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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도굴문화재 해외 밀반출 성행/“유물팔아 한몫 잡자”

    ◎시장경제 도입이후 한탕주의 만연/토용·화석 등 종류 다양… 「가짜」도 많아 중국대륙에 시장경제가 본격 도입된이래 최근들어 문화유적지나 고분들에 대한 도굴이 성행하면서 여기서 발굴해낸 골동품들에 대한 해외밀반출이 크게 늘고 있다.사회주의 강경좌파가 집권할 당시의 금욕생활로부터 풀려나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시대로 접어든후 배금주의·한탕주의가 만연하면서 해외에서 고가로 팔리고 있는 문화유물을 통해 한목 잡으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들어 대륙에서 홍콩으로 밀수해 들어가는 문화재급 골동품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명해지고 있다.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오늘날 고분도굴단이 중국문화재 보존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을 정도이다.이제 중국의 범죄조직들은 호화차량 절도나 전자제품 마약밀수 그리고 불법이민 등을 대상으로 삼던 범주를 벗어나 중국문화유산의 심장부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홍콩이나 마카오 등지를 통해 서방으로 흘러들어가는 골동품들중에는 고대의 공룡인 디노사우르 알화석에서 옛 황제들의 시신을 호위하던 토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과거에는 기껏해야 청동제품이나 접시,꽃병정도에 그쳤으나 이제는 그 질이나 가격 숫자등에서 과거와는 판이하게 높아지고 많아졌다. 근래에 들어 중국대륙 여기저기에서 경제건설을 위해 땅을 파헤치는등 토목사업을 많이 벌이면서 우연케도 옛 고적들이 새롭게 발견되기도 하고 고고학자들에 의해 산동성이나 신강위구르지역등에서까지 춘추전국시대의 유물들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고분들에 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가고 있다. 중국골동품은 홍콩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가는게 보통이다.지난해말에는 1백만달러어치가 넘는 1백7개의 골동품을 싣고 심수에서 홍콩으로 넘어가려던 한 트럭이 붙잡혔다.그후 불과 4개월만인 지난 4월초에는 같은 장소에서 청동불상에서부터 도검 병마총 왕실용장식물등에 이르기까지 2백50여점의 골동품이 실린 트럭이 또 발견됐다. 홍콩에서는 지난 92년에 중국골동품 2백96점을 압수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2백38점을 압수했으나 올해 들어서는 지난 4월중순에 이미 지난 한햇동안 처리한것보다 훨씬 많은 4백54점을 적발하기에 이르렀다.홍콩에서 압수된 중국문화재는 중국으로 되돌려 보내지는데 지금까지 6천여점이 반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중국문화재가 일단 세관을 거쳐 홍콩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어서 심지어 디노사우르 알화석을 팔겠다는 광고까지 신문에 실린적이 있다.이 알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에서만 발견되고 있는 것들로 일단 홍콩만 벗어나면 유럽이나 미국등지로 손쉽게 흘러들어 거액의 현금으로 바뀐다. 골동품 밀반출이 유행하면서 가짜 골동품이 범람하고 있는 것도 한 특징.토용으로부터 화병 접시등 각종 자기류나 문화재에는 모조품등 가짜가 없는게 없다.한 일본인은 수백 수천년됐다는 도자기를 수십점 구한후 이를 이삿짐에 갖고 나가기위해 세관원을 매수키로 마음먹고 우선 반출가능 여부를 판별해주도록 했다.놀랍게도 그는 돈한푼 들이지 않고 떳떳하게 반출할 수 있었다.그 세관원은 수백년전 것이라는골동품들을 보자마자 단번에 『이것은 5년전에 ○○에서 만든 것이고,저것은 10년전 ○○에 있는 ○○공장에서 만든 것이군요』라며 『세금 물릴게 하나도 없다』는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이조백자가 뉴욕에서 3백만달러에 거래된 이후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여행객들중에도 골동품가게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 승용차 금지령(외언내언)

    런던의 스모그 사건은 1878년부터 시작한다.환경재난이라할 만한 대사건만도 62년까지 10회나 된다.최대사건이 52년.12월10일부터 1주일간 아황산가스안개가 지속되자 이로부터 3주사이에 질식과 호흡곤란으로만 4천여명이 사망했다.그후 만성폐질환으로 죽은 사람이 또 8천여명이다. 1987년 2월 멕시코시티 하늘을 날던 수천마리의 새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새 사체를 조사한 결과 심장,폐,간등에서 다량의 납,카드뮴,수은등이 검출됐다.이사건은 호흡으로 죽는것만이 아니라 누적과 농축을 거쳐서도 죽는다는 것을 확인해줬다.멕시코시티는 89년부터 외교관차량을 제외한 전차량의 5부제운행을 실시하고있다.2천만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두통,불면증,무기력,구토증세를 겪고있고 심한사람은 확각과 환청증세에까지 다다른다. 25일 그리스정부는 수도 아테네 일원에 승용차 운행금지 긴급조치령을 발동했다.금주 들어 60여명의 시민이 대기오염에 의해 호홉기 및 심장질환으로 입원하는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아마도 이것이 제3의 최대사건이 될지도 모른다.아테네 역사유적들은 이미 매연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었다.매연에 의한 부식으로 코와 귀가 없는 고전 대리석흉상들이 현재 한둘이 아니다. 대리석은 쉽게 부식된다해도 그 도가 지나친다.그리스 산성부식전문가 스콜리키디스는 「지난 2천4백년에 걸쳐 부식된 정도보다 최근20년사이에 부식된 정도가 더 크다」고 단정한다. 자동차매연이 주범인 도시대기오염은 기온 연평균 1도증가,먼지10배증가,일사량 총량20%감소 자외선30%감소,풍속30%감소,안개빈도 겨울100% 여름30%증가를 가져온다.이 결과가 모여 갑자기 불상사를 만들어낸다.남의 일이 아니다.다음차례가 중국 센양이거나 한국 서울일 가능성도 있다.지금 서울은 매연분진에 있어 세계수위그룹에 끼여 있다.
  • 중국에 유행어 바람 분다

    ◎인판자/야성 유괴해 장가 못간 남자에 파는 것/육해/마약·포르노·인신매매등 6가지 해악/노삼건/세가지 전자제품… 유복한 생활을 상징/양삽대/해외취업… 부자가 되는 지름길로 인기 격변기를 살아가는 중국 국민들의 유행어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개방 및 개혁 정책이 가져다 준 중국의 급속한 사회 변혁은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었다.새로운 상황을 과거에 없던 말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일본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린 중국의 최신 유행어를 소개한다. ▲인사=급증하는 밀항자를 빗댄 말이다.밀항 배삯은 미국이 2만8천달러,일본이 2만달러 정도이다. ▲인판자=여성이나 어린이들을 유괴해 농촌의 장가 못간 남자나 일손이 없는 노인에게 팔아치우는 행위.지난 해만도 10만명이 유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육해=중국 사회에 만연된 마약,매춘,포르노,인신매매,미신,도박 등 여섯 가지 해악. ▲공조=노동쟁위를 말함.실업과 해고 등으로 파업이 늘면서 생겼다. ▲대관=큰 부자.개혁 초기엔 연수입이 1만원이었으나 지금은 1백만원 이상을 지칭한다. ▲민공조=내륙의 농민이 돈을 벌기 위해 상해 등 연해 도시로 몰려드는 것을 말한다.추정 유동인구는 2천만∼5천만명으로 맹류라고도 불린다. ▲노삼건=유복한 생활을 상징하는 세가지 전자제품.처음에는 컬러 TV,냉장고,세탁기를 의미했으나 지금은 비디오,에어컨,전자렌지(혹은 오디오)로 바뀌고 있다. ▲하해=학자나 학생,작가 등 지식인들이 경제 관련 직업인으로 전직하는 현상. ▲병가주=병가를 얻어 부업으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아예 결근을 하고 부업에 매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이들은 불상반주이라 부른다.이들 때문에 출근율이 70% 이하인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삼각채=기업이 부채가 쌓여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상환정지 현상. ▲양삽대=해외 취업.국내에서의 돈벌이에 비해 단시일에 수십배의 수입을 올린다.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삼철=국영 기업의 철밥통같은 제몫 지키기,경직된 임금 구조 등을 말한다. ▲내퇴=정년전 조기 퇴직.남자는 50세,여자는 45세 이전에 퇴직시키는 기업이 늘고 있다. ▲대가대=휴대용 전화기.부자의 상징물로,상담이든 데이트든 이것만 있으면 순조롭다.
  • “도장 쥐었기에 두려움은 생기나니”(박갑천 칼럼)

    부처님의 고향은 오늘의 네팔남부 타라이지방에 해당된다.히말라야산 기슭으로 이어지는 분지로서 갠날이면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멀리 바라보인다.그 봉우리들의 눈이 녹아 흐르는 여러 줄기의 강이 남으로 흘러 갠지스강으로 합류한다.그 가운데 하나인 로히니강은 그지방의 젖줄이었다. 로히니강을 끼고 서쪽에는 사캬(석가)족이,그리고 동쪽에는 코랴(구리)족이 살고 있었다.이 두부족은 따져볼때 한겨레이기도 해서 의좋게 지내온 터였다.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도 코랴에서 시집왔을 정도로. 그런 사이였는데 어느 해던가 부처님이 고향에 들렀더니 강을 사이에 두고 두부족이 손에손에 무기를 들고서 한바탕 맞붙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가뭄이 그 원인이었다.강물이 줄어듦에 따라 서로 자기쪽으로 물을 끌어들이려 한 물싸움이었다.그때 두부족 사이에 선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도장잡은 사람들을 보라.도장을 쥐었음으로 해서 두려움은 생기느니』 여기서의 「도장」이란 무기를 가리킨다.그러니까 먼저 손에든 무기들을 버리라는 뜻이었다.사람들은 무기가 자신을 방어해 준다고 여기지만 무기를 지니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이 생기고 공격의 표적으로 되면서 싸움도 일어난다는 가르침이었다.이는 노자가『무기란 상서롭지 못한 연모』(병자불상지기)라고 했던 말과도 맥락이 통한다.부처님은 이어 자신의 체험을 털어놓았다. 『여러분,나도 지난날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생로병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그 불안과 두려움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이겨낼수 있었던가.그 문제에 집착하는데서 벗어났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들고있는 무기들을 버리면 두려움에서 해방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도 찾아낼수 있을 것이라는게 부처님의 말이었다.이 가르침에서의「도장」을 무기로만 국한하여 생각할 일은 아니다.세상사 어떤 문제에도 적용시킬수 있겠기 때문이다.재산이나 학문을 두고도 혹은 권세나 지위를 두고도.무슨 문제건 수단·방법에 집착하면서 비범하게 굴때 두려움과 고통이 따름은 사람마다 경험해오고 있지 않은가.하지만 사람이기에 그 집착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가르침과 함께 얼마전의 불교계 내분을 떠올려 본다.「도장」을 휘둘러버렸기에 두려움은 남는 것이나 아닐는지.로히니강 아닌 휴전선의 대치상황도 생각해 보게 한다.정치하는 사람이,학문하는 사람이,모든 중생이…,도장과 도장쥔 손을 한번쯤 들여다 보았으면 한다.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 석탄일 특집프로 풍성

    ◎각방송사들 봉축법요식 중계등 다양한 기획 프로 마련/KBS/불교음악회·외국스님 구도현장 취재/MBC/성철 큰스님 발자취·특집극 「강…」 방송/SBS/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인의 가정 소개/EBS/불교 문화유산·전래과정·용어 등 풀이 18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각 방송사들은 다양한 특집물들을 내보낸다.이번 부처님 오신날에는 방송3사가 초파일 상오10시 봉축법요식을 중계하는 등 다큐멘터리나 영화들뿐 아니라 법요식 중계,불교음악회및 공연,토크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선보인다. KBS는 방송사 가운데 가장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몄다. K­1TV는 낮 12시30분에 방영하는 불교음악회「붓다여 붓다여」에 전명진·김국환·김성녀등 국악인과 대중가수를 출연시켜 KBS관현악단의 연주로「찬불가」·「반야심경」·「붓다」등 현대 불교음악을 들려준다. 또 K­1TV에서는 특선영화「아제아제 바라아제」와 특집 다큐멘터리「한국불교 맥을 잇는 파란눈의 구도자들」및「한국의 불교」를 방송하고 K­2TV는 중국에서 중동에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에 펼쳐진 불교유적들을 소개하는「불교 유적지를 찾아서」를 3시간동안 내보낸다. K­1TV는「중국 연변가무단 초청공연­춘향전」도 방송한다. 이와함께 청소년들에게 부처님의 일생을 예화중심으로 들려주고 깨달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특집「연꽃에 담긴 미소」가 유인촌과 강수연의 공동진행으로 제2라디오를 통해 방송된다. EBS­TV는 2편의 부처님 오신 날 특집을 마련했다. 다큐멘터리「불교문화 유산을 찾아서」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사찰과 석탑·불상 및 불화·불경등 문화유산과 불교의례에 큰 영향을 받은 전통신앙 및 풍속등을 살펴봄으로써 뿌리깊은 우리의 불교문화를 조명해 본다. 또 불교가 우리에게 전래된 과정과 불교용어를 알기쉽게 풀이하고 동자승들의 생활상을 소개하는「알기쉬운 불교이야기」도 방송한다. MBC­TV는 지난해 입적한 성철 큰 스님의 발자취를 재조명해보는 특집 다큐멘터리「성철 큰 스님을 말한다」를 방송한다.여기에서는 성철 큰 스님의 일대기와 업적을 직계제자 10명의 눈을 통해 알아본다.해인사의 선원 및 송광사 그리고성철 스님이 유명한 장좌불와 참선을 처음 수행했다는 경북 문경의 고찰 대승사 선방도 보여준다.또 다비식이후 직계제자들의 첫 모임과 생일제사,사리 재공개행사 등이 소개되며 소식으로 일관한 성철스님의 독특한 공양상 등을 재현해본다. 이와함께 M­TV는 특선영화 「우담바라」와 「흰 목련구모」를 방송한다. 또 라디오를 통해서는 옴니버스형식의 특집극「강을 건너는 나룻배를 버려라」를 방송한다. SBS­TV는 기존 편성물인 「세계의 가정」을 석탄일특집으로 꾸며 국민의 74%가 불교도로 남방불교가 가장 발달한 「스리랑카편」을 방송한다.또 다큐멘터리 「연꼭속의 타는 번뇌」와 특선영화「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등을 재방송으로 편성했다.
  • 수준높은 금속산업(백제를 다시 본다:13)

    ◎“주도술의 진수” 실납법 응용 향노제조/마한의 우수한 청동·철문화 계승 발전/6세기 삼국중 가장 뛰어난 기술선봬/칠지도·금동용봉향로는 당시 기술의 결정체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지난해 부여능산리에서 발굴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라는 긴 이름의 백제향로를 보존처리하고 있다.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향로는 미처 깨닫지 못한 백제 금속문화의 진수다.긴 시간을 뛰어 넘어서 다시 보여준 백제 금속기술의 결정체이기도 하다.역사학자들은 백제가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긴 마지막 사비시대(AD538∼660년)에 이 향로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향로가 나온 건물지에 대해서는 왕릉들의 제사를 집행하던 곳이라는 의견과 왕릉에 넣을 부장품을 만들고 기타 제물들과 기구등을 수리하는 공방지라는 의견으로 엇갈린다.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왕릉과 관련짓고 있다는 점이다.이 향로가 왕릉과 관련된 성스런 행사에 쓰인 성스런 기물이라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본 셈이다.왕릉과 관련한 기물은 국가적인 힘을 모아 제작했을 것이고 백제 금속산업의 실력을 한데 모은 것으로도 짐작할수 있다. 백제 금속기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관리국은 지난 1971년 여름,공주 송산리에서 무령왕의 무덤을 발굴했다.동방의 투탕카멘 왕 무덤이랄수 있는 유적이다.출토된 유물 가운데 뛰어난 금속제품들을 살펴보면 우선 왕의 위엄을 보이는 금동용봉손잡이 큰칼,왕권의 지혜와 힘을 상징하는 사람과 동물이 조각된 사신경(청동거울),3가지 금속으로 구성 제작된 등탁은잔이 있다. ○과학적 이론 바탕 등탁은잔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받침은 구리 합금이며,잔과 뚜껑은 은으로 만들고 손잡이는 연봉 모양이지만 꽃받침은 금이다.그리고 표면은 받침에서 뚜껑까지 역동하는 용과 겹겹이 핀 연꽃,봉래산과 그 위를 나는 봉황새등 무늬들을 새겼다.향로와 미술적모티브가 같다고 볼수 있다.기술적으로 말하자면 백제의 높은 금속기술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금속산업 입장으로 견주어보자.채광 제련 용범 합금 주물 분야는 독립적 설비와 분업적 전문기술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하다.이 요소들은 과학적 이론과 경험의 토대에서 실력이 나온다.이러한 요소는 지금도 국력이다.무령왕릉의 제품보다 1세기 늦은 백제향로는 이같은 과학의 힘으로 완성한 것이다.늦은 만큼 더 발달된 터전에서 생산한 것이라고 판단하면 우연히 중국제품이 부여 땅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볼수는 없다.필자는 무령왕이 왕의 통치권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영면의 잠자리를 샀노라는 매지권까지 부장한 점도 긍지에 찬 백제문화의 기세를 우러러 볼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보다 앞서 백제가 건국하여 세를 확장한 제1시기 한성시대(4세기초∼475년)에는 칠지도가 있다.일곱개의 가지가 벋은 철검(길이 83.9㎝)은 백제왕이 369년(태화 4년)에 일본의 왜왕에게 내린 칼로 영구히 잘 보존하라는 뜻이 담긴 글귀가 상감 기법으로 새겨져 있다.이 칼은 일본 천이시에 있는 이소노가미신사에 보존되어 있다.지금도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다는 것도 역시 쇠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다는 증거이다. 백제인의 조상은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대로 청동기 문화를 크게발달시킨 예맥이라 부르는 고구려와 같은 부여족이다.고고학적으로 고찰하면 이 종족은 중국 황하강 북부의 오르도스 지역에서 요령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요령식 동검문화(BC8세기)를 크게 융성시키고,계속하여 우리나라로 남하하면서 드디어 독창적인 한국식 동검문화(BC4∼3세기)를 꽃피운다.여기에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과 철기문화를 받아 들이면서 고대국가를 발전시킨다.절정의 한국식 동검문화는 마한소국들의 문화이며 이 지역은 백제가 세를 모아 터를 잡은 오늘날의 경기·충청 지방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명한 부여 송국리 청동기 유적과 대전·공주지방 일대에서 출토된 청동기(동경 동령 동검 동과 방패형동기등)는 종류별로 지정 문화재급이다.이들 청동기가 이 지역에서 직접 만들어졌다는 것은 용범의 출토로 고고학적으로 증명됐다. ○「아연­청동기」 특징 청동기는 대체로 쌍합법으로 주조가 가능하나 팔주령같이 구조가 복잡하거나 기하학적 무늬를 현미경적 작업으로 새긴 다뉴세문경은 소위 실납법이라는 주물기술로만 가능하다.특히 제조기법이 신비의 수수께끼로 알려진 이 세문경은 지금도 필자를 비롯한 많은 전문 과학자들이 실험고고학 측면에서 연구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92년7월 「한국의 청동기문화」특별전을 열면서 낸 도록에 청동기의 합금 조성비율을 각 유물별로 명시했다.이 분석치를 대표치 비율로 구하면 구리(Cu) 대 주석(Sn) 대 아연(Zn)=7.6대1.6대0.8이다.우리의 주석청동기가 중국과 다르게 「아연­청동기」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이 비율은 금속학적 견지에서 보면 최고 강도와 주조성의 완전한 효율을 터득한 상태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진행중인 백제향로의 분석비율은 앞으로 확실한 값이 나오겠지만 1차로 7.8대1.6대0.3으로 나왔다.그리고 표면은 금을 수은(Hg)에 녹여 도금했으며 두께는 10∼20마이크로m 정도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여기서 우리는 청동기시대와 백제시대라는 시대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청동기는 역시 「아연­청동기」인 점을 알수 있다.이 점은 고고학이나 과학사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따라서 백제의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전통적 과학기술 바탕위에서 실납법 제조로 결론지을수 있다.그리고 표면 금치장 방법도 6세기초의 백제는 금박덧씌움법을 무령왕릉의 머리받침과 다리받침목에서 보여주고 있으나,구리합금재 향로는 수은 아말감법에 의한 손도금으로 처리했다.이로써 우리는 백제가 금치장의 여러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는 점도 알수 있게 됐다. 백제의 금속산업은 삼국중 가장 뛰어났으며 동북아시아 주변국가들에게도 기술적 영향을 주었다고 볼수 있다.이 분야의 연구는 자료의 부족으로 미진했으나 향로의 출현이 백제과학의 실상을 밝히는데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다.따라서 백제향로의 보존처리가 완료된후 많은 과학자들의 분야별 연구를 기대해 본다. ◎도금술 전래/BC1세기 서아시아서 유입 추정/사비시대땐 높은 기술의 아말감 수은법 사용 금에 대한 인류의 욕망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나타나고 있다.황금빛으로 비유되는 찬란한 광택은 인간으로하여금 금을 더욱선호하게 만들었다.금은 귀금속이기 때문에 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더욱 부추겼다.그래서 연금술과 함께 도금술까지도 발전시켰다. 지난해 연말 충남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 역시 금을 선호한 고대인들의 욕망을 도금을 통해 대체한 사비시대 백제유물이라 할 수 있다.1천4백여년을 땅속에 묻혀있었음에도 황금광택을 발산하는 까닭은 고도의 도금술에서 찾아진다.최근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이루어진 삼국시대 금동유물 도금분석에서 고대도금술의 신비가 어느정도 밝혀진 바 있다. 한반도에서 시작된 도금의 역사는 명확치 않다.다만 BC1세기쯤 서아시아,서역,중국을 거쳐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현재까지 나타난 가장 오래된 도금유물로는 AD3세기쯤 원삼국시대 널무덤 출토품인 금박유리구슬이 있다.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및 가야 고분 등에서는 말갖춤,신발,관장식,관모,불상등의 도금유물이 출토되었다. 최초의 도금을 기술한 역사기록은 「삼국유사」진흥왕 34년(AD573년)의 황용사 장육상 조성과 관계된 내용.여섯팔 길이나 되는 거대한 불상을 도금하는데 금 1만1백98푼을 썼다고 적었다.백제의 도금관련기록은 없지만 지금까지 출토된 금동유물 가운데 익산 미륵사 절터에서 나온 금동소탑등 3점의 도금제품에 대한 도금분석이 시도되었다.그 결과 「아말감수은법」도금제품으로 가려졌다. 아말감수은법의 도금은 금이 수은속에서 녹으면 수은처럼 액체가 되기때문에 이를 청동제품에 칠하는 방법이다.수은에 용해된 금물을 칠한 뒤에는 수은의 비등점인 3백75도까지 열을 가한다.이 때 수은은 증발해버리고 금피막만 남게되는데,몇차례 같은 방법을 되풀이해야 완벽한 도금이 된다. 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용봉봉래산향로 제작시기와 거의 같은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부여 부소산성출토 금동맞새금장식품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도금분석이 이루어졌다.결과는 역시 아말감수은법의 도금으로 상당한 기술수준임을 보여주었다.능산리 출토 금동향로의 1차 도금분석에서 역시 아말감수은법에 의한 고도의 도금기술이 구명되었다.그러나 연금술은 물론 산지구명등의 숙제를 안고있다.
  • 올해 서울현대조작전 대상 김무기씨(인터뷰)

    ◎“「허무와 실존의 조화」 형상화 올해 서울현대조각공모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김무기씨(31)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모자람이 많은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과 그동안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가족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서울대 조소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김씨는 이번 학기부터 주 이틀씩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영남대에 출강하랴 작품에 몰입하랴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상작 「실존의 유추」는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마련인 갈등을 극복해 내려는 초월의지를 허무와 맞물려 형상화한 작품. 『우리의 삶속에는 희비극적인 요소가 공존하지만 결국 양쪽은 상호보완적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따라서 이번 작품에서도 허무적인 요인을 많이 등장시켰지만 살아내야 한다는 존재의지를 강하게 부각시킨 셈이지요』 『재학시절부터 실존철학에 관심이 많아 작품에서도 줄곧 그쪽에 경도되고 있다』는 그는 작품 「실존의 유추」에서 허무와 실존의 대비·조화를 위해 무쇠와 브론즈 화강암등 3가지 재료를 기묘하게 맞물려 썼다. 무쇠를 흙작업을 통해 주물로 성형한후 부식시켜 찌들린 삶의 현실을 표현했고 이에 대비시켜 브론즈 특유의 광택과 거친 화강암으로 생명력과 초월의지를 강조했다.특히 『한국 고유의 모습을 살릴 수 있는 조형이 바람직하다』는 평소의 생각대로 무쇠주물에 불상에서 유출한 한국인의 얼굴과 인체를 다듬었다고 설명한다. 중학교때부터 미술반 활동을 통해 판화등에 소질을 인정받아 선배의 권유로 조소과를 택해 조각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씨는 『공간에 대한 표현이 무궁무진해 들어갈수록 재미를 더 느끼게 되는 장르』로 조각을 평가한다. 지난 91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조각부문 특선에 이어 92·93년 연달아 중앙미술대전 특선을 따냈고 올해 서울현대조각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으로 4년 연속 큰상을 거머쥔 셈이다. 오는 11월쯤 첫 개인전을 계획중이다. ◎심사평/물질의 통합과 총체적 이해 돋보여/인간에 관한 실존적 해석 전면 부상 제9회 서울현대조각공모전에는 93명이 1백점을 출품하여 이 가운데서 61명의 62점이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서 58명의 59점이 최종 입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아홉번째의 공모전을 맞으면서 출품작가들의 주제와 방법에 있어서 이미 하나의 뚜렷한 성향이 드러나고 있다.특히 금년의 경우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지지 않았나 생각된다.주제의 설정에 있어서 자신의 내면적 정황을 직접 토로하며 전설과 역사의 담론을 오늘의 시점에서 재인용하거나 인간에 관한 실존적 해석을 시도하되 사회내(내)존재를 분석하며 차용된 오브제의 변용을 통한 사물의 의미에 대한 재검토가 전면에 부상되고 있다. 방법적 측면에서는 복합 재료들의 합성을 시도함으로써 물질들의 통합과 총체적인 이해가 돋보이는 가운데 병렬,이음,엮음,중첩에 의한 여러 기법들이 시도되었으며 이 기법들이 앞서의 주제들을 인간과 역사에 관련된 서술과 담론 나아가서는 패러디적 변용을 위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여기에는 물론 곤충,인간의 생체,성,기계,전자매체,신화적 사물들이 소재로 다루어지고 이것들을 소화해냄으로써 작품의 성공과 실패가 가늠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바로 본 심사위원회의 시각은 주제와 방법에 있어서 다양한 성공사례들을 찾고자 하는데 강조를 두었다. 특선작 5점과 대상및 우수상으로 선정된 작품들은 이 점에서 몇가지 모범사례들이라 할 것이다.대상으로 뽑힌 김무기의 「실존의 유추」는 인체의 부위 형상들을 해체적 방법으로 재결합함으로써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고 있다.그는 인간의 존재론적 허무를 드러냄에 있어서 동과 돌의 절단된 단위들을 병렬식으로 처리하되 병렬된 부분들의 이음새와 각 부위의 형태및 재료의 처리에 있어 뛰어난 수준을 견지하였다.우수상으로 선정된 정길택의 「정신의 습속에 관하여」는 인간사회에 내재된 성(성)을 주제로 다루면서 육체와 정신으로 분리시킨 형상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방식을 취하였다.통합하는 과정에서 돌의 매스들이 세워지고 눕혀지며 휘어지는 제 형태들의 형상과 패어지고 돌출되는 이미지자태의 질감적 처리가 유연하고 균형을 유지하여 전체적으로는 돌을 매개로 한 풍경적 자태를 연출하였다.다섯점의 특선작들은 이 방면의 또다른 5가지의 범례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심사를 마치면서 이러한 최근의 조각어법들이 이 시대의 새로운 조각예술의 확고한 양식으로 설정될 수 있도록 앞으로 보다 더 치열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 손잡고 줄선 흑백인 “새세상 한마음”/남아공 자유총선 마지막날표정

    ◎IFP,한때 탈퇴선언 번복 해프닝/국제공항서 차량 또 폭발… 19명 부상/곳곳 부정시비… 역사적 선거 먹칠 ○…남아공총선 둘째날인 27일의 투표는 아침 일찍 요하네스버그국제공항에서 차량폭탄 폭발로 19명의 부상자가 나는 불상사와 함께 시작됐다. 전날에 이어 여전히 투표용지의 도착지연으로 투표개시가 몇시간씩 지체되는 투표소들이 속출.또 어떤 투표소에서는 잉카타자유당(IFP)란이 그려진 스티커가 없는 투표용지들이 많아 중단되는 사태도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그런가 하면 또다른 투표소에서는 예상치 않은 인파가 몰려 준비한 투표용지가 바닥나자 중간에 긴급추가신청을 하는 소동을 피우기도.이같은 사태는 많은 유권자들이 공휴일을 맞아 모처럼 경관좋은 백인지역에서 소풍삼아 투표를 하려고 몰려든 데도 원인이 있는 듯.유권자들은 투표소마다 비치돼 있는 자외선검색기 덕분에 거주지에 상관없이 전국 어느 곳에서든 신분증만 있으면 투표할 수 있게 돼 있다. ○…망고수투 부텔레지 인카타자유당(IFP)당수는 자신의 당이 이번 선거에서저질러진 선거부정의 최대 피해자라면서 총선탈퇴를 위협하고 나섰다. 27일 기자회견을 요청,투표소에 IFP란이 그려진 스티커들이 없어서 스티커없는 투표용지로 투표가 진행된 바람에 자신의 지지자들이 IFP에 투표할 수 없었다면서 중립선거위원회(IEC)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한 만델라 ANC의장도 역시 이번 선거공정성 훼손에 우려를 표명했으나 부텔레지 IFP당수의 선거탈퇴위협은 너무 지나친 반응이라고 비난했다.IFP를 3위로 밀어내고 ANC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의석확보를 기대하고 있는 국민당의 데 클레르크대통령도 『나는 어떤 정치지도자라도 현단계에서 그같은 위협을 늘어놓아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비난에 가세했다. 정치평론가들은 부텔레지가 총선개시 막바지에 불참결정을 번복,이미 인쇄된 투표용지에 추가로 스티커를 부착하게 된 것이 화근이라고 말하고 이같은 차질이 빚어진 것은 그의 탓이라고 논평했다. ○…남아공총선 이틀째를 맞아 여기저기서 선거부정시비가 제기되면서 총선관리를 맡은 독립선거위원회(IEC)의 무능과 조직성결여을 탓하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비평가들은 일부지역에서 IEC의 활동미숙으로 역사적인 이번 선거의 성공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요하네스버그 북부 교외의 여러 투표소에는 부유한 백인유권자들이 그들의 가정에서 일하는 흑인유권자들을 동반하고 나와 함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16년간 백인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해온 흑인 유니스 마다베다베씨는 이날 안주인인 신디 메나체씨와 함께 투표소에 나와 다른 4백여명의 흑·백인들이 늘어선 줄 뒤에서 정답게 투표차례를 기다렸다. 마다베다베씨는 이번 총선으로 「새로운 남아공」이 실현되길 기대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도시 외곽 흑인거류지에 살고 있는 자신의 자녀들도 도시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었다.
  • 대불공사 관련자 오늘중 소환 조사/상무대의혹 수사

    상무대사업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형사1부(이동근부장판사)는 19일 동화사 대불공사비의 정확한 규모를 밝히기 위해 불상조형공사를 맡았던 불상기능보유자 박모씨(45)등 공사관계자들을 20일중 소환,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당초 대불사업 설계감리회사인 우리건축대표 김태조씨가 추정한 대불공사비 40억원과 이들 업체들이 대불공사 대금으로 실제로 받은 금액이 일치하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와함께 10여개 시공업체의 경리장부등 관련자료를 넘겨받아 동화사측이 제출한 공사비 내역서와의 대조작업도 벌이고 있다.
  • 자재·인건비 포함 총120억 규모/대불공사비 어디에 얼마들었나

    ◎불상·좌대 석재비 10억… 광장 화강암 블럭 10억원/대전­기반조성 60억 들어… 완공까진 더 늘어날듯 대구 동화사 통일약사대불 조성사업에 소요된 공사비는 과연 얼마이며 또 상무대 관련 조기현씨가(56·구속중)가 시주했다는 80억원은 어디로 갔을까. 세인들의 관심이 모아진 통일약사대불에 들어간 공사비용을 역추적한 결과 현재까지의 공사비 전액은 1백20억원 규모로 현철승려가 주장하고 있는 1백57억여원에 비해 30억여원이 부족하다. 공사비 내용을 살펴보면 전북 익산지역에서 출토되는 국내 최고급 화강암인 황등석 3천여t(80㎏당 6만원선)이 사용된 불상및 좌대의 경우 운임비를 포함 석재가격이 1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나 대불용 석재는 서원장이 직접 구매했으며 일부에서는 현물 시주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 경남 거창지역 화강암(80㎏당 4만원)을 사용한 불상앞 17m 높이의 석탑 2기와 사자상·석등등 석조물 조각비및 원석구입에 10억원,팔부신중·사천왕상등이 조각될 통일대불 뒤편의 높이 10m,길이 1백50m의 병풍석공사에는 10억원이 산정됐다. 이밖에 통일대불앞 광장 3천여평에 1㎡당 12만원선의 화강암을 깔아 10억여원이 들었다. 이와함께 직영인부 20여명의 임금및 식대와 공구비·주변 조경공사등에 10억여원이 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처럼 통일대불 불상과 관련한 사업비를 역추적한 결과 대불공사에 60억원미만,통일대전 및 기반조성사업에 60억원미만,운영비 등에 10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동화사 대불공사에는 현철승려가 주장한 1백57억여원보다 20억∼30억원이 모자라는 1백20억∼1백30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동화사측이 대불공사 착수 당시 대구시에 제출했던 건축허가서 등에 책정한 당초 공사비 1백34억원보다 10억여원이 모자라는 것이다. 특히 1백57억원이 사업비로 모두 투자됐다고 밝혔으나 통일대전을 비롯,관련공사 상당부분이 현재까지 마무리되지 않아 공사비 차액은 더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전원장이 이 공사의 전분야에 걸쳐 직접 관장해 온 만큼 잠적중인 서전원장이 직접 주고받은 대규모 시주금 및 석재 등의 현물시주 규모 등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는한 80억원의 행방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상무대 국정조사/예상밖 증인 축소… 순항 가능성

    ◎「발동」 앞둔 여야분위기/물증 없는데다 「당내악재 가능성」 부담/여선 “본격 조사땐 야쪽이 말릴것” 자신 상무대 공사대금 일부의 정치자금 유입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와 관련,여야가 증인채택등을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민주당이 14일 노태우전대통령을 비롯,최형우내무부장관과 서석재전의원을 증인채택 대상에서 제외할 뜻을 시사함에 따라 별다른 마찰 없이 순탄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민자당은 여전히 『뒤져봐야 나올 게 없다』면서 느긋해하고 있다. 이같은 국면전환에 대해 정가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내부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자당◁ 14일 상오 김종필대표가 주재한 고위당직자 회의에서는 정면대응 원칙과 민주당의 증거 없는 증인요구는 수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 그러나 내심 부담을 느끼고 있던 노전대통령,최내무부장관,서전의원등에 대해 민주당이 「꼬리를 내리는」 움직임을 보이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특히 최장관과 서전의원 문제는 계속 거론될수록 여권이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그러나 민주당이 이들의 결백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돌연 방향전환을 하자 당연한 결과로 평가하면서도 무척 반기는 분위기. 민자당은 민주당의 이같은 모습을 크게 세가지의 이유로 분석. 첫째 당국이 의혹이 제기된 여권인사에 대해 조사한 결과 무고함을 확인했고,반면 민주당은 이를 뒤집을 만한 물증이 없다는 것.군 특검단과 검찰의 수사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의혹을 『민주당이 해봐야 얼마나 캐내겠느냐』고 전망. 둘째 민주당이 내부 연루자가 분명히 없음을 자신하지 못하는 것도 안도감을 주는 대목.즉 상무대이전사업의 무대가 광주이고,사퇴한 서의현총무원장이 김대중씨의 아·태재단 고문이라는 것등의 사실 때문에 내부 문제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관측.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조사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그쪽에서도 말릴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같은 배경. 마지막으로 이 사건이 6공 때의 일로 현정부와는 무관하다는 여권 핵심부의 생각도 이를 뒷받침.그러나 이는 자칫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심스러운 대목. ▷민주당◁ 국정조사권발동에 대해 원칙적으로 환영하면서도 거둬들일 수확에 대해서는 짐짓 자신하지 못하는 분위기. 특히 지금까지의 주장과 달리 여권핵심인사의 개입여부와 관련,「터뜨릴 만한」 호재를 찾지 못해 내심 고민하는 모습.이에 따라 공공연하게 거론됐던 노전대통령과 최내무부장관,서전의원에 대한 증인선정도 불투명한 상황.정대철 상무대진상조사위원장은 이와 관련,『이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다』고 말해 기세등등하던 모습에서 한발 물러서는 인상. 김대식총무도 『얼마만큼의 증인을 확보하느냐가 이번 조사의 관건』이라면서도 『구체적으로 누구를 증언대에 세울지에 대해서는 당론으로 정한 바 없다』고 말해 여권핵심부를 공략할 실탄이 없음을 간접 시사. 민주당은 15일 법사위와 진상조사위 연석회의를 열어 증인선정문제등 조사계획서 작성을 위해 협의할 예정이나 당내 인사의 관련설등 「잡음」때문에 회의분위기는 상당히 위축되리라는 것이 당안팎의 전망 한편 여권이 국정조사에 흔쾌히 응한 배경과 관련,「야당에도 약점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은근히 동교동을 겨냥한 일부의 시각에 대해 『그쪽에서는 펄쩍 뛰고 있다』(문희상대표비서실장)며 강력 부인.그러나 한 의원은 『지난 대선때 서의현총무원장이 20여명의 정치인과 접촉했다는 설이 있다.그 사람들이 전부 여당인사였겠느냐』면서 의외의 악수가 터져 나올 수 있음을 경계. ◎심기 불편한 연희동/“또 6공이냐” 볼멘소리… 구설수 신경/노 전대통령 개입했을 개연성도 일축 노태우전대통령의 연희동주변 공기가 다시 흐려지고 있다.상무대 공사대금의 정치자금 유입의혹 때문이다. 최근들어 여권 핵심부는 이 문제에 대해 「6공 때의 일」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잘못이 있더라도 「6공인사」가 간여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이에 대해 노전대통령측은 『또 6공이냐』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한마디로 불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현우전청와대경호실장과 이진삼전체육부장관이 구설수에 오르는데 대해서는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물론 연희동측 인사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그러면서도 두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상무대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국정조사권의 발동을 여권이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나,여권 인사들의 입을 통해 두사람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한것도 이와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사실이 그렇다면 마냥 자신할 수만도 없다는 점에서 고심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전실장과 이전장관은 상무대공사의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거액을 챙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전실장은 주변 인사들에게 『그런 일 없다.신경 쓸 것 없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연희동의 한 인사는 『최근 이전실장의 모습에서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전장관은 지난 1일 미국으로 출국,한 때 도피성 외유라는 의심을 받았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1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그는 「바람이나 쐬려고」 지난 1월20일 미국으로 갔다가 항소심 첫 재판을 받으려고 지난달 30일 잠시 귀국했었다는 것.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되면 귀국해 출두할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밝혔다. 연희동측은 노전대통령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무대 건으로 얘기되고 있는 동화사는 노전대통령의 생가와 가까워 노전대통령이 자라다시피한 곳으로 거기에 불상을 세운다는데 부정한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말로 일축했다.
  • 「시주금 80억」 전면 재수사/검찰,국조권 발동 따라

    ◎전동화사주지 곧 소환/공사비장부 확보·계좌 추적/청우 조회장·현철스님등과 대질신문 검찰은 13일 국회가 상무대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권을 발동키로 함에 따라 대구 동화사 통일 대불사업관련 시주금 80억원의 행방의혹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에따라 지난 11일 이 사건의 보강수사를 사실상 종결했던 서울지검 형사1부(이동근부장검사)는 대불사업과 관련,청우종합건설회장 조기현씨(54·구속중)로부터 시주금 80억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전동화사 주지 무공스님(59·대구 법장사주지)을 금명간 소환,주장의 진위와 진상등을 조사키로 하는등 재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검찰은 무공스님의 주장과 시주금 80억원 전액을 공사비로 사용했다는 당시 재무담당 현철스님,조씨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점을 중시,3자 대질신문을 벌이기로 했다. 검찰은 특히 무공스님이 공사비에 사용된 시주금의 입금장부가 있으며 공사비를 은행통장에 입금시켜 관리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문제의 장부를 확보,계좌추적을 벌일 계획이다. 검찰은 또 대불사업의 정확한 공사규모와 내역을 파악하기 위해 통일대전및 불상 제작에 참여한 설계사와 감리사,업체관계자등을 조만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80억원이 동화사에 입금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전동화사 재무국장 선봉스님도 조사하기 위해 「범종추」측에 출두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앞서 12일 무공스님은 『내가 주지로 있던 91년7월부터 92년8월까지 조씨가 대불공사에 시주한 돈을 전달받은 사실이 없으며 현철스님은 공사감독책임을 맡았을뿐 재정은 나와 선봉스님이 맡았다』며 『당시 공사비로 조성된 돈은 대구후원회 시주금 10억여원,시보조금 35억여원등 모두 45억여원으로 이중 35억여원이 공사비로 집행됐다』고 주장했었다.
  • 경주남산 행락쓰레기로 “신음”/현장고발:5(녹색환경가꾸자:38)

    ◎계곡마다 음식찌꺼기·깡통/불법분묘 5천기 방치… 훼손 부채질 옛 신라의 영산 경주 남산이 관리소홀과 행락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주 남산은 산세가 빼어난데다 경주유적의 절반가량을 품고있어 지난 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연간 20만∼30만명의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나 인파가 부쩍 늘어나면서 곳곳에는 이들이 버린 쓰레기와 인근 주민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훼손이 계속되고 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등산객들이 늘어나자 서남산 용장계곡의 경우 2㎞에 이르는 계곡은 온통 이들이 버리고 간 플라스틱 음료수병·깡통·휴지·비닐조각등으로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또 산자락 구석구석에는 밥을 지어 먹은뒤 버린 음식찌꺼기가 보기 흉하게 널려 있다.「쓰레기를 버리면 2백만원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표지판은 있으나 마나이다. 남산에서 가장 큰 좌불이 있는 상선암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조금 으슥한 상선암 뒤편 승방터와 전망대 주변에는 대·소변냄새가 코를 찌르고 상선암에서 삼릉으로 이어지는 하산길곳곳에도 담배꽁초·깨진채 버려진 병·과자봉지가 길바닥에 널려 있다.특히 선각육존불에서 내려보이는 계곡 아래 큰바위는 무속신앙인들의 소행인듯 바위 전체가 촛불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경주군 내남면 용장3리로 이어지는 와룡사와 천룡사 사이에는 그동안 10여가구의 민가가 있었으나 최근 이들이 산아래 마을로 이주하면서 버리고간 폐가가 허물어져 널려 있었고 그 주변에는 각종 생활집기와 비닐등이 널려 있어 보는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한 서남산 나정앞 김광사터 부근에는 언제부터인지 젖소 1백여마리를 기르는 대규모 목장이 들어서 자연훼손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통일전옆 서출지 부근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대형 불상·사자상·인물상이 파손된채 흉물스런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특히 국립공원이며 사적지인 남산에는 개인 분묘를 일체 설치할 수 없는데도 최근 몰래 무덤을 설치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 분묘수가 무려 5천여기에 이르고 있다. 남산성역화운동을 펴고 있는 부처님마을 남산사랑모임 회장 김덕수씨(43)는 이같은 분묘는 주요 유적지의 원형을 크게 훼손할 뿐 아니라 무덤 개설때와 성묘때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철저한 단속과 아울러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이들 불법 분묘를 하루빨리 옮겨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향토사학자 윤경렬씨(78·경주시 인왕동 268의3)는 『경주 남산의 환경오염 현상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10대 유적지의 하나인 경주자체가 멀지않아 흉한 몰골로 변해 버릴 것은 뻔한 일』이라면서 보다 적극적인 계몽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UR저지” 3만 평화시위/규탄대회/과격행동 자제… 큰충돌 없어

    ◎대학생 2백명 명동성당서 농성 돌입/춘천선 농민33명 한때 민자당사 점거 9일 서울등 전국 11개 도시에서 3만여명(경찰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문민정부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연대집회로 개최된 「우루과이 라운드(UR)밀실협상 규탄및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에서는 농산물 개방파고를 맞는 우리의 애타는 「농심」이 메아리쳤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무역질서 속에서 「국제적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는 대세론도 집회장 주변을 줄기차게 넘나들어 UR문제가 국제화·세계화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얼마나 넘기 어려운 시련의 고비인지를 절실히 나타내 주었다. 또 비교적 순조롭게 치러진 대회였으나 이날 서울시내 곳곳에는 「매국노」 운운 하는 과격한 표현의 포스터와 스티커도 나붙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서울의 경우 대회참가자들은 지난 2월1일 도심지역에서 벌어졌던 방화·폭력사태가 결국 UR반대 운동의 명분을 약화시켰다는 사실을 인식한 탓인지,대회가 끝난 하오 5시쯤부터 가두행진에 나섰으나 종전과 같은과격행동을 자제하고 평화시위를 벌여 경찰과 충돌은 없었다. 이들은 여의도까지 가두행진을 하면서 『온국민이 합심하면 개방저지 할수있다』『우리농민 다 죽이는 수입개방 저지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기도 했지만 주최측의 비폭력 호소에 호응,별다른 불상사가 없었다. 여의도광장 집회를 마치면서 대회위원장 장원석 단국대교수는 『오늘의 집회열기로 볼때 UR협상안의 국회비준 거부가 확실할 것 같다』며 『온 국민이 똘똘뭉쳐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대항하자』고 주창한뒤 폐회를 선언. 참가자들은 이어 학교·단체별로 해산했는데 김현준 한총련위원장등 60명의 학생대표들로 구성된 「구국단식농성단」을 비롯,2백여명의 학생들은 명동성당으로 가 농성에 돌입했다. ○…춘천시 공지천 야외무대에서 열린 이날 대회에 참가한 대학생과 농민등 5백여명이 집회를 마친뒤 가두 홍보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농민 33명이 하오 7시쯤 소양로 3가 민자당 강원도지부 사무실을 점거,30분동안 농성을 했다. 전국농민연맹 소속 회원인 이들은 민자당사를 점거한뒤 「민자당이 UR협정 국회비준 거부에 동참할 것」과 도지부장 면담 등을 요구했으며 학생과 농민 3백여명은 당사앞 도로를 점거한채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한편 이들은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되는 과정에서 심한 몸싸움을 벌여 영월군 농민회 선전부장 유경종씨(32)등 농민 2명이 머리를 다쳤으며 당사 출입문 유리창 1장이 깨졌다.
  • 백제의 불교미술(백제를 다시본다:10)

    ◎7세기초 반가사유상 “동양 최고” 평가/금동 등신불… 자비미소 살아있는듯/석불재료는 6세기 납석에서 화강암으로 발전/최초 금동불상은 6세기 선정인좌상… 공예기술 바탕 걸착 양산 백제는 비록 영토는 크지 않았지만 일찍이 그 문물은 동아시아에서 작으면서 빛을 발하는 금강석 같은 존재였다. 백제는 고구려와 거의 같은 시기의 서기384년에 불교를 중국의 동진으로부터 전해받았으나 불상이 본격적으로 조성된 것은 150여년이 지난 6세기초부터였다.한성시대(4세기초∼475년)나 웅진시대(475∼538년)에도 불교사찰들이 건립되었으나 아직까지 이 두 도읍지에서 백제불상이 발견된 예는 없다.그런데 웅진시대에는 양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양의 연호를 따서 대통사가 건립되는등 몇 유적에서 웅진시대의 기와가 발견되고 있다.또 최근 발굴된 무령왕릉에서는 묘실내부 전체를 연화문전으로 장식하고 왕과 왕비의 두침과 족침에 연화화생을 표현하는 등 극락왕생의 염원을 강렬하게 나타내고 있다. ○극락왕생 염원 표현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웅진시대에 예배대상인 불상이 마땅히 조성되었어야 한다.그러나 지금까지 공주지방에서 웅진시대의 불상은 단편조차 확인되지 않고있다.그 이유는 무엇일까.현 단계로는 어떠한 추측도 할수없다.고구려의 경우도 539년에 만든 연가칠년명금동여래립상이 현재로는 가장 오랜 불상이니 이로 미루어 백제도 6세기초,그러니까 다시 부여로 서울을 옮긴 사비시대(538∼660년)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불상의 조성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장 오래되었다는 서울 뚝섬에서 출토된 5세기의 청동제 선정인좌상은 백제것이 아니고 중국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받아들인 불상은 그와 같은 선정인불상인듯 한데 실제로 사비시대에 가장 오래되었다고 보이는 불상은 두 손을 배에서 모은 부여군 규암면 신리 출토 선정인좌상이었다.그 만듦새는 투박하고 서툴러서 인체를 표현하는 불상제작이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백제는 곧 그동안 축적된 금속공예기술을 바탕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중국의 북위 내지 동위시대의 불상양식을반영한 훌륭한 불상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즉 부여 정림사지 출토 납석제삼존불좌상,서산군 운산면 보원사지출토 금동여래립상,부여 군수리사지출토 납석제여래좌상과 금동보살립상,부여군 규암면 신리 출토 금동보살립상등이 그것이다.모두 백제의 초기 불상을 대표하는 것들이다.이들 불상은 힘있고 우아한 모습은 그당시 중국불상을 능가할 정도이며 더 나아가 백제 특유의 조형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부여 군수리사지출토 김동보살립상은 온화한 미소,날카로운 천의의 표현,적절한 신체의 비례등 자신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백제특유의 정채를 보여주는 백제불상의 백미라 할수 있다. 특기할 것은 백제는 일찍이 납석이란 석재를 써서 불상을 조각한 일이다.부여지방에 많은 납석으로 불상을 조각한 것은 중국에도 없는 일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백제가 처음이었다.납석은 희고 약간의 빛을 발하므로 백제인들은 옥석대신 납석을 써서 옥제불상의 효과를 내려한것 같다.또 납석은 그리 단단하지 않으므로 정교하게 조각할수 있었다.그리하여 백제인은 작은 불상뿐만 아니라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처럼 등신대의 납석제 불상까지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그러므로 거대한 납석덩어리의 네 면을 다듬어서 네면에 불상을 새긴 예산의 사면불은 백제의 석불로서는 기념비적이라 할만하다. 7세기에 접어들면 백제는 불교미술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660년 백제가 망하기까지 중국의 북재,수,초당의 불상양식을 반영하는 불상들이 만들어졌다.7세기초의 불상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저 유명한 국보83호 금동련화관사유상이다.북재에는 백옥으로 만든 20㎝내외의 작은 사유상들이 많이 조성되었으나 백제에서는 등신대의 크기로 만들어 독립적인 예배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백제인들은 사유상에 온갖 힘을 기울여 백제나름의 조형성을 살렸다. ○손가락마다 생동감 아마도 이 금동사유상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상가운데 가장 위대한 걸작이라 할만하며 더 나아가 동양의 그당시 고대불상에서 이에 견줄만한 것이 없다.소년의 애띤 얼굴엔 잔잔한 자비의 미소가 흐르고 검지와 중지를 살짝 뺨에 댄 오른손가락과 왼쪽 무릎에 올린 오른 다리의 발목에 내린 왼손가락은 마디 마디가 생동감에 차있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대좌에 느러뜨려진 보살의 옷자락은 자유분방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가 미풍에 약간 휘날리듯 표현되어 있어서 역시 생동감을 주고있다.이 사유상은 이와같이 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으로 생명력을 살리고 있어서 하나의 예술품으로 영원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흔히 이 사유상은 일본의 경도 광륭사 목조사유상과 비교되고 있다. 두 불상은 비슷한 점들이 많아 광륭사상이 백제에서 건너간 것이라 하나 다른 점들도 많아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어서 연구과제로 남아있다. 한편 7세기에는 화강암이란 새로운 재료를 써서 불상을 조각하였다.화강암 역시 그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조각재료로서 채택하지 않던 소재인 것이다.화강암은 경도가 강하고 입자가 굵어서 표면처리를 매끄럽게 처리하기 어려우므로 조각하기에 부적당하였다.그러나 백제인들은 우리나라에 많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석탑을 건립하고대형불상을 조성하였으니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 백제가 처음으로 착상한 것이다.불상의 경우 전북 정읍 신천리 석조여래립상이 원각상으로 조각되었을뿐 대체로 암벽에 불상을 새긴 마애불이 조성되었다.말하자면 처음에 납석을 재료로 썼으나 부서지기 쉬운 석질이므로 화강암이란 재료를 선호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신앙 자유롭게 표현 그 대표적인 예가 태안 마애삼존불과 서산 마애삼존불이다.태안 삼존불은 보주를 손에 든 작은 보살상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우람한 모습의 아미타상과 약사여래를 둔 삼존형식인데 이러한 도상은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이다.또 서산 삼존불도 중앙에 여래립상이 있고 좌우에 사유상과 보주봉지보살립상이 협시하고 있는 특이한 도상이다.두 예가 모두 조각기법이 우수하고 독특한 도상이어서 7세기에 이미 독자적 조각기법을 개발하고 백제특유의 신앙내용을 자유롭게 표현하였음을 알수 있다. 백제는 중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독창력을 발휘하여 화강암이라는 재료로 석탑형식과 양식을 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불상에 있어서 백제나름의 형식과 양식을 발휘하였다. 백제미술은 단순하고 단아하며 정밀하고도 생명감이 있다.또 그 풍토성처럼 부드럽고 고요하여 적조미가 있다.그러나 애석하게도 백제는 그 문화가 절정에 이르렀을때 망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백제미술은 요절한 천재와 같다. ◎반가사유상/삼국 독자적 신앙배경서 유래/싯다르타태자 사색 모습… 2점 국보 지정 삼국시대 불상의 형식은 불교 수용경로에서처럼 중국의 유행과 깊은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6세기 전반 중국에서 성행하던 미륵·석가는 6세기 후반에 삼국의 불상에 반영됐다.상당한 시간적 거리를 두고 들어왔다. 그러나 불교가 삼국의 대중적 신앙으로 발돋움한 7세기에는 중국의 유행과 관련이 없는 독자적인 불상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불상이 있다면 반가사유상이다.반가사유상은 중국에서는 거의 소멸해버린 서기 600년을 전후해 삼국 모두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 이유가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불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우리의 독자적인 신앙적 배경이 아닌가 한다.반가사유상의 유행에 대한 미술사학자들의 견해는 대개 이런 쪽으로 일치하고 있다. 반가사유상은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싯다르타태자의 모습이다.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통찰의 자세를 조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싯다르타태자는 이같은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됐다.그러나 사유상은 인간을 구원하는 절대자는 아직 아니다.그럼에도 중요한 예배의 대상이었다.한국인은 「깊은 사색을 통한 깨달음의 성취」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절대자가 되기 이전 사색의 단계까지를 서슴지 않고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시대 사유상에 대한 숭앙은 세계미술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조각품들을 남겼다.바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78호 「금동일월식반가사유상」과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국보 83호 「금동삼산관반가사유상」이다.
  • “종단 모순점 개혁 하겠다”/3연임 조계종 서의현총무원장

    ◎“폭력사태 죄송… 「동화사 80억 증발」 모르는 일” 승려들간의 유혈사태와 공권력 투입이라는 불상사 끝에 30일 총무원장으로 다시 뽑힌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은 『선출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불미스런 일에 대해서는 2천만 불자와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도 자신이 선출된 것을 『종회가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교권을 지켜내 승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종단 내부의 문제에 공권력을 끌어들인 이유를 『종단을 폭력과 혼란에서 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신임 총무원장으로서 종단운영 계획은. ▲우선 내년 1월 시작될 케이블TV 불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이 당면과제이므로 이를 차질없이 진행시켜 나가는데 역점을 두겠다.또 종단이 모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법에따라 개혁을 추진해 나가겠다.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범종추)측에서는 종헌·종법에 「총무원장직을 중임할 수 있다」는 규정이 한차례의 연임만 가능하다는 의미라며 서원장의 3선이 무효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데. ▲그 규정을 3선에 대한 제한으로 볼 수 없다.따라서 3번째 총무원장을 맡는게 법에 어긋나는 것도,장기집권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파를 수용해 화합을 이루는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나. ▲그들의 좋은 뜻은 받아들이겠다.그러나 폭력사태는 이번을 계기로 뿌리뽑아야 한다.종회에서 제안한대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사태의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것이 우선이다. ­동화사 불사건립기금 80억원이 증발했고 그일에 서원장이 관련됐다는 주장이 있다. ▲내가 동화사 주지가 아닌데 어떻게 관련됐겠는가.사실무근이다.나에게 돈을 주었다고 지목된 조기현신도회장(청우건설회사 대표)에게 들어보니 공사자금의 일부를 다른 지역의 공사비로 충당하다보니 돈이 두달여동안 비었던 적은 있었다고 한다. 서원장은 기자회견을 마치면서도 자신이 부덕한 탓에 종단 내부에서 이번같은 불상사가 일어났다며 다시한번 불자와 국민 앞에 사죄한다고 말했다.
  • 불자들 왜 이러는가(사설)

    한국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스님들이 사찰안에서 집단난투극을 벌여 수십명이 중경상을 입는 불상사가 빚어졌다.29일 총무원이 있는 서울의 조계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스님들이 웃통을 벗어젖힌 채 발길질을 하고 각목을 휘두르는가 하면 몸에 휘발유를 뿌리면서 분신자살을 위협하는 처절한 모습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다.이번 사태는 서의현총무원장의 진퇴문제를 둘러싼 종권다툼에서 비롯됐다.총무원집행부 스님들과 다수의 종회의원 스님들이 30일 임시종회를 열어 서총무원장의 3선연임을 강행하려는 데 반해 종단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재야스님들이 이를 실력으로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폭력대결로 치닫고 만 것이다. 종회를 앞두고 총무원에서 농성을 벌인 재야스님들은 서의현총무원장이 종단개혁에 뜻이 없을 뿐 아니라 총무원을 비리의 온상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으며 총무원측은 불교방송국설립,중앙승가대학의 각종 학교승격등 그동안의 업적을 들어 지금으로서는 그가 불교중흥의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우리로서는 어느 주장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세속을 떠나 발심출가한 스님들이 난투극을 벌이고 신성한 사찰을 전쟁터로 만든 것은 어떤 변명도 용납될 수 없는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조계종은 총무원장선출이나 본사주지 임명때 마다 말썽이 따랐고 유혈극도 불사하는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쏟고 있는 일부 파렴치스님들의 행위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 조계종은 줄곧 사회의 지탄을 받아왔으며 이번 난투극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고 말았다. 서의현총무원장을 지지하는 총무원측은 30일 예정대로 종회를 강행,서원장의 연임을 가결했다.그러나 이것으로 사태가 수습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오히려 보다 심각한 파국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이번 폭력사태로 교구본사들이 들먹거리고 있는데다 서원장의 도덕성문제까지 제기되고 있어 자칫하면 법정싸움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지금은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각문중의 원로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종단의 제도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조계종의 분규는 총무원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데에도 원인이 있는 만큼 종단행정체제를 총무원장중심제에서 본사중심제로 바꾸는 문제를 검토해야 하며 스님들의 자질향상을 위한 교육제도의 개혁도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파사현정의 기개와 수도의 기풍이 진작되지 않는 한 종권다툼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벼슬은 닭벼슬만도 못하다」는 승가의 속담이 있다.온갖 세속적인 것을 박차고 출가한 스님들이 다시 세속적인 감투에 연연함을 경계한 데서 나온 말이다.모든 스님들이 명심해야 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서 총무원장 연임 싸고 조계종 집단 난투극

    ◎경찰,농성스님 100여명 연행/수차례 각목대결… 30여명 중경상/서의현원장 사퇴의사 표명 불교 조계종 종단개혁과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을 결정할 30일 임시종회를 하루 앞둔 29일 서총무원장을 지지하는 승려측과 반대측 사이에 폭력사태가 빚어져 3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러나 서총무원장측은 30일 임시종회를 강행,75명의 스님가운데 과반수출석,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제27대 총무원장을 선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양측의 마찰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경찰은 이날 자정을 기해 조계사안에 있던 1백여명의 서원장 반대파 스님을 모두 강제연행하는 동시에 지지파 스님 3백여명을 별도로 격리시켰다. 이날 폭력사태는 상오6시10분쯤 서총무원장을 지지하는 일반인 복장의 청년 1백여명이 지난 26일부터 서총무원장의 연임을 반대하며 경내에서 농성중이던 범승가종단 개혁추진위원회(범종추)소속 승려 50여명을 밖으로 몰아내려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범종추 소속 혜경스님(32·동국대 경주 석림회)은 『총무원 청사앞에서집행부의 청사진입을 저지하며 농성을 벌이던중 청사 2·3·4층에서 소방호스 5개로 물을 뿌려 우왕좌왕하던 사이 갑자기 각목을 든 일반인 복장의 청년들이 들이닥쳐 30여분간 집단난투극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하오 3시50분쯤에는 청사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범종추승려 50명이 청사안에 있던 총무원 승려 3∼4명을 각목과 주먹으로 마구 때려 상처를 입혔으며 청사안에 있던 승려들은 유리창을 깨고 소화전을 뿌리며 이에 맞섰다. 또 대웅전앞 견지동 출입구쪽에 있던 동화사 스님 20명이 경내로 들어가려하자 범종추 승려들에 의해 저지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양측 승려들끼리 대치하던 하오6시33분쯤에는 밧줄을 이용해 3층으로 올라가던 김병민승려(37·도각스님)가 돌에 맞고 쓰러져 중상을 입기도 했다.또 범종추 승려들은 하오6시35분쯤 경찰이 9개중대 1천여명을 동원,경내로 들어오자 총무원 5층 청사의 셔터와 출입문을 뜯어내고 들어가 2∼5층에서 농성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이 진입하자 중앙승가대 3년 덕현스님등 3명이온몸에 시너를 부으며 『물러가지 않으면 분신하겠다』고 위협하는 한편,물과 시너를 뿌리며 한때맞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종로경찰서 신상철경사가 승려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날 범종추소속 금강스님(29)등 34명을 기물파괴등의 혐의로 연행,조사중이다. 이에 앞서 양측승려들은 이날 하오5시50분까지 3차례에 걸쳐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이날 협상에서 범종추측은 서총무원장의 즉각사퇴및 원로회의에 모든 권한 위임등을 서총무원장 지지파에게 요구했다.반면 서원장측은 『30일로 예정된 임시종회를 취소하고 사퇴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으나 『당장 사퇴와 총무원 청사를 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건국대 성태용교수등 36명의 신도들은 상오9시 덕왕전앞에서 『종단의 파행운영과 분규조장,상무대공금유용등으로 불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서총무원장의 3선 연임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 백제인의 불교신앙(백제를 다시본다:8)

    ◎성왕이래 융성… 불국정토건설 희구/미륵신앙 대유행… 미륵사는 그 중심/6세기 불경·불상 이미 국제적 수준 「백제에는 승려와 사탑이 매우 많다」.주서의 이 기록처럼 백제에는 불교가 성했고,당시 사람들의 생활은 불교신앙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풍진세상 살면서도 때묻지 않는 연꽃의 그 맑은 마음 배우기를 희망했다.그리고 미륵불이 출현하는 아름다운 불국토를 희구하면서,불전에 향을 사르는 공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그들이 꿈꾸던 행복은 서산마애불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웃음같은 것이기도 했다.불국은 향기로 가득한 나라다.계의 향기,삼매의 향기,그리고 해탈의 향기가 가득 피어나기를 불전에 기원하던 백제인의 염원은 최근에 출토된 아름다운 향로에도 스며있다.백제의 향로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또 그 작은 향로에 사람과 동물이 함께 있고,음악이 또 거기에 있음은,자신을 향기롭게 닦고 세상을 향기롭게 꾸미려던 진실된 마음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향로에도 불심스며 백제는 한강 유역에 도읍하고 있던 4세기 후반에 이미 불교를수용한다.그러나 웅진시대를 지나 사비로 천도할 무렵까지의 기록은 거의 없다.다만 성왕 이후의 기록이 약간 전할 뿐이다.사비시대라 할지라도 불교에 관한 기록이 적고 유물과 유적 또한 흔치 않다.그나마 단편적인 자료가 남아 이 시기 백제불교가 국제적 수준의 문화를 소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엿보게 한다.백제 구법승의 발길은 중국은 물론이고 멀리 인도에까지 미쳤다.사비성에는 인도의 패달다삼장이 겸익을 따라와서 율부번역에 참여했다.선신니등 일본의 구법유학승이 와서 백제불교를 배웠다.사신과 구법승의 중국 내왕을 통해서 부지런히 선진의 문화를 수용했고,동시에 신라 및 일본 등지로 그들의 불교문화를 전파했다. 겸익이 인도의 구법유학에서 돌아온 것은 성왕 4년(526년)이다.왕은 그를 흥륜사에 살게하고 28명의 고승과 함께 역경에 종사토록했다.율부 72권이 번역되자 담욱과 혜인이 율소 36권을 저술한다.겸익의 인도 유학과 율부의 번역은 백제불교의 폭과 역량이 국제적인 것이었음을 일러준다.백제불교는 계율을 중시했다.율부의 번역과 주석이 그 대표적 사례다.이밖에도 법왕은 살생을 금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를 놓아주며 고기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불사르라는 명을 내릴 정도였다.법왕이 살생을 금한 것은 불교의 윤리를 국민의 생활 속에 심어주려는 노력의 하나로 풀이될수 있다.이 세상에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다.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자신은 더없이 소중하다.불살생은 자비를 적극적 실천하는 일이다.우리의 일상생활을 제멋대로 방치해둔채,새로운 인생의 행로나 역사는 열리지 않는다.계의 정신은 나쁜 행위를 막고 대신 훌륭한 일은 권장하는데 본래의 뜻이 있다.백제불교가 계율을 중시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겸익,인도 불교유학 미륵사,미륵불광사 등의 사찰이 세워졌던 백제사회에는 미륵신앙이 유행하고 있었다.AD634년에 낙성된 미륵사는 백제 미륵신앙의 중심 사원이다.전륜성왕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했던 백제 왕실의 원찰이기도 했다.이 절의 창건연기설화에서 용화산 아래의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했다고 한 것으로 보면 미륵사는 미륵하생신앙을 토대로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할때 이 세상은 낙토로 변하고 나라는 깨끗이 잘 정돈되어 온갖 재난은 사라진다고 했다.그리고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살 것으로 믿었다.미륵신앙은 유토피아적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과 희구라는 특징을 지닌다. ○전륜성왕의 이념 구현 그러나 미륵불의 세상은 사람들의 노력과 공덕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미륵신앙은 희망의 신앙이거니와 끊임없는 정진의 신앙이기도 하다.아무튼 백제인들은 불국토의 건설을 꿈꾸었고,그것은 미륵사의 창건으로 표출되었다.경전은 미륵불이 이 세상에 출현할때 샹카라는 전륜성왕이 등장하여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린다고 기록하고 있다.이같은 내용을 감안하면 백제 왕실의 미륵사 창건은 정치적 의도를 담았다고 하겠다.그것은 불교적 정치이념인 전륜성왕사상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전륜성왕은 무력이나 힘에 의한 지배자가 아니라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서 천하를 통일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였다.왕실에서는 전륜성왕사상을 빌려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없지 않았겠지만 전륜성왕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려 했던 욕구 또한 강했던 것이다. 백제의 승려들에게는 법사·율사·선사·주사 등의 호칭이 사용되었다.불교의 여러 분야중에서 어느 하나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승려가 있었던 것이다.경전은 거의 대부분이 유통되었겠지만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으로 열반경·법화경·유마경·반약심경 등이 있다.그리고 천대학이나 삼론학에 조예가 있는 고승도 있었다.현광은 위덕왕때 진나라에서 남악 혜사로부터 법화경을 배우고 법화삼매를 증득했다.귀국 후에는 웅천에서 교화했다고 한다.그는 중국에서도 명성을 떨쳤고 귀국 도중에는 용궁에 초청받아 설법했다는 설화가 전할만큼 유명했다.혜현은 수덕사에서 법화경과 삼론을 강의했고 일본으로 건너간 관륵도 삼론학에 밝았다.의영이 약사본원경소와 유가론의림을 저술했다고 하지만 전하는 것이 없다. ○일 아스카문화에 기여 백제에는 대통사·왕흥사·미륵사 등의 큰 절이 있었다.최근의 발굴로 그 규모가 밝혀진 익산의 미륵사는 삼국 중에서도 가장 큰 절이었다.신라에서는 선덕녀왕때에 황용사에 9층탑을 건립하고자 하여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를 초청해간 일이 있다.이는 백제의 건축 기술이 신라에 비해서 앞서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많은 백제의 고승·기술자 등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아스카문화를 일으키는데 기여했다. 일본 고대국가의 정비에 정신적 이념을 제공한 것도 물론 백제다.성왕30년(552년)에는 일본에 본격적으로 불교를 전했다.위덕왕 24년(577년)에는 경론과 율사와 선사 등을 보냈다. AD588년에는 불사리와 사문과 화공 등이 건너갔는가 하면 AD595년에 도일한 혜총은 쇼토쿠태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가.AD602년에 일본으로 간 관륵은 최초의 승정이 되기도 했다. 백제가 신라에 무력으로 병합된 이후인 신문왕때에 국로가 되었던 경흥이 백제의 웅천주 출신이었음은 주목할만 하다.그는 유식학의 대가로 당시의 대표적 고승이었다.이처럼 융성했던 백제불교는 통일신라의 새로운 불교발전에도 공헌했다.삼국은 오랜 분열과 대립으로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많은 이질적인 것이 있었지만 불교라는 공통의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에 민족 융합이 가능했다.우리 민족문화속에 살아 숨쉬는 백제 불교문화의 향기는 최근에 발견된 향로에서 아직도 풍기고 있다. ◎백제불교의 역사/384년 동진서 전래… 일에 전파/사비시대 정림사·금강사 등 많은 사찰 건립 백제불교에 관한 기록은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이는 「삼국사기」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삼국사기」는 AD384년 백제에 처음 불교가 들어왔다고 기록했을뿐 그 이후 성왕 19년(AD541년)까지 불교관계 기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있다. 그러나 성왕 19년에 불교기사가 다시 등장한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그 해는 「삼국사기」기록대로라면 불교전래 1백57년이 되는 해이고,시기적으로는 사비천도 직후에 해당한다.그렇다면 성왕 때부터 불교가 융성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실제 사비시대에 백제불교가 대단히 번창했다는 사실은 근래 부여일대에서 발굴된 절터에서도 확인되었다. 군수리절터를 비롯,동남리절터,정림사절터,김강사절터 등이 그 대표적 발굴사례다.그리고 부여에서 멀리 않은 익산 미륵사절터는 발굴결과 사비시대 최대의 가람으로 밝혀졌다.이밖에 사비시대 백제고토에 해당하는 지역에 많은 절터가 산재해 있다.또 도기가마와 기와가마에서도 불상과 연꽃무늬기와,연꽃무늬상자형벽돌 등의 불교관련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은 침류왕 원년(AD384년)이다.백제는 침류왕 원년 7월에 동진에 사신을 보냈기 때문에 백제에 처음 불법을 전한 호승 마라난타는 귀국길에 오른 백제사신과 함께 왔을 것으로 보고있다.그리고 나서 오랫동안 불교관계기사가 나오지 않지만,사비시대가 개막되면서 백제불교는 국제화하는 양상을 띠게된다.구법승들이 중국은 물론 서역까지 진출하는가 하면,일본의 구법승들은 백제를 찾았던 것이다. 삼국 가운데 최초로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나라는 백제다.그 시기는 AD552년이다.고구려보다 32년 먼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백제불교에 관한 기록은 일본쪽에 더 많이남아있다.
  • 티베트 서쪽끝 피앙·동가지역/대규모 불교석굴유적 발견

    ◎벽화·고대문자 등 「돈황」 버금/실크로드 주요거점 추정… 역사 바뀔수도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티베트지역은 라마불교가 융성한 곳으로 수많은 불교유적이 널려 있는 곳이다. 이 티베트의 서쪽 끝 「피앙」과 「동가」지역 뒷산에서 2년전 새로 발견된 대규모 불교석굴유적이 티베트,더 나아가 아시아 불교문화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풍부한 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중국불교사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 서안의 진시황릉처럼 아주 우연하게 발견된 이들 유적은 해발고도가 4천m나 돼 지금까지 발견된 석굴유적으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티베트의 성도인 라사로부터 2천여㎞ 떨어진 곳으로 차로 1주일이나 걸리고 도중에 해발 5천∼6천m의 고지대를 넘어야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견 2년이 지났지만 본격적인 탐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 유적은 중국문헌등에 단 한줄도 언급이 없는 곳이어서 50년전 티베트지역을 답사한 이탈리아나 최근 이지역을 조사한 중국의 학술탐험대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곳이다. 뒤늦게 발견된 만큼 보존상태도 양호하다.특히 티베트인들은 사원을 중창할 때마다 원본위에 개칠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곳 유적들은 후세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것으로 조사돼 제작당시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이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석굴의 구조는 주로 정사각형의 바닥에 돔형 천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천장 중심에는 만다라를,주위에는 불상과 보살상,불교설화와 석가모니의 수행등 고사를 그린 벽화를 배치해 돈황석굴과 비슷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채색벽화에 등장하는 동물그림에는 간다라미술,불교고사는 인도예술의 영향을 짙게 받은 듯하다.하늘을 날아오르는 인물은 갈색피부에 털이 많이 그려져 있어 남방계 사람인 것이 완연하다.다양한 문화가 녹아 있는 것이다. 특히 비파와 비슷한 악기를 연주하는 마두인체상은 현대의 로큰롤 연주자 못지 않게 경쾌하게 그려져 있어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또 석가모니생애도나 불교고사도에는 고대티베트문자가 빽빽하게 씌어있고불탑아래에서는 다량의 불교경전도 발견되고 있어 문자사료가 해독되면 석굴의 축조시기나 당시의 사회 문화상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사천대학의 곽외교수는 『석굴유적을 살펴 본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티베트 서쪽끝인 이곳도 실크로드의 주요거점이었던 듯하다』고 말한다. 중국 중앙미술학원의 불교미술사학자인 김유낙교수는 『처음 사천대학의 보고를 받았을 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면서 『풍부한 문자기록,후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채 생생하게 보존돼 있는 벽화등등 돈황못지 않은 세계적인 유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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