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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의 맛’ 김종민 황미나, 한강 데이트 포착 ‘벌레가 부러워’

    ‘연애의 맛’ 김종민 황미나, 한강 데이트 포착 ‘벌레가 부러워’

    “이것이 김종민 표 연애의 맛!” TV CHOSUN 새 예능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연애의 맛’ 김종민-황미나, ‘종미나 커플’이 불타오르는 한강에서의 ‘뽀뽀이몽’으로 극강 설렘을 선사한다. 김종민과 황미나는 지난 9월 30일 방송된 TV CHOSUN 예능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연애의 맛’ 3회 방송분에서 ‘연애의 맛’ 공식커플 1호답게 ‘로맨틱한 한강 데이트’를 펼쳐 안방극장을 달달하게 물들였다. 그동안 꿈꿔왔던 한강 데이트를 위해 김종민은 캠핑용품까지 대여하며 노력을 기울였고, 두 사람은 함께 텐트를 친 후 나란히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등 핑크빛 무드를 조성, 시청자들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이와 관련 7일(오늘) 방송되는 ‘연애의 맛’ 4회분에서는 ‘종미나 커플’이 선보이는 ‘소확연(소소하지만 확실한 연애의 맛)’이 보는 이들의 연애세포를 무한 자극한다. 한강에 해가 저물어가자, ‘종미나 커플’은 치킨으로 ‘한강 데이트 2차 먹방’을 시작했던 터.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설렌다”고 떨리는 마음을 드러내는 김종민에게 황미나는 “좋은가 보다”라고 답했고, 이에 김종민은 “응”이라고 칼 같은 답변을 건네 황미나를 향한 애정을 증명했다. 그러자 MC 박나래는 “김종민씨는 매번 소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아서 좋다”며 김종민을 향해 엄마 미소를 지어냈다. 특히 김종민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유머감각으로 황미나에게 폭소를 안기며 매력을 발산했다. 불빛을 찾아 날아든 벌레가 갑자기 황미나의 입술에 달라붙자 이를 지켜보던 김종민이 “하...벌레는 좋겠다”라면서 사심 가득한 속내를 자기도 모르게 발설, 므흣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던 것. 더욱이 괜히 부끄러워진 황미나가 한강 데이트 전, 스포츠 놀이터 데이트에서 얻어낸 소원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김종민이 “사람들 많은데 그래도 돼?”라면서 입술을 닦고는 김종민표 능글 웃음과 표정을 지어내 황미나를 웃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본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은 “연애할 때 유머감각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라며 김종민을 치켜세우자, MC 최화정이 “그런 말 있잖아요. 웃다보면 침대라고~”라는 19금 명언을 남겨 스튜디오를 후끈하게 달궜다. 그런가하면 김종민은 통금이 있는 ‘현대판 신데렐라’ 황미나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보여주는 ‘박력 폭발 손잡기’로 황미나의 걸음을 붙잡기도 했다. 스튜디오 MC들의 탄성이 터진 가운데, 종미나 커플의 ‘한강 눕방’은 이뤄질 수 있을지, 매회 설렘 지수를 높여가고 있는 두 사람의 ‘심쿵 연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작진은 “‘연애의 맛 공식 커플 1호’인 김종민과 황미나의 연애에 대한 관심이 가히 폭발적”이라며 “황미나에 대한 애정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김종민과 김종민의 한마디 한마디에 웃음을 쏟아내는 황미나, ‘종미나 커플’의 연애가 어떤 결말을 낳게 될지, 끝까지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한편 TV CHOSUN 새 예능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연애의 맛’ 4회분은 7일(오늘) 밤 10시 50분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길섶에서] 처음처럼/황수정 논설위원

    밤하늘 올려다보는 일을 까맣게 잊었다. 도심 불빛에 놓치는 줄도 모르고 놓치는 것이 밤의 하늘이다. 가는귀가 먹었더라도 밤이 내려와 풀썩풀썩 주저앉는 소리가 시골길에서는 들린다. 어느 영화에서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라 했는데. 가을바람에 꺼칠해진 수수밭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속도를 나도 보았다. 분속 수숫대 한 마디쯤. 보름달만 믿고 밤길 한번 걸어 보리라 묵혔던 마음을 지난 보름밤에야 풀었다. 가로등 없는 둑길을 잘 살폈다가 밤보다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발끝을 챙겨 또박또박 걷다 보면 보름달 아래 실꾸리처럼 환하게 풀어지는 밤길. 식은 죽 먹기다. 함지박으로 별을 퍼붓는 밤하늘은 시골에서도 전설이 되려 한다. 한참 시력을 맞춰야 별들이 안간힘을 써 돋는다. 분별없는 지상의 인공 조명에 칠흑의 밤은 칠흑이 아니라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시대는 행복했었다고. 어느 사상가의 오래된 문장이 발 아래 오래 뒹구는 밤. 돌아갈 수 있다면! 밤은 본디 검어서, 보름달이 뜨면 느리게 걷고, 발소리 내줄 한 사람만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겁나지 않았던 그때 처음으로.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소월과 육사에 함께 취한 남북… 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소월과 육사에 함께 취한 남북… 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 그리고 기자단을 태운 공군 1호기는 ‘ㄷ’ 자의 서해 직항로 경로를 좌석 앞 모니터에 정확하게 펼쳐 보였다. 나는 비행기의 머리가 항로를 따라 시시각각 순조롭게 순항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서울공항에서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08년 봄에 평양 근교 역포구역에 어린이사과농장을 만들기 위해 다녀온 뒤로 10년 만의 방북이었다.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환영 나온 시민들이 어마어마한 사람의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가도 가도 끝없이 늘어서서 손을 흔들고 깃발을 흔들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10만명이 넘을 거라고 했다. 남녀가 따로 없었고 노소가 따로 없었다. 버스 안에서 차범근 감독이 유홍준 교수를 보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죠?” 차 감독의 눈자위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이 나야 정상이지.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 버려요. 아무 걱정 말고 울어 버려요.” 이렇게 말하면서 유 교수도 눈가를 훔쳤다.서로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남과 북의 시민들이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우는 것으로 만남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울어 볼 일이 없는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밥을 버느라, 통장의 잔고를 늘리느라, 오로지 내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비즈니스를 위한 일에 매달리느라 울어 볼 날이 없었다. 고려호텔 2층 뷔페의 메뉴 중 하나로 나온 돌목어식해는 처음 먹어 보는 북쪽 음식이었다. 널리 알려진 가자미식해와 모양과 빛깔은 비슷했으나 식감이 완전히 달랐다. 돌목어는 도루묵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봤다. 북측 접대원에게 물어도 그는 도루묵을 모르고 나는 돌목어를 모르니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걸 입에 넣고 씹으면 비리지 않은 쫄깃한 생선회를 씹는 느낌이 났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퀴퀴하고 들척지근한 맛도 없었다. 부드럽고 몰캉한 생선 식해에다 흰 밥을 먹는 것으로 평양 일정은 시작됐다.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옥류아동병원을 방문하는 김정숙 여사를 수행하는 일이었다. 유홍준 교수, 김형석 작곡가, 차범근·현정화 감독,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박종아 평창아이스하키남북단일팀 주장, 에일리·알리·지코 같은 가수들, 마술사 최현우는 소형버스 14호차를 함께 타고 다녔다. 우리 일행이 옥류아동병원에 도착한 직후 북측의 리설주 여사가 승용차에서 내렸다. 리설주 여사는 병원 관계자들과 30분 가까이 병원 입구에 꼿꼿이 서서 김정숙 여사를 기다렸다. 그녀는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 일정 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깍듯하게 모시듯 환대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동병원에 도착한 김정숙 여사는 리설주 여사에게 특별수행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가까이에서 악수하면서 잡은 리설주 여사의 손은 연약하고 따뜻했다. 저녁에 평양대극장에서 ‘2018 평양 수뇌회담 환영공연’이 열렸다. 평양 시민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입장할 때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함께 ‘만세’ ‘만세’를 입 모아 외쳤다.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제지를 해도 그 웅장한 소리는 끝이 없었다. 최고지도자를 향한 그 존경심의 표현은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극적이었다. 공연은 우리도 잘 아는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북쪽 노래와 남쪽의 노래를 섞어 진행됐다. 남쪽 가요 중에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침이슬’ ‘흑산도 아가씨’와 같은 노래들이 들어 있었다. 모두 북한식 편곡과 연주로 우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던져 주었다. 공연에 등장한 배우들의 한복 디자인은 현재 남쪽의 한복 디자인과 거의 비슷했다. 공연의 절정 부분에 한돌이 작사하고 작곡한 ‘홀로아리랑’이 배치됐다.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 타고 간다/(…)/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평화와 번영을 향해 가는 길이 순조롭고 반듯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남북을 가로막기도 하고 우리의 운행을 방해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평양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시내를 걸어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밝고 자신감이 넘쳤고, 여성들의 옷차림도 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어떤 젊은 여성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휴대폰(손전화)을 계속 들여다보며 거리를 걸어갔다. 저녁 환영만찬이 목란관에서 열렸다. 이 연회의 차림표를 여기 북한 표기대로 적는다. 백설기, 약밥, 칠면조말이랭찜, 해산물 물회, 과일남새생채, 상어날개야자탕, 백화대구찜, 자신소심옥구이, 송이버섯 편구이와 볶음, 흰 쌀밥, 송어국, 도라지 장아찌, 오이숙장과, 수정과, 유자고, 강령록차김정숙 여사는 첫날 환영만찬에서 ‘동무생각’을 불러 왕년의 솜씨를 뽐냈다. 우리 14호차의 안내를 맡은 여성 두 사람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일하는 젊은 엄마들이었다. 탁아소에 아기들을 맡기고 나온 이들 중 한 사람은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녀는 소월과 육사의 시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을 한번 들여다봤다. 뒷면에 ‘평양’이라고 적혀 있는 이 핸드폰의 앱에는 체계관리(설정), 조선대백과사전을 비롯해 류경바둑, 별찌까기와 같은 게임이 들어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북한에서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용자가 5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평양 방문은 우리에게 휴대폰으로부터 해방된 여행이었다. 혹시나 진동이 울리나 싶어 무의식적으로 양복 안주머니 쪽으로 손이 간다는 분도 있었다. 9월 19일. 방북 이튿날 일정은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점심 때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장에 도착하자 남북 공동선언 합의문이 만들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큰 숙제를 끝낸 듯 표정이 밝아 보였다. 평양을 방문한 수행단보다 남쪽의 국민들이 더 빨리, 더 생생하게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옥류관 오찬으로 나온 음식은 평양냉면뿐만이 아니었다. 잉어달래초장무침, 자라탕, 송이버섯볶음 등이 맛있었다. 나는 냉면을 한 그릇 먹고 나서 반 그릇을 더 먹었다. 평양에서 각 장르의 미술가들이 창작하고 그 창작물을 전시, 판매하는 만수대창작사를 들르는 일은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나는 ‘감자꽃 필 때’라는 제목의 유색판화 한 점을 구입했다. 큰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림 값을 깎는 ‘가격투쟁’에는 실패했다. 대동강의 능라도에 있는 5·1경기장은 15만명의 평양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카드섹션에 참여하는 경기장 반대편 ‘배경대’는 1만 7490명의 중학생들로 구성됐다고 했다. 남과 북의 양 정상들이 경기장에 막 도착했을 때 15만명이 하나의 목소리로 환호하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대규모 평양 시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에 나섰다. 거의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집단체조 ‘아리랑’의 일부와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는 특별공연이 수만 명의 청년학생과 예술가들에 의해 펼쳐졌다. 공연은 북한식 집단주의가 역사적 경험과 만나면서 어떠한 예술적 영향력을 생산하는지 웅장하게 보여 주었다. 평양 방문단이 백두산을 간다는 소식이 들린 것은 19일 밤 9시쯤이었다. 백두산을 간다는 말에 우리는 들뜨기 시작했다. 방한복을 싣고 공군 2호기가 평양국제비행장에 온다는 말도 들렸다. 공군 1호기 조종사는 삼지연비행장의 활주로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미리 떠났다고도 했다. 젊은 가수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대박!” 새벽 1시쯤 잠이 든 나는 4시에 모닝콜을 받았다. 평양 거리는 불을 켠 곳이 별로 없었다. 5시 30분 비행장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그때 버스 창문으로 우리를 환송하러 나온 평양 시민들이 보였다. 불빛 하나 없는 거리에서 그들은 손을 흔들면서 연도에 줄지어 서 있었다. 평양에 도착했을 때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환송 열기는 그에 못지않아 보였다. ‘뭉클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일 것이다. 비행장에서는 남쪽에서 급히 공수해 온 방한복이 두 벌씩 지급됐다. 기자도, 그룹 총수도, 노동자도, 학생도, 성직자도, 교수도,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모두 하나같이 점퍼로 중무장을 마쳤다. 백두산으로 가는 비행기까지 따로 수속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좌석표도 없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고려항공에 탑승해 빈자리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가듯이 말이다. 7시 40분 평양에서 한 시간을 날아가 삼지연비행장에 도착했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삼지연에 가본 이후 13년 만이었다. 해발 13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삼지연의 공기는 서늘한 가을이었다. 우리는 한두 달 앞당겨 가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어디 보자기에도 싸갈 수 없는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의 길은 32㎞다. 모든 길의 양쪽 갓길에 이끼를 깔아 남과 북의 양 정상을 맞이하려는 노력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갔다.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의 테두리도 대리석으로 새로 단장했고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케이블카)도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장군봉 정상까지 SUV 차량으로 올라간 수행원들도 있었고, 두 정상과 함께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삭도를 타고 생전 처음 천지 물을 손에 적시는 행운을 누렸다. 꽃은 졌지만 잎이 푸르게 남아 있는 만병초 잎사귀 하나를 따서 수첩에 끼워 넣었다. 두메양귀비는 보이지 않았지만 구절초로 짐작되는 식물의 씨앗을 나는 은밀하게 봉투에 넣었다. 숲에서 발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손가락 길이만 한 가문비나무 어린 새싹을 살짝 뿌리째 뽑아 들었다. 아름드리나무가 내 수첩 속으로 들어왔다. 평양도 백두산도 이제 먼 길이 아니다.
  • 밤은 알고 있다, 당신의 사랑도 욕망도

    밤은 알고 있다, 당신의 사랑도 욕망도

    밤을 가로질러/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전대호 옮김/해나무/352쪽/1만 6000원“나 태어난 곳 그대 어둠이여. 그댈 불빛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대 어둠이여’라는 시로 밤을 예찬한다. “불빛은 세계의 경계를 그어버리지만, 어둠은 모든 것을 품 안에 품는다”고 한 그는 어둠이 오히려 세계의 본질을 알려준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밤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릴케는 어둠을 품은 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해답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밤. 낮의 반대말, 잠을 통한 휴식의 기간, 기이한 꿈이 펼쳐지는 때,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 그러나 누군가에겐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독일 과학사 학자인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신간 ´밤을 가로질러´는 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때로는 과학, 때로는 문학, 때로는 철학으로 들여다본, 그야말로 밤에 관한 ‘종합판’인 셈이다. 저자는 밤의 여러 모습을 다양하게 살피고자 어둠, 그림자, 우주, 잠, 꿈, 사랑, 욕망, 악을 소재로 삼는다. 밤이란 무엇인가, 우주는 왜 검은가, 우리는 왜 잠을 자는가, 꿈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악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밤을 둘러싼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하나씩 답한다.인간의 역사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인류가 밤을 밝힌 것은 불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어둠을 밝히면서 인류의 뇌는 비약적으로 발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물, 흙, 공기와 불을 4가지 원소로 꼽았지만, 인류가 불의 정체와 원천을 알기까지는 그 뒤로 2000년이나 걸렸다. 빛이 없는 이 기간에 밤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중세 사람들은 밤과 어둠을 인간이 저지른 큰 잘못의 결과로 해석하고, 밤이 오면 밤바람 속의 정령들과 더불어 인간의 내면에서 어두운 욕망이 고개를 든다고 상상했다. 예컨대 16세기 영국 작가 토머스 내시는 ‘밤의 공포’라는 책에서 ‘밤을 절망의 어머니, 지옥의 딸’로 묘사했다. 밤을 논할 때 잠과 꿈을 떼 놓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인공조명이 없던 과거에는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한밤에 깨어 두세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잠을 자는 ‘2단계 수면 패턴’이 보편적이었다. 잠의 패턴이 바뀌었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꿈을 꾼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꿈은 활동하는 뉴런들의 마구잡이 조합에서 발생한다. 잠을 자면 자극성 신호를 가지런히 모으는 모노아민성 시스템과 연결망을 어지럽히는 콜린성 시스템이 함께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꾸는 꿈을 프로이트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은폐된 의미’로 파악했다. 은밀한 공포, 바람, 희망이 상징으로 포장됐다는 뜻이다. 과학사에서 봤을 때, 꿈에 의해 창조적인 영감을 얻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예컨대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벤젠의 구조에 관한 힌트를 꿈에서 얻는다. 벽난로 앞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케쿨레는 뱀 한 마리가 꼬리를 물고 비웃듯 맴도는 꿈을 꾸고 이른바 밴젠 고리 구조를 발견한다. 이 발견 덕분에 19세기 화학공업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밤 과학 없이는 위대한 과학이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주제는 ‘인간 속의 악’이다. 인간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과거 세계대전 등에서 드러난 인간의 무자비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도덕의 원천에 관해 ‘개별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감각지각’이라 설명한다. 앞에 놓인 이가 친구냐 적이냐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도덕의 이중성을 명민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밤을 종횡무진하면서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은 밤의 어둠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빛이 존재하려면 어둠이 있어야 하고, 인간은 낮과 밤,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는 게 그의 마지막 결론이다. 저자는 문학, 과학, 역사, 철학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고 유려한 글솜씨를 선보인다. 다만, 너무나 방대한 범위를 다루는 데다가 온갖 지식을 쏟아내기 때문에 자칫하면 저자의 안내를 놓치고 어둠 속에 남겨질 수 있음을 유의하시길.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경기도, 고속도로 휴게소 공공병원 설치

    버스 USB충전기 전 차량 확대 등 추진 경기도민의 ‘알짜’ 아이디어 7건이 도정에 반영된다. 경기도는 이재명 도지사직 인수위원회인 ‘새로운 경기 위원회’에 접수된 도민 제안 가운데 정책으로 추진할 부문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위원회는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24일까지 같은 이름의 홈페이지에 온라인 정책 제안 창구를 개설했다. 최종 채택된 7개 제안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공공병원 운영 ▲일부 버스에만 있는 USB충전기를 전 차량으로 확대 ▲이면도로나 어린이보호구역에 센서를 설치해 차량 진입 때 음성 안내·불빛 등이 표출되는 교통안전 스마트 시스템 도입 ▲민방위 사이버 교육 실시 ▲노후 교량이나 건축물에 대한 무상 안전 점검 실시와 점검 결과 공개 등을 담은 재난안전 관련 종합대책 수립 ▲재난 상황 전파를 위한 전담 조직이나 인력을 보강하는 재난안전본부 홍보 전담 부서 신설 ▲국공유 유휴부지를 활용한 주말농장 확대다. 도는 아이디어별로 소관 부서를 지정하고, 각 부서에서 구체적인 추진 일정과 실시 방법을 수립해 추진한다. 채택된 제안엔 심사 점수에 따라 상금 30만~50만원을 지급하고, 본 심사에서 아쉽게 채택되지 않은 7개 제안에도 10만원 상당의 온누리 상품권을 지급할 예정이다. 도 관계자는 “앞으로도 도민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적극 마련해 도민 손으로 직접 만든 다양한 정책이 생활 속에 스며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채택된 제안 가운데 제안자의 실명과 연락처 정보가 없는 경우 상금을 지급하기 어렵다며 경기도 홈페이지 ‘제안자를 찾습니다’를 통해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미래전략담당관(031-8008-2576)으로 연락할 것을 당부했다. 정책 제안 60건에 대한 심사 결과는 ‘새로운 경기 위원회’ 홈페이지(newgg.org) 공지사항에 안내한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안도현 시인 특별기고]평양은 멀지 않다

    [안도현 시인 특별기고]평양은 멀지 않다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당시 수행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안도현 시인이 서울신문에 당시 감동을 담은 기행문을 보내오셨습니다. 안 시인이 보고 느꼈던, 그리고 언론 매체에선 볼 수 없었던 정상회담 이면의 이야기들을 원문 그대로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한 북한의 풍경들을 함께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평양은 역시 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 그리고 기자단을 태운 공군 1호기는 ‘ㄷ’자의 서해 직항로의 경로를 좌석 앞 모니터에 정확하게 펼쳐보였다. 이른 새벽 해 뜨기 전에 잠을 자지 못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의 머리가 항로를 따라 시시각각 순조롭게 순항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서울공항에서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08년 봄에 평양 근교 역포구역에 어린이사과농장을 만들기 위해 다녀온 뒤로 10년 만의 방북이었다. 순안비행장이라 불리던 평양국제비행장 청사는 현대식 건물로 면모를 완전히 바꿨고, 의장대와 환영 나온 평양 시민들의 함성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차범근도, 유홍준도…벅찬 감동에 “왜 이렇게 눈물이”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환영 나온 평양 시민들이 어마어마한 사람의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가도 가도 끝없이 늘어서서 손을 흔들고 깃발을 흔들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10만 명이 넘을 거라고 했다. 남녀가 따로 없었고 노소가 따로 없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천천히 움직였고 우리는 시민들의 진심 어린 표정 하나하나를 가까이에서 읽을 수 있었다. 버스 바깥도 버스 안도 만남의 감격의 출렁거렸다. 선두에서 남북 정상은 정상끼리, 행렬 뒤쪽에서 같은 동포인 우리는 우리끼리 만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차범근 감독이 유홍준 교수를 보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하죠?” 차 감독의 눈자위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이 나야 정상이지.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버려요. 아무 걱정 말고 울어버려요.” 이렇게 말하면서 유 교수도 눈가를 훔쳤다. 서로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남과 북의 시민들이 썬팅 처리된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우는 것으로 만남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울어볼 일이 없는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밥을 버느라, 통장의 잔고를 늘리느라, 오로지 내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비즈니스를 위한 일에 매달리느라 울어볼 날이 없었다. 누군가가 눈물 타령한다고, 감상적이라고 또 이죽거린다고 해도 평양에서는 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공식수행원들의 숙소는 백화원초대소, 특별수행원들의 숙소는 고려호텔이었다. 오랜만에 들어선 고려호텔은 별다른 장식 없이 조용히 낡아가고 있었다. 1인 1실로 배정된 방에는 사과, 배, 귤, 바나나로 구성된 과일 한 접시와 과자, 사탕, 껌이 담긴 접시 하나가 ‘당신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내게 재떨이는 또 반가운 선물이었고. 호텔 창밖으로 평양화력발전소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솟아올라 평양 시내 상공을 뒤덮고 있었다. 호텔에서 가까운 평양역 구내로 화물차와 전철이 쉼 없이 오가는 게 보였다.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호텔 2층 뷔페식당의 메뉴 중 하나로 나온 돌목어식해는 처음 먹어보는 북쪽 음식이었다. 널리 알려진 가자미식해와 모양과 빛깔은 비슷했는데 식감이 완전히 달랐다. 돌목어는 도루묵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봤다. 북쪽 접대원에게 물어도 그는 도루룩을 모르고 나는 돌목어를 모르니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걸 입에 넣고 씹으면 비리지 않은 쫄깃한 생선회를 씹는 느낌이 났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퀴퀴하고 들척지근한 맛도 없었다. 부드럽고 몰캉한 생선 식해에다 흰 밥을 먹으면서 나는 1930년대 후반 시인 백석을 떠올렸다. ●김정숙 여사 ‘영부인 외교’ 동행한 리설주 여사 ‘깍듯한 환대’ 인상적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옥류아동병원을 방문하는 김정숙 여사를 수행하는 일이었다. 유홍준 교수, 김형석 작곡가와 같은 문화예술계 인사, 차범근·현정화 감독,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박종아 평창아이스하키남북단일팀 주장 등 체육계 인사, 에일리·알리·지코 같은 가수들, 마술사 최현우는 소형버스 14호차를 함께 타고 다녔다. 14호차 일행이 옥류아동병원에 도착한 직후 북쪽의 리설주 여사가 승용차에서 내렸다. 리설주 여사는 병원 관계자들과 30분 가까이 병원 입구에서 김정숙 여사를 기다렸다. 그녀는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정장 차림에다 하이힐을 신고 부동자세에 가까운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 일정 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깍듯하게 모시듯 환대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이기 전에 젊은 부부가 웃어른을 모시는 우리의 전통 예절을 잊지 않으려는 자세가 분명했다. 아동병원에 도착한 김정숙 여사는 리설주 여사에게 특별수행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가까이에서 악수하면서 잡은 리설주 여사의 손은 연약하고 따뜻했다. 이어서 김원균 음악종합대학을 방문했다. 김원균은 북한의 국가와 ‘김일성장군의 노래’ 등을 작곡한 사람으로 북한 정권 초기 앞장서서 음악으로 ‘혁명과업’을 수행했다. 저녁에 평양대극장에서 ‘2018 평양 수뇌회담 환영공연’이 열렸다. 평양 시민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입장할 때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함께 ‘만세’ ‘만세’를 입 모아 외쳤다. 김 위원장이 손짓으로 제재를 해도 그 웅장한 소리는 끝이 없었다. 최고 지도자를 향한 그 존경심의 표현은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극적이었다. 공연은 우리도 잘 아는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북쪽 노래와 남쪽의 노래를 섞어 진행되었다. 남쪽 가요 중에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침이슬’ ‘흑산도 아가씨’ ‘그대 없이는 못 살아’와 같은 노래들이 들어 있었다. 모두 북한식 편곡과 연주로 우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던져주었다. 남쪽의 대중가요를 선곡한 것도 모두 남쪽 손님들에게 예를 갖추기 위한 거라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그렇지만 나는 귀에 익숙한 노래를 들으면서도 왠지 불편했다. 낯간지러운 가사와 트로트풍의 가요를 내가 모두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국에 나가 북한 식당을 들렀을 때 점점 남쪽 사람들의 입맛대로 음식들이 변화하는 것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과 유사한 것이다. ●‘홀로아리랑’에 눈물…“어떤 난관도 아리랑 고개 넘듯 헤쳐 가야” 환영공연에 등장한 인민배우들의 한복 디자인도 현재 남쪽의 한복 디자인과 거의 비슷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북한이 원래의 것을 놓치고 남쪽을 흉내 내는 일로 남쪽을 배려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진행될 모든 남북 관계에서 북한은 원래의 북한을 유지해야만 화해와 협력도 대등한 관계 속에서 진전될 것이 아닌가. 공연의 절정 부분에 한돌이 작사하고 작곡한 ‘홀로아리랑’이 배치되었다. 가사 뒷부분은 이렇다.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섬에 닻을 내리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해보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평화와 번영을 향해 가는 길이 순조롭고 반듯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남북을 가로막기도 하고 우리의 운행을 방해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1980년대 후반에 남쪽에서 만들어진 이 노래가 2018년 평양에서 울려 퍼진다는 것은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평양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시내를 걸어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밝고 자신감이 넘쳤고, 여성들의 옷차림도 전보다 훨씬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어떤 젊은 여성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휴대폰(손전화)을 계속 들여다보며 걸어가기도 하였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내외분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신 김정은 동지와 부인 리설주 녀사께서 주최하는 연회”가 목란관에서 열렸다. 이 연회의 차림표를 여기 북한 표기대로 적는 것으로 나는 평양 방문을 한 것에 대해 우쭐거려 보려고 한다. 백설기, 약밥, 칠면조말이랭찜, 해산물 물회, 과일남새생채, 상어날개야자탕, 백화대구찜, 자신소심옥구이, 송이버섯 편구이와 볶음, 흰 쌀밥, 송어국, 도라지 장아찌, 오이숙장과, 수정과, 유자고, 강령록차 이에 화답하듯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첫날 환영만찬에서 ‘동무생각’을 불러 왕년의 솜씨를 뽐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당중앙위 조용원 부부장은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금지의 언어가 아니라 소통의 언어로 말하고자 하였다. 우리 14호차의 안내를 맡은 여성 두 사람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일하는 젊은 엄마들이었다. 탁아소에 아기들을 맡기고 나온 이들은 찡그린 얼굴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한 한 사람은 소월과 육사의 시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을 한번 들여다봤다. 뒷면에 ‘평양’이라고 적혀 있는 이 핸드폰의 앱에는 체계관리(설정), 조선대백과사전을 비롯해 류경바둑, 별찌까기와 같은 게임이 들어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북한에서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용자가 5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양에서 가장 현대화한 지역은 미래과학거리 구역이었다. 여기에는 전에 없던 현대식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곳에는 과학자, 연구자, 교육자들이 주로 거주한다고 했다. 이 거리의 가로수들은 대부분 메타세쿼이아였다. 북에서는 이걸 수삼나무라고 부른다. 이밖에 평양의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나무들은 살구나무와 버드나무가 있다. 봄이 되어도 평양 거리에 벚나무들이 벚꽃을 휘날리는 일은 없다.9월 19일 이튿날 일정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점심 때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장에 도착하자 남북공동선언 합의문이 만들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큰 숙제를 끝낸 듯 표정이 밝아 보였다. 이번 평양 회담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기록될 공동선언은 남쪽에 생중계 되었다. 평양을 방문한 수행단보다 남쪽의 국민들이 더 빨리, 더 생생하게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웅장한 집단체조…남북 정상을 향한 15만 환호는 ‘지축 진동’ 평양 방문은 휴대폰으로부터 해방된 여행이었다. 혹시나 진동이 울리나 싶어 무의식적으로 양복 안주머니 쪽으로 손이 간다는 분도 있었다. 옥류관 오찬으로 나온 음식은 평양냉면뿐만이 아니었다. 잉어달래초장무침, 자라탕, 송이버섯볶음 등이 맛있었고, 나는 냉면을 한 그릇 먹고 나서 반 그릇을 더 먹었다. 모두 300g이었다. 평양교원대학은 우리의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합친 교육기관이다. “어린이들에게 한 컵의 물을 주기 위해 한 동이의 물을 들이키는 심정으로 가르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평양 방문 때 각 장르의 미술가들이 창작하고 그 창작물을 전시, 판매하는 만수대창작사를 들르는 일은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나는 ‘감자꽃 필 때’라는 제목의 유색판화 한 점을 구입했다. 큰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림 값을 깎는 ‘가격투쟁’에는 실패했다. 집에 그 판화를 가져와 펼쳐 놓고 다시 보아도 내 선택이 현명했던 건 분명하다.대동강의 능라도에 있는 5·1경기장은 15만명의 평양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보는 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카드섹션에 참여하는 경기장 반대편 ‘배경대’는 1만 7490명의 중학생들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남과 북의 양 정상들이 경기장에 막 도착했을 때 15만명이 하나의 목소리로 환호하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지축을 울린다는 그 상투적인 표현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 수사일 것이다.대규모 평양 시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에 나섰다. 거의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집단체조 ‘아리랑’의 일부와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는 특별공연이 수만 명의 청년학생과 예술가들에 의해 펼쳐졌다. 공연은 북한식 집단주의가 역사적 경험과 만나면서 어떠한 예술적 영향력을 생산하는지 웅장하게 보여주었다. 다들 하나같이 말했다. “남쪽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공연이지. 아이들을 저렇게 동원해서 연습 시키면 가만히 있을 엄마가 한 사람도 없을 걸.” 씁쓸했지만 그게 또 우리의 현실이었다. 1970년대 중반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중학생이었던 나도 마스게임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어린 우리는 뙤약볕 속에서 살을 태워가며 연습을 해야 했다. 개인은 없고 집단만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북쪽 안내원이 말했다. “여기 참여하는 어린이들의 엄마는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한답니다.”평양 방문단이 백두산을 간다는 소식이 들린 것은 19일 저녁 9시경이었다. 20일 새벽 4시에 출발한다는 갑작스런 통보가 전해졌다. 평양 방문 내내 우리는 그 다음 일정을 알지 못해 궁금해 하였다. 일정이 정해진다고 해도 남과 북의 안내원 말이 다를 때가 있었다.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면서 실무적으로 삐걱거리는 일도 있었던 것 같다. 백두산을 간다는 말에 특별수행원들은 들뜨기 시작했다. 방한복을 싣고 공군2호기가 평양국제비행장에 온다는 말도 들렸다. 공군1호기 조종사는 삼지연비행장의 활주로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미리 떠났다고도 했다. 백두산은 밤에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간다는 말도 들렸다. 어쨌든 젊은 가수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대박!” 9월 20일 새벽 1시까지 큰 짐들을 호텔 로비에 내려놓으라는 전갈이 왔다. 1시쯤 잠이 든 나는 4시에 모닝콜을 받았다. 평양 거리는 불을 켠 곳이 별로 없었다. 5시 30분 비행장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때 버스 창문으로 우리를 환송하러 나온 평양 시민들이 보였다. 불빛 하나 없는 거리에서 그들은 손을 흔들면서 연도에 줄지어 서 있었다. 평양에 도착했을 때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환송 열기는 그에 못지않아 보였다. ‘뭉클하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일 것이다. 비행장에서는 남쪽에서 급히 공수해온 방한복이 두 벌씩 지급되었다. 기자도, 그룹 총수도, 노동자도, 학생도, 성직자도, 교수도,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모두 하나같이 점퍼로 중무장을 마쳤다. 백두산으로 가는 비행기까지 따로 수속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좌석표도 없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고려항공에 탑승해서 빈 자리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가듯이 말이다.●남북을 위한 백두산의 환대, 이젠 평양도 백두산도 멀지 않더라 7시 40분, 평양에서 한 시간을 날아가 삼지연비행장에 도착했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삼지연에 가본 이후 13년 만이었다. 해발 13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삼지연의 공기는 서늘한 가을의 공기였다. 우리는 한두 달 앞당겨 가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나는 마음껏 맑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어디 보자기에도 싸갈 수 없는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졌다.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삼지연의 공기를 팔아 돈을 벌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지연비행장과 그 주변은 말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터미널이 신축되었고, 활주로는 깨끗하였다. 백두산으로 가는 포장도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깔나무(냑엽송), 가문비나무, 자작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길을 운전하는 운전기사가 말했다. “남쪽에서 오신 나이 드신 손님들을 위해 속도를 80㎞ 이하로 줄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의 길은 32㎞다. 모든 길의 양쪽 갓길에 이끼를 깔아 남과 북의 양 정상을 맞이하려는 노력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갔다.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의 테두리도 대리석으로 새로 단장했고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케이블카)도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장군봉 정상까지 SUV 차량으로 올라간 수행원들도 있었고, 두 정상과 함께 천지로 내려가는 삭도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삭도를 타고 생전 처음 천지 물을 손에 적시는 행운을 누렸다. 백두산과 천지는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로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1920년대에 육당 최남선이 쓴 ‘백두산근참기’를 나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꽃은 졌지만 잎은 푸르게 남아 있는 만병초 잎사귀 하나를 따서 수첩에 끼워 넣는 일이었다. 두메양귀비는 보이지 않았지만 구절초로 짐작되는 식물의 씨앗을 봉투에 넣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었다. 백두산과 천지 주변을 마음껏 걸으며 둘러보고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 잎사귀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 그것으로 나의 ‘백두산근참기’는 완결편을 갖게 되었다. 평양도 백두산도 이제 먼 길이 아니다.
  • 푸른 눈의 예수들…빛고을엔 ‘희생의 꽃’이 핀다, 형형색색 고물들…양림동 펭귄마을엔 보물이 산다

    푸른 눈의 예수들…빛고을엔 ‘희생의 꽃’이 핀다, 형형색색 고물들…양림동 펭귄마을엔 보물이 산다

    20세기 초, 광주 양림동에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발을 디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오늘날과 달리 당시만 해도 낯선 이국땅을 밟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겠지요. 태어나 자란 고향을 뒤로하고 남의 나라에 오는 것, 말도 안 통하는 땅에서 배곯고 병든 이들과 함께하는 것, 머나먼 타지에서 눈을 감는 것,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 매 순간순간이 크나큰 결심이고 용기이자 헌신이 아니었을까요. 미국과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은 양림동 언덕배기 땅을 사들여 집을 짓고 교회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3·1운동을 하는 신자들을 돕고, 한센병 환자의 손을 잡았으며, 남루한 이들을 보살폈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지은 건물은 번듯한 근대 문화재가 되고, 이방인 선교사들의 행적은 아름다운 역사가 됐습니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의 조붓한 골목길에는 100여 년 전 양림동에 살았던 이들의 삶이 고여 있습니다.1904년 12월 25일 광주 양림동에 있는 유진 벨 선교사 사택에서 성탄절을 기념하는 예배가 열렸다. 전라남도 지역에 울려 퍼진 첫 기도문, 첫 찬송가였다. 1900년대 초 양림동에 온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유진 벨과 클레멘트 C 오웬은 성탄절 예배를 시작으로 작은 동네에 터를 잡고 기독교를 전파한다. 생소한 종교를 믿는 이방인들이 읍성 내에 자리잡기는 어려웠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은 곳이 양림동, 병들어 죽은 이들의 시신을 내다 버리는 풍장터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가진 게 없던 시절, 마을에는 병들고 배곯는 이들이 지천이었다. 이국의 선교사들은 복음을 가르치기에 앞서 복음을 실천한다. 자신의 개인 재산을 털고 본국의 후원금을 그러모아 양림산 자락 땅을 사들인 뒤 학교와 병원, 교회를 지은 것이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을 둘러보는 4.5㎞의 골목길은 양림동에 머무른 작은 예수들의 행적을 뒤따르는 길이다.●좁은 골목 사이로 오웬기념각과 광주 최초의 양림교회 양림동역사문화마을에 깃든 기독교 역사를 음미하려면 양림오거리 아래 오웬기념각을 출발점으로 삼는 게 좋다. 바로 옆에 광주 최초의 교회인 양림교회가 있으며, 수피아여학교, 우일선선교사사택, 호남신학대 선교사 묘원 순으로 동선이 잘 연결된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바지런히 누벼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걷다 보면 만나는 서양식 건축물은 선교사 이름이 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네덜란드 식으로 회벽돌을 쌓았다’, ‘원형 창과 첨두아치 형상의 창문을 조화롭게 배치했다’는 안내문 설명을 읽기에 앞서 이곳에 얽힌 선교사들의 삶을 아는 것이 먼저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양림동은 그저 오래된 동네요, 사택은 고색창연한 서양식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양림동에 거주한 선교사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한국인만큼 한국을 사랑했던 이들은 한국 이름으로 살았다. 유진 벨은 ‘배유지’, 로버트 M 윌슨은 ‘우일선’, 클레멘트 C 오웬은 ‘오원’ 또는 ‘오기원’, 엘리자베스 셰핑은 ‘서서평’으로 불렸다. 1895년 한국에 온 배유지 선교사는 수피아여학교를 세웠다. 여자여서 배움이 어렵던 시절, 여학생들은 근대식 학교에서 교육의 권리를 보장받았고, 민족의 앞날을 고민해 행동으로 옮겼다. 광주 지역 3·1운동 만세시위를 주도해 1000여 명의 군중을 이끌었고, 교복을 찢어 태극기를 만들었고,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 우일선 선교사는 제중원 원장으로 의료 선교에 앞장섰다. 워싱턴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촉망받는 의료인은 광주한센병원, 여수 애양원을 여는 등 한센병 환자를 향한 사랑이 극진했다. 서서평 선교사는 1934년 풍토병과 영양실조로 죽으며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는 데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나같이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의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삶이었다. ●배유지 선교사 만든 수피아여학교, 아치형 창문·회벽의 조화 의료 봉사를 하던 오원 선교사는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뜬다. 한국에 온 지 5년 만이었다. 오원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 오웬을 기념해 세운 건물이 오웬기념각이다. 요즘 용어를 빌리자면 복합문화공간이랄까. 예배는 물론, 수많은 강연, 음악회, 무용과 연극 공연이 열린 공간이다. 수피아여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예배당은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 메모리얼 홀, 선교사들이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던 곳이다. 학교를 세운 배유지 선교사를 기리는 뜻에서 ‘배유지 기념 예배당’이라고도 한다. 아치형 창문과 회벽이 어우러져 고아한 아름다움이 풍긴다. 건축물 기행의 하이라이트는 호랑가시나무를 지나면 나타나는 2층 건물, 윌슨 선교사 사택이다. 우일선 선교사가 살던 집이자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로 소개되는 곳이다. 미국 영화에서 볼 법한 ‘잘생긴’ 주택은 회색 벽돌을 네덜란드 식으로 쌓아 올리고 내부는 회반죽을 칠했다. 외관만큼 집에 서린 사연도 아름답다. 이곳은 우일선 선교사의 사택이자 광주 최초로 고아원 사역을 시작한 장소다. 마당 한편에는 은단풍 나무가 있다. 우일선 선교사가 고향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은 것이란다. 은단풍은 자신과 고향을 이어주는 끈이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벗이었으리라. 누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열거하지 않더라도 어떤 죽음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윌슨 선교사 사택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호남신학대 언덕에 아담한 묘원이 있다. 배유지와 오원 선교사를 포함해 양림동과 호남을 기점으로 활동한 22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원이다. 본명과 한국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비석 앞에는 방금이라도 누가 다녀간 듯 싱그러운 꽃다발이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이 건넨 안부 인사다. 선교사들은 눈을 감은 후에도 고국이 아닌 양림동에 묻혔다.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은 까만 눈의 사람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한껏 안아줄 수 있는 양림동 언덕배기에.출발점이었던 오웬기념각 근처에 마을의 또 다른 명소, 펭귄마을이 있다. 양림 커뮤니티센터 뒤편의 골목길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옛날 주택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길은 색색의 폐품으로 가득하다. 목록 한번 다양하다. 멈춰버린 시계, 고물 자전거, 이 빠진 그릇, 녹슨 실로폰, 줄 나간 바이올린….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것들, 효용이 중요한 세상에서 제 기능을 다한 것들이 여기서는 귀한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 카메라에 쉴 새 없이 담기는 예술 작품, 정크아트가 된 것이다. 펭귄마을의 시작은 화재가 나 방치돼 있던 빈집에서 가져온 고물이었다. 김동균 촌장을 주축으로 마을 주민들은 맥주 병뚜껑으로 물고기 몸통을, 깨진 장독대 뚜껑으로 펭귄 팔을 만들어가며 길거리 미술관을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고물은 쓸모없다 여긴 것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고 속삭인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처럼 노년의 지혜가 담긴 글귀, 라면땅부터 뽀빠이까지 불량식품 가게에서의 소소한 군것질도 놓치기 아까운 즐거움이다. 버드나무가 울창해 ‘버들 양’(楊)에 ‘수풀 림’(林), ‘양림’(楊林)이란 이름이 붙은 양림동은 젊은이들에겐 놀 거리 많은 핫플레이스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골목에 세련된 레스토랑과 한옥 카페가 들어섰다. 양림동은 변화에 유연한 동네다. 풍장터에서 기독교 문화를 꽃피운 마을은 어르신의 손때 묻은 작품과 젊은이의 재잘대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양림동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예향의 도시 축소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향의 고장, 아시아문화 중심도시, 광주. 이 도시의 예술적인 면면이 궁금하다면 양림동역사문화마을 맞은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으로 향하면 된다. 2015년에 문을 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 문화예술 전반을 아카이빙하고 전시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최후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서 역사적 의미도 깊다. 부지는 민주평화교류원,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총 5개 시설로 나뉜다. 재밌는 점은 건축의 특이성이다. 구 전남도청 본관, 별관, 경찰청 본관을 활용한 민주평화교류원을 제외하면 모두 지하에 들어서 있어 거대한 지하세계 같다. 그렇다고 어두침침하거나 습한 기운은 없다. 건물 지붕에 설치된 70여 개 채광정 덕이다. 채광정은 낮에는 햇볕을 지하 깊숙이까지 받아들이고 밤에는 은은한 불빛을 뿜어낸다. 총면적 16만 1000㎡. 우리나라 문화 공간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보니 여행자는 입구에 들어선 순간 어디를 둘러봐야 할지 당황하기 십상이다. 시간이 여의치 않은 여행자에게 넓은 부지는 때로 부담이므로. 광주에 흐르는 예술의 향기를 맡고 싶되 1시간 남짓밖에 시간이 없다면 문화정보원 라이브러리파크로 향하자. 전시 규모가 아담해 가벼운 마음으로 휘이 둘러볼 수 있다. 도서관, 박물관, 갤러리, 극장을 하나로 묶은 라이브러리파크는 무료 전시를 자주 연다. 문화창조원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자 기획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다. 6개 복합관에는 아시아를 주제로 국내외 이름난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올라간다. 문화생활을 한 뒤 가을볕에 몸을 바짝 말리고 싶다면 문화창조원 뒤편 하늘마당이 제격이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은 전시만큼 인상적이다.●무등산 품에 안고 달리는 모노레일 무등산은 광주 시민들에게 집 앞 공원 같은 산, 지산유원지 모노레일은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는 이름이다. 지산유원지 앞마당으로 소풍을 갔다, 리프트를 타고 무등산을 올랐다, 엄마 손 꼭 붙잡고 모노레일을 탔다…. 지산유원지 모노레일에 얽힌 추억은 1980~90년대 이곳을 찾은 어린이의 수만큼 각양각색일 것이다. 1980년부터 2005년까지 선로를 달리던 모노레일은 운영업체 부도 등으로 운행이 중단됐다가 11년 만인 2016년부터 운행을 재개했다. 모노레일을 타러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무등산 등산로를 따라 산길을 오르는 방법과 745m 길이의 리프트를 타는 방법. 빨갛고 노란 철제 리프트는 1990년대 광주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이다. 타임머신은 시속 5㎞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리프트가 두 발을 대신하고 시간은 넉넉하니 가족, 연인, 친구는 번다한 일상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모노레일은 탑승역인 빛고을역과 종착점인 팔각정 아래를 25분 동안 왕복한다. 끼이익, 모노레일에서 이따금 섬뜩한 소리가 난다. 선로가 하나라 약간의 덜컹거림도 피할 수 없다. “아빠, 여기서 떨어져도 죽진 않겠죠?” “이거 누가 타자 그랬어! 무섭잖아!”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스릴은 없지만 옛날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짜릿함에 여기저기서 즐거움 섞인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모노레일 밑으로 나무들의 초록색 정수리가 빼곡하다. 종착점인 팔각정은 무등산 향로봉 기슭에 자리해 광주 도심이 한눈에 담긴다. 드넓은 광주가 아담해지는 순간, 빛고을의 따사로운 볕이 내리쬐는 순간, 마음이 쉰다. 글 이수린(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62)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오산IC를 타고 논산천안고속도로 천안분기점을 지나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광주IC에서 서광주 쪽으로 들어선 뒤 중외공원 입구에서 ‘무등산, 시청’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양동시장에서 ‘남광주교차로, 양동시장’ 방면으로 들어서 천변좌로를 따라 2㎞가량 이동하면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이다. →맛집 충장로에 있는 1960백선청원모밀(268-1960)은 6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메밀 집이다. 역사만큼 음식 맛이 깊어 2011 미슐랭 그린가이드 한국 편에 이름을 올렸다. 가다랑어포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는 여타 메밀 집과 다르게 멸칫국물로 육수를 내 시원하다. 영미오리탕(527-0248)은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온 뒤 사람들로 더욱 북적인다. 들깻물에 미나리와 오리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들깨오리탕이 유명하다. 푸짐한 남도 밥상이 당긴다면 금다연(374-1000)이 어떨까. 친환경 식재료를 써서 호박죽, 전, 회까지 한 상 가득 거하게 차려낸다. →잘 곳 양림동역사문화마을 주변에 게스트하우스가 여럿 있다. 호남신학대 부근의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682-0976)는 옛 선교사의 사택을 리모델링했다. 고즈넉한 적벽돌 집의 2층 테라스에서는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지산유원지 내에 자리한 호텔무등파크(226-0011)는 골프연습장, 온천사우나, 볼링장 등 부대시설이 다양하다.
  • [고든 정의 TECH+] 사람을 구하는 환자 꼬마 로봇 할(HAL)

    [고든 정의 TECH+] 사람을 구하는 환자 꼬마 로봇 할(HAL)

    사람의 생명을 구조하는 로봇이라고 하면 대부분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인명 구조 로봇이나 아니면 로봇 수술 같은 의료용 로봇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면 의료 교육 부분에서도 로봇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로봇 선생님이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환자 같은 로봇으로 실습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심폐소생술 연습용 인형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흔히 애니(Anne)라고 불리는 심폐소생술 인형은 성인용은 물론이고 소아용까지 다양한 형태가 개발되어 있으며 실제 사람과 얼마나 비슷하게 기능을 지녔는지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인형은 심폐소생술처럼 사람에게 위험할 수 있는 시술을 연습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어 수많은 생명을 구한 인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단순히 사람을 닮은 인형을 넘어 인간형 로봇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진화한 모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의료기기 관련 전문회사인 가우마드 사이언티픽(Gaumard Scientific)은 역대 가장 정교한 소아 환자 시뮬레이터를 공개했습니다. 5살 남자아이 형태를 한 할(HAL)은 일반적인 심폐소생술 인형과 달리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로봇입니다. 마네킹 같은 첫인상은 비슷해 보이지만, 할은 고개를 돌려 움직일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으며 어색하긴 하지만 얼굴을 찡그리거나 눈물도 흘리면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할에서 더 중요한 점은 표정보다 실제 사람이 지닌 여러 가지 반사 및 활력 징후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할은 사람처럼 동공 반사가 있어 눈에 불빛을 비추면 동공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처럼 맥박과 호흡이 있고 심전도 등 다양한 검사가 가능한 것은 물론입니다. 심지어 피부를 절개하고 수술한 후 다시 봉합할 수도 있습니다. 덕분에 심폐소생술 이외에 다양한 질병과 치료법을 시뮬레이션하고 여러 치료법의 연습이 가능합니다. 최근 의료용 연습 모델은 놀랄 만큼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교한 3D CT/MRI 스캔 정보와 3D 프린터 기술을 이용해서 환자의 장기와 똑같은 모형을 만든 후 이를 이용해서 수술 연습을 하거나 최적의 수술 방법에 대해서 미리 3차원적으로 보고 연구할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VR)을 이용한 수술 연습이나 환자 시뮬레이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실제 환자와 비슷하게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똑같은 형상을 한 모형이 가장 효과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점점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교육용 로봇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사람과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의료용으로 먼저 상용화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SF 소설과 영화에서는 사람과 닮은 로봇이 사람을 돕기도 하고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의료 훈련용 로봇 모형은 전적으로 사람을 돕는 도구입니다. 훈련이 필요한 의료인 이외에는 자주 접할 수 없는 로봇이긴 하지만, 과거 심폐소생술 인형처럼 이들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할 것입니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인터뷰 플러스] “암흑 터널 같았던 인생길… 이제 LED로 밝히렵니다”

    [인터뷰 플러스] “암흑 터널 같았던 인생길… 이제 LED로 밝히렵니다”

    LED 터널 시선 유도등의 명가 ㈜진태명의 김명순 CEO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친환경 에너지의 중심인 LED 전문업체를 10년 넘게 이끌어오고 있는 여성 기업인이다. 그는 10년 전 가까운 인척이 투자하면 밥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해 100% 투자자로, 도와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참여하게 된 것이 지금은 경영자 겸 마케터(영업인)가 됐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 처음 영업을 하러 나서야 할 때는 마치 도살장에 죽으러 가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직접 영업 일선을 누비는 김명순 대표이다. 그렇다 보니 뭍은 세월의 날 수 만큼 생면부지의 시장에서 홀로 구르고 부딪치며 한걸음을 내딛고, 돌아서 속울음을 울고 또 한걸음을 떼고 하며 그가 오늘에 왔다. “부산에서 전남 광주로 또 강원도 양양을 거쳐 서울로… 전국 방방곡곡을 하루에 1000㎞ 넘게 뛰어다니기 일쑤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앉은뱅이가 되는 줄 알았다”며 “강원도 꼬부랑길을 넘어올 때 하늘에서 내리는 눈비가 마치 내 눈물 같기도 했다”고 회고할 즈음 김 대표의 눈가는 맺히는 이슬들로 반짝거렸다. 이에 본지는 지난 11일 경기도 성남에 자리한 ㈜진태명의 김 대표를 만나 그가 걸어온 인생 스토리를 인터뷰했다. 김 대표가 꿈과 희망을 안고 달려간 도로마다 사람 사랑의 LED 불빛이 반짝거리며 대한민국을 빛내고, 세계를 밝히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다음은 일문일답이다. →LED 업계의 여성 기업인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주 가까운 인척이 도와줄 테니 투자하면 밥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해서 100% 투자를 했습니다. 당시 캐츠아이안전㈜라고 우리나라에서 한참 잘 나가던 회사였습니다. 제가 여자로서 당시는 생면부지의 사업이었고, 저는 기술도 없고 물론 아무런 노하우도 없는 상태였죠. ‘도와주겠다’는 그 말에 의지했고, 또 ‘밥 먹고 살게 해 주겠다’는 그 말을 믿고 시작을 했는데요. 그게 제 발목을 잡아 버렸습니다. 분명 첫발은 100% 투자자였는데요. 막상 투자하고 보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제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게 됐는데, ㈜진태명입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말씀이군요. -10년을 지내 오는 동안 사업공부, 인생 공부를 많이 한 거죠. 처음에는 의존할 수밖에 없어 그분들이 하는 말을 믿고 돈을 주고, 인맥까지 전부 다 주다시피 했습니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거죠. 믿음의 상처로 고통을 받은 다음에서야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날고뛰는 사람들이 사장으로 앉아 있는 업계의 틈바구니에서 그 틈을 비집고, 벽을 넘자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내가 직접 나서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웬만한 사람이 뭐라 말해도 노하우가 쌓여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큰 고비들은 넘겼다고 해야 하나요. →그렇더라도 마케팅·영업에 직접 뛰어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기술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기술이 있으면 사업은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팔아야 산다’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시장에 나가 영업할 수 있으면,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걸 안 다음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며 1000㎞ 넘게 뛰어다니기 일쑤더라고요. 또 어느 날은 고속도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자고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밤낮이 없는 겁니다. 나는 왜 힘들게 살아야 하나 하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나중에는 앉은뱅이가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때는 병원에 가서 누워 있을 시간마저 없었습니다. 그러면 내 목표를 이루고 죽어도 죽어야 하는데 하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소리 없는 속울음으로 가슴은 멍이 들어 찢어지는데도 저는 1000㎞를 놀러 다니는 듯이 다닌 겁니다. 지금은 부모님께 건강한 유전자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눈물이 감사로 바뀌셨군요. -네, 지금은 감사합니다. 전국을 운전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산봉우리들을 많이 봅니다. 그때 문득 ‘저 산봉우리에 오르려면 땀 흘려 올라가야 오를 수 있다, 저절로 올라가지는 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한편으로 전국의 산천초목이 내 눈에 다 들어오는 풍경을 만나는데 그것을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그때 내가 나를 원망했던 게 미안하게 되더라고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일석이조로다가 돈도 벌고 계절 따라 온갖 경치를 다 감상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때 대표님을 지켜낸 원동력이라고 할까요. 힘은 무엇이었나요. -누군가 보이지는 않지만 나를 도와준다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루는 영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TV를 켰는데요. 경주 남산이란 곳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너무 지쳤고 힘들 때였습니다. 그런데 몸 안에서 이상한 반응이 일어나는 겁니다. 경주 남산에 안 가면 마치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막 드는 겁니다. 그 당시 제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다 보니까 발은 쩍쩍 갈라지고, 혈액순환은 안 되고. 억울한 일로 검찰과 경찰에 불려 다니던 그러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경주 남산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다녀온 지 하루 만에 몸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더라고요. 얼굴에 웃음이 감돌며 남에게 웃음을 주게 되더라고요.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 바뀌었습니다. 경주 남산이 제게 웃음꽃을 주어 희망 꽃을 피우게 한 거죠.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분들이 나를 이끌며 돕고 있다는 새로운 믿음이 생겼습니다.→그렇다면, 앞으로의 꿈과 희망은 무엇인가요. -삶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나눔의 삶을 사는 겁니다. 어떤 때 TV를 시청하다 보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들어요. 그러면 ‘아~ 내가 후원하고 있지’하는 게 생각나 수화기를 놓습니다. 평소에도 길을 가다가 배고픈 사람들을 만나면 내어주는데, 그런 습관은 몸에 배었나 봐요. 한동안 독거노인을 찾아가서 계좌에 돈을 넣어주기도 했는데요. 앞으로는 체계 있는 복지로 돕고 싶어요. 제가 잘 아는 산악회가 있습니다. 그 산악회가 네팔의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를 세워주는데 약간의 기금을 기부했습니다. 지진이 나서 학교가 무너졌다고 하더라고요. 내년 1월에 학교가 준공되는 때를 맞춰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참, 진태명의 제품은 어떻습니까.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은 ‘LED 터널 시선 유도등’(특허 제10-1042187호)입니다. 운전자들이 터널 내 어두운 조도에서도 차로 폭의 시인성을 확보해 안전운전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먼저’인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 제품은 각종 사고에서 안전한 대피를 유도함으로써 사고확대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터널은 물론 지하차도, 지하주차장, 중앙분리대, 도로 경계석, 연석 등에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납품은 주로 한국도로공사와 지자체 등 관급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내 LED 시장규모는 지난해 7조44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내년에는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스마트 LED 도로조명 제어시스템’을 2020년까지 구축할 계획이죠. 단순 조명의 기술개발 수준을 넘어 ‘사람이 먼저’인 기술을 적용하는 응용 분야로 산업 저변이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이에 발맞춰 ㈜진태명도 ‘국민 생활과 안전에 직결된 제품인 만큼 최고로 만들자’고 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자제이지만 가격경쟁력을 갖춘 최고의 제품 말이죠. 그렇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견적서 보내 주세요” 하며 저희 진태명을 찾아주고 불러 주는 곳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0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0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최근에야 국내외에 알려진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학계에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10회>그녀가 황제 납치 프로젝트를 설명해주자 나는 크게 웃었다. 사실 까다롭고 연로한 황제(고종)가 해외 탈출에 동의한다고 해도 과연 베델과 내가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해서였다. “그런데...상하이에 있는 귀족분(러시아 극동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 추정)과는 정말로 어떤 관계죠?” 내가 짓궂게 물었다. “아...그런 얘기는 하지 않으려구요.” 소녀의 눈에서 유쾌함이 사라지고 곧바로 심각함이 묻어났다. 그녀가 진지하게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 친구, 제 말 잘 들으세요.” 그녀가 불편한 감정을 억누른 채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과 베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이 게임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목숨을 부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제서야 나는 우리의 상대(일본)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 세 명은 이 귀신같은 음모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우리가 없어진다 해도 이 세상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테고... 나는 소녀의 손을 잡고 그녀의 눈에서 뭔가 다른 감정을 읽어보려 애썼다. 이윽고 소녀가 다시 말을 꺼냈다. “나는 당신이 이 일에 연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노력할게요. 만약 당신이 판사 의자 뒤에 사형 집행기계가 숨어있는 비밀 법정에 선다면 과연 자신을 제대로 변호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당신은 이번 일의 전부를 알수는 없을 거에요. 당신을 위해서라도 그 이상은 알려고 하지 말고 이 정도로 만족했으면 해요...이건 친구이기에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 나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게 가장 어울리는 대답이자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 키스를 받은 뒤 곧장 미국 공사관저로 향했다.그 뒤로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그녀가 말한대로 민영환 대감의 전갈을 기다렸다.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소녀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나와 베델은 매일 밤 루이의 호텔(서대문 애스터하우스 호텔) 바에 머물거나 오래된 당구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쇠사슬에 묶여있는 것 같은 무력감에 짓눌렸다. 상하이에서 온 여성은 대단한 용기를 갖고 일본의 구렁텅이 속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조선의 운명을 위해 자신의 열정을 모두 쏟아내던 내 친구 베델은 화산으로 생겨난 옆나라(일본)가 빠르게 조선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화를 냈다. 나는 소녀가 제안한 계획이 잘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답답하고 또 불안했다. 그래도 조선황제 납치 계획을 반드시 성사시켜야겠다는 열망만큼은 누구보다도 환하게 불타고 있었다. 3일이 지났다. 마침내 궁에서 전갈이 왔다. 민영환 대감이 베델의 인쇄소(대한매일신보사 사옥)로 급하게 사람을 보냈다. 그는 인쇄소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와 대한매일신보 최고책임자 양기탁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속삭였다. 그는 베델과 눈이 마주치자 호흡을 가다듬고 능숙한 영어로 크게 외쳤다. “그녀가 전신을 보내라고 합니다. 최대한 빨리요!” 나는 곧바로 서울에서 30㎞쯤(번역자주:원문에는 sixty miles로 돼 있으나 아마도 sixteen miles의 오기로 보입니다.) 떨어진 제물포로 가야했다. 마지막 기차를 타려고 죽은 듯 조용한 밤 시가지를 지나 달리기 기록을 깨려는 선수처럼 역(지금의 서대문역 터)으로 몰아치듯 인력거를 몰았다. 나를 실어나른 인력거 소년은 그 뒤 3일간 아무 일도 못하고 앓아 누웠을 것이다.기차(경인철도)를 타고 2시간 가까이 달렸다. 한밤이 돼서야 제물포에 도착했다. 전신 전화국은 세관(인천해관)과 같은 건물에 있었다. 대한제국 세관에서 중요한 일을 하던 나는 원래 일주일에 이틀씩 이 건물에서 일했다. 내가 한밤중에 이곳에 찾아와 뭔가 메시지를 보낸다고 해서 의심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날은 운 좋게도 일본 전신 검사관이 근무하지 않았다. 한국인 전신 운전자만 남아 장비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검열이 없었다. 상하이로 전보를 보낸 뒤 나는 주홍(중국인으로 추정)이 운영하는 외국인 호텔(제물포 대불호텔 추정)에 묵었다. 내 방 발코니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제물포 항구의 불빛을 바라봤다. 이미 내 눈은 옌타이에서 황제를 구해낼 보트가 오고 있을 황해로 향하고 있었다. 11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포토 다큐] 600년 별빛 따라… 궁으로 숨어든 밤

    [포토 다큐] 600년 별빛 따라… 궁으로 숨어든 밤

    고궁이 새로운 ‘문화허브’로 자리잡고 있다. 역사와 예술을 결합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옛 궁궐 안에서 펼쳐진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경복궁 별빛야행’은 한낮의 번잡함을 벗어난 고궁에서 품격 있는 왕실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힐링 프로그램’이다.은은한 별빛이 짙게 드리워진 경복궁. 손마다 청사초롱을 쥔 관람객들이 한껏 들뜬 기분으로 고궁 나들이에 나섰다. 조선 시대 궁중 의상을 차려입은 상궁이 옛 말투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흥례문(興禮門)의 중문이 열리고 동편 회랑(回廊)을 지나 별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가니 왕세자가 글을 읽던 비현각(丕顯閣)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일으킬 만큼 배우들이 당시 세자가 대신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었다.본격적인 투어를 하기 전 들른 곳은 궁궐의 부엌인 소주방(燒廚房)이다. “주상 전하께서 여러분에게 특별히 진찬연을 베풀라 하셨지요”라며 수라간 상궁이 맞았고 ‘도슭(도시락의 옛말) 수라상’이 차려진 방으로 안내했다. 도시락이라 하여 요깃거리일 줄로만 알았는데 임금이 즐기던 12첩 반상이었다. 궁중 나인의 수발 속에 즐기는 만찬은 정갈하면서도 담백했다. 더불어 마당에서 열리는 퓨전국악 공연은 먹는 내내 입맛을 돋워 주었다.식사 후 시작된 본격적인 고궁 산책은 이제껏 야간엔 공개하지 않았던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交泰殿)으로 이어졌다. 금남(禁男)의 구역이었던 궁녀들의 생활 공간을 엿보는 흔치 않은 기회다. 전각에 들어가기 전에 보여 주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사랑을 샌드 아트로 그려낸 영상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윽고 둘러본 각각의 방은 단아한 고가구와 소박한 꽃들이 아 기자기한 모습으로 조화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문양의 창호(窓戶)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이 은은하다. 내부 관람이 처음으로 허용된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은 경복궁 내전의 침전(寢殿)으로서 우리 한옥의 건축미가 돋보였다.후원을 거쳐서 다시 발걸음을 옮기니 별빛야행의 백미인 경회루(慶會樓)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연못을 앞에 두고 조명과 어우러진 누각은 고요함 속에 고고한 멋을 발하고 있었다. 사라져 버린 왕조의 순간들이 물위로 아른거리는 듯하다. 낮에는 볼 수 없던 고궁의 비경을 카메라에 담는 관람객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별빛 아래 펼쳐진 왕실 조경의 진수에 모두가 흠뻑 취한 듯했다. 별빛야행에 참가하려고 휴가를 냈다는 회사원 민경배씨는 “낭만적인 감흥을 많이 받았고 특히 늦은 밤에 구경해 보니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신발을 벗고 2층 누각에 오르니 힘 있게 술대로 내려치는 거문고 소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인왕산과 경복궁의 전각들은 물론 도심 속 빌딩의 야경까지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내려다보는 풍경이 사뭇 색다르다.행사의 마무리는 근정전(勤政殿)에서 진행됐다. 조명으로 꾸민 밤의 근정전은 고즈넉하면서도 화려했다. 2단의 월대(越臺) 위로 세워진 경복궁 정전(正殿)의 자태가 당당하다. 월대를 둘러싼 난간 기둥마다에는 사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과 십이지상 등이 배치돼 있다. 관람객들은 이곳저곳 놓칠 수 없는 장면을 둘러보기에 바쁘다. 학원 강사인 서지숙씨는 “조명 불빛 아래 화려함이 더해진 단청이 환상적”이라며 탄성을 터뜨렸다.조선 최고의 건축과 정원을 배경으로 운치를 더하는 ‘시간 여행’을 다녀온 초가을 밤. 600년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궁은 우리 곁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황제 납치 프로젝트4] “어진 화가로 위장해 입궁하겠습니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4] “어진 화가로 위장해 입궁하겠습니다.”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최근에야 국내외에 알려진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학계에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4회>그녀는 입술에 술잔을 가져가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과 빌리 두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이미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어요. 우리 임무의 첫 번째 대상은 이토 히로부미가 될 거예요.” 이 때 베델이 잠깐 대화를 끊었다. “여기서 그 문제까지 얘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군요. 우리 셋이 밤새 같이 있으면 분명 일본 끄나풀이 눈치채고 달라붙을 겁니다.” 그러면서 베델은 조선 왕궁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소녀에게 간략히 설명했다. 왕과 무기력한 왕자들은 첩자들에 첩첩히 둘러쌓여 있고 신하들은 말만 할 뿐 실제 조선 독립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세가와(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황제를 궁에 사실상 가둬놨지만 일본에 매수된 비겁한 대신들은 이를 모른 체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여전히 조선에 충성하는 이들은 날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을... 끝으로 베델이 소녀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일본 감시자들 모르게 황제를 만나 망명 의사를 타진할 생각인가요?” 그녀의 대답이 매우 놀라웠다. 마치 첩보원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저는 폐하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서울에 온 것으로 돼 있어요. 이미 베이징에서 연로하신 황후(서태후 1835~1908)의 초상화를 그려 드렸어요. 황후께서는 제 신원을 증명하는 친서를 써 주시고 옥으로 만든 목걸이도 하사하셨어요. 목걸이가 워낙 커 마치 제가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기분이 들 정도였죠.“(편집자주: 소설 속 이러한 설정은 실제로 고종과 서태후의 초상화를 그린 네덜란드 출신 미국인 서양화가 휘베르트 보스의 이야기를 차용한 것입니다. 단 소설과 달리 그는 1899년 고종의 초상화를 먼저 완성했습니다. 서태후 초상화는 1906년에 그렸습니다.) 그녀는 트렁크를 열어 추천서 꾸러미를 꺼냈다. 하나는 워싱턴에 있는 ‘거물’이 준 편지였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 있는 미국 대사의 것이었다. 도쿄에 있는 주일영국대사(클로드 맥스웰 맥도널드 1852~1915)의 부인이 써준 것도 있었다. 준비는 완벽했다. ”이게 바로 제가 황제의 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베델과 나는 밤 10시쯤 그 방에서 나왔다. 1층으로 내려가 고종 납치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며 호텔의 단 하나뿐인 당구대에서 게임을 했다. 자정 쯤이었다. 권총 소리가 크게 울리며 한밤의 고요를 깨뜨렸다. 호텔 주인 루이(루이 마르탱)가 사무실에서 ‘페르넷 브랑카’(이탈리아에서 개발된 식후주로 알콜 도수가 35도 이상임)를 마시다 말고 뛰쳐 나왔다. 호텔 뒤쪽에 있던 종업원실에서도 시끄럽게 발소리가 들렸다. 현관을 지키던 호텔 경비원도 연신 쇠막대기를 흔들어대다가 실수로 뭔가를 깨뜨렸다. 우리도 바에서 로비로 나왔다. 머리 위 복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거기 누구 안 계세요? 누구든 제 방으로 와 주시겠어요?“ 소녀의 목소리였다. 베델과 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 뒤 소리쳤다. “강도가 침입한 거면 그놈에게 총을 더 쏘세요.” (편집자주: 당시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치외법권이 설정돼 한국법이나 일본법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현지 법으로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루이와 베델, 나 이렇게 3명은 헐떡거리며 소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소녀는 나이트가운 위로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 쪽에 두손을 모아 작지만 무거운 것(권총)을 감추고 있었다. 그녀는 루이에게 램프를 가져오라고 부탁한 뒤 우리를 방으로 이끌었다. 방에 들어가니 소녀의 트렁크가 활짝 열려 있었다. 푸른빛이 도는 실밥 같은 것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일본인 쿨리(짐꾼)들이 입는 외투의 색깔이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방 한켠에 엎드려 쓰러져 있었다. 베델이 그를 뒤집자 불빛에 모습이 드러났다. 이미 죽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온 얼굴을 덮어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음...” 그녀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벌써 일본의 반격이 시작됐군요...그렇죠?” 5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열받은 내얼굴 집에서 쿨하게

    열받은 내얼굴 집에서 쿨하게

    ●에어컨 줄이고 물과 팩으로 수분 공급 필수 올여름 휴가철은 남다른 폭염에 그 어느 때보다 피부가 시달린 계절이었다. 바다, 계곡, 워터파크 등지에서 야외 바캉스를 즐겼다면 고온, 외부 자극에 손상되고 면역력이 떨어진 피부를 회복시키기 위해 휴가 이후 사후 관리를 챙기는 게 필요하다. 예년보다 부쩍 높았던 자외선 지수로 약해진 피부는 기온이 급격히 바뀌는 환절기를 맞으며 더 악화되기 마련이다. 피부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막바지 더위에 에어컨을 적정 시간만 가동하고 바람을 직접 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외출할 때는 자외선으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수시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 주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차단제 역시 2~3시간 간격으로 덧바를 것을 권장한다. 또 증발된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고 팩을 하면서 몸 전체에 수분 공급을 충분히 해 주는 것이 좋다. 피부관리실이나 전문의를 찾지 않고도 집에서 효율적으로 피부 관리를 할 수 있는 방편들이 있다.●관리샵 모델링 팩으로 즉각적 진정·쿨링 효과 피부가 메마르면 탄력이 저하돼 노화로 직결된다. 자극받은 부위를 빠르게 진정시키고 수분과 영양을 채워 주기 위해서는 팩이 효과적이다. 화장품 브랜드 AHC의 ‘365 레드 세럼 랩핑 모델링’은 관리실에서 주로 쓰는 모델링 팩을 간단히 붙이는 마스크 형태로 만든 제품이다. 가루를 물에 개는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붙이는 순간 탱글한 고무팩 질감이 얼굴에 밀착돼 즉각적인 진정 및 쿨링 효과를 준다는 설명이다. 일반 마스크 시트 표준 용량의 두 배에 이르는 40g 용량에 97% 이상 보습 성분이 들었다.●건조해진 팔·다리, 보디 크림으로 매끈하게 팔, 다리는 자극받는 범위가 넓고 땀 배출이 많아 쉽게 건조해지고 거칠어진다. 시슬리의 보디 크림인 ‘끄렘므 레빠라뜨리스 쑤엥 이드라땅 쁘르 르 꼬르’는 수분 활성 성분 복합체가 함유돼 각질층의 수분을 잡아 주고 피부 본연의 밸런스를 유지해 준다. 필수 지방산이 풍부한 쉐어 버터, 알란토인 등 유연, 진정 성분은 피부 장벽을 강화하는 데 효능이 있다. ●마시고 붙이는 콜라겐으로 피부 탄력 업! 콜라겐 관리는 피부 탄력을 높여 준다. 피부 진피층의 90%를 차지하는 콜라겐은 세포들이 서로 지탱하며 피부 탄력을 유지해 주게끔 돕는 단백질 성분이다. 진피층이 얇아지면 피부가 늘어지고 주름이 생기기 때문에 콜라겐 재생, 관리가 중요하다. 최근에는 젤리, 알약 형태로 먹는 콜라겐부터 시트 형태로 직접 붙이는 마스크팩, 특허받은 고주파를 통해 진피층에서 콜라겐 생성을 돕는 미용 기기까지 나왔다.아모레퍼시픽의 이너뷰티 브랜드인 바이탈뷰티 ‘슈퍼콜라겐’은 국내 최초의 마시는 콜라겐 앰플이다. 분자량이 작아 흡수가 빠른 초저분자 콜라겐 3000㎎을 한 병에 담았다. 청정 지역에서 얻은 피쉬 콜라겐으로 간편하게 콜라겐을 보충할 수 있다.비타민 C는 콜라겐이 빠르게 합성되도록 도와 환절기에도 긴요한 성분이다. CNP ‘비타C 갈바닉 앰플 프로그램’은 앰플과 이온 기기로 구성된 제품이다. 영국산 순수 비타민 C를 함유해 피부톤을 밝혀 주고 피부결을 윤기 나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된다. 이온 기기는 미세전류를 이용해 앰플을 피부 깊숙이 침투시켜 유효 성분의 흡수력을 높여 준다. ●고주파·LED 기기로 홈케어… 피부과 부럽잖네 셀프 관리를 위한 미용기기는 올해 시장이 폭풍 성장하며 주목받았다. 국내 시장은 2013년 8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4700억원대까지 6배가량 성장했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전문숍이나 피부과에서 주기적으로 관리받는 것보다 셀프 관리를 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인식이 늘면서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를 찾는 다양한 연령층에서 사용이 늘었다. 환절기에 접어들며 기기를 사용해 스스로 관리하려는 수요도 늘었다.LG전자 프라엘의 ‘더마 LED 마스크’는 발광다이오드(LED) 불빛의 파장을 이용해 안면 부위 피부 톤 및 탄력 개선에 도움을 준다. 총 120개의 LED가 동시에 파장을 내는데, 레드 파장과 적외선 2개 광원이 시너지 효과를 내 피부에 한층 골고루 침투할 수 있다. LED를 일명 ‘동안 좌표’라 부르는 이마, 입가, 눈 밑 등 고민 부위에 집중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안경을 쓰듯 손쉽게 착용할 수 있고,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도 앞을 볼 수 있어 편리하다.일본의 미용기기 대표 브랜드인 야만뷰티 ‘RF 보떼 포토플러스’는 고주파 등 관리실에서 받을 수 있는 5단계 코스를 기기 하나에 담았다. 딥클렌징, 수분 충전, EMS 업, LED, 쿨링 모드로 피부 고민, 상황에 따라 맞춤 케어를 할 수 있다. 클렌징 기능은 1㎒ 고주파인 라디오파(RF)로 모공 속 노폐물을 자극 없이 제거한다. 표정근 자극을 통한 리프팅, 진정 및 모공 축소 등 원하는 관리를 단계별로 선택할 수 있다.플라스마 기술을 이용한 홈 케어 기기인 플라스마 ‘플라베네’는 대한아토피협회에서 ‘KAA아토피안심마크’를 획득했고, 한국피부임상과학연구소에서 인체적용 시험을 거쳤다. 플라스마는 초고온에서 음전하 전자와 양전자 이온으로 분리된 기체 상태 물질이다. 피부에 붙어 있는 균의 세포막을 없애 균을 죽이고 피부 친수성을 높여 보습에 좋다는 설명이다. 콜라겐 생성을 촉진시켜 탄력 증진도 기대할 수 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정조대왕의 ‘여민동락’ 재현…59.2㎞ 효의 길 함께 간다

    정조대왕의 ‘여민동락’ 재현…59.2㎞ 효의 길 함께 간다

    정조는 조선시대 어느 임금보다도 궁궐 밖 나들이가 많았던 임금이다. 재위 24년 동안 66차례 나들이를 했는데 이 가운데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인 화성 융릉을 방문한 게 모두 13차례나 된다. 정조는 능행차를 통해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면서 수많은 백성과 소통하고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했다고 전해진다. 임금의 행차는 백성과 함께하는 일종의 ‘축제’였다. 임금의 행차를 행행(行幸)이라고 했던 것도 백성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행차여서 붙여진 것이다. 경기 수원시와 화성시,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재현하는 정조대왕 능행차는 정조가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수원 화성을 거쳐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성 융릉까지 참배하러 가는 조선 최대 규모의 왕실행렬이다. 이들 3개 시는 정조대왕 능행차를 공동으로 재현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켰다. 지난해 150만여명이 관람, 우리나라 거리 퍼레이드 축제 중 최대 규모로 꼽힌다.●작년 150만명 관람… 격쟁·자객공방전 재현 30일 수원시에 따르면 올해로 3년째를 맞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은 수원시, 서울시, 화성시가 주최하고 서울 종로구·용산구·동작구·금천구, 경기 안양시·의왕시가 참여한다. 제55회 수원화성문화제 축제 기간인 10월 6~7일 이틀간 열린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을 거쳐 화성 융릉까지 총 59.2㎞ 전 구간을 소통·나눔·공감이라는 주제로 진행한다. 2년 전에는 창덕궁에서 수원 화성 연무대까지 47.6㎞에 이르는 구간에서만 재현했으나 지난해부터 화성시의 참여로 융릉까지 전 구간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게 됐다. 3개 시가 보여주는 정조대왕 능행차는 정조의 즉위 20년 해인 1795년(을묘년), 회갑을 맞은 어머니인 현경왕후(혜경궁 홍씨)와 함께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묘소에 참배하기 위해 8일간 행했던 대규모의 원행이다. 당시 기록이 글과 그림으로 소상히 기록돼 있는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를 기반으로 풀어냈다.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은 이틀에 걸쳐 서울시 21.2㎞, 안양시 12.8㎞, 의왕시 6㎞, 수원시 13.5㎞, 화성시 5.7㎞ 구간에서 진행되며 연인원 4453명, 말 684필, 취타대 16팀이 투입된다. 첫날 서울에서는 창덕궁~노들섬 10.39㎞, 노들나루공원~시흥행궁 터 10.85㎞를 이동해 모두 21.4㎞ 구간에서 재현한다. 창덕궁에서는 출궁의식이 선보이며 서울역과 노들섬, 시흥행궁 등에서 전통줄타기, 전통예술단 공연, 배다리 밟기, 미음다반, 정재공연, 먹거리장터, 체험학습 등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2일차 수원시에서 진행하는 안양~수원 구간은 모두 26.4㎞에서 진행한다. 금천구청에서 출정식을 시작으로 만안교까지 4.9㎞를 이동해서 안양현감의 정조맞이 행사를 치른 후 유한양행 연구소까지 7.9㎞를 이동한다. 유한양행에서 표식기 교대의식을 치른 후 수원 노송지대까지 6㎞를 이동한다. 이 구간에서 의왕현감의 정조맞이 및 격쟁, 자객공방전, 사근참행궁터 답사 등 행사를 갖는다. 이어 수원시 구간인 노송지대부터 수원종합운동장까지 4.5㎞, 연무대까지 3.1㎞를 이동한다. 노송지대에서는 수원 입성 환영식과 조선의 마술사 및 경찰의장대 공연 등이 펼쳐진다. 연무대로 이동할 때는 종합운동장과 장안문, 행궁광장 등에서 연합 풍물단 공연을 비롯해 사자춤, 깃발무, 군무의식, 길마재 줄다리기 등을 준비한다. 같은 날인 2일차 수원에서 화성으로 이동하는 11.6㎞ 구간에서는 수원시와 화성시에서 교대하며 진행을 맡는다. 화성행궁에서 출궁의식을 마친 행렬은 대황교동까지 5.9㎞를 이동한다.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인 대황교동에 도착해 표식기 교대의식을 진행한 후 화성시 행렬단과 교대한다. ●혜경궁 홍씨 진찬연·친림 과거 무과시험 눈길 이후 화성시에서 운영하는 능행차 행렬은 융릉까지 5.7㎞를 이동하고, 헌륭원 궁원의 제향 및 봉심례 재현 등을 통해 전 구간 행렬이 완성된다. 수원시에서 진행하는 안양~수원 구간에는 2800여명이 참여할 계획이다. 메인 구간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화성 행궁까지의 구간에서는 다채로운 시민 참여 행사로 채워진다. 1559명의 인원과 240필의 말로 구성되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본 행렬 뒤에는 후미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종합운동장에서 장안문과 행궁광장을 거쳐 연무대로 이동하는 화성어차 효행행렬,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대 경호중대의 순찰용 모터사이클 퍼레이드, 수원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 자율 퍼레이드 등도 있다. 능행차 행렬이 연무대에서 마무리되면 화성을 배경으로 한 대규모 야간 공연이자 수원화성문화제 폐막공연인 ‘야조’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이외에도 궁중 연희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혜경궁 홍씨 진찬연(회갑 잔치), 수원지역 무사를 등용하고자 거행한 무과시험인 친림 과거시험 무과, 호위부대인 장용영이 자객으로부터 정조대왕을 보호하는 자객 대적 공방전 등도 시민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관광 발전에 기여 ‘관광혁신 종합대상’ 받아 지난해 창덕궁~수원~화성 융릉 전 구간에서 완벽하게 재현한 수원시, 서울시, 화성시는 최근 2018 한국국제관광전에서 ‘한국관광혁신대상’ 종합대상을 받았다. 세계관광기구(UNWTO), 한국관광학회, 국제관광인포럼, 한국국제관광전 조직위원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한국관광혁신대상은 창의·혁신을 바탕으로 한국관광 발전에 이바지한 지자체·기관 등에 수여하는 상이다.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 행사가 대한민국 대표 거리축제로 인정받은 것이다. ●루마니아의 클루지나포카시에서 벤치마킹 또 능행차 재현은 수원시의 자매도시인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시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클루지나포카시는 매년 5월 열리는 ‘클루지의 날 거리퍼레이드’에서 루마니아 전통과 역사를 재현한 공연, 시민 퍼레이드 등을 선보이고 있다. 송영완 수원시 문화체육교육국장은 “올해는 수원화성문화제 및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 퍼레이드가 수도권을 하나로 연결하고 세계적인 유명 축제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세계문화유산도시 수원에 걸맞은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은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을 통해 옛것(을묘원행)과 새것(시민이 직접 참여해 즐기는 축제)의 조화를 통해 시민 중심·주도형 축제로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또 정조의 애민정신과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즐거운 축제로 꾸며 나갈 계획이다. 올해 수원화성문화제를 시민 중심 축제로 만들고자 지난 4월 수원화성문화제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6개 분과 16개 소위원회, 35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추진위는 시민 프로그램 선정, 기부캠페인 전개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문가를 초빙해 사례 중심의 발전 방안 토론회도 갖고 있다. 기부캠페인은 ▲능행차와 함께하는 시민 대행진 ▲효행, 불빛을 밝히다(효행등 달기) ▲함께해요! 사회공헌 공동 퍼레이드 등으로 진행한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민선 7기는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사람 중심 도시’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만큼 정조대왕 능행차를 포함한 수원화성문화제도 시민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시민주도형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곤충 대재앙”…러시아 남부 도시, 깔따구떼 출몰로 몸살

    “곤충 대재앙”…러시아 남부 도시, 깔따구떼 출몰로 몸살

    러시아의 한 도시가 날벌레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지에서는 “곤충 대재앙”(insect apocalypse)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남부 항구도시 타간로크에 최근 시내 곳곳을 가득 매울 정도로 많은 깔따구 떼가 출몰했다. 도로는 이들 곤충이 내려앉아 약 2.5㎝ 높이의 층이 생겨 길을 다니던 사람들이 넘어지고 심지어 차들도 미끄러지는 일이 속출했다. 한 남성 시민은 시내에 깔따구가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보여주기 위해 본인 손바닥 위에 쌓인 이 벌레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 SNS에 공유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이들 깔따구 탓에 차량 통행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차들이 미끄러지는 모습도 담겼다. 또 시민들 역시 길을 걷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모습이다. 문제의 깔따구 떼는 도시 주변에 있는 여러 작은 호수에서 번식해 이곳까지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은 유독 더웠던 이번 여름 이후로 이렇게 많은 깔따구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올가 슈스트로바라는 이름의 한 여성은 “저녁이 되면 깔따구들이 불빛만 보이면 몰려들어 외출하는 것조차 두렵다. 이들 벌레는 지난해부터 출몰해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때는 그 수가 훨씬 적었다”면서 “이제 이들 벌레는 무리지어 다닌다”고 토로했다. 이제 사람들은 날씨가 빨리 차가워져 이들 곤충이 사라지길 기도할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깔따구는 모기처럼 생겼지만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기붙이과에 속하는 깔따구의 수명은 평균 2~5일이다. 이들은 독특한 소리를 내는 데 이는 초당 1000회의 날개짓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SNS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와우! 과학] “나를 잡아먹지 마라?”…반딧불 불빛의 비밀

    [와우! 과학] “나를 잡아먹지 마라?”…반딧불 불빛의 비밀

    조용한 저녁 숲에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와 은은하게 보이는 반딧불이의 희미한 불빛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하지만 사실 반딧불이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 불빛이라고 할 수 있다. 벌레의 울음소리와 마찬가지로 천적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광고하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위치를 공개하는 이유는 보통 짝짓기 때문이지만, 반딧불이의 경우 포식자에게 자신이 독이 있거나 혹은 맛이 역겹다는 점을 경고하는 목적도 함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보이시 주립 대학의 제시 바버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박쥐와 반딧불이의 관계를 연구했다. 박쥐가 주된 먹이인 나방보다 눈에 훨씬 잘 보일 뿐 아니라 속도도 느린 반딧불이를 사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정확한 이유를 알기 위해 연구팀은 고생스럽게 반딧불에 하나씩 페인트를 칠해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게 한 후 반딧불이가 서식하지 않는 지역에 사는 박쥐와 나방을 잡아 연구를 진행했다. 박쥐는 나방이나 반딧불이 모두 처음 볼 때 사냥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딧불이의 불빛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에서는 반딧불이를 다시 잡아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반면 불빛을 가린 상태에서는 반딧불이를 사냥했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반딧불이의 생물 발광이 매우 역겨운 맛을 낸다는 신호라는 점을 확인했다. 참고로 반딧불이를 먹고 마비되거나 죽은 박쥐는 없기 때문에 치명적인 독을 지녔기 보다는 박쥐에서 역겨운 맛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이 내용을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박쥐는 장님이 아니며 반딧불이의 희미한 불빛을 충분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박쥐가 어둠 속에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초음파는 나방과 반딧불을 구분하기 어렵다. 결국 반딧불이는 일종의 경고등을 통해 자신이 맛있는 나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만약 역겨운 맛을 내는 독성 물질이 없다면 반딧불이는 천적의 눈에 너무 잘 보이기 때문에 오래전 사라졌을 것이다. 보통 자연계에서 화려한 색상을 지닌 생물은 독을 지녔거나 혹은 역겨운 맛을 내는 경우가 많다. 반딧불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눈에는 평화롭고 서정적인 반딧불이 사실은 경고등인 셈이다. 반딧불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과학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애니멀구조대] 꽃마차 끌고 해수욕장 달리던 말 이야기

    [애니멀구조대] 꽃마차 끌고 해수욕장 달리던 말 이야기

    폭염이 이어진지 한 달이 되어 갑니다. 예년이면 32도 정도만 되어도 ‘참 덥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올해는 37도, 38도를 웃도는 날이 계속 이어지며 이제 더위에 만성 적응하는 제 몸을 느낍니다. 더위에 사람들이 쓰러지는 사례가 일상적인 소식처럼 들려옵니다. 제 주변의 동료들도 여럿이 열사병으로 인해 병원에 실려 갈 정도였으니까요. 살인적인 더위가 언제쯤 멈출까요? 더위가 힘든 것은 비단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지요. 아니, 실은 동물은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지요. 집도 없이 묶여 뙤약볕을 그대로 받고 있는 마당 개들, 물 한 모금조차 평생 구경도 못하며 양철지붕 아래 뜬 장에서 죽지 못해 견디는 개농장 개들, 움막 같은 실내 공간 속에서 숨이 턱턱 막혀 죽어가는 강아지 공장과 공장식 축산 속의 돼지와 닭들... 살인적인 더위에 사람과 동물 모두 힘든 시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농장동물들은 더위에 집단 폐사하고 있다는 심각한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됩니다. 가만히 갇혀만 있어도 죽어나가는 이 무더위에, 일까지 해야 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아니, 그 고통이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여기 매일 밤 온 몸에 땀이 배이고 숨이 차 헉헉대고 절뚝이는 아픈 다리로도 억지로 일을 해야만 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꽃마차를 끄는 말들입니다. 관광지에 휴가 온 사람들의 잠시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밤새도록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마차를 끌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자 일생입니다. 지방의 한 해수욕장. 온 거리에 퍼질 정도로 시끄러운 경음악 소리를 내며 번쩍거리는 불빛으로 치장한 꽃마차 한 대가 늦은 밤까지 힘겹게 달립니다. 마부의 명령에 앞만 보며 달려야 하는 검은 말. 말의 등에는 무거운 무쇠덩이가 얹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힘겹게 움직이는 꽃마차가 규칙적으로 들썩입니다. 검은 말이 다리를 심하게 저는 탓입니다.관절염 탓인지 퉁퉁 부은 다리를 절며 마차를 끄는 말의 발굽에는 편자조차 붙어 있지 않습니다. 온 몸에 땀이 흠뻑 밸 정도로 한 바퀴를 간신히 돌고 나면 또 다음 손님이 기다립니다. 2017년 여름에 케어가 구조했던 베컴이라는 검은 말의 사연입니다. 2017년 케어 동물구호팀은 제보를 받은 다음 날 바닷가로 출발했으나 당일은 꽃마차 말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말은 다시 바닷가에 나타났고 다리를 절며 마차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케어는 마차를 중단시키고 아픈 말에게 일을 시키는 마부에게 항의하며 말을 구하기로 하였으나 마부는 매입비를 요구하였습니다. 다리를 다쳐 꽃마차로 이용할 수도 없는 말이었지만 그냥 내어주지는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부는 말이 더 이상 마차를 끌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고기로 팔 생각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꽃마차를 끌어야 하는 말들의 마지막은 결국 도축장이었던 것입니다. 케어는 오랜 설득 끝에 다친 상태로도 꽃마차를 끌어야 했던 검은 말을 마침내 구조하였습니다. 구조 후 검진 결과 심각한 관절염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심하게 해서 관절염이 생겼고 점점 심각해지는 상태이며, 지금 당장 뛰는 것을 중단하고 걷는 것조차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하는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조가 안 되었더라면 얼마 안 가 도로에서 쓰러졌겠지요. 몇 해 전 구조한 삼돌이처럼 말입니다. 노쇠한 말이 끌던 경주의 꽃마차. 평균수명을 훌쩍 넘어 선 삼돌이는 결국 폭염 속에서 마차를 끌다 아스팔트에 쓰러져 생을 마감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관절염 걸린 검은 말을 구조하여 아픈 다리가 얼른 나아서 잘 뛰라는 의미에서 축구 황제의 이름을 따 베컴이라 이름도 붙였습니다. 베컴과 삼돌이는 다행히 케어에 의해 구조되어 건강을 되찾고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베컴, 삼돌이, 그리고 삼돌이와 함께 구조되었던 경주 꽃마차를 끌던 세상 떠난 깜돌이를 구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불필요한 동물학대를 막아야 합니다. 법으로도, 제도로도 만들 수 있지만 가장 쉽고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불필요한 동물 이용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꽃마차를 타지 않으면 더 이상의 꽃마차 말들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해수욕장에서 이 폭염에 꼭 말을 타야 할까요? 단순한 오락거리로 동물을 이용하지 말아 주세요. 즐길 거리가 너무나 많은 현대 사회에서 불필요한 동물 오용과 남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동물권단체 케어는 전국의 꽃마차를 금지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케어는 서울, 경주, 진해 등 전국 3곳의 꽃마차를 없앴습니다. 한편 꽃마차 금지법이 제정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꽃마차 말들을 구조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은 다른 동물에 비해 관리 비용도 많이 들어 구호활동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케어의 꽃마차 저지 활동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보내주세요. *꽃마차로부터 벗어난 베컴 : 대부대모 결연하기 http://fromcare.org/archives/34183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 soyounpark@fromcare.org
  • [별별 이야기] 별 좀 보여 주세요/전영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별별 이야기] 별 좀 보여 주세요/전영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보현산 천문대를 건설한 초창기인 1997년의 어느 봄날 한 가족이 1.8m 망원경 관측실 입구를 두드렸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는다.1.8m 망원경 관측실은 창문도 없는 1층에 있고 실제 망원경은 4층 꼭대기에 있다. 관측 중에는 깜깜해 모니터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이크를 설치해 소리를 살피고 간혹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불을 켜 화면으로 망원경을 살피기도 한다.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바람 소리와 여러 기기에서 나오는 소음이 섞여서 좀 시끄럽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4개나 열고 나가야 하는 출입구에서 두드리는 소리는 어지간해서는 잘 안 들린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문을 열고 나가니 한 가족이 ‘별 좀 보여 주세요’라고 했다. 그들은 아주 해맑은 모습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필자는 순간 짜증이 났다. “여기는 별을 보여 주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오셨으면 차량 불빛 때문에 관측에 심각하게 방해를 하신 겁니다. 어서 내려가세요”라고 말하며 냉정하게 돌려보냈다. 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후회하는 마음이 생겼다. 관측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얼른 다시 뛰어나갔다. 불과 1~2분에 불과했지만 벌써 내려가고 없었다. 그들은 어린아이를 위해 산꼭대기까지 올라와 제법 오래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돌아가는 아이의 실망한 표정과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이 생각나서 관측하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지금 이 순간도 그때 그 가족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사실 보현산 천문대처럼 연구용 망원경에는 늘 관측장비가 부착돼 있어 별을 보여 줄 수 없다. 심지어 관측자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이후 공개 행사를 열어 별을 볼 기회를 만들었을 때 하루에 60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요즘은 과학관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천문대는 물론이고 사설 천문대도 늘어 별을 볼 기회가 많아졌다. 그래도 한여름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극대기를 이루는 시점인 8월 12일을 전후해 여전히 많은 사람이 보현산 천문대를 찾는다. 천문대는 여름 정비 기간이라 연구를 위한 관측 일정이 없고, 불빛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시기인지라 날씨만 좋으면 더운 여름밤을 잊고 밤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은 떨어지는 유성에 소원도 빌어 보면서 말이다.
  • 1만석 매진 파워 레드벨벳, ‘파워 업’으로 ‘빨간 맛’ 흥행 잇는다

    1만석 매진 파워 레드벨벳, ‘파워 업’으로 ‘빨간 맛’ 흥행 잇는다

    지난해 여름 시즌송 ‘빨간 맛’으로 가요계를 강타했던 레드벨벳(아이린, 웬디, 슬기, 조이, 예리)이 올해는 ‘파워 업’(Power Up)으로 또 다시 여름 사냥에 나선다. 레드벨벳은 6일 미니앨범 ‘서머 매직’을 발표하고 여름 ‘걸그룹 대전’에 합류한다. 이들은 지난 4일과 5일 이틀간 서울 송파구 방이동 SK핸드볼경기장에서 자신들의 두 번째 단독콘서트 ‘레드메어’를 열고 신곡 ‘파워 업’ 등 무대를 ‘레베럽’(레드벨벳 팬덤명)들에게 미리 공개했다. ‘파워 업’은 통통 튀는 8비트 게임 사운드가 매력적인 중독성 강한 업템포 팝 댄스곡으로, 신나게 놀고 에너지를 얻으면 일도 신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5일 공연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레드벨벳은 ‘빨간 맛’이 큰 사랑을 받아 여름에 발표하게 된 이번 앨범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멤버 조이(22)는 “부담이 컸던 건 사실”이라면서 “녹음하면서 어떤 뉘앙스의 보컬로 부를지 멤버들과 연구를 많이 했고, 녹음을 끝낸 뒤엔 회사 내에서 데모곡보다 신나게 들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자부했다. 웬디(24)는 “‘빨간 맛‘은 상큼하고 다양한 색깔이 생각난다면 ‘파워 업’은 제목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라며 “이번 앨범에는 레드벨벳의 여름 색깔인 청량하고 시원한 곡들로 가득 찼다”고 소개했다. 슬기(24)는 “가사 중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죠 놀 때도 일할 때도 즐겁게 해’라는 부분이 있는데, 작사를 한 켄지 언니가 워크숍에서 이수만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감명을 받아 이 곡에 넣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놀이공원을 주제로 한 콘서트는 ‘판타지 어드벤처’, ‘아마존’, ‘퍼레이드’, ‘호러 어드벤처’, ‘리얼 월드’ 등 5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멤버들은 ‘아마존’ 섹션에서는 각자의 이미지에 맞춰 토끼, 강아지, 곰, 병아리, 유니콘 등 귀여운 동물로 변신하는가 하면 ‘퍼레이드’ 섹션에서는 화사한 퍼레이드걸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새 앨범 ‘파워 업’ 외에도 ‘모스키토’, ‘미스터 E‘, ‘히트 댓 드럼’, ‘블루 레모네이드‘ 등 신곡 무대가 화려한 안무와 함께 펼쳐져 공연을 위해 쏟은 멤버들의 노력을 짐작케 했다. 콘서트를 앞두고 처음 나온 공식 응원봉은 장밋빛 불빛 등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내며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레드벨벳은 “우리 응원봉 이름이 ‘김만봉’이라고 들었다”며 “김치만두봉이라는 뜻인데 처음에는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꽃밭에 온 것처럼 예쁘다”는 멤버들의 말에 팬들은 응원봉을 높이 들어 화답했다. 레드벨벳은 이날 새 앨범 수록곡들을 비롯해 ‘덤덤’, ‘러시안 룰렛’, ‘루키’, ‘피카부’, ‘배드 보이’ 등 히트곡까지 총 22곡의 무대를 선사했다. 공연 막바지에 관객들은 레드벨벳의 ‘사탕’을 합창하며 ‘앙코르’를 요청했고 멤버들은 다시 무대에 올라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 무대를 펼쳤다. 멤버들이 객석을 향해 다시 ‘사탕‘을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팬들은 ‘사탕’을 또 한 번 열창해 레드벨벳을 감동시켰다. 두 번째 단독콘서트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말할 때 웬디는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레드벨벳은 이틀간 공연을 전석 매진시키고 모두 1만명 관객을 모아 한층 높아진 인기를 증명했다. 레드벨벳은 6일 오후 6시 멜론, 지니, 아이튠즈,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샤미뮤직 등 각종 음악 사이트에서 여름 미니앨범 ‘서머 매직‘ 전곡 음원을 공개한다. 공식 홈페이지 및 유튜브, 네이버TV SM타운 채널 등을 통해 타이틀곡 ‘파워 업’ 뮤직비디오도 동시 공개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하성운 악어 발견 ‘정글의 법칙’ 멤버들 살린 예리한 관찰력

    하성운 악어 발견 ‘정글의 법칙’ 멤버들 살린 예리한 관찰력

    ‘정글의 법칙’ 하성운이 악어를 발견해 멤버들을 위기에서 구했다. 3일 방송된 SBS ‘정글의 법칙 in 사바’에서는 워너원 옹성우, 하성운과 박정철이 함께 탐사를 나서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하성운은 강가를 건너던 중 악어를 발견했다. 이어 그는 “여기 악어가 있다”고 큰소리를 냈다. 같은 보트에 탄 박정철과 옹성우는 악어를 발견하지 못했고, 하성운은 연신 “진짜 악어를 봤다”며 악어가 있는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실제 하성운이 가리킨 곳에는 빨간 불빛이 있었고, 악어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모두가 놀라 얼른 강에서 탈출하기로 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하성운은 “제가 제일 먼저 봤다”라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느껴져서 플래시를 딱 비췄는데 악어였다”라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옹성우 역시 “악어가 눈앞에 있으며 진짜 위험한 거다”라며 당시 놀랐던 마음을 털어놨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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