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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계 과해” 제천 화재참사 징계 소방관 5명 중 4명 소청 청구

    “징계 과해” 제천 화재참사 징계 소방관 5명 중 4명 소청 청구

    2017년 12월,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와 관련해 성실 의무 위반 등으로 징계를 받았던 충북지역 소방관 5명 가운데 4명이 소청을 청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충북도에 따르면 이들 소방관은 징계결과가 부당하거나 과하다는 이유 등으로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청을 청구했다. 이와 관련 도 소청심사위원회는 오는 17일 열린다. 징계 처분에 불복하는 공무원은 처분을 받은 후 30일 이내에 관할 소청심사위에 구제를 요청하는 소청을 청구할 수 있다. 앞서 충북도는 4월 26일 징계 대상에 오른 소방관 6명 중 1명(불문 처분)을 제외한 5명에게 징계 처분을 했다. 전 제천소방서 지휘팀장은 정직 3개월, 전 제천소방서장은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았다. 현장에 출동했던 제천·단양소방서 소속 소방관 2명에게는 각각 감봉 1개월 처분이 내려졌다. 당시 소방본부에서 일했던 전 소방종합상황실장은 견책 처분을 받았다. 징계 사유는 성실 의무 위반, 복종 의무 위반 등이었다. 이들 중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았던 소방관 1명만 소청을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선 소방관들은 지난 4월 징계 처분이 내려졌을 당시 “정말로 징계받아야 할 사람은 충북지역 소방인력·장비 충원에 소극적이었던 이시종 지사”라고 억울해했다. 실제로 이 지사는 2010년 민선 5기 도지사로 취임한 뒤 소방본부 이전 계획을 백지화하는 등 지역소방 관리 시스템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한 유족은 언론에 “소청을 청구한 것은 소방관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에 할 얘기는 없다”면서도 “충북도가 애초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은 유감이며 유족 입장에서 징계결과를 여전히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지난 4월 징계대상자 6명 가운데 단 한 명만 중징계를 받은 점 등을 들어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징계 내용을 보니) 여론을 의식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며 “소방청 합동조사단과 충북도소방본부의 중징계 요구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기에 강한 불만을 표명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유족들은 징계 처분이 내려지기 전인 4월 15일 충북도에 촉구서를 보내 “(소방징계위원회는) 부디 유가족의 마음을 십분 헤아려 중징계를 통해 비록 소방관이더라도 참사에 책임이 있다면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소방청 합동조사단과 충북도소방본부도 화재현장 상황 수집과 전달 등 초동 대처 미흡을 이유로 현장 소방관들에게 중징계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과실 여부를 두고 법적 다툼이 이어지면서 징계 처분이 무기한 연기돼 오다가 참사 1년 5개월여 만인 지난 4월말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2017년 12월 21일 오후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당시 비상구가 거대 목욕용품 수납장에 가려지고 심지어 잠겨 있어 논란이 됐던 2층 여자 목욕탕에서만 20명이 숨지는 등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소방당국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컸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보복징계’ 논란 휘문재단 공익제보자… 교육부 “해임 취소”

    교원소청심사위, 前 교장 손 들어줘 “이사회 명시 안 해·비위별 징계도 부당” 재단이사장 횡령 의혹 교육청 첫 제보 서울 강남의 명문 사학 휘문중·고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 휘문의숙에서 해임됐던 공익제보자가 교육부의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통해 해임 취소 결정을 받았다. 10일 교육부에 따르면 교원소청심사위는 지난 5일 휘문의숙에서 해임됐던 전 휘문중 교장 A씨가 제기한 징계취소 청구에 대해 A씨의 손을 들어 주며 “해임 취소” 결정을 내렸다. 교원소청심사위의 징계 취소 청구에 대한 결정은 취소나 징계 감경, 징계 유지 세 가지로 나뉘는데 취소 처분은 징계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졌을 때 이뤄진다. A씨는 2017년 10월 당시 휘문의숙의 명예이사장과 이사장이었던 김모(92)씨와 아들 민모(56)씨의 횡령 의혹을 처음으로 서울교육청에 제보한 인물이다. 휘문의숙은 올해 초 이사회를 열고 A씨에 대해 “교원 인사위원회의 심의권을 침해하고 교장 1인 결재를 남용했으며 체험학습 등을 부적정하게 추진했다”는 이유로 해임과 직위해제, 정직 3개월 등 동시에 3가지 징계를 내렸다. 이에 공익 제보자에게 ‘보복 징계’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당시 재단은 “A씨가 부정을 저질러 해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교원소청심사위의 이번 결정으로 부적정한 해임이었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교원소청심사위는 징계 취소 결정 이유로 ▲휘문의숙이 징계 과정에서 이사회 소집을 할 때 회의 목적을 명시하지 않았고 ▲징계 의결서에 기술된 징계처분 사유만으로는 A씨의 비위 행위를 제대로 알기 어려우며 ▲하나의 징계 의결 요구에 대해서는 하나의 징계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관련 규정을 어기고 비위별 징계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원소청심사위에서 징계 취소 처분이 나오면 학교법인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징계위원회를 다시 열고 재징계를 내려야 한다. 교원소청심사위의 결정에 불복할 경우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할 수 있다. 휘문의숙 관계자는 “교원소청심사위로부터 관련 내용을 통보받은 상태”라면서 “향후 계획은 내부 검토 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횡령 혐의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김 전 명예이사장과 민 전 이사장은 검찰로부터 각각 징역 7년과 5년을 구형받고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사설] 국회 파행 틈타 반격 나선 한유총의 후안무치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지난 연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된 ‘유치원 3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와 일부 사립유치원이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 조치에 대한 법적 반격에 잇따라 나서 논란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외면한 채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고, 뼈를 깎는 개혁 노력을 기울여야 할 판에 여론이 잠잠해진 틈을 타 또다시 사익을 꾀하려 하다니 기가 찬다. 한유총은 서울시교육청의 사단법인 설립 허가 취소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가 지난 5일 각하되자 이에 불복해 재신청하겠다고 밝혔다. 한유총은 처분 자체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한유총은 수년간 학부모와 원아를 볼모로 집단 휴원과 폐원을 주도하면서 사립유치원의 이익 보호에 앞장선 단체다. 지난 3월엔 유치원 3법에 반대해 집단 개학 연기를 강행했다가 여론의 뭇매에 백기를 들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설립 허가를 취소한 것은 한유총이 유아교육을 발전시키기는커녕 걸림돌이 돼 왔다고 판단해서다. 그런데도 이사장만 교체해 기득권을 유지할 궁리를 하고 있으니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다. 대형 사립유치원 원장 160명은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 사용을 강제한 교육부 법령에 대해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유치원 3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령만으로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에듀파인 도입을 전면 수용하겠다던 기존의 태도와는 상반된 움직임이다. 교육부는 원아 200명 이상인 사립유치원도 에듀파인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교육부령을 개정해 지난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했다. 정치권의 미온적인 태도가 한유총의 적반하장식 대응에 빌미를 준 측면이 크다고 본다. 하루속히 국회를 재가동해 유치원 3법을 처리하기 바란다.
  • 미투 5년… 이제야 그를 교단서 쫓아냈다

    미투 5년… 이제야 그를 교단서 쫓아냈다

    이경희 코치 “3년간 성폭력 당해” 징계 없이 교직 유지하던 가해자 체조협 부회장 선임 거부당하자 “이씨와 연인” 소송했다가 패소 강간 미수·명예훼손 등 조사 남아국내 체육계 최초의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폭로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전 대한체조협회 고위간부 A씨가 자신이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 최근 해임됐다. 피해자인 이경희(48) 체조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 측은 “미투 폭로 5년여 만에 이뤄진 첫 징계”라고 밝혔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A씨는 서울교육청 징계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난달 21일자로 해임 처분됐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A씨가 체조협회 부회장 선임 인준 거부를 놓고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가 최종 패소하자 판결 내용을 근거로 A씨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으며 징계위원회에 중징계 의견을 냈다. 당시 법원은 “(인준 거부의 근거가 된) 이씨의 미투 내용이 수치심이나 형사 처벌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존재하지도 않은 피해 사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별도의 불복 절차를 제기하지 않으면 앞으로 3년간 공무원으로 일할 수 없게 된다. 교육청 관계자는 “A씨가 곧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공무원직으로 돌아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불복할 경우 징계위 의결 이후 30일 이내 소청이 가능하며, 본인에게도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은 “후임 교사를 이미 구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 코치의 법률대리를 맡은 오선희 변호사는 “형사 처벌과 인사상 징계는 별개의 건이지만 피해자에게는 상징적인 일”이라며 “탈북민으로 한국에서 어떤 연고도 없는 이 코치에게 ‘미투’ 이후 과정들은 힘겨운 싸움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2014년 리듬체조 대표팀 상비군 코치였던 이씨는 대한체육회에 ‘2011년부터 3년간 체조협회 임원을 지낸 A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A씨는 임원직에서 물러났고 감사 등 징계 절차도 마쳐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A씨가 2016년 체조협회 부회장으로 내정되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체육회는 이씨의 탄원서 등을 근거로 선임 인준을 거부했지만 A씨는 “이씨와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하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이씨는 지난해 3월 방송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A씨의 패소를 확정했다. 그러나 A씨는 형사 처벌은 받지 않았다. 검찰이 과거 수사에서 공소시효 완료나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2017년 11월 A씨를 불기소 처분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에는 재정 신청도 기각됐다. 이에 이 코치 측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었고 증거가 보강됐다”며 올해 4월 상습강간 미수와 강제추행으로 A씨를 다시 고소했다. 미투 과정에서 “연인 관계”를 주장한 A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건도 지난해 7월 불기소처분됐으나 항고 과정을 통해 올해 4월 재기수사 명령이 내려졌다. 오 변호사는 “명예훼손 수사의 경우 미투 사건 피해자에게 ‘꽃뱀이다’ 등의 말을 하는 것 역시 죄가 될 수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미투 5년… 이제야 그를 교단서 쫓아냈다

    미투 5년… 이제야 그를 교단서 쫓아냈다

    이경희 코치 “3년간 성폭력 당해” 징계 없이 교직 유지하던 가해자 체조협 부회장 선임 거부당하자 “이씨와 연인” 소송했다가 패소 강간 미수·명예훼손 등 조사 남아국내 체육계 최초의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폭로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전 대한체조협회 고위간부 A씨가 자신이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 최근 해임됐다. 피해자인 이경희(48) 체조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 측은 “미투 폭로 5년여 만에 이뤄진 첫 징계”라고 밝혔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A씨는 서울교육청 징계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난달 21일자로 해임 처분됐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A씨가 체조협회 부회장 선임 인준 거부를 놓고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가 최종 패소하자 판결 내용을 근거로 A씨에 대한 징계 절차를 밟으며 징계위원회에 중징계 의견을 냈다. 당시 법원은 “(인준 거부의 근거가 된) 이씨의 미투 내용이 수치심이나 형사 처벌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존재하지도 않은 피해 사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별도의 불복 절차를 제기하지 않으면 앞으로 3년간 공무원으로 일할 수 없게 된다. 교육청 관계자는 “A씨가 곧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공무원직으로 돌아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불복할 경우 징계위 의결 이후 30일 이내 소청이 가능하며, 본인에게도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은 “후임 교사를 이미 구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 코치의 법률대리를 맡은 오선희 변호사는 “형사 처벌과 인사상 징계는 별개의 건이지만 피해자에게는 상징적인 일”이라며 “탈북민으로 한국에서 어떤 연고도 없는 이 코치에게 ‘미투’ 이후 과정들은 힘겨운 싸움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2014년 리듬체조 대표팀 상비군 코치였던 이씨는 대한체육회에 ‘2011년부터 3년간 체조협회 임원을 지낸 A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A씨는 임원직에서 물러났고 감사 등 징계 절차도 마쳐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A씨가 2016년 체조협회 부회장으로 내정되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체육회는 이씨의 탄원서 등을 근거로 선임 인준을 거부했지만 A씨는 “이씨와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하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이씨는 지난해 3월 방송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A씨의 패소를 확정했다. 과거 수사에서 검찰이 공소시효 완료와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A씨를 불기소하자 이 코치 측은 지난 4월 상습강간 미수와 강제추행으로 A씨를 다시 고소했다. 미투 과정에서 “연인 관계”를 주장한 A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건도 불기소처분됐으나 항고 과정을 통해 최근 재기수사 명령이 내려졌다. 오 변호사는 “명예훼손 수사의 경우 미투 사건 피해자에게 ‘꽃뱀이다’ 등의 말을 하는 것 역시 죄가 될 수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단독]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유명 상담사,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였습니다”

    [단독]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유명 상담사,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였습니다”

    가해자가 취약한 위치에 있는 피해자를 일부러 찾아 호감을 얻은 다음 피해자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성폭력을 은폐할 목적으로 다양한 통제술을 사용하는 것을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한다. 가해자의 그루밍은 자존감이 낮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된 피해자를 골라 신뢰를 쌓은 다음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관계를 점차 성적으로 만드는 단계를 거친다. 그루밍 상태에 빠진 피해자는 가해자의 성적 가해 행동을 자칫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 보니 가해자의 성폭력이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오인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피해의 본질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A씨가 B씨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A씨는 2000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줄곧 가정주부로 지냈다. 그러다 2010년 남편과 사별했다. 가장이 된 A씨는 미성년 자녀 2명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심리상담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2급 자격을 취득하려면 1급 자격을 가진 상담사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6개월간 수련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2013년 2월 한 심리상담센터의 실습 수련 과정에 등록했다. 센터 운영자 B씨는 수련감독자로서 A씨의 교육을 맡았다. B씨는 A씨에게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A씨는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씩 일주일에 6회 정도 B씨로부터 상담을 받았다. 또 ‘전문 상담사가 되려면 박사학위가 있어야 한다’는 B씨의 말에 A씨는 2014년 3월부터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지도교수는 B씨였다. 이렇게 B씨는 A씨와 수련감독자와 수련생 관계뿐만 아니라 상담자와 내담자, 지도교수와 제자라는 다중 관계를 형성했다. ‘상담자는 객관성과 전문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중 관계는 피해야 한다’는 상담학회 윤리강령을 B씨는 위반했다. ●“믿고 따랐던 사람한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B씨는 상담 때 “아빠, 엄마가 너를 걱정하진 않는다”, “왜 엄마(A씨)가 애들과 항상 같이 있어야 하지?”라며서 A씨에게 가족(친정, 자녀)과 주변 사람들을 멀리할 것을 요구했다. 또 “여자가 성적 균형이 안 맞는다”는 성적인 말과 부적절한 신체 접촉도 몇 차례 있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2014년 12월 30일 B씨는 A씨에게 상담학회 간사 일을 맡길 건데 할 일을 알려주겠다며 A씨를 불러 무인텔로 데려갔다. 그런데 B씨가 갑자기 A씨에게 달려들었다. A씨는 정신적 혼란을 겪었다. A씨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인 상담을 받으면서 힘들었던 모든 얘기와 가족도 모르는 사건들까지 다 말했다. 제 진로를 책임져 줄 사람이라고 믿고 따랐는데, 제 몸을 탐냈단 사실에 너무나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상담자이자 지도교수인 B씨와 성관계를 갖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거부했지만, 이후에도 논문·상담 지도 등을 이유로 자신을 무인텔로 불러내 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상담자는 내담자와 성적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담학회 윤리강령이다.최초 강간 피해를 입고도 A씨가 B씨를 따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A씨는 “뭐든 다해서 빨리 학위를 따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B씨는 꾸준히 ‘너는 나와의 성관계로 잘 사는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을 잠시 믿었다”며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자책했다. 학습된 무기력. 피해자가 ‘어떤 노력으로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상태를 말한다. B씨는 이에 대해 “A씨와 내연 관계를 유지한 채 성관계를 한 사실은 있지만 A씨 의사에 반해 강제로 간음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 “무인텔을 갈 때 A씨가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이동했고, 금전도 대부분 A씨가 지불하는 등 일체의 성폭력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A씨는 “B씨가 각종 모임에서 내게 ‘사회화 과정을 배우라’라면서 식비, 커피 값, 담뱃값 등을 내라고 했고, A씨가 운전을 시키는 일도 많았다”면서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방어는 그저 A씨가 지시한 일을 알아서 빨리 해버리고 집으로 오는 것뿐이었다”고 대응했다. ●“무고죄 무서운 거 알아요?” 의심 받는 피해자 A씨는 B씨를 바로 고소할 수 없었다. B씨는 지도교수였고, 대통령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 장관 표창 등 다수의 포상 경력이 있는 상담학계 유명 인사였다. A씨는 또 피해 사실이 노출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던 중 A씨는 B씨 아내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B씨 아내는 B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A씨에게 혼인 관계 파탄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다. A씨는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성폭력 피해사실을 털어놨고, 2016년 11월 B씨를 강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피감독자간음)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박사학위도 포기했다. 조사 과정은 험난했다. A씨는 수사관으로부터 ‘무고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특징이 잘 안 보인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팀장은 “수사과정에서 무고와 관련한 객관적인 물증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성폭력 피해 자체가 허위 신고일 수 있다는 의심은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했는지, 거부 의사는 분명하고 정확했는지, 피해 이후 가해자와 주고받은 문자나 연락은 없었는지,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는지,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심리적·정신적 고통이 있는지 등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진짜’ 피해자를 가리는 데 주요한 기준이 된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너 같은 피해자는 본 적이 없다’면서 ‘가짜’ 피해자로 둔갑되고 한순간에 무고 피의자로 전환된다”는 게 최 팀장의 말이다. 실형을 살 수도 있다는 말에 위축된 A씨는 고소를 취하했다. 2017년 5월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B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A씨는 B씨로부터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A씨와 내연 관계로 지내면서 서로 합의해서 성관계를 했다’는 B씨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며 2017년 11월 A씨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다움’은 무엇인가 지난해 12월 법원은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초 강간 피해 발생일에 대한 A씨의 진술이 달라진 점과 A씨가 B씨와 내연 관계를 암시하는 문자를 주고받은 점 등을 종합해 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고소장에 강간 피해 날짜를 2014년 12월 22일로 진술했다가, 12월 30일로 변경한 점을 문제 삼았다. “남편 기일(22일)에 강간을 당했다면 이는 매우 특별한 사건으로서 잊기 어려운 일이므로 날짜를 착각했다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이 큰 피해를 당했더라도 날짜를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김희겸 천안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바로 신고하지 못하는 동안 성폭행 기억을 억누르거나 잊으려는 무의식적 작용들이 일어난다”면서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자기 부정 때문에 피해 날짜를 특정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 판단은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했을 때 피해자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기억하는지에 주목해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판부는 또 A씨가 B씨에게 애칭을 사용하고 그를 칭송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점을 근거로 두 사람이 내연 관계였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 B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문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A씨의 주장은 배척했다. 재판부는 ‘그루밍 성폭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루밍 성폭력은 주로 아동, 청소년 또는 성적 주체성이 미숙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A씨는 성인이고 고학력 여성이기 때문에 그루밍 수법에 의해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성인은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논리 역시 편협한 관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수진 변호사는 “그루밍 성폭력 피해 판단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떤 관계였고, 어떤 환경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났고, 피해 발생 당시 피해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상담자의 성폭력 2016년 2월 서울 강남의 한 정신분석 클리닉 대표가 내담자들에게 상담실 밖에서 만날 것을 제안해 내담자들을 성폭행하고 그 장면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같은 해 6월에는 이미 4년 전 강간미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전직 목사가 서울의 한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며 내담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근에는 한 유명 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상담하는 환자를 그루밍 수법으로 성폭행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직업상의 차이만 있을 뿐 세 사건 모두 상담자로서의 지위와 내담자의 심리적 취약성이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성폭력 사건이 적지 않게 불거지지만 유무죄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 심리적 의존 상태를 이용해, 폭행 또는 협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오인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는 이런 위험성을 인식하고 상담자가 내담자와 성관계를 갖는 것을 내담자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성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임주환 변호사는 “심리상담 과정에서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강한 의존관계를 감안해야 한다. 특히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 상담 과정 속 위력의 존재 등을 적극적으로 인정해 성폭력 피해자 양산을 막아야 한다”면서 “심리적 의존관계에 놓인 사람을 간음·추행한 사람을 처벌하는 법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상담자와 내담자, 교수와 제자…싸움은 계속된다 A씨는 1심 판결이 부당하다며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A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동신의 최경혜 변호사는 “이 사건은 B씨가 A씨의 진정한 의사에 반해 A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면서 “미성년자나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 고학력자이고 성인이라도 상담자에게 심리적으로 종속되어 그루밍이 충분히 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고 덧붙였다. B씨가 교수로 재직하던 대학은 2017년 5월 B씨를 해임했다. 이 학교는 B씨가 “지도교수로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박사과정 지도학생과 성관계를 가진 것은 교원의 품위를 손상하고 상담심리학자가 지켜야 할 윤리를 정면 위반했다”고 징계 사유를 밝혔다. 상담학회도 올해 1월 B씨에게 상담심리전문가 자격 박탈 및 영구제명 징계를 내렸다. B씨는 학교의 해임 처분에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소청심사위)에 심사를 청구했다. 소청심사위는 B씨의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징계 양정이 과하다면서 해임 취소 판단을 내렸다. 학교는 이에 불복해 소청심사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B씨가 대학교수로서의 지위를 이용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소청심사위의 결정이 맞다고 봤다. 반면 2심은 “B씨가 교수로서의 기본적인 본분과 윤리규정을 망각하고 그 지위를 이용해 품위유지 의무 위반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학교의 해임 처분은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B씨는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여기는 남미] “연금 포기해!” 아르헨 전 대통령 행정명령 받는 사연

    [여기는 남미] “연금 포기해!” 아르헨 전 대통령 행정명령 받는 사연

    남편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돼 화제가 됐던 아르헨티나의 전직 여자대통령에게 연금을 포기하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사진)에게 자신의 연금 또는 남편의 연금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고 현지 언론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행정명령을 따를 경우 페르난데스는 그간 이중으로 받은 연금도 일정 부분 토해내야 한다. 사연은 이렇다. 페르난데스의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2003~2007년 대통령을 지냈다. 그에 이어 대선에 출마한 부인 페르난데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두 사람은 민선 대통령으로 정권을 넘겨주고 넘겨받은 부부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2007~2011년 임기를 마친 페르난데스는 연임에 도전, 당당히 재선에 성공하면서 2015년까지 집권하고 퇴임했다. 페르난데스는 대통령 재임기간 중 홀몸이 됐다. 전임 대통령이기도 한 남편이 2010년 심장마비로 돌연 숨을 거두면서다. 퇴임한 남편에게 지급되던 연금은 법에 따라 배우자인 페르난데스에게 승계됐다. 연금 이중 수급 논란이 불거진 건 페르난데스가 퇴임하면서다. 페르난데스는 사망한 남편으로부터 승계한 연금, 자신이 퇴임하면서 받기 시작한 연금을 동시에 수급하게 됐다. 그가 받은 연금은 남편과 자신의 것을 합쳐 지난해 기준으로 월 33만 페소, 당시의 환율로 약 2만1700달러(약 2570만원)였다. 행복하게(?) 막대한 연금을 챙기던 페르난데스에게 아르헨티나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선 건 지난해였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대통령연금은 특별연금이며, 법규상 특별연금은 1개 이상 수급이 허용되지 않는다"면서 페르난데스에게 자신의 연금 또는 남편의 연금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연금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포기한 연금으로 그동안 지급된 돈은 국가가 환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페르난데스가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 불복하자 이번엔 행정명령이 발동된 것이다. 현지 언론은 "페르난데스가 끝내 행정명령에 불복하고 사법투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한편 현직 상원의원인 페르난데스는 세비도 별도로 받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여교사에게 귓속말한 교장에 법원 “성적 수치심 행위”

    여교사에게 귓속말한 교장에 법원 “성적 수치심 행위”

    폭탄주 원샷 강요한 교장… 법원 “해임 정당”회식 자리에 참석한 여교사에게 술을 강요하고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사실이 드러나 해임된 초등학교 교장이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대전지법 행정1부(부장 오천석)는 최근 충남의 한 초등학교 전 교장 A씨가 충남도교육감을 상대로 낸 해임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2017년 3∼6월 회식 자리에서 여교사들에게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준 뒤 한 번에 마시는 이른바 ‘원샷’을 하도록 했다. 술을 한꺼번에 마시지 않는 교사에게는 “꺾어 마시냐?”거나 “다 먹었냐?”라며 남은 술을 확인하는가 하면 현금 1만원을 건네주며 술을 마시도록 했다. 한 교사는 술 대신 냉면 국물을 마시겠다고 A씨 허락을 받아 냉면 국물을 원샷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또 노래방에서 여교사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도록 한 뒤 귓속말을 하거나 손을 잡는 등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일로 같은 해 8월 해임 처분된 A 씨는 소청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교직원들에게 술 마시기를 강요한 사실이 없다”며 “노래방에서 귀에 가까이 대고 말을 한 것은 시끄러운 상황에서 대화하기 위함이었고, 회식 중 현금을 준 것은 대리운전비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각종 증거 자료 등을 종합할 때 원고가 교직원들에게 각종 술자리에서 술 마시기를 일부 강요한 정황이 인정되며, 노래방에서 남성 상급자가 여성 하급자의 귀 가까이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할 만한 행위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교원에게는 일반 직업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교원의 비위 행위는 본인은 물론 교원 사회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킬 우려가 있다”며 “이 사건 처분이 사회 통념상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회] “‘칼은 칼’이라고만 말하라” 증거조사 가로막은 ‘종이 전쟁’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회] “‘칼은 칼’이라고만 말하라” 증거조사 가로막은 ‘종이 전쟁’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수요일, 금요일 두 차례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 중계 합니다.  “제가 예를 들게요. 살인사건이면 칼을 제시하면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찌른 거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거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말씀대로 하면 ‘이건 칼입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거죠, 입증을 뭘 합니까?”(검사)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그 다음에 증인이나 칼을 주운 사람을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이게 피의자가 피해자를 찌른 칼’이라고 말도 못하는 거면 서증조사는 왜 합니까?”(검사) “칼로 찔렀다는 말은 해도 되는데 이게 뭐 어디서 주웠고 누가 주웠고 이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검찰 측 서류증거(서증)조사를 이어가기로 했던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의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2회 공판은 그야말로 ‘종이와의 전쟁’이나 다름 없었다. 증거서류, 증거물인 서면, 보고서, 설명서, 의견서, 원본, 사본, 출력물…. 검찰이 세 사람의 방대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서류증거도 수만쪽. 변호인들은 종이 자체의 완벽성을 요구하기도 했고 종이에 담긴 내용, 종이 속 내용을 어디까지 읽어야 하는지까지. 검찰의 서증조사 방식을 건건이 문제삼았다. 29일 1회 공판은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지만 이날은 311호 중법정에서 열려 법정 규모가 확 줄었다. 그 안에 14명의 검사와 12명의 변호인이 법정 앞을 가득 채운 데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고성이 터져나올 정도로 뜨거운 공방이 더해졌다. ●이틀째 서류증거 조사…변호인들 “원본과 완벽하게 같은 서류증거만 동의” 보통 형사재판에서 서증조사는 검찰이 피고인들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기록을 비롯해 피고인과 증인, 참고인 등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검찰 진술조서, 사건과 관련된 문서, 이메일, 언론기사 등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간단히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변호인이 검찰 측 증거에 동의하면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하고 법정에서 실물화상기에 띄워 다같이 지켜보며 어떤 내용인지 확인한다. 변호인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그 문건을 작성한 사람을 법정으로 불러 실제 자신이 작성한 문건이 맞는지, 문건 속 내용이 맞는지 등을 증인신문을 거쳐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판준비절차에서 변호인들이 동의하지 않아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야 할 사람들이 200명이 훨씬 넘는다. 그 가운데 재판부는 우선 28명만 증인으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29일 첫 공판부터 다음 공판기일가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서증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전 10시부터 열린 재판에서는 서증조사가 아닌 서증을 둘러싼 공방이 먼저 시작됐다. 서류증거의 많은 부분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겨있던 것들이다. 변호인들은 임 전 차장의 USB에서 비롯된 수많은 서류증거들의 ‘무결성’을 확실하게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차례에 걸친 재판준비절차에서도 거듭 나왔던 주장이다. 변호인들은 임 전 차장의 USB에서 발견된 문건들과 법원행정처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임의로 제출한 문건들에 대해 ‘원본과의 동일성’을 요구했다. 적법하지 않게 수집이 됐고(임 전 차장의 USB), 증거능력이 없는 ‘사본’이거나 누가 작성했는지 또는 누가 제출했는지 알 수 없는 ‘출력물’(USB 속 문건들과 임의 제출 문건들)이기 때문에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들은 “증거물(증거물인 서면)로는 동의하지만 내용이 사실이라는 취지의 증거(증거서류)라면 동의할 수 없다”면서 “수고스럽더라도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물어 문서 출처를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검찰은 “압수수색절차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증거물로서 동의하겠다면서 증거의 압수 이전 출처까지 입증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증거 내용이 문제라면 작성자를 찾으면 된다”고 맞섰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공판준비절차에서 해소됐어야 하는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심리의 효율성을 위해 피고인이 문제삼는 부분을 특정해서 동일성과 무결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몇 차례 더 신경전을 거친 뒤 상황이 마무리됐지만 곧 다른 다툼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워낙 수사기록이 방대하고 증거 양이 많다 보니 검찰에서 어떤 문서로 어떤 공소사실을 입증하겠다고 적은 증거설명서를 내서 재판의 효율성을 좀 더 높이기로 했다. 준비절차에서 예정된 방식이었다. 그런데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이 증거설명서를 문제삼았다. 변호인들이 동의하지 않아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내용까지 증거설명서에 곁들였다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A문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변호인들이 동의하지 않아 채택되지 않은 B문건과 내용을 합해보면 이러한 공소사실이 인정된다’는 식으로 설명서를 썼다는 것이다.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검찰이 증거를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검찰의 주장과 의견, 해설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나중에 본안 심리에서 의견서로 내면 되는데 서증조사 절차에서 일일이 주장을 내놓는 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과 비슷한 맥락으로도 읽힌다. 공소장에는 범죄사실과 적용 법조만 담아야 하고 증거 내용이나 혐의와 직접 관련 없는 배경 설명을 지나치게 자세히 담으면 법관들에게 불필요한 선입견과 예단(미리 결론을 단정짓게 하는 것)을 줄 수 있어 금지돼야 한다는 게 공소장 일본주의다. 수사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드러나면서 이른바 ‘사법농단’의 주역이 돼버린 전·현직 법관들은 재판부가 가질 수 있는 선입견과 예단에 극도로 예민한 모습을 보여왔다. 사법농단 사건의 ‘정점‘으로 꼽힌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 측의 민감함은 강도가 더 세졌다. 서증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 검찰의 증거설명서에조차 동의하지 않은 조금의 내용도 허락할 수 없다며 날을 세웠다. ●검찰이 정리한 증거설명서… “채택되지 않은 증거내용도 포함” 재판부 반환 검찰이 “법원 실무에서는 쟁점과의 관련성과 입증취지를 진술한 뒤에 증거조사를 한다고 정하고 있다”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봤지만 변호인은 “검사의 주장이 기재된 부분을 제가 접어놓은 것만 해도 166쪽, 174쪽, 175쪽, 176쪽….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부는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제출된 증거설명서를 증거조사에 활용하지 않고 반환하겠다”며 재판부가 먼저 증거설명서를 검찰에 다시 돌려줬다. 검찰이 문제될 게 없다고 거듭 주장하자 재판장은 “증거능력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고 증거를 채택하지 않은 것을 계속 증거조사하는 건 부적절한 게 분명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기재된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재판장은 원칙적으로는 증거로 채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론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고 검찰은 굳은 표정으로 예정된 증거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검찰 측 서증조사는 얼마 안 가 다시 멈춰졌다. 검찰은 우선 사법행정권 의혹이 제기된 뒤 2017년 대법원에서 진행된 자체 진상조사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소개했다. 이어 이탄희 전 판사의 사직서가 증거로 나왔다. 이 전 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은 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를 견제하라는 상부 지시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이 전 판사의 사직서로 법원행정처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려 한다며 실물화상기에 사직서를 띄웠다. 그리고는 “이탄희 수원지법 안양지원 판사가 이메일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명단이다. 이 사직서를 통해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이 판사가 발령을 받게 되자...” 이 대목에 이르자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과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동시에 손을 들고 “이의 있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변호인단은 “사직했다는 사실 외에 왜 추가로 설명을 하느냐”고 항의했다. 사직서로는 사직의사를 표시했다는 사실관계만 확인시켜줘야 할 뿐, 증거에 포함되지 않은 배경 설명을 설명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반면 검찰은 “이 전 판사가 사직을 하게 된 경위를 입증하기 위한 취지이기 때문에 필요한 설명이다. 사직서를 두고 사직했다는 것만 읽으라는 것은 부당한 이의 제기”라고 받아쳤다. 다만 재판부는 “쟁점 관련성을 넘어섰기 때문에 이 부분은 진술을 금지하겠다”고 정리했다. 이번에도 변호인단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셈이다. 검찰은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다”며 재판부의 결정에 반감을 드러냈다. 오후 12시 5분 오전 재판이 마무리되고 휴정이 선언됐다. 재판부가 법정에서 나가자 양 전 대법원장, 박·고 전 대법관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변호인들과 악수하고 인사를 나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사석 옆을 지나치면서 몇몇 검사의 낯이 익은 듯 웃으며 목례를 했다. 검사 3명이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에 답했다.점심식사를 한 뒤 오후 2시부터 재판이 다시 열렸다. 검찰은 “오전에 2시간 분량의 서증조사를 준비했지만 20분 밖에 하지 못했다”며 변호인들이 건건이 서증조사 방식을 문제삼는 바람에 재판이 불필요하게 지연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치열하고 더 센 강도의 설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스로 서증조사를 이어가던 검찰은 2016년 법원행정처에 보고된 구속영장 청구서 하나를 증거로 내놨다. 이 청구서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됐는지 결과가 써있지 않았는데, 검찰은 당시 행정처가 특정 사건과 관련해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영장 사본을 입수하려 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다시 검사의 말을 막았다. “이 문서에는 언제, 어떻게 입수됐는지가 기재돼 있지 않은데 그런 말(입수 경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재판부도 “증거 내용상으로는 없는 내용이니 진술하면 안 된다”고 했다. 조사방식을 두고 번번이 가로막혔던 검찰이 드디어 폭발했다. “단순히 (구속영장 청구서가) 외부에 유출됐다고 하는 게 입증 취지인데, 왜 이걸 말씀드릴 수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증거 둘러싼 배경설명 하지 말라”…검찰, 재판부에 정식 이의신청 이 때 ‘칼’이 등장한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증거물이 만약 살인사건에 쓰인 칼이라면, ‘이 칼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찌른 칼입니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4명의 검사들이 동시에 반응했다. 웃음을 보이거나 앉은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검사도 있었고 인상을 찌푸리며 동료 검사와 상의를 하는 등 변호인의 주장에 불만을 표시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심리되기 전인, 또 증인들이 법정에 나와 많은 서류증거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기 전에는 서류증거에 적힌 내용만 딱 설명해야 한다는 게 변호인들의 주장이었다. “칼로 찔렀다는 말은 해도 되는데 이게 뭐 어디서 주웠고 누가 주웠고 이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란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말은 그렇게 나왔다. 반면 검찰은 입증취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경위나 배경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이번에도 변호인 측 주장이 원칙적으로 맞다고 판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후 7시 16분쯤 재판이 마무리됐다. 검찰은 “증거를 설명할 때 증거와 쟁점 사안의 관련성, 입증 취지에 대한 설명도 제한하는 취지로 결정한 것은 법령에 명백히 위반되고 실무와도 어긋난다”면서 “변호인의 부적절한 이의 신청으로 재판이 지연되지 않도록 적절히 소송을 지휘해 달라”며 재판부에 정식으로 이의를 신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날 예정된 증거조사를 마무리한 검찰은 이날 바로 정식 이의신청을 접수했다. 검찰은 “증거를 설명할 때 증거와 쟁점 사안의 관련성, 입증 취지에 대한 설명도 제한하는 취지로 결정한 것은 법령에 명백히 위반되고 실무와도 어긋난다”면서 “변호인의 부적절한 이의 신청으로 재판이 지연되지 않도록 적절히 소송을 지휘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곧바로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검찰은 “혼란스러운 게 있다. 증거조사 방법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하셨고 수긍할 수 없지만 불복절차가 없고 다투려면 상급심에 주장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공판)조서에 남겨주실 것을 요청드린다”며 재판부의 결정에 우회적으로 불편함을 강조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용산참사 진상규명위 “과거사위, 수사권고 없어 매우 실망”

    용산참사 진상규명위 “과거사위, 수사권고 없어 매우 실망”

    檢과거사위 조사결과에 양쪽다 반발용산참사규명위 “특검 재조사해야”당시 수사팀 “의심을 사실처럼 발표”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31일 용산참사와 관련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수사 권고가 내려지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날 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경찰이 무리한 진압을 펼쳤는지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소극적이고 편파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검찰총장의 사과와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이에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검찰총장 사과와 제도 개선만 권고하고, 수사 권고가 내려지지 않은 점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검찰 조사단은 수사검사 외압 논란으로 지난 1월 말에 새로 구성됐다”면서 “강제 수사 권한도 없고 조사 기간도 짧아 애초부터 충분히 조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국회와 정부가 나설 때”라면서 “철저한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특검을 비롯한 수사·기소의 권한이 있는 특별조사기구를 통해 제대로 된 재조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당시 검찰 수사팀은 “과거사위가 법원 확정판결을 부정한 채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의심을 객관적 사실처럼 발표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수사팀은 입장문을 내고 “기소된 농성자 16명은 화재원인과 형사책임을 모두 인정하고 불복하지 않았으며 상고한 9명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면서 “농성자가 던진 화염병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과거사위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사팀은 “경찰 진압의 많은 문제점을 밝혀내고 경찰로부터 잘못까지 시인받았으나 객관적 사실관계와 법리에 따라 형사처벌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향후 사법절차를 통해 수사팀의 명예를 훼손한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혔다.앞서 검찰과거사위는 대검찰청 산하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용산참사 사건 조사결과를 보고받은 뒤 31일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사건 관련 철거민들과 유족들에 대한 사과를 검찰에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화재 가능성 등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진압작전을 강행한 경찰지휘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지휘부는 철거민들이 소지한 염산과 화염병 등 위험물질을 파악하고 있었고, 극단적인 돌출 행동도 우려되는 상황임을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그러나 경찰특공대원들은 농성장에 다량의 시너 등 인화물질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고, 소방차도 단 2대만 출동하는 등 화재 발생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게 이뤄졌다. 과거사위는 “당시 무리한 직업 작전을 결정·변경한 경찰지휘부에 대한 수사가 필요했음에도, 검찰은 최종 결재권자인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주요 참고인 또는 피의자로 조사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 전 서울청장에 대해 서면 조사만을 한 뒤 ‘혐의없음’ 처분을 했다. 무리한 진압 작전의 이유와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요청 대상에서도 김 전 청장의 개인 휴대전화는 누락됐다. 검찰 수사에 청와대 등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 사건으로 인한 촛불시위 차단을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철거용역업체 직원의 불법행위 및 경찰과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검찰이 소극적 수사를 펼쳤다고 과거사위는 판단했다.과거사위는 “용역업체 직원의 살수(撒水) 및 방화 행위에 대해 묵인·방조한 경찰의 위법행위(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망자들의 시신을 유가족 동의 없이 긴급부검하도록 구두 지휘한 부분, 용산참사 당시 화재를 일으켜 경찰관 등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철거대책위 관계자들의 재판에서 변호인들의 수시기록 열람·등사를 거부한 부분 등도 사건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 수사가 기본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거나 왜곡시켰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거리로 내쫓긴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정의로움’을 충족하기엔 부족했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는 유족들에게 사전통지 없이 진행된 긴급부검과 수시기록 열람·등사 거부 등에 대해 검찰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와 함께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교육 및 제도 개선, 긴급부검 지휘에 대한 검찰 내부의 구체적 판단 지침 마련, 검사의 구두 지휘에 대한 서면 기록 의무화 등도 권고됐다. 과거사위는 이날 심의를 끝으로 약 1년 6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철거민 32명이 재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하던 중 경찰 강제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진 사건이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생각나눔]관광VS자연보호, 10년째…끝나지 않는 설악산케이블카 갈등

    [생각나눔]관광VS자연보호, 10년째…끝나지 않는 설악산케이블카 갈등

    2010년 자원공원법령을 개정해 국립공원 자연보전지구 안에 삭도를 5km로 연장하도록 허용해 시작된 ‘설악산케이블카 설치 갈등’이 10년 째 갈등을 겪고 있다. 환경단체와 정부, 지역주민 간의 갈등 속에 설악산케이블카 갈등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은 31일 원주지방환경청 정문 앞에서 ‘설악산케이블카 백지화 끝장 투장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국민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5월 16일, 설악산케이블카 사업자 양양군이 ’환경영향평가 본안 최종 보완서‘를 원주지방환경청에 접수했다“며 ”이는 행정절차 상 사업추진여부를 결정짓는 최종단계에 와있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10년 째 추진된 설악산케이블카사업 그 끝은? 2010년 시작된 설악산케이블카사업 추진은 지난 박근혜 정부 때 본격화됐다. 박근혜 정부는 국립공원 내부에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를 확대하고, 승마장을 건립하는 등의 산악관광체계 건설을 추진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케이블카확충TF를 구성해 국립공원위원회 통과방안을 모색했다. 이후 환경부는 2015년 8월 28일 양양군이 당초 제출한 사업 원안 가운데 정상부 탐방로 회피대책 강화방안 강구, 산양 문제 추가조사 및 멸종위기종 보호 대책 수립, 시설 안전대책 보완 등 7가지 부분을 보완할 것을 전제로 사업안을 가결·승인했다. 그러자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조건부로 승인하자 환경 파괴를 우려한 시민과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대가 연일 이어졌다. 그러나 반전이 나왔다. 2016년 12월 28일 문화재위원회는 양양군이 신청한 문화재 현상변경안을 부결 처리했다. 문화재위원회는 산양 서식지 고립화와 공사로 인한 환경 파괴 우려 등을 부결 이유로 들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 진행된 강원 양양군이 추진 중인 설악산오색케이블카가 지방재정투자사업 심사규칙을 위반하고 구매계약도 절차 이행 없이 체결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관련자들은 감사원으로부터 지방재정투자심사규칙과 투자심사절차 위반행위를 적발당해 징계 처벌을 받았다. ●연이은 소송…환경단체 패소, 사문서 조작은 인정설악산케이블카 설치가 계속 추진되자 환경단체는 소송으로 맞불을 놨다. 그러나 법원은 양양군의 손을 들어줬다. 환경단체와 시민소송단은 환경부장관과 문화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국립공원계획 변경처분 무효 확인 소송’과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취소 소송’ 등 3건의 소송 1심에서 모두 원고 각하 또는 기각 판결했다. 시민소송단은 본 소송에서 원고패소에 불복해 항소하려면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해야 하나 제출하지 않아 항소포기 함에 따라 판결 확정됐다. 사문서 위조 파문도 이어졌다. 설악산오색케이블카 경제성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양양군청 공무원들에게 벌금형이 선고된 것이다. 춘천지방법원은 2017년 4월 19일 열린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사문서 위조혐의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양양군청 직원 김모 씨 등 2명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이름으로 환경부에 제출한 경제성검토 보고서에 강원발전연구원의 자료를 임의로 삽입한 것은 문서변조에 해당하며 업무상 실수라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현재 진행형 케이블카…환경단체 “설악산케이블카 사업 종지부 찍어야” 정부는 설악산케이블카를 두고 현재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에서 논의하며 갈등을 줄이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사업폐기’만이 해법이라는 입장이다. 국민행동은 “이미 부실함으로 얼룩진 환경영향평가서를 두고 무슨 갈등을 조정할 수 있겠는� 굡窄� “설악산케이블카의 갈등조정은 환경영향평가서를 부동의하는 것만이 유일한 협의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 선고후 항소 포기 의사를 밝힌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들은 항소는 포기했지만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저지를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민행동은 “이명박 정부가 자연공원법령을 개정하고 국립공원 내 모든 개발을 허용한지 10년, 설악산케이블카 시범사업이 선정된지 8년, 전경련이 산악관광활성화 방안을 박근혜 정부에 제안한지 5년, 설악산케이블카가 국립공원위원회를 통과한지 4년 동안 단 한번의 포기없이 싸워내고 이겨내 왔다”며 “문재인 정부는 관망의 태도를 즉시 바꿔야 한다. 계속해서 국민의 힘을 무시한다면 결국 모든 책임과 화살이 문재인 정부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한미정상 통화 유출한 K참사관 파면… 최고 중징계

    한미정상 통화 유출한 K참사관 파면… 최고 중징계

    K측 “의도적인 유출 아닌데 징계 과중” 통화록 출력 대사관 직원은 감봉 3개월외교부는 30일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한 혐의로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K공사참사관에 대해 파면을 결정했다. 외교부는 이날 조세영 1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K참사관에 대해 이같이 의결했다. 파면은 최고수위의 중징계로 파면 처분을 받으면 5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으며 퇴직연금이 2분의1로 감액된다. K씨는 총 세 차례 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징계위에서는 정상 간 통화유출 건만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K참사관이 통화 내용을 열람할 수 있도록 내용을 출력한 주미대사관 직원 A씨는 감봉 3개월의 경징계를 내렸다. 외교부 보안심사위원회는 지난 28일 K참사관과 A씨, 감독관리 책임을 지는 고위공무원 B씨 등 세 명에게 중징계 결정을 할 것을 징계위에 요구했다. 보안심사위의 중징계 요구가 징계위에서 경징계로 바뀐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보안심사위는 외부인사가 포함되는 징계위와 달리 외교부 직원으로만 구성돼 보안 위반에 대해 엄격·엄중하게 심사했던 것”이라고 했다. K참사관 법률대리인은 “잘못은 있지만 의도적이지 않은 유출 한 건에 대해 지나치게 과중하다”고 주장했다. K참사관은 결과에 불복해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할 계획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한미정상 통화 유출한 K참사관 파면… 최고 중징계

    K측 “의도적인 유출 아닌데 징계 과중” 통화록 출력 대사관 직원은 감봉 3개월 외교부는 30일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유출한 혐의로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K공사참사관에 대해 파면을 결정했다. 외교부는 이날 조세영 1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K참사관에 대해 이같이 의결했다. 파면은 최고수위의 중징계로 파면 처분을 받으면 5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으며 퇴직연금이 2분의1로 감액된다. K씨는 총 세 차례 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징계위에서는 정상 간 통화유출 건만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K참사관이 통화 내용을 열람할 수 있도록 내용을 출력한 주미대사관 직원 A씨는 감봉 3개월의 경징계를 내렸다. 외교부 보안심사위원회는 지난 28일 K참사관과 A씨, 감독관리 책임을 지는 고위공무원 B씨 등 세 명에게 중징계 결정을 할 것을 징계위에 요구했다. 보안심사위의 중징계 요구가 징계위에서 경징계로 바뀐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보안심사위는 외부인사가 포함되는 징계위와 달리 외교부 직원으로만 구성돼 보안 위반에 대해 엄격·엄중하게 심사했던 것”이라고 했다. K참사관 법률대리인은 “잘못은 있지만 의도적이지 않은 유출 한 건에 대해 지나치게 과중하다”고 주장했다. K참사관은 결과에 불복해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할 계획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단독]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유명 상담사,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였습니다”

    [단독]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유명 상담사,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였습니다”

    가해자가 취약한 위치에 있는 피해자를 일부러 찾아 호감을 얻은 다음 피해자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성폭력을 은폐할 목적으로 다양한 통제술을 사용하는 것을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한다. 가해자의 그루밍은 자존감이 낮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된 피해자를 골라 신뢰를 쌓은 다음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관계를 점차 성적으로 만드는 단계를 거친다. 그루밍 상태에 빠진 피해자는 가해자의 성적 가해 행동을 자칫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 보니 가해자의 성폭력이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오인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피해의 본질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A씨가 B씨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A씨는 2000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줄곧 가정주부로 지냈다. 그러다 2010년 남편과 사별했다. 가장이 된 A씨는 미성년 자녀 2명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심리상담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2급 자격을 취득하려면 1급 자격을 가진 상담사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6개월간 수련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2013년 2월 한 심리상담센터의 실습 수련 과정에 등록했다. 센터 운영자 B씨는 수련감독자로서 A씨의 교육을 맡았다. B씨는 A씨에게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A씨는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씩 일주일에 6회 정도 B씨로부터 상담을 받았다. 또 ‘전문 상담사가 되려면 박사학위가 있어야 한다’는 B씨의 말에 A씨는 2014년 3월부터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지도교수는 B씨였다. 이렇게 B씨는 A씨와 수련감독자와 수련생 관계뿐만 아니라 상담자와 내담자, 지도교수와 제자라는 다중 관계를 형성했다. ‘상담자는 객관성과 전문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중 관계는 피해야 한다’는 상담학회 윤리강령을 B씨는 위반했다. ●“믿고 따랐던 사람한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B씨는 상담 때 “아빠, 엄마가 너를 걱정하진 않는다”, “왜 엄마(A씨)가 애들과 항상 같이 있어야 하지?”라며서 A씨에게 가족(친정, 자녀)과 주변 사람들을 멀리할 것을 요구했다. 또 “여자가 성적 균형이 안 맞는다”는 성적인 말과 부적절한 신체 접촉도 몇 차례 있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2014년 12월 30일 B씨는 A씨에게 상담학회 간사 일을 맡길 건데 할 일을 알려주겠다며 A씨를 불러 무인텔로 데려갔다. 그런데 B씨가 갑자기 A씨에게 달려들었다. A씨는 정신적 혼란을 겪었다. A씨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인 상담을 받으면서 힘들었던 모든 얘기와 가족도 모르는 사건들까지 다 말했다. 제 진로를 책임져 줄 사람이라고 믿고 따랐는데, 제 몸을 탐냈단 사실에 너무나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A씨는 상담자이자 지도교수인 B씨와 성관계를 갖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거부했지만, 이후에도 논문·상담 지도 등을 이유로 자신을 무인텔로 불러내 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상담자는 내담자와 성적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담학회 윤리강령이다.최초 강간 피해를 입고도 A씨가 B씨를 따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A씨는 “뭐든 다해서 빨리 학위를 따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B씨는 꾸준히 ‘너는 나와의 성관계로 잘 사는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을 잠시 믿었다”며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자책했다. 학습된 무기력. 피해자가 ‘어떤 노력으로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상태를 말한다. B씨는 이에 대해 “A씨와 내연 관계를 유지한 채 성관계를 한 사실은 있지만 A씨 의사에 반해 강제로 간음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 “무인텔을 갈 때 A씨가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이동했고, 금전도 대부분 A씨가 지불하는 등 일체의 성폭력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A씨는 “B씨가 각종 모임에서 내게 ‘사회화 과정을 배우라’라면서 식비, 커피 값, 담뱃값 등을 내라고 했고, A씨가 운전을 시키는 일도 많았다”면서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방어는 그저 A씨가 지시한 일을 알아서 빨리 해버리고 집으로 오는 것뿐이었다”고 대응했다. ●“무고죄 무서운 거 알아요?” 의심 받는 피해자 A씨는 B씨를 바로 고소할 수 없었다. B씨는 지도교수였고, 대통령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 장관 표창 등 다수의 포상 경력이 있는 상담학계 유명 인사였다. A씨는 또 피해 사실이 노출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던 중 A씨는 B씨 아내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B씨 아내는 B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A씨에게 혼인 관계 파탄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다. A씨는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성폭력 피해사실을 털어놨고, 2016년 11월 B씨를 강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피감독자간음)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박사학위도 포기했다. 조사 과정은 험난했다. A씨는 수사관으로부터 ‘무고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특징이 잘 안 보인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팀장은 “수사과정에서 무고와 관련한 객관적인 물증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성폭력 피해 자체가 허위 신고일 수 있다는 의심은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했는지, 거부 의사는 분명하고 정확했는지, 피해 이후 가해자와 주고받은 문자나 연락은 없었는지,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는지,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심리적·정신적 고통이 있는지 등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진짜’ 피해자를 가리는 데 주요한 기준이 된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너 같은 피해자는 본 적이 없다’면서 ‘가짜’ 피해자로 둔갑되고 한순간에 무고 피의자로 전환된다”는 게 최 팀장의 말이다. 실형을 살 수도 있다는 말에 위축된 A씨는 고소를 취하했다. 2017년 5월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B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A씨는 B씨로부터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A씨와 내연 관계로 지내면서 서로 합의해서 성관계를 했다’는 B씨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며 2017년 11월 A씨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다움’은 무엇인가 지난해 12월 법원은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초 강간 피해 발생일에 대한 A씨의 진술이 달라진 점과 A씨가 B씨와 내연 관계를 암시하는 문자를 주고받은 점 등을 종합해 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고소장에 강간 피해 날짜를 2014년 12월 22일로 진술했다가, 12월 30일로 변경한 점을 문제 삼았다. “남편 기일(22일)에 강간을 당했다면 이는 매우 특별한 사건으로서 잊기 어려운 일이므로 날짜를 착각했다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이 큰 피해를 당했더라도 날짜를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김희겸 천안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바로 신고하지 못하는 동안 성폭행 기억을 억누르거나 잊으려는 무의식적 작용들이 일어난다”면서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자기 부정 때문에 피해 날짜를 특정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 판단은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했을 때 피해자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기억하는지에 주목해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판부는 또 A씨가 B씨에게 애칭을 사용하고 그를 칭송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점을 근거로 두 사람이 내연 관계였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 B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문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A씨의 주장은 배척했다. 재판부는 ‘그루밍 성폭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루밍 성폭력은 주로 아동, 청소년 또는 성적 주체성이 미숙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A씨는 성인이고 고학력 여성이기 때문에 그루밍 수법에 의해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성인은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논리 역시 편협한 관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수진 변호사는 “그루밍 성폭력 피해 판단은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떤 관계였고, 어떤 환경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났고, 피해 발생 당시 피해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상담자의 성폭력 2016년 2월 서울 강남의 한 정신분석 클리닉 대표가 내담자들에게 상담실 밖에서 만날 것을 제안해 내담자들을 성폭행하고 그 장면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같은 해 6월에는 이미 4년 전 강간미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전직 목사가 서울의 한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며 내담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근에는 한 유명 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상담하는 환자를 그루밍 수법으로 성폭행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직업상의 차이만 있을 뿐 세 사건 모두 상담자로서의 지위와 내담자의 심리적 취약성이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성폭력 사건이 적지 않게 불거지지만 유무죄를 가리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 심리적 의존 상태를 이용해, 폭행 또는 협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오인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는 이런 위험성을 인식하고 상담자가 내담자와 성관계를 갖는 것을 내담자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성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임주환 변호사는 “심리상담 과정에서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강한 의존관계를 감안해야 한다. 특히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 상담 과정 속 위력의 존재 등을 적극적으로 인정해 성폭력 피해자 양산을 막아야 한다”면서 “심리적 의존관계에 놓인 사람을 간음·추행한 사람을 처벌하는 법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상담자와 내담자, 교수와 제자…싸움은 계속된다 A씨는 1심 판결이 부당하다며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A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동신의 최경혜 변호사는 “이 사건은 B씨가 A씨의 진정한 의사에 반해 A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면서 “미성년자나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 고학력자이고 성인이라도 상담자에게 심리적으로 종속되어 그루밍이 충분히 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고 덧붙였다. B씨가 교수로 재직하던 대학은 2017년 5월 B씨를 해임했다. 이 학교는 B씨가 “지도교수로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박사과정 지도학생과 성관계를 가진 것은 교원의 품위를 손상하고 상담심리학자가 지켜야 할 윤리를 정면 위반했다”고 징계 사유를 밝혔다. 상담학회도 올해 1월 B씨에게 상담심리전문가 자격 박탈 및 영구제명 징계를 내렸다. B씨는 학교의 해임 처분에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소청심사위)에 심사를 청구했다. 소청심사위는 B씨의 징계 사유는 인정되지만 징계 양정이 과하다면서 해임 취소 판단을 내렸다. 학교는 이에 불복해 소청심사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B씨가 대학교수로서의 지위를 이용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소청심사위의 결정이 맞다고 봤다. 반면 2심은 “B씨가 교수로서의 기본적인 본분과 윤리규정을 망각하고 그 지위를 이용해 품위유지 의무 위반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학교의 해임 처분은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B씨는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설] “극우 경찰, 공안 수사” 민노총의 어이없는 항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올 들어 세 차례 국회 진입을 시도하면서 조직 차원의 사전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이 설치한 철제 펜스를 뜯어내려고 미리 밧줄 등을 준비했는가 하면 시간 단위로 시위 현장의 간부들이 역할을 나눠 계획안을 실행에 옮겼다. 이런 내부 문건을 확인한 경찰은 시위를 주도한 간부 6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민주사회에서 노조의 시위와 집회의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폭력을 전매특허처럼 동원하는 민노총의 시위 행태는 도를 한참 넘었다. 지난달 국회 난입 시위는 현장 경찰 7명이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폭력의 수위가 높았다. 민노총은 경찰이나 법원에 불복해 불이익을 당하면 조직 차원의 보상을 하겠다는 내부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노조원들의 폭력 행위를 방조한 것은 민노총의 사회적 지위와 맞지 않는 조합주의다. 간부들의 구속영장 청구에 반발한 민노총의 항변은 궤변에 가깝다. 정권의 탄압이라고 맞서며 “경찰이 극우세력이 만든 판 위에서 움직이고, 정해 놓은 공안수사의 결론”이라고 성명서를 냈다. 앞뒤 안 맞는 논리가 궁색하다 못해 딱하다. 무법 시위에 경찰이 번번이 물렁한 대응으로 일관한 탓에 공권력이 법질서를 수호하려는 의지가 없이 민노총 눈치만 살핀다고 되레 경찰에 원성이 쏟아지는 현실이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경영진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현대중공업 법인 분리 문제를 놓고 그저께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첫날 노조원들의 진입을 막던 직원 한 사람은 실명 위기에 놓였다. 주주총회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결정을 무시하고 건물을 막무가내로 점거하려다 사고가 났다. “민노총이 폭력조직보다 더 무섭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래서는 정말 민노총은 설 땅이 없다. 법치와 공권력을 무시하는 무법천지를 더는 눈감아 줄 수가 없다.
  • 이해찬 “정책간담회서 정치적 이야기 매우 부적절”

    내년 총선 공천 기준 관련 특별 당규 의결 여성 공천심사 가산점 최고 25%로 상향오늘부터 18개 부처 장관과 릴레이 오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9일 “정책간담회에서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날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한국외식업중앙회와 정책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공천 요구’가 나와 논란이 되자 선을 그은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정책투어 간담회를 할 때 사전에 협의해서 정치적 주장이 나오지 않도록 준비를 잘해 주기를 바란다”며 당직자를 질책했다. 이 대표가 이처럼 공개 비판을 한 데는 전날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이 “우리를 앞세워서 필요할 땐 부르고 그렇지 않을 땐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이 당에 결코 버림받을 수가 없다. 내년 4월 15일 비례대표를 꼭 주셔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다. 이 발언을 듣던 이 대표는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비례대표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갈 회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지난 선거가 돈을 매개로 비례대표를 약속한 금권선거이며 부정선거 소지가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와 당무위원회의를 열고 지난 3일 공개된 내년 총선 공천 기준과 관련된 특별당규를 의결했다. 기존 공개된 공천 기준인 현역 국회의원은 전원 경선을 치르고, 정치 신인에 대해서 공천심사 시 10~20%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규정이 포함됐다. 여성의 정치 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공천심사 가산점을 최고 25%로 올렸다. 경선 불복, 탈당, 제명 징계 경력자 등에 대한 경선 감산을 20%에서 25%로, 선출직 공직자 평가 결과 하위 20%에 대한 감산도 10%에서 20%로 강화했다. 다만 선출직 공직자의 중도 사퇴에 따른 경선 감산 비율을 30%로 하기로 한 것을 25%로 내렸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는 현역 단체장의 중도 사퇴로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해 감산 비율을 기존 10%에서 30%로 대폭 확대하려 했지만 지자체장들이 과도하다고 항의하면서 감산 비율을 조정했다. 한편 이 대표는 30일부터 기획재정부 등을 시작으로 18개 부처 장관들과 릴레이 오찬을 갖고 정책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기로 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제자와 사귄 담임, 해임 불복 소송서 패소…법원 “교육공무원 책무 저버려”

    제자와 사귄 담임, 해임 불복 소송서 패소…법원 “교육공무원 책무 저버려”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 학생과 교제한 사실이 드러나 해임된 고등학교 교사가 해임 불복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문용선)는 A씨가 관할 지역 교육감을 상대로 낸 해임 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처럼 A씨의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자신이 맡은 반 학생과 몇달에 걸쳐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A씨는 자신이 교사의 지위를 이용해 해당 학생을 강압하거나 유인한 적이 없고, 신체 접촉도 성행위까지 이르지 않았다면서 해임 처분은 지나치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그러나 “교육공무원으로서 학생들의 정서와 인격 발달을 고양하고 학생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할 책무가 있는데도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수개월간 지속했고, 이는 교육공무원으로서의 책무를 심각하게 저버리는 행위”라면서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아울러 “원고의 비위 정도가 매우 무겁고 교육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실추시켜 교육공무원의 품위를 손상했다”면서 “그에 상응하는 징계로 원고를 해임하는 것이 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씨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1심의 판단이 옳다고 보고 그의 항소를 기각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에펠탑을 사랑한 사람들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에펠탑을 사랑한 사람들

    올해는 에펠탑이 세워진 지 130년이 되는 해로 가장 성대한 레이저쇼에 대한 뉴스가 각 매체를 장식했다. 이처럼 큰 뉴스가 된 배경에는 몇 년 전 이탈리아의 몬자브리안자 상공회의소가 에펠탑의 가치에 대해 조사 발표한 영향이 클 듯하다. 유럽의 상징적 조형물과 건축에 대한 인지도, 관광객, 상징성 등을 반영해 그 가치를 매겼는데, 에펠탑은 2위인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과 약 다섯 배의 차이로 1위를 기록했다. 당시의 환율로 계산하면 한화로 약 616조원의 가치가 인정됐다. 7년 전 기준 한 해 에펠탑을 찾는 관광객이 약 800만명으로 추산됐으며, 최근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지금은 보물단지가 된 에펠탑이 처음부터 대접받은 것은 아니다. 1889년 프랑스혁명 백주년 기념으로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이 공모됐을 때 토목기술자였던 구스타브 에펠은 320m(안테나 포함)의 높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물 자체의 하중만 견디면 되는 철탑 건설 계획을 제출했는데, 공기나 공사비 등 이런저런 고려 덕분에 선정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프랑스인들은 문화, 예술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다. 품격 있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흉물스런 철탑이 웬 말이냐고 반대가 심했다. 특히 많은 예술가가 이 흉측한 철 구조물을 비난했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 완성 후 탑의 1층 식당에서 식사를 자주 했는데, 그 이유가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지 않으며 밥을 먹을 곳이 거기밖에 없어서’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듯 애물단지였던 에펠탑이 보물단지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철로 만들어진 미려한 곡선은 건축 후에 많은 사람을 감탄시켰다. 비난일색이던 예술가들도 칭찬했다. 이후 많은 예술가가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거나 에펠탑 광장에서 예술 활동을 했다. 프랑스는 보수적인 곳에서는 다루지 못한 내용들을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싸이가 에펠탑 광장에서 공연해 2만여명이 군집했다. 한국의 퍼포먼스 작가 배달래도 지난해 에펠탑 광장에서 ‘못다 핀 꽃 한 송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공연을 했다. 많은 화가가 에펠탑을 그렸지만 샤갈의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도 ‘에펠탑의 신랑 신부’는 유명한 작품이다. 미술가, 행위예술가, 음악가, 영상예술가, 문학가 등이 에펠탑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에펠탑 자체가 아름답다 보니 그 예술성에 에펠탑을 좋아한다. 둘째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진보적이라 제약이 적어 어떤 예술적 표현도 수용하는 편이다. 예술에서는 어떤 집단의 눈치도 안 보는 프랑스인들의 예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많은 예술가를 파리로 부른다. 셋째는 에펠탑의 인지도나 상징성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함께하고 싶게 만든다. 넷째, 다인종 국가로 홍보효과가 크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를 사랑하고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사랑한다. 히틀러도 에펠탑을 좋아해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에펠탑의 약 1700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며 폰 콜티츠 장군에게 에펠탑과 파리를 파괴할 것을 지시했고 아홉 번이나 확인했다. 다행히 폰 콜티츠 장군이 ‘나는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인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며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해 지금 우리가 에펠탑을 볼 수 있게 됐다. 항명을 하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이 생각나는 대목이다.건축가 에펠은 화학을 전공한 토목기술자로 유럽의 많은 철교를 설계하고 건설했다. 에펠은 에펠탑 이후에 건축가라는 이름을 달았다. 또 그는 에펠탑 이전에 프랑스가 미국에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 철 구조물을 설계했으니 프랑스와 미국의 상징물을 설계한 셈이다. 간혹 토목을 하는 사람들이 건축가들에게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토목가가 만들었다며 토목의 예술성을 어필한다. 에펠탑 건립 130주년을 맞아 한국에 에펠탑 같은 상징물이 아직 없음을 아쉬워한다. 한건축 대표
  •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에펠탑을 사랑한 사람들 / 한건축 대표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에펠탑을 사랑한 사람들 / 한건축 대표

    올해가 에펠탑이 세워진 지 130년이 되는 해로 가장 성대한 레이저쇼에 대한 뉴스가 각 매체를 장식했다.이처럼 큰 뉴스가 된 배경에는 몇 년 전 이탈리아의 몬자 브리안자 상공회의소가 에펠탑의 가치에 대해 조사 발표한 영향이 클듯하다. 유럽의 상징적 조형물과 건축에 대하여 인지도, 관광객, 상징성 등을 반영해 그 가치를 매겼는데 2위인 콜로세움 원형경기장과 약 다섯 배의 차이로 1위를 기록했다. 당시의 환율로 계산하면 한화로 약 616조원의 가치가 인정되었다. 7년전 기준 한해 에펠탑을 찾는 관광객이 약 800만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최근 1000만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2위인 콜로세움이 한화로 약 129조원이고 스페인의 파밀리아 성당이 약 127조원의 가치라고 하니 에펠탑이 가지는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콜로세움이나 파밀리아 성당의 입장에서 보면 그 차이를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의 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라니 콜로세움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지금은 보물단지가 된 에펠탑이 처음부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1889년 프랑스혁명 백주년 기념으로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이 공모되었을 때 토목기술자였던 구스타프 에펠은 320m(안테나포함)의 높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물 자체의 하중만 견디면 되는 철탑을 계획하여 제출하였으며 공기나 공사비 등 이런저런 고려에 의해 선정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프랑스인들은 문화, 예술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였다. 품격있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흉물스런 철탑이 웬 말이냐고 반대가 심했다. 특히 많은 예술가가 이 흉측한 철 구조물을 비난하였다. 대표적으로 모파상은 에펠탑의 완성 후 탑의 1층 식당에서 식사를 자주 했는데 그 이유가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지 않으며 밥을 먹을 곳이 거기밖에 없어서’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듯 애물단지였던 에펠탑이 보물단지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철로 만들어진 미려한 곡선은 건축 후에 많은 사람을 감탄시키기 충분했고 비난일색이던 예술가들을 칭찬으로 바뀌게 했다.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거나 에펠탑 광장에서 예술 활동을 하였다. 프랑스의 진보적인 색체는 다른 보수적인 곳에서는 다루지 못한 내용들을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싸이가 에펠탑 광장에서 공연을 하여 2만 여명이 군집하였다.작년에는 한국의 퍼포먼스작가 배 달래도 에펠탑 광장에서 ‘못다 핀 꽃 한 송이’ 라는 무거운 주제의 공연을 했었다.미술작품으로는 많은 화가가 에펠탑을 그렸지만, 샤갈의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들 그중에서도 에펠탑의 신랑 신부는 유명한 작품이다.미술가, 행위예술가, 음악가, 영상예술가, 문학가에 이르기 까지 모든 장르의 문화 예술인들이 에펠탑을 소재로 하고 배경으로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에펠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에펠탑 자체가 아름답다보니 그 예술성에 에펠탑을 좋아한다. 둘째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진보적이라 제약이 적어 어떤 예술적 표현도 수용하는 편이다. 예술에서는 어떤 집단의 눈치도 안보는 프랑스인들의 예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많은 예술가들을 파리로 부른다. 셋째는 에펠탑의 인지도나 상징성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함께하고 싶도록 만든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그곳에서 뭔가를 도전하고 싶게 만든다. 넷째. 가장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모이고 다인종국가로 홍보효과가 크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를 사랑하고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사랑한다에펠탑은 예술가만 사랑한 게 아니다. 히틀러 역시 에펠탑을 너무 좋아해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던 탑의 약 1700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하여 폰 콜티즈 장군에게 에펠탑과 파리를 파괴할 것을 지시하였고 아홉 번이나 확인하였다. 네덜란드의 한 도시를 파괴한 히틀러다운 명령이었다. 다행이 폰 콜티즈 장군이 ‘나는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인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며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하여 지금 우리가 에펠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항명을 하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에펠에 대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많은 사람이 에펠을 건축가로만 알고 있으나 에펠은 화학을 전공한 토목술자로 유럽의 많은 철교를 설계하고 건설 하였다. 이중 가장 유명한 철교는 가리비 고가교로 대형 아치가 철교를 떠받치고 있다.마치 에펠탑의 하부를 보는 듯하다. 에펠은 에펠탑 이후에 건축가라는 이름을 달았다. 또 그는 에펠탑 이전에 프랑스가 미국에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 철 구조물을 설계하였으니 프랑스와 미국의 상징물을 설계한 셈이다.에펠탑 건설시 프랑스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예상 공사비의 약 25% 정도였다. 에펠은 자신이 공사비를 대고 대신 향후 에펠탑이 유지될 20년간 관람비용 등을 자신의 회사에서 받는 것으로 계약을 하고 에펠탑을 지었으며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약 800일 만에 공사를 마쳤다. 물론 에펠탑은 만국 박람회 최고의 전시물이었으며 그 관람수입만으로 공사비를 다 충당할 수 있었다. 에펠탑은 원래 20년간 유지될 목적이었으나 통신이나 군사적 목적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철거를 면하였다. 에펠탑으로 성공한 에펠은 파마마 운하를 만들었으나 큰 손해를 입어 어려움을 겪었다. 에펠의 성공은 그의 정체성에 대한 후학들의 다툼을 유발했다. 화학자들은 에펠이 화학자라 했으며 토목가들은 에펠을 토목가라 하고 건축가들은 에펠은 건축가라 한다. 수학자들은 에펠탑의 곡선이 수학의 함수를 활용한 지수 그래프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한다. 내 주변에서도 간혹 토목을 하는 사람들이 건축가들에게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토목가가 만들었다며 토목의 예술성을 어필 한다. 각 나라마다 지방마다 상징물로 자리매김 된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있으며 그 홍보가치는 천문학적이다. 파리의 에펠탑과 개선문,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그리스의 파르테논, 스페인의 피밀리에 등. 미국의 러시모어 바위산의 대통령 조각상,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로의 예수상, 이집트의 피라미드, 칠레의 모아이석상, 중국의 만리장성과 천안문 등은 상징물인 동시에 어마어마한 관광자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무엇이 있을까?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의 이미지를 넘는 상징물이 없단다. 광화문 광장이 월드컵 응원과 촛불혁명으로 많이 보도되어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위에 열거한 다른 나라의 상징물에 비하면 지명도는 미미하다. 일부 건설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거를 뛰어넘는 국가적 기념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억지로 상징물을 목적으로 만들 필요야 없겠지만 국가적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고려해볼만 하다. 꼭 대형 구조물이 아니어도 된다. 파리의 에펠탑을 비롯한 상징물들은 모두가 스토리가 있다. 어떤 것은 예술성에서 어떤 것은 규모에서 어떤 것은 상징성에서 유명해졌지만, 공통점은 스토리가 입혀진 홍보가 이런 가치를 만들어냈다. 특히 에펠탑은 에펠탑 광장을 각종 문화행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에펠탑의 사진이 계속 생산되고 홍보된다. 한국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많은 유적이 있다. 건축물로서 파르테논과 비교되는 종묘, 조각물로서 세계 어느 것에도 손색없는 석굴암, 소실되고 없지만, 황룡사 대탑 같은 조형물들은 충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알릴만 하다.몇 달 전 BTS의 한 멤버가 불국사 등 우리 문화유적을 방문 사진을 올렸다는 기사를 보며 나라에서 할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체계적인 연구와 홍보를 위해 정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에펠탑의 1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는 상징물이 아직 없음을 아쉬워하며 돌아보게 된다.
  • 애완견 데리고 출근한 유치원장…법원 “징계사유 인정” 왜

    애완견 데리고 출근한 유치원장…법원 “징계사유 인정” 왜

    “보호자 위탁 받은 원생 안전 보호하고 충실한 교육이 유치원의 역할” 유치원 원장이 애완견을 데리고 유치원에 지각 출근한 데 대해 법원이 ‘안전관리 소홀’에 따른 징계 사유가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개의 목줄을 채웠다고 해도 원생과 교직원들이 불안을 느낀데다 무단 지각에 따른 업무 공백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3부(문용선 부장판사)는 유치원장 A씨가 경기도교육감을 상대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교육공무원인 A씨는 한 유치원의 원장으로 근무하던 중 무단으로 늦게 출근하고, 애완견을 데리고 출근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직원들의 지각을 적발하지 못해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낸 A씨는 애완견과 함께 출근하고, 직원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점은 징계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다퉜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이런 징계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애완견을 데려올 때 목줄을 채우고 케이지에 넣는 등 안전장치가 돼 있었다고 해도, 애완견이 낯선 환경에 노출돼 공격성을 보임으로써 유치원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또 “감사결과 실제로 유치원 교직원들이나 원생들이 애완견 때문에 불안감을 느낀 것이 사실로 보인다”면서 “이는 유치원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원장으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직원들의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도 징계 사유로 인정되고, 이중징계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이렇게 인정된 징계 사유들을 종합하면, 감봉 3개월 역시 지나치게 무거운 징계가 아니라고 재판부는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야기한 업무의 공백과 증대시킨 안전사고의 위험성은 원생들에게 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서 “이로써 영향을 받을 원생과 교직원의 규모까지 고려하면 비위의 정도가 결코 약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보호자의 위탁을 받아 원생을 안전한 환경에서 보호하면서 충실히 교육하는 것이 유치원의 역할”이라면서 “역할에 반하는 비위에 대해 징계해 유사 사례를 방지하려는 공익이 A씨가 입게 될 불이익보다 크다”고 밝혔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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