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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외부세력 평택에서 손 떼라

    평택 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어제도 팽성읍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미리 허가를 받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두 번이나 유혈충돌이 빚어진 만큼 경찰의 봉쇄 조치는 타당하다고 본다. 어쨌든 시위대·경찰·군인의 피해는 막아야 한다. 같은 국민끼리 더 이상 피를 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군 투입에 반대해온 것도 혹시 모를 불상사를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군인이 경계를 서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급기야 시위대에 짓밟힘까지 당했다. 잘잘못을 떠나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추·도두리 주민들의 아픔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들은 50년의 역사 속에서 두 차례나 땅을 강제수용 당한 경험이 있다. 불모지 갯벌을 간척해 오늘의 삶을 이루어 놓은 터에 또다시 나가라고 하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렇더라도 미군기지 이전은 예정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미 한국과 미국 사이에 그곳으로 옮기도록 약속을 한 까닭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발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조상이 일군 옥토에서 농사 짓고 싶을 뿐”이라는 울부짖음 역시 진실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한총련·민노당 등 외부세력이 끼어드는 것은 옳지 않다. 일을 해결해 주기는커녕 주민들의 상처를 더 깊게 해줄 소지가 크다. 지역 주민들의 볼멘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오죽했으면 주민들이 나서 반대집회를 열겠는가. 무엇보다 외부인이 개입할 경우 이념논쟁과 함께 정치색을 띨 수밖에 없다. 보수든, 진보든 마찬가지다. 문제해결은 정부와 주민간 직접 대화뿐이다. 외부세력의 자중을 거듭 촉구한다.
  • [5·31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24時] (3) 서울시장-우리당 강금실

    [5·31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24時] (3) 서울시장-우리당 강금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이른바 ‘쪽방촌’을 찾은 강금실 후보는 거의 말이 없었다.‘전통’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는 인사동 뒤편 후미진 곳, 한 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서 고달픈 몸을 누이고 사는 서민들과 눈 맞추는 일도 어려워하는 듯했다. 팍팍한 서울생활에 밀리고 밀리다 하나둘 이곳에 정착한 이들만 684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 독거세대다. 강 후보가 사진기자들에게 “제발 플래시 터뜨리지 말아달라.”며 양해를 구하더니 2년 전부터 이곳에 산다는 인모(58·여)씨의 집을 찾았다. 이내 무릎을 꿇더니 인씨의 손을 잡고 한참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가슴이 막막했다.”고 했다. 인씨는 강 후보에게 느닷없이 연락 끊긴 딸 자식 얘기를 꺼냈다. 그러더니 “나라에서 주는 35만 8000원이 조금만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대답 대신 라면 박스와 쌀 봉지며, 돈 생기면 땔감과 양식부터 사두어야 안심하는 ‘없는 사람’들의 살림살이 앞에 한참 동안 서 있는 강 후보. 인씨는 다시 집을 찾은 기자에게 “조그만 여자가 눈이 맑아. 정이 많은 것 같애. 나도 모르게 속얘기가 나오더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왼쪽 팔다리가 불편한 인모(79) 할아버지는 강 후보의 손에 캔 커피를 쥐어주었다. 한 달 26만원을 받는 한 일용직 노동자가 “그나마 20만원이 한 달 방세”라며 넋두리할 때는 굵은 눈물마저 보였다. 원래 쪽방촌 방문 일정은 40분으로 잡았었다. 모두 3가구를 돌아보는 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후에 방송사 정당연설 프로그램 녹화에, 토론 준비도 해야 하는데 강 후보 일행은 자리를 뜨지 않는 강 후보를 겨우 일으켜세웠다. 된장찌개에 날달걀로 비빈 점심밥을 한술 뜨더니 강 후보는 “서울시장은 소홀히 했던 일과 사람부터 챙겨야 한다. 참여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들은 확대했지만 그 뒤론 방치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자리를 만드는 일, 고용 안정을 위한 재교육을 강조했다.“어려운 분들이 도움을 구하러 시청에 가도 담당 과가 분리돼 있어 접수조차 불편하다. 단일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그의 정치 입문을 두고 ‘악마와의 계약’이라는 말이 돈 적이 있다.‘정체성과 포용, 통합·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하던 다짐은 지난 한 달을 거치며 어떻게 변했을까. 강 후보는 “선거란 가장 예민한 정치”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나 “바꾸지 않겠다. 다만 기존 정치판의 언어로 나를 해석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선 “왈가왈부하기 싫다.”고 말했다. 늦은 저녁, 그의 든든한 지원자를 자청하는 시민위원회 모임에 따라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해지는 정책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참석한 40여명의 시민위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더니 60대의 할아버지 한 분과 마지막 악수를 나눴다. 강 후보는 치마 정장 차림이었다. 한쪽 다리를 들더니 할아버지 뒤쪽으로 힘겹게 돌아 나갔다.‘악마와 계약’했지만 ‘정체성과 원칙으로 구원받겠다.’던 강 후보의 약속이 떠올랐다. 11일 강 후보 캠프를 다시 찾았더니 KTX 여승무원들은 점거 농성을 계속 중이다. 지난 7일 서울 신문로에서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근처로 사무실을 옮긴 뒤 강 후보측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캠프 관계자들은 여승무원과의 만남을 주저해 왔다. 강 후보는 그러나 이날 결단을 내렸다. 점심시간 여승무원들이 있는 방에 불쑥 들어가더니 “처음엔 나도 어려운 상황이라 당신들이 여기 있는 게 속상했다. 하지만 오죽하면 여기까지 와 이러겠는가 하는 맘이 들어 찾아왔다.”며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해결점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며 조카뻘 되는 승무원들을 달랬다.10여분쯤 지났을까,“차라리 자원봉사를 하면서 나를 도와주는 게 어떻겠냐.”고 강 후보가 운을 떼자 웃음소리가 넘치기도 했다. 한 여승무원은 “여러 군데서 농성했지만 해결되지 않아 선대위 사무실을 점거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다.”고 답했다. 강 후보는 “정부와 철도공사가 해결할 문제지만 긍정적인 결말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자. 불상사가 없어야 한다.”고 설득했다.20여분간의 면담은 박수로 마무리됐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美軍부지 철조망 설치 완료

    美軍부지 철조망 설치 완료

    4일 주한미군 기지 이전 부지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등에 대한 국방부의 강제 퇴거(행정 대집행) 작업이 상당수의 중·경상자를 남긴 가운데 종료됐다. 국방부는 이날 새벽 행정대집행을 통해 부지 접수와 함께 기지 이전터 철조망 설치 작업에 전격 착수해 대추분교 등에 대한 철거를 마무리지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부지 285만평을 군사시설 제한보호구역으로 설정했다. 일부 주민의 거부로 지체돼 온 미군기지 이전 공사는 본격화되게 됐으며,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08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대국민 담화를 발표,“국책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면 외교적 신뢰를 손상시킴은 물론 이전사업비 증가, 국가 재정 및 국민 추가부담 소요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해 더 이상 사업을 지연시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이어 “군 병력은 건설지원이 주임무이기 때문에 지역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퇴거 작업은 사실상 경찰이 대행한 셈이어서, 군과 주민들간 직접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지에 진입하려는 경찰과 저지하려는 반대 주민 및 외부 반미 단체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 137명, 시위대 93명 등 모두 23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이 가운데 경찰 5명과 시위대 7명은 중상인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시위대 524명은 경찰에 연행됐다. 국방부는 경찰이 반대 주민들을 폐교된 ‘대추분교’로 몰아넣은 사이 공병과 보병 등 3000여명의 병력을 투입, 주민들의 영농행위를 막기 위한 철조망 설치작업을 완료했다. 철조망이 설치된 농지에는 군병력이 상주할 예정이어서 주민들의 출입이 원천 금지되며, 출입이 허용된 주택 지역도 다음달까지만 거주가 허용된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관 13명을 현장에 파견해 행정대집행 과정의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 중이다. 서울 김상연·평택 김병철 이재훈기자 carlos@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조계사 목석가불좌상 ‘5월 문화재’

    서울시는 5월의 서울시 문화재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있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6호 ‘조계사 목석가불좌상’을 선정했다. 조계사 대웅전에 본존불로 모셔져 있는 목석가불좌상은 1938년 전남 영암군 월출산의 도갑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조선시대 후기의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는 매주 토요일 오후 1∼3시 현장에서 전문가의 해설을 실시한다.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번지) 대웅전. 일제치하 불교 총본산으로 세워져 지금은 조계종 직할교구본사 본당의 위상을 갖는 건물이다. 조선시대 억불숭유책에 따라 막혀 있던 승려의 도성출입이 허용되면서 불교계의 중지를 모아 건립된 불당으로, 단일 목조건물론 국내 최대 규모. 조선후기 전통사찰 불전과 궁궐 양식이 혼합된 대웅전에는 일제에 시달렸던 우리 민족의 한과 암울했던 시절 불교중흥을 위한 불교계의 염원이 함께 서려 있다. ‘4방에 계단을 둔 단층 석조 기단위 정면 7칸, 측면 4칸의 평면에 외부 22개의 평주, 내부 12개의 고주를 세워 다포계 단층 팔작지붕을 얹은 155.7평 규모의 남향 불전.’ 조계사 대웅전 앞에 서면 법당은 물론, 기단과 공포(拱包, 처마 끝을 받치는 기둥머리에 맞추어댄 나무쪽)의 크기에 압도당한다. 조선후기 불교 건축양식에 충실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며 조선왕조의 궁전보다 더 장대하고 화려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우선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기단. 높이가 160㎝에 이르는 단층 석조인데 경복궁 근정전을 포함해 어느 궁전의 기단보다도 높다. 다음은 공포. 외부 5출목, 내부 7출목으로 짠 다포계로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덕수궁 중화전 등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궁전보다 안팎으로 2출목씩이나 더 많을 만큼 장중하다. 대웅전 천장 높이는 자그마치 8.5m. 대웅전 디자인을 비롯해 곳곳에 스며있는 궁궐 양식도 눈길을 끈다. 외벽 큰 기둥을 받친 장초석은 경복궁 집옥재(1873년)의 것과 비슷하며 기단 전면에 일렬로 배치한 석조 동물상 중 해태상도 궁정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이다. 불전에 궁궐양식을 쓴 것은 당시 불교계가 얼마만큼 이 건물을 중시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대웅전 건립을 맡았던 도편수와 부편수는 모두 궁궐 재건공사를 지휘했던 인물들이다. 특히 도편수 최원식은 1920년대 창덕궁 대조전 재건 공사를 총지휘한 도편수로 대웅전 건립을 위해 경복궁과 덕수궁을 여러 차례 시찰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 설계 담당이며 관리직들은 모두 이왕직(李王職) 영선과 소속 일본인으로 돼 있었으나 사실상 대웅전 건립은 모두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불상을 모신 불단도 폭 14.57m, 높이 2.3m의 초대형. 지난 2004년부터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하면서 강원도 홍송으로 교체했다. 불단 크기에 비해 불상은 왜소한 편. 불전 건립때 도갑사의 것을 개금해 모신 것인데 오는 10월쯤 대웅전 동편에 들어서는 영산전으로 옮겨지며 대신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등 17자 크기의 대형 삼존불이 봉안된다. 석가불좌상 뒤편, 즉 후불벽에는 1978년 새로 봉안된 천불도와 목각탱이 걸려 있다. 대웅전 정면은 전혀 벽이 없이 모두 장엄한 꽃판문과 꽃판창으로 처리했는데 벽 안쪽에는 천부중·신중, 바깥쪽에는 최근에 그려진 불전도가 장엄되어 있다. 바닥은 원래 다다미가 깔려 있었으나 최근 불단과 함께 강원도 홍송으로 바꿨다. 그런데 조계사의 원래 이름이 ‘태고사’였고 대웅전도 증산도 원류인 민족종교 보천교의 본당인 ‘십일전(十一殿)’을 옮겨지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먼저 태고사는 일제하에서 한국불교를 지켜내려는 당시 불교계의 눈물겨운 노력이 담긴 이름. 일제의 민족말살책에서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가 불교계를 통제하려는 사찰령을 시행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칼을 들이댄 게 바로 총본산 건립이다. 식민지 시절인 만큼 불교계의 통일기관인 총본산 설치에 총독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터이지만 나름대로 한국불교의 맥을 지키기 위해 불교계가 뭉쳤다.1935년 8월 전국 31본산주지회의 이후 ‘조선불교선교양종종무원’이란 대표기관을 설치한 데 이어 한국불교 1번지의 위상을 갖는 사찰을 세운다는 원칙아래 인근 각황사 교당 개축에 뜻을 모은 것이다. 각황사는 지금의 조계사 옆 수송공원에 있던 한국 최초의 불교 포교당. 이 각황사를 헐어 지금 조계사 자리로 이전한다는 것이었는데 새로 대웅전을 건립하고도 그 명칭을 확정짓지 못하다가 고심끝에 한국불교의 법통을 태고 보우에서 찾는다는 뜻에서 삼각산(현 북한산)의 태고사로 정해 총독부에 신청한 것이다. 태고사는 전국승려대회 이후 소유권 다툼이 법정으로 비화한 끝에 1975년 6월에야 명칭이 조계사로 변경되었다. 그러면 왜 하필 보천교 십일전을 옮겨왔을까. 아무래도 당시 신도가 12만명에 불과했던 불교계 형편상 기존 건물을 옮겨짓는 것이 비용절감에 긴요했고 무엇보다 보천교가 일제에 강하게 맞서 일제에게도 위협적인 종교란 점에 착안했던 것 같다. 조계사 대웅전은 단순히 불교의 한 가람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천교는 한때 신도가 2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교세가 컸다.1928년 당시 전북 정읍의 보천교 본소는 2만평 부지에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 내장사 대웅전 같은 건축물이 45채나 들어섰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특히 십일전은 일제가 남산에 설치한 조선신궁(神社)에 대응해 지은 건물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주 차경석이 사망한 뒤 일제는 대대적인 보천교 말살에 나서 결국 십일전을 강제로 헐값(1만 2000원, 당시 쌀 한 가마 값은 5원30전)에 사들였는데 불교계가 이것을 매입해 옮긴 것이다. 대웅전 기둥과 대들보는 십일전의 것을 그대로 옮겨 세웠으며 형태도 사실상 십일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계사 대웅전이 낙성된 것은 1938년 10월25일. 건립엔 총 17만원이 소요됐으며 기술자는 목공 7000명, 와공(瓦工) 200명을 포함해 6500명, 인부는 6만 5000명이 동원됐다. 당시 만해 한용운은 ‘총본산건설의 재인식’(1938년 ‘불교’ 신제17집)이란 글에서 대웅전의 규모를 말하면서 “만일 이 건물을 신축하자면 최소한도 100만원은 초과치 아니하면 안 되겠다고 하니 얼마나 훌륭한 집인가.”라고 적고 있다. 그야말로 19∼20세기를 통틀어 한국 최대의 건축불사(佛事)였던 셈이다. 조계사는 지난 2004년부터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하면서 “전통사찰 양식에 충실한다.”는 원칙을 세워 기둥과 지붕 등 기본 골격과 구조물은 변형하지 않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많은 부분이 바뀌어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고 있다. 우선 천장을 민반자로 완전히 바꾸면서 천장에 있던 그림들이 모두 철거됐고 자개 장식의 불단도 완전히 바뀌었는가 하면 새로 봉안될 3존불 위에 전통양식의 닫집을 설치하면서 기존의 장식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 이강근(48) 경주대 교수(미술사학)는 “전통사찰 양식도 중요하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 문화재의 구조물들을 교체하는 것은 역사인식의 결여를 보여주는 큰 오류”라고 말한다. 이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시작으로 4년 안에 조계사에는 종각과 보제루·영산전이 새로 들어서 환골탈태하게 된다. 경내에 있는 여관 현대장도 헐려 그 자리에 24시간 개방형 시민선방이 세워진다. 조계사 주지 원담(48) 스님은 “조계사는 서울 중심에 위치한 대표적인 신중도량으로 한국불교의 견인차 역할을 계속 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불교 1번지의 위상에 맞지 않게 사찰 형태가 초라하고 급하게 지은 대웅전도 전통 사찰양식에서 비켜난 부분이 많아 해체보수를 통해 한국불교 고유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imus@seoul.co.kr
  • 성철스님 법골 석가모니 성지 간다

    전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의 법골(法骨)이 석가모니의 열반지이자 불교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인도 북부 쿠시나가르에 봉안된다. 전남 보성 대원사 티베트박물관 관장 현장 스님은 “티베트박물관에서 열리고있는 ‘미륵불상 심장전(心藏殿) 사리세계 순례전’에 성철 스님의 법골을 전시 중”이라면서 “법골은 세계순회전을 마친 뒤 인도 북부 쿠시나가르에 조성되는 세계 최대 미륵불상에 석가모니 사리 등과 함께 봉안될 예정”이라고 26일 밝혔다. 티베트박물관측에 따르면 성철 스님의 상좌 원택(백련암 주지) 스님은 현장 스님의 요청을 받고 성철 스님의 법골을 최근 티베트박물관으로 이운했다. 한편 지난 24일 시작되어 다음달 14일까지 계속되는 ‘미륵불상 심장전 사리 세계순례전’에는 석가모니의 혈(血)사리와 머리뼈 사리,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사리 1000과(顆)가 들어 있다. 순례전시가 끝나면 성철 스님의 법구를 비롯한 사리들은 빌딩 50층 높이(152m)인 세계 최대 규모의 미륵불상 중심부에 봉안된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섬에서 온 봄편지] 청산도·여서도를 가다

    [섬에서 온 봄편지] 청산도·여서도를 가다

    ■ 완도에서 뱃길 45분…청산도를 가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야 너도 가자/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청산도나 여서도처럼 베일 속에 감춰진 섬들의 이름을 들을 때면,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설렘이 고개를 쳐든다. 그래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중독과도 같다.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난 짧은 일탈, 그리고 해방감. 청산여수(靑山麗水)란 뜻에서 이름붙여 졌다던가. 푸른 보리밭과 쪽빛 바다가 넘실대는 곳. 청산도와 여서도를 다녀왔다. 글 사진 완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뭍과 하늘, 그리고 바다 등이 온통 쪽빛으로 물든 것 같다고 해서 ‘청산(靑山)’이란 이름을 갖게 된 청산도.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이다. 문학작품 속에서나 접했던 그 섬에 가기 위해 완도항에서 청산페리호에 올랐다. 뱃길로 45분. 청산도에 대해 ‘예습’이라도 할 생각으로 운항실 문을 열어 항해사 이기정(56)씨를 찾았다.13년 동안 완도와 청산도를 오가며 뭍 사람과 섬 사람들을 실어나른 베테랑 항해사다.“ 청산도 처녀들이 시집갈 때꺼정 쌀을 서말(세말)을 못먹는당께요.”청산도는 농사지을 땅이 모자라 항상 쌀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처녀가 뭍으로 시집갈 때까지 쌀 세말만 먹으면 ‘부잣집 처녀’소리를 들었단다. 뭍에서 자란 처녀를 ‘청산도로 시집보내지 말라.’는 말과 함께 이런 얘기도 들려준다. 육지 처녀가 청산도로 시집을 갔다. 어느날 아침. 시어머니가 새색시에게 “오늘 안으로 12개의 밭을 매라.”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어느 분의 영이라고 거역하랴. 하루종일 밭을 맨 새색시가 저녁무렵 허리를 펴고 세어보니 아무리 봐도 11개밖에 안 되더란다. 설움에 북받쳐 울던 새색시가 털고 일어서는 데, 바로 그곳이 12번째 밭이었더라는 얘기. 작디 작은 섬을 일구며 살아온 섬 사람들의 고단한 생활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게다. 풍요로운 때도 있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바다뿐인 천혜의 어장에서는 사시사철 고기가 끊이질 않았다. 주로 잡혔던 어종은 멸치와 고등어, 삼치 등. 특히 70년대초 청산도의 고등어 파시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했다. 청산도 입구 도청항에는 건착망(巾着網)이라는 그물로 무장한 수백척의 고등어잡이 배들이 몰려들었다. 건착망은 그물아래쪽에 죔줄을 대 두 척의 어선이 고등어떼를 포위하고 주머니모양으로 조여가며 잡는 방법. 청산도 뭍과 바다가 밤, 낮을 가리지 않고 흥청거렸던 건 당연지사였다.“아, 그때가 좋았지라. 뱃놈들 보고 뭍에서 건너온 술집 아가씨들이 200명도 넘었당께라.” 항해사 이씨의 말끝에 향수가 묻어나왔다.“도청항 주변으로 한집 건너 술집이 들어섰제.” 요즘엔 고등어가 잘 들지 않는다. 해수의 온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고등어의 먹이가 되는 멸치를 모두 잡아버렸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느덧 해거름에 도착한 청산도 도청항. 섬색시의 따스한 환대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다소 휑한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도청항 주변을 일별한 다음, 서둘러 숙소에 짐을 풀고 밥집으로 향했다. 뭍에서 손님이 왔다고 마중을 나온 정성희(57) 청산면장과 함께 찾은 곳은 바다식당(061-552-1502).‘체도(본섬을 뜻하는 현지말)’ 내의 다른 식당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산 활어가 주종이다. 우럭과 광어를 다진 배추 위에 얹어 내오는데, 한 접시에 5만원을 받는다. 곰삭은 김장김치인 ‘묵은지’에 싸서 먹는 회맛이 일품. 무엇보다 특이한 음식은 ‘꾸죽(참소라)’구이다. 청산도와 소안도 등 일부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꾸죽을 참기름과 함께 볶은 것. 껍질에 불퉁스러운 뿔이 나 있는 것이 다른 소라들과는 영 딴판이다. 술이 한 순배 돌고나자, 정 면장이 청산도에 얽힌 옛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고등어가 파시를 이루던 60~70년대. 유난히 교육열이 높았던 청산도에는 부산이나 광주는 물론, 일본으로까지 유학가던 학생들이 많았다.‘청산도에 가서 글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 돈은 골목마다 지천으로 넘쳐났다.“그 시절엔 서울에만 명동이 있는 거이 아니고 청산에도 명동이 있었당께.” 요즘엔 다른 어촌들과 마찬가지로 청산도에도 젊은이들이 없다. 모두가 저마다의 ‘명동’을 찾아 도회지로 떠난 것.60세 이상이 주민의 절반을 넘고,40세가 넘은 택시운전기사가 이 섬의 ‘막내’급이다. 사람이 없다보니 “면장이 쓰레기도 치워야 한다.” 그러나 총총히 뜬 별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얼핏 눈에 띈 노래방만 해도 서너곳. 청산은 아직도 옛 영화를 잊지 못하는 듯하다. 이튿날 날이 밝기 무섭게 찾은 곳은 청산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당리. 도청항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닿는 거리에 있다.1993년 청산도를 세상에 알렸던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다. 이웃마을에서 ‘소리’를 팔고 돌아오던 유봉(김명곤)과 의붓딸 송화(오정해), 그리고 의붓아들 동호(김규철)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던 돌담길이 바로 이곳. 현재 당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초가집도 이때 만들어졌다. 최근엔 ‘봄의 왈츠’라는 한 방송사의 주말연속극이 촬영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다시한번 ‘청산도 붐’이 불기를 기대하는 것이 현지의 분위기. 이 드라마를 위해 당리와 읍리 등의 민가지붕이 모두 새로 칠해져 넓은 ‘세트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 드라마 촬영을 위해 돌담길 언덕 위에 세워진 ‘그림 같은 집’ 때문에 예전의 토속적인 느낌이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당리는 청보리가 무릎언저리에 이를 만큼 자라고, 유채꽃이 노오란 꽃잎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지금부터가 가장 아름답다. 마치 시인 정지용의 ‘향수’를 연상케 한다. 당리에서 바닷가쪽 도락리 포구까지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읍리쪽에서는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소리가 들린다.“차마 꿈엔들 잊힐리” 없는 곳이다. 다음에 들른 곳은 부흥리의 구들장논.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해 산비탈에 논을 만든 것으로 계단식 논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윗논과 아랫논의 높이차이가 2m에 이르는 곳도 있다. 산자락을 깎아 돌을 평평하게 깐 다음 그 위에 흙을 얹은 모습에서 섬사람들의 억척스러움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배어나왔다. 대부분을 여자들이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박토의 천수답에 물을 대고 작대기 모를 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선비기질이 남달라 ‘똥지게를 지고도 한시(漢詩)를 읊조리는’ 이 섬의 남정네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청산도로 시집오지 말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듯하다. 구장리에서 본 ‘초분’은 외지인에겐 다소 당혹스러운 장례풍습이었다. 망자를 돌 위에 얹고 짚으로 만든 이엉으로 지붕을 삼아 초가집처럼 만든 것. 이곳에서 2∼3년간 머물다 뭍으로 나간 후손이 돌아와 다른 곳에 이장하게 된다. 일종의 풍장(風葬)으로 청산도 등의 일부 섬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아직도 청산도 안에 3∼4기의 초분이 남아 있기도 하다. 청산도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또다른 명소가 ‘유두봉’. 여인네의 가슴언저리와 비슷하다 해서-반대편 화랑포쪽에서보면 상당히 설득력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부 현지 남자들이 명명했다. 이곳에서 보는 주변모습 또한 절경이다. 가깝게는 거북바위와 저멀리 다도해 국립공원의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5월쯤 전망대가 들어서면서 정식명칭도 생길 예정. 권덕리 주차장에서 도보로 15분정도 걸린다. 청산도 여행이 가장 즐거울 때가 바로 지금부터. 푸르른 보리가 섬을 수놓고, 바다에서는 삼치잡이가 한창일 때다. 이때부터 비로소 청산(靑山)이 훨훨 날갯짓을 한다. 가는길 완도항에서 청산페리호가 하루 4회(오전 8시,11시20분, 오후는 2시30분과 6시) 운항한다. 요금은 편도 5800원. 승용차를 실을 경우 편도 2만 3000원,1인은 무료. 여름 성수기에는 8∼10회로 증편된다. 문의 완도군청 문화관광과(061)550-5421. 완도 여객터미널 (061)552-0116. 숙박업소 등대모텔(061-552-8558) 등 4∼5개의 깔끔한 숙박업소들이 도청항 주변에 몰려 있다. 현지교통 여객선 입출항 시간에 맞춰 청산운수(051-552-8546)소속 버스가 선착장에 나와 있다. 개인택시는(061-552-8747) 지프차로 모두 4대. ■ 청산도에서 25km…여서도의 봄 ‘그 곳에 가면 애 배 나온다.’는 섬 여서도. 청산도에서도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외딴섬이다. 배가 여서항 선착장에 닿자 서너명의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섬의 형상이 쥐와 같다 해서 고양이 모습을 한 거문도 사람과는 혼인을 하지 않는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을만큼 순박한 섬사람 모습 그대로다. 청산도보다는 다소 차가운 날씨. 습도가 높아선지 말할 때마다 입가에 김이 서렸다.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섬답게 벌써 제비들이 하늘을 주름잡고 있었다. 청산도와 여서도 등의 해녀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제주도 출신이라는 것과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것. 채민자(60)씨도 돈을 벌기 위해 청산도를 찾았다가 섬마을 총각과 눈이 맞아 눌러 살게 된 전형적인 케이스다. 고향은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 제주도에서 해녀생활을 하다 30여년 전 청산도에 돈과 해산물이 많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 고향을 떠났다. 그때 나이 23세.‘물질’의 고단함이야 어디라고 다를까.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객지생활 끝에 ‘불과’ 4개월 만에 남편 정규만(61)씨의 포근한 품에 안겨버렸다. 지금껏 편안하게 대해준 남편을 의식해서였을까. 힘들었던 기억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점은 대화를 나눴던 다른 해녀들도 마찬가지. 그러나 자식들 얘기를 하면서는 목소리가 촉촉이 메었다. “고 어린 것들을 배에 두고 물 속에 들어갔다 오면 언 놈은 토해놓기도 하고, 또 언 놈은 기절이라도 한 듯 쓰러져 있기도 했지라.” 뭍의 친척집에 맡겨두고 나올 때도 있었다. 밤 9∼10시쯤 빈손으로 돌아와 저녁도 거른 채 쓰러져 자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는 것. 지금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삼남매가 참 고맙단다. 맑은 날이면 청산도에서도 보이는 고향 제주도. 떠나온 후 지금까지 4∼5번밖에 찾아가 보지 못했다.“볼 때마다 반갑지라. 언니랑 동생, 그리고 친구들도 보고잡고….” 55가구 100여명이 주민의 전부인 섬. 이렇게 조용한 섬에 여자가 들어오면 애를 밴다는 난잡한 얘기가 나돌게 된 이유는 뭘까. 여서도는 예로부터 제주도의 해녀들이 많이 들락거릴만큼 완도보다는 오히려 제주도에 가까운 곳이었다. 이곳에 ‘물질’하러 온 제주 해녀들이 ‘청산도 모퉁이까지는 장담을 해도 여서도까지는 가봐야 안다.’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뱃길이 막혀 묶이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젊은 처녀가 한달이고 두달이고 갇혀 있다 보면 섬총각과 가까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러구러 시간이 지나 앳된 처녀가 그 섬을 나올 때면 어느덧 애엄마가 되었다는 얘기다. 외진 곳에서 ‘물질’로 살아가는 섬아낙네들의 애환을 질펀한 해학으로 풀어낸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쌀 세 말을 못먹는 곳’이 청산도라면, 여서도에는 ‘평생을 살아도 쌀 한 가마니를 못먹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만큼 먹을거리가 궁하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섬이란 뜻이다. 그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섬총각과 ‘애 밴’여인네들은 산모퉁이를 깎아내 논을 일구었다. 마치 계단처럼 산자락을 돌아나간다고 해서 ‘두렁논’이라 불렀다. 요즘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그나마 소의 방목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여서도는 아직까지도 때묻지 않은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섬이다. 특히 30∼40m 깊이의 바닷속이 훤히 보일 만큼 맑은 물색이 자랑이다. 여서도로 시집가던 새색시의 앞섶이 풀어지며 옷고름이 바닷물에 빠져 황급히 들어보았더니 옥색으로 물들어 있더라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맑고 곱다. 이 맑은 바닷속 비경을 보기 위해 해마다 스킨 스쿠버 다이버들이 여서도를 찾아 오기도 한다. 미역, 다시마 등의 해산물과 함께 많이 나는 것이 문어. 마을 앞이 문어밭이어서 문어를 잡아 던지면 집안 빨랫줄에 바로 걸릴 정도란다. 구멍 등에 숨기를 좋아하는 문어의 특성을 이용한 ‘단지어업’도 성행하고 있다. 자그마한 단지모양을 한 플라스틱 통을 그물에 연결해 바닷물 속에 사나흘 넣어두면 통마다 문어들이 가득차 있다는 것. 여서도에는 학교가 한 곳, 청산초등학교 여서분교뿐이다. 학생은 김민욱(11), 은빈(8)남매와 정주훈(9)군 등 세 명. 반면에 선생님은 김금남(48) 분교장 등 두 명이다. 교육환경만큼은 무척 좋은 편(?)이다. 요즘 여서도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뭍에서 오는 낚시꾼들을 돌봐주는 것이다. 섬 주변에 고기들이 많아 사철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이들에게 밥도 지어주고 잠도 재워주는 것이 주업이 되었다. 며칠 조용하게 쉬다 오기에는 딱 좋은 섬이다. 청산도에서 휴가를 즐기다 1박정도는 이 섬에서 보내도 좋을 듯하다. 단, ‘애 배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사전에 기상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고 가야 한다. 가는 길 완도항에서 섬사랑 3호가 매일 오후 2시30분에 출항한다. 소모도와 대모도, 장도 등을 들러가는 ‘완행’이다. 요금은 여서도까지 편도 8800원. 승용차를 싣고 가는 데는 편도 2만 8000원이다. 운전자 요금은 무료. 문의 완도군청 문화관광과(061)550-5421. 완도 여객터미널 (061)552-0116. 숙박업소 민박집 외에는 없다. 대부분의 집에서 민박이 가능하다. 문의 김명남 이장 (061)552-8927.
  • 불교聖人사리 1000여과 한국 오다

    가톨릭의 로마 교황청과 같은 위상의 세계 불교타운 건립이 추진되는 가운데 이 타운의 핵심인 대형 불상에 봉안될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사리 1000여과(顆)가 한국에 들어와 불교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일 전남 보성 대원사 티벳박물관(관장 현장스님)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혈(血)사리와 머리뼈 사리,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인 목련, 사리불, 아난다 존자 등의 사리 1000과를 친견할 수 있는 ‘미륵불상 심장전(心藏殿) 사리 세계순례’ 한국행사가 24일부터 5월15일까지 이 박물관에서 개최된다. 전시에는 ‘티베트 불교의 어머니’로 불리는 예세초겔을 비롯해 달라이 라마가 속한 티베트 게룩파의 개조 라마 총카파 등 티베트 불교 성인들의 사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리 전시는 지난 2001년부터 미국, 캐나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세계 100여개 도시에서 열려왔으며 동북아시아 행사로는 처음이다. ‘미륵불상 심장전 사리 세계순례’는 티베트 선승 라마 조파 린포체가 주도해 진행되는 ‘마이트레야(彌勒) 프로젝트’의 일환. 이 프로젝트는 불교 4대 성지의 하나로 석가모니가 열반한 인도 쿠시나가르에 세계 불교의 구심점을 구축하기 위한 대형 불사(佛事)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세워진 불상중 최대 규모인 빌딩 50층 높이(152m)의 미륵불상을 중심으로 주변에 문화복지센터가 건립된다. 불상 안에는 대웅전과 선방, 심장전 등 부대시설이 들어서는데 이번에 국내에 들어오는 사리들은 불상이 완공된 뒤 불상의 심장 부근에 조성되는 심장전에 봉안된다. 사리는 이 프로젝트의 후원금 마련을 위해 라마 조파 린포체를 비롯해 그의 제자 우원위앤, 티베트 디클로 사원의 촉네 제이, 인도 세라메 사찰의 웨사르 린포체 등이 기증한 것이다. 현재 불상은 타이완에서 제작중으로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 현장 스님은 “마이트레야 프로젝트는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 진행돼 2008년까지 마무리된다.”며 “한국 큰스님들의 사리도 프로젝트의 핵심인 큰 불상 심장전에 봉안할 수 있도록 주최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평택 미군기지 격렬 충돌

    국방부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지역 농수로 폐쇄 과정에서 주민들과 충돌, 주민과 국방부측 용역직원 등 6명이 다치고, 주민 6명이 연행됐다.●농사 못짓게 농수로 3곳·농로 폐쇄국방부는 7일 굴착기 3대와 레미콘 6대 등 중장비와 용역직원 750여명을 동원, 기지 이전지역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함정리와 도두리·신대리 등 3개리 농수로 3곳에 대한 폐쇄작업을 벌였다. 기지 이전지역 농지 285만평은 인근 진위천과 안성천에서 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고 있으며, 농수로가 차단될 경우 모내기 등 앞으로의 농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방부는 오전 11시10분쯤 레미콘 차량을 동원, 함정리 콘크리트 농수로(폭 1.5m, 깊이 70㎝)에 빨리 굳고 강도가 높은 조강시멘트를 부어 1시간30분 만에 농수로를 폐쇄했다. 이어 오후에는 굴착기로 폭 3m짜리 도두리 농수로를 막았다. 국방부는 농수로를 폐쇄하며 물길을 배수로 쪽으로 돌려 농지에 물을 못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오전 9시쯤 함정리 마을 초입에서는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와 팽성리 주민 40여명이 승용차 7대를 세워놓고 국방부측의 진입을 막으며 2시간여 동안 심한 몸싸움을 벌여 국방부측은 우회농로를 이용해 함정리와 도두리 작업지점에 도착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안성천 바로옆 신대리 농수로로 가는 둑길에 주민 50여명이 승용차 5대로 길을 막고 대치해 작업을 하지 못했다.●연행자 묵비권… 신원파악 어려워 국방부는 대추분교 인근 내리들판에서도 불도저 2대로 농로 폐쇄작업을 병행했다. 내리에서는 주민 30여명이 소형버스로 진입로를 막아 중장비가 논바닥을 통해 현장에 진입했으며, 주민들은 불붙은 볏짚을 던지고 불도저에 올라가 작업을 저지하는 등 충돌을 빚어 주민 5명과 용역직원 1명이 부상했다.경찰은 4개 현장에서 작업 방해를 주도한 6명을 연행해 조사 중이며 이들은 모두 묵비권을 행사, 신원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은 50개 중대 5000여명의 병력을 작업현장 주변에 배치해 주민들의 접근을 막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15일 논갈이를 봉쇄하기 위해 기지 이전지역 농지에 길이 30∼100m의 대형 골(폭 3m, 깊이 1.5m) 4개를 만들고 파낸 흙으로 농로를 차단, 주민들과 한차례 충돌했었다.이후 국방부는 불상사를 우려, 논갈이를 막지 않아 주민들은 전체 농지 285만평 가운데 80만평의 논을 갈았으며 나머지 205만평에 대해서는 이달 말까지 파종을 끝내기로 하고 볍씨를 직파해 왔다.평택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기고] 동북아역사재단은 어찌 되었나/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 소장

    최근에 한 국내 대학에서 일본학을 강의하는 일본인 교수가 우리의 독도 연구수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독도와 관련된 한국 측의 모호함이 일본이 우길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는 설명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는 정밀한 연구는 하지 않은 채 주장만 한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한 어린 유학생이 중국의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서 석굴암을 일본 불상으로 잘못 표기한 것을 바로잡았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이 교과서에서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석굴암의 오류가 아니다. 세계 각 지역의 사회와 문화를 소개하는 이 교과서에서 한국은 전혀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일본과 중국에 의한 역사 왜곡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의 교과서 왜곡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역사왜곡의 시작도 전부도 아니다. 그것은 오랜 역사 왜곡 드라마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것이 드라마의 마지막인지 클라이맥스인지 아니면 클라이맥스의 전단계인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흐름으로 보아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리 짜여진 각본이 없는 드라마이기에 지켜보는 것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그들이 쓰고, 그들이 주연이고, 그곳이 무대이기도 한 이 드라마를 우리는 계속 지켜보고 흥분만 할 것인가. 중국을 둘러싼 주변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중국 문화에 예속된 것으로 보는 중화사관의 뿌리 깊음이나 세계적 영향력은 굳이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아직도 세계 많은 나라 교과서나 역사 서적에서 한국의 전근대 역사는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것으로 과장되어 묘사되고 있다. 일본에 의한 역사왜곡도 식민지 강점 준비기였던 19세기 말에 이미 시작되었다. 탈아론을 내세운 후쿠자와 유키치가 1885년에 “우리는 마음 속으로부터 아시아의 나쁜 친구를 거절해야 한다.”고 외친 이후 일본은 아시아를 무시하는 행태를 반복해 왔다. 주체적 개화에 실패한 한국은 무시 대상의 첫 번째이다. 아시아에 대한 무시의 핵심에 아시아 역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 일본 중심 해석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단순한 호칭이나 교과서 표현이 아니라 뿌리 깊은 중화주의 사관과 일본식 역사인식 그 자체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길게는 수세기 적어도 1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역사 왜곡이기에 하루아침에 바로잡힐 리 만무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삐뚤어진 사관을 바로잡는 데는 앞으로 1세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독도, 동해, 임나일본부설, 군대위안부, 고구려사와 같은 몇몇 사례의 시정에 매달리기보다는 좀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2004년의 중국 동북공정 파문, 그리고 지난해에 다시 불거진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파동 속에서 대안으로 제시되어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기대감을 갖게 했던 것이 동북아역사재단이었다. 그러나 출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어찌되었는가. 지난 1년간 주변국으로부터의 반복되는 역사 모욕을 감내해 온 국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정치권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 소장
  • 쇼트트랙 파벌…찢어진 선수들 “관둘까봐요”

    쇼트트랙 파벌…찢어진 선수들 “관둘까봐요”

    “제 전부였던 쇼트트랙을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에요.”(안현수),“파벌다툼이 없어져 마음껏 스케이트만 타고 싶어요.”(이호석) 세계 최강인 한국 쇼트트랙이 ‘파벌싸움’으로 벼랑끝에 섰다. 일부에서는 이참에 종목 자체를 아예 없애자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최근 끝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내선수끼리 무리한 경쟁을 벌이다 한 명은 실격되고, 다른 한 명은 넘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어 귀국한 4일 인천공항에선 이를 두고 선수 부모와 대한빙상연맹 간부간 폭력사태까지 빚어져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것. 이번 사태의 진원지는 쇼트트랙 내부의 해묵은 ‘파벌’이다. 서로 ‘파’가 다른 지도자들이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기 위해 과잉 경쟁을 벌인 탓이다. 병역은 물론 명예와 부가 뒤엉키며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특히 동계올림픽 유일한 금메달 종목이어서 암투는 극에 달했다. 파벌은 한국체대와 비(非)한국체대로 요약된다. 시발은 초기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었던 한국체대 출신과 비한국체대 출신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우수 선수 스카우트와 대표 구성에서 한국체대 출신들이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자, 이에 반발한 비한체대 출신들이 대항하면서 파벌이 형성됐다는 얘기다. 이들의 싸움은 그동안 불모지였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부터 서서히 표출됐고 이후 구타사건, 입촌거부사태 등으로 이어져 속은 곪을 대로 곪아갔다. 비한국체대 출신들은 여전히 한국체대 출신으로 국가대표 지도자를 지낸 사람이 대표팀 훈련방식 등에 관여하고 있다며 반발한다. 지금도 비한국체대 출신들은 우수선수들을 한국체대가 ‘싹쓸이’해가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이것이 파벌을 더욱 키운다는 것. 폭발조짐은 토리노동계올림픽 전에 감지됐다. 연맹은 코치 2명을 임명하면서 “역대 올림픽을 분석해 보니 남녀 코치를 따로 두었던 94릴레함메르대회에서의 성적이 가장 좋아 코치를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어 내린 고육책이었다. 명목상으로는 남녀 코치였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역시 한국체대와 비한국체대로 갈라놓은 것에 불과했다. 한국체대 재학생인 안현수는 박세우(한국체대 출신) 여자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고, 여자인 진선유(광문고)와 변천사는 송재근(단국대 출신) 남자 코치쪽에서 지도를 받는 기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변천사는 한국체대 소속임에도 본인의 강력한 의사에 따라 송 코치를 택해 “변천사가 한국체대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토리노올림픽에선 예상외의 좋은 결과로 파벌 싸움은 묻혔지만 미봉책에 불과했다. 연맹측도 파벌의 존재를 인정한다. 한 관계자는 “다른 곳에서도 학연, 지연을 따지듯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면서 “특히 지도자들은 ‘밥줄’과 직결되기 때문에 과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맹은 2명의 코치진 시스템을 바꿔 감독 아래 코치를 두는 ‘정상적인’ 체제로 바꾸는 등 파벌타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분위기는 다소 회의적이다. 연맹 내부도 파벌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쇼트트랙이 거듭나기 위해선 선수들이 서로 희생하는 정신을 발휘하거나 박성인 연맹 회장이 특단의 메스를 가해야 할 절대 시점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청와대 안팎은 ‘문화유산 보고’

    청와대 안팎은 ‘문화유산 보고’

    지난 1일 청와대의 뒷산인 북악산의 숙정문 일대가 열렸다. 홍련사에서 숙정문, 촛대바위까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37년 만의 일이다.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인 북원 자리의 청와대와 북악산 곳곳에는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유적들이 자리잡고 있다. 대통령 경호상 개방될 수 없었던 까닭에서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에 경주에서 옮겨놓은 석조여래좌상, 임금의 쉼터인 오운정,‘천하제일복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 법흥사터, 만세동방계곡 등 크고 작은 역사의 흔적들이다. 청와대 경호실은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주변의 문화유산을 손수 정리한 책,‘청와대 주변 역사·문화유산’을 펴냈다.29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청와대의 유래에서부터 유적의 사진과 역사·전설까지 자세하게 기록,‘역사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문화관광부의 감수까지 받았다. 경호실측은 “출입이 통제돼 청와대 주변의 문화유산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점이 안타까워 직접 유적들을 사진찍고 자료를 모았다.”면서 “사라진 유적들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석조여래좌상 대통령 관저 뒤쪽에는 높이 1m의 석조 불상이 있다. 서울시유형문화재 제24호이지만 청와대 경내에 있어 접근이 어려운 탓인지 서울시문화재의 홈페이지에는 소재지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기록하고 있다. 원래 석조여래좌상은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8세기경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크기만 다를 뿐 똑같다. 일명 ‘미남불’로도 불린다. 불상은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총독부 관저가 신축되면서 당시 경무대(현 청와대)터로 옮겨졌다. 일본 총독인 데라우치가 조선 문화재에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안 경주금융조합 이사 오히라가 자신의 집 정원에 뒀던 불상을 총독 관저로 가져갔다. 일본 총독의 점유물이 된 것이다. 서울시는 1974년 1월 유형문화재로 지정했으며, 현재 불상의 보호각은 1980년대인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다. ●법흥사터 청와대 동쪽 북악산 기슭에 있는 신라 진평왕 때 내옹 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현재 주춧돌 등 일부만 남아 있다.1965년 청오 스님이 현재 절터에 증축해 사용했으나 68년 1·21사태 이후 신자들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폐허가 됐다. ●만세동방계곡 법흥사 아래에 있는 계곡이다. 중턱에는 ‘만세동방 성수남극(萬世東方 聖壽南極)’이라고 쓰여진 약수터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재직때 약수물을 손수 떠다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78년 폐쇄됐다. 수남극은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의 별인 노인성(星)으로 무병장수를 뜻한다. ●오운정 대원군이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2.3평 정도 되는 임금의 휴식 공간이다. 청와대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오운정(五雲亭)이라는 편액의 초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정자는 19세기 중엽 성행했던 전통기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1989년 대통령 관저 대지를 조성하던 중 발견된 가로 2m, 세로 1.3m 규모의 바위에 새겨진 글귀다. 관저 부지가 오래전부터 명당자리였음을 의미한다. 글자는 조선중기 때인 300∼400년 전쯤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해태바위·말바위 북악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해태바위다. 멀리에서도 보이지만 접근할 수 없다. 무게만 55t이나 된다. 전설의 동물 ‘해태’와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왕조 창건 때 정도전이 물을 상징하는 해태바위가 불의 형상인 관악산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말바위는 북악산의 끝이라 해서 말(末)바위 또는 말과 비슷하다고 해 말(馬)바위라고도 불린다. ●사라진 유적 문관들이 모여 글을 짓고 연회를 즐기던 융문당, 무관들이 활쏘기와 훈련을 하던 융무당은 1922년 5월 철거돼 일본 사찰의 자재로 사용됐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Leisure+α] 물과 함께 하는 축제

    4월8일부터 16일까지 태국의 쏭끄란 축제가 열린다. 물을 주제로 한 축제로 불상에 물을 뿌리며 씻기도 하고 지나가는 여행객이나 사람들에 물을 뿌려 시원함을 주는 재미있는 축제이다. 또한 미인선발 대회, 모래탑 쌓기, 토속 요리경연대회, 각종 문화 행사 등 이색적인 볼거리가 가득하다.www.songkran.net
  • 빛이 그리운 ‘백제의 미소’

    “기대했던 ‘백제의 미소’는 없었다.” 충남 서산시가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가야산 중턱의 국보 84호 마애삼존불 보호각을 일부 철거했으나 그의 온화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벽면만 철거하고 지붕을 그대로 남겨 자연채광이 불완전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서산시에 따르면 습기에 의한 마애삼존불 훼손을 막기 위해 지난해 11월 2100만원을 들여 보호각 철거작업에 들어가 최근 전면 및 측면 2칸(3.59평)의 벽면을 떼어냈다.풍화와 인위적 훼손을 막기 위해 1965년 설치된 폐쇄형 보호각이 오히려 내부와 암벽에 습기를 차게 해 불상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따라 철거가 결정되자 41년 만에 이전 백제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에 앞서 문화재청과 서산시는 2000년 마애삼존불에 대한 구조진단을 벌여 위험도가 가장 큰 5등급 판정이 나오자 보호각을 철거하기로 했으나 “지붕을 없애면 눈·비를 직접 맞아 풍화작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의견이 제기돼 벽면만 철거키로 결정했었다. 하지만 철거가 안된 지붕부분이 그대로 불상을 덮고 있어 오전 10시 가야산 위로 해가 떠올라도 햇빛이 불상의 아랫부분까지만 비추고 오후 3∼4시에도 햇빛이 간접적으로 비춰 얼굴의 윤곽이 어색하게 드러나고 있다. 보호각이 설치되기 전 이 불상은 오후 3∼4시 햇빛을 받아 풍만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어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호각이 설치된 이후에는 조명을 비춰 관광객이 불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으나 당초의 미소가 재현되지 않아 불만이 컸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빛이 그리운 ‘백제의 미소’

    “기대했던 ‘백제의 미소’는 없었다.” 충남 서산시가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가야산 중턱의 국보 84호 마애삼존불 보호각을 철거했으나 그의 온화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벽면만 철거하고 지붕을 그대로 남겨 자연채광이 불완전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서산시에 따르면 습기에 의한 마애삼존불 훼손을 막기 위해 지난해 11월 2100만원을 들여 보호각 철거작업에 들어가 최근 전면 및 측면 2칸(3.59평)의 벽면을 떼어냈다.풍화와 인위적 훼손을 막기 위해 1965년 설치된 폐쇄형 보호각이 오히려 내부와 암벽에 습기를 차게 해 불상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따라 철거가 결정되자 41년 만에 이전 백제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에 앞서 문화재청과 서산시는 2000년 마애삼존불에 대한 구조진단을 벌여 위험도가 가장 큰 5등급 판정이 나오자 보호각을 철거하기로 했으나 “지붕을 없애면 눈·비를 직접 맞아 풍화작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의견이 제기돼 벽면만 철거키로 결정했었다. 하지만 철거가 안된 지붕부분이 그대로 불상을 덮고 있어 오전 10시 가야산 위로 해가 떠올라도 햇빛이 불상의 아랫부분까지만 비추고 오후 3∼4시에도 햇빛이 간접적으로 비춰 얼굴의 윤곽이 어색하게 드러나고 있다. 보호각이 설치되기 전 이 불상은 오후 3∼4시 햇빛을 받아 풍만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어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호각이 설치된 이후에는 조명을 비춰 관광객이 불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으나 당초의 미소가 재현되지 않아 불만이 컸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암벽에 2.8m 높이의 석가여래입상과 좌우에 1.7m의 불상 2개가 새겨진 마애삼존불은 백제 말인 6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1962년 말 국보로 지정됐다. 서산시 관계자는 “보호각 벽면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미소를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은 고려하지 못했다.”며 “1∼2년간 지켜보고 문화재청과 자연채광을 가로막는 지붕까지 철거하는 문제를 면밀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책꽂이]

    ●파라오 이집트의 영광(델리아 펨버턴 지음, 김희상 옮김, 심산 펴냄) 카르나크와 룩소르의 대사원에서부터 투탕카멘의 무덤에 묻혀 있는 엄청난 보물에 이르기까지 고대 이집트인들은 어떤 고대문명도 따라올 수 없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이집트인들이 가장 중요하고 신성하게 여긴 도시는 테베. 고대 그리스인들은 테베 건축물들의 위용과 화려함에 감동한 나머지 “100개의 문을 가진 도시”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들은 보이오티아에 있는 자신들의 도시에 똑같이 테베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고대이집트 문명의 신비를 찾아 나선다.3만 8000원.●천로역정(존 버니언 지음, 김 창 옮김) 천국으로 가는 한 순례자의 고단한 여로를 장엄한 서사시처럼 그려낸 기독교의 고전. 간디는 존 버니언이 베드퍼드 감옥에서 지은 이 책을 “영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칭송했다.“나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라는 크리스천의 탄식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고뇌와 회심, 전도와 박해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승리로 이어지는 버니언 자신의 고달픈 생애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1만 6900원. ●지식의 증류(브루스 모런 지음, 최애리 옮김, 지호 펴냄) 16∼17세기 갈릴레오, 뉴턴 등에 의한 고전역학의 확립과 함께 자연상·세계상의 변혁을 몰고온 과학혁명. 이 과학혁명 이전, 천문학자는 점성술사였고 화학자는 연금술사였다. 사람들은 마법과 신비주의가 갑자기 과학과 합리주의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유럽지성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에 반박한다. 연금술도 그 자체의 맥락 내에서 보면 논증적 과학의 테두리 안에 놓일 수 있다는 것. 미신 혹은 마술로 잘못 알려져 있는 연금술은 오히려 근대과학을 태동케 한 변화의 주인공이었다고 주장한다.1만 8000원.●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허호 옮김, 이산 펴냄)‘문명개화’의 선구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인간적 면모가 담겼다.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로 이어지는 근대 일본의 격동기를 헤쳐 나가면서 자신의 뜻한 바를 이뤄나간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한다. 후쿠자와는 자신이 글을 비교적 늦게(열서너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음에도 남들보다 빠르게 한문과 네덜란드어, 영어를 익힌 경험이 있어서인지 기본적인 예의범절과 예능교육 외엔 조기교육에 반대했다. 자신이 낳은 9남매에게도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랐지 공부하란 소리는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일본 만엔 권 지폐에 인쇄된 초상의 주인공이다.1만 9000원. ●미국법, 오해와 이해(이수형 지음, 나남출판 펴냄) 우리 언론에서 언젠가 “음반업체들이 존 도(John Doe)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법정 영어 용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존 도’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존 도’는 소송의 원고나 피고를 특정할 수 없을 때 편의상 사용하는 무의미한 이름으로 우리로 치면 동사무소 민원양식에서 흔히 보는 ‘홍길동’ 정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명불상의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제대로 된 번역이다. 국내 언론보도 등에서 잘못 번역되고 있는 미국법 관련 표현을 살폈다.2만원.●한비광, 김전일과 프로도를 만나다(조성면 지음, 일송미디어 펴냄) 장르문학에 대한 본격 평론집. 공포문학의 제왕 스티븐 킹과 현대인의 집단적 노이로제, 동아시아 최초의 베스트셀러인 ‘삼국지’ 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다. 제목의 한비광은 무협만화 ‘열혈강호’의 주인공이며, 김전일과 프로도는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과 현대 장르판타지의 효시인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1만원.
  • 분당 토지박물관 ‘명품 유물’ 전시

    분당 토지박물관 ‘명품 유물’ 전시

    ‘삼국시대 순금불상에서 고려시대 청동향완, 조선시대 물가정보자료까지.’ 최근 리모델링작업을 마치고 재개관한 경기도 분당 토지박물관(관장 조유전)에서 볼 수 있는 희귀한 유물들이다. 고문서와 생활유물이 어우러진 복합전시관으로 변모함으로써 국토개발의 역사는 물론, 사회·경제·문화 등 각 시대상을 이해하기 쉽게 꾸몄다. 특히 상당수 명품 유물들이 수장고를 탈출, 모습을 드러내 감상의 즐거움을 더한다.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조선시대 물가정보가 자세히 기록된 일기책인 ‘심원권일기’. 울산에 살았던 중인 신분의 심원권이 1870년부터 1933년까지 무려 64년에 걸쳐 농업, 천문, 기상, 땅값, 쌀값 등 생업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일기로 기록했다. 특히 15일마다 한번씩 시장에 나가 보고 들은 물가가 모두 기록돼 조선후기에서 식민지시대까지 계량경제사 연구를 위한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재산분배 풍습이 담긴 고문서인 ‘만력15년명(1587년) 분재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조선전기 아들·딸 구별없이 모든 자녀에게 재산을 공평하게 나눠준 균분상속 전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희귀한 고문서들의 전진배치와 함께 나무로 만든 피리와 거문고, 박 등 악기와 말, 노새,18점에 이르는 인물상으로 구성된 고려시대 ‘목제명기’도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현존하는 고려시대 향완 중 가장 큰 규모로 확인된 ‘청동은입사향완’이 수장고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와 함께 삼국시대 희귀한 순금불상인 ‘금제여래입상’과 통일신라시대 ‘보상화문전’, 조선초기 백자인 ‘백자철화상감연화문소병’ 등도 새롭게 볼 수 있다. 1997년 한국토지공사 산하로 개관한 토지박물관은 2만 5000여점에 달하는 토지관련 자료를 수집, 소장하고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인성의 산울림]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산

    [김인성의 산울림]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산

    # 동백꽃 한아름 품에 안은 호남의 내금강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과 심원면 경계에 있는 선운산(336m)은 본래 도솔산(兜率山)이었으나 백제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야트막하면서도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호남의 내금강이라고 불릴 만큼 계곡미가 일품이고 숲이 울창하다. 선운산의 각 봉우리에는 수리봉, 천룡산 등 동물의 이름이 붙어 있으며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칠산바다의 일몰은 유명하다. 특히 3월 중순에 꽃이 피기 시작해 4월 중순에 절정을 이루는 선운사의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184호)이 유명하다. 선운사 대웅전 뒤 5000여 평 산비탈에 자라는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에 일시에 꽃이 피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아직 선운산의 봄은 멀기만 하다. 겨우내 찾아 온 강추위로 예년 같으면 어느 정도는 피었어야 할 동백꽃이 봉오리조차 보이질 않는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말로는 4월 중순에나 만개할 것 같다고 한다. # 산행길잡이:추천코스(8.7㎞,2시간45분 정도) 선운사 주차장에서 벚꽃나무가 늘어진 아스팔트길을 800m 가면 매표소와 선운사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을 지나면 잡목이 우거진 비포장 길이 선운사 앞 다리까지 이어진다. 선운사에 들어서면 대웅전 뒤 산비탈에 동백나무숲이 선운사의 운치를 더해준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탐방로와 도솔암까지 가는 비포장 도로가 있는데 어느 길로 가든 도솔암으로 이어져 있다. 도솔암을 향해 30여분을 가면 높이가 30m쯤 되는 장사송이 보인다. 이 소나무 옆에는 깊이가 10m인 진흥굴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이 굴에서 수도할 때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타났기 때문에 진흥굴이라 불린다. 진흥굴에서 3분 정도면 도솔암 옆에 20m 높이의 마애불이 눈길과 발길을 잡는다. 앞에는 천마봉이 솟아 있고 시원한 계곡이 흐르는, 선운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도솔암이다. 마애불을 지나 기암괴석이 늘어선 골짜기를 300m 오르면 용문굴. 내부가 100여평 되는데 옛날에 용이 살았다고 한다. 용문굴에서 낙조대까지는 500m. 경사진 언덕을 100m 오르면 선운산 능선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가면 낙조대인데 여기서 바라보는 일몰은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낙조대에서 왼쪽으로 10여분 가면 선운산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천마봉이다. 천마봉에 올라서면 선운산의 기암괴석의 능선과 발아래로 도솔암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한눈에 들어온다. 천마봉에서의 하산은 낙조대 쪽으로 50m 정도 가다 오른쪽 능선을 따라 도솔암까지 내려가면 되는데 초입에 로프가 설치돼 있다. 도솔암에서 선운사 주차장까지는 3.6㎞이고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코스정리:관리사무소-0.8㎞(9분)-매표소-0.2㎞(3분)-선운사-0.7㎞(10분)-자연의 집-1.6㎞(30분)-장사송·진흥굴-0.3㎞(5분)-도솔암-0.1㎞(3분)- 마애불상-0.3㎞(15분)-낙조대-0.2㎞(10분)-천마봉-0.4㎞(11분)-도솔암-3.6㎞(1시간)--주차장(8.7㎞,2시간41분). 2월1일∼5월15일까지는 입산통제 기간으로 위에 소개한 코스를 제외하고는 등산을 할 수 없다. 입장료:어른 2800원, 어린이 1300원. 가는 길: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선운산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22번국도를 타고 부안면을 지난다. 오산저수지를 지나 반암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한 후 2.8㎞를 가면 선운산 도립공원에 도착한다.
  • 화장용棺 의무화 추진

    화장용棺 의무화 추진

    ‘마지막 가는 길에도 환경 사랑.’ 서울시가 매장용 관에서 화장용 관 사용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매장용 관에 비해 두께가 얇은 화장용 관은 대기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데다 연소시간도 짧고 가격도 저렴해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매장용 관, 유해물질 기준치 넘어 14일 서울시와 서울시시설관리공단 장묘문화센터는 보건복지부에 올 상반기 중 개정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안에 화장용 관 사용 의무화 조항을 넣는 방안을 건의했다. 서울시는 법률안이 개정되면 두께가 1치(3.03㎝) 이하의 관을 쓰는 것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 장묘문화센터는 시내 장례식장 74곳에 화장용 관을 사용해 달라는 협조 안내문을 발송했다. 장묘문화센터가 2치(6㎝)짜리 매장용 관과 0.6치(1.8㎝)짜리 화장용 관을 실험한 결과 매장용관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는 515으로 법적기준치인 300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화장용 관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는 81으로 매장용 관의 15%에 그쳤다. 연소시간도 화장용 관이 1시간으로 매장용관(1시간20분)에 비해 더 짧았다. 서울시 장묘문화센터가 운영하는 벽제 화장장의 경우 하루 평균 화장 건수가 81건으로 적정수준(63건)을 넘는다. 이에 따라 ‘화장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는 불만이 전체 민원의 40%를 차지한다. 화장용관을 쓰게 되면 유족들의 불편도 줄일 수 있다. 화장에 들어가는 연료비도 매장용 관은 2만 7000원에서 화장용 관 1만 8000원으로 건당 9000원의 가스료를 절감할 수 있다. 또 매장용 관은 30만∼45만원이지만 화장용관은 20만∼25만원으로 10만원가량 더 싸다. ●관 속 유품도 친환경적으로 서울시 장묘문화센터는 관 속에 넣는 고인의 유품에 대해서도 유족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화장을 하기 전 관 속을 확인할 수 없는 만큼 유족들이 자발적으로 환경 오염 물질을 함유하거나 화장장 시설을 고장내는 물품을 넣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핸드백, 구두, 베개, 골프공, 화학합성 섬유제품 등은 오염물질을 내뿜고 과일, 서적, 이불, 큰 인형 등은 가연물질이지만 연소를 방해한다. 또 낚시도구, 골프채, 지팡이, 동전, 휴대전화, 귀금속, 불상, 캔음료, 라이터, 화장품 스프레이통 등은 화장로 설비의 고장원인이 되며 안경, 식기, 병 등은 유골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서울시 장묘문화센터 김홍렬 소장은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화장용 관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우리 역시 화장률이 높아지고 있어 화장으로 인해 발생되는 환경오염의 문제를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만큼 시민들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사설] 학부모가 교사 뺨 때리는 교육현장

    학부모가 교사에게 폭언·협박하고 심지어 아이들 앞에서 손찌검하는 추태가 교육현장에서 여전하다니 서글픈 일이다. 까닭이야 있겠지만 신성한 배움터에서 이런 비교육적·비이성적인 불상사가 반복되는 것은 안타깝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밝힌 지난해의 교권침해 사례를 보면 그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음악 선생님이 무섭다.”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학부모가 다짜고짜 음악교사의 뺨을 때렸다는 사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현장이 어쩌다 이토록 황폐화하는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교권침해 가운데 담임 교체 요구, 무고(誣告)성 진정서 제출, 고소 등은 약과라고 한다. 학부모의 부당한 폭언·폭행·협박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점은 학교와 가정의 거리가 그만큼 멀어지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해서 씁쓸하기만 하다. 특히 여교사에 대한 교권침해 행위의 절반 가까이가 학부모의 완력에 의한 부당행위였다고 한다. 가뜩이나 각급 학교에서는 여교사가 급증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물리력이 취약한 여교사에게 학부모와 학생의 폭력·폭언 등이 확산된다면 학교는 그 존립마저 위태롭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물론 우리는 이같은 교권침해가 드문 일일 뿐, 만연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아무리 교육 수요자의 권리가 강해졌다지만 교사의 교육적 현장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는 교육의 3대 주체다. 이들이 존경과 사랑과 신뢰로 끈끈하게 맺어져야 우리 교육의 미래는 밝다고 하겠다. 교육의 한 축인 교권이 무너져내린 곳에서는 미래의 인재 육성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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