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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극단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희극 ‘베니스의 상인’이 12일부터서울시극단에 의해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무대에 올려지고있다.‘베니스의 상인’은 법과 자비의 관계,사랑의 본질등 두개의 큰 주제를 축으로 엄격한 법 집행보다 인간끼리 서로 베푸는 사랑과 자비가 사회를 유지하는 기둥임을 강조한다.사업 경쟁자들간 알력과,사랑의 본질에 대한 시험,불의 앞에서 무기력한 정의 등 다양한 요소들이 극을 구성한다.잔혹극 계열의 독특한 연출로 이름난 채윤일이 첫번째 도전하는 셰익스피어 무대.원작의 희극적 요소와 채윤일 연출 특유의 냉혹과 잔인함이 어떻게 조화될지 궁금하다.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역은 전 국립극단장 권성덕이 맡았다.29일까지 월∼목 오후7시30분 금·토 오후3시·7시30분 일 오후3시,(02)399-1647. 김성호기자 kimus@
  • 구멍난 산불진화 작전

    당국의 우왕좌왕과 늑장대응,잔불처리 소홀,하늘만 쳐다보는 무대책 등이뒤엉켜 백두대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동고서저(東高西低)의 독특한 지형으로 해마다 영동지역에는 강풍과 산불이 극성을 부리는데도 강원도와 영동지역 시·군들은 이렇다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이번 재해를 맞았다. 산불발생 초기 제대로 된 장비만 갖추고 체계적인 진화작전만 폈어도 이처럼 처참하게 초토화되지는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불로 여의도 면적의 12배나 되는 1만여㏊의 산림이 일순간에 재로 변했다.복원에 100년 이상 걸린다는 생태계 파괴와 토사유출·해양오염까지 치면 피해는 천문학적이다.연간 4만여㎏에 이르던 국내 최대의 자연산 송이 생산기반도 깡그리 사라졌다.지난 96년의 고성산불,98년 강릉 사천산불 등 대형 산불이 연례행사처럼 발생,교훈을 얻어 대비책을 마련했을 법도 하지만똑같은 잘못이 반복되고 있다. 되풀이되는 산불에 신경이 무뎌진 탓일까.공무원들의 산불 관리체계는 오히려 부서이기주의에 치여 원시수준을 못벗고 있다.산불 진화를진두지휘하고있는 강원도 사고대책본부는 속속 변하는 현지사정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해빈축을 샀다.일선 시·군과 협조가 안된다는 불만의 목소리 높이기에 급급해하더니 급기야 농정산림국과 자치행정국간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며 그야말로눈뜬장님 역할로 일관했다. 진화장비도 후진성을 벗지 못해 헬기와 소방차 지원 외에는 곡괭이와 갈퀴로 중무장(?)한 공무원과 민방위대원 동원이 고작이었다.이 때문에 진화작업이 헬기와 소방차 몇대에 전적으로 의존,강풍이 불어 헬기가 못뜨면 모두 강 건너 불구경 신세일 수밖에 없었다.그나마 산림청·군부대·경찰·소방서헬기만 동원됐을 뿐 민간소유 헬기는 동원협조를 이끌어내지도 못했다.안이한 잔불 처리도 문제.삼척 근덕지역 산불은 당초 뒷불정리만 잘 했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실패하는 바람에 피해가 엄청나게 늘었다. 군부대 무기고와 화약고·가스충전소 등 위험시설물이 무방비로 산불에 노출돼 또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됐다.이번에 군부대 화약고가 있는 동해시 천곡동주민 3만5,000여명은 긴급대피속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삼척 조한종기자 bell21@. *울진원전 부근 진화현장. 13일 오전 5시30분.날이 밝아오자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울진원전 일대는 헬기의 굉음으로 요란했다.36대의 헬리콥터가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저마다 큰 물통을 하나씩 매달고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잠시후 헬기들은 매달고 있던 물통을 풀어헤쳐 세찬 물줄기를 미사일처럼마구 쏘아댔다.그때마다 산등성이 너머에는 뿌연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고 헬기는 차례로 줄을 지어 다시 바다 한복판에서 물을 담곤 하는 모습이 흡사적 진지를 공격하는 특공대원처럼 민첩했다.헬기들의 이같은 공격에 맞춰 759여명의 진짜 특공대원들이 숲을 헤치고 길을 만들며 산 정상을 향해 돌격했다.이들은 이날 오전 울진지역에 급파된 201특공대원들로 총·칼 대신 갈고리와 곡괭이·낫 등으로 산길을 헤쳤고 간간이 등에 멘 휴대용 분무기를 뿌려댔다.원전앞 광장과 나곡리·검성리 야산 곳곳에는 빨간모자를 착용한 민방위대원등 1만여명이 목숨을 건 한판 결투를 준비하듯 비장한모습으로 군데군데 진을 치고 있었다. 원전으로부터 3㎞ 떨어진 나곡리 일대의 산불과 일전을 치르는 모습으로 전쟁터의 기습작전 그대로였다.지난 밤부터 울진원전을 위협하던 산불은 끈질기게 이어진 헬기의 공격과 특공대원들의 진격 앞에 서서히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오전 10시30분 드디어 나곡리 일부를 제외하고 여기저기서 적의 ‘항복하는’ 모습이 보였다.기세등등하던 산불은 6㎞가 넘는 지역에서 가녀린연기만을 남긴 채 정오쯤 모두 사라졌다. 때를 맞춰 야산 주변 곳곳에 진을 치고 있던 민방위대원들이 온 산을 뒤지며 불이 지나간 길을 다시 한번 수색하고 작전은 마무리됐다.향토사단인 육군 50사단 제121연대가 ‘원전을 사수하라’는 작전명령을 완수한 것이다.원전을 위협하던 산불은 경북 울진군으로 넘어온 지 꼬박 하루 만에 치밀한 군작전에 의해 섬멸된 셈이다. 울진 이동구기자 yidonggu@. *당분간 비소식 없다. 언제쯤 비가 내려 산불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결론부터 말하자면당분간 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기상청은 13일 “남부지방은 14∼15일과 19일쯤 기압골이 지나면서 비가 내리겠지만 그 양은 적겠다”면서 “그밖의 지방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될 것같다”고 내다봤다. 올들어 지난 10일까지 전국의 평균 강수량은 87.5㎜로 평년(177.2㎜)의 49%,지난해(226㎜)의 38.6%에 그쳤다.영남과 호남지방은 평년의 44.6%와 37.1%에 그쳤다. 특히 건조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2월19일부터 지난 10일까지 52일 동안의 강수량은 ▲서울 8.1㎜ ▲수원 7.8㎜ ▲속초 17.2㎜ ▲동해 19.6㎜ ▲울진 17. 3㎜ ▲대구 28.8㎜ ▲광주 22.8㎜에 불과했다. 기상청은 비가 오지 않는 원인으로 중국 북부 내륙지방에서 발생한 강한 고기압대를 꼽았다.올해에는 고기압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면서 해마다 이맘때쯤 중국 남부지방에서 우리나라로 다가오는 저기압의 북상을 막아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정규(朴正圭) 장기예보과장은 “4월 중 이번 주말을 비롯,지역별로 1∼2차례 비가 오겠지만 양이 적어 가뭄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다”면서“5월 상순 이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1∼2차례 많은 비가 내리면서 건조한날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재천기자 patrick@. *제과업계,산불피해지역에 온정의 손길. 산불로 큰 피해를 본 강원도 지역에 제과업체의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동양제과는 13일 산불 피해가 가장 극심한 강원도 삼척·동해·고성·강릉지역에 초코파이 2,000박스를 긴급 전달했다.동양제과는 12일 밤 산불피해로 이재민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밤사이 긴급연락망을 가동,다음날 새벽 영업장으로 나갈 오리온 초코파이 2,000박스를 확보했다.초코파이는 8t트럭 3대에 나눠 실려 13일 오전 11시 현장으로 이송됐다.시가로는 3,600만원 어치다. 제일제당도 이날 산불 재해지역인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과 강릉시 사천면에 음료와 햇반 등 2,100만원 상당의 구호물품을 전달했다.재해지역 이재민들은 취사도구가 다 타버려 빵·파이류 등 대체용 식량과 생수가 절실한 형편이다. 안미현기자 hyun@
  • 바그너 ‘오페라 서곡들,기타’(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7)

    ◎리하르트 바그너/서쪽으로,서북쪽으로/파시즘 선구자로 숭배 유태인 몰살의 음악/서로 흐러던 문명사조 북향시키려던 노력들/베토벤 교향곡 ‘확장’ 오페라속으로 신화화/망상의 평화 꿈꿨으나 엷기만한 희망의 흔적 1.발할라,유태인을 혐오하는 천재를 환영하다… 1883년 2월13일 베니스에서 바그너가 사망하자 신문은 그런 부고를 냈다. 발할라는 그의,4일 동안 연속 공연되는 총 16시간짜리 대작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신들의 궁전. 독일신화의 주신(主神) 보탄의 딸 발퀴레들이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전사한 영웅들을 이곳으로 데려온다. 보탄은 그들에게 날마다 주연을 베풀며 마지막 ‘악과의 전쟁’에 대비한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신들이 승리할 수는 없다. 신들과 악의 세력이 모두 멸망하고 새로운 인간의 세상이 열린다. 그래서 ‘반지’ 4부의 각 제목은 전야제 격인 ‘라인의 황금’(라인의 황금을 지하세력 난장이가 탈취하면서 세상의 질서가 뒤흔들리는 ‘사건 발단’),첫째날 ‘발퀴레’, 둘째날 ‘지그프리트’(미래의 주인인 지상의 ‘인간영웅’ 이야기)에 이어 마지막날이 ‘신들의 황혼’이다. 그렇게,그런채로 발할라가 천재­바그너를 환영한다.‘유태인 혐오’는,무슨 소린가? 식인종이었던 자들을 교육시켜 사회를 주무르는 장사꾼으로 키웠다… 유태인 종족에 대해 바그너는 그렇게 극언했다. 그리고 사망 40여년후 그는 악명높은 히틀러 파시즘의 선구자로 숭배되고 그의 음악속으로 수백만의 유태인들이 몰살한다. 2.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문명은 태양의 동쪽에서 태동,서쪽으로 그 중심지를 옮겨갔다. 뒤늦은 문명이 앞선 문명을 보다 빠른 기간에 배우고 여력을 계승­발전에 투여한다. 그렇게 고대 그리스에서 문명이 만개하고 로마에서 위대한 건축물을 이룬다. 문명의 주역은 그후 프랑스­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바뀌었다. 동에서 서로… 바그너는 독일문명의 세계 주도를 위해 그 흐름을,거대하게 북향(北向)시킨다. 그의 음악은 그래서 음악사상 가장 거대한 폭으로 흐른다. 물에서 태어나 가장 강렬한 욕망의 불길을 태우다가 다시,물의 평정으로,죽음으로회귀하려는 필생의,그리고 전 생애에 걸친 음악. 그러나 당대와 후대의 바그너 예찬자들은 그의 음악에 평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그너 자신은? 그는 소망했지만,소망을 성취할 수 없었다. 각 민족에게는 고유한 문화가 있다. 그것들을 선진­미개의 틀로 설명할 수는 없다. 요는,주류 문명에 대응하는 방식. 바흐는 ‘독일속으로’ 더 흔들리면서 더 명징한 종교음악을 세웠고,독일을 종교음악의 본산지로 세웠다. 괴테는 그리스­로마의 문명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독일문학을 이룩했고 베토벤은 자신의 불행과 독일의 열정을 음악사적인 낭만주의로 전화시켰다. 브람스 또한 북(北)독일의 우울을 음악의 보편적 심오함으로 담금질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영국과 프랑스의 학문적 업적을 독일적으로 종합,독일의 후진성을 혁명성으로 변혁시켰다. 바그너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복원을 꿈꾸면서 이탈리아 코믹 오페라 형식(사랑의 금지)과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 형식(리엔치)을 기웃댔지만 처음부터 북행(北行)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게,서북 쪽으로. 그 결과는무엇인가? 문명의 야만을 치유하기 위한 생체실험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으나,위대한 실패로 끝난. ‘베토벤의 교향곡 세계를 오페라 세계로 심화­확대시키자’. 바그너의 음악적 꿈은 그랬다. 베토벤이 오페라를 단 한편 남겼으므로,그리고 그렇게 그의 ‘교향곡세계’가 ‘보이는 것’의 음악적 응축이었으므로,그것은 타당한 꿈이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일찍 북쪽의 광포하고 웅대한 신화로 꿈의 내용을 채운다. 3.웅대한 규모는 막대한 자본을 요구하고 ‘야만의 신화’는 신화의 성스러운 야만화를,그리고 역사관의 반동화를 초래한다. 야비한 사기,불륜 행각과 과대망상의 천재 행각이 오페라 ‘속으로’ 신화화 하고 그 신화음악이 오페라 ‘밖으로’ 나와 다시 바그너의 현실세계를 미화,영웅화하는,악순환 고리가 반복 심화된다. 예찬자들은 열광하고,그러나 바그너로서는 ‘마음의 지옥’이었던 그 악순환의 고리. 그러므로,그의 음악은 그가 그 지리한,고통의 생체실험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육(肉)의 고행으로까지 밀어부치는 대목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다. 도대체 어디까지니이까.어디까지 음악의 육욕을,탐닉해야 하니이까. 저를 도와주소서…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음악의 살속’을 파고 든다. ‘끝까지’가 지리하고 심오한 반복을 낳고 ‘파고 듦’이 음악을 이제껏 가장 극단적인 반음(半音)사용으로, 사랑의 환희의,몰아의 황홀경의,그렇게 ‘사랑의 완성을 위한 죽음’의 정황으로 치닫는다. 물의 죽음에서 물의 죽음으로… 그러나 그 과정은 아름다움이 죽음으로 완성되는 극단의 불의 경지. 그것으로 물과 불의 구분 자체가 극복되는 경지이다. 4.반프리트. 망상에서 평화로운 곳. 혹은,망상으로 평화로운 곳. 바그너는 만년의 저택을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 숱한 거장들이 바그너를 ‘망상으로 평화로운 곳’으로 연주한다. 그러나,예술가는 망상에서 평화롭지 않으면 망상으로 평화로울 수 없다. 흥분은 금물. 루돌프 켐페의 음반은 한마디로 바그너 ‘반지’ 작곡 생애에 바치는 진정한 반프리트이다. 오페라 ‘방황하는 네델란드인’(1841)서곡,‘탄호이저’(1845)서곡 및 1막 일부,‘뉘른베르크의 명가수’(1867) 1막,3막 서곡 및 일부,그리고 ‘신들의 황혼’(1874) 서주­‘새벽’과 ‘지그프리트의 라인여행’등 수록곡은 켐페의 ‘독일 정통’ 연주를 통해 ‘바그너 선언’,‘정체성과 전통 발견’,그리고 ‘평정의 갈구’로 재설계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바그너의 진정한 소망의 골격을 보는 것이다.가장 중요한,이 모든 것이 종합되는 ‘지그프리트 장례행진곡’은 등장하지 않고 각 곡 도처에 흔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위대한 망상의 흔적이 (아직)아니고 상상력 풍부한 희망의 흔적이다. 바그너 사망 한달 후 마르크스도 세상을 떠났다. 그는,어느 쪽?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Ⅳ

    ◎외세개입 없을땐 100% 적화통일 가능/나진·선봉에 남한기업 투자 원치 않아 ▷북한 대외관계◁ ○외교정책·전략 소·동구붕괴 이후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은 ‘체제고수’라는 기본목표하에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대국(주변4각)들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이들을 이용해 나가는 전략임. 외교정책 결정은 소·동구 붕괴이전에는 ①외교부 수립 ②당 국제부 심사 ③김정일 비준 ④외교부 하달순이었으나 90년대 들어 김정일이 직접 관장한 이후부터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음. 외교정책 주도인물로는 김영남·강석주 등을 들수 있는데 외교부가 주관한 대미 핵협상이후 강석주가 김영남을 제치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신임을 받고 있음. 북한지도층은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경제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일·북 관계에 진전이 없자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 되어야 함을 깨달았음.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간섭을 견제하면서 대미관계 개선을 통해 일본을 따라오게 하고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기 위한 것임. 김정일을 UN을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부속기구로 보고 있으며 대 UN외교활동 중점을 주한미군 철수와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원획득에 두고 있음. ○해외 주체사상연구소 70.10 김일성과 단독 면담하여 주체철학 확립사업을 승인받고 4년간에 걸친 집필활동을 통하여 김일성 명의로 주체사상을 집대성 하였음. 최근까지 주체사상 연구소 활동을 위해 연간 100∼120만불의 예산을 사용해 왔음. 주체사상의 세계전파를 위해 78.4 동경에서 주체사상 국제연구소르 창설(초대 이사장 야스이 카오루,현재는 이노우에 슈하치)하고 매년 자금을 지원해 왔으나 최근에는 북한의 자금난으로 2년전부터 조총련에서 지원하고 있음. 현재 지역별 주체사상연구소는 인도,불란서,페루,나이제리아에 있으며 동 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아주 주체사상연구소(인도)에 매년 3∼4만불,중남미 지역 1만불,불란서에 5천불 정도 지원한 바 있음. 해외주재 북한대사가 주체사상 전파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으며 일부지역에는 전담요원이 파견된 바도 있으나 이들 조직의 활동보고를 받거나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음. ○주요국과의 관계 김정일의 대미접근 의도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평화적」이라는 대외명분도 세우려는 것으로서 중국의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데 대해 골탕을 먹이고 남한을 고립시키는 등 여러책략을 기본고리로 미국과 상대하려는 것임. 김정일은 미국을 타도대상인 적인 동시에 이용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미국과의 수교가 상당기간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수교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제기되고 북한의 남한 고립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임. 북한이 미국과 미사일 관련 협의에 수표하더라도 종잇장에 불과할 것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을 것임. 내부적으로 ‘미·북 핵합의’를 “신출귀몰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승리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 모두 이를 믿고 있는 실정임. 김정일이 “일본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취함으로써 일본을 끌어 당기라”고 지시한바 있으며,대일관계 개선 목적은단지 사죄와 보상금을 얻어내는데 있음. 일본과의 수교회담은 처음에는 일본과 직접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차츰 미국의 승인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대미관계 개선에 우선을 두고 있음. 일·북 수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며 1백억불정도의 보상만 받을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수교할 것임.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북한은 미국과의 접근을 원치않는 중국을 자극하여 보다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임. 북한은 한·중 수교이후부터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며 외교적 사안을 전혀 통보하지 않는 등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북한은 소련붕괴이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도 벗어나려 하고 있기때문에 중국측에서 김정일을 수차 방중 초청해도 거절하고 있음. 북한은 남쪽을 무력으로 통일시키는데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을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음. 러시아가 한국의 자본과 러시아 기술을 이용하여 북한의 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할 경우 북한은 설비는 받아들일 것이나 남쪽인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임. 북한은 대만에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만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음. 북한은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비하여 보위부 반탐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작년 여름 총영사관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홍콩을 방문하였다고 함. 91년경 김일성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줄때 뿐이며 자본주의 국가나 남조선에서도 받아먹고 있어 ‘밑빠진 독에 불붓기’”라면서 “이제부터는 동남아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언급하였음. 김정일도 21세기를 태평양 시대라고 보고 동남아를 중요시하면서 필리핀·호주 등과의 수교를 추진하고 있음. 김일성은 91년경 교시를 통해 동남아 다음으로 브라질,페루 등 중남미 국가 야당과의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이들국가의 여당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 ○조총련의 대북송금 실태 김정일은 조총련의 송금을 최대의 명줄(중요자금원)로 간주하고 있으나 80년대에는 송금액이 6억달러 정도였으나 지금은 정확한 액수를 알수 없으며 빠찡코,부동산 등의 수입이 감소하여 많이 줄어들고 있음.또한 북한은 조총련에 교육비 명목으로 선전차원에서 자금을 보내기는 하지만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번 일본 지진시 북한이 위로금을 보냈을때 ‘황’이 “뭐 그렇게 많이 보내느냐”고 하자 통전부 간부가 “보내면 몇배로 되돌아온다”고 대답한 바 있음. 지난 91∼92년도에 수교교섭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1백억불 이상 받아낼 계획이었음. 김일성 생존시에 배상금을 쓰는 문제에 대해 조금 논의를 했는데 경제부문이 아닌 다른부분에 쓰려는 것으로 들은바 있음. ▷대남 및 남북관계◁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 과거 김일성은 대남혁명전략으로 남한내 이른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킨 다음 연방제로 통일하는 평화적 방법과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방법을 병행하였음. 김정일은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에 비해 경제력은 열세이나 일본 등 외부간섭이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극심한 식량난에도 아랑곳없이 군사력 강화는 물론 무력통일을 위한 사전 기반조성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철수·남한 내부와해 및 지하당조직 공작을 추진하고 있음. 특히 최근에는 남한과 해외의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별도 공작기구를 설립하는 등 군관련 공작에 주력하고 있음. ○연방제통일전략(합작통일전략)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①남한은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고 ②무력으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며 현재 ‘남한정세가 정치적 문제·학생데모 등으로 혁명의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결정한데 따른 것이며 남북관계에서 온건파가 발붙일 자리는 없음. 북한의 연방제 통일전략은 외국 등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남한내에 혼란을 일으키고 인민 봉기에 의한 정권을 수립한 후 합작하겠다는 것으로 속임수에 불과함. 김정일은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지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식권력승계를 하더라도 대남정책에는 변화가 있을수 없고 있지도 않을 것임. ○대남정책 입안 및 집행절차 대남 공작사업은 대남사업을 전담하는 당 소속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작전부·조사부와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각각 자체계획을 수립,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집행하고 있음. 공작부서간 상호 업무협조는 김정일의 직접적인 통제아래 이루어지므로 김정일 이외에 어느 누구의 지휘나 협의·조정없이 자체적으로 수행함. ○남북대화 북한은 남북대화를 ‘적과의 전쟁’으로 간주하여 모든 전략을 김정일의 결재하에 추진하고 있음. 남북대화 전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수립하며 동 전략에 따라 조평통·정무원 등 관계자로 구성된 회담대표단이 이를 수행함. 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했던 것은 남한을 안심시키고 국제적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의도였으며 당시 연형묵 총리는 로봇에 불과했음. 94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김일성이 서울을 방문할 경우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며. 회담목적은 연방제통일과 남북 경제교류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었음. 4자회담은 잘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쌀을 준다면 나올 수는 있겠으나 딴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끌 것임. 북한이 ‘3+1’회담을 주장한 이유는 중국의 조선문제에 대한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임. 북한 고위인사 대부분중 대미협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미협상이 김정일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4자회담 참석에는 반대하고 있음. 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 강영섭은 통일전선부 사람들이 작성해주는 것을 읽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며,북한에는 종교를 믿으면 곧바로 통제구역으로 쫓겨남. 민간급 접촉은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남한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해 재야단체 등을 반정부 투쟁에 끌어들이려는 유인술책임. 또한 당국간 대화 거부입장을 정당화 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국내 일부단체의 대북접촉을 부추겨 통일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경제지원 등도 얻어내 보려는 속셈임. 남북경협은 대외경제위 산하 ‘대외경제협력 추진위’가 주관하고 있으며 동 기구는 크게 나진·선봉투자,금강산 개발,남한 기업인 접촉 등 3가지 업무를 담당함.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와같이 비단섬을 경제특구나 관광특구로 개발하려고 하는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1일관광을 시키는 정도일 것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봄. 북한이 나진·선봉지역을 개방한 것은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모면해 보기 위한 것으로 남한기업의 투자는 원하고 있지 않으며 남한기업인에게는 경영권을 절대로 주지 않을 것임.
  • 서양 중세철학의 백미 아퀴나스 명저/신학대전 번역본 본격 출간

    ◎정의채 신부 14년만에 30권중 4권째 내놔/신의 존재와 본질·인간의 덕목 등 두루 다뤄 서양의 중세사상을 완성한 인물로 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년)의 「신학대전」.전30권을 목표로 번역에 착수한 이 방대한 저술이 4권째 간행되었다.그의 이름과 「신학대전」은 우리 종교계와 학계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을 대한 사람들은 흔치 않다.원전이 라틴어라는 언어문제와 독특한 내용 때문에 쉽사리 소개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저술의 번역은 원로 철학자이자 가톨릭의 사제인 정의채 신부(72)손에 이루어졌다.가톨릭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강대 석좌교수로 봉직중인 그가 「신학대전」 번역에 손을 댄 것은 지난 1983년.두 해 뒤인 1985년 9월 제1권을 내놓고 나서 이번에 제4권을 출간하기까지 꼬박 12년이 걸렸다.제5권은 현재 담당 출판사인 바오로딸이 인쇄에 들어갔다.그리고 제6권은 우리말로 절반쯤 옮겨놓았다. 「신학대전」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1272부터 2년에 걸쳐쓴 대표적 저술로 원전은 3부로 되어있다.제1부에서는 신의 존재와본질·창조·천사·인간을 다루었다.제2부는 1,2편으로 나누어 인간의 목적과 행위·죄와 법을 골자로 한 도덕의 근본문제와 더불어 신앙과 사랑·정의와 용기·절제 따위의 덕에 관한 문제를 말했다.제3부는 그리스도론을 비롯한 신학문제를 들추어 냈다. 그러니까 신학 뿐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과 목적을 밝혀주면서 인간의 실재를 다룬 「신학대전」은 고전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이 저술에 담긴 사상은 오늘날 유럽문화의 원천이 되었거니와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평가받는다.더구나 「신학대전」속에는 당시 유럽과 접촉한 그리스­로마와 아랍사상까지도 융화되었다.그의 사상에 세계성을 부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번역본 제4권은 원전 제2부 1편에 해당한다.믿음을 비롯,희망·사랑·지혜와 정의의 덕,불의 등 8항목이 들어있다.각 항목의 테마에 반론과 본문을 제시하고,반론에 응답을 주는 형식으로 꾸몄다.믿음을 다룬 항목 한 절에서는 「홀로 또는 오직이라는 배타사가 하느님안에서 적합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그러나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니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의 궤변론에 따르면 홀로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같이 있지 않는 사람이다.그런데 하느님은 천사들과 거룩한 영혼들과 함께 하는 터라,홀로라 할 수 없다」.이 대목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되풀이만 한 것은 아니다.그리스도교 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흔적이 「신학대전」곳곳에 나타났다.「신학대전」번역과 완간을 필생의 과제로 삼은 정의채신부는 『서구사상이 여러 손을 거쳐 전수되어서는 학문을 제대로 연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래서 원전에 충실하면서 이번 제4권은 라틴어와 우리말 대역본으로 내놓았다.중세철학연구로 유명한 로마 우르바노대와 그레고리안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연구한 그는 우르바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동서고금의 흥미로운 「상징문화」/박영수씨의 「행운의 풍속」

    ◎새로운 사람들간/불행 막기위한 로마인의 열쇠 태우기 등/21가지 주제통해 분석한 인류의 신앙행태 고대 로마사람들은 매년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축제일(8월17일)이 다가오면 앞다퉈 문 열쇠를 불속으로 던졌다.불행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소유」의 상징인 열쇠를 정화하는,일종의 액막이 행위였다.원화소복의 의식 혹은 문화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인다.하지만 행운을 기원하는 인간의 마음만은 언제나 닮은 꼴이다.최근 출간된 「행운의 풍속」(새로운 사람들,박영수 지음)은 행운과 금기에 관한 풍속과 유래,상징문화를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 책은 21가지의 상징적인 주제를 통해 인류의 삶과 맥을 같이해 온 행운의 실체에 접근한다.인류의 풍속사를 살펴보면 행운기원 보다는 불운방지의 관습이 더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특히 부적은 보이지 않는 신의 대용품으로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한 신앙형태다.고대 멕시코의 아즈텍인들은 손모양의 붉은 무늬가 재앙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해준다고믿어 벽에 그 무늬를 그렸으며,이집트인들은 풍뎅이를 부활의 상징으로 신성시해 풍뎅이 무늬를 새긴 반지를 끼고 다녔다.또 중국인들은 악귀에 대항하는 주문을 노란 종이위에 써서 태운 다음 그 재를 물에 타서 삼키는 이른바 「소회탄부」로 악귀를 쫓았다. 독일의 미술사가인 빌헬름 보링거는 『문양은 인간의 내적인 불안으로 생긴 공간공포를 진정시키기 위한 추상충동에 의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그렇다면 인류가 그려온 수많은 무늬속에는 과연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이 책은 풍부한 사례를 통해 각 문화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무늬의 상징성을 밝힌다.특히 동양문화권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문양인 박쥐무늬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눈길을 끈다.동양에서 박쥐는 오복을 가져다주는 동물이자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이다.태국에서 박쥐는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로 인식되며,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는 풍년을 상징하는 신령한 동물로 간주된다.중국에서도 박쥐는 행복과 장수의 상징이다.그러나 서양에서는 박쥐야말로 부정적 이미지의표상이다.바빌론시대에는 악령이나 유령으로 묘사됐으며,중세시대부터 셰익스피어시대까지는 죽음·공포·불운·악마를 상징했다.마녀나 드라큘라가 집에 들어올 때는 박쥐모습을 한다고 믿었으며 박쥐를 악귀들의 심부름꾼으로 여기기도 했다. 히틀러는 그의 저서「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썼다.『붉은 바탕은 우리가 벌이는 운동의 사회적 이상을 나타내고 흰색원은 민족적 이상,하켄크로이츠는 아리안족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사명을 나타낸다』 이 책에서는 나치스의 당장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에 담긴 뜻을 면밀하게 살핀다.하켄크로이츠는 유럽백인의 원조인 아리안족 최고의 상징으로,「불의 요람」 또는 행운을 뜻했다.대중조작 기술이 뛰어났던 히틀러는 바로 이 「불의 요람」에서 불·힘·권력의 속성을 파악했으며,국가사회당의 지도권을 장악했던 1920년에는 하켄크로이츠를 문장으로 선택했다. 거울의 상징성에 대한 동서양 문화권의 해석을 비교·소개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서양에서는 거울을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고대신화를 보면 메두사를 퇴치하는데 거울을 사용했으며,뿔달린 백마 유니콘을 유혹하기 위해서도 거울을 이용했다.거울은 주구나 신기,나아가 통치자의 상징물로도 활용됐다.거울에 왕권을 부여했음은 진시황제나 고려·조선의 예에서 알 수 있으며,일본 왕실의 삼보에 거울이 포함돼 있는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려태조 왕건은 객상 왕창근이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고경에 새겨진 글자를 해석한뒤 용기를 얻어 고려건국을 결심했고,조선태조 이성계는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꾼뒤 길몽이라는 해석에 자신감을 얻어 조선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이 책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위주의 책이라기 보다는 동서양 상징문화를 「행운과 불운의 방정식」으로 풀이한 풍속 소사전이라 부를수 있다.
  • 소설가 오정희(작가를 찾아:8)

    ◎“소설쓴지 30년… 원고지 두렵기는 처음 그대로…”/내느낌·체험으로만 글쓰는 나는 아마추어/하루 원고지 5∼6매가 고작… 많이 쓰면 밀도 떨어져/일상의 잔상들은 한순간에 피어나는 소설의 씨앗들/버려진 노인 등 변두리 인물통해 성의 어둠 조명 작가 오정희씨를 찾아 달리던 경춘가도 사위에는 여름더위가 아지랭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빨랫줄처럼 빳빳하게 내리꽂히는 햇볕이 소양강 물줄기를 따라 들어찬 여관의 지붕이며 수초의 무더기들,구불구불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삶아댔다.어느새 돌아온 들끓음과 소란의 계절.그렇건만 남춘천역을 등진 오씨의 11층 아파트는 적요롭기만 했다.맞바람치는 널찍한 공간을 먼지 하나 없이 정돈해놓고 오씨는 툭툭한 삼베저고리에 말끔히 화장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며 인사치레를 했다.그러자 대뜸 『하루종일 걱정에 묻혀 지낸다』는 「엄살」부터 건너왔다.『작품 주기로 한 곳은 많은데 글은 더디죠,계간지 원고 석달만 미뤄주면 명작이 나올 것만 같은데 막상 닥치고 보면여전히 제자리걸음….소설쓴 지 30년이 돼가도 원고지 두렵기는 처음 그대로지요』 최근 오씨는 지난해 발표한 단편 「새」를 중편으로 손질,막 문학과 지성사에 넘겼다.하지만 「작가세계」 「창작과 비평」 등 계간지와의 「닳고 닳은」 부채가 줄을 서 있다.『출판사와의 이런저런 원고약속을 제때 지켜본 적이 거의 없다』며 주눅들어하는 작가.『살림할 시간마저 탈탈 털어 책상앞에 붙어 살지만 하루 원고지 5∼6장이 고작』이라고 넋두리다.함부로 말을 널어걸지 못하는 천성은 단어 하나마다 무수한 망설임을 낳게 하지만 정제된 그의 언어에는 성급한 원고지 열장과 맞먹는 내밀한 울림이 출렁인다. 거북이붓을 미안해 하는 마련으로도 그는 『많이 쓰면 밀도가 떨어져요』,더 나아가 『나는 좀 많이 쓰면 안돼,나는 내가 잘 알아요』라고 재빨리 못박아버린다.이러니 그의 글을 받으려는 편집자들은 오래 끓여야 깊은 국맛이 우러나는 정갈한 한정식을 기다리는 여유를 배워야 할 것 같다. ○삼베저고리 정갈한 차림 겉으로는 너무나도 말끔하고 평온한일상.그러나 이면에선 삶의 어둠에 가장 적확한 한마디가 아니고는 허용하지 않는 엄정한 태도.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반된 기질의 이 양립을 오씨는 『문학이 있어 나는 일상을 깊은 어둠에서 지켜내기 수월했다』고 나름으로 해석한다. 오씨의 작품은 많은 젊은 작가지망생을 한번씩 홀린다.몇해전 한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작이 오씨의 표절이라 해서 당선취소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그 응모자는 오씨의 작품을 베끼며 습작하다 저도 모르게 그의 문장을 흉내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뚜렷한 사건이나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없다.거대한 사회적 함의를 품은 경우도 별로 없다.주인공은 거의 변두리에 팽개쳐진 인물이다.버려진 노인이나 아이,보잘것없는 주부가 대부분.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생의 깊숙한 무엇과 닿아 속으로 앓고 있다.무엇이 작가를 자꾸만 이런 속멍든 세계로 이끌까.또 그의 독자는 이 끔찍한 세계의 무엇에 그토록 번번이 끌려드는 것일까. ○작가지망생 습작용 인기 『제가 소설의 실마리를 잡는 것은 그냥 휙 지나치는잔상,이미지 같은 것들이에요.이것들이 물이 괴듯 마음속에 괴어 있다가 어느 순간 밖의 소재를 만나면서 소설이 눈뜨지요』 그 예로 오씨는 지난 84년 교환교수 남편을 따라 2년간의 미국살이끝에 도통 고갈됐다가 불시에 글샘이 뚫린 89년작 「파로호」를 든다. 『당시 뭔지 모를 답답하고 황량한 것이 가슴을 꼭 누르고 있었어요.그러다 평화의 댐 계획으로 물이 말라버린 파로호를 보러 가서 비로소 그 뭔지 모를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호명할 수 있게 됐지요』 그래서 오씨는 자신의 글쓰기를 「씨뿌리기」에 비유한다. 『지난해말 「한국작가포럼」으로 프랑스에 다녀오고 올초엔 멕시코·페루 등 남미를 둘러봤어요.파리는 늙은 골동품 같았고 마야유적은 죽음에 대한 예감이며 인간의 본원적 회귀욕망에 대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어요.이런 외국체험을 날것 그대로 가져다 쓴다고 소설이 되지는 않겠지요.하지만 지구 저편 사람의 삶과 유적에서 받은 인상은 씨앗처럼 마음속에 떨어져 숨었다가 어느 순간 물을 만나듯 하나씩 되살아오를 거라믿어요』 문학이 상품이 돼버려 글쓰기도 생산이라는 요즘,많은 이가 장르를 넘나들며 팔방의 재능을 뽐낸다.하지만 오씨는 1년에 서너편의 단편을 「깎아」낸다.『예감도 아무 재능도 믿지 않는,내 소설쓰기는 완전한 수공업』이라는 그는 『작가는 문학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그러면서도 『나는 내 느낌,내 체험이 아니면 못써요.내속에서 익은 것이 절로 흘러넘쳐야 해요.그러니까 나는 아마추어라고 생각돼요.직접 겪지 않은 것도 만들어 끄집어낼 만큼 깊어져야 진짜 프로인데』라며 우물거린다.『문학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데도 시간을 뺏기기 싫다』는 오씨는 이제 우리 주변에 몇 남아 있지 않은 「장인」이다.이 속도의 시대에 보석처럼 더디게 깎아낸 작품을 들고 그는 사람을 홀리는 「장인」의 그물을 더 넓게 펼칠 것이다. ○1년에 단편 서너편 깎아 열아홉 겨울일기에 오씨는 「정결한 사랑,문학과 나 사이에 어떤 매개항도 두지 말 것.아름답고 힘 있는 문학을 살(생) 것」이라고 썼다.30년이 지난 지금도 『문학이란 나를 굉장히 매혹시켜요.작가로 출발했으니 다른 길은 없는 것 같애』라 되풀이하고 있다. 이 매혹을 만나려거든 곧바로 그의 책을 열어봐야 한다.그러면 아무렇지 않은 듯 건너온 우리 삶의 이면에 얼마나 섬뜩한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이 소름끼치는 어둠을 회피하지 않는 몇몇 독자만이 오씨 작품이 감춰둔 기이한 안식의 세계에 가 닿게 되리라. □연보 ▲47년 서울생 ▲충남 홍성군 홍주읍 홍주국민학교 입학(54) 인천 신흥국민학교로 전학(55) 신문연재소설부터 야담류까지 남독의 시작 ▲3학년때(56) 경기도내 백일장에서 「오늘 아침」이라는 산문으로 특선 ▲수송국민학교(59)·이화여중(60)·이화여고(63)·서라벌예대(66)입학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당선(68) ▲강원대 신방과 교수가 될 박용수와 결혼(74) ▲대표작 단편 「번제」(70) 「봄날」(71) 「적요」(76) 「불의 강」(77) 「저녁의 게임」 「중국인 거리」(79년) 「유년의 뜰」 「어둠의 집」(80) 「별사」(81) 「동경」 「바람의 넋」(82) 「불망비」(83) 「불꽃놀이」(86) 「그림자밟기」(87) 「파로호」(89) 「옛우물」(94) 「새」(95) 장편동화 「송이야,문을 열면 아침이란다」(93)등 ▲이상문학상(79) 동인문학상(82)
  • 지휘자 임원식(이세기의 인물탐구:93)

    ◎26세에 지휘봉 잡은 “한국의 토스카니니”/46년 고려교향악단 창설… 4대교향곡 국내초연/서울 온 오사카필 등 단골 지휘… 일 TV서도 소개/서울예고·예원학교 설립… 7순넘긴 나이에도 “꼿꼿한 현역” 미국의 NBC교향악단이 세기적 거장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음악의 자존심」 임원식이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그는 음악을 위한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의 이름은 음악사의 중앙을 가로질러 우뚝한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평생을 통해 그처럼 존경과 사랑과 선망을 한몸에 받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그리고 음악의 발전·보급과 그 질을 높이는데 지금도 식을줄 모르는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첫째,그는 우리나라 교향악운동에 초석을 놓은 독보적 존재다.아직 새파랗게 젊은 나이인 26세에 하얼빈교향악단 지휘로 음악계에 데뷔,국내 최초의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여 46년 서울 부민관무대에서 첫지휘봉을 잡았을 때 『혜성같이 나타난 젊고 아름다운 예술가에 대한 청중의 열광은 참으로 대단했다』『연주 때마다 객석은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그날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은 극장의 창문을 깨뜨릴 정도였다』고 그의 오랜 동료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전봉초씨가 이를 증명한다.그로부터 10년후인 56년,KBS교향악단창단과 함께 그는 지금까지 「현역의 단정함」을 꼿꼿이 지키고 있다. 지난 94년 음악생활 50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그는 베토벤 교향곡 1번·5번을 필두로 다섯차례나 암보지휘를 하여 노익장을 과시했다. 전에는 비교적 섬세한 해석이 눈에 띄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큰 흐름을 붙들면서 「음률의 마디마디에서 거인의 숨결이 느껴지고 인간정신의 승리가 구가되는 한층 심화된 경지」를 펼쳐보였다.『그가 지휘봉을 드는 순간이 바로 음악을 이루는 순간』이라는 박용구씨의 평은 결코 과장일수가 없다. ○연주때마다 관객 만원 둘째,음악교육에서도 그는 미래를 지향하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몸소 실천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만든 일이다.미 줄리어드 음악학교 유학시절 청소년예능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이화재단 신봉조이사장과 의논하여 예술고교를 설립하는 한편 해외에 나가있는 재능있는 젊은이가 눈에 띄면 어떤 방해도 뿌리치고 국내무대에 진출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음악계 일선에서 쟁쟁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 원경수를 비롯,이남수 박은성,피아니스트 백낙호 정진우 신수정 이경숙 백건우등등 연주자 성악인의 대부분은 그의 도움을 받아 발돋움한 이들이다. 우리나라에 클래식이 보급되는 역사와 더불어 그는 주옥 같은 명편을 직접 들려준 첫지휘자이기도 하다.이른바 4대교향곡으로 일컬어지는 차이코프스키의「비창」,드보르자크의「신세계」,베토벤의「운명」과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초연은 물론 음악애호가들이 탐닉해마지않는 모차르트에서 프로코피예프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이모셔널한 시심과 티없이 순수한 천상의 음악」으로 그때마다 지식층의 청중들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말았다. 그는 지방교향악단의 위상과 연주확대의 차원에서도 남이 넘볼수 없는 커다란 획을 긋고 있다.83년 인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부임했을 때 동호인 그룹에 불과하던 이 악단을 3관편성의 풀오케스트라로 전열을 가다듬었고 지방시향으로선 엄두도 못낼 동남아및 미국순연으로 활기와 용기를 불어 넣었다.이런 면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세계적 교향악단으로 성장시킨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처럼 굵직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 대한 행사는 떠들썩하게 소문내는 법이 없다.62년 이래 오사카필을 비롯,일본 NHK심포니·도쿄필하모닉의 단골지휘자였으며 지난 71년에는 서울에 온 오사카필을 지휘,내한공연을 갖는 외국교향악단을 최초로 지휘한 기록을 세웠고 77년 일본 도쿄와 삿포로에서 열렸던 아시케나지와의 협연역시 「아시케나지 특유의 탁월한 기교와 시적감성 표출을 절묘한 조화로 이끌어냈다」는 일본신문들의 특필이 있었으나 이를 과시하지 않고 평상적으로 지나갔다. ○유학도 국내진출 뒷받침 91년에는 레닌그라드필,다음은 러시아국립교향악단 객원지휘로 차이코프스키를 연주,「음 하나하나를 갈고 닦은 다이내믹한 쾌감과 가슴을 파고들게한 더없이 아름다운 거장의 선율」로 호평되었고 지난해엔 일본 마이니치 TV가 제작한 세계 최원로지휘자인 아사히나 다가시(조비나 융)다큐멘터리에 참가,이 프로그램은 다가시와 다가시의 후계자였던 그의 하얼빈교향악단 지휘 50년을 기념하는 동양음악사에 남을만한 내용이었다. 그의 성품이 바로 그렇다.폭이 넓고 대범하면서도 절도와 예의범절을 중시하여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폐해를 끼치지 않는다.단지 싫고 좋은 것을 선명하게 가리는 까다로움 때문에 「카리스마적」이라든가 또는 「독선적」으로 몰아붙이는 예가 없지 않으나 이는 임원식 카테고리에 들지 못한 사람들의 질투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 간단해진다. 오히려 불의에 굽히지 않는 강건한 의협심은 작곡가 윤이상씨가 국가보안법에 관련되어 주변 사람들이 만나기를 꺼려할 때도 점심을 싸들고 구치소에 드나들며 「거대한 예술가」의 고뇌와 슬픔을 달래주고 예술혼을 격려한 것으로 유명하다.그래서 윤이상씨는 『임원식은 나의 유일한 은인』임을 자랑삼았고 바로 이런 정의감과 의리가 그의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끈끈한 친화력은 다양한 층과 교분을 트고있는 사교맨이기도 하다.정·재계는 물론 체육계와도 깊이 관련되어 70년대엔 남자대학농구협회부회장을 지내는가 하면 바로 「농구의 노래」를 지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농구와의 인연은 그가 누구도 「못말릴 농구광」이기 때문이다.그가 얼마나 열렬한 농구광인가는 그가 있는 곳엔 반드시 어린이농구든 어머니농구든 농구경기가 열리고 있다고 짐작하면 정확하다. 그는 평북 의주의 독실한 개신교집안에서 태어났다.집안이 만주로 이사하는 바람에 봉천서 유년기를 보내고 하얼빈에 있는 제일음악학원에서 피아노와 이론을 사사,교회찬양대를 반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접할수 있었다.편곡과 작곡에도 능하여 도쿄음악학교시절에 작곡한 파인 김동환의 「아무도 모르라고」는 지금도 폭넓게 애창되는 가곡의 하나다.가족은 플루티스트인 고순자씨와의 사이에 2녀1남,연극연출가 임영웅씨가 그의 조카다. ○각계각층 인사와 교분 토스카니니가은퇴해야 할 69세부터 87세까지 거장다운 황금시대를 누렸고 스토코프스키가 95세까지 7천회의 지휘로 금자탑을 쌓았다면 그는 지금 욕구와 절제,감성과 이성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음악의 정수를 순수한 형태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결집된 시기다.그의 열렬한 지지자의 한사람인 원경수는 「영원히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점에서 『그는 파우스트적』이라고 말한다.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의 피아니시모는 예리하고 그의 포르티시모는 누구보다 웅장하며 긴장되고 팽팽한 현의 울림,꽉차오르는 관의 장중한 볼륨은 거센 폭풍우를 분출시키면서 청중의 가슴속에 날카롭게 꽂힌다』고 경탄해 마지않는다. 올해는 그가 하얼빈서 돌아와 첫지휘봉을 잡은지 만50주년이 되는해,상대방의 내부에 음악의 혼을 심어준 「위대한 음악의 은인」에게 우리 모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의 기립박수를 보낼 때이다. □연보 ▲1919년 평북 의주출생 ▲1942년 일본 동경고등음악학교 졸업 제정삼낭사사 ▲1945년 중국하얼빈심포니 지휘데뷔 ▲1946년 고려교향악단창단,초대상임지휘자 ▲1948년 줄리어드음악학교 수학 ▲1949년 탱글우드음악제서 러시아출신의 쿠세비츠키에게 지휘법사사 ▲1953년 서울예고 창립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1956∼71년 KBS교향악단 창단,상임지휘자 ▲1961∼75년 서울예고교장 ▲1962년이래 일본 오사카·도쿄필,NHK교향악단 등 50여회 객원지휘 ▲1966년 한국음악협회이사장 ▲1971년 내한 오사카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서울시민회관) ▲1973∼86년 국제청소년 음악연맹 한국지부 회장 ▲1976년부터 서울예고 명예교장 ▲1978년 경희대 음대학장 ▲1981∼84년 예총부회장 ▲1984∼95년 인천시향상임지휘자 ▲1985년부터 추계예대교수 ▲1987년 인천시향 동남아순회연주 및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3개도시 연주 ▲1991년 싱가포르 교향악단 및 레닌그라드필 지휘 ▲1994년 음악데뷔 50년 기념음악회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전곡」지휘,러시아국립교향악단 지휘 ▲1995년 국제청소년음악연맹 한국지부회장 예술원회원,인천시향 및 서울아카데미심포니 명예지휘자 서울시문화상·방송문화상·오월문예상·대한민국예술원상·서독문화훈장·은관문화훈장·음악동아대상
  • “개인비리로 호도말고 정치권 반성을”/노씨 구속­시민·각계반응

    ◎정·경유착 부패고리 끊는 계기로 삼아야/비자금 조성·사용 관련자 사법 처리해야/권력에 약하고 중기에 강한 재벌 각성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된 16일 시민들은 『범죄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난 만큼 구속수사는 당연한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과 재벌기업간의 부패의 고리를 차단하고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양승함(연세대 정치외교학과)교수=전직 국가원수가 거대한 부조리를 저질러 구속된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태다.국민들의 사기 저하가 우려된다.특히 많은 정치·경제 지도층 인사들이 연루돼 앞으로 사회지도층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부패구조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정경유착과 금권정치를 청산하고 법치주의 원칙이 살아있는 정의로운 사회로 발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유재현 경실련 사무총장=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를 노씨 개인비리에한정하면 안된다.비자금 조성과 사용에 관련된 정·재계 인사들도 마땅히 사법처리돼야 하고 우리 경제의 내실화를 위해 정경유착과 검은돈의 거래관행을 이 순간 단절해야 하다.이번 사건을 당리당략 차원에서 이용하고 있는 정치권도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구평회 무역협회 회장=전직대통령의 구속소식을 듣고 착잠함과 함께 법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확인했다.이번 사법처리를 계기로 사회 여러분야에서 야기되고 있는 각종 문제가 조속히 마무리 되기 바란다. ▲김한주 변호사=정치권의 구조적인 부패를 규명하지 않을 경우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증폭돼 엄청난 후유증이 우려된다.이번에는 노 전대통령이 제공했던 정치비자금의 실체를 정확히 밝혀내 국민적 의혹을 풀어야 한다. ▲조동진 목사=가롯 유다의 배신 장면을 보는 심정이다.사법처리되는 전직 대통령을 보는 것도 참담하지만 불의한 대통령을 줄줄이 모시면서 그들을 찬양했던 종교인의 양심에 더욱 자괴감을 느낀다. ▲남인순 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전직 대통령이라도 불법을 저질렀으면 사법처리되는게 당연하다.이번 기회를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한 개인의 단순 비리로 축소,사건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명룡씨(34·회사원·광주시 북구 중흥동)=속이 후련하다.어떻게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는지 역사앞에 부끄러울 뿐이다.앞으로 5·18책임자에 대해서도 엄중한 법적용을 해 이런 과거의 잘못에 대한 정리가 마무리돼야 할 것이다. ▲조재호씨(46·대아코프레이션 대표·대구시 달서구 장기동)=전직 대통령이라 동정이 가지만 구속은 당연하다.권력에 약하고 중소기업에 강한 재벌도 각성해야 한다.정부도 앞으로 보다 폭넓게 규제를 완화하고 자율경쟁에 맡기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이정애씨(30·여)=앞으로 어떠한 정치적타협이 있을 경우 엄청난 국민적 저항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엄격한 법적용의 선례를 남겨야 한다.
  • 호루라기 부는 사람이 없다/문용린 서울대교수·교육심리학(시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작년과 올해에 걸쳐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대형 참사로 민심조차 흉흉하다.언제 어디에서 불의의 변을 당할지 몰라 불안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급증한다는 역이민의 추세가 올해를 고비로 주춤하고,국외로 탈출하려는 이민자 수가 오히려 급증하지 않을까 예상되기도 한다. 이번 삼풍참사에 온 가족을 잃은 어떤 유가족이 『도대체 이런 나라가 다 있는가』하고 한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그리고 어느 신문엔가 「한국인인 게 부끄럽다」는 사회면의 큰 제목을 보면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미 많은 진단은 나와있다.부정부패의 순환고리가 연이어져서 온갖 건축물들의 공사가 허술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책임질줄 모르는 이기적인 관행이 굳어져서 모든일을 눈가림과 때우기로 해치우게 된다는 것,생명에 대한 외경의식이 희박하고 물질적 욕심에만 치우쳐서 타인의 안전과 공익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는 것등이 그것이다. 그런 모든 진단이 다 옳다.그러나 그런 진단은 이 모든 문제의책임을 국민 모두가 함께 지자는 의미로 낙착되는 허점이 있다.우리가 원하고,찾아내야할 원인은,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고,모두가 함께 반성하자는 책임분산의 변명이 되는 원인이 아니라,구체적으로 어느 누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으므로,그런 일을,그런 사람들이 다시는 거듭하지 않도록 하자는 정보를 제시할 원인이다. 과연 그런 진단이 가능할까? 막연한 진단이 아니라,분명한 원인을 제시하면서,그런 사태를 사전에 예방할 구체적 방책이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리라고 본다. 요즈음의 복잡다단한 산업사회가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회로 유지되게 하는데 가장 요구되는 특징은 무엇보다도 먼저 엄정한 법집행에 있다.그러나 엄정한 법집행은 「법을 어긴자」에 대한 확인이 가능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따라서 「법을 어긴자」를 어떻게 찾아내는가의 여부가 엄정한 법집행의 관건이다.미국과 일본을 위시한 대다수 선진국에서 부정과 부패가 적은 이유는 엄정한 법집행에 있다고 볼 수 있으나,더 정확히 말하면,「법을 어긴자」에 대한 확인과 변별이 다른 어느 사회에서보다 더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그럼 법을 어긴 자에 대한 높은 확인율과 변별률은 경찰과 검찰의 질 높은 수사력 때문인가? 그렇지만은 않다.오히려,수사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시민 제보자」들의 높은 양심수준 때문이다. 예컨대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고 하면,이곳저곳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죄책감을 가진 시민들이 기꺼이 아주 사소한 일일망정 수사기관에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것이다.삼풍참사를 두고,과연 어느 누가 양심의 가책을 제보했는가? 경찰과 검찰이 모두를 찾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삼풍과 관련해서 조금이라도 양심에 걸리는 일을 한 사람이 사망자들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을 털어놓아 준다면,원인은 더 명쾌하게 밝혀지리라 믿는다. 결국 양심있는 시민 제보자의 결여가 삼풍을 비롯한 여러가지 한국적 대형참사의 원인이자 결과인 셈이다.삼풍백화점 건물붕괴 직전에 대피 여부를 놓고 대책회의가 있었다고 했다.그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중의 단 한사람만이라도 「양심에 입각한 용기있는 반역」을 시도하여 대피를 알리는 비상벨을 울렸다면,사태는 지금과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이런 사람을 가리켜 「호루라기 제보자(whistle blower)」란 말을 도덕 심리학자들은 쓴다.이른바 정의와 진리,그리고 양심에 입각해서 동료와 소속집단의 비리와 부정을 폭로하고,고발하며 제동을 거는 사람을 말한다.회사측에서 보면 배신자가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이는 자기의 개인적 이득이 아니라,양심과 정의에 입각한 제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형 참사의 원인은 「호루라기 제보자」의 결여에 있다.설사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를 배신자로 몰아붙이려는 풍토를 가지고 있다.산업사회 이후의 사회는 대단히 복잡다단하여 「호루라기 고발자」의 왕성한 활동 없이는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회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 소설가 황순원씨(이세기의 인물탐구)

    ◎소설을 시의 경지로 승화시킨 “청산의 백학”/작품 끝낼때마다 “마지막 작” 심정으로/문장·단어 하나까지 보석처럼 갈고 닦아/시·소설의 잡문엔 손 안대… 문학박사학위도 거절 서울신문사는 증면과 더불어 새로운 기획물 「인물탐구」를 매주 화요일 1페이지에 걸쳐 연재키로 했습니다.이 와이드 기획물은 사람들이 가장 흥미를 가지고 관심있게 대하는 사람의 이야기 인물평전입니다.그것은 삶의 모습을 담은 인생일 수도 있고 세상살이와 고리를 함께 하는 인간의 진면목으로도 나타날 것입니다.집필은 본사 이세기논설위원이 맡았습니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산골아이」나 「소나기」「학(학)」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리고 투명하게 정제된 청강(청강)의 문체와 명편에 흐르는 별빛같은 이야기는 우리의 정서속에 총총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새삼 황순원문학과 한국문학사에서 그가 점하고 있는 오늘의 위치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청산의 백학」「소설을 시의 경지로 승화시킨 언어미의 추구」「하명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절고의 기품」등 이미 잘 알려진 시중의 찬탄을 되풀이 열거하는 것도 무색한 노릇이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한뿐 더이상 다른말은 하지 않는다」,그래서 독자들에게 책임지고 소설을 내놓기위해 그는 문장 한구절 단어 하나에 세심하게 배려하여 「토씨」 한 자도 잘못 놓인 바가 없다는 정평을 받고있다. 쓴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남에게 읽힐 수 없다는 신념으로 이미 출간된 시집 「방가」에서 27편중 12편을 빼 버리고는 『내가 이렇게 버린 것을 이후에 어느 호사가가 있어 발굴이라는 명목으로든 뭐로든 끄집어 내지 말기를』당부하기도 한다. 작품이 활자화되기 이전까지 그만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지켜 초교에서 재교까지 꼼꼼하게 손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넘치는 감정의 뒷받침없이는 작품을 써본적이 없으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쓰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이르고 있다. 일사일언적(일사일언적)인 그의 압축된 문체의 시정신은 「생각나면 시구를 적어두는 운문적 스케치 방식,사전구상에매이지 않고 붓이 생각해서 쓰도록 맡겨두는 데서 온 탄력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문장은 말하듯이 써야한다고 하지만 귀로 듣는 말과 눈으로 읽는 글이 같을 수 있을까. 그는 언젠가 들은 감명깊은 강연을 후에 속기록으로 살려 글로 옮겨쓴 것을 보고는 그 지리멸렬함에 크게 놀랐다고 말한다. 「역시 말하듯이 말하고 글쓰듯이 써야 한다」고.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보석처럼 갈고 닦는 언어 탁마(탁마)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설을 끝낼때마다 「나는 과연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했는가」를 자신에게 묻기를 잊지 않는다. 이른바 지난 60년 동안 시와 소설외에 단 한번도 잡문을 쓰지 않았고 신문연재소설을 거절해 왔으며 어떤 단체에도,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 제자들이 새로 책을 내면서 서문이나 발문을 부탁하면 정중하게 이를 말린다.그자신도 그의 책속에 서문이나 발문을 써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나 서문이나 발문은 독자가 소설을 읽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재직했던 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수여하려 할때도 「소설가는 소설가 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유로 이를 깍듯이 거절했다. 이렇게 표면에 드러난 예만으로는 그가 얼핏 까다롭게만 비치기 십상일것이다. 물론 문학을 하는 길에서는 공정·엄격하고 단호하고 결벽하다.그외엔 인자하고 다감하고 말을 아끼고 술을 즐긴다. 주량은 3년전까지는 소주 한병반,주력은 문단데뷔보다 빨라 13세때부터 체증(체증)으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문학하는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술마시는 자리에서도 명정(명정)의 모습을 보이거나 비틀거려 누가 댁까지 바랜일도 없다. 아무리 취중이라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빛나는 형안(형안)으로 경청하고는 내용이 정확치 않으면 두번 세번 되물어 확인하기 때문에 어설픈 지식이나 주워들은 풍월은 통하지 않는다. 다만 「술」에 얽힌 일화라면 그의 친구이며 번역문학가인 원응서씨와의 총죽지교(총죽지교)를 빼놓을 수 없다. 황순원과 술자리에서의 「마지막잔」이야기가 그것이다. 어느 술자리에서든지 원응서씨는 『그 마지막 잔은날주게』하는 버릇이 있었다.술이 바닥에 이르면 이유도 없이 친구는 이 술을 탐냈고 언제부턴가 마지막 술은 원응서씨의 몫으로 돌아갔다. 73년 낚시갔다가 쓰러져 친구가 타계하자 황순원씨는 술마시는 자리에서 반드시 이 마지막 잔을 친구에게 따라주었다. 잔에 술을 따라 빈그릇에 버리는 이 의식은 지난 20년간 한결같이 지켜져온 그의 친구를 그리는 아름다운 슬픔의 장면이다. 역시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라면 77년 서울신문사 신춘문예 심사때의 예가 있다. 그때 최종심에 두편이 남게되자 같은 심사위원인 홍성원씨가 『두편중 선생님이 고르시지요』했다. 아무래도 대선배인 황순원씨가 당선작을 확정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졌으나 그는 굳이 홍성원씨의 선택에 따르겠다면서 이를 사양했다. 『하나는 군대물로 장래성이 보이고 다른 하나는 뱃사람 얘기로 소설기법상 우수하므로 신춘문예 당선작으로는 장래성 보다 소설로서 완벽한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럼 뱃사람 얘기로 결정하세』 뱃사람 얘기로 결정후 잡담하는 자리에서『군대물을 쓴 사람은 바로 내 제자』라고 했다는 얘기다. 그는 아무리 아끼는 제자라도 작품이상으로 그를 부추기거나 추켜세우지 않는다.또 어떤 경우에도 남을 악평·혹평하는 법이 없다. 그가 문단후배들을 즐겁게 했다면 72년 2월 현대문학사가 주최한 문인극 「양반전」에 특별 찬조출연한 일이다. 유현종 연출로 한국일보 13층 홀에서 공연된 이 연극에서 그는 박영준 최정희씨와 함께 「동네사람」으로 분장해서 모처럼 문단에 훈훈한 화제를 뿌려주었다. 황순원씨는 언제 어디서나 명징·적연할뿐 넘치거나 눙치지 않는다.보기싫은 것·듣기 싫은 것·하기 싫은 것을 명료하게 구분하여 전혀 주저가 없다. 오산중때 남강 이승훈씨의 단정한 풍채와 인품을 보고 『남자가 늙어서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했다는 그는 그때부터 자신도 「늙어서 아름다운 남자축에 들수 있기를」마음속에 그려왔는지도 모른다. 황순원씨는 평남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교육자이며 조림사업을 하던 황찬영씨와 장찬붕여사의 아들 3형제중 장남.숭실학교 출신인부친은 숭덕학교 교사시절 바로 남강과의 기미독립만세사건으로 수감된 적이 있었고 64년 창우사에서 펴낸 「황순원 문학전집」(전6권)제자는 바로 부친의 친필이다. 숭실중으로 전학하여 졸업후 일본 와세다 제2고등학원 재학때 나고야 김성여전에 다니던 양정길여사와 35년 결혼,동갑인 양여사와는 평양 숭의여고 문예반장때부터 교제해온 사이다.자녀는 시인이자 서울대 영문과 교수인 동규씨(54)등 3남1녀. 요즘은 부인과 함께 새벽7시면 사당동 대림아파트 단지내 공원을 1시간씩 산책하면서 처음 문단 출발때처럼 오랜세월 가슴에 담아두었던 시어를 고르고 있다. 삶을 정관하는 절제된 서정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애정,보석을 눈에 띄지않게 장식한 듯한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감동하게 되는 것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울같은 청휘,또는 고치에서 막 뽑히기 시작한 명주실 같은」바로 그 싱그러운 시와 문득 마주치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최근 시에 이렇게 쓰고 있다. 밤늦어 플랫폼에 내 긴 그림자를 끌고 섰을때 밀물이 거슬러 오르는 강물을내 저만치서 바라볼때 가을걷이 끝낸 들판을 내 해걸음녘에 거닐때 그러나 나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항상 곁에 지키고 있는 이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이가 누구라는걸 나는 안다­.
  • 반딧불/윤시향 원광대교수·독문학(굄돌)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시인인 파졸리니는 어떤 에세이에서 이탈리아 사회를 반딧불의 유무로 구분했다.그는 반딧불이 흔하게 눈에 띄던 시기와 전후 산업화로 인해 반딧불이 사라진 시기를 구분하여 사회상을 관찰했다.반딧불이 있었던 시기에는 인간관계가 포근하고 따뜻했던 반면,반딧불이 사라진 시기에는 인간관계가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삭막해졌다는 것이다.미미한 곤충으로 사회진단을 한 파졸리니의 신선한 관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적이 있다. 독일에 체류하던 시절,가장 부러웠던 것이 그곳의 울창한 산림이었다.독일의 산림정책이야 워낙 알려진 사실이라 반복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도시 곳곳에 숲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이 완전히 생활화되어 있었다.게다가 어두운 저녁,숲에 갔을 때 작고 희미한 불빛들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마치 요정들의 군무를 보는 것 같았다.물론 내 체구가 그들보다 작은 탓도 있었겠지만 내가 워낙 환호하자 그들은 내 별명을 「반딧불」이라 붙여 주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지난 날 흔하고 낯익었던 것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우리도 어린 시절,반딧불을 잡아 유리병속에 넣고 어두운 곳에서 그 빛을 경이롭게 바라보았고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잡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그러나 시골에 가도 이제 더이상 반딧불을 볼 수가 없다.그럼 우리는 이제 파졸리니가 지적한 삭막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다른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란 결국 인간도 살기 어려운 곳일 것이다.가장 작고 연약한 생명체도 더불어 함께 살고,살도록 하는 세계,자연의 고리가 튼튼한 세계가 또한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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