이르다는 분석이다. 다만 15일 김일성 사망 1백일제에도 김정일이 무대 위로 「등장」하지 않으면 그의 후계승계 가도에 모종의 장애가 생겼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봐야 한다는게 정부와 북한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 WTO체제 효과적대응 최선/전경련회장단 회의

    전경련은 13일 회장단 회의에서 경제계가 국제화 인력을 함께 양성하고 해외진출 지원을 위한 상호 정보제공 체제를 구축하는 등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재계 내부의 불화설과 관련,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정부 및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앞으로 각 그룹 회장들끼리 비공식적인 모임을 자주 갖고 재계화합 방안도 논의키로 했다.전경련은 이의 일환으로 다음 달 초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주선으로 회장단 모임이 열린다고 밝혔다.
  • 김성애 “담담” 김경희 “오열” 대조적/상중의 북한 이모저모

    ◎“김정일과 불화설” 김영주 공개참배/북방송,“김사망에 백두산천지 요동” 북한이 11일밤 TV방송을 통해 공개한 김일성 시신과 김정일의 공개참배 광경은 남측을 비롯한 외부세계의 촉각을 모으기에 충분했다.그동안 김일성의 사인이 베일에 가려졌던데다 김정일이 모습을 전혀 나타내지 않은 가운데 권력의 향배가 어떻게 될지 많은 궁금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사망(8일)한지 93시간만인 이날 하오 9시 평양 금수산 의사당(주석궁)지하에서 진행된 이 행사는 조곡이 은은히 울려퍼지고 실내조명이 어둑하게 비치는 가운데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수정관에만 밝은 조명을 집중적으로 비쳐 자못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 ○…「김일성화」로 보이는 조화로 둘러싸인 수정관속의 김일성은 얼굴에 특별한 상처가 없이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인민복 차림으로 붉은 자주색 모포를 가슴까지 덮고 있었으며 잠을 자듯 둥근 베개가 베어져 있기도. 김일성의 얼굴은 사망 나흘째임에도 변색흔적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망 즉시 영구보존 처리에 들어간것으로 추측되기도. 또 수정관앞에는 공화국영웅및 노력영웅 메달과 각종 훈장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으며 국방위원회 위원장 군최고사령관 명의의 김정일 화환과 노동당·당중앙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정무원 명의의 화환이 시신 주위를 장식. ○…고위 당정간부 1백여명을 대동한 채 인민복 차림으로 참배장소에 도착한 김정일은 평소 알려진 모습과는 달리 초췌한 모습. 입장직후 무엇인가를 묻는듯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시신쪽을 가리킨 김정일은 옆사람에게 잠시 말을 건네는듯 했으나 시종 굳게 입을 다문채 침통한 표정. 시신을 향해 머리 숙여 참배한 뒤 수정관 주위를 둘러보던 김정일은 간간이 손수건을 꺼내 안경을 벗어 눈물을 훔치기도. ○…이날 첫 공식참배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끈것은 참배 서열이 어떻게 되는가와 이른바 김정일과 반목관계에 있다는 가족들의 참석 여부가 주목. 김정일 좌측에는 각각 서열 2·3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강성산 정무원총리,우측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최광이 서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이을설 호위총국장이 김정일 주변을 분주히 오가는 것이 목격됐다. 오진우등은 김일성과 함께 북한 정권 40여년을 이끌어온 「혁명1세대」로 김정일을 「업어키웠다」는 말이 있는 원로들.이들 역시 시신앞에 머리를 숙인채 눈물. ○…김정일은 자신의 참배가 끝난 뒤 군장성및 북한 주재 외교관의 조문을 받는 순서를 마련. 김정일은 조문객들의 인사말에 꼿꼿히 선채 한손으로 악수만하며 묵묵부답. 평양에 요양차 체류중이던 올해 87세의 한덕수 조총련의장은 지팡이를 짚은채 특히 울먹이며 김정일을 위로.김정일은 다른 조문객들에 대한 태도와 달리 이례적으로 두손으로 한덕수의 위로에 응답,대조를 보였다. ○…가족중 입장때부터 김정일의 바로 뒤 오른쪽에 따라 나온 친 여동생 김경희(48·노동당 경공업위원장)는 참배행사중 내내 오열.김일성과 김의 전처 김정숙의 소생으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검은 상복차림으로 자그마한 체구.이와함께 실력자로 부각되고 있는 남편 장성택도 처남인 김정일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주목을 받기도. ○…한편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와 친동생이자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부주석등 유가족들이 김정일의 뒤쪽에 위치.확실치는 않으나 지난 3월 핀란드 대사에서 소환된뒤 행적에 관심이 모아졌던 이복동생 김평일도 일단 참석한 것으로 보이나 확인되지는 않았다.경희의 오열하는 모습과 달리 김성애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 ○…북한은 12일 김일성의 사망직후 백두산에서 격렬한 기상변화가 있었다고 전하면서 『백두산과 천지도 비분을 삭이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주장,눈길을 끌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상오 뉴스를 통해 김일성이 사망한 8일 새벽 백두산에서는 『짙은 안개의 장막속에서 깊이 잠든 듯 조용하던 천지가 갑자기 격랑을 일으키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와 때를 같이하여 초속 50m이상의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대줄기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는데 이날 시작된 비는 잠시도 그치지 않고 3일동안 3백㎜나 내렸다고 이 방송은 강조했다.
  • “김정일 남북대화 거부 못할것”/일 경응대 오코노기교수(인터뷰)

    ◎“경제난 해결 못하면 2∼3년내 위기” 일본의 저명한 한반도문제전문가인 게이오(경응)대의 오코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교수는 10일 김정일후계체제는 일단 순조롭게 구축될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비관적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오코노기교수와의 인터뷰내용이다. ­후계체제의 전망은. ▲김주석이후 북한체제는 김정일서기 중심체제가 될 것이다.일부에서는 부자간의 불화설도 말하고 있으나 김정일은 김주석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20여년 후계체제준비를 해왔다.현재로서는 김서기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군부도 일단은 김서기체제를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어떻게 자신의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보는가. ▲정치체제구축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하나는 전정권을 비판하며 자신의 권위를 만드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권위를 계승하는 방법이다.김서기는 김주석의 권위를 계승발전시키며 자신의 권위로 승화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향후정책은. ▲김서기는 김주석의 권위를 물려받으려 하기 때문에 그만큼 정책변화의 폭도 좁다고 할 수 있다.김서기는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김주석의 정책을 쉽게 바꿀 수 없으며 우선은 그대로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으로 보는가.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김서기가 핵문제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북한도 핵문제의 해결 없이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아직은 어떻게 나올지 불투명하며 그 시금석은 미·북한 고위급회담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미·북한 고위급회담에 대한 전망은. ▲김주석은 진심으로 대화를 원했다고 생각한다.이 때문에 김정일도 미·북한회담과 남북대화를 거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물론 25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은 열리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북한은 어떤 형태로든 남북대화를 원할 것으로 보인다.잠시 중단된 미·북한회담도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체제는 순탄할 것으로 보는가. ▲김서기체제는 단기적으로는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당분간은 국내의 정치적 혼란도 없을 것 같다.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김정일체제가 2∼3년내에 식량부족등 경제난,핵문제등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군부및 국민들로부터 불만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그때는 농민의 폭동이나 쿠데타등 모든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더욱 심각한 북한의 딜레마는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더라도 김서기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이다.김서기체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위기를 맞겠지만 경제난극복을 위해 개방정책을 촉진할 경우도 외국의 정보·기술등의 유입으로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이 때문에 김서기체제는 2∼3년의 단기적으로는 안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비관적이다.일부에서는 현재의 북한체제가 무너질 경우 새로운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으나 그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현체제가 무너지면 북한이라는 나라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그렇게 될 경우 한국에 흡수통일되는 길밖에 없다. ­한반도 통일전망은. ▲한반도통일은 대화보다는 어느날 갑자기 실현될지도 모른다.
  • 83년 이후 「서열 2위」… 당·정·군 장악

    ◎73년 김영주축출… 공적활동 전면등장/반대세력 반발불구 통치권확보 성공/성격 독선적·일부선 “통 크다”… 영화·연극에 큰 관심,직접 제작도 김정일이 사망한 북한주석 김일성에 대한 장례위원 가운데 서열 1위로 발표됨으로써 차기 권력승계작업이 일단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공산정권의 전례로 비추어 볼 때 숨진 최고지도자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예외 없이 차기 통치권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그에 대해 북한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혁명의 계승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김정일은 20여년동안 끈질기게 권력승계 작업을 해온 결과 지난 83년 공식서열 2위에 오른 뒤부터 김일성 사망 직전까지 김일성에 이어 2인자의 위치를 굳혀왔다.군최고 사령관,원수,국방위원장,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중앙군사위원등 그의 맡아온 직책이 이를 입증한다.이복동생 김평일과의 불화설등 반대세력과의 권력투쟁설이 끊임없이 나돌기도 했지만 통치권 장악에 거의 성공한 것으로 관측돼 왔다. ○92년부터 승계완료그는 당·정·군등 북한내 3대 기본권력구조 가운데 형식적인 통수권은 국방위원장직으로 군에 대해서만 갖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이 국가주석으로 정을,당 총비서로 당을 이끌어 오면서 형식적인 통수권자였지만 김정일은 사실상 이들 기관도 통치해 왔다는 것이 북한전문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이들 전문가들은 이미 권력승계작업은 지난 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부터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완료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남외교부장은 같은해 9월 제47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들렀다가 우리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통치자라고 밝혔었다.앞서 같은해 4월1일 김일성생일행사의 하나로 개최됐던 주체사상토론회에서 김정일이 「당·국가·군대의 수위」로 지칭되고,김부자의 생일을 전후해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종옥부주석,연형묵정무원총리등 당시의 당·정·군 간부들이 김정일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다짐하기도 했다.이때부터 김일성은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김정일은 지난 92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원수와 8명의 차솔진급자에게 계급장을 달아 줘 군통수권에 대한 첫 공식행사를 가짐으로써 이를 대내외에 천명했다.이어 지난해 4월에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됐으며 3개월뒤 장성 99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혁명1세대를 퇴진시킴으로써 군을 완전 장악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각된 것은 지난 73년.사상·기술·문화 3대혁명소조운동과 3대혁명 붉은기쟁취운동의 실무지도자로 공적활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같은해 9월 삼촌 김영주를 밀어내고 조직·사상담당 비서로,74년 2월 노동당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추대됐다.그는 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대회에서 후계자로 결정됐으나 70년대까지만 해도 「당중앙」으로 모호하게 불려졌다.그러나 80년대부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표현되기 시작했다.83년 4월이후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제치고 당서열 제2위로 부상하면서 명실상부한 후계자의 위치를 굳혔다. 85년 4월에는 「당·국가수위」로 지칭됐다.85년 7월 북한언론으로부터 「김정일시대」라는 용어가 등장하고,91년에는 인민경제대학총장 김국훈이 김정일을 「미래의 위대한 수령」으로 후계구도를 공식적으로 가시화했다.이어 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뒤 92년 4월20일 원수칭호,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5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으로써 군을 장악한 명실상부한 실권자로 등장했다. ○원래 이름은 「정일」 김정일은 김일성과 그의 첫부인인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난 2남1녀중 장남으로 지난 41년 2월16일생이고,원래 이름도 정일이라고 한다.그러나 뒤늦게 그를 우상화하는 편법으로 정일로 바꿨고 2년뒤 그의 출생연도도 1년 낮췄다는 설도 있다.82년은 이른바 「조선의 어머니」인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출생 90돌이자 김일성의 70돌이며,김일성이 창건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의 50돌이었는데 그의 이름도 이에 맞춰 변조했다는 것이다.그의 이복동생 평일,성일에서 보듯 원래 항렬이 일자였다는 것이다. 어릴때 이름이 「슈라」인 것으로 미루어 출생지는 옛 소련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구체적인 지명은 사마르칸트,오케얀 스카야,하바로프스크등으로 엇갈린다.그러나 그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백두미령」에서 출생해 『혁명의 준엄한 시련을 체험하면서 성장했다』고 미화됐다.북한은 이를 위해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을 할 때 백두산의 한 귀틀집에서 『백두산의 정기를 한몸에 받고 태어났다』는 이른바 「백두산정기설」을 뒷받침하는 각종 흔적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백두산의 「정일봉」,김정일의 탄생을 칭송하는 이른바 「구호나무」등이 그 흔적이다. ○3세대 평양 들어와 김정일은 세살때 광복과 함께 부모를 따라 소련함정을 타고 평양에 처음 들어왔다.43년 소련에서 태어난 남동생 「유라」(소련명)가 있었으나 2년뒤 김일성 관저 연못에 빠져 죽었다.7살때인 49년 9월 생모 김정숙이 출산중 사망하면서 여동생 김경희(46년생)와 함께 김일성의 외6촌동생 강연실에 의해 키워졌다.그의 성격은 생모와 사별후 난폭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성격은 괄괄하고 과격하며 독선적이나 통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김일성앞에서도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그는 아버지가 너무 바빠 홀로 어린시절을 보내온 것을 자주 불평했다고 한다.66년 홍일천과 연애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69년 이혼한 뒤 73년 김혜숙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평양의 남산유치원을 나와 49년 간부 자녀들이 다니던 남산 제 4인민학교를 다녔으며 57년 8월 평양제1중학교,60년 8월 평양 제1고급중학교,64년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를 각각 졸업한뒤 노동당에 입당했다.70년 당 문화예술부장,71년 선전선동부 부장으로 진출하면서 영화촬영및 연극공연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전해진다.「피바다」「한 자위대원의 운명」「꽃파는 처녀」등 주요 영화와 가극을 직접 제작하는등 일년에 1백50∼2백편의 영화를 만들어 올만큼 북한영화계의 최고권위자로 꼽힌다.이같은 영화에 대한 애정때문에 신상옥씨 부부를 납치한 것이 깊숙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체가 상세히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표◁ △1941.2.16 소련 사마르칸트 출생(북한측,백두산 출생주장) △1953.2 만경대혁명학원(인민반)수학 △1960.8 남산고급중학교 졸업 △1964.3 김일성대학교 졸업(정치경제학과) △1964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 △1971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973.11 노동당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1974.2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1974.2 「후계자」로 결정(노동당 제5기 8차전원회의) △1980.10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6차 당대회) △1980.10 노동당 비서국 비서 △1980.10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90.5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12.24 인민군 최고사령관(노동당 제6기 19차 전원 회의) △1992.4.20 원솔 칭호 △1993.4 국방위원회 위원장(최고인민회의 9기 5차회의)
  • 삼성 신경영 1년 성적표/출발은 “화려” 실리는 못챙겨

    ◎자기혁신 노력… 재계각성 선도/승용차 진출 의욕 소득은 없어/“제품·서비스 완벽추구” 2단계 개혁에 관심 삼성의 신경영 성적표는 몇 점일까.이건희 회장이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질위주 경영과 국제화·복합화를 골자로 한 신경영을 선언한 지 7일로 꼭 1년이다.1년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공과는 짚어볼 수 있다. 지난해 삼성그룹은 김영삼 정부의 의미 있는 동반자였다.이회장이 주창한 신경영은 기본적으로 YS의 개혁작업과 궤를 같이 하기때문이다.「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자기 혁신 노력은,재계는 물론 민간의 각성과 변화를 선도했다. 최근의 국내외 정세를,경제전쟁을 포함한 세기 말적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생존과 발전을 위한 변화와 개혁의지를 재계 전반에 심었다.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회간접 자본의 중요성,국제화의 필요성을 널리 인식시켰다. 내부적으론 종래의 근무체제를 질과 효율을 지향하는 「조기 출퇴근제」로 전환했고,불량률 제로에 도전하기 위해 「라인 스톱제」도 도입했다.계열사 정리를 통해사업구조를 정비했고,인력 및 조직의 개편을 통해 경영 인프라도 재구축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는 신경영 2단계 개혁에 착수,제품과 서비스의 완벽을 기하는데 전력투구할 계획이다.사업구조는 전기·전자,기계,화학·소재 등 3대 사업군을 축으로 질적 고도화와 21세기형 첨단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재편한다.경영시스템은 분권형 경영구조를 중심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할 방침이다. 신경영의 상징이라 할수있는 조기출퇴근제에 대해 일부 총수는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1년만에 상당히 정착됐다.삼성 경제연구소가 최근 그룹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전체응답자중 59%가 조기출퇴근제가 정착됐다고 답했고 보통 15%,미흡 26%였다.또 70% 가까이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고 응답했고 50%는 업무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임직원 40%는 생활패턴이 바뀌었다고 밝혔다.그러나 직원의 8.3%는 회사밖에서 밀린 업무를 한다고 답했다. 이로써 삼성의 신경영은 적어도 화려한 데뷔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그 대가 역시 만만치는 않다.눈에 띄는 과실이 없어 「외화내빈」이란 평가도 있다. 신경영은 인간미와 도덕성의 회복을 가치관으로 삼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기아자동차 주식을 매입,경영권을 겨냥한 기업사냥의 의혹을 불러일으켰고,부동산 취득제한이 없는 삼성신용카드를 이용해 부동산을 과다 매입,투기란 비난도 받았다.냉장고 기술절취 사건도 있었다. 재계의 기존 관행이 깨지며 나온 「불화설」도 따지고 보면 삼성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여론을 등에 업은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행동에 재계가 반발한 탓이다. 삼성은 자동차를 비롯,모든 사업에 관심을 보였지만,실제 수확을 거둔 것은 없다.노력에 비해 소득이 없었던 점이 재미 있는 대목이다. 결국 삼성의 신경영은 대외적으로 명분에서 호응을 받은만큼 실리를 잃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26년 전통 깬 포철 새회장 영입 안팎

    ◎포스코 혁신에 「외부용광로」 도입/내부불화 씻어내 경여효율 제고/박태준인맥 완전 물갈이 시각도/수뇌부 교체 잦아 하부안정 흐트릴 우려 포항제철의 전통이 깨졌다.최고 경영자를 내부에서 뽑던 26년의 전통이 무너졌다. 포철은 당초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의 연임을 예측했다.두사람의 불화설이 걸림돌이었으나 지난 해 경영성과나 2통 지배주주의 선정 등으로 아무도 연임을 의심하지 않았다.그러나 최대 주주인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정회장과 조사장의 불화가 재연될 경우 경영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국가 최대의 기간산업으로,2통 사업의 주체이기도 한 포철이 내부 불화로 흔들리면 새정부의 경제정책에도 흠집이 난다는 것이다. 정회장과 조사장이 지난 1년간 신포스코를 주창하며 개혁을 추진,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정부 기대에 미흡했다고 평가받은 셈이다.특히 올 초부터 터져나온 두 사람의 불화설이 결정적인 경질사유로 작용했다.정부가 두사람의 불화를 꼬투리 삼아 경영의 효율성을강조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불화설이 침소봉대된 것이라는 포철 내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두 사람의 퇴진에는 또다른 사유가 있을 수도 있다.포철을 직접 챙기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신임 김회장이 TK의 핵심 인사라는 점에서 TK에 대한 배려라는 정치적 시각도 있다.또 다른 쪽으로는 박태준 인맥의 완전 물갈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정부는 김전부총리의 발탁 사유를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김영삼 대통령의 경제 자문팀장을 맡아 청와대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아는 데다,경제 전반에 정통하고 조직 장악력도 강해 포철 군단의 반발을 잠재우면서 혁신을 주도할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해박한 경제 지식과 왕성한 추진력,뛰어난 정치감각 등을 감안할 때 이런 설명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적어도 신임 김회장의 능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철수 상공자원부 장관은 8일 『경영진 내부의 불화를 일소하고 화합을 다지는 차원에서 현 경영진을 퇴진시켰다』며 『김만제 전부총리는 뛰어난 국제감각과 전문지식을 갖춰,적임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직접 인사권을 휘두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또 잦은 경영권의 교체는 오히려 경영의 안정을 흐트리고 외부 인사의 영입으로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금융통인 김전부총리가 앞으로 포철 맨들을 어떻게 다룰 지 주목된다. ◎포철 새 회장선임 이모조모/청와대서 직접 낙점… 하루전에 전격통보/직원들 “뜻밖… 한사람이라도 남았으면”/새회장 조직파악뒤 사장선임 여부 결정 ○…정명식회장과 조말수 사장의 동반 퇴진은 지난 1월 두 사람간의 불화설이 나돌면서 잉태.특히 『박태준 회장이 없으니까 포철에 말이 많다』는 얘기가 청와대에 퍼지면서 『우째 그런 일이…』라는 진노가 있었다는 후문.이를 기화로 정부가 한때 회장제 폐지 등 조직개편도 검토했으나 두사람의 경질이 사태 수습에 낫다고 판단했다고.그러나 제 2이동통신 사업을 따내 한편으론 유임 관측도 유력했던 터. ○철저한 보안속 진행 ○…김만제 전부총리의 선임은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짐으로써 또다시 YS 인사의 전형을 과시.7일 하오 5시까지 청와대는 수석 비서관을 통해 포철의 경영진은 변동이 없다고 연막. 그러나 하오 7시쯤 김철수 상공부장관에게 내정 사실을 알린 뒤 8일 새벽 포철에 공식 통보.정회장과 조사장도 7일 하오까지 경질 사실을 몰랐다가 김장관으로부터 새벽에 들었다는 후문.김전부총리는 7일 하오 늦게 김장관으로부터 내정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고 『지금이라도 포항에 내려가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주총 45분만에 끝나 ○…포항 본사에서 상오 9시부터 열린 주총은 영업실적보고,임원선임,정관변경 등 예정된 순서에 따라 45분 동안 일사천리로 진행.정회장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본인과 조말수 사장,심장섭 상무의 임기가 끝났다』고 말한 뒤 『새회장으로 김만제 전부총리를 제청한다』며 임원선임까지 주재. 이어 상오 10시 정회장과 조사장이 빠진 상태에서 이사회를 열고 김전부총리를 새회장으로 선임. ○…정부는 주총을 약 보름 앞둔 지난 달 중순 쯤 정회장­조사장 동반퇴진을 최종 결론짓고 후임자 물색에 나섰다고.그러나 내부에서 발탁할 만한 인물이 없자 김만제·이경식 전부총리와 전직 상공자원부 장관을 지낸 2∼3명 등 4∼5명의 후보를 청와대에 추천했다고. ○…8일 상오 7시쯤 정명식 회장과 조말수 사장의 경질 사실이 전해지자 포철 직원들은 모두 뜻밖이라며 놀라는 분위기.일부 직원들은 『한 사람만이라도 자리를 지켰으면 다소 체면을 세웠을 텐데…』라며 아쉬워하기도.또 『김전부총리가 비포철맨이지만 청와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새정부 들어 위축된 포철의 위상이 나아질 것』이라고 반기기도.그러나 다른 직원들은 『최고 경영진을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공기업 민영화에 역행되며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불만을 토로. ○회장중심 운영 전망 ○…김전부총리의 회장 취임으로 지금까지 회장­사장의 쌍두체제를 유지해 온 포철은 당분간 회장 중심으로 운영될 전망.정덕영 상공자원부 기초공업국장은 『정회장 시절에는 사장과 회장이 다소 대립관계에 있었지만,이제 김회장 체제로 일원화됨으로써 사장이 큰 힘을 갖지 못할 것』이라며 『새 회장이 조직을 장악한 뒤 사장선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 ○…이날 하오3시 포철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김신임회장은 『지난 7일 저녁 늦게 연락을 받아 취임사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며 본인도 갑작스런 회장취임에 다소 놀랐음을 시인. 김회장은 취임사에서 『과감한 경영혁신과 개혁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발전적인 기업문화를 창조해 나갈것』이라고 말한뒤 『지금까지 쌓아온 포항제철의 성과와 전통을 바탕으로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는데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다짐.그는 또 포철이 지금까지 높은 신용도와 효율적인 경영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해 왔다고 평가한뒤 그동안 이룩한 양적성장을 발판으로 질적성장을 추진하는 한편 이동통신 분야에서도 도약해 나갈것이라고 역설. ○…한편 김철수 상공자원부 장관은 8일 상오 김만제 전부총리의 포철회장 기용과 관련,기자회견을 가졌다. ­포철회장 인사를 왜 정부가 발표하나. ▲정부가 대주주이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의 하나로 내정사실을 발표하는 것이다. ­이번 결정은 누가했나. ▲대통령께서 직접 하신 것으로 안다. ­앞으로도 사장이 대표이사의 자격을 계속 갖게 되나. ▲정관을 바꿀 계획이 없기 때문에 현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 ◎김만제 포철회장/대선때 자문맡아 YS와 인연/학·관·재계 두루섭렵… 정치감각도 뛰어나/3공 경제정책에도 관여한 서강학파 핵심 포철의 신임 김만제 회장이 직접 경영을 책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90년부터 1년간 삼성생명 회장을 지냈으나 초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5공 시절 재무부장관 및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낸 학자출신 관료로 더 알려져 있다. 서강대 교수에서 지난 71년 한국개발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11년간 재임하며 3공의 경제개발 정책에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했다.재무부장관 때는 난마처럼 얽혔던 해외 건설업계의 부실문제와 국제그룹·경남기업의 해체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특유의배짱으로 과감히 처리했다.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 시절에는 엄청난 국제수지 흑자를 맛보는 행운과 함께 미국의 통상압력이 가중되는 고충을 겪었다. 92년의 14대 총선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서울 강남 을구에 민자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패배한 뒤 관운이 다한 듯 했으나 지난 대선에서 김영삼후보 진영의 「대통령후보 자문팀장」을 맡아 새정부와 연을 맺었다. 포철회장 발탁도 이같은 경력과 인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과단성 있는 일솜씨와 자문팀 장으로 익힌 김대통령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거대 기업 포철을 새정부가 지향하는 공기업의 모범생으로 만들라는 주문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학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감각과 저돌적인 추진력,친화력 등을 고루 갖췄다.
  • 정 회장­조 사장 체제 재출범 확실시/포철 오늘 주총

    ◎경영실적·「2통공로」 인정받아/홍상복전무 부사장 승진 거론 포항제철이 8일 주주총회를 연다.지난 해 3월 정명식회장­조말수사장 체제가 출범한 지 꼭 1년 만이다.박태준 전회장이 물러난 뒤 첫 주총이다. 특히 정회장과 조사장의 3년 임기가 모두 끝나 이들의 거취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한때 불화설이 나돌아 한명이 퇴진한다는 말도 있었으나 소문에 불과할 뿐 두사람 모두 연임이 확실시 된다. 지난 1월 장중웅 상무의 인사 파문을 빼면 지난 1년간 평점은 「A」이다.세계적인 철강 수요의 감소에도 매출은 6조9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12%나 늘었다.「신포스코」를 주창하며 내부 개혁을 추진,정치권과 완전히 손을 끊었다. 게다가 제2이동통신 사업의 지배주주를 따내는 과정에서도 정회장은 재계를,조사장은 실무협상을 각각 맡아 단합된 모습을 한껏 보여줬다.최대 주주인 정부로서도 정­조 체제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문제가 된 정회장과 조사장의 알력설도 두사람의 경력을 보면 낭설에 가깝다.지난 71년 정회장이 건설관리부장을 지낼 때 갓 입사한 조사장은 줄곧 정회장과 엄격한 상하관계를 유지했다.정회장이 부사장일 때는 이사로,사장일 때는 부사장으로 그 관계가 분명했다.장상무 파문은 외부의 시각과는 달리,단순한 업무에 대한 문책인사라는 것이 포철 안팎의 입장이다. 임원 14명 가운데 임기가 끝나는 사람은 정회장,조사장,심장섭 상무 등 3명이다.김종진,손근석 부사장 역시 유임될 전망이며 전무 7명 가운데 포항제철소장인 홍상복 전무만 부사장 승진이 거론되고 있다.
  • 「개혁세력결집」 시급하다/이수인(일요일 아침에)

    냉전시대가 돌연히 종식되면서 닥친 온 세계의 「변화」는 역사적 추세이며 국가경쟁시대가 첨예하게 진행되면서 일어난 모든 민족의 「개혁」이 시대정신임은 이제는 의문이 여지가 없다. ○시대적정신 자명 미국이 클린턴정권의 등장이래 개혁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제화시대의 선두에 서서,우리가 쌀개방압력을 체험한 바와 같이 다시금 새로운 세계의 패권을 잡아가고 있는 것은 무섭다.유럽이 벌써 경제공동체의 수준에서 국가연합(EU)의 차원으로 진입한 사실은 부럽기 짝이 없다.중국이 개방을 차곡차곡 추진하여 30년,아니 10년 안에 강력한 「대륙국가」로 부상할 바탕을 마련하고 있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더구나 이웃 일본이 40년 자민당 시대의 낡은 체제를 빠르게 극복하는 개혁을 힘차게 실천하면서 95년 신체제의 성립에 성큼 다가선 것은 두렵기 한량 없다.그들의 95년 신체제는 바로 제2의 명치유신이고,그 성립이야말로 그들과 우리 겨레의 낙차를 얼마나 벌리지 예측할 수 없는 근거가 되며 나아가 식민지시대가 분단시대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민족통일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너무나 커지기 때문이다. 이 까닭에 세계사의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물결에서 뒤처질 때 한 나라는 자멸의 운명에 빠져들 것은 분명하다.또한 민족사의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개혁의 물결에서 밀려날 때 한 겨레의 진운이 차단될 수밖에 없음도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역사적 대세에서 유리되고 현실적 경향에서 이탈하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는 사태는 참담하기 이를데 없다.그 사건들이 개혁정권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한 획기적 정책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만한 것인 까닭이다. 제2의 장영자 파동은 금융실명제에 대한 정면도전이고 율곡사업부정부패사건,그리고 국방장관과 참모총장 불화설은 군사문화의 독소를 뿌리뽑는 군의 개혁정책에 대한 역행적 부정이다. ○위기대책의 부재 국회 노동위의 돈봉투 사건과 원자력 부부외유사건은 공직자 재산공개법의 정신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며,국회의원 제거 음모사건은 공작정치엄금 정책에 경시할 수 없는 훼손이다.또 떼강도 사건은 민생치안 공약에 대한 치명적 타격이다.여기에 덧붙여 국민은 문민시대가 발족하자 마자 부산 철도함몰,목포 비행기추락,부안 여객선 침몰 등의 사건이 개혁적 전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난 해나 올해 일어난 것을 가릴 것 없이 냉정히 살펴 이 사건들을 관통하고 있는 두가지 특징을 추출해 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 사건들이 모두 30년의 군사독재문화구조에 바탕을 둔 필연적 산물이라는 사실이다.이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문민정권은 자신을 군사정권의 정치적 사생아로 보는 정치적 색맹을 노출함으로써 개혁에 나설 자격을 원천적으로 상실하고 있다는 지탄을 피하기 어렵다.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민정권은 이 사건들의 모든 책임을 스스로 걸머지고 국민에게 사과만 하는 맹목적 겸손을 용감하게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개혁정권은 이 사건들을 자신의 출범 뒤에 빚어졌다는 점에 관해 책임을 지는 자세는 평가받을만 하지만,개혁시대나 군사독재시대의 정치적 책임과 문화적 특징을 준별하는 정치적선전에 실패함으로써 정치적 무능을 스스로 노출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 정치적 색맹과 정치적 무능은 바로 개혁정권의 위기관리능력의 부재와 개혁정책의 실패를 증명할 개연성도 부인할 수 없다. ○정면돌파 외길뿐 낙관적 희망을 차단하는 절망적 구름이 검게 피어오르는 것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친다.더구나 4월 혁명과 맞물려 우루과이 라운드 비준 파동과 5월 광주항쟁과 겹치고 있는 노사파동이 상승작용할 때 개혁정권은 최대의 위기를 맞이 할 것임에 틀림 없다.무릇 역사적 준비란 역사적 승리로 귀결되어야만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개혁시대에서 개혁정권의 패배가 우리 겨레의 역사적 패배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개혁정권의 역사적 선택은 정면돌파 오직 하나다.정면돌파의 방법은 개혁세력의 결집 뿐이다.개혁세력 형성의 전제는 개혁 청사진의 제시 오직 하나 뿐이다.
  • 포철,「경영권 내분」 구설수로 곤욕/회장­사장 “불화설” 안팎

    ◎정 회장,조 사장 측근 전격 축출이 발단/회사 “장 상무 해외파견은 문책성” 해명 포항제철이 새해 벽두부터 뜻하지 않은 「내분」의 구설수에 올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발단은 「시무식에서의 이례적인 인사」. 정명식 포철 회장은 지난 3일 시무식에서 『경영일선에 가세하겠다』며 친정체제 구축의 뜻을 비쳤다.대외 업무에만 치중하던 정회장이 대내 업무도 직접 챙기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때만 해도 긴장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국제화에 대응하려는 정회장의 생각으로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어 열린 임원회의에서 정회장이 장중웅 상무를 워싱턴 사무소로 보내겠다고 하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정회장과 조말수 사장과의 불화설,실세로 떠오른 장상무의 축출설,TJ 계열간의 암투설 등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선 3월 정기 주총에서 해도 늦지 않을 임원인사를 정초에 갑자기 단행한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특정 인물을 겨냥한 의도적 인사와 경영복귀 선언과 맞물린 점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재계에는 정회장이 조사장의 세를 견제하기 위해 측근으로 알려진 장상무를 제거했다는 견해가 있다.주총을 앞두고 조사장의 행보에 쐐기를 박자는 의도라는 얘기이다. 장상무가 비서,이동통신,경영구조 개선,홍보 등 포철의 주요 업무를 모두 맡아 대외적으로 「실세」로 비쳐진 것도 또 다른 소문을 낳고 있다. 조사장과 장상무가 박태준 전회장의 비서실장­과장 출신이었다는 점도 인사에 대한 구구한 해석을 낳고 있다.최근 「한국논단」과 모 월간지에 TJ를 부하의 손에 시해된 시이저로 표현하며 현 경영진을 몰아붙인 것이 배경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이런 소문에 포철은 펄쩍 뛴다.포철을 해코지하려는 고의적 악성 루머라는 것이다.포철의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한마디로 문책인사라고 잘라 말한다. 이 관계자는 ▲제2 이동통신에 대한 포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못한 점 ▲신포스코를 추진하면서 경영측면보다는 박전회장의 이미지 탈피에만 주력한 점 ▲공기업의 이미지를 살리지 못해 국민에게 사기업으로 비친 점 ▲「한국논단」등 포철과 관련된 기사를 제 때 파악하지못한 점 등이 장상무의 문책사유라고 설명했다. 또 정회장이 인사에 앞서 조사장의 의견을 물었고 조사장이 정회장의 의견에 동의했다는 점을 밝히며 불화설을 일축하고 있다.4일 임원회의에서도 정회장은 『내부 갈등은 없다.무한 경쟁시대에 전 직원이 단합해 달라』고 당부했고 조사장도 『오해가 없도록 회사 일에 솔선 수범하겠다』고 말했다. 포철은 인사 및 경영일선 복귀 선언이 겹친 데다 조사장과 장상무의 관계가 오래 지속된 점이 헛소문을 낳게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 “대쪽 재상” 개혁2기 고삐 당길듯/이회창 신임총리 스토리

    ◎「성역없는 사정」 일궈낸 「개혁선봉장」/고시 8회… 45세때 일약 대법관 탈락/88년 「동해선거」땐 「불법」보고 선관위장 자퇴 개혁을 기치로 출발한 문민정부 아래 「성역없는 사정」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회창 신임국무총리.어찌보면 그는 우리가 바라는 이 시대의 「신한국인」인지도 모른다. 이신임총리가 「사정의 칼」을 들고 새 정부의 개혁선봉장으로 국민 앞에 나선 것은 지난 2월25일,김영삼대통령의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부터다.대법원장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던 「대쪽같은」 소신의 그가 개혁의 한 축인 감사원장에 발탁되면서 였다. 당시 여론은 그의 감사원장 발탁을 김대통령 인사의 절묘함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감사원장으로 내정된 그의 일성은 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국회의 임명동의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소감이나 감사원 운영계획에 대한 포부를 밝히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그가 아니면 할수없는 참으로 그다운 얘기였다.이 발언은 새 정부의 이미지와 겹쳐 참신함을 더했고,국민에게 보다많은 기대를 심어줬다. 그는 개혁의 파고가 사회 곳곳을 휩쓸고간 지난 10개월 동안 이를 유감없이 보여줬다.언론들이 앞다퉈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도 그가 재임기간중 국민 모두의 바람이었던 개혁과 구태의 청산에 얼마나 성실히 임했는가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감사원장으로 있는 동안 우리 사회에는 그의 청정한 「사정의 칼날」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늘 개혁의 현장에 앞장서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율곡사업」「평화의 댐」등 굵직굵직한 감사로 감히 넘보기 어려웠던 군과 안기부,나아가 권부로 불리던 청와대까지 성역 없는 감사의 대상으로 삼았다.김대통령을 도와 문민의 정신인 「법에 의한 국정 운영」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그는 여기서 중단하지 않았다.국민의 일상과 관련된 민원행정,세무,건설,금융등 생활감사 부분에도 메스를 가했다. 구조적 부정부패와 무사안일에 대한 쾌도난마의 감사방식은 참으로 엄격했다.한때 정부내에서 조차 「청와대와의 불화설」이 나돌 정도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의 이같은 행보는 사실 예측가능한 것이었다.공직인생의 대부분을 법관으로 살아온 이신임총리의 평소철학은 「사법 적극주의」로 요약되고 있다.즉 사법부가 법조문의 해석에 얽매이지 말고 판결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김대통령이 그를 감사원장으로 내정하면서 『대법원장이 되어야 할 분인데…』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법관시절,그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특히 박세경변호사 계엄법위반사건은 헌법정신 수호와 인권보장이란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판으로 기록되고 있다.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중이던 89년에는 강원 동해시및 서울 영등포 을구 국회의원 재선거 과정에서 불법선거를 제대로 막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 모든 공직자의 수범이 되기도 했다. 고시 8회인 이신임총리는 지난 60년 인천지법판사로 임관돼 서울 민사지법 부장판사,서울고법 부장판사,법원행정처 기획실장을 거쳐 81년 일약 45세의 나이로 대법관에 임명됐다.그러나 86년 대법관 재임명에서 탈락되는 수난을 겪었다.서울이 고향으로 서울지검장을 지낸 이홍규변호사(85)의 아들이자 대법관을 지낸 한성수씨의 사위다.부인 한인옥여사(55)와의 사이에 2남1녀.
  • 총선 앞두고 텅빈 크렘린/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코너)

    ◎각료들 선거구서 “잿밥 찾기” 12일의 총선을 수일 앞두고 러시아정부는 사실상 국정운영이 중단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대통령을 비롯해 부통령대행인 총리,제1부총리등 정부의 책임인사들이 거의 모두 선거운동에 뛰어들거나 무슨무슨 이유로 크렘린을 거의 비워놓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옐친대통령은 7일 느닷없이 오세티야공화국내전을 중재한다고 헬기를 타고 현지로 날아갔다.오세티야내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최근 특별히 사태가 악화된 것도 아니다.총선과 새헌법채택 국민투표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호소를 위해 갔을 것임은 삼척동자라도 짐작할 일이다. 체르노미르딘총리는 이날 신장결석이 생겼다고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옐친측근들과의 불화설이 나도는 가운데의 일이라서 그의 입원은 여러 억측을 자아내고있다.가이다르,슈메이코,추바이스등 부총리 3인은 선거운동을 위해 7일자로 무급휴가를 떠났다. 이들은 모두 곧바로 자신의 선거구인 지방으로 떠났다.샤흐라이부총리는 이들보다 앞서 자신이 이끄는 「통일화합당」선거운동을 위해 역시 무급휴가를 떠났다.공식휴가를 떠나기 전부터도 이들은 사실상 선거운동에만 매달려왔다.다만 관용차량,인력을 선거운동에 이용한다는 야당측 비난 때문에 새삼스레 무급휴가를 신청한 것일뿐이다. 정부각료들만 일손을 놓고있는 게 아니다.은행·기업을 포함한 각종 사업체들은 정치혼란기에 확실한 「줄」을 잡기 위해 나름대로 후보지원에 나서 본업은 뒷전이다.현행 선거법상 선거자금공개의무 규정이 없어 어떤 단체에서 얼마만한 돈을 어떤 당에 대주는지 알수도 없고 그걸 문제삼는 사람도 없다.각당별로 받을수 있는 기부금 상한액이 1억5천만 루블(한화 1억2천만원 상당)이고 후보별로도 1백50만 루블까지 기부금을 받을수 있게 돼있다.서방의 기준으로 본다면 많은 선거비용은 아니지만 현재 러시아 경제현실에 비추면 엄청나게 많은 액수이고 공개되지 않은 비용은 이의 수십배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들이다. 보다 큰 문제는 총선이후에도 정치혼란이 개선될것 같지 않다는데 있다.「러시아선택당」은 선거만 치르면 깨질 것이라는 설이 분분하고 샤흐라이부총리,체르노미르딘총리등이 제2의 하스불라토프,루츠코이로 변신할 것이라는 추측들이 벌써 나돌고 있다.이번 총선 역시 각종 후유증만 남긴 채 실속없는 잔치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
  • 김정일,2개월여 공석 안나타나/평양에 위암 입원설·교통사고설 무성

    【도쿄 연합】 북한의 김정일비서는 지난 4월말 예술 관계자들과의 좌담회에 출석한 후 2개월 반이나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춰 평양의 서방측 외교소식통들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버지 김일성과의 불화설·교통 사고설 등 여러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일본의 교도(공동)통신이 16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교도 통신은 이에 따라 평양에서는 오는 27일 대대적으로 개최할 이른바 「대미전쟁(6·25전쟁)승리 40주년 기념식」에 김이 출석할 것인지 여부가 최대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고 밝히고 김이 여기에도 나타나지 않을 경우 김일성의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커다란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외교 소식통들은 『김의 장기적인 소재 불명이 평양 시민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유에 관해 여러가지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면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음주광에다 흡연광인 김이 위암에 걸려 입원해 있다는 설 ▲김이 독단적으로 핵 확산 금지조약 (NPT)의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김일성의 노여움을 샀다는 부자 불화설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북한­중국관계 정말 껄끄러운가/김정일 방중취소 등 불화설 저변

    ◎한­중 수교후 장관급 공식방문 “전무”/중,시장경제채택으로 이념상 “결별” 중국과 북한관계가 위기로 치닫고 있는가. 근래에 들어 이들 양국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내용의 보도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국경선에서의 총격전을 비롯,중국민항기의 평양운항중단,김정일의 방중취소,강택민주석의 김일성특사 접견거부,양국간 외교접촉 중단설 등이 보도되는 걸 보면 중국과 북한관계가 이제 막다른 골목길에 접어든듯한 느낌이다.이렇게 가다가는 단교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난해 8월 한·중수교 이래 중국·북한관계가 다소간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신문보도처럼 그렇게 위기상황으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았다는 게 중국관리나 이곳 외교 소시통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들은 최근의 중국·북한관계 보도들이 이상하리만큼 날조·과장·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홍콩의 한 잡지는 강택민국가주석이 지난 5월중순 김일성특사의 접견을 거부했으며 대신 고위 관리들을 이 특사에게 보내 양국간 당·군대표단의상호 교환방문계획을 취소키로 결정했음을 통고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이는 북한의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이 인도네시아에 가기 위해 조선민항을 타고 왔다가 다른 항공기로 갈아타는 동안 잠시 북경공항 일부가 폐쇄되고 중국 외교부의 부부장 한명이 마중나갔던 사실을 두고 계속 쏟아지고 있는 억측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잡지가 당·군대표단의 교환방문을 취소했다고 전한 것과는 달리 5월부터 적십자대표단·공안대표단·여맹대표단 등 오히려 전보다 활발한 교류가 일고 있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또 양국 국경선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몇차례 있었으나 이것 역시 『북한측 경비요원들이 밀수꾼들에게 총을 쏜 경우』로 해명되고 있다. 이밖에 김정일이 3월8일 중국방문계획을 중단하게 된것은 팀스피리트훈련을 둘러싼 「준전시상태 선포」(3월9일)와 핵확산금지조약탈퇴선언(3월12일)등 북한 내부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간 때문이지 서방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강택민국가주석과의 회담이 거부됐기 때문이 아니며 중국민항기의평양취항중단설도 승객이 없어 운항횟수를 종전의 주2회에서 주1회로 줄인데서 나온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난해 한·중수교 이후 양국관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우선 지난 10개월 가까이 양측에서 장관급 이상 고위인사를 상대편 국가에 공식대표로 보낸 적이 없다.종전의 예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과거 평양공항에서 중국여권 소지자에게는 아무 검사도 없이 무사통과시켰으나 이제는 검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크고 근본적인 변화는 이념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중국이 등소평의 이른바 「남순강화」 이후 2단계 개혁·개방 바람을 일으키면서 이스라엘,남아공,한국 등과 수교하고 당대회에서 시장경제체제까지 공식 채택하게 되자 북한으로서는 『중국도 이제는 이념상 동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그래서 내부적으로 중국을 「사회주의변절자」로 취급하게 되고 김정일은 『몇몇 국가들이 사회주의 경제를 접수하지 않은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기까지 했다.사회주의 국가들간에 이념적 변절이 생기면 화합은 커녕 원수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은 중·소분쟁을 비롯한 각종 역사적 사실들이 잘 입증해주고 있다. 이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중국과 북한 두 나라는 이미 마음속으로 등을 돌렸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다시말해 과거 혈맹이나 동맹관계를 따질 때 처럼 서로 마음속으로 의지하고 믿던 시대는 지나고 국가이익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일반적인 국가관계로 변질됐다는 얘기다. 이같이 서로 마음이 변한게 분명함에도 아직까지는 『양국간 우호친선관계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따라서 중국과 북한은 이념상으로는 남남이 됐지만 아직도 양측이 상대편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서로 조심하면서 적대관계로 발전하는 걸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 파월,“조기사임 희망”/클린턴과 불화설은 부인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콜린 파월 미합참의장은 10일 임기 만료전에 합참의장직에서 조기 퇴진하고 싶다고 말했으나 자신이 빌 클린턴대통령의 국방정책을 반대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파월의장은 이날 NBC방송과 회견에서 『내 임기는 오는 9월30일에 만료되지만 가족들의 재정착문제로 1∼2개월 가량 빨리 퇴임하고 싶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것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나 실망때문은 아니다』고 밝혔다. 파월의장은 ABC방송과 회견에서도 국방예산 감축,동성연애자 군복무허용등 클린턴의 국방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조기 퇴임할 것이라는 뉴욕 타임스지의 10일자 보도를 부인했다.
  • 남북 총리회담 대표들의 「평양기류」 진단(오늘의 북한)

    ◎김정일 조기 권력승계 가능성 희박/대일수교·경제재건 이후에 다양점쳐/김부자 추종세력 불화설이 최대변수/주석직 임기 끝나는 내년쯤 이뤄질지도 북한의 권력승계와 관련,조기승계 불가론이 6차 남북 고위급회담 이후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24일 김정일 비서가 북한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자 국가주석직이 오는 4월15일 김일성주석의 80회 생일을 전후해 김 비서에게 넘어가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18∼21일 평양에서 열렸던 제6차 고위급회담 참가 대표단 및 취재진들은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들을 근거로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함을 증언하고 있다. ○총사령관은 명예직 이와관련,고위급회담 남측 대변인인 이동복 국무총리특보는 지난달 25일 서울에서 가진 외신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김일성이 여전히 예비병력을 포함한 군최고사령관직을 갖고 있으며 다만 김정일에게는 예비병력을 제외한 현역 인민군에 국한하는 총사령관직을 「명예직」으로 신설,취임케 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며 조기 권력이양의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김일성주석이 권력을 놓기에는 너무 건강하다』면서 지난 방북기간중 김 주석이 소문과 달리 김정일에게의 권력이양작업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의 이같은 주장은 지난 6차 회담기간중 북측 인사들에 의해서도 여러 차례 확인된 것이다. 북한 국제관계대학 법학과 교수라는 이모씨는 김 비서의 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를 국가주석직 승계예고로 받아들인 것은 남측 언론들의 잘못된 해석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주석은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되며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고 한 사회주의 헌법 93조의 내용중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이란 인민군 최고사령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즉 전반적 무력은 노농적위대,붉은 청년근위대 등 비정규군과 정규군인 인민군을 통칭하는 것으로 김 비서가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것은 전반적 무력에 포함되는 정규군에 관한 지휘권만 장악,여전히 전반적 무력의 총사령관인 김 주석을 보필하게 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따라서 김 비서가 인민군 최고사령관 자리에 앉았으므로 헌법상 겸임토록 돼있는 국가주석에 곧 선임될 것으로 내다본 서방의 관측은 한낱 추리일 뿐이라는 게 이모씨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이었다. ○생존전략과 맞물려 뿐만 아니라 일부 전문가들은 『김 비서가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것은 후계체제의 완성과 그에 따른 공존체제의 구축을 병행추진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북 수교가 이뤄져 일본으로부터 도입되는 배상금과 기술을 토대로 경제를 재건하고 남한과의 장기적인 공존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그것을 김 비서에게 인계하는 것이 김 주석의 생존전략이다. 이에따라 일·북 수교가 완결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권력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최근 평양에 대규모 살림집(아파트)을 건설하고 인민소비품의 증산을 도모하는 것은 김 주석에 비해 이렇다할 업적이 없는 김 비서에게 「경제발전」의 치적이란 신화를창조해 줌으로써 부자권력승계의 당위성을 주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소련 및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딴 변혁으로 이같은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는 북한이 최근과 같은 「위기상황」하에서 권력승계를 단행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최근 북한이 열의를 보이고 있는 일·북 수교와 남북간 경제교류 및 합작추진은 한계상황에 이른 경제를 재건할 수 있는 물질적인 토대를 지금까지 적으로 간주해온 일본과 남한은 물론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축적하고자하는 몸짓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은 안정된 권력승계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유화적인 대외·대남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해외자본 및 기술유치면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내부적 갈등과 불안의 소지가 있는 권력승계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처럼 김 비서의 조기 권력승계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권력이양 및 북한의 최근 대외·대남정책과 관련해 김부자간,또는양자의 추종세력간 미묘한 갈등이 노정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것이다. 가령 김 주석이 지난달 20일 정원식 국무총리 등 남측대표 일행과의 면담시 발표한 성명이라든가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의 이튿날 만찬사 등은 5·6차 고위급회담때 보여준 북측의 태도와 정반대되는 흐름을 보여준 것이라는 게 이동복 대변인의 주장. 연형묵총리 등 북측 회담대표들은 이같은 돌출한 「흐름」에 당혹해 하며 남측대표자들에게 간접적인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북측의 이같은 상반된 태도는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즉 이같은 불협화음이 양측의 「사전약속」에 의해 나온 것인지 아니면 최근의 대남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과 그의 추종세력인 개혁파와 김일성을 한평생 「모셔온」 혁명1세대 등 보수파간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인지에 따라 향후 상황전개가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파 반발 심해 이 경우 남측 언론에 대한 「혹 달린」 김 주석의 모습노출 등의 「사건」은 김 비서추종세력들이 「병들고 노쇠한 모습」의 김 주석의 근황을 유포함으로써 조기 권력세습의 당위성과 그 가능성을 시사하기 위한 「의도적인 배려」(?)일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김정일비서가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것을 의도적으로 축소 해석하려는 최근의 움직임 또한 혁명1세대를 중심으로한 보수파들의 반발에 따른 반사작용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이같은 보수파의 반발이 존재하는 한 조기 권력승계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김정일비서의 권력승계는 지난 90년 국가주석직에 재선된 김 주석이 임기 4년을 마치는 오는 93년 4월쯤이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민자당직 오늘개편/정책의장 나웅배씨·총무 유임

    ◎총장엔 김태호·김중권씨 거론 민자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은 19일 수서파문 수습책의 2단계 조치로 당3역중 일부에 대한 당직개편을 단행한다. 18일 개각에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기용된 최각규 정책위의장 후임에는 나웅배의원이 유력시된다. 또 정순덕총장의 후임에는 김태호·김중권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사의를 표명한 김윤환총무는 유임이 확실시 된다. 민자당은 당3역에 대한 개편에 이어 수서사태로 공석이 된 사무제1부총장,국회 건설위원장 등 중하위 당직과 국회직에 대한 후속인선도 곧 단행할 예정이다. 한편 박희태 대변인은 이날 하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간에 인선내용에 대한 이견이 없었다』며 노대통령과 김대표의 청와대 회동직후 나돈 불화설을 일축했다.
  • 「12·27 개각」 정가·관가 표정

    ◎“그동안 펼친 일 이젠 수확할 때”/힘센 장관 발탁에 기대반 우려반 체육부/“꼼꼼한 장관 부임했다”… 외무부직원 큰 걱정/“민주계 목소리 완전 배제” 일부 의원 불만도 ○신임 각료들에 당부 ○…노태우 대통령은 27일 하오 청와대에서 노재봉 신임 국무총리서리등 신임 각료들과 정해창 신임 대통령비서실장 등 신임 수석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통치후반기를 맡을 각료들에게 법과 질서와 경제도약을 당부.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제 6공화국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후반기를 장식할 주역들』이라면서 『그동안 많은 일을 펼쳐놓았는데 수확할 일이 많다』고 앞으로의 역할을 강조. 노대통령은 『90년대 중반까지는 통일의 결정적인 시기가 온다』면서 『등소평과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자신감을 피력. 노대통령은 북한문제에 대해 『지금 세계에 이상 한파가 오고 있다고 하는데 북한도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므로 각 부처는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한미 통상마찰등을 잘 해결하라』고 지시. ○“강한 내각될것” 중론 ○…개각이 발표된 27일 상오 총리실은 강총리의 「명예퇴진」을 일찍부터 예견했던 때문인지 비교적 담담한 분위기 강총리는 이날 상오 8시55분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는데 정부종합청사 현관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진기자들에게 『새로 오는 사람을 찍어야지 떠나는 사람은 무엇하러 찍어요』라며 웃으며 농담. ○“대북 협력관계 주력” ○…9개월여의 단명으로 홍성철 장관이 물러가고 최호중 외무장관이 통일담당 부총리로 임명되자 통일원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속에 대체적으로 환영.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부총리로 승격,관련 부처를 조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통일원으로서는 외무장관을 지낸 분이 오면 그만큼 관련 부처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겠느냐』며 최부총리의 조정권에 기대를 표시. 한편 신임 최부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관계도 북방외교와 마찬가지로 교류·협력분야에 중점을 두고 이의 활성화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소감을 피력. ○…최호중 전임장관이 부총리로 격상된 통일원장관으로 영전되고 신임장관도 직업외교관 출신인 이상옥 주제네바 대사가 임명되자 외무부는 매우 밝은 분위기. 최장관의 영전은 그동안의 북방외교 성과로 볼 때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인 외무부 관계자들은 그러나 신임 이장관이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 식의 매우 꼼꼼한 업무스타일이어서 은근히 걱정. ○“상공부 산하단체냐” ○…김창식 장관이 재임 9개월의 단명으로 끝나고 임인택 상공부차관이 새 장관으로 부임해온 교통부에서는 임장관과 지난 6월 동자부에서 자리를 옮겨온 장상현 차관이 모두 상공부 출신이라는데 화제가 집중. 상공부에서 임장관을 차관보로 모셨던 장차관으로서는 오랜만에 다시 손발을 맞출 수 있게 됐으나 일부에서는 『교통부가 상공부 산하단체냐 아니면 상공부 외청이냐』고 부내 승진 부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강성 노동정책 예상 ○…공보처 직원들은 최병렬 장관이 장수장관이어서 이번 개각에서 물러서면서 다른 자리로 「중용」될 줄 알았지만 노동부 장관으로 가게 된데 대해서는 의외라는 반응. 이와 관련,간부급직원들은 『집권후반기의 노동행정에서 그의 업무추진력과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분석. 최장관은 이날 상오 강총리에게 인사를 한 뒤 기자들과 점심을 하면서 『노동의 「노」자도 모르지만 배우면서 하겠다』고 소감을 피력. ○…정동성 장관의 잦은 경질설로 이번 개각에서 장관이 바뀔 것으로 보아온 체육부는 막상 거물급(?)인 박철언 민자당의원이 후임장관으로 발탁되자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분위기. 새해부터 부명칭이 체육청소년부로 바뀌면서 업무가 비대해지게 된 체육부는 은근히 힘이 있는 장관이 오기를 기대해 왔는데 박장관이 기용되자 앞으로 생활체육·청소년문제 등 굵직한 현안들이 쉽게 풀리지 않겠느냐는 반응. ○…신임 서울시장으로 박세직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이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시 직원들은 인명사전에서 박시장의 프로필을 복사해 돌려보는 등 민감한 반응. 대부분의 직원들은 박 신임시장이 서울올림픽을 무사히 치른 능력과 안기부장 등 요직을 거친 점을 들어 서울시 행정을파악한 뒤엔 「뭔가 보여줄 것」으로 크게 기대하는 눈치. ○“장관은 전공과 무관” ○…민자당은 이번 개각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각 계파간에는 「일부」 신임각료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는등 미묘한 기류가 형성.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지난 10월말 내각제합의각서 파동당시 불화설이 나돌았던 노재봉 대통령비서실장이 총리로 기용된데 대해 『대통령비서실장과 집권당의 대표간에 관계가 나쁠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노총리서리는 청와대 정치특보와 비서실장을 역임하면서 행정경험을 충분히 쌓았는데다 노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기 때문에 업무를 훌륭히 처리할 것』으로 평가. 김대표는 또 박철언의원의 체육부장관 입각에 대해 『장관이란 전공과 상관없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 김대표의 이같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민주계의 황병태의원은 『논평조차 하고 싶지 않다』며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했으며 「민주계의 목소리가 인선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는 것이 민주계 의원들의 공통적인반응. 그러나 김종필 최고위원은 『조각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만큼 얘기하지 않겠다』며 초연한 자세를 견지. ○…평민당과 민주당 등 야권은 이번 개각에 양김 퇴진론자인 노총리와 3당통합의 주역인 박장관이 기용되는 등 껄끄러운 인사가 대거 포함된데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 야권은 특히 일부 신임각료가 5공때 장관직을 거친 인물인 점을 들어 「5공으로의 회귀」로 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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