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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굄돌] 군주의 자질

    대권주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신문 지면을 달구고 있다.바야흐로 선거철임이 실감난다. 군주는 하늘이 내는 것이다.하지만 통치는 인치(人治)이기에 정말 잘 뽑지 않으면 안 된다.우리 역사상 어리석고 나약한 군주가 통치한 시대는 백성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가? 1418년 8월 부왕 태종의 강권으로 21살에 보위에 오른 세종의 통치철학은 요즈음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태조의 계비 강씨를 위해 세운 흥천사 사리탑을 수리하고 경찬회를 가지려 했을 때 당대의 명유,대소 신료,유생들의 반대상소가 수십일간 빗발쳤다. 세종은 “불탑이 기울어져 수리하고 밥 한번 먹자는 것인데 그것이 그리 통곡할 만한 일이더냐.나는 간함을 거절한 임금이다.세 번 간하여 듣지 아니하면 벼슬을 버리고 간다고 하는데,경들은 어찌 사직하지 않는가.”라며 끝끝내 경찬회를 베풀었다.비록 옳더라도 조금만 비판을 가하면 언제 그랬느냐며 꼬리를 감추거나,말 바꾸기를 예사로 여기는 세태에,비록 권위가 손상되더라도 소신을 관철시킨 세종의 통치관이 돋보이는 일화이다. 세종은 또한 공과 사를 분명히 했다.조선시대 왕은 제도적으로 후궁을 60명까지 둘 수 있다.평소 총애하던 어린 후궁이 침실에서 사소한 청을 하자,“아직 어린데도 이러할진대 크면 나라를 어지럽힐 것이다.”라며 내쳐버렸다. 세종은 책을 잡으면 반드시 100번을 읽었다.특히 난해한 ‘춘추좌전'과 ‘초사'는 100번을 더해 200번을 읽었다.세자 때 하도 글을 읽어 쇠약해지자 태종이 모든 책을 거두게 했는데,마침 병풍 뒤에 남아 있던 ‘구소수간(송나라 때 구양수와 소식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란 책을 무려 1100번이나 읽었다. 또 왕비의 상사는 중국에 알리지 않도록 되었음에도 이를 모르고 부고를 보낸 일이 생기자 황희·맹사성·김종서 등에게 “제발 책 좀 읽어라.이게 무슨 나라 망신이냐.”고 질타하기도 했다.세종 때 한글이 만들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국의 지도자가 되려면 확고한 통치철학과 역사관,미래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갖추어야 한다.세종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종수(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 석불등 문화유적 다량 확인

    문화재청은 주한미군 주둔지역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 결과 부산 캠프하야리아에서 광배가 있는 석불입상(사진) 등 3점의 석불과 불탑 등을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방부가 지난 12∼14일 공동으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는 이밖에 ▲대구 캠프 헨리에서 고인돌 7기 ▲대구 캠프 워커에서 19세기석상 ▲경북 왜관읍 캠프 캐롤에서 분묘 8기 등을 확인했다. 문화재청은 “조사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국방부 및 미군과 협의하여 구체적 보존방안을 수립할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미군 주둔지의 유적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동철기자 dcsuh@
  • 신간 맛보기/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등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김봉렬 지음,관조스님 사진,안그라픽스 펴냄). 고건축에 정통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가 범어사에서 수행중인 스님 사진가와 전국의 사찰 29곳을 그윽한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문화재연구서나 답사안내집을 생각하면 오산.저자는 순전히 가람의 건축적 장면들에 숨어있는 지형적,교리적,일상적 의미를 되돌아 보고 그 속에 담겨있는 실상을 끄집어내고자 한다.역시 으뜸가는 관점은 절을 짓고 절에 사는‘사람’이다.왜 이곳에 터를 잡았을까부터 대웅전 건물은 왜 이쪽에 앉혔을까,승려들의 살림집은 왜 외부 시선으로부터 비껴나 있을까 등 ‘사람’의 의도가 찬찬히 탐구된다.종교적으로 사찰 건물은 불법을 전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대다수 민중이 문맹이었던 상황에서 대중은 불탑과 불상을 바라보며 신앙을 가다듬었기에 불교조형예술은 장엄과 화려의 극치를이루었다.시대와 종파,건축가에 따라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는 우리 절의 모습을 차분하게 만날 수 있다.1만5000원.■도구와 기계의 원리 (데이비드 맥컬레이 글·그림,박영재·박은숙 함께 옮김,서울문화사 펴냄). 아파트를 나설 때 타는 엘리베이터부터 주머니 속의 핸드폰,자동차,지하철,사무실의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은 기계와 함께 살면서도 과학기술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복잡한 것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도구와 기계의 원리’는 과학기술은 어디나 널려 있으며 그것도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기발한 일러스트레이터로 국제적 명성이 높은 저자는 소화기,전기모터,VTR,복사기,카메라,비행기 같은 기계들을 해체해그림으로 원리를 풀어준다.운동,자연력,파동,전기,디지털등 원리에 따라 항목을 배열,쟁기와 지퍼,달걀 거품기와일렉트릭 기타,수력발전소와 치과용 드릴이 이웃사촌이란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뒷부분엔 ㄱㄴㄷ 순으로 ‘찾아보기’도 넣어 기계백과사전 역할도 훌륭히 겸하는 온 가족용 그림책이다.2만9800원. ■노년에 관하여 (키케로 지음,오흥식 옮김,궁리 펴냄). 로마 최고의 웅변가이자 정치가, 문학가였던 키케로가 죽기 1년전,예순 두 살(기원전 44년)에 쓴 노년에 관한 소회. 사람들은 흔히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몸이 약해지며, 쾌락을 빼앗기고 죽음으로부터 멀지 않게 된다는 이유로 늙음을 불행하게 생각한다. 키케로는 이에 대해 진실로 중요하고 유익한 일은 육체의 힘이 아니라 사려깊음과 판단력에 의해 행해지며 몸은 늙어도 정신은 젊은이의 특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반론한다. 또한 노인은 거창한 잔치를 벌일 순 없지만 모든 열망과의 전쟁을 끝낸 후 자기 자신의 마음과 함께 사는 즐거움을누릴 수 있으며 죽음은 자연을 따르는 아름다운 것이라고말한다.노년은 부담스럽기보다는 즐거운 것이라는 현자의결론은 평균수명 80세를 바라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절실한 지혜로 다가온다.1만원. 신연숙기자 yshin@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만화경] 꿩 구워먹은 NYT

    지난해 7월 해인사 청동 대불(大佛) 조성계획을 둘러싸고조계종단 내 반대·지지파간 ‘치고받기’가 한창일 무렵미국 뉴욕타임즈(NYT)가 조계종을 발칵 뒤집어놓았다.‘평화로운 기념물로 인해 한국 스님들은 전쟁중’이라는 제하의 도쿄특파원 기사는 세계최대의 대불 조성계획을 상세히전하면서 한국 불교계의 폭력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판국이던 조계종은 ‘거대 동상건립은종교를 위장한 축재욕의 발현’‘세력싸움을 벌이는 폭력세계의 활동에 익숙한 한국 승려들’ 운운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즉각 기사정정과 반론문 게재를 요구했다.그러나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뉴욕타임즈는 이렇다할 반응없이 ‘꿩구워먹은 자리’다. 대불 건립의 내홍도 가라앉았고 거듭된 종단분규 수습도마무리 단계인 지금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하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NYT의 한국불교 폭력성 지적은 불교계를 겨냥한 단발의 필화사건으로 돌릴 수도있다. 그러나 종단싸움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항상심으로사암을 찾는 일반신도들의 구겨진 자존심은 무엇으로 보상할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기사내용이 부분적으로 왜곡,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하지만 거듭된 절집의 파행적인 싸움은 NYT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주목됐던 것이다.비난의 빌미를 충분히제공했음을 부인키 어렵다.더구나 불가에서 ‘승단분열’은불탑파괴, 불경소각,삼보정재절도,불법비방과 함께 5역죄에속하지 않는가. 태고종 종찰인 전남 순천 선암사에는 고려시대 천태종을창종한 대각국사 의천의 가사가 보존돼 있다.신라시대부터극한대립을 보였던 교·선종을 통합해 천태종을 세우고 승단의 화합을 일관되게 주장했던 의천이다.비구·대처 싸움의 결과로 조계종에서 분할된 태고종 사찰에 의천의 가사가전해짐은 아이러니다. 아니, 승단 분열을 경계하는 무언의법어로 보면 어떨까. 총무원장 자리를 둘러싸고 폭력사태를 빚는 등 1년이 넘도록 엎치락뒤치락하던 태고종이 마침내 화합의 결단을 내렸다.극한대립을 보였던 보수 진보 양측이 ‘종단화합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이끌어내,분규 징계를 원천무효화하고 양측의 탕평인사도 감행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원망으로써 원망을 갚으면 끝내 원망은 쉬지 않는다.인내를 행할 때 원망은 쉬나니 이럴 때 화합은 이루어진다.”는 법구경은 불가에서 자주 읽혀지는 구절이다.태고종의 대승 화합이 꿩구워먹은 자리만 하릴없이 바라보고 있을 게아니라 ‘꿩 내놓으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계기가됐으면…. 김성호기자kimus@
  • 삼성전자 ‘200억弗 수출의 탑’

    삼성전자가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38회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200억달러 수출 탑’을 받는다.금탑산업훈장은 삼성석유화학 최성래(崔成來) 대표와 노키아티엠씨 이재욱(李梓旭) 대표,LG전선 허창수(許昌秀) 대표,대경기계기술 김석기(金石基) 대표 등 4명에게 돌아간다. 29일 산업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무역의 날 행사에서 200억달러 탑의 삼성전자를 비롯해 100만달러 이상수출실적을 올린 859개 업체가 수출의 탑을 수상한다. 수출 확대에 이바지한 674명의 기업 관계자와 1개 단체가 훈·포장과 표창을 받는다.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미국 테러사태 여파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100만달러 이상 수출업체가 지난해(820개사)보다 39개사 늘었다. 특히 올해는 중소기업의 약진이 돋보였다.100만불 탑 수상업체 가운데 대기업은 지난해보다 9개 업체 감소한 27개사에 그쳤으나 중소기업은 48개 업체 늘어난 832개사였다. 이번 행사에서 삼성전자는 올해 200억3,200만달러의 수출실적을 기록,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200억달러 이상 수출했다.또 45억100만달러를 수출한 현대중공업은 40억불탑을 받는다.24억5,400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린 노키아티엠씨와 10억2,900만달러를 수출한 한국소니전자가 각각 20억불 탑과 10억불 탑을 수상한다. 산자부 관계자는 “올해 수출의 탑 수상은 세계 경기 침체 등 갖가지 악재를 감안할 때 그 어느 해보다 의미가 깊다”면서 “특히 올해는 첨단 기술력을 앞세워 수출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 중소기업이 많은 게 큰 소득”이라고말했다. 다음은 수출의 탑 수상업체 명단. ◇200억달러 수출탑 ▲삼성전자◇40억달러 수출탑 ▲현대중공업◇20억달러 수출탑 ▲노키아티엠씨 ◇10억달러 수출탑 ▲한국소니전자 ◇7억달러 수출탑 ▲LG전선 ◇5억달러 수출탑 ▲삼성석유화학▲현대미포조선▲아이앤아이스틸◇4억달러 수출탑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삼호중공업◇2억달러 수출탑 ▲팬택 ▲도레이새한 ▲대한항공 ◇1억달러 수출탑 ▲HSD엔진 ▲케피코 ▲휴맥스 ▲현대오토넷▲이미지퀘스트 ▲한국화인케미칼 ▲한국경남태양유전▲공신테크노소닉 ▲태진 ▲롯데캐논▲스테코 ▲대명 ▲현진어패럴 ▲디브이에스코리아 ▲세원텔레콤 ▲성우오토모티브 ▲일진소재산업 ◇7천만달러 수출탑 ▲가나안 ▲나자인 ▲을화 ▲진로 ▲대경기계기술 ▲델코레미 ▲동우화인켐 ▲사조산업 ▲STX▲지이메디칼시스템코리아 ▲태창기업 ◇5,000만달러 수출탑 ▲대경 ▲양의물산 ▲에이치앤티 ▲한단정보통신 ▲광림통상 ▲삼영열기 ▲성진지오텍 ▲한국포리올. 전광삼기자 hisam@
  • [오늘의 눈] 올림픽대교 횃불탑 유감

    서울시가 올림픽대교의 주탑 상단에 횃불 모양의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기로 한 계획은 빨리 온 더위처럼 시민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이벤트(?)다. 교량의 주탑 상단에 높이가 13m나 되는 대형 조형물이 얹힌다니,시민들은 엄청난 기형적 모습을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서울시가 이런 구상을 내놓은 배경을 전혀 이해못할 것은아니다.예술적 철학 없이 그냥 질러 놓은 한강의 다리들이서울시의 황량한 이미지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이런 지적에 넌더리를 내온 서울시로서는 기막힌 일을 한번 해내고 싶은 충동과 유혹을 숱하게 느껴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배경까지 미루어 감안해도 문제는 남는다.한강에 놓인 많은 다리 중 그나마 잘 만들어져 기능과 미관에서보는 이에게 신선함을 안겨주는 다리가 바로 올림픽대교다. 완강하고 안정된 구조체에 팔뚝 같은 와이어를 당기고 선주탑의 머릿부분 역시 잘 조화된 결절을 이루고 있다.따로더하고 뺄 뭔가가 없어 보인다.누가 봐도 이 다리의 주탑은그 자체로 제법 괜찮은 조형물이다. 올림픽대교는 제24회 서울올림픽(88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85년 착공,90년에 완공된 국내 최초의 사장교다.주탑의높이 88m는 88올림픽을 상징하고,케이블 24개는 24회 올림픽임을 상징한다. 이런 올림픽대교에 번쩍이는 횃불 모양의 상징물을 설치한다니,시민들이 ‘관료적 발상’을 나무랄 때 서울시는 뭐라고 이들을 설득할 것인가.‘88올림픽’ 위의 횃불은 도대체무엇을 의미하는가. 주탑 꼭대기에,그것도 교조적이어서 21세기 시대정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횃불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하기로 한 결정에서 공론(公論)을 모으는 번거로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아쉬움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한다.올림픽대교의 주탑 상단에 얹힐 높이 13m,직경 9m의 횃불조형이 무리한 관료주의적 발상의 상징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심재억 전국팀기자] jeshim@
  • [외언내언] 仙桃山

    경주를 웬만큼 아는 사람 가운데도 경주평야 서쪽의 선도산(仙桃山)을 얘기하는 이는 드물다.해발 380m 정도로 높다 할 만한 산은 아니다.해뜰 무렵 산머리에 뽀얗게 안개가 피어오르고 해질녘엔 붉은 물이 들어 보는 이의 시선을 빨아들인다.신라인들은 서술산(西述山),서연산(西鳶山)이라고도 불렀다.요즘 경주 사람들에겐 서악(西岳)으로익숙해져 있다. 신라인들은 이 산을 서방정토로 여겼다.산마루에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극락왕생을 기원했다.삼존불이 아직도 남아 신라인들의 숨결을 전한다.돋을새김의 본존불과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이다.강우방(姜友邦) 전 경주박물관장은 “나의 오랜 경주생활에서 선도산과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없었더라면 예술적 체험도,종교적 체험도 그리 깊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곳을 바라보면 선도산 자체가 아미타여래가 되어 응답한다고 했다. 산의 8부 능선쯤에는 돌로 쌓은 산성이 있다.시루에 테를 돌린 것처럼 산허리를 감고 있다.이른바 퇴뫼식 산성이다.진평왕이 쌓은 것을문무왕이 증축했다는 기록이 있다.산자락엔 태종무열왕릉이 있다.이름 모를 고분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서악동 3층 석탑과 효현동 3층 석탑도 이곳의 유물이다. 작고한 향토사학자 윤경렬(尹京烈)선생은 신라인들의 발길이 닿은산등성이와 골짜기마다 불탑과 부처를 모신 남산을 ‘부처의 땅,겨레의 땅’이라고 노래했다.그리고 땅의 신이 사는 것으로 추앙됐던 선도산을 ‘전설의 땅’이라 했다.일제는 신라문화와 신라정신을 지우기 위해 서라벌의 중심에 경주역을 세우고 선도산 옆으로 철로를 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일제의 간교함을 비난한다. 대법원이 며칠 전 선도산 자락에 병원을 지으려던 한 학교법인과 이를 막으려는 문화재청의 송사에서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줬다.“매장문화재 보호를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전문가들은 매장문화재의 존재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포괄적으로 문화재보호권을 인정한 적극적인 판결이라고 평한다. 토목공사중 발견된 고분때문에 공사를 못하게 된 학교법인의 사정은 딱하게 됐다.부지를 이전할 경우 수십억원의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얘기도 들린다.하지만 재판부의 지적처럼 유적보존으로 얻게되는 공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한번 훼손된 문화유산은 영원히 복구할 길이 없다.이번 판결이 서울의 몽촌토성 주변 개발등을 둘러싼논쟁에도 ‘교과서’로 원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태환 논설위원 yunjae@
  • [문화도시 문화거리](11)탐라의 역사 재조명 제주시

    언제부터인가,저녁나절 제주시 탑동해안가에 서면 예술의 향기가 진득하게 묻어 나온다.육지가 그리워 목을 길게 뺀듯 지어진 해안가의원추형 야외공연장에서 기악·합창·무용·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매일이다시피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합창소리의 여운이 가시는 듯 멀어져 가면 관악의 장쾌한 화음이 울려퍼지고 때로는 굿판이 벌어져 3,000석의 노천 객석에 좌정한 관람객과 방파제주변 산책객들의 신명을 돋운다. 매년 8월이 되면 도내외 유명 예술단체가 40여일 내내 한여름밤의축제를 여는 곳도 해변공연장이다. 이 곳 일대는 횟집만이 즐비한 먹자거리였으나 95년 해변공연장이문을 열면서 연간 300일 이상의 각종 공연이 이뤄지는 문화·예술의산실이자 청소년의 거리로 바뀌었다. 제주의 문화사업을 선도하는 제주문화원이 자리하고 양중해 시인의시비 ‘떠나가는 배’가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삼성혈과 신산공원 사이에 있는 제주도문예회관 역시 도내외 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는 문화·휴식 공간이다. 88년에 문을 연 이 곳 902석짜리대극장과 200석 규모의 소극장,157평짜리 전시실에서는 연중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가 펼쳐져 어느덧 문화욕구에 대한 도민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문화샘터’가 됐다. 이외에도 지역 특색을 살린 용연포구에서의 ‘선상음악회’,전통민속을 재현하는 ‘탐라국 입춘 굿놀이’ 그리고 연례행사로 열리고 있는 국제관악제 등은 제주에 문화예술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한 듯한인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지난해부터 음력 7월 보름밤을 전후해 영주 12경의 하나인 용연포구암벽계곡을 따라 자연의 울림을 즐기며 열리고 있는 ‘용연 선상음악회’는 옛 선인들이 즐긴 풍류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사다. 탐라국시대부터 전래된 전통 민속행사로 제주목사가 주관이 돼 제주목 성안의 관민이 하나로 어우러져 새봄을 맞이했던 풍농굿인 ‘탐라국 입춘굿놀이’는 1만8,000신들을 불러 한해의 액막이를 하는 대동굿으로 올해 처음 탑동 해변공연장에서 선보여져 큰 박수를 받았다. 올해로 5회째가 되는 제주국제관악제는 아·태지역에서는 유일하게제주에서만 열리는국제 관악인축제로,지난 8월에도 총 9개국 1,500여명의 세계 유명 관악인들이 참가해 축제기간 내내 제주섬을 향기짙은 관악의 열기로 휩싸이게 했다. 한반도의 최남단 절해 고도이자 유배의 역사로 점철됐던 제주도.70년대 까지만 해도 문화예술의 불모지요 변방이라 홀대받았던 제주는이제 어제의 제주가 아니다. 연간 400만명이 넘는 내외 관광객이 출입하면서 제주만이 간직한 전설과 민요,고유한 민간신앙,독특한 민속예술 등이 탐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제주를 빛내고 있는 지역출신 문화·예술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영화인 임원식·양윤모·김종원,사진작가인 문순화·김익종·김용수·고영일,연극인 고인배,연예인 고두심·고지아·혜은이,음악인 신지화·김수정,무용인 양성옥·김미애,미술인 고영훈·김영철·김영호그리고 중앙문단의 거목 현기영·김시태·박철희·강범선 모두 제주출신이다. 보물 제322호와 제1187호인 관덕정과 불탑사 5층석탑,사적 제134호,제380호,제416호로 유명한 삼성혈,제주목관아지,삼양동 선사유적지,그리고 제주도무형문화재 제2호인 제주향교,제주도기념물 제1호와 3호인 오현단과 제주성지,지방기념물 제22호와 30호,35호인 해신사,화북 비석거리,삼사석 등 각종 문화재가 즐비한 제주시에서는 최근 문화유적 복원을 통해 제주의 정체성을 확보하자는 바람이 훈풍처럼 불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제주목관아지(濟州牧官衙址)와 삼양동 선사유적지 복원사업이 꼽힌다. 관덕정과 인접한 제주목관아지는 탐라국시대에는 성주청(星主廳),고려후기 원(元) 지배하에서는 탐라총관부,조선시대에는 대촌현(大村縣)이 자리했던 제주의 정치·문화·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최근 관아 외대문이었던 포정문이 완공된데 이어 오는 2002년까지관아내에 들어섰던 동헌·홍화각·연희각·애매헌·귤림당·청심당등이 복원돼 제주 유일의 문화 사적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96년 토지구획정리사업 추진과정에서 처음 발견된 삼양동 선사유적지는 기원전 1세기 무렵 제주인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국내 최대의 선사마을 유적지다. 그동안의 발굴 과정에서초기 철기·원삼국시대의 적갈색 토기와 돌도끼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됐고 원형의 크고 작은 수혈움집과 대형창고,소형 저장시설,토기제작지,조리장소,야외 노지시설,배수시설,쓰레기장,고인돌 등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곳 역시 도심속 역사공원으로조성된다. 지역 문화·예술의 척도는 이들 사업에 쏟는 자치단체 예산이나 문화 기반시설 수와도 관련지을 수 있다. 제주시의 문화·예술사업 투자예산은 전체예산의 5.4%로 전국 평균투자율 1.4%에 비해 대단히 높은 편이다.박물관수나 문화재 분포비율도 전국 상위권 수준이다. 기반시설로는 해변공연장과 문예회관 외에 우당도서관, 탐라도서관등 2개 대형 도서관과 민속자연사박물관,제주대박물관,민속박물관,교육박물관 등 4개 박물관이 있으며 연건평 2,700여평,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국립제주박물관이 내년 개관을 목표로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이렇게 가꿉시다] “독특한 전설·토속신앙 개발을”. 제주시를 방문하는 사람마다 그 소감을 물으면 제주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고 그래서 ‘환상의 섬’,‘신비의 섬’이라고 말한다.어떤이는 ‘한국의 보배’라고 까지 극찬할 정도다. 그러나 제주만의 전설과 민요,민속신앙 등을 갖고 있음에도 문화예술 도시로의 매력을지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주는 최소한 우리나라 속에서 탐라국이라는 또 다른 한 나라가 명멸해간 땅이다.그래서 대륙과의 단절속에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고 그야말로 보배로운 노동요와 놀이,나름대로의 민속과신앙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이라는 굴레와 척박한자연환경은 그러한 ‘보배’를 드러내 놓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탐라인의 숨결에서 제주 특유의 문화예술의 정체성을 찾아내려는 여러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17세기 무렵 창건됐다 소멸된 제주목관아지 복원사업과 선사시대 제주인의 혈거지였던 삼양동 선사유적지 복원사업 등이 그것이고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축제 개발과 참여가 다른 하나다. 제주문화의 정체성 찾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징후는 목관아지 복원에 필요한 기와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납함으로써,그리고 탐라인의 지배층 무덤이었던 고인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민간차원에서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민간단체가 주축이 돼 아·태지역에서 유일하게 제주시에서 열리고있는 국제관악제나 용연 선상음악회 역시 시민들 스스로 축제 예술을가꾸는 지혜의 터득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시민의식은 앞으로열릴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에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싶다. 관이 문화예술 행사에 관여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다소 서투르더라도 시민들 스스로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때 축제의 미래는 한층 밝아질 것이고 평화의 섬,생태의 도시,동북아의 관광 거점지인 제주도의제1관문 제주시를 생명력 있는 이상적인 문화예술 도시로 발전시킬수 있을 것이다. 고경실 제주시 문화관광국장
  • 光州비엔날레 구경 길 ‘담양 소쇄원’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광주엔 지금 예술의 향기를 찾는 발길이 가득하다.6월7일까지 계속되는 비엔날레 춘풍 때문인가.‘휘리릭,휘리릭’대숲의 댓잎부딪는 소리가 연인 옷자락을 스치는양 살갑다.햇빛에 반짝이는 색바랜 툇마루에 앉으니 수백년 연륜의 무게가 느껴진다. 들리는 것은 정자 아래 작은 폭포에서 물떨어지는 소리,그리고 그 옆 측백나무 가지에 앉아 따스한 봄볕을 즐기는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 뿐. 여기는 ‘소리와 빛의 공간’ 소쇄원.바람 물 새소리,딱딱 부딪히는 대나무소리 등이 낮에는 햇빛과,밤에는 달빛과 어우러지는 곳이다. 소쇄(瀟灑)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란 뜻.전통 민간정원의 백미로 꼽히는이곳은 조선 중종때 처사(벼슬을 마다한 선비를 일컬음) 양산보(1503∼1557)가 3대,약 70년에 걸쳐 조성한 원림(園林)이다.‘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란 나무판이 문패인양 흙돌담에 붙어있다.려(廬)는 조촐한 집이라는 뜻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자 이곳에 은둔하면서 당대의 학자들과 학문을 논하고풍류를 즐겼다. 소쇄원은 1만여평의 부지위에 10여동의 건물과 연못,계곡,대나무숲,그리고온갖 수목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계곡물이 ‘오곡문’(五曲門)이란흙돌담 밑을 지나 정원을 관통해 흐르는 것이 자연미의 극치를 이룬다. 양산보는 자손에게 “풀 한 포기 계곡 한 구석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니 하나도 상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하니 소쇄원에 대한 그의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림의 중심인 제월당 앞은 지금 샛노란 산수유꽃이 한창이다.소쇄원에서 한국미의 뿌리를 찾았다는 건축가 김수근이 죽기전 한달간 지냈다는 제월당(霽月堂).그 아래에는 계류를 앞에 두고 광풍각(光風閣)이 서 있다.두 건물의당호는 ‘흉회쇄락여광풍제월’(胸懷灑落如光風霽月)이란 문구에서 따왔다. 가슴에 품은 뜻의 맑음이 빛속의 바람,맑은 날의 달빛과 같다는 의미다. 소쇄원에서 담양읍 방면으로 5분쯤 가니 성산별곡이 탄생한 식영정이 있다. 명종 15년(1560) 서하당 김성원이 담양부사를 지낸 장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세운 정자.뛰어난 문장가였던 임억령은 ‘그림자가 쉬어가는 정자’란 뜻의 이름을 붙였다.석천에게 시문을 배우던 제봉 고경명,송강 정철 등이 여기서 교유하며 가사문학의 기틀을 다졌다.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리던 이들은 성산(식영정 일대를 일컬음)의 경치 스무곳을 택해 각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 이십영’을 지었는데,이것이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식영정이 서 있는 언덕 아래에는부용당 서하당이 연못과 어우러져 서 있다. 식영정 사선을 비롯,면앙정 송순,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 당대의 선비들이 이곳에서 수많은 시문을 읊었다.특히 성산 앞을 흐르는 자미탄(紫薇灘)이란 여울을 주제로 수많은 시문을 지었다.자미탄은 물섶에 백일홍 꽃잎이 반사된다는 뜻으로,광주호가 생기기전 정자 아래로 흐르던 여울이다. 담양군 남면 소쇄원에 가려면 동광주 방향에서 15번 국도를 타야 한다.20분쯤 달리다가 887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소쇄원과 식영정이 잇달아 나타난다. 임창용기자. *光州 인근의 가볼만한 곳. 광주비엔날레(3월29일∼6월7일)가 열리는 광주 인근에는 소쇄원과 식영정 말고도 가볼만한 곳이 제법 많다.송강정·면앙정 등 정자와 금성산성,운주사가괜찮으며,쉴 곳으로는 화순에 온천이 있다. ■송강정(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광주에서 담양읍으로 가는 국도변에 있다. 선조때 송강 정철이 대사헌을 지내다 물러난 후 담양에 내려와 세운 정자.송강은 이곳에 은둔하면서 ‘사미인곡’‘속미인곡’을 비롯한 뛰어난 가사와단가를 지었다.소나무 등걸 사이로 펼쳐지는 너른 들과 멀리 올려다 보이는무등산의 자태가 시심을 불러일으킬 만 하다. ■면앙정(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송강정에서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송순이 중종 때(1533년) 지었다는 면앙정의 의미는 ‘땅을 내려다보고,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사심이나 꾸밈 없는,넓고 당당한 경지를 바라는 송순의마음을 담고 있다. ■금성산성 담양군 용면 도림리,금성면 금성리로 이어지는 산성으로 둘레가7,345m에 달한다.산성 밖에는 높은 산이 없어 성문 안을 전혀 엿볼 수 없도록,형세를 잘 살펴서 지은 성으로 평가받는다. 산성안에는 아직도 곳곳에 우물이나 절구통 같은 유물을 찾아볼 수 있으며산성의 동문 밖은 전북 순창군의 강천사 등 관광명소와 바로 연결된다. ■운주사(화순군 도앙면 대초리) 광주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반쯤 가면 있다.신라때 도선국사가 운주사 일대 땅이 배의 형국을 닮아 그대로 두면 배가 심하게 흔들려 나라의 국운이 일본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믿고 배를 젓는 노의 위치인 이곳에 돌탑과 돌부처를 각각 1,000개씩 하룻밤동안에 도력을 써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은 70여개의 석불과 18개의 석탑만이 남아 았다.운주사의 불탑과 불상중 으뜸은 와불.이 와불은 천불천탑의 마지막 천불로서,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세상이 바뀌고 천년동안 태평성대가 계속된다고 해 불상을 막 일으켜세우려는 순간 첫닭이 우는 바람에 와불의 형대로 남게 됐다고 한다. ■화순 금호리조트 종합온천탕 지난 95년 개장한 종합온천장으로 광주에서남쪽으로 50분 거리에 있다.하루 1,500톤 이상 용출돼 수량이 풍부하며,아연 라듐 유황 등의 함유량이 높아 만성피부염 류마티스 등에 효능이 뛰어나다고.대온천탕과 튜브슬라이더,실내온천수영장,노천탕 등의 시설을 갖췄다.240실 규모의 콘도미니엄 시설도 갖춰놓았다.(0612)370-5000.
  • [21세기 문화프론트라인](8)탈장르‘퓨전

    *창무예술원 예술감독 김선미씨. 창무예술원(이사장 김매자)은 무용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다른 장르와 교감하는 단체로 유명하다.지난 87년 ‘춤과 시의 만남’을 시작으로 ‘춤과 미술의 만남’(88)‘춤과 연극의 만남’(96)‘춤과 영상의 만남-아날로그 댄스’(98),그리고 지난해 ‘춤과 건축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 결합을 시도했다. 예술감독 김선미(40)는 스승인 김매자와 함께 이 모든 기획춤판을 이끌어왔다.요즘 새로운 시대의 예술로 각광받는 ‘탈장르’ 혹은 ‘장르 통합’을 10년넘게 꾸준히 해온 것이다. “춤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부분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에눈이 가더군요.미술·연극·영상이 춤과 어울려 만들어내는 표현영역은 기존의 한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지요.” 지난해 11월 기획한 ‘춤과 건축의 만남’도 기대이상의 호응을 얻었다.다른장르에 비해 별로 연관성이 없을 것 같던 두 장르의 결합은,그러나 우리가기존에 알던 춤의 영역과 건축의영역을 동시에 확장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건물의 조형미를 이용하거나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한 춤들은관객들에게 흥미로운 예술체험으로 받아들여졌다. 김선미의 창작춤 중 ‘월영,일·시·무(一始無)’(98)와 ‘추다만 춤’(92)은 각각 영상,미술과 접목해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다.‘월영,일시무’는 한국창작단편영화제 최우수상 수상작가인 김윤태와 공동작업했다.전남 화순 운주사에 얽힌 천불탑 설화를 영상과 실연을 적절히 조화해 형상화했는데 칭찬에 인색한 스승으로부터 “이제 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이 작품은 올해 ‘새로운 예술의 해’가 선정한 공연지원작에 뽑혀 하반기중 다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추다만 춤’은 설치미술가와 함께 한 작품.석고가루와 항아리가 놓인 무대를 배경으로 침묵 속에서 빛과 움직임만으로 1시간동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가만히 서있는 것도 춤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특별한 공연으로 김씨의 기억에 남아 있다.“다른 장르와 만나면서 춤에 관한 생각도 더욱깊어지고,예술 전반에 시야가 넓어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가 창무예술원의 작업에 자극받아 96년부터 매년 ‘무용과 의상의 만남’‘춤추는 디자인’등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고,젊은 무용가들이 눈치보지 않고 형식파괴를 꾀하는 일 등도 그에게는 흐뭇한 일이다. 가을쯤으로 계획한 기획춤판은 ‘춤과 애니메이션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정했다.만화가와의 공동작업에서 어떤 미적 체험을 얻게 될지 벌써부터 마음이설레는 표정이다.그는 “원시 종합예술이래 줄곧 전문화·세분화해 온 예술장르가 점차 음악 미술 영상 무용 등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재통합의 길을가고 있다”면서 “창무예술원의 작업은 그 길을 개척하는 길잡이 구실”이라고 말했다. 5살때 한국무용을 시작한 그는 이화여대 한국무용과(78학번)를 졸업한 뒤 곧바로 창무예술원에 입단했으며,96년부터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 *문화속의 '새문화’로 장르 파괴. 스위스의 가장 특색있는 요리를 들라면 ‘퐁뒤’를 꼽지 않을 수 없다.그중하나인 ‘치즈 퐁뒤’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그뤼예르 치즈에 알코올과 향신료를 넣어 불에 녹인 뒤 빵조각을 찍어 먹는 요리다.그 은근한 맛의 비결은퐁뒤라는 말 뜻에 그대로 담겨 있다.퐁뒤는 불어의 ‘fondue’에서 비롯된것으로 ‘녹인다’라는 뜻을 지닌다.그것은 우리에게 이미 낯설지 않은 영어단어 퓨전(fusion)과도 의미가 통한다.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간의조화와 그로 인한 예술적 상승작용.그것이 바로 퓨전문화 또는 퓨전현상의요체다. 퓨전은 일반적으로 재즈에 록 등을 가미한 퓨전재즈를 일컫는 말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미술 영화 문학 패션 요리에 이르기까지 확대돼 ‘장르 구분없이융합되는 현상’을 폭넓게 퓨전이라고 부른다.퓨전은 우리의 문화현장 곳곳에 스며들어 소용돌이치고 있다. 잡종·혼성 문화로서의 퓨전은 고급예술과 대중간의 거리를 좁히는 데 크게기여한다.지난해 8월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버스 데몬스트레이션’전은 대표적인 예다.설치·회화·사진·비디오 등 분야별 전문작가들은 버스라는 집단적인 상징 아래공동작업을 벌였다.장르의 벽을 부수고 서로의 속살을 건드렸다.전시장엔 창조적 긴장감이 감돌았고,관객은 다양한 문화융합 현상에갈채를 보냈다. 또 최근 열린 ‘0의 공간,시간의 연못’전은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시도한기획전으로 연장전시까지 하며 인기를 끌었다.시공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 전시는 실험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한편으론 ‘순수회화의 복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기존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변증법적인 시도가 미술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학과 음악의 만남도 활발하다.시인 김정란·위승희씨는 ‘사이렌 사이키’라는 멀티포엠 형식의 시낭송 음반을 통해 고급문화가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오늘날 외형적으로 초라한 주변 장르에 머물러 있는 시(詩)가 낡은 옷을 벗고 장르의 왕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첨단멀티미디어 기술은 시의 영역을 예술 전반으로 넓혀주고 있다. 장르간의 융합,고급예술과 대중예술간의 이종교배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문화정신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시-건봉사 불이문

    건봉사 불이문 두 개인 듯 하나로 보이는 구름 한 조각금강산과 향로봉에 걸쳐있다나는 아내와 함께 건봉사 불이문에 들어선다부처님 치아사리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에는불상이 없고계곡 건너 금강산 대웅전엔부처가 환하다만해(卍海)의 뜨거운 발자국이 보일 듯돌다리를 경계로금강산과 향로봉이 포개진다같고 다름이 하나인데이 곳에는 모두가 둘이라니민통선 철조망이 반세기동안녹슨 풀섶에서 가람을 두르고 있다반야심경(般若心經) 독경 소리가 풀향기에 섞인다깨진 기왓장에 뒹구는 낡은 이념들초병들의 군홧발 자국 절마당에 가득한데목백일홍나무에서 떨어지는자미꽃의 핏빛 절규는나무아미타불탑 위의 돌봉황에 실려북으로 가는가,갔는가적멸보궁 터진 벽 뒤로 날아가는하얀 미소를 보며,아내와 난보살님이 준 콩인절미를반으로 나누어 먹는다 이덕완
  • 정찬주 창작집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김룡사(金龍寺)는 경북 문경의 운달산 자락에 있는 고찰(古刹)이다.흔히 ‘금룡사’로 부르는 것은 김(金)씨 성을 가진 이가 기도끝에 아들을 얻은 뒤용(龍)이라 이름했다는 이 절의 내력을 모르는 탓이리라.수행의 명당이라는소가 누워있는 형상으로,성철 큰스님이 용맹정진한 곳이기도 하다. 정찬주는 그 성철스님을 소재로 한 장편 ‘산은 산,물은 물’과 산문집 ‘길 끝나는 길에 암자가 있다’로 알려진 작가다.그래서 책을 읽은 사람들로 부터 “실제로 출가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그는 “그런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 그럴 용기도 없는 소설가일 뿐”이라고답한다.그러면서도 “나의 글 곳곳에 잿빛 중(僧)물이 들어 있는 모양”이라면서 싫지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가 창작집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해들누리)를 냈다.여기엔 중편 ‘김룡사…’와 ‘월인천강지곡’ 등 두개의 중편과 단편 ‘포옹’이 실렸다. ‘김룡사…’는 부도가 확정된 중소기업 사장이 어릴 적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찾았던 산사를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그 절은 주인공이 젖먹이였을 때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 아버지가 수행하고 있다.그곳에서 가을 한철 날아드는 잠자리떼의 날갯짓과 지친 날개를 접고 잠시 부처님의 이마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나비를 통해 자신이 헛꿈에 취해 살아 왔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삶이 힘겨운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쓴 것”이라고 말한다.우리는 진실로 무엇에 지독하게 아파해 보지 않고 헛꿈에 취해 살고 있는데,가열찬 번뇌로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해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그려내려 했다는 것이다. ‘김룡사…’가 절을 무대로 하고는 있지만 일주문 밖의 세상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속세를 떠난 두 수행자의 얘기다.진리를 탐구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를 통해 성불(成佛)하겠다는 운수승(雲水僧)과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성불하겠다는사판승(事判僧)의 갈등을 다룬다. 이야기는 시주를 받아 천불탑을 지은 뒤 인도에서 진신사리를 가져다 봉안코자하는 사판승 지웅과,그것을 “깨침을 핑계삼아 신도들의 시주금을 잡아먹는 짓”으로 보는 운수승 법상의 사상적 대립으로 풀어간다.그러나 눈에 보이는 길을 가는 지웅과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법상이 서로 다른 길을 가기에 겉돌고 부딪치지만,그 길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정찬주는 ‘중물’이 들기는 했지만,자신이 결코 ‘불교작가’는 아니라고말한다.요즘 몇몇 젊은 작가들이 불교적 소재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면,자신은 처음부터 불교를 문학적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그런 만큼 자신의 문학이 불교적 뿌리를 두되,외연을 넓혀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 일본 법륭사의 구세관음(求世觀音)을 다룬 장편을 구상하고 있다.일본사람들은 성덕태자의 등신불이라고 주장하지만,‘성예초’라는 고서는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백제 성왕의 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그는 이 작품을 위해 두 차례나 일본을 다녀왔다.역시 불교를 모티브로 하지만,역사와 문화가 주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그의 말처럼 외연을 넓히는 작업인셈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金대통령 “사이버무역법-인프라 마련 시급”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일 오후 한국종합전시관(COEX)에서 열린 36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연설을 통해 “21세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문화창조력이 경제와 국운을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정덕구(鄭德龜) 산업자원부 장관,김재철(金在哲)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 정부 및 재계 주요 인사와 수출유공자 등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념식에서 이같이 말하고 ▲전자상거래를 포함한 사이버 무역에 대한 철저 대비 ▲21세기 세계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고부가가치 지식집약형 상품수출에 진력 등 3가지 무역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전자상거래와 관련,“앞으로 5년안에 세계무역의 30%는 사이버 무역으로 변화할 것”이라면서 “정부는 사이버 무역을 위한 법제도 정비,인프라스트럭처 구축,전문인력 육성,사이버 실크로드 개최 등 다각적인 시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기념식에서 한국타이어 조충환(曺忠煥),한우건설기계 양철우(楊撤宇),한국로보트보쉬기전 디트마르 지거 대표이사가 금탑산업훈장을,씨제이코퍼레이션 천주욱(千宙旭),농협무역 이준원(李濬源),조한물산 서종문(徐宗汶),보영섬유 현무근(玄茂根),한아 안태원(安泰源) 대표이사가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등 849명이 각종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또 LG상사(대표 이수호)가 수출실적 100억달러 이상 기업에 주는 ‘100억불탑’을 받는 등 665개 업체가 100만불 이상의 수출탑을 수상했다. 양승현기자
  • 최인호 불교수상록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세여청산하자시(世與靑山何者是) 춘광무처불개화(春光無處不開花)’.“세상과 청산은 어느것이 옳은가,봄볕이 있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鏡虛)대선사의 선시(禪詩)중 한 구절이다.몸은비록 세속에 머물러 있다 해도 마음이 봄볕을 비추는 곳을 찾아가고 있다면그곳이 어디건 꽃이 필 것이 아니겠느냐.청산(靑山)만 청정한 도량(道場)이아니라는 말씀이다. 작가 최인호(54)는 이 싯귀를 통해 마음에 불을 지피고 ‘세상 모든 곳이청정한 도량’임을 깨닫게 됐다.그가 최근 수상록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를 출간,종교계는 물론 독서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87년 가톨릭에귀의해 ‘베드로’라는 영세명을 받은 그가 갑자기 ‘스님이 되고 싶다’고선언(?)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불교에 대한 그의 이해의 ‘깊이’가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불교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이다. “2년전 ‘해인(海印)’이라는 불교잡지에서 청탁이 와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는 글을 썼는데 그 글이 불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켜 반년 뒤 다시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책 제목처럼 수상록 내용의 절반이 불교에 관한 그의 깊은 사색을 담고 있다. 그가 불교에 심취하게 된 것은 90년대초 장편 ‘길없는 길’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4년여 동안 모 일간지에 연재해 오던 ‘잃어버린 왕국’을 끝내고 하루종일 ‘해바라기꽃이나 바라보는’ 무위(無爲)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중 우연히 불교서적을 접하고 흥미가 생겨 책방에서 불교책을 몇권 사 읽었는데 그 가운데 그를 불교의 세계로 이끈 경허스님의 법어집이 있었다. “스님의 법어집에서 선시 한편을 읽었는데 그중 한 구절이 저를 방망이로두들겨 패는 것 같았습니다.바로 ‘일 없음이 오히려 할 일(無事猶成事)’이라는 싯귀였죠”.그는 그 한 구절에서 ‘경허’라는 ‘두레박’을 발견했고그 두레박을 타고 불교의 깊은 우물로 점점 깊이 들어가게 됐다.그리고 경허의 행장을 소설화한 장편 ‘길없는 길’을 일간지에 3년여동안 연재하면서불교에 깊이 빠져 들었다. 그는 마침내 우리 민족의성격을 형성시킨 불교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영혼’임을 깨닫는다.‘벼락을 맞아’ 하느님으로 부터 깨닫게 된 진리와 불(佛)의 사상이 결국 하나의 진리임을 자각하게 됐다는 것.그런 의미에서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라며 스스로를 ‘불교적 가톨릭 신자’,‘가톨릭적 불교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러한 그가 되고 싶은 스님은 어떤 스님일까.땡중이 아니라 진짜중,면도날처럼 기가 살아있는 중,백척간두에 홀로 서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시퍼런 중,대숲을 지나는 바람처럼 왔다가 물에 비친 기러기처럼 사라지는 중,천치처럼 살다가 잠시 나와 노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혼자서 물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며 빙그레 웃는,그런 ‘중’이다. 매일처럼 서울 근교의 청계산을 오르며 ‘무이(無二)’라는 법명으로 ‘청계산 주지’를 자처하는 최씨는 이제 자신의 몸을 절로 삼아 몸 속에 불탑을 세우고 ‘봄볕’을 향해 마음을 닦아가는 스님이 되고,수도자가 되어 살아간다.성직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난 자체가 이미 성직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청산만이 도량이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세속이,가정이 그에게는 ‘청정도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스님들에게 불교의 교세를 더욱 확장시키려면 더 깊은 청산으로 들어가라고 권한다.세상에 나와 참견하고 훈계하기보다는 자기 내면으로깊이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종교의 향기를 풍기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포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남을 교화시키기 보다는 스스로를 성불시키고도시의 한복판에 법당을 세우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 속에 더 청정한 법당을세우는 일이야말로 목숨을 걸고 가야할 ‘구도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지금처럼 혼란한 시대야말로 ‘자기유배’가 더욱 필요한 시기라는 것. “인생은 성불(成佛)의 문으로 나아가는 삼수생,사수생들”이라고 말하는최씨는 “내가 생을 받은 것은 부처로 나아가는 또 한번의 기회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며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박찬기자 parkchan@
  • [이어령의 새 천년읽기]정보가치의 변화

    중국의 돈황(敦惶)유적지에서 1만개가 넘는 고대의 목간(木簡)이 발견됐을때 사람들은 참으로 놀라운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그것은 이 지방을 관장하던 관리가 매일같이 “이상 없음”이라고 적어놓은 근무일지였다.한(漢)나라 때는 흉노들의 침입이 없어 변방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그래서 수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관리는 200년동안 5,6대에 걸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상 없음”이라는 말을 계속 기록해 갔던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그 광대한 중국을 떠받쳐온 힘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기록할 것이 없는 것까지도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 관료주의의 고지식함이다.오늘날의 관직에도 서기(書記)라는 말이 있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최고의 권력자를 서기장(書記長)이라고 부른다.한 국가는 문자를 적는 관료에 의해서,그리고 문자를 통해 축적된 그 정보에 의해서 통치된다. 이른바 중화(中華)의 빛이 변방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한자’라는문자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전설에 의하면 한자를 처음 만든 사람은 창힐(蒼힐)이었다.그가처음 새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창안했을 때 밖에서는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문자는 빛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깁슨의 주장대로 모든 정보는 빛속에 존재한다.그러므로 어둠 속에서 사는 귀신은 발붙일 곳을 잃게 된다.그래서 옛날사람들은 창힐의 눈이 네 개나 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변방의 관리들이 “이상 없음”이라는 말 대신에 그날 그날의 기상변화에 대해서 적었더라면,혹은 계절의 변화와 자신의 심정을 적었더라면 그 산더미처럼 쌓인 200년동안의 목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 되었겠는가.그 문자들이야말로 과거를,그리고 미래를 밝히는 창힐의 네 눈이 되었을것이다. 그러나 근무일지에 사사로운 기록을 쓴다는 것은 직무유기와 같은 행위이다. 변방의 관료가 맡은 일은 오직 흉노들의 침범 유무만을 기록하는 일이다. 그이외의 정보는 모두가 노이즈로 처리된다. 그것이 바로 관료의 언어이며 관료주의에 의해 처리된 정보시스템이다.그러고보면 ‘이상 없음’이라는 똑같은 문자를 적으면서 200년 동안이나 먹고 살아간 관료주의의 그 ‘이상 있음’에 우리는 또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산더미처럼 쌓인 돈황의 목간은 오늘날 중국의 관료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지산회해(紙山會海:서류종이가 산처럼 쌓이고 회의가 바다를 이룬다)란 말속에 그대로 살아 숨쉰다. 돈황의 유적지에서 현대의 사이버 스페이스로 눈을 돌리면 어떠한 일들이벌어지고 있는가.거기에서도 우리는 한나라때 변방 관리가 근무일지를 쓰듯이 매일 매일 무엇인가를 기록해가고 있는 이상한 홈페이지 하나를 발견하고놀랄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고 관리가 아니라 대학생이며 “이상 없음”이 아니라 매일 매일 자신이 먹는 음식 메뉴를소상히 기록해 놓은 것이다.대학생 역시 수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일을 되풀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정보적 자료를 창출해 낸 것이다. 왜냐하면 식료품회사,영양학관계자,의학자와 경제학자,그리고 미국의 식(食)문화와 청년문화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에게 있어서 그 홈페이지는 일찍이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정보자료를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관료들이 기록하는 공공의 문자는 오로지 큰 이야기에만 매달려왔다.어느 통계국도 한 사람이 먹는 음식을 끼니마다 그렇게 집요하게 추적해 간 적은 없었다.또 그렇게 추적할 수도 없는 일이다.오히려 국가 통계국의 관료적인 시스템에서 보면 그 대학생의 홈페이지는 무의미한 노이즈의 쓰레기더미에 불과할 것이다.실제로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쓰레기 바다라고 비웃는 사람들일수록 관료적인 문자정보에 익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종래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점으로 검색해 보면 그 쓰레기더미들이 예상치 않던 금맥과 장미꽃이 되는 수가 많다.옛날에는 정부의국세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수 천만원의 자료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들을통해서 돈 한푼 안들이고 간단히 얻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헛된 말은 아니다. 심지어 자기 집 빗물을 받아 산성도를 분석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숙제라해도 인터넷으로 연결하면 연방정부도 못해내는 미국전역의 정확하고 정밀한산성비의 최신 분포지도를 얻을 수가 있다.인쇄물이든 전파든 종래의 매스미디어는 공공적인 한 발신처에서 그 정보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었다.그래서‘출판’을 뜻하는 영어의‘퍼블릭캐이션’은 공표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방송’을 뜻하는 ‘브로드캐스트’는 널리 살포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네트워크나 웹 속의 개인은 이미 정보의 살포대상이나 수신자가 아니라 스스로 정보를 구하고 발신하는 정보의 생산자인 것이다.개인개인이 만들어 내는 홈페이지를 합치면 그것이 바로 사회나 나라 전체의 방대한 정보자료를 축적해놓은 매머드 도서관이 되는 셈이다. 인터넷 정보시대가 아니라도 우리는 가끔 묻는다.만약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가 없었더라면,백범이나 안네 프랭크가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그리고 우리의 아녀자들이 규방에서 혜경궁 홍씨처럼 ‘한중록’을 쓰지 않았더라면어떤 세상이 되었을까하는 상상이다.이러한 개인의 기록들이 관가나 공식문서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역사적 정보와 다양한 삶의 자료가 되어준다는 것을누구나 한번쯤은 체험했을 것이다.거기에서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이야기나일제와 나치의 폭정이 어떤 것이었나 하는 정치적 정보를 얻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큰 이야기와 상관없는 사소한 작은 이야기들, 이를테면 정보의 노이즈라고 할만한 군더더기 말 속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정보를 발견할수 있다. 백범일지에는 인천 형무소에서 사형직전 전화 통보에 의해 간발의차이로 풀려나게 되는 삽화가 기록되어 있다.전화가 없었더라면 백범도 백범일지도 태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백범일지의 이 대목은 독립운동의 사료만이 아니라 한국 통신사에 있어서도 빼놓은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결국 지난 천년을 관료들의 문자기록에 의한 정보축적 시대라고 한다면 앞으로 오는 새 천년은 개인의 디지털 기록에 의한 정보발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관료가 개인으로,아날로그가 디지털로,그리고 정보축적이 이제는 정보검색의 데이터 베이스로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30만이나 넘는 동 활자를 만들었으면서도 그것으로 찍은 조선왕조의 실록은 고작4부에서 5부를 넘지 않았다. 역사의 기록은 관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 기록은 세상사람의 눈에서 멀리 떨어진 네 개의 사고(史庫)속에 숨겨진다.왕조차 볼 수가 없는 이 기록들은 읽히기 보다는 단지 역사의 기록으로 영구히 보존해 간다는데 가치를 둔 것이다.불교의 경전 역시 사경공양(寫經供養)이라 하여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탑신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오늘날 도서관 서고 안에 소장되어 있는 그 많은 서적들 역시 근본적으로는 불탑이나 사고 안에 들어있던 다라니경이나 왕조실록과 다를 바 없다. 새 천년의 디지틀 사회란 지난 천년동안의 기록 방법과 그 보존의 의미가근본적으로 달라진 세상을 뜻한다.2000년이 되면 지금 우리가 컴퓨터에서 쓰고 있는 개인기록 저장장치인 플로피 디스켓은 그 크기와 두께가 거의 10분의 1로 줄어든 스마트 미디어로 바뀌게 될 것이다.그러면서도 그 저장량은 2메가를 넘는 것으로 300페이지 짜리 책 열권을 웬만한 우표 한 장 정도의 크기에 담는다.그러면 개인이 워드 프로세서로쓴 글이 출판사나 인쇄소의 과정을 거칠 것 없이 그대로 전자 책을 배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정으로 저장된 기록물들은 공적인 것이던 사적인 것이던아무 구별없이, 네트워크에 의해 연결되고 하이퍼 텍스트와 검색 프로그램에의해서 자유자재로 검색된다.모든 기록물들은 문서나 책이 아니라 하나의 데이터 베이스로서 수시로 검색 조합되어 가면서 새로운 정보자료로 변신해 간다.저장이 곧 생성인 것이다.그러고 보면 새 천년을 ‘기록의 원년’이라고하는 말은 단순한 연대기 상의 문제만을 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있다. 아무리 기록장치와 저장 기기의 변화가 일어나도 기록 자체에 대한 마인드가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구텐베르크의 활자가 중세의 낡은 성을 허물어뜨린 ‘26명의 납 병정’이되게 한 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만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성서를 읽을 수있게 개혁한 마틴 루터요,그 큰 책들을 오늘날과 같은 사이즈로 만들어 들고 다닐 수 있게 고안한 마누티우스였다.그것처럼 디지틀 기술이 세상을 바꿀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2000년을 기록의 새 창세기로 만들어 가는 정책과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2000년이 새로운 기록문화의 창세기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하는 간단한 지표가 있다.만약 새천년을 맞는 여성지 신년호 부록이 옛날과마찬가지로 책자로 된 가계부라면 그것은 2000년 1월호가 아니라 1999년 13월호라고 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부록이 CD로 바뀌어지고 컴퓨터에 인스톨할수 있는 가계부 소프트웨어라면 문자 그대로 2000년은 기록의 원년이 되는셈이다. 가계부의 문자가 디지털로 바뀌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인가는 장황한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미국 대학생의 음식메뉴를 적은 일지가 그러했듯이만약 10만명의 한국 주부들이 적은 가계부는 나라나 사회 각 분야에서 다시없는 데이터 베이스로 정보의 보고가 되어 줄 것이다.항목별로 분류된 자료와 통계숫자는 개인에게는 가족사요,민족에게 있어서는 민족사,그리고 세계에 있어서는 세계사로 변하게 될 것이다. 포도주처럼 묵을수록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자료들은 더욱 값진 것이 되어갈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따른다.지속성과 호환성이다. 개인자료가 공공의 자료 구실을 하려면 산재해 있는 개인자료들이 호환성을 갖고 취합되어야 하며 꾸준히 그 자료들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공기관에서 할 일이다. 가계부의 소프트웨어를 검색할 수 있는 항목으로 데이터 베이스화하고 주부들이 일년동안 쓴 가계부들을 한데 모으는 제도적 장치들이 강구돼야 한다. 그리고 그 자료들이 개개인의 참여에 의해 국가의 보존기록과 대등한 무게로보존되기 위한 안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경제지표 문화지표 생활지표 등으로 활용될수 있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정보강국, 정보부국으로떠오르게 될 것이다. 가계부에 적힌 사소한 기록들과 그 통계는 국가의 어떤공공기록이나 국세조사의 통계자료보다도 값진 것이 되어 미래의 비전과 그방향을 알려주는 역사의 레이더암이 될 것이다. 어찌 가계부만의 일이겠는가.아날로그로 된 문자자료를 디지털자료로 바꾸면 그것이 바로 국가의 자산, 이른바 디지털 자원이 된다. 이제는 한 나라의부를 땅의 크기나 지하에 묻힌 자원으로 평가하던 시절이 아니다.싱가포르와같은 작은 나라, 홍콩과 같은 섬의 도시가 디지털 사이버 세계에서는 광활한중국 대륙과 맞먹는다. 쓰레기라고 내버렸던 그 많은 개인기록들을 어떻게 공공의 사회적 역사적자료로 활용하느냐로 21세기의 새로운 부(富)인 ‘디지털 어세트’의 새 자원이 마련된다.왕이나 위인전에 나오는 개인 전기가 이끌어갔던 큰 이야기의역사가 아니라 새 천년은 무명의 개인들이 엮어내는 작은 이야기들이 역사를지배하게 되는 시대이다. 가계부처럼 한국인들이 기록하는 민족이 되어 모든사람들이 컴퓨터 상에서 일기를 쓴다면, 그리고 아날로그로 된 먹물의 문자들을 빛(비트)으로 바꿔간다면 우리는 정말 창힐처럼 네 개의 눈을 가진 신화의 인간들이 될 것이다. “이상 없음”이라고 빈 칸으로 남겨졌던 변방의 그 200년이,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수백 수천 개의 목간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사막의 모래알하나 하나가 푸른 잎이 되어 초원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다. 새 천년은 사상 최고의 폭죽을 쏘는 축제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천문학적 돈을 들여 거창한 돔을 만드는 데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아주 평범한하나의 기획-10만의 주부가 종이로 된 가계부를 컴퓨터의 디지털로 바꾸는기록의 개혁-그 작은 이야기에서 새 천년의 꿈은 현실이 된다.(새천년 준비위원회에서는 현재 10만 주부의 디지털 가계부 쓰기와 그 자료를 ‘평화의대문’에 보존,활용하는 안을 준비하고 있다)
  • ‘불교미술 원류’ 간다라 미술 서울 나들이

    ‘2,000년 불교미술의 원류’ 간다라 미술의 정수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됐다.예술의전당은 7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전당내 미술관에서 ‘간다라 미술대전’을 마련한다. 간다라는 힌두쿠시와 카라코람 산맥으로 둘러싸인,지금의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평원지역.이곳은 동서 문명의 교차로이자 대승불교의 요람이었다.대승불교의 중요한 경전들이 간다라 지방에서 씌어졌고 대승불교의 논사(論師)들인 마명·무착·세친 등이 이곳 출신이다.혜초·현장과 같은 고승들이 구법순례를 떠나던 곳도 간다라다. 간다라미술은 기원 전후 무렵부터 간다라 지방에서 발달한 그리스·로마풍의 불교미술을 말한다.간다라미술은 기원후 1세기 쿠샨왕조 시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지금의 페샤와르에 도읍을 정한 호불왕(護佛王)카니슈카 시대에는 더욱 번성해 서역지방에서부터 동아시아 전역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쳤다.간다라미술은 불탑과 조각이 주를 이룬다.회화는 남아 있지 않다.간다라미술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불상.불상은 간다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그때까지 부처는 보리수나 스투파,법륜(法輪),보좌(寶座) 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됐을 뿐이다.이러한 무불상시대를 거쳐 부처는비로소 인간적인 모습을 띠게 됐다.이것이 간다라불상이다.그리스 신상(神像)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불상은 머리카락이 물결모양의 장발이며,눈언저리가깊고 콧대가 우뚝해 서양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이번에 전시되는 간다라불상은 고답적인 예배용 불상과는 사뭇 다르다.‘도리천으로부터의 강하’‘마야부인의 꿈’‘탄생’‘궁중생활’‘첫 설법’‘열반’ 등 부처의 일생에 기초한 사실적인 조각들이 선보인다. 간다라 조각은 기원후 1세기경 석조상으로 출발했다.그러나 4∼5세기경에이르러 소조상(塑造像)으로 바뀌었다.이 소조불상은 색깔이 가미돼 한층 우아한 모습을 보인다.간다라미술은 반가사유상과 관련해서도 커다란 의미를지닌다.반가사유상은 좌우균형을 중시해온 동양조각의 전통에서 보면 균형을여지없이 깨뜨려 버린 것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상대적으로 인체조각이발달하지 못한 동아시아에서는 소화하기 힘든 양식이다. 이같은 반가사유 자세의 인체조각 역시 기원후 2세기경 간다라에서 처음 시작됐다.간다라 지방에서는 자연주의적인 헬레니즘 인제조각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기때문에 반가사유상 양식이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키스탄의 국보급 간다라 유물 121점이 소개된다.카라치파키스탄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이슬라마바드 박물관,탁실라·스와트·페샤와르·디르 고고박물관 등 5개 박물관에서 작품을 냈다.입장료는 일반 8,000원,중고등학생 6,000원,초등학생 4,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하룻밤에 千佛千塔’전설의 佛心 가득-화순 운주사

    무등산 줄기가 흘러내린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와 용강리 일대 해발 100여m 높이의 야트막한 자락에 들어앉은 운주사.언제 누가 어떻게 세웠는지도 확실치 않은 고찰이다.요즘은 비구니들의 수행처로 알려져 있지만 미륵사상과 칠성신앙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는 신비와 수수께끼의 공간이다. 한 장편소설에선 역성혁명을 꾀하는 역모의 땅으로 등장했고 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이후에는 마치 민주화의 성지처럼 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간 곳이다.이처럼 이 곳이 ‘희망의 땅’이 됐던 이유는 무엇일까.곳곳에 흩어진 불상과 불탑 모두가 전형적인 불교의 양식과는 달리,민중의 모습을 닮은 탓은아닐까. 이곳의 불상과 탑은 세련된 조형미와는 철저하게 거리가 멀다.부처들은 한결같이 못생겼다.탑의 모습도 아무렇게나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듯한 인상이짙다.파격적이면서도 해학을 갖춘게 운주사만의 독특한 매력이라고나 할까. 국운이 일본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위해 하늘에서 석공을 불러 하룻밤만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쌓았다는 도선국사의 전설이담긴 곳.그러나 지쳐버린 사동이 일부러 새벽닭 울음을 내는 바람에 마지막 불상 2기를 일으켜세우지 못했다고 한다.그 유명한 부부와불이다.길이 12m,너비 10m의 바위에조각했는데 남녀가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이다.바위 일곱개를 거대한 원형으로 쪼아 북두칠성과 똑같이 배열한 칠성바위는 와불과 함께 칠성신앙을 그대로 보여준다. 와불에서 칠성바위까지 가는 길엔 탑과 석불이 도열해 있다.정유재란때 일본군이 절을 파괴하는 바람에 천불천탑은 사라지고 지금은 석불 91기와 석탑 21기만 남았다.일주문 안쪽 오른쪽에 도열한 불상들.비바람에 얼굴 형상은사라진지 오래고 하나같이 비스듬히 바위에 등을 기대고 서있다.그 못난이불상들 위쪽 언덕에 서있는 동냥탑이며 원반처럼 둥글납작한 돌로 만든 호떡탑,실패꾸리 모양의 실패탑,경사진 산비탈에 넘어질듯 아슬아슬하게 서있는무명탑 등 불상·탑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보물 제796호 9층석탑 옆에는 불두 3기와 목잘린 불신이 쓰러져 있으며 국내 최대의 석조 불감(부처를 모신방·보물 797호)안에는부처 두분이 사이좋게 등을 맞대고 앉아있다. 법당안 높은 곳이 아닌 산속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민중들의 얼굴을 닮은 채 서있는 불상과 탑은 오랜 세월동안 중생들의 희망과 기대를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이렇게 가세요 광주 버스터미널에서 운주사행 버스가 하루 30여회 운행한다.소요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화순읍에서는 40분간격으로 노선버스가 있다.소요시간은 40분. 나주에서도 노선버스가 11회 운행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30분쯤 걸린다.자가용을 이용하려면 남광주역 전방에서 천변로를 타고 화순방면으로 접어들어너릿재,화순읍을 거친 다음 능주에서 822번 도로를 타 도곡방면으로 향하면된다.평리교에서 817번도로를 타면 된다.
  • 경주 남산·강화 고인돌…세계문화유산 등록 추진

    문화재관리국은 2일 경주 남산 신라유적과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사적 311호인 경주 남산은 신라미술을 대표할 만한 불상과 불탑이 산재해있는 노천박물관이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은 밀집분포도,다양한 형식의 공존 등으로 세계 거석문화의 발생·분포 및 전파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문화재관리국은 7월1일까지 세계유산 등록신청서 등 관련 서류를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현재 우리나라는 불국사 등 5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 申英均대우重·崔炳哲극동전선사장 제35회 무역의날 금탑산업훈장수상

    한국무역협회(회장 具平會)는 30일 제35회 무역의 날을 맞아 각종 훈·포장 및 표창 수상자 531명과 수출탑 수상업체 487개사를 선정,29일 발표했다. 영예의 금탑산업훈장에는 申英均 대우중공업 사장과 崔炳哲 극동전선공업 사장 등 2명이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申사장은 일본 조선업계와 동등한 가격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 공로가,崔사장은 산업용 전선의 일본 진출과 신기술 개발 공로가 높이 평가됐다. 은탑산업훈장 수상자로는 崔旭洛 (주)한화 사장과 朴正仁 현대정공 사장, 李文成 제일엔지니어링 부회장,金載憲 대신통상 사장,宋仁鎬 (주)을화 사장 등 5명이 선정됐다. 올해 제정된 150억불탑은 (주)대우와 삼성물산,현대종합상사 등 3개사가 수상했다.
  •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현대문명과 단절 오지인삶 어떨까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3’ 등 잇따라 출간 현대문명과 단절된 오지인(奧地人)들의 삶을 다룬 문화탐사기들이 여름 서점가에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실천문학사),‘지상에서 사라져가는 사람들’(푸른숲),‘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3’(금토)등이 그런 책들이다. ‘사라져가는…’은 시인이자 르포라이터 이용한씨가 사진작가 심병우씨와 함께 전국을 답사해 쓴 한국 오지문화기행기다. 이 책에서는 너와집,굴피집,샛집,귀틀집,투방집,투막집 등 원시적인 형태의 집들을 소개한다. 이 희귀 가옥들은 새마을운동이 펼쳐지던 70년대부터 급속히 자취를 감췄다. 정부의 ‘독가촌 정리사업’으로 더이상 살아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오지인들의 과거와 현재,슬픔과 기쁨을 보듬고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들만의 질박한 향기를 전한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장곡선을 그리며 살아가는 오지 사람들. 시인의 눈에 비친 그들은 그야말로 ‘순(舜)적 백성’이다. ‘지상에서 사라져가는 사람들’은 국제식량농업기구(FAO)수석고문관으로 일했던 김병호씨 등 3인이 썼다. 이들은 티벳 고원에서 미얀마,타이,인도의 벽촌에 이르는 2만㎞의 대장정 끝에 이 책을 하나 얻었다. 만난 소수민족만도 50여족. 그중에는 80년대 들어서야 존재사실이 알려진 티벳의 두룽족도 포함된다. 매매라는 경제활동 자체가 없는 두룽족은 매먼신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청량제 구실을 한다. ‘바람의 딸…’은 오지여행가 한비야씨가 인도차이나·남부 아시아 탐방끝에 펴낸 오지체험기. 베트남 북쪽 산악지방 사파,세계 최대의 곡창지대인 메콩 델타,라오스의 루앙 파르방 물벼락 축제,미얀마 바간의 불탑,아편산지 ‘골든 트라이앵글’의 밀림지대,산호와 코코넛 나무가 어우러진 방글라데시의 세인트 마틴 섬 등을 주요 탐사대상으로 삼았다. 7년동안 육로로만 세계를 몇바퀴 돈 한씨는 앞으로 국제난민기구에 들어가 어린이 난민들을 위해 일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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