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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형칼럼] 도라산역·임진각에서

    [이경형칼럼] 도라산역·임진각에서

    북한은 진정 우리에게 무엇인가. 임진각 평화의 종각에서 울리는 새해 첫 종소리를 들으며 문득 이같이 자문해 본다.‘2006 경기도 평화와 희망의 축제’가 열린 임진각 ‘평화누리’ 광장의 화려한 무대는 레이저 빔이 밤하늘을 가르고, 가수들의 빠른 리듬을 따라 불꽃들이 분수처럼 피어오른다. 파주 등 분단의 경계 지역에서 사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평화의 소망을 기원한다. 남한은 과연 북한에 어떤 존재인가. 임진각역 출발, 평양행 임시 열차는 새해를 2시간여 앞둔 밤 9시24분 실향민 등 300여명을 싣고 달렸다. 분명 이정표에는 평양행으로 씌어 있지만 열차는 7분쯤 달리다 말고 도라산역에 섰다. 분단 55년 만인 지난해 경의선은 이어졌지만 아직은 이 철도의 최북단역인 민통선내 도라산역 플랫폼에 서서 새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질문을 던져본다. 북한은 우리에게 분명 귀찮고 성가신 존재다. 핵 카드로 미국과 도박에 가까운 외교 게임을 벌이는 북한은 하루빨리 선진국으로 가야 하는 우리의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 그렇다고 내팽개칠 수도 없다. 저들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무슨 난리를 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달래고 설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대북 포용정책이고 남북평화공존정책이다. 북한은 또 우리 사회 이념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진보-보수, 좌파-우파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의 하나가 북한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나 북한 ‘퍼주기’ 논란 등에서 보듯, 북한의 존재는 남남 대결을 야기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북한의 처지에서 남한을 보면, 겨우 쌀 됫박이나 도와주면서 온갖 잔소리, 이웃의 입노릇까지 다하는 ‘남보다 못한 형’쯤으로 볼까. 아니면 줏대도 없이 미국 자본주의에 빌붙어 돈푼깨나 벌었다고 나대는 졸부로 볼까. 아무튼 미국을 제치고 ‘우리끼리’ 잘 해보자는 데 필요한 남쪽의 동반자, 아니 ‘돈 있는 협력자’로 여기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흔히들 북한이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북한 주민과 북한을 통치하는 김정일 권력체제를 함께 지칭한다. 그래서 북한은 우리가 마음대로 멸하거나 무너뜨릴 대상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한민족공동체의 절반을 구성하고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분단된 남북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민족사적 과제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더욱이 21세기 들어 세계화의 급물살이 지구촌을 휩쓰는 가운데 민족의 의미는 크게 퇴색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북한도 외국의 하나로 보고, 문제를 풀자는 주장이 적지 않다. 실제로 남북한간에, 또는 한반도 주변 4강과 얽힌 현안들 가운데 민족공동체라는 ‘족보’를 가지고 풀 수 있는 일들은 열 손가락 꼽기도 힘들 것이다. 올해는 남북한 당사자간 대화의 활성화가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북·미간 위폐 문제로 북핵 6자 회담의 진전은 불투명하다. 워싱턴에서는 ‘9·19 베이징 공동성명’을 이뤄낸 대북 협상파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으며, 북한도 체제 보장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태도에 깊은 불신을 보이며 대결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는 북한에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동전을 짤랑거리면서 그들의 체면을 구겨서는 안 된다. 신뢰만 형성되면, 우리가 그들의 귀에 거슬리는 인권 문제, 북·미간 상호 불신 제거에 관한 충고를 하더라도 경청할 것이다. 거의 매일 출근 길에 임진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새해에는 우리 모두 정말 따뜻한 마음으로 북한에 다가갔으면 한다. 본사고문 khlee@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사설] 경제 올인 약속 올해는 지켜라

    지난 연말부터 경제관련 지표들이 호조를 보이면서 새해 경제에 청신호를 울리고 있다. 기업들은 그동안 미뤘던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하는 등 성장동력을 점화하는 데 앞장설 태세다. 정부를 비롯한 각종 연구기관들은 올해의 성장률이 5%대를 회복할 것이라는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3년여에 걸친 기나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 우리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의 발목을 잡아 왔던 큰 문제들은 대강 정리가 된 것 같다.”면서 새해에는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한결 나아질 수 있도록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도 올해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제가 불안정 요소 없이 운용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론이 국민에게는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은 모양이다. 새해를 맞아 언론기관들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64∼82%가 민생과 경제에 전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양극화의 그늘 탓도 있지만 마냥 낙관론만 구가하기엔 경제 내외적인 불안요인이 여전히 복병마냥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경제에 ‘올인’하겠다던 정부와 정치권의 약속이 빈말에 그쳤던 누적된 불신도 경제 회생을 바라는 간절한 소망에 담겨 있다. 우리는 노 대통령이 먼저 경제 외적인 요인이 경제에 주름을 주지 않게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줄 것을 당부한다. 기업도 더 이상 외부 탓만 해선 안된다. 국민에게 온기를 안겨 주지 않는 세계화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다. 올해는 모든 담론이 경제에 집중되기를 기대한다.
  • [사설] 수험생 피해 어떻게 책임질 텐가

    대부분의 대학이 2006학년도 정시모집 원서접수를 마감키로 한 지난 28일 인터넷 서버가 다운되면서 시한 내에 원서를 접수하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이에 따라 수십만 수험생과 그 학부모 등이 공황에 빠지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교육부가 나서 접수 마감 시한을 하루 늦추도록 지시해 그나마 겉으로는 큰 피해 없이 대학 지원 일정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예고된 인재’를 불러온 각 대학 당국과 감독기관인 교육부에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원서접수 방식은, 지난해에 이미 일부 대학이 접속 폭주로 마감시간을 연장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 게다가 2008학년도부터 대입 제도가 완전히 바뀌어 올 수험생은 재수를 피해 극심한 눈치작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데도 특별한 대책 없이 안이하게 원서접수 일정을 짠 결과 극도의 혼란과 불만을 초래했다. 지금 첫 마감시간 안에 소신 지원한 학생들은 연장 접수 탓에 경쟁률이 높아져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고 아우성이다. 반면 뒤늦게 접수한 학생들 또한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접수를 마칠 때까지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 그밖에 조급한 마음에 원하는 대학이 아니라 접속 가능한 대학에 서둘러 접수한 수험생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대입 원서접수 과정에서 대부분의 수험생이 불신·불만을 갖게 한 이번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텐가. 내년 입시부터는 이같이 어리석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육부와 각 대학은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학군 별로 접수기간을 달리하고, 인터넷 접수 말고도 창구 접수를 병행하며, 대학별 서버를 갖춰 폭주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등 학생 편의를 우선하면 문제는 자연 해결될 것이다.
  • [맞춤형 줄기세포 없다] 안규리 “황교수 부탁받고 김선종씨에 돈전달”

    황우석 교수팀의 핵심 측근인 안규리 교수는 29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조작과 관련해 공동 연구자로서 참담하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안 교수는 이날 오후 평화방송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자신도 난치병환자와 가족들처럼 줄기세포가 있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이같은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줄기세포 생성, 배양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연구팀 내에서의 위치로는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는지, 만들어졌다면 몇 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다만 11월19일 세계줄기세포허브에서 회의를 하던 중 4명의 연구팀 교수들이 나를 불러 MBC 이외의 다른 기관에 보낸 줄기세포 5개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이상하게 나온 것 같다고 말해줬다.”면서 “당시는 줄기세포가 다른 세포에 의해 오염되었거나 보관 잘못으로 세포가 바뀐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논문의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수차례 논문에 어떤 구체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공동연구자들에게 물었으나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다.”면서 “이 상황에서는 논문의 진위 역시 불투명하다고 생각돼 12월9일 서울대 연구처장에게 대학 차원의 조사가 필요함을 건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피츠버그대 방문에 대해서는 “PD수첩의 취재와 관련해 김선종 연구원을 직접 만나서 확실한 내용을 긴급히 확인해야 한다는 판단아래 황 교수의 간청으로 가게 됐다.”면서 “황 교수의 부탁으로 피츠버그대의 김 연구원과 박종혁 연구원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첫 번째는 지난달 27일 박종혁 박사에게 김선종 연구원 입원비 명목으로 3000달러를 전달했고, 이어 지난 3일 김선종 연구원 아버지에게 1만달러, 박종혁 연구원에게 1만달러, 윤현수 교수에게 2000달러를 각각 치료비와 출장비 명목으로 전달해 주었다는 것. 안 교수는 그러나 “어떤 분들은 마치 내가 황 교수를 대신해서 김선종 연구원을 회유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순수하게 후배들의 귀국을 도우려는 의도로 알았다.”고 해명했다. 안 교수는 “과학적 사실을 허위로 발표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며 “사이언스 논문의 진위는 물론 조작이 밝혀진 지금 공동연구자로서 참담하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어 “난치병 환자에게 꿈의 성배를 찾아줄 것으로 믿어왔던 이 기술에는 과학적 조작과 서로에 대한 미움과 원망, 불신, 의료의 상업화 같은 감당할 수 없는 어두움이 짙게 깔려 있다.”면서 “이 일을 겪으면서 배운 것이 있다. 진실도 중요하지만 더 귀중한 것은 생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희망과 사랑이 어우러질 때 진실이 더욱 빛난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경찰법 보완’ 靑이 직접 챙긴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경찰공무원법의 수정·보완작업을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공무원법 문제가 단순한 공무원 인사정책 차원을 넘어 파괴력있는 정치적 사안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바탕에는 소관부처인 행정자치부가 처음부터 문제해결에 소극적이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27일 정부 안팎에서는 경찰공무원법 보완을 위한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됐다.●“행자부에 대한 불신도 작용” 경찰공무원법을 보는 정부 내부의 시각은 비슷하다. 한마디로 국회와의 갈등으로 비춰질 수 있는 데다 여러 부처가 연관돼 있는 복잡한 현안이라는 것이다. 경찰의 반발을 무마하고, 다른 직종과 형평성을 유지하며, 예산을 낭비하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극복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청와대가 직접 챙기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이번 사안은 국회에서 만든 법안을 대체해야 하는 중요한 일인 만큼 청와대에서 주도권을 갖고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배경에는 행정자치부에 대한 불신도 작용하는 것으로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국회, 경찰청, 중앙인사위원회, 기획예산처, 행자부, 소방방재청 등 많은 기관이 관련돼 있어 행자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하기에는 갈등의 소지가 너무 많다.”면서 “결국 행자부가 부처간 조율을 거쳐 초안을 마련하면 청와대가 주관하는 회의를 통해 최종방안을 결정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근속승진 조항 수정법안 마련 시급 정부 안팎에서는 다양한 개정법의 보완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이날 공포된 ‘경찰공무원법 11조 2항(근속승진)’을 수정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일이 급하다. 정부내 다른 직종은 근속승진 조항이 시행령에 담겨 있는데 경찰만 법에 명시된 만큼 이 내용을 폐기하는 수정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경찰의 근속승진 조항을 담는 ‘행정기관의 조직과 정원에 관한 통칙’개정작업을 함께 벌여야 한다. 시행령에선 새로 만들어진 법에 담긴 근속승진 규정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관점이다. 아직은 정해진 것은 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새 법에선 경장과 경사의 근속승진을 기존보다 1년씩 줄여 6년과 7년으로 했다. 또 경사로 8년 동안 근속하면 경위로 자동승진토록 하고 있다. 이대로 시행하면 내년에만 경위까지 2만 2000명이 근속승진한다. 경찰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소방 등 다른 직종으로 확대하면 2010년까지 1조 8000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돼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때문에 입법 취지를 살려 근속승진을 경위까지 확대하되, 경위 근속승진 요건을 엄격히 해 실적있는 사람만 승진시키는 방안이 거론된다. 연한만 되면 자동으로 승진시키지 않고 실적이 있는 경찰관 위주로 골라 승진시킨다는 것이다. 또 경장 6년, 경사 7년, 경위 8년으로 돼 있는 규정도 바꿀지 여부도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기존의 경장 7년, 경사8년의 근속승진연수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경위는 10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경우에도 성과관리시스템을 강화해 성과가 부진하면 인사 및 보수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서울신문이 선정한 2005년 국내외 10대 뉴스

    ■ 국내 ●황우석교수 ‘줄기세포 논문’ 조작 파문 ‘국보급 과학자’에서 ‘허풍 과학자’로 전락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파문은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아직 완전히 조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초라고 했던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믿을 수 없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난치병 환자들은 다시 절망에 빠졌고 한국은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어떻게든 성과를 빨리 보여주려는 조급성과 과학자로서의 윤리 상실이 부른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안기부·국정원 수천명 불법도청 확인 7월 도청테이프 한 개의 내용이 폭로됐다.1997년 삼성측 인사들이 한 음식점에서 정치권과 검사에게 금품을 주려고 논의하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를 실마리로 국가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이 국가정보원을 사상 처음으로 수색하는 등 다섯달 동안 수사를 벌여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미림팀이 정·관·재·언론계 인사 수천명을 도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도청 추방을 외쳤던 김대중 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이 구속됐다. ●정부, 8·31 부동산투기 억제대책 발표 연초부터 서울·수도권 신도시 아파트값과 전국 땅값이 폭등해 서민들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다.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서 시작된 가격급등은 일반 아파트로까지 번졌고, 판교 신도시 광풍은 주변 아파트값을 끌어올려 연간 아파트값 상승률이 11%(㈜부동산114 기준)를 넘어섰다. 결국 정부는 강력한 투기억제책이 담긴 ‘8·31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고, 연말부터 부동산 시장은 안정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일부 투기억제 법률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 국회 통과 12부4처2청의 국가기관을 수도권에서 충남 연기·공주로 옮기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법안이 3월2일 전격적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도 헌법소원에 휘말렸지만 헌법재판소가 합헌취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법리논쟁이 일단락됐다. 여권은 청와대까지 옮기려던 당초 계획에서 다소 물러서긴 했지만 대통령선거 공약을 지킨 것으로 자평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 경우 재검토되거나 변경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 ●청계천 47년만에 복원 ‘생태하천으로’ 서울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이 47년만에 복원돼 시민들 품으로 돌아왔다.1958년 콘크리트로 복개되면서 땅속에 묻혔던 5.84㎞ 물길이 10월1일 따사로운 햇볕을 되찾아 물고기와 새가 노니는 생태하천으로 거듭났다. 공사 비용을 뛰어넘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성공적 하천복원 사례로 외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도 오랜 단장 끝에 새롭게 문을 열어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도심의 명소로 거듭났다. ●‘독도 영유권분쟁’ 한·일 감정대립 격화 일본 시마네현이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하는 조례안을 상정하고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 앉아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한·일 외교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3월16일 시마네현은 일본 정부의 묵인과 국수주의자들의 응원 속에 조례를 통과시켰다.6월20일 한·일 정상들은 냉랭하게 만났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10월15일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한·일 양국의 감정대립은 격화됐고 연말로 예정됐던 양국 정상간 정례 ‘셔틀회담’도 결국 무산됐다. ●기생충알 김치등 중국산 먹을거리 파동 10월 중국산 김치에서 납 성분에 이어 기생충알까지 검출됐다는 당국의 발표로 중국산 식품 전체가 극도의 불신을 받았다. 검출된 알이 모두 미성숙란이어서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한때 한국과 중국은 외교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11월에는 일부 국내산 김치에도 기생충알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먹을거리의 국민건강 위협이 심각하게 부각됐다. 또 중국산 어류에 이어 송어·향어 등 국내 양식 민물고기에서도 발암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됐다. ●한국축구, 월드컵 6회 연속 본선진출 한국축구대표팀이 6월9일 쿠웨이트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에서 쿠웨이트를 4-0으로 대파하며 6회 연속 본선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월드컵 6회 연속 진출은 세계에서 9번째이고 아시아에선 최초다. 하지만 8월 초 열린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2무1패로 꼴찌를 기록한 데다 8월17일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졸전 끝에 0-1로 맥없이 패배, 조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되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새로 영입하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여성 악법’ 호주제 2008년 완전 폐지 50년간 여성계의 숙원사업이던 ‘호주제 폐지’는 2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물꼬를 텄다. 헌재결정후 50일이 안돼 국회는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호주제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호주제는 여성권리의 신장, 한 부모 가족 증가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존속시켜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유림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었다. 유예기간을 거쳐 호주제가 완전 폐지되는 2008년 1월부터는 가족 관계를 개인별로 관리하게 된다. ●과거사규명·사립학교법 여야의원 격돌 17대 국회는 ‘과거사 규명’과 ‘사립학교법’의 격랑 속에 여야간 극한 대립을 불러왔다. 여야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사대상과 범위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었는데 지난 9일 ‘반쪽 통과’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는 정면 충돌, 연말까지 급랭정국이 이어졌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 종교계의 불복종운동, 사학재단의 신입생 모집 거부 경고 등으로 반발이 확산되자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불가’와 ‘단독 국회 개최’로 맞섰다. ■ 국제 ●카트리나 강타와 구겨진 미국자존심 8월29일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멕시코만을 강타해 1306명이 숨지고 6644명이 실종됐다.‘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가 순식간에 물속에 잠겨 유령의 도시로 변하면서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꼬리를 문다. 피해를 키운 연방정부의 늑장 대응은 초일류국가임을 자임해온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특히 재난 대처 과정에서 첨예화된 흑백간 인종 갈등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국제사회에 그대로 드러냈다. ●파키스탄 강진으로 7만5000명 사망 10월8일 발생한 리히터 규모 7.6의 파키스탄 강진은 7만 5000명의 사망자,350만명의 이재민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낳았다. 재난 앞에서 카슈미르 관할권을 둘러싸고 앙숙 관계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경을 개방, 구조작업에 나선 군인들을 오가게 했다. 그러나 영하 30도까지 수은주가 곤두박질치는 겨울이 닥쳐왔다. 이재민들에게 제공된 텐트는 대부분 겨울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어서 동사(凍死)자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전세계 확산 비상 ‘21세기 흑사병’으로 불리는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던 AI가 9월 이후 중국과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 중동, 미주로까지 번졌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 결과 현재까지 AI로 숨진 사람은 73명.WHO는 특히 치명적인 H5N1 바이러스의 사람간 감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AI가 역병(疫病)이 될 경우 1억명 이상이 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이슬람계 런던 연쇄 폭탄테러 이라크전에서 미국의 최대 우방인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7월7일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했다.9·11테러 이후 4년만에 세계가 다시 테러공포에 휩싸였다. 출근길 런던 시민들로 붐비던 지하철과 2층버스에서 발생한 테러로 56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쳤다. 인명피해 못지않게 충격을 준 것은 테러범들이 영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자생적인 이슬람계 이민 2세들이라는 점이다. 이후 테러용의자를 사살하는 과정에서 영국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프랑스 이민자들 ‘인종갈등’ 폭동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인종갈등으로 빚어진 폭동으로 불탔다.10월27일 파리 교외 무슬림 빈민가에서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10대 소년 2명이 감전사했다. 이후 3주 동안 무슬림과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사는 파리 외곽 지역에서 분노한 젊은이들의 방화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9000여대의 차량이 불탔고 약 3000명이 체포됐다. 이 소요사태는 이민자 2·3세의 사회통합문제, 실업, 빈부차 등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라크 주권정부 구성 행보 계속 혼란과 갈등이 노출되고는 있지만 주권정부 구성을 향한 이라크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1월 제헌의회 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가 내놓은 새 헌법안이 10월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이같은 안정화 일정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치러진 총선 개표 결과 발표가 늦춰지면서 정파간 갈등과 혼돈이 초래되고 있지만 내년 1월 총선 결과가 나오면 총리 지명, 내각 구성 등 새 정부 출범을 향한 정치 일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 교황 보수파 베네딕토 16세 즉위 4월2일 26년 동안 재임해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저는 전부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선종한 뒤 전 세계의 이목은 바티칸에 쏠렸다.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네번째 콘클라베가 열린 같은 달 19일 오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 새 교황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제 265대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하느님의 충견’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데서 볼 수 있듯 대표적 강경 보수주의자로 평가돼왔다. ●자민당 과반의석… 고이즈미 개혁독주 우정민영화를 기치로 중의원을 전격 해산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도박’이 ‘대박’으로 나타났다.9·11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15년 만에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개혁 독주를 시작했다.‘제왕적 총리’가 된 고이즈미 우경화도 탄력을 받았다. 취임 후 다섯번째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가 하면 아소 다로 외상 등 극우 인사를 내각에 중용해 이웃나라인 한국·중국과 최악의 외교마찰을 빚고 있다. ●국제유가 고공행진… 세계경제 긴장 연초만 해도 배럴당 40달러 안팎에 머물던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6월27일 사상 처음 60달러를 넘어섰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미국 멕시코 만의 석유시설 피해가 생긴 8월 말에는 10월 인도분 WTI 가격이 70달러를 넘었다.3차 오일쇼크가 오리라는 우려는 이후 유가가 하락세로 안정되면서 다행히 기우로 그쳤다. 고유가 쇼크로 정신이 번쩍 든 미국을 비롯한 에너지 소비대국들이 원자력, 석탄, 에탄올 등 대체에너지 사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독일 첫 女총리 메르켈 ‘좌·우 대연정’ 9·18 총선 후 두 달여의 연정(聯政) 줄다리기 끝에 독일 총리직을 거머쥔 앙겔라 메르켈. 조기 선거 승부수를 던진 7년 집권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꺾었다.36년 만이라는 좌·우 대연정의 수장을 맡아 독일병을 치유하고 제2의 라인강 기적을 이룰지 주목된다. 취임 첫 날을 해외순방으로 연 메르켈은 유럽연합 예산안을 막후 조정으로 타결시켜 국제 무대 데뷔전도 성공리에 치렀다. 동독 출신과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제2의 대처’로 탄생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논문조작은 ‘빨리빨리 문화’ 탓”

    외신들은 23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황우석 교수팀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와 황 교수의 교수직 사퇴 발표를 긴급 뉴스로 전했다. 미국의 AP통신은 “황 교수가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죄했지만, 환자맞춤형 줄기 세포를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입장은 여전히 유지했다.”고 보도했다.AP통신은 황 교수의 연구 결과 조작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광폭한 운전의 버스기사, 빨리 취하는 폭탄주로 대표되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부작용도 낳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인들’에 관한 책을 쓴 마이클 브린은 “애국주의와 대중의 집중 관심이 황 교수팀을 휩쓸어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면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절차를 무시하고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호주 모나시대의 줄기세포 권위자인 앨런 트루슨 교수는 이번 황 교수의 스캔들은 과학자들은 서로의 연구결과를 엄격하게 확인해야 함을 보여준다며,“이젠 복제견 스너피도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스캔들로 황 교수와 연계됐던 사람들이 불신을 받을 것이나, 줄기세포 분야를 개척하는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까지 지장을 줘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황 교수팀과 세계 최초로 안면이식 수술 ‘페이스오프’를 시술한 프랑스 연구팀을 비교하면서 조급한 과학적 흥행주의를 비판했다. BBC와 CNN은 침통한 표정의 황 교수 사진을 크게 싣고, 그동안의 연구 과정을 집중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황 교수가 ‘국가의 자랑’이었던 최고의 과학자에서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피의자 신세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이언스지도 황 교수의 논문을 조사 중인데, 만약 조작이 확인되면 최근 몇년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던 의학 연구 분야에 거대한 정치적 및 과학적 충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버드 줄기 세포 연구소의 조지 댈리 박사는 “이 분야 사람들은 모두 논문이 진실이기를 기원했다.”면서 “그 모든 과학적 노력이 너무나 실망스럽고 가슴아프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인터넷 신문인 드러지 리포트는 황 교수를 ‘사기꾼 복제자’라고 칭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데스크시각] 학교폭력 예방 ‘멘토링’ 활용했으면/유진상 공공정책부 차장

    학교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수위도 성인 조직폭력과 다를 바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학교폭력의 피해학생들이 직접 경찰서를 찾는 일까지 있었다. 수사 결과 가해학생들은 교내 폭력조직이었다. 이들이 정기적으로 어울리며 벌인 갖가지 일탈행위는 낱낱이 세상에 공개됐다. 이들이 폭력으로 신고식을 치르는 장면은 방송매체에서 여과없이 방영돼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때를 같이하여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어린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의 학원폭력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가까지 광범위하게 전염된 상황이 돼버렸다. 청소년기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소영웅주의에 빠지기도 쉽다고 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을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피해자의 상처가 너무 크고, 우리 모두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도 너무 많다. 물론 관련 전문가와 사회단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상담기능 강화를 위해 상담인력을 증원하거나, 학교안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방안, 학교경찰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는 모양이다. 이런 아이디어들이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떠오르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교사나 전문가들의 노력을 학생들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쉽게 얘기해서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성세대를 무조건 거부하려는 청소년기의 속성이나 이유없는 반감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폭력 문제는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사이의 세대간극과 불신은 의사소통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따라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선배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멘토링(mentoring) 제도를 적극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멘토링은 그리스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간 동안 허약한 아들 텔레마쿠스를 훌륭한 왕의 재목으로 키워낸 스승의 이름 멘토르(Mentor)에서 유래되었다. 멘토링은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멘토르’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멘티(Mentee)’로 하여금 성공에 이르게 하는 능력과 잠재력을 찾아주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선배 멘토르가 1대1로 후배 멘티를 지도하는 일종의 대면(對面)교육이다. 따라서 후배를 지도할 수 있는 열정과 역량을 지닌 동문 선배를 중심으로 멘토르 풀(Pool)을 구성하여 후배들과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갖게 하자는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초임 사무관과 전입 공무원 등 17명에게 이 제도를 도입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은 6개월 동안 자율적인 만남을 통해 직장생활의 고충을 비롯해 진로, 경력개발, 학습동아리 공동참여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선후배 의식이 강한 우리사회의 특성상 청소년들에게 이 제도를 활용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연말을 맞아 동창회나 동문회 등이 줄을 잇고 있다. 대개 모임은 모교 발전기금이나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모으자고 의기투합하는 데서 시작해 한데 어울려 술 마시고, 가물가물한 교가를 목청껏 부르곤 헤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멘토링 제도를 통해 후배들과 상시 유대관계를 갖도록 한다면 어떨까. 선배들이 나서 후배들의 고민을 덜어주고, 나아가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보다 멋진 동문모임이 되지 않을까. 날로 심해지는 청소년들의 폭력이 더 이상 사회문제가 되지 않도록 작은데서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오길 기대한다. 유진상 공공정책부 차장 jsr@seoul.co.kr
  • “생산주축인구 2050년까지 1000만명 감소”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19일 최근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오는 2050년까지 생산주축인구(25∼49세)가 1000만명 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 장관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 연설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면서 “이대로 가면 생산주축인구는 2008년부터 매년 20만명씩 감소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변 장관은 이어 “지금은 8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2030년에는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면서 “출산율을 높여 급격한 변화를 다소 늦추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여성 및 노인인력 활용, 고용안정서비스 개선, 노인복지 시스템 구축 등 고령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변 장관은 또 “공적연금 제도는 연금재정에 대한 불신과 후세대로의 부담전가 때문에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면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조속히 개편돼야 한다.”고 말했다.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CEO 설문조사 2제] 10명중 6명 “내년 성장률 4%이상”

    국내 최고경영자(CEO) 10명중 6명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다소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1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00인 이상 211개 기업 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발표한 ‘CEO 경제전망조사’에 따르면 61.5%가 내년 경제성장률(GDP 기준)을 4% 이상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조사에서 61.0%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4% 미만으로 전망한 것과 비교할 때 CEO들이 내년 경제를 다소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 경기상황에 대해서는 40%가 ‘침체 국면에서 서서히 회복 중’이라고 응답한 반면 38.6%는 ‘경기회복세 정체국면’이라고 상반된 답변을 내놓았다. 내년 투자계획은 78.3%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확대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91.2%가 보통 이하로 평가해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동산 정책(37.5%)과 노동 정책(29.7%)을 가장 실패한 경제 정책으로 꼽았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사설] 의혹·불신 풀지 못한 황교수 회견

    줄기세포 논란과 관련, 서울대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이 16일 잇따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며 각각 ‘진실’을 밝혔으나 국민들은 더 혼란스럽다. 의문점은 그대로인 채 진실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고 불신도 해소되지 않았다. 더욱이 황 교수는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혀 줄기세포 진위 논란은 법에 의해 가려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전에 학계가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진실을 밝혀주길 기대한다. 따라서 내주부터 자체 조사에 착수키로 한 서울대의 조사위원회에 기대를 갖는다. 국민들은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만들었고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황 교수의 말을 모두 믿고 싶은 심정이다. 그제 노 이사장이 “줄기세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폭탄선언을 한 이후 느낀 허탈감과 배신감을 달래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교수는 국민들의 불신을 돌려놓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노 이사장은 줄기세포가 11개에 미달하면서도 숫자를 부풀려 논문 내용을 작성한 것은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황 교수는 “11개가 아니고 1개면 어떻고 3개면 어떻느냐.”고 모호한 말로 대신했다. 황 교수는 이 대목에 대해 추가해명을 해야 한다. 또 노 이사장은 “황 교수가 희생양이 필요로 하며 미즈메디에 책임을 전가한다.”고 밝혔다. 정말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미즈메디측에 책임을 전가하는지에 대해서도 황 교수는 추가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검찰 수사를 기다리기에는 국민들은 너무 답답하며 궁금하다. 또 논문의 사진 조작을 수행한 미국 피츠버그대에 파견되어 있는 연구원의 작업과정을 황 교수와 노 이사장은 공동으로 밝혀야 할 대목이다. 연구논문을 작성한 과정과 줄기세포를 관리하는 시스템에서도 황 교수측과 노 이사장측은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며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다. 이런 대목의 사실 규명은 어렵지 않다. 다시 한번 보도진과 만나도 좋을 것이다. 국민들은 지도적인 과학계 인사들이 상대방을 “거짓말 하는 사람”등으로 인격적인 비난을 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다. 황 교수측과 노 이사장은 줄기세포의 진실이 되도록 빨리 밝혀지도록 서로 상대방이 제기한 문제를 추가로 밝히길 바란다. 그러면 서울대의 조사도 더욱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만에 하나 줄기세포를 과학적인 목적외에 또 다른 의도로 악용했다면 어느 측이든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 보온도시락·병 크기·무게도 따져보세요

    보온도시락·병 크기·무게도 따져보세요

    회사원 김설아(32·여)씨는 지난 10월부터 점심 도시락을 갖고 다닌다.“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나왔다니까 왠지 꺼림칙하고, 점심 값도 아끼려고 동료들과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뒤 도시락 반찬을 담는다. 전기밥솥에 쌀을 앉쳐 다음날 밥이 되도록 시간을 맞춘다.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 밥만 싸면 준비 끝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도시락 먹던 추억이 떠올라 재미있어요.” 올해 보온도시락과 보온병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보다 40∼50% 증가한 것이다. ●견고한 일제 ‘조지루시´ 인기 주 5일 근무가 정착되면서 겨울철 스포츠를 즐기는 레저족이 늘어난데다 경기가 나아지지 않아 비용을 아끼려는 알뜰족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또 김치파동 등으로 외부의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경향이 유행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웰빙 열풍으로 녹차 등 국산차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보온병의 구입을 부추겼다. 회사원 류미희(29·여)씨는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으면 붐비는 식당 앞에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면서 “남는 점심시간에 요가를 배운다.”고 말했다. 신세계닷컴이 지난 10월에 판매한 2500여개의 보온도시락 현황을 분석한 결과, 류씨 같은 20대 여성이 구매고객의 7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보온병도 커피잔처럼 손에 들고다니는 0.8∼1ℓ짜리를 많이 구입한다. 소비자들은 보온용품을 고를 때 보온력과 디자인을 먼저 살핀다. 그리고 크기와 무게를 따진다. 많이 들고 다녀야 하기에 가볍고 튼튼한 상품을 선호하는 것이다. 코끼리표로 알려진 일본 브랜드 ‘조지루시’가 최고 히트상품이다. 잘 망가지지 않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상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짙다. 이선민(25·여)씨는 “일본 제품이 국산보다 1.5∼2배가량 비싸지만 고객의 평이 좋아 선택했다.”고 밝혔다. 조지루시 스틸 보온병은 원터치 기능을 갖춰 물 따르기가 편하다. 콤팩트형이라 가볍고 날씬한 것도 장점이다. 내부를 불소로 코팅해 세척하기가 편리하다. 진공막 사이에 동판을 넣어 보온력과 보냉력을 향상시켰다고.6시간 보관하면 79도 이상,24시간이면 54도까지 온도를 유지한다.4만 7500원. 신세계닷컴 김제연 바이어는 “조지루시 보온병은 디자인이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고 가격도 예전보다 20∼30% 하락해 인기가 꾸준하다.”고 전했다. ●24시간 열기 유지 죽 전용 제품도 죽(粥) 전용 보온병이 새로 나와 주목받고 있다.8000∼6만원.24시간 보온력을 자랑한다고. 병 안에 특수 ‘거름방’을 설치, 녹차나 허브차를 먹을 때 잎을 걸러 마실 수 있다. 보온병을 넣는 검정색 천에 수저를 꽂는 주머니를 마련했다. 아이세이브존(www.isavezone.com)은 아이디어 상품으로 차량용 오토 보온컵을 선보였다.12V 시가 잭을 연결하면 따뜻한 음료를 마실 수 있다. 보온병은 관리에 따라 수명이 크게 차이가 난다. 가끔 끓는 물에 소다를 한스푼 타서 병에 15∼20분 넣어뒀다가 헹구면 좋다. 깔끔히 소독돼 항상 깨끗한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사이버 쇼핑몰 할인판매 한창 유통업계에선 기획전도 한창이다. 인터파크(www.interpark.com)는 이달 말까지 ‘보온병·보온도시락 20% 세일전’을 열고 조지루시, 피코크, 아폴로, 키친아트 등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CJ몰(www.cjmall.com)과 우리닷컴(www.woori.com), 롯데닷컴(www.lotte.com)도 이달 말까지 20% 할인, 판매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美쇠고기 수입협상 1월 본격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 위한 한·미간 협상이 내년 1월부터 본격화된다. 따라서 내년 하반기에는 소비자들이 국내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식탁에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급물량 증가로 국내 쇠고기 값도 다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림부는 14일 전문가와 생산·소비자 단체 대표 등 16명이 참가한 ‘2차 가축방역협의회’를 개최한 결과,“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전문가그룹의 의견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음주 중 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2003년 12월 이후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위한 한·미간 협상 일정 등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농림부는 회의에서 생산자 단체가 소비자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해 협상 시점을 최대한 늦춰달라고 요청한 점을 감안, 내년 1월부터 협상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특정위험물질(SRM)’의 제외범위 ▲수입할 소의 월령(月) ▲미국내 사료시설 검사 등과 관련,“국제기준보다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면 안전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의 수입조건 협상에서는 30개월 미만의 소를 대상으로 뼈와 뇌를 제외한 살코기를 수입하는 방안이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국내 쇠고기 값은 지금보다 10∼30% 안팎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내년 초에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는 것을 전제로, 내년 한우의 산지가격은 6.4∼39.2%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대체 육류로 각광받던 돼지고기도 4.1∼8.5%, 닭고기는 1.9∼14.5% 각각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그러나 “쇠고기 가격은 떨어지겠지만 수입 쇠고기가 한우 시장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쇠고기 수입이 전면 개방된 지난 2001년 이후 한우 값은 산지 기준으로 20% 올랐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된 이후 지금까지 한우 값은 오히려 올랐다고 덧붙였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9월 도시 소비자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73%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돼도 먹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또 89%는 가격이 한우보다 싸지만 76%는 맛이 한우보다 나쁘다고 말해 미국산 쇠고기가 한우를 대체할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남호경 전국한우협회 회장은 “미국과의 수입재개 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러나 소비자의 불신이 크므로 협상시점은 내년으로 늦추고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박홍수 장관은 홍콩에서 마이크 조핸스 미 농무장관을 만나 “국제기준과 과학적 근거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조핸스 농무장관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조속히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2003년 5월부터 수입이 중단된 캐나다산 쇠고기의 수입재개 여부와 관련, 농림부는 이달 말 캐나다에서 현장조사를 벌인다고 밝혔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사설] 한나라 장외투쟁은 구태다

    인기가 바닥권인 열린우리당이 왜 정기국회 막바지에 사학법 개정안 강행처리라는 무리수를 뒀을까. 현안법안 가운데 국민 지지가 높다는 점이 감안됐을 게 틀림없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사학법 개정에 찬성하는 의견은 60∼70%에 이르고 있다. 이런 사학법 개정에 반발, 한나라당이 어제부터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여당 전략에 휘말린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반대투쟁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가정체성을 지키는 운동으로 규정했다. 너무 심한 비약이다. 사학재단에 개방형 이사를 4분의 1 포함시키면 교육현장이 온통 좌파로 물든다는 주장은 선동적이다. 전교조 추천 인사가 1명이라도 이사가 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교사 스스로는 소속 학교 재단의 개방형 이사가 될 수 없다. 때문에 사학법 개정으로 전교조가 재단 이사회까지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우려는 섣부른 예단일 가능성이 크다. 개방형 이사제 도입이 사학비리 발생 소지를 줄이는 순기능을 하도록 후속조치 마련에 주력하는 게 책임정당으로서 할 일이다. 사학법 개정안의 본질과 관계없이 이념논란을 가열시킴으로써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국 주도권을 잡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또한 잘못된 판단이다. 여당이 국민 지지와 관계없는 행동을 했을 때 강하게 밀어붙여야 야당 위상이 올라간다. 여론과 동떨어져 특정집단을 옹호한다는 인식을 준다면 어렵게 쌓아온 지지도를 까먹을 뿐이다. 야당이 기댈 곳은 결국 명분과 국민지지라고 본다. 법 처리 과정에서 여당이 야당을 무시한 측면은 있다. 대리투표 의혹도 제기된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 불신임결의와 여당 의장 검찰고발을 추진키로 했다. 사학법인들은 헌법소원, 법률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낼 예정이다. 원내 투쟁을 통해 법개정 절차의 문제를 따질 수 있다. 위헌 논란은 헌재나 사법부 결정에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 가두집회, 촛불시위로는 해법을 못 얻는다. 여당의 강행처리에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툭툭 털고 국회로 복귀, 예산과 민생법안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달라.
  • [줄줄 새는 국가 R&D예산] 美 정부성과결과법 2000년부터 시행

    미국은 R&D에 대한 평가를 위해 정부성과결과법(GPRA)을 제정했다.GPRA는 R&D 예산뿐만 아니라 정부 재정이 투입된 모든 사업에 대한 평가시스템이다. 미국도 처음에는 R&D를 평가할 때 동료평가와 한시적 특별평가 등 일반적인 평가법을 썼다. 동료평가는 말그대로 과학자, 기술자 등이 연구의 질을 판단하는 방식이다. 한시적 특별평가는 민간 전문가의 경쟁을 통해 평가를 위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 미국 내에서는 R&D 등 연방정부의 재정집행이 불신을 받게 됐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사업이 정말 효과를 봤는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된 것이다. 그래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3년 GPRA를 마련했다.7년 동안 유예기간을 둔 뒤 2000년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GPRA는 3가지 핵심요소가 반영돼 있다. 첫째가 전략계획이다. 모든 연구관련 투자와 기관운영에 대해 최소 5년단위(3년마다 갱신 가능)의 목적과 목표 등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계속적으로 R&D가 투입되는 사업의 경우 5년 단위의 중기평가시스템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두번째는 연간 성과계획이다. 전략적 목표를 반영한 성과목표 및 지표, 검증방법, 조정사항 등 1년 단위의 실행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매년 9월 각 기관의 예산 요청안과 함께 제출된다. 마지막은 연간 성과보고다. 실제성과, 실패에 대한 설명, 성과달성 계획 등에 대해 매년 내놓는다. 과학기술부 관계자는 12일 “우리는 1999년에서야 종합적인 R&D 평가시스템이 도입됐다.”면서 “미국의 GPRA 등을 벤치마킹해 앞으로도 평가시스템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한나라 박대표 ‘전투복 패션’

    한나라당은 12일 최고위원회의,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고 13일부터 ‘사학법 무효화투쟁’을 원내는 물론 원외에서도 강도 높게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은 17대 국회 들어 처음이라는 점에서 ‘전의(戰意)’가 읽혀진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검은색 바지와 티셔츠 위에 회색 재킷을 걸친 차림으로 참석했다. 회의 모두발언에서는 “지도부부터 비장한 각오로 응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해 늘 그랬듯이 바지차림’이 ‘전투복 패션’임을 숨기지 않았다.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는 ‘투쟁’을 진두지휘할 ‘사학법 무효투쟁 및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본부’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이규택 최고위원이 본부장을 맡고 최연희 사무총장,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 등 17명이 참여한다. 이어 오후 의원총회에서는 김원기 국회의장 불신임안 채택 및 윤리위원회 제소, 사학법 헌법소원, 국회 사무총장 해임촉구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하기로 결의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에 대해선 사무처 당직자 등을 동원했다는 이유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키로 했다. 이규택 최고위원 등 의원 20여명은 김원기 국회의장실을 점거 농성한 데 이어 상임위원회별로 4개조로 나눠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또 13일 서울 명동·서울역에서 ‘전교조로부터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 거리집회를 시작으로 매일 거리집회를 갖고 16일 대규모 촛불집회를 갖는다. 학부모·시민·종교 단체와 연계해 대규모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모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당초 예외적으로 참석키로 한 예결산특별위원회에도 불참했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이슈로 본 2005 문화계] (1) 이중섭·박수근 위작 파문

    문화계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한해를 보냈다. 출판계에서는 세계 최대·세계 최고의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역할을 맡아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성과를 얻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새 둥지를 틀면서 우리 문화의 보고이자 산실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신인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영화계에서는 한국영화가 인기몰이의 주역으로 나서며 영화판을 달구었다. 그러나 미술계는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가짜 그림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고, 방송계는 시청률 지상주의 등으로 파행적인 프로그램 진행이 계속됐다. 각 분야의 이슈를 중심으로 올 한해 문화계의 움직임과 변화를 결산해 보는 자리를 6회에 걸쳐 마련한다. 올 미술계의 최대 이슈는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가짜 그림 파문이다. 지난 3월 이중섭 화백의 작품 4점을 서울옥션이 경매에 내놓으면서 시작된 한국 최고 화가 2명의 유작 진위 논란은 검찰 수사로까지 비화됐다. 수사결과 이들의 작품이 가짜로 판명나면서 미술계는 홍역을 앓았다. ●미술계 불신 이어져 가짜 그림 논란으로 화랑가에는 아직까지 이들의 작품에 대한 진위를 감정받으려는 움직임이 계속되는 등 미술품 거래가 과거보다 신중해졌다. 일부 화랑에서는 가짜로 판명된 작품과 관계없는, 이들의 작품을 샀던 고객으로부터도 “환불해달라.”는 요청으로 곤욕을 치렀다는 후문이다. 지난 11월부터 매주 무료감정을 하고 있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17점이 의뢰된 이 화백의 작품은 1점만이 진짜로 판명났고, 박수근 화백의 경우 12점이 의뢰,2점이 진짜로 밝혀졌다. 매주 2∼5건씩 감정의뢰가 꾸준히 들어올 정도로 미술계는 가짜 그림 파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 작품 외에도 작고한 대가들이나 현존하는 대가들의 작품을 찾는 이들의 발길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미술시장을 위축시킬 정도로 큰 파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 미술계 안팎의 지적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미술품 거래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문화관광부가 감정인력 양성을 위해 내년 예산에 3억원을 확보해 놓았고,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도 감정기구 설립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성과를 이뤘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미술계 최대 위작사건인 이번 사태가 다행히도 K옥션의 출범 등으로 국면전환된 측면이 있다.”면서 “감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감정제도 마련을 위한 시발점이 됐다.”고 밝혔다. ●경매와 해외시장으로 돌파구 시도 화랑가에 불어닥친 위기가 화랑 중심의 미술품 거래를 경매와 해외 아트페어를 통한 새로운 활로 찾기로 방향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가나아트가 운영하는 서울옥션이 이번 사건으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하자 라이벌인 갤러리 현대는 하나은행 등과 손잡고 지난달 K옥션을 출범시켰다. 국내 미술계를 움직이는 양대 축인 가나아트와 갤러리 현대가 경매시장에서도 경쟁에 돌입하며, 경매시장에 열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K옥션의 출범이 당초 기대와 달리 ‘기획경매로 작품 가격의 상승을 초래했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사설] 임시국회 정상화가 급선무다

    오늘부터 한달 회기로 임시국회가 시작된다. 새해 예산안조차 처리하지 못한 채 정기국회가 끝났고, 여당의 사학법 강행처리에 한나라당이 반발해 임시국회마저 파행이 예고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을 벌써 열흘이나 넘겼다. 부동산입법, 비정규직법 등 시급한 현안처리가 지연되면서 부동산시장과 노사현장이 들썩이고 있다. 국회를 빨리 정상화시키기 위해 여야가 한발짝씩 물러나는 지혜를 보여야 할 때다. 한나라당은 어제 ‘사학법 무효투쟁 및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국회의장과 여당이 국회법절차를 위반했다면서 헌법소원, 권한쟁의심판 청구, 국회의장 불신임, 대리투표 의혹 규명을 추진키로 했다. 나아가 장외투쟁 여부를 최고위원회의, 의총을 통해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사학법 개정안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여당의 밀어붙이기에 대해 한나라당이 느끼는 위기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사안으로 국회를 외면하고 장외로 나가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다. 국회에서 사학법처리 절차의 문제점을 따지고, 법개정안 실시과정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막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제1야당으로서 책임있는 자세라고 본다. 무엇보다 사학법 통과를 정체성 논란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지양해야 한다. 사학의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입법취지를 살리는데 정치권이 앞장서야지,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소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사학법인과 일부 종교단체의 불만이 대단한데, 기름을 붓지 말아야 한다. 야당이 이들과 연대해 장외투쟁에 나선다면 나라는 다시 두쪽으로 갈라져 극도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정치력과 포용력 없음을 다시 지적해야겠다. 예산안을 비롯, 현안처리가 늦어지는 1차 책임은 여당에 있다. 단독국회 운영보다는 한나라당을 설득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사학법 후속조치에서 야당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새해 예산도 불요불급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감하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임시국회가 오래 파행하면 여야 모두 국민의 질타를 받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 [7·9급 공무원 시험 완전정복] 행정학 문제

    ●행정학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정부관 1. 의의 사회에는 이념상의 스펙트럼이 있기 마련이다. 대별한다면 ‘진보주의-중도-보수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진보주의는 좌파, 보수주의는 우파로 부른다. 정당은 이러한 정치적 이념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치적 결사체이다. 미국의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일본의 사회민주당 등은 진보주의 정당이라고 볼 수 있으며, 미국의 공화당, 영국의 보수당, 일본의 자유민주당 등은 보수주의 정당이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간에는 인간관, 가치 판단, 시장과 정부에 대한 평가 등에서 차이가 있다. 2. 진보주의 정부관 진보주의는 인간의 비현실적인 냉혹함과 계산방식 때문에 경제인(homo economicus)의 인간관을 부정하고,‘욕구’,‘협동’,‘오류 가능성(fallibility)’의 여지가 있는 인간관을 갖는다. 진보주의자들은 자유(freedom)를 옹호하며, 그들의 자유는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실질적인 정부의 개입을 허용한다. 진보주의자들은 효율성과 공정성, 번영 및 진보에 대한 자유시장의 잠재력을 인정하되, 시장의 결함과 윤리적 결여를 인지한다. 이러한 시장실패는 가능한 정부의 치유책으로써 수정될 수 있다고 본다. 진보주의자의 정부관을 보면 많은 영역에서의 정부의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지지하고, 좀 더 많은 정부 지출과 규제를 선호한다. 진보주의자들은 경제문제에 대한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정부개입을 선호하기 때문에 복지국가·혼합 자본주의·규제된 자본주의·개혁주의 등의 입장을 견지한다. 일반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은 다음을 선호한다. (1)소외집단을 돕기 위한 정책, 즉 가난한 사람들, 소수 민족, 여성들을 위한 기회를 확보하고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선호한다. (2)의료보장, 소비자 보호, 공해 없는 환경 등과 같은 목적을 증진시키기 위해 경제에 대한 더 많은 정부규제를 선호한다. (3)과세 제도를 통해 부자들로부터 가난한 사람들로의 소득 재분배 정책을 선호한다. (4)낙태 금지를 위해 정부권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며, 공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을 반대한다. 3. 보수주의 정부관 보수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합리적인 경제인의 인간관을 갖는다.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를 강조하며, 그들의 자유는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기회의 평등과 경제적 자유를 강조하고 소득, 부 또는 기타 경제적 결과의 평등은 경시한다. 보수주의자의 이상적인 정의는 교환적 정의(commutative justice)이지 배분적 정의가 아니다. 따라서 평등·공정과 같은 가치 판단과 갈등 관계에 있을 때에는 자유를 선호한다. 보수주의자의 시장에 대한 견해를 보면 자유시장(free market)의 이점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갖고 있으며, 자유시장의 어떠한 결함도 보수주의자의 신념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보수주의자의 정부관은 기본적으로 자유시장을 신봉하고 정부를 불신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위태롭게 할 뿐만 아니라 경제조건을 악화시키는 전체적 횡포라고 믿는다. 이들이 정부가 필요하다고 믿는 경우는 개인에 의한 강요와 폭력의 방지, 외적으로부터의 방어, 재산권과 법적 계약의 집행, 통화 체계의 보수주의적 운영 규제, 특정 공공재의 공급, 최소한의 사회보장의 확보 등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경제문제에 대한 정부 개입을 지속적으로 반대하며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옹호한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은 다음을 선호한다. (1)소외집단의 이름으로 하는 정책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부 개입이 없는 강력한 경제로부터 소외집단이 가장 혜택을 받는다고 믿는다. (2)일자리, 의료 보장, 공해 규제 등을 제공하기 위해 정부 규제를 줄이고 시장에 더 많은 의존을 한다. (3)높은 자본 투자율을 확립하기 위해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세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4)낙태 금지를 위해 정부 권력을 사용하는 것을 찬성하며, 공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을 선호한다. (자료:새행정학, 대영문화사, 이종수 외.2004.p35∼36 인용) ●문제 진보주의 정부관에 대한 설명으로 부적절한 것은 (1)과세제도를 중시한다. (2)소외집단의 정책을 선호한다. (3)일자리나 의료보장 등은 시장경제를 활성화하여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4)여성정책에 관심이 높다. ●해설 및 정답 진보주의적 정부관은 1990년대 뉴거버넌스나 참여주의와 관련이 깊다. 진보주의자들은 효율성과 공정성, 번영 및 진보에 대한 자유시장의 잠재력을 인정하되, 시장의 결함과 윤리적 결여를 인지한다. 이러한 시장실패는 가능한 정부의 치유책으로써 수정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과세정책이나 소외집단, 여성정책 등을 선호하며, 실질적인 정부개입을 중시한다.(3)은 보수주의 정부관으로서 일자리, 의료 보장, 공해 규제 등을 제공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여 해결하려는 정부규제를 줄이고 시장에 더 많은 의존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정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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