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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영주 부석사/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1000년 세월을 듣는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부석사에 가려면 귀찮더라도 예습부터 할 일이다.여느 사찰에 가듯 뒷짐지고 두어 바퀴 거닐다가,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 나왔던 그 유명한 무량수전 앞에서 기념사진 몇 컷 찍고 나오기엔 부석사 나들이가 너무 허망하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왕명에 의해 창건했다는 부석사는 한국전통건축의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사찰이다.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법등이 끊이지 않았던 역사성,독특한 공간구조와 장엄한 석축단,당당하면서도 우아한 기품을 갖춘 세련된 건물들. 부석사엔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석등,조사당,소조여래좌상,조사당벽화 등 5점의 국보와 3층석탑 등 4점의 보물이 있다.이중 부석사를 대표하는 것은 대웅전격인 무량수전이다.고려 현종 7년(1016) 원융국사가 중건했다.무량수전의 압권은 부드럽고 탄력적인 곡선미를 보여주는 배흘림 기둥과 팔작지붕이다. 거칠게 다듬어진 주춧돌 위에 세운 기둥의 지름 사이즈는 34-49-44㎝.기둥머리에서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오면서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지는 배흘림은 팔작지붕과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일직선이 아닌 정사각모양으로 돌려 쓴 무량수전(無量壽殿)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특이한 것은 무량수전에 오르려면 누구나 ‘극락’의 뜻이 담긴 ‘안양루’란 누각 밑 계단을 걸어올라야만 한다는 것.불자들은 부처님을 만나거나 극락에 오르는 길은 신분의 고귀함이나 미천함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이다.이 건물은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다른 데 무량수전 앞마당과 이어진 위쪽엔 ‘안양루’,위로 오르기전 입구엔 ‘안양문’이라고 씌어 있다.무량수전에 오르기 전엔 ‘문’이고,오르고 나서는 ‘누각’인 이중의 기능을 부여했다.안양루에 서면 발아래 엎드리듯 모여 있는 경내 건물들의 지붕들,그리고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그래선지 옛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 오르면 끓어오르는 시심(詩心)을 참지 못하고 적지않은 시문을 남겼다.그중 방랑시인 김병연 등 몇몇이 지은 시문은지금도 누각 안에 걸려 있다.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봤더니/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백년동안 몇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세월도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안양루에서 발 아래 경치를 감상하며 김병연의 시구를 읇조려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부석사 나들이는 보람이 있다. 영주 임창용기자 sdragon@ ■여행 가이드 *가는 길= 풍기를 들머리로 잡는 것이 편하다.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빠져나와 931번 도로를 타면 된다.30분 정도 달리면 소수서원,순흥향교 등을 지나 부석사에 닿는다.풍기서부터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일단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영주 또는 풍기로 간 다음 부석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숙박 및 먹거리= 주차장 인근에 명성식당(054-633-3262) 등 민박을 겸한 식당이 몇 군데 있다.좀더 깨끗한 곳에 묵으려면 부석사 입구의 코리아나호텔(633-4445),또는 풍기,영주시내 호텔이나 모텔을 이용하면 된다. 부석사 인근 식당에선 산채비빔밥을 주로 낸다.조금만 시간을 내 풍기로 가면 인삼정식,인삼갈비 등 인삼을 재료로 쓴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인근 가볼만한 곳= 신라 선덕여왕 때 두운조사가 창건한 희방사,조선 중종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의상대사가 부석사 터를 구할 때 초막을 지어 기거하던 자리에 지었다는 초암사 등이 찾아볼 만하다.소백산 옥녀봉 기슭에 자리잡은 자연휴양림에선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문의 영주시 관광담당(639-6062). ■둘러 볼만한 곳/ 벽화·불상… 예술혼에 감탄 꼭 문화유적 답사가 아니라도 일단 부석사를 찾는다면 무량수전과 안양루 이외에도 아래의 몇가지는 눈여겨 둘러보자. 먼저 부석사 창건 당시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무량수전 앞 석등.화려한 귀꽃 장식과 세련된 보살상 조각이 감탄을 자아내는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대표적 석등이다.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의 초상을 안치한 곳이다.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희귀하게도 건물내부 입구 좌우에 보살상,사천왕상이 남아 있다. 조사당 앞엔 이중 철창 속에서 보호받는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이 나무가유명한 ‘선비화’다.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은 뒤 가지와 잎이 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선비화 잎을 따 삶은 물을 마시면 아들을 얻는다는 믿음이 생겨 뭇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철창으로 보호하게 되었다.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조사당 벽화는 고려 회화사에 귀중한 연구자료로평가되는 작품이다.불명(佛名) 미상의 보살상과 다문천왕상 등을 담은 이들벽화 6점은 고려조 예술이 지니는 아름다운 선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무량수전에 모셔져 있는 소조여래좌상은 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걸작으로 꼽힌다.소조(塑造)상으로는 최대,최고의 불상으로,두꺼운 입술에서 고려불의 특징이 엿보인다.특이한 점은 불상이 정면이 아닌 측면,즉 동쪽을보고 앉아 있는 것으로,호국을 기원하는 뜻으로 서라벌을 향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권 출간

    어디 한곳에 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지적 편력과 독설 때문에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도 유별난 인물로 평가받는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그리고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두 사람이 만나서 나눈 대화는 과연 어떤 것일까. 최근 김씨가 통나무 출판사에서 펴낸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은,원시불교를 축으로 두 사람이 가진 사고와 세계관을 꼼꼼히 살필 수 있는 흥미있는 책이다.도올이 한달간의 인도 순례에서 얻은 원시불교에 관한 지적 사유와 지난 1월 11∼12일 인도 보드가야에서 친견한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를 3권으로 묶었다. 책은 팔리어삼장(경장·율장·논장)을 중심으로 원시불교를 탐구한 제1권,인도여행을 통해 불교미술사에 대해 나름대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제2권,달라이 라마와의 인터뷰인 제3권으로구성됐다. 도올이 책에서 줄곧 주장하는 것은 ‘역사 속의 불교,역사 속의 싯달타(붓다가 되기 전의 속명)’.그는 “팔리어 삼장을 통해 본 붓다의 모습은,차디찬 금동불상이 아니라 2500년전 인도 땅 마가다 지역에서 산 고뇌하는 한 청년이었다.”고 적고 있다.티베트에서 붓다의 화신으로 통하는 달라이 라마를 만난 것도 ‘역사적 붓다’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3권에 풀어쓴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긴장감이 느껴진다.대화는 “붓다가실제로 역사 속에서 우리와 같이 존재한 인간이냐.”는 도올의 도전적인 물음으로 시작된다.달라이 라마의 답변은 이렇다.“실존한 어떤 개인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팔리어 삼장 체계가 성립할 수 없다.그러나 불교의 가장 원초적인 출발은 싯달타라는 역사적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싯달타라는 인간이 구현하려고 했던 진리에 있다.”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세계의 종교를 보는 눈은 놀랄 만큼 일치한다.“불교는 과학이라는 인과세계의 신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영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불교로의 세계사적 전환이 불가피하다.”는공감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책에는 종교와 과학,티베트의 불행한 역사적 운명,21세기 인류사의 정신적 패러다임 변화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두 사람이 영어로 벌인 토론이 빼곡히 실려있다.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시각에선 여유마저 보인다.도올이 “중국 마오쩌둥 주석이 서거했을 때 성하께서는 애도를 표시했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달라이 라마는 “어찌 됐든 마오쩌둥은 중국 사람들에겐 주체적인 역사를회복시켜준 은인이 아니냐.”고 즉답한다.이어서 “마오쩌둥에게 감사할 것이 또 있냐.”는 물음엔 “그는 우리를 떠돌이 신세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 인류에게 불법을전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틀간의 만남 뒤 도올은 달라이 라마를 ‘무한한 호기심의 소유자’라고 기록한다.남의 말을 참으로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다. 도올은 “당신은 정말 깨달으셨습니까,정말 깨달으셨다면 그것을 저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는 잔뜩 긴장한 채 떨었다고 한다.그리고는 “깨달음을 물으신다면,공(空)과 자비를 통해 조금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통찰을 얻었다는 것뿐임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는 답변에 눈물이 고였다고적고 있다. 한편 도올은 10일 오후2시30분 동국대 본관 중강당에서 이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강연을 한다. 김성호기자 kimus@
  • 서해교전 정리 어떻게/ 北 “재발방지”… 군사회담서 재논의

    장관급회담 실무접촉에서 우리측 대표단이 가장 부담을 느꼈던 부분은 ‘서해교전’.실무접촉 결과가 전반적으로 좋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서해교전과 관련,공동보도문에 명백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명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여론이 나올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홍재(金弘宰) 통일부 대변인은 “우리측은 수석대표 기조연설에서 서해교전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전달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다시 촉구했다.”고 밝혔다.“북측도 기조발언에서 지난달 25일 보낸 전통문의 ‘유감’표시와 ‘재발방지’ 언급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앞으로 서해 무력충돌 같은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전체 분위기도 전했다.지난 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유감’ 표명은 남북간 교류·협력 강화를 위한 북측의 솔직하고 진지한 태도이며 추호의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 점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향후 군당국간 회담과 6일 예정된 유엔사 장성급 회담 테이블에서 서해교전에 대한 추가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게 우리측 설명이다. 서해교전에 대한 대북 공세는 이쯤으로 마무리하려는 듯한 인상도 주고 있다.재개된 장관급회담 등을 통해 실질 진전이 이뤄지면 서해교전과 관련된 비판여론이 수그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조계사 대웅전 전면 보수 - 새달말 해체후 내년까지 작업

    불교 조계종의 상징 격인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이 전면 해체,보수된다.조계종은 “대웅전의 천장과 기둥 등이 낡아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이르면 새달 말부터 해체에 들어간다.”고 최근 밝혔다. 국비와 시비 지원금 8억원을 포함해 총 30억원이 소요될 대웅전 보수공사는 내년 부처님 오신 날 전까지 마무리해 이곳에서 법요식을 가질 계획이다. 조계종은 대웅전을 완전히 해체해 일부 지주와 썩은 목재,기와의 20%쯤을 교체하며 법당 내부 바닥도 정비할 예정이다.불화와 단청,벽화도 원형을 복원하거나 고쳐진다.공사기간 중에는 대웅전 앞마당에 임시 법당을 마련한다. 경복궁 근정전과 함께 현존하는 조선 전통 목조건물의 최고로 평가받는 조계사 대웅전은,1928년 준공한 전북 정읍의 증산도 계열 보천교(普天敎) 십일전(十一展)을 1937년 11월 현재 위치로 이축한 것.이듬해 단청을 한 데 이어전남 영암 도갑사에서 본존불상을 옮겨와 낙성 봉불식을 거행했다. 고산 스님이 주지로 있던 70년대 썩은 서까래를 갈았고 1999년 현주지인 지홍스님이 부임해 기와를 전면 교체했다.이 과정에서 도리가 틀어져 있고 보머리가 빠져 있는 등 안전에 문제가 있음이 확인돼 그동안 보수 계획을 수립해왔다. 김성호기자
  • [오늘의 눈] ‘5·18정신 승화’ 지금부터 시작

    광주 5·18묘지가 22년만에 광주만의 차별화가 아니냐는 잘못된 인식을 극복하고 27일자로 ‘국립 5·18묘지’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반란,폭도들이란 멍에를 뒤집어 쓰고 청소차에 실려 이곳에 묻혔던 민주영령들이 비로소 완전하게 명예를 회복,법적·제도적으로 광주항쟁이 마무리된 셈이다. 물론 발포자가 가려지지 않았으며,학살 주범들이 형식적인 재판을 받은 뒤 지역주의를 등에 업고 힘을 쓰고 있기는 하다.그러나 이제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은 빛고을 광주의 ‘5월 정신’을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광주 민중항쟁은 한마디로 군부독재와 불의에 맞선 순수한 민중항쟁이었다.최초로 민중들이 민족사의 주체로 올라선 결정적 디딤돌이었다.청문회 등 우여곡절을 거쳐 97년 5월,5·18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자위적 무장투쟁의 합법성’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 저항권에 기초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정됐다. 여기에 10일 동안의 공권력 공백과 철저한 고립 속에서도 광주에서는 불상사 한 건 없었고 앞다툰 수혈로 나눔의 공동체 정신을 보여줬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해마다 장미가 피면 5·18묘역에는 한맺힌 절규가 되풀이된다.지난해 방방곡곡에서 이곳을 찾은 참배객은 55만여명이었다.이 묘역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주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묘역의 운영에 관한 업무와 관리는 광주시에서 국가보훈처로 넘어갔다.5·18관련자가 숨지면 이곳에 묻히고 ‘행불자’로 확인되면 묘비도 세울수 있다.또 자손들도 입학과 취직,진료 등에서 혜택도 받게 돼 위안이 되고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이어 공수부대의 무차별살상으로 광주항쟁이 촉발됐다.정부의 4차 보상이후 사망 154명,행방불명 70명,부상 3193명 등 모두 4312명(중복자 제외)인 것으로 집계됐다.97년 마무리된 광주 북구 운정동 산 34일대의 5만 280평 묘역에는 사망자 333기의 묘지가 조성돼 있다. 하지만 아직도 ‘폭도들의 반란’이라고 매도했던 언론들은 반성은커녕,남의 일처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이제 이들이 입을 열 차례라고 본다. 남기창 전국팀 기자kcnam@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만화경] 三步一拜

    미얀마며 캄보디아 같은 남방불교의 맥이 이어지는 동남아 국가들을 여행하다 보면 거리에서 탁발행렬과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된다.발우를 든 채 일렬로 줄을 지어 문간문간을 들르는 맨발의 승려들은 물론,그들을 기다리다가공양 음식을 정성을 다해 발우에 담아주는 시민들의 모습은 독특한 인상으로 남는다. 출가승이 하루 세 차례 어김없이 공양 때에 맞춰 거리를 순회하는 이같은 탁발행렬은 우리네 정서와는 퍽이나 동떨어진 모습이다.물론 이같은 탁발행렬은 몇 안되는 불교국가에 남아 전해지는 의식의 하나다.그러나 요즘 같은 현대에서 세간·출세간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이같은 합일의식은 각국 불자들로부터 동경의 대상이자 연구의 대상이 된다. 한국 불교는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 이후 사찰이 산중으로 옮겨가고 사대문 안에 승려의 출입제한이 오랜기간 지속되면서 도심보다는 산중의 이미지가 강하다.그래서인지 승·속의 구분이 엄격해 출가자가 세속에 관여하는 것도 달갑잖게 받아들인다.행자들이 계를 받고 승려가 되는 수계식때 빠짐없이 행해지는 일보일배(一步一拜) 의식에서 대부분의 스님들이 눈물을 보이는 것도 속세와의 단절에서 오는 심경의 발로일 것이다. 걸음 한발짝을 떼고 절을 한번씩 하는 일보일배는 불가에서 힘겨운 수행의 시작이며 중생을 향한 발로참회(發露慘悔)로 받아들여지는 신성한 의식이다.불제자만의 특별한 행사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나 승단 분열때 간헐적으로 대중 앞에서 행해지기도 했다.얼마 전 서울과 부산의 도심에서 오랜만에 일보일보의 변형인 삼보일배(三步一拜) 의식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25일 조계종 승려들이 북한산 관통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을 반대하며 농성중인 경기도 양주군 사패산 ‘철마선원’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다.지난 19일 서울역을 출발해 조계사까지 삼보일배를 한 스님들을 겨냥한 난입으로,불교계는 법난으로 규정하고 나섰다.당시 삼보일배를 한 스님들을 두고 세간에선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출가승이 세속에 관여했다는 질타와,수행 도량을 수호하려는 절박한 자기참회적 거리의식이라는 동정이 그것이다. 25일 폭력을 주도한것으로 알려진 정법수호회는,부처님을 방패삼아 속인들과 연대 농성을 계속하는 승려들에게 농성장에 모신 불상을 법당으로 모시도록 설득하려 했다는 명분을 세웠다고 한다.조계종 분규때 승적을 박탈당한 승려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이들에게서 우리 불교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음을 본다.일반인의 승려들에 대한 인식에 앞서. 김성호기자kimus@
  • [씨줄날줄] 말라카 해협

    해군이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게 된다고 한다.한국형 구축함(KDX-Ⅲ)에 최첨단 이지스 전투 체계를 장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떠 다니는 요새라는 이지스 함을 갖게 되면 한국 해군은 ‘대양 해군’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한다.멀리 동남아의 말라카(Malacca) 해협까지도 작전 반경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해군력을 말하라면 기껏 연평도나 떠 올리는 우리네이고 보면 말라카 해협이 얼른 가슴에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말라카해협은 여느 뱃길이 아니다.태평양에서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바다 비단길(Silk Road)’의 길목이다.상품이나 석유를 중동이나 유럽으로 실어 가고,사 오는 유일한 교통로이다.세계 13위 무역국이요,세계 4대 석유 수입국인 우리에겐 말라카 해협은 ‘생명선’일 것이다.그럼에도 속수무책이었다.손이 미치지 못했다.그러나 이지스함이 생기면 달라진다.말라카 해협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말라카 해협은 마(魔)의 뱃길이기도 하다.폭이 좁은 곳은 40㎞밖에 안 된다.골목길 수준이다.유조선같은 대형 선박만 하루에 200척이 오가기에는 턱없이 비좁다.대한해협도 아무리 좁아도 50㎞가 넘는다.뿐만이 아니다.평균 수심이 50m에 불과하고 중앙과 연안 곳곳에는 여울이 도사리고 있다.능숙한 항해사라도 900㎞ 말라카 해협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가는 참사를 면키 어렵다. 말라카 해협에는 암초만 있는 게 아니다.밤낮없이 해적이 들끓고 있다.오가는 상선이 모두 사냥감이 된다.폭이 좁아지면서 다른 배와 충돌을 피하느라고 속도를 줄이면 자동 소총과 위성위치시스템(GSP)까지 갖춘 초고속 해적선이 접근한다.잔인한 수법은 옛날 해적과 똑같다.선원을 수장시키고 물건과 함께 배를 통째로 빼앗아 달아난다.한해 평균 500건의 해적 사건 60% 가까이가 말라카 해협 일대에서 벌어 진다.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은 컴퓨터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성능을 발휘한다고 한다.얼마 전 서해교전 때처럼 스틱스 미사일의 전파가 감지돼도 피할 필요가 없다.고속정이나 경비정 수를 헤아리며 해군력을 비교하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서해 교전 같은 불상사는아예 없을 것이다.그리고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도 한국 상선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기다려 진다. 정인학 논설위원
  • 북한산 관통로 반대 조계종 농성장 승려등 110명 난입·충돌

    25일 새벽 2시50분쯤 조계종 승려들이 북한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건설을 반대하며 농성 중인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사패산 ‘철마선원’에 ‘정법수호회’ 소속으로 알려진 승려 20여명과 2개 용역회사 직원 90여명 등 모두 110여명이 난입,농성 승려들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농성장에 있던 승려·신도 30여명 중 수경(收耕·53) 스님 등 5명이 부상,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농성장 충돌발생 직후 병력 200여명을 출동시켜 난입자들 가운데 일공(50·속명 김일공) 스님 등 승려 3명과 김모(29·E사)씨 등 용역회사 직원 86명 등 모두 89명을 연행,의정부·남양주·일산 등 5개 경찰서에 분산,수사 중이다.난입자들은 이날 경찰이 지키고 있던 농성장 입구를 피해 산 능선을 타고 침입,철조망을 끊고 농성 중이던 30여명을 둔기로 위협해 농성장 밖으로 내몰았다. 경찰에 따르면 정법수호회는 지난 98년 종권을 둘러싸고 폭력이 오갔던 조계사 사태 때 승적을 박탈당한 승려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알려지고 있으나 조직 체계와 구성원 수는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일단 정법수호회측이 용역업체 직원들을 고용한 것으로 보고 배후를 밝히기 위해 연행자들을 상대로 정확한 난입 목적과 경위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한편 이날 난입을 주도한 정법수호회측은 “부처님을 방패삼아 속인들과 연대,농성을 계속하는 승려들에게 농성장에 모셔진 불상을 법당으로 모시도록 설득하려 했다.”는 성명서를 냈다. 그러나 ‘자연환경 보전과 수행환경 수호를 위한 조계종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외곽순환도로 시공사측이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폭력배들이 스님 30여명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이번 사태를 법난(法難)으로 간주한다.”며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시행사인 서울고속도로주식회사와 시공사인 LG건설은 “이날 난입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양주 한만교·이창구기자 mghann@
  • 부활된 화이트칼라 지옥훈련…우리은행 오지체험 동행기

    기고 또 기었다.아랫사람에게 엉덩이를 내보인다는 수치심도,최초로 직립을 시도했다는 인간의 존엄성도,작열하는 열사(熱砂)의 사막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명주실처럼 모래가 가늘고 고와 바람에 흘러내리는 소리가 마치 산이 흐느끼는 것 같다고 해서 ‘명사산’(鳴沙山)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고비사막의 한 자락.어쩌면 산이 흐느끼는 게 아니라 그 거대한 모래늪에 빠져 영영 헤어나오지 못한 고대 상인들의 통곡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서 올려다보면 결코 가파르지 않은 경사였건만 두 손 두 발은 자꾸만 모래속으로 빠져들었고,흘러내리는 모래와 함께 뒤로 밀려났다.계속 밀리지 않으려면 쉼없이 전진하는 길 밖엔 없었다.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순간,온 몸을 엄습해온 공포감은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다 갑자기 숨이 멈춰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아니었다.영원히 이 사막을 넘지 못할것 같다는 좌절감이었다. 그러나 끝은 있었다.몇 사람의 낙오자가 생기긴 했지만 우리은행(옛 한빛은행) 오지체험 연수단은사막의 정상에 걸터앉아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며 기쁨을 만끽했다. 오지 체험단이 서울을 떠난 것은 지난 5일.실크로드의 현관이라 불리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거대 바위불상의 ‘막고굴’로 유명한 둔황(敦煌)을 거쳐 우루무치(烏魯木齊)까지 7박8일 동안 2000㎞를 횡단하는 대장정이었다.때로는 걷고,때로는 낙타를 탔다.정 먼 곳은 기차와 비행기에 의존했다.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추천·선발된 우수 임직원 300명이 네 팀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길을 떠났다.기자는 그들의 세번째 ‘지옥훈련’ 여정에 합류했다. 이 은행의 지옥훈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지난달에는 여성직원 200여명을 해병대에 1박2일 입소시켰다.지난해에는 전 임직원이 한라에서 백두까지 릴레이산행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운동선수도 아닌 화이트칼라가 왠 지옥훈련인가.육체의 한계상황을 시험케 하는 군대식 집체훈련인 지옥훈련을 기업의 직원연수로 본격 도입한 곳은 일본이다.이후 현대 등 국내기업들이 앞다퉈 모방하기 시작했다.나약한 심성을 단련시킨다며 서울역 앞에서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게 하거나 20㎏이 넘는 등짐을 메고 하루 10시간씩 강행군을 시켰다.그러나 70∼80년대 절정을 이뤘던 지옥훈련은 90년대 들어 창의성이 강조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생뚱맞게 지옥훈련을 다시 부활시킨 이유에 대해 이덕훈(李德勳) 우리은행장은 이렇게 말했다.“지난해 3월 행장에 취임하고 보니 직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구조조정 과정에서 동료 직원들이 잘려나가고 친인척에게 빌려산 우리사주 주식이 휴지로 되는 것을 보면서 직원들의 가슴은 숯덩이가 돼있었다.회사가 어느 정도 정상화됐는데도 그들 가슴 밑바닥의 개인주의와 패배주의,자괴감은 가실 줄 몰랐다.뭔가 분위기 반전이 절실했다.” 24시간 기차를 타고 둔황으로 이동하는 길에 최현구 연수팀 차장은 “거대하게 버티고 선 모래산을 보면서 더는 나 자신도,내 동료도 낙오해서는 안된다는 오기가 뻗쳤다.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줬다.실로 오랜만에 치밀어 오르는 동료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맛봤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우리은행의 지옥훈련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꼭 고운 것만은 아니다.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이 분에 넘치는 외유를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민숙기 노조 부위원장은 “처음엔 일부 직원들조차 그럴 돈 있으면 차라리 현금으로 달라는 불만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이번 지옥훈련을 통해 얻은 자신감 등 무형의 성과는 연수비용의 몇 배에 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지옥훈련이 과연 공적자금 상환을 앞당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둔황 우루무치 안미현기자 hyun@
  • 홍업씨 공소장 요지

    1. 피고인 김성환과 유진걸은 99년 4월 서울 역삼동 일식집에서 성원건설회장 전윤수로부터 ‘김홍업 회장에게 부탁하여 신속히 화의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활동비로 즉석에서 10만원권 자기앞수표 3000장 3억원,같은 해 8월 같은 곳에서 10만원권 자기앞수표 1만장 10억원 합계 13억원을 받았다.피고인 김홍업은 김성환과 유진걸로부터 화의인가를 신속히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한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은 다음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형택을 통하여 채권자인 대한종금 청산인 이○○(예금보험공사 직원)에게 화의안에 신속히 동의해 달라고 청탁했다. 2. 2000년 12월 서울 역삼동 ○○호텔에서 공소외 이거성은 당시 무역금융사기 혐의에 대한 검찰수사를 피하여 해외도피중이던 새한그룹 부회장 이재관으로부터 ‘김홍업 회장에게 부탁하여 구속되지 않고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김성환에게 전달했다.김성환은 서울 역삼동 김홍업의 개인사무실에서 선처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하고 김홍업은 김성환에게 친분이 있는 검찰 간부들을 통하여 선처 가능성을 알아보도록 지시했다.이거성은 같은 해 12월 중순 위 ○○호텔 주차장에서 이재관의 매제로부터 활동경비 명목으로 현금 2억 5000만원,2001년 5월 같은 곳에서 이재관의 부하직원으로부터 이재관이 불구속기소된데 대한 사례비로 현금 5억원을 받는 등 7억 5000만원을 수수했다. 3. 피고인 김홍업은 2000년 1월 전윤수로부터 성원건설이 대한종금 및 채권은행단에 대한 부채를 지속적으로 탕감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울 논현동 일식집에서 위 이형택,전윤수,김성환 등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 이형택으로 하여금 대한종금 파산관재인인 위 이○○을 데리고 오도록 한 뒤 부채를 감면해 주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김홍업은 그 사례비로 전윤수로부터 2000년 9월 5000만원,2001년 1월 3000만원,2001년 9월 3000만원,2002년 2월경 3000만원 등 1억 4000만원을 받았다. 4. 김홍업은 2000년 2월 개인 사무실에서 친분이 두터운 S판지㈜ 부사장 유○○으로부터 ‘훈격이 높은 모범납세자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활동비로 1억원이 입금된 차명예금통장을 받았다. 5. 김홍업은 2000년 6월 서울 서초동 룸살롱에서 당시 대한주택공사 사장 오○○으로부터 ‘공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부하직원들로부터 8000만원을 갹출하여 비자금으로 사용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 사정기관에서 내사를 받게 되어 억울하니 선처받도록 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그뒤 성명불상의 청와대 비서관에게 처리 결과를 알아본 후,같은 해 9월 개인 사무실에서 김성환으로부터 오○○이 사례비 명목으로 피고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맡긴 10만원권 자기앞수표 200장 2000만원을 전달받았다. 6. 2000년 11월 초순 서울 반포1동 ○○피자 사무실에서 김성환은 위 회사 대표이사 정○○으로부터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에서 특별세무조사를 하고 있으니 김홍업 회장에게 부탁하여 선처받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김홍업에게 보고했다.김홍업은 친분이 있는 국세청 간부에게 청탁하여 주기로 한 다음,김성환은 경비로 차명계좌로 1억 7000만원을 송금받았다. 7. 2001년 6월 서울 역삼동 김성환의 개인 사무실에서,김성환은 평창종합건설㈜ 전무 김○○으로부터 ‘신용보증기금 간부들에게 부탁하여 국민주택기금을 대출받는데 필요한 신용보증서를 신속히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받고 김홍업에게 보고했다.김홍업은 룸살롱 ○○에서 김성환과 함께 대출심사업무를 관장하는 신용보증기금 전무 손용문과의 술자리를 마련하여 신용보증서를 신속히 발급하도록 청탁,같은 해 7월말 신용보증서가 발급되자,김성환은 김○○으로부터 사례비로 평창종합건설㈜ 발행의 액면금 1억원권 약속어음 1장을 받았다. 8. 김홍업은 98년 7월 서울 역삼동 개인사무실에서 알고 지내던 ㈜금강고려화학 부사장으로부터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이 ㈜금강고려화학회장 정상영을 통하여 활동비 명목으로 제공한 10억원을 10만원권 헌 수표로 증여받았다.그러나 3개월 안에 증여세 과세표준신고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서울 홍은동 벽산아파트 피고인의 집 베란다에 있는 창고 안에 10억원을 숨기고 그 앞에 가구를 쌓아놓아 은닉했다가 아태평화재단 행정실장 김병호로 하여금 16개의 차명계좌에 분산 입금시킨 뒤 각 차명계좌 개설자 명의로 100만원권 자기앞수표로 교환하여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증여세 2억 4000만원을 포탈했다.98년 3월부터 2000년 2월까지 15회에 걸쳐 정주영 등으로부터 22억원을 증여받았고 98년도분 증여세 2억 5000만원, 99년도분 증여세 1억 4000만원, 2000년도분 증여세 1억 9000만원을 포탈했다.
  • ‘백제의 얼굴’ 복원 조각가 이영섭씨 작품전

    경기도 여주군 고달사 유적 발굴지 인근에 사는 조각가 이영섭(40)씨를 만나러,점심도 굶어가며 차로 2시간30분을 달려가던 길에 들은 정보는 이랬다.데생 한 장도 그리지 못하던 고교생이 강원대 미술교육과에 들어가 화가 김종학씨를 만나 개안(開眼)한 뒤,생계를 팽개치고 세상과 담쌓은 채 15년간 조각공부만 했다.교사인 부인과 아이가 수원에 따로 떨어져 사는 동안 그는 그저 조각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소 도인 같은 이미지를 연상했다.그러나 180㎝의 훌쩍한 키에 빛바랜 연보라색 염색 머리를 한 이씨는 ‘날건달’같아 보여 놀랐다.더 충격적인 것은 이 인물이 만들어내는 조각이 150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백제시대 서산 마애불처럼 정겹고,반가사유상처럼 고상하고 넉넉하다는 점이다.또 화강암을 쪼은 것 같은 조각들은 박수근의 화폭을 펼쳐놓은 듯한 질감을 나타냈다.튀어나온 곳을 차라리 더 짙게 표현하는 동양화법을 빌리기도 했다. 집 앞마당에 구덩이를 파고,그 안에서 조각품을 건져내는 그는 천상 고고학자의 모습인데….그가 이렇게된 것은 5년 전 고달사 절터 근처로 이사오면서부터다.더이상 조각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대학 때부터 10여년 해온 극사실적 묘사의 테라코타 작업을 포기한 직후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유목민 의식’처럼,버렸더니 새로운 영감이 찾아옵디다.고달사 근처로 이사와 아침 저녁으로 1년 넘게 유적을 발굴하는 작업을 지켜보다가 문득 내 조각도 발굴하듯이 흙에서 건져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곧 스케치에 따라 땅을 파고 그 안에 모래와 시멘트를 배합한 혼합재료를 부은 뒤 묻어뒀다가,다시 파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시멘트 혼합재료는 마당의 마사토(바위가 풍화된 흙)와 어우러져 한국 바위와 돌의 느낌을 살려줬다.한국적 정감이다.모델은 누구일까? 머리를 무스로 잔뜩 치켜세운 듯한 소녀상들은 탑이나 종에 새긴 ‘비천상’에서 차용했다.둥근 얼굴에 오목한 눈,아담한 코,앵두 같은 입술이 머금은 고졸한 미소가 한국 여인네 얼굴이다. 그는 또 말한다.“한국 현대조각의 미래는 우리의 탑이나 불상 등에 있습니다.” 그가 다섯번째 개인전을 연다.3일부터 13일까지 박여숙화랑 (02)549-7574. 문소영기자 symun@
  • [임영숙 칼럼] 꿈은 이루어진다

    서너살이나 됐을까.얼굴에 태극 문양을 그린 붉은악마 차림의 두 어린이가 뚫어지게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월드컵 준결승전 다음날인 26일 대한매일 1면 사진이다.상암동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독일 경기 관람에 열중한 어린이들을 찍은 것이었다.신문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이 사진 밑에는 “꿈은 계속된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고,사진설명 제목은 “내일은 우리가…”였다. 나도 그 어린이들처럼 붉은악마 옷차림으로 상암동 경기장에서 월드컵 준결승전에 12번째 선수로 ‘참여’했다.경기가 끝나고도 응원석이 텅 빌 때까지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고 아쉬움과 뿌듯함이 교차하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다.그러나 아침 신문에서 이 사진을 보는 순간 한국이 독일에 0 대 1로 진 아쉬움을 가볍게 떨쳐낼 수 있었다.“그래 적절한 시점에서 잘 멈춘 거야.이번 경기도 연장전이나 승부차기까지 가고,그래서 우리가 이긴다 해도,다음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에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어.그동안 죽을 힘을 다해 몸이 부서져라 뛰었으니….한꺼번에 무리하게 이루는 것보다 4년 후를 기다리지 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순간 스스로를 달랬던 심정으로 다시 돌아갔다. 사실 한국 축구의 폴란드전 첫 승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결승 진출좌절을 아쉬워한 것은 우승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한국 선수들이 일본 요코하마 경기장에 서는 것을 보고 싶은 소망에서였다.“‘아시아의 긍지’가 된 한국 축구를 일본이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하는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월드컵 대회에 남북한 단일팀이 뛰었다면 남북 통일은 훨씬 앞당겨질 텐데.”하는 꿈까지 가졌던 것이다. 동북아 질서의 재편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데서 온 아쉬움과 교차된 뿌듯함은 우리 선수들과 응원단이 안겨주었다.한국 선수와 응원단은 너무나 순수하고 평화스러웠다.거스 히딩크 감독은 지난 5월 “한국 선수들의 강한 열정과 순수함이 나를 들뜨게 한다.이들은 월드컵을 단순히 돈벌이로 여기는 유럽선수들과는 크게 다르다.”고 말한 바 있는데,6월 한달 내내 우리 선수들은 온 국민과 세계인에게 히딩크의 그 발언을 감동적으로 확인시켜 주었고 이날 준결승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붉은악마의 응원 모습을 먼 발치나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본 사람들에겐 그 거대한 에너지 분출과 일사불란함이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그러나 그 붉은 물결 속에 들어가 보면 평화로운 열정에 ‘생애 최고의 감동’(미국 칼럼니스트 토머스 플레이트)을 맛보게 된다.아직도 그 물결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3,4위전 때를 놓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준결승전이 끝나고 경기장 밖에서는 진기한 풍경이 벌어졌다.독일 응원복을 입은 한 독일인이 작은 나팔로 ‘대∼한민국’을 선창하고 붉은악마 차림의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이를 따라 목청껏 연호하는 모습이었다.노약자와 어린이는 들어갈 수도 없을 만큼 축구 팬의 난동이 극심하다는 공포의 유럽 축구장에서 주최국이 패배했을 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모습인가. 물론 한국의 놀라운 승리를 ‘음모론’으로깎아내리는 외국 언론도 없지 않다.인종차별의 냄새가 나는 그런 주장이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에선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정부의 포스트 월드컵 대책이 발표됐지만 월드컵 경기장 사후 활용대책의 재점검도 필요하다.10개 개최도시가 이미 마련해 놓은 대책은 수익사업 위주이고 축구경기장으로서의 상시 활용계획은 미흡한 편이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결승에 나가지 못했으나 세계에 자신들의 정신을 과시했다.”고 썼다.그렇다.우리는 월드컵 우승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다.붉은악마의 준결승전 카드섹션대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다.또 우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꿈을 이루는가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우리는 꿈을 이루었고 앞으로도 이룰 것이다. 임영숙/ 미디어연구소장 ysi@
  • 아쉬움 접고 이젠 일상으로/4700만 월드컵 붉은악마 일손잡기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 월드컵 4강 신화에 들뜬 시민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에 분주하다.시민들은 오는 29일 한국팀의 3,4위전을 기약하면서도 각자 생활의 터전에서 ‘월드컵 이후’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특히 한국팀이 보여준 불굴의 투지와 정정당당한 스포츠 정신,붉은 물결의 저력등 월드컵의 교훈을 현실 속에서 되살리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전문가들은 거대한 잔치판이 막을 내리면서 정신적 허탈감과 금단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하고 주의를 당부했다. 월드컵으로 표출된 국민 에너지를 정치개혁이나 민생 캠페인 등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하는 운동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대학 졸업생 이현웅(25·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씨는 “독일 경기가 끝난 뒤 갑자기 현실감이 밀려와 잠시 접어 두었던 취직 준비에 다시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대입시를 준비하는 이용재(19·경기 소하고 3년)군은 “대표팀이 떳떳하게 결과에 승복했듯이 나도 ‘고3’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무선 인터넷솔루션 업체를 운영하는 정정기(35)사장은 “회사 특성상 이직률이 높고 동료 의식이 부족했는데 월드컵 공동 응원을 계기로 생긴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회사를 잘 이끌어 나가겠다.”며 활짝 웃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상일(李相壹) 박사는 “격렬한 이벤트 이후 일상에 적응하는데 최대 6주 이상의 기간과 손떨림 등 금단 현상이 동반된다.”면서 “충분한 수분 섭취와 땀을 내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백상창(白尙昌)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은 “붉은악마의 유례없는 환호와 열광 뒤에는 분단의 한,경쟁사회의 스트레스,신세대의 애정 결핍이 녹아 있다.”고 진단하고 “패배로 인한 허탈감만을 치료하기보다 근본적인 사회구조적 모순들을 치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5일 4강전에서는 한국팀이 졌지만 사상 최대인 650만명의 길거리 응원단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새벽까지 도심 곳곳에서 흥겨운 잔치가 벌어졌지만 별다른 불상사는 없었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는 이날 안전사고가 모두 293건으로 지난 22일 한국·스페인전때보다 늘었으나 사안은 훨씬 경미했다고 밝혔다.경찰 관계자는 “성숙한 응원문화가 완전히 자리잡은 만큼 월드컵 이후 일탈 행동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혜영 윤창수기자 koohy@
  • [일본에서] 60만동포 “요코하마서 보자”

    [오사카 황성기특파원 도쿄 김 현·간노 도모코 객원기자 요코하마 신인하 객원기자] “우리는 이제 4강 민족입니다.” 감격은 바다 건너 일본 땅 오사카(大阪)나 도쿄(東京),요코하마(橫浜) 어디건 하나였다.60만 재일 동포들이 생애 최고의 기분을 만끽한 120분,그리고 페널티킥이었다. ●오사카= “지금 기분 최곱니다.” 오사카에서 재일 동포가 가장 많이 몰려사는 이쿠노(生野)구 쓰루하시(鶴橋)코리아타운에서 경기를 지켜 본 신명희(15·조총련 조선고급학교 1학년)양은 흥분으로 얼룩진 붉은 얼굴 그대로 “안정환 최고”를 외쳤다. 그녀는 “120분간 다소 불안했지만 이겨서 너무 좋아요.”라면서 “민족이 이기는 데 남조선이건 조국(북한)이건 없습니다.”라고 친구 3명과 ‘대∼한민국’을 외쳤다. 코리아 타운 곳곳에 설치된 대형 TV 앞에서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응원하던 동포들은 4강 진출이 결정되는 순간 서로 얼싸안고 ‘대한민국,만세’를 외쳤다. 이날 코리아 타운에서 응원을 주도한 오성기(吳誠起·40·재일 한국인 2세)씨는 “꿈만같다.”면서 “이제 우승으로 가자.”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재일 동포들과 섞여 코리아 타운에서 한국을 응원한 일본인 구로사와 사토시(黑澤聰·29·회사원)는 “일·한 공동개최의 의미를 비로소 느꼈다.”면서 “아시아의 힘을 세계에 보여줘 너무 고맙다.”고 눈물을 흘렸다. 곳곳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동포들은 일제히 코리아 타운의 거리로 나와 만세 삼창을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코리아 타운 상점가 회장인 문우평(文友平·62·재일 조선인 2세)씨는 “60만 동포들에게 힘과 긍지와 희망을 안겨준 생애 최고의 날”이라면서 “코리아 민족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 지를 일본인들에게 단단히 보여줬다.”고 기뻐했다. 코리아 타운은 23일 ‘일한 월드컵 기념 행사’를 갖고 상점들이 이날 하루동안‘반액 세일’을 실시하기로 했다. 오사카 총영사관에도 600여명의 재일 동포와 유학생이 몰려 김병수씨(52) 부부의 트럼펫 반주에 맞추어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며 한덩어리가 됐다.유학생 정재호씨(25)씨는 “광주에 없었던 게 너무 분하다.”면서 “한국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고 말했다. 총영사관측은 승리가 확정된 직후 건물에 ‘축 한국 축구 4강진출’플래카드를 내걸었다.유병우(兪炳宇) 총영사는 “승패에 관계없이 이번 월드컵으로 동포들의 긍지가 더욱 높아져 그 의미가 값지다.”고 말했다. ●도쿄= 도쿄 신주쿠(新宿)의 쇼쿠안도리는 온통 빨간 물결이었다.이곳에 코리아 타운이 형성된 이후 사상 최대의 재일 동포,유학생,주재원이 몰려 승리를 기뻐하며 밤 늦게까지 결승 진출을 염원했다.눈어림으로도 대략 수천명은 족히 되는 동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승리를 축하하고 또 축하했다. 한 유학생은 상의를 벗고 승리를 축하했으며 한 여학생은 즉석 춤을 춰 분위기를 돋구기도 했다.또 쇼쿠안도리 빌딩의 한국인 사무실에서는 창문에서 화장지를 던지거나 맥주를 뿌리기도 했다. 이들은 경기가 끝나자 쇼쿠안도리의 6차선 도로로 나가 한때 차량통행이 마비됐으며 일본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헬리콥터까지 띄어 경계에 나섰으나 큰 불상사는 없었다. 남금실(28·여·회사원·재일 동포 3세)씨는 “이제 결승 진출을 믿으며 요코하마에서 기다리겠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곽석진(25·요리사)씨는 “스페인에 이기는 순간 코리아는 8강 민족에서 4강 민족으로 뛰어 올랐다.”면서 “이제 우승을 노리자.”고 흥분했다. 승리에 취한 동포들은 근처 가부키쵸와 신주쿠역까지 진출해 ‘대한민국’을 외치고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으며 일부 일본인들이 함께 이들과 어울리기도 했다.고쿠나다 히토미(28·여·회사원)는 “간코구 스고이(한국,대단해요).”라면서 “한국팀이 요코하마에 올 날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다른 일본인은 “한국팀은 정신력에서 일본과 다르다.”고 칭찬했다. ●요코하마= 요코하마 시내 가나가와(神奈川)현 민단 지부에도 100여명의 응원단이 모여 TV 중계를 지켜보며 감격스런 4강 진출에 축제 분위기였다. 손기정씨의 아들 손정인(孫正寅·59·요코하마 민단 지부 사무부장)씨는 “한국이 이긴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면서 “이날 승리는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marry01@
  • 자치단체 ‘길거리 응원’ 앞장서 편의 제공/월드컵계기””주민곁에 한걸음 더””

    한국 축구가 16강을 넘어 8강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하면서 길거리 응원이폭발적인 열기를 보이자,지방자치단체들이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좋은 기회로 이 분위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그동안 많은 예산과 인력을 동원,주민 속으로 파고 들려고 시도했음에도 불구,‘관(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길거리 응원에 나선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행정과 주민’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시가 한국전이 열릴 때마다 시청 앞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준 것.미국전을 계기로 응원전 주무대가 광화문에서 시청앞 광장으로 옮겨져 시청앞∼대한매일신보사앞∼광화문앞에는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려 장관을 연출했다. 서울시는 이처럼 많은 인파가 몰리자 미국전이 열릴 때부터 시청앞과 대한매일신보사앞,동아일보사앞,동화면세점앞 등 8곳에 80기의 임시화장실을 시 예산으로 설치,시민 불편이 없도록 했다. 수돗물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미국전과 포르투갈전,이탈리아전이 열릴 때 길거리 응원단에게 페트병에 담은 수돗물 2만병을 무료 공급한 바 있는 서울시는 8강전이 열리는 22일에도 시청앞 광장 등 10곳에서 페트병 수돗물 1만병을 무료 제공할 방침이다. 서울시 소방본부도 길거리 응원전이 열리면서 16곳에 응급의료센터를 마련하고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다.혹시 모를 불상사를 위해 비상대기를 하고 경기시작 2시간전부터 현장에서 순찰과 점검활동을 벌이고 있다.폴란드전 23명,미국전 21명,포르투갈전 85명에 이어 응원단이 최고 많던 이탈리아전때 98명이 119의 도움을 받았다. 광주시도 한국대표팀의 8강전이 열리는 20일 동구 금남로,서구 상무시민공원,광산구 쌍암공원 등지에 각각 10만여명의 거리 응원단이 몰릴 것으로 보고 각 구 총무과와 상수도사업본부 주관으로 응원단에게 수돗물을 제공할 계획이다.시는 당일 낮 최고기온이 섭씨 30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응원 참여자들이 많은 물을찾을 것으로 보고 대형 페트병에 수돗물을 담아 거리 곳곳에 놓거나 차량을 이용한 운반급수도 실시한다. 대구시는 도심 범어네거리를 서울 광화문과 같은 월드컵 응원메카로 만들기 위해22일 전면 개방한다.시는 이 일대에 전광판 3개를 설치,경기를 중계하고 응원인파20만명 정도를 수용할 계획이다.시는 범어네거리가 대구 도심교통의 핵심지역이지만 4강 진출을 기원하는 시민들의 염원에 따라 이날 교통을 전면 통제하고 응원 장소로 개방키로 했다. 울산시도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한국의 8강 경기 때 문수축구경기장 안에서 대형전광판을 보며 응원할 수 있도록 경기장을 개방한다.월드컵 조 예선전 2경기를 치른 문수축구경기장은 4만 3512석을 갖추고 있다.여유공간 등을 감안하면 5만∼6만여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시는 그동안 한국경기 때마다 문수축구경기장을 개방해 달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많았으나 보안관리상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개방하지 않았다.인천시는 길거리 응원의 흥을 돋우고 민속문화예술 활성화의 계기로 삼기위해 한국-스페인전 때 열리는 길거리 응원에 지역 풍물패와 청소년 사물놀이패를동원,붉은악마와 함께 합동응원을펼칠 계획이다. 전국종합·정리 조덕현기자 hyoun@
  • [이경형 칼럼]‘거리 역량’을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는 새로운 역동성을 발견했다.그것은 ‘길거리 응원’에서출발했지만 사회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는 신선한 충격 파장으로 확산되고 있다.지금 이러한 충격파가 가장 필요한 곳은 정치의 장이 아닌가 한다. 전국의 거리에는 수백만의 함성이 넘쳐나는데 6·13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고작 48.9%에 그쳐 역대 전국 규모 선거로서는 최저율을 기록했다.이러한 ‘정치 왕따’현상은 어디에서 오는가.한마디로 우리 정치는 정치인 ‘그들만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가 변하려면 첫째는 정치의 주역이,둘째는 정치의 소프트웨어가 바뀌어야 한다.이런 변화를 추구하려면 우리에게 정치적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그 동력은 이번에 월드컵 과정에서 확인된 ‘길거리의 역동성’에서 조달할 수 있다.그 힘을 정치 개혁에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우선 ‘거리의 에너지’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정치 숙환’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인가.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연고주의가 없다.광화문 거리의 전광판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는 ‘붉은 물결’에는 패거리와 동문과 영호남이 없다. 오죽하면 지난 18일 밤 한국 축구가 8강으로 진출하던 대전 월드컵 경기장 곳곳에 ‘Hiddink for President’(히딩크를 대통령으로)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겠는가.히딩크가 제 아무리 용병술이 뛰어나다 해도 선수들을 기존의 명성과 출신 학교를 감안해 선발하라고 주문했더라면 결코 오늘의 ‘히딩크 경영학’이 나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치는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한다.임기말을 맞은 김대중 대통령이 ‘아들 게이트’로 고뇌 속에 나날을 보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끼리끼리의 연고주의가 낳은 불상사다.정치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지름길은 정치판의 주역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이의 가치’를 기존 정치권에 투입시켜야 한다.젊은이의가치에는 ‘늙은이의 선입견과 고집’이 없다.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아니면 분명하게 거부한다.젊은이의 가치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하나의 방법으로는 ‘젊은 리더십’을 추구하고,그러기 위해 선거 연령을 지금의 20세에서 한 살이라도 끌어내려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늙은이의 아름다운 퇴장’이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낡은 ‘3김 정치’는 이제는 발붙일 곳이 없다.한때 거세게 불었던 노풍(盧風)의 저변에는 바로 보스정치,지역할거주의와의 작별이라는 민심의 희구가 깔려 있었다.그러나 노풍 당사자의 행태가 기껏 YS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래서 ‘6·13 표심(票心)’은 등을 돌렸던 것이다.충청권에서 JP의 몰락도 같은 맥락에서봐야 한다. ‘거리 에너지’의 또 다른 특성은 서로 다른 다양성이 모여 하나의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얼른 보기에는 혼돈과 무질서가 횡행하는 것 같지만 그 바탕은 개성과 자발성으로 탄탄하게 짜여져 있다.이런 질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영위해가는 하나의 합의를 만든다. 이런 원리를 정치에 대입하면 그것은 국회의 의사를 국회의원들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된다.구체적으로는 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당론에만 묶이지 말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유투표제를 통해 원의(院意)를 결정하는것이다.지금 20일 넘게 방치돼 있는 ‘식물 국회’의 해법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거리의 에너지’ 분출은 차도와 인도를 광장으로 만드는 ‘발상 전환’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제도정치권을 기존 거대 정당들만의 놀이터로 할 것이 아니라,신진 세력도 함께 경쟁하는 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이번에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이 8%의 득표로 자민련을 제치고 제3당으로 부상한 것은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차기 대권을 다투는 각 당 후보와 그 진영은 이러한 ‘거리의 역동성’이 곧 낡은 한국정치의 틀을 깰 날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논설위원실장 khlee@
  • [월드컵 뷰]월드컵 한국, 그 붉은 신화

    오늘의 역사가 내일의 신화가 된다.이런 점에서 한국 축구팀은 모두가 다 신화의주인공이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최고는 히딩크 감독이다. 사실 월드컵이 시작될 때만 해도 우린 은근히 두려웠다.우리 대표팀이 1차전에서탈락하여 월드컵 열기가 너무 일찍 시들해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손님들을 초대해 놓고 우리가 ‘모르쇠’한다면 그거야말로 실례 아니던가.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1년6개월 만에 한국팀을 최고로 끌어올렸다.기적은 여기에서 시작됐다.신화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세상이 바뀌었다.거리마다 붉은 바다가 출렁인다.‘레드 콤플렉스’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비 더 레즈(빨갱이가 돼라)’라고 외친다.그 신성한 태극기가 두건이 되고,치마가 된다.어떤 이는 태극기를 슈퍼맨처럼 망토로 걸치고 길거리를 배회한다. 애국가는 또 어떠한가.즐거운 영화 한편을 보러 가서도 부동자세에 경건한 마음으로 애국가를 불러야 했던 우리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덩실거리면서도 부를 수 있는노래,발을 동동 구르고 춤을 추듯 하면서 부를 수도 있는 노래임을 확인시켜준다.더 이상 그들에게 애국가와 아리랑은 엄숙하고 구슬픈 노래가 아니다. ‘히딩크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계속된다.히딩크같은 정치인을 보고 싶다고 외친다.‘히딩크 경영학’이 생기고 히딩크 식 ‘파워 프로그램’이 일반인의 건강과 체력단련에 응용된다. ‘히딩크 현상’은 이제 가정의 식단까지를 바꾼다.맵고 짠 음식이 아니라 ‘싱거운 가정식’이 그것이다. ‘히딩크 신화’의 밑바탕에는 ‘붉은 악마’라는 너무도 싱싱한,밝고 명랑한 세대가 있다. 그들은 전 세대가 가진 이념이나 종교·정치·지역이라는 굴레의 틀을 훌훌 벗어버리고자 한다.그들은 신화를 기다려왔고,이제 그 신화를 통해 자신들을 설명하고자 한다.‘히딩크 신화’에 당파나 지역갈등이 있었던가.강인한 생존 의지를 통해팀을 결속시키고 통합시켰을 뿐 거기엔 그 어떤 분열도,균열도 없었다. ‘히딩크 신화’의 마무리는 ‘낡고 병든 것’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종언의 역사가 펼쳐지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어야 한다.우리의 가슴 벅찬 세대는 단합된 힘을 과시하면서도 그 어떤 불상사도 일으키지 않았다.질서정연한그들은 벌써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붉은악마는 우리 4800만을 하나로 묶어냈다.불과 20여일만의 일이다.한국팀은 우승후보들을 차례로 꺾는 진짜 강팀이 되었다.불과 1년6개월만의 일이다. 히딩크와 한국팀 선수들은 영웅이 되었다.영웅이라고 해서 고대나 중세의 영웅이아니다.그들은 현대의 표상에 맞게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누가 알랴.그들을 향한 아름다운 우리의 기억이 전설을 만들어내고,그로 인해 그들에 대한 기억이 이야기에 실려 먼,먼 훗날까지 하나의 신화로 퍼져갈는지. 오봉욱/시인
  • 히딩크! 경찰관에도 희망 주소서/행자부 홈페이지 글 화제

    월드컵 8강 진출로 온 국민이 축제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는 가운데 한 경찰관이 행정자치부 홈페이지에 ‘월드컵 열기에 혹사 당하는 경찰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 화제다. 경찰들은 경기를 보지도 못한 채 도심에서,경기장에서 난동이라도 발생할까 노심초사하며,너나없이 비상근무한다는 내용이다.다음은 글의 요약. 월드컵 16강전이 열린 18일.또 비상동원령이 내려졌다.이번엔 축구 경기장이 아닌 거리로 불려 나왔다.경기가 끝난 후 흥분한 시민들 때문에 발생할지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월드컵이 시작된 후 하루도 편히 쉰 날이 없다.아니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연습이다 해서 얼마나 많이 소집됐던가? 경찰관도 사람인데,경찰관도 축구 볼 줄 알고,잠 잘 줄도 아는데…. 예상대로 경기가 끝나자 거리는 승리의 기쁨에 도취된 시민들로 무법 천지가 돼버렸다.다행히도 우리 경찰의 적절한 대처로 큰 불상사는 없었다.새벽 1시30분이 돼서야 거리는 겨우 진정되고 귀가할 수 있었다.근무자는 다시 근무지로 가고,비번인데도 차출나온사람들은 집으로 가야 했다.새벽 1시반.버스도,지하철도 끊기고… 무엇을 타고 가라는 말인가.수당은커녕 사비를 들여가면서 비번날 경비 서는 우리 경찰.월드컵이 언제부턴가 경찰관에겐 크나큰 부담으로 느껴지고 있다.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님이 편찮아서 한번 가보려고 해도 월드컵 기간에는 비상근무라,휴가도 안된다. 히딩크! 경찰관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소서! 김용수기자 dragon@
  • [일본에선] “한민족 기상 높였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김 현·간노 도모코 객원기자·요코하마 신인하 객원기자] “가자,결승도 두렵지 않다.”“동포들 체면을 세웠다.” 11명의 코리아 전사,4700만 국민,바다건너 일본 동포 60만명이 함께한 120분의 사투(死鬪)였다. 도쿄의 ‘코리아 타운’ 신주쿠(新宿) 쇼쿠안도리 하늘로 동포들의 환희와 열광이 날아올랐다.‘대∼한민국,대∼한민국’.한국은 웃고 일본은 울어버린 18일 밤이었다. ●코리아 타운= 경기가 끝나자 쇼쿠안도리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동포,유학생 3000여명은 “해냈다.”며 일제히 바깥으로 나서 순식간에 거리는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재일 한국인 3세 강순화(회사원·여)씨는 “진짜 히딩크 축구는 최고”라면서 “이탈리아를 꺾은 만큼 세계 일류임이 증명됐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강씨의 친구로 한국을 응원한 네덜란드인 파울 에렌다스(27)는 “히딩크와 같은 네덜란드인으로서 너무 자랑스럽다.”고 함께 기뻐했다. 일본인 가에리야마 아야미(26·여·회사원)는 “낮에 일본팀의 패배로 울었지만 밤에는 한국팀의승리로 울었다.”면서 “한국축구 최고”라고 말했다. 쇼쿠안도리의 ‘붉은악마’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가부키초로 진출,곳곳의 ‘울트라 닛폰’과 합류,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곳곳에서 경계를 섰으나 큰 불상사는 없었다. ●일 언론,한국 부럽다= 일본 방송들은 “히딩크 축구도 놀랍지만 응원객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 경기로 역사가 짧은 일본 응원객들도 배워야 한다.”면서 “일본인들도 한국이 보여준 훌륭한 기백에 박수를 보내자.”고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한 TV 아나운서는 경기 도중 “일본은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한국이 일본 몫까지 열심히 해줬으면 한다.”고 한국 응원을 당부하기도 했다. 아사히와 닛케이 등 일본 신문들도 경기가 끝난 것과 거의 동시에 인터넷판에 한국의 8강 진출을 톱기사로 올렸다.아사히는 한국의 승리를 “경이적”이라며 “연장전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뛰어 체력이 떨어진 이탈리아 선수들과 대조를 보이며 응원단의 끊임없는 성원에 보답했다.”고 말했다.닛케이는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해 8강에 올랐다며 끝까지 선전해줄 것을 기원했다. ●조총련= 일부 조총련 지부에서도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국·이탈리아전을 관전하며 ‘한국,한국’을 응원했다.재일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산하 재일 조선인 체육연합회 임권길(林權吉·47) 부이사장은 “같은 민족이니까 응원에 남과 북이 없으며 오늘도 집에서 TV를 보며 한국을 응원했다.”고 말했다. ●일본전= “믿어지지 않아요.”열도는 경기장에 내리는 비처럼 울었다.터키에 아깝게 0-1로 져 8강 진출에 좌절하자 일본 방송들은 ‘일본 열도 한숨’이라는 제목을 내보내면서 “일본이 월드컵 16강 진출로 끝나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한 여자 아나운서는 울면서 일본의 패배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센다이(仙台) 미야기 경기장의 5만여 ‘울트라 닛폰’ 응원단은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8강에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을 눈물로 대신했다.스포츠 호치(報知)는 ‘일본 0-1 감동’이란 호외를 통해 “일본,고맙다.”고 선전을 격려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유감이지만 잘 했다.”면서 “일본 국민들에게 흥분과 감동을 준 일본팀과 트루시에 감독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marry01@
  • 월드컵 지구촌 표정/ “”美축구 사상 가장 위대한 날””

    “국경 전쟁에서 미국이 이겼다.” 미 CNN방송은 17일 미묘한 긴장관계에 있는 이웃국가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승리를 이같이 표현했다.방송은 경기 내용을 상세히 전하며,미국이 1930년 월드컵에 첫 출전한 이래 가장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워싱턴 포스트도 이날 승전보를 서울발로 전하면서 ‘오늘 미국의 승리는 미국 축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감격스러워했다. 모든 미국 언론들은 어부지리로 거머쥔 16강 티켓을 의식,진짜 실력으로 72년만에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며 이날을 미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날이라고 평했다.반면 밀리는 국력을 축구로 만회해 보려던 멕시코에겐 더없이 치욕스러운 날이었다. -자존심 상한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한 스포츠 카페에서는 멕시코팀 유니폼을 입고 국기를 얼굴에 그려넣은 열성 축구팬 1000여명이 대형 스크린 앞에 앉아 열띤 응원을 펼쳤다.전반 8분 미국팀의 첫 골이 터지자 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이어 미국이 두 번째 골을 넣자 “멕시코,멕시코”를 연호하던 축구팬들은 일순 침묵에 잠겼다.시간이 흐르면서 경기를 역전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축구팬들은 하나 둘씩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궜다. 멕시코 언론도 이번 멕시코-미국전을 “전쟁”으로까지 표현하며 그동안 외교적으로 눌려왔던 분풀이를 할 기회로 일컬어 국민들의 실망이 더 컸다.한 20대 축구팬은 눈물을 글썽이며 “미국인들이 우리를 바보 취급하는 불명예를 끝냈어야 했다.”며 “여기가 아프다.”고 말하며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게다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축구를 푸대접해온 미국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에 국민들은 더욱 자존심 상해했다.한 상인은 “미국은 축구가 아닌 농구의 나라다.운명의 여신이 우리를 갖고 놀았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난동은 기우= 미국-멕시코전이 열린 17일 만약의 불상사에 대비해 멕시코시티 주재 미국 대사관은 하루 문을 닫았다.미 대사관과 멕시코시티의 명물 독립기념탑 주변에는 지난 16강전 때처럼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4000여명의 경찰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그러나 의외의 패배에 풀죽은 멕시코 축구팬들이 서둘러 귀가하면서 난동은커녕 이전처럼 교통까지 마비되는 혼란도 발생하지 않았다. -축제로 시작한 아침= 브라질이 예상대로 벨기에를 꺾고 손쉽게 8강 문턱을 넘자 상파울루를 비롯한 브라질 전역은 이른 아침부터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이날 오전 8시30분(현지시간) 경기가 열리기 전부터 이파랑가 공원 등 시내 곳곳에 몰려든 극성 축구팬들은 브라질팀의 골이 터질 때마다 삼바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환호성을 질렀다.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승리를 자축하는 폭죽소리와 차량 경적소리가 거리마다 요란하게 울려퍼졌으며,하루종일 축제는 계속됐다. -우리도 열렬한 축구팬= 8강 윤곽이 서서히 잡히면서 월드컵 열기가 각국 정상들을 사로잡고 있다.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리는 유럽연합 정상회담 참석은 물론 오는 21일에 벌어질 잉글랜드팀의 8강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그는 BBC 라디오에 나와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국제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순 없고,차선책으로 시간을 재조정하기 위해 열심히 궁리하고 있다.”며 8강전을 고대하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공식 일정 때문에 독일의 첫 경기를 못봤지만 8강 상대 파라과이전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TV를 통해 지켜보며 열렬한 응원을 펼쳤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까지 경기의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 사둔 빵으로 가족들과 아침을 먹으며 TV를 시청했다고. -졌지만 잔칫집= 아일랜드 정부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친 자국 대표팀 선수들을 위해 약 50만유로(한화 약 5억 7000만원)를 들여 18일 대대적인 귀국 환영파티를 열 계획.수도 더블린 외곽 피닉스 공원에서 열리게 될 이날 대표팀 환영 파티에 수십만명의 아일랜드 국민들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팀은 특별 전세기편으로 더블린 공항에 도착한 직후 헬리콥터로 공원까지 이동한다. -프랑스가 타산지석= 고촉통 싱가포르 총리가 프랑스 축구 대표팀의 탈락을 자국축구 발전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싱가포르의 스트레이츠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그는 “뒤처져 있어서는 안된다.구세대의 경험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말한 뒤 “젊은 인재들과 경험이 혼합돼야 한다.”며 축구계의 ‘젊은 피’수혈을 역설. -나라 사정이 이런데…= 포르투갈 축구협회로부터 475만달러의 보너스를 받는 축구 대표팀이 이에 대한 세금 공제까지 요구해 빈축을 사고 있다.파울로 포르타스 국방장관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표팀의 이같은 행동을 비난한 뒤 조국이 금융위기에 처해 있으며,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직자들과 퇴직자들이 많다는 것을 선수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갈. 박상숙기자 a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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