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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문연다

    ◎「희원」 23일 개원식… 24일부터 일반에 공개/석단·정자·연못·담장 옛 지형 그대로 복원 경기도 용인에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사설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이 전통정원 「희원」을 마련,오는 23일 개원식을 가진뒤 24일부터 일반에게 공개한다. 1년간의 공사끝에 모습을 드러낸 「희원」은 우리의 옛 지형을 복원,석단과 정자·연못·담장 등 한국 전통정원의 멋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게 특징.2만평의 대지위에 호암미술관이 수집해 온 신라시대 석탑을 비롯,이름없는 석공들이 만들어낸 불상,벅수,석등 등 석조물이 배치되는 것과 함께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 4군자와 자생 화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꾸며졌다. 바깥마당과 죽림,간정,소원,주정,객정,전통찻집,전시마당,후원 등으로 꾸며져 이 가운데 죽림과 주정,후원,소원 등에 각각 석물이 34점,51점,26점,12점이 전시되고 전시마당과 간정,전통찻집 주변 등에도 미술관 소장품들이 놓여지게 된다. 울창한 대나무 숲인 죽림은 소원으로로 이어지면서 벅수들의 정겨운 표정이 찾는 이들을 맞게 되며 호암미술관앞 중앙에 자리잡은 1천200여평의 넓은 마당인 주정에는 120평 규모의 연못과 함께 이 미술관의 주요 소장 석조물들이 전시돼 있다.이와 함께 미술관 전면에 펼쳐진 500여평의 잔디 전시마당은 전시와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며 후원은 미술관의 옆면과 뒷면을 차지해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서 있다.
  • 청동여래좌상틀·다라니경 필사본등/통일신라 불교공양품 47점 공개

    지난 95년 8월 전남 구례군 화엄사 서오층석탑 보수공사중 탑신 사리공에서 발견된 청동여래좌상틀과 녹색유리사리병,다라니경 필사본,수정옥,청동제 뒤꽂이장신류 등 탑안에 넣어둔 8세기후반 통일신라시대 불교 공양품 47점이 보존처리를 거쳐 16일 공개됐다.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이날 공개한 유물가운데 불상을 떠내는 용범인 청동여래좌상틀은 발견 당시 내용을 알수 없는 금속덩어리였으나 보존을 거친 결과 청동으로 만든 완전한 모습의 용범으로 드러난 최초의 것이 됐다.가로7.1㎝,세로8.1㎝,두께 0.4㎝ 크기에 사각형 판의 이 용범은 청동위에 불상의 모습을 눌러서 음각하는 형태로 앞면에 여래좌상이 연꽃 대좌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다.이와 함께 공개된 높이 4.9㎝크기의 타원형 녹색유리사리병은 뚜껑에 청동 못을 부착시킨 것으로 색채와 형태가 아주 빼어나다.또 가로 27㎝,세로 6㎝,두께 3㎝의 종이뭉치로 발견돼 보존처리된 다라니경 필사본은 지금까지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지류유물 가운데 세번째로 탑인이 찍힌 종이와 무구정광다라니경의 다라니 문구를 반복적으로 필사한 것이다.
  • 검찰 “현철씨 입열기 시작”/김현철 소환­수사 이모저모

    ◎출두즉시 조사실행… 검사 「피의자」 호칭/식사로 배달된 설렁탕 다 비우기도 15일 낮 검찰에 소환된 김현철씨에 대한 조사는 밤을 새워 계속됐다. 그러나 혐의 사실이 어느 정도 공개됐고 사법처리도 기정사실화된 탓인지 긴박한 분위기는 두드러지게 감지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들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사법처리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듯 표정이 밝지 않았다. 검찰은 현철씨를 피의자 자격으로 소환했으나 지난 2월 1차 출두 때처럼 청사로비 안팎에 30여명의 직원들을 배치하는 등 불상사에 대비했다. ○…현철씨가 탄 검은색 쏘나타 승용차는 검찰이 통보한 출두시간보다 15분 빠른 하오 1시45분쯤 대검찰청사 정문 앞에 도착했으나 소환시각에 맞추려는듯 10여분 동안 도로 옆에 정차해 있다가 55분쯤 청사안으로 들어왔다. 승용차에서 내린 감색 싱글 양복 차림의 현철씨는 5초동안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한뒤 수행원 2명과 함께 청사 현관으로 들어섰다. 청사 로비에서 다시 사진촬영에 응한 현철씨는 『이권개입 대가로돈 받은 것을 시인하느냐』,『대선자금으로 쓰고 남은 돈이 있는가』 등 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일체 대답하지 않고 정면을 응시. 10여초 동안 포즈를 취한 현철씨는 마지막에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현철씨는 지난 2월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에 자진 출두할 때의 다소 찡그렸던 표정과는 달리 이날은 사법처리를 예상한 듯 체념한 빛이 역력. ○…엘리베이터로 11층 조사실에 도착한 현철씨는 조사를 맡은 이훈규 중수3과장 등 수사진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며 가볍게 악수를 교환. 현철씨는 지난번 고소인 자격으로 출두했을때는 조사에 앞서 10층 박상길 중수1과장 방에서 차를 대접받았으나 이날은 피의자 신분 때문이었는지 11층 조사실로 직행. 현철씨는 그러나 곧바로 조사를 받지는 않고 이과장 등 수사진들과 4시간여 동안 심경과 주변정황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눈뒤 하오 8시부터 본격적으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또 지난번에는 현철씨가 고소인 자격임을 감안,「김소장」이라고 불렀으나 이날은 「피의자」로 호칭하며 조사에 임했다. ○…현철씨는 하오 7시30분쯤 인근 식당에서 배달한 설렁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검찰 직원은 『현철씨가 1109호 조사실에서 혼자 앉아 저녁식사를 했다』면서 『밥은 잘 먹는 것 같았으나 표정이 어두워보였다』고 설명. ○…심중수부장은 하오 11시가 가까울 때까지 조사진척 상황을 보고 받는 등 수사를 독려하다가 퇴근. 심중수부장은 조사 진척상황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객관적으로 인정된 부분은 다 시인한다』고 말해 현철씨가 입을 열기 시작했음을 확인. 곧이어 퇴근한 김상희 수사기획관도 밝은 표정으로 『수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해 사법처리에 대한 자신감을 표시.
  • 진각종 25대 통리원장 성초 대정사

    ◎“창종 50돌… 포교·실천불교운동 매진”/새달 중 흑룡강성에 두번째 해외포교당/경제회생 등 49일 불공 『진각종 창종 50주년을 맞아 창종 당시의 정신인 도심포교와 실천불교운동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미국 로스앤젤리스 불광심인당에 이어 내달 초에는 중국 흑룡강성에 제2의 해외포교당인 해동심인당을 건립,해외 포교의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대한불교 진각종 제25대 통리원장으로 선출된 성초(56) 대정사는 취임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진각종은 1947년 회당 손규상(1902∼1963) 대종사가 불교개혁을 위해 우리 불교를 산중불교에서 도심불교로,또 기복신앙에서 실천불교의 기치를 들고 창종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밀교종단으로 사찰인 심인당에는 불상이 없다.신도들은 석가여래 부처님이 아닌 본래 모습인 법신 비로자나불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주문을 염송한다.진각종은 전국에 120개 심인당과 60만 신도들이 있으며 96년 경주에 위덕대학을 설립했다. 『올해 창종 50주년 기념사업으로는 종조 손규상 대종사의 전기와법어집,밀교사전 간행등 출판사업과 창종 50주년 학술세미나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초 통리원장은 최근 한보사태등 정치와 사회의 혼란에는 종교인들의 책임도 있다며 종교인들이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달 26일부터 7월13일까지 49일간 전국의 심인당에서 「국가경제와 정치난국 회생을 위한 49일 불공」을 드릴 예정입니다.』
  • 진보문학단체 「기사」의 무대 송강(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7)

    ◎항청투쟁 불지른 저항시인의 한맺힌 절규…/소곤산 자락끝 하윤이부자 무덤 비석 외로이/“항청복국” 부르짖던 옥중시 4백편 그날을 증언 들 넓고 물 많은 땅에 배 따뜻하면 무슨 근심이겠냐고 하지만 꼭 그런 법만은 아니다.명말때 문학의 실용성과 현실성,그리고 반만청의 혁명에 참여,장렬하게 희생당했던 「복사」나 「기사」 등의 문학단체들은 바로 상해를 중심한 남북근교,곧 태창·곤산·송강 등지의 시인이었고,뒷날 반만청과 반봉건을 주창했던 문학의 진보단체 「남사」가 또한 소주와 오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그곳들은 일망무진의 평원이라서 풍요로운 곡창이요,바다가 가까워서 근대화의 전진기지였다. 그중에도 「기사」의 성원들인 진자룡(1608∼1647),하윤이(1596∼1645),하완순(1631∼1647) 등은 모두 송강 사람이요,따라서 기사의 무대는 송강인 것이다. 상해시에서 서남쪽으로 30㎞쯤 벗어나는 곳,송강은 옛날 화정·운간·곡수·송릉·입택 등으로 불리웠는데 모두 시정이 물씬하다.상해의 근교라서 근대의 문물을 타고 중국 최초의 천문대와 중국 최대의 성당으로 사산 천주당이 있는가하면 서진때의 유명한 평론가 육기와 명나라때 서예가 동기창이 모두 여기 사람인데다 중화민국국부였던 손문이 그의 혁명단체 「동맹회」의 전국총회를 소집했던 곳도 바로 송강시내에 있는 명청대의 원림 취백지의 설해당이었다. 송강의 문단 맥락이나 산수 경개도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1934년 편찬한 「중국문학가사전」에 수록된 송강 출신의 문인이 90명이요,「중국미술가인명사전」에 수록된 미술가가 586명이라는 통계만으로도 문학예술의 맥을 알겠거니와 송강에는 봉황산,육보산,사산·소곤산 등 9봉이 있고,원림이 상기한 취백지말고 강남의 으뜸이라는 방탑원이 있다. 그럼에도 숭정초(1628∼) 이 고장에서 발족된 「기사),그 주요시인은 한결같이 장렬하게 순국했다.태창·곤산지역에서 먼저 발족된 「복사」처럼 명나라 초엽 소위 「전후7자」의 복고운동을 계승한 동인이다.그를 「기사」로 일컬음은 바로 「끊겨진 학문을 재기하는 기틀(기)」이란 뜻이었다.그러나 그들은 진보적이었다.정치의 진화를 강조하면서 민족의 단결을 호소했다.그래서 현실을 반영하는데 문학의 족쇄를 풀었고 만청에 항거하여 순국의 시를 쓰다가 그 저항은 강희연간까지 불길을 지폈다. 「기사」의 맏형격인 하윤이는 한때 복건의 장락지현을 살았건만 기사를 창립,청병이 침노하자 울분끝에 투신 자살했고,「복사」의 후기수령인 진자룡은 「기사」를 창설 주도하고 그의 웅혼하면서도 창량한 시를 무기로 항청 투쟁에 참여했다.그는 명나라의 멸망과 함께 강남 각지를 전전하면서 의병 투쟁을 벌이다 소주에서 피체,남경으로 압송 도중,하윤이처럼 강물에 투신 자살하고 말았다. 하윤이의 아들 하완순은 나이 겨우 13살로 진자룡의 의병을 따르다가 청군에게 피체,열여섯 꽃같은 나이로 처형당했는데 그는 법정에서 최후까지 오랑캐들의 만행을 규탄했다. 더욱 놀랄 일은 하완순이 어린 나이임에도 영웅열사를 가송하거나 항청복국을 절규하는 옥중시를 4백편이나 남겼는데 그가 청군에게 압송될 때 그의 향리를 마지막 작별하면서 썼던 「운간을 이별하며」는 천고의 절창이다.「삼연기여객,금일우남관. 무한산하누,수언천지관. 이지천노근,욕별고향난. 의백귀래일,영기공제간.」 「3년을 타관 떠돌다가/이제는 또 한번 옥 살이. 저 산하가 모두 눈물인걸/누가 이 천지를 넓다하랴! 이제 가면 황천길이지만/고향 떠나기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이 젊음,넋으로 돌아오는 날/하늘가에 가물거릴 혼령의 깃발이여!」 참으로 장렬했다.한낱 열여섯살 소년 시인의 목숨이 이토록 아름답게 메아리 칠 줄이야. 그들 부자는 나란히 묻혔다.송강서 서북쪽 13㎞쯤 소곤산 낮은 산자락 저 끄트머리 양지쪽 탕만촌뒤에 쓸쓸히 묻혔다.비록 그 동남쪽에 수수라는 작은 시내가 굽이 돌았지만 그들의 넋을 위로할만한 여울이 들리거나 솔바람 소리조차 스쳐가지 않았다.쓸쓸한건 하윤이 부자의 무덤만 아니다.서진때의 대시인이요,대평론가였던 육기와 그 아우 육운이 여기 소곤산 양지쪽에 살았다는데 아무런 자취도 찾을 길이 없다. 진자룡의 무덤은 훨씬 화려했다.역시 송강에서 서북쪽으로 10여㎞쯤 진산 못미쳐 왼쪽으로 광부림이라는 마을,그 동쪽 평지에 동향으로 앉았는데 그는 청나라 건융때 충유라는 시호를 얻은데다 묘비에 묘전,묘정등 세가지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이들 「기사」의 장렬했던 시인들,그 무덤들을 순례하고 다시 송강으로 돌아왔다.그 유명한 방탑원과 취백지를 한바퀴 돌아야만 했다.어쩌면 「기사」들의 족적이 거기에 남았을지도 몰라서였다. 송강시 중산동로에 자리한 방탑원은 중국 강남에서 손꼽는 원림이다.그 안에는 북송,1068년에서 1094년 사이에 세운 높이 42.5m,누각형 9층의 전목을 함께 쓴 방탑을 비롯,명나라 홍무 3년(1370),방탑의 북쪽에 세운 도교의 부조로 새긴 조벽,그리고 방탑의 3층에 그려진 송대의 불상화와 송교 등이 있다. 필자는 무엇보다 날씬한 몸매에 펄럭이는 치마 모양의 방탑,더구나 서북쪽으로 약간 기우뚱하여 언젠가 피사의 탑을 닮을지 모를 방탑과 용의 대가리에 사자의 꼬리,소의 몸통에 사슴의 발톱에 기린의 비늘을 지닌 탐이라는 괴수가 세상의 보배를 지니고도 모자라 하늘의 해를 삼키려 쫓다가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마는 그 부조가 인상적이다.그런가하면 단 한장 널찍한 화강석으로 덮개를 삼은 송교와 찰랑하게 물이 찬 연당을 살짝 덮도록 가설된 널찍한 부석교는 고전미와 현대미를 융합했다. 청대 초엽,당시의 부호 고대신이란 사람이 백낙천을 흠모하는 뜻으로 시공했다는 또 하나의 원림인 「취백지」도 운취가 그윽했는데 이러한 경개가 시인을 기르고 「기사」를 형성했는지도 몰랐다.
  • 석굴암에 견줄 통일신라 걸작 석조관음보살입상 복원

    ◎머리만 있던것 몸체 발굴 지난 1930년대 일제하에서 머리부분이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중이던 8세기 통일신라시대 석조관음보살입상의 몸체가 최근 발굴돼 국립경주박물관이 결합,복원을 마치고 2일 공개했다. 높이 3.76m크기의 이 석조관음보살입상은 경주시 배반동 643 낭산 서쪽(현 중생사)에서 처음 머리부분이 발견된뒤 지난달 28일 경주박물관이 양산 중턱 개인 소유의 밭둑에 파묻힌 상태로 방치돼있던 몸체를 발굴,복원했다. 이 석조관음보살입상은 삼국유사 권3에 「중생사」란 절에 소재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현재 그 절의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발굴결과 이 불상이 독립된 예배대상으로 조성된 통일신라시대 관음보살상으로는 최대의 작품으로 조각도 석굴암의 불상들에 비견되는 걸작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 도박덫에 걸린 학원대표(사설)

    굴지의 사설학원 대표가 「도박덫」에 걸려 수십억원을 잃고 사기도박꾼들에게 협박당하며 수억을 뜯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수 없다.그는 학원으로 일어선 「사교육」계의 거물급으로 알려져 있다.입시철이면 언론들이 앞다퉈 그의 평가를 인용하고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의 관심도 그에게 쏠리다시피 하는 「교육적」영향력이 큰 사람이다.그렇게 해서 큰 재물도 모은 실력가인 셈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사교육은 「파출부노릇도 마다않는」어머니와 뇌물의 유혹을 끊임없이 견뎌야 하는 아버지들의 피땀이 응고된 돈으로 이뤄진다.『내돈 내가 쓰는데…』어떠냐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이 학원으로 모은 재물이라고 할수 있다. 이번 사건은 「사기도박」의 범죄에 걸린 희생임을 우리도 안다.그러나 그는 전부터도 상당기간 「내기노름」에 탐닉했던 흔적이 농후하다.운수 불길해서 걸려든 정도가 아니라 당사자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어 보인다. 학교교육보다 훨씬 고가인데다 시간과 정력도 많이 들이는 것이 사교육이어서자라는 세대들에게 정신적으로도 사교육기관이 지닌 영향력은 지대하다.그중에서도 대표적 명문인 J학원은 단순한 하나의 사교육기관이라고만 할 수 없다.특히 이 학원은 갖가지 형태의 과외를 창안하고 사교육자료도 개발하여 학원경제를 선도해오기도 했다.청소년교육만을 상품으로 거대한 재물을 모아온 학원의 대표적 사례에도 속한다.그런 인사이므로 이땅의 청소년교육에 관한 기대까지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이 불상사는 더욱 유감스럽다.이런 기관들에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목을 매고 기회있을 때마다 그들이 내놓는 의견이 공교육제도를 좌우하다시피 해온 일이 환멸스럽기까지 하다.최근 역시 사기도박에 걸려 수십억원을 갈취당한 여성 병원장의 패가망신 사례도 있었다.사회 지도층·부유층의 깊은 성찰이 요긴한 시점이다.
  • 서울신문 기획연재 「한국인의 얼굴」 100회돌파 특별기고/임효재

    ◎“훌륭한 국민교육용 문화재독본”/문화유산 가치 살찌운 수준높은 기획물/역사·민족·종교 등의 학술과 접목 돋보여/문체·표현력 탁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채택 서울신문을 기다리는 독자의 한 사람이다.그 이유는 흥미롭게 읽는 시리즈가 있기 때문인데,서울신문의 주간 연재물 「한국인의 얼굴」이다.처음 「한국인의 얼굴」을 만난 것은 지난 1994년 가을이 아닌가 한다.내가 발굴한 강원도 양양군 오산면 손양리 신석기유적 출토품 테라코타를 소개한 내용을 본 것이 인연이 되었다. 내 손으로 발굴한 유물이었지만,저널리스트 안목의 해석이 우선 놀라웠다.그 유물은 진흙을 둥글넓적하게 반죽을 한 다음 눈과 코,입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만든 원시미술품이었다.이를 한반도 최초의 소조안면상으로 본 이 시리즈는 안면상 하나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9천여년전 신석기시대로 뒷걸음질친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 「한국인의 얼굴」에 매료되었다.어떤 유물에 나타난 학술적 현상이나 가치를 떠나 유물에 나오는 얼굴을 통해늘상 상상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이를 굳이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면 「저널리즘 고고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지금까지의 학술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윤택하게 살지운 보기드문 기획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선사시대 고고유물에만 나오는 인물을 다루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불상이나 불화를 보면서 불교의 세계로 다가갔는가 하면,민속미술품에 나타난 얼굴을 통해서는 그 옛날 민중들의 심성을 들여다 보았다.그리고 흙인형 토우에서 역사시대 각 계층의 삶을 들추어냈다.도자공예와 회화예술에 등장한 인물에서도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그 시대상을 꿰뚫어 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처럼 얼굴을 주제로 한국문화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시리즈라 할 수 있다.그 대상은 국내에 소장된 유물의 얼굴 뿐이 아니라 해외에 흩어진 우리문화재에서까지 찾아냈다.그리고 고고학은 물론 문화인류학,미술사와 역사,민속학,사상과 종교 등의 학술을 이 시리즈와 접목시킨 흔적도 발견했다.그러니까 「한국인의 얼굴」은 얼굴의 생김새나 특징을 가리는데 그치지 않은 수준높은 시리즈인 것이다. 이 시리즈의 묘미는 문체가 간결하고 부드럽다는데도 있다.그리고 글을 무척 쉽게 썼다.이미 서울신문에 활자화한 「한국인의 얼굴」중에서 다섯 꼭지가 97학년도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채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쉬운 문장과 표현력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더구나 올해가 「문화유산의 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서울신문 기획물 「한국인의 얼굴」은 「국민교육용 문화재독본」쯤으로 여기고 싶다.
  • 통일신라시대 불상 공개

    문화재연구소의 보존처리를 거쳐 8세기중엽∼9세기후반 통일신라시대 불상 18점과 함께 완벽한 상태로 3일 공개된 13.8㎝ 높이의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지난 95년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 삼층석탑(보물제467호) 해체 보수작업중 수습돼 이날 처음 모습을 나타낸 이 불상들은 풍만한 상호(얼굴)와 불신,U자형 옷주름 등 당시 불교조각의 시기별 흐름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박경식씨 압수수색 영장

    피내사자는 서울 송파구 송파2동 97의 14 G 남성 비뇨기과의원 원장인 바, 일시 불상부터 원장실에 비디오카메라(CCTV)를 설치,내원 환자들에 대한 상담 및 치료 장면을 녹화·녹음해 오던중 95년 1월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현철이 성명 불상자와 통화하는 내용을 본인의 동의 없이 임의로 녹화·녹음하여 타인의 전화통신을 감청했다. 피내사자는 위 녹화·녹음 테이프 외에도 김현철 관련 테이프가 7개 더 있다고 언론에 공개하고 있으며,김현철에게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권 입찰 청탁을 하는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금품의 수수 및 제공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므로 압수·수색을 하여 혐의 사실 입증 및 김현철 관련 잔여 테이프 내용 등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한 증거 자료로 수집하고자 한다.
  • 박태중씨 압수수색영장

    피의자는 무역중계업체인 주식회사 심우를 경영하면서 최종원 명의로 즉석 복권제조 인쇄업체인 주식회사 로토텍인터내셔널을,박남은 명의로 전자제품 생산 및 판매업체인 주식회사 우보전자를 위장 설립하여 경영하는 자로서 김현철의 자금관리책이라는 의혹을 받고있다. 1.93년 3월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 412의 170에서 윤부환으로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 718의 21 시가 16억원 상당의 「아사도」라는 일식집과 청담동 128 시가 8억원 상당의 「카사두손빌라」 301호,현금 25억원 등 49억원 상당을 증여받아 관할 강남세무서에 신고를 하여야 함에도 그 사실을 숨기고 세금 납부기한을 경과함으로써 증여세 42억3천1백50만원을 포탈했다. 2.94년 7월경 서울 서초구 역삼동 790의 1 개포세무서에 부가가치세 신고를 함에 있어 심우의 제품 판매내역을 세무관세 장부에 기재하면서 판매원장 등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2억5천만원 상당의 판매 금액을 누락시킨뒤 납부기한을 경과함으로써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부가가치세 3천만원 상당을 포탈한 것을 비롯,96년7월25일까지 3회에 걸쳐 합계금 5억5천4백만원을 판매원장에 누락시켜 부가가치세 5천8백만원을 포탈했다. 3.94년 7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수회에 걸쳐 서울 강남구 대치동 316 소재 한보철강공업이 외환은행 강남지점 및 제일은행 섬유센터 지점 등을 통해 독일 SMS사로부터 열연설비를 수입함에 있어 한보철강의 대리인 자격으로 금액 불상의 열연설비 수입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실제보다 50% 높은 가격과 실제 수입가로 이중계약서를 작성,열연설비를 수입한 뒤 SMS사로부터 리베이트 명목으로 차액 2천억원을 받아 김현철에게 제공한 의혹이 있다.오스트리아 베스트알핀사,일본 고베철강 등으로부터도 설비시설을 수입하면서 국제시세보다 50% 비싼 가격으로 수입하면서 거액의 차액을 해외로 도피하였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또한 신정부 출범 이래 김현철의 자금관리책으로서 거액의 부동산을 자신 등의 명의로 매입 관리하고 김현철의 자금으로 위 주식회사 로토텍인터내셔널 및 주식회사 우보전자를 위장 설립하여 경영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자이므로 피의자 및 피의자가 경영하는 법인 등 명의의 번지의 계좌를 압수수색하여 혐의점 및 혐의사실을 구증하고자 한다.
  • 법원·검찰의 갈등/김상연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법원과 검찰의 대립이 점입가경이다.구속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달아나고 신병이 방치되는 등 잇따라 발생한 불상사의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 다툼의 골자다.법리적 논쟁의 단계를 지나 힘겨루기식 감정싸움으로 악화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주눅부터 들기 일쑤인 평범한 시민들의 눈에는 어찌보면 사소한 법집행 문제를 둘러싼 법조계 양대축의 이전투구가 해괴할 수밖에 없다. 양측의 대립은 지난 5일 서울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던 피의자가 2시간 가량 방치된 사건에서 본격화됐다.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피의자의 신병을 서울구치소에 유치해달라는 법원의 요청을 검찰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올초부터 새로운 형사소송법에 따라 구속영장 실질심사 등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잠재해 온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검찰은 새 제도의 모호한 부분을 법원이 맘대로 해석·적용한다고 보고 있다.이러한 불만이 사법 주도권이 법원으로 넘어가는게 아니냐는 위기의식을 조장했고 마침내 검찰을 「전면전」으로 내몬 것으로 봐야할 것 다. 동기가 그래서인지 검찰의 대처방안은 옹졸하기 짝이 없다.이유야 어쨌든 피의자가 보는 앞에서 신병인수를 거부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뿐만 아니라 검찰은 「법원직원들을 내사하고 있다」는 등의 말을 흘리며 「무력시위」까지 펼치고 있다. 반면 법원의 「오만」도 문제다.「집행기관인 검찰은 법원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식의 권위주의적 자세는 검찰의 피해의식만 자극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양측은 이번에는 법정구속된 피고인을 누가 구치소까지 데려가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입씨름을 하고 있다.그야말로 「치사한」 부분으로까지 치닫는 양상이다. 문제는 법만 선진국형으로 고쳐 놓았을 뿐 사고방식은 개조하지 못한 데 있다.이쯤되면 양측 모두 『인권은 말뿐,밥그릇만 챙기려 한다』는 비난을 면키어렵다.
  • “내각 책임지고 실질적 통할”/고건 총리 일문일답

    ◎“대통령은 외교·안보에 주력” 약속 고건 총리는 6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새 내각은 임기가 정해져 있는 만큼 사심없이 일할수 있다』면서 『나라와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온몸을 던져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한 당부가 있었나. ▲내각을 책임지고 각 부처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라고 했다.대통령께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통일과 외교에 할애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경제부총리는 금융실명제를 보완하겠다고 했는데. ▲경제정책은 경제팀에게 맡기고 나는 일할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노력할 것이다.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왜곡되지 않도록 하겠다.다만 장바구니물가는 관심을 가지겠다.금융실명제는 근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정한 대통령선거 관리방안은. ▲시민단체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깨끗하게 선거를 관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내무부장관으로 있던 87년6·29선언 직전 명동성당의 공권력 투입을 막았다는데.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공권력 투입방향을 이미 정해 놓았다.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적 여론이 악화될 우려가 있고,행여 교황청에서 문제를 삼으면 수출에도 지장이 있는데다,인명피해 등 불상사에 대한 우려 등 「3불가론」을 들어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방침을 바꾸게 한 적이 있다.
  • 요선철릭(외언내언)

    노리끼리한 제 색(소색)을 살린 생모시인가 했더니 연한 분홍색이라고 한다.열다섯살 남자아이의 옷에 이꽃(홍화)물을 들인 이의 고운 마음과 세모시의 투명한 질감,그리고 정교한 바느질솜씨가 어울어진 「요선철릭(요선천익)」.「비단 100년,종이 1000년」이라는 말도 있거늘 잠자리날개처럼 가벼워 보이는 이 옷이 7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이겨냈다는 것이 얼핏 믿어지지 않는다. 해인사 비로자나불상의 복장유물로 발견된 고려시대 의복 「요선철릭」은 오늘의 패션디자이너도 놀랄 만큼 아름답고 기능적이다.홑옷임에도 정교하게 박음질한 허리부분(요선)에 생명주로 안단을 댔고 가는 주름을 풍성하게 준 치마부분은 왼쪽 트임을 두되 자락이 겹치도록 해서 미적 요소와 활동성을 최대한 살렸다. 철릭은 고려시대 원나라에서 들어온 포의 일종.고려시대에는 수십종의 포가 있었으나 조선조말 두루마기 하나로 통일됐다.저고리에 주름잡은 치마를 이어붙인 모양의 철릭은 조선조 세종때엔 왕의 곤룡포 속에 입는 받침옷구실을 했다.나중 왕과 문무백관의 일상복인 편복이 됐고 임진왜란때는 왕 이하 신하가 모두 철릭을 입고 칼을 차,관복처럼 됐다.혜원과 단원의 풍속화에서는 철릭 입은 서민과 군졸·무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한쪽 혹은 양쪽 소매를 반소매로 만들고 따로 긴 소매를 만들어 매듭단추로 연결하기도 했다.패션평론가 김유경씨에 의하면 철릭은 오늘의 바바리코트처럼 실용적인 옷이다. 철릭으로서 뿐만 아니라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옷이라는 점에서 「요선철릭」의 보존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보존처리를 마쳤다지만 이런 문화재는 공기와 빛에 노출되는 순간부터 급속히 변질되는 만큼 사람의 입김이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아울러 오늘의 옷감으로 정교하게 복제해 일반인에게 이 옷을 보여주면 좋을 듯싶다.「요선철릭」 이전까지는 가장 오래된 옷으로 알려진 고려조의 백저포(일명 문수사포)는 한복디자이너 이리자씨가 지난 84년 재현해낸 바 있다.
  • 고려말 의복 11점 완전형태 첫 공개/해인사서

    ◎지공화상 계첩 12장도 고려 말의 사회상과 불교의식을 보여주는 상류사회의 옷가지 11점이 완전한 형태로 처음으로 공개됐다. 대한불교 조계종 성보문화재연구원 원장 범하 스님이 5일 경남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복장에서 발견한 것으로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쯤에 만든 옷가지 11점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발견한 의복들은 불상을 조성할때 불상안에 봉안하는 복장유물의 하나로 이름과 신분을 나타내는 붓글씨 묵서명이 들어있다.묵서명은 어른옷에는 『승봉랑 봉선고 부사 이승밀 의』라고 적었고 어린이 옷 요선철릭에는 『연십오 송부개 장명지원』이라고 쓴 것으로 미루어 15세된 송부개 어린이의 무병 장수를 빌기위한 유물로 해석했다. 그리고 비로자나불 복장에는 옷가지 말고도 고려시대 개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도출신의 승려 지공화상(1300∼1363)이 육필로 쓴 계첩 12장과 비단주머니 하나가 더 들어 있었다.
  • 파키스탄 탁티바이(세계 문화유산 순례:23)

    ◎가파른 바위산 벼랑끝 성채같은 가람이… 간다라(Gandhara)는 아주 일찍 역사에 등장했다.아키메네스왕조때(BC559∼330년) 페르시아의 속주로 처음 역사에 기록되었다.오늘날 파키스탄 북서변경주 페샤와르현에 해당하는 지역이 옛 간다라 땅이다.역사속에 명멸한 정복자들의 말발굽 소리가 그칠날 없이 이어진 지역이기도 했다.그래도 간다라에서는 불교와 불교미술이 오랫동안 꽃피었다. ○대평원 한복판 우뚝/망망대해 등대인듯 그 간다라에는 불교유적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대표적 유적의 하나가 탁티바이(Takht-i-Bahi)다.가람유적인 탁티바이는 페샤와르현 마르단에 있다.페샤와르시에서 탁티바이까지는 꽤 멀었다.난마처럼 얽힌 카불강과 스와트강줄기를 몇차례 건너서 간다라 첫 수도 차르사다를 지나쳤다.논스톱으로 두시간을 좀 넘게 달렸을까,대평원 한복판에 우뚝한 산자락 하나가 불쑥 시야로 들어왔다. 탁티바이산이다.산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 같았다.오랜 세월을 두고 탁발로 유랑한 당시 구도승들에게 산은 실제 등대 노릇을 했을것이다.풀 한포기도 눈에 띄지않는 바위너설의 악산인데,가람은 매달린듯 벼랑에 붙어있다.아래서 저만큼 올려다 본 가람 탁티바이는 성채 그것이었다.그많은 정복자들의 난리를 피해서 부러 가파른 바위산을 택했으리라.오르는 길이 무척이나 험했다. 가람 입구에 다다랐을때 기다리던 경비원이 거수경례로 맞아주었다.긴 치마자락처럼 정강이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고유의상 카미즈 차림의 경비원은 허리에 넓은 가죽벨트를 맸다.벨트에 권총을 매달지 않았을 뿐,어떤 제복같은 느낌이 와닿았다.유적 경비원을 따라 여러개의 수투파(불탑)가 있는 뜰을 지나서,경내에 단 한그루 밖에 없는 보리수나무 그늘에서 우선 한숨을 돌렸다. 탁티바이 가람유적은 기원전(BC)100년쯤부터 터를 잡아나갔다.그리고 나서 기원후(AD)6세기까지 모두 4단계에 걸쳐 가람을 조성하는 동안도 파괴와 건설이 거듭되었다.탁티바이산은 산자체가 돌산이다.그래서 가람의 모든 건조물은 산에 널린 운모편암을 자재로 축조했다.가람은 층서관계가 분명하게 나타나 블럭을 가늠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간다라 불교유적지 성한불상 하나없어 유적의 단면은 대체로 요꼴을 이루었다.그런 단면을 기반으로 불교의 기본 건축물인 수투파와 불당,승원을 지었다.수투파는 네모꼴 기단위에 탑 몸체를 쌓아올리는 형식이었는데,애석하게도 기단만 남아있다.승원의 경우에는 가운데 뜰 중정을 가운데 두고 둘레에 승방을 가지런히 배치했다.이같은 승원축조양식은 간다라지방에서 처음 나타나 인도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가람 입구를 들어서면 수투파 기단들이 늘어선 좁은 뜰이 나왔다.요꼴 단면에서 보이는 오목한 부분이 바로 뜰이다.그 뜰이 시작되는 오른쪽(북쪽)으로 불상을 봉안했던 닫집(감실)들이 바싹 다가왔다.모두 12개나 되는 닫집을 지나쳤지만,불상 한 두어 구가 겨우 눈에 띄었다.그나마 머리가 아니면 팔이 떨어져 나간 불상 뿐이다.가람 어디에서도 몸이 성한 불상을 만나지 못했다. 간다라 불교유적은 일찍 파괴되었다.당나라 승려 현장의 구도여행기인 「대당서역기」를 보면 7세기 전반의 건태국,즉 간다라 이야기가 나온다.현장은 이책에다 「승가람은 1천여군데에 있으나,모두 부서진채 방치되었다」고 적었다.동서 1천리,남북 800리의 간다라를 여행하면서 적었다는 현장의 기록에서 탁티바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식민제국 박트리아의 왕 맨안더(재위 BC155∼130년)의 후광을 업고,또 쿠산왕조의 카니쉬칸(재위 AD78∼128년)을 후원자로 전성기를 맞았던 탁티바이.겨우 600여년을 가람답게 지켰다.지금 탁티바이는 적막했다.탁티바이는 「바위속의 샘」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유적 경비원에게 청해서 얻어마신 양재기 물맛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정복자 말발굽에 파괴­건설 600년 이 가람의 대탑 메인 수투파는 입구에서 곧바로 만난 뜰 왼쪽(남쪽)에 있었다.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 가장자리에다 여러 칸의 닫집을 ㄷ자꼴로 앉혔다.닫집의 지붕은 독특했다.네모꼴 지붕을 돌로 올리면서 모서리를 차츰 죄어가는 방식으로 둥글게 쌓았다.그리고 지붕 한가운데에 원심의 구조물을 도드라지게 덧쌓았다.역시 이들 닫집안에서도 불상이 보이지 않았다. 승려들이 머물렀던 승원은 이 가람 북쪽 블럭에 있다.메인 수투파가 있는 마당을 내려와 입구 뜰을 건너서 계단을 올랐다.마당 중간을 비워두고 ㅁ자형으로 빙 둘러지은 승방들이 촘촘히 박혀있다.경전을 외는 소리가 두런두런 했을 승방은 지붕조차 없다.지난 먼 옛날 불교를 그토록 보호했던 왕조 모두가 역사속에 묻혔으니,누가 중창을 하랴.지금 유네스코(UNESCO)가 나서 더 허물어지지 않게 보살피고 있는 것만도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불교가 존재않는 불교의 유적지 구도승들의 고행현장은 정오가 가까운 한낮에 찾았다.가람 입구에서 시작한 뜰을 거쳐 서쪽 마당끝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갔을때 어두컴컴한 터널이 나왔다.돌을 맞조려 쌓은 천정이 아치꼴을 이룬 터널은 꽤 길었다.터널 오른쪽으로 작은 방들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아주 뒤늦게 알아차렸다.인공의 토굴이었던 것이다. 토굴의 환경은 감방보다 열악했다.승려들이 고행과 명상으로 은둔했을 토굴에는 박쥐떼만 득시글거렸다.세월이 무상했다.생겨나고 없어지는 생멸에 집착하지 않은 탓일까,파키스탄에서 불교가 사라진지는 오래다.제대로 된 불상 하나를 만나지 못하고 탁티바이를 돌아서야 했던 까닭도 불교가 존재하지 않는 불교유적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가이드/숙박은 페샤와르서/국내선 하루 2∼4편 운항 탁티바이는 페샤와르에서 80㎞ 거리다.페샤와르에서 택시를 타면 90∼100달러가 든다.페샤와르를 거점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숙박은 페샤와르에서 하는 것이 좋다.숙박시설은 딘스호텔,펄콘티넨털호텔 등이 있다. 교통편은 라왈핀디나 라호르에서 오는 파키스탄 국내항공이 하루 2∼4편 정도 운항한다.그리고 이슬라마바드에서 육로를 택할 경우 4시간이 걸린다.페샤와르는 실크로드시대부터 발달한 도시라서 아랍풍의 문물관광도 즐길수 있다.인더스 가이드(92­42­872975)같은 여행사 안내도 고려할만한 일이다.
  • 북측,차량 10대 동원 위협시위/황장엽 망명 긴장의 주중대사관

    ◎요원 4∼5명씩 분승… 한국인 동태 감시/중 돌발사태 대비 경비병 대폭 증원 ○…주중한국대사관측은 14일 대사관과 영사관에 각각 상황실을 설치하는 등 사태의 장기화와 돌발적인 불상사를 대비하는 모습.대사관측은 대사관 상황실은 북한의 한국인 납치기도 등에 대비,교민과 체류자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설치됐으며 신변안전에 대한 신고와 요청을 접수한다고 설명.황장엽 노동당비서가 들어있는 삼이둔 동삼가의 영사관 단독건물에는 황씨의 외교적 절차와 망명 등을 다루기위한 상황실이 별도로 설치되는 등 사건의 장기화를 대비하는 모습. ○…삼이둔 동삼가의 한국총영사관 주변은 전날밤에 무장경찰 50여명을 대사관 주변에 배치,주변 도로마저 봉쇄한데 이어 14일에는 주변 예멘대사관 등에 경비병력을 증가하는 등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 ○…한때 한국대사관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등 과격행동 의도도 보였던 북한요원들은 13일 하오에 한국대사관 주변에서 철수했다가 이날 밤늦게 갑자기 차량 10대를 동원,다시 대사관주변으로 몰려들어 긴장감을 감돌게 했다. 이들은 이날밤 자정 무렵 대사관 번호판을 단 차량 10대에 4∼5명씩 나눠타고 한국대사관 주변 중국공안원들의 저지선밖까지 몰려들어 또다시 한국공관을 감시하기 시작. ○…북한대사관측은 이날 황비서의 망명에 대한 논평요구에 현재 담당자들이 없다고 하다가 『이는 납치극이며 황비서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우리 뜻대로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격앙된 표정. 한편 북한대사관 직원과 상사원들은 우리측 기업인 등에게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전쟁이 날지도 모른다.황비서를 돌려보내라』고 위협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 ○교민에 외출자제 당부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측은 12일 저녁 무렵부터 비상연락망으로 공관원,상사주재원,유학생 등에게 신변안전에 유의할 것과 가급적 외출을 삼가줄 것을 당부.정종욱 대사는 13일 『모든 공관원의 안전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사관측은 특히 중국 공안당국에 북경의 한국인들에 대한 신변안전조치를 더욱 강화해주도록 요청.
  • 고무탄권총 경찰서 지급/인질·테러범 등 신속검거 활용

    인질·테러사건 등에 대처하기 위해 고무총과 고무탄이 일선경찰서에 처음으로 지급됐다. 경찰청은 12일 서울·부산·대구 등 전국 200여개 일선 경찰서 소속 5분 대기대에 각각 고무탄 권총 4정과 고무탄 60발씩을 지급,위급한 상황에 적극 활용하도록 지시했다. 경찰청은 『인질·테러 등 범죄자에게 고무탄을 발사하여 신속히 제압,검거할 수 있는 장비로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고무총으로 인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안면발사를 금지하고 6m 이내 발사를 지양하며 총기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 「세」 경찰,반정시위 진압 강행/가두행진 저지

    ◎대법원 “라포보도 야 승리 인정” 【베오그라드 AP 연합】 세르비아 경찰은 7일 사실상 반밀로셰비치 집회가 된 정교회의 성탄 예배장에 최류탄을 투척하고 3만여명이 모여 베오그라드 중심부에서 벌인 가두 행진을 저지하는 등 마침내 반정 시위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르비아 대법원은 이날 지난해 11월 실시된 14개 지역 지방선거에서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3개 도시 외에 라포보 지역에서도 야당이 승리했음을 인정함으로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에게 또다른 타격을 가했다. 또 유고연방 몬테네그로공화국의 국회의원들도 반정 시위를 지지하는 뜻에서 밀로셰비치가 지방선거 결과에 완전 승복할 때까지 유고 연방의회를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밀로셰비치의 지방선거 결과 무효화 조치로 촉발된 세르비아 사태는 이번주를 고비로 무력 진압되거나 아니면 다른 해결책이 모색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세르비아 경찰 수천명은 7일 버스에 탄 채 가두행진을 벌이던 3만여명의 시위대 앞에 저지선을 만들고 행진을 막았다.그러나 양측간의 격렬한 충돌 등 이렇다할 불상사는 없었다.
  • 대북정책 신중히(사설)

    북한이 잠수함사건 사과후에 취한 행동을 보면 과연 그들의 사과와 재발방지약속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경수로지원을 재개해야 옳은 것인지 의문을 지울 길이 없다.우리는 북한의 이중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으며,따라서 대북정책도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 북한의 대남 전위기구인 「조국전선」은 한국측의 무장공비유해 인도에 대해 『사실상 남조선당국이 자기들의 비인도적 처사에 대해 늦게나마 시인하고 사죄한 것』이라고 왜곡·주장했다.또 「조평통」은 잠수함사건이 『훈련중 우발사고』라는 종전의 억지를 되풀이하면서 『남조선당국은 응당한 교훈을 찾고 이런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적반하장격 주장을 늘어놓았다.북한은 판문점에서 공비들의 유골을 받아갈 때도 이같은 적반하장격 태도를 보인 바 있다. 그들의 이런 주장이 비록 내부선전용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정권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임은 분명하다.외형상 잠수함사건이 타결됐다고 해서 이런 기만적인 정권에 신뢰를 보낸다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잠수함사건 사과이후 남북관계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이달 하순 4자회담설명회가 열리고 새 달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경수로사업의 조기착공을 위해 부지조사단을 함남 신포에 파견할 예정이다.또 미국의 카길사는 50만t의 대북 쌀수출허가를 받았다고 한다.꽁꽁 얼어붙었던 대북관계가 급속히 해빙되는 느낌이다. 우리는 진정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란다.그러나 북한의 사과로 큰 난제가 해결된 양 들떠서는 안될 것이다.우리는 4자회담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한다.그러나 4자회담 자체에 끌려다녀서는 곤란할 것이다.환상을 떨치고 인내심을 갖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대북정책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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