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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직기강 바로 세워야(사설)

    공직사회의 기강이 너무 해이해져서 지금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전체 국가기강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심히 우려되는 일이 아닐수 없다.金重權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나서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보신주의,개혁에 대한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시인하고 6·4 지방선거후대대적인 사정작업이 있을 것임을 시사할 정도다.金실장은 공직자들의 기강해이는 장관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각 부처 장관들의 유·무능을 가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청와대측은 金실장의 이 발언이 곧바로 개각으로 확대 해석되자 서둘러 해명에 나서 개혁동참을 촉구하는 바람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청와대측의 해명과 관계없이 우리는 공직사회의 기강해이와 무사안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관련자들의 즉각적인 처벌을 촉구한다.지방선거운동이 한창인 지금만 하더라도 현직 장관들이 연고지에 내려가 자기당 후보 지지운동을 벌인 혐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불상사가 일어났다.지방공무원들은 당선이 유력한 후보에게 눈도장이라도 찍기 위해 공무는 팽개친채 불법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사례가 잇따라 적발돼 중앙선관위가 金鍾泌 국무총리서리에게 이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이번 선거를 유사이래 가장 깨끗하게 치르겠다는 다짐은 다 어디가고 장관과 공무원이 앞다퉈 자당의 이익과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선거 분위기 자체를흐리고 있단 말인가.우리 선거 역사에서 가장 큰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는 관권선거를 스스로 자행한 이들을 그냥 둔채 이번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고 본다. 직분을 망각한 공직자들의 행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얼마전 서울 강남구청과 강남경찰서 직원들이 인수인계까지 하며 유흥업소에서 뇌물을 받아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고 있다.복지부동,무사안일 역시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여기에다 최근에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혁작업에 대한 냉소주의까지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지역편중인사 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민간기업 종사자들이 정리해고 등의 가혹한 구조조정을 감수하며 개혁에 동참하고 있는 마당에 공직자들의 이런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개혁의 주체로서 앞장서 뛰어야할 공직자들이 오히려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면당장 척결돼야 할 것이다.물론 그 대상은 일부일 것이다.공직사회의 일대 혁신없이는 나라의 장래도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거듭 지적하며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한다.
  • 느낌 극락같은·천년의 수인/개성강한 연출자의 두 무대

    ◎느낌 극락같은­불상 코러스 연출로 원작 난해성 줄여/천년의 수인­재미 곁들여 비틀린 한국현대사 조명 연극 ‘느낌,극락같은’과 ‘천년의 수인’.공통점이라야 대표적 전업 극작가 신작이다,6월14일 끝난다는 등이 고작이어 뵌다.하지만 보고 나면 둘다 연출의 개성이 그 정도의 동굴을 파냈다는 걸 수긍하게 된다.정체성 모를 평면 무대가 난무하는데 연출자 나름의 자장과 힘을 느끼게 하는 공간을 만나는 건 기쁨이 아닐 수 없다.안겨 볼 만한 깊이와 그늘을 거느린 동굴인 건분명하되 막다른 골목,절벽은 없는지 발밑도 살펴보자면. 이강백씨 신작 ‘느낌,극락같은’은 우선 연출자 이윤택의 ‘탈각’ 몸짓이 진지하다.천성이 화려하고 공격적인 연출자는 불교가 형식이냐,내용이냐 설왕설래하는 고전적 대본을 받아놓고 한호흡 졸라맨 것 같다.불상 코러스는 생각보다 요란스럽지 않게 희곡의 굳은 반죽을 무르게 하는 일등공신이 됐다.뒤쪽까지 넓힌 무대를 시원스럽게 써 공백만 보면 채우고자 하던 기질을 억제한 티도 역력했다. 문제는 희곡.이강백작품의 관념성이야 고유 세계라 치더라도 신작이 그의 연대기에서 뚜렷한 발전으로 뵈지 않는다.소재만 불교로 옮아갔을 뿐.예를 들어보자.형식보다 부처 마음이 중요하다고 돌부처를 만들며 떠도는 불상 제작자 서연.죽은 스승 함묘진은 그를 뒤쫓는 딸의 환상에 나타나 “돌부처 있는 길에서 못 만났거든 없는 길에서 기다려 보라”고,비워야만 찾아지는 삶의 비의를 은유한다.이는 방황 장면의 초현실적 정황에서 울림있는 상징으로 설득력 있다.그렇다면 이 대목.‘형식’파 동연과 형태니 마음이니 숱한 논쟁을 벌이다 집나간 서연이 오랜만에 돌아와 “사람사는 곳 돌아다녀 보니까 모든 것을 형태가 결정하더라”고 또 되뇐다.이 정도 되면 형태며 마음은 더이상 상징이 아니다.구호다.이런 날말들을 쏟아부으며 연출가에게 살을 붙이라는 건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 게다가 연기.역사적 맥락이나 일상이라는 안전장치가 없는 은유적,우화적 작품에서 연기자는 어쩌면 유일한 도구다.그는 서사 전달을 넘어 울림의 공간을 보여줘야 한다.사투리며 혀짧은 소리는 부수적이라고 접어두자.본질로만 따져도 젊은 연기자들은 한참 수련을 요한다.예술의전당 토월극장.580­1880. ‘천년의 수인’ 이전에 근엄한 표정의 한국현대사를 누가 감히 ‘개그’로 건드려 볼 생각을 했을까.연출가 오태석은 안두희,비전향 좌익수,80년 광주 진압병 등을 통해 한국현대사 고름의 진원지를 꿰뚫을 기도를 한다. 그런 류의 기도는 흔했다.그런데 방법이 전복적이다.총 한발에 평생을 저당잡혀버린 안두희 가족의 불운이,명령복종한 죄로 살인자가 돼버린 저격병의 광기가 드러나려 할 때마다 람보같은 상사가 이끄는 감시군이,노란 비옷차림의 간호사가 떼로 나타나 쇼를 벌이며 미꾸라지처럼 감정이입의 상황에서 관객을 빼간다.‘수인’들의 푸념과 초현실같은 코미디가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연극은 일단 재미있다.그 숨가쁜 호흡이 때론 빠른 컷으로 돌아가는 컬트영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연극에서 한국현대사 처지는 불운하다.현대사를 이리저리 비틀어 관객에게 낯설게 보이게 하자니 무얼 다시 봐야 하는가.안두희며 저격병이며 수인들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이고 책임질 권력자가 따로 있다? 그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저처럼 역사에 잘못 발목잡히면 피보기 쉽다.그저 조용히 살아야지”하는 역사 허무주의와 상대주의에나 빠지게 만들 위험이 없는지.이 ‘조울증’ 연극은 재미로는 성공했지만 ‘현대사 다시보기’에 새롭게보탠 뭔가는 없어 뵌다.동숭아트센터.3673­4466.
  • 스리랑카 불교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73·끝)

    ◎그곳에 가면 ‘부처’가 된다/아누라다푸라­부처가 정각이룬 보리수 50m 루완웰리탑 위용/폴론나루와­드러누운 열반상 푸근/시기리야­200m 암벽에 세운 궁전 벽화 미인 살가운 미소 【스리랑카=金鍾冕·金明國 특파원】 인도양 위에 한 점 외로이 떠있는 망고모양의 섬 스리랑카.‘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을 지닌 스리랑카의 옛 이름은 실론이다.동북부의 타밀 반군과 14년 넘게 내전을 치르고 있는 나라지만 스리랑카에는 정신적 풍요로움이 깃들어 있다.유구한 불교적 전통 때문일까. 스리랑카에는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쇼카왕의 아들 마힌다가 불교를 처음 전전했다.석존이 열반한 직후에 전파된 소승불교였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신할라 왕조의 보호 아래 민중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식민세력인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가 불교를 박해했을 때에도 스리랑카사람들은 미얀마나 타이의 고승을 맞아들이는 등 소승불교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갔다.스리랑카는 지금도 소승불교의 성지로 숭앙받고 있다. 스리랑카는 전국이 문화유적지라고 할 만큼 고대 문화가 온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그 유산은 주로 아누라다푸라와 폴론나루와,그리고 캔디를 잇는 이른바 문화삼각지대(cultural triangle)와 시기리야에 몰려 있다.아누라다푸라는 기원전 5세기경에 세워진 스리랑카의 첫 수도다.콜롬보에서 북쪽으로 200㎞쯤 떨어진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인 ‘스리 마하 보리수’가 있다.전하기로는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쇼카 왕의 딸 상가미타가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가지를 가져와 옮겨 심은 것이다.이 보리수는 부처가 정각(正覺)을 이룬 나무로 신성시된다.수령(樹齡)이 2천200년이 넘는 이 보리수는 잎은 무성하지만 줄기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보리수를 지나 오른편에는 40개씩의 돌기둥이 40줄로 늘어서 있는 ‘로하 파사다’ 절터가 있어 그 옛날의 영화를 전해 줬다.그 너머로는 높이가 50m에 이르는 루완웰리 대탑이 하늘을 찌를 듯 위용을 드러냈다.이 탑은 338개의 코끼리 조각품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채로웠다. 11세기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으로 타격을 받은 스리랑카는 수도를 아누라다푸라에서 폴론나루와로 옮겼다.밀림 속의 고대도시 폴론나루와의 유적은 남북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 둘러보기 편했다.이 옛 도읍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비자야 바후 1세와 파라크라마 바후 1세 두 왕 시대의 것들이다.폴론나루와에서의 주목거리는 단연 파라크라마 바후 1세 때 세워진 갈비하라 불교사원이었다.이 곳에는 열반상·입상·좌상 등 3기의 불상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길이가 14m나 되는 열반상은 오른팔로 머리를 괴고 왼팔은 몸을 따라 쭉 뻗은 형상이었다.열반상 특유의 좌우 크기가 다른 발 모습도 볼 수 있었다.발 밑에 자잘하게 뻗친 연꽃의 뿌리는 땅을,꽃은 하늘을 향했다.입상의 높이는 7m,좌불상은 5m에 달했다.팔짱을 끼고 있는 입상은 석가의 수제자인 아난 존자라고 한다.하지만 연꽃대좌에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석가의 제자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석가라는 설도 있다.좌불상은 진리를 터득한 석존을 나타낸 것이다. 계율을 중시하고 자기 인격완성에 힘을 쏟는 소승불교의 참뜻을 새기며 시기리야로 발길을 돌렸다.시기리야는 5세기 카샤파 왕조때의 수도로 고고학적으로 특히 가치있는 유적지다.폴론나루와에서 시기리야까지는 약 70㎞.자동차로 정글 속을 50분 가량 달리니 곧추선 적갈색의 바위산이 거대한 요새처럼 다가왔다.이 시기리야 록은 예술가이자 정신이상자이기도 했던 카샤파왕이 부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 뒤 후환이 두려워 바위 꼭대기에 세웠다는 궁전 터다.암벽의 높이는 200m는 족히 됐다.이곳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시기리야 벽화 때문이다. 벽화를 보려면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타고 꼬불꼬불 나 있는 철제 계단을 올라야 했다.그것은 마치 외줄을 타듯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고행이었다.정상에 오르니 앙가슴을 훤히 드러낸 시기리야 벽화 미인이 살가운 미소로 이방객을 맞아 줬다.시기리야 벽화는 왕의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압살라라는 요정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이 ‘시기리야 레이디’는 당초 50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훼손돼 18명만 남아 있다.시기리야 벽화 아래쪽에는 ‘미러 월(mirror wall)’이라 불리는 회랑 벽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달걀 흰자와 꿀,석회 등을 이겨 칠했다는 ‘거울 벽’은 진주처럼 반짝거렸다.벽에는 역대 왕조의 흥망을 노래한 서사시와 시기리야 벽화의 여인을 칭송하는 시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이 시들은 신할라어로 씌여진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의 치아사리를 모신 불치사(佛齒寺)로 유명한 고도(古都) 캔디는 신할라 왕조의 마지막 도읍지다.살색 벽에 갈색 지붕을 한 불치사는 인공호수인 캔디호를 끼고 있다.이 사원은 4세기에 자이나교의 세력에 쫓긴 남인도의 한 왕녀가 부처의 치아를 머리카락 속에 숨겨 스리랑카로 가지고 왔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그 부처의 치아는 지금도 불치사 본당에 있는 일곱 겹의 황금상자 속에 보관돼 있다.스리랑카 사람들은 이것을 민족의 상징이자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긴다.스리랑카에서는 매년 7∼8월에는 불치 축제가 열린다.화려한 의상을 걸친 코끼리의 등에 부처의 치아를 싣고 시내를 한바퀴 도는 행사다.‘불심(佛心)의 나라’스리랑카에 가면 부처의 얼굴을 닮는다. ◎여행 가이드/콜롬보서 200㎞ 거리… 시기리야는 버스타야 아누라다푸라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유적지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유적지는 도시를 흐르는 말와투 강의 서쪽에 주로 있다.유적순례는 유적지구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이수루무니야 사원에서 출발하거나 스리 마하 보리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폴론나루와는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교통은 좀 불편한 편이다.아누라다푸라에서 폴론나루와까지는 하루 여러 차례 버스가 다닌다.시기리야까지는 철도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가야 한다.직행편이 없을 경우에는 스리랑카 최대의 석굴사원이 있는 담불라를 거쳐 가야한다.‘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로 불리는 캔디에서는 캔디왕조시대에 궁전연회에서 추었던 춤에 민속무용적 요소를 가미한 캔디안 댄스를 관람할 수 있다.
  • 이강백­이윤택 예사롭지 않은 첫 만남/느낌,극락같은

    예술의전당 이강백 연극제에서 ‘느낌,극락같은’은 단연 화제작.네편 가운데 이것만 초연이다.작가 이강백과 연출자 이윤택의 첫 만남이기도 하다.작가는 현실을 은유하는 묵중한 대사,알레고리 등 관객을 ‘괴롭히는’ 관념적 작품으로 진작부터 입지를 다져온 중진.반면 연출자는 90년대 인기 절정인건 분명하지만 대중의 혀에 착 감기는 요리 감각으로 ‘고급대중극’을 표방한 인물이다.이질의 만남이 불러일으킬 흥미의 파장을 당사자가 먼저 안다는 듯 둘은 서로의 예술세계를 겨냥,한판 설전을 치뤄 상품성을 더욱 높여놨다.22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드디어 막이 오른다. 불교를 축으로 한 그 기둥줄거리는 낯익다.한 스승한테 배운 불상제작자동연과 서연은 불상 만들때 형식이냐 마음이냐를 놓고 갈라진다.갈등의 골이 패가던 중 동연이 스승의 딸 함이정을 범하고 서연은 ‘진정한 부처 마음’을 찾겠다며 길을 떠난다.함이정의 아들이 대립을 지양할 화두로 찾아든 것은 음악.일견 전형적인 ‘극락’궁구 드라마를 연출이 어떻게 ‘느낌’으로육질화할지가 주목거리다. 스승 함묘진에 신구·고능석,서연 조영진,동연 이용근,함이정에 김소희 등.동연과 서연의 불상을 사람에게 맡기고 불상 코러스 12명까지 동원한 것에서만도 감각적 연출이 엿보인다.6월14일까지.평일 하오 7시30분 토 하오 3시,7시30분 일 하오 3시.580­1880.
  • 대관령 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2)

    ◎굽이굽이 ‘옛길’따라 질박한 삶의 흔적/사임당의 旅路 정취 그대로/나선형 이어진 6개 전시실/통일신라 미륵불상부터 연자방아·돌대야·우물까지 99개의 굽이 굽이마다 옛 사람들의 숱한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동의 관문 대관령.이 대관령 아래 첫 마을인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는 신사임당이 넘나들며 어머니를 그리는 시를 지었다는 ‘대관령 옛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취로 가득한 이 옛길 왼편에 단아한 자태를 드리우고 있는 대관령박물관(관장 洪貴淑)은 영동지방의 명소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채 대관령 계곡이 교차해 가로지르는 가운데 들어앉아 마치 대관령에서 굴러 내린 돌 한점이 오똑 앉아 있는 모양이다. 이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지난 93년 5월.30여년간 전국을 다니며 옛 것을 고집스럽게 모아온 한 여성 수집가의 집념으로 어렵사리 만들어진 결실이다.대지 3천평에 건평 220평의 이 박물관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야외 전시장과 백호방 현무방 토기방 청룡방 우리방 주작방 등 특색 있는유물 1천200점을 갖춘 6개의 전시실이 나선형으로 이어져 관람객들을 맞는다. 영동고속도로를 뒤로 하고 계곡 위에 장난감처럼 얹혀 있는 아담한 목조 난간 다리를 건너면 나타나는 고인돌 모양의 붉은 벽돌 건물.건물 좌우에 석등과 장승들이 마치 문지기처럼 들어서 있어 처음부터 흔치 않은 옛풍광을 전해준다.고인돌을 들어서는 느낌으로 네개의 큰 기둥을 지나치다보면 원형 공간을 앞에 둔 전시관이 우뚝 서 있다.전시관 입구 왼쪽엔 삼신할머니상 2개,오른쪽엔 ‘머슴과 낭자상’이 친숙한 한국인의 얼굴로 다가선다. 전시관 중앙은 불교미술을 보여주는 공간인 백호방.원형 홀 가운데에 2.5m 높이의 통일신라시대 미륵불상이 천정에서 쏟아져 내리는 자연채광을 받으며 온화한 미소를 던지고 서 있다.벽면엔 전통악기인 장구줄을 늘어뜨리고 흰색기둥 위아래를 오방색 띠로 장식해 옛 것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분위기다.전시장엔 궁중유물 3점이 놓여 있는데 16세기 가마장식끈인 가마수술과 병학서적 등 규장각 고서,그리고 보물급 고려시대 목불(木佛)이 그것.이 가운데 가마수술은 통도사 소장품을 빼놓곤 유일한 것이다. 백호방 오른쪽은 청동기 유물을 모아놓은 현무방.광목천을 사용해 거북이 현상으로 덮은 천정이 인상적이다.천정아래 청동에 금입사한 대구(帶具)부터 구리거울,약물을 끓였다가 덥히는 초두,우물물을 정화시키는 정병들이 색다른 감흥을 전해준다.그 다음은 토기방.진흙과 밀집으로 구석기시대 움막집을 연상시키는 방을 꾸며 구석기부터 고려시대에 걸친 토기들을 보여주고 있다.가야시대 고리장군칼,신라 토우·쇠뿔잔,통일신라시대 토기장군,청동기 무문토기들이 역사의 맥을 짚어준다. 토기방을 보고나면 햇빛을 스며들게 하는 무지개색 기둥들이 청룡방으로 이끈다.온통 녹색으로 칠한 방엔 청자·분청·백자들이 자연스럽게 발길을 모으는데 물고기무늬가 새겨진 어문병과 철사백자인형·분청사기철화문병 등 보물급 자기가 백미다. 다음은 조상들이 사용하던 민속품을 모은 우리방과 고서화를 보여주는 주작방이 차례로 기다리고 있다.마치 한옥을 들어간 것처럼 꾸민 우리방에는 ‘만우정’이란 대원군 친필 현판이 걸려있고 주작방에서는 호렵도·벽사도·설화도 등 조선시대 민화·병풍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전시관을 보고나면 온갖 석물(石物)들이 군상처럼 들어서 있는 야외 전시장이 기다리고 있다.잔디위에 배치된 문관석·동자석 17개와 신라시대 석등 사리탑 부품,고려시대 향료석,조선시대 연자방아·돌대야,남근석 등이 푸근한 느낌을 전하며 은은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조선시대 우물을 옛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도 잠시나마 옛생활의 여운을 감상해볼 수 있는 볼거리다. 여기에다 박물관 북쪽에 병풍처럼 전개되는 푸른 소나무 숲과 계곡도 박물관의 멋을 더해주는 천연 소품.오염된 생활을 잊고 탁족이라도 하고 싶은 자연심을 진하게 자극하는 고즈넉한 풍경이다. ◎洪貴淑 관장 인터뷰/30년 모은 토기·고서화 한자리에/자연미 최대한 살려 소품 일일이 배치/정신적 쉼터 됐으면 대관령박물관 설립자인 洪貴淑 관장은 ‘천의 얼굴’을 가진 개성있는 인물.음대 기악과를 졸업한뒤 서양화와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토기와 고서화에 빠져들어 30년간을 골동품 수집에 바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골동품 하나하나를 모을 때마다 ‘왜’라는 의문을 갖고 찾아다녔지요.옛토기나 자기 하나하나에 독특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때 귀하고 값비싼 것에만 집착할 수 없게 됩니다” 처음엔 취미로 남들의 눈길을 별로 끌지 않는 토기를 모으기 시작,어느정도 안목도 생기게 됐고 결국은 하루일과를 골동품 가게를 찾는 것으로 마감하게까지 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줄곧 살아온 만큼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넉넉한 시골풍경이 항상 그리웠다는 洪씨.자연과 관련된 그림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난 80년대엔 서울 장안평에서 화랑을 경영하기도 했다.지금의 자리에 대관령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것도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동양화가의 소개에 따른 것. “박물관 부지를 소개받고 지난 90년 이곳에 왔을때는 화전민 4가구가 살고 있는 삭막한 땅이었어요.돌 하나 나무하나 모두 제가 일일이 배치한 것입니다.자연 그대로를 살릴 수 있는 박물관을 원했지요.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박물관이 철도역사의 내부구조를 그대로 살려 만든 것을 보고 크게 감명받았습니다.”그래서 이 박물관 내부도 자연스럽게 땅의 구조를 살려 관람객들이 오르내리도록 만들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洪씨는 “인근 관광지를 찾는 이들이 오가는 길에 들러 잠시나마 조상의 숨결이 담긴 유물을 둘러보는 정신적인 쉼터가 됐으면 합니다”라며 이 박물관이 해수욕장과 스키장 등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를 희망했다. ◎대관령박물관 가는 길/강릉 시내버스 운행/공항서 승용차 20분 대관령 한 기슭에 자리잡아 인근 강릉 경포대와 오죽헌,용평스키장 등과 더불어 방문해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현장까지 운행하는 노선버스가 많지 않아 다소 불편하지만 강릉시내에서 가깝고 고속도로 바로 옆에 위치해 쉽게 찾아가 볼 수 있다.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시내에 이르기전 어흘리 마을에서 우회전하면 된다.강릉시내에선 25번 가마골행 노선버스를 타고 25분 쯤 가다가 왼편 어흘리 마을에서 내리면 된다.강릉공항에서 승용차로 20분정도 거리. 연중무휴로 문을 열고 있으며 관람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6시까지.관람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관람료는 일반 2천500원,청소년 1천500원,노인·어린이 500원.0391)41­9801.
  • 불국사·석굴암 191억 보험 가입/보험료 3년간 1억2천만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불국사와 석굴암이 6일 동부화재와 보험계약을 맺었다.보험대상은 불국사 및 석굴암의 모든 건물과 불상,탱화 등으로 화재가 날 경우 1백91억2천만원의 보험금을 받는 조건으로 앞으로 3년간 1억2천만원의 보험료를 내야한다. 동부화재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화재로 전소할 경우 현재의 기술을 투입해 복구,재건하는데 드는 비용을 건축 전문가들과 상의한 끝에 1백91억원 가량의 보험금을 산출했다고 밝혔다. 동부화재측은 “유명 사찰들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불의의 사고에 대한 복구책은 미흡했다”면서 “이번 계약은 국내 유명사찰로는 최초의 화재보험 가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인도 북부 아그라 타지 마할(세계 문화유산 순례:70)

    ◎코발트빛 하늘에 우뚝 솟은 백진주/무굴황제 샤 자한 아내 추모위해 22년 대역사/정적인 균제미 대단… 힌두­이슬람 절묘한 결합 【인도(타지마할)=金鍾冕·金明國 특파원】 지금부터 360여년전 인도 무굴제국의 한 여인이 열 네번째 아이를 낳다 죽었다.그녀의 이름은 뭄타즈 마할,온갖 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일국의 황비였다.그녀에게는 신들도 질투할 정도로 자신을 사랑한 남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이다.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타지 마할은 이 샤 자한이 죽은 아내를 추모해 만든 영묘(靈廟)이다.타지 마할은 북인도의 고도(古都) 아그라에 있다.무굴제국 3대 황제 아크바르 대제 때의 수도였던 아그라는 인도 고대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아그라바나(천국의 정원)’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그러나 이곳에 정작 타지 마할이 없다면 아그라는 오늘날 그 명성의 태반은 내놓아야 했을 것이다. 아그라로 가기 위해 델리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델리에서 아그라까지는 약 200여㎞.버스는 마투라식 불상으로 유명한 마투라를 거쳐 갔다.차선도 없는 시골길을 5시간쯤 달렸을까.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하얀 돔이 사막의 신기루인양 눈앞에 다가왔다.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신화의 현장,그것은 ‘백색의 진주’였다.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 안으로 발을 떼어 놓았다.완벽한 좌우 대칭구조가 고도의 미학적 질서를 이루고 있는 대리석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그 정적인 균제미(均齊美)는 보는 이의 마음마저 가지런히 해주는듯 했다.타지 마할 묘역은 전형적인 무굴양식의 정원으로 꾸며졌다.중앙으로 길게 뻗은 분수의 물에 어린 타지 마할의 그림자가 아지랭이처럼 피어올랐다. 분수를 지나 샤 자한과 황비의 유해가 묻힌 타지 마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내부는 관람객들의 열기로 후끈거렸다.조금 어둑했지만 레이스 모양의 격자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오는 부드러운 빛이 신비한 기운을 더해줬다.회중전등을 든 안내원들이 꽃무늬가 새겨진 대리석 벽을 비추며 분주하게 오갔다.본당 한 가운데에는 투조(透彫) 대리석 간막이로 둘러싸인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빈 분묘가 놓여 있었다.델리에서 보았던 후마윤 황제의 묘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도굴을 막기 위해 만든 가짜 관이었다.진짜 관을 보기 위해서는 본당 대리석 마루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정원과 같은 높이의 6평 남짓한 지하 납골당에는 1층의 모조관과 똑같은 모양의 석관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1층의 호화로운 전시용 관과는 달리 그것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어 초라함마저 안겨 줬다. 샤 자한은 철저한 회교도였다.그의 치세 때는 가혹할 만큼 이교도를 배척했다.건물도 물론 이슬람풍 일색이었다.그러나 타지 마할은 좀 다르다.타지마할에는 이슬람과 힌두 두 문화가 절묘하게 혼합돼 있다.아라베스크나 갈매기형 무늬,그리고 창과 문 테두리의 뾰족한 아치는 이슬람색을 짙게 풍긴다.그런가하면 벽면에는 힌두교의 만신상(萬神像)이 가득 조각돼 있다.타지 마할은 그 기단부(基壇部)의 크기가 사방 95m,본체는 사방 57m·높이가 67m에 이른다.또 네 귀퉁이의 탑,즉 미나르도 높이가 43m나 된다.남성적인 힘을 느끼게하는 웅장한 규모다.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타지 마할은 어느 건축물보다도 여성적임을 알 수 있다.특히 후미진 앨코브(alcove)의 벽에 상감기법으로 아로새겨진 갖은 형상의 꽃문양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전해준다.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타지 마할의 대리석이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색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아침과 한낮,석양 무렵의 느낌이 다르고 달빛에 따라서도 그느낌이 다르다.누가 타지 마할은 낮에는 찬란하게 빛나고,황혼에는 따사롭게 작열하고,달빛 아래서는 영묘한 기운이 감돈다고 했던가.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타지 마할의 모습은 표정이 풍부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닮았다. 타지 마할은 1631년부터 짓기 시작,22년만인 1653년에야 완공됐다.이 대역사에는 2만명의 기술자와 노동자가 인도는 물론 아시아와 멀리 유럽으로부터 동원됐다.인도의 라자스탄에서 채취한 대리석을 건축자재로 쓰기 위해 1천여마리의 코끼리가 사역돼야 했다.또 중국의 비취,버마의 루비,다마스커스의 진주,터키산 옥 등이 건물 장식을 위해 운반됐다.이 타지 마할을 완성하는데 4천만 루피의 돈이 들었다고 하니,한 여인을 향한 사나이의 집념 앞에 고개를 숙여야할지 탄식을 토해야할지 어리둥절했다.게다가 샤 자한은 타지 마할이 완성된 뒤 다시는 그와 같은 걸작품이 나오지 못하도록 공사를 맡은 장인들의 손가락을 모두 잘라버렸다고 하지 않는가. 타지 마할은 이렇게 온 국력을 기울여 완성됐다.그러나 타지 마할을 다 짓고도 샤 자한의 고분지통(叩盆之痛)은 가실 줄 몰랐다.건축광이었던 그는 이내 타지 마할이 마주 보이는 야무나강 건너편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이번에는 검은 대리석을 사용해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건조한 다음두 무덤 사이를 구름다리로 연결할 작정이었다.하지만 그 뜻은 자신의 아들에 의해 좌절됐다.샤 자한은 만년에 황위계승 싸움에 휘말려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아그라 성에 유폐됐다.샤 자한 자신이 부왕(父王)을 밀어내고 등극했던 바로 그 인과(因果)의 고리가 아들을 통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샤 자한은 만년을 아그라성의 8각망루에서 타지 마할을 바라보며눈물로 보냈다.그리고 8년 뒤 일흔 네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타지 마할은 언제 보아도 보석처럼 영롱했다.하지만 그것이 수많은 생령(生靈)들의 울부짖음을 뒤로 하고 태어난 것임을 어쩌랴.애욕,권력,죽음,연민,분노,허무 등의 낱말이 기자의 머리속을 맴돌았다.공연한 상념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인근 아그라 성으로 발길을 돌렸다.멀리 타지 마할의 둥근 지붕위로 까마귀 떼가 까옥대며 날아 올랐다.그 뒤편으론 성스러운 야무나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타지 마할의 하늘은 여전히 코발트 빛이었다. ◎타지 마할 가는 길/델리∼아그라 열차 2시간/광광버스로 3대 명소 순회 아그라로 가기 위해서는 델리를 기점으로 삼는 것이 편리하다.델리에서 아그라까지는 비행기와 열차,버스편이 모두 마련돼 있다.비행기로는 40분,열차로는 2시간 정도 걸린다.또 일반버스에서 디럭스급까지 여러 종류의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닌다.중앙역격인 아그라 간트 기차역에는 주정부에서 운행하는 시내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타지 마할·아그라성·파테푸르시크리 등 아그라의 3대 명소를 하루에 둘러볼 수 있어 이용할만하다.
  • 문화재 나들이/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박물관장을 역임한 어느 고고학자의 회고다.그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던 시절 KAL 007편이 소련 미사일에 격추된 사고가 일어났다.마침 박물관은 한국 문화재의 유럽 전시회를 준비하던 중이었다.KAL 참사 소식을 듣고 그 고고학자와 소식을 전한 박물관 직원이 맨 처음 나눈 대화는 엉뚱했다.“우리 문화재가 탄 비행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는 것이었다.“나중에야 유족들이 생각 났습니다.269명이 죽은 엄청난 사고였는데….그 KAL 사고에서는 나도 죄인입니다” 문화재의 해외 나들이는 관련 전문가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일이다.국보(國寶)급 유물들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그래서 한 비행기에 모두 실을 수 있는 분량이라도 두 비행기에 나누어 싣는다.유물의 종류도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나누어 포장한다.이를테면 도자기가 2개 나간다면 한개는 이 비행기,또 한개는 저 비행기에 싣도록 하는 것이다.KAL 사고가 났을때 바로 한 비행기는 떠나고 다른 비행기가 떠날 참이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한국실 개관기념전시회(6월7일∼99년 1월24일)에 선보이기 위해 우리 문화재 121점이 미국에 보내질 예정이다.그 가운데는 국보 9점,보물 24점이 포함돼 있어 지난 79년 미국 순회전시회를 가졌던 ‘한국미술 5천년전’(334점) 이후 최대 규모의 문화재 나들이다.기원전 4천∼3천년전에 제작된 빗살무늬토기부터 조선조 후기 회화(繪畵)의 대표작인 단원(檀園) 풍속도첩까지 각 시대별로 엄선한 이 문화재는 비행기 3대에 나누어 공수(空輸)된다.‘한국미술 5천년전’ 당시 보험 평가액이 1천5백만달러 였던데 비해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지불 보증한 보험액수가 1억2천만 달러(약 1천5백60억원)에 이른다해서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보험액수가 아무리 많아도 손상된 문화재는 원상복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험부담률이 높은 문화재 해외나들이는 가능한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실제로 대규모 문화재의 해외나들이는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적도 있다.이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 문화재를 감상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한국실 개관기념전도 메트 소장품 중심이 되도록 하면서 시기적으로 보완할 것만 도와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어쨌거나 이번에 나들이하는 귀중한 우리 문화재가 무사히 전시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 30년 외길 이강백 연극세계 조명

    ◎예술의 전당 ‘오늘의 작가’ ’98 주인공 선정/16일∼6월14일 최신작 등 4편 공연/김아라·정진수 등 개성적 연출가 참여 예술의전당의 간판 연극프로그램 ‘오늘의 작가’ 시리즈의 98년 주인공은 이강백(52)이다.예술의전당이 94년 오페라극장 개관을 기념하며 격년제로 마련한 이래 오태석(94년),최인훈(96년)에 이어 세번째로 선택한 오늘을 대표하는 작가다. 이강백은 71년 작가 데뷔 이후 30년 가까이 우화적 방법으로 우리 사회와 인간의 본질을 파헤치는 희곡 28편을 발표하며 ‘알레고리 작가’라는 별칭을 얻기까지 희곡 외길을 고집해온 순수 희곡 전업작가.그의 연극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이강백 연극제’가 오는 16일부터 6월1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다. 이번 연극제에서는 30년 그의 연극세계를 10년주기로 대표하는 기존 3개 작품과 미발표 최신작 1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이들 무대는 특히 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요즘의 연극계를 대표하는 독특한 개성의 연출가 4명과 이들이 이끄는 4개 극단에 의해 각기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된다는 점에서 매력을 끈다. 16일 막을 올리는 첫 무대는 김아라의 연출로 극단 무천이 꾸미는 ‘내마’.사회상황을 특유의 알레고리 어법으로 해부하고 비판했던 70년대의 단막작품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더듬어 정치와 체제,인간을 성찰한다. 두번째 무대는 극단 민중의 ‘주라기의 사람들’.사북탄광 사태를 소재로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분단의 문제 등 80년대 이강백의 작가적 관심을 보여준다.이미 이 작품과 ‘칠산리’ 등에서 이강백과 만났던 정진수가 연출을 맡는다. 또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켰던 90년대 이강백의 연극세계는 채윤일 연출로 극단 쎄실이 제작한 ‘영월행 일기’를 통해 조망한다.채윤일 역시 96년 이 작품을 연출했던 바 있다. 이어 연희단거리패의 ‘느낌,극락같은’이 5월22일부터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이 공연은 이강백의 신작 발표무대이자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연출가 이윤택과 이강백의 첫 만남의 자리다.불상제작을 둘러싸고 스승의 딸과 두제자 사이에서 빚어지는예술적 갈등과 통속적 사랑의 삼각관계를 통해 예(藝)와 도(道),인간의 삶의 본질을 짚어본다.한편 이번 연극제에서는 이들 작품공연 외에 5월12일 하오 2시 전당내 서예관에서 ‘이강백을 바라보는 네가지 시선’을 주제로 한 세미나도 열린다. 공연은 평일 하오 7시30분,금·토 하오 3시·7시30분,일 하오 3시(월 쉼).문의 580­1880.
  • 金善吉 해양수산장관에 듣는다(올해 國政 어떻게)

    ◎“중·일과 어업협상 인내심 갖고 신중 추진”/가덕 등 신항만 건설 차질없도록 전폭 지원/수산물 유통개혁… 기르는 어업 대대적 육성 金善吉 해양수산부 장관은 2일 서울신문 金榮晩 경제부장과의 대담에서 “바다는 낭만과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향한 개발과 도전의 대상이며,기회가 있는 곳”이라며 “행정 및 법규운영에 유연성을 두어 활력이 넘치는 행정을 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金장관은 이어 한일 어업협정 재개와 관련,“협정시한인 내년 1월까지 인내를 갖고 추진할 계획”이라며 “한일 두 나라는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정도여서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협상에 임하면서 어민의 권익보호 등 실리를 얻는데 중점을 둘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담=김영만 경제부장 ­상공부 차관 역임후 17년만에 관계에 복귀하셨는데….교수와 행정가,정치인 등 다양한 경력으로 미루어 해양수산 행정도 한단계 올려 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를 21세기 일류 해양국가로 만드는 중요 역할을 담당할 해양수산부의 장관을맡아 개인적으로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이곳이 외교통상부 다음으로는 국제관계 일이 많은 곳입니다.옛 상공부 근무할 때 공부한 국제업무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야당에서는 바다가 없는 충북출신이 해양부장관에 임명된 것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국회에서 충북도 높이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다고 말했습니다.오히려 바다가 없었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동경이 해안쪽 출신보다 더 크고,비젼이 많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3면이 바다인 우리의 여건과 21세기 ‘해양의 시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해양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절실합니다.앞으로 해양환경의 보전과 조화되는 해양산업 육성을 위해 행정의 효율성을 높여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한일 민간어업단체들이 잇따라 접촉하고 일본정부의 공식·비공식적 사과로 새 한일 어업협정 체결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우리 정부가 협상에 임하는 기본입장은 어떻습니까. ▲내년 1월23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있습니다.일본이 파기한 어업협정은 지난 65년 국교정상화의 산물이었습니다.그동안 세상도 많이 변했고,고쳐야 할 상호간에 이유도 있었습니다.양측이 서로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일본과의 관계는 여전히 감정적이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실리를 취해 나가려고 합니다.우리 어민의 권익 극대화가 협상의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우리 어선과 일본어선들의 감정적 대립은 소강상태인 것 같은 데요. ▲순시선과 지도선을 동원해 불상사가 없도록 여러가지로 신경쓰고 있습니다.그러나 감정의 폭발은 늘 내재된 상태여서 걱정입니다. ­중국과의 어업협정도 신경을 써야 할텐데요. ▲중국과는 96년 이후 9차례에 걸쳐 어업협상 체결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아직 양국간 어업협정수역의 폭에 대해 의견차가 큽니다. ­지난해 5월에 발표한 ‘21세기 해양수산비전’을 검토해 보셨습니까.굵직굵직하고 내용은 그럴듯한 것들이 많지만 구체적으로 실천하기에는 어려운점도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계획을 죽 훑어 보았는 데 그 자체로는 훌륭합니다.앞으로 각계의 의견을더 수렴하고 현실에 가깝고 개발이 가능하도록 보완·수정해 나갈 부분도 많았습니다.역사의 흐름에 맞춰 역사관같은 것도 넣어야 한다고 봅니다.다만 독도개발문제는 좀더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항만의 효율 극대화와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민영화를 서두르고 규제 위주의 항만행정도 과감히 고쳐나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만. ▲민간이 부두시설을 일괄 임대받아 운영하는 부두운영회사제를 부산·인천항 등 전국 8개 무역항애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부산 자성대부두도 올해안에 민영화방안을 확정할 겁니다.특히 불필요한 행정규제를 대폭 완화해 이용자 중심으로 항만행정을 펴 나갈 계획입니다. ­IMF 체제에서 가덕신항 광양항 아산항 등 주요 SOC사업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질 지 걱정입니다.어떤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습니까. ▲올해는 1조원 이상을 항만개발에 투자할 계획이었습니다.그러나 IMF 체제로 정부재정을 감안,8천8백억원을 추경예산에 반영했습니다.항만개발을 위해 해외차관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그러나 외국기업의 투자와 민자유치업체의 차관자금 도입은 적극 지원할 방침입니다. ­실업자가 갈수록 늘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항만의 경우 노동조합이 인력을 공급하는 체계여서 감독이나 임금체계 등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데 개선방안은 있습니까.항만의 정보·자동화가 진전되면서 대량실업도 불가피한데요. ▲실업자가 늘어나 정말 큰 일입니다.항만의 기능인력 확보를 위해 노·사·정 협조로 기술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하역 기계화에 따른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상재원을 확충하고 생산적인 항만노무공급체계 구축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장개방 이후 수입어종에 대한 국산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어민들이 고생하고 있습니다.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은 없습니까. ▲IMF 한파로 모든 부분이 어렵습니다.어업인들의 경제적 부담이 큰 유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면세유류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계획입니다.현재 5∼6단계에 이르는 수산물 유통구조도 3∼4단계로 축소,생산자가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싼값으로 생선을사 먹도록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수산업은 이제 ‘잡는 어업’이 아니라 ‘기르는 어업’입니다.21세기의 식량자원 확보차원에서 신품종 어류개발이 시급합니다.어촌종합개발사업과 바다목장 개발계획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요. ▲현재 전체 수산물 생산량의 30%인 연간 1백만t이 기르는 어업입니다.급변하는 어업환경에서 식량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육성시책을 펴 나가겠습니다.어촌종합개발사업을 위해서는 그간 1천7백억원이 투자됐고 오는 2004년까지 160개 권역에 5천4백억원을 더 투자하게 됩니다.기르는 어업의 실현을 위해 통영 앞바다의 바다목장 계획도 추진중입니다. ­해운업계에서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국제선박등록제의 세제지원이 너무 적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만. ▲제도를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우선 시행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겠지요.지방세를 2000년까지 유보하는 등 행정자치부 재경부 등 관련부처와 세제감면 등의 문제를 계속 협의하려고 합니다.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장을 앞둔 부산감만과 광양항의 전용터미널사용료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정해서 강제한 것이 아니라 업체들이 입찰을 해서 들어왔는 데 이해가 안갑니다.그러나 IMF시대에 모두가 어려운 만큼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지요.좀 더 지켜 보고 업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마침 올해는 UN이 정한 ‘세계 해양의 해’입니다.장관께서는 공식적인 자리에 설 때마다 ‘바다 홍보’를 무척 강조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분야별 구체적 홍보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지요. ▲국민들이 해양에 대해 너무 인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바다의 중요성과 잠재력에 대한 홍보를 좀 더 강화해야겠습니다.해양문화재단을 중심으로 해양문화 발전을 도모하고 특히 청소년들에게 바다에서 미래를 찾도록 꿈을 불어 넣어 주겠습니다.초중고교 교과서에도 해양관련 내용을 많이 싣고요. ­홍보를 하려면 이벤트를 많이 만들어야지요. ▲매월 생선시식회에 장관이 직접 나갑니다.그래야 언론이 관심을 갖고 홍보도 될 것 아닙니까. ◎2010년 모습 드러낼 첨단 해양도시/올해부터 프로젝트 본격화 21세기 고도 정보화·과학화 시대의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과학·공상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첨단 해양산업도시가 2010년대에는 우리나라에도 건설된다. 해양수산부가 21세기 해양의 시대를 앞두고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21세기 해양수산비전’에는 해양공간의 종합적 활용을 위해 첨단 해양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들어있다.물론 아직은 제반 기술이 취약해 꿈의 단계에 불과하다. 해양부는 그러나 기술발전의 속도로 미루어 적어도 5∼6년 후면 우리도 선진국 수준의 해양공간이용 첨단기술을 확보하고 해양구조물에 대한 핵심기반기술을 자체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수도권의 바닷가 도시부근에 건설될 이 첨단 해양도시는 일종의 인공섬 형태.21세기 해양시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건설이다. 이곳에는 국제적 해양관련 회의를 소화할 컨벤션센터를 비롯,수산연구센터 수산과학관 수산물가공·유통단지 등이 들어서게 된다.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바다의 꿈을 심어주기 위한 수련장도 건설된다.관광객을 위한 수중전망대,선상레스토랑이 마련되고 바다목장과 연근해 어업전용어항도도 들어서 해양공간의 활용을 높이게 된다. 해양부는 이 계획의 추진을 위해 올해 2억원을 들여 기반기술,타당성조사에 착수한다.기술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내년과 2000년,2001년에 각각 12억원씩 36억원을 더 투자하고 2001년부터는 부지조성 및 시설설치에 착수할 계획이다.해양도시 건설에 투자될 재원은 시설설치 등 1단계 계획이 끝나는 2011년까지 2조5천1백61억원(96년 불변가격 기준)이다. 해양도시가 건설되면 해양개발기술을 확보하는 효과 외에 바다와 육지를 이어줌으로써 활동적 여가공간을 유치하고 수도권의 입지난 해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 경주 나원리 석탑 발견/통일신라 유물 공개

    지난 96년 경북 경주시 나원리 오층석탑(국보 제39호)에서 발견된 금동사리함 등 8세기중엽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이 2년간의 보존처리를 거쳐 27일 모습을 드러냈다.국립문화재연구소가 당시 석탑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유물중 이날 공개한 유물은 높이 4㎝ 크기의 금동제 불상을 비롯해 금동사리함·금동 작은탑 4점·목제 사리공(舍利孔) 뚜껑과 작은탑 1점.작지만 원형이 잘 살아난 금동 불상은 발견 당시 순금제로 알려졌으나 보존처리결과 두광(頭光)에 화염무늬가 새겨진 금동제로 밝혀졌다.
  • 분황사 상량문 발견/보광전 개축중… 불교벽화도

    【경주=李東九 기자】 경주시 구황동 분황사 경내에 있는 보광전(普光殿) 개축 공사장에서 분황사 창건 연대를 비롯,분황사 역사를 총체적으로 기록한 상량문과 높이 80㎝,폭 50㎝ 불교벽화가 발견됐다.경주시는 보광전 개축공사를 하던 중 지난 24일 상량에서 분황사의 창건연대와 본전에 안치돼 있는 약사여래불상(경북도 문화재 자료 319호)의 사용재료,보광전 중건과정 등을 기록한 상량문을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 “1차진술만으로 영장청구 가능”/김원치 지청장 문답

    ◎권씨 존중 몸수색 안해… ‘강압’ 당치않하/회견 공작금 25만불 출처 밝힐수 없어 김원치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은 22일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상태가 호전되는 대로 빠르면 23일 안기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권씨에 대한 신병처리는. ▲의료진과 상의해 23일 청구여부를 결정하겠다.상태가 나빠져도 영장을 발부받은 뒤 집행은 미룰 수 있다. ­신문 전에 수색을 하지 않은 이유는. ▲수사진의 잘못이 아니다.권씨가 자진출두 형식으로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의 강제수사 규정에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2차 진술은 언제 받나. ▲의료진의 의견을 종합해 검토하겠다.현재 권씨는 1차 진술을 마친 뒤 본인의 동의(날인)만을 받지 않은 상태이다.이 진술서로도 영장청구가 가능하며 증거서류로 법원에 제출할 수 있다. ­공작금 25만의 출처와 중간에 없어진 3만1천달러는. ▲출처는 아직 밝힐 수 없다.3만1천달러는 이 전 실장이 갖고 있다가 다른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배달사고로 볼 수 있다. ­특수조사실에 설치된 폐쇄회로 TV가 작동했었나. ▲폐쇄회로 TV는 사고 당시 사용할 필요가 없어 작동시키지 않았다. ­수사 분위기가 강압적이었나. ▲수사진에게 권씨의 명예와 인격을 존중하는 수사태도를 보이라고 거듭지시했기 때문에 강압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해 동기와 칼의 출처 등은. ▲사고후 수사진이 권씨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권씨가 밤샘조사를 받으며 수차례에 걸쳐 성경을 만지작거리며 수사진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했고 이때 가방 또는 성경책 속에 있던 칼을 꺼내 몸에 감춘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수사는 누가 지휘하나. ▲23일 상오 다른 사람에게 수사지휘권을 넘긴다.권씨가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털어놔 진상을 규명하는데 협조했다면 부하에 대해 관대한 처분을 하려했으나 불상사가 발생,진상규명이 다소 어려워졌으며 결과적으로 부하들에 대한 처분에 영향을 주어 유감스럽다.
  • 조각가 최기원(이세기의 인물탐구:163)

    ◎‘비상·탄생·열망’ 창조하는 예술가/국립묘지 현충탑·독립기념관 ‘추념의 장’ 대표작/작품마다 한국적 개성 독특… 미­유럽서도 호평 ‘문화란 특수층의 향유물이 아니며 모든 사람들이 고루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조각가 최기원의 신조다.그는‘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태어났는가,어떻게 머무르고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풀기 위한 방법으로 조각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의 예감대로 군중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 대형조각품들을 설치할 수 있었다. 동작동 국립묘지의 현충탑,독립기념관의‘추념의 장’을 비롯한‘태초의 빛’‘비천상’등 기념물과 각종 상징탑,발전상과 성장탑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불꽃같은 정열과 확신에 찬 신념으로 그는‘비상’과 ‘탄생’과 ‘열망’을 일사불란하게 창조하는 시기다. ○국전 4회 연속 특선 그가 미술의 등용문인 국전을 통해 데뷔하던 56년에는 ‘추상조각’분야가 따로 없었으나 연속4회 특선으로 추천작가가 되자 자기 내면에 꿈틀거리던 상상속의 형상,상징적 주제들을자유롭고 분방하게 모색할 수 있었다.예를들어 불꽃과 꽃봉오리,나무와 새와 열매의 구상적 형상을 서로 통합시키거나 형태적 변주로 탄생을 계시하는가하면 앵포르멜적 성향에서는 ‘예리한 선조의 구조’로 섬세한 용접에 의한 평면투조를 추구하여 청동의 부식효과로 세월의 영욕을 표현해 내기도 했다. 평론가 이일씨에 따르면 63년,한국작가들이 파리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했을 때 오프닝에 참석했던 당시 프랑스 드골내각의 공보담당 국무상이었던 앙드레 말로가‘최기원의 동양적 사유가 깃든 작품에 관심’을 보인 것이 그가 화단의 주목을 받게된 계기다.이후 그의 작품성은 지난 92년에도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험프리 화인아트 초대전에서 화랑대표인 리처드 험프리씨가‘한국적 개성이 돋보이는 그의 청동조각품은 세계적인 미술시장 불황에도 불구하고 콜렉터들이 다투어 소장하기를 원한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작품 창작땐 ‘완벽’ 주의 결국 그가 끈질기게 파고든 ‘탄생’시리즈는 발전과 흥성을 상징하는 가운데 생명의 근원인 물과 불을 다루게 되었고 기하학적 패턴에 의한 추상적인 개념속에 다양한 형태를 변주시켜 인류의 개화나 창조적 미래를 암시하기도 한다.이른바 ‘우의적’형상에 따뜻한 휴머니즘이 감도는‘화합’의 ‘조율’을 성취해낸 것이다. 역시 미술평론가인 김복영은 ‘동양적 사유에 바탕을 둔 예술을 발현하기 위해 그가 얼마만큼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작가인가’를 설명하는 글에서‘그의 작품은 생명의 탄생을 해석하는 동양인의 마음을 한눈에 보여준다’고 말한다.그 한 예로 외환은행본점 정문 보도에 세워진 ‘영원한 불꽃’은 거대한 고층빌딩과 조화를 이룬 둥근 형태와 간결한 곡선,화살처럼 날카롭게 하늘로 치솟는 사선에 불꽃과 분수로 물과 불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낸다. 독립기념관의 ‘추념의 장’도 후면에 설치된 대형부조는 나지막한 능선의 양날개에 성화대를 배치하고 건물 전면에는 태극을 의미하는 둥근 원속에서 힘차게 치솟는 분수로 물과 불의 작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때마다 그의 소재는 언제나 청동이었고 지나친 청동집착에 대해 오광수는 ‘황금빛을 연상케하는 찬란한 동빛과 이끼가 낀 푸른 구성으로 자신의 조형을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몰아가면서 예각적인 선조와 구형의 공존,직선과 곡선의 대비로 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고 평한다. 최기원은 순서울토박이다.종로구 연지동에서 은행원인 최용구씨의 아들 3형제중 막내.효제초등학교 후배이자 서양화가인 이만익에 의하면 ‘동이 지니고 있는 재료적 특성으로 한국의 미를 발굴하는 작가’로서 개성을 남발하지 않지만 작품에 임할 때는 철두철미하게 ‘완벽’을 기하는 주의다.서울의 문안사람답게 자화자찬을 싫어하고 남에게 폐끼치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정겨운 대인관계를 유지한다.문학과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한때는 충신동에 있던 월탄댁이나 미당,김동리씨가 나오던 명동 청동다방에 드나들기도 했다.집안은 예술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가 하고싶은 것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 그의 수많은 작품중에서도 ‘그림자 놀이’시리즈는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새의 눈을 만들고 새는 언제나 설화적인 알(난)을 품고 미래를 향해 똑바른 응시를 찬연하게 지속시킨다.그것은 승리와 탄생과 창조를 예고하지만 과불급이 없는 중용을 깨뜨리지 않는 것도 그만의 장점이다.이와 관련하여 그의 종교관을 엿볼수 있는 작품으로는 천안시 태조산 각원사에 세운 세계최대의 야외 청동좌불과 속리산 법주사 야외 청동미륵대불을 빼놓을 수 없다. 각원사 좌불청동상은 3년의 긴 역사끝에 얻어진 결과로 앉은 키만도 14m20㎝,일본 가마쿠라(겸창)의 불상보다 1m가 더 높은 대작이다.그는 이 작업을 맡기까지 불교관계자들과 ‘100번도 더 넘게’만나야 했고 ‘욕심이 없는 순수한 심성’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까다로운 절차가 번거로운 나머지 중도에서 그만두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불상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킬 수있었다.가족은 전배구선수이던 부인 김성희씨와의 사이에 1남3녀,평소엔 짙은 남색셔츠에 정장을 즐기는 멋장이지만 흙공장을 연상케하는 목동 작업장에 들어서면 노동자로 변신해버린다. 그는 절차탁마끝에 예술가로서 가장 정상에 서서 주변의 존경과 흠모를 받는 위치다.그러나 ‘깨끗한 청년성’과 ‘불꽃’의 열정을 잃지않는 그는 자코메티가 말한대로 ‘하나를 만들면 천개가 연달아 나오는 샘물같은 영감’과 ‘형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에서 과일이 열리듯이 열려져 나온다’는 것을 터득한지 오래다.그래선지 ‘예술은 미의 방법을 통해 진과 선의 문제를 포용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자신의 ‘불꽃’을 내면에 감춘채 다만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면서 제2,제3의 ‘탄생’과 ‘창조’를 지금도 끊임없이 모색하는 자세다. □연보 ▲1957년 홍익대 조각과 졸업 ▲1956­59년 국전 연속 4회 특선(문교부장관상 수상) ▲1960년부터 국전추천·초대작가 ▲1963년 파리비엔날레출품(프랑스 현대미술관 작품소장) ▲1967­69년 한국미술협회이사 ▲1969년 한국현대조각회창립 회장 ▲1972년 개인전(신문회관 화랑) ▲1982년부터 현대미술초대전 초대작가 및 운영위원 ▲1984년부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조각분과위원장,동아미술제심사위원 ▲1984­86년 독립기념관 ‘추념의 장’지명공모 당선,작품제작 ▲1985년 선화랑 초대개인전,서울신문사주최 서울현대조각공모전 심사위원,한국조각가협회 창립회장 ▲1988년 88올림픽예술축제한국현대미술초대전,도시의 환경조각전 홍익대 교수,한국조각가협회회장,한국미술협회고문 아시아반공연맹최고상(57년)문교부문예상(66년)국전초대작가상·예술원장상(81년)
  • 호암미술관 ‘아미타전’

    호암미술관(0335­20­1801)은 소장품 테마전의 하나로 지난 3일부터 ‘아미타전’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 미술관이 열었던 ‘대고려국보전’과 ‘몽유도원도와 조선전기국보전’의 연장선에서 우리민족의 미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꾸민 기획전.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제작된 불상과 불화·경전 등을 한자리에 모아 불교문화와 전통미술의 특성을 훑어본다. 아미타신앙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신앙.통일신라시대에 특히 성행해 부석사 무량수전·불국사 극락전 등에 아미타상이 봉안됐다. 이번 기획전은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불교 미술품중 아미타여래를 숭앙하기 위해 제작된 것들만 모아 놓은 자리.불상·불화·사경·전적 등 모두 42점이 나와 있다.국보 85호인 ‘금동신묘명삼존불’과 국보218호 ‘아미타삼존도’·국보128호 ‘금동관음보살입상’ 등 국보 3점과 보물 5점도 들어있다.8월30일까지.
  • 반 수하르토 시위 재발/인니 대학생 “하야” 요구

    【자카르타 DPA 연합】 인도네시아에서 4일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대학생 시위가 재발됐다. 자바 중부의 요갸카르트시에서 3천여 대학생들은 “수하르토 퇴진”을 외치며 가자흐 마다대에서 교내 시위를 벌였다. 사우스 술라웨시 주도 우중판당에서도 대학생 6천명 이상이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이스트 자바 주도 수라바야에서도 이날 학생시위가 벌어졌다. 당국은 시위 현장에 병력을 파견했으나 강제 해산하지 않았으며 이렇다할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 국태공의 보은(비록 남가몽:2)

    ◎대원군,정권잡사 신세진 쌀장수에 관직/이조판서 홍종응 집서 무참하게 냉대받고/서 강사는 쌀장수 이천일 찾아가 사정하니/쌀 20섬·돈 1천냥 꾸러미·정육 100근 선뜻/아들 보위 오를던날 궁중잔칫상 차려 대접 고종이 즉위하자 아버지 흥선군은 대원군이 되고 세상사람들은 그를 국태공이라 불렀다.운현궁도 초가 삼간에서 대궐같은 기와집으로 탈바꿈했다.당시의 돈으로 1만7천830냥이나 들여 신축하였으니 만일 그 때가 IMF시절이었다면 즉각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실로 오랜만에 권좌에 오른 대원군이었던 만큼 그까짓 1만이나 2만냥 같은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고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나라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동안 자기를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하고 자기를 능멸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응분의 불이익을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먼저 대원군이 손을 보려 했던 사람은 이조판서 홍종응이었다.이사람은 당대 유수의 대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는데 안목이 없었고 세상일에 너무 각박했다.○하인폭거로 왼손에 유혈 1863년 임술민란(일명 진주민란) 직후의 경제는 특히 어려웠다.요즘과 같은 경제난국이 닥쳐 모든 사람들이 하루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는데,흥선군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래서 하루는 흥선군이 홍판서 댁을 찾아가 구걸하게 되었는데,홍판서는 문전박대를 했다.문전박대 뿐만 아니라 그 댁 하인이 대원군에게 폭행까지 하여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국태공이 흥선군 시절에 너무 가난하여 늘 꾸워 먹고 살았다.임술민란이후에 인심이 점점 각박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하였다.이조판서 홍종응의 집에 가서 입을 열고 싶었으나 여러 번 은혜를 입은 처지라서 쉽게 말하기도 어려웠다.그러나 염치를 불고하고 부득이 찾아가니 하인들이 나와서 말하기를 ‘우리 대감께서는 근래에 건강이 좋지 못하여 잠시 산정의 사랑에 쉬러 갔습니다. 소인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아무라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으니 다른 날 다시 오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고 했다.그러나 세모에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 배도 고프고 목마름이 심하여 일이 성사되건 안되건간에 한번 만나 얘기나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흥선군이 애걸하니 하인들이 차마 거절하지 못하여 협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홍종응이 답하기를 ‘이왕에 몇번 청구하신 것은 즉시 봉행해 드렸습니다만 지금은 세모를 당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구걸하니 이들을 다 구제해주기 어렵습니다.얼마 안되는 이조판서의 봉급으로는 그 사람들을 다 기쁘게 해주기 어려우니 대감께서 금번에 청하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차차 형편을 보아 후일에 도와드리겠습니다’ 하고 흥선군의 청을 거절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흥선군이 그 집 문밖을 나설 때에 불상사가 생겼다.뒤를 따라 나온 홍종응의 하인이 발길로 협문의 판자를 찼다.그 조각이 흥선군의 손을 내리치니 다섯 손가락에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러나 서강에 사는 쌀장수 이천일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홍종응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흥선군은 손에 붕대를 감은 채 그 길로 이천일의 집을 찾아갔는데 맞이하는 태도부터가 홍종응과는 크게 달랐다. ○“집권자 되면 은혜 갚겠다” “부득이 서강에 사는 쌀가게 주인 이천일을 찾아갔다.흥선군을 맞은 천일은 크게 놀랐다.문안을 드린 후에 보니 흥선군의 왼손 다섯 손거락에 피가 엉기어 얼었고 상처의 흔적이 매우 심하였다.천일이 ‘어찌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하고 물으니 대원군은 ‘나귀를 모는 아이가 실수하여 빙판에 떨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천일이 약수로 피를 씻어낸 후에 손을 헝겊으로 싸니 조금 통증이 가셨고 정신이 들었다. 그런 뒤 천일이 ‘대감은 어찌해서 누한 곳(누지)에 행차를 하셨습니까.’고 물으니 대원군은 ‘다른 이유가 없고 몇년 전부터 내가 그대의 은혜를 입어 왔으나 지금 세모를 당하니 추운 절기에 살아갈 길이 막연하여 염치불고하고 찾아왔네’ 하고 답했다.이에 천일이 아뢰기를 ‘형편이 그러시다면 물건 보내라는 패지(메모지) 한 장이면 족하실텐데 대감께서 예까지 친림하셨습니까.송구할 따름입니다.염려하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요.내일 아침일찍 조처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고 황송해했다. 대원군은 집에 돌아왔으나 저녁을굶은 터라 추위가 더욱 혹독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천일은 약속대로 이튿날 아침 일찍이 물자를 보냈다.흥선군이 조반 후에 서강의 이천일에게서 보내 온 목록을 보니 쌀 20섬,돈 1천꾸러미,장작나무 50바리,정육 100근,서초(평안도에서 나는 담배) 30근이나 되었다.흥선군은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생각하면서 ‘만약에 하늘이 도와 내가 집권자가 된다면 제일 먼저 그 은혜를 갚겠다’고 맹세하였다.” ○경상감사와 비슷한 녹봉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거지 흥선군이 국태공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1863년 12월8일 젊디 젊은 철종이 갑자기 승하하니 운현궁에 왕기가 서렸다. 아들이 임금이 되고 흥선군이 대원군으로 뜬 것이다. 즉위식 날 대원군이 서강의 쌀장수 이천일을 특별히 부르니 천일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달려와 운현궁으로 들어섰다. 대원군이 친히 손을 잡고 인도해 가니 천일은 떨리고 황공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몸을 굽히고 있었다.그 두터운 은혜를 이루다 헤아리기 어려웠다. 이 때 대원군의부인 민씨가 이천일이 온 것을 알고 궁중의 잔치상을 내어오게하니 천일은 손이 떨려 진수성찬을 다 먹을 수가 없었다.이에 대원군이 친히 천일의 손을 잡아 상에 앉게 한뒤 큰 은반에 홍로주를 가득 부어주니 천일에게 그렇게 큰 영광은 처음이었다.” 대원군은 왕실의 체면을 많이 떨어 뜨렸으나 그 정분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뿐만 아니었다. “드디어 이천일이 선혜청 고직에 임명되니 그 수입이 경상감사의 봉급보다 못하지 않았다.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있다하더니 과연 헛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홍종응 처럼 한치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천일같이 착한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니 이 일은 두고 두고 후세 사람들이 명심할 일이라 할 것이다.
  • ‘한국과 일본,왜곡과 콤플렉스의 역사’ 출간

    ◎왜곡으로 얼룩진 한일역사/‘칠지도’ 논쟁 등 54가지 주제 해부/춘추필법 정신살려 객관적 고찰 한·일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한국과 일본은 고대의 적극적인 국가교류에서 중세의 소극적인 접촉,근세의 상호교린,근대 이후의 갈등과 대립의 관계로 변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그 관계는 가히 숙명적이라고 할 만큼 여러 방면으로 깊숙히 얽혀있다.그러나 두 나라 국민의 역사인식의 벽은 영원히 넘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높다. 최근 도서출판 자작나무에서 펴낸 ‘한국과 일본,왜곡과 콤플렉스의 역사’(전2권,한일관계사학회 지음)는 한일간의 역사적 쟁점을 객관적 시각에서 다룬 역사교양서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논쟁적인 주제는 모두 54가지.이 가운데 하나가 헌상품인가 하사품인가를 놓고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칠지도 문제다.특히 칠지도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최근 TV방송을 통해 집중 조명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칠지도는 일본 나라현 텐리시의 이소노카미 신궁(석상신궁)에 보관돼 있는 일본의 국보다.이 칠지도에대해 대부분의 일본학자들은 백제 조정의 헌상품이라는 주장을 편다. 그 배경에는 ‘일본서기’ 신공황후조의 삼한정벌 기록을 사실로 뒷받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칠지도의 진실은 무엇일까.이와 관련,이 책의 공동저자인 이영식 교수(인제대)는 칠지도에 새겨진 61자의 금상감 명문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4세기 중·후엽 백제는 왜와 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이전까지 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수한 모양의 칼을 만들어 보냈다” 이 책은 또한 그 제작자와 제작 장소를 놓고 오랜 논쟁에 시달려온 우리나라의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의 국보 1호인 고류지(광륭사) 보관 반가사유상,임진왜란때 조선에 귀화한 왜장 김충선의 실존여부를 둘러싸고 일본 학계에서 벌어진 논란에 대해서도 소상히 살핀다. 일본 교토의 우즈마사(태진)에 있는 고류지라는 절에는 나무로 만든 2구의 불상이 안치돼 있다.침울하게 우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우는 불상’이라고 불리는 1구의 미륵반가상과,이와는 달리 소박하고 단순한 모양이지만 한일 고대 불교미술사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또 다른 1구의 미륵반가상이 그것이다.그런데 이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 논란을 빚고 있다. 일본 것은 나무이고 우리 것은 금동이라는 재질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양식이나 조형적인 감각이 너무 비슷하다. 이 책은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720년에 완성된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를 비롯한 문헌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그런 다음에 백제 제작설이나 신라 제작설,그리고 한국의 금동반사유상을 일본이 본떠 만들었다는 모작설 등이 규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에 귀화한 항왜의 한 사람인 김충선을 둘러싼 논란도 관심을 끌만한 대목.본명이 사야가인 김충선은 임진왜란 때의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조선을 침략했다가 귀화한 인물이다.그는 조선인이 된 뒤에는 여진의 침구를 막아내고 이괄의 난과 호란 때도 공을 세우는 등 조선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현재 대구 우록동에는 그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우록서원은 후손들의 배움터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야마지 조이치(산도양일)·가와이 히로타미(하합홍민)·아오야기 츠타나로(청류강태랑) 등 일본의 사가들은 김충선의 저서인 ‘모하당집’은 위작이며 사야가는 매국노라고 강변한다. 이 책은 김충선의 사후 행해진 일본의 엄청난 역사왜곡상을 빈틈없이 소개,우리들로 하여금 일제 식민지 시대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이 책은 최근 한일간의 쟁점이되고 있는 일본의 일방적인 어업협정 파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요컨대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연안국주의,즉 조업단속 권한을 어선의 소속국이 아닌 연안국이 갖는 원칙을 채택하자는 것이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의 최단거리는 53㎞.맑은 날이면 부산에서 대마도의 산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그러나 고구려 광개토왕비에서 최근의 어업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여전히 갈등의 골이 깊이 패여 있다.이것은 한일관계의 역사적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함으로써만해결될 수 있다.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 한일관계에서 특히 빠져들기 쉬운 국수주의적 역사관을 버리고 춘추필법의 정신을 살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 ‘김대중 총재 비자금’ 수사 발표문

    ◎진실 발견 최대 노력 경제 영향·여론 참작 최대한 형평성 유지/당 운영·대선비 명목 의원들이 받아 처리 대가성 인정 안된다/375억원 입금된 13명의 가차명 계좌 피고발인과 무관/허위사실 공표·무고혐의 인정되나 고발없어 불입건 ▷수사경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97년 10월16일 신한국당(현 한나라당)박헌기 김영일 황우려 이국헌 의원 등이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상대로 고발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조세) 및 무고 사건과 같은 달 17일 바른정치실현시민연대가 신한국당 강삼재 이사철 의원을 상대로 고발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위반사건에 대하여 2월22일까지 전 수사력을 투입해 수사했다. 그동안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 등 기업 관계자 52명,권노갑 전 의원 김봉호 의원 등 국민회의 및 정당 관계자 29명,김용진 이수휴 전현직 은행감독원장,박청부 증권감독원장 등 금융관계자 62명,김홍업 등 김총재 친인척 55명,한승수 김광일 전현 대통령비서실장,김영수 문종수 전현 민정수석,손주환 김중권 이원종 전 정무수석,이현우 전 경호실장 및 경찰청 조사과 관계자 49명 등 총 250여명을 조사하는 한편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였다. 김총재에 대해서는 바쁜 일정을 고려하여 서면조사를 하였고 이희호 여사로부터도 자술서를 제출받았다. 그러나 고발인 4명은 명의만 빌려주었을 뿐 사실 관계는 전혀 모른다는 이유로 검찰 출석을 거부해 조사하지 못했다. 검찰은 IMF 체제하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수사범위를 각 고발사실 범위내로 국한하고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선택하여 수사를 진행하되 엄정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 발견에 최대한 노력하였다.아울러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제기된 사건이므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국민여론 등을 참작하여 수사진행 및 처리과정에서 불편부당함이 없이 최대한의 형평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사건처리 개요◁ 피고발인 김대중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조세) 및 무고=혐의 없음. 피고발인 강삼재 이사철의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위반=혐의 없음. 사정비서관 배재욱,은행감독원장 이수휴=사표수리 후 불입건. ◇김대중 총재의 특가법위반(뇌물,조세),즉 동아건설 등 10개 기업인으로부터 1백34억8천6백만원을 수수하였다는 고발과 관련 ­김대중 총재(이하 피고발인)는 어떤 명목으로도 자금을 수수한 사실이 없음. ­다만 동아건설 유영철 부회장(당시 사장)으로부터 92년 12월초 권노갑 전 의원이 15억원,김봉호 의원이 5억원을 ­삼성그룹 이종기 사장(중앙일보 사장)으로부터 91년 3월 권노갑 전 의원이 5억원,2억원 등 2회에 걸쳐 7억원을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으로부터 91년 7월 임춘원 전 의원이 5억원을 ­대동건설 박헌동 회장으로부터 91년 9월 김인곤 의원이 2억원을 ­대우그룹 자금담당 남상우 전무로부터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없는 당시 평민당 소속 국회의원 5∼6명이 92년 12월초 5억원을 교부받는 등 당시 평민당(민주당)의원 10∼11명이 5개 기업으로부터 총 39억원을 받았음.그러나 모두 당운영비,92년 총선,대선비용 명목으로 지원받은 것으로 판명돼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어 혐의가 없다. 나머지 한창 풍성전기 동현건설 벽산개발 대호건설은 피고발인이나 당 관계자들에게 금원을 교부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피고발인이 기업체 등으로부터 수수한 1천49억여원을 704개의 가·차명,친·인척명의 계좌에 분산예치,은닉함으로써 증여세를 포탈하였다는 고발과 관련 ­3백75억6천5백만원이 입금된 고발장 기재 이순오 등 13명의 가·차명계좌는 성명불상자의 자금세탁 계좌로 피고발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백95억1천2백75만원이 입금된 이형택이 관리했다는 349개 계좌 중 262개 계좌 입금총액 2백47억4천3백75만원은 피고발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나머지 87개 계좌 입금총액 47억6천9백만원은 이형택이 관리한 피고발인의 정치자금임이 확인됐다. ­3백78억3천6백97만원이 입금된 피고발인의 친·인척 41명의 342개 계좌중 3백70억2천2백97만원이 입금되어 있는 319개 계좌는 피고발인의 친·인척의 사업용·사용 계좌로서 피고발인과는 아무런관계가 없다.그중 23개 계좌의 입금액 기준 16억2천4백만원은 이형택이 관리한 피고발인의 자금으로 확인되었으나 이 가운데 22개 계좌 입금액 8억1천4백만원은 이형택이 관리한 87개 계좌 입금 총액 47억6천9백만원에 포함돼 있다. ­위 확인된 피고발인의 입금액 기준 55억7천9백만원은 피고발인이 정치자금으로 일시 입금하였다가 인출하여 사용한 것으로 판명됐다. ◇‘20억+α’설 무고 여부와 관련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계좌인 가명 민영애 계좌에서 인출된 3억원이 91년 1월14일 평민당 사무총장 계좌에 입금되었고,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경호실 명의로 발행의뢰된 자기앞수표 3천만원이 91년 9월16일 이형택이 관리하는 계좌에 입금된 사실은 확인되었으나 피고발인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위 자금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계좌인 소심회 계좌에서 인출된 3억원이 91년 5월30일 평민당 사무총장 계좌에 입금되었다는 고발내용은 계좌추적 결과 소심회계좌가 아닌 대우그룹 계좌에서 인출된 것으로 판명되어 피고발인이 노전 대통령으로부터 위 자금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 ◇강삼재 이사철 의원과 계좌추적 관계인 등의 금융실명제 위반부분과 관련 강삼재 이사철 의원과 기타 한나라당 관계자는 법률상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경제명령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어 혐의 없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다만 ▲피고발인이 수수하였다고 한 3억원의 자금출처가 (주)대우임이 명백하고 ▲친·인척 41명 342개 계좌에 대하여는 근거없이 입금된 총액을 피고발인이 축재·은닉한 자금이라고 허위·과장하였으며 ▲관련 기업들로부터 피고발인이 수수하였다는 금원에 대하여는 자금원(공여자)이나 최종 사용처(수수자)가 규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기초적인 사실확인 작업없이 폭로 및 고발을 한 점이 인정되므로 폭로자,고발인,폭로 및 고발지시자,고발장 작성에 관여한 자 등은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 만회를 위하여 허위사실을 공표 하거나 고발한 것으로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와 무고죄의 혐의 인정되나 정치적 사건으로서 피해자의 고발이 없는상황에서 검찰이 입건,처벌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되므로 불입건하기로 하였다. ◇배재욱 청와대 사정비서관,전 은행감독원장 김용진,현 원장 이수휴,전 증권감독원장 백원구,원장 박청부,전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장 천사령,현 조사과장 박재목,은감원 전 검사6국장 김무길,현 검사6국장 김상우,경찰청 조사과 박규현,김종회 및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직원 등 20여명은 불법으로 고발장 기재 704개 계좌를 추적함으로써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경제명령 위반죄의 혐의는 인정된다. 그러나 불행한 과거사를 청산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고 관계자들에 대하여는 그들이 크게 뉘우치고 있는 점,피해자의 고발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하여 배재욱 비서관,이수휴 은행감독원장에 대하여는 사퇴를 조건으로 불입건하고,증권감독원장 박청부는 지난 4일 임기만료로 사퇴한 점,나머지 자금추적 관계자는 상사의 명령에 의하여 저지른 범행임을 각 감안하여 불입건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총재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 결과 ▷기업 제공 비자금◁ ▲고발내용=김 당선자가 동아건설 등 10개 기업으로부터 134억여원 수수 ▲수사결과=평단당 소속 의원 10여명이 5개 기업으로부터 39억원 수수했으나 대가성 없음 ▲고발내용=동아건설 62억여원 ▲수사내용=동아건설 20억원 ▲고발내용=삼성그룹 24억원 ▲수사결과=삼성그룹 7억원 ▲고발내용=진로건설 5억원 ▲수사결과=진로건설 5억원 ▲고발내용=(주)한창 5억원 ▲수사결과=대우그룹 5억원(한창과는 무관한 대우자금 판명) ▲고발내용=대동건설 2억원 ▲수사결과=대동건설 2억원 ▲고발내용=대우그룹 20억원,동현건설 5억원,풍성전기 5억원,벽산개발 4억원,대호건설 2억여원 ▲수사결과=금품교부 사실 없음 ▷김 당선자 친인척 계좌 등 은닉 비자금◁ ▲고발내용=김 당선자가 기업체 등으로부터 받은 1,049억여원을 704개 가·차명,친인척 명의계좌에 분산 은닉,증여세 포탈 ▲수사결과=김 당선자가 처조카 이형택씨 명의로 88개 계좌에 55억여원을 정치자금으로 일시 입금했다가 인출해서 사용했으므로 조세포탈 혐의 없음. 나머지는 친인척 개인계좌 등으로 관련 없음 ▷20억+α 부분◁ ▲고발내용=김 당선자가 92년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 받은 외에 91년 6억3천만원 받았음에도 20억+α설을 주장한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을 무고 ▲수사결과=3억3천만원이 노 전 대통령 비자금 계좌 등에서 평민당 사무총장 및 이형택 계좌에 입금됐으나 김 당선자가 직접 받았다는 증거 없음. 3억원은 대우그룹 계좌에서 인출된 것으로 판명 ▷신한국당측 금융실명제 위반 부분◁ ▲고발내용=신한국당 강삼재·이사철 의원과 계좌 추적 관계인 등 20여명이 불법으로 704개 계좌를 추적함으로써 금융실명제 위반 ▲수사결과=강·이 의원 등 단순히 폭로만한 사람은 처벌조항이 없음.나머지 자금추적 관계자는 모두 혐의 인정되나 배재욱 청와대 사성수석비서관과 이수휴 은행감독원장 등은 그 직책의 사퇴를 조건으로,나머지는 상사의 명령에 의해 저지른 범행임을 감안,불입건
  • 여권 JP총리 인준 비상/양당 8인협의회 소집…다각도 대책 논의

    ◎지도부까지 나서 야의원 개별설득키로 ‘김종필 총리’국회인준을 놓고 여권에 비상이 걸렸다.한나라당이 20일 김종필 총리 불가의 뜻을 굳히자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양당 8인협의회를 소집,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지도부가 모두 나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개별 설득하는 등 ‘불상사’를 막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이날 총리인준 반대를 당론으로 확정함에 따라 25일 국회 본회의에서의 ‘정면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국민회의는 특히 한나라당이 소속의원 이탈을 막기 위해 투표에 불참하거나 백지투표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저지할 다각도의 대응책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이와 함께 남은 기간 가동할 수 있는 채널을 총동원,한나라당 의원들과의 개별접촉을 통해 지지세를 넓혀 나간다는 복안이다.한 관계자는 “비록 한나라당이 총리인준 거부방침을 세웠으나 소속의원들 중에는 총리인준에 찬성하는 인사도 적지 않다”면서 “남은 기간 야당의원들을 최대한 설득하면 의외의 성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상오 국회 국민회의 총재실에서 양당 8인협의회를 소집,투표불참과 표결거부,백지투표,반대투표 등 예상되는 한나라당의 전략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성향을 분석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한나라당이 본회의를 불참하거나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여론을 감안할 때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또 백지투표도 지난 72년 백두진 국회의장 사퇴권고 결의안 처리때 여당인 공화당이 시도했으나 무효처리된 만큼 실현가능성은 적다는 판단이다.양당은 “야당이 새정부 출범에 제동을 건 적은없다”(조세형 대행)“한나라당이 이성적으로 결정하리라 믿는다”(자민련 강창희 총장)는 등 총리인준에 자신감을 보이면서 한나라당을 압박하기도 했다. ○…국민회의 박상천·자민련 이정무 총무는 하오 국회의장실에서 한나라당 이상득 총무와 만나 한나라당내 기류를 점검하고,총리인준안 처리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무위로 끝났다.여권의 두 총무는 이날 회담에서 총리인준에 대한 ‘협력’의 반대급부로야당의원 빼가기식의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정무총무는 이어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끝난 뒤 이상득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절충방안을 타진했으나 단호한 거부의 뜻을 전해듣고 곤혹스러워 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의 막후대화도 긴박하게 전개됐다.전날 한나라당 조순 총재를 찾았던 자민련 박태준 총재는 하오 구천서의원,조영장 전 의원과 함께 국민신당 이만섭 총재를 방문,협조를 요청했다.박총재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제2야당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향후 국정운영에 있어서 국민신당과의 긴밀한 협력의사를 강조하면서 동조를 당부했다는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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