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새달 25일 국민투표” 결의/인민대회 폐막
◎조기선거 등 4개항 묻기로/옐친신임 「유권자 과반수」로 판정/개혁파는 「투표자 과반수」 신임 주장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지난 26일 소집된 러시아 인민대표대회 비상회의가 29일 보리스 옐친대통령에 대한 신임등 모두 4개항을 묻는 국민투표를 오는 4월25일 실시하기로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한 뒤 폐막했다.
인민대표대회는 이날 국민투표실시에 대한 결의안을 찬성 6백54대 반대 1백2로 통과시켰다.
인민대표대회가 채택한 국민투표안은 대통령에 대한 신임과 함께 지난해 시작된 개혁정책에 대한 평가,대통령및 의회선거의 조기실시등 4개항을 묻도록 하고 있다.
결의안은 특히 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묻는 질문에 대해 러시아 전체유권자의 과반수의 동의를 얻을 경우에만 국민들이 대통령을 신임하는 것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옐친대통령과 개혁파 대의원들은 유권자의 과반수가 투표해 이들 가운데 절반이상이 찬성할 경우를 대통령신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이에따라 국민투표해석에 대한 문제를 놓고 보혁간에 또한차례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옐친대통령은 이날 인민대표대회의 국민투표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나에대한 국민들의 신임을 훔치려 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한뒤 당초의 방식대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한편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 의장은 이날 폐막연설에서 『이번 인민대표대회는 옐친대통령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고 선언했다.
하스불라토프 의장은 옐친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된지 하루만인 이날 인민대표대회에서 또다시 옐친에 대한 탄핵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여전히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스불라토프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옐친대통령이 계속 저항하는 태도를 보일 경우 그를 축출하기 위한 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앞서 인민대표대회는 이날 회의에서 국민투표를 강행할 비상대권을 갖고 있다는 옐친대통령의 선언을 거부하는 한편 행정부의 독립과 양원제 의회 도입,의회와 행정부의 권력분립등에 대한 수정안을 거부하는 결의안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옐친대통령에 대해 연립정부의 구성을 건의하는 한편 대통령에 귀속돼 있던 행정기구 통제권을 내각으로 이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수파 탄핵실패로 옐친 상대적 유리/신임 「의결정족수」 싸고 재충돌조짐도(해설)
의회에서 대통령신임투표실시를 결의함에 따라 러시아의 보혁대결은 일단 4월25일의 대통령신임투표에서 승패를 가리게 됐다.그러나 투표에 부칠 내용과 투표방법상의 법적용을 놓고 양측간 입장차가 워낙 커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옐친대통령은 신임투표가 헌법상의 국민투표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지난 90년 대통령선거때 채택된 대통령선거법에 의거해 치른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대통령당선자의 요건과 같이 유권자 과반수 투표에 투표인 과반수의 찬성으로 재신임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의회는 이를 국민투표로 규정, 전체유권자 과반수의 찬성을 재신임의 요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민투표의 경우 의회에서 사안별로 그때그때 통과에 필요한 유효표의 요건을 규정토록 돼있다.전체유권자 과반수의 찬성을 고집할 경우 재신임은사실상 불가능하다.
투표에 부칠 내용도 옐친대통령은 대통령신임외에 새헌법안,조기선거실시에 대한 가부를 묻기로 한 반면 의회는 ▲대통령 신임 ▲현정부의 경제개혁 지지여부 ▲대통령 및 의회의원조기선거실시에 대한 가부를 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이같이 양측 주장이 큰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28일 의회보수파들은 대통령탄핵안과 최고회의 의장 불신임안을 전격 상정했으나 모두 부결됨으로써 일단 전략상의 패배를 기록했다.
반면 옐친대통령은 최근 2∼3일동안 미묘하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하는 민심의 동향을 포착,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28일 붉은 광장앞의 대규모 시위는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시위대에 행한 연설에서 옐친대통령은 상당히 고무된 듯 『모든 심판을 국민에게 맡기겠다』며 신임투표강행의사를 재천명했다.
현재의 분위기로는 옐친대통령은 4월25일 예정대로 신임투표를 강행,여기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가을 대통령 및 의회조기총선을 실시해 현의회를 해산시켜 버린다는 전략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론의 지지가 따라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반면 의회보수파들은 탄핵에 실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충수를 둔 셈이 됐다. 이들은 당초 협상용으로 내놓았던 대통령및 의회조기총선을 옐친대통령이 받아들이겠다고 나섬에 따라 여기서도 상당한 혼란을 겪는 듯한 인상이다. 어떻게든 의회해산만은 피한다는 것이 이들의 속마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현재의 분위기로는 옐친진영은 대통령신임투표쪽에 모든 무게를 실을 공산이 크다. 여기서 승리하면 그 여세를 조기선거에까지 연결,「승리의 행진」을 계속하겠다는 전략이다.
보수파들은 대통령탄핵에 실패함에 따라 신임투표에서 대통령불신임을 위해 힘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투표시행방법을 싸고 양측간 입장차가 너무 커 과연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될지 여부도 예측키 힘들게 됐다.결국 치열한 여론싸움이 전개될 것이고 장외집회가 계속됨에 따라 자칫 대규모 충돌이 빚어질 우려 또한 고조되고 있다.
국민투표가 어떤식으로 강행되든지 그 결과는 누구도 장담하기 힘든게 사실이다.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등 대도시는 옐친지지층이 두터운 반면 지방공화국을 비롯한 소도시·농촌에서는 반개세력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옐친정부가 이들 지방공화국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현재 논란중인 연방법제정등에 있어 지방공화국에 더 많은 양보를 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지방공화국들의 권한확대를 가져와 장기적으로 연방분열의 가속화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