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불행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드라마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사업가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브랜드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941
  • 이해찬 “盧 향한 검은 그림자 걷히지 않아…참말로 징하다”

    이해찬 “盧 향한 검은 그림자 걷히지 않아…참말로 징하다”

    16대 대선 출마 슬로건 걸고 봉하마을서 100여명 참석… 코로나 확산 최소 규모로 주호영 ‘MB·朴’ 사면 언급에 김두관 비판‘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1년 16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약속한 슬로건을 내걸고 진행된 노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지난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엄수됐다. 추도식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최소 규모로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 등 유족과 각계 주요 인사 등 100여명만 참석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추도사에서 “민주의 역사가 헌법에 당당히 새겨지고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 그날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노무현재단과 민주당을 향한 검은 그림자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모함을 받고 공작의 대상이 됐다”고 서거 이후를 회상하면서 “지금도 그 검은 그림자는 여전히 어른거린다. 끝이 없고 참말로 징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정색을 하고 미리 초를 치는 것을 보니 노무현재단 관련 곧 뭔가 터져 나올 듯하다”고 적었다. 이 대표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을 염두에 두고 ‘검은 그림자’ 발언을 했다고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추도식 전날인 22일 페이스북에 봉하마을로 내려가는 심정을 적으며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 처리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며 “대통령마다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대통령의 비극’이 이제는 끝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에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23일 “황당한 사면 주장에 노 전 대통령을 운운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위기에 빛난 응급대처… ‘신영록 교훈’이 김효기 살렸다

    위기에 빛난 응급대처… ‘신영록 교훈’이 김효기 살렸다

    지난 23일 광주FC와 상주 상무의 경기가 열린 상주시민운동장. 광주가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37분 광주 공격수 김효기가 골을 넣기 위해 달려가다 상대 골키퍼 황병근과 부딪친 후 의식을 잃자 주심을 보던 조지음 심판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뒤 호루라기를 불고 경기를 중단시켰다. 심판의 휘슬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동료들은 김효기에게 달려들어 몸을 주무르는 한편 혀가 말려들어가지 않게 응급조치를 취했고 심판도 기도확보를 하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몇 초 뒤 선수보다 빠른 속도로 그라운드에 뛰어든 의료진은 황병근과 김효기 모두 정상임을 확인한 뒤 충격이 더 컸던 김효기를 응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후송했다. 프로축구가 위기의 순간 선수를 살리는 ‘K응급대처’를 선보여 화제다. 순간적으로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자 그라운드에 있는 모든 이들이 승부를 멈추고 선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합심했고 재빠른 응급조치로 아무 사고 없이 상황을 수습했다. 광주 구단 측은 “김효기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후송돼 CT 촬영을 했고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프로축구의 응급대처에는 2011년 5월 신영록(당시 제주 유나이티드) 사고의 교훈을 빼놓을 수 없다. 신영록은 대구FC와의 홈경기 도중 부정맥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로 경기 중에 쓰러졌다. 신영록이 쓰러진 직후 상대팀인 대구의 안재훈이 기도를 확보했고 의료진에 의해 심폐소생술 조치가 이뤄지는 등 신영록은 쓰러진 이후 병원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12분이 걸리며 다행히도 목숨을 건졌다. 신영록은 한동안 의식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다가 50여일 만에 가족을 알아볼 정도로 의식을 회복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신영록 사건 이후 프로축구연맹은 홈경기 운영 매뉴얼에 응급상황시 대처사항, 의료진 구성 등에 대한 규정을 강화했고 현재는 K리그1, 2 모두 경기장에 특수 구급차 1대와 의료진 3명(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이 상시 의무 대기한다. 연맹은 경기장은 물론 선수단 이동과 훈련 때도 심폐소생술에 필요한 제세동기를 비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엄격한 대응기조를 통해 선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 연맹과 협약을 맺은 기관에서 담당자가 파견돼 1년 내내 순회하면서 선수, 심판, 직원 등 리그 구성원에 대한 심폐소생술 교육도 실시한다. 연맹 관계자는 24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축구가 격렬하게 신체접촉을 하는 종목이다보니 위급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장에 있던 심판의 1차적인 조치와 의료진의 신속 대응으로 위기를 넘겼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든 구성원에게 심폐소생술 응급조치 교육 규정에 대한 충분한 숙지를 더 강조해서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몰디브에서 두 달 신혼부부 “우리 허니문 끝나질 않네요”

    몰디브에서 두 달 신혼부부 “우리 허니문 끝나질 않네요”

    “우리의 신혼여행은 도무지 끝나질 않네요.” 인도양의 아름다운 섬나라 몰디브에 옴짝달싹 못하고 붙들려 있는 이집트 신혼부부 칼레드(36)와 페리(35) 얘기다. 만난 지 8년 만에 지난 3월 6일(이하 현지시간) 카이로에서 예식을 올린 두 사람은 며칠 뒤 직장이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멕시코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코로나19다 뭐다 말들이 많았지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선언되기 전이라 남의일로만 여겨져 칸쿤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바이 집에 돌아가기 위해 같은 달 19일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내린 뒤에야 두바이로 가는 하늘길이 막혔다는 것을 알았다. 페리는 23일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이스탄불행) 기내에서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친구들이 보내온 메시지가 가득했다. 두바이에 돌아올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들은 새 법 때문에 입국이 어려울 것이라고 알려줬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둘은 별 일 없겠지 하고 말았다. 경유편 수속을 밟다 둘은 멕시코를 출발하던 즈음 UAE의 새 법이 공표됐으며 두바이행 여객기에 탑승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틀을 공항에서 보냈다. 터키 당국은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도, 이스탄불 시내에 들어가는 일도 안된다고 했다. 탑승권이 유효하지 않아 화장실 휴지나 옷을 살 수도 없었다. 짐을 찾을 수도 없었다. 이집트 항공편도 모두 취소돼 고국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이집트인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으며 비행편이 있는 나라는 몰디브 뿐이었다.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씻 웃었다. 한때 몰디브를 허니문 장소로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투명한 물빛의 해변, 스노쿨링 같은 것보다 공항 벤치나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일만 아니라면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상관 없다 싶었다. 통신사 엔지니어인 칼레드는 웃으며 “짐을 되찾은 것만 해도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제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 떠올랐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페리는 “노트북 컴퓨터도 챙겨오지 않았다. 신혼여행 가면서 일할 게 많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리조트에 도착하니 투숙객이 많지 않고 그나마 귀국 비행편만 주어지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는 신혼부부들 뿐이었다. 투숙객들이 떠나면 호텔은 문을 닫는다며 나가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부부는 계속 호텔들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지난달은 몰디브 정부가 올후벨리 섬에 마련한 생활격리시설에서 지냈다. 할인된 가격에 묵게 해줘 그나마 다행이었다. 현재 둘이 묵는 리조트에 70명, 몰디브 전체로는 300명의 여행객이 남아 있다. 새로운 입국 여행객을 받지는 않는다.둘은 몬순 기간이라 비도 많이 내리고 무슬림의 금식 성월인 라마단 기간이어서 같은 해변을 수십 번 찾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휴가 기간이 끝나 어렵사리 연결된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직장 일을 보고 있다. UAE 국민이 아니고 영주권자라 걸프 영내 다른 나라로 비행할 수도 없다. 이집트 정부가 마련한 전세기로 귀국하는 방안이 유일한 대안일 수 있는데 정부시설에 14일 격리돼야 한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두바이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처럼 해외에 발이 묶여 있는 영주권자들에게 귀국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하고 있지만 답이 없다. 여행 비용이 계속 불어나는 것에 대해 “돌아갈 때까지 계산도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 다른 곳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는데 본인들은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행복한 신혼부부들로 북적거려야 할 이곳에서 두 달째 갇혀 지내니 스트레스와 부담이 만만찮다고 했다. 페리는 조금 더 직설적으로 “우리 얘기를 듣는 이들은 웃으며 ‘뭐라고? 몰디브 같은 곳에서 신혼여행을 두 달씩이나? 당신의 처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닥 편안하거나 행복하지 않다. 분명 스트레스 가득이다. 집에서 가족과 있는 것을 즐겨라. 나라면 어떤 것도 제쳐놓고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주호영 ‘박근혜·MB’ 사면 건의에 김두관 “盧 서거일에 황당”

    주호영 ‘박근혜·MB’ 사면 건의에 김두관 “盧 서거일에 황당”

    朴 겨냥 “상습 뇌물 먹고 탄핵 당하고도 사과·반성 없어…어떤 이유로 사면하나”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인 23일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 건의에 대해 “왜 하필 노 전 대통령 서거 11주년 전날 사면 건의를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황당한 사면 주장에 노 전 대통령을 운운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金 “지금은 사면 건의 아닌 반성·사과 촉구할 때”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은 사면을 건의할 때가 아니라 두 전직 대통령에게 반성과 사과를 촉구할 때”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전날인 22일 오후 페이스북에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는 심정을 적으며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대통령마다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대통령의 비극’이 이제는 끝나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사면을 거론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뇌물과 국정농단이라는 범죄로 감옥 간 두 전직 대통령과 정치검찰의 표적 수사와 정치보복으로 운명을 달리한 노 전 대통령을 모두 ‘불행한 전직 대통령’이라며 한 묶음으로 표현한 것도 매우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 기일 전날에 고인의 불행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고인과 상대 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일갈했다.金 “반성 없는 사면의 결과, 전두환이 똑똑히 보여줘” 김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겨냥해 “뇌물을 상습적으로 받아먹고 국정농단으로 탄핵을 당하고도 자신의 죄를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고 사과와 반성도 전혀 없다”면서 “어떤 이유로 사면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사면은 국론 분열만 초래한다”고 작심한 듯 비난했다. 특히 광주 5·18 민주화운동 관련 헬기 사격 등에 있어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사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강조했다. 김 의원은 “반성 없는 사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전두환이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한 뒤 “청산하지 못한 불행한 역사의 고리를 이번에는 반드시 끊자는 결의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 노 전 대통령께 당당히 인사드릴 수 있지 않겠냐”라고 말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기이한 천재들의 산책… 세상을 바꿔놓은 잡담

    기이한 천재들의 산책… 세상을 바꿔놓은 잡담

    ‘외로움·지적 고립’ 감정 공유했던 두 천재 업적 세워도 고독했던 대가들의 빛과 그늘천재는 외롭다고 한다. 위대한 사상가며 과학자 중엔 외롭게 살다 간 이들이 적지 않다. 남과 구별되는 창의성으로 기상천외한 성취를 남기고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거꾸로 외면당하는 고독한 영혼이 수두룩하다. 미국 과학작가이자 철학자인 짐 홀트는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에서 세상을 바꿔 놓은 이론이며 그 주인공에 얽힌 빛과 그림자를 들춰 흥미롭다. ‘문외한에게는 빛나는 통찰을, 전문가에게는 뜻밖의 참신한 반전을 선사하고 싶은 칵테일파티용 잡담’이란 서문처럼 걸출한 이론과 사람을 깊이와 재미로 버무린 수준이 녹록지 않다. 책의 제목으로 택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쿠르트 괴델의 우정은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다. 상대성이론으로 물질세계에 관한 개념을 뒤집은 아인슈타인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로 불리는 괴델. 붙임성이 좋고 웃기 좋아하는 아인슈타인과 침울하고 비관적이었던 괴델, 두 사람은 정반대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늘 단둘이서만 이야기하길 즐겼다고 한다. 혁명적 사상을 독자적으로 내놓으며 지적인 고립의 감정을 공유했던 셈이다. 후대에 두 천재는 ‘이 세계는 우리 개개인의 인식과 무관하게 합리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결국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인물´로 함께 묶인다.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튜링의 계산 가능성과 결정문제, 프랙털, 범주론, 고차원, 진리이론. 책의 특징은 이런 걸출한 이론들의 깔끔한 정리에 입체적으로 붙인 스토리 전개이다. 이를테면 빅토리아 시대의 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일기예보와 지문 감정 분야를 개척한 인물임에도 선택적 번식을 통해 인류를 향상시킨다는 업적으로 해서 유사과학의 아버지로 매도된다. 불행한 결말을 맞은 대가들의 이야기도 예사롭지 않다. 괴델은 유일한 대화 상대였던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후 더 심하게 내성적으로 변했다. 망상에 시달리다 음식을 거부한 채 병원에서 영양실조로 숨졌다. 컴퓨터 개념을 고안했고 나치의 애니그마 암호를 해독해 수많은 생명을 구해낸 앨런 튜링은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깨물고 목숨을 끊었다. 순수수학과 상업주의를 둘러싼 논쟁을 비롯해 과학, 수학계의 해묵은 논쟁 궤적을 훑는 재미도 쏠쏠하다. 골턴의 이론에 따라 시도된 유럽과 미국의 우생학 프로그램들에선 과학이 어떻게 윤리를 타락시키는지를 볼 수 있다. 저자는 한 세대 이상 ‘끈 이론’ 전쟁을 벌이고 있는 물리학계를 향해 “아름다움은 곧 진리라는 등식이 지난 세기 대부분의 기간 물리학자들을 사로잡았지만 그 등식 때문에 물리학자들이 길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꼬집고 있다. 특히 전쟁 부상자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친 플로렌스 나이팅케일의 예를 들어 지적한 ‘도덕적 성인’이 주목할 만하다. 책에서 나이팅게일은 다정하고 헌신적인 자비의 천사가 아니라 걸핏하면 화를 내고 굽히지 않는 꼬장꼬장한 의지와 예술가 기질을 가진 자기중심적 여성으로 소개된다. 나이팅게일의 숨겨진 면모를 들춘 저자는 “필요한 기술적, 조직적 능력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타적 업적을 달성하려면 뛰어난 창의성도 필요한 것 같다”고 쓰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주호영 “5·18은 현대사 불행” 심상정 “광주서 朱 제일 환영”

    주호영 “5·18은 현대사 불행” 심상정 “광주서 朱 제일 환영”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를 거치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온 미래통합당과 정의당이 20일 덕담을 주고 받으며 화해 분위기를 연출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취임 인사차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심 대표를 만나기 위해 국회 본관 정의당 대표실을 찾았다. 심 대표는 주 원내대표를 맞으며 “엊그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행사 때 광주에서 주 원내대표가 환영을 제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주 원내대표는 광주를 방문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5·18 망언’ 등에 대해 사과했다. 주 원내대표는 심 대표의 환대에 “5·18은 현대사의 기록인데 40년 동안 해결 못 된 채 갈등이 반복됐다”며 “현대사의 불행을 빨리 정리하고 국민통합,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광주를 방문해보니 ‘5월에서 미래로’라는 문구가 있더라. 방향이 바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행사장에서 본 ‘미래로’와 통합당 당명에 담긴 ‘미래’가 가리키는 지점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심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협력도 제안했다. 심 대표는 “더이상 5·18이 정치의 볼모가 돼선 안 된다”며 “법적으로 다 정리된 문제고, 정의로운 문제를 볼모로 붙잡고 있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21대 국회에서는 초반부터 매듭을 지어야 한다”며 “4·3과 함께 (5·18을) 역사의 자리에 세워놓고, 우리는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심 대표가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황교안 대표를 예방했을 때는 양측 모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당시 심 대표가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원천무효 해야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자 황 대표는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고 맞섰다. lkh2011@seoul.co.kr
  • [여기는 남미] “코로나19로 가족 5명 잃었다”…브라질 할머니의 비극

    [여기는 남미] “코로나19로 가족 5명 잃었다”…브라질 할머니의 비극

    코로나19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브라질에서 50여 일 만에 코로나19로 가족 5명을 잃은 할머니가 언론에 소개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브라질 아마조나스주의 주도 마나우스에 사는 할머니 마리아 누네스 시님부(76). 그는 “나와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자식만 셋을 잃었으니 심정이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했다. 3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교사로 일하면서 홀몸으로 12명 자식들을 키워낸 할머니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아들과 딸이 40~60대에 이르면서 손자와 손녀는 60명을 넘어섰다. 증손자와 증손녀는 몇 명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대가족에게 첫 슬픔이 닥친 건 지난달 5일(이하 현지시간). 3명 아들 중 1명인 라이문도(58)가 코로나19에 걸려 숨졌다. 대를 이어 교사가 된 아들은 엄마인 시님부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효자였다. 자식을 잃은 할머니에겐 이틀 뒤 7일 또 비보가 전해졌다.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주던 시누이(77)가 코로나19에 걸려 사망했다. 같은 달 13일 이번엔 딸 롤란다(48)가 세상을 떴다. 마나우스에서 장사를 하던 딸은 코로나19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했지만 장사를 강행하다가 몹쓸 감염병에 걸렸다. 할머니는 “딸이 코로나19를 가볍게 여긴 것 같다”면서 “평소처럼 장사를 하다가 그만 코로나19에 감염돼 회복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지난달 24일 할머니는 큰시누이(80)를 잃었다. 이어 지난 1일엔 또 다른 아들 티아고(52)가 코로나19에 걸려 눈을 감았다. 아들은 코로나19에 걸려 이미 상태가 심각해진 뒤에야 병원에 실려가 입원한 날 바로 사망했다. 할머니는 괜찮을까? 함께 살던 아들이 코로나19로 사망한 할머니는 코로나19 밀접접촉자지만 한 번도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 그만큼 브라질의 대응이 허술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할머니 주변에선 자식 셋과 시누이 둘 등 5명이 코로나19에 걸려 세상을 떠났지만 코로나19 사망자로 분류된 사람은 58살 아들과 48살 딸 등 2명뿐이다. 공식 통계를 보면 브라질에선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자 26만5896명, 사망자 1만7840명이 발생했다. 그러나 시님부 할머니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실제 확진자와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할머니에겐 얼마 전 고열과 근육통 등 코로나19 증상이 발현했다. 할머니는 감기약을 먹은 뒤 증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할머니는 “감염병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어이가 없다”면서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면허도 땄고 게임도 해요” 김광현의 슬기로운 미국생활

    “면허도 땄고 게임도 해요” 김광현의 슬기로운 미국생활

    코로나19로 메이저리그(MLB) 데뷔가 늦어진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근황을 전했다. 김광현은 개인 훈련을 진행하고, 면허를 따고 비디오 게임 등을 하며 ‘슬기로운 미국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과는 매일 화상통화로 안부를 주고 받고 있다. MLB닷컴은 19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머무는 김광현의 근황을 전했다. 김광현은 팀의 스프링캠프지였던 플로리다주에 머물다가 코로나19로 MLB 개막이 연기된 이후 세인트루이스로 거주지를 옮겼다. 김광현은 당시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한테만 불행한 것 같은 시기”라며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김광현은 현재 통역 최연세씨와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캐치볼과 런닝 훈련을 통해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김광현은 리그가 개막했을 때를 대비해 팀의 베테랑 아담 웨인라이트로부터 다양한 조건에서 투구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야구 없는 지루한 생활을 달래기 위해 김광현은 소소한 일상도 보내고 있다. 이미 국제운전면허증이 있지만 면허증 만료 기간보다 미국 생활이 길어질 점을 대비해 미주리주 운전면허 시험을 쳐 통과했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비롯해 몇몇 비디오 게임도 하고 있다. 김광현은 ‘기생충’을 여러 번 봤으며 다양한 액션 영화들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과는 꼬박꼬박 영상통화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김광현은 한국프로야구엔 큰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MLB닷컴은 “김광현이 사는 아파트엔 ESPN의 채널이 나오지 않으며 친정팀 SK 와이번스가 1승 10패로 시즌을 시작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통역 최연세씨도 “김광현이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있지만 큰 관심을 두고 있진 않다”고 덧붙였다. 김광현은 “중요한 것은 지루하다는 것”이라면서도 “시즌이 시작하면 바쁠 것 같다. 그러면 내가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요즘은 바쁘지 않기 때문에 가족 생각이 많이 난다. 다행히 한국 내 코로나19 확진자수가 급격히 줄어 가족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면서 “가족과 통화하는 걸 즐기고 있지만 가족이 그립다”고 말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반려독 반려캣] “나는 닥터 독!”…美 명예박사 받은 치료견 화제

    [반려독 반려캣] “나는 닥터 독!”…美 명예박사 받은 치료견 화제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도왔던 치료견이 미국 유명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아 화제에 올랐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현지언론은 버지니아 공대 수의대에서 생활하고 있는 치료견 무스(8)가 15일 온라인으로 열린 졸업식에서 수의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인 무스는 지난 2014년부터 이 대학 쿡 카운셀링 센터에서 치료견으로 활동해왔다. 치료견(therapy dog)은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이 아닌, 훈련을 거쳐 양로원이나 장애인 복지시설, 병원 등에 투입되는 개를 말한다. 특히 어린이 환자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줘 치료를 돕는 역할을 하며, 국내에서도 일부 병원에서 환자들의 심리 안정을 위해 치료견이 활용되고 있다.학교 측에 따르면 무스는 교내 동아리 행사, 오리엔테이션 등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본업인 학생들의 불안, 트라우마 치료 등을 돕는 일을 담당해왔다. 쿡 카운셀링 센터의 카운셀러이자 견주인 트렌트 데이비스 박사는 "우리 학교는 학생들에게 다른 형태의 정신적인 안락함을 제공하기 위해 동물 보조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면서 "무스는 지난 6년 동안 7500번 이상의 카운셀링과 수천 여명의 학생들에게 정신적인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특히 학교 측은 총 4마리의 치료견을 학생들 상담에 활용하고 있는데 이중 무스의 '실력'은 단연 발군이다. 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지난해에는 버지니아 수의대 동물영웅상까지 받았다. 데이비스 박사는 "수의사는 불행히도 자살률이 매우 높은 직업"이라면서 "정신적인 불안을 느끼는 많은 학생과 직원들에게 무스는 정말로 많은 도움을 줘 그 일을 큰 인정도 받고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무스는 지난 2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아 방사선 치료를 받고있지만 여전히 평소 행복했던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면서 "명예박사 학위로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많은 간식과 해변에서의 수영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며 웃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실레마을에선 사랑이 이뤄지리라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실레마을에선 사랑이 이뤄지리라

    내게 강원 춘천은 ‘소설가의 분홍색 집’과 ‘소설가들’의 고장이었다. 처음 춘천 가는 기차를 탔을 적엔 이미 너무도 많은 사람과 사랑들이 다녀간 뒤였고, 102보충대에 입소하던 이를 배웅하러 오긴 왔지만 친오빠의 일이어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울고 있는 엄마 뒤에서 오빠가 군대에 있을 동안에 그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쓸 생각에 약간 신이 났던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춘천? 노래에나 나오는 거기 아냐?” 미안한 말이지만, 여튼 그랬다.대학원 재학 시절의 단체 MT에서야 ‘춘천’ 혹은 ‘봄내’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됐다. 그때만 해도 아주 작았던 김유정 생가터와 소양댐, 청평사를 거쳐 자연 휴양림의 방갈로 안에서 ‘술 마시러 갔던’ MT.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교수님들이 타고 있던 앞차가 갓길에 섰다. 그리고 물안개가 짙게 깔린 소양댐을 배경으로 두 작가의 옥신각신이 이어졌다. “춘천이 고향인 최수철 소설가 집에 들렀다 가자”는 임철우 소설가의 제안, 동료 교수의 다정하고도 장난기 어린 제안을 거절하는 ‘옛날의 집주인’. 숙취가 가시지 않은 판에 흥미진진한 주거니 받거니를 보면서 “그럼 수철 교수님 생가에 가는 거예요?”라고 묻자 눈앞에 뻔히 살아 있으니 ‘생가’가 아니라 ‘본가’라고 해야 한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결국 그냥 떡전거리(병점역)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봉고차 두 대가 선 곳은 어느 우아한 핑크색 주택이었다. 모두가 웃고 있는 단체사진 속에서 최수철 소설가만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핑크라니….” 집주인이었던 이가 내뱉은 이 한마디가 춘천의 화룡점정으로 남았다. 대학원생에서 등단한 소설가가 되는 동안 춘천은 사랑과 낭만, MT와 봄 강의 고장에서 김유정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장소로 변모했다. 그사이에 자그마했던 김유정 생가는 김유정 문학촌으로 바뀌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이자 그가 병을 얻어 내려와 요양을 하며 야학을 세우고 사랑하던 이에게 끊임없이 연서를 보내던 곳이라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셈이었다.왜 김유정 문학관이 아니라 김유정 문학촌일까. 올해 문학촌장으로 부임한 이순원 소설가에게 물었더니 마을 곳곳이 김유정 소설의 배경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동시에 문학촌으로 들어오면서 내내 ‘김유정로, 김유정 우체국, 김유정역, 김유정 농협지점’ 등등의 이름들을 스쳐온 것이 떠올랐다. 2004년 12월 1일부터 신남역(무궁화호, 경춘선)은 김유정역이 됐다. 2010년 경춘선이 복선 전철로 바뀌어 다시 김유정전철역이 된 사연이 길게 이어졌다. 한국 최초로 문인의 이름을 딴 길과 마을, 전철역과 우체국이라니! 이는 가히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서야 성립될 수 없는 크기이기도 했다.ㅁ자로 지어진 생가터에서부터 뻗어 나온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김유정 문학촌과 그 일대를 ‘소설 속 공간’으로 탈바꿈해 놓았다. 떡시루의 강원도 방언이라는 실레는 어쩌면 소설가 김유정으로부터 이야기를 빚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가 아닐까. 김유정은 1908년생이다. 그리고 1937년 3월 29일에 이곳 실레(실제 지명은 신동면 증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2년 후에 경춘선이 처음 개통됐다. 그가 병사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더라면 실레에 기차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이야기를 지어냈을 법한 옴폭한 자리였다.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에 진학한 수재였던 김유정은 어릴 적 양친을 잃고 나서 얻은 말더듬이병과 애정 결핍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던 중에 당대 명창인 박녹주를 만나 열렬한 구애를 펼쳤으나 실패했다. 박녹주의 가마를 지키고 서 있다가 마음을 전했으나 완강한 거절의 뜻을 전해 듣고 쓴 혈서는 그의 간곡한 마음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실연과 재적이라는 연이은 아픔에 고향으로 돌아온 김유정은 야학의 일종인 ‘금병의숙’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서울살이의 도회적 감수성과 연희전문까지 재학할 정도의 뛰어난 수재였던 김유정의 눈에 비친 고향 마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다. 고향에서 몸과 마음을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다시 서울로 올라간 그는 글쓰기에 매진해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조선중앙일보에 입선했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고, 구인회의 후기 동인으로도 활동한다. 이때 시인 이상과의 교류가 이어지는데, 이들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타지에서 글을 쓰는 같은 처지의 동료로서 우정이 깊어졌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폐병을 얻기까지 한다. “각혈이 여전하십니까?”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치질이 여전하십니까?”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 대화 끝에 그들은 자살을 모의하기도 하지만 실패했다. 이상은 일본으로, 김유정은 다시 낙향해 투병과 작품 활동을 이어 간다. 이 대화를 나눈 이듬해에 그들은 다시 나란히 세상을 등졌다.김유정은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과수원집 토방에서 투병 생활을 하며 휘문고보 동창인 안회남에게 생의 마지막 편지를 쓴다. 자신이 쓴 추리소설을 보낼 터이니 돈 백원을 융통해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닭 30마리와 살모사와 구렁이 10마리를 고아 먹고 너끈하게 일어나겠다고도 했다. 남은 생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인하게 나온 편지가 오히려 아리게 다가온다. 김유정은 그해 3월 29일 새벽에 생을 마감한다. 사인은 폐결핵과 치질. 김유정의 엽서와 유품들은 이 편지를 받은 안회남이 보관하고 있었으나, 안회남의 월북으로 인해 김유정의 흔적들은 모두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유정 문학촌은 김유정의 유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롯이 김유정의 소설로 다시 태어난 문학촌인 것이다.채 서른이 되기 전의 죽음이었지만 그가 남긴 30여 편의 단편소설은 아직도 빛나고 있다. 그 빛이 절정에 달하는 곳이 바로 이 김유정 문학촌이 존재하는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이다. 문학촌에서는 김유정의 소설과 생애만 담아둔 것이 아니라 기념전시관과 이야기집, 민속공예 체험방과 김유정 생가를 비롯해 그의 소설을 배경으로 한 ‘실레이야기마을’이 꾸려지고 있다. 금병산 밑의 옴폭한 시루 같은 마을 곳곳에 그의 소설의 배경과 인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김유정 문학촌은 ‘이야기가 복작대는 마을’이 됐고 그 이야기들을 따라 한 해에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장소로 변모했다. 그 길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산국농장 금병도원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 산식각 가는 산신령길, 응칠이가 송이 따먹던 송림길, 응오가 자기 논의 벼 훔치던 수아리길, 근식이가 자기 집 솥 훔치던 한숨길, 금병의숙 느티나무길,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 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 맹꽁이 우는 덕만이길”이 바로 그것이다. 김유정 사후에 발간된 소설집의 표지는 빨간 동백꽃이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은 노란 동백, 즉 강원도 사람들이 부르는 생강나무꽃을 일컫는다. 촌장님의 안내에 따라 문학촌 곳곳에 있는 생강나무들을 찾아봤다. 그 ‘알싸한 향기’ 역시도 이 노란 동백꽃에서 나온 것임을 거듭 강조하는 촌장님의 생강나무 사랑이라니. 문학촌은 여러모로 이야기와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시루에 담긴 이야기들이 작가의 품을 떠나 그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새롭게 읽히고 쓰여지는 공간이자 후배 문인들을 독려하고 창작의 길을 열어 주는 마을이 봄내, 춘천에 있다. 김유정의 생애는 다소 불행하고 끝내 사랑도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펼친 문학의 자리, 이야기들은 아직도 살아 있음으로 그 스스로의 힘을 증명해 냈다. 오죽하면 여태 ‘나’의 장인이 점순이의 키를 재고 있을까. 김유정은 현실에서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끊임없이 인물들에게 사랑과 인간애를 부여하는 매파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들이 모두 이어졌는지는 소설을 읽어 보거나 김유정 문학촌에 와서 확인해 볼 일이다.이제 내게 춘천은 김유정 문학촌과 소설가들 그리고 (여러 의미의)사랑과 아직도 분홍색인 소설가의 집이 있는 곳이다. 오정희, 전상국, 최수철 소설가를 비롯해 현재 김유정 문학촌의 상주 작가로 근무하는 전석순 소설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멋진 소설가들의 등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김유정 문학촌의 위상이라니. 김유정의 춘천은 다소 무정했을지언정 그가 남긴 춘천에서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게도, 이곳을 찾는 백만 명의 발길에게도 그리고 그의 작품을 잇는 후대의 독자들에게도. 우리들의 사랑은 부디 유정하기를!
  • 문재인 대통령 5·18 최후항쟁 유공자 이연씨 묘소 찾아

    문재인 대통령 5·18 최후항쟁 유공자 이연씨 묘소 찾아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치고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추모탑 헌화 후 제 2묘역에 묻힌 고 이연씨의 묘지를 찾았다. 이씨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상무충정작전이 펼쳐졌던 옛 전남도청과 광주YMCA 5·18 최후항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민주화운동으로 수차례 투옥된 큰형 이강 씨의 영향을 받은 듯 이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고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거쳐 1980년 전남대학교에 입학했다. 그해 5월 18일 비상계엄이 확대되자 이씨는 선배들과 함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시민군과 총격전 끝에 광주 외곽으로 물러간 계엄군이 다시 진압작전을 펼 것이라는 소식에도 그는 옛 전남도청과 이웃한 YWCA를 사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27일 새벽,어둠을 틈타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그는 죽을 각오로 계엄군과 총격전을 벌였지만 가지고 있던 구형 총기의 노리쇠가 고장나면서 계엄군에게 붙잡혔다.이때 17명이 숨지고 이씨와 함께 전남도청과 YWCA 등에서 200여명이 붙잡혔다. 이씨의 둘째 누나 이정씨도 전남도청에서 취사반장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진압작전 직전 빠져나와 목숨을 구했다. 그는 곧바로 군부대로 끌려가 가혹한 구타를 당해야 했다. 특히 남민련 사건으로 구속돼 있던 큰형의 사주를 받은 것 아니냐며 유독 심한 가혹행위가 이뤄졌다. 그는 매일같이 끌려나가 혼절해 돌아왔다. 그러던 와중에도 다른 수감자들이 서로 먹을 것이 부족해 다투자 자신의 몫을 대신 전해주기도 했다고 그와 함께 수감됐던 이들은 전한다. 이씨 가족들은 최후 진압작전이 끝난 뒤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그의 생사를 걱정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씨 가족들은 그가 두달 뒤 이씨가 재판에 넘겨진다는 한 장의 통지서를 받고서야 행방을 알게 됐다. 군 부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던 그는 재판을 받고서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5·18 최후항쟁에서 숨진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에 평생을 힘들어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출소한 뒤 ‘폭도’라는 낙인이 찍혀 학교를 더는 다니지 못하게 된 이씨는 다시 시험을 치러 서강대학교에 입학,야학 활동 등을 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이후 서울에서 삶을 이어간 이씨는 58세가 되던 지난해 7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 제2묘역에 안치됐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취중생]힌츠페터 통역 도운 미국인들…“광주 정신, 늘 삶과 함께”

    [취중생]힌츠페터 통역 도운 미국인들…“광주 정신, 늘 삶과 함께”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에 도착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대학생 무리를 만납니다. 그 중 영어를 할 줄 알던 대학생 재식(류준열 분)이 얼떨결에 힌츠페터의 통역을 맡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힌츠페터의 번역을 맡은 학생이 있습니다. 그의 한국어 이름은 원덕기. 바로 미국에서 온 평화봉사단 팀 윈버그입니다. 그는 1979년 4월 한국에 파견돼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기자들을 위해 통역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와 단원들은 현장의 목격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과 시민들의 피해는 커져만 갔고, 군대는 광주를 고립시켰습니다. 그는 1987년 ‘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최용주 5·18기념재단 자문위원 번역)에 그가 본 비극을 적었습니다. 최초의 영문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분석한 보고서였습니다. 일요일이던 5월 18일에는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기 위해 시내를 찾았지만, 시민들은 곳곳에서 군인들에게 잔인하게 구타당했습니다. 팀은 “머리에 부상을 입고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중국집 배달원을 근처 병원으로 데려갔다”면서 “19일에도 부상당한 사람들을 의사와 함께 들것을 이용해 일하던 전남대병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5월 22일. 팀은 영국과 네덜란드 출신 기자와 동행하며 통역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딜 가든 자신들이 무슨 일을 봤는지 알려주려는 인파에 휩싸였다. 특히 시민들은 지역 방송사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크게 분노했고 자신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다. 우리는 기독병원으로 가서 한 부상당한 학생과 얘기를 나눴다. 서울대학교 학생인 그는 담양에서 광주로 오다가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았고 함께 했던 30명 가량의 사람들 중 자신이 유일한 생존자라고 했다.” 팀은 5월 23일에는 타임지 기자 로빈 모이어, AP통신 기자 테리 엔더슨 등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합니다. 그의 동료 폴 코트라이트도 호텔에서 팀이 독일 기자와 호텔에서 했던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코트라이트는 그의 저서 ‘5·18 푸른 눈의 증인’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팀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학생을 군인들로부터 빼냈다고 한다. 그는 구타 당하고 있는 학생들이 잘못하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군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말렸고 그 학생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도운 것이다. 말을 마친 팀은 기자에게 이름과 소속은 빼고 키가 큰 금발의 외국인이라고만 밝혀 달라고 당부했다.” 팀은 “26일 뉴욕타임즈 기자가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설득해 광주를 폭격하는 것을 저지시켰다고 말했다”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그날 밤 군대가 다시 도시로 진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만연했고, 사람들은 모두 매우 불안해했다”고 적었습니다. 팀의 동료 데이비드 돌린저도 “26일 도청에서 만난 시민들은 그날이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에게 도청에서 밤을 보내지 말라고 했다”면서 “몇몇은 내게 우리가 아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회상합니다. 27일 오전 3시. 그는 데이비드 돌린저 등 동료와 함께 포탄 소리에 잠에서 깹니다. 군대가 탱크를 앞세워 진압을 시작하자, 전남도청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며칠 전 함께 그와 말을 나눈 한 학생은 2층 창가에 불에 탄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윈버그의 이야기는 그의 글과 동료들의 증언, 각종 사료로만 전해집니다. 1993년 2월 7일, 그는 39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윈버그는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팀이 부상당한 시민을 다른 시민들과 함께 이송하던 장면은 보안사가 채증을 위해 찍은 사진으로도 남아 있습니다.코트라이트는 팀에 대해 이렇게 회상합니다. “팀은 사려 깊고 결코 오만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모로 그는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의 영웅이자 리더였습니다. 그의 한국어는 모든 단원들 가운데 제일 뛰어났고, 우리 누구보다도 광주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화봉사단에 허락된 일뿐만 아니라 광주 시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광주와 시민들을 사랑했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광주에 있던 미국인들에게도 그는 영웅이었습니다.” 또 다른 동료 데이비드 돌린저는 “불행히도 팀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늘 팀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하다”면서 “5월의 그날들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고, 광주 정신이 제 삶을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와 팀은 광주에서 만나 친구가 됐고 불의와 기꺼이 싸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하루 하루를 살고자 늘 다짐한다”고 전했습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서울광장] “어용 시민이 어때서…”/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어용 시민이 어때서…”/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여권 유력 인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조선 태종에 비유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남은 임기는 세종처럼 마쳤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시민주권이 핵심가치인 진보정권에서 군왕을 노래하자고 하니. 궁궐 잔치의 작취미성(昨醉未醒). 덜 깬 술은 날 밝으면 해결될 일이나, 취한 것이 권력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180석을 집권당에 몰아준 국민이 아슬아슬 지켜보고 있다. 지금 취한 게 승리의 한 잔인지 완강해진 권력인지.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60%를 넘는다. 문 대통령은 풍운의 정치가다. 제 앞가림도 못하다 녹아버린 야당 복에다 ‘시절 복’까지 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불행한 대통령”이라 불렀다. 퇴임 이후의 고민을 기록한 책 ‘진보의 미래’에 비애의 육성이 담겨 있다. “분배는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 정부라고 뭇매만 맞았던 대통령”이라 자평했다. “보수시대의 진보 대통령이었기에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한계의 비감이다.  발목 묶였던 진보시대를 문 대통령은 활짝 열린 문으로 갈아탔다. 총선 결과가 증명했다. 진보보다 보수가 많아지는 유권자의 연령 분기점은 8년 전 47세였던 것이 지금은 57세. 무려 10년치나 확장했다. 진보의 토양은 상상 못했을 만큼 풍성하고 두꺼워졌다.  그런 자신감에 새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필두로 전 국민 고용보험제 논의에 이어 ‘한국형 뉴딜’이 나왔다. 재난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만들자는 데 이의를 달 수는 없다. 효용과 방법론의 찬반 논란도 불가피한 진통이다. 문제는 전적으로 믿어도 되는 정책인지 그 자체에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는 대목이다. 이런 초대형 정책을 대체 언제 연구하고 준비했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반쯤이라도 익은 정책인지 애초에 못 먹는 개살구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대통령 중임제와 토지공개념 개헌론까지 불거져 있다.  거대정책 봇물에 호흡 조절이 힘들다. 코로나19로 일상을 지키기도 버거운 판에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무슨 그림을 왜 지금 그리는지 관심 쏟을 여력이 없다. 견제세력이어야 할 야당은 머리카락도 안 보이는데 시중의 소문만 무성해진다. 인기폭발 문 대통령이 장기집권하는 개헌, 진보 집권 30년에 쐐기를 박는 개헌. 여당이 개헌 방법론으로 들고 나온 국민발안제에도 불신이 쏠린다. 100만명 이상 유권자 동의를 받아 헌법 개정을 발의할 수 있다고? 균형추가 없어진 시민단체와 ‘문파’가 마음먹으면 식은 죽 먹기 아니냐. 제대로 운을 떼기도 전에 체념들이 쏟아진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회도 불면서 먹으라”고 과속을 걱정한다.  문 대통령은 “경제 전시 상황”이라며 한국형 뉴딜에 드라이브를 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대공황의 재난을 똑같이 언급하며 뉴딜을 추진했다. 루스벨트는 “적국의 공격을 받을 때 주어지는 만큼의 강력한 권한을 달라”고 정공법으로 대국민 호소했다. 재임에 성공해서는 뉴딜 정책들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려는 욕심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크게 손보려다 실패했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까지 반대했던 결과다. 국가재난을 명분으로 대통령이 헌법기관을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내 편 네 편이 없었다. 미국 의회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그 와중에도 제대로 작동했다. 헛발질을 모면한 루스벨트는 성공한 뉴딜로 남았다.  우리 상황은 그런가. 야당은 언제 제기능을 할지 기약이 없다. 대통령 해바라기 여당한테는 설령 청와대가 과속운전을 시도하더라도 제어 의지나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재난의 위기에 권위주의는 권력을 거저 얻는다. 9ㆍ11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90%였다. 나치 집권을 부른 1932년 독일 선거 이후의 상황은 오랜 범례다. 정치무대가 손쓸 수 없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시민은 정권이 원하는 규칙에 체념하고 순응했다. 미국의 입바른 역사학자는 베스트셀러에서 이런 정치적 위험성을 ‘예측 복종’이라 이름붙여 경고한다.  “어용 시민이 어때서…” 개헌 논란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의 말이 아니다. ‘친문’과 열혈 진보 세력이 압도적 주류로 한 개의 목소리만 내더라도, 유능한 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체념이다. 무서운 무기력증이다. 이런 절반의 국민 무기력증도 돌아봐야 한다.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고 깊은 이해를 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견제와 균형 속에서 끝내 성공했다는 그 소리를 듣겠다면. sjh@seoul.co.kr
  • [서울광장] “어용 시민이 어때서…”/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어용 시민이 어때서…”/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여권 유력 인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조선 태종에 비유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남은 임기는 세종처럼 마쳤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시민주권이 핵심가치인 진보정권에서 군왕을 노래하자고 하니. 궁궐 마당의 작취미성(昨醉未醒). 덜 깬 술은 날 밝으면 해결될 일이나, 취한 것이 권력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180석을 집권당에 몰아준 국민이 아슬아슬 지켜보고 있다. 지금 취한 게 승리의 한 잔인지 완강해진 권력인지.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60%를 넘는다. 문 대통령은 풍운의 정치가다. 제 앞가림도 못하다 녹아버린 야당 복에다 ‘시절 복’까지 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불행한 대통령”이라 불렀다. 퇴임 이후의 고민을 기록한 책 ‘진보의 미래’에 비애의 육성이 담겨 있다. “분배는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 정부라고 뭇매만 맞았던 대통령”이라 자평했다. “보수시대의 진보 대통령이었기에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한계의 비감이다.  발목 묶였던 진보시대를 문 대통령은 활짝 열린 문으로 갈아탔다. 총선 결과가 증명했다. 진보보다 보수가 많아지는 유권자의 연령 분기점은 8년 전 47세였던 것이 지금은 57세. 무려 10년치나 확장했다. 진보의 토양은 상상 못했을 만큼 풍성하고 두꺼워졌다.  그런 자신감에 새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필두로 전 국민 고용보험제 논의에 이어 ‘한국형 뉴딜’이 나왔다. 재난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만들자는 데 이의를 달 수는 없다. 효용과 방법론의 찬반 논란도 불가피한 진통이다. 문제는 전적으로 믿어도 되는 정책인지 그 자체에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는 대목이다. 이런 초대형 정책을 대체 언제 연구하고 준비했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반쯤이라도 익은 정책인지 애초에 못 먹는 개살구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대통령 중임제와 토지공개념 개헌론까지 불거져 있다.  거대정책 봇물에 호흡 조절이 힘들다. 코로나19로 일상을 지키기도 버거운 판에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무슨 그림을 왜 지금 그리는지 관심 쏟을 여력이 없다. 견제세력이어야 할 야당은 머리카락도 안 보이는 와중에 시중의 소문만 무성해진다. 인기폭발 문 대통령이 장기집권하는 개헌, 진보 집권 30년에 쐐기를 박는 개헌. 여당이 개헌 방법론으로 들고 나온 국민발안제에도 불신이 쏠린다. 100만명 이상 유권자 동의를 받아 헌법 개정을 발의할 수 있다고? 균형추가 없어진 시민단체와 ‘문파’가 마음먹으면 식은 죽 먹기 아니냐. 제대로 운을 떼기도 전에 체념들이 쏟아진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회도 불면서 먹으라”고 과속을 걱정한다.  문 대통령은 “경제 전시 상황”이라며 한국형 뉴딜에 드라이브를 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대공황의 재난을 똑같이 언급하며 뉴딜을 추진했다. 루스벨트는 “적국의 공격을 받을 때 주어지는 만큼의 강력한 권한을 달라”고 정공법으로 대국민 호소했다. 재임에 성공해서는 뉴딜 정책들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려는 욕심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크게 손보려다 실패했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까지 반대했던 결과다. 국가재난을 명분으로 대통령이 헌법기관을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 내 편 네 편이 없었다. 미국 의회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그 와중에도 제대로 작동했다. 헛발질을 모면한 루스벨트는 성공한 뉴딜로 남았다.  우리 상황은 그런가. 야당은 언제 제기능을 할지 기약이 없다. 대통령 해바라기 여당한테는 설령 청와대가 과속운전을 시도하더라도 제어 의지나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재난의 위기에 권위주의는 권력을 거저 얻는다. 9ㆍ11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90%였다. 나치 집권을 부른 1932년 독일 선거 이후의 상황은 오랜 범례다. 정치무대가 손쓸 수 없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때 시민은 정권이 원하는 규칙에 체념하고 순응했다. 미국의 입바른 역사학자는 베스트셀러에서 이런 정치적 위험성을 ‘예측 복종’이라 이름붙여 경고한다.  “어용 시민이 어때서…” 개헌 논란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의 말이 아니다. ‘친문’과 열혈 진보 세력이 압도적 주류로 한 개의 목소리만 내더라도, 유능한 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체념이다. 무서운 무기력증이다. 이런 절반의 국민 무기력증도 돌아봐야 한다.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고 깊은 이해도 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견제와 균형 속에서 끝내 성공했다는 그 소리를 듣겠다면. sjh@seoul.co.kr
  • [열린세상] 디지털이 우리를 구해 줄 수 있을까/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열린세상] 디지털이 우리를 구해 줄 수 있을까/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5G와 인공지능으로 첨단화된 디지털 기술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줄 수 있을까. 디지털로 가능해진 비대면 만남들이 감염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디지털 기술 산업지원이 이 경제 위기로부터 우리의 일자리를 지켜 줄 수 있을까.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연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대통령은 디지털 기반 산업을 육성하고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해 ‘한국판 뉴딜’을 이끌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디지털은 정말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을까? 한국의 IT 역량을 한국판 뉴딜을 위한 버팀목으로 삼겠다는 이 희망이 기존의 혁신성장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제쳐 두자. 코로나 위기 이전의 계획에 국난극복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하나 더 얻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미뤄 두자. 데이터 기반 디지털 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존 제조업에 비해 훨씬 미약하다는 통계 자료도 잠시 접어 두자. 무엇보다 이번 정부 계획이 우리가 이 위기를 다시 겪지 않도록 해 주는 방향으로 한 걸음이라도 우리 사회를 진전시키느냐는 질문만 던지고 싶다. 몇 주 전 일거리가 완전히 사라진 이 상황이 다시 또 올까 봐 너무 두렵다고 울먹이던 한 관광버스 기사를 TV에서 보면서 많은 이들이 나처럼 이번이 끝이 아닐 거라고 직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현실을 뉴노멀로 여기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면 우리는 이런 위기의 재발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 있는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은 단지 공중보건의 위기가 아니다. 여러 학자가 주장하듯이, 신종 감염병이 불러온 공중보건의 위기를 넘어 기후변화를 포함한 지구 규모의 생태적 위기의 일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로,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보이지 않는 강도”로 부르며 외부의 적으로 규정했지만, 사실 이는 우리의 삶이 낳은 문제이다. 바이러스를 무도한 침입자로, 인간을 선량한 희생자로 만들고 싶겠지만 이 위기는 익숙한 삶의 방식들을 누리고 받아 든 냉정한 계산서이다. 경쟁력을 이유로 경제적 지구화를 무한히 확장하고, 여유로운 삶을 찾아 때마다 해외여행을 하며, 자연에서 자원을 얻는다는 명목으로 숲을 개간하고 야생의 삶을 침입하고 상업화한 결과이다. 예외적 상태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에 익숙한 우리의 삶이 가져온 평범한 결과이다. 디지털 기술은 문제가 되는 삶의 방식을 수정하기보다는 연장하는 것에 가깝다. 디지털 기술은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가상의 비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당한 생태적 흔적을 지구에 남기고 있다.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 전기회로판 재료로 쓰이는 콜탄 등의 광물을 찾는 채굴작업은 아프리카 등 지구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토스터 프로젝트’로 유명한 디자이너 토머스 트웨이츠는 우리가 전자기기를 싼값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채굴작업에서 발생하는 하천오염 등 생태적 비용을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은 적이 있다.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저장하는 데이터센터의 경우, 서버에 전기를 공급하고 열을 식히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최근에 만들어진 기술이지만, 벌써 인간이 사용하는 전기의 1~1.5%를 사용하며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의 0.3%를 차지한다. 우리의 주변 기기들이 더 스마트해질수록 이런 생태적 흔적이 더 커질 전망이다. 일상의 삶이 자동화되고 사물인터넷이 보편화한다는 것은 결국 이런 인간의 생태적 영향이 더 깊어진다는 의미이다. 디지털 산업 육성을 외치면서 코로나 위기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인프라의 디지털화를 지원하면서 미세먼지가 퇴치되길 기대할 수도 없다. 이 위기로 불행을 당한 이들이 많지만, 화석연료가 없어지면 지구가 어떤 모습일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매일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멈춰 선 활동들 중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지 상상해 볼 기회도 얻었다. 디지털 뉴딜보다는 훨씬 과감한 정책적 상상을 할 수 있는 때이다.
  • [이광식의 천문학+] 고대 그리스의 놀라운 ‘4가지 천문학적 발견’

    [이광식의 천문학+] 고대 그리스의 놀라운 ‘4가지 천문학적 발견’

    지난 10일 자 우주전문매체 스페이스닷컴에 발표된 고대 그리스의 놀라운 천문학적 발견에 관한 칼럼을 소개한다. 고대인들의 놀라운 지성과 과학수준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필자는 영국 버밍엄 대학의 박사후 과정에 있는 개리스 도리언이다. 헤로도투스(기원전 484~425)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 중반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놀라운 창을 제공한다. 그들이 몰랐던 사실에 관한 것도 흥미롭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사실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향후 몇 세기 동안 고대 그리스인들은 순전히 자신들의 관찰에 의존해 놀라운 지적 성장을 이룩했다. 헤로도투스는 아프리카가 거의 완전히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이집트의 네코 2세(기원전 600경)가 파견한 페니키아 선원들이 홍해에서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아프리카 대륙 연안을 항해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인류가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 연안을 일주한 기록이 되며, 여기에는 고대 세계의 천문 지식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도 포함되어 있다. 항해에는 몇 년이 걸렸다. 아프리카의 남단을 돌아 서쪽으로 선수를 돌린 선원들은 태양이 북쪽 수평선 위 오른쪽에 있는 것을 관찰했다. 그러나 지구가 구형이고 남반구가 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관찰은 당시에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1. 행성은 태양을 공전한다 그러나 몇 세기 후 고대 그리스의 지성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기원전 310~230)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 불'(central fire)이라고 주장했으며, 당시 알려진 모든 행성을 올바른 순서로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태양 중심설, 곧 지동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태양 중심설을 주장한 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아리스타르코스가 어떻게 그 같은 결론을 도출해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태양과 지구, 달의 상대적 거리와 크기를 알고 있었던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이 지구나 달보다 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당연히 태양계에서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추론했을 것으로 보인다.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재발견하기까지 무려 1700년 동안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이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잊혀졌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2. 달의 크기 현존하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저작 중에 태양과 달의 크기와 거리에 관한 것이 있다. 이 놀라운 논문에서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과 달까지의 상대적인 크기와 거리에 대해 최초로 시도한 계산을 제시했다. 오랜 관찰에 의해 태양과 달은 하늘에서 겉보기 크기가 같으며, 태양이 달보다 더 멀리 있다는 사실이 당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달이 지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태양 앞으로 지나가는 일식에서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달이 정확히 반달일 때, 태양-달-지구가 이루는 각도가 직각이며, 세 천체가 직각삼각형을 만든다는 점에 착안,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해 세 천체 간의 상대적 거리를 계산해냈다. 그 결과 태양까지의 거리가 달까지의 거리의 18~20배가 되는 값을 추정했다. 또한 달의 크기는 월식 때 달에 떨어진 지구 그림자의 곡률을 계산하여 지구 크기의 약 1/3이라고 추정했다. 여기서 태양의 크기(지름)는 지구의 약 7배라는 계산이 나온다. 지름이 7배라면 부피는 7^3 배, 곧 343배나 된다. 이렇게 큰 것이 작은 지구 둘레를 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당시에는 망원경이 없어 태양까지의 예상 거리가 너무 짧았지만(실제 비율은 390배), 달과 지구 크기의 비율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달의 지름은 지구의 지름 0.27배다. 오늘날 우리는 첨단 망원경, 레이더 관측 및 아폴로 우주 비행사에 의해 표면에 남겨진 레이저 반사경을 포함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달까지의 거리와 크기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3. 지구의 둘레 에라토스테네스(기원전 276~195)는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수석 사서이자 유능한 실험가였다. 그의 많은 업적 중에는 최초로 알아낸 정확한 지구 둘레 계산이 들어 있다. 피타고라스는 일반적으로 지구 구형설의 초기 지지자로 간주되지만, 지구의 크기까지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극히 간단한 방법은 지구 둘레의 크기를 알아냈는데, 그것은 태양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어느 날 에라토스테네스는 도서관에 있던 파피루스 책에서 ‘남쪽의 시에네(지금의 이집트 아스완) 지방에서는 하짓날인 6월 21일이 되면 수직으로 꽂은 막대기의 그림자가 없어지고 깊은 우물속 물에 해가 비치어 보인다’는 문장을 읽었다. 이는 곧 시에네가 북위 23.5도인 북회귀선 상에 있다는 뜻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실제로 6월 21일을 기다렸다가 막대기를 수직으로 세워보았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막대 그림자가 생겼다. 이는 지구 표면이 평평하지 않고 곡면이라는 뜻이다. 에라토스테네스가 파피루스 위에 지구를 나타내는 원 하나를 컴퍼스로 그렸을 순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수학적 개념이 정확한 관측과 결합되었을 때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가를 확인해주는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다. 그림자 각도를 재어보니 7.2도였다. 햇빛은 워낙 먼 곳에서 오기 때문에 두 곳의 햇빛이 평행하다고 보고, 두 엇각은 서로 같다는 원리를 적용하면, 이는 곧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거리가 7.2도 원호라는 뜻이다. 당시 알렉사드리아와 시에네 간의 거리는 약 925㎞로 알려져 있었다. 그 다음 계산은 간단한 것이다. 925x360/7.2 하면 약 46,250이라는 수치가 나오고, 이는 실제 지구 둘레 4만㎞에 약 15%의 오차밖에 안 나는 것이다. 2300년 전 고대에, 막대기 와 각도기 하나로 이처럼 정확한 지구의 크기를 알아낸 에라토스테네스야말로 위대한 지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 최초의 천문 계산기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계식 계산기는 안티키테라 기계(Antikythera Mechanism)다. 이 놀라운 장치는 1900년 그리스 안티 키테라 섬의 고대 난파선에서 발견되었다. 기계의 표면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설명서의 역할을 한다. 이 중 약 25%에 해당하는 3500여 개의 글자를 해독한 결과 태양, 달, 금성 등 천체들의 움직임과 위치, 일식에 관한 예측 등이 담겨 있었다. 기계는 이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편화되었지만, 손상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수십 개의 정교한 청동 톱니바퀴를 가진 박스형 장치였다. 손잡이를 수동으로 회전하면 톱니는 외부의 숫자를 통해 연중 달의 위상, 월식 시간 및 5개의 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를 표시한다. 심지어 행성의 역행을 설명하기도 했다. 우리는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BC 3세기에서 1세기 사이 유물로, 어쩌면 아르키메데스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안티키테라 기계의 정교함을 갖춘 기어 장치 기술은 그후 수천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들 작품의 대부분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렸고, 그로 인해 인류의 과학적 각성은 천년 이상 지체되었다. 이 고대 과학이 계속 이어졌더라면 우리 인류의 문명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조문 논란’ 하루 만에 사과한 이낙연…“제 수양부족”

    ‘조문 논란’ 하루 만에 사과한 이낙연…“제 수양부족”

    “유가족 슬픔과 분노 아프도록 이해한다”장제원 등 야당 비판에 “좋은 충고 감사”유가족들 다시 찾을지 여부는 말 아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이 이천 물류창고 화재 희생자 조문 과정에서 있었던 유가족들과의 대화 논란에 대해 “저의 수양부족이다.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 위원장은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비상경제대책본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유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아프도록 이해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유가족들의 마음에 저의 얕은 생각이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면서 “그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것이 저의 수양부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유가족과 당국 협의가 유가족들의 뜻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 이번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데 저와 민주당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이나 민생당 등 야당의 관련 비판에 대해서는 “좋은 충고 감사드린다”고 언급했다. 유가족들을 다시 찾을지 여부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겠다”며 말을 아꼈다.전날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이 위원장이 유가족 대기실로 들어서자 유가족들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계속 이어지는데 어떻게 할 거냐”, “이번 사고에 대한 대책을 갖고 왔나”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이 위원장이 “제가 지금 현직에 있지 않아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하자 유가족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를 두고 유가족을 야당 의원 대하듯 했다며 미래통합당과 민생당 등이 비판하는 등 논란이 일었다. 장제원 통합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전 총리는 너무너무 맞는 말을 너무너무 논리적으로 틀린 말 하나 없이 하셨다”면서 “그런데 왜 이리 소름이 돋는가”라고 비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이낙연 전 총리, 이천 참사 구설 관련 “제 수양부족이다”

    이낙연 전 총리, 이천 참사 구설 관련 “제 수양부족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지난 5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나눈 대화가 논란이 된 것에 대해 결국 직접 사과했다.이 전 총리는 6일 오후 코로나국난극복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한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것(유가족의 마음)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것은 제 수양부족”이라며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 등의 비판에 대해서도 “장 의원 등의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좋은 충고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진행되고 있는 유가족과 당국의 협의가 유가족의 뜻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란다”며 “이번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제도를 개선하는데 저도 민당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 전 총리는 지난 5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 한 유가족이 “이번 기회에 법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 의원님이시니까…”라고 하자 “제가 국회의원이 아니에요”고 답했다. 또 유가족들이 “고위공직자 분들이 오기만 하고 똑같은 의견만 말한다. 대안을 갖고 오지 않는다”고 항의하자 “저의 위치가 이렇다”고 했다. “높은 사람들이 왔다 갈 뿐 구체적 대안을 전해주지 않는다. 이럴 거면 왜 왔느냐”는 유가족들의 불만엔 “장난으로 왔겠느냐. 저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일반 조문객이다”고 맞받았다. “사람 모아놓고 뭐 하는 거냐”는 항의에는 “제가 모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이 전 총리는 한 유가족이 “그럼 가라”고 하자 “가겠습니다”라고 답하고 나서 분향소를 빠져나갔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전 총리는 너무너무 맞는 말을 너무너무 논리적으로 틀린 말 하나 없이 하셨다”며 “그런데 왜 이리 소름이 돋을까”라고 했다. 장 의원은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유가족과 나눈 대화라니 등골이 오싹하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또 “이 전 총리가 현직 총리 재직 시절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장례식장에서 보인 눈물, 4·3 희생자 추모식에서 눈물을 참으며 읽은 기념사,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보인 눈물을 기억한다”며 “그 눈물들은 현직 총리로서 흘린 눈물이었나 보다. 눈물도 현직과 전직은 다른가 보다”고 비꼬았다. 민생당도 이 전 총리에 대해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우식 민생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 당선인이 조문에서 유가족들과 설전 아닌 설전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낙연 당선인의 알맹이 없는 조문으로 유가족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것”이라 평가했다. 다만 “일반 조문객 자격으로 왔으니 분명히 억울할 것”이라며 “유가족들도 조문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당선인이 유가족들에게 대응한 처사는 적절치 못했다”면서 “마치 국무총리 재직시 야당 의원 대정부 질의에서 (했던) 촌철살인의 논리적 답변으로 느껴진다”고 꼬집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한국車 ‘코로나 선제적 대응’ 도약 기회로

    한국車 ‘코로나 선제적 대응’ 도약 기회로

    中 44%·유럽 28%·日 25%·美 21% 감소 점유율 1.1%P 확대… 내수시장도 회복“우리만 문을 닫았으면 힘들었겠지만 전부 다 닫았으니까 괜찮습니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코로나19 여파로 극심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국내 자동차 브랜드가 해외 자동차 브랜드보다 코로나19에 더 발빠르게 대응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국내 자동차 산업이 도약할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4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2020년 1분기 해외 주요 자동차시장 및 정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브랜드의 올해 1분기 판매는 지난해 1분기 대비 15.9% 감소했다. 이 수치는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 가운데 가장 낮은 감소폭이다. 중국 브랜드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44.4%, 유럽은 28.1%, 일본은 25.0%, 미국은 20.6%씩 감소했다. 한국 브랜드의 1분기 점유율도 8.4%로 지난해 7.3%에서 1.1% 포인트 확대됐다. 정만기 협회장은 “한국은 선제적인 방역으로 공장 가동의 차질을 최소화함으로써 실적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가 동유럽이 아닌 서유럽에서 폭발적으로 확산한 것도 국내 자동차 업계엔 불행 중 다행이었다. 현대차 공장이 있는 체코와 러시아, 기아차 공장이 있는 슬로바키아 모두 동유럽 국가다 보니 가동 중단 기간은 한 달을 넘기지 않았고 재가동도 다른 해외 브랜드의 공장보다 훨씬 빠른 편이었다. 현재 서유럽 국가에서는 코로나19로 2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동유럽에서는 사망자가 1000명 이상인 나라가 하나도 없는 상태다. 국내 내수 시장이 살아 있는 것도 자동차 업계엔 희망적이다. 현대차 그랜저·쏘나타·아반떼·팰리세이드, 제네시스 G80·GV80, 기아차 K5·쏘렌토·셀토스, 르노삼성차 XM3, 한국지엠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등 신차들이 높은 인기를 유지하며 실적 폭락을 막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코로나19를 잘 극복한 국가’라는 이미지가 한국산 자동차의 글로벌 판매량 상승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2020년 코로나가 물었다… “인류는 언제까지 생존할까요”

    2020년 코로나가 물었다… “인류는 언제까지 생존할까요”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전 세계 사망자가 24만 5000명을 넘어섰다. 각국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엄격한 봉쇄 조치를 시행하는 가운데서도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자 현대 인류에 가해진 가장 큰 생존 위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예측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 게이츠가 2015년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위협을 자세히 설명해 화제가 된 게 대표적이다. 바이러스 대유행(팬데믹)은 영국 정부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발간한 위험요인 보고서 ‘국가 위험 기록부’(NRR)에서 가장 두드러진 재앙 위험 중 하나였다. 그러나 감염병 대유행에 대한 전 세계의 준비 수준은 미흡했고, 그 결과가 현재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와 도시들은 거대한 규모의 유동인구와 교통량만큼 더 큰 피해를 겪고 있으며 가난한 나라들은 감염자와 사망자 추세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빌 게이츠, 2015년 감염병 유행 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가디언은 최근 보도에서 코로나19가 인간의 극히 일부만 죽인 채 소멸할 경우 인간은 바이러스가 인류 실존을 위협할 수준의 재앙은 아니었던 것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닥치지 않은 것은 마치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려는 본성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인류 실존에 대한 위협은 두 가지로 정의된다. 첫 번째는 인류의 완전한 종말을 가져오는 것, 나머지 하나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문명 붕괴다. 소수지만 이런 위험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이 추려낸 위험 요소는 얼핏 공상과학이나 디스토피아 영화 속 이야기처럼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대 미래인류연구소의 토비 오드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다음 세기에 초신성이 지구에 대재앙을 일으킬 확률은 5000만분의1이다. 정부나 주류 학자들, 일반인이 고민하고 대응하기에는 확률이 너무 낮다. 하지만 코로나19 펜데믹을 감안할 때 확률은 적어도 인류 생존에 치명적일 수 있는 각종 위협에 대해 한번쯤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드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모든 위험의 가능성을 합치면 이번 세기에 인간 생존에 대한 위협이 일어날 가능성은 6분의1이나 된다고 했다.●1815년 인도네시아 화산 폭발로 7만명 사망 BBC는 지난해 케임브리지대에 본부를 둔 실존위험연구센터에 의뢰해 인간 멸종이나 문명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에 관해 보도했다. ‘초(super)화산’은 인류의 멸종을 가져올 만큼 가공할 위력을 가질 수 있다.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로 7만명 이상이 숨졌다. 이때 화산은 엄청난 화산재를 대기권 상층부에 뿜어냈는데, 이로 인해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이 줄었다. 결국 이후 2년간 전 세계 평균 기온이 떨어졌고 ‘여름 없는 해’로 기록됐다. 같은 나라 수마트라의 토바 호수는 7만 5000년 전 슈퍼 화산의 폭발로 형성됐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 화산이 폭발하면서 초기 인류가 극단적인 인구 감소를 겪었다는 설이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슈퍼 화산의 위협은 지구 주변에서 초신성이 폭발하거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만큼이나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본다. 외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며 이 순간에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기후변화 위험이다.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미 기후변화로 많은 지역에서 생사가 달린 문제를 겪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문명 붕괴는 물론 자연계 상당 부분에서 멸종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다. 기후 위기는 실제 살인적인 폭염과 해수면 상승, 광범위한 기근 등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AI 기술의 발달로 사이버 위협 커져 ‘초인공지능’(Super AI) 등 새로운 기술의 잠재적 위험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위험은 국가 전체의 정보를 인질로 삼을 수 있는 사이버 무기, 순식간에 주식시장 붕괴를 일으킬 수 있는 자율 알고리즘 등 광범위하고 다양하다.핵전쟁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은 긴장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1980년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맺었고 당시 7만여개였던 활성 핵탄두는 약 3750개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양국은 내년에 만료될 예정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을 갱신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미래엔 핵탄두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것이 인간뿐이라는 보장도 없다. AI와 같은 신기술이 핵전쟁을 촉발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적인 유행병은 자연적인 위협도 되고 인공적인 위협도 된다. 바이러스는 자연의 산물이지만 생물학 실험실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 바이러스의 증식은 농경, 수송, 무역 등 인간의 활동에 의해 크게 증가할 수 있다.세계를 움직이는 국제적인 시스템이 교란될 때 발생하는 위험도 있다. 10년 전인 2010년 4월 14일 아이슬란드 아이야프야플라예르쿠둘 화산이 폭발했다.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유럽 전역의 항공 교통이 6일간 멈췄다. 2017년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한 랜섬웨어 ‘워너크라이’의 공격으로 영국 공공 의료 서비스인 국민의료보험(NHS) 등 전 세계 기관이 마비됐다. 우리가 의존하는 거의 모든 것이 전기와 컴퓨터, 인터넷 시스템에 의존돼 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 태양 흑점 폭발이나 핵폭발 등이 문명을 붕괴시킬 수 있는 이유다. 레트윈은 “우리 삶의 더 많은 부분이 점점 더 적은 수의 통합된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현재로서 인류 실존적 위험을 측정하고 이에 대비하는 데 투입되는 자원은 많지 않다. 오드는 “인류는 매년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우리를 파괴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보다 아이스크림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생물무기 감시 임무를 맡은 국제기구인 생물무기협약의 연간 예산은 140만 유로(약 18억 8000만원)로 웬만한 맥도날드 매장의 연매출보다 적다. 전 세계가 지구 온난화, 환경 파괴 등 가장 구체적인 위협조차 인류나 문명의 실존적 위험으로 정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로 실존적 위험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나올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전 세계 공동 대응까지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경제는 국제적이지만 정치 체제는 전적으로 국가나 연방 단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오드는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결과적으로 아무도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세계보건기구(WHO)의 경우 늑장 대응 및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로 논란을 겪었고 유엔이나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 국제기구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각된 건 각국의 방역 대응이었고 개별 국가의 역할에 무게가 실렸다. 철학자 존 그레이는 최근 “세계적인 문제들이 항상 세계적인 해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 위기가 전례 없는 국제 협력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은 마법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오드는 인류가 벼랑에서 물러서려면 세계 공통의 유대관계를 차이점보다 더 크게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디언도 전염병이 더 깊은 국제 협력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 미래에 훨씬 더 큰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세계의 단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